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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法學硏究, 第26卷 2號

The Journal of Law of Education


Vol. 26, No. 2, Aug, 2014 : pp.101~123.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1)
Background, Performances, and its Recent Trends of Affirmative Action in
Malaysia
염철현**
< 요약>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종족·다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1971년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의 일환으로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시행하면서 빈곤
탈피와 국가통합을 달성하고자 했다. 우대정책은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부미푸트라)
을 주 대상으로 지난 40여 년 간 시행되었는데, 빈곤율이 감소하고, 종족 간 경제적 불균
형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의 주요 수혜자는
상위 5% 계층에 치우쳤고, 최초 목표로 삼았던 종족 간의 소득분배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최근 선거에서 우대정책을 반대하는 야당에 대한 지지
도가 올라가고, 과도한 자국민 우대조치에 반대하는 비부미푸트라의 해외 이주가 활발
해지며, 외국인의 투자기회를 놓치는 등 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적
극적 우대정책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을 탐색하여 급격하게 다문화 사회로 이
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시사점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주제어: 적극적 우대정책, 부미푸트라, 비부미푸트라, 종족정치

접수일자 : 2014. 06. 27. 심사기간 : 2014. 08. 04. ~ 08. 08. 게재확정일 : 2014. 08. 08.
* 본 논문의 내용은 대한교육법학회 제23차 비교교육법연구포럼(2014년 5월 10일)에서 발표한 “말레
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의 동향과 시사점”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 고려사이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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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제의 국가로 유럽 국가들로부터 오랜 식민통치를 받았다. 1511년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1640년 네덜란드, 1795년 영국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의 외세에 의한
지배를 겪다 비로소 1957년 말라야라는 연방의 이름으로 영국에서 독립하여, 1963년 싱가
포르 자치령과 영국령 보르네오가 합쳐져 오늘날의 말레이시아가 탄생하였다.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북보르네오 지역의 Sabah와
Sarawak의 원주민)을 합친 부미푸트라(Bumiputra)1)가 67.4%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중
국계 24.6%, 인도계 7.3%, 기타 0.7%를 차지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인구는 부미푸트라와
비부미푸트라(Non-Bumiputra)로 대별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는 국교로 지정된 이슬람교 신
자가 61.3%로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밖에도 불교 19.8%, 기독교 9.2%, 힌두교 6.3%를 나타
냈다.2) 이처럼 말레이시아는 세계 어느 국가 못지않은 다양한 인구와 문화로 구성된 다문
화·다종족·다종교 국가인데, 1957년의 경우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비부미푸트라 인구가 부미
푸트라 인구보다 많았던 적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인구 숫자는 통치자에게 민감하게 받
아들여졌는데, 급기야 1965년 중국계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축출시
키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특정 국가에서 자국민과 외국계 인구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분리, 독립시킨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겠다..3)
말레이시아에서 시행하는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4)은 두 가지 점에서 독특
한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적극적 우대정책은 미국 등 다민족, 다종족 국가에
서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오히려 다수를 차지하는 말
레이계와 원주민을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일반적으로 적극적 우대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소수계가 다수계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지
만, 말레이시아의 경우 다수계는 정치적 위상은 높지만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위상은 소수
계보다 낮다는 점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계 유권자수의 우위를 이용하여
1) 말레이시아에서 보통 중국인과 구별하여 사용하는 본토 원주민을 지칭하며, “땅의 원주민(natives
of soil)”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로 1927년부터 사용되었다(이양호, “말레이시아에서의 불
평등과 빈곤”, 동남아시아연구 23권 1호, 2013, 127면).
2) Department of Statistics, Population distribution and basic demographic characteristics, Malaysia,
2011.
3) 토마스 소웰 저/염철현 역, 세계의 차별철폐정책(서울: 한울, 2008), 77~80면.
4) 보통, Affirmative Action은 ‘소수자 우대정책’, ‘적극적 우대정책’, ‘차별철폐정책’ 등의 다양한 용어
로 사용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우 전체 인구구성비 중 소수자 보다는 다수계인 말레이계와 본토
원주민을 위한 우대정책을 적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본 논문에서 ‘적극적 우대정책’으로 통일
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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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주도권 행사를 통해 자국의 종족에게 포괄적
특혜와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시작부터 다른 국가, 이를 테면 미국, 브라
질, 인도 등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5) 이런 특징의 배경은 물론 현행 말
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의 동향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의 시행 배경과 그 간의 성과를 고찰한 뒤, 이 제도
의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의 시행 배경 및 성과


1. 시행배경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대상으로 적극적 우대정책을 시행하게 된 배
경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종족 간의 경제적 불균형이다. 1970년의 경우 중국계
가 단일 종족으로 말레이시아 전체 부(富)의 27.2%를 점유했는데, <표 1>을 보면 종족 간
의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57년부터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 NEP)을 시행하기 바로 직전 해인 1970년까
지의 가구별 평균소득을 나타낸 것이다. 말레이계와 기타 원주민으로 구성된 부미푸트라의
가구당 평균 소득을 100으로 두고 타종족의 평균 가구당 소득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경제
적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계와는 2.3배, 인도계와는 1.8배의 격차를 나타냈다. 하물
며 식민 지배 국가였던 유럽계와 격차는 무려 4.7배로 비교하는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또한 1970년대 초반 말레이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사유재산의 5% 미만을 소유했지만,
중국계는 75%를 소유하기도 했다. 공공 상장기업 중 1.3%를 말레이계가 소유주였고, 중국
계는 89.2%를 점유했다. 유한회사의 자본소유의 경우 말레이계는 1.5%, 중국계는 22.8로 중
국계가 사적 재산과 공공 재산에서 실질적인 주인 행세를 했다.6)

5) 이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적극적 우대정책에 관해서는, ‘토마스 소웰 저/염철현 역, 세계의 차별철폐


