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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409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황해)
ch0409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황해)
황해도동학당정토약기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서 진무시켜주십시오”라고 했다.
처음에 소관은 용산에서 그것을 듣건대 황해도의 적은 오직 재령에만 있
다는 것이었으나, 이번에 그곳에 이르러 상황을 듣고는 실로 놀랐다. 바로 황
해도의 3분의 2는 모두 동도로 채워지고 있으니, 어떻게 오합지졸로 그것도
겨우 40~50명의 적은 병사로, 병참감의 명령대로 신속히 그들을 평정할 수
있으며, 더구나 그 수괴를 체포하여 공사公使에게 보내는 것은 도저히 쉽게 이
루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소관은 지금의 책략으로 먼저 한쪽 방향에서 파괴
유린하여 적의 세력을 좌절시킨 후, 수괴를 체포함과 동시에 중요한 문서도
획득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강령현 현감이 해주감사에 급한 사환을 보내 말하기를, “동비 수
백 명이 다음 날을 기약하여 이 읍을 습격할 것이라고 하니 속히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소관은 그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강령 쪽으로 출발토록 했다.
원래 동비는 그 잔학하고 사나운 것과 달리 일본병사를 보면 바로 도망가
숨으므로 불의의 타격을 주고자 하여 야행하였다. 새벽에 강령에 도착하여
먼저 이 지방 사람을 보내 적의 상황을 정찰시켰는데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
기를 “이곳에서 남으로 반 리里 떨어진 고현장古縣場에 수백의 동비가 집합하
여 종을 울리고 큰 북을 치며 깃발을 세우고 있으니, 장차 강령을 향해 갈
것 같다”라고 하였다.
바로 병력을 나누어 하나는 정면에서 다른 하나는 측면에서 나아가 격전
을 치른 지 한 시간 만에 마침내 그들을 격파하였고, 적은 세 방향으로 나뉘
어 도주하였다. 강령의 양민은 그 동도와 구별하기 위해 현감의 날인된 종이
조각을 모자에 부착시켰다. 모여든 적 가운데 길을 잃은 자 수명이 산꼭대기
에 있었는데, 우리의 병사가 추격하여 체포하니, 모두 모자에 종이가 붙어있
으나 그 관인官印은 색이 달랐다. 매섭게 추궁하니, 그들은 결국 일시의 궁여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503
총리대신 등에게 보임. 서류의 사본은 권말에 첨부했다] 그 외 2~3통은 이노우에 공사와 후
쿠하라 병참감에게 제출하였다.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505
이었다.
이곳에 동도의 화약제작소가 있는데, 큰 가마 3~4개를 갖추고 회즙취착소
灰汁取搾所10를 설치하였지만 추위가 심했기 때문에 회즙을 얻을 수 없었다. 제
조도 중지되어서 단지 몇 가마니의 목탄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것들은 바로
파괴하여 불을 질러 태워 없앴다. 그곳에 있었던 구식 조선대포 몇 문과 포
탄 약간을 보고 판단하건데, 어느 지방의 관사에도 반드시 총기 탄약이 있으
며 그들의 총기 탄약은 그 이전에는 모르지만, 지금은 적을 방어하는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적에게 공급되는 무기가 되었다. 바로 관아가 적의 무기 공급
소라고 해도 될 것이다.
여기에서 송화 온정에 이르는 곳에 도창刀槍 제작소가 있고, 그 근방 눈 속
에서 조선에서 진귀하고 뛰어난 창 30~40자루를 얻었다. 창은 해주로 보내고
제작소는 파괴하였다. 거기서부터 재령 지방에 있는 본대와 합류할 목적으로
신천을 향해 갔다. 그곳에는 의용병이 있었는데, 그 수는 200~300명이었다.
또 신천의 남쪽으로 약 3리 떨어진 어떤 읍에 안태운安泰運11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의용병을 모집하여 스스로 의병부대 대장이 되어, 그들을 통솔하여
산속에서 농성하면서 누차 동도와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그
안태운이라는 사람은 단지 자기 읍을 지키기만 하였고, 다른 지방의 적을 치
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안태운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부사, 군수,
현감 등이 모두 이처럼 1군 1읍의 안전만을 도모해왔다. 소관은 글을 써서
제1종 진정동학당眞正東學黨
제2종 일시적동학당一時的東學黨
제3종 위동학당僞東學黨
임종현林鐘賢 김명선金明善
원용일元容一 김영하金榮河
끝
명치明治, 28년 3월 7일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515
공주 호서 구접중 [公州湖西九接中]
방금 왜병이 크게 소란을 피워 조야가 근심으로 가득차 있다. 이처럼 우려
하고 있는 사이 조정의 비밀 지시가 신령스럽고 간절한데, 머리를 조아리며
이를 받드니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 또한 청나라 군사는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피를 흘리며 길을 여는데, 우리 보국안민補國安民, 補는 輔의
오기의 의리를 가지고서 어찌 편안히 앉아서 바라만 보겠는가. 바라건대 오도
吾道의 여러 군자는 하나의 북소리에 함께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크게 힘쓰며,
제반 군대에 필요한 것을 제빨리 마련하고 훈련에 힘써서 충성을 다하여 나
라에 보답하기를 바란다.
경통 [敬通]
평산平山 수접주首接主
경통敬通하는 일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동도의 충군효친忠君孝親과 광제창생
廣濟蒼生의 근원은 크고 크도다. 그런데 아아, 저 해백海伯, 황해감사의 부자父子16
는 왜놈과 같으니 죽일 수 있다. 해주와 강령의 동학 도인 100여 명을 해치
고, 백성을 도륙하였다. 이 같은 부자 두 놈은 개국 오백 년이래 처음 나온
대역죄인이다. 때문에 영서營西 10여 읍에 일제히 격문을 발포하여 기포起包
해 모인 자가 50,000~60,000명에 이르렀다. 취야翠野 북쪽에 진을 치고 그
도내 각 읍의 유생 등 단자 [道內各邑儒生等單子]
삼가 바라건대 순상 합하閤下께서는 세심하게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경經에
서 이르기를,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고, 근본이 굳건하면 나라가 평안하다”
라고 했습니다. 사史에서 이르기를 “배가 굶주려서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
하고 추워도 옷을 입지 못하면, 비록 자애로운 아비라도 그 자식을 보호할
520 황해도 지역 동학농민군 토벌자료
장두狀頭 임종현林宗鉉
삼곡 유생 등 단자 해주·강령 [三谷儒生等單子海州康翎]
맹자孟子에서 말하기를 “인仁의 마음이 있는데도 자기 부모를 버리는 일은
없으며, 의義의 마음이 있는데도 그 군주를 뒷전으로 돌리는 법은 없다”고 했
습니다. 무릇 충군효친忠君孝親은 오륜五倫의 으뜸이요, 모든 행동의 근원입니
다. 사람이고서 불충不忠하고 불효不孝하다면, 천지 사이에 어떻게 설 수 있겠
습니까. 저희들이 비록 외지고 먼 곳에 있다하더라도, 성세聖世의 교화의 은
택으로 길러져서 왕의 신하가 아님이 없고, 왕의 백성이 아님이 없으니, 어찌
황해도동학당정토략기 黃海道東學黨征討略記 521
후록 [後]
최유현崔琉鉉 오응선吳膺善 김동춘金東春 정헌용鄭憲鎔
김용극金龍克 강관영姜寬永 안주승安周承
(번역 : 정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