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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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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4 층으로 지어진 낡은 빌라의 옥상 한 쪽 구석에 지어진 옥탑방.
그 앞에 평상을 놓고, 들어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은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그는 부모님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있던 고아원은 인정받던 고아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고아원은 급박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았다.
그 때, 그 고아원에 있던 모든 아이들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다른
고아원으로 옮겨졌지만, 15 세가 넘은 아이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봐야 했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하여 16 세의 나이에 고아원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갖은
고생하며, 버티고 버텼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독하게 버티고 버텼다.
지금 그의 나이는 27 세. 보증금 백 만원에 월세 20 만원의 옥탑방 세입자…….그런 고생하며 버티고
버텼지만, 지금 현재 그의 상황은 이랬다.
고아원을 나온 후, 착실하게 살던 그는 세상의 짙은 어둠을 너무나 몰랐다. 10 년을 넘게 벌어 모은 모든
재산을 지인에게 다 사기당하고, 다시 밑바닥으로 내려앉은 그였다.

밀린 월세 6 개월 치…….이미 보증금을 넘어섰다. 주인을 피해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잘


마주치지 않는다. 천운이다.
꿈을 향해 다가서기 위하여,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이력서에 작성되는
글자는 눈으로 봐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이름과 나이, 주소와 가족관계. 가족관계란은 단 한 글자만 들어간다. 무(無), 그리고 학력을 기재하는
란에도 몇 글자 없다, 중학교 중퇴가 전부였다.
또 한 군가산점은 상관이 없었다. 그 당시 학력미달로 인하여 군대도 가지 못한 그였다. 이것이 그가
작성하는 이력서 내용 전부였다.
보통도 아닌…….하위…….그것도 아주 최하위의 대한민국 구성인원 중 한명…….하지만 그는 꿈이 있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경호원이 되는 것이었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 보았던 영화 보디가드…….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인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 그 어린나이에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휘트니휴스턴, 그녀를 보호하는 보디가드 케빈코스트너, 아직도 그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그의 기억 속,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고아원을 나와 생활하던 그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준 영화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경호원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다. 합격은 둘째 치고 단…….단. 한 번만이라도
면접을 보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이력서…….내세울 것이 없다. 모든 면접이 서류면접에서
낙방이었다.

단 한 곳도 그를 보자고 하는 곳은 없었다. 고아, 학력미달,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살기 힘든 스펙이었다.

요즘은 경호학과가 따로 있다. 그곳을 졸업한 수많은 응시자들이 모두 그의 경쟁자였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그들과 마주쳐 진정한 경쟁을 해보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였다. 뭘 하나 내세울 것이 없으니, 그들과의 경쟁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해당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며, 자신을 보여줄 화려한 경력도 없었다.
흔한 태권도 단증도 없었으며, 공인으로 인정해 줄, 그 어떤 단증도 없었다. 그러기에 서류면접에서 조차,
그를 낙방시키는 것이었다.

‘꼬르륵…….’
움직이지 않아도 위장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려준다. 야간에 물류아르바이트와 평일엔
이삿짐이나 막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갈 자금을 마련하며 살던 그였다.
튼튼한 몸과 제대로 박힌 정신이지만, 그에게 일을 맡기는 곳은, 이 곳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대학생과 고등학생까지 가세하여, 경쟁이 치열한 지금이었다.
그는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라면을 사러 움직였다. 장마가 시작된 후, 오늘처럼 맑은 날씨가 없었었다.
이런 화창한 날에, 일거리가 들어와야 하지만, 그 일마저도 이미 엄청난 경쟁에 의해,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오늘도 라면이야?”
구멍가게 아주머니께서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본인이 본인 돈으로 라면을 먹는데, 굳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는가. 그는 애써 응답을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어른의 물음이라,
어설픈 미소를 보내고, 라면 두 봉지를 달랑 들고 다시 옥탑방으로 향하였다.
“멀쩡하게 생긴 놈이 빈둥거리니, 대한민국에 발전이 없지.”
그의 귀가 저 멀리 떨어졌을 때, 그런 말을 하면 좋았을 것이었다. 그가 고작 구멍가게에서 5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확성기를 입에 데고 떠들고 있는 것 마냥 큰 소리로 아주머니가 말하였고,
주위에 있던 몇 어른들이 한심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다.
“우울하다 정말…….”
우울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 사람들은 그의 과거 10 년을 알지 못한다. 지난 과거에 어찌
살았던 지금 현재 보이는 모습이 주변인들이 보는 모습일 뿐이다. 모든 상황은 본인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본인이 훌륭하면, 주위의 부러운 눈빛을 받지만, 본인이 한심하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응?”
라면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던 길에, 빌라 옆 골목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마치 아이들 숨바꼭질을 하는 듯, 이리저리 살피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쓰레기 옆에 있으면 냄새난다.”
그는 그 아이의 곁으로 움직인 후,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너무나 큰 동작으로 뒤로 넘어지며, 그를 보고
놀란 눈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 친구들과 장난을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며, 경계를 하는 듯하였고, 손과 발은 너무나 심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보았다. 수상하게 보이는 인물은 없었고, 오로지 그를 보며, 한심한 듯
보고 있었던 동네 어른들만 보이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그는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계속되는 그 아이의 행동. 필시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시선은 그가 내민 손이 아닌, 다른 한 손이 들고 있는 라면에 집중되고
있었다.
“배고파?”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고 생라면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다시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들린 라면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사내아이처럼 바가지머리에, 반바지, 그리고 반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굉장히 더럽혀져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나는 아이였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옥탑방으로 향하였다. 부모가 있으면 이 아이를 찾고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그는 일단 그 아이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 경찰에 연락을 주려 하였다.
옥탑방에 도착한 후,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아…….안 돼요.”
“응?”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가 전화기를 들자,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안 된다는 말. 부모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일 텐데, 그가 전화하는 것을 한사코 말리려 하였다.
“부모님께서 너를 찾을 거야. 그러니 어서 집으로…….”
“죽었어요.”
“응?”
“죽었다고요.”
“!!!”
아이가 하는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진지하며, 정확히 음성에 공포감이 실린 듯하였다. 그는
다시 그 아이를 보았다. 충혈 된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고, 무더운 여름이지만, 계속하여 몸도 떨고
있었다.
“안되겠다. 일단 병원부터가자.”
먹고 살 돈은 없지만, 아이의 상태가 더 위급해 보여 한 말이었다.
“배고파요. 밥부터 주세요. 그럼 제가 알아서 갈게요.”
말을 너무나 잘 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행동으로 보아, 일단 병원이 우선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충혈 된 눈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럼. 내가 라면을 끊여 줄 테니, 일단 씻어. 너…….너무 냄새난다. 그리고 내가 어린이옷이 없으니,
일단 내 티를 꺼내놓을께 그거라도 입고 있어.”
그리고 그는 아이를 욕실로 들이밀었다. 아이는 씻지 않으려 계속 주춤하였지만, 자신도 자신에게 나는
냄새가 지독했는지, 잠시의 반항이 있은 후, 조용히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라면을 맛있게 끊이기
시작하였다.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밥이라도 먹여서 가까운 파출소에 데려다 주려 한 그였다.