정책(서울: 한울, 2008)’과 ‘염철현, “소수자 우대정책의 최근 동향 및 시사점: 미국과 브라질의 사례
를 중심으로”, 교육법학연구(서울: 대한교육법학회, 2013), 제25권 2호’를 참고하기 바람.
6) Abdullah, Firdaus Hj., “Affirmative Action Policy in Malaysia: To Restructure Society, to
E radicate Poverty”, Ethnic Studies Report, Vol. ⅩⅤ, No. 2, July 1997.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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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말레이시아 종족별 가구당 평균 소득(1957-1970년)
(단위 : M$)
구 분 1957/58년 1967/68년 1970년
$ % $ % $ %

모든 종족집단 199 138 217 167 264 153


부미푸트라 144 100 130 100 172 100
중국계 272 189 321 247 394 229
인도계 217 151 253 195 304 177
기타(유럽계 등) - - 839 645 813 473
출 처 : Abdullah, Firdaus Hj., “Affirmative Action Policy in Malaysia: To Restructure Society, to Eradicate
Poverty”, Ethnic Studies Report, Vol. ⅩⅤ, No. 2, July 1997. p.200.

째, 또 다른 동인(動因)은 다수종족인 말레이계와 중국계와의 정치적 주도권 다툼을 꼽



을 수 있다. 실제, 중국계의 경제적 주도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말레이계와 경제적 기반
을 바탕으로 정치권 위상 확보를 노리는 중국계 간의 긴장과 대립 관계에 불을 붙이는 사
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1969년 국민전선(Barisan Nasional)7)이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일부 중국계가 환호하면서 거리행진을 한 것이 말레이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말레이계가 중국계를 폭행하고 집과 시설을 방화하게 되었다.
당시 말레이계는 중국계와의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종족적 자존감의 상처와 선거에서
조차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우려했던 선거결과가 나
타남에 따라 종족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다른 국가에서처럼 빈
곤이나 배고픔 때문이라기 보단, 다른 종족이 자신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점이 큰 걱
정거리였다. 이렇게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의 질투와 시기가 곪아터진 것이 1969년 5월 13
일 발생한 종족폭동(racial riot)이었다. 이 폭동은 말레이계가 중국계를 공격하면서 발단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살인과 방화로 번져 196명이 사망하고, 439명이 부상을 입고, 약 6천
명이 체포되고, 수천 명이 집을 잃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국제적으로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권 경시와 종족차별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를 기점으로 말레이시아는 국내외적
7) 국민전선은 말레이계의 통합말레이국민조직(The United National Organization, UMNO), 중국계(화
인)의 말레이시아화인협회(The Malaysian Chinese Association, MCA), 그리고 인도계의 말레이시
아인도인의회(The Malaysian Indian Congress, MIC)로 구성되었으며, 종종간에 느슨한 동맹형태
를 유지하는 종족간 연합체이다. 물론, UMNO가 주도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경제력이 막강한
MCA와 MIC의 견제도 무시할 수 없다(김종업·최종석, “말레이시아 종종간의 갈등 원인과 현황 연
구: 신경제정책(NEP)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사회과학논집 제42집 21호, 2011년 봄. 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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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난국을 타개하고, 말레이계를 달래면서 추가적인 유혈사태를 예방한다는 대의명분으로


1971년 신경제정책(NEP)의 일환으로,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파격적인 적극적 우대정책을
내놓게 되었다.8) 또한 1969년 총선 결과를 보면, 부미푸트라뿐 아니라 비부미푸트라의
UNMO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짐에 따라 집권당으로서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꼈으며, 정권유
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신경제정책을 통해 과감한 우대정책을 시도한 민심 대반전 전
략으로 볼 수 있다.9)
그동안 말레이시아는 중국계를 비롯한 외국인에게 경제적 주도권을 용인하는 대신, 정치
적 주도권(political supremacy)을 유지하려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중국계가
많은 도시보다 말레이계가 많은 농촌 지역에서 투표를 조작함으로써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
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말레이계와 토착민을 위한 우대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 확
대할 수 있었다.10) 말레이시아의 말레이계에 의한 정치적 주도권(Malay Supremacy) 확보
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 재임 시절(1981-2003
년)에는 필리핀 남부에서 약 70만의 무슬림 이민자를 수입하여 사바(Sabah)주에 정착시키
기도 했다. 유권자 수를 늘려 정치적 주도권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적으로 동일한
외국인을 대량 수입하여 시민권을 부여하였다.11)
셋째, 말레이시아 정부가 부미푸트라를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펼칠 수 있는 법률적 근
거가 된 것은 말레이시아 연방헌법 제153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헌법 조문은 말레이시아
가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하여 연방을 수립하기 이전 제정된 것으로 중국인과 인도인에게
시민권(citizenship)을 주는 대신에 경제적으로 약자이지만 종족적으로 다수인 부미푸트라에
게 우대와 특혜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12) 이러한 부미푸트라와 비부미푸트라 간의
거래관계는 헌법에서 명시하였으며, 오늘날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헌법에 근거하여 신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탄력을 받았다고 본다. 이처럼 1970년대 신경제정책은 헌법 조항이라는
정당한 근거에 따라 부미푸트라에게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특혜를 제공할 수 있었다. 특혜
항목을 나열해 보면, 토지소유의 우대, 정부가 발주하는 사업에서 수의계약체결, 면허를 통
한 독점 기업 양성, 공기업과 벌목업 및 광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우선 권리를 제공하기
위한 주식지분의 30% 우선 할당제 시행, 교육기관의 우대 입학 및 장학금 혜택, 공직 채용
의 우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대를 제공하였다.13)
8) e York Times, “Criticism of 30-Year-Old Affirmative Action Policy Grows in Malaysia”,
N w
an ar 5, 2001(2014년 3월 24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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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종업·최종석, 앞의 논문, 46면.
10) 토마스 소웰 저/염철현 역, 앞의 책, 80면.
11) The New York Times, “In Malaysia, a Historic Chance for Reform”, May 3, 2013(2014년 4월
14일 검색).
12) Article number 153, Constitution of Malaysia ; 김종업·최종석, 앞의 논문, 54~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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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말레이시아가 적극적 우대정책을 도입하게 된 배경은 헌법 153
조에 근거하고, 종족 간의 합의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국가통합과 정치적 안정
을 증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 우대정책을 노골적으로 시행하게 된 결정적인 원
인이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종족폭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
대정책은 강력한 국가통합을 위한 정치적 구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족 간의 충돌로
빚어진 국가적 재앙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위기관리기술(skill of crises management)
로 볼 수 있을 것이다.14) 그렇지만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의 핵심은 다수종족인 말
레이계와 토착민을 철저히 우대하는 것이며, 상대적으로 소수종족인 중국계와 인도계에 대
해서는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거나 제외시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적극적 우대정책
을 도입한 시점에서는 이 우대정책을 1971년부터 20년 간 시행한 뒤 1990년 종료를 목표로
했지만, 현재까지 정책명만 바꾼 채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신
경제정책(National Economic Policy)’이란 이름으로 20년 간 시행하였으며, 1991년부터 2000
년까지는 ‘국가개발정책(National Development Policy)’으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국가
비전정책(National Vision Policy)’으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국가
변혁정책(National Transformation Policy)’이란 이름으로 10년 단위로 시행하고 있다. 이제
까지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시행해온 국가정책과 주요 과제를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 표 2> 말레이시아 국가정책의 변천 및 주요 목표


