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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피아 제35권 2호
오토피아 제35권 2호
편집위원
Crump, Larry Griffith University, 김기봉 경기대학교, 역사학
International Negotiation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학
Rajkovic, Nikolas T ilburg University,
International Public Law 신충식 경희대학교, 철학
anchester University,
Richmond, Oliver M 원만희 성균관대학교, 현대언어철학
Peace Studies
이남인 서울대학교, 철학
목 차
Weiss, Thomas G. CUNY, Political Science
이승주 중앙대학교, 정치학
정용덕 금강대학교, 행정학
AI의 영원철학(Perennial Philosophy)적 접근:
정진영 경희대학교, 정치학
존재의 대둥지와 AQAL 프레임을 중심으로
지주형 경남대학교, 사회학
허훈(전 중앙대학교) ........................................................................................... 5
최우영 전북대학교, 사회학
발행인 이한구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발행처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채진원(경희대학교) ............................................................................................. 41
허훈
3 알파고의 경우, 알고리즘의 설계자 자신도 알파고가 수행하는 모든 행위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1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과학 용어사전>에서도 “알고리즘”, “사물인터넷
없다.
(1999 )”, “빅데이터(2005 )”, “딥러닝”, “3D프린터”, “드론(1930 년대)”과 같은 용어는 물론이고,
“인공지능(1955)”, “4차 산업혁명(2016)”, “로봇(1920)”이라는 용어조차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4 2014 년 12 월 BBC 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http :// www .bbc .com / news / technolo-
변화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 ) 안은 해당 용어가 처음 등장한 연대이다. (뉴턴코리아 편집부 gy-30290540). 또한 일론 머스크(Elon Musk), 스티브 위즈니악(Steve Wozniak) 등 많은 학
2010). 자들이 인공지능 개발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공동 서한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1,000명이 넘는 세
계적인 석학과 기업가가 참여한다.
2 “인공지능의 자율성이란 주변 환경을 관측(Observe)하고, 판단(Orient)해서, 결심(Decide)한 후
행동(Act)하는 의사 결정 과정인 OODA 루프(Loop)상의 각 단계별로 인공지능 스스로 결정할 5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인류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바로 철학의 부재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진석용 2016, 4) 온다. (KBS <명견만리>제작팀 2016, 104).
8 OUGHTOPIA 35:2 AI의 영원철학(Perennial Philosophy)적 접근: 존재의 대둥지와 AQAL 프레임을 중심으로 9
접근 역시 적지 않게 시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전통철학이나 과거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포괄적인 지도(Comprehensive Map)이다. 모
시대를 대표했던 철학자들의 이론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인공지능을 연 든 문제를 사분위(내부/외부, 단수/복수 혹은 주관/객관, 간주관성/간객관성)로 나누어
구하는 현대 철학자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개별적인 논조의 전망을 내놓는 경 보게 되면(Wilber 2000a, 71), 이것이 바로 모든 차원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인
1
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과거 철학이론을 빌려오더라도 서로 대척점(對蹠點) 길이라는 것이다. 이 포괄적인 지도 위에서 인공지능을 검토하면 프레임 구성
에 놓여 있었던 철학이론이 인공지능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동시에 적용되기 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2
도 한다. 따라서 상이한 관점에서 인공지능의 문제를 접근하게 되면, 상이한
결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과 문화에 공통적으로 나
타났던 사상, 즉 인류 공통의 진리로 간주되는 사상인 영원의 철학(永遠哲學,
philosophia perennis)의 관점으로 인공지능시대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또한 통
합사상가 켄 윌버(Ken Wilber, 1949~)는 영원의 철학을 근거로 서구의 심리학과
동양의 영적 전통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며 자신의 통합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다. 주지하듯이, 그의 통합적 모델은 ‘온 우주의 네 코너(AQAL: all quadrants &
all levels)’라고 불리는 ‘온 상한’ 즉 ‘사상한(四象限)’이다. 이 사상한은 인류의 지
식 전체에 근거해서 인간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핵심적인 열쇠가 무엇인지를
타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매틴·뵉 1996, 26).1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림 1> 지능의 사상한(四象限)
•도덕지수 •지능지수
개인적
•감성지수 (I) •신체운동 감각지수 (It)
출처: 저자 작성
인공지능이 반드시 인간지능과 유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향후 등장할 수
도 있는 범용성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은 인간지능에 견주
될 것이다.2 따라서 정당한 비교가 되려면,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이 가지는 전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범용인공지능(AGI)에게도 지능지수 외에, 우리에게 이
3
반적인 지적 능력을 포괄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또한, 이탈리아 출신의 옥스 미 널리 알려진 감성지수나 도덕지수5, 사회성지수 등등을 적용하고 평가해야
퍼드대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1964~)는 정보윤리(Information 한다.6(<그림 1> 참조) 우리가 정작 염려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높은 지능지수를 보
Ethics)라는 이름 하에서 훨씬 더 근본적인 수준의 피동자 중심(patient-oriented) 여 주어서라기보다는7 향후 개발될 인공지능이 감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거나
윤리학을 제안한다.4 나아가 만약 재귀적인 자기향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의 혹은 일정수준의 감성지수나 사회성 지수를 보여주지 못할 가능성이기 때문이
출현이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그 ‘초지능은 일정 수준의 도덕성이나 감성, 사 다.8 이미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대상으로 튜링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9
회성을 갖추고 있는지’ 당장 문제가 된다.
언어의 차이에서 생기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를 고등종교 교의의 기초가 되는 사상으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Holman 2008,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 바꾼다.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논리에 XV; Lings, Minnaar 2007, 243) 거의 모든 종교에는 공통적인 ‘비전(秘傳)의 핵심’이
는 기호(symbol)와 규칙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널리 있음을 전제로 한다(Friedman 1993, 96). 단적으로 말하면, 영원의 철학은 우리
알려진 것처럼 그는 현재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언어 즉 이진법을 창안했으며, 인간 속에 신성(Divine Reality)이 내재하고 있으며, 이를 깨닫는 것이 인간의 최
우주의 본질을 모나드(monad, 單子)로 파악한다. 그가 말하는 모나드는 더 이 종의 목적이라고 본다.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렸던 영국의 소설가이자 미래 비
상 분할할 수 없는 궁극의 실체이며 “우주를 구성하는 생동적인 선험질료”(라 평가 올더스 헉슬리에 따르면, 영원의 철학은 형이상학과 심리학, 그리고 윤리
이프니츠 2003, 254; 조승호 외 2018, 151)이다. 이에 근거하여 향후 나타날 안드로 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영원의 철학은 형이상학으로서 ‘초월적인 신성’
1
이드(Android, 인조인간) 로봇 은 “인지 기능과 메탈재질(로봇 피부) 및 나노재질 혹은 ‘신성한 실재’가 사물·생명·마음의 세계에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
(로봇 속살)이 서로 연속되고 나아가 외부세계인 자연과도 한 숨을 쉴 수가 있 한다. 또한 심리학으로서 인간의 영혼 속에는 이 신성한 실재와 유사(類似)하
을 것”(조승호 외 2018, 153)으로 예상하는 견해도 있다. 인조인간 역시 인간과 거나 심지어 동일(同一)한 그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윤리학으로서 인간
마찬가지로 수많은 모나드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 최종 목표가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바탕(immanent and
이처럼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생명을 가진 수많은 실체들”, “자연의 참된 transcendent Ground)을 아는 것이라 가르친다(Huxley 2013, 65). 요컨대, 영원의
원소”이자 “사물의 요소들”로 보았다. 또한 “이들은 영혼 또는 엔텔레케이아 철학에서는 생명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홀라키(holarchy, 홀론(holon)의 계층)적
(entelekheia)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느끼거나 지각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으로 존재(<그림 2> 참조)한다고 말한다.(Smith 1992, 62).
하지만 그는 동물적 영혼과 인간의 정신을 구별한다. 인간의 정신 즉 이성적 여기서 마음(Mind)·영혼(Soul)·정신(Spirit) 또는 심(心)·혼(魂)·영(靈)은 가끔
2
영혼은 ‘신 그 자체, 자연의 창조자’의 이미지라고 보았다(라이프니츠 2003, 193) . 서로 바꿔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문맥에서는 엄밀하게 구분되어 사
또한 라이프니츠는 지역을 초월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히 참된 것을 찾 용한다. 일반적으로 ‘영혼(Soul)’이라는 말은 “영속하는 비물질적인 실체이자,
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이에 인류 공통의 진리로 간주되는 사상을 추출하 사람의 의식의 중심” 4의 의미로 쓴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사람의 뇌를 방
여, 이를 영원의 철학(永遠哲學, philosophia perennis)3이라고 지칭한다. 이는 모든 앗간만 하게 크게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해도 의식의 자취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Kurzweil 2006, 376).
으로 해명함으로써 조 Psychology
Theology
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Mysticism
할 수 있다.2
출처: Wilber 2001, 14; Smith 1992, 62. 규범(1942)’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흔히 의사과학(擬似科學)으로 간주한다.
* 화살표: 저자 삽입
3 일찍이 아인슈타인(1879~1955)은 “모든 종교와 예술, 그리고 과학은 같은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Einstein 1950, 7)라고 하였으며,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하였다.(1939년에 쓴 수필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에 나온다(Einstein
1 다른 말로 ‘존재의 대둥지(great nest of being)’라고 한다(Wilber 1998, 8).
1954, 36-40). 하지만 영원의 철학과는 달리 전통 종교들은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에 대해 할 수
2 과학에서도 <그림 2>의 A에 해당하는 마음, 혼(Soul), 영(Spirit)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소위 ‘심 있는 말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은 유전공학, 인공지능에 대해 할 말이 없고 대부분의
령과학’, 혹은 ‘초과학’이 있지만,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영적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유사과학 신부, 랍비, 무프티는 생물학과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일어난 최신 발견을 이해하지 못한다.”, “많
(pseudoscience)’으로 치부(置簿)된다. 초과학이나 심령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의 일반적인 요건 은 과학자들을 포함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권위의 원천으로 계속 성경을 이용하지만, 이 문헌
을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증가능성도 없다. 특히, 머튼(Robert K. Merton)의 ‘CUDOS 들은 더 이상 창조성의 원천이 아니다.”(Harari 2017,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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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과학의 범주(영적 경험주의)에 속하며, 나아가 현대과학의 지원을 받아 전 Ⅳ. AQAL 프레임과 인공지능 프레임 설정
1
승 지혜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1. 기술적 특이점의 문제
2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물론 세계적인 영원철학자들, 사상가들 5 나노 기술자 랠프 머클(Ralph C. Merkle)이 명명한 것으로, 개체가 자기 복제 정보 암호를 중앙
과 거의 모든 세계 고등종교들이 이에 동의한다. 서버에서 내려 받도록 하면 무단 복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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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고 말한다. 결국 개발자들은 목적과 관계없이 결과를 구분할 수 진 윌버의 도식이다. AQAL은 <그림 5> AQAL 프레임
있는 로봇 R2Dl을 만든다. 그런데 R2Dl은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방 밖 글자 그대로 ‘모든 영역’과 ‘모든
에서 햄릿(Hamlet)과도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결국 R2Dl이 수준’을 의미한다. 프레임 수(數)
방 앞에서 목적과 무관한 결과를 구분해 내고 결과들을 하나씩 무시하 는 끊임없이 늘어나지만, 기본
는 사이에 시한폭탄이 터져 버렸다(Hookway 1984, 129-150; 岡本裕一朗 2018, 적으로 고려해야 할 영역은 단
52-54). 네 곳으로 압축되며, 사상한 즉
온상한을 포괄하지 못하면 당
이상과 같은 사고실험(思考實驗)은 인공지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공 위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중대한
지능은 고려해야 할 정보의 프레임이 미리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영역이 결여된다는 의미다.2 그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려해야 할 정보 프레임의 수를 무한정 늘릴 수 래서 윌버는 당위적·윤리적 측
도 없다. 위의 사례처럼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햄릿(Hamlet)과도 같이 망 면에서 이를 강조한다. 출처: Wilber 2000a, 70.
통합심리학자 켄 윌버는 영원의 철학을 이론적으로 확장시켜 세상[상황, 문제] 전자 개인의 내적 기술(기능), 우
우리(We, 문화) 그것들
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을 정리하여 “AQAL(All Quadrants All Levels, 온상한온 상상한에는 차량의 정비(핸들, 브 집합적 상대운전자의 (Its, 시스템, 사회)
(복수)
안전운전 도로사정
수준)”이라고 명명한다. <그림 5> AQAL은 전(全)세계적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 레이크, 부품의 완비 등), 좌하상한
에는 상대운전자의 안전운전, 정신적 물질적
1 ‘프레임 문제’는 인공지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도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難題)라고 보아야 한
다. 인간 역시 같은 상황에서, 돌발적인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보통 그 가능성을 무
시하고 행동할 뿐이다(岡本裕一朗 2018, 57-59). 그래서 윌버는 “통합 프레임 워크”를 응용하
자고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물론 그의 통합 프레임워크의 응용 제안은 인공지능을 염두에 둔 것 2 <그림 5>와 <그림 4>를 비교해 보면, “유기체 정보 프레임”은 사상한 중 우상상한에만 해당된다는
이 아니다.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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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 싱크홀, 낙석, 빙판길 여부 등등)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는 인 • 내부/단수(주관) : 내부 <그림 7> 통합 프레임 워크의 응용
공지능의 경우에도 —이를테면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 적 고려사항 “나는(인공
다. 중요한 것은 “안전 운전을 위해 사상한”(<그림 6>)에 제시된 조건 이외에 사 지능은)3 에 대하
상한을 벗어나는 다른 어떤 조건이 더 요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 어떻게 생각하고 느
네 상한 중에서 단 하나의 상한이라도 결여(缺如)되거나 무시되면 안전 운전 끼며 어떻게 평가하는
즉 온전한 문제해결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가?”
그래서 윌버는 AQAL을 “온우주의 네 코너”라고 부르며, 동시에 “모든 진리 • 내부/복수(간주관성) : 소
의 네 가지 형식(all four types of truth)”이라고 부른다.(Wilber 2006, 157). 앞서 제 통 “나는(인공지능은) 어
시한 <그림 4> 유기체(Organ)에 대한 정보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윌버의 <그림 떻게 최대한 많은 사람
5> AQAL 도식은 숫자로써 상위관계와 포함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우 들을 가장 깊은 수준으
1
상상한 의 “… →파충류뇌간(7)→신경조직(6)→신경세포(5)→진핵세포(4)→원 로 고려할 수 있을까?”
출처: Wilber. et al. 2008, 112.
핵세포(3)→분자(2)→ …”가 그것이다. 이 AQAL을 바탕으로, 다음 <그림 7> • 외부/단수(객관) : 가능
은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AQAL을 사용하는 통합 프레임 워크(Integration 한 행위들의 평가 “나
2
Framework)의 응용” 이라는 제하(題下)에 윌버가 제시하는 것이다. 는(인공지능은) 와(과) 관련하여 어떤 창의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4개의 상한 각각에는 “1) 내부적 고려사항, 2) (개인 상호간의) 소통, 3) 가능한 가?”
행위들의 평가, 4) (집단 간의) 상호 연결성”이라는 당위적으로 고려해야 할 기 • 외부/복수(간객관성) : 상호연결성 “내가(인공지능이) 살고 있는 더 큰 시스
초 항목(프레임)이 설정되어 있다. 템이 내(인공지능) 선택의 범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의 선택들은
이 시스템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윌버에 따르면, 이들 AQAL 요소들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지만, 종 이처럼 AQAL을 인공지능 프레임 설정시 기본적인 준거로 삼을 수 있다. 물
종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AQAL은 “자신의 세 론 윌버의 AQAL은 인간의 행위를 염두에 두고 설정된 것이지만, 이를 인공지
계 차원뿐만 아니라 자신, 다른 사람 또는 무엇이든 취할 수 있는 일련의 관 능에 적용하면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설정된 프레임[프로그램]에
점을 나타내기 때문에”(Wilber. et al. 2008, 112) 중요한 것이다. 그는 AQAL을 따라 작동할 것이다.
1
사용하여 원하는 만큼 상황을 조정할 수 있다 고 보았다. 사분면을 통과하는 하지만, 예견되는 한계도 있다.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이것이 제도
것은 모든 상황에 대한 빠르고 쉬운 통찰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 화(制度化)·법제화(法制化)되지 않으면, 시행동력을 상실함으로써 큰 의미를 갖
공지능이 사분면을 모두 고려하는 능력을 가진다면, 어떤 상황에 대해 한 가 지 못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약한 인공지능의 경우 유효하지만, 앞서 ‘통신규
지 영역에 치우쳐 판단하거나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비단 인간뿐 약 구조’ 설계에서도 보았듯이 강한 인공지능의 경우 이를 준수(遵守)하리라는
만 아니라 자율성을 갖는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통합 프레임 워크를 활용할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것이 법제화되고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개발한다면, 그 인공지능은 포괄적인 안목을 가지고 행동을 취할 수 있다면 최소한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이 합리적인
것이다. “결국 최신의 인공지능조차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험을 쌓으면 운영시스템 아래 운용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서 성장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
다2(진석용 2016, 12).
민족과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사상 즉 영원의 철학과 ‘온 우주의 네 뉴턴코리아 편집부. 2010. 『과학용어사전』. 서울: 아이뉴턴(뉴턴코리아).
코너’라고 불리는 사상한으로 인공지능의 문제에 접근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라이프니츠. 이동희 역. 2003. 『라이프니츠가 만난 중국』, 서울: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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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mankind.” (2 December) . http://www.bbc.com/news/technolo- In this paper, I use “The Perennial Philosophy” and “Integrative Model”
gy-30290540.(검색일: 2020. 09. 04.) based on the perennial philosophy to establish the frame of AI research.
Wikipedia. 2020. “유전 알고리즘” https://ko.wikipedia.org/wiki/유전_알고리 In previous studies on the philosophy of AI, there is no research that
즘.(검색일 2020. 10. 13.) approaches the perenni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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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川 仁志. 2018. 『AIに勝てるのは哲學だけだ; 最强の勉强法12+思考法10』. 東京: created the human brain, AI will also become spiritual existence and
祥傳社. semantic existence. However, in the perennial philosophy,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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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Weidmann. maintains its own body.
Also, applying the AQAL(All Quadrant, All Level) can help to set up the
40 OUGHTOPIA 35:2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41
AI research frame. The four corners of the AQAL can be presented as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valid criteria for setting the AI frame.
Strong AI or self-amplifying super- 시론적 연구
intelligence, which is expected to emerge in the future, should be viewed
in four areas and need to be evaluated as the "AQAL of intelligence." 채진원
와 지탄으로 즉,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득권생활을 와 함께 도덕에 대한 이중 잣대인 ‘내로남불적 태도’(즉 위선적 도덕주의)가 어떻
놓지 않으려 했던 강남좌파인 조국의 허물과 위선이 ‘내로남불’이란 형태로 지 게 하나의 유교적 습속의 체계에서 양면적으로 드러나고 서로 결합되어 모순
탄을 받으며 드러났다는 점이다. 조국의 많은 도덕적 어록들이 왜 ‘내로남불’ 이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 현상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비교학적 시사점을 찾
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는 데 있다.
셋째, 다시 소환된 ‘주자학적 도덕관과 민족주의 습속’에 따른 진영논리와 이런 목적을 위해 본론에서 다음의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조국 사태’를 서
적대적 공생관계(공범자관계)에 따라 불공정과 부정의에 분노하는 국민의 상식 술하고 선행연구에 기초하여 가설을 설정한다(제Ⅱ장). 둘째, 위정척사론과 내
이 파괴되었고, 그 과정에서 마치 조선시대 사색당파간 당쟁처럼 여야정치권 로남불론을 보인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의 도덕적 행태를 서술한다(제Ⅲ장).
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들 사이의 파당적 대립과 정쟁이 ‘서초동 집회’와 ‘광화 셋째, 586 운동권그룹의 도덕주의적 행태와 ‘주자학적 민족주의론’과의 친화성
문 집회’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 파당적 정치문화가 반복적으로 을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의 상징인 화서학파의 위정척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운동과 송시열 등의 소중화론이 어떻게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진영논리에 갇힌 적대적 대립과 로 전승되어 내면화됐는지를 살펴본다(제Ⅳ장). 넷째, 결론으로서 전체를 요약
분열의 정치행태를 되새기고 그것의 원인을 진단하는 가운데 실천적 대안으 하고, 연구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이후 후속과제를 논의한다(제Ⅴ장).
로 파괴된 상식과 공화주의 정신을 다시 복원하고 되살리는 정치적 노력이 필
요하다. 특히,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조국의 행태와 그를 지지하는 586 운동
권그룹이 진영논리에 빠지게 되는 배경이 되는 ‘주자학적 도덕관과 민족주의
습속’문제에 대한 진단과 함께 이를 극복하는 대안적 실마리가 모색되어야 한
다. 그럴 때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대립과 분열 및 국민 상식의 파괴가 반복되
지 않고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채진원 2020a).
지면의 제약 상으로 본고는 조국과 조국을 지지했던 586 운동권그룹이
공유하는 독특한 도덕적 정서와 선악의 이분법적 사유구조가 민주화 된지
30년, 한 세대가 지난 현재의 ‘조국사태’의 모습으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고
재현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그들의 ‘도덕지향성’과 ‘이분법적 선악관’
은 조선시대 유교인 주자학과 성리학적 습속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계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냉전화 등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시대상황과 그
리고 정당간의 선거경쟁을 상정하고 하고 있는 민주주의 규범과 충돌할 가
능성이 크다.
본 글의 목적은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586 운동권그룹의 ‘위정척사적 태도’
46 OUGHTOPIA 35:2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47
Ⅱ. ‘조국사태’에 대한 서술과 연구가설 설정 반공주의 운동가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
다. 21세기 한일관계를 19세기 말 위정척사론으로 대신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반일 아니면 친일이고, 애국 아니면 이적(利敵)”이라고
1. 지능의 다의성(多義性) 말한 것은 국민국가의 경계가 약화되면서 교류와 협력으로 지구촌이 심화되
는 이른바 21세기 세계화·정보화· 탈냉전 시대에 맞지 않는 시장경제와 민
‘조국사태’는 크게 보면 두 단계의 연속으로 진행되었다. 1단계는 청와대 민정 주주의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규범을 위협하
수석으로서의 일본에 대한 공격적 태도(위정척사적 도덕관)를 보인 조국사태이 는 퇴행적인 도덕관을 보여주는 언행이다(채진원 2019a).
고, 2단계는 도덕에 대한 이중 잣대로서 내로남불적 태도를 보인 법무장관으 그리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는 과정에서 적대적 진영논리를 재현했던 586
로서의 조국사태이다. 이 두 단계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운동권그룹의 행태 역시도 시대착오적으로 퇴행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들은
조국 민정수석이 일본공격에 앞장서고 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이에 반대 선거경쟁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친화적이지 못한 ‘전근대적 습속’을 재
하거나 이견이 있는 세력을 ‘친일파와 이적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충돌했던, ‘반 현하였다. 그들은 조국의 허물과 위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자유한국당 지
일민족주의의 찬반을 둘러싼 조국사태’에 이어서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의 찬 지자’나 ‘토착왜구’ 및 ‘적폐세력’으로 매도하거나 적대화·악마화하면서 상대를
반과 퇴진여부를 놓고 벌어진 ‘67일간의 법무부장관의 진퇴에 따른 조국 사태’ 괴멸과 타도 및 숙청의 대상으로 보는 ‘선악의 이분법적 습속’을 사용하였다.
이다. 이러한 선악의 이분법적 습속은 대의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경쟁을 외면하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경제제재의 근거로 2012년과 2018년 “대법원의 강 고 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경쟁을 통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
제징용 판결”을 아베정부가 문제를 삼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써 2019년 7월 는 대의민주주의제도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주의적 규범과 행
21일부터 일본과 친일파를 공격하는 1단계 조국사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2019년 8월 9일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부터 67일 만인 10월 14일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은 ‘조국사태’에서 자신은 도덕주의적 대인배로서 성
사임할 때까지 조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한 2단계 조국사태 인군자이고, 상대는 사악한 소인배이기에 당연히 소인배들을 위정척사(衛正斥
가 진행되었다. 邪)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대상으로 삼아서 타도하고 절멸시켜야 한다는 형이
그렇다면, 과연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586 운동권그룹이 공유하고 있 상학적인 도덕논리를 재현했다는 점이다.
는 도덕주의적 선악관의 집약체로서 위정척사론과 소중화론을 내포한 ‘주자 어쩌다가 우리정치는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이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부
학적 민족주의론’은 오늘날 시대적 적실성이 있는 것일까? 잠정적으로 보면, 르짖으면서도 속으로는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기득권을 탐하는 입신출세자
21세기적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논리로서 부적절한 것으로 의 상징이 되어 민주공화국의 정신인 공화주의와 충돌하는 선악의 이분법이
의심이 된다. 란 진영논리로 위정척사와 소중화를 부활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하도록 허용
즉,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게 흘러간 지금의 시기를 여전히 일제 강점기로 했을까?
보고 독립운동가처럼 사유하고 말하는 것은 지금을 6·25전쟁 시기로 보고, 이런 가정과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실마리로 선행연구들을 살펴
48 OUGHTOPIA 35:2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49
보고, 연구가설을 수립하여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정치제도와 습속(정 는 가치를 강조하는 유교를 비-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유교
치문화)과의 관련성 연구의 대표적인 논의는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민주주의’라는 어휘를 ‘거짓 민주주의’로 이해했다(Huntington 1991, 300-301, 71).
와 자본주의 정신』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그레고리 핸더슨의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청교도 습속과 위계서열의 중앙집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등 이다. 다만 이 논의들이 제시하고 있는 각각 장단 권적인 집단주의가 발달된 유교 습속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이 있다. 를 위해 윤원근이 『동감신학』에서 밝힌 대로, “청교도의 유한세계관과 유교
막스 베버의 논의는 청교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간에는 ‘선택적 친화성’이 의 무한세계관의 차이는 개인주의와 위계서열의 집단주의의 차이를 만든다”
있음을 보여주지만 청교도 윤리와 민주주의론 혹은 청교도 윤리와 민주공화 는 논의(윤원근 2014)를 수용하여 본 연구에서는 ‘천인합일’의 무한세계관과 ‘천
주의론간의 친화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토크빌의 논의는 청교 인분리’의 유한세계관과의 차이에 따른 결과로써, 도덕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도 습속과 민주공화주의론간 친화성을 보여주고, 프랑스의 카톨릭과 민주공 다는 가설을 수립하고 관련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화주의론간의 습속충돌을 보여주지만 동양 유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 본 연구는 선행연구들의 논의에 의존하여 다음과 같은 시론적 가설을 제
이 없다(Weber 1958). 시한다. 위정척사론과 소중화론을 내포하는 ‘주자학적 도덕관과 민족주의론’
또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논의는 청교도 습속이 있는 미국과 유교 습속의 의 사유구조적 산물인 유교적 무한세계관의 습속이 1980년대 586 운동권그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정치가 소용돌이의 형태로 중앙권력으로 집중화되고 룹의 도덕관으로 전승되었으며, 이런 유교적 습속의 내면화는 민주화를 시작
집단주의적 패거리 정치로 패턴화되는 이유를 개인주의를 기초로 하는 중간 한 지 한 세대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교도적 유한세계관의 친화성에서 성
의 매개집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 립한 민주공화국의 규범인 공화주의와 충돌하면서 ‘조국사태’에서 국민상식의
는 한국정치문화에 왜 개인주의에 기초한 중간매개집단이 약한 것인지, 그렇 파괴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다면 어떻게 개인주의에 기초한 중간매개집단을 촉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 결국 이것은 조국과 함께 현 제도정치권을 주도하는 586 운동권그룹의 리
급이 없다는 것이다(헨더슨 2013). 더십이 세계화·탈냉전·정보화·후기산업화·탈물질주의화 등으로 표현되는
직접적으로 유교와 민주주의간의 관련성과 관련해서 둘 간의 공존이 불가 21세기 시대상황과 부합하지 않는 ‘위계서열의 집단주의’와 ‘이분법적 선악관’
능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학자는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을 을 내포하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도덕규범이기에 이를 극복의 계기로 삼아야
지은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다. 그는 유교사상이, 청교도 습속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는 점이다.
에서 나와서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거나(undemocratic), 민주주의 이러한 시론적 가설의 관점에서 본 연구는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이 보여
에 반한다(antidemocratic)고 주장한다. 그는 유교의 특징을 개인보다는 집단의 준 유교적 무한세계관의 습속과 도덕행태에 대한 현상적 서술에 기초하여 진
강조, 자유보다는 권위의 강조, 권리보다는 의무의 강조라고 분석하였다. 단과 처방의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교적 습속과 도덕관이
즉, 헌팅턴은 국가와 관료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개인 자유와 권리보장의 재현되는 원인규명과 처방에 대한 비교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전통이 부재함을 유교습속의 특징으로 설명하면서,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특히, 극복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우리보다 먼저 개인주의에 기초하여 시장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수호에 있다는 자유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이것에 반하 경제와 민주주의의 성립을 통해 근대화와 민주공화국 설립에 성공한 영국,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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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 영향을 미친 청도교의 유한세계관 습속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기초로 Ⅲ.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의 도덕행태:
해서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 습속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그 시사점을 찾을 위정척사론과 내로남불론
필요가 있다. 이 비교학적 논의에 대한 부분은 지면의 제약상 다른 지면에서
계속 이어갈 것이다.
1. 1단계 조국사태: 조국의 친일파·이적세력 공격 행태
7월 18일, 조국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세 수위를 높여 다음과 같이 적었 며 “이인영 원내대표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반일 선동으로 다 덮을 수 있다’
다.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는 손쉬운 전략에 편승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고 비판했다(박준호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2019).
다.” 조국의 이런 표현에 환호와 비난이 거세게 엇갈렸다. 그리고 조국 민정수석은 8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일본이 도발한
7월 20일 조국은 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 ‘경제전쟁’ 상황에 대하여 일본과 한국 양쪽의 ‘민족주의’ 모두가 문제라며 ‘양
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비론’을 펼치고 ‘민족감정’ 호소는 곤란하다고 훈계하는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라며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 이 있다. 이들은 한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대해서도 냉소적 평가를 던지고 ‘이성적 대응’을 운운한다”고 비판했다.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하면서 또 다시 정부 비판을 반박했다. 이어서 그는 “일본 정부의 ‘갑질’ 앞에서 한국 정부와 법원도 문제가 있다고
그는 자신의 최근 SNS 게시글이 민정수석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의 말하는 것은 한심한 작태이다.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길도
식한 듯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열리고, 유리한 협상도 이끌어낼 수 있다. 국민적 분노를 무시·배제하는 ‘이성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 적 대응’은 자발적 무장해제일 뿐”이라며 “여건 야건, 진보건 보수건, 누가 가
다”며 강제징용 판결로 불거진 한일갈등의 쟁점에 대한 입장을 선명하게 드 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확실히 하자. ‘피’(彼)와 ‘아’(我)를 분명히 하자. 그리고
러냈다. 모든 힘을 모아 반격하자”고 주장했다.
조국 수석은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조국 수석이 언급한 양비론 비판과 애국론은 과연 적절한 것이었을까? 한
대법원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 마디로, 이성적인 책임윤리보다는 감정적인 신념윤리에 가깝고, ‘가짜 애국론’
고 명확히 하며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양비론 비
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정철운 2019). 그리고 7월 21일 조국 수석이 판과 이성주의 프레임으로 가둬서 자신의 시각을 ‘절대 선과 정의’로, 상대의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하여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시각을 ‘절대 거짓과 부정의’로 모는 태도라 할 수 있다(채진원 2019b).
수행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특히, 조국 전수석의 ‘애국론’은 ‘민족주의 애국’과 ‘공화주의 애국’을 구별하
당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국 민정수석의 친일파와 이적세력에 대한 지 않는 것이 문제다. 외부의 적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감을 선동해 동질적인
공격을 적극 옹호하였다. 그는 7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일전에서 한국당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민족주의 애국’이다. 이 민족주의 애국은
이 백태클 행위를 반복하는 데 준엄히 경고한다”며 “우리 선수나 비난하고 심 제국주의나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 말로 신(新)친일”이라고 한국당을 향해 반대로 ‘공화주의 애국’은 외부의 적을 상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
날 선 발언을 했다. 닌 동등한 글로벌 시민들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상처받은 서로의 처지를
이에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 “이인영 원내대표마저 자신이 연민하고 연대하여 민족·종교·인종 같은 차별이 없는 보편적인 문명국가를
할 일을 않고 결국 ‘반일 선동’에 편승하고 가세하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만들어 사랑과 우정을 실천하는 시도가 공화주의 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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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화주의 애국’은 우리 헌법 전문에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 만 조국은 자신의 관여를 부정하면서 관련 사건을 주도한 단국대 교수에게
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책임을 전가했다.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 과거의 조국은 어땠을까. 조국은 정치권에서 논문 표절 문제가 뜨겁게 달아
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올랐던 2012년 4월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논문 작성 과정에서의 윤리적 엄격
그리고 우리 헌법정신의 기원인 3.1 독립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공화주의 애 성을 강조한 바 있다. 조국은 당시 “직업적 학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국’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무도함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 수준은 다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
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 다. 실제로 조국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8년 ‘진리 탐구와 학문 윤
를 꼼꼼히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 리’라는 강의를 맡았다. 당시 서울대는 황우석 전 수의대 교수의 연구조작 사
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지, 결 건을 계기로 연구윤리를 강화하겠다는 차원에서 이 수업을 개설했다. 강의
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채진원 2019b). 계획(실러부스)을 보면 ‘바람직한 학문 연구의 자세, 학문 연구의 설계와 수행,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의 국제적 표준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학생들의 창
조적 안목과 능력을 계발’하는 것을 강의 목표로 하였다.
2. 2단계 조국사태: 내로남불 행태와 그 비판에 대한 부정 하지만 조국 후보자가 연구윤리를 강의하던 2008년 한영외고에 재학 중이
던 조 후보자의 딸은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2주가량 인턴을 한 뒤 이듬해
조국 법무부 장관은 2019년 8월 9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부터 67일 만인 대한병리학회에 논문을 제출했다.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에서 혈관
10월 14일 사임할 때까지 조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질 때마 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eNOS Gene Polymorphisms in Perinatal
다 그의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그래서 조국이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이라는 제목의 여섯 쪽짜리 논문에 조 후보자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조로남불’, 조국은 과거의 자신과 싸 의 딸은 제1저자로 등재돼 있다. 통상 논문의 1저자는 실험을 기획하거나 설
운다는 의미의 ‘조과싸’, 과거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데자뷰되어 자신에게 일 계, 수행하고 데이터 분석을 하는 등 가장 많이 기여한 저자에게 부여된다.
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조스트라다무스’,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조적조’라는 해당 논문 작성을 주도한 단국대 의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 대학에
신조어가 탄생했다(이가영 2019). 도덕주의에 대한 이중 잣대를 보여준 조국의 진학한다고 했고, 열심히 한 것이 기특해 제1저자로 했다”고 설명했다.
내로남불 행태와 그 비판에 대한 부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유지만 2019).
2) ‘특목고·장학금 제도’에도 단호했던 과거의 조국
1 ) ‘논문 작성윤리’ 강조했던 과거의 조국 조국은 2012년 4월 자신의 트위터에 대학 장학금 지급 기준에 대한 자신의
조국 법무장관 인사청문회과정에서 가장 공분을 샀던 의혹은 딸의 입시문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상태 중
제였다. 그 중에서도 조국 후보자의 딸이 한영외고를 다니던 중 2주 만에 병 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적었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값 등록금 시행을
리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에 ‘사실상의 특혜’라는 지적이었다. 하지 환영하며 장학금을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에게 줘야 한다는 취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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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들어가기 1년 전인 2015년 몸담았던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도 서울대 총 당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입시의혹들은 대중들이 이해하
동창회가 운영하는 장학재단 ‘관악회’로부터 학기당 401만원씩 2회에 걸쳐 전 기 쉽고, 국민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자녀 교육과 입시 문제라는 역린(逆鱗)이
액 장학금을 수령했다. 통상 관악회 장학금은 경제 상황이 어려운 학생에게 기에 폭발성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이 역린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으며, 이해관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에 제출된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신고된 조 계상 공정과 정의를 바라는 청년층과 2030세대를 더욱 자극하고 분노케 하
후보자의 재산은 약 56억원이다. 는 상황으로 번졌다.
조국은 또 딸이 재학했던 한영외고와 같은 특목고에 대해서도 평소 비판의 하지만 조국 후보자는 “제기된 의혹들이 ‘가짜뉴스’이고 법적으로 어떤 하
목소리를 높여 왔다. 특목고가 본래의 취지를 망각한 채 사실상 ‘입시기관’으 자도 없다”며, ‘적법’하다고 주장하면서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하
로 전락했다는 취지였다. 그는 2007년 4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유명 였다. 하지만 이런 조국 후보자의 접근은 분노하는 국민감정과 충돌하였다.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런 사교육 ‘실정법’보다 더 무서운 게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을 지난 ‘정유라-최순실 사태’
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 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지만 조 후보자의 딸은 문과 특성화 고등학교인 한영외고에서 이공계 스펙을
쌓아 이공계 대학으로 간 뒤 의전원으로 진학했다. 4) 가부장주의적인 직무유기에 대한 부정
조국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앞선 2019년 9월 2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해
3) ‘주식·펀드 가르치는 동물의 왕국’ 비난했던 과거의 조국 명에 나선 바 있다. 기자간담회 발언에서 조국 후보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
조국은 2009년 낸 저서 『보노보 찬가』에서 자본주의 병폐를 지적하며 대 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 “가장(家長)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정을 관리하는 ‘제
표적으로 주식과 펀드 등을 지목했다. 그는 책에서 “대한민국은 어린이들에 가’(齊家)를 잘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고, 그 나머지 것에 대해서는
게 주식·부동산·펀드를 가르친다”며 한국 사회를 ‘동물의 왕국’에 빗대기도 대체로 부인했다.
했다. 이에 많은 언론과 여론은 “모든 의혹에 대해 관여한 바 없다”거나 “모르쇠
하지만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난 2017년 7월, 그 로 부인”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부실한 셀프 청문회’임을 꼬집었다. 당연히
의 딸과 아들은 사모펀드에 각 3억5500만원씩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실제 투 “기자간담회에서 의혹이 대부분 해소됐다”는 여당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국민
자금은 각각 5000만원이었다. 또한 조 후보자의 배우자 정씨는 67억4500만 의 실망과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원을 투자금으로 약정한 뒤 9억5000만원을 냈다. 총 약정금액은 74억5500만 조국 후보자는 8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아내가 해서 몰랐다”,
원이다. 펀드 운용자는 조 후보자의 5촌 조카인 조씨다. 조 후보자 측은 펀 “이과 쪽 논문이라 몰랐다”, “사모펀드 자체를 몰랐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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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의 입에서 ‘모른다, 몰랐다’(88회), ‘알지 못했다’(27회), ‘알 수 없었다’(14회), 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국 장관이 재현하는 가장의 모습과 발
‘이번에 알았다’(7회), ‘처음 들었다’(5회)는 표현들만 141차례가 나왔다(채진원 언들을 ‘온정적 가부장’이라고 평가했다.
2020b). 가장(家長)과 제가(齊家)가 표현하는 상징처럼, 가부장주의적 성별분업에서
특히 아내를 앞세우면서 자신은 모르는 체 빠지려고 하는 조 후보자의 언 나오는 그의 무관심한 태도는 ‘가부장주의적인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이런 가
행은 6일 인사청문회 당일 동양대 총장 표창장 관련 발언에서도 계속 이어 부장주의적인 직무유기는 드라마 ‘SKY 캐슬’의 주인공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
졌다. 조 후보자는 딸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허위 수상 의혹과 관련해 최성 부장주의와 유사하다. 가정관리의 일인 양육과 경제문제는 아내와 여성에게
해 동양대 총장과 직접 통화했다는 최 총장의 발언에 대해 “저는 내용을 모 전적으로 맡기고, 남편과 남성들은 사회적인 참여와 공적인 일에만 전념해야
르니, 제 처가 너무 흥분한 상태라 진정하라 하면서 총장께 ‘죄송하다’고 말 된다는 식의 가부장주의적 이분법 태도를 만든다.
씀드렸다. 제 처가 이러이러한 주장을 하니 잘 조사해주시라고 말했다”고 설
명했다. 5) 80년대 운동권그룹의 등장
지난 2015년, 20대 청년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밑 586 운동권 출신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80년
바닥 정서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에 대한 강한 대 운동권을 주도했던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ND(민족민주)의 이론적 논객
반발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조국 후보자는 여러 차례 그런 것에 맞서 싸울 것 들이 자연스럽게 소환되었다. ‘주사파’로 불리는 NL, ‘사회주의좌파’세력인 PD,
을 주문했다. ‘사노맹’으로 더 유명한 CA(제헌의회) 혹은 ND계 인사들이 소환되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후보자는 청년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법대)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
민주적인 생활습속을 내면화하지 못한 채 언행일치의 생활진보를 실천하지 (법대)가 “친구야 그만 하자”라고 비판하자 이진경 서울과학기술교육대 교수(본
못한 까닭으로 ‘위선적 지식인’의 대명사로 분노의 부메랑을 맞는 처지가 되었 명 박태호, 경제학과)가 “희룡아,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라고 응수한 것을 두고
기 때문이다. 20년 전 뜨거웠던 운동권의 ‘사투’(사상투쟁)를 재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조국 장관은 2019년 10월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자택 압수수색을 하던 원희룡 지사는 범PD계열로 분류되는 고 노회찬 의원과 민주당 송영길 의
검사와 통화한데 대해 “가장으로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호 원 등과 함께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잘 알
소했다”고 말했다. 그간 조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제 처가 매우 놀라 건강 려진 바와 같이 조국 후보자는 ‘사노맹’의 방계조직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의
이 너무 염려되는 상태였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연락을 한 것”이 창설멤버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은
라고 설명해왔다. 학술연구기관으로 사노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는 10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가장(家 사노맹은 백태웅(현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서울대 법대 81학번)과 ‘얼굴없는 노동
長)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정을 관리하는 ‘제가’(齊家)를 잘하지 못했다는 점을 자 시인’ 박노해, 은수미 성남시장 등이 주도한 단체이다. 이인영 의원, 이상호
인정한다”고 했다. 조국 장관의 이런 표현들은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의원, 임종석 대통령 전 비서실장 등 민주당 주류를 이루면서 조국의 내로남
확대재생산하는 언급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10월 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불을 철저하게 방어했던 세력이 ‘주사파’계열로 불리는 NL(민족해방)계 출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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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의 내면화 과정 에 ‘필연적 법칙’과 ‘규범적 당위’를 관념적으로 연결시키고, 만약 이것의 분리
모순이 발생할 시 이러한 모순을 합리화하는 이중적 방어논리로 ‘위선적 도덕
주의론’을 내포하게 된다. 이런 역설과 ‘위선적 도덕주의론’을 꿰뚫어 본 조선
1. 성리학적 사유구조와의 친화성과 내부모순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한문소설 『호질』과 『양반전』을 통해 도
덕지향성과 위선의 이중성을 보이는 당시 지배계층인 사대부와 양반들의 ‘위
2019년 12월 31일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뇌물수수 등 11개 죄명으 선적 도덕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채성준 2019).
로 불구속 기소했다. 입시비리와 관련해서는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위 성리학적 사유구조는 상대를 공격할 때는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
조공문서행사,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가 적용 고 자신이 공격받으면 사람들은 기득권자처럼 살면 안 되냐는 식으로 낮은
됐다. 조국의 딸 조모씨의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부정수수와 관련해서는 뇌 도덕성의 잣대로 방어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중성을 방어기제로 내포하는 것이
물수수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사모펀드 비리에는 공직자윤리 특징이다. 이것은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이 대동세상을 꿈꾸면서도 노비
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증거조작 의혹에는 증거위조교사 및 증거은닉 367명과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였듯이, 이기심을 가진 유한한 인간이 ‘천인분
교사 혐의가 각각 적용됐다(하세린·오문영 2019). 리’의 도덕관이 아닌 ‘천인합일’의 도덕관과 같이, 신과 같은 무한한 성인군자
‘조국사태’ 때, 많은 사람들이 위선과 허물을 보인 조국의 허물과 위선 및 를 추구하기에 이율배반적으로 역설의 ‘위선적 도덕주의론’을 방어논리로 내포
내로남불을 지적해도 그와 그 지지자들인 586 운동권그룹이 여기에 적극적 하는 것과 같다.
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조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이 ‘조국의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에도 반응하지 않
국의 허물과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방어하면서 성찰하지 않 았던 심리적 배경에는 민주화 이후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고 ‘조국사태’를 문제로 키웠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상식, 경험, 도덕감정, 국민정서를 공유하는 공감능력
그 이유는 “죽창가를 부르자”고 하면서 “반일이 아니면 친일이고, 애국이 과 소통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추론된다.
아니면 이적”이라고 한데서 드러난 선악의 이분법에 따른 차별의 논리를 사용 그들이 공감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인지적으로 ‘확증편향성’에 따른
했던 그들의 도덕주의적 신념구조인 성리학적 사유구조에 힌트가 있다. 이런 ‘인지부조화’가 있고, 그것을 방해하는 신념구조에는 ‘이분법적 선악의 도덕관’
성리학적 사유구조는 반일과 이적으로 차별하는 공격의 잣대가 반대로 내로 에 따라 위정척사와 내로남불의 이율배반성을 방어적 심리기재로 연결하는
남불이 드러날 경우, 내로남불을 부인하는 방어의 잣대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 ‘성리학적 사유구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면서도 다른 이중성을 보여줬는지를 설명하는 데 용이하다. 성리학적 사유구 그렇다면, 자신은 절대 선을 추구하는 대인배의 성인군자이고, 상대는 사
조는 어떻게 공격의 잣대와 방어의 잣대를 다르게 사용하는 이중 잣대의 이 악함을 추구하는 절대 악인 소인배로 이분화하여 차별적으로 보는 성리학적
율배반적 역설을 합리화하는 것일까? 사유구조는 왜 공감능력을 저하시키고 ‘확증편향성’과 ‘인지부조화’를 강화시
성리학적 사유구조는 이상(理)과 현실(氣)을 형이상학적으로 분리시킨 뒤 도 키는 것일까?
덕적 인간의 수양을 통해 천인합일(天人合一)에 이르려고 하는 도덕관을 갖기 그것은 같은 실수나 오류도 내 것은 작게, 상대는 크게 하는 확증편향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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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조화와 같은 역설적 논리를 펴도록 하는 이중 잣대와 방어논리를 내포 는 시민들의 도덕감정 및 상식과 충돌하여 공감대와 공공선을 파괴할 수 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적 사유구조는 상대의 거악을 타도하는 절대선이 다는 점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이기에,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은 악인이나 소인배가 되는 일이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방어적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현실적으로 만에 하나 자신의 허물이 발생할 경우, 악행이 없다는 식으 2. 화서학파의 사유구조와 ‘주자학적 민족주의’의 기원
로 회피하거나 이를 부정하는 ‘오리발 전략’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며, 그래도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상대의 악은 거악으로 자신의 악은 소악으로 취급하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반일이 아니면 친일이고, 애국이 아니면 이적”이
서 거악보다는 소악이 낫다거나 소악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식의 ‘평범한 악’ 라고 반일민족주의를 선동한 것을 지지하고 조국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과정
을 수용하면서 그 이율배반성의 모순을 무마하고 합리화한다는 점이다(채진원 에서 드러난 조국의 내로남불을 부인하는 586 운동권그룹의 태도는 19세기
2020c). 구한말 개화를 거부한 이항로, 최익현 등이 이끄는 화서학파의 위정척사파운
따라서 자신의 허물과 내로남불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문제가 동의 도덕관과 유사점이 있다. 조국의 행태와 화서학파의 행태는 ‘주자학적 민
되지 않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예컨대 검찰개혁과 같은 중차대하고 본질적인 족주의론’으로 연결된다.
