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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연구 48집 (2018.3.10)
불교연구 48집 (2018.3.10)
48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2018. 2
제48집 佛敎硏究 2018. 2
目次
[인도불교]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2.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
IV.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이해
1. vastu의 의미
2.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해석
V. 결어
[동아시아불교:한국]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3. 중국 전승의 의미
Ⅲ. 조선에 전래된 筆削記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3. 筆削記의 私記
4. 조선 전래의 의미
Ⅳ. 일본에 전래된 筆削記
1. 筆削記의 간행
2. 筆削記의 주석서
3. 일본 전래의 의미
Ⅴ. 결론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박부자 ··············································· 203
Ⅰ. 서론
Ⅱ. 삼계의 분류와 제3계불법
1. 삼계의 분류와 구조
2. 제3계불법
Ⅲ. 삼계교의 불타관
1. 보법의 사불
2. 普眞普正佛
Ⅳ. 결론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 -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교감분석을 토대로/박은영(지현) ···················· 237
Ⅰ. 서론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2. 제3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3. 제4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Ⅲ. 결론
6 ∙佛敎硏究 제48집
[특별기고]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2018. 2
Bulgyo-Yongu
불교연구 제48집(2018), 9~40쪽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
한상희* 1)
Ⅰ. 들어가는 말
Ⅱ. 니까야의 믿음
1. 믿음의 특성
2. 예류자의 믿음
Ⅲ. 아라한의 믿음
1. na khvāha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2. assaddha
Ⅳ. 나오는 말
요약문
본 논문은 아라한을 나타내는 용어 중의 하나인 ‘assaddha(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의미를 명확히 하여, 아라한이 믿음을 갖추
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를 위해 니까야에서 믿음이 의미하는 바를 규명하고,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견해를 보이는 선행연구에 인용된 경전의 내용을 검
토하여 ‘assaddha’의 의미를 밝혔다.
니까야의 믿음은 정서적인 성격을 본질로 하면서 스스로의 지혜
에 의한 담마의 실현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지적인 특성을 띠
고 있다.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깊어질수록 믿음
은 더욱 확고해지는데, 어떠한 단계의 믿음이든 그 대상은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로 동일하며, 삼보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믿음이 없다’는 말은 ‘붓다
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선행연구
에서 아라한이 ‘assaddha’임을 이끌어내는 근거로 들고 있는 경전들
이 실제로 나타내는 바는, 어떠한 담마에 대해 스스로의 지혜와 경
험을 통한 확신이 있으므로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그 담마를
받아들여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여기에 붓다에 대한 믿
음이 없다는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assaddha’는 니까야상의
일반적 의미로서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담마를 성취하였으므로 단지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사람, 즉 그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
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라한은 ‘assaddha’인 것이며, 아라한
에게 붓다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게 갖추어져 있다.
주제어 :
믿음이 없는 사람(assaddha), 믿음(saddhā), 지혜(paññā), 아라한,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aveccappasāda)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1
Ⅰ. 들어가는 말
불교에서 믿음(saddhā)은 깨달음을 향한 실천 수행에서 가장
우선적이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할 덕목으로, 붓다의 가르침
을 듣는 일에 대한 의욕과 수행의 결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다.1)
니까야상의 대부분의 수행의 과정은 믿음에서 시작되어 지혜를
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는데,2) 믿음에 의해 붓다의 가
르침을 듣는 일에서 시작된 수행은 도(道)와 과(果)의 획득을 이
루며 마침내 최고 성자인 아라한과의 성취로 이어진다.
니까야에는 아라한에 대한 표현으로 ‘assaddha’라는 용어가 등
장한다. 이것은 ‘a + saddha’에서 만들어진 말로 문자적으로 ‘믿음
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데3), 이로 인해 몇몇의 선행연
구에서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경향이 있
다. 자야띨레께(Jayatilleke, K. N)는 믿음은 지혜보다 열등하며 믿
음에서 시작되어 지혜에 이르는 수행과정에서 믿음이 마지막에
지혜로 대체되기 때문에 아라한이 ‘assaddha’라고 일컬어지는 것
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4) 후지타 코타츠(藤
1) e.g. MN. I. 480; Ⅱ. 173: “믿음이 생겨난 사람은 [스승에게]가까이 다가가
고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존경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귀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가르침을 듣고 듣고서 가르침을 지닌다 ... 노력하는 사람
은 몸으로 최상의 진실을 체득하고 지혜에 의해 그것을 통찰하여 본다
(saddhājāto upasaṅkamati, upasaṅkamanto payirupāsati, payirupāsanto
sotaṃ odahati,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sutvā dhammaṃ dhāreti …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2)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믿음이 처음에 주어지는 용례에 대해서는
Jayatilleke(1963), 396; 藤田宏達(1992), 93-100를 참조하라.
3) ‘saddha’는 본래 여성형 명사인 ‘saddhā’가 남성형 명사(manussa 등)를 수
식하는 형용사의 역할을 하며 남성형 명사가 생략된 형태로 남은
bahuvrīhi(소유복합어)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4) Jayatilleke(1963), 397-399.
12∙佛敎硏究 제48집
5) 藤田宏達(1992), 101.
6) 4예류지란 ‘예류자가 갖추는 네 가지 요소’로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하
여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aveccappasādena samannāgato)과
성자들이 즐거워하는 계를 갖추는 것(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이 가운데 처음 세 가지 믿음이 예류자가 갖추는 믿
음을 나타낸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다룬다.
7) DN. Ⅱ. 82: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 대해 이렇게 청정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깨달음에 대해서 세존보다 더 뛰어난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
전에도]없었고 [앞으로도]없을 것이고 지금도 없습니다(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 idaṃ
sambodhiyan ti).”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3
assaddha
Ⅱ. 니까야의 믿음
1. 믿음의 특성
선행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져 있듯이, 빠알리 문헌의 믿음에는
정서적(affective) 능동적(conative)측면과 지적(cognitive) 측면
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 있다.8) 믿음의 정서적 측면은 “그는 여래
에 대해 충분한 믿음이 있고 충분한 애정이 있다(tathāgate c’assa
saddhāmattaṃ hoti pemamattaṃ hoti)”9)와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고 신심이 적고 애정이 적고 청정한 믿음이 적다(ekacco
puggalo ittarasaddho hoti ittarabhatti ittarapemo ittarappasādo
)”10)와 같이, 믿음(saddhā)이 애정(pema) 신심(bhatti) 청정한
믿음(pasāda) 등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술어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나란히 등장하는 용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pasāda’는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며 고요한 기쁨이나 만족을
느끼는 심경을 나타내며,11) ‘saddhā’와의 동의어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12) 이 밖에도 “여래에 대해 믿음을 얻는다(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13)와 같이 믿음의 대상으로서 ‘붓다’가 설해
진 용례에도 믿음의 정서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한편, 믿음의 지적 측면은 그 기반에 지혜가 작용하는 용례에서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옥깐띠까상윳따(Okkantikasaṃyutta)
14)의 경전들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십이처와 오온 등의 무상
8) Jayatilleke(1963), 387; 舟橋一哉(1952), 198; 藤田宏達(1992), 139-140.
9) MN. I. 142, 444, 479.
10) AN. Ⅲ. 165; Pp. 65.
11) 藤田宏達(1992), 107.
12) ‘pasāda’가 ‘saddhā’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용례는 藤田宏達(1992), 106
-110에 잘 설명되어 있다.
13) DN. I. 63; MN. I. 179, 344; Ⅲ. 134.
14) SN. Ⅲ. 225-228.
14∙佛敎硏究 제48집
2. 예류자의 믿음
이미 언급했듯이, 예류자의 믿음은 4예류지에서 볼 수 있다. 4
예류지란 ①붓다에 대해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②담마에 대해 확고하
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③상가에 대해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④성자들이 즐거워하는
계를 갖추는 것(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으로 구성되는
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이 신해탈자라고 불린다(idha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as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e c’assa saddhā niviṭṭhā hoti mūlajātā patiṭṭhitā. ayaṃ vuccati
puggalo saddhāvimutto).”(원문의 밑줄 필자 삽입, 이하 동일)
24) e.g. AN. Ⅲ. 326: “비구들이여,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 견고한 애정을
가진 자, 깊고 청정한 믿음을 갖춘 자는 여래 혹은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하여 간다(yo ca kho bhikkhave tathāgataṃ vā tathāgatasāvakaṃ vā
dassanāya gacchati niviṭṭhasaddho niviṭṭhapemo ekantagato
abhippasanno).” 예류자의 믿음인 ‘3예류지’(본문Ⅱ.2참고)를 내용으로 하
는 문맥에서 ‘aveccapasāda’대신 ‘ekantagato hoti abhippasanno’라는 표
현이 사용된 용례가 있으므로(e.g. SN. V. 378) ‘깊고 청정한 믿음을 갖
춘 자(ekantagato abhippasanno)’는 예류자 이상의 성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표현은 믿음(saddhā)과 애정(pema)에 ‘niviṭṭha(확립되
어 있다)’가 결합된 용어와 동의어로 사용되어 흔들림 없이 확립된 믿음
을 가진 상태를 나타낸다.
18∙佛敎硏究 제48집
Ⅲ. 아라한의 믿음
후지타와 자야띨레께가 아라한이 ‘assaddha’인 것이 당연하다는
견해를 가지는 것은, 지혜가 믿음보다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아라
한은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
나33) 수행의 최종 단계에서 믿음이 지혜로 대체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34) 이 경우 ‘assaddha’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음이 없
는 사람’을 뜻하며, saddhā의 일반적 쓰임을 고려했을 때 이 용어
는 붓다와 삼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견해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혜가 믿음보다 우월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로 각각 상윳따니까야의 뿝바꼿타까
숫따(Pubbakoṭṭhakasutta) 와 니간타나따뿟따숫따(Nigaṇṭhanāṭa
puttasutta) 를 들고 있다. 이 두 경전에는 공통적으로 “저는 세존
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na khvāha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라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은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어떠한 담마에 이른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표면적으로만 해석할
경우 지혜를 갖추면 믿음은 필요하지 않다 등의 이해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이해는 ‘assaddha’의 의미에 오해를 일으킬 수 있
다. 이 장(章)에서는 위의 두 경전을 비롯하여 이 문장이 포함된
33) 藤田宏達(1992), 101: “아직 지혜에 의해 알지 못하고 체험적으로 파악하
지 못한 자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성취한 자는 어떠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붓다에 대한 믿음도-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의
미에서 보자면 해탈자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이미 오래된 시구(詩句)에는 그러한 의미의 ‘불신’(assaddha; na saddho)
이 설해져 있다.”
34) Jayatilleke(1963), 399: [삼명(tevijjha, 三明)에 대한 언급 후] “At this
stage his faith or belief with which he started is replaced by direct
personal knowledge. It is therefore not surprising that the Arahant is
described as “one devoid of faith”(assddho).”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3
1) 시하세나빠띠숫따(Sīhasenāpatisutta)
우선 살펴볼 이 경전은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는
다(na ...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의 의미를 매우 잘 보여
준다. 시하(sīha)라는 장군은 붓다에게 눈에 보이는 보시의 결과에
대해서 질문한다. 붓다는 보시의 주인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네 가지 결과와 사후 좋은 곳(善處)에 태
어나는 내세의 결과가 있다고 설법한다. 이 설법을 듣고 시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눈에 보이는 보시의
결과에 저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 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하는 사람, 보시의 주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친근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그러나 세존이시
여, 세존께서 저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 [즉] ‘시하여, 보시하는
사람, 보시의 주인은 몸이 해체되는 죽음 후에 좋은 곳, 천상계에 태어
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 경우 저는 세존에 대
한 믿음에 의해 이릅니다.35)
37) SN. IV. 298: saddahasi tvaṃ gahapati samaṇassa gotamassa atthi
avitakko avicāro samādhi atthi vitakkavicārānaṃ nirodho ti. na
khvāhaṃ ettha bhante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tthi avitakko
… nirodho ti.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7
2. assaddha
IV. 나오는 말
니까야의 믿음은 절대자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맹목적인 신앙
심과는 달리, 정서적인 성격을 본질로 하면서 스스로의 지혜에 의
한 담마의 실현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지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깊어질수록 믿음은
더욱 확고해지는데, 그 정도에 따라 나누어지는 믿음의 단계 가운
데 가장 확고한 형태의 믿음은 예류자가 갖추는 믿음이다. 그렇지
만 어떠한 단계의 믿음이든 그 대상은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
로 동일하며, 삼보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
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믿음이 없다’는 말은 ‘붓다를 비롯한 삼
보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자야띨레께와 후지타는 믿음보다 지혜가 뛰어나다는 전제하에
믿음에서 시작하여 지혜의 획득으로 끝나는 수행의 과정에서 최
종적으로 믿음이 지혜로 대체되거나, 지혜를 갖춘 자는 믿음을 필
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이 ‘assaddha’라는 견해를 보인다.
이 경우의 ‘믿음’은 수행의 첫 단계에 위치하며 지혜와 대비되는
것으로, 니까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 외의 다른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assaddha’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아라한은 붓다에 대한
믿음조차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예류자의 단계에서
확고해진 믿음이 아라한까지 지속적으로 갖추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교설을 찾을 수 있음은 물론, 다섯 가지 능력의 완성을 통해
서도 아라한이 믿음을 갖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자야띨레께 등이 아라한이 ‘assaddha’임을 이끌어내는 근거로
들고 있는 경전들은 믿음보다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지혜를 갖
추게 되면 믿음이 이 지혜로 대체되거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
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나타내는 것
은 어떠한 담마에 대해 스스로의 지혜와 경험을 통한 확신이 있
∙佛敎硏究 제48집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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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ua, B. M.(1931), “Faith in Buddhism” in Buddhistic Studies,
38∙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A Study on the meaning of ‘assaddha’:
does not Arahant possess saddhā?
Han, Sang Hee
Tokyo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meaning of
‘assaddha’ (one who does not have faith) which is one of
the terms that are descriptions of Arahant and to show
whether Arahant has faith(saddhā) or not. For this study, I
first identified what faith means in the Nikāyas through the
characteristics and aspects of faith. Then I clarified the
meaning of ‘assaddha’ by examining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which are quoted in the precedent studies which
show that Arahant has no faith.
Faith in the Nikāyas is affective in nature and it is
based on the realization and experience of Dhamma by
wisdom(paññā) of oneself, so it has a characteristic of
intelligence. Because it is based on wisdom, as wisdom
deepens, faith becomes firmer. In any stage of faith, the
object of faith is tiratana that is made up of Buddha,
Dhamma, and Saṅgha. And faith in tiratana results in faith
in Buddha. Therefore, the meaning of ‘no faith’ in the
Nikāyas means that there is no faith in Buddha and
tiratana.
Even though the precedent studies use the scriptures as
the basis to indicate that Arahant is ‘assaddha’ by
interpreting the scriptures as wisdom is better than faith
and, when one possesses wisdom, faith is replaced by this
wisdom and faith is not needed, the scriptures do not
40∙佛敎硏究 제48집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3 - 02. 09 | 게재확정 2018. 02. 09
불교연구 제48집(2018), 41~75쪽
이은정** 56)
Ⅰ. 들어가는 말
Ⅱ. 연기와 십이지분의 불가분성
Ⅲ. 괴로움과 연기
Ⅳ. 나가는 말
요약문
한국불교는 연기 정형구에 근거하여, 연기설을 상의상관적으로 해
석하는 것이 주류적 경향이다. 김동화 이래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연기상의설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불교에 한해서는
잘 못 이해된 것이다. 상의상관적 해석은 사물일반에 대한 언급으로
서의 성격이 강하며 사물에 대한 법칙성으로, 인과원리에 대한 설명
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이해가 연기 정형구와
십이연기를 구분하여 접근한 결과로 파악하며, 정신적 조건화의 과
정이라는 연기 본연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한
다. 연기의 가르침은 일반 사물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조
건화의 과정에만 연관되어 있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기의 지분들과 분리 되
어 있지 않다. idappaccayatā는 연기와 동의어로 나타나며, idaṃ이
가리킨 것은 바로 12지분에 속하는 각각의 지분들이다. 연기의 특성
은 곧 십이연기의 특성이며, 십이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
움의 발생과 소멸의 과정에만 관여되어 있다. 물론 연기의 지분이 12
가지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에 니까야에서는 12지분 연기에서부터 2
지분 연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연기의 가르침 또
한 정신적 조건화의 과정으로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관여한다.
그렇다면,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필자가 파악하건데 괴로움을 연
기의 가르침과 관련시킬 경우, 그 괴로움은 재생적 괴로움과 실존적
괴로움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연기에 대한 삼세양중인과적 접근 방식은 재생에 대한 괴로움을 해
명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8지, 5지, 4지 등 다양한 지분들로
구성된 연기의 가르침은 재생의 괴로움을 규명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실존적 괴로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니까야에서 괴로움으로 언급되는 ‘견해’,
‘오온’, ‘느낌’, ‘갈애’ 등은 실존적 괴로움에 관련된다. 실존적 괴로움
의 원인으로서 견해의 발생은 8지 연기로, 오온에 대한 집착으로 인
한 괴로움의 발생은 5지 연기로, 느낌으로 인한 괴로움의 발생은 4
지 연기로, 갈애로 인한 괴로움의 발생은 5지 연기로 드러난다. 이러
한 방식으로 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과
정을 규명한다.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은 재생의 괴로움과 더
불어 현재의 삶에 당면한 실존적 괴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실천
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주제어 :
초기불교, 연기, 십이지분, 괴로움, 견해. 오온, 느낌, 갈애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43
Ⅰ. 들어가는 말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글자 그대로 분석하면 ‘paṭicca
(조건으로 하여)’, ‘sam(함께)’, ‘uppāda(일어남)’가 된다. 그대로 직
역한다면 ‘조건으로 하여 함께 일어남’이다. 연기는 초기불교 이래
불교의 핵심교리로서 모든 불교학파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이
된다. 한국불교 학계에서 연기에 대한 해석은 크게 네 가지로 나
뉜다.1) 첫째, 유부(有部)의 삼세양중인과(三世兩中因果)설, 둘째, 유
식(唯識)의 유식연기설, 셋째, 중관(中觀)의 공(空)연기설, 넷째, 화
엄(華嚴)의 법계(法界)연기설이다.
연기의 가르침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2)라는 정형구로 설명되어지곤 한다. 한국불교는
이러한 연기 정형구인 ‘차유고피유 차기고피고 차무고피무 차멸고
피멸(此有故彼有 此起故彼故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에 근거하여,
연기설을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으로 해석한다. 김동화는 불교
학개론에서 ‘차유고피유 차무고피무’를 모든 사물들의 물질적 현
상과 정신적 현상의 공간적 관계성으로, 즉 공간적 논리성으로 파
악한다. 또한 ‘차기고피고 차멸고피멸’은 모든 사물들의 물질적 현
상과 정신적 현상의 시간적 관계성으로, 즉 시간적 계기성(繼起性)
으로 파악한다.3) 김동화 이래로 대부분의 불교서적에서 연기상의
설을 채택하고 있다.4)
그러나 이러한 연기의 해석이 초기불교에서도 타당한지에 대해
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연기의 초기 불교적 가르침을
1) 박태원(2015), 221.
2) SN.Ⅱ, 28,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 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
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 nirodhā idaṃ nirujjhati.
3) 김동화(1984), 104.
4) 박경준(1989), 125.
