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on page 1of 13

해제

효유문 曉諭文

이 자료는 초정草亭 김성규金星圭(1863~?)가 1894년 4월 새로 부임하는 전라


감사 김학진金鶴鎭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있으면서 전라감사의 이름으로 작성한
효유문을 모은 것이다. 그의 문집 초정집草亭集 12권 중 7권의 공문公文 에
수록된 자료로 인쇄본이다.
주요한 내용은 효유도내란민문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4월: 실제
감영에서 발포되는 시기는 5월 15일경으로 추정됨), 감결오십삼주甘結五十三
州 (개국 503년 갑오 4월), 재유도내란민문再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5
월), 삼유도내란민문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5월), 답청국두품정대
기명제독정임산서태원총진통영려방회련마보등영파도융아파도노섭사성문
答淸國頭品頂戴記名提督正任山西太原總鎭統領廬防淮練馬步等營巴圖隆阿巴圖魯 士成文』(개국 503년 갑
오 6월 초5일), 사유도내란민문四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6월 초7일),
감결오십삼주甘結五十三州 (개국 503년 갑오 7월) 등 7종류의 공문公文을 수록
하였다. 먼저 효유도내란민문曉諭道內亂民文 은 1894년 5월 중순경 농민군이
전라도 지역을 사실상 장악하고 폐정개혁을 위해 집강소를 설립하기 시작
하자, 김학진이 5월 15일경에 이 효유문曉諭文을 보내면서 면리面里에 집강執綱
을 임명하여 집강으로 하여금 억울한 일을 감사監司에게 직접 소지所志케 하여
공결公決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사유도내란민문四諭道內亂民文 에서
전라감사는 농민군에 대하여 한 고을에 한 명의 집강을 뽑아 기존의 지방관
청과 협력하여 전라도 각 고을의 질서를 잡아나가자는 제의를 하고 있다.
이어 감결오십삼주甘結五十三州 는 7월 1일경에 발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
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과의 협의를 통해 집강소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직전의 감결甘結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는 1894년 5월 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의 집강소 설치운동에 대응
하는 전라감사 김학진金鶴鎭과 전라감영의 입장을 잘 나타내주는 것으로 전라
도 지역에 설치된 집강소執綱所의 설치경위에 대하여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
는 자료이다.
효유문 曉諭文
1) 327

효유문* 1)

曉諭文

공문 [公文]

전라감영총서시 [全羅監營總書時]

도내道內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曉諭道內亂民文]1)


-개국 503년1894 갑오 4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본 관찰사가 불일내로 사조辭朝2)하고 급히 말을 몰아 길을 나선 것은 단거


單車로 너희들에게 가서, 내가 임금께 연이어서 받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기시
는 윤음綸音과 은혜로운 하교를 하나하나 선포하여, 너희들의 오랜 허물을 씻

* 국왕이 백성들에게 알아듣도록 타이르는 글로서 주로 민란이나 반란이 일어났을 때 회유


책으로 사용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언문과 한문으로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1) 이 효유문은 신임 전라감사 김학진(金鶴鎭)이 동학농민군에게 반포한 것으로, 작성시기
는 1894년 4월로 되어 있으나, 실제 동학농민군에게 전달된 것은 5월 초순이다. 김학진은
4월 18일 전라감사로 임명된 뒤 서울을 출발해 5월 5일경 전라도 삼례에 도착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 효유문은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대
치하던 5월 5일 무렵 동학농민군을 진무하기 위해 반포된 것으로, 전주화약을 맺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2) 사조(辭朝) : 새로 임명된 관리가 부임하거나 외국의 사신이 떠나기에 앞서 임금께 드리
던 하직 인사를 말한다.
328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라도 지역 자료

