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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계절
뜻밖의 계절
1장 선택 사항
2장 이름
3장 공정한 대우
4장 금
5장 한 걸음
6장 반성문
7장 소문
8장 생각 없는 사람들
9장 사랑
10장 퍼즐
11장 후회
12장 살아남는 방식
13장 두 부류의 사람
14장 각자의 사정
작가의 말
4교시가 끝날 때까지 나는 기절한 듯 잤다. 중간중간 담당 과목 선생들
이 깨울 때도 있었지만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곧바로 다시 잤다. 그럴 때
마다 주위 애들이 내 몸을 흔들었다. 내 의식은 현실과 꿈 사이를 이리저
리 배회했는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내 의식이 또렷하게 현실로 돌아온 건 점심시간 때였다. 주변을 둘러보
니 교실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3분단 맨 앞자리에 모여 있는 여자 애들
몇 명과 4분단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 애가 전부였다. 나는 숨
을 길게 내뱉고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자리에 모여 있던 애들 중 한 아이가 맨 뒤에 혼자 있는 여자 애에게
살갑게 말했다.
“밥 안 먹어?”
“아, 응……”
“같이 가자.”
“아, 아니야.”
같이 먹자고 권하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
다. 나도 교실을 빠져나와 1층에 있는 급식실로 내려갔다.
나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교실로 올라오자마자
엎드렸다. 5교시부터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야만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잠을 깨우지 않는 선생이 들어와 5교시 내내 푹 잘 수 있었다.
6교시 특활 시간에는 담임이 수업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자리를 바꾸겠
다고 했다. 어차피 좁은 교실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는데
도 반 애들은 상당히 좋아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잠을 못
자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은 자리를 어떻게 바꿀지 상의하다가 늘 똑같은 제비뽑기로 결정
을 내렸다. 한 아이가 담임을 도와 준비를 끝내자 이번에는 통을 몇 분단
부터 돌릴지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각 분단의 대표들이 가위바위보를 했
다. 지루한 가위바위보가 끝나고 통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분
단은 세 번째였다. 모두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통이 돌아가는 걸 지켜봤
다.
나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몇 개 떠 있었다.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있을 때 통이 내 책상 위
로 왔다. 나는 접힌 종이를 하나 뽑았다. 번호를 확인하니 자리가 크게 바
뀌지 않았다. 한 칸 뒤로 가면 끝이었다.
제비뽑기가 끝나자 담임은 교체된 자리로 조용히 이동하라고 했다. 하
지만 애들은 요란법석을 떨며 자리를 옮겼다. 책상을 마구잡이로 밀면서
다른 책상과 부딪치게 만드는 애들도 있었고, 비키라며 소리를 질러대는
애들도 있었다. 자리가 거의 정리됐을 때쯤 나는 책상을 조금 뒤로 밀어
이동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엎드리려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내자.”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내 짝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까 혼자 있던 여자
애에게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던 아이였다. 나는 고개를 반쯤 끄덕
이고 다시 엎드리려고 했다.
“같은 반 된 지 한 3개월 됐는데 너랑 한마디도 안 한 것 같아. 그치?”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내 이름은 알지?”
“몰라.”
“진짜 몰라?”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반 친구 이름을 몰라?”
“왜 알아야 하는데?”
“어?”
나는 숨을 내뱉고 엎드렸다.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는 게 귀찮아졌기 때
문이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 자야 했다.
7교시가 끝나고 갈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물을 마시러 나가는데 누가
내 팔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내 짝이 서 있었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그 아이를 쳐다봤다.
“아까 말을 왜 그렇게 해?”
“무슨 말.”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없어.”
“그런데 왜 그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내 선택 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
지 않고 정수기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그 애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
지 않았다.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