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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gyo-Yongu

48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2018. 2
제48집 佛敎硏究 2018. 2


目次
[인도불교]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한상희 ···· 9


Ⅰ. 들어가는 말
Ⅱ. 니까야의 믿음
1. 믿음의 특성
2. 예류자의 믿음
Ⅲ. 아라한의 믿음
1. na khvāha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2. assaddha
Ⅳ. 나오는 말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
이은정 ·························································································· 41
Ⅰ. 들어가는 말
Ⅱ. 연기와 십이지분의 불가분성
Ⅲ. 괴로움과 연기
Ⅳ. 나가는 말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이태승 ··········· 77
Ⅰ. 서언
Ⅱ. 금강경의 제작시기와 vastu의 용례
1. 금강경의 제작시기
2. 금강경의 vastu 용례
4 ∙佛敎硏究 제48집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2.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
IV.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이해
1. vastu의 의미
2.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해석
V. 결어
[동아시아불교:한국]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김상영 ··························· 107


Ⅰ. 머 리 말
Ⅱ. 뇌묵 처영의 행적
Ⅲ. 처영의 의승 활동과 佑世尊者
Ⅳ. 처영의 불교사적 위상
Ⅴ. 맺 음 말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역사의 단면/김광식 ·································································· 135
Ⅰ. 서언
Ⅱ. 만당의 결성, 중앙에서의 활동
Ⅲ. 만당, 다솔사에서 활동
1. 다솔사 불교전문 강원
2. 光明學院의 설립
3. 다솔사 ; 민족의식 창출, 민족운동 거점
Ⅳ. 결어
[동아시아불교:한 중 일]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김혜원 ······························ 169


Ⅰ. 서론
Ⅱ. 중국에서 전승된 筆削記
1. 대장경에 수록된 筆削記
5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3. 중국 전승의 의미
Ⅲ. 조선에 전래된 筆削記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3. 筆削記의 私記
4. 조선 전래의 의미
Ⅳ. 일본에 전래된 筆削記
1. 筆削記의 간행
2. 筆削記의 주석서
3. 일본 전래의 의미
Ⅴ. 결론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박부자 ··············································· 203
Ⅰ. 서론
Ⅱ. 삼계의 분류와 제3계불법
1. 삼계의 분류와 구조
2. 제3계불법
Ⅲ. 삼계교의 불타관
1. 보법의 사불
2. 普眞普正佛
Ⅳ. 결론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 -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교감분석을 토대로/박은영(지현) ···················· 237
Ⅰ. 서론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2. 제3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3. 제4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Ⅲ. 결론
6 ∙佛敎硏究 제48집

[특별기고]

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安中尚史 ·································· 277


Ⅰ. はじめに
Ⅱ. 出家と在家
Ⅲ. 神道と仏教の習合
Ⅳ. 日本仏教の歴史と出家
Ⅴ. 現在の日本仏教の淵源
Ⅵ. 現代社会の出家者養成
Ⅶ. 在家教団である創価学会について
Ⅷ. むすびにかえて
佛敎硏究 주요목차 ···································································· 292
佛敎硏究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규정 ························· 315
윤리 규정 ··················································································· 328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2018. 2
Bulgyo-Yongu
불교연구 제48집(2018), 9~40쪽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
한상희* 1)

Ⅰ. 들어가는 말
Ⅱ. 니까야의 믿음
1. 믿음의 특성
2. 예류자의 믿음
Ⅲ. 아라한의 믿음
1. na khvāha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2. assaddha
Ⅳ. 나오는 말

* 동경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kate1213@hanmail.net


∙佛敎硏究 제48집
10

요약문
본 논문은 아라한을 나타내는 용어 중의 하나인 ‘assaddha(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의미를 명확히 하여, 아라한이 믿음을 갖추
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를 위해 니까야에서 믿음이 의미하는 바를 규명하고,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견해를 보이는 선행연구에 인용된 경전의 내용을 검
토하여 ‘assaddha’의 의미를 밝혔다.
니까야의 믿음은 정서적인 성격을 본질로 하면서 스스로의 지혜
에 의한 담마의 실현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지적인 특성을 띠
고 있다.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깊어질수록 믿음
은 더욱 확고해지는데, 어떠한 단계의 믿음이든 그 대상은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로 동일하며, 삼보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믿음이 없다’는 말은 ‘붓다
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선행연구
에서 아라한이 ‘assaddha’임을 이끌어내는 근거로 들고 있는 경전들
이 실제로 나타내는 바는, 어떠한 담마에 대해 스스로의 지혜와 경
험을 통한 확신이 있으므로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그 담마를
받아들여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여기에 붓다에 대한 믿
음이 없다는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assaddha’는 니까야상의
일반적 의미로서의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담마를 성취하였으므로 단지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사람, 즉 그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
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라한은 ‘assaddha’인 것이며, 아라한
에게 붓다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게 갖추어져 있다.
주제어 :
믿음이 없는 사람(assaddha), 믿음(saddhā), 지혜(paññā), 아라한,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aveccappasāda)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1

Ⅰ. 들어가는 말
불교에서 믿음(saddhā)은 깨달음을 향한 실천 수행에서 가장
우선적이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할 덕목으로, 붓다의 가르침
을 듣는 일에 대한 의욕과 수행의 결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다.1)
니까야상의 대부분의 수행의 과정은 믿음에서 시작되어 지혜를
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는데,2) 믿음에 의해 붓다의 가
르침을 듣는 일에서 시작된 수행은 도(道)와 과(果)의 획득을 이
루며 마침내 최고 성자인 아라한과의 성취로 이어진다.
니까야에는 아라한에 대한 표현으로 ‘assaddha’라는 용어가 등
장한다. 이것은 ‘a + saddha’에서 만들어진 말로 문자적으로 ‘믿음
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데3), 이로 인해 몇몇의 선행연
구에서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경향이 있
다. 자야띨레께(Jayatilleke, K. N)는 믿음은 지혜보다 열등하며 믿
음에서 시작되어 지혜에 이르는 수행과정에서 믿음이 마지막에
지혜로 대체되기 때문에 아라한이 ‘assaddha’라고 일컬어지는 것
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4) 후지타 코타츠(藤
1) e.g. MN. I. 480; Ⅱ. 173: “믿음이 생겨난 사람은 [스승에게]가까이 다가가
고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존경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귀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가르침을 듣고 듣고서 가르침을 지닌다 ... 노력하는 사람
은 몸으로 최상의 진실을 체득하고 지혜에 의해 그것을 통찰하여 본다
(saddhājāto upasaṅkamati, upasaṅkamanto payirupāsati, payirupāsanto
sotaṃ odahati,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sutvā dhammaṃ dhāreti …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2)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믿음이 처음에 주어지는 용례에 대해서는
Jayatilleke(1963), 396; 藤田宏達(1992), 93-100를 참조하라.
3) ‘saddha’는 본래 여성형 명사인 ‘saddhā’가 남성형 명사(manussa 등)를 수
식하는 형용사의 역할을 하며 남성형 명사가 생략된 형태로 남은
bahuvrīhi(소유복합어)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4) Jayatilleke(1963), 397-399.
12∙佛敎硏究 제48집

田宏達) 역시 지혜와 믿음의 우열에 대해 언급하며 지혜에 의해


성취한 자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해탈자에게 믿음이 없
다고 설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5) 그러나 성자가 삼보(三
寶)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이른바 ‘4예류지
(cattāri sotāpattiyaṅgāni, 四預流支)’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6) 사
리뿟따가 붓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전의 내용
을 통해 아라한에게 믿음이 갖추어진 모습을 엿볼 수 있다.7) 그렇
다면 아라한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아라한에게 믿음이 있
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밝히기 위해 ‘assaddha’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니까야의 믿음이 가지
고 있는 특성에 대해 살펴보고, 그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예류자
의 믿음의 양상을 통해 니까야에서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
명한다. 이어 자야띨레께와 후지타가 아라한이 ‘assaddha’라는 것
을 이끌어내는 근거로 들고 있는 경전들을 검토하고, 그 해석을
통해 ‘assaddha’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5) 藤田宏達(1992), 101.
6) 4예류지란 ‘예류자가 갖추는 네 가지 요소’로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하
여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aveccappasādena samannāgato)과
성자들이 즐거워하는 계를 갖추는 것(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이 가운데 처음 세 가지 믿음이 예류자가 갖추는 믿
음을 나타낸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다룬다.
7) DN. Ⅱ. 82: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 대해 이렇게 청정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깨달음에 대해서 세존보다 더 뛰어난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
전에도]없었고 [앞으로도]없을 것이고 지금도 없습니다(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 idaṃ
sambodhiyan ti).”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3
assaddha

Ⅱ. 니까야의 믿음
1. 믿음의 특성
선행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져 있듯이, 빠알리 문헌의 믿음에는
정서적(affective) 능동적(conative)측면과 지적(cognitive) 측면
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 있다.8) 믿음의 정서적 측면은 “그는 여래
에 대해 충분한 믿음이 있고 충분한 애정이 있다(tathāgate c’assa
saddhāmattaṃ hoti pemamattaṃ hoti)”9)와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고 신심이 적고 애정이 적고 청정한 믿음이 적다(ekacco
puggalo ittarasaddho hoti ittarabhatti ittarapemo ittarappasādo
)”10)와 같이, 믿음(saddhā)이 애정(pema) 신심(bhatti) 청정한
믿음(pasāda) 등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술어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나란히 등장하는 용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pasāda’는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며 고요한 기쁨이나 만족을
느끼는 심경을 나타내며,11) ‘saddhā’와의 동의어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12) 이 밖에도 “여래에 대해 믿음을 얻는다(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13)와 같이 믿음의 대상으로서 ‘붓다’가 설해
진 용례에도 믿음의 정서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한편, 믿음의 지적 측면은 그 기반에 지혜가 작용하는 용례에서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옥깐띠까상윳따(Okkantikasaṃyutta)
14)의 경전들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십이처와 오온 등의 무상
8) Jayatilleke(1963), 387; 舟橋一哉(1952), 198; 藤田宏達(1992), 139-140.
9) MN. I. 142, 444, 479.
10) AN. Ⅲ. 165; Pp. 65.
11) 藤田宏達(1992), 107.
12) ‘pasāda’가 ‘saddhā’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용례는 藤田宏達(1992), 106
-110에 잘 설명되어 있다.
13) DN. I. 63; MN. I. 179, 344; Ⅲ. 134.
14) SN. Ⅲ. 225-228.
14∙佛敎硏究 제48집

에 대해 “이 담마들을 이와 같이 믿고 확신한다(ime dhamme


evaṃ saddahati adhimuccati)”고 설해져 있다. 여기서 믿는 대상
인 십이처와 오온 등은 지혜로써 그 본성을 알아야 하는 ‘담마’이
고, ‘믿는다’는 뜻의 ‘saddahati’가 지혜에 의해 확신함을 의미하는
‘adhimuccati’15)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어,16) 이 용례의 믿음은
지혜와 결합된 양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지적 측면은 불교의 믿음이 맹목적인 신앙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 의해 확인하고 확신하는 것과 불가
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은 믿음
의 한 가지 특성이 지혜에 기반을 두는 것이며, 정서적인 성질을
가진 믿음이 지혜와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
을 보여준다. 게틴(Gethin, R)도 강조하고 있듯이 믿음의 본질은
정서적인 것이다.17) 그러므로 믿음은 지혜에 기반을 두고 지혜와
결합하고 있으나 그 정서적인 본질이 사라지거나 변하지 않는
다.18) 만약 믿음의 본질이 지적인 것이고 지혜와 그 성격이 동일
15) ‘adhimuccati’의 이러한 의미는 “지혜에 의해 확신한다(paññāya adhi
muccati).”(MN. Ⅱ. 262)라는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동사와 같이
adhi-√muc에서 만들어진 명사인 ‘adhimutti(확신, 信解)’에 대해 후지타
는 ‘대상에 대해 명확히 결정하는 心作用’[藤田宏達(1957), 94]이라고 설
명하고 있다. ‘信解와 慧’의 관계에 대해서는 藤田宏達(1992), 123-126를
참조하라.
16) 두 동사가 동의어로 사용되는 또 다른 예문으로 “비구들이여, 이것에 대
해 나를 믿으라. 확신을 가지라(saddahatha me taṃ bhikkhave
adhimuccatha).”(SN. Ⅱ. 84)를 들 수 있다.
17) Gethin(2001), 106-112.
18) 자야띨레께는 교리(doctrine)에 대해 확인하는 단계의 ‘합리적인 믿음
(rational faith)’을 가장 가치 있는 믿음으로 간주하며,[Jayatilleke(1963),
394] 믿음은 해탈을 위한 필수 요소 가운데 지혜의 성취로 향해 가는 첫
단계로 사용될 뿐 마지막에는 지혜로 대체되어 그 자체로서는 가치를
갖지 못하므로 지혜와 비교될 수 없다는 견해를 내세운다.[Ibid.,: 397]
이에 대해 게틴은 불교의 믿음의 본질은 정서적 측면에 있다는 것을 강
조하면서 자야띨레께는 믿음을 단순히 ‘belief’와 같은 지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믿음이 지혜로 대체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믿
음(saddhā)과 지혜(paññā)는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5
assaddha

하다면 자야띨레께의 견해처럼 마지막에는 지혜로 대체될 수 있


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은 지혜와 다르기 때문에 믿
음에서 시작하여 지혜를 얻는 것으로 끝나는 수행의 과정에서 믿
음이 지혜로 대체된다고 보기 어렵다.
니까야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의 형태는 지혜를 갖춘 정도에 따
라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 최초로 붓다와 삼보에 대해 가지는 믿음
② 예류도의 성자가 갖추는 믿음
③ 예류과의 성자가 갖추는 믿음
첫 번째 단계의 믿음(①)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얻어진 붓다에
대한 믿음19)과 삼보에 귀의할 때의 믿음, 또는 출가의 계기가 되
는 믿음이다.20) 붓다를 믿고 그의 깨달음과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라 자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그 길을
걸어갈 결의를 하게 된다.21)
두 번째 단계의 믿음(②)은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해 가면
서 얻어진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믿음이다. 첫 번째 단계의 믿
음에 비해 지적인 측면이 잘 드러나는 이 형태의 믿음은 예류도
의 성자가 갖추는 믿음에서 볼 수 있다. 일곱 종류의 성자(이하 7
다.[Gethin(2001), 111]
19) DN. I. 62-63; MN. I. 179, 267, 344, 521; Ⅲ. 134: “그는 그 담마를 듣고
여래에 대해 믿음을 얻는다(so taṃ dhammaṃ sutvā tathāgate saddhaṃ
paṭilabhati).”
20) e.g. MN. I. 16: “존자 고따마여, 이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은 존자
고따마를 향하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상태로 출가했습니다(ye’me
bho gotama kulaputtā bhavantaṃ got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출가의 계기가 되는 믿음의 용례에 대해서는 清
水谷善暁(2010)참조.
21) cf. Ergardt(1977), 142-144.
16∙佛敎硏究 제48집

성자)22) 가운데 예류도의 성자인 수신행자는 오온, 십이처, 갈애


등의 무상에 대해 믿고 확신한다. 이 믿음과 확신은 담마에 대한
지혜를 통해 얻어지는데 이 용례에 대해서는 위에서 ‘믿음의 지적
측면’에 대한 예로 들며 설명했다.
세 번째 단계의 믿음(③)은 예류과의 성자인 예류자가 갖추는
것으로 니까야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확고한 형태의 믿음이다.
수행의 결과로 지혜가 증가하면 지혜에 의해 완성된 담마에 대해
더욱 강한 확신을 얻게 되고, 그 담마를 설한 붓다에 대한 믿음도
더욱 깊어지고 확고해진다. 이것은 예류자가 갖춘 믿음을 나타내
고 있는 ‘4예류지’에서는 물론, 7성자 중의 예류자인 신해탈자가
수신행자에 비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23)
22) 7성자란, 양면해탈자(ubhatobhāgavimutta, 양면으로 해탈한 사람), 혜해
탈자(paññāvimutta, 지혜에 의해 해탈한 사람), 신증자(kāyasakkhin, 身
証者, 몸으로 경험한 사람), 견지자(diṭṭhippatta, 見至者, [바른]견해를 얻
은 사람), 신해탈자(saddhāvimutta, 信解脱者, 믿음에 의해 해탈한 사람),
수법행자(dhammānusārin, 随法行者, 법을 따르는 사람), 수신행자
(saddhānusārin, 随信行者, 믿음을 따르는 사람)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양면해탈자와 혜해탈자는 아라한이며, 수법행자와 수신행자는 예류도의
성자이다. 나머지는 예류자에서 아라한도에 있는 성자이다. 각 성자에 대
한 자세한 설명은 끼따기리숫따(Kīṭāgirisutta) (MN. I. 477-479)와 뿍
갈라빤냣띠(Puggalapaññatti)(Pp. 14-15)에 잘 나타나 있다.
23) MN. I 479: “여기 어떤 사람은 색(色)을 뛰어넘어 무색(無色)의 고요한
해탈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보아 [어떠한] 번
뇌도 소멸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래에 대해 충분한 믿음이 있고
충분한 애정이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러한 덕성이 있다. 즉 믿음의 능
력(信根), 정진의 능력(精進根), 마음챙김의 능력(念根), 삼매의 능력(定
根), 지혜의 능력(慧根)이다. 이러한 사람이 수신행자라고 불린다(idha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as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a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e c’assa saddhāmattaṃ hoti pemamattaṃ, api c’assa ime
dhammā honti, seyyathidaṃ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ayaṃ vuccati puggalo saddhānusārī).”;
MN. I 478: “여기 어떤 사람은 색을 뛰어넘어 무색의 고요한 해탈을 몸
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써 보아 일부의 번뇌를 소멸
시켰다. 그리고 그는 여래에 대해 믿음이 확고하고 뿌리가 내리고 확립
assaddha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7

과, 이 단계의 믿음이 앞의 두 단계의 믿음과는 달리 확고한 성질


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동반하여 나타나는 점24)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믿음이 확고한 것은 그 기반에 그에 상응하는 지혜가 갖
추어져 있기 때문이므로, 예류자의 믿음의 양상을 통해 지혜를 기
반으로 하는 특성을 가진 니까야의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
인할 수 있다.

2. 예류자의 믿음
이미 언급했듯이, 예류자의 믿음은 4예류지에서 볼 수 있다. 4
예류지란 ①붓다에 대해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②담마에 대해 확고하
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③상가에 대해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는 것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④성자들이 즐거워하는
계를 갖추는 것(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으로 구성되는
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이 신해탈자라고 불린다(idha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as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e c’assa saddhā niviṭṭhā hoti mūlajātā patiṭṭhitā. ayaṃ vuccati
puggalo saddhāvimutto).”(원문의 밑줄 필자 삽입, 이하 동일)
24) e.g. AN. Ⅲ. 326: “비구들이여,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 견고한 애정을
가진 자, 깊고 청정한 믿음을 갖춘 자는 여래 혹은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하여 간다(yo ca kho bhikkhave tathāgataṃ vā tathāgatasāvakaṃ vā
dassanāya gacchati niviṭṭhasaddho niviṭṭhapemo ekantagato
abhippasanno).” 예류자의 믿음인 ‘3예류지’(본문Ⅱ.2참고)를 내용으로 하
는 문맥에서 ‘aveccapasāda’대신 ‘ekantagato hoti abhippasanno’라는 표
현이 사용된 용례가 있으므로(e.g. SN. V. 378) ‘깊고 청정한 믿음을 갖
춘 자(ekantagato abhippasanno)’는 예류자 이상의 성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표현은 믿음(saddhā)과 애정(pema)에 ‘niviṭṭha(확립되
어 있다)’가 결합된 용어와 동의어로 사용되어 흔들림 없이 확립된 믿음
을 가진 상태를 나타낸다.
18∙佛敎硏究 제48집

‘네 가지 예류자의 요소(cattāri sotāpannassa aṅgāni)’이다.25) 이


가운데 처음 세 가지 요소, 즉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확고하
며 청정한 믿음(이하 3예류지)이 바로 예류자가 갖추는 믿음이다.
삼보에 대한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이라고 번역한 ‘aveccappasāda’
의 ‘avecca’는 ‘지혜에 의해 알고서’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26)
‘aveccappasāda’는 ‘지혜에 의해 확고해진 청정한 믿음’을 뜻한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를 기반으로 하므로 믿음이 확고
하다는 주석서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27) 또한 4예류
지의 두 번째 요소인 ‘담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추는 것이 바
른 지혜인 ‘정견’을 갖추는 것과 다르지 않음28)을 나타내는 교설
25) DN. Ⅲ. 227; SN. Ⅱ. 69-70; V. 342-413. 이 외에 또 다른 종류의 ‘4예류
지’가 있다. 이것은 좋은 사람과의 사귐(sappurisasaṃsevo) 정법을 들
음(saddhammassavanaṃ) 바른 주의 기울임(yonisomanasikāro) 법
을 따르는 법의 실천(dhammānudhammappaṭipatti)등 ‘예류과를 얻기 위
해 필요한 요소’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 요소들은 예류과 뿐만 아니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성취와 지혜의 획득에 유용한 역할을 한
다.(SN. V. 410-413)
26) ‘avecca(ava + √i)’는 ‘알다(to know), 이해하다(to understand)’라는 의
미의 ‘aveti’의 동명사형(gerund)으로 ‘이해하고서(understanding), 통찰하
여(having penetrated)’[Cone. p.259] 혹은 ‘확실히(certainly), 완전히
(perfectly)’[PED. p.85]라는 의미를 가진다.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라따나숫따(Ratanasutta) 에는 “[사]성제를 분명하게 보는 자(yo
ariyasaccāni avecca passati)”(Sn. 229게; khp. 4)라는 구절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주석서에는 “사성제를 지혜에 의해 들어가서 보는 자(yo
cattāri ariyasaccāni paññāya ajjhogāhetvā passati)”(Pj. I. 185; Ⅱ. 278)
라고 설명되어 있어 ‘avecca’란 ‘지혜에 의해 들어감’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7) Sv. Ⅱ. 544: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이란 붓다의 여러 특성을 있는 그
대로 알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이라는
의미이다]. 뒤의 두 요소에 대해서도 바로 이것이 [이해의]방법이다
(aveccappasādenā ti buddhaguṇānaṃ yathābhūtato ñātattā acalena
accutena pasādena. upari padadvaye pi es’eva nayo).” 여기서 ‘뒤의 두
요소’란 담마와 상가를 말한다.
28) MN. I. 46: “벗이여, 정견, 정견이라고 합니다. 벗이여, 어떻게 해서 성자
인 제자는 정견을 갖추고 그의 견해는 바르게 되고 담마에 대해 확고하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19
assaddha

은 지혜가 믿음의 확립에 작용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예류자는 지혜에 의해 확고해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를 그 대상으로 한다. 이 담마와 상가
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맛지마니까야의 위상사까숫따(Vīsaṃsakasutta) 에는 이러한 사
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경전에는 누군가 “세존은 정등각자이다.
담마는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다. 상가는 잘 실천한다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hāto bhagavatā dhammo
supaṭipanno saṅgo).”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 질
문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고 설해져 있다.
벗이여, 나는 담마를 듣기 위해 세존에게 다가갔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나에게 어둠과 밝음의 양면을 가진 더욱 높고 더욱 뛰어난 담마
를 설하셨습니다. 벗이여, 세존께서 나에게 어둠과 밝음의 양면을 가
진 더욱 높고 더욱 뛰어난 담마를 설하는 대로 그대로 나는 그 담마에
대하여 깨달아 알고 담마 가운데 하나의 담마에 대해 완성에 이르러,
스승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즉]‘세존은 정등각자이다. 담
마는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다. 상가는 잘 실천한다’라고.’29)
이 내용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세존은 정등
각자이다 등등’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담마를 스스로 깨달아
며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이 바른 담마(正法)를 얻습니까?(sammādiṭṭhi
sammādiṭṭhī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ariyasāvako
sammādiṭṭhi hoti, ujugatā ’ssa diṭṭh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āgato imaṃ saddhamman ti)”
29) MN. I. 320: idhāhaṃ āvuso yena bhagavā ten’ upasaṅkamiṃ
dhammasavanāya. tassa me bhagavā dhammaṃ deseti uttaruttariṃ
paṇītapaṇītaṃ kaṇhasukkasappaṭibhāgaṃ. yathā yathā me āvuso
bhagavā dhammaṃ deseti uttaruttariṃ paṇītapaṇītaṃ
kaṅhasukkasappaṭibhāgaṃ, tathā thatā’ haṃ tasmiṃ dhamme
abhiññāya idh’ekaccaṃ dhammaṃ dhammesu niṭṭham agamaṃ,
satthari pasīdiṃ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hāto bhagavatā
dhammo supaṭipanno saṅgo ti. cf. DN. Ⅲ. 102.
20∙佛敎硏究 제48집

알게 됨으로써 스승인 붓다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붓다에 대한 믿음이 담마에 대한 지혜와
그 실현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스승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곧 ‘세존은 정등각자이다. 담마는 세
존에 의해 잘 설해졌다. 상가는 잘 실천한다고 믿는 것’이다. 즉
붓다에 대한 믿음에 붓다가 설한 가르침인 담마와 그 담마를 따
르는 상가에 대한 믿음이 모두 포함되며, 믿음의 대상은 스승인
‘붓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
비구들이여, 누구에게라도 이러한 방식과 이러한 말과 이러한 표현
에 의해 여래에 대해 믿음이 확고하고 뿌리가 내리고 확립되면, 비구
들이여 이것이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바른]견해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라고 불린다.30)
이러한 방식에 의해 붓다에 대해 믿음이 확립되면 그것이 바로
이유를 가진(ākāravatī) 확고한 믿음이다. 이 예문 가운데 밑줄 친
부분은 ‘신해탈자’를 설명하는 표현과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신해
탈자는 ‘믿음에 의해 해탈한 사람’으로 해석되는데, 이 명칭에서의
‘해탈’은 번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의
완성과 확립을 의미한다. 즉 믿음과 대치되는 ‘의심(vicikicchā)’이
라는 속박(saṃyojana)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믿음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31) 따라서 신해탈자란 ‘믿음을 완성한 사람’을 의미
30) MN. I. 320: yassa kassaci bhikkhave imehi ākārehi imehi padehi imehi
byañjanehi tathāgate saddhā niviṭṭhā hoti mūlajātā patiṭṭhitā, ayaṃ
vuccati bhikkhave ākāravatī saddhā dassanamūlikā daḷhā.
31) cf. 平川(1965), 56: “신해탈이 해탈이라고 불리는 것은‘믿음이 해탈해 있
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해탈하는 것은 의심에서 해탈하는 것
이다 ... ‘의심’을 끊는 것이 믿음이 해탈하기 위한 조건이다. 더욱이 그
믿음이 어느 정도의 깨달음의 지혜에 의해 기반이 되어 있을 때 믿음의
해탈이 실현된다. 즉 믿음이 의심에서 해탈하고 번뇌의 방해를 받지 않
으며 자유롭게 불법승을 믿을 수 있는 단계가 신해탈이다. 다시 말해 우
assaddha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1

하며, 믿음은 예류자의 단계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7성자


중의 두 종류의 아라한인 양면해탈자와 혜해탈자의 설명에서 보
듯이32) 니까야의 교설에서 아라한과 관련하여 주로 다루어지는
요소는 지혜와 선정으로, 믿음이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
은 믿음이 예류자의 단계에서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니까야의 믿음은 정서적인 측면을 본
질로 하면서 지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성을 가진다.
니까야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은 지혜를 갖춘 정도에 따라 확고함
에 차이를 가지고 몇 단계로 나누어지나, 어떠한 믿음의 형태이든
붓다를 비롯한 삼보를 그 대상으로 하며 이 삼보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추고 있다’는
말은 ‘붓다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아라한이 믿음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붓다와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리들의 마음에서 무엇이 처음으로 해탈하는가 하면 그것은 ‘믿는 힘’이라


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믿음이 해탈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의 지혜에 의한
지지(支持)를 조건으로 한다. 이것은 지혜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아도
믿음이 먼저 해탈할 수 있다는 말이다.”
32) MN. I 477: “여기 어떤 사람은 색을 뛰어넘어 무색의 고요한 해탈을 몸
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보아 [모든]번뇌를 소멸시켰
다. 이러한 사람이 양면해탈자라고 불린다(idha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as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ayaṃ vuccati puggalo
ubhatobhāgavimutto).”; Ibid.,: “여기 어떤 사람은 색을 뛰어넘어 무색의
고요한 해탈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써 보아 [모
든]번뇌를 소멸시켰다. 이러한 사람이 혜해탈자라고 불린다(idha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as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ayaṃ
vuccati puggalo paññāvimutto).”
22∙佛敎硏究 제48집

Ⅲ. 아라한의 믿음
후지타와 자야띨레께가 아라한이 ‘assaddha’인 것이 당연하다는
견해를 가지는 것은, 지혜가 믿음보다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아라
한은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
나33) 수행의 최종 단계에서 믿음이 지혜로 대체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34) 이 경우 ‘assaddha’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음이 없
는 사람’을 뜻하며, saddhā의 일반적 쓰임을 고려했을 때 이 용어
는 붓다와 삼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견해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혜가 믿음보다 우월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로 각각 상윳따니까야의 뿝바꼿타까
숫따(Pubbakoṭṭhakasutta) 와 니간타나따뿟따숫따(Nigaṇṭhanāṭa
puttasutta) 를 들고 있다. 이 두 경전에는 공통적으로 “저는 세존
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na khvāha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라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은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어떠한 담마에 이른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표면적으로만 해석할
경우 지혜를 갖추면 믿음은 필요하지 않다 등의 이해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이해는 ‘assaddha’의 의미에 오해를 일으킬 수 있
다. 이 장(章)에서는 위의 두 경전을 비롯하여 이 문장이 포함된
33) 藤田宏達(1992), 101: “아직 지혜에 의해 알지 못하고 체험적으로 파악하
지 못한 자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성취한 자는 어떠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붓다에 대한 믿음도-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의
미에서 보자면 해탈자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이미 오래된 시구(詩句)에는 그러한 의미의 ‘불신’(assaddha; na saddho)
이 설해져 있다.”
34) Jayatilleke(1963), 399: [삼명(tevijjha, 三明)에 대한 언급 후] “At this
stage his faith or belief with which he started is replaced by direct
personal knowledge. It is therefore not surprising that the Arahant is
described as “one devoid of faith”(assddho).”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3

또 다른 경전을 검토하고 그 해석을 통해 ‘assaddha’가 의미하는


바를 밝히도록 한다.

ā ṃ 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1. na khv ha

1) 시하세나빠띠숫따(Sīhasenāpatisutta)
우선 살펴볼 이 경전은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는
다(na ...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의 의미를 매우 잘 보여
준다. 시하(sīha)라는 장군은 붓다에게 눈에 보이는 보시의 결과에
대해서 질문한다. 붓다는 보시의 주인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네 가지 결과와 사후 좋은 곳(善處)에 태
어나는 내세의 결과가 있다고 설법한다. 이 설법을 듣고 시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눈에 보이는 보시의
결과에 저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 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시하는 사람, 보시의 주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친근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그러나 세존이시
여, 세존께서 저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 [즉] ‘시하여, 보시하는
사람, 보시의 주인은 몸이 해체되는 죽음 후에 좋은 곳, 천상계에 태어
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 경우 저는 세존에 대
한 믿음에 의해 이릅니다.35)

35) AN. Ⅲ. 39-40: yānimāni bhante bhagavatā cattāri sandiṭṭhikāni


dānaphalāni akkhātāni, nāhaṃettha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haṃ petāni jānāmi. ahaṃ bhante dāyako dānapati bahuno janassa
piyo manāpo ... yañca kho maṃ bhante bhagavā evam āha, dāyako
sīha dānapati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ī ti, etāhaṃ na jānāmi. etthaca panāhaṃ bhagavato saddhāya
gacchāmī ti. cf. AN. IV. 82.
∙佛敎硏究 제48집
24

밑줄 친 부분에서 보듯이, 시하는 눈에 보이는 보시의 결과라는


스스로 알고 있는 ‘담마’에는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는 것
이 아니라고 말하는 반면, 내세의 결과라는 알지 못하는 담마에는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시하가 보시의
네 가지 현세의 결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보시
하는 사람으로서 그 결과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며, 내세의 결과
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사후에 좋은 곳, 천상계에 태어남을 아
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른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하여 알지 못하지만 그러한 결과가 있다는 것을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
험을 통해 알지 못하여 확신이 없는 상태임에도 붓다에 대한 믿
음으로 어떠한 사실에 대해 믿을 수 있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붓다’를 믿는 것이다.
또한 이와 반대의 경우, 즉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붓다에 대
한 믿음에 의해 그 담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지혜가 있
으므로 붓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
히려 그 사실이 진실임을 스스로 확인함으로써 붓다에 대한 믿음
은 더욱 확고해진다고 할 수 있다.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
르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떠한 담마를 체
득하고 있으며 그것이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의
미하고 있으나, 여기에 붓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은 내포되어
있지 않다.
2) 뿝바꼿타까숫따(Pubbakoṭṭhakasutta)
경전은 사리뿟따를 향한 붓다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세존: 사리뿟따여, 그대는 ‘믿음의 능력(信根)을 수습(修習)하고 많이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5

닦으면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로 향하고 불사가 완성된다 ... 지


혜의 능력(慧根)을 수습하고 ... 불사가 완성된다는 것’을 믿는가?
사리뿟따: 세존이시여, 저는 ‘믿음의 능력을 수습하고 ... 불사가 완
성된다는 것’에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
여, 이것을 지혜로써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체득
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믿음의 능력을 수습하고 ... 불
사가 완성된다는 것’에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이것을 지혜로써 이해하고 보고 알고 체득하고 경
험한 사람들은, ‘믿음의 능력을 수습하고 ... 불사가 완성된다는 것’에
대해 의혹이 없고 의심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실로 저는 이것을 지
혜로써 이해하고 보고 ...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믿음의 능력을
수습하고 ... 불사가 완성된다는 것’에 대해 의혹이 없고 의심이 없습
니다.36)
다섯 가지 능력(五根)의 수습에 의해 불사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는지에 대한 붓다의 질문에, 사리뿟따는 그러한 사실에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불사의
완성을 스스로 얻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그것에 이르나, 지혜에 의해 불사의 완성을 얻은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의혹이 없다고 말한다. 의혹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확신이 얻어졌음을 의미하므로, 사리뿟따는 지혜에 의한 경
험을 통해 그 담마에 이르렀으며 그로 인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36) SN. V. 220-221: saddahasi tvaṃ sāriputta saddhindriyaṃ bhāvitaṃ
bahulīkataṃ amatogadhaṃ hoti amataparāyaṇaṃ amatapariyosānaṃ …
paññindriyaṃ bhāvitaṃ ... amatapariyosānan ti. na khvāhaṃ ettha
bhante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saddhindriyaṃ bhāvitaṃ ...
amatapariyosānaṃ. yesañhetaṃ bhante aññātaṃ assa adiṭṭhaṃ
aviditaṃ asacchikataṃ aphassitaṃ paññāya, te tattha paresaṃ
saddhāya gaccheyyuṃ, saddhindriyaṃ bhāvitaṃ … amatapariyosānaṃ.
yesañca kho etaṃ bhante ñātaṃ diṭṭhaṃ viditaṃ sacchikataṃ
phassitaṃ paññāya, nikkaṅkhā te tattha nibbicikicchā, saddhindriyaṃ
bhāvitaṃ … amatapariyosānaṃ. mayhañ ca kho etaṃ bhante ñātaṃ
diṭṭhaṃ … phassitaṃ paññāya. nikkaṅkhavāhaṃ tattha nibbicikiccho
saddhindriyaṃ bhāvitaṃ … amatapariyosānan ti.
26∙佛敎硏究 제48집

고 대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에 의해 불사를 얻었기 때문


에 다섯 가지 능력의 수습을 통해 불사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스
스로 체득하여 믿고 있으며, 그것을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받
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붓다가 사리뿟따에게 한 질문은 다섯 가지 능력의 수습에 의한
불사의 완성이라는 ‘담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이다. 이 질문에 대한 사라뿟따의 대답은 스스로의 지혜에 의해
‘그 담마’를 체득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 담마를 믿고 있다는 것이
다. 이 문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담마에 대한 믿음은 지
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아라한도 이와 같이 담마에 대한 믿음
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3) 니간타나따뿟따숫따(Nigaṇṭhanāṭaputtasutta)
이 경전은 찟따(citta)라는 장자와 외도인 니간타 나따뿟따
(nigaṇṭha nāṭaputta)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니간타: 장자여, 그대는 ‘일으킨 생각(尋)이 없고 머무는 생각(伺)이
없는 삼매가 있으며 일으킨 생각과 머무는 생각의 소멸이 있다’고 말
하는 사문 고타마를 믿습니까?
찟따: 존자여, 나는 ‘일으킨 생각이 없고 ... 소멸이 있다’고 [하는 것
에]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습니다.37)
니간타는 이러한 찟따의 말을 듣고 그를 칭찬한다. 찟따가 붓다
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
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찟따가 니간타에게 질문한다.

37) SN. IV. 298: saddahasi tvaṃ gahapati samaṇassa gotamassa atthi
avitakko avicāro samādhi atthi vitakkavicārānaṃ nirodho ti. na
khvāhaṃ ettha bhante bhagavato saddhāya gacchāmi. atthi avitakko
… nirodho ti.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7

찟따: 존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앎과 믿음 중 어느 쪽이 뛰어납


니까?
니간타: 장자여, 실로 믿음보다 앎이 뛰어납니다.38)
니간타가 이렇게 대답하자 찟따는 스스로 원하는 대로 초선에
서 제4선까지 성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찟따: 존자여, 그러한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사람으
로서 ‘일으킨 생각이 없고 머무는 생각이 없는 삼매가 있고, 일으킨 생
각과 머무는 생각의 소멸이 있다’고 [하는 것에] 다른 어떤 사문 혹은
바라문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겠습니까?39)
이 말을 들은 니간타는 앞서 찟따를 칭찬할 때와 정반대의 말
로 찟따를 비난한다.
여기에서 니간타가 찟따에게 질문한 믿음의 대상은 일으킨 생
각과 머무는 생각이 없는 삼매, 즉 제2선 등이 있다고 말한 ‘붓다’
이다.40) 이에 대한 찟따의 대답은 뿝바꼿타까숫따 의 사리뿟따
와 동일한 것으로,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제2선 등의 ‘담마’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찟따는 제2선뿐만 아니라 제4선까
지도 자유롭게 성취가능하며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그 담마’에
이르러 믿고 있으므로,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그것을 받아들이
38) Ibid.,: taṃ kiṃ maññasi bhante katamaṃ nu kho paṇītataraṃ ñāṇaṃ
vā saddhā vā ti. saddhāya kho gahapati ñāṇaṃ yeva paṇītataraṃ.
39) Ibid., 299: so khvāhaṃ bhante evaṃ jānanto evaṃ passanto kassa
aññassa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saddhāya gamissāmi. atthi
avitakko avicāro samādhi atthi vitakkavicārānaṃ nirodho ti.
40) 게틴은 자야띨레께가 이 부분의 해석에 ‘사문 고따마의 진술(statement)
을 믿는가’[Jayatilleke(1963), 398]라고 ‘진술’이라는 말을 넣은 것은 더욱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믿는가(saddahasi)’의 직접 목적어는 사문 고따마
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Gethin(2001), 110]
∙佛敎硏究 제48집
28

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 경전이 지혜가 믿음보다 뛰어남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
는 결정적 부분은“믿음보다 앎이 뛰어나다(saddhāya ñāṇaṃ yeva
paṇītataraṃ)”라는 문장이다. 이것은 믿음과 앎 중 무엇이 뛰어난
지를 묻는 찟따의 질문에 대한 니간타의 대답인데, 찟따는 두 요
소간의 우열을 확인하기 위해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찟
따가 이렇게 물은 것은 니간타가 질문한 것에 대한 자신의 대답
을 듣고 그가 자신을 칭찬한 직후이다. 찟따는 니간타가 자신의
대답을 오해한 것을 알았고, 그에게 스스로의 경험을 통한 앎에
의해 그 담마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타인에 대한 믿
음’과 ‘스스로의 앎’ 중 어느 것이 뛰어난지 물은 것으로 볼 수 있
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찟따가 ‘믿음’보다 ‘앎’이 뛰
어나다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하였지만, 그 앎을 통해서 얻
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담마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지혜에
의해 알기 때문에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
붓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찟따의 대답이
붓다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니간타는
말을 바꾸어 그를 비난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두 경전은 담마의 체득을 위해서 지혜가 주요하
게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지혜가 믿음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를 내
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혜를 갖추게 되면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믿음이 지혜로 대체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경전들 속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세존에 대한 믿음에 의
해 이르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스스로의 지혜와 경험을 통해 담
마의 체득에 이르러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지해 그 담마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장을
포함해 경전의 내용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바로 ‘assaddha’의
의미이다.
assaddha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29

2. assaddha

‘assaddha’가 아라한을 나타내는 용어로 등장하는 곳은 담마빠


다(Dhammapada)의 아라한따왁가(Arahantavagga) 에 들어있
는 다음 게송이다.
assaddho,무위(無為)의 [열반]을 아는 사람, [윤회와의]결합을 끊은
사람,
[재생의]기회를 파괴한 사람, 욕망을 버린 사람, 그 사람이 진실로
최고의 사람이다.41)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saddhā’는 붓다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
음으로 수행의 시작이 되는 덕목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고 있
지 않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불교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
서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며, 바르지 못한 법(asaddhamma, 非正
法)에 포함되는 등42)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니까야에서 볼
수 있는 ‘assaddha’의 용례는 대부분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데 이 용어가 아라한을 나타내는 경우 그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
를 가지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주석에 따르면43) 이 게송은 앞서 보았던 뿝바꼿타까숫따 의
사리뿟따에 관한 것이다. 붓다와 사리뿟따의 대화를 듣고 비구들
은 “사리뿟따 장로는 ... 이제 정등각자를 믿지 않는다
(sāriputtatthero … ajjāpi sammāsambuddhassa na saddahati
41) Dhp. 97게: assaddho akataññū ca sandhicchedo ca yo naro,
hatāvakāso vantāso sa ve uttamaporiso.
42) DN. Ⅲ. 252: “일곱 가지 바르지 못한 법이 있다. 벗이여, 여기 비구는 믿
음을 갖지 않은 자이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이고, 창피함이 없는 자이고,
배움이 없는 자이고, 나태한 자이고, 부주의한 자이고, 어리석은 자이다
(satta asaddhammā, idh’āvuso bhikkhu assaddho hoti, ahiriko hoti,
anottappī hoti, appassuto hoti, kusīto hoti, muṭṭhassati hoti, duppañño
hoti).”
43) Dhp-a Ⅱ. 186-7.
30∙佛敎硏究 제48집

yeva)”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것을 들은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 후에 위의 게송을 읊는다.
나는 ‘사리뿟따여, 그대는 다섯 가지 능력을 닦지 않고 사마타와 위
빳사나를 증대시키지 않고 도와 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물
었다. 그는 ‘세존이시여, 저는 그와 같이 해서 [도와 과를] 얻는 일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보시 혹은 행위의 결과,
[즉] 과보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붓다 등의 덕성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성취한 선정, 위빳사나, 도, 과에 다른 사람
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44)
밑줄 부분이 나타내고 있듯이 사리뿟따는 붓다 등의 덕성에 대
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했기 때문
에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해 그것을 받아들여 믿고 있지 않은 것
이다. 주석에는 또한 ‘assaddha’의 의미에 대하여 “스스로 성취한
덕성을 타인의 말에 의해 믿지 않기 때문에 assaddha이다(attano
paṭividdhaguṇaṃ paresaṃ kathāya na saddahatī ti assaddho)”라
고 설명되어 있다. 즉 어떠한 덕성을 타인의 말이 아닌 스스로의
성취를 통해 믿는 사람이 ‘assaddha’라는 것이다. 요컨대
‘assaddha’란 붓다와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담마를 경험하고 실현
시킨 사람으로, 스스로 알지 못하는 담마를 믿고 받아들이기 위해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와 동일한 맥락의 용례를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앗타
44) Ibid., 187: ahañ hi ‘pañcindriyāni abhāvetvā samathavipassanaṃ
avaḍḍhetvā maggaphalāni sacchikātuṃ samattho nāma atthī ti
saddahasi tvaṃ sāriputto’ti pucchiṃ. so ‘evaṃ sacchikaronto atthi
nāmā ti na saddahāmi, bhante’ti kathesi. na dinnassa vā katassa vā
phalaṃ vipākaṃ na saddahati. nāpi buddhādīnaṃ guṇaṃ na saddahati.
eso pana attanā paṭividdhesu jhānavipassanāmaggaphaladhammesu
paresaṃ saddhāya na gacchati. tasmā anupavajjo.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31
assaddha

까왁가(Aṭṭhakavagga) 에서도 볼 수 있다.


즐거운 것에 대해서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 오만을 가지고 있지 않
은 사람,
유연한 사람, 말을 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na saddho, [탐욕에
서 떠나 있기 때문에] 탐욕에서 떠남이 없다.45)
이 게송에 대해 니뎃사(Niddessa)에는 “na saddho란 스스
로 깨달아 알고 실현시킨 담마에 대해서 어떠한 다른 사문, 바라
문, 천신, 마라, 범천도 믿지 않는다[라는 뜻이다](na saddho ti
sāmaṃ sayaṃ abhiññātaṃ attapaccakkhaṃ dhammaṃ na
kassaci saddahati aññassa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devassa vā mārassa vā brahmuno vā)”46)라고 설명되어 있어,
‘na saddho’가 위의 ‘assaddho’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아라한은 어떠한 담마에 대해서 지혜로써 알
기 때문에 그것을 믿기 위해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는 것이
아닐 뿐, 붓다를 비롯한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라한의 믿음은 니까야의 중요한 교설 중의 하나인 ‘다
섯 가지 능력’의 완성에서 잘 드러난다.47) 그 가운데 ‘믿음의 능
45) Sn. 853게: sātiyesu anassāvī atimāne ca no yuto, saṇho ca
paṭibhānavā na saddho na virajjati.
46) Nidd. I. 235-236. 니뎃사에는 이 설명에 이어 위에서 살펴본 뿝바꼿
타까숫따 의 붓다와 사리뿟따의 대화와 담마빠다의 게송이 차례대로
소개되어 있어,(Ibid.,: 236-237) 뿝바꼿타까숫따 가 의미하는 바와
‘asaddho’및 ‘na saddho’의 의미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7) 자야띨레께는 바루아(Barua, B. M)의 견해를 소개하며, 바루아가 믿음은
지혜와 함께 증대되기 때문에 지혜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믿음도 최고의
상태에 도달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상윳따니까야에 나타나는 아라한의 다
섯 가지 능력의 완성에 관한 내용에 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Jayatilleke(1963), 399]
32∙佛敎硏究 제48집

력’에 대해 니까야에서 세 가지의 설명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믿음의 능력을 4예류지에서 보아야한다(catūsu
sotāpattiyaṅgesu daṭṭhabbaṃ).48)
②믿음의 능력이란 붓다의 깨달음을 믿는 것이다(saddahati
tathāgatassa bodhiṃ).49)
여기서 ②는 ‘붓다의 깨달음을 믿는 것’이나, 세부 사항으로 4예
류지 중의 첫 번째 요소인 ‘붓다에 대한 믿음’의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붓다를 믿는다는 것은 담마와 상가를 믿는다는 것을 함의하
고 있기 때문에, ①과 ②가 나타내는 바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능력은 아라한의 단계에서 완성된다.50) 그러
므로 아라한은 다른 요소들과 함께 완성된 믿음의 능력 역시 갖
추게 된다. 믿음의 능력을 4예류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예류
자의 단계에서 완성된 믿음이 아라한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윳따니까야의 사라까니숫따(Sarakānisutta) 에 의하면, 삼보
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추는 성자는 예류자 뿐만 아니라 일래
자와 불환자, 그리고 아라한에 이르는 네 종류의 성자 모두이
다.51)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예류자의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
에 이 경전은 예류자에게 갖추어지는 삼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
는 일 없이 아라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붓다(원
문‘나’)에 대한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을 갖춘 사람은 모두 예류자
인데(ye keci mayi aveccappasannā, sabbe te sotāpannā), 이 예
류자들 가운데 세 종류의 예류자, 일래자, 아라한은 이 세상에서
완성에 이르고 다섯 종류의 불환자는 이 세상을 떠나서 완성에
48) SN. V. 196.
49) SN. V. 196-7, 199.
50) SN. V. 200: “다섯 가지 능력을 완전하게 하고 완성시킴으로써 아라한이
된다(pañcannaṃ indriyānaṃ samattā paripūrattā arahaṃ hoti).”
51) SN. V. 376-377.
assaddha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33

이른다52)는 교설을 통해서도 아라한에게 믿음이 갖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예류자는 성자의 단계에 들어선 모든 이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모두 붓다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믿음의 능력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은 위의 두 설명과 조금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a)여래에 대해 깊고 청정한 믿음이 있는 성자인 제자는 여래 혹은
여래의 가르침에 대해 의혹이 없고 의심이 없다. 믿음을 갖춘 성자인
제자에게 ... 열심히 정진하며 지낼 것이 기대된다. 그에게 있는 이 정
진이 그의 ‘정진의 능력’이다. 믿음을 갖추고 열심히 정진하는 성자인
제자에게 ... 마음챙김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 기대된다. 그에게 있는
이 마음챙김이 그의 ‘마음챙김의 능력’이다. 믿음을 갖추고 열심히 정
진하며 마음챙김을 확립한 성자인 제자에게 버림을 대상으로 하여 삼
매를 얻고 마음의 집중을 얻을 것이 기대된다. 그에게 있는 이 삼매가
그의 ‘삼매의 능력’이다. 믿음을 갖추고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집중된 마음을 가진 성자인 제자에게 ... 이와 같이 알 것이
기대된다. 그에게 있는 이 지혜가 그의 ‘지혜의 능력’이다. 믿음을 가
진 성자인 제자는 이처럼 반복해서 노력하고 반복해서 마음 챙기고
반복해서 집중하며 반복해서 알고서 이와 같이 확신한다. (b)‘이것들은
이전에 내가 들었던 담마이다. 지금 나는 그것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
다. 그리고 지혜로써 통찰하여 본다’라고. 그에게 있는 이 믿음이 그의
‘믿음의 능력’이다.53)
52) AN. V. 120. 세 종류의 예류자는 ‘최대 일곱 번 태어나는 자
(sattakkhattuparama, 極七返生者)’, ‘좋은 가문에서 가문으로 옮겨가는 자
(kolaṃkola, 家家)’, ‘한 번만 더 태어나는 자(ekabījin, 一種)이고, 다섯 종
류의 불환자는 ‘수명의 절반에 이르기 전에 열반에 드는 자
(antarāparinibbāyin, 中般涅槃者)’, ‘죽음에 이르러 열반에 드는 자
(upahaccaparinibbāyin, 生般涅槃者)’, ‘노력 없이 열반에 드는 자
(asaṅkhāraparinibbāyin, 無行般涅槃者)’, ‘노력하여 열반에 드는 자
(sasaṅkhāraparinibbāyin, 有行般涅槃者)’, ‘위[의 세계]로 올라가 색구경천
에 이르는 자(uddhaṃsota akaniṭṭhagāmin, 上流色究竟行者)’이다.
53) SN. V. 225-227: yo so ariyasāvako tathāgate ekantagato abhippasanno,
na so tathāgate vā tathāgatasāsane vā kaṅkheyya vā vicikiccheyya vā
34∙佛敎硏究 제48집

밑줄 (a)와 같이 확고한 믿음을 갖춘 예류자 이상의 성자54)에


게 정진 등 다섯 가지 능력의 다른 요소들이 갖추어져 지속적으
로 닦이면, 밑줄 (b)에서 보듯이 스스로 경험하고 지혜에 의해 통
찰하여 담마에 대해서 확신이 얻어진다. 여기서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로써 통찰하여 본다(kāyena c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 ativijjha passati)”라는 표현은 담마를 체득
한 아라한의 경지를 나타내며55) 이러한 확신이 믿음의 능력을 의
미하므로, 이 교설 역시 아라한에게 믿음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능력을 통해 얻은 이 확
신은 ‘담마’에 대한 것이면서 그 담마를 설한 ‘붓다’에 대한 것이기
도 하다.
... saddhassa hi ariyasāvakassa etaṃ pāṭikaṅkhaṃ yaṃ āraddhavīriyo
viharissati ... yaṃ hi’ssa vīriyaṃ tadassa vīriyindriyaṃ. saddhassa hi
ariyasāvakassa āraddhavīriyassa etaṃ pāṭikaṅkhaṃ yaṃ satimā
bhavissati ... yā hi’ssa sati tadassa satindriyaṃ. saddhassa hi
ariyasāvakassa āraddhavīriyassa upaṭṭhitassatino etaṃ pāṭikaṅkhaṃ
yaṃ vossaggārammaṇaṃ karitvā labhissati samādhiṃ labhissati
cittassa ekaggataṃ. yo hi’ssa samādhi tadassa samādhindriyaṃ.
saddhassa hi ariyasāvakassa āraddhavīriyassa upaṭṭhitassatino
samāhitacittassa etaṃ pāṭikaṅkhaṃ yaṃ evaṃ pajānissati ... yā hi’ssa
paññā tadassa paññindriyaṃ. saddho so ariyasāvako evaṃ padahitvā
padahitvā evaṃ saritvā saritvā evaṃ samādahitvā samādahitvā evaṃ
pajānitvā pajānitvā evaṃ abhisaddahati ime kho te dhammā ye me
pubbe sutavā ahesuṃ. tenāhaṃ etarahi kāyena ca phusitvā viharāmi,
paññāya ca ativijjha passāmī ti. yā hi’ssa saddhā tadassa
saddhindriyaṃ.(원문의 호격 생략)
54) cf. SN. V. 376-377.
55) SN. V. 230: “비구들이여, 여기 무학(無學)의 비구는 다섯 가지 능력을
안다. [즉]믿음의 능력, 정진의 능력, 마음챙김의 능력, 삼매의 능력, 지혜
의 능력이다. 그는 그것들의 궁극, 최상의 [경지], 결과, 완성을 몸으로 경
험하고 있다. 그리고 지혜로써 통찰하여 본다(idha bhikkhave asekho
bhikkhu pañcindriyāni pajānāti.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yaṃgatikāni yaṃparamāni
yaṃphalāni yaṃpariyosānāni kāyena c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
ativijjha passati).”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35
assaddha

IV. 나오는 말
니까야의 믿음은 절대자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맹목적인 신앙
심과는 달리, 정서적인 성격을 본질로 하면서 스스로의 지혜에 의
한 담마의 실현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지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깊어질수록 믿음은
더욱 확고해지는데, 그 정도에 따라 나누어지는 믿음의 단계 가운
데 가장 확고한 형태의 믿음은 예류자가 갖추는 믿음이다. 그렇지
만 어떠한 단계의 믿음이든 그 대상은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
로 동일하며, 삼보에 대한 믿음은 붓다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
다. 그러므로 니까야에서 ‘믿음이 없다’는 말은 ‘붓다를 비롯한 삼
보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자야띨레께와 후지타는 믿음보다 지혜가 뛰어나다는 전제하에
믿음에서 시작하여 지혜의 획득으로 끝나는 수행의 과정에서 최
종적으로 믿음이 지혜로 대체되거나, 지혜를 갖춘 자는 믿음을 필
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이 ‘assaddha’라는 견해를 보인다.
이 경우의 ‘믿음’은 수행의 첫 단계에 위치하며 지혜와 대비되는
것으로, 니까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 외의 다른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assaddha’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아라한은 붓다에 대한
믿음조차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예류자의 단계에서
확고해진 믿음이 아라한까지 지속적으로 갖추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교설을 찾을 수 있음은 물론, 다섯 가지 능력의 완성을 통해
서도 아라한이 믿음을 갖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자야띨레께 등이 아라한이 ‘assaddha’임을 이끌어내는 근거로
들고 있는 경전들은 믿음보다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에 지혜를 갖
추게 되면 믿음이 이 지혜로 대체되거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
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나타내는 것
은 어떠한 담마에 대해 스스로의 지혜와 경험을 통한 확신이 있
∙佛敎硏究 제48집
36

으므로 붓다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그 담마를 받아들여 믿고 있


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여기에 붓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의
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assaddha’는 니까야상의 일반적 의미로
서의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에 의해 담마를 성취하였으므로 단지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의
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사람, 즉 그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라한은 ‘assaddha’인 것이며,
예류자의 단계에서 확고해진 삼보에 대한 믿음은 아라한에게도
지속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37
assa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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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미 –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39
assaddha

Abstract
A Study on the meaning of ‘assaddha’:
does not Arahant possess saddhā?
Han, Sang Hee
Tokyo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meaning of
‘assaddha’ (one who does not have faith) which is one of
the terms that are descriptions of Arahant and to show
whether Arahant has faith(saddhā) or not. For this study, I
first identified what faith means in the Nikāyas through the
characteristics and aspects of faith. Then I clarified the
meaning of ‘assaddha’ by examining the contents of the
scriptures which are quoted in the precedent studies which
show that Arahant has no faith.
Faith in the Nikāyas is affective in nature and it is
based on the realization and experience of Dhamma by
wisdom(paññā) of oneself, so it has a characteristic of
intelligence. Because it is based on wisdom, as wisdom
deepens, faith becomes firmer. In any stage of faith, the
object of faith is tiratana that is made up of Buddha,
Dhamma, and Saṅgha. And faith in tiratana results in faith
in Buddha. Therefore, the meaning of ‘no faith’ in the
Nikāyas means that there is no faith in Buddha and
tiratana.
Even though the precedent studies use the scriptures as
the basis to indicate that Arahant is ‘assaddha’ by
interpreting the scriptures as wisdom is better than faith
and, when one possesses wisdom, faith is replaced by this
wisdom and faith is not needed, the scriptures do not
40∙佛敎硏究 제48집

indicate or support it. They indicate that one is convinced of


Dhamma through his or her own wisdom and experience; he
or she is not accepting and believing in that Dhamma
because of faith in Buddha only. There is no implication in
the scriptures that he or she does not have faith in Buddha.
‘Assaddha’ doesn’t mean a person who does not have ‘faith’
of the general sense in the Nikāyas, but it means a person
who does not rely on faith in others because he or she has
achieved Dhamma by his or her own wisdom. In this sense
Arahant is ‘assaddha’, and his faith in Buddha and tiratana
is firmly established.
Key Words :
assaddha, saddhā, paññā, Arahant, aveccappasāda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3 - 02. 09 | 게재확정 2018. 02. 09
불교연구 제48집(2018), 41~75쪽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


-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이은정** 56)

Ⅰ. 들어가는 말
Ⅱ. 연기와 십이지분의 불가분성
Ⅲ. 괴로움과 연기
Ⅳ. 나가는 말

* 이 논문은 2013년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BK21


플러스 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관리번호:22B20130000007, 사업팀
명: 경북대학교 철학과 임상철학 창의인재 양성 사업팀)
** 경북대 박사과정. yej0709@knu.ac.kr
∙佛敎硏究 제48집
42

요약문
한국불교는 연기 정형구에 근거하여, 연기설을 상의상관적으로 해
석하는 것이 주류적 경향이다. 김동화 이래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연기상의설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불교에 한해서는
잘 못 이해된 것이다. 상의상관적 해석은 사물일반에 대한 언급으로
서의 성격이 강하며 사물에 대한 법칙성으로, 인과원리에 대한 설명
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이해가 연기 정형구와
십이연기를 구분하여 접근한 결과로 파악하며, 정신적 조건화의 과
정이라는 연기 본연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한
다. 연기의 가르침은 일반 사물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조
건화의 과정에만 연관되어 있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기의 지분들과 분리 되
어 있지 않다. idappaccayatā는 연기와 동의어로 나타나며, idaṃ이
가리킨 것은 바로 12지분에 속하는 각각의 지분들이다. 연기의 특성
은 곧 십이연기의 특성이며, 십이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
움의 발생과 소멸의 과정에만 관여되어 있다. 물론 연기의 지분이 12
가지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에 니까야에서는 12지분 연기에서부터 2
지분 연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연기의 가르침 또
한 정신적 조건화의 과정으로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관여한다.
그렇다면,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필자가 파악하건데 괴로움을 연
기의 가르침과 관련시킬 경우, 그 괴로움은 재생적 괴로움과 실존적
괴로움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연기에 대한 삼세양중인과적 접근 방식은 재생에 대한 괴로움을 해
명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8지, 5지, 4지 등 다양한 지분들로
구성된 연기의 가르침은 재생의 괴로움을 규명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실존적 괴로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니까야에서 괴로움으로 언급되는 ‘견해’,
‘오온’, ‘느낌’, ‘갈애’ 등은 실존적 괴로움에 관련된다. 실존적 괴로움
의 원인으로서 견해의 발생은 8지 연기로, 오온에 대한 집착으로 인
한 괴로움의 발생은 5지 연기로, 느낌으로 인한 괴로움의 발생은 4
지 연기로, 갈애로 인한 괴로움의 발생은 5지 연기로 드러난다. 이러
한 방식으로 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과
정을 규명한다.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은 재생의 괴로움과 더
불어 현재의 삶에 당면한 실존적 괴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실천
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주제어 :
초기불교, 연기, 십이지분, 괴로움, 견해. 오온, 느낌, 갈애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43

Ⅰ. 들어가는 말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글자 그대로 분석하면 ‘paṭicca
(조건으로 하여)’, ‘sam(함께)’, ‘uppāda(일어남)’가 된다. 그대로 직
역한다면 ‘조건으로 하여 함께 일어남’이다. 연기는 초기불교 이래
불교의 핵심교리로서 모든 불교학파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이
된다. 한국불교 학계에서 연기에 대한 해석은 크게 네 가지로 나
뉜다.1) 첫째, 유부(有部)의 삼세양중인과(三世兩中因果)설, 둘째, 유
식(唯識)의 유식연기설, 셋째, 중관(中觀)의 공(空)연기설, 넷째, 화
엄(華嚴)의 법계(法界)연기설이다.
연기의 가르침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2)라는 정형구로 설명되어지곤 한다. 한국불교는
이러한 연기 정형구인 ‘차유고피유 차기고피고 차무고피무 차멸고
피멸(此有故彼有 此起故彼故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에 근거하여,
연기설을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으로 해석한다. 김동화는 불교
학개론에서 ‘차유고피유 차무고피무’를 모든 사물들의 물질적 현
상과 정신적 현상의 공간적 관계성으로, 즉 공간적 논리성으로 파
악한다. 또한 ‘차기고피고 차멸고피멸’은 모든 사물들의 물질적 현
상과 정신적 현상의 시간적 관계성으로, 즉 시간적 계기성(繼起性)
으로 파악한다.3) 김동화 이래로 대부분의 불교서적에서 연기상의
설을 채택하고 있다.4)
그러나 이러한 연기의 해석이 초기불교에서도 타당한지에 대해
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연기의 초기 불교적 가르침을
1) 박태원(2015), 221.
2) SN.Ⅱ, 28,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 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
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 nirodhā idaṃ nirujjhati.
3) 김동화(1984), 104.
4) 박경준(1989), 125.
44∙佛敎硏究 제48집

규명하기 위해 4부 니까야(Nikāya)에 한정하여 이 문제를 검토하


고자 한다. 초기불교에서도 연기의 가르침이 모든 사물의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에 관여하고 있는지 혹은 정신적 조건화에만
관련되어 있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은 정
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과정이며, 사물의 발생
과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논의는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
해 시도되었다. 먼저 박경준은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기초이론을
정립하는 첫 단계로써 연기가 상의설로 해석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점을 제시한 후, 새로운 해석을 모색하였다.5) 그는 현실에 대한
통찰력과 현실 극복에 대한 비판의식을 길러주는 토대로서 연기
설을 이해하며, 그러기 위해서 상의적 입장에 반대하는 것을 분명
히 했다. 또한 권오민은 초기불교의 경(經), 율(律), 논(論)에 근거
하여 연기의 가르침이 부파불교에서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고찰하였다. 그는 초기불교의 연기설을 상의상관성이라고 해석하
는 것은 일본학계의 영향이라고 말한다.6) 이필원은 붓다의 출가
목적에 부합되는 수행론의 측면에서 연기의 가르침에 접근한다.7)
임승택은 ‘무아윤회’의 사상적 배경이 된 연기에 대해 언급한다.
‘무아윤회’에서의 연기는 만물의 인과법칙으로서 적용되며, 물리적
법칙이다. 그러나 그는 사물의 생성·변화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상
호의존(緣, paccaya)이며 연기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8)
필자는 이들의 입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연기가 사물의 법칙
성으로서 인과원리를 나타내는 것은 연기 정형구와 십이연기를
구분하여 접근한 결과이다. 연기가 사물의 발생논리가 아닌 정신
적 조건화에만 관련되어 있음을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 연기 정형
구와 십이 연기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
5) 박경준(1989), 139.
6) 권오민(2009), 251.
7) 이필원(2015), 14.
8) 임승택(2015), 28.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45

해서 살펴볼 것이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연기 정형구와 12지


분들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정신적 조건화에만 관련되어
있다. 물론 연기의 지분이 12가지로 확정적이지 않으며, 이들 지
분들의 연기 가르침 또한 정신적 조건화에 연결된 괴로움의 발생
과 소멸과정이다.
그렇다면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먼저 니까야에 나타나는 괴로
움 경 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들 경에서 설해진 괴로움
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괴로움에 대해 알아보고, 이들이 어
떻게 발생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다양하게 설해진 괴로움의 발
생은 다양한 형태의 연기 가르침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이 괴로움의 발생과 어떻게 배대되는 지를 함께 살펴
볼 것이다. 필자는 재생적 괴로움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여기’ 현
실에서의 괴로움에도 주목한다. 다양한 괴로움들이 발생하는 과정
중에 현실에서 발생하는 괴로움의 문제에 초점을 모은다. 이러한
방법은 연기설 자체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유용성이 있
을 것이다.

Ⅱ. 연기와 십이지분의 불가분성


대전기 경, Mahāpadāna sutta 에서 붓다는 대범천에게 연기를
설하기 전에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고 감각적 쾌락에 물들어 있
고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지 즉 ‘이와 같이 조
건을 지닌 것’인 연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ṃ idaṃ ṭhānaṃ y
adidaṃ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
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46∙佛敎硏究 제48집

수 있을 것(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


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이기 때문이다.9)
연기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대로 붓다 이래로
지금까지 연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일반적으로 연기는 사
물의 인과 원리 또는 상호의존으로 이해되어졌다. 이러한 이해가
4부 니까야(Nikāya)에 설해진 연기(paṭiccasamuppāda)에 대해서
도 적용할 수 있는지 반성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칼루파하나(D. Kalupahana)는 붓다가 사물의 본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연기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10) 그는 조건 경,
Pacca sutta 에서 ‘연기(緣起, causality, paṭiccasamuppāda)’와 ‘연
기된(已生, causally conditioned phenomena, paṭiccasamuppanne)
현상’이 구분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연기’와 ‘연기된 현상’이란
두 개념은 세상의 모든 것, 즉 개별적인 사물과 그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는 연기란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연기된 것은 과거
분사형으로 ‘나타나게 된 사물’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과거분사의
사용은 원인보다는 결과를 강조하는 것으로 ‘연기된’이라는 부분
은 결과를 지칭한다고 덧붙인다.11) 이처럼 연기는 사물들의 원인
과 결과, 즉 인과관계의 원리12)로 해석된다. 칼루파하나는 이러한
인과 원리로 해석된 연기의 특성을 “객관성(objectivity, tathatā),
필연성(necessity, avitathatā), 항상성(invariability, anaññathatā),
9) DN.Ⅱ, 37.
10)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2011), 55.
11)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김종욱 옮김(2014), 126-127.
12) 칼루파하나는 외형적으로는 연기의 인과 원리가 자연주의의 인과론에 영
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자연주의의 인과론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자연주의 인과론은 물리적 현상에만 적용되지만, 연기의 인과 원리는 물
리적 현상뿐만 아니라 도덕·사회·심리·정신의 영역으로 확대 적용한다.
또한 자연주의의 인과론은 엄격한 법칙성이 지배하지만 연기의 인과 원
리에는 약간의 조건성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2011), 56-57.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47

조건성(conditionality, idappaccayatā)”13)으로 설명한다.