National
e conomic National Development
N w E N ational Vision Transformation
Policy(NEP) Policy(NDP) Policy(NVP) Policy(NTP)
신경제정책 국가개발정책 국가비전정책 국가변혁정책
(1971-1990) (1991-2000) (2001-2010) (2011-2020)
- 국가통합 - 국가통합 - 국가통합 - 국가통합
- 빈곤탈출(빈곤율 - 사회재구조화(빈곤율 - 부미푸트라 주식 - 선진국 진입
49.3%에서 16.7% 7.2%로 감소, 소득분 소유율 최소 30%
로 줄임) 배, 삶의 질 향상, 주 - 지식기반사회에 따
식지분재구조화 등) 른 인적자원개발
자료 : 필자가 정리

13) Article number 153, Constitution of Malaysia.


14) Abdullah, Firdaus Hj., 앞의 논문, pp.189~190.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07

위의 <표 2>에서 보는 것처럼, 말레이시아는 10년 단위로 국가개발계획을 입안, 시행하


고 있는데, 각 정책에 포함되는 공통적인 아젠다는 국가통합(national unity)이다. 말레이시
아는 국가의 특수성을 반영한 국가적 아젠다로 종족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시행경과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서 펼쳐지는 적극적 우대정책이 담고 있는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의 주요 항목을 살펴보면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대상으로
정부공직 자동임용, 정부계약, 대학 입학 할당제와 무료 외국유학, 정부대출과 저축을 포함
한 금융, 장학금, 비즈니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파격적으로 우대혜택을 제공한다. 하물며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조차도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우대 채용하도록
하였다.
말레이계를 위한 집단우대의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의
우대 범위와 정도를 알 수 있다. 먼저 말레이계 기업가(이들은 집권 다수당인 UMNO와 연
계)는 면허, 신용, 정부계약에서 우대혜택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중국계와 외국계가
보유한 주식의 30%를 말레이계 정부기관이나 개인 기업가들에게 전환하는 방식으로 소유
구조를 강제로 재편성했다. 만약 소유 구조의 재편성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필요한 면허
를 갱신하거나 정부와의 계약 체결이 어려웠다. 정부의 대출정책도 말레이계에게 우대대부
를 해주도록 했다. 간혹 자신의 기업체를 소유한 UMNO 소속 정치인과 지방의회와 주의회
의원도 정부로부터 우대혜택을 받았다.
교육의 영역을 보면 국공립 대학은 학생정원의 60%를 말레이계에게 우선적인 쿼터를 배
정함으로써 수준이 낮은 졸업생을 양산하여 타 소수종족이나 외국 이민자들의 분노와 적개
심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대학입시를 공정하게 치루고 말레이계에 대한 할당제를 없앤다면,
말레이계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숫자는 전체의 5%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15) 또
초중등학교와 대학에서 말레이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개인의 능력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정
책을 금지했다가, 2001년에 이르러서야 능력제 입학제도를 다시 도입하였다. 1970년에서
1982년까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던 모든 공립학교에서 말레이어로 수업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이처럼 학교에서 사용하는 언어정책의 변화로 말레이계를 제외한 중국계와 인도계
학생은 학업성취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외국유학을 가는 경
15) e York Times, “Criticism of 30-Year-Old Affirmative Action Policy Grows in Malay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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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많았다. 심지어 중등학교 단계에서도 1만 명 이상의 학생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싱가포르로 유학을 가거나 말레이사에 유명 외국대학의 캠퍼스가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
다.16)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가 교육 분야에서 부미뿌뜨라계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교육
정책의 기본방향을 국민통합에 두고 있다. 경제분야를 장악한 중국계와 인도계 국민이 교
육분야까지 석권하여 엘리트를 양산해 낸다면, 말레이시아 미래의 비전을 확보할 수 없다
는 논리이다. 이런 이유로 교육분야에 관한 한 국가로부터 파격적인 우대혜택을 받는 말레
이계 국민과 상대적으로 양질의 교육 접근성이 낮은 중국계와 인도계 간의 갈등은 해소되
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이 장기간 시행될 수 있는 것일까? 적극적 우
대정책의 원형에 해당하는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소수계를 위한
대학입학정책에서 대학의 다양성(diversity)을 고려하여 종족을 하나의 입학전형요소로 배
려하는 것에 그친다. 미국에서 60, 7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라틴계를 대상으로 시행
한 바 있는 대학입학 시 가산점 부여나, 정원을 할당하는 정책은 최고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정치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 말레이시아에는 1948년 영국식
민통치 시기에 제정된 치안방해법(Sedition Act)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 법을 통해 적극적
우대정책에 대한 공공의 비판을 억누를 수 있다. 식민시기의 치안방해법은 영국의 식민통
치를 비방하거나 방해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데 목적을 제정하였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1948년의 치안방해법을 폐지하지 않고 통치를 위한 법으로 두었다. 물론 말
레이시아 연방헌법에는 “모든 시민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더불어 연방의 안전과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는 헌법상의 권리가 유보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17) 현재 치안방해법은 말레이시아 국민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으며, 매우
엄격한 언론탄압에 해당한다. 예컨대, 2014년 3월 8일, 갑자기 통신이 끊긴 채 사라져 버린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부당국에게 누
군가 쓴 소리를 하면 이 역시 치안방해법의 위반이 되는 것이다. 2012년 나집 라작(Najib
Tun Razak) 현 총리가 치안방해법을 폐기하고 국가조화법(National Harmony Act)으로 대
체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대체입법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18)
16) 양승윤, “말레이시아의 교육정책과 종족갈등”, 동남아연구(서울: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2008), 제
17권 2호. pp.95~96; Abdullah, Firdaus Hj., 앞의 논문, 82~93면을 재인용하거나 문장을 재구성함.
17) Article 10, the Malaysian Federal Constitution.
18) http://www.freemalaysiatoday.com, “No Change to Sedition Act, Yet”, 11 March 2014(2014년 3
월 24일 검색).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09

