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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5388/buddhi.20. 202212.

014
© 『불교문예연구』 20집 2022.12.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

임 병 정(명조)
(사)아시아종교연구원 연구위원

Ⅰ. 서론

Ⅱ. 초발심(初發心)의 이결정의(二決定義)
III. 육근수행(六根修行)과 육결(六結)
IV. 결론
446 불교문예연구 20집

〈국문초록〉

본 연구에서는 삼마제 수행의 근간이 되는 이결정의(二決定義)와 수행


의 방편으로써 제시되는 육근수행을 통해 번뇌의 원인이자 원통의 통로로서
의 육근의 공덕과 작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번뇌의 해결과정인 육해
일망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였다.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는 삼마제 수행의
필수 근간이 되는 지침의 역할을 한다. 세존이 설하신 두 가지 결정의는 다음
과 같다. 첫째,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覺]과 같아야 한다.
인지가 과지와 일치하려면 환망한 생멸심을 버려야 하므로 오탁이 설명되어
야 한다. 둘째,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發業輪生)의 원인을 깨달아야 한
다.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함이 육식과 육근에 기인함을 깨닫고 바로 그
육근을 통해 번뇌를 풀어야 함을 말한다. 능엄경에서 이러한 삼마제의 방
편으로서 원통근을 통한 수행을 제시한 이유는 육근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자
깨달음의 통로[解結同體]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존의 삼마제 법문 가운데
가장 먼저 설법한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의 내용으로 본다면 오탁에 의한
생멸심이 중생의 번뇌를 필연적으로 야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중생의
번뇌는 육근과 육진의 전도로 인하여 발생함을 깨닫고 번뇌의 원인인 육근을
통해 번뇌를 벗어나야만 불성으로서의 여래장 묘진여성에 이를 수 있게 된
다.

핵심어: 『능엄경』, 삼마제, 이결정의(二決定義), 인지(因地), 과지(果地),


육근(六根)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47

Ⅰ. 서론

능엄경(楞嚴經)은 객진번뇌에 물들어 사량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


고 묘명한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을 깨달아 증득하기를 권하는
경전이다. 깨달음이 궁극적인 불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
해 생멸심을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문(多聞)하고도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법에 대한 이익이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견도분(見道分)
의 설법을 통하여 아난이 여래장 묘진여성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올바른
방편 수행을 수반하지 않으면 생멸심(生滅心)을 모두 여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대궐을 얻었으나 그 문을 찾지 못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올바로 문을 찾아 들어가는 방편이 필요하
다는 비유와도 같다.
세존은 아난의 요청에 답하여 삼마제(三摩提) 수행의 최고 방편으로
법문을 펼친다. 그 중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삼마제 법문의 근간이
되는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決定義)’이다. 수행을 시작할 때 두
가지 결정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피권(疲倦)을 내지 않고 불지견(佛知
見)에 올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는 삼마제
수행에 있어서 나침반과 같은 필수 근간이 되는 지침이다. 이를 각심하
지 않고서는 올바른 수행과 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세존이 설한 두
가지 결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覺]과 같아야 한다. 인지가 과지와 일치하려면 환망한 생멸심을
버려야 하므로 세존은 이를 위해 오탁을 설명하였다. 둘째,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發業輪生)의 원인을 깨달아야 한다.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함이 육식, 육근에 기인함을 깨닫고 바로 그 육근을 통해
번뇌를 풀 것을 밝혔다.
능엄경은 삼마제의 방편으로서 원통근을 통한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원통근 수행은 육근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자 동시에 깨달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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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解結同體]인 까닭이다. 세존의 삼마제 법문 가운데 가장 먼저


설법한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의 내용으로 볼 때, 오탁에 의한 생멸심
이 중생의 번뇌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1) 중생의 번뇌는 구체적으로
육근과 육진의 전도로 인하여 발생함을 깨닫고 번뇌의 원인인 육근을
통해서 번뇌를 벗어나야 불성 즉 여래장 묘진여성에 이를 수 있다.
능엄경이 한국의 불교의 수행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가 많지 않은 것은 검토해봐야 할 사항이다. 능엄경
의 수행론에 관련한 연구들이 몇 편이 채 안되지만 그 중에서 이근원통
(耳根圓通)을 논의한 연구들이 주목된다.2) 이근원통은 능엄경을 비
롯한 대승의 수행론의 핵심을 차지하는 면에서 앞으로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들 연구에서 초발심과 이결정의(二決定義)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우며 이것이 어떻게 육근의
원통과 관련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연구 범위가 미치지 못한다.
이결정의를 비롯한 육근 수행과 더불어 수행의 장애가 되는 오탁과
마장을 다루는 것이 향후 능엄경 연구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으
로 기대된다.
본 연구에서는 삼마제 수행의 근간이 되는 이결정의와 수행 방편으
로써 제시되는 육근수행을 다루고자 하였다. 이근원통 수행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이결정의의 주요 역할이 해명되어야 『능엄경』 수행 체계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번뇌의 원인이자 원통의 통로로

