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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 2014 제25권 4호(통권 69호)

논 문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19)

■ 윤 지 선■ 20)

요약문

정합적 완결체로서의 시스템은 다수의 항들을 이성의 질서에 따라 유기


적으로 배치․종속시키는 종합-기계(machine synthétisante)에 의해 가
동된다. 이러한 유기적 질서에 반하여 종합-기계의 중심축인 시스템의 메커
니즘-수렴과 분류, 위계화와 배제작용 등-을 분쇄시키고자 우리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관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전체-시스템이라는 실체개념을 와해시키는 것을 표적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
에서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은 전략적으로 연
동․탈골․재배열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유기체적 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다각적 항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규정적․비한정적 카오스에 주목하고자 한
다. 종합-기계를 해체시키는 전략으로 다각적 항들을 창조적이고 변칙적으
로 조합하고 분해시키는 비종합적 직관(intuition dé-synthétique)을 종
합적 이성의 대립항에 놓고자 한다. 이러한 비종합적 직관을 통해 생성된 카
오스적 군집체(agrégat chaotique)는 한데 수렴되거나 이성의 사유로 종

* 이 논문은 2013년 7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의 필자의 월례발표회의 논


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 윤지선|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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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지 선

속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 무의 과잉상태와 맞닿아 있고 이로 인해 우


리는 견딜 수 있음과 견딜 수 없음의 경계에서 비롯되는 도착적 쾌감-숭고와
괴물적 끔찍함의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카오스적 군집체들의
전개양상은 뿌리(racine)와 시원(origine)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리좀적
방식으로, 이러한 분자적 다수성들은 여러 가지 마이크로 카오스모스를 여
기저기에 양산해내며 수평적이며 내재적인 줄기-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것
이야말로 총체적인 완결체로서의 수직적이고 초월적인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주 제: 현대프랑스철학, 들뢰즈, 지젝, 포스트모더니즘


검색어: 안티시스템, 기관없는 신체, 신체없는 기관, 생성, 카오스,
비종합적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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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I. 들어가는 말

인류정신사를 통해 드러나는, 총체적 완결체-시스템과 구조-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우리의 천착이 반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
정된 여러 항들의 질서정연한 배치와 그것의 위계적이고 세분화된 역
할은 상부법칙에 의해 단일하게 종속되고 수렴 가능한 요소로서 기능
할 때만 유효하다. 총체적 단일성(unity)을 지향하는 시스템에서 다
수의 항들은 위계적 질서 내에 정합적이고 통일된 방식으로 편입되어
야 하는데, 이 항들의 고정화된 배치를 담당하는 종합­기계(machine
synthétisante)1)가 펼치는 대서사시에 균열을 일으키고 와해를 꾀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관없는 신체
(Corps sans organes)’는 조직적으로 구획․결정된 유기체적 시스
템의 뼈대가 탈골되고 그 하부기관들이 무질서하고 어지러이 적출되
어있을 때의 카오스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지 않는가. 우리는 “초월
적인 종합원리”로 미처 수렴될 수 없는 다각적이고 비균질한 항들이
이루어 내는, 힘들의 변칙적이고 과잉된 긴장상태게임2)에 주목할 것
이다. 이것은 카오스와 같은 비규정적이고 비한정적 혼돈상태에서 전
개되는, 다채롭고 이질적인 힘들 간의 광적인 융합과 충돌, 해체의 운
동이 어떤 방식으로 정합적 완결체로서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폭발3)

1) ‘종합­기계’개념(machine dé­synthétique)은 필자의 박사논문 「비종합적 직관


을 통해 본 가치의 상관관계와 다수성(la pluralité et la corrélation des
valeurs sous le regard de l’intuition dé­synthétique)(2013)」에서 구상해낸 개념
으로, 시스템의 메커니즘 분석­수렴과 분류, 위계화와 배제 등­을 통해 종
합기계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2) 다각적 힘들이 펼치는 ‘변칙적이고 창조적인 긴장상태게임’은 필자의 앞선
소논문 「변칙적이고 창조적인 긴장상태게임으로서의 의지활동」에서 제창
된 개념으로, 여러 가지 요소들의 단선적이고 정합적인 상부구조에로의
수렴과 그것의 일방적 종속원리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3) 위에서 언급한 필자의 소논문에서 나온 표현을 재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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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지 선

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시스템의 총체적 메커니즘을 담당하고 그것을 가동시키는 종합­기계
개념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해체, 교란시키는 방법과 전략에 대해 구
상해 보도록 할 것이다.

II. 종합-기계(machine synthétisante) 해체전략


- 비종합적 직관(intuition dé-synthétique)

시스템(system)의 어원은 그리스어 synistani로서 ‘결합하다, 구


축하다, 집합시키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4). 다각적 요소들을 단일
하고 정합적인 방식으로 모으고 결합시키는 동시에 적확한 개념에 따
라 그것들을 분류․분할하며 이성의 질서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
시스템이다5). 산발적이고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던 다양한 요소들을
흡입하는 단 하나의 중앙집권적 수렴점, 이것은 다수를 자신의 시스
템 안에 가열차게 재편성․재배열하며 작동하는 종합-기계
(machine synthétisante)이다. 임마뉴엘 칸트의 시스템 안6)에서도
이러한 종합-기계가 항상 작동하고 있지 않는가.: 욕망과 정감의 복

4) Le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8e édition)에서 ‘시스템(système)’의