약 5 분의 시간이 지난 후, 라면이 완성되었고, 그는 욕실 문을 노크하였다. 그러자 5 분 만에 대충 몸을


다 씻은 후, 그의 티를 입고 나오는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저절로 자신의 몸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너…….너…….여자애야?”

진정 몰랐었다. 필시 남자로 보였었다. 복장이라던지, 머리스타일, 얼굴은 곱게 생겼지만,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남자나, 여자나 얼굴은 곱기에, 그 외모만으로 남자라 단정을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아이는 필시 여자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쳐갔다. 이런 대낮에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으니, 그 누가 좋은 시선으로 볼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 대처를 할 수도 없었다.
“이거…….먹어도 되요?”
‘젠장. 목소리까지 완벽한 여자아이로 들린다.’
조금 전까지 사내아이의 목소리로 들렸지만, 이젠 이 아이가 완벽한 여자아이로 보이고 있는 그였다.
“그…….그래. 먹어. 먹어. 난…….난 네가 여자인지 몰랐어…….”
그는 진정 놀란 가슴을 아직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그의 라면을 너무나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그의 배에서 나는 요동소리도 난리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의 가까이 앉아 라면을 함께 먹을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건 전적으로 무조건 그가 불리하며, 자신의 잘못이 확실하기에, 무조건 그 아이의 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하였다.

그리고 방구석으로 엉덩이를 밀려 이동하던 중, TV 리모컨을 눌렀고, 갑작스럽게 켜진 TV 로 인해,


더욱더 그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0000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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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주미 한국대사로 모든 임기를 마친, 이창민 대사가 고국으로 돌아와 자택으로 향하던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내에 의해 이창민 부부가 피살되었습니다.-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주미 한국대사가 한국 땅에서 피살된 내용이 전파를 타고 있었고,
아이는 라면을 먹다말고, TV 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동자를 심하게 떨고 있었다.
곧 뉴스화면에는 CCTV 에 녹화된 화면이 나오고 있었고, 차량이 정차한 후, 운전사가 차에서 내린 뒤,
곧 또 다른 한 사내가 차안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차량은 약 2 분간 굉장히 흔들거렸고, 복면을 한 채, 차량 안으로 들어섰던 사내가 유유히 걸어 나온 뒤,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사내가 그 자리를 벗어난 후, 뉴스가 전하는 방송의 CCTV 화면이 고속으로 재생되었고, 약 5 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차량 뒷문을 열고, 한 아이가 기어서 나온 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곳을 벗어나는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서…….설마…….”
그는 TV 에서 시선을 뗀 후,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영상
속 주인공이 이 아이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조금 전 아이에게 물어보았던, 부모님에 관한 것에 아이의 답도 생각을 하였다. 죽었다는 말…….즉. 이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10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저런 상황을 겪고 난 뒤에도 아이는 의외로
침착해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피살사건이 아닌, 국제적 사건이 가미된 것이라 발표를 하였습니다.
정부요원은 물론, 대한민국의 검,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이 번 사건의 용의자인 CCTV 속
인물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뉴스가 마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라면을 그 아이의 앞으로
밀었다.
“먹어.”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아이는 잠시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곧 고개를 들어, 눈에 맺힌 눈물을
애써 참으며, 라면을 먹기 시작하였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용의자검거도 중요하지만, 영상 속, 살아남은 이대사의 딸에 대한 행방을 먼저


찾으세요!”
한 편.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이번사건에 관여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젊은 나이인 43 세에 대통령 자리에 앉은 차현태 대통령은, 각 부처의 수장들을 청와대 회의실로 불러, 이
번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당부하였다.
자신이 직접 이번 사건에 관여한다는 말을 하였고, 경찰청과 검찰청은 물론, 국정원과 외교부. 심지어
청와대 경호실까지 동원하여, 이번 사건을 해결할 준비를 하였다.
한 나라를 대표하여 외국에서 정부의 뜻을 대변하는 자리에 있던 인물이 피살되었으니, 비단 국내에
한정된 일만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국정원과 외교부도 함께 이번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것이었다.
또 한. 이창민 대사 부부의 피살사건은 전 세계에 톱기사로 전해졌다. 전 세계 각 지도자들은 차현태에게
전화하여, 애도를 표했고, 그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했다.

“우린, 검, 경찰과 따로, 이창민 대사의 딸인 이지현을 찾아 경호합니다. 서둘러 인원을 편성하고,
움직이세요.”
각 부처의 수장들이 회의실을 나선 후, 곧바로 경호 실장을 회의실로 불러들인 차현태는 그에게 임무를
하달하였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은 대통령님과 그 가족을 경호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그러니…….”
“청와대에 앉아, 보고만 받는 나를 무엇으로부터 보호를 하려는 것입니까? 나의 보호보다, 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인물을 조금 전, 직접 눈으로 다 보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국적으로 해외에서 거주하는
국민들을, 나를 대신하여 보살펴 준 대사입니다. 그런 사람이 타국도 아닌 고국의 땅에서 피살되었는데,
그냥 이렇게 앉아서 보고만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서두르세요. 이제 고작 10 살인 어린 아이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죽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꼭 살아있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하루가 지난 지금. 어디에서 얼마나 큰 공포감을 안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경호실장의 말에 차현태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경호실장의 말이 옳은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말
그대로 청와대속 인물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그런 조직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타당치 않은 처사였다.
하지만 차현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을 먼저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경호실장은 차현태의 명령으로 경호실로 돌아온 뒤, 청와대 경호원 몇 명을 추려내기 시작하였다.