44∙佛敎硏究 제48집
속에서 설명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연기의 정형구는 yad idaṃ으로 제한
되어 곧바로 이어진 12지분들에 한정된다. 따라서 idaṃ은 12지분
들 각각을 가리킨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초기불교에서 연기의
가르침은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신이
작동하는 과정에 초점을 모은다. 그들은 정신이 존재를 조건짓는
방식을 표현한다. 연기는 정신작용의 분석과 관련되어 있고 정신
적 조건화의 다양한 과정을 확인하면서 각 지분들과의 관계를 드
러낸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필자는 연기 정형구와 십이연기를 구분하지 않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본다. 이어서 12지분들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살펴
보자.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지음이 …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
뇌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무명이 남김
없이 소멸하면 지음이 소멸하고 …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 슬픔, 육
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
가 소멸한다.36)
경전에서는 12지분 각각의 지분들에 대해 앞선 지분을 조건으
로 하여 뒤의 지분이 발생하며 마지막으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
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또한 같은 방법으로 앞선 지분이 소멸하면
뒤의 지분이 소멸하며, 각각의 지분들에 대한 설명을 모두 끝낸
36) SN.Ⅱ, 28, imasmiṃ sati idaṃ … imass' nirodhā idaṃ nirujjhati Ya
did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 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
manassū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
sa samudayo hoti. Avijjāya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nir
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佛敎硏究 제48집
54
Ⅲ. 괴로움과 연기
니까야(Nikāya)에서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duk
kha이다. 마크 엡스타인은 dukkha의 번역어인 suffering이 원어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dukkha에
내포된 의미는 ‘전반적인 불만족’으로, 즉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
하는 전반적인 불만족의 느낌이다. 첫 번째 근원은 불멸에 대한
환상이다. 두 번째 근원은 좋음과 좋지 않음에 대한 집착이다. 세
번째 근원은 자신의 인격에 대한 일반적인 불편함이다.42) 마크 엡
스타인의 이와 같은 분류는 사성제(cattāri ariyasaccani) 중의 첫
번째 진리에 해당하는 고성제(dukkhaṃ ariyasacca)의 사고팔고
(四苦八苦)43)에 배대된다. 먼저,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등은 불
멸에 대한 환상을 채워줄 수 없기에 불만족의 느낌이다. 두 번째,
싫어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과 원하
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은 좋음과 좋지 않음에 대한 집착에서
42) 마크 엡스타인, 전현수·김성철 옮김(2008), 67.
43) SN.Ⅴ, 421 ; 각묵스님(2013d), 385,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
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
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
더기 자체가 괴로움이다.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v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
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saṅkhittena pañcupādāna
kkhandhā dukkhā.)
56∙佛敎硏究 제48집
pahātabbo.
55) AN.Ⅲ, 3 ; 대림스님(2012b), 52-53, Pañcahi bhikkhave dhammehi sa-
mannāgato bhikkhu diṭṭheva dhamme sukhaṃ viharati … sugati pāṭi-
kaṅkā. Katamehi pañcahi: bhikkhave bhikkhu saddho hoti, hirimā hoti,
ottappī hoti. Āraddhaviriyo hoti, paññavā hoti.
56) AN.Ⅴ, 187, diṭṭhi bhūtā saṅkhatā cetayitā paṭiccasamuppannā, yaṃ
kho pana kiñcī bhūtaṃ saṅkhataṃ cetayitaṃ paṭiccasamuppannaṃ ta-
daniccaṃ, yadaniccaṃ taṃ dukkhaṃ.
57) SN.Ⅳ, 70.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1
그들 모두는 여섯 장소[六入]를 통해 계속해서 일어나는 접촉[觸]으로
인해 [사견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런 느낌[受]이 그들에게 갈애[愛]를 생
기게 하고 갈애는 집착[取]을 생기게 하고 있음[有]은 태어남[生]을 생기
게 하고 태어남은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老死憂
悲苦惱]를 생기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꿰뚫어 안
다.58)
지금까지 살펴본 견해 경 , 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 범망 경 에는 괴로움으로서 견해를 설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
들은 8지 연기[여섯 장소-접촉-느낌-갈애-집착-갈애-있음-태어
남-늙음·죽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육내처에 속하는 눈·귀·코·혀·
몸·마음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제어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실어 나
르며, 여섯 장소를 통한 접촉으로 견해가 발생한다. 견해는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기에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붓다는 견해에 빠진 것을 독화살에 맞았으나 형이상학적 질문
에 모두 답하기 전까지 치료를 거부하는 것에 비유한다.59) 견해에
빠진 상황은 지금 현실에서 몹시 괴로운 상태이다. 독화살에 맞았
다면 시급하게 치료를 하여야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독을 치료하는 것과는 무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 몰두하
여 치료시기를 놓친다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58) DN.Ⅰ, 45 ; 각묵스님(2012a), 176-177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s
abbe te chahi phassāyatanehi phussa phussa paṭisaṃvedenti. Tesaṃ v
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
assupāyāsā sambhavanti. Yato kho bhikkhave bhikkhu channaṃ phass
āyatanānaṃ samudayaṃ ca atthagamaṃ ca assādaṃ ca ādīnavaṃ ca
nissaraṇaṃ 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imehi sabbeheva uttaritara
ṃ pajānāti.
59) MN.Ⅰ, 426-432.
62∙佛敎硏究 제48집
고 설한다.
이 외에도 괴로움에 대해 설해지는 경들 중에서 ‘갈애’ 지분과
관련된 경으로 살하 경, Sāḷha sutta , 대인연 경, Mahānidāna s
utta 등이 있다. 살하 경 에서는 난다까(Nandaka)존자와 미가라
의 손자인 살하와 뻬꾸니야의 손자 로하나가에게 “탐욕(lobho)”과
“성냄(doso)”과 “어리석음(moho)”은 해로운 법들이기에 받들어
행하면 괴로움이 생긴다고 설한 후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
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한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옛적에 나에게는 탐욕이 있었고 그것은
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내게 그런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 … 성냄이 … 어리석음이 … 없다. 그러므로 이것
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그는 금생에 더 이상 갈애
가 없고 고요하고 침착하고 행복을 경험하고 수승한 상태로 머문다.70)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어지면 금생 즉 ‘지금·여기’ 현실에서
더 이상 갈애가 생기지 않는다. 갈애가 생기지 않으므로 고요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갈애’ 지분과 관련된 연기는 5지 연기[갈애-
집착-있음-태어남-늙음·죽음]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대인연
경 에서는 ‘갈애’ 지분에 대해서 9가지 갈애71)가 연기의 가르침으
로 설해진다. 이러한 설명은 재생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현실
mmaṭṭho saṅkhaṃ nopeti vedaguti.)
70) AN.Ⅰ, 197 ; 대림스님(2012a), 475-476, So evaṃ pajānāti. Ahu pubbe l
obho, tadahu akusalaṃ so etarahi natthi, iccetaṃ kusalaṃ. … doso …
moho … natthi, iccetaṃ kusalanti. Iti s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
bbuto sītibhūto sukha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ī'ti.
71) DN.Ⅱ, 58 ; 각묵스님(2012b), 125-126, [1]추구(pariyesanā), [2]얻음(lābh
a), [3]판별(vinicchaya), [4]욕망(chandarāga), [5]탐착(ajjhosāna), [6]거머
쥠(pariggaha), [7]인색(macchariya), [8]수호(ārakkhā), [9] 몽둥이를 들
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
고 거짓말(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ṃtuvaṃpesuññ
amusāvādā):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7
Ⅳ.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필자는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이 정신
적 조건화에 연결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과정에만 관련되어 있
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
72) 슈미트하우젠, 안성두 번역(2008), 188.
73) SN.Ⅱ, 18 ; 각묵스님(2013a) 146-147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Ja
rāmaraṇassa ce bhikkhu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hoti,
diṭṭhadhammanibbāṇappatto bhikkhū'ti alaṃ vacanāya. … Jātiyā … B
havassa … Upādānassa … Taṇhāya … Vedanāya … Phassassa … Saḷ
āyatanassa … Nāmarūpassa … Viññāṇassa … Saṅkhārānaṃ … Avijjā
ya ce bhikkhu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hoti, Diṭṭhadha
mmanibbāṇappatto bhikkhūti alaṃ vacanāyāti.
∙佛敎硏究 제48집
68
약호 및 참고문헌
AN : Aṅguttaranikāya, PTS.
DN : Dīghānikāya, PTS.
MN : Majjhimanikāya, PTS.
SN : Saṁyuttanikāya,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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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정초 , 한국불교학제14집.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71
Abstract
A Consideration On The Issue Surrounding the
Paṭiccasamuppāda
-Focusing on Early Buddhism-
Lee, Eun Jung
Kyungpook National Univ.
Key Words :
early buddhism, dependent-origination, idappaccayatā, 12-links,
suffering, view, five aggregates, feeling, thirst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1 | 게재확정 2018. 02. 12
불교연구 제48집(2018), 77~106쪽
Ⅰ. 서언
Ⅱ. 금강경의 제작시기와 vastu의 용례
1. 금강경의 제작시기
2. 금강경의 vastu 용례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2.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
IV.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이해
1. vastu의 의미
2.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해석
V. 결어
요약문
vastu라는 말은 유가행파의 문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된
용어이다. 곧 유가행파의 사상적 입장을 나타내는 유가사지론이나
불교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에서도 이
vastu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개념으로 사용되고 있
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외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존재하는 사
물들이 가지는 각각의 vastu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외경
대상이 찰나적으로 생멸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승의로서 실재하
는 각각의 vastu의 힘에 의해 대상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
게 유가행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된 vastu
가 반야경전에서도 등장하고 있고, 특히 여러 반야경전들 가운데 후
대의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되는 금강경에서도 vastu의 용어는 나
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강경에서는 유가행파에서 보듯 긍정적인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해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의미의 용어로서 나타나고 있다. 곧 vastu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거나
vastu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서 무집착, 무소득의 공성의 의
미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vastu와 더불어 외계
대상 일반을 가리키는 법(法)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어 vastu와 동
일하게 집착해서는 안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집착의 대
상으로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vastu가 유가행파에서 철학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긍정적으로 수용된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것은 무집착, 무소득의 입장에서 일체의 개념적 분별을 떠
날 것을 강조하는 금강경의 입장에 대해 적어도 유가행파는 vastu
에 대해긍정적인 입장에서 의미를 규명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반야경의 입장에
대해 유가행파로서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대응하고자 한 의도도 있
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금강경에서의 vastu에 대한 입장은
후대 유가행파가 vastu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명케 하는 하나
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주제어 :
바스투, 법, 반야경전, 금강경, 유가사지론, 양평석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79
Ⅰ. 서언
불교의 교학전통에서 초기불교 이래 외계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법(法, dharma)이란 말이 있다.1) 곧 초기불교이래 사용되는
12처(處), 18계(界)의 용어에서 법(法) 또는 법계(法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12처란 우리의 주관적인 감관기능으로서 안이비
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이에 대응하는 외계의 대상으로서 색성향
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가리키며, 이중 법이란 의(意)의 대상이
되는 인식대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12처의 의의 대상으로서 법은
18계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의식계(意識界)
와 그 대상으로서 법계(法界, dharma-dhatu)를 지칭한다. 곧 법과
법계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의 대상인 외계의 대상일반을 가리키
게 된다. 이렇게 주관적 기능과 그에 대한 객관적 대상을 의미하
는 법 또는 법계의 용어는 불교철학의 전개 속에서 보다 깊이 있
는 고찰이 이루어진다.
불교철학의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사유는 외계대상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전개한다. 곧 외계의 대상도 따로 인간 밖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상에 표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주관적
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계의 대상은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상에 나타나는 일종의 개념으
로서 우리 인식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 인식이란 인식주체로서 의식이 인식대상으로서 표상화된 의식
대상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의식화된 대상을 인식하는 일
종의 자기인식(自己認識, svasaṃvedana)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인
1) 초기불교에서 법이란 말에는, 독일의 가이거(Geiger) 부부의 견해에 따르
면, (A) 법칙, 정당, 규준 (B) 교설 (C) 진실, 최고의 존재 (D) 경험적 사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高崎直道(1987), 405] 본고에서 사용하는 의미는
(D)의 의미로서, 주관적인 의식에 대비되는 대상일반의 의미로 사용한 것
이다.
∙佛敎硏究 제48집
80
2. 금강경의 vastu 용례
초기대승경전으로서 반야경전 일반에서도 vastu의 용어는 나타
나고 있다.11) 범본의 소품반야경이나 대품반야경에 나타나는
vastu의 의미는 실재(entity), 사물(thing), 객관적 실체(objective
entity), 원인(cause), 특성(property) 등의 의미로 나타난다. 범본
금강경에서도 vastu는 등장하고 있지만12), 이 범본에 대한 7본
10) 渡辺章悟(2009),33.
11) Conze(1967), 346 : 여기에 나타나는 vastu 항목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vastu ; dngos po; entity, A ix 200, P.541a, AA-*, iv.1, gshi ;
thing , A, i 7, P.194, 265, AA viii 19*; objective entity, AA i 34, gshi;
v 14*; property, R xvii 5*, xxxi 10*; possession, P.437; entity, and,
cause; S x1463*, 1465*, 1466*(P-), 1466*, 1467*; objective existing
entity, Su vii 98b; objective basis, P 533b; see: puņyakriyā-v.”(여기의
약호는 범본의 반야경으로서 A : Aṣṭasāhasrikā; AA :
Abhisamayālaṅkāra; R : Ratnaguņasaṃcayagāthā ; S : Śatasāhasrikā ;
Su : Suvikrāntavikrāmiparipṛcchā를 가리킴)
12) Conze(1967)의 vastu항목에서 금강경에서의 용례는 필자가 본문에서
84∙佛敎硏究 제48집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의미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유가사지론은 대승 유가행학파의 기본전적으로 대략 4세기경
에 제작되어, 시기적으로는 금강경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
으로 보인다. 특히 이 유가사지론 안의 보살지(菩薩地) <진실
의품(眞實義品)>이나 <섭결택분중보살지(攝決擇分中菩薩地)>에서
는 이 vastu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나타나고 있다. 유가사지론
은 전체적으로 오랜 시기에 걸쳐 제작된 것이 밝혀지고 있어 이
vastu에 대해서도 유가사지론 내에서 그 고찰의 심천(深淺)이
나타나고 있다. 곧 보살지 <진실의품>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되
고 있는 개념인 vastu는 <섭결택분중보살지>에서 5사(事)의 개념
으로 더욱 세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보살지 <진실의품>에서는 vastu에 대해 “가설(假說)되
어진 것으로서 언어대상의 원인인 기체(基體), 가설되어진 것으로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9
야바라밀다경론송(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頌)에 대한 주석서이
지만, 주석의 내용상에서는 금강경의 전문이 거의 대부분 나타
나고 있다. 각각의 해당개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A) api tu khalu punaḥ Subhute na bodhisattvena
vastu-pratiṣṭhitena dānaṃ dātavyam,(다시 또 수보리여, 보살은
vastu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해야 한다.)
* 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다(不住於事者 謂不著自身)47)
B) evaṃ 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vastu에 집착한 자로서 보살이 보시를 행하는 것은 [어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실제로 진여법이 있는데 중생은 어찌하여 증득하지 못하는가.
게송에서 “지혜가 없어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으니,
그는 지혜가 없어 마음이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다.(衆生實有眞如法
何故不得 偈言無智以心住法故)48)
C) evam a-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vastu에 집착하지 않는 자로서 보살이 보시를 하는 것은 [사
람이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쳐 가지가지의 색을 봄과 같으니
라])
47) 大正藏 25권, No.1511, p.782, 중.(한글대장경 三法度論外 동국역경원간,
278, 참조.)
48) 大正藏 25권, No.1511, p.789 상.(한글대장경 三法度論外 동국역경원간,
314, 참조.)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9
V. 결어
vastu라는 말은 유가행파의 문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
된 용어이다. 곧 유가행파의 사상적 입장을 나타내는 유가사지론
이나 불교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에서
도 이 vastu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개념으로 사
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외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101
약호 및 참고문헌
Abstract
On the meaning of the word Vastu
in Vajracchedikā Sutra
Lee, Tae Seung
Uiduk Univ.
The word vastu is a term that has been used vital in
the literature of the Yogācāra. This vastu is also used as a
key concept to enable recognition of the object in
Yogācārabhūmi, which represents the ideological position of
the Yogācāra, and in Dharmakīrti’s Pramāṇavārttika, which
shows the peak of Buddhist philosophy. In other words, our
recognition of the external object can be attributed to each
vastu of the existing objects. Even if the external object is
instantly alive, it can be recognized by the force of each
vastu as the ultimate level. In this way, vastu, which is
used as a philosophical concept with an important meaning
in the Yogācāra, also appears in the Prajñāpāramita
literatures.
Especially in the Vajracchedikā Sutra,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influential in many Prajñāpāramita literatures,
the term vastu appears. However, in the Vajracchedikā
Sutra, it is not used as a positive concept as seen from the
Yogācāra, but it appears as a term of negative meaning that
should not be obsessed. It soon emerges as a notion that
emphasizes the meaning of emptiness, meaning that it
should not attach in vastu or obsessed with vastu. In
addition to this vastu, the term "dharma" refers to the
general meaning of external things, which is used in the
sense that it should not be attached with dharma in the
106 ∙佛敎硏究 제48집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1 | 게재확정 2018. 02. 12
불교연구 제48집(2018), 107~133쪽
Ⅰ. 머 리 말
Ⅱ. 뇌묵 처영의 행적
Ⅲ. 처영의 의승 활동과 佑世尊者
Ⅳ. 처영의 불교사적 위상
Ⅴ. 맺 음 말
요약문
뇌묵 처영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의승장이자 고승으로서 너무
도 뚜렷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의 생
몰연도에 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처영과 관계된 기존 학
계의 연구성과 역시 초라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처영의 생애와 그가 지니고 있는 불교
사적 위상을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본문에서는 먼저 금산사지, 亂中雜錄 등에 전하는 각종 자료
를 종합하여 처영의 행적을 살펴보았으며, 그의 의승활동과 관계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처영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행주대첩 이후에도
蛟龍山城을 수축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결과 그의 영정에
는 ‘세상을 도운 존자(佑世尊者)’라는 존호가 명기되어 있기도 하다.
처영은 이른바 서산대사의 4대문파를 열어간 門長에 속하지는 못하
였다. 하지만 그는 사명대사와 함께 서산대사의 2대제자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었으며, 이같은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
다.
주제어 :
뇌묵 처영, 의승군, 행주대첩, 佑世尊者, 금산사지, 난중잡록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09
Ⅰ. 머리말
Ⅱ. 뇌묵 처영의 행적
包光 金映遂(1884-1967)는 1943년 金堤郡金山面金山寺誌(이하
금산사지로 약칭함)를 편찬하였다. 그는 1635년 中觀 海眼
(1567-?)이 금산사사적을 편찬한 이후 300여 년만에 금산사 사
지를 다시 편찬한 셈이다. 해안의 금산사사적은 내용상 여러 오
류가 보이므로 지금까지 그 자료의 활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김영수의 금산사지 역시 해안의 금산사사적을
많이 따랐지만, 특히 근대기 이후부터 1943년 무렵까지의 금산사
역사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3)
김영수의 금산사지에서 가장 주목되는 사항은 역시 뇌묵 처
영과 관계된 내용이 아닐까 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처영
과 관계된 불교계 내부의 자료는 극히 영세하다. 그의 의승 활동
경력이나 불교사적 위상 등을 감안한다면, 처영과 관계된 행장의
편찬이나 立碑 또는 문집 편찬 등의 일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은 높
아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와 관련한 사례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금산사사적을 편찬한 해안이 처영의 외조카
이자 제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처영 관련 자료의 부재 현상
은 다소 의아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김영수는 금산사지
에서 몇 차례나 처영을 언급하고 있다. 그가 과연 어떠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이같은 내용을 수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이들 내용은 처영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면 김영수가 금산사지에서 언급한 처영
관련 내용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3) 김영수의 금산사지에는 혜덕왕사비의 음기를 처음으로 판독, 수록한 내
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해안과 김영수의 금산사 사지 편찬, 그리고 그것
이 지니는 불교사적 의의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
이 든다. 해안과 김영수의 금산사 사지는 아세아문화사에서 간행한 금산
사지(1983)에 원문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112 ∙佛敎硏究 제48집
시 기 처영의 행적
조정에서 승통을 설치하고 승군을 모집함.