1) 이와 관련한 논의는 아래의 논문들에서 다루고 있다. 염송운(2021). 『楞嚴經』의


修行體系 硏究 : 識心見性을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임병정(2021),
「『능엄경』에서의 홀생과 상속의 의미」, 『불교문예연구』 제18집, 불교문예연구소;
임병정(2021), 「『능엄경』의 수행과 구제의 상관성 연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 이상식(2018), 『楞嚴經』 「耳根圓通章」 硏究, 동의대학교 박사논문; 임병정(2019),
능엄경의 이근원통과 염불원통의 특성에 대한 비교 고찰, 불교문예연구(14); 장운숙
(2009), 능엄경의 耳根圓通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조용헌(2001), 『楞嚴經』
修行法의 韓國的 受容 : 耳根圓通과 性命雙修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
문.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49

이해될 수 있는 육근의 공덕과 작용을 살펴보고 번뇌의 해결과정인


육해일망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초발심(初發心)의 이결정의(二決定義)

『능엄경』에서는 삼마제 법문을 통하여 중생이 올바른 인지(因地)를


세워 올바른 수행을 하도록 계도하기 위한 세심한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삼마제 법문은 여래장의 진공 이치를 깨달은 후 불지견을 얻기
위한 수행의 방편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록 사마타 법문을 통해서 중생의
마음이 망상에 빠져있음을 알고 진심의 면모와 세계의 여래장성을 깨달
았지만 중생은 여전히 생멸하는 인연의 업보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오직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깨끗이 가라앉히고 적멸의 과(果)를 얻어야 비로
소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나 청정담연(淸淨湛然)한 불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삼마제 법문에서는 수행자가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하
고자 할 때 두 가지 결정한 도리를 밝혀 수행의 기본을 삼게 하였다.

1. 발심과 깨달음의 살핌[心觀發心與果覺爲同爲異]

이때 세존께서 회중의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심에 자재하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


시며, 오는 세상에 세존이 멸도한 뒤 말법 중생이 보리심을 낼 수 있도록 최상승의
묘한 수행하는 길을 열어주려고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심을 내어 부처님 여래의 묘한 삼마제에 피로와 권태를 일으키지 않으려거든,
먼저 깨닫는 초심의 두 가지 결정한 뜻을 밝혀야 한다. 어떤 것이 초심의 두 가지
결정한 뜻이냐? 아난아, 첫 번째 결정의는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을
닦아서 불지견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인지의 발심이 과지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
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생멸심을 수행의 본인으로
삼아서 불승의 불생불멸을 구하려 한다면 옳지 않다.”3)
450 불교문예연구 20집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최상승의 묘한 수행의 길이란 반문문자성(反聞聞自


性) 공부법인 이근원통(耳根圓通)을 말한다. 이근원통을 닦기 전에 수행자가 보리심
을 발하는 처음 마음의 두 가지 결정한 도리를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처음의 인지의 발심이 과지의 각과 같은가, 다른가를 잘 살펴서 관찰해야 된다는
것이다. 인지의 발심이란 처음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할 때의 마음을 말한다. 과지의
각이라고 하는 것은 성불한 이후의 불승인 불생불멸의 보리열반이다. 이는 곧 처음
발심할 때부터 생멸심(生滅心)이 아닌 불생멸심(不生滅心)으로 수행을 해야 불지견
의 마음과 일치가 됨을 강조한 것이다.
본래 담연하고 순수한 불성이 정각이라면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불성은 시각이
다. 인지와 과지를 일치시킴은 사마타의 깨달음을 통해 정각을 세워 시각을 구하는
것이다. 생멸심은 정각을 감추는 망상에 불과한 것이므로 그 망상의 정체를 알고
깨뜨려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생멸심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변멸(變滅)하는
사대(四大)로 구성되어진 몸이 견문각지하여 혼탁함을 만들고 본래 맑고 원만한
묘각명심인 본성자리가 사대로 얽힘으로 인하여 생멸심을 발생시킨다. 『능엄경』에
서는 생멸심이 발생하는 근거를 오탁(五濁)을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오탁(五濁)

능엄경에서의 오탁은 법화경, 화엄경 등의 여타의 경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오탁과는 다른 개념이다. 다른 경전의 오탁은 말법의
시대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혼탁한 현상을 말하지만 능엄경에서 언급
되는 오탁은 당초에 순수한 여래장 묘진여성이 청정함을 잃게 되는
과정을 언급한 것이다.

3) 『楞嚴經』(T19, 122a), 汝等決定發菩提心 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惓 應當先明發


覺初心二決定義 云何初心二義決定 阿難第一義者汝等若欲捐捨聲聞 修菩薩乘入
佛知見 應當審觀因地發心 與果地覺為同為異 阿難若於因地 以生滅心為本修因 而
求佛乘不生不滅 無有是處.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51

“너의 몸 가운데 단단한 것은 땅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것은


불이 되고, 동요함은 바람이 된다. 이 네 가지 얽힘으로 인해 너의 담원한 묘각명심을
분리되어 보는 것이 되고 듣는 것이 되며 느끼는 것이 되고 살피는 것이 되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으로 쌓이고 혼탁하다. 어떤 것이 탁이냐. 아난아, 비유컨대 맑은 물은
본래 청결하나 먼지, 흙과 재, 모래 따위는 형질을 갖기 때문에 두 체성이 본래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진토를 가져다가 깨끗한 물에 넣으면 흙은 유애 함을
잃고 물은 청결함을 잃어서, 그 모양이 흐려지니, 이것을 탁이라 한다. 너의 탁이
다섯 번 중첩함도 이와 같다.”4)

