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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번역_ 한대성
(델리대 석사)
I.
II.
1) 가장 최근의 논문인 O. von Hinüber, “On the Tradition of Pāli Text in India, Ceylon and Burma,”
Buddhism in Ceylon and Studies on Religious Syncretism, Abhandlungen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in Göttingen, Phil.-Hist. Klasse. Dritte Folge. Nr 108, ed. H. Bechert (Göttingen:
1978) pp. 48-49를 보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195
6)
치세 5년의 한 비문에서 발견되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디가(Dīgha-),
맛지마(Majjhima-), 그리고 아마 상윳다(Saṃyutta-) 니까야라는 세부적
인 언급이 발견되는 것은 나가르주나 콘다(Nāgārjunikonda)와 아마라
바띠(Amarāvatī) 비문들 — 그래서 오직 남쪽에서만 있는 — 이전은 아니
7)
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sutaṃtika 그리고 sutātika 등
(바르후트에서 한 번, 그리고 산치에서 세 번), 혹은 율을 알고 있는 사
Illustrating its Gradual Growth: General Observations,’ UCR 9 (1951) 113-124를 보라.
11) N. A. Jayawickrama, ‘The Vaggas of the Sutta Nipāta,’ UCR 6 (1948) 229-232; Ét. Lamotte,
Historie du bouddhisme indien, 256-259.
12) L. O. Gómez에 의해 출판된 두 개의 흥미로운 논문 (‘Proto-Mādhyamika in the Pāli Canon,’
Philosophy of East and West 26 [1976] 137-165) 그리고 H. Nakamura (‘A Process of the
Origination of Buddhist Meditations in Connection with the Life of Buddha,’ Studies in Pali and
Buddhism [Kashyap Volume], ed. A. K. Narain [Delhi: 1979] 269-277)을 보라. 교의적 불연속성은
특별히 나카무라에 의해 지적되었지만, 고메즈는 Aṭṭhaka-와 Pārāyaṇa- vaggas 그리고 팔리 경전
전체 사이에서 후자와 전자의 유사함의 결핍에 의거하여 [나카무라와는] 다른 각도에서 그것을
제시하였다. R. Otti Franke의 ‘Die Suttanipāta-Gāthās mit ihren Parallelen,’ ZDMG 63 (1909)
1-64, 255-286, 551-586; 64 (1910) 760-807; 66(1910) 204-260, 706-708 (=Kleine Schriften
[Wiesbaden: 1978] 474-777)과 비교하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199
13)
전제가 되었다’는 것을 논의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
14)
은 또다시 라모뜨에 의해 반론되었다. 어쨌든 흥미로운 점은 만약 뤼더
스가 옳다면, 우리는 그 본문들이 그 니까야들의 완성된 경전들과는 유
사하지 않다고 이미 증거를 가진 것에 더하여 또 다른 증거를 가지게
된다: 만약 바르후트 울타리[의 조각들과 비문들]가 실제 경전들의 증거
를 주는 것이라면, 그 경전들의 내용은 거의 완전하게 本生譚(Jātaka)
15)
나 譬喩說話圖(avadāna) 경전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러한 ‘경전들’로부터 삽화를 조각하게 한 시주자들은 — 우리가 상당한 숫
자의 실례들에서 보듯이 — 비구와 비구니들이었다.
우리는 또한 팔리 이외의 인도 언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자료는 기원
후 2세기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필사본인 간다라어의 법구경 — 이것
16) 17)
은 노만에 의하면 번역본이다 — 으로 나타난다. 현존하는 불교의 산
13) H. Lüders, Bhārhut und die buddhistischen Literatur, Abhandlungen für die Kunde des
Morgenlandes, XXVI. 3 (Leipzig: 1941) 136-176.
14) Ét. Lamotte, 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444-445.
15) 이것에 최소한 한 가지 예외가 있다고 논의 될 수 있다. Ajātasata bhagavato vaṃdate라는 짧은 설
명이 덧붙여진, ‘Sāmaññaphala-sutta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그 왕이 방문하는 세 단계들이 나타
난’ 양각 부조는 이 세부적인 경전의 존재를 전제한다고 논의할 수도 있다; E. J. Thomas의 The
Life of Buddha as Legend and History, 3rd ed. (London: 1949) x를 보라. 어쨌든, 이것은 사실상 토
마스가 말한 것처럼 Sāmaññaphala-sutta의 교의적 내용은 ‘여섯 경쟁적인 교주들과의 대면 후에
붓다에게 왔다고 말해지는 아자타사투 왕의 전설에 삽입된 것’ (ibid., 179)처럼 나타남에 따라 이
것은 단지 그 본문의 설명부의 구조를 전제할 뿐이다. 그 비문과 그 양각부조는 단지 이 ‘전설’만을
전제 할 뿐이다. 이 경전의 핵심적 교의의 구성요소들은 디가 니까야의 Sīlakkhandha-vagga
(Suttas 1-13)에서 글자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며, 이것은 거의 확실히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였
을 것(178)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본질적으로 그 동일한 설명부의 구조는 — 비록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지만 — Milindapañha의 저자에 의해 또한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유의하라.
