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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105 양호전기 (1차진압)
ch0105 양호전기 (1차진압)
양호전기(兩湖電記)
양호전기(兩湖電記)
4월 초 3일 기유 [初三日 己酉]
4월 초 4일 경술 [初四日 庚戌]
4월 초 5일 신해 [初五日 辛亥]
전보 없음.
4월 초 6일 임자 [初六日 壬子]
전보 없음.
4월 초 7일 계축 [初七日 癸丑]
4월 초 8일 갑인 [初八日 甲寅]
4월 초 9일 을묘 [初九日 乙卯]
라고 하였다.
혜당댁으로부터 완백에게 권유하여 적을 토벌하라는 전보에 이르기를,
“각 읍에서 저 무리들을 잡아 가두면 매양 무장의 지난 일과 같이 반드
시 행패를 부릴 것이니 어찌하여 급히 도모하지 않는가? 토벌하여 전멸
시키면 어찌 날로 더 왕성하겠는가? 이와 같이 버려두면 도내에서 패배
하지 않을 수 없고 순찰사와 병사는 직무를 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장
차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앞에 있는 참(站)의 요해처를 방비하고 특별
히 용단을 내어 공략하도록 도모하라. 초토사의 비밀 전보책(電報冊)이
궁내(大內)에 있어서 풀어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혜당댁에서> 전보하기를, “저 무리들이 도처에서 행패를 부려도
한 곳도 서로 버티지 못하고 또 두절시키지도 못하며 각 도로에는 진군
하는 장병도 없고, 보루(堡壘)에서는 기회를 보아 적을 섬멸해야 하는데
오래도록 전주에 주둔하여 있으니 적이 스스로 죽기를 기다리는가? 피로
하여 저절로 지루하여 해산하기를 기대하는가? 지금 농사의 시기를 당하
여 하루가 급하다. 만약 하루를 지연시키면 거기에 <일이> 더해지는 날
이 많으니 속히 토벌하여 제거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답전하기를, “연일 전보로 전달되어도 하나도 하답을 받지 못하여 답
답하였는데, 지금 오히려 해독하지 못한다는 전보를 받으니 송구하옵니
다. 저들의 정세는 수가 만여 명이나 되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며
갑자기 모였다가 곧 흩어져 일정하게 주둔하는 곳이 없습니다. 큰 군사
가 만약 전진하여 한 마을을 추격하여 저들을 잡으려하면 마을이 텅 비
고 여러 읍이 소요스럽고 농민이 일을 못하게 됩니다. 또 함부로 움직이
지 말고 부대를 나누어 방어하지 말라는 궁내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미약한 군사로 어떻게 하루빨리 섬멸할 수 있겠습니까? 토병
(土兵)14)은 전적으로 믿을 수 없으니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에야 이 전교(傳敎)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혹 소홀함
일이 없게 하라”라고 하였다.
어제 대내로부터 비밀전보로 내리기를, “경군(京軍)을 또 파견하여 보
내기 어렵기 때문에 심영(沁營) 병사 4백 명을 그 곳 병방장(兵房將)16)
으로 하여금 거느려 내려 보내서 합심하여 함께 일을 완성하도록 하라.
크루프 1좌도 마땅히 내려 보낼 것이고 각처에 보낸 비밀 전보는 그저
인심만 소요스럽게 하니 다만 대내와 상의하라”고 하였다.
공사청과 본영 사또댁에 전보하기를, “심영의 장병은 어느 날에 내려
오며 군도 10자루와 좋은 품질의 대포와 자기황(自起黃, 화약)을 내려
보내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원세록은 어제 불러 돌아오게 하였고, 지금
이학승(李學承)과 이두황을 파견하여 2개 부대의 병력을 거느리고 금구
(金溝)・태인・정읍・고창(高敞)・흥덕 등지로 보낸 연유를 알립니다”라고
하였다.
공사청에 비밀리 전보하기를, “2개 부대의 장병은 어제 보내었고 한편
으로는 장병의 위엄을 보이며 한편으로는 방문으로 효유하고 만일 귀화
하지 않으면 남김없이 섬멸시킬 계획입니다. 심영 병사가 법성포(法聖浦)
에서 하선한 것은 매우 온당합니다. 저 무리들의 정세는 한결같게 날뛰
지만 호서에서는 흩어졌으니 다행한 일입니다. 초 9일에 호서로 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대내에서 회전(回電)하기를, “어제의 전보는 백성을 안도시키고 어루만
지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무장에 있는 저 무리의 동정은 어떠한가? 심
영의 병사들이 법성포의 슬실(蝨悉)이라는 땅에 내렸으니 서로 호응하여
적을 토벌함이 어떠한가? 호서의 동도는 모두 이미 귀화하여 안정되었
다”라고 하였다.