『능엄경』에서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은 바로 생멸심을 떠나는 공부이다. 처


음 보리심을 내었을 때 바로 불생불멸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담원한 묘각명심을
터득하게 된다. 생멸의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결국에는 생멸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청정함을 오염시키는 오탁을 설명하는 목적은 본래 청정하고 순수한 불생
멸의 불과를 얻으려면 불생멸의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이다. 담원한 묘각명심이 견고하고 습윤하며 따뜻하고 움직이는
성질을 가진 사대인 지, 수, 화, 풍의 얽매임으로 묘각명심인 진심을 분리하여
어떤 것이 눈으로 가서 보는 것[視]이 되고, 귀로 가서 듣는 것[聽]이 되며, 몸으로
가서 느끼는 것[覺]이 되고, 뜻으로 가서는 살피는 것[察]이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
로 견문각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시청각찰(視聽覺察)로 설명하고 있다. 본래는
여래장 묘진여성인 진성이 육근으로 분리되어 간 것이다.

(1) 겁탁(劫濁)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세계에 두루함을 볼 때, 허공과 견이 구분되지 않는다.


허공은 형체가 없고 견은 각이 없는데 서로 짜여 허망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겁탁이다.”5)

4) 『楞嚴經』(T19, 122a), “則汝身中 堅相 爲地 潤濕 爲水 煖觸 爲火 動搖 爲風


由此四纏 分汝湛圓妙覺明心 爲視爲聽 爲覺爲察 從始入終 五疊渾濁 云何爲濁 阿難
譬如清水 清潔本然 即彼塵土灰沙之倫 本質 留礙 二體 法爾性不相循 有世間人
取彼土塵 投於淨水 土失留礙 水亡清潔 容貌 汩然 名之爲濁 汝濁五重 亦復如是.”
452 불교문예연구 20집

겁은 산스크리트어 칼파(kalpa)의 음역으로 겁파(劫波)라고도 하는데 번역하


면 시분(時分)이라고 한다. 시분은 한때의 구분 혹은 분단으로서 하나의 시기를
분리하는 것이지만, 시간의 개념으로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뜻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허공은 형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허공은 볼 수 있으나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형질이 없다는 뜻이다. ‘견은 각이 없다’라고 하는 의미는
견이 허공에 두루하나 차갑고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의
불을 보지만 보는 것이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서로 짜여 허망한
것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허공과 보는 것이 서로 결합하여 씨줄과 날줄이
빽빽이 짜여져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본래 두 모양이 없는데 서로
짜여 허망을 이룬다는 것이다.6) 겁탁은 청정본연한 상주진심 성정명체에서 최초
로 혼탁함에 의해서 유위법이 형성되기 시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겁탁
은 본질적으로 생멸심을 일으키는 세계의 바탕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견탁(見濁)

“너의 몸은 현재 사대를 뭉쳐서 그 자체가 되었는데 견문각지가 막혀서 유애하게


하며 수, 화, 풍, 토를 돌려 각지하게 하여 서로 조직하여 허망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제2중인 견탁이 된다고 말한다.”7)

오탁의 내용은 생멸심과 분별심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다. 겁탁은


근본적으로 생멸심을 야기하는 세계의 기반을 언급하고, 견탁 이후의
내용들은 분별심을 일으키는 망상의 근거인 중생의 몸에서의 혼탁함을

5) 『楞嚴經』(T19, 122b), “阿難 汝見虛空 遍十方界 空見不分 有空無體 有見無覺


相織妄成 是第一重 名爲劫濁.”
6) 『楞嚴經正脉疏』(X12, 307a), “有空無體者。以虗空可見而不可執捉無形塊也。有
見無覺者。以見雖遍空。而無冷煖等覺受也。如見空中有火而見不覺熱是也。相
織者。如經緯密織不可分也。妄成者。本無二相。而成此交織之妄也.”
7) 『楞嚴經』(T19, 122b), “汝身 現摶四大爲體 見聞覺知 壅令留礙 水火風土 旋令覺知
相織妄成 是第二重 名爲見濁.”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53

밝히고 있다. 견탁은 본래 담원한 묘각명심이 지금 지, 수, 화, 풍 사대가


함께 단결하여 중생의 몸을 이루었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감각
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사대로 인해 모두 막히고 장애하는 성질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써 “중생이 견고하게 아견을 일으켜 모든 견의
주가 되어 62견이 모두 여기에 통합되니, 견탁이 된다.”8) 오탁을 오음
에 배대하면 겁탁은 색음이고, 견탁은 수음이다. 색음이 녹아지면 겁탁
을 초월하고 수음이 녹아지면 견탁을 초월한다고 오음마장에서 밝히고
있다. 음은 가려졌다 또는 어두웠다의 의미이고, 탁이란 흐리멍텅하게
혼탁했다는 뜻이다. 음과 탁은 청정본연한 여래장 묘진여성을 흐리게
한다는 뜻에서는 유사하다.

(3) 번뇌탁(煩惱濁)

“또 너의 심중에 기억하고 인식하고 외울 때 성이 지견을 발휘하여 육진의 모양을


나타내니, 육진을 떠나면 상도 없고 각을 떠나서는 육진의 자성이 없는데 서로
조직화하여 허망한 것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3중인 번뇌탁이다.”9)

번뇌탁은 오음 가운데 상음에 해당된다. 상음자체가 바로 지견이다.