연기설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인과 원리로 적용될 때
객관성, 필연성, 항상성이라는 특성이 부각된다.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이나 현상은 없으며, 발생한 사건이나 현상은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일으킨다. 현상세계에서 마주하는 우연스러운 사건이나 상
황은 인과의 관계를 미처 알지 못할 경우에 국한된다. 특히 객관
성은 연기의 발견을 사라진 왕국을 발견하는 것14)에 비교함으로
써 강조된다. 필연성과 항상성은 무예외성을 말해준다. 한편 네
번째 특성인 조건성은 상호의존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칼루파하나
는 바로 이것을 연기와 동의어로 파악하였다.
특히, 그는 조건성(conditionality, idappaccayatā)을 연기 정형구
와 연관하여 상호의존성 뿐만 아니라 시간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
으로 본다. 즉 ‘저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게 된다.’라는 구문은 “상
관성(relativity)”을 나타내고, ‘저것이 일어남으로 해서 이것이 일
어난다.’는 구문은 “발생적(genetic) 관계”를 나타낸다.15)
칼루파하나는 연기의 원리를 물리적 현상의 인과 관계, 즉 “세
계의 발전과 해체과정(DN.Ⅲ, 82, AN.Ⅳ, 100-103), 가뭄(AN.Ⅲ, 2
43)·지진(AN.Ⅳ, 312) 같은 자연의 사건 그리고 식물의 생활(AN.
Ⅰ, 223-224, SN.Ⅲ, 45, SN.Ⅳ, 315)” 뿐만 아니라 “심리과정(MN.
Ⅰ, 111-112)”에도 적용한다.16) 더 나아가 정신·윤리·사회적 행위
의 영역으로 확대한다.17) 이처럼 연기의 원리는 모든 정신적 현상
과 더불어 물리적 현상과 사회적 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
로 활용된다. 특히 그는 연기의 원리가 적용된 특별한 경우로 십
이연기를 언급한다. 십이연기는 인간의 인격(human personality)
에 적용되어 인생의 과정(life-process)을 설명한다.18)
13) Kalupahana(1976), 27.
14) SN.Ⅱ, 105-106.
15) Kalupahana(1992), 70.
16) Kalupahana(1976), 30.
17)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2011), 61.
∙佛敎硏究 제48집
48

또한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도 연기의 관찰을 통하여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조건지어지고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라고 말한다.19) 그는 연기 정형구를 언
급하면서 ‘이것(idaṃ)’은 실체적이고 자기 동일적인 ‘이것’이 아니
라, 원인과 결과로 얽혀 있는 ‘사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라훌라는
러셀(Russell)의 “세상의 모든 것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
의 사건은 하나의 작은 시·공적 한계를 차지하고 있는 어떤 것이
다. … 시·공적 모든 사건은 다른 사건들에 의해서 겹쳐진”다는
말을 인용한다.20)
콜린스(S. Collins)는 일반적인 조건성의 관념으로 이해되는 연
기설과 12지분들로 표현되는 가르침, 즉 십이연기설을 구분한다.
이러한 연기의 가르침이 개념적 측면에서 브라흐마니즘에 반한다
는 것에 주목해야한다고 덧붙인다.21) 그에 따르면 연기설의 일반
적인 원리는 idappaccayatā(idaṃ-paccayatā)로 표현되는데, 여기
에서 idaṃ이란 특정한 원인을 가지는 일반 ‘사물들’을 지칭한다.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은 다른 요소들에 의존해 있다. 이러한 원리
는 물질 현상 뿐만 아니라 정신 현상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아날요(Anālayo) 또한 연기와 idappaccayatā를 동일시하면서
연기설을 일반적인 조건성의 관념으로 설명한다. 그 역시 콜린스
가 말한 것처럼 일반적인 조건성의 관념으로서의 연기와 십이연
기를 구분하고 있다.22) 아날요에 따르면, 연기란 특정한 사건들과
관련된 특정한 조건들에 대한 설명이며, 그 특정한 조건(idappacc
ayatā)들이 연기의 정형구로서 표현된다. 연기된 현상들의 작용은
마치 거미줄이 서로 얽혀서 구성된 것처럼 현상적 사건들의 동시
적·조건적 상호연관을 의미한다. 각각을 조건짓는 요소들은 원인
18)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나성 옮김(2011), 62.
19) 월폴라 라훌라, 전재성 역저(2009), 161.
20) 월폴라 라훌라, 전재성 역저(2009), 163.
21) Collins(1982), 106.
22) 아날요 스님, 이필원·강향숙·류현정 옮김(2014), 122-123.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49

과 결과로서 동시에 조건지어진다.23)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반적으로 연기는 idappaccayatā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인 조건성의 관념으로 파악되어졌
다. 이때의 연기는 사물의 발생에 대한 법칙으로서 인과의 원리로
적용되었다. 이러한 이해는 연기의 정형구와 idappaccayatā를 분
리하여 접근한 결과 연기와 십이연기가 구분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idaṃ이 지시하는 것은 사물이거나 혹은 사건들이었으며 서
로 간에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연기 이해는 사물의
생성 변화를 설명해주는 법칙으로서 적용되었으며, 특수한 경우로
써 정신적 현상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슐만(Eviater Shulman)은 이러한 연기설에 대한 이해가
초기불교에 한해 잘 못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24) 연기설은 존
재 일반에 대한 언명이라기보다는 단지 정신적인 조건화의 과정
에만 연관된다. 이것은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정신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슐만에 따르면, 연기 정형구를 12지
분들과 분리해서 설명해서는 안된다.25) 4부 니까야를 통틀어 단
한 가지 경우26)를 제외하고는 연기의 정형구 이후 12지분27)들의
23) 아날요 스님, 이필원·강향숙·류현정 옮김(2014), 124-125.
24) Shulman(2008), 297.
25) Shulman(2008), 307.
26) 단 한 가지 예외의 경우가 사꿀루다야의 짧은 경, Cūḷasakuludāyi sutta
(MN.Ⅱ, 32-39)이다. 먼저 과거의 삶에 대한 회상과 관련되어 논의한다.
이후 행복뿐인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근거 있는 도닦음(atthi ākāravatī
paṭipadā ekantasukhassa lokassa sacchikiriyāyāti)에 대한 설명으로 나
아간다. 과거 전생의 모습을 기억하고서, 마침내 모든 괴로움이 소멸하는
지혜를 꿰뚫어(dukkhanirodhoti yatābhūtaṃ pajānāti) 알게 된다. 여기에
서도 연기 정형구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27) 12지분에서 숫자 12는 확정적이지 않다. 지분들이 더 길거나 짧을 수도
있다. Nidāna Saṃyutta에 나타나는 93개의 경을 연기의 구성요소의
갯수를 중심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2지 연기는 34개의 경에, 11지
연기는 31개의 경에, 10지 연기는 4개의 경에, 9지 연기는 2개의 경에, 8
지 연기는 4개의 경에, 7지 연기는 1개의 경에, 6지 연기는 1개의 경에, 5
50∙佛敎硏究 제48집

설명이 이어졌다. 즉, 연기의 정형구가 끝나고, yad idaṃ으로 이


어진 후, 12지분들 각각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십력 경, Dasabala sutta 에서 볼 수 있듯이 “Imasmiṃ sati id
aṃ hoti … yad idaṃ avijjā paccayā …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 있는 저것은 무명을 조건으로 한다 …)” 라고 붓다는 말
한다. idaṃ은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나타내거나 가까움을 강조한
다.28) yad는 관계 불변화사(Relative Inteclinables)로서 yad idaṃ
은 ‘예를 들면(as for example)’, ‘이와 같은(such as)’ ‘즉(i.e.)’과
유사하다.29) yad idaṃ이하의 12지분들30)에 대한 설명은 Imasmi
ṃ sati라는 정형화된 공식을 한정적으로 설명할 뿐이다. 이러한
문법 구조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정형화된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지 연기는 8개의 경에, 4지 연기는 3개의 경에, 3지 연기는 1개의 경에, 2
지 연기는 4개의 경에 나타난다. 또한 연기를 설하는 대표적인 경인 여
섯씩 여섯 경, Chachakka sutta 은 6지 연기를, 범망 경, Brahmajāla s
utta 은 8지 연기를 , 대전기 경, Mahāpadāna sutta 은 10지 연기를,
대인연 경, Mahānidāna sutta 은 9지 연기를, 갈애 멸진의 긴 경, Mahā
taṇhāsaṅkhaya sutta 은 9지 연기를 설한다.
28) Warder(2001), 30.
29) Warder(2001), 73.
30) SN.Ⅱ, 28 ; 임승택(2013), 283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무명(無
明)을 조건으로 지음(行)이 있다. 지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있다. 의
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현상(名色)이 있다. 정신·물질현상을 조건으로
여섯 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장소를 조건으로 접촉(觸)이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있다. 갈애를 조
건으로 집착(取)이 있다. 집착을 조건으로 있음(有)이 있다. 있음을 조건
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
픔, 고통, 비탄, 고뇌(老死憂悲苦惱)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Saṅkhārapacc
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
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
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
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
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
o hoti.)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51
이것이[즉, 예컨대 무명 등이] 있을 때 저것이[즉, 예컨대 지음 등이]
있다. 이것이[즉, 예컨대 무명 등이] 발생하면 저것이[즉, 예컨대 지음 등
이] 발생한다. 이것이[즉, 예컨대 무명 등이] 없으면 저것이[즉, 예컨대 지
음 등이] 없다. 이것이[즉, 예컨대 무명 등이] 소멸하면 저것이[즉, 예컨대
지음 등이] 소멸한다.31)
실제로 사꺄무니 고따마 경, Sakyamunigotama sutta 에서는
연기의 정형구에 각각의 지분들이 대입되어 나타난다.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죽음이 있으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
다. … 태어남이 없을 때 늙음·죽음이 없으며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이 소멸한다.”32) 또한 조건 경, Pacca sutta 에
서는 연기와 연기된 현상의 실제 내용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먼저 연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비구들이여, 연기가 무엇이냐?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확립된 계’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며, ‘법으로 결정된 것’이니,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33)이다.34)
31) SN.Ⅱ, 28,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 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 nirodhā idaṃ
nirujjhati.
32) SN.Ⅱ, 10, jātiyā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n
jātiyā kho asati jarāmaraṇaṃ na hoti, jātinirodhā jarāmaraṇanirodho.
33) idappaccayatā는 ‘idaṃ(이것, 此)’, ‘paccaya(조건, 緣)’, ‘tā(추상화접미사,
性)’로 분석되어 ‘이것은 조건을 지닌 것’, 혹은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단수 idaṃ을 부사화하여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idaṃ을 각각의 지분에 한
정하지 않고 전체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으로 번역한다.
34) SN.Ⅱ, 25 ; 각묵스님(2013a), 162-163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K
atamo ca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
raṇaṃ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
52∙佛敎硏究 제48집

연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


다.’라는 방식으로 대답한다. 이러한 답변은 바로 연기가 곧 각각
의 지분들로 구성된 십이연기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어서 연기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한다. ‘확립된 계(ṭhitā dhātu)’이고, ‘법으
로 확립된 것(dhammaṭṭhitatā)’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dhammani
yāmatā)’이고,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idappaccayatā)’이다. 즉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는 것은 ‘확립된 계’이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는 것은 ‘법으로 확립된 것’
이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는 것은 ‘법으로 결정
된 것’이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어서 조건 경 에서는 연기에 대해 ‘여여한 것(tathatā)’, ‘거
짓이 아닌 것(avitathatā)’,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님(a
naññathatā)’, ‘이와 같이 조건을 지닌 것(idappaccayatā)’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칼루파하나가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인과의 원리
로 연기를 해석할 때 연기의 특성이라고 말한 “객관성(tathatā),
필연성(avitathatā), 항상성(anaññathatā), 조건성(idappaccayatā)”
은 연기의 특성을 말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의 이해에 따
르면, 니까야에서 연기는 십이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연기의 특
성이라고 말한 것들은 12지분들 각각에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이다.
이후 조건 경 에서는 연기된 현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묘사
로서 12지분들 각각을 설명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된 현상들인가? 늙음·죽음은 비영구적인, 조작된, 연기된 것
이며, 지멸의 법이고, 사라짐의 법이고, 이탐의 법이고, 소멸의 법
이다.(Katame ca bhikkhave, paṭiccasamuppannā dhammā? Jarā
maraṇaṃ bhikkhave, aniccaṃ saṅkhataṃ paṭiccasamuppannaṃ,
khayadhammaṃ vayadhammaṃ virāgadhammaṃ nirodhadhamm
aṃ.)35)” 이처럼 연기된 현상들 또한 각각의 지분들과의 연관성
35) SN.Ⅱ, 2.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53

속에서 설명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연기의 정형구는 yad idaṃ으로 제한
되어 곧바로 이어진 12지분들에 한정된다. 따라서 idaṃ은 12지분
들 각각을 가리킨다.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초기불교에서 연기의
가르침은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신이
작동하는 과정에 초점을 모은다. 그들은 정신이 존재를 조건짓는
방식을 표현한다. 연기는 정신작용의 분석과 관련되어 있고 정신
적 조건화의 다양한 과정을 확인하면서 각 지분들과의 관계를 드
러낸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필자는 연기 정형구와 십이연기를 구분하지 않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본다. 이어서 12지분들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살펴
보자.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지음이 …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
뇌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무명이 남김
없이 소멸하면 지음이 소멸하고 …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 슬픔, 육
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
가 소멸한다.36)
경전에서는 12지분 각각의 지분들에 대해 앞선 지분을 조건으
로 하여 뒤의 지분이 발생하며 마지막으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
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또한 같은 방법으로 앞선 지분이 소멸하면
뒤의 지분이 소멸하며, 각각의 지분들에 대한 설명을 모두 끝낸
36) SN.Ⅱ, 28, imasmiṃ sati idaṃ … imass' nirodhā idaṃ nirujjhati Ya
did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 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
manassū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
sa samudayo hoti. Avijjāya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nir
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佛敎硏究 제48집
54

후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언급은 십


이연기가 사물의 발생 논리가 아닌, 바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과정임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콕스(Collett Cox) 또
한 연기 정형구와 12지분을 분리하여 설명하지 않는다.37) 초기경
전에 드러난 연기는 인간에게 괴로움이 발생하는 방법과 소멸하
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필자는 paṭiccasamuppāda를 “상의적 생기”(相依的 生起, interde
pent co-origination)로 번역하는 것에 거부한 슈미트하우젠(L. Sc
hmithausen)의 언급에 주목한다.38) 그에 따르면, 초기불교의 연기
설은 모든 사물들의 상호의존성, 상호연결성 또는 상호관련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방식의 연기 이해를 미즈노 고갱
(水野弘元), 야마다 이시(山田一志) 등의 일본학자들의 해석으로
보았다.39) 슈미트하우젠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대승불교가 초기불
교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진 것을 비판한다. 대승불교는 연
기의 본래 의미를 상호의존으로 이해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화엄
불교 시기에 연기의 개념이 보편적 상호의존성과 상호연관성의
원리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언급한다.40) 페터(T. Vetter) 또한 중
국의 화엄전통에서 연기가 의존적 상호발생이 되었다고 주장한
다.41)
필자는 슐만, 슈미트하우젠 등의 입장과 이해를 같이한다. idap
paccayatā는 연기와 동의어로 나타나며, idaṃ이 가리킨 것은 바
로 12지분에 속하는 각각의 지분들이다. 니까야에서 연기 정형구
는 12지분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연기의 특성은 곧 십이연기의
특성이며, 십이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
멸의 과정에만 관여되어 있다. 물론 연기의 지분이 12가지로 확정
37) Cox(1993), 126.
38) 슈미트하우젠, 안성두 번역(2008), 106.
39) Schmithausen(1997), 53.
40) Schmithausen(1997), 13.
41) 틸만 페터, 김성철 옮김(2009), 142.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55

적인 것이 아니기에 니까야에서는 12지분 연기에서부터 2지분 연


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또한 괴
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관련되어 있음을 Ⅲ장에서 고찰할 것이다.

Ⅲ. 괴로움과 연기
니까야(Nikāya)에서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duk
kha이다. 마크 엡스타인은 dukkha의 번역어인 suffering이 원어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dukkha에
내포된 의미는 ‘전반적인 불만족’으로, 즉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
하는 전반적인 불만족의 느낌이다. 첫 번째 근원은 불멸에 대한
환상이다. 두 번째 근원은 좋음과 좋지 않음에 대한 집착이다. 세
번째 근원은 자신의 인격에 대한 일반적인 불편함이다.42) 마크 엡
스타인의 이와 같은 분류는 사성제(cattāri ariyasaccani) 중의 첫
번째 진리에 해당하는 고성제(dukkhaṃ ariyasacca)의 사고팔고
(四苦八苦)43)에 배대된다. 먼저,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등은 불
멸에 대한 환상을 채워줄 수 없기에 불만족의 느낌이다. 두 번째,
싫어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과 원하
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은 좋음과 좋지 않음에 대한 집착에서
42) 마크 엡스타인, 전현수·김성철 옮김(2008), 67.
43) SN.Ⅴ, 421 ; 각묵스님(2013d), 385,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
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
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
더기 자체가 괴로움이다.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v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
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saṅkhittena pañcupādāna
kkhandhā dukkhā.)
56∙佛敎硏究 제48집

오는 불만족의 느낌이다. 세 번째, 집착의 대상이 되는 오온(五蘊)


자체가 불완전하며 비실체적이고 불확실한 것이기에 불만족의 느
낌이다.
고성제에서의 사고팔고는 십이연기의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老死憂悲苦惱)’ 지분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다. 십이연기의 괴로움이 큰 맥락에서는 사성제에서의 괴로움과
동일하다. 니까야에는 괴로움에 대한 언급이 이외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니까야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괴로움에 대한 고
찰을 통해 연기의 본래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먼저 괴로움은 연기된 것(Paṭiccasamupp
annaṃ dukkhaṃ)44)이라고 천명한다. 연기가 지닌 의미를 붓다의
출가 목적과 관련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함 경,
Ādhipateyya sutta 에는 붓다가 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나는 옷 때문에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니고 음식과 거처와 특정한
존재를 위해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 이었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나에게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라고.45)
붓다는 괴로움의 끝을 드러내기 위해 출가하겠다고 설 한 이후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의 출구를 알고자 지혜롭게 마음에 집중
44) SN.Ⅱ, 33.
45) AN.Ⅰ, 147 ; 대림스님(2012a), 383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na k
ho panā'haṃ cīvara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na piṇḍapāta
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na senāsanahetu agārasmā anag
āriyaṃ pabbajito, na itibhavābhava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
o. Api ca kho'mhi otiṇṇo jātiyā jarā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
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nāma i
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57

(yonoso manasikāra)한 결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


다는 것을 통찰지로 꿰뚫어본다.(paññāya abhisamayo)46) 마침내
붓다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괴로움의 끝을 낼 수 있는지를 설한
다.
무명[無明]을 제거하여 … 지음[行]이 없고 … 의식[識]이 없고 … 정신·물
질현상[名色]이 없고 … 여섯 장소[六入]가 없고 … 접촉[觸]이 없고 … 느
낌[受]이 없고 … 갈애[愛]가 없고 … 집착[取]이 없고 … 있음[有]이 없고
… 태어남[生]이 없고 소멸해버렸는데도 늙음·죽음[老死]을 천명할 수 있
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고도 장하구나. 참으로 그와
같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대해 나를 믿고 확신을 갖
고 의문을 제거하고 의심을 없애라.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47)
슐만에 따르면, 전통적인 해석으로서 십이연기는 삼세의 기간
동안 윤회의 재생과정을 묘사한다. 그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을
유지하여 십이연기는 “마음이 윤회적인 경험과 존재를 조건 짓는
방식”이라고 말한다.48) 십이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의 다양한 과정
을 확인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묘사한다. 명상 경, Sammasa sutt
a 에는 ‘늙음·죽음’ 지분과 ‘갈애’ 지분이 재생의 근거가 되어 괴로
움이 발생한다고 언급한다.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은 재생의 근거가 되며 그 근원이며 재생의
46) DN.Ⅱ, 31.
47) SN.Ⅱ, 82-84 ; 각묵스님(2013a), 268-273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
음, avijjā pahīṇā … saṅkhāresu asati … viññāṇe asati … nāmarūpe as
ati … saḷāyatane asati … phasse asati … vedanāya asati … taṇhāya
asati … upādāne asati … bhave asati … jātiyā asati jātinirodhā api n
u kho jarāmaraṇaṃ paññāyethā'ti Sādhu sādhu kho1 bhikkhave, evam
evetaṃ bhikkhave, netaṃ aññathā saddahatha evamevetaṃ bhikkhave,
adhimuccatha. Nikkaṅkhā ettha hotha nibbicikicchā. Esevanto dukkhas
sāti.
48) Shulman(2008), 304.
58∙佛敎硏究 제48집
근거로부터 일어나고 재생의 근거로부터 발생한다. … 갈애를 기르는 자
들은 재생의 근거를 기르고 재생의 근거를 기르는 자들은 괴로움을 기르
며 괴로움을 기르는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
고 괴로움으로부터도 해탈하지 못한다.49)
한편 요한슨(Johansson)은 연기의 마지막 지분인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老死憂悲苦惱)’를 두 가지로
나누어 해석한다.50) 첫째, 늙음·죽음은 특정한 사건의 유형을 말
하는 것으로 윤회를 의미한다. 둘째,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
탄, 고뇌 등은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
는 후자의 해석에 대해 ‘지금 여기’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한 실천적인 목적으로 이해한다.51) 이러한 괴
로움은 반복해서 발생하기에 또 다른 과정의 연속이다. 괴로움에
서 벗어나는 것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이다.
필자는 요한슨의 후자 해석에 주목하며, 연기의 가르침이 현실
에서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모은다. 니까야에
는 고성제와 연기의 지분으로 등장하는 괴로움 이외에도 다양한
괴로움52)이 나타난다. 이러한 괴로움들은 현실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괴로움이다. 이와 같은 괴로움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연
기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괴로움의 발생 과정에 대한
49) SN.Ⅱ, 108-109 ; 각묵스님(2013a), 319-323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
음, uppajjati jarāmaraṇaṃ, idaṃ kho dukkhaṃ upadhinidānaṃ upadhis
amudayaṃ upadhijātikaṃ upadhipabhavaṃ, upadhismiṃ sati jarāmaraṇ
aṃ hoti. … ye taṇhaṃ vaḍḍhenti, te upadhiṃ vaḍḍhenti. Ye upadhiṃ
vaḍḍhenti, te dukkhaṃ vaḍḍhenti. Ye dukkhaṃ vaḍḍhenti. Te na pari
muccanti. Jātiyā jarā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
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a.
50) 루네 E.A. 요한슨, 허우성 옮김(2011), 209.
51) 루네 E.A. 요한슨, 허우성 옮김(2011), 210.
52) SN.Ⅳ, 259, 괴로움은 세 가지 성질이 있는데, 고통스런 괴로움의 성질[d
ukkha-dukkhatā, 苦苦性], 형성된 괴로움의 성질[saṅkhāra-dukkhatā, 行
苦性],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의 성질 [vipariṇāma-dukkhatā, 瓌苦性]이다.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59

규명은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이 실존적 괴로움에 대한 방


안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괴로움 경, Dukkha sutta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을 중심
으로 괴로움의 발생 과정에 대해 알아본다. 4부 니까야에서 괴로
움 경 은 SN.Ⅱ, 71, SN.Ⅲ, 77, AN.Ⅲ, 3 등 세 곳에서 나타나며,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여섯 장소(saḷāyatana)’ 지
분과 관련되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둘째, ‘오온(pañcakkhandh
ā)’의 각각이 괴로움이다. 셋째, ‘지금·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론이 설해진다.
먼저 SN.Ⅱ, 71에 나타나는 괴로움 경 이다. 이 경에서는 괴로
움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에 대해 설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해 설하리라. 무엇이 괴로
움의 일어남인가? 눈과 시각대상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접촉이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53)
SN.Ⅲ, 77에 있는 괴로움 경 에서는 오온의 각각이 괴로움이
기에 그것에 대한 욕구를 버려야 한다고 설한다.
비구여, 괴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버려야 한다. … 물질현상[色]은 괴로
움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느낌[受] … 지각[想] …
지음[行] … 의식[識]은 괴로움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
다.54)
53) SN.Ⅱ, 72, dukkhassa bhikkhave,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desissā
mi. Katamo ca bhikkhave dukkhassa samudayo? Cakkhuñca paṭicca r
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
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Ayaṃ kho bhikkhave dukkhassa s
amudayo.
54) SN.Ⅲ, 77, Yaṃ kho bhikkhu, dukkhaṃ, tatra te chando pahātabbo'ti.
… Rūpaṃ kho bhante, dukkhaṃ, tatra me chando pahātabbo, … ve-
danā … saññā … saṃkhārā … viññāṇaṃ dukkhaṃ tatra me chando
60∙佛敎硏究 제48집

AN.Ⅲ, 3에 나오는 괴로움 경 에서는 ‘지금·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져야 할 다섯 가지에 대해 설한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가진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 예상된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있고, 양심이 있고, 수치심이 있고, 열심히 정진하고,
통찰지를 가졌다.55)
SN.Ⅱ, 71에 나타나는 괴로움 경 은 ‘여섯 장소(saḷāyatana)’
지분과 관련된 것으로, 눈과 시각대상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
어나고, 이후 접촉, 느낌, 갈애가 조건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괴로
움의 일어남’이라고 설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괴로움을 설하는
경들에는 견해 경, Diṭṭhi sutta , 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Adantāgutta sutta , 범망 경, Brahmajāla sutta 등이 있다.
견해 경 에는 “견해는 생겨난 것이고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고 조건따라 일어난 것입니다. 조건따라 일어난 것은 무상합
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56)이라고 설하고 있다. 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에서는 “눈·귀·코·혀·몸·마음기능은 괴로움을
실어 나른다(Cakkhuṃ·Sotaṃ·Ghānaṃ·Jivhā·Kāyo·Mano dukkhā
dhivāhā honti)”57)고 설한다. 범망 경 에는 62가지 견해가 생기
는 것은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pahātabbo.
55) AN.Ⅲ, 3 ; 대림스님(2012b), 52-53, Pañcahi bhikkhave dhammehi sa-
mannāgato bhikkhu diṭṭheva dhamme sukhaṃ viharati … sugati pāṭi-
kaṅkā. Katamehi pañcahi: bhikkhave bhikkhu saddho hoti, hirimā hoti,
ottappī hoti. Āraddhaviriyo hoti, paññavā hoti.
56) AN.Ⅴ, 187, diṭṭhi bhūtā saṅkhatā cetayitā paṭiccasamuppannā, yaṃ
kho pana kiñcī bhūtaṃ saṅkhataṃ cetayitaṃ paṭiccasamuppannaṃ ta-
daniccaṃ, yadaniccaṃ taṃ dukkhaṃ.
57) SN.Ⅳ, 70.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1
그들 모두는 여섯 장소[六入]를 통해 계속해서 일어나는 접촉[觸]으로
인해 [사견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런 느낌[受]이 그들에게 갈애[愛]를 생
기게 하고 갈애는 집착[取]을 생기게 하고 있음[有]은 태어남[生]을 생기
게 하고 태어남은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老死憂
悲苦惱]를 생기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꿰뚫어 안
다.58)
지금까지 살펴본 견해 경 , 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 범망 경 에는 괴로움으로서 견해를 설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
들은 8지 연기[여섯 장소-접촉-느낌-갈애-집착-갈애-있음-태어
남-늙음·죽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육내처에 속하는 눈·귀·코·혀·
몸·마음기능을 단속하지 않고 제어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실어 나
르며, 여섯 장소를 통한 접촉으로 견해가 발생한다. 견해는 조건
따라 생겨난 것이기에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붓다는 견해에 빠진 것을 독화살에 맞았으나 형이상학적 질문
에 모두 답하기 전까지 치료를 거부하는 것에 비유한다.59) 견해에
빠진 상황은 지금 현실에서 몹시 괴로운 상태이다. 독화살에 맞았
다면 시급하게 치료를 하여야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독을 치료하는 것과는 무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 몰두하
여 치료시기를 놓친다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58) DN.Ⅰ, 45 ; 각묵스님(2012a), 176-177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s
abbe te chahi phassāyatanehi phussa phussa paṭisaṃvedenti. Tesaṃ v
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
assupāyāsā sambhavanti. Yato kho bhikkhave bhikkhu channaṃ phass
āyatanānaṃ samudayaṃ ca atthagamaṃ ca assādaṃ ca ādīnavaṃ ca
nissaraṇaṃ ca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imehi sabbeheva uttaritara
ṃ pajānāti.
59) MN.Ⅰ, 426-432.
62∙佛敎硏究 제48집

붓다는 견해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


는 방법을 연기의 가르침으로 설하였다. 견해의 발생은 ‘여섯 장
소’ 지분과 관련된 연기 가르침으로, 즉 8지 연기[여섯 장소-접촉
-느낌-갈애-집착-갈애-있음-태어남-늙음·죽음]의 형태로 나타난
다. 붓다는 견해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을 제시
한다. 만일 “눈·귀·코·혀·몸·마음기능에 대해 염오하고 탐욕을 빛
바래고 소멸하고 집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이
증득(cakkhussa·sotassa·ghānassa·jivhāya·kāyassa·manassa nibb
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hoti diṭṭhadhammanibbānap
patto)”60)된다고 설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견해로 인한 실존적 괴
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있는 방편이다.
이와 더불어 세상 경, Loka sutta 에는 “눈과 시각대상을 조건
으로 하여 의식이 일어나고 이 셋의 화합이 접촉”이며, 이후 느낌,
갈애, 집착, 있음,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
등이 조건적으로 생기며,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lokassa samuda
yo)”61)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SN.Ⅱ, 71의 괴로움
경 에 나타나는 괴로움의 일어남과 배대되며, 8지 연기[여섯 장소
-접촉-느낌-갈애-집착-갈애-있음-태어남-늙음·죽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o)에게는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Dukkhameva uppaj
jamānaṃ uppajjati, dukkhaṃ nirujjhamānaṃ nirujjhati)”62) 이러
한 설명은 견해로 인하여 괴로움이 발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SN.Ⅲ, 77의 괴로움 경 에 나오는 것처럼 ‘오온’과 관련하여
괴로움을 설한 경들에는 나꿀라삐따 경, Nakulapitā sutta , 삼
매 경, Samādhi sutta 등이 있다. 먼저 나꿀라삐따 경 에는 몸
이 아픈 나꿀라삐다 장자가 어떻게 하면 몸도 병들지 않고 마음
60) SN.Ⅳ, 141.
61) SN.Ⅳ, 87.
62) SN.Ⅱ, 13.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3

도 병들지 않을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 먼저 사리뿟따 존자는 몸


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질현상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현상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관찰
하고 물질현상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현상 안에 자아가 있다
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물질현상이다. 물질현상은 내 것이다.’라는 [견
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물질현상이다. 물질현상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물질현상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
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가 일어납니
다. … 느낌 … 지각 … 지음 … 의식 … 그에게는 슬픔, 육체적 아픔, 고
통, 비탄, 고뇌가 일어납니다.63)
몸과 마음이 병든 자는 바로 오온 각각에 대해 자아라고 관찰
하고,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거나, 오온 각각 안에 자아가 있다
고 관찰한다. 또한 오온 각각이 ‘나’라거나 ‘내 것’이라 견해에 사
로잡혀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가 발생한다. 또한 삼
매 경 에는 오온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설하
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 현상의 일어남이고 … 느낌 … 지각 …
지음 … 의식의 일어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사람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러면 무엇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는가? 그는 물질현상
을 즐기고 환영하고 거기에 묶여 있다. 물질현상을 즐기고 환영하고 거
기에 묶여 있는 자에게 즐김이 일어난다. 물질현상을 즐기는 것이 바로
63) SN.Ⅲ, 3 ; 각묵스님(2013b), 102-111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rūp
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
pasmiṃ vā attānaṃ. 'Ahaṃ rūpaṃ mama rūpa'nti pariyuṭṭhaṭṭhāyī ho
ti. Tassa 'ahaṃ rūpaṃ, mama rūpa'nti pariyuṭṭhaṭṭhāyino taṃ rūpaṃ
vipariṇamati, aññathā hoti. Tassa rūpa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an
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 Vedanaṃ … Saññaṃ … S
aṅkhāre … Viññāṇaṃ …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64∙佛敎硏究 제48집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있음이, 있음을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
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 슬픔, 육체적 아픔, 고통, 비탄, 고뇌가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64)
위의 경은 5지 연기[오온 각각의 즐김-집착-있음-태어남-늙음·
죽음]의 형태를 띤 것으로, 오온 각각이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
기에 집착이 발생한다고 말하며, 이후 지분들이 조건적으로 발생
한다. 이처럼 취착의 [대상인] 오온들은 조건 따라 생긴 것이다.(P
aṭiccasamuppannā kho panime yadidaṃ pañcupādānakkhandhā).
취착의 대상인 오온에 욕심내고 집착하고 친밀하고 탐착하는 것
은 괴로움의 일어남(Yo imesu pañcasupādānakkhandhesu chando
ālayo anunayo ajjhosānaṃ, so dukkhasamudayo)이다.65)
오온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로서 ‘나’ 자신에 관련
된 가르침이다. 오온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유신견(有身見)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한다면 괴로움이 발생한다. 집착된 오온은 지
금 현실에서 맞닥뜨린 괴로움이다. 붓다는 이러한 괴로움에 대해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오온에 대해 탐욕과 욕망을 제
어하고 탐욕과 욕망을 제거(pañcasupādānakkhandhesu chandarā
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66)한다면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 즉 ‘바로·지금’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여섯 장소’ 지분과 관련되어 괴로움에 대해 설하는
64) SN.Ⅲ, 14 ; 각묵스님(2013b), 134-135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K
o ca bhikkhave, rūpassa samudayo, … vedanāya … saññāya … saṃk
hārānaṃ … viññāṇassa samudayo: Idha bhikkhave, bhikkhu abhinanda
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Kiñca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rūpaṃ 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tassa rūpaṃ a
bhinandato abhivadato ajjhosāya tiṭṭhato uppajjati nandi. Yā rūpe nand
i tadupādānaṃ tassū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
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
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65) MN.Ⅰ, 191.
66) MN.Ⅰ, 191.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5

경들과 ‘오온’과 관련된 괴로움을 설하는 경들을 살펴보았다. 괴로


움을 설하는 경들 중에서 ‘느낌’ 지분과 관련한 경에는 외도의
주장 경, Tittha-sutta , 깔라라 경, Kaḷāra sutta 등이 있다.
외도의 주장 경 에는 “정신·물질현상을 조건으로 여섯 장소가
있으며, 여섯 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 ‘이것은 괴로움
이다.’(Vediyamānassa idaṃ dukkhanti paññāpemi.)”67)라고 천명
한다. 이 경에서는 4지 연기[정신·물질현상-여섯 장소-접촉-느낌]
로 괴로움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깔라라 경 에서는 “느
껴지는 것은 무엇이든 괴로움에 포함된다.(yaṃ kiñci vedayitaṃ t
aṃ dukkhasminti.)”68)고 설한다. 이 경은 5지 연기[태어남-있음-
집착-갈애-느낌]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느껴지는 것으로 인한 괴
로움에 대해 바르게 알고 본다면 괴로움은 소멸될 수 있다고 기
술한다.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
낌 등 3가지로 분류되며, 눈·귀·코·혀·몸·마음기능이라는 감각기관
에 접촉하여 발생한다. 우리는 6가지 감각기관에 접촉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발생한다. 이러한 느낌들에 대해 탐욕과 분
노에 매여 괴로움이 발생한다. 붓다는 각각의 느낌들에 대해 철저
하게 안다면 ‘지금·바로’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69)
67) AN.Ⅰ, 176.
68) SN.Ⅱ, 53.
69) SN.Ⅳ, 207 ; 각묵스님(2013c), 433-434, 즐거움에서 괴로움을 읽어내며
괴로운 느낌을 화살처럼 이해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저 평화로운
느낌에서 무상을 이해하는 그 비구야말로 바르게 보는 자이니 이런 자
가 바로 느낌을 철저하게 아느니라. 그 지혜의 달인은 느낌을 철저하게
알아 바로 이 생에서 번뇌가 멸진할 것이며 몸이 무너져 죽을 때엔 법의
길에 확고하리니 어떤 헤아림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이 없으리. (Yo suk
haṃ dukkhato adda dukkhamaddakkhi sallato Adukkhamasukhaṃ sant
aṃ addakkhī naṃ aniccato. Sa ve sammaddaso bhikkhu parijānāti ved
anā. So vedanā pariññāya diṭṭhadhamme anāsavo Kāyassa bhedā dha
66∙佛敎硏究 제48집

고 설한다.
이 외에도 괴로움에 대해 설해지는 경들 중에서 ‘갈애’ 지분과
관련된 경으로 살하 경, Sāḷha sutta , 대인연 경, Mahānidāna s
utta 등이 있다. 살하 경 에서는 난다까(Nandaka)존자와 미가라
의 손자인 살하와 뻬꾸니야의 손자 로하나가에게 “탐욕(lobho)”과
“성냄(doso)”과 “어리석음(moho)”은 해로운 법들이기에 받들어
행하면 괴로움이 생긴다고 설한 후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
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한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옛적에 나에게는 탐욕이 있었고 그것은
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내게 그런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 … 성냄이 … 어리석음이 … 없다. 그러므로 이것
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그는 금생에 더 이상 갈애
가 없고 고요하고 침착하고 행복을 경험하고 수승한 상태로 머문다.70)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어지면 금생 즉 ‘지금·여기’ 현실에서
더 이상 갈애가 생기지 않는다. 갈애가 생기지 않으므로 고요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갈애’ 지분과 관련된 연기는 5지 연기[갈애-
집착-있음-태어남-늙음·죽음]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대인연
경 에서는 ‘갈애’ 지분에 대해서 9가지 갈애71)가 연기의 가르침으
로 설해진다. 이러한 설명은 재생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현실
mmaṭṭho saṅkhaṃ nopeti vedaguti.)
70) AN.Ⅰ, 197 ; 대림스님(2012a), 475-476, So evaṃ pajānāti. Ahu pubbe l
obho, tadahu akusalaṃ so etarahi natthi, iccetaṃ kusalaṃ. … doso …
moho … natthi, iccetaṃ kusalanti. Iti s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
bbuto sītibhūto sukha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ī'ti.
71) DN.Ⅱ, 58 ; 각묵스님(2012b), 125-126, [1]추구(pariyesanā), [2]얻음(lābh
a), [3]판별(vinicchaya), [4]욕망(chandarāga), [5]탐착(ajjhosāna), [6]거머
쥠(pariggaha), [7]인색(macchariya), [8]수호(ārakkhā), [9] 몽둥이를 들
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
고 거짓말(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ṃtuvaṃpesuññ
amusāvādā):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7

에서 맞닥뜨린 괴로운 상황에 어떻게 함몰되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 실존적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현 상황에서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된다.72) 연기의 가르침은 현실의 괴로
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괴
로움은 연기된 것이기에 연기와 연기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분명하게 본다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할 수 있
다.
비구여, 만일 늙음·죽음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여 집착 없이 해
탈하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 태어남 … 있음 … 집착 … 갈애 … 느낌 … 접촉 … 여섯 장소 … 정
신·물질현상 … 의식 … 지음 … 무명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여 집
착 없이 해탈하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73)

Ⅳ. 나가는 말
이상과 같이 필자는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이 정신
적 조건화에 연결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과정에만 관련되어 있
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연기 정형구는 십이연
72) 슈미트하우젠, 안성두 번역(2008), 188.
73) SN.Ⅱ, 18 ; 각묵스님(2013a) 146-147의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Ja
rāmaraṇassa ce bhikkhu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hoti,
diṭṭhadhammanibbāṇappatto bhikkhū'ti alaṃ vacanāya. … Jātiyā … B
havassa … Upādānassa … Taṇhāya … Vedanāya … Phassassa … Saḷ
āyatanassa … Nāmarūpassa … Viññāṇassa … Saṅkhārānaṃ … Avijjā
ya ce bhikkhu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hoti, Diṭṭhadha
mmanibbāṇappatto bhikkhūti alaṃ vacanāyāti.
∙佛敎硏究 제48집
68

기의 지분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연기와 idappaccayatā는 동의


어로 나타나며, idaṃ이 가리킨 것은 바로 12지분에 속하는 각각
의 지분들이다. 십이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
과 소멸의 과정에만 관여되어 있다. 물론 연기의 지분이 12가지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에 니까야에서는 12지분 연기에서부터 2지
분 연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연기의 가르침 또
한 정신적 조건화의 과정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관여한
다.
그렇다면,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니까야에서 괴로움으로 언급
되는 것에는 ‘늙음·죽음’, ‘견해’, ‘오온’, ‘느낌’, ‘갈애’ 등이 있다. 이
러한 방식으로 접근할 때, 재생과 관련된 괴로움과 실존적 괴로움
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괴로움의 발
생 과정에 대한 규명은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이 실존적
괴로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본 고는 다양한 괴로움들
이 발생하는 과정 중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실존적 괴로움의 문
제에 초점을 모은다.
필자는 연기에 대한 삼세양중인과적 접근 방식이 재생에 대한
괴로움을 해명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재생적 괴로움은 ‘늙음·죽음’
과 ‘갈애’ 등과 연관되어 있다. ‘견해’, ‘오온’, ‘느낌’, ‘갈애’-재생의
괴로움과 실존적 괴로움 모두에 포함된다- 등은 실존적 괴로움에
해당한다. 견해에 대한 괴로움은 ‘여섯 장소’ 지분과 관련되며 8지
연기로 드러난다. ‘세상의 일어남’은 견해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하
는 과정에 배대된다. 오온에 대한 괴로움은 5지 연기로, 느낌과
관련된 괴로움의 발생은 4지 연기로, 갈애와 관련된 괴로움은 5지
연기로 드러난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기는 정신적 조건화에 의한 괴로움의 발생
과 소멸과정을 규명한다.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의 가르침은 재생
의 괴로움과 더불어 현재의 삶에 당면한 실존적 괴로움에서도 벗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69

어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본 고에서


는 다양한 지분들의 연기 가르침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으
나 향후 후속 연구할 것이다.
70∙佛敎硏究 제48집

약호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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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73

Abstract
A Consideration On The Issue Surrounding the
Paṭiccasamuppāda
-Focusing on Early Buddhism-
Lee, Eun Jung
Kyungpook National Univ.

In Korean Buddhism, it is a main trend to interpret


mutual dependence[相依相關] relation as the
dependent-origination on the basis of dependent-origination
formula. Since Kim Dong-Hwa, most researchers have
adopted the mutual dependence. However, this is not well
understood refer to early Buddhism. Mutual dependence
interpretation is strong in character as a reference to a
general things, and is about a law on things and sometimes
extended as an explanation of causal principle.
However, I apprehend that this understanding as a
result of separating the dependent-origination formula and
12-links dependent-origination, and as a result of not
grasping the significance of the dependent-origination as a
process of mental conditioning. The teaching of
dependent-origination is related only about the process of
mental conditioning rather than reference to general things.
The dependent-origination formula that appears in
Nikāya is not separated from the 12-links. idappaccayatā is
synonymous with dependent-origination, and idaṃ refers to
each of the 12-links. The characteristic of
dependent-origination is namely the characteristic of the
12-links dependent-origination, and the 12-links
74∙佛敎硏究 제48집

dependent-origination is concerned only with the process of


the occurrence and disappearance of suffering. Of course,
since the number 12 is not fixed, it varies from the 12-links
to the 2-links dependent-origination in Nikāya. These
various dependent-origination teachings are also involved in
the process of occurrence and disappearance of suffering
caused by the process of mental conditioning.
As I understand of, if you relate suffering to the
teaching of dependent-origination, the suffering is divided
into suffering associated with rebirth and existential
suffering. I agree that the approach to dependent-origination
based on twofold causality spanning the three periods[三世兩
中因果] is the suffering of rebirth. However, considering the
dependent-origination teachings of the various links,
suffering is not only confined to the problem of rebirth but
can be understood to be the problem of existential suffering.
According to my comprehension, the ‘view’, ‘five
aggregates’, ‘feeling’ and ‘thirst’ which are mentioned as
suffering in Nikāya are existential suffering. The generation
of a view as a cause of existential suffering is manifested
in 8-links dependent-origination, and the occurrence of
suffering due to obsession over 5 aggregates is manifested
in 5-links dependent-origination, and the occurrence of
suffering due to feelings is manifested in the 4-links
dependent-origination, and the occurrence of suffering due
to thirst is manifested by the 5-links dependent-origination.
In this way, the dependent-origination identifies the
occurrence and disappearance of suffering caused by the
process of mental conditioning. The teachings of
dependent-origination on various links suggest a practical
way to escape from existential suffering as well as
suffering of rebirth.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관한 고찰∙75

Key Words :
early buddhism, dependent-origination, idappaccayatā, 12-links,
suffering, view, five aggregates, feeling, thirst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1 | 게재확정 2018. 02. 12
불교연구 제48집(2018), 77~106쪽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


이태승* 74)

Ⅰ. 서언
Ⅱ. 금강경의 제작시기와 vastu의 용례
1. 금강경의 제작시기
2. 금강경의 vastu 용례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2.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
IV.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이해
1. vastu의 의미
2.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해석
V. 결어

* 위덕대학교 불교문화학과 교수. tslee@uu.ac.kr


∙佛敎硏究 제48집
78

요약문
vastu라는 말은 유가행파의 문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된
용어이다. 곧 유가행파의 사상적 입장을 나타내는 유가사지론이나
불교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에서도 이
vastu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개념으로 사용되고 있
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외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존재하는 사
물들이 가지는 각각의 vastu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외경
대상이 찰나적으로 생멸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승의로서 실재하
는 각각의 vastu의 힘에 의해 대상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
게 유가행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된 vastu
가 반야경전에서도 등장하고 있고, 특히 여러 반야경전들 가운데 후
대의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되는 금강경에서도 vastu의 용어는 나
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강경에서는 유가행파에서 보듯 긍정적인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해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의미의 용어로서 나타나고 있다. 곧 vastu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거나
vastu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서 무집착, 무소득의 공성의 의
미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vastu와 더불어 외계
대상 일반을 가리키는 법(法)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어 vastu와 동
일하게 집착해서는 안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집착의 대
상으로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vastu가 유가행파에서 철학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긍정적으로 수용된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것은 무집착, 무소득의 입장에서 일체의 개념적 분별을 떠
날 것을 강조하는 금강경의 입장에 대해 적어도 유가행파는 vastu
에 대해긍정적인 입장에서 의미를 규명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반야경의 입장에
대해 유가행파로서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대응하고자 한 의도도 있
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금강경에서의 vastu에 대한 입장은
후대 유가행파가 vastu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명케 하는 하나
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주제어 :
바스투, 법, 반야경전, 금강경, 유가사지론, 양평석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79

Ⅰ. 서언
불교의 교학전통에서 초기불교 이래 외계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법(法, dharma)이란 말이 있다.1) 곧 초기불교이래 사용되는
12처(處), 18계(界)의 용어에서 법(法) 또는 법계(法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12처란 우리의 주관적인 감관기능으로서 안이비
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이에 대응하는 외계의 대상으로서 색성향
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가리키며, 이중 법이란 의(意)의 대상이
되는 인식대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12처의 의의 대상으로서 법은
18계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의식계(意識界)
와 그 대상으로서 법계(法界, dharma-dhatu)를 지칭한다. 곧 법과
법계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의 대상인 외계의 대상일반을 가리키
게 된다. 이렇게 주관적 기능과 그에 대한 객관적 대상을 의미하
는 법 또는 법계의 용어는 불교철학의 전개 속에서 보다 깊이 있
는 고찰이 이루어진다.
불교철학의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사유는 외계대상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전개한다. 곧 외계의 대상도 따로 인간 밖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상에 표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주관적
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계의 대상은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상에 나타나는 일종의 개념으
로서 우리 인식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 인식이란 인식주체로서 의식이 인식대상으로서 표상화된 의식
대상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의식화된 대상을 인식하는 일
종의 자기인식(自己認識, svasaṃvedana)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인
1) 초기불교에서 법이란 말에는, 독일의 가이거(Geiger) 부부의 견해에 따르
면, (A) 법칙, 정당, 규준 (B) 교설 (C) 진실, 최고의 존재 (D) 경험적 사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高崎直道(1987), 405] 본고에서 사용하는 의미는
(D)의 의미로서, 주관적인 의식에 대비되는 대상일반의 의미로 사용한 것
이다.
∙佛敎硏究 제48집
80

식에 대한 철학적 논증은 불교인식론의 해명을 과제로 삼았던 불


교논리학파나 유가행학파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가 되어 더욱 철
저한 고찰이 이루어졌다.
이렇듯 불교철학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 외계대상에 대한 깊은
고찰은 인식의 대상이 단순히 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상에 반영된 의식의 일종이라는 국면까지 전개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외계대상에 대한 논의에 있어 전통적인 법의 개념을
대신하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나는 데 그것이 곧 vastu이다.2) 이
vastu의 용어는 특히 불교논리학파의 대성자로서 알려진 다르마
키르티(Dharmakīrti, 600-660)의 저술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어 후
대 불교철학상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
자가 이 vastu라는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르마키르티의 저
술에 의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이 vastu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본고이다.
필자가 그간 궁금증을 가졌던 vastu에 대해서는 2005년 출간
된 다카하시 고이치(高橋晃一 )씨의 학위논문의 저술로서 비교적
상세한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논문은 유가행파의 기본 전적
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의 보살지(菩薩地) 안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한 연구로, 그간의 궁금증을 상당히 해소시켜주었다.
그러던 차에 근년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던 금강반야바
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본고에서는 금강경이라고 약칭함) 안에
서도 vastu라는 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많
은 용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행파에서 중시된 용어가
여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본논문은 vastu에 대한 그간의 궁금증을 금강
경의 용례를 통해 해소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vastu란 말은 인도사상 일반에서 사용된 보통명사로서, 이 말은 ‘재화’나
‘사물’과 같은 구체적인 물체를 의미하거나 혹은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
것에서 轉意하여 근거·의지처·원인이라는 추상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
다[권서용(2010), 155].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1

대승불전으로서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핵심을 나타내


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번역된 경전으로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유포되어 대승의 정신을 선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였다. 따라서 대승의 중요한 정신을 보여주는 금강경의 원전
인 범본(梵本)에 나타나는 vastu의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도
폭넓게 사용되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범본 금강
경 내에서는 이 vastu와 함께 외계를 지칭하는 dharma 즉 법이
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3), 이 vastu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고는 vastu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타나는 유가사지론과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量評釋,
Pramāņavārttika)에서의 vastu 정의를 바탕으로 금강경의
vastu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Ⅱ. 금강경의 제작 시기와 vastu의 용례


1. 금강경의 제작시기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핵심을 간직한 중요한 경전으로
서 특히 동아시아의 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금강경이 그 중요성을 더하는 것에는 금강경에
대한 번역이 상당히 광범히 하게 이루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곧 금강경은 범본, 티벳본, 한역본 외에도 코탄본, 소그드본, 위
구르본, 몽골본 등도 남아있어4),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권은
3) 금강경에서의 법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부처의 교설’과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나타낸다. 물론 여기에서 ‘존재하는 것’이란 언어로서 표현된다하
더라도 실제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따라서 ‘법’이라고도 ‘비법’이라고
도 할 수 없는 무위의 세계라고 한다.[竹橋(1999), 159.]
∙佛敎硏究 제48집
82

물론 인도의 주변지역에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그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는 금강경은 인도에서의 대승경전
제작에 있어서는 초기대승경전을 대표하는 반야경전 내에서도 중
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금강경은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반야경전의 4단계 성립
시기 가운데 제3단계인 <교설의 개별화와 운문화의 시기>로서
300년~500년간에 성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5) 이것은 이전 
금강경은 반야경전 가운데서도 상당히 초기의 경전이라는 견해
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6),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 등 방
대한 반야경전이 성립된 속에 개별적 특정한 주제의 반야경전으
로서 금강경이 성립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경전으
로는 승천왕반야(勝天王般若), 문수반야(文殊般若), 선용맹반
야(善勇猛般若) 등을 거론하고 있다7). 이러한 금강경에 대한
최근의 성과를 반영한다면 금강경의 성립은 유가행파의 유가
사지론과도 그 제작된 시기가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곧 vastu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유가사지론은 일
반적으로 4세기경에 성립한 것으로 간주되고8), 이 전적의 최종
편찬에는 무착(無著, Asaṅga, 310-390[별설 395-470])이 관여하였
을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9). 유가행파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
을 하는 무착은 실제 금강경에 대해서도 중요한 저술을 남기고
있다. 곧 무착은 금강경에 대한 문헌으로서 능단금강반야바라
4) 渡辺章悟(2009), 6-11.
5)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반야경전의 성립은 다음의 네 단계를 통해 거
의 천여년 이상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한다. (1) 원시반야경전의 형성(기원
전 100년~기원후 100년) (2) 경전의 增廣期(기원후 100년~300년) (3) 교
설의 개별화와 운문화의 시기(300년~500년) (4) 밀교화의 시기(500/600
년~1200년) [渡辺章悟(2009), 24].
6) 渡辺章悟(2009), 32-34.
7) 渡辺章悟(2009), 25.
8) 高橋晃一(2005), 3.
9) 안성두(2015), 454.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3

밀다경론송(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頌, 1권)(大正藏 25, No.15


14)을 남기고 있고, 이것에 대해 그의 이복동생으로 간주되는 세
친(世親, Vasubandhu, 400-480 [별설320-400])은 복주(復註)로서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론석(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釋, 3권)
(大正藏 25, No.1513)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무착과 세친이 금강
경에 대한 저술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무착의 생전(生
前)에 금강경은 존재하였던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금강
경은 대체적으로 300~400년간에는 성립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금강경이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의 저술인 대지
도론(大智度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10)과 나가르주나의 생몰
연대인 150-250년을 고려하면 금강경은 적어도 250-400년 정도
에는 성립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2.  금강경의 vastu 용례
초기대승경전으로서 반야경전 일반에서도 vastu의 용어는 나타
나고 있다.11) 범본의 소품반야경이나 대품반야경에 나타나는
vastu의 의미는 실재(entity), 사물(thing), 객관적 실체(objective
entity), 원인(cause), 특성(property) 등의 의미로 나타난다. 범본
금강경에서도 vastu는 등장하고 있지만12), 이 범본에 대한 7본

10) 渡辺章悟(2009),33.
11) Conze(1967), 346 : 여기에 나타나는 vastu 항목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vastu ; dngos po; entity, A ix 200, P.541a, AA-*, iv.1, gshi ;
thing , A, i 7, P.194, 265, AA viii 19*; objective entity, AA i 34, gshi;
v 14*; property, R xvii 5*, xxxi 10*; possession, P.437; entity, and,
cause; S x1463*, 1465*, 1466*(P-), 1466*, 1467*; objective existing
entity, Su vii 98b; objective basis, P 533b; see: puņyakriyā-v.”(여기의
약호는 범본의 반야경으로서 A : Aṣṭasāhasrikā; AA :
Abhisamayālaṅkāra; R : Ratnaguņasaṃcayagāthā ; S : Śatasāhasrikā ;
Su : Suvikrāntavikrāmiparipṛcchā를 가리킴)
12) Conze(1967)의 vastu항목에서 금강경에서의 용례는 필자가 본문에서
84∙佛敎硏究 제48집

의 한역금강경에서는 그 역어가 일정하지 않다13). 범본에 등장하


는 vastu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4)
A) api tu khalu punaḥ Subhute na bodhisattvena
vastu-pratiṣṭhitena dānaṃ dātavyam,
(羅) 復次 須菩提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眞) 復次 須菩提 菩薩不著已類而行布施
(流) 復次 須菩提 菩薩不住於事行於布施
(留) 復次 須菩提 菩提不著己類而行布施
(笈) 雖然 復次時 善實 不菩薩摩訶薩事住施與應
(玄) 復次 善現 若菩薩摩訶薩 不住於事應行布施
(義) 復次 妙生 菩薩不住於事應行布施
* 여기에서의 범본의 내용은 한역의 과문에서는 <제4 묘행무주
분(妙行無住分)>에 해당하는 것으로, 특히 구라라집의 역문은 상
당히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먼저 범본의 내용을 번역하면 ① “다
시 또 수보리여, 보살은 vastu에 머물러 보시를 해서는 안된다”와
②“다시 또 수보리여, 보살은 vastu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해야
한다”의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부분의 티베트역문은 ②로
번역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15) 이 범본에 대한 한역의 역문에
인용하는 부분의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vastu-patita, fallen among
things, V 14g, dngos-por lhung-ba ; vastu-pratiṣṭhita, supported by a
thing, V 4, dngos-po-la gnas-pa.(V=Vajracchedikā, 금강경)
13) (羅) : 鳩摩羅什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No.235) ; (流) : 菩提流支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No.236-A) ; (眞) : 眞諦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
正藏8, No.237) ; (留) : 留支三藏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No.236-B) ;
(笈) : 笈多譯, 金剛能斷般若波羅蜜經(大正藏8, No.238) ; (玄) : 玄奘譯, 大般
若波羅蜜多經, 第九能斷金剛分(大正藏7, No.220-9) ; (義) : 義淨譯, 佛說能斷
金剛般若波羅蜜多經(大正藏8, No.239) [渡辺(2009),437 참조]
14) 본고에서 금강경 범본은 기본적으로 이기영(1997)을 이용하고, 범본대
조는 Vaidya(1961)를 이용했다.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5

서는 이 vastu가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집은


법으로, 진제와 유지삼장은 이류(已類) 혹은 기류(己類)로, 그 외에
보리유지, 급다, 현장, 의정은 모두 事로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역
문을 보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라집의 번역이다. 라집은 vastu
를 법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또 dharma도 법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묘행무주분>의 이 부분에 이어 등장하는 6경과 관련된 라집
의 한역 즉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 부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
味觸法布施)”와 같이 법의 의미가 등장해 vastu와 dharma가 구별
없이 사용된다.16) 이에 대해 다른 역본에서는 vastu를 사, 이류,
기류 등으로 번역해 dharma의 법과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라
집은 vastu나 dharma를 별 차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또 사나 이류 등으로 번역한다면 그 번역어는 어떻게 현대어로
번역하면 좋을까? 일반적으로 현대어 번역에서 범본을 번역한 경
우에는 물건이라고 번역하며17), 범본과의 대조가 없는 경우에는
구마라집의 한역에 의거 법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18). 그
렇다면 이 말을 물건이나 법으로 그대로 사용하면 그 의미가 온
전히 드러나는 것일까? 필자로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
제라고 생각된다.
B) evaṃ 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羅)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眞) 如是當知 菩薩 墮相行墮相施
(流) 若菩薩 心住於事而行布施
15) byang chub sems dpas dngos po la mi gnas par sbyin pa sbyin no//
[전재성(2003), 150 참조]
16) 이기영(1997), 45.
17) 이기영(1997), 44 ; 성열(2014), 148.
18) 지안(2006), 47. 무비(2010), 46에서는 “어떤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86∙佛敎硏究 제48집

(留) 如是 當知菩薩 墮相行墮相施


(笈) 如是 事墮菩薩見應 若事墮施與
(玄) 當知菩薩 若墮於事 謂墮於事而行布施亦復如是
(義) 若菩薩 心住於事 而行布施
* 이 부분은 한문의 과문에서는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
分)>에 해당하는 것으로, 뒤의 C) 부분과 서로 연결이 되고 있다.
이 구절과 관련된 라집의 한역 내용은 “만약에 보살의 마음이 법
에 머물러 있으면서 보시를 행하면, 마치 사람이 어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못 보는 것과 같다(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則無所見)”고 되어 있는 까닭에19), 이 구절의 의미는 “보살의 마음
이 법에 머물러 있으면서 보시를 행하면”에 상당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한역의 ‘법에 머물러 있으면서’에 해당하는 것이 범본의
vastu-patito로서, 이것을 좀 더 정확히 번역하면 ‘vastu에 집착하
는 사람’ 혹은 ‘vastu에 집착하면’이란 의미가 된다. 따라서 범본
의 의미는 “vastu에 집착한 자로서 보살이 보시를 하는 것은 [어
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가 된다. 이 경
우 vastu의 한역어는 라집의 법이란 말 이외에 상(相) 내지는 사
(事)로서 번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vastu는
집착의 대상으로서 사용하고 있어 이 vastu에 대한 집착을 벗어
날 것을 강조하고 있다.
C) evam a-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羅)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眞) 如是當知 菩薩 不墮於相行無相施
(流) 若菩薩 不住於事行於布施
(留) 如是當知 菩薩 不墮於相行無相施
19) 이기영(1997), 127.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7

(笈) 如是菩薩摩訶薩見應 若事不墮施與


(玄) 當知菩薩不墮於事 謂不墮事而行布施 亦復如是
(義) 若不住事而行布施
* 이 부분의 번역은 위의 B)의 부분에 이어서 나오는 것으로,
라집의 한역에서는 “만약에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
시를 행하면 마치 사람이 눈이 있고 햇빛이 밝게 비쳐 가지가지
의 색을 봄과 같으니라(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
照 見種種色)”에서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
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20) 이 한역을 참조하면 범본의 번역은
“vastu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보살이 보시를 행하는 경우
도 그와 같다”와 같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vastu에 집착하지 않
는 자란 의미의 a-vastu-patito란 말은 라집 이외의 한역에서는
불타어상, 부주어사, 불타어사, 부주사 등과 같이 번역되고 있다.
곧 사(事)나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자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이
처럼 vastu의 원어에 대해 라집 이외의 사람들은 법이란 말과는
차별되는 용어로서 사용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
다. 그렇다면 이 vastu의 현대어역은 어떠한가. 범본을 번역한 곳
에서는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보살’21) 또는 ‘사물들 가운데 머물
지 않는 구도자’22)라고 번역하고 있고, 한역에 근거한 번역에서는
‘마음을 온갖 것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23) 또는 ‘마음을 법에
붙들리지 않고 보시한다면’24)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라집의 번역
에 따라 vastu를 법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 한역의 번역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범본의 현대역도 ‘물건’이
나 ‘사물’의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20) 이기영(1997), 127.
21) 성열(2014), 323.
22) 이기영(1997), 126.
23) 무비(2010), 166.
24) 지안(2006), 108.
∙佛敎硏究 제48집
88

이상이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라는 말의 용례로서 범본과


한역의 내용 그리고 현대어역의 용어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이
금강경에서는 vastu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집착을
떠나야할 대상으로 따라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대상으로 나타나
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vastu란 말은 본래 어떠한
의미를 사용된 말이었을까. 범본 금강경과 유사한 시기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가사지론과 같은 유가행파로서 좀더
후기에 속하는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에서의 그 의미를 다음절
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Ⅲ. 유가행파에서의 vastu 의미
1. 유가사지론에 나타나는 vastu
 유가사지론은 대승 유가행학파의 기본전적으로 대략 4세기경
에 제작되어, 시기적으로는 금강경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
으로 보인다. 특히 이 유가사지론 안의 보살지(菩薩地) <진실
의품(眞實義品)>이나 <섭결택분중보살지(攝決擇分中菩薩地)>에서
는 이 vastu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나타나고 있다. 유가사지론
은 전체적으로 오랜 시기에 걸쳐 제작된 것이 밝혀지고 있어 이
vastu에 대해서도 유가사지론 내에서 그 고찰의 심천(深淺)이
나타나고 있다. 곧 보살지 <진실의품>에서 핵심적으로 논의되
고 있는 개념인 vastu는 <섭결택분중보살지>에서 5사(事)의 개념
으로 더욱 세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먼저 보살지 <진실의품>에서는 vastu에 대해 “가설(假說)되
어진 것으로서 언어대상의 원인인 기체(基體), 가설되어진 것으로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89

서 언어대상의 원인으로서 의지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승의적(勝義的) 실재(實在)인 vastu”25)라고
말하고 있다. 곧 여기에서의 vastu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vastu
는 ①언어표현의 기체와 ②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본질을 갖는
승의적 실재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26) 곧 언
어로 표현된 사물에 대해 그 사물에 대해 명칭을 부여하는 근본
능력 내지는 사물 본질로서의 근본 실재 등의 개념을 나타낸다.
이러한 vastu에 대해 <진실의품>에서는 vastu를 네 가지의 진
실(tattva)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네 가지란 ① 세간에서 성립
하는 진실(世間極成眞實 ; 세간의 언어분별로서 파악되는 vastu)
②도리에 의해 성립한 진실(道里極成眞實; 올바른 인식수단에 의
해 바르게 정립된 인식대상) ③번뇌의 장해로부터 정화를 위한 지
의 활동영역으로서 진실(煩惱障淨智所行眞實; 4성제의 현관에 의해
인무아를 바로 알아 번뇌장을 떠나는 것) ④인식대상에 대한 장해
로부터의 정화를 위한 지의 활동영역으로서의 진실(所知障淨智所
行眞實 ; 법무아에 의해 일체 인식대상을 평등하게 보는 무분별의
지)이다. 이중 ①②③은 언어표현의 기체로서 vastu이며, ④는 언
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승의적 실재로서의 vastu를 가리킨다.27) 특
히 이 중 ③에서는 색등의 제온(諸蘊)과 인(人, pudgala)과의 관계
에서 색등의 제온이라는 vastu가 존재해야 인이라는 가설이 성립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④의 법무아를 통해 무분별의 경계에 들
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법에 대한 분별을 떠나는 것으로, 이것도
단지 vastu인 단순한 진여의 경계를 파악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
이라고 한다28). 이렇게 무분별의 경계로서 진여를 vastu라고 하는
25) prajñaptivādanimittādhiṣṭhānaṃ prajñaptivādanimittasaṃniśrayaṃ
nirabhilāpyātmakatayā paramārthasadbhūtaṃ vastv…(BBh 5.3.1) [高橋
晃一(2005), 18]
26) 高橋晃一(2005), 18
27) 高橋晃一(2005), 19-21 ; 박기열(2017), 27-29.
28) 高橋晃一(2005), 21.
∙佛敎硏究 제48집
90

것에 대해 동일한 <진실의품> 내에서 vastu가 분별로부터 생긴


다는 내용도 나타난다. 약간 모순되는 내용이지만29), 무분별의 궁
극적 경계가 vastu라고 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vastu의 설명을 살펴보면 vastu는 언어 표현되어진 사물
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근거 내지는 올바른 인식을 가져오는 인
식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올바른 인식대상으로서의 vastu의 개념은 같은 유사사
지론 내의 <섭결택택분중보살지> 안에서는 5사(事)의 개념으로
전개되어 더욱 상세한 설명이 이루어진다30). 5사란 다섯가지
vastu라는 말로서 상(相), 명(名), 분별(分別), 진여(眞如), 정지(正
智)의 다섯을 가리킨다. 이 5사 각각에 대한 유가사지론 내에서
의 설명과 그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31)
상 : 언어표현을 위한 언어의 기체가 되는 vastu(의식내 분별의 활동
영역 )
명 : 상에 대한 구체적 명칭(일상적 언어활동의 장)
분별 : 3계에서 작용하는 심심소로서의 제법(상을 활동영역으로 하는
것)
진여 : 법무아로서 나타나고 성자들의 지혜의 활동영역으로, 언어표현
을 위한 기체가 되지 않는 vastu(정지의 활동영역)32)
정지 : 출세간적인 것과 세간적이며 출세간적인 것의 2종(진여를 활동
영역으로 하는 것)
이와 같이 vastu를 다섯 가지의 형태로 설명하며, 상과 진여에
대해서는 vastu의 용어를 붙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 상
으로서 vastu란 세간의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서 분별을 일
으키는 근거라고 말할 수 있고, 진여란 성자들의 지혜의 영역에
29) 池田道浩(1996), 370-372.
30) 다카하시 고이치(2014), 84-86.
31) 高橋晃一(2005), 35-36.
32) 本村耐樹(2005), 460에 의하면 진여가 곧 vastu라고 한다.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1

속하는 것으로 언설을 초월한 상태에서 드러나는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과 진여의 개념은 앞서 <진실의품>에서의
vastu에 대한 정의인 언어표현의 기체, 언어표현할 수 없는 승의
적 실재란 의미와도 상통하는 것으로, 따라서 이 vastu에는 세간
세속으로서의 의미와 승의의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함축적 의미로서 vastu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33)

따라서 이 유가사지론 <진실의품>과 <섭결택분중보살지>에


나타나는 vastu의 의미를 정리하면 이 vastu는 대상사물로 하여
금 언어의 표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근거임과 동시
에 언설표현은 불가하지만 정지의 대상으로서 성자의 지혜를 가
져오는 승의적 실재로서의 대상이란 의미를 갖는다. 곧 언설표현
의 근거이자 성자의 지혜를 가져오는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

2.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


 양평석(量評釋, Pramāņavārttika)은 불교논리학파의 개조인
디그나가(Dignāga, 480-540)의 주저 집량론(集量論,
Pramāņasamuccaya)에 대한 다르마키르티의 주저로서, 불교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대한 가장 세밀하고 구체적인 사유를 보이는
책이다. 이 양평석의 인식론에 대한 고찰에서도 vastu의 개념은
상당히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vastu의 개념이 디그나가에게
33) 다카하시 고이치(2014), 86.
∙佛敎硏究 제48집
92

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르마키르티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난다. 곧 다르마키르티는
디그나가가 제시하는 두 가지 인식수단으로서 직접지각(直接知覺,
pratyakṣa)과 추리(推理, anumāna)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그 대상
으로 삼는 독자상(獨自相, svalakṣaņa)과 일반상(一般相,
sāmānyalakṣaņ) 가운데 독자상을 vastu라 부르고 있다.34) 다르마
키르티는 두 가지의 인식대상을 그의 양평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35)
인식수단은 두 가지 뿐이다. 인식대상이 두 가지 뿐이기 때문에. 인
식대상은 유효(有效)한 작용의 능력이 있든가 또는 그 능력이 없던가
어느 하나이기 때문에. 단 예안지(翳眼知)에 현현하는 머리카락 등은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대상으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PV. k.1)
유사(類似)하든가 유사하지 않던가 어느 하나이기 때문에, 또 언어
의 대상이든가 언어의 대상이 아니든가 어느 하나이기 때문에. 또 다
른 원인 등이 있을 때 그것이 없어도 그것의 지가 있든가 또는 그것이
없이는 그것의 지가 없든가 어느 하나이기 때문에.(PV.k.2)
여기서 유효한 작용의 능력이 있는 것은 승의유(勝義有)이고, 다른
것은 세속유(世俗有)이다. 이 두 가지 중 전자를 독자상, 후자를 일반
상이라고 한다.(PV.k.3)36)
다르마키르티는 이와 같이 양평석 <현량장>의 첫 부분에서
독자상과 일반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독자상과 일반상에 대
한 설명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7)
34) 후나야마 토루(2017), 108 참조.
35) 본고에서 양평석에 대한 번역은 박인성교수가 번역한 도사키(2015)를
따른다.
36) 이상의 3게송은 도사키 히로마사(2015),108-111을 따름.
37) 이나미 마사히로(2017), 56 참조.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3

독자상 : ① 유효한 작용능력을 가짐 ②유사하지 않음 ③언어표현의


대상이 아님 ④그것이 없이는 그것의 지가 발생하지 않음
일반상 : ①유효한 작용능력이 없음 ②유사함 ③언어표현의 대상 ④그
것이 없어도 다른 원인이 갖추어지면 그것에 대한 지가 발
생함
이러한 인식의 대상으로서 독자상과 일반상 가운데 vastu는 독
자상으로 실재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독자상에 대한 설명
에 따라 vastu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로 vastu는 유효한 작용능
력을 갖는 실재하는 대상을 지칭한다. 곧 불이라는 대상을 두고
살펴보면 그것이 뜨겁다는 불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실재 대상이
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하지 않다는 것은 현재 순간순간 찰나에
생멸하는 존재로 그 순간의 존재는 다른 사물과 차별을 갖는 독
자적인 모습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곧 찰나찰나 생멸하고 있는 불
의 모습을 지칭한다. 셋째로 언어표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순
간순간 생멸하는 존재로 개념화되기 이전의 실재의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넷째는 그것의 존재가 있어야 그것에 대한 지식이 생긴
다는 뜻으로 곧 앞에 생멸하며 찰나적인 불이란 존재가 실재하여
야 불에 대한 지각이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독자상으로서
vastu에 대한 설명에 대해 일반상이란 다양한 개물에 대한 개념
으로서의 대상으로, 의식 상에 나타나며 유사한 대상일반으로서
언어로 표현되며, 앞에 대상이 없어도 지칭이 가능하다는 의미이
다.
다르마키르티는 양평석에서 위에서와 같이 독자상과 일반상
에 대해 설명한 뒤 제11게송 이하(제63게송까지)에서는 vastu가
왜 일반상이 아닌지에 대해 구체적인 논증을 실시하며, 반론자와
의 대론(對論) 형태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38) 그는 자신
의 입장을 제11게송의 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38) 도사키 히로마사(2015), 122 이하.