“너희 다섯 명은 지금 이시간부로 이창민 대사의 딸인 이지현을 찾는다. 이제 고작 열 살이다. 그리고


모두 이번 사건을 CCTV 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이지현은 그 좁은 차안에서 자신의 부모가 괴한에게
피살당하는 것을 보았다. 정신적으로 충격이 클 것이니, 각별히 주의해라.”
“알겠습니다.”
경호 실장은 자신의 앞에 선, 다섯 명의 대통령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청와대 경호실은
다른 사설 경호업체와는 수준이 다르다.
최고의 조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라의 수장을 보호하는 주 임무를 가진 자들이기에, 그에 맞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차현태의 명령에 의해, 이지현을 찾아 보호할 인물로 선정된 다섯 명의 경호원은 남자 네 명에 여자
한명으로 구성되었다. 이지현이 여자이기에 여자 경호원 한명을 특별히 배치한 것이었다.

-이창민 대사 피살 사건으로 인하여,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에서는 해당 CCTV 화면을 정밀하게
분석한 후, 그의 운전기사인 장 모 씨가 이 번 사건에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고 보며, 현재 자취를 감춘
장 모 씨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또 한 외교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국제적인 사건으로 분류한 뒤, 이창민 대사가 근무하였던 미국에 협조를 요청하였습니다.-

뉴스의 내용은 계속하여, 이창민에 대한 내용으로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옥탑방에 앉아, TV 를 보던 그는 뉴스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창민의 딸인 이지현도 라면을 먹으며,
자신의 귀로 들리는 뉴스 내용을 듣고,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부모…….님. 이야기지?”
그는 어렵게 물었다. 그러자 이지현의 서툰 젓가락질이 멈추었다.
“…….”
“말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다 먹었으면 나가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유를 알아야…….”
“제가…….알아서 할게요. 라면 잘 먹었습니다.”
진정 열 살 된 아이의 말과 행동이라 볼 수 없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피살되는 모습을 모두
목격하였겠지만, 침착하였다. 비록 몸은 계속 떨고 있었지만, 울며 소리치지도 않았다.
“뭘 혼자 알아서 해? 그리고 어딜 나가려고? 옷도 없어. 이대로 네가 알아서 한다면 뭐 어찌 할 건데?
만에 하나 그 놈들이 이 뉴스를 보았다면 네가 살아있는 것을 알고…….”
그는 이지현의 말을 들은 후,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곧 말을 다 잇지 못하였다. 이제 열 살 된
아이에게 자신의 말은 너무나 심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선우 총각 있어?”
그 순간 문 앞에서 50 대 중후반의 여인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그의 이름은 선우였다. 그리고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후,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이지현을 본 뒤, 문
앞으로 이동하여 좁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녀는 집주인이었다. 6 개월 동안 우연찮게 잘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마주쳤다.
“어찌된 거야. 벌써 6 개월 치가 밀렸어. 보증금을 넘어갔고…….어?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야?”
집주인 아주머니는 선우를 향해 월세 이야기를 하다말고,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이지현을 보며
물었다.
“네? 아…….제 조카입니다.”
“조카? 선우총각, 고아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조카가…….”
“네. 고아죠…….그리고 저 아이는 제가 있던 고아원에서 나온 아이인데,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네요.
그런데 먹일 것이 라면밖에 없어서…….”
집주인은 선우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이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작은 교자상위에 놓인 라면을 끊인 냄비를
보았다.
“저런 어린 아이에게 라면이 뭐야 라면이! 그리고 옷은 또 저게 뭐고? 내려와. 집에 찾아보면 우리 은주
입던 옷이 있을 거야.”
선우는 그녀를 보았다. 밀린 월세로 인하여 당장이라도 집을 빼라고 말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지현을 보며 안스러웠는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오라 말한 뒤, 먼저 내려갔다.

“집주인이야…….그리고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넘어섰어. 나도 이 집에서 나가야


할 판이야. 그리고 얼떨결에 말했지만, 일단 집주인에게 넌. 내 조카다. 고아원에서 알고 지낸 조카야.
알았지?”
“…….”
선우의 말을 들은 지현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지현을 데리고 집주인의 집으로 들어섰다.

“이름이 뭐야? 참 예쁘게 생겼네. 그리고 이 옷 입어봐.”


집주인은 지현에게 옷 한 벌을 건네주며 말했다.
“추지현이에요. 추지현. 저와 성도 같고 해서 제가 각별하게 신경 썼던 아이거든요.”
선우는 집주인이 지현의 이름을 물으며 옷을 건네주자, 지현을 대신하여 자신이 이름을 대신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지현은 선우를 보았다.
“그래? 추지현이야? 몇 살인데?”
“열 살입니다.”
“좀. 내가 선우총각에게 물은 것이 아니잖아. 하도 예쁘게 생겨서 목소리도 좀 듣고 싶어서 묻는데,
조용히 좀 해줘.”
선우는 혹시나 지현의 현 상태에 대해 그녀가 많은 질문을 할 것 같아, 미리 답을 준 것이지만, 이내
집주인은 선우의 입을 막았다.

“지현입니다. 추…….지현. 그리고 열 살이고요.”


이지현은 여인의 물음에 답했다. 지현은 선우가 말한 성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자신의 이름인 이지현이
아닌, 추지현이란 이름을 말했다.
“어쩜. 목소리도 예쁘네. 어서 입어봐. 이 옷은 언니…….아니구나. 선우총각의 조카라고 했으니, 우리
은주가 이모가 될 수 있겠네. 아주머니 딸이 지현이 삼촌과 동갑이거든. 어서 입어봐.”
집주인 아주머니는 지현에게 환한 엄마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지현은 선우를 만난 후,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준 옷을 받은 후, 두리번거렸다.