어내고 너희들의 원통한 고통을 풀어주려는데 있다. 그래서 반드시 너희들


이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두려는 성상聖上, 임금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본 관찰
사는 반드시 성상의 진정한 뜻을 받들어 너희들 모두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
치고 각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런데 본 관찰사가 천안天安에 이르러 장성長城의 소식을 듣고,3) 다음날
밤 금강錦江에서 전주全州의 변란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서,4) 너무 놀라 말조차
잃어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이유는 성상의 뜻이 아직 내려가기도 전
에, 너희들이 벌써 반드시 죽을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너희들
이 <성상의> 명을 받든 신하를 죽이고 열읍列邑의 병권을 제멋대로 하여 전
묘殿廟를 놀라게 하고 성城을 닫아걸고 웅거하고 있으니, 생각하건대 너희들
의 죄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 비록 본 관찰사가 <너희들을> 물속과 불
속에서 건져내어 임석 席의 단단한 곳에 두려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이 역
시 어찌하겠느냐? 이것은 너희들이 살 수 없는 지경으로 스스로 들어가 마
침내 나로 하여금 너희들을 살리려는 내 마음을 끝내 베풀지 못하게 한 것
이니, 참혹하고 애통하다.
너희들이 신임 관찰사에게 원통함을 하소연한 것은 무슨 일이냐? 너희들
이 원통하게 여기는 것은 너희의 하소연을 헤아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관장官長,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로 말
미암았고 두 번째는 안핵사의 실정失政에 격분하여 울부짖고 원통함을 하소
연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한번 모이고 두 번 모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하소연 하여도 살펴주는 사람이 없고, 흩어지려 해도 삶을 도모할 곳이 없
었다. 이런 때 효파경梟破 5) 처럼 화심禍心6)을 기른 흉괴凶魁가 기회를 틈타

3) 1894년 4월 23일 동학농민군이 장성 황룡촌에서 홍계훈이 보낸 관군과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하면서 대관 이학승(李學承)의 목을 베었던 일을 말한다.
4) 1894년 4월 27일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을 말한다.
5) 효파경(梟破 ) : 악인을 비유한 말로, 효(梟)는 어미새를 잡아먹는 올빼미, 파경(破 )
은 아비 짐승을 잡아먹는 짐승을 말한다.
효유문 曉諭文
1) 329

터무니없는 말로 선동하고 불안하고 의심스런 형세로 꾀어, 아직 안정되지


않은 민심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몰아넣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
치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흉괴凶魁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너희들 천백은 그래
도 아직 살 길이 있다. 저 흉괴들은 제거할 것이지만, 위협을 받아 따른 자들
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 본 관찰사가 직접 받은 성상의 교지敎旨이다. 그
러하니 너희들은 진실로 거짓 없는 마음으로 귀화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즉
시 무기를 반납하며 성문을 활짝 열고 흉괴를 결박해 잡아다 휘하에서 명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여러
번 글을 쓰고, 다시 말을 둘러대면서 사특함을 감추고 성문을 닫아걸고, 나
로 하여금 가엾은 상황을 궁구하게 하면서 갈수록 더욱 함부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 관찰사가 이렇게 한결같이 효유하는 것은 끝내 차마하기 어려
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 백성들은 분명히 나의 말을 듣고 나중에
간절히 후회함이 없기를 특별히 효유한다.

53개 고을에 보내는 감결 [甘結五十三州]7)


-개국 503년 갑오 4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본 관찰사가 성상께서 너희들을 가엽게 여기는 교지와 은혜로운 윤음을


받들어 이미 감결을 보내 효유하였다. 비류匪類는 지금 이미 흩어져 각기 자
신의 집으로 귀가하고 본업으로 돌아갔는가? 어리석은 백성들이 꼬임과 협
박을 당해 비록 일찍이 점차 물들었을지라도, 곧바로 후회하고 무기를 거두
어 가져온 각자의 읍에 반납하고 이전의 본업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양민良民

6) 화심(禍心) : 남을 헤치거나 반역을 꾀하는 마음을 말한다.


7) 이 감결(甘結)은 1894년 4월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비류가 지금 이미 흩어져’라
는 본문 내용으로 보아 5월 8일 전주화약 직후에 전라도 53개 군현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
된다.
330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라도 지역 자료

이다. 반드시 주리州里에서 더욱더 어루만지고 위로하여, 허물이 없는 사람


과 똑같이 다루어 그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라. 혹시라도 이전의 과실
을 지목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워지려는 길을 막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만약 혹시라도 병기를 반납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모이고 흩어
지는 자는 끝내 교화를 방해하는 부류들이니, 그들은 섬멸하고 다시는 의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보이는 데로 방방곡곡에서 힘을 합해
해당 고을에 잡아들이고, 다시 본 영문營門에 보고하여 조치하도록 하라. 또
한 그 정황을 급히 보고하여 혹시라도 늦어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
라. 그러므로 이 감결 내용을 각 면리面里의 길가 벽에 붙여, 지나는 사람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두루 알고 후회하는 자가 없이 반드시 스스로 반
성하고 귀화하도록 하고, 뉘우치지 않은 자들이 죽음에 이르러 후회하는 자
가 없도록 하라. 아울러 감결이 도착한 날과 거행한 상황은 우선 즉시 급히
보고하라. 또한 중영中營 진역鎭驛 목장牧場 산성山城에 있는 관리들도 감결을 서
로 주고받아 시행하라.