1592년(선조 25) 7월 1일 이미 청허 휴정의 격문을 받은 관동의 유
정과 호남의 처영은 각각 승군을 일으킨
상태임(선조수정실록 26)
전라감사 권율이 군사 2만여 명을 거느리
1592년(선조 25) 9월 22일 고 勤王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갈 때 승장
처영이 그를 따름(난중잡록 2)
행주대첩의 전과가 알려지자 조정에서 처
1593년(선조 26) 2월 16일 영에게 정3품 관계에 해당하는 折衝將軍의
직을 내림(난중잡록 2)
원수 권율이 승의장 첨지 처영으로 하여금
남원의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함. 처영이
1593년(선조 26) 12월 25일 의령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교룡
산성에 주둔하며 수축함(난중잡록 3). 처
영은 7개월 만에 교룡산성을 준공함( 교룡
산성 공제루기 상촌선생집 23)
1594년(선조 27) 4월 처영이 이미 교룡산성을 수축하는 역사를
마침(난중잡록 3)
安信院 길이 험하여 닦기 어려우므로 洪世
1595년(선조 28) 7월 3일 恭이 산성의 승장 처영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닦게 함(난중잡록 3)
처영이 이순신을 찾아가 부채와 짚신 등을
1597년(선조 30) 6월 12일 선물하고 적과 관계된 일, 원균과 관계된
일 등을 이야기 함(난중일기초)
사명 유정이 보현사석가여래사리비 의 음
1603년(선조 36) 6월 기를 지음. 이 비의 문인 명단 都大禪師禪
判秩에 처영의 이름이 보임( 보현사석가여
래사리비 )
1612년(광해군 4) 4월 16일 사명당집의 발문을 지음(사명당집)
청허당집을 발간함. 이 책의 助緣秩에 처
1630년(인조 8) 3월 영의 이름이 보임(청허당집)7)
해남 표충사 건립이 완공된 이후 첫 번째
1789년(정조 13) 4월 27일 제향을 봉행함. 처영은 청허 휴정, 사명 유
정과 함께 이 사당에 배향됨(대둔사지)
묘향산 수충사에 사액 현판이 내려짐. 처
1794년(정조 18) 영은 청허 휴정, 사명 유정과 함께 이 사당
에 배향됨
116 ∙佛敎硏究 제48집
Ⅳ. 처영의 불교사적 위상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처영은 후대인들에게 ‘우세존자’라는
존호로 불리어졌다. 이 존호는 역시 ‘의승장 처영’으로서의 위상이
강조된 표현이므로, 이를 통해 그가 지녔던 사문상을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영은 의승장이기 이전에 불교탄압과 외침
이 극에 달했던 시대를 살다간 한 사문이었다. 출가 사문으로서
처영은 과연 어떠한 자취를 남겼으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의는
무엇인지, 여기서는 먼저 휴정의 대표적 문도로서 지니고 있는 처
영의 위상과 관계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휴정과 관계된 자료를 열람하다 보면, 유정과 처영 두 제자의
이름이 함께 보이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휴정의
의승군 봉기와 관계된 자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휴정의 입적 장
면과 관계된 자료이다. 예를 들면 “격문을 보내어 제자인 관동의
유정과 호남의 처영을 장수로 삼아 각기 본도에서 군사를 일으키
게 하여 수천 명을 얻었다”22), “글을 써서 松雲과 처영에게 부친
뒤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팔십 오세요,
법랍이 64세였다”23)와 같은 내용이다. 이로 보면 처영은 유정과
함께 마치 휴정의 2대 제자처럼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묘향산수충사비 에는 “제자는 70여 인인데, 그 중에서 유정과 처
영이 가장 뛰어났다”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22)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임진(1592) 7월 1일 무오.
23) 李廷龜, 청허당휴정대사비 , 한국고승비문총집,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3
Ⅴ. 맺 음 말
뇌묵 처영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의승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다. 해남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에 휴정, 유정과 함께 配享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지니고 있는 의승장으로서의 위
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특히 權慄과 함께 행주대첩으
로 불리는 역사적 승전을 이루어냄으로써 한국전란사의 위인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영과 관련한 우리 학계의 연구는 지극
히 부진한 상태이며,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하여 작성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먼저 처영의 행적 관련 내용을 검토해 보았다. 이를
위해 김영수의 금산사지에 실려 있는 처영 관련 내용을 소개하
였는데, 이 자료를 과연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처영의 의승군 활동
은 비교적 다양한 자료에 전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특히 亂中
雜錄에 수록된 내용을 주목하면서 그의 의승활동을 연표 형식으
로 구성하여 제시하였다.
처영은 행주대첩 이후 남원 蛟龍山城의 수축과 관련한 일을 주
도하였다. 교룡산성 수축과 관련한 내용은 申欽의 蛟龍山城控制樓
記 에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신흠은 처영을 ‘英師’로 표현하면
서 그를 의승장으로서 뿐 아니라, ‘도의 작용을 일으켜 남에게 이
익을 주는’ 승려로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기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9
약호 및 참고문헌
금산사지(1983), 아세아문화사 한국사지총서
금산사 사지-미륵도량 모악산(2005), 금산사
Abstract
The Life of Noemuk Cheoyeong and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Kim, Sang Young
Jungang Sangha Univ.
At first glance, the status of Noemuk Cheoyeong in the
Buddhist history is apparently solid, as a famous general of
monk soldiers and a high monk during the middle Joseon
dynasty. However, the scholars have even not secured any
information on the years of his birth and death. Also, it is
hard to find previous works related to Cheoyeong.
Recognizing the scarcity of research as a problem, this
study aims at understanding the life of Cheoyeong and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This paper first surveyed various kinds of records
including the Chronicle of Geumsansa Temple (金山寺誌)
and Nanjung Japnok (亂中雜錄) to investigate the life of
Cheoyeong, especially concerning the matters related to his
activities as a general of monk soldiers. Cheoyeong led to
victory the Siege of Haengju, which was one of the three
most significant battles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He rendered military merits even after the battle,
starting the construction of Gyoryongsanseong Fortress (蛟
龍山城). As a result of his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the
commemorative portrait of him after the death included a
eulogistic title ‘Venerable Monk who Helped the World (佑世
尊者).’ Cheoyeong was not included as one of the so-called
Mun Leaders (門長) who founded the four major sects that
followed the teachings of Seosan the Great Zen Master.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33
Key Words :
Noemuk Cheoyeong, General of monk soldiers, The Siege of
Haengju, Venerable Monk who Helped the World (佑世尊者),
The Chronicle of Geumsansa Temple, Nanjung Japnok
투고일 2018. 01. 30 | 심사기간 2018. 01. 30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0
불교연구 제48집(2018), 135~168쪽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역사의 단면 -
김광식* 34)
Ⅰ. 서언
Ⅱ. 만당의 결성, 중앙에서의 활동
Ⅲ. 만당, 다솔사에서 활동
1. 다솔사 불교전문 강원
2. 光明學院의 설립
3. 다솔사 ; 민족의식 창출, 민족운동 거점
Ⅳ. 결어
요약문
본 고찰은 다솔사(경남, 사천)와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로 알려진
卍黨과의 상관성을 정리한 글이다. 다솔사는 1,500년 역사를 갖고 있
는 고찰이지만, 근대기에 와서는 불교 독립운동의 관점에서도 중요
한 대상이 되었다. 그는 최범술이 주지로 있으면서 전개된 역사이다.
최범술은 다솔사가 위치한 사천 출신으로 3·1운동 참가, 해인사
주지, 제헌국회 의원, 불교 총무원장, 해인대(현, 경남대) 설립자 등
다양한 행보를 간 인물이다. 그는 일제하에는 한용운을 추종하면서
불교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집행위원장
과 만당의 당원이었다. 그런데 만당은 내분으로 1933년 자진 해소되
었다.
그러나 만당 당원들은 최범술이 주지로 있었던 다솔사에 왕래를
하면서 민족의식을 유지하였다. 당원이었던 김법린, 허영호가 다솔사
에 머물기도 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 다솔사는 불교전문 강원과
광명학원을 설립하여 학승과 지역 어린이를 교육시켰다. 강원에는
동양학자인 김범부가 있었고, 광명학원에는 김범부의 동생인 소설가
김동리가 교사로 있었다.
그리고 다솔사는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문학인, 지식인, 승려 등이
왕래하는 경남지방의 명소가 되었다. 즉, 민족의식을 창출하고, 민족
운동을 추진하는 거점이었다. 그래서 일제 경찰은 늘 감시를 하였다.
이런 전제하에서 다솔사는 민족운동, 항일의 역사가 짙게 배어 있다.
본 고찰은 이런 역사와 문화를 자료, 증언에 의지하여 정리한 글
이다. 이 글이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를 비롯한 근대기 지식
인 연구와 다솔사의 근대사 정리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주제어 :
다솔사,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만당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37
Ⅰ. 서언
多率寺는 경남 사천의 봉명산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지증왕대
에 창건된 다솔사는 자장, 의상, 도선 등의 고승과 인연이 있는 명
찰로 1,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하에서는 해인사 말사이
었지만, 현재는 범어사 말사이다. 그런데 근현대기에는 해인사 3·1
운동의 주역, 독립운동가, 제헌국회 의원, 국민대 이사장, 해인대
설립자, 한용운의 제자,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장, 차문화의 개척
자 등 다양한 행적을 걸어갔던 崔凡述(1904∼1979)이 주지로 있었
다.1)
최범술은 1928년부터 1976년까지 다솔사 주지를 하였다. 그래
서 다솔사에는 최범술이 존경한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이었던 萬
海 韓龍雲과 관련된 역사도 있다. 그 역사의 중심에 卍黨이 있다.
만당은 1930년대 불교계의 항일 비밀결사체로 활동하였던 독립운
동 단체이었다. 만해를 추종하였던 최범술을 비롯한 불교청년들이
결성하였는데, 1930년대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불교 단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2) 1930년대 초반 만당 활동의 중심은 서울
이었지만, 1933년부터는 다솔사가 활동의 중심부가 되었다. 그래
서 다솔사에는 만당의 당원 뿐만 아니라 한용운과 친근한 독립운
동가, 애국지사, 지식인, 고승들이 운집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
다. 그곳에 거주한 인물에는 동양학의 대가로 지칭되는 김범부,
소설가인 김동리도 포함되었다. 김범부는 다솔사의 불교전문강원
에서 강의를 하였고, 김동리는 다솔사가 설립한 광명학원에서 강
의를 하면서 “등신불”이라는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모티브를 얻
었다. 때문에 근대 다솔사의 다양한 이야기는 독립운동, 불교사,
창작의 현장, 지성사 등에서 간과할 수 없는 자료이다.
1) 김상현(2013).
2) 박노준․인권환(1960), 373-376. 만당을 “불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독립투쟁 비밀결사단체”라고 최초로 개념 규정을 하였다.
138 ∙佛敎硏究 제48집
- 佛敎大衆化
이처럼 불교(종교)와 식민통치(정치)의 분리에서 보이듯 일제
사찰령 체제의 극복, 불교 교단의 운영의 정상화, 불교의 대중화
이었다. 그런데 강령에서 정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자체가 일제에
저항, 항일불교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성격은 만당의 선서문에
나온다.
보라! 3천년 法城이 허물어져 가는 꼴을!
들으라! 2천만 동포가 헐떡이는 소리를!
우리는 참을 수 없는 義憤에서 감연히 일어선다. 이 法城을 지키기
위하여 이 民族을 구하기 위하여!
向者는 同志요 背者는 魔拳이다. 團結과 撲滅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안으로 敎政을 확립하고 밖으로 大衆佛敎를 건설하기 위하
여 身命을 賭하고 과감히 전진할 것을 宣言한다.10)
만당 당원들은 입당 시에는 위의 선서문을 盟誓하는 마음으로
외워 암송하였다. 그리고 만당 강령의 실천을 위해 분투하였다.
당원들은 문서 기록을 남기지 않고 비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
였다. 당원은 18명으로 출발을 하였지만, 전국적인 인물을 검증하
고 입당을 시켜 80여명에 달하였다. 국외인 일본에서도 재일유학
생들 몇 명이 당원으로 포섭되었다. 그러나 지금 연구 보고된 인
물은 30여명만11) 알 수 있다.
이렇듯 출범한 만당은 만해를 黨首로 여기고12) 자문을 받으면
서 불교청년운동의 중앙조직체인 총동맹의 진두지휘,13) 교단 운
10) 위와 같음.
11) 김광식(1996), 268-269. 필자는 이 논고에서 25명을 제시했고, 추가 대상
자는 조종현(선암사), 이금암(건봉사), 이고경(해인사), 오제봉(의곡사),
도진호(쌍계사)이다.
12) 공식적으로 만해를 당수로 표방하지는 않았다. 후일 만당이 노출되면 만
해에게 피해(구속, 고문 등)가 갈 것을 우려한 것에서 나왔다.
13) 총동맹의 강령이 佛陀情神의 體驗, 合理宗政의 確立, 大衆佛敎의 實現이었
142 ∙佛敎硏究 제48집
파악하였다.
이후부터는 내가 활동하게 될 장소는 우리나라 안의 지방이 되었으
며 각 방면에 걸쳐 있는 인사며 사회단체와도 결연되어 있는 불교 중
심으로 기반을 둔 靑年運動者의 총수 노릇을 하여야 했다. 그리고 모
든 지도는 卍海 韓龍雲先生에게 받게 되었고 핵심체는 卍黨員들이었다.
도시와 산, 농촌 서울과 지방 산중 등 곳곳에 大本山이라는 것이 자
리잡고 있었다. 卍黨員들은 政敎分立 大衆佛敎의 擴張 을 부르짖었
다. 敎團 내에서는 친일파를 축출하고 대외적으로는 불교에 대한 일제
총독부의 정치적 세력을 배제하자는 것이 政敎分立 을 내세우는 우리
들의 의도였다.26)
불교청년운동의 책임자로, 한용운의 지도를 받으면서, 만당 당
원들과 함께 불교 교단내의 친일파 축출과 일제 세력의 배제를
임무로 인식하였다. 그는 한용운의 권고를 참고하여 식민지 불교
체제와 정면 대결을 작정하면서도, 만당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그
는 일본에서 투쟁을 해본 경험의 당사자로 만당이 발각될 것을
우려했다.27)
1933년 4월 중순, 그는 당원들을 소집하여 만당의 해소를 제안
하였다. 만당이 일제의 감시에 노출되면 당원들이 피체되고, 만당
이 지향하는 노선이 퇴진하여 민족불교 노선이 좌초될 것을 염려
한 것이다. 이런 최범술의 제의에 당원들은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만당의 해산을 선언하고, 총동맹의 집행부도 개편하였다.
Ⅲ. 만당, 다솔사에서 활동
1. 다솔사 불교전문 강원
최범술, 김법린, 허영호, 김범부 등은33) 다솔사에서 공동 생활을
31) 그의 자제인 조정래는 당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동순(2015), 667. 1932년
연보에 '만당 재무위원직을 맡다'로 서술되었다.
32) 조종현(1971), 49-50. 김광식(2016b), 206-211.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7
2. 光明學院의 설립
1930년대 후반, 다솔사에는 특별한 교육 시설이 등장하였다. 그
는 광명학원이었다. 이 학원은 전술한 다솔사 강원이 창건된 이후
에 개설되었다. 1933년 무렵, 다솔사에 김범부가 머물게 되자, 그
의 동생인 소설가인 김동리(1913~1995)가 함께 머물게 되었던 연
유가 동기이었다. 우선 그 개설에 대한 사정을 회고한 최범술의
증언을 참고하자.
또 이때 金東里씨 등은 光明학원을 따로 설립하여 다솔사 일대의
농민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光明학원에서 가르친 것은 초등교육 과
정이었다. 光明학원은 이 지방의 농촌 교육에 큰 성과를 올렸으며 이
때 얻은 체험으로 金東里씨는 많은 작품을 썼다. 당시 金씨의 초년
문학 작품은 巫女跳 , 生食 , 山火 花郞의 후예 등이었다.58)
즉 김동리는 다솔사의59) 인근 지역의 농민 자제들에게 초등교
55) 최범술은 1934년 5월 9일 일경에 피체되어 사천경찰서에 2개월, 거창검
찰청에 2개월간 구금되었다. 그리고 1935년 6월 1일 임실군 경찰서에 3
개월간 구속되었다. 효당사상연구회(2013), 31.
56) 1937년 12월 현재 범어사 강사이었다. <홍법우> 창간호(1938.3), 80.
57) 최재목(2017).
58) 효당사상연구회(2013), 643.
59) 김주현(2015), 김정숙(1996).
152 ∙佛敎硏究 제48집
백)하다.92)
항일첩보 36호의 유일한 생존자인 金瀅極 선생은 이 강연에서 항일
첩보 36호의 비화와 관련, (중략)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한 1938년 8월
상해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김형극은 경남 사천군
곤명면에 있는 다솔사에서 만해의 회갑연을 맞아 白山(필자 주, 안희
제)과 자리를 함께 했었다. (중략) 그후 김형극이 1944년 2월 서울 성
북동 심우장에 와병중인 만해를 찾아 갔을 때 만해는 年下의 백산이
먼저 간 것을 비통해 하면서 陽36 陰36에 근거한 일제 36년 敗亡의 적
중을 다시 강조했다.93)
8월 말,94) 그 모임의 참석자는 최범술, 김범부,95) 만당 당원(김
법린 등), 지역 인사, 독립운동가, 해인사와 범어사의 승려(김경산
등) 등 다양하였다.96)
한편 다솔사 역사에는 신채호의 추모 계승 작업도 있다. 신채호
가 1936년에 항일활동을 하다가 일제에 피체되어 옥사하자 만해
와 최범술은 신채호의 유고를 간행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있
92) 최범술(1971), 21.
93) <동아일보>(1975.6.25), 스케치 : 음양역학으로 일제 패망을 예언한 한
용운선생, 김형극씨가 항일 첩보 36호비화 처음 공개 . <동아일
보>(1976.5.28), 백산 안희제선생 추모비 제막때... 김형극 .
그런데 안희제 연구자들은 안희제가 다솔사 내방 사실을 서술하지 않았
다. 이는 김형극의 과장적인 회고라는 인식으로 본 것 결과이다. 그래서
김형극의 구술을 신뢰치 않는다. 필자는 안희제와 다솔사 연관이 있는
보도기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소개하지만, 추후 이에 대한 사료 비판
이 있어야 한다.
94) 그 날자는 8월 29일 혹은 30일로 추정된다.
95) 김범부는 해방 직후, 불교 교단 기관지에 본명인 金鼎卨이라는 이름으로
<新生> 창간호(1946.3) 21면에 故 韓龍雲先生 追悼文 을 기고하였다. 그
는 만해가 “일어나라, 나아가라, 삼천만 한 마음으로 오직 한 길 義로운
길로”라는 말을 삼천리 강산이 흔들리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서술했
다.
96) 만해는 서울에서 회갑을 지내고 사흘 뒤, 다솔사로 내려갔을 때 후배들
에게 둘러싸여 찍은 사진이 전한다. 효당사상연구회(2013), 436.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61
Ⅳ. 결어
맺는말은 앞에서 살핀 다솔사와 만당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내
97) 최범술(1971), 효당사상연구회(2013), 429.