개혁을 가로막기 위해 조국 딸 아이의 학교 표창장 같은 사소한 문제를 꼬투 김충남은 “21세기의 한일관계가 19세기 말 같은 의병이나 죽창이나 감정
리 삼아 ‘큰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식의 회피논리를 내밀거나 큰 적 적 극일 운동으로 될 일이 아닌데 구한말의 위정척사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고
폐를 타도하기 위해 작은 적폐는 덮을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서 큰 정의를 가 조금도 진화하지 못한 느낌”이라고 진단하였다(곽아람 2019). 또한 박성현은
위해서라면 때로는 거짓말도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위정척사파 활동이 있은 후 140여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
이런 성리학적 사유구조는 신이 내린 도덕명령과 같은 절대불변의 진리이기 는 각종의 정책이 위정척사파의 이념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하
에 주변에서 아무리 내로남불을 지적하고 비판해도 자신을 스스로 척결해야 였다(박성현 2018).
할 절대적 악인으로 내모는 비판을 수용할 수 없도록 방어하고 방해하는 역 또한 함재봉은 “조선 말기 위정척사 정신은 1980년대 반미·반자본주의를
설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타인이 지적하는 실수나 오류를 반성하거 표방하는 586 학생 운동권으로 이어지고, 이들이 공유하는 신념구조가 한국
나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좌파의 이념적 기저가 되면서 이들 운동권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주축이 되
결국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적 사유구조로 무장한 위 었다”고 진단하고 있다(김성민 2019; 함재봉 2017).
정척사론자와 소중화론자의 신념구조는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끝까지 부인 이런 신념구조는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권들이 공유해온 도덕적 정서
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의 위선과 허물을 숨기기 위해 극단적인 죽음까 로서, 이것은 구한말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을 통해 ‘주자학적 민족주의론’(김용
지 마다하지 않도록 극단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상대를 비판할 때 덕 1987)을 앞세워 일제시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이항로, 최익현 등을 중심으
의 잣대인 ‘성인군자적 도덕주의’와 자신의 허물을 비판하는 것을 방어할 때의 로 한 화서학파의 사유구조와 습속에서 기원하고 있어 이 둘 간의 친화성이
잣대인 ‘위선적 도덕주의’를 양극단으로 오가는 태도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 있다(오영섭 1994; 오영섭 1997; 오영섭 2013). 화서학파의 기원은 병자호란 이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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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선(善)=중화, 기(氣)=악(惡)=청으로 이분법적으로 차별하는 김상헌의 척화 그러나 이성무는 ‘주자학적 민족주의’는 다분히 명분적(名分的)이어서 물리적
론과 송시열의 소중화론이다(박민영 2003a; 박민영 2003b; 강준만 2007). 인 힘으로는 안 되니 오랑캐들과는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만 높였다고
위정척사운동은 1860년대 조선 후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으로 성리학적 질 평가하고 있다. 이 남송의 주자학적 민족주의는 조선의 도덕지향성에도 깊은
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영향을 미쳐 조선의 지배사상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성무는 주자학적 민족
배격하는(척사) 반제 민족주의 운동을 말한다.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했던 화서 주의론의 대표적인 예가 병자호란시기 김상헌(金尙憲)의 척화론(斥和論)으로, 김
학파는 서양의 종교와 문물과 사상이 주자학적 형이상학과 유교사회의 가치 상헌은 척화파(斥和派)의 영수로서 후금군(後金軍)을 막아낼 아무런 방책도 없
들을 위협하자 주자학의 이기론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리론을 창안하였다. 으면서도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자고 하는 다분히 명분적인
그들은 理와 氣의 관계를 상보관계가 아니라 주종관계로 파악하고, 오직 理 민족주의를 내세웠다고 평가한다(이성무 2006).
만이 세상만사의 근저에 있는 유일한 이치로서 그 어떤 것도 理를 대신할 수 이런 명분론적인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은 송시열의 ‘북벌론’과 ‘소중화(小中華)
없으며, 氣가 理의 지배적 위치를 위협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 론’으로 재구성되었다. 송시열은 숭명배청론에 기초한 북벌론과 재조지은(再造
이라고 인식하였다. 화서학파에게 서양의 모든 것은 氣가 현상적으로 드러난 之恩)의 나라인 명에 대한 도덕적 의리를 중시하면서 명나라 멸망 이후 조선
혼탁한 것인 반면, 유교적 도덕은 氣보다 우월한 지고의 가치를 지닌 순수한 이 명을 계승한 문명국가라고 규정하는 소중화론과 북벌론을 주창하였다. 이
理의 구현과 같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런 조선의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은 리와 기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도덕관
화서학파는 “국제관계와 인간사회의 역학관계를 설명할 때에 주리론에 기 으로 무장한 화서학파로 전승되어 의병운동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해방
초한 정사(正邪) 이분법의 개념을 동원했다. 理와 氣의 우열관계를 불변 법칙 이후 민주화운동권 그리고 NL(민족민주)계, ND(민족민주)계, PD(민중민주)계 등
으로 간주한 화서학파는 중화와 이적, 인류와 금수, 양과 음, 본과 말, 정과 의 학생운동권들에게 전승되었다(이황직 2017).
사, 體와 用, 인심과 도심, 천리와 인욕, 왕도와 패도, 군자와 소인 등의 개념들
을 理와 氣로 대치하여 인식했다. 또 그들은 동양과 서양의 지리·인성·문화·
학술·종교 및 국제관계를 비교할 때에도 이러한 인식틀을 구사했다. 그들은 3.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의 민주화운동권으로의 전승과정
철저히 주리론적·중국중심적·유교문화중심적 시각에 입각하여 중화문화의
전통가치와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서양적인 모든 수단들을 배척하려고 하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의 저자인 도쿄대 독
다.”(오영섭 2013). 문과 출신인 오구라 교수는 1980년대 말 한국에 유학을 와서 서울대 철학과
이성무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의 대표적인 예로 병자호 에서 8년간 공부했다. 그에 의하면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란 때의 김상헌의 ‘척화론’을 들고, 그것의 기원으로 남송의 ‘주자학적 민족주 지금도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도덕을 지배하는 것은 “주자 성리학이라는 단
의’를 예로 든다. 이성무는 금(金)나라에 쫓겨 양자강 이남으로 이주해온 주자 하나의 철학”이라고 진단한다(기조 2017).
가 살던 남송(南宋)은 금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져 이 때문에 주자학적 민 그는 “한국이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理)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
족주의가 강화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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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며, ‘한국인의 도덕지향성’을 진단한다. 그는 이 “어머니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속성과 지향을 상징하는 자원이었던 것 같
런 곳에서 “권력 투쟁이란 곧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세력이 얼마나 도덕 다. 민중가요인 <선봉에 서서>는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딸, 자랑스런 민주의 투
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 된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사’라고 노래하였다. 투사자식들의 "뿌려진 피땀"에 비유되는 ‘어머니의 눈물’은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그간 당대 자식들에게 연민으로 확대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적 어머니의 표상이었다.
정권교체 때마다 ‘민족중흥’ ‘정의사회구현’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창조’ ‘제 동지애는 운동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한데, … 대개는 선후배 사
2건국’처럼 우리 정권이야 말로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덕적 가치 이 대면접촉을 통한 결속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 가족주의의 전유로서
를 창출하겠다는,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슬로건들이 민중개념은 … 운동참여자는 억압받는 대중 일반으로서의 민중개념을 받아들
연달아 태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였고, 운동의 심화과정에서 민중개념은 계급의식이 각성된 주체를 말하게 되었
또한 그는 “조선 사림인 노론, 소론, 남인, 북인 4색 당파의 당쟁은 아직 완 다.”(이황직 2017, 92-94)
전히 주자학화되지 않은 조선을 어떻게 하면 급진적으로 주자학화시킬 것인
가를 둘러싼 철학적 정쟁이기도 하였다”고 보고 있다(기조 2017, 140). 그리고 이황직은 이 책에서 변절=악, 지조=선이라는 사대부의 주자학적 도덕론과
그는 “1960년대 이래의 한국의 민주화운동·반독재운동은 지식인과 학생들 위정척사론은 민주화운동권 세력에게 민족적 정통은 민족주의와 민주화(재야
의 사대부지향과 선비지향이라는 두 측면의 산물이다. 전자는 군인정권(무)에 사림)세력으로, 친일독재는 반민족세력으로, 선악의 이분법처럼 재코드화가 되
대항하는 문의 정치권력 지향이고, 후자는 독재부패정권에 대한 도덕적 결벽 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향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기조 2017, 145). 그는 사대부의 정통론과 위정척사론의 그늘 아래에서 ‘사쿠라’라는 경멸어
『군자들의 행진: 유교인의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저자인 이황직도 우 가 사용되면서 야권과 운동권세력은 합리적 노선보다 선명성과 진영주의논리
리나라 건국운동과 민주화운동에는 유교인들의 성리학적 사유구조와 도덕지 경쟁에 내몰렸다고 보고 있다. 이런 위정척사론과 정통론에서 기원하는 명분
향성이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이황직 2017). 이황직은 이 론적인 선명성과 진영주의 도덕관은 근대 대의제 민주정치 운영의 핵심인 자
저서에서 사료 발굴을 통해 해방 정국의 좌우 유교 단체 참여자 조사와 분 율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공론장의 경쟁과 토론과는 거리
석 작업을 수행하여 유교 정치운동사의 연속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구한 가 멀 수밖에 없다.
말 의병전쟁부터 1960년대 민주화운동까지 면면히 이어진 유교 정치의 도덕 1980년대 NL계와 CA(ND)계 및 PD계로 대변되는 학생운동권들은 성리학
적 이상의 연속성과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유교와 유교인 적 사유구조와 도덕관이 작동하는 유교적 습속에 기초하여 서구의 마르크스
의 도덕적 행위가 어떻게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는가를 논증하고 있다. 주의 계열의 사상이나 민주주의 계열의 사상을 흡수하면서 사상투쟁과 이념
특히, 그는 민주화운동의 유교적 습속으로 민족주의와 민중주의로 연결되 투쟁을 전개하였다. NL계는 CA계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볼세
는 유교적 대동사상이 어머니를 상징으로 하는 가족주의의 민족적·민중적 비키 방식의 선도투쟁과 혁명주의적 선민주의에 맞서 대중조직화에 있어 대
확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의, 명분, 의리, 대동단결 품성론 등 유교적 관습과 가치 및 언어와 정서를 자
원화하였다. 자율적 개인보다는 유교적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로 상징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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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의로 무장한 정서적 유대감과 일체감 그리고 Familism적 결속은 당시 움을 쫓는 자신들과는 매우 다른, 이익을 쫓는 '소인'으로 쉽게 규정하는 데에
NL계가 주류운동권이 되는 운동권조직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르면... 글쎄, 그들을 꾸짖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들이 '지조'나 '변절' 같은 위
무(武)보다 문(文)을 숭배하는 유교적 습속과 선악을 차별하는 도덕지향성 정척사파 최익현 선생이 쓰시던 언어를 쓸 때는 같이 놀고 싶지 않다.(김홍집, 조봉
은 독립운동과 근대화 및 민주화 과정에서 교수집단과 학생과 지식인들의 사 암에 깊이 공감하는 나의 정서...)
회적 위세를 높게 유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교수와 학생들의 저항과 제 그래서 이황직 교수의 연구에 감사하면서도, 그 연구의 철학적 전제, 즉 '군자
도권 진입은 일종의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와 삼사의 간언운동처럼, ‘입신양명’ 와 소인이 따로 있다'는 믿음에는 의문을 가지고, 또 연구의 목적, 즉 ‘유교 민주
과 ‘출세의 기회’ 및 ‘신분과 권력세습’으로 정당화되었다. 주의’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데에도 회의적이다. 이 교수가 인용한 로버트 달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오랫동안 한 진보정치인인 주대환은 『군자의 행 의 ‘소수의 지혜를 가진 사람(바로 군자!)이 통치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배치된
진』에 대해 자신과 동료들이 대체로 맑스주의를 받아들이더라도 그 바탕에는 다’는 판단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이 민주
‘유교적 선비’로서 자의식이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주의에 적대적이었던 것과 같다.
민주화운동가들이 사실은 유교적인 행동방식을 가진 전근대인이며, 반민주적
대단하다. 감사하다. 이황직 교수가 연구를 정밀하게 해주셨다. ‘사(士)’로서의 인 ‘사’라는 사실은 아이러니이고, 그들이 민주화운동의 상징 자산에 기대어 담
자의식과 정서와 행동방식을 누구에게 배워서, 언제부터 갖게 되었을까? 나와 론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령화와 더불
나의 민주화운동 동지들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가져온 의문이다. 이 교수는 이 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만 미래의 주인인 아들, 며느리 세대를 향하
책에서 유교는 몰락했으나 유교 지식인, 즉 선비의 습속은 면면히 이어졌다고, 여 ‘청년이여 궐기하라’고, 이불 속에서 외칠 따름이다. 아니 면전에서는 그저 ‘니
동학, 기독교, 맑스주의, 심지어 아나키즘으로 개종한 후에도 독립운동가들과 지 들의 세상,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쿨하게 말하고 만다(주대환 2018).
식인들은 근원적으로 ‘선비’였다고 전해준다. 우리는 그런 분들이 쓴 글과 시를
읽으며 자랐으니, 배운 사람은 당연히 ‘사’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 또한 『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의 저자인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다. 그것이 민주화운동가로서 살았던 청년 시절의 나와 나의 동지들이었다. 교수는 유교와 민주주의가 서로 상충하는 이념이라는 통념을 거부하면서 오
하지만 민주화 이후 30년을 살면서 민주주의를 경험해보니, 현대 민주주의 체 히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유교라는 뿌리가 있었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제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군자’의 독재보다는 소 주장한다. 그는 조선시대 유림이 임금에게 올린 집단 상소와 독재에 저항한
인들이 서로 견제하게 하는 다당제, 삼권분립과 언론의 자유 등의 제도를 발전 민주화운동은 공히 선비정신을 매개로 한 광범위한 연대가 기반이 됐다고 강
시켰다. ‘군자와 소인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인간관은 <좌파논어>에서도 썼지만... 조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은 지식인의 실천적 참여의식과 이를 바람직한 인
나 자신 민주화 이후 30년 세월을 산 경험을 성찰하면서 얻은 생각이기도 하다. 간상으로 인정하는 일반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과 공유의식이 있었기에 가능
즉 나는 현대 민주주의가 기반한 (영미의 경험론)철학에 승복하였다. 했다”고 설명한다(나종석 2017).
그래서 나의 옛동지들에게 간혹 불편함을 느끼고 그들이 대중을 계몽하러 나 사농공상을 차별하면서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유교적
설 때는 반감도 느낀다. 더욱이 다른 생각이나 정치노선을 가진 사람들을 의로 관료주의와 성리학적 사대부주의에 영향을 받아 선민의식으로 무장했던 586
72 OUGHTOPIA 35:2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73
룹의 유교적 습속과 규범은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구현하는 노선인 공화주의 세계관의 습속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차이점과 그리고 그것이 주는 공화주의
와 충돌하는 전근대적인 유교와 가부장적인 가족주의 습속이 여전히 작동하 적 시사점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런 비교학적 논의가 성공을 거둘 때, 조국
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향후 극복을 위해 이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 사태에서 드러난 586 운동권그룹의 행태의 의미와 함께 그 원인진단에 따른
한 대안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극복지점을 구체적인 시사점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연구는 다른 지면을
요약해보면, 조국과 함께 현 제도정치권을 주도하는 586 운동권그룹의 리 통해서 이어갈 수밖에 없다.
더십은 세계화·탈냉전·정보화·후기산업화·탈물질주의화 등으로 표현되는 이번 연구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하나의 비교학
21세기 시대상황과 부합하지 않는 ‘위계서열의 집단주의’와 ‘이분법적 선악관’ 적 연구가설을 설정하여 관련내용을 서술하고자 시도했다는 데 실험적 의의
을 내포하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도덕규범이기에 이를 극복의 계기로 삼아야 가 있다. 즉,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의 도덕에 대한 이
한다는 점이다. 율배반적인 행태를 ‘천인분리’를 지향하는 유한세계관의 청교도 습속과 대비
본 글은 ‘조국사태’에서 드러난 조국과 586 운동권그룹의 행태를 ‘유교적 도 되는 ‘천인합일’을 지향하는 무한세계관의 유교적 습속의 관점에서 나올 수밖
덕주의’와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으로 상징되는 유교적 무한세계관의 습속으로 에 없는 산물로 서술하고 대안적 시사점을 찾고자 한 점이다.
서술하고, 이러한 현상이 민주화가 된 지 한 세대가 지나도록 경쟁과 협력으 당초 설정된 가설은 위정척사론과 소중화론을 내포하는 유교적 무한세계
로 상징되는 선거민주주의의 규범과 충돌하면서 재현되는 배경에 대한 원인 관의 습속이 586 운동권그룹의 도덕관으로 전승되었으며, 이런 유교적 습속
진단과 처방을 찾기 위한 실험적 시도로써 출발하였다. 의 내면화로 인해 민주화 30년 만에 ‘조국사태’를 계기로 재현되었으며 결국
이 논문은 민주화를 주도했던 586 운동권세력의 유교적 습속과 이율배반 국민상식의 파괴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586 운동권그룹의 낡은 습속
적인 도덕관에 대한 논쟁사항을 다룬 실험적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논쟁적이 은 민주공화국이 추구하는 공화주의 규범과 충돌하는 만큼, 이를 극복하기
고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당연 많은 한계를 가진다. 논의 전개상 많은 것 위해서는 대안적 논의가 새로 시작될 필요가 있다.
을 다룰 수밖에 없기에 추상적인 논의가 많았고, 충분한 증거와 예시자료가 후속 연구에서는 앞서 막스 베버, 토크빌, 그레고리 헨더슨, 헌팅턴, 윤원근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는 추후 다른 이견 등의 선행연구자들의 언급처럼, 어떻게 청교도 기반의 영국과 미국은 유교적
제시와 논쟁을 통해 비판되고 채워질 필요가 있다. 기반의 동양과 달리,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과 친화적인 규범을 창출할 수 있
특히, 이 연구는 당초 습속에 대한 비교학적 연구를 전제로 한 시사점 찾기 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천
였지만 지면의 제약상 진행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시 인합일’ 지향의 유교적 습속과 다른 ‘천인분리’ 지향의 청교도적 습속의 특징
사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연구가설 설정의 관점에 따른 서술 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과정은 이미 ‘습속’의 비교학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당초 연구계획에서는 영국과 미국에서 성립한 민주공화국론과 청교도 정신
간의 친화성 논의 및 청교도 정신의 특징인 ‘유한세계관’의 행동논리를 검토하
면서 이런 청교도의 유한세계관의 행동논리가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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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 고 일 2020년 08월 13일
■ 심 사 마 감 일 2020년 10월 08일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how the 586 Movement group's 'attitude
■ 수 정 일 2020년 10월 12일
■ 최종게재확정일 2020년 10월 13일 on Yuejungchugsa' revealed in 'The Cho Guk Crisis' and the double
standard of morality that is, hypocritical moralism, are a system of
Confucian custom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ook at whether it
appears two-sided and is combined and contradictory to each other, and
to find comparative implications for the diagnosis and prescription of the
phenomenon. Confucian customs were handed down to the moral view
of the 586 Movement Group, and due to the internalization of these
Confucian customs, it was recreated after 30 years of democratization
with the opportunity of the “The Cho Guk Crisis”, which eventually
turned out to be the destruction of common sense. these Confucian
customs of the 586 Movement group have become anachronistic norms
that do not conform to the representative democracy system to receive
the people's choice through election competition in that they ignore
election competition and distort public sentiment. It suggests that you
must be the object of overcoming for development.
거리 위의 프레카리아트:
배달앱 노동자의 삶과 실천감각
정수남
국문요약
무시와 천대, 그리고 이를 스스로 무마시키
기 위한 둔감함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마지
막으로 배달기사들은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자율성을 지닌 듯 보
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스스로 관리·
통제하도록 부추기면서 이 과정을 디지털 제
어장치로 통제하는 플랫폼자본주의체제의
이윤축적 방식을 드러내고자 했다. 동시에
배달노동자로서의 삶이 자신의 미래를 구체
적으로 준비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또래집
단과의 유흥이나 자신의 쾌락을 위한 소모적
인 소비활동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프레
카리아트 노동의 일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수에 따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배달앱은 주문고객-가 구(2019)는 주문형 앱 청년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노동경험을
맹점-배달대행업체-배달기사를 실시간으로 이어주는 네트워크 서비스다. 그리 현상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배달기사가 되기까지의 개인적
고 콜시스템은 대행업체 관리자가 배달기사의 출퇴근 시간, 배달건수 관리, 배 배경과 고용의 불안정성, 위험부담, 사회보장의 필요성 등을 논의한다.
달동선 제어 등을 실행할 수 있게 해준다. 배달대행업체의 등장과 함께 배달 하지만 기존 연구들의 대부분은 배달기사의 행위론적 차원에서 포착될 수
기사들의 근무시간, 고용관계, 배달방식, 임금체계, 조직체계 등이 기존 형태 있는 동기, 가치, 감정 등을 심도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
와는 완전히 다르게 조직되었다. 그리고 배달기사들이 대부분 대행업체와 계 동세계를 좀 더 다차원적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필자는 배
약을 맺는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매장에 소속된 직원에서 자유로운 프리랜서 달기사들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기본적으로 정치경제학 혹은 노동패러다임
(freeter) 혹은 독립자영자의 지위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음식배달노동자의 연 에 의존함으로써 이들을 플랫폼 경제(혹은 긱gig경제)의 불안정한 피고용자 혹
령대가 매우 낮아져서 20대 초·중반 젊은 세대의 참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은 노동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자로 규정하는 담론에 일정 정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 부분이다(김종진 2017). 배달앱 노동자는 플랫폼노동자 도 거리를 두고자 한다. 이러한 담론들이 배달노동자의 노동권을 증진시키는
의 한 유형에 속하는데, 플랫폼체계의 노동성격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 데 분명히 기여하지만 다른 한편 이들이 어쩌다 이 세계로 진입했는지(혹은 진
을 갖지만 직무영역이나 과업성격에 따라 매우 상이한 차이를 갖는다. 플랫폼 입할 수밖에 없었는지), 배달 일을 하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나아가 자신
노동은 고도의 전문지식과 창조력을 발휘해야하는 분야부터 단순반복적인 의 노동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
저숙련노동까지 다양하다. 배달앱 노동자는 이전 배달노동자들과 노동 성격 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해명해보고자 한다. 일반 사
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저숙련노동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플랫폼체계 람들이 보기에 배달노동자들이 운전을 거칠게 하고 위협적으로 한다든지 또
는 저숙련노동자를 더욱 ‘프레카리아트화’한다는 점에서 배달앱 노동자의 삶 는 도로에서 교통법규를 상시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들을 일삼는데, 그런 행위
을 더욱 궁지로 내몬다. 의 배후에 놓인 감정구조와 감정동학은 무엇인가? 이들의 삶에서 오토바이
이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배달노동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진행 배달노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배달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되고 있다. 초반에는 학술적인 연구보다는 언론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배달기 이와 같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음식배달의 중축인 배달원을 인
사의 노동환경과 사고위험 등을 고발하는 논조의 기사들이 앞서 보도되었다 식대상으로 하되 최근 들어 급증한 배달앱 오토바이 배달노동자를 중심으로
(정혁 2018). 최근 들어 수행되고 있는 연구는 대부분 배달앱 아르바이트의 고 이들의 노동 성격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존적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1 감
용 및 노동실태를 파악하거나 이들의 노동권 보장 문제를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김종진 2015; 정성진 2017; 김재민 2017). 이들 연구들에 따르면, 배달
앱과 연계된 배달노동자들이 점점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배달노동자와
1 이 글에서는 배달원, 배달기사, 배달노동자를 혼용해서 사용할 것이다. 통계청의 <제6차 한국표준
달리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플랫폼 경제의 확산에 직업분류>에 따르면 정식 명칭은 ‘배달원’이다. 그런데 이 글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배달대행업체
부합하는 노동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기존의 여러 와 계약을 맺은 배달원들은 엄밀히 말해 특정 사업장에 소속된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사
업자로 등록된 독립사업자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글의 맥락에 따라 혼용해서 사용할 것이다. 이
연구들이 이처럼 노동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면, 최근 조연희의 연 러한 애매함 자체가 이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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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상황에 대한 판단, 의미, 반성을 촉구하고 가늠하게 해주는 지렛대이다 사들의 행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참여관찰은 해당 지역에서 2018년 7월 초부
(바바렛 2009, 8; 버킷 2017, 180). 그리고 감정은 행위를 촉발시킴으로써 일련의 터 9월 초까지 진행했다. 배달건수가 많은 늦은 오후부터 저녁시간대 그리고
실천감각을 형성하게 한다. 따라서 감정을 분석한다는 것은 사회적 행위의 심 9시 이후부터 12시 이전까지 시간대를 둘로 나누어 한 번씩 바꿔가면서 집중
층구조와 행위의 효과를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박형신·정수남 2015). 이러한 문 적으로 관찰했다. 몇 년 전 본 연구를 기획할 때부터 배달기사의 거리 위에서
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본 연구는 배달노동자의 노동세계에 대한 감정사회 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왔지만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찰의 주요 항목과
학적 접근을 취한다. 나아가 배달노동자들의 행위양식과 그 행위의 가능태로 연구관점이 구체화되면서 한 달 정도 집중적인 참여관찰을 시도했다. 이들이
작동하는 감정구조와 감정동학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언뜻 보기에 젊 가장 많이 운행하는 길목을 관찰하면서 이들이 도로 위에서 행하는 운전방
은 배달노동자의 행동은 상식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위험을 식, 특히 속도내기와 신호위반, 행인들과의 접촉, 그에 대한 대응 등을 살펴보
감수하면서 혹은 ‘목숨걸고’ 운전을 한다든지 행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고 았다.
도 외면한다든지(속칭 ‘쌩깐다’) 상당한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만 그 돈의 대 또한 심층면접을 위해서 필자는 우선 목적표집법과 눈덩이표집법을 활용하
부분을 유흥비로 써버린다든지 미래를 위한 별다른 계획 없이 ‘오늘만을 위 여 대상자를 선정하고 심층면접을 실시하였다. 필자의 당초 예상과 달리 이들
해’ 산다든지 그러면서도 때론 배달기사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배달대행업
든지 등 이들의 행위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면서 일반적인 삶의 에토스와 비 체 두 곳을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 협조를 요청했지만 허락해주지 않았다. 필
교해볼 때에도 매우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세 자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인터뷰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이 되면
계 혹은 노동세계는 일반적인 규율과 규범에 따르지 않고도 잘 작동하는 독 연락을 받지 않거나 메세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직접 찾아가서
특한 장(field)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사실 이들의 삶은 나름의 합리성과 신뢰, 다시 요청을 해도 비슷한 반응이 계속 되었다. 이런 식으로 거절을 당하던 중
우애, 존중, 만족감, 행복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포착하기 위해서 우연히 필자의 지인을 통해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달원으로 일하는
는 합리성의 사회학을 넘어 감정사회학의 지평 위에서 바라볼 때 그들의 삶 20대 초반 배달기사를 소개받았다. 소개받은 기사는 마침 최근 배달대행업체
과 노동세계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를 만든 자신의 친구와 현재 관리자겸 배달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 배달기
사의 적극적인 소개로 이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배달기사들과 인터뷰를 진행
할 수 있었다. 피면접자들은 총 9명으로 8명은 20대 초반이고 나머지 한 명
2. 연구방법 은 18세로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다. 앞의 8명은 배달앱 아르바이트
를 하고 있고 고2 학생은 B치킨점에 배달직원으로 고용되어 일주일에 3일 정
본 연구를 위한 연구방법으로 필자는 참여관찰과 심층면접법을 활용했다. 그 도 일하고 있다(2018년 현재).
리고 분석방법은 해석학적 접근을 통해 연구대상자의 이야기를 준거로 그 이 주요 질문의 경우 배달기사로서 일해 온 경험을 중심으로 배달을 하게 된
면의 동기와 그에 수반되는 감정적 발흥을 이해하고자 했다. 우선 참여관찰은 계기, 배달기사의 고용조건, 배달노동의 특징, 일상생활, 배달일의 매력과 단
관악구 봉천역과 장승배기역 부근의 배달대행업체 주변을 배회하면서 배달기 점, 정체성, 사회적 무시 경험, 미래계획 등에 관한 심층면접을 진행하였다.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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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필자는 이들의 배달업무가 촘촘하게 배치된 관계로 이를 고려하여 근 부: 직업 모름 고1 때부터 아르바이트
서울
김우빈 남 18 고2 재학 모: 가출 시작
무시간 전이나 이후에 만나야 했다. 그런데 이들의 근무시간이 보통 밤 1시 (영등포구)
할머니: 건물 청소 고2 때 배달원 시작
나 2시에 끝나는 대다가 일과가 끝나면 식사와 함께 동료들끼리 간단하게라 서울 부: 도시가스 설계 중3 때 치킨집 아르바이트
이재훈 남 17 고1 재학
(동작구) 보: 전업주부 고1 때 배달원 시작
도 회포를 풀기 때문에 주로 귀가시간이 빠르면 새벽 4시, 보통 5시라고 했다.
* 피면접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함.
따라서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할 수는 없고 그나마 근무시간 전에 인터뷰를 진
행해야 했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로 오전 11시까지 출근하
는데, 퇴근시간을 고려해보면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필자가 인터
뷰를 시도한 시간대가 출근시간 전 2시간이었는데, 이마저도 피곤하다는 이
유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거나 약속을 자주 미루었다. 이들은 주중 하루
쉬는데, 이 휴일만큼은 웬만해선 시간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 <표 1>
은 피면접자들의 기본 특성을 소개한 것이다.
이름 부모직업 및 아르바이트 및
성별 나이 지역 학력
(가명) 경제수준 배달원 경력
서울 고1 자퇴 부: 식당 자영업
이주승 남 21 고1 때 배달원 시작
(동작구) 검정고시 모: 식당 자영업
중학생 시절 전단지
서울
김충현 남 22 고1 퇴학 무응답 고1 때부터 배달원 시작
(동작구)
잡화 도매업 2년
서울 대재(2년재) 고1 때 뷔페 서빙
구민영 남 22 맞벌이
(동작구) (휴학 중) 수능 끝난 후 배달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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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내온 형·동생 같은 인격적 유대를 토대로 조직화되 는 점에서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 방식을 취하지만 배달업에 몰리는 사
어 있다. 구민영의 말대로, “위에서 일할 애 없냐, 일할 애 없냐, 계속 그러면 람들은 한정되어 있다. 피면접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부
자기 친구한테 가서 일 할래? 나도 일하는데. 그러면서 소개, 소개해서 이렇 분 학업을 중단하거나 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10대 후반 청소년들부터 공
게 되는 것 같아요.”(구민영) 혹은 “……배달하던 애들이 다 옆 동네 친구들이 식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20대 청년들이 배달노동에 대거 몰려 있다.
나 형들이고 옆 동네 동생들이고 우리 동네 친구들이고 그러니까 제가 이 사 그리고 그들은 줄곧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친교집단 내에
람을 직접 몰라도 간접적으로 서로 이름은 아는 대부분 그런 사이로 이어져 서 구축한 인맥을 통해 배달노동 세계에 진입한다.
있는 거 같아요.”(정진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배달서비스가 급증하게 되면서 배달기사들은 자유 이제 다른 사람 같은 경우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 동네 사람들, 가게들 다 친
로운 신분으로 배달업에 종사하게 된다. 플랫폼 체계는 이윤축적의 새로운 장 하니까 자리 있다 하면 들어가는 거고 없으면…그냥 많아요. 그만 두고 싶어 하
을 개척하면서 배달서비스산업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서 언급되 는 애들도 많아서 내가 나갈 테니 너 이 자리에 들어와 주라 그러면 다시 들어
는 플랫폼은 ‘재화와 서비스가 교환되는 구조화된 디지털 공간으로서 이 공 가고 그런 개념인 거 같아요. 구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통해서… SNS
간에서 거래는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된다.’ 플랫폼 노동은 이러한 ‘디지털 플 같은 것으로. 그룹이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데 들어가 보면 친구들이 게시물
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서비스(용역) 또는 가상재화 생산노동으로 ① 플랫폼을 올리면 다 볼 수 있잖아요. 배달 남는 자리 있는 가게 아는 사람 연락 좀 달라
통해 고객이나 일거리(tasks)를 구하여 노동을 제공하고, ② 플랫폼을 통해서 고 해요. 그러면 연락이 와요.(Q: 아 그런 식으로 해서 정보를 얻는군요?) 네, 아니면 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③ 플랫폼에 게시된 일거리는 특정인이 아닌 다수에게 주변 친구들한테 일하는 친구들한테 가게 남는 자리 있냐고 있다 하면 들어가
열려있어야 한다(장지연 외 2020: 9-19).’ 고.(최승준)
우선 배달앱은 영업점(주)과 배달직원 간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둘의 관계는
더 이상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가 아닌 서로 일면식도 없는 타인과 타인 간 이렇듯 플랫폼 배달체계는 언제든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할 위치에 처해있는
의 형식적 관계이다. 오랫동안 일했던 치킨가게 사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 젊은 청(소)년들을 ‘실시간으로’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재훈에 따르면, 학
서 유사 가족처럼 지냈던 박정진은 배달앱을 통해 일하게 되면서 이제 더 이 교를 자퇴한 애들이 “하는 일에는 괜찮은 거죠. 왜냐하면 걔네들은 할 것도
상 점주들과 친밀하게 지낼 가능성도 없고, 고용주로부터 최소한의 법적 보 없는 데 배달 일 하면 놀 때 리스 차가 있고, 오토바이 타고 놀고 하니까 그런
호와 인격적 보호를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로써 둘 간의 관계는 온전히 점에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음 정진수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들의 특징
이해관계로만 엮인 한층 더 사물화된 관계로 전환된다. 한편 고용주는 배달 을 짐작할 수 있다.
직원을 직접 고용하게 될 경우 소요될 경제적 비용과 정서적 피로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런 관계가 고용주들에게 전적으로 이득을 가 (배달하는 애들은)공부 빼고 어느 정도는 다 잘하는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공
져다준다고 단정지울 수는 없다. 부를 빼고 게임이라든지 당구라든지 볼링이라든지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공부
다음으로 배달앱은 불특정 다수의 배달기사를 실시간으로 고용할 수 있다 만 빼고 잘하는 애들이 많아요. 쓰잘데기 없는 것을 잘 하구요. 대부분 배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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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방황 청소년들이 많아서… 대부분 대학교를 안 다니고 피면접자들이 오토바이에 대한 이른 관심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중졸이거나 고졸. 거기까지만… 그리고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또래집단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이들은 대체로 학교생활을 (빠르
특징이라 뽑을 순 없고 특징은 중졸이나 고졸이다. 공부 빼고 다 잘한다는 것. 면 중학교 때부터)중단하거나 학업을 포기하고, 부모의 규제와 간섭으로부터 많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리고 반 정도는 집이 잘 못 살고. 형편이 어렵고.(정진수) 이 벗어나 있으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시간
을 보내고, 술과 담배도 서슴없이 즐기는 편이다. 김충현은 “누구한테 붙잡히
기도 싫고 누구에게 도움 청하는 것도 싫을 뿐더러 도움 청하게 되면 그 사람
2. 오토바이, ‘일탈’, 배달노동 이 부탁하는 거 하나 들어 줘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학교를 잘나가라, 저는
그런 게 아예 싫어서 저 혼자 독립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이들
피면접자들은 오토바이를 끌게 된 계기에 대해 ‘친구들 또는 또래집단 사이 에게 오토바이는 학생의 규범을 따르는 다른 또래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상
에서 유행이기도 하고 오토바이가 자신의 생활을 좀 더 자유롭게 해주기 때 징적 도구이자 활동의 시공간적 제약을 일정 수준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모
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정진수는 “그냥 그때 당시에는 (면허증-필자)따는 게 유 빌리티의 구현 수단이다. 이에 대해 박정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이었어 가지고,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유행이어서,” 김충현은 “다 친구들
때문이죠. 형들 때문이거나. 접하다 호기심이 발동 하니까 제가 운전도 해보 그런 사람들은 재미로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는 그랬었고, 그 당시에
고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죠” 등의 이유로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다고 는 그게 재밌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때는. 딴 데 놀러 다니는 것 좋아하고. 먼
말한다. 이들이 오토바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법적으로 데 갈 수 있잖아요. 내 의지대로 어디 가고 싶다 하면 돌아다니고 동네 이리저리
125cc는 만 16세부터 면허취득이 허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니고…오토바이 타면 그때 나이에는 좀 되는구나 생각도 들고. 그래서 더 그
이들 사이에서 오토바이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기능적 유용성을 넘어 자신 런 거 같아요. 과시하려고.(박정진)
들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하나의 집합적 상징물이기도 했다. 오토바이는 이들
에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상징적 차원에서 또래집단 내에서 좀 더 피면접자들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10대 후반부터
멋있게 보이려는 미학적 우월성과 거친 행동을 표출하려는 저항성을 확보한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용돈이나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서 살아
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차원에서 돈을 쉽게 벌 수 있게 해주는 물 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하나는 학
적 수단이라는 점이다.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공간 이 업포기와 학교생활 부적응 그리고 많은 유흥시간을 두고 갈등을 일으킨 부모
동의 수월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매력을 가져다준다. 이재훈은 오토바이 에 대한 반발심이다. 다른 하나는 부모에 대한 미안함인데, 통상적인 규범적
의 매력을 “일단 더운 날에 타면 시원하고요. 그리고 멀리 이동할 때 편하게 삶을 벗어난 데 대한 자기성찰적인 속죄의식이 일면 작동한다. 한편 부모의
이동할 수 있으까 이동 수단이 편하”고 제일 즐거운 시간은 “배달 일을 하고 규제와 간섭으로부터 자벌적으로 벗어난 이상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염
나서 일이 끝나는 시간에 애들이랑 같이 오토바이 타고 놀러 다니는”(이재훈) 치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자신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감당하는 김충현의 경우
때라고 한다. 는 “전 안 해본 치킨집이 없어요. 한 달하고 또 다른 데 가서 한 달하고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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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에 해당하는 것으로 산재사망 원인 1위이다(프레시안 2019.10.01.). 속도를 고, 안 빼면 욕먹고 안 빼면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도 해야 하고. 그러니 어쩔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배달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무감 때문이 수 없이 신호등도 다 위반하고 타게 되고 그렇게 타다 보니 안 좋은 인식이 생
다. 그리고 배달건수와 직결되어 있는 소득 때문이기도 하다. 기는 거고.”(김충현)
피면접자들에 따르면, 간혹 거칠게 위협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곡예 운전하
가게가 많이 바쁘다든가 좀 밀린다든가 하면 천천히 가고 싶어도 맘이 급해지 듯이 도로를 내달리는 배달기사들이 있는데, 그런 식의 운전 스타일은 일부
는 것도 아닌데 빨리 다 빼야겠다, 배달을 빨리 갔다 줘야겠다 해서 할 수 없이 미숙한 미성년자 배달원이나 운전습관이 험악하거나 과시하려는 성향이 강
그때 빨리 가야 해요. 왜냐하면 배달 가게랑 손님이랑 몇 분 안에 가겠다고 약 한 배달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재훈은 “일단 고등학생들은 속
속을 했잖아요. 그 시간 안에 갖다 줘야 하는데 시간이 만약에 5분밖에, 3분밖 도 제한이 없어요. 다 처음부터 빠르게 다녀요.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다니
에 안 남았네, 최대한 1분이라도 맞춰서 가줘야 하니까.(최승준) 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칼치기’라고 차 사이로 다니는 게 있는데 그것을 하다
보면은 백미러 부수고 인도로 가다 할머니 치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시간압박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배달기사들은 대부분 속력을 끌어 올 구민영은 “저는 솔직히 말해서 개인 스타일인 거 같아요. 보여 주기식도 있는
려 거칠게 운행하고 교통위반은 다반사다. 비나 눈이 오는 날처럼 악조건 속 거 같아요. 특히 어린 애들이 오토바이도 윙윙거리면서 타면서 길거리 사람들
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 내에 배달을 마쳐야 한다. “비 오는 날, 눈 오 한테. 약간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일하는 환경보다는 개인 스타일
는 날 미끄럽고… 미끄러운데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 정말 바빠요. 그런데 이 더 큰 거 같아요. 왜냐하면 지리만 알고 있으면 충분히 안 늦게 배달 가능
빨리 오라고 하는데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미끄러져도 그쪽에서 책임 하거든요. 이럴 경우 “운전습관이 안 좋게 든 얘들이 많이 다치는 거 같아요.
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칠까 안전하게 가는데 뭐라 뭐 라하고.”(박정진) 그냥 곡예운전하고 빠빠빠방 거리면서 사거리를 그냥 지나가 버리니까 넘어
정진수의 말대로 “솔직히 배달 대행하는 사람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곱게 타 지고 팔 부러지고 손가락 잘리고 죽고….”(정진수)
지 않”는다. “개인능력제이기 때문에 신호도 하나도 안 지키고 탈 수밖에 없 게다가 그런 위험스러운 곡예운전이나 잦은 신호위반에도 불구하고 경찰단
는” 것이고 스피드를 내면서 위험하게 다니는 것은 “건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 속이 허술하다는 점 또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정진수에
이고 그 다음에 음식이 늦어져서 캔슬이 나거나 아니면 음식이 불어서 못 먹 따르면, 허술한 경찰단속은 “목숨 걸고 운전하는” 배달기사들의 속사정을 알
게 되거나 이렇게 되면은 저희가 물어야” 되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못 갖다 고 있는 경찰들의 ‘의도적인 외면’도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피면접자들
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배달이 늦어졌다고 안 먹는다고 보내버리면 제 은 사고가 많은 지역이나 단속이 강한 장소에서는 경찰의 단속이 보다 엄격
가 음식을 사서 폐기를 하든가 먹든가 해야”한다. 이처럼 시간초과는 배달기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체로 그냥 넘어가준다고 생각한다.
사에게 여러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가 여기 치
킨집, 저기 치킨집 다 일해 보면 솔직히 알바생 많이 안 쓰려고 해요. 하루 종 일반 차선에서는 곡예 운전을 해도 경찰에게 단속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근
일 쉬는 타임 없이 돌리면 소화할 수 있는 거니까. 소수 인원으로 그 많은 배 데 사거리 지나면 단속대상이긴 한데 그냥 경찰도 무시하고 가버리는 것 같아
달을 빼려고 하니까 그 소수 인원의 일하는 사람은 다급해요. 빨리 빼야 하 요. 그거 잡히면 4만원, 8만원 내야하잖아요. 얘네들은 목숨 걸고 배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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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잘못되긴 한데…뙤약볕에 나가서 목숨 걸고 13개씩 배달해서 3만 9천원 벌 한편 일부 피면접자들은 배달노동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인 인식을 내면
고 거기서 4만원 뜯기면 기분이 좀 나쁘잖아요. 그냥 가버리는 거 같아요.(정진수) 화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이..많이 천대를 하다 보니까 어른 세대
는 그냥 배달을 하면 전부다 짱깨 기사로 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나의 직업
개인적인 스타일에 따른 의도적인 과속이든 멋 부리기 위한 곡예운전이든 으로 인식되지 않”았다(정진수). 김충현은 처음 배달일을 “한 달 하다가 저 4시
거친 운전이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되더라도 배달기사의 속도내기는 근본적으 에 출근하는데 얘들 4시에 학교 끝나니까 배달일 할 때는 편하고 좋았었는데
로 배달건수와 소득과 직접 관련된 시간압박에서 기인한다. “배달 일 하면서 얘들 만날 때마다 창피해서 한 달하고 그만뒀어요”라고 말하면서 또래 학생
힘든 것은 시간준수, 시간 안에 정확하게 갖다 주는 것”이다(이재훈). 박정진은 들과의 마주침을 부담스러워했다. 배달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느
“멋으로 하는 애들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20%~30%정도 되고요. 나머지 꼈던 모멸감은 그들을 더욱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피면접자들은 일반인들
70%정도는 픽업시간과 마감시간을 완료해야 하는…머릿속에서 빨리 가야겠 이 배달일을 무시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 공부하는 친구
다, 이런 생각이 들고 이것을 주고 내가 또 어디를 가야겠다, 시간 맞춰 못 갈 들이 아니라 노는 친구들이 많이 운전대를 잡죠. 그러다 보니 몸에 그림이 있
것 같은데 더 빨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고 오토바이 험악하게 타니까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아요.”(김충현) 다음 인용
이들의 과속과 속도전은 고객의 빠른 배달서비스 요구와 배달원의 소득구조 문에서도 배달노동 중에 겪은 사회적 무시의 경험이 잘 드러난다.
가 결합된 산물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문고객-배달원-배달대행
업체-배달앱-가맹업체’ 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배달 장’(delivery field)의 효 그냥 배달하면 위험하고 돈도 많이 못 벌고.. 배달이라 함은 되게 위험하고 사
과이라고 볼 수 있다. 람들의 인식이 목숨 걸고 일하는 거고 그에 비해서 돈도 별로 못 벌고. 그리고
되게 천한 직업으로 보죠.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다.(Q: 아 그런 식의 인식....)
어렸을 때 다 양아치고, 이런 사람들이나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수입을 떠나서
2. 사회적 천대와 부끄러움 배달하는 사람들은 만약에 좀 와전된 얘기일 수 있는데 여자친구 사귀려고 해
도 배달하는 사람 안 만나려고 해요. 그런 인식 때문에.