지견은 분별사식이다. 성이 지견을 발한다는 것은 능히 취하는 여섯 가지
생각으로, 시각, 청각, 미각, 촉각, 지각 작용이다. 그 모양은 육진을 나타낸
다는 것은 취할 바 육진의 상이니 색, 성, 향, 미, 촉, 법인 육진을 말한다.
육진을 떠나서는 그 지각(知覺)의 자상(自相)이 없다는 의미이니 육진을
떠나서는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가 어울려야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력과 전구가 서로 어울려야 밝은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8) 『楞嚴經正脉疏』(X12, 307b), “衆生堅起我見爲諸見之主六十二見咸統於此 是謂見


濁也.”
9) 『楞嚴經』(T19, 122b), “又汝心中 憶識誦習 性發知見 容現六塵 離塵無相 離覺無性
相織妄成 是第三重 名煩惱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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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결합하게 되어 허망함이 이루어졌으므로 번뇌탁이라고 한다.


(4) 중생탁(衆生濁)

“또 네가 아침저녁으로 생멸함이 멈추지 않아 지견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운은 늘 국토에 항상 옮겨 다니려 하여 서로 조직해서 허망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4중인 중생탁이다.”10)

중생탁은 오음 가운데 행음에 속한다. 중생탁이란 마음이 조석으로


일분일초를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반복하여 생멸하는 것이다. 조석으
로 생멸하는 것은 업을 짓는 모습이며, 번뇌탁으로 인하여 육진에 지배
받는 지견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업운은
사대로 구성된 산하국토의 환경에 따라 변멸하며 취에 따라 다음 생을
받는다. 본래의 담원한 성품 가운데는 생사가 없지만 겁탁, 견탁, 번뇌
탁에 기계와 신심이 함께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기계에 옮겨 다니며
신심을 유지, 상속하는 곳에 드디어 무변생사가 생기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칠취에 유전하여 일체중생의 모습으로 변하고 바뀌므로 중생탁
이다.11)

(5) 명탁(命濁)

“너희들의 보고 듣는 것이 원래 다른 성질이 없는데 여러 가지 진이 막혀서 무단


히 다른 것이 생겼다. 육근의 성 가운데에는 서로 알되 작용 가운데에는 서로가
등져서, 동과 이가 표준을 잃고 서로 조직하여 허망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5중인
명탁이라고 말한다.”12)

10) 『楞嚴經』(T19, 122b), “又汝朝夕 生滅 不停 知見 每欲留於世間 業運 每常遷於國土


相織妄成 是第四重 名衆生濁.”
11) 『楞嚴經正脉疏』(X12, 307c), “葢湛圓中本無生死 以上三濁器界身心俱備故 於遷
器界續身心處 遂有無邊生死 由因此故 流轉七趣 變幻一切衆生之相 故名衆生濁
也.”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55

명탁은 오음(五陰) 가운데 식음(識陰)에 해당된다. 능엄경정맥소


에서는 "명탁이란 육근이 맺혀서 명근이 그 가운데 의탁하여 체와 용이
다 자재하지 못한 것이 명탁이 된다."13)라고 언급하고 있다. 『능엄경요
해』에 의하면 “견문각지하는 작용은 본래 맑고 원만한 하나의 마음을
근본으로 하므로 다른 성품이 없다. 그런데 육진으로 인하여 원융한
체가 서로 막히고 어겨서 물질을 보고 소리를 듣게 되는 등의 다른
작용이 생긴 것이다. 곧 사대가 육근을 이루고 육근의 견문각지로 인하
여 격리하여 상통하지 못하게 된 것이 명탁이다. 성품에서 본다면 동일
한 진상이므로 서로 알지만, 용에서 본다면 생멸을 일으키므로 서로
등지니 진상과 생멸, 동이와 화합이 항상 하는 기준을 잃게 되는 것이
명탁이 허망하게 짜인 모습이다.”14)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멸심을 낳은 오탁도 끝에 이르러서는 근, 진, 식이며, 육근 육진,
육식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래는 여래장 묘진여성인 묘각명심인 그
자리는 오직 담원 함 만 있을 뿐이지 탁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생멸심의 망상인 오탁에 의해 묘각명심의 담원함을 잃어 버렸다. 이러
한 오탁의 생멸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탁을 명확히 인지하고 근본무명
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행을 해야 과지의 수증도 원만해져서 열반의
묘덕을 얻을 수 있다. 능엄경에서 오탁을 맑히는데 적합한 수행방편
으로 원통근을 통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12) 『楞嚴經』(T19, 122b), “汝等見聞 元無異性 衆塵 隔越 無狀異生 性中 相知 用中


相背 同異失準 相織妄成 是第五重 名爲命濁.”
13) 『楞嚴經正脉疏』(X12, 307c), “所以爲命濁者 只以六根結滯 命托於中 體用俱不自
在 便爲命濁.”
14) 『楞嚴經要解』(X11, 818a), “見聞自湛圓而分故 元無異性衆塵隔圓融之體故 無端
成異 自性觀之同一真常 故曰相知 自用觀之互起生滅 故曰相背 真常生滅 同異和合
失其凖常 是命濁之妄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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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뇌의 근본을 살핌[心詳煩惱根本]


초발심의 제일결정의에서 수행이란 초발심에서 생멸심이 아닌 불생
멸심으로 수행해야 됨을 밝히고 있다 유위법이 생기게 된 차제는 오탁
에 의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중생의 마음이 유위법에 사로잡히는
것은 결국 번뇌의 문제로 집약되므로 유위법의 근본원인을 파악함으로
써 수행의 방법이 도출되는 것이다.