16) K. R. Norman, ‘The Gāndhārī Version of the Dharmapada,’ Buddhist Studies in Honour of I. b.
Horner, ed. L. Cousins et al. (Dordrecht/Boston: 1974) 171-179.
17) J. Brough, The Gāndhārī Dharmapada, London Oriental Series, Vol. VII (Oxford: 1962) 55-56.
200 불교학리뷰 vol.13
18) J. W. de Jong, ‘The Study of Buddhism. Problems and Perspectives,’ in J. W. de Jong, Buddhist
Studies, ed. G. Schopen (Berkeley: 1979) 19. [이것은 오직 정전 문헌에만 참조시키는 것임]
19) O. von Hinüber, ‘Die Erforschung der Gilgit-Handschriften (Funde buddhistscher Sanskrit-
Handschriften I),’ Nachrichten der Ak. d. W. in Göttingen. I Phil.-hist. KI., Jahrgang 1979, Nr.
12(Göttingen: 1979) 341, no. 4a.
20) E. Zürcher, The Buddhist Conquest of China, The Spread and Adaption of Buddhism in Early
Medieval China, Vol. I (Leiden: 1959): 어쨌든 ‘지금 정전의 일부분이 된 그 [중아함과 증일아함]
의 번역본은 4세기 최말단에 상가데바(Saṅghadeva)에 의해 만들어진 다르마난딘의 번역의 후기
개정판 인 듯 하다’라는 것에 주의하라 (204). 이 진술은 그것을 더 세부적으로 언급한 Ét. Lamotte
의 ‘Un sūtra composite de l’Ekottarāgama,’ BSOAS 30 (1967) 104ff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 E.
Waldschmit의 ‘Central Asian Sutra Fragment and their Relation to the Chinese Āgamas,’ Die
Sprache der ältesten buddhistischen Überlieferung, Abhandlunggen 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in Göttingen, Phil.-Hist. Klasse. Dritte Folge. Nr. I 17. Ed. H. Bechert (Göttingen:
1980) 169ff 또한 보라. 물론 이 시대 보다 앞서 번역된 단독적인 니까야/아함 문헌의 단편들이 존재
한다; L’inde classique, T. II (Paris: 1953) 2070, 2082-2083과 비교하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01
III.
21)
나는 물론 ‘고등 비평’ 이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개정판 이전의 시
점으로 우리의 지식의 범위를 뒤돌릴 수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는 사실
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불운하게도, 나는 또한 아직 비판적으로 연구되
지 않은 이 ‘고등 비평’의 핵심 이론과 그 이론의 적용에 수반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비평의
핵심 이론은, 결론적으로, 만약 모든 알려진 부파들의 본문과 구절이 일
치한다면 그 본문과 구절은 분명이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이것은 명백
히 그 전통의 제파분열 이전 단계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 원리
는 어떤 한 형태에서든 다른 형태이든 사실상 바로(Bareau), 프라우발너
(Frauwallner) 등등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모든 중요한
22)
진술들의 기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 두 가
21) 역) Higher criticism: 저급비평에 대립되는 말이다. 저급비평이 (성서의) 원문에 관한 연구인 데 반
해, 그 저작연대와 저자, 또 역사적・사상적 배경 등의 연구를 주안으로 한다. 본문에서는 만약 모든
학파에서 어떤 내용이 일치한다면 그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고 부파분열 이전에 속한 것이라는
해석방식을 지칭함.