어원과 뜻
5) 플라톤은 Phèdre에서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 이러한 집합(le rassemblement)
과 분할(la division) 의 방식을 통해 사유를 구축하고 이끌어나간다고 주장
한다:
«첫번째는 여기저기 분산되어있는 것(다수)들을 전체적 조망 안에서 단일
한 개념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들을 자연스런
분절점에 따라 개념에 의해 다시 나누고 분할하는 것이다 […] [265d]». (괄
호는 필자가 본문의 이해를 위해 덧붙인 것이다)
6)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raison pure, Paris, Gallimard, 1985;Emmanuel
Kant, Critique de la raison pratique, Paris, Gallimard,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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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합체들은 실천이성이라는 단일한 원리에 의해 종속․통제되어야 하고,


감각적 직관에 주어진 다수(les divers)들은 ‘‘나는 생각한다’’라는 인
식의 종합적 단위 속으로 일괄적으로 포섭되어야7) 하기 때문이다.
종합-기계는 시스템 내의 다각적 요소들을 유기적인 방식으로 재
구성하고 조직적으로 분류하고 위계화시킨다는 점에서 들뢰즈와 가
타리의 ‘기관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와 대립된다. 왜냐하
면 전자가 구성요소와 전체와의 유기적 관계를 담보하는 총체적 완결
체로서의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유기체의 초월적인
종합원리 하에서 할당되어진 개별기관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관에 의해서 작동되고 결합될 것인지 미리 결정되어있지 않
은 상태를 의미”8)한다는 점에서 시스템 바깥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메커니즘-수렴과 분류, 위계화와 배제작용 등-을 분쇄시키
고자 한다는 것은 곧 종합-기계가 만들어내는 단일하고 상부적인 원
리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호고진
스키(J. Rogozinski)는 자신의 저서, Le moi et la chair(나와 살)에
서 이러한 종합원리가 근원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가를 날카
롭게 지적하고 있다.

“[...] 모든 (종합적) 단일성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다수성으로부터


구성된다. 일체의 동일성(identité)-나의 동일성과 개인의 동일성까지
포함한-은 (무수한) 동일화작용의 종합들을 거쳐서 이루어졌었고, 고정
불변하는 사물로 나타나는 것들은 우선 연속되고 연계되는, 일련의 유동
하는 흔적들과 같은 다량의 흐름으로 주어졌었다.9)”

7)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raison pure, Analytique transcendantale, Première


division, Chapitre II, §20, §21, Gallimard, 1980, pp.166-167.
8) 들뢰즈(G. Deleuze)는 La logique de la sensation에서 기관없는 신체에 대해 이
처럼 설명하였다.
9) 자콥 호고진스키(Jacob Rogozinski), Le moi et la chair, Paris, Les Editions du
Cerf, 2006, p.162, 불어번역은 필자가 하였으며 괄호안의 번역은 의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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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종합-기계의 작동원리의 저변에는 항상 다각적 요소들이


역동적인 방식으로 펼쳐지고 유동하는 원초적 카오스(chaos)가 있
다. 상부원리로서의 종합적 단일성은 반드시 이러한 다수로부터 비롯
되고 구성되는 것이며, 불변하는 사물이란 다채롭게 변화하는 다량의
흐름들 속에서 포착해내야만 하는 후차적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러 요소들을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중앙집권적 수렴
점을 분쇄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시스템의 뼈대를 탈골시키고 유기적으로 조직된 구성단위
들에 균열을 일으키는 전략으로 다각적 요소들을 창조적이고 변칙적
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조합하고 와해시키는 비종합적 직관
(intuition dé-synthétique)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여기서 직관은
다수를 비확정적(indéterminé)이고 무한하게 조합해내는 작용을 하
며 위계적 종합의 질서를 과감히 전복시킨다. 예를 들어 프란츠 카프
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스스로가 끔찍하게 허약한
벌레의 몸통에 다루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긴 다리가 붙어있는, 거대
한 인간-벌레10)로 변신한 것을 발견하며 소스라치게 깨어난다. 이렇
게 총체적 완결체로서의 세계의 질서를 뒤틀어버리고 새롭고 변칙적
인 세계를 창조적으로 다시 주조하는 직관의 기능은 지젝(Žizek)이
언급한 ‘전종합적 상상력의 혼돈스러운 측면’과 일맥상통한다. 지젝
은 자신의 저서, Le sujet qui fâche(까다로운 주체)에서 헤겔이 명
철히 주시한, ‘전종합적 상상력’의 부정적이며 혼란스러운 측면을 집
중적으로 새로이 조명하고 있다.11) 이것은 일체의 종합적 단일성을
전복시키며 무질서 안에서 다수를 끊임없이 흐트러뜨리고 엉키게 하

이해를 위해 필자가 덧붙였다.


10) 자기 스스로가 벌레로 변신했음을 자각하는 인간지성을 지닌 채 탈바꿈했
다는 점에서 인간-벌레이다.
11) Slavoj Žizek, Le sujet qui fâche, tr. de l’anglais par Stathis Kouvelakis, Paris,
Flammarion, 2007, pp.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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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며 비결정적인 방식으로 다수를 자유자재로 조합하기에 정련된 전체