94∙佛敎硏究 제48집

그것(=일반상)은 실유(實有, vastu)가 아니다. 언어표현의 대상이기


때문에. 언어표현의 대상은 실유가 아니다―논증인의 제2의 상(=대명
제) ―라는 것은 왜 그런가? 감관의 결합(=감관지)은 결과를 갖기 때
문에.39)
이 다르마키르티의 말은 일종의 논증식으로서 “주장(종) : 일반
상은 실유가 아니다. 이유(인) : 왜냐하면 언어표현의 대상이기 때
문에”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대명제가 되는 “언어
표현의 대상은 실유가 아니다”라는 것에 대한 이유로서 거론되는
“감관의 결합(=감관지)은 결과를 갖기 때문에”라는 의미에 대해
도사키(戶崎)는 주석자들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언어표현의 대상이 색등을 본성으로 하는 존재라면, 예컨대
맹인이 ‘색’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색이라는 실유를 인식하게 될 것
이다. 따라서 실유인 색을 인식하는 감관지는 무의미하게 되고 말 것
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에 반한다. 즉 색등을 인식하려면 안지(眼知)
등의 감관지가 필요하다. 이렇듯 만약 “언어표현의 대상은 색등을 본
성으로 하는 실유이다”라고 한다면, 사실과 모순되기 때문에 이것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표현의 대상은 색 등을 본성으로 하
는 실유가 아니다”라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40)
곧 언어로 표현되는 개념적인 대상은 실재 유효한 작용으로서
생멸하는 현실적 사물의 모습으로서 vastu와는 다르다는 의미로,
감관의 지각을 통한 감관지로서 인식하는 대상은 vastu가 아니라
일반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다르마키르티는 vastu가 일반
상이 아닌 것에 대해 상세한 논증을 하고 있는 속에 도사키는
vastu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르마키르티의 찰나멸설에 따르면 ‘존재’는 ‘찰나멸성의 것’으로 발
39) 도사키 히로마사(2015), 122.
40) 도사키 히로마사(2015), 123.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5

생한다. 따라서 소멸은 존재의 본질이다. ‘존재한다’란 바로 ‘찰나멸성


의 것이다’. 이와같이 실유는 스스로 소멸하는 것으로서 존재하기 때
문에 만약 일반상이 생기해서 실유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소멸하는 것
이다. 따라서 상주할 수 없다.41)
여기에서 말하고 있듯 실유(實有) 즉 vastu는 스스로 소멸하는
존재로서 이것은 달리 말하면 스스로 자기차이성(自己差異性)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42) 이것은 현재 존재하는 사물들의 찰나적인
순간순간의 생성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르마
키르티에게 있어 vastu란 직접지각의 대상으로서 독자상의 특질
을 갖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순간순간의 찰나적인 모습으로 지각
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vastu에 대해 다르마
키르티가 승의유라고 표현하고 있어 그러한 찰나적 순간의 효과
적 작용을 갖는 본질적인 사물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43)

IV.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이해


의 의미
1. vastu

41) 도사키 히로마사(2015), 163.


42) 권서용(2010),179-181 참조.
43) 권서용(2010), 156-157에서는 다르마키르티의 vastu에 의미를 다음과 같
이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차이성을 본질로 하는 vastu. 둘째
인과적 효과성을 본질로 하는 vastu. 셋째 추리의 존재론적 근거인
vastu. 넷째 사성제 등의 청정한 존재로서 vastu. 다섯째 인과결과와 인
식수단의 비별체설을 논의할 때 하나의 전체로서 생기하는 인식으로서
vastu”
∙佛敎硏究 제48집
96

앞에서 살펴본 유가사지론과 양평석에 나타나는 vastu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곧 vastu란 현재 찰나찰나
생멸하는 외경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인식에 그 대상에 대한 지식
을 전달해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대상의 근거로서
는 앞서 유가사지론에서의 설명과 같이 ①언어표현의 기체 내
지는 ②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진 승의적 실재인 것이
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는 양평석에 나타나듯 독자상으로
서의 이해와 거의 일치한다. 곧 독자상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의 ①유효한 작용능력을 갖는 것 ②유사하지 않은 것 ③언어
표현의 대상이 아닌 것 ④그것 없이는 그것에 대한 지식이 생기
지 않는 것의 성격은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vastu의 성격을 나
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vastu는 승의적 실재로서 존재하는 승의
유의 성격으로서, 곧 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
유가사지론과 양평석에 의하면 vastu는 궁극적인 실재로서 우
리들 인간에게 대상인식을 가능케 해주는 절대적인 성격의 존재
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vastu에 대해서는 유가사지론 내지 양평석과 같
이 유가행파로 분류되는 경론에서 상세하게 그 의미가 고찰되고
있다. 그런데 양평석을 쓴 다르마키르티에 대해서는 그가 경량
부(經量部) 소속의 사상가인지 유식학파(唯識學派)의 사상가인지에
대해 견해가 나누어지고 있어, 이렇게 나누어지는 입장에서 vastu
에 대한 견해도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곧 외계의 대상을
추리적으로 인정하는 경량부의 입장에서는 vastu는 인식을 가능
케하는 외계대상으로서 순간적 존재성, 찰나적 사물 등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44) 하지만 외계의 대상조차 우리 인식의 일부
라고 하는 유식사상의 입장에서는 vastu는 인식상에 나타나는 순
44) 외계대상을 추리적인 입장에서 인정하는 경량부적 입장에서 받아들여지
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대상인식’이라 하고, 인식의 발현으로 대상을 받
아들이는 유식적인 입장에서 인식은 ‘자기인식’이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권서용(2010), 285]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7

간적인 상, 즉 개념화되기 이전 대상의 모습을 띠는 것으로서 대


상형상성(對象刑象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45) 이런 입장에서 vastu
는 외경대상을 표상화하는 본질적인 성격을 갖는 궁극적 존재로
서 이것이 개념상으로서 일반상을 성립시키는 토대가 되는 것이
다.
이와 같이 vastu는 외계대상을 지칭하는 입장에서 궁극적인 존
재인 까닭에 그 성격은 미묘하게 외계존재성과 인식론적 성격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있음으로
서 인식대상에 대한 지각은 가능한 것이지만, 이것은 “궁극적 차
원에서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존재’(entity)
이며, 지각을 생기게 하는 인과적 효과성이라는 측면에서 현실적
(actual) 존재”인 것이다.46) 순간적인 찰나성을 본질로 하면서도
외계대상을 인식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작용의 성격을 갖는 것이
vastu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가행파계통의 입장에서 vastu
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로 간주되고 있지만,
이러한 입장은 본고에서 살펴본 금강경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
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보았듯 금강경에서는 이 vastu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금강경 vastu에 대한 재해석


금강경에서의 vastu에 대한 용례는 앞서 보았듯 3군데에 걸
쳐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3군데 나타나는 용례에 대해 범
본의 해당개소와 이와 관련된 세친(世親)의 복주인 한역 능단금
강반야바라밀다경론석(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釋) 에 나타나는
설명을 보기로 한다. 이 세친의 복주는 무착(無著)의 능단금강반
45) 유식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형상으로서 인식되기 이전 제1차적인 인식대
상을 대상형상성이라고도 표현한다.[박기열(2017), 27]
46) 권서용(2010), 159.
98∙佛敎硏究 제48집

야바라밀다경론송(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頌)에 대한 주석서이
지만, 주석의 내용상에서는 금강경의 전문이 거의 대부분 나타
나고 있다. 각각의 해당개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A) api tu khalu punaḥ Subhute na bodhisattvena
vastu-pratiṣṭhitena dānaṃ dātavyam,(다시 또 수보리여, 보살은
vastu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해야 한다.)
* 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다(不住於事者 謂不著自身)47)
B) evaṃ 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vastu에 집착한 자로서 보살이 보시를 행하는 것은 [어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실제로 진여법이 있는데 중생은 어찌하여 증득하지 못하는가.
게송에서 “지혜가 없어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으니,
그는 지혜가 없어 마음이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다.(衆生實有眞如法
何故不得 偈言無智以心住法故)48)
C) evam a-vastu-patito bodhisattvo draṣṭvyo yo
vastu-patito dānaṃ parityajati,
(vastu에 집착하지 않는 자로서 보살이 보시를 하는 것은 [사
람이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쳐 가지가지의 색을 봄과 같으니
라])
47) 大正藏 25권, No.1511, p.782, 중.(한글대장경 三法度論外 동국역경원간,
278, 참조.)
48) 大正藏 25권, No.1511, p.789 상.(한글대장경 三法度論外 동국역경원간,
314, 참조.)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99

*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이 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진여


를] 능히 얻을 수 있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불 여래는 청
정한 진여로 그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머무름이 있는
마음으로는 불보리를 얻을 수 없다.(以有智者心不住法 是故能得 以
是義故 諸佛如來 淸淨眞如得名 是故住心不得佛菩提)49)
이 범본 금강경에 대한 한역 세친의 주석서에는 vastu가 사
(事)로서 번역되어 나타나지만, 실제 주석 상에서는 법(法)이란 말
과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A)에서는 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을 무착의 게송에 나타나는 말인 ‘자신의 몸(自身)’에 집착하지 않
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B)C)의 설명에서는 vastu가 법
의 용어로 번역되어 vastu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 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로 심부주법(心不住法)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진여를 얻으려면 마음이 법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법에 머
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곧 집착의 경계를 떠나야 진여가 얻어진
다는 B)와 C)부분의 내용은 앞서 유가사지론 <진실의품> 중에
나타나는 네 가지 진실(tattva)의 경계 중 마지막 네 번째인 무분
별의 경계와 관련을 갖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네 번째의 경계는
진여가 얻어지는 경계인 까닭에 이 세친의 주석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세친의 해석에서는 vastu에 대한 집착을
떠나는 것이 진여의 무분별의 경계를 얻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세친이 이 vastu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
는가는 향후 연구해보아야 할 내용이지만, 무착과 같은 유가행파
로서 세친의 입장을 고려하면 vastu로서 진여를 언급하여 앞서 
유가사지론의 내용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생각
된다.
그렇다면 금강경의 성립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49) 大正藏 25권, No.1511, p.789 상중.(上同)
100 ∙佛敎硏究 제48집

다고 생각되는 유가행파에서 이 vastu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


미로 사용된 것에 대해 금강경에서는 집착을 일으키는 대상으
로서 부정적으로 사용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금강경에서 강조
하는 무집착(無執著)이나 무소득(無所得)의 공(空)의 입장을 고려
해보면 이러한 vastu에 대한 부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더
욱이 외경대상으로서 법을 포함한 6경(境)에 대한 부정이나 인간
의 내면의 가장 미묘한 개념적 상으로서 4상(相) 즉 자아(自我)라
는 상, 중생(衆生)이라는 상, 푸드갈라(Pudgala, 人)라는 상, 목숨
[壽者]이라는 상에 대한 부정이 강조되는 것을 고려하면 vastu에
대한 부정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금
강경 안에서 부정대상으로서 vastu에 대한 용어가 새롭게 사용
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외경대상을 가
리키는 전통적인 용어로서 법 즉 다르마의 개념이 유지되는 속에
새로운 용어로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vastu
가 어떤 문헌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조사는 향후 과제
가 되겠지만, 이 다르마의 용어와 함께 새롭게 사용된 vastu가 유
가행파에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사용되어 대승불교 내에서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생겨나는 계기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고 생
각된다.

V. 결어
vastu라는 말은 유가행파의 문헌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
된 용어이다. 곧 유가행파의 사상적 입장을 나타내는 유가사지론
이나 불교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다르마키르티의 양평석에서
도 이 vastu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핵심개념으로 사
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외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101

존재하는 사물들이 가지는 각각의 vastu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


다. 비록 외경대상이 찰나적으로 생멸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승의로서 실재하는 각각의 vastu의 힘에 의해 대상인식이 가능하
다는 것이다. 물론 이 vastu가 외경대상으로서 개별 사물의 영향
력을 지닌 것으로서의 존재인지 아니면 완전한 우리 의식의 발현
으로서의 존재인지는 보는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
만, 적어도 유가행파에서는 대상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유가행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철학적 개념으로 사
용된 vastu가 반야경전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러
반야경전들 가운데 후대의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되는 금강경에
서도 vastu의 용어는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강경에서는 유가
행파에서 보듯 긍정적인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해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의미의 용어로서 나타나고 있다. 곧
vastu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거나 vastu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
미로서 무집착, 무소득의 공성의 의미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등장
한다. 그리고 이 vastu와 더불어 의식대상의 일반을 가리키는 법
(法)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어 vastu와 동일하게 집착해서는 안
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집착의 대상으로서 부정적으
로 사용되는 vastu가 유가행파에서는 철학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긍정적인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
금강경에서 보이는 부정적인 vastu와 유가행파의 긍적정적인 의
미의 vastu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이것은 대
승불교 최초의 경전으로서 반야경전이 후대 대승불교의 전개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는 하
나의 입장으로서 불교논리학의 개척자인 디그나가의 중요한 입장
이 반야경의 영향이라는 다음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
된다.
디그나가가 직접지각은 개념(분별)을 떠나 있다고 주장했을 때, 아
102 ∙佛敎硏究 제48집

마도 그 배경에는 반야경등의 각종 대승경전에 설해진 ‘분별(개념적


이해)에 대한 불신’, 바꾸어 말하면 ‘무분별이야말로 진실이라고하는
입장’이 있었다고 상상된다. 다르마키르티도 또한 분별과 무명을 동일
한 것으로 보고, 높은 경지의 요가행자나 붓다를 ‘분별의 그물을 끊은
자’라고 형용하는 경우가 있다.50)
곧 대승불교의 철학자로서 이름 높은 디그나가의 사상적 입장
에는 반야경전 등의 선행하는 대승경전에서 강조한 사상적 입장
이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뜻을 고려해보면
무집착, 무소득의 입장에서 일체의 개념적 분별을 떠날 것을 강조
하는 금강경의 입장에 대해 적어도 유가행파는 vastu에 대해서
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의미를 규명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반야경의 입장에 대
해 유가행파로서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대응하고자 한 의도도 있
었던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리고 vastu에 대한 금강경의 입장
은 유가행파가 vastu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명케 하는 하나
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vastu에 대한 고찰을 통해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외경대상 일반으로서 법이라는 용어와 차별을 가져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vastu는 외경대상으로서 사물, 물질, 법 등의 구체적인
현상존재라는 의미와 함께 근본, 의지처, 실유 등의 철학적 개념
으로서 궁극적인 존재라는 의미도 갖는다. 금강경에서의 vastu
는 유가행파와 같은 의미의 철학적인 개념을 가졌다고는 생각되
지 않지만, 외경대상인 법과는 구별되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필자는 금강경에서의 vastu는 사
물의 고유한 모습 내지는 현상의 본질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사상(事相), 실상(實相), 본유(本有) 등의 용어로서 표현
하면 본래적인 의미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50) 후나야마 토루(2017), 113.
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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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본 금강경에 나타나는 vastu에 대하여∙105

Abstract
On the meaning of the word Vastu
in Vajracchedikā Sutra
Lee, Tae Seung
Uiduk Univ.
The word vastu is a term that has been used vital in
the literature of the Yogācāra. This vastu is also used as a
key concept to enable recognition of the object in
Yogācārabhūmi, which represents the ideological position of
the Yogācāra, and in Dharmakīrti’s Pramāṇavārttika, which
shows the peak of Buddhist philosophy. In other words, our
recognition of the external object can be attributed to each
vastu of the existing objects. Even if the external object is
instantly alive, it can be recognized by the force of each
vastu as the ultimate level. In this way, vastu, which is
used as a philosophical concept with an important meaning
in the Yogācāra, also appears in the Prajñāpāramita
literatures.
Especially in the Vajracchedikā Sutra,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influential in many Prajñāpāramita literatures,
the term vastu appears. However, in the Vajracchedikā
Sutra, it is not used as a positive concept as seen from the
Yogācāra, but it appears as a term of negative meaning that
should not be obsessed. It soon emerges as a notion that
emphasizes the meaning of emptiness, meaning that it
should not attach in vastu or obsessed with vastu. In
addition to this vastu, the term "dharma" refers to the
general meaning of external things, which is used in the
sense that it should not be attached with dharma in the
106 ∙佛敎硏究 제48집

Vajracchedikā Sutra. The vastu, which is negatively used


as an object of obsession in the Vajracchedikā Sutra,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concept that has a philosophical
meaning in the Yogācāra. It is thought that, at least for the
position of the Vajracchedikā Sutra, which emphasizes the
departure of all conceptual discernment from the standpoint
of no-obsession and no-attachment, at least for the
Yogācāra, vastu was positive in explaining and positively
explaining the meaning. In this sense, it is thought that
there is also intention to respond to the position of the
Vajracchedikā Sutra with a different position as the
Yogācāra movement. Therefore, the position of vastu in the
Vajracchedikā Sutra is considered to be the moment for the
Yogācāra to clarify vastu positively.
Key Words :
vastu, dharma, Prajñāpāramita literatures, Vajracchedikā Sutra,
Yogācārabhūmi, Pramāṇavārttika

투고일 2018. 01. 22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1 | 게재확정 2018. 02. 12
 불교연구 제48집(2018), 107~133쪽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김상영**1)

Ⅰ. 머 리 말
Ⅱ. 뇌묵 처영의 행적
Ⅲ. 처영의 의승 활동과 佑世尊者
Ⅳ. 처영의 불교사적 위상
Ⅴ. 맺 음 말

* 이 논문은 2015년 9월 18일 세계종교평화협의회와 중앙승가대 불교학연구


원이 공동 주관한 ‘조선시대 금산사의 역사와 고승’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
표문을 일부 수정, 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kimsea98@hanmail.net
108 ∙佛敎硏究 제48집

요약문
뇌묵 처영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의승장이자 고승으로서 너무
도 뚜렷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의 생
몰연도에 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처영과 관계된 기존 학
계의 연구성과 역시 초라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처영의 생애와 그가 지니고 있는 불교
사적 위상을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본문에서는 먼저 금산사지, 亂中雜錄 등에 전하는 각종 자료
를 종합하여 처영의 행적을 살펴보았으며, 그의 의승활동과 관계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처영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행주대첩 이후에도
蛟龍山城을 수축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결과 그의 영정에
는 ‘세상을 도운 존자(佑世尊者)’라는 존호가 명기되어 있기도 하다.
처영은 이른바 서산대사의 4대문파를 열어간 門長에 속하지는 못하
였다. 하지만 그는 사명대사와 함께 서산대사의 2대제자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었으며, 이같은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
다.
주제어 :
뇌묵 처영, 의승군, 행주대첩, 佑世尊者, 금산사지, 난중잡록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09

Ⅰ. 머리말

뇌묵 처영은 청허 휴정, 사명 유정, 기허 영규 등과 함께 조선


시대 대표적 의승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해남 표충사와 묘향
산 수충사에는 휴정, 유정, 처영 세 분의 의승장이 함께 配享되어
있는데, 이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지니고 있는 의승장으로
서의 위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처영은 또한 權慄과 함께 이
른바 행주대첩으로 불리는 역사적 승전을 이루어냄으로써 한국전
란사의 위인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영은 군인이 아니었
다. 우리는 그가 출가 사문의 신분으로 평생을 살다간 조선중기의
대표적 고승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처영과 관계된 기존 학계의 연구성과는 초라하다는 표현이 어
울릴 정도이다.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영 관련 연
구물로 소개할 수 있는 글은 단 세 편에 불과하다. 洪奭鉉은 가장
이른 시기 처영을 주목한 연구자였다. 그는 1926년 僧將處英(雷
默)의 略傳 (불교 19, 불교사, 1926. 1)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는
데, 이 글은 일본인 와타나베 긴조우(渡辺金造, 1874-1965)가 지은
幸州戰史1)를 읽은 이후 행주산성을 직접 답사한 내용으로 이루
어져 있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처영의 승군활동에 대하여 같은
승려로서 느낀 소회를 서술하고 있는데, 정작 글의 제목과는 다르
게 처영의 생애와 관련한 내용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후 崔碩南은 僧兵將 處英禪師-李英男장군과의 合祠를 提議하
면서 (法輪 4, 월간 법륜사, 1968.5)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순신의 휘하에서 맹활약하다 전사한 장수 이영남(1563-1598)의
1) 필자는 아직까지 이 책의 구체적인 서지 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1938년 碧蹄戦史 附幸州の戦、蔚山の戦(明隣堂)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홍석현이 열람하였던 행주전사는 이 책에 함께 실려 있는
幸州の戦 이라는 글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보다 구체적인 사항
은 향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110 ∙佛敎硏究 제48집

사당 건립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글을 작성하였는데, 글의


후반부에서 이영남의 사당에 처영을 合祠하자는 독특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최석남의 이 글은 이순신이 지은 亂中日記草
, 壬辰狀草 등에서 처영과 의승군 관련 자료를 찾아내 처음 소
개하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박영기는 1999년 처영과
관계된 본격적인 학술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
뇌묵당 처영의 생애와 승군활동 (금산사의 역사와 인물 금산사
개산 1400주년기념 제2차 학술회의 자료집, 1999. 6)은 처영과 관
계된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하여 작성한 勞作으로 평가할 수 있
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처영과 관계된 연구는 그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처영 관련 연구가 이처럼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처영의 행장을 소개, 정리한 자료라든가 그가 남긴 문
집 등의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처영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의승장과 고승으로서 너무도 뚜렷한 위상을 지
니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의 생몰연도에 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논문은 처영의 생애와 그가 지니고 있는 불교사적 위상을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물론 이같
은 시도는 분명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
는 현 시점에서 그와 관계된 자료를 최대한 수집, 정리하고 그 의
의를 부여하는 작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학술적 과제라는 생
각에 이르게 되었다.2) 비록 試考의 성격을 지니는 글이지만, 이
글을 계기로 처영 관련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 필자는 지난 2005년 금산사에서 간행한 사지 금산사-미륵도량 모악산


의 집필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처영과
금산사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기술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11

Ⅱ. 뇌묵 처영의 행적
包光 金映遂(1884-1967)는 1943년 金堤郡金山面金山寺誌(이하
금산사지로 약칭함)를 편찬하였다. 그는 1635년 中觀 海眼
(1567-?)이 금산사사적을 편찬한 이후 300여 년만에 금산사 사
지를 다시 편찬한 셈이다. 해안의 금산사사적은 내용상 여러 오
류가 보이므로 지금까지 그 자료의 활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김영수의 금산사지 역시 해안의 금산사사적을
많이 따랐지만, 특히 근대기 이후부터 1943년 무렵까지의 금산사
역사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3)
김영수의 금산사지에서 가장 주목되는 사항은 역시 뇌묵 처
영과 관계된 내용이 아닐까 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처영
과 관계된 불교계 내부의 자료는 극히 영세하다. 그의 의승 활동
경력이나 불교사적 위상 등을 감안한다면, 처영과 관계된 행장의
편찬이나 立碑 또는 문집 편찬 등의 일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은 높
아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와 관련한 사례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금산사사적을 편찬한 해안이 처영의 외조카
이자 제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처영 관련 자료의 부재 현상
은 다소 의아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김영수는 금산사지
에서 몇 차례나 처영을 언급하고 있다. 그가 과연 어떠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이같은 내용을 수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이들 내용은 처영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면 김영수가 금산사지에서 언급한 처영
관련 내용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3) 김영수의 금산사지에는 혜덕왕사비의 음기를 처음으로 판독, 수록한 내
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해안과 김영수의 금산사 사지 편찬, 그리고 그것
이 지니는 불교사적 의의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
이 든다. 해안과 김영수의 금산사 사지는 아세아문화사에서 간행한 금산
사지(1983)에 원문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112 ∙佛敎硏究 제48집

①李朝 宣祖二十六年(皇紀二二五二年 佛紀二六四七年)壬辰에 至하여


政府로부터 八道를 通하여 禪敎十六宗糾正所를 置할 때에 當寺는 全羅
右道糾正所가 되어 義僧兵大將 雷黙處英大師로서 第一世摠攝을 命한 바
되어 全羅右道諸寺刹을 統轄하다가 後에 至하여는 全羅左道右道를 統轄
하는 糾正所가 되었다.
②이와 같이 法相宗風을 維持宣揚한지 約八百餘年을 經하여 李朝 宣
祖朝 以後에 至하여는 曺溪禪宗을 提唱하는 禪宗寺刹이 되었다. 처음 雷
黙大師라 하는 이는 本來 當寺 法相宗 門下에서 得度한 法相宗人으로서
其當時 禪宗巨擘인 淸虛休靜禪師에게 參謁하여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曺
溪禪旨를 傳來하여 當寺에서 크게 宣揚한 後에 承하여 逍遙 喚惺 等 淸
虛門師들이 輩出되어 曺溪禪風을 維持相傳함으로부터 當寺는 드디어 曺
溪禪宗을 宣揚하는 大道場이 되어 現今에 至한 것이다.
③雷黙大師
師의 諱는 處英이니 妙年에 金山寺 法相宗 門下에 投하여 得度하였
다. 後에 西山休靜禪師에 參하여 曺溪의 禪旨를 傳受하였다.
壬辰之後에 師는 當寺 金山寺에서 僧兵 千名을 募集하여 擧義赴戰함
으로 政府에서는 師로써 摠攝을 命하고 後에 其 功勞를 褒賞하여 國一
都大禪師扶宗樹敎葆光玄朗雷黙의 法號를 賜하였다.
①은 금산사지의 寺格 이라는 항목에 수록된 내용이다. 여기
에서 김영수는 1592년 조정에서 선교16종 규정소를 설치할 때 금
산사는 전라우도 규정소가 되었으며 처영을 제1세 총섭으로 임명
하였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후 금산사는 전라좌도와 우
도를 모두 통할하는 규정소가 되었다는 점도 서술하였다. 김영수
가 언급한 규정소 설치라든가 총섭의 임명 등과 관계된 내용은
보다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사항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사지의 내용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고자 한다.
②는 由緖 라는 항목에서 옮겨온 내용이다. 여기에서 김영수는
금산사가 법상종풍을 800여 년간 유지하여 오다가 처영 대에 이
르러 조계선종을 제창하는 선종 사찰이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
다. 처영은 처음 금산사 법상종 문하에서 득도한 法相宗人이었는
데, 청허 휴정을 參謁한 이후 조계선지를 전래하였으며, 그 이후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13

금산사에서는 소요 태능, 환성 지안 등의 청허 문사들이 배출되었


다는 내용이다. 이 대목의 말미에서 그는 “當寺는 드디어 曺溪禪宗
을 宣揚하는 大道場이 되어 現今에 至한 것이다”라는 내용을 특기
하고 있다. 이 대목은 김영수가 지니고 있던 조계종 사관이 적극
반영된 표현으로 이해된다.
③은 高僧 이라는 항목에서 처영 부분을 옮겨온 내용이다. 비
록 몇 줄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처영의 출가 또는 처영과 금산사
의 관계를 언급할 때 이 부분은 유일한 전거로 활용되는 현실이
기도 하다. 여기에서 김영수는 처영이 妙年에 출가하였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아울러 ②에서도 언급된 내용처럼, 처영은
금산사 법상종 문하로 출가하여 득도하였으며 후에 휴정에게 조
계선지를 전수받았다고 하였다. 또한 처영은 금산사에서 승병
1,000명을 모집하여 擧義赴戰하였으며, 조정에서 총섭으로 임명하
고 후에 ‘國一都大禪師扶宗樹敎葆光玄朗雷黙’이라는 법호를 하사하
였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①-③의 내용은 사실 처영의 일대기와 관련한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묘년에 금산사로 출가하
였다는 점, 그리고 그가 금산사에서 의승 1,000명을 모집하였다는
점 등은 오직 이 자료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
쉽게도 김영수는 금산사지를 편찬하면서, 특히 처영과 관계된
내용을 언급하면서 어떠한 자료를 근거로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김영수는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불교사학자였다. 그는 실상사,
법주사 주지 등을 역임한 뒤 1918년부터 불교중앙학교 교수로 부
임하였으며, 이곳에서 불교사 교과목을 강의하였다. 그는 이미
1920년대부터 退耕 權相老(1879-1965)와 함께 조계종 종명으로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으며, 이들의 조계종 관련 주장은 이후 불교
계 내부에서 꾸준한 공감을 얻어 나갔다. 이들은 결국 1937년 총
본산 건설운동과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매
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김영수는 이른바 ‘태고종조론’
114 ∙佛敎硏究 제48집

을 주장하는 과정에 다소 무리한 논리를 고집함으로써 비판의 대


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의 불교사학과 조계종 연구는 일제강점
기를 대표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4)
이처럼 불교사학에 정통한 식견을 갖추고 있던 김영수가 금산
사지의 편찬 과정에서 처영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김영수는 처영이 차지하고 있
는 역사적, 불교사적 위상에 비해 지나치게 소홀하게 인식되고 있
는 듯한 당시 불교계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는 처영의 제자 해안이 금산사사적을 편찬하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처영과 금산사의 관계를 유추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처영의 출가도량이 금산사였으며, 그가 처음 의승 1,000명
을 모집하여 궐기한 장소도 금산사5)였다는 금산사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측면에서의 검토가 필요한 과제라
는 생각이 든다.
비록 승려로서의 자세한 행장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처영의 의
승군 활동은 비교적 다양한 자료에 전한다. 특히 趙慶男
(1570-1641)이 편찬한 亂中雜錄에는6) 처영의 의승 활동과 관계
된 내용이 어려 건 전하고 있어 주목된다. 아래의 내용은 처영의
행적 가운데 구체적인 연대가 확인되는 사항만을 간추려 나름대
로 정리해 본 것이다. 이들 각각의 행적 자료가 지니고 있는 의미
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본문에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4) 포광 김영수의 조계종 사관에 대해서는 김상영의 논문(2006), (2008)을 참


조하기 바란다.
5) 처영이 의승군을 소집하여 봉기한 장소가 금산사라는 점은 오직 금산사
지에 전하는 내용이다. 여타 자료에서는 처영이 ‘호남’, 또는 ‘지리산’에서
의승을 일으켰다는 내용만 전하고 있다.
6) 난중잡록에 대해서는 조원래(1997), 장영희(2001), 장영희(2003), 정구복
(2011) 등의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15

시 기 처영의 행적
조정에서 승통을 설치하고 승군을 모집함.
1592년(선조 25) 7월 1일 이미 청허 휴정의 격문을 받은 관동의 유
정과 호남의 처영은 각각 승군을 일으킨
상태임(선조수정실록 26)
전라감사 권율이 군사 2만여 명을 거느리
1592년(선조 25) 9월 22일 고 勤王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갈 때 승장
처영이 그를 따름(난중잡록 2)
행주대첩의 전과가 알려지자 조정에서 처
1593년(선조 26) 2월 16일 영에게 정3품 관계에 해당하는 折衝將軍의
직을 내림(난중잡록 2)
원수 권율이 승의장 첨지 처영으로 하여금
남원의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함. 처영이
1593년(선조 26) 12월 25일 의령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교룡
산성에 주둔하며 수축함(난중잡록 3). 처
영은 7개월 만에 교룡산성을 준공함( 교룡
산성 공제루기 상촌선생집 23)
1594년(선조 27) 4월 처영이 이미 교룡산성을 수축하는 역사를
마침(난중잡록 3)
安信院 길이 험하여 닦기 어려우므로 洪世
1595년(선조 28) 7월 3일 恭이 산성의 승장 처영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닦게 함(난중잡록 3)
처영이 이순신을 찾아가 부채와 짚신 등을
1597년(선조 30) 6월 12일 선물하고 적과 관계된 일, 원균과 관계된
일 등을 이야기 함(난중일기초)
사명 유정이 보현사석가여래사리비 의 음
1603년(선조 36) 6월 기를 지음. 이 비의 문인 명단 都大禪師禪
判秩에 처영의 이름이 보임( 보현사석가여
래사리비 )
1612년(광해군 4) 4월 16일 사명당집의 발문을 지음(사명당집)
청허당집을 발간함. 이 책의 助緣秩에 처
1630년(인조 8) 3월 영의 이름이 보임(청허당집)7)
해남 표충사 건립이 완공된 이후 첫 번째
1789년(정조 13) 4월 27일 제향을 봉행함. 처영은 청허 휴정, 사명 유
정과 함께 이 사당에 배향됨(대둔사지)
묘향산 수충사에 사액 현판이 내려짐. 처
1794년(정조 18) 영은 청허 휴정, 사명 유정과 함께 이 사당
에 배향됨
116 ∙佛敎硏究 제48집

Ⅲ. 처영의 의승 활동과 佑世尊者


임진왜란 발발 이후 본격적인 의승군의 봉기는 청허 휴정과 선
조 임금의 만남에서 비롯하였다. 실록에서는 이때의 상황을 “行朝
에서 묘향산의 옛 僧官 휴정을 불러 그로 하여금 승려들을 모집하
여 군사를 만들도록 하였다”8)고 표현하고 있으나, 鞭羊 彦機가 지
은 휴정의 행장 과 李廷龜가 지은 청허당휴정대사비 (1632년 立
碑)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먼저, 행장 에는 “임진년에 왜적이 3京을 함락시켰을 때, 임금
의 수레는 서쪽으로 龍灣에 피난 가셨다. 임금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주위의 신하들에게 ‘아무 스님은 지금 어디 있는가. 어찌 나
를 잊었는가?’ 라고 묻고는 곧 사자를 보내 불러왔다. 스님이 오
자 임금은 스님을 주렴 밖에 앉히고 ‘지금 형세가 이처럼 위태로
우니 이 급한 어려움을 구하라’ 하면서, 8도 16종 선교도총섭에
임명하셨다”9)는 내용이 있다. 선조가 휴정을 간절히 찾았으며, 휴
정에게 전란 극복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살필 수 있는 대
목이다.
7) 현재까지 처영의 생몰연도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처영
이 1612년 사명당집 발문을 작성하였다는 사실은 확인되므로 그가 이
무렵까지 생존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1630년(인조 8) 3월
간행된 청허당집 助緣秩에서 처영의 이름이 보인다. 이 명단에 수록된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 더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
지 않을까 한다. 처영의 제자 해안은 중관대사유고에서 스승을 ‘老師’,
또는 ‘師翁’으로 지칭하고 있다. 처영의 입적 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 이
표현도 참고가 될 듯하다( 次雷默堂老師室戱示求鹽韻 , 雷默師翁 夢中贈一
封書 丁寧勿洩 ).
8)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임진(1592) 7월 1일 무오.
9) 際壬辰倭賊陷三京 大駕西幸龍灣 上忽自憶 問左右曰 某上人今在何處 豈忘我耶
亟使召來 來則坐簾外傳諭 時危如此 幸相急難 即拜八道十六宗禪敎都捴攝
편양 언기, 금강산 퇴은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사자 부종수교겸등계보
제대사 청허당행장 , 청허집보유(한국불교전서 제7책, 735中).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17

또한 청허당휴정대사비 에는 선조가 “세상의 어지러움이 이와


같은데 그대가 널리 구제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휴정이 울면서
명령을 받들고 임금에게 “국내 승려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군대
의 임무를 맡지 못하는 자들은 있는 곳에서 분향하고 도를 닦아
신명의 도움을 기도하도록 신이 명령할 것이며, 그 나머지는 신이
모두 통솔하고 군전에 나아가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10)라고 말했
다는 내용이 있다. 늙고 병든 승려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승려
는 전장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휴정의 의지를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임진왜란에서의 의승군 봉기는 왕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승단의 자발적인 결정과 참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휴정은 전국의 승도에게 참전을 독려하는 격문을 돌렸다. 실제
로 각종 자료에는 휴정의 독려로 전국에서 의승군이 봉기하였으
며, 특히 유정은 관동지역에서 700명, 처영은 호남지역에서 1,000
여 명의 의승군을 각각 조직하여 참전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처영은 호남지역의 승려 1,000여 명을 결속한 이후 權慄의 휘하로
들어갔다. 난중잡록에는 “전라감사 권율이 군사 2만여 명을 거
느리고 勤王하려고 북쪽으로 달려가는데, 각 고을 수령과 승장 처
영 등이 따랐다”11)는 내용이 있으며, 再造藩邦志에는 “휴정의
높은 제자 처영은 지리산에서 일어나 권율의 막하에 들어갔고, 유
정은 금강산에서 일어났다”12)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처영은 권율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
는 행주대첩의 승전을 이끌었다. 행주산성 전투에서 처영의 의승
군은 가장 경사가 완만한 지역인 산성의 서북면을 담당하였는데,
경사가 완만한 곳은 곧 적의 공격이 가장 용이한 지점이라는 사
10) 李廷龜, 청허당휴정대사비 , 한국고승비문총집,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51.
11) 난중잡록 2, “全羅監司權慄領軍二萬餘名 赴北覲王 各官守令及僧將處英等
從之”.
12) 再造藩邦志 2, “休靜高弟處英 起於智異山 來赴權慄幕下 惟政起於金剛山”.
118 ∙佛敎硏究 제48집

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러한 곳의 방어를 담당하였다


면, 의승군은 당시 전투에 참여한 병력 가운데 가장 정예군으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3) 이 전투에는 처영의 제자인 중관 해
안도 참가하였다. 해안은 당시 행주산성의 모습을 ‘한낱 가시덤불
로 둘러진 울타리’ 같이 허술한 것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처
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산성의 시설을 극복하고 얻어낸 승리였기
에 처영의 승전보는 더욱 큰 평가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처영은
이 대첩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折衝將軍의 직책을
받았다.14) 조선시대 무신에게 주어지던 관계인 武散階에 의하면
절충장군은 무반에서의 최고 품계인 정3품 上의 당상관에 해당하
는 관계로, 이는 문산계에 비교하면 通政大夫에 해당한다. 조선시
대 승려가 처해 있던 사회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조치는
상당히 파격적인 사례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처영은 행주대첩 이후 유정과 함께 승군을 이끌고 宜寧 지역에
주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처영은 蛟龍山城의 수축과 관련
한 명을 받고 南原으로 군사를 옮기는데, 이같은 정황은 난중잡
록의 “원수 권율은 합천에 그대로 머물고, 승의장 僉知 처영으로
하여금 남원의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하니, 처영이 의령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서 교룡산성에 주둔하여 수축하였다”15)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조실록에는 “또 의승장 처영에
게 승군을 거느리고 형편에 따라 수축하게 하였는데, 지금 이루어
진 功役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16)는 내용이 있지만, 산성
13) 행주대첩과 관계된 각종 자료에는 승군이 처음 왜군의 기세에 밀리기 시
작하자 권율이 이들의 뒤에서 일부의 목을 베면서 전투를 독려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행주대첩의 승전을 전하는 각종 자료는 이처럼
지나치게 권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14) 난중잡록 2, 계사년 상 만력 21년, 선조 26(1593년). “出攷事 幸州捷聞
加權慄資憲 趙儆嘉善 處英等折 諸將士賞職有差 本國咨請收 買弓面火藥 兵
部題准許貿”.
15) 난중잡록 3, 계사년 하 만력 21년, 선조 26년(1593년). “元帥權慄因駐陜
川 令僧義將僉知處英修築南原蛟龍山城 英自宜寧領兵出來 留鎭而修之”.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19

을 수축하는 역사는 1594년 4월 무렵17) 이미 마쳤던 것으로 보인


다. 처영의 교룡산성 수축과 관련하여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는 申欽(1566-1628)이 지은 蛟龍山城控制樓記 이다. 이
자료에는 특히 처영의 공훈을 칭송하는 내용도 함께 실려 있어
주목되는데, 그 내용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생략) 그로부터 3년째 되던 갑오년에 우리 元帥 權公이 과거를 돌
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뜻에서 帶方(남원) 옛 터에다 적당한 지세를
살펴 산을 이용하여 성을 쌓았는데, 그 역사를 실지 주관한 사람은 승
려인 처영이었고 7개월 만에 준공을 보았다. (중략) 그리고 처영으로
말하면 난리 초기부터 정의를 앞장세우고 의려를 모집하여 원수를 잘
보좌했으며, 행주 싸움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특별히
上大夫에 해당하는 벼슬을 제수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이
역사를 시작하여 결국 성사를 시켰으니 처영 같은 대사야말로 바로,
모든 번뇌를 다 없애고 본성을 되찾고, 道의 작용을 일으켜 남을 돕는
다고 하는 그러한 자가 아니겠는가. 원수가 장군이 되어 있고, 처영
같은 대사가 아래서 힘을 다하고 있는 데다 또 이러한 地利까지 얻었
으니 호남 전체의 백성들이 사납고 독한 전쟁의 불꽃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이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리
고 어쩌면 이 나라 중흥의 발판이 이를 계기로 하여 굳어질는지도 모
를 일이다.18)
권율은 산성 축수를 완성한 이후 산성 망루의 이름을 ‘控制樓’라
16) 선조실록 선조 53권, 선조 27년 갑오(1594) 7월 19일 을미.
17) “朝廷已罷各道義兵 本道左右兵亦罷 自餘義兵等 不可因存以長弊習 敵愾義兵
將年滿七十老病之人 經年赴戰 其功甚多 因定南原蛟龍山城守禦將 因率兵入
守事云云 時處英已畢修城之役”
난중잡록 3, 갑오년 만력 22년, 선조 27년(1594).
18) “越三年甲午 我元帥權公懲往毖來 迺於帶方舊址 相視地宜 因山而城 僧處英實
董其事 七月而工訖.....英師自亂始 倡義鳩旅 克左右元帥 在幸州 英與有功 朝
廷特授上大夫之列 而復創爲此擧 卒乎有成 若師者 其盡客塵而復性 起道用而
益他者非耶 有元帥爲之將 如英師者效力於下 而得地利且如此 吾知全湖之民
能脫於毒潦虐焰之中者其在此乎 而或者中興之基 自是而爲之兆也歟”
신흠, 교룡산성공제루기 , 상촌선생집 제23권 記.
120 ∙佛敎硏究 제48집

지었으며, 신흠에게 부탁하여 그간의 전말을 기록하게 하였다고


한다. 권율의 부탁을 받은 신흠은 1606년 5월 이 글을 작성하였다.
위 인용문에서 보이듯, 교룡산성은 처영이 주관하였으며, 그 공사
에 소요된 기간은 7개월이었다. 교룡산성의 축조 시기와 공사 기
간 등에 대해서는 다소의 이설이 있으나, 자료의 성격상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가장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신흠은 위의 기문에서 처영을 ‘英師’로 표현하였다. 처영의 그간
공적에 대해서는 “처영으로 말하면 난리 초기부터 정의를 앞장세
우고 의려를 모집하여 원수를 잘 보좌했다”고 하였으며, “행주 싸
움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특별히 上大夫에 해당하
는 벼슬을 제수받았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신흠은 “지금 또다시
이 역사를 시작하여 결국 성사를 시켰으니 처영 같은 대사야말로
바로, 모든 번뇌를 다 없애고 본성을 되찾고, 道의 작용을 일으켜
남을 돕는다고 하는 그러한 자가 아니겠는가”라는 표현도 하였다.
이같은 표현을 통해 신흠은 처영의 공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를 의승장으로서 뿐 아니라 승려, 그것도 ‘도의 작용을
일으켜 남에게 이익을 주는’(起道用而益他者) 승려로 평가하고 있
음을 살필 수 있다.
이 기문의 끝에 기술한 내용처럼, 교룡산성 수축은 당시 호남인
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그들은 “호남 전체의 백성
들이 사납고 독한 전쟁의 불꽃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이것
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품었으며, 또한 “어쩌면 이
나라 중흥의 발판이 이를 계기로 하여 굳어질는지도 모를 일이
다”는 희망도 지니게 되었다. 이같은 일을 전체적으로 주관한 인
물이 처영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지니고 있는 공적과
영향은 충분히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의승군의 활동은 이
처럼 이 시기 조선의 儒者들이 지니고 있던 승려, 또는 불교에 대
한 인식을 전환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
다.
교룡산성 수축을 완성한 이후 처영의 행적은 두 가지 사례를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1

통해 확인된다. 먼저 1595년(선조 28) 7월 3일 남원 인근 安信院


길을 닦았다는 내용인데19), 이것으로 보아 처영은 교룡산성 완공
이후에도 남원 지역에 계속 머무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1597년 6월 12일, 처영이 이순신을 찾아가 부채와 짚신 등을 선물
하고 적과 관계된 일, 원균과 관계된 일 등을 이야기 했다는 내용
이다(난중일기초). 당시 이순신의 신변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이
때의 만남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이 문제
에 대한 검토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다.
1789년(정조 13) 4월 27일, 해남 표충사에서는 사당 완공 이후
첫 번째 제향을 봉행하였다. 이후 매년 봄 가을 표충사 제향은 계
속되었는데, 이때의 춘추제향에서 읽혔던 春秋時享祝文 내용은
지금도 전하고 있다.20) 그런데 이 축문에서 처영은 ‘佑世尊者 雷默
堂禪師’라는 존호로 칭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蔡濟恭
(1720-1799)은 처영의 影贊21)을 지었는데, 여기서도 역시 처영에
게 ‘우세존자’라는 존호를 붙인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시
점은 알 수 없지만, 처영은 후대인들에게 ‘우세존자’로 인식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필자는 이 존호야말로 ‘의승장 처영’으로
서의 역사적 위상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
19) 난중잡록 3, 을미년 만력 23년, 선조 28년(1595년). “秋七月初三日 譚都
司向京 洪世恭自全州到南原 巡覽城機 杖治判官金騮 翌日往還母山 監董修途
之役 安信院險路 未易修治 世恭令山城僧將處英 領軍修治”.
20) “伏以 定慧具到 忠義並隆 大德授旨 二徒承風 獲醜孔阜 王用記功 鼎彛旣銘
俎豆斯崇 春物敷榮 秋享則曰 秋日凄淸 悵慕愈緬 嘉薦普淖 式宣寵典 謹以
弘濟尊者泗冥堂禪師 佑世尊者雷默堂禪師 配食于左右 尙饗 淖音直敎切”. 한
편, 이 축문을 누가 지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축문의 시작이 “해남현감 申
處文이 병이 들어, 승려 유일이...감히 고합니다”로 되어 있어, 蓮潭 有一
이 지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사열전에는 常用祭文의 내용을 인
용한 후 ‘承旨丁若鏞撰’이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있어 의문이 남는다. 표충
사 춘추제향에 대해서는 김상영의 논문(2012)을 참조하기 바란다.
21) “一甁一鉢 塊坐面壁 其形也死灰枯木 及其仗尺劒赴國難 手提數千羆熊 其學也
曰義曰忠 如師者 善用如來奧旨 安得不致敬於一幅影子”
蔡濟恭, 雷默堂處英大師影贊 , 樊巖先生集 권58.
122 ∙佛敎硏究 제48집

각을 지니고 있다. 처영의 佑世行을 규명해가기 위한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Ⅳ. 처영의 불교사적 위상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처영은 후대인들에게 ‘우세존자’라는
존호로 불리어졌다. 이 존호는 역시 ‘의승장 처영’으로서의 위상이
강조된 표현이므로, 이를 통해 그가 지녔던 사문상을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영은 의승장이기 이전에 불교탄압과 외침
이 극에 달했던 시대를 살다간 한 사문이었다. 출가 사문으로서
처영은 과연 어떠한 자취를 남겼으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의는
무엇인지, 여기서는 먼저 휴정의 대표적 문도로서 지니고 있는 처
영의 위상과 관계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휴정과 관계된 자료를 열람하다 보면, 유정과 처영 두 제자의
이름이 함께 보이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휴정의
의승군 봉기와 관계된 자료이고, 또 다른 하나는 휴정의 입적 장
면과 관계된 자료이다. 예를 들면 “격문을 보내어 제자인 관동의
유정과 호남의 처영을 장수로 삼아 각기 본도에서 군사를 일으키
게 하여 수천 명을 얻었다”22), “글을 써서 松雲과 처영에게 부친
뒤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팔십 오세요,
법랍이 64세였다”23)와 같은 내용이다. 이로 보면 처영은 유정과
함께 마치 휴정의 2대 제자처럼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묘향산수충사비 에는 “제자는 70여 인인데, 그 중에서 유정과 처
영이 가장 뛰어났다”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22)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임진(1592) 7월 1일 무오.
23) 李廷龜, 청허당휴정대사비 , 한국고승비문총집,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0.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3

휴정은 처영을 매우 각별한 제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물


론 두 고승의 관계는 함께 임진왜란의 전란을 겪으면서 더욱 돈
독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청허당집에 실려 있는 다음의 시를
통해 제자 처영에 대한 휴정의 애틋한 마음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산문을 나가는 처영 禪子를 전송하며
누더기 가사는 희어 구름이 무색하고
못은 맑아 학은 쌍이로세.
그대 이 산을 나가니
조각달만 빈 창을 비추겠네.24)
휴정이 산문을 나가는 제자 처영을 떠나보내며 지은 시이다. 이
시를 지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휴정은 처영을 鶴에 비유
하였다. 그리고 그 학과 같은 제자가 떠난 산중은 이제 조각달만
이 텅 빈 창가를 비추게 될 것이라는 감상을 표현해 놓고 있다.
스승 휴정이 처영을 얼마나 각별하게 여기고 있었는가를 짐작케
해주는 시구로 생각된다.
휴정의 각별했던 관심과 휴정의 2대제자로 인식되고 있는 듯한
다양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처영은 이른바 휴정의 4대문파를 열어
나간 門長으로서의 위상은 지니지 못하였다. 중관 해안의 문집 
중관대사유고 발문을 지은 恁麽居士는 “연원의 유래와 종파의 바
른 것에 대하여는 아는 자가 없는데, 옛적에 청허휴정대사가 秘旨
를 뇌묵 처영에게 옆으로 전하시고 처영이 師(해안)에게 전하시니
이는 실로 임제의 종맥이다. 태고의 청풍으로 하여금 탁한 세상에
다시 불게 하였으니 참으로 다행함이 아니겠는가”25)라는 견해를
24) “衲白雲無色 潭淸鶴有雙 從師出山去 片月照空窓”
휴정, 送處英禪子出山 , 청허집 권2, 한국불교전서 제7책, 682中.
25) “至於淵源之自 宗派之正 則未有知者 昔淸虛休靜大師 旁傳秘旨於雷默處英 處
英傳之於師 此實臨㴉之宗脉 使太古淸風 再吹於濁世 玆非幸歟”
124 ∙佛敎硏究 제48집

나타내기도 하였지만, 처영-해안으로 이어지는 법계는 더 이상 활


발하게 전승되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해안이 훗날 휴정의 전
법제자가 되었다는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였겠지만, 이 문제는
조금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과제로 생각된다. 특히 김영수가 
금산사지에서 언급했던 내용, 즉 처영과 금산사의 영향 아래에서
소요 태능, 환성 지안과 같은 淸虛門師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고
본 견해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한 해석이 뒤따를 필요가 있지 않
을까 한다.
처영은 사명 유정과 절친한 도반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
인다. 유정이 1610년 입적한 이후 유정의 문하인 惠球 등은 스승
의 글을 수집하여 문집을 발간하면서 처영에게 발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처영은 ‘내가 재주 없는 것도 잊어버리고서 우선
그 始末을 서술하게 되었다’면서 발문을 지어주었다. 처영은 이 발
문에서 유정의 다비가 행해지던 장면을 “다비를 행하던 날에는
팔방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모두 如喪의 탄식을 발하
고 애모하며 혼절하기도 하였다. 도를 지닌 이가 세상을 떠나면
그 법도가 이와 같아서 그런 것이니, 부도를 세우고 영당을 짓는
것은 스님의 본의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26)라고 하면서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또한 유정의 입적을 크게 아쉬워하며 “나 역시 서산
대사의 문하에 있었기에 스님과 함께 출입한 것이 여러 해가 된
다. 그런데 金蘭이 먼저 가니 마치 蛩이 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
지라. 비록 峨洋曲이 있어도 그 누구를 위해 다시 노래하랴. 오호
통재라! 그 누가 슬퍼하지 않으리오”27)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
다. 이처럼 유정과 처영은 의승장으로서, 휴정의 법을 함께 이은
恁麽居士, 부록 , 중관대사유고, 한국불교전서 제8책, 220下.
26) “闍維之日 八表雲臻 哀慕頓絶 俱興如喪之嘆 有道者之去世也 法如是故也 立
浮屠建影堂者 非師之本意也”
雷黙堂, 발문 , 사명당대사집 권7, 한국불교전서 제8책, 78上.
27) “某亦在西山門下 與師同爲出入者 積有年矣 金蘭先逝 蛩失其蚷 雖有峨洋 爲
誰更奏 嗚呼痛哉 非夫人之爲慟其誰哉”
雷黙堂, 발문 , 같은 책, 78上.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5

동문학도로서 진정한 의미의 도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28)
한편, 휴정-처영으로 이어지는 법계는 19세기 해남 대흥사에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表忠祠寶藏錄 (1846)에 실려 있는
다음의 자료를 살펴보도록 하자.
오호라! 갑진년(선조37, 1604) 정월 23일에 선사가 입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유촉하여 이르길 “지금 내가 입적한 후에 의발을 호남도
해남현 두륜산 대흥사에 전하고, 이에 따라 기일에 제사를 받들게 하
여, 한편으로는 萬右忠勤의 공업을 계승케 하고, 한편으로는 千秋效赫
의 발자취를 보존케 하라”하시니, 제자들이 엎드려 아뢰되 “문도가 장
차 천여 명이나 되고, 또 금강산과 묘향산이 나라 안의 명승지인데, 어
떤 의향으로 두륜산으로 전하라 하시나이까”라 하니, 선사 이르되 “너
희들이 어찌 내가 뜻을 둔 바를 알지 못하는가? 두륜산은 바다 끝에
치우쳐 있어 명산은 아니지만, 내가 세 가지 이유가 있어 중히 여기는
것이다. (중략) 한 가지는 처영과 여러 제자들이 모두 남쪽에 있으니,
이는 곧 내가 출가할 처음에, 함께 더불어 두류산에서 법을 들었으니,
이곳이 곧 종통이 돌아갈 곳이니, 돌아봄에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상
의 세 가지 이유로 나의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너희들은 나의 유촉을
준수하여, 나의 의발과 주상께서 내려주신 대선사교지를 두륜산 속에
옮겨 보관하여 제사를 받들라”하였다.29)
28) 한편, 조영록은 처영이 지은 사명당대사집의 발문 내용을 주목하면
서 “그의 일본행이 비록 승려의 본분을 벗어난 행위라 하더라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창생구제라는 불교의 자비행에 대한 겸손한 표현임을 알
아야 할 것이다. 처영은 문집의 발문에서 이러한 대사의 행위를 ‘不道之
道와 不德之德을 오직 스님이 깊이 알고서 시행했다고 할 것이다’라고 평
하여 그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조영록(2014),
24-25.
29) 嗚呼 甲辰正月卄三日 先師入寂 遺囑弟子等曰 今我入寂之後 衣鉢傳于湖南道
海南縣 頭崙山 大興寺 因令奉齋忌日 一以繼萬古忠勤之功 一以存千秋效赫之
蹟 弟子等俯伏曰 門徒將至千餘 又此金剛妙香 擅勝邦內 有何意向 而傳於頭
侖哉 先師曰 爾等豈不識俺意所在乎 頭侖僻在海隅, 雖非名山俺 有三絶爲重者
(中略) 一則處英及諸弟子 皆在南方 卽我出家之初 相與聞法於頭流 此乃宗統
所歸 顧不重歟 以此三節 俺意已定 爾等遵我遺囑 送我衣鉢 及主上所賜 大禪
126 ∙佛敎硏究 제48집

휴정의 衣鉢이 전래된 이래 대흥사는 이른바 西山佛敎의 중심도


량이 되었다. 대흥사는 스스로 宗院의 위상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조선후기 불교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하였으며, 표충사 건립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성과물이기도 하였다. 표충사보장록
이라는 자료에 실려 있는 위 인용문은 그 진실성 측면에서 많은
의구심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휴정이 과연 자신의 의발
을 대흥사에 보존케 하라는 이른바 遺意를 직접 남겼을까 하는 점
에서 이 자료는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30)
따라서 “처영과 여러 제자들이 모두 남쪽에 있으니, 이는 곧 내가
출가할 처음에, 함께 더불어 두류산에서 법을 들었으니, 이곳이
곧 종통이 돌아갈 곳이니, 돌아봄에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는 내용
도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보인다. 다만 이
시기 대흥사 승려들이 휴정의 遺意를 언급하면서 처영의 이유를
들었던 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 의미를 부여해나갈 필요가 있
을 것이다.
처영과 동시대, 혹은 후대에 살았던 儒者들 가운데 처영에 관계
된 詩文을 남긴 경우가 더러 발견된다. 먼저 白光勳(1537-1582)은
崔慶昌 · 李達과 함께 三唐詩人이라 불리었던 문인으로, 그는 특히
絶句에 뛰어나 당나라 천재시인 李賀에 비견된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그는 贈處英上人 31)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에서 처
영을 ‘上人’이라 칭하면서 둘 사이의 각별한 정을 시구에 담아 표
현하고 있다. 林悌(1549-1587) 또한 처영을 시제로 한 시를 남겼
다.32) 임제는 스승 휴정을 찾아뵙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나는 처영
師敎旨 移藏于頭侖山中奉齋
30) 오경후(2002), 김용태(2007), 이종수(2011)
31) “一杯言別兩依依 去入千峯舊路微 何許野禽啼更切 落梅香斷又殘暉 禪棲忽憶
碧雲峯 到日寒泉拂石縫 依舊夜深階下聽 月明時倚手栽松 却來言別意匆匆 把
酒相看畏曉鍾 秋草黃花去不盡 亂山何處獨携筇”
白光勳, 贈處英上人 . 玉峯詩集 上 詩○七言絶句.
32) “第一山楓岳 無雙釋靜師 上人今遠訪 芳草未言歸 石點談經處 龍降洗鉢時 慇
懃說離幻 消息莫相違 離幻乃空門友惟政 號松雲”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7

을 위해 이 시를 지었으며, 시의 내용으로 보아 임제는 휴정, 유


정, 처영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백광훈과 임제는 16세기 중 후반 무렵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명
성을 떨치던 문인들이었다. 처영과 이들 문인은 지역 연고를 바탕
으로 상호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이들은 처영이
의승활동을 전개하기 이전부터 교류를 하고 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비록 처영의 생애
관련 자료가 전하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처영은 임진왜란
참전 이전에 이미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들과 교류할 만큼 나름대
로의 위상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權
韠(1569-1612)은 처영의 시에 次韻을 하는 시33)를 남겨 주목되는
데, 이것으로 보아 처영은 나름대로 作詩 활동도 꾸준하게 하고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뇌묵 처영은 의승장으로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 그 결과 처영은
후세인들에게 ‘우세존자’로 추앙되었으며, 해남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에 휴정, 유정과 함께 배향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처영은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의승장으로서 뿐 아니라
출가사문으로서의 뚜렷한 위상도 함께 지니고 있는 고승이었다.
그는 유정과 함께 서산대사의 2대 제자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유
정 문집의 발문을 지어줄 만큼 유정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중관 해안은 그의 외조카이자 제자였으며, 소요
태능과 환성 지안 등의 금산사 고승은 그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
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처영은 당대의 文士들과 교류하
며 한편으로 作詩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러한 면모는 그가 출가사문으로서 상당한 자량을 갖추고 있었다
林悌, 山人處英將歷遊楓岳尋休靜 詩以贐行 , 林白湖集 권1 五言近體.
33) “有物絶名相 所以能物物 心如寒江水 印得空界月 一自混沌死 萬法從此別 諸
佛亦微塵 群經皆妄說 何人强解事 作此淡生活”
權韠, 次山人處英詩韻 , 石洲集 권1 五言古詩.
128 ∙佛敎硏究 제48집

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처영은 임진왜란


을 전후한 시기의 불교사 전개과정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
였던 고승으로 향후 보다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싶다.

Ⅴ. 맺 음 말
뇌묵 처영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의승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다. 해남 표충사와 묘향산 수충사에 휴정, 유정과 함께 配享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지니고 있는 의승장으로서의 위
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특히 權慄과 함께 행주대첩으
로 불리는 역사적 승전을 이루어냄으로써 한국전란사의 위인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영과 관련한 우리 학계의 연구는 지극
히 부진한 상태이며,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하여 작성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먼저 처영의 행적 관련 내용을 검토해 보았다. 이를
위해 김영수의 금산사지에 실려 있는 처영 관련 내용을 소개하
였는데, 이 자료를 과연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처영의 의승군 활동
은 비교적 다양한 자료에 전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특히 亂中
雜錄에 수록된 내용을 주목하면서 그의 의승활동을 연표 형식으
로 구성하여 제시하였다.
처영은 행주대첩 이후 남원 蛟龍山城의 수축과 관련한 일을 주
도하였다. 교룡산성 수축과 관련한 내용은 申欽의 蛟龍山城控制樓
記 에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신흠은 처영을 ‘英師’로 표현하면
서 그를 의승장으로서 뿐 아니라, ‘도의 작용을 일으켜 남에게 이
익을 주는’ 승려로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기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29

문의 끝 부분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처럼, 교룡산성 수축은 당시


호남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자
하였다. 전란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처영의 의승활동은 후세인들에
게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그 결과 처영은 ‘佑世尊者’라는 존호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의승장 처영’으로서의 위상과 함께 본문에서는 처영의 불교사
적 위상도 살펴보았다. 먼저 각종 자료를 통해 처영은 유정과 함
께 서산대사의 2대 제자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아울러 처영은 사명대사 유정의 문집 발문을 지어줄 만큼 유정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그가 지은 사명대사집 발문 내용을
통해 두 고승의 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였다.
처영은 이른바 휴정의 4대문파를 열어나간 門長으로서의 위상
은 지니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선중기의 고승 중관 해안은 그의
외조카이자 제자였으며, 소요 태능과 환성 지안 등의 금산사 고승
은 그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처
영은 당대의 文士들과 교류하며 한편으로 作詩 활동도 활발하게
펼쳐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처영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의 불교사 전개과정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당대의 고
승으로 보다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게 되었
다.
130 ∙佛敎硏究 제48집

약호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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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The Life of Noemuk Cheoyeong and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Kim, Sang Young
Jungang Sangha Univ.
At first glance, the status of Noemuk Cheoyeong in the
Buddhist history is apparently solid, as a famous general of
monk soldiers and a high monk during the middle Joseon
dynasty. However, the scholars have even not secured any
information on the years of his birth and death. Also, it is
hard to find previous works related to Cheoyeong.
Recognizing the scarcity of research as a problem, this
study aims at understanding the life of Cheoyeong and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This paper first surveyed various kinds of records
including the Chronicle of Geumsansa Temple (金山寺誌)
and Nanjung Japnok (亂中雜錄) to investigate the life of
Cheoyeong, especially concerning the matters related to his
activities as a general of monk soldiers. Cheoyeong led to
victory the Siege of Haengju, which was one of the three
most significant battles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in 1592. He rendered military merits even after the battle,
starting the construction of Gyoryongsanseong Fortress (蛟
龍山城). As a result of his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the
commemorative portrait of him after the death included a
eulogistic title ‘Venerable Monk who Helped the World (佑世
尊者).’ Cheoyeong was not included as one of the so-called
Mun Leaders (門長) who founded the four major sects that
followed the teachings of Seosan the Great Zen Master.
雷黙 處英의 생애와 불교사적 위상 ∙ 133

However, he has been widely recognized as one of the two


significant disciples of Seosan, together with Samyeong the
Zen Master. This study shows this as a fact recorded in
various historical data.

Key Words :
Noemuk Cheoyeong, General of monk soldiers, The Siege of
Haengju, Venerable Monk who Helped the World (佑世尊者),
The Chronicle of Geumsansa Temple, Nanjung Japnok

투고일 2018. 01. 30 | 심사기간 2018. 01. 30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0
 불교연구 제48집(2018), 135~168쪽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역사의 단면 -
김광식* 34)

Ⅰ. 서언
Ⅱ. 만당의 결성, 중앙에서의 활동
Ⅲ. 만당, 다솔사에서 활동
1. 다솔사 불교전문 강원
2. 光明學院의 설립
3. 다솔사 ; 민족의식 창출, 민족운동 거점
Ⅳ. 결어

*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특임교수. jiher77@hanmail.net


136 ∙佛敎硏究 제48집

요약문
본 고찰은 다솔사(경남, 사천)와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로 알려진
卍黨과의 상관성을 정리한 글이다. 다솔사는 1,500년 역사를 갖고 있
는 고찰이지만, 근대기에 와서는 불교 독립운동의 관점에서도 중요
한 대상이 되었다. 그는 최범술이 주지로 있으면서 전개된 역사이다.
최범술은 다솔사가 위치한 사천 출신으로 3·1운동 참가, 해인사
주지, 제헌국회 의원, 불교 총무원장, 해인대(현, 경남대) 설립자 등
다양한 행보를 간 인물이다. 그는 일제하에는 한용운을 추종하면서
불교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집행위원장
과 만당의 당원이었다. 그런데 만당은 내분으로 1933년 자진 해소되
었다.
그러나 만당 당원들은 최범술이 주지로 있었던 다솔사에 왕래를
하면서 민족의식을 유지하였다. 당원이었던 김법린, 허영호가 다솔사
에 머물기도 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 다솔사는 불교전문 강원과
광명학원을 설립하여 학승과 지역 어린이를 교육시켰다. 강원에는
동양학자인 김범부가 있었고, 광명학원에는 김범부의 동생인 소설가
김동리가 교사로 있었다.
그리고 다솔사는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문학인, 지식인, 승려 등이
왕래하는 경남지방의 명소가 되었다. 즉, 민족의식을 창출하고, 민족
운동을 추진하는 거점이었다. 그래서 일제 경찰은 늘 감시를 하였다.
이런 전제하에서 다솔사는 민족운동, 항일의 역사가 짙게 배어 있다.
본 고찰은 이런 역사와 문화를 자료, 증언에 의지하여 정리한 글
이다. 이 글이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를 비롯한 근대기 지식
인 연구와 다솔사의 근대사 정리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주제어 :
다솔사,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만당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37

Ⅰ. 서언
多率寺는 경남 사천의 봉명산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지증왕대
에 창건된 다솔사는 자장, 의상, 도선 등의 고승과 인연이 있는 명
찰로 1,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하에서는 해인사 말사이
었지만, 현재는 범어사 말사이다. 그런데 근현대기에는 해인사 3·1
운동의 주역, 독립운동가, 제헌국회 의원, 국민대 이사장, 해인대
설립자, 한용운의 제자,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장, 차문화의 개척
자 등 다양한 행적을 걸어갔던 崔凡述(1904∼1979)이 주지로 있었
다.1)
최범술은 1928년부터 1976년까지 다솔사 주지를 하였다. 그래
서 다솔사에는 최범술이 존경한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이었던 萬
海 韓龍雲과 관련된 역사도 있다. 그 역사의 중심에 卍黨이 있다.
만당은 1930년대 불교계의 항일 비밀결사체로 활동하였던 독립운
동 단체이었다. 만해를 추종하였던 최범술을 비롯한 불교청년들이
결성하였는데, 1930년대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불교 단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2) 1930년대 초반 만당 활동의 중심은 서울
이었지만, 1933년부터는 다솔사가 활동의 중심부가 되었다. 그래
서 다솔사에는 만당의 당원 뿐만 아니라 한용운과 친근한 독립운
동가, 애국지사, 지식인, 고승들이 운집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
다. 그곳에 거주한 인물에는 동양학의 대가로 지칭되는 김범부,
소설가인 김동리도 포함되었다. 김범부는 다솔사의 불교전문강원
에서 강의를 하였고, 김동리는 다솔사가 설립한 광명학원에서 강
의를 하면서 “등신불”이라는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모티브를 얻
었다. 때문에 근대 다솔사의 다양한 이야기는 독립운동, 불교사,
창작의 현장, 지성사 등에서 간과할 수 없는 자료이다.
1) 김상현(2013).
2) 박노준․인권환(1960), 373-376. 만당을 “불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독립투쟁 비밀결사단체”라고 최초로 개념 규정을 하였다.
138 ∙佛敎硏究 제48집

근대기의 다솔사에는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내용은


관련 분야의 연구자의 관심을 받아 정리되고, 서술되었다. 필자는
한용운과 최범술의 생애에 관심을 기울였던 연고로 그에 대한 글
을 발표한 바가 있다.3)
이런 배경하에서 필자는 본 고찰에서 그간 수집한 자료 및 연
구에 의해서 파악한 제반 내용을 유의하여 다솔사와 만당의 상관
성, 그리고 다솔사가 갖고 있는 근대기의 역사성을 정리하고자 한
다. 필자의 이 서술은 한용운,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등과 같은
다솔사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역사의 단면을 설명한다. 미진한
점은 자료수집, 연구를 통하여 보완하겠거니와 제방 선학들의 질
책이 있으면 기꺼히 수용하겠음을 밝힌다.

