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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唐新翻密嚴經序

대승신역밀엄경(大唐新翻密嚴經) 서(序)
大唐新翻密嚴經序

짐(朕)1)이 듣건대, 서방(西方 : 인도)에 성인(聖人 : 부처)이 있어, 말로 전할 수 없는 진리를 말하고, 가르칠 수 없는 가르침을 전
하며, 일시적 방편과 영원한 진리[權實]2)를 활용하여, 무지한 자들[聾瞽]3)을 깨우쳐4) 일으키니, 선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재촉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경지를 높이는 것은 범부라도 성인에 이르게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쳐 사바세계[娑婆
丘陵]를 구하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드러내어 밀엄세계[密嚴世界]5)를 보게 하였다고 한다.
朕聞西方有聖人焉,演不言之言、垂無教之教,啓迪權實、發柀聾瞽,遷其善者不疾而速,階其益者卽聖自凡,擊蒙求以娑婆
丘陵,示達觀以密嚴世界。

욕망에 물든 번뇌의 세계[染]와 번뇌에 벗어난 청정세계[淨]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들 세계가 나의 외부에서
떠도는 것도 아니니, 이 두 세계는 초나라와 월나라[楚越]6)가 생각 속에서 생겨났다가 바로 한 순간에 사라지듯이 그 종적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물고기가 숨고 새가 떠나가는 것과 같으니, 그 종적이 이와 같은 것이었도다!
匪染淨在我,實是非遊,而楚越生於念中,及缺頓於目下,彼魚藏鳥逝。其若是乎!

위대하도다! 밀엄경[密嚴]7)이여! 삼유(三有)8)의 세계를 넘나들며, 불법의 세계[法界]를 두루 담아내고, 지극히 미세한 실체[極
微]9)까지 구별하였도다. 이것은 그 가르침의 소리를 듣는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그 현상을 본다고 그 실재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나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오묘한 불법을 주관하게 되어 진실로 부촉(付屬)을 공손히 받들게 되었다.
이것은 식(識)10)의 파도를 샘물처럼 고요하게 하고, 의식[意]의 근원을 구슬처럼 맑게 하며, 아뢰야식[賴耶]11)이 작용하는 실마
리를 꿰뚫고, 깨달음[自覺]12)의 깊고 맑은 세계를 밝히어, 마음의 가장 깊은 곳[心極]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이 경전의 덕택이도다.
欽哉密嚴,迹超三有,量周乎法界、相離於極微,非聲聞之所聞、豈色見之能見。嘗潔已主妙允恭付屬!是欲泉靜識浪、珠淸意
源,窮賴耶能變之端,照自覺湛然之境,深詣心極其唯是經。

일반적으로 불경 번역(翻譯)의 자취를 살펴보면 모두 그 까닭이 있다. 그리고 비록 번역된 방언(方言)은 서로 달라도 그 본질
(本質)은 반드시 번역문에 담겨있어야 한다. 이 경(經)의 경우에 범서(梵書)는 모두 게송(偈頌)인데, 앞서 이 경을 번역한 사람은
이 경을 대부분 산문(散文)으로 번역을 했으니, 이무기가 변하여 용이 될 수는 있어도, 어찌 물고기나 조개[鱗介]13)로 변할 수
있으며, 나라에서 집안을 일으키는 데 어찌 성씨(姓氏)를 바꿀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번역 중에 잘못된 누락, 중요하지 않은 것
과 중요한 것의 혼동, 어쩌다가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 것 등을 다시 한 번 모두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진실로 올바른 일
이라고 할 수 있다.
夫翻譯之來抑有由矣。雖方言有異而本質須存,此經梵書竝是偈頌,先之譯者多作散文,蛇化爲龍何必變於鱗介?家成於國寧
卽改乎姓氏?矧訛略輕重或有異同,再而詳悉可爲盡善。
대흥선사(大興善寺) 삼장사문(三藏沙門) 불공(不空)은, 상법[像]14)시대 중생을 교화하는 동량(棟梁)이고, 애욕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배[舟楫]15)이며, 계율을 굳게 지켜 마치 계율의 구슬을 굳게 쥔 듯 하고, 마음을 갈고 닦아 명경(明鏡)을 마음
에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눈처럼 고결하게 되어 속세의 허망한 구름을 건너 부처님께서 녹야(鹿野)16)에서 가르치신 불법의 진
리[真諦]를 부지런히 궁구하였고, 바람을 잔뜩 머금은 돛배처럼 애욕의 바다를 지나 마명대사[馬鳴]17)의 말씀[奧音]을 끝까지
탐구하였다. 그리고 불공대사는 범어의 문법인 팔전성[八轉]18)까지 터득하였고, 언어는 범어와 중국어 모두 능통해서, 번역문
에서 빠뜨린 것을 살펴서 찾아내고, 불법의 궁극적 진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다. 이에 조칙을 내려 경성(京城)에서 의학
사문(義學沙門) 비석(飛錫) 등과 한림학사(翰林學士) 유항(柳抗) 등을 모아 불공 대사를 도와서 이 경문과 호국경(護國經) 등을
정밀하게 번역하였는데, 패엽경[貝多]과 대조하여 여러 간독(簡牘)을 번역하게 하였다. 이에 새롭게 번역된 밀엄경은 경의 원
본인 패엽경과 간독을 전거로 하여 게송[頌言]으로 번역되어서, 대갱(大羹)19)같은 불법의 순수한 맛이 사라지지 않고, 청월(清
月)같은 불법의 밝은 빛이 항상 가득차게 되었으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으며,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大興善寺三藏沙門不空,像教棟梁愛河舟楫,戒珠在握明鏡入懷,雪涉雲征窮鹿野之眞諦,帆飛海宿究馬鳴之奧音,聲該八轉
言善兩方,之可窺鑑闕如、抑揚了義。詔令集京城義學沙門飛錫等、翰林學士柳抗等,詳譯斯文及護國經等,對執貝多翻諸簡
牘,憑其本夾依以頌言,大羹之味不遺、淸月之魄恒滿,豈不美歟!豈不美歟!

짐(朕)의 운문은 담백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산문도 격식에 맞지 않고 세련된 품위도 없지만, 마음만은 불법의 심오한
진리[祕賾]를 향해 한껏 달려가, 다함이 없는 불법의 세계에 머물기를 원하니, 부족하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경문의 맨 앞에 서
문을 짓는다.
朕詞乏淸華、文非道麗,志流衍於祕賾,將布灌於無窮,聊課虛懷,序之篇首云爾。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상권
大乘密嚴經卷上

불공(不空) 한역

김성구 번역
開府儀同三司特進試鴻臚卿肅國公食邑三千戶賜紫贈司

空謚大鑑正號大廣智大興善寺三藏沙門不空奉詔譯

1. 밀엄도량품(密嚴道場品)
密嚴道場品第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 색(色)ㆍ무색(無色) 등의 생각을 초월하고 일체 법에 자재하며 무애하여 신족(神足)ㆍ역(力)ㆍ통


(通)으로 유희(遊戱)하는 밀엄세계(密嚴世界)에 머무시니, 이 세계는 외도ㆍ성문ㆍ연각이 수행할 경계가 아니었다.

모든 훌륭한 유가(瑜伽)를 수행하는 이와 10억 불찰의 미진수와 같은 보살마하살과 함께하시니, 일체 외도와 이론(異論)을 꺾
는 보살마하살과 대혜(大慧)보살마하살과 일체불법여실견(一切佛法如實見)보살마하살과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마하살과
득대세(得大勢)보살마하살과 신통왕(神通王)보살마하살과 만수실리(曼殊室利)보살마하살과 금강장(金剛藏)보살마하살과 해
탈월(解脫月)보살마하살과 지진(持進)보살마하살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모두 삼계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을 초월한 경계와 지혜가 몸을 이루었으며, 소의(所依)를 돌려 요술 같은 수릉엄법운삼마지


(首愣嚴法雲三摩地)를 성취하였으며, 무량한 모든 부처님이 손으로 그들의 정수리를 만졌으며, 3유(有)를 떠난 연화궁에 있었
다.
一時佛薄伽梵住於超越欲色無色等想,於一切法自在無礙、神足力通之所遊戲密嚴世界,而此世界非彼外道聲聞緣覺所行之
境,與諸修習勝瑜伽者十億佛剎微塵數等菩薩摩訶薩俱。其名曰:摧一切外道異論菩薩摩訶薩、大慧菩薩摩訶薩、一切佛法如
實見菩薩摩訶薩、聖觀自在菩薩摩訶薩、得大勢菩薩摩訶薩、神通王菩薩摩訶薩、曼殊室利菩薩摩訶薩、金剛藏菩薩摩訶薩、解
脫月菩薩摩訶薩、持進菩薩摩訶薩而爲上首,皆超三界心意識境智成身,轉於所依成就如幻,首楞嚴法雲三摩地,無量諸佛手
灌其頂,處離三有蓮華宮。

그때에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 현재의 법을 즐기는 지위이며, 스스로 깨달은 성지이며, 심심한 경계이며, 미묘하고 빠르며,
무량한 여러 빛깔로 나타난 삼마지로부터 일어나, 천제(天帝)의 번개 빛인 묘장엄전(如莊嚴殿)에 나오셨다가 모든 보살들과 함
께 무구월장전(無垢月藏殿)에 들어가시어 밀엄장 사자좌에 앉았다.

세존께서 앉으신 다음 사방을 살피시고 눈썹 사이 구슬 상투의 광명 장엄으로부터 무량한 백천의 맑은 광명을 내시니, 둘러싸
여 서로 비치어 광명의 그물을 이루었으며, 이 광명의 그물이 흘러 비칠 때에는 일체 불찰의 장엄한 모습이 분명히 나타나서 한
불찰과 같았다.

나머지 불토도 장엄하게 꾸미어 가늘고 미묘함이 미진과 같았으며, 밀엄세계는 모든 불국토를 초월하여 별과 해ㆍ달을 멀리 떠
나 무위의 성품 같고 미진 같지 않았다.

이 밀엄에 부처님과 제자와 다른 세계에서 이 모임에 온 이가 마땅히 열반과 허공과 비택멸(非擇滅)의 성품과 같았다.
爾時如來、應、正遍知從現法樂住自覺聖智甚深境界微妙奮迅無量衆色之所現顯三摩地起,出帝雷光妙莊嚴殿,與諸菩薩入於
無垢月藏殿中,昇密嚴場師子之座。世尊坐已觀察四方,從眉閒珠髻光明莊嚴出於無量百千淨光,圍遶交映成光明網。是光網
流照之時,一切佛剎莊嚴之相分明顯現,如一佛剎,餘諸佛土嚴飾細妙同於微塵。密嚴世界超諸佛國,遠離星宿及日月,如無
爲性不同微塵。此密嚴中佛及佛子,幷餘世界來此會者,皆如涅槃及以虛空非擇滅性。

그때에 세존께서 저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과 공덕의 승묘한 일을 나타내시고, 다시 불안(佛眼)으로써 두루 시방의 모든
보살들을 보시고 일체불법여실견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여실견이여, 지금 이 세계는 밀엄이라 하며, 이 가운데의 보살은 모두 욕ㆍ색ㆍ무색ㆍ무상유정(無想有情)의 처소에서 삼마지


의 힘으로써 지혜의 불을 내어 색탐(色貪)과 무명을 태워버리고, 의지한 바를 돌려 뜻으로 이루는 몸을 얻고, 신족ㆍ역ㆍ통으로
써 장엄하니 구멍과 틈이 없고, 뼈도 몸집도 없음이 마치 해ㆍ달ㆍ마니ㆍ번개 빛ㆍ무지개ㆍ산호ㆍ흘리다라(紇利多羅)ㆍ황금
ㆍ첨복(瞻蔔)ㆍ공작ㆍ달무리ㆍ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다. 이러한 색신으로 모든 곳에 머물러 무루인(無漏因)을 닦아 삼마지에
의해 자재함과 10무진원(無盡願)과 회향(廻向)을 얻고 수승한 몸을 얻어 밀엄세계에 왔느니라.”
爾時世尊現彼世界佛及菩薩威神功德勝妙事已,復以佛眼遍視十方諸菩薩衆,告一切佛法如實見菩薩摩訶薩言:“如實見!今
此世界名曰密嚴,是中菩薩悉於欲色無色無想有情之處,以三摩地力生智慧火,焚燒色貪及以無明,轉所依止得意成身,神足
力通以爲嚴飾,無竅隙無骨體,猶如日月摩尼電光、帝弓珊瑚紇利多羅、黃金瞻蔔孔雀花月鏡中之像。如是色身住於諸地修無
漏因,由三摩地而得自在,十無盡願及以迴向,獲殊勝身來密嚴剎。”

그때에 일체불법여실견보살마하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묻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허락하여 주소


서.”

