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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자

혜정법사․정종법사 법문
연지해회 편집부 번역

연지해회
아미타부처님_ 淨仁 任仁赫 作
연꽃 _ 淨仁 任仁赫 作(부채에 그림)
아미타불 접인도
아미타부처님 _ 淨仁 任仁赫 作(부채에 그림)
선도대사님
선도대사께서는 아미타불의 화신이시라.
정토종을 창립하시어 고금의 그릇됨을 바로 잡으셨네.
미타의 본원인 칭명염불로 범부가 극락(실보토)에 들어가니
평생의 업이 이루어져 현생에 불퇴전의 지위에 오르네.
목차

혜정법사와 정종법사에 대한 소개 9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4
1 아미타불은 본원을 성취하신 부처님이시다 17
2 아미타불은 중생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이시다 53
3 아미타불은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 부처님이시다 63
4 아미타불은 임종 때 맞이하러 오시는 부처님이시다 72
5 질문과 대답 81
염불실용문답 117
1. 현세의 이익에 관하여 118
2. 염불왕생에 관하여 136
3. 임종조념에 관하여 157
4. 일상생활에서의 마음가짐에 관하여 196
5. 의심되고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한 종합적 해답 232
부록_ 정토에 관한 의문과 대답 273
1. 일향전념과 제행회향 274
2. 염불왕생에 품위가 있는가? 284
3. ‘보토와 화토’에 대한 질문에 답함 (1) 303
4. ‘보토와 화토’에 대한 질문에 거듭 답함 (2) 314
5. 삼복과 염불을 논함 321
법보시 시주질
정토종 종지 365
혜정법사와 정종법사에 대한 소개

혜정법사
혜정법사慧净法师는 1950년 대만의 남시南市에서 태어났
다. 어릴 때 서당에서 교육을 받아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깊이 기초를 닦았다. 성년이 된 이후로는 불교에 귀의하여
즐겨 경을 독송하고 염불하기를 좋아했다.
1977년 불광산의 성운星雲대사에게 출가했는데, 법명은
심엄心严, 별호는 혜정이라 했다. 1985년 봄에 성운대사에게
청하여 홀로 자주산自住山에 가서 3년간 수행했다. 이때 염불
을 위주로 하였으며, 인광대사문초印光大师文钞를 읽고 정토
에 관한 글을 저술했다. 또한 일본의 법연대사가 쓴 선택본원
염불집选择本愿念佛集을 연구함으로써, 정토법문은 마땅히
선도대사의 가르침이 가장 순수하고 바르다는 것을 알았다.
1988 년 가을부터는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오오타니 대학大
谷大學으로 유학하여 선도대사 계열의 정토사상을 연구하였
다. 1993년 여름에 타이완으로 돌아와 선도대사의 정토법문
을 펴기 시작했으며, 수차례 홍콩, 마카오, 중국과 뉴질랜드
등지에서 홍법하였다.
2003년 이후로 타이베이 상산象山의 수행 지구에서 주석했
는데, 이후로 상산은 하루 종일 염불하는 ‘미타촌彌陀村’이
되어갔으며 대만 내에서 ‘정토종 선도류’의 총본산이 되었다.
혜정법사의 인품은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우며, 꾸밈이 없고
검소하며, 하루 종일 염불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는 스님이
시다. 그분은 자신의 전 생애를 정토법문에 투신했는데, 그러
한 인품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사람들에게 비할 바
없이 큰 감화력을 주고 있다.
혜정법사의 저술은 선도대사전집, 법연상인전집, 염
불감응록 등 20여 가지의 책이 있는데, 근본 종지는 모두
선도대사께서 가르치는, 아미타불의 구제하심을 믿고, 오로
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또한 혜정법사는 2013년 두 차례나 한국에 초청받아 와서
한국의 정토염불행자들을 위한 법문을 해주었다.
정종법사

정종淨宗법사는 1966년 안휘성 선성宣城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에 중국 민간항공 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에 불교
에 귀의하였는데, 1994년에 공직을 사퇴하고 구화산의 인덕
仁德 노화상께 출가하였다. 1997년에는 안휘성 봉양 용흥사
龍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는 안휘
성 선성에 위치한 홍원사弘願寺를 재건해오고 있다. 이리하여
홍원사는 중국에서 선도대사의 순수정토를 선양하는 대표적
인 도량이 되었다.
정종법사는 1996년에 혜정법사를 만나 선도대사의 정토법
문을 들음으로써 크게 감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후로
지금껏 한결같은 마음으로 경론을 인쇄하고 법문을 하는 등
선도대사의 정토법문을 널리 펴고 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혜정법사님 법문
원왕생 번역
18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년 10월 하문廈門에서의 법문
2006
혜정慧淨법사

여러 법사님들과 연우님들, 나무아미타불!


저는 대만에서 왔으며, 어릴 때부터 대만에서 태어
나고 자랐기에 역시 민남어(闽南话: 복건성 남부와 광동
성 동부 및 대만에서 쓰는 방언)로 말합니다. 이곳 하문
지방은 제가 일찍이 와보고 싶어 했던 곳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선조들이 복건 장주漳州와 하문 일대
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조들이 뿌리내렸던
고향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것이, 몹시 감회가 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민남어
를 알아들을 수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서로 간에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9

친밀하고 느긋하며 자유롭고 활기찬 방식으로 우리


들의 공통 관심사인 불법을 논의할 수 있기를 희망합
니다.
불법은 매우 광대하여 이른바 팔만사천법문, 심지
어 한량없는 법문이 있습니다. 법문이 너무나 방대하
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불법이 중국에 전해진 뒤에
조사님들은 이를 여덟 가지 큰 종파(八大宗派)로 귀결
시키고자 했습니다. 이 팔대 종파 가운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보편화되어 있고, 오래토록 쇠퇴하지
않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늘 새로워지는 것이 바로
정토법문입니다.
정토법문, 다시 말해 정토종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법문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교리
를 모른다 하더라도 한 구절 ‘아미타불’ 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출가인과 마주치면 ‘아미타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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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줄도 알며, 설령 불교 교리를 전혀 모르는 비불


교도라 해도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나 출가 대중을
만나면 모두 ‘아미타불’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은 불교 안팎의 모든 사람들
에게 익숙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어떠한 부처님이십니까? (이에
대해) 오늘 저는 사(事: 현실)와 이(理: 이치)의 두 방면
으로 구별하여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미타불은 본원本願을 성취하신 부처님이시다.
2. 아미타불은 중생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이시다.
3. 아미타불은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 부처님이
시다.
4. 아미타불은 임종 때 맞이하러 오시는 부처님이
시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21

1. 아미타불은 본원을 성취하신 부처님

이시다

아미타불이 나무아미타불이 되신 까닭은 그 부처님


의 본원本願 때문입니다. 만약 아미타불께서 본원이
없으셨다면 이처럼 위대한, 능히 우리들을 구제하실
수 있는 부처님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한 분 한
분의 부처님들이 성불하신 까닭은 각 부처님마다의
본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미타불의 본원은
다른 모든 부처님들과는 차별이 있으시니, 이는 시방
의 모든 부처님들에게는 없는 것이자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을 뛰어넘는 본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까
닭에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뒤에, 당신의 본원에
22

의하여 성취하신 큰 힘은 특별히 수승하고 광대하며


넓고 깊습입니다.
본원’은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으로 나눌 수 있습니

다. 본원에서의 ‘본本’ 역시 ‘인본(因本: 인지因地의 본원)’
과 ‘근본(根本: 주요한 본원)’의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본원’이란 두 글자부터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은 성불하시기 전에 모두가
반드시 먼저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발해야 합니다. 그
런 까닭에 불문의 제자들은 매일 부처님 앞에서 ‘참회
문懺悔文’을 읽으면서 자기의 죄업을 참회함과 동시에
보리심을 발發합니다. 발보리심發菩提心이란 사실상
바로 이 사홍서원이라는 게송을 소리 내어 읽는 것입
니다.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길 서원합니다. 다함없
는 번뇌를 끊기를 서원합니다. 한량없는 법문을 배우
기를 서원합니다. 위없는 불도를 이루기를 서원합니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23

다(眾生無邊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道無上誓


願成).” 이것은 모든 부처님들이 똑같이 발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홍서원’은 ‘총원’에 속하며, 한
분 한 분의 보살님과 부처님에게 다 통합니다.
그러나 ‘별원’에 있어서는 각자 같지가 않습니다.
예컨대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500가지 원願을 발하
셨고, 약사불께는 12가지 원이 있으시고, 아미타불
께는 48대원이 있으신 것 등입니다.
무량수경 중에 아미타불께서 “나는 세상을 초월

하는 원을 세우리라(我建超世願)”고 말씀하신 뜻은, 아
미타불의 그 당시 발원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발원
을 뛰어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에게는 없는 원이라
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아미타불을 소개하실
때에도 “모든 부처님을 뛰어넘는 발원(發願逾諸佛)”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아미타불께서 발하
신 48원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의 원을 초월하
24

는 원이라는 것입니다.
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불께서 발원하신 시간이 얼

마나 오래되었다고 나옵니까? 경에서 (석가모니불께


서) 말씀하시길 “5겁 동안이나 충분하게 불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할 행을 사유하여 선택하셨느니
라(具足五劫, 思惟攝取, 莊嚴佛國, 清淨之行)”고 하셨습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어떻게 하면 아주 간단하고 쉽게
시방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방중
생들이 한 번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빨리 성불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상세하게 고려하시고 계획
하셨는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아미타불
께서는 5겁이나 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사유하셨던 것입니다.
발원을 한 뒤에, 만약 계속하여 공덕을 쌓기 위해
육도만행六度萬行도 닦고 널리 무량한 법문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런 발원은 헛된 발원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또 얼마나 오랜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25

시간 동안 공덕을 쌓으셨겠습니까? 경(무량수경)에


서 말씀하시기를 “불가사의한 조재영겁의 세월 동안
보살의 무량한 덕행을 쌓고 심으셨다(於不可思議兆載永
劫, 積植菩薩無量德行)”고 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한 조재
영겁이라는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거치면서 끊임없
이 공덕을 쌓으신 것입니다.
‘조兆’와 ‘재載’라는 이 두 가지 숫자는 모두 매우
큰 숫자입니다. ‘조’는 그런대로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지만, ‘재’에 이르면 중국의 숫자 중에서 ‘재’보다
더 큰 숫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조재’ 이외에
또한 ‘영永’이 있는데, 이 숫자라면 더욱 깁니다. ‘영’
은 영원하다는 것으로 시간을 초월합니다. ‘겁劫’은
천문학적인 숫자이지만 그래도 헤아릴 수는 있습니
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조재영겁’에서 ‘불가사의’라
는 네 글자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불가사
의’는 말할 수도 없고 일컬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이처럼
26

오랜 시간 동안 보살의 무량한 덕행을 쌓으시고 나서


야 비로소 당신이 세우신 48대원을 완성할 수 있으셨
는데, 모든 원 하나 하나가 진실로 원만하게 구족했습
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이러한 48대원을 완성하시기 위
하여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거치셨는데, 이 기나긴
시간 동안 다른 부처님들은 인지(因地: 성불을 위해
수행하는 원인자리)에서부터 수행을 시작하여 불과를
증득하시고, 다시 과지(果地: 성불을 완성한 결과자리)에
서 되돌아와 널리 중생을 제도하시고는 열반에 드셨
지만, 아미타불께서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수행을
하고 계셨고, 여전히 중생을 위하여 공덕을 쌓고
계셨습니다. 왜 48대원을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이나
사유하셨을까요? 왜 48대원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
시 그렇게 긴 시간(수행)이 필요하셨을까요? 이것은
48대원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근본
원’을 철저하게 성취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27

인지因地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인지에서 세운 48


대원은 하나하나의 원이 모두 인지의 본원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원이 있으니, 바로 제18
원입니다. 무엇 때문에 정토법문에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말할 때엔 전부 제18원을 지목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48원 가운데에 만약 제18원이 없다면 48
원은 귀하고 수승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며,
오직 제18원이 있어야 비로소 아미타불의 48원의
귀중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제18원은 시방세계 중생들을 구제해야 할 원입니
다. 시방세계 중생의 범위는 한없이 넓어, 이른바
‘십법계十法界’의 중생이 있습니다. ‘십법계’는 사성법
계(四聖法界: 불 보살 연각 성문)와 여섯 가지 범부법계
(凡夫法界: 천도 아수라도 인도 지옥 아귀 축생)를 포함
합니다. 사성법계는 이미 범부를 초월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超凡入聖)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생사윤
회를 하지 않는 성자들이며, 다른 여섯 가지 법계는
28

아직도 육도 가운데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 범부들


입니다. 이 십법계 가운데서 불법계를 제외한 나머지
구법계의 유정(중생)들은 모두가 다 아미타불의 구제
의 대상이니, 이것이 바로 제18원이 구제하는 시방
세계 중생입니다.
제18원은 정토법문의 근본입니다. 단지 아미타불
의 본원일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의
본마음(本懷)이기도 하며, 심지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장하시고 칭찬하시고 호념하시는
원이기도 합니다.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래 세상에 불도가 멸하고 경전이 다 없어진다

해도,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가엽게 여겨 특별히
이 경전만은 백 년 동안 세상에 더 머물게 할 것이니,
그 중생들 가운데 이 경전을 만나는 이는 원하는
바에 따라서 모두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다(當來之世
經道滅盡 我以慈悲哀湣 特留此經 止住百歲 其有眾生 值斯經者 隨意所願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29

皆可得度).”

석가모니부처님의 이 말씀은, 제18원의 아미타불


의 구제 법문이 영원히 우주 가운데 보존되어, 설령
이전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다음의 부처님께
서 아직 인간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법문이 영원히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시겠다
는 것입니다.
제18원은 모두 서른여섯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서른여섯 글자를 여러분들이 외울 수 있으면 되도
록 외우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이 법문의
근본으로 가히 아미타불의 생명이요, 또한 우리들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8원이 있
었기 때문에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되실 수 있었으
며, 제18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금생에 생사윤
회에서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제18원의 서른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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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우리들이 경건하고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번 독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기쁘게 믿고,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바라며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서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다
만 오역죄를 범하는 사람이나 정법을 비방하는 사
람은 제외합니다(設我得佛 十方眾生 至心信樂 欲生我國 乃至
十念 若不生者 不取正覺 唯除五逆 誹謗正法).”

합장을 푸십시오.
이 서른여섯 글자는 아미타불께서 당신 자신이 품
고 계신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신(自我發露) 중요한 내
용으로서, 당신의 성불은 시방세계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시방세
계의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여 한결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31

같이 ‘나무아미타불’이란 만덕홍명을 부르기만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이 중생이 금생에 반드시 극락세계
에 왕생하도록 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라도 아미타불께서 그 중생을 극
락세계로 왕생토록 하지 못한다면 아미타불께서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
면, 만약 왕생하지 못하는 중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의 능력이 아직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
고, 아직 성불의 자격이 없는 것이기에, 모든 중생들
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더욱더
수행을 해야 하고, 더욱더 공덕을 쌓아야만 비로소
성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다른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그나
마 쉬운 편입니다. 삼대아승지겁이면 충분하니까요.
이른바 “삼대아승지겁 동안 복과 지혜를 닦고, 백겁
동안 상호를 장엄한다(三祇修福慧 百劫種相好)”는 말이
32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미타불이라 하는 이 부처님께


서 조재영겁의 시간을 거치면서 보살의 무량한 공덕
을 쌓아 비로소 성불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께서
보편적이면서도 간편하고 쉽게 모든 중생을 구제하
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구제 대상은 ‘시방세계의 중생’입니다.
우리들 사바세계에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탐진
치)이 특별히 왕성하고 강하며, 죄업이 유난히 깊고
무거운 범부들도 전부 아미타불께서 구제하셔야 할
대상입니다. 시방세계 중생에는 성인과 범부가 포함
되어 있고, 범부에는 선인과 악인이 포함되어 있으
며, 비지옥의 중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아미타불의 구제는 분별이 없고 평등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인과 범부, 선인과 악인,
출가자와 재가자, 수행을 잘하는 이나 못하는 이나,
마음이 청정한 이나 청정하지 못한 이나 관계없이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33

모두가 다 아미타불께서 구제하셔야 하는 대상입니


다. 어느 중생이든 극락에 왕생하기를 원하고, 아미
타불의 명호를 칭념하기만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반
드시 그를 왕생하도록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아미타불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아미타불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조건
은 매우 간단합니다. 바로 제18원에서 말씀하신,
“지극한 마음으로 기쁘게 믿고, 나의 나라에 왕생하
고자 바라며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면(至
心信樂 欲生我國 乃至十念)”이니, 이렇게만 하면 곧바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쁘게 믿고(至心信樂)”에서 “지극
한 마음(至心)”은 바로 경건하고 정성스런 마음이며
진실한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려
는 마음은 진실되고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입으로는
왕생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왕생
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장래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34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지극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이 “지극한
마음”에는 “기쁘게 믿고(信樂)”가 포함되어 있고, “극
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欲生極樂世界)” 마음이 포함
되어 있으며,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서
(乃至十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모두 진실한 마음(眞
心)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만약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바로 겉치레의 호의일 뿐이니,
그렇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고 존재 가치도 없는 것입
니다. 하물며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삼계육도의 생사
윤회를 벗어나는 이 중요한 큰일에 어떻게 진실한
마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간단히 말해,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구제해주시는
조건은 바로 “지극한 마음으로 기쁘게 믿고,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바라며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至心信樂 欲生我國 乃至十念)” 것입니다. “지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35

극한 마음”이란 이 두 글자는 “기쁘게 믿고,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바라며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기쁘게 믿고(信樂)”
는 바로 ‘믿음(信)’이고, “나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바
라며”는 바로 극락왕생을 원하는 ‘발원(願)’이며, “내
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염불은 바로
‘수행(行)’입니다. 그러므로 “기쁘게 믿고”는 바로 “기
쁘게 믿고 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여기에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더하면 바로
‘신信 원願 행行’(삼자량)이 됩니다. 여기서 제18원
은 신 원 행을 다 갖추고 있으며, “지극한 마음”은
신 원 행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극한 마음”란 곧 진실
한 마음眞心입니다. 우리들이 극락세계가 있음을 믿
고 아미타불이 계심을 믿는 것은 반드시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극락세계가
있고 아미타불이 계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
36

고, 자기 스스로 그다지 확신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는다면 그것은 “지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극락세계가 있음을 믿고, 아미타불께서 계
신다는 것을 믿으며,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고, 극락
세계가 우리의 마지막 종착점임을 믿는 것이니, 이것
을 모두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미타불의 입장에
서 말하자면, 아미타불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며 “너는
나의 극락세계로 왕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고, 우리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바로 “나는 극락세계
에 왕생할 것을 발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구제하여 극락세계로 데려가신다는 것은 진
심이니, 우리가 극락세계로 왕생하려는 발원도 진심
이어야 하며, 남을 따라서 단지 회향게만 읽어선
안 됩니다.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부름(乃至十念)”이란
바로 지금 이후로 우리에게 하루의 시간이 있으면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37

하루 동안 염불하고, 이틀의 시간이 있으면 이틀


동안 염불하며, 이레의 시간이 있으면 이레 동안
염불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렛날에 수명이 다하면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만약 수명이 연장되어
여드렛날이 되면 여드렛날 동안 염불하며, 만약 8년
혹은 80년을 더 산다면 한평생 동안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을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다
른 법문을 빌려 (정토로) 회향할 필요가 없이, 염불을
하는 즉시 왕생의 공덕이 모두 갖추어지게 됩니다.
제18원에서는 믿음과 발원과 수행(신信 원願 행行)
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信)’이 바로 “지극
한 마음으로 기쁘게 믿는(至心信樂)” 것이라면, “나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바라며(欲生我國)”는 무엇일까요?
아미타부처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아미타불께
서는 우리들이 당신의 구제를 받아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매순간 우리들을 부르면서 우리들에게
38

부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께


서 “나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바라며(欲生我國)”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중생들의 입장
에서 말씀드리자면, 바로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원
하는(願生彼國)” 것인데,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
하여 아미타불의 부름과 구제에 따르는 것이 곧 ‘발원
(願)’입니다. ‘수행(行)’은 “내지 열 번만이라도 내 이름
을 부름(乃至十念)”으로, 지금 이후로 오직 한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께서 비록 우리와 구제의 조건을 맺으셨다
해도, 이 구제의 조건은 사실 거의 조건이 없는 것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아미타
불의 구제를 믿고 받아들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그 뒤로는 우리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으면 얼마간의 시간 동안만 염불을 하면 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염불할 때에는 번뇌가 있건 없건,
망상잡념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39

없습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이와 같은


조건만을 정해주셨기 때문에, 비록 조건이 있다 해도
거의 조건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
면 우리는 단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지불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어떠한 손실도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가장 간단한 것이어
서, 우리가 말만 할 줄 알면 염불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말을 하듯이 염불을 하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므
로 염불하고 극락왕생을 원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간단하고 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닐뿐더러 밑질 것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염불하는 시간에는 비교적 망상잡념 등의 번뇌가
없으니, 이러한 염불은 우리를 더욱 홀가분하게 해줍
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중들: 그렇습니다.)
40

만약 번뇌가 생길 때나 혹은 몸이 아프고 마음이


매우 답답할 때, 염불을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평온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아미타불께서 이 한 구절 부처님 명호를 부르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오직 이로움만 있을 뿐 해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중들: 그렇습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은 극락을 그리워


하고 왕생을 원하는 일종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
자체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시간과 금전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고, 동시에 본전을 까먹거나 손해를
볼 일도 없습니다. 극락왕생은 오직 백 가지 이익만이
있을 뿐, 손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기를 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비록
극락세계가 있음을 그다지 믿지 못하고 극락세계가
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여전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41

히 극락왕생을 원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만약 진짜


로 생사윤회가 없고 극락세계가 없다고 해도 본전을
잃거나 손해를 보는 어떠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생사윤회가 있고 극락세계가 있다면
공짜로 이득을 본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 이익
은 계산할 방법이 없는, 우주에서 가장 큰 선근과
가장 큰 복덕을 전부 얻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진짜로 극락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극락세계에 왕생
함으로써 틀림없이 삼계육도의 생사윤회에서 벗어
나게 되고, 틀림없이 성불을 하게 되며, 틀림없이
부처님과 같은 무량한 수명 무량한 광명 무량한 지
혜 무량한 자비를 갖게 되고, 아미타불과 같은 48대
원을 갖추고서 타방세계 시방세계 무량세계에 분신
으로 가서 널리 중생구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왕생을 원하는 마음으로 큰 이익
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우리들이 범부여서 마음의 힘이 매우 약하고
42

어리석고 번뇌가 깊고 무거울지라도, 우리들이 단지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이 하나의 발원만 있다면
이 원은 바로 큰 원(大願)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이 하나의 원이 능히 우리를 왕생하여 성불케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원이 없다면 우리들은 계속
육도에 윤회할 것이고, 만약 이 원이 없다면 가장
큰 선근과 가장 큰 복덕을 잃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우리들이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는 이 하나의 믿음은 ‘큰 믿음(大信)’이고
불가사의한 믿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미타불
께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의외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 이 믿음이야말로
어찌 불가사의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곳 하문의) 맞은편 기슭에 금문(金門, 금문
현이란 섬)이 있고, 금문을 지나면 대만台灣이란 섬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본 적도 없고
두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우리는 금문과 대만이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43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도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믿음이 소중합니까?
이런 믿음에는 아무런 소중함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에
대해 증가(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감소(방해)되는 것
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믿음은 단지
범부의 세속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미타불의 구제가 있음을 믿
고 극락세계라는 돌아갈 곳이 있음을 믿는다면, 비록
같은 믿음이라 해도 내용이 다르므로 그 가치도 따라
서 다르게 됩니다. 아미타불의 구제가 있음을 믿고
극락세계라는 돌아갈 곳이 있음을 믿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삼계육도의 윤회를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끝내는 우리를 성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어찌 더할 나위 없이 높은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단지 입을 벌리고
명호를 부르거나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
44

기만 하면 이와 같은 행이 바로 ‘큰 행(大行)’이어서,
우리가 오계를 지키고 십선을 닦는 공덕보다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오계를 지키면 우리를 다시 사람으
로 태어나게 하고, 십선을 지키면 우리를 천상에
태어나게 할 뿐이지만, 오계와 십선의 인因과 과果는
다 여전히 거짓이고 뒤바뀐 전도顚倒이며 새어남이
있는 유루有漏이며 청정치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담란대사께서) 왕생론주往生論注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과 천상의 모든 선과 모든 과보는 원인이든

결과이든, 모두 전도된 것이고 모두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지 못한 공덕이라고 부른다
(人天諸善 人天果報 若因若果 皆是顛倒 皆是虛偽 是故名不實功德).”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육도윤회 가운데 있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은 청정한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45

것이고, 진실한 것이며, 위없이 큰 이익이 있는 불가


사의한 공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더러운 마음
과 깨끗하지 못한 입으로 청정하고 진실하며 지극히
높고 위없는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큰 행과 다름없기에 유루가 아닙니다. 이 말을 다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대중들: 네!)

그런 까닭에 정토법문을 “이행도(易行道: 행하기 쉬운


길)”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행도에서 이른바 ‘이(易:
쉬움)’란 바꿔 말해 다음과 같습니다.
(1) 천이淺易: 이해하기 쉽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행도의 이치는 굉장히 간단명료하여, 심오하거나
어렵지 않고 한 번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간이簡易: 단지 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바로 왕생의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게 되고,
왕생의 자량(資糧: 밑천)을 즉각 완성하여 백 퍼센트
46

확실하게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됩니다. 경전을 많이


독송해야 하거나, 성지순례를 하면서 참회를 해야
하거나, 경전을 깊이 이해해야 하거나, 다라니나
주문을 많이 독송한 공덕을 통하여 왕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염불을 시작하는 때부터 임종 때까지 모두
다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이면 됩니다.
(3) 용이容易: 늙었거나 젊었거나, 현명하거나 어
리석거나를 가리지 않고, 경전을 깊이 이해하거나
못하거나에 관계없이 사람마다 모두 다 실천할 수
있어야 비로소 쉽다(容易)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
면 당신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할 수는 있지만,
그 가운데 일부분의 사람들은 실천할 수가 없다면
이행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이행도’
란 사람마다, 즉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나, 지혜가
있거나 없거나, 수행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학문이
있거나 없거나, 선하거나 악하거나에 관계없이 모두
가 다 실천할 수 있으며 모두가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47

수 있어야 비로소 ‘이행도’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법문을 배워서 성불을 하려 한다면 전부
‘난행도(難行道: 가기 어려운 길)’인데, 이 난행도의 어려
운 정도는 가히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극락세계에 왕생하
기를 원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매우 쉬워서,
여러분들 모두가 다 해낼 수 있습니다.
(4) 안이安易: 이 법문을 닦기 시작하면 매우 편안
하고 즐겁고 자재하여, 전혀 괴로움이 없습니다.
자력적인 ‘난행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까닭에 용수보살께서는 불교의 모든 법문을
두 가지 법문으로 요약하셨는데 하나는 ‘난행도’이
고, 하나는 ‘이행도’입니다. ‘이행도’는 바로 아미타불
의 제18원에 의한 구제를 가리킵니다. 이 ‘이행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종파와 다른 모든 법문의 수행은
전부 ‘난행도’에 속합니다.
우리가 난행도와 이행도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48

있도록 용수보살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용수보살이 말씀하시길 ‘난행도’는 ‘걸
어서 가는 것’과 같고, ‘이행도’는 ‘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걸어서 가는 것은 괴로
운 일이고, 배를 타고 가는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교통수단으로
배를 타거나 소달구지나 마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으
므로, 오늘날 비행기나 기차나 버스가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천리만리나 되는 먼 지방에 가야
하는데, 만약 두 다리로 걸어서 간다면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갈 방법
이 없습니다. 설사 신체가 건강하고, 심지어 세계에
서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유명한 선수라 해도 반드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재를 넘어서 먼 길을 고생고생하며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도처에서 도적을 만날 수도
있고, 굶주림과 추위와 피로로 인해 삼분의 일도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49

못 가서 전부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자력수행으로써 삼계육도의 생사윤회
를 벗어나 마침내 성불의 경계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지한다면 매우 편안하
고 즐겁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행도’는 바로 편안하
고 즐거운 법문(安樂法門)이요, 편안하고 쉬운 법문(安
易法門)입니다.

어째서 염불이 ‘이행도’일까요? 이는 전적으로 염


불 그 자체에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 의한 크나큰
힘의 가피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미타불께
서 세우신 원이,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
기를 원하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반드시 그를 왕생하도록 하신
다’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아미타불께서는 조재영겁(兆載永劫: 셀 수 없이 긴 세월)
50

이란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극락세계


에 왕생할 수 있는 공덕을 쌓으셨고, 우리가 극락세계
에서 빨리 성불할 수 있는 공덕을 쌓으셨으며, 우리가
세세생생 동안 지어온 빚(업보)을 갚아주시기 위해
필요한 공덕을 쌓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공덕을 모두 원만히 성취하신 다음에 비로
소 그분은 성불하셨으며, 비로소 나무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에는
자연히 아미타불께서 조재영겁 동안 닦으신 만행萬行
과 만선萬善과 만덕萬德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량없는 백천 다라니의 공덕이 모두 이 한
구절 명호 안에 털끝만치도 빠짐없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명호를 일러 ‘만덕홍명
(萬德洪名: 만 가지 덕이 깃든 위대한 명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덕홍명에서 ‘만萬’은 숫자상의 백, 천,
만 할 때의 만이 아니라, ‘구족함 완전 원만함(完滿)
초월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왕생하고 성불하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51

는 공덕이 이 명호 안에 완전 원만하고 온전하게


구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육도윤회를 초월하여 일단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바
로 삼현(三賢: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의 단계에 있
는 보살)과 십성(十聖: 십지十地의 단계에 있는 보살)의
단계를 초월하여 신속히 성불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들이 왕생할 수 있는 공덕이 완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의 성불은 무엇을 성취하신 것입니
까? 바로 우리들의 왕생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이 왕생
할 수 있는 공덕자량(조건,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미타불께서 이미 성불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 부를 수 있는 이 한 구절 명호가 있게 된 것이고,
염불만 하면 즉시 우리가 왕생할 수 있는 공덕자량이
있게 된 것입니다.
52

이쯤에서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미타불께


서는 어떠한 부처님이십니까? 바로 본원을 성취하신
부처님이십니다! 이 말의 뜻은, 아미타불께서 이미
본원을 성취하셨고, 그 다음 다시 당신께서 성취하신
본원의 공덕을 전부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회향해주
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까닭은 바로 우리의 왕생을 위하여 성불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공덕도
동시에 모두 우리의 공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과지(果地: 묘각의 지위)의 깨달음을 인지(因地: 수행
의 지위)의 마음으로 삼으니, 원인은 결과의 바다에
갖추어져 있고, 결과는 원인의 근원과 통하네(以果地覺
爲因地心, 因該果海 果徹因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뜻
은, 아미타불께서 과지에서 성취하신 부처님 공덕으
로써 우리와 같이 인지에 있는 범부가 왕생하고 성불
하는 공덕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53

정각正覺은 우리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원인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중생이 왕생할 수 있는
원인은 아미타불의 정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아미타불의 성불은 바로 우리의 왕생이며, 우리
의 왕생은 바로 아미타불의 성불입니다. 만약 우리가
왕생하지 못한다면 아미타불은 성불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아미타불께서 이미 성불하셨다는 것은 우리
가 단지 염불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왕생은
아미타불의 성불과 하나로 묶여 있어 영원히 떼어놓
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법문은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향하는(從果向因)’ 법문이지, ‘원인으로부터 결과로 향
하는(從因向果)’ 법문이 아닙니다. ‘원인으로부터 결과
로 향함’이란 바로 범부에서부터 줄곧 수행을 하여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를 거치고, 그런 다음에야 성불에 이르는 것입니다.
54

한 걸음 한 걸음, 한 단계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법문은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은’ 것으로, 아미타불께서 이미 성불하신
공덕을 우리가 왕생하여 성불하는 자량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와 같은 여러 가지 수행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
로 단계를 초월하여 왕생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행도’를 가리켜 가로(공간적으로)
로 초월하는 ‘횡초橫超’법문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
다. 예컨대 타이베이에 101빌딩(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금융센터)이란 건물이 있는데, 만약 매 층마다 모두
걸어서 올라간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걸어가
는 데 매우 고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직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매우 빨라, 순식간에 101빌
딩의 옥상에 도달할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55

정토법문이 ‘이행도’이며 ‘횡초법문’이라 불리는 이


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
있습니다! 만약 아미타불의 본원이 성취되지 않았다
면 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지 못했을 것이지만,
한 번 본원이 성취되고 나서는 모두가 갖추어지게
되어, 우리가 왕생할 수 있고 성불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부처님마다 성불은 다 아주 어려운 일을 해내
신 것이기에 매우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들과 반드시 직접적인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처님들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제18원과 같은 원을 세우지 않으셨으며, 또
한 우리를 위하여 조재영겁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보살의 무량한 덕행을 쌓으시고 비로소 성불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미타불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아미타불의 성불은 바로 우리
중생의 왕생에 입각한 것이며, 우리의 왕생을 위해
56

그분의 생명을 담보로 내기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왕생케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분의 부처로서의
생명이 있는 것이며, 우리의 왕생이 없다면 그분의
부처로서의 생명도 없는 것이기에, 그분의 성불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성불하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불께서는 어떠한 부처님이신가?’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본원을 성취하신 부처님’이신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57

2. 아미타불은 중생을 구제하시는 부처

님이시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아미타불의 성불은 시방중생


을 구제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방중생
들이 구제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성불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방중생들이 만약 “우리가 정말 구제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구제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면,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셨는지, 언제 성불하셨는지
를 보아야 합니다. 만약 아미타불께서 아직 성불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부를(稱念) 수 있는 부처님의 명호
가 없을 것이고, 또 우리가 왕생하여 성불할 극락세계
도 없을 것입니다.
58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셨


습니까, 못하셨습니까?
(대중들: 성불하셨습니다.)