Ⅱ. 만당의 결성, 중앙에서의 활동


萬海 韓龍雲(1879~1944)은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었다.
그의 행보는 문학(시, 소설, 시조 등), 독립운동, 불교 개혁의 추진
등 다양하였다.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이 불교계 내외에 상
당하여, 그의 인기는 상당하였다.4)
만해는 불교청년들이 불교개혁을 추진하여, 불교 자주화를 통
한 식민지 불교정책의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해의 기
대에 부응한 불교청년들은 1928년 조선불교청년회의 재기, 1931년
불교청년총동맹의 결성을 기하면서 불교 교단의 정상화에 나섰다.
1929년에는 승려대회의 개최를 통한 자주적인 宗憲 제정을 성사
3) 김광식(1996), 김광식(2007), 김광식(2010), 김광식(2017b).
4) <불교> 93호(1932.3),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 당선 발표 . 1932년 불
교를 대표하는 인물에 대한 선거를 하였는데 한암 18표, 한영 13표, 백용
성 4표, 송종헌과 백성욱 3표 등이다.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39

시켰다. 그러나 식민지불교의 극복, 교단 정상화, 항일 민족운동의


모색은 쉽지 않았다.
한편 그 당시 만해는 불교청년들에게 청년운동의 조직을 통일
성이 강력한 黨的 조직체로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청년들
은 만해의 당부, 자체적인 판단을 고려하여 불교청년운동을 이끌
전위적인 조직체 결성에 나섰다. 이런 고민들이 卍黨의 결성으로
이어졌다는 만당 당원인 이용조의 회고가 있다.
1930년 5월 경에 우리 4인이 佛前에 誓盟하고 結社를 한 후 2차로
조은택, 박창두 강재호, 최봉수 제씨를 포섭하였으며 다음 佛專 재학중
인 박영희, 박윤진, 김유문(필자주, 강유문 오기) 박근섭, 한성훈, 김해
윤 제씨도 입당시켜 柱秘裡에 創黨 선서를 하고 黨名을 卍黨이라 했으
며5)
이렇듯이 1930년 5월 경 서울에서 만당은 창당되었다. 그는 殉
敎 정신의 동지를 규합하여 자주노선, 항일 노선을 가기 위함이었
다. 당의 결성을 주도한 인물은 이용조, 조학유, 김상호, 김법린 등
이었다. 그후 10여명의 동지를 더 포섭하여, 입당시켰다. 그런데
다솔사 주지를 역임한 최범술이 창당 초기부터 관여되었고, 만해
의 지시에 의하여 만당이 결성되었다는 박영희(대흥사) 증언이 있
다.6) 즉 만당의 결성은 비밀결사를 만들라는 만해의 지시에 의해
자신이 주도했는데,7) 박영희는 최범술, 이용조, 강재호, 박근섭을
만나 結社不變의 맹세를 하고 만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 박영희의 또 다른 증언을 참고하자. 위에서 소개한 박영희
5) 이용조, 한국불교항일 투쟁 회고록 - 내가 아는 卍字黨 사건 , <대한불
교>(1964.8.30).
6) <불교신문>(1989.3.1), 조선민중은 노예의 삶을 거부했다 .
7) 박영희는 중앙학림을 20대 초반에 다니다가 3.1운동 참여, 신흥무관학교
입학, 청산리 전쟁 등을 겪고 낙향 이후에 중앙불전을 입학한 인물이었다.
그는 3·1운동 당시에도 만해의 부탁을 받고 3·1운동을 이면에서 도왔다.
김광식(2016), 16-30.
140 ∙佛敎硏究 제48집

의 서술보다 빠른 시점(1973년 8월, 광복절 대담)의 발언이다.


김어수 ; 처음 만당(卍黨)을 조직한 동기와 만당(卍黨)의 활동상황은
대개 어떠합니까?
박영희 ; 시국이 점점 불리(不利)해지고 동지(同志)들의 변절(變節)이
자구만 늘어가는 것을 본 만해(萬海)선생은 비분(悲憤)을 참을 길 없
어 실의(失意)의 생활과 고궁(固窮)의 나날이 계속되던 중 그때 연대
(年代)는 지금 기억나지 않습니다마는 내가 중전(中專) 3학년 때라고
생각됩니다. 어느날 만해선생이 학교로 찾아오셔서 나를 살짝 불러
학교 뒤 바위 위에 올라 가 젊은 동지(同志)를 규합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의논하고 인물(人物)을 골라 서너번 찔러본 다음 생각
이 꿋꿋하거든 입당시키자고 하여 최범술(崔凡述), 이용조(李龍祚),
박근섭(朴根燮), 강재호(姜在鎬) 등을 당장 찾아가 입당 겸 발기 총
회가 되고 탑골 근처에가서 막걸리 한잔씩 마신 다음 결사불변(結社
不變)의 맹세를 한 뒤 차츰 차츰 동지(同志)들을 규합한 것이 만당
(卍黨)이고 활동상황이란 대개 한달에 한번 정도 비밀 회합을 갖고
각자(各自)가 살핀 정세(情勢)보고에 의하여 그것을 검토 평가하는
것을 주로 한 것이지요.8)
박영희의 어록에는 만당 결성의 초기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온
다. 그래서 필자는 최범술도 만당이 출범할 때에는 국내에 있었
고, 만당을 창립한 당원들과 탑골공원(서울, 종로) 근처에서 만당
을 決死의 자세로 추진하자고 맹세를 한 핵심 당원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는 방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기에 만당이 출
범한 초기 활동은 미약하였다.
그러면 여기에서 만당의 노선을 살펴 보겠다. 이는 만당의 강령
과 선서문에 나온다. 강령은 다음과 같다.9)
- 政敎分立
- 敎政確立
8) <법륜> 174호(1973.8), 특별기획 대담 : 광복절에 생각한다 .
9) 위의 이용조 회고록.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1

- 佛敎大衆化
이처럼 불교(종교)와 식민통치(정치)의 분리에서 보이듯 일제
사찰령 체제의 극복, 불교 교단의 운영의 정상화, 불교의 대중화
이었다. 그런데 강령에서 정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자체가 일제에
저항, 항일불교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성격은 만당의 선서문에
나온다.
보라! 3천년 法城이 허물어져 가는 꼴을!
들으라! 2천만 동포가 헐떡이는 소리를!
우리는 참을 수 없는 義憤에서 감연히 일어선다. 이 法城을 지키기
위하여 이 民族을 구하기 위하여!
向者는 同志요 背者는 魔拳이다. 團結과 撲滅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안으로 敎政을 확립하고 밖으로 大衆佛敎를 건설하기 위하
여 身命을 賭하고 과감히 전진할 것을 宣言한다.10)
만당 당원들은 입당 시에는 위의 선서문을 盟誓하는 마음으로
외워 암송하였다. 그리고 만당 강령의 실천을 위해 분투하였다.
당원들은 문서 기록을 남기지 않고 비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
였다. 당원은 18명으로 출발을 하였지만, 전국적인 인물을 검증하
고 입당을 시켜 80여명에 달하였다. 국외인 일본에서도 재일유학
생들 몇 명이 당원으로 포섭되었다. 그러나 지금 연구 보고된 인
물은 30여명만11) 알 수 있다.
이렇듯 출범한 만당은 만해를 黨首로 여기고12) 자문을 받으면
서 불교청년운동의 중앙조직체인 총동맹의 진두지휘,13) 교단 운
10) 위와 같음.
11) 김광식(1996), 268-269. 필자는 이 논고에서 25명을 제시했고, 추가 대상
자는 조종현(선암사), 이금암(건봉사), 이고경(해인사), 오제봉(의곡사),
도진호(쌍계사)이다.
12) 공식적으로 만해를 당수로 표방하지는 않았다. 후일 만당이 노출되면 만
해에게 피해(구속, 고문 등)가 갈 것을 우려한 것에서 나왔다.
13) 총동맹의 강령이 佛陀情神의 體驗, 合理宗政의 確立, 大衆佛敎의 實現이었
142 ∙佛敎硏究 제48집

영의 운영, 불교계의 모순 해결에 적극 나섰다. 그래서 만당은 불


교계의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만당은 1932년 가
을 무렵부터 내우외환에 직면하였다. 그 문제는 자료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출범 당시 만당 당원은 중앙 간부를 맡지 말고 교단 발전에 헌
신하는 것을 黨意로 정하였다. 즉 당파적인 활동과 명리 추구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약속을 어기고 중앙간부로 진출하
였고(김상호), 당원들(허영호와 정상진) 간에 교단 문제의 해석을
놓고 당파적인 입장에서 갈등을 벌였다.14) 그래서 당의 존재가 위
험하게 되었다.15)
이와 같이 만당은 기로에 서 있었다. 이때 일본에 있었던 최범
술은 총동맹 동경동맹의 간부로 활동하고 1933년 봄, 大正大學(동
경)을 졸업하였다. 그의 나이 30세이었던 그때, 국내 불교청년의
주체로부터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1933년 3월 초, 대학을 나올 무렵 서울에서는 나를 靑年總同盟 中央
執行委員長으로 선임, 곧 서울로 와야 한다는 전보와 상세한 서신을
보내 왔다.16)
즉 그에게 불교청년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니
속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는 당시 총동맹 간부이면서 당원
이었던 인물들이 분열되었음을 뜻한다. 그 분열은 중앙불전의 학
감인 허영호와 강사 간의 대립에서 찾을 수 있다.17) 이 구도에서
다. 이 강령과 만당의 강령과 거의 흡사한 것에서 이해하였다.
14) 憤慨生, 佛敎誌上 南溟氏의 辨明을 再駁함 , <불청운동> 9·10호(1932.2),
14-18.
15) 위의 이용조 회고록.
16) 효당사상연구회(2013), 635. 최범술은 자신의 일대기를 <국제신문>
1975년 1월 26일부터 “청춘은 아름다워라”라는 제목으로 50회로 연재하
였다. 이 기고문은 효당사상연구회(2013), 513-659에 수록됨. 필자는 연
구자 편의를 위해 효당사상연구회(2013)로 근거를 제시하겠다.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3

당원인 허영호가 중앙불전 학감 겸 교수직에서 辭免(1933.5.4.)되


었고,18) 허영호를 지지하던 김법린도 교단에서 축출되었고, 중앙
간부를 의도한 김상호는 범어사로 내려 갔다.19) 이는 핵심 당원들
이 교단에서 배제되는 상황이었다. 만당 주역인 이용조는 만당의
개조를 의도하였지만 여의치 않자 1932년 10월, 만주로 떠났다.20)
더욱 큰 문제는 만당의 노출이었다. 만당은 비밀결사이었기에
당의 존재가 노출이 되면, 일제가 실체를 파악하여 당원들이 피
체되는 사태가 우려되었다.21) 당시 교단은 종헌 실행 및 사법 개
정을 둘러싸고 본산 간의 갈등, 중앙불전 내분,22) 재단법인 교무
원 40만원 증자23)와 보성고보24) 운영의 논란, 만해가 책임을 진
불교계의 잡지인 <불교> 휴간,25) 불교 자주화의 상징인 종헌체제
의 후퇴 등 심각하였다. 거기에 교단을 이끌던 만당, 청년운동진
영도 분열되어 갈등이 노정되었다.
최범술이 귀국한 1933년 3월, 만당은 내분으로 존재 자체가 위
태로웠다. 그래서 만당이 주도하는 불교청년총동맹에서는 위원장
인 허영호를 퇴진시키고 최범술을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출하였
다. 귀국한 최범술은 불교청년운동 및 교단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17) 만당 당원인 허영호는 중앙불전 學監이었는데, 그는 당시 五講師(金敬注,
金仍石, 鄭駿謨, 權相老, 崔應觀)와 불편한 관계이었다. 강사들이 허영호를
학교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진정을 이사회에 건의하자, 총동맹에서는 오
히려 학교 당국이 다섯 강사를 학교에서 辭免시켜야 한다고 결의했다.
18) <一光> 4호(1933.12), 72, 北漢烽臺 .
19) <불교> 104호(1933.2), 교계소식 ; 김상호 전별회 .
20) 이용조, 橫堅相華 , <금강저> 24호(1940.7).
21) 위의 이용조 회고록 참조.
22) <佛靑運動> 11호(1933.8), 총동맹 소식; 제3회 중앙상무집행위원회 .
1932년 4월 21일, 맹원 12인이 참가한 회의에서 총동맹 맹원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중앙불전 교장(만암 송종헌)의 용퇴를 주장했다. 趙直述,
中央佛專 校長의 勇退를 眞言함 , <佛靑運動> 11호(1933.8), 2-4.
23) 허영호(당원)는 40만원 증자를 주장했으나, 정상진(당원, 선암사)은 이를
반박하여 논란이 격화되었다.
24) 김광식(2000), 271-274.
25) 김성연(2008), 76.
144 ∙佛敎硏究 제48집

파악하였다.
이후부터는 내가 활동하게 될 장소는 우리나라 안의 지방이 되었으
며 각 방면에 걸쳐 있는 인사며 사회단체와도 결연되어 있는 불교 중
심으로 기반을 둔 靑年運動者의 총수 노릇을 하여야 했다. 그리고 모
든 지도는 卍海 韓龍雲先生에게 받게 되었고 핵심체는 卍黨員들이었다.
도시와 산, 농촌 서울과 지방 산중 등 곳곳에 大本山이라는 것이 자
리잡고 있었다. 卍黨員들은 政敎分立 大衆佛敎의 擴張 을 부르짖었
다. 敎團 내에서는 친일파를 축출하고 대외적으로는 불교에 대한 일제
총독부의 정치적 세력을 배제하자는 것이 政敎分立 을 내세우는 우리
들의 의도였다.26)
불교청년운동의 책임자로, 한용운의 지도를 받으면서, 만당 당
원들과 함께 불교 교단내의 친일파 축출과 일제 세력의 배제를
임무로 인식하였다. 그는 한용운의 권고를 참고하여 식민지 불교
체제와 정면 대결을 작정하면서도, 만당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그
는 일본에서 투쟁을 해본 경험의 당사자로 만당이 발각될 것을
우려했다.27)
1933년 4월 중순, 그는 당원들을 소집하여 만당의 해소를 제안
하였다. 만당이 일제의 감시에 노출되면 당원들이 피체되고, 만당
이 지향하는 노선이 퇴진하여 민족불교 노선이 좌초될 것을 염려
한 것이다. 이런 최범술의 제의에 당원들은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만당의 해산을 선언하고, 총동맹의 집행부도 개편하였다.

Ⅲ. 만당, 다솔사에서 활동

26) 효당사상연구회(2013), 635-636.


27) 효당사상연구회(2013), 642.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5

일본에서 귀국한 최범술은 정세 판단을 하여 만당을 해산시키


고, 불교청년운동 진용을 개편하였다. 그러나 최범술은 민족운동,
만당의 노선, 민족불교 지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만해의 뜻을
수용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만당 결성의 모티
브를 제공한 한용운은 만당의 해소에 대한 입장은 어떠 하였는가
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28)
한편 만당의 당원이었던 김법린, 허영호는 중앙교단에서 배제
되었다. 그들은 중앙 교단에서 축출되어 생활 자체도 어렵게 되
자, 최범술은 이들을 다솔사에서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중앙에서 失職한 金法麟 전 가족, 許永鎬 韓普淳과 불교계
와는 딴판이지만은 金凡父 선생과 그의 全 가족(凡父선생 동생 金東里
씨도) 등의 생활을 다솔사로 데려와 내가 맡았고 卍海선생의 생활상의
책임도 져야 했다. 어쨋든 多率寺는 이 같은 관계로 排日 抗日의 근거
지가 되었다. 이들 인사들을 수용하는데는 秋收 3百석이 될락말락하는
다솔사의 주지인 나에게는 소위 弱馬䭾格이 되었다.
거기에 친일파인 총독부 지지파인 중들과 맞서야 했고 동시에 捲土
重來를 계획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도꼬에서 朴烈 등과 더불어 싸웠
던 경험의 소유자가 아닌가. 나는 패잔병 같은 처지의 이 식솔들을 집
결시켜 투쟁을 하여야만 하는 難境에 서게 된 셈이었다. 내가 굴복하
고 말면 우리 진용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29)
마침내 최범술은 결단을 내렸다. 친일파의 세력과 정면 대결을
하는 노선을 가되, 그 근거처를 다솔사로 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만당 당원이었지만 교단에서 배제된 김법린 가족과 허영호를 다
솔사로 이끌었다.30) 즉 그들이 다솔사에 머물면서 활동케 하였다.
그리고 김범부와 김동리도 다솔사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배려하였
28) 최범술이 사전에 상의를 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를 단정할 수 없다.
29) 효당사상연구회(2013), 641.
30) 최범술은 한보순도 다솔사로 이끌었다고 하였지만, 그 사실은 알 수 없
다.
146 ∙佛敎硏究 제48집

다. 그러면서 만해에 대한 생활의 책임도 감당하였다. 최범술의


이런 실행은 곧 만당이 패배할 수 없다는 처절한 항일의식에서
나왔다.
한용운, 만당, 최범술은 민족의식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점과 관련해 만당 당원이었던 조종현이31) 만해, 만당, 다솔사
를 회고한 글이 참고된다.
선생은 55세 무렵부터 임종 시까지 약 십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비
밀결사 단체인 만당(卍黨) 을 꾸준히 격려 지도했었다.
세칭 만당 은 이용조, 최범술, 김법린, 박근섭, 김상호, 장도환, 서
원출, 박영희, 강재호 등 불교 청년 19인이 조직한 비밀결사로서, 일제
에 항거하며 투쟁했었다.
표면상으로는 정치 종교 분립 운동이었으나. 실은 그 최고 최종
의 투쟁 목표는 조국 독립 민족 투쟁이었었다. 불교로 색칠했을 뿐
이다.
만당 은 지하운동으로서, 비밀 회합 때는 반드시 삼분간 묵언 사
유 를 했었다.
이 행사의 속뜻 은 오직 선생과 당원만이 알 뿐인 것이었다. 만당
은 그 후반기에 있어 사천 다솔사를 근거지로 했었었다.32)
이 같은 내용으로 인해 1933년 중반부터는 다솔사는 배일 · 항
일의 근거처가 되었다. 이는 다솔사 주지이었던 최범술의 민족의
식에서 나온 것이다.

1. 다솔사 불교전문 강원
최범술, 김법린, 허영호, 김범부 등은33) 다솔사에서 공동 생활을
31) 그의 자제인 조정래는 당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동순(2015), 667. 1932년
연보에 '만당 재무위원직을 맡다'로 서술되었다.
32) 조종현(1971), 49-50. 김광식(2016b), 206-211.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7

하였다. 그러나 최범술이 초청한 허영호는 잠시 머물렀다. 그는


일본 유학 이후34) 중앙불전의 교수이면서 학감이었으나 파면되었
다.35) 그래서 다솔사에 있다가, 1933년 후반 경36) 부산으로 갔다.
그 이후는 그의 입산 사찰인 범어사 강사를37) 하면서, 김해 해은
사 주지가(1934.7.17~1937.7.16)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최범술은 지식인이었던 김법린, 김범부가 활동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는 다솔사 강원의 설립이었
다.38) 강원의 설립은 1933년 봄에 준비를 하여 그해 가을에 개강
을 하였다.39) 아래의 최범술 회고에 그 단서가 나온다.
이 무렵 내가 주지로 있는 다솔사에는 金凡父, 金法麟씨 등이 가족
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들이 절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총
독부는 또 다시 무슨 항일 모의라도 하나 하고 눈독을 올리기 십상이
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솔사에 불교전수강원을 설치했다. 두 金씨와 姜高
峰씨가 강사로 나섰다.40)
다솔사 강원의 강사는 ‘두 金氏’로 표현된 김법린과 김범부이었
다. 金法麟(1899∼1964)은 범어사 출신으로 중앙학림 졸업 후, 프
랑스와 일본의 유학을 다녀온 학승이다. 해방 이후에는 조계종 총
33) 한보순도 있었다고 하나 그에 대한 입주, 활동 등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였다.
34) 제점숙(2015). 황인규(2015).
35) <금강저> 21호(1933.12), 53면, 업경대;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이사가 중
앙불전 학감을 파면식히더니 .
36) 그가 다솔사를 떠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허영호도 다솔사 강원에서
강의를 하였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37) <일광 7호(1936.10), 60면에 舊職員 許允은 범어사 강사로 나온다. 그는
1937년 5월 20일에 중앙불전 강>사로 부임하였다. <일광> 8호(1937.11),
85.
38) 강원과 함께 설립된 광명학원에 대한 설립 시점은 제고할 문제이다.
39) 김상현은 1933년 6월이라고 하였다. 김상현(2013), 202.
40) 효당사상연구회(2013), 643.
148 ∙佛敎硏究 제48집

무원장, 3대 민의원, 문교부 장관, 동국대 총장을 역임하였다.41)


그는 불교 주필을 하면서 식민지 불교를 비판하다가 불교지
가 1933년 7월호로 휴간이 결정되자 다솔사로 내려왔다.42) 金凡父
(1897~1966)는 천재적인 사상가로 불리우고 있는데 영남대 전신
인 계림대의 초대 학장, 2대 국회의원, 건국대 동방사상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동방사상(풍류사상)의 대가이다.43) 그의 화랑도 사상
이 박정희 대통령과 연계된다고 하여 주목을 받아 그의 연구가
진행되었다.44)그런데 김범부가 다솔사에 오게 된 최범술과의 인
연은 단언할 수 없다.45) 그는 일본유학을 거쳐 1921년 무렵에는
동국대 전신인 중앙학림의 강사로 있었다.
그리고 이 강원에는 승려 姜高峯도 강사로 동참하였다. 강고봉
(1900~1967)은 일제하 고승인 白龍城(1864~1940)의 제자로 강사
로 활동하였다. 그의 연구는 현재까지는 없지만46) 그는 백용성,
제산(직지사), 송만공(수덕사) 문하에서 참선을 하고 이고경, 장석
상, 오해련 등의 강백에게 배워 敎禪一致的인 수행을 했다. 47)백용
성의 萬日參禪結社會(1926~1927)에 동참을 하였고, 禪農一致의 도
량인 함양 華果院(1927~ 현재)에서도 백용성에게 배웠다.48) 이
후 개운사의 박한영에게 傳講을 받았고, 은해사 강사를 역임하였
다.49) 강고봉이 다솔사에 온 인연의 사정은 알 수 없다. 추정하건
대 해인사의 강사로 활동할 때에 최범술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41) 강미자(2010).
42) <일광> 4호(1933.12), 67. 그의 주소가 다솔사로 나온다.
43) 영남대에서 출범하였고, 최재목이 회장이다.
44) 정다운(2010).
45) 기존 김범부 연구에서도 이 점은 없다.
46) 그의 문손은 우룡(경주 함월사), 종하(과천 관음사), 고산(쌍계사), 덕민
(불국사 승가대 학장) 등이다.
47) 이지관(2000), 1174-1175.
48) 김광식(2017a), 172.
49) <경북불교> 7호(1937.1), 3.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49

이런 다솔사 강원은 당시 불교계에도 알려졌다. 여기에서 그 기


록을 제시하겠다.
現 경남 사천군 多率寺 住持 崔英煥의 新案으로 현대 불교도에게
필요한 佛敎 敎理와 일반 학술에 관한 지식 기능을 교수하야 실제 生
活에 適切한 人才 養成을 目的 으로 한 多率講院 이 該寺에 창립되었
다고 한다. 이것은 正히 현 學徒들의 光明일진저50)
위의 기록은 재일 불교유학승들이 펴낸 금강저에 보도된 내
용이다. 다솔사 강원은 기존 강원을 답습치 않고 근대적 성격을
지녔고, 인재 양성의 목적에서 설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솔사
강원은 강사로 참여한 김범부의 회고에도 나온다.
특히 불교운동은 교권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은 독립운동의 일부
분이었다. 내가 범산을 안 것도 그 무렵 한용운씨가 운영하는 <불교>
지의 주간으로 있을 때부터이다. 그 뒤 그와는 如兄若弟한 사이가 되
었고, 한때는 동거도 했으며 비록 감옥은 다를지라도 같은 시기에 옥
살이도 했다. 그러니까 일제말기 왜경이 한창 과민할 때 범산과 나는
사천 다솔사에서 그곳 주지이며 동지인 최범술과 더불어 학원을 경영
하고 있었다. 범산은 역시 다솔강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틈틈히 불경과
한국역사를 교수하며 조국정신을 고취하기에 진력하였다. 우리 셋은
비록 도원결의를 한 것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진배 없었고, 또 세상 사
람들이 그렇게(‘三凡’이라고) 불렀다. 梵山은 호요, 凡述은 아명이며, 凡
父는 내 字이건만, 우연하게도 무슨 돌림자를 쓴 것처럼 일치된 것은
사실이다.51)
위의 회고에 나오는 ‘강원’이 다솔사 강원이었다. 즉 최범술이
운영하는 다솔사 강원에서 김법린은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불경,
한국역사, 조국정신의 고취를 교육하였다.52)그리고 김범부는 최범
50) <금강저> 21호(1933.12), 우리 뉴-스 : 다솔강원 창립 .
51) <대한일보>(1961.3.18), 김범부의 회고 .
52) 김법린은 1934년 1월부터 1935년 9월까지 다솔사 강원에서 강의했다는
150 ∙佛敎硏究 제48집

술과 함께 다솔사 강원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강고봉의


강사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위의 회고에 김법린은 불
경과 한국역사를 가르쳤다고 나오지만 최범술과 김범부가 담당한
과목은 전하지 않는다. 김범부는 동양철학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
러나 강원에서 수학한 승려가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다솔강원은 1935년 9월부터 다솔사의 본사인 해인사 강원
에 합병되었다. 이렇게 다솔사 강원은 2년만 운영되었다가 사라졌
다. 그러면 최범술, 김법린, 김범부 등 3명은 어떤 행보를 갔는가?
그 정황은 아래 기록에 나온다.
慶南 沙川郡 多率寺 講院은 去 九月부터 大本山 海印寺 講院에 合倂하
야 別 다른 改良講院으로 經營하게 되엇다는데 講師의 氏名은 左 如와
갓더라.
金法麟 崔英煥 金鼎卨53)
요컨대, 다솔사에 있었던 최범술, 김법린,54) 김범부가 함께 합
병된 해인사 강원의 강사로 참여하였다. 3명이 모두 다솔사를 떠
나 해인사라는 장소로 가서 강의를 한 것은 특별하다. 이는 다솔
사 강원의 특성을 이전, 전수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어떤 연유로 합병이 된 것일까? 이 문제도 단언하기 어
렵다. 다만 최범술이 해인사 출신이었고, 해인사의 法務를 1935년
초부터 하였으며, 해인사에는 그의 스승인 林幻鏡과 그와 친근한
강백인 李古鏡이 있었던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요컨대 최범술이
해인사의 주체들과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다솔사의
경제적 요인, 입학생의 부진, 최범술이 그 무렵 일제에 2회나 피
검되었던 탄압55) 등이 복합된 사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
기록이 있다. 금정중(2006), 137.
53) <불교시보> 4호(1935.11), 휘보 ; 다솔사강원이 해인사강원과 합병 .
54) 김법린이 1935년에 해인사에 있었음은 성철 기록에 나온다. 즉 성철이
해인사에서 1935년에 출가한 직후, 김법린이 성철에게 교학 연구를 권유
하였다는 내용이다. 원택(2012), 41.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51

나 해인사 강원의 강사로 부임한 3명은 오래 근무하지는 않았다.


김법린은 출신 사찰인 범어사로 갔고,56) 김범부와 최영환은 다솔
사로 복귀하였다.
이와 같은 다솔사 강원은 근대기 강원의 역사, 최범술 · 김범부
· 김법린 등의 역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상이다.57) 이제는 그에
담겼던 역사적 의의를 살펴야 한다.

2. 光明學院의 설립
1930년대 후반, 다솔사에는 특별한 교육 시설이 등장하였다. 그
는 광명학원이었다. 이 학원은 전술한 다솔사 강원이 창건된 이후
에 개설되었다. 1933년 무렵, 다솔사에 김범부가 머물게 되자, 그
의 동생인 소설가인 김동리(1913~1995)가 함께 머물게 되었던 연
유가 동기이었다. 우선 그 개설에 대한 사정을 회고한 최범술의
증언을 참고하자.
또 이때 金東里씨 등은 光明학원을 따로 설립하여 다솔사 일대의
농민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光明학원에서 가르친 것은 초등교육 과
정이었다. 光明학원은 이 지방의 농촌 교육에 큰 성과를 올렸으며 이
때 얻은 체험으로 金東里씨는 많은 작품을 썼다. 당시 金씨의 초년
문학 작품은 巫女跳 , 生食 , 山火 花郞의 후예 등이었다.58)
즉 김동리는 다솔사의59) 인근 지역의 농민 자제들에게 초등교
55) 최범술은 1934년 5월 9일 일경에 피체되어 사천경찰서에 2개월, 거창검
찰청에 2개월간 구금되었다. 그리고 1935년 6월 1일 임실군 경찰서에 3
개월간 구속되었다. 효당사상연구회(2013), 31.
56) 1937년 12월 현재 범어사 강사이었다. <홍법우> 창간호(1938.3), 80.
57) 최재목(2017).
58) 효당사상연구회(2013), 643.
59) 김주현(2015), 김정숙(1996).
152 ∙佛敎硏究 제48집

육 과정을 가르치는 光明學院에서 강의에 나섰다. 그러면 김동리


는 다솔사에 언제부터 머물렀고, 다솔사 인근인 院田에 위치한 광
명학원은60) 언제 개설되었는가?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김동리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백로”라는 詩가 가작,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에 소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신춘
문예에 당선되던 해인 1935년 2월, 다솔사로 갔다. 창작 공간의
확보 차원이었다. 그의 형인 김범부가 다솔사에 있다는 소문을 들
었기 때문이다. 다솔사에서 그는 4개월간을 머물다가 6월말 경에
는 해인사로 갔다. 해인사에 6개월간 체류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
였다. 이는 그의 형인 김범부가 해인사 강원의 강사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때 김동리는 해인사(백련암)에서61) 수행을 하던 하용
봉 선사와 인연을 맺었다.62) 하용봉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동산
이었다. 그는 해인사에서 소설 “산화”를 써서 <동아일보>에 신춘
문예에 당선이 되자 1936년 2월에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다가
1936년 가을, 다솔사로 내려 왔다. 그런데 1937년 봄(4월) 무렵,63)
광명학원이 개설이 되자, 다솔사를 떠나 인근64) 광명학원이 소재
한 원전으로 나갔다. 그는 그 학원에 머물면서 강사를 역임하였
다.
광명학원의 설립은 다솔사 주지인 최영환의 주관으로 설립되었
다. 필자는 이에 대한 1차 기록을 찾지 못하였지만 정황상 최범술
의 주도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이는 최범술 그가 사천 출신으로
60) 건물은 함석지붕, 시멘트 벽, 나무 바닥이었다고 전한다.
61) 동산문도회(2016), 36. 여기에는 1935년 6월, 해인사 백련암에 있었던 용
봉(하동산)이 그의 제자 유성갑에 보낸 친필 서간문이 나온다.
62) 김동리, 절과 마을 사이 – 하용봉 스님과의 만남 , <불일회보>(불기
2528.8.1). 김동리(1986).
63) 김주현(2015), 320. 효당사상연구회(2013), 31. 여기에서는 그를 1934년 3
월 5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학원이 있었던 본래의 포교당의 용도
로 지은 건물을 수리하여 학원을 시작한 날자로 보인다.
64) 4km 떨어졌다.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53

다솔사 주지를 맡고 있었던 측면에서의 이해이다. 광명학원의 설


립, 김동리의 관련에 대해서는 김동리의 현지(다솔사, 원전 등) 조
사를 통해 세밀하게 조사한 김정숙의 글이 참고된다.
이처럼 동리가 독서와 작품 구상에 몰두해 있는 동안 다솔사에는
전에 경내에 있었던 ‘광명학원’을 원전이란 곳에 새로 건립하게 되는
데, 동리는 이 곳의 강사로 임용된다. 광명학원의 원장은 효당 최범술
이었다. 광명학원을 원전으로 옮기면서 동리는 경내 강사였던 이상권
과 더불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광명학원은 1937년 다솔사의 재정으로 세워졌다. 1937년 다솔사의
세입 세출 예산서를 보면 세입 5410원, 세출 5410원으로 잔금이 없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원전 무진 장원 신축비가 포교비 명목으로
1400원의 예산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면 광명학원이 1937년 1월 이
후에 신축 완공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전 마을의 공동묘지였던 언덕에 광명학원이 세워졌는데, 함석 지
붕에 씨멘트 벽, 그리고 나무바닥으로 된 건물이었다. 동리는 이 학원
에 대해 ‘빨간 지붕에 흰 벽을 한 양옥으로 사설학원 강습회의 허가로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고 회고한다.65)
이와 같은 김정숙의 글에는66) 광명학원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온다. 우선 첫째, 그 학원이 다솔사 경내에 있다가 1400원의 예
산을 투입하여 원전에 신축 완공되었다. 그러나 언제 처음으로 개
설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67) 둘째, 그 학원의 강사
는 김동리와 이상권이 함께 담당하였다. 여기에서 다솔사 강사이
었다는 이상권의 정보가 요청된다.68) 셋째, 학원은 사설학원 강습
65) 김정숙(1996), 174-175.
66) 이 서술은 광명학교 출신인 김옥남, 김용석(효당 조카)의 증언에 의지한
것이다.
67) <중외일보>(1930.5.10), 「方丈育英院, 創立總會 . 이 기사를 보면 다솔사
는 지역 인사와 교류를 갖고 인재양성에 관심이 많은 사찰이었다.
68) <일광> 8호(1937.12), 84. 증앙불전 6회 졸업생(1936.2)인 金義贊이 다솔
사에 머물고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그는 <일광> 10호(1939), 51에서는
滿洲國 通化城 第一國民高等學校 敎員으로 나온다. 김의찬에 대한 추가 정
154 ∙佛敎硏究 제48집

회라는 명목으로 일제 당국에 허가를 받았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김동리의 회고를 참고하자.
1937년 봄부터 나는 진주와 하동 사이 중간 지점쯤에 있는 院田이
란 곳에서 學院일을 보고 있었다. 원전 마을 뒷산에 빨간 지붕의 양식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일을 보고 있는 光明學院이었
다. 이 광명학원이 된 建物은 몇 해 전에 같은 昆明面(泗川郡) 소재의
多率寺에서 資材를 부담하고 마을에서 노력을 맡고 해서 본디는 布敎
堂으로 쓸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절의 형편이 여의치 못
해서 비어진채 있다가 그해 봄부터 학원 개설로 合意를 보았던 것이
다.
낮에는 어린이들이 約 50명 밤에는 청년 남녀들이 약 20명 한글 日
本語를 중심한 국민교 4학년 정도의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처음엔 내
가 혼자서 맡아 가르치다가 나중엔 마을청년 한사람이 나와서 거들어
주었다.69)
위의 김동리 회고에 의하면 광명학원의 건물은 신축은 아니고,
기존 다솔사 포교당으로 쓸 용도로 지어진 건물을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 학원 개설이라는 합의가 있었음에서 다솔사, 주민, 김동
리 간에 상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명학원은 이렇듯 당국의 인가를 받은 사설강습소의 성격이었
다. 학원에서는 학예회도 열렸고, 성적 통지표와 월사금 용지가
전하는 것을 보면 준제도권 교육이었다.70) 낮에는 어린이 50명에
게 초등학교 과정을, 밤에는 청년 20여명에게 문맹타파를 시키는
야학으로 즉 이원적 교육이 행해졌다.71) 강의는 김동리가 책임을
보가 요청된다.
69) 김동리, 作家가 말하는 作品의 世界, 等身佛 , <불교신문>(1981.5.10).
70) 광명학원 제1회 졸업 기념 사진에는 김범부, 김동리, 김월계, 성인 학생
1명(이상권?)과 학생 18명이 나온다. 그리고 관리자 성격의 외부 교사(일
본인? 2인)가 나온다. 효당사상연구회(2013) 화보.
71) 지역의 농촌 교육을 담당하였다. 광명학원 인근 어린이들의 배움터, 놀이
터의 성격을 가졌다. 광명학원에 대한 지방사 차원의 연구가 요청된다.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55

지었으나, 동리의 청년 1명이72) 보조로 참여하였다. 김동리는 주


로 국어(조선어, 동요 등)를 가르쳤고, 보조자인 이상권은 산수와
서예를 가르쳤다.73) 그리고 김동리와 결혼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
월계도 1940년 경 합류하여 가르쳤으나, 김동리가 주도하였다.74)
이렇게 교육에 기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원은 6년간
운영되다가 1942년 10월 경 한글을 교육시킬 수 없다는 일제의
압력과 김동리도 요시찰 인물로 보았던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
었다.75) 광명학원의 학생들은 곤명국민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편
입되었다. 그래서 김동리는 다솔사(원전)를 떠났다.
한편 김동리는 다솔사에서 불교와의 인연을 맺었다.76) 우선 만
해를 만났다. 그는 만해와 김범부의 대화에서 나온 燒身供養의 이
야기에 착안하여 소설 “등신불”(<사상계> 1961.11), 그리고 다솔
사에 얽힌 일화를 바탕으로 “황토기”(1939.5)를 쓸 수 있는 모티브
를 얻었다. 여기에서 김동리의 회고를 참고하자.
그렇게 한 일 년이 지나 38년 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하루는 다솔
사에서 사환이 왔다. 서울서 韓龍雲선생이 절에 오셨으니 수업이 파하
는대로 오라는 것이었다. 거기서 절까지는 약 십리 가량 되었다. 나는
곧 자전거를 타고 절로 달려갔다. 그 무렵엔 내 伯氏(凡父先生)도 다솔
사에 寓居中이었다. 伯氏는 본디 민족주의 계통으로 경찰의 괴롭힘을
받고 지내다가 이 절의 주지 錦峰스님(崔凡述氏)의 好意로 여기서 잠간
72) 이 사람이 이상권일 가능성이 있다.
73) 일본어는 누가 가르쳤는가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
74) 김동리는 “내 혼자서 강사요 직원이요 수위이었던 광명학원”이라고 표현
하였다. 김동리문학전집 편집위원회(1997), 199.
75) 김동리가 학생 성적표에 일본어를 ‘국어’라고 기재하지 않고, ‘조선어’(한
글)를 국어로 표기한 것이 빌미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김동리는 학원 아
이들이 일본국가 노래를 제대로 못부른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고 회고
했다.
76) 김주현(2015), 337. 김주현은 김동리는 다솔사에서 사십이장경을 읽었
다고 언급하면서, 김동리의 소설에 담긴 불교사상의 연구 필요성울 지적
했다.
156 ∙佛敎硏究 제48집

몸을 숨기고 휴양중이었던 것이다.


절의 큰방에는 萬海先生과 내 伯氏와 住持스님이 앉아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나는 萬海先生에게 인사를 드리고 내 伯氏와 住持스님 사
이에 앉았다.
주지스님은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손수 엽차를 끓이고 있었다. 萬海
先生이 내 伯氏를 보고 문득 “凡父, 우리나라에서도 스님 가운데 燒身
供養한 기록이 있소” “내가 본 고승전 속에는 그런 기록이 없더군요”
내 백씨의 대답이었다. “분신공양이 뭡니까” 내가 백씨와 住持스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옛날 스님이 스스로 자기를 불태워 부처님께 공
양드리는 거라네” 住持스님이 답했다. “불속에 뛰어 듭니까” “벌겋게
불에 달은 황토같은 걸 머리에 여서 태우는거 아닐까”
주지스님도 자신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대
답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미 맘속으로 충분히 놀라고 흥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전부터 충격받은 이야기는 그것을 나의 작품의 소재로 삼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물론 이 분신공양의 이야기도 소설화시켜야 하리
라고 맘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77)
이렇듯이 김동리는 1937~1938년,78) 다솔사에서 만해를 만났다.
또한 그는 광명학원의 강사 시절(당시 24세)인 1938년 3월 25일
김월계(당시 20세)와 결혼을 하였다.79) 김동리 삶에 있어서 10년
77) 김동리, 작가가 말하는 작품의 세계, 等身佛 , <불교신문>(1981.5.10).
78) 필자는 김동리가 스스로 작성한 글을 신뢰하여 1937~8년으로 본다.
79) 진주 일신여고(당시 진주사범) 출신인 김월계(함양, 백전초등학교 교사)
와의 혼배성사는 진주 옥봉본당이 관할하는 봉계공소(당시 명칭은 원전
공소임)에서 있었다. 광명학원 제자인 김소영은 김동리가 얼마 후(?)에
한용운을 주례로 모시고 광명학원내의 교정에서 결혼식을 하였다고 전
한다.
김동리는 광명학원이 세워진 초기에는 다솔사에서 학원까지 걸어 왕래
하였다. 그래서 불편하여, 학원의 방을 숙소로 이용하였다. 그때 그는 김
월계의 집에서 식사만을 하다가, 얼마 후에는 하숙을 하였다. 김동리가
천주교 공소에서 결혼식을 한 것은 천주교 신도인 김월계 가족의 요청
에서 나온 것이다. 김동리의 세례명은 가브리엘, 지금도 그의 영세 서류
는 진주 옥봉 천주교회에 보관되어 있다.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57

간의 다솔사(원전) 경험, 추억은 강렬하였다.80)


1937년 4월부터 1942년 6월까지 다솔사의 광명학원은 김동리가
중심 인물로 나오는 근대 문학사에서 귀중한 역사이다. 그래서 일
제 식민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오지의 청소년들에게 희망
을 심어준 광명학원의 역사는 불교사, 근대 문학사 뿐만 아니라
다솔사 및 사천 지역사의 역사 및 문화이었다.

3. 다솔사 ; 민족의식 창출, 민족운동 거점


다솔사는 김법린, 김범부, 김동리 등이 머물면서 강원, 광명학원
을 개설하여 승려, 청소년들을 가르치던 교육 도량이 되었다. 이
런 계기로 다솔사에는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지식인들이 모여 들
던 민족운동의 거점이었다. 만당 당원들의 집합처, 해소된 만당의
본부 성격을 뛰어 넘었다. 이에 다솔사는 민족, 독립, 지역을 끌어
안았던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우선 다솔사 주지인 최범술의 회고
를 들어보자.
한편 다솔사에는 김법린, 김범부 등 인사가 은거하고 있어 국내외
유지들의 왕래가 잦았다. 그 때의 항일 세력인 공산주의자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중략)
간혹 日本 경찰이 들이닥쳐도 그냥 볕이나 쬐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무렵 우리를 크게 도운 분은 沙川서도 의원을 지냈던 黃順柱(73, 생존)
였다. 다솔사엔 韓龍雲 선생을 비롯, 義烈團圓 李基周, 朴喜昶, 李時穆씨
등도 자주 들렀다.81)
즉 항일인사와 다양한 有志들이 왕래를 하였다. 그 인사에는 만
80) 그는 1943년 봄, 일제 식민통치를 피해 피신(방랑, 쌍계사 일시 체류)을
하였다가, 1943년 10월 경 사천으로 돌아왔다. 그는 양곡배급조합 서기
를 보면서 해방을 맞았다.
81) 효당사상연구회(2013), 645.
158 ∙佛敎硏究 제48집

당 당원,82) 의열단원, 민족적인 사회주의자, 문인(서정주, 조연현


등), 지성인(변영만)도 포함되었다. 다솔사를 왕래한 대표적인 항
일 인사는 한용운이었다.
어쨌든 다솔사에는 항일인사, 지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 인사
에는 사천, 하동의 지역 인사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사가 文
永彬(1891~1961)이었다.83) 하동 출신인 그는 1914년에 상해로 망
명하여 비밀결사 배달학회를 결성하였고, 3·1운동 당시에는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의령 출신인 독립운동가 安熙濟와
함께 백산상회를 만들고, 그곳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상해 임정을
후원하였다.84) 지역의 지사들은 다솔사에서 비밀 모임을 갖고 항
일 의식을 정비하였다.85) 그래서 다솔사는 1933~1945년, 경남지
역 항일운동의 근거지라는 성격을 가졌다.
한편 다솔사에는 일본승려가 다녀 갔다. 이는 최범술이 일본 유
학을 거친 연고에서 나왔다. 즉 1939년 8월, 다솔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승려 수십여명이 모여 학술 행사를 가졌으니, 그는 ‘己卯年
安居法會’이었다.
1939년 여름엔 다솔사 대강당에서 법회가 있었다. 이 자리엔 日本의
高僧碩德 47명과 그 수행원들이 참석, 서로 학문과 法義에 관한 광범위
한 강론을 나누었다. 우리측 강사로는 金凡父선생이 나섰고 吳宗植씨
가 통역을 맡았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서도 두 나라
의 불교계는 화기애애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로 지키려 했던 것이
다.86)
82) 건봉사 법무(봉명학교 학감)이었던 이금암은 만당 당원으로 재정을 담당
하였는데, 그 시절 다솔사를 다녀왔다. 그는 박종운(건봉사 교무)에게
조선독립의 書 를 입수하였다고 전하면서 조선독립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였다고 전한다. 박설산(1994), 133.
83) 문영빈은 해방 후 한용운 전집 간행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다.
84) 부산일보 특별취재팀(1998), 71-72.
85) 독립운동가인 안희제도 다솔사에 다녀갔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동언(2010), 조동걸(2013) 연보.
86) 효당사상연구회(2013), 648.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59

즉 다솔사에서 한일 양국의 학승들이 佛法을 놓고 토론을 하면


서 수행을 하였다.87) 당시 그 법회(8.21~28)에88) 한국측의 인사
로 金凡父(다솔사), 金法麟(범어사 강원 학감), 趙梵海(쌍계사, 범패
전문가), 趙影庵(율사, 밀교 전문가), 金九河(통도사 주지 역임), 金
擎山(범어사, 임시정부 자금 전달), 白景鰕(해인사 율사), 李古鏡(해
인사 강백), 林幻鏡(해인사 주지 역임), 吳濟峰(서예가, 의곡사 주
지), 吳宗植(통역) 등이 참석하였다.89)
다솔사의 법회가 종료된 다음날에 한용운의 회갑 잔치가 있었
음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해는 8월 26일(음력 7월 12
일), 서울 청량사에서 20여명과 함께 회갑을 기념하는 식사를 하
였다.90) 그리고 다솔사로 내려왔는데, 청량사 모임으로부터 3일
후에 다솔사에서 간단한 모임이 있었다.
이 법회가 끝난 다음 날에 다솔사에서는 卍海 韓龍雲 선생의 回甲
잔치가 벌어졌다. 이 때 선생이 기념식수한 향나무는 지금도 무성히
자라고 있다.91)
(필자 주, 회갑일 1939.8.26) 사흘 후에, 그 당시 민족독립운동의 비
밀 집회 장소의 하나인 경남 사천군 곤명면 소재의 다솔사로 내려가
서 고락을 함께 하였던 경산노인(擎山老人 ; 범어사 주지), 김범산(金梵
山), 김범부(金凡父), 최범술(崔凡述) 등 몇 명의 동지, 후학들과 함께
회갑 기념의 조출한 축연을 갖다. 다솔사에 기념 식수(석수 ; 황금측
87) <경북불교> 25호(1939.8.1), 方丈山 多率寺에서 天台宗學者 等 夏安居,
期間은 一週日로 .
<매일신보>(1939.8.6), 佛敎 親善修行 .
<부산일보>(1939.8.24), 「內鮮의 名僧知識 多率寺에서 嚴修 . 
88) 행사는 6일이고, 2일은 견학 순례(경주, 서울)를 한 것으로 보인다.
89) 최범술은 오제봉을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서술했다. 김구하, 김경산, 백
경하, 이고경 등은 위의 보도기사에서 참가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실제
로 참가했는지는 확인이 요청된다.
90) 김광식(2015), 211-212.
91) 효당사상연구회(2013), 649.
160 ∙佛敎硏究 제48집

백)하다.92)
항일첩보 36호의 유일한 생존자인 金瀅極 선생은 이 강연에서 항일
첩보 36호의 비화와 관련, (중략)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한 1938년 8월
상해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김형극은 경남 사천군
곤명면에 있는 다솔사에서 만해의 회갑연을 맞아 白山(필자 주, 안희
제)과 자리를 함께 했었다. (중략) 그후 김형극이 1944년 2월 서울 성
북동 심우장에 와병중인 만해를 찾아 갔을 때 만해는 年下의 백산이
먼저 간 것을 비통해 하면서 陽36 陰36에 근거한 일제 36년 敗亡의 적
중을 다시 강조했다.93)
8월 말,94) 그 모임의 참석자는 최범술, 김범부,95) 만당 당원(김
법린 등), 지역 인사, 독립운동가, 해인사와 범어사의 승려(김경산
등) 등 다양하였다.96)
한편 다솔사 역사에는 신채호의 추모 계승 작업도 있다. 신채호
가 1936년에 항일활동을 하다가 일제에 피체되어 옥사하자 만해
와 최범술은 신채호의 유고를 간행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도 있
92) 최범술(1971), 21.
93) <동아일보>(1975.6.25), 스케치 : 음양역학으로 일제 패망을 예언한 한
용운선생, 김형극씨가 항일 첩보 36호비화 처음 공개 . <동아일
보>(1976.5.28), 백산 안희제선생 추모비 제막때... 김형극 .
그런데 안희제 연구자들은 안희제가 다솔사 내방 사실을 서술하지 않았
다. 이는 김형극의 과장적인 회고라는 인식으로 본 것 결과이다. 그래서
김형극의 구술을 신뢰치 않는다. 필자는 안희제와 다솔사 연관이 있는
보도기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소개하지만, 추후 이에 대한 사료 비판
이 있어야 한다.
94) 그 날자는 8월 29일 혹은 30일로 추정된다.
95) 김범부는 해방 직후, 불교 교단 기관지에 본명인 金鼎卨이라는 이름으로
<新生> 창간호(1946.3) 21면에 故 韓龍雲先生 追悼文 을 기고하였다. 그
는 만해가 “일어나라, 나아가라, 삼천만 한 마음으로 오직 한 길 義로운
길로”라는 말을 삼천리 강산이 흔들리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서술했
다.
96) 만해는 서울에서 회갑을 지내고 사흘 뒤, 다솔사로 내려갔을 때 후배들
에게 둘러싸여 찍은 사진이 전한다. 효당사상연구회(2013), 436.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61

다.97)최범술은 만해와 상의를 하고, 만당 당원인 박근섭(쌍계사)


과 함께 실무 작업까지 하였으나, 완성은 못하였다. 그러나 묘지
명은 신채호 친척에게 전달하였거니와, 이 같은 민족의식의 재생
산 작업을 한 곳이 다솔사이었다. 그로 인해 최범술은 1년간 구속
당하였다. 최범술이 구속당하자 만해는 경남도경 유치장까지 찾아
와 민족운동으로 구속됨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던져주고 갔다.98)
이처럼 다솔사 역사에는 민족의식 창출, 민족운동의 거점이라
는 역사가 있었지만, 일제에 피체되었던 쓰라린 역사도 있었다.99)
일제에게 당한 피체, 구속, 고문 등은 관련 당사자의 기록, 보도기
사 등에서100) 확인된다. 다행히 최범술, 김범부 등은 피체되고서
도 살아남았지만, 해인사 강백인 이고경은 순국하였다.101) 이렇듯
이 다솔사에는 일제에 저항, 피체, 구속, 순국이라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

Ⅳ. 결어
맺는말은 앞에서 살핀 다솔사와 만당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내
97) 최범술(1971), 효당사상연구회(2013), 429.
98) 최범술(1970). 효당사상연구회(2013), 407.
99) • 1938. 8 ; 김법린 진주 경찰서 구금
10 ; 최범술, 김범부, 김적음 등 경기도 경찰서 구금(4개월)
• 1942. 9 ; 일제 경찰 28명 다솔사로 와서 최범술과 김범부 체포
경남도경(부산) 감방 구속(최범술 1년, 김범부 4개월)
• 1942. 12 ; 만당의 해인사 사건
임환경, 이고경, 오제봉, 민동선, 김범부 등 17명(합천경찰
서 구속)
100) 오제봉(1988), 42-43. 민동선, 왜정말기의 해인사사건 , <대한불교> 85
호(1964.9.20.). 申炯魯(1993). 이지관(1992), 1159-1160.
101) <불교신문>(2011.8.13), 고경스님 ‘독립유공자’ 선정 .
162 ∙佛敎硏究 제48집

용, 문화 등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개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첫째, 卍黨은 1930년 서울에서 출범한 항일 비밀결사체이었다.
만해 한용운을 추종하는 불교청년들이 순교적 자세로 식민지 불
교체제의 극복, 불교대중화를 위해 헌신하기 위한 결사체이었다.
18명에서 출발하였지만 전국적으로, 국내외에 걸쳐 80여명의 당원
이 가입하였다. 불교청년총동맹의 활동, 자주적인 승려대회의 개
최, 종헌체제의 가동 등 중앙의 불교 교단의 움직임의 내면에는
만당의 활동이 관철되었다.
둘째, 만당은 1932년 후반, 내분으로 인해 일제에 노출될 위험
에 처하였다. 이 내분은 교단 운영에 대한 당원들의 이질적 인식,
당규의 위반 등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래서 총동맹 위원장으로
피선된 최범술은 당원 보호를 위해서 1933년 4월 만당의 해산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최범술은 외형적으로 만당의 해소를 단행했지
만, 내면적으로는 지속적인 투쟁을 위해 그 거점을 다솔사로 이전
시켰다. 그래서 만당은 다솔사에서 재정비되었고, 다솔사는 항일
과 민족의식 정비의 거점이 되었다.
셋째, 다솔사에는 만당 당원, 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지식인, 승
려 등이 왕래하는 경남지방의 명소가 되었다. 이른바 민족의식을
창출하고, 민족운동을 추진하는 거점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배경
에서 다솔사에는 불교 강원과 광명학원이 개설되었다. 강원은
1933년 후반에 개설되었는데 원장은 김법린이었고 강사는 최범술,
김범부, 강고봉 등이 담당하였다. 그러나 다솔사 강원은 1935년에
해인사 강원과 합병되었다. 광명학원은 1937년 4월 다솔사 인근의
원전에 세워졌다. 최범술이 지역 주민, 강사인 김동리와 합의하여
출범시켰다. 낮에는 50여명의 지역 청소년들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하였으며, 밤에는 지역 청소년의 문맹타파를 위한 야학교
육을 하였다. 이 학원은 1942년 6월 문을 닫을 때까지 그 지역 교
육, 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김동리는 다솔사와 원전에
거주하면서 그의 소설의 모티브를 채록하였다. “등신불”은 한용운
다솔사와 항일 비밀결사 卍黨 ∙ 163

과 김범부의 대화에서 착안한 것으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었다.


넷째, 다솔사에는 일제의 감시가 엄중하였다. 그 결과로 다솔사
에서 저항, 항일 활동을 하였던 최범술, 김범부는 일제에 체포, 구
속되었다. 그는 만당의 노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는 이른바
만당, 만해당의 검거 선풍이었다. 이런 구도에게 한용운, 최범술과
연고가 있었던 다수의 승려들도 체포, 고문을 당하였다. 해인사
강백 이고경은 합천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죽음에 이르
렀다. 요컨대 다솔사는 항일, 저항, 감시, 체포, 구속이라는 민족운
동과 식민통치가 맞부딪혔던 치열한 현장이었다.
이상과 같이 근대기 다솔사의 역사를 만당을 중심으로 살펴 보
았다. 이런 다솔사 역사는 다솔사 만의 역사가 아니다. 그는 근대
불교민족운동사, 경남 지방사, 사천 지역사 등의 역사이었다.
164 ∙佛敎硏究 제4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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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orrelation between Dasolsa Temple and the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Mandang
- Han YongWoon, Choi BumSul, Kim BumBu, Kim DongLee
One side of history -
Kim, Kwang Sik
Dongguk Univ.
This review summarizes the relationship between
Dasolsa Temple(Sachuan in Gyeongnam) and Mandang,
which is known as a Buddhist-style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Despite the fact that it has a history of
1,500 years, it has also become an important object in the
modern period from the standpoint of the Buddhist
independence movement. He is a history that has been
developed with the help of Choi BumSul.
Choi Bumsul is a member of Native Sachuan, where is
Dasolsa Temple located, and has participated in a variety of
activities such as participating in the March 1 Movement,
Haeinsa Temple, a member of the Constitutional Assembly,
the General Secretary of Buddhism, and the founder of
Haein Dae (Kyungnam University). He led the Buddhist
youth movement following Han Yongwoon under Japanese
rule. He was the executive chairman of the Chosun
Buddhist Youth Alliance and a member of the Mandang
Party. By the way, the self-sacrifice was resolved in 1933
by internal affair.
However, the members of the per capita kept visiting
the national ceremony when they visited the ceremony
where Dasolsa Temple. Kim bunglin and Huh Youngho,
168 ∙佛敎硏究 제48집

who were party members, stayed at the ceremony. And in


the mid-1930s, Daithol founded the Buddhist Gangwon(講院)
and Gwangmyeong(광명학원) that to educate monk studying
and local children. There was Kim Bumbu, an orientalist in
Gangwon, and Kim Dongri, a younger brother of Kim
Bumbu, was a teacher.
And it became a famous place of Gyeongnam province
where patriot governors, independence activists, literati,
intellectuals, and monks go and go. In other words, it was a
base for creating national consciousness and promoting
national movement. So the Japanese police always
monitored. Under this presupposition, the history of the
national movement and the anti-Japaneseism is deeply
inferred.
This review summarizes this history and culture based
on data and testimony. I hope that this article will be
helpful in the study of modern intellectuals such as Han
Yong Woon, Choi Bum Sul, Kim Bum Bub,
Key Words :
Dasolsa Temple, Mandang, Han YongUn, Choi Bumsul, Kim
Bumbu, Kim Dongri,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투고일 2018. 01. 03 | 심사기간 2018. 01. 05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2
 불교연구 제48집(2018), 169~201쪽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김혜원* 102)

Ⅰ. 서론
Ⅱ. 중국에서 전승된 筆削記
1. 대장경에 수록된 筆削記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3. 중국 전승의 의미
Ⅲ. 조선에 전래된 筆削記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3. 筆削記의 私記
4. 조선 전래의 의미
Ⅳ. 일본에 전래된 筆削記
1. 筆削記의 간행
2. 筆削記의 주석서
3. 일본 전래의 의미
Ⅴ. 결론

*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freehwk@hanmail.net


170 ∙佛敎硏究 제48집

요약문
본 논문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유통되었던 장수자선(長水子璿,
965-1038)의 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이하 필삭기)의 서
지학적 연구를 통해서 필삭기가 불교사에서 갖는 의미와 특성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필삭기를 살펴보고, 다음에
필삭기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과정과 간행 현황을 검토하였다. 마
지막으로 일본에서 유통된 필삭기 판본과 주석서들을 정리하였다.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었
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續法)이 필삭기를 회본(會本)형식으로
편집한 기신론소기회열(起信論疏記會閱)(이하 회열)을 통해서 유
통되었다. 회열에서는 필삭기 이외에도 저자 소개와 저술 동기
및 그의 사상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조선에서는 중국의 가흥장본(嘉興藏本)이 유입되어 성총(性聰)이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을 제작하고, 해
원(海源)이 필삭기를 복각(復刻)하였다. 이는 이후 강원(講院)의 사
교과(四敎科)의 편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필삭기의 사기(私
記)가 일부 남아있다.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회본(會本) 형식의 판본이 없
다고 추정한다. 일본의 필삭기연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주석서
찬술에 있다. 예컨대 즉중(卽中)은 대승기신론소기이변초(大乘起信
論疏記易辨抄)와 기신의(起信義) 등을 찬술하여 필삭기를 주석
하거나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주제어 :
장수자선(長水子璿), 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
회본(會本), 사기(私記)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1

Ⅰ. 서론

북송대에 晉水淨源(1011-1088)은 大覺義天(1055-1101)이 화엄전


적을 가져온 일을 계기로 화엄을 부흥시켰고, 이 과정에서 長水子
璿(965-1038)을 송대화엄조사로 추대하였다.1) 일본화엄에서는 자
선과 정원의 이름에 똑같이 “水”라는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그들
을 “二水”라고 일컬었고, 道亭·観復·師会·希迪 “四家”를 합해서 “二
水四家”라고 하였다.2) 자선의 저작 가운데 起信論疏筆削記(이하
필삭기)는 石壁傳奧(생몰년 미상)의 大乗起信論随疏記(이하 
수소기)를 재편집한 주석서이다. 필삭기에서 자선의 주장을 파
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이 자선의 주장이고 어느 부분이 전오
의 언설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수소기가 현존하지 않기 때
문에 두 사람의 논의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필삭기에서 자선의 사상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 서지학
적 검토이다. 필삭기는 이후 중국과 조선 그리고 일본 동아시아
3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간행되고 연구되었다. 이러한 전승과
전래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동아시아불교에서 필삭기가 갖는 의
미와 이 책에 담겨진 자선의 사상을 추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다. 그런데 이제까지 동아시아에서 이뤄진 필삭기에 대한 문헌
학적 연구는 제한적이었다.3)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바탕
으로 동아시아에서 유통되었던 필삭기의 서지사항을 정리하고,
필삭기가 불교사에서 갖는 의미와 특성을 찾아보겠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필삭기를 살펴보고, 다음에 필삭기가 우리나
1) 吉田 剛(1997), 1.
2) 吉田 剛(2000), 159의 각주3번에서는 二水四家라는 호칭을 일본화엄계에서
처음 사용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3) 吉田 剛(2000)이나 高峰了州(1979)처럼 자선의 사상을 송대화엄연구의 일
부로서 소개하거나 개설한 것이 대부분이다.
172 ∙佛敎硏究 제48집

라에 유입된 과정과 간행 및 영향을 검토하겠다. 마지막으로는 일


본에서 유통된 필삭기 판본과 주석서들을 알아보겠다.

Ⅱ. 중국에 전승된 筆削記


圭峰宗密(780-841)은 大乘起信論義起(이하 의기)를 요약하고
보완하여 大乘起信論疏(이하 기신론소)를 지었고, 전오는 기
신론소를 주석한 수소기를 찬술하였다. 자선은 1030년경에 전
오의 수소기를 가감하여 필삭기를 저술하였다고 하는데,4) 이
는 중국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첫째는 자선이 입적한
이후에 제조된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해졌고, 둘째는 續法
(1641-1728)이 필삭기를 會本형식으로 편집하여 만든 起信論疏
記會閱(이하 회열)을 통해 유통되었다. 중국의 필삭기판본은
조선과 일본으로, 중세에서 현대까지 전승되었고, 조선과 일본에
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방식의 필삭기 유통 양상을 보여주었
다. 여기에서는 각각의 대장경에 수록된 필삭기의 간략한 서지
정보와 회열의 특성을 살펴보겠다.

4) 필삭기는 자선의 다른 저서인 首楞嚴義疏注經이나 金剛經纂要刊定記


와는 달리 서문에 간기가 쓰여 있지 않고, 여타 관련 자료에서도 필삭기
의 정확한 간행연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起信論疏記會閱卷首卷1 記
主長水大師略錄 (X45, 541c-542a), “仁宗天聖年間 撰楞嚴義疏十卷 并科旨二
篇 丞相王公 序以冠首 次又出金剛經刊定記 并起信論疏筆削記 並盛傳於世。
(1023-1032년에 楞嚴義疏10권과 科旨2편을 찬술했다. 丞相 王公이 서
문으로 첫머리를 장식했다[冠首]. 다음에는 금강경간정기와 기신론소필
삭기를 출간해서, 모두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라고 하였다. 이 부분을
보면, 1023-1032년에 필삭기가 저술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3

1. 대장경에 수록된 筆削記


 필삭기는 1100년경에 간행된 대장경부터 2000년대에 편찬된
대장경까지 여러 대장경에 수록되었다. 필자는 趙城金藏本·嘉興藏
本·乾隆藏本·頻伽藏本·佛敎藏本·中華藏本 총 6종의 대장경에 수록된
필삭기를 확인하였다. 이 가운데 4종의 판본에서 특이사항을 발
견하였다. 첫째 1589년부터 약 70년간 제작된 明 嘉興大藏經 124
권에는 필삭기20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본에 대한 언급은 없
다.5) 매 권의 말미에는 한자 독음[音切]과 시주자·판각자·필수자
등의 서지 정보가 실려 있는데, “萬曆 辛卯(1591년) 봄에 淸涼山
妙德庵에서 필삭기를 적었다[識]”6)고 한다. 이 판본은 이후 조
선에 유통되어 성총이 회본을 제작할 당시에 저본으로 삼았다.
둘째 1738년에 완성된 乾隆大藏經에는 필삭기15권이 들어있
다. 그 내용은 嘉興藏本과 동일하고, 卷의 구분은 앞서 두 판본과
다르다. 1-3권까지는 가흥장본의 1-3권의 구분과 일치하고, 나머
지 4-15권은 가흥장본의 4-20권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다. 가흥
장본과 마찬가지로 저본에 대한 언급은 없고, 권 말미마다 한자
독음과 한자의 간단한 풀이[音釋]가 있다. 마지막 15권 말미에는
玉峯可堂 師會가 찬술한 南山高麗講起信玄敍 가 첨부되어 있는
데,7) 글의 마지막에는 “嘉定 庚辰(1220년) 中元日(7월 15일)에 眞
如賢首敎院住持傳敎 止堂 戒月이 삼가 썼다[敬書]”고 적혀있다.8) 건
5) (明版)嘉興大藏經권124(1987)에는 판본정보가 없는데, cbeta에서 제공하
는 嘉興藏의 필삭기를 검색해보면 첫 번째 각주에서 신수대장경과 동일
한 판본정보를 제공하였다.
6) (明版)嘉興大藏經권124(1987), 475.
7) 吉田 剛(1999), 586에 따르면, 師會(1102-1166)는 五敎章 주석가인 四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杭州 慧因院을 중심으로 저술활동을 펼쳤다. 慧因寺는
북송대에 고려의 의천이 가져온 전적을 활용하여 화엄을 부흥시킨 淨源이
주석했던 곳으로서 화엄학을 전파했던 十方敎院이다 따라서 南山高麗講起
信玄敍 의 “南山高麗”는 “南山高麗慧因寺”를 가리킨다고 추정한다.
8) 乾隆大藏經권145(2005), 400. 이 글은 기신론 주석서의 재조명에 초점을
174 ∙佛敎硏究 제48집

륭대장경은 이후 1997년 대만의 傳正有限公司에서 간행한 龍藏과


2005년 대만의 華藏淨宗學會에서 출간한 乾隆大藏經으로 출간되었
는데, 龍藏105冊과 乾隆大藏經145冊에 필삭기가 실려 있다.
셋째 佛敎大藏經 67冊 論疏部에 필삭기20권과 과문이 수록되
어 있다. 頻伽藏本을 저본으로 삼았고, 그것과 인쇄상태가 유사하
다. 이 대장경은 1978-1984년에 대만의 佛教出版社에서 간행하였
고,9) 이후 1982년에 부산의 古典讀書會에서도 영인하였다.10) 넷째
1997-2004년에 북경의 중화서국에서 출간한 中華大藏經92冊에는 
과문과 필삭기, 그리고 교감기가 실려 있다. 교감기를 보면 가
흥장본[明徑山藏]을 저본으로 하고, 건륭대장경[淸藏]을 이본으로
사용했다고 한다.11) 가흥장본을 본받아 필삭기본문을 20권으로
나누고, 건륭장본에 수록된 師會의 南山高麗講起信玄敍 를 차용하
여 20권 말미에 첨부했다고 추정된다.