부처님께서는 여실견에게 말씀하셨다.

“좋다, 좋다. 너의 마음대로 물어라. 너에게 말하여 너로 하여금 마음이 기쁘게 하리라.”
爾時一切佛法如實見菩薩摩訶薩從座而起,偏袒右肩稽首佛足,右膝著地合掌白佛言:“世尊!我於今者欲有所問,唯願如來、
應、正遍知哀許爲說。”佛告如實見言:“善哉善哉!恣汝所問,當爲汝說令汝心喜。”

그때에 일체불법여실견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허락하여 주심을 받고 곧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이 불찰만이 욕계ㆍ색계ㆍ무색계ㆍ무상유정계를 초월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로부터 위로 백억 불찰을 지나서 범음(梵音) 불토ㆍ사라수왕(紗羅樹王) 불토ㆍ성수왕(星宿王) 불토가 있고, 이러


한 불토를 지나서 다시 무량한 불찰이 있으니, 넓고 너르고 고상하고 깨끗하여 보살들의 모임으로 장엄되었다.

그 안에 모든 부처님이 보살들을 위하여 현전의 법을 즐기는 지위와 스스로 깨달은 성스러운 지혜와 분별을 멀리 떠난 실제의
진여와 큰 열반세계의 법을 말씀하시니,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세계 밖에 이와 같이 무량한 불찰이 있는 것이다.

여실견아, 오직 너만이 이제 불국토와 보살들의 모임에서 마음에 한량을 내어 여래에게 물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보살마하살
이 있었으니 이름이 지진(持進)이었다. 일찍이 부처님 처소에서 ‘한량심(限量心)’을 내어 문득 신통을 써서 위쪽으로 올라 백천
구지(俱胝)와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불세계를 지나도 한 번도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하고, 마음에 희유한 생각을 내
고 불보살의 불가사의함을 알아 사바세계의 명칭대성(名稱大城)에 돌아와 나에게 와서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고, 부처님의 공
덕이 무량하고 무변하여 허공과 같으시고, 자기의 깨달은 경계에 머무신 채 밀엄 불찰에 오셨다고 찬탄하였다.”
爾時一切佛法如實見菩薩摩訶薩承佛開許,卽白佛言:“世尊!唯此佛剎超越欲色無色及以無想有情界耶?”佛言:“善男子!從
此上方過百億佛剎,有梵音佛土、娑羅樹王佛土、星宿王佛土,過如是佛土復有無量百千佛剎,廣博崇麗菩薩衆會之所莊嚴。
彼中諸佛咸爲菩薩,說現法樂住自覺聖智,遠離分別實際眞如,大涅槃界究竟之法。是故當知此界外有如是等無量佛剎。如實
見!匪唯汝今於佛國土菩薩衆會心生限量請問如來,有此菩薩摩訶薩名曰持進,曾於佛所生限量心,便以神通昇于上方,過百
千俱胝乃至殑伽沙等諸佛世界,不能一見如來之頃。心生希有,知佛菩薩不可思議。還至娑訶世界名稱大城,來於我所悔謝已
過,讚佛功德無量無邊,猶如虛空住自證境來密嚴剎。”

그때에 모임 가운데 금강장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모든 지위의 모습을 잘 설명하기에 능숙하여 미묘하게 결정하고 그 근원과
밑바닥을 다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부처님 앞에 정례하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 조금 묻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금강장아, 네가 나에게 묻고자 함이 있다 하니,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은 너의 의심하는 바를 따라 너에게 열어서 말하리라.”


爾時會中金剛藏菩薩摩訶薩,善能演說諸地之相,微妙決定盡其源底,從座而起,偏袒右肩頂禮佛足,右膝著地合掌白佛
言:“世尊!我於如來、應、正遍知欲少諮問,唯願哀愍爲我宣說。”佛言:“金剛藏!汝於我所欲有問,如來、應、正等覺隨汝所
疑爲汝開演。”

그때에 금강장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란 무슨 뜻이며, 깨달은 바는 무엇입니까. 바라건대 세존께서는 승의(勝義)의 경계를 말씀하시어 법성불
을 보여 주십시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보살행을 닦는 이가 모든 물질의 모양이 쌓인 소견과 다른 외도 이론에 집착하고 수행
하며 분별하는 경계를 행하면서 일으키는 미진(微塵)ㆍ승(勝)ㆍ자재성(自在性)ㆍ시(時)ㆍ방(方)ㆍ허공(虛空)ㆍ나의 뜻ㆍ근
(根)ㆍ경(境)ㆍ화합(和合) 등 이러한 모든 소견과 다시 계교하는 이가 있음은 무명과 애업(愛業)의 안색(眼色) 때문입니다. 그리
고 이때에 다시 촉감[觸]과 뜻을 일으키는[作意] 것이 있어 인연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증상연(增上緣)ㆍ소연연(所緣緣)과 화
합하여 알음알이를 낸다고 집착하며, 행하는 이와 우리 법 가운데 있다 없다 따위의 악각(惡覺)을 일으키는 이와 다시 어떤 모
든 사람들은 온[蘊法]인 유정에 공한 성품이란 소견에 떨어진 이들에게 이러한 망령된 분별을 끊게 하여 주십시오. 바라건대 세
존이시여, 다섯 가지 의식을 떠나고, 아는 바 모습과 능히 모든 법에 가장 자재한 것과 부처님의 큰 보리를 깨달아, 알 바를 듣는
이로 하여금 다섯 가지로 알 바를 깨달은 것과 같이 정각을 이루게 하소서.”
爾時金剛藏菩薩摩訶薩承佛許已,而白佛言:“世尊!佛者是何句義?所覺是何?唯願世尊說勝義境示法性佛,令過去未來現
在修菩薩行者,於諸色相積集之見,及餘外道異論執著行分別境,起微塵、勝自在性、時方、虛空、我意,根境和合如是諸見。
復有計者,無明愛業眼色與眼,是時復有觸及作意,如是等法而爲因緣、等無閒緣、增上緣、所緣緣和合生識執著行者,起有
無等,種種惡覺於我法中。復有諸人於蘊有情墮空性見。爲斷如是妄分別覺,唯願世尊說離五種識所知相,能於諸法最自在者
佛大菩提所覺知義,令得聞者如其了悟所知五種而成正覺。”

그때에 부처님께서 금강장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금강장아, 10지(地)는 자재하여 분별의 경계를 초월하였다. 큰 총명과 지혜가 있어 능히 이 법성과 불종(佛種)과
가장 훌륭한 유기(瑜祇)를 나타내고자 한다. 지금의 너만이 부처 보리로 깨닫는 바에 대하여 미묘한 생각을 내어서 나에게 물을
뿐이다. 그리고 현환(賢幻) 따위 무량한 불자가 있어 모두 이 뜻에 희유한 생각을 내어, 가지가지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부처의
본체를 구하되 여래란 무슨 뜻인가, 색(色)이 여래인가, 색 아닌 것이 여래인가, 이와 같이 온ㆍ처ㆍ계의 모든 행상에서 안팎으
로 두루 구하여도 여래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모두 지은 바이어서 무너지고 없어지는 법인 까닭이다.

온 가운데 여래가 없고 내지 분석하여 극미(極微)에 이르러도 모두 보지 못하는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묘한 지혜와 선


정의 뜻으로써 자세히 관찰하면 보이는 바가 없는 까닭이며, 온은 거칠고 더러운 까닭이며, 여래는 항상된 법신인 때문이니, 좋
은 일이다. 불자야, 너는 능히 심심한 법계에 잘 들어갔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금강장보살마하살이 황송하게 여기며 들었다.


爾時佛告金剛藏菩薩摩訶薩言:“善哉善哉!金剛藏!十地自在超分別境有大聰慧,能欲顯是法性佛種最勝瑜祇。匪唯汝今於佛
菩提所覺之義生希有念請問於我,有賢幻等無量佛子咸於此義生希有心,種種思擇而求佛體:‘如來者是何句義?爲色是如來
耶?異色是如來耶?’如是於蘊界處諸行之中,內外循求不見如來,皆是所作滅壞法故。蘊中無如來,乃至分析至於極微皆悉不
見。所以者何?以妙智慧定意諦觀無所見故、蘊麤鄙故、如來者常法身故。善哉佛子!汝能善入甚深法界。諦聽諦聽,善思念
之,當爲汝說。”金剛藏菩薩摩訶薩唯然受教。
“선남자야, 삼마지로 훌륭하게 자재하며 금강의 창고[藏]인 여래는 온이 아니며, 온이 아닌 것도 아니며, 온에 의지한 것이 아니
며, 온에 의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생도 아니며, 멸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며, 알 바도 아니다. 근도 아니며, 경계도 아니니, 무
슨 까닭인가. 온ㆍ처ㆍ계의 모든 근ㆍ경 따위는 모두 비루(鄙陋)한 까닭이니, 반드시 그 안팎에서 여래를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색은 감각도 알음알이도 없으며, 생각도 없어서 생기면 반드시 없어지나니, 풀ㆍ나무ㆍ기왓장의 종류와 같다. 미진이 쌓여
서 이루어졌으니, 와서 모인 거품과 같다.

수(受)는 두 가지 법이 화합하여 생기니, 마치 물ㆍ병ㆍ거품ㆍ옷 따위와 같으며, 또 두 가지가 화합하는 인연으로 생긴 것이 아


지랑이와 같다. 비유컨대 매우 더워 땅에서 수증기가 오르고, 다시 햇빛이 비치면 파랑(波浪)과 같나니, 모든 날짐승들이 목마
름에 시달리어 멀리 바라보고 참으로 물인 양 착각하는 것과 같다.

생각[想]도 이와 같아서 체성이 없고 허망하여 실답지 않다. 분별하는 지자(知者)가 보기에는 성과 견[性見]이 각각 달라 명자
를 얻을 듯하지만 안정된 이가 자세히 관찰하면 토끼의 뿔 같고 석녀(石女)의 애기 따위 같아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다. 마치 꿈
속의 색(色)이 오직 생각으로 헛되게 보는 것이니 깨면 없는 것이요, 무명의 꿈속에 남ㆍ녀 따위의 가지가지 빛깔을 보나 정각
을 이루면 보이는 것이 없다.
행(行)은 파초의 속이 빈 것과 같으니, 모두 경계를 떠나면 체성이 없다.

식(識)은 요술의 일 같아서 거짓되고 실답지 않으니, 비유컨대 요술쟁이와 그의 제자가 초목ㆍ기왓장에 의하여 색과 형상을 나
타내는 것과 같다. 요술에 의해 사람들과 그 밖에 코끼리ㆍ말 따위가 가지가지 형상을 구족하고 장엄하게 보일 때 어리석은 이
는 탐내어 구하려 하지만 지혜 있는 이는 그러지 않다. 식도 그와 같아서 다른 이에게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변계(遍計)하고 분
별하여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두 가지에 집착을 내거니와 만일 스스로 깨고 알면 즉시 모든 것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실제
없는 것이 요술쟁이와 같다.

금강장아, 여래는 항상 머무르며, 항상 변역(變易)하지 않으니, 이것이 염불과 관행을 닦는 경계이며 여래장이라 한다. 마치 허
공을 쳐서 없앨 수 없는 까닭에 열반계라 하며, 또한 법계라 한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이것을 수순하여 연
설하신 까닭에, 만일 여래께서 출세하셨거나 출세하지 않으셨거나 이 법성은 항상 있음으로, 법주성(法住性)ㆍ법계성ㆍ법니야
마성(法尼夜摩性)이라 한다.

금강장아, 무슨 까닭으로 니야마(尼夜摩)라 하는가. 뒤에 받을 일체의 허물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또 이 삼마지는 능히 뒤에


받을[後有] 모든 악을 완전히 없애는 까닭이니, 이러한 이유에서 니야마라 한다.

만일 삼마지에 머무는 이가 모든 유정에 마음으로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 없으면 실제와 열반을 증득하나니, 마치 뜨거운 쇠
를 찬물에 던지는 것 같아서 유정을 버린 까닭에 보살이 버리고 증득하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큰 정진ㆍ큰 자비ㆍ모든 바라밀을 버리고 부처의 종자를 끊어 성문승으로 나아가고, 외도 사견의 길을 가니, 마
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속에 빠진 것과 같다. 삼마지에 침몰되어 선정의 경계에 맛들이는 것도 그러하니,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법문을 물려서 굴리고, 구경의 지혜에 들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버리고 증득하지 않은 채 가까운 데 머물기만 한다.