22) 바로에 대해서, 특히 Recherches sur la biographie du Buddha dans les Sūtrapiṭaka et les
Vinayapiṭaka anciens: de la quête de l’éveil à la conversion de Śariputra et de Maudgalyāyana
(Paris: 1963); Recherches sur la biographie du Buddha dans les Sūtrapiṭaka et les Vinayapiṭaka
anciens: les derniers mois, le parinirvāṇa et les funérailles, T. I (Paris: 1971); T. II (Paris: 1971); 그
리고 아래 주해 38을 보라. 프라우발너에 관해서는 The Earliest Vinaya and the Beginnings of
Buddhist Literature, Serie Orientale Roma, VIII (Rome: 1956); “The Historical Data We Possess
on the Person and the Doctrine of the Buddha,” EW 7 (1957) 309-312를 보라. 이 원리의 몇 가지 전
형적 발현을 보려면 Ét. Lamotte의 ‘Lotus et buddha supramondain,’ BEFE0 69 (1981) 32-33 ;
Brough, The Gāndhārī Dharmapada, xviii; K. R. Norman, ‘Four Etymologies from the Sabhiya-
Sutta,’ Buddhist Studies in Honour of Walpola Rahula, ed. S. Balasooriya et al. (London: 1980) 179
(§ 8.1)를 참조하라. 이 원리의 수용은 문헌 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불교를 다루는 광범
위한 근대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점 또한 유의하라. 예를 들어, J. Ph. Vogel, ‘The Past
202 불교학리뷰 vol.13
Buddhas and Kāśyapa in Indian Art and Epigraphy,’ Asiatica, Festschrift Friedrich Weller
(Leipzig: 1954) 808; F. E. Reynolds, ‘The Many Lives of Buddha: A Study of Sacred Biography and
Theravāda Tradition,’ The Biographical Process, Studies in the History and Psychology of
Religion, ed. F. E. Reynolds and D. Capps (The Hague: 1976) 41; 등등.
23) Bareau, Les sectes bouddhiques du petit véhicule (Paris: 1955) 16.
24) Bareau, Les sectes bouddhiques, 16-19.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03
25) Bareau, Les sectes bouddhiques, 27, 36. 2세기라는 기원은 바로의 것이다. 이 시기를 좀 더 뒤로 당
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굉장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그 저명한 Mathurā Lion Capital 비문에 의거
한 연대이다. 예를 들어, R. Salomon의 ‘The Kṣatrapas and Mahākṣatrapas of India,” WZKS 17
(1973) 11; A. K. Narain, The Indo-Greeks (Oxford: 1957) l42ff.
26) N. Dutt, Early Monastic Buddhism, Vol. II (Calcutta: 1945) 14.
27) 아쇼카의 부파분열(Schismenedikt) 발생되었다는 몇몇 개의 가설에 대해서는 L. Alsdorf,
“Aśoka’s Schismen-Edikt und das dritte Konzil,” IIJ 3 (1959) 161-174 (=Kleine Schriften
[Wiesbaden: 1974] 414-427); H. Bechert, “Aśoka’s ‘Schismenedikt' und der Begriff Sanghabheda,”
WZKS 5 (1961) 18-52; H. Bechert, “The Importance of Aśoka’s So-called Schism Edict,”
Indological and Buddhist Studies. Volume in Honour of Professor J. W. deJong on his Sixtieth
Birthday, ed. L. A. Hercus et al. (Canberra: 1982) 61-68을 보라.
204 불교학리뷰 vol.13
28) W. Wassilieff, “Le bouddhisme dans son plein développement d’après les vinayas,” RHR 34 (1896)
318-325. 1896년에 Wassilieff 의 논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S. Lévi 가 이것에 짧은 서문을 추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거기에서 Wassilieff의 ‘의견들은……일반적 사상들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반드시 언급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음과 같은 서술을 추가하였다: ‘이것은 그
번역자가 저자와의 연대의식을 보여주려 의도함이 없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인도학 학자
로서 번역자는 Wassilieff의 대담한 결론들을 가장 형식적인 말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절
제하였다.’ 하지만 10년 뒤에 그 자신의 논문에서 Lévi는 Wassilieff의 논문의 결론을 인용하고 동
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 차례에서 나는 그 같은 것들에 질문했었다.’ 그런 다음
Wassilieff의 의도와 거의 정확히 같은 질문들을 한 장 가량 논의했다 —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또 다
시, 대답되지 않았다. S. Lévi, “Les éléments de formation du Divyāvadāna,” TP 8 (1907) 116-117
그리고 n. 1 을 보라.
29) Ét. Lamotte, 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197.
206 불교학리뷰 vol.13
30) Bareau, Les sectes bouddhiques, 48. L. Renou and J. Filliozat, Linde classique. Manuel des Études
indiennes, T. II (Paris-Hanoi: 1953) 517 (§ 2245); H. Bechert, ‘Notes on the Formation of Buddhist
Sects and the Origins of Mahāyāna,’ German Scholars on India, Vol. I (Varanasi: 1973) 10, 11 또한
참조하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07
31) A. Bareau, ‘La construction et le culte des stūpa d ’après les Vinaya piṭaka,’ BEFEO 50 (1960)
257-261, 특히 260.