성불하신 지는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대중들: 10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10겁이 지났습니다. 10겁 동안


아미타불께서는 밤낮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10겁의 세월 동안 아미타불께서는 무얼
해오셨습니까? 오로지 우리 시방중생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모든 착하거나 악한 범부들아! 너희들은
어서 나의 극락세계로 왕생하여라. 내가 여기서 너희
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줄곧 우리를 부르고 계시며, 심지
어 우리에게 합장하시며 부탁하고 계십니다. ‘시방의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59

중생들은 모두 나의 외아들인데, 지금 삼계육도를


떠돌며 고통스럽게 윤회하고 있으니, 부모인 나로서
는 견딜 수가 없구나. 아들들아! 너희들이 제발 속히
돌아오기를 부탁한다. 돌아오기만 하면 안락함을
얻을 수가 있단다. 너희가 돌아오는 데 필요한 양식
(자량)을 나는 이미 모두 준비해 놓았다. 너희가 돌아
오는 데 필요한 비용과 도구들 역시 내가 일찌감치
너희를 위해 알맞게 마련해 놓았다. 너희가 단지
차에 올라타기만 하면(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기만 하
면) 필요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다 있기에 네가
평안하게 극락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단다.’ 이와
같이 아미타불께서는 10겁 이래로 줄곧 우리를 향해
외치면서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시방중생들을 매우 쉽게 구제할
수 있는 부처님이 되기 위해 어떻게 발원하셨습니까?
그 내용은 모두 48원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60

시방중생들을 아주 수월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극


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역시
48원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의
48원은 각각의 원 하나하나가 전부 시방중생을 구제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그 중 하나의 원이라도
시방중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원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아미타불께서는 차라리 이 원을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불은 시방중생
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이십니다.
아미타불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데에는 어떠한
조건도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굳이 조건이 있다
고 말한다면 바로 당신이 단지 ‘왕생을 발원하고,
명호를 부르는’ 것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가
아무리 청정하고 장엄하며, 아미타불께서 아무리
대자대비하시고 원력이 넓고 크시다 해도,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아미
타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고, 계속해서 영원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61

히 육도 안을 윤회하며 헤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먼저 반드시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이런
사람은 모두 백 퍼센트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의 발원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선도대사(善導大師, 613~681)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반드시 왕생한

다(衆生稱念 必得往生).”
시방중생들이, 즉 성인, 범부, 선인, 악인, 재가자,
출가자, 수행을 할 줄 아는 사람, 수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에 관계없
이 그들이 단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른다
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62

하면 아미타불의 본원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입니


다. 선도대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성불하시어 극락세계에
계시나니, 마땅히 본래 서원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라!(彼佛今現 在世成佛 當知本誓 重願不虛)”

아미타불께서 세우신 이 본래 서원은 허망하고 거


짓된 원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이미 성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하나하나가 모두 중생을 위한
원입니다. 그러기에 단지 우리는 구원받기를 바라면
서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우리 모두는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는 마치 큰 원력의 배와
도 같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 육도라는 고통의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63

바다에서 부침하며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극락에 왕생하기를 원하여 오로지 아미
타불의 명호를 부른다면 바로 아미타불의 큰 원력의
배 위에 올라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미타불의
큰 원력의 배 위에 올라탄 사람은 때가 되기만 하면(세
상에서의 수명이 다 되면) 곧바로 피안(저 언덕)에 도착하
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비록 우리의 수명이 다하지는 않았고, 아직도
육도의 고통바다 속에 있지만, 다시는 가라앉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아미타불의 큰 원력의 배를 타고 있기 때문입니
다. 이 세상에서는, 당신이 아무리 호화로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하더라도 모두 위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이 거대한 원력의
배는 영원히 위험에 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배는 아미타불께서 직접 만드시고 아미타불께서 직
64

접 운전하시며 승무원들도 모두 극락세계의 보살님


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피안에 도달할 수 있으며
어떠한 위험도 만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으
로 아미타불의 구제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단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왕생의 업인(業因: 결과를 위한 원인으로
써의 행위)은 이미 성취된 것이어서, 이미 더 이상
육도를 윤회하는 범부가 아니며, 이미 극락세계 성중
聖衆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이해
하시겠습니까?
(대중: 이해합니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대중: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왕생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께 달려 있습니다. 마치 먹지도,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65

입지도 못하고 머물 곳도 없이 음식을 구걸하려고


밖으로 돌아다니던 한 아이가, 어느 날 그가 본래
국왕의 유일한 아들이며 태자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면 이때부터 그는 바로 의젓하고 화려하고 귀한 신분
이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유랑하는 거지가
아니라, 한 왕의 아래이자 만인의 위에 있는 태자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광대사(印光大师, 1861~
1940. 정토종 제13대 조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습니다.
과연 생사를 벗어나려는 마음(生死心)이 간절하고,

한 생각의 의혹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으로 믿을 수
있다면, 비록 아직 사바를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미
사바에 오래 머물 나그네가 아니며, 극락에 아직
왕생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극락의 귀한 손님이니라.”

그러므로 왕생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변치 않고,


66

다른 수행을 섞지 않으며, 오롯하게 염불만 한다면


임종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고, 나중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지금부터 우리는 이미 극락세계의 성중이며,
이미 더 이상 육도를 윤회하는 범부가 아닙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67

3. 아미타불은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

부처님이시다

‘나무아미타불’이란 이 한 구절 명호를 ‘광명명호光


明名號’라고도 부르는데, 아미타불께서는 곧 한량없는
광명의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미타경에
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는 데 장애가 없는 까닭에 아미타라 하시느니
라.”
이 말씀의 뜻은, 이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광명을
68

갖추고 계시는데, 그분의 한량없는 광명은 온 우주를


남김없이 비출 뿐만 아니라, 그분의 광명은 어떠한
장애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형상이
있는 해 달 별 산 강 대지의 장애도 받지 않고, 또
한 형상이 없는 우리 중생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癡), 그리고 우리가 세세생생 동안 지어온
갖가지 죄업들의 장애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아미타불의 광명은 언제 어디서나 다 손쉽
고도 빠르게 우리 곁으로 와서 우리를 보호하고 구제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불을 또한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光明攝取)’ 부처님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광명’이란 아미타불의 불광佛光을
가리키며, ‘거두어주심’이란 아미타불께서는 지금부
터 줄곧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으시며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며 기다려주시다가, 임종
때가 되면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어 극락세계로 데려
가신다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69

아미타불께서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 것은 마치


무엇과 같을까요? 우리가 밤에 잠잘 때 모기가 우리
를 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기장 안에
있으면 모기는 우리를 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삼계육도 안을 윤회할 때에는 어떤 모기가
우리를 물려고 할까요? 원수와 채권자라는 모기가
있어 우리를 물려고 하며 우리에게 빚을 독촉합니다.
또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라는 큰 모기가 있어 우리가
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하지
만 우리가 단지 염불만 한다면 영원히 아미타불의
광명이라는 모기장 안에 있게 되어, 큰 모기든 작은
모기든 모두 우리를 물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이 컵과도 같아서, 컵 속에 담긴 물은 밖으로
흐르지 않고 항상 이 컵 안에 있습니다. 염불하는
사람도 영원히 아미타불의 광명이란 컵 안에 있어
다시는 삼계육도에 윤회하지 않으며, 또한 갖가지
업력業力의 장애도 받지 않습니다. 이분이 바로 광명
70

으로 거두어주시는 부처님입니다.
그러므로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인은, 그가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
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한평생이 다할 때까지 아미타
불의 광명이 거두어주시는 가호 가운데 있게 되어
아미타불의 보호를 받고, 원수나 채권자의 방해를
받지 않고, 천마나 외도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또한
재난의 상해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아미타불의 명호가 지니고 있는 너무나 자연
스러운 작용과 기능이어서, 따로 기도를 하며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을 붙이면 불은
자연히 타오르게 되고, 물을 따르면 물은 자연히
아래로 흐르게 되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기능이어서,
원리를 안다거나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현세의 이익으로 보더라도
염불은 재난과 어려움들을 소멸할 수 있고, 복과
수명을 늘리게 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71

사람의 몸에는 다 광명이 있는데, 그 광명의 크기는


그 사람의 염원과 복덕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가
착한 생각만 일으켜도 상서롭고 좋은 빛이 매우 커지
고,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 혼탁하고 나쁜 빛이 나타나
게 됩니다. 복덕이 크면 광명도 크고, 복덕이 작으면
광명도 작습니다. 만약 부모에게 효순하고 스승을
받들어 모시며 삼보를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광명은
더욱 맑고 깨끗하고 많을 것이며, 더 나아가 ‘나무아
미타불’을 부를 수 있다면 광명은 바로 온 우주에
두루 가득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광명이 생기는 것일까요? 아미타불의 광명
은 한량없는 광명인데, 아미타불께서 당신이 지니신
모든 공덕을 이 한 구절 명호로 변화시켜서 우리
중생들에게 회향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구절 명호에는 아미타불께서 지니
신 모든 광명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범부가 미약한 마음으로 이 광명 명호를 부르더라도
72

곧바로 아미타불의 명호와 결합되고, 아미타불의


광명과 결합하게 되니, 어찌 우리 몸의 광명이 아미타
불의 한량없는 광명을 따라 한량없이 큰 우주에 가득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비록
단 한 방울이지만, 큰 바다에 떨어뜨리면 큰 바다와
융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염불하는 사람의 몸에는 모두 부처님의 광명
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전에 법사님 한 분이 미국에 홍법을 하러 가셨습
니다. 그분께서 대중을 이끌고 법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염불이 막 끝나는 시간에 어떤 미국인
한 분이 그 법사님을 찬탄하며 말했습니다.
“스님! 스님! 저는 신통력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제가 법당에서 염불하고 계시는 대중들을 보았는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염불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몸에서 나는 광명이 매우 커서, 그 크기가 지구를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73

감쌀 만큼 그렇게 큰 광명이었습니다. 그다지 경건하


지도 정성스럽지도 않게 단지 입만 벌름거리며 염불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광명이 아주 작아서 단지
입가에만 들락거릴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수승한
광경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저도 불교를 배우고자
합니다.”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염불하는 사람은 40리나


되는 광명이 몸을 비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40
리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우주와 비교하면
지구는 매우 작은 것이며, 지구와 비교하면 40리는
더욱 작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경건하고 정성스럽
게 염불할 때 그에게서 나오는 광명은 지구를 감쌀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이 입이 깨끗합니까? 입을
열면 냄새가 고약합니다. 그렇지만 단지 우리가 한
번 입을 벌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광명이
74

나옵니다. 우리가 단지 입을 벌려 염불하기만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우리의 몸으로 드나드시며 광명을
놓으십니다. 비록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신이나 불보살님들은 모두 광명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불만 하면 귀신이 우리를 방해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힌 원한이 있다 해도, 염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맺힌 원한도 풀 수 있으며, 지금 이후
로 다시는 당신에게 빚을 독촉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염불을 하는 관계로 말미암아 상대방
을 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불을
할 때에는 어느새 귀신과 중음신이 제도되며, 우리가
염불을 하기 때문에 조상님들도 제도되고, 자손들도
보호받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염불이야말로 참으로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뛰어난 법문인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75

염불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부처님 명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중요성은 우리의 생명과
도 같아서 이 부처님 명호가 있으면 우리의 생명이
있는 것이요, 이 부처님 명호가 없으면 우리의 생명도
역시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처님 명호가
없으면 사람이 죽은 뒤에는 곧바로 염라대왕의 처소
로 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러면 매우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76

4. 아미타불은 임종 때 맞이하러 오시는

부처님이시다

염불을 하는 사람은 염불하는 그때부터 아미타불께


서 그분의 한량없는 광명으로 끊임없이 보호해주시
고 돌봐주시며 잠시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임종에 이르렀을 때 몸을 나투시어 우리를 극락세계
로 영접해주십니다. 아미타경에서 이렇게 말씀하
셨습니다.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는 때가 오면 아미타불께서
는 여러 거룩한 무리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므
로,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이 뒤바뀌지 않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77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로 왕생하게 되느니라.”


이제 막 목숨을 마치려는 사람은, 만약 그가 평소에
아미타불을 부르지 않았다면, 보통은 일단 숨이 끊어
지고 나서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
하고, 이 세상에서 일으켜 세운 모든 사업과 재산을
두고 떠나야 하며, 이런 환경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매우 아쉬워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원친
채주(冤親債主: 원한 맺힌 사람들이나 채권자)들이 나타나
빚을 독촉할 것이며, 흑무상黑無常과 백무상白無常이
란 저승사자가 쇠사슬로 가지고 나타나 그 사람을
묶어서 염라대왕 앞에 데려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마음속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긴장되며 두려울 것입
니다.
그러나 염불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께서 직접 오시어 우리를 보호해
78

주시고 영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임종이 다가와


막 숨이 끊어지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
아미타불께서 먼저 몸을 나투시게 되는데, 그 사람은
분명하게 아미타불을 뵐 수 있습니다. 그때에 그는
매우 기뻐하며 아미타불을 따라가서 극락세계에 왕
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한다면, 왕생할 시간이 됐을
때 아미타불께서는 우리를 맞이하러 오십니다. 지금
부터 줄곧 임종 때까지 아미타불께서는 일분일초,
일찰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잊어버리지 않으
시며, 싫어하여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임종하
는) 그 시간에 혼미하거나 깨어 있거나에 상관없이
아미타불께서는 한결같이 우리를 영접하러 오십니
다. 왜냐하면 혼미한 것은 단지 감각기관이 혼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부인들이 볼 때는 혼미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79

한 사람은 염불도 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손발을 움직일 수도 없을 거라고
여기겠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맑고 또렷합니
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순간에
도 여전히 염불할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미타
불께서 그 사람을 영접하러 오실 때에는 그 사람과
아미타불, 아미타불과 그 사람은 서로가 아주 분명하
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동안
단지 염불만 책임지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왕생하는
일은(이는 아미타불의 소관이시므로) 아미타불께서 당
연히 완전하고 완벽하게 책임지시고 우리를 극락세
계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만약 어떤 염불행자가 임종할 때에 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를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
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위안
이 있어서, ‘때가 되면 아미타불께서 영접하러 오신
다’라고 생각하므로 이 염불인은 목숨이 마칠 때에
80

이르러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여 불안해하지


도 않으며, 단지 조용히 아미타불께서 맞이하러 오시
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
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아미타불께서 맞이
하러 오시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아무튼, 아미타
불께서 맞이하러 오신다는(내영來迎) 사실은 염불하
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위안과 희망이 가득하게
해줍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내가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부처
님 명호를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면 어떡하
지?” 하며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상황
을 아미타불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아미타불께는
대신통력과 대원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께서는 대자비와 대지혜로써 이 사람에게 어떠한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81

업장이 있으며, 어떠한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염불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혼미할 것인지 깨어있을
것인지에 대해 모두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부처님께
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며,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실이 참으로 귀중
합니까, 귀중하지 않습니까?
(대중들: 참으로 귀중합니다!)

그런 까닭에 단지 우리들이 평상시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또 이 마음이
경건하고 정성스럽고 진실하며, 지금 이후로 더 이상
잡수(雜修: 염불 외에 다른 수행을 섞음)나 잡념(雜念: 다른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름)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한마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임
종 때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됩니다. 임종할
때 의식이 혼미한가 혼미하지 않은가에 상관없고,
82

또한 임종할 때 병으로 몸이 아파 염불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와도 관계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평상시에 염불만 책임지고 하면 됩니다. 임종 때
만약 병으로 몸이 아파 염불을 할 수 없다 해도 상관없
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구하
러 오시기만을 고요히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광명으로 거두어주시는 부처
님이시고, 임종 때 맞이하러 오시는 부처님이시므
로, 때가 되면 그분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안온하고
위안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염불법문을 ‘이행도易行道’라고도 부르는데, 쉬운 법
문이며 안락한 법문이라는 뜻입니다. 이 법문이 아니
라면 중생들은 영원히 고통 속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만약 아미타불께서 광명으로 우리를 거두어주시지
않고, 임종 때 우리를 영접하러 오시지 않는다면,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83

설사 우리가 지금 염불을 한다 해도 마음속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끔찍하구나! 내가 지금 열심히 염불을 하고 있지만,
임종 때 만약 질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염불을 못하면
어떡하지? 만약 정신이 혼미하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죠. 하지만 사실 이런 걱정들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께서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곳에 늘 계시며 대신통이 있으시기에, 그분께서
는 당신의 상황을 다 아시고는 때맞추어 당신을 보호
하시고 영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정토법문은 어떠한 조건도 없는 법문입
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을 부르며, 다른 잡다
한 수행을 하지 않고 완전히 아미타불께 의지하기만
한다면,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84

법문에 의문점이 있으시다면 마음 놓고 질문해주시


기 바랍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85

5. 질문과 대답

질문: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


입니다. 수행에는 믿음과 발원과 수행(信願行)이 구족
되어야 하는데, 법사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아미타불
의 본원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으로서의
행(신원행 가운데 행)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지
만 왕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단지 발원만
있고, 행의 정도(수준)를 강조하지 않는다면, 이는
일본의 본원법문(정토진종淨土眞宗 등에서 주창하는 염불
법문)과 혼동되지 않겠습니까? 삼매(三摩地)에 들고,
깨끗한 마음이 끊이지 않게 이어지고(淨念相續), 한마
음이 흐트러지지 않는(一心不亂) 경지에 들도록 수행
86

해야지 비로소 왕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답변: 당신이 말한 그런 조건은 없습니다. 단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면 됩니다. 왜
‘나무아미타불’이 ‘만덕홍명萬德洪名’이라 불릴까요?
그 이유는, 시방중생이 왕생하는 데 필요한 공덕과
자량이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 가운데 이미
다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로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 역시 마음 내키는 대로 멋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있으면 얼마만큼의 시
간 동안 염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방중생들의
근기는 모두 한결같지 않아, 어떤 사람은 시간이
비교적 많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사람은 염불을 많이 하시고, 시간이
적은 사람은 염불을 적게 하시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수양이 비교적 좋은 편이고 성격도 비교적 좋은 편이
며 마음도 비교적 평온한 편이어서, 염불할 때 당연히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87

마음에 비교적 잡념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품이 비교적 억세고 습기(習氣: 쌓여온 습관의
힘)도 비교적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염불할 때
는 망상과 잡념이 여전히 매우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상관없습니다. 그가 염불만
하면 됩니다. 중생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아미타불께서 다 알고 계시니까요.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

르되, 걸을 때나 머물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에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고, 순간순간 (염불을)
잊지 않는 것을 정정업(正定業)이라 부르나니, 저 부처
님의 원력을 따르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직 염불만 하면 됩니다. 우리
가 가든지 머물든지 앉아 있든지 누워 있든지, 당신이
88

어느 곳에 가든, 어느 시간 때든, 무슨 볼일을 보든


간에 모두 염불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염불행자입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다고 했을
때, 무엇을 ‘대자大慈’라고 부릅니까? 조건 없이 사랑
하는 마음을 ‘대자’라고 부릅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
타불께서는 제18원 속에서 단지 “내지십념乃至十念”
만을 말씀하셨을 뿐, 반드시 어떤 기준을 구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어떤 기준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왕생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왕생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법문은 일본의 (정토진종에서
말하는) 정토법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 본원법문은
아미타불의 제18원의 법문입니다. 제18원에서 무
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염불’을 말씀하신 것뿐입니
다. 선도대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89

부처님의 본원을 살펴보니, 그 뜻은 중생이 한결같



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데
있다(望佛本願 意在眾生 一向專稱 彌陀佛名).”
이 제18원을 (선도대사께서) ‘본원本願’이라 부르셨
기 때문에, ‘본원칭명本願稱名’은 선도대사님에 의해
전해진 것입니다.
‘본원’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미타불께서
성불을 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일체중생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
기’만 하면 왕생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본원을 살펴보니, 뜻은 중생이 한결같은 마
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데 있다”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미타불이라는 만덕홍명을
칭념하는 것이 바로 본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본원에서 말씀하시는 유일한 수행입니다.
방금 우리는 ‘본원칭명’이 선도대사님에 의해 전해
90

진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선도대사


개인의 독창적인 견해가 아니라 용수보살께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용수보살께서는 십주비바사론 이
행품易行品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은 이와 같으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생각하여 명호를 부르며(稱名) 스스로
귀의하면, 곧 필정(必定: 불퇴전)에 들어 아뇩다라삼
먁삼보리를 얻으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항상 억념
(憶念: 굳게 기억하고 염불)해야 한다.”
(阿彌陀佛本願如是 若人念我 稱名自歸 即入必定 得阿耨多羅三藐
三菩提 是故常應憶念)

용수보살께서는 이 문장의 말씀 속에서 ‘본원本願’


이란 두 글자를 직접 지적하여 분명하게 밝히셨고,
‘칭명(稱名: 명호를 부르는 염불)’이란 두 글자도 분명하
게 지적하며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제18원’이 바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91

로 ‘본원’이며, ‘제18원’이 곧 ‘칭명염불’입니다.


“본원은 이와 같으시다(本願如是)”라고 했는데, 아미
타불의 본원은 어떤 것일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若
人)”는 시방중생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성인과 범
부를, 범부 가운데서도 선인과 악인을 포함하고 있습
니다. “나를 생각하여(念我)”에서 생각(念)은 의업(意
業: 생각으로 짓는 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명호를 부르며(稱名)”는 구업(口業: 입으로
짓는 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稱念) 것입니
다. “스스로 귀의하면(自歸)”이란 아미타불의 원에
수순하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귀순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범부의 죄악의 생명과 생사의 생명, 그리고
윤회의 생명을 아미타불의 청정하신 생명과 영원한
생명, 윤회하지 않는 생명 속으로 완전히 귀의하여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스스로 귀의하면(自
歸)’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극락왕생을 원
92

하는 것을 바로 ‘스스로 귀의하면(自歸)’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본원칭명’도 역시 용수보살께서 말씀
하신 것이라는 근거가 아주 뚜렷하고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본원’은 용수보살님이 독창적으로 만든
것일까요? 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석가모니
불께서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량수
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부처님 본래 세우신 원력
그 명호 듣고 왕생 원하면
모두 다 저 나라에 이르러
저절로 불퇴전에 오르리라.”
(其佛本願力 聞名欲往生 皆悉到彼國 自致不退轉)

저 부처님(其佛)”은 아미타불을 가리키며, “본래



세우신 원력(本願力)”은 제18원의 능력을 가리킵니
다. 제18원에서는 기타의 삼학三學과 육바라밀을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93

말씀하시지 않고 “그 명호 듣고 왕생 원하면(聞名欲往
生)”만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란 이 한
구절 명호를 듣고서 극락왕생을 발원하여, 이때부터
오로지 나무아미불만 부르면 “모두 다 저 나라에 이르
게(皆悉到彼國)”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으며, 또한 왕생하
는 그 순간부터 자연히 불퇴전의 지위에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량수경에서 ‘본원’을 말씀하셨고, 용
수보살께서는 이를 계승하셨으며, 선도대사께서 다
시 널리 전하시면서 확정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본원
은 일본의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의 본원입니다.
본원의 조건은 오직 ‘칭명염불’일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신 “부처님 본원
을 살펴보니, 그 뜻은 중생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데 있다”에는 공부
가 하나로 모아진 공부성편功夫成片이나, 자나 깨나
94

같은 경지인 몽매일여(夢寐一如, 몽중일여)를 요구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만약에 이런 조건이 필요하다면
묻고 싶습니다. ‘아미타불께서 누구를 구제하시겠다
는 겁니까? 만약 이와 같다면 아미타불의 자비는
큰 것입니까, 작은 것입니까? 조건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
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신 “일심불란(一心不亂: 한마

음이 흐트러지지 않음)”은 예로부터 모두 잘못 해석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선도대사님의 해석을
보지 못했고, 모두 천태종의 사상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선종의 사상으로 해석하였으며, 정토의 사상으
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모두 잘못
해석되어왔던 것입니다.
아미타경 가운데 다음의 세 단락은 예로부터 오

랫동안 오해되어 왔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95

1. “적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나라에 왕생


할 수 없느니라(不可以少善根 福德因緣 得生彼國).”
2.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말씀을
듣고는, 명호를 굳게 지니고서 하루나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동안 한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면(若有善男子 善女人 聞說阿彌陀佛 執持名號 若一日
若二日 若三日 若四日 若五日 若六日 若七日 一心不亂).”
3. “그 사람이 목숨이 마치려고 할 때에 아미타불께
서 여러 거룩한 무리와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나시므
로, 이 사람은 목숨이 마칠 때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곧바로 왕생하게 되느니라(其人臨命終時 阿彌陀佛
與諸聖眾 現在其前 是人終時 心不顛倒 即得往生).”

정토법문에 대한 대부분의 해석은 송나라 이후에


이루어졌는데, 특히 북송(北宋, 960~1127) 때 비교
적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모두
천태종의 사상을 가지고 이 몇 단락을 해석했기 때문
96

에 “일심불란”에 대한 해석이 다 그렇게 정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도대사님의 저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도대사님의 저작들은
한국과 일본에 전해져 유통된 반면, 중국에서는 당나
라(618~907) 말 이후로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
다가 청나라(1644~1911)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국에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중국인들은
선도대사님의 저작을 볼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일반 성도문聖道門의 교리를 사용하여 “일심불란”을
해석해왔습니다. “일심불란”을 가지고 선정에서의
일심, (수행)능력에서의 일심으로 생각해버린 것입
니다. 그래서 ‘이행도’의 원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래서 배를 타고 가는 안락한 법문인 ‘이행도’가 아닌
해석들이 당연히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선도대사께서 정토법문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97

선도대사께서는 (법사찬法事讚에서) “극락은 무위


열반계이다(極樂無為涅槃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극락세계는 보토報土의 경계이
고, 열반의 경계이며, 이 경계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미타불과 같은 열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극락은
무위열반계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인연에 따르는 잡다한 선으로는 왕생하지
못할까 두렵다(隨緣雜善恐難生)”고 하셨습니다. 일체의
다른 법문은 모두 ‘인연에 따르는 잡다한 선’입니다.
오늘 현교顯教를 만나면 현교의 법문을 배우고, 밀교
를 만나면 밀교의 법문을 배우며, 천태교를 만나면
천태교의 법문을 닦아서 극락왕생에 회향하고, 선종
을 만나면 선종의 법문을 닦아서 극락왕생에 회향하
며, 어떤 법문을 만나면 어떤 법문을 닦고 그 법문을
닦은 공덕을 극락왕생에 회향하는데, 이것을 ‘인연에
따르는 잡다한 선(隨緣雜善)’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방식의 ‘인연에 따르는’ 수행이 바로 ‘잡다한 선’이며,
98

바로 “적은 선근과 적은 복덕(少善根少福德)”입니다.


그래서 “인연에 따르는 잡다한 선으로는 왕생하지
못할까 두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연에 따르는 잡다한 선’은 모두 ‘적은 선근과
적은 복덕’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많은 선근과
많은 복덕(多善根多福德)”일까요? 선도대사께서는 이
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우리에게) 핵심 법문을 선택하
도록 하셨으니, 아미타불을 전념하고 또 전념하라고
가르치셨다(故使如來選要法 教念彌陀專複专).”
다시 말해 우리가 단지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기
만 하면 당신에게 수행공부가 있든 없든, 마음이
청정하든 청정하지 못하든,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전념하고 또 전념하
라’는 것에 부합했으며,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호를 굳게 지니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99

서, 한마음 흐트러지지 아니함(執持名號, 一心不亂)”이


란 바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데 전념하고 또
전념하라(稱念彌陀專復專)”는 뜻입니다.
이른바 ‘일심불란一心不亂’에서 ‘일一’은 곧 둘이 아
님이요, 둘이 아님은 곧 ‘오로지(專, 전적으로)’이며,
‘불란不亂’은 난잡하지 않고 잡다하게 섞이지 않음이
니 역시 ‘오로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잡다
한 수행을 하지 않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만을
부른다면 이것이 바로 ‘일심불란’입니다. 그것은 견
사혹(見思惑: 견혹과 사혹)을 조복시키거나 끊는 것과
같은, (자력)공부에 있어서의 일심불란을 말하는 것
이 아닙니다. 만약 참으로 그러하다면 우리들은 모두
왕생할 수가 없으며, 아미타불께서는 시방중생을
구제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자聖者들만 구제하
시려는 것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자력)공부에 있
어서의 ‘일심불란’이란 ‘이치적인 일심(理一心)’이거나
아니면 ‘현실적인 일심(事一心)’인데, 그렇다면 이미
100

그는 삼계 밖의 근본무명根本無明을 깨트렸거나 삼계
내의 견사번뇌(惑)를 끊은 성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정토법문을 배우는 데 있어 만
약 확실하게 안심할 수 있고, 확실하게 왕생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아미타불의 제18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제18원에 대해 명확
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정토를 배운다면 자칫 어긋날
수 있어 우리들이 안심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일심불란’의 수행에 대해 우리는 이와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출가자의 신분이므로, 출가자의 신분으로 오
로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재가자의 신분이니, 재가자의 신분
으로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출가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탐진치)의 번뇌가 강성하고, 업장이 깊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01

무거우며, 망상과 잡념이 분분하게 많은 범부입니


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몸과 마음으로 오로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고 있습니다.
재가 불자님들 가운데 만약 번뇌가 적고 업장도
깊지 않아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매우 청정한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들은 이러한 근기
의 몸과 마음으로 오로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시면 됩니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근기
로 오로지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른다면
여러분은 모두 평등하게 왕생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 해도 아미타불의
원력의 배 위에 타고 있고, 당신이 악한 사람이라
해도 역시 원력의 배 위에 타고 있어서, 당신이 성인
이든 범부든, 출가자든 재가자든 관계없이 똑같이
다 원력의 배 위에 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왕생은 이 한 구절 만덕홍명萬德洪名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들의 신분에 의지하고
102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난 뒤에는 모두가 이전의 신분을 버리게 되고, 모두가
아미타불께 의지하여 피안으로 오르게 되며, 무위열
반의 경계에 들어가 함께 성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사바세계에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있고,
지혜와 학문의 높고 낮음, 선악의 업장이 많고 적은
차별이 있지만, 극락세계에 가는 데는 이러한 것들에
의지해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한 구절
아미타불의 명호만 있다면 설사 재가자라도 좋고,
수행을 할 줄 몰라도 좋고, 마음이 청정하지 못해도
좋으며, 사혹이 있어도 좋고, 견혹이 있어도 좋으며,
또는 한 품의 무명조차 조금도 제거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극락세계에 왕생
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도대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03

인간이거나 천인이거나, 선하거나 악하거나 모두



왕생할 수 있으며, 그곳에 이르면 아무 차별이 없이
모두가 가지런히 불퇴전에 오른다(人天善惡 皆得往生 到
彼無殊 齊同不退).”

 아미타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극락국토에 왕생하는 중생은 모두 아비발치(불퇴


전)이며, 그 가운데는 일생보처도 많이 있느니라(極樂
國土 眾生生者 皆是阿鞞跋致 其中多有 一生補處).”