두번째 도내道內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5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너희들은 전주全州에서 흩어졌으니, 그 뜻이 병기를 풀고 귀농하여 각자


본업으로 돌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 관찰사는 오랜 잘못을 들추
어 따지지 않고 급히 새로운 정사를 펴서 편안하게 할 것을 도모하려고 한
다.
지금 들으니, 몇몇 곳의 잔당들이 오히려 아직도 병기를 풀지 않고 주둔
해 있다고 한다. 이에 본 관찰사가 우리 성상聖上께서 보호하려는 지극한 뜻
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너희들로 하여금 끝내 의심하거나 두려
워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려는 것이겠느냐. 그렇게 하면 너희들이 끝내 흉
효유문 曉諭文
1) 331

악한 무리가 될 것이니, 이는 진실로 나의 직분을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생


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이러한 잘못이 나에게 있는 듯하다.
이에 짧은 편지를 갖추어 군관軍官 이용인李容仁을 보내 다시 진심을 드러내
는 바이다. 만약 너희들이 나의 말을 헤아리고 나의 마음을 믿어 너희들의
목숨을 보전하고 생업을 편안히 하는 날을 얻는다면, 나의 경사스러움이 또
한 그보다 큰 것이 없을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조목으로 경계하고 밝혀 너희
들에게 알리는 바이다. 만약 너희들이 끝내 미혹되어 완악함을 고집하면서
변하지 않는다면, 이는 너희들 스스로가 죽음을 취하는 것으로 내 마음도
유감이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건대 지금 육지로 상륙한 청국 병사들이 마보馬步 6천명, 순변사巡
邊使, 이원회와 초토사招討使, 홍계훈가 관할하는 삼진三陣의 수가 3천명이 넘는데, 이
들 군대는 용이나 호랑이처럼 사나워 반드시 무기로 일을 처리하고자 할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체하면서 군대를 동원하지 않는 것은
바로 본 관찰사가 만류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여러
군대가 길을 나누어 수륙으로 전진한다면, 보잘 것 없는 무기를 든 너희들
을 소탕하는 것이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한 올의 털을 태우는 것과 같
아, 몸은 악명惡名을 입고 피와 살은 들판에 널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쌍한
우리 백성들은 어찌 되겠느냐?
나는 너희들의 부모와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찌 추호라도 속이는 마음
이 있을 것이며, 또 어찌 추호도 허황한 말을 하겠느냐? 특별히 매우 지극하
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자비심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너희들은 분명히 듣고 나의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一. 백성에게 해가 되는 폐정弊政은 일체 교혁矯革하라는 성교聖敎를 이미 직


접 받았으니, 진실로 너희들의 말을 기다릴 것도 없다. 작은 폐정은
332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라도 지역 자료

본 감영에서 고치고, 큰 폐정은 조정에 계문啓聞하여 혁파해 주도록 청


할 것이다.
一. 조정에서는 이미 너희들의 귀화를 허락하였으니, 너희들이 집으로 돌
아가는 날로 바로 양민이다. 만약 이웃에서 지난 허물을 지목하거나
관리가 지난 일로 침색侵索하면, 단지 너희들 종적이 위태로울 뿐 아니
라, 어찌 조정에서 너희를 사면한 본래의 뜻이 있는 것이겠느냐? 본
감영은 바야흐로 따로 신칙하고 엄금嚴禁하여, 너희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사는 면리面里에 각각 집강執綱을
두어, 만약 너희들 가운데 억울함을 말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해당
집강이 연유를 갖추어 곧바로 본 관찰사에게 정소呈訴하여 공결公決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一. 너희들의 병기는 마땅히 곧바로 상세히 개록開錄8)하여 각각 소재지의
주현州縣에 반납해야 한다.
一. 병기를 도로 반납하는 것 외에 대체로 재곡財穀과 연관된 일들 중에 비
록 추심推尋하려는 민소民訴가 있더라도 오늘 이전의 것들은 없던 것으
로 부치고 이전의 잘못을 용서하여 영원히 논하지 말라는 뜻으로 지
금 본 감영에서 법식을 만들어 관문關文을 각 읍에 보낼 것이다.
一. 너희들은 이미 농사철을 놓쳤고 또한 가산을 탕진하여, 지금 비록 귀
가할지라도 반드시 자활資活하기 어려우니, 올해의 호세戶稅와 각종 공
납公納은 마땅히 일괄 면제할 것이다.
一. 너희들이 귀화한 뒤로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고 즐겁게 살게 하는 책
임은 본 관찰사에게 있으니, 앞으로 제반의 급한 일들은 차례대로 조
치하여 시행할 것이며, 지금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다.

8) 개록(開錄) : 상급 관청에 보내는 문서의 끝에 이름이나 의견을 적는 것을 이른다.