3. 시행 성과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열
등한 다수의 말레이계에게 우대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이는 1971년 신경제
정책(NEP)의 도입을 통해 부(富)를 재분배하고, 가난을 타파하며, 사회를 재구조화하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신경제정책을 도입, 시행한 지 20년 후에 드러난 결과에 따르면, 교
육, 채용, 금융, 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격적인 특혜를 받아 온 말레이계는 1960년대 말
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으로 밝혀졌다.19)
앞 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레이시아 정부는 최초 신경제정책을 수립하면서 두 가지의
목표를 수립하였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의 빈곤탈출이었다. 그리고 빈곤탈출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의 세부 계획은 빈곤타파를 통한 빈곤율 감소와 부미푸트라의 주식 지분을 높
이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신경제정책 입안 당시에 세웠던 빈곤율 감소 계획에 따
르면, 평균 빈곤율을 1971년의 49%에서 1990년에는 16%로 줄이고자 하였다. <표 3>은
1970년에서 1990년까지 종족별 빈곤율을 나타낸 것이다.
< 표 3> 말레이시아 종족별 빈곤율(1970년-1990년)
(단위: %)
구 분 1970년 1976년 1984년 1987년 1990년
말레이계 64.8 56.4 25.8 23.8 20.8
중국계 26.0 19.2 7.8 7.1 5.7
인도계 39.2 28.5 10.1 9.7 8.0
기타 44.8 44.6 22.0 24.3 18.0
평균 49.3 35.1 18.4 17.3 15.0
출 처 : Yusoff, B. Mohammed, etc., Globalisation, Economic Policy, and Equity: The Case of Malaysia, p.48.
위의 <표 3>에서 보는 것처럼 말레이시아에서 빈곤율은 종족별로 많은 격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말레이시아 빈곤율은 신경제정책을 입안, 시행했던 1971년과 20년 후
인 1990년을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종족별 빈곤율은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90년 기준으로 빈곤율을 살펴보면 말레이계는 20.8%, 중
국계 5.7%, 인도계 8.0%로 말레이계는 중국계의 약 3.7배, 인도계의 4배 이상 빈곤하다는
19) Abdullah, Firdaus Hj., 앞의 논문, p.216.
110 敎育法學硏究
결론이다. 말레이계는 1970년대보다 훨씬 부유해졌지만, 중국계와 인도계에 비해서는 상대
적으로 더 빈곤하고, 이런 상대적 빈곤은 종족 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서 말레이시아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든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가 적극적 우대정책을 시행한 이후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의 소득
수준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대상으로 교육, 고용, 금융, 주택, 면허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우대와 할당제
정책을 시행한 결과가 과연 소득수준의 변화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표 4>에서 보는 것처럼 부미푸트라의 소득 수준은 해년마다 증가 추세를 나타냈지
만, 중국계와 비교하면 아직도 월등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부미푸트라의 월 평균 소득
은 중국계의 월 평균 소득에 6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미푸트라의 소득이
향상되었지만, 동시에 중국계의 소득도 향상되어, 최소한 중국계와의 소득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측면이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시행하는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위
한 우대혜택과 할당제의 주요 수혜자는 이미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에게 치우쳤다는 분
석이다. 연구에 따르면 말레이계 중 5% 정도만이 우대정책의 수혜자로 밝혀졌으며, 말레이
계 인구만 한정하였을 때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과거보다 훨씬 증가했다.20)
<표 4> 부미푸트라와 중국계의 월 평균 소득
구 분 부미푸트라(A) 중국계(B) A/B x 100
1979년 296 달러 565 달러 52%
1984년 384 달러 678 달러 57%
1990년 940 링기트 1,631 링기트 58%
1995년 1,600 링기트 2,895 링기트 55%
1997년 2,038 링기트 3,738 링기트 55%
1999년 1,984 링기트 3,456 링기트 57%
출 처 : Sowell, Thomas, Affirmative Action Around the World: An Empirical Study(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4), p.67.