그러므로 우리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모든 사람


이 불퇴전의 계위에 오르게 되며, 또한 모두가 다
일생보처(다음번에 부처 될 후보)의 신분을 갖게 됩니
다. 이 법문이 가장 귀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
니다. 이것도 역시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아미타불께서 본원을 성취
104

하신 부처님이 아니셨다면 이렇게 귀중한 법문도


없었을 것입니다.
본원에는 ‘인본의 원(因本之願)’과 ‘근본의 원(根本之
願)’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의 48대원 가운데 오직
제18원만이 근본의 원이며, 나머지는 모두 인본의
원입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제11원에서 “무릇 극락
세계에 왕생한 사람은 모두 불퇴전이며, 뿐만 아니라
반드시 멸도(滅度, 열반)에 이른다”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만 하면
퇴전할 리가 없으며, 반드시 멸도에 이르게 됩니다.
제21원에서는 “32상과 80가지 수형호가 완전히
구족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22원에서는
“당신이 일생보처가 되게 하고, 뿐만 아니라 다른
불국토에 가서 널리 중생을 제도케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왕생과 우리들의 성불은 모두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05

아미타불의 본원에 달려 있습니다. 48원이든 제18


원이든 모두가 다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것은 본원이 있었기
때문에 성불하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며,
또한 본원을 성취하신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귀한
부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질문: 두 번째 질문입니다. 현재 국내(중국)의 도량


에서는 대부분 정토법문을 선양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법문들은 계속 쇠퇴하고 있습니다. 만약 강력하
게 유식이나 천태 등 다른 종파들을 발전시키지 않는
다면 불교가 더욱더 쇠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또한
종(宗: 선종)에도 정통하고 교(敎: 경전 내용을 근거로
하는 모든 종파의 가르침과 수행, 교종)에도 정통한 도량
들이 더욱더 적어지지 않겠습니까? 이 외에 불법을
연구하는 데 있어 무량수경이나 아미타경뿐만
106

아니라, 다른 경전들도 반드시 읽고 공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답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목
적은 바로 널리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함이셨는데,
널리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목적이 달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중생이 불교를 공부하지만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
하고, 죽은 뒤에도 여전히 계속 윤회하게 된다면,
설사 선종(宗)과 교종(敎)에도 통달하고 경전들에 깊
이 파고들어 팔만사천법문을 다 통달한다고 해도,
그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목적이 아니며 또한 우리
가 불교를 배우는 목적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단
한 번 윤회하게 되면 이생에서 배운 것들이 다음
생에서 반드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
다. 더군다나 우리는 업력에 따라 윤회하게 되는데,
만약 지옥에 떨어진다면 오직 고통만 받게 됩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07

몸과 마음으로 온통 고통만 받기 때문에 과거에 공부


한 것들을 다시 돌이켜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예컨대 만약 돼지의 태에 들게 된다면 바로 돼지의
습성과 성질과 어리석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정토법문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극락세계에 왕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이 법문을 배울 뿐만 아니
라, 우리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법문을
배울 수 있도록 권유해야 합니다. 이 법문을 배울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큰 지혜이며, 장차 이 법문을
널리 전파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대자대비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법문을 배울 수 있으면 여러분은
바로 큰 선근과 큰 복덕을 지닌 것입니다.
모든 경전은 법이 소멸되는 시대(滅法時代)가 이르면
전부 다 소멸되지만, 오직 이 정토법문을 선양하는
무량수경만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 경전이 소멸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경전이 모두 소멸되지


108

않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경전과


논서의 목적은 우리를 해탈케 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만약 해탈할 수 있다면 모든 경전과 논서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에 깊이 들어가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직 왕생하지 못할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왕생하기만 한다면 경전에
깊이 들어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명육통
(三明六通: 세 가지 지혜와 여섯 가지 신통)과 무수한(百千)
다라니가 당장에 모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해 말씀드리면, 젊었을 때는 상당히 많은
경전을 외웠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기억력이
쇠퇴하여 그 경문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세세생생
동안 제가 출가를 해본 적이 없다가 금생에 이르러서
야 비로소 출가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고승으로
지냈을 때는 경전을 깊이 연구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
고, 모든 선한 일들도 다 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09

천상에도 태어나 봤을 텐데, 사천왕천 도리천 아마


천 도솔천에도 다녀왔으며, 색계천과 무색계천에도
다 다녀왔을 것입니다. 모든 법문도 다 공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범부입니다.
그리고 제가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는데, 세세생생
동안 저에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며,
저에게 상해를 입은 중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며,
저에게 도둑맞고, 강도당하고, 욕먹고, 모욕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비지옥에 떨어졌던 적도 있었고, 도산지옥에 오른
적도 있었으며, 화탕지옥에 내려간 적도 있었고,
축생과 아귀가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차이는, 오직 극락세계에만 왕생
한 적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전에 출가하신 적이 있었나요?
110

( 대중들: 있었습니다.)
고승으로 지낸 적은 있었나요?
(대중들: 있었습니다.)
일찍이 선정에 들 수 있었기에 오신통을 갖춘 적이
있었습니까?
(대중들: 모두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까?
(대중들: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고기를 먹은 적이 있습니까?
(대중들: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도 간접적인 살생인데, 하물며 직접
적인 살생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세생생
동안 모두 오계五戒를 범한 적이 있었고, 십악十惡의
업을 지었던 적도 있었으며, 천상에도, 지옥에도
모두 다녀왔습니다.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서는
“천상에서부터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부터 천상
에 오른다”고 말씀하셨고, 열반경에서는 “비록 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11

시 범천의 몸을 얻거나 심지어 비상비비상천의 몸을


얻는다 해도, 목숨을 마치면 다시 삼악도 가운데로
떨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색계천에 태어날 수 있으려면 선정의 경지가 상당
히 높아야 합니다. 그런 선정이 있으면 신통력도
생기게 되는데 담벼락도 장애 없이 출입할 수 있으며,
과거와 미래도 알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도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목숨을 마치고 복이 다하면 장차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색계천도 마찬가
지입니다. 무색계천에서 가장 장수하는 수명이 팔만
사천 겁인데, 그동안 매우 깊은 선정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죽으면 여전히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한 국왕이 되어 금과 옥으로 장식된
옷을 입더라도, 그가 바다 속에 빠질 때는 거지 한
사람이 바다 속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 둘
112

다 똑같이 죽고 맙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만약 삼계육


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모두 마찬가
지라는 것입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출가자든 재
가자든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생사윤회에서 해탈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궁극적인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법문은 배울 필요가 없으며 널리 전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여전히 필요합
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염불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최선을 다해 인륜의 도리를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삿된 생각을 방지하고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
며, 또한 다른 교리들도 이해해야 합니다.
다만 우선시되는 것이 있고 부차적인 것이 있습니
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이 정토 교리를 이해하고
난 다음에 한 구절 명호를 마음속에 굳게 지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13

나서, 다른 것들은 각자의 인연과 능력에 따라서


하시라는 겁니다. 이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일들도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유감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만약 정신이 맑고 귀와 눈이 밝다
면 그건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명이
긴 사람일수록 대부분 치매에 걸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아뢰야식 안에는 3장 12부의 경전이 조
금도 빠짐없이 모두 저장되어 있기에, 극락세계에
이르러 아미타불을 뵙게 되면 모두 열리어 완전하게
갖추어지게 됩니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새벽
별을 보시기 전에는 범부였지만, 한 번 새벽별을
보자마자 단박에 삼명육통과 백천 다라니를 갖추시
어 즉시에 천상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제일의 부처님
이 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114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왕생하지 못할까를 두려워


해야 하며, 널리 중생을 제도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다만 성불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왕생하면 반드시 성불하게 되어 있고, 성불
하면 틀림없이 널리 중생을 제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모든 것은 먼저 왕생하고 나서 보자는 말입
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상(無常: 죽음)이 시시각각으
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외출했다가
자동차에 부딪쳐 죽을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타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며, 차를 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이 정토법문을 배워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상無常에 대한 관찰이 매우 깊은 사람이라야 착실
하게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상에 대한 관찰이 깊을수록 그 사람이
열심히 정진하도록 동기부여가 되고, 그 사람이 현생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15

에서 해탈할 수 있는 법문을 찾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상에 대한 깊은 관찰이
없다면, 그는 노력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이리저리
찾아 헤매면서 하루하루를 허비하다가, 정말 무상(죽
음)이 닥쳐왔을 때는 이미 늦어버리게 됩니다.

질문: 만약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르고, 다른 법문


은 모두 배우지도 묻지도 않는다면 아마 이제부터
정토종만 남게 될 것이고, 시간이 더 지나면 말법의
시기가 매우 빨리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토염
불에만) 치우쳐 집착하지 말고 마땅히 중용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보살들도 모두
많은 법문을 다 닦지 않으셨습니까?
답변:이 문제에 대해 방금 모두 답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116

문수보살께는 한 수의 발원게(願偈)가 있는데, 이


게송에서 문수보살님은 당신의 심정을 그대로 다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하오니, 제가 목숨이 마칠 때

모든 장애 다 사라지고
눈앞에서 직접 아미타부처님 뵈옵고
곧바로 극락세계로 왕생하여지이다.”
원아임종시願我臨終時 진제제장애盡除諸障碍
면견아미타面見阿彌陀 즉생안락찰卽生安樂刹

이것이 문수보살님의 발원입니다. 문수보살님은


법조(法照: 정토종 제4조, 당나라 때 오회염불을 창시)대사
에게도 오로지 아미타불을 불러서 극락세계에 왕생
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럼 보현보살님의 발원은
무엇일까요? 보살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17

원하오니, 제가 목숨이 마치려 할 때



일체의 모든 장애 다 사라지고
눈앞에서 직접 저 아미타부처님 뵈옵고
곧바로 극락세계로 왕생하여지이다.”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碍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아울러 보현보살님은 화엄회상華嚴會上의 41위位


법신보살들을 인도하여 극락으로 왕생하도록 하셨
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미타부처님 앞에서는 문수보
살과 보현보살께서도 모두 스스로를 하품하생의 범
부로 생각하시고, 임종 때에 모든 장애가 사라져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극락에 왕생할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앙을 없애고 어려움을 면할 수 있는 공덕
118

또한 이 한 구절 아미타불 명호 안에 있습니다. 그래
서 재앙을 없애고 수명을 늘려주시는 약사여래불의
불호의 능력도 이 나무아미타불이란 만덕홍명萬德洪
名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섯 자의
위대한 명호(洪名)는 바로 아가타약(불사약)이며, 만
병통치약이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한다면, 오직 ‘나무아미타불’이
란 한 부처님의 명호만 부르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미타불을
부르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약속이나 하신
듯이 일제히 우리를 찬탄하시고, 우리를 기억하여
보호(護念)하시며, 우리를 칭찬해주십니다. 그러니
이 법문을 선택한 것은 사실 매우 지혜로운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정토법문을 배운 뒤에는 더 이상 또다
시 관세음보살님이나 대세지보살님의 명호를 부를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님이신가? 119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아미타불만 부르면


관세음보살님이나 대세지보살님께서는 아주 기뻐하
시면서 당신의 벗이 되어주시고 형제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보살님은) 마치 그림자가 항상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당신을 보호하십니다. 그 이유
는, 당신이 부르는 부처님은 바로 그분들이 머리
위에 모시고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관세음보살님의
목적은 바로 고난에 빠진 중생을 인도하시어 나무아
미타불을 부르게 하시는 것이며, 그런 다음 극락세계
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세음보살
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무척 피곤하
구나! 그대가 아직도 윤회하고 있고 아직도 고난
속에 있으니, 내가 세세생생토록 거듭거듭 그대를
고난에서 건져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대가
지금 이생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면 내가 홀가
분할 수 있겠구나!”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120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법문과 이 부처님과


이 보살님의 목적을 알고서, 문자에만 의지하여 뜻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샛길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염불실용문답

정종淨宗법사 법문
정전淨傳스님 번역
122

1. 현세의 이익에 관하여

1. 질문: 왕생을 구하려면 아미타불을 부르고, 평안함


과 재난의 소멸이나 수명의 연장 등 현세의 이익을

구하려면 따로 관련된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거


나, 경전 또는 진언을 독송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관념들은 옳은 것인가?

답변: 옳지 않다. 일반적으로 처음 불교에 입문한


사람들의 신앙심이 비교적 얕기 때문에 때로는 이러
한 관념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그 사람이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이라면 왕생
을 위해서나, 아니면 현세의 이익을 구하는 데 있어서
염불실용문답 123

나 모두 마땅히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지


다른 것을 부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전에서 말씀하시길 “아미타불은 모든 부처
님 중의 왕이시고, 아미타불의 명호 속에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 경전과 진언의 공덕이 포함되어 있으
므로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부처님만 염念하면 모든
불보살님과 경전, 그리고 진언을 전부 염한 공덕과도
같다”(경전의 뜻을 취함)라고 하셨다. 따라서 모든 불보
살님과 경전, 진언을 염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아미타불을 염하여도 전부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아미타불을 불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다른 불보살
님들의 명호를 부르거나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한
다면 반드시 전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백관대신百官大臣들이 일반 백성들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일들은 국왕으로서도 당연히 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국왕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백관대신들이
124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둘째,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른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세간의 이익도
얻을 수 있으므로, 두 가지 방면에서 모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잡다하게 여러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거나 경전과 진언 등을 독송한다면 왕생
이 결정되지 않을뿐더러, 얻을 수 있는 세간의 이익
또한 적다.
2. 질문: 아미타불을 부르면 다만 왕생을 할 수 있을
뿐이지, 현세의 여러 이익과는 상관없지 않은가?

답변:그렇지 않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에는 현


세의 이익과 내생의 이익이 전부 포함된다. 이것을
정토종에서는 “현세와 내생의 두 가지 이익(現當二益)”
이라 부른다. ‘당當’은 당래(장래, 내생)로서 당래의
이익은 왕생하여 성불을 하는 것이고, ‘현現’은 현세
염불실용문답 125

로서 현세의 이익에는 예를 들어, 재난을 소멸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며, 병을 물리치고 장수할 수
있으며, 평안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잘 되고, 위로는
조상을 천도하고 아래로는 자손들을 보우保佑하는
등의 모든 이익이 그 속에 포함된다.
3. 질문: 관세음보살님은 구원의 소리를 찾아서 고난

에 처한 중생들을 구제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관세음보


살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답변: 관세음보살님을 “대자대비 구고구난 광대영


감”이라고 부르는데,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관
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면, 보살님께서 즉시 구원
을 요청하는 소리를 살피시고 구원을 해주신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 치의 그릇됨도 없다. 하지만 평소에
126

염불수행을 하던 사람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바꿔 부


를 필요는 없다. 이치적으로 설명하자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미타불께서 소리를 찾아서 고통을 구제해
주시는 능력은 관세음보살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관세음보살님은 현재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는데 아
미타불의 상수上首제자이시다. 이 보살님의 자비와
능력은 전부 스승이신 아미타부처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아미타불께서는 성불을 하시기 전 보살도를
닦으실 때 명호로써 중생구제를 하시겠다는 발원을
하시고 수행을 하셨다. 다만 당신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어
부르든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부르든, 위급할
때에 부르든 아니면 평소에 부르든, 전문적으로 정신
을 집중하여 부르든 아니면 비교적 산란한 마음으로
부르든, 심지어 염불을 하는 사람이 부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아미타불께서는 즉각 감응하여 바로
염불실용문답 127

광명을 놓아 비춰주시고, 동시에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을 보호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감응의 속도는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바로 환하게 비추는
것보다 더욱 빠르다. 염불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광명
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므로 즉시에 위험한 상황에
서 벗어나 안전하게 되고, 재난이 소멸되어 상서롭게
된다. 또한 평소에 자주 염불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당하여 간혹 염불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감응은 역시
이와 같다.
만약 평소에도 늘 염불을 하던 사람이라면, 아미타
불의 광명은 주야로 이 사람을 비춰주고 보호를 해주
시며 그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일생 동안 줄곧 평안하게 지내다가, 임종할
때가 되면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하
게 된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관세음보살님
이 소리를 찾아 고통을 구제해주시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전면적이며 철저하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128

부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임시적으로 다른 불보살님


들을 바꿔 부를 필요가 없다.
둘째, 아미타불을 부르면 관세음보살님은 따로 청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신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의 스승이신 아미타불을 매우 존경하고, 그 은혜
에 감사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머리 위에 이고 계신다.
우리가 보고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머리 위에는 화불
化佛 한 분이 서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아미타불이시
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은 아미타불을 수시로 따라
다니시는데, 아미타불이 어디를 가시든지 한 발자국
도 떨어지지 않으신다. 따라서 평소에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아미타불께서 이미 광명을 놓고
몸을 나투시어 그 사람을 보호해주시는 이상, 관세음
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그리고 수많은 대보살님들
도 당연히 함께 오셔서 보호를 해주신다.
예컨대 관무량수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은 관세음과 대세지 양대
염불실용문답 129

보살님이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항상 그


사람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이 염불하는 사람을 보호
해주심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훌륭한 벗이
되어 주시고, 자비로써 모든 일에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이라
면 설사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지 않더라도 관세음보
살님은 당연히 오셔서 보호를 해주신다. 그 밖의
불보살님들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불보살님들을 부를 필요가 없다.
셋째, 평소에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항상
부처님 광명의 보호 속에 있으므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재난들이 자연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
지게 된다. 따라서 위급한 때에 임시적으로 보살님께
도움을 청하게 될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숙세의 업을 피할 길이 없어 작은 재난과 장애가
있더라도 진정으로 신앙심이 깊고 염불수행에 바탕
이 있는(습이 배인) 사람이라면 자연히 아미타불을
130

부르게 되지, 이 보살님 저 부처님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이고 결정되지 않았다
는 것은 마음이 전일專一하지 않다는 증거다. 따라서
어떤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든지 효과적으로는 오
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과 전혀 비교할 수가 없다.
4. 질문: 세간에는 자식을 낳게 해주는 송자관음送子

觀音이 있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자식을

구하려면 반드시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답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미타불을 불러도 똑같


이 자식을 구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5. 질문: 문수보살님은 지혜제일이시다. 비록 염불수

행을 하고 있지만 지혜가 증장하고 시험을 보는 데

순조롭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문수보살을 불러야 한


염불실용문답 131

다고 한다. 옳은 것인가?

답변: 그럴 필요가 없다.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상


징하고 보살대중 가운데서 지혜제일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어쨌든 부처님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경전
에서 말씀하셨듯이, 아미타불의 지혜와 광명은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조차 따라갈 수 없다고 하셨으
니, 하물며 보살제자들은 더더욱 동등한 입장에서
논할 수 없다. 따라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면 역시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6. 질문: 지장보살님께는 정해진 업을 소멸시켜주는
멸정업진언滅定業眞言이 있으시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업장소멸을 하려면 반드시 지장보살님
을 불러야 한다는데, 옳은 것인가?

답변: 그렇지 않다! 아미타불을 불러도 똑같이 업


132

장소멸을 할 수 있다. 불보살님들의 명호에는 전부


공덕이 들어 있고, 공덕이 있으므로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 지장보살님의 공덕이 진실로 불가사의하
나, 아미타불과 비교를 한다면 여전히 백천만억 배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석정토군의론(釋淨土群疑論, 군의
론)에서는 “일대겁 동안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은
아미타불을 한번 부르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고,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의 공덕은 위없고, 광명
은 제일이어서 시방제불이 따라갈 수 없다”고 말씀하
셨다. 아미타불을 불러 업장소멸을 하는 것은 마치
햇빛이 어둠을 없애주는 것과 같고, 지장보살 등의
기타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불러 업장소멸을 하는
것은 마치 달빛이 어둠을 소멸하는 것과 같다.
7. 질문: 지장보살님은 유명교주幽冥敎主로서, 오로지

유명계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계신다. 비록 지금 염불

수행을 하고 있지만 망령亡靈을 천도하고 지옥중생을


염불실용문답 133

구제하려면 반드시 지장보살님을 불러야 한다고 한


다. 이는 옳은 것인가?

답변: 그렇지 않다. 지금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을


비교하여 간략하게 일곱 가지 점을 들어 비교될 수
없음을 밝히겠다.
⑴ 공덕의 부족함과 원만함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님께서는 발원하시길 ‘지옥이 텅 비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므로, 수행 공덕이 아직
원만하지 않고, 그 원력 역시 아직 실현되지 못하였
다. 아미타불은 인지因地에서 발원하시길 ‘항상 자비
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고 아비지옥의 고통
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고 하셨는데,
수행 공덕이 이미 원만하였고, 그 원력 역시 이미
실현되어 성불을 하셨다. 그러므로 양자 간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⑵ 지위가 높고 낮음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
134

님은 유명교주이시고, 아미타불은 제불의 왕이시므


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⑶ 임금과 신하의 관계이므로 비교되지 않는다.
군의론에서는 “부처님은 법왕이시고 보살은 법신

法臣인데, 임금이 출타할 때 대신들은 반드시 따라나


선다. 큰 것은 작은 것을 포괄할 수 있으니, 염불을
많이 하면 공덕이 제일 크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
서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지장보살님은 자연히
아미타불을 모시고 따라오셔서 지옥중생들을 구제
해주신다.
⑷ 알려진 명성의 범위가 비교되지 않는다. 아미타
불의 명호는 시방제불들이 다 경앙하고 찬탄하시는
바이므로 비교되지 않는다.
⑸ 광명의 크기가 비교되지 않는다.
⑹ 소멸되는 죄업의 양이 비교되지 않는다.
⑺ 구제의 이익이 비교되지 않는다. 지장보살을
부르면 대부분 삼악도의 중생들을 건져 인간과 천상
염불실용문답 135

의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할 수 있지만, 아미타불을


부르면 삼악도에서 곧장 정토로 초월하여 성불할
수 있다.
8. 질문: 사람이 임종할 때는 왕왕 업장이 나타나서
원친채주怨親債主들이 서로 와서 끌고 가려고 핍박을

한다고 한다. 이때 반드시 먼저 지장경을 독송하고

지장보살님의 명호를 불러서 업장소멸을 하고 난


다음, 다시 아미타불을 부르며 왕생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옳은 것인가?

답변: 옳지 않다. 임종할 때는 사람이 위로 올라가


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를 판가름할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때는 어떠한 다른 불보살님과 경전, 주력
도 전부 너무 늦어 급한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시급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가장
큰 구제의 효과를 지니고 있으며, 업장소멸과 극락왕
136

생을 동시에 완성시킬 수 있다.


관경에서는 대승의 12부 경전을 들어도(독송하여

도) 단지 천겁의 죄업을 소멸할 수 있을 뿐 왕생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크게 부족한 반면, 아미타불을
한 번 부르는 즉시 50억겁의 죄업이 사라지고, 곧장
사바세계를 초월하여 정토로 왕생할 수 있다고 전하
고 있다.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한 번 아미타불을
부르는 공덕이야말로 수천만 부의 지장경과 금강
경 등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공덕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질문: 위타보살(韋陀菩薩: 신중의 한 종류)은 호법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
만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장애의 인연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타보살을 모셔야 한다. 이는 옳은

것인가?
염불실용문답 137

답변: 그럴 필요 없다. 오로지 아미타불을 모시고


아미타불을 전념하며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은 관
경, 아미타경, 시왕생경에서 설하신 것처럼 아
미타불께서 항상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보호를 해
주시며,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제불들이
함께 오셔서 호념護念을 해주신다. 그리고 25분의
대보살들이 여러 보살들을 거느리시고 일체시처一切
時處에서 옹호를 해주신다. 또한 무수한 부처님과
관음 세지 등 보살들이 화신으로 오셔서 백 겹 천
겹으로 둘러싸고 주야로 이 사람 곁을 떠나지 않으신
다. 모든 천신天神과 지기(地祇, 토지 신)들도 모두 공경
하고 보살펴주며, 모든 악귀와 악신들도 그 틈을
노릴 수 없고, 일체의 액난과 재해, 장애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위타보살 역시 분명히 여러 보살님들을
따라 청하지 않아도 당연히 오셔서 호념을 해주실
것이다.
138

10. 질문: 제불보살님들의 신주神呪에는 큰 위신력이


있으시다. 비록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삿된 것을

물리치고 마구니를 항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


주를 지송해야 한다. 이는 옳은 것인가?

답변: 그럴 필요 없다. 한마디 아미타불은 주력


중의 왕과도 같으므로, 일체의 신주를 통해 이룰
수 있는 효능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도 전부 얻을
수 있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과 제불,
관음과 세지, 여러 큰 보살님들의 직접적인 호념을
받으므로, 비록 주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모든
사마외도로부터 침범을 받지 않게 된다.
11. 질문: 약사부처님은 중생들의 모든 병고를 치료해
주시겠다고 발원을 하셨다. 비록 아미타불의 정토법

문을 닦고 있지만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구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약사부처님을 불러야 한다는데, 옳은


염불실용문답 139

것인가?

답변:그럴 필요 없다. 아미타불을 전념해도 똑같


이 병을 치유할 수 있다.
12. 질문: 약사불을 다른 이름으로 ‘소재연수약사불消

災延壽藥師佛’이라고도 부른다. 비록 아미타불의 정토

법문을 닦고 있지만 재난을 소멸하고 수명을 연장시


키기 위해서 반드시 약사불을 불러야 한다는데, 이는

옳은 것인가?

답변:그럴 필요 없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이라


고도 불린다. 아미타불을 전념한다면 똑같이 재난을
소멸하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선도대사께서는
관념법문에서 “아미타불을 칭념하며 왕생을 발원

한 자는 현생에서 장수를 누릴 수 있고, 아홉 가지


횡액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140

2. 염불왕생에 관하여

13. 질문: 살생을 하고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의 경우


는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아마 왕생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답변: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바로 우리와 같이 죄업을 짓고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들을 구제하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죄업을 지었지만 마음을 돌이켜 염불을
한다면 왕생을 못할 이가 없다. 관경의 하품왕생에
는 일생 동안 십악과 파계, 오역이라는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임종할 때에 겨우 염불을 하였음에도
염불실용문답 141

모조리 다 왕생한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14. 질문: 그렇다면 염불하는 사람들은 악을 끊고
선을 닦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답변: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불법 중에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끊고 선을 닦을 필요가 없다는 법문은
결코 없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더욱 마땅히 신분과
능력에 따라 악을 끊고 선을 닦아야 한다.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서 염불을 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있어
공덕과 이익은 더욱 크다.
⑴ 죄를 지으면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고, 선을
닦으면 크게 안락하다.
⑵ 죄를 지으면 잘 죽기가 어렵고, 선을 닦으면
선종善終을 하기 쉽다.
⑶ 죄를 짓는 사람은 중생들이 싫어하여 설사 염불
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 어렵고, 착한
142

사람이 염불을 하면 중생들이 환희심을 내어 믿고


따른다.
⑷ 죄를 지으면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법이 쇠하게
되며, 선을 닦으면 도덕이 창명昌明하고 불교가 흥성
하게 된다.
⑸ 죄를 지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제불이 싫어하고,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제불의
가르침을 수순하므로 제불이 기뻐하신다.
따라서 마땅히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며 염불해야
한다.
15. 질문: 악을 끊기도 어렵고 선을 닦기도 어려운데,
어떡해야 하는가?

답변: 사람이 성현이 아닌 이상, 항상 악을 끊고


선을 닦을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인연에 따라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염불
염불실용문답 143

을 많이 하면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비록 악업을


깨끗하게 끊기는 어렵겠지만 절대 큰 죄를 저지르기
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고, 비록 선행을 원만하게
닦지는 못하더라도 아무튼 한 생각 착한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이니, 아미타불께서도 반드시 가피를 주실
것이다.

16. 질문: 채식을 하지 못했는데도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念佛感應錄: 정종


법사 편집, 전체 3집)에는 많은 분들이 채식을 하지 않았
지만 전부 염불왕생을 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상황을 봐야겠지만, 채식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
다. 채식에는 이로운 점들이 많다. 부처님의 자비심
에 수순하고, 중생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를
베풀며, 자신의 건강에도 이롭고, 에너지를 절약하
144

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며, 임종할 때에


업장을 줄일 수 있다.
17. 질문: 삼보에 귀의를 하지 않았어도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왕생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여건이 허락


하다면 그래도 귀의를 하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귀의를 한다는 것은 신앙을 정하고 불법문중에 들어
와서 불제자가 되는 첫걸음인데, 어떻게 염불을 하고
싶고 왕생을 하고 싶은 사람이 귀의를 원치 않을
수 있겠는가?
18. 질문: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염불을 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진정한 발보리심(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이 가없


염불실용문답 145

어도 다 건지기를 서원합니다)은 매우 어렵다. 만약에


반드시 보리심을 발해야만이 왕생할 수 있다면, 감히
이 세상에 왕생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미타불께서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
하려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보리심을 발해야만이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관경의 상삼품(上三品: 상품상생·상품중생·상품하

생)의 왕생에는 비록 발보리심이 있지만, 중하육품


(中下六品:중품상생·중품중생·중품하생, 하품상생·하품중
생·하품하생)의 왕생에는 전부 발보리심이 없다. 염
불감응록에 수록된 왕생사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보리심이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인데,
하물며 발보리심이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비록
보리심을 모르지만 염불을 하고 왕생을 원한다면
모조리 왕생할 수 있다. 일단 왕생을 하고 나면 자연
히 성불하고 중생구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토염불법문의 묘한 점이다. 정토법문에서 중요시
146

하는 것은 왕생을 하려는 마음(願生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곧 정토법문에
서의 보리심이며, 이 마음은 사람마다 다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이다.
19. 질문: 만약에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지 못하였다

면, 그래도 염불을 하면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관경에서 중품하생 이하


는 전부 계를 받은 적이 없거나, 계를 파하고 죄를
지었지만 임종할 때에 염불하여 왕생을 한 사람들이
다. 일반법문의 수행은 전부 ‘부지런히 계 정 혜를
닦아 탐 진 치를 소멸함’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
서도 계율은 가장 기초가 된다. 따라서 계율을 청정하
게 지키지 못하면 인간과 천상(人天)의 선과善果조차
얻을 수 없는데 해탈하여 성불을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것은 필경 너무 어려운
염불실용문답 147

일이다. 왜냐하면 계 정 혜를 닦아 탐 진 치를 소멸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도 드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많고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염불이라는 특별법문을 설하
신 것이다. 이 염불법문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
(생각하며 부름)하면서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기
만 하면 되므로, 왕생은 단지 염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계정혜가 있고 없고 와는 무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의지하
는 것은 오직 배의 힘이므로, 승객이 수영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와는 전혀 상관없이 배를 타기만
하면 전부 강을 건널 수 있다.
염불 역시 마찬가지다. 염불을 하기만 하면 전부
아미타불의 원력의 배를 올라탄 것과 같아, 계정혜가
있든 없든 모두 왕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자대비’
라고 하고, ‘특별법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148

20. 질문: 그렇다면 염불하는 사람은 계율을 지킬(持


戒)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답변: 계율이 비록 왕생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지


만, 그래도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각자 자신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지킬 수 있는 데까지 계율을
지켜야 한다.
지계持戒에는 지계의 공덕과 이익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몸이 불구인지 건강한지는 비록 왕생
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불구의 고통을 받기를 원치
않고, 왕생과 무관하다고 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소홀히 하여 몸이 불구가 되거나 손상을 입도록 내버
려두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계에는 지계의
안락함이 있고, 파계에는 파계로 인한 괴로운 과보가
있다. 다만 계율을 잘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
므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꾸준히 염불을 하라는
염불실용문답 149

것이지, 결코 염불하는 사람들은 계율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관경의 구품 중에 상중육품上
中六品은 전부 계를 지켰거나 선행을 닦은 사람들이
염불왕생을 한 것이고, 하삼품下三品은 파계를 했거
나 악업을 지은 사람들이 염불왕생을 한 것이다.
21. 질문: 비록 염불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잡념이 분분한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에 수록된 여


러 왕생사례들은 전부 평범한 염불인들로서, 많든
적든 간에 잡념이 있었지만 모두 왕생하였다. 사실상
마음이 청정하고 못하고, 염불을 하는 데 잡념이
있고 없고는 왕생을 하고 못하고 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전수염불專修念佛을 하면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면, 설사 온종일 잡념이 분분할지라도 조금도
아미타불의 구제를 막을 수 없고, 조금도 왕생에
150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 몸이 이미 큰 배 위에 앉아 있는
이상, 설사 마음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배 위에 있으면서 배에서 내려오
지만 않는다면 이 배는 여전히 우리들을 태우고 피안
에 도착할 것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미타부처님께 귀명歸命하여 우리들의 해탈과 성
불의 생명을 부처님께 바치고, 꾸준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서 안심하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맡긴
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아미타불의 대원大願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며, 아미타불과 한 몸(一體)이
되는 것이다. 설령 제6의식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더
라도 그것은 단지 ‘전진영사前塵影事’와 ‘허망상상虛妄
想像’일 뿐이다. 그 자체는 생멸하고 무상하여 자성이
없는 것인데, 어찌 아미타불의 구제를 방해할 수
있겠으며, 아미타불의 대원력의 배를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아미타불의 걸림 없는
염불실용문답 151

광명(無碍光)은 아주 가뿐하고도 조금도 힘들이지 않


고 우리들을 서방극락세계로 구제하실 수 있다.
다만 한 사람에게 망상과 잡념이 많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고 마음속에 번뇌가 많다는
것이므로, 염불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잡념이 적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있다. 바로 최대
한 세상사에 대하여 담담하게 바라보고 염불을 많이
하면서 오래오래 지속하다 보면 자연히 잡념들이
줄어들 것이다. 인광대사님의 ‘십념기수법十念記數法’
은 마음을 집중하여 염불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22. 질문: 왜 나는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청정하고 망념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염불만 하면
도리어 망념이 더 많은 것을 느끼는가?

답변: 염불을 하지 않으면 이 사람 전체가 번뇌와


152

습기를 따라가게 되고, 망념과 동일한 방향이 되므로


망념이 있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염불은 망념과 역방향이어서, 염불만 하면 망념이
엄청 많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차역에서 붐비는 인파를 따라 개찰구
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갈 때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크게 느낄 수 없는데 이것은 방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반대의 입장이 되었을 때,
인파가 안쪽으로 밀려오는데 본인 혼자서 바깥으로
빠져 나오려고 한다면 즉각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야
말로 인산인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은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사람의 수는 똑같이 많다. 염불하여
생사의 흐름에 역행해서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
도 바로 이와 같다. 처음 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망념
이 많음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어서 걱정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다.
염불실용문답 153

23. 질문: 염불을 할 때에 망념이 많다는 것은 염불이


효험이 없다는 게 아닌가?