98) 최범술(1970). 효당사상연구회(2013), 407.
99) • 1938. 8 ; 김법린 진주 경찰서 구금
10 ; 최범술, 김범부, 김적음 등 경기도 경찰서 구금(4개월)
• 1942. 9 ; 일제 경찰 28명 다솔사로 와서 최범술과 김범부 체포
경남도경(부산) 감방 구속(최범술 1년, 김범부 4개월)
• 1942. 12 ; 만당의 해인사 사건
임환경, 이고경, 오제봉, 민동선, 김범부 등 17명(합천경찰
서 구속)
100) 오제봉(1988), 42-43. 민동선, 왜정말기의 해인사사건 , <대한불교> 85
호(1964.9.20.). 申炯魯(1993). 이지관(1992), 1159-1160.
101) <불교신문>(2011.8.13), 고경스님 ‘독립유공자’ 선정 .
162 ∙佛敎硏究 제4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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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67
Abstract
Correlation between Dasolsa Temple and the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Mandang
- Han YongWoon, Choi BumSul, Kim BumBu, Kim DongLee
One side of history -
Kim, Kwang Sik
Dongguk Univ.
This review summarizes the relationship between
Dasolsa Temple(Sachuan in Gyeongnam) and Mandang,
which is known as a Buddhist-style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Despite the fact that it has a history of
1,500 years, it has also become an important object in the
modern period from the standpoint of the Buddhist
independence movement. He is a history that has been
developed with the help of Choi BumSul.
Choi Bumsul is a member of Native Sachuan, where is
Dasolsa Temple located, and has participated in a variety of
activities such as participating in the March 1 Movement,
Haeinsa Temple, a member of the Constitutional Assembly,
the General Secretary of Buddhism, and the founder of
Haein Dae (Kyungnam University). He led the Buddhist
youth movement following Han Yongwoon under Japanese
rule. He was the executive chairman of the Chosun
Buddhist Youth Alliance and a member of the Mandang
Party. By the way, the self-sacrifice was resolved in 1933
by internal affair.
However, the members of the per capita kept visiting
the national ceremony when they visited the ceremony
where Dasolsa Temple. Kim bunglin and Huh Youngho,
168 ∙佛敎硏究 제48집
투고일 2018. 01. 03 | 심사기간 2018. 01. 05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2
불교연구 제48집(2018), 169~201쪽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김혜원* 102)
Ⅰ. 서론
Ⅱ. 중국에서 전승된 筆削記
1. 대장경에 수록된 筆削記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3. 중국 전승의 의미
Ⅲ. 조선에 전래된 筆削記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3. 筆削記의 私記
4. 조선 전래의 의미
Ⅳ. 일본에 전래된 筆削記
1. 筆削記의 간행
2. 筆削記의 주석서
3. 일본 전래의 의미
Ⅴ. 결론
요약문
본 논문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유통되었던 장수자선(長水子璿,
965-1038)의 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이하 필삭기)의 서
지학적 연구를 통해서 필삭기가 불교사에서 갖는 의미와 특성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필삭기를 살펴보고, 다음에
필삭기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과정과 간행 현황을 검토하였다. 마
지막으로 일본에서 유통된 필삭기 판본과 주석서들을 정리하였다.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었
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續法)이 필삭기를 회본(會本)형식으로
편집한 기신론소기회열(起信論疏記會閱)(이하 회열)을 통해서 유
통되었다. 회열에서는 필삭기 이외에도 저자 소개와 저술 동기
및 그의 사상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조선에서는 중국의 가흥장본(嘉興藏本)이 유입되어 성총(性聰)이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을 제작하고, 해
원(海源)이 필삭기를 복각(復刻)하였다. 이는 이후 강원(講院)의 사
교과(四敎科)의 편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필삭기의 사기(私
記)가 일부 남아있다.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회본(會本) 형식의 판본이 없
다고 추정한다. 일본의 필삭기연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주석서
찬술에 있다. 예컨대 즉중(卽中)은 대승기신론소기이변초(大乘起信
論疏記易辨抄)와 기신의(起信義) 등을 찬술하여 필삭기를 주석
하거나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주제어 :
장수자선(長水子璿), 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
회본(會本), 사기(私記)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1
Ⅰ. 서론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1) 起信論疏記會閱의 구성
중국에서는 續法이 회열10권을 제작하였다. 회열은 크게 卷
首와 10卷으로 구성되어 있다. 10卷은 편집본의 구체적인 내용으
로서 科段에 따라 배대된 기신론소와 필삭기가 수록되어 있
맞추고 있고, 내용을 간추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馬鳴가 기신론을 짓
고 龍樹[龍阿周那]가 번역했으며, 法藏[康藏和尙]과 澄觀[淸凉和尙]과 宗密
[圭峰尊者]이 주석서를 지었다. 이후 子璿[長水]이 傳奧[石壁]의 번다한 문
장을 편집하여 필삭기를 만들어서 후대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 주석서
의 版이 닳아 오랫동안 유통되지 못함을 안타까워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고 한다.
9) 佛敎大藏經권67(1978-1984).
10) 佛敎大藏經권67(1982).
11) 中華大藏經권92(2004), 927.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5
도 파악할 수 있다.
(2) 起信論疏記會閱序
起信論疏記會閱緣起 을 기술한 지 3년 만인 康熙庚申(1680년) 7
월 17일에 속법이 쓴 起信論疏記會閱序 의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는 기신론을 개설하였고, 후반부에서는 필삭기와 회편의
간행이유를 간략히 언급하였다. 두 주석서의 간행이유를 설명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疏가 심원하여 利根機에만 이르니, 神이 寂照함이 아니면, 그 연원을
알 수가 없다. 圭山大師는 中下의 根機를 위하여 精要한 내용을 뽑아
論 밑에 바로 기록하였다. 石壁法師는 註가 <너무> 함축적이라고 생
각하여 部函에서 <관련내용을> 수집하여 그 疏를 상세하게 풀이하였
다. 長水大師는 淸淨本然을 깨달은 연후이자 佛祖心口16)를 경험한 이후
이 論疏를 경사스럽게 여겨 주석을 달기를 주저하다가, 문구의 의미가
너무 번다하거나 간략한 것을 살피고 상술[述作]17)의 장단점을 감안하
였다. <그리고는 너무> 상세한 주석의 경우에는 그 상세한 부분을 간
략히 만들어 정신을 어지럽지 않게 만들었고, <너무> 간략한 주석의
경우에는 그 간략한 부분을 자세히 풀이하여 源流에 어둡지 않게 하였
다. 세밀하게 편집을 하였기에 “筆削”이라 이름 한다. 그런데 또 疏와
記가 따로 간행되어 일찍이 合本이 없었는데, 復齋선생께서 후학들이
통합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울까 걱정하시어 거듭 分會를 요청하셨다.18)
16) 知訥, 해주스님 외 역(2009), 345-346에는 “於是 置卷長歎曰 世尊說之於口
卽爲敎 祖師傳之於心卽爲禪 佛祖心口 必不相違 豈可不窮根源 而各安所習
妄興諍論 虛喪天日耶(이에 경전을 놓고 길게 탄식해서 말하기를, “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은 곧 교(敎)가 되고,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은 곧 선
(禪)이 된다. 부처님과 조사의 마음과 입이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 않으
니, 어찌 근원을 궁구하지 않고 각자 익힌 바에 안주해서 망령되게 쟁론
을 일으키며 헛되게 세월만 죽이겠는가?”라고 하였다.)”라고 나온다.
17) 述而 論語,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옛것을 傳述하되 창작하
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가만히 우리 老彭에게 견주노라).”
18) 起信論疏記會閱序 起信論疏記會閱卷首(X45, 546b), “疏既曠遠 獨逗利機
神非寂照 叵測淵源 圭山大師 為中下之根 更搜精要 直錄於論 石壁法師 因簡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9
3. 중국 전승의 의미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
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이 필삭기를 會本형식으로 편집한
회열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중국의 필삭기는 시간적·공간적 제
약을 뛰어넘어 전파되었다. 1030년경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필삭기는 1100년경에부터 2000년대까지 6종의 대장경에 수록되
었다. 이 가운데 가흥장본은 이후 조선에 유입되어 회편으로 재
편되거나 복각되었다. 건륭장본에서는 필삭기를 20권에서 15권
으로 재편집하였는데, 이는 龍藏이나 乾隆大藏經으로 현대에 출간
되었다. 여기에는 현수12세손인 師會가 필삭기에 대해 쓴 敍가
첨부되어 있는데, 中華藏本에서는 사회의 敍를 차용하였다. 佛敎藏
本에 수록된 필삭기와 과문은 대만과 부산에서도 영인되었다.
이와 같이 대장경에 수록된 필삭기는 중국에서 조선으로, 중세
의 중국에서 현대의 대만과 한국으로 유통되었다.
속법의 회열은 단순히 필삭기를 기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소개와 저술 동기 및 그의 사상사적 위치까지 가늠할 수 있
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法界宗五祖略記 에서는 화엄의 조통설을
우러러 사모하였다. 일찍이 능엄경 등의 경전에 疏를 달아 세상에 성
행시켰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1
을를 소개하겠다.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필삭기를 會編의 형식으로 처음 조선에 유통시킨 사람은 性
聰이다. 1681년 중국에서 가흥대장경을 선박에 실어 일본으로 가
던 도중에 배가 난파되어 荏子島에 정박하였다. 이 때 성총이 표
류선으로 가서 남아 있는 佛書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澄光寺와 雙
溪寺 등의 사찰에서 197권 5000여 판의 책들을 復刻 혹은 改刊하
였다.22) 그 중에는 가흥장본필삭기도 들어있었다. 성총은 이를
바탕으로 지리산 雙溪寺에서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4권을 간행
하였다. 그는 康熙 乙亥(1695년) 重陽月(9월 9일)에 쓴 序文에서
필삭기의 유입시점과 회편의 간행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
했다.
<부처님 멸도> 6백년 후에 大光明佛의 후신이 있었는데, 百本了義
經을 모아서 마침내 이 기신론을 저술하여 중국으로 유입시켰다. 唐
賢首大師가 疏를 지어 해석하였다. 뒤를 이은 石壁大師가 隨疏記[廣
記]를 지어 해석했는데, 실로 지나치게 번잡했다. 長水法師는 <隨疏記
를> 필삭하고 절충하여 <필삭기를 지었는데, 이는> 起信論<의
의미>에 부합하고 疏<의 의미>에 통하는 가장 적당한 <주석서>였
다. <그런데> 우리 海東에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하다가, 지난 辛酉
(1681년)에 다행스럽고 기이하게도 <필삭기가> 보급되어 강학하는
자들이 귀중한 보배를 얻은 것처럼 여겼다. 다만 疏와 記가 별도로 간
행되었기에, 자못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지혜롭지 못한데도 모자람을
헤아리지 않고서 함부로 붓을 잡고는 一家<의 주석서>를 편성하여
기신론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봄에 쉽게 了義를 알 수 있게
하였으니, 실로 초학자에게 편리할 것이다.23)
22) 이종수(2008), 260; 同(2013), 329-335.
23) 刻起信論䟽記會編叙 大乘起信論䟽筆削記會編(H8, 654), “距六百歲 有大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3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가흥장의 필삭기를 會編하지 않고 그대로 復刻한 사람은 涵月
海源(1691∼1770)이다. 그는 1769년 安東 鳳停寺에서 起信論疏筆
削記20권을 복각하였다. 그가 乾隆 十八年(1753년) 癸酉 한 여름
에 쓴 重刊起信論筆削記序 26)을 보면 무슨 까닭에 성총의 회편
을 복각하지 않고 필삭기를 重刊했는지를 알 수 있다.
3. 필삭기의 私記
성총의 회편과 해원이 복각한 필삭기의 판본이미지는 동국
대학교 불교학술원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http://kabc.dong
guk.edu/]에서 볼 수 있다.31) 아카이브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간략
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판본 소장처 인쇄 私記의 有無 1권 각권의 有無
2권 3권 4권
원각사 1695년
刻後刷 ㅇ ㅇ ㅇ ㅇ ㅇ
雙溪寺 동국대 1695년 刊 ㅇ ㅇ ㅇ ㅇ ㅇ
표충사 1695년
刻後刷 ㅇ ㅇ ㅇ
31) 남권희(2016), 63-64에서는 고려대장경 연구소에 필삭기권4와 과문
이 있다고 하였는데, 필자가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현존자료 소개
에서 생략한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7
지암정 1695년
1919년
刻
사 後刷 ㅇ ㅇ ㅇ ㅇ
伽倻寺 원각사 1764년 ㅇ ㅇ
32) 刻後刷
1769년 刻
鳳停寺 동국대 1998년 ㅇ ㅇ ㅇ ㅇ
印經
용흥사 1695년
33) 刻後刷
[표1]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에서 서비스하는 필삭기 이미지
위에서 제시한 판본 가운데 원각사와 동국대 그리고 표충사에
소장된 쌍계사본에는 후학들이 적은 私記34)가 있는데, 주로 판본
의 가장자리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해당주석의 요약이나
단어풀이 혹은 과문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蓮潭有一의 起信蛇足이나 仁岳義沾의 起信私記 같은 講院의
私記로 추정된다. 동국대 도서관에는 앞서 말한 판본들 외에도 大
應이 筆寫한 筆削記卷2(간행년 미상)가 있다. 이 책에는 “論云”,
“疏云”, “眞如生滅二門”, “不覺”, “摩訶衍” 등의 단어가 나오기 때문
에 기신론에 관련된 서술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필
사본인데가 다른 판본처럼 論·疏·記의 구별이 정확히 이뤄지지 않
았다. 예컨대 책의 마지막 장 13-14줄에는 “第二卷終 大應 赤馬二
百十四 絶筆于圓通”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책이 자선의 필삭기
2권에 대한 일종의 私記인지, 아니면 大應이라는 사람이 쓴 필삭
기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상의 자료에 대한 연구는 차후
의 과제로 미뤄둔다.
32) 伽倻寺本은 성총의 회편을 복각한 것이다.
33) 2017년 12월 7일에 아카이브를 검색한 결과, 용흥사본은 서지정보만 제
공하고 이미지파일은 아직 업로드 되지 않았다.
34) 이종수(2017), 1-4에서는 私記라는 용어 자체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88 ∙佛敎硏究 제48집
4. 조선 전래의 의미
性聰이 임자도에 정박한 중국선박에서 佛書를 발견한 일을 계기
로 필삭기는 조선에 유통될 수 있었다. 그는 표류선에서 중국의
가흥장본 필삭기를 입수하였고, 이것을 기신론본문과 기신
론소에 배대하여 회편을 제작하였다. 그가 회편을 제작한 이
유는 기신론소와 필삭기가 따로 편찬되었어서 그것들을 비교
해 보는 일이 불편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러한 간행이유는 속법
이 회열을 편찬한 목적과 동일하다. 다만 조선의 회편은 중국
의 회열과는 달리 조선의 강원교육과정의 일부인 사교과목의
구성에 영향을 끼쳤다. 회편이 간행된 이후에 사교과목의 하나
인 법화경이 기신론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천태의 소위경전
을 논서로 대체했다는 점이 어떠한 시사점을 가질 수 있는지는
더 연구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총의 회편은 이후 현대의 강
원에서 2종의 번역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필삭기의 현대
어 번역본은 한국에만 있다.
성총 이후에 필삭기를 유통시킨 사람으로는 해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회편이 아닌 가흥장본 필삭기를 복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회편의 글씨가 잘고 행간이 촘촘한데다가 목판이 닳아
서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대장경판본을
제외하고는 회열이외에 다른 필삭기판본을 찾기가 어렵다.
반면에 조선에서는 회본 형식의 회편과 가흥장본의 복각본인
필삭기가 모두 유통되었다.
필삭기 조선 유통에 있어서 또 다른 특이점은 필삭기의 私
記작성에 있다. 원각사와 동국대 그리고 표충사에 소장된 쌍계사
본에는 후학들이 적은 私記가 있고, 동국대 도서관에는 大應이 筆
寫한 筆削記卷2(간행년 미상)이 남아 있다. 이 서적들은 조선의
강원에서 필삭기가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삭기가 강원의 교육체제와 교
재에 영향을 끼친 점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 유통에서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9
1. 筆削記의 간행
필자가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기
존의 연구에서도 일본에 소장된 필삭기에 대해 언급한 경우가
한정적이었다.35) 그래서 NII学術情報ナビゲータ36)와 全國漢籍デー
タベース37)에서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를 검색한 결과,
다음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자료접근
에 한계가 있는 관계로 한국에서도 조사할 수 있는 속장경과 신
수대장경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두 사이트에서 보여준 서지정
보와 소장처를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그 결과 일본에는 필삭기6
권본과 필삭기20권본이 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5) 최근의 연구인 望月海慧(2018), 13-14에서는 身延文庫典籍目錄下(2005),
40에 筆削記 卷五(余宗79. 8-4)가 있다고 하였다. 이 논문의 필자도 목
록집에 있는 필삭기제목만 확인했을 뿐 실물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36) http://ci.nii.ac.jp/books/search(2017.12.01).
37)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query(2017.12.01).
190 ∙佛敎硏究 제48집
2. 筆削記의 주석서
일본의 필삭기 연구가 중국과 한국 두 나라와 다른 점은 필
삭기의 주석서 찬술에 있는데, 주석서 역시 필삭기판본의 경우
와 마찬가지로 소장처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보관처를 확인했다하
38) 김천학(2014), 64-65 재인용.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1
그는 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3권(寫本)과 같은 책의 大乘起信論
疏記易辨抄科解2권(刊本), 그리고 起信義1권(刊本)을 지었다. 현
존한다고 추정되는 책은 起信義1권이다. 첫 번째 易辨抄3권은
필삭기를 註解한 책으로서 延寶 2년(1674)에 찬술되었다. 自序에
는 “起信論疏筆削記는 장수대사가 隨疏記[古記]를 필삭하여 알
맞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論과 疏 그리고 의미[義]에 미진한 바가
없으니, 후학의 안목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智에서 愚를 변별하더
라도 고치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윤색하여 변별
하기 쉽게 만들었기에 <易辨抄라고> 제목을 붙였을 따름이다.
때는 延寶甲寅(1674년) 여름에 阿陽의 起信菴에서 서두에 쓰노라
.”43)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같은 책의 科解2권은 본문에 과를
달고 관주(冠註)에 간략한 해석[略解]을 첨가하였다. 본문 앞에
賢首義記序 와 풀이를 첨가하였고, 권 말미에는 自跋을 실었고 延
寶 3년(1675)에 開版했다. 佛典章疏目錄上44)과 (影印)佛敎大系1
大乘起信論解題 45)에 그 서명이 남아있다. 세 번째로 起信義1
권은 론의 요의를 20章으로 나누어 풀이한 책으로 卷首에 自序를
첨부하였다. 延寶 3년(1675)에 4월에 저술되고 延寶 6년(1678) 仲
春(음력 2월)에 開版했다. 興隆이 찬집한 仏典疏鈔目録上의 大乘
起信論疏鈔目録 에는 起信義1권이라고만 적혀 있고, 저자의 이름
이 없다.46) 현재 東北大学 부속도서관 본관에서 起信義(鈴木太兵
衞, 1678)가 소장하고 있고, 起信義-延寶6刊-(村上勘兵衛,1678,
http://jodoshuzensho.jp/jozensearch/search/image.php?lineno=J17_0494A0
8(2017.12.08).