구경혜(究竟慧)로써 불법신(佛法身)에 들어가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깨달아 마땅히 정각을 이루고 묘한 법륜을 굴리라. 지혜
경계의 여러 색으로 살림을 삼고, 여래의 선정에 들어 열반의 경계에 놀면 일체 여래께서 선정에서 일어나게 하신다. 그리고 점
차 가행하여 제8지를 초월하고, 방편으로 결택하여 내지 법운(法雲)에서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수용하고, 모든 부처님이 안으
로 증득한 지경에 들어가 무공용도(無功用道)인 삼마지와 서로 어울리어 시방을 두루 다니되, 본 곳을 움직이지 않고 항상 밀엄
불찰을 의지한다.

금강같이 자재하고 큰 변화를 갖추어서 불토를 나타내되 자재하게 이루나니, 의지하는 바인 지혜와 삼마지와 의성신(意成身)
을 굴려서 역(力)과 통(通)을 구족하니, 걸음 걷는 위덕이 마치 아왕(鵝王) 같다.

비유컨대 밝은 달의 그림자가 여러 물에 비치나니, 부처님도 그러하여 모든 유정을 따라 널리 색상을 나타낸다. 여러 가지 모임


에 이익되는 일이 헛되지 않고 또 모두 밀엄 불찰에 참여하게 한다. 그들의 성질과 욕구에 따라 점차로 개유(開誘)하되, 그들을
위하여 일체의 욕계 천왕과 자재 보살과 청정한 마니보장 궁전의 모든 안락한 곳과 내지 모든 지위의 차례를 말하여 준다. 한
불찰에서 다른 불찰에 이르면서 부귀하고 즐겁고 공덕 되는 장엄을 보이시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근기에 따라 응현(應現)하되,
마치 지명 선인(持明仙人)들이나 모든 신령과 신선의 궁전에 있는 신이 사람과 더불어 행동하되 볼 수 없는 것같이 한다.

여래의 변화로 할 바의 일을 마치면 진신(眞身)에 머물러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佛言:“善男子!三摩地勝自在金剛藏如來,非蘊亦非異蘊、非依蘊非不依蘊、非生非滅、非智非所知、非根非境。何以故?蘊
處界諸根境等皆鄙陋故,不應內外而見如來。且色無覺知、無有思慮、生已必滅,同於草木瓦礫之類,微塵積成如來聚沫。受
以二法和合而生,猶如水泡甁衣等想,亦二和合因緣所生猶如陽焰。譬如盛熱地氣蒸涌,照已日光如水波浪,諸鳥獸等爲渴所
逼,遠而望之生眞水解。想亦如是,無有體性虛妄不實,分別智者如有性見各別體相名字可得,定者審觀猶如兔角石女兒等但
有假名,如夢中色唯想妄見覺悟非有,無明夢中見男女等種種之色,成於正覺卽無所見。行如芭蕉中無堅實,離於身境卽無體
性。識如幻事虛僞不實,譬如幻師若幻師弟子,依草木瓦礫示現色像,幻作於人及諸象馬,種種形相具足莊嚴,愚幻貪求非明
智者。識亦如是依餘而住,遍計分別能取所取二種執生,若自了知卽皆轉滅,是故無體同於幻士。金剛藏!如來常住恒不變
易,是修念佛觀行之境名如來藏。猶如虛空不可壞滅,名涅槃界亦名法界。過現未來諸佛世尊皆隨順此而宣說故,若如來出世
若不出世,此性常住,名法住性、法界性、法尼夜摩性。金剛藏!以何義故名尼夜摩?遠離後有一切過故。又此三摩地能決定
除後有諸惡,以如是故名尼夜摩。若有住此三摩地者,於諸有情心無顧戀,證於實際及以涅槃,猶如熱鐵投諸冷水棄於有情,
故諸菩薩捨而不證。所以者何?捨大精進大悲諸度,斷于佛種趣聲聞乘,行於外道邪見之徑。猶如老象溺在淤泥,爲三摩地泥
所沈沒。味定境界亦復如是,退轉一切諸佛法門,不得入於究竟之慧,是故菩薩捨而不證近住而已。以究竟慧入佛法身,覺悟
如來廣大威德,當成正覺轉妙法輪,智境衆色而爲資用,入如來定遊涅槃境。一切如來令從定起,漸次加行超第八地,善巧決
擇乃至法雲,受用如來廣大威德,入於諸佛內證之地,與無功用道三摩地相應,遍遊十方不動本處,而恒依止密嚴佛剎。金剛
自在具大變化,示現佛土而成自在,轉於所依智三摩地,及意成身力通具足,行步威德猶如鵝王。譬如明月影遍衆水,佛亦如
是,隨諸有情普現色相,於諸衆會所益不空,復令當詣密嚴佛剎。如其性欲而漸開誘,爲說一切欲界天王、自在菩薩淸淨摩尼
寶藏宮殿諸安樂處,乃至諸地次第,從一佛剎至一佛剎,示現富樂功德莊嚴,盡於未來隨機應現。猶如成就持明仙等,及諸靈
仙宮殿之神,與人行止而不可見。如來變化所爲事畢,住於眞身隱而不現亦復如是。”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爾時世尊而說偈言:

근(根)이 쌓여 뱀과 같으니

경계연(境界緣)이 부딪친 곳에

무명과 애업이 생겨

훈습(薰習)하니 속박은 풀기 어려워라.


根蘊如蛇聚,

境界緣所觸,

無明愛業生,

薰習縛難解。

심(心)ㆍ심소(心所) 등 악각(惡覺)

얽힌 것이 용트림 같아

성내는 독이 어울리는 까닭에

훨훨 타는 불길 같아.
心心所惡覺,

纏繞如蟠龍,

怒毒因之與,

㶿如炎盛火。

관행을 닦는 여러분

항상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온법(蘊法)을 버리고

일심으로 게을리 말라.


諸修觀行者,

常應如是觀,

捨諸蘊法故,

一心而不懈。

나무 없는 허공에

그림자를 보거나

바람의 길 발자취

모두 보기 어려워.
如於虛空中,

無樹而有影,

風衢及馬迹,

此見悉爲難。

능조(能造)와 소조(所造)와

색(色)과 색 아닌 것에서

여래를 보려 하는 이

어렵기 이와 같은 것을.
於能造所造,

色及非色中,

欲求見如來,

其難亦如是。

진여와 실제와

제불(諸佛)의 체성은

안으로 깨달을 행할 바이요

말로 할 경계들이 아니랍니다.
眞如實際等,

及諸佛體性,

內證之所行,

非諸語言境。

열반을 부처라 하니

부처를 열반이라 하네.

능(能)과 소(所)의 분별이 없으니

어떻게 알거나 볼 수 있으리.


涅槃名爲佛,

佛亦名涅槃,

離能所分別,

云何而可見?

금돌을 부셔 보라.

금은 못 보리.

지혜 있는 사람이 불매질 하면

진금이 바야흐로 나타나리라.


碎末於金鑛,

鑛中不見金,

智者巧融鍊,

眞金方乃顯。

모든 물질 분석하여

극미에 이르며

모든 온을 쪼개어

일이성(一異性)을 구해도

불체(佛體)는 끝내 보지 못하리.

부처가 없는 것은 또한 아니라.
分剖於諸色,

乃至爲極微,

及析求諸蘊,

若一若異性,

佛體不可見,

亦非無有佛。
안정된 이 여래를 관찰하면

서른두 가지의 훌륭한 모습과

괴롭고 즐거운 모든 일들과

움직이는 곳마다 나타나리니

그러므로 응당 말을 말아라.

여래는 결정코 없는 거라고.


定者觀如來,

勝相三十二,

苦樂等衆事,

施作皆明顯,

是故不應說,

如來定是無。

삼마지 불(佛)과

선근ㆍ선교불과

일체세승불(一切世勝佛)과

정등각불(正等覺佛)과

이러한 부처님들 계시고

나머지는 모두가 변화신(變化身)이라.


有三摩地佛,

善根善巧佛,

一切世勝佛,

及正等覺佛,

如是五種佛,

所餘皆變化。

여래장(如來藏) 속에는

32상이 갖추어 있나니

그러므로 부처가 없지 않은 것

선정 얻은 사람은 볼 수 있으니
如來藏具有,

三十二勝相,

是故佛非無,

定者能觀見。
삼계를 초월하는

무량한 불국토

여래의 미묘한 세계

청정한 불자들이 가득하시네.


超越於三界,

無量諸佛國,

如來微妙剎,

淨佛子充滿。

정과 혜가 서로서로 의지가 되어

견고한 성품을 성취하시고

밀엄세계 불찰에 오가면서

부처님의 위덕을 생각하시네.


定慧互相資,

以成堅固性,

遊於密嚴剎,

思惟佛威德。

밀엄세계의 사람들

모두가 부처님 같아

찰나괴(刹那壞)를 초월하여

항상 삼마지에 노니네.
密嚴中之人,

一切同佛相,

超越剎那壞,

常遊三摩地。

세존은 선정에 드시어

훌륭한 상호들로 장엄하시고

여몽관(如夢觀)을 얻어서

모든 법을 나타내나니
世尊定中勝,

衆相以莊嚴,

得於如夢觀,

顯現於諸法。

여러 사람 부처님의 화신을 일러

도솔천으로부터 내렸다 하나

부처님은 언제나 밀엄에 있어

그림자를 나타내 그 나라를 따르네.


衆謂佛化身,

從於兜率降,

佛常密嚴住,

像現從其國。

참된 정에 머물러 고요하건만

인연 따라 여러 모양 나타나니

허공에 솟은 달이

여러 물에 비치는 듯.
住眞而正受,

隨緣衆像生,

如月在虛空,

影監於諸水。

마니주의 여러 모양은

빛깔이 모여서 나타나거니

여래가 정정에 머물러서도

그림자를 비침도 그러하다오.


如摩尼衆影,

色合而明現,

如來住正定,

現影亦復然。

비유컨대 물체와 그림자 같아

같은 것 다른 것 모두 아니니

훌륭한 대장부여, 밝히 알아라.

이렇게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譬如形與像,

非一亦非異,

如是勝丈夫,

成於諸事業。

극미의 훌륭한 성품 아니며

시간도 자재(自在)도 모두 아니며

그 밖에 다른 인연 또한 아니나

그러나 세간은 이뤄졌나니


非極微勝性,

非時非自在,

亦非餘緣等,

而作於世閒。

여래는 인연으로써

과체를 장엄하시고

세간에 따라 응하신 바는

가지가지 모두가 분명하시니

삼마지에 유희(遊戱)하시며

안과 밖을 모두가 못함이 없네.


如來以因緣,

莊嚴其果體,

隨世之所應,

種種皆明現,

遊戲三摩地,

內外無不爲。

산천과 임야와

벗들과 권속과

별들과 해ㆍ달이

맑은 거울 속에 비치네.
山川及林野,

朋友諸眷屬,

衆星與日月,

皎鏡而垂像。
이러한 모든 세간

몸 속에 다 넣어

손바닥에 얹었다가

겨자씨같이 던지기도 하네.


如是諸世閒,

身中盡苞納,

復置於掌內,

散擲如芥子。

부처님은 선정에 자재하시어

모니(牟尼)를 일컬어서 최승존(最勝尊)이니

세간을 지을 이 능히 누구냐.
오로지 부처님만 하실 일이라.
佛於定自在,

牟尼最勝尊,

無能作世閒,

唯佛之所化。

어리석은 이 지혜가 없어

잘못된 생각에 속박되어서

있다 없다 희론을 일삼아

나와 남을 보려고 하네.
愚翳無智者,

惡覺惑所縛,

著於有無論,

見我及非我。

일체가 무너졌다 하고

일체가 조그만큼 이라고도 하니

이러한 모든 사람은

항상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네.


或言壞一切,

或言於少分,

如是諸人等,

常自害其身。

부처님은 3유를 두루하면서

관행(觀行)하는 거룩한 도사이시니

세상을 보시기 간성과 같고

짓는 바 여러 가지 일과 업들은
佛是遍三有,

觀行之大師,

觀世如乾城,

所作衆事業,。

꿈속에 생기는 빛과도 같고

사슴이 따라가는 아지랑이

꾸부리고 펴는 등 업을 지으나

바람에 노끈같이 진퇴(進退)하시네.