32) H. C. Norman, The Dhammapadaṭṭhakathā, Vol. III (London: 1906-1915) 250-255; cf. E. W.
Burlingame, Buddhist Legends, Pt. 3, Harvard Oriental Series, Vol. 30 (Cambridge, Mass.: 1921)
68-69.
33) 예를 들어, ‘붓다의 미소’는 아래와 같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Aṅguttara, iii, 214; Majjhima, ii, 45, 74
(cf. Saṃyutta, ii, 254; Vinaya, iii, 105 — 이 모든 지시는 P.T.S. 판을 가르킨다); Mahāvastu (Senart
ed.), i, 317; Divyāvadāna (Cowell and Neil ed.), 67ff, 138ff, 265ff, 등등. Kṛkin과 Kāśyapa왕의 이야
기도 Mūlasarvāstivāda-vinaya, Gilgit Manuscripts, iii 1, 191, 195, 200; iii 2, 17-78; iii 4,
190-193=Divyāvadāna (Cowell and Neil ed.), 22-24; Avadānasataka (Speyer ed.), II, 76, 124-125;
Avadānakalpalatā (Vaidya ed.), i, 95 (vss. 147-148), 145 (vss. 132-133), 279 (vss. 16-17);
Ratnamālāvadāna (Takahata ed.), 132; 등등에 나타난다.
208 불교학리뷰 vol.13
37) 이것에 관계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Kṛkin왕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부재한 것이다.
불교 산스크리트 문헌 전통은 가섭불과 그 왕을, 특히 그의 장례식과 유해의 매장에 관해, 항상 연
관시킨다. M. Hofinger, Le congrès du lac Anavatapta I: Légendes des anciens (Sthavirāvadāna)
(Louvain: 1956) 225, n. 1을 참조하라. 이 관계는 항상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있었다
— 주해 33의 참고 문헌들의 일견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산스크리트 본문이 이 연관성에 대
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따라서, 내가 말한 것처럼, 특별히 중요하다.
38) ‘선-스투파’의 사리숭배만을 알고 있는 문헌의 존재는 바로의 스투파와 이것의 숭배의 기원을 재
구성하는 최근의 노력들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특별히 그 문제의 본문
이 과거불들 중 한 분과 연관된 가장 우리가 가진 오래된 전통을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우리
210 불교학리뷰 vol.13
IV.
V.
40) H. Oldenberg, Buddha, sein Leben, seine Lehre, seine Gemeinde (Stuttgart: 1923; first pub. 1881)
424; trans. Buddha: His Life, His Doctrine, His Order (London: 1882) 377.
41) R P. Chanda, Dates of the Votive Inscriptions on the Stupas at Sanchi, MASI, No. 1 (1919); A. H.
Dani, Indian Palaeography (Oxford: 1963) 62 -65 ; V. Dehejia, Early Buddhist Rock Temples, A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13
54-58. XL, XLII, XLIII과 XLIV에 있는 보시자들은 ‘sadaviyarisa,’ ‘sadayarisa’ 등등의 용어에 기
반되어 승려로 취해졌다; H. Lüders, A List of Brāhmī Inscriptions from the Earliest Times to about
A .D. 400 with the Exception of Those of Aśoka, Appendix to EI (I), 1909/10 (Calcutta: 1912) 223;
Brough, The Gāndhārī Dharmapada, 177 and xx-xxi를 참조하라; Konow (107)는 그 용어를
sārdhaṃchara 혹은 sārdhaṁvihārin와 동일시 한다. 이 모든 보시자들은 상가의 이름을 가진 것으
로 나타나며, 최소한 한 경우(XLIII)에서, 비록 이것은 널리 인정되어 있듯이 얼마간 이상하지만
Konow는 그 이본을 sa[dharmarataśamanasa sadayarisa]로 재구성하였다. 재가자: I, II, XIII, XV,
XVII, X X I, XXVII, X X X I, X X X II, XXXV.4, XLVI, XLVII, XLIX, LXXIV, LXXVI,
LXXVII, LX X X , LX XXII, LXXXVI.
45)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XXV I.7; Fussman, BEFEO 61 (1974).