2. 續法의 起信論疏記會閱
1) 起信論疏記會閱의 구성
중국에서는 續法이 회열10권을 제작하였다. 회열은 크게 卷
首와 10卷으로 구성되어 있다. 10卷은 편집본의 구체적인 내용으
로서 科段에 따라 배대된 기신론소와 필삭기가 수록되어 있
맞추고 있고, 내용을 간추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馬鳴가 기신론을 짓
고 龍樹[龍阿周那]가 번역했으며, 法藏[康藏和尙]과 澄觀[淸凉和尙]과 宗密
[圭峰尊者]이 주석서를 지었다. 이후 子璿[長水]이 傳奧[石壁]의 번다한 문
장을 편집하여 필삭기를 만들어서 후대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 주석서
의 版이 닳아 오랫동안 유통되지 못함을 안타까워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고 한다.
9) 佛敎大藏經권67(1978-1984).
10) 佛敎大藏經권67(1982).
11) 中華大藏經권92(2004), 927.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5

고, 각 권의 말미마다 독음과 간단한 해석[音釋]이 첨부되었다. 卷


首에는 起信論疏記會閱總目 · 起信論疏記會閱緣起 · 大乘起信論疏
科文 · 法界宗五祖略記引 · 法界宗五祖略記 · 論主馬鳴菩薩略錄 ·
記主長水大師略錄 · 起信論法相 · 起信論釋教義中詮真妄生滅法相之
圖 · 起信論疏記會閱序 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자선이나 필삭기
에 관련된 장으로는 法界宗五祖略記 와 記主長水大師略錄 과
大乘起信論疏科文 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法界宗五祖略記 는 화엄종 최초의 祖燈說로 간주된
다. 여기서 말하는 五祖는 帝心杜順-雲華智儼-賢首法藏-清凉澄觀-
圭峰宗密이다. 이후 1804년에 景林心露와 興宗祖旺 등이 편찬한 
寶通賢首傳燈錄에서는 “화엄의 오조설”을 기반으로 賢首를 初祖
로 “현수의 조통설”을 수립하였다. 현수의 조통설은 賢首法藏-清
凉澄觀-圭峰宗密-妙圓傳奧-開明普朗-圓顯法現-靈光洪敏-長水子璿-
晉水淨源-神鑑希冲-道鳴妙觀-玉峯師會 등으로 이어진다. 자선은 이
가운데 현수 제8세손에 이름이 올랐다. 현수 12세손인 玉峯師會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필삭기에 관한 南山高麗講起信玄敍 을 지었
고, 이는 이후에 건륭장에 필삭기와 함께 수록되었다. 이상의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 현수의 조통이 자선과 자선의 문인인 사
회에게까지 이어졌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法界宗五祖略記 에서는 자선의 교학사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 반면에, 記主長水大師略錄 (이하 략록 )에
서는 여러 전기를 종합하여 작성한 자선의 전기를 제시한다. 속법
은 자선을 화엄의 조통설에 편입시키지는 않았으나, 기신론 저
자의 전기서술인 論主馬鳴菩薩略錄 다음에 자선의 전기기술인
략록 을 수록하였다. 략록 은 자선의 전기자료를 망라하여 편년
체 형식으로 서술한 글이다. 大乘起信論疏科文 은 법장이 제정
[定]한 것을 종밀이 기록[錄]하고, 그것을 다시 자선이 수정[修]하
고, 속법이 편집하며 京曾이 교열[閱]하였다고 한다.12) 회열은
12) 大乘起信論疏科文 起信論疏記會閱卷首권1(X45, 520a), “唐 西京太原沙
門法藏 定 唐 終南草堂沙門宗密 錄 宋 秀州長水沙門子璿 修 清 錢
176 ∙佛敎硏究 제48집

처음으로 자선의 과문 을 실은 문헌으로 추정된다.13)


2) 起信論疏記會閱의 간행경위
(1) 起信論疏記會閱緣起
起信論疏記會閱緣起 와 起信論疏記會閱序 에서는 회열의 간
행경위와 필삭기에 대한 속법의 관점을 엿볼 수가 있다. 康熈丁
卯(1687년) 佛歡喜日인 7월 15일에 續法이 쓴 起信論疏記會閱緣起
에서는 그가 마명의 기신론 저술, 역자인 진제·실차난타의 기
신론번역, 법장-전오-자선으로 이어지는 기신론주석서의 찬술
과정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속법 자신이 회열
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였는데, 그 일부를 보
면 다음과 같다.
康熈乙巳년(1665년)에, 내가 蓮居에 있을 적에 靈滄法伯의 강의를 듣
고는14) 기신론 본문과 疏·記의 의미를 상세히 연구하여, 3조 賢首國
師가 <화엄>宗의 判敎를 수립하고 三乘頓漸의 극치를 발휘함이 모두
기신론에 빙자하였음을 진실로 알았다. 戊午(1678년) 가을에 順天府
府丞戴 復齋선생님께서는 내게 기신론을 해석해보라고 권하셨다. 己
未(1679년) 여름에 강의를 열고 疏를 달 적에 선생께서 기신론 백여
권을 인쇄하여 보시해 주시고, 아울러 私註疏本을 보여주시며 말씀하
셨다, “내가 道에 들어감에 실로 이 論疏를 發覺의 初因으로 삼았다.”
塘慈雲沙門續法 編 清 順天府府丞戴京曾閱”
13) 회열이 나오기 이전에는 新編諸宗教藏總錄(이하 의천록)권3(T55,
1175)에서 과문 에 대해 언급만 했을 뿐 과문 의 본문을 기록한 책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
14) 慈雲伯亭大師古希紀(自識實行) 伯亭大師傳記總帙(X88, 394a), “二十四五
蓮居學性相宗 聖先法師聽唯識 靈滄法師聽起信(25살에는, 蓮居에서 性相宗
을 배우고, 聖先法師에게 唯識강의를 들으며, 靈滄法師에게 기신론강의
를 들었다.”고 했다. 靈滄法師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찾아내지 못했으나,
그가 기신론을 강의하였다는 사실은 다른 전거자료를 통해서도 추측
이 가능하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7

가만히 읽어보고서야 선생께서 기꺼이 林泉에 머물렀던 뜻이 오직 佛


法에 있음을 믿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두 달도 안 되어 要解2권을 정
리하였다. 선생께서 보시고는 사람을 시켜 베끼게 하시고 <그것을>
상자에 보관하셨다. 10월에 선생은 기신론소[舊疏]4권과 필삭기20
권이 모두 각각 <다른> 책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구두도 찍혀있지 않
아서 학자들이 대조하여 보기가 곤란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내게
명하시길 疏와 記의 會本을 만들고 章段에 구두를 찍는데 힘쓰며, 문맥
에 따라서 註와 疏의 문장에 科判을 하여 저마다 제자리에 배대하라고
하셨다.15)
속법은 復齋선생님을 만나기 이전인 1665년에 靈滄法伯의 기신
론 강의를 통해 기신론주석서를 연구하였다. 1678년에는 復齋
선생님의 권유로 기신론연구를 시작하였다. 1979년 이후에는 선
생님이 개인의 연구노트[私註疏本]와 강의배포용 기신론100여권
을 제공해 주었기에 속법은 강의와 주석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속법은 要解2권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는
선생님께서 필삭기와 기신론소가 각각 간행되어 비교하면서
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두도 찍혀있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
고는 속법에게 두 주석서를 과단에 따라 배열한 일종의 합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고, 이후 속법은 회열 제작에 돌입했다.
여기서 선생님이 속법에게 준 私註疏本과 속법이 그것을 읽고 정
리한 要解2권이 현존한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더라도, 그들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논의하면서 회열이
라는 새로운 필삭기 편집본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이 자료에서
15) 起信論疏記會閱緣起 起信論疏記會閱卷首(X45, 518a-b), “康熈乙巳年 予
在蓮居 聽靈滄法伯講 細研論文 并疏記意旨 洵知三祖賢首國師立宗判教 發揮
三乘頓漸之極致 皆憑於此論矣 戊午秋 順天府府丞戴復齋先生 勸予出論解 己
未夏開講疏時 先生印施論文百餘卷 兼以私註疏本示曰某之入道 實以此論疏
為發覺初因也 靜閱之 始信先生好處林泉者 志在於佛法耳 後予不兩月 摘成要
解兩卷 先生目之 即命人謄錄 藏於篋中 十月間 先生因舊疏四卷 記二十卷 咸
各自為帙 亦未句讀 學者難於披對 重命予為疏記會本 務須章段句讀 並順條理
科註疏文 各安其所”
178 ∙佛敎硏究 제48집

도 파악할 수 있다.
(2) 起信論疏記會閱序
起信論疏記會閱緣起 을 기술한 지 3년 만인 康熙庚申(1680년) 7
월 17일에 속법이 쓴 起信論疏記會閱序 의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는 기신론을 개설하였고, 후반부에서는 필삭기와 회편의
간행이유를 간략히 언급하였다. 두 주석서의 간행이유를 설명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疏가 심원하여 利根機에만 이르니, 神이 寂照함이 아니면, 그 연원을
알 수가 없다. 圭山大師는 中下의 根機를 위하여 精要한 내용을 뽑아
論 밑에 바로 기록하였다. 石壁法師는 註가 <너무> 함축적이라고 생
각하여 部函에서 <관련내용을> 수집하여 그 疏를 상세하게 풀이하였
다. 長水大師는 淸淨本然을 깨달은 연후이자 佛祖心口16)를 경험한 이후
이 論疏를 경사스럽게 여겨 주석을 달기를 주저하다가, 문구의 의미가
너무 번다하거나 간략한 것을 살피고 상술[述作]17)의 장단점을 감안하
였다. <그리고는 너무> 상세한 주석의 경우에는 그 상세한 부분을 간
략히 만들어 정신을 어지럽지 않게 만들었고, <너무> 간략한 주석의
경우에는 그 간략한 부분을 자세히 풀이하여 源流에 어둡지 않게 하였
다. 세밀하게 편집을 하였기에 “筆削”이라 이름 한다. 그런데 또 疏와
記가 따로 간행되어 일찍이 合本이 없었는데, 復齋선생께서 후학들이
통합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울까 걱정하시어 거듭 分會를 요청하셨다.18)
16) 知訥, 해주스님 외 역(2009), 345-346에는 “於是 置卷長歎曰 世尊說之於口
卽爲敎 祖師傳之於心卽爲禪 佛祖心口 必不相違 豈可不窮根源 而各安所習
妄興諍論 虛喪天日耶(이에 경전을 놓고 길게 탄식해서 말하기를, “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은 곧 교(敎)가 되고,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은 곧 선
(禪)이 된다. 부처님과 조사의 마음과 입이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 않으
니, 어찌 근원을 궁구하지 않고 각자 익힌 바에 안주해서 망령되게 쟁론
을 일으키며 헛되게 세월만 죽이겠는가?”라고 하였다.)”라고 나온다.
17) 述而 論語,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옛것을 傳述하되 창작하
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가만히 우리 老彭에게 견주노라).”
18) 起信論疏記會閱序 起信論疏記會閱卷首(X45, 546b), “疏既曠遠 獨逗利機
神非寂照 叵測淵源 圭山大師 為中下之根 更搜精要 直錄於論 石壁法師 因簡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79

의기의 수준이 높아서 일반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종밀은, 의기의 핵심내용을 간추려 기신론 본문에 배
대하여 기신론소를 만들었다.19) 전오는 기신론소조차도 너무
함축적이라고 판단하고 부연설명을 덧붙여 수소기를 지었다. 자
선은 기신론소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만든 수소기에 관해 평
가하는 것을 처음에는 주저했다. 淸淨本然을 깨달은 연후이자 佛
祖心口를 체험하고 나서 論疏의 우수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하
는데, 이러한 각성이나 체험은 慧覺과의 참견20)을 통해 이루어졌
奧之註 採集部函 詳解其疏 長水大師 悟清淨本然之後 驗佛祖心口之餘 慶斯
論疏 猶豫釋文 審句義之繁約 勘述作之利弊 詳者略其詳 自不煩於神思 略者
詳其略 則不昧於源流 細為折衷 命名筆削 然又疏記別行 未曾總帙 復齋先生
憫後進之難通 重請分會”
19) 大乘起信論疏卷1(L141, 84b), “西太原寺沙門法藏述 草堂沙門宗密錄之隨科
注於論文之下(西太原寺의 사문인 法藏이 기술하고, 草堂사문 宗密이 기록
하고 기신론본문 밑에 科段에 따라 주석을 달았다.)”라고 하였다. 大
乘起信論疏를 현수소로 약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김천학(2015), 43에
서는 大乘起信論疏가 단순히 의기요약본이기 보다는 종밀의 기신론
해석의 일단을 드러내는 글이라고 판단하여 종밀소라고 하였다.
20) 嘉興府長水子璿講師 嘉泰普燈錄권3(X79, 306c), “敏拊而證之 然欲探禪源
罔知攸往 聞瑯瑘道重當世 即趨其席 值上堂次 出問 清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
地 瑘憑陵答曰 清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師領悟 禮謝曰 願侍巾瓶 瑘謂曰
汝宗不振久矣 宜厲志扶持 報佛恩德 勿以殊宗為分也 乃如教 再拜以辭 後住長
水 承稟日 顧四眾曰 道非言象得 禪非擬議知 會意通宗 曾無別致 由是二宗仰
之 甞疏楞嚴等經 盛行於世(홍민이 <자선을> 붙들고 깨닫게 해주었으나,
禪源을 탐구하려 함에 어디로 가야 할 줄 몰랐다. 瑯琊의 도가 당시에 막
중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법석으로 달려가, <瑯琊가> 상당할 적에 물
었다, “청정본연한데 어떻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기나이까.” 瑯琊가 빙
자[憑陵]하여 답하였다, “청정본연한데 어떻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기겠
는가.” <이에> 자선이 깨닫고는, 감사의 절을 드리고 말하였다, “원컨대
시봉하고자 합니다.” 瑯琊가 말하였다, “너의 宗이 떨쳐지지 못한지가 오
래되었으니, 마땅히 굳건한 의지로 부지하여 부천님의 은덕에 보답해야
지, 다른 宗을 개의해서는 안 된다.” 이에 가르침대로<한다 하고는> 다
시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拜辭]. 이후 長水에 머물렀는데, 承稟日에 대중
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道는 言象으로 터득할 바가 아니고, 禪은 분별
[擬議]로 알 바가 아니다. 의미를 깨닫고 현묘에 통할 적에는 일찍이 다
른 이치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두 宗<파의 사람들이> 모두 <자선을>
180 ∙佛敎硏究 제48집

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는 수소기가 갖고 있는 문제점


을 파악하고 재편집하여 필삭기를 지었다. 여기까지가 필삭기
의 간행경위를 기술한 부분이고, 이후에는 필삭기를 회열로
만들게 된 연유를 설명한다. 復齋선생은 후학들이 필삭기를 볼
적에 기신론소를 함께 놓고 봐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기신
론 주석서들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게끔 속법에게 회편을 만
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3. 중국 전승의 의미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
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이 필삭기를 會本형식으로 편집한 
회열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중국의 필삭기는 시간적·공간적 제
약을 뛰어넘어 전파되었다. 1030년경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
필삭기는 1100년경에부터 2000년대까지 6종의 대장경에 수록되
었다. 이 가운데 가흥장본은 이후 조선에 유입되어 회편으로 재
편되거나 복각되었다. 건륭장본에서는 필삭기를 20권에서 15권
으로 재편집하였는데, 이는 龍藏이나 乾隆大藏經으로 현대에 출간
되었다. 여기에는 현수12세손인 師會가 필삭기에 대해 쓴 敍가
첨부되어 있는데, 中華藏本에서는 사회의 敍를 차용하였다. 佛敎藏
本에 수록된 필삭기와 과문은 대만과 부산에서도 영인되었다.
이와 같이 대장경에 수록된 필삭기는 중국에서 조선으로, 중세
의 중국에서 현대의 대만과 한국으로 유통되었다.
속법의 회열은 단순히 필삭기를 기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소개와 저술 동기 및 그의 사상사적 위치까지 가늠할 수 있
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法界宗五祖略記 에서는 화엄의 조통설을
우러러 사모하였다. 일찍이 능엄경 등의 경전에 疏를 달아 세상에 성
행시켰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1

처음 수립하여 이후 현수조통설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는데,


이후 현수조통설에는 자선이 편입되었다. 記主長水大師略錄 은
이전의 자선에 관련된 전기 자료를 망라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해
서 보여준다. 大乘起信論疏科文 역시 의상의 신편제종교장총록
같은 목록집에 책명이 거론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열에 처음
과문 의 내용이 수록되었다고 추정된다. 起信論疏記會閱緣起 과
起信論疏記會閱序 에서는 속법이 復齋선생의 부탁을 받고서 기
신론 본문과 기신론소와 필삭기를 합본하여 보기 편하도록
만들게 된 경위를 상술하였다. 회열에서 제공한 필삭기의 간
행경위와 자선의 전기정보 역시 이후 자선의 연구에 영향을 끼쳤
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Ⅲ. 조선에 전래된 筆削記


 필삭기는 고려시대에 이미 목판본으로 존재했다는 주장21)이
있으나, 이 외의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필삭기가 본격
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라고 추정한다.
栢庵性聰(1631-1700)은 임자도에 중국선박이 정박했을 때 그 안에
서 가흥장본 필삭기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會編을 제작하였
고, 이는 강원의 사교과 구성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이
후에 그의 제자인 涵月 海源(1691∼1770)은 필삭기자체를 復刻
하였고, 그 밖에도 필삭기관련 私記 등이 기술되었다. 이번 장에
서는 성총의 회편과 해원이 복각한 필삭기의 유통과정을 살
펴보고, 회편과 필삭기의 私記와 간행년 미상의 筆削記卷2
21) 이종수(2008), 284의 각주 47번에 따르면, 필삭기는 현재 보물 제
734-18호로서 3판이 해인사 대장경판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에 있
다고 한다.
182 ∙佛敎硏究 제48집

을를 소개하겠다.

1. 性聰의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필삭기를 會編의 형식으로 처음 조선에 유통시킨 사람은 性
聰이다. 1681년 중국에서 가흥대장경을 선박에 실어 일본으로 가
던 도중에 배가 난파되어 荏子島에 정박하였다. 이 때 성총이 표
류선으로 가서 남아 있는 佛書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澄光寺와 雙
溪寺 등의 사찰에서 197권 5000여 판의 책들을 復刻 혹은 改刊하
였다.22) 그 중에는 가흥장본필삭기도 들어있었다. 성총은 이를
바탕으로 지리산 雙溪寺에서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4권을 간행
하였다. 그는 康熙 乙亥(1695년) 重陽月(9월 9일)에 쓴 序文에서 
필삭기의 유입시점과 회편의 간행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
했다.
<부처님 멸도> 6백년 후에 大光明佛의 후신이 있었는데, 百本了義
經을 모아서 마침내 이 기신론을 저술하여 중국으로 유입시켰다. 唐
賢首大師가 疏를 지어 해석하였다. 뒤를 이은 石壁大師가 隨疏記[廣
記]를 지어 해석했는데, 실로 지나치게 번잡했다. 長水法師는 <隨疏記
를> 필삭하고 절충하여 <필삭기를 지었는데, 이는> 起信論<의
의미>에 부합하고 疏<의 의미>에 통하는 가장 적당한 <주석서>였
다. <그런데> 우리 海東에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하다가, 지난 辛酉
(1681년)에 다행스럽고 기이하게도 <필삭기가> 보급되어 강학하는
자들이 귀중한 보배를 얻은 것처럼 여겼다. 다만 疏와 記가 별도로 간
행되었기에, 자못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지혜롭지 못한데도 모자람을
헤아리지 않고서 함부로 붓을 잡고는 一家<의 주석서>를 편성하여 
기신론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봄에 쉽게 了義를 알 수 있게
하였으니, 실로 초학자에게 편리할 것이다.23)
22) 이종수(2008), 260; 同(2013), 329-335.
23) 刻起信論䟽記會編叙 大乘起信論䟽筆削記會編(H8, 654), “距六百歲 有大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3

서문에서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성총은 임자도의


표류선에서 처음으로 필삭기를 보았다. 둘째, 그는 嘉興藏의 
필삭기를 그대로 복각하지 않고, 기신론소와 필삭기를 배대
해서 회편을 편찬하였다. 그는 科段에 따라 기신론소의 구절
을 배열하고, 다시 그 구절들에 대한 筆削記의 설명 부분을 배
치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기신론소와 필삭기를 배
대하여 회편을 제작한 것은 속법의 회열과 그 편집형태가 유
사하다. 간행경위도 후학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성총의 필삭기 간행은 이후 사교과목의 구성에도 영향
을 끼쳤는데, 朝鮮佛教通史卷3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栢庵이전에는 화엄경<주석서로>는 疏本만 있고 演義鈔는 없었
으며, 起信論筆削記와 般若經刊定記도 없었기에 四教大教가 완비되
지 못했다. <그러다가> 康熙辛酉(1681년)에 배 한 척이 荏子島에 이르
렀는데, <그 배는> 佛書를 가득 싣고 있었다. 거기서 演義鈔와 華
嚴經80권, 그리고 筆削記와 刊正記를 발견한 栢庵대사는 <그 서
적들을> 목판으로 만들어 인쇄하고 유포했다. 그제야 비로소 四教大教
가 완비되었다.24)
처음에 원각경·금강경·능엄경·금강경으로 이루어졌던
光明佛後身 宗百本了義經 遂著斯論 繹流支那 唐賢首大士 造疏以釋 嗣後石
壁師 作廣記以解之 實傷繁冗 長水法師 即筆削而折中 節論通疏 最爲切當 我
海東則未有聞 去辛酉 幸異波及 講學者如獲重寶 但疏記別行 尋討甚艱 不慧
於是 不揣凡愚 妄自操觚 編成一家 使讀論者 一轉易見了義 實便於初學也”
성총 편, 수정 등 역(2005), 30-31; 성총 편, 대진 등 역(2008) 7-8의 번
역 참조.
24) 朝鮮佛教通史권3(B31, 695a), “栢庵以前 華嚴經但有䟽本 無有演義抄又未
有起信論筆削記 般若經刊定記 四教大教 未得全完 康熙辛酉 海舶 忽自至荏
子島 滿載佛書 其中得演義抄本華嚴經八十卷 及筆削記刊定記 栢庵大師刊于
木板 印刷流布 四教大教 始克全完”
184 ∙佛敎硏究 제48집

사교과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신론이 법화경의 자리를 대


신하였고, 이는 당시에 화엄교학의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
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25)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17세기에 성총
이 필삭기를 입수하여 회편으로 간행한 사실도 영향을 끼쳤
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성총의 회편은 현대의 강원에서 2종의
번역서로 출간되었다. 첫째는 2005년에 수정(秀靜) 등이 번역한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이고, 둘째는 2008년에 대진(大眞)·설각
(設覺) 번역한『(完讀)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1-2이다. 앞서의 번
역본은 기신론·의기·필삭기 가운데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
을 번역했고, 다음의 번역본에서는 기신론·의기·필삭기를
서문과 본문 의 반 정도의 분량까지 모두 번역했다. 2종의 번역본
모두 완역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3국에서 유일하게 현대어로 번역
된 책이다. 회편은 강원에서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2. 海源의 筆削記 復刻
가흥장의 필삭기를 會編하지 않고 그대로 復刻한 사람은 涵月
海源(1691∼1770)이다. 그는 1769년 安東 鳳停寺에서 起信論疏筆
削記20권을 복각하였다. 그가 乾隆 十八年(1753년) 癸酉 한 여름
에 쓴 重刊起信論筆削記序 26)을 보면 무슨 까닭에 성총의 회편
을 복각하지 않고 필삭기를 重刊했는지를 알 수 있다.

25) 김용태(2010), 290-292.


26) 海源의 重刊起信論筆削記序 의 판본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鳳停寺
에서 1769년에 판각한 起信論疏筆削記에 들어있고, 두 번째는 釋王寺에
서 1821년에 판각한 天鏡集에 들어있다. 여기서는 鳳停寺의 起信論疏
筆削記에 수록된 서문을 저본으로 하고, 釋王寺의 天鏡集에 들어있는
서문을 대조하여 교감하였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5

예전에 필삭기가 조선에 유통되지 않았을 적에는, 조선의 학자


가운데 기신론과 기신론소를 연구하는 자들이 <論과 疏>를 분석
하기 어려움[其盤錯之難剖游刃之未恢]27)을 문제로 여겼다. 얼마나 다행
인지 康熙辛酉(1681)에 覺海의 宗風이 불어 慈航28)을 정박시켜서 長水
의 필삭기가 조선[槿花鄕]을 비추게 되었으니, <이 筆削記는> 疏
외에 별도로 간행된 것이다. 栢庵長老가 疏 밑에 記를 적고 주석을 달
아 간행·유통되어 후학들의 안목을 넓혀주었으니, 이보다 다행인 일이
없다. 그런데 글자가 잘고 행간이 촘촘한데다가 시간이 지남에 목판이
닳아서 알아보기가 어려워진지가 오래였다. 그래서 翫月弘·楓嶽仁·虛明
珠·幻宇胤·南溟鵬·聖巖允·翠松惠·龍城海·赤洲禪·翠雲岸 여러 선사들이 재
물을 모아 기술자에게 시켜서 따로 간행된 가흥장본[別行唐本]을 수집
하여 간행에 힘쓴 것은 아마 널리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해서였으니,
그 불법을 지키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간절하도다. 老禪
도 다행이 이 일을 돕게 되어 천하에 널리 유포되어 미혹한 중생들을
깨우치기29)를 바랄 뿐이니, 그 공적이 진실로 크도다.30)

27) “盤錯”은 엉긴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盤根錯節”을 말하는데, 처리하


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遊刃”은 칼을 놀림을 말하는데, 일을 하는 데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養生主 莊子에서는 “以無厚入有間 恢恢乎 其
於遊刃 必有餘地矣(두께가 없는 칼을 두께가 있는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
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에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28) 불보살이 자비의 배로 생사의 바다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자항보도
慈航普渡라고 한다. 자항은 자주慈舟와 같다. 休靜, 김영욱 외 역(2012),
683 참조.
29) 義天[2010: 414] 각주 3번 참조 해석.
30) 重刊起信論筆削記序 起信論疏筆削記(1769, 鳳停寺本), “昔記之未東也 東
學之討論䟽者 病其盤錯之難剖 游刃之未恢矣 何幸康熙辛酉 覺海宗風 吹泊慈
航 長水之記 得暎槿花之鄕 則䟽外別行者也 栢庵長老 注記於䟽下 而繡梓流
傳 開後學之眼目 幸莫大焉 而字細行密 歲深板刓 難圖久遠故 翫月弘楓嶽仁
虛明珠幻宇胤南溟鵬聖巖允翠松惠龍城海赤洲禪翠雲岸 諸師鳩財命工 搜得別
行唐本 而汲汲於刊行者 惟恐傳之不廣 其護法利人之心勤且切矣 老禪亦得以
幸相斯役 庶幾廣流寰海 謦欬迷夢 厥功誠大矣”
이종수(2013), 348-349의 번역과 http://cafe.daum.net/sws0799/ 24MA/
84?q=%F9%BC%FA%B9%CB%AC%FD%F7%E3%F4%EB%B7
(2018.01.09)의 번역 참조.
186 ∙佛敎硏究 제48집

해원은 성총이 임자도에 표류한 선박에서 필삭기를 발견하고


는 이 책을 회편형식으로 출간하여 기신론소와 배대하여 볼 수
있게 만든 점은 높이 평가하였다. 다만 시간이 지나 회편의 글
자가 너무 잘고 행간도 촘촘한데다 목판까지 닳아서 보기가 힘들
어졌다고 판단하고, 필삭기 자체를 復刻하였다고 한다. 해원은
단순히 회편의 목판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필삭기
자체를 복각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글자크기나 닳은 목판
본이 문제였다면 글자크기나 행간을 조절하여 목판본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차치해 두고라도, 성총이 회편을 제작
하고 해원이 필삭기를 복각했던 1600년대 후반부터 1700년대까
지 필삭기에 대한 수요가 있었음은 자명하다.

3.  필삭기의 私記
성총의 회편과 해원이 복각한 필삭기의 판본이미지는 동국
대학교 불교학술원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http://kabc.dong
guk.edu/]에서 볼 수 있다.31) 아카이브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간략
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판본 소장처 인쇄 私記의 有無 1권 각권의 有無
2권 3권 4권
원각사 1695년
刻後刷 ㅇ ㅇ ㅇ ㅇ ㅇ
雙溪寺 동국대 1695년 刊 ㅇ ㅇ ㅇ ㅇ ㅇ
표충사 1695년
刻後刷 ㅇ ㅇ ㅇ
31) 남권희(2016), 63-64에서는 고려대장경 연구소에 필삭기권4와 과문
이 있다고 하였는데, 필자가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현존자료 소개
에서 생략한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7

지암정 1695년
1919년

사 後刷 ㅇ ㅇ ㅇ ㅇ
伽倻寺 원각사 1764년 ㅇ ㅇ
32) 刻後刷
1769년 刻
鳳停寺 동국대 1998년 ㅇ ㅇ ㅇ ㅇ
印經
용흥사 1695년
33) 刻後刷
[표1]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에서 서비스하는 필삭기 이미지
위에서 제시한 판본 가운데 원각사와 동국대 그리고 표충사에
소장된 쌍계사본에는 후학들이 적은 私記34)가 있는데, 주로 판본
의 가장자리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해당주석의 요약이나
단어풀이 혹은 과문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蓮潭有一의 起信蛇足이나 仁岳義沾의 起信私記 같은 講院의
私記로 추정된다. 동국대 도서관에는 앞서 말한 판본들 외에도 大
應이 筆寫한 筆削記卷2(간행년 미상)가 있다. 이 책에는 “論云”,
“疏云”, “眞如生滅二門”, “不覺”, “摩訶衍” 등의 단어가 나오기 때문
에 기신론에 관련된 서술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필
사본인데가 다른 판본처럼 論·疏·記의 구별이 정확히 이뤄지지 않
았다. 예컨대 책의 마지막 장 13-14줄에는 “第二卷終 大應 赤馬二
百十四 絶筆于圓通”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책이 자선의 필삭기
2권에 대한 일종의 私記인지, 아니면 大應이라는 사람이 쓴 필삭
기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상의 자료에 대한 연구는 차후
의 과제로 미뤄둔다.
32) 伽倻寺本은 성총의 회편을 복각한 것이다.
33) 2017년 12월 7일에 아카이브를 검색한 결과, 용흥사본은 서지정보만 제
공하고 이미지파일은 아직 업로드 되지 않았다.
34) 이종수(2017), 1-4에서는 私記라는 용어 자체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88 ∙佛敎硏究 제48집

4. 조선 전래의 의미
性聰이 임자도에 정박한 중국선박에서 佛書를 발견한 일을 계기
로 필삭기는 조선에 유통될 수 있었다. 그는 표류선에서 중국의
가흥장본 필삭기를 입수하였고, 이것을 기신론본문과 기신
론소에 배대하여 회편을 제작하였다. 그가 회편을 제작한 이
유는 기신론소와 필삭기가 따로 편찬되었어서 그것들을 비교
해 보는 일이 불편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러한 간행이유는 속법
이 회열을 편찬한 목적과 동일하다. 다만 조선의 회편은 중국
의 회열과는 달리 조선의 강원교육과정의 일부인 사교과목의
구성에 영향을 끼쳤다. 회편이 간행된 이후에 사교과목의 하나
인 법화경이 기신론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천태의 소위경전
을 논서로 대체했다는 점이 어떠한 시사점을 가질 수 있는지는
더 연구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총의 회편은 이후 현대의 강
원에서 2종의 번역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필삭기의 현대
어 번역본은 한국에만 있다.
성총 이후에 필삭기를 유통시킨 사람으로는 해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회편이 아닌 가흥장본 필삭기를 복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회편의 글씨가 잘고 행간이 촘촘한데다가 목판이 닳아
서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대장경판본을
제외하고는 회열이외에 다른 필삭기판본을 찾기가 어렵다.
반면에 조선에서는 회본 형식의 회편과 가흥장본의 복각본인 
필삭기가 모두 유통되었다.
필삭기 조선 유통에 있어서 또 다른 특이점은 필삭기의 私
記작성에 있다. 원각사와 동국대 그리고 표충사에 소장된 쌍계사
본에는 후학들이 적은 私記가 있고, 동국대 도서관에는 大應이 筆
寫한 筆削記卷2(간행년 미상)이 남아 있다. 이 서적들은 조선의
강원에서 필삭기가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삭기가 강원의 교육체제와 교
재에 영향을 끼친 점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 유통에서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89

나타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Ⅳ. 일본에 전래된 筆削記


필자가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기
존의 연구에서도 일본에 소장된 필삭기에 대해 언급한 경우가
한정적이었다. 이번 장에서는 두 웹사이트의 정보를 바탕으로 남
아있는 필삭기판본을 소개하고, 선행연구를 참조하여 일본에서
만 간행되었던 필삭기주석서를 검토해보겠다.

1. 筆削記의 간행
필자가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기
존의 연구에서도 일본에 소장된 필삭기에 대해 언급한 경우가
한정적이었다.35) 그래서 NII学術情報ナビゲータ36)와 全國漢籍デー
タベース37)에서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를 검색한 결과,
다음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자료접근
에 한계가 있는 관계로 한국에서도 조사할 수 있는 속장경과 신
수대장경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두 사이트에서 보여준 서지정
보와 소장처를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그 결과 일본에는 필삭기6
권본과 필삭기20권본이 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5) 최근의 연구인 望月海慧(2018), 13-14에서는 身延文庫典籍目錄下(2005),
40에 筆削記 卷五(余宗79. 8-4)가 있다고 하였다. 이 논문의 필자도 목
록집에 있는 필삭기제목만 확인했을 뿐 실물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36) http://ci.nii.ac.jp/books/search(2017.12.01).
37)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query(2017.12.01).
190 ∙佛敎硏究 제48집

첫 번째 京都의 村上平樂寺에서 寛永17(1640)에 간행한 起信論


疏筆削記6卷 坿音切은 関西大学과 九州大学과 龍谷大学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동일한 사찰에서 延寶5(1677)에 간행한 필삭기
는 東京大学 동양문화연구소 도서실, 東京大学 총합도서관, 佛教大
学 부속도서관, 身延山大学 도서관, 東北大, 中央大에서 소장하고
있다.
두 번째 起信論疏筆削記20卷으로는 江戶시기의 刊行本·續藏經
本·新脩大藏經本·大日本校訂大藏經本 총 네 가지 판본이 있다. 龍谷
大学 도서관에는 宇治의 黄檗山寶藏院에서 江戸前期에 간행한 필
삭기20권이 있다. 東北福大와 東北大에 소장된 필삭기도 江戶시
기에 간행되었다고 하는데, 寶藏院本과 동일본인지는 검토가 필요
하다. (新纂)大日本續藏經45의 목차를 보면, “기신론소(4권)과 
기신론소필삭기(20권)과 부록의 科文 2部는 기신론소필삭기회
열에 함께 편입시켰다(起信論疏註(四卷)起信論疏筆削記(二十卷)附
科文 已上二部會入于起信論疏筆削記會閱)”고 나온다. 필삭기의 본
문을 수록하지 않고, 대신 회열에 있는 필삭기부분을 보라고
하였다.38) 新修大藏經44권의 起信論疏筆削記20권은 明 萬曆 十九
年(1591년)에 간행한 增上寺 報恩藏本을 底本으로 사용했고, 延寶五
年(1677년)에 간행한 宗教大學藏本을 甲本으로 사용했다. 東北大와
一橋大와 東洋文庫에 보관되어 있다. 大日本校訂大藏經本은 東洋文
庫과 新潟県図와 九州대학에서 보관하고 있다.

2.  筆削記의 주석서
일본의 필삭기 연구가 중국과 한국 두 나라와 다른 점은 필
삭기의 주석서 찬술에 있는데, 주석서 역시 필삭기판본의 경우
와 마찬가지로 소장처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보관처를 확인했다하
38) 김천학(2014), 64-65 재인용.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1

더라도 직접 보고 조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존의 필삭기 주석


서에 관련된 연구를 찾아본 결과, 이 또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
다. 일본에서 편찬된 필삭기 주석서에 관해서는 望月信亨이
『大乗起信論之研究』(東京: 金尾文淵堂, 1922.)의 제2편 대승기신
론주석서해제: 3. 일본 찬술 에서 간략하게 소개하였는데,39) 이번
장에서는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주석서를 개략적으로 정리해
보겠다.
1) 卽中의 筆削記 주석서
일본에서 필삭기 주석서를 가장 많이 저술한 사람은 卽中이
다.40) 鎭流祖傳8권 尾州相應寺快玄上人傳 에서 그의 전기를 간
략히 언급하였는데,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釋快玄은 諱가 則41)中이고, 阿州 사람이다. 無量山에서 배워 대중이
더욱 흠모하였다. 거처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기신론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미묘한 지취를 규명하여 대중들을 위해 수백 회 강연을 하였
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거처를 “起信庵”이라 불렀다. 延寶三年(1675
년) 4월에 학자들의 요청을 받아 기신론에 科를 달고 해석을 한 책
을 2권 만들었다. <그리고> 별도로 起信義1권을 기술하였다.42)
39) 高崎直道·柏木弘雄(2005)는 望月信亨(1922) 이후에 나온 기신론 연구 자
료를 첨부하였는데, 望月信亨(1922)의 기신론 주석서 해제보다 일본의
기신론 주석서를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도 있다. 중국에는 龔雋(1995)의
第七章 走向世界與現代 에서 근현대 일본과 중국, 그리고 영미권의 기
신론관련 연구서를 간추려 소개하였다.
40) 望月信亨(1922), 295-297.
41) 검색사이트나 다른 서적에서는 “卽”으로 되어 있는데, “則”과 “卽”이 당
시에 통용하던 글자였는지 아니면 이 책에서 잘못 기입했는지는 밝혀내
지 못했다.
42) 尾州相應寺快玄上人傳 鎭流祖傳권8[Z17], “釋快玄 諱則中 阿州之人 學無
量山 大衆尤欽 望居 常把玩起信論 發明微旨 爲衆講説數百回 人呼其宇曰
起信庵 延寶三年四月 因學者之請 科解於論文 爲二卷 別述起信義一卷 ”
192 ∙佛敎硏究 제48집

그는 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3권(寫本)과 같은 책의 大乘起信論
疏記易辨抄科解2권(刊本), 그리고 起信義1권(刊本)을 지었다. 현
존한다고 추정되는 책은 起信義1권이다. 첫 번째 易辨抄3권은
필삭기를 註解한 책으로서 延寶 2년(1674)에 찬술되었다. 自序에
는 “起信論疏筆削記는 장수대사가 隨疏記[古記]를 필삭하여 알
맞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論과 疏 그리고 의미[義]에 미진한 바가
없으니, 후학의 안목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智에서 愚를 변별하더
라도 고치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윤색하여 변별
하기 쉽게 만들었기에 <易辨抄라고> 제목을 붙였을 따름이다.
때는 延寶甲寅(1674년) 여름에 阿陽의 起信菴에서 서두에 쓰노라
.”43)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같은 책의 科解2권은 본문에 과를
달고 관주(冠註)에 간략한 해석[略解]을 첨가하였다. 본문 앞에
賢首義記序 와 풀이를 첨가하였고, 권 말미에는 自跋을 실었고 延
寶 3년(1675)에 開版했다. 佛典章疏目錄上44)과 (影印)佛敎大系1
大乘起信論解題 45)에 그 서명이 남아있다. 세 번째로 起信義1
권은 론의 요의를 20章으로 나누어 풀이한 책으로 卷首에 自序를
첨부하였다. 延寶 3년(1675)에 4월에 저술되고 延寶 6년(1678) 仲
春(음력 2월)에 開版했다. 興隆이 찬집한 仏典疏鈔目録上의 大乘
起信論疏鈔目録 에는 起信義1권이라고만 적혀 있고, 저자의 이름
이 없다.46) 현재 東北大学 부속도서관 본관에서 起信義(鈴木太兵
衞, 1678)가 소장하고 있고, 起信義-延寶6刊-(村上勘兵衛,1678,
http://jodoshuzensho.jp/jozensearch/search/image.php?lineno=J17_0494A0
8(2017.12.08).
43) 望月信亨(1922), 296, “起信論疏筆削記者 盖長水大師 筆削古記而取其中也 乃
論疏并解無義不盡 可謂後學眼目 然於智 雖辨於愚 猶難改故 今潤色其義以令
愚易辨 命題云耳 時延寶甲寅夏 首書於 阿陽起信菴”
44) 望月信亨(1922), 296에서는 佛典章疏目錄에 나온다고 했는데, 이 목록을
찾지 못했다.
45) 金津洪嶽(1992), 48에 “卽中の科解2卷(存)”이라고 기입되어 있는데,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46) 仏教書籍目録第1: 仏典疏鈔目録上 大日本仏教全書권1(1980), 208.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3

소장미상)도 보관하고 있다.47)


2) 그 밖의 필삭기 주석서
卽中의 저작 외에도 필삭기를 재편하여 만든 주석서로는 다
음의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천태학승으로 추정되는 敎山(생몰
년 미상)이 지은 起信論疏筆削記鈔4권은 天和 4년(1684)에 필삭
기를 초석(鈔釋)한 책으로 풀이가 자세하고 전거 인용이 방대하
다. 別名은 起信論筆削記鈔·起信論疏筆削記鈔·筆削記畧鈔·起
信記鈔·大乗起信論疏筆削記鈔이다. 普済法話集 大乘起信論梗槪
에도 교산이 筆削記鈔4권을 지었다고 나와 있다.48) 현재 佛教
大学 부속도서관과 東北大에서 소장하고 있다.49)
靈譽圓應(?-1623)의 起信論本末五重科註1권은 의소주경의
十門가운데 第3敎義分齊부분에서 기신론에 의거하여 모든 染法
을 규명함에 本末五重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능엄경의
내용과 합하여 해석하는 글을 쓰고, 거기에 科와 해석을 추가하였
다. 延寶 3년(1675년) 3월에 간행되었다.50) 그 밖에도 찬자미상의
頭書起信論疏筆削記6권(刊本)은 필삭기에서 인용한 전거의 출
처와 자구의 각주를 보충한 글로 延寶 5년(1677)에 지어졌다.51) 
필삭기와 기신론소를 재구성한 주석서도 2종이 있다. 尊辨의 
大乘起信論抄出2권은 기신론소와 필삭기의 중요한 구절을 뽑
아 요약하고 본문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德治2年(1307년) 5-6월에
47) http://www.gaya.org.tw/library/readers/guide-101.htm(2017.12.11) 위의
사이트에서 기신론 자료로 올라와 있으나 소장처는 찾지 못했다.
48) 道重信教(1926), 451과 龔雋(1995), 183에는 芸房의 “筆削記鈔四卷(天和
四年刊)”으로 되어 있다. 이 책들에 근거해 볼 때, 芸房은 敎山을 가리킨
다고 추측한다.
http://dl.ndl.go.jp/info:ndljp/pid/971177/236?viewMode(2017.12.15).
49) http://ci.nii.ac.jp/ncid/BB1562507X(2017.12.11).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record=data/FA001379/tagged/1511
213.dat&back=1(2018.01.04).
50) 望月信亨(1922), 291-292.
51) 望月信亨(1922), 291-292.
194 ∙佛敎硏究 제48집

저술되었다.52) 찬자미상의 增補起信論助寥抄3권은 필삭기에


의거하여 종밀의 注疏를 재편집한 책이다. 天和3年(1683년) 仲冬
에 간행되었다.53) 이 책 역시 仏典疏鈔目録上 大乘起信論疏鈔目
録 에 나와 있다.54)

3. 일본 전래의 의미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會本을 만드는 데 치중한 반면에, 일본에
서는 회본 형식의 판본을 만들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자료 접근의
한계가 있으나 현재까지의 판본조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 남아있는 필삭기 판본은 起信論疏筆削記6卷·起信論疏
筆削記20卷·續藏經本·新脩大藏經本·大日本校訂大藏經本으로 모두
1600년대 이후의 자료이다. 그 가운데 京都의 村上平樂寺에서 간
행한 起信論疏筆削記6卷은 의천록에서 언급한 필삭기6권을
입수하여 재 간행 하였는지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續
藏經本에서는 필삭기를 별도로 장을 할애에 수록하지 않고 대
신 회열의 본문을 참조하라고 하였다. 무슨 이유로 책명만 언급
하고 본문을 회열로 대체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일본의 필삭기연구가 앞서 두 나라와 다른 점은 주석서 찬술
에 있다. 중국에서는 회열의 필삭기 저술경위와 자선의 전기
자료 및 대장경본의 몇 가지 서문에서 필삭기관련 정보를 제시
하였다. 한국에서는 회편과 복각한 필삭기의 서문 및 私記가
있으나, 이 역시 체계적 연구의 성과물이라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반면에 일본에서 간행된 필삭기주석서들은 이전 주석서들
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필삭기를 분석하였다고 생각한다. 예컨
대 卽中은 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3권과 같은 책의 科解2권, 그
52) 望月信亨(1922), 285-286.
53) 望月信亨(1922), 293 참조.
54) 仏教書籍目録第1: 仏典疏鈔目録上 大日本仏教全書권1(1980), 208.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5

리고 起信義1권을 지어서 필삭기를 주석하거나 각 장의 요지


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敎山이 지은 起信論疏筆削記鈔
4권과 靈譽圓應의 起信論本末五重科註1권, 그리고 찬자미상의 
頭書起信論疏筆削記6권에서는 다른 경론과 비교하여 논의를 전개
하거나 상세한 역주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상의 주석서는 모두
1600년대에 출간되었다. 앞서 남아있는 필삭기6권과 20권이 모
두 1600년대 전후에 출간된 점을 고려해보면, 1600년대에 집중적
으로 필삭기를 연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尊辨의 大乘起信論
抄出2권과 찬자미상의 增補起信論助寥抄3권은 필삭기와 기
신론소를 재구성한 연구서이다. 이는 정확히 회본의 형식은 아니
지만 비교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다만 增
補起信論助寥抄3권은 1307년에 저술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1300년대에 이미 필삭기가 유입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어
느 나라에서 어떤 판본을 입수했는지는 앞으로 검토할 과제이다.

Ⅴ. 결론
중국에서는 대장경에 필삭기를 수록하고 회열을 제작하였
으며, 조선에서는 회편이 나오고 관련된 私記가 남아있다. 두 나
라에서는 필삭기판본에 관련된 작업이 중점적으로 이뤄진 반면
에, 일본에서는 필삭기에 대한 주석서들을 간행하였다. 이 과정
에서 중국의 필삭기판본은 조선과 일본으로, 중세에서 현대까지
전승되었고, 조선과 일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방식의 필삭
기 유통 양상을 보여주었다.
중국에서 필삭기는 한편으로는 대장경들에 수록되어 전승되
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법이 필삭기를 會本형식으로 편집한 
회열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1030년경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
196 ∙佛敎硏究 제48집

필삭기는 1100년경부터 2000년대까지 6종의 대장경에 수록되었


다. 대장경에 수록된 필삭기는 중국에서 조선으로, 중세의 중국
에서 현대의 대만과 한국으로 유통되었다. 대장경을 제외한 판본
으로는 속법의 회열이 있는데, 이것은 기신론과 기신론소
에 배대하여 만든 일종의 會本이다. 여기에서는 현수조통설에 자
선을 편입할 근거와 저자소개와 저술 동기 및 그의 사상사적 위
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조선에서는 중국의 가흥장본을 저본으로 한 필삭기의 회본과
단행본이 모두 간행되었고, 이후 사교과의 편성에 영향을 끼쳤으
며 필삭기의 私記가 유통되었다고 추정한다. 성총은 속법의 회
열과 유사한 회본의 형식으로 회편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강
원의 사교과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이 기신론으로 변경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회편은 동아시아에서 유
일하게 현대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후에 해원은 회편의
가독성이 낮다는 이유로 가흥장본 자체를 복각한다. 조선의 필삭
기 출판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부분은 私記이다. 필삭기
私記 일부와 大應이 筆寫한 筆削記卷2(간행년 미상)이 남아 있는
데, 강원교육과 필삭기의 연관성은 조선불교사에서만 볼 수 있
는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회본을 만드는 데 집중한 것과
는 달리 회본 형식의 판본이 없다고 추정한다. 일본의 필삭기연
구가 앞서 두 나라와 다른 점은 주석서 찬술에 있다. 예컨대 卽中
은 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3권, 起信義1권을 지어서 필삭기를
주석하거나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일본의 주석서는
모두 1600년대에 집중적으로 출간되었다. 필삭기6권과 20권이
1600년대 경에 저술된 점을 고려해보면, 이 당시에 집중적으로 
필삭기를 연구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197

약호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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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 韓國佛敎全書
L : 乾隆大藏經
T : 大正新修大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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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乘起信論疏卷1[L141]
大乘起信論䟽筆削記會編[H8]
伯亭大師傳記總帙[X88]
新編諸宗教藏總錄卷3[T55]
鎭流祖傳8卷[Z17]
朝鮮佛教通史卷3[B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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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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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i.nii.ac.jp/books/search(2017.12.01).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query(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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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i.nii.ac.jp/ncid/BB1562507X(2017.12.11).
http://kanji.zinbun.kyoto-u.ac.jp/kanseki?record=data/FA001379/tagged/1511
213.dat&back=1(2018.01.04).
200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Qixinlun-shu-bixueji(起信論疏筆削記)'s
transmission and introduction
Kim, Hea Won
Dongguk Univ.

In this paper, Qixinlun-shu-bixueji(起信論疏筆削記)(筆


削記 for the rest) of Zhangshui-Zixuan(長水子璿, 965-1038)
that was distributed in East Asia will be medium to find
the definition and characteristics of 筆削記 in terms of
Buddhism through bibliographical study. In the beginning, 
筆削記 will be reviewed when it was published in China.
Then research on the introduction of 筆削記 into Korea
will be covered. Finally, printed 筆削記 and annotation
books that were distributed in Japan will be listed.
In China, 筆削記 has been handed down by recorded
from Dacangjing(大藏經) and, on the other hand, it was
distributed through Qixinlun-shu-ji-huiyue(起信論疏記會閱)
(會閱 for the rest) which was edited as Huiben(會本)
version of 筆削記 that was worked by Xufa(續法). In 會閱,
the information of author introduction, motivation of writing
as well as the one that lead to judge his visionary thoughts
was mentioned beside of 筆削記.
In Joseon, Xingcong(性聰) published Dacheng-qixinlun-
shu-bixueji-huibian(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when
Jiaxingcangben(嘉興藏本) from China was brought into.
Haiyuan(海源) reprinted 筆削記. This was effect on
consisting Jiangyuan(講院)'s Sijiaoke(四敎科). Also, some part
of 筆削記's Siji(私記) is still remained.
起信論疏筆削記의 전승과 전래 ∙ 201

In Japan, it is believed that Huiben(會本) version of


printed book doesn't exist differ from China and Korea.
Above all the difference from two countries to Japan, in
terms of studying 筆削記, is coming from editing
commentary. For example, Jizhong(卽中) composed 
Dacheng-qixinlun-shu-ji-yi-bian-chao(大乘起信論疏記易辨抄)
and Qixinyi(起信義). After that he arranged substances of
each chapters or annotated 筆削記.
Key Words :
Zhangshui-Zixuan(長水子璿),
Qixinlun-shu-bixueji(起信論疏筆削記), Huiben(會本), Siji(私記)

투고일 2018. 01. 21 | 심사기간 2018. 01. 22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0
 불교연구 제48집(2018), 203~235쪽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
박부자* 55)

Ⅰ. 서론
Ⅱ. 삼계의 분류와 제3계불법
1. 삼계의 분류와 구조
2. 제3계불법
Ⅲ. 삼계교의 불타관
1. 보법의 사불
2. 普眞普正佛
Ⅳ. 결론

*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bujapark41@naver.com


204 ∙佛敎硏究 제48집

요약문
삼계교는 중국 남북조시대 후기에서 수대에 걸쳐 활동한 신행선
사(540-591)에 의해 개창된 후 약 400년에 걸쳐서 종교 활동을 전개
한 중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삼계교의 사상은 삼계의 근기에 대한 삼계 출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짜임새를 축으로 해서 성립하고 있다. 근기의 삼계란 제1계 일
승보살과 제2계 삼승보살, 제3계 공견유견 중생을 말하는데, 제1계와
제2계는 각각 종래의 일승과 삼승의 가르침인 별법에 의해서도 출세
간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일천제인 제3계 중생은 종래의 일승과
삼승이라고 하는 교판적 짜임새로는 성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삼
계불법이란 이 제3계 중생이 출세할 수 있는 법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제1계, 제2계의 별법과는 달리 普法에 의해야만 한다. 제3
계의 근기는 邪正의 판별 능력이 없는 것이 특징이므로 사정을 분별
하려 해도 압도적으로 다수인 邪 가운데에서 극히 소량의 正을 선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邪를 正으로 인식하는 실수를 범
하게 된다. 이 실수를 회피하기 위해서 불·법·승·중생의 4항목에 대
해서 ‘普’라는 시점을 도입하였다. 결국 보법, 즉 보진보정불법은 제3
계중생을 여래장, 불성불, 당래불, 불상불의 보법사불로서 철저히 공
경한다는 것이다. 보진보정불법은 邪人이 배워도 正人이 배워도 널
리 진정을 얻을 수 있으므로 제3계 인이 출세할 수 있는 불법이다.
주제어 :
신행, 삼계교, 보법, 보불, 일승보살, 삼승보살, 공견유견중생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05

Ⅰ. 서론

三階敎는 중국 남북조시대 후기에서 수대에 걸쳐 활동한 信行선


사(540-594)에 의해 개창된 후 약 400년에 걸쳐서 활동을 전개한
중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삼계교는 당시 불교의 제 종파와는 달리
혁신적인 실천불교를 주창하여 불교계 내부와 정치세력권에 의해
서 개종 초부터 많은 논란과 핍박을 받아왔다.1) 그러나 실천 그
자체는 당시 남북조시대에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졌던 六時禮佛·懺
悔·頭陀乞食·參禪 등 소박하고 힘든 수행생활로 일관했던 것이었
다.
삼계교는 당시 일체불교가 일승·삼승에 대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어 일승보살과 삼승보살만이 이 수행에 의해 출세할 수 있고,
현세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중생인 일천제는 이 불법으로는 성불
할 수 없음을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이들도 구제될 수 있는 길을
1) 이후 삼계교의 관련 자료는 소멸되고 삼계교 자체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
지 않았다. 矢吹慶輝는 돈황사본 중에서 삼계교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내
고, 이를 바탕으로 三階敎之硏究를 1927년에 편찬하였다. 삼계교 문헌들
에 대한 교감을 바탕으로 삼계교 연구의 기본적인 자료로서 矢吹慶輝의 
三階敎之硏究는 지금까지도 삼계교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이후 삼계교의 연구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지만, 1980년대 이후
정토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한 粂原勇慈(1988·1991), 역사학의 입장
에서 삼계교를 연구한 早川道雄(1987·1989·1991), 신출사본을 중심으로 한
西本照眞(1998) 등의 새로운 성과가 있었다. 구미에서는 돈황 사본 중 삼
계교 문헌으로 P2115, 2268, 2283를 주목한 Gernet(1970), 삼계교와 당대
정치의 관계에 주목한 Antonino Forte(1976·1985), 矢吹慶輝의 성과를 근
거로 하여 삼계교의 문헌 및 사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비문 자료에 독자적
인 해석을 한 James Hubbard(1986), 삼계교의 탄압 경위에 관한 문제를
정리한 M. E, Lewis(1990) 등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강경중
(2017), 권탄준(2017), 민영규(1993), 이평래(1995), 홍재성(2011), 이상현
(1983) 등의 논문이 있다. 앞으로의 삼계교의 사상 연구에서는 개개의 삼
계교 문헌의 내용 소개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
여 서로 다른 삼계교 문헌의 상호 관계 탐구가 필요하다.
206 ∙佛敎硏究 제48집

모색하여 여러 경전에서 그 근거를 찾아 제3계 불법을 개창하였


다.
그 중에서도 일체중생은 如來藏佛性을 갖고 있는 當來佛이므로
깊이 공경해야 하고 말법시대에 살고 있는 善惡邪正에 분별이 흐
린 제3계 중생은 어느 특정한 불이나 법에 매달려서는 안 되고 일
체의 불과 일체의 법에 귀의해야 한다는 普法普佛사상, 즉 보법이
바로 제3계 중생이 출세할 수 있는 근거이다.
이러한 보법은 자신에게서는 악만 보고 타인에 대해서는 선만
찾는 생활 자세를 닦아 일천제인 제3계 중생도 성불할 수 있는 길
을 제시한 실천사상이었다. 또한 신행이 삼계교를 창시한 그 바탕
에는 말법시대라는 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계속되는 전쟁과 법
난 등으로 민중이 어려움에 처하여 말세가 왔음을 실감할 때 그
들이 실천해야 할 정신적 자각을 제시한 것이 바로 이 보법이다.
말세에 예토에 사는 전도된 범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선
행을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선행의 근본에 무소득 공사상에
의한 평등보시를 하게하여 서로를 돕는 것도 말법난세에 대처하
는 보법사상의 한 실천인 것이다.2)
본고에서는 여래장불성의 체가 법계에 두루하여 邪人과 正人을
불문하고 사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고 정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는,
제3계 普眞普正佛法을 살펴보며 이에 근거를 이루는 普法四佛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계환(2014), 215.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07

Ⅱ. 삼계의 분류와 제3계불법


1. 삼계의 분류와 구조
(1) 時·處·人의 삼 단계 분류
‘三階’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세 단계를 의미 한다. 즉 불법의
내용을 시·처·인의 관점에서 각각 세 단계로 분류한 것이다.
첫째, 시에 대한 삼계의 분류는 불멸후 처음 500년까지는 정법
시대로 제1계, 다음 1000년까지는 상법시대로 제2계라 하고, 불멸
후 1500년 이전은 일체성인, 일체이근정견성취중생이므로 별법으
로도 출세간에 이룰 수 있으나, 1500년 이후는 오직 공견유견파계
의 중생이 살고 있으므로 보진보정불법에 의할 수밖에 없다. 이
설은 대집월장분경, 열반경, 십륜경, 불장경 등에 의해서
모든 불법을 삼계로 나눈 것이다.
제1계 불멸후 500년 이전 정법
제2계 불멸후 1500년 이전 상법
제3계 불멸후 1500년 이후 말법
[표1] 時의 三階
둘째, 처에 대한 삼계는 정토는 오탁이 없으므로 제1계 일승을
설하기에 적합하지만, 예토는 오탁이 있으므로 제2계 삼승을 설하
거나 파계파견의 제3계의 처에 해당된다. 대집경 십륜경 설에
의거하였다.
제1계 정토 일승세계
제2계 예토 삼승세계
제3계 예토 계견구파의 세계
[표2] 處의 三階
208 ∙佛敎硏究 제48집

셋째, 사람의 근기에 대한 삼계는 다음과 같다. 제1계는 최상근


이고 일승의 근기로 하고, 제2계는 삼승의 기류로서 이들은 별진
별정의 불법으로도 출세할 수 있다. 제3계는 계견구파전도의 중생
으로 공견유견사견에 사로 잡혀 한결같이 모두 사악하여 근본에
애증의 편견을 가진 자이다. 따라서 제3계인은 별진별정불법이 아
닌 보진보정불법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제1계 일승의 근기(계견불파, 파계정견)
제2계 삼승의 근기(계견불파, 파계정견)
제3계 공견유견의 근기(전도사견)
[표3] 人의 三階
이와 같은 삼계의 분류는 일본본 삼계불법(4권)에 모두 설명
되어 있는데, 시·처·인(機)의 세 관점에서 삼계를 구분한다 해도
본디 다수에 관한 대략의 판별로써 절대적 구별은 아닌 것이다.
즉 불멸 천년이전에도 제3계에 속하는 악인이 있었고, 또 천년이
후에도 제1계, 제2계에 속한 자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3)
그 중에서도 삼계의 분류는 세 번째 人에 의한 삼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3계 인(機)인 파계파견중생은 설령 제
불의 대자비라 하더라도 제도할 수 없는 기류이기 때문에 오직
제3계 불법인 보불보법에 의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 삼계 분계의 구조
삼계교가 이렇게 불법의 내용을 시·처·인(機)의 관점에서 세 가
지로 분류한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부처님의 설법 중
어느 것을 우리의 시대에 맞게 또 환경에 맞게, 그리고 사람의 근
기에 맞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한 결정이다.
3) 矢吹慶輝(1927), 195.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09

우리가 불법에 의지하려는 것은 출세간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물론 불법 자체가 가장 수승한 것을 찾아야 하
겠지만, 그런 중에도 우리의 근기를 고려하고, 부처님 재세 시로
부터 변환된 시기와 시대상을 감안할 때, 지금 이 시기에, 이 땅에
서 사는 사람의 근기에 과연 부처님의 어느 법이 가장 적절한 가
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 물론 이 선택의 방법조차
도 부처님의 경전에 의거하여 부처님이 이미 설하신 것 중에서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의 삼계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형성되었는가?
삼계교는 사물의 단계적 구별을 나타내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
어 왔던 ‘제1계’·‘제2계’·‘제3계’라는 용어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
여 이 삼계를 출세간에 이르는 능력을 구별하는 단계별 사상적
짜임새로 한 것이다. 신행 최만년의 저작인, 對根起行法 전반 부
분에서 삼계의 각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계 일승근기범부보살 정견 제1계불법
제2계 삼승근기 정견 제2계불법
제3계 공견유견중생 사견 제3계불법
[표4] 三階의 분계
삼계교에서 삼계 분계의 가장 큰 요인은, 人의 근기의 상위에
있고 각계는 또한 그 근기에 대응하여 출세간에 이르는 법이 각
각 다르다.
이 짜임새는 대반열반경 권33 가섭보살품 에서 선성비구가
‘일천제 불가치인’인 것을 설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고 삼계교가
삼계의 짜임새로서 가장 중시하는 교증의 하나이다.
일본본 삼계불법 권4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大般涅槃經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체의 三階佛法을 해설하고 있는
점에서, 경문도 의미 내용도 가장 잘 구비되어 있다. 제33권의 후반에
는 6종의 비유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4)
210 ∙佛敎硏究 제48집

삼계불법을 밝힌다는 점에서 내용과 의미를 가장 잘 갖추고 있


는 경전으로 삼계교에서 열반경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5) 여기에서 말하는 열반경 권33의 6종의 비유 중 그 첫 번째
비유에서
예를 들어 어떤 부모에 세 아들이 있다고 하자. 첫째 아들은 信順의
마음이 있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근으로 지혜가 있으며, 세간사를 빠
르게 인식할 수 있다. 둘째 아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신순의 마
음도 없지만, 이근으로 지혜가 있고, 세간의 일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
다. 세 번째 아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신순의 마음도 없으며, 둔
근으로 지혜도 없다. 부모가 가르침을 告하려할 때, 우선 누구에게 가
르치고, 우선 누구를 친애하고, 우선 누구에게 세간사를 가르쳐야 할
것인가? 가섭보살은 불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우선 먼저 신순의
마음이 있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근으로 지혜가 있고, 세간사를 아는
자에게 가르쳐야겠지요. 다음에 제2, 제3(의 아들에게 가르쳐야겠지
요.) 그 두 아들은 신심이나 공경의 마음은 없지만, 연민의 마음에 의
해서 그 다음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여래도 또한 마찬가지
이다. 그 3인의 아들 중에서, 첫째를 보살에 비유하고, 중간은 성문에
비유하였으며, 막내를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다. 십이부경수다라중에
미세한 내용을 나는 우선 처음으로 보살을 위하여 설하고, 얕은 내용
을 성문을 위해서 설하고, 세간적인 내용을 일천제와 오역죄를 위해서
설한다. 현재세의 이익이 없어도, 연민의 마음에 의해서, 후세에서 善
의 종자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6)
4) 矢吹慶輝(1927), 402. 三階佛法 권4, 大般涅槃經通上及下, 說明一切三階佛
法, 文義最大具足. 第三十三卷過半已後, 就六種喻広說.
5) 삼계불법에 인용된 열반경의 횟수는 87회이다. 이것은 120회 인용된
十輪經에 이어서 두 번째이다. 불법에 대한 단계적 분류에서 지대한 역
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矢吹慶輝(1927: 595).
6) 涅槃經, 권33(T12, 560b-c), “譬如父母唯有三子, 其一子者有信順心, 恭敬父
母, 利根智慧, 於世間事能速了知. 其第二子不敬父母, 無信順心, 利根智慧, 於世
間事能速了知. 其第三子不敬父母, 無信順心, 鈍根無智. 父母若欲教告之時, 応
先教誰, 先親愛誰, 当先教誰知世間事. 迦葉菩薩白佛言, 世尊, 応先教授有信順
心恭敬父母利根智慧知世事者, 其次第二, 乃及第三. 而彼二子雖無信心恭敬之心,
為愍念故,次復教之. 善男子, 如來亦爾. 其三子者, 初喻菩薩, 中喻聲聞, 後喻一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1

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직접으로 제1계, 제2계, 제3계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삼계교가 제1계의 근기, 제2계의 근기, 제3계의 근기라고 각각 규
정한 보살·성문·일천제, 3종류의 근기가 거론되어 있다. 결론적으
로 말하면, 삼계교는 열반경의 이 부분을 삼계 분계 중에서 근
기의 구조에 대한 가장 중시한 교증으로 인용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불교인들의 사상에서 이 부분의 세 종류 근기와 그
에 대한 가르침의 대응관계를 이처럼 중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삼계의 근기와 설해진 가르침의 대응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계 보살(일승) 미세한 뜻(심심대승의 뜻) 제1계불법
제2계 성문(삼승) 얕은 뜻(소승의 법) 제2계불법
제3계 일천제(공견유견) 세간의 뜻 제3계불법
[표5] 근기와 불법의 대응관계7)
제1계의 일승근기중생은 일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
서 출세간에 이를 수 있다. 제2계 삼승근기의 중생은 삼승의 가르
침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출세간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데 제3계 중생은 종래의 일승과 삼승이라고 하는 교판적 짜임새
에 의하는 한은 출세간에 이르는 길은 없다.
신행은 佛의 자비에 의해서도 세간의 뜻 밖에 설해질수 없는
제3계인은 바로 말법시대의 오탁악세에 태어난 우리들임을 자각
하고 제3계인도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闡提. 如十二部經修多羅中微細之義, 我先已為諸菩薩說. 淺近之義為聲聞說. 世


間之義, 爲一闡提五逆罪說. 現在世中雖無利益, 一憐愍故, 為生後世諸善種子”
7) 西本照眞(2017), 368.
212 ∙佛敎硏究 제48집

2. 제3계불법
(1) 제3계 出世의 法
삼계출세의 법은 제1계의 일승근기를 위해서 일승의 법이, 제2
계의 삼승의 근기를 위해서 삼승의 법이 존재할 뿐이다. 원래 출
세의 법이 설해질수 없는 일천제를 위해서 출세의 법을 찾는 것
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기존의 법을 비방하지 않고 새로운 짜임새
를 도입한 것이 신행의 제3계불법, 즉 보진보정불법이다.
일본본 삼계불법 권1 시작 부분의 문장은 삼계교의 근본적인
의의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인집록에 밝힌다. 모든 제3계불법 중에서 다만 일체 최대둔근의
중생인 두 종류의 아양승 이외에는 일체의 이근의 중생은 모두 이근
공견유견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분명히 대반열반경에
설한 바와 같다. 경문에는 “세간의 의를 일체의 제3계불법 내 일체의
이근공견유견의 일체의 선근이 끊어진 모든 일천제를 위해서 설한다.”
고 기술되어 있다. 이 경문을 잘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8)
 삼계불법 전체의 총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이후에 설명하
고자 하는 인집록의 범위가 제3계불법이고, 그 가운데 공견 유
견의 중생에게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삼계불법
 전체가 제1계 및 제2계의 불법이 아닌 제3계의 불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첫머리에서 밝힌 것이다. 인집록이란 삼계교
의 문헌을 특별히 일컫는 말이다. 인집록에 해당하는 삼계불법
의 요점이 바로 제3계불법을 일러주는 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
8) 三階佛法 권1, “人集錄, 明一切第三階佛法內, 明除一切最大鈍根衆生兩種瘂
羊僧已外, 一切利根衆生皆悉普是一切利根有見衆生, 何以故, 明如大般涅槃經,
文當世間之義, 爲一切第三階佛法內, 一切利根空見有見斷一切善根皆悉普盡一闡
提衆生說, 以此文驗所以得知” 이를 통해 삼계교에서는 공견과 유견의 중생
을 斷善根, 일천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3

요도 없다.
말법 예토의 제3계 불법 내에서는 두 종류의 둔근아양승 외에
일체 이근중생은 모두 공견 유견에 사로잡힌 중생이다. 열반경
에는 세간의 의를 일체의 선근이 끊어진 모든 일천제를 위해서
설한다고 기술되어 있지만9) 사견중생으로 불교의 뜻을 올바로 이
해할 수 없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제3계불법을 알려 주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열반경에서 일천제는 어떠한 불이나 법도 이를 구제
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10)11) 견해에 空과 有의 편견이 있어서
9) 涅槃經 권33(T12, 560c), “世間之義, 爲一闡提五逆罪說” 열반경에서는
세간의 뜻을 일천제와 오역죄인을 위해서 설한다고 하였지만, 삼계교에서
는 위와 같이 일천제에 한하여 인용된 경우가 많다. 삼계불법과 마찬가
지로 대근기행법에서도 일천제에 한정하여 인용하고 있다.(敦煌寶藏
19, 525c)
10) 涅槃經 권9(T12, 417c-418a), “허공에 비구름이 나타나 큰 비가 대지에
쏟아졌을 경우에 枯木도 石山도 高原도 모두 빗물을 받아 축축해지고, 물
이 고이지 않는 곳에도 흘러 田地나 池水를 충만케 하는 것처럼, 이 미묘
한 경전 대반열반경도 또한 法雨를 내려 사람들을 골고루 윤택하게 하
지만 일천제만은 제외한다. 如虚空中興大雲雨注於大地, 枯木石山高原堆阜
水所不住, 流注下田陂池悉滿利益無量一切衆生, 是大涅槃微妙經典亦復如是,
雨大法雨普潤衆生, 唯一闡提發菩提心無有是處” 涅槃經 권9(T12, 419b),
“선남자여, 어떤 양의가 여덟 가지 묘한 의술로써 중생들의 병고를 치료
하더라도 반드시 죽을 병은 고치지 못한다. 이 대반열반경도 그와 같
아서 중생들의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여래의 청정한 因에 머물게 하여
발심하지 못한 이를 발심케 하나 반드시 죽을 일천제 무리는 제외한다.”
善男子, 復有良醫過八種術能除衆生所有病苦, 唯不能治必死之病, 是大涅槃大
乘經典亦復如是, 能除衆生一切煩惱, 安住如來清淨妙因, 未發心者令得發心,
唯除必死一闡提輩”
11) 물론 열반경에서는 일천제에게도 성불의 가능성으로서 불성이 있다고
하였다.(涅槃經 권34(T12, 568c), “선남자여! 내가 또다시 말하건대 네
가지 무거운 계율을 범한 자나 일천제, 방등경을 비방한 자, 오역죄를 지
은 자도 모두 불성이 있으니 이들 중생은 善法이 없지만 불성은 선한 것
이다. 善男子, 我又復説犯四重禁一闡提人謗方等經作五逆罪皆有佛性, 如是衆
生都無善法佛性是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불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선근을 내지 않고(涅槃經 권5(T12, 391b)), 罪垢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
214 ∙佛敎硏究 제48집