亦如夢中色,

渴鹿見陽焰,

屈伸等作業,

風繩而進退。

부처님은 방편 지혜로

자재하게 아시나니

비유컨대 기술자가

기계를 다루고

바다의 뱃사공이

키를 잡고 달리듯

가없고 고요하고 가장 묘하신

구족하고 훌륭한 장부이시네.

근기가 영리하면 능히 깨치고

근기가 둔한 이는 멀리 떠나리.
佛於方便智,

自在而知見,

譬如工巧匠,

善守於機發,

亦如海舩師,

執柁而搖動

無邊最寂妙,

具定勝丈夫,

利根者能證,

鈍根者遠離。

이것은 선정 닦는 행자의

묘한 선정으로 의지하는 바이니

일체의 정혜인(定慧人)도

분명히 마음속에 있나니


是修行定者,

妙定之所依,

一切定慧人,

明了心中住。

불체(佛體)는 가장 청정하여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아니니

깨치는 것 깨친 바 멀리 떠나고

근(根)의 한량도 또한 떠났네.


佛體最淸淨,

非有亦非無,

遠於能所覺,

及離於根量。

묘한 지혜로 어울릴 마음

무엇보다 수승한 경계

모든 상은 망(妄)의 경계

상을 떠나면 여래이니라.
妙智相應心,

殊勝之境界,

諸相妄所境,

離相是如來。

능히 모든 번뇌를 끊고

선정에 물들지 않아

움직이고 움직일 바 없이

물들지 않는 길에 머물지어다.
能斷諸煩惱,

於定無所染,

無動及所動,

住於無染路。

미묘한 모든 하늘들과

건달바 아수라들과

여러 선인과 외도들까지

찬탄하며 항상 공양하리라.
微妙諸天俱,

乾闥脩羅等,

衆仙及外道,

讚歎常供養。

그럴때에 놀라거나 기꺼워 말고

마음에 동요가 없게 하라.

유가(瑜伽)의 본래 맑음 말미암으면

그 까닭에 저 언덕 뛰어넘으리.
於彼不驚喜,

心無所動搖,

由瑜伽本淨,

是故超彼岸。

화신불의 모습을 나타내어서

하늘ㆍ사람 위함도 모두 업이니

부처님은 피차(彼此)에 아니 나타남이

넓은 하늘 한복판의 해와 달 같아.
以化佛現迹,

爲天人亦業,

佛非彼此現,

猶如於日月。
원경지(圓鏡智)에 머물러

욕심을 떠나, 인간에 나타나시고

여러 가지 모든 외도

계제 따라 모두 다 조복하시네.
住於圓應智,

離欲現人閒,

異類諸外道,

隨宜悉調伏。

가지가지 사람의 지혜로운 법

왕론(王論)과 4베다(吠陀)

이들을 모두 다 여래께서는

정력(定力)으로 말씀하시네.
種種衆智法。

王論四吠陁。

悉是諸如來。

定力而持說。

현재의 국왕이나 나라의 모임

그리고 모든 나라 모든 법령과

산림 속에 수도하는 여러 처소는

모두 다 부처님이 보이신 응화.


現國王朝會。

及諸國法令,

山林修道處,

悉皆佛示化。

시방의 여러 가지 보배 창고들

청정한 보배를 출생하나니

이것이 모두가 천중천(天中天)께서

자재한 위신력을 쓰시는 까닭.


十方衆寶藏,

出生淸淨寶,

悉是天中天,

自在威神故。

삼계에 재주 있는 여러 지혜와

가지가지 모든 재주 모든 재치로

짓는 바 방편과 그리고 업은

부처님을 인하여 이룩되나니


三界善巧慧,

種種諸才智,

所作方便業,

因佛而成就。

화만(華鬘)을 가지고 중생을 위하여

업행자(業行者)에게 인을 보이고

희롱하고 웃으시는 갖가지 방편

말하고 노래하고 읊으기 항상.


持鬘爲群品,

業行者示因,

戲笑衆善巧,

常說歌詠論。

혹은 도솔(兜率)에서 내리시니

천녀에게 둘러싸여 춤과 노래로

서로서로 재미나게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노시는 모습 나타내고


或現降兜率,

天女衆圍遶,

歌舞交歡娛,

日夜常遊集。

어느 때는 마왕같이 몸을 나타내어

보배의 감투를 머리에 쓰고

세상의 오랏줄을 손에 들고서

주었다 빼앗다 가두고 품고.


或現如魔王,

寶冠以嚴首,

執世之所繩,

與奪而招放。

일체의 중생에게

명지자(明智者)로 나타났으니

항상 밀엄국 안에

조용히 움직이지 않아.


雖放一切衆,

現爲明智者,

常在密嚴中,

寂然無動作。

이는 거룩한 모니의 경계

범우(凡愚)는 망령되게 분별을 내니

어떤 사람 눈을 앓는 것 같고

사슴이 아지랑이 보는 것 같고

세상의 요술을 보는 것 같고

꿈속에 취하는 모든 것 같네.


此大牟尼境,

凡愚妄分別,

如人患翳目,

如鹿見陽焰,

如世觀於幻,

夢中諸所取。

천중천의 경계를

불자는 모두 참되게 갖추었나니

수승함을 보는 까닭에

꿈속에서 깨어나듯 하리라.


天中天境界,

佛子悉具眞,

由見殊勝故,

如從於夢覺。
나라(那羅)와 이사(伊舍)와 범천과

산나단묘희(珊那單妙喜)와

동자(童子) 겁비라(劫毘羅)와

수가(首迦)들까지 생각하여도

그 경계는 어리둥절하여

바르게 유가(瑜伽)를 보지 못하리.


那羅伊舍梵,

珊那單妙喜,

童子劫比羅,

首迦等亦想,

或亂彼境界,

不見正瑜伽。

미래에 고행할 선인도

과거와 현재의 선인도

습기가 마음을 가리워

모두 알지 못하리.
當來苦行仙,

過去及現在,

習氣覆心故,

悉亦不能了。

어질다 금강장아,

널리 모든 지위를 수행하고

다시 부처님의 위신으로써

밀엄토에 있게 되었네.
善哉金剛藏!

普行諸地中,

復以佛威神,

而居密嚴土。

이 사람 금강장은

시현(示現)으로 등지(等持)에 드니

정정(正定)의 경계는

이를 말미암아 어울리는 때문.


此之金剛藏,

示現入等持,

正定者境界,

由此相應故。

혹은 망령되어 분별을 하여

승성(勝性)과 그리고 미진이라니

장인같이 재주껏 물건 만들면

가지가지 모양이 차별되지만

생겨남도 다만 이 법뿐이요

없어짐도 다만 이 법뿐이라.
或有妄分別,

勝性與微塵,

如工匠製物,

種種相差別,

生唯是法生,

滅亦唯法滅。

일체의 물건을 망계(妄計)하여서

미세한 티끌이 지었다 하나

비유컨대 등불이 물건 나타내듯

원인이 결과를 능히 깨치네.

처음에도 얻는 바 모습이 없고

나중에 무너짐도 또한 그러해.


妄計一切物,

細塵能造作,

譬如燈顯物,

因能了於果,

初無所得相,

後壞亦復然。

지나간 세상에도 실체 없었고

돌아오는 세상도 또한 그러해

반연을 떠나면 본성이 없어

하나하나 모든 연에 찾아도 없네.


非於過去中,

有體而可得,

未來亦如是,

離緣無有性,

一一諸緣內,

遍求無有體。

또다시 있고 없는 성품을 보니

없다 하는 견해도 또한 없으니

미세하게 나의 몸과 유정의 몸과

질병과 의복 따위 분별한다오.
亦見有無性,

亦無無有見,

分別微細我,

有情甁衣等。

사종(邪宗)들은 정도를 무너뜨리면서

300하고 60의 종류 있으니

죽고 사는 갈래에 오고 가면서

열반할 법이란 있지 않나니.


邪宗壞正道,

三百有六十,

往來生死中,

無有涅槃法。

2. 입밀엄미묘신생품(入蜜嚴微妙身生品) ①
大乘密嚴經入密嚴微妙身生品第二

그때에 일체불법여실견(一切佛法如實見)보살마하살이 무량한 위덕이 세상 가운데서 자재하시어 보배의 영락(玲珞)으로 그 몸


을 장엄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금강장에게 말하였다.

“존자께서는 능히 3승의 세간을 잘 통달하시어 마음이 현법락주(現法樂住) 안으로 증득한 지혜에 어기지 않게 되었고, 큰 선정
의 스승이 되어 선정에 자재하시며, 능히 모든 지위의 모습을 수순하여 설명하시며, 항상 일체 불국토에 계시면서 모든 상수들
에게 깊고 묘한 법을 연설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불자에게 권청(勸請)하노니, 모든 성자들의 불수타행(不隨他行)과 현
법락주와 안으로 증득하는 경계를 말씀하여 주시오. 이제 나와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법을 보고 안락하게 수행하여 불지(佛地)
에 나아가 의성신(意成身)ㆍ언설신(言說身)ㆍ자재(自在)ㆍ역(力)ㆍ통(通)을 얻어 모두 구족케 하여 주시오. 소의(所依)를 바꾸
어 실제(實際)에 머물지 않음이 마치 여러 빛깔이 있는 진다마니(眞多摩尼)가 모든 색ㆍ상을 나타내듯 능히 모든 갈래와 천왕
의 궁전과 일체 부처님의 밀엄국에서 밀엄행을 말하게 하여 주소서.”
爾時一切佛法如實見菩薩摩訶薩,無量威力世中自在寶瓔珞莊嚴其身,從座而起,右膝著地,白金剛藏而作是言:“尊者善能
通達三乘世閒,心得無違現法樂住內證之智,爲大定師於定自在,能隨順說諸地之相,常在一切佛國土中,爲諸上首演深妙
法。是故我今勸請佛子,說諸聖者不隨他行現法樂住內證之境。今我及諸菩薩摩訶薩衆得見斯法,安樂修行趣於佛地,獲意成
身及言說身,自在力通皆得具足,轉所依止不住實際,猶如衆色眞多摩尼,現諸色像能於諸趣天王宮殿,及一切佛密嚴國中說
密嚴行。”

그때에 금강장보살마하살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爾時金剛藏菩薩摩訶薩以偈答曰:

거룩할사 하늘ㆍ사람 임금 되시고

보살들 가운데 뛰어나신 분

밀엄국에 들어가는 무아의 법을

말해 달라 나에게 권청(勸請)하시네.
분별하는 경계가 많다 하여도

마음으로 취(取)한 모습 깨쳐야 하리.


善哉天人主,

菩薩中殊勝,

請說入密嚴,

無我之法性,

應覺分別境,

心之所取相。

만일에 분별들을 버리는 이는

세상의 모든 분별 볼 수 있으리.

세상의 반연들을 밝게 아는 이

틀림없이 삼마지 얻게 되오리.


若捨於分別,

卽見世分別,

了於世所緣,

卽得三摩地。
내가 이제 말하리니

그대 들으시오.

더운 날에 아지랑이 볼 수 있나니

세간의 모습들도 그러합니다.


我今爲開演,

仁主應諦聽,

熱時見陽焰,

世間相亦然。

능상(能相)은 소상(所相)의 원인이 되나

없는 것을 망령되게 분별한다오.

능각(能覺)은 소각(所覺)을 내고

소각은 능각에서 나타나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어

불빛과 그림자 서로 따르듯.


能相所相因,

而無妄分別,

能覺生所覺,

所覺依能現,

離彼則無此,

如光影相隨。

마음도 없는 것 경계도 그런 것

헤아리고 헤아릴 법 모두 없나니

애오라지 한 마음에 의지하여서

이렇듯이 여러 가지 분별을 하네.


無心亦無境,

能所量俱無,

但依於一心,

如是而分別。

안다는 법 알아야 할 법 둘인 듯하나

모두가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알아야 한다는 마음 원래 없는 것이며

안다는 그 마음도 얻지 못하리.

마음은 법의 자성

유의 성품[有性]에게 흐려졌나니

8지에서 청정해지고

9지에서 정려(精慮) 얻으리.


能知所知法,

唯心量所有,

所知心旣無,

能知不可得,

心爲法自性,

有性所擾濁,

八地得淸淨,

九地獲靜慮。

지혜를 깨달은 이 10지라 하고

관정(灌頂)은 여래를 증득하시리.

법신은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경계랍니다.


覺慧爲十地,

灌頂證如來,

法身得無盡,

是佛之境界。

끝 간[究竟] 지위는 허공과 같고

심식(心識)들도 모두가 그러하여서

끝이 없고 항상하여 변함이 없는

여러 가지 공덕으로 장엄하시고

언제나 부사의한 모든 부처의

밀엄토를 안 떠나고 계신답니다.