효유문 曉諭文
1) 333

세 번째 도내道內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5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본 관찰사가 성상의 교지와 은혜로운 윤음을 받들어 이미 여러 번 효유문


을 내려 신칙했는데도 아직도 소동과 그릇됨이 그치지 않고 인심이 안정이
되지 않고 있다. 귀화한 자들도 아직 의심과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는 데다
가 원통함을 품고 있는 자들은 더욱 억울해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나의
부덕함과 서툰 다스림이 아니겠는가? 위로는 성상의 지극한 뜻을 떨치지 못
하고 아래로는 만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분을
감당치 못하는 것이 이보다 무엇이 크겠는가? 이 때문에 비통한 마음이 더
욱 절실하다.
대개 사람이 매우 싫어하는 것은 죽는 것이고 사람이 매우 부끄러워하는
것은 도적이라는 이름이며 사람이 매우 아껴서 버릴 수 없는 것은 부모 처
자 밭 집 재산이다. 그럼에도 아끼던 것을 버리고 부끄러운 짓을 도모하면
서 굳이 죽을 곳으로 뛰어들면서도 마치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는 것은 반드
시 궁박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 것이다. 이에 꺼리거나 번거롭게 여
기지 않고 다시 본 관찰사의 본심을 드러내는 바이다.
지난 번 효유문의 뒤에 기록한 규조規條를 너희들이 보고서 상세히 알았을
것이니, 곧바로 마땅히 소재지의 군현郡縣에 무기를 반납하고 각자의 고향으
로 돌아가 자신의 일에 편안히 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의심을 품고서 시
일을 지체하지 말 것을 간절히 다시 유시諭示한다.

청국淸國 두품정대頭品頂戴 기명제독정임記名提督正任 산서태원山西太原 총진통령總


鎭統領 여방회련마보등영廬防淮練馬步等營 하도융아파도노巴圖隆阿巴圖魯 섭사성 士成에

게 답하는 글
-개국 503년 갑오 6월 5일,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334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라도 지역 자료

조선국 전라도관찰사 겸 도순찰사都巡察使 친군무남영외사親軍武南營外使가 이


문移文을 회답합니다. 지금 귀국의 통령統領이 전해준 편지에 말한 것들을 보
고 자문을 받아보니, 본 지방의 교비敎匪, 동학농민군들이 부적과 주문의 술법과
허황되고 망령된 말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 무리들이 부
지불식간에 싹튼 것이 지금 30여년이나 되어, 동남東南의 여러 도道에 두루 가
득합니다. 이에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들이 위협에 못이겨 따르는 많은 사람
들을 믿고서 암암리에 다른 도모를 품어 온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
다가 마침 고부군古阜郡에 소동이 생기자 때를 틈타 투합하여 여러 고을의 무
기를 훔쳐 도륙하고 공격하여 겁탈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 않는 짓
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비록 원통함을 빙자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마
음은 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전주全州에서 흩어진 뒤로 당신의 군대가 온다는 말을 듣고 전라좌
도 일대에서 잔당들이 잔뜩 겁을 먹고 불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래서 거
듭 번거롭게 효유문을 내리자 하루아침에 병기를 풀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대군大軍이 경계에 임하고 은혜와 위엄을 아울러 행하여, 이미 이루어진 데서
난리의 싹을 꺾고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워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그러니 진실로 당신의 군문軍門에서 올바르게 처리하지 않았었
다면 어찌 이런 것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대개 이 무리들이 교화가 되지 않으면 적으로 여길 것이며, 귀순하면 백
성으로 여길 것입니다. 본 관찰사가 일찍이 어루만지고 안심시키는 정사를
베풀어 악을 제거하여 선으로 나아가도록 해서 자신들의 일에 편안하게 하
려 하였습니다. 나머지 상황들은 다시 군더더기 말을 허용치 않고 장차 뒤
이어 일어나는 소동을 제거하고 기미를 보아 처리하면서 안팎으로 상응하
여 글을 갖추어 삼가 이문을 올릴 것입니다.
효유문 曉諭文
1) 335

네 번째 도내道內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 갑오 6월 7일,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본 관찰사가 너희들에게 효유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너희들 역시 원