답변: 망념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치솟아 오르는


데도 여전히 염불을 할 수 있고 망념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이 바로 염불의 효험을 얻은
것이다. 예컨대 개찰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안쪽을 향해 몰려드는데, 본인 혼자서 밖으로 빠져나
오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큰 힘을 지닌 사람이거나 위세가 있는 사람, 예컨대
국왕이 역을 나온다면 만인이 전부 길을 양보하고
회피해야 하므로, 이때에 우리는 국왕의 뒤를 좇아
그 기세를 따라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한마디 아미타불은 마치 국왕과도 같다. 아미타불
이 우리들을 구하러 오신다는 것은, 곧장 삼악도로
달려가는 우리들을 업력과 망념의 흐름으로부터 구
제해주시는 바이므로 무시겁 이래의 망념의 방향과
154

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단지 부처님 명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순조롭고 편안하게 육도윤회에서 벗
어날 수 있다. 마음속에 부처님의 명호를 한 번 떠올
리면 모든 망념이 자연히 피해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
다. 망념이 많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방향이 상반되
기 때문인데, 사실상 이 망념은 더 많아진 것도 아니
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24. 질문: 글을 쓸 줄도 모르고 독경을 할 줄도 모르며
지혜도 없는 사람인데, 염불을 하면 왕생할 수 있는

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속의 여러


불자님들은 글을 모르지만 전부 왕생하였다. 사실상
글을 알고 모르고, 독경을 하고 안하고, 지혜가 있고
없고는 왕생을 하느냐의 여부와는 서로 조금도 관계
염불실용문답 155

가 없다.
25. 질문: 매일 염불을 하고 있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변:염불의 숫자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각자


있는 능력껏 염불을 하면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
면 비록 염불의 숫자가 적더라도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에 기록된 염불인들은 매일
많게는 수만 번, 적게는 수천 수백 번씩 염불하였지만
모조리 왕생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명인 셈이
다.
26. 질문: 그렇다면 정진하여 염불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답변: 각자 능력에 따라 마땅히 정진해야 한다.


156

틈만 나면 염불을 해야 하는데, 특별히 마음을 쓰고


머리를 써야 할 상황이 아니면 전부 염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염불을 습관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염불을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망상잡념을 생각하게
되고, 망상잡념을 생각하면 바로 업장과 감응하여
업장만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염불을 해서 부처님
과 감응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복을 증장시키는 것만
못하다.
27. 질문: 나는 이미 나이도 많은데다가 염불한 시간
도 짧다. 그런데도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변:왕생할 수 있다. 관경의 하품왕생에는 임


종전에단지열번내지한번정도염불을한사람들도
다 왕생한다고 하셨으니, 이보다 염불의 시간이 더
짧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염불실용문답 157

28. 질문: 그렇다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다가, 임종할


때가 돼서 염불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답변: 아니다. 이런 생각들은 굉장히 요행을 바라


는 마음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몸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어 수시로 폭발할
위험이 있는데, 다만 정확히 언제 폭발할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라 하자. 그렇다면 일단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즉각 폭발물을 떼어내야지, 곧 폭발하기 직전
까지 기다렸다가 떼어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종할 때를 기다렸다가 염불을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안단
말인가? 절대 정해진 임종의 시간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임종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 현재의 일분일초가 전부 임종일 수가 있으므
로, 임종염불이 곧 현재염불이요, 현재염불이 곧
임종염불이다. 더군다나 사람이란 전부 현재 이 순간
158

을 살아가는 존재인데, 현재를 제외하고 임종이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부터 염불을 해야 한다.
또한 현재에 염불법문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염불
을 하지 않는 사람이 확정지을 수 없는 임종을 기다렸
다가 염불을 하겠다는 것은 염불의 이익을 모르고
있는 것이며, 진심으로 염불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진심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
물을 보는 순간 바로 그 재물을 얻고 싶을 것이요,
진심으로 병을 고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묘약이 있다
는 사실을 안 즉시 그 약을 복용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죄를 지은 사람이 면사패免死牌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면사패를 즉각 손에 넣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사전에 미리 면사패를 몸에 지니면
서 잘 보관해 두지 않는다면, 어느 날 야밤에 끌려
나가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때가 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염불실용문답 159

임종할 때에 과연 염불을 할 수 있다면 당연이 똑같


이 왕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에는 몸은
사대가 분리되고, 마음은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번뇌
하며, 게다가 권속들이 아버지, 어머니 불러가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원수가 와서 목숨을 앗아가려
하는데, 이때가 되면 좀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 평소에 부처님이 계심에도 부르지 않던 사람은
이때가 되면 부처 ‘불’자는 일찍이 어디에다 버렸는지
도 알 수 없거늘, 어떻게 다시 염불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죽음의 인연이란 일정치가 않아, 공난(항공
사고), 해난海難, 교통사고, 광난(礦難, 광산 사고) 등
여러 가지 사고사가 있고, 몸에 칼을 맞고 총탄이
머리를 관통하며, 독약이나 독가스 등으로 인한 죽음
도 있으며, 중풍으로 언어능력을 잃고, 혼미하여
정신이 맑지 않으며, 목이 잠기고 혀가 오그라들면서
죽는 등 수많은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너무나 갑작스
러워 미처 막아낼 방법이 없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
160

에만 걸려도 염불을 할 수 없다.


29. 질문: 보아하니, 지금부터 염불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답변: 그렇다! 일찍 염불하면 일찍 평안하고, 일찍


재난을 면하고, 일찍 업장이 소멸되며, 일찍 복이
자라나고, 일찍 왕생이 결정된다.
염불실용문답 161

3. 임종조념에 관하여

30. 질문: 임종 때 입으로 염불을 할 수 없다면 마음속


으로 염불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31. 질문: 임종 때 마음속으로 한마디 한마디씩 부처님
의 명호를 부르는 것조차 어려워, 오직 한 생각 왕생을
원하는 마음만 갖고 있어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왕생할 수 있다. 관경의 하품중생下品中生


이 바로 그런 경우다.
162

32. 질문: 임종 때 혼자 마음속으로 염불하기가 힘들


어, 다른 사람을 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념을

해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왕생할 수 있다. 관경에서 하품하생한 사


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본인의 마음이 무기력하여
의업意業으로 사유를 할 수 없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선지식을 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념을 하였지만
역시 수승하게 왕생하였다. 예컨대 본인이 글을 쓸
줄 몰라도 글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손을 잡고 글을
쓴다면 이 역시 똑같은 글이다. 임종하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미 염불을 할 수 없으므로 선지식을
따라서 한마디 한마디씩 염불하는 것 역시 똑같은
염불이고, 똑같이 왕생한다.
33. 질문: 평소에는 왕생을 발원하고 염불하지만,

임종 때에 혼미하여 염불을 못한다면 왕생할 수 있겠


염불실용문답 163

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34. 질문: 어찌하여 평소에 염불을 하다가, 임종 때에
는 염불을 못해도 왕생할 수가 있는가?

답변:왕생이란 결코 반드시 임종 때가 되어서 결정


되는 게 아니다. 평소에 전수염불하며 진심으로 왕생
을 발원하는 사람의 왕생은 평소에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임종할 때 비록 염불을 못했어도 반드시
왕생한다. 이것을 정토종에서는 “평생업성平生業成”
이라고 부른다. 마치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랄 때부터
서쪽을 향해 기울었다면, 톱으로 자를 때에는 비록
힘을 더 주지 않더라도 자연히 서쪽을 향해 넘어가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일찍이 배에 올라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설사 배가 부두를 떠날 때에 잠이 들어
164

서 모른다 할지라도 편안하게 피안에 도달하는 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선도대사께서,
염불이야말로 왕생에 있어서 ‘정정업正定業’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다.
35. 질문: 염불이 정정업이라면 어떠한 사람도 염불

을 하면 모조리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찌하여 임종조념臨終助念이라는 일설이 있는가?

답변: 인광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임종조념의


법은 당나라 때 선도대사님이 발명하신 것으로서,
이를테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이 이 법에
의지하여 조념을 한다면 역시 왕생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임종조념은 주로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이 임종 때에도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윤회를 하게 되므로,
염불실용문답 165

이때는 이 사람을 데리고 함께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선지식의 지도와 도움이 필요한 시기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이때 선지식을 따라서 염불을 할 수 있다면
똑같이 왕생한다. 임종조념으로도 왕생할 수 있는
데, 평소에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염불이 왕생의 정정업이고, 만인이
닦아 만인이 다 왕생한다(萬修萬人去)는 것에 대한 설명
이다.
36. 질문: 지장보살을 염하고 지장경 금강경을
읽거나 진언 등을 염하는 것도 조념에 속하는가?

답변:전부 조념이 아니다!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


를 부르는 것만이 조념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조념’
이란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 아미타불을 불러 극락
세계에 왕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고, 또 다른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
166

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임종할 때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어서,
평소에 어떤 법문을 배웠던 간에 이때에는 전부 내려
놓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 더
이상 난잡하게 다른 것을 부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오히려 조념을 방해하
고 왕생을 파괴하는 행위다.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지은 죄업은 임종할 때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37. 질문: 경을 읽거나 진언을 외우거나 모든 불보살

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에도 전부 공덕이 있지 않는가?


어찌하여 조념을 파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답변:전부 공덕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왕생을 한다고는 보장할
염불실용문답 167

수 없다. 본래 임종조념이란 정토왕생을 통하여 성불


을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인데, 결국 다른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고 다른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름으
로써 단지 인간과 천상의 좋은 과보만을 얻을 뿐이다.
그 다음 생에 다시 불법을 만나기 어렵고 삼악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이 어찌 성불이란 대사大事
인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38. 질문: 조념자가 가장 확실하게 알아야 할 근본은

무엇인가?

답변:모든 장애요소들을 제거하고 오로지 한마디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다.
39. 질문: 조념을 할 때에 법문의 주요 내용은 어떤

것인가?
168

답변: 우선 윤회의 괴로움과 극락의 즐거움에 대하


여 설명하고, 그 사람에게 마땅히 왕생발원을 할
것을 권장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세간에
대한 모든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는
데, 목숨이 다할 때에 아무리 집착을 해도 소용이
없을 뿐더러 왕생까지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
로 그 사람에게 조념자를 따라 함께 염불을 하면서
부처님이 영접하러 오시면 바로 부처님을 따라 가도
록 권해야 한다.
40. 질문: 가장 간단한 임종법문은 어떤 것인가?

답변: 아무개여! 죽은 뒤에 윤회를 한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아미타불을
부르시고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로 왕생하
십시오!’
염불실용문답 169

41.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장시간의 조념과 법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는가?

답변: 그 사람의 목숨이 아직 다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조념하러 오신
사람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진행하셔서 임종
을 맞이한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남아 있다면 무슨 일인지 알아
보고 되도록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도와드
려야 한다.
만약 채무관계가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의 권속들에
게‘모든 채무관계를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잘
해결할 테니 안심하시고 떠나십시오!’라고 임종자를
위해 말씀드리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 집착을 버리
지 못하고 있다면 ‘저희들이 이 자녀들을 잘 부양하고
170

도와줄 테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려야 한


다.
만약에 원한으로 인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렵
다면 ‘아무개도 지금 굉장히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곧 정토에 왕생하여 성불을 할 사람이니,
그 사람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약에 그 사람의 걱정거리를 적중시
켰다면 즉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42. 질문: 조념과 법문 도중에 가장 주의하고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답변: 첫째는 잡다한 것을 피해야 한다. 한마디


아미타불을 제외하고, 그 외의 것은 일절 피해야
한다.
둘째는 병자 또는 망자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더하
는 것을 피해야 한다. 예컨대 ‘아무개여! 당신은 평생
염불실용문답 171

을 염불수행 하셨는데, 구하는 게 바로 극락왕생입니


다. 지금이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이므로 반드시 정념
正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만약
이 순간에 정념을 잃어버린다면 평생의 수행이 수포
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모두 부정적인 메시지가 그 속에 들어 있어서
임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부담을 주게 된다. 왜냐하
면 사람이 이 순간이 되면 스스로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지혜롭게 위로를 하여 그 사람의 마음
이 평안하고 온화하도록 해주는 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땅히 ‘아무개님! 당신이 평생
염불수행을 하시고 왕생을 원하신다는 것을 아미타
불께서는 일찍부터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니, 그
공부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반드
시 당신을 구제해주실 것입니다. 현재 비록 아미타불
께서 몸을 나투시어 영접하러 오신 모습을 친견하지
172

는 못했으나, 그건 당신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아미타불의 사람입
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당신을
영접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저희들을 따라서 염불을 할 수 있으면 저희들과 함께
염불을 하시고, 만약에 힘이 받쳐주지 않으시면 우리
가 염불을 할 테니 듣고만 계셔도 됩니다. 당신은
안심하고 여기에 누워서 아미타불의 영접만을 기다
리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43. 질문: 조념자는 마땅히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어

야 하는가?

답변: 첫째는 상대방의 입장, 즉 임종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바로 저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인데,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한
염불실용문답 173

다면 모든 행위가 임종자의 마음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아미타불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되 조념을
하면서 정말 왕생할 수 있을까? 아미타불께서 진짜로
오실까? 등에 대하여 의심하고 걱정해서는 안 된다.
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오로지 염불에만 집중한다면
아미타불께서 당연히 오셔서 임종자를 구제하실 것
이니,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따라서 지나친 걱정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염불하는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
44. 질문: 임종조념을 할 때에 법문과 염불 중에
어느 것을 위주로 해야 하는가?

답변: 염불을 위주로 해야 한다. 법문은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편일 뿐이다.
174

45. 질문: 조념을 할 때에 법문을 해줄 사람이 없으면


염불만 해도 되는가?

답변: 평생 불법을 만나지 못하였거나 왕생을 원치


않던 사람이라면 간단한 법문을 통하여 왕생발원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말로 법문을
해줄 사람이 없다면 대중들이 다함께 입을 모아 염불
만 해도 자연히 온 집안이 광명으로 가득해지고 불가
사의한 효과도 있을 것이다.
46. 질문: 조념을 할 때에 창념唱念과 칭념稱念, 육자六

字와 사자四字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

답변:임종을 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칭념(음률 없이 하는 염불)은
창념(음률을 넣은 염불)보다 수월하고 기력 소모가 적
어서 힘이 덜 든다. 중병 또는 임종을 하는 사람은
염불실용문답 175

기가 부족하고 정신력이 쇠약하여 창념을 따라 하기


가 어려우므로 칭념을 하는 게 적합하다. 육자(나무아
미타불)는 사자보다 완전하고, 사자(아미타불)는 육자
보다 급박하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전후에는 사자
로 칭념해도 된다.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부처님
명호의 완전함을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상황이 급박하지 않으므로 육자로
부르는 게 비교적 원만하다.
47. 질문: 조념을 해주는 연우들이 많을수록 좋은가?

답변: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몇 조로 나누어 조념을


하되 한 조에 6, 7명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하다.
사람이 적으면 항상 염불소리가 통일이 잘 되는데
사람이 많으면 번번이 난잡해지기 일쑤다. 조념을
하는 현장에서는 정신의 집중과 명호의 일치를 요구
하므로 필요 없는 잡담을 삼가고, 사람들이 왔다
176

갔다 하면서 움직여서도 안 되며, 선풍기 등의 기계가


작동하면서 나는 소리 등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48. 질문: 염불기로 연우들의 조념을 대신할 수 있는

가?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 대신할 수 있는가?

답변: 사람의 심력心力의 감응이 크므로, 염불기가


조연助緣은 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전후에는
더욱 대중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소리를 내어 칭념을
해야 하므로, 절대 사람이 염불하지 않으면서 염불기
만 염불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경우는 잠시 염불기로 대신
할 수 있다.
⑴ 조념을 할 사람이 없을 경우.
⑵ 조념자가 너무 피곤하여 지속하기 어렵거나,
병자의 상태가 아직은 평온하여 심각하게 위급하지
염불실용문답 177

않을 경우.
⑶ 임종자 자신이 확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조념
이 필요 없을 경우.
⑷ 망자를 위해 최소한 8시간 이상의 조념을 했을
경우.
⑸ 망자의 왕생이 이미 확실해졌을 경우.

49. 질문: 수행력이 있는 사람이 조념을 한다면, 그


효과가 일반인보다 좋지 않겠는가?

답변:정확히 말하자면,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과


정성을 다해 집중을 하는 사람일수록 조념의 효과는
더욱 좋다.
50. 질문: 가족이 직접 염불을 해준다면 그 이익은

일반 조념자보다 더 나은가?
178

답변: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족 사이의 연분이 가깝고 염불하는 마음
이 정성스러워서 쉽게 감통感通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일지라도 성의 없이 대충대충 한다면
도리어 외부에서 조념을 하러 온 사람만큼 정성을
다해 집중을 하지 못하므로, 그 이익과 효과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연우들이 오셔서 조념을 해주고 가족 또한
참석하여 서로 감동을 주고받으면서 정성을 다해
염불에 집중한다면 효과가 가장 좋을 것이다.
51. 질문: 일생 동안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전수염불을
한 사람도 임종 때 가족들이 울거나 옮기는 등의
인연을 만나면 왕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답변:과연 일생 동안 믿음과 발원을 가지고 전수염


불을 한 사람이라면 일찍이 아미타불의 광명의 섭취
염불실용문답 179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임종 때 어떠한 인연을 만나던


간에 전부 영향을 받지 않고 반드시 왕생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정확히 알기는 어렵
고, 게다가 조념을 하러 온 이상 반드시 모든 가능한
장애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을 안전하고 완전한
계책(萬全之策)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임종을
하는 사람의 믿음과 발원이 어떻든 간에 조념을 할
때는 가족들이 울거나 옮기는 등의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52. 질문: 가족들이 울거나 병자 또는 망자의 몸을

옮기는 등의 행위가 조념의 효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가?

답변: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들은


병자 또는 망자에게 고통을 더해주기 때문에, 만약
평소에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고 염불에 숙달된 사람
180

이 아니라면 탐착하고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


켜서 삼악도에 떨어지기 쉽다.
53. 질문: 만약 가족들이 조념을 반대한다면 마음속

으로 묵묵히 그 사람을 위하여 법문과 조념을 해줘도


되는가? 그래도 효과는 동등한가?

답변: 그래도 좋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


으로 묵념을 하더라도 온몸에 자연히 부처님의 광명
이 있게 된다. 만약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집중해서
묵묵히 법문을 해준다면 불력佛力과 감응이 통하여
효과 역시 불가사의하다.
54. 질문: 아미타불께서 염불인을 영접하러 오실 때
혼자서 오시는가, 아니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도 함께 오시는가?
염불실용문답 181

아미타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관음 세지


답변: 
와 여러 성중들을 거느리고 함께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다만 개개인의 인연이 다르므로 보이는 바
또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는 부처님만 보이고 보살은 보이지 않거나, 어떤
사람에게는 보살만 보이고 부처님은 보이지 않거나,
또 어떤 사람은 소수의 성중들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다수의 성중들을 보며, 어떤 사람은 단지 연꽃과
광명만을 보게 된다.
55. 질문: 아미타불께서 영접을 하러 오신 것을 보면

‘뛰어 올라가야 한다(衝上去)’는 말을 들었는데, 아미


타불을 친견한 뒤에 어떻게 뛰어 올라가야 하는가?

답변: 뛰어 올라감’이란 말은 경전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상상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상 왕생을 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
182

마치 연인들이 만났을 때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과 같다.
염불인이 영접을 하러 오신 부처님을 뵈면 아주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향해 다가갈 것이다. 마치 추위
에 떨고 있는 사람이 따뜻한 장소를 찾게 되고,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밝은 곳을 원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당연한 경향이다. 더군다나 아미타불의 위신력으로
섭취해주심이 있기 때문에, 이때에 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마치 작은 풀잎 하나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난 것과도 같이 자연히 부처님을 따라가게 된다.
예컨대 관경의 구품왕생은 전부 아미타불께서 여
러 성중들과 함께 광명을 놓고 손을 내밀어 영접을
하시는데, 염불인은 자연스럽게 연화대에 올라 앉아
부처님의 뒤를 따라 곧바로 극락세계의 연못에 들어
가게 된다. 우리는 오로지 염불만 할 뿐, 어떻게
연화대에 올라가고 어떻게 서방의 연못으로 왕생하
는지는 전부 아미타불의 소관이시므로 우리가 걱정
염불실용문답 183

할 필요는 없다.
56. 질문: 임종할 때에 마魔가 와서 아미타불의 모습
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가?

답변: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임종 때는 마가


붙을 때가 아닐뿐더러, 더욱이 염불인의 임종에는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제대보살들께서 광명신력으
로 가호해주심이 있으므로 모든 삿된 마들이 가까이
범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정오의 태양
아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57. 질문: 임종 때 혼미 상태일 때, 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준다면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제3집에 보


면, 황영부黃英夫는 식물인간처럼 혼미한 지 43일이
184

되었지만, 그를 위해 법문을 하고 염불을 해주자


여전히 수승하게 왕생하였으니, 그것이 곧 명백한
증거다.
58. 질문: 혼미 상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여서 움직
일 수도 말을 할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텐데,

어찌하여 그 사람을 위해 법문을 하고 염불을 해준다

고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답변:겉모습은 비록 혼미한 상태이지만 정신은


혼미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을 위해 법문과 염불을
해준다면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그 사람이 따라서 염불을 하고 정토왕생을 원한다면
틀림없이 왕생한다.
59. 질문: 만에 하나 임종 때 혼미하여 부처님이 영접

하러 오신 것도 모른다면 어떻게 왕생할 것인가?


염불실용문답 185

답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염불감응록에서 장묘신張妙信
은 뇌혈관 파열로 하루 종일 혼미한 상태였으나,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
셨으니 나는 왕생한다”라고 말한 것이 곧 그 증거이
다. 이 사례가 설명하듯이, 비록 육체는 혼미한 상태
이지만 정신(神識)은 혼미하지가 않기에, 부처님께서
영접하러 오신 모습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뵙고 부처
님을 따라서 왕생을 할 수 있다.
60. 질문: 임종자 또는 망자가 아미타불을 뵌 적이

없어서 부처님을 못 알아보면 어떡하는가?

답변: 부처님을 뵙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초목이 봄을 모르지만 봄이 오면 자연히 생기발
랄해지는 것과 같다. 사람이 죽음의 고통 속에 있을
때 부처님이 영접하러 오시는 것은 마치 초목이 태양
186

을 향하고, 추운 사람이 따뜻한 곳을 찾는 것과 같아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향해 기울게 된다. 중생들은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할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나무에는 불의
기운이 있어서 맹렬한 불속에 넣으면 자연히 타게
되고, 얼음에는 물의 성질이 있어서 끊는 물에 넣으면
저절로 녹게 된다. 그런데 어찌 나무가 불을 모르고
얼음이 물을 모를까를 걱정하겠는가? 더군다나 부처
님께서 위신력으로 가지(加持, 가피)하심이 있거늘,
어찌 범부로 하여금 부처님을 알아보게 하지 못하겠
는가!
61. 질문: 살아생전에 염불을 한 적이 없던 사람이,
죽은 뒤에 조념을 해준다고 해서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육체는 비록 못쓰게 되었지


만 영혼(神識)은 죽기 않고 평소보다 더욱 예민해지므
염불실용문답 187

로, 단지 법문을 듣고 염불을 하며 왕생을 원하기만


한다면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염불감응록 곳곳에 여러 증거가 있다.

62. 질문: 비명횡사를 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왕생


할 수 있는가?

답변:왕생할 수 있다. 염불감응록 곳곳에는 추


락 교통사고 타살 급사로 죽은 사람들이 조념염불
을 통하여 모조리 왕생한 사례들이 있으니, 그것이
명백한 증거이다.
63. 질문: 자살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왕생할 수 있다.


188

64. 질문: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사람도 조념을


해주면 역시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비록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사람일지라도
영혼이 아직 환생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위해
조념을 해주면 역시 왕생할 수 있다.

65. 질문: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났어도 조념을 통해


왕생할 수 있다면, 망자를 위해 조념하는 시간 배정을

어떻게 안배하는 것이 타당한가? 49일 동안 염불을


해주는 게 더욱 좋은 것인가?

답변:조념과 천도는 망자가 죽은 시간과 가까울수


록 좋으며, 그 시간을 차일피일 미룬다거나 따로
날짜를 잡는다던가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조념을
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마땅히 실제 사정에 따르되,
아무튼 길면 길수록 좋다.
염불실용문답 189

66. 질문: 망자의 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염불을 해줘


도 왕생에 도움이 되는가?

답변: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공간


을 초월하여 그 감응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염
불감응록 제3집에 보면, 관영冠英이라는 사람은 대
만에 살고 있었고, 돌아가신 부친은 중국대륙에 있어
서 서로 수천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부친을
위해 염불을 해주니 극락왕생을 했다는 사례가 바로
그 증거다.
67. 질문: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조념만 해주면
전부 정토왕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답변:조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왕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왕생한다고 보장할 수는
190

없다. 이른바 조념이란 본인 스스로 염불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으로서, (임종을 맞이한) 본인이 염불을
해야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조념을 해주더라도 만약에 본인의 선근이 적고 업장
이 많으며, 왕생을 원치 않고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역시 왕생할 수 없다. 다만, 왕생을 못하더라도 목숨
이 끊어질 때 한마디 부처님의 명호가 귀를 스쳐지나
가기만 하면 최소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음을 보장
할 수는 있다. 그런 까닭에 그 공덕과 이익 역시
불가사의한 것이다.
68. 질문: 어떤 사람에게 반드시 조념을 해주어야만
왕생할 수 있거나 왕생을 확신할 수 있는가?

답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⑴ 부처님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
⑵ 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
염불실용문답 191

⑶ 왕생을 원치 않는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은 반드시 조념이 필요하다.
⑷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
⑸ 잡행을 하는 사람
⑹ 의심이 많은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 역시 조념을 해주어야만 왕생을
확신할 수 있다.
69. 질문: 어떤 사람이라야 조념이 필요 없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평소에 진심으로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고


왕생을 원하며,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임종할 때 조념의 유무와 상관없이 반드시
왕생한다.

70.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평생토록 염불수행하


192

고 진심으로 왕생발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역시


임종조념을 원하는가?

답변: 그것은 왕생이 결정되지 않아서 사람들의


조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비록 왕생이 이미 결정되었
지만 연우들을 모시고 임종할 때 배웅을 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일 뿐이다.
71. 질문: 염불인에게 어떠한 징표가 있어야 확실하게

왕생하였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답변: 다음과 같은 징표이다.


⑴ 왕생할 때 앉고 눕는 것이 자유롭다.
⑵ 사전에 정토왕생을 하는 시간을 정확히 안다.
⑶ 염불을 하면서 숨이 끊어진다.
⑷ 임종할 때 스스로 극락세계의 거룩한 경계가
나타나고, 불보살님과 연꽃이 나타나 영접하러 오셨
염불실용문답 193

다는 말을 한다.
⑸ 임종조념을 해주던 사람이 극락세계의 불보살님
과 연꽃이 영접을 하러 오심을 본다.
⑹ 친한 사람의 꿈속과 선정 속, 또는 염불 도중에
직접 그 사람이 정토왕생을 하는 모습이 뚜렷하고
확실하게 본다.
⑺ 죽은 뒤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으나 정수리만큼
은 따뜻하다.
이상 일곱 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갖췄어도 틀림없
이 왕생했다고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염불인의 목숨이 끊어진 뒤에 얼굴에
미소를 짓거나, 신체가 유연하거나, 천상의 음악이
울리거나, 미묘한 향기가 나거나 하는 등의 현상도
기본적으로 정토왕생의 징표라고 볼 수 있다.
72. 질문: 만약에 위와 같은 그러한 상서로운 징조가

없었다면 정토왕생을 못했다는 것인가?


194

답변: 그렇지는 않다. 평소에 염불을 하고 믿음과


발원을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특별한 징조가 없더라
도 틀림없이 왕생한다. 다만 이것은 부처님과 왕생자
본인만 알 뿐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근본부터 말하자면, 왕생이 결정되는 것은 부처님
의 원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지 상서로운 징조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일반 초심자들은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원력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잠시 눈앞에 보이는 상서로운 징조들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73. 질문: 어떤 사람들이 왕생할 때 자유로운가?

답변: 왕왕 신분이 낮고, 우둔하고 지혜가 없으며,


마음씨가 착하고 부드러우며, 성실하게 염불을 하
며, 떠벌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좋게 갈 수
있다.
염불실용문답 195

간략히 말하자면 여섯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⑴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
⑵ 어리숙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
⑶ 듬직하고 드러내기를 싫어하며 조용히 수행하는
사람
⑷ 자비롭고 착하고 유순한 사람
⑸ 염리심(厭離心: 생사를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
⑹ 숙세에 선근이 있는 사람
74. 질문: 어떤 사람이 왕생할 때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가?

답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⑴ 잡행을 하는 사람
⑵ 게으른 사람
⑶ 의심이 많은 사람
196

⑷ 교만한 생각으로 잘난 척하는 사람


⑸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⑹ 고집이 센 사람
⑺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
이상 일곱 부류의 사람들은 숙세에 큰 선근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롭게 왕생하
기란 어렵다.
75. 질문: 어떤 염불인이 미리 왕생할 시간을 알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미리 시간을 알 수 있는가?

답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⑴ 염불의 공력이 많이 쌓인 사람
⑵ 숙세의 선근이 깊고 두터운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선정 속에서나 또는 염불을 하고
있는 도중에 불보살님의 계시를 받아서 알 수 있다.
혹은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
염불실용문답 197

로 알게 된다. 남들은 신기하게 느껴지겠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마치 눈앞에 놓인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
전혀 특별할 게 없다.
76. 질문: 평소에 염불수행을 하고 있지만 왕생을
못할까 두려워서, 사전에 미리 연우들에게 연락하여

때가 되면 와서 조념을 해줄 것을 부탁해도 되는가?

답변: 사전에 연우들에게 조념을 부탁하는 것은


괜찮다. 그렇다고 평소에 염불수행을 하지만 왕생이
결정되지 않아 반드시 조념을 해야만 왕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조념의 유무
와 상관없이 반드시 왕생한다”고 깊이 믿어야 한다.
다만 범부들은 세속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임종을
할 때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기 쉽다. 또한 불교를
믿지 않고 염불을 하지 않는 가족들이 세속적인 방식
으로 임종을 처리해서 염불인의 심정을 헤아리지
198

못하고 염불인의 염원을 어긴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에 만약 연우들이 오셔서
함께 염불을 한다면 위안과 따뜻함을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서 현재 동일한 부처
님의 명호를 부르며, 장래에 동일한 정토에 왕생하게
되는 것이니, 친한데다가 더 친해진 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임종 때 서로 배웅을 해주는 것은 피차
간에 아주 즐겁고도 위안이 되는 일이다.
온정적이면서 장엄한 염불은 임종을 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족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덜어주고 그분들이 불법에 대한 선근과 신심
을 증장시켜주며, 정토를 동경하고 염불왕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바로
연우들이 오셔서 그분의 가족을 위해 염불을 해준
덕택에 불법의 이익을 얻고 감동을 한 나머지 불교를
믿고 염불을 하게 된 것이다.
염불실용문답 199

그리고 조념을 해주러 오신 연우들의 입장에서 보


더라도 애심愛心으로 봉사하고, 무상無常함을 체험하
며, 현장에서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구제를 견학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77. 질문: 평상시 염불과 임종시 조념의 사이에 마땅

히 어떤 마음으로 취사取捨를 해야 하는가?

답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염불인


이다. 임종할 때 설사 그 자리에 아무도 없더라도
아미타불께서는 반드시 청정대해중보살清淨大海眾菩
薩들을 거느리시고 영접하러 오실 것이다.’
다만 사바세계의 업보가 다할 때에, 연우들이 염불
을 하며 배웅을 해준다면 세속적인 인연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서로가 기뻐하고 위안이 되니, 역시
매우 수승한 일이다.
만약에 자신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오로지 염불수
200

행을 하여 부처님 원력의 배를 타면 반드시 왕생한다’


는 것에 힘써야지, 왕생을 임종조념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임종할
때 되도록 가서 조념과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염불실용문답 201

4. 일상생활에서의 마음가짐에 관하여

78. 질문: 어째서 나는 염불을 안 하면 마음이 그나마


편안한데, 염불만 하면 도리어 마음이 답답해지고

염불하기가 싫어지는가?

답변:이것이 바로 당신이 염불의 이익을 얻었고


염불이 당신에게 적합하다는 증거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마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축구경기를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인터넷 게임을 좋아해서, 한
번 시작했다 하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 쌩쌩해지는 것은 망념이 멋대로 하도
록 내버려 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염불을
202

하면 여기가 불편하지 않으면 저기가 답답한 것은,


부처님의 명호로써 망념을 다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야생마에게 처음으로 고삐를 채울 때에 당연히
자유롭지 못해서 반항을 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속의 망념 역시 야생마와도 같아서, 부처
님의 명호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힘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다. 따라서 염불을 오래오래 하다 보면 망념이
자연히 길들여지는 것이, 마치 야생마가 좋은 말(良
馬)로 변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 염불은 하지 않고
망념이란 야생마를 좇아 치달린다면 이 야생마는
우리를 태우고 곧장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79. 질문: 어째서 나는 염불을 하지 않을 땐 활력이
넘치는데, 염불만 했다 하면 쉽게 졸리는가?