“제이결정의는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승에 대용맹을 일으켜 결


정적으로 모든 유위상을 다 버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번뇌의 근본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비롯없는 때로부터 업을 발하며 윤생을 하는데 어느 것이 짓고
어느 것이 받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더라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허망한 육근과 육진이 어느 곳에서 전도되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곳을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번뇌를 항복받아 여래의 지위를
취할 수 있겠느냐?”15)

발업윤생으로서 번뇌는 육근(六根), 육식(六識), 육진(六塵)의 관계


에서 비롯된다. 붓다는 육근과 육진의 전도함에 번뇌의 근본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곧 너의 현전에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인 여섯이 도적이 되고 중매가 되어


집안의 보물을 겁취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비롯이 없는 중생세계가 전박이 생기므
로 기세간에서 능히 초월하지 못한다.”16)

번뇌는 육식의 작용으로 생기므로 생사는 고의 결과이며 육식은

15) 『楞嚴經』(T19, 122b). “第二義者 汝等 必欲發菩提心 於菩薩乘 生大勇猛 決定棄捐


諸有爲相 應當審詳煩惱根本此無始來 發業潤生 誰作誰受 阿難 汝修菩提 若不審觀
煩惱根本 則不能知虛妄根塵 何處顛倒 處尚不知 云何降伏 取如來位
16) 『楞嚴經』(T19, 122b). “則汝現前 眼耳鼻舌 及與身心 六爲賊媒 自劫家寶 由此
無始眾生世界 生纏縛故 於器世間 不能超越.”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57

생사의 근본이 되고 육근은 육식의 근본이다. 여기서의 식은 분별식이


자 생멸심이며, 근은 자체로는 분별함이 없는 불생멸심이다. 『능엄경』
에서는 육근이 불생멸심이며 망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육근
자체는 불생멸이기 때문에 인식을 할 수 없고 단지 육진경계만을 받아
들일 뿐이다. 여기에 육식이 작용함으로써 허망한 분별이 발생하므로
이것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수행방편으로 육식과 같은
분별식을 버리고 불생멸심인 근을 닦음으로써, 생멸하는 육식과 육진
으로부터 분리된 청정본연의 여래장 묘진여성의 원통에 이를 수 있다.

Ⅲ. 육근수행(六根修行)과 육결(六結)

1. 육근의 공덕
중생은 육근에 얽매여 여래장 묘진여성을 잃어버리고 무시이래로
중생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생세계를 밝히는 이유는 육근의 결
박을 풀기 위함이다. 중생세계란 업을 짓는 주체인 중생의 몸을 말한다.
중생의 몸도 하나의 세계로써 육체는 공간이고, 태어나서 지나온 세월
은 시간이다. 이러한 몸이 시방삼세와 서로 얽혀서 망을 이루고 천변하
는 것이다. 중생세계는 육근의 입장에서도 방위와 시간이 나누어지는
데 각 근에 따라 그 공덕의 범위가 차이가 있다. 여기서 공덕수량을
밝히는 이유는 원통을 얻으려면 공덕의 수량이 많은 것을 선택해서
닦아야만 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시와 종을 총괄하면 육근의 안에 각각 1200 공덕이 있다. 아난아, 네가 다시


그 가운데 우열을 꼭 정한다면 눈으로 보는 것은 뒤는 어둡고 앞은 밝아서, 전방은
온전히 다 밝고 후방은 온전히 어두우며, 좌와 우는 옆으로 조금 보니 2/3이다.
작용하는 곳을 통틀어 논한다면 작용하는 공덕이 온전하지 못하니, 삼분으로 공덕을
458 불교문예연구 20집

말한다면 일분은 공덕이 없으니, 눈은 다만 800공덕임을 알 수 있다. 귀는 두루


들어서 시방에 유실함이 없다. 움직임에 멀고 가까움이 있는 것 같지만 고요할
적에는 한계가 없으니, 이근은 1200공덕이 원만했음을 알 수 있다. 코는 냄새를
맡아서 들을 때 들숨, 날숨을 통하여 나가는 것 들어가는 것이 있고 중교가 궐했다.
비근을 살펴보건대 1/3이 궐했으니 코도 역시 800공덕임을 알 수 있다. 혀로 선장
함은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니, 말은 방분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므로
설근도 1200공덕이 원만했음을 알 수 있다. 몸은 촉각을 느끼되 불쾌감과 쾌감을
알아서 몸에 합할 때에 능히 느끼고 떠날 적에는 알지 못하여, 떠날 때 하나이고
합할 때 둘이다, 신근을 살펴 보건데 3분에 하나가 빠졌으니 신근도 다만 800공덕임
을 알 수 있다. 의근은 시방 삼세의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하여
성인의 법과 범부의 법을 포용하지 못함이 없어서 그 한계를 다하니, 의근은 1200공
덕이 원만했음을 알 수 있다.”17)