43) 望月信亨(1922), 296, “起信論疏筆削記者 盖長水大師 筆削古記而取其中也 乃
論疏并解無義不盡 可謂後學眼目 然於智 雖辨於愚 猶難改故 今潤色其義以令
愚易辨 命題云耳 時延寶甲寅夏 首書於 阿陽起信菴”
44) 望月信亨(1922), 296에서는 佛典章疏目錄에 나온다고 했는데, 이 목록을
찾지 못했다.
45) 金津洪嶽(1992), 48에 “卽中の科解2卷(存)”이라고 기입되어 있는데,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46) 仏教書籍目録第1: 仏典疏鈔目録上 大日本仏教全書권1(1980), 208.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3
3. 일본 전래의 의미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會本을 만드는 데 치중한 반면에, 일본에
서는 회본 형식의 판본을 만들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자료 접근의
한계가 있으나 현재까지의 판본조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 판본은 起信論疏筆削記6卷·起信論疏
筆削記20卷·續藏經本·新脩大藏經本·大日本校訂大藏經本으로 모두
1600년대 이후의 자료이다. 그 가운데 京都의 村上平樂寺에서 간
행한 起信論疏筆削記6卷은 의천록에서 언급한 필삭기6권을
입수하여 재 간행 하였는지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續
藏經本에서는 필삭기를 별도로 장을 할애에 수록하지 않고 대
신 회열의 본문을 참조하라고 하였다. 무슨 이유로 책명만 언급
하고 본문을 회열로 대체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일본의 필삭기연구가 앞서 두 나라와 다른 점은 주석서 찬술
에 있다. 중국에서는 회열의 필삭기 저술경위와 자선의 전기
자료 및 대장경본의 몇 가지 서문에서 필삭기관련 정보를 제시
하였다. 한국에서는 회편과 복각한 필삭기의 서문 및 私記가
있으나, 이 역시 체계적 연구의 성과물이라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반면에 일본에서 간행된 필삭기주석서들은 이전 주석서들
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필삭기를 분석하였다고 생각한다. 예컨
대 卽中은 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3권과 같은 책의 科解2권, 그
52) 望月信亨(1922), 285-286.
53) 望月信亨(1922), 293 참조.
54) 仏教書籍目録第1: 仏典疏鈔目録上 大日本仏教全書권1(1980), 208.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5
Ⅴ. 결론
중국에서는 대장경에 필삭기를 수록하고 회열을 제작하였
으며, 조선에서는 회편이 나오고 관련된 私記가 남아있다. 두 나
라에서는 필삭기판본에 관련된 작업이 중점적으로 이뤄진 반면
에, 일본에서는 필삭기에 대한 주석서들을 간행하였다. 이 과정
에서 중국의 필삭기판본은 조선과 일본으로, 중세에서 현대까지
전승되었고, 조선과 일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방식의 필삭
기 유통 양상을 보여주었다.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
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이 필삭기를 會本형식으로 편집한
회열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1030년경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196 ∙佛敎硏究 제48집
약호 및 참고문헌
B : 大藏經補編
H : 韓國佛敎全書
L : 乾隆大藏經
T : 大正新修大藏經
Z : 淨土宗全書
起信論疏記會閱卷首卷1[X45].
大乘起信論疏卷1[L141]
大乘起信論䟽筆削記會編[H8]
伯亭大師傳記總帙[X88]
新編諸宗教藏總錄卷3[T55]
鎭流祖傳8卷[Z17]
朝鮮佛教通史卷3[B31]
天鏡集[釋王寺本]
起信論疏筆削記[鳳停寺本]
論語
莊子
東京: 日本印度学仏教学会.
吉田 剛(2000), 第三章 長水子璿の教学 , 宋朝華厳教学史の研究,
東京: 仏教学博士駒沢大学.
金津洪嶽(1992), 大乘起信論解題 (影印)佛敎大系1, 佛敎大系刊行會
編纂, 臺北: 新文豊出版公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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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 大藏出版.
http://cafe.daum.net/sws0799/24MA/84?q=%F9%BC%FA%B9%CB%A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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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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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record=data/FA001379/tagged/1511
213.dat&back=1(2018.01.04).
200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Qixinlun-shu-bixueji(起信論疏筆削記)'s
transmission and introduction
Kim, Hea Won
Dongguk Univ.
투고일 2018. 01. 21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0
불교연구 제48집(2018), 203~235쪽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
박부자* 55)
Ⅰ. 서론
Ⅱ. 삼계의 분류와 제3계불법
1. 삼계의 분류와 구조
2. 제3계불법
Ⅲ. 삼계교의 불타관
1. 보법의 사불
2. 普眞普正佛
Ⅳ. 결론
요약문
삼계교는 중국 남북조시대 후기에서 수대에 걸쳐 활동한 신행선
사(540-591)에 의해 개창된 후 약 400년에 걸쳐서 종교 활동을 전개
한 중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삼계교의 사상은 삼계의 근기에 대한 삼계 출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짜임새를 축으로 해서 성립하고 있다. 근기의 삼계란 제1계 일
승보살과 제2계 삼승보살, 제3계 공견유견 중생을 말하는데, 제1계와
제2계는 각각 종래의 일승과 삼승의 가르침인 별법에 의해서도 출세
간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일천제인 제3계 중생은 종래의 일승과
삼승이라고 하는 교판적 짜임새로는 성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삼
계불법이란 이 제3계 중생이 출세할 수 있는 법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제1계, 제2계의 별법과는 달리 普法에 의해야만 한다. 제3
계의 근기는 邪正의 판별 능력이 없는 것이 특징이므로 사정을 분별
하려 해도 압도적으로 다수인 邪 가운데에서 극히 소량의 正을 선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邪를 正으로 인식하는 실수를 범
하게 된다. 이 실수를 회피하기 위해서 불·법·승·중생의 4항목에 대
해서 ‘普’라는 시점을 도입하였다. 결국 보법, 즉 보진보정불법은 제3
계중생을 여래장, 불성불, 당래불, 불상불의 보법사불로서 철저히 공
경한다는 것이다. 보진보정불법은 邪人이 배워도 正人이 배워도 널
리 진정을 얻을 수 있으므로 제3계 인이 출세할 수 있는 불법이다.
주제어 :
신행, 삼계교, 보법, 보불, 일승보살, 삼승보살, 공견유견중생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05
Ⅰ. 서론
2) 계환(2014), 215.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07
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직접으로 제1계, 제2계, 제3계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삼계교가 제1계의 근기, 제2계의 근기, 제3계의 근기라고 각각 규
정한 보살·성문·일천제, 3종류의 근기가 거론되어 있다. 결론적으
로 말하면, 삼계교는 열반경의 이 부분을 삼계 분계 중에서 근
기의 구조에 대한 가장 중시한 교증으로 인용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불교인들의 사상에서 이 부분의 세 종류 근기와 그
에 대한 가르침의 대응관계를 이처럼 중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삼계의 근기와 설해진 가르침의 대응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계 보살(일승) 미세한 뜻(심심대승의 뜻) 제1계불법
제2계 성문(삼승) 얕은 뜻(소승의 법) 제2계불법
제3계 일천제(공견유견) 세간의 뜻 제3계불법
[표5] 근기와 불법의 대응관계7)
제1계의 일승근기중생은 일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
서 출세간에 이를 수 있다. 제2계 삼승근기의 중생은 삼승의 가르
침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출세간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데 제3계 중생은 종래의 일승과 삼승이라고 하는 교판적 짜임새
에 의하는 한은 출세간에 이르는 길은 없다.
신행은 佛의 자비에 의해서도 세간의 뜻 밖에 설해질수 없는
제3계인은 바로 말법시대의 오탁악세에 태어난 우리들임을 자각
하고 제3계인도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2. 제3계불법
(1) 제3계 出世의 法
삼계출세의 법은 제1계의 일승근기를 위해서 일승의 법이, 제2
계의 삼승의 근기를 위해서 삼승의 법이 존재할 뿐이다. 원래 출
세의 법이 설해질수 없는 일천제를 위해서 출세의 법을 찾는 것
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기존의 법을 비방하지 않고 새로운 짜임새
를 도입한 것이 신행의 제3계불법, 즉 보진보정불법이다.
일본본 삼계불법 권1 시작 부분의 문장은 삼계교의 근본적인
의의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인집록에 밝힌다. 모든 제3계불법 중에서 다만 일체 최대둔근의
중생인 두 종류의 아양승 이외에는 일체의 이근의 중생은 모두 이근
공견유견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분명히 대반열반경에
설한 바와 같다. 경문에는 “세간의 의를 일체의 제3계불법 내 일체의
이근공견유견의 일체의 선근이 끊어진 모든 일천제를 위해서 설한다.”
고 기술되어 있다. 이 경문을 잘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8)
삼계불법 전체의 총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이후에 설명하
고자 하는 인집록의 범위가 제3계불법이고, 그 가운데 공견 유
견의 중생에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삼계불법
전체가 제1계 및 제2계의 불법이 아닌 제3계의 불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첫머리에서 밝힌 것이다. 인집록이란 삼계교
의 문헌을 특별히 일컫는 말이다. 인집록에 해당하는 삼계불법
의 요점이 바로 제3계불법을 일러주는 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
8) 三階佛法 권1, “人集錄, 明一切第三階佛法內, 明除一切最大鈍根衆生兩種瘂
羊僧已外, 一切利根衆生皆悉普是一切利根有見衆生, 何以故, 明如大般涅槃經,
文當世間之義, 爲一切第三階佛法內, 一切利根空見有見斷一切善根皆悉普盡一闡
提衆生說, 以此文驗所以得知” 이를 통해 삼계교에서는 공견과 유견의 중생
을 斷善根, 일천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3
요도 없다.
말법 예토의 제3계 불법 내에서는 두 종류의 둔근아양승 외에
일체 이근중생은 모두 공견 유견에 사로잡힌 중생이다. 열반경
에는 세간의 의를 일체의 선근이 끊어진 모든 일천제를 위해서
설한다고 기술되어 있지만9) 사견중생으로 불교의 뜻을 올바로 이
해할 수 없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제3계불법을 알려 주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열반경에서 일천제는 어떠한 불이나 법도 이를 구제
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10)11) 견해에 空과 有의 편견이 있어서
9) 涅槃經 권33(T12, 560c), “世間之義, 爲一闡提五逆罪說” 열반경에서는
세간의 뜻을 일천제와 오역죄인을 위해서 설한다고 하였지만, 삼계교에서
는 위와 같이 일천제에 한하여 인용된 경우가 많다. 삼계불법과 마찬가
지로 대근기행법에서도 일천제에 한정하여 인용하고 있다.(敦煌寶藏
19, 525c)
10) 涅槃經 권9(T12, 417c-418a), “허공에 비구름이 나타나 큰 비가 대지에
쏟아졌을 경우에 枯木도 石山도 高原도 모두 빗물을 받아 축축해지고, 물
이 고이지 않는 곳에도 흘러 田地나 池水를 충만케 하는 것처럼, 이 미묘
한 경전 대반열반경도 또한 法雨를 내려 사람들을 골고루 윤택하게 하
지만 일천제만은 제외한다. 如虚空中興大雲雨注於大地, 枯木石山高原堆阜
水所不住, 流注下田陂池悉滿利益無量一切衆生, 是大涅槃微妙經典亦復如是,
雨大法雨普潤衆生, 唯一闡提發菩提心無有是處” 涅槃經 권9(T12, 419b),
“선남자여, 어떤 양의가 여덟 가지 묘한 의술로써 중생들의 병고를 치료
하더라도 반드시 죽을 병은 고치지 못한다. 이 대반열반경도 그와 같
아서 중생들의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여래의 청정한 因에 머물게 하여
발심하지 못한 이를 발심케 하나 반드시 죽을 일천제 무리는 제외한다.”
善男子, 復有良醫過八種術能除衆生所有病苦, 唯不能治必死之病, 是大涅槃大
乘經典亦復如是, 能除衆生一切煩惱, 安住如來清淨妙因, 未發心者令得發心,
唯除必死一闡提輩”
11) 물론 열반경에서는 일천제에게도 성불의 가능성으로서 불성이 있다고
하였다.(涅槃經 권34(T12, 568c), “선남자여! 내가 또다시 말하건대 네
가지 무거운 계율을 범한 자나 일천제, 방등경을 비방한 자, 오역죄를 지
은 자도 모두 불성이 있으니 이들 중생은 善法이 없지만 불성은 선한 것
이다. 善男子, 我又復説犯四重禁一闡提人謗方等經作五逆罪皆有佛性, 如是衆
生都無善法佛性是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불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선근을 내지 않고(涅槃經 권5(T12, 391b)), 罪垢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
214 ∙佛敎硏究 제48집
世間法
邪善佛法
邪見衆生所帰法
正見衆生所帰法
佛菩薩應作空見有見法
普想大乘法
僧 一乘聖菩薩 三乘聖菩薩 縁覺 聲聞 剃頭著袈裟僧
戒見俱不破一乘凡夫 戒見俱不破三乘凡夫菩 邪見僧
菩薩僧 薩 縁覺 聲聞僧 正見僧
破戒不破見一乘凡夫 破戒不破見三乘菩薩 縁 佛菩薩應作空見有見僧
菩薩僧 覺 聲聞僧 普親僧
亦正亦邪三乘菩薩 縁覺 普想大乘僧
聲聞僧
度 一乘聖菩薩 三乘聖菩薩 縁覺 聲聞 邪見衆生
衆 戒見俱不破一乘凡夫 戒見俱不破三乘凡夫菩 正見衆生
生 菩薩 薩 縁覺 聲聞 佛菩薩應作空見有見衆
破戒不破見一乘凡夫 破戒不破見三乘凡夫菩 生
菩薩 薩 縁覺 聲聞 普親衆生
地獄 餓鬼 畜生 阿 三乘亦正亦邪菩薩 縁覺 普想大乘衆生
修羅 聲聞 地獄 惡鬼 畜生 阿修羅
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斷 善外惡 善外惡 二十六斷惡
惡 善內惡
修 惡外善(別真別正) 惡外善 惡內善(如來蔵佛性普真
善 惡內善(普真普正) 普正八種佛法)
得苦善(十二頭陀)
求 一乘聖菩薩 十二種의 僧과 同一 文義俱不解瘂羊僧
善 戒見俱不破一乘凡夫 解文不解義瘂羊僧
知 菩薩 利根人內學當根七法六
識 破戒不破見一乘凡夫 法人
菩薩
[표6] 각 계의 근기에 대한 7항목의 출세의 도13)
Ⅲ. 삼계교의 불타관
220 ∙佛敎硏究 제48집
1. 보법의 사불
(1) 여래장불
대근기행법에서는 보경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여래장을
설명하였다.
첫번째로 널리 공경하는 것(普敬)에 대해서 밝히면, 그 중에 8단이
있다. 첫째, 여래장이고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는 가르침에 의
한 설명이다. 여래장은 모든 불, 보살, 성문, 연각 그리고 육도중생의
본체이다. 두 번째는 비유에 의한 설명으로 5단이 있다. ① 예를 들면
阿耨이라는 큰 못이 8개의 큰 강이 되어 흘러나가는 것과 같다. 강에
는 (8개의) 구별이 있지만 물이라는 본체에는 다름이 없다. 모든 범부
23) 普法四佛은 S5668의 일부(3葉의 紙面)에 矢吹가 붙인 가제이다. 후에
西本照眞이 스타인본 중의 삼계교사본을 추출하는 작업 중에 다시 8엽을
더 발견하여 모두 앞면과 뒷면으로 된 11엽의 사본이 만들어졌다. 이것
은 시취가 소개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西
本은 이것을 三階佛法廣釋이라 가제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시취가 발견한 3엽에 있는 내용만 참고하였으므로 시취의 보법사불이
라는 가제를 사용하였다.
24) 對根起行法(敦煌寶藏113, 315a-b).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3
라고 한 것과 같다.
보법사불에서는
불상불이란 일체법계중생이 같이 여래장ㆍ불성불ㆍ당래불이므로
겉으로 드러난 특성은 진불과 같다. 그러므로 (상이 같기 때문에) 불
상불이라 한다.41)
일체중생을 여래장 불성으로 보면 모두 당래불이 되는 것이다.
당래 작불을 기다려 비로소 ‘불’인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체
성에서 생각하면 모두가 불 아닌 것이 없다. 修證得果의 다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有戒無戒持戒破戒의 차별을 철
폐하고 당장 중생에 진불상을 생기지 않게 해서는 안 된다. 삼계
교의 보불은 여기서 그 진가를 최대로 발휘하게 된다.
2. 普眞普正佛
보법사불에서
여래장불성의 체가 법계에 두루한다. 체용공덕이 邪가 아니고 僞가
아니므로 보진보정불법이란 보정불법이라 한다. 일체별진별정이 아니
기 때문이다. 또한 일체근본불법이라 이름한다. (중략) 보진보정 등 6
종불법과 여래장 등 8종불법을 얻는다면 일천제 됨을 면한다.42)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대근기행법에서는
(八段中의) 둘째는 보진보정불법이다. (사인과 정인을) 불문하고, 사
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고 정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는다. 어째서인가?
여래장, 불성이라는 본체는 두루하는 법, 진실의 법밖에 있을 수 없으
니까 그중에 사마가 끼어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인
과 정인을 불문하고 모두 진정을 얻는다.43)
고 하였다. 즉 보진보정불법도 여래장, 불성의 본질에 관한 것
임을 알 수 있다. 여래장, 불성은 모든 중생에게 두루 널리 퍼져
있다는 점에서 보법이다. 또한 완전히 진정한 법이기 때문에 보진
보정불법이라고 하였다.
제3계의 사견의 중생이어도 여래장, 불성을 공경하면 眞正을 얻
는 것이 보증되어 있다. 여래장, 불성 혹은 그 본질을 설한 보진보
정불법은 제3계인의 출세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원리가 되는 것이
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3계 공견유견전도사상의 중생은 견
에 眞正을 얻기 어려우므로 적어도 ‘불’로 사유하여야 하는 것은
모두 받아들여 귀의하게 하였다. 이것은 대근기행법중 생맹보현
의 설에 의한 것이다.44) 불성이란 불다운 성을 가리키며 일체중생
모두 각자이어야 할 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제3계 불법인 보진
보정의 불법으로 보면 일체 중생 모두 내재적 불타이다. 보불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Ⅲ. 결론
신행이 삼계교를 창시한 그 바탕에는 말법시대라는 강한 위기
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법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그 방법을 가르친 이가 바로 신행
이다. 이 가르침이 제3계 불법이고 보법이다.
신행이 살고 있던 당시의 풍조로는 부처님의 여러 설법 가운데
어느 법이 가장 우위에 있는 가를 가름하는 교판을 가려내는데
온힘을 기울였지만, 신행은 아무리 수승한 법이라도 그 시대 그
땅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그에 알맞은 법 즉 대
근기행법을 찾는 것이 가장 알맞은 출세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리
하여 기존의 틀을 부정하지 않고 제3계중생도 성불할 수 있는 길
을 모색하였다. 이 새로운 틀은 보와 별이라는 짜임새였다. 제3계
중생의 본질은 견의 사견성전도성에 있고 이것을 없애는 것이 바
로 그들이 출세간에 이를 수 있는 길인 보법인 것이다.
견이 전도된 제3계 중생은 사정을 식별할 능력이 없으므로 어
느 특정한 가르침만을 배우는 별법을 수행하면, 그것은 마치 맹인
이 앞을 못 보면서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법을 배우는 것은 맹인이 지면을 향해
화살을 보내는 것처럼 안전하다고 하여 제3계인에게는 모든 불과
모든 법을 두루 공경하는 보불보법만이 순익무손의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여래장불성을 갖고 있으므로 당래불로서 공
경해야 하며 자기에게서는 악만 보고 상대에게 대해선 선만 보는
생활태도로 자기의 악을 참회하고 선행을 쌓아가야 출세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 삼계교의 중요사상이다.