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신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빈곤탈출을 위해 부미푸트라의 주식 지



분율을 1971년 1.5%에서 1990년 3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주식 지분율 향상
20) o e , Thomas, 같은 책, 6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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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11

은 정부의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표 5>에서 보는 것처럼 부미푸트라의 주식 지분율은


1990년 19.3.%를 나타냈지만, 2000년에는 19.1%로 약간 떨어졌다가 2012년에는 22~30%를
나타냈다. 최근 들어 정부가 신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설정한 목표치 30%에 근접하고 있다.

<표 5> 말레이시아의 주식 지분율

구분 1990년 2000년
부미푸트라 19.3% 19.1%
비부미푸트라 46.8% 40.3%
외국인 25.4% 32.7%
명의주식보유자 8.5% 7.9%
출 처 : http://www.epu.gov.my, Review of the Second Outline Perspective Plan, 1991-2000, p.53.

그렇다면 두 번째 목표인 국가통합(national unity)은 어떤가? 1969년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 종족충돌 이후 적극적 우대정책을 입안하여 1971년부터 그 정책을 시행했는데, 말레이
시아에서 크고 작은 종족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3월에는 캄풍 메단(Kampung
Medan) 사건이라 불리는 종족충돌 사건이 발생하여 말레이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미지
가 또 다시 크게 실추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종족충돌의 원인으로는 종족 간의 사회경제
적 불평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21)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을 최초 목표의 관점, 즉 말레이계에게 우대와 할당제를
적용하여 중국계와 인도계와 사회경제적으로 종족균형(racial balance)을 이루겠다는 계획에
서 바라보면 상당수 시행 성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대학의 경우 국립대학에서
입학할당제를 시행한 결과 대부분의 국립대학에서 70% 이상을 말레이계 학생으로 채웠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대학입학이 어려워진 중국계와 인도계는 사립학교에 등록하거나 말
레이시아 소재 외국계 학교나 외국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가 공무원 진
출의 경우 전체 공무원 중 85%가 말레이시아계로 채워졌다(1969년과 1973년 사이 공직은
98%, 군대는 99%가 말레이계 출신으로 채워졌다.)
또한 말레이계는 적극적 우대정책의 시행으로 이전에 과소대표된 직업 영역으로 이동했
는데, 1970년 말레이계는 전체 엔지니어 중 4%를 차지했지만, 1980년 24%, 1990년 35%,
1995년 38%로 증가했다. 중국계 엔지니어는 1995년 기준으로 55%를 차지했다. 의사 직업
21) http://www.thestar.com, “Should affirmative action go?”, August 20, 2013(2014년 3월 28일 검
색).
112 敎育法學硏究
의 경우, 말레이계는 1970년 4%에 불과했지만, 1995년에는 28%를 차지했다.22) 2000년 주요
종족 집단의 전문직 분포는 <표 6>과 같다.
< 표 6> 말레이시아의 전문직 분포(2000년, 명)
구분 부미푸트라 중국계 인도계
건축가 1,258 1,677 48
회계사 2,673 11,944 883
엔지니어 15,334 18,416 1,864
의사 4,592 3,827 3,689
변호사 3,118 3,861 2,588
출 처 : Sowell, Thomas, 같은 책, 70면.

이밖에 <표 7>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특혜 대상 집단인 부미푸트라의 전문직 진출 현황


을 나타냈다. 이 표에서는 1990년과 2000년의 전문직 진출 현황을 비교하였는데, 10년 사이
에 부미푸트라의 전문직 진출은 눈에 띄게 향상된 일부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은 크게 향
상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 표 7> 부미푸트라의 전문직 분포
구분 1990년 2000년
회계사 11.2% 15.9%
건축사 27.6% 28.9%
의사 27.8% 36.7%
치과의사 24.3% 34.8
수의사 35.9% 42.6
엔지니어 13.1% 26.5%
측량사 44.7% 47.8%
변호사 22.3% 31.3%
출 처: http://www.epu.gov.my, Review of the Second Outline Perspective Plan, 1991-2000, p.53.

22) o e , Thomas, 앞의 책, 6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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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13

지금까지 1971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신경제정책(NEP)이란 명칭으로 시행해온 말레이계


와 부미푸트라를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의 성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
위하고 노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말레이시아식 적극적 우대정책은 지난 40여 년 간 시행
해오면서 일부 분야에서는 최초의 계획을 달성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이 순기능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인구수에서는 소수
계이지만 말레이시아의 주류사회를 이끌어 온 중구계와 인도계, 그리고 외국인들은 자신들
의 기득권이 빼앗기고 공정한 게임 룰에 의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고 대안적
기회를 모색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소수계와 외국인들은 대학입시나 정부공직 진출 그리
고 금융거래 등 많은 영역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기대할 수 없었다. 2011년 세계은행 조
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인구 2천 8백만 중 100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해외 인구 유출은 말레이시아에서 노골적으로 시행하는 적극적 우대정책의 아픈 곳을 찌르
고 있는 것이다. 해외 이주 인구 중 60%는 말레이시아를 떠나게 된 주된 이유로 사회 불평
등(social injustice)을 꼽았다.23) 실제 1976년과 1985년 사이에 약 120억 달러의 자본이 말
레이시아를 빠져나갔는데, 이 금액은 중국계가 소유한 자본의 절반 이상에 해당했다.24)
또한 아래의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Mahathir bin Mohama) 전
총리의 연설도 의미심장하다. 마하티르 총리는 이제까지 말레이시아 정부가 노골적으로 시
행해 온 우대 혜택과 할당제 정책이 본래 대상이었던 일반 대중보다는 엘리트 계층이었음
을 인정하는 연설을 한 바 있다.
가난한 말레이계의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정부의 신경제정책으로 혜택을 받아
부유해진 말레이계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말레이계의 노력은 말레
이계 일부만을 부유하게 한 것 같습니다. ... 그러나 극소수의 말레이계나마 부유
하지 않다면, 가난한 말레이계도 혜택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말레이계를 운전수
로 부리면서 대저택에 계속 살게 될 사람은 바로 중국계입니다. 적어도 극소수의
부유한 말레이계가 존재함으로써 가난한 말레이계는 그들의 운명이 전적으로 비
말레이계를 섬기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말레이계 자존심의 관점
에서도 극소수의 말레이계 재벌의 존재는 중요합니다.25)