究竟如虛空,

心識亦如是,

無盡無所壞,

衆德已莊嚴,

恒在不思議,

諸佛密嚴土。
비유컨대 질병[甁]이 깨진 뒤에는

기왓쪽이 또렷이 나타나

기왓쪽을 쪼개면 미진이 되고

미진을 쪼개면 극미(極微) 되듯이.

유위법을 인하여 무루법 됨이

숯불이 태우는 듯 모두 그러해.


譬如甁破已,

瓦體而顯現,

瓦破微塵顯,

析塵成極微,

如是因有爲,

而成無漏法,

如火燒薪盡,

復於餘處然。

진여를 증득하고 전의(轉依)를 얻어

분별을 멀리멀리 떠나면

부동지(不動智)에 머물러

밀엄국에 나타나리라.
證如得轉依,

遠離於分別,

住於不動智,

密嚴中顯現。

무생(無生)이 여러 가지 빛을 내는 것

세간에 머물지 않으니

능히 일체의 소견을 끊으려면

이 무아에 귀의하시라.
無生現衆色,

不住諸世閒,

能斷一切見,

歸依此無我。

잇따라서 유주(流注)함이 끊어지고

무너지지 아니하고 낳지도 않고

일체의 소견을 끊으려 하면

이러한 무아에 귀의하시라.


相續流注斷,

無壞亦無生,

能盡一切見,

歸依此無我。

모든 미혹 모두 다 없어지고

고요하여 부사의하니

일체의 소견을 맑히려 하면

이러한 무아에 귀의하시라.


諸惑皆已滅,

寂靜不思議,

能淨一切見,

歸依此無我。

세간의 가지가지 법

본래 무아인 성품

없애서 없는 것 아니며

비유로 나타낼 것도 아니니.


世閒種種法,

本來無我性,

非由擊壞無,

乃喩之所顯。

장작에 붙은 불

저절로 꺼지나니

3유를 관찰하면

무아지(無我智)도 그런 것이라.
如火燒薪已,

於中自息滅,

觀察於三有,

無我智亦然。
이것이 현법락

안으로 깨친 경계

이에 따라 닦으면

무시(無始)의 악 없애리.

세상이 의지하는 바를 버리고

세상을 벗어나 안주(安住)하면

그 마음은 더욱 청정하여

항상 밀엄토에 있으리.
是名現法樂,

內證之境界,

依此入諸地,

淨除無始惡,

捨離世所依,

出世而安住,

其心轉淸淨,

恒居密嚴土。

그때에 여실견보살마하살과 모든 왕들이 금강장보살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이제 귀의하려 하니, 바라건대 우리들에게 귀의할 곳을 보여 주시오.”


爾時如實見菩薩摩訶薩及諸王等,向金剛藏咸作是言:“我等今者皆欲歸依,唯願示我歸依之處。”

그때에 금강장보살마하살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於是金剛藏菩薩摩訶薩以偈答曰:

부처님의 본체는 유ㆍ무가 아니니

5온의 나무를 이미 불태우고

마왕의 무리보다 훨씬 훌륭해

밀엄국에 어엿이 머무시나니.

깨달은 바 깨끗해 때가 없어

그대들은 마땅히 귀의하시라.


佛體非有無,

已焚燒蘊樹,

超勝魔王衆,

而住密嚴國,

所覺淨無垢,

仁主可歸依。

깨달음의 한계를 멀리 떠나서

없는 이치 여실히 깨달으시니

밀엄의 선정에 든 여러분들께

그대들은 마땅히 귀의하시라.


遠離於覺量,

證於無所有,

密嚴諸定者,

仁主可歸依。

깨뜻하고 훌륭한 밀엄세계는

여러 성현들이 의지하는 곳

관행(觀行)을 닦는 이가 가득하시니

마땅히 밀엄으로 귀의하시라.


淨勝密嚴剎,

衆聖所依處,

觀行者充滿,

應歸於密嚴。

세간을 관찰할 때는

그림 속의 높고 낮음을 보듯

꿈속에 미인을 보듯

석녀(石女)가 급히 탄생을 하듯.


當觀於世閒,

如盡有高下,

夢中見美色,

石女急誕生。

건달(乾達)의 성 같기도 하고

불바퀴[火輪]와 공중의 터럭과 같고

요술로 생겨난 갖가지 물건

인마(人馬)와 화과(花果)와 나무와 같네.


亦如乾闥城,

火輪空中髮,

如種種幻形,

人馬花菓樹。

요술쟁이의 변화한 것이

모두가 참되지 못해

번개와 뜬구름이

모두 거짓이요 참되지 않아

장인들이 물건 만들 듯

분별에 의하여 이루었나니.


幻歸所變化,

一切悉非眞,

如奔電浮雲,

皆爲而非實,

如匠作甁等,

由分別所成。

그대여, 자세히 들으라.

세간의 모든 유정은

습기가 항상 마음을 덮어

가지가지 희론을 내나니


仁主應諦聽,

世閒諸有情,

習氣常覆心,

生種種戲論。

말나(末那)와 의식(意識)과

그리고 다른 식과 상속(相續)하여서

5법과 3성과

두 가지의 무아(無我)는
末那與意識,

幷餘識相續,

五法及三性,

二種之無我。
끊임없이 서로서로 어울리는 것

바람이 흐르는 물 세차게 쳐서

더욱더 많은 물결 일으키거든

일어난 물결은 멎지 않나니

아뢰야도 그러하여서

무시(無始)의 모든 습기

마치 흐르는 물이

경계의 바람 때문에

식(識)의 물결들을 일으켜

항상 끊일 때 없듯.
恒共而相應,

如風擊暴水,

轉起諸識浪,

浪生流不停,

賴耶亦如是,

無始諸習氣,

猶如彼暴水,

爲境風所動,

而起諸識浪,

恒無斷絕時。

여덟 가지 움직이는 마음은

여러 가지 진실 있지 않건만

어느 때는 인연 따라 몰록 생기고

어느 때는 점차로 일어나나니

경계를 취하는 것 또한 그러해

몰록하고 점차 함이 차별된다.
八種流注心,

雖無若干體,

或隨緣頓起,

或時而漸生,

取境亦復然,

漸頓而差別。

마음이 변하여 집도 되고

해와 달과 그리고 모든 별들과

나무와 풀잎과 꽃과 열매와

산천과 수풀과 사람들 되니


心轉於舍宅,

日月與星宿,

樹枝葉花菓,

山林及軍衆。

이러한 것들을

몰록ㆍ점차로 내서

많이는 단박 나타나고

혹은 점차로 일기도 하네.


於如是等處,

皆能漸頓生,

多分能頓現,

或漸起差別。

만일 어떤 때 꿈을 꾸다가

지난날 하던 경계 골고루 보고

그리고 생각들이 처음 날 때와

늙어서 죽는 데 이르기까지
若時於夢中,

見昔所更境,

及想念初生,

乃至於老死。

여러 가지 물건을 헤아려도 보고

어구(語句)의 깊은 뜻 생각도 하며

차별된 문채(文彩)를 관찰도 하며

여러 가지 좋은 음식 받기도 하니
筭數與衆物,

尋思於句義,

觀於異文彩,

受諸好飮食。
이러한 경계에는

점차로 깨닫고

어느 때는 단박 생겨

취하기도 하나니.
於如是境界,

漸次能了知,

或有時頓生,

而能取之者。

심성은 본래 청정하여

불가사의하니

이는 여래의 묘한 창고니

진금이 금돌 속에 있는 것같이.
心性本淸淨,

不可得思議,

是如來妙藏,

如金處於鑛。

뜻이 장식(藏識)에서 나오니

나머지 여섯도 다시 그러해

식의 여섯 가지, 혹은 많은 것

삼계를 차별되게 하나니.


意生從藏識,

餘六亦復然,

識六種或多,

差別於三界。

뇌야와 능훈(能熏)과

나머지 심법(心法)들과

물들고 깨끗한 모든 종자가

함께 있으나 물들지 않아.


賴耶與能熏,

及餘心法等,

染淨諸種子,

雖同住無染。

부처님의 종성(種性)도 그러하여서

선정과 산란[非定]이 항상 깨끗해

바닷물이 변함없이 머물렀건만

물결과 조수만이 늘고 주는 듯.
佛種性亦然,

定非定常淨,

如海水常住,

波潮而轉移。

뇌야도 그러하여서

지위마다 차별 있나니

닦음에 상ㆍ중ㆍ하 있으나

물듦을 버리고 밝게 나타나네.


賴耶亦復然,

隨諸地差別,

修有下中上,

捨染而明顯。

금강장은 또다시 말을 하노니

여실견보살이여 들을지어다.

본 대로 들은 대로 깨닫는 이는

자성이 실다운 지혜이다.


金剛藏復言:

“如實見菩薩!”

見聞覺悟者,

自性如實慧。

시방의 여러 나라와

모든 왕과 무리가 모인 가운데

나에게 들으신 이러한 뜻을

힘에 따라 널리널리 말씀하시라.
十方一切國,

諸王衆會中,

汝已從我聞,

隨應廣爲說。

어떤 사람 법을 듣고

아뢰야가 맑아지면

인간의 왕이 되어

사천하를 다스리고
若人聞法已,

漸淨阿賴耶,

或作人中王,

轉輪四天下,

또다시 어떤 이는

제석과 도솔과 소염(蘇焰) 따위와

내지는 화락(化樂)의 궁전에서와

욕계에 자재한 주인이 되리.


或復爲帝釋,

兜率蘇焰等,

乃至化樂宮,

欲界自在主。

어떤 이는 색계에 왕노릇하고

어떤 이는 무색계의 여러 하늘에

생각없는 유정으로 태어나서는

정려(精慮)에 들어가서 안락을 받으리.

진리를 깨닫고도 머물지 않아

사자의 우렁찬 영각과 같이

모든 선정에 자재하여서

법희(法喜)를 가지고 어울리시네.


或王色界處,

或生無色天,

無想有情中,

靜慮受安樂,

證眞而不住,

猶如師子吼,

於諸定自在,

法喜以相應。

일심으로 밀엄을 구하여

삼계에 물들지 않고

밀엄에 이르러서는

점차로 깨달아지리.
一心求密嚴,

不染著三界,

至於密嚴已,

漸次而開覺。

의지(依支)를 바꾸어서 안락을 얻고

고요한 경계에 상주하는 이

무량한 불자들이

둘러싸고 장엄하시네.
轉依獲安樂,

寂靜常安住,

無量諸佛子,

圍遶以莊嚴。

법에 자재하신 왕

무리에서 가장 높아

외도들이 말하는

무너져 버리는 것이

열반이라는 것과 달라.
爲法自在王,

衆中之最上,

非如外道說,

壞滅爲涅槃。

무너지면 유위와 다르지 않아

없어졌다 또 생기는 허물 있나니

10업의 상ㆍ중ㆍ하 때문에

3승이 생겨났다오.
壞應同有爲,

無有復生過,

十業上中下,

三乘以出生。

최상품[最上]은 밀엄에 태어나리니


지위마다 더욱더 승진하여서

해탈하는 지혜와

여래의 미묘한 몸 이루리.


最上生密嚴,

地地轉昇進,

得解脫智慧,

如來微妙身。

어찌하여 열반을

없어지는 것이라 하랴.

열반이 망가지는 것이라면

유정은 끝날 때가 있으리.
云何說涅槃,

是滅壞之法?

涅槃若滅壞,

有情有終盡。

유정이 끝이 있다면

첫머리도 있어야 할 것이니

응당 생기지 않는 법이

처음에 유정을 만든 이 있을 터.
有情若有終,

是亦有初際,

應有非生法,

而始作有情。
유정이 아니면서도

유정세계에 있을 이 없나니

유정세계가 없어졌다면

부처님께는 알아야 할 법이 없네.


無有非有情,

而生有情界,

有情界旣盡,

佛無所知法。

이는 깨달을 이도 없고

열반도 없는 것이니

망령되이 해탈을 계교하여

해탈을 말하는 것이네.


是則無能覺,

亦無有涅槃,

妄計解脫者,

而說於解脫。

마치 등불이 꺼져 섶이 다하는 것과 같고

또한 파초와 같나니

그들의 깨친 해탈의 성품이

유(有)를 깨뜨려 무(無)를 만든 것


如燈滅薪盡,

亦如芭蕉種,

彼證解脫性,

是壞有成無。

해탈의 묘한 즐거움과는

너무나 멀었나니 말을 말 것이다.