46) H. Lüders, Mathurā Inscriptions, Abh. d. Akad. d. Wiss. in Göttingen, Philo-Hist. Klasse, Dritte
Folge, Nr. 47, ed. K. L. Janert (Göttingen: 1961) §§ 4(?), 8, 24, 29, 31, 32, 33a, 33b, 35a, 35b, 36, 37,
38, 39a, 39b, 40a, 40b, 41, 44, 45, 46, 52, 53, 54, 55, 56, 58, 59, 67, 80 (?), 90, 103, 121, 126, 152, 154, 157,
179, 185, 186.
47) Lüders, Mathurā Inscriptions, §§ 33a, 33b, 35b; 46 [on prāhaṇīka cf. BHSD, 389 s.v. prahāṇa:
390 s.v. prahāṇika (“characterized by religious strenuosity”); 394 s.v. prāhāṇika (“engaging in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15
[ascetic] exertion”); Th. Damsteegt,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Its Rise, Spread,
Characteristics and Relationship to Buddhist Hybrid Sanskrit (Leiden: 1978) 247; Lüders,
Mathurā Inscriptions, 83, n. 2]; 24.
48) 역) caityagṛha: caitya는 스투파와 유사어이고 gṛha는 집이다. 따라서 탑 따위를 안치한 법당이다.
49) 승가 보시자에 관해서 J. Burgess의 Report on the Buddhist Cave Temples and Their
Inscriptions. Archaeological Survey of Western India, Vol. IV (London: 1883; repr. Varanasi:
1975) IV.7, 8, 9, 10, 20 (?); VI.2; VII.3, 8, 9, 12, 13, 14, 16, 17; VIII.17; XI.6, 7, 9; X I I .1, 3, 5, 7, 8, 10,
11, 12, 13, 14, 15를 보라.
50) G. Schopen, “Mahāyāna in Indian Inscriptions,” IIJ 21 (1979) 1-19, 특별히 9. ‘마투라 비문들’과 ‘동
굴 사원군 비문들,’ 그리고 ‘대승’이라는 표제를 붙인 이 집단끼리는 일정 정도 겹친다는 것에 유의
해야 한다. 일정 정도의 처음 두 집단은 세 번째 집단에 역시 포함된다.
216 불교학리뷰 vol.13
VI.
51) 상기에 인용된 올덴베르그의 진술을 보라. 이 입장이, 예를 들어, H. Bechert의 ‘Contradictions in
Sinhalese Buddhism,’Religion and the Legitimation of Power in Sri Lanka, ed. B. L. Smith
(Chambersburg, PA: 1978) 192-193 등에서 여전히 아주 많이 통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쨌든
우리는 이 견해들에 예외가 되는 최근의 두 논문 또한 인용 할 수 있다: R. F. Gombrich, Precept
and Practice. Traditional Buddhism in the Rural Highlands oj Ceylon (Oxford: 1971) 319 그
리고 D. Seyfort Ruegg, ‘A Recent Work on the Religions of Tibet and Mongolia,’ TP 61 (1976)
313-314.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17
52)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monastic: XX XVI. 1, 2, 4, 5, 6, 7, 8, XL, XLII, XLIII, XLIV,
LVIII, LXXXVIII; Fussman에 의해 보고된 비문 BEFEO 61 (1974)은 다른 하나가 될 것이다.
Konow의 재가 비문들은 다음과 같다(XXI, XXXV.4, XLVI, XLVII, XLIX).
53) Lüders, Mathurā Inscriptions, monastic: §§ 4, 8, 24, 29, 41, 67, 80, 90, 103, 121, 126, 152, 154, 155,
157, 179, 185, 186; lay: §§ 1, 74, 76, 81, 135, 136, 150, 167, 172, 180. 아래의 것들 또한 ‘대승’이라는 표
제 아래 묶어진 비문이란 것에 유의하라: §§ 8, 67, 152, 179, 185, 186.
54) Burgess, Report on the Buddhist Cave Temples, IV.7, 8, 9, 10; X I.7, 9; XII. 1, 3, 5, 7, 8, 11, 12,
13, 14, 15, 모두 상가의 것임; X II.2는 유일한 예외임. 여기서 ‘대승’의 집단과 겹치는 것이 훨씬 많
218 불교학리뷰 vol.13
VII.
61) H. Sarkar, Studies in Early Buddhist Architecture of India (Delhi: 1966) 15-24, 특별히 22.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21
62)
(Sirkap)이다.
우리는 아직 특별히 언급되지 않은 두 개의 금석학적 증거를 이것에
추가할 수 있다. 첫째로, 모든 곳에, 하지만 특별히 카로스티 비문에서
인지할 수 있듯이, 사리 혹은 스투파가 재가자에 의해 주어졌을지라도,
그것들은 거의 항상 어떤 하나 혹은 다른 하나의 승가와 종파에게 ‘수용
63)
되어서(parigrahe)’ 혹은 ‘수용되기 위해(pratigrahe)’,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거나, 혹은 그것들은 세부적으로 어떤 한 승원(saṃghārāma)이나 승
64)
사(vihāra)에 함께, 아니면 한 특정한 승사(僧舍)에 주어졌다고 한다.