신행은 말법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정신적인 지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무진장시 같은 경제적인 불교복지면에서도 힘써, 전
쟁과 법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서민들의 생활을 돕고자 몸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31
약호 및 참고문헌
T : 大正新脩大藏經
涅槃經(T12)
勝鬘經(T12)
楞伽經(T16)
大乘義章(T44)
三階佛法
對根起行法
普法四佛
日本印度学仏教学会.
粂原勇慈(1991), 三階教の普行について , 印度学仏教学研究39-2,
日本印度学仏教学会.
西本照眞(1998), 三階敎の硏究, 東京: 春秋社.
西本照眞(2005), 救われない私の救いを求めて-中国の三階教と浄土教 ,
仏教文化44, 東京大学仏教青年会.
西本照眞(2017), 삼계교 연구(박부자 역), 서울:운주사.
矢吹慶輝(1927), 三階敎之硏究, 東京: 岩波書店.
早川道雄(1987), 三階教と無尽蔵院 , 鴨台史論1, 大正大学 .
早川道雄(1989) 三階教の意味するもの , 鴨台史論2, 大正大学 .
早川道雄(1991) 唐代三階教徒の信行崇拝について ,
大正大学大学院研究論集15,
唐代三階教徒の信行崇拝について.
Forte, Antonino(1976), Political Propagada and Ideology in China
at the End of the Seventh Century, Napoli: Instituto
Universitario Orientale.
Forte, Antonino(1985), “La Secte des Trois Stades et l’Hérésie de
Devadatta”. Bulletin de l’École Française
d’Extréme-Orient 74.
Hubbard, James(1986), “Salvation in the Final Period of the
Dharma: The Inexhaustible Storehouse of the
San-chiech-chiao”. Ph.D.diss., University of Wisconsin.
Lewis, M. E.(1990), The Suppression of the Three Stages Sect:
Apocrypha as a Political Issue, Chinese Buddhist
Apocryph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34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Doctrine of Universal Law and Universal Buddha in
San-Jie Jiao
Park, Bu Ja
Dongguk Univ.
Ⅰ. 서론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2. 제3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3. 제4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Ⅲ. 결론
요약문
본 논문은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연구했던 華嚴經談玄決擇
記 전6권을 완역하면서 일본의 卍續藏經에 수록된 원문과 金澤
文庫管理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이다.
앞서 卍續藏經에 수록되지 못했던 결택기 권제1에 국한하여 金
澤出版本과 金澤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교감표와 분석 내용을 정
리하여 게재한 이후, 두 번째 작업으로서 권제2부터 권제4(절반)까지
를 교감표로 작성하여 그 특이사항을 분석하였다.
담현결택기는 일본의 高山寺소장 寫本 권제2~6권이 있고, 卍
續藏本 권제2~6의 저본으로 보이는 교토대학 도서관부속 藏經書院
소장본 권제2~6이 있으며, 金澤寫本 권제1~6이 있어 모두 세 종
류의 사본이 현존하고 있다. 1975년에 일본의 가나자와 문고에서
金澤文庫資料全書에 제1권을 실어 출판한 것을 제외하고 학계에는
그동안 金澤寫本 권제2~6과 卍續藏本 권제2~6을 비교 검토하
는 텍스트 간 교감연구가 없었다.
본 논문에서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두 텍스트 간 원문의
비교분석을 [교감표]로 정리해본 결과, 제2권은 교감번호가 122항이
고, 제3권은 102항이며, 제4권(절반)은 90항에 달한 결과가 나왔다.
卍續藏本의 원문을 수정하거나 보충한 것은 상당수 金澤寫本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다. 특히 제3권은 卍續藏本의 30페이지 中段의
10행부터 11행 사이에 유실되었던 8페이지3줄, 총 2597자를 金澤寫
本을 통해 모두 보충했는데, 그 보충된 내용을 통해 선연이 본문
제1장 교기인연 을 다루면서 十緣가운데 ‘二緣, 처소에 의지함’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과 또 법장의 여러 저술가운데 旨歸 역시
인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어 :
대소, 연의초, 담현결택기, 卍續藏本, 金澤寫本, 원문교감표,
내용분석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39
Ⅰ. 서론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1) 제2권의 교감내용
우선, 決擇記 卷第二~ 卷第四(절반) 교감 표의 작성 범례는
다음과 같다.
[범례]
* 卍續藏本권2~권4 원문은 대만의 Chinese Buddhist Electronic
Text Association(이하 CBETA)의 2016년도 Version에 의거했다.
* ‘해당 페이지’란에서 앞의 숫자는 卍續藏本 제8권의 페이지,
‘a·b·c’는 상단·중단·하단이며, 그 다음숫자는 행수를 표시한다. 小註
일 경우, 한 행을 상반과 하반으로 나눈다.
* 교감표시는 예를 들어 ‘一一光’에서 ‘一’이 빠진 경우는 ‘-一光’으로,
‘一’이 있는 경우는 ‘一+一光’으로 표시한다.
* 동일한 행에 교감할 글자와 동일한 글자가 있을 경우, 그 글자의 앞
이나 뒤에 괄호 속의 글자를 덧붙여 구별한다.
* ‘비고’란에서 참조 본 언급 없이 ‘교감주’라고만 쓴 경우는 卍續藏本
의 ‘교감주’를 의미한다.
* 卍續藏本의 교감주는 교감에 반영한 경우에만 언급하고, 반영하지
않은 경우는 언급하지 않는다.
* 金澤寫本에 근거하여 교감했을 경우, 일일이 金澤寫本을 언급하
지 않고 ‘참조’ 수정(or 보충) 등이라고만 밝히고, 金澤寫本과 함께
참조한 본이 더 있을 경우에는 ‘&’로 표시한 뒤 참조 본을 밝힌다.
결택기 제2권(X8, 01a-16a)을 교감한 내용16)은 다음과 같다.
16) 위에 작성된 [교감표]의 내용은 추가로 교감사항이 나오면 계속해서 반
영할 예정이다.
244 ∙佛敎硏究 제48집
下半
25 04c06 敕 勅 勅 上同
上半
26 04c06 來 禮 禮 上同
下半
27 04c06 廟 廟 上同
上半 庿
28 04c07 手 乎 乎 上同
上半
29 04c07 和 知 知 上同
上半
30 04c07 大國 國大 國大 & 예문지
上半 참조 도치
31 04c21 該 統 統 & 조론 참조 수정
32 06a24 示 亦 亦 참조 수정
33 06b03 說 諸 諸 참조 수정
34 06b05 三 之 之 참조 수정
35 06b06 一- 一+者 一者 참조 보충
36 06b06 二- 二+者 二者 참조 보충
37 06b10 不- 不+斷 不斷 & 연의초
참조 보충
38 06b10 惡性 性惡 性惡 & 연의초
참조 도치
39 07a02 有 在 在 참조 수정
40 07a06 淨 諍 諍 참조 수정
41 07a12 二(二) 二(二) 下(二) 上二句의 상대구절
참조 수정
42 07a17 空 定 定 참조 수정
43 07a23 徧 徧 偏 교감주 및 문맥상(偏
滯) 수정
44 07a23 云乃至 云乃至 乃至云 연의초 참조 도치
45 07b03 對 句 句 참조 수정
46 07c03 差 嗟 嗟 참조 수정
47 07c07 陟 涉 涉 & 교감주 참조 수정
48 07c09 離- 離- 離惡 유마경 참조 보충
49 07c12 失+所 失-所 失 참조 “所”삭제
50 07c22 [言*寅] 諠 諠 참조 수정
金澤寫本 교감주
51 08a01 聞 開 闕 참조 수정
246 ∙佛敎硏究 제48집
109 14b05 性稱 稱性 稱性 참조 도치
下半
110 14b06 多 五 五 & 대소 참조 수정
111 14b08 面-- 面+聽政 面聽政 & 대소 참조 보충
112 14b14 表-(契) 表+之(契) 表之(契) &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行”으로
113 14b16 修 修 修 되어 있다.
114 14c02 滅 減 減 참조 수정
115 14c21 界- 界+界 界界 참조 보충
116 15a06 纔 讒 讒 참조 수정
117 15a15 帝 常 常 참조 수정
118 15a17 孔 礼 礼 참조 수정
119 15b19 應 忘 忘 참조 수정
120 15c06 似 以 以 참조 수정
121 15c06 爲 與 與 참조 수정
122 16a03 聖 經 經 참조 수정
(錄摘文解)19)
2) 제2권 교감상의 특이사항
⑴ 전반적인 사항
제2권의 교감사항을 전반적으로 정리해보면, 이 권은 교감번호
가 122항에 달하는데 이 중 金澤寫本을 통해 수정되거나 보충한
경우는 모두 99항이다. 그 중에서도 글자를 새로 보충한 부분은
23항에 이른다. 金澤寫本을 참조하지 않고 화엄경이나 대소
17) 卍續藏本의 경우 底本인 藏經書院本과의 교감이 선행되어야 하겠지
만, 우선 卍續藏本이 널리 알려져 있는 텍스트인 점과 卍續藏本의 작
업을 신뢰하여 이 두 텍스트 간 비교연구는 제외했다.
18) 演義鈔 등 大正藏을 참조할 경우는 일본의 The SAT Daizōkyō text
database(SAT2012)를 참조하였다.
19) 決擇記는 尾題 뒤의 錄摘文解 제하에 각 권의 주요 내용을 순서대로
간략한 문구나 단어로 열거해 놓아서 그 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쉽
게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제1,2권의 錄摘文解 는 사본기 바로 뒤에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선연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후대에 필사하거
나 학습한 이들이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9
上半
3 16b01 固 同 同 참조 수정
上半
4 16b01 故 相 相 참조 수정
上半
5 16b04 具 見 見 참조 수정
下半
6 16b06 阿 何 何 참조 수정
下半
심지관경
7 16b12 能速 能悉 悉能 참조 수정
8 16b19 身 身 心 上同
9 16b19 與 與 雨 上同
10 16b20 (提)-宮 (提)寶+宮 (提)寶宮 & 심지관경
참조 보충
11 16c01 如 以 以 & 심지관경
참조 수정
12 16c01 -佛 諸+佛 諸佛 & 심지관경
참조 보충
13 16c16 應 忘 忘 참조 수정
14 16c23 護 獲 獲 & 교감주
上半 참조 수정
15 17a06 憂 憂 愛 연의초
上半 참조 수정
16 17a21 佛舉 舉佛 舉佛 참조 도치
17 17b10 而(滿) 已(滿) 已(滿) 참조 수정
18 17b21 喩 踰 踰 & 교감주
참조 수정
19 17b24 -群 咸+群 咸群 참조 보충
20 17c02 曰 云 云 참조 수정
행원품소
21 17c04 他- 他- 他方 참조 보충
22 17c06 知 智 智 참조 수정
23 17c09 誠 識 識 참조 수정
24 17c12 後 復 復 참조 수정
25 17c13 -寶 -寶 -寶 교감주曰,“寶앞에
‘捧’이 빠진 듯하다.”
26 17c16 由 田 田 참조 수정
27 17c19 若 若 一 대소 참조 수정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5
56 22c03 退 待 待 참조 수정
57 22c03 -涉 理+涉 理涉 참조 보충
58 22c08 取 耶 耶 & 참조 수정
59 22c14 堅 竪 竪 참조 수정
60 23b03 句 俱 俱 참조 수정
61 23b21 --(必) 有力+(必) 有力(必) 참조 보충
金澤寫本 교감주
62 23c05 非謂 謂非 謂非 참조 도치
63 23c17 見- 見+修 見修 & 대소
참조 보충
64 24a14 境 妙 妙 참조 수정
65 24c06 護 獲 獲 & 교감주 및 대소
上半 참조 수정
66 24c18 技 枝 枝 참조 수정
67 25a06 經 位 位 & 대소
참조 수정
68 25a07 以 以 位 대소 참조 수정
69 25a11 五 如 如 참조 수정
70 25a15 三第 第三 第三 참조 도치
71 25b10 今 如 如 & 대소
참조 수정
72 25b20 說-- 說+四或 說四或 & 대소
참조 보충
73 25c03 占/古 占 占 & 卍續藏經,
(CBETA) 대소 참조
74 25c07 佛- 佛- 佛依 대소 참조 보충
75 26a02 至- 至+茶 至茶 참조 보충
76 26a05 來 來 來 교감주 “是”인 듯하
다
77 26a22 融- 融+皆 融皆 참조 보충
78 26b01 -隱隱 鈔+隱隱 鈔隱隱 참조 보충
79 26b01 -問 者+問 者問 참조 보충
80 26b21 斯 斷 斷 참조 수정
81 26c03 後- 後+後 後後 참조 보충
82 26c10 之(北) 至(北) 至(北) 참조 수정
83 27a22 貧 貪 貪 & 대소 , 교감주
참조 수정
84 27b14 得入+持 --持 --持 참조 “得入”삭제
上半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7
85 27c03 立 立 玄 원각경대초
참조 수정
86 27c19 畏 畏 異 교감주 및 문맥상 수
정
87 27c24 雨*隻 雨*隻 雙 대소 참조 수정
88 28a06 二 三 三 참조 수정
89 28a10 喜 嘉 嘉 & 교감주
참조 수정
90 28a12 與 爲 爲 참조 수정
下半
91 28a15 也 色 色 참조 수정
92 28b04 違 遠 遠 & 교감주
上半 참조 수정
93 28b10 正(因) 正(因) 生(因) 교감주 및 문맥상 수
정
94 28b11 正 生 生 & 교감주
참조 수정
95 28b16 緣-(也) 緣-(也) 緣因(也) 대소 참조 보충
96 28b16 因緣 緣因 緣因 & 대소
참조 도치
97 29a11 本/木(覺) 本(覺) 本(覺) & 卍續藏經
(CBETA) 참조 수정
98 29b09 文 大 大 & 教義分齊章 및
교감주 참조 수정
99 29c08 言- 言+貪 言貪 & 연의초, 교감주
참조 보충
分限~云 8장 3행 & 교감주
100 30b10
~11 중간내용 2597字 있 故名~
謂通 참조 보충 [별첨1]
없음 음
101 30b18 藏 嚴 嚴 참조 수정.
아래도 동일
102 31a06 令 今 今 참조 수정
[별첨1]33)에서 결택기 권제3(X8, 30b10)離分限~(30b11)云 사
이에 보충된 원문은 모두 8紙3行의 2597자이다.
33) [별첨1]에서 보충하고 있는 원문은 박은영(지현)(2017), 958-961에서 재
인용하였다.
258 ∙佛敎硏究 제48집
10 32c22 意 意 樂 연의초 참조 수정
11 33a03 持 示 示 참조 수정
下半
12 33a03 入-(7자) 入- 入(生死故, 대소 참조
下半 없음 示滅非眞.) 7字 보충
13 33a07 見眞 見眞 眞見 대소 참조 도치
14 33a12 未 末 末 참조 수정
15 33a20 問 同 同 참조 수정
16 33b05 億 德 德 참조 수정
17 33b11 -亡 -亡 言亡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二+性”
18 33b11 性 性 性 으로 되어 있다.
19 33b24 法 法 皆 대소 참조 수정
20 33c17 名 妙 妙 & 심지관경
上半 참조 수정
21 34a13 報 執 執 & 기신론필삭기
참조 수정
22 34b03 佛 法 法 & 기신론의기
참조 수정
기신론의기
23 34b04 皆 皆 是 참조 수정
24 34c21 到 到 致 繫辭傳 참조 수정
25 35a12 □ 促 促 참조 보충
26 35a13 被 披 披 참조 수정
27 35a18 末 未 未 참조 수정
28 35a20 求 未 未 참조 수정
연의초에는 “取”로
29 35a22 所 所 所 되어 있다.
30 35b01 許 計 計 & 대소 참조 수정
31 35b20 諼 該 該 & 대소 참조 수정
32 35c07 說證 說證 證說 대소 참조 도치
대소 에는 “機”로
33 35c16 根 根 根 되어 있다.
34 35c16 見 是 是 & 대소 참조 수정
35 36a01 (念)聲 (念)請 (念)請 & 대소 참조 수정
36 36a09 第-(會) 第+九 第九(會) & 대소
(會) 참조 수정
대소에는 “有說”로
37 36a14 經 經 經 되어 있다.
266 ∙佛敎硏究 제48집
上半 참조 수정
62 38a11 是(能) 此(能) 此(能) &참조법원의림장
上半 수정
63 38a13 -界 境+界 境界 참조 보충
上半
64 38a16 脫+障 脫+障 脫- 법원의림장
上半 참조 삭제
65 38b12 遽 邃 邃 & 교감주 참조 수정
66 38b13 名 各 各 & 교감주 참조 수정
67 39a01 耶 那 那 & 대소 참조 수정
68 39a02 (說)如 (說)如 (說)知 대소 참조 수정
上半
69 39a02 耶 那 那 & 대소 참조 수정
70 39a09 寄 奇 奇 & 대소 참조 수정
71 39a11 誓 誓 擔 대소 참조 수정
72 39a20 了- 了+義 了義 & 대소 참조 수정
73 39b24 -稱(論) 正 + 稱 正稱(論) 참조 보충
(論)
74 40a24 勝+上 勝+上 勝- 대소 참조 삭제
75 40b02 雅 雅 雄 연의초 참조 수정
下半
대소에는 “機”로 되
76 40b06 根 根 根 어 있다.
77 40b23 法--善 法--善 善法+(智若) 승만경, 연의초
참조 보충
78 40c03 遲 違 違 & 승만경
참조 수정
79 40c05 等 第 第 & 대소 참조 수정
80 40c08 侍 伴 伴 & 장엄론
참조 수정
81 40c14 目 自 自 & 대소, 성실론
참조 수정
82 40c19 福(是) 福(是) 德(是) 탐현기 참조 수정
83 41a04 主 生 生 & 법화경
참조 수정
84 41a15 是+無 是+無 是- 연의초 참조 삭제
85 41a23 者 者 言 연의초 참조 수정
86 41b14 受 愛 愛 참조 수정
87 41b19 滅(蘊) -(蘊) -(蘊) & 연의초
268 ∙佛敎硏究 제48집
下半 참조 삭제
88 41b21 色 色 死 “老死支” 참조 수정
연의초 · 공목장
89 41c13 觀 觀 推 및 下句 참조 수정
90 41c14 觀(因) 觀(因) 推(因) 上同
Ⅲ. 결론
지금까지 결택기 권제2부터 권제4(절반)까지의 두 대표적인
44) 華嚴經疏 권제53(T35, 904b), “五涅槃即是化身, 化身示滅故名涅槃. 深入
見者, 深入涅槃, 故能示滅. 深入生死, 故示滅非眞.”
45) 決擇記 권제4 (X8, 033a), “涅槃佛深入見, (深入涅槃, 故能示滅. 深入生死
故, 示滅非眞.)”
46) 成唯識論 권제8(T31, 043c), “老非定有, 附死立支. 病何非支, 不遍定故.”
47) 決擇記 권제4, (X8, 041b), “老非定有故, 死非徧地故, 合附為支.”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71
약호 및 참고문헌
T: 大正新修大藏經
X: 卍新纂續藏經
T1735, 唐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疏, CBETA(Ver.2016) &
SAT(2012).
T1736,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CBETA & SAT.
X0232,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疏鈔玄談, CBETA.
X0235, 遼 鮮演 述, 大方廣佛華嚴經談玄決擇 卷第二~六, 001a-041c,
CBETA.
鮮演 述, 大方廣佛華嚴經談玄決擇 卷第一~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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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현·박용진외(2015), 고려의 재조대장경과 동아시아의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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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西省文物館·中國歷史博物館 主編(1991), 應縣木塔遼代祕藏敍錄,
山西文物出版社.