어제 정부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왕에게 아뢰기를, ‘금백의 전보
를 보니 회덕(懷德)에 모인 <동학농민군의> 무리는 지금 다 물러가 흩
어져 귀화하였다고 합니다. 대저 우리 백성[赤子]들이 혹 잠시 속이는 말
18) 탐리(探吏): 실정을 정탐하는 아전을 말한다. 1894년 당시에는 지방관아의 아전과
보부상을 첩보원으로 이용하였다.
양호전기(兩湖電記) 207
에, 자세히 저들의 형상을 물으니 13・14 양일 밤에 혹 6・70명씩 혹 4・
50명씩 총과 창・칼을 가지고 흥덕을 지나 부안으로 향하고 영광에 주둔
한 자가 날마다 더욱 늘어나 짚을 모아 사토(沙土)를 섞어서 성첩을 쌓
고 남문만을 열어 군량을 운반하여 쌓아두니 그 기세가 점점 성대하다고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이 확실히 이와 같으니 적은 군사로는 함부로 움직
이지 못하겠기에 매우 걱정이 됩니다. 심영의 병사들을 재촉하여 내려
보내기를 엎드려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계획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사청에 전보하기를, “전주의 좌병방(左兵房) 김한정(金漢鼎)이 경군
의 뒷바라지를 전적으로 거행하였습니다. 새로 온 감사가 처음으로 부임
하여 여러 가지의 뒷바라지 일에 생소할 듯하니 김한정은 특별히 이전의
임무를 그대로 계속하여 거행하도록 하라는 처분을 기다립니다”라고 하
였다.
기기국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청평천에서 새로 제조한 화약 5
궤와 일본 화약 5통과 양화약(洋火藥) 300봉과 대포약 40봉과 나개철(螺
盖銕)21) 400개를 지난 16일 강화의 군함편에 이미 실려 보냈습니다”라
고 하였다.
회답하여 전보하기를, “모든 화약을 내려 보냈는데 자기황은 보내지
않았습니까? 아무 알림이 없으니 의심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5월 초 3일 기묘 [初三日 己卯]
5월 초 4일 경진 [初四日 庚辰]
5월 초 5일 신사 [初五日 辛巳]
유를 말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혜당댁에 전보하기를, “본영 사또의 분부를 받고 여러 장졸을 위문하
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본영 사또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장성에서 전사한 관병(官
兵)의 일은 놀랍고 참혹하다”라고 하였다.
내서에서 하달한 전보에 이르기를, “계속 승리를 하니 장병들의 충성
심은 가상하다. 모두 아무 탈 없는가? 멀리서 매우 염려된다. 비록 승리
하였으나 더욱 더 단속하여 소홀함이 없게 하라. 적을 잡아 올린 민간인
의 성명을 일일이 기록하여 뒷날의 시상을 기다리라. 적을 잡은 다소의
성과에 의하여 시상의 차등이 있을 것이니 이를 알려 더욱 권장하고 힘
쓰게 하라”고 하였다.
혜당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크게 승리하여 전공을 이루었으
니 여러 장병들을 축하하고 위로한다. 비록 무찔러 이겼으나 절대로 적
을 가벼이 보지 말고 백성들을 품고 보호하라”고 하였다.
내서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귀화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으니 적
을 섬멸하기를 기하라 평민에 이르러서도 충분하게 살피고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5월 초 6일 임오 [初六日 壬午]
5월 초 7일 계미 [初七日 癸未]
돌아갔습니다”라고 하였다.
내서로부터 하달한 전보에 이르기를, “비록 애걸하면서 살려주기를 구
하더라도 적의 심정은 믿기 어려우니 세밀하고 견고하게 포위하여 방어
함이 타당하다. 청나라 군사는 어제 먼저 하륙하여 전진하면서 형세를
관망할 뜻으로 원세개의 공관에 통보하였다. 어제 아침의 전보는 받아
보았는가?”라고 하였다.