둘째,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한 흥미로운 카로스티 비문에 대
해 주목할 수 있다. 이 특정한 비문은 ‘그 스투파의 기둥이 세워진’(yaṭhiṃ
aropayata) 날에 ‘한 우바새’(upasika)가 ‘기둥을 세우는 것’(yaṭhi-pratiṭhana)
에 더해서 — 코노우의 해석 ṭhapa(ï)chaṃ이 옳다는 가정 하에 — ‘에워
싸는 구조물[울타리]’ 또한 보시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기둥
(yaṣṭi)의 건립은 중요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 그 비문은 이것이 행
해진 날의 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 그 스투파의 완성을 암시
하고, 숭배의 대상으로써의 그것의 낙성을 신호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비록 기둥과 그 ‘에워싸는 구조물’이 여신자의 시주였지만, 그 스
투파를 숭배의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의식을 행한 사람은 한
65)
승려, 즉 한 ‘법사’(dharmakathika)였다는 것이다.
62) Sarkar, Studies, 53, 55; 어쨌든 이것들이 불교 스투파들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다는 것
에 유의하라; Mitra, Buddhist Monuments, 124와 비교하라.
63)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V, LXXII, LX X X, LXXXVI.
64)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III, XXVII, LXXVI, etc.
65) Hoernle, Majumdar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논의한 Konow의 Kharoshṭhī Inscriptions, 140을 보
라. 어쨌든, yaṭhi가 여기서 스투파의 ‘기둥:yaṣṭi’를 지시한다는 것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을 수 있
다. yaṭhipratiṭhana와 yaṭhiṃ aropayata 양자는 문헌적 상당어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Divyāvadāna (Cowell and Neil ed.), 244.7에 있는 아주 많이 연구된 스투파 문구에서 yūpa-yaṣṭir
222 불교학리뷰 vol.13
VIII.
67)
(III)+ {d}ā(na)ṃ bh{ik}ṣus{y}a b … + … m{i}trasya
v{o}jya+ {vaśi}kasya {mātap}i+{tṛ}ṇa {abhyat}itaka+laga{tā}nāṃ
puja{ie)+ bhavatu sa{dh}yivi+harīsya dharma{d}ev{a}s{y}a+
ar{o}g{a}dakṣiṇ{a}y{e} {bha}vat{u}
Lüders, Mathurā Inscriptions §44
68)
비구 미트라와 보쟈바시카(?)가 보시하였다. 그의 돌아가신 부
69)
이 기둥받침은 명상 수행자 인 비구 수리야와 붓다락시타의 보
시물이다. 이 보시의 공덕으로 인해 모든 명상 수행자가 건강해
질 지어다.
80).
69) 이것은 뤼더스의 prābaṇīka의 번역이다; 상기 주해 47를 보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25
IX.
72) D. C. Sircar, EI 30 (1953-1954) 184; Damsteegt,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164, n. 50;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 (=静谷正雄, インド仏教碑銘目錄) § 639 — 여기
서 나는 담스티그를 따랐다.
73) . Burgess, Report on the Elura Cave Temples and the Brahmanical and Jaina Caves of
Western India, Archaeological Survey of Western India, Vol. V (London; 1883) II. Kānheri
Inscriptions, no. 7; Damsteegt,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186.
74) D. C. Sircar, EI 35 (1963-1964) 7ff, no. 2 (A, B);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 (=静
谷正雄, インド仏教碑銘目錄), 715.
75) Burgess, Report on the Buddhist Cave Temples, IX.21.
76)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LXXXVI; Damsteegt,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160,
165, n. 51.
228 불교학리뷰 vol.13
라는 이름 혹은 ‘Śākyabhikṣu/-bhikṣuṇī’와 ‘Paramopāsaka/-opāsikā’(내
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가 대승이라고 부르는 집단에 의해 사
용되었던)라는 명칭과 결코 함께 발견되지 않았다 — 여기서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인도에서 나온 여러 다른 시대의 80여 가지의 비문들을 이야
77)
기하고 있다. 내가 위에서 인용한 그 다섯 개의 비문들에서 발견된 어
떤 다른 정형구들을 보더라도 그와 같은 양식이 나타난다.