답변:이것은 일반인들의 마음이 항상 망상에게


점거당하고 망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덩달아 망념
염불실용문답 203

을 참마음으로 여기고 남을 자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망념이 활기를 띠면서
흥분 상태에 있기에 본인은 자신의 활기가 넘친다고
느끼지만, 염불을 하면 부처님 명호의 위력으로 인해
망념이 억제되어 더 이상 흥분 상태에 처해 있지
않게 되므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졸리게 되는 것이
다. 예컨대 마치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장소
에 덕망이 높고 위엄이 있는 제왕이 나타나면 즉시에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염불을 하면 졸리는 것 역시 염불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서, 위에서 염불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불편
한 경우보단 한층 더 나은 편이다. 다만 아직은 완전
히 부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때에 망념을
간파하여 (망념을) 따라가지 않고 부처님을 가까이한
다면, 염불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밝고 깨끗해질
것이다.
204

80. 질문: 어째서 나는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에 염불을 하면 순조롭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데,

앉아서 조용히 염불하려고만 하면 순조롭지도 않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도 없는가?

답변: 성격이 지나치게 활발하거나 생각이 지나치


게 활기찬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 쉽다. 하지만 개의치
않아도 된다. 자신의 습관화된 방식에 따라 염불하면
되니, 왕생에 있어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81. 질문: 염불인들은 망상잡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

답변: 망상잡념에 대하여 염불인들은


첫째, 조급해하지 말고
둘째, 두려워하지 말고
셋째, 마땅히 기뻐해야 하고
염불실용문답 205

넷째, 생각을 바꿔야 한다.


⑴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망상잡
념을 단박에 제거하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겁생 동안 우리들은 망상잡념에 너무나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담배와 술을 끊고 마약을 끊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지 모른다. 바로 이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염불을 하고 부처님의 원력에 기대어 왕생을 하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여 망상잡념을 제거하고
마음을 정화하여 왕생하려 한다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⑵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망상잡념이 있는 것은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모든 범부들은 전부 망상잡념
이 분분한 존재들이고, 아미타불께서 구제하시려는
대상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아미타불께서 이미 당신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206

왕생을 할 수 있다는 보증을 해주신 이상, 설령 망상


잡념이 있으면 어떠한가? 이렇게 망상잡념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망상잡념 역시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없어서 온순해지고 잠잠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망상잡념을 두려워한다면 도리어 말썽을 일으켜서
우리로 하여금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도록 한다.
⑶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 어째서 망상잡념이 있는
데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망상잡념을
조복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곧 나는
계 정 혜 삼학을 원만하게 닦을 수 없고 염불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아미타불께서 구제하려는
중생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사가 치료할 대상은 환자이지 건강한 사람이 아니
듯이, 망상잡념이 있는 내가 어떻게 아미타불께서
구제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만약에 망상잡념
이 없는 성인聖人이라면 아미타불께서 굳이 그런 성
인을 위하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염불실용문답 207

생각을 해보면 나야말로 아미타불의 구제대상에 딱


부합되므로, 내가 염불을 하면 틀림없이 왕생하게
되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염불을
할 때에 자신에게 망상잡념이 많음을 안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아미타불로부터 구제되었음을 입증해주
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본래 염불을 하지 않을 때는
아직 자신에게 잡념이 많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염불
만 하면 즉각 잡념이 분분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달이 없으면 나무의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지만
달빛이 밝을수록 나무의 그림자 역시 짙어지는 것과
같다. 내가 염불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광명이
나의 마음속을 비춰주신 것이고, 그때서야 자신의
망상잡념을 보게 된 것이니 어찌 내가 이미 부처님으
로부터 구제된 것이 아니겠는가?
⑷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망상잡념인줄 알아차리면
즉시 내려놓고 상대하지 말며, 생각을 바꿔서 아미타
불을 불러야 한다. 예컨대 달빛 아래의 나무 그림자를
208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볼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어둡


게 느껴지게 된다. 이럴 땐 두 눈을 돌려 허공 속에
떠 있는 맑고 밝게 비치는 달을 보고, 얼굴을 스치는
산들산들한 맑고 신선한 바람을 즐긴다면 마음은
단박에 탁 트이게 될 것이다.
경전에서 “일향전념一向專念”하라는 말씀이 바로 이
뜻이다. 망상잡념이 생기면 그냥 내버려두고 함께
뒤엉키지 말며, 오로지 아미타불을 향하여 염불만
하면 된다. 망념은 스스로 생겨났다가 다시 스스로
사라지게 되는 존재이므로, 억지로 망념이 사라지게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여전히 우리는 범부의 본분
을 지키면서 착실하게 염불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범부로서 망상잡념이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이라면 눈과 귀가 있듯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임을 안다면, 이 망상잡념을 내 몸 이외의 것(身外之物)
이라 생각하여 반드시 제거를 해야 통쾌하다고 여기
염불실용문답 209

지 않을 것이며, 망상으로 인해 망상이 더 생겨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침 옛말 중에 “세상에는
본래 아무 일도 없건만,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시끄럽게 구는구나!”라는 구절과 잘 어울린다. 이
구절을 다시 달리 표현하면 “염불만 하면 아무 일도
없건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스스로 시끄럽게 구는구
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 편에
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고 어떠한 제한적 조건도
없으시건만, 우리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여 자기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을
뿐이다.
82. 질문: 정토법문을 만났지만 도심道心이 강하지
못해 염불을 하다가 말다가 하는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도심道心에는 두 종류가 있다.


210

첫째는 왕생을 원하는 마음(願生心)이고


둘째는 정진하는 마음(精進心)이다.
만약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왕생을 해도 되고 못해도 되며, 염불을 하다가 말다가
한다면, 그렇다면 왕생을 보장할 수 없다.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은, 앞으로 나아가면 왕생하고 뒤로
물러서면 왕생을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근기 자체가 게으르고 나약하여 염불을 하
는 데 용맹정진을 못하고 하다가 말다가 하지만,
왕생을 원하는 진실한 마음만은 바뀌지 않는다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다. 또한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염불은 저절로 점점 더 증진하게 될 것이
다.
83. 질문: 나는 매일 염불을 하는 것 외에도 여전히

마작을 즐기는데,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염불실용문답 211

답변: 그것은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만약에


염불왕생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습성 때문에 마작을 즐긴다면, 그래도 왕생
을 할 수는 있다. 다만 마작을 끝내고 나면 본인도
이건 시간낭비이고 염불을 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
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시일이 지나다 보면 저절
로 적게 하게 되고 결국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염불은 겉치레에 불과하고 마작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주객과
경중이 전도된 것으로서 왕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84. 질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염불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염불을 많이 할 것을 시시각각 상기시킬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마작
을 하면서 자신의 왕생에 대하여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며 소탈하고 자재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아미

타불의 구제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212

옳은 것인가?

답변: 이런 인식은 매우 편파적인 것이다. 마땅히


자신의 왕생을 걱정하지 않는 동시에, 염불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자 염불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에 관해서는 사람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통 재가자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든가 마작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마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진심으로 염불왕생을 원한다면 물론
무방하겠으나, 그래도 텔레비전을 적게 보고 마작을
적게 하며 염불을 많이 하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소탈함과 자재함을 말하자면, 역시 염불하는
것이 소탈하고 자재한 것이다.
범부의 마음이란 본래부터 제멋대로인 데에 익숙하
므로, 이제 겨우 염불을 시작하면 이내 속박을 느끼게
된다. 애써 상기시켜도 염불을 늘 잊어버리는 판국
염불실용문답 213

에, 자유의지에다 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는


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아마
도 자신은 틀림없이 아미타불을 의지한다고 생각하
면서 염불을 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마음
조차 희미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텔레비전과
마작 속에 빠져들고 만다. 부처님을 의지하고 염불한
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관념일 뿐이고, 자신을
위해 찾은 변명거리에 불과하며, 염불은 아주 적게
하거나 심지어 아예 염불을 안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85. 질문: 사후에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보살행이
틀림없으나, 범부의 신분으로서는 집착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왕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답변: 그건 개인의 발심을 봐야 한다. 만약 삼매력


이 부족하고 원력이 견고하지 않다면 반드시 영향을
214

받게 된다. 왕생한다는 것은 큰일(大事)이므로, 마땅


히 큰일을 보전하여 결정된 왕생을 구함으로써 무생
법인을 증득하고, 그 다음에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
면, 그때는 석가모니불처럼 제 몸을 던져 매와 호랑이
를 먹이는 일도 어렵지 않거늘, 하물며 다른 일들이겠
는가!

86. 질문: 나는 상품상생을 원하는데, 그래도 되는가?

답변: 아미타불의 구제에 맡기기를 발원하는 것만


못하다. 역대 정토종 조사들 중에 이와 같이 발원하신
분은 듣지 못했다. 인광대사께서 “왕생만 할 수 있다
면 하품하생일지라도 만족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아미타불을 따르겠
다는 뜻이다.

87. 질문: 나는 ‘왕생할 때에 몸에 병으로 인한 고통이


염불실용문답 215

없고, 단정히 앉아서 왕생하고, 선정에 든 듯하며,


기이한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하고, 하늘 음악이 허공

에 울려 퍼지도록 함으로써 대중들의 신심을 불러일


으키고자 한다’는 발원을 하려는데, 괜찮은가?

답변: 참으로 이런 원력이 있다면 안 될 건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모르게 면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만약에 진정한 공행功行이 있다면 설사 이런
발원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이러한 광경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진실한 행도 없으면서
이미 큰소리를 친 상태라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 진심으로 왕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보기 좋게 꾸미려는 가식
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왕생할 때가 되면
도리어 장애가 되어 왕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염불왕생은 사람 됨됨이와 같아
서, 진실하고 분수에 맞게 살며 자신의 무게가 얼마면
216

얼마만큼의 말만 해야 한다. 착실하게 염불하고 착실


하게 왕생한다면, 비단 죽을 때만 사람들의 믿음을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더욱 더
사람들의 믿음을 일으킬 수 있다.
88. 질문: 나는 불치병이 낫고,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발원하여 이것으로 표법表法을 하려는데, 괜찮은가?

답변: 모든 것이 다 무상한데 무슨 법을 표하겠단


말인가? 이는 마음속에 왕생할 생각이 없으면서 듣기
좋은 말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120세까지 살아도 좋고
오늘 밤에 죽어도 좋으므로, 장수와 단명에 대하여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병이 깊을수록 더욱 왕생발원을
할 것이다.

89. 질문: 나는 왕생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염불실용문답 217

건강과 장수, 부귀와 영화 등 생선과 곰발바닥을 다


얻고자 발원하는데, 괜찮은가?

답변: 오로지 왕생발원만 있으면 된다. 가난과 부


유함, 장수와 단명은 앞서 지은 운명에다 맡기고
삶과 죽음, 빈곤과 영달은 전적으로 아미타불께 의지
할 일이다. 금생에 받은 몸(報身)은 전생에서 지은
업의 결과이다. 이미 그 과보가 나타난 이상, 설사
염불을 통하여 바꿀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복력이
부족하여 큰 부귀를 감당할 수 없다면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반드시 큰 부귀를 누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이미 다 지은 초가집을 개선하려면
다만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보수와 리모델링을 하여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헌집을 허물고 다시 짓지 않는 한 초라한
초가집을 호화로운 별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
218

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우리들도 하여금 정토왕


생을 하여 철저한 부귀와 영원한 수명을 얻을 수
있도록 발원하신 것이다.
90. 질문: 나는 왜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가?

답변: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활달하고


얽매임이 없는 사람은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으면
죽을 날이 멀지 않고 왕생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기
에, 이것이 바로 자신이 기대하던 것이므로 기뻐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세속적인 감정에 얽매여서 목숨
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세간에 대한 미련이
많기 때문에,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왕생할
수 있다. 이 ‘죽음’이라는 글자는 본래 가명에 불과하
염불실용문답 219

며, 생명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업에 따라 몸을


바꾸고 태어나는 처소를 달리하는 것을 죽음이라
부를 뿐, 사실상 진정한 죽음이란 없다. 더욱이 염불
하는 사람은 임종 때에 부처님이 내영을 하시므로
목숨이 다하면 영혼은 곧바로 정토에 태어나게 되니,
사실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91. 질문: 만약에 근근이 왕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


지 않고, 왕생한 뒤에 빨리 성불할 것을 고려해 현세에

서 보리심을 발하고 널리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자신


의 심성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면, 이는

괜찮은가?

답변: 발보리심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것이


다. 발보리심을 했다면 현세에서 이미 보살인데,
이 세상에 보살 한 분이 더 있으면 어찌 좋지 않겠는
가? 다만 문제는 사람들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220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일 착실하게 전수염


불을 하면서 여력이 남아 있으면 대승경전을 독송하
고, 마음을 넓혀서 염불하기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왕생한 뒤에 빨리 성불을
하기 위해 사전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어두운 밤중에 열 개의 촛불 빛이
물론 하나의 촛불보단 밝겠지만, 촛불을 많이 준비해
서 태양이 떠오를 때 더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
는 기껏해야 어두운 밤에 촛불 빛의 밝고 어두운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불일佛日의 대
광명大光明 경계이므로, 일단 왕생하면 부처님 경계
속으로 들어가 부처님과 똑같이 수용受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도대사께서는 “심성心性은 백천 개의 태양보다
밝게 빛나고 자비와 지혜를 동시에 운용함이 그대로
염불실용문답 221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극락왕생하여 연꽃이 피


고 미묘한 법문을 들으면 십지보살의 원행願行이 저
절로 드러나리라”고 하셨다. 이처럼 아미타불의 본원
력에 따라 모두 신속하게 성불할 수 있거늘, 또 어떤
인위적인 힘이 있어서 아미타불의 서원을 가속화시
킬 수 있단 말인가?

92. 질문: 자신의 왕생이 결정된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매일 경전과 다라니를 독송하여 천도 불사를

함으로써 발보리심 하여 자신을 장엄하는 실제 행동


으로 삼고자 하는데, 괜찮은가?

답변: 그럴 필요는 없다. 염불하는 사람은 자리이


타自利利他가 전부 한마디 아미타불이다. 어떤 사람
이 공덕 불사를 부탁해도 역시 그분을 위해 염불을
해주어야 한다. 과연 자신의 왕생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제해주시는 이 법문
222

을 열심히 널리 선양하는 데 노력하여 더 많은 사람들


이 염불하여 성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발보리심이고 위없는 공덕 장엄이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경전과 진언을 독송하는 불
사에만 열중하다 보면, 결국에 왕생은 그림 속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

93. 질문: 나는 염주를 들고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자력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

이 드는데, 옳은 것인가?

답변: 이런 견해는 옳지 않다. 결코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것은 자력이고, 게을러서 염불을 안 하는
게 오히려 타력인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아미타불
의 서원을 우러러 의지한다면 비록 하루에 수만 번씩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지라도 역시 타력(불력)인 것이
다. 남들이 용맹스럽게 염불하는 것을 보면 마땅히
염불실용문답 223

본받으려고 해야 하며, 본받을 수 없으면 마땅히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94. 질문: 염불을 하려면 전수專修를 해야지 잡수雜修

를 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는데, 오욕락도 잡수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범부로서 오욕락이 전혀 없도

록 한다는 것은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타락과 고의적인 타락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


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답변: 오욕五欲은 인생의 현상이므로 잡수라고 말


할 것까진 없다. 천상에는 수승하고 미묘한 오욕이
있고, 사람에게는 거친 오욕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악도인 축생들에게도 약간의 오욕락은 있다. 사람으
로 태어나서 합리적인 오욕락은 누릴 수 있지만,
법과 인륜을 어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본래부터 오욕중생이므로, 이런 신분을 가지고 꾸준
224

히 염불하는 것이 곧 전수專修이다.
95. 질문: 비록 왕생을 원하지만 일시에 전수염불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데, 믿음을 일으킬 수 있도

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답변: 전수염불은 언뜻 보기엔 간단한 것 같아도


자세히 알고 보면 불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법문이다.
‘염불만 하면 누구나 왕생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선근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굉장
히 믿기 어려운 것이다.
무량수경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를 분명히 믿음
(明信佛智)”이라 하시고 “어려움 중의 어려움은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難中之難 無過此難)”고 말씀하셨으
며, 관무량수경에서는 굉장히 긴 지면을 할애하여
먼저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수행법을 설명하여 복선
을 깔아놓고, 맨 마지막에서야 칭명염불법을 부촉하
염불실용문답 225

셨다.
아미타경에서는 직접적으로 “믿기 어려운 법(難

信之法)”이라 부르셨는데, 이를 육방제불께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증명해주셨다. 따라서 일시에 전수염
불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
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해(解)와 수행(行)이라는 두 측면을 통
하여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볼 수 있다.
‘해解’는 이해이다. 전수염불에 대한 교리 관련 서적
과 전수염불을 하여 왕생한 사례들을 기록한 왕생실
록들, 그리고 인과응보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보면
서, 그 속에서 아미타불의 자비와 원력의 위대함,
명호 속에는 모든 공덕이 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하열함과 무능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행行’은 곧 행지(行持: 명호를 지니고 염불함)이다. 진
실한 마음과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착실하
게 염불수행을 해야 한다. 진정한 수행자는 수행을
226

하면 할수록 자신이 수행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진정으로 청정한 계율을 엄격
히 지킨다는 기준으로 따져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자신이
효자가 되고자 했을 때에야 비로소 쉽지 않음을 알게
되며, 진정으로 보시를 하려 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마음속에 늘 미련이 남고 늘 나와 남의 분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선행이 누적됨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선근이 더욱 더 두텁게 쌓이고, 또 한편으
로는 마음이 더욱 더 자비롭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게다가 관련된 교리와 감응의 작용에 대하여 듣고
훈습을 하면서 이른바 ‘이해와 수행을 함께 닦아 나아
간다(解行並進)’면 점차적으로 전수염불을 믿고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볼 때는 선택을 해서 봐야 하고, 수행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만약 성도문의 수행과
관련된 책들을 보게 되면 서로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염불실용문답 227

비교적 상응하지 않는다. 비록 선행을 닦으면서 수행


을 한다고는 하지만, 만약 허망한 명예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고 또 아주 교만하다면 자신은
수행을 굉장히 잘하고 있고 덕행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을 공부하는 시간
이 길면 길수록 아상我相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렇
게 되면 역시 상응하지 못한다.
무량수경에서 “겸손하고 공경한 마음으로 듣고
받들어 행하여 환희심에 뛰놀며 크게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사람은 이 법을 믿기 어렵도
다”라고 하신 말씀과 관경에서 반드시 “지성심至誠
心 심심深心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을 갖추고 정업삼
복淨業三福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96. 질문: 전수염불을 하기 전과 전수염불을 시작한

뒤에 똑같은 선행을 하고 있다면, 양자 간에 차별이

있는가?
228

답변: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국왕을 호위


하는 의장병이 단독으로 외출할 때와 국왕을 따라나
설 때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호위를 맡은 인원이
비록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같이 다른 이름을 가졌어도,
국왕의 뒤를 따라나선다면 개인적인 신분은 사라지
고 국왕의 지휘를 따르는 군인의 신분으로 통일되므
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감히 그들을 범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 비록 똑같은
사람이지만 개인의 신분으로 모여 있다면, 설령 개개
인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백성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여 특별히 존귀한 것은 아니다.
염불은 국왕과 같고 그 외의 모든 선善은 백성과도
같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온갖 선행을 닦고
있어도, 본인은 온갖 선행을 닦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공로를 완전히 염불의 공덕으로 돌린다.
만약에 꼭 그분들의 선행을 따지려고 한다면 틀림없
이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심지어 몸 둘 바를 몰라
염불실용문답 229

할 것이다. 마치 국왕의 호위병이 완전히 국왕의


위덕을 받아쓰기 때문에 그 사람은 본인에게 어떠한
위덕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전수염불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선을 닦고 있어
도, 마치 일반 백성이 국왕의 지도가 없으면 오합지졸
에 불과한 것과 같다. 다만 개인의 능력이 크고 작음
을 논할 수는 있겠지만,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국왕의 위덕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선도대사께서는 전수염불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닦은 모든 선을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隨
緣雜善)’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이러한 선의 힘에 의지
해 아미타불의 보토에 왕생하려 한다면 그것만으로
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미타불께 귀명
하는 마음으로(관경에서 설하신 지성심 등의 세 가지
마음) 닦은 선은 설사 그 선이 아무리 작고 아무리
적을 지라도 하나하나의 선을 ‘진실한 업(眞實業)’이라
고 부르시고, 이를 회향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230

말씀하셨다.
선행을 닦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닦은 선은 설사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최상의 선이 된다. 염불의 뒤에 붙어 따르는 까닭에
염불과 하나가 되고, 자신의 공덕에 집착하지 않고
본래 그러한 공성空性과 무아無我의 이치에 잘 계합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잡다하게 온갖 선을 닦는다면
설령 그 선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진실한 업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무아와 공성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예컨대 사자성어에 “점철성금點鐵成金”이라는 말
이 나오는데, 쇠와 금은 비교할 수 없으나 이 쇠를
신령스런 손가락으로 한 번 대기만 하면 쇠가 금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범부들이 닦은 인천의 모든 선은
원인이든 결과든 전부 전도된 것이고 전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말할 가치도 없지만, 일단 전수염불에
들어오게 되면 명호라는 신령스런 손가락에 한 번
염불실용문답 231

살짝 닿은 것처럼 본래의 잡다한 선이 진실한 업으로


바뀌게 되고, 범부는 현생에서 불퇴전의 지위에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니, 이야말로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
다.
어떤 사람은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들은 선을 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견해다. 전수
염불을 하는 사람들은 다만 모든 선을 닦으면서 결코
자신에게 선을 닦은 공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염불에다 그 공을 전부 돌릴 뿐이다.
97. 질문: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법당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가?

답변: 법당을 설치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의


신앙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규범이 되어주고 우리들의 수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준다. 법당을 설치할 때 기본적인 원칙은, 반드시
232

본인이 수행하고 있는 법문과 상응하도록 전일하되


잡다하지 않고, 간단하되 번잡스럽지 않으며, 청정
하고 장엄해야 한다.
전수염불을 하는 사람은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신
오정행(五正行: 독송 관찰 예배 칭명 찬탄)에 따라 오로
지 아미타불께만 예배하고, 오로지 아미타불께만
공양하고 찬탄해야 한다. 그래서 법당에는 오직 아미
타불 한 분만 모시면 된다. 부처님 한 분, 등 하나,
향 하나, 깨끗한 물 한 잔, 그리고 전적으로 아미타불
만 염송하는 염불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육근이 상대하는 경계가 단조로울수록 마
음 또한 전일해지기 때문이다.
화학성분이 들어 있는 향료는 사용하지 말고 되도
록 최고급의 전단향(또는 침향)을 사용해야 한다. 집
안에 설치된 법당의 크기가 작으면 향을 한 대만
피우면 되므로 세 대를 피울 필요가 없다.
불단을 모시면 다음과 같은 좋은 점이 있다.
염불실용문답 233

첫째는 염불수행에 도움이 되니, 경계와 인연을


만날 때마다 정념을 일으킬 수 있다.
둘째는 어린이들의 심신의 교육과 건강하게 성장하
는 데 이롭다. 법당은 특별한 교실과 같고, 아미타불
은 무언의 스승님과도 같아서 은연중에 감화하는
작용은 어떠한 사람과 어떠한 교육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법당이 설치되어 있는 가정에는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절을 하고 염불을 하며, 부처님의 명호를
들음으로써 선근을 심게 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게
되며, 인과를 깊이 믿게 된다. 나중에 커서는 자연히
규율을 잘 지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어질고 착하고 정직하고 유용한 인재가 될 것이다.
셋째는 법당의 광명은 온가족이 평안하고 행복하도
록(吉祥) 보호해줄 수 있다. 가족 중에 밖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걱정이
된다면, 집에 모신 부처님께서 아시고는 그들을 보호
해주실 것이다.
234

만약 법당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된다면 마음속에


모시면 된다.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빛나는 법당으로
만들고, 그 법당에다 오직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며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된다. 늘 이 한마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항상 아미타불의 공덕
향을 사르는 것과 같아서, 아미타불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더러 당신을 모시고 예배
하라고 요구하신 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여 자신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음과 얕음, 수행의 전일함과
잡다함(專雜), 왕생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여부는 그
사람의 법당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대체로 법당의
배치가 난잡하면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은 아직 낮은
단계에 있고 단지 평범한 신앙일 뿐이며, 중심이
없고 마음속에 주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사 그 사람이 불교를 믿은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모두 단지 불법과 인연을 맺는 성질의 것이고 불교의
염불실용문답 235

초심자일 뿐이니, 수행도 당연히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이고 왕생 역시 결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왕생을 위하여 법당에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고 본인도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른다면
그 사람의 신앙이 매우 깊고 전일하고 순수함을 알
수 있으므로,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단정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정행五正行에
부합하고, 수행이 정정업正定業이기 때문이다.
98. 질문: 나는 본래 많은 불상을 모셨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분만 모시려 하는데, 원래 있던

불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답변: 본래 모시던 불보살상들을 깨끗이 닦고 살짝


향냄새가 배게 한 다음, 인연 있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된다. 그 사람이 지장보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직
모시지 않았고, 마침 당신에게 있다면 그분에게 주면
236

된다. 그 불상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기념적 가치가


있든 간에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
님과의 인연은 세간의 재물로써 가늠할 수 없기 때문
이다. 불상을 그 사람에게 보내주면 지장보살의 분신
으로 작용을 하지만, 본인이 갖고만 있으면 불보살님
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모시던 불상을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시도록 주면 그 사람이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지은 복은 자연히 본인에
게도 한 몫이 돌아올 것이다.
염불실용문답 237

5. 의심스럽고 판단하기 힘든 문제에 대

한 종합적인 해답

99. 질문: 어째서 간단하고 쉬운 염불은 왕생의 정정


업이 되어 반드시 왕생하며, 그 외의 어렵고 심오한

수행은 도리어 정정업이 아니어서 왕생이 결정되지


않는가?

답변: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발원을 하시


길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명호를 불렀음에도 불구하
고 왕생할 수 없다면 난 맹세코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현재 아미타불께서 이미 성불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서원이 실현되었음을 의미하므로, 우리
238

가 염불하면 당연히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염불왕생은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보증해주신
것이다. 다른 수행은 비록 어렵고 수준이 있고 심오하
기는 하나,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보증됨이 없이 오직
수행자 본인의 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왕생
이 결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
한다면 배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쉬우면
서도 반드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개인
적으로 헤엄쳐 바다를 건너려 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어서, 설사 매우 뛰어난 수영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건널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00. 질문: 어떤 것이 믿음과 발원을 갖춘 염불이고,
어떤 것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지 못한 염불인가?

답변: 아미타불의 서원이 헛되지 않아 내가 그분의



염불실용문답 239

명호를 부르면 틀림없이 왕생할 수 있다. 이것 외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믿음을
갖춘 것이고, ‘이번 생에 꼭 왕생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면 곧 발원을 갖춘 것이다. 만약 이와 정반대
라면 믿음과 발원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101. 질문: 나는 염불을 하고 있지만 나 자신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왕생할 수


있는가?

답변: 진심으로 왕생을 원한다면 반드시 왕생한다.


102. 질문: 어째서 염불을 하면 반드시 왕생하는 것
이외에도 재난을 소멸하고 복이 자라나며 수명을
연장하는 등 갖가지 현세의 이익들이 있는가?

답변: 아미타불의 명호가 범부들로 하여금 왕생하


240

여 성불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는, 명호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위없는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량무변한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업장을 소멸하고 복과 지혜가 자라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업장이 소멸되면 당연히 병이 낫고
수명이 연장되며 재난이 사라지고, 복과 지혜가 자라
나면 자연히 여러 인연들이 잘 모여서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게 된다. 설사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이루어지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103. 질문: 어째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잡다하게 여러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는
것보다 얻게 되는 세간의 이익이 월등히 뛰어난가?

답변: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⑴ 전념專念은 잡념雜念보다 뛰어나다.
염불실용문답 241

⑵ 아미타불은 다른 모든 부처님보다 뛰어나다.


사람 마음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마음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야만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옛말에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게 되고,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영험하다”고 했듯
이, 전념을 하면 정성도 있고 익숙하기도 하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게 없지만, 잡념(잡다하게
부름)을 하면 정성도 없거니와 익숙해지지도 않으므
로 구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 게다가 아미타불께서는
특별히 명호로써 중생들을 이익케 하겠다는 발원을
하셨으며, 모든 부처님들의 왕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
에,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잡다하게
제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보다 뛰어난 것이다.
104. 질문: 어째서 사람들은 아미타불을 얘기하면

항상 왕생만을 떠올릴 뿐, 현세의 이익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가?


242

답변: 이 점이 바로 아미타불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세의 이익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불보살님들도 모두 소원을 이루게 해주실 수 있지만,
극락왕생하여 성불을 하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근본
적인 이익은 반드시 전적으로 아미타불을 우러러
의지해야만 비로소 백 퍼센트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얘기하면 왕생을 떠올
리고, 왕생을 얘기하면 아미타불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만 할 뿐 현세의 이익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치적으로 말하자면, 아미타불을 부르면 왕생하
여 성불을 하는 크나큰 이익조차 얻을 수 있거늘,
하물며 현세의 갖가지 적은 이익들이겠는가! 예컨대
대신에게는 죄수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줄 수 있는
권한은 있어도, 죄수가 지은 죽을죄를 사면해줄 권한
은 없다. 반면에 국왕은 죄수의 죽을죄도 사면해줄
염불실용문답 243

수 있으므로, 죄수들의 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쯤은


당연히 해줄 수 있다.
105. 질문: 아미타불을 부르면 현세의 이로움과 안락

함에서부터 왕생하여 성불에 이르기까지 전부 도맡


아 처리해주신다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염불법문 하나만 설하시면 되셨을 텐

데 또 무엇 때문에 다시 그렇게 많은 불보살님들의


명호와 경전, 다라니를 설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염송하도록 하셨는가?

답변: 이것은 중생들이 근기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


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비록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뛰어난 법문으로서 일체 법문을 원만히 거두어
들이고 원만히 초월하고 있지만, 만약 겨우 이 한
가지 법문만 설하신다면 일부 중생들은 한번에 계합
해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244

여러 종류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전부 얻을 수 있도록 고려함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나중에 모두 아미타불을 부를 수 있도록 편리
하게 인도하시기 위해서 갖가지 법문을 강설하시면
서 다른 불보살님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
다. 이는 마치 누각이 너무 높아서 한달음으로 오르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계단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서 여러 가지 법문을 닦다가
맨 마지막에 염불수행으로 돌아서지만 이미 크게
우회한 것이다. 만약 이미 염불을 시작했고 또 이러한
이치를 알았다면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선도대사께서는 “오직 지름길로 가는
수행을 해야 하나니, 단지 아미타불만을 부를 뿐이니
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6. 질문: 어째서 똑같이 염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현세 이익의 크기는 각자 다른가?


염불실용문답 245

답변:중생들의 근기가 다르고 과거전생에 지은


선업과 금생에서의 마음씀씀이 역시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동일한 태양이 비추고 있지만 나무들
은 각각 높고 낮음이 있는 것과 같다.
107. 질문: 어째서 현세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단지

왕생만을 원했을 뿐인데, 얻은 현세의 이익이 도리어

더 수승한가?

답변:세간은 무상하고, 무상하기에 괴롭다. 오직


왕생만을 구할 뿐 세간의 일체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완전히 부처님께 의지하게 되므로 부처님
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부처님과의 감응 역시 가장
원활하며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는 것도 가장 강력하
고 업장소멸도 가장 빠르다. 업장이 소멸된 이상,
세간의 갖가지 이익을 구할 줄도 모르고 구하지도
않더라도 자연히 온갖 수승한 이익을 얻게 된다.
246

만약 현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왕생을 구하지 않


거나, 심지어 왕생을 두려워한다면 이 사람의 마음은
부처님과 서로 떨어져 있게 되어 업장소멸이 더디고
얻은 세간의 이익도 오히려 열등하다. 예컨대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이 바깥의 햇빛을 그리워하며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모든 창문들을 활짝 열어버린다면
설사 잠시 무슨 일이 있어서 집밖을 나서지 못하더라
도 집안은 더욱 환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방안에만
있고 싶고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서 창문을 반쯤
열고 반쯤 닫는다거나, 심지어 햇빛이 너무 강렬할까
봐 두려워서 커튼을 쳐서 차단시킨다면 방안은 당연
히 밝지 않을 것이다.
107. 질문: 어째서 똑같이 병이 생겨 염불을 했음에도
어떤 사람은 병이 나아 기사회생하고, 어떤 사람은

병이 낫지 않고 여전히 죽게 되는가? 염불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게 도대체 영험이 있긴 한가?