0000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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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정신 좀 봐. 이 쪽방으로 들어가서 입어보렴.”
옷을 받아들고 멍하니 선, 지현을 보며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의 방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지현은
방안으로 들어갔고, 곧 아주머니는 선우 앞에 섰다.
“고아원에 뭔가 문제라도 있어? 저 어린 아이가 선우총각을 찾아 올 정도면…….”
“원장님께 무슨 문제가 생겼나봅니다. 지현이가 많이 떨고 있는데, 직접 가서 알아보려고요.”
아주머니는 다시 선우의 앞으로 와서 물었고, 선우는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을 어쩔 수 없이 이어할 수밖에
없었다. 결코 악의가 있는 거짓말은 아니기에, 훗 날.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아주머니가 이해를 해 줄
것이라 믿었다.
“에혀…….세상 살기가 쉽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매몰차게 몰아내고 싶은데, 저런 어린 조카까지 왔으니
…….당분간은 월세 걱정 말고 지내.”
선우는 지금까지의 최대 걱정거리 중 하나였던 밀린 월세문제가 의외의 상황에서 해결되는 바람에
어리둥절하게 서서 그녀를 보았고, 이내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담은 인사를 하였다.

“와…….예쁘네.”
곧 지현이 옷을 입고 나왔다. 열 살 나이의 여자아이가 치마를 입었을 경우가 가장 예쁘지만, 아쉽게도
치마가 없어 바지를 입혔다. 하지만 진정 지현에게 딱 맞는 옷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잘 입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지현은 그녀를 향해 인사하였다.
“어쩜. 예의도 바르네. 아니야. 이 옷은 이 아줌마가 선물로 줄게, 잘 입고. 밥도 잘 챙겨먹고 다녀.”
집주인은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지현은 선우의 옆으로 다가선 뒤, 선우의 손을
잡았다.

“삼촌. 나 잘 어울려?”
지현은 선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생겨 있었지만, 눈에는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보였다.
“그래…….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 지현이. 꼭 천사 같다.”
선우는 눈물을 애써 참고 미소를 짓고 있는 지현을 보며 가슴이 아픈 듯하였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지만, 지현의 눈을 보며, 진정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듯하였다.
“그리고 선우총각. 이거…….”
“네?”
“라면만 먹이지마. 많이 먹고 뛰어 놀 나이인데, 라면가지고 되겠어? 나중에 선우총각의 꿈인 경호원
되어 돈 벌면 내가 이자 제대로 받아낼테니, 그냥 준다고 생각지 말고.”
선우는 주인아주머니가 준 봉투를 보았다. 세상이 참 차갑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그 차가움이 모두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뛰어넘고, 백수로 있는 선우에게서 돈이 마땅히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는 그에게 선 듯 돈을 주었다.
선우는 지현을 데리고 주인집을 나왔다. 그리고 주인집 대문이 닫히자, 지현은 지금까지 꼭 잡고 있던
선우의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너. 이제 열 살이다. 어린아이답게 말해. 그리고 네가 죄송할 것 없어. 엄연히 따지면 나도 네 득에
이익을 본 것이야. 가자. 너도 뉴스를 봐서 알거야. 지금 우리나라 검, 경찰이 널 찾는다. 너를
보호하고자 찾고 있어. 나보다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를 위해…….”
“아니에요. 난…….가지 않을거에요.”
“왜?”
“그 사람들이 나를 보호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야? 너도 뉴스 봤잖아. 너희 부모님을 그렇게 만든 나쁜 사람을 잡고, 너를 꼭…….”
“아빠…….엄마. 그렇게 만든 사람도 우리가족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
선우는 놀란 눈으로 지현을 보았다. 이 말은 범인을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지현이 범인을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일 수도 있었다.
“너…….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
하지만 확실한 답은 없었다. 지현은 선우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고, 매서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열
살의 여자아이가 짓는 표정이라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선우의 표정도 매섭게 변해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인하여 이 어린 아이까지 죽이려 했는지, 뉴스 속
영상에서 나왔던 그 살인범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저 라면을 먹이고, 지현을 파출소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지만, 지현의 말을 들은 후, 선우의 그
생각은 점 차 변해가고 있었다.

“사건 발생지역의 주변 CCTV 를 모두 살폈습니다. 이지현양이 이동한 경로를 몇 파악하였고, 이지현양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지역은 현재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성북도 북정마을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국정원에서도 이지현의 행방을 쫒고 있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며, 현재
살해위협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들보다 먼저 이지현을 찾고자 노력하였고, 사건 발생장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근 모든 CCTV 를 다 확인하여, 그녀의 마지막 행선지를 찾을 수 있었다.

경찰과 검찰은 서둘렀다. 국정원에서도 혹시나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뉴스로 인하여 지현의 생존이
확인되었기에, 이창민 부부에 이어 이지현까지 살해할 위험도가 있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인원을
선출하여 북정마을로 보냈다.

“이지현양의 마지막 목격지역이 북정마을이라 합니다. 곧 그 쪽으로 향하겠습니다.”


한 편. 청와대 경호실에서 선출된 다섯 명의 경호원들도 해당 정보를 입수하였고, 서둘러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경호실장은 이 내용을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였고, 차현태는 모든 병력을 다 동원해서도 살아남은 이지현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단. 뉴스를 통해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검찰이나 경찰도 알았겠지만, 그들만이 너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야.”
선우는 뉴스를 통해 이지현이 살아있는 장면이 방송되었으니, 이창민의 가족을 모두 죽이지 못한 그
의문의 인물이 이지현을 찾아 올 것이라 여겼다.
선우는 주인집을 나온 후, 지현을 보며 말하였고, 곧 다시 옥탑방으로 올라간 뒤, 몇 가지 짐을 챙겼다.
“걱정 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놈들이 다시 널 찾아와도 쉽게 그놈들에게 널 내주지
않을게, 절대…….너 혼자 보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선우는 짐을 챙기는 자신의 모습을 빤히 보고 있는 지현의 눈을 의식한 듯 말했다. 지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가자. 주인아주머니께서 너 밥 사주라고 돈도 주셨으니, 가서 밥부터 먹자. 라면이 아닌 밥 먹고, 다시
생각하자.”
지현은 선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선우 외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이
역시 열 살 된 여자아이가 자신이 살기 위하여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선우와 지현은 연립주택을 나섰다. 빌라라고 하지만, 그냥 다 허물어지기 직전의 연립주택에 가까운
건물이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가파른 내리막길이기에 선우는 지현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지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선우의 손을 꼭 잡았다.
“응?”
좁은 골목을 돌아, 조금 더 넓은 골목으로 돌아서자, 이곳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가 보였고, 선우의
시선에 범상치 않은 인물 몇 사람이 구멍가게 주인에게 뭔가 사진을 보이며 묻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듯하다. 뒤로 돌아가자.”
선우는 그들이 지현을 보호하기 위하여 찾아온 인물인지, 아니면 지현을 죽이기 위하여 찾아온 인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주치지 않으려 다시 방향을 돌려 다른 골목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팀장님. 이곳 지리를 확인하니, 오르는 길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일단 모든 입구 쪽에 병력을 배치해, 이곳에 지현이가 있다면, 꼭대기에서 만나겠지. 모두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경찰병력이 도착하였다. 경찰청의 지시를 받고, 이번 사건에서 이지현을 찾아 보호할 팀으로 구성된 인원
중, 그들을 지휘하는 팀장은 28 살의 박태식 팀장이었다. 젊은 나이지만, 그의 경력이 화려하여 이번
사건에서 경찰병력을 지휘할 인물로 내정된 베테랑 형사였다.
호리호리한 외모에 잘 생긴 얼굴. 하지만 지랄맞은 성격탓에 매번 검찰과 마찰이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실장님. 경찰병력이 도착했습니다.”