를 넘어선 카오스적인 군집체를 양산해 낸다. 헤겔은 La
philosophie de l’Esprit 1805(정신의 철학 1805)에서 이러한 ‘전
종합적 상상력(imagination pré-synthétique)’의 전복적 작용에 대
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바로 여기(전종합적 상상력)에 가장 자유
로운 방식으로 이미지들을 와해시키고 조합하는 능력이 있다.12)”
카오스와 같은 비규정적이고 비한정적 혼돈상태에서, 다수라는
다채롭고 다각적인 힘들 간의 신열한 융합과 해체의 게임을 전개시키
는 비종합적 직관은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구성된 일체의 조합을 분
쇄시켜버리며 정합적 완결체에 균열을 일으킨다. 여기서 필자가 비종
합적 직관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전종합적 상상력’
이라는 용어가 지니고 있는 시간적․논리적 선차성이 자칫 ‘종합’이
라는 고양된 단계에 이르기 전의 기초적이고 예비적 수준의 인식능력
이자 퇴행의 일종으로 오인하게 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가 유기적 완결체에 대한 퇴행이나 선행단
계가 아니듯이, 이러한 비종합적 직관이라는 비규정적이고 창조적이
며 변칙적인 조합능력은 총체적 완결체의 질서를 전복시키고 종합-
기계를 해체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일종의 전략이자
선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무한정의 비결정적 상태로 구성
되어 있는 ‘부정적(否定的) 무한’ 개념(infini négatif)과 맞닿아 있는,
일종의 과잉의 순간으로 보고 있다. 서양 철학자들이 시스템 전체에
끊임없이 정합적인 단일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비결정적 우
주에서 펼쳐지는 과잉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젝이 잘
지적한 것처럼 칸트는 이러한 비한정적 과잉을 ‘악마적 악(Le Mal

12) Hegel, La philosophie de l’Esprit 1805, trad. par G. Planty-Bonjour, Paris, P.U.F,
1982, p.13, 불어의 한국어번역은 필자가 하였으며 괄호 안은 필자가 덧붙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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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bolique)’으로, 헤겔은 ‘세계의 밤(La nuit du monde)’으로 묘사


하며 카오스적 군집체의 산발적이고 변칙적인 양산이 일으킬 수 있는
폭발적 창조력과 파괴력을 예언하고 있다.

III. 카오스적 군집체 - 인간지네의 예, ‘기관없는


신체’와 ‘신체없는 기관’의 연동과 재배열

카오스적 군집체가 띄고 있는 무질서하고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


의 우글거림은 우리를 전율시킬 만큼 괴물적이다. 들뢰즈는 북적거리
는 분자들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분자적 다수성(multiplicité
moléculaire)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이 단선적 통합이나 위계적 구성
으로의 환원이 불가능하다고 기술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분자적 다수
성은 우연적이며 불규칙한 조합가능성과 그것의 정합적 질서로의 환
원불가능성에서 카오스적 군집체와 놀라우리 만큼 닮아있다.

“하나는 유연하고 분자적이며 […] ; 또 다른 하나는 더 단단하고 총


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있다. […] 바로 후자의 차원에서 초코드
화를 형성하는 중앙 집권화, 단일화, 전체화, 통합화, 위계화 및 방향 설
정 등이 일어난다.13)”

시스템이 전체의 유기적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하나의 점으


로 수렴되는 이러한 다수들을 ‘총괄적이며 전체적인 다수성
(multiplicités molaires)’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분자적 다수
성(multiplicité moléculaire)’과 대별된다. 후자는 카오스적 군집체
안에서 어지럽게 분산된다. 󰡔까다로운 주체 Le sujet qui fâche󰡕에

13) Deleuze et Guattari, Mille plateaux, Paris, Editions de Minuit, 1980,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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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서 지젝이 썼던 표현처럼, 카오스적 군집체는 다수들의 무한한 조합


게임으로 이루어지며 총괄적이고 유기적인 단일성의 사지를 “절
단”14)하고 그것을 분자들의 열광적인 우글거림으로 분해시킨다. 카
오스적 군집체에서 다각적 힘들의 긴장상태게임이 존재하는데 이것
은 분자들의 덩어리가 이루는 좌표를 시시각각 바꾸며 항상 불안정한
상태로 내던진다. 필자가 제안하고 있는 카오스적 군집체는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념과 어떤 방식으로 조우․충돌․연동되고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
다15). 들뢰즈는 ‘기관없는 신체’를 통해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유기
적, 정합적인 부분구성체로서의 기관들을 와해시킴으로서 코드화된
신체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이에 반해 지젝은 ‘신체없는 기관’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역전을 통해 들뢰즈가 상정하고 있는 신체조차 일종의
“은밀하고도” 정박가능한 실체로 간주16)함으로서 신체 시스템전체
에 종속․통합․흡수되지 않는 ‘부분 대상’17)들로서의 기관들의 향
연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부분대상이라는 프로이트적 개념이 신체의 한 요소이


거나 구성성분이 아니라 신체 전체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기관이라
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8)”

14) S. Žižek, Le sujet qui fâche, Flammarion, 1999, p.45.


15)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에 관한 비교논의에 대한
심사위원님들의 제언에 힘입어 카오스적 군집체가 이 두 철학자의 두 개념
과 어떤 방식으로 섬세하고 독창적으로 연동되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16) 지젝은 󰡔신체없는 기관󰡕에서 다음과 같이 들뢰즈를 분석, 비판한다: “그
(들뢰즈)의 일원론이 이원론으로 표류하는 것은 그의 생성의 과정 그 자체
가 은밀히 어떤 통일된 주체에 정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p.144)”;
박영균, 「기관없는 신체인가, 신체없는 기관인가?; 지젝의 들뢰즈 비판」, 󰡔철
학연구󰡕, 제 106집, 대한철학회, 2008.5, p.143.
17) 지젝, 󰡔신체없는 기관󰡕, 이성민 외 역, 도서출판 비, p.328.
18) 같은 책, p.330: ““부분 대상”으로서의 신체없는 기관은 클라인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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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전체의 유기적 시스템에서 적출된 채 부유하는 ‘부분 대