274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A Comparative Study For Intertextuality of Huayan
Jing Tǎnxuan Juezĕ Ji 華嚴經談玄決擇記
Park, Eun Young (Ven. Jihyun)
Education-ācārya,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This paper is a process of organizing at the original
texts of Tǎnxuan Juezĕ Ji, has been studied for translation
as my Ph.D. dissertation, which is comprised of the texts
being contained in the Manchi Zokuzokyo 卍續藏經(V.8) and
the manuscripts of the Kanajawabunko 金澤文庫 managed.
Tǎnxuan Juezĕ Ji written by Xianyǎn 鮮演(1040~
45-1118) was one of the later annotations to Xuantǎn 玄談
(Profound treatise) of Dafang'guangfo Huayan Jing Shu 大方
廣佛華嚴經疏 20 volumes and Suishuyanyi Chao 隨疏演義鈔 40
volumes, which was widely known as a distinctive
commentary of the Avataṃsaka sutra 80 volumes, written
by Qingliang Chengguan 清涼澄觀(738-839)
I procured and analyzed between the manuscripts of
Kanajawabunko and the texts of the Manchi Zokuzokyo.
When I drew the printed version (published in 1975) parallel
with the manuscriptal version of the first fascicle, I could
find out that a parts of it were misprinted. Especially
through a competitive study between the manuscripts of the
Kanajawabunko and the texts of the Manchi Zokuzokyo
(from volume 2 to volume 4), it added and replaced to the
original body texts have ranged from hundreds to thousands
every single fascicle.
Now I set them all down in a list and refer to overall
276 ∙佛敎硏究 제48집
Key Words :
Huayan Jing Shu, Huayan jing suishu yanyi chao, Tǎnxuan juezĕ
ji, Manchi zokuzokyo text, Kanazawabunko manuscripts, correcting
the proof
투고일 2018. 01. 20 | 심사기간 2018. 01. 20 - 02. 09 | 게재확정 2018. 02. 09
불교연구 제48집(2018), 277~291쪽
[특별기고]
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
安中尚史* 49)
Ⅰ. はじめに
Ⅱ. 出家と在家
Ⅲ. 神道と仏教の習合
Ⅳ. 日本仏教の歴史と出家
Ⅴ. 現在の日本仏教の淵源
Ⅵ. 現代社会の出家者養成
Ⅶ. 在家教団である創価学会について
Ⅷ. むすびにかえて
* 立正大学 仏教学部 教授
278 ∙佛敎硏究 제48집
소개의 글
본고는 2017년 11월 4일(토) 거행된 “불연이기영선생 추모 초청특
강 및 기념행사”에서 특강의 연사로 초청된 안나카 나오후미(安中尙
史) 교수의 발표원고를 본인이 새롭게 다듬은 것이다. 안나카 교수는
현재 일본 릿쇼(立正) 대학의 불교학부 소속 교수로서 근대일본의
불교를 전공으로 하며, 일본인도학불교학회의 상임이사 및 일본근대
불교사연구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중견의 학자이다. 불연선생
님 추모행사로서 거행된 학술행사로는 안나카 교수의 발표 및 “동아
시아 재가불교의 역할과 실제”라는 제목의 좌담회가 거행되었다. 금
번 추모행사로 거행된 학술행사는 향후 동아시아 내지는 한국사회에
서 재가불교도가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을 시도한 것으로, 그런 의
미에서 세계 불교학의 연구성과를 리드하는 일본사회에서 출가와 재
가의 역할 및 그 실제적인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교도
가 어떠한 자세로 나아가야할 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안나카
교수는 일본불교 내에서 출가와 재가의 전통 내지 오늘날 재가불교
의 역할 등에 대해 사실적인 내용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원
고는 철저한 논문의 형태는 아니지만 일본불교의 전통 및 오늘날 일
본불교의 일단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 인연있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79
[
Ⅰ. はじめに
本日のお話しは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と題してお話しをさ
せて頂きます。現代社会の問題から、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定着す
るまでの内容や、いくつかの宗派に関する出家・在家に関係する内
容をお話します。
日本の仏教に関係している内容ですし、専門的な事柄にも触れま
す関係で、解りにくい箇所もあるかと思いますので、ご不明な点は
後ほど質問を頂ければお答え申し上げます。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
します。
Ⅱ. 出家と在家
日本仏教に限らず、仏教を信仰する人々には出家者と在家者の区
別があります。一般的には、出家者(僧侶)によって在家者(信
徒)は教え導かれます。
本来、仏教徒は出家者・在家者の立場によって異なるものの、戒
律という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が定められ、これを破ると強く
責められる場合もあります。この戒律の中に 不殺生戒 と 不邪淫戒
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
不殺生戒 とは生き物を殺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つまり
は生き物を殺して食べ物としてはいけないことを意味します。 不
邪淫戒 とは男女の交わりを禁じるということで、つまりは結婚を
してはいけないことを意味します。
日本人は出家者と在家者を区別するとき、この二つの戒を基準に
することが多くあります。日本人の中には、現在でも 僧侶は結婚し
ても良いのか? 僧侶は肉を食べても良いのか? という疑問を
持っている人は多くいます。
280 ∙佛敎硏究 제48집
それは、日本仏教各宗派の僧侶の多くは、出家者という立場をと
りながら、結婚して肉も食べる生活を普通におくっているからで
しょう。
この肉食・妻帯は1872(明治5)年に政府が僧侶へ通達を出
して以降、認められることになったものです。日本の仏教界は出家
者でありながら、結婚して肉を食べることが可能になり、今日にい
たっています。
この通達を契機として、日本仏教に出家者の在家化が目立つよう
になってきましたが、
なぜ明治時代に政府が僧侶に肉食・妻帯を認めることになったの
でしょうか?
それは、僧侶の地位を下げることを大きな目的にしたと言われて
います。この背景には、日本の政府が新しい国を作ろうとした中で
行った宗教政策に大きく関係します。
明治という近代的な国家がはじまったのは、1868(明治元)
年からのことで、それ以前は江戸幕府が日本を治めていました。
この、江戸幕府がはじまったのは17世紀からのことで、徳川家
康という武将が江戸(現在の東京)に政治の中心を置いたことには
じまります。
この江戸幕府は創設されてからすぐ後に、宗教に対する政策を
次々と行いました。例えばキリスト教を禁止したり、仏教宗派ごと
に制度を定めたり組織化を図らせたり、国民を必ずどこかの寺院に
所属させたりします。この背景には、宗教を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
によって、政権が安定すると考えたわけです。
特に、今、述べた 国民を必ずどこかの寺院に所属させる という
ことは、国民の管理の一部分を寺院に委ねたことを意味します。そ
れは、寺院が戸籍のようなものを作成し、旅行や住居の移動の際に
は寺院で発行する証明書を必要としました。
さらに、この国民の管理は、個人的なものではありましたが、そ
れぞれが所属する家ごとにまとめられていたことから、寺院(菩提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1
寺)と家(檀家)の関係が築かれ、実は現代に至るまでこの関係が
継続していることは珍しくありません。
菩提寺と檀家の関係が築かれたことによって、寺院の仕事は増え
ますが、安定した収入を確保する仕組みが作られました。さらに、
幕府も寺院を保護するために土地などを寄附し、寺院も寄附された
土地を地域の人々に貸して、そこから収入を得ていました。
こうして、江戸幕府は国民の管理を寺院に委ねることによって、
寺院や僧侶に対する保護政策をとっていきました。
このような状態のまま、200年以上の歳月を経て、明治政府が
樹立すると、江戸時代と一転して、仏教に対して排撃する動きが見
られました。
この動きの背景には、神道という日本古来の宗教を用いて新しい
国を果たそうとする政府の姿が見られます。具体的には、神道と仏
教が1000年以上もの長きにわたって習合していましたが、明治
政府はそれを強制的に切り離すことを目指し、そのための法律(神
仏分離令)が次々に出され、神道の立場を向上させる取り組みが行
われました。
これに対して仏教は、江戸時代に幕府から保護されていた反動か
ら、排撃の対象となってしまい、寺院が強制的に削減させられたり
する中で、先にも述べましたとおり、僧侶に対する地位の低下を求
めて、肉食・妻帯を認める通達が出されたと言われています。
こうした背景があって、明治政府が主導して出家者の在家化が行
われました。
Ⅲ. 神道と仏教の習合
ここで少し日本古来の宗教である神道と、朝鮮半島から6世紀に
日本に伝わった仏教の関係についてお話します。先ほど、 神道と仏
教が1000年以上もの長きにわたって習合していた と述べまし
282 ∙佛敎硏究 제48집
たが、今日まで仏教の中に神道的な要素が存在していますが、神道
の中に仏教的な要素は明治政府が樹立したときに無くされていま
す。
日本の神道の神々は実に多岐にわたるもので、自然のものや自然
現象の神、神話の神や土地の神、衣食住の神など、その数の多さか
ら 八百万神 と言われます。さらに、歴代の天皇や高い徳を積まれ
た人物、人々の生活を見守る先祖も、神として祀られています。
仏教と神道の習合がはじまった時期は正確に知ることは出来ませ
んが、すでに仏教が日本に伝来してからそれほど長い年月が経過し
ていない時期から、距離が縮まっ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具体
的に史料で確認できるのは、7世紀の後半になってからで、仏教の
思想に基づいた儀式が神道の神社で行われています。
その儀式とは 放生会 というもので、仏教の殺生戒の思想に基づ
いて行われる、鳥獣や魚を放つ儀式です。その功徳は金光明最勝王
経などに説かれ、中国の天台宗の開祖が行ったと伝わっています。
日本では日本書紀の中で、676年8月17日の条に 諸国に詔
(みことのり)して放生せしむ とあるのが歴史上の初見です。収
穫祭の意味を込める場合が多く、各地の寺院のほか、神社でも行わ
れました。
また、8世紀になると仏教の僧侶が神道に奉仕するために、神社
の境内などに神宮寺が作られ、神社の祭祀が読経などの仏式でとり
行われました。
さらに、9世紀にいたると、仏教が日本の国の中で広まり、日本
の宗教である神道と密接な繋がりが生まれました。それは、神道の
神々は仏教の仏・菩薩が仮の姿をして、日本に仏教が伝わる以前か
ら存在していたという 本地垂迹 思想と言います。
例えば天照大神は大日如来の仮の姿である。八幡神は阿弥陀如来
の仮の姿である。秋葉権現は観音菩薩の仮の姿であるなどと位置づ
け、神と仏・菩薩を習合させました。
その他にも三十番神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地球と月の動きをも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3
とにして作られた太陰暦は1カ月30日もしくは29日でした。三
十番神の30は1カ月の日数を示すもので、毎月の1日から30日
まで、日ごとに神道の神が仏教を守る 守護神 として配置されるも
のでした。
1日は熱田大明神、2日は諏訪大明神、3日は広田大明神、4日
は気比大明神、5日は気多大明神、というものでした。
この三十番神は仏教側に見られ、仏教を主、神道を従とするもの
で、日本の国の中では、外国から渡って来た宗教である仏教の立場
が、日本で起こった宗教である神道の上位に位置づけられていまし
た。
また、山岳信仰・修行を中心とする修験道という信仰も神道と仏
教が習合したものでした。8世紀に役行者という人物によってはじ
められました。
仏教伝来以前からの日本土着の神々への信仰と、仏教の信仰とを
融合させる動きの中で展開したもので、仏教の一派である密教(天
台宗・真言宗)で行われていた山中での修行と、さらに日本古来の
山岳信仰とが結びついて、修験道という独自の信仰が成立しまし
た。
このように仏教と習合した神道を司る人々は、出家者ではなく在
家者であることから、日本の仏教には、神道を介して在家者が古く
から存在し、ときには指導者という立場の場合もありました。
Ⅳ. 日本仏教の歴史と出家
日本仏教の歴史に見られる出家について、仏教が日本に伝来して
から、およそ250年間の様子について少しく見ていきます。
この250年は、国家と仏教が最も密接な関係を構築した時間で
あり、日本に仏教が定着する要因となる出来事が、この期間に起
こっていました。
284 ∙佛敎硏究 제48집
日本で初めて出家した人物は3人の女性と言われています。この
女性は中国から日本に渡ってきた一族の出身者で、仏教が公式に伝
来して約30~50年後の584年頃に、高句麗から渡来した僧侶
に師事して出家しました。この年、蘇我氏という仏教信仰を当時の
日本で推進しようとする有力者一族の邸宅で、百済からもちこまれ
た仏像を安置して、法要が営まれたとされます。
しかし、翌年に日本に仏教が広まることを反対していた物部氏と
いう有力者によって、出家尼僧たちは弾圧されて、法衣を剥ぎ取ら
れて鞭打ちの刑に処せられました。
こうした状況にも耐えた3人の尼僧たちは、588年に百済へ
渡って戒律を学び十戒、六法、具足戒を受け、2年間の留学を終
え、590年に日本へ帰国しました。帰国後、蘇我氏が提供した寺
院に住んで、多くの女性を出家させて仏教の興隆に貢献したと言わ
れています。
古来、日本の宗教は女性に神との橋渡し役を担わせていました。
この背景には、外国から伝わってきた未知の宗教である仏教の担い
手を、男性にすることに大きな抵抗が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
その後、物部氏が蘇我氏によって滅ぼされたことによって、仏教が
日本の宗教の中心となり、男性が出家者の中心に変化しました。
さらに、聖徳太子という人物によって日本の仏教は新たな展開を
見ることになりました。聖徳太子は当時の天皇を補佐する役割を
担っていました。
この頃、日本は朝鮮半島の国とは関係を保っていましたが、中国
と国交は絶えていましたため、中国に使者を派遣して国交回復を図
ろうとします。
この活動に対して、中国は日本との対等な関係を最初は認めませ
んでしたが、聖徳太子が仏教の思想を政治に用いている姿を中国人
使者に見せて、対等な関係を結べるだけの力を有していることを主
張し、その結果、中国との国交が樹立します。
最初に日本から中国へ派遣された600年から18年間に、5回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5
[
もしくは6回の使者が派遣されて、中国からさまざまなものがもた
らされました。
さらに、もう一方で日本から出家者を派遣して、仏教が盛んだっ
た中国で本格的に学ばせました。留学僧として、10年以上の長い
時間を使って仏教を学ばせて、日本の仏教界の指導者となるような
人材育成を中国の仏教界に託しました。
また、仏教の推進者であった蘇我氏が病になったとき、男・女1
000人が出家をして、蘇我氏の病を治すことを念じさせるなど、
仏教に特別な力を求めることも行われたとする記録が残っていま
す。
その後、仏教は徐々に日本の中で定着をすると、寺院が建立され
始めて、出家者の育成が行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ちなみに仏教
が日本に伝わってから約100年後である624年の寺院・僧侶の
数は、記録によると46寺、僧(男性)816人、尼(女性)56
9人、あわせて1385人とされています。
さらに同年に出家者が親族を殺害する事件が起こると、当時の仏
教界を監督していた百済の僧侶による管理体制が強化されていきま
した。
そして、645年に仏教信仰を推進する有力者であった蘇我氏が
政治クーデターで倒れると、仏教は天皇が保護と統制にあたると宣
言し、国家と仏教・出家者の関係がいっそう密接になりました。
さらに8世紀になると、寺院・出家者を管理する法令(僧尼令)
が作られ、出家・得度から、正式な僧侶となり、その後の指導者に
なるまでの手続きが定められ、加えて出家者の身分が向上して中級
の官僚と同じ位の官位が与えられました。
この身分はときに出家者が罪を犯したときに効力を発揮し、例え
ば強制労働1年間の罪は還俗をもって相殺することが出来ます。ま
た、軽度の罪であれば還俗の必要はなく、杖(じょう:木の棒で背
中をたたく)10回の罪は10日間の労働で済んでしまいました。
このように出家者には、在家者にくらべて特権が与えられていま
286 ∙佛敎硏究 제48집
したが、国家への反逆や殺人などの重大犯罪は特権は適用されない
で、還俗のうえ、在家者と同じ刑罰が与えられます。
さらに、聖武天皇が即位すると、よりいっそう仏教が盛んとな
り、奈良に大仏が造立されたり、国家が運営する大規模な寺院が建
立され、そこで大勢の出家者(一度に数千人が出家)が養成され、
その出家者によって国家の安泰を願って経典が読誦されました。こ
の聖武天皇は自分も出家するなど、国家と仏教の関係がいっそう強
く結びつくことになりました。
しかし、一人の僧侶が天皇の立場を(法皇)を狙おうとしたこと
によって、政治と仏教の距離を離すための政策がとられることにな
り、出家者を管理する体制が強化され、原則、1年間に出家するこ
とが出来る人数を10人に定めることにしました。
この時点で日本に仏教が伝わって約250年経過した頃のことで
した。
Ⅴ. 現在の日本仏教の淵源
現在、日本で活動する仏教宗派の多くは、日本の時代で言う 鎌倉
時代 に作られました。西暦で言うと12世紀の終わり頃のことでし
た。
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300年頃に天台宗と真言宗が作られ、今
日に継続する仏教の宗派が創設され、その後、鎌倉時代に浄土宗・
浄土真宗・臨済宗・曹洞宗・日蓮宗・時宗という宗派が作られまし
た。
日本の寺院数は規模の大小はありますが、約81700です。そ
の内、天台宗系が約5000寺、真言宗系が約13700寺、浄土
宗系が約30000寺、禅宗系が約21000寺、日蓮宗系が約1
1500寺、その他が約500寺となります。
この宗派の中で、浄土真宗という宗派は出家と在家について、他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7
[
の宗派と全く異なるそれぞれの立場がとられ、それが今日まで継承
されています。
浄土真宗を創設した人物は親鸞と言い、貴族の家に生まれまし
た。9才で出家し、その後、天台宗で学びましたが、そこで浄土宗
を起こした法然と出会い、専らに阿弥陀如来の信仰を持つことに
よって、極楽浄土に導いてくれるという考えに傾倒して、その門下
に加わります。
法然の教えは専らに念仏を唱えることによっての成仏がかなうこ
とから、 専修念仏 と言われましたが、親鸞の場合はさらに 悪人正
機 と言って、悪いことをした人こそ、阿弥陀如来に救済されなけれ
ばいけないと主張し、修行をすることも禁じます。さらに 非僧非
俗 と称して、僧侶でありながら在家者の生活をおくり、結婚もして
子供をもうけました。
親鸞は、生きた人間の相手をすることを主張し、死者の相手ばか
りする一般的な僧侶を批判しました。そのために 非僧 、つまりは
私は僧侶ではありません という立場をとりました。一方、俗人に
対しては、金銭や物を求めて一生を暮らすだけの存在と位置づけ、
非俗 、つまりは 私は在家ではありません という立場をとってい
たのでした。
そして、この親鸞の教えは今日にまで継続し、浄土真宗の出家者
は結婚し、子供をもうけ、さらに寺院は代々、世襲制で受け継が
れ、親鸞がしていたように有髪のままでいる場合が多いです。これ
は江戸時代の宗教統制が強いときでも、浄土真宗は特別な扱いを受
けていました。
親鸞の末裔とされる一族が宗派内の頂点に位置づけられ、800
年以上続く由緒正しい家柄として認識され、ときには皇室と姻戚関
係が結ば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
288 ∙佛敎硏究 제48집
Ⅵ. 現代社会の出家者養成
次に、親鸞よりも少し遅れて日本の仏教界に現れた日蓮が起こし
た 日蓮宗 について、出家者養成の資格制度や教育制度と宗門立の高
等教育機関である日蓮宗大学・立正大学の関係について見ることに
します。
現在、多くの伝統的仏教宗派は、資格制度と教育制度を連関させな
がら出家者を養成し、さらに行政が設置認可した大学などの教育機
関にその課程が置かれている場合があります。
日蓮宗の例をあげれば、資格制度は 僧籍規程 、教育制度は 叙任
規程 の中にそれぞれ位置づけられ、出家者は沙弥と教師に大別され
ます。
沙弥は日蓮宗の宗務総長に得度届を提出し、僧籍へ編入の後に度牒
という証明書の交付によって得られるもので、この過程は専ら資格
に関する制度に基づいて進められ、教育に関する制度は見あたりま
せん。これに対して沙弥から教師となる過程において、資格に関す
る制度はもとより教育に関する制度が集中します。
教師となるための現行制度について、順序を逆にして述べると、
最終に信行道場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35日間に及ぶ修行と教育
の場が設けられ、この道場を修了することによって僧階が新たに叙
せられ、寺院の住職に就くことが制度上可能となります。