같은 시각. 선우가 보았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 틈으로 또 다른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다가서며
보고하였다.
“그래? 경찰도 무능하지는 않군. 내일이나 지나야, 지현양의 행방이라도 쫒을 것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빠르네. 일단 우리 국정원 쪽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 테니, 협조할 것은
협조해줘라.”
“알겠습니다.”
이들은 국정원 소속 인물들이었다. 국정원은 범인을 찾기 위한 팀과, 국제적인 협조를 공유할 팀, 그리고
이지현을 찾아 보호 할 팀으로 나뉘어져 움직이고 있었고, 현재 이지현을 찾아 나선 팀은 달동네 꼭대기를
향해 올라서고 있었다.

“서둘러가자.”
선우는 이들에 비해 달동네 지리를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동선을 피해 달동네를 거의 다 내려왔다.
그리고 곧 큰 길에 접어들었고, 그 순간 경찰병력이 탄 차량들이 그 입구에 도착하여, 서둘러 위로
오르고 있었다.
선우의 직감에 그들의 행동은 형사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현을 그들의 손에 인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녀가 한 말이 떠올라 그러지 못한 채, 경찰병력과 간만의 차이로 달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치 좋군.”
가장 먼저 꼭대기까지 오른 국정원소속 인원들은 모두 한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라 말하고 있는 이 동네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실장님. 저기…….”
한가롭게 경치구경을 하고 있던 중, 한 대원이 다가서며 좁은 골목길 아래를 가리켰다. 그리고 실장의
시선이 돌아선 곳에 박태식이 보이고 있었다.
“박태식…….저 놈이 경찰병력을 이끄는 팀장인가보네.”
실장은 그의 모습을 보며 안면이 있는 듯 한 말을 하였다.
“설 실장님께서 직접 움직이셨습니까?”
곧 박태식도 꼭대기에 도착하여 그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그래.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나나 자네와 같은 베테랑이 배정되었겠지. 그리고 어쩐일로 경찰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이나 싶더니, 자네가 팀장으로 나선 것이군. 그래. 뭔가 찾은 것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지현양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CCTV 가 이곳 북정마을 입구라, 일단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선배까지 계시니, 우리 정보도 이제 어느 정도 맞아가고 있는 듯 하네요.”
박태식은 형사들에게 손짓하여, 이곳으로 오르며 많은 집들을 수색하였고 곧, 조금 전까지 추선우와
이지현이 있었던 연립주택을 수색토록 명령내린 뒤, 실장의 옆으로 다시 서며, 친분감을 내세우는 듯 한
억양으로 말했다.

0000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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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국정원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창민 대사의 피살이 그냥 단순 강도사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선배가 직접 나선 것만으로 알 수 있지만,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외교관의 죽음이다. 그것도 나라를 대표하여 외국에 나가있던 대사가 고국땅에 들어서자마자 죽은
사건이야. 쉽게 생각하지 않지. 국제적으로 협조를 요청해 두었지만, 만에 하나 그 협조 요청국과 얽힌
것이라면, 협조는 둘째 치고 어쩌면 국제적인 대립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실장의 말에 박태식의 표정은 굳어졌다. 단순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깊은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실장님.”
“팀장님.”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상태였다. 곧 두 사람의 부하직원이 동시에 두 사람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박태식이 물었다.
“지현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하대원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놀란 듯, 서둘러 움직였다.
“네. 맞아요. 이 아이였어요.”
이지현의 행방을 아는 인물은 추선우의 집주인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지현과 함께 있었으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우리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선우총각의 조카라고 했어요.”
“선우총각의 조카?”
“네. 고아로 자란 총각인데, 참 착하게 살아온 총각이에요. 여러모로 너무 순둥이라 사기당해 모든
재산을 다 날렸지만, 세상천지 그런 놈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댁들은 누구신지…….?”
두 사람은 그 즉시 부하대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부하대원들은 선우의 집인 옥탑 방으로 움직였다.

“아…….네 뭐. 우린 선우씨의 직장동료입니다. 오랫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아,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하긴 그렇게 착한 사람이 직장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
아주머니는 박태식의 말을 믿고 있었다.
“없습니다.”
곧 부하대원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지금 집에 없을거에요. 조금 전에 조카하고 고아원에 간다고 나갔으니 아마 고아원으로 갔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급히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서울의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꼭대기에 나란히 섰다.
“한 발 늦었네. 그나저나 고아원…….”
“고아원으로 갔겠습니까? 아마 지현이를 의심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일 것입니다. 일단 그
선우총각이라는 놈에 대해 조금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실장의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박태식이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이 먼저 몸을 돌려 움직였고, 곧 그와
함께 올라온 형사들도 모두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역시…….어린놈이지만, 아주 빠르게 결론을 생각해 내는 놈이야.”