상’으로서의 기관들에 집중하였고 들뢰즈는 유기적 기관들의 배열들
을 탈골시킨 신체를 조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체없는 기관’과
‘기관없는 신체’가 표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역전된 개념어의 사용으로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개념들은 실로
는 전체와 유기적 시스템이라는 실체를 극단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
서 데칼코마니와 같이 겹쳐진다. 카오스적 군집체는 바로 이 지점, 두
개념간의 긴장과 충돌, 연계가능성의 변주를 통해 탄생하였으며 다각
적 분산과 변칙적 조합을 거듭하는 ‘분자적 다수성’이 일으키는 시스
템폭발력을 내포하는 전략적, 혼종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19) 전체-
시스템이라는 실체개념을 와해시키는 것을 표적한다는 점에서 카오
스적 군집체는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을
전략적이며 탄력적으로 연동․탈골․재배열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
해 유기체적 전체와 질서-그것이 기관으로 표상되었든 신체로 표상
되었든-로 환원될 수 없는, 다각적 항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규정
적․비한정적 카오스에 주목하고 있다.

대상이 아니라, 라캉이 「세미나 11」에서 충동의 대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


다. 즉 신체 전체와는 통약불가능하며, 그로부터 돌출해 나오며, 신체적 전
체 속으로의 통합에 저항하는, 성애화된(리비도 투여된) 신체의 일부”
19) 카오스적 군집체는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의 단선적 표방이라기보다는
그것이 표적하고 있는 전체-시스템의 폭발과 교란으로부터 착안되었기에
이것(카오스적 군집체)을 통한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
는 기관’과의 연동과 접합가능성은 들뢰즈적 입장에 대한 반역이라기보다
는 분자적 다수성의 전략적 변주이자 창조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심사위원님이 지적하신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전략으로서 제시되는
지젝과 들뢰즈의 논의는 상충되고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완결체의
질서-그것이 기관으로 표상되었든 신체로 표상되었든-를 끊임없이 전복하
고 탈주하려는, 분자적 다수성의 비규정적이고 변칙적인 조합능력에 대한
논증으로서 지젝과 들뢰즈의 논의를 탄력적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
기에 기존에 통용되고 있는 지젝 대 들뢰즈의 논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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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종합-기계를 무력화시키는 카오스적 군집체는 유기체적 조직화


의 질서를 자유자재로 거스르고 뒤트는데 이를 형상화한다면 탐 식스
감독의 ‘인간지네(Human centipede, 2006)’라는 영화를 탁월한 예
로 들 수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 영화에
서 한 개인의 신체라는 유기체적 완결체는 샴 쌍둥이 전문집도 미치
광이 외과의사의 욕망에 따라 탈골되고 타인의 신체와 재연접되며 이
내 인간지네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연동되게 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Antiœdipe의 첫 장에서 언명한 것처럼 입이라는 기관이 먹는 기계
이자 말하는 기계, 토하는 기계 등으로 다채롭게 변환되며 작용하는
것처럼 영화 속 그들 각각 3인의 신체 A B C는, 입이라는 기관이 타
인의 항문으로 연속적으로 연접됨으로서 A-B-C라는 일련의 흐름으
로 나타난다.

[...] 가슴이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라면 입은 이것에 연접된 기계이


다. 거식증환자의 입은 먹는 기계, 배설하는 기계, 말하는 기계, 숨쉬는
기계들 사이에서 머뭇거린다.20) [...]

A의 변은 B의 입을 통해 소화기관에 이르고 C의 입으로 다시 흘


러들어간다. 외과의사는 그들의 팔과 다리를 우선 탈골시키고 입과
항문간의 연접을 집도함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유기체적 단일성을 해
체시키고 자유자재로 신체의 기관들을 재배치하고 재조합시키며 카
오스적 군집체를 양산시킨다. 인간지네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A의
입은 말하는 기계로서도 기능할 수 없고-그를 타인들과 소통이 불가
능한 외국인으로 설정한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단지 음식을 섭취하
고 항문을 통해 변을 생산하여 타인의 입에 흘러들어가게 한다. 개인
의 유기적 신체를 파괴시킨 곳에 ‘인간지네’라는 창조적이고 변칙적

20) Deleuze et Guattari, L’anti-œdipe, p.7, Paris, Editions de Minuit,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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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지 선

조합이 탄생하지만 이것을 새로운 공동의 유기체로 안착시키려는 외


과의사의 욕망은 A의 자살로 인한 배열에서의 자진말소와 C의 병사
(病死)로 인한 흐름의 절단으로 인해 좌절되고 만다. 여기서 흥미로
운 것은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인간지네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총체적
완결체로 고착화되려할 때 이것이 A -B- C라는 말소된 두 계열의
중간에 끼인 채 앞뒤 시체의 부패작용과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카오
스적 군집체로 이행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카오스적 군집체는 어떠
한 위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마이크로 코스모스로(미시적
세계)부터 마크로 코스모스(거시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각적 힘들
의 집산과 내파(implosion) 운동을 활성화시키며 완결체적 닫힌 구
조를 탈각하고 끊임없이 열려있고 생성․이동․창조하는 새로운 형
태의 존재전략이다.