피면접자들 중 몇 명은 배달노동에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로 친인척이나 일
반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 혹은 무시하는 태도를 꼽았다. 이에 대해 정진수는 피면접자들이 보기에 일반인들에게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 자체가
“저는 배달이 잘못 된 거도 아니고 누군가의 밥벌이 수단이고 하나의 직업인 공부 못해서 놀다가 저렇게 살다가 이제 할 것도 없고 받아 주는 데도 없으니
데 사람들이 가볍게 보고 어른들이 완전 천대하는 직업이다 보니까…어머니 까 저런 일을 하네 이렇게 박혀”있다고 생각한다(구민영). 하지만 구민영은 자
아버지세대는 많이 천대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기분이 많이 안 좋죠.”라고 말 신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그와 같은 부정적인 시선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했다. 한 번은 고급 수입차의 신호무시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 없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반반인 거 같아요. 그 인식에 맞게 살아 온 사
는데, 오히려 그 차주가 “배달하는 거지새끼가 넌 이차가 얼만 줄 아냐, 너 같 람도 있는 것 같고 자기가 진짜 배달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해서 하시는
은 새끼는 평생 배달해도 못산다.”라며 화를 내고 가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분도 있고 생업을 위해서 하시는 분도 있고… 그런 거 같아요. 대개는 인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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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래서 저는 중앙대학교나 숭실대학교 쪽 배달을 가는 것 정말 싫어 다른 한편 배달기사의 사회적 무시 경험은 주문고객와의 마주침 속에서 더
해요.” 욱 빈번하게 일어난다(최종렬 2011: 119). 이는 거리에서 이동 중에 겪을 수 있는
구민영은 현재 자신 또한 대학생 신분이라는 점에서 대학이나 대학가 주변 무시 경험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는 고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무시
지역에 배달가는 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극도로 꺼려한다. 그는 자신 이다. 운행 중에 불특정 다수와의 마주침 속에서 발생하는 일반 사람들의 무
의 배달하는 모습을 대학생들이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배달하고 시와 멸시는 위협받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경계나 견제를 내재하고 있는 상
있네.”라며 비웃거나 멸시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곧 호의례적 형태의 무시, 마치 상호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한 무시감의 교
마음을 다잡으면서 자신을 위로한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가끔씩 자기 위로 환이라면, 주문고객과의 대면 과정에서 겪는 무시 경험은 일방적인 모욕감으
인데 나는 너희들보다 잘될 거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그래요.” 로 다가온다. 구민영에 따르면, “손님 대할 때가 제일 힘들죠. 기분 나쁘게 배
달 받는 손님도 계시고 좋으신 분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좀 상하죠.
저도 사람이니까 나름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어른 어쩔 수 없이.(Q: 어떤 케이스가 있을까요?) 그냥 저는 손님 만나면 인사부터 해
들이 하는 이야기. 너 언제까지 배달할거냐 그러면 자괴감이 좀 들죠. 나도 하고 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음식을 이렇게 가져가면 그냥 문을 닫아 버린다든지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인데 그런 소리 들으면 좀 창피하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조금 늦을 수 있잖아요. 길은 미끄럽고 왜 늦냐 보자
죠. 그런데 지금은 당당하게 말해요. 저는 잠시 쉬는 동안 배달이라도 하고 있습 마자 반말로 쏘아 붙이는 손님도 있고.”
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약간의 창피함은 없지 않아 있어요 솔직히. 왜 피면접자들은 주문고객으로부터 이 같은 무시를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대
냐하면 그런 시선으로 봐주니까 저야 부끄럽죠. 그렇게 말을 하는 게, 그런 일 항하거나 상대방 면전에서 언짢은 표정을 내비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 절
하는 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좀 버려준다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에서 상세히 논의하겠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인내’와 ‘속내 감추는’ 행
요?(김충현) 위는 배달노동자로서 경험을 쌓으면서 터득한 감정조절능력 혹은 감정통제라
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이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무시를 견뎌내려는 감
배달노동자가 거리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다른 운전자들과의 마주 정적 수행이다.
침 속에서 겪는 무시는 배달노동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고정관념에서 비롯 배달노동자를 향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과 무시는 배달노동 자체가 아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거친 운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위험 배달하는 ‘사람’에 대한 멸시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애과정에 대한 편견으로부
에 대한 불안 표출이기도 하다. 보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배달원들의 오토바 터 비롯된 무지(無知)적 무시이다. 대부분의 중·고등학생이 규범적으로 따르는
이 운전이 때론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 사고를 종종 발생시키기 때문에 늘 경 학업수행이나 행동과는 일찍 거리를 둔,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KBS 2020년 5월 31일 보도). 일반인들이 오토바이 배달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무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김충현
원에 대해 갖는 이러한 경계심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감정으로 표 의 말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출되기도 한다. “배달하는 놈이 싸가지 없이 군다는 등 저희 욕할 때 배달하
는 놈이 왜 이리 거지 같냐며..”(정진수) 보고 배운 게 배달인 거고 그런 사람이 배달하는 거 보니까 저거면 괜찮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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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겠다 싶으니까 보이는 것만 찾아 가는 거예요. 주변 사람이 그러다 보니까 쉽 행인들이나 자동차 운전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질 경우 가급적 먼저 ‘미안합니
게 접할 수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이 집단으로 배달 문화가 발달해서 좀 안 좋게 다’라고 사과를 하고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박정진의 경우 “실랑이
보이고. 안타까운데 조금이라도 직업 정신을 가지고 일한다, 그러면 지금 시선이 에 관해서 저는 무조건 제가 먼저 사과하는 편이에요. 제가 어떻게 오토바이
아니라 조금은 달라 보이게. 약간의 고마움. 택배 기사 분들도 그렇고 음식 배 타고 다니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시간조차 아깝기 때문에 그 사람에
달하는 분들도 그렇고 퀵서비스 아저씨도 그렇고 진짜 고마워해야 해요. 이런 게 최대한 공손하게 빠르게 사과해요.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허리 숙이면 그
서비스가 어디 있어요, 솔직히. 그냥 보이는 게 그래서 그런 거지 편견일 뿐이에 사람들 입장에서도 얘가 그래도 사과는 하는구나 하고 별 말 안하고 ‘네 알겠
요. 세상에 안 착한 사람 없어요. 다 착해요. 그만한 고충이 있으니까 그만한 태 습니다. 조심히 타세요.’ 이런 말을 해주세요. 저는 ‘알겠습니다.’ 하고 실랑이
도가 나오는 거지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아~ 저런 태도가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미안합니다’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행위가 타
인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 배달음식을 제시간에 전달해야한다는 기능적 책무를
3. 하이퍼 둔감함 다해야한다는 의미도 있다. 다음은 배달원을 관리하는 정진수의 말이다.
오토바이 배달기사들은 차도는 물론이고 인도에서도 거칠게 운전할 때가 있 조심히 타는 것도 조심히 타는 거지만 저 같은 경우는 별거 아니면 먼저 사
다. 차도와 인도를 쉽게 넘나들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의 좁은 공 과를 하라고 해요. 별거 아닌데 가맹점이 만약에 여기면 횡단보도가 이렇게 있
간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운전하거나 때론 곡예운전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는데 횡단보도를 무조건 들어가야 되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인도를 타야 하는
앞서 피면접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배달기사의 운전스타일은 개인적 성향이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여기 갓길은 좁아서 오토바이를 세울 수 없다. 이렇게 들
나 기질에 따라 거칠고 위협적인 면도 있지만 실제로 상당수는 조심스럽게 어왔는데 행인이 인도도 좁아 죽겠는데 오토바이가 왜 들어오냐 하면은 그냥
탄다고 한다. 위협적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배달기사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들 ‘죄송합니다’, 가맹점이 여기래서요 라고 하면 그냥 가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실랑
이 많고 아직 큰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사고 이를 벌이면 좀 피곤해져요. 저 같은 경우는 먼저 사과를 해라 이러죠.
가 나면 절대 그렇게(위험하게-필자) 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고 해도 요청받은 배달건수를 제때 처리하려면 불 이들의 ‘미안함 드러내기’는 속도전을 벌이면서 여러 사람과 마주쳐야하는
가피하에 속도를 내거나 거리 위의 틈새를 잘 활용해서 운전해야 한다. 일명 배달노동의 특성 상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경전을 회피하기 위한 생존적
‘칼치기’라고도 한다. 그럴수록 행인들이나 도로변 차들과의 접촉 가능성이 혹은 관행적 둔감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무심한 척하는 데 능숙하고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유의 노동방식과 조건 속에서 이들의 탈규범적인 운 되도록 지나치는 타인들을 그렇게 대하려고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타인들과
전은 거리 위의 사람들에게 위협적이고 거슬릴 수밖에 없다. 배달기사들 또한 마주쳐야하는 피로감을 누그러뜨릴 방법은 둔감해지는 것이다. 짐멜이 근대
자신의 이러한 행태와 주변인의 시선을 잘 인지하고 있다. 자신의 운전행위가 도시 생활자들의 특유의 감정을 둔감함으로 포착했듯이(짐멜 2006: 41) 이 개념
행인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혹 을 차용해서 다르게 표현하자면, 오토바이 배달원은 ‘하이퍼 둔감함’(hyper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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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을 지녀야한다. 이때 하이퍼 둔감함은 고도의 감정노동을 요청하는 응들. 그럼 그런 반응에 정진씨는 어떻게 대응을 합니까? 그냥 참는다?) 일단 손님인데 내
실천감각으로서 여러 갈등적 상황과 시간초과를 방지하려는 합리적 대응이기 가 여기서 잘못하면 우리 가게 이미지 안 좋아지고 난 고용된 입장이기 때문에
도 하다. 둔감해지거나 무심해지지 않으면 다급하고 복잡한 온갖 상황을 합 …….(박정진)
리적으로 통제할 다른 방법이 마땅히 없다. 이들은 신호 위반에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많은 배달건수를 제시간에 완수하려면 신호체계에 무감 전 신경 안 써요. 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저의 생계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각해져야 한다. 일할 만큼 일을 해요. 그런데 어느 일을 해도 스트레스 받아요. 어차피 한번 보
또한 이들의 둔감함은 주문고객과 마주칠 때 가장 두드러진다. 배달기사를 고 안 볼 사람인데 거기에 대응할 필요도 없고 갑질 하면 갑질 하나 보다. 죄송
가장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고객의 무응답이나 늦장피우 합니다, 하고 끝나면 되니까 거기다 대응하다 보면 가맹점에게도 안 좋은 인식이
는 행위이다. 피면접자들은 종종 겪는 일이라고 하는데, 도착신호에 제 때 반 생기니까 제가 눈 한번 감고 말죠.(김충현)
응하지 않는 고객들 때문에 오랫동안 밖에서 기다려야하는 상황은 초조해지
거나 빨리 다른 판단을 하도록 압박한다. 후속 배달 건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 이처럼 고객을 응대할 때 발생하는 화와 짜증은 동료집단과 소통하면서 곧
는 경우 배달기사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오랜 기다림은 배달기사들을 다 바로 상황 공유를 통해 위안을 얻거나 퇴근 후 고객의 행위를 희화화하거나
급하게 만든다. 더구나 비슷한 동선을 따라 30분 내에 2-3곳을 배달해야 하 욕설을 퍼부으면서 해소해버린다. 이러한 순간만큼은 배달원들은 하나의 직
는 일이 발생했을 때 고객이 제 때 배달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낭패를 볼 수 업집단에 속해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의 유대감은 특별할 수
있다. 특히 음식배달은 시간엄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 때 도착하지 않을 경 있는데, 방금 언급했듯이 고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공유할
우 고객의 불평과 반환요구는 전적으로 배달기사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때도 발생하지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이
피면접자들은 주문고객이 깔보는 듯한 시선과 말투를 가끔씩 대면할 때가 다. 이는 생명의 위험을 공유하는 생존공동체이자 실존적인 불안을 공유하는
있지만 대체로 ‘속내를 감추거나 상황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고 한 감정공동체의 구성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다. 가령 정진수의 경우는 “아무래도 서비스업이다 보니까 저는 그냥 무시하 주변에 있는 동료 배달원이 당장 사고 지점으로 가거나 관리자가 곧바로 이동
고 끝까지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해요. ……반말로 “왜 이렇게 늦게 왔 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중재한다고 한다. 조사기간 동안 목격된 행인과의 접촉
어” 이런 사람도 있는데 아예 대꾸를 안 하고 결제를 해버리고 “감사합니다. 사고와 위협적인 운행으로 행인과 마찰을 빚은 사건이 몇 건 있었는데, 실랑
맛있게 드세요”하고 나와 버려요.“라고 말하고, 유사하게 박정진과 김충현의 이가 발생하면 주변의 동료 배달원들이 다가와서 동료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경우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변해주었다. 피면접자 대부분이 예전부터 친구관계로 엮여있는 경우가 많
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대감이 곧잘 형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달리 다
저는 직접적으로 예민한 성격이 아니어서 모르겠는데 집에 배달 왔을 때 표 른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해 봤던 이주승이나 박정진의 말에 따르면, 배달원끼
정을 안 좋게 하고 나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있고 어디 배달을 갔 리 서로 잘 모를 경우 배달일 자체가 매우 외롭고 고객의 무시나 불만을 혼자
을 때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면 그럴 때마다 무시 받는 느낌 받죠.(Q: 그런 반 서 삭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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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배달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이기도 하고 근무 시간이 길어 맹점이 계약을 맺고 거기 배달을 해주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저희 배달
서 일이 쌓이면 피로도 강해요. 오토바이를 오래 타다 보면 솔직히 지겹기도 하 업체랑 가맹점이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친절하게 해야 저희를
고 배달은 혼자하기 때문에 은근히 외로워요. 가는 동안 생각도 많이 나고, 이상 써주고 하니 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 생각도 많이 하고 생각할 시간이 되게 많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장점인데 그 그렇다고 이들이 표현하는 친절함이 비행기 승무원이나 백화점 판매원이
렇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 많이 해요. 그리고 고객을 응대할 때 행하는 수준의 고도의 감정노동에 비할 바는 아니다. 주문
스트레스도 쌓인 게 모여서 그만두고 싶어지는, 연예인으로 말하면 권태기 같은 고객과의 마주침이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배달원의 경우 상대
것이 있어요.(이주승) 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인상관리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들의 인상
관리는 얼굴 표정, 언어표현, 옷차림과 관련되어 있기보다는 신체의 특정 부위
그렇다고 고객의 무시하는 행태에 대해 배달원이 불만과 화를 노골적으로 를 가리는 데 집중된다. 바로 ‘문신 가리기’이다.
표출한다거나 무례한 제스쳐를 보인다면 그 또한 간단치 않은 문제를 일으킬 피면접자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신체 곳곳에 문신을 했다. 이들에게 문신
수 있다. 고객이 가맹점주인에게 연락해서 배달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면 가 은 자아정체성의 표현이자 또래들과의 유대감을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지만
맹점주는 대행업체와의 계약을 곧장 파기할 수 있다. 통상 가맹점과 대행업체 (김가현 2019: 85-88) 대부분 ‘친구들이 하고 오면 멋있어 보여서 해보고 싶고 뭔
간의 계약은 한 달을 기준으로 맺어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배달원은 대행업 가 그때 나이에는 가오라는 것이 살기 때문에 호기심에 하게 된다’는 것이다.
체 관리자로부터 곧바로 계약해지 당할 수 있다. 문신한 배달원들은 자신의 신체에 특정한 그림이 새겨진다는 것에 별다른 거
리낌이 없다고 했다. 후회되는 부분도 있는데, 그 후회는 문신이 ‘너무 예쁘지
배달원이 친절하다면 아무래도 그 가게는 배달원이, 사장님이 우리에게 맡겨 않아서’이지 문신을 한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필자가 목격한 이들의 문신
주셨는데 배달원이 친절하고 배달이 빨라 담에 또 시켜먹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은 순식간에 눈에 띌 정도로 자극적인 무늬와 색감으로 그려져 있었고 신체
사장님이 리뷰관리를 다해요. 하시는데 그러면 되게 좋아하시죠. 가맹과 저희를 부위 여러 곳에 새겨져 있었다. 문신이 가슴이나 등 부위에 새겨져있다면 크
더욱 끈끈하게 만들 수 있어서…기사들 수익도 만약에 리뷰에 기사들 불친절하 게 상관없을 수 있지만 어깨부터 손목까지,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훤히 드러나
고 음식도 쏟아서 왔고 기사들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눈에 힘주고 이런 것도 있 는 부위에 새겨진 경우가 있는데, 관리자는 가급적이면 고객을 응대할 때는
거든요. 그렇게 달리면 가맹을 끊자고 하겠죠. 더 이상 못할 것 같다.(정진수) 가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이들은 한 여름에도 긴 팔을 입거나 가리개를
이용해서 문신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고객들 중에 문신을 보고
이런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배달원은 고객을 상대로 최소한 놀라거나 겁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문신 가리기는 손님을 안심시키
의 감정노동, 즉 친절함과 인내심을 발휘하여 상황을 빨라 모면하려고 한다. 기 위한 감추기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진상 고객을 만날 때면 구민영은 대체로 “저는 똑같이 해요 어쩔 수 없이. 그 문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인식해서 배달원 자신들이 그런 시
냥 맛있게 드세요 하고. 기분은 나쁘지만 티 안내죠. 그래서 더 큰 일을 만들 선을 피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이 일탈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것
기 싫어서… 제가 참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편하니까. ……배달대행업체랑 가 을 은근히 꺼려한다(정혜인, 2015: 8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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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는 배달기사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가 콜신호를 보낸다. 그 달 건수를 올렸어요. 그러다가 며칠 있다 나가봐요 그 배달 건수 남은 인원들
래서 “대행업체는 사무실이 있긴 하지만 얘네가 여러 개가 있으니까 본부라 이 다 소화해야 하는 거예요. (Q: 어린애들의 특징이 그렇게 우르르 왔다 우르르 빠져요?)
는 게 여기서 울리면 여기 가야하고 여기서 울리면 여기 가야하고 배달하는 네. 친구 없는 가게에서 일하기 싫어하잖아요. (Q: 아 그게 그렇게 묶이는 겁니까?) 그
중에도 울리면 사무실 들르지도 못하고 계속 돌고 있어야”한다.(정진수) 래서 어린애들 안 써요. 그리고 업체들도 어린애들 쓰면 싫어하는 게 보여요 좀
싸가지 없고 예의 없고 오토바이 험악하게 타고 오토바이 몰고 가면서 목적지
이게 관리자가 봐요. 이쪽으로 사람을 한 명 보내야 하는데 자기가 봤을 때 는 안가고 중간에 친구 만나서 노닥거리다 배달 늦고. 그것이 어린애들 특징이에
얘가 가면 효율적이겠다, 그러면 얘한테 넣어주는 거예요.(Q: 그럼 내가 하겠다 그러 요. 솔직히 남의 물건을 실어다가 남에게 전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
면 동의를 누르고 가는 거고, 못 가겠다 그러면 거절?) 거절 안돼요. 관리자가 넣어주는 요 주소 찾아서.(김충현)
것은.(박정진)
이러한 관리와 통제에도 불구하고 피면접자들은 대부분 배달대행이 자신
배달대행업체는 사무실로 안가는 경우도 많아요.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콜을 들에게 훨씬 더 매력적이고 장점이 많다고 느낀다. 매장에 소속된 배달원이
기다리거나. 그런데 가맹점 일할 때 가맹점 들어가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 누릴 수 없는 ‘막간의 자유’나 이동의 편이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기 때
를 할 수 있잖아요. 너 이랬더라 주의해라. 좀 빨리 다녀라. 헬멧 써라 그러는데 문이다. 박정진은 “치킨 집은 계속 그곳에만 있어야 해요. 바쁘든 한가하든 가
대행업체는 얼굴을 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핸드폰으로 많이 통제하는 거 같아 만히 있어야 하고. 대행은 한가하면 시간 좀 내서 급한 볼 일을 본다든지 이
요. 콜 안 잡으면 바로 잡으라고 떠요. 카톡, 단톡방을 항상 해서 뭐 했네, 뭐가 런 것들을 잠깐 잠깐 시간 내서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업장에
문제네 핸드폰으로 많이 통제하죠.(구민영) 서 일하게 될 경우 배달원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할지라도 매장 내의 여타 일
을 도와줘야 하는 ‘그림자 노동’을 해야한다. 최승준은 “배달을 하면 패스트푸
그렇다고 배달기사에 대한 관리나 통제가 늘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 드랑 주유소를 하면 신경 쓸게 많잖아요, 안에서 일하니까. 배달은 포장해서
은 아니다. 특히 어린 10대들의 경우 유독 통제하기 힘들다고 한다. 배달업은 가지고 나가면 배달만 주고 오면 되는 거고 나은 점은 좀 편하죠, 아무래도
쉽게 계약이 파기될 수 있는 만큼 또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어서 일자리에 배달 일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사장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이 이들에게
대한 충성심이나 절실함을 갖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직에 대한 충성이 불편한 일 중 하나이다.
나 헌신적인 태도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이들에겐 일찍이 박탈되어 있다.
콜이 없으니까 만약에 가맹점에서 일하면 어찌됐던 영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
다른 대행 업체에서 일해보지는 않았지만 들어보면 까라면 까야죠. 가라면 면 12시부터 12시까지 제가 출근하기로 했으면 12시에 무조건 나와서 12시까지
가요. 강제로 배당을 넣을 수 있어요. 그런 데는 미성년자도 많고 어린애들이 많 무조건 일해야 해요. 그 안에서 담배를 태운다든지 말고는 무조건 그 안에 있어
으니까. 저희 업체는 어린애 절대 안 쓰거든요. 왜냐하면 통제하기는 쉬어도 한 야 하잖아요. 잠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데 배달대행의 경우 개개
번 나가면 우르르 나가잖아요. 그런 어린애들이 있고 가맹점 더 많이 따와서 배 인의 사업이기 때문에 자기가 콜을 한두 개 포기를 하고 친구들을 잠깐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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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든지 집에서 택배를 받아야 한다면 저희한테 말하고 받으러 가라. 되게 자 네 시에 출근하니까 그전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바쁜 시간에 밥 먹는다고
유도가 높아요. 일할 때 커피를 마시고 누워 있을 수도 있고. 왜냐하면 업장에 하면은 그건 안 된다고 하는데 만약에 저녁을 먹고 싶어 열 시나 열한 시 한가
서 일하면 업주한테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어서 아무리 배달만 하는 직원이 한 시간에 사무실에 뭘 싸와서 먹거나 저희 단톡방에 이거 좀 먹을게요 하면 오
라 한들 대부분 장사 준비도 같이 하거든요. 박스를 접는다든지 어느 곳은 양파 전 조 애들이 나가서 도와주고.
를 깐다든지 어느 곳은 피클이나 치킨소스를 포장을 해서 준비를 한다든지 하
는데 이 업종 같은 경우는 잡일도 없고 자유도가 높아서 친구를 잠깐 만나고 와 배달기사들에게 자율성은 배달앱의 콜신호에 전적으로 복속되어 있다. 그
도 되고 커피를 한잔해도 되고 친구랑.(정진수) 럼에도 이들이 배달대행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위험성을 감안하면서
도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기간만 일할 것이라는 당장
이렇듯 매장에 고용된 배달기사로 일할 때 겪어야 하는 인간관계, 불편함, 의 전망 때문이다.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배달기사들은 노동자로서의
눈치보기, 근무시간 제약 등을 배달대행에서는 겪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 정체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자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
서 이들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을 자율성에서 꼽는다. 대부분은 배달일을 그저 잠시 “돈을 벌려고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이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길고 계절과 날씨 상황에 따라 위험하고 힘든 경우도 은 이 모호한 경계 그 자체를 이용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이 모호한 경계는
많지만 “……배달 대행이라는 게 돈을 더 벌려고 하면 더 열심히 해서 더 많 합법과 불법 사이를, 규범과 일탈 사이를 모호하게 가로지르면서 이들의 행태
이 탈 수 있고 쉬고 싶으면 천천히 안 타면서 쉴 수가 있으니까”(박정진) 자신 를 정당화시켜준다. 그리고 이 모호한 경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
들이 해왔던 그 어떤 아르바이트보다도 자율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린다.
자율성은 일과 휴식 간의 경계가 모호해짐으로써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엄밀 배달대행의 자율성은 배달료를 배달기사가 원하는 때에 출금할 수 있다는
한 의미에서의 휴식이 될 수 없다. 데에서도 드러난다. 배달대행의 경우 ‘자기가 일한 돈을 바로 출금요청 버튼
나아가 이러한 자율성은 자기주도 및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아닌 디지털 을 어플로 누르면 다음날 두 시에 돈이 바로 들어’온다.
화된 리듬에 복속되고 탈조직화된 규율에 익숙해짐을 의미한다. 탈조직화된
규율은 역설적이게도 자율성을 매개로 노동자를 통치하기 때문이다. 서르닉 그런데 배달 대행은 .(Q: 그럼 월급 개념이 아닙니까?) 자기가 모아두고 싶으면 모
의 주장대로, 디지철 경제에서 감시와 이윤은 뒤섞이고 이른바 ‘감시 자본주 아두고.(Q: 굳이 지금 받지 않으려면?) 네. 빼려면 빼고. 저는 가게 일할 때도 맘대
의’가 출현한다(서르닉 2020: 62). 이들에겐 식사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배달대 로 받아서 잘 모르겠는데 다른 얘들 보면은 이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자기가
행 관리자인 김승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 써버릴 거 같다 모아야 하는데 그러는 아이들이 있고, 돈이 급했는데 잘됐
다. 순간순간 급할 때가 있죠. 다음날 돈이 갑자기 급한데 그러면 신청을 하
그냥 웬만한 애들은 출근하기 전에 집에서 먹고 오고요, 다른 애들은 상황에 죠.(구민영)
따라 눈치 보면서 사무실에서 시켜먹거나 아니면 나가서 사먹거나 이 근처에서.
끼니는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웬만하면 저희가 못 먹게 해요. 오후 조 애들은 이러한 형태의 임금지급 방식은 축적과 절약의 생활양식을 유도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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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탕진과 소모적인 생활양식을 부추긴다. 임금관리를 자신의 자율성에 적지 않은 수입임에도 이들은 자신의 취업이나 생계를 위해 계획적으로 돈
맡기는 방식이지만 이는 일반적인 임금(월급)구조를 파편화시킴으로써 돈을 을 관리하거나 활용하지는 않았다. 필자가 면담했던 당시에도 이들은 현재 버
장기적인 계획에 투자하거나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배달 는 돈들은 상당 부분 유흥비로 소비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당구 치고 볼
대행은 “한마디로 개인, 밥도 제 돈으로 먹어야 하고 기름 값이랑”(구민영) 오 링 치고 피시방 가고 코인 노래방 가고 밖에서 노가리”(이재훈) 풀고, 게다가
토바이 대여비도 개인이 부담해야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 “담뱃값도 들고 노는 것도 들고 여자친구 만나면 돈도 써야하고,”(김충현) “동
이 아니라 개인에게 더욱 많은 부담을 지도록 만든다. 이처럼 필요할 때마다 네 형들이 돈이 없어서 그 비용을 다 내기도” 한다(김우빈). 이들이 나열한 주
출금해서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프레카리아 요 소비항목을 보면 술값, 담배값, 각종 유흥비, 숙박비(찜질방이나 모텔), 식비,
트적 삶에 더욱 익숙해지도록 하는 습속을 강화한다. 유류비, 오토바이 리스비 등이고 자취 생활자의 경우 월세가 포함된다. 이중
유흥비가 차지하는 비중에 제일 크다고 한다. 치킨점에서 일한 박정진은 월
200만 원 이상의 임금을 4년 동안 받았지만 그 돈을 ‘술 먹는 데 다 썼다’고
2. 무전망-자본과 호혜적 탕진 했다. 피면접자들 대부분이 돈을 벌면 주변의 친한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대
부분 다 써버린다. 이들과의 대화 중 주로 뭐하는 데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피면접자 대부분은 식당이나 매장에서 10대 후반부터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 던졌을 때 ‘친구들과 노는 데’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그리고 더 주목할 점은
작했지만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모두 배달원으로 일을 시 자신의 소비활동에 명확한 범주나 계획 혹은 반성적 인식이 매우 모호했다는
작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매장 내에서 구속받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 사실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의 소비습관은 거의 탕진에 가까웠는데, 그럼에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피면접자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도 이 소비는 지극히 개인을 위한다기 보다 또래집단과의 어울림, 유대감 형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 유흥비로 사용해고 자신의 미래 설계를 위한 저축이 성, 호혜적 관계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시적인 의례일지도 모르지
자 투자는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소득은 그 달 내에 만 이들의 삶에서 소모적인 소비는 또래집단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도 유지
대부분 써버렸다. 이들에게는 다 쓰더라도 또 벌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 하기 위한 불가피한 의례처럼 보인다.
리 잡고 있다. 배달 일은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해줬다. 이들이 영업장에 고 피면접자들 중 유일하게 저축하고 있는 이재훈은 동료들과의 만남에서 최
용되어 배달원으로 일을 했을 경우 한 달 평균 200만원 가까이 벌지만 배달 소 비용만 지불하고 대부분의 수입은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모으고 있다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할 경우에는 평균 300만 원 정도까지 번다고 했다. 고 했다. “벌써 천이백 만 원 모았어요.(Q: 차는 뭐 사고 싶은데요?) 저 폭스바겐이
주문이 폭주하는 주말이나 눈·비 오는 날이면 배달건수가 급증할 때가 있는 요. 아니면 젠쿱. (Q: 폭스바겐은 흔해서 알겠는데 젠쿱은 모르겠다.) 젠쿱이라고 스포
데, 조금만 무리해서 배달을 한다면 400-500만원까지도 벌어들일 수 있다고 츠카처럼 생긴 게 있는데 그거 아니면 BMW, 아우디 그런 거 살려고요.” 이재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극히 드문 경우라고 했 훈은 다른 동료들의 소비행태를 약간 비꼬면서도 자신만은 고가의 수입차를
다. 그럼에도 월 300만 원 정도면 유사 직종 분야와 비교해볼 때 꽤 높은 소 사는 데 돈을 모은다며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그 또한 저축의 목적이
득이다. 훗날 자신의 생계나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대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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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소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묻는 질문에 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지닌 배달원들에 대해 박정진
이재훈은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라고만 답했다. 은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자영업을 해 보겠다 모여서. ……망하든 말든, 쪽박
피면접자들 중 2~3명은 오토바이 배달일을 그만 둘 경우 현재 부모가 운영 이든 대박이든 우선 도전을 해 봐야겠다, 자기는 남 밑에서 죽어도 못 일 하
하는 사업체를 물려받아 운영하겠다거나 부모의 지원을 받아 독립된 매장 하 겠다, 이러는 애들도 많고, 아니면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자기 전공 살려서 그
나를 차려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주로 자신 쪽 관련 분야 하려는 애들도 있”다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5, 6년 봐 왔
이 일하면서 직접 보고 축적해온 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는데 거기서 일해보고 느낀 점은 돈도 안 남고, 다들 엄청 힘들어 하는 시긴
대체로 치킨, 피자, 배달, 족발 등 가맹점 하나를 차려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 데 그런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자영
다. 구민영은 “대개는 배달하는 애들 보면 돈 모아서 사업 하려는 애들이 많 업의 성공률이 실제로 엄청 낮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배달원들의 꿈이 자영업
아요. 제 주변에도 그렇고. 돈 벌어서 자기 가 게 하나 차리는 게 꿈인 거 같 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삶의 세계를 구성해왔던 경험들과 깊은
아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피면접자들 중 현재 대학 재학 중인 구민영은 호 관련이 있다.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다양한 자본과 권력의 결핍은 과거의 자
텔리어, 김충현은 문신 미용기술을 배워 타투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 원을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미래의 삶을 구상하게 만든다. 다음 박정진의 말
고, 김우빈은 래퍼, 이주승은 배우, 이재훈은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을 들어보면, 배달원들은 배달노동의 굴레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이 수반되
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관념적으로 추상화된 계획일 뿐 현재 이를 어렸을 때, 고등학교 시절에는 19살 때까지 20살 되기 직전까지 할 거다 해도
대비한 준비과정은 보이지 않으며, 상당수는 군 전역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 막상 졸업을 하면, 그런 애들 있어요, 고등학교 다니는 애 중에 내가 아무리 꼴
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큰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 외에 다른 배달 통이어도 수시로 가면 어디 한군데는 받아 주겠지 하고 자신 있게 일을 그만 둬
원들의 경우 배달 일을 당분간 계속 하면서 훗날 개인 사업(자영업)을 어렴풋 요. 대학 갈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달 뒤에 다시 와요. 배달해야 될 거 같
하게 고려하고 있다. 아요. 막상 20살 되면 돈이 필요해요. 성인 되면 군대 가기 전까지 할 거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고요. 군대 갔다 온 분들은 제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알기에
했던 일이고 잘 아는 거 같아서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어 미성년자 때는 20살까지 하고 싶어 하고, 20살 애들은 군대 가기 전까지 하고 싶
렸을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 하는데 그 가맹점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하는 어 하고… 그 정도까지 하고 그만둘 거라고 다들 그래요. 변하지가 않아요. 한
지 다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돈을 버는지도 알고 있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80%는 다 그렇게 얘기해요.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최승준)
위의 인터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장기간의 시간적 지평을 상정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을 경우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위의 인용문에서처 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미래를 기획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에서 과거-현재-미래
럼 피면접자들은 매장에서 배달직원으로 일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활용하여 사이의 간극은 매우 좁다. 다시 말해 이들의 삶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는 물론
자영업, 예를 들어 치킨집, 피잣집, 분식집 등 가맹점을 하나 얻어서 운영해보 미래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시간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들이 그동안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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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배달노동자의 목숨을 건 위험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면접자 김재민. 2017.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본 음식배달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서울지
들이 배달노동의 세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나마 이러한 노동이 역 음식배달 종사자 노동실태조사』,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사업 발표문
자신의 생계, 정체성, 삶의 의미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플랫폼자 (2017년 12월 21일).
본주의는 이들의 취약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극대화시켜 이윤을 축적한다. 이 리처, 조지. 1999. 『맥도날드 그리고 맥드날드화』. 김종덕 역. 서울: 시유시.
들의 생명과 안전은 이윤에 반비례하면서 전적으로 자신의 몫으로 환원된다. 바바렛, 잭(엮음). 2009. “서론: 왜 감정이 중요한가.” 『감정과 사회학』. 일신사.
이와 같은 생명과 위험의 환원구조는 플랫폼자본주의체제 하의 프레카리아트 박형신·정수남. 2015.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한길사.
들에게 점차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익숙함이 이데올로기 차원을 넘어 습 버킷, 이안. 2017. 『감정과 사회관계』. 박형신 역. 한울아카데미.
속화될 때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에 대한 적극적인 요청은커녕 서르닉, 닉. 2020. 『플랫폼 자본주의』. 심성보 역. 킹콩북.
오토바이를 운행한 운전자에게 사고와 위험을 둘러싼 책임이 온전히 전가될 스탠딩, 가이. 2014.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 김태호 역. 박종철출판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자본주의체제의 합리성 뒤에 숨겨진 냉혹함이라면 장지연·이호근·조임영·박은정·김근주·Enzo Weber. 2020. 『디지털시대의 고용
우리는 이러한 합리성의 역설을 지속적으로 파헤쳐 봐야할 것이다. 안전망: 플랫폼 노동 확산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힌국노동연구원.
본 논문에서 여러 한계와 향후 과제를 간략히 제시하고 마무리 짓고자 한 정성진. 2017. “설문조사를 통해 본 서울지역 음식배달 노동실태.” 『서울지역 음식
다. 먼저 피면접자들의 배달노동 경험을 보다 가까이서 혹은 직접 체험을 하 배달 종사자 노동실태조사』.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사업 발표문(2017년
면서 관찰하고 조사하지 못한 점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둘째로 이들 12월 21일).
과의 충분한 인터뷰 시간이 확보되었다면 좀 더 면밀하게 생애과정, 특히 이 정혁. 2018. “시간과 돈 사이에서 신음하는 ‘긱’(gig)노동자의 생존법.” <르몽드 디
들의 사회화 과정을 분석할 수 있었을 텐데 현재 조사로서는 매우 불충분하 플로마티끄>(8월호).
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가족문화, 교육구조, 계급구조, 지역성, 또래집단, 청 정혜인. 2015. 『청년 타투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
(소)년문화 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그럼에도 본 연구가 배달앱 논문.
노동자의 감정적 삶의 측면과 플랫폼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조연희. 2019. 『주문형 앱 청년노동자의 노동경험에 관한 연구: 배달대행 노동자
향후 연구를 위한 하나의 토대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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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국문요약
이 논문의 목적은 21세기 이후 급격한 사회 안, 기본소득과 기초자본 중 기초자본을 왜
경제적 구조의 변화 가운데 맞고 있는 노동 더 나은 대안으로 생각하는지 그 근거를 제
의 위기에 주목하며, ‘보완적인’ 대안 분배정 시한다. 넷째, 앞서 전개된 논의를 바탕으로
책으로 ‘생애주기자본금’이란 정책을 제안하 생애주기자본금이란, 변형된 기초자본을 노
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네 단계를 따라 동시장의 대안적 분배정책으로 제안한다. 결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첫째, 21세기 노동 론에서는 생애주기자본금이 노동을 분배기
의 위기를 만들어 낸 사회적·경제적 배경에 준으로 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내재해
대해 논의한다. 둘째, 우리가 맞고 있는 노동 있는 ‘노동’ 친화적 의미를 밝힌다.
시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노동
윤리’에 입각한 노동중심적 분배에서 벗어나
야함을 주장한다. 셋째, 이 제안서가 탈노동 주제어: 유토피아 기획, 생애주기자본금, .
적 발상을 바탕으로 제시되어 온 두 분배대 기본소득, 기초자본, 노동윤리
*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8S.
1A5B8068919)
Ⅱ. 21세기 도래한 노동의 위기와 경제적 불평등 과 노동의 관계 및 본질마저 바꾸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에서 자본
은 더 이상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다. 우버는 소유한 택시가 없으며, 에어
비앤비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II절에서는 도래한 노동의 위기 및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 다음의 세 가지 한편에선 많은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플랫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전
요인을 두고 분석한다. 첫째,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빚어낸 노동 현실의 변화 환되는 가운데, 이 업종에 종사하기 위해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
를 플랫폼 자본주의와 연관시켜 본다. 둘째, 소비사회의 도래와 양극화가 만 수단을 관리하는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다(스탠딩, 2019).1 무엇보다 제조업에서
들어 내는 ‘빈곤’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셋째, 지구화의 확장 속에 일어난 노동 플랫폼으로 옮겨온 대다수의 직업은 소위 컨시어지 직종, 즉 과거 하인들이
시장의 유연화가 만들어 낸 노동의 실존적·현실적 문제를 살펴본다. 넷째, 이 나 집사들이 하던 일로서, 직업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노동
런 요인에 근거해 왜 새로운 보완적 분배대안이 필요한지, 이 분배대안이 기 을 통해 자존감을 얻고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
존의 대안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힌다. 한 것이 노동현실이다. 이런 플랫폼 경제의 현실을 두고 알렉산드리아 J. 레브
넬은 “공유경제는 혁신이란 미명하에 지난 수 세대 동안 쌓아 올린 노동자 보
호장치를 파괴하며 노동자 착취가 만연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고
1. 급격한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변화 비판한다(래브넬, 2020, 22).
사람들이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고 더 나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자 사이의 관계는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가 국가의 중요한 보호대상이 됨을 뜻한다. 특히 앞서 주목한 디지털 기술의 무엇보다 소비사회에선 소비력이 없을수록 사회의 관심에서, 존중에서, 보
발전은 이 기술의 고도화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호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산사회에서 생산력을 가진 자들
보상을 해주는 반면, 그렇지 못하거나 이 기술에 의존적으로 노동을 제공하 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었듯, 소비사회에선 소비력을
는 사람들에겐 그 이익을 제대로 나눠주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브란 가진 사람들이 보호받는다. ‘소비자가 왕이다’는 말은 이런 현실을 극단적으로
울프슨·맥아퍼, 2014, 168-170).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조지프 스티글리츠(Jo- 보여준다.
seph Stiglitz) 등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당대의 자본주의 혁신이 현재 소득과 부의 분배는 특정 소수에게 그 이익이 몰려 있는 ‘샴페인 효과’
다수가 아닌 소수에만 이익을 주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Reich, 라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고, 이런 양극화는
2015, Stiglitz, 2012). 소수의 보호 받는 사람과 다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의
실제 다양한 통계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제조업의 쇠퇴와 플랫폼의 성장 미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통계 하에서 매해 100만 명 안팎의 실업
이 일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자들이 있고, 8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파견, 용역 등을 포함하여 사실상) 비정규직
예를 들어 2017년 우리나라의 통합소득 분석에 따르면 “근로소득과 사업소 에 종사하고 있다(김유선, 2018). 2020년 몰아닥친 팬데믹은 양극화 속에 이렇
득, 금융·임대소득 등을 합친 통합소득 기준으로 상위 0.1%에 속하는 2만 게 보호망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인지
2천여 명이 하위 27% 구간인 629만5천명만큼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연합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뉴스 2019/10/17). 중위 소득은 2천301만원에 불과했다. 부의 불평등에 대해선
국가 간 비교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 지수보다 높
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연구는 3. 지구화 속 노동시장의 유연화
2013년 기준으로 상위 10%에 전체 부의 66%가량이 집중되고 하위 50%에
1.7%가 분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한겨레 2015/10/29). 이를 다른 국가와 비교 지금의 노동이 위기를 맞게 된 데는 명백하게 당대의 지구화 현상의 확장이
해보면 그래도 좀 낫다는 식의 논리는, 여성의 권리가 과거보다는 그래도 많 자리 잡고 있다. 지구화는 초국적 기업의 지배라는 넘쳐나는 잉여자본과 그
이 나아졌으니 가만히 있으란 말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심지어 세상이 원래 가운데 소외되어 넘쳐나는 잉여노동 현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지구화 속에
불평등하다는 말도 들린다. 명백히 말하자면 세상은 원래 공유자산의 세계였 급격히 가시화되고 있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속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다. 사유재산은 제도와 법의 설립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 온 인위적 질서의 결 전통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임금이 낮은 국가로 일자를 내보내고
과물이다.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산업에서조차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런 부와 소득의 불균형은 명백히 한 개인의 ‘소비력’과 연관이 있다. 소득 할 때마다 ‘창조적 파괴’란 명목 아래 수시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리처
은 단기적 소비력을, 자산은 장기적 소비력을 준다. 그리고 단기적 소비력이 드 세넷(Richard Sennett)은 구조조정의 가장 두드러진 요소가 인원 감축이라 설
높은 사람들에겐 저축과 투자의 여유가 있고, 이것이 자산의 증가에 영향을 명하고,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은 이 구조조정이야말로 대량의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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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노동이 생겨나는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비용을 줄이는 가장 명료하고 Alstott, 47). 그러다 보니 분배기준이 노동중심적으로 변할수록 직접적 노동력
도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우만의 적나라한 표현을 빌리자면 ‘정리해고된 을 제공하지 못하는 구성원에 대한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복지국가에서도 당
이들은 ‘구조조정’의 주요 ‘쓰레기’를 이룬다’(Bauman, 1998). 연한 수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존의 분배체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대
여기서 핵심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다시 재진입해 들어갈 수 안은 더 이상 노동을 분배의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있는가이다. 하나의 예로 우리나라에서 실업급여 수급자의 노동시장 재진 이 논문이 앞으로 제안할 생애주기자본금은 이런 현실적 맥락에서 몇 가지
입율을 살펴보자. “수급기간 중 재취업률은 2015년 31.9%, 2016년 31.%1, 특징을 지닌다. 첫째, 생애주기자금은 ‘보완적’ 분배대안으로서 기존의 노동중
2017년 29.9%, 2018년 29.4%”로 매해 점차 줄어들고 있다(연합뉴스 2019/02/01). 심적 분배로 만들어진 복지체계를 전면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애주
(실업급여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위의 사실은 실업급여를 통해 기자본금은 기존의 노동중심적 분배체계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수급기간 중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10명 중 3-4명이며, 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보완적 분배대안으로서 노동을 분배기준으
비율도 매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구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질서 로 삼지는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이 논문은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라는 노
가 만들어낸 결과로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자본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 동을 분배기준으로 삼지 않는 발상을 지지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재원 규
나 노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누구나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 우리나라 모가 분배체계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 실천적 과정에서 엄
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청난 저항이 예상된다. 여기에 생애주기자본금의 두 번째 특징이 있다. 생애
주기자본금은 실행가능성의 측면에서 기존의 분배체계를 허물지 않아도 되
는 기초자본을 지지하며, 그 기초자본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있다. 이런 측
4. 왜 보완적 분배대안인가? 면에서 생애주기자본금은 기존 분배체계에 보완적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생애주기자본금은 일생에 단 한번 지급되는 기초자본과 달리 사람의 수명에
현재 지구적 차원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그리고 우리사회 역시 당면하고 있는 따라 최대 3회까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바로 ‘20년 마다’ 생애주기별 지급이
문제는 예측을 뛰어넘는 기술의 발전, 소비사회의 도래와 극심해진 양극화, 노 세 번째 특징이다. 다음 절에서는 첫 번째 특징, 보완적 대안으로서 왜 노동
동시장의 급격한 유연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과제를 기존의 노동중심적 분배 을 분배기준으로 삼지 않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체계만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서구사회에서 복지국
가의 쇠퇴는 지구적 시장이 더욱 부추기는 노동중심적 분배에서 필연적인 수
순이었다. 은연중에 지구적 시장과 복지국가는 노동이라는 매개에서 서로 긴
밀한 친화력을 지니고 있는데, 복지국가라는 발상이 나아가 이 복지국가의 완
성형이라 볼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역시 바로 이 노동중심
적 기반에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에서 보호의 혜택은 예비노동
력, 은퇴노동력이라는 노동중심적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Ackerman &
140 OUGHTOPIA 35:2 ‘유토피아적 기획’으로서 ‘생애주기자본금’ 141
Ⅲ. 탈노동중심적 분배의 필요성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55.5%에서 2017년 48.1%까지 감소”했음
을 지적한다(292). 더불어 “시장소득 격차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분배정책을
통한 정부의 소득 분배개선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문재인 정부는 가
III절에서는 기존의 노동시장 중심적 분배로는 더 이상 노동의 위기를 해결할 계소득을 늘려 내수 기반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복지 강화를 통해 사람에
수 없음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보완적’ 대책으로써 탈노동중심적 분배가 추 대한 투자를 늘리는 새로운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채택”했다고 밝힌다(293).
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다음 두 질문에 대한 답변하며 주장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6월 이 글이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아 문재
을 전개할 것이다. 우선 ‘노동중심적 분배가 여전히 효과적인 분배수단인가’란 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정책인 최저임금을 사실상 포기했을 뿐만 아
실질적 유효성에 대한 답변. 다음으로 ‘노동윤리가 여전히 정당한 분배의 기 니라, 소득주도성장을 더 이상 핵심적 경제과제로 추구하고 있지 않다. 중미
준인가’란 규범적 차원에 대한 답변이다. 무역 분쟁, 한일 무역 분쟁, 코로나 사태를 겪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은 노동이
아니라 기업이 중심이 되는 정책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무엇보다 지난 2년 동
안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공식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소득이나 부의 격
1. 노동중심적 분배가 여전히 효과적인가 차가 줄었다는 공식적인 보고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는 사회복지지출을 늘리는 방안도 있었지만, 노동중심적인 분배정책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새로운 도 중심에 놓고 정책 캠페인을 벌인 탓에 오히려 사회복지지출의 증대가 열심히
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 일하는 노동시장에 있는 사람들을 ‘역차별’하는 정책이라는 인상만 주고 있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 위기가 다. 실제로는 노동중심적 분배와 탈노동중심적 분배가 공존하는 정책을 두고
근본 원인이며,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한국일 노동중심적 분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탈노동중심적 분배에 대한 비판만
보 2017/06/10) 강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분배(original distribution)의 기구로써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과 재능이란 요소에서 자유롭지 않다. 능력주의가 배제하려는 가정환경, 부모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그 어떤 곳보다 민감한 우리사회는 이미 ‘탈산업사회’ 의 직업 및 소득수준, 인적 네트워크 등은 실제로는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
로 진입했다. 지금의 문제는 a) 누구나, 언제나 노동시장에 접근 가능한 것이 곳곳에서 영향을 미친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를 만든 마이클 영은
아니라는 점, b) 노동시장에서 직업의 불안정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c) 여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사회가 “얼마나 슬프고 허약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
러 소득분포 통계들이 보여주고 있듯 노동시장 내에서도 보상격차가 아주 심 해 이 표현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영은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이…자기가 가
하다는데 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일자리 대신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진 모든 것을 마땅히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게 부추긴다면 스스로 얼마나 오
플랫폼 경제에선 청소, 배달, 심부름, 수작업, 택시 등 ‘컨시어지’ 직종으로 분 만해지겠으며, 그 자들이 이 모든 게 공공선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한다면 얼
류되는 낮은 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곳에선 전통적인 마나 비정하게 자기들만의 이득을 추구하겠는가?”(영, 2020, 8)라며 반문한다.