공덕수량의 우열을 정해볼 때 이근(耳根), 설근(舌根), 의근(意根)


이 가장 우월하다. 귀는 시방에 유실함이 없고, 혀는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 나타낼 수 있어 그 이치에 다함이 없다. 의근은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하여 성인의 법과 범부의 법을 포용하지 못함이
없다. 생사의 근원을 돌이켜 불생멸에 이르려 한다면 견문각지 하는
여섯 가지 수용근을 하나 하나 따져 심(深), 천(淺), 합(合), 리(離), 원통
(圓通), 불원통(不圓通)의 난이(難易)의 우열을 따져 보아야 한다. 수행
을 할 때 육근 가운데 깊은 것과 떠난 것과 원통이 된 것만 선택해서
관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육근 중에서 이, 심, 원통 세 가지를 완전히
갖춘 것은 귀 밖에 없다. 가령 설근과 의근은 이, 심은 되나 원통이

17) 『楞嚴經』(T19, 122c), “ 總括始終 六根之中 各各功德 有千二百. 阿難 汝復於中


克定優劣 如眼 觀見 後暗前明 前方 全明 後方全暗 左右 傍觀 三分之二 統論所作
功德 不全 三分 言功 一分 無德 當知眼唯八百功德 如耳 周聽 十方無遺 動若邇遙
諍無邊際 當知耳根 圓滿一千二百功德 如鼻 嗅聞 通出入息 有出有入 而闕中交
驗於鼻根 三分 闕一 當知鼻唯八百功德 如舌 宣揚 盡諸世間 出世間智 言有方分
理無窮盡 當知舌根 圓滿一千二百功德 如身 覺觸 識於違順 合時 能覺 離中 不知
離一合雙 驗於身根 三分 闕一 當知身唯八百功德 如意 默容十方三世一切世間 出世
間法 惟聖與凡 無不苞容 盡其涯際 當知意根 圓滿一千二百功德.”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59

아니고 오직 이근만이 이, 심, 원통을 모두 갖추었으며 1,200 공덕이


된다.

2. 육해일망(六解一亡)

“시방의 여래는 십팔계를 낱낱이 수행하여 모두 위없는 보리를 원만하게 얻으


셨으니, 그 중간에 우와 열이 없지만 너는 하열하여 그 가운데서 자재한 지혜를
원만하게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선양하여 너를 오직 일문으로 깊이 들어가도
록 하리니,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서 허망이 없어지면 저 여섯 가지 아는 육근이
일시에 청정해진다.” 18)

하나의 근을 선택하여 원통하여도 육근이 모두 풀림을 설명하고


있다. 이유는 육근은 원래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닌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담연하고 원만한 여래장 묘진여성이 육근과 육진, 육식으
로 나눠지게 된 것은 모두가 본래의 명묘한 성각에 허망하게 밝히려고
하는 명각이 작용하여 주객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능엄경』에서는 “명의 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각명이 허물이 된 것이니, 소망이 이미 성립됨에 밝은 이치가 그를
벗어나지 못하나니, 그러한 인연 때문에 듣는 것이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빛깔을 초월하지 못하여, 색, 성, 향, 미, 촉, 법 여섯
가지 각의 허망이 성취하나니, 그로 말미암아 견문각지를 분개하여
같은 업들은 서로 얽히고 합과 리는 형성하고 변화를 하느니라.”19)라고
중생이 상속하는 인연을 설하는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의 근을

18) 『楞嚴經』(T19, 123a), “十方如來 於十八界 一一修行 皆得圓滿無上菩提 於其中間


亦無優劣 但汝下劣 未能於中 圓自在慧 故我宣揚 令汝 但於一門 深入 入一無妄
彼六知根 一時清淨.”
19) 『楞嚴經』(T19, 120a) “明妄非他 覺明爲咎 所妄旣立 明理不踰 以是因緣
聽不出聲 見不超聲 色香味觸 六妄成就 由是分開 見覺聞知 同業相纏 合離
成化”
460 불교문예연구 20집

선택하여 분별식을 모두 소멸하면 청정본연한 원담한 여래장 묘진여성


에 이를 수 있다.
비유하면 허공을 여러 그릇에 놓아두면 그릇에 담긴 허공은 그릇
에 따라 모양이 다른 듯이 보이지만 본래 허공 자체는 그릇 모양과
수에 상관없이 두루한 것과 같다.