IV. 내재적 운동으로서의 생성의 흐름

끊임없는 생성(∼되기)의 흐름은 총체적 단일성으로서의 영속적


동일성을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서 기능한다. 생성
이란 다수의 힘들이 이루어내는 변이와 충돌, 교섭의 게임으로서 우
연적이고 도발적이며 비약을 내포한다. 생성은 부정적 무한의 비결정
적 우주를 펼치며 실체적인 동일성의 고정화되고 완결된 경계를 ‘탈
주(dé-territorialiser)’21)해 나간다. 생성의 흐름은 상이한 강도와
다각적 힘들의 무한 조합가능성들로 뒤끓는 육체-마그마(corps-
magma)22) 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유동적이고 비한정적

21) 탈주와 탈영토의 개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Mille plateaux(천개의 고원)에서


사용하고 제창하였다.
22) ‘육체-마그마(corps-magma)’는 필자의 박사논문에서 제창한 개념으로 이때
351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indéterminé)이며 불안정한 긴장에너지의 역동적 흐름­줄기으로서


의 육체-마그마는 수많은 소용돌이처럼 여기저기 카오스적 군집체들
을 일으켰다가 사그라뜨리며 나아간다. 호고진스키는 이러한 카오스
적 군집체들의 발현이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다수들이 유출되는 내재
성의 장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내재성은 시간적으로는 끊임없는 흐름처럼 전개되며 공간적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밀어내며 펼쳐지는, 지속적으로 운동 중의 장이다. 내
재성의 장은 산발적 다수성이자 카오스, 그 어떠한 고정된 동일성도 안
정된 형태도 드러나지 않는 코라(chôra)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원적 카
오스는 우리의 세계가 해체되고 존재의 단일성이 위협당할 위기가 나타
날 때 도래한다.23)”

이처럼 카오스적 군집체는 초월적 종합원리가 지배하지 않는 내


재성의 영역에서 펼쳐진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다수에서 단 하
나의 중심수렴점으로 수직적으로 상승하며 나아가는 대신, 탈중심적
이며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리좀24)적 조합방식을 통해 시스템을 균열

껏 육체와 이성의 관계로 제시되었던 기계와 그것을 조종하는 엔지니어와


의 관계 모델 전복시키고 새로운 관계지도를 그려보고자 하였다. 유동적이
고 비한정적(indéterminé)이며 불안정한 긴장에너지의 역동적 흐름­줄기로
서의 육체-마그마는 그것의 표면적인 산물인 지층­이성을 흔들기도 하고
재편성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육체-마그마가 지배적인 힘이며
이 에너지의 파장이 지층­이성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
혹은 이성은 육체를 초월한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육체와 밀접한 연관관
계를 맺고 있는 내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23) J. Rogozinski, Le moi et la chair, Paris, Les Editions du Cerf, 2006, p.162.
24) 리좀(rhizome)은 들뢰즈의 Mille plateaux(p.9-37)에서 다뤄진 핵심적 개념 중
의 하나이다. 이것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기술해 보겠으며, 들뢰즈에게 있
어서 리좀은 기존의 시원적 뿌리중심의 사고와 수직적 사고방향에서 수평
적이며 탈중심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
《리좀(rhizome)
352

윤 지 선

시킨다. 예를 들어 생성의 흐름에 있어 단일한 중심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수평적 줄기처럼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리
좀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리좀의 열려있는 구조, 더 나
아가 이 구조 자체를 끊임없이 탈영토화하며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생성-줄기들’ 개념을 창안하였다. ‘생성-줄기들’25)의
전개는 분자적 다수성을 마디마디 잎이나 열매처럼 피워내며 총체적
단일성․동일성이라는 수직적이며 위계적 사고를 비웃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재성은 수평적이자 탈중심적 운동으로, 주어진 다수들을
아우르는 초월적 종합원리를 찾으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전개시키는
데 주력하는, 자기 충분성(auto-suffisance)을 가진다. 카오스적 군
집체가 분자적 다수성을 전개시키는 내재적(immanent) 운동이라면
총체적 시스템은 단일성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초월적
(transcendant) 운동일 것이다.

1. (식물학) 지하에 수평적인 방식으로 뻗어나가는 줄기. 예- 고구마, 감자 등


2. 리좀은 뿌리가 아니며 주로 마디나 돌기 등으로 축소된 잎들을 지니고
있다》
25) ‘생성-줄기들’의 개념은 필자가 들뢰즈의 리좀적 사고에 영감을 받아 제창
한 개념이다.
353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이처럼 필자가 제시하는 도식화된 위의 그림에서처럼 초월의 운


동은 고정된 수직축을 중심으로 다각적 요소들의 상승원환적 운동이
일어나며 이들은 초월의 정점(신, 단일성 등)을 향하여 나아간다. 예
를 들어 ‘사유하는 자아’ 개념을 안정된 고정축으로 삼고 이를 중심으
로 사유나 실체, 진리와 같은 다른 개념들이 구성되기 시작하며 결말
에는 사유하는 자아의 존재를 보증하는 신의 존재로 나아간다. 중심
축의 주요한 역할은 다수의 요소들의 운동을 안정시키고 규칙성을 유
지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수들이 부정적 무한과 같은 비결정적
방향으로 다채롭게 전개되거나 분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그것들의 운동은 항시 정렬되어 있고 결코 단일성의 궤도를 벗
어나지 않으며 단 하나의 초월적 원리를 향해 수직상승해 나간다. 그
렇지만 이러한 축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것은 어떤 축을 다른 축으로 대체시키는 수준 정도의 전환
이 아니라 종합-기계의 분쇄와 전복 자체를 요구한다. 분자적 다수성
과 같은 내재적 운동에는 수직적이며 고정된 중심축이란 애초에 존재
하지 않으며, 다만 “무한생성의 과정”26)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흐름
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리좀적 방식으로 끊임없이 중심을 이탈
시키고 여기저기 산재하면서 유희어린 조합을 전개시키는 카오스적
군집체는 내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6)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G. Deleuze, La Logique du sens,


Paris, Editions de Minuit, 1969, p.9.
354

윤 지 선

V. 카오스적 군집체가 일으키는 도착적 쾌감-숭고


와 괴물적 끔찍함 사이에서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한데로 분류화할 수 없는 분자들의 우글거림