23) The Economist, “A never ending policy”, April 27, 2013(2014년 3월 31일 검색).
24) 토마스 소웰 저/염철현 역, 앞의 책, 90면.
25) 토마스 소웰 저/염철현 역, 같은 책, 91면 재인용.
114 敎育法學硏究
Ⅲ. 최근 동향
2009년 집권한 나집 라작 신임 총리는 1년 후인 2010년, 신경제정책(NEP)로 불리는 세계
에서 가장 강력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전면 개편함과 더불어, 언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치안유지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
정책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경제적 빈곤을 타파하고, 이들에게 정부공직
고용과 대학 교육, 주택구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혜를 제공하기 위해 실행되었지만, 지나
친 자국민 위주의 특혜가 외국인의 자본투자를 위축시키고 중국계와 인도계 등 기존의 엘
리트 집단이 외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레
이시아에서는 경제침체가 심각해지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신경제정
책의 일부 조항을 임시로 정지시키곤 했기 때문에, 적극적 우대정책의 일시 중지나 개편
등은 이상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마하티르 총리는 외국 자본
의 유치를 통한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신규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완전 소
유권을 인정하는 조치를 한시적으로 취하기도 했다.26)
라작 총리는 2013년 총선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의 다수계를 위한 파격적인 적극적 우대정
책을 시행하면서 드러난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의욕적인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종족 포괄주의와 정부의 경제 개입이나 간섭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
는 공약을 천명했다. 라작 총리의 공약은 지난 40여 년 간 시행해온 적극적 우대정책은 말
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 등과의 경제적 수준 차이를 어느 정도 만회하였다곤 하지만, 글로
벌 경제체제에서 신경제정책에 대한 외국투자자의 비난과 중국계와 인도계 등으로 구성된
야당의 정치적 압력과 소수계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
에도 국민전선의 장기집권과 지나친 말레이계 우대정책에 혐오감을 갖는 소수계와 젊은 유
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그의 공약은 상당한 정치적 호소력을 지녔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불평등을 문
제로 삼고 발전을 이루려면, 시급하게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지대추구(rent-seeking)27)와 후원 행위를 지지하는 관행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런 행위는 신경제정책의 근본 취지를 희석시켰습니다. 모든 말레이시아인들이 경

26) TIME.com, “Affirmative action: Bad for growth?”, April 4, 2010(2014년 3월 29일 검색).
27)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 즉 로
비·약탈·방어 등 경제력 낭비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특정 경제 주체가 면허 취득 등
을 통해 독과점적 지위를 얻게 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차액지대와 같은 초과 소득을 얻을 수 있
다. 각 경제 주체들이 이와 같은 지대를 얻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경쟁을 벌이는 행위를 지대추구
행위라 한다(행정학 사전).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15

제성장에 기여하고 혜택을 누리는 포괄주의 원칙(inclusiveness)이 새로운 경제적


접근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28)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신경제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 약속은 현실적으로 지켜
질 수가 없게 되었다. 실제, 그는 총선 정국이 끝나고 나서는 태도를 돌변했다. 그가 공약으
로 내걸었던 개혁은커녕 오히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1957년 이래 장기 집권하고 있는
국민전선으로부터 발목을 잡혀 말레이계에 대한 특혜 정책을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특혜 범
위를 더 늘릴 것으로 내다보인다. 2013년 9월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합친 부미푸트라
에 대해 기업과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제공하는 취지의 적극적 우대정책을
발표했다. 말레이계를 위한 새로운 특혜 제도에 따르면, 기업지분을 늘리기 위해 30억 달러
를 추가 조성하고, 기업인 양성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추가 배정하며, 국영기업에 대해 말
레이계 소유 기업에 대한 프로젝트 할당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29) 아래는 전국에 생
방송된 연설 내용의 일부이다.30)
우리가 부미푸트라의 경제적 참여를 활성화 시키지 못한다면, 2020년을 목표로
하는 선진국 진입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공평하고, 옳고, 평
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 총리의 공약 파기와 함께 발표한 새로운 적극적 우대정책의 계획은 총리의 최초 의

도가 무엇이었든 소수계의 분노를 샀으며,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계와 인도계 등 소수계
의 해외 이주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1년 고등교
육을 받은 말레이시아인, 대부분은 중국계의 20%가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 우대정책에 대한 강화 조치는 외국계 자금의 이탈로 이어지고,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으로 국가등급도 하향 조정되었다.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강력한 특혜제도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시행되는 적극적 우대정책의 수혜 대상이 한 국가의 소수계이고,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수혜대상을 다수계인 말레이
계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이
래 시행해 온 적극적 우대정책이 오늘날 까지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말레이계가 정치적

28) TIME.com, 앞의 기고문.