노동시장이 제공하는 노동조합의 형성, 4대 보험의 혜택 등 노동자들을 보호 진정한 능력주의는 모든 이들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할 때 유효한 것
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애초에 플랫폼 경제는 유휴자산을 활용 이며, 우리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
한 공유경제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이 부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했지 주의와 노동윤리의 결합은 ‘열심히 일하는, 능력 있는 자만이 자격이 있다’는
만, 통계에 따르면 75%가량의 종사자들이 이 활동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스탠 발상으로 진화하여 사회 내 차별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원
딩, 2019, 286). 천이 된다. 결코 의도치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능력주의 시대의
지금의 세계는 더 이상 노동시장이 최초분배 수단으로 온전히 기능할 수 노동중심적 분배는 보호 받아야할 인간의 자격을 규정하는, 반인간적인 수단
없으며 보완적인 분배수단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에서 ‘일하는 자만이 자격이 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있다’는 발상을 완고히 유지한다면, 이는 의도치 않게 일자리에 접근성이 떨어 탈노동중심적 분배는 실행 가능한 것일까?
지는 사람들을 이류시민으로 만들고 마침내 이들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지경
에 이르게 된다. 일하는 자들이 ‘일하지 못하는 자들’을 차별하고 경멸하는 수
단이 될 뿐만 아니라, 일하지 못하는 자들은 완고한 노동윤리 속에 자기혐오
와 타자혐오를 경험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많은
‘워킹푸어’들은 양자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애런라이크, 2012). 워킹푸어들은 열
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 자를 향한 혐오를 마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데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분노와 좌절
이 일상이 된다. 탈산업사회에 ‘일하는 자만이 자격이 있다’는 발상은 이처럼
비윤리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하여 이 발상은 왜곡된 ‘능력주의’의 원천이 되고, 심지어 공정성
이라는 발상마저 왜곡하기도 한다. 실제 어떤 능력주의도 타고난 주변 환경
144 OUGHTOPIA 35:2 ‘유토피아적 기획’으로서 ‘생애주기자본금’ 145
Ⅳ. 왜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초자본인가 과 기초자본은 그 목적과 성격, 지급방식이 아주 상이하다. 기본소득은 ‘기본
적 소비력’을 안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분배대안이라
면, 기초자본은 일정한 목돈이란 ‘사회적 상속’을 통해 모두에게 일생에서 단
바우만이 『새로운 빈곤』(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 1998)에서 밝히고 한번이라도 자신의 인생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대안이다. 소비
있듯이, ‘모두가 가난한 시대, 모두가 일할 수 있는 시대의 빈곤과 부가 넘쳐나 사회와 양극화란 요소를 심각히 고려한다면 이 두 대안 중 필리프 판 파레이
는 시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된 시대의 빈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앞선 스(Philippe Van Parijs, 2006),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2017(b ) 등이 주장하듯
III절은 이런 기조를 중심에 두고 노동중심적 분배만으로는 더 이상 효과적 일생 동안 정기적으로 배당이 되는 기본소득이 ‘청년 시절 목돈의 낭비’로 이
으로 분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이 제한된 기회 속에서 인간의 자격을 어질 수 있는 기초자본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분배기준일 수 있음을 밝히고자 앞으로 벌어질 세대 간 불평등의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이면서 ‘최소한의 사회
했다. IV절에선 노동을 중심으로 삼지 않는 분배대안으로 제시된 기본소득과 적 상속’(minimum inheritance)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앤서니 앳킨슨(Anthony
기초자본을 점검하고, 왜 기초자본이 기본소득보다 그 실행의 측면에서 있 Aktinson)의 주장에 주목하며, 기초자본이 훨씬 더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효
어서 보다 효과적인 대안인지에 대해 논한다. 과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Atkinson, 2015, 170-172).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다. 첫째, 기초자본은 계층 이동 가능성을 열어준다. 둘째, 기본소득보다 재원
마련이 훨씬 용이하며 현실적이다. 셋째, 기초자본이 정책의 최초 수용과정에
1. 기본소득과 기초자본 있어 정치적 안정성을 훨씬 덜 해친다.
계한 인생을 실행할 힘을 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매달 들어오는 50만원은 본을 3천만 원으로 두고 비교하더라도 기초자본의 재원은 기본소득의 10%
최소소비력을 줄 수 있어도 인생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자본금이 되지는 않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다. 사회적 지분 이론을 주장하는 에커만과 앨스톳 역
는다. 하지만 목돈으로 지급되는 ‘기초자본’은 인생계획을 실천함으로써 계층 시 재원의 측면에서 볼 때 기본소득보다 기초자본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 지
간 이동의 가능성을 높인다. 소위 끊어진 계층 간 사다리를 다시 세울 수 있 적하고 있다(Ackerman & Alstott, 2004, 47-48).
는 실행력을 지니고 있다. 기본소득이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수긍하며
만들어진 순응적 대안이라면, 기초자본은 그 결과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
는 대안이라 할 수 있다. 4. 최초 수용과정에 있어 정치적 안정성
2. 왜 생애주기로 주어야 할까2: 빈곤의 생애주기 간 연속성 국이 세계 최장수국으로 기록될 전망”이라는 점도 덧붙여 둔다(메디컬옵저버
2017/02/23). 이처럼 충분한 연금수급 가능성이 낮을 것이란 전망, 급격히 늘어
생애주기로 주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빈곤이 생애주기 간 연속성을 지니고 나고 있는 노인인구와 수명은 노인들 역시 새로운 주기를 대비해 인생을 설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동빈곤은 청년빈곤으로 이어진다. 2018년 한국보건사 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회연구원이 내 놓은 ‘현세대 청년위기 분석’은, 6년 이상 장기간 아동빈곤을 겪
을 경우 낮은 학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구직의 난관으로 이어진다고 밝히
고 있다(중앙일보 2018/11/20). 3.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이렇듯 아동빈곤에서 전이된 청년빈곤은 중장년 빈곤으로 이어진다. 예
를 들어, 2017년 <보건복지포럼> 낸 ‘청년의 빈곤 실태 : 청년, 누가 가난한 그렇다면 생애주기자금은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까? 앞서 밝혔듯이 생애주기
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을 기준으로 상대소득 빈곤(경상소득 기준 중위소득 자본금은 ‘각 구성원에게 모두에게 매 20년마다 인생설계의 기회’를 주고자 한
50% 미만)을 겪었던 청년들을 추적해 보니 이들이 29~44살이 된 시점에서도 다. ‘생애주기자본금’의 배당액수는 모두에게 동일하며, ‘투자하는 해’의 1인당 국
(2015년) 빈곤율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6.7%에서 6.3%) (김태완, 2017, 12). 청 민소득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수준이어야 한다.1 앞으로 제시되는 모델은 20년
년빈곤이 중장년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학진 을 주기로 했을 때, 투자금액이 10배 정도 불어난다는 기대에 근거해 있다. 이
학율이 70%가 넘어가는 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30%는 사회적 관심의 밖에 존 런 수치는 영국의 아동신탁기금이 전망한 기대에 근거해 있음을 밝혀둔다.2
재하면서 생애주기전반에 걸쳐 빈곤의 고리를 끊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안수찬, 2011). 1) 매 20년이라는 생애주기구분
한편으로 이런 중장년 빈곤이 노년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상관관계는 실제 생애주기는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
우리나라가 ‘노인빈곤’국이라는 널리 알려진 사실에서도 쉽사리 추론해볼 수 등 더 세분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도의 설계에 따라 주기구분 자체가 달
있다. 우리나라가 노인빈곤국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현재의 노동시장을 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애주기자본금 제도는 개인이 자본을 스스로 쓸 수
고려할 때 앞으로 20년을 채운 연금수급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전망은 여전히 있는 나이가 성년이 되는 투표연령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한국의 선거제도 상
노인들이 빈곤에 노출될 수 있음을 내보이고 있다(프레시안 2015/05/26). 한편으
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노인이 전체인구의 14%를 웃도는 고령사회로 진
입했다는 사실 역시 고려대상이다(한겨레, 2018/08/27). 이에 더하여 영국 임페 1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론 사회구성원이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독립할 수 있는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그런 기준이
리얼 칼리지 런던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공동연구결과에 따르면 “2030년 학문적 연구를 통해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에 태어나는 한국 여성이 세계 최초로 평균 기대수명 90세를 돌파, 가장 오 2 “예를 들어 블레어가 2001년 재선거 캠페인으로 내세운 사회적 지분을 생각해보라. 노동당 정
래 사는 집단이 될 것”이며, “아울러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 남성의 평균 기 권 하에서 영국인들은 베이비 본드라는 750달러 정도의 지분을 출생시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18세까지 복리로 누적될 것이고, 성인이 되었을 때 7500달러의 자본을 받게 될 것이다.” (Ack-
대수명은 90세를 넘진 못하지만 전 세계 남성 중 1위로 예측돼, 미래에는 한 erman & Alstott, 2004,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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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면 투표가 가능하므로 19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생애주기자본금을 수령 두 번째는 정치공동체가 매해 출생한 아이들에게 계좌를 열어 일정금액
할 자격이 생긴다. 생애주기자본금은 성년기(20세-39세), 중년기(40-59세), 노년기 을 넣어주고 일정기간 돈을 불려 아이들이 스스로 자본을 쓸 수 있는 연령
(60세 이상)로 자본금을 쓰는 주기를 3단계로 나누고 각 주기마다 인생을 설계 에 이르렀을 때 지급하는 모델이다. 영국에서 신노동당이 기획해 2003년 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제안한다. 매주기마다 필요한 이유는 앞선 2절에서 행한 ‘아동신탁기금’(Child Trust Fund)이 이에 따라 설계된 대표적 제도다(White,
이미 제시했다. 2015). 이 정책을 설계한 이들은 18년 동안 초기투자비용의 10배 정도가 불어
날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당이 주도했던 이 혁신적 제도는, 2011년 노동당으
2) 재원마련 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보수당이 폐기시켜버려 불행히도 그 결과를 볼 수
생애주기자본금은 매해 정부가 걷는 증여상속세를 사회적 상속의 재원으로 없게 되었다. 이 논문이 제안하는 생애주기자본금은 초기투자금을 최소화하
쓰자고 제안한다. 증여상속세를 사회적 상속에 쓰는 것은 그 쓰임새가 알맞고 여 최대한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두 번째 모델을 따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될 것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 라 설계되었다.
원이 청년사회상속제를 제안했을 때 그 재원이 바로 증여상속세였으며 2017년 후자의 방식을 선택했을 경우 주어진 5조 4천억으로 각 주기별로 투자한다
기준으로 5조 4천억 원이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초기단계에서 일시적으로 고 했을 경우 대략 300만 원 정도의 초기투자가 가능한데, 2020년 7월 기준
6년 간 증여상속세를 미래로부터 빌려와 써야 하지만, 향후 15년 간 어느 정도 으로 인구구성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보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재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든다.
0세 275,094명
3)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20세 630,460명
기초자본을 배당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자본 40세 845,239명
을 설계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기초자본에는 두 가지
설계모델이 있다. 첫 번째 모델은 일정연령에 이른 이들에게 일정한 몫을 일괄 이렇듯 300만원이 초기투자 될 경우 대략 3000만 원 정도를 기대할 수 있
적으로 지급한다.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2019)에서 다. 이는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의 90%가량에 해당하는 액수다.
프랑스의 예를 들며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똑같은 몫을 상속하자고 주장
한다. 프랑스의 1인당 평균자산이 20만유로인데 이의 60%에 해당하는 12만 4) 어떻게 59세 이하의 사람들을 모두 가입시킬 것인가
유로를, 25세가 되는 모든 프랑스 젊은이들이게 배당하자고 제안한다(981). 피 매해 12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생애주기자본금에 가입시킨다면 5년 안으
케티에 앞서 『사회적 지분 사회』(The Stakeholder Society, 1999)에서 브루스 에커 로 59세 이하의 모든 유권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다음은 시행연도를 기
만과 앤 앨스톳은 21살에 이른 미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8만 달러씩 배당하 준으로 가입하는 시기를 구분한 것이다.
자고 제안했다(5). 이런 피케티와 애커만/앨스톳의 제안이 이 첫 번째 모델에
해당한다. 1년차: 0세-3세, 20세-23세, 40세-43세
154 OUGHTOPIA 35:2 ‘유토피아적 기획’으로서 ‘생애주기자본금’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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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61
* 이 논문은 한국외국어대학교 4단계 BK21 사업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입니다. 논문의 초안
은 2020년 한국정당학회 하계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바 있습니다.
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고, 이는 우리사회 내 다양한 잠재적 균열들이 지역 비례대표제로의 전환 등 다양한 대안을 주장하기도 한다(김형철 2007; 김만흠
균열로 획일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011; 홍재우 외 2012). 여기서 더 나아가, 또 다른 학자들은 현행 대통령제가 하
정당체계와 관련한 두 번째 연구의 흐름은 바로 제도주의적 관점이다. 제도 위 정치제도와의 부조응성 및 입법-행정 권력 간 교착상태 등의 제도적 문제
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양당제 혹은 다당제 등의 서로 다른 정당체계를 형성 를 야기하기 때문에 의회제나 준대통령제로의 개헌을 통해 제도적 경직성을
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로 축약될 수 있다(Duverger 1964; 해소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안순철 2004; 박기덕 2007; 강원택 2001).
Harmel and Robertson 1985; Lijphart 1994; 2012). 즉,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가, 그러나 앞선 사회학적 관점과 제도주의적 관점은 한 가지 논리적 한계를 가
다수제보다 비례제가, 더 나아가 단방제보다 연방제가 집중된 권력을 더욱 분 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설명이 구조결정론적 혹은 제도결정론적인 형식에
산시킴에 따라 진보정당을 비롯한 신생 정치세력이 보다 쉽게 제도권 정치로 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설명과 달리 현실에서는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주의자들의 논리는 미국에서도 왜 제 사회균열과 선거제도의 영향력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상호의존적일 수 있으며
3정당이 등장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용된 바 있다. 예를 들어, (Neto and Cox 1997),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사회균열이 정치화될 수 있는지의
립셋(Lipset 1996)은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행정 권력이 대통령 여부는 행위자 즉, 정치엘리트의 전략적 행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Zielinski
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며, 그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양당 구도를 유 2002). 이러한 맥락에서, 정당 간 경쟁의 논리를 통해 진보정당 등 신생정당의
도하는 헌정제도 및 선거제도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등장과 생존을 설명하는 연구들은 주목할 만하다. 개별 정당들의 이념위치
1
지적한다. 및 정책태도를 토대로 그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정당경쟁의 논
위의 제도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맥락에서, 다수의 국내 연구들이 한국정치 리는 다운즈(Down 1957)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정당경쟁의 공간
에서 진보정당을 비롯한 제3정당이 등장하기 어려운 주요 원인을 정치제도에 이론이라는 맥락에서 특히 유럽 국가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큰 학문적 관
서 찾는다. 비록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따라 2004년 제17대 총선부터 1인 심을 받아왔다(Budge 1994; Adams and Somer-Topcu 2009 등).
2표의 혼합형 다수대표제(MMM, mixed member majoirty system), 즉 병립형 선거 이러한 연구의 흐름 중에서도, 진보정당의 등장과 생존에 관심을 가지는 본
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선거제도가 거대정당을 과다대표하 연구에서는 메귀드(Meguid 2005)의 틈새정당(niche party) 이론에 주목한다. 그
는 불비례성 문제와 소수집단을 과소대표하는 대표성 문제를 여전히 초래하 녀는 먼저 틈새정당이 계급 등 기존의 제도권 정치의 중심에 자리했던 이슈
고 있다는 것이다(장훈 2006; 김형철 2017). 이에 따라,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더 들을 거부하는 대신 주류정당들이 다루지 않았던 특정 이슈들을 정치화하
욱 높이기 위해 비례의석을 확대하거나 병립형이 아닌 연동형 선거제도 또는 며, 새로운 이슈에 집중함으로써 기존의 정당지형에 편입되지 않는 정당을 의
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틈새정당은 기존의 주류정당들과 상
호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주류정당은 무시전략(dismissive strategy), 적응
1 물론 립셋은 제도적 요인만이 유일하다고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유주의 및 평등주의에 근거 전략(accommodative strategy), 그리고 적대전략(adversarial strategy) 등 세 가지 전
한 개인주의와 반국가주의 등의 미국적 가치, 봉건적 전통의 부재, 생활수준의 향상과 교육 기회의 략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주류정당이 무시전략 또는 적응전략을 이
확대 등 사회적 요인뿐만 아니라, 미국 양당의 유연한 정책적 대응과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탄압 등의 정치적 요인도 함께 지적한다. 자세한 논의는 그의 책(Lipset 1996)을 참고 바란다. 용할 경우, 틈새정당의 득표는 줄어든다. 그러나 주류정당 중 하나(A)가 적대
168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69
전략을 취하는 반면 다른 하나(B)가 적응전략을 취하게 되면, 틈새정당의 득 표 및 생존과 관련하여 당시의 한나라당 또는 현재의 미래통합당보다 민주당
표는 늘어날 수 있다(단, 여기서 주류정당 A의 적대전략이 주류정당 B의 적응전략보다 의 영향을 더 받기 쉽다는 점에서, 틈새정당에 대한 주류정당의 영향력이 비
강해야 한다). 또는 주류정당들이 모두 적대전략을 취할 경우에도 틈새정당은 대칭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1
득표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이를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에 적용해보면, 틈새정 둘째, 메귀드(Meguid 2005)의 이론은 관심의 대상인 틈새정당을 수동적 행
당인 정의당의 성공은 주류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 상호작용 위자로 간주한다. 즉, 이 이론에서 틈새정당의 득표는 단지 주류정당의 전략
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적 에 달려있을 뿐, 틈새정당 스스로의 노력 혹은 전략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대-적대 조합, 무시-적대 조합, 또는 약한 적응-적대 조합을 선택함에 따라 정 그러나 현실에서는 틈새정당 역시 능동적 행위자로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의당의 이슈 소유권을 부각시켜줄 경우에만, 정의당은 선거에서 득표를 늘릴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틈새정당은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당의 적응전략을
수 있게 된다. 중화시키고, 멀리 위치한 정당의 적대전략을 강화하는 유인전략(중화-유인 전략)
따라서 메귀드(Meguid 2005)의 틈새정당 이론은 신생정당의 등장 및 생존 을 통해 최선의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정재관 외 2016).2
과 관련하여 정당 간 상호작용의 논리를 통해 새로운 설명을 제공해줌으로써, 셋째, 틈새정당 이론은 유권자 개개인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틈
앞선 구조결정론적인 사회균열이론과 제도결정론적인 제도주의적 설명의 한 새정당이 주도하는 이슈는 단순히 기존의 정당이 소유했던 이슈와 차별적이
계를 일부 극복하고 보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론 역시 몇 가지 라는 그 사실만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로운 이슈가 유권자들 사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이론은 복수의 주류정당이 틈새정당에게 행사 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에 따라 선거에서의 성패가 좌
하는 영향력을 대칭적으로 간주한다. 즉, 진보정당 또는 극우정당은 이념적 우된다(예를 들면, Singer 2011). 따라서 미시적 수준의 유권자가 틈새정당의 이
스펙트럼 상에서 분명 기존의 정당보다 극좌 혹은 극우에 위치한다. 따라서 슈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앞선 두 가지 한계점과
진보정당은 중도 보수의 정당보다 중도 진보의 정당에 의해 영향을 더 받기 도 관련되는데, 첫째,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틈새정당(정의당)의 잠재적 지지자
쉬우며, 반대로 극우정당은 중도 진보의 정당보다 중도 보수의 정당의 영향을 들은 이념적으로 멀리 있는 정당(미래통합당)보다 가까이 있는 정당(더불어민주
더 받기 쉽다. 말하자면, 과거의 민주노동당 혹은 현재의 정의당은 그들의 득 당)으로부터 옮겨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Enelow and Hinich 1982; 1984; 강원
3
택 2004). 둘째, 따라서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틈새정당은 중화-유인 전략 조합
에서 이념적으로 먼 정당에 대한 유인전략보다 가까운 정당에 대한 중화전략 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치이념은 개인의 정치적 인식, 태도, 그리고 행태의 토
에 더 많은 애를 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중화전략과 유인전략은 독립적이 대로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정치이념을 토대로 형성된 정치적 선호는 투표
지 않고 오히려 상쇄적인 경우가 현실에서는 더 많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인전 선택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여기서 정당일체감은 그러한 태도
략을 위해서는 중화전략에서의 일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 및 행태를 강화하고 영속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Bartels 2002).
간이론에서 설명하는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을 고려하건대(Downs 1957; Enelow 정치이념 및 정당일체감에 대한 고전적 논의를 따른다면, 진보적인 정치이
and Hinich 1982), 틈새정당은 중화전략의 대상인 가까운 정당으로부터 지지층 념을 가진 유권자들은 진보적인 정책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을 지지
을 가져와야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중화전략을 위해서 오히려 유인전략에서의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선거에서도 진보정당에게 투표하는
일부 손실을 감수하는 전략을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다. 행태를 보임으로써 정치이념 및 정당일체감에 따른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이
요컨대, 진보정당 등 신생정당의 등장 및 생존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사회균 는 순수투표(sincere voting) 또는 일관투표(straight-ticket voting)로서 설명될 수
열이론과 제도주의)은 구조론적 혹은 제도결정론적 설명으로 인해 한계점에 직 있다. 즉, 진보적인 정치이념을 가지기 때문에 진보정당에 대한 애착감이 강해
면했으며(Lipset and Rokkan 1967; Duverger 1964; Lijphart 1994), 이에 따라 정당 간 지며, 궁극적으로 이는 투표선택으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정
경쟁의 논리를 통해 그 설명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Meguid 2005; 2007). 당일체감은 ‘추동되지 않는 추동자(unmoved mover)’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적 태
그러나 후자의 이론 역시 미시적 수준에서 진보정당을 비롯한 신생정당에 대 도와 행태에서의 일관성을 담보해주는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한 유권자 분석이 부재함에 따라 제한적인 설명만 제공해줄 수 있다는 비판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정치이념, 정당일체감, 그리고 투표선택 간 관계가 상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히 안정적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이념이 항상 투표선택으로까지 이
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이념을 토대로 형성된 정당일체감의 대상이 되는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도 목격되며, 이는 특히 진보정당을
2. 누가 그리고 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가? 비롯한 군소정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 중 하나
가 바로 분할투표(split-ticket voting)인데, 이는 정치이념이나 정당일체감이 투표
그렇다면 미시적 수준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및 정치적 수요는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론적 관점에서 이례적 현상으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 달리 말해서, 누가 그리고 왜 진보정당을 지지할까? 로 간주되기도 한다(Bartels 2000). 한국에서 나타나는 분할투표는 두 거대정당
진보정당은 진보적인 이념의 선명성을 바탕으로 진보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 간 분할투표보다 주로 거대정당과 군소정당 간 분할투표의 형태로 나타난다.1
시해주는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념적인 요인이 진보정당에 대 이는 듀베르제(Duverger 1964)가 제시한 바와 같이 군소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한 지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정치이념은 개인의 정치적 세계관을 나타내주는
신념들의 안정화된 집합체라고 정의될 수 있으며(Campbell et al. 1960), 이와 유
사하게 컨버스(Converse 1964)는 신념체계(belief systems)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 1 물론 한국선거에서도 두 거대정당에게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행사하는 견제균형 분할
투표자가 존재한다(박찬욱 2004). 그러나 본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이기 때
써 그것이 개인이 가진 다양한 관념적 요소들이 고유한 형태로 결집된 상태라 문에 군소정당에 대한 분할투표로 논의를 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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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한다.1 아래의 <표 1>은 정당일체감에 따른 응답자의 구성을 보여준다. 해 확인된 정당일체감에 따른 정치이념의 차이를 조사연도에 따라 보여준다.
예상한 바와 같이, 보수정당에 일체감을 가지는 응답자들은 일관되게 보수
<표 1> 정당일체감에 따른 응답자 구성 적인 정치이념을 보여준다. 그들의 정치이념은 16년의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3.34의 값을 가짐으로써 이념 스펙트럼에서 중도를 의미하는 3보다 더 우측
정당일체감 N %
에 위치한다. 따라서 무당파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정당에 일체감을 가지
무당파 3,827 20.04
는 응답자들보다 더 보수적이며, 그들의 보수성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
보수정당 6,923 36.25
먼저, 정치이념은 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개인의 정치적 세계관을 반영해준 <그림 1> 정당일체감에 따른 정치이념
다는 점에서 정치적 태도 및 행태의 토대가 된다(Campbell et al. 1960; Converse
1964). KGSS에서는 “귀하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진보적 또는 보수
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문항을 통해 응답자의 정치이념을 직접 물
어보며, 응답자는 ‘매우 진보적(1)’에서 ‘중도(3)’를 거쳐 ‘매우 보수적(5)’까지의
응답범주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아래의 <그림 1>은 KGSS 누적데이터를 통
1 각각의 연도별 KGSS 설문문항에 응답으로 포함된 정당들이 이러한 구분에 따라 어디에 분류되
었는지 명확히 밝히기 위해 이를 <부록 1>에 첨부한다. 특히, 본 연구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기타정당을 구분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데, <부록 1>에서의
구분은 진보정당 및 제3정당 또는 정당체계에 관한 선행연구들과 큰 차이가 없다(노기우·이현우
2019; 김소정·윤종빈 2019). 출처: 한국종합사회조사 누적자료(200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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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정치이념이 민주당 다(강원택 1998; 2004; 김소정·윤종빈 2019). 그러나 이러한 판단 역시 경험적인 검
을 지지하는 유권자들과 차이가 거의 없거나 차이가 있더라도 매우 미약한 증이 요구된다. 즉, 앞서 소개된 메귀드(Meguid 2005; 2007)의 이론에 따르면, 틈
수준이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으로는 최초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입에 성공했 새정당은 기존의 주류정당들이 형성해 온 제도권 정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던 지난 2000년대 초에는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간 진 이슈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이슈에 집중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슈를 선점
정치이념이 다소나마 차별적이었으나, 그 이후 그러한 이념적 차이는 급격히 하고자 하는 틈새정당은 기존의 주류정당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전략을 유도
약화되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17대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급락 함으로써 선거에서의 득표를 통해 그들의 생존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했던 2006년~2008년 즈음하여 두 정당일체감의 집단 간 이념적 차이는 사실 따라서 한국의 정당 역시 기존의 보수정당과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 의해서
상 사라진다. 실제로, 두 집단 간 평균비교를 위해 실시한 연도별 t-검정(yearly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던 주변화된 이슈들에 더욱 집중함으로써 그 생존전
t-test)에 따르면, 17대 총선 직전과 직후인 2003년(t=2.6835, p=0.0076)과 2005년 략을 모색할 수 있다. 바꿔 말해서, 유권자들이 단순히 일차원적인 정치이념
(t=2.3496, p=0.0191),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등장한 2011년(t=2.81, p=0.0052) 등 3개 의 스펙트럼 상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몇몇 주요 이슈에서 차별적인 태도를 가
년을 제외하면 통계적으로도 이념적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추가적으로, 연 짐에 따라, 이로 인해 진보정당을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
도별 t-검정이 아닌 전체연도를 종합한 t-검정(pooled t-test)을 실시해본다. 비록 라서 아래에서는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간 이슈에 대한 태도가
본 연구의 데이터가 패널데이터가 아니라는 점과 연도별로 정치적 상황이 상 차별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검증을 실시한다.
이하다는 점 등 일부 한계가 존재하지만, 14개년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패턴 한편, <그림 1>에서 무당파의 정치이념은 중도를 의미하는 3의 주변에 머물
을 살펴보기 위한 전체연도 t-검정 결과에 따르면, 2003년이 포함될 경우에만 고 있으며, 16년의 기간에 걸쳐 누적된 정치이념의 평균값도 3.04로 확인된다.
이념적 차이가 나타나는 반면 2003년을 제외한 그 이후의 모든 연도에서는 이처럼 무당파가 보수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및 진보정당 지지자 사이에 위치
1
이념차가 확인되지 않는다. 하고 있는 것은 그림을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타정당의
따라서 이는 진보정당의 정치이념이 민주당이라는 주류정당과 차별적이지 경우 정치이념의 분포가 매우 불안정하고 일관되지 못하다. 이는 <부록 1>에
못함에 따라, 그들이 표방하는 이념적 선명성 혹은 순수성이 사실상 부각되 서 제시된 바와 같이 기타정당으로 분류된 각각의 정당들이 이념적으로 매우
지 못하는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진보 이질적인 사실에서 기인한다.
정당에 대한 지지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주류정당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에
서 그칠 수 있으며, 설사 진보정당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론적 논의
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념적 선명성의 부재로 인해 순수한 지지로 나타나 2. 이슈태도: 진보정당 vs 민주당 지지자
기보다 오히려 전략적 차원에서 일시적 지지로서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단순히 이념적인 순수성 또
는 이념적 충성심으로부터 비롯되기보다, 틈새정당의 개념에 대해 메귀드
1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간 연도별 평균차이검정(t-test) 결과는 <부록 2>에 제시한다.
(Meguid 2005; 2007)가 정의한 바와 같이, 특정 이슈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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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간 이슈에 의 경우 한국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여당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따른
대한 차별적인 태도가 나타나는지 분석해본다. 더욱이, 진보정당의 잠재적 지 반사적인 저항투표의 성격을 지닌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한 것이다(강원택 1998;
지자들은 이념적으로 먼 보수정당에서보다 이념적으로 근접한 민주당으로부 2004; 김소정·윤종빈 2019). 사회경제적 변수로는 교육수준, 소득수준, 취업여부,
터 옮겨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Enelow and Hinich 1984; 강원 주관적 계층인식, 성별, 그리고 연령이 포함된다.1
택 2004), 진보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 이슈태도에 대한 분석은 진보정당의 먼저, <표 2>는 복지이슈에서 진보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 태도의 차이
미시적 토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아래의 분석에서는 진 를 보여준다. 복지태도는 다음의 세 가지 문항을 통해 측정된다: 1) “고소득자
보정당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슈들에 집중하여 분석을 실시 와 저소득자 간 소득차이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2) “정부는 실업
하는데, 여기에는 복지, 노동, 여성 이슈에 더하여, 북한 및 통일에 대한 태도 자들도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3) “정부
와 각 분야별 정부지출에 대한 태도가 포함된다. 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 이 문항들이 함께 설문에
그러나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KGSS 누적데이터에서 서로 다른 이슈분야에 포함된 연도는 2009년, 2011년, 2014년의 3개년이며, 이는 모두 ‘매우 반대’(1)
서의 태도를 묻는 문항이 가진 한계점을 미리 지적해두고자 한다. 비록 KGSS 부터 ‘매우 찬성’(5)까지의 5점 척도로 측정된다. 따라서 앞의 두 문항은 높은
누적자료가 16년의 기간에 걸쳐 상당히 일관된 문항들을 포함함으로써 통시 값을 가질수록, 마지막 문항은 낮은 값을 가질수록 친 복지성향의 태도를 가
적 분석에 매우 적합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지만, 일부 문항에서는 그 일관성을 진다.
담보하지 못한다. 예컨대, 복지이슈와 여성이슈에 대한 태도를 측정할 수 있 이를 염두에 두고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3개년을 통합한 분석에서 복지이
는 문항들은 3개년에만 포함되어 있으며, 분야별 정부지출 태도는 4개년, 그리 슈에 대한 태도는 진보정당 또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고 노동이슈와 북한 및 통일이슈에 대한 문항은 각각 9개년과 12개년에 포함 가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패턴은 세 가지 서로 다른 문항에서 동
되어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이슈에 따라 시간적 일관성이 부재하다는 자료 일하게 확인된다. 다만, 연도별로 나누어 살펴보았을 때, 2011년에만 소득격
의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에서는 단일 연도에서만 이용 차 해소를 위한 정부개입과 관련하여, 진보정당과 민주당 간 유의미한 차이
된 설문문항을 배제하고 복수의 연도에 일관되게 포함된 설문문항들을 이용 가 발견된다. 구체적으로, 다른 변수들을 평균값에 고정한 채 이 변수(복지태도
함으로써, 누적데이터의 시간적 범주를 최대한 활용하여 앞서 언급된 5개 이 1)를 최솟값(‘매우 반대’)에서 최댓값(‘매우 찬성’)으로 변화시키면, 진보정당 지지
슈 분야에서의 진보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 태도차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의 예측확률 변화는 16%p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유독 2011년에만 이와
두 정당의 지지자들 간 차이를 분석하는 아래의 통계모델에서 종속변수는
진보정당을 지지할 경우 1, 민주당을 지지할 경우 0으로 조작화한다. 따라서
이항 로지스틱 회귀분석(binary logit model)을 이용한다. 또한 각각의 이슈분야
1 구체적으로, 국정운영 평가는 매우 못함(1)에서 매우 잘함(5)의 5점 척도, 교육수준은 고졸미만,
에 대한 태도가 독립변수로서 포함되며(문항은 아래에서 소개), 이에 더하여 정치 고졸, 대재 및 대졸, 대학원 이상 등 4점 척도, 소득수준은 월평균 가구소득으로서 소득 없음(0)
적 변수와 사회경제적 변수를 통제변수로서 포함한다. 정치적 변수는 위에서 부터 50만원 간격으로 1,000만 원 이상(21)까지의 22점 척도, 취업여부는 이항변수, 주관적 계
층인식은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의 10점 척도, 성별은 남성(0)과 여성(1)의 이항 변수, 그리고 연
사용된 정치이념과 함께 현 정권의 국정운영 평가를 포함하는데, 특히 후자 령은 연속형 변수로서 측정한다.
180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81
같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에서 복지태도의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은 당시 무 이어서, <표 3>은 진보정당과 민주당 간 지지자들 사이에 노동이슈에서의
상급식으로 복지이슈가 매우 쟁점화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태도 차이가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노동태도는 다음의 두 가지 문항을 토대
치이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민주당에 대한지지 로 측정한다: 1) “귀하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신뢰하
사이에서 유의미한 변수가 아닌 것으로 재확인된다. 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2) “귀하는 한국의 노동조합활동이 어느 정도 온건
또는 강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에 관한 두 문항은 9개년에 포함됨으
<표 2> 복지태도(2009, 2011, 2014년) 로써 앞선 복지태도보다 더 높은 연도별 일관성을 가진다. 문항에 대한 응답
은 ‘거의 신뢰하지 않음’(1)부터 ‘매우 신뢰’(3)까지의 3점 척도, 그리고 ‘매우 온
Pooled 2009 2011 2014
건’(1)부터 ‘매우 강경’(5)까지의 5점 척도로서 각각 측정된다.
0.110 0.072 0.374* -0.047
복지태도1
(0.077) (0.115) (0.173) (0.151) 9개년을 모두 포함한 통합모형에 따르면 진보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 노
0.082 -0.091 0.113 0.234 동이슈에서의 태도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확인된다. 즉, 노동조합
복지태도2
(0.078) (0.122) (0.165) (0.152)
-0.076 -0.188 -0.036 0.001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한국의 노동조합활동이 온건
복지태도3
(0.066) (0.104) (0.137) (0.123) 하다고 생각할수록 민주당보다 오히려 진보정당을 더욱 지지하는 방향으로
-0.037 0.052 -0.281 -0.055
이념 나타난다. 예측확률로서 살펴보면, 다른 변수들을 평균값에 고정시킨 상태에
(0.067) (0.095) (0.154) (0.136)
-0.096 -0.015 -0.276 -0.134 서 노동조합 신뢰수준과 노조활동에 대한 평가가 최솟값에서 최댓값으로 변
국정운영평가
(0.075) (0.118) (0.163) (0.139)
-0.060 -0.190 -0.169 0.138
할 때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확률은 각각 15.2%p 증가 또는 7.5%p 감소하는
교육수준
(0.103) (0.151) (0.241) (0.193) 것으로 확인된다.
0.031* 0.004 0.103* 0.030
소득수준
(0.014) (0.022) (0.033) (0.025)
한편, 이를 연도별로 나누어 살펴보았을 때 노동태도에서의 뚜렷한 연도별
0.178 0.239 0.245 0.137 패턴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통제변수로서 포함된 변수 중에서 현 정권에
취업여부
(0.144) (0.216) (0.336) (0.263)
대한 국정운영 평가가 매우 일관되게 유의미한 수준에서 나타나는 것이 눈에
-0.078 -0.068 -0.051 -0.101
주관적 계층
(0.046) (0.070) (0.103) (0.080) 띈다. 이는 선행연구들이 밝힌 바와 같이 집권 여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진
-0.084 0.108 -0.194 -0.395
여성 보정당에 대한 반사적 지지로서 표현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라고 할 수 있
(0.132) (0.194) (0.294) (0.246)
-0.013* -0.020* -0.031* -0.001 는데(강원택 1998; 2004; 김소정·윤종빈 2019), 특히 보수정당이 집권한 2008년 이
연령
(0.005) (0.008) (0.014) (0.009)
후보다 민주당이 집권한 그 이전의 시기에서 이러한 패턴이 더욱 뚜렷하게 나
연도 FE Yes No No No
지역 FE Yes Yes Yes Yes 타난다는 점에서 이는 진보정당에 대한 미시적 지지는 이념적으로 가까운 민
N 1,469 547 387 535 주당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로그우도 -772.2 -342.7 -165.4 -237.1
이념은 연도별 분석에서 유의미한 변수로서 확인되지 않는다. 비록 통합모형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지역 고정효과는 포함되었지만 보고되지 않음. 상수는 생략됨.
* p<0.05, ** p<0.01 (two-tailed). 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만, 이는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적
182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83
인 시기를 보내던 17대 총선 직후의 2005년에 국한된 현상을 보이며, 실제로 취업 0.105 -0.502 0.190 0.205 0.122 -0.164 0.336 0.323 0.176 -0.074
2005년을 제외한 통합모형에서는 이념의 차별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부 (0.078) (0.292) (0.198) (0.209) (0.222) (0.246) (0.260) (0.224) (0.335) (0.329)
계속해서, <표 4>는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들 간 여성이슈에 대 주관적 -0.044 -0.160 -0.046 -0.043 -0.028 -0.106 0.182* -0.056 -0.097 0.020
한 태도에서 차이가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여성이슈 특히, 여성의 역할에 대 계층 (0.026) (0.111) (0.066) (0.074) (0.073) (0.084) (0.092) (0.071) (0.103) (0.114)
한 태도는 다음의 두 가지 문항을 통해 측정한다: 1) “취업하고 있는 어머니도 -0.126 -0.790* -0.260 -0.157 -0.162 -0.373 0.044 0.150 -0.187 0.268
여성
(0.074) (0.283) (0.189) (0.197) (0.220) (0.243) (0.238) (0.199) (0.296) (0.311)
취업하지 않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녀와 따뜻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2) “전반적으로, 여성이 전일제로 취업을 하면 가정생활을 상당히 연령
-0.018** -0.019 -0.024** -0.015 -0.015 0.004 -0.053** -0.018* -0.019 0.007
(0.003) (0.013) (0.008) (0.009) (0.010) (0.011) (0.011) (0.008) (0.014) (0.013)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두 문항은 2003년, 2012년, 2016년 등 3개년에 걸쳐
동일하게 측정되었다. 이에 대한 응답은 ‘매우 반대’(1)부터 ‘매우 찬성’(5)까지 연도 FE Yes No No No No No No No No No
지역 FE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의 5점 척도로서 측정되는데, 특히 후자의 문항을 역코딩(reverse-coding)함으로
N
4,208 397 617 563 538 366 406 524 365 432
써 두 문항 모두 값이 높을수록 여성취업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로그
-2398.1 -180.9 -368.7 -341.7 -304.1 -234.8 -232.9 -326.9 -165.0 -158.1
우도
을 의미한다.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지역 고정효과는 포함되었지만 보고되지 않음. 상수는 생략됨.
* p<0.05,
** p<0.01 (two-tailed).
<표 3> 노동태도(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1, 2013년)
Pooled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1 2013
노동 0.359** 0.388 0.481** 0.290 0.537** 0.320 0.211 0.512** 0.136 0.124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3개년을 통합한 분석에서는 진보정당 지지자와 민주
태도1 (0.060) (0.230) (0.155) (0.163) (0.168) (0.190) (0.206) (0.169) (0.247) (0.283)
당 지지자 간 여성취업의 태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 연
노동 -0.088* -0.356* 0.045 -0.189 -0.041 -0.188 -0.131 0.129 -0.353* -0.326
태도2 (0.037) (0.156) (0.097) (0.107) (0.104) (0.117) (0.122) (0.099) (0.146) (0.166) 도별로 살펴봤을 때 2003년의 경우에만 한 가지 문항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확인된다. 즉, 자녀와의 관계에서 취업여성과 미취업여성 간 큰 차이가 없다
-0.084* -0.199 -0.056 -0.222* -0.164 -0.039 0.025 0.047 -0.286 -0.108
이념 고 생각할수록 민주당보다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의 확률이 높아진다. 구체적
(0.038) (0.138) (0.098) (0.112) (0.112) (0.125) (0.124) (0.099) (0.154) (0.182)
소득 0.010 0.111* -0.025 -0.008 0.009 0.024 -0.033 -0.0006 0.092** 0.023
이후 2000년대 초반에 다시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던 사회경제
수준 (0.009) (0.042) (0.028) (0.025) (0.028) (0.028) (0.031) (0.023) (0.033) (0.034) 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00년대 후반부터 그 증가추세
184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85
변수는 여기서도 다소 일관되게 유의미한 것으로 확인되며, 진보정당과 민주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지역 고정효과는 포함되었지만 보고되지 않음. 상수는 생략됨.
* p<0.05,
당 간 정치이념에서의 차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 p<0.01 (two-tailed).
0.339* 0.255 0.312 0.596* 의 국가를 선택할 경우 0을 부여했다. 또한, 통일에 대한 태도는 “귀하는 남북
교육수준
(0.131) (0.203) (0.269) (0.269)
통일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의 문항을 이용하며, 이는 ‘전혀
0.044* 0.093* 0.017 0.048
소득수준 필요하지 않다’(1)에서 ‘매우 필요하다’(4)까지의 4점 척도로 측정된다. 북한태도
(0.019) (0.041) (0.036) (0.033)
취업여부
-0.156 -0.450 0.223 -0.137 에 관한 두 문항은 모든 연도에 포함되었으나, 통일태도의 문항이 2004년과
(0.182) (0.281) (0.366) (0.370)
2005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12개년의 자료를 활용하여 분석을 실
-0.081 -0.176 0.080 -0.208
주관적 계층
(0.062) (0.104) (0.112) (0.124) 시한다.
-0.425* -0.834** -0.445 -0.157
여성 분석결과, 12개년 통합자료에 대한 모델에서 북한에 대한 태도는 진보정당
(0.173) (0.275) (0.340) (0.360)
상이라고 생각할수록, 그리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주변 국가들보 Pooled 2003 2006 2007 2008 2009 2010
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느낄수록 민주당보다 진보정당을 더욱 지지하는 것 -0.01** -0.03* -0.01 -0.0009 -0.05** -0.01 -0.001
연령
(0.00) (0.01) (0.01) (0.01) (0.01) (0.00) (0.01)
으로 확인된다. 예측확률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차이를 살펴보면, 다른
연도 FE Yes No No No No No No
변수들을 평균값에 고정시킨 상태에서 북한을 적대대상으로 생각할 경우 진 지역 FE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보정당을 지지하는 확률이 약17%인 반면, 협력대상 또는 지원대상으로 여길 N 5,253 394 550 356 395 523 441
로그우도 -2546.5 -175.1 -307.1 -229.8 -222.0 -327.0 -167.8
경우에는 21%가 넘는 확률로 나타남에 따라 그 차이가 약 4%p로 계산된다.
또한, 다른 주변국들보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느낄 경우에 진보정당을 지지 2011 2012 2013 2014 2016 2018
할 확률은 약 9%p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태도와는 0.42 -0.0005 0.15 0.51* -0.19 0.80**
북한태도1
(0.23) (0.25) (0.25) (0.20) (0.30) (0.30)
대조적으로, 통일에 대한 태도는 진보정당과 민주정당에 대한 지지에 있어서
0.52 1.40** 0.46 0.48 0.70 0.63*
유의미한 차별성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표 5>에서도 현 북한태도2
(0.37) (0.36) (0.37) (0.35) (0.45) (0.29)
-0.69* -0.02 -0.25 0.08 0.08 -0.30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지역 고정효과는 포함되었지만 보고되지 않음. 상수는 생략됨. * p<0.05, **
여성 -0.10 (0.07)
(0.29) (0.21) (0.24) (0.24) (0.20) (0.29) p<0.01 (two-tailed).
188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89
정권의 국정운영 평가는 유의미한 것으로 확인되며, 특히 연도별 분석에서는 정치이념의 차별성은 나타나지 않으며,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민주당의 집권
민주당 집권 시기에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리고 이념은 여기서도 통계적 시기를 중심으로 유의미하게 확인된다.
유의성을 가지지 못한다.