“아난아, 이 근은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건만 비롯이 없는 때로부터 전도


되어 윤회에 잠긴 까닭에 원담에서 하나와 여섯이 생긴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수다원
이라 여섯은 녹아졌으나 아직 하나를 버리지 못했다. 마치 태허공을 여러 그릇에
담아 놓아두면 그릇 모양이 다르다 해서 다른 허공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릇을
제거하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저 태허공이 어찌
너에게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겠느냐. 어찌 하물며 하나다, 혹은 하나가 아니다
라고 말을 하겠느냐? 네가 분명히 아는 여섯 가지 수용근도 이와 같다.”20)

허공에 각기 다른 모양의 그릇들을 놓고 그 안에 담긴 허공을


설명할 때 하나가 아니고 각기 다른 모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릇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지 허공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육근의 근원은
허공과 같이 담연한 것이라 특정한 모양이나 수량의 구별이 없다. 그러
나 무시이래로부터 원담한 성품에서 전도된 육근의 구별에 집착하여
이것을 하나다 혹은 여섯이다 말하니 이것은 모두 허상이다. 하나라는
집착도 역시 육근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것일 뿐이다. 만일 그릇을
모두 제거하면 허공뿐이어서 거기서 여섯도 하나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육근에 감춰진 청정하고 담연한 본성에 이르면 하나마저도
사라지는 것이다. 청정본연의 여래장 묘진여성을 얻으면 육근의 분별
이 이미 의미가 없어져 여섯도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아난은

20) 『楞嚴經』(T19, 123a). “阿難 當知 是根 非一非六 由無始來 顛倒淪替 故於圓湛


一六義生 汝須陀洹 雖得六銷 猶未亡一 如太虛空 參合群器 由器形異 名之異空
除器觀空 說空爲一 彼太虛空 云何爲汝 成同不同 何況更名是一非一 則汝了知 六受
用根 亦復如是.”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61

아직 육근을 푸는 순서와 이치를 깨닫지 못하므로 세존께 다시 질문을


한다.

“제가 지금 세존의 무차대비로 성이 청정하고 미묘하고 항상한 진보법구를


들었으나, 아직도 여섯이 풀리면 하나까지도 없어진다는 매듭 푸는 순서를 통달하
지 못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써 이 법회에 모인 사람과 미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법음을 베풀어 미세한 마음의 때를 깨끗이 세척해 주십시오.”21)

육근의 결박이 모두 풀리면 하나까지 없어지고[六解一亡] 원담한


여래장 묘진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의 근을 선택하여 삼마제에
들 때 그 생멸의 결박을 푸는 것에 대해서 매듭을 비유로 들어 밝혔다.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이 겁바라 수건에 여섯 매듭이 나타나 있으니,


동시에 맺힌 것을 풀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매듭이 본래 차례로
맺혀 생겼으니, 지금도 모름지기 차례를 따라 풀어야 합니다. 여섯 매듭이 그 자체는
같으나 매듭이 동시에 된 것이 아니니, 매듭을 풀 때 어떻게 한꺼번에 풀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여섯 근결을 풀어 제거함도 역시 그렇다. 이 근을 처음
풀게 되면 먼저 인공을 얻고, 공의 성이 원만하게 밝아지면 법해탈을 이루니 법을
해탈한 다음에 구공까지 나지 않으면, 이를 일러 보살이 삼마지로부터 무생법인을
얻었다고 말한다.”22)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 분별식을 끊는 과정은 동(動), 정(靜), 근


(根), 각(覺), 공(空), 멸(滅)의 육결(六結)을 차례로 풀어서 인공, 법공,
구공을 모두 초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능엄경정맥소에서는 생멸
심이 소멸되는 육결(六結)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1) 『楞嚴經』(T19, 125a). “我今 聞佛無遮大悲 性淨妙常 眞實法句 心猶未達六解一亡


舒結倫次 惟垂大慈 再愍斯會 及與將來 施以法音 洗滌沈垢.”
22) 『楞嚴經』(T19, 125b) “阿難 吾今問汝 此劫波羅巾 六結 現前 同時解縈 得同除不
不也世尊 是結 本以次第 綰生 今日 當須次第而解 六結 同體 結不同時 則結解時
云何同除 佛言 六根解除 亦復如是 此根 初解 先得人空 空性 圓明 成法解脫 解脫法已
俱空 不生 是名菩薩 從三魔地 得無生認.”
462 불교문예연구 20집

“생멸 두 글자에 동, 정, 근, 각, 공, 멸의 육결이 전부 들어가니 추세가 같지


않으나 모두 생멸심이다. 처음에 동결을 풀어서 멸하면 정결이 생긴다. 다음에
진[동결과 정결]을 풀어서 멸하면 근결이 나온다. 이치로는 비록 무생이나 멸할
것이 있고 남은 것이 있으니 생멸이 완연하다. 아래도 이와 같으니 셋째는 근결을
풀어서 멸하면 각결이 생기고, 넷째는 각결을 풀어서 멸하면 공결이 생긴다. 다섯째
는 공결을 풀어서 멸하면 멸결이 생긴다. 여기에 이르러 만약 최후의 멸상에 머무르
면 곧 멸상에 덮힌 바가 되어서 항상 구공에 처하게 된다. 이 한 가지 미세한 장애에
떨어지기 때문에 제육의 멸결이라고 한다.”23)

이와 같이 근으로 들어가 맺힌 것을 풀고 원통을 이루고자 하면


동결에서 시작하여 차례로 풀어 멸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차례로
동결, 정결, 문결을 풀면 아공이 되고, 각결, 공결을 풀면 법공이 되고,
멸결까지 풀어 구공을 증득하면 무생법인의 해탈을 이루게 된다. 『능엄
경』에서는 이어서 성인들의 25 원통수행법을 제시하고 그 가운데 대중
의 근기에 가장 적절한 수행방편으로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을 선택한
다.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장에서 하나의 근으로 들어가 육결을 풀어
구공을 증득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Ⅳ. 결론