과 마주칠 때 우리는 어떠한 감정에 사로잡히는가? 준거점의 유실로
인해 우리는 현기증과 같은 비스듬하고 퇴폐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
다. 즉 우리는 카오스를 향해 비약하며 세계의 붕괴와 자아-중심축의
소멸을 일으키는 비규정적 무를 발견한다. 신과 세계, 자아와 같은 중
심점들로부터 벗어나면서 생성되는 쾌감은 견딜 수 있음과 견딜 수
없음의 수위를 위험하게 넘나든다. 무질서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향해
휘몰아칠 때 분자적 다수성을 감지하는 육체-마그마가 활성화되고

이로서 우리는 감각적․지각적 초흥분상태에 이르게 된다. 카오스적


비정형적 군집체는 분자적 다수성이 이루어내는 형태(forme)들의 과
잉으로부터 생겨난다. 이처럼 만약에 잡다한 분자들의 우글거림으로
부터 도착적인 쾌락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이러한 도착적 현기증의
메커니즘에 대해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견딜 수 있음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들 앞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이러한 현기증은 이
355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미 칸트가 󰡔판단력비판󰡕 중 숭고의 감정에서 기술한 바 있다. 칸트는


우리가 수학적 무한이나 자연적 무한에 노출되었을 때 거대한 심연에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고 기술한다27). 숭고의 감정
은 양가적 감정으로 부정적 무한으로 촉발되는 경직과 공포와 더불어
긍정적 무한이 선사하는 경이와 기쁨이 복합적으로 교차하고 엉켜있
다. 예를 들어 절벽의 근접할 수 없는 높이라던가 규모의 과잉적 상
태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식론적 중력장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감각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잉(excès)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일체의 인식론적 종합적 도식을 무력화시키고 넘어
서는 무한정성(indéterminabilité, 無限定性)을 지니기 때문이다.
칸트는 숭고의 감정이 내포하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은 분산된 다
수성의 인식과 그것에서 단일성을 포착해내려는 종합행위 사이의 간
극과 어긋남에서 발생된다고 설명하고 있다28). 견딜 수 있음과 견딜
수 없음의 경계는 인식할 수 있음과 인식불가능함의 경계와 축을 같
이하며 전개된다. 종합-기계의 중심축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과잉
(excès)이라는 원심력적(centrifuge) 운동으로 인해 총체적 단일성
이 위협당할 때 위의 두 경계선 사이에서 도착적 쾌락의 감정이 불규
칙한 방식으로 촉발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갈등을 일으키는 두
가지 국면 사이에서 생겨났기에 항상 비스듬히 놓여있고 다층적이며
불안정하다. 그렇다면 이 도착적 감정은 어떻게 구성되어져 있는가.
우리가 카오스적 군집체를 바라볼 때, 우리는 불안, 공포뿐만 아니라
도착적이고 열광적인 쾌감에 이르기까지 양가적이며 복합적인 감정
을 느낀다. 공포 감정 안에는 비규정적 무와 죽음에의 공포가 깃들어
져 있으며, 도착적 쾌락에는 통합적인 법(질서)이 부재하는 비결정적

27) E. Kant, La Critique de la faculté dejuger, I. l’Analytique du sublime, § 27, v. 258,


Gallimard, 1985, p.199.
28) Rogozinski, Kanten, p.117.
356

윤 지 선

무 안에 정신없이 빠져 들어가는 현기증이 남아있다.


산발적인 과잉 앞에서 우리는 숭고(le sublime)의 감정과 괴물적
인 끔찍함(le monstrueux, Ungeheure)의 감정29) 사이에서 줄타기
하면서 도착적 쾌감을 느낀다. 비록 우리는 이 형태들의 과잉을 다스
리고 정련할 수 있는 법칙(Loi)을 찾아내고자 하지만, 숭고의 감정
안에서조차 비규정적 무(le néant indéterminé)와 닮아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다.

«숭고는 그것의 최극단의 정점 안에서 괴물적 끔찍함에 근접한다. 이


것(괴물적 끔찍함)은 이성의 관념(idée)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고 궁지
에 몰아넣어진 심연을 가리키고 있다. 즉 숭고의 경험 안에서는 상상력
이 이성의 초감각적 차원을 도식화하고 시간화하려는 것에 실패했다기
보다는, (이러한) 선험적 상상력의 실패에 의해 예고된 괴물적 끔찍함의
심연을 초월하고 메꾸려는 이성의 정합적 관념들의 이차적 시도라는 것
이 드러나는 것이다30).»

지젝은 숭고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마주치게 되는 괴물적 끔찍


함(Ungeheure)이야말로 이때껏 이성이 감추고자 했던 과잉이라는
심연(abîme)을 폭로한다고 분석한다. 다시말해 숭고의 경험이란 이
러한 심연-비규정적 무- 안에서 초월적 법칙을 찾아내어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것에 정박하려는 이성의 처절한 시도에 다름없음을 지적하
는 것이다. 이러한 지젝의 고찰은 매우 탁월하고 명철하며 필자의 사
유와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비균질적 과잉은 분자적 다수성으로 구
성된 카오스적 군집체를 양산시키고 이는 다수를 종합하려는 선험적

29) 형태의 과잉 앞에 느끼는, 숭고감정과 괴물적 끔찍함의 감정 사이의 줄다


리기 게임과도 같은 감정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의 박사논문에서 다룬 바
가 있다.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박사논문(직관의 시선으로 본 가치의 다수
성과 상관관계)을 참조하길 바란다.
30) Žižek, Le sujet qui fâche, p.57.
357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상상력을 마비시키며 정초내릴 수 없이 심연으로 표류하는 괴물적 끔