正邪를 구별하지 못하고 관찰하는 것 모두 차별의 시각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제3계 중생은 본질적으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신행은 어떻게 해서 이 절대적 모순을 돌파해 삼계불법
을 세웠던 것일까? 그는 구제의 도 자체를 찾기보다 구제를 방해
하고 있는 원인, 즉 자기의 내면으로 눈을 돌렸다. 제3계 중생의
본질은 무언가? 그것은 사견, 즉 전도되고 바르지 못한 견해밖에
가질 수 없다고 하는 점에 있다. 신행은 열반경을 비롯한 제 경
전에 설해진 사견의 내용은 공견과 유견이라고 간파했다. 공견이
란 여래의 상주성을 부정하고 모든 중생에 깃들어 있는 여래장불
성을 가볍게 보고 부정하는 자의 견해이다. 他者의 존재성을 부정
한다고 해도 좋다.
한편 유견이란 자기만족, 거만, 자만, 불손 혹은 과잉 평가의 경
향이고 불손한 동기와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의 견해이다. 이
와 같이 신행은 제3계의 사람을 절대적 타자부정과 절대적 자기
긍정이라고 하는 이중의 병폐를 안고 있는 존재로서 포착하였다.
자기를 긍정하고 타자를 부정한다고 하면 자기와 타자와의 관계
성은 닫혀 버리게 된다. 이렇게 닫혀 있는 관계성의 모습이야 말
로 인간존재로서 가장 구제하기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병을 제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견을
중지하고 정견으로 돌아가는 확실한 길을 찾아 가는 수밖에 없다.
즉 자기 자신의 가치 판단으로만 사정을 판별하는 것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모든 불법승과 중생을 차별하는 일 없이 두루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하면 자기의 잘못된 가치 판단이 개재하는 두려움
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견의 병은 끊어지고 일
승에 돈입하는 도가 열려질 것이다.
당시의 풍조로서 특정의 불, 특정의 경, 특정한 가르침, 특정의
사원, 특정의 승려에 대하여 존숭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확실
고(涅槃經 권9(T12, 419b)) 열반경에서는 밝히고 있다.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5

하다.12) 그러한 중에서 모든 사견, 편견을 포기하고 모든 중생을


장래불로서 평등하게 공경하고 예배하는 상불경보살의 도를 실천
의 길로써 선택하고 보진보정불법을 제3계 중생 구제의 법으로
밝혀간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2) 보진보정불법의 특징
 대근기행법 전반 부분에서는 삼계의 각각의 근기가 출세간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행하는 법, 즉 대근기행법을 5단으로 나누어
서 설명하고 있다. 5단 중 제1단 삼계출세도의 不同을 제1계(일
승), 제2계(삼승), 제3계(공견유견전도사견성취구종인)의 삼단으로
나누어 대근기행출세도의 부동이 있는 까닭을 언급하고 있다. 그
리고 각 계의 근기에 대한 출세의 도는 귀일체불, 귀일체법, 귀일
체승, 도일체중생, 단일체악, 수일체선, 구일체선지식의 7개의 항
목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것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계 제2계 제3계
佛 一乘真身佛 一乘應佛 形像佛
一乘應身佛 形像佛 邪見衆生所帰邪魔佛
形像佛 正見衆生所帰真佛
佛菩薩應作空見有見邪
魔佛
普真普正佛
法 頓教大乘法 三乘經律論 經卷法
普想大乘法 極重惡法
12) 삼계교 성립 이전의 중국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교상판석’을 들 수
있다. 불교 경전과 사상이 인도에서 역사적인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형
성된 순서와 관계없이 중국에서는 한역되었다. 여기에서 발생한 상호 모
순과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 불교인들은 다양한 해석학적 방법
론을 통해 특정 경전의 교리를 우선시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
전과 교학의 서열화, 즉 교상판석을 도모하게 된다.
216 ∙佛敎硏究 제48집

世間法
邪善佛法
邪見衆生所帰法
正見衆生所帰法
佛菩薩應作空見有見法
普想大乘法
僧 一乘聖菩薩 三乘聖菩薩 縁覺 聲聞 剃頭著袈裟僧
戒見俱不破一乘凡夫 戒見俱不破三乘凡夫菩 邪見僧
菩薩僧 薩 縁覺 聲聞僧 正見僧
破戒不破見一乘凡夫 破戒不破見三乘菩薩 縁 佛菩薩應作空見有見僧
菩薩僧 覺 聲聞僧 普親僧
亦正亦邪三乘菩薩 縁覺 普想大乘僧
聲聞僧
度 一乘聖菩薩 三乘聖菩薩 縁覺 聲聞 邪見衆生
衆 戒見俱不破一乘凡夫 戒見俱不破三乘凡夫菩 正見衆生
生 菩薩 薩 縁覺 聲聞 佛菩薩應作空見有見衆
破戒不破見一乘凡夫 破戒不破見三乘凡夫菩 生
菩薩 薩 縁覺 聲聞 普親衆生
地獄 餓鬼 畜生 阿 三乘亦正亦邪菩薩 縁覺 普想大乘衆生
修羅 聲聞 地獄 惡鬼 畜生 阿修羅
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斷 善外惡 善外惡 二十六斷惡
惡 善內惡
修 惡外善(別真別正) 惡外善 惡內善(如來蔵佛性普真
善 惡內善(普真普正) 普正八種佛法)
得苦善(十二頭陀)
求 一乘聖菩薩 十二種의 僧과 同一 文義俱不解瘂羊僧
善 戒見俱不破一乘凡夫 解文不解義瘂羊僧
知 菩薩 利根人內學當根七法六
識 破戒不破見一乘凡夫 法人
菩薩
[표6] 각 계의 근기에 대한 7항목의 출세의 도13)

13) 西本照眞(2017), 440-441 표 재인용.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7

위의 표에 의거하여 출세법의 특징을 살펴보자. 불·법·승·중생


의 4항목에 관한 제1계와 제2계의 기본적인 구별은 제1계가 일승
이고, 제2계가 삼승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이것은 제1계의 근기
가 일승의 근기이고, 제2계의 근기가 삼승의 근기이므로 근기의
다름이 각 항목의 내용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삼계
불법에서 제1계와 제2계는 별불법으로도 좋으나 제3계는 오직 보
진보정불법에 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불교의 교판은
별법과 보법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갖기에 이른 것이다.
‘普’는 ‘別’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편ㆍ추상ㆍ전체를 의미
한다.14) 삼계교에서는 보법과 별법의 이항적 구분을 내세우고 있
다. 별법이란 특정의 불에 관련된 특별한 교법으로 불멸 후 1500
년(혹은 1000년) 이전에 제2계중생이 수학해야 할 上根을 위한 법
이다. 이에 대해 불멸 1500년 이후에 해당하는 현재는 제3계중생
이 살고 있는 말법시대로 특정의 부처나 경전의 가르침에 치우치
지 않고 오히려 하근기의 중생들을 위한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이 보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량수경이나
관무량수경에 의하여 극락정토를 구하고 아미타 일불에 귀의하
는 미타정토는 별법에 해당되어 보법의 삼계교와는 근본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로 일컫는 善導(613-681)는
범부의 하근기 중생을 위한 독자적인 정토교의 실천체계를 수립
하였다. 그는 五種正行 등 오직 미타일불과 연관된 행법의 전수를
주장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모든 수행법을 ‘잡행잡수’로 배척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도가 주장하는 專修正行과 雜行雜修이라는 방
식, 즉 ‘정’과 ‘잡’의 이항대립적 수행 방식의 구별은 바로 삼계교
가 말하는 별법ㆍ보법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5) 결국 보
14) 矢吹慶輝(1927), 291-304.
15) 삼계교와 정토교는 비슷한 시기에 말법사상을 바탕으로 똑같이 말법시대
의 하열한 근기의 수행법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정토교는 실천능력의 결
여를 주시한 반면 삼계교는 교법의 판별능력에 대한 결여를 들어서 이러
한 차이가 생겼다고 본다.
218 ∙佛敎硏究 제48집

법은 모든 교법에 가치평가를 가하지 않으면서 널리 실천하는 것


이고, 별법은 교법에 대한 가치평가를 더하여 특정한 교법에 우위
를 부여하고서 이것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보법에 대해서 살펴 보기 위해 위의 표에서 제3계중생이 귀의
해야 할 불을 보면 형상불, 사마불, 보진보정불 등이 있다. 그 중
보진보정불에 대해서 대근기행법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八段中의) 둘째는 보진보정불법이다. (邪人과 正人을) 불문하고, 사
인이 배워도 眞正을 얻고 정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는다. 어째서인가?
여래장, 불성이라는 본체는 두루 하는 법, 진실의 법밖에 있을 수 없으
니까 그중에 사마가 끼어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인
과 정인을 불문하고 모두 진정을 얻는다.16)
이에 의하면 삼계교에서는 여래장ㆍ불성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널리 퍼져 있다는 점에서 보법이라는 것이다.17) 여래장ㆍ불성의
본질이 갖는 진정성은 邪正을 불문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
를 갖고 있다. 즉 제3계의 사견 중생이어도 여래장ㆍ불성을 공경
하면 眞正을 얻을 수 있다고 보증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래장ㆍ불
성 혹은 그 본질을 말하는 이러한 보법의 설정, 보법의 진정성은
제3계인의 출세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원리로 되어 있는 것이다.
보법은 법에 대한 차별을 전혀 두지 않고 오직 한 법을 존중하여
타법을 배척하지 않기 때문에 제3계의 중생에 대하여는 순익무손
의 불법이라고 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계교는 제3계의 機根에 대해서 空見
16) 對根機行法(敦煌寶藏19, 524a-511c) “二者普真普正佛法. 莫問邪人, 學
亦得真正, 正人學亦得真正. 何以故. 如來蔵佛性體唯是普法, 唯是真法, 於中無
有邪魔得入其中. 是故不問邪人正人, 俱得真正”
17) 이에 대하여 특정한 경전을 들지는 않았으나, 돈황본 삼계불법 권3에
서 팔종의 불법에 대한 교증을 나열하면서, 보진보정불법에 대해서는
“경전의 뜻에 준해서 추정하여 설한다.”고 하였다. 여래장ㆍ불성을 설한
경전에 의거하여 보법의 진정성을 도출한 것이다. 西本照眞(2017), 477.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19

有見 邪見 성취중생이라고 인식하였다. 제3계의 기본적인 능력은


아견이나 증상만과 같은 유견, 여래장ㆍ불성을 부정하는 공견에
사로잡혀서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제3계중생
은 어떠한 교법이 자신에게 맞는가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
다.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교법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곧 사견에 근거한 판단이 될 뿐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 수행은 謗佛로 이어지며 지옥의 因이 된다. 그러므로
삼계교의 보법은 바로 그러한 판단을 가하지 않고 모든 불법에
같은 가치를 두는 실천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보법이야말로
제3계의 중생에게는 그 근기에 가장 적합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교법에 대한 邪正深淺의 판별 능력이 결여된 제3계의 중
생,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중생을 삼계교에서는 生盲의 중생으
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생맹의 중생이
보진보정이 아닌 별진별정의 불법을 배우는 것은 마치 맹인이 하
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익할 뿐만 아니라 결
국 謗佛謗法의 죄를 더하게 된다고 하였다. 사정에 대한 식별능력
이 없는 제3계인, 즉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승과 삼승을 간
별하지 못하므로 널리 일체에 귀경하여 특수의 일행에 의지하지
않고 두루 일체 선을 닦아야 한다. 이것을 보진보정의 불법이라
하고, 줄여서 보법이라고 한다. 이 보법이 바로 제3계 불법으로
현재의 우리들을 구제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신행은 불교에 대한
교판적 이해, 불교 교의의 우선 순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남
북조시대에 불교자들에게 그러한 인식이야말로 불교에 무익할뿐
아니라 불법을 비방하는 중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Ⅲ. 삼계교의 불타관
220 ∙佛敎硏究 제48집

이상과 같이 일체의 불교를 보법과 별법으로 나눈 삼계교는 이


를 바탕으로 한 특수한 불타관을 세웠다. 삼계교의 사상은 삼계
각각의 근기가 출세할 수 있는 가르침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3계
중생에 대한 출세법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
계교의 불타관도 제3계불법의 불타관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
고 있다.
대근기행법에서 신행은 보법의 수행에 대하여 7가지로 나누
었다.18) 그 중 삼보에 대한 귀의의 첫 번째인 ‘불’19)에 대한 항목
은 삼계교에서 인식하는 불타관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중에서 제1의 일체의 불에 귀의함을 다한다는 것은 그 중에 5단
이 있다. 첫째는 형상불로 다만 눈을 뜨고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사정을 구별할 수 없다. 관불삼매해경에 광설하고
있는 것과 같다. 둘째는 12종의 사견을 성취한 중생이 귀의하는 일체
의 사마불이다. 九十六種異學道經에 광설하고 잡류신주경 등에 설
한 것과 같다. 셋째는 12종의 정견을 성취한 중생이 귀의하는 진불을
밝힌다. 대불명경이랑 여러 대승경에 광설한 것과 같다. 넷째는 일
체의 보살이 일체의 공견유견의 사마불로 모습을 바꾼 것을 밝힌다.
여래대승경 중 응신의 부분에 광설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보진보정불
에 귀의하는 것을 밝힌다. 그 중에 4단이 있다. 첫번째는 여래장불이
다. 능가경에 설하고, 승만경 열반경 등에 광설한 것과 같다. 두
번째는 불성불이다. 열반경에 설한 것과 같다. 세번째는 당래불이다.
법화경에 설한 것과 같다. 네번째는 불상불로 화엄경 십륜경에
설한 것과 같다.20)
18) ⓵ 歸一切佛盡 ⓶歸一切法盡 ⓷歸一切僧盡 ⓸度一切衆生 ⓹斷一切惡盡 ⓺
修一切善盡 ⓻求一切善知識의 7항목의 내용은 <표 6>에서 정리하였다.
⓵⓶⓷은 각각 歸依佛, 歸依法, 歸依僧의 ‘귀의삼보’에 해당하며, ⓸⓹⓺⓻
은 삼계교의 실천 수행법을 나타내고 있다.
19) 항목 명에는 ‘歸一切佛盡’으로 되어 있다. 각 항목에는 “일체”를 붙여서
각각의 항목 속에 해당하는 계의 모든 요소가 열거되어 있다는 것을 나
타내었다.
20) 矢吹慶輝(1927: 별책 114-115) “第一明歸一切佛盡者, 於内有五段. 一者形像
佛, 唯就開眼得. 合眼已去, 邪正不別, 如觀佛三昧海經廣説. 二者十二種邪見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1

이처럼 ‘불’에 대해서 ⓵형상불 ⓶사마불 ⓷진불 ⓸사마불 ⓹보


진보정불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⓹보진보정불을 다시
㉠여래장불 ㉡불성불 ㉢당래불 ㉣불상불로 구별하였다.
앞서 제3계중생은 태어나면서 맹인인 것과 같이 사정을 분별할
수 없는 근기이므로 불법에 차별을 두지 않고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제3계에서는 적어도 ‘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불로서 받아들여 널리 믿고 이에 귀의한다고
하는 것이다. 제3계 불의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
은 몇 가지 점을 알 수 있다. 사마불에는 ⓶와 ⓸의 두 종류가 있
다. 전자는 사견의 중생이 귀의하는 일체의 사마불로서 불교뿐 아
니라 외도경전의 제 귀신도 포함한다고 한다. 후자는 불보살이 변
한 바 應身을 가리킨다. 제1계와 제2계에서는 응불(일승응신불과
삼승응불)을 能度와 所度로 나누고 있다.21) 이것을 고려하여 제3
계의 불을 보면 ⓸사마불 ⓹보진보정불이 응불에 해당하여 ⓸사
마불은 능도, ⓹보진보정불은 소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결국 제
3계의 불은 ⓵형상불 ⓷진불 ⓸능도의 응불(불보살의 소도) ⓹보
진보정불(소도의 중생)이므로 능도와 소도 모두를 ‘불’로서 보는
것이다.22) 결론적으로 보진보정불은 바로 소도의 중생이다. 그러
므로 이것을 여래장불, 불성불, 당래불, 불상불의 네 가지로 구분
하는 것은 중생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따라서
중생의 호칭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成就衆生所歸一切邪魔佛, 如九十六種異學道經廣説及雜類神呪經等説. 三
者明十二種正見成就衆生所歸眞佛, 如大佛名經及諸大乘經等廣説. 四者明一
切諸佛菩薩應作一切空見有見邪魔佛, 如諸大乘經内應身處廣説. 五者明歸普眞
普正佛,於内有四段. 一者如來藏佛, 如楞伽經説, 勝鬘經 涅槃經等廣説.
二者佛性佛, 如涅槃經説. 三者當來佛, 如法華經説. 四者佛想佛, 如華嚴
經 十輪經説”
21) 제1계의 ‘불’은 세 가지가 있는데, 一乘真身佛, 一乘應身佛, 形像佛이다. 그
중 일승응신불은 能度와 所度로 나누어지고, 각각 다시 둘로 나뉜다. 제2
계의 ‘불’은 三乘應佛, 形像佛의 두 가지이다. 이 중 삼승응불은 能度(三乘
應佛)와 所度(三乘度衆生)로 나뉘며 能度를 다시 둘로 나누었다.
22) 岡部和雄(1988), 267-269.
222 ∙佛敎硏究 제48집

이하에서는 대근기행법과 보법사불23)에서 말하는 보진보


정불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四佛이 같은 내용을 확인해보
고자 한다. 대근기행법에서 불의 구분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다만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한 가르침을 설한 부분 중에서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하고 있다. 즉 제3계불법의 중심이 되
는 두 축으로서 普敬과 認惡을 설명하면서 보경에는 8종의 불법이
있다고 하였다.24) 그 중 앞의 두 가지로 ① 여래장. 불성. 당래불.
불상불의 불법, ②보진보정불법을 말하였다. 우선 보경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된 보법사불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1. 보법의 사불
(1) 여래장불
대근기행법에서는 보경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여래장을
설명하였다.
첫번째로 널리 공경하는 것(普敬)에 대해서 밝히면, 그 중에 8단이
있다. 첫째, 여래장이고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는 가르침에 의
한 설명이다. 여래장은 모든 불, 보살, 성문, 연각 그리고 육도중생의
본체이다. 두 번째는 비유에 의한 설명으로 5단이 있다. ① 예를 들면
阿耨이라는 큰 못이 8개의 큰 강이 되어 흘러나가는 것과 같다. 강에
는 (8개의) 구별이 있지만 물이라는 본체에는 다름이 없다. 모든 범부
23) 普法四佛은 S5668의 일부(3葉의 紙面)에 矢吹가 붙인 가제이다. 후에
西本照眞이 스타인본 중의 삼계교사본을 추출하는 작업 중에 다시 8엽을
더 발견하여 모두 앞면과 뒷면으로 된 11엽의 사본이 만들어졌다. 이것
은 시취가 소개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西
本은 이것을 三階佛法廣釋이라 가제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시취가 발견한 3엽에 있는 내용만 참고하였으므로 시취의 보법사불이
라는 가제를 사용하였다.
24) 對根起行法(敦煌寶藏113, 315a-b).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3

와 성인에는 구별이 있고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래)장이라는 본체에


는 다름이 없다. ② 예를 들면 연기자가 여러 가지 연기를 하는 것이
다. 연기는 비록 다르지만 신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③ 예를 들면 기
와가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과 같다. 진흙으로 기와를 만들
면 다름이 있지만 흙 자체에는 다름이 없다. 생사는 여래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래장이 생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세간의 언설
에서 잘 말해지는 것이므로 생사가 있다고 해도 여래장 자체에 生이
있고 死가 있는 것은 아니다. ④ 예를 들면 파도가 물에 의해서 있는
것과 같다. 물이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을 인연하기 때문에 파도
가 있다고 해도 물 자체가 파도는 아니다. ⑤ 예를 들면 금장식품과
같다. 여러 가지 장식품은 비록 다르지만, 금이라는 본체에는 다름이
없고 모두 똑같은 금이다. 모든 범부와 성인에는 구별이 있어 같지 않
지만 모두 같은 (여래)장인 것이다.25)
여래장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여래장을 불ㆍ보살ㆍ성문ㆍ연
각ㆍ육도 중생의 본체로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아뇩대지ㆍ8대하ㆍ배우의 연기ㆍ진흙 기와ㆍ물과 파도ㆍ금장식품
의 다섯 가지 비유를 들고 있다. 승만경26)과 능가경27)에서도
볼 수 있는 다섯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여래장에 대한 인식을 확
장시키고 있다.
보법사불에는

우선 법계진망의 관계를 언급하고 진망이 서로 독립하지 않고 체상


25) 矢吹慶輝(1927), 별책 131-132, “第一段, 明普敬者, 於内有八段. 一者如來藏,
有二種. 一者法説, 如來藏是一切諸佛菩薩聲聞緣覺乃至六道衆生等體. 二者喩
説者有五段. 一喩如阿耨大池出大八大河, 河雖差別, 水體無異. 一切凡聖雖差
別不同, 藏體無異. 喩如伎兒作種種伎倆. 伎倆雖別, 身無有異. 喩如一切瓦皆因
泥. 泥作瓦雖差別, 土體無異. 生死依如來藏作. 如來藏作生死, 是名善説世間言
説故有生死, 非如來藏體有生有死. 喩如波依水, 水作波, 風因緣故有波, 非水體
有波. 喩如金莊嚴具, 衆具雖別, 金體無別皆一金. 一切凡聖差別不同, 皆是一
藏”
26) 勝鬘經 一乘章 (T12, 219b)
27) 楞伽經(T16, 483a, 484b, 490a, 510b)
224 ∙佛敎硏究 제48집

동별이 있다고 설하고 승만경을 인용 재전 여래장과 출전 여래장과


의 융즉을 설하여 진망상관은 필경 수파불일불이라 하더라도 원래 여
래장의 공덕이 서로 법계에 널리 미치고 일체명상의 의지 건립에 본
원임을 말하고, 일제. 일의. 여여. 법계. 장식 등은 모두 여래장의 다른
이름이다.28) 또 여래장을 설함에 있어서 연과 작용을 가지고 설할 때
인을 자라게 해서 과를 성취하고 소가 변해서 대를 이루고 범이 변해
서 성을 이룬다. 이런 것은 모두가 여래장불의 공덕이다.29)
라고 하였다. 즉 여래장불의 여래장을 아뢰야 진망화합의 뜻으
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서 여래장설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한 
승만경과 능가경은 여래장연기설의 예로써 후대에도 많이 인
용하고 있다.
여래장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 방법은 대근기행법과 보법사
불에서 일치하고 있다. 대근기행법은 여래장을 주장하는 경증
으로 승만경과 능가경 외에도 열반경을 언급하였고, 보법
사불은 밀엄경을 더하여 인용하였다. 보법사불에서 “밀엄
경 하권에 이르기를 불설여래장은 아뢰야식이 된다. 악혜(지혜가
낮은 자)가 藏 즉 아뢰야식임을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보이
고30) 일체 여래 법계 장식 등은 모두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
였다. 또 여래장을 설명하면서서 “연과 작용을 가지고 설할 때 인
을 자라게 해서 과를 성취하게 하고 소가 변해서 대를 이루고 범
이 변해서 성을 이룬다. 이런 것은 모두가 여래장불의 공덕인 것
이다.”고 하였다.
(2) 불성불
 대근기행법에서는 열반경 권36 가섭보살품 을 인용하여
28) 矢吹慶輝(1927), 404.
29) 矢吹慶輝(1927), 별책 202, “言如来藏約緣就用, 能長因成果變小成大轉凡成
聖, 總是如来藏佛之功力也”
30) 위의 책, 404.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5

불성에도 가르침과 비유에 의한 두 가지의 설명이 있다. (가르침에


의하면) 불성은 모든 범부와 성인의 因이다. 모든 범부와 성인은 모두
불성에 의해서 生長하는 것이다. 비유에 의한 설명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우유가 酪의 因이 되는 것과 같다.31) 모든 酪은 모두 우유에서
생긴다는 것은 (범부와 성인이 불성에서 생장하는 것과) 흡사하다.32)
고 하였다. 여래장과 불성 모두 佛부터 육도까지 모든 선악과
凡聖의 존재를 만들어 내거나 키우는 근본적인 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즉 일체 중생을 두루 공경해야 하는 당
위성을 ‘因’이라는 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 보법사불에서도 불성불을 설명하였다.
불성불이란, 불성에 理性行性이 있고 因性果性이 있다. 이제 여기서
밝히는 불성불이란 오직 열반경 제38권에 설한 바에 의거하면 正因
佛性쪽으로만 말한다. 일체법계중생은 공통적으로 凡 및 聖 모두 정인
불성을 가지며 일체제불보살 역시 이 성질(정인불성)을 같이 가진다.
極果(佛)를 따라서 이름을 세우므로 불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불성
도 (부처될 가능성으로서의) 인이 없고 과가 없다. 因상태에 있을 때
因이라 이름하고 果상태에 있을 때 果라 이름한다. 앞의 여래장(불성
불을 말하기 전 첫 번째) 공히 안목이명이다. (인으로는 차별이 없
지만) 연의 뜻을 따라서 차별이 조금 있다. 불성의란 법계중과와 함께
법계업인을 거두기 때문에 그러므로 불성이라고 한다. 불과를 따라서
인을 향하여 모두 다 포함하기 때문에 불성불이라고 이름한다.33)
31) 열반경 獅子吼菩薩品 (T12, 530b)
32) 對根起行法(敦煌寶藏113, 315a-b) “佛性者, 亦法喩並説. 佛性者是一切
凡聖因, 一切凡聖皆從佛性而得生長. 喩説者, 喩如乳是酪因, 一切酪皆因於乳
而得生長, 一種相似”
33) 對根起行法(敦煌寶藏19, 524a), “佛性佛者或有理性或有行性, 或有因性或
有果性, 今此明者唯依涅槃經第三十八卷説但明正因佛性, 言一切法界衆生通凡
及聖皆有此性, 一切諸佛菩薩亦同有此性, 從極果立名故名佛性, 然此佛性非因
非果, 在因名因在果名果共前如来藏眼目異名, 約緣義少有差別, 佛性義者與法
界常果收法界常因故名佛性, 從佛果向因總收盡故名佛性佛”
226 ∙佛敎硏究 제48집

이것은 열반경권36에 의거하여 설명한 것이다.


불성이란 일법을 이름이 아니다. 십법, 백법, 천법, 만법 내지 아뇩
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 이래로 모든 법을 얻은 것이다. 일체 선
악무기를 불성이라 이름한다.34)
불성이란 불다운 성을 말하며, 일체중생 모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성(不改의 義)35)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불성도 여
래장도 그 근본 뜻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요컨대 불성불이란 열
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의 설에 의하여 불성의 보편으로서 일
체중생을 불로 보는 삼계교의 보불을 가리킨다.
(3) 당래불
당래불에 대해서 대근기행법에서는
당래불이라는 것은 모든 四衆들은 현재는 바르지 못한 선행을 하고
있지만, 장래는 불이 되는 것이다.36)
라고 하였다. 보법사불에서는
연에 의거하여 모든 행이 여래장이고 불성행이다. 본으로서 싹을
포섭하고 진으로서 망을 거두는 것이 모두 일승보살행이고 행이 만족
되므로 불과를 이룰 수 있다. 여래장불, 불성불, 번뇌 중에 있기 때문
에 인위에 있고 장래에 불이 될 수 있으므로 당래불이라 한다.37)
34) 열반경 迦葉菩薩品 (T12, 580c), “佛性者不名一法十法百法萬法, 乃至未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來一切善惡无記悉名佛性”
35) 혜원은 불성의 ‘性’에 대해 ①種子因本, ②體, ③不改, ④性別의 네 가지
뜻을 붙였다. 大乘義章(T44, 472a-b)
36) 矢吹慶輝(1927), 별책 132, “當來佛者, 一切惡四衆等現在雖行邪善行, 皆當作
佛”
37) 西本照眞(1998), 617, “約緣行行皆是如来藏行, 皆是佛性行, 以本攝苗以眞收妄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7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삼고 있는 법화경에 의거하


면 “불경보살이 사부대중 그들의 몸속에 여래장 불성 진실체가
있기 때문에 예배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고
마땅히 부처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당래불이라 한다.”38)고 하
였다. 어떠한 중생이라도 여래장 불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므
로 장래에는 佛이 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하였다. 두루 공경해야
하는 근거를 장래에 불이 된다는 ‘果’의 입장에서 인식한 점에 당
래불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신행은 법화경 상불경보살의 예에 따라 길에서 만나는 모든
남녀에게 예배하였다고 전해진다. 상불경보살이 항상 사상을 예배
하고 모든 중생들을 깊이 존경하기 때문에 감히 가볍게 여기지
않고, 모두 보살도를 행하여 장래 부처가 될 존재로 인식한 것은
명백히 중생의 구성작불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교에서는
이에 의하여 ‘당래불’의 항목을 세워 제3계의 보불을 설하였던 것
이다.
(4) 불상불
佛想佛에 대해서 대근기행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상불이란 중생을 생각하는 경우에 모두에 대해서 佛의 모습을 연
상하는 것이다.39)
또한 돈황본 삼계불법에서
일체의 불, 일체의 승,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상불이다.40)
皆是一乘普菩薩行, 行満足故, 得成果佛, 以如来藏佛佛性佛在纏中故, 在因位
故當來得作佛故名當來佛”
38) 위의 책, “准依法華經説不輕菩薩禮拜四衆身中同有如来藏佛性眞實體, 故云汝
等皆行菩薩道當得作佛故名當來佛”
39) 矢吹慶輝(1927), 별책 132, “佛想佛者, 想一切衆生皆作佛想”
228 ∙佛敎硏究 제48집

라고 한 것과 같다.
 보법사불에서는
불상불이란 일체법계중생이 같이 여래장ㆍ불성불ㆍ당래불이므로
겉으로 드러난 특성은 진불과 같다. 그러므로 (상이 같기 때문에) 불
상불이라 한다.41)
일체중생을 여래장 불성으로 보면 모두 당래불이 되는 것이다.
당래 작불을 기다려 비로소 ‘불’인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체
성에서 생각하면 모두가 불 아닌 것이 없다. 修證得果의 다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有戒無戒持戒破戒의 차별을 철
폐하고 당장 중생에 진불상을 생기지 않게 해서는 안 된다. 삼계
교의 보불은 여기서 그 진가를 최대로 발휘하게 된다.

2. 普眞普正佛
 보법사불에서
여래장불성의 체가 법계에 두루한다. 체용공덕이 邪가 아니고 僞가
아니므로 보진보정불법이란 보정불법이라 한다. 일체별진별정이 아니
기 때문이다. 또한 일체근본불법이라 이름한다. (중략) 보진보정 등 6
종불법과 여래장 등 8종불법을 얻는다면 일천제 됨을 면한다.42)

40) 위의 책, 56, “一切佛一切僧一切衆生俱是佛想佛”


41) 위의 책, 205, “佛想佛者由一切法界衆生同是如来藏佛性佛當來佛故, 相同眞佛
名佛想佛”
42) 西本照眞(1998), 618, “普眞普正, 謂如來藏佛性體遍佛法界, 體用功能不邪不
僞, 名普眞普正佛法, 非是一切別眞正故. 亦名一切根本佛法, (中略) 普眞普正
等六種佛法, 及得如來藏等八種佛法相當, 卽免作一闡提”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29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대근기행법에서는
(八段中의) 둘째는 보진보정불법이다. (사인과 정인을) 불문하고, 사
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고 정인이 배워도 진정을 얻는다. 어째서인가?
여래장, 불성이라는 본체는 두루하는 법, 진실의 법밖에 있을 수 없으
니까 그중에 사마가 끼어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인
과 정인을 불문하고 모두 진정을 얻는다.43)
고 하였다. 즉 보진보정불법도 여래장, 불성의 본질에 관한 것
임을 알 수 있다. 여래장, 불성은 모든 중생에게 두루 널리 퍼져
있다는 점에서 보법이다. 또한 완전히 진정한 법이기 때문에 보진
보정불법이라고 하였다.
제3계의 사견의 중생이어도 여래장, 불성을 공경하면 眞正을 얻
는 것이 보증되어 있다. 여래장, 불성 혹은 그 본질을 설한 보진보
정불법은 제3계인의 출세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원리가 되는 것이
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3계 공견유견전도사상의 중생은 견
에 眞正을 얻기 어려우므로 적어도 ‘불’로 사유하여야 하는 것은
모두 받아들여 귀의하게 하였다. 이것은 대근기행법중 생맹보현
의 설에 의한 것이다.44) 불성이란 불다운 성을 가리키며 일체중생
모두 각자이어야 할 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제3계 불법인 보진
보정의 불법으로 보면 일체 중생 모두 내재적 불타이다. 보불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43) 矢吹慶輝(1927), 132, “二者普真普正佛法. 莫問邪人, 學亦得真正, 正人學亦得


真正. 何以故. 如來蔵佛性體唯是普法, 唯是真法, 於中無有邪魔得入其中. 是故
不問邪人正人, 俱得真正”
44) 위의 책(396).
230 ∙佛敎硏究 제48집

Ⅲ. 결론
신행이 삼계교를 창시한 그 바탕에는 말법시대라는 강한 위기
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법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그 방법을 가르친 이가 바로 신행
이다. 이 가르침이 제3계 불법이고 보법이다.
신행이 살고 있던 당시의 풍조로는 부처님의 여러 설법 가운데
어느 법이 가장 우위에 있는 가를 가름하는 교판을 가려내는데
온힘을 기울였지만, 신행은 아무리 수승한 법이라도 그 시대 그
땅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그에 알맞은 법 즉 대
근기행법을 찾는 것이 가장 알맞은 출세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리
하여 기존의 틀을 부정하지 않고 제3계중생도 성불할 수 있는 길
을 모색하였다. 이 새로운 틀은 보와 별이라는 짜임새였다. 제3계
중생의 본질은 견의 사견성전도성에 있고 이것을 없애는 것이 바
로 그들이 출세간에 이를 수 있는 길인 보법인 것이다.
견이 전도된 제3계 중생은 사정을 식별할 능력이 없으므로 어
느 특정한 가르침만을 배우는 별법을 수행하면, 그것은 마치 맹인
이 앞을 못 보면서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법을 배우는 것은 맹인이 지면을 향해
화살을 보내는 것처럼 안전하다고 하여 제3계인에게는 모든 불과
모든 법을 두루 공경하는 보불보법만이 순익무손의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여래장불성을 갖고 있으므로 당래불로서 공
경해야 하며 자기에게서는 악만 보고 상대에게 대해선 선만 보는
생활태도로 자기의 악을 참회하고 선행을 쌓아가야 출세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 삼계교의 중요사상이다.
신행은 말법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정신적인 지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무진장시 같은 경제적인 불교복지면에서도 힘써, 전
쟁과 법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서민들의 생활을 돕고자 몸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31

소 실천에 옮겨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신행은 당시 불교계에 많이


퍼져있던 교의사상과는 달리 불교의 사회적 실천에 중점을 둔 독
창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을 주장하고 그 실천에 주력하였다. 현대
를 사는 우리도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자기주장만 옳다
고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상대방을 공경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삼계
교 정신을 실천하면 더욱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232 ∙佛敎硏究 제48집

약호 및 참고문헌
T : 大正新脩大藏經
涅槃經(T12)
勝鬘經(T12)
楞伽經(T16)
大乘義章(T44)
三階佛法
對根起行法
普法四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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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佛敎硏究 제48집

Abstract
Doctrine of Universal Law and Universal Buddha in
San-Jie Jiao
Park, Bu Ja
Dongguk Univ.

San-Jie-Jiao is one of the sect of Buddhism in China


that has carried religious activity about for 400 years after
it was opened by the Xinxing Zen maser in the late period
of North and South Dynasities. The idea of San-Jie is
founded on the framework of the teachings of ‘Three levels
of roots’. Among the three levels, the first and second level
can reach to success by learning and practicing each
different law.
However, the people in third level can not attain
Buddhahood as long as it was based on the existing
religious structure of eka-yana or yana-traya. Therefore,
the San-Jie doctrine express a way to achieve success for
the people of third stage. This must be done not by Biefa,
‘exceptional law’, but by Pufa, ‘universal law’.
As the root of the third group is characterized by the
inability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it is
impossible to distinguish only a small number of true out of
overwhelming majority of false. Ultimately, they make the
mistake of recognizing virtue as vice. To avoid this mistake,
the perspective of ‘Pu’ is introduced into ‘Buddha’, ‘Dharma’,
‘Sangha’, and People.
In colclusion, ‘Pufa’ respect whole people for beings
with Buddha nature or Buddha element. The authenticity of
三階敎의 普法普佛思想∙235

this lesson can be learned regardless of the good and the


bad.
Key Words :
Xinxing, San-Jie Jiao, Pufa, Universal Law and Buddha, three
level roots, School of the Thrid Stage, Pufa Pufu

투고일 2018. 1. 23 | 심사기간 2018. 01. 24 - 02. 10 | 게재확정 2018. 02. 10


불교연구 제48집(2018), 237~276쪽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교감분석을 토대로
박은영(지현)** 45)

Ⅰ. 서론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2. 제3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3. 제4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Ⅲ. 결론

*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후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임.


** 조계종교육아사리. jihyun6811@hanmail.net
238 ∙佛敎硏究 제48집

요약문
본 논문은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연구했던 華嚴經談玄決擇
記 전6권을 완역하면서 일본의 卍續藏經에 수록된 원문과 金澤
文庫管理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이다.
앞서 卍續藏經에 수록되지 못했던 결택기 권제1에 국한하여 金
澤出版本과 金澤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교감표와 분석 내용을 정
리하여 게재한 이후, 두 번째 작업으로서 권제2부터 권제4(절반)까지
를 교감표로 작성하여 그 특이사항을 분석하였다.
담현결택기는 일본의 高山寺소장 寫本 권제2~6권이 있고, 卍
續藏本 권제2~6의 저본으로 보이는 교토대학 도서관부속 藏經書院
소장본 권제2~6이 있으며, 金澤寫本 권제1~6이 있어 모두 세 종
류의 사본이 현존하고 있다. 1975년에 일본의 가나자와 문고에서 
金澤文庫資料全書에 제1권을 실어 출판한 것을 제외하고 학계에는
그동안 金澤寫本 권제2~6과 卍續藏本 권제2~6을 비교 검토하
는 텍스트 간 교감연구가 없었다.
본 논문에서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두 텍스트 간 원문의
비교분석을 [교감표]로 정리해본 결과, 제2권은 교감번호가 122항이
고, 제3권은 102항이며, 제4권(절반)은 90항에 달한 결과가 나왔다. 
卍續藏本의 원문을 수정하거나 보충한 것은 상당수 金澤寫本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다. 특히 제3권은 卍續藏本의 30페이지 中段의
10행부터 11행 사이에 유실되었던 8페이지3줄, 총 2597자를 金澤寫
本을 통해 모두 보충했는데, 그 보충된 내용을 통해 선연이 본문
제1장 교기인연 을 다루면서 十緣가운데 ‘二緣, 처소에 의지함’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과 또 법장의 여러 저술가운데 旨歸 역시
인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어 :
대소, 연의초, 담현결택기, 卍續藏本, 金澤寫本, 원문교감표,
내용분석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39

Ⅰ. 서론

본 논문은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1)으로 연구했던 華嚴經談玄決


擇記2)(이하 결택기) 전6권을 완역하면서 일본의 卍新纂續藏經
(X8, 001a-089a)에 수록된 원문(이하 卍續藏本)과 金澤文庫管
理寫本(이하 金澤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
의 하나이다. 앞서 卍續藏經에 수록되지 못했던 결택기 권제1
에 국한하여 金澤出版本3)과 金澤寫本의 원문을 교감한 교감
표와 분석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4)한 이후, 두 번째 작업으로서 권
제2부터 권제4(절반)5)까지를 교감표로 작성하여 그 특이사항을
분석하였다.
한문불전에 기반하고 있는 동아시아 불교에 있어서 경·율·론 관
련 章疏 등의 텍스트 원문에 관한 연구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선
행되어야 하는 연구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연구
1) 박은영(지현)(2017), 1-962에서 결택기 전6권을 연구하고 완역하였다.
2) 金澤寫本 권제1~6과 卍續藏本권제2~6에 쓰인 決擇記의 표제와 미
제는 모두 大方廣佛華嚴經談玄決擇으로 되어 있고, 金澤寫本 권제5의
미제에는 大方廣佛華嚴經決擇記로 되어 있다. 필자는 그 명칭을 華嚴經
談玄決擇記로 정리했는데, 이유는 金澤寫本 권제5의 미제와 의천 외, 이
상현 역(2012), 606-607과 선연 자신이 그 권제6(X8, 089a)에서 언급하고
있는 記文이란 표현, 그리고 후대의 인용문에서 결택기라고 언급한 점
등에 의거했다. 記를 덧붙였을 때 疏鈔의 주석서인 것이 잘 드러나기 때문
이다.
3) 일본의 稱名寺소장·金澤文庫관리 사본의 여러 문헌에서 결택기 6권의
존재가 확인되어 1975년에 金澤文庫에서 제1권을 金澤文庫資料全書(V.2,
20-46)로 간행했는데, 이것이 金澤出版本이다.
4) 박은영(지현)(2016), 7-36에서 금택출판본 과 금택사본의 결택기 권
제1을 교감한 결과를 표로 작성하고 오자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내용의 변
화를 설명했다.
5) 본 논문에서 결택기 권제2~권제4(절반)까지를 다룬 것은 분량상의 이
유 때문이다. 제4권의 나머지절반과 제5,6권은 다음 결택기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Ⅱ 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240 ∙佛敎硏究 제48집

자들에 의해 일일이 원문을 분석하는 과정은 단순한 글자상의 교


감을 넘어 문맥상 판단해야 하는 경우와 다른 저본들과의 교차
대조를 통한 교감까지를 포함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
요한 과정인 것이다.
결택기는 일본의 고잔지(高山寺)소장 寫本(이하 高山寫本)6)
권제2~6이 있고, 卍續藏本(권제2~6)의 저본으로 여겨지는 교
토대학 도서관부속 藏經書院 소장본(이하 藏經書院本) 권제2~6
이 있으며, 金澤寫本 권제1~6이 있어 모두 세 종류의 사본7)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사본에 관한 연구는 서지학적인 연구8)와
1975년에 일본의 쇼묘지(稱名寺)소장·가나자와문고(金澤文庫)관리
사본가운데에 卍續藏經에 입장되지 못했던 제1권을 金澤文庫資
料全書에 실어 출판한 것을 제외하고는 화엄전공자 사이에서도
사본 전문연구자들에 의해서도 金澤寫本과 卍續藏本을 비교
검토하는 텍스트 간 교감연구는 없었다. 따라서 가나자와문고 관
리 사본이 지닌 가치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
다. 그런데 金澤寫本 권제1, 2와 卍續藏本 권제2, 3의 사본기
에는 공통적으로 ‘고려국 대흥왕사에서 壽昌 2년(1096) 세차 (병
자)에 선지를 받들어 새기다. 대송국 崇吳古寺에서 宣和 5년(계
묘)(1123)에 석 安仁이 베껴 쓰고, 淳熙 세차(을유)(1189)에 崇吳古
寺 문중 釋 祖燈이 科點하고 重看하다.’9)라는 내용이 있어 현존하
6) 大塚紀弘(2010), 9-10에 의하면 高山寺本은 권2~6이 소장되어 있다. 현
재 高山寺本은 1년에 3월과 9월 두 달에 열람만 가능하다. 이처럼 자료
의 접근성이 어려워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高山寺本과의 텍스트
교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여건이 성립되면 추후에 진행할 계
획이다.
7) 현존하는 세 종류 사본 중에 高山寺本이 최고본이고, 다음이 金澤寫本
이며, 藏經書院本은 가장 뒤의 것으로 高山寺本을 저본으로 해서 에도
시대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세 필사본의 문헌학적인 전후성립관계는
박은영(지현)(2017), 37-39에서 소개하고 있다.
8) 龜川敎信(1935a), 54-75; 龜川敎信(1935b), 173-201.
9) 결택기의 사본기 에는 공통적인 내용 이외에 각각 金澤寫本 권제1에
“弘安 8년(1285)에 9월 19일 高山寺에서 사문 ○○이 서사시켰다.”와 卍續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1

고 있는 결택기의 祖本은 高麗敎藏10)의 하나로 간행된 텍스트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동아시아에서 비교적 짧았던 역사에도 불구하고 契丹藏
등 훌륭한 불교문화를 남겼던 요나라(916~1125)는 특히 요대 불
교의 황금기로 불리는 세 황제(성종, 흥종, 도종)의 적극적인 외호
정책과 불사봉행을 배경으로 화엄, 유식 등 불교연구 분야에 있어
서도 뛰어난 학승들이 배출되어 활발하게 章疏의 저술 및 강학 활
동이 이뤄졌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 요대에서 화엄학의 제일인자
였던 이가 바로 결택기 6권을 저술한 선연(1040~45-1118)이다.
요나라에서는 결택기 이전에도 이미 청량 징관(738-839)의 華
嚴經疏(이하 대소), 華嚴經隨疏演義鈔(이하 연의초)에 관한
주석서가 몇 종류 더 저술11)될 만큼 화엄학이 발달했는데, 이 사
실은 그동안 발견된 요대의 불교유물 가운데에 화엄경과 대소
, 연의초가 다수 발견된 점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12) 또
선연이 결택기 권제6 말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저술동기’를13)
藏本 권4에 “대송국 咸淳 제7(신미)년(1271) 봄 중월 下7일에 송조 湖州
思溪 法寶禪寺에서 남산의 고려교사에 있는 祕本을 빌려서 삼가 베껴 두기
를 마쳤다. 집필 사문 辨智.”라는 개별적인 내용도 있다. 따라서 卍續藏本
의 저본은 일본학승 변지가 직접 서사하여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고산
사본)이고, 金澤寫本은 귀국 후 일본에서 서사를 발주시킨 사본으로 보
인다. 박은영(지현)(2017), 37-39.
10) 최근 학계에서는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이 간행한 교장들을 일괄적으로 
高麗敎藏으로 명명하고 있으므로 필자도 역시 이를 따랐다. 高麗敎藏
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유부현 외(2015), 95-99 참조.
11) 요대 학승들이 저술한 대소·연의초의 주석서는 ①道弼 述, 演義集玄
記 六卷, ②鮮演 述, 『華嚴經談玄決擇』 六卷, ③思積 集, 『演義鈔玄鏡
記』 二十卷 등이 있고, 과단을 정리한 것으로 ④道弼 述, 演義逐難科
一卷, ⑤思孝 述, 玄談鈔逐難科 一卷이 있다. 이 중 ①,④,⑤는 고려의 의
천이 간행한 新編諸宗敎藏總錄에 수록 되어있다. ①은 후대 주석서에
인용된 형태로만 확인되고, ③은 遼代 應縣木塔에서 권제3상반의 단간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竺沙雅章(2000), 142. 후대에 宋代의 ⑥觀復 述, 『華
嚴經會解記』 十卷과 日本의 ⑦湛睿 述, 演義鈔纂釋 三十八卷, 元代의 ⑧
普瑞 述, 『懸談會玄記』 四十卷의 세 종류가 더 있다.
12) 竺沙雅章(2000), 123-146.
242 ∙佛敎硏究 제48집

살펴보면 당시 요나라 학승사이에서 특히 징관의 화엄학에 관한


관심도를 알 수 있다.
결택기는 대소 권제1-4, 연의초 권제1-16에 해당하는 
현담 부분을 수문 해설하는 형식으로 주석한 것인데, 그 내용은
크게 귀경게송(7언 율시), 서문(2紙 11行), 본문(권제1-6), 회향게
송(5언 절구)으로 구성되어 있다.14) 遼代에 저술된 화엄경소초
주석서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주석서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연구 자료인 것은 물론이고, 내용면에서는 법장과 징관으로 이어
진 화엄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론 ‘오중중도론’ ‘진리
망사비일비이도’ ‘성악사상’ 등15)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사상을 그
속에 녹여내고 있기도 하다. 선연의 화엄사상에 관한 내용은 본
논문의 연구주제에서 벗어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본 논문에
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두 텍스트 간
원문을 비교 검토한 결과로 교감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Ⅱ본론
에서는 결택기의 제2, 제3, 제4권(절반)의 교감내용을 교감표로
작성하여 제시하고 각 권별로 전반적인 사항과 특이한 사항을 정
리하면서 내용상의 분석을 해보겠다.

13) 박은영(지현)(2017), 953, “決擇記 권제6(X8, 088c-089a), “지난여름부터


계속해서 법석을 열어 초가을에 이르게 되자, … 청하기를 ‘간절하게
滿規 등 오백 명의 학승들이 숙세에 圓宗을 사모하여 이제 ‘了義’[의 가르
침]을 받게 되었으나, … 玄談의 상·하내에서 義門이 가려지고 소원해
진 틈에 근거하여 간략하게 記文을 집성해 주시면 길이 뜻풀이가 될 것
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하 생략.”
14) 박은영(지현)(2017), 49-89에서 결택기의 구성과 내용, 주석상의 특징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15) 기무라, 정병삼 외 역(2005), 261-279.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3

Ⅱ. 본론
1. 제2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1) 제2권의 교감내용
우선, 決擇記 卷第二~ 卷第四(절반) 교감 표의 작성 범례는
다음과 같다.
[범례]
* 卍續藏本권2~권4 원문은 대만의 Chinese Buddhist Electronic
Text Association(이하 CBETA)의 2016년도 Version에 의거했다.
* ‘해당 페이지’란에서 앞의 숫자는 卍續藏本 제8권의 페이지,
‘a·b·c’는 상단·중단·하단이며, 그 다음숫자는 행수를 표시한다. 小註
일 경우, 한 행을 상반과 하반으로 나눈다.
* 교감표시는 예를 들어 ‘一一光’에서 ‘一’이 빠진 경우는 ‘-一光’으로,
‘一’이 있는 경우는 ‘一+一光’으로 표시한다.
* 동일한 행에 교감할 글자와 동일한 글자가 있을 경우, 그 글자의 앞
이나 뒤에 괄호 속의 글자를 덧붙여 구별한다.
* ‘비고’란에서 참조 본 언급 없이 ‘교감주’라고만 쓴 경우는 卍續藏本
의 ‘교감주’를 의미한다.
* 卍續藏本의 교감주는 교감에 반영한 경우에만 언급하고, 반영하지
않은 경우는 언급하지 않는다.
* 金澤寫本에 근거하여 교감했을 경우, 일일이 金澤寫本을 언급하
지 않고 ‘참조’ 수정(or 보충) 등이라고만 밝히고, 金澤寫本과 함께
참조한 본이 더 있을 경우에는 ‘&’로 표시한 뒤 참조 본을 밝힌다.
결택기 제2권(X8, 01a-16a)을 교감한 내용16)은 다음과 같다.
16) 위에 작성된 [교감표]의 내용은 추가로 교감사항이 나오면 계속해서 반
영할 예정이다.
244 ∙佛敎硏究 제48집

<표1> 決擇記 제2권의 교감 표


번 X8 卍續藏本17) 金澤寫本 교감결과 비고
호 페이지
1 01b03 -一(光) 一+一(光) 一一(光) &감주연의초 18) 및 교
참조 보충
2 01b09 一+一(切) -一(切) 一(切) &참조화엄경 삭제

3 01b09 程 種 種 & 교감주 참조 수정,


아래(01b11)도 동일
4 01b16 充+滿 充- 充- & 연의초
참조 삭제
5 01c15 至 主 主 & 교감주 참조 수정
6 02a02 爾 所 所 참조 수정
上半
7 02a02 邊 遞 遞 참조 수정
下半
8 02a10 何 可 可 참조 수정
9 02a22 遞 處 處 참조 수정
10 02a23 赴 起 起 참조 수정
11 02b02 一 十 十 & 연의초
참조 수정
12 02b10 劫 却 却 참조 수정
13 02c18 楞 楞 楞 前後同句에는 “緣”으
로 되어 있다.
14 03a07 (何)以- (何)以+云 (何)以云 참조 보충
15 03a16 普 不 不 참조 수정
16 03b22 赴 趣 趣 & 교감주 참조 수정
17 03c18 情 晴 晴 & 교감주 참조 수정
18 04a20 後 從 從 & 교감주 참조 수정
19 04a23 來 末 末 참조 수정
下半
20 04b01 靈 虛 虛 & 조론 참조 수정
21 04b02 乎- 乎+哉 乎哉 & 조론 참조 보충
22 04b19 曲- 曲+有 曲有 참조 보충
23 04c04 故 政 政 & 예문지
上半 참조 수정
24 04c05 衛 術 術 上同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5

下半
25 04c06 敕 勅 勅 上同
上半
26 04c06 來 禮 禮 上同
下半
27 04c06 廟 廟 上同
上半 庿

28 04c07 手 乎 乎 上同
上半
29 04c07 和 知 知 上同
上半
30 04c07 大國 國大 國大 & 예문지
上半 참조 도치
31 04c21 該 統 統 & 조론 참조 수정
32 06a24 示 亦 亦 참조 수정
33 06b03 說 諸 諸 참조 수정
34 06b05 三 之 之 참조 수정
35 06b06 一- 一+者 一者 참조 보충
36 06b06 二- 二+者 二者 참조 보충
37 06b10 不- 不+斷 不斷 & 연의초
참조 보충
38 06b10 惡性 性惡 性惡 & 연의초
참조 도치
39 07a02 有 在 在 참조 수정
40 07a06 淨 諍 諍 참조 수정
41 07a12 二(二) 二(二) 下(二) 上二句의 상대구절
참조 수정
42 07a17 空 定 定 참조 수정
43 07a23 徧 徧 偏 교감주 및 문맥상(偏
滯) 수정
44 07a23 云乃至 云乃至 乃至云 연의초 참조 도치
45 07b03 對 句 句 참조 수정
46 07c03 差 嗟 嗟 참조 수정
47 07c07 陟 涉 涉 & 교감주 참조 수정
48 07c09 離- 離- 離惡 유마경 참조 보충
49 07c12 失+所 失-所 失 참조 “所”삭제
50 07c22 [言*寅] 諠 諠 참조 수정
金澤寫本 교감주
51 08a01 聞 開 闕 참조 수정
246 ∙佛敎硏究 제48집

52 08b10 (爲)衆 (爲)取 (爲)取 참조 수정


53 08b10 (現)變- (現)變+化 (現)變化 참조 보충
54 08c12 之- 之+相 之相 참조 보충
55 09a24 偶 偶 隅 교감주 참조 수정
56 09b15 曰 日 日 참조 수정
57 09c15 舍 含 含 참조 수정
58 09c17 但 俱 俱 참조 수정
59 09c18 含/合 含 含 & 卍續藏經
(CBETA) 참조 수정
60 10a01 -現 內+現 內現 참조 보충
61 10a05 現(在) 還(在) 還(在) 참조 수정
62 10b07 有 者 者 & 연의초
참조 수정
63 10b08 失 失 夫 연의초 참조 수정
64 10b16 記 託 託 참조 수정
65 10b22 知 如 如 참조 수정
66 10c06 (今)云 (今)謂 (今)謂 참조 수정
67 10c13 當 審 審 참조 수정
68 11a16 折 折 俱 대소 참조 수정
下半
69 11a16 二無 二無 無二 대소 참조 도치
下半
70 11a16 其- 其+心 其心 참조 수정
71 11a17 處 所 所 참조 수정
연의초 “見如來神”
72 11a19 見+神 見+神 見 참조 연문으로 보임
73 11a20 云 無 無 참조 수정
下半
74 11a24 證聖 聖證 聖證 참조 도치
75 11c08 悟 語 語 & 범망경
참조 수정
76 11c24 似 以 以 & 교감 주
참조 수정
77 12a03 光-----亦 光+(五果 光五果位 & 대소 참조
位一光)亦 一光亦 5字 보충
78 12b02 住十 十住 十住 & 대소 참조 도치
比前+ & 대소
79 12b03 (諸位此齊) 比前--如 比前如 참조 수정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7

80 12b17 本 大 大 & 연의초


참조 수정
81 12b18 導 尊 導
上半
82 12b19 四- 四+悲 四悲 참조 보충
연의초 ·열반경
83 12c02 (欠)去*欠 (欠)去*欠 (欠)呿 참조 수정
 연의초  ·  열반경 
84 12c02 震動 震動 震動 에는 “振吼"로 됨.
대소에는 “其”로
85 12c12 然 然 然 되어 있다.
86 12c13 動 動 便 대소 참조 수정
87 12c14 昧 昧+爲 昧爲 & 대소 참조 보충
88 12c21 爲- 爲+行 爲行 & 대소 참조 보충
화엄경, 교감주
89 13a05 來 來 是 참조 수정
90 13a06 返 變 變 & 화엄경,
교감주 참조 수정
91 13a08 -身 者+身 者身 참조 보충
92 13a11 來 乘 乘 & 교감주 참조 수정
93 13a12 辯 辦 辦 & 대소 참조 수정
94 13a14 定 定+故 定故 참조 보충
95 13a23 莊 莊 福 대소 참조 수정
96 13a23 二+心 二+心 心 대소 참조
下半 “二” 삭제
97 13b08 一 十 十 & 화엄경
참조 수정
98 13b14 雖 矣 矣 & 대소 참조 수정.
99 13b15 嚴- 嚴+者 嚴者 참조 보충
100 13b15 -眼 天+眼 天眼 참조 보충
101 13c11 德(城) 福(城) 福(城) & 대소 참조 수정
102 13c13 趣 起 起 & 대소 참조 수정
103 13c14 --故 摧伏+故 摧伏故 & 대소 참조 보충
104 14a03 固 固 忍 화엄경 참조 수정
105 14a13 寄-(修) 寄+位(修) 寄位(修) 참조 보충
106 14a16 謂- 謂- 謂初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一人”으
107 14a16 一位 一位 一位 로 되어 있다.
108 14a21 邊 遺 遺 & 대소 참조 수정
248 ∙佛敎硏究 제48집

109 14b05 性稱 稱性 稱性 참조 도치
下半
110 14b06 多 五 五 & 대소 참조 수정
111 14b08 面-- 面+聽政 面聽政 & 대소 참조 보충
112 14b14 表-(契) 表+之(契) 表之(契) &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行”으로
113 14b16 修 修 修 되어 있다.
114 14c02 滅 減 減 참조 수정
115 14c21 界- 界+界 界界 참조 보충
116 15a06 纔 讒 讒 참조 수정
117 15a15 帝 常 常 참조 수정
118 15a17 孔 礼 礼 참조 수정
119 15b19 應 忘 忘 참조 수정
120 15c06 似 以 以 참조 수정
121 15c06 爲 與 與 참조 수정
122 16a03 聖 經 經 참조 수정
(錄摘文解)19)
2) 제2권 교감상의 특이사항
⑴ 전반적인 사항
제2권의 교감사항을 전반적으로 정리해보면, 이 권은 교감번호
가 122항에 달하는데 이 중 金澤寫本을 통해 수정되거나 보충한
경우는 모두 99항이다. 그 중에서도 글자를 새로 보충한 부분은
23항에 이른다. 金澤寫本을 참조하지 않고 화엄경이나 대소
17) 卍續藏本의 경우 底本인 藏經書院本과의 교감이 선행되어야 하겠지
만, 우선 卍續藏本이 널리 알려져 있는 텍스트인 점과 卍續藏本의 작
업을 신뢰하여 이 두 텍스트 간 비교연구는 제외했다.
18) 演義鈔 등 大正藏을 참조할 경우는 일본의 The SAT Daizōkyō text
database(SAT2012)를 참조하였다.
19) 決擇記는 尾題 뒤의 錄摘文解 제하에 각 권의 주요 내용을 순서대로
간략한 문구나 단어로 열거해 놓아서 그 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쉽
게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제1,2권의 錄摘文解 는 사본기 바로 뒤에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선연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후대에 필사하거
나 학습한 이들이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49

, 연의초 등 다른 본을 참조하여 교감한 경우는 모두 14항이


 
다. 참조 본은 없이 卍續藏本이나 사본의 교감주를 의거했거나
문맥상 수정한 것이 4항이고, 문맥상 문제가 없어 교감을 하진 않
았지만 대소, 연의초 등에는 달리 쓰여 있는 경우는 5항이 된
다. 또, 卍續藏本에 자체적으로 달린 교감 주는 모두 18항인데
실제로 교감에 반영된 경우는 12항이다. 나머지 6항은 교감된 내
용과 달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감표]에서 제시된 오자를 특징지어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유사해서 잘못 쓴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인데, 위의 교감
표에서는 主→至(5), 處→遞(9), 廟→庿(27), 乎→手(28), 知→和(29),
該→統(31), 亦→示(32), 之→三(34), 在→有(39), 下→二(41), 定→空
(42), 日→曰(56), 含→舍(57), 俱→但(58), 如→知(65), 審→當(67),
語→悟(75), 乘→來(92), 辦→辯(93), 遺→邊(108), 常→帝(117) 등이
해당된다.
위 항목들은 모두 앞의 글자를 뒤의 글자로 잘못 쓴 것인데, 이
것은 필사체로 보면 더욱 더 유사하기 때문에 옮겨 쓰는 과정에
서 잘못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0) 비교적 사본 전문가들이 작업했
더라도 乎→手, 日→曰, 如→知 등은 착각하기 쉬운 글자들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고, 나머지는 불전원문을 전공한 이들이 아
니라면 헷갈릴 수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하나 둘씩 획을 빠뜨리거나 덧붙여져서 잘못된 경우와
좌변이나 우방의 획을 잘못 쓴 경우인데, 위 교감표에서 種→程
(3), 可→何(8), 起→赴(10), 却→劫(12), 十→一(11·97), 晴→情(17),
政→故(23), 勅→敕(25), 諸→說(33), 諍→淨(40), 偏→徧(43), 嗟→差
(46), 涉→陟(47), 隅→偶(55), 夫→失(63), 託→記(64), 大→本(80),
起→趣(102), 減→滅(114), 讒→纔(116), 礼→孔(118), 以→似(120) 등
이 해당된다.
20) 박은영(지현)(2016), 16-19에서 오류의 유형에 대한 분석 을 통해 사본
의 필사체를 직접 보이면서 비교 검토했다.
250 ∙佛敎硏究 제48집

또, 所→爾(6), 不→普(15), 虛→靈(20), 禮→來(26), 句→對(45), 俱


→折(68), 所→處(71), 便→動(86), 矣→雖(98), 福→德(101), 忍→固
(104), 經→聖(122)처럼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경우도 있다. 또, 
대소나 연의초에는 달리 쓰여 있는데도 수정하지 않은 경우는
振吼→震動(84), 其→然(85), 一人→一位(107), 修→行(113) 등인데,
문맥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아예 글자를 빠뜨린 경우가 제법 많은데, 제2권에서는
모두 25항 29자에 이른다.
⑵ 특이한 사항
제2권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교감번호 13의 경우이다. ‘楞’과
‘緣’은 다른 글자인데, 여기서는 둘 다 ‘모서리(楞)’와 ‘가장자리
(緣)’의 의미로 쓰였다. 필자가 이것을 교감표에서 제시한 이유는
바로 앞뒤의 문장 때문이다. 이는 연의초에서 징관이 대소의
序文 을 10문으로 해설하는 가운데, 제1문 總序名意 를 세밀하
게 10문으로 나눴고, 그 네 번째에 해당하는 說儀周普 에서 다시
열 가지 뜻(十義)을 설명한 가운데 제7, 설법하는 威儀를 별도로
보임 에서 ‘주체와 반려가 중중하게 시방의 끝까지 일제히 설법한
다’21)라는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이와 같이 주불이 서방세계 끝
까지 가면 역시 서방에 있던 보살들이 동쪽으로부터 서쪽을 지나
와서 주불과 가까워진 것을 볼 수 없다. 시방이 모두 그러하다.’22)
는 것을 설명한 구절이다.
여기서 ‘開元通寶’처럼 중심에 네모 구멍이 난 둥근 동전(동전의
중심은 주불이고 동전의 가장자리는 반려보살을 비유한다.) 열 개
곧 ‘十錢’으로 비유하는 글이 나오는데, ‘두 번째 동전이 첫 번째
동전 위에 포개지면 동쪽 한 가장자리(一緣之地)와 가까워진다.’23)
21) 華嚴經疏 권제(T35, 503a). “主伴重重, 極十方而齊唱.”
22) 演義鈔 권제1(T36, 006b), “如是主佛極於西方, 亦不見有西方菩薩從東過西
來近主佛. 十方皆爾.”
23) 演義鈔 권제1(T36, 006b), “以第二錢壓第一錢上, 近東一縁之地.”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1

고 한 문장을 선연이 수문 해설하면서 ‘동쪽에 전개된 한 모서리


자리(一楞之地)와 점차 가까워진 것으로써 제2중의 주·반이 각각
이동하여 동쪽 한 세계에 가까워진 것을 비유했다’24)고 설명을 붙
인 것이다. 연의초에서는 거듭 ‘一緣之地’란 문구만 썼기 때문에
얼핏 보면 ‘緣’을 ‘楞’으로 잘못 쓴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선연
은 ‘一緣之地’를 ‘一楞之地’로 표현하여 글자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려 했던 것 같다. ‘楞’의 모서리란 뜻이 여기서의 ‘緣’과 일
맥상통하면서 달리 해석될 여지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이사항은 卍續藏本에는 ‘含’으로 쓴 자를 CBETA
에서 ‘合’(58)으로 잘못 쓴 점이다. 이 글자는 金澤寫本에도 ‘含’
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몇 안 되는 CBETA의 오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⑶ 내용상의 분석
제2권은 대소의 서문 을 10문으로 해설하는 가운데 제1문
總序名意 의 세분과단 10문 중에 제4, ⑷ 說儀周普 의 十義 중
五義, 가르침을 받는 대중을 밝힘 에서 시작되어, 현담 본문의
10章 가운데 제1장 敎起因緣 , ② 釋緣十義 중 二緣까지를 다루
고 있다.
이 가운데 교감번호 38은 ‘性惡’을 ‘惡性’으로 잘못 쓴 경우인데,
여기선 ‘稱性之惡’을 의미하기 때문에 둘의 순서가 바뀌면 안 된
다. 이 내용은 대소의 序文 중 제1문 總序名意 에 ⑹ 旨趣
가 유현하고 미묘함 의 ① 이사무애를 밝힘 에 해당한다. 여기서
“聖心에 즉해서 凡心을 본다. … 그러므로 여래는 性惡을 끊지 않
으며”25)라는 구절에 대해 선연이 ‘性惡’에 관한 5교의 설을 자세하
게 설명한 뒤에 여기서는 “能同 終敎의 사리무애를 취한 것”26)이
라고 결론짓고 인증하고 있는 내용이다.
24) 決擇記 권제2(X8, 02c), “漸近東展出一楞之地,喻第二重主伴各移近東一界.”
25) 演義鈔 권제1(T36, 08b), “即聖心而見凡心. … 故如來不斷性惡.”
26) 決擇記 권제2(X8, 06b), “雖通五教, 正取能同終教事理無礙.”
252 ∙佛敎硏究 제48집

“아래 초27)에서 ‘여래가 性惡을 끊지 않는 것은 善惡이 똑같이 심


성으로 성을 삼아서이니, 만일 性惡을 끊는다면 심성을 끊게 된다. 성
은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일천제조차도 性善이 끊어지지 않
는다.’고 하였고, 또 용수보살이 ‘잠든 士夫를 참수할 때 어찌 깨어 있
는 士夫가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등28)이라고 하였다.”29)
따라서 ‘惡性’은 ‘性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선연은 오교
로 ‘性惡’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惡相’, ‘惡法’, ‘惡性’을 자유롭게 쓰
고 있다. 즉,
“終敎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예전에는 진여가 隨緣해서 모
든 법을 지었고, 지금 과위에 이르러서는 무명이 이미 끊어졌으니, 惡
相은 없어졌더라도 수연하는 眞性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중략-
둘은 악은 두 가지 뜻을 갖추었으니; 첫째는 상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으로, 진여와 다른 뜻이며(‘緣生相有’에 해당한다), 둘째는 성품에 걸
맞는 것으로, 진여에 즉하는 뜻이다(‘無性體空’의 뜻에 해당한다). 여기
서는 뒤의 뜻에 의거했기 때문에 ‘끊지 않으며’라고 한 것이다. 돈교에
서는 惡相은 본래 다한 것이어서 다시 끊어지는데 기대지 않으며, 惡
性은 본래 현전하는 것이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30)
라고 하여 ‘性惡’으로만 표현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7) 演義鈔 권제79(T36, 619a).
28) 釋摩訶衍論 권3(T32, 620b), “譬如眠士夫及與悟士夫, 俱行俱轉不相離故.
亦不可言斬眠士時悟士不傷, 相續一故. 亦不可說得悟士時眠士空無, 相續同
故.”
29) 決擇記 권제2(X8, 06b), “故下鈔云: 如來不斷性惡者, 善惡同以心性為性.
若斷性惡, 則斷心性, 性不可斷. 亦猶闡提不斷性善. 又龍樹云: 如斬眠士夫,
豈悟士夫不傷等. 若爾, 何故涅槃經說, 如來無不善佛性? 答曰: 彼據以理從事
即無, 此據攝事從理不斷. 又彼約現在為名, 此據過去立號, 故彼此文不相違背.”
30) 決擇記 권제2(X8, 06b), “終教亦有二義; 一云, 昔日眞如隨緣以作諸法. 今
至果位, 無明既斷, 惡相雖無, 隨緣眞性仍存故. 如依靜水, 隨風成波, 風停波息,
成波之性恒存故. … 二云, 惡具二義; 一者不壞相異眞義(當緣生相有也.), 二者稱
性即眞義(當無性體空義). 今據後義, 故云不斷. 頓教云, 惡相本盡, 更不待斷. 惡性
本現, 非所斷故.”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3