<표 6> 분야별 정부지출 태도(2006, 2014, 2016, 2018년)
복지, 노동, 여성, 그리고 북한 및 통일이슈에 이어서, 끝으로 분야별 정부
Pooled 2006 2014 2016 2018
지출에 대한 태도를 통해 진보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 차이가 나타나는
0.136 0.243 -0.443* 0.087 0.423*
정부지출-환경
지 분석해본다. KGGS에서는 “각 분야에 대해 정부가 지출을 얼마나 더 늘려 (0.092) (0.165) (0.190) (0.288) (0.183)
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귀하가 ‘훨씬 더 늘려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0.198 0.009 0.638** 0.002 0.266
정부지출-보건
(0.102) (0.182) (0.222) (0.276) (0.212)
세금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라는 문항을 통해 8가 -0.193* -0.231 -0.473 -0.454*
0.037
정부지출-치안
지 정부지출 분야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에 대한 응답은 ‘훨씬 더 줄여야’(1)에 (0.087) (0.146) (0.173) (0.276) (0.201)
0.140 0.108 0.230 0.217 0.079
서 ‘훨씬 더 늘려야’(5)의 5점 척도로서 측정되었으며, 이는 2006년, 2014년, 정부지출-교육
(0.076) (0.133) (0.147) (0.216) (0.167)
2016년, 2018년 등 4개년에 걸쳐 일관되게 측정되었다. -0.135* -0.149 -0.165 -0.147 -0.216
정부지출-국방
(0.064) (0.109) (0.133) (0.193) (0.139)
<표 6>은 각 분야별 정부지출에 대한 태도가 민주당보다 진보정당을 지지
-0.075 0.083 -0.299 -0.221 0.010
할 확률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는지 보여준다. 4개년을 통합한 모형에 따르면 정부지출-노인연금
(0.083) (0.148) (0.174) (0.221) (0.181)
오직 치안과 국방 분야의 정부지출에서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이 확 정부지출-실업수당
0.064 0.162 0.182 -0.038 -0.307
(0.079) (0.130) (0.173) (0.240) (0.172)
인된다. 즉, 치안과 국방 분야의 지출을 줄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일수
0.036 0.110 -0.012 0.258 -0.033
정부지출-문화예술
록 민주당보다 진보정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게 나타난다. 이를 구체적으로 (0.077) (0.135) (0.150) (0.264) (0.157)
살펴보면, 다른 변수들을 평균값에 고정한 채 치안과 국방 분야의 지출에 대 -0.079 -0.176 -0.042 -0.113 0.066
이념
(0.070) (0.113) (0.141) (0.222) (0.168)
한 응답을 ‘훨씬 더 늘려야한다’에서 ‘훨씬 더 줄여야한다’로 변화시키면, 진보 -0.238** -0.271* -0.104 -0.351 -0.347*
국정운영평가
정당에 대한 지지의 확률이 각각 약 12.4%p와 8%p 증가하는 것으로 계산된 (0.068) (0.116) (0.140) (0.247) (0.152)
0.225* 0.062 0.136 0.466 0.289
다. 한편, 그 외의 분야들에 대한 통계분석 결과를 좀 더 살펴보면, 환경 분야 교육수준
(0.099) (0.182) (0.198) (0.271) (0.199)
는 연도별 분석에서 서로 다른 회귀계수의 방향이 확인됨에 따라 그 일관성 0.017 0.014 0.031 0.058 -0.003
소득수준
(0.013) (0.028) (0.026) (0.033) (0.027)
이 부재하며, 보건 분야는 오직 2014년에만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교육,
0.090 0.175 0.061 -0.044 0.195
취업여부
노인연금, 실업수당,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지출의 태도차이에서는 진보정당 (0.132) (0.223) (0.268) (0.377) (0.305)
지지와 전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인되지 않으며, 특히 실업수당에서 통계 -0.074 -0.036 -0.109 -0.287* -0.065
주관적 계층
(0.042) (0.073) (0.082) (0.131) (0.089)
적 유의미성의 부재는 앞선 분석에서와 같이 복지태도는 진보정당과 민주당 -0.086 -0.045 -0.405 0.181 -0.212
여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차별적이지 않음을 재확인해준다. 추가적으로, 여기서도 (0.124) (0.213) (0.255) (0.368) (0.276)
190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91
<표 7> 투표선택(2014, 2016, 2018년) <표 7>은 이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여준다.1 결과변수에서의 기준범주는 보
민주당/보수정당 진보정당/보수정당 기타정당/보수정당 수정당이며, 독립변수로 포함된 정당일체감의 기준범주는 민주당이다. 따라서
연도 FE Yes
지역 FE Yes 1 하우스만-맥파든 검정(Hausman- McFadden test)에 따르면, <표 7>에 제시된 다항 로짓 모델
2,186 은 무관한 대안들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IIA) 가정에 위배되지 않는다.
N 로그우도
-994.4
2 이러한 해석은 투표선택에 대한 KGSS의 문항이 지역구와 비례투표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지역 고정효과는 포함되었지만 보고되지 않음. 상수는 생략됨. 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즉, 이는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비례투표에서와 달리 지역구 투표에서
정당일체감의 기준범주는 민주당임. 진보정당 소속의 후보가 없음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그나마 가까운 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을 배
* p<0.05, 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의 여러 분석들이 보여주듯, 진보정당과 민주
** p<0.01 (two-tailed). 당 간 이념적 차별성의 부재, 이슈태도 차별성의 미약함, 그리고 투표선택에서의 차이의 부재는
진보정당의 미시적 토대가 빈약하다는 것에 대한 경험적 증거가 될 수 있다.
194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95
의당의 지지자들이 중도에 더 가까운 아이러니한 이념분포를 보여준다.1 요컨 이어서, 앞선 KGSS 분석에서와 유사하게 21대 총선에서 복지, 노동, 젠더/
대,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이념성 선명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문화, 북한, 그리고 환경 분야에서 정의당 지지자들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간 태도차이가 존재하는지 분석해본다. 분석의 결과는 <표 9>에 제시되어 있
<표 9> 이슈태도 비교(21대 총선): 정의당 vs 더불어민주당 으며, 여기에는 각 항목에 대한 두 집단의 평균값과 그러한 평균값이 통계적
으로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t-검정의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각 문항에 대
더불어
이슈 (응답척도) 정의당 t
민주당 한 응답 값이 높을수록 강한 찬성을 의미한다. 표에 따르면, 두 정당 지지자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 (4점) 2.80 2.53 1.67† 들 간 이슈태도 차이는 오직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서만 나타나며, 이마저도
복지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4점) 3.05 3.17 -0.79 0.1의 유의수준에서 확인될 뿐이다. 따라서 사실상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지
복지 부의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4점) 3.17 3.32 -1.05 지자들 간 이슈태도의 차이는 21대 총선에서도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볼 수
소득의 분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재벌과 대기업의 지배 있다. 말하자면, 정치이념에서 뿐만 아니라 이슈태도에서도 진보정당인 정의
3.18 3.00 1.26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4점)
당의 독립적인 미시적 지지 기반은 발견되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 (5점) 3.82 3.89 -0.29
참고: 로짓 회귀계수와 표준오차. 정치이념, 국정운영평가, 그리고 지역 고정효과를 포함한 사회경제적 변수들의
추정계수와 상수는 생략됨. 정당일체감의 기준범주는 민주당임.
1 21대 유권자 의식조사에서 정의당을 지지하는 응답자의 수가 28명으로서 전체 표본의 약 3%를 * p<0.05,
차지함에 따라 통계적 추론에 있어서 분명 비효율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따라서 해당 자료를 이 ** p<0.01 (two-tailed).
용하는 아래의 분석을 해석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한 채, 전반적인 패턴만을 살피기로 한다.
198 OUGHTOPIA 35:2 한국정치의 유권자 지형: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와 다당제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99
끝으로, 서로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실제 21대 총선에서 투표행 적으로 진보정당에게 유리한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동일한 패턴으로 확인된
태의 차이가 나타나는지, 특히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투표선택이 더 다. 즉, 비록 이번 21대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됨에 따라 두
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선택과 차별적인지 살펴보기 위해 다항 로지스틱 거대정당이 각각 위성정당을 창당하여 비례대표 투표에서 정의당의 입지를
회귀분석을 실시한다. 여기서의 종속변수는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더불어민 좁힌 측면은 분명 존재하지만,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투표로서 이념적 순수
주당(더불어시민당), 그리고 정의당으로 구성되며, 21대 유권자 의식조사에서는 성 또는 정당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 비례대표 투표에서 조차도 정의당 지
지역구 투표와 비례 투표에서의 선택을 모두 물었기 때문에 각각에 대해서 서 지자들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간 투표선택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
로 다른 다항 로짓 분석을 실시한다. 독립변수로는 정당일체감에 더하여, 정 한 수준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치적 변수로서 정치이념과 문 대통령 국정운영평가, 그리고 사회경제적 변수
로서 교육수준, 소득수준, 취업유무, 주관적 계층인식, 성별, 연령, 출신지역이
포함된다.1
<표 10>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와 비례 투표에 대한 다항 로짓 분석
의 결과를 보여준다.2 앞선 KGSS 누적데이터에 대한 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종속변수의 기준범주는 두 모델에서 각각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
당이며, 독립변수인 정당일체감의 기준범주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여기서도 정의당 지지자들의 투표행태는 기준범주인 더불어민주당 지
지자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
파 사이에,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와 미래통합당 지지자 사이에는 지역구 투표
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하
는 것이 차별적으로 확인되지만, 민주당 지지자와 정의당 지지자 사이에는 그
러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러한 패턴은 지역구 투표보다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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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간 정치이념 평균차이 검정 This study delves into political support for progressive parties by
연도 민주당 진보정당 t
examining political attitudes of Korean voters. In spite of reforms
2003 2.923 2.608 2.683** of electoral systems, progressive parties in South Korea frequently
2004 2.770 2.649 1.597 face electoral difficulties in political competition. By analyzing the
2005 2.878 2.704 2.349*
accumulated data of Korean General Social Survey (2003-2018), we
2006 2.835 2.678 1.917†
reveal that there is no ideological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who
2007 2.702 2.726 -0.250
2008 2.910 2.839 0.737 support progressive parties and Democratic parties in South Korea.
2009 2.746 2.791 -0.526 Likewise, the lack of difference is also found in political attitudes in
2010 2.741 2.736 0.035
several issues. Moreover, they have similar patterns of vote choices in
2011 2.800 2.477 2.810**
2012 2.747 2.617 0.860
elections. Data from the 21st Korean General Election in 2020 also show
2013 2.559 2.424 1.204 the same patterns of empirical evidence. Thus, we argue that progressive
2014 2.561 2.473 0.866 parties in South Korea have very weak individual-level support. And
2016 2.629 2.528 0.8358
we suggest that the parties should pursue ideological purity and issue
2018 2.446 2.512 -0.647
ownership, which are more important than institutional reforms, in order
참고: † p<0.1, * p<0.05, ** p<0.01 (two-tailed).
to establish individual-level political foundation.
■ 투 고 일 2020년 08월 03일 Keywords: Korean politics, Korean voters, Progressive party, Political
■ 심 사 마 감 일 2020년 10월 20일
ideology, Vote choice
■ 수 정 일 2020년 10월 21일
■ 최종게재확정일 2020년 10월 21일
210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11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이동수
국문초록
21c엔 국가를 단순히 정부(government)가 보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아니라 다양한 층위와 형태를 아우르는 통 들이 공동체를 구성해 자기통치를 하는 것이
치성(governmentality) 개념으로 분석할 필 다. 따라서 지도자의 자질이나 기구보다, 공
요가 있다. 통치성은 푸코(Foucault)가 통치 동체의 정치적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제도
(govern)와 사고양식(mentality)을 연결시킨 그리고 자기통치의 주체이자 대상인 시민들
개념으로 통치의 성질이나 성격을 지칭한다. 의 자질과 덕성이 중요하다. 요컨대 자유, 평
그는 근대국가 초기엔 사목적 권력에 기반한 화, 법치, 권력분립, 혼합정, 공동선, 애국심
통치성, 17-18c엔 국가이성과 규율적 권력 등이 시민성에 기반한 공화주의적 통치성의
에 근거한 국민국가적 통치성, 18-19c부터 주된 요소이다. 이것이 잘 작동한 예로는 피
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으로 변화했으며, 인간 렌체와 베네치아가 있으며, 여기서 교훈을
은 통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하지 얻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
만 필자가 보기에, 푸코는 르네상스기 이탈 할 필요가 있다.
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주의적 통치성을 간과
함으로써 통치성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
라보았다. 공화주의적 통치성은 전근대 왕이 국문주제어: 통치성, 푸코, 공화주의, .
나 사제가 사용했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돌 국가이성, 자유주의
**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
212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13
2 인구는 푸코가 인간, 인류 혹은 인민을 대신해 사용하는 용어로서, 인간의 존엄성, 계급적 차이
1 푸코는 1976년 1월부터 1979년 4월까지 콜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통치성과 혹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전체 인구집단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214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15
력이며, 현재의 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문제점을 보완할 새로운 통치성을 탐색 고, 그 특성을 르네상스기 대표적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인 피렌체와 베네
하는 것이다. 치아의 시민적 문화, 제도, 역사를 살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공화주의적
필자는 이런 새로운 통치성의 단초를 역사 속에서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 통치성을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서론에 이어, 2장 푸코
그것은 푸코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지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에 있어서 통치성, 3장 공화주의적 통치성, 4장 공화주의적 통치성의 예로서
1
서 나타났던 공화주의적 통치성(republican governmentality) 이다. 즉 근대 자유 르네상스기 피렌체와 베네치아 공화정에 대해 알아보고, 마지막 결론을 맺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공화주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 고자 한다.
날 서구사회에서 공화주의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공
화주의는 원래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등장했다가
근대 자유민주주의 열풍 속에서 잊혀졌던 것인데, 현대사회에서 자유민주주
의의 폐해가 드러나고 또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공산주의나 신자유주의, 포
퓰리즘 역시 그 한계가 명확해 지자 1990년대부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
였다.
특히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공화주의는 근대 자유민주주의
등장에 밑바탕이었으며, 근대 국민국가를 공화국 체제라고 부르는 원인이기
도 하다. 이때 공화주의 도시국가들은 중세와 달리 새로운 공화주의적 통치
성을 활용했는데, 이는 부족주의(tribalism)를 벗어나 시민주의(civicism) 문화로
의 이행을 통해 목자나 군주가 백성을 돌보는 통치성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
체를 공적으로 구성하는 시민적 권력(civic power)에 근거한 통치성으로, 통치성
자체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공동지배 혹은 자기통치 형태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 글은 공화주의적 통치성을 푸코가 빠트린 중요한 통치성 개념으로 보
Ⅱ. 푸코에 있어서 통치성1 푸코는 이런 기존의 국가개념을 해체시키면서 통치성으로 대체한다. 그에게
통치성이란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푸코는 초기에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을 주로 권력 개념에 의존하였다.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 절차, 분석, 고찰, 계측, 전술의
기존의 권력론이 국가나 지배자가 행사하는 물리력, 강제력, 행정력을 강조 총체”(Foucault 2007, 108)를 의미한다. 이는 국가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권
한 반면, 그는 모든 인간-사회관계에 내재하는 힘의 작용의 총체로서의 권력 력과 통치라는 소프트웨어를 보다 총괄적으로 덧붙인 개념이다. 푸코는 이
을 다루었다. 따라서 권력은 단순히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 분석틀에 따라 역사적으로 정치체들의 권력형식과 통치양식의 변화에 주목
상에 관한 것이다. 사회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권력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 한다.
한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며, 사회의 담론과 가치 그리고 사회생활 전반을 유 먼저 푸코는 초기 기독교 모델에서 제시된 양들에 대한 사목적 권력(pastoral
도하고 생산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사회구조 전체를 둘러싸면서 또한 power)에 대해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사목적 권력 양식은 3c경부터 기독교
그 구조 안에 내재하는 “전체 사회체(social body)를 관통하는 생산적인 네트워 목회자의 형식으로 서구 교회에 적용되어 집단적으로 강화되고 정교해졌다.
크”(Foucault 1980, 199)이다. 권력은 모든 순간, 모든 지점, 모든 관계에서 생산되 특히 16c 종교개혁 이후 사목적 권력의 요소들이 세속 국가의 통치양식으로
며, 바로 그런 모든 움직임들의 전체효과이다. 전유되기 시작해 근대국가 수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목적 권력의 특징은 국
이런 푸코의 권력 분석은 기존의 권력론을 넘어서는 색다른 작업이었기 때 가라는 공간보다 그 구성원인 인구집단에 주로 행사되며, 목자의 권력은 그
문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미시적 권력 분석 집단의 구원을 위한 시혜적인 권력으로서 목자가 인구집단 전체뿐만 아니라
에만 치우쳐 국가에 대한 분석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리하여 후 각자를 돌보는 개인화된 권력으로 이해된다. 이런 맥락에서 근대국가 초기엔
기로 접어들면서 그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국가와 인구집단에 대한 연 국가란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을 통합하는 존재였다. 다
구로 방향을 옮긴다. 개별적 인간과 그에게 작동하는 미시적 권력으로부터 국 만 목자와 양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민들이 왕 개인에게 의존하고 복
가를 구성하는 인구집단의 생활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통치성으로 종하는 형태였던 것이다(Foucault 2007, 125-130).
주제를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17-18c 근대국가는 국가이성(raison d'État)을 근거로 소위 규율적 권
그런데 푸코가 통치성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란 “이미 주 력(disciplinary power)을 통해 통치하였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군주론』에
어져 있는 요소와 제도의 고유한 본성, 연결, 관계 등을 사유하는 방식”의 대한 찬반토론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권력 관점이 등장하고, 16c 이후 발전
일종이며, “이미 확정된 제도들로 이루어진 총체, 이미 주어져 있는 현실들로 된 수학과 과학 덕분에 주권자의 자연적 통치 대신 통치의 합리성을 논하면
이루어진 총체에 관한 인식가능성의 도식”(Foucault 2007, 286)이라 할 수 있다. 서 국가이성이라는 관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국가이성이란 국가 자체의 강
화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규율, 감시, 금기 등을 통해 국민을 통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합리성이다. 국가는 타국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국가의 안
1 푸코의 권력 개념과 통치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졸고(2020)를 참조하라. 전과 부국강병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218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19
외교군사적 측면과 국가를 세밀하게 관리하는 내치(police)의 측면이 강조된다. 푸코가 보기에, 자유주의란 어떤 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물들을
즉 국가는 새로운 합리성으로서의 국가이성의 기획 아래 타국과 일정한 관계 대면하는 방식이자 실천으로서, “극대화를 지향하는 경제의 내적 규칙에 순
를 유지하면서 신민에게 내치적인 개입 즉 통제와 규율을 통해 통치하는 체 응하는 합리화의 원칙이자 방법”(Foucault 2008, 318)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제로 변화하게 되었다(Foucault 2008, 6-13). 통치성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가능한 한 비용을 절감하면서 결과의 극대화를
중세의 통치자가 신민들이 내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지향한다. 이는 인구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 실천 및 개입이 개개인과 인구
자에 가까웠다면, 이제 국가는 더 이상 내세에서의 구원에 조력할 필요없이 전체의 생명을 최적화하려는 규범에 의해 합리화될 때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자신을 위해, 국가 자신에 의해, 그리고 서로 경합하는 복수의 국가들로 통치의 목적은 주권자의 권력으로부터 인구의 복지로 바뀐다.
서만 존재한다(Foucault 2007, 297-298). 이런 국가들의 통치에 있어서 내치의 대 생명관리를 통해서 권력은 더 이상 사법적인 것이 아니라 다분히 물질적인
상은 거의 무한이라고 생각될 만큼 무제한의 지배가 판옵티콘(Panopticon) 체 것이 된다. 생명관리에서 권력은 반드시 살아있는 존재자들인 국민의 건강, 위
제 하에서 추구된다. 국가는 이제 주권과 분리되어 통치만을 위한 자연스러 생, 출산율, 장수 등에 직간접적으로 행사된다. 나아가 권력은 통계학과 같은
운 존재가 되며, 국가이성은 국가 스스로를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보호 인구의 관찰기술과 국가 행정기관의 진화와 더불어 정교화되고, 급기야 인구
함으로써 국가 그 자체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실천으로부터 목적과 수단의 계산망을
그런데 아담 스미스(A. Smith)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이후 즉 18-19c 구성하는 실천으로 이행함으로써 통치성의 문제로 이행된다. 어원적으로 통
자유주의의 확장과 전환이 생기면서 소위 자유주의적(liberalist) 통치성으로의 계학(statistics)이 국가학(Statistik)에서 나왔듯이, 국가학으로서의 통계학이란 국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보다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변화로서, 규율과 억압뿐 력을 증대시키고 통합시키고 발전시키는 총체적인 집합체이자 그런 절차들의
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주기 위해 생명과 생활을 관리하 요체인 것이다(Foucault 2007, 273-275).
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이는 또한 국가 자체의 부강함보다는 시민사회의 이 한편 20c에 접어들면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진화한다. 18-19c 자유
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개인에게 자유를 보장하고 인권을 신장 주의가 주어진 정치사회에서 시장이라는 자유공간 구축에 관심이 있었던 반
시키면서도 사회적 공리주의 입장에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인구를 면, 20c 신자유주의는 정치권력의 행사를 시장경제 원리에 맞추는 것에 관심
관리하는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규율적 권력으로부터 생명관 을 갖는다(Foucault 2008, 131). 그리하여 국가가 시장 메커니즘에 직접 개입하
리 권력(bio power)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Foucault 2008, 40-47). 는 대신 시장의 조건들에 개입해 사회의 조절자로서 보편적 시장의 구성을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통치의 과잉에 고유한 비합리성에 대한 비 목표로 삼는다. 즉 법과 질서를 통해 시장의 조건과 경쟁메커니즘의 유지를
판”(Foucault 2008, 322)으로, 인간의 육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이성 시대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는 개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용의주도하
의 규율적 기술과 달리 전체의 생물학적 과정 안에서 육체와 생명을 관리하 고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를 관리하고 유도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하
고 조절하는 생명관리 기술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통치란 외부에서 감시하고 는 것이다.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운동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이상과 같이, 푸코는 권력 개념을 보다 거시적인 국가의 통치와 연관시켜 통
과정으로 간주된다. 치성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근대 초기는 고중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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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이란 자유로운 도시 거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큰
유력한 가문의 시민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시민이 있었다. 유력 시민이 아닌 대다수의 일반시민
들을 인민(popolo)이라 불렀다. 요컨대 시민은 유력시민과 일반시민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222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23
참여하는 자로서의 시민이라는 의미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시민 즉 의 독립을, 작게는 바로 곁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봉건 영주들로
자유를 가진 자로서의 시민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이 자유 시민들은 자치 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이 독립과정은 150여 년간 진행되었으며 투쟁과
를 추구했으며, 자체의 군사력을 지니고, 자체의 세금제도, 법률제도, 행정체계 전쟁의 연속이었다.
를 갖추었다(Finer 1997, 952).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은 항시 이탈리아 도시국가에 개입하고자 했는데, 특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자유 시민이 함께 통치하는 공화정 체제를 이루었 히 1154년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Friedrich Barbarossa) 황제는 ‘진정한 열락의
1
다. 물론 밀라노처럼 비스콘티(Visconti)나 스포르차(Sforza) 같은 유력가문 이 정원’인 롬바르디아 평원을 얻고자 북부 이탈리아 지역을 침략하였다. 당시 도
지배하는 공국(公國) 형태도 존재했지만 대개는 공화정이었다. 이 공화정 코무 시국가들은 ‘롬바르디아 동맹’을 구축해 이를 물리쳤으며, 1312년 최종적으로
네들은 봉건적 권력, 즉 로마 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혹은 봉건 영주들 밀라노와 피렌체의 활약으로 신성로마제국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또한 로
로부터의 독립과 자치를 얻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자유와 독립을 가장 큰 마 교황의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은 직접적인 전쟁 외에도 1342년 파도바(Pado-
정치적 가치로 여겼다. 그리고 자유와 독립을 획득한 후엔 내부의 갈등과 대 va)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가 『평화의 수호자』 출판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
결을 피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므로 내부의 평화가 두 번째로 중요 다. 마르실리우스는 교회란 성도들의 모임인 콩그레가티오 피델리움(congrega-
한 가치였다. 또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는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없어야하기 tio fidelium) 즉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심있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
때문에 공적인 권력행사 즉 법에 따른 통치인 법치가 중요한 통치 원리로 간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관할권은 오직 세속적인 국가에 있다고 주장
주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의 실현을 위해 정치체제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데, 했는데, 이것이 호응을 얻어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간섭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의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면서도 권력을 분립시키고, 군 (Skinner 1978, 18-19).
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을 혼합한 혼합정이 요구되었다. 또한 시민들에게 이때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한 국가의 독립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
2
는 공동선 추구와 애국심 같은 시민적 덕성(virtue) 이 요청되었다. 그러면 공 인 시민들의 자유를 포함했는데, 여기서 자유는 단순히 ‘간섭으로부터의 자
화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가치와 원리, 제도, 덕성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유’(freedom as non-interference)가 아니라 ‘지배로부터의 자유’(freedom as non-dom-
먼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공화정의 기본 가치와 통치 원리는 자유와 평화 ination)를 의미하였다. 이는 봉건질서를 상징하는 여러 사적 형태의 주종관계
그리고 법치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신성로마제국 에서 벗어나 아예 지배(domination)나 예속(dependency)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황제와 로마 교황의 관할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크게는 이 두 권력으로부터 상태를 지향하는 비지배적 상태를 자유로 인식했던 것이다(Pettit 1997, 21-27).
시민이란 남에게 예속되는 것도 원치 않으며 또한 남을 사적으로 지배하
려는 야심도 없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런 욕구가 바로 자유를 향한 욕구이
1 비스콘티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은 밀라노를 지배한 두 주요 가문이다. 전자는 1277 년부터 다. 이는 벌린(I. Berlin 1998)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나 ‘적극적 자
1447년까지, 후자는 1450년부터 1535년까지 밀라노를 지배하였다. 유’(positive liberty)와는 다르다. 전자는 간섭이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
2 공화정에서 말하는 덕성이란 고대의 도덕과 윤리를 대체하는 말이다. 도덕과 윤리는 보다 관조적, 는 자유주의적 의미의 자유를 가리키며, 후자는 민주주의적 자유로서 의사결
철학적 특성이 있는 반면, 덕성은 행위적, 실천적 특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덕성이란 일종의 실
천윤리와도 같으며, 일반적인 윤리와는 구별된다. 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스스로 규범을 정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스스로 만든
224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25
규범이 아니면 어떤 규범에도 복종하지 않을 힘을 갖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민들보다 힘이 셀 때뿐이라고 주장하면서, 피렌체에서는 어느 누구의 권력도
런 민주주의적 자유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압력이나 아부 또는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브루니 2002, 72-74; 김경희 2015, 319-320 재인
삶의 방향에 관한 환상들을 이겨낼 수 있고, 전혀 고분고분하지 않은 채 자기 용). 프랑스혁명기 루소(Rousseau)도 자유의 원칙으로 법치를 강조했는데, “자
의사에만 따르는 자유를 가리킨다. 유로운 인민은 복종(obedience)은 하지만 예종(servitude)은 하지 않으며, 지도
민주주의적 자유에 비하면 공화주의적 자유는 개인들이 예속에 벗어났을 자(leader)는 두지만 주인(master)은 두지 않는”다면서 “자유로운 인민은 오직
때, 그리고 타인이나 타집단의 자의에 좌우되지 않을 때 누리는 일종의 소극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게 예종하도록 강제될 수 없는데, 이는 법의 힘 때
적 자유이다. 하지만 공화주의적 자유는 그 역시 강요를 자유의 침해로 간주 문”(Rousseau 1964, 842; Viroli 2006, 17 재인용)이라고 설파한다.
한다는 점에서는 의사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적 자유에 가깝다. 그 공화정에서 일단 자유가 성취되면 그 다음 등장하는 것은 평화의 문제이
러나 공화주의적 자유와 민주주의적 자유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자기의사 다. 이때 평화란 국제평화가 아니라 국내평화를 의미하는데, 외국과의 전쟁은
의 자율성을 법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공화주의적 자유는 나의 의 불가피한 경우가 있고 이것을 회피해서는 안 되지만, 도시 내부에서의 전쟁은
사가 자율적으로 되는 것은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이나 규칙이 내 의사와 피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평화가 공화정의 중요한
일치할 때가 아니라, 내가 남에 의해 강요받을 수 있는 끊임없는 위험성으로 가치라는 것이다. 이때 내부의 전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여러 유력 가
부터 법이 보호해 줄 때라고 본다는 점이다(Viroli 2006, 103). 문들이 붕당을 형성해 패권을 다투는 대결, 그리고 유력 가문들과 포폴로에
자유란 내가 동의한 법에 의해서만 나의 행동이 규율되거나 내가 스스로 속하는 인민들이 계층적으로 다투는 충돌 등이 있다.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또는 내가 만든 규칙만을 따를 수 있는 힘과 같은 실제로 독립을 획득한 도시국가들이 내부 전쟁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결
것이 아니다. 법에 따르는 것 자체가 자유인데, 그 이유는 법이 자유에 대한 국 쇠퇴한 경우가 많이 있다. 도시엔 시민들의 자치라는 대원칙이 존재하지만
제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자유에 꼭 필요한 것이기 실제에 있어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력 가문들이 존재했으며,
때문이다. 법은 모든 시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적이고 보편적인 명령이며, 그 가문들은 경쟁자들과 대립하고 투쟁하면서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심을 부
따라서 법의 지배가 엄중하게 지켜지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자의 렸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제노바(Genova)이다. 제노바는 주요 해양국가로 국
적인 의사를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반면 법 대신 사람이 지배하는 경우엔 력이 강했으나, 유력 가문들이 파당을 지어 폭력투쟁을 벌인 결과 빈번한 정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고, 억압하거나 방해함으로써 타인의 자 치변동으로 쇠락하였다. 당시 제노바에는 도리아, 스피놀라, 피에스키, 글리말
유를 박탈할 수 있는 특정인들이 존재함으로써 자유를 훼손시킨다. 이는 다 디 등 유력한 4개 가문이 있었는데, 특히 도리아가는 스피놀라가와, 파에스키
수파가 지배하는 민주주의에도 적용되는데, 다수의 지배는 결국 소수자를 비 가는 글리말디가와 연합해 파당을 만들어 서로 대항하였다. 적과의 타협은
자유인으로 만드는 것이다(Viroli 2006, 108-109). 불가능했으며, 서로 타협하기보다는 차라리 외세(프랑스왕이나 밀라노공)에게 권
따라서 공화주의적 자유는 다수자의 지배보다는 법의 지배 즉 법치를 요 력을 넘겨주기까지 하였다(시오노 2009, 369).
구한다. 르네상스기 피렌체 공화정을 직접 이끌었던 브루니(L. Bruni)는 진정 이러한 파당 간의 폭력적 대결을 방지하고 도시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방
한 자유란 법에 의해 보장되는 평등이며, 자유가 존속하는 것은 오직 법이 시 편이 법치이다. 어떤 파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
226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27
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에 의한 통치가 필요하다. 공화정의 정치제도들은 한편 공화정 시민들 모두에게는 시민적 덕성이 요구된다. 이것은 공화국 시
모두 성문법에 따라 법제화되었는데, 그 핵심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자의 민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실천적 자질을 의미한다. 먼저 사익 외에 공동선에
적 권력행사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시에나(Sienna)의 경우, 최고위직(9인 대한 인식과 추구가 필요하다. 자유로운 시민이 된다는 것은 사적인 이익이
위원회 위원)에 선출되는 정치가는 오직 2개월 동안만 그 직위에 재임할 수 있 나 파당적 이익으로부터 탈피해 공적인 이익, 즉 공동선을 추구해야 함을 의
고, 다시 선출되려면 법에 따라 20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선출이 미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공적
추첨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9인위원회에 선출되는데 자신할 수 이익과 사적 이익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은 곧 자신
없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 또는 동업자나 사업관계자가 다른 공직을 맡 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적 덕성은 도덕성
고 있는 경우에는 법에 따라 9인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이 엄격히 금지 과 다르며, 금욕, 희생, 검약 등을 강조함으로써 사생활을 포기시키는 것이 아
되었다. 니라, 사생활을 즐겁고 안전하게 만드는 사생활의 주춧돌이다. 요컨대 시민적
또 다른 공화정의 제도적 특징은 권력분립과 혼합정부 구성이다. 특정 붕당 덕성은 공화국에 대한 봉사와 사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의 권력독점을 막기 위해서는 행정과 입법, 심의 등의 정치적 권력을 분리시 시민적 덕성은 또한 이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으로 열정을 억누
켜야 하고, 특정 계층의 독점적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르지 않으며, 다만 다른 열정보다 시민적 우애가 상위에 서도록 독려한다. 여
의 요소들을 서로 혼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합정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기서 시민적 우애란 정치적 우정을 의미하며, 이는 곧 애국심(patriotism)으로
이미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받아들여졌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각각 참 연결된다. 공화정의 주체가 되려면 다른 시민들과 적어도 같은 공동체의 시민
주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환관계로 인식되면서, 이라는 정치적 우정을 가져야 하며, 이는 곧 애국심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혼합정을 구성하는 것 여기서 정치적 우정은 감정적 우정이 아닌 자유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는 우
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합정이 가장 좋은 정부인 이유는 특정 정이며, 정치공동체와 동료시민에 대한 카리타스(caritas)이다. 이는 실제적 공
인, 소수, 혹은 다수가 무한한 권력을 갖게 되면 곧 폭정을 초래하므로, 이 요 동체인 이 도시의 중요한 것들(법, 자유, 공회당, 광장, 승리와 패배의 기억, 희망과 두려
소들을 혼합하여 권력을 분립시켜야만 공화정이 잘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던 움)을 공유하는 자들 사이의 애착을 의미하며, 이것이 시민들로 하여금 애국
것이다. 심으로 이끈다(Viroli 2006, 164).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시민들의 정치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민족주의적 애국심과는
이 참여하는 대의회가 기초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고 결정의 신속한 집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정치적인 것으로서, 파트리아(patria)에
대외정책 및 기타 정부활동의 조율과 감독을 위해 1인 내지 소수의 행정 수 대한 애정, 즉 정치제도와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공동체인 조국에 대한 애정이
반이나 행정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경험 많고 존경받는 시민들의 심의가 필요 다. 이와 달리 민족주의적 애국심은 비정치적인 것으로서 나티오(natio) 즉 태
하기 때문에 귀족정적 요소인 원로원 같은 기구가 구성되었으며, 독재나 당파 생에 대한 애정으로서, 종족적·문화적·종교적인 동질성을 지닌 사람들 사이
적 이익을 막기 위한 방파제 및 모든 시민들이 참여함으로써 국력을 증진시킬 의 공통감이다. 그런데 시민공동체로서의 정치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동질성
수 있는 대의회가 민주정적 요소로 필요했다(Viroli 2006, 77-78). 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방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공동체 자체에 대한 애정이
228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29
다(Viroli 2006, 175-176). 이러한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있어야 사적인 충성 대신 Ⅳ. 피렌체와 베네치아1
공적인 제도에 충성하게 되며, 사회 내부에 경쟁은 존재하지만 상호파괴적이
지 않은 다원성이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공화주의적 통치성은 자유와 평화, 법치 등을 정치적 가치와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공화정을 채택한 대표적인 도
원리로 여기고, 정치적 제도로는 권력분립과 혼합정부를 구성하며, 시민적 덕 시국가들이다. 피렌체는 중부 토스카나 지역의 핵심도시로서 일찍이 섬유산
성으로는 공동선에 대한 인식과 정치적 우정으로서의 애국심을 그 내용으로 업을 중심으로 한 상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했으며, 높은 경제력 덕분에 문화
삼는다. 예술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일구었다. 한편 베네치아는 북동부 황무지인 석
호지역에 건설된 해양국가로서 동부 지중해와 흑해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권
을 형성해 높은 경제력을 구가하였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로는 보기 드물게 천
년 이상 존속할 정도로 안정적인 체제를 이루었다. 이 장에서는 가치와 제도
및 덕성을 중심으로 이 두 도시국가의 공화주의적 통치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피렌체
밀라노 등과 힘을 합쳐 1312년 황제권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 있 적이 아니라, 전제적 횡포가 침범해 오는 데도 시민들이 자유를 위해 싸울 태
었다. 또한 교황의 간섭으로부터의 탈출은 1375년 프랑스 아비뇽에 유수된 세를 갖추지 않고 용병만 찾는 시민들 자신이라고 보았다. 또한 자신의 도시
교황청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기 위해 도시국가들을 침략한 ‘8성인의 전 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서 오직 전리품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남자답지 못
쟁’을 계기로 크게 진전하였다. 결과적으로는 교황청이 승리해 다시 로마로 돌 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면서, 결국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 전쟁에서
아오게 되었지만, 피렌체는 이 전쟁을 겪으면서 공화정을 더욱 공고히 다졌던 승리했던 것이다(Skinner 1978, 74-75).
것이다. 당시 피렌체 재상 살루타티가 야만인 프랑스에 넘어간 교황청을 비난 한편 살루타티에 이어 재상에 취임한 브루니는 피렌체에 법치를 확립시켜
하면서 로마를 이어받은 피렌체의 자유정신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피렌체인들 공화정을 더욱 안정시켰다. 그는 피렌체가 로마 공화정을 이어받은 국가로서
에게 전쟁에 참여하고 자신의 공화정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어느 누구의 권력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유 외에 정의와
것이다. 법치를 강조하였다. 자유는 오직 법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으며, 진정한 자
또한 이웃 군주정 국가인 밀라노와의 전쟁을 통해 피렌체인들은 공화정에 유이자 공평은 법 앞에 평등하며, 이때에만 타인으로부터의 폭력과 해악으로
대한 정체성을 더욱 굳게 다지게 되었다. 당시 밀라노의 전제 군주인 잔 갈레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요컨대 자유와 평등은 권력자들의 오만과 위선을 제
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는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야심을 갖고 있 어할 수 있는 강력한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엄정하
1
었다. 그는 여러 전쟁을 통해 북부 롬바르디아의 패권을 장악한 후, 1397년 고 공정한 법집행을 위해 사법관을 외국인들로 충원하기도 하였다(김경희 2015,
부터 피사와 루카, 볼로냐, 시에나 등 중부 도시들을 점령하고 피렌체에 대한 319-320).
포위망을 구축했으나 1402년 사망하였다. 이후 피렌체는 베네치아와 동맹을 자유와 법치의 공화정은 시민들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이때 시민들에게는
맺어 밀라노 군을 몰아냄으로써 자유와 공화정을 지킬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은 아니더라도 실제적인 시민적 덕성
이와 같이 피렌체가 여러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이 요구된다. 르네상스의 중심 역할을 했던 피렌체에서는 시민을 소위 르네상
보다도 공화정 체제에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군이 자유와 독립을 위해 기꺼 스적 인간으로 교육하고자 하였다. 이는 어느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전문가
이 목숨을 바쳐 싸웠기 때문이다. 원래 피렌체는 상업 활동이 복잡해지고 발 나 그것을 골똘히 생각하는 관조적 인간이 아니라, 여러 일에 두루 관심을 갖
달함에 따라 대부분의 부유한 시민들은 국방을 직접 담당하지 않고 용병을 고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이다. 즉 시민이라면 학문적
고용했는데, 몇 차례 용병의 배신을 경험한 후 시민군이 직접 전쟁을 수행한 지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전쟁에도 참여하는 실천적인 사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시민군 체제로의 전환은 살루타티의 제 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의 총합은 비르투(virtù)2라는 용어로 표명되었는
안이었는데, 그는 밀라노와의 전쟁에서 가장 주된 위협은 밀라노라는 외부의 데, 시민은 운명(fortuna)을 개척하는 사람으로서 실천적인 비르투를 가진 사람
1 로스키(A. Loschi) 같은 인문주의자는 평화(pax)와 통일(unitas)을 위해서는 자유(libertas)를 강 2 마키아벨리가 포르투나를 극복하는 비르투를 강조한 것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당시
조하는 공화정보다 일인 군주정이 낫다고 주장하면서 밀라노를 옹호하기도 하였다(김경희 2015, 이탈리아 공화정에서 공통으로 강조한 내용이었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비르투가 다른 사람들의
314-315). 비르투와 다른 점은 남자다움의 비르투에 술수의 능력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232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33
론 후보자가 되는 과정에서 명문가문이나 대상인, 그리고 길드조합의 지도자 이런 내부의 불안은 강력한 힘을 가진 시뇨레(signore)를 필요로 하게 되었
들이 부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였다. 명문가문이 아닌 사람(즉 중간급 다. 즉 시뇨리아 위원회에서 합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권한
상인이나 기능인)도 관직에 오를 수는 있었지만, 이는 누가 심사받을지 결정하 을 가진 일인 통치자의 결정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434년부터
는 노미나토리를 지배했던 유력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승인할 때에나 가능했 혁명이 발생한 1494년까지 60년간 메디치(Medici) 가문의 전횡이 이어졌으며,
234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35
일시적으로 스페인에 망명했던 메디치가는 다시 복귀한 후 1532년 공화정 는 경제적으로 유럽의 가장 부유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15c엔 도시인구가 10-
을 폐지하고 토스카나 대공국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피렌체는 포폴로들이 20만 명 정도였으며, 베네치아가 곳곳에 일군 제국 전체의 인구는 150만 명에
득세하여 보다 민중적인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귀족과 포폴로 달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베네치아의 10배나 되었지만, 수입은 베네치아의
의 대결 및 여러 포폴로들 사이의 각축으로 인해 국내 평화가 무너지고 권력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Finer 1997, 991).
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 안정을 추구하는 일인 지배체제로 회귀 이와 같은 베네치아 경제성장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콜레간차(colleganza)라
했던 것이다. 는 합자회사의 발전이다. 콜레간차는 예전에 유대인, 그리스인, 아랍인들도 사
용했던 제도이지만, 그들은 가족이나 친족에만 참여를 허용한 반면 베네치아
는 타인의 참여도 허용하였다. 따라서 해외무역의 경우 자본가뿐만 아니라,
2. 베네치아 상인이나 선원들도 함께 투자해 공동이익을 얻으면서 공동체 의식을 높여갔
다. 콜레간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먼저 자본가가 2/3를 출자하고 경
베네치아는 피렌체와 달리 1천여 년의 존속 기간(697-1797) 동안 단 2차례의 영자(선원 이자 상인)는 1/3을 출자해 경비를 제한 후 이익을 1/2씩 분배하거나,
1
반란 음모 만 있었을 정도로 국내 평화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공화정 체제 혹은 자본가가 전액 출자하고 이익을 자본가는 3/4, 경영자는 1/4씩 분배하는
였다. 그 주된 이유는 베네치아가 비잔틴제국의 일부로서 봉건귀족과 부유한 것이다. 그리고 경영자는 여러 자본가와 동시에 협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
상인계층 사이의 극단적인 충돌이 없었고, 주로 상인들로 구성된 국가지도층 본가만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무역에 관여하는 사람은 누구나 돈을 벌 수
과 일반시민들 사이에 협력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17c 영국 있었다(시오노 2009, 229-230).2
공화주의자 해링턴(J. Harrington)이 『오세아나』에서 이상적 모델로 삼을 정도 정치제도적 측면에서는 초기부터 종신직으로 선출된 도제(doge)3가 중심
로 모범적인 공화정 국가였다. 이 되어 통치했는데, 공화정 체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들어선 것은 1297년
베네치아의 출발은 서로마 멸망 후 무정부상태에서 고향을 떠나 피난 온 헌법을 제정한 이후이다. 베네치아 공화정은 세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도시
사람들이 황무지에 도시를 건설한 데서 비롯된다. 이 지역은 석호와 섬들로 의 공직을 대부분 임명하는 대의회(consilio grande), 외교와 재정에 관한 사무
이루어져 농지와 자원이 부족했으며, 따라서 어업과 무역이 주된 경제활동이 를 관장하는 원로원(senate), 그리고 대의회의 보좌를 받으면서 선출직 정부수
었다. 10-11c경에는 비잔틴제국의 서부인 아드리아해의 해적을 물리치는 경
찰 역할을 하면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였고, 13c 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콘스탄티노플 동쪽의 흑해까지 무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네치아
2 1267년 사망한 베네치아 도제 라니에리 제노의 유산 명세서는 다음과 같다(시오노 2009, 232):
부동산 (10,000 리라), 현금 (3,388 리라), 귀금속 (3,868 리라), 채권 (2,264 리라), 국채 (6,500
리라), 콜레간차 (132종, 22,935 리라). 이상과 같이 베네치아에서는 합자투자인 콜레간차가 자
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유행하였다.
1 두 차례의 반란 음모는 1310년 귀족인 퀴리니-티에폴로의 반정부 음모와 1335년 도제 마리노 3 도제(doge)는 군주정을 피하면서도 강력하고 통치능력이 뛰어난 통치를 위해 도입한 직제로서
파리엘의 궁정반란을 지칭한다. 흔히 통령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지도자를 뜻하는 dux가 어원이다.
236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37
반으로 재직하는 도제가 그것이다. 이런 혼합정 체제 하에서 처음엔 참정권 먼저 도제는 1172년부터 원로원의 ‘40인 위원회’에서 선출하고 대의회의 승
을 인정받지 못한 포폴로들이 봉기를 일으켰지만 즉시 진정되었고, 1335년 비 인을 받았는데, 1297년 개혁 이후엔 대의회에서 직접 선출하였다. 대의회의
밀공안위원회인 10인위원회가 상설기관으로 설립된 후에는 더 이상의 소란은 예비추천위원회인 노미나토리가 후보를 추천하고, 대의회 위원으로 구성된 선
없었다. 거인단이 선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때 선거인단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오히려 베네치아인들은 도시의 정치적 안정이 혼합정 체제 덕분이라고 생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쳤는데, 먼저 대의회에서 11명의 선거인을 임명하고, 그
각하고 이에 자부심을 가졌다. 특히 법률가인 베르제리오는 1394년 도제에게 가운데 스스로 4명으로 축소하며, 다시 이 4명이 40명(후에 41명)으로 선거인단
보낸 편지에서 베네치아의 특징인 혼합정을 찬양하였다. 먼저 그는 플라톤이 을 확대한 후, 최종적으로 확대된 선거인단이 도제를 선출하였다.
『법률』에서 밝힌 주장, 즉 가장 건전하고 안전한 정부형태는 세 가지 ‘순수한’ 이렇듯 선거인단 구성을 처음에 1,500명에서 11명, 11명에서 다시 4명으로
형태가 결합한 결과 즉 군주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이 융합된 상태라는 축소시키고, 그것을 다시 40-41명으로 확대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주장에 동조한다. 그리고 베네치아 헌법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군주정의 요 선출과정에서 어떤 파당이 형성되는 것이 불가능했다(Finer 1997, 993). 그리고
소를 대변하는 도제와 귀족정을 대변하는 원로원, 그리고 민주정을 대변하는 선거인단을 임명할 때에는 추첨과 선거를 모두 활용했는데, 여기서 추첨을 사
대의회 등 서로 다른 세 요소가 융합해 하나의 안정된 혼합정을 엮어내는 데 용한 것도 파당을 막기 위해서였다(Lane 1973, 110).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침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으로써 선거인단은 결국 특정한 소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는
또한 마키아벨리의 친구이며 베네치아에 망명한 적이 있는 피렌체 출신의 도제를 선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아노티(Gianotti) 역시 베네치아 공화정의 진화과정을 서술하면서, 베네치아 한편 원로원 정원은 260명 정도였는데, 이 중 핵심은 120명으로 구성되며
사람들이 달성한 자유와 안전의 결합은 주요한 두 원인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나머지는 공직에서 물러나 보직을 받지 않은 참석자들에 불과했다. 이 120명
첫째는 도제와 원로원, 대의회를 결합함으로써 베네치아 사람들이 일인지배 의 핵심 중 절반인 60명은 대의회에서 선거로 선출되었고, 선출된 60명이 또
와 소수지배 그리고 다수지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둘 다른 60명을 선출하여 이를 대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원로원을 구성할 때에는
째는 모든 관리의 선출과 정책 결정이 어떤 파당적 이익에 앞서 공동선을 극 여러 기준에 따랐는데, 지식, 책임감, 토론능력, 연속성 등이 주요한 기준이 되
대화하는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게끔 선거와 투표제도를 정교하게 고안해 시 었다.
행했다는 점이다(Skinner 1978, 141). 대의회가 민주정 요소를 지녔다고 하지만, 베네치아의 대의회 역시 인구의
물론 베네치아에는 귀족정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100여개의 명문 작은 부분만 포함하고 있었다. 대의회의 위원 자격은 세습되었으며, 위원들은
가문이 존재하고 그 중 20-30개의 유력 가문들이 대가문을 이루었다. 그리고 대부분 1297년 개혁 때 입회했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1,500-2,000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대의회에서 선출되는 주요 공직자가 될 수 소수만을 위한 과두정으로 타락하지 않은 것은 견제와 감시체제, 관료제의
있는 대상은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공직 선거과정, 특히 도제 정립, 그리고 민관협력의 문화 때문이었다.