찍함의 감정으로 치닫게 한다. 카오스적 군집체가 총체적 단일성으로
서의 시스템의 뼈대를 탈골시킨다는 것은 분자적 다수성의 과잉상태
게임을 통해 종합과 통합의 법칙을 무력화시키고 견딜 수 있음과 사
유가능함의 수위마저 단번에 뭉개버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산발적이고 비정형적인 분자적 다수성은 일체의 법(칙)과 어떠한 관
계를 맺고 있는가.
신과 법, 국가, 자아와 같은 정련된 시스템들의 총체적 단일성을
해체시키는 작업을 행한다고 할 때, 이것은 일체의 법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행위로서 ‘법에 반(反)하는 자유(la liberté contre Loi)’ 안
에서 일어난다. 만약 모든 형태의 도착(perversion)의 메커니즘이
명령적 방식으로 법을 위반하는 데 있다면, 법이 없다면 이러한 도착
은 스스로의 지표를 잃게 되는 것이며 법의 위반은 항시 우리와 법
사이의 긴밀한 긴장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착은
법의 심급을 요구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법에 반하는 자유는 법에 대
한 복종의 전치된 경우에 불과한가. 아니면 지젝이 Le sujet qui
fâche(까다로운 주체)에서 주장한 대로, 도착은 전복이 될 수 없는
가?31) 여기서 명시하는 ‘법에 대항하는 자유’가 반항적 도착의 한 형
태로 항상 법이 규정해 놓은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인데, 이것은 통합
적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이 법을
위반하는 형태로만 유효하다는 점에서 법의 효과 중 하나에 불과한
가. 푸코의 지적처럼 권력에 대한 항거가 맺는 권력과의 종속된 관
계32)를 감안한다면, 반시스템적인 분자적 다수성이란 권력과 총체적
단일성에 대한 실패한 항거에 불과한 것인가. 하지만 리오타르가 주

31) S. Žižek, Le sujet qui fâche, Flammarion, 1999, pp.329-343.


32) 푸코에 의하면 항거는 권력의 효과일 뿐이며, 권력과 항거는 상호적으로
서로를 내포하고 있으며 후자는 전자를 넘어설 수 없다고 본다.
358

윤 지 선

장한 바처럼 구조의 이데올로기적, 전체적 단일성으로서의 ‘대서사


시’의 해체와 파열을 인정한다면, 법이라는 시스템에 반하는 자유는
우리에게 도착적 쾌감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대서사시를 전복시키고
해산시키는 분자적 다수성을 생산해낼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일 것이다.
다수의 요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긴장상태게임은 총체적
단일성이라는 대서사시의 실현을 불가능하게끔 만드는데, 중앙집권
적 수렴점에 의해 조정되는 코스모스(cosmos)개념과는 반대되는 마이
크로 ‘카오스모스(chaosmos)’33)의 줄기-네트워크(réseaux-tige)34)
를 생산해 낼 것이다. 우선 마이크로 카오스모스란 용어를 분석해 보
자. 카오스모스는 제임스 조이스에 의해 창안되었고 들뢰즈와 가타리
에 의해 발전된 개념으로, 카오스와 코스모스(세계)라는 두 용어의
합성어이다. 코스모스의 전통적 정의가 정련되고 조정되고 미리 구상
된 세계라는 점에서 카오스를 배제시켰던 반면, 카오스모스는 생성의
흐름과 «분산하는 연속체들로 구성되어진 세계»로서 카오스와 코스
모스가 긴밀하게 혼합된 세계이다. 분자적 다수성들은 여러 가지 마
이크로 카오스모스를 여기저기에 양산해내는 것을 즐기며, 이들은 서
로서로 뒤엉키기도 하고 성장하며 뿌리(racine)와 시원(origine)․
근원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리좀적 방식의 줄기-네트워크를 형성한
다. 이러한 의미에서 분자적 다수성은 생성의 흐름을 따라 다수들의
무한정한 지도를 그려낼 수 있으며 이것은 마이크로 카오스모스를 반
영하고 있다. 만약에 정합적인 법칙이 마크로 코스모스의 조직체계를
구조화하고 결정한다면, 카오스적 군집체는 이 마크로 코스모스의 전
체주의적 배치를 폭발시키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우글거림으로 이
루어진다. 후자에는 단일한 중심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동적인 방

33) 카오스모스는 제임스 조이스에 의해 제창된 개념으로 카오스와 코스모스


의 합성어이다.
34) 줄기-네트워크(réseaux-tige)는 필자가 제창한 개념으로 뿌리(racine)와 근원
(origine) 중심주의적 사고관과 대별되는 전략적 개념이다.
359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식으로 통합적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려 함으로서, 법에 반하는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 무법의 자유(Liberté sans Loi)를 즐긴다. 이러한 의
미에서 카오스적 군집체 안에서의 도착적 쾌락은 해방적이면서도 반
도덕의 한계로부터 비껴간 비도덕적 쾌락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VI. 나가는 말