이 집단의 두 번째 비문에서 비구 붓다팔라는 그의 보시를 ‘그의 부
모와 일체 중생을 위한 공양’(māt{ā}pit{r}in{a} pujāye savasav
{ā}n{a} ca)으로써 행한다. 처음 것에서는 비구 붓다바르만이 한 조상
을 세우고, 이 행위 — 즉, 복을 초래하는 — 가 부분적으로 ‘일체 중생의
행복과 복리를 위하는 것(sarvasatvahitasukh{ā}r{th}a)’이라고 명기하
였다. 또다시 명백하게 ‘복의 회향의‥‥‥교의의 존재를 암시하며’인 이
후자의 정형구는 거의 대부분의 시기의 불교 비문에서 아주 종종 발견
되며, 다수의 실례에서, 이것은 또한 구체적으로 거론된 학파의 이름과
연관되었지만, 대승이라는 이름과 사캬비구 혹은 그런 종류의 칭호와는
결코 함께 나타나지 않았다. 마투라에서는 이것이 설일체유부와 한 번,
78)
그리고 대중부와 두 번 연관되어 나타난다; 까르리(Kārli)에서 이것은
79)
대중부와 다시 연관되어서 나타나며, 퍼스만에 의해 편집된 다른 카로
80)
스티 비문에서 이것은 법장부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깐헤리에서 나온 두
81)
비문에서는 현주부와 연관되어 나타났고, 포겔(Vogel)에 의해 출판된
82) J. Ph. Vogel, EI 20 (1929-1930) H;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雄, イン
ド仏教碑銘目錄), § 708.
83) D. C. Sircar, EI 33 (1959-1960) 250;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雄, イ
ンド仏教碑銘目錄). § 712.
84)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LXXII;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
雄, インド仏教碑銘目錄), § 1775.
85) G. Bühler, EI 2 (1892) 212, no. 42;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雄, イン
ド仏教碑銘目錄), § 460.
86) 이것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하지만 나는 의문스러운, 예외가 존재한다. 뤼더스가 그의 Mathurā
Inscriptions § 135 에서 다음과 같이 판독하였다: {Ś}ā{ky}opāsakasya Suṣasya Hāruṣasya —
dānaṃ Budhaprat{i}mā Ūttarasya H{ā}ruṣa{sya} vihāre sahā mātāpitihi —
sarvasatvānaṃ hitasukhartha{ṃ}. 뤼더스가 {Ś}ā{ky}opāsakasya로 재구성 하였다는 점에
유의하라. Cunningham과 Vogel은 upāsakasya로 판독했다는 점 역시 유의하라. 만약 뤼더스의
재구성이 받아들여진다면, 이것은 45개의 sarvasatvānaṃ hitasukharthaṃ이 나타나는 비문 중
에서 Śākyabhikṣu/ -bhikṣuṇīs, Śākyopāsikas, 등등과 연합된 단 하나의 실례라는 것에도 유의
하라. 그리고 이 정형구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이상할 뿐만 아니라 Mathurā Inscriptions § 135
의 전체 구조는 우리가 ‘Śākyabhikṣu,’ 등등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모든 곳의 그것과 다르다.
‘Dānaṃ’은 결코 후자와 함께 나타나지 않지만, 항상 deyadharmo 'yaṃ 과는 그러하고,
budhapratimā라는 용어와 sahā mātāpitihi라는 문구는 결코 그들의 비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뤼더스의 재구성이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230 불교학리뷰 vol.13
X.
이것은 마투라 비문들에서 세 번(§§ 44, 46, 180), 그리고 담스티그에 따르면 일곱 카로스티 비문들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162)에 나타난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sarvasatvaṇa aroga-
daksbiṇae’가 대중부와 연관되어 발견된 Wardak Vase Inscription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LXXXVI) 이 한 군데에서만 학파의 이름이 나타난다. 우리는 또한 최근에 퍼스만
에 의해 발행된 Haḍḍa 비문에서 설일체유부와 연관된 정형구 ‘atmaṇasya arogada {kṣ}i{ṇa...}’
를 발견한다(BEFEO 66 [1969] 5-9). 우리는 그 정형구들이 세부적으로 이름 적힌 학파와 연관되
어 나타난 그 두 실례들에서, 그 학파들은 소승 학파였고, 그 정형구들은 대승 학파 혹은 사캬비구
등과 연관된 비문들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음을 말할 수 있다.
88)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XVII; S. S. Ram, “Taxila Silver Scroll Inscription, Year 136,”
Indological Studies 2 (1974) 45-52.