선출과정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파당이 장악하는 것을 먼저 견제와 감시를 위해 3인의 국가 감시관을 두었으며, 공직은 한 가문에
방지하였다. 서 한 개의 공직만 맡을 수 있었고, 투표에 있어서는 1인 2투표제로 찬성표와
238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39
반대표를 동시에 행사해서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많으면 공직에서 탈락시켰다 적으로는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로부터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시오노 2010, 303). 또한 도제와 원로원, 대의회는 상호견제가 가능했는데, 도제 며, 정치적으로는 해외식민지 개척에 필요한 강력한 군주정으로 전환하지 못
에게는 종신직의 안정성과 커다란 권한을 주었지만 그 만큼 강력한 원로원이 했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초기엔 경제력으로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했으
있어서 도제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고, 또한 원로원은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 나, 이후 새로운 정치적·군사적 환경 즉 강한 군주정 체제와 강한 군사력의
하는 대의회를 통해 견제되었던 것이다. 필요성에는 잘 대응하지 못했다(시오노 2010, 381). 신대륙으로 경제적·군사적
둘째, 잘 정비된 관료제가 유력 가문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 역할을 팽창을 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절대 왕정을 통해 국력을 결집하고 발전했
하였다. 일반 행정은 대의회에 참여하는 시민이 아닌 전문행정직들이 담당했 지만, 베네치아의 공화정은 국력을 극대화시키기엔 부적절했던 것이다. 이후
는데, 이 계층은 행정직에 종신으로 근무했으며 따라서 국정에 대해 가장 잘 베네치아는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 군대에 무너져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
알고 있었다(시오노 2009, 338-339). 따라서 정치와 행정의 분리가 이루어졌으며, 다가, 결국엔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고 말았다.
정치적 변동이 있더라도 행정의 안정성은 계속 유지되었다.
셋째, 유력한 가문과 일반시민의 구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와 달
리 귀족의 지배나 권위주의로 흐르지 않은 것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민관협력
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개인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조직을 형
성하고, 행정지도를 통해 무역을 관리하고, 상선과 해군의 일체를 통한 중개
무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관협력은 베네치아인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였
다. 즉 대부분의 베네치아인들은 자기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가 일치함을 잘
알고 있었으며, 통치계급인 대상인들이 법의 평등한 실시와 이익의 공정한 분
배에 유념하고 또한 실행했기 때문이다(시오노 2009, 129). 단순히 귀족들이 힘
에 의해 위로부터 억압했다면 천년 동안 2번 밖에 반정부운동이 일어나지 않
았던 보기 드문 국내 안정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협력의 문화는 항해에서도 볼 수 있다. 배의 선장은 독단적으로 결정
하지 않고 선장, 선주 1인, 상인 대표 2인 등 4인이 배에서 합의해 결정했으며,
선원은 선장에서 견습에 이르기까지 지위에 상응하는 정도의 상품적재가 허
용되었고, 선주와 선장 및 선원의 이해관계가 동일해 서로 쉽게 합의가 가능
하였다. 따라서 대상인뿐만 아니라 중소상인도 공존 가능했으며, 오늘날과 같
은 대자본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었다(시오노 2009, 234-235).
하지만 베네치아는 16c 대항해시대가 개막하자 쇠락의 길을 걷는다. 경제
240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41
수의 폭정’에서 벗어나 공동선 추구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연방 중앙정부 여가 정치권에만 그치지 않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목도된다는 사실이다.
의 구성과 대통령이라는 중앙정부 최고위 직의 도입은 일인의 폭정을 초래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공화주의적 통치성은 좋은 통치자(혹은 정치가)만 필요로
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이는 베네치 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적 덕성이 없다면, 시민공동체는 요원한 것이다.
아 공화정의 도제를 모방한 것으로서, 다만 미국 대통령은 도제와 달리 임기
제한을 두어 종신직이 되는 것은 방지하였다.
또한 연방주의자들은 국가의 영토가 광활해야만 공화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도시국가처럼 작은 영토에서는 파당형성이 단
순해져서 제노바와 같이 두 개의 큰 파당으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큰데, 이 경
우 두 파당이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어느 한쪽의 우세로 이어지고 결국 어느 참고문헌
한 ‘파당의 독재’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광활한 영토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파당의 다양성’(diversity of factions)이 형성되어 어 김비환 외. 2020. “미셀 푸코: 권력과 통치성을 넘어서”. 이동수 편. 『현대정치의
느 한 파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으므로, 광활한 연방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위기와 비전』. 서울: 아카넷.
것이다. 요컨대 연방주의자들은 민중정부를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는 공화주 김경희. 2015. “르네상스기 피렌체 공화주의 연구.” 『한국정치연구』 24집 2호.
의로 보완되어야 하며, 따라서 공화주의적 민중정부인 연방제가 가장 바람직 pp.311-334.
하다고 결론짓는다. 김경희. 2018. 『근대국가 개념의 탄생: 레스 푸블리카에서 스타토로』. 서울: 까치.
우리나라도 지금 민주주의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시오노 나나미. 정도영 역. 2009.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 파주: 한길사.
지배가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 타인의 의견도 존중하면서 서로 공존하는 시오노 나나미. 정도영 역. 2010. 『바다의 도시 이야기, 하』. 파주: 한길사.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각자 주권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권력의 분립과 분배 브루니, 레오나르도. 임병철 역. 2002. 『피렌체 찬가』. 서울: 책세상.
를 전제로 하며, 따라서 민주적 결정은 항상 또 다른 주권자인 다른 사람들과 이동수. 2010. “르네상스기 이태리 도시국가의 정부: 자유와 법치의 공화정.” 『한
의 공화주의적 협력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파당들 국정치연구』 19집 2호. pp.255-280.
이 이념을 앞세워 진영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시민들을 현혹시키고 줄 세우
는 행위에 있다. 한 파당은 진보라는 탈을 쓰고 민주주의적 민중정부의 완성 Baron, Hans. 1966. The Crisis of the Early Italian Renaissance. Princeton:
을 위해 다른 파당을 적폐청산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며, 다른 파당은 보수라 Princeton University Press.
는 시대착오적 용어를 소생시켜 권력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이 파당들 Berlin, Isaiah. 1998. "Two Concepts of Liberty." The Proper Study of Mankind.
에 결여된 것은 바로 국가를 어떤 특정 지배자나 집단이 통치하는 도구로 간 Ed. Henry Hardy. New York: Farrar, Strauss and Giroux.
주하는 대신 여러 시민들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공화주의적 통치성 개념이다. Cicero. 2009. The Republic and The Laws. Tr. Niall Rudd. Oxford: Oxford Uni-
즉 공화의 정신이 우리 정치권에는 없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결 versity Press.
244 OUGHTOPIA 35:2 공화주의적 통치성: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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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47
<표 1> 3당 합당 협상 당시 가능한 정당 연합 조합 가 있다고 한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하며,
가능한 연합 조합 평화민주당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 이를 위해서는 국회 의석수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
(크기순으로 나열) (김대중)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
순 과반수에 해당하는 [4], [5], [6], [7]의 경우로는 균형에 이를 수 없고 선택에
[1] 94 ● ●
서 배제된다.
과반수 미만 연합
[2] 105 ● ●
(1/2 이하) 결국, 당시 가능한 합당의 조합은 [8], [9], [10], [11]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③
[3] 129 ● ●
지도자의 양립성 가정을 통해 김영삼과 김대중(양 김)이 모두 연합에 포함되는
[4] 164 ● ● ● [10]과 [11]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 즉, 1960-70년대에 나타난 라이벌 구도
단순 과반수 연합
[5] 164 ● ● 때문에 양 김의 연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또한, 김종필은 김대중
(1/2 초과) 보다 김영삼과 가까웠기 때문에, 남은 [8]과 [9] 중에서 [8]이 지도자들 간의 양
[6] 188 ● ●
[7] 199 ● ● 립을 더 가능하게 하며, 따라서 최종적으로 [8]이 선택되었다고 한다. 김재한
[8] 223 ● ● ●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분석하면서 1990년 합당 게임의 결과 나타난 민정
당-민주당-공화당 합당을 악셀로드(Axelrod 1970)의 최소연결승리연합(minimal
[9] 234 ● ● ●
가중 과반수 연합
connected winning coalition)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김재한 2018, 39-41).
(2/3 이상)
[10] 258 ● ● ●
이처럼 김희민의 연구에서 왜 민정당-민주당-공화당의 3당 합당이 균형이
[11] 293 ● ● ● ●
되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① 연합의 크기, ② 내각제 개헌, ③ 지도자의
●: 합당 참여 정당
출처: 김희민(1997, 93; 2013, 58) 양립성이라는 3가지 가정이 필요하며, 특히 내각제 개헌 가정과 지도자의 양
립성 가정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균형이 달라질 수 있거나 심지어 균형을 구
① 연합의 크기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이커(Riker 1962)의 최소승리연합(mini- 하지 못할 수도 있다.
mal winning coalition), 즉 승리연합은 권력 공유의 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 그러나 노태우와 김종필이 내각제 개헌을 추구했던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
합의 크기를 최소화하고자 한다고 가정한다. 이로써, 과반수 확보가 불가능 로 개헌을 추구했는지는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김종필은 당시 노태우가 겉
한 [1], [2], [3]의 경우가 선택에서 배제된다. 한편, 엄밀한 의미의 최소승리연합 으로는 내각제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기는 했으나 속까지 꽉 들어차게 신
일 경우 승리연합의 의석수가 가장 적게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는 [4]와 [5]가 념이 박힌 건 아니었다고 한다(김종필 2016, 170). 또한, 김대중(평민당)이 내각제
선택이 되어야 한다. 또는 행위자의 수에 초점을 맞추어 과반수를 확보할 수 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김영삼은 내각제 개헌의 거부권자(veto player)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자로 구성된 연합이 선택된다면 [5], [6], [7]이 균형이 되어 있는데, 당시 김영삼은 내각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며 내각제 합의를 없
야 한다. 던 것으로 하자고 했고(노태우 2011a, 490-491), 내각제 합의 각서 파동 당시에
그러나 김희민은 합당 게임 당시 ② 내각제 개헌이 게임의 행위자들에게 매 도 “내각제는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므로 불가능하다. 나 자신도 내각제를 반
우 중요한 사안이었으며, 따라서 균형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를 고려할 필요 대한다. 다만 세 계파의 융화를 위해 이런 형식이 굳이 필요하다면 서명은 해
254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55
주겠다.”(김영삼 2000, 277)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약 노태우-김종필에게 있어서 소승리연합, 내각제 개헌, 지도자 양립성의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3당 합당이 내각제 개헌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내각제 개헌이 실현 불가능한 행위자들의 효용에 92년 총선 및 대선, 특히 대선을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상황이 되었을 때 더는 국회 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3당 합당을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합정치의 개념(정병기 2014)을 통해 정
노태우-김종필의 최소승리연합(즉, 양당 합당)으로 돌아갈 것이다. 리하자면, 3당 합당은 통치연합(governing coalition)의 성격뿐만 아니라 선거연
또한, 앞서 박찬표의 연구(2014)를 통해 살펴봤듯이, 김대중과 김영삼 간의 합(electoral coalition)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념적 차이는 거의 없었고, 따라서 김종필이 김영삼과 가까울 이유도 없었
다. 그뿐만 아니라, 김희민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92년 대선을 고려하고 있었
기 때문에 연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일부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김희민 2. 연구방법
2013, 56), 지도자 양립성 가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1960-70년대에 나
타난 양 김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김희민 2013, 본 연구에서는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을 바탕으로 3당 합당
32-35; 55). 그러나 양 김은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과 1985년 신한민 을 분석한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크게 두 가지를 가정한다(Downs 1957; Little
주당 창당에서 힘을 합친 바가 있다. 또한, 87년 대선에서 양 김의 후보 단일 1991; Green and Shapiro 1994; 김희민 2013). 첫 번째 가정은 방법론적 개인주의
화 실패로 인한 선거 패배 경험은 만일 92년 총선·대선에서 비슷한 상황이 (methodological individual)이다. 즉, 행위자 또는 분석단위를 개인 또는 하나의
발생할 경우 양 김에게 연합 또는 후보 단일화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개체로 설정한다. 87년 대선과 88년 총선에서 1노 3김은 지역주의를 동원하
컸다. 따라서 3당 합당 게임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 가정이나 지 여 각 지역을 할거했으며, 각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의 상징적 존재
도자 양립성 가정과 같은 강한 가정을 도입하지 않은 채, 대안적으로 설명할 가 되었다. 또한, 정당의 인사권(또는 공천권)과 재정권을 총재가 장악하고 있었
필요가 있다. 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에 소속된 개별 의원들이 총재의 입장을 거스르는
한편, 선행연구에서는 4당 체제의 주요 행위자들이 92년 총선과 대선을 염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민정당,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은 각각 노태우,
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대신 과반 의석 및 헌법 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과 동일시될 수 있으며,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 또한 1노
정 가능 의석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의석수를 중심으로 설명할 3김이 좌지우지했다. 실제로, 3당 합당은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자 간의 비밀
경우, 각 행위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본 연구에서는 92년 총선 및 대선을 행위자들의 효용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 두 번째 가정은 개인의 목적 지향성 즉, 효용 극대화(utility maximization)이
인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3당 합당의 당사자들은 92년 총선과 대선, 그중에서 다. 즉,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도 특히 9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노태우 2011a; 김대중 2011; 김영삼 2000; 선택지를 취하고 행동한다. 가능한 선택지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효용을 가져
김종필 2016). 따라서 3당 합당을 설명할 때 92년 총선·대선을 중요하게 고려 다주는지를 판단하고 어떠한 선택지를 취할지는 전적으로 각 행위자가 결정
할 필요가 있다. 한다. 이때 각 행위자는 당위적인 요소들조차도 효용의 수준으로 환원하여
본 연구에서는 합리적 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하되, 선행 연구가 가정한 최 다른 요소들에서 비롯되는 효용과 비교하여 판단한다.
256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57
1) 객관적 고려사항
김종필은 8.1%의 득표율로 4위에 그쳤다. 88년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정당이 2) 행위자의 효용과 관련된 고려사항
125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지만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는 못했고, 평민당은 호
남 지역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70석을 확보하여 제1야당이 되었다. (1) 노태우
민주당은 전국 득표율이 평민당에 앞섰지만 다수의 지역구에서 민정당 또는 노태우의 효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소는 ① 안정적 국정운영과
평민당과 경합을 벌여 59석을 얻는 데 그쳤고, 제2야당이 되었다. 공화당은 ② 정권교체의 방지이다. 우선, 야 3당 공조를 무너뜨리고, 정부-여당의 정책
다른 정당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은 충청에 기반을 두 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1
고 있었으며, 35석을 확보하여 제3야당이 되었다. 는 야당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노태우 2011a, 482). 그러나 이것이 노태우의
88년 총선 결과, 민정당·평민당·민주당·공화당의 4당 체제가 수립되었는 효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과반의석
데,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부재하여 국회에서는 특정 정당에 의한 독자 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김종필과 연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노태
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주의가 단순히 일회적 우는 김종필과 합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서두르지 않았
인 선거 구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 지배이데올로기, 정당체계 등 다. 실제로, 김종필은 89년 3월 7일에 노태우 대통령과 합당에 합의했지만, 그
구조적인 차원에 밑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박상훈 2013), 상당한 시간 동안, 이후 좀처럼 합당 작업이 진척되지 않았다고 하며 민정당과 공화당의 합당으
적어도 92년 총선·대선까지는 지속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합당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 도무지
88년 총선으로 형성된 4당 체제에서, 평민당-민주당-공화당은 야 3당 공조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김종필 2016, 151-153).
에 합의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여당의 의지를 좌절시키기도 했다.2 하지 노태우에게 더욱 중요한 요소는 정권교체를 막는 것이다. 즉, 그의 입장에
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고려사항은 20개월 동안 공조했음에도 불 서는 집권 기간 내에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 못지않게, 12·12 군사
구하고 야 3당이 진지하게 합당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란 및 5·17 쿠데타의 주도 세력을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비호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노태우는 무엇보다도 야당 세력에 정권을 넘겨
주어서는 안 되었다.
성공한다면 민정당은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1 따라서 노태우는 87년 민주화 (2) 김영삼과 김대중
세력을 대변하는 김영삼 또는 김대중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정권교체 김영삼과 김대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92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김
의 방지와 쿠데타 세력의 신변보장을 고려한다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치 영삼이 92년 대선을 준비하며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3가지인데, ① 지금과
적 상징인 김대중을 포섭하는 것의 효용이 더 클 수 있지만, 민정당 내부의 일 같이 4당 체제를 유지하며 독자노선을 취하거나, ② 김대중과 연합하거나, ③
부 인사들이 김대중에 대해 가진 반감으로 인해 효용이 상쇄될 수 있다. 노태우와 연합하는 것이다. 이때, ① 4당 체제를 유지하며 독자노선을 취할 경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노태우의 입장에서 승리연합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 92년 대선 본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 및 김대중과 경쟁을 해야 하며, ② 김
반드시 최소승리연합일 필요는 없다. 만일 노태우가 안정적인 정책 추진만을 대중과 연합할 경우 92년 대선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김대중과 경쟁을 해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권력의 배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승리연합을 추구 야 한다. 김영삼이 92년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후보직을 넘겨주거나, 김대중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는 퇴임 후의 상황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으며 게 패배하여 낙선할 경우 97년 대선에 나서야 하는데, 김영삼에게 97년 대선
자신과 자신의 세력을 정치적으로 탄압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승리연합으 승리의 효용은 92년 대선 승리의 효용보다 현저히 적다. 즉, 할인율이 크다는
로 포섭할 유인이 있었다. 실제로 노태우는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김대중, 것인데, 왜냐하면 5년 사이에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정치 상황이 급
김영삼, 김종필에게 각각 정계개편에 대한 의중을 물어보았고 개별적으로 접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태우가 합당 게임을 시작한 상황에서, 김
촉했다고 한다(노태우 2011a, 483-485). 영삼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노태우와 연합하여 기존 민정당 지
한편, 노태우에게 ① 안정적 국정운영, ② 정권교체 방지 및 신변 보호라는 지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유인은 충분하다. 여기까지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비
두 가지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경우, 양당 합당이나 3당 합당보다는 4당 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합당의 이익이 더 클 것이다. 그러나 4당 합당은 노태우가 확보할 수 있는 지 김대중에게는 그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치적 상징’이라는 조건이 추
분의 크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정책 특히 인사정책에서 내부 분열이나 입 가로 부과된다. 이는 문용직(1993)이 주장한 지지기반의 차이와 동일한 조건
장 차이로 인해 불협화음이 생겨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4당 합당의 이다. 이때, 이 제약조건의 영향력을 매우 크게 고려할 경우 앞서 선행연구들
순 효용은 양당 합당 또는 3당 합당의 순 효용보다 작을 수 있으며, 양당 합 이 김영삼-김대중의 이념적·정책적 차이를 강조한 것과 유사한 접근방식을
당 또는 3당 합당으로도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반드시 4당 합 취하면, 제약조건에 절대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그
당이 이뤄질 필요는 없다. 러한 강한 제약 대신에 효용 수준에 포함하여 다루고자 한다.
한편, 노태우 대통령은 여야 간의 협상이 필요한 경우에 김영삼(제2야당 총재)
과 김종필(제3야당 총재)을 배제한 채, 제1야당 총재인 김대중과 영수회담을 가
1 이러한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3당 합당이 88년 총선 후와 92년 총선 전의 시기인 1990년에 이 졌다. 이처럼 여당과 제1야당이 주도하는 정국 운영에서 소외된 김영삼은 자
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88년 총선 후 형성된 야 3당 공조 하에서 수세적인 상황에 있었던 노태
우는 남은 집권 기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자 했으며 가급적 빨리 합당을 이루고자 했다. 신이 노태우에게 먼저 합당을 제안했고 결심이 서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고 한
또한, 92년 총선에서도 88년 총선과 비슷한 의석수의 4당 체제가 나타날 경우, 김영삼은 총선 다(김영삼 2000, 238-239). 김영삼이 4당 체제에 변화를 주려고 한 것도 결국에
후에 노태우 또는 김대중과 합당을 시도할 때 92년 대선에서 여권 단일화 후보 또는 야권 단일
화 후보가 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합당의 시기를 92년 또는 그 이후로 미룰 유인이 적었다. 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함이었고 제2야당 총재로
262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63
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었기 때문에, 제1야당 총재보다 추가로 양보할 수 있 의 의석수를 기준으로 볼 때 김영삼-김종필 합당(94석), 김대중-김종필 합당
는 부분이 있었다. 반면에, 김대중은 제1야당 총재로서 그동안 선명성을 강조 (105석)으로는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던 야 3당 공조의 중심이었고, 따라서 그에게는 ‘제1야당 총재’로서의 제약 김종필은 3당 합당의 주요 행위자이기는 하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과
이 존재했다. 야 3당 공조가 공고히 유지되고 92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단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즉, 김종필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간의 합당 논의
일화될 수만 있다면, 김대중의 입장에서는 야 3당 공조를 깨뜨릴 이유가 없었 가 마무리되면, 이 행위자들이 그를 받아들일지 또는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다. 김영삼이 제2야당 총재로서 갖는 현상타파 지향과 김대중이 제1야당 총재 결정하고, 그는 통보를 받은 후에 선택해야 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
로서 갖는 현상유지 지향은 사실상 같은 현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며, 여기
서는 둘 중 하나만 고려한다.
2. 3당 합당 게임1 분석: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합당 게임
(3) 김종필
김종필은 4당 체제에서 제3야당 대표에 불과했다. 김종필도 대권을 노리기 <표 3> 각 합당 방식에 따른 행위자들의 효용
는 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큰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97년 대선 또는 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후를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제3야당 대표인 그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
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합당 t₁ y₁ d₁
는 것은 (요직을 맡거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가지고
② 노태우–김영삼 합당 t₂ y₂ d₂
있는 지분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③ 노태우–김대중 합당 t₃ y₃ d₃
것이었다. 내각제 개헌과 같은 정치제도의 변화를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 ④ 김영삼–김대중 합당 t₄ y₄ d₄
서 이해할 수 있다. 김종필은 3당 합당 이전까지 유지되고 있던 야 3당 공조 독자노선(4당 체제 유지) 0 0 0
하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변화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바라고 있
었다.
그러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은 김종필을 합당 또는 연합의 최우선 대상 3당 합당 게임1의 행위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이 게임
으로 간주할 필요가 없었다. 노태우의 입장에서는 김종필과 합당하면 과반의 에 참여하고 싶은 의향이 없었지만, 노태우가 게임을 시작한 상황에서 어쩔
석을 확보함으로써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수 없이 행위자가 되었다. <표 3>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간의 가능한 합당
이 퇴임 이후를 고려할 경우 김종필만으로는 부족했고 김영삼 또는 김대중과 의 방식과 각 방식에서 3인이 갖게 될 효용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4당 체제
의 협상이 더 중요했다. 왜냐하면 노태우-김종필 합당으로는 92년 대선 승리 상태가 유지될 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갖게 될 효용 수준을 기준으로 한
를 낙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때의 효용을 0으로 설정한다). 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합당, ② 노태우-김영
김영삼과 김대중의 입장에서는 김종필과의 합당이 가져다줄 이익이 별로 삼 합당, ③ 노태우-김대중 합당, ④ 김영삼-김대중 합당에서 노태우는 각각 t₁,
없었다. 김종필은 제3·4공화국의 주요 인사였을 뿐만 아니라, 3당 합당 직전 t₂, t₃, t₄, 김영삼은 각각 y₁, y₂, y₃, y₄, 김대중은 각각 d₁, d₂, d₃, d₄의 효용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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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4> 각 합당 방식에 따른 행위자들의 효용 근사치 면,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는 노태우로부터의 정치적 요구를 대가로 지불하더라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도 여전히 각각 ② 노태우-김영삼 합당, ③ 노태우-김대중 합당이 최선의 선택
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합당 t₁ b b-c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노태우–김영삼 합당 t a -a′+c′
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합당 t₁ b b-c 0
그렇다면 ④ 김영삼-김대중 합당보다, 노태우와의 다양한 방식의 연합에 따 ③ 노태우–김대중 합당 t -a′ a-c a-b-c
<표 6> 합당과 합당 과정에서의 거래를 포함한 행위자들의 효용 근사치 민주계-공화계의 당내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했는데 민정계는 의석 비율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57% : 27% : 16%)대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민주계는 9 : 7 : 4 (45% : 35% : 20%)
①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합당 t₁ b b-c 로 하자고 했다. 즉, 민정계는 당내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
② 노태우–김영삼 합당 t+(a-b-ε) b+ε -a+c′ 도권을 갖거나 때에 따라서는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과반을 요구했
③ 노태우–김대중 합당 t+(a-b-c-ε′) -a′ b+ε′ 고, 민주계는 사실상 어느 한 세력에 의해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도록
④ 김영삼–김대중 합당 t₄ b b 그 누구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민정계-민주계-
독자노선(4당 체제 유지) 0 0 0 공화계의 지분은 대략 5 : 3 : 2로 배분되었다. 국회 상임위원장직은 6 : 4 : 2
(50% : 33% : 17%)로, 중앙당 당직은 5 : 3 : 2 (50% : 30% : 20%)로, 시·도지부 당
직은 7 : 4 : 3 (50% : 29% : 21%)으로 배분했고, 이러한 경향은 92년 총선 직전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요구한 a-b-ε의 정치적 대가는 구체적으로 ⓐ 김종필 까지 대체로 유지되었다.
의 3당 합당 참여, ⓑ 합당 이후 보수적 성격 지향, ⓒ 합당 이후 민정계 지분 이처럼 주요 직위를 둘러싸고 민정계가 당내 지분의 절반을 확보한 것은 합
보장 및 92년 총선에서의 민정계 위주 공천 이렇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김 당 직후의 일이었고, 합당 논의 과정에서도 직접 언급된 바 있다. 당시에 2년
종필의 3당 합당 참여는 다음 절에서 분석하기로 하고, 다른 두 가지를 먼저 후에 있을 92년 총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지만, 92년 총선
살펴보고자 한다. 의 공천에서 나타난 실제 결과를 통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생각과 효용
우선, 민주계의 보수화가 있다. 박찬표(2014)에 따르면 3당 합당 이전, 국회 수준을 역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김영삼은 92년 총선 전에 92년 대선의 후
의 원내 균열 구도에 있어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은 비슷한 위치에 있었 보로 공인받기를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고,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도 별다
지만, 3당 합당 이후 민주계가 보수적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김영삼은 1990년 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김영삼은 노태우가 대외적으로는 김영삼을 중
4월 재·보궐선거 정국에서 노태우 정부가 공작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 심으로 총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공천에 적극적으로
기도 했고(김영삼 2000, 265-266), 그해 10월 내각제 합의 각서 파동 정국 당 관여하여 다수의 측근을 공천했다고 한다(김영삼 2000, 300-301).
시 당무를 거부하고 노태우와 김종필을 비판하기도 했으며(김영삼 2000, 278),
1992년 초에는 총선 전에 대통령 후보를 확정해 놓자고 하며 민정계와 대립 <표 7> 92년 총선 민자당 공천 후보자의 계파별 비율
하기도 했다(김영삼 2000, 299). 그러나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3당 합당 이전과
의원정수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 불명
달리 노태우 정부 및 민정계-공화계와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노태
서울 44 24 13 4 3
우는 3당 합당 이후 김영삼과 거의 매주 만나면서 국정운영에 대하여 의논을
인천 7 7 0 0
했는데, 자신의 견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역구 경기 31 21 3 6 1
반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노태우 2011b, 437). 강원 14 10 3 1
다음으로, 민정계의 지분 보장이 있다. 3당 합당 직후 당무회의에서 민정계- 대구 11 11 0 0
270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71
의원정수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 불명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대부분에서 공천을 받은 후보자는 민정계였고, 더
경북 21 16 2 1 2 나아가 민정계는 호남, 대전, 충남, 부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민자당 공천
부산 16 6 10 0 후보의 50% 이상을 확보했다.
경남 23 12 9 0 2 전국구 선거에서도 민정계가 큰 이익을 보았는데, 민자당이 공천한 전국구
대전 5 1 0 4 의원 명부의 1번부터 50번까지를 살펴보면, 민정계가 28명(56%)이었고, 민주계
지역구
충남 14 4 2 7 1 는 8명(16%), 공화계는 5명(10%)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계와 공화계가
충북 9 7 0 2 명부상의 순번에서 특별히 배려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제주 3 2 1 0 이처럼 92년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민주계와 공화계가 손해를 보았음에도,
계
1
198 121 43 25 9 김영삼과 김종필은 탈당하지 않았으며, 두 계파(특히 민주계) 소속의 다수 인사
전국구
2
50 28 8 5 9 가 민정계 후보가 공천된 곳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선택을 취할 뿐이었다.
통령 후보로 하겠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92년 대선 정국이 되 (1) 노태우
자, 박태준이 노태우에게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표 노태우의 입장에서 승리연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권력을 배분해야
명했지만, 노태우가 만류했고 결국 박태준은 철회했다(노태우 2011a, 511). 마찬 하지만, ①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이 이뤄질 경우 노태우-김영삼 합당보
가지로 군 출신인 이종찬이 노태우의 뜻을 거스르고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 다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즉, 만일 김종필이 참여하지 않은 채 노
했지만, 승산이 보이지 않자 얼마 후 탈당했다. 이때 그와 함께 탈당한 민정계 태우-김영삼만으로 승리연합이 구성될 경우, 노태우는 자신이 추진하려는 정
인사는 소수에 불과했는데, 왜냐하면 민정계의 대다수는 노태우의 뜻을 따라 책에 김영삼이 반대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은 노태
김영삼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김영삼은 대선 후보를 보장받는 대신 우에게 지분 확대를 요구할 수 있으며, 노태우는 김영삼을 무시할 수 없고 심
정치적 대가를 지불했다. 결론적으로, 3당 합당 게임1을 통해 노태우-김영삼 지어 그에게 끌려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이 이뤄
합당이 결정되었다. 진다면, 민정계-민주계 또는 민정계-공화계만으로도 국회의원 과반수를 확보
할 수 있으므로, 김영삼과 김종필이 합심하여 반대하지 않는 이상 안정적으
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물론, 앞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간의 합당 게임
3. 3당 합당 게임2 분석: 노태우-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합당 게임 1에서 김영삼이 지불한 ‘정치적 대가’에 의하여 어느 정도 정책 추진을 보장받
기는 했으나,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이 이뤄진다면 김영삼의 결정 번복 동
3당 합당 게임2는 노태우-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간의 합당 게임이다. <표 8> 기와 시도 자체를 상당 부분 억지할 수 있다.
는 3당 합당 게임2에서 각 합당 방식에 따라 행위자들이 갖게 될 효용을 정리 또한, 정권교체의 방지 측면에서도 김종필의 합류는 중요했다. 노태우와 김
한 것이다. ①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 ② 김대중-김종필 합당, ③ 독자노 영삼의 승리연합은 김종필에 대하여 그를 승리연합으로 받아들일지 또는 받
선에서 노태우는 각각 w₁, w₂, w₃, 김영삼은 각각 s₁, s₂, s₃, 김대중은 각각 j₁, j₂, 아들이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노태우와 김영삼은
j₃, 김종필은 각각 p₁, p₂, p₃의 효용을 가진다. 김종필이 ② 김대중과 합당할지 또는 ③ 독자노선을 취할지 결정하려 할 때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만일 노태우-김영삼 합당에서 배제된 김대중
<표 8> 각 합당 방식에 따른 행위자들의 효용 과 김종필이 합당할 경우 92년 총선·대선이 1 대 1 양자 구도로 치러질 수 있
으며, 이 상황에서는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노태우의 입장에서
승리연합
김대중 김종필 김종필의 합류는 비록 권력의 배분이라는 비용을 수반하지만, 3당 합당 정국
노태우 김영삼
에서 노태우에게 가장 중요한 2가지 고려사항인 안정적 국정운영과 정권교체
①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 w₁ s₁ j₁ p₁
의 방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비용을 감수할 만했다(w₁>w₃>w₂). 노태우
② 김대중-김종필 합당 w₂ s₂ j₂ p₂
에게 김종필은 남은 집권 3년 동안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한 ‘보험’이
③ 독자노선(3당 체제 형성) w₃ s₃ j₃ p₃ 자 정권교체 방지의 가능성을 낮추어 자신의 측근 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보
험’이었다.
274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75
게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김종필은 야당 정치인일 때보다 여당 정 중과 합당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노태우-김영삼이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다.
치인일 때 자신의 존재감이 더 부각된다고 생각했다. 김종필은 야 3당 공조 따라서 실제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태우-김영삼은 김종필과의 합당 게임
하에서도 선명성을 드러내기보다 국익을 중시했던 자신의 정치행보를 자부했 2를 서둘러 진행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합당 게임1과 합당 게임2를 거의
다(김종필 2016, 144-147). 동시에 진행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3당 합당 정국에서도 김종필은 1989년 3월 7일 노태우 대통령과 처음으로 3당 합당 게임1에서 김종필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모두에게 가장 우선
합당에 대해 논의했을 때, “북방외교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하기가 힘듭니 적인 합당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3당 합당
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공화 게임2에서 노태우-김영삼과 김대중은 모두 김종필이 상대와 합당할 경우에
당 35명이 민정당과 합치면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뀝니다. 대통령이 하고 갖게 될 효용이 가장 작았고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김종필의
자 하는 북방외교를 포함한 국방·외교 정책을 소신껏 할 수 있습니다.”(김종필 승리연합 참여를 바랐던 노태우와 김종필의 참여에 매우 긍정적이지도, 부정
2016, 151)라고 말하면서, 정부-여당의 일원이 되어 정책을 추진하고 싶어 했다. 적이지도 않았던 김영삼이 ‘정치적 대가’를 매개로 타협을 이루어 김종필에게
김종필은 노태우-김영삼이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김대중과의 합당을 고 합당을 제안했고 김종필이 이를 수용하여,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이 이
려할 이유가 적었는데, 왜냐하면 김대중과의 합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뤄졌다.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김종필에게는 ① 노태우-김영삼-김종필 합당의 효용이 ② 김대중-김종필
합당의 효용과 ③ 독자노선의 효용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그러나 만일 김
종필이 노태우-김영삼으로부터 거부를 당한다면, 김대중과 합당했을 가능성
이 크다(p₂>p₃). 왜냐하면 야 3당 공조를 통해 경험했듯이, 제1야당 총재가 아
닌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렵고 노태우-김영삼이 과반을 확보한 상황에서
주요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김대중과 합당한
다면 92년 총선·대선을 1 대 1 양자 구도로 만들어 그 이후를 도모할 수 있
었다는 점에서, 3당 체제에서의 제2야당의 1인자보다 양당체제에서의 통합야
당의 2인자를 선호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통합여당의 3인자 역할
에 비해 통합야당의 2인자나 제2야당의 1인자가 김종필에게 가져다주는 효용
은 현저히 작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각 합당 방식에 따른 김종필의 효용 수준을 노태우-김영삼이 충
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일 김종필이 노태우-김영삼으로
부터 합당 제안을 받지 않거나 그러한 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다면 김대
278 OUGHTOPIA 35:2 합리적 선택 이론으로 본 3당 합당: 9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주목하여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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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트남은 사회적 자본이 협력적 행위를 촉진시켜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등 사회
적 효율성(efficiency)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Putnam 1993; 2000). 이에 많은
학자는 사회적 자본이 시민문화 형성과 민주주의 공고화, 결사체 참여 활동
현대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관한 논쟁은 그 개념이 등장한 과 상관성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Newton 1997). 이후 정치학과 행정학, 지역
이후 활발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자본은 정치학과 행정학에서 민주주의 성과 학에서 미국, 아시아, 유럽연합, 인디아, 스칸디나비아 등 다양한 국가의 사회
와 시민사회 활성화, 사회적 효율성 증대라는 관점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현 적 자본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자본 연구 활성화를 통해 사
대 사회과학 전반에 사회적 자본은 민주적 거버넌스 수립에서 민주주의의 제 회과학계에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젠더, 세대, 지역 등 다
도적인 성취와 만족감, 경제발전, 거버넌스 구축, 지역발전 전략, 시민참여 강 양한 층위에서 사회적 자본 형성과 축적,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선순환적인
화와 협력 증진 등으로 확산하였다(송경재 2008; Edward and Foley 2001). 시민사회의 고양과 민주주의 효과에 주목하게 되었다(Fukuyama 1999; Norris
학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자본이 주목받은 것은 개념적 정의를 시도한 하 2002; 송경재 2010).
니판(Hanifan, 1916)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이란 단어를 언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해외 연구는 주로 지역과 국가 비교 연구가 주를 이
급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자본을 연구한 선구자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루고 있으며(Grootaert & van Bastelaer 2001; Fukuyama 1999; Norris 2002), 한국에서
자본 연구의 시작을 19세기 건국 초기 미국을 방문한 토크빌(Tocqueville, 2003) 도 사회적 자본에 관한 관심이 제고되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
에서 찾는다. 그는 신생국가인 미국을 방문하고 시민적 덕성과 결사의 예술 히 국내에서는 사회적 자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장수찬 2002; 유석춘 외
(art of associations),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 2002; 송경재 2018). 그 성과로 많은 학자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
에 감명을 받았다. 그의 노력은 이후 Democracy in America란 역사적인 노 건강한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사회적 자본의 존재 형태와 동학(dyna-
작으로 정리되어 유럽 지성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 mism)에 따라 민주주의 발전의 선순환 효과(virtuous circle effect)가 있을 것으로
의 제도를 움직이는 토대가 시민사회의 역동성에 있다고 보고, 신뢰와 협력, 본다(Diamond 1999). 사회적 자본은 국가 연구에서 지역별 비교 연구로 발전했
규범의 형성이 결사체와 자발적 시민참여, 결사의 예술 등 시민사회의 성숙에 으나,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사회적 자본에 따라 정치문화, 시민사회의 발전,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민주주의 제도발전에 중요한 결과를 만든다고 보았다 민주적 거버넌스와 경제발전이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
(Lewis 2010). 자본이 동질적이기보다는 다층적 특성이 있으며, 국가별·지역별로 불균등하
사회적 자본은 “신뢰(trust), 규범(norm), 수평적 네트워크(horizontal network)로 게 특화되어 형성된 사회적 자본(particularized social capital)으로 발전하기 때문
이루어진 공공재(public goods)적 사회속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Putnam 2000). 이다(송경재 2010).
정치학에서 사회적 자본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퍼트남(Putnam)에서 시작되 그렇다면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성과는 어떤 형태로 표출되는
었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자본 형성과 시민참여 문화의 형성이 남부와 북부의 가? 보다 구체적으로, 선행 연구자들의 지적대로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이 시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변인이 되었다는 퍼트남의 연구는 사회적 자본 형성 민참여를 촉진하고 민주주의 제도적 발전을 촉진하는가? 그리고 어떤 형태의
과 시민참여 문화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적 성과라는 선순환에 주목했다. 퍼 사회적 자본이 시민참여와 민주주의 발전과 공고화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286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287
이에 주목하여 본 연구는 동아시아의 두 국가인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한 공동 설문조사인 ABS(Asian Barometer Survey) project의 자료를 활용할 것이
자본의 차이와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성과의 인과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ABS의 가장 최근 자료인 4th Wave 설문 데이터 중
사회적 자본 이론에 따르면,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 수평적 네트워크에 따라 에서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 네트워크의 변수를 추출하여 국가별 사회적 자본
서 시민참여와 민주주의의 만족도가 차이가 있다(Putnam 1993; Lewis 2010). 이 의 성격을 규명하고, 사회적 자본의 요소와 민주주의 제도 만족도 간의 인과
를 통해 사회적 자본의 다층적 측면에 한국과 타이완의 민주주의 제도에 어 성을 분석할 것이다.
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 국가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의 다층 연구 논문의 구성은 Ⅰ장은 연구의 목적과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연구
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동향을 개괄하고, Ⅱ장은 이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Ⅲ장은
본 연구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분석대상으로 설정한 이유는 다음의 4가지 연구가설과 변인을 조작적으로 설정하고, Ⅳ장은 구체적인 통계 분석의 결과
측면에서 비교분석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지은주 2015). 첫째, 한국과 타이 를 요약할 것이다. 마지막 Ⅴ장은 연구의 요약과 한국적 함의를 제공할 것이
완은 20세기 이후 세계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여전히 정치문화와 시민의식에 다. 특히 결론에서는 동아시아의 한국과 타이완 민주주의 공고화에서 사회
서 아시아적 문화의 영향이 강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연구에서는 비 적 자본이 미치는 영향의 정치적 함의를 다층적 사회적 자본(multilayered social
교분석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문화와 사회적 환경 등 변인은 통제하였 capital)의 형성 측면에서 세부적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다. 둘째, 1970년대 이후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릴 정도로 단기간 산업화
성공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경제 수준은 1인당 GDP 기준으로 2만 달러 이
상이다.1 셋째,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는 더욱 유사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제 정치제도를 정착했고, 타이완도 1996년
부터 총통직선제를 도입하여 두 나라 모두 안정적인 정권교체를 진행하고 있
다. 이에 한국과 타이완은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넷째, 정치제도 면에서도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타이완은 쑨원의 5권(행정원, 입법원, 사법원, 감찰원, 고시원) 분립에 기반
한 미국식 대통령제와 유사한 정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구 방법론(methodology)은 설문조사를 활용한 계량적 방법론을 적용할 것
이다. 구체적으로 한국과 타이완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본, 시민의식에 관
‘네오 토크빌리안(neo-Tocquevilleans)’으로 계승되었다(Edwards & Foley 2001). 성의 회복과 민주주의 공고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OECD 2001).
퍼트남 이후의 연구는 정치학 측면에서 시민참여의 강화, 민주주의 공고화 국내에서도 다양한 차원에서 사회적 자본과 시민참여, 민주주의 공고화의
차원에서 다양한 층위에서 진행되었다. 시민참여와 관련된 연구는 다양한 학 인과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먼저 한국을 분석한 연구는 장수찬(2002)
자들이 진행했다. 팩스턴(Paxton 2002)은 사회적 자본 형성과 자발적인 시민단 이 대표적이다. 그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체의 확대와의 관계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사회적 자본 형성이 시민단체 참 사회적 자본의 문제점이 있고 이를 악순환의 사이클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장
여에 인과성이 강함을 확인하고 시민참여에 중요 변인으로 보았다. 팩스턴은 수찬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이 결사체 참여, 정부신뢰 등에서 부정적이라고
자발적인 결사체나 시민단체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형 분석했다. 송경재(2010) 역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분석하면서 신뢰가 약한
성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구조로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정부 신뢰와 시민단체 참여가 약하여 민
또한,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의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도 확 주주의 제도에서 위험 요소로 지적했다. 박종화(2018) 역시 한국의 사회적 자
인된다. 아일랜드(Ireland)의 사회적 자본을 분석한 National Economic and 본의 형성은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강화에 중요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
Social Forum(2003)은 사회적 자본 형성이 시민참여, 정치참여 그리고 거버넌 물러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켜 민주주
스 구축 강점이 있음을 확인했다. 앞서 팩스턴의 연구가 시민결사체나 시민단 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적신뢰의 회복과 공동체 정신의 함양 등을 제시했
체에 한정되었다면 National Economic and Social Forum은 전방위적인 정치 다(2018, 386-396).
참여 인과성을 분석했다. 이들은 실증분석을 통해 아일랜드의 사회적 자본이 한편,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사회적 자
축적되고 선순환하게 되면 단순히 사회협력을 떠나서 지역, 국가와 지역의 시 본을 분석한 연구도 발견된다. 초기 연구로는 박희봉 등(박희봉 외 2005: 547-
민참여와 정치참여가 증가할 것을 확인했다. 폴리와 에드워즈(Foley & Edwards 575)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광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1996, 39)는 사회적 자본 형성으로 시민문화 수준이 높은 시민사회는 민주적 등 3국 수도권 주민의 의식조사 분석을 통해 사회적 자본의 정치참여 효과에
거버넌스에 유리하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사회적 자본인 정부 신뢰와 관해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서 다룰 한국과 타이완을 분석한 연구도 확인된
대인 신뢰가 향상되면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만족도를 향상시킨다고 보았다. 다. 임혜란(2007, 105-135)은 한국, 일본,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의 원천(sources)
국가의 하부단위로서 지역에서 사회적 자본과 시민참여, 민주주의 강화 효 을 신뢰로 파악하고 이를 비교분석 했다. 특히 그녀는 3개국의 산업 클러스터
과에 주목한 연구도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사회 를 중심으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협력관계가 성패를 좌우하고 신뢰의 사회
적 자본 형성이 지역내 신뢰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 로컬 거버넌스 적 자본이 중요함을 확인했다. 임혜란의 연구는 민주주의 제도 전반에 관한
에 이바지한다는 결과도 있다. 무쏘와 웨어러(Musso & Weare 2016)는 지역 내의 분석은 아니지만, 경제발전에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확인한 연구라고 할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지역 민주주의 강화와 로컬 거버넌스 구축에 아주 강 수 있다. 최근의 연구로 우와 김(Woo & Kim 2018)은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한 인과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에서도 지역발전과 지역내 민주주의 자본의 경험적 지표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분석 결과 타이완은 정
강화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사회적 자본 확충을 강조하고 있다. EU와 OECD 치신뢰와 인터넷 신뢰도 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치정보에서의
등에서는 국가 간 그리고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시민참여를 확대하여 공동체 신뢰와 의회, 정당 등 정치제도에 관한 신뢰가 매우 강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292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293
류태건(2014, 549-575)은 더 구체적으로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과 정 Ⅲ. 변인의 측정과 연구가설
치적 영향에 대해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분석에서 타이완이 동북아 지역 국
가 중에서 가장 사회적 자본 수준이 높고 활발한 시민참여 문화가 있음을 증
명했다. 특히, 신뢰와 결사체 참여의 수준이 높으며 투표 참여가 강한 것을 확 사회적 자본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변인의 조작화와 측정이다. 연구
인했다. 그는 분석에서 타이완의 높은 정치참여가 이익표출과 이익집약을 향 자들이 사회적 자본을 개념화하면서 측정지표가 개발되었지만, 아직 공통의
상해, 정부의 민주적 반응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제도 만 측정 방법은 통일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회적 자본의 측정의 중요성인 확
족감과 공고화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시민참여 영역에서 결 산되면서, 다양하게 측정변수가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 자본의 측정
사체 참여도가 높은 편이지만 타이완보다는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법에 관한 논의는 미국과 영국 호주 등의 국가기관이 수행하는 조사와 퍼
그리고 사회적 자본의 중요 구성 요소인 정부 신뢰와 일반화된 신뢰 등이 매 트남이 주도하는 Harvard Kennedy School의 The Saguaro Seminar의 설문
우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The Saguaro Seminar https://www.hks.harvard.edu/programs/saguaro), 세계가치조사
이상의 연구를 종합하면, 그동안 사회적 자본이 시민참여문화의 형성과 민 (World Values Survey) 그리고 본 연구에서 활용할 ABS이다.
