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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306 박봉양경력서 (전라)
ch0306 박봉양경력서 (전라)
박봉양경력서朴鳳陽經歷書
박봉양경력서朴鳳陽經歷書
초비군공조사위원총대군부협판剿匪軍功調査委員總代軍部協辦 권재형權在衡 각하
함께 공을 세운 사람
전 군사마 김응진, 전 군수 김정수, 전 찰방察訪 박봉규朴奉奎, 전 오위장五衛將
박형철朴烱喆, 유학幼學 박량준朴良俊, 김영춘金永春, 박흥준朴興俊, 박봉주朴奉珠, 전
이등소랑伊藤小朗이 가져감]
천보조총千步鳥銃 15자루
조총鳥銃 473자루
- 합계 488자루를 본읍의 수성청守城廳5에 소속시켰는데, 그 중 300자루는
일본군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남원부로 보내고 남은 188자루는 대부분
망가져서 군기軍器에 포함시켰으며, 일본 순사가 부수어 매각함.
환도環刀 31자루
철편鐵鞭 22자루
철창鐵 55자루
- 이상 3가지는 전투에 참가한 군인에게 나누어줌.
화약 305근
연환鉛丸 10말
철환鐵丸 3말
- 이상 3가지는 포군砲軍에게 나누어줌.
백본차일白本遮日 5개
백포장白布帳 7개
- 이상 2가지는 옷이 없는 군정軍丁에게 나누어줌.
- 이상 8가지는 본군의 군기軍器에 소속시켰으며, 일본군과 일본순사가 부
수어 매각하였음.
기치旗幟 83면
피갑皮甲 33벌
피주皮 39개
- 이상 3가지는 수성청에 소속시켰으며 모두 망가져서 소각함.
방패 55개
- 민가의 풀과 짚, 죽비竹扇, 사립문 문짝은 모두 소각함.
묘로구卯爐口 3개
- 2개는 망가졌고 1개는 온전함. 수성청에 소속시킴
252 전라도 지역 동학농민군 토벌자료
쌀米, 평말 37석
- 15석은 본 군대의 군량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22석은 경군京軍과 일본군이
두 번째로 남원성을 수복할 때 성에다 내줌.
소 18마리
- 7마리는 경군京軍과 일본군에게 내줌.
- 9마리는 본 군대를 먹임.
- 나머지 2마리는 사상자를 위한 위령제와 치료를 위하여 본군에 남겨둠.
남원에서 공문을 보내어 가져감.
말 27필
- 12필은 경군京軍이 가져감.
- 5필은 병으로 죽음.
- 7필은 각읍에서 공문에 의거하여 내줌.
- 나머지 3필은 각읍의 공마公馬로 파발마로 사용함.
뢰어 참모관參謀官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관음치에서 전투를 하였고 세 번째는 유치의 번암에서 전투를
하였는데, 매번 군졸들보다 앞장서서 수천 명의 적을 베고 수많은 무기들을
획득하였습니다. 승세를 타고 패배하는 적을 쫓아 남원 성 아래에 이르러 적
의 예봉을 무릅쓰고 먼저 성에 올라 마침내 성을 되찾았습니다. 대개 비적을
토벌한 이래로 이처럼 여러 차례 승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밖에 영남과 호남의 요충을 장악하였으니 적들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은 실로 운봉을 지켜낸 덕분이었습니다. 비단 본도에서만 그
업적을 보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백嶺伯도 그 공을 아뢰어서 내부 주사에 임
명하였으나 시기를 틈 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록 집에 있으면서 공을 말하지 않지만 영남과 호남에서는 그 공이 알려
지지 않고 인멸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은 해당 군
을 순시하여 그 전적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창의의 전말을 자세히 알아보았습
니다. 이와 같은 특별한 공적은 우등으로 벼슬과 상을 내려 격려하고 권장하
는 것이 합당하옵니다.
1900년 경자庚子 3월 일
(번역 : 장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