염불실용문답 247

답변: 중생들의 업감(業感: 업으로 인한 과보)이 각자


다르고 염불하는 마음도 한결같지 않은데, 어떻게
똑같은 결과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업감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만약 한 사람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설사 의학계에서 필사의 병이라고 판명이 났어도,
염불을 하여 업장을 소멸한다면 역시 기사회생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의 수명이 이미 다
됐다면 비록 염불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지 않는다
고 장담할 수 없다.
용심(用心: 마음씀씀이)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왕생만을 구하는 사람은 늘
오래된 지병이 빨리 낫게 되지만, 마음속에 걱정이
많고 오로지 병이 낫기만을 바라며 죽음이 두려워서
왕생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염불은 본래 오로지 이 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248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병을 치유하는 데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염불을
하면 업을 소멸할 수 있고, 업이 소멸되면 어떤 병들
은 저절로 낫게 되기 때문에, 때로는 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말씀하셨
는데, 그래서 자비하신 아미타불께서 우리들을 영접
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광명과 수명이 무량한
자유로운 몸과 마음을 얻어 영원히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면할 수 있도록 발원하신 것이다. 염불을
한다고 금생에서 이 몸의 병을 반드시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량겁 동안의 생사윤회의 큰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우리의 현세의 이 몸은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이다.
어떤 사람은 염불을 겨우 몇 번밖에 안하고는 아미타
불께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고 지혜가 뛰어나며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보장해달라고 하고, 그렇지
염불실용문답 249

않으면 부처님이 영험이 없다고 탓하는데,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컨대 자신이 만든 차의 재료가
전부 고철덩어리라면 설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정비소에서 수리를 했더라도 절대 길에서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고장이 났다고
해서 정비소를 탓한다면 그것은 옳지가 않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너의 몸을 내가 비록 유지
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모든 책임을
다 질수는 없다. 만약 나의 명호를 부른다면 내가
너를 위하여 (극락에 왕생시켜) 금강처럼 단단하며 파
괴되지 않는 몸으로 바꿔주겠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서,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게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09. 질문: 병이 생겼을 때 자신의 명이 다했는지

다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만약 명이 다한

줄 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염불을 하면서


250

왕생만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아미타불께서 나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답변: 비록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이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께서는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모두 틀림없이 죽을 거라는 생각으로
염불을 하면서 모든 것을 아미타부처님께 맡겨야
한다. 심지어 평소에 아무런 병이 없을 때에도 곧
임종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에
서 말하는 ‘무상관’이다.
예컨대 차를 끌고 정비소에 들어갔을 때 전문가들
은 척 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차가 아직 사용가치
가 있으면 수리를 해주겠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면
다른 새 차로 바꿀 것을 건의하면서 더 이상 수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염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다. 이 몸을 아미타부처님께 맡기기만 하면 부처님께
염불실용문답 251

서는 당연히 계속해서 보양하고 손볼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것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알고 계신다.
110. 질문: 본래 병이 생겨 곧 죽을 것만 같은데, 어떤

사람이 염불을 가르쳐주면서 병이 낫기를 바라지


말고 오로지 왕생만을 구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본래 나을 수 있는 병도 못 낫고 더 빨리 죽게 되는

게 아닌가?

답변:그렇지 않다. 필사의 마음으로 염불을 하며


왕생만을 구하고, 병이 낫기를 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로지 염불에만 집중한다면 항상
불가사의한 기적을 이루게 된다. 이때 만약에 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업장이 신속히 녹아내리고 병고가
신속히 낫게 된다. 만약 명이 다했다면 비록 병이
있어도 큰 고통 없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 병이 낫든 안 낫든 간에 모두 이익이
252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


는가!
111. 질문: 세속적인 일이 많고 자녀에 대한 미련도

버릴 수 없기에, 염불하여 우선 병이 낫기를 구하고


왕생은 구하지 않아도 되는가?

답변: 아미타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


‘지금은 자녀들이 아직 어려서 저의 보살핌이 필요합
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주관자가
되어 저와 자녀들의 앞뒤 인과를 살펴주세요! 만약에
남아서 그들을 보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저의 병이
하루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만약에 필요가
없다면 저는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겠습니다. 자녀들
은 부처님께 부탁드리오며, 저는 미련을 버리겠습니
다,’
염불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간에 전부 아미타불
염불실용문답 253

의 안배에 맡기는 게 가장 온당하다. 왜냐하면 부처님


께서는 오안五眼과 육신통이 있어서 과거와 미래를
아시고, 모든 사람의 업보의 인연을 잘 알고 있으시기
에, 각 방면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좋은 안배를 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 꼭 가장 좋다고만 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부처님께 표현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어떻게 해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만약 꼭 자신의 고정된 생각에 집착하려 한다면 도리
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장애하게 될 것이다.
112. 질문: 만약 아미타불께서 먼저 병을 치유해주신
다음에, 다시 극락으로 영접하여 주신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다소 유감을 느낄
것이다.

답변: 이것은 모두 범부들의 생각으로 부처님의


254

지혜를 헤아리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봤자 다 우리가


이 몸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진짜로 여기고 있기 때문
이다. 부처님께서는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말씀하
시면서, 인생은 본래부터 유감스러운 것이라고 하셨
다. 병이 나으면 유감이 없을까? 병이 나으면 다시
장수하고 싶어지고, 장수하면 부귀를 바라고, 부귀
하면 또 다시 자손들이 모두 영달하기를 바라니……
언제쯤 끝이 있겠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만 유감
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바세계에서는 온통
모두가 유감일 뿐이다. 그래서 아미타불께서는 우리
로 하여금 왕생하여 성불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야말로 진정으로 원만하고 유감이 없는 것이다. 그리
고 각자 언제 왕생하고 어떤 인연 속에서 왕생하는가
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안배가 있을 것이다.

113. 질문: 어째서 염불하는 사람 중에는 재물을 구하


염불실용문답 255

면 재물을 얻는 사람이 있고, 재물을 구해도 재물을


얻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는가?

그 외에 구하는 바도 마찬가지로 소원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고,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는가?

답변: 재물을 구하여 재물을 얻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이 사람의 복이 두터워 마치 두꺼운 판자가
무거운 물건을 견딜 수 있듯이 재물도 있고 누릴
복도 있으며, 자신과 다른 이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면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
둘째, 이 사람의 심성이 연약하고, 과거의 선근을
볼 때에 뜻을 거스르지 않고 제도하는 게 적합한
경우이다. 만약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람
은) 바로 의기소침해지고 부처님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며 선근이 성숙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256

그 소원을 들어준다면 신심이 자라나고 선근이 점점


성숙해져서 불법문중으로 이끌어 들이기가 편리해
진다. 부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다.
재물을 구해도 손해를 보는 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이 사람은 본래 마땅히 크게 손해를 보게
될 상황이었지만 염불을 했기 때문에 은연중에 작은
손해로 바뀐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염불을 하여도 여전히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
는 것이다.
둘째, 이 사람이 박복하여 마치 얇은 판자가 무거운
물건을 감당할 수 없듯이 만약 재물이 있어도 누릴
복이 없으면 뜻밖의 재난과 소송, 납치, 사망을 당하
는 등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
을 들어주지 않으므로 재물을 구해도 재물을 얻지
염불실용문답 257

못한다.
셋째, 이 사람의 심성은 고집이 세고 교만하며,
과거의 선근을 볼 때 뜻을 거스르며 제도하는 게
적합하다. 만약 소원을 들어주면 도리어 교만한 마음
만 커지게 되고 세속에 더욱 더 빠져들고 미혹하여
돌아올 줄 모른다. 만약 그 교만한 기세를 꺾어 준다
면 점차적으로 마음을 돌려서 불법을 믿게 된다.
부처님께서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그 소원
을 들어주지 않으시기에 재물을 구하지만 도리어
손해를 보게 된다. 그 밖에 구하고자 하는 것들도
이러한 예로써 알 수 있다.
아무튼 부처님의 지혜란 불가사의한 것이어서 각자
정성을 다하여 구한다면 각자의 분에 알맞게, 많지도
적지도 않게 얻을 수 있다. 마치 대지에 만물이 생장
하는 데 있어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이 각각 적절하여,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과 같다.
258

114. 질문: 염불감응록 속에 보면 병으로 고통받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적처럼 회복할 수 있었는데,

어째서 나는 정성을 다해 염불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병으로 인한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가?

답변: ⑴ 과거의 업력이 불가사의하여 본래 더욱


큰 병고가 있을 터인데, 염불을 하는 인연으로 은연중
에 사라져서 더 이상 받지 않고 단지 지금의 병고만
있을 뿐이다.
⑵ 병이 낫기만을 바라고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조급하고 허망하여 부처님과 감응을 이루
기 어려워 염불의 효과가 떨어진다.
일심으로 염불하여 숙세의 업장이 소멸되면 각자
그 이익을 얻을 것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115. 질문: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와 별장을 즐기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사회 발전으로


염불실용문답 259

기득권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한 기득 이익자(
사바세계에 대한 염리심을 내라고 권장한다는 것이

어찌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미타불께서


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치중하

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답변: 논리에 맞다. 왜냐하면 인생이 무상하고 괴


롭기 때문이다. 돼지가 음식의 즐거움을 탐하다가
드디어 살육을 당하게 되고, 사람은 오욕의 즐거움을
탐하다가 결국 윤회의 과보를 받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하여 돌아올 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찌감치 벗어나기를 구한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사회의 고층과 저층이
있지만, 아미타불의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부류로
고뇌하고 죄를 짓는 범부들일 뿐이다. 부처님의 마음
은 평등하여 간택이 없으시며,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아미타불께서는 나를 가장 편애하신다!’고 생각해
260

도 무방하다.
부귀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부귀를 탐하고 좋아하는데, 극락정토에는 순전히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다. 그러니 어찌 아미타불
께서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난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난과 고생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가장 간절히
구제를 바라고 있다. 자비하신 아미타불께서 괴로움
을 덜어주시고 즐거움을 채워주시니 어찌 극락세계
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116. 질문: 어째서 평소에 염불을 안 하던 사람들도
임종 또는 죽은 뒤에 조념을 해주면 따라서 염불을
하고 왕생을 할 수 있는가?

답변:평소에 염불을 못한 것에는 다음 세 가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염불실용문답 261

첫째는 그 사람에게 염불을 말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비록 염불을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지만,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에 염불을 하지 않은 것이다.
셋째는 비록 염불을 믿기는 하지만 세속적인 일에
얽매여서 항상 차일피일 미루다가 염불을 못한 것이
다.
⑴ 지금은 임종 또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누군가
오셔서 염불법문을 해주시니, 곧 첫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⑵ 본인의 임종 때에 중음신의 경계가 나타나거나
죽은 뒤에도 영혼이 소멸되지 않음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고 인과응보가
실제로 존재함을 믿게 되니, 이로써 두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⑶ 평소에 큰 짐이 되었던 아내와 자식, 재산과
사업 등을 이때가 되면 내려놓기 싫어도 어쩔 수
262

없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선지식의 법문을 들음


으로 문득 깨닫게 되니, 곧 세 번째 장애가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세 가지 장애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염불
을 할 수 있고, 염불을 하면 바로 왕생하게 된다.
117. 질문: 어째서 평소에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던

사람들도 임종할 때에 갑자기 염불을 하지도 않고


왕생을 구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는가?

답변: 이것이 바로 이른바 전도顚倒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갑자기는 아니다. 이 경우는, 그 사람이
평소에 염불하여 왕생을 구한다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단지 입으로만 말한 것이었음을
입증해준다. 이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짜로
죽는 것도 두렵고, 아내와 자식 등에 대한 애착도
버릴 수가 없어서 오로지 더 살고 싶다는 생각에
염불실용문답 263

왕생을 원치 않는 것이다.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왕생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절대 전도되어 왕생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염불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야지,
겉으로 말만 있어서는 안 된다.

118. 질문: 내가 수행을 많이 하신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암 제거 수술을

받은 뒤에 건강과 즐거움을 되찾았기 때문에 법희가


충만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불교를 믿을 것을 권장하

셨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하게 ‘저는 수행을


제대로 잘하지 못해서 아직은 왕생할 수 있는 조건과
의 거리가 굉장히 멉니다’라며 말씀하곤 하셨다. 그러
던 그분이 임종할 때가 되자 도리어 육식을 하려

하고 조념을 해주어도 효과가 없었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264

답변: 이것이 바로 업장이 나타나서 전도가 된 것이


다.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매우 큰 경각심과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염불왕생에는 본래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스스로 조건을 정해놓고 자신은
그 조건과의 거리가 멀다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미타불의 서원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왕생
의 조건을 상정한다면 임종 때에 당연히 업장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착실하게 염불하
고, 부처님을 의지하며, 자력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면 절대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염불
이 천번만번 온당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119. 질문: 어째서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한 번
영접하러 오시면 바로 따라가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두 번, 세 번 영접하러 오셔야

비로소 왕생하는가?
염불실용문답 265

답변: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라면


부처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즉시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한다.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세속의 일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비록
부처님께서 오셨음을 보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망설
이게 된다. 부처님을 따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지혜의 거울로써 비추어 아시고, 이
사람이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면 자비로운 마음으
로 연화대를 들고 기다리신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왕생을 하기로 결정하면 부처님은 바로 이 사람을
연화대에 태워 극락으로 돌아가신다. 이 사람이 만약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부처님은 바로 모습
을 감추신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다시 왕생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부처님께서 다시 오신다. 이러한
부처님의 자비는 비유할 방법이 없다.

120. 질문: 처음에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하지 않으면


266

부처님께서 반드시 다시 한 번 오시는가?

답변: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이 사람이 다시 한


번 왕생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몸을 다시 나투신다. 그러나 만약에 이
사람이 왕생을 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부처님 역시
다시 오지 않으신다.
121. 질문: 만약 임종인이 세간에 대한 미련이 많고,

부처님도 오셨다가 다시 가셨음을 발견했다면, 이때


는 어떡해야 하는가?

답변:임종 때에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부처님


께서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
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고, 중생 자신이 왕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중생이 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진실하
지 않고 부처님의 기대를 저버렸음을 입증해준다.
염불실용문답 267

다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구제를 하려면


반드시 첫째는 울거나 억지로 붙잡지 말아야 하고,
둘째는 지혜롭게 위로와 법문을 해주어 그 사람에게
세속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왕생을 발원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윤회에 떨어질
것이니, 다시 염불법문을 만나서 정토에 왕생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이로써 임종 때 선지식의
법문과 조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122. 질문: 어째서 임종조념을 할 때는 종종 쉽게

불보살과 연꽃 등 수승한 경계를 볼 수 있는가?

답변: 첫째는 아미타부처님께 임종내영의 원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조념하는 대중들이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한 목소리로 염불을 하면 감응력이 크기
268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무릇 염불을 하는 곳에는 반드시 불보살님과 광명
이 있고, 그 외의 다른 장소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에 전념한다면 마찬가지로 쉽게 볼 수 있다.
123. 질문: 같은 장소에서 함께 염불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부처님과 광명, 연꽃 등을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볼 수 없는가? 그리고 어째서


보이는 경계에도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가?

답변: 이는 개개인의 근기와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


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종류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다.
⑴ 선정의 공부가 깊은 사람
⑵ 좌선을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한 사람
⑶ 평소에 쉽게 통령通靈할 수 있는 사람
⑷ 음양 눈(陰陽眼)이 있는 사람
염불실용문답 269

⑸ 숙세에 유사한 근기를 가진 사람


⑹ 어린이들
⑺ 조념을 받는 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
124. 질문: 임종조념 때에 보이는 불보살님과 연꽃
등은 극락의 진실한 모습인가?

답변: 범부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감응현


상으로, 극락세계 참모습의 투영일 뿐 완전히 진실한
모습은 아니다. 만약 삼매를 얻었다면 미묘하고 불가
사의한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25. 질문: 갖가지 현상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수행을 잘하고 공부가 깊다고 볼 수 있는
가?

답변: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선도대사처럼 깊은


270

삼매에 들어 항상 정신(영혼)이 정토를 노닐 수 있다


면 당연히 두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갖가지 경계를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가지 다른 인연이 있는 것이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123문問 참조)
따라서 경계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수행을 잘하
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척도로 삼아서는 안 되며,
마땅히 착실하게 염불을 해야 한다. 보고 못보고는
각자의 근기와 인연에 달렸다. 경계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추구하지 말고, 경계를 보았다고 해서 기뻐하지
도 말아야 한다. 평범하게 염불을 하는 것이 가장
온당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수승한 것이다.
126. 질문: 아미타불께서 적극적이고 평등하게 모든
중생을 구제하신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이승에 남아

있는 권속들이 망자를 위하여 염불을 하여 천도불사

를 해줘야만 비로소 그들을 구제해주시는가?


염불실용문답 271

답변: 아미타불께서는 사람들이 망자를 위하여 천


도불사를 해줘야만 비로소 그들을 구제해주시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권속들이 그 사람을 위해 염불하여
회향을 해주는 인연을 통하여 그 사람을 구제하시는
것이다. 마치 태양의 빛이 비치지 못하는 어두운
구석에 거울이 있어서 태양의 빛을 반사시켜 준다면
똑같이 비쳐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살아 있는
권속들이 망자를 위해 염불하여 회향을 해준다면
그 작용은 바로 이 거울과 같다. 망자가 염불하여
회향한 공덕력에 힘입어 이고득락離苦得樂하여 정토
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미타불의 자비
원력의 작용이다.
127. 질문: 살아생전에 염불을 하지 않다가, 오직 죽은
뒤에 사람들을 불러서 천도해주기를 바라도 되는가?

답변: 이런 생각은 매우 경솔한 것이다.


272

⑴ 자신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반드시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불러 천도를 해줄 것이란
보장은 없다.
⑵ 설사 누군가 사람들을 부르려 해도 반드시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⑶ 설사 사람을 불렀다 하더라도 방해를 받지 않는
다는 보장은 없다.
⑷ 설사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천도를
해주는 사람이 충분히 정성스럽고 충분히 전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⑸ 설사 천도를 해주는 사람이 충분히 정성스럽고
충분히 전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죽은 뒤에
어느 도로 갈 것인지, 업장은 얼마나 두터운지, 부처
님과 감응을 이룰 수 있는지의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
⑹ 설사 감응이 있다 하더라도 감응의 크기를 장담
할 수 없다. 지옥에서 아귀로 태어난다거나 아귀에서
염불실용문답 273

축생으로, 축생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천상으로


태어난다면 여전히 윤회를 할 뿐 정토에 왕생하지는
못한다.
⑺ 설사 (나중에는) 정토에 왕생한다 해도 무엇 하러
억울하게 삼악도를 다녀온단 말인가! 왜 지금부터
염불하여 살아서는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아 업장소
멸을 하고, 죽어서는 정토왕생을 하여 다함께 불퇴전
을 얻으려 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염불은 단지 일념
의 마음속에 있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살아서 염불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128. 질문: 망자를 천도하는 효과의 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다음과 같은 세 가지 면이 망자를 천도하는


효과를 결정한다.
274

첫째, 망자의 선근의 깊이


둘째, 살아 있는 권속들이 천도를 하는 정성
셋째, 천도를 하는 방법
망자의 선근의 깊이는 이미 정해져 있고, 천도하는
방법은 전수염불이 가장 좋으며, 마음은 정성스러울
수록 좋다.

129. 질문: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싶지만 길이 멀어


서 직접 절에서 분향을 할 수 없으니, 어떡해야 하는

가?

답변: 향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형체가 있는 향이다.
둘째, 형체가 없는 향이니, 바로 우리의 경건하고
정성스런 마음이다.
셋째, 부처님 공덕의 향이니, 바로 아미타불의 명호
이다.
염불실용문답 275

절에서 분향을 하는 목적은 엄숙하고 장엄한 의식


을 통하여 우리들이 경전하고 정성스런 마음을 일으
키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대중스님들의 인도 하에
염불을 함으로써 망자에게 이익을 주려는 것이다.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는데, 비록 길이 멀어 직접
현장에 참석할 수 없지만 본인의 집에서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망자에
게 회향을 해준다면 최상의 부처님의 공덕 향을 피우
는 것과 같아, 시간과 돈을 들이지도 않고 먼 길을
가는 수고로움도 덜며 실제로 망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만약 단지 형식만을 바라면서 염불을 버리고
먼 길을 바쁘게 뛰어다닌다면, 설사 절에서 분향을
하더라도 집에서 염불하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130. 질문: 이미 돌아가신 망자가 환생을 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가 없는데, 천도를 해도 효과가 있는가?


276

답변: 환생을 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다 효과가


있다. 만약에 아직 환생을 못했거나, 이미 지옥 또는
아귀도에 환생하였다면 염불회향을 해주면 곧바로
천도할 수 있다. 만약 천상 인간 축생으로 환생했다
면 염불회향을 통하여 그분의 복덕을 추가해주고,
생활환경을 개선해주며, 또는 과보가 다했을 때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
131. 질문: 조념과 천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이 별세하셨을 때 조념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


면 천도를 선택해야 하는가?

답변:조념의 대상은 주로 임종 또는 갓 돌아가신


사람이고, 천도의 대상은 주로 죽은 지 오래 된 사람
들이다. 만약 일반도량이라면 조념은 비록 여전히
염불로 하겠지만, 천도는 대부분 그 외의 경전과
진언을 독송한다. 예컨대 수륙법회水陸法會 염구焰口
염불실용문답 277

참법懺法을 하는 등이다. 정토종에서 조념과 천도는


모두 한마디 나무아미타불이다. 전념을 하기 때문에
효과도 좋다. 가까운 사람이 별세하셨을 때는 우선
조념을 해야 하고, 조념의 기회를 놓쳤을 때는 다시
천도를 하여 구제를 해야 하는데, 그 시기는 사망일로
부터 가까울수록 좋다.
부록

정토에 관한 의문과 대답

정종淨宗법사 법문
정전淨傳스님 번역
280

부록 1

일향전념과 제행회향
(一向專稱與諸行迴向)

머리말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에 어떤 연우와 아내 분이
정토수행에 대한 견해가 엇갈렸는데, 아내 분은 불교
는 석가모니불이 창건한 것이다. 나는 오로지 석가모
니불의 말씀만 믿는다. 당신은 어느 경전에서 “잡행
을 하면 왕생하기 어렵다”다는 구절을 찾을 수 있는
가? 그리고 어느 경전에서 “정토종의 학인들은 반드
시 일향전념一向專念 나무아미타불을 해야 한다”는
글귀를 찾을 수 있는가?”라며 따져 물었다. 이 연우님
은 이 문제에 대하여 누군가가 답변을 해주기를 요청
부록 281

하였다. 이 문제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간략히


정리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드린다.

문답
1. 질문: 정토종의 수행자라면 반드시 일향전념을
해야 하는가?

이 부분은 각자의 자각에 달려 있다. 본인은


답변:
반드시 일향전념一向專念1)을 해야만 왕생할 수 있다
고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일향전념을 할 것이고, 자신
은 여러 가지 법문을 닦아서 회향하여 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향전념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일향전념’과 ‘제행회향諸行回向’2)은 모두 정
토종의 수행 방법이다. 경전에는 다만 인도引導만
있을 뿐 강요는 없다.
1) 一向專念: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름.
2) 諸行回向: 극락왕생을 위하여 염불을 제외한 여러 가지 수행을 하여,
그 공덕으로 정토에 회향함.
282

2. 질문: ‘일향전념’과 ‘제행회향’ 중에 어떤 수행을


해야 왕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답변:전수염불을 하면 반드시 왕생하고, 제행회향


을 하면 왕생하기 어렵다.
3. 질문: ‘전수염불을 하면 반드시 왕생하고, 잡행잡

수雜行雜修를 하면 왕생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무


슨 경전에 근거가 있고, 또 어떠한 이치인가?

답변: 다음과 같은 근거들이 있다.


(1) 무량수경에는 제18원이 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왕생하
고자 내지 열 번(乃至十念)만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렀
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다. 다만 오역죄를 지었거나 정법을 비방한
부록 283

자는 제외한다.”3)
이 원을 염불왕생원이라고 부르는데, 서원하신 왕
생의 수행법에는 오직 ‘내지십념’만 있을 뿐 그 외의
것은 없다. 믿음과 발원을 갖춘 전수염불은 아미타불
께서 ‘만약 왕생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보증을 하셨으나 제행회향에는 이와 같은 보증이
없으시다.
(2) 무량수경 중에 ‘염불에 위없는 공덕이 구족
함’에 대한 글이 있다.
“저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내지
는 한 번만이라도 염念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고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됨을 마땅히 알라.”4)
염불을 하면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되므로 반드
시 왕생하고, 잡행을 하면 공덕에 한계가 있기에
반드시 왕생하는 것은 아니다.
3) “設我得佛, 十方眾生, 至心信樂, 欲生我國, 乃至十念, 若不生者, 不取正覺;
唯除五逆, 誹謗正法.”
4) “其有得聞彼佛名號, 歡喜踴躍乃至一念, 當知此人為得大利, 則是具足無上功
德.”
284

관경 중에는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지만


(3) 
오직 염불인만 섭취한다’는 글이 있다.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면서 염불중생을 섭
취하여 버리지 않으신다.”5)
이를 선도대사께서는 (관념법문과 왕생예찬게에
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다.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지만 오직 염불을 하는
자만 섭취하신다. 다만 아미타불을 전념하면서 왕생
을 원하는 자가 있다면 저 부처님의 심광心光은 항상
그 사람을 비추면서 섭취하고 보호하며 버리지 않으
신다. 그 외의 잡다한 업을 닦는 행자를 비추고 섭취
하는 것은 전부 논하지 않는다.……
오직 염불을 하는 자만이 광명의 섭취를 받나니,
마땅히 본원이 가장 강력함을 알라! 다른 인연으로
광명을 두루 비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염불왕생인을
찾기 위함이다.”6)
5) “光明遍照十方世界, 念佛眾生攝取不捨.”
6) “佛光普照, 唯攝念佛. 但有專念阿彌陀佛願往生者, 彼佛心光, 常照是人, 攝護
부록 285

아미타불을 전념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광명을 비추


고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므로 왕생이 결정되지만,
잡행을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광명의 비춤과 섭취를
받지 못하므로 왕생하기 어렵다.
(4) 관경 중에 ‘염불은 생사중죄를 소멸할 수
있음’에 대한 글이 있다.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여 열 번 나무아미타불을 갖추어 부르게 되면(具足十
念),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80억겁의 생사
의 죄가 소멸되느니라.”7)
염불이 생사의 중죄를 소멸할 수 있고 생사의 죄가
소멸되면 자연히 생사를 초월하고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그러나 잡행은 겨우 천겁의 악업을 제거할
뿐 생사의 죄를 소멸할 수 없어서 여전히 생사윤회를
하므로 정토왕생이 어렵다.
不捨, 總不論照攝餘雜業行者 …… 唯有念佛蒙光攝, 當知本願最為強, 不為餘
緣光普照, 唯覓念佛往生人.”
7) “如是至心令聲不絕, 具足十念, 稱南無阿彌陀佛. 稱佛名故, 於念念中, 除八十
億劫生死之罪.”
286

아미타경 중에 ‘전일하되 잡다하지 않게 명호


(5) 
를 집지함’에 대한 글이 있다.
“적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없다.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니어 하루나 이틀…… 이레 동안 한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선도대사의 해석에 의하면, “적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이란 곧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隨緣雜善)’이
고, “한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음”은 바로 ‘전일하되
잡다하지 않음(專一不雜)’이다. 아미타경에서는 잡
행을 하는 사람은 왕생할 수 없고, 반드시 전일하되
잡다하지 않게 염불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왕생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잡행을 하는 사람이 왕생하기가 어려운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① 잡행의 행법行法 자체가 염불보다 어렵다.
② 잡행을 하면 아미타불의 서원의 절대적인 보증을
부록 287

얻을 수 없다.
③ 잡행은 아미타불 광명의 비춤과 섭취를 받지 못한
다.
④ 잡행은 제불諸佛의 호념을 받지 못한다.
⑤ 잡행의 공덕에는 한계가 있다.
⑥ 잡행은 생사의 중죄를 소멸할 수 없다.
⑦ 잡행은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전수염불은
① 수행 방법이 지극히 쉬어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② 아미타불의 ‘만약 왕생하지 못하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원력의 절대적인 보장이 있다.
③ 아미타불의 광명이 주야로 섭취하여 버리지 않으
신다.
④ 시방제불께서 다함께 호념을 해주신다.
⑤ 위없는 공덕을 갖추게 된다.
288

⑥ 모든 생사중죄를 소멸하게 된다.


⑦ 완전히 아미타불의 대원업력大願業力을 의지한다.
4. 질문: 위에서 인용한 내용이 전부 경문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조사의 해석이므로 완전히 신복信


服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답변: 경전 속의 심원한 뜻을 보살님과 조사님들의


해석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범부들이 분명히 이해하
기란 어렵다. 만약에 오직 부처님의 말씀만 신복할
수 있을 뿐 조사들의 말씀은 신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면, 여기에는 단지 두 가지 경우만 있을 것이다.
첫째는 조사들의 말씀이 부처님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만 믿을 뿐 조사의 말씀은 믿지
않는 경우이고,
둘째는 조사들이 경전에 대한 해석이 자신이 경전
에 대한 이해만큼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록 289

깨달음만 믿을 뿐, 조사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경우다.


만약에 이 두 가지 경우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부처
님의 말씀을 믿으면 반드시 조사의 말씀도 믿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와 같은 범부들은 반드시 조사들
의 해석을 의지해야만 비로소 정확하게 불경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반드시 창문을 통해야만 비로소
바깥의 경치를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범부들의 마음
은 벽과 같고 조사의 말씀은 창문과 같으며, 경전은
바깥의 경치와 같다. 따라서 조사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경전의 뜻을 깨달으려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290

부록 2

염불왕생에 품위가 있는가?

머리말
정토교에서는 왕생의 행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제행諸行이요, 둘째는 염불이다. 제행은 방편
이니 구법계 중생들이 인지因地에서 닦는 자력수행인
까닭이고, 염불은 진실이니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
는 것은 과지果地의 타력(佛力)수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행왕생에는 품위品位가 있으나 염불왕생에
는 품위가 없다.
여기에는 이치적인 근거와 경전상의 근거가 있다.
먼저 이치적으로 설명하겠다. 제행은 수행 방법이
부록 291

천차만별이고, 그 수행을 통하여 얻게 되는 공덕


또한 한결같지가 않으므로 공덕의 크기에 따라서
높고 낮은 품위가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염불은
평등일여平等一如하여 다함께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
르고, 다함께 아미타불의 원력의 배를 타는 것이므로
원인에 차별이 없는 이상, 결과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선도대사께서는 “오승五乘8)이 함께 들어간다
(五乘齊入)”고 하시고, 또 “같은 인因과 같은 행行으로
깨달음에 이른다(同因同行至菩提)”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은 경전상의 근거를 들겠다. 정토삼부경에서
정식으로 올곧게 염불만을 말씀하신 곳에는 모두
품위를 두지 않았다. 예컨대 무량수경의 제18원과
제18원의 성취문, 미륵보살에게 부촉하시는 글, 그
리고 관경의 부촉문咐囑文, 아미타경의 경문 등
이다. 제행을 설명하는 곳에서만 비로소 삼배구품을
8) 五乘: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292

말씀하셨으므로 제행에는 배품(輩品: 삼배구품)이 있


고, (전수)염불에는 배품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문답
1. 질문: 무량수경의 삼배왕생문에서 하나하나 모
두 염불을 설하셨기 때문에 염불왕생에는 품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답변: 삼배왕생문에서 비록 염불을 설하셨지만 정


식으로 올곧게 설하신 게 아니라 제행을 겸하여 설하
셨기 때문에, 여기에는 제행을 닦는 삼배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을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한
것으로서 방편의 뜻이 담겨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 “부처
님께서는 일체 중생들의 근성根性이 달라 상 중 하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근성에 따라 부처님
은 모두 무량수불의 명호를 전념할 것을 권유하셨다”
부록 293

라고 말씀하셨다. 삼배왕생은 제행을 닦는 자들의


근기에 관한 일일 뿐, 염불왕생의 품위와는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식으로 올곧게 염불을 설하신
곳은 삼배문三輩文의 앞인 ‘제18원 성취문’인데, 여기
서는 품위의 차별에 대하여 설하지 않으셨다.
2. 질문: 관경 하품의 세 사람에게 오로지 염불만

설하시고 그 외의 행은 설하지 않았지만 품위가 있다.


따라서 염불에도 품위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답변: 관경의 하품은 전체적으로 구품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구품은 정식으로 올곧게 염불을 설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중육품上中六品에는 대승선
大乘善과 소승선小乘善, 그리고 세간선世間善을 겸하
여 설하셨기 때문이다. 맨 뒤의 삼품은 세간과 출세간
의 선에 몫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오직 염불에 의지해
구제를 받아야 한다고 설하셨는데, 이로써 대승의
294

선인(上三品)과 소승의 선인(中上品 中中品), 세간의 선


인(中下品)과 세간의 악인(下三品), 다시 말해 모든 선
악범부들을 인도하여 염불에 귀속시키려는 것이다.
그 뜻은 무량수경의 삼배三輩와도 같아서, 구품
은 선악범부들의 근기에 관한 일일 뿐 염불왕생의
품위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음을 알 수 있으며,
품위 역시 제행에만 있을 뿐, 염불과는 상관없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만덕홍명萬德洪名을 칭념하여 왕
생한 사람이 세간의 선을 닦아서 왕생한 사람보다
오히려 품위가 더 낮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문장 뜻의 흐름을 타고 관경의 유통분에 이르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무량수불의 명호를 지닐 것’
을 부촉하셨다. 이때서야 부처님의 본마음을 시원하
게 드러내시며 정식으로 올곧게 염불은 품위를 초월
한다고 설하신 것이다.

3. 질문: 아미타경은 정토삼부경 중에 결론에 해당


부록 295

하는 경전으로, 방편을 버리고 정식으로 올곧게 오로


지 염불만을 설하시고 그 외의 행은 섞이지 않았다.

우익대사의 미타요해에서 “왕생의 여부는 전적으


로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 있고, 품위의 높고

낮음은 전적으로 지명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


셨으니, 염불왕생에도 품위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

가?