카오스적 군집체는 비종합적 직관이라는 비한정적이고 변칙적인


조합능력을 통해 다각적 힘들의 긴장상태게임을 활성화시킴으로서
종합-기계의 초월적 원리를 무력화시킨다. 이처럼 카오스적 군집체
는 총괄적이고 유기적인 단일성의 사지를 분쇄시키고 그것을 분자들
의 열광적인 우글거림으로 끊임없이 변환하며 스스로를 항상 변화와
불안정한 상태로 내던진다. 이것은 종합이라는 단 하나의 중심수렴점
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며 나아가는 대신, 생성의 흐름을 통해 시
시각각 중심을 이탈시키며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리좀적 조합방식으
로 시스템을 와해시킨다. 왜냐하면 분자적 다수성과 같은 내재적 운
동에는 수직적이며 고정된 중심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무한생성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흐름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
문이다. 우리가 분자들의 가열찬 우글거림과 마주칠 때, 준거점의 유
실로 인해 비스듬하고 도착적인 쾌감을 느낀다. 이는 신과 세계, 자아
와 같은 단선적 중심점들로부터 벗어나면서 생성되는 쾌감으로서 견
딜 수 있음과 견딜 수 없음의 수위를 위험하게 넘나드는 사이의 감정
이기도 하다. 분자적 다수성들은 서로 뒤엉키고 교차하며 여기저기
리좀적 방식의 줄기-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다수의 마이크로 카오스모
스를 생산해나가는데 이는 종합-기계로 구축된 완결체를 교란시키는
가장 탁월한 전략이다.
360

윤 지 선

참고문헌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raison pure, Paris, Gallimard, 1985.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raison pratique, Paris, Gallimard, 1985.
Emmanuel Kant, Critique de la faculité de juger, Paris, Gallimard, 1989.
Jean Lefranc, Platon et le platonisme, Paris, Armand Colin, 1999.
G. Deleuze, La logique de la sensation, Paris, Editions de Minuit, 1969.
Frank Pierobon, Kant et la fondation architectonique de la métaphysique, Grenoble,
Million, 1990.
Platon, Phèdre, Paris, Flammarion, 1999.
Jacob Rogozinski, Le moi et la chair, Paris, Les Editions du Cerf, 2006.
Deleuze et Guattari, L’anti-œdipe, Paris, Editions de Minuit, 1972.
Deleuze et Guattari, Mille plateaux, Paris, Editions de Minuit, 1980.
Hegel, La philosophie de l’Esprit 1805, trad. par G. Planty-Bonjour, Paris, P.U.F,
1982.
S. Žižek, Le sujet qui fâche, Paris, Flammarion, 1999.
슬라보예 지젝, 󰡔신체없는 기관󰡕, 이성민 외 역, 도서출판 비, 2006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 역, 새물결출판사,
2013
박영균, 「기관없는 신체인가, 신체없는 기관인가?; 지젝의 들뢰즈 비판」,
󰡔철학연구󰡕, 제 106집, 대한철학회, 2008. 5. 35)

◈ 논문투고일 2014년 11월 19일 / 심사일 2014년 11월 28일 / 심사완료일 2014
년 12월 16일
361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Du système architectonique à la stratégie


vers l’agrégat chaotique

YUN Ji Sun

Le système architectonique fonctionne par la machine


synthétisante qui consiste à subordonner plusieurs éléments
à l’ordre de la raison. Afin d’exploser le mécanisme du
systme -synthèse, division, classement, exclusion, etc-qui
est l’axe principal de la machine synthétisante, on adopte le
concept du Corps sans Organes proposé par Deleuze et
Guattari. En visant à faire éclater le concept de substance de
Tout-Système on connecte, remodèle, réorganise le Corps
sans Organes de Deleuze et l’Organe sans Corps de Zîzek; A
partir de cela on se dirige ver le chaos qui existe toujours
entre plusieurs éléments et qui ne se soumet pas à l’ordre
organique de la raison. C’est l’intuition dé-synthétique en
tant que la stratégie de défaire la machine synthétisante, qui
combine, décompose plusieurs éléments d’une façon
créatrice. Comme l’agrégat chaotique produit par cette
l’intuition dé-synthétique ne peut être subordonné à l’ordre
de la raison, celui­là se rapproche du infini négatif et cela
nous provoque le plaisir pervers qui jongle entre le
sentiment du sublime et du monstrueux. Le développement
de l’agrégat chaotique consiste en la façon rhizomatique
libérée de la recherche de la racine et de l’origine. Et la
362

윤 지 선

pluralité molculaire produit partout les micro­chaosmos et


forme les réseaux­tige qui sont immanents et horizontaux.
C’est ainsi qu’on propose la meilleure stratgie pour
perturber le système architectonique.
363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From the architectonic system in the strategy


towards the chaotic aggregate

YUN Ji Sun

The architectonic system works by the synthétisante


machine which consists in subordinating several elements to
the order of the reason. To explode the mechanism of the
systme - synthesis, division, classification(ranking),
exclusion, etc. which is the main axis of the synthétisante
machine, we adopt the concept of the Body without Organs
proposed by Deleuze and Guattari. To make burst the
concept of substance of All- System, we connect, remodel,
reorganize the Body without Organs of Deleuze and the
Organ without Body of Zîzek; from it we go to the chaos
which always exists between several elements and which
does not submit itself to the organic order of the reason. It
is the intuition die-synthetic as the strategy to undo the
machine synthétisante, which combines(organizes),
decomposes several elements in a creative way. As the
chaotic aggregate produces by this intuition die-synthetic
cannot be subordinated to the order of the reason, that one
gets closer to the infinite negative and it causes(provokes)
us the perverse pleasure which juggles between the feeling
of the sublime and the monstrous. The development of the
chaotic aggregate consists of the rhizomatique way freed
364

윤 지 선

from the search for the root and for the origin. And the
molculaire plurality produced everywhere micro-chaosmos
and forms the networks-stalk which are immanent and
horizontal. This is the way we propose the stratgie best to
perturb the architectonic system.

Subject Sphere: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Deleuze, Zizek,


postmodernism
Key Words: Anti systems, Corps sans organes, Organes sans
corps, devenir,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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