본 논문에서는 삼마제 수행의 근간이 되는 이결정의와 수행의 방편


으로써 제시된 육근수행을 통해서 번뇌의 원인이자 원통의 통로로서의
육근의 공덕과 작용, 번뇌의 해결과정인 육해일망에 대해 살펴보았다.
능엄경은 객진번뇌에 물들어 사량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묘명한

23) 『楞嚴經正脉疏』(X12, 352b), “生滅二字 通前動靜 根覺空滅 六結全收 麤細不同


要之皆生滅心也 初解動滅靜生 次解塵滅根生 理雖無生 而有滅有存 生滅宛然 下皆
放此 三解根滅覺生 四解覺滅空生 五解空滅滅生 到此若住最後滅相 則當為滅相所
覆 恒處俱空 應是一種頂墮細障故 猶名第六滅結也.”
『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63

여래장 묘진여성을 깨달아 증득하기를 권하는 경전이다. 깨달음이 궁


극적으로 불성에 이르려면 수행을 통해 생멸심을 완전히 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문(多聞)하고도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법에 대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도분의 설법을 통하여 아난이 여래장
묘진여성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올바른 방편 수행을 수반하지 않으면
생멸심을 모두 여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대궐을 얻었으나 그 문을 찾지
못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올바로 문을 찾아 들어가
는 방편이 필요하다.
세존은 아난의 요청에 답하여 삼마제 수행의 최고의 방편의 법문을
펼쳤다. 그 중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삼마제 법문의 근간이 되는 ‘초발
심의 두 가지 결정의’이다. 수행을 시작할 때 두 가지 결정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피권을 내지 않고 불지견에 올바로 들어갈 수 있다.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는 삼마제 수행에 있어서 나침반과 같은 필수 근간이
되므로 이를 각심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수행과 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세존이 설한 두 가지 결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지(因地)의 발심
이 과지(果地)의 깨달음[覺]과 같아야 한다. 인지가 과지와 일치하려면
환망한 생멸심을 버려야 하므로 이를 위해 오탁을 설명하였다. 둘째,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發業輪生)의 원인을 깨달아야 한다. 번뇌의
근본과 그 발업윤생함이 육식, 육근에 기인함을 깨닫고 바로 그 육근을
통해 번뇌를 풀 것을 설하였다. 능엄경은 삼마제의 방편으로서 원통근
을 통한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원통근 수행은 육근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
자 동시에 깨달음의 통로[解結同體]인 까닭이다.
본 연구에서는 삼마제 법문 가운데 가장 먼저 설법한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의 내용으로 볼 때 오탁에 의한 생멸심이 중생의 번뇌를 필연
적으로 야기됨을 논의하였다. 중생의 번뇌는 구체적으로 육근과 육진의
전도로 인하여 발생함을 깨닫고, 번뇌의 원인인 육근을 통해서 번뇌를
벗어나야 불성으로서의 여래장 묘진여성에 이를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464 불교문예연구 2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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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의 초발심 이결정의와 육근수행에 대한 고찰│임병정 465

[Abstract]
A Study on Six Sense Organs(六根) in Initiation of
Enlightenment(初發心) and Igyeoljeongui(二決定義)
in the Śūraṅgama Sūtra
Lim, Byung-Jung(Myeongjo)
Senior Research, Asia Research Center of Religion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erits and functions of


Six Sense Organs(六根) as the cause of defilements and the path of Perfect
penetration(圓通) through Meaning of Two Decision(二決定義), which is the
basis of the practice of Samadhi and Six Sense Organs. In addition, it was
intended to discuss Yughaeilmang(六解一亡), the process of resolving
defilements. Meaning of Two Decision(二決定義) Buddha said are as follows.
First, Starting Point of Enlightenment(因地) must be the same as the
Enlightenment of Arrival Point of Enlightenment(果地). In order for cognition
to coincide with Starting Point and Arrival Point, we must give up the vein
feeling of life and death, so Five Turbidities(五濁) should be explained to overcome
it. Second, we must understand the root of defilement and the cause of Samsara.
Realizing that the root of defilement and its succession of Samsara are due
to Six Sense Organs and Six Aspects of Consciousness(六識), it is necessary
to solve defilements through Six Sense Organs. The reason why the practice
through Six Sense Organs was presented in the Śūraṅgama Sūtra(楞嚴經)
as a means of such samadhi is that Six Sense Organs act as the cause of
defilements and the path to Enlightenment. Judging from the contents of Meaning
of Two Decision of Initiation of Enlightenment(初發心) among the three teachings
of Buddha, it can be seen that the spirit of life and destruction caused by
Five Turbidities(五濁) inevitably caused the defilements of sentient beings.
In the end, It can be realized that the defilements of sentient beings are caused
by the conduction of Six Sense Organs and Six Gunas(六塵), and only after
getting out of the defilements through Pracice of Six Sense Organs, the cause
of defilements, can be obtained the Buddha-nature of Tathata(眞如).

Key words: : Śūraṅgama Sūtra(楞嚴經), Samadhi, Meaning of Two


Decision(二決定義), Starting Point of Enlightenment(因地),
Arrival Point of Enlightenment(果地), Six Sense Organs(六根)
투고일 : 2022년 11월 02일 / 심사완료일 : 2022년 11월 13일 / 게재확정일 : 2022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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