답변: 이것은 미타요해(아미타경요해)에서 경전


의 뜻을 해석하기 위한 방편일 뿐 진실한 해석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은 방편을
베풀었는가? 이는 다른 종파에서 관상觀想 또는 화두
참구에 집착하며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려는
사람들이 지명염불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비록 역시 극락왕생을
원하지만 망령되이 관상과 참구에만 집착하여, 이를
능사로 삼으면서 지명염불은 하근기들이나 하는 수
296

행이라고 평가절하 한다. 미타요해의 뜻은 관상도


참구도 필요 없이 곧장 염불만 해도 역시 상품왕생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서 모든 선과 만행萬行을
통섭하여 지명염불이란 한 수행법(一行)으로 귀속시
키려는 것이다.
4. 질문: 그렇다면 미타요해의 진실한 뜻은 무엇인

가?

답변: 믿음과 발원을 갖추고 지명(칭명)염불을 하


면 단박에 구법계를 초월하여 곧장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익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
셨다. “일성一聲 아미타불은 석가본사께서 오탁악세
에서 얻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다. 이제 이
과각(果覺: 구경각)의 전체를 오탁악세의 중생들에게
주시는 것은 제불께서 행하시는 경계이므로,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끝까지 다 궁구할 수 있을 뿐,
부록 297

구법계(중생들)의 자력으로 믿고 이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수행자가 믿음과 발원을 갖추고 지명염불
을 한다면, 부처님의 공덕이 전부 거두어져 자신의
공덕으로 된다”, “지명의 선근과 복덕은 부처님과
같다.”
그리고 인광대사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단 왕생하면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부처님과
같은 수용을 하고, 범부의 생각과 성인의 견해 두
가지가 모두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품위의(품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설이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5. 질문: 선도대사께서는 오로지 염불법문만을 널리
펴셨고, 또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이므로 그분의 말씀
은 곧 불설이다. 대사님께서 관념법문에서 “ 매일
별도로 염불을 삼만 번 이상 하는 이들은 모두 상품상
생을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염불왕생
298

에 품위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답변: 이 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염불인을 찬탄함이요, 둘째는 관불觀佛을 하는 사람
들을 염불로 이끌어 들임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인용하
여 염불왕생에 품위가 있다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첫째, 염불인을 찬탄함이다. 매일 삼만 번 이상
염불하는 자는 용맹정진하는 사람으로, 설사 한 글자
도 모르고 한 줄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상품상생에서 말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생
을 하지 않고, 모든 계행을 갖추고, 대승경전을 독송
하며 육념법을 닦음”과 같아서 대승상선大乘上善의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 그래서 “크게 정진해야 하나
니 삼만 번을 부르거나 육만 번, 십만 번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상품상생을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수행자의 근기를 논할 뿐 왕생의 품위를
부록 299

논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관불을 하는 사람을 염불로 이끌어 들임이다.
관념법문觀念法門에서 관불과 염불 두 가지를 함께
설하신 뜻은 관불을 하는 사람을 염불로 이끌어 들이
는 데 있다. 그리고 선도대사의 관경소에서 비록
관불과 염불 두 가지 삼매를 종지로 삼고 있으나,
유통분에 이르러서는 오직 염불만을 부촉하셨다.
지금 인용하신 ‘삼만 번 이상 하는 이들은 상품상생
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이 단락의 글은 ‘관불삼매법’의
맨 마지막에 설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관불삼매
법을 해설하고 있었는데 무슨 까닭에 이 단락의 글을
넣었는가? 그 의도는 결론을 맺으면서 염불로 귀결하
기를 권장하는 데 있다. 예컨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관불삼매는 성취하기가 어렵고, 성취했을 때 ‘상품으
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함’이라 하셨는데,
지금 염불이라는 쉬운 행으로 상품상생을 한다고
하셨으니 어찌 염불의 행이 쉬우면서 공덕이 크다는
300

것이 아니겠는가! 이로써 염불로 돌아갈 것을 권장하


는 것이 바로 이 글의 취지이다. 따라서 상품상생이라
는 말씀은 관불을 하는 사람을 순조롭게 염불로 이끌
어 들이기 위한 방편설임을 알 수 있다.
6. 질문: 인용하신 경전과 해석에 염불왕생에 품위가

있다고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품위가 없다

는 말씀도 없지 않은가?

답변: 염불왕생에 품위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면 품위가 없음이 자명하다. 만약에 품위가 있다면
반드시 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량수
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곳에 있는 성문과 보살과
천인 및 사람들은 지혜가 매우 밝아 신통이 자재하며
모두 같은 모습으로 다르게 생긴 사람이 없으나,
다만 다른 세계의 인연에 수순하여 인간과 천상의
이름이 있을 뿐이니라. 그들의 얼굴과 모습이 단정하
부록 301

고 미묘하여 세상에서 뛰어나고 매우 드물며, 용모가


미묘하여 천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모두 자연의
허무의 몸(虛無之身)과 무극의 몸(無極之體)을 받았느니
라.”
같은 경전의 다른 번역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
다. “극락국토의 모든 중생들은 차별된 모습이 없으
며, 다른 세계의 인연에 따라 천상과 인간의 이름이
있을 뿐이니라.”
그리고 담란대사께서는 “본래 삼삼의 품(구품)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 둘(구품)과 같은 차별이 없다.
또한 치수와 민수가 한맛(淄澠一味)이듯이, 어찌 생각
하여 헤아릴 수 있겠는가!”9)라고 말씀하셨고, 선도
대사께서는 “저 나라에 태어나면 서로 다름이 없으며
다함께 불퇴전에 이른다”10)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
품위의 차별이 없는 모습을 설명하신 것이다.

9) “本則三三之品, 今無一二之殊, 亦如淄澠一味, 焉可思議!”


10) “到彼無殊, 齊同不退.”
302

7. 질문: 품위가 없이 왕생한다는 것은 대체 어떠한


경계인가?

품위가 없다는 것은 곧 품위의 차별상을 초월


답변:

하며 평등일여平等一如한 보토報土의 경계이다.


8. 질문: 품위가 존재하지 않는 염불왕생과 제행 가운

데 상품상생을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수승한


것인가?

답변: 이미 품위를 초월한 이상, 품위가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셨
듯이 “(염불을 제외한) 그 외의 제행은 비록 선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만약에 염불과 비교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11)
또한 에베레스트 산이 모든 산들 중에서 비록 가장
自余諸行, 雖名是善, 若比念佛者, 全非比較也.”
11) “
부록 303

높은 산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어쨌든 허공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체로 불법 중에서 품위에
차별을 둔 것은 모두 방편이고 원만한 가르침이 아니
며, 원만하고 진실한 가르침에는 반드시 품위가 없
다.
9. 질문: 범부들이 단지 칭명염불을 함으로써 무루의

보토(無漏報土)에 왕생하여 부처님과 같은 수용을 한


다고 하니, 이 일은 믿기 어렵다. 어떤 경전과 주석의

근거가 있는가?

답변: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믿기 어려운 법’이라


하는 것이다. 경전과 주석의 근거가 굉장히 많은데
임의로 한두 가지만 들겠다. 무량수경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보살들의 일반적인 수행 점차를 뛰어
넘고 바로 보현보살의 덕을 닦음이라”, “부처님과
같은 금색의 몸을 얻고 미묘한 모습이 모두 원만하며,
304

또한 대비심으로 모든 중생들을 이익케 하느니라.”


선도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원
력에 의탁하여 강력한 증상연을 삼음으로써 오승五乘
이 다함께 (보토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 번 열반상주
국에 들어가면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순간순간 항상 증오證悟를 하나니 십지보
살의 원행願行이 저절로 이루어지느니라.”12)
우익대사께서는 미타요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
다. “지명염불을 하는 자는 광명과 수명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 “원만히 사토四土를 청정케 하고 온갖
즐거움을 원만히 누린다”, “다함께 무루의 부사의업
으로써 같은 곳에 태어남을 감득하여, 서로 스승과
친구가 되어 함께 무명을 끊고 함께 묘각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므로 하근기의 범부중생들이 염불퇴念
不退 가운데서 41인위因位를 다 초월하게 된다.”

一入涅盤常住國, 徹窮後際更何憂 ; 念念時中常證悟, 十地行願自然成.”


12) “
부록 305

10.질문: 똑같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있지만 범부


들은 망상이 분분한 존재이고 조사들은 삼매를 얻으

신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상이 분분한 범부


들이 삼매를 얻은 조사들과 같은 보토에 태어나 지위

의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범부들을


찬양하고 조사들을 억누르는 게 아닌가? 이치적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그 일 역시 믿기 어렵다.

답변:그렇다. 이 일을 믿기 어렵게 때문에 ‘믿기


어려운 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치가
매우 분명한 것은 다함께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타는
까닭이다. 삼매를 얻었다는 것은 물론 공부가 깊다는
것이겠으나 부처님의 원만한 과각果覺의 공덕이 담긴
육자명호와 비교하면 어떠한가?
조사의 왕생 역시 부처님의 원력을 의지하는 것이
지 삼매력을 의지하여 왕생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범부가 조사와 같다고 하는 것이 범부를 찬양하고
306

조사를 억누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부처님의


명호와 부처님의 명호가 같다는 것인데 무슨 억누름
과 찬양이 있겠는가! 예컨대 무량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문과 보살들의 모든 광명은 다 가려
지고 오직 부처님의 광명만이 밝고 혁혁하게 빛나고
있음을 뵐 수 있었다.” 또 고덕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번 명호를 칭념하여 십지를 뛰어넘음에
놀라지 마라, 마땅히 육자명호가 삼승을 포괄함을
알라.”13)
11. 질문: 그렇다면 나태하고 산만하게 염불만 하면

되는데, 또 무엇 하러 정성스럽고 부지런하게 염불을


하고, 순간순간 명호를 잊지 않도록 제창할 필요가
있겠는가?

답변: 순간순간 육자명호를 버리지 않는 것은 염불


莫訝一稱超十地, 當知六字括三乘.”
13) “
부록 307

인들의 본분의 즐거움이므로, 정성스럽고 부지런한


칭명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권장할 수 있다. 왕생을
하기 전에는 죄루罪累에서 벗어난 게 아니어서 정성
스럽고 부지런히 염불하면 죄업의 장애가 소멸되고,
번뇌가 줄어들며 왕생할 때 자유로우니 무엇 때문에
싫어한단 말인가!

12. 질문: 부처님의 원력을 왕생이 결정되는 근거로


삼고,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염불함으로써 품위를 높

일 수 있는 자량으로 삼고자 하는데, 그래도 되는가?

답변: 정성스럽게 부지런히 염불하는 일은 그래도


된다. 그러나 품위를 높이는 데 자량으로 삼겠다는
것은 이치적으로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염불은 본래
품위를 초월하는 법이어서 곧바로 보토에 들어간다.
이미 염불수행을 하고 있는 이상, 어찌하여 품위가
없이 곧바로 보토에 들어가는 법문을 버리고 도리어
308

품위가 있는 연꽃에 갇히는 태생(含華胎生)을 구한단


말인가! 예컨대 황금이 비록 귀중하나 마니보주摩尼
寶珠와 견줄 수는 없다.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마니보
주를 가지고 상품上品의 황금과 바꾸면서 크게 이익
을 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큰 손해를 입은
것이다.

13. 질문: 천박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품위品位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염불하여

향상을 꾀하지만, 품위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산만하


고 게을러져 채찍질하며 격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理: 이치)만 고집하고 사(事: 현실)를 버리는 병폐를


방지하기 위하여 품위로써 염불인들을 권장해야 한
다. 그렇지 않은가?

답변:삼배구품을 시설하신 것은 본래 이런 부류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부록 309

부록 3

‘보토와 화토’에 대한 질문에 답함 (1)

1. 질문:
스님, 안녕하십니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이
있어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1.혜정스님께서 정토종답의淨土宗答疑 (1)에서
‘만약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서 왕생한 사람이
아니면 화토化土14)에 왕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렇다면 이 화토에 왕생한다는 표현에는 경전적인
근거나 조사님들의 해석이 있습니까? 선도대사의
14)화토化土: 부처님께서 근본무명을 끊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방편으로
만드신 세계이다.
310

관경사첩소15) 중에는 화토라는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변지邊地
가 화토인가요? 이 화토와 천태종에서 말하는 사토四
土16)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천태의 상적광토常寂
光土는 보토報土17)입니까?

화토에 왕생한 자가 연꽃이 열리고 부처님을


2.
친견(花開見佛)할 때, 거기는 화토인가요? 아니면
보토인가요? 곧바로 보토에 이르러 보신불을 친견하
는 것이 아닐까요?
15) 관경사첩소 觀經四帖疏: 선도대사께서 주석하신 관무량수불경소觀
無量壽佛經疏를 말한다.
16) 사토四土: 천태에서 말하는 사토란, 첫 번째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범성동거토이고, 두 번째는 삼계 내의 지말무명인 견사번뇌見思煩
惱를 끊었지만 아직 삼계 밖의 근본무명을 끊지 못한 중생들이 머무는
방편유여토이며, 세 번째는 근본무명을 끊은 법신보살들이 계시는 실보
장엄토이고, 네 번째는 부처님의 경계이신 상적광토이다.
17) 보토報土: 천태종에서 말하는 보토는 일반적인 보토로서 수행의 과보로
감득한 실보장엄토이다. 이 보토는 일품一品 이상의 근본무명을 끊은
대보살들이 머무는 국토다. 그러나 극락세계의 보토는 이와 달리 부처님
과 동일한 경계를 수용하는 국토로서 시방세계에서 가장 수승한 국토이
다.
부록 311

3.보토와 화토에 관해서 다시 조금 보충 질문을


하겠습니다.
관경의 구품왕생은 모두 제행을 닦아 회향하여
왕생한 사람들입니다. 혜정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분들이 왕생한 곳은 마땅히 화토여야 합니다. 그런
데 상품상생을 하는 사람을 영접하러 오신 분은 아미
타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무수한 화불化佛,
백천 비구, 성문대중과 무량한 제천諸天, 칠보궁전
등입니다. 이에 대해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 “또한
관경 중에서는 상배 세 사람(上輩三人)의 임종 때에
는 모두 아미타불과 화불이 함께 오셔서 이 사람을
영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보신과 아울러
화신이 함께 오셔서 손을 내밀기 때문에 함께(與)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경문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보신임을 알 수 있다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불報佛과 화불化佛이 함께 이 사람을 영접하러
又觀經中, 上輩三人臨命終時, 皆言阿彌陀佛及與化佛來迎
18) 관경사첩소, “
此人. 然報身兼化共來授手, 故名為與. 以此文證故知是報.”
312

오심으로써 극락국토는 보불보토報佛報土임을 증명


하셨기 때문에, 이 사람이 왕생한 곳이 보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도대사님의) 이 설명은 혜정스님
의 말씀과 다른 것 같습니다. 만약 화불이 오셔서
영접을 하시기 때문에 화토에 왕생한다고 해석한다
면 그럭저럭 해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보불도 함께 오셔서 영접을 하시는지요? 보불
이 오셔서 영접을 하시는데 또 무슨 이유로 보토에
왕생하는 것이 아닙니까? 선도대사의 뜻에 의하면
왕생한 곳은 바로 보토입니다.
그 뒤의 상품중생과 상품하생, 중품상생, 중품중생
은 모두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이 함께 이 사람을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화불을 언급하지 않은
이상 마땅히 보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보불이
영접하러 오셨기에 이치적으로 보토에 왕생해야 마
땅한데, 어째서 혜정스님께서는 화토에 왕생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부록 313

그 다음에 하품상생과 하품중생에는 모두 화불이


영접하러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마땅히 화토에
왕생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관경소(관경
사첩소)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대승동성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서방안락세계 아미타불은 보토와 보
불이다”19)라는 것입니다.
극락국토는 선도대사의 판단에 의하면 마땅히 보불
보토여야 하는데, 어째서 또 하나의 화토가 나타난
걸까요? 구품왕생을 한 사람들은 연꽃이 피고 부처님
을 뵈면(花開見佛) 모두 청허淸虛한 몸과 무위無爲의
체體를 얻고 부처님과 수용을 같이 한다고 하셨으니,
마땅히 보토라고 봐야 맞는 것 같습니다.
이상의 세 가지 질문이 있으니, 스님께서 법문해주
시기를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如 大乘同性經說, 西方安樂阿彌陀佛是報佛報土.”
19) 관경사첩소, “ 
314

답변:
극락정토는 오직 보토일 뿐 화토는 아니다. 선도대
사께서 바로 관경에 소(疏, 주석)를 달아서 해석하
실 때 극락은 보토라는 뜻을 세운 것이므로, 관경에
서 설명하는 극락이 보토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품왕생은 모두 보토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연태蓮胎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보토에 들어
감’과 ‘먼저 연태에 들어간 다음, 꽃이 피면 보토에
들어감’의 차별은 있다. 이 말인즉슨, 곧바로 보토에
들어가는 것을 ‘보토에 왕생한다’라고 하는 것이고,
연태 속의 경계를 두고 화토라고 표현한 것이다.
단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화토’라는 이름을 빌린
것일 뿐, 보토 밖에 따로 있는 화토는 아니라는 것이
다. 왜냐하면 연꽃이 진실로 보토 가운데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구품의 연꽃 속=태생胎生=궁태宮胎=궁화宮花=
부록 315

변지邊地=변계邊界=의성疑城=화토化土
부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의혹을 품어 연꽃 속에
오백 세 동안 갇혀 있는 것이 마치 모태 속에 있는
것과 같으므로 태생胎生이라 부른다.
의심이라는 장애 때문에 연꽃 속에 갇힌 것이 마치
성에 갇힌 것과 같으므로 의성疑城이라 말한다.
연태(연꽃 태) 속에서 법문을 듣기 어렵기 때문에
변지邊地라고 부른다.
연태 속은 부처님의 세계와 떨어져 있기에 변계邊界
라고 부른다.
연태가 넓고 크며, 그 속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리는
게 마치 궁전과도 같으므로 궁태宮胎라고 부른다.
바깥은 연꽃 모양이고, 그 속은 궁전과 같으므로
궁화宮花라고 부른다.
잠시 머무는 곳일 뿐, 구경처가 아니므로 화토化土
라고 부른다.
이처럼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그 처소는 똑같다.
316

선도대사전집(이하 전집) 159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수인修因의 정념正念에는 잡다함과 의심이 있
어서는 안 된다. 비록 왕생을 하나 연꽃 속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여 변계邊界에 태어나거나 궁태宮
胎에 떨어지거나, 혹은 대비보살께서 개화삼매開華三
昧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의심의 장애가 사라지게
된다. 이때 궁화宮花가 열리면서 몸의 모습(身相)이
또렷해지고 도반들이 이 사람을 이끌고 부처님의
법회에 노닐게 된다.”
천태에서 말하는 사토四土를 극락의 보토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은, (극락의 보토는) 교판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상적광토 역시 관경에서 말하는 보토가
아니다. 왜냐하면 상적광토는 오직 부처님의 경계로
서 아직 수행 단계에 있는 인인因人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부처님과 제자들
이 똑같은 수용受用을 한다는 것이다. (우익대사의)
부록 317

미타요해에서도 “시방의 불국토에는 이러한 이름



이 없다” 하시고, “가르침의 그물(敎網)로 거둘 수
없고 불국토의 그물(刹網)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본원칭명本願稱名을 하는 사람이 곧바로 보토로 들
어가고 연태 속에 머물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분명히 믿기 때문이다.
잡행잡수를 하는 사람이 연태 속에 태어나 인연에
따라 구품으로 나눠지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에 대하
여 의혹을 품었기 때문이다.
질문: 무량수경에서는 태생을 한 자는 오백 세
동안 삼보를 뵙지 못한다고 하셨고, 관경에서는
구품의 연꽃마다 피는 시간이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태생과 구품의 연꽃 속이 같다고 말합니까?

무량수경의 말씀은 간략하여 총괄적으로


답변: 
318

오백 세라 하신 것인데, 이는 동일한 부류이기 때문이


다. 관경에서는 자세하게 말씀하시느라 별도로
시간의 길고 짧음을 분별하신 것인데, 이는 구품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른바
‘오백’이란 그 숫자가 많다는 말로서 실제 숫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전 중에 자주 오백을 들어
설명을 하시는데, 예컨대 ‘오백 시녀’, ‘오백 상인’,
‘오백 장자’ 등이 있다.

질문: 만약 염불인은 곧장 보토에 들어간다고 말한


다면, 어째서 관경의 하품 세 부류의 사람들(下品三

人)은 모두 염불을 했음에도 연태에 머물게 됩니까?

관경의 설명 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이는


답변: 
정선定善20)과 산선散善21)을 닦는 요문要門 수행자
20) 정선定善: 삼매를 닦는 수행으로서, 관경의 16관법 중에 제1관에서
제13관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21) 산선散善: 악을 끊고 선을 닦는 수행으로서, 관경의 제14관에서
제16관의 삼복 구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부록 319

들을 전수염불專修念佛을 하는 홍원문弘願門으로 이
끌어 들이기 위해서이다. 하품의 염불에는 두 방면의
뜻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정선과 산선 쪽을 향하면
정산定散이라 말하고, 본원 쪽을 향하면 본원이라
말한다. 하품 세 부류의 사람들이 품위 속에 있는
이상, 우선 정산 쪽의 뜻을 따라서 연꽃이 피는데
여러 겁이 걸린다고 말씀하신 것이므로 여전히 방편
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통분에서는 오직 칭명만
을 부촉하셨기에 삼배구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님 본원의 뜻을 따른 것이며, 비로소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다리와 도로의 경계(引橋)에 서
서 도로 쪽을 바라보면 도로의 끝부분이라 말하고,
다리 쪽을 바라보면 또 다리의 시작 부분이 되어
교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다.
320

부록 4

‘보토와 화토’에 대한 질문에 거듭 답함 (2)

스님, 안녕하십니까! 화토의 뜻은 이제 잘 알겠습


니다. 다시 한 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관경
중에 상품상생을 한 사람도 역시 제행을 닦아서 회향
하여 왕생한 경우이므로, 이치적으로 화토에 왕생해
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경전 속에는 왕생한 즉시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들으며 무생법인을 얻게 된다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태궁胎宮을 거치
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보토에 왕생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화토 역시 보토 가운데 있다고 하시지
만, 결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
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부록 321

질문: 만약 잡행을 하면 반드시 구품의 연태蓮胎에


들어간다고 말한다면, 상품상생의 경우, 꽃이 피고

부처님을 뵈면 다시 꽃이 접히는 장애가 없지 않습니


까?

답변: 구품은 행업行業이 서로 다르지만 삼심三


心22)을 근본으로 한다. 삼심은 심심深心을 요체로
삼는데, 심심이란 바로 깊은 믿음이다. 기(機: 중생의
근기)와 법(法: 부처님의 원력)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향전념이라는 정정업正定業에 계합해 들
어가는 것이다. 만약 삼심이 홍원염불弘願念佛과 융
합해 들어간다면 이는 더 이상 잡행이 아니며 곧바로
보토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분명히 믿는 까닭이요, 일향전념을 하는 까닭이다.
만약 구품 중 한 품의 행업만을 집착하여 홍원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잡행에 떨어지게 되니, 비록 왕생
22)삼심三心: 극락왕생을 바라는 자가 갖추어야 하는 세 가지 마음으로,
지성심至誠心, 심심深心, 회향발원심回向發願心을 말한다.
322

을 하나 꽃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게 된다.


상품상생에서는 삼심三心에 관한 글이 나오는데,
연꽃이 피고 부처님을 뵙는다는 것을 밝힌 것은 곧
염불하여 보토에 들어간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나머지 여덟 품에서는 삼심의 글이 나타나지 않는데,
연꽃이 피는 시간이 한결같지 않다는 것은 곧 잡행을
하면 연꽃 속에 머무르게 된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다.
질문: 삼심이 구품 전체를 관통한다면 구품이 모두

곧바로 보토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상품상생은 연꽃이 접히지 않고 나머지 품만

이 연태에 들어갑니까?

답변: 실제로 그러하다. 예컨대 담란대사께서 왕


생론주에서 말씀하시길 “동일한 염불로서 다른 길
(道: 이행도-칭명염불)이 없기 때문이다23)”, “본래는

往生論註, “同一念佛, 無別道故.”


23) 왕생론주
부록 323

구품이지만, 지금은 (구품 가운데서) 하나니 둘이니


하는 차별이 없다”24)고 하셨다. 하지만 삼심에 대한
글이 상품상생에 있으므로, 곧바로 보토에 들어가는
이익은 오직 염불에만 있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상품
상생에서 꽃이 피고 부처님을 뵙는 데 태궁胎宮을
거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여덟 품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우선 각 품의 행업에 따라 꽃이 피는 시간이 같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으로, 곧 잡행을 하는 사람에게
연태에 갇히는 액난厄難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아무
튼 구품의 사람이 만약 자신이 닦은 행업만을 고집한
다면 연태 속에 왕생하여 삼배구품으로 나눠질 것이
고, 삼심이 염불과 융합해 들어간다면 모두 연화화생
蓮花化生으로 삼배구품 속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구품에 대한 글에는 다음 삼중의 뜻이 있다.
① 표면: 차별이 있음–행업이 다름–근기–구품.
本則三三之品, 今無一二之殊.”
24) 왕생론주, “
324

② 내면: 차별이 없음–삼심이 같음–방법–염불.


③ 의취: 차별이 있는 것을 차별이 없는 것으로
이끌어 들이고, 방편인 것을 진실인 것으로 이끌어
들이며, 제행을 염불로 이끌어 들임.
이끌어 들이는 대상(所導)은 구품의 사람(九品人)이
고, 이끌어 들이는 주체(能導)는 삼심의 인(三心因)이
며, 이끌어 들어가는(導歸) 것은 염불법이다.
선도대사께서 관경소의 ‘십일문요간十一門料簡’
에서 말씀하시길 “다섯 째, 정식으로 근기가 감당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대해 가림”이라 하셨고, 현의분
玄義分 에서는 “다만 만난 인연이 다르므로 인하여
구품의 차별이 있게 된 것이다. 상품의 세 사람은
대승법을 만난 범부들이고, 중품의 세 사람은 소승법
을 만난 범부들이며, 하품의 세 사람은 악법을 만난
범부들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구품은 다 중생의
근기임이 분명하다. 행업에는 비록 차이가 있으나
부록 325

모두 자신은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인연이 없음을


깊이 믿으므로 반드시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타게
된다.
삿된 견해를 갖고 있는 교만한 중생에게 만약 삼심
이 없다면 저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볼 수 없으며,
삼심이 있는 까닭에 저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보며
일향전칭(一向專稱: 오로지 한결같이 칭명염불만 함)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존께서 근기에 따라 이익을
드러내시려는 비밀스런 뜻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스스로 삼심에 대해 묻고 답하는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선도대사께서 관경 유통분을 해석하여
말씀하시길 “부처님의 본원을 살펴보니, 그 뜻은 중
생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
를 부르는 데 있다”25)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삼심은 정산(定散: 정선과 산선)과 선악의
구품행인九品行人들을 염불로 이끌어 들이는 중요한
25) 관경소 正宗分散善義 , “望佛本願, 意在眾生一向專稱彌陀佛名.”
326

관문이다.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 “정산에 관한


글 속에는 오직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서
왕생함을 밝히고 있다”고 하셨는데, 삼심이 널리 구
품에 뻗쳐 있고 정선定善까지도 전부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정산定散과 홍원弘
願은 끝내 서로 떨어져서 융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홍원弘願이라는 말은, 모든 선악의 범부가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불의 대원업력大願業力의
배를 타는 것을 증상연增上緣 으로 삼지 않는 이가
26)

없다는 것이다”27)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를 통해 구


품왕생을 하는 선악의 근기들은 오직 염불을 함으로
써 보토報土에 왕생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6) 증상연增上緣: 삼연(三緣: 친연親緣, 근연近緣, 증상연) 중 하나로 다른


법을 일으키는 데 힘이 되는 연緣을 말한다. 정토종에서는 중생이 평생
염불하면 임종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대원력으로 보살들과 함께 오시어
극락으로 데려가시는 것을 말한다.
27) 관경소 玄義分 , “言弘願者, 如大經說, 一切善惡凡夫得生者, 莫不皆
乘阿彌陀佛大願業力為增上緣也,”
부록 327

부록 5

삼복과 염불을 논함

질문: 어느 대덕께서 법문 도중에 늘 ‘정업삼복淨業三


福’에 대하여 법문하시면서, 만약 정업삼복을 실천하

지 않는다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고 관경 중에 부처님께서 왕생의 방법을 설하시기
전에 먼저 정업삼복을 설하신 것과 아울러 관경

ㆍ ㆍ
중에 ‘과거 현재 미래 삼세 여러 부처님들의 청정
한 업의 바른 인(三世諸佛 淨業正因)’이라는 경문을 근거

로 들면서 정업삼복 가운데 첫 번째 복을 실천해야

비로소 범부와 성인이 함께 머무는 범성동거토凡聖同


居土에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당수의

연우님들이 이 말씀의 영향을 받아 왕생에 대한 신심


328

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또한 대덕께서 근거로 드신


‘삼세제불의 청정한 업의 바른 인’라는 이 경문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법사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법문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답변:

1. 관경의 참 뜻

이 경전은 문자가 매우 많은데, 경전의 참 뜻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조사들의 해석에 의거하여 전체
적으로 한 경전의 종지를 파악해야만 비로소 문장의
뜻이 산산이 흩어지지 않고 한 문장의 뜻만 취하여
문구에 막히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관경에서 설하신 내용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위제희 부인의 청에 응하여 정선定善을 닦기
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하여 정선관定善觀을 설하셨으
니, 곧 십삼관(①일상관日想觀~⑬잡상관雜想觀)이 그것
이다.
부록 329

둘째, 정선을 닦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스스로 산선散善인 삼복업三福業을 개설하셨으니, 곧
구품 가운데 전육품(前六品: 상배 3품과 중배 3품)이다.
셋째, 정선과 산선을 모두 닦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하여 ‘정선도 산선도 아니고 정선과 산선을 초월하
는(非定非散, 超定超散)’ 칭명염불을 설하셨으니, 곧 하
삼품下三品이다.
정선과 산선과 칭명을 막론하고 여법하게 수행하는
자라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 그러나 정관(定觀: 정선)
은 어렵고 삼복(三福: 산선)은 쉬우며, 삼복은 어렵고
칭명은 쉽다. 그리고 정선이 거두어들이는 근기의
폭은 국한되어 있고 산선이 거두어들이는 근기의
폭은 넓으며, 산선이 거두어들이는 근기의 폭은 국한
되어 있고 칭명이 거두어들이는 근기의 폭은 넓다.
그래서 경전 끝부분인 유통분에 이르러 석존께서는
정선도 부촉하지 않으셨고 산선도 부촉하지 않으셨
330

으며, 오직 칭명만을 부촉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
“지금까지 비록 정선과 산선 두 문(定散兩門)의 이익
을 설하셨으나, 부처님의 본원을 살펴보면 그 뜻은
중생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
호를 부르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은 오직 칭명에 있
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이나 산선과 같은 제행(定散諸行)
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권장되었지만, 칭명의 한
행은 부처님의 본원을 마주 대한 것이다. 오직 이
칭명 하나만이 진실한 것이니, 다른 둘도 없고 셋도
없다.
만약 삼복을 중시하는 사람이 복을 닦을 것을 권장
하는 경문을 보고서 삼복을 닦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정관定觀 수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관을 닦을 것을 권장하는 문구를 보고서 또 정관을
닦지 않으면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곧 하나하나
부록 331

의 법문들이 모두 파괴되어 왕생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옳은 것도 집착하면 그릇되게
되니, 어찌 경전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2. 삼복을 설하신 이유
관경에서 말씀하시길(선도대사전집 117쪽)
“저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세 가지
복(三福)을 닦아야 하느니라.
첫째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며, 스승과 어른
을 받들어 섬기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생하지 말
며, 열 가지 선업을 닦아야 하느니라.
둘째는 삼보에 귀의하여 여러 가지 계를 지니며,
위의를 범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셋째는 보리심을 발하여 인과의 도리를 깊이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며, 다른 수행자들에게 부지런히
권하도록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세 가지를 청정한
332

업(淨業)이라고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전집 117쪽)
“<저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에서부터 <청정
한 업이라고 하느니라>에 이르기까지는 정식으로
<삼복의 행을 닦을 것을 권장함>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일체중생의 근기가 두 종류가 있음을 밝히고
있으니, 첫째는 정定이고, 둘째는 산散이다. 만약
정행定行만을 의지한다면 중생들을 다 거두어들일
수 없으므로, 여래께서 방편으로 삼복의 행을 개설하
시어 마음이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에 응하셨다”라
고 말씀하셨다.
또 말씀하시길(전집 30쪽)
“정선 법문은 위제희가 청한 것이고, 산선 법문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것이다”라고 하셨다.
부록 333

석존께서 스스로 삼복을 개설하신 목적은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에 응하시기 위함이다. 극도로 산란하
게 움직이는 사람은 하품하생으로, “죽음의 고통에
시달려서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선지식은 고통으로 인하여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음을 아시고, 바꾸어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이에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타고 왕생을 하였다(전집 308쪽).
이로써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에 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삼복을 개설하신 이유는 바로
칭명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지 말 것


삼복을 닦기를 권장하신 것은 경전에 명백한 문구
가 있으나 역시 총체적으로 염불인들이 각자의 근기
와 능력에 따라서 마땅히 실천할 것을 권장하시기
334

위함이다. 하지만 ‘정업삼복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왕생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며,
관경에서의 부처님 말씀을 직접적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염불인은 마땅히 삼보에 보시해
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시할
재력이 없는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삼복 가운데 첫 번째 복은 세속의 선이고, 뒤의
두 가지는 불법의 선이다. 그러나 관경의 하삼품下
三品을 선도대사께서 해석하시길(전집 42쪽)
“이 삼품의 사람은 불법과 세속의 두 가지 선근이
없으며, 오직 악업만 지을 줄 안다”고 말씀하셨으니,
곧 삼복에 완전히 몫이 없는 사람은 칭명으로 왕생한
다는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광명 명호로써 시방중생들을 섭취하
고 교화하시겠다고 서원하셨는데, 언제 오직 삼복을
닦는 중생들만 구제하시겠다고 발원하셨던가?
부록 335

관경의 구품에는 모든 선악의 범부들이 전부 포


함되어 있는데, 언제 석존께서 오직 삼복의 선인들만
구제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무량수경에서도 말씀하시길 “불법이 사라진 만

년 후에 하나의 복도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도 뜻하는


대로 염불하여 왕생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비록 말씀은 이러하나, 염불하며 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에 마땅히 신분과 능력에 따라 삼복을
닦아야 한다. 조사(선도대사)께서도 꾸짖어 말씀하시
길 “혹 어떤 사람들의 경우, 삼복을 모두 실천하지
않는다면 곧 십악과 사견邪見과 천제(闡提: 선근이 끊어
진 사람)인 사람이라 부른다(전집 238쪽)”라고 하셨
으며, “혹 세 가지에 다 몫이 없는 사람은 사람의
가죽을 쓰고 있는 축생이라 부를 뿐,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느니라(전집 263쪽)”고 말씀하셨다.