변처(邊處)와 정려(精慮)와

무색과 무상정(無想定)에
於解脫妙樂,

遠離不能說,

遍處及靜慮,

無色無想定。

거슬리고 순하여 드나들면서

역(力)과 통(通)을 자재히 하고

거기에서 다시는 안 물러나며

그리고 영구히 빠지지도 않고서


逆順而入出,

力通皆自在,

於彼不退還,

亦不恒沈沒。

법상들을 깨치어

모든 지위의 방편을 얻나니

이렇듯 장엄하여

밀엄찰에 오신다네.
了達於法相,

諸地得善巧,

如是而莊嚴,

當來密嚴剎。

어떤 사람 입을 열어 해탈성이란

있는 것을 깨뜨려 없게 했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3유 안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若言解脫性,

壞有以成無,

斯人住諸有,

畢竟不能出。

세 가지의 화합이 이미 깨지고

인연 따위 네 가지 또한 없다면

눈과 색과 안팎의 모든 반연과

화합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식
旣壞三和合,

因等四種緣,

眼色內外緣,

和合所生識。

세간의 안과 밖의 여러 가지 법

서로서로 힘으로 생기는 것들

이러한 이치를

모두 어기리.
世閒內外法,

互力以相生,

如是等衆義,

一切皆違反。

유식(唯識)으로 나타남을 알기만 하면

마음에 얻은 바도 떠날 것이니

분별은 또다시 안 나타나

그러한 성품에도 아니 머무네.


若知唯識現,

離於心所得,

分別不現前,

亦不住其性。

그런 때에 반연할 바 떠나 버리면

적연히 마음은 삼매에 들어

세간의 여러 가지 많은 견해들

취할 것 취하는 것 모두 버리고

의지(依支)를 바꾸어 추중(麤重) 떠나니

그 사람의 지혜는 부사의하리.


爾時所緣離,

寂然心正受,

捨於世閒中,

所取能取見,

轉依離麤重,

智慧不思議。
열 가지의 의성신(意成身)은

여러 가지 묘한 것이 장엄하였고

삼계의 왕이 되어

밀엄에 나시리.
十種意成身,

衆妙爲嚴好,

作三界之王,

而生於密嚴。

색과 심(心)과 그리고 심소(心所)

소상응(所相應)과 그리고 무위

안과 밖의 세간에

차별이 없노라고 자세히 보면

이렇게 슬기로운 이들

밀엄국에 오시나니.
色心及心所,

所相應無爲,

於內外世閒,

諦觀無別異,

如是諸智者,

來於密嚴國。

명상(名相)과 그리고 분별

정지(正智)와 그리고 여여(如如)

모니의 삼매에는

체성이 모두 평등하니
名相與分別,

正智及如如,

牟尼三摩地,

體性皆平等。

응당 부처님이 칭찬하시는

밀엄 불토에 가시게 되리다.

세 가지 화합이 무너졌거나

네 가지 인연이 무너졌다면

자기의 종지[自宗]가 굳지 못하여

망령된 여러 가지 분별 같으리.
應當往密嚴,

佛所稱讚土,

若壞三和合,

及以四種緣,

不固於自宗,

同諸妄分別。

악한 습관으로 분별하는 이

저들의 다섯 가지 논리의

비유가 끝끝내 성립 안 되니

모든 뜻은 모두 다 어긴다네.
惡習分別者,

彼之五種論,

譬喩不成立,

諸義皆相違。

저들의 다섯 가지 모두가 잘못

깨달을 지혜의 눈 어지럽히니

비유와 사유(似喩)와 그리고 전도(顚倒)

부전도(不顚倒)에 집착하는 이러한 허망

모든 것이 여기서 무너진다네.
彼五悉成過,

惑亂覺智眼,

著喩及似喩,

顚倒不顚倒,

如是虛妄執。

자기의 종취를 버리고

남의 종법에 의지하니

초제(初際) 따위의 모든 소견은

모두 ‘없어진다’에서 나오네.
一切於此壞,

捨離於自宗,

依止他宗法,

初際等諸見,

皆從滅壞生。

대왕이여, 마땅히 알아 두시오.

유정들이 삼계 안에서

도르래같이 움직여

첫 갈피를 알 수 없나니
大王應當知,

有情在三界,

如輪而運轉,

初際不可得。

여래는 자비한 원력으로

인연 따라 널리 응하시니

밝은 달의 광명이

두루하지 않는 곳 없듯이
如來以悲願,

普應諸有緣,

如淨月光明,

無處不周遍。

그들의 전생 업의 종류를 따라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시나

만일에 열반이 망가졌다면

부처님께 얼마나 공덕 있으랴.

증상(增上)에 세 가지 있고

해탈도 그러합니다.
隨彼先業類,

應機而說法?

若壞於涅槃,

佛有何功利,

增上有三種,

解脫亦復然。
4제와 그리고 신족(神足)

염처(念處)와 무애해(無碍解)

4연(緣)과 무색주(無色住)

근과 역과 그리고 신통
四諦及神足,

念處無礙解,

四緣無色住,

根力及神通。

각지(覺支)와 모든 지위 따위

유위ㆍ무위의 법과

모든 성인들까지

모두 식(識)에서 생긴다.
覺支諸地等,

有爲無爲法,

乃至衆聖人,

皆依識而有。

고법인(苦法忍)ㆍ고법지(苦法智)와

고류인(苦類忍)ㆍ고류지(苦類智)와

집(集)과 지(智)의 네 가지도 그러하며

멸(滅)과 도(道)에 딸린 것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열여섯 가지를

현관(現觀)이라 이름한다.
苦法忍法智,

苦類忍類智,

集智四亦然,

滅道亦如是,

如是十六種,

名之爲現觀。

학인(學人)의 수효는 열이 있나니

제8과 그리고 7반유(返有)와

가가(家家)와 그리고 1왕래(往來)와

1간(間)을 지나서는 멸도할 이와


學人數有十,

第八七返有,

家家一往來,

一閒而滅度。

중반(中般)과 그리고 생반(生般)

유행(有行)과 그리고 무행(無行)

상류(上流)의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그런 뒤에 열반에 들어가는 이
中槃與生般,

有行及無行,

上流於處處,

然後般涅槃。

이러한 여러 가지는

모든 지혜의 품위(品位)이나

관행을 수행하는 이도

하ㆍ중ㆍ상이 같지 않나니

보살의 보다 높은 수행은

공덕이 가장 수승하다.
如是一切種,

諸智之品位,

修行觀行者,

下中上不同,

菩薩增上修,

功德最殊勝。

11과 그리고 12에서

그리고 다시 16에서

선정을 닦는 사람들은

마음이 점점 없어지리니
十一與十二,

及以於十六,

此諸修定者,

復漸滅於心。

없어지는 것은 마음이 아니요

마음과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니

미래의 마음은 이르지 않고

이르지 않았으니 있다고 못해.


所盡非是心,

亦非心共住,

未來心未至,

未至故非有。

마음과 인연이 화합 않으면

이 몸도 경계도 생기지 못해.


제4 선천(禪天)은 원래로 무심한 세계

유인(有因)으론 도저히 해치지 못하네.

유인이란, 모든 식 이른 말이니

의식과 나머지 다섯 가지라.

망상의 덩어리라 깨달음 없어

물결[波浪]같이 이리저리 유전한다.


心緣不和合,

非此非彼生,

第四禪無心,

有因不能害,

有因謂諸識,

意識及五種,

妄想不覺知,

流轉如波浪。

선정을 닦는 이 뇌야를 관(觀)해

능소(能所)의 분별을 모두 떠나면

미묘하여 있는 곳 따로 없고

의지를 바꾸어 불괴(不壞) 얻으리.


定者觀賴耶,

離能所分別,

微妙無所有,

轉依而不壞。

밀엄에 머무시는 이

반달같이 드러나시고

밀엄의 모든 지자(智者)

부처님과 함께 계시네.
住密嚴佛剎,

顯現如月輪,

密嚴諸智者,

與佛常共俱。

항상 선정 속에 계시니

한 맛이 차별이 없노라.

놀라운 관행의 경계는

정력(定力)에서 생기었나니
恒遊定境中,

一味無差別,

難思觀行境,

定力之所生。

그대여, 끊임없이 닦아 보시라.

상응하고 미묘한 여러 선정은

욕계에 여섯 하늘

범마(梵摩)에는 열 두 하늘
王應常修習,

相應微妙定,

欲界有六天,

梵摩復十二。

무색(無色)과 그리고 무상천(無相天)이니

이러한 여러 가지 지위 안에서

밀엄국에 나시는 이는

그 하늘에서 주인이 되리.

밀엄토에 나려는 이는

열 가지의 지혜를 닦으시라.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의

타심(他心)과 세속지(世俗智)와

고ㆍ집ㆍ멸ㆍ도의 지혜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니라.
無色及無想,

一切諸地中,

若生密嚴國,

於彼爲天主,

欲求密嚴土,

應修十種智,

法智及類智,

他心世俗智,

苦集滅道智,

盡智無生智。

그대가 몸을 받으신

사군다라(捨軍怛羅) 족속과

월왕(月王)과 감자(甘遮)족은

종성(種姓)이 모두 평등하고.
仁主汝所生,

捨軍恒羅族,

月王與甘蔗,

種姓而平等。

그러한 여러 가지 족속 안에서

그대의 종족이 제일 높으나

응당히 밀엄국을 구할 것이요

의심하거나 물러날 생각을 마라.


雖於彼族中,

汝族最殊勝,

當求密嚴國,

勿懷疑退心。

염소가 끌려가면서도

헐떡이며 따라가듯

말나(末那)가 몸 안에 있어

요술의 사슴같이 머무네.


如羊被牽拽,

喘懼而前卻,

末那在身中,

似幻鹿而住。

요술로 생겨난 나무의 그림자 같고

강가에 우거진 갈대와 같아

임금이 정원(庭園)에 거니노라.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임 같네.


亦如幻樹影,

河中之葦荻,

如王戲園苑,

運動身支分。

뜻과 그리고 의식(意識)

마음과 마음의 법 함께 있으나

이러한 법은 자성이 없어

무리 구름 같아 실체가 없네.
意及於意識,

心心法共俱,

此法無自性,

猶雲聚非實。

장식(藏識)의 일체 종자(種子)가

습기에게 얽히고 덮혀

깨끗한 마니 구슬이

인연 따라 빛을 내는 듯.
藏識一切種,

習氣所纏覆,

如彼摩尼珠,

隨緣現衆色。
비록 유정의 몸을 받으나

아왕(鵝王)같이 때 묻지 않으면

이러한 결정된 종성은

또한 큰 열반 얻으리.
雖住有情身,

如鵝王無垢,

是決定種性,

亦爲大涅槃。

이름은 형상에서 나고

형상은 인연으로 생기니

갖가지 형상 때문에

분별은 불같이 일고
名從於相生,

相從因緣起,

以諸形相故,

而起於分別。

분별은 두 가지 원인 있으니

외상(外相) 그리고 마음의 습기

제7의 말나식(末那識)도

그러한 줄을 그대들 모두 다 밝히 아시라.


分別由二因,

外想心習氣,

第七末那識,

應知亦復然。

모든 근(根)과 뜻과의 인연이 모여

다섯 가지 알음알이 끌어내거든

심소(心所)와 더불어 어울리나니

머무르는 몸뚱이는 궁전 같아라.


諸根意緣會,

發生於五識,

與心所相應,

住身如宮室。

바른 지혜로 항상 관찰하라.

일체의 모든 세간은

이러한 원인에서

저러한 모든 결과를 내는 줄로.