실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그의 부하대원들도 모두 나왔다.
“지금 즉시, 이곳에 살고 있었던 선우라는 놈에 대해 알아보고, 그 내용을 보고해.”
“알겠습니다.”
국정원 소속이니 일반인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은 경찰보다 더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조직이었다. 말
한마디에 해당인물의 인상착의는 물론, 주변인과, 그가 활동한 모든 내역까지도 한꺼번에 모조리 알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 실장님.”
부하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다시 꼭대기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려 할 때, 골목 아래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태정민?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설장호를 부른 인물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선출 된 다섯 명의 경호원 중 한 명인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슈트가 진정 잘 어울리는 29 살의 청년이었다.
“뭐. 설 실장님께서 직접 이렇게 오신 내용과 같지 않겠습니까?”
“하…….역시 대통령께서 바로 움직이셨군.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에서까지 사람을 보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실. 그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저희들도 이런 임무는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어쩌겠습니까? 명령이니
따라야죠.”
“그래. 지금까지 이 나라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대통령이라 평가받는 분이시니, 그 선택도 많은 것을
고려하여 내린 것일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지현양이 없다. 우리가 한 발 늦었어. 그리고 조금
전, 박태식이 이곳을 다녀갔으니, 그놈을 잘 아는 너라면, 그놈의 뒤만 잘 따라다녀도 지현이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을테지. 서둘러라.”
설장호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박태식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어투였다.
“자존심 상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지금 바로 태식이에게 연락해서 정보공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정민은 경호원을 이끌고 애써 올라온 달동네를 다시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한 편, 달동네를 찾은 국정원, 경찰, 청와대 경호원들과 간만의 차이로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벗어난
선우와 지현은, 달동네를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인근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지현양이 마지막으로 포착되었던 북정마을에서 지현양을 찾지 못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같은 시각. 경호 실장은 대통령 집무실로 향한 뒤, 이지현을 찾기 위하여 움직였던 태정민으로 부터
그녀를 찾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곧바로 그 내용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 없는가?”
“지금 국정원에서 또 다시 인근 CCTV 를 모두 확인중입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포착되었고, 그 곳에서
찾지못했다면 북정마을을 나왔을 것입니다. 나왔다면 그 즉시 인근 CCTV 에 찍혔을 테니, 곧 찾을
것입니다.”
“그래. 꼭 찾아 보호해야하네. 또 한 이창민대사의 장례식도 잘 치러주어야 하며, 이번 사건의 배후를
철저하게 파헤쳐야 하는 것을 명심하게. 그 상대가 국제적인 조직이던, 국내 인물이던, 무조건 이
나라에서 죄를 물어야 함을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차현태는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창민의 죽음에 대한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답답하였다.
“각하. 이번 사건은 평범한 사건이 아닙니다. 전담팀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곧 그의 옆에 서 있던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미 각 부처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 모든 기관을 통합하여 지금현재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경호원들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즉시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 그리고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을
불러들이세요. 이 사안에 대해 비서실장의 말처럼 전담팀을 만들어 해결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차현태는 비서실장의 말을 받아들였다. 비서실장은 그 즉시 해당 기관의 수장들을 집무실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단순 강도 살인사건은 아닙니다. 정확히 이창민 대사를 노린 범행으로, 이건 나라 안의
문제라 할 수 있지만, 나라 밖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어떤 결정을 하고
있습니까?”
먼저 외교부장관에게 물었다.
“외교부는 어제 사건이 있은 후, 그 사건을 확인하자마자, 미국정부는 물론, 이창민 대사가 그동안
머물렀던 각 국의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창민 대사가 자국에서 대사직을 역임하고 있을 때,
혹여 다른 마찰이 있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곧 그에 대한 답이 올 것입니다.”
외교부장관이 현재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말했다.
“답이 오는 즉시 알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까?”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이창민 대사는 물론,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각국에 나가 있는 대사들은 국가기밀을 일부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뜻을 해당국가에 대변하기에 기밀을 많이 접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로인하여 예기치 않은 정보를 빼내기 위하여 국가단체나, 기타 정보를 거래하는 조직이 이번 일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고 보여, 전 세계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정원도 외교부와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사안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비단 한국인이 살해되었다는
것만을 중점으로 둔 것이 아니라, 외교관이 살해당한 것으로 틀을 잡고 있기에, 국제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국내에서 벌어진 일인만큼. CCTV 에 찍힌 범인의 인상착의를 잘 파악하여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범인을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지현을 찾아, 그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팀을 서둘러 꾸리세요.
모든 면에서 강해야 하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상대가 누군지 모릅니다. 누군지 모르는 상대로부터
지현양을 보호하려면 그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 모여 있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차현태의 말이 끝나자, 모든 기관의 수장들이 일제히 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검찰과 경찰은 국내에서 이창민대사를 죽인 범인을 잡고, 그 배후를 알아내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며,
외교부와 국정원은 국외의 사안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며, 사건을 해결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 한,
청와대 경호실은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무조건 이지현을 찾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에서 몇 사람만 차출하여 이지현에게만 집중하도록 합시다.”


대통령 집무실을 나온 후, 각 부처 수장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그리고 국정원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쪽에서는 이미 박태식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찰청장이 그의 말에 답을 주었다.
“우리 쪽에서도 이미 설장호가 움직였습니다. 검찰 쪽에서는…….”
“우린 아직 어느 누구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지현양의 신체적 안전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하기에, 남자 검사보다는 여자검사로 이번 일을 해결하려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각 부처의 수장들은 각기 자신들이 선출한 인원에 대해 서로 업무를 공조하며, 하루라도 빨리 이지현을
찾고자 서둘고 있었다.
“그럼 그들 중, 최상위 인물은 누구입니까?”
검찰총장이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국정원의 설장호 실장인 듯합니다. 그리고 경찰 쪽에서 박태식이 움직였다면, 아마
설장호실장과 잘 맞을 것입니다.”
“그럼. 이지현양을 찾아 보호하는 팀에서는 국정원 실장호 실장을 수장으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움직이시죠.”
이지현에 관한 모든 지휘권한을 설장호에게 준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이미 설장호와 박태식, 그리고
태정민이 이들의 말처럼 먼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배불러?”
한 편. 근사한 밥한끼는 아니지만, 밤새 꼬박 굶고, 라면 하나만을 먹은 지현은 분식집에서 배불리
분식을 먹었고, 다 먹은 듯, 수저를 내려놓은 그녀를 보며 선우가 물었다.