만약 부처님의 본원에 수순하여 오로지 부처님의


336

명호를 부르면서도, 전체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수순하여 능력에 따라서 삼복을 닦는다면 아미타불
과 제불께서는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다.

4. 삼복 왕생에 대한 의문
관경에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위제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이
제 알겠는가? 이 청장한 업이 바로 과거, 현재, 미래
삼세 여러 부처님들의 청정한 업의 바른 인(正因)임
을.”
이를 해석하시길(전집 124쪽)
“<부처님께서 위제희에게 말씀하시기를>에서부터
<바른 인>에 이르기까지는 ‘성인을 끌어다 범부를
격려하심(引聖勵凡)’을 밝히고 있다. 다만 결정된 마음
으로 심력을 기울인다면 반드시 왕생함에 의심이
없다. 지금까지 말한 위의 다섯 구절들이 서로 다름이
부록 337

있으나, 널리 ‘산선을 실천하는 인연을 드러냄(散善顯


行緣)’을 밝힘을 끝마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삼복의 업은 정토왕생의 업으로서, ‘청정한 업의
바른 인(정업정인淨業正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삼복三福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
이 산란한 범부가 닦는 것이요, 둘째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닦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이 두 가지 삼복을 설하신 의도에
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이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에 응하시기 위함이요, 둘째는 성인을 끌어다
범부를 격려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경전과 해석에는 의문이 있다.
만약 마음이 산란한 범부들이 닦은 삼복의 업을
기준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불법에서 말하
는 인과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다시 제불이
닦는 삼복을 들어 ‘성인을 끌어다 범부를 격려함’이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산란한 범부가
338

탐·진·치를 버리지 못하는 이상, 비록 삼복을 닦는다


할지라도 결국은 ‘유위의 작은 선(有爲小善)’이고 ‘유루
의 공덕(有漏功德)’일 뿐이기 때문이다.
담란대사께서는 “모두 전도된 것이다”, “모두 허망
하고 거짓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선도대사께
서는 “독이 섞인 선(雜毒之善)”, “허망하고 거짓된 행(虛
假之行)”이라고 꾸짖었으니, 이를 의지하여 어떻게
‘진실’과 ‘무위’, ‘무루’와 ‘열반의 경계’인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까닭에 선도대사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
다.(전집 242쪽)
독이 섞인 이러한 행을 회향하여 저 부처님의 정토

에 왕생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28)
만약 제불이 닦은 삼복업을 기준으로 왕생할 수
28) 관경소 正宗分散善義 , “欲迴此雜毒之行, 求生彼佛淨土者, 此必不可
也.”
부록 339

있다고 말한다면 물론 이치적으로는 타당성이 있겠


으나, 그렇다면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에 응함’이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코 산란한
범부들이 닦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산란한 범부가 닦는 삼복은 어떡해야 비로
소 ‘독이 섞임(雜毒)’과 ‘허망하고 거짓됨’을 피하면서
제불이 닦은 삼복과 동일한 성격이 되어, 이른바
“전도되지 않고, 허망하고 거짓되지 않으며, 법성에
의지하고, 이제(二諦: 진제와 속제)에 수순하며, 중생
을 거두어 필경의 청정함에 들어감(왕생론주의 뜻
30쪽)”29)으로써 마침내 왕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해당 경문 속에서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선도대사의 판단과 해석은 우리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해주신다. 서분序分 에 나오는 이 단
락의 경문을 선도대사께서는 ‘산선현행연散善顯行緣’
不顛倒 不虛偽, 依法性, 順二諦, 能攝眾生入畢竟淨.’
29) ‘
340

이고 판단하셨다. 다시 말해 석존께서 먼저 삼복이라


는 산선이 극락왕생의 행업임을 간략하게 드러내심
으로써 정종분正宗分 에 이르러 상세하게 내용을
전개하기 위하여 복선을 까는 연기(起因)가 되어준다
는 것이다. 정종분 에 이르러 삼복업을 상세하게
전개하여 구품의 행업이 되었으니, 구품의 최초(상품
상생)에서 석존께서 삼심에 대해 자문자답을 하신
부분에 스스로 답변을 하신 것이다.

5. 삼심의 미묘한 작용
경전에서 말씀하시길(전집 241쪽)
“만약 어떤 중생이 저 나라에 왕생하고자 세 가지
마음을 일으킨다면 바로 왕생하게 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지극히 정성스러운 마음(至誠心)이고,
둘째는 깊이 믿는 마음(深心)이며,
셋째는 회향하여 발원하는 마음(廻向發願心)이니라.
부록 341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추는 사람은 반드시 저 나라에


왕생하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이를 해석하시길(전집 241쪽)
“정식으로 삼심을 분별하고 판정하여 바른 인(正因)
으로 삼을 것을 밝힘”이라 하셨다. 이어서 매우 긴
편폭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삼심에 담긴 뜻을 해설하
셨다.
왕생예찬에서 말씀하시길(전집 475쪽)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춘다면 반드시 왕생한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만 빠져도 왕생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삼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 말씀하시길(전집 259쪽)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이상 성취하지 못할 행이
없고, 원행(願行)을 갖춘 이상 왕생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하셨다.
왕생예찬에서 또 말씀하시길(전집 476쪽)
342

하나하나의 법문이 위의 삼심과 합한다면 일으키



는 업행業行마다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 진실한
업이라 부른다”30)
라고 하셨으니, 이로써 삼심의 미묘한 작용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삼심과 합하지 않는다면(전집 242쪽)
“비록 삼업三業을 일으키나 독이 섞인 선이라 부르
며, 또한 허망하고 거짓된 행이라 부를 뿐, 진실한
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설사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힘쓰며 주야로 24시간 동안 급히 걷고 급히 짓기를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독이 섞인 선이라 부른다. 이러한 독이 섞인
행을 회향하여 저 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나고자 한다
면, 이것은 절대 불가하다”31)고 말씀하셨으니, 삼심
을 떠난 삼복은 전혀 공용功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30) “一一門與上三心合, 隨起業行, 不問多少, 皆名真實業也.”
31) 관경소 산선의 , “雖起三業, 名為雜毒之善, 亦名虛假之行, 不名真實業
也. 縱使苦勵身心, 日夜十二時, 急走急作, 如炙頭燃者, 眾名雜毒之善. 欲迴此
雜毒之行, 求生彼佛淨土者, 此必不可也.”
부록 343

삼심이 있으므로 인하여 범부들이 닦은 삼복은 비


로소 진실한 업이라 부르게 되고, 비로소 왕생의
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복왕생은 삼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
라 “지성심, 심심, 회향발원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심에 대한 경문은 비록 상품삼생에서 설하셨지
만, 선도대사께서는 전체적으로 구품을 관통하고
정선을 포섭한다고 해석하셨다.
이를 준거로 구품에 대한 경문을 대조해 보면, 하나
하나의 품마다 모두 열한 가지가 있다.
이 십일문十一門의 뜻은, 만약 경문을 가지고 살펴
본다면 곧 갖춘 것과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
“비록 드러나지 않음과 드러남이 있으나, 만약 그
이치에 의거한다면 모두 다 반드시 있을 것이다.”(전
집 239쪽)
삼심 역시 정선의 뜻을 전부 포괄한다. 마땅히

알라!”(전집 259쪽)
344

상상품이 이와 같으니 구품도 모두 그러하며, 산선


이 이와 같으니 정선 역시 그러하다.

6. 삼심이 묘용妙用을 갖게 된 이유
본래 왕생할 수 없는 독이 섞인 선에, 일단 삼심이
있음으로써 바로 진실한 업으로 바뀌어 왕생할 수
있게 된다는데, 이것은 어떠한 이치인가?
선도대사께서 심심深心에 대해 해석하여 말씀하셨
다.(전집 244쪽)
심심深心이라는 말은 곧 깊이 믿는 마음이다. 이에

역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정적으로 자신은 현재 죄악생사 범부로서
무량겁 동안 항상 침몰하고 항상 유전하여 벗어날
기연이 없음을 깊이 믿는다.
둘째는 결정적으로 저 아미타불께서 48대원으로
중생들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부처님의
부록 345

원력을 타고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깊이 믿는다.”


두 가지 깊은 믿음이란 바로, 자신(機)에게 힘이
없음을 믿고, 아미타불(法)께서는 힘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신에게 힘이 없음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진실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아미타불께
힘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아미타불에 대하여
진실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심’ 속에는
진실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 곧 ‘지성
심’이다. 또한 이미 자신에게 힘이 없고 아미타불께는
힘이 있음을 안 이상, 당연히 자력自力을 되돌려 불력
佛力으로 나아갈 것이며, 윤회가 두려워 왕생발원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심심 속에는 ‘회향발원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탈 수
있겠는가?”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셨다.(전집 251
346

쪽)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행주


좌와에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고 순간순간
(염불을) 잊지 않는 것을 정정의 업(正定業)이라 부르나
니 저 부처님의 원력을 따르는 까닭이다.”32)
여기서 삼심이 심심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심심이란 바로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불
러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심이 있기 때문에 수행자의 신앙의식은 필연적으
로 자력에서 불력으로 돌아갈 것이고, 실천적 행위
역시 필연적으로 정선과 산선과 같은 온갖 선(定散諸
善)으로부터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전칭불
명專稱佛名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
면 곧 삼심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어서 왕생할 수
32) 관경소 산선의 , “一心專念,彌陀名號,行住坐臥,不問時節久近,
念念不捨者,是名正定之業,順彼佛願故.”
부록 347

없다.
마음이 산란한 범부들이 닦은 삼복은 불력에 의지
한 삼심이 있음으로 인하여 왕생할 수 있는 것이지,
삼복자체의 힘으로 왕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절름발이가 천릿길을 가고자 하면 험난한 산과
강에 가로막혀 도착할 수 없지만, 걷는 것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탄다면 잠깐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절름발이의 보행은 산란한 범부들이 닦은 삼복
에 비유한 것이고,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에 비유한 것이며, 보행을 버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삼심의 작용에 대한 비유이다.
이에 대해 해석하여 말씀하셨다.(전집 22쪽)
“모든 선악의 범부들이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미
타불의 대원업력을 타는 것을 증상연으로 삼지 않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선과 산선이라는 두 가지 선을 닦는 범부들은
정선과 산선의 힘에 의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아미타
348

불의 대원업력을 타는 것’으로써 왕생하는 것이다.”


만약 삼심을 일으키지 않고 불력을 타지 않는다면
범부의 복선(福善: 삼복의 선)은 인간과 천상의 과보에
막히고 육도윤회에 그칠 뿐, 정토에는 더욱 왕생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산란한 범부가 닦은 삼복은 본래 진실되지
못한 거짓이어서 왕생할 수 없다. 그러나 칭명에
귀속한다면 바로 진실한 업이 되어 곧 왕생한다.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와 동일한
짠맛이 되고 동일한 깊이와 넓이를 갖게 되는 것과
같다. 범부가 닦은 선은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아미타
불 명호의 공덕은 바다와 같으며,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삼심의 작용을 비유한
것이다.

삼복이 칭명으로 귀속되는 까닭에 명호의 통솔을


부록 349

받아 명호와 동화同化되며, 명호 자체 내의 공덕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본래 독이 섞인 선이 진실한 업으
로 바뀌어 삼세제불이 닦은 정업과 동일한 체성體性
이 되는 까닭에 성인을 끌어다 범부를 격려할 수
있고 범부를 격려하여 성인과 동등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부처님의 명호를 산란한 마음에 던
지면 산란한 마음은 부처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삼복
이 칭명에 귀속되면 잡독雜毒은 곧바로 청정해짐”33)
이라는 것이다.
이를 담란대사께서 해석하시길(왕생론주 94쪽)
예컨대 청정한 마니주를 탁한 물에 넣으면 물은

곧 청정해진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비록 한량없는
생사의 탁한 죄가 있다 하더라도 저 아미타여래의
지극한 무생(至極無生)과 청정한 보배구술과 같은 명
호를 듣고서 (이 명호를) 혼탁한 마음에다 던진다면
33) ‘ 佛號投入亂心,亂心不得不佛;三福歸入稱名,雜毒即便清淨.’
350

염념念念 가운데 죄가 소멸되고 마음이 청정해져 바


로 왕생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삼심을 일으키지 않고 염불에 귀속되지 않는
다면 삼복은 삼복 자체일 뿐이고, 잡독은 여전히
잡독일 뿐이어서 왕생할 수 없다.
여기서 ‘불력’과 ‘칭명’은 삼심의 핵심이면서 왕생을
하는 생명의 문이며, 범부를 성인으로 바꿀 수 있는
영약이고, 쇠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묘술妙術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믿고 이것을 실천한다면 잡독은
단박에 청정함으로 바뀌고, 한 번 칭념할 때마다
케케묵은 것들은 매우 기묘한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7.삼심과 칭명
⑴ 삼심은 칭명을 의지함
삼심은 심심에 포함되고, 심심은 바로 깊은 믿음이
부록 351

다. 깊은 믿음은 ‘칭명정정업稱名正定業’에 의해 세워
진 것으로, 선도대사께서 이를 해석하시며 “행을 따
라 믿음을 세움(就行立信)”이라 말씀하셨다. 따라서
삼심은 칭명을 의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⑵ 칭명을 떠나서 삼심은 없음
선도대사께서는 ‘지성심’이 곧 진실한 마음이라고
해석하시고, 또 ‘회향발원심’을 해석하시길(전집
252 )쪽
회향발원을 하여 왕생을 원하는 자는 반드시 결정

된 진실한 마음 가운데서 회향발원을 하며 왕생을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34)라고 말씀하셨다.
칭명을 떠나서 왕생에 대한 결정된 신심이 설 수
없는 까닭에 ‘심심’이 없는 것이고, 왕생에 대한 신심
이 서지 않는 까닭에 ‘진실로 왕생을 한다는 생각’을
못하므로 ‘지성심’과 ‘회향발원심’이 없는 것이다. 따
34) 관경소 산선의 , 迴向發願願生者,必須決定真實心中迴向願,作得

生想.”
352

라서 칭명을 떠나서는 삼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⑶ 명호에 삼심이 구족함
선도대사께서 ‘육자에 대한 해석(六字釋)’을 하시기
를(전집 50쪽)
“나무라는 말은 곧 귀명歸命이요, 또한 발원과 회향
의 뜻이다. 아미타불이란 말은 곧 그 행이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반드시 왕생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귀명’이 곧 ‘자신을 포기하고 아미타불께 목숨 바쳐
귀의함’이며, 바로 ‘두 가지 깊은 믿음이라는 깊은
마음(深心)’이며, 또한 반드시 ‘지성심’이다. 따라서
명호에는 삼심이 구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⑷ 칭명에 삼심이 구족함
명호가 지극히 진실한 까닭에 일심으로 칭명을 하
는 것이 곧 ‘진실한 마음(眞實心)’이며, 칭명은 저 부처
님의 원력을 따르는 까닭에 반드시 왕생하니, 곧
부록 353

심심’이다. 또한 칭명은 정정업正定業인 까닭에 마음



은 반드시 왕생을 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으므로,
곧 ‘회향발원심’이다. 따라서 일심으로 칭명하면 자
연히 삼심을 구족함을 알 수 있다.

8.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望佛本願)


⑴ 별도로 극락을 선택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別選
極樂, 望佛本願)
위제희가 전체적으로 제불의 정토인 ‘근심과 고뇌
가 없는 곳’을 청하였고, 석존의 금색광명이 좌대로
변하면서 모든 불국토가 그 속에 나타났으나, 오직
서방정토가 가장 수승함을 드러내시면서 비밀리에
위제희 부인이 별도로 선택하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별도로 극락을 선택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보심’
이다. 이를 해석하시길(전집 112쪽)
“이는 아미타불 본국의 48대원은 발원 발원마다
모두 증상增上의 수승한 인因을 발한 것이고, 이러한
354

인을 따라 수승한 행行을 일으킨 것이며, 행을 따라


수승한 과果를 감득한 것이고, 과에 따라 수승한 보報
를 감득하였으며, 보에 의해 극락이 형성되었고,
낙樂에 의해 자비로운 교화와 통함을 드러내며, 자비
로운 교화에 의해 지혜의 문을 열리게 됨을 나타낸다.
그러나 자비심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끝이 없으므
로 자비와 지혜를 함께 실천하는 것이 곧 널리 감로의
문을 여는 것이고, 이 법으로 윤택하게 해줌으로
인하여 중생을 두루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 밖의
여러 경전에서 권장하는 곳은 더욱 많으며, 모든
성인들이 마음을 모아 다 함께 지목하며 찬탄하신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비밀리에
위제희 부인에게 별도로 (극락을) 선택하도록 하신
것이다.
부록 355

⑵ 여래의 미소와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如來微笑, 望佛


本願)
이에 대해 해석하시길(전집 114쪽)
“여래께서 위제희 부인이 극락왕생을 원하고 다시
왕생하는 행을 청하는 것을 보시니, 부처님의 본심에
꼭 맞고, 또한 아미타불의 원력의 뜻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청으로 인하여 널리 정토
의 문을 열게 되었으니, 비단 위제희만 왕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들은 자들은 모두 다
왕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익이 있는 까닭에 ‘여래께
서 미소를 지으신 것’이다.”
이것이 ‘여래의 미소와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
다.
⑶ 스스로 삼복을 개설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自開
三福, 望佛本願)
위제희는 정선을 청해 물었으나 석존께서는 (마음
이) 산란하게 움직이는 근기들을 위해 스스로 삼복을
356

개설하셨다. 산란하게 움직임의 극치는 하품하생으


로, 이러한 근기를 위해 오직 칭명을 설하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삼복을 개설하신 뜻이 칭명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석존의 ‘스스로 삼복을 개설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다.
이상은 관경 서분 에서, 석존께서 부처님의 본
원을 바라봄이다.
⑷ 십삼정관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十三定觀, 望佛本
願)
열세 가지 정관 중에 진신관眞身觀이 가장 수승하
나,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지만 오직 염불중생
만을 거두어들인다(佛光普照, 唯攝念佛)”고 하셨다.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셨다.(전집 205쪽)
묻는다. 온갖 행을 닦아 다만 회향만 하면 모두

왕생을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두루 비추는
부처님의 광명이 오직 염불하는 자들만 섭취하는가?
부록 357

답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친연親緣을 밝힌다. 중생들이 행을 일으켜서
입으로 항상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께서 곧바로
들으시고, 몸으로 항상 부처님께 예배하면 부처님께
서 곧바로 보시며,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
님께서 곧바로 아신다. 중생들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면 부처님 역시 중생들을 기억하고 생각하시
니, 피차의 삼업이 서로 버리고 떠나지 않는 까닭에
‘친연’이라 부른다.
둘째, 근연近緣을 밝힌다. 중생들이 부처님을 뵙기
를 원하면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응하여 눈앞에 나투
신다. 그러므로 ‘근연’이라 부른다.
셋째, 증상연增上緣을 밝힌다. 중생들이 칭념하는
즉시 많은 겁劫의 죄가 사라지고, 목숨을 마칠 때
부처님과 성중들이 자연히 영접을 하며, 온갖 삿된
업의 매듭이 장애를 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증상연’
이라 부른다.
358

나머지 모든 행들은 비록 선善이라 부르지만, 만약


염불과 비교를 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여러 경전 중의 도처에서 염불의 공덕을 널리
찬탄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무량수경의 48대원 가운데서는 오로
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왕생을 하는 것을 밝히셨
고, 또 아미타경 가운데서는 하루에서 이레 동안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왕생하는 것을 밝히
셨으며, 또 시방세계의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셨고, 또 이
경(관무량수경)의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글 가운데
서는 오직 명호를 불러 왕생함을 밝히시고 있다.
이러한 예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널리 염불삼매
를 드러냄을 마친다.”
왕생예찬에서 말씀하시길(전집 529쪽)
“오직 염불만이 광명의 섭취를 받나니 마땅히 본원
부록 359

이 가장 강력함을 알라!”35)라고 하셨다.


이것이 석존께서 말씀하신 ‘십삼정관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十三定觀, 望佛本願)’이고, 또한 ‘정토삼
경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淨土三經, 望佛本願)’이며,
‘여러 경전에서 널리 찬탄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
봄(諸經廣讚, 望佛本願)’이며, ‘제불이 진실임을 증명함
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諸佛證誠, 望佛本願)’이다.
⑸ 스스로 삼심을 물음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自徵三
心, 望佛本願)
자세하게 삼복과 구품의 법문을 열고자 먼저 삼심
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하셨다. 삼심의
핵심은 “우러러 불력에 의지하며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름”이다.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근기에 따라 이익을 드러내시니, 비밀
唯有念佛蒙光攝, 當知本願最為強.”
35) “
360

스런 뜻을 알기 어렵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질문하시고 스스로 답변하시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가 없는 것이다.”(전집 242쪽)
“결정적으로 저 아미타불께서 사십팔원으로 중생
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깊이 믿는다.”(전집
242 )쪽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행주
좌와에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고 순간순간
(부처님의 명호를) 잊지 않는 것을 정정업正定業이라
부르나니, 저 부처님의 원력을 따르는 까닭이다.”
전집 251쪽)
(
이것이 석존의 ‘스스로 삼심을 물음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다.
⑹ 자세히 구품을 개설함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詳開
九品, 望佛本願)
구품 가운데 전육품(상배와 중배)은 삼복을 닦는
부록 361

사람으로서, 삼심을 의지해 회향하여 왕생할 수 있


다. 뒤의 삼품(하배)은 삼복에 몫이 없고 오직 악만
있으며 선이 없는 무리들이 오로지 칭명으로써 왕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석존의 ‘자세히 구품을 개설함
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다.
이상으로 관경 정종분 에서 석존께서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다.
⑺ 유통분의 부촉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付囑流通,
望佛本願)
경전 끝 부분의 유통분에서 석존께서는 정관定觀과
삼복을 부촉하지 않으시고, 오직 칭명만을 부촉하셨
다. 이것이 석존의 ‘유통분의 부촉과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봄’이다.
전체적으로 한 경전의 서분, 정종분, 유통분, 삼복
구품, 십삼정관을 살펴보면 석존의 마음은 오직 아미
362

타불의 본원을 바라보는 데 있으며, 석존의 뜻은


오로지 중생들이 칭명을 하는 데 있다. 이를 해석하시
기를(전집 317쪽)
“지금까지 비록 정선과 산선 두 법문의 이익을 말씀
하셨으나, 부처님의 본원을 바라보면 그 뜻은 중생들
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데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선과 산선 두 법문의 이익은 삼심에 있고, 삼심을
떠나면 이익이 전혀 없다.
삼심의 기능은 오직 칭명에 있으며, 칭명을 떠난
삼심은 효능이 전혀 없다.

9. ‘삼복’과 ‘염불’을 총결하여 비교함


(1) 범부의 삼복은 탐욕과 성냄을 여의지 못해
‘독이 섞여 있는 선’과 ‘거짓된 행’이라 부르는데, 본래
부터 왕생의 인행因行이 아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의
부록 363

명호처럼 지극히 진실하고 칭명 자체가 왕생의 정정


업인 것만 못하다.
(2) 삼복은 삼심을 의지해 회향하여 왕생해야만
비로소 왕생의 행이 된다. 따라서 한결같이 칭명만
하면 자연히 삼심이 갖춰지고 자연히 왕생하게 되는
것만 못하다.
(3) 삼복왕생은 삼복 자체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심이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을 우러러 의지함으로
써 왕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
면 자연히 부처님의 원력의 배를 타는 것만 못하다.
(4) 명호 밖에 따로 불력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칭명을 떠나서 삼복만을 집착하면서 회향하여 왕생
하고자 한다면 절대 왕생할 수 없다. 비록 삼복이
없더라도 칭명을 하며 왕생을 원하면 반드시 왕생한
다.
(5) 삼복은 삼심을 통하여 칭명 속으로 포섭되어
돌아가기 때문에, 명호의 공덕과 한맛으로 화합되었
364

을 때에 본래 ‘독이 섞인 선’이 ‘진실한 업’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왕생은 명호에 의한 것이지 삼복
때문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해석하여 말씀하시길
(전집 206쪽)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글 중에는 오직
명호를 불러 왕생함을 밝히고 있다”라고 하셨다.
(6) 삼복은 비록 삼심으로 말미암아 회향하여 왕생
하게 된 것이지만, 필경 수행의 바탕이 아미타불의
본원의 행은 아니다. 그래서 아미타불과 소원하여
친하지 않으므로, 명호와 비교했을 때 잡다하여 순일
하지 않다.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길(전집 252쪽)
“비록 회향하여 왕생할 수는 있으나 모두 소원하고
잡다한 행이라 부른다”라고 하셨다.
(7) 삼복이 소원하고 잡다한 행인 까닭에 아미타불
의 광명은 (그 사람을) 비추지 않으시고, 칭명은 본원
의 행이므로 저 부처님의 심광心光은 항상 (그 사람을)
비춘다.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길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지만 오직 염불하는
부록 365

이들만 거두어들인다.”(전집 205쪽)


“다만 오로지 아미타불을 부르는 중생이 있다면
저 부처님의 심광은 항상 이 사람을 비추면서 보호하
고 섭취하며 버리지 않으신다. 다른 잡다한 업을
닦는 행자들을 비추고 섭취하는 것은 전부 논하지
않는다.”(전집 343쪽)
“오직 염불만이 부처님 광명의 섭취를 받나니, 마땅
히 본원이 가장 강력함을 알라!”(전집 529쪽)고 하
셨다.
(8) 범부에게 번뇌가 있으므로 삼복은 칭명을 거두
어들이지 못하지만, 명호는 만덕萬德을 갖춘 까닭에
칭명은 당연히 삼복을 거두어들인다.
(9) 칭명은 삼복 또는 모든 행업보다 수승하다.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길
“그 외의 모든 행은 비록 선이라 부르나 만약 염불과
비교한다면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전집 205쪽)
“극락의 무위 열반계는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으
366

로는 왕생하기 어렵구나. 그래서 여래께서 중요한


법문을 선택해주셨으니, 아미타불을 전념하고 또
전념하라 가르치시네.”36)(전집 437쪽)
“만행萬行 닦아 회향하면 모두 왕생하나
염불 일행一行 가장 존귀하네.
잡선雜善 닦아 회향하여 왕생하려 하니
그 힘이 약할까 두려운데
하루에서 이레 동안 염불하는 것만 못하구나”37)
(전집 576쪽)라고 말씀하셨다.
(10) 부처님께서 십삼정관과 삼복구품을 설하신
것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보시고 칭명으로 이끌
어 들이기 위한 것이다.
(11) 그런 까닭에 왕생을 하기 위해서는 오직 마땅
히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

36) 법사찬(安樂行道轉經願生淨土法事讚), “極樂無為涅槃界,隨緣雜善恐


難生. 故使如來選要法,教念彌陀專復專.”
37) 반주찬(依觀經等明般舟三昧行道往生讚), “萬行俱迴皆得往,念佛一行
最為尊. 迴生雜善恐力弱,無過一日七日念.”
부록 367

10. 오직 선도대사를 의지함


‘범성동거토’ 등의 사토四土는 천태종에서 일반교리
에 입각하여 판별한 것으로서, 이 사토를 가지고
극락정토를 가늠하려 하는 것은 전반적인 오해이므
로 마땅히 버리고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토법
문을 닦는 자라면 마땅히 정토종의 종조宗祖이신 선
도대사의 교판을 따라야 할 것이다.
“범부가 칭명하면 부처님 원력의 배를 타고 극락
보토에 왕생한다.”
법보시 발원문

널리 자금을 낸 이나 수지하고 유통시키는 이를 위해 회향하는 게


普爲出資及受持轉流通者回向偈曰

원컨대 이 공덕으로 전생과 현생의 업이 다 소멸되고,


모든 복과 지혜가 증장되고 수승한 선근을 원만하게 이루며,
願以此功德 消除宿現業 增長諸福慧 圓成勝善根

모든 도병겁과 기근 등이 다 남김없이 소멸되고,


사람들마다 각자 예의와 양보를 닦으며,
所有刀兵劫 及與饑饉等 悉皆盡滅除 人各習禮讓

자금을 낸 사람이나 유통시키는 사람들의 현생의 권속이 모두다


남김없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선망조상들은 극락왕생을 이루고,
一切出資者 展轉流通者 現眷咸安樂 先亡獲超昇

비바람이 항상 순조로우며,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함께 위없는 도를 증득하길 바라나이다.
風雨常調順 人民悉康寧 法界諸含識 同證無上道
법보시 시주질

이번 법보시는 전북 임실 상이암 신도 분들의 발원으로 시작되었으

며, 아울러 강원도 고성 건봉사와 연지해회 연우님들과 그 외 여러


연우님들의 귀한 법보시 시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체 출간비용은 원이 들었습니다. 이에 아래에 시주하신 분들과
시주금을 알려드립니다.

상이암 신도 전체: 5,000,000원


건봉사 신도님: 100,000원
연지해회 법보시 연우님들 일동: 원

이 법보시 인연 공덕으로 염불하는 모든 중생들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다 왕생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정진법회 안내

상이암
․시간: 매달 4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다음날 새벽 5시
․연락처: 063-642-6263 / 010-3778-5264 (겨울엔 휴식)
․주소: 전북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산 1-1번지 상이암
건봉사
․시간: 매달 3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다음날 새벽 5시
(서울 조계사 앞에서 오후 1시 30분,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
오후 2시에 건봉사로 버스 출발)
․연락처: 033-682-8100 / 010-2529-7335
․주소: 강원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건봉사
불력회
․시간: 매달 1째 주 토요일 오후 8시 30분~다음날 새벽 4시
․장소: 동국대학교 정각원 법당
․시간: 매달 2째 주 토요일 오후 8시 30분~다음날 새벽 4시
․장소: 서울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
․시간: 매달 3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다음날 새벽 5시
․장소: 고성 건봉사 (건봉사 정진에 동참)
․연락처: 010-2529-7335
․인터넷: 다음카페 불력회 (http://cafe.daum.net/buddhapower)
정토종 종지
淨土宗 宗旨
信受彌陀救度 專稱彌陀佛名

願生彌陀淨土 廣度十方眾生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들어 믿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여

널리 시방중생 제도하길 원합니다.


법보시 염불모임 연지해회

연지해회蓮池海會는 법보시 도서출판과 염불수행을 위한 모임입니다.


정토염불에 관한 법문과 연기와 인과에 관한 양서들을 여러 뜻있는
불자님들의 후원에 의해 출간하여 법보시로 배포하기 위해 법보시
출판 연지해회 서유西有를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정기적인 염불수
행 모임을 통해 염불수행의 대중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연지해회의 뜻은, 극락세계 불보살님들의 덕이 바다같이 깊고 넓다는
것과 극락세계 법회에 모인 불보살의 수가 바다같이 무량하다는 비유
입니다.
연지해회에서 나오는 도서는 일반서점에서는 배포하지 않으며, 인연
있는 모든 분들께 법공양으로 회향하고 있습니다. 법보시를 올리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후원계좌: 신한은행 110-256-444023 예금주: 박병규(연지해회)
․주 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694-17 경원빌딩 301호 (우편: 137-070)
․ 전화: 02-599-1710 / 팩스: 593-5583
․ 사이트(다음카페): 연지해회 (http://cafe.daum.net/lianchi)
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고향으로 돌아가자
법 문 혜정법사, 정종법사
번 역 연지해회 편집부(淨傳法師, 願往生)
초 판 불기 2558(2014)년 4월 26일 제1판 1쇄 3,000부
재 판 불기 2558(2014)년 12월 20일 제1판 2쇄 3,000부
고 문 덕암 박종린 법사
주 간 서정 박병규
편 집 원왕생
디자인 목림 김수진

․ 주 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694-17 경원빌딩 301호


․ 전화: 02-599-1710 / 팩스: 593-5583
․ 사이트(다음카페): 연지해회(http://cafe.daum.net/lianchi)
◉ 이 불서는 무상 법보시로 출간하였습니다(비매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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