王智常觀察,

一切諸世閒,

從於如是因,

而生彼諸果。

진여는 이것[正智]과 다르지 않고

모든 법은 서로서로 생겨나는 것

진리와 더불어 어울리는 맘

그 마음만이 이런 이치 밝히 아시리.
眞如非異此,

諸法互相生,

與理相應心,

明了能觀見。

이것은 모든 법의

끝내 뚜렷한 성품

그러나 망계(妄計) 때문에

일체 법은 나지 않는다.
此卽是諸法,

究竟圓成性,

亦爲妄所計,

一切法不生。

모든 법의 성품이 항상 공하여

있는 것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

요술 같고 꿈 같고

건달바(乾達婆)의 성 같고

아지랑이와 모륜(毛輪)과 같고

연기와 구름 따위 같네.
諸法性常空,

非無亦非有,

如幻亦如夢,

及乾闥婆城,

陽焰與毛輪,

煙雲等衆物。

가지가지 모든 형상

명(名)ㆍ구(句)와 문(文)의 몸

이러한 집착을 내어

변계(遍計)의 성품을 이루거니


種種諸形相,

名句及文身,

如是執著生,

成於遍計性。

근(根)ㆍ경(境)ㆍ의(意)가 화합하여서

훈습(薰習)하면 종자가 되고

마음과 다를 것 없는

모든 식은 여기서 나서

서로 원인이 되니

이를 의타기(依他起)라 하네.
根境意和合,

熏習成於種,

與心無別異,

諸識由此生,

資於互因力,

是謂依他起。

스스로 깨칠 지혜[自覺智] 증득하여서

현전법을 즐기어 머무르는 이

이것이 다름 아닌 원성(圓成)이거니

여러 성인 계시는 경계라네.
善證自覺智,

現於法樂住,

是卽說圓成,

衆聖之境界。

부처님과 모든 제자가

이를 깨치면 성인이거니

누구나 이 법을 깨치고 나면

실제(實際)를 똑똑히 뚫어보리라.


佛及諸佛子,

證此名聖人,

若人證斯法,

卽見於實際。

‘죽고 나는 일 이미 다하고

범행도 다 이루었으며

못 다한 일 없고

내생의 몸 아니 받는다’고

소리 높여 외치리.
唱言我生盡,

梵行亦已立,

所作無不成,

不受於後有。

일체의 고통은 해탈하고

일체의 동요(動搖)는 끊어지고

훈습은 모두 다 불사르니

겁해(劫海)가 다하여도 끄떡없으리.


解脫一切苦,

斷滅於動搖,

熏習皆已焚,

劫盡猶不轉。
생무아(生無我)ㆍ법무아(法無我) 두 가지이나

자세히 살피면 모두 공한 것.

무시(無始)부터 오늘까지 쌓아 온

가지가지 그릇된 모든 희론과

끝없는 여러 가지 잘못된 일을

일체를 남김없이 모두 없앴네.


生法二無我,

照見悉皆空,

無始來積集,

種種諸戲論,

無邊衆過患,

一切皆已除。

비유컨대 뜨거운 쇳덩이

식으면 쇠는 그대로

해탈을 얻은 이도 이와 같아서

번뇌가 다하면 청량 얻으리.


譬如熱鐵團,

熱去鐵無損,

如是解脫者,

惑盡得淸涼。

무루의 법계인

밀엄세계에 들면

가장 미묘한 이 땅

아무나 이르지 못해.


入於無漏界,

密嚴之妙國,

此土最微妙,

非餘者所及。

부처님과 보살만의 청정한 살림

삼마지가 나타나면 그것이 진지(眞智).

이 나라에 나고자 하면

훌륭한 유가(瑜伽)를 잘 닦을지라.

그리고 모든 인연들에게

분별하여 널리널리 말하여 주라.


唯佛與菩薩,

淸淨之所居,

三摩地現前,

以此而爲食,

欲生斯剎者,

善習勝瑜伽,

復爲諸有緣,

分別廣開示。

이름은 형상에서 나고

형상은 연기에서 생기니

형상을 따라 분별을 내면

원성성(圓成性)에는 계합치 못해.


名本從相生,

相復從緣起,

從相生分別,

不契圓成性。

근(根)과 경(境)과 병(甁)과 옷(衣) 따위

거짓된 법이 서로 화합했나니

분별이 이에서 생겨

각각 다른 것[別異]을 알아낸다.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일체의 모든 세간은

모두 치암(痴暗)에서 생기니

어리석음[愚冥]이 근본이다.
根境甁衣等,

假法共和合,

分別從此生,

了知而別異,

若動若非動,

一切諸世閒,

皆因癡闇生,

愚冥以爲體。
길고 짧은 모든 현상

소리와 그리고 냄새

달고 쓰고 굳고 무른[滑] 것

의식을 인하여 반연된다.


短長等諸色,

音聲與香界,

甘苦堅滑等,

意識因所緣。

선하고 악한 일

유위와 무위법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혜의 경계.

생각생각 쉬지 않고 변해 가는 일

모두가 식을 인해 생기는 까닭.


所有諸善惡,

有爲無爲法,

乃至於涅槃,

斯爲智之境,

念念常遷轉,

皆因識以生。

말나가 장식(藏識)을 반연하기

자석이 쇠를 당기듯

한 뱀에 두 머리같이

각각 제 업을 짓네.
末那緣藏識,

如磁石吸鐵,

如蛇有二頭,

各別爲其業。

물들여진 의(意)도 그러하여서

아뢰야를 집취(執取)하고는

아(我)의 사업을 짓고

아소(我所)를 자라게 하네.


染意亦如是,

執取阿賴耶,

能爲我事業,

增長於我所。

어느 때는 의식(意識)과 함께

인(因)이 되어 서로 바뀌니

몸으론 따뜻한 촉감을 내고

운동하여 갖가지 업을 짓나니.


復與意識俱,

爲因而轉謝,

於身生煖觸,

運動作諸業。

음식과 의복

무엇이나 수용하며

춤을 추고 노래도 하여

갖가지로 즐거워해.
飮食與衣裳,

隨物而受用,

騰躍或歌舞,

種種自嬉遊。

이렇듯 유정들이 몸을 지님은

모두가 말나의 공력인 것이

밤하늘에 불 바퀴와 허공에 터럭

맑은 하늘 건달바성 같다오.
持諸有情身,

皆由意功力,

如火輪垂髮,

乾闥婆之城。

오직 내 마음임을 끝내 모르고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키니

몸매와 기세간(器世間)은 그네와 같이

힘없고 견고치 못해라.


不了唯自心,

妄起諸分別,

身相器世閒,

如動鞦韆勢,

無力不堅固。

분별도 그러한 것이

분별은 의지할 곳 없으니

자기의 경계[自境]에만 시행되는 것.


別亦復然,

分別無所依,

但行於自境。

비유컨대 거울 속의 그림자

식의 종자 움직여 보게 되나니

어리석은 지아비 이에 혹하나

지혜 있는 모든 사람 할 짓 아니니.
譬如鏡中像,

識種動而見,

愚夫此迷惑,

非諸明智者。

그대여, 마땅히 알라.

이러한 세 가지 허망한 일은

모두가 식에서 나타났나니

이런 것 떠난 곳이 원성실이니.
仁主應當知,

此三皆識現,

於斯遠離處,

是卽圓成實。
지진(持進) 등 보살과

성(聖) 목건련(目乾連)이

좋은 곳을 찾아서 두루 다니니

백천만억 세계에
持進等菩薩,

及聖目乾連,

尋聲與遍觀,

百千萬億剎。

가지가지 보배로 장엄하여

아름답기 이를 데 없으나

그러한 묘한 경계에서도

밀엄이 가장 수승하였네.
種種寶嚴飾,

綺麗無等雙,

於彼微妙境,

密嚴最殊勝。

극락(極樂)과 묘희(妙喜) 세계와

아랫 쪽 구지(俱胝) 나라의

모든 부처님들도

모두 다 이 세계를 찬탄하였네.
極樂妙喜剎,

下方俱胝國,

一切諸世尊,

皆讚如斯土。

‘마침과 시초가 없고

위덕은 자연히 교화되며

옛부터 부처님 사시던 곳이며

삼계를 뛰어났다’ 하였네.


謂無有終始,

威德化自然,

本昔佛所居,

超出於三界。

풍부하고 즐거워 집수(執受)치 않고

적연(寂然)하여 스스로 무위가 되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공덕이 모두 이루어졌다.
豐樂非執受,

寂靜自無爲,

自利及利他,

功業悉成滿。

욕계에서는 바라지 말고

성불하여 부처님 일 이룰 것과

밀엄국에 가서

무상각(無上覺)을 깨달아라.
不於欲界中,

成佛作佛事,

要往密嚴土,

證於無上覺。

구지(俱胝)의 모든 부처님

욕계에서 불사를 하시려면

먼저 이 나라에서 변화하여

무량ㆍ억이 되시나니.
俱胝諸世尊,

欲中施佛事,

先從於此國,

化爲無量億。

바른 선정과 항상 상응하시고

신통으로 유희하시어

모든 국토에 두루하심이

달빛을 못 보는 곳이 없는 듯.
正定常相應,

神通以遊戲,

遍於諸國土,

如月無不見。

모든 중생의 근기에 따라

알맞은 것으로 이익 주시네.

『십지경』ㆍ『화엄경』과 대수(大樹)와 신통

승만(勝鬘)과 모든 경 이 경에서 나왔네.


隨諸衆生類,

所應而化益,

十地花嚴等,

大樹與神通,

勝鬘及餘經,

皆從此經出。

이와 같이 밀엄경은

일체의 경보다 수승하니

그대들과 모든 왕은

마땅히 공경을 다하라.


如是密嚴經,

一切經中勝,

仁主及諸王,

宜應盡恭敬。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무상천 따위의 천궁보다도

여래는 아득히 뛰어나셔서

밀엄에 의지하여 머무시나니.


欲色無色界,

無想等天宮,

如來迥已超,

而依密嚴住。
이 나라의 모든 궁전은

연꽃처럼 아름다운 것

이는 모든 여래의

맑은 지혜의 모습이시니.
此土諸宮殿,

如蓮被衆飾,

是一切如來,

淨智之妙相。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

항상 그 안에 계시어

세존께서는 언제나 선(禪)에 드시니

적정함이 극진하여 위가 없더라.


佛及諸菩薩,

常在於其中,

世尊恒住禪,

寂靜最無上。

자기의 부사의한 선정으로

여러 가지의 묘한 색을 나타내시니

색상이 한없이 아름다운 것

다른 이는 볼 수 없더니.
依自難思定,

現於衆妙色,

色相無有邊,

非餘所能見。

극락의 장엄한 나라

세존은 무량수(無量壽)이시니

관행을 닦는 여러 보살도

색상은 모두 다 그러하였다.
極樂莊嚴國,

世尊無量壽,

諸修觀行者,

色相皆亦然。

어느 때 천중천(天中天)을 우러러보니

혁혁히 모든 광채 머금으시어

위를 보니 황금색 노란빛이고

명월의 보름달 밝은 빛이네.


或見天中天,

赫奕含衆彩,

瞻蔔雌黃色,

眞金明月光。

공작의 목과 연꽃과 같고

상사자(相思子)의 열매의 무더기 같고

무지개와 번개와 산호빛 같아.

어느 때는 가난하고 야윈 몸 되며

어느 때는 거친 삼베옷 입고

어느 때는 풀밭에 잠이 드시고

어느 때는 피어나는 연꽃 위에서

1천 개의 해와 같이 빛을 내시네.
孔雀頸如蓮,

相思子之聚,

虹電珊瑚色,

或現淸羸身,

或著芻摩衣,

或寢草茅等,

或處蓮華上,

猶如千日光。

모든 보살을 보니

용트림의 상투로 머리를 꾸미고

금강과 제청(帝靑)의 보배로

장엄하여 보관을 만드셨고


或見諸菩薩,

頂飾盤龍髻,

金剛帝靑寶,

莊嚴爲寶冠。

어느 때는 윤당(輪幢)과 문채와

물고기의 모습을 보여

어느 때는 빛나고 고운 빛깔이

무지개가 뻗친 듯 하늘을 치고
或見輪幢文,

魚商佉等相,

或見光麗色,

如蜺而拖空。

어느 때는 수미산을 들어다

손바닥에 얹어 놓고

어느 때는 바다 물을 옮겨다

소 발자국에 넣어 두고.
或以須彌山,

置之於掌內,

或持大海水,

安於牛迹中。

어느 때는 인간의 왕이 되어서

면류복(冕旒服)을 갖춰 입고 마루에 서니

보좌들이 모두가 공경히 하고

다 같이 나라 일을 보살피시고.
或現作人王,

冕服當軒宇,

輔佐皆恭敬,

共宣於國化。

어느 때는 밀엄장에서

적정한 정(定)을 닦는 행자 되어서

자기의 깨친 바를 말씀하시니

부처님의 아시는 법 빛이 난다오.

어느 때는 또다시 전의(轉依)를 얻어

맘과 지혜 모두 다 해탈하여서

자재한 삼마지 요술과 같이

걸림 없는 몸매를 말씀하시고
或現密嚴場,

寂靜修定者,

說於自證境,

光佛所知法;

或說得轉依,

心慧皆解脫,

自在三摩地,

如幻無礙身。

어느 때는 경계에 물들지 않고

여러 가지 취착업(取着業) 끊어버려서

지혜로써 망견 수풀 태워 버리니

여러 가지 뒷몸[後有]을 안 받으시네.