여기서는 能同終敎의 의미를 취한 것이라고 언급했으므로 ‘性惡’이


되어야 한다. 선연은 화엄이 지닌 동교일승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화엄은 能同의 측면에서 동교일승의 의미를 지닐 뿐이고, 所同의
측면에서 동교일승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31)
곧 능동종교는 곧 화엄일승 원교의 원융이라는 테두리를 띠고 설
명할 수 있는 終敎를 말한다. 따라서 ‘稱性의 惡’을 함축한 의미의
‘性惡’이 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중국의 화엄사상사를 연구하고 있는
기무라는 선연의 ‘성악사상’을 설명하면서 위 단락 전체를 인용32)
했는데, 인용된 卍續藏本에는 ‘진여가 수연하여 諸法을 짓는다’
는 구절에서 ‘諸’자가 ‘說’(33)자로 잘못 되어있다. ‘설’이 되면 ‘진
여가 수연해서 설법을 짓는다’가 되므로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문장 전체를 뒤바꿀 정도의 오류는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 원문교
감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2. 제3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1) 결택기 제3권의 교감내용
 결택기 제3권(X8, 016a-031a)을 교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2> 決擇記 제3권 교감 표
번 X8 卍續藏本 金澤寫本 교감결과 비고
호 페이지
1 16a21 口*寅 諠 諠 참조 수정
2 16a22 義 儀 儀 참조 수정
31) 決擇記 권제6(X8, 072b), “但有能同之義也. 勿謂便有所同之義. 所同之義,
是所揀故.”
32) 기무라, 정병삼 외 역(2005), 271-275에서 선연의 ‘성악사상’을 분석하면
서 인용한 내용이다.
254 ∙佛敎硏究 제48집

上半
3 16b01 固 同 同 참조 수정
上半
4 16b01 故 相 相 참조 수정
上半
5 16b04 具 見 見 참조 수정
下半
6 16b06 阿 何 何 참조 수정
下半
심지관경
7 16b12 能速 能悉 悉能 참조 수정
8 16b19 身 身 心 上同
9 16b19 與 與 雨 上同
10 16b20 (提)-宮 (提)寶+宮 (提)寶宮 & 심지관경
참조 보충
11 16c01 如 以 以 & 심지관경
참조 수정
12 16c01 -佛 諸+佛 諸佛 & 심지관경
참조 보충
13 16c16 應 忘 忘 참조 수정
14 16c23 護 獲 獲 & 교감주
上半 참조 수정
15 17a06 憂 憂 愛 연의초
上半 참조 수정
16 17a21 佛舉 舉佛 舉佛 참조 도치
17 17b10 而(滿) 已(滿) 已(滿) 참조 수정
18 17b21 喩 踰 踰 & 교감주
참조 수정
19 17b24 -群 咸+群 咸群 참조 보충
20 17c02 曰 云 云 참조 수정
행원품소
21 17c04 他- 他- 他方 참조 보충
22 17c06 知 智 智 참조 수정
23 17c09 誠 識 識 참조 수정
24 17c12 後 復 復 참조 수정
25 17c13 -寶 -寶 -寶 교감주曰,“寶앞에
‘捧’이 빠진 듯하다.”
26 17c16 由 田 田 참조 수정
27 17c19 若 若 一 대소 참조 수정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5

28 17c23 [銜-金+ 御 御 & 대소 , 교감주


缶] 참조 수정
29 18a03 羨 美 美 & 대소 , 교감주
참조 수정
30 18a04 當 等 等 & 대소
참조 수정
31 18a11 原 厚 厚 참조 수정
32 18a11 濕 隰 隰 참조 수정
33 18a12 拔 浚 浚 참조 수정
34 18a12 作 砂 砂 참조 수정
35 18a12 參 泰 泰 참조 수정
36 18a22 文 之 之 & 연의초
참조 수정
37 18a22 傳 傳 宣 연의초 참조 수정
38 18c19 性- 性+相 性相 참조 보충
39 19a17 成而 而成 而成 참조 도치
40 19c01 唯 准 准 참조 수정
41 19c18 美- 美- 美而 파사론 참조 보충
42 19c19 損 指 指 & 파사론 참조
43 19c19 竟 竟 競 파사론 참조 수정
44 19c19 旨 肓 肓 & 파사론,
교감주 참조 수정
45 19c24 序而 序而 序而 교감주 “而는 연문
인 듯하다.”
46 20a08 (心)等 (心)到 (心)到 & 대소
참조 수정
47 20b08 信 身 身 & 교감주
참조 수정
48 20c12 目 月 月 & 연의초
참조 수정
49 21b08 (刹)相- (刹)相+卽 (刹)相卽 참조 보충
50 21c04 開 關 關 참조 수정
51 21c05 開 關 關 참조 수정
52 21c06 開 關 關 참조 수정
53 21c10 億-音+(天 億-音+(天 僭 문맥상 수정
*天) *天)
54 22a02 去 云 云 참조 수정
55 22a24 於於 於- 於 & 교감주
참조 수정
256 ∙佛敎硏究 제48집

56 22c03 退 待 待 참조 수정
57 22c03 -涉 理+涉 理涉 참조 보충
58 22c08 取 耶 耶 & 참조 수정
59 22c14 堅 竪 竪 참조 수정
60 23b03 句 俱 俱 참조 수정
61 23b21 --(必) 有力+(必) 有力(必) 참조 보충
金澤寫本 교감주
62 23c05 非謂 謂非 謂非 참조 도치
63 23c17 見- 見+修 見修 & 대소
참조 보충
64 24a14 境 妙 妙 참조 수정
65 24c06 護 獲 獲 & 교감주 및 대소
上半  참조 수정
66 24c18 技 枝 枝 참조 수정
67 25a06 經 位 位 & 대소
참조 수정
68 25a07 以 以 位 대소 참조 수정
69 25a11 五 如 如 참조 수정
70 25a15 三第 第三 第三 참조 도치
71 25b10 今 如 如 & 대소
참조 수정
72 25b20 說-- 說+四或 說四或 & 대소
참조 보충
73 25c03 占/古 占 占 & 卍續藏經,
(CBETA) 대소 참조
74 25c07 佛- 佛- 佛依 대소 참조 보충
75 26a02 至- 至+茶 至茶 참조 보충
76 26a05 來 來 來 교감주 “是”인 듯하

77 26a22 融- 融+皆 融皆 참조 보충
78 26b01 -隱隱 鈔+隱隱 鈔隱隱 참조 보충
79 26b01 -問 者+問 者問 참조 보충
80 26b21 斯 斷 斷 참조 수정
81 26c03 後- 後+後 後後 참조 보충
82 26c10 之(北) 至(北) 至(北) 참조 수정
83 27a22 貧 貪 貪 & 대소 , 교감주
참조 수정
84 27b14 得入+持 --持 --持 참조 “得入”삭제
上半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7

85 27c03 立 立 玄 원각경대초
참조 수정
86 27c19 畏 畏 異 교감주 및 문맥상 수

87 27c24 雨*隻 雨*隻 雙 대소 참조 수정
88 28a06 二 三 三 참조 수정
89 28a10 喜 嘉 嘉 & 교감주
참조 수정
90 28a12 與 爲 爲 참조 수정
下半
91 28a15 也 色 色 참조 수정
92 28b04 違 遠 遠 & 교감주
上半 참조 수정
93 28b10 正(因) 正(因) 生(因) 교감주 및 문맥상 수

94 28b11 正 生 生 & 교감주
참조 수정
95 28b16 緣-(也) 緣-(也) 緣因(也) 대소 참조 보충
96 28b16 因緣 緣因 緣因 & 대소
참조 도치
97 29a11 本/木(覺) 本(覺) 本(覺) & 卍續藏經
(CBETA) 참조 수정
98 29b09 文 大 大 & 教義分齊章 및
교감주 참조 수정
99 29c08 言- 言+貪 言貪 & 연의초, 교감주
참조 보충
分限~云 8장 3행 & 교감주
100 30b10
~11 중간내용 2597字 있 故名~
謂通 참조 보충 [별첨1]
없음 음
101 30b18 藏 嚴 嚴 참조 수정.
아래도 동일
102 31a06 令 今 今 참조 수정
[별첨1]33)에서 결택기 권제3(X8, 30b10)離分限~(30b11)云 사
이에 보충된 원문은 모두 8紙3行의 2597자이다.
33) [별첨1]에서 보충하고 있는 원문은 박은영(지현)(2017), 958-961에서 재
인용하였다.
258 ∙佛敎硏究 제48집

[별첨1] X8, 30b10, 離分限 ~ 30b11, 云


離分限[故, 名爲非劫.
◇[疏]廣如旨歸者, 旨歸云, 問: 若此多劫常恒說者, 何故如來有涅槃耶? 答:
說此經佛, 本不涅槃. 法界品中, 開栴檀塔, 見三世佛, 無涅槃者. 又復以此初時
旣攝多劫. 是故示現涅槃, 亦在此中. 攝化威儀之中, 涅槃亦是說法攝生. 與成道
說法, 無差別故. 是故說法總無休時. 復此盧舍那佛常在34)花藏, 恒時說法. 初無
涅槃, 如常住故.
○[鈔]普賢身相如虛空依眞而住非國土者, 下疏 問曰: 法性身土, 爲別不別?
別則不名法性, 性無二故. 不別則無能依所依. 答: 經論異說, 統收法身, 略有十
種. 土隨身顯, 乃有五重; 一, 依佛地論, 唯以淸淨法界而爲法身. 亦以法性, 而
爲其土. 性雖一味, 隨身土相, 而分二別. 智度論云, ‘在有情數中, 名爲佛性. 在
非情數中, 名爲法性.’ 假說能所, 而實無差. 唯識論云, ‘雖此身土, 體無差別, 而
屬佛·法, 性·相異故.’ 謂法性屬佛, 名法性身. 法性屬法, 爲法性土. 性隨相異,
故云爾也. 今言如虛空者, 唯識論云, ‘此之35)身土, 俱非色攝. 雖不可說形量大
小. 然隨事相, 其量無邊. 譬如虛空遍一切處.’ 故如虛空言, 通喩身土. 二, 或唯
大智, 而爲法身. 所證眞如, 爲法性土. 故無性攝論云, 無垢無罣㝵智爲法身故.
若爾, 云何言相如虛空? 智體無㝵, 同虛空故. 三, 亦智亦如而爲法身. 梁攝論中,
及金光明經皆云, ‘唯如如及如如智獨存, 名法身故.’ 此則身含如智, 土則唯如.
四, 境智雙泯而爲法身. 經云, ‘如來法身, 非心非境. 土亦隨爾.’ 依於此義, 諸契
經中 皆說如來身土無二. 此則依眞之言, 顯無能所. 方曰依眞成如空義. 五, 此
上四句, 合爲一無㝵法身, 隨說皆得, 土亦如之. 六, 此上總別五句, 相融形奪,
泯玆五說, 逈然無寄, 以爲法身, 土亦如也. 此上單就境智以辨. 七, 通攝五分,
及悲願等所行, 恒沙功德無不皆是. 此法身收以修生功德, 如證理故. 融攝無㝵
卽此所證眞如體大爲法性土, 依於此義身土逈異. 今言身相, 卽諸功德. 言如虛
空, 卽身之性. 下經亦云, ‘解如來身非如虛空. 一切功德無量妙法所圓滿故.’ 八,
通收報化, 色相功德無不皆是, 此法身收. 故攝論中, 三十二相等皆法身攝. 然有
三義; 一, 相卽如故, 歸理法身. 二, 智所現故, 屬智法身. 三, 當相幷是功德法
故, 名爲法身. 其所依土, 則通性相. 淨穢無㝵, 我此土淨, 而汝不見. 衆生見燒,
淨土不毁. 色卽是如, 相卽非相. 身土事理, 交互依持. 通有四句; 謂色身依色相
土, 色身依法性土, 法身依法性土, 及依色相故. 又以單雙互望, 亦成五句. 謂色
相身依法性色相土等. 準以思之. 此上猶通諸大乘敎. 九, 通攝三種世間, 皆爲一
大法身, 具十佛故. 其三身等, 幷此中智正覺攝故. 土亦如之, 卽如空身, 而示普
身, 示何不具, 此唯華嚴. 十, 上分權實, 唯以第九, 屬於此經. 若據融攝及攝同
敎總, 前九義爲總句. 是謂如來無㝵身土. 普賢亦爾. 義隨隱顯, 不可累安. 達者
尋文, 無生局見. 上言土有五重者, 一唯法性, 屬前二身. 二者雙泯, 屬於第四.
三具性相, 五六七八所依. 四融三世間, 屬於第九, 五, 總前諸義, 卽第十依. 身
土要義, 無厭繁文.
[鈔]末通淨·穢本刹唯淨者, 又淨·穢土而有多門. 故下疏云, 然淨有二種; 一世
間淨, 離欲穢故. 以六行爲方便, 上二界爲淨土.(欲界爲穢.) 二出世間淨, 此復二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59

種, 一者出世間, 所謂二乘, 以緣諦爲方便. 權敎說之, 無別淨土. 約實言者, 出


三界外, 別有淨土, 二乘所居. 智論有文(凡夫所居名穢.). 二出世間上上淨. 此謂
菩薩則以萬行而爲方便. 以實報七珍珠無量莊嚴而爲其土. 然出世上上淨中, 復
有二種; 一者眞極, 佛自受用, 相累兼亡, 而爲方便. 二者未極, 等覺已還故. 仁
王云, 三賢十聖, 住果報唯佛一人居淨土(未極而居名穢.). 未極之中, 復有二種;
一, 八地已上, 一向淸淨, 以永絶色累, 照體獨立, 神無方所. 故其淨土色相難名.
二, 七地已還, 未出三界, 無漏觀智, 有間斷故, 非一向淨. 若依瑜伽, 入初地去,
方爲淨土. 三賢所居皆稱非淨, 此分受用變化別故. 約此經宗, 十信菩薩卽有淨
土. 又準下鈔, 就佛法性, 自他受用, 幷變化土, 論其淨穢, 復有三義; 一, 前
三皆淨. 四中有淨有穢, 則三類半爲淨, 半類爲穢. 二, 前三爲淨, 以他受用, 斷
分別障, 已證眞如. 故名爲淨. 變化皆穢, 設有七珍, 穢衆生住, 故亦非淨. 三, 後
二皆穢. 仁王經云, ‘三賢十聖住果報, 唯佛一人居淨土.’ 而生公說, 有形皆穢, 無
形爲淨, 則唯法性爲淨. 若爾, 自受用土, 豈稱穢耶? 此以冥同眞性不可說其形
量大小則同淨攝. 今此所論淨穢, 正當鈔中初之一義也.
[鈔]以歸花藏卽前染淨無㝵故不立之者, 問: 初閻浮卽前通局中一句亦不應立.
答: 彼無遍法界言故不同也, 而乃別立. 言皆有百億閻浮提者, 卽一大天界也. 謂
四大州日月蘇彌盧, 欲天梵世各一千名一小千界, 如一貫錢. 一千箇小千, 爲一
中千, 如一千貫錢. 一千箇中千, 爲一大千, 如千箇千貫也. 若爾, 應有萬億, 何
言百億? 答: 準此方皇帝算法, 數有三等, 謂上中下. 下等數法十十變之. 中等百
百變之, 上等億億變之. 今此三千, 若據小數可有萬億. 今約中數, 從千已上, 百
百變之, 則有百億故. 又相傳釋億而有三種; 一者十萬, 二者百萬, 三者千萬, 此
當千萬爲億也. 故疏云, 唐三藏譯是千萬也.
○言乃至百億色究竟天者, 問: 二禪量等一小千界, 三禪量等一中千界, 四禪量
等一大千界. 是知爲一色究竟天覆於百億四州, 如何亦言百億色究竟天耶? 答:
準下鈔云, 譬如夏雲普覆九州. 若以州取, 則有九雲. 若以郡取, 則四百餘雲.
若以縣取, 千數未多. 或言一雲普覆萬國, 或言萬國各有夏雲, 思之可見.
[疏]五遍花藏者, 問: 花藏世界實報淨土, 應化土耶? 若云實報淨土, 何有分限?
若無分限者, 何故花藏之外中方便有刹海耶? 若云應化土者, 何故世尊修因之所
嚴淨不云應衆生故? 又下疏難, 身若云應者, 那言遮那處蓮花藏? 驗知華藏非
應化土. 答: 良以自報眞身旣分圓無㝵故. 彼自報眞土, 亦廣狹自在. 論廣則花藏
世界所有塵, 一一塵中見法界. 語狹則十萬各有世界海故.
[鈔]云若彼不說則說處不遍, 若彼亦說, 處則雜亂. 何以經中唯云忉利說十住法
等者, 鈔雖有答, 義猶沈隱. 今依旨歸, 以答前難云, 此說十住忉利天處, 旣遍十
方一切塵道. 是故夜摩等處皆有忉利, 卽於如是遍夜摩等忉利天處, 說十住. 是
故忉利無不普遍, 仍非夜摩等處說十住也. 說十行等夜摩等處, 亦遍忉利等處,
仍非忉利說十行等也. 故不違經, 亦無不通.
[鈔]前相卽門中, 正十住遍時不妨餘遍但隱顯不同耳者, 此則潛通外難也. 恐有
難云, 十住爲所卽有體, 十行等作能卽無體, 唯有十住遍法界故無雜者. 若爾, 十
行等爲一向作能卽無體耶? 爲亦作所卽有體耶? 若一向作能卽無體, 還成滯執非
260 ∙佛敎硏究 제48집

無㝵也. 若亦作所卽有體, 爲前後耶? 爲同時耶? 若云同時, 十住爲所卽有體,


遍法界時, 不妨同時十行却爲所卽有體, 亦遍法界. 二種有體, 旣同時遍法界, 還
成雜亂. 何故鈔云, 前相卽門中正十住遍時, 不妨餘遍? 故鈔通云, 但隱顯不同
耳. 十住遍時, 十行等卽隱. 十行遍時, 餘隱亦然. 今應難云, 十住顯時, 十行等
唯隱. 亦通其顯. 若云唯隱, 還成滯執非無㝵也. 若云通顯, 爲同時耶? 爲前後
耶? 若云前後同時, 四句義不成故. 若云同時, 十住正顯, 遍法界時. 不妨十行等
顯, 亦遍法界. 還成雜亂. 若云隱顯門中顯顯不俱, 無雜亂者, 相卽門中所卽所卽
不俱, 已無雜亂. 何須鈔中, 更用隱顯門耶? 彼二所卽有體, 旣得同時. 彼二能攝
顯義, 亦得同時. 彼此異因不可得故. 若救云, 雖許二顯得俱, 而一主一伴故, 無
雜亂者, 更應難曰, 十住爲主時, 十行等一向作伴, 亦得爲主耶? 若一向作伴, 還
成滯執非無㝵也. 若得爲主, 爲同時耶? 爲前後耶? 若云前後同時, 四句義不成
故. 若云同時, 還成雜亂. 十住爲主遍法界時, 不妨十行等爲主亦遍法界故. 若云
主主不相見, 無雜亂者, 所卽門中, 所卽所卽不俱, 已無雜亂, 何故鈔中更用隱顯
耶? 設更用自餘玄門料揀, 滯難同前. 今謂通]云
2) 제3권 교감상의 특이사항
⑴ 전반적인 사항
제3권은 교감번호가 총 102항인데, 金澤寫本을 참조하여 수정
하거나 보충한 경우는 81항에 이른다. 金澤寫本은 제외하고 대
소, 연의초 등 다른 본만을 참조한 경우는 14항이고, 참조 본
이 없이 문맥상 卍續藏本 의 교감주나 사본의 교감주 만을 참조
하여 교감한 경우는 4항이다. 수정하진 않았지만 다른 본에는 다
르게 쓰여 있다고 제시만 한 경우는 3항이다. 또, 卍續藏經 자체
에서 교감한 주는 모두 22항인데, 이를 참조하여 교감한 경우는
18항이다. 제시내용이 실제로 교감한 사항과 달라 반영하지 않은
경우가 4항이기 때문이다.
위의 [교감표]를 특징지어 정리해보면, 역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사해서 틀린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는 見→具(5), 忘→應
(13), 復→後(24), 等→當(30), 厚→原(31), 浚→拔(33), 泰→參(35),
34) 底本 및 [金澤寫本]에는 “在+藏”, 華嚴經旨歸 참조 “藏”삭제.
35) 成唯識論(T31, 058b)에는 “佛”로 되어 있다.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61

之→文(36), 指→損(42), 肓→旨(44), 關→開(50·51·52), 竪→堅(59),


至→之(82), 貪→貧(83), 玄→立(85), 異→畏(86), 嘉→喜(89), 色→也
(91), 遠→違(92) 등이다.
둘째, 한 두 획을 빠뜨리거나 덧붙인 경우와 좌방, 우변을 잘못
쓴 경우는 儀→義(2), 何→阿(6), 獲→護(14·65), 踰→喩(18), 智→知
(22), 識→誠(23), 田→由(26), 美→羨(29), 隰→濕(32), 准→唯(40),
月→目(48), 云→去(54), 耶→取(58), 枝→技(66), 斷→斯(80), 三→二
(88), 今→令(89) 등이 해당된다.
또, 已→而(17), 身→信(47), 俱→句(60)처럼 발음만 같을 뿐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경우도 있고, 相→故(4), 雨→與(9), 砂→作(34),
待→退(56), 妙→境(64), 位→經·以(67·68), 如→五·今(69·71)처럼 전
혀 다른 글자로 잘못 쓴 경우도 있다.
셋째, 빠뜨린 글자는 20항이고 22자이다.
⑵ 특이한 사항
金澤寫本을 통해 새롭게 얻은 성과 중 하나는 卍續藏本 권
제3의 유실된 부분을 모두 보충할 수 있었던 점이다. 卍續藏本
제3권 말미의 교감 주 ①에는 “권말의 錄摘文解 에 의거하면36),
몇 장이 유실된 것 같지만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37)라고 했는
데,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유실 부분이 金澤寫本에는 온전히 있
었고 그 분량은 모두 8장 3행 2957자에 달한다. 바로 위 [제3권
교감표]에서 [별첨 1]로 실은 내용이 그것이다. 卍續藏經에 입장
되지 못한 제1권의 경우는 한 권이 통째로 유실되었던 까닭으로
쇼묘지 소장, 가나자와문고 관리 사본에 결택기의 존재가 확인
된 이후, 선행 연구들을 통해 그 전체 문장이 소개되고 인터넷 검
36) 제3권의 錄摘文解 는 모두 45항인데, 뒤의 항목 ㊶所謂無性等, ㊷問答法
性身土, ㊸淨穢剎百億閻浮等, ㊹十住遍時不妨餘遍, ㊺遮那餘佛見不見失의
5항 가운데 ㊶은 卍續藏本(X8, 029c22)에서 다뤘고, ㊺는 030b18에서
다뤄졌는데, ㊷~㊹를 다룬 본문이 없기 때문이다.
37) 決擇記(X8, 30b), “依卷末錄摘文解, 似失數紙而今無由求之.”
262 ∙佛敎硏究 제48집

색도 가능해진 반면에 제3권에 대해서는 유실 부분을 보충한 연


구라든가 학계에 이 점을 밝힌 연구는 필자의 박사논문을 제외하
고는 아직 없다.
보충된 부분은 현담의 본문 10章 중 제1장인 화엄경의 가
르침이 일어난 因緣 의 十緣 중 一緣, ‘시간에 의지함’과 二緣, ‘처
소에 의지함’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으로, 앞의 네 줄을 제외한 나
머지는 모두 ‘처소’에 관한 것이다. 이는 결택기에서 해설한 十
緣 중 三緣, ‘교주에 의지함’에 관한 설명 다음으로 많은 분량38)이
어서 선연이 화엄경을 설법한 연으로써 ‘처소’에 관한 주석에
심혈을 기울인 점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이 사항은 卍續藏本에는 맞게 쓰인 글자인데,
CBETA에 입력되는 과정에서 바뀐 글자 즉, ‘占’을 ‘古’(73)로, ‘本’
을 ‘木’(97)으로 잘못 쓴 경우가 있었다.
⑶ 내용의 분석
결택기의 내용구성 면에 있어서 특징 한 가지는 징관의 대
소 20권과 연의초 40권의 내용을 종횡으로 가져와서 설명을
붙인 점인데, 제3권에서 새로 보충된 부분 역시 그 형식에서 벗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소나 연의초 이외에 참조한
章疏가 포함되어 있다. 바로 법장의 화엄경지귀이다. 선연은 법
장의 교의분제장을 자주 인용한 반면, 지귀는 두 번 인용했을
뿐인데, 그 두 번이 모두 지금 새로 보충된 부분에서이다. 이것은
대소에서 징관이 화엄경을 설법한 열 가지 연을 다루면서 법
장의 지귀에서 다루고 있는 說經時 의 글을 가져와 설명한 뒤
‘자세한 것은 지귀와 같다’고 언급하며 생략한 것인데, 선연이
그 중 아래 단락을 가져와 부연 설명을 붙인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8) 三緣, ‘교주에 의지함’은 卍續藏本(X8, 31a-37a)으로 6페이지 분량이고,
二緣, ‘처소에 의지함’은 그 절반인 3페이지 정도인데, 三緣보다는 적지만
나머지 八緣을 모두 합친 분량과 거의 비슷하다.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63

“지귀39)에서 ‘문) 만일 이 화엄경을 多劫에 항상 설법한다면 무


슨 까닭으로 여래는 열반에 듦이 있습니까? 답) 이 경전을 설법하는
불은 본래 열반하지 않는다. 입법계품 에서 전단좌여래의 탑문을 열
어 삼세의 불을 보았는데 열반에 든 분은 아무도 없었다. 40)라고 하였
고, 또다시 이 初時로써 이미 多劫을 거둬들였으니 이 때문에 열반을
시현했지만 역시 이 가운데 있는 것이며, (중생을) 거둬서 교화하는
威儀 가운데 열반에 든 것도 역시 설법하여 중생을 거둬들이는 것이니
성도하여 설법하는 것과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설법은 언
제나 그친 적이 없다. 또다시 이 노사나불은 항상 화장세계에 있으면
서 항시 설법한다. 애초에 열반에 듦이 없고 평상처럼 머물기 때문이
다.’라고 하였다.”41)
또 아래 문장에서 ‘만일 저 곳에서 (십주를) 설법하지 않았다고
하면 설법한 곳이 변만하지 않은 것이며, 만일 저 곳에서도 역시
(십주를) 설법했다면 설법한 곳이 잡란할 것인데, 어째서 경에서
는 오직 도리천에서 十住法을 설하는 등이라고만 했는가?’라는 
초문을 해설하면서 ‘연의초에서 답변했더라도 뜻이 여전히 잠
기어 감쳐져 있으니 지금 지귀에 의거하여 앞의 논란에 대답해
보겠다’42)고 언급하고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十住를 설법한 도리천의 처소가 이미 시방 일체의 塵道에
변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야마천 등 처소에 모두 도리천이 있으며, 이
미 이와 같이 야마천 등 처소에 변만한 도리천 처소에서 십주를 설법
했다. 이 때문에 도리천이 널리 변만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지, 야마천
등 처소에서 십주를 설법한 것은 아니다. 십행 등을 설법한 야마천 등
처소도 역시 도리천 등의 처소에 변만한 것이지 이내 도리천 등 처소
39) 華嚴經旨歸 (T45, 0590c), “說經時第二.”
40) 華嚴經 권제68(T10, 366b), “我知十方一切世界諸佛如來, 畢竟無有般涅槃
者, 唯除爲欲調伏衆生 而示現耳. 善男子, 我開栴檀座如來塔門時, 得三昧, 名
佛種無盡.”
41) 앞의 [별첨1], “[疏]廣如旨歸者, 旨歸云 … 如常住故.”
42) 앞의 [별첨1], “[鈔]云若彼不說則說處不遍, 若彼亦說, 處則雜亂 … 今依旨歸,
以答前難云,”
264 ∙佛敎硏究 제48집

에서 십행 등을 설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문에 어긋나지 않으


며 또한 통하지 않음이 없다.”43)
새로 보충한 두 단락의 글을 통해서 선연이 법장의 저술 중에
교의분제장, 탐현기 이외에 화엄경지귀 역시 참조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3. 제4권의 교감내용 및 특이사항


1) 결택기 제4권의 교감내용
 결택기 제4권(X8, 031a~041c)을 교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3> 談玄決擇記 제4권(절반) 교감 표
번 X8 卍續藏本 金澤寫本 교감 결과 비고
호 페이지
1 31a08 -等 信+等 信等 & 대소 참조 보충
2 32a07 十(身皆) 身(身皆) 身(身皆) 참조 수정
3 32a14 指 必 必 & 대소 참조 수정
4 32a22 (以)見 (以)是 (以)是 & 대소 참조 수정
5 32b14
下半 固 同 同 참조 수정
6 32c01
上半 身 眞 眞 참조 수정
7 32c04 知 智 智 참조 수정
32b09
8 上半 世 離 離 & 화엄경
참조 수정
32c21
9 下半 勢- 勢- 勢身 문맥상 보충
43) 앞의 [별첨 1], “此說十住忉利天處, … 故不違經, 亦無不通.”; 華嚴經旨歸
(T45, 590a), “此說十住忉利天處, 既遍十方一切塵道. 是故夜摩等處皆有忉利,
即於如此遍夜摩等忉利天處說十住. 是故忉利無不普遍, 仍非夜摩. 夜摩等處說
十行等, 皆亦遍於忉利等處, 仍非忉利當知亦爾.”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65

10 32c22 意 意 樂 연의초 참조 수정
11 33a03 持 示 示 참조 수정
下半
12 33a03 入-(7자) 入- 入(生死故, 대소 참조
下半 없음 示滅非眞.) 7字 보충
13 33a07 見眞 見眞 眞見 대소 참조 도치
14 33a12 未 末 末 참조 수정
15 33a20 問 同 同 참조 수정
16 33b05 億 德 德 참조 수정
17 33b11 -亡 -亡 言亡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二+性”
18 33b11 性 性 性 으로 되어 있다.
19 33b24 法 法 皆 대소 참조 수정
20 33c17 名 妙 妙 & 심지관경
上半 참조 수정
21 34a13 報 執 執 & 기신론필삭기
참조 수정
22 34b03 佛 法 法 & 기신론의기
참조 수정
기신론의기
23 34b04 皆 皆 是 참조 수정
24 34c21 到 到 致 繫辭傳 참조 수정
25 35a12 □ 促 促 참조 보충
26 35a13 被 披 披 참조 수정
27 35a18 末 未 未 참조 수정
28 35a20 求 未 未 참조 수정
연의초에는 “取”로
29 35a22 所 所 所 되어 있다.
30 35b01 許 計 計 & 대소 참조 수정
31 35b20 諼 該 該 & 대소 참조 수정
32 35c07 說證 說證 證說 대소 참조 도치
대소 에는 “機”로
33 35c16 根 根 根 되어 있다.
34 35c16 見 是 是 & 대소 참조 수정
35 36a01 (念)聲 (念)請 (念)請 & 대소 참조 수정
36 36a09 第-(會) 第+九 第九(會) & 대소
(會) 참조 수정
대소에는 “有說”로
37 36a14 經 經 經 되어 있다.
266 ∙佛敎硏究 제48집

38 36a15 有無 無有 無有 & 대소 참조 도치


39 36a21 一說 說一 說一 & 연의초
참조 도치
40 36c02 盡 畫 畫 & 탐현기
上半 참조 수정
41 36c02 前 前 能 탐현기 참조 수정
下半
42 36c02 盡 畫 畫 & 탐현기
下半 참조 수정
43 36c11 皆- 皆+證 皆證 & 대소 참조 보충
대소에는 “迹”으로
44 36c15 鳥 鳥 鳥 되어있다.
45 36c16 大 太 太 참조 수정
46 36c17 著 差 差 & 대소 참조 수정
47 36c23 因---得 因+(一切 因一切智 & 십지경론
智)得 得 참조 보충
48 37a08 光 先 先 & 대소 참조 수정
49 37a14 故+藏攝 故-- 故 참조 “藏攝” 삭제
50 37a17 業 集 集 참조 수정
51 37a18 他 陀 陀 참조 수정
52 37a19 訖 □ 說 교감주 참조 수정
下半
연의초찬석
53 37a20 口*栗 口*栗 栗 참조 수정
54 37a21 名 各 各 & 교감주 참조 수정
下半
55 37c14 亦 約 約 참조 수정
亦--敵對 敵對言經非敵對約義也
56 37c15 (22자 누 影取線非敵對[故]云古 참조 22자 보충
락) 人旣以
파사론 및 교감주
57 37c19 繫壞 繫壞 擊壤 참조 수정
58 37c20 捨 拾 拾 & 파사론
참조 수정
59 38a05 (無)處 (無)所 (無)所 참조 수정
上半
60 38a09 勝 勝 勝 유가사지론에는
上半 “聖”으로 되어 있다.
61 38a11 備 滿 滿 & 법원의림장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67

上半 참조 수정
62 38a11 是(能) 此(能) 此(能) &참조법원의림장 
上半 수정
63 38a13 -界 境+界 境界 참조 보충
上半
64 38a16 脫+障 脫+障 脫- 법원의림장
上半 참조 삭제
65 38b12 遽 邃 邃 & 교감주 참조 수정
66 38b13 名 各 各 & 교감주 참조 수정
67 39a01 耶 那 那 & 대소 참조 수정
68 39a02 (說)如 (說)如 (說)知 대소 참조 수정
上半
69 39a02 耶 那 那 & 대소 참조 수정
70 39a09 寄 奇 奇 & 대소 참조 수정
71 39a11 誓 誓 擔 대소 참조 수정
72 39a20 了- 了+義 了義 & 대소 참조 수정
73 39b24 -稱(論) 正 + 稱 正稱(論) 참조 보충
(論)
74 40a24 勝+上 勝+上 勝- 대소 참조 삭제

75 40b02 雅 雅 雄 연의초 참조 수정
下半
대소에는 “機”로 되
76 40b06 根 根 根 어 있다.
77 40b23 法--善 法--善 善法+(智若) 승만경, 연의초
참조 보충
78 40c03 遲 違 違 & 승만경
참조 수정
79 40c05 等 第 第 & 대소 참조 수정
80 40c08 侍 伴 伴 & 장엄론
참조 수정
81 40c14 目 自 自 & 대소, 성실론
참조 수정
82 40c19 福(是) 福(是) 德(是) 탐현기 참조 수정
83 41a04 主 生 生 & 법화경
참조 수정
84 41a15 是+無 是+無 是- 연의초 참조 삭제
85 41a23 者 者 言 연의초 참조 수정
86 41b14 受 愛 愛 참조 수정
87 41b19 滅(蘊) -(蘊) -(蘊) & 연의초
268 ∙佛敎硏究 제48집

下半 참조 삭제
88 41b21 色 色 死 “老死支” 참조 수정
 연의초  ·  공목장 
89 41c13 觀 觀 推 및 下句 참조 수정
90 41c14 觀(因) 觀(因) 推(因) 上同

2) 제4권(절반)의 교감상의 특이사항


⑴ 전반적인 사항
제4권은 卍續藏本의 분량이 20페이지(X8, 031a~052a)로 전6
권 중 가장 많다. 절반 분량을 교감했는데 번호가 90항에 이른 이
유도 여기에 있다. 교감번호 90항 중에 金澤寫本에 의거하여 수
정하거나 보충한 것은 모두 58항이고, 金澤寫本은 제외하고 화
엄경 등 경전과 대소, 연의초 등을 참조한 경우는 21항이며,
卍續藏本나 사본의 교감주 만을 참조한 경우는 3항이다. 교감은
안했지만 다른 참조 본과 글자가 다른 경우는 8항에 달했는데 앞
의 제2권과 제3권에 비해 이 권에서는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제시만하고 교감하지 않은 경우가 좀 더 많다. 그 이유는 ‘根
↔機(33·76)’, ‘經↔有說(37)’, ‘勝↔聖(60)’ 등은 글자는 다르지만 바
꾸지 않고 그냥 두더라도 큰 차이가 없어 문맥상 통하기 때문이
며, ‘鳥迹(44)’은 전혀 다른 의미가 합쳐진 것이지만 문장에서 ‘새
발자취’란 단어를 반복해서 쓰면서 한쪽 단어를 생략한 경우로 보
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제4권에서 교감된 글자들을 유형별로 정리해보면 역시 다음과
같다.
첫째, 유사해서 틀린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眞→身(6), 同→問
(15), 未↔末·求(14·27·28), 是→見(34), 畫→盡(40·41), 差→著(46),
先→光(48), 集→業(50), 擊壤→繫壞(57), 第→等(79), 伴→侍(80), 生
→主(83) 등이 해당한다.
둘째, 한두 획을 빠뜨리거나 덧붙여 쓴 경우와 좌방, 우변을 잘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69

못 쓴 경우는 同→固(5), 智→知(7), 德→億(16), 報→執(21), 致→到


(24), 披→被(26), 計→許(30), 該→諼(31), 太→大(45), 拾→捨(58),
邃→遽(65), 各↔名(54·66), 那→耶(67·69), 奇→寄(70), 擔→誓(71),
雄→雅(75), 自→目(81), 愛→受(86) 등이 해당된다.
위의 두 가지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는 必→指(3), 皆→法(19),
妙→名(20), 法→佛(22), 請→聲(35), 滿→備(61), 違→遲(78), 約→亦
(55) 등이다.
셋째, 아예 빠뜨린 글자는 13항에 모두 43자이다.
⑵ 특이한 사항
결택기 제4권의 특이사항은 金澤寫本을 통해 卍續藏本에
없었던 수천 글자를 보충한 제3권과는 반대로, 이 권에서는 金澤
寫本의 위쪽 보존상태가 나빠 유실된 글자가 제법 많았던 점이
다. 총 91페이지가운데 25페이지부터 60페이지까지 35페이지의 분
량이 유실된 글자가 있었는데, 이 중 앞의 10페이지는 위쪽부분이
16행 모두에 1~3자씩 유실되었고, 뒤의 25페이지 정도는 좌우바
깥 양쪽의 윗부분에 3행, 그 행 아래로 1~4자씩 글자가 유실되었
다. 그런데 다행히도 卍續藏本에는 이 부분이 온전하여 유실된
글자가 전혀 없다. 卍續藏本과 金澤寫本의 두 텍스트간의 상
호보완 관계를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권수가 된다.
제4권은 卍續藏本에서 유실된 것은 없지만 47항에 ‘一切智’의
3자, 12항에 ‘(深入)生死故示滅非眞’의 7자, 56항에 ‘敵對言經非敵對
約義也影取線非敵對[故]云古人旣以’의 22자를 보충함으로써 조금은
많은 글자를 새로 보충한 점도 한 특징이다. 이 중에 12항은 卍
續藏本과 金澤寫本 두 곳 모두에 없고, 대소를 참조하여 보
충한 것이다. 이 부분은 징관이 제1장 교기인연 의 十緣 가운데
三緣, 교주에 의지함 에서 十佛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十種의 見
佛’ 중 ‘열반불의 깊이 들어감을 본다’는 설명에 대해 선연 역시 
대소의 글44)을 가져와 行間註의 형태로 釋成한 것으로 곧 ‘열반
에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적멸을 보이며, 생사에 깊이 들어가기
270 ∙佛敎硏究 제48집

때문에 적멸을 보이는 것이지 진실로는 적멸한 것이 아니다.’45)란


구절인데 여기서 두 번째 구절에서 ‘깊이 들어감(深入)’이란 말 뒤
에 ‘生死故, 示滅非眞.’의 일곱 글자가 빠진다면 구절이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이 7자를 보충해서야 완성된다.
또, 교감번호 88처럼 참조 본 없이 문맥상 수정한 부분도 있다.
바로 ‘色’을 ‘死’로 교감한 경우인데, 이것은 십이인연법의 12支 가
운데 ‘老死支’를 설명하면서, ‘老死’로써 ‘支’를 성립하는 까닭에 대
해 ‘늙음[老]은 결정 코 있는 것이 아니며, 죽음[死]은 두루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합해 붙여야 ‘支’가 된다.46)’라고 한 부분47)
이다. 여기서 ‘死’가 두 텍스트에는 모두 ‘色’으로 쓰여 있다. 그렇
지만 이는 ‘老死支’를 설명하는 글인데다, ‘支’의 성립요건은 ‘결정
코 있음(定有)’과 ‘변만하게 있음(徧有)’의 두 가지를 갖춰야 되는
데, ‘老’와 ‘死’의 둘은 한 요건만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과 합해 붙
여야 ‘지’가 된다는 말이 뒤따르고 있다. 이 모든 사항에 의거해
볼 때 ‘色’이 아닌 ‘死’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제4권(절반)의 내용상의 분석은 본 논문에서는 생략하고 다음
에 발표할 결택기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Ⅱ 에서 함께 논하도
록 하겠다.

Ⅲ. 결론
지금까지 결택기 권제2부터 권제4(절반)까지의 두 대표적인
44) 華嚴經疏 권제53(T35, 904b), “五涅槃即是化身, 化身示滅故名涅槃. 深入
見者, 深入涅槃, 故能示滅. 深入生死, 故示滅非眞.”
45) 決擇記 권제4 (X8, 033a), “涅槃佛深入見, (深入涅槃, 故能示滅. 深入生死
故, 示滅非眞.)”
46) 成唯識論 권제8(T31, 043c), “老非定有, 附死立支. 病何非支, 不遍定故.”
47) 決擇記 권제4, (X8, 041b), “老非定有故, 死非徧地故, 合附為支.”
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71

텍스트 卍續藏本과 金澤寫本 간의 교감분석을 토대로 [교감표]


를 작성하고 그 특이사항과 분석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서론에서 언급했던 결택기
제1권의 경우 金澤出版本과 金澤寫本의 텍스트 간 비교분석을
통해 80항에 이르는 교감결과를 도출했는데48), 본 논문에서는 卍
續藏本과 金澤寫本의 두 텍스트 간 원문을 비교분석한 내용을
[교감표]로 정리해본 결과, 제2권은 교감번호가 122항이고, 제3권
은 102항이며, 제4권(절반)은 90항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
卍續藏本의 원문을 교감하여 수정하거나 보충하고, 도치 또는
삭제한 상당부분은 바로 金澤寫本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이다.
특히 제3권은 卍續藏本의 30페이지 中段의 10행~11행 사이에
유실되었던 8페이지 3행의 분량, 총 2597자를 金澤寫本을 통해
모두 보충했는데, 그 보충된 내용을 통해 선연이 현담 본문의
제1장 교기인연 을 다루면서 二緣인 ‘처소에 의지함’을 비중 있
게 다뤘다는 점과 또 법장의 여러 저술가운데 화엄경지귀 역시
인용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요나라 학승들은 주로 징
관의 저술에 관해 주석하고 연구한 반면에 법장의 저술에 관한
직접적인 주석서는 없었는데, 역시 법장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
다는 점을 결택기의 인용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
다.
결론적으로 金澤寫本은 그동안 卍續藏本에 일실되었던 제1
권이 온전히 보존된 점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권들도 좀 더 완전
한 문헌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 문헌학적인 가치
는 매우 높다. 반면, 卍續藏本은 金澤寫本의 제4권에 문헌의
보존상태가 나빠 유실된 상당부분을 모두 온전히 갖추고 있어 두
텍스트 간 상호보완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두 텍스트 이
외에 대소나 연의초 등 다른 본을 참조하여 함께 교감함으로
써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48) 박은영(지현)(2016), 13-15.
272 ∙佛敎硏究 제48집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결택기의 현존하는 최고본인 高山寺


本과 卍續藏本의 저본인 藏經書院本의 원문교감은 자료의 접
근성이 어렵고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제외할 수밖
에 없었던 점이다. 향후에 진행할 연구에서는 高山寺本과 함께
藏經書院本을 교감하고 연구할 여건을 마련한다면 결택기가
지닌 문헌학적인 가치를 더욱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과 같이 한문불전 원문의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된 여건
에서는 수월하게 자료의 원문에 접근할 수 있고 교차교감까지 가
능하다. 귀중본이 대부분인 고사본을 직접 구하는 일은 시간적으
로나 비용적인 면에서 여전히 한계점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텍스
트 간 원문교감은 선행 연구과정으로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꾸
준히 진행해야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연구의 내용이 무엇이든
지 분석 대상인 원문이 잘못된 것이라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도 있는 만큼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이 텍스트의 원문을 교감하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73

약호 및 참고문헌
T: 大正新修大藏經
X: 卍新纂續藏經
T1735, 唐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疏, CBETA(Ver.2016) &
SAT(2012).
T1736,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CBETA & SAT.
X0232, 澄觀 述, 大方廣佛華嚴經疏鈔玄談, CBETA.
X0235, 遼 鮮演 述, 大方廣佛華嚴經談玄決擇 卷第二~六, 001a-041c,
CBETA.
鮮演 述, 大方廣佛華嚴經談玄決擇 卷第一~六,
稱名寺所藏·金澤文庫保管寫本의 복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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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佛敎硏究 제4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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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談玄決擇記의 텍스트 간 비교연구Ⅰ ∙ 275

Abstract
A Comparative Study For Intertextuality of Huayan
Jing Tǎnxuan Juezĕ Ji 華嚴經談玄決擇記
Park, Eun Young (Ven. Jihyun)
Education-ācārya,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This paper is a process of organizing at the original
texts of Tǎnxuan Juezĕ Ji, has been studied for translation
as my Ph.D. dissertation, which is comprised of the texts
being contained in the Manchi Zokuzokyo 卍續藏經(V.8) and
the manuscripts of the Kanajawabunko 金澤文庫 managed.
Tǎnxuan Juezĕ Ji written by Xianyǎn 鮮演(1040~
45-1118) was one of the later annotations to Xuantǎn 玄談
(Profound treatise) of Dafang'guangfo Huayan Jing Shu 大方
廣佛華嚴經疏 20 volumes and Suishuyanyi Chao 隨疏演義鈔 40
volumes, which was widely known as a distinctive
commentary of the Avataṃsaka sutra 80 volumes, written
by Qingliang Chengguan 清涼澄觀(738-839)
I procured and analyzed between the manuscripts of
Kanajawabunko and the texts of the Manchi Zokuzokyo.
When I drew the printed version (published in 1975) parallel
with the manuscriptal version of the first fascicle, I could
find out that a parts of it were misprinted. Especially
through a competitive study between the manuscripts of the
Kanajawabunko and the texts of the Manchi Zokuzokyo
(from volume 2 to volume 4), it added and replaced to the
original body texts have ranged from hundreds to thousands
every single fascicle.
Now I set them all down in a list and refer to overall
276 ∙佛敎硏究 제48집

& unusual things. Thus I sought to introduce results of the


comparative study for the second~fourth fascicles and
would reveal the values of intertextuality of the Manchi
Zokuzokyo texts and the Kanajawabunko manuscripts.

Key Words :
Huayan Jing Shu, Huayan jing suishu yanyi chao, Tǎnxuan juezĕ
ji, Manchi zokuzokyo text, Kanazawabunko manuscripts, correcting
the proof

투고일 2018. 01. 20 | 심사기간 2018. 01. 20 - 02. 09 | 게재확정 2018. 02. 09
불교연구 제48집(2018), 277~291쪽

[특별기고]

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

安中尚史* 49)

Ⅰ. はじめに
Ⅱ. 出家と在家
Ⅲ. 神道と仏教の習合
Ⅳ. 日本仏教の歴史と出家
Ⅴ. 現在の日本仏教の淵源
Ⅵ. 現代社会の出家者養成
Ⅶ. 在家教団である創価学会について
Ⅷ. むすびにかえて

* 立正大学 仏教学部 教授
278 ∙佛敎硏究 제48집

소개의 글
본고는 2017년 11월 4일(토) 거행된 “불연이기영선생 추모 초청특
강 및 기념행사”에서 특강의 연사로 초청된 안나카 나오후미(安中尙
史) 교수의 발표원고를 본인이 새롭게 다듬은 것이다. 안나카 교수는
현재 일본 릿쇼(立正) 대학의 불교학부 소속 교수로서 근대일본의
불교를 전공으로 하며, 일본인도학불교학회의 상임이사 및 일본근대
불교사연구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중견의 학자이다. 불연선생
님 추모행사로서 거행된 학술행사로는 안나카 교수의 발표 및 “동아
시아 재가불교의 역할과 실제”라는 제목의 좌담회가 거행되었다. 금
번 추모행사로 거행된 학술행사는 향후 동아시아 내지는 한국사회에
서 재가불교도가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을 시도한 것으로, 그런 의
미에서 세계 불교학의 연구성과를 리드하는 일본사회에서 출가와 재
가의 역할 및 그 실제적인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교도
가 어떠한 자세로 나아가야할 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안나카
교수는 일본불교 내에서 출가와 재가의 전통 내지 오늘날 재가불교
의 역할 등에 대해 사실적인 내용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원
고는 철저한 논문의 형태는 아니지만 일본불교의 전통 및 오늘날 일
본불교의 일단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 인연있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79
[

Ⅰ. はじめに
本日のお話しは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と題してお話しをさ
せて頂きます。現代社会の問題から、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定着す
るまでの内容や、いくつかの宗派に関する出家・在家に関係する内
容をお話します。
日本の仏教に関係している内容ですし、専門的な事柄にも触れま
す関係で、解りにくい箇所もあるかと思いますので、ご不明な点は
後ほど質問を頂ければお答え申し上げます。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
します。

Ⅱ. 出家と在家
日本仏教に限らず、仏教を信仰する人々には出家者と在家者の区
別があります。一般的には、出家者(僧侶)によって在家者(信
徒)は教え導かれます。
本来、仏教徒は出家者・在家者の立場によって異なるものの、戒
律という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が定められ、これを破ると強く
責められる場合もあります。この戒律の中に 不殺生戒 と 不邪淫戒
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
不殺生戒 とは生き物を殺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つまり
は生き物を殺して食べ物としてはいけないことを意味します。 不
邪淫戒 とは男女の交わりを禁じるということで、つまりは結婚を
してはいけないことを意味します。
日本人は出家者と在家者を区別するとき、この二つの戒を基準に
することが多くあります。日本人の中には、現在でも 僧侶は結婚し
ても良いのか? 僧侶は肉を食べても良いのか? という疑問を
持っている人は多くいます。
280 ∙佛敎硏究 제48집

それは、日本仏教各宗派の僧侶の多くは、出家者という立場をと
りながら、結婚して肉も食べる生活を普通におくっているからで
しょう。
この肉食・妻帯は1872(明治5)年に政府が僧侶へ通達を出
して以降、認められることになったものです。日本の仏教界は出家
者でありながら、結婚して肉を食べることが可能になり、今日にい
たっています。
この通達を契機として、日本仏教に出家者の在家化が目立つよう
になってきましたが、
なぜ明治時代に政府が僧侶に肉食・妻帯を認めることになったの
でしょうか?
それは、僧侶の地位を下げることを大きな目的にしたと言われて
います。この背景には、日本の政府が新しい国を作ろうとした中で
行った宗教政策に大きく関係します。
明治という近代的な国家がはじまったのは、1868(明治元)
年からのことで、それ以前は江戸幕府が日本を治めていました。
この、江戸幕府がはじまったのは17世紀からのことで、徳川家
康という武将が江戸(現在の東京)に政治の中心を置いたことには
じまります。
この江戸幕府は創設されてからすぐ後に、宗教に対する政策を
次々と行いました。例えばキリスト教を禁止したり、仏教宗派ごと
に制度を定めたり組織化を図らせたり、国民を必ずどこかの寺院に
所属させたりします。この背景には、宗教を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
によって、政権が安定すると考えたわけです。
特に、今、述べた 国民を必ずどこかの寺院に所属させる という
ことは、国民の管理の一部分を寺院に委ねたことを意味します。そ
れは、寺院が戸籍のようなものを作成し、旅行や住居の移動の際に
は寺院で発行する証明書を必要としました。
さらに、この国民の管理は、個人的なものではありましたが、そ
れぞれが所属する家ごとにまとめられていたことから、寺院(菩提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1

寺)と家(檀家)の関係が築かれ、実は現代に至るまでこの関係が
継続していることは珍しくありません。
菩提寺と檀家の関係が築かれたことによって、寺院の仕事は増え
ますが、安定した収入を確保する仕組みが作られました。さらに、
幕府も寺院を保護するために土地などを寄附し、寺院も寄附された
土地を地域の人々に貸して、そこから収入を得ていました。
こうして、江戸幕府は国民の管理を寺院に委ねることによって、
寺院や僧侶に対する保護政策をとっていきました。
このような状態のまま、200年以上の歳月を経て、明治政府が
樹立すると、江戸時代と一転して、仏教に対して排撃する動きが見
られました。
この動きの背景には、神道という日本古来の宗教を用いて新しい
国を果たそうとする政府の姿が見られます。具体的には、神道と仏
教が1000年以上もの長きにわたって習合していましたが、明治
政府はそれを強制的に切り離すことを目指し、そのための法律(神
仏分離令)が次々に出され、神道の立場を向上させる取り組みが行
われました。
これに対して仏教は、江戸時代に幕府から保護されていた反動か
ら、排撃の対象となってしまい、寺院が強制的に削減させられたり
する中で、先にも述べましたとおり、僧侶に対する地位の低下を求
めて、肉食・妻帯を認める通達が出されたと言われています。
こうした背景があって、明治政府が主導して出家者の在家化が行
われました。

Ⅲ. 神道と仏教の習合
ここで少し日本古来の宗教である神道と、朝鮮半島から6世紀に
日本に伝わった仏教の関係についてお話します。先ほど、 神道と仏
教が1000年以上もの長きにわたって習合していた と述べまし
282 ∙佛敎硏究 제48집

たが、今日まで仏教の中に神道的な要素が存在していますが、神道
の中に仏教的な要素は明治政府が樹立したときに無くされていま
す。
日本の神道の神々は実に多岐にわたるもので、自然のものや自然
現象の神、神話の神や土地の神、衣食住の神など、その数の多さか
ら 八百万神 と言われます。さらに、歴代の天皇や高い徳を積まれ
た人物、人々の生活を見守る先祖も、神として祀られています。
仏教と神道の習合がはじまった時期は正確に知ることは出来ませ
んが、すでに仏教が日本に伝来してからそれほど長い年月が経過し
ていない時期から、距離が縮まっ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具体
的に史料で確認できるのは、7世紀の後半になってからで、仏教の
思想に基づいた儀式が神道の神社で行われています。
その儀式とは 放生会 というもので、仏教の殺生戒の思想に基づ
いて行われる、鳥獣や魚を放つ儀式です。その功徳は金光明最勝王
経などに説かれ、中国の天台宗の開祖が行ったと伝わっています。
日本では日本書紀の中で、676年8月17日の条に 諸国に詔
(みことのり)して放生せしむ とあるのが歴史上の初見です。収
穫祭の意味を込める場合が多く、各地の寺院のほか、神社でも行わ
れました。
また、8世紀になると仏教の僧侶が神道に奉仕するために、神社
の境内などに神宮寺が作られ、神社の祭祀が読経などの仏式でとり
行われました。
さらに、9世紀にいたると、仏教が日本の国の中で広まり、日本
の宗教である神道と密接な繋がりが生まれました。それは、神道の
神々は仏教の仏・菩薩が仮の姿をして、日本に仏教が伝わる以前か
ら存在していたという 本地垂迹 思想と言います。
例えば天照大神は大日如来の仮の姿である。八幡神は阿弥陀如来
の仮の姿である。秋葉権現は観音菩薩の仮の姿であるなどと位置づ
け、神と仏・菩薩を習合させました。
その他にも三十番神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地球と月の動きをも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3

とにして作られた太陰暦は1カ月30日もしくは29日でした。三
十番神の30は1カ月の日数を示すもので、毎月の1日から30日
まで、日ごとに神道の神が仏教を守る 守護神 として配置されるも
のでした。
1日は熱田大明神、2日は諏訪大明神、3日は広田大明神、4日
は気比大明神、5日は気多大明神、というものでした。
この三十番神は仏教側に見られ、仏教を主、神道を従とするもの
で、日本の国の中では、外国から渡って来た宗教である仏教の立場
が、日本で起こった宗教である神道の上位に位置づけられていまし
た。
また、山岳信仰・修行を中心とする修験道という信仰も神道と仏
教が習合したものでした。8世紀に役行者という人物によってはじ
められました。
仏教伝来以前からの日本土着の神々への信仰と、仏教の信仰とを
融合させる動きの中で展開したもので、仏教の一派である密教(天
台宗・真言宗)で行われていた山中での修行と、さらに日本古来の
山岳信仰とが結びついて、修験道という独自の信仰が成立しまし
た。
このように仏教と習合した神道を司る人々は、出家者ではなく在
家者であることから、日本の仏教には、神道を介して在家者が古く
から存在し、ときには指導者という立場の場合もありました。

Ⅳ. 日本仏教の歴史と出家
日本仏教の歴史に見られる出家について、仏教が日本に伝来して
から、およそ250年間の様子について少しく見ていきます。
この250年は、国家と仏教が最も密接な関係を構築した時間で
あり、日本に仏教が定着する要因となる出来事が、この期間に起
こっていました。
284 ∙佛敎硏究 제48집

日本で初めて出家した人物は3人の女性と言われています。この
女性は中国から日本に渡ってきた一族の出身者で、仏教が公式に伝
来して約30~50年後の584年頃に、高句麗から渡来した僧侶
に師事して出家しました。この年、蘇我氏という仏教信仰を当時の
日本で推進しようとする有力者一族の邸宅で、百済からもちこまれ
た仏像を安置して、法要が営まれたとされます。
しかし、翌年に日本に仏教が広まることを反対していた物部氏と
いう有力者によって、出家尼僧たちは弾圧されて、法衣を剥ぎ取ら
れて鞭打ちの刑に処せられました。
こうした状況にも耐えた3人の尼僧たちは、588年に百済へ
渡って戒律を学び十戒、六法、具足戒を受け、2年間の留学を終
え、590年に日本へ帰国しました。帰国後、蘇我氏が提供した寺
院に住んで、多くの女性を出家させて仏教の興隆に貢献したと言わ
れています。
古来、日本の宗教は女性に神との橋渡し役を担わせていました。
この背景には、外国から伝わってきた未知の宗教である仏教の担い
手を、男性にすることに大きな抵抗が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
その後、物部氏が蘇我氏によって滅ぼされたことによって、仏教が
日本の宗教の中心となり、男性が出家者の中心に変化しました。
さらに、聖徳太子という人物によって日本の仏教は新たな展開を
見ることになりました。聖徳太子は当時の天皇を補佐する役割を
担っていました。
この頃、日本は朝鮮半島の国とは関係を保っていましたが、中国
と国交は絶えていましたため、中国に使者を派遣して国交回復を図
ろうとします。
この活動に対して、中国は日本との対等な関係を最初は認めませ
んでしたが、聖徳太子が仏教の思想を政治に用いている姿を中国人
使者に見せて、対等な関係を結べるだけの力を有していることを主
張し、その結果、中国との国交が樹立します。
最初に日本から中国へ派遣された600年から18年間に、5回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5
[

もしくは6回の使者が派遣されて、中国からさまざまなものがもた
らされました。
さらに、もう一方で日本から出家者を派遣して、仏教が盛んだっ
た中国で本格的に学ばせました。留学僧として、10年以上の長い
時間を使って仏教を学ばせて、日本の仏教界の指導者となるような
人材育成を中国の仏教界に託しました。
また、仏教の推進者であった蘇我氏が病になったとき、男・女1
000人が出家をして、蘇我氏の病を治すことを念じさせるなど、
仏教に特別な力を求めることも行われたとする記録が残っていま
す。
その後、仏教は徐々に日本の中で定着をすると、寺院が建立され
始めて、出家者の育成が行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ちなみに仏教
が日本に伝わってから約100年後である624年の寺院・僧侶の
数は、記録によると46寺、僧(男性)816人、尼(女性)56
9人、あわせて1385人とされています。
さらに同年に出家者が親族を殺害する事件が起こると、当時の仏
教界を監督していた百済の僧侶による管理体制が強化されていきま
した。
そして、645年に仏教信仰を推進する有力者であった蘇我氏が
政治クーデターで倒れると、仏教は天皇が保護と統制にあたると宣
言し、国家と仏教・出家者の関係がいっそう密接になりました。
さらに8世紀になると、寺院・出家者を管理する法令(僧尼令)
が作られ、出家・得度から、正式な僧侶となり、その後の指導者に
なるまでの手続きが定められ、加えて出家者の身分が向上して中級
の官僚と同じ位の官位が与えられました。
この身分はときに出家者が罪を犯したときに効力を発揮し、例え
ば強制労働1年間の罪は還俗をもって相殺することが出来ます。ま
た、軽度の罪であれば還俗の必要はなく、杖(じょう:木の棒で背
中をたたく)10回の罪は10日間の労働で済んでしまいました。
このように出家者には、在家者にくらべて特権が与えられていま
286 ∙佛敎硏究 제48집

したが、国家への反逆や殺人などの重大犯罪は特権は適用されない
で、還俗のうえ、在家者と同じ刑罰が与えられます。
さらに、聖武天皇が即位すると、よりいっそう仏教が盛んとな
り、奈良に大仏が造立されたり、国家が運営する大規模な寺院が建
立され、そこで大勢の出家者(一度に数千人が出家)が養成され、
その出家者によって国家の安泰を願って経典が読誦されました。こ
の聖武天皇は自分も出家するなど、国家と仏教の関係がいっそう強
く結びつくことになりました。
しかし、一人の僧侶が天皇の立場を(法皇)を狙おうとしたこと
によって、政治と仏教の距離を離すための政策がとられることにな
り、出家者を管理する体制が強化され、原則、1年間に出家するこ
とが出来る人数を10人に定めることにしました。
この時点で日本に仏教が伝わって約250年経過した頃のことで
した。

Ⅴ. 現在の日本仏教の淵源
現在、日本で活動する仏教宗派の多くは、日本の時代で言う 鎌倉
時代 に作られました。西暦で言うと12世紀の終わり頃のことでし
た。
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300年頃に天台宗と真言宗が作られ、今
日に継続する仏教の宗派が創設され、その後、鎌倉時代に浄土宗・
浄土真宗・臨済宗・曹洞宗・日蓮宗・時宗という宗派が作られまし
た。
日本の寺院数は規模の大小はありますが、約81700です。そ
の内、天台宗系が約5000寺、真言宗系が約13700寺、浄土
宗系が約30000寺、禅宗系が約21000寺、日蓮宗系が約1
1500寺、その他が約500寺となります。
この宗派の中で、浄土真宗という宗派は出家と在家について、他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7
[

の宗派と全く異なるそれぞれの立場がとられ、それが今日まで継承
されています。
浄土真宗を創設した人物は親鸞と言い、貴族の家に生まれまし
た。9才で出家し、その後、天台宗で学びましたが、そこで浄土宗
を起こした法然と出会い、専らに阿弥陀如来の信仰を持つことに
よって、極楽浄土に導いてくれるという考えに傾倒して、その門下
に加わります。
法然の教えは専らに念仏を唱えることによっての成仏がかなうこ
とから、 専修念仏 と言われましたが、親鸞の場合はさらに 悪人正
機 と言って、悪いことをした人こそ、阿弥陀如来に救済されなけれ
ばいけないと主張し、修行をすることも禁じます。さらに 非僧非
俗 と称して、僧侶でありながら在家者の生活をおくり、結婚もして
子供をもうけました。
親鸞は、生きた人間の相手をすることを主張し、死者の相手ばか
りする一般的な僧侶を批判しました。そのために 非僧 、つまりは
私は僧侶ではありません という立場をとりました。一方、俗人に
対しては、金銭や物を求めて一生を暮らすだけの存在と位置づけ、
非俗 、つまりは 私は在家ではありません という立場をとってい
たのでした。
そして、この親鸞の教えは今日にまで継続し、浄土真宗の出家者
は結婚し、子供をもうけ、さらに寺院は代々、世襲制で受け継が
れ、親鸞がしていたように有髪のままでいる場合が多いです。これ
は江戸時代の宗教統制が強いときでも、浄土真宗は特別な扱いを受
けていました。
親鸞の末裔とされる一族が宗派内の頂点に位置づけられ、800
年以上続く由緒正しい家柄として認識され、ときには皇室と姻戚関
係が結ば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
288 ∙佛敎硏究 제48집

Ⅵ. 現代社会の出家者養成
次に、親鸞よりも少し遅れて日本の仏教界に現れた日蓮が起こし
た 日蓮宗 について、出家者養成の資格制度や教育制度と宗門立の高
等教育機関である日蓮宗大学・立正大学の関係について見ることに
します。
現在、多くの伝統的仏教宗派は、資格制度と教育制度を連関させな
がら出家者を養成し、さらに行政が設置認可した大学などの教育機
関にその課程が置かれている場合があります。
日蓮宗の例をあげれば、資格制度は 僧籍規程 、教育制度は 叙任
規程 の中にそれぞれ位置づけられ、出家者は沙弥と教師に大別され
ます。
沙弥は日蓮宗の宗務総長に得度届を提出し、僧籍へ編入の後に度牒
という証明書の交付によって得られるもので、この過程は専ら資格
に関する制度に基づいて進められ、教育に関する制度は見あたりま
せん。これに対して沙弥から教師となる過程において、資格に関す
る制度はもとより教育に関する制度が集中します。
教師となるための現行制度について、順序を逆にして述べると、
最終に信行道場というものがあります。35日間に及ぶ修行と教育
の場が設けられ、この道場を修了することによって僧階が新たに叙
せられ、寺院の住職に就くことが制度上可能となります。
この信行道場へ入場するために 無試験検定 と 試験検定 があ
り、どちらかの検定を修める必要があります。
この内の 無試験検定 とは、日蓮宗が定めた教育機関で学習し、
修了・卒業、もしくは特定の教科目の修得・単位取得等によって得
られます。その中には行政によって設置認可された教育機関であ
り、正課の中に出家者資格に関する教科目が置かれれています。
これに対して 試験検定 とは、高等試験甲種・同乙種、普通試験
甲種・同乙種に分類され、高等試験は論文審査と口述試験、普通試験
は筆記試験によって得られます。試験を実施する施設は行政によっ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89

て設置認可された教育機関が用いられますが、教育機関の正課外で
実施されています。
このほかにも、信行道場入場予定者に対して経典読誦の力量が考
査されたり、信行道場における教育の本来の目的達成を目指し、教
師となるための基礎教育を徹底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僧道林とい
う学びの場も設置されています。この二つは義務とされています
が、宗門が定めた機関で修行と教育(宗門立の学生寮など)を一定
期間受けた者は免除されます。
こうした出家者の養成に関する資格と教育の制度について、日蓮
宗内で画一化されたのは明治時代以降でした。明治維新期の多難な時
代を乗り越えた日蓮宗は、政府の宗教政策と関連しながら、時代に
即応した方策がとられ、出家者養成についてもその例外ではありま
せんでした。
さらに、日本の教育政策の変革と相俟って、明治後期には宗派の
子弟教育の場であった教育機関が、国の教育制度下に置かれるな
ど、新たな局面をむか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
今ここで、日蓮宗の事例を示しましたが、他の宗派の出家者養成
についても、名称や期間の相違はありますが、同じような規則や過
程を設けて運営されているのでした。

Ⅶ. 在家教団である創価学会について
現在、日本の仏教系組織で最大のものは 創価学会 という宗教団
体です。公称で872万世帯と発表していますが、実際にはそこま
で多数の人が所属しているとは考えられません。
それでも、数百万人の信徒が所属する宗教団体ということには変
わりなく、また、現在の日本の政界において、政権を担う与党の一
つである公明党の支持母体でありますことから、日本の国に対して
最も影響力のある宗教団体であ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290 ∙佛敎硏究 제48집