0000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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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짧은 답이었지만, 처음으로 듣는 긍정적인 말이었다.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이고
싶었지만, 현재 지현이의 나이에 가장 잘 먹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럼. 가보자. 도망친다고 되는 일이 있는가 반면에, 부딪혀서 이겨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선우는 지현이 가슴아파하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묻어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무조건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힘든 것 알아.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픈 것도 알아. 하지만 너희 부모님. 적어도 너희
부모님이 왜 죽었는지, 그리고 누가 죽였는지…….그것만이라도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선우는 열 살 된 어린여자아이를 앞에 두고 참으로 무거운 말을 하고 있었다. 고작 열 살이라는 것이지만,
아픔이라는 것은 잘 느낄 수 있는 나이이며, 더군다나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아이에게 너무 딱딱한 어투로
말하는 듯하였다.
“아니다. 그냥 잊자. 괜한 말을 꺼냈다. 그래 네 말처럼 그냥 도망치자. 그렇게 도망치다보면 어느새
어제 일도 모두 잊겠지.”
선우는 자신의 말을 듣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지현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자 지현은 지금까지 숙이고만
있던 고개를 들어 선우를 보았다.

“삼촌…….”
“삼촌? 야야…….그건 내가…….”
지현은 선우를 삼촌이라 불렀다. 그리고 선우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그저 농담이었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지현의 눈빛을 보며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였다.
“그래. 말해.”
선우는 지현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맑았고, 초롱초롱했지만, 너무나 깊은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듯 한 눈빛이었다.
“나…….보호해줄 수 있어요? 나…….그 사람들한테 잡혀가지 않도록…….”
“걱정 말라고 했지? 그리고 참 다행으로 내가 지금 백수야. 할 일이 없어. 그래서 너와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네가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까지, 내가 함께 가줄게.”
선우는 지현의 목소리가 무척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참으로 놀라웠다.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열 살의 아이가 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잊지…….않을거에요. 그리고 도망치지 않을거에요. 삼촌이 옆에 있어준다면, 아빠. 엄마…….그렇게
만든 사람들. 누군지 꼭 찾아서 벌주고 싶어요.”
지현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어린아이의 증오가 이토록 무섭게 느껴지는지 처음 알았다.
“이 삼촌이. 꼭! 꼭 함께 있어줄게.”
지현은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한 채, 선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선우도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지현의 지금 미소와 표정을 본다면, 살인마도 살인을 멈추고 그녀를 도울 정도였을 것이다.
“나가자.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내려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야 하는 거야.”
“네. 삼촌.”
두 사람은 분식집을 나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은 처음 이곳을 들어올 때보다 더 밝은 표정들이었다.

-지난 밤 있었던 이창민 대사의 피살사건으로 인하여, 외교부와 국정원이 나섰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사안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하여 이창민 대사가 그동안 업무를 보았던 각 국가에 전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또 한 검찰과 경찰은 전국에 이창민 대사의 딸인 이지현양의 사진을
배포하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살아남은 그녀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분식집을 나서자마자, 분식집 안에 비치된 TV 에서 뉴스속보가 전해지고 있었고, 곧 이지현의 사진이 TV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뉴스를 접하지 못하였다. 아주 간만의 차이로 두 사람이 나간 후, 곧바로 뉴스
속보가 전파를 타고 있었고, 그 내용은 이미 이지현의 사진이 전국적으로 배포가 된 상황이라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와 지현은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거리로 나가게 되었다.

“실장님. 여인이 말한 그 선우총각이라는 사내에 대한 정보입니다.”


설장호는 여전히 북정마을 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래? 줘봐.”
설장호는 부하대원이 들고 있던 스마트기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인물을 보았다.
“잘생겼네. 이름 추선우. 나이 27 세. 고아, 무직, 참…….얼굴 값 못하는 놈이네.”
스마트 기기 안에는 추선우에 대한 모든 기록이 다 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물론, 나이와 과거기록,
그리고 현재 기록까지 모조리 다 떠 있었다.
“은행잔고 30 원. 직장생활 무. 군 면제. 대체, 뭐하고 산 인간이야.”
설장호는 그의 이력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인생이 궁금해지고 있었다. 은행잔고 30 원으로 살 수 없을
테지만,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이러고 살 수 있어?”
“그 있지 않습니까? 막노동이나, 기타 4 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말입니다. 그런 직장일
경우 사회생활 이력이 전혀 잡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그런 일이 많지. 하긴, 이런 이력과 학력으로 제대로 된 직장의 면접이나 제대로 보겠어. 일단
이 정보를 형사팀 박태식과 청와대 경호원 태정민에게도 보내줘.”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추선우에 관한 정보를 모두와 공유하였다. 이는 지금 현재의 수많은 기관에 종사하는 일부
인물들과는 달랐다. 서로가 알아낸 정보는 서로 공유해야 하는 기관일지라도 철저히 숨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요즘이었다.
즉. 정보공유가 자신들의 살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여기는 일부 몰상식한 공무원들에 의해, 나라의 돈이
쓸데없는 헛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는 달랐다. 기관이 다르고, 서로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같은 일을 맡았을 경우에는 모든
정보를 그 순간 곧바로 공유하는 인물이었다.
이는 형사 쪽의 박태식이나, 경호원 쪽의 태정민도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국정원보다 느린 정보수집으로
인하여, 설장호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였다.

“추선우…….”
곧 박태식이 설장호에게서 받은 선우에 관한 정보를 모두 읽었다. 그리고 그의 사진도 함께 보았다.

“추선우라…….”
같은 시각. 태정민에게도 그 정보는 들어갔다.
“모두와 공유하고, 현재 이지현을 데리고 있는 인물은 27 세의 추선우라는 놈이다. 그의 이력이 별로
없어, 마땅히 찾아 나설 곳도 없다. 하지만 그냥 무조건 찾아. 전국의 CCTV 는 물론, 차량 블랙박스를
이용해서라도 찾아. 그게 답이다.”
박태식은 그 즉시 명령 내렸고, 같은 시각. 설장호는 그제야 달동네에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태정민도 나머지 네 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추선우와 이지현을 찾기 위하여 움직였다.