89) 위에서 언급한 § 29의 마투라 비문에 더해서, 이것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곳에서도 발견된다: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XVII and LX X X II; Konow에 의해 편집된 Kalawān에서 나
온 한 비문 JRAS (1932) 949ff (cf.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雄, イン
ド仏教碑銘目錄), § 1745); Vogel, EI 20 (1929-1930) C3, B4, B5, C2, C5 에서의 Nāgārjunikoṇḍa
에서 나온 몇 개의 비문들; Sircar, EI 35 (1963-1964) 11-13, no. 4; cf. N. Dutt, Buddhist Sects in
India (Calcutta: 1970) 124-125.
내가 위에서 인용한 그 다섯 개의 비문들에서 나온 모든 다른 정형구들의 소속을 우리가 추적하였
기에, 우리는 정형구 sarvabuddhapūjārtham(일체 제불의 예배를 위해)가 일관되게 소승 학파
와 연관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이것은 마투라 비문들에서 학파의 이름과 연관되어 세 번
나타난다: 정량부와 한 번 (§ 80) 그리고 대중부와 두 번 (§§ 86, 157); 이것은 Konow, Kharoshṭhī
Inscriptions, XV의 Mathurā Lion Capital Inscription에서 설일체유부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그
리고 이것은 Sircar가 발행한 EI 30 (1953-1954) 181의 마투라 비문에서는 대중부와 연관되어 또다
시 나타난다; Shizutani, Indo bukkyō himei mokuroku(=静谷正雄, インド仏教碑銘目錄),
§ 639.
232 불교학리뷰 vol.13
XI.
102) 보시자가 그들의 의도를 표명하거나 그런 개념이 발견된 정형구의 발달에 관한 일부의 견해를
위해서 E. Senart, “Notes d’épigraphie indienne,”JA (1890) 119-123, 그리고 Damsteegt,
Epigraphical Hybrid Sanskrit, Ch. III를 보라.
103) J. M. Agasse, “Le transfert de mérite dans le bouddhisme pâli classique,” JA (1978) 311-332, 특히
312-313. Agasse와 복의 회향에 관해서 짧지만 아주 중요한 논문인 J. Filliozat, “Sur le domaine
sémantique de puṇya,” Indianisme et Bouddhisme, Mélanges offerts à Mgr. Étienne Lamotte
(Louvain-La-Neuve: 1980) 101-116을 보라.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41
104) Deo and Joshi, Pauni Excavation, 38, no. 2; Kolte, EI 38 (1969) 174 (D).
105) Paranavitana, Inscriptions of Ceylon, Vol. I, no. 34;lii-liii 또한 보라; W. S. Karunaratne, “The
Date of the Brāhmī Inscriptions of Ceylon,” Paranavitana Felicitation Volume (Colombo:
1965) 243-250과 비교하라.
106) Paranavitana, Inscriptions of Ceylon, Vol. I, nos. 338-341; lii-liii 또한 보라.
242 불교학리뷰 vol.13
XII.
107) H. Bechert, “Notes on the Formation of Buddhist Sects and the Origins of Mahāyāna,” German
Scholars on India, Vol. I (Varanasi: 1973) 17-18; “Zur Frühgeschichte des Mahāyāna-
Buddhismus,” ZDMG 113 (1964) 535.
인도 불교사에 있어서의 두 가지 문제 — 승・속의 구분과 복의 회향에 관한 교의 — 243
108)
의 논문에서 베체트는 좀 더 직설적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베체트는 복의 회향의 교의는 실론의 상좌부 불
교 안의 ‘대승 사상’이 되길 원하지만, 거기에서 두 가지 문제점이 나타
나는 듯하다. 첫째, 이것은 소승 비문 내에서 초기에 속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그 교의의 존재를 무시한다. 둘째, 그가 복의 회향의 ‘대승
사상’이라고 제시한 것이 실제적으로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을 주지 않는다. 그의 지시는 항상 ‘그 대승의 본문들에
있는’의 형식이지만, 그 본문들은 결코 인용된 적이 없었으며, 세부적인
참고 문헌들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서의 함의는 단독의, 일체화된,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개념의 그 ‘사상’이 대승의 본문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나는 대승 경전 문헌들의 한정된 지식에 근거하지만, 이것은 나에
게 아주 그럴싸하지는 않으며, 어떤 경우에라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
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대승 문헌에서 복의 회향에 관한 사상의 완전
한 연구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아게쎄(Agasse)에 의해 가장 최근에 제
시된 자료들과 대조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게쎄가 분석한 팔리 자료들이 대승의 비문에서 발견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