この創価学会は在家者が中心となって組織されていますが、その
もとを尋ねると 日蓮正宗 という日蓮宗系宗派の信徒団体の一つで
した。
日蓮正宗とは、日蓮宗の祖である日蓮の直弟子日興を派祖とする
宗派です。日蓮の遷化後、日蓮のほかの直弟子と組織運営で関係が悪
化し、距離を置いて活動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さらに、日蓮の教
義を正統に受け継ぐ唯一の存在という自負のもと、活動を展開した
こともあって、日蓮門下の中でも異端に見られることがしばしばあ
りました。
加えて、日蓮正宗は日蓮宗の根本経典である法華経の解釈が、
他の弟子が運営していた組織と異なり、前半部分の迹門と後半部分
の本門に勝劣(前半が劣って、後半が勝れている)があると主張す
るなど、いくつかの点で、日蓮宗と考えに相違が見られます。
日蓮正宗 には古くから 法華講 という信徒たちが組織・運営す
る信徒団体がいくつも存在しており、 創価学会 もその一つでし
た。
創価学会の創設は1930年ですが、大きく拡大したのは195
0年以降のことでした。 折伏 という激しい布教方法で、信者を多
数獲得し、急成長を遂げました。
これによって、その母体であった 日蓮正宗 は大きく発展しまし
たが、1974年頃に、創価学会が日蓮正宗の支配や日蓮正宗との
分離を画策しましたが、結局は不調に終わってしまい、当時の会長
であった池田大作氏が辞任して事態は収束しました。
しかし、この問題はその後もくすぶり続け、1990年に創価学
会の日蓮正宗に対する批判が前にも増して激しくなり、さらに日蓮
正宗も創価学会に対して激しく批判し、1996年には日蓮正宗が
国に対して創価学会が宗教法人としての的確性を欠くなどといった
意見書を提出するなど、関係が修復されることなく、決別する結果
となりました。
本来、日蓮正宗の信徒組織の一つにすぎなかった創価学会であり
특별기고]_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291
[

ましたが、その組織力・経済力がはるかに支持母体であった日蓮正
宗をうわまわってしまい、その立場が逆転しても、出家と在家とい
う関係性によって繋がっていたものが、創価学会側の批判によっ
て、その関係が解消されて、お互いが独自の道を歩むことになった
のであります。
激しい批判の応酬が一時期は見られましたが、今日にいたっては
日本国内において表だった対立は見られなくなりました。
出家と在家との関係が複雑化し、悪い結果を招いた一例ではあり
ますが、創価学会という日本で最大規模の宗教団体であったことか
ら、当時の大きな社会問題にも発展したことは確かなことでした。

Ⅷ. むすびにかえて
以上、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と題して、現代社会の問題か
ら、日本に仏教が伝来して定着するまでの内容や、いくつかの宗派
に関する出家・在家に関係する内容をお話しさせて頂きました。雑
駁な内容で解りにくい箇所も多々あったかと存じます。もし、ご質
問をお受けするお時間があるようでしたら、可能な限りご対応させ
て頂きます。本日は誠に有難うございました。
292 ∙佛敎硏究 제48집

佛敎硏究 주요 목차

불교연구 1 (신국판, 200쪽, 2500원, 1985.8.15)


創刊의 말씀································································································이기영
쇼펜하우어의 美學思想-美的 無慾性과 涅槃·················································김문환
무엇을 믿고 어떻게 修行할까?Ⅰ-超越의 길, 內在의 길·······················R. Thurman
廻向, 功德의 轉移와 轉化-空과 關聯하여···································가지야마 유우이찌
The Indian Concept Dharma has its Two Aspects:Old Degernate Dharma and New
Creative Dharma······································································Noritoshi Aramaki
法에 관한 硏究Ⅰ-Hiraṇyagarbha와 Tathāgatagarbha를 中心으로················이기영
華嚴經에 있어서의 佛陀觀·························································다마끼 고오시로오
불교연구 2 (신국판, 236쪽, 2500원, 1986.5.15)
慈 悲 熹 捨에 관하여······································································에드워드 콘제
法華經과 Bhagavadgita···············································································서경수
石佛寺 및 佛國寺의 硏究-그 創建과 思想的 背景·········································김상현
元曉의 懺悔思想-大乘六情懺悔를 中心으로··················································김현준
如來의 참뜻························································································피터 하아비
Asanga(無着)와 大乘 요가行學派·····················································쟈니스 윌리스
世親의 ‘二十頌’,‘三十頌’,‘三性論’ ···································································이지수
무엇을 믿고 어떻게 修行할까?Ⅱ-超越의 길, 內在의 길…······················R.Thurman
韓國佛敎의 現況과 問題點···········································································정병조
論評/베다안타와 佛敎-T.M.P. Mahadevan···················································정병조
論評/베다안타와 佛敎-T.R.V. Murti의 解釋에 대한 批判的 檢討··················정호영
佛敎硏究 주요 목차∙293

불교연구 3 (신국판, 266쪽, 2500원, 1987.7.15)


Hwa-Yen Philosophy and Bodhisattva Ethics ································Ki-Young RHI
如來藏의 存在와 그 存在 根據의 問題-究竟一乘寶性論을 中心으로···············정호영
實在의 本性-中邊分別論 第一 辯相品에 대하여············································이지수
元曉의 神話와 眞實-分析心理學的 試論을 위하여·········································이부영
一心과 包括者-元曉와 칼 야스퍼스의 實在觀 比較·······································신옥희
元曉思想과 現代心理學················································································오강남
解深密經 硏究 序···················································································E.Lamotte
Etienne Lamotte, 그 生涯와 著作들····················································Hubert Dürt
宇宙(進化)論的 神話들···········································································P.Thomas
慧眼 徐景洙 敎授의 죽음을 哀悼함······························································변선환
불교연구 4·5 (신국판, 334쪽, 4000원, 1988.11.15)
宗敎란 무엇인가? ·····················································································西谷啓治
Nilakantha Lokesvara as the Buddhist Apotheosis of Hari-Hara ·· Lokesh Chandra
世界의 文化的 現實과 韓國佛敎의 理想-元曉思想은 21世紀 世界를 향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이기영
文殊菩薩의 硏究·························································································정병조
緣起經의 梵藏 漢韓 對照·············································································이지수
空에 대하여·····························································································稻垣最三
物質에 대하여·························································································齊藤義一
資料Ⅰ:第5回 佛敎學術세미나 “佛敎와 民主主義”――――
佛敎와 民主主義·························································································이기영
經濟的 側面에 있어서 佛敎와 民主主義························································최덕규
社會面에서의 佛敎와 民主主義····································································박근호
韓國文化와 佛敎·························································································정병조
資料Ⅱ:第6回 佛敎學術세미나 “佛敎와 共産主義”――――
294 ∙佛敎硏究 제48집
佛敎와 共産主義·························································································이기영
攝受와 折伏, 暴力革命과의 差異··································································송석구
階級鬪爭에 대하여······················································································정병조
所有와 無所有, 國有····················································································권기종
階級的 敵愾心과 煩惱의 差異······································································윤이흠
討論 要旨···································································································편집부
불교연구 6·7 (신국판, 452쪽, 5500원, 1990.12.25)
初期唯識思想의 硏究················································································勝呂信靜
崔氏 武臣政權과 禪宗·················································································진성규
비트겐슈타인과 龍樹-知覺과 語의 問題······································Chris Gudmunsen
佛敎解釋學 序說··············································································D. S. Lopez,Jr
彌勒信仰의 現代的 考察··············································································유덕산
資料:第10回 佛敎學術세미나 “佛敎와 基督敎”――――――
元曉思想에 있어서 窮極的인 것···································································이기영
Ultimate Reality in Won-Hyo ·························································Ki-Young Rhi
法과 하나님·····························································································八木誠一
God and Dharma···············································································Yagi, Seiichi
涅槃과 救援·················································································프레드릭 스트랭
Nirvana and Salvation································································Fredric J. Streng
佛敎와 大衆文化···········································································루이스 랭카스터
Buddhism and Mass Culture ···················································Lewis R. Lancaster
十牛圖에 나타난 진정한 自己 追求······························································변선환
The Ten Cow-Herding Picture seen in search of the true self ···Sun-Hwan Pyun
討論 要旨···································································································편집부
佛敎硏究 주요 목차∙295

불교연구 8 (신국판, 210쪽, 5000원, 1992.8.30)


華嚴經의 眞理······················································································玉城康四郞
淨土에 대하여···························································································山口 益
寶性論의 佛陀에 대한 理解·········································································정호영
티베트本 金剛三昧經 硏究···········································································허일범
八不中道思想의 始原으로서의 稻竿經과 緣起의 中道的 意味·························김성철
楞伽經의 如來藏說과 性相融會····································································김호성
初期佛敎의 階級平等論 硏究········································································전재성
傳統思想의 定着過程에 대한 一考察 ―― 新羅佛敎倫理의 護國的 變容過程을 中心으
로 ·············································································································허남결
書評/ 韓國禪思想硏究 (韓基斗 著) ·······························································권기종
書評/ 惡이란 무엇인가? (韓國精神文化硏究阮 編) ········································정병조
불교연구 9 (신국판, 272쪽, 5000원, 1993.7.30)
佛敎, 三寶의 體系·····································································다카사키 지끼도오
佛敎의 現在와 可能性···································································야마오리 테쯔오
歸依, 社會에 있어서 佛敎의 役割··················································루이스 랭카스터
佛敎徒,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기영
佛·法·僧에 대한 나의 見解··········································································권기종
佛·法·僧 三寶와 佛敎信仰············································································노권용
佛敎의 믿음과 삶························································································리영자
三寶에 대한 나의 見解···················································································성타
三寶에 관하여·····························································································정병조
나는 무엇을 믿는가? ·······························································프랑코 M. 테데스코
佛·法·僧의 歸敬에 대한 나의 見解·······························································한기두
296 ∙佛敎硏究 제48집

불교연구 10 (신국판, 208쪽, 5000원, 1993.12.30)


攝大乘論 所知相分 第三 譯·········································································이기영
우파니샤드 序說·············································································라다하끄리슈난
가우다빠다 사상에 있어서 대승불교의 영향 고찰·········································문을식
淸淨道論에 나타난 心·心所 相應論에 대하여················································최봉수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한보광
가우다빠다의 不生說의 논리적 기반····························································이호근
불교연구 11·12 (신국판, 496쪽, 10000원, 1995.11.15)
문화적·종교적 원형으로서의 원효―한국 불교 고승전에 대한 연구····로버트 버스웰
Wŏnhyo as Cultural and Religious Archetype;A Study in Korean Buddhist
Hagiography·············································································Robert Buswell Jr
몇 가지 사색-사상으로서의 원효의 “생애” ········································베르나르 포르
Random thoughts:Wonhyo’s “Life” as thought ································Bernard Faure
원효와 열반종요·················································································위베르 듈뜨
Colloque Wonhyo ···············································································Hubert Dürt
원효와 명혜·················································································야마오리 테쯔오
元曉と明惠······························································································山折哲雄
‘일심’의 분석심리학적 조명-원효 대승기신론 소·별기를 중심으로·················이부영
‘Il Shim’(One Mind)-a Jungian interpretation:With the special reference to
Won-Hyo’s commentaries of mind in the Tai-Sung Ki-Shin-Ron(Book of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 ··········································Bou-Yong RHI
원효사상의 특징과 의의-원효사상 연구 노트···············································이기영
원효 화쟁사상의 연구사적 검토···································································김상현
A Historiographical Retrospect of Wonhyo’s Theory of Harmoniza- tion ·
································································································Sang-Hyon KIM
원효에 있어서 화쟁의 논리-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본 무이이불수일 사상 구조의
佛敎硏究 주요 목차∙297
의의···································································································사토 시게기
The Logic of Wonhyo’s Harmonization:On the meaning of His MuiiBulsuil thought
found in the Kumgang Sammaegyoung ron······································Shigeki Sato
원효의 정토사상 연구-무량수경종요를 중심으로··········································권기종
한국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정병조
원효의 화쟁사상과 오늘의 통일문제····························································이기영
귀명삼보의 참된 의미와 실천······································································이기영
불교연구 13 (신국판, 372쪽, 8000원, 1997.1.15)
원효의 저술에 나타난 道의 의미·································································이기영
다르마의 미묘한 전개에 관한 일고찰···················································미노루 하라
A Note on dharmasya sūkṣmā gaitḥ··············································Minoru HARA
희랍고전과 성서에 있어서의 Logos ·····························································강영계
老 莊의 道-자연·························································································송항룡
北魏의 충신 高允의 불교사상에 대하여·········································아라마키 노리쥰
北魏の忠臣 高允の佛敎思想について·························································荒牧典俊
동아시아 삼국에 있어서의 불교와 문화························································이기영
Buddhism and Culture in East Asia ···············································Ki Young RHI
산스크리트 문학에 나타난 다르마 개념···············································미노루 하라
Concept of dharma in Sanskrit literature ········································Minoru HARA
베단타와 여래장사상에서의 존재의 문제······················································정호영
불교에서 정보화 사회론의 수용문제····························································유덕산
궁극적 자유에 관한 다섯 가지 접근방법···········································비쿠 파사디카
불교연구 14 (신국판, 327쪽, 8000원, 1997.8.5)
불교와 국가································································································이기영
Buddhism as a Principle of Tolerance······································Byung-jo CHUNG
298 ∙佛敎硏究 제48집
관용의 원리로서의 불교··············································································정병조
왕권과 종교: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베르나르 포르
Kingship and Religion: The French and Japanese Cases ················Brenard Faure
중국 역사상 종교와 국가의 관계·································································황심천
中國歷史上的宗敎与國家的關系····································································黃心川
국가와 종교: 기독교의 경우········································································고범서
한국불교의 역사쓰기: 미래를 위한 과거의 교훈···································존 요르겐센
Korean Buddhist Historiography: lessons from the past for the future·········John
Jorgensen
현대 한국불교 頓漸論의 비판적 小考: 退翁性澈의 頓悟頓修 對 普照知訥의 頓悟漸修
··················································································································심재룡
8 9세기의 한일 불교 관계···········································································최재석
불교연구 15 (신국판, 377쪽, 9000원, 1998.3.31)
철학으로서의 불교, 종교로서의 유교····························································정병조
Buddhism as a Philosophy, Confucianism as Religion···············Byung-jo CHUNG
불교와 유교에 있어서 이상적 인격······························································최근덕
Ideal Personality in Confucianism and Buddhism························Kŭn-dŭk CH'OE
중국의 불교와 유교··············································································로우위리에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China ················································Yu-lie LOU
조선왕조에서의 불교와 유학간의 대립·················································존 요르겐센
Conflicts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the Chosŏn Dynasty―a
preliminary survey ·······································································John Jorgensen
고려대장경의 전산화와 인문학적 중요성······················································김종명
TRIPITAKA KOREANA: Its Computerization and Signifiance in Cultural Sciences
································································································Jong-myung KIM
J.S. 밀의 ‘최대행복의 원리’에 나타나는 대승윤리적 사유경향·······················허남결
J.S. Mill's Mahāyānist ethical thinking tendency in his ‘the Greatest Happiness
佛敎硏究 주요 목차∙299
Principle’ ····················································································Nam-kyul HUR
불교연구 16 (신국판, 236쪽, 7000원, 1999.2.27)
한국불교의 좌표·························································································정병조
고려 연등회와 그 유산················································································김종명
인도철학 불교학의 그 방법론에 관한 성찰···················································김호성
원시불교에서의 무아와 열반과 공································································최봉수
법장교학과 기신론 ······················································································계환
즉비의 논리, 회호적 관계, 선문답································································이찬수
윤회론에 대한 유불대론··············································································허정희
불교연구 17 (신국판, 352쪽, 10000원, 2000.12.30)
사명대사 유정의 정토사상···········································································정병조
삼국, 통일신라, 고려의 승병사를 통해본 사명대사 의거의 의의와 인간적 종교적 비
극성···········································································································박노자
乾鳳寺와 四溟堂·························································································김상현
불교 무용론에 대한 백곡의 호불론 연구······················································김기영
‘호국불교’ 개념의 재검토·············································································김종명
성유식론에 나타난 종자설연구·································································송찬우
21세기 문명과 불교·····················································································정병조
應用佛敎學의 學問的 性格과 課題································································김용표
21세기와 한국불교······················································································김종명
출가와 재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시론···············································홍사성
불교연구 18 (신국판, 352쪽, 10000원, 2001.12.30)
종교적 관점에서 본 불교윤리······································································정병조
300 ∙佛敎硏究 제48집
宗敎哲學으로서의 空 思想···········································································김용표
觀無量壽經疏와 妙宗鈔에 대한 연구······················································김은희
불교의 북극성 신앙과 그 역사적 전개·························································김일권
佛敎의 異端性 論爭 ···················································································김기영
唯識 輪回說에서 ‘轉換’의 의미·····································································구본술
21세기 한국종교의 전망과 과제 ·································································송선영
雲岡石窟을 중심으로 본 북위불교의 특징····················································문무왕
약속의 땅 미국에는 한국불교의 여지가 존재하는가····················Matty Wegehaupt
불교연구 19 (신국판, 206쪽, 12000원, 2003. 2. 24)
21세기 한국문화의 불교적 고찰···································································정병조
智異山 花開茶의 歷史的 考察······································································김상현
高麗 太祖 訓要十條의 再考察······································································김기영
Acceptability of Agent-Based Utilitarianism·································Nam-Kyul, Hur
北魏時代 國家權力과 불교와의 관계····························································문무왕
新羅社會의 佛敎倫理文化 硏究····································································송선영
불교연구 20 (신국판, 288쪽, 비매품, 2004. 2. 24)
The Buddhist Lay Movement in Korean Society ······································정병조
瑜伽師地論 聲聞地 의 構成과 그 修行体系 ············································강명희
불교 생명관에서 ‘새 生’의 성립 ·································································구본술
楞伽経인도주석가의 생애와 유식사상 ·············································김수아(소운)
전통 뒷간과 사찰 해우소 이야기·································································김재일
‘唯識性’(vijñaptimātratā) 개념의 유래에 대한 최근의 논의의 검토 · 안성두
위빠사나 수행의 원리와 실제 ····································································임승택
漢訳 金光明経의 仏身論에 관한 연구 ······················································최은영
무기설을 통해 본 무여열반의 의미···························································· 황순일
佛敎硏究 주요 목차∙301
한국적 불교윤리문화의 형성과 전개··························································· 허남결
불교연구 21 (신국판, 222쪽, 비매품, 2004. 8. 24)
미래불교의 座標 ························································································정병조
解深密經의 止觀에 대하여 ······································································김치온
천태 三種止観에서 不定止観의 의미 ···························································오지연
사회복지 욕구이론과 중도사상 一考察 ························································임해영
圓測의 勝義諦観 ························································································박인석
大乗六情懺悔의 性格과 構造 ··························································이선이(태경)

불교연구 22 (신국판, 288쪽, 비매품, 2005. 2. 24)


慈蔵의 文殊信行 研究·················································································정병조
신라 구법승 의상의 윤리사상······································································곽만연
圓測의 解深密経疏三에 나타난 止観思想···················································· 강명희
의상의 화엄사상과 중국불교········································································허정희
신라승려들의 구법경로 연구········································································문무왕
僧朗의 中国仏教思想史的 地位····································································석길암
불교윤리와 공리성의 원리···········································································허남결
신라말기 최치원(崔致遠)의 승전(僧伝) 찬술·················································곽승훈

불교연구 23 (신국판, 376쪽, 비매품, 2005. 8. 24)


求法僧 研究의 意義와 課題·········································································정병조
7·8세기 海東求法僧들의 중국에서의 活動과 意義·········································김상현
中国禅宗과 無相禅師···················································································金 勳
한국 승려의 長安에서의 활동······································································쳔징푸
略論韓国僧侶在安的活動··············································································陳景福
302 ∙佛敎硏究 제48집
‘입당승’ 神林의 신라화엄학에서의 위상················································사토 아츠시
入唐僧 神林と新羅華厳学における位相······················································佐藤厚
6·7세기 중국불교의 흐름·············································································권기종
圓測法師의 入唐行蹟(1) ···············································································강명희
생명조작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윤리적 입장의 문제····································허남결

불교연구 24 (신국판, 245쪽, 비매품, 2006. 2. 24)


최치원의 유․불․도 삼교관 연구································································곽만연
한국선문의 형성과 홍주종···········································································강명희
新羅 下代 求法僧들의 行蹟과 實狀······························································김병곤
문화의 영향과 도덕적 책임의 문제······························································허남결
백의해의 관음수행관 고찰········································································이선이
인도의 언어철학에서 단어와 문장의 관계····················································최윤정

불교연구 25 (신국판, 365쪽, 비매품, 2006. 8. 24)


◁ 한․중 불교 교류사 특집 ▷
韓國佛敎의 思想的 性格··············································································정병조
9~12세기 중한불교교류의 각 시기와 특징···················································쳔진푸
試論 9~12世紀中韓佛敎交流的几个階段及其各自特点····································陳景富
장안 자오곡 김가기 마애비 연구························································쪼우웨이쪼우
長安子午谷金可記摩崖碑硏究········································································周偉洲
高麗 王朝의 祈禳佛敎와 東傳한 密敎························································뤄지안푸
高麗王朝的祈禳佛敎与東傳之密敎·································································呂建福
9세기 당과 신라의 관계 고찰···································································빠이건싱
九世紀唐与新羅關系考述··············································································拜根興
강남지역 한국승려들의 구법지역에 관한 고찰Ⅰ···········································문무왕
佛敎硏究 주요 목차∙303
◁ 일반 논단 ▷
萬海와 曉堂의 人間 關係 연구····································································전보삼
한국공직사회의 윤리문화적 현실과 그 미래·················································허남결
덕치(德治)와 법치(法治)의 딜레마 일고·······················································강정훈
종교적 삶에서 비의도적 죄지음의 문제························································송선영

불교연구 26 (신국판, 313쪽, 비매품, 2007. 2. 24)


三國遺事의 編纂과 刊行에 대한 硏究 現況···················································김상현
정토신앙의 중생구제와 高麗時代의 淨土思想···············································곽만연
화엄경 계율의 현대적 조명······································································권탄준
텍스트와 현실의 해석학적 순환···································································김호성
한국불교의 도심포교와 대중화 연구····························································윤영해
오계의 일상적 실천을 위한 행위전략 모색···················································허남결
생명불교현양운동론·····················································································차차석
현장의 五種不飜의 음역 이론의 연구···························································문을식

불교연구 27 (신국판, 348쪽, 비매품, 2007. 8. 26)


白雲 景閑과 臨濟宗·····················································································정병조
東亞細亞佛敎에서의 韓國佛敎의 正體性························································김상현
신라 구법승의 구법과 전도·········································································정병삼
高麗後期 敎宗僧의 中國遊歷과 佛敎界의 動向··············································황인규
民国時期 佛教 간행물에 게재된 韩国佛教史料에 대한 고······························黃心川
民国佛教刊物所见韩国佛教史料摭议········································································
高麗時代 中國遊學僧이 傳法한 五家七宗······················································강명희
한국구법승들의 활동지역에 관한 연구·························································문무왕
元의 宗敎觀과 高麗 入元僧의 行蹟······························································金炳坤
자리이타행의 공리주의화와 공리주의의 자리이타행화··································허남결
304 ∙佛敎硏究 제48집
불성론을 바탕으로 한 생태적인 삶의 모색···················································김치온

불교연구 28 (신국판, 306쪽, 비매품, 2008. 2. 28)


법화경 전편에 나타난 초기부파불교의 영향 탐구······································차차석
간화선에서 疑의 기능에 관한 고찰······························································공만식
사종삼매의 종합적 고찰·····································································김종두(혜명)
중국의 地藏信仰과 金喬覺 法師···································································김 훈
북위시대 용문석굴 개착에 나타난 신앙적 특색············································문무왕
남북조시대 서역-중국간 불교교류 연구·······················································한지연
의천의 불교적 이상과 실천·········································································허정희
원효의 화쟁(和諍)에 대한 현대의 논의와 반성·············································석길암
보살과 의인의 현대적 구원관 비교 ····························································최종석
동성애와 불교의 입장·················································································허남결

불교연구 29 (신국판, 412쪽, 비매품, 2008. 8. 26)


비단길과 한국불교······················································································정병조
3-9세기 실크로드상의 서북민족과 불교의 전파··········································周伟洲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구간 박트리아 예술 중의 불교적 요소·························李 琪
입당구법(入唐求法), 당과 신라 간에 불교문화교류의 다리를 놓다·················拜根兴
摩訶止觀의 후 3장에 관한 고찰·······················································감종두(혜명)
서북 涼州지역의 불교 특성 연구·································································한지연
譯經된 禪經류가 초기중국불교 수행론에 미친 영향······································최은영
메이지 시대 서구 불교문헌학의 수용과 난조 분유(南條文雄) ························조승미
高麗時代 護持佛 摩利支天像에 대한 고찰 ···················································최성은
현대 한국불교의 현황과 전망······································································차차석
보살사상과 서번트 리더십에 기반한 사회복지사 리더십의 도출····················조기룡
佛敎硏究 주요 목차∙305

불교연구 30 (신국판, 332쪽, 비매품, 2009. 2. 27)


海東華嚴의 실천적 전개··············································································권탄준
고려 후기 體元의 관음신앙의 특성······························································정병삼
티벳불교에 나타난 구종심주의 수행체계와 전개 양상··································차상엽
금강경의 구조에 대한 시론······································································김영일
고려 전기 금석문과 法相宗·········································································남동신
한국불교에서 관세음신앙 성립의 특수성 고찰··············································이종섭
일본의 근대불교학 형성과 대승 비불설(非佛說) 문제···································조승미
환경윤리 관점과 육식문화의 반성································································허남결

불교연구 31 (신국판, 247쪽, 비매품, 2009. 8. 30)


일래에 대한 고찰························································································이필원
部派佛敎의 佛身에 대한 논쟁과 龍樹의 佛身觀 성립에 대한 一考·················원필성
번역과 독창적 사유·····················································································조성택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류제동
不然 李箕永 선생의 불교학방법론에 대하여·················································문을식
불교 딴뜨리즘 역사에 나타난 연기법 전개···················································정성준

불교연구 32 (신국판, 247쪽, 비매품, 2010. 2. 28)


사무량심의 ‘해탈도’적 성격 고찰·································································이필원
타트바상그라하 <外境考察의 章>에 나타나는 3종의 形象說 批判··············이태승
샤마타圖와 道次第의 관계에 대한 검토 ······················································차상엽
고려시대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전개양상과 불교사적 위상···························김상영
고려대장경 조조(彫造)의 동기 및 배경에 관한 연구·····································김성수
唐 中期 儒․佛 논의에 대한 일고찰····························································장병한
‘원형’에의 의지와 동아시아 근대불교···························································조승미
306 ∙佛敎硏究 제48집
일제강점기 寺誌 편찬과 그 의의·································································한동민
풍경소리 글의 성격과 내용 분석······························································박경준

불교연구 33 (신국판, 329쪽, 비매품, 2010. 8. 30)


마라(Māra)의 도전과 붓다의 대응·······························································안양규
불교철학에 있어 학파적 복합성과 독단성(2) ················································권오민
섭대승론의 삼신설(三身說) ·······································································정호영
화엄의 삼매와 무애행의 연관성···································································권탄준
신라의 불교 전래와 교단의 확립·································································신선혜
화엄사 승가대학의 어제와 오늘···································································김광식
현대 한국의 간화선:이슈와 분석··································································김종명
불교포교매체가 불교신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최종석․권종만

불교연구 34 (신국판, 289쪽, 비매품, 2011. 2. 28)


[인도불교]
초기유식 삼성설의 두 형태와 불가분리성····················································정호영
[동아시아불교․한국]
고려시대 봉암사와 희양산파의 추이····························································한기문
全文 白花道場發願文略解와 체원의 관음신앙············································정병삼
震黙 一玉의 선사상과 그 연원 고찰····························································차차석
金剛界曼茶羅의 韓國的 變容에 관한 연구····················································김영덕
[동아시아불교․중국]
‘고승전’ 역경편으로 본 중국 초기 불교의 전개············································한지연
《不真空论》的“本无者”初探········································································赵炳活
[인도사상]
Bhagavdgītā에서 초월적인 행위의 실현에 대한 고찰···································문을식
佛敎硏究 주요 목차∙307

불교연구 35 (신국판, 325쪽, 비매품, 2011. 8. 30)


[인도불교]
염처론의 두 양상························································································김성철
[동아시아불교․한국]
원측의 해심밀경소에 나타난 알라야식의 해석과 그 특색··························안성두
근대 한국불교에 있어서의 성지순례의 諸相·················································정영식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 모색과 정치적 세속화············································김용태
不然 李箕永의 韓國佛敎史 硏究···································································김상현
[동아시아불교․중국]
하택신회의 明鏡에 대하여··································································정준기(유진)
중국근대소설에 나타난 불교적 사유와 역사의식···········································박영환
[응용불교]
근대 내셔널리즘의 대두와 화엄적 민족주의의 형성······································김종욱
불자의 신행동기 및 지각된 가치와 만족도 사이의 상관성 연구····················김종옥
불교연구 36 (신국판, 317쪽, 비매품, 2012. 2. 28)
[기획논문-불연 이기영박사 15주기 추모 국제학술회의]
불교적 식민지화?-1910년대 한국 원종(圓宗)과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에 대한 새
로운 해석의 가능성 / 김환수···············································································9
근대중국불교에서 전통의 경쟁과 개조 / 김영진·················································35
The Roots of Buddhist Imperialism in Modern Japan, 1868-1945 / 허남린········67
From terms to schemata - Some prefatory remarks on a complementary approach
to Wŏnhyo’s commentarial practice / Jörg Plassen··········································109
不然 李箕永의 한국불교연구-그 특징과 의의 / 정영근······································135
이기영의 동서사유 비교 고찰 / 한자경·····························································171
부디즘, 불교, 불연의 엘리아데 / 장석만···························································197
불연의 사회참여 이론과 실천에 대한 비판적 검토 / 유승무 ····························219
308 ∙佛敎硏究 제48집
[특별논문]
Reflesctions on the life and work of Professor Yi Ki- young : A 20th Century
Pioneer in Korean Buddhist Studies / Lewis Lancaster ···································245
[일반논문]
여말선초 나옹문도의 오대산 중흥불사 / 황인규················································255

불교연구 37 (신국판, 287쪽, 비매품, 2012. 8. 30)


[인도불교]
불전에서 자비 개념의 전개 양상(1) / 문을식·······················································9
한역불전에 나타난 베탈라(vetāla, 起尸鬼) 연구 / 심준보····································43
[동아시아불교․한국]
최남선의 ‘조선불교’ 정체성 인식 / 김광식··························································67
조선시대 연등회의 存廢와 불교사적 의미 / 이종수···········································113
[동아시아불교․중국]
華嚴宗 성립에 있어서 三階敎의 문제 / 석길암·················································147
[응용불교]
불교명상의 심리치료에의 응용에 대한 연구 / 김재성········································169
탈핵의 윤리적 당위성과 불교적 사유 / 정호영·················································229

불교연구 38 (신국판, 499쪽, 비매품, 2013. 2. 28)


[인도불교]
부파분열과 破僧 / 권오민··················································································11
종성무위론의 기원에 관한 한 고찰 / 김성철······················································65
섭대승론에서의 ‘異門’개념의 사상적 의의 / 박성춘(여연) ································97
[동아시아불교․한국]
원효의 계율관 / 최유진···················································································123
高麗 寺院形止案의 復元과 禪宗寺院의 공간 구성 검토 / 최연식························155
佛敎硏究 주요 목차∙309
고려시대 水陸齋의 전개와 공민왕대 國行水陸齋 설행의 의미 / 강호선··············193
고려후기 백련사 결사의 계승과 전개 / 황인규·················································227
고려후기 ‘法華經 戒環解’의 유통과 사상사적 의미 / 박광연······························261
사효(師孝)의 윤리와 출가정신의 딜레마 / 김호성·············································301
[동아시아불교․중국]
초기 중국불교사에서 法華經 연구와 법화신앙의 형태 / 최은영······················357
중국근대 정토법문의 부흥과 인꽝(印光)의 정토사상 / 김영진····························393
[불교의례]
현행 한국예불의 문제점과 방향 / 김종명··························································425

불교연구 39 (신국판, 412쪽, 비매품, 2013. 8. 30)


[인도불교]
譬喩者의 和合見說과 관련된 몇 가지 가설 비판 / 권오민···································11
[동아시아불교․한국]
신라 약사신앙의 성격 / 정병삼··········································································57
원효의 이장의 성립 배경에 대한 일 고찰 / 김수정(법성) ································89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의 실상염불선 / 박경준·············································117
日本 壹岐 金谷寺 소장 동조보살좌상 연구 / 정은우·········································153
[동아시아불교․중국]
宗密의 圓覺禮懺略本 분석 / 라정숙······························································181
[비교철학]
표상인식과 생멸심 / 김종욱·············································································211
[응용불교]
고대~임진왜란 이전에 있어서의 불교식 慰靈과 국가 / 정영식·························245
현대 한국불교 여성 성직자의 현황과 젠더경험 / 조승미···································269
사회 갈등에 대한 불교적 진단과 해법 / 이호근················································319
불교 교학에서 본 MBCT의 치유 효과의 원리 / 안양규····································345
310 ∙佛敎硏究 제48집

불교연구 40 (신국판, 359쪽, 비매품, 2014. 2. 28)


[기획논문-2013년도 불교학술세미나] “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기조강연] 불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 / 정호영·······································11
인도불교 출발에서 보편성 / 조준호···································································37
깔야니시마를 통해 본 동남아시아 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 황순일···················69
티벳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나타난 불교사의 과제 / 정성준···························95
중국 근대 량치차오의 불교 문명모델과 중국불교 고유성 문제 / 김영진············123
한국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 김상영······························································155
고대 일본의 사리신앙 / 김춘호········································································193
[일반논문]
방등경에서 불이(不二) 개념의 위상에 관한 일고(一考) / 최은영·······················229
동물윤리에 있어서 불교 실천윤리의 정립가능성에 대한 고찰 / 한명숙··············265
묘법연화경 제바달다품 후대 삽입설 재고 / 최기표····································297

불교연구 41 (신국판, 510쪽, 비매품, 2014. 8. 30)


[인도불교]
先代軌範師의 ‘色心互熏說’ 散考 / 권오민···························································11
십지경의 가장 오래된 두 네팔 산스크리트 사본의 轉寫— 현전지 (Ⅱ) / 이영진53
불교의 모신(母神) 하리티(Hārītī) 신앙의 형성과 변천 연구 / 조승미·················107
[동아시아불교 : 중국]
禪宗史에 있어서의 昭昭靈靈 비판의 전개 / 정영식···········································149
후스(胡適)의 선종사연구와 과학방법론 / 김영진···············································175
[동아시아불교 : 한국]
신라말 선승비문과 선종(禪宗)에 대한 당대인의 인식 / 한기문··························203
근현대 승려 이미지의 생성과 굴절 / 김용태·····················································229
초기불교와 퇴옹성철의 중도 / 조준호······························································265
佛敎硏究 주요 목차∙311
[동아시아불교 : 일본]
“불교는 철학적 종교” : 이노우에 엔료의 ‘근대일본불교' 만들기 / 송현주··········299
[동아시아불교 : 지역을 넘어서]
三論玄義의 성립배경에 대한 검토 / 최연식···················································355
法眼宗과 海洋佛國 吳越 / 조영록·····································································385
동아시아 비구니계율 전래와 수계의 변천 / 민명숙(벽공) ·····························415
[응용불교]
불교 명상을 통한 심신치유의 뇌과학적 이해 / 김종욱 안지영(등광) ··················447

불교연구 42 (신국판, 540쪽, 비매품, 2015. 2. 28)


[인도불교]
마야 부인의 죽음에 관한 연구 / 안양규·····························································11
先代軌範師의 ‘色心互熏說’ 散考(續) / 권오민······················································43
眞諦의 삼성설 해석과 阿摩羅識 / 안성두··························································101
[동아시아불교 : 중국]
동아시아불교의 전개과정에서 神의 표상 / 손진(정완스님) ································151
[동아시아불교 : 한국]
元曉 梵網經菩薩戒本私記의 진찬여부 논쟁에 대한 연구(1):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
적 검토 / 한명숙·····························································································187
화엄일승법계도에 나타난 의상의 중도적 사유 / 정호영······························221
고려시대의 비보사탑과 불상조성 / 김진숙························································253
1920년대 <불교>지에 나타난 불교유학생의 문학 활동 / 김종진························285
조계종단 계단(戒壇)의 역사 및 성격 / 이자랑··················································317
[동아시아불교 : 일본]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의 활동주의와 그 해석학적 장치들 / 김호성················353
[인도철학과 불교]
유식(唯識)의 이유에 대한 요가 철학의 비판 / 정승석·······································387
고전 산끄스리뜨의 아누쉬뚜브(Anuṣṭubh)에 대하여 / 박영길····························423
312 ∙佛敎硏究 제48집
[응용불교]
종교생활이 노인의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 홍송이, 김학주·······················471

불교연구 43 (신국판, 453쪽, 비매품, 2015. 8. 30)


[인도불교]
아비달마 학파의 주장에 대한 상이한 기술 고찰 / 김영석···································11
‘낙(樂) 등’의 심리현상에 대한 불교인식론의 논증(Ⅱ) / 박기열···························47
율장의 불탑 기술에 관한 일고찰 - 불탑=붓다의 관점을 중심으로 / 이자랑·········75
승단분열과 결집사의 쟁점에 대한 일고찰 -제3결집과 까타밧투의 성립 / 최경아105
[동아시아불교 : 중국]
고대 중국 불상 조상기와 정토신앙 / 김진숙·····················································137
[동아시아불교 : 한국]
의상 화엄사상의 시간・시간성 / 정호영···························································175
佛所行讚과 月印千江之曲의 붓다관 비교 연구 / 김지영······························211
한용운의 불교대전과 난조분유·마에다 에운의 불교성전의 비교연구 / 송현주·243
[동아시아불교 : 일본]
구라타 햐쿠조(倉田百三)의 신란(親鸞) 이해 / 김호성········································279
신란(親鸞)의 진불자관에 대한 고찰 / 박성춘(여연) ···········································327
[인도철학]
요가 수행의 식생활 / 정승석···········································································355
Vivekacūḍāmaṇi에 나타난 빤짜꼬샤(pañca kośa)의 이해 / 문을식·····················393

불교연구 44 (신국판, 222쪽, 비매품, 2016. 2. 28)


[인도불교]
Development of the notion of personal identity in Indian Buddhism / Choi, Kyung
Ah ·····················································································································9
[동아시아불교:중국]
佛敎硏究 주요 목차∙313
수당시대 천태종학의 밀교소재에 대한 해석 / 정성준·········································37
총법사의 성실론 주석서에 대한 문헌적 고찰 / 최은영····································63
[동아시아불교:한국]
徒弟敎育과 密敎儀式次第 비교연구 / 구동현······················································89
현공 윤주일의 불교강연집에 나타난 불교사상 / 이병욱·································125
[응용불교]
체벌에 대한 불교적 고찰 / 이호근···································································159

불교연구 45 (신국판, 234쪽, 비매품, 2016. 8. 30)


[인도철학과 불교]
상캬-요가 수행론에서 본 유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의 수행론 비교연구/ 문을식·· 9
상키야와 불교의 ‘adhyavasāya’ / 박기열····························································47
[인도불교]
바비야(Bhavya) 추론식의 특징 / 우형은····························································75
[동아시아불교:중국]
楞嚴經 傳譯의 전개와 특징 / 황영희·····························································101
後周 世宗의 고민과 폐불령 / 장미란································································127
[응용불교]
영화 파이널 컷(The Final Cut)의 가설에 대한 불교철학적 검토 / 이호근······165

불교연구 46 (신국판, 376쪽, 비매품, 2017. 2. 28)


[기획논문: 불연 이기영 선생 20주기 국제학술심포지엄]
샨티데바의 승천 : 인습에 묶이지 않은 철학자 보살의 삶과 수행 / 크리스티나 셰러숍 9
보살의 여러 얼굴 : 중국과 일본에서의 변모 / 베르나르 포르·····························31
보살, 그는 누구인가: 불연 이기영 선생의 보살관 / 정호영·································57
[인도철학과 불교]
마누법전에 규정된 죄와 벌의 근거 및 성격 / 이호근······································83
314 ∙佛敎硏究 제48집
[인도불교]
上座 슈리라타의 ‘舊隨界’ / 권오민···································································113
[남아시아불교:스리랑카]
스리랑카 국가종교의 분열과 아바야기리 세력 / 김경래····································155
[동아시아불교:한국]
신라 중고기 僧職의 설치와 僧團 / 신선혜························································179
고려시대 占察法會의 설행과 의미 / 라정숙······················································209
만해 한용운의 불교관 이해와 현대적 계승의 관점 / 석길암······························243
일타의 지성적 노선과 조계종단의 좌표 / 김광식··············································277
[응용불교]
불교계의 청소년 지원을 위한 정책적 제언 / 이혜숙·········································313

불교연구 47 (신국판, 359쪽, 비매품, 2017. 8. 30)


[인도철학과 불교]
유식 삼성설에 대한 불교인식론적 고찰 / 박기열·················································9
종교 내러티브(Narrative)에 나타난 citta-vīthi / 김경래······································55
법화경의 갈애(tṛṣṇā) 용례에 대한 고찰 / 하영수············································85
[동아시아불교:한국]
석가여래행적송과 석보상절의 비교연구 / 김지영········································159
금강산의 역사적 위상에 관한 연구 / 이석환·················································187
[동아시아불교:중국]
僧肇 選注維摩詰經에 나타난 方便의 理解 / 장병한········································221
[동아시아불교:일본]
출가, 재가, 그리고 비승비속(非僧非俗) / 김호성···············································251
[응용불교]
불교적 敎育과 인간의 心性啓發 / 구동현··························································289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15

佛敎硏究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

1. 편집위원회 규정

1) 편집위원회 구성
(1) 편집위원회는 한국불교연구원 원장과 부원장을 당연직으
로 하고, 불교연구회의 연구위원 중에서 약간 명을 선임
한다.
(2) 편집위원은 불교학 관련 전공 교수로서 해당 분야 논문이
10편 이상인 자로 나머지 성원을 구성한다.
(3) 편집위원회의 장은 원장이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특별한 경우 원장이 편집위원회의 장을 편집위원 가운데
에서 위촉할 수 있다.
2) 편집회의 시기
편집회의는 연 2회(각각 1월과 7월 중) 개최한다.
3) 편집회의 규정
(1) 편집회의는 편집위원 5/3 이상의 참석을 정족수로 한다.
(2) 편집회의는 편집위원장이 주관하며, 위원장 유고시 내규
에 따라 편집위원 중 한 명이 위원장의 임무를 대신한다.
(3) 편집위원회에서는 논문집의 편집 방향과 게재 순서를 정
한다.
(4) 편집위원회에서는 논문의 심사위원을 선발, 위촉한다.
(5) 편집회의에서는 발표된 논문 중에서 ‘수정 후 게재’ 판정
이 나온 논문에 대하여 심사, 결정한다.
(6) 편집위원회 규정은 본 연구원 윤리규정에 따라 판단한다.
316 ∙佛敎硏究 제48집

(7) 기타 사항은 편집위원장의 결정에 따른다.


2. 논문심사 규정

1) 논문 심사 절차
(1) 편집위원회에서는 한국불교연구원 및 불교연구회에서 개
최하는 모든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 및 투고된 논문
에 대하여 각각 관련 전공학자 3인을 심사위원으로 선
정․위촉하고 심사를 의뢰한다.
(2) 심사위원 3인은 심사결과를 ‘게재, 수정 후 게재, 게재불
가’의 세 등급으로 판정하고, 판정결과 소견을 편집위원회
에 제출한다. 단 외국어 논문은 해당언어에 능통한 심사
위원 2인의 판정을 따른다.
(3) 심사 결과 ‘수정 후 게재’가 요구된 논문은 투고자에게 그
사항을 통보하고, 수정본을 재심하여 보완 사항을 성실하
게 이행하였거나 해명한 논문에 한하여 게재를 결정한다.
(4) 심사 결과는 투고자에게 그 사항을 통보한다.
(5) 심사위원의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며, 다음과 같은
예에 준한다.
게재: 게재 3인 혹은 게재 2인, 수정 후 게재 1인일 경우
수정 후 게재: 게재 1인, 수정 후 게재 2인일 경우
수정 후 게재 3인일 경우
게재불가: 게재 불가 2인 이상일 경우
(6) 심사위원 3인의 판정소견이 ‘게재’ 1인 ‘수정 후 게재’ 1인
‘불가’ 1인일 경우, 혹은 ‘수정 후 게재’ 2인, ‘불가’ 1인 일
경우 편집위원회의 판정소견을 따른다.
(7) 규정 이외의 사항은 편집위원장이 윤리규정에 의거하여
결정한다.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17

2) 논문 심사 기준
(1) 불교연구 논문게재원칙 및 집필요령의 체제를 준수하여
야 한다.
(2) 논문의 주제의식과 논제가 명확하며, 타당한 논리적 근거
가 제시되어야 한다.
(3)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논제, 개념, 논거, 관점 등이 제시되
어야 한다.
(4) 관련 분야에 대한 기초 문헌과 2차 문헌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5) 1차 또는 2차 문헌에 대한 단순 해석, 정리, 요약에 그친
논문들은 권장되지 않는다.
(6) 논문 주제와 관련된 국내외의 선행 연구 논문 및 저술에
대한 논의를 적극 권장하며, 특히 최근의 연구물을 권장
한다.
(7) 본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은 본 연구원의 윤리규정에 어
긋나지 않아야 한다.
3) 게재 논문 저작권 양도
(1) 본 학회지의 심사를 거쳐 게재된 논문의 저자는 해당 논
문을 학회의 홈페이지 및 KCI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공
개 서비스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2) 본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저자는 해당 논문의 저작권을
본 학회의 소유로 양도한 것으로 간주한다.
(3) 상기한 (1)과 (2)항에 이의가 있거나 동의하지 않는 저자
는 논문이 게재되기 이전에 이 사실을 본 학회에 즉각 통
보하여, 별도의 저작권 양도 합의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3. 논문 게재 원칙 및 원고 작성 요령
318 ∙佛敎硏究 제48집

1) 논문 게재 원칙
(1) 불교연구는 불교학의 전문학술지로서 불교의 역사, 철
학, 문화와 이와 관련된 분야의 학술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논문, 서평과 기획물 등을 수록한다.
(2) 논문의 채택여부와 게재 순서는 편집위원회의 결정에 따
른다.
(3) 기타 세부적인 사항은 편집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
2) 논문 투고 규정
(1) 논문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로 한다. 논문에
는 200자 원고지 4매 내외의 우리말 요약문과 200자 원고
지 8매 내외의 영문 Abstract를 첨부하고, 여기에 5가지
정도의 우리말 주제어와 영문 key words를 부기한다. 단
본문이 외국어일 경우, 200자 원고지 4매 내외의 우리말
요약문과 우리말 주제어, 영문 key words를 첨부한다.
(2) 원고는 ‘글 워드프로세스’로 작성해야 하며, 불교연구
에서 규정한 스타일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3) 본문의 장, 절, 항, 목 등의 번호는 Ⅰ. 1, 1), (1), ①으로
표시하며, 표와 그림은 [표1], [그림1]과 같은 형식으로 일
련번호를 붙여 표/그림의 아래에 두고, 출처가 있으면 이
를 병기한다.
(4) 논문의 각주와 참고문헌의 표기형식은 ‘한국불교학술단체
연합회’에서 개정한 각주 및 참고문헌 형식 통일안
(ver. 20170602)에 따르며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별첨]을
참조한다.
(5) 논문의 제출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잼스
Jams’ 시스템(https://kibs.jams.or.kr/)을 이용하며 논문
투고시 필요한 제반사항은 해당 시스템의 내용을 따른다.
4. 불교연구의 발행일

본 연구원 학술지는 매년 2회 발행한다. 1회는 2월 28일로, 2회


는 8월 30일로 한다.
부칙
1. 본 규정은 2004년 1월 1일 제정되었으며, 개정된 규정은 2009
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320 ∙佛敎硏究 제48집

[별첨]
각주 및 참고문헌 형식 통일안
한국불교학술단체연합회 개정안(ver. 20170602)
Ⅰ. 각주
1) 각주 작성의 기본원칙
(1) 각주는 간략히 작성하고 ‘저자(연도), 쪽수.’ 방식으로 하며,
온전한 서지정보는 참고문헌에 기입한다.
(2) 약호를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 줄 수를 표기하며 연도는 서
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 松本史朗(1990), 156. [平成2년, 불기2534 등은 쓰지 않음]
AKBh, 98, 12-13줄.
(3) 자신의 논저를 인용할 경우에는 ‘졸고’ 등이 아닌 성명으로
표기한다.
(4) 여러 권의 저서나 논문 등을 함께 표기할 때는 단락을 나누
지 말고 쌍반점(;)으로 연결하여 표기한다.
예) 홍길동(1987), 30-37 ; AKBh, 130.
(5) 페이지는 ‘p.’나 ‘pp.’ 없이 쪽수만 표기하고 범위는 ‘-’로 표
기한다.
예) 홍길동(2017), 140-142.
(6) 재인용 논저는 출처를 밝힌 후 재인용이라고 표기한다.
예) 홍길동(2013), 100 재인용.
(7) 저자의 경우 성과 이름을 모두 표기하나, 서양어권 저자의
경우 성만 표기한다.
예) 홍길동(2017), 14 ; 中村元(1960), 50.
Schmithausen(1981), 23.
(8) 학문 분야 또는 전공 별 특수한 표기는 관례에 따른다.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21

2) 인용문헌의 표기
(1) 논저[1인 저자의 경우]
‘저자(연도), 쪽수.’의 형식으로 표시하되 같은 해에 발간된 동일
저자의 논저는 발간순서에 따라 a, b, c 순으로 구분한다.
예) 홍길동(2016a), 20. [2016년 2월에 발간된 홍길동의 논문
20쪽을 의미함]
홍길동(2016b), 3-4. [2016년 10월에 발간된 홍길동의 저서
3-4쪽을 의미함.]
(2) 논저[2인 이상 저자의 경우]
2인 공저의 경우 저자를 모두 표기하고, 3인 이상의 경우
‘대표저자 외 ○인’만 표기한다.
가. 동양어권 : 가운뎃점( )으로 연결한다.
예) 홍길동 장길산(2013), 30.
홍길동 외 3인(2014), 50-60.
나. 서양어권 : and기호(&)로 연결한다.
예) Alexander & Stefan(2013), 35.
Alexander 외 2인(2014), 40.
(3) 사서(史書) 전집(全集)류
아래와 같은 용례에 준하여 표기한다.
예) 三國遺事 卷5, 義解5, 寶壤梨木.
世宗實錄 권122, 30년 12월 1일.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21년.

(4) 번역서
번역서에서 기재하고 있는 저자명과 역자명을 병기하고 번역본
의 출판연도, 쪽수를 표기한다.
예) T.R.V 무르띠, 장길산 역(1995), 99.
322 ∙佛敎硏究 제48집

미즈노 고겐, 홍길동 역(1996), 40.


단, 편역서의 경우 편역자만 기재해도 무방하다.
예) 백련선서간행회(1995), 47-48.
(5) 학술지 이외의 정기간행물(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의 경
우는 ‘<간행물명>(발행일자), 면.’ 순으로 표기하며, 권・
집・호 등을 쓰고자 할 경우 간행물명 뒤에 병기한다.
예) <불교신문>(1989.2.1), 9.
<불교> 100호(1994.8), 3.
(6) 대장경(大藏經), 전서(全書)류의 경우 약호를 사용하여 표시
한다. 인용한 원문은 쌍따옴표(“ ”) 안에 표기하되 한국어
번역을 병기할 경우 “번역문(원문)”의 형태로 표시한다. 자
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예를 참고하여 작성한다.
가. 약호
예) 고려대장경 : K
한국불교전서 : H
대정신수대장경 : T
만신찬속장경 : X
이 외의 문헌은 해당 학문(전공) 분야에서 통용되는 약호
를 사용하되 본문에서 사용한 약호는 모두 참고문헌에서 다
시 밝힌다.
나. 한문(漢文) 문헌
예) ○○○經(K7, 512c-513a), “원문”
○○○疏(T42, 148c-149a), “번역문(원문)”
다. 티벳 문헌
[P.: Peking판, D.: Derge판, N.: Narthang판, C.: Cone판]
예) P.103, 15a2-3. [Peking판, 불전 No.103, 15면 상단, 둘
째 줄부터 셋째 줄까지를 의미함]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23

라. 빨리 문헌[권수는 로마자로 표기한다]


예) DN.Ⅱ, 135. [Dīgha Nikāya Vol.2, p.135를 의미함]
Sn, 342게. [Suttanipāta verse 342를 의미함]
Vism, 542, “번역문(원문)” [Visuddhimagga, p.542]
마. 범어 문헌[권수는 로마자로 표기한다]
예) RV.Ⅸ, 48cd ; AKBh, 393.
(7) 인터넷 정보 인용의 경우, 온전한 URL 정보와 검색일자
를 아래와 같이 표기한다.
예) http://www.studies.worldtipitaka.org (2013.2.15).
Ⅱ. 참고문헌
1) 참고문헌 표기의 기본원칙
(1) 참고문헌에는 본문(각주 포함)에서 인용한 문헌만 정리・표
기한다.
(2) 본 규정에 명시된 약호를 포함하여 본문에서 사용한 모든
약호는 참고문헌의 서두에 밝힌다.
(3) 1차 자료와 2차 자료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1차 자료는 원
전 및 사전류, 2차 자료는 논문 및 저역서, 학술지 이외의
정기간행물, 인터넷 정보 등의 순서로 정리한다. 단, ‘1차 자
료’, ‘저역서’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4) 각주에서 제시한 정보의 온전한 서지사항을 제시하되 ‘저자
명(연도), 서명, 출판지역: 출판사.’ 순으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단행본은 출판지역을 밝히고, 학술지의
경우는 발행기관만 표기해도 무방하다. 각주의 온전한 정보
를 확인함에 혼란이 없도록 각주에서 사용한 약호 및 저자
명 등이 서지사항 맨 앞에 오도록 유의한다.
예) 홍길동(2012), 아티샤의 중관사상, 서울: 동국출판사.
上田真啓(2008), 普遍と特殊をめぐって , 印度学仏教学
324 ∙佛敎硏究 제48집

研究 通号116, 日本印度学仏教学会.


(5) 동양어권 자료의 경우 저자의 성과 이름을 붙이고 홑낫표(
), 겹낫표( )를 사용하여 논문과 저역서를 표기한다. 서
양어권의 자료는 저자의 성명을 ‘성, 이름’ 순으로 표기하고
논문은 쌍따옴표(“ ”), 저역서는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예) 松本史朗(1988), 空について , 駒澤大學佛敎學部論集 19,
駒澤大學 佛敎學部硏究室.
Kulkarni, V.M.(1994), “Relativity and Absolutism”.
Filliozat, Pierre Sylvain etc ed. Pandit
N.R.Bhatt Felicitation Volume. 1st ed, Delhi: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6) 배열순서는 아래 2), 3) 항목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A,
B, C 또는 가, 나, 다 순으로 한다. 단, 동일저자의 논저는
번역서를 포함하여 함께 배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 水野弘元(1972), 修證義の佛敎, 東京: 春秋社.
미즈노 고겐, 홍길동 역(1996) 경전의 성립과 전개, 서
울: 시공사.
Murti, T.R.V(1983), Studies in Indian thought: collected
papers of Prof. T.R.V. Murti, edited by Harold
G. Coward, Columbia: South Asia Books.
T.R.V 무르띠, 홍길동 역(1995), 佛敎의 中心哲學: 中觀 체
계에 대한 연구, 서울: 동국출판사.
2) 1차 자료의 표기
(1) 작성하는 논문의 성격에 따라 분야별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2) 본문에서 사용한 모든 약호와 그 온전한 정보를 아래와 같
이 표기한다.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25

예) T: 대정신수대장경
J: 일본대장경
SN: Saṃyutta-nikāya, PTS.
AKBh: Abhidharmakośabhāṣya, ed., by P. Pradhan,
Tibetan Sanskrit Work Series 8, Patna,
1967(repr. 1975).
AKVy: Sphuṭārthā Abhidharmakośavyākhyā by
Yaśomitra. ed., by U. Wogihara, Tokyo,
1932-1936(repr. Tokyo: The Sankibo Press,
1971)
Vism: Visuddhimagga, ed by H.C. Warren, revised D.
Kosambi: Harvard, 1950.
(3) 원전의 출처가 일반 출판물이 아니거나 원전 편역자의 의견을
본문에서 인용한 경우에는 편역자명과 발행연도만 밝히고
해당 서지정보를 2차 자료에서 자세히 표기한다.
예) AP: Anekantapraveśa. 藤永伸(1997 ; 1998).
NA: Nyāyāvatāra. Balcerowicz(2001).
[2차자료에서]
藤永伸(1997), Haribhadra作Anekāntavādapraveśa 積極的多
面説入門 翻訳解説 (1) , ジャイナ教研究 通号 3,
京都: ジャイナ教研究會.
藤永伸(1998), Haribhadra作Anekāntavādapraveśa 積極
的多面説入門 翻訳解説 (2) , ジャイナ教研究
通号 4, 京都: ジャイナ教研究會.
Balcerowicz, Piotr(2001), Jaina Epistemology in Histor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 Critical Edition
and English Translation of Logical-
Epistemological Treatises: Nyāyāvatāra,
Nyāyāvatāravivṛti Nyāyāvatāra-Tippana with
326 ∙佛敎硏究 제48집

Introduction and Note, Stuttgart.


3) 2차 자료의 표기
(1) 논문과 저서 구분없이 저자의 성명 순으로 정리한다. 동일
저자의 문헌은 발행연도 순으로 하되 동일저자의 동일연도
발행 문헌은 a, b, c 순으로 구분한다.
예) 장길산(2017), 불교학개론, 서울: 서울출판사.
홍길동(2008a), 용성의 불교 근대화 기획 , 대각사상
21, 대각사상연구원.
홍길동(2008b), 불교의 근대성과 대중불교 , 한국불교
학 50, 한국불교학회.
홍길동(2010), 한국 현대선의 탐구, 서울: 도피안사.
(2) 2차 자료는 동양어권, 서양어권으로 나누어 정리하되 동양
은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순서로 한다.
예) 末木文美士(2006), 日本佛敎の可能性, 東京: 春秋社.
Schmithausen, Lambert(1981),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 Studien zum Jainismus
und Buddhismus, Gedenkschritf für L. Asldorf,
Wiesbaden.
(3) 2인 이상 공저의 경우 가능한 한 저자를 모두 표기하되 동
양어권은 가운뎃점(·), 서양어권은 and기호(&)로 연결한다.
단, 필요에 따라 ‘–외 ○인’으로 표기할 수 있다.
예) 홍길동·장길산(2013), 한국불교사상사, 서울: 동국대
출판부.
Alexander, Marcus & Stefan, Cleanth(2013), A Study
of Ganhwaseon, New York: Buddhist Pub.
편집위원회 구성 및 논문심사 규정∙327

Alexander, Marcus 외 5인(2017), A Study of Wonhyo,


New York: Buddhist Pub.
(4) 번역서의 경우 책에서 기재하고 있는 저자명과 역자명을 표
기하되 저자명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원
서명과 원서의 출판정보를 표기할 수 있다.
예) 미즈노 고겐, 홍길동 역(1996) 경전의 성립과 전개, 서
울: 동국출판사.
틸만 페터, 장길산 역(2009) 초기불교의 이념과 명상,
서울: 동국출판사.
B.K. 마티랄, 홍길산 역주(1993) 고전인도 논리철학,
서울: 동국출판사(Matilal, Bimal Krishna,
Epistemology, logic, and grammar in Indian
philosophical analysis).
(5) 학술지 이외의 정기간행물(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의 경
우는 ‘<간행물명>(발행일자), 면수, 기사제목 .’ 순으로 표
기한다. 단, 전문연구자 기고문의 경우 논문 형식을 따르며
저자의 다른 논문과 함께 표기할 수 있다.
예) <불교신문>(2017.4.3), 8면, 소셜 네트워크…불교 안내
하는 소통수단으로 .
<불교> 100호(2017.4.23),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
상-99, 아도(阿度) (http:
//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
xno=156850)
홍길동(2016), 불교와 정치 , <한겨레신문>(2016.3.1), 9.
328 ∙佛敎硏究 제48집

윤리 규정

전 문

한국불교연구원(이하 본 연구원)은 연구 활동을 통해 한국 불교


문화의 창달과 한국불교학의 국제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술 연구기관이다.
본 연구윤리규정(이하 윤리규정이라 약칭함)은 본 연구원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불교연구》의 게재 대상 논문의 심사․논문의
게재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의 원칙과 기준을
규정한다.
연구자는 학술 연구 수행 및 연구 논문 발표 시 연구윤리규정
을 준수함으로써 연구의 가치를 서로 인정하고 연구결과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불교문화 및 한국불교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다.
연구 논문을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ㆍ게재하는 전
문 학술지의 발간은 본 연구원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
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이며, 수준 높은 학술지의 발간을 통해 불
교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연구 논문의 저자는 물론 학술
지의 편집위원과 심사위원이 지켜야 할 윤리규정을 확립할 필요
가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제정하는 본 “윤리규정”은 이미 관행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지만, 모든 회원들에게 연구 논문의 작성과 평
가 및 학술지의 편집에 대하여 본 연구원이 추구하는 윤리 의식
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윤리 규정∙329

제1장 연구관련 윤리규정

제1절 저자의 윤리규정

제1조 표절
저자는 자신이 행하지 않은 연구나 주장의 일부분을 자신의 연
구 결과이거나 주장인 것처럼 논문이나 저술에 제시해서는 안 된
다. 타인의 연구 결과는 출처를 명시함과 동시에 여러 차례 참조
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그 일부분을 자신의 연구 결과 혹은 주
장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표절이 된다.
제2조 출판 업적
(1) 저자는 자신이 실제로 행하거나 공헌한 연구에 대해서만 저
자로서의 책임을 지며, 또한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2) 논문이나 기타 출판 업적의 저자(역자)나 저자의 순서는 상
대적 지위에 관계없이 연구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정확하게 반영
해야 한다. 단순히 어떤 직책에 있다고 해서 저자가 되거나 제1저
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반면, 연구나
저술(번역)에 기여했음에도 공동저자(역자)나 공동연구자로 기록
되지 않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연구나 저술(번역)에 대한
작은 기여는 각주, 서문, 사의 등에서 적절하게 고마움을 표시한
다.
제3조 연구물의 중복 게재 혹은 이중 출판
저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전에 출판된 자신의 연구물(게재
예정이거나 심사 중인 연구물 포함)을 새로운 연구물인 것처럼 출
판(투고)하거나 출판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이미 발표된 연구물
을 사용하여 출판하고자 할 경우에는, 출판하고자 하는 학술지의
편집자에게 이전 출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중복 게재나 이중
출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다만, 자신의 연구물
330 ∙佛敎硏究 제48집

을 영역과 성격을 달리하여 발표하고 이를 사전에 고지하는 경우


는 이중출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제4조 인용 및 참고 표시
(1) 공개된 학술 자료를 인용할 경우에는 정확하게 기술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상식에 속하는 자료가 아닌 한 반드시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논문이나 연구계획서의 평가 시 또는 개인적
인 접촉을 통해서 얻은 자료의 경우에는 그 정보를 제공한 연구
자 혹은 연구기관의 동의를 받은 후에만 인용할 수 있다.
(2)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차용(참고)할 경
우에는 반드시 각주(후주)를 통해 인용 여부 및 참고 여부를 밝혀
야 하며, 이러한 표기를 통해 어떤 부분이 선행연구의 결과이고
어떤 부분이 본인의 독창적인 생각ㆍ주장ㆍ해석인지를 독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5조 논문의 수정
저자는 논문의 평가 과정에서 제시된 편집위원과 심사위원의
의견을 가능한 한 수용하여 논문에 반영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근거와 이유를 상세하
게 적어서 편집위원(회)에게 알려야 한다.

제2절 편집위원의 윤리규정

(1) 편집위원은 투고된 논문의 게재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모


든 책임을 지며, 저자의 인격과 학자로서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
다.
(2) 편집위원은 학술지 게재를 위해 투고된 논문을 저자의 성
별, 나이, 소속 기관은 물론이고 어떤 선입견이나 사적인 친분과
도 무관하게 오로지 논문의 질적 수준과 투고 규정에 근거하여
윤리 규정∙331

공평하게 취급하여야 한다.


(3) 편집위원은 투고된 논문의 평가를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
과 공정한 판단 능력을 지닌 심사위원에게 의뢰해야 한다. 심사
의뢰 시에는 저자와 지나치게 친분이 있거나 지나치게 적대적인
심사위원을 피함으로써 가능한 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단, 같은 논문에 대한 평가가 심사위원 간에 현
저하게 차이가 날 경우에는 편집위원회에 참석한 위원 전체의 검
토에 의해 공정하게 결정한다.
(4) 편집위원은 투고된 논문의 게재가 결정될 때까지는 심사자
이외의 사람에게 저자에 대한 사항이나 논문의 내용을 공개하면
안 된다.
제3절 심사위원의 윤리규정

(1) 심사위원은 학술지의 편집위원(회)이 의뢰하는 논문을 심사


규정이 정한 기간 내에 성실하게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편집위원
(회)에게 통보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논문의 내용을 평가하기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편집위원(회)에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통보한다.
(2) 심사위원은 논문을 개인적인 학술적 신념이나 저자와의 사
적인 친분 관계를 떠나 객관적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충분한 근거를 명시하지 않은 채 논문을 탈락시키거나, 심
사자 본인의 관점이나 해석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논문을 탈락시
켜서는 안 되며, 심사 대상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평가해서
도 안 된다.
(3) 심사위원은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저자의 인격과 독립성을
존중하여야 한다. 평가 의견서에는 논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밝
히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이유도 함
께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4) 심사위원은 심사 대상 논문에 대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논
332 ∙佛敎硏究 제48집

문 평가를 위해 특별히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문내용


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출판되기 이전에 저
자의 동의 없이 논문의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
제2장 윤리규정 시행 지침

제1조 윤리규정에 대한 동의
한국불교연구원의 《불교연구》에 투고․심사․게재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본 윤리규정을 준수하기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제2조 윤리규정 위반 보고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자가 윤리규정을 위반한 것을 인지할 경
우 그 연구자로 하여금 윤리규정을 환기시킴으로써 문제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거나 명백한
윤리규정 위반 사례가 드러날 경우에는 연구원 윤리위원회에 보
고할 수 있다. 윤리위원회는 문제를 연구원에 보고한 회원의 신원
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제3조 윤리위원회 구성
윤리위원회는 연구자 5인 이상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이사회 및
편집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원장이 위촉한다.
제4조 윤리위원회의 권한
윤리위원회는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고된 사안에 대하여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 및 증거자료 등을 통하여 폭넓게 조사를
실시한 후, 윤리규정 위반이 사실로 판정된 경우에는 원장에게 적
절한 제재조치를 건의할 수 있다.
제5조 윤리위원회의 조사 및 심의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고된 연구자는 윤리위원회에서 행하는 조
윤리 규정∙333

사에 협조해야 한다. 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윤


리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제6조 소명 기회의 보장
윤리규정 위반으로 보고된 연구자에게는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제7조 조사 대상자에 대한 비밀 보호
윤리규정 위반에 대해 학회의 최종적인 징계 결정이 내려질 때
까지 윤리위원은 해당 연구자의 신원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
다.
제8조 징계의 절차 및 내용
윤리위원회의 징계 건의가 있을 경우, 연구원장은 이사회를 소
집하여 징계 여부 및 징계 내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윤리규정
을 위반했다고 판정된 회원에 대해서는 경고, 회원자격 정지 내지
박탈 등의 징계를 할 수 있으며, 이 조처를 다른 기관이나 개인에
게 알릴 수 있다.
제9조 윤리규정의 수정
윤리규정의 수정 절차는 본 연구원의 정관 개정 절차에 준한다.
2009년 한국불교연구원
편집위원장 : 이호근(강릉원주대)
편 집 위 원 : 김성수(청주대), 문을식(서울불교대학원대)
우제선(동국대), 원영상(원광대)
이태승(위덕대), 임승택(경북대)
정승석(동국대), 정호영(충북대)
최연식(동국대), 최종석(금강대)
총 무 간 사 : 신선혜(고려대)
편 집 간 사 : 최지연(동국대)

佛敎硏究 48
2018년 2월 28일 초판1쇄 발행
엮은이 불교연구 편집위원회
펴낸이 이태승
펴낸곳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

등록 제1-500호 (1972. 9. 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익선동 55번지 현대뜨레비앙 1층 148호
TEL 02)762-5624 FAX 02)762-5627

비매품

ISSN 1225-3154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No.48 Bulgyo-Yongu 2018. 2

CONTENTS

A Study on the meaning of ‘assaddha’: does not Arahant possess


saddhā? ·················································································· Han, Sang Hee
A Consideration On The Issue Surrounding the Paṭiccasamuppāda
-Focusing on Early Buddhism- ················································ Lee, Eun Jung
On the meaning of the word Vastu in Vajracchedikā Sutra ·················
······························································································· Lee, Tae Seung
The Life of Noemuk Cheoyeong and His Status in the Buddhist History
··························································································· Kim, Sang Young
Correlation between Dasolsa Temple and the Anti-Japanese resistance
group Mandang- Han Yong Woon, Choi Bum Sul, Kim Bum Bu, Kim
Dong Lee One side of history - ·········································· Kim, Kwang Sik
Qixinlun-shu-bixueji( 起信論疏筆削記 )'s transmission and introduction
······························································································· Kim, Hea Won
Doctrine of Universal Law and Universal Buddha in San-Jie Jiao ·········
····································································································· Park, Bu Ja
A Comparative Study For Intertextuality of Huayan Jing Tǎnxuan Juezĕ
華嚴經談玄決擇記
Ji ································· Park, Eun Young (Ven. Jihyun)
日本仏教における出家と在家 安中尚史
······················································

Published By
Korean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Seoul, Korea

ISSN 122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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