통함을 하소연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진실로 너희들이 아직도 관망하는 것
은 실로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말과 글의 번
거로움을 꺼려하지 않고 성상聖上의 지극한 뜻과 본 관찰사의 고심으로 다시
너희들로 하여금 분명히 알도록 하고자 한다.
지금 너희들이 병기를 반납하는 한편, 불손한 무리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매우 미워하면서 엄금시키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너희들 양심의
진실을 알겠다. 지난 일들은 궁박함에서 나온 것으로써 더욱 더 매우 불쌍
하니, 본 관찰사의 본래 생각을 지금 이룰 수만 있다면 매우 다행이다.
또 이용인李容仁이 입으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각 읍
의 군물軍物을 각자 소재의 읍에 반납한다고 하니, 반드시 그것을 상세히 기
록하여 각 관청에 반납하고 그 즉시 영문營門, 감영에 보고하도록 하라. 그리고
믿고 의지할 곳이 없는 적들이 동학에 거짓 의탁하여 물이 흐린 경수涇水가
물이 맑은 위수渭水를 탁하게 만들고 있으니, 그것은 비단 지방의 근심과 해
가 될 뿐만 아니라, 이는 바로 너희들에게도 원수가 되는 것이다. 각 읍에서
염탐하여 붙잡을 때 염려되는 것은 혹시라도 곡식과 잡초를 구별하기 어려
운 것처럼 일의 단서를 불어나게 할 수도 있으니, 너희들은 각자 자신이 사
는 곳에 나아가 근신謹愼하고 의義로운 사람으로 집강執綱을 삼고 보이는 데로
적을 포박하여 해당 읍에 넘겨 처분을 받도록 하라. 만일 집강이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점이 있거든 이름을 지목하여 관청에 보고하여 법에 따라 체포
하도록 하되, 부적당한 사람을 집강으로 임명하여 폐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
야 한다. 그리고 당초 나주羅州에서 있었던 형살刑殺은 너희들이 전혀 몰랐던
때에 있었던 일이니, 오늘 이후로 본 관찰사가 마땅하게 처리할 것이다.
336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라도 지역 자료

이에 친군무남영군親軍武南營軍 사마司馬 송인회宋寅會를 파견하여 이 효유문을


보내고 연이어 관문關文을 띄우니, 귀화한 자들에게도 생업에 종사 할 수 있
는 절목을 일일이 직접 효유하라. 너희들은 이 말을 분명히 듣고 모두 새로
워지는 것을 경사로 여겨,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옛 일을 회복하여 지극한
바램에 부합하기를 바란다.
이 중에 귀화한 자들이 안업할 수 있는 방편과 군기軍器를 거두어들이고
적을 잡아들이는 절목은 지금 각 읍에 감결로 발송한다.

53개 고을에 보내는 감결 [甘結五十三州]


-개국 503년 갑오 7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지금 동학도들이 올린 원정原情9)을 보니, “일제히 감화되어 예전에 살던


곳으로 귀가하여 살고, 가지고 있던 포와 창은 거두어 영문營門에 반납하였습
니다. 그런데 감화한 사람을 도리어 비도匪徒라고 하니, 의심하고 두려워하
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편히 살 수 있는 방도가 없습니다. 생업을 잃은 적
과 불항배不恒輩들은 수시로 추적하여 싹을 제거하고 금지시켜 소요를 일으킬
수 없도록 해야 하나, 이는 우리들이 할 바가 아닙니다. 장차 <저들 무뢰배
들을> 단호하게 철저히 금지시켜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또한 “각 읍
의 군기軍器를 다시 각 관청에 반납할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렇게 예전의 묵은 잘못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되었으니, 하늘의 떳떳한 양심을 볼 수 있다. 이후부터 모든 잘못을 뉘우친
평민에 대해서는 절대로 예전의 허물을 지적하지 말라. 또한 비록 말할 때
와 출입할 때일지라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조금의 막힘도 없도록 하되, 병
기를 가지고 와서 반납하는 경우에는 숫자를 일일이 대조한 뒤 <병기를> 건
네받아 군기고軍器庫에 보관하고 그 즉시 곧바로 급히 보고하라. 불항배들이

9) 원정(原情) : 사정을 하소연한 일종의 진정서 내지 청원서를 말한다.


효유문 曉諭文
1) 337

<동학에> 적탁籍托하여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그들 중에


서 집강을 정하고, <집강으로 하여금> 보이는 데로 본 읍에 잡아들여 즉시
수감한 뒤 이를 곧바로 보고하여 법에 따라 엄격히 처리하라. 그리고 조사
하여 체포할 때 만일 혹 소홀하여 지방관에게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경우,
와서 보고한 것을 듣고 교차校差를 보내 그들과 힘을 합해 잡아들이고 지체없
이 보고하라. 귀화한 자들에 대한 안접安接 방안은 전에 이미 관문을 각 읍에
보내면서 그 뒤에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지금 또다시 번거로움을 꺼려하지
않고 다시 기록하여 관문을 띄우니, 이대로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하 생략.

<번역 : 권기원>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