29) http://www.foxnew.com “Malaysia shift on affirmative action angers minorities”, September 25,
2013(2014년 3월 28일 검색).
30) Australia Network News, “Malaysia extends controversial affirmative action”, 14 Sep.
2013(2014년 3월 29일 검색).
116 敎育法學硏究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행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집권 여당인 국민
전선은 1957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야당에게 정권을 내준 적이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정치 구도의 변화를 좇아가면 노골적으로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우대하는 적극적 우대정책도 일정한 한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5월 치러진 국
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전선은 전체 222석 중 133석을 얻어 3분의 2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면
서 2008년 선거에 이어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국민전선은 지구상에서 중국, 북한, 쿠바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정당인데, 2013년 총선에서도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를 얻지 못했다(표 8).
<표 8> 연방의회 주의회 총선 결과 비교(1999-2013)
구분 1999년 2004년 2008년 2013년
연방 주 연방 주 연방 주 연방 주
여당 113 281 159 417 129 281 133 275
연립(BN)
야당 42 113 20 51 82 196 89 230
출 처 : 황인원(2009)의 연구에 2013년 자료 (http://elections.thestar.com.my/results/results.aspx)를 추가함.

이런 선거결과는 독립 이후 종족성에 기반을 둔 ‘종족집단 간 거래 정치(ethnic bargain


politics)’에 대한 환멸과 말레이시아인들이 거대 집권 여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했다
는 분석이다. 특히 2008년 총선부터 그동안 국민전선에 우호적이었던 중국계와 인도계의
야당 지지세가 확산되는 등 종족에 기반한 선거 패턴에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제는 탈
종족에 기반한 정당정치의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31) 따라서 정부
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야당
에 의해 제기되는 부정선거 주장은 물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만연한 부패도 말레이시아
정부와 집권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자국 국민에 대한 지나친
특혜와 외국인에 대한 제한된 경제활동 정책이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 부정적인 영
향을 미치고 있으며,32) 같은 말레이시아인이지만 2, 3류 취급을 받는 중국계와 인도계와 같
은 소수계 중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한 두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미푸트라’에 대한 개념도 불분명하고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

31) 김종업·최종석, 앞의 논문, 55~56면.


32) http://www.reuters.com, “Malaysia coalition extends rule despite worst electoral showing”, May
5, 2013.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17

다. 예를 들어, 2009년 보르네오 북부 사라왁(Sarawak)에서 부미푸트라 아버지와 중국계 엄


마를 둔 여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거부되었다. 사라왁에서는 부모가 모두 부미
푸트라 출신일 때 대학입학의 혜택을 부여하였다. 이와 반면 이웃 사바(Sabah)에서는 혼혈
인 경우에는 부미푸트라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었다.33)
2008년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인 중 71%가 종족에 기반한 적극적 우대정책이 폐지되
어야 한다는 것에 찬성했다. 야당도 말레이계는 오랜 시간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니,
적극적 우대정책을 말레이계에 국한하지 말고 사회경제적인 약자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34) 이처럼 적극적 우대정책에 대한 폐지 여론이 비등해짐에 따라 정책 방향
과 규정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Ⅳ. 결론 및 제언
말레이시아는 1969년 종족폭동에서 확인된 종족 간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방안의 일환
으로 적극적 우대정책을 시행하여 빈곤퇴치(anti-poverty)와 국가통합(national unity)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계획하였다. 먼저, 빈곤타파의 경우 종족 간, 종족 내 소득분배를 이루
고자 하였지만,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그 변화는 아주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부의 개입 정책이 빈곤 감소에는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불평등 감소에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35)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1970년대부터 시종일관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우대
정책을 시행하여 종족 간, 종족 내 불평등을 개선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
쳐 부미푸트라를 대상으로 한 우대정책의 시행 결과 빈곤율이 상당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종족 간, 종족 내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정치적 갈등과 대립의 불씨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36)
특히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오늘날까지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현
정부는 절대 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부미푸트라에 대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쉽게 개선 또는
폐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현 라작 총리가 선거유세에서 적극적 우대정책의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이는 총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비부미푸트라의 표를
33) http://www.geocurrents.info, “Controversies over ethnicity, affirmative ac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in Malaysia”, 20 Sep. 2013(2014년 4월 1일 검색).
34) The Economist, 앞의 기사.
35) 이양호, 앞의 논문, 158면 재인용.
36) 앞의 논문, 129면 재인용.
118 敎育法學硏究
얻기 위한 공약(空約)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점이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이 안고
있는 정치적 딜레마이고, 이와 유사한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대비된
다고 하겠다. 설령 말레이시아 정부와 집권당이 우대정책을 개선하려고 하더라도 절대 다
수를 차지하는 부미푸트라의 표를 얻지 못하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잃게 되고 결국엔
정권을 빼앗긴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37)
이제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비록 부미푸트라에
대한 우대정책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종종간의 정치적 거래관계를 통해 집권 여당이 강
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총선에서 나타난 여론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
실, UMNO가 주도하는 국민전선은 1971년 신경제정책을 통해 다수 부미푸트라에게 우대와
혜택을 제공하고 정치적으로 장기집권의 포석을 깔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제 부미푸트라
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향상되고, 종족간의 갈등이 감소된 상황에서는 국민전선의 장기집권
에 먹구름이 끼웠다고 하겠다. 부미푸트라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들고 있다. 실제, 총선 결
과 야당의 지지도가 높은 주에서는 부미푸트라 우대 정책을 폐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08년 3월 야당 연합의 안와르 아브라힘 대표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이 정책의 폐지를 선언한 적도 있다.38)
이제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시행되어 온 적극적 우대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
를 종합하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적극적 우대정책의 시행기간이다. 말레이시
아 정부는 1971년 부미푸트라를 위한 우대정책을 시행하면서 향후 20년을 잠정적인 시행기
간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정치적 특성인 종족정치의 특수성과 수혜자의 지속
적인 요구 등이 맞물려 적용 기간은 최초 계획보다 훨씬 길어져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어느 시점까지 부미푸트라를 위한 우대정책이 시행될 수 있을지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많은 국민들이 말레이시아의 탈종족정치를 요구하고, 우대정책을 반대하거나 폐기하
고자 하는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는 등 정치지형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현 정부
의 임기가 종료된 후 정책변화가 예상된다고 하겠다. 실제 야당이 집권한 주정부에서는 우
대정책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고 있다.
둘째, 우대를 받는 수혜자의 불균형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시행하는 우대정책의 대상자는
말레이계와 토착 원주민을 포함하는 모든 부미푸트라이지만, 실제 우대혜택을 받는 계층은
상위 10%에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우대수혜자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면서 최초 정책을
시행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종족 간의 소득분배의 효과는 매우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하물
37) 말레이시아는 상원(Dewan Negara), 하원(Dewan Rakyat)의 양원제로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하원의 다수당 대표가 수상이 된다.
38) 홍석준, “2008년 제12대 총선 이후 말레이시아 ‘종족정치(ethnic politics)’의 변환과 ‘부미뿌뜨라
(Bumiputra)’ 정책”, 동아시아브리프 제3권 제4호 통권 12호(2008. 12), 70면.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19