この信行道場へ入場するために 無試験検定 と 試験検定 があ
り、どちらかの検定を修める必要があります。
この内の 無試験検定 とは、日蓮宗が定めた教育機関で学習し、
修了・卒業、もしくは特定の教科目の修得・単位取得等によって得
られます。その中には行政によって設置認可された教育機関であ
り、正課の中に出家者資格に関する教科目が置かれれています。
これに対して 試験検定 とは、高等試験甲種・同乙種、普通試験
甲種・同乙種に分類され、高等試験は論文審査と口述試験、普通試験
は筆記試験によって得られます。試験を実施する施設は行政によっ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9
て設置認可された教育機関が用いられますが、教育機関の正課外で
実施されています。
このほかにも、信行道場入場予定者に対して経典読誦の力量が考
査されたり、信行道場における教育の本来の目的達成を目指し、教
師となるための基礎教育を徹底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僧道林とい
う学びの場も設置されています。この二つは義務とされています
が、宗門が定めた機関で修行と教育(宗門立の学生寮など)を一定
期間受けた者は免除されます。
こうした出家者の養成に関する資格と教育の制度について、日蓮
宗内で画一化されたのは明治時代以降でした。明治維新期の多難な時
代を乗り越えた日蓮宗は、政府の宗教政策と関連しながら、時代に
即応した方策がとられ、出家者養成についてもその例外ではありま
せんでした。
さらに、日本の教育政策の変革と相俟って、明治後期には宗派の
子弟教育の場であった教育機関が、国の教育制度下に置かれるな
ど、新たな局面をむか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
今ここで、日蓮宗の事例を示しましたが、他の宗派の出家者養成
についても、名称や期間の相違はありますが、同じような規則や過
程を設けて運営されているのでした。
Ⅶ. 在家教団である創価学会について
現在、日本の仏教系組織で最大のものは 創価学会 という宗教団
体です。公称で872万世帯と発表していますが、実際にはそこま
で多数の人が所属しているとは考えられません。
それでも、数百万人の信徒が所属する宗教団体ということには変
わりなく、また、現在の日本の政界において、政権を担う与党の一
つである公明党の支持母体でありますことから、日本の国に対して
最も影響力のある宗教団体であ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290 ∙佛敎硏究 제48집
この創価学会は在家者が中心となって組織されていますが、その
もとを尋ねると 日蓮正宗 という日蓮宗系宗派の信徒団体の一つで
した。
日蓮正宗とは、日蓮宗の祖である日蓮の直弟子日興を派祖とする
宗派です。日蓮の遷化後、日蓮のほかの直弟子と組織運営で関係が悪
化し、距離を置いて活動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さらに、日蓮の教
義を正統に受け継ぐ唯一の存在という自負のもと、活動を展開した
こともあって、日蓮門下の中でも異端に見られることがしばしばあ
りました。
加えて、日蓮正宗は日蓮宗の根本経典である法華経の解釈が、
他の弟子が運営していた組織と異なり、前半部分の迹門と後半部分
の本門に勝劣(前半が劣って、後半が勝れている)があると主張す
るなど、いくつかの点で、日蓮宗と考えに相違が見られます。
日蓮正宗 には古くから 法華講 という信徒たちが組織・運営す
る信徒団体がいくつも存在しており、 創価学会 もその一つでし
た。
創価学会の創設は1930年ですが、大きく拡大したのは195
0年以降のことでした。 折伏 という激しい布教方法で、信者を多
数獲得し、急成長を遂げました。
これによって、その母体であった 日蓮正宗 は大きく発展しまし
たが、1974年頃に、創価学会が日蓮正宗の支配や日蓮正宗との
分離を画策しましたが、結局は不調に終わってしまい、当時の会長
であった池田大作氏が辞任して事態は収束しました。
しかし、この問題はその後もくすぶり続け、1990年に創価学
会の日蓮正宗に対する批判が前にも増して激しくなり、さらに日蓮
正宗も創価学会に対して激しく批判し、1996年には日蓮正宗が
国に対して創価学会が宗教法人としての的確性を欠くなどといった
意見書を提出するなど、関係が修復されることなく、決別する結果
となりました。
本来、日蓮正宗の信徒組織の一つにすぎなかった創価学会であり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91
[
ましたが、その組織力・経済力がはるかに支持母体であった日蓮正
宗をうわまわってしまい、その立場が逆転しても、出家と在家とい
う関係性によって繋がっていたものが、創価学会側の批判によっ
て、その関係が解消されて、お互いが独自の道を歩むことになった
のであります。
激しい批判の応酬が一時期は見られましたが、今日にいたっては
日本国内において表だった対立は見られなくなりました。
出家と在家との関係が複雑化し、悪い結果を招いた一例ではあり
ますが、創価学会という日本で最大規模の宗教団体であったことか
ら、当時の大きな社会問題にも発展したことは確かなことでした。
Ⅷ. むすびにかえて
以上、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と題して、現代社会の問題か
ら、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定着するまでの内容や、いくつかの宗派
に関する出家・在家に関係する内容をお話しさせて頂きました。雑
駁な内容で解りにくい箇所も多々あったかと存じます。もし、ご質
問をお受けするお時間があるようでしたら、可能な限りご対応させ
て頂きます。本日は誠に有難うございました。
292 ∙佛敎硏究 제48집
佛敎硏究 주요 목차
1. 편집위원회 규정
1) 편집위원회 구성
(1) 편집위원회는 한국불교연구원 원장과 부원장을 당연직으
로 하고, 불교연구회의 연구위원 중에서 약간 명을 선임
한다.
(2) 편집위원은 불교학 관련 전공 교수로서 해당 분야 논문이
10편 이상인 자로 나머지 성원을 구성한다.
(3) 편집위원회의 장은 원장이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특별한 경우 원장이 편집위원회의 장을 편집위원 가운데
에서 위촉할 수 있다.
2) 편집회의 시기
편집회의는 연 2회(각각 1월과 7월 중) 개최한다.
3) 편집회의 규정
(1) 편집회의는 편집위원 5/3 이상의 참석을 정족수로 한다.
(2) 편집회의는 편집위원장이 주관하며, 위원장 유고시 내규
에 따라 편집위원 중 한 명이 위원장의 임무를 대신한다.
(3) 편집위원회에서는 논문집의 편집 방향과 게재 순서를 정
한다.
(4) 편집위원회에서는 논문의 심사위원을 선발, 위촉한다.
(5) 편집회의에서는 발표된 논문 중에서 ‘수정 후 게재’ 판정
이 나온 논문에 대하여 심사, 결정한다.
(6) 편집위원회 규정은 본 연구원 윤리규정에 따라 판단한다.
316 ∙佛敎硏究 제48집
1) 논문 심사 절차
(1) 편집위원회에서는 한국불교연구원 및 불교연구회에서 개
최하는 모든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 및 투고된 논문
에 대하여 각각 관련 전공학자 3인을 심사위원으로 선
정․위촉하고 심사를 의뢰한다.
(2) 심사위원 3인은 심사결과를 ‘게재, 수정 후 게재, 게재불
가’의 세 등급으로 판정하고, 판정결과 소견을 편집위원회
에 제출한다. 단 외국어 논문은 해당언어에 능통한 심사
위원 2인의 판정을 따른다.
(3) 심사 결과 ‘수정 후 게재’가 요구된 논문은 투고자에게 그
사항을 통보하고, 수정본을 재심하여 보완 사항을 성실하
게 이행하였거나 해명한 논문에 한하여 게재를 결정한다.
(4) 심사 결과는 투고자에게 그 사항을 통보한다.
(5) 심사위원의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며, 다음과 같은
예에 준한다.
게재: 게재 3인 혹은 게재 2인, 수정 후 게재 1인일 경우
수정 후 게재: 게재 1인, 수정 후 게재 2인일 경우
수정 후 게재 3인일 경우
게재불가: 게재 불가 2인 이상일 경우
(6) 심사위원 3인의 판정소견이 ‘게재’ 1인 ‘수정 후 게재’ 1인
‘불가’ 1인일 경우, 혹은 ‘수정 후 게재’ 2인, ‘불가’ 1인 일
경우 편집위원회의 판정소견을 따른다.
(7) 규정 이외의 사항은 편집위원장이 윤리규정에 의거하여
결정한다.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17
2) 논문 심사 기준
(1) 불교연구 논문게재원칙 및 집필요령의 체제를 준수하여
야 한다.
(2) 논문의 주제의식과 논제가 명확하며, 타당한 논리적 근거
가 제시되어야 한다.
(3)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논제, 개념, 논거, 관점 등이 제시되
어야 한다.
(4) 관련 분야에 대한 기초 문헌과 2차 문헌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5) 1차 또는 2차 문헌에 대한 단순 해석, 정리, 요약에 그친
논문들은 권장되지 않는다.
(6) 논문 주제와 관련된 국내외의 선행 연구 논문 및 저술에
대한 논의를 적극 권장하며, 특히 최근의 연구물을 권장
한다.
(7) 본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은 본 연구원의 윤리규정에 어
긋나지 않아야 한다.
3) 게재 논문 저작권 양도
(1) 본 학회지의 심사를 거쳐 게재된 논문의 저자는 해당 논
문을 학회의 홈페이지 및 KCI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공
개 서비스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2) 본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저자는 해당 논문의 저작권을
본 학회의 소유로 양도한 것으로 간주한다.
(3) 상기한 (1)과 (2)항에 이의가 있거나 동의하지 않는 저자
는 논문이 게재되기 이전에 이 사실을 본 학회에 즉각 통
보하여, 별도의 저작권 양도 합의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3. 논문 게재 원칙 및 원고 작성 요령
318 ∙佛敎硏究 제48집
1) 논문 게재 원칙
(1) 불교연구는 불교학의 전문학술지로서 불교의 역사, 철
학, 문화와 이와 관련된 분야의 학술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논문, 서평과 기획물 등을 수록한다.
(2) 논문의 채택여부와 게재 순서는 편집위원회의 결정에 따
른다.
(3) 기타 세부적인 사항은 편집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
2) 논문 투고 규정
(1) 논문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로 한다. 논문에
는 200자 원고지 4매 내외의 우리말 요약문과 200자 원고
지 8매 내외의 영문 Abstract를 첨부하고, 여기에 5가지
정도의 우리말 주제어와 영문 key words를 부기한다. 단
본문이 외국어일 경우, 200자 원고지 4매 내외의 우리말
요약문과 우리말 주제어, 영문 key words를 첨부한다.
(2) 원고는 ‘글 워드프로세스’로 작성해야 하며, 불교연구
에서 규정한 스타일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3) 본문의 장, 절, 항, 목 등의 번호는 Ⅰ. 1, 1), (1), ①으로
표시하며, 표와 그림은 [표1], [그림1]과 같은 형식으로 일
련번호를 붙여 표/그림의 아래에 두고, 출처가 있으면 이
를 병기한다.
(4) 논문의 각주와 참고문헌의 표기형식은 ‘한국불교학술단체
연합회’에서 개정한 각주 및 참고문헌 형식 통일안
(ver. 20170602)에 따르며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별첨]을
참조한다.
(5) 논문의 제출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잼스
Jams’ 시스템(https://kibs.jams.or.kr/)을 이용하며 논문
투고시 필요한 제반사항은 해당 시스템의 내용을 따른다.
4. 불교연구의 발행일
[별첨]
각주 및 참고문헌 형식 통일안
한국불교학술단체연합회 개정안(ver. 20170602)
Ⅰ. 각주
1) 각주 작성의 기본원칙
(1) 각주는 간략히 작성하고 ‘저자(연도), 쪽수.’ 방식으로 하며,
온전한 서지정보는 참고문헌에 기입한다.
(2) 약호를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줄 수를 표기하며 연도는 서
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 松本史朗(1990), 156. [平成2년, 불기2534 등은 쓰지 않음]
AKBh, 98, 12-13줄.
(3) 자신의 논저를 인용할 경우에는 ‘졸고’ 등이 아닌 성명으로
표기한다.
(4) 여러 권의 저서나 논문 등을 함께 표기할 때는 단락을 나누
지 말고 쌍반점(;)으로 연결하여 표기한다.
예) 홍길동(1987), 30-37 ; AKBh, 130.
(5) 페이지는 ‘p.’나 ‘pp.’ 없이 쪽수만 표기하고 범위는 ‘-’로 표
기한다.
예) 홍길동(2017), 140-142.
(6) 재인용 논저는 출처를 밝힌 후 재인용이라고 표기한다.
예) 홍길동(2013), 100 재인용.
(7) 저자의 경우 성과 이름을 모두 표기하나, 서양어권 저자의
경우 성만 표기한다.
예) 홍길동(2017), 14 ; 中村元(1960), 50.
Schmithausen(1981), 23.
(8) 학문 분야 또는 전공 별 특수한 표기는 관례에 따른다.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21
2) 인용문헌의 표기
(1) 논저[1인 저자의 경우]
‘저자(연도), 쪽수.’의 형식으로 표시하되 같은 해에 발간된 동일
저자의 논저는 발간순서에 따라 a, b, c 순으로 구분한다.
예) 홍길동(2016a), 20. [2016년 2월에 발간된 홍길동의 논문
20쪽을 의미함]
홍길동(2016b), 3-4. [2016년 10월에 발간된 홍길동의 저서
3-4쪽을 의미함.]
(2) 논저[2인 이상 저자의 경우]
2인 공저의 경우 저자를 모두 표기하고, 3인 이상의 경우
‘대표저자 외 ○인’만 표기한다.
가. 동양어권 : 가운뎃점( )으로 연결한다.
예) 홍길동 장길산(2013), 30.
홍길동 외 3인(2014), 50-60.
나. 서양어권 : and기호(&)로 연결한다.
예) Alexander & Stefan(2013), 35.
Alexander 외 2인(2014), 40.
(3) 사서(史書) 전집(全集)류
아래와 같은 용례에 준하여 표기한다.
예) 三國遺事 卷5, 義解5, 寶壤梨木.
世宗實錄 권122, 30년 12월 1일.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21년.
(4) 번역서
번역서에서 기재하고 있는 저자명과 역자명을 병기하고 번역본
의 출판연도, 쪽수를 표기한다.
예) T.R.V 무르띠, 장길산 역(1995), 99.
322 ∙佛敎硏究 제48집
예) T: 대정신수대장경
J: 일본대장경
SN: Saṃyutta-nikāya, PTS.
AKBh: Abhidharmakośabhāṣya, ed., by P. Pradhan,
Tibetan Sanskrit Work Series 8, Patna,
1967(repr. 1975).
AKVy: Sphuṭārthā Abhidharmakośavyākhyā by
Yaśomitra. ed., by U. Wogihara, Tokyo,
1932-1936(repr. Tokyo: The Sankibo Press,
1971)
Vism: Visuddhimagga, ed by H.C. Warren, revised D.
Kosambi: Harvard, 1950.
(3) 원전의 출처가 일반 출판물이 아니거나 원전 편역자의 의견을
본문에서 인용한 경우에는 편역자명과 발행연도만 밝히고
해당 서지정보를 2차 자료에서 자세히 표기한다.
예) AP: Anekantapraveśa. 藤永伸(1997 ; 1998).
NA: Nyāyāvatāra. Balcerowicz(2001).
[2차자료에서]
藤永伸(1997), Haribhadra作Anekāntavādapraveśa 積極的多
面説入門 翻訳解説 (1) , ジャイナ教研究 通号 3,
京都: ジャイナ教研究會.
藤永伸(1998), Haribhadra作Anekāntavādapraveśa 積極
的多面説入門 翻訳解説 (2) , ジャイナ教研究
通号 4, 京都: ジャイナ教研究會.
Balcerowicz, Piotr(2001), Jaina Epistemology in Histor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 Critical Edition
and English Translation of Logical-
Epistemological Treatises: Nyāyāvatāra,
Nyāyāvatāravivṛti Nyāyāvatāra-Tippana with
326 ∙佛敎硏究 제48집
윤리 규정
전 문
제1조 표절
저자는 자신이 행하지 않은 연구나 주장의 일부분을 자신의 연
구 결과이거나 주장인 것처럼 논문이나 저술에 제시해서는 안 된
다. 타인의 연구 결과는 출처를 명시함과 동시에 여러 차례 참조
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그 일부분을 자신의 연구 결과 혹은 주
장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표절이 된다.
제2조 출판 업적
(1) 저자는 자신이 실제로 행하거나 공헌한 연구에 대해서만 저
자로서의 책임을 지며, 또한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2) 논문이나 기타 출판 업적의 저자(역자)나 저자의 순서는 상
대적 지위에 관계없이 연구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정확하게 반영
해야 한다. 단순히 어떤 직책에 있다고 해서 저자가 되거나 제1저
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반면, 연구나
저술(번역)에 기여했음에도 공동저자(역자)나 공동연구자로 기록
되지 않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연구나 저술(번역)에 대한
작은 기여는 각주, 서문, 사의 등에서 적절하게 고마움을 표시한
다.
제3조 연구물의 중복 게재 혹은 이중 출판
저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전에 출판된 자신의 연구물(게재
예정이거나 심사 중인 연구물 포함)을 새로운 연구물인 것처럼 출
판(투고)하거나 출판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이미 발표된 연구물
을 사용하여 출판하고자 할 경우에는, 출판하고자 하는 학술지의
편집자에게 이전 출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중복 게재나 이중
출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다만, 자신의 연구물
330 ∙佛敎硏究 제48집
제1조 윤리규정에 대한 동의
한국불교연구원의 《불교연구》에 투고․심사․게재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본 윤리규정을 준수하기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제2조 윤리규정 위반 보고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자가 윤리규정을 위반한 것을 인지할 경
우 그 연구자로 하여금 윤리규정을 환기시킴으로써 문제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거나 명백한
윤리규정 위반 사례가 드러날 경우에는 연구원 윤리위원회에 보
고할 수 있다. 윤리위원회는 문제를 연구원에 보고한 회원의 신원
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제3조 윤리위원회 구성
윤리위원회는 연구자 5인 이상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이사회 및
편집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원장이 위촉한다.
제4조 윤리위원회의 권한
윤리위원회는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고된 사안에 대하여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 및 증거자료 등을 통하여 폭넓게 조사를
실시한 후, 윤리규정 위반이 사실로 판정된 경우에는 원장에게 적
절한 제재조치를 건의할 수 있다.
제5조 윤리위원회의 조사 및 심의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고된 연구자는 윤리위원회에서 행하는 조
윤리 규정∙333
佛敎硏究 48
2018년 2월 28일 초판1쇄 발행
엮은이 불교연구 편집위원회
펴낸이 이태승
펴낸곳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비매품
ISSN 1225-3154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No.48 Bulgyo-Yongu 2018. 2
CONTENTS
Published By
Korean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Seoul, Korea
ISSN 1225-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