비유컨대 기름불 심지 다하면

등불이 꺼지는 듯 열반을 얻네.


或現境不染,

斷諸取著業,

以智燒見薪,

不受於諸有,

譬如膏炷盡,

燈滅而涅槃。

어느 때는 모든 바라밀 닦아

대회를 열어 무차(無遮)를 베풀되

계율을 지니고 고행을 닦고

가지가지 의식법칙 나타내시네.


或示修諸度,

大會施無遮,

持戒苦行等,

種種諸儀則。

극락 장엄국에는

사람이 태로 낳지 않고

미묘한 금빛 몸이

빛나서 맑고 둥글어.
極樂莊嚴國,

人非胎藏生,

微妙金色身,

光明淨圓滿。

그들의 경계

모두 유가(瑜伽)를 갖추었으나

밀엄에 비기면

백 분에 하나도 못돼.
彼衆之境界,

皆悉具瑜伽,

若比於密嚴,

百分不及一。

극락세계의 사람들은

자연히 생각대로 먹고

모니(牟尼)는 더욱 자재하여서

선정으로 감로의 맛을 삼아.


極樂界中人,

自然隨念食,

牟尼勝自在,

定爲甘露味。

갖가지 보배 나무의 숲

그 밑에 노닐고 쉬면

금은 모래같이 땅 위를 덮어

훌륭한 세계임을 드러내고


種種寶樹林,

遊憩於其下,

金沙布其地,

顯現殊勝剎。
맑고 묘한 보배의 연꽃

공덕수 연못 위에 피니

이렇게 수승한 경계도

비유를 못해.
淨妙之寶蓮,

開敷功德水,

如是殊勝境,

不可得爲喩。

그들은 모두 연화에 태어나서

무량수를 공경하옵고

삼마지를 잘 닦아서

부처님의 공덕을 애락(愛樂)하네.


彼皆蓮華生,

恭敬無量壽,

善修三摩地,

愛樂佛功德。

부지런히 정진[事精]하여 회향하는 이

모두 다 그 나라에 태어나리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장엄하여서

맑은 거울에 티끌이 없네.


專精迴向者,

悉皆生彼國,

衆相以莊嚴,

皎鏡無塵垢。

금강장 말을 마치고

스스로 몸을 나타내되

손가락 마디와 같고

겨자의 씨와 같고
金剛藏說已,

自現於己身,

或如於指節,

或復如芥子。

가늘기가 터럭 끝의

백 분의 하나도 되고

혹은 선서(善逝)의 몸과

성문과 연각의 몸과
或細如毫端,

百分之一分,

或現善逝身,

聲聞與緣覺。

여러 가지 현상과

그 밖의 다른 것

가지가지 나타나

마땅함을 따라서
衆色及餘類,

乃至種種形,

各隨其所宜。

모든 법을 말씀하시되

‘보살들이 모든 지위에 들어

5법ㆍ3자성과

8식ㆍ2무아를 깨쳐
而說於諸法,

或說於菩薩,

入諸地了知,

五法三自性,

八識二無我。

요술 같은 선정과

뜻대로 이루어진 몸과

자재한 모든 신통과

10력과 4무외를 얻어
得於如幻定,

隨意所成身,

自在諸神通,

十力四無畏。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며

청정한 소의(所依)를 얻어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

무루의 온(蘊)ㆍ계(界)에서

영원히 모든 변역(變易)을 떠나서

적연히 상주(常主)한다’ 하며
住於不退轉,

得淨之所依,

入於佛地中,

無漏之蘊界,

永離餘變易,

寂然而常住。

혹은 말하되 ‘여러 보살이

어질고 묘하게 노니시는 일

꿈속의 형상이며 물속의 달

유기(瑜祇)의 수행도
或說於菩薩,

善妙而遊履,

猶夢像水月,

瑜祇所行道。

수릉엄의 선정을 얻고

열 가지 요술 같은 몸과

열 가지 무진한 원이 뚜렷해지면

등정각을 깨달아 이루어


得首楞嚴定,

十種如幻身,

十無盡願圓,

證成等正覺。
묘련화 자리에 앉으니

상호는 심히 단엄하고

무량한 불자들은

공경하며 둘러싼다’고.
據妙蓮花座,

相好甚端嚴,

無量諸佛子,

恭敬而圍遶。

어느 때는 말하되 ‘모든 보살이

원력으로 모든 형상 나타내시고

시방세계에 두루 다니며

항하사 수의 부처님을 고루 섬기니


或說諸菩薩,

願力現衆形,

遍遊於十方,

歷事恒沙佛。

이러한 보살들

그 몸매 심히 미묘해

출입이 자재하시니

유(有)ㆍ무(無)ㆍ중(中)에 머물지 않아.


是諸菩薩等,

其身甚微妙,

出入常自在,

不住有無中。

비유컨대 하늘의 신선들이나

그리고 여러 가지 건달바들이

묘고(妙高)에 의지하여 살고 있거나

혹은 허공에 살고 있으나

땅으로 다니는 모든 유정은

그들을 대하여도 보지 못하리.


譬如天神仙,

及諸健達縛,

依彼妙高住,

或處於虛空,

地行諸有情,

對之而不見。

여러 가지 보살들도 그러하여서

형상을 나타내는 일 그와 같으니

관행을 닦는 이가 아니고서는

그 몸 모양을 보는 이 없으리라’고.
如是諸菩薩,

現形亦復然,

非修觀行人,

無能睹之者。

혹은 말하되 ‘모든 보살이

훌륭한 정려를 얻고

곳곳에 수생(受生)함을 나타내시고

무여세계(無餘世界) 드심을 보이신다’고.


或說諸菩薩,

得於勝靜慮,

處處現受生,

示入無餘界。

혹은 말하되 ‘모든 보살이

능히 선정의 힘으로

자재하게 뜻을 굴리어

진실한 곳에는 머물지 않아.


或說諸菩薩,

能以於定力,

自在轉所依,

不住眞實際。
무량한 유정계 따라

차별된 몸 나타내니

몸은 비록 가지가지나

그 마음은 하나요, 평등한 것이

마치 땅에 물줄기 같고

또한 해ㆍ달과도 같다’고.
無量有情處,

隨現差別身,

身雖種種殊,

其心一平等,

猶如於地水,

亦如於日月。

혹은 말하되 ‘모든 보살이

항상 대비심(大悲心)으로

모든 유정을 불쌍히 여겨

생사에 처하여 윤회하고도


或說諸菩薩,

常以大悲心,

憐愍諸有情,

輪迴處生死。

뛰어다니면서 설움도 받고

병들고 가난하여 괴로워하고

하천(下賤)한 계급이나 초라한 모습

편안히 여기고 근심치 않고.


跉跰受窮獨,

貧病衆苦煎,

下賤與形殘,

安之不憂惱。

벌이 배 위에 앉아

넓은 바다에 떠서

물길을 따라 오고 가기

잠깐에도 몇 만리 가듯.
如蜂處舶上,

飄然大海中,

沿泝而往來,

須臾數萬里。

그들을 위하여 비아법(非我法)을 말하고

생사의 빠름과 무상함을 말하여

그들의 목숨이 찰나를 쉬지 않고

없어져 가는 줄을 알게 한다’고.
爲說非我法,

生死速無常,

令其知滅壞,

剎那蹔不住。

혹은 말하되 ‘부처님들과

그리고 모든 보살들께서

분명히 모든 유정이

갈애(渴愛)에 취하여 있고
或說於諸佛,

及以諸菩薩,

明見衆有情,

醉在於渴愛。

분별하는 괴로움에 쪼들려서

모양 없는 법들을

망령되게 갖가지 모양을 취해

능취ㆍ소취를 계교하니
爲分別苦逼,

於無於法中,

妄取種種相,

計著能所取。

마음은 항상 얽매이고

해탈을 얻지 못하여

죽고 사는 바다에 빠져

헤매기를 끊일 때 없고

비천하고 외롭고 헐벗어

오가는 데 의지할 바가 없으니.

비유컨대 큰 바다에

거미줄은 머물지 못하지만

모든 불보살은

배 안에 있는 이 같아서
心恒被縲紲,

不能得解脫,

溺生死海中,

馳蕩無休息,

貧賤而孤露,

往來無所依,

譬如大海中,

蛛蝥網難住,

諸佛及菩薩,

如彼住船者。

모든 유정을 어여삐 여겨

생사의 험한 곳에서 운반해 내되

그들의 약간(若干)의 종류에 따라

차별된 몸을 나타내시어

보시ㆍ지계 등의 문과

가지가지 승행(勝行)을 말씀하신다’고.


普憐諸有情,

運出生死難,

隨其若干類,

爲現差別身,

說施戒等門,

種種諸勝行。

大乘密嚴經卷上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당나라 대종(代宗, 726~779) 황제이다. 이름은 이예(李豫)이고, 시호는 예문효무황제(睿文孝武皇帝)이다. 현종(玄宗)의 손자이자 숙종(肅宗)의 큰아
들로 안사(安史)의 난(亂) 때 공을 세웠다. 762년 즉위하였으나, 세력이 커진 절도사(節度使) 등의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여서, 당나라는 점차 쇠망의
길로 접어든다.
2) 권실(權實) : 권은 일시적 방편을, 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을 가리킨다.
3) 농고(聾瞽) : 귀머거리와 소경을 말하는 데 곧 무지함을 의미한다.
4) 원문에는 피(柀)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피(披)로 고쳐 번역하였다.
5) 밀엄세계(密嚴世界) : 부처나 보살이 머무는 번뇌가 없는 청정한 세계를 말한다. 극락세계와 같은 말이다.
6) 초월(楚越) :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나라들이다. 초(楚)는 양자강 중류 무창(武昌) 지방에, 월(越)은 동쪽 해안의 회계(會稽) 지방에 있었다.
7) 밀엄(密嚴) :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또는 밀엄경(密嚴經)이라 한다. 8세기 중엽 인도 출신의 학승 불공(不空)이 번역하였다. 총 3권 8품으로 구성
된 이 경은 부처가 될 성품을 의미하는 여래장과 여러 가지 마음작용의 근원과 근본 의식이 된다는 아뢰야식과 밀엄정토에 대해 말하면서, 여래장
은 곧 아뢰야식이며 곧 밀엄정토라는 것을 설법하고 있다. 또 다른 역본으로는 지바하라의 「대승밀엄경」(3권)이 있다.
8) 삼유(三有) : 모든 중생들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탐욕이 들끓는 욕유(慾有), 탐욕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형상에 얽매여
있는 색유(色有), 형상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색유(無色有)를 가리킨다. 이것을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삼계(三界)라고도
한다.
9) 극미(極微) : 물질을 가장 미세한 점까지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10) 식(識) :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적 기관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여섯
번째의 식(識)을 제6 의식이라고 한다. 전5식은 자체로서 판단·유추·비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관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 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11) 뢰야(賴耶) :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불교 유심론(唯心論)에서 말하는 인간의 근본 의식(意識)으로, 과거의 인식 · 행위 · 경험 · 학습 등에 의해 형
성된 인상(印象) · 잠재력 등, 모든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 의식을 말한다.
12) 자각(自覺) : 스스로 미망을 끊고 정법(正法)을 깨달아 득도하는 일을 말한다.
13) 인개(鱗介) : 비늘 가진 물고기와 딱딱한 껍질을 지닌 수중 생물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14) 상(像) :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의 교법 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한, 정법(正法)⋅상법(像法)⋅계법(季法)의 삼시(三時) 중 상법을 말한다. 상법 시기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이에 따른 수행자, 곧 교법과 수행은 있으나, 깨달음을 증득⋅증과하는 이는 없다고 한다.
15) 주즙(舟楫) : 배와 노를 말하는 데, 여기서는 애욕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16) 녹야(鹿野) :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설법한 곳인 녹야원(鹿野苑)을 가리킨다.
17) 마명(馬鳴) : 인도의 학승으로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이다. 아슈바고샤라는 말의 뜻을 번역하여 한역 경전에서는 마명(馬鳴)
으로 불린다.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로 유명하다.
18) 팔전(八轉) : 팔전성(八轉聲)이라고도 한다. 범어(梵语) 중에 명사⋅대명사⋅형용사의 어미에서 생기는 여덟 가지 변화를 가리킨다.
19) 대갱(大羹) : 제사상에 올리는 고깃국으로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의 육류와 무를 반듯하게 썰어 함께 끓인 국으로 양념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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