며, 부미푸트라와 비부미푸트라 간의 유착관계로 알리(외견상 부미푸트라가 소유한 기업)와


바바(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비부미푸트라로 이름 사용 대가를 알리에게 지불)가 결탁한 ‘알
리바바 기업(Ali-baba enterprises)’이 등장하여 정부로부터 각종 이권과 혜택을 받는 경우
도 있다. 결국 소득분배를 개선한다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혜택은 특정 계층에 편중되고
최초의 정책에서 주대상으로 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최소한에 머문다는
것이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가 부미푸트라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우대 조치(공직, 입학, 금
융, 주택, 주식보유 등)가 자칫 본질이 훼손된 왜곡적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셋째, 말레이시아의 경우 우대정책의 시행근거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적인 시행을 반대하는 여론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부미푸트라를 위한 포괄
적이고 강력한 우대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중국계와 인도계를 비롯한 비부미푸
트라와 외국인들은 해외로 이주를 하거나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과
도한 자국민 우대정책이 외국인의 시장진입과 자본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경과, 배경, 그리고 성과
에 대해 살펴보았다. 종합해보면,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의 특성은 1971년부터 20년
간 지속하기로 했지만, 당초의 기간보다 훨씬 장기간 시행되고 있다는 점, 우대 대상자도
부미푸트라에 국한하였지만 실제로는 경제소득의 상위 10%에 우대혜택이 집중되었다는 점,
그리고 정책의 장기간 시행과 부작용의 결과로 우대혜택의 폐지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결국
구성원 간의 사회적인 갈등 요소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는 말레이시아의 적극적 우대정책을 우리나라의 경우에 적용하여 그 시사
점을 찾아보기로 하자.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베트남, 태국은 물론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이주민들이 활발하게 유입되고 있고, 그 유입되는
이유도 취업, 유학, 결혼, 비즈니스 등 점차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유입된 소수민족과 소수인종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게 되면서 이들을 위한
한국식의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요구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서는 우리나라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입법화하여 시행하게 될 경우를 상
정하여, 말레이시아에서 시행되어 온 적극적 우대정책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타산지석으
로 삼을 만한 시사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외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입법은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과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이른바 ‘다문
화가족(multicultural family)’을 대상으로 하는『다문화가족지원법』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120 敎育法學硏究
이 법의 주요 골자는 지역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관련 법률은 소극적인 우대 또는 지원 양상을 띠고 있어 앞으로 다문화
가족의 요구나 사회통합 차원에서의 정치적 배려를 통해 얼마든지 적극적 우대정책이 입법
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식의 적극적 우대정책을 입법화할 때는 정책의 시행기간, 수혜대상, 수혜내용
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 정치적 관점에서 우대정책이 결정, 시행된다면 시간
이 지나면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본 논문의 말
레이시아에서 시행하는 적극적 우대정책의 경우를 보았을 때도 최초의 선의(善意)의 취지
와 명분이 희석되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단서를 제공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유의
해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정책이든 구성원 간의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려는
의도로 정책을 제정, 시행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최초의 취지와 의도가 흐
려지고 그 운영과정에서 왜곡, 변질될 우려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까지 적극적
우대정책을 글자그대로 적극적으로 시행해 온 미국, 브라질, 인도 등 대표적인 다민족, 다문
화 국가에서도 최초에 정책을 시행하면서 내걸었던 목적과 명분은 공정한 사회와 사회통합
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입법 의도나 정책의 취지가 변질, 왜곡되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뇌관이 될 수도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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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배경, 성과, 그리고 최근 동향 123

[Abstract]
Background, Performances, and its Trends of Affirmative Action in Malaysia
Yum, Chul Hyun (The Cyber University of Korea)

After race riots in 1969, the Malaysian government has launched the “New Economic
Policy” to reduce inequality and increase the share of the economy held by Malays.
This policy called a Malaysian affirmative action has started from 1971 and provided
preferential treatment to Malays(bumiputra) in business, civil service jobs, education,
scholarships and access to loans, assisted saving and housing, etc. Although it was
originally intended to end in 1990, it has since become permanent as part of the ruling
party’s doctrine of Malay supremacy over and against “immigrant races.”
Nowadays while some say the affirmative action policy has managed to bridge the
economic gap between Bumiputras and Non-bumiputras, there is active debates on
whether it should continue. There is also debate on whether it should be a race-based
policy or class-based affirmative action. Some say when it came to business, affirmative
action has not worked, but the policy in education is the way forward. Other say it
helped impoverished ethnic Malays and enriched their members and cronies.
Conclusively I think Malaysia still needs affirmative action to promote national unity
maintain political stability, but it has to be monitored and revised.
Key words : bumiputra, non-bumiputra, affirmative action, New Economic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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