혜당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밤비가 계속하여 내리는데 장병
들이 노숙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황우 5마리와 백미 10석을 전보로 의탁
하니 완백은 이를 찾아 장병들을 위문하고 내 말로서 한 사람 한 사람
음식을 대접한 뒤에 잘못을 바로 잡도록 하라”고 하였다.
금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곧 탐문한 군교(軍校)의 보고를 보
니 청국의 섭통령(聶統領, 섭사성)이 보병 1,000명을 거느리고 상륙하여
아산읍으로 향하고, 마군(馬軍) 100명과 섭제독(葉提督, 섭지초)이 거느
린 보병 1,500명과 마군(馬軍) 150명이 오늘 상륙한다고 하니 매우 답답
합니다. 밤비는 비록 단비이지만 진중에 노숙하는 군병들이 어떻게 밤을
새우는지 옷이 젖어 떠는 모양은 절실히 마음이 아픕니다. 적도의 정형
은 어떠한지 자세히 알리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금영에 답전하기를, “청국 군사가 상륙하여 유진한다고 하니 다행입니
다. 적도들은 초 3일에 대패한 뒤에 기운이 위축되어 연일 살려주기를
애걸합니다. 그러나 진정이 아닌 듯하니 그 말을 깊이 믿을 수 없습니다.
순변사는 어느 날에 도착합니까?”라고 하였다.
금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일간에 동정은 어떠합니까? 지금
교동의 전보를 보니 청나라 군사는 육지에 내렸을 뿐이요 진군하지 말라
는 뜻으로 원세개의 공관에 <전보로> 왕래하였다고 하고 순변사는 진군
하여 아군과 합세하여 토벌하되 적을 경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순변군에
전보를 하였으니 이런 줄 알고 정형을 계속 알려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공사청에 전보하기를, “여러 차례 접전할 때 적의 무리 중에 용맹스럽
양호전기(兩湖電記) 221
고 힘 있는 자를 격살한 것이 태반이나 됩니다. 지금 성안에 점거하고
있는 자는 모두 남은 무리라고 하는데, 수가 아직도 적지 않습니다. 성의
주위 10여리에는 기영의 군사가 아직 오지 않아 군사가 적어 포위하기가
어려우니 비록 요새의 길을 막고 차단하더라도 밤에는 빠져나가 도망치
는 자가 많고 쓸데없이 여러 날을 보내고 있어서 성안에 남아 있는 적도
들을 전부 놓칠까 두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히 운제(雲梯, 사다리)를
만들어 성을 넘어 들어가 섬멸할 계획입니다”라고 하였다.
혜당에 답전하기를, “밤비가 연이어 퍼부으니 옷이 흠뻑 젖어서 걱정
스럽습니다. 내려 보내신 소 5마리, 쌀 10석을 삼가 하교하신대로 마련
하여 노고를 위문하였으며, 얼굴을 맞대고 타이르고 음식을 대접하였습
니다. 적의 정세를 살피건대, 근일에는 살려주기를 애걸하고 있으나, 그
들의 뜻을 헤아리기 힘듭니다.
이번 성안에 진을 치고 있는 자들의 숫자는 아직도 적지 않고 성의
둘레가 10여 리인데, 기영의 군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군대의 수
가 적어 포위하기 힘듭니다. 비록 요로를 막아도 밤에 빠져 나가는 자가
많고, 쓸데없이 여러 날을 보내면서 시일을 오래 끌게 되니, 성에 남아
있는 적들을 모두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급히 사다리를 만들
어서 성을 넘어 적을 토멸할 생각입니다”라고 하였다.
금영에 전보하기를, “요즈음 적의 동정은 귀화하기를 애걸하지만 야간
에 도망치는 자가 많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청나라 군사가 상륙을 하면
그들을 접대하는 일이 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오고 오지 않는 것은 조정
의 처분에 달려 있으나 아무튼 이곳의 동정을 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비가 내리는 일이 계속 되니 온 장병들의 젖는 것이 걱정스럽
습니다”라고 하였다.
222 1차 동학농민혁명 정부 진압자료
5월 초 8일 갑신 [初八日 甲申]
38) 구슬: 여러 종류의 보석을 말한다. 민씨들은 당시 청군의 지원을 요청하여 출동하자
청군 수뇌부에 많은 뇌물을 바쳐 큰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