주주의 공고화에 중요한 변인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일부 연구는 있지만, 여 사회적 자본의 구성 변인은 연구진마다 강조점이 다르지만 대부분 신뢰, 호
전히 한국과 타이완을 비교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혜성의 규범, 수평적 네트워크와 시민참여 지표를 측정한다. 미국 퍼트남의
아무래도 국가 비교의 연구 분석 틀로서 조사의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일 Saguaro 세미나는 주로 정책 중심의 문항을 바탕으로 신뢰, 비공식적 사회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연구에서 확인되듯이 사회적 자본 접근법을 활용한 비 대, 기부 및 자원봉사, 시민참여, 다양성, 시민 리더십 등을 측정지표로 활용
교분석에서 중요한 방법론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했다. 영국 국가통계청은 5가지 영역에서의 측정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회
이러한 사회적 자본 변인을 중심으로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의 특성을 참여, 시민참여, 사회적 네트워크 및 사회적 자본, 상호호혜성 및 신뢰, 지역사
비교하고 민주주의 제도 만족감과의 인과성을 분석하도록 하겠다. 회에 대한 견해 등이다(조권중 2010). ABS 역시 사회적 자본의 구성요소를 신
뢰와 규범, 호혜성, 네트워크로 파악하고 시민참여나 정치참여 수준을 중심으
로 사회적 자본을 제시하고 있다.
ABS는 국립타이완대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제비교 설문조사 프로젝트
이다. 국제비교자료는 국가적 특수성과 동질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ABS는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국가간 동일한 설문을 제시하여 사
회적 자본 측정에서의 타당성과 신뢰성이 높다는 점에서 좋은 원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라진(Ragin)은 국제비교 데이터가 국내의 내생적 변인과 외생변
인을 비교분석을 하기 위해 좋은 자료로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국립타이
완대학교 Hu Fu Center for East Asia Democratic Studies에서는 주기별로 시
294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295
민의식과 사회적 자본, 민주주의에 관한 국제비교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상, 사건 등으로 규정되는 노드(node)의 집합체이다(송경재 2010, 141-162). 그런
이번 분석에서 활용한 4번째 조사에서 타이완은 2014년 한국은 2015년 조 측면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변인은 주로 타인과의 관계와 연관된다. 주로 지역
1
사 결과이다. 자료 분석은 사회과학 통계 패키지 프로그램인 SPSS(Statistical 내에서의 타인과의 관계와 자신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공동체 활
Package for the Social Science) ver. 25.0을 이용해 독립표본 t-test, 다중회귀분석 동은 주로 주변인들과의 교류의 정도에 따라 측정할 수 있다(Lim & Song 2019).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모델로 검증하였다. 퍼트남(2000)은 주변의 연결 가능한 사람의 수를 측정하고 공동체 내에서의
연구에서는 가설을 설정하기 위하여 ABS에서 실시한 사회적 자본의 구성 친밀성을 측정했다.
요소별 설문조사 문항을 체계화했다. 사회적 자본 변인은 신뢰, 호혜성의 규 이상 사회적 자본 변인과 함께 또 다른 측정 변인은 사회적 자본의 효과 중
범, 네트워크를 측정했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로 많은 연구자 의 하나인 시민참여이다(이승종·김혜정 2011, 116-121). 시민참여의 지표는 선행
가 지적한다. 신뢰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자본의 토대가 되며 공동체 내에서 연구자들은 참여를 유형화하는 방식을 활용했고 무엇보다 ABS에서 조사한
의 믿음을 통해 공동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이동원 외 2010; 반즈와 카아스(Barnes & Kaase 1979)의 시민참여 유형화 구분을 중심으로 활용
Lim & Song 2019). 신뢰는 다층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며 학자마다 중요도가 다 했다. 반즈와 카아즈는 정부의 제도적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참여를 관
르지만, 콜만(Coleman 1990)은 사회적 관계에서 불특정한 일반에 대한 신뢰 습적 참여(conventional participation), 비제도적이고 저항적인 참여를 비관습적
(generalized trust)를 강조했고, 우슬러너(Uslaner 2010)는 타인 신뢰의 일반화된 참여(unconventional participation)로 구분했다. 이 연구에서는 최근의 투표참여
신뢰와 정부에 대한 믿음인 공적 신뢰로 구분했다. 와 시위참여 등 관습적 참여와 비관습적 참여 2가지 형태로 구분할 것이다.
호혜성의 규범은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규범을 지칭한다. 무엇보다 호혜성 그리고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공고화의 만족감에 대한 측정을 위해서
(reciprocity)이란 보상이 미래의 불특정한 시기에 되돌아오며, 미지의 타인으로 연구에서는 민주주의 제도 만족도를 측정했다. 앞서 장수찬(2002)과 퍼트남
부터 주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성립된다(Newton 1997, 575-586; 2009; 이동원 (1993)의 연구에서도 확인되지만,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민주주의 제도적 성취
외 2010). 타인을 위한 선의의 행동이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도움으로 파악할 는 인과성이 강한 관계이다. 이에 민주주의 제도성과와 만족에 어떤 연관성이
수 있다. 그리고 호혜성의 규범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사회의 질서를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 따른 민주적 발전 방식에 대
유지하는데 자신이 이바지하고자 하는 속성이기도 하다(이재신·이영수 2012, 65; 한 만족도를 종속변수로 설정하였다.
이동원 외 2010, 129). 이상의 주요 변수측정 문항을 요약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사회 내에서 공동체 내에서 또는 외적으로 다른 사람들
과 맺고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이재신·이영수 2012, 67). 네트워크는 사람들, <표 1> 측정지표와 설문문항 요약
측정 지표 설문 문항 문항
<그림 1> 연구 모형
측정 지표 설문 문항 문항
곤란한 문제가 있는 경우, 외부에서 도움을 요청
타인에게 도움 요청 q30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호혜성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이 문제를 겪을 때 도움을 청
타인이 나에게 도움요청 q31 한국/타이완
규범 합니까? 한국 민주주의 만족도
사회적 자본 비교
우리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
개인과 공동체이익 선호 q56
야 한다. 1) 신뢰 비교분석
2) 호혜성의 규범
수평적 주변 사람과의 교류 일주일에 몇 명이나 연락하십니까? q29
타이완 민주주의 만족도
3) 네트워크
네트워크 친밀성 집단을 위해 공개적 다툼을 피해야 한다. q63
▪ 연구 가설 1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신뢰/호혜성의 규범/수평적 네트워크)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연구 가설 2
한국과 타이완의 시민참여(관습적/비관습적참여)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연구 가설 3
한국의 사회적 자본의 세부변인별 특성에 따라 민주주의 만족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의 세부변인별 특성에 따라 민주주의 만족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298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299
다고 지적한바, 일상적 사회 내에서의 믿음이 한국보다 타이완이 높은 고신뢰 † p<.1, * p<.05, ** p<.01, *** p<.001
국가라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차이가 될 것이다.
<표 2> 한국과 타이완의 신뢰 차이(t-test) 이러한 결과는 한국보다 타이완이 강한 호혜성의 규범을 가지고 있음을 의
미한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도움 요청이나 타인이 나에게 도움 요청 경험 변인
신뢰 구분 M t p
에서 한국보다 타이완이 강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강한 호혜성이 존재한다
한국 (N=1,200) 2.19
정부 신뢰 -6.663 .000 (***) 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공동체 이익지향성이 타이완보다 약간
타이완 (N=1,657) 2.52
한국 (N=1,200) 2.69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반화된 타인 신뢰 -1.919 .055 (†)
타이완 (N=1,657) 2.76
셋째, 사회적 자본 중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변인은 모두 통계적인 유의성이
† p<.1, * p<.05, ** p<.01, *** p<.001
확인되었다. 지난 한 주간의 연락 빈도를 특정한 주변 사람과의 교류는 한국
1.85포인트 < 타이완 2.64포인트로 타이완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t=-19.215,
300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301
p=.000). 그리고 친밀성 변인 역시 한국보다 타이완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 낮은 차이가 나타난 것은 상대적으로 한국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014년
(t=-10.848, p=.000). 요컨대, 수평적 네트워크는 한국보다 타이완이 더욱 강한 6월에 실시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타이완은 전국규모 선거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총통선거가 2015년 12월에 실시되어 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한다
면, 전국 선거의 영향이 한국과 타이완의 투표 참여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
<표 4> 한국과 타이완의 네트워크 차이(t-test) 지만, 두 국가 모두 중앙값(1.5)보다 높은 투표참여 수준을 보였다.
시위나 항의 참여인 비관습적 참여도 한국이 타이완보다 강한 것으로 분석
수평적 네트워크 구분 M t p
되었다(t=8.706, p=.000). 비관습적 참여가 강하다는 것은 결론에서 분석할 것
한국 (N=1,200) 1.85
주변 사람과의 교류 -19.215 .000 (***) 이지만, 민주주의 제도발전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내포하
타이완 (N=1,657) 2.64
한국 (N=1,200) 2.63
기 때문에, 간단하게 해석할 문제는 아니다. 비관습적 참여가 증가하는 것이
친밀성 -10.848 .000 (***)
타이완 (N=1,657) 3.00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불만족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 참
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 타이완보다
† p<.1, * p<.05, ** p<.01, *** p<.001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자본 수준에 비해, 강한 시민 참여적인 특성이 나타
난다. 이는 결론에 더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넷째, 팩스턴(2002)과 NESF(2003)의 선행 연구 결과에서 확인되지만, 사회적
자본은 시민참여에 양(+)의 인과성이 있다. 이 같은 연구는 퍼트남(1993)의 이 <표 5> 한국과 타이완의 시민참여 차이(t-test)
탈리아 남부와 북부 비교 연구에서도 나타나지만 강한 사회적 자본을 가진
수평적 네트워크 구분 M t p
지역인 북부가 시민참여가 활발하고 민주주의 제도 성취감도 높다. 그런 차원
투표 참여 한국 (N=1,200) 1.14
에서 한국과 타이완의 시민참여 차이는 사회적 자본의 수준과 결과물로서 의 -1.694 .090 (†)
(관습적 참여) 타이완 (N=1,657) 1.19
미가 있다. 한국 (N=1,200) 3.10
시위나 항의 참여
8.706 .000 (***)
분석 결과, 두 국가는 사회적 자본 수준에 비해 시민참여는 다른 방향으로 (비관습적 참여) 타이완 (N=1,657) 2.86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먼저 관습적 참여인 투표는 한국이 타이완보다
† p<.1, * p<.05, ** p<.01, *** p<.001
약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에서 높았다(t=-1.694, p=.090).1 측정에서 투표에
참여했다 1),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2)로 코딩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타이완
보다 약간 높은 투표 참여를 보인다. 한국과 타이완의 투표 참여가 통계적으 2.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하는 다중 회귀분석(multiple regression analysis)을 <표 6>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만족도 모델
실시했다. 한국 모델 타이완 모델
먼저, 한국 모델의 회귀방정식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B 표준β t Sig B 표준β t Sig
(F=5.180, p<.001). 그리고 회귀방정식의 설명력을 나타내는 Adj R2=.037로 나타 (상수) 2.177 7.118 *** 1.024 5.905 ***
났다. 모델의 자기상관을 파악할 수 있는 더빈-왓슨계수는 1.950으로 2에 근
접하여 자기상관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은 한국의 민주주의 만족도
신뢰
는 정부 신뢰가 높을수록(p<.001), 친밀성이 높을수록(p<.01), 그리고 소득이 높 정부 신뢰 .115 .104 3.509 *** .180 .263 10.869 ***
일반화된 타인 신뢰 .025 .023 .767 .135 .113 4.772 ***
을수록(p<.001)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회적 자본 변인 중에서 신
뢰와 수평적 네트워크 변인이 민주주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경제 변인은 소독이 가장 강한 인과성이 있는 것으로 호혜성의 규범
타인에게 도움 요청 -.004 -.003 -.099 .068 .062 2.454 *
나타났다. 회귀방정식이 한 단위 이동할 때의 변인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는 타인이 나에게 도움 요청 .016 .013 .378 -.065 -.052 -2.037 *
표준화 계수 β는 소득 .145, 정부 신뢰 .104, 친밀성 .079의 순으로 나타났다. 개인과 공동체이익 선호 -.027 -.023 -.789 047 .059 2.511 *
가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적 자본은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렵다. 장기간의 사 주주의 선순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회적 협력의 무형자산이란 점에서 한국에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쉬 넷째, 분석에서도 확인되지만, 투표나 시위, 집회 등의 비관습적 참여행태는
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사회적 자본 강화를 위한 노력은 정부 신뢰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 신뢰가 낮고 호혜성의 규
투 트랙(two-track)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 번째 트랙은 정부, 국회 등 공적 조 범이 형성되지 못하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
직에서 제도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주요하고, 두 번째 트랙은 시민사회의 노력 일 것이다. 나이(Nye 1998)와 잉글하트(Inglehart 1998)의 지적대로, 현대 민주주
이 추가되어야 한다. 앞서 제시한 정부 신뢰의 향상과 공동체성 강화라는 차 의 국가의 낮은 정부 신뢰가 정부 자체가 아닌 현 정부 권위체에 대한 실망감
원에서 살펴본다면, 제도적 차원의 노력은 공적 조직들의 책임성과 투명성 제 의 반영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정부 신뢰의 하락은 한국 민주
고 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이해관계와 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 신뢰와 시민참여 행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즉 민주주의 제도의 주권자로 태를 연관 지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민들의 시민참여 의지를 수렴하
서 시민이 인식을 높이고 이를 제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참여 방안에 관 지 못한 제도적 한계가 정부 신뢰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
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바람직한 시민문화 형성 역시 중요하다. 장기적인 관 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 요구를 정치 매개 조직인
점으로 낮은 차원에서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현재 각급 지방정부에서 추진 시민단체, 정당 등의 협력 또는 거버넌스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중인 마을공동체 운동,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시민문화의 재형성도 필요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적 자본 형성과 축적을 위한 제도화된 참여의 플랫
하다. 폼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은 사회적 자본의 재형성과
셋째, 타이완의 높은 사회적 자본 수준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선순환의 축적을 위한 시민참여의 확대 제도화, 정부 차원의 공동체 의식의 회복 등 다
토대가 될 것이다. 타이완은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 네트워크 형성 등 사회적 층적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사회적 자본을 형성, 민
자본 모든 차원에서의 다차원적인 축적이 진행되었다. 이 성과는 향후 타이완 주주의 강화, 시민참여 확대를 실현하기 위한 교집합의 영역을 찾는 것도 필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실제 타이완은 2014년 요하다.
1
해바라기 혁명 이후 의회에서 개혁 입법이 통과되고 여당과 야당의 평화적인 다섯째, 한국의 낮은 사회적 자본과 높은 비관습적 참여에 대한 우려감도
정권교체 등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중국과 양안 갈등의 정치 불안정성은 있 존재한다. 과도한 비관습적 참여가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지만, 타이완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은 노리스(Norris 2011)는 현대의 비판적인 시민(critical citizen)으로 인해 저항적인
주 2015). 이번 분석에서도 장기적으로 타이완에서 사회적 자본의 축적 → 민 참여가 증가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비관습
주주의 만족감 증가 → 시민참여의 증대 → 사회적 자본의 재축적이라는 민 적인 참여로 인한 참여 과잉 문제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의 정부 신뢰와 관련해 비관습적인 참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제도 불안정성이 남아 있는 ‘깨지기 쉬운’ 민주주의
1 해바라기혁명은 2014년 3월 중화민국의 대학생과 사회운동세력이 중국과의 일방적인 양안서비 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민의 폭발하는 비관습적인 참여를 제도화하
스협정을 반대하여 입법원을 점거농성한 사건이다. 이후 10만명의 시민들이 동조시위에 나서면
서 시위대의 의견이 반영된 합의안이 도출된 시민운동이다. 지 못할 경우,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별적인 이해관계에만 매몰되는 집단행
308 OUGHTOPIA 35:2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다층적 사회적 자본: 한국과 타이완을 중심으로 309
동(collective action)으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 . 2010. “한국의 사회적 자본과 시민참여 2: 사회적 자본과 시민참여 동
이상 연구를 마치기에 앞서 한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비교 설문 학의 변화.” 『국가전략』, 16권 4호, 125-150.
조사는 통일적인 조사라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 2008. “시민사회,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자본 : 한국과 필리핀을 중심
각 국가의 내면적이고 인지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으로.” 『아태연구』, 제15권 제2호, 141-162.
는 것이다. 둘째, 다양한 사회적 자본의 변인을 설계하지 못한 한계도 존재한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2009. 『정치학』. 서울: 숲.
다. 기존 시행된 설문자료를 활용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의 다양한 측면 우슬러너, 에릭. 박수철 역. 2010. 『신뢰의 힘』. 서울: 오늘의 책.
을 측정하여 분석한 연구에 비해서는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 셋째, 연구에 사 유석춘 외. 2002. “사회자본과 신뢰: 한국, 일본, 덴마크, 스웨덴 비교연구.” 『동서
용한 ABS가 가장 최신의 조사임에도 2014년과 2015년의 데이터인 관계로 현 연구』, 14권 1호, 101-135.
실을 반영하기는 약간의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한계도 있다. 이처럼 몇 가 이동원 외. 2010. 『제3의 자본』.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을 민주주의와 이승종·김혜정. 2011. 『시민참여론』. 서울: 박영사.
시민참여 간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시도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이재신·이영수. 2012. “사회자본과 SNS.” 한국언론학회. 『한국사회의 정치적 소
바탕으로 더 발전된 한국과 타이완의 사회적 자본 비교연구가 활성화되기를 통과 SNS』. 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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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 고 일 2020년 08월 20일 Social capital is an important factor in civic participation and
■ 심 사 마 감 일 2020년 10월 08일
consolidation of democracy. This study is a comparative analysis of
■ 수 정 일 2020년 10월 13일
■ 최종게재확정일 2020년 10월 14일 the differences in social capital and democratic satisfaction between
Korea and Taiwan using the social capital approach. The research will
apply a quantitative methodology that analyzes the ABS survey. The
analysis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mong the social
capital components of Korea and Taiwan, trust, reciprocity norms,
and horizontal networks were found to be high in Taiwan. Second,
citizen participation in Korea and Taiwan is also different. Citizen
participation was found to be high in Korea in both conventional and
non-conventional participation. Third, it was confirmed that trust and
horizontal network are common variables in the satisfaction of democracy
in Korea and Taiwan. Therefore, it was suggested that institutional and
civic-cultural preparations are needed for social capital formation in
Korea.
김태영
국문요약
본 연구는 자치권의 확대가 삶의 질을 개선 인되었다. 미합중국의 출범 과정에서도 유럽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단인지, 마땅히 추 제국들로부터 독립을 지향하고 각 주의 권한
구되어야할 목적 그 자체인지를 확인하고자 을 인정해주는 지리적 공간 개념의 자치권과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세금에 대한 인식이 왕정에 반하는 인민주권이 동일한 비중으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리고 자치권이 어 중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연구를 통하여 자
떻게 태동되었는지를 탐색했다. 그 결과 자 치권의 확대는 적어도 유럽의 경우 그 자체
치권은 인민주권과 마찬가지로 왕정에서 공 목적이라는 점이 일부 확인되었고, 그 결과
화정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태동되었으며, 인 향후 예상되는 지방자치의 모습을 그려본다
민주권이 목적 그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면, 자치권이 더욱 확대되어 주권자 개개인
자치권도 목적으로 간주된 역사적 사실을 확 이 초소형 플랫폼 지방정부를 실시간 활용하
인했다. 고대에서 중세에 걸친 시기에 세금 게 될 것이며, 이는 공화정의 정신을 더욱 함
에 대한 인식변화가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었 양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다. 근대 공화정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한편으로 군주에 반하는 인민주권과 다른 한
편으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중앙에 반하는 국문 주제어: 자치권, 인민주권, 공화정, .
자치권은 양대 축으로 역할을 한 것으로 확 중세유럽도시, 조세제도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
1A5C2A02083124)
**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미국 코넬대학교 도시행정 박사학위 취득.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행정
안전부정책자문위원, 대통령소속자치분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 “재정
분권에 대한 이해와 오해” 등이 있다.
316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17
치권의 확대는 곧 민주주의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소중한 가 예산상의 이유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여전히 지방의회 사
치라는 입장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자치권의 확대를 통하여 국가발전이 기대 무국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맡겨져 있고, 이는 예산의 문
된다는 것이다. 1987년 헌법 제117조와 제118조에 지방자치제도 도입 관련 제도 아니지만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극적이다.3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방자치
조항이 명시된 이래 자치권의 확대는 신성시 되었다. 1991년 지방의회의 설치 단체장 역시 지방 고유의 자치인사권과 자치조직권을 중앙정부로부터 온전히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치권의 확대는 그 자체 목적 이양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자치권의 확대를 어떻
1
이 아니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문재 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4
인 정부가 연방제에 버금가는 수준의 자치분권을 이루어 내겠다고 선언한 것 정리하면 최근 자치권의 확대 논의가 답보 상태에 놓인 가장 근본적인 이
도 역설적으로 보면, 그 동안 지방자치에 대한 열망과 진척이 크게 성과를 거 유는 자치권의 확대를 그 자체 목적으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치권의 확대 는 점이다.5 국민의 절반 정도가 여전히 지방자치에 대하여 불신하고 있다고
논리를 국가발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 하는 주장도 있다. 그 결과 지방자치제도가 반쪽짜리로 운영되고 있으며, 단
방이 발전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논리를 진보정부와 보수정부를 가리지 않 체장을 선출한다는 것 외에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주장도 이와
고 정부 구호로서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배분비율, 국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방자치제도를 형식적으로만 도
세와 지방세의 비율 등 실제 통계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여전히 국가발전은 입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인력과 예산 낭비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
2
중앙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믿음이 저변에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치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주장도 상당수 확인된다. 권력이 주민 가까
말하자면 지방자치의 추가적인 활성화를 통하여 국가발전이 기대될 수 있 이 있기 때문에 민주성이 효과적으로 확보될 수 있으며, 주민 친화적 행정이
다는 주장에 대하여 여전히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치권의 확대를 수
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지방자치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
을 암묵적으로 하게 된다. 이 경우 지방자치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3 2019년 국회에 제출된 지방자치법전부개정(안)의 내용 중에 이와 같은 부분을 시정하려는 노력
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결국 법안 통과는 불발되었다.
지도 모른다는 단 하나의 통계만 제시되어도 지방자치의 강화에 대한 주장은
4 온라인 행정학 사전(2020)에 의하면 자치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지배하고
위축된다. 예컨대, 지방자치의 핵심 축 중의 하나인 지방의회가 활성화되어 그 소관업무를 자신의 책임 하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지방자치권이 필요하게 되는데, 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책지원인력에 대한 보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방자치권이라 함은 지방자치단체가 그 존립 목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가지는 일정한 범위와 권
능을 말한다. 지방자치권의 본질에 대해서는 고유권설, 전래권설, 제도보장권설 등 다양하나 지방
자치권을 국가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보장된 일정한 범위의 자율적 통치 권능이라고 보는 제도보
장권설이 통설이다. 세부적으로는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 자치행정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가 추진해 온 각종 지방자치종합계
5 지방자치의 성과에 대하여 줄곧 질문을 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지방자치를 통하여 우리가 실
획안의 기본 정신에 이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자치권의 확대 논리가 담겨 있다. 구체적 내용 추가
질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재 시대를 지나 민주사
해서 인용할 것
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시대와 비교하여 실질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해야 할
2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대략 67%: 33% 정도로 보고되고 있으며, 국세와 지 것이다. 혹자는 독재를 통하여 더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기대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흔히 박정
방세의 비율은 2019년 말 현재 아직도 78%:22% 정도이다. 희 정부의 성과를 이와 같은 논리로 정당화 한다.
320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21
1 온라인 행정학 사전(2020)에 의하면 자치권은 지방자치단체가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지배하고
그 소관업무를 자신의 책임 하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지방자치권이 필요하게 되는데, 지
방자치권이라 함은 지방자치단체가 그 존립 목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가지는 일정한 범위와 권
능을 말한다. 지방자치권의 본질에 대해서는 고유권설, 전래권설, 제도보장권설 등 다양하나 지방
자치권을 국가에 의하여 제도적으로 보장된 일정한 범위의 자율적 통치 권능이라고 보는 제도보
장권설이 통설이다. 세부적으로는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 자치행정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322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23
옳고 무엇이 그른 일인가를 판단하는 제3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체 된 효용함수를 극대화하는 작업에 집중되었다.2 결국 공리주의 역시 논리적으
인간의 순수 이성에 근거해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어떠 로는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지만 현실적으
한 경우라도 부패는 옳지 않은 것이며, 근절하려 노력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 로는 직관주의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어떤 단
이라고 한다. 부패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인 계에서는 반드시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 주관적 판
간의 직관(intuition)이라는 것이다. 직관은 합리적 이성(reason)에 근거하며, 이 단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 이성(reason)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직관주의와 크게
1
는 양심의 준거라고도 한다.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3
한 사회의 공리 또는 효용(utility)을 증진시켜줄지 여부에 따라 어떤 행위가 공화국의 등장 논리가 공리주의 철학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 인
옳은(right)것인지, 또는 그른(wrong)것 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이 기준은 매 류가 추구해야할 목표로서의 가치에 근거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공화국의
우 유용할 것이다. 효용은 행복 또는 경제적 번영 등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지 등장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자칫 독재도 정당화 될 수 있
만, 결국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구성원 각 다. 만약 독재가 더 큰 번영을 보장한다면 독재도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자는 다양한 효용 함수(utility function)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효용 어떠한 경우에도 독재는 정당화될 수 없는가? 또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화정
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행위에 대하여 묻는 은 포기되어서는 아니 되는가? 공리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가? 공리
방식으로 선호체계(preference system)를 도출해 낼 수는 있다. 개인의 효용함수 (utility)는 효용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과 그 수준을 의미
를 수평으로 합하면(horizontal sum) 사회의 효용함수(social utility function)가 도 한다고 전술했다. 사람들이 선호(preference)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출된다. 사회의 효용함수를 극대화하면(maximized) 그 사회가 원하는 것이 하 선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효용함수를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
나의 단일 함수(social demand function)로 표시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함수 값 다고도 전술했다. 그러나 공리주의 추종자들은 인간의 선호품목을 화폐로 표
의 극대화를 위한 선택을 확인하면 된다. 어떤 행위가 우리 사회에 총체적으 시하는 묘수를 고안해 냈다고 판단된다. 말하자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준
로 도움이 될 것인지의 여부가 수치로 확인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여타의 다면 독재가 허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진화된 공리주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
행위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며, 이 또한 수치화되어 확 다.4 공화정 역시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전제 하에 허용되어야 한다
인 가능할 것이다. 20세기 경제학 연구의 추세는 효용함수를 탐색하고, 탐색
2 21세기 경제학의 추세는 효용함수를 다양한 방식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결과 객관적
인 효용함수의 도출 자체가 쉽지 않다는 분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행동경제학, 게임이론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정보경제학 등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가속화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경
1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인간의 이성에 기초 향이 있다.
하여 보편적 법칙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저작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3 John Rawls(1971)는 직관주의와 공리주의 간 절충점을 모색하려 시도했으며, 나름의 대안을
비판 등은 훗날 직관주의(intuitionism) 철학으로 명명되며 하나의 철학 사조를 이룬다. 인간의 합
제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성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제자인 마이클 센델 교수
리적 이성에 기초하여 직관에 의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증명이 필요
역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없는 그 자체로 추구해야할 보편적 목적이 있음도 강조했는데, 본고에서는 자치권의 확대가 칸트
가 지칭하는 옳음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4 김태영(2004)은 정부혁신이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324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25
는 논리도 피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경제적 번영이 기대된 2. 공화정의 본질과 자치권에 대한 이해
다면 독재도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반대로 경제적 번영과 상관없이 과연 공화정은 그 자체로 선이자, 추구되어야 최초의 공화정은 고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영어로 republic이라고 표현되는
할 가치인가? 인류 역사상 어떤 계기로 어느 시점에서 공화정이 보편적 국가 공화정은 여럿이라는 뜻의 res publica에서 따온 개념으로서 공공성(publicness)
운영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살펴보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이 구해질 을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3 한자 문화권에서는 사기에 나타난 바
것이다.1 후술되겠지만 공동체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 와 같이 주나라시기에 동일한 의미로 공화(共和)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왕이
하면서 공화정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 부재중일 때 여러 신하들이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공화제라고 불렀
2
찰 역시 공화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 던 것으로 이해된다. 어쨌거나 로마시대에도 당시 정치의 주체가 시민에 제한
독립선언 과정에서 알려진 것처럼 경제적 가치보다 자유 그 자체가 중요하다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공화정과는 다르지만 왕이 독재하는 것을 반대했다
고 인식했는데, 인류역사상 가장 온전한 형태의 공화정이 미국에서 시작되었 는 측면에서는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원로원
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심 로마 통치 시스템을 공화정의 맹아로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사실상 왕이 로마 시민의 여론을 의식했다는 점에서 진전된 공
화정을 갖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당시 로마에서는 왕정과 공화정 간 선택
의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그러나 고대 로마 공화정은 여전히 제한된 인민
주권 개념에 의하여 운영된 것이었으며 원로원 의원 역시 지역을 대표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자치권의 등장과는 거리가 있다. 로마 전성기 시절 지역 대
1 본 연구의 핵심 질문인데, 저자는 그 기원을 중세말기에서 찾고자 한다. 12~13세기 경제 도시 표로서 원로원 의원이 추천되기도 했지만, 현재의 지역 자치와는 여전히 다른
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시민의 경제적 역량이 증진되어 주권에 대한 관심
도 생기기 시작하고, 동시에 자치권에 대한 관심도 증폭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내용은 연 측면이 많다.4
구 과정에서 확인될 것이다. 마르실리우스의 정치사상과 관련된 이화용의 인민주권에 대한 연구
(2001)도 주권에 대한 관심이 이 시기에 태동되었다고 밝힌바 있는데, 공간 개념이 적용된 자치
권에 대한 논의는 누락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인민주권 개념보다 지역에 기초한 자치권 개념이
선행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도시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추가적인 3 「정부의 재발견」, 이동수 편(2015) 제2장에서 고대 로마정에 대한 심도 있는 소개가 등장한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도시 중심 자치권의 확보였기 때문이다. 후술될 플렌 민주와 공화의 공통점과 차이를 확인해줄 목적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당시 로마 시대에는 민주
스부르크의 도시법이 제정된 것도 1284년이다. 도시 자치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경제발전에 대 와 공화가 상호 보완적으로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동수(공)의 다른 서적(공화와 민주의 나
한 관심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치안 등 다양한 내용의 자치권이 포함되어 있다. 라)에서도 이 점이 강조되는데, 공화정이 공공성을 강조하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협력적 노
력을 중시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후술하게 될 공화정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2 예컨대, 19세기 초중반 키르케고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실존주의 철학은 당시 시대의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동양에서의 공화정도 공공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산물이며, 인간이 도구가 아니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의 시대사조인데, 당시 정치사상에도 영향을
민주주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의미에 적합한 인간에 대한 탐구,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내는 정치적 자기 결정권에 적합한 공화정은 당시 시대사조인 인간 중심 실존주의 철학 4 이동수 외(2015), 「정부의 재발견」에서 “민주보다 공화가 앞선다”는 표현이 등장하며, 최근 공화
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유는 인간에게 단순히 소중함을 넘어서는 그 자체 목적이 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민주주의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공화는 공공성 등 공익과 협
라는 점에서 공화정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소 기계적인 민주와는 살짝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고대
326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27
그러나 중세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개인과 지역이 동시에 주인의식을 갖기 Ⅲ. 자치권의 확대와 공화정의 진화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 도시의 발달로 인해, 중앙으로부터 독립하
려는 도시들은 자치도시(self governing cities)를 주장하게 된다. 주권재민이 먼저
인지, 주권재도시가 먼저인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도시 내의 개인이 영 1. 공화정의 현재진행형
주(lord)를 상대로 주권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영주는 황제(emperor)를 상대로
자치권을 주장하게 되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된 것도 중세의 특징이다. 자치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은 곧 주권재민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공화정의 본질은 인민주권과 지 달리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가는 주인의 복리 증진을 위한
역 자치가 동시에 추진될 때 비로소 가능하며, 이는 중세 도시에 대한 탐구를 도구라는 것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국민은 과연 나라의 주인인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라면 자치
권의 확대는 그 자체 목적임이 틀림없다. 자치권의 주체는 종국에는 개인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주인인 국민 개인이 스스로 통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
러 사정상 국가에 자신의 권한 일부를 양도하여 통치하도록 했을 뿐인데, 이
제 여러 사정이 변경되어 권한을 되돌려 달라는 것이 자치권의 확대 논리다.
자치권의 확대 경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나는 정부의
권한이 수평적으로 각부 장관과 국회에 이양되는 과정을 거친다. 또 하나는
정부의 권한이 지역으로 이양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수평적 수직적
권한 이양은 종국에는 개인에게 귀속된다. 지방자치와 관련된 자치권의 확대
는 수직적 권한 이양을 강조해서 일컫는 표현이다.1
그러나 국가의 주인이 개인이 아닐 수도 있다면 답은 달라질 수 있다. 또는
국가의 주인이 아직은 개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애당초 국가의 주인은 국가를 만든 당사자다. 통상 그 당사자를 왕
으로 칭한다.1 국가를 만드는데 부가적인 공헌을 한 자는 왕과 일정한 지분 답을 구하고자 한다. 왕이 국가를 수립하고 운영하며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
을 나누어 갖기도 하지만 결국 왕의 소유권 범위 내에 있다. 왕국(kingdom)에 과했는데, 서구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 왕이 부과한 세금(tithe)이 최초라고 한
서의 국민은 왕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자치권을 갖지 못한다.2 역사적으로 보 다. 당시 수입의 10%를 세금으로 부과했는데, 중요한 점은 세수입의 목적이
면 왕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일찍 지역 또는 개인에게 이양된 나라도 있고, 그 납세자에 대한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제공에 대한 대가(reward)가 아니고,
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떤 나라의 경우 현재까지도 왕이 모든 권한을 갖고 단순한 수수료(fee, corvee)의 개념으로서 백성이 왕에게 납부해야할 금전적 의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으며, 수 무로서 부과했다는 점이고, 이와 같은 형태가 조세의 효시다. 한편 납세자 역
평적 수직적 분권을 현재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은 공화국을 지향하는 시 공공서비스 등 어떤 대가를 기대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고, 왕의
3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토에서 신민으로서 살아가면서 당연히 부담해야할 의무(duty)로서 세금을
이해한 것으로 해석된다.4 영토의 주인인 왕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해야 함
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하여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
2. 자치권의 태동과 공화정의 진화 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5
페르시아의 조세제도 역시 세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 개념으로서 운영
1) 조세제도의 효시와 자치권에 대한 이해 되었다. 다만, 이집트의 조세제도에 비교하면 더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되
그렇다면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의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 는데, 지역별 할당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세금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사
을까? 본고는 서구의 조세제도와 도시의 발달 과정을 통하여 이 질문에 대한 트라피(satrapy)라고 하는 지역 단위를 중심으로 생산량에 따라 일정한 비율을
적용하여 부과했다.6 세금(tax)의 의미는 원래 요금(rate, fee)에서 따왔는데, 구
3 김태영(2017)은 한국일보 기고문(2017년 1. 26)에서 민주공화국의 완성은 지방분권에 달려 있 6 페르시아의 사트라피는 현대적 의미의 지역 책임자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지역 자체를 의미하기
다고 주장했는데, 토크빌이 주장한 것처럼 수평적 수직적 권한 이양이 곧 근대화 과정이라고 한 도 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지역 책임자를 임명하여 일종의
것처럼 한국사회는 어떤 의미에서 이제 막 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술되겠지 분할 통치를 했다. 키루스 대왕 시기부터 도입된 제도인데, 세금을 거두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
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치권의 확대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다. 사트라피의 규모, 특성 등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했으며, tax(세금)라는 용어도 요율(taxi-
330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31
성원 각자에게 어떤 비율로 얼마만큼 부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왕(정 고, 공화정을 도입하게 된다. 후술하게 되겠지만 세금 거부운동이라는 표현보
부)의 책무로 받아들여졌다. 납세자는 본인에게 부과된 세금을 거부할 수도 다는 세금을 부담하는 목적에 대한 재인식을 통하여 주권과 자치권의 개념이
없고 거부할 의도도 없다. 다만, 합리적으로 요율이 결정되지 않은 채 부과된 싹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세금을 납세자들이 접하게 되면 왕국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왕은 최
대한 합리적으로 조세제도를 운영하려 노력했다. 국가의 주인은 왕이기 때문 2) 중세도시의 발달과 자치권의 개념 등장
에 국민은 전쟁에 동원될 때도 무조건 응해야 했고, 각종 국가 일에 동원되었
다. 당시 노동(forced labor)이라는 용어도 세금과 동일하게 사용되었으며, 세금 (1) 중세도시의 발달과 조세제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을 노동으로 대체한 경우도 많았다. 간혹 전쟁에 동원된 국민들에게 대가를 북부 이태리 중심 중세도시의 발달은 상업자본의 등장에 힘입은 것으로 알
지불하거나 국가 일에 동원된 국민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지도자도 있었지 려져 있다. 그들은 영주와 교황에게 세금을 납부했는데, 초기에는 현실세계
만 이는 매우 특별한 경우였으며 대개의 경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무료 의 주인인 영주와 영적세계의 주인인 교황에게 당연히 납부해야할 의무로서
1
봉사해야 했다. 세금을 인식했다. 십일조와 세금은 본래부터 동일한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전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조세제도를 바탕으로 자치권을 이해한다면, 만약 자 술했다. 고대 왕국에서도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납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치권이 일부 허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왕으로부터 위임된 제한된 의미의 경우에 따라서 20%를 걷기도 했다. 당시에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었고, 권력
권한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조세부담 정도를 차등적으로 적 자체가 금전적 권력을 내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민들 입장에서는 왕은 의
용하려 했던 페르시아의 경우도 지역 자치를 허용하지는 않았고, 당사자들 역 지의 대상이고, 본인들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로 여겼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
시 자치권을 주장하지도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애당초 주권은 왕에게 귀속 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하고 그에 따라 상공업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경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권재민 의식도 없었고, 자치권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고 계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길드 등 조합의 결성으로 자본을 중심으로 새로
이해할 수 있다. 공화정은 주권이 인민에게 있고, 지역에 있을 때 가능한데, 당 운 계급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에는 인민도 지역도 주권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 조세제도를 통해 확인될 상업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상업도시의 경제력은 더
수 있다. 훗날 인류는 세금 거부 운동을 통하여 주권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 증가하게 되는 선순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세금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납세자 입장에서 세금은 교황과 왕 중 한 쪽에만 납부하는 것이 합리적이었
을 것이다. 당시 인민주권 개념의 등장은 세금 부담을 회피하려는 노력의 일
환이었을 것이다.2 고대시민과 비교하면 중세도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정치보
meter)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떤 요율을 적용할 것인지의 기준은 지역의 넒이, 비옥도, 인구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결정한 것이다. 어쨌거나 핵심은 지역이 당연히 부담해야할 금전적 가치
를 왕이 정하는 것이며, 해당 지역은 이에 대하여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1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리스 아테네의 페리클래스 장군은 전쟁에 동원된 국민들에게 전리 2 마르실리우스 사상의 핵심은 인민주권이 어떤 환경에서 등장했을까? 인데, 교황, 왕, 인민 간의
품을 골고루 나누어 준 것(equal right clause)으로 유명했으며, 그 결과 아테네 최고 지도자로 권력관계에서 인민이 본인들의 위치를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세금을 중심으로 인민주권이 싹트
서 30여 년 간 군림할 수 있었다. 「키루스의 교육」 (2015), 이동수 역 참고. 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이화용(2001)의 연구도 따지고 보면, 이들 삼자 간의 권
332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33
다 경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1 고대에는 부의 크기 자체가 제한되어 있었고, 로 이해된다. 고대도시 구조의 특징은 정중앙에 신전을 중심으로 귀족과 시민
큰 부가 형성 되는 과정 자체가 노동보다는 전쟁 등에 의존했기 때문에 경제 이 거주하며, 이들은 도시 밖의 농민, 노예 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왕과 사제
보다는 정치가 더 우선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업 등이 발달하면서 전쟁 에게 세금을 바치는 구조다. 과거와 다른 점은 도시가 이러한 세금 사슬을 더
등 정치행위를 통하지 않고도 부가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은 중세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고대도시에 거주하는
가 고대와 크게 다른 점이다. 이제 경제적 부(wealth)를 형성한 도시민과 당대 시민을 정치적 인간(homo politikus)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계급에
2
의 도시들은 세금 부담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만 관심을 가질 정도 수준의 부(wealth)밖에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까지만 하더라도 세금은 십일조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의무, 그 에는 도시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귀족 신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잉여 생
자체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치안, 항만, 교역 등 도시 관리를 지역민들이 자체 산을 창출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왕국에 영향을 줄만큼의 경제적 자산을 형
적으로 수행하고 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왕의 역할이 크지 않았고, 그 결과 성하지는 못했다.
세금을 납부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면 도시의 규모가 더 커지게 되고 도시의 형태는 성채
(fortress)로 둘러싸인 모습인데, 성 안에 거주하는 도시민들의 계급도 구분되
(2) 중세도시의 구조와 경제계급에 대한 이해 기 시작한다. 일반 서민 중 경제적 능력이 확보된 농민, 상인 등도 성채도시
그렇다면 당시 인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납부했을까? 세금 부담 비 안에 거주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세금을 직접 납부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 도
율은 고대 왕국들처럼 지역별 할당제는 아니고, 개인의 소득에 비례하거나 교 시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곧 납세자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
역 등 정부 서비스를 활용할 때 부담하는 현대식 방법에 의존했다. 다만, 납 세 도시의 구조는 교황과 왕 또는 영주가 한 가운데 위치하고 나름의 계급에
세자들이 거주하는 공간 자체가 구분되어 일종의 경제계급이 공간상에 분포 따라 주변으로 거리에 비례하여 배치되었다.3 어떤 측면에서 도시구조는 세금
하기 시작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고대 도시민들이 정치계급에 따라 거주지 을 부담하는 정도와 일정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해된다.4 결국 도시에 거주
가 결정되었다면 중세 도시에서는 경제계급도 주거지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
하는 납세자들부터 인민주권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납 권한 등을 명시한 일종의 자치법이다. 당시 도시법에 따라 자치권과 과세권이
세자의 거주지는 중세도시 구조상 왕 또는 교황과의 거리에 따라 배치되었다. 정당화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경에 이르면 주요 납세자인 상인들이 영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오는 도시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284년 제정된 플렌스부르크
상황이 발생하는데, 치안, 재정, 도시 관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재판권까지 의 도시법은 도시헌장(city charter)이라고도 한다.2 도시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
이양 받게 된다.1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세력 중 하나는 길드로 알려 는데, 해당 도시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해 놓은 것이다. 상
진 상인조합(merchant guild)이다. 훗날 정주하며 자치권을 주장하게 된 수공업 위법과 배치될 수도 있는데, 자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시헌법이라고
길드에 이르면 자치권이 거의 확보된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도 할 수 있다. 과세권 등을 명시하여 도시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기만 하면
중세도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도시 자체가 하나의 경제공동체(common 새로운 조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교역 등에 관한 자유를 명시할 수도 있
wealth)로 발전하게 되고 납세자인 경제계급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으며, 납부해야할 세금의 수준도 결정할 수 있다. 위 도시법은 19세기말 미국
들 경제계급은 초기에는 왕과 교황 사이에서 정치를 하며, 세금 부담을 최소 의 주요 도시들이 자치헌장을 갖게 된 배경과 유사하며, 마그나 카르타 제정
화하려 시도했다. 신권 시대인 중세를 거치면서 교황에게 기울어진 경제계급 에 포함된 도시별 자치권 부여 노력과도 유사하다. 공통점은 도시 문제를 스
은 훗날 왕에게 납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위 인민주 스로의 재원으로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며, 도시 지도자의 선출도 헌장에
권(popular sovereignty)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인민으로 지칭 의거하여 자체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세권의 부여는 자치권 확대
되는 계급은 납세자에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의 핵심 사항으로 공화국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연방
국가로 발전한 독일의 주요 도시들이 자치권을 확보하고 공화국 정신을 함양
(3) 중세 경제도시와 자치권의 개념 등장 할 수 있게 된 효시가 바로 플렌스부르크의 도시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중세시대 경제도시의 등장이 자치권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도 이태리 북부의 주요 경제도시들이 자치를 선언하고 왕과 대립을 이루기 시
시 내부적 관점에서의 인민 주권 운동이 도시 외부로 확산되어 개별 도시가 작한 것도 이 즈음이며, 당시 파도바 출신 마르실리우스는 교황에 비하여 왕
왕에게 납부해야 하는 세금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 의 권한을 옹호하며 경제도시의 위상을 증진시키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훗
할 필요가 있다. 거대 경제도시들이 중앙으로부터 자치권을 요구하고 나선 시 날 사회계약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되는 인민주권에 대한 개념이 싹튼
점이기도 한다. 현재의 독일에 속해 있는 플렌스부르크는 1284년 최초로 도
시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자치권 개념의 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법이
란 중세유럽에서 영주가 영지 간의 교역에 관한 권한과 길드 등을 결성하는
2 도시헌장제도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일종의 도시헌법과도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뉴욕시의 헌장을 Home Rule Charter라고 하며, 자치헌장이라고 번역된다. 뉴욕시 헌장은 뉴욕
주 헌법에 의거하여 일종의 특권을 보장받은 사항을 정리해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치단
1 Schultz(2013)에 의하면 당시 코뮌의 형성과 시민의 등장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한 체들은 원칙적으로는 주(state)가 만들어낸 피조물이지만,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해줌으로써 온
다. 결국 납세지로서의 시민이 인민주권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전한 공화국 정신을 함양하고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36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37
것도 이 시기로 알려져 있다.1 왕의 권한을 남겨둔 채 인민 주권을 강조하기 이를 정도였다. 런던의 인구가 당시 4~5만 정도에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하
가 수월했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당시에는 모든 인민은 신에 귀속되어 있 면 북부 이태리 경제도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파리의 인구가 10만 정도
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권, 주권, 자치권의 개념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고 짐작 였고 독일의 경우 쾰른, 프라하가 당시 5만 내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된다. 왕은 일종의 영주이기 때문에 왕국 하에서는 계약의 논리에 따라 인민 도시민들은 오늘날 시민권에 해당되는 특허장을 왕으로부터 제한적으로만 받
주권의 개념이 확보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3세기 말부터 경제도시 았다. 특허장을 소지해야 제한적이지만 도시민으로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
들이 왕으로부터 독립하여 주도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 기에 특허장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한편 경제구모가 커지
졌는데, 왕은 자치권을 인정하고 안정적으로 세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 면서 이들 도시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경제공동체, 정치공동체들이 활동하
으로 짐작된다. 경제도시들이 자치권을 강조하고 조세행정 개혁 과정을 주도 기 시작하는데, 길드 등 상인조합의 출현과 동시에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서
한 것은 훗날 사회계약론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으로 평가되며, 동시에 지역 또는 자치 활동의 수단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commune)가 등장하기 시
2
에 근거한 자치권의 확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작했다.3 이를 통해 자치권의 개념을 확대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훗날 시민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4
(4) 중세유럽의 코뮌 운동과 자치권의 확대 그런데 도시민들이 특허장을 받고 시민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5 애당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북부에는 프랑스 북부를 중심으로 경제도시가 발 초 도시의 관할권은 영주, 대주교, 교회영주 등이 갖고 있었으며, 왕은 그들
전했고, 알프스 남쪽으로는 북부 이태리를 중심으로 베네치아, 파도바, 밀라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경우 도시민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편을
노, 제노바, 피렌체 등이 발전했는데, 큰 도시의 경우 인구가 거의 10만 명에 들어 주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특허장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를 축적
하는 것이 관건인데, 전술된 각종 코뮌 활동을 통하여 법적 정치적 권리를 확 납세자가 원하는 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는 곧 왕이
보해 나간 것이다. 당시 주요 도시들의 주권자로서의 도시민은 도시 내부 전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주어진 임
체 인구의 3%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리용, 잉글랜드의 엑시터, 이태 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공화국 헌법 정신과도 유사하다.
리의 피렌체의 경우도 3% 내외의 인구만이 특허장을 소지한 인민주권의 주체 마그나 카르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63조항 중에 제
였다. 인구 규모가 가장 큰 베네치아의 경우도 대략 2,500명 정도만이 시민권 12조부터 제14조가 본 연구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제12조는
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도시의 중앙부에 거주했다. 르네상스시기에 접 “왕국 내의 어떤 종류의 군역세 또는 원조도 왕국 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
어들면서 인민주권의 주체로서의 도시민의 숫자는 크게 증가했으며, 이에 따 고는 강제할 수 없다. (중략)” 제13조는 “런던시는 특권과 관습상의 특전을
라 자치권도 확대된 것으로 짐작된다. 누린다. 기타 도시, 소도시, 항구들도 특권과 관습상의 특전을 누려야 한다.
(중략)” 제14조의 경우 “(중략) 원조나 군역세를 거두고자 할 때 필요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서신 등을 통하여 대주교, 주교, 수도원장, 백작 등에 알려
3. 공화정의 재등장과 자치권에 대한 이해 서 참석을 독려하고, 지방지사의 참여도 허락해야 한다. (중략)” 마그나 카르
타 내용의 일부를 발췌했는데, 위 인용문으로부터 두 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1) 마그나 카르타와 조세 수 있다.
도시 중심 지역 자치의 전개와 별개로 귀족들이 왕으로부터 독립하여 또 첫째, 세금 등 각종 부담금을 왕이 결정하지 말고, 납세자들이 결정하도록
하나의 인민 주권 운동이 영국에서 진행되었는데, 1215년 마그나 카르타 제 하자는 것이다. 이는 조세제도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조세가 단
정이 그것이다. 마그나 카르타는 몇 개의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1215년 순한 의무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걷힌 일종의 비용이라는
6월 15일 런던 근교 러니미드 평원에서 일단 구두로 왕의 권한을 제한한 후,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납세의 주체가 시민이라는 것과 국가
몇 차례의 보완을 거쳐 1297년 윌리엄 1세에 이르러 대헌장으로 제정된 것이 운영의 주체이자, 주권자는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주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그나 카르타의 내용이다. 총 63개의 장으로 구성 권의 개념이 명료하게 드러난 부분으로 파악된다. 둘째, 런던시를 비롯한 각
된 마그나 카르타의 핵심 내용은 제39장과 제12장인데, 39장에서 왕의 사법 개별 도시들이 자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은 개별 도시들이 갖고 있는 권
권 사용의 제한을 명시했고, 12장에서는 과세권과 관련하여 납세자인 영주들 한을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주권과 자치
과 협의하여 세금을 부과하도록 한 점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과세권의 권을 동시에 주장했고, 온전히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국 대
제한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판단된다. 영토 내의 모든 생명과 재산의 소유 헌장의 제정은 1215년이지만 실제 이행에 옮긴 것은 1297년이다. 어쨌거나
가 왕에 귀속되고, 보호의 의무도 왕이 갖고 있는데, 영주들이 과세권을 문제 12세기 유럽의 역사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고, 인민과 지역이 나라의 주
삼는 것은 사법권을 문제 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사안이다. 세금은 왕이 당 인이라는 공화국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짐작된다.
연히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와 상의하여 부과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곧
납세자가 주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왕의 의무는 세수입을
340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41
2) 사회계약론의 등장과 자치권의 본질 의 권한을 인민 전체에게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은 나
1215년 영국에서 시작된 왕으로부터의 독립 운동이 공화정의 토대가 되었 라의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공화정을 확산
다는 사실은 마그나 카르타의 여러 조항에서 확인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온전한 형태의 공화정의 시작을 프랑스 대혁명에서 찾
전술된 바와 같이 1284년 독일 플렌스부르크에서 제정된 도시법의 내용은 도 으려는 시도는 인민주권의 가치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2
시가 왕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동일한 시기에 이태리 북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조차도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는 논쟁에서 지역(region)
부의 여러 도시들이 왕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자치 운동을 벌였는데, 이와 맥 을 도외시 한 것은 아니다. 인민 누구나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
락을 함께 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과 지역이 영토의 주인임을 확인하기 시작 다. 그러나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으로 인하여 지역 중심 자치권의 확대가 온
했다고 판단된다. 공통점은 세금에 대한 이해이며, 조세저항 운동이 활발했는 전한 공화정을 함양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데, 일종의 조세저항 운동은 누가 영토의 진짜 주인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실제로 프랑스에서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화되기
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특징이다. 시작했으며, 1982년에 이르러서야 헌법 개정을 통하여 프랑스가 지방분권국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인민은 이번에는 왕과 영 가임을 헌법 제1조에 명시했다.3 어쨌거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공화국
주로부터 독립을 시도했다. 인간 이성의 재발견이라고 명명된 이러한 노력은 의 완성은 단순한 인민주권의 확립뿐만 아니라 자치권의 확보까지 담보되어
왕과 국가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다. 1651년 출간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나 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4
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상태(state of nature)로부터 벗어나
려는 의도로 국가를 만들었지만 결국 국가라는 괴물에 의하여 지배되고 만
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론의 핵심은 애당초 국가의 주인은 시민이었다는 것
이다. 홉스가 최초로 주장한 바는 아니지만 나라의 주인이 국가 또는 왕이 2 알베르 소불은 「프랑스 대혁명」(2016)에서 인민주권의 개념이 등장하고 완성된 시기가 바로 프랑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논리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꽤 긴 기간 동안 인민 스 대혁명기라고 한다. 중세말기부터 제한된 도시민을 대상으로 인민주권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삼는 인민주권의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라는 것이다.
주권에 대한 인식이 널리 공유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1
3 전학선(2015)은 “프랑스 지방분권 개혁의 최근 동향과 한국에의 시사점”에서 프랑스는 대혁명에
홉스 이후 존 로크, 장자크 루소에 이르기까지 소위 사회계약론이 보편적 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오랫동안 지방분권이 지연되어 균형발전도
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홉스와 로크가 인민주권의 이론적 토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 자치권의 확대와 인민주권의 확대는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
져야 할 것이다.
대를 제공했다면 루소는 실천가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루소의 실
4 흔히 중앙과 지방으로 구분하여 국가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중앙은 실체가 없다. 중앙
천철학이 반영된 프랑스 혁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1688년 명예혁명을 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에도 존재하는 관념상의 개념이다. 지방은 국토를 의미하며, 한
통하여 왕의 권한이 단지 귀족에게로 넘어갔다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왕 자어 지방의 뜻은 곧 전 국토를 의미한다. 인민은 누구나 공간상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지방에 거주하며, 공간상의 독립 또는 자치가 곧 주권의 확대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중앙
에는 거주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중앙에 거주하다고 믿는다면, 그는 필시 왕정 시대
의 왕일 것이다. 서울 거주민이 스스로 본인이 중앙에 거주한다고 오해하는 것도 오랜 중앙집권
적 왕정시대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서울은 경기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한민국 대표
1 이화용(2001) 참고할 것 지방이다.
342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43
4. 미합중국의 건국과 자치권의 본질 선언문의 가치는 지대하다. 그런데 미국의 독립선언이 촉발된 직접적인 계기
도 과세권과 관련이 있다. 1765년 영국의 인지세법과 1767년 타운젠트법의
1) 미국 독립선언문의 의의와 자치권 핵심 내용은 식민지로부터 세수입을 더 많이 창출하겠다는 영국 정부의 의지
프랑스 대혁명 이전 1776년에 발단된 미국 독립선언은 인민주권과 지역주 가 담긴 것이었다.4 납세자 중심의 조세 부담은 공화국 철학의 핵심이다. 납세
권을 동시에 주장한 온전한 형태의 공화정 철학을 담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자인 시민 또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정부는 대리인(agent)에 불과하다는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지역 자치를 강조한 측면도 있지만, 왕으로부터 독 것이다. 이와 같은 공화정의 논리가 지역에도 적용된다. 영토를 점하고 있는
1
립을 선언함으로써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 최초 지역 정부 또는 도시 정부가 주인이고 중앙정부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철학
2
의 대통령 을 갖게 된 나라로서 미합중국은 최초의 공화국(republic)이라고도 이 곧 공화국 철학이다. 인류사를 통하여 인민주권이 태동하고 발전되어온 시
할 수 있다. 미합중국이 공화국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철 간은 꽤 길다, 공화국으로서의 미합중국이 탄생함으로써 개인(people)은 국가
학은 인민주권과 자치는 그 자체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며, 두 개의 (state)의 주인이고, 지역(region)은 중앙의 주인이라는 점을 인류가 공유하게 되
축이 별개의 가치가 아니며, 동시에 추구되어야할 공화국의 가치라는 점이다. 었다.5
1775년 3월 23일 Patrick Henry의 리치몬드 연설문 말미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표현은 미국 독립선언의 의미와 가치를 가장 적절하게 표방하 2) 미국의 지방자치와 자치권의 본질
3
고 있다. 주권과 자치는 그 자체 추구되어야할 목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독립 1931년 프랑스 청년 알렉스 토크빌은 미국의 교도소 운영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3개 월 간의 미국여행을 했다. 교도소 시설 외에 토크빌이 접한 미
국의 특이 사항은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접하
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의견과 동네 자치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현대적 의미의 공화정은 개인의 주권과 지역의 주권이 동
토크빌의 시각에 의하면 유럽의 왕정 국가들은 자치가 쉽지 않은 구조적 문 시에 보장될 때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연방제(federal-
제를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왕의 권한을 개인이나 지역에 이양해주었다 ism)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프랑스 역시 이제 지역
고 믿는 한, 공화국의 완성은 요원해 보였을 것이다. 애당초 개인과 지역에 속 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공화국의 완성은 요원하다는 것과 국가발전
해 있는 권한이 왕과 정부에 조건부로 맡겨져 있다는 시각이 정상이라고 토 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
크빌은 믿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도 자치권의 본질을 재인식하고 헌법 개정을 통하여 반쪽짜리 공화국의 완
미합중국에서 공화정이 최초로 도입되고 가장 완성된 형태로 운영될 수 성을 위하여 헌법 제1조에 주권재지방을 주권재민과 함께 명시하여 대한민국
있었던 이유를 토크빌은 미국의 지방자치 문화에서 찾았던 것으로 판단된 이 지방분권 국가임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3
다. 제도 완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자, 동력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는 사
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제도가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 역시 제도에 영향
을 미친다는 상호작용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확인되었다. 민중 혁명은
프랑스에서 먼저 발생했지만, 공화국의 진전은 영국에서 더 빨랐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왕의 권한이 마그나 카르타 시기부터 이미 약화되어 분권적 정
치문화가 일찍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대혁명 이후
에도 총통제가 왕정을 대체한 형태로 유지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
다. 20세기 중반 드골 정부 역시 공화국의 정신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것으
로 평가된다. 한국의 경우 프랑스 모델을 벤치마킹했다고 하는데, 유사한 정
치문화가 한몫 했으리라고 평가된다.1 198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랑스
는 지방분권법을 제정하고 분권 국가를 지향한다고 발표했다.2 미국이나 영
국에 비하면 자치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지만 최근 자치권을 주권의 일
부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자치문화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각종 법률 제정, 헌법 개정 등의 노력을 통하여 공화국의 완성도를 3 중앙과 지방은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중앙은 실체가 없는 문서에 불과하다. 누구나 지방에 거추
하며, 중앙이라고 하는 추상적 법인체를 통하여 국가적 수준의 사무를 관장할 뿐이다. 미국의 경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 워싱턴D,C,는 면적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연방 또는 중앙정부가 입주해 있는 공간이지만 이론
적으로는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을 중앙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
데 중앙과 지방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국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지방에 거주하기 때
문에 개인주권과 지방주권을 동시에 명시해야 비로소 온전한 공화국 헌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저자가 주권재지방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는 주권의 개념에 이미 지역 자치권의 개
1 김훈(2016),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고찰」, 한국행정사학회
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주권의 개념을 인민주권에만 제한되어 이해되고
2 전학선, 프랑스 헌법 제1조에 의하면 프랑스는 지방분권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있기 때문이다.
346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47
1 미국 독립선언문과 전술된 페트릭 헨리의 연설문에 독립은 자연법의 영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다. 당시 독립의 의미는 곧 자치를 의미하며, 미합중국 내에서의 주에 대한 자치권 인정도 이러한 3 D. Easton(1963)은 정치체제를 하나의 생태계로 간주하고 주민의 요구에 정부가 반응하고 정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하나의 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정부로 대체된다는 이론을 제시
했다. 그의 체제 이론(system theory)은 민주공화정의 작동 모델을 가장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2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도 그 자체 양보할 수 없는 목적 가치라는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유엔이 제시한 17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과제에 해당되는 인권,
차별금지, 환경, 고용, 기아극복, 상생협력 등이 목적 가치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도 이들 목표가 4 입헌군주제의 시기를 꽤 오랜 기간 거치게 되는데, 이론적으로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되는
사회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목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도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헌군주제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348 OUGHTOPIA 35:2 자치권의 확대에 대한 이해와 오해: 역사적 고찰 349
이 태동하던 시기와 동시에 자치권이 태동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주권 점에서 인민주권을 극대화하는 국가운영 시스템이며, 이는 지역자치를 수용
을 주도한 세력이 도시를 기반으로 움직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별 도 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자치권의 확대는 인민주권의 확대 개념과 맥락을
시들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자치를 주장하며, 동시에 인민주권을 강조하기 시 함께 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화정은 완성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인식되는 것
작했던 것이다. 인민주권에 대한 주장과 동시에 강조되던 자치권에 대한 주장 이 적절하며, 각 지역에 공간상으로 흩어져 있는 국가 구성원 전체가 통치에
은 세금과 관련이 깊다. 세금을 왜 지불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지불해야 하 참여하는 수준까지 진행될 것이다. 국가 구성원은 누구도 예외 없이 지역을
는지를 도시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며, 이 당시부터 코뮌 등 정치세력과 점하여 살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자치는 공화정의 완성에 필수조건이다. 기술
길드 등 경제세력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자치권과 인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 적인 문제로 인하여 현재로서는 국회와 지방의회가 전체 구성원을 대표하지
했다. 만, 향후 오천만 전체가 독립 주체로서 통치에 참여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으
주권의 위치에 대한 논쟁의 단초는 고대부터 있었지만, 직접적인 논의는 마 로 전망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두 발을 지방이라고 하는 땅에 딛고 살아간
그나카르타의 제정 등을 위시한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소위 다는 점에서 공화국의 완성은 지역 자치의 확대와 관련이 깊다. 공화국의 완
인민주권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 제한된 의미에서의 인민주권 논의가 시작된 성이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목적 그 자체인 것처럼 자치권의 확대도
것도 이 즈음이다. 귀족 또는 지배계급이 왕과 교황에 대항하여 주권을 확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추구되어야할 목적 가치라는 점을 역사적 고찰을 통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시대 주목할 점은 전술된 바와 같이 상공업의 하여 일부 확인했다.
발달로 인하여 도시의 발달이 목격되었고, 도시에 거주하는 소위 경제계급들
이 도시 내에서는 인민주권을 요구했지만 동시에 왕에 대해서는 지역주권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왕이 거주하는 도시와 다른 지역 도시들이 일종의 계급
투쟁을 벌이는 과정 역시 주권 문제였다.1 이태리 북부 상업도시들이 왕으로
부터 독립하려는 소위 자치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민주권과 동일한 차원에서
진행된 역사적 사건들로 평가된다. 독일에서 도시법이 제정되어 지역자치를
선포한 것 역시 단순한 인민주권 확보만으로는 온전한 자치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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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oung Kim
I. 서론 IV. 마르실리우스와 인민주권
Ⅱ. 평화의 적 V. 맺음말
The paper attempts to confirm that the self-governing right in the region Ⅲ. 제국과 도시국가
would be valued as much as popular sovereignty. It would end the debate
whether the local autonomy system could be acceptable even in case it 국문초록
weakens the national economy as well as local economy. The work started 이 논문은 마르실리우스 사상을 통해 14세 을 대립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그들을 아우
to root the origin of tax, which they pay to the king in ancient times. It 기 인민주권론이 등장하는 정치적 환경과 르는 정치적 통합 속에서 보편적 존재로서
맥락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마르실리우스 인민을 개념화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
was payed and collected without rewards since the king owns all in the 의 인민주권의 함의와 현재적 시사점을 찾 대 정치에서 인민주권론은 때로 왜곡된 포
kingdom. The history witnesses, however, that the growing wealth in 고자 한다. 마르실리우스에 의하면, 정치공 퓰리즘 혹은 당파 정치의 도구로 사용되고
동체의 최고의 권위인 입법적 권위는 전체 있는 듯하다. 역사적 맥락에서 제시된 마르
the private sector began to expect rewards in the form of public services 시민 혹은 인민에게 있다. 전체 시민은 물질 실리우스의 인민주권론의 탐색을 통해, 오
when paying tax during the medieval era. The medieval business cities, 적으로, 도덕적으로 좋은 삶을 가능케 하는 늘날 인민주권론의 현황을 비판적으로 성찰
정치공동체의 존속에 기여하는 보편적 정치 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which were regionally located, demanded the lord and the king to allow
행위자이다. 마르실리우스의 인민에 대한
them to govern by themselves. The popular sovereignty and the concept 이해는 정치공동체의 평화를 와해시킨 교황
of self governing right began to foster the spirit of the republic in the 에 대한 강력한 도전에서 비롯되었다. 마르 국문 키워드: 제국, 도시국가, 인민주권, .
실리우스는 제국과 도시국가, 황제와 시민 마르실리우스, 서양중세 후기
medieval times. In the late 18th century, they experienced two main
historical events, which collapsed kingdom and helped them to turn to
republic. The first republic state clarified popular sovereignty and local
self governing right in the constitution. They would observe again in the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ear future that self governing principle works with multi-platform local (NRF-2019S1A5C2A02083124).
governments promoting popular sovereignty.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
현재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이며, 한국정치학회 편집이사와 부회장,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이사,
Keywords: self governing right, popular sovereignty, tax, medieval cities, 아시아여성연구소 편집이사, 한국정치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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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성예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제들의 권한은 모든 교회 성직자들 에 각자의 영역을 지배할 것을 주장하였다(Wilks 1963, 233). 일견 겔라시우스
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것이며, 교황은 로마교회를 맡은 사제일 뿐 세상을 지 는 교권과 속권의 균형을 언급하는 듯 보이나, 실제 그의 양검론은 왕권신수
배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리인이 아니다(Marsilius 1980, II xxii 4-5). 그럼에 를 위한 논리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다. 실제 중세 내내 교권과 속권의 균형
도 교황은 교회 안과 밖에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전능권(plenitudo po- 론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두 영역간의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마르실리우스가
testatis)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교황의 전능권 주장과 사제의 권한 남용이 공동체 평화의 적임을 피력한 배경
마르실리우스에 의하면 전능권이란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가리킨다: 자의적 은 교권의 우월성을 극단적으로 제시하던 13세기 교황 이노켄티우스(Innocen-
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력, 사람과 사물에 대한 통제권, 세속사회에 tius) 3세, 이노켄티우스 4세, 보니파키우스(Bonifacius) 8세로 이어지는 일련의
대한 강제력이 있는 최고 판결권, 교회 직무 임명과 파면, 교회 재산 분배 등 교황 전능권 주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노켄티우스 3세(1198-1216)는 교
사제에 대한 판결권, 교회 관련 사면과 파문 등 사제들의 사법적 권한, 사제의 권과 구별되는 속권의 통치권을 인정하지만, 이는 우월한 교권의 지배 하에서
성품권과 성찬권을 부여하고 금지할 권한, 성경 해석과 그 진위를 판별할 수 그러함을 분명히 하였다(이화용 2002, 22). 보니파키우스 8세는 하느님의 직접적
있는 권한, 영혼 치유의 보편적 사목권 등이다(Marsilius 1980, II xxiii 3). 마르실 인 명령으로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교황 전능권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몰
리우스는 교황과 사제가 영혼 치료와 관련한 성사권(sacramental power)만을 갖 아갔다.
고 있음에도, 교황이 세속사회와 교회에서 판결권. 처벌권, 사면권 등 강제력 마르실리우스도 중세의 교권과 속권, 즉 교황과 황제 간의 반목과 분쟁의
을 행사할 수 있는 전능권을 주장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마르실리우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3세기 초 교황과 황제의 거친 싸움의 연
스는 절대권력의 정당화 기반인 전능권을 통한 교황의 자의적 권력 행사가 이 장선에서, 교황 요한 22세와 황제 루드비히와의 갈등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헨
태리 도시국가의 혼란과 분열을 갖고 오는 가장 큰 원인임을 역설한다. 마르실 리 7세(1308-1312 재임)의 후임자를 뽑는 선거로 인해 표면화되었다. 선제후들
리우스에 의하면, 사제의 역할은 영혼 구원과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이는 강 의 이견으로 복잡하게 얽혀 버린 황제 선거에서 두 명의 황제가 맞서게 되었
제력 행사의 대상이 아니라 한다. 그럼에도 교황이 세속 사회에 대한 강제력 는데, 요한 22세는 그 중 프레드릭(Frederick of Austria)을 지원하였다. 프레드릭
과 지배권을 행사하고 전능권을 주장함은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교회와 세속 의 대립교황으로 세워진 루드비히는 요한 22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
적 영역에서 교황의 전능권 주장은 곧 황제나 왕 같은 세속권력이 교황의 지 이 황제임을 선포했다. 요한은 루드비히의 대관식을 거절하고 그의 황제권 수
배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마르실리우스는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무제한의 행을 금했으나, 루드비히가 이를 듣지 않자 1324년 그를 파문시켰다. 이에 루
권한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갖고 있을 뿐이며, 그 전제 속에서 세속 사회의 지 드비히도 요한 22세를 이단자로 몰고 그를 축출하였다. 요한 22세와 루드비
배는 왕의 권한이지 교황 혹은 교회의 몫이 아님을 밝힌다(Marsilius 1980, II, 히의 싸움은 단순히 8세기 이후 내려오는 대관식의 관행에 관한 것이 아니라,
xxiii, 3-5). 정치권력의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다.
서양 중세에서 교회권력과 세속권력의 역할과 관계 규정은 그치지 않는 논 이와 같은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서 반교황, 반교회권력에 대한 논리적 이론
쟁 아젠다였다. 교황 겔라시우스(Gelasius, 492-6 재위)는 이른바 양검론을 제시 서이자 합리화가 마르실리우스의 『평화의 수호자』(1324년)이다. 나아가, 『평화
하며, 하느님으로부터 교회는 정신의 검을, 세속사회는 세속의 검을 받았기 의 수호자』는 14세기에 제기된 정치적 권위의 기원에 관한 문제 제기이자 응
364 OUGHTOPIA 35:2 제국과 도시국가, 인민주권의 태동: 역사적 맥락의 마르실리우스 365
답이다. 마르실리우스는 세속사회에서 절대 권위를 내세운 교황의 지위가 하 장제를 비판하며 교회에게 세속권력을 탐하지 말고 영혼 치유의 본래 역할
느님이 아니라 황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인간적 기원의 역사를 주장한다. 마 에 충실하며 성예전과 성경 가르침에 힘쓸 것을 역설한 바 있다. 교황과 교회
르실리우스는 그 주장의 근거로 ‘콘스탄티누스 기증장’(The Donation of Constan- 권력에 대한 마르실리우스의 거침없는 비판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tine)을 언급했다. 이 역사적 문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 으로 이어진다. 교황주의자들에 의하면, 교회란 그리스도의 대리자 혹은 인
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에게 제국의 영토를 주었음을 명시하고 있는 격화된 교회로 간주되는 교황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는 절대적 위계질서체
데, 교권과 속권 모두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을 각자의 지배권을 정당화시키 이다(Wilks 1863, vii). 이와 달리, 마르실리우스는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고 따
는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다.1 교황이 속한 교권이 콘스탄티누스의 제 르는 전체 신자(the whole body of the faithful)의 집합체라 하였다. 교회는 사제뿐
국 헌납은 원래 주인인 교회에게 지배권과 재산권을 돌려준 것이라는 입장을 만 아니라 가정, 마을에 사는 일반 신자들로 구성되며 교회 안에서 사제와 비
주장하는 반면, 속권에서는 제국의 기증은 황제의 자발적인 증여라는 입장을 사제 모두 평등함을 주장하였다(Marsilius 1980, II ii 3, II iv 2). 이러한 교회 정의
내세웠다. 마르실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 교회의 지 속에서, 마르실리우스는 교회의 주권이 교황 혹은 사제가 아니라 전체 신자에
배권과 재산권이 인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교황은 황제가 만든 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교황이나 사제가 갖는 권한은 전체 신자에 의해 허용
인위적 자리임을 강조한다(Marsilius 1980, II xxii 10; II xvii 8-9). 마르실리우스는 되었기에 행사될 수 있었으며, 황제가 교황 자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전체
800년 크리스마스 미사에서 교황 레오 3세가 행한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왕 신자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한다(Marsilius 1980, II, iv).
의 황제 대관식에 대한 해석을 통해 교황직의 인간적 기원에 관한 자신의 주 마르실리우스는 교황과 교회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황제를 옹호하는 데 그
장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갑작스런 교황의 황제 대관식 의도는 동로마 비잔 치지 않고 교황의 권위를 부여하는 원천이 전체 신자로부터 연유함을 밝힌다.
틴 제국을 염두에 둔 교황의 정치적 계산이 전제된 것이었으나, 이후 이 대관 교회 내의 권위 근원이 전체 신자에게 있다면, 정치공동체의 정치적 권위의
식은 교황의 황제 임명권을 옹호하는 데 인용되곤 하였다(이경구 2000, 54-61). 원천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마르실리우스는 교황 레오에 의한 황제 대관식이 주는 역사적 의미는 없으며,
황제 임명은 칠인의 선제후에 의한 선거 결과일 뿐이라며 대관식의 의미를 일
축한다(Marsilius 1993, Ch. 2).
시대를 넘어선 과감하고 진보적인 마르실리우스의 사유는 교회에 대한 정
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마르실리우스는 교황 중심의 교회 권력, 즉 교황수
1 15세기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는 역사적 문서라 믿었던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은 8세기 교
황 측이 만든 허위문서임을 밝혀냈고, 지금까지 발라의 주장이 인정되고 있다(Folz 1969, 11).
필자는 ‘기증장’이 허위였다 해도, 그것을 둘러싸고 전개된 교권과 속권의 주장, 즉 14세기 교권
과 속권의 ‘기증장’에 대한 해석과 관점의 대립이 시사하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366 OUGHTOPIA 35:2 제국과 도시국가, 인민주권의 태동: 역사적 맥락의 마르실리우스 367
임을 보이자, 1167년 도시국가들은 롬바르디 동맹을 구성하여 제국에 맞섰다. 도시국가임을 강조하였다(Gewirth 1951, 128).
당시 이태리 도시국가의 방어 대상은 제국인 반면, 도시국가의 지원자는 교황 이들 주장 속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제국과 도시국가 이론이 공존할 수
이었다. 도시국가와의 지속되는 싸움을 끝내고자 1183년 황제 프리드릭 I세 없다는 것이며, 이 경우 정치공동체의 지배권은 황제 혹은 시민이 각각 갖고
는 “콘스탄스 협약(Peace of Constance)을 맺고 롬바르디 동맹을 구성한 도시국 있다는 논리로 전개된다. 그러나 필자는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과 도시
가들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제국과 도시국가의 대 국가, 두 정치체는 대립이 아닌 상호적 관계임을 보편적 지배의 상징으로서 제
립은 일단락되어, 13세기 이태리 북부지역에는 선거를 통한 자치정부 형태의 국, 레그눔 이탈리쿰(Regnum Italicum)1의 상황과 lex regia2 담론을 갖고 논증
도시국가의 수가 증가되었다(Skinner 1988, 390; Waley 1988, 41). 나아가, 밀라노 하고자 한다. 이로써 마르실리우스의 경우 어떻게 제국과 도시국가가 조화를
와 피렌체 등의 제국에 대한 계속된 투쟁으로 인해 14세기 초반 이태리 도시 이루고, 제국의 지배 속에서 도시국가의 자치와 자유가 확보될 수 있는지를
국가의 정치적 상황에서 제국의 세력은 사라지고 도시국가가 갈망하던 자유 밝히고자 한다.
와 자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이동수 2015, 82-83). 이처럼, 마르실리우스의 저서 필자는 마르실리우스가 루드비히 황제의 조언자였다 할지라도, 마르실리우
가 쓰여지던 13, 14세기 이태리 정치 환경의 현실은 자유로운 도시국가 체제 스의 제국에 대한 이해가 독일 영토에 자리잡은 신성로마제국에 머물러 있다
로의 진행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도시국가들은 보편적 정치체로서의 제국과 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을 넘어 보
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갔는가? 제국과 도시국가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영 다 폭넓은 함의를 갖는다. 지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제국(imperium)은 로마 인
원한 긴장관계로 남았는가? 제국과 도시국가를 아우르는 관계가 형성되었는 민과 황제의 지배에 속한 영토(kingdoms)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실리우스가
가? 처해 있던 정치적 현실은 루드비히 황제의 신성로마제국이었지만, 마르실리우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과 도시국가의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 제국주 스에게 있어 로마제국이란 지리적 의미를 넘어 전 세계 혹은 대부분의 지역을
의 해석자 루빈스타인은 마르실리우스에게 보편적 왕국으로서의 제국은 도시 지배하는 보편적 왕국, 보편적 지배의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평화에 반하는 존재라 하였다. 루빈스타인에 의하면, 마르실리우스 국
가이론, 특히 부서의 균형잡힌 배치에 대한 주장은 파두아와 같은 도시국가에 “‘로마 제국’은 로마 도시 혹은 로마 시민체를 지배하는 왕국을 의미한다.....또
서 보여진 시뇨레(signore)의 자의적 통치를 비판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마르 다른 의미에서 ‘로마 제국’은 전 세계 혹은, 로마 도시와 같은 많은 지역에 대한
실리우스는 시뇨레 도전에 대한 해법으로 전체 혹은 보편성(universitas)에 천착 보편적 왕국을 뜻한다.”(Marsilius 1993, Ch. 1).
하고 이를 정치적 권위의 기반으로 삼았다(Rubinstein 1965, 44-45). 루빈스타인
과 다른 맥락이긴 하나, 윌크스도 마르실리우스가 지향했던 정치적 단위는 신
성로마제국과 같은 단일한 보편적 정치공동체라 주장한다(Wilks 1963, 110). 한
편, 알렌은 이태리 도시국가에서 제국은 이미 죽은 존재라 평가하며 도시국 1 레그눔 이탈리쿰은 신성로마제국의 통치권에 있던 왕국 혹은 정치체들 가운데 이태리 북부와 중
부지역을 가리킨다.
가에서 제국의 비중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Allen 1923, 169). 『평화의 수호
2 lex regia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군주법이다. 이 경우 입법적 권위가 군주에게 있다는 일방적 해
자』 영어본 저자인 기워스도 마르실리우스가 선호한 정치체는 제국이 아니라 석을 할 수 있다. 정치적 권위를 둘러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살리고자 원어 그대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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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크라우가 통찰력있게 지적했듯이, 마르실리우스의 제국(신성로마제국)은 보편적 제국, 레그눔 이탈리쿰의 논거와 함께, 마르실리우스의 제국과 도시
게르만 제국이지만 그것을 넘어 로마 인민의 권위에 근거하는 고대 로마제국 국가의 관계는 lex regia 논쟁1에 의해 더욱 뒷받침될 수 있다. 11세기 고대 로
의 정치적 표현으로 확대된다. 보편적 지배의 로마 제국은 이태리 도시국가의 마 법전인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발견으로 인해 12, 13세기 주석자들에게
정치체를 합법화시키는 보편적 권위체로 존재한다(Barraclough 1969, 14-15). 그 로마법은 법적 문제를 다루는 주요 기준이 되었다(Kelly 1990, 56). 정치공동체
러나, 마르실리우스의 제국은 중세적 보편 제국, 즉 단테가 말하는 크리스챤 에서 주권을 가진 자, 곧 법을 만드는 최고 권력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를 밝
보편적 왕국(Dante 1996, 91)의 함의를 담고 있지 않다. 히는 로마법학자와 주석자들 간의 뜨거운 lex regia 논쟁은 고대 로마법 구절
보편적 지배의 상징으로서 제국에 대한 위상을 이해한다면, 마르실리우스 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내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논쟁은 독립
사상에서 황제에 대한 충성과 도시국가의 자치를 각기 추구하는 두 정치체 과 자유를 찾던 이태리 북부 도시국가가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가 갈등을 일으킬 필연적 이유는 없다. 실제로 14세기 이태리 북부에서, 황제 위해 제국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11세기 이후 황제는
는 공화정과 시뇨레 체제를 합법화하는 권위를 가진 군주(overlord)로 인정되 로마법을 통해 도시국가의 복종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할지라도, 이
었고, 이 지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황제 또한 도시국가의 독립적 주권이 필 태리 북부 도시국가들은 제국의 규제를 벗어나 정치적 자유를 제도화하고 있
요하였다. 이 지점에서, 제국과 도시국가의 관계에 관한 바르톨루스(Bartolus of 었던 터였다.
Saxoferrato 1314-1357)의 지배자(princeps)에 대한 언명은 더욱 설득력있는 준거 이런 맥락에서, 로마법의 하나인 Digesta에 나온 “지배자는 법의 지배를 받
틀이 된다. 고대 로마법에서 princeps는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지 않는 지 않는다(princeps legibus solutus est)” 조항에서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최고 지
최고의 지배자를 의미했다(Pennington 1993, 90). 바르톨루스는 이를 도시국가 배자(princeps)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lex regia 논쟁은 곧 제국 황제와 도시국
에 적용하여 황제는 보편적 공동체인 제국을 관할하는 지배자로, 도시국가는 가 시민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유효한 근거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최고 지배
자신의 영토 관할권에서 상위자를 갖지 않는 지배자(civitas quae superiorem non 자는 황제나 왕을 지칭하나, lex regia 논쟁에서 최고 지배자는 황제 혹은 인
recognoscit, sibi princeps)로 자리매김한다(Lee, 76-77). 이러한 이해를 수용한다면, 민으로 나뉘었다.2 11~12세기에 걸쳐 활동한 인민주의 주석학자 아조(Azo)와
마르실리우스가 제국을 논한다 해서 도시국가 위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마르실리우스는 정치공동체의 최고 권위인 입법적 권위가 인민
도시국가가 자신보다 상위의 지배자를 두지 않는다 해서 제국과 황제의 존재 (populus) 혹은 전체 시민, 혹은 전체 시민이 선거나 의사표현 등을 통해 결정
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다.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과 도시국가의 관계는
당시의 레그눔 이탈리쿰 상황에서 제국의 관할권이라는 법적(de jure) 관계와
도시국가의 실제적인 독립과 자치라는 실제적(de facto) 관계로 양자가 균형을
1 lex regia 논쟁의 적용사례는 다음과 같다: 황제권의 인간적 기원, 교황의 세속적 판결권의 근거,
이룰 수 있다(Quillet 1970, 75-7, 87). 다시 말해, 법적 지배자와 실제적 지배자로 제국 또는 도시국가의 판결권의 근거, 지배자에 대한 인민의 권한, 정부의 기권에 대한 모델을 위
서로의 영역에 대한 명분을 세우면서, 제국은 도시국가의 법적, 정치적, 사회 한 논의.
적 준거로, 황제는 세상의 지배자(dominus mundi)로 남는 한편, 도시국가는 스 2 12세기 이르네리우스(Irnerius)로 부터 시작된 lex regia 논쟁은 프라켄티누스(Placentinus), 아
조( Azo)를 통해 마르실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입법적 권위의 원천에 대한 많은 논의를 전개하였
스로 법을 만드는 자치적인 정치체로 합리화될 수 있다. 다. 이들 주석학자들의 입장과 반론에 관해서는 Lee 2008, 65-71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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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유력자에게 있다고 보았다(Marslius 1980, I xii 3). 그러나 황제주의 해석과 Ⅳ. 마르실리우스와 인민주권
달리, 마르실리우스는 전체 시민이 권력을 부여해준 유력자의 권위 속에는 항
상 전체 시민의 본래적 권력이 살아 있다고 본다. 이는 유력자의 정치적 권위
가 다름 아닌 전체 시민으로부터 나왔고, 전체 시민으로부터 위임된 입법적 정치사상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고전을 읽는 관점
권위는 일시적이기 때문이다(Marsilius 1980, I xii 3). 제국과 도시국가의 정치적 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하나는 과거의 맥락에서 고전을 접근하
권위를 해명하는 lex regia 논의에서, 마르실리우스는 전체 시민과 유력자의 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그것의 기원과 흔적을 찾아
관계처럼 제국과 도시국가도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가는 것이다. 중세 연구자 라가드와 퀼레는 마르실리우스의 사상에서 세속정
필자는 보편적 제국, 레그눔 이탈리쿰의 상황과 lex regia 논의를 통해 마르 치의 특성들이 나온다 할지라도, 이는 황제주의적 함의를 갖는 중세적 사유임
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과 도시국가는 대립적이지 않고 통합될 수 있음을 말 을 주장한다(Lagarde 1970, 178-182; Quillet 1970, 85). 반면, 프레비테 오르통과 네
하고자 하였다.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황제로 대표되는 제국과 전체 시민으 더만 등은 마르실리우스 사상의 근대성을 강하게 주장한다(Previte-Orton, 1935,
로 상징되는 도시국가의 관계는 두 정치체의 평화를 방해하는 교황이라는 공 136-7: Nederman, 1995). 중세와 근대의 이분법 속에서 제시되는 마르실리우스
동의 적으로 인해 더욱 용이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 연구와는 달리, 필자는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제국과 도시국가의 관계처럼,
황제와 전체 시민이 모순과 긴장의 관계가 아님을 밝혔다. 교황과 교회권력에
대한 도전과 정치적 권위의 소재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중세적 환경에도 불구
하고 마르실리우스 사상은 민주주의의 이론적 요체가 되는 인민주권론의 태
동을 보여주고 있다.
마르실리우스에 의하면, 인간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되지 못하고 날 것
상태로(bare) 태어났기에 고통받고 무너지기 쉬운 존재이다(Marsilius 1980, II iv
3). 그리하여 인간은 법적 보호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갈등의 소용돌이 속
에서 와해되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다행이 인간은 정치공동체를 만들어 파
멸로 가지 않는 이성을 갖고 있다. 마르실리우스는 정치 공동체가 자기 충족
적이고 좋은 삶의 유지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이루어져 하는
바, 이는 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마르실리우스에게 있어, 법(ius)이란 정
의롭고 이로운 것의 기준이다. 법은 개인 인간보다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우
월하다. 법이 없다면 인간은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므로 법을 필요로 한다.
이에 법을 만드는 사람, 즉 입법자가 요청되는데 누가 입법자가 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법은 입법자의 명령, 승인 혹은 금지에 따라 만들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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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Marsilius 1980, II xii 10-11). 다시 말해, 법은 입법자의 크스는 마르실리우스 사상에는 인민주권과 같은 근대적 특성이 있지 않다고
의지외 다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입법자는 어느 상위자도 두지 않는 최고의 본다. 이들과 달리, 필자는 마르실리우스의 유력자 개념에는 인민주의적 함의
주권자(the sovereign)이다. 마르실리우스와 중세의 주석학자에게 있어 정치 공 가 담겨 있다고 본다. 유력자는 법의 준수와 맡은 역할의 수행을 통해 정치
동체의 최고의 권위는 법을 만드는 권위를 가리킨다. 공동체의 유지와 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력하다고 말해지며, 이와 같은
법에 대한 마르실리우스의 인식은 매우 인간적, 세속적이다. 아퀴나스와 같 유력한 자질은 소수의 지배자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전체
은 중세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은 법을 만드는 권위의 근원이 하느님에게 있다 구성원, 시민 전체에게도 찾아질 수 있기에 인민주의적 함의를 갖고 있다(이화
고 보며, 법이란 하느님이 명하는 바라고 생각한다(Aquinas 1882, 1a2ae). 하느님 용 2001, 62-65). 이러한 이해를 근간으로 할 때, 전체 시민과 유력자는 정치 공
의 법으로부터 연유하는 정치공동체의 세속법의 근거도 인간이 아니라 하늘 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해야 한다는 목적 앞에서 동일한 집단으로 볼 수 있다.
에 있다고 간주한다. 대조적으로, 마르실리우스는 법의 절대적 기준이 하느님, 마르실리우스의 경우, 법을 만들고 강제력을 갖는 입법자는 전체 시민이다.
신법에 있음을 인정하지만(Marsilius 1980, II xii 9), 세속법의 근원은 인간에게 때로 입법자의 권위는 지배자에게 부여될 수 있는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지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실리우스는 정치 공동체의 법을 만드는 권위의 인간적 배자는 전체 시민의 뜻을 읽고 실천할 수 있는 자이다.
기원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세속적이다(Marsilius 1980, II viii 4). 마르실리우스의 황제는 유력자의 역사적 실체이다. 그렇다 해서, 황제의 주
마르실리우스가 상정한 입법자, 법을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구체적으 권이 배타적으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민이 원래의 권한을 황제에
로 인간 입법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마르실리우스에 의하면, 게 이양한 후, 황제는 인민의 정치적 대리인이 되었다. 마르실리우스는 어떻게
인민 혹은 로마 인민이 정치적 권력의 근원이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법의 최초이자 올바른 동력인(efficient cause)이 되는 입법자는 전체 시민(the
whole body of citizens) 혹은 시민 총회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나 구두로 표현되는 의 “지고의 인간 입법자는, 그리스도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시
지를 통해 구성되는 시민의 유력자(the weightier part)이다....... 전체 시민이나 시민 대 이전에도, 각 지역과 지방에서 강제력의 법에 따르는 인간 공동체(universitas)
의 유력자는 법을 직접 만들거나 혹은 입법 행위를 누군가에게 위탁한다. 후자 혹은 그들의 유력자이었고, 이며, 이어야 한다......황제 혹은 로마 시민의 권위와
의 경우 절대적인 의미의 입법자는 아니며, 최초의 입법자 권위에 따라 얼마 동 권력은 작은 공동체로부터 보다 큰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전체 인민에 의해 주어
안 임무를 행하는 상대적인 의미의 입법자이다.”(Marsilius 1980, I xii 3; III ii 9-10). 진 것이다”(Marsilius 1993, DM Ch. 12, 1).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입법자는 전체 시민과 유력 마르실리우스는 정치체의 크기나 장소에 상관없이, 정치적 권위의 근원은
자이며 이들이 법을 만드는 권위를 갖고 있다. 여기서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정치체 구성원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한다. 따라서, 황제 혹은 로마 인민의 권
것은 유력자란 누구인가이다. 퀼레와 윌크스는 유력자란 소수의 시민, 예컨대 위나 권한은 그 조직을 구성하는 전체 인민에 의해 주어진다. 마르실리우스
통치 능력을 가진 지배자나 당시 황제 선출권을 가졌던 칠인의 선제후를 의미 도 역사적으로 황제가 칠인의 선제후에 의해 선출됨을 알고 있었다(Marsilius
한다고 주장한다(Quillet 1988, 560; Wilks 1963, 195-96). 이런 이유로, 퀼레나 윌 1980, II xxvi, 5). 그러나 황제주의 해석과 달리, 마르실리우스는 황제의 정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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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살았던 마르실리우스가 전체 구성원을 포함한 인민에 대한 이해 제적인 정치적 주권 행사와 자의적 지배에 대한 제어가 인민주권이라는 수사
를 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정치공동체 운영의 밑그림으로 근대적 의미의 인민 (rhetoric)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인민의 구성도 훨씬 복잡해지고
주권론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트라우스처럼 마르 의견과 지향도 달라져 무엇이 인민의 뜻이냐를 알아내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
실리우스의 인민주권 개념이 반성직자론을 주장하기 위해 나온 역사적 우연 고 있기도 하다. 다양해진 인민의 이해관계와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정치의
(Strauss, 1964, 234)으로 치부하는 것은 마르실리우스 사상에 대한 역사적 이해 부재와 인민주권의 도구화에 대항하여, 마르실리우스가 우리에게 우리 자신
가 결여된 몰역사적 평가이다. 역사적 우연도 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마르 은 정치공동체의 평화 유지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되돌
실리우스의 교황에 대한 도전이 황제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것으로 끝날 수도 아 봐야할 시간이 이미 와 있다.
있었지만, 그는 제국과 도시국가의 관계를 대립적인 아닌 법적, 실제적 동반
자로 위치지웠다. 마르실리우스의 시대를 앞선 사유는 교황과 교회권력을 비
판하면서 더욱 드러났다. 마르실리우스는 전체 시민 혹은 인민이 정치적 권위
의 기원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유력자나 황제도 정치공동체의 평화에 기여하
면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며, 이런 의미에서 전체 시민과 유력자는 같은 반열
의 정치적 행위자이다. 대조적으로, 마르실리우스는 교회 영역에서는 교회란 참고문헌
전체 신자의 집합체이고 사제와 비사제 모두 동등함을 주장하며, 교황의 자리
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경구. 2000. 『중세의 정치 이데올로기』. 서울: 느티나무
전체 시민을 입법적 권위를 가진 최고 지배자로 상정하는 마르실리우스의 이동수. 2015. 『정부의 재발견』. 고양: 인간사랑
인민주권론은 정치 공동체의 평화 유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14세기 정치적 이화용. 2001a. “중세에서 근대로?: 마르실리우스(Marsilius of Padua) 인민주권론에
환경에서 태동되었다. 마르실리우스 인민주권론의 핵심은 물질적으로, 도덕적 관한 하나의 역사적 이해”. 『정치사상연구』. 5집. 55-79.
으로 좋은 삶을 가능케 하는 정치공동체의 존속에 기여하는 전체 시민이라 이화용. 2001b. “마르실리우스의 정치대표론: 시민권, 권력전이 그리고 정치의 회
는 보편적 정치 행위자의 등장에 있다고 본다. 마르실리우스 사상에서 전체 복”. 『한국정치학회보』. 35집 4호.
시민으로 표현된 인민은 근대적 의미의 개인 집합체도 아니며 숫적으로도 다
수를 지칭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마르실리우스의 전체 시민은 배타 Allen, J. W. 1923. “Marsiglio of Padua and Medieval Secularism,” in Th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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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Hearnshaw. London: Harrap.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인민주권론은 보편성을 담보하지 않는 당파 Aquinas, T. 1882. ‘Summa Theologiae’ in Opera Omnia Iussu Impensaque 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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