“저곳이야?”
“네.”
분식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지난 밤. 이창민이 피살당한 장소에 도착하였다. 이미 경찰들에 의해 현장은
수습되었지만, 인근에 수많은 형사들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갈 수는 없겠다.”
선우의 눈에는 주위에 있는 모두가 형사들로 보였다. 단 한명도 그냥 구경하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뭔가 단서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형사들이 너무 많아.”
지현을 뒤에 세워두고 그 현장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지현을 보았을 때, 지현은 자신의
눈을 꼭 감고 귀를 막고 있는 행동을 하였다.
“왜…….그래?”
대답이 없었다. 지현은 조금씩 몸마저 떨기 시작하였다.
“젠장. 충격이 오나보다.”
선우는 지현을 들어 안은 뒤,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당시의 기억이
현장을 보면서 다시 기억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채,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고, 그의 모습은 인근에 있던 형사들의 눈에도 보였다.

“저 놈 뭐야? 확인해봤어?”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형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오며 선우와 지현을 쫒기 시작하였고, 선우는 지현을 안고 달리던
중, 시선을 돌려 그들이 따라 붙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젠장…….”
선우는 떠 빨리 달렸다. 하지만 열 살 된 아이를 안고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맨몸으로 달려오는
형사들의 뜀박질이 훨씬 빨랐다.

“이봐! 거기! 잠깐 서 봐!”


이내 형사들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선우와 지현을 보았다.
“어머…….저 아이 뉴스에 나왔던 아이 아니야?”

-뉴스?-

사람들 틈을 피해 뛰고 있을 때, 지나가는 한 여인이 하는 말이 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선우조차


잊고 있었던 부분이 떠올랐다.
이미 방송으로 모든 것이 알려졌다. 하지만 선우가 본 뉴스에서는 지현의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온 후, 다시 방송된 뉴스에서 지현의 사진마저 공개된 것이라 여겼다.

‘이런. 병신 같은 짓을 하다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목격자라며 보호해야 한다 말해놓고, 오히려 사진을


띄워? 아예 범인에게 지현이가 살아있으니, 이 사진을 보고 찾아 죽이라는 말과 뭐가 달라!’
선우는 격하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홀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모든 말을 지현이가 들어 좋을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빠르게 움직였다.
“젠장. 넌 저쪽으로 가봐.”
골목 앞에서 선우를 놓친 형사들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골목을 수색할 요량으로 움직였고, 곧 지원요청을
더 하고 있었다.

“실장님. 약 10 분전. 서울 삼성동 인근에서 이지현과 추선우의 모습이 CCTV 에 찍혔습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휴대전화로 국정원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도 삼성동 인근이니 곧바로 가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변동 상황 있으면 연락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해당지역으로 향하였고, 이 정보 역시 박태식과 태정민에게 알려주었다.

‘킥!’
설장호가 해당지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몇 명의 형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그의
앞으로 섰다.
“형사?”
설장호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누구요? 누군데 우리가 형사라는 것을…….”


“국정원 설장호 실장입니다. 여기서 이지현양을 보았습니까?”
형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형사들은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그를 보았다.

이미 국정원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설장호도 자신의 신분을
곧바로 밝히며 그들에게서 서둘러 정보를 받으려 하였다.

0000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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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이지현양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를 안고 뛰는 사내를 보았는데, 이 앞에서
놓쳤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우리도 함께 움직이죠. 자! 모두들 잘 들었지? 생쥐가 독안으로 들어왔다. 살살
구슬려서 잡아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 소속 인원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형사들과 공조하여 골목으로 진입하였고, 곧 차량 두 대가 그
옆으로 급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역시. 설실장님이 빠르시네요.”
이어 도착한 인물은 박태식과 태정민이었다.
“국정원의 힘이지, 내 힘은 아니야. 그리고 이곳 형사들의 말로는 이 안에 추선우와 이지현이 있다고
하니. 혹시 추선우가 지현양을 인질로 잡고 있을 수도 있어, 조심히 접근하고…….”
“어디.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들어가 보겠습니다.”
설장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식이 형사들과 함께 움직였고, 곧 태정민이 설장식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그도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하…….저 놈은 참 버릇이 없는데, 왜 밉지가 않지…….”
설장식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었다. 주로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었고, 그는 느긋하게 내린
명령에 대한 답만을 기다리는 스타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국정원 소속 인원들이 투입되었고, 곧 박태식과 함께, 태정민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설장호는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지현양을 찾았군. 지현양을 찾으면 그 때부터는 범인을 잡는다. 어떤 놈인지
내 손에 잡히면 최소 사망 직전까지 간다.”
설장호의 눈매가 변하였다. 지금까지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조금 전부터 변한
그의 표정은 진정 독한 표정이었다.

“누구의 소행인지도 알 수 없고, 의심 가는 사람도 없지만, 이창민 대사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모두가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은 알지만, 조금이라도
더 서둘게 해 주세요.”
한 편.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모든 기관의 수장들이 다 나가고, 비서실장만이 남아 있는 집무실에서
여전히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차현태가 말했다.
“그 어떤 단서보다 더 중요하며 큰 역할을 할, 단서가 바로 이지현양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목격하였고,
그 아이가 목격한 현장의 목소리만이라도 지현양이 기억한다거나, 또, 차안으로 들어와 부모를 죽인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 때부터는 일이 쉽게 풀릴 것입니다.”
비서실장이 답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왜 굳이 임기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죽였냐는 것이었다. 그 문제가 차현태의 머리를 계속하여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튼 서두르세요. 무엇보다 지현양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현장에 나가고 싶었던 차현태였다.
“모두 흩어져서 찾아!”
한 편. 설장호의 국정원은 물론, 박태식의 형사 팀과 태정민의 경호원들까지 가세하였지만, 한블럭 밖에
되지 않은 곳에서 추선우와 이지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에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지현아. 괜찮아?”
선우는 골목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절묘하게 그들과 마주치지 않았고, 곧 고급 빌라의 안쪽 주차장
구석으로 몸을 숨긴 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지현에게 물었다.
지현은 그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생각을 깊게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였다. 어린나이에 충격적인 일을 겪었는데, 그것을 단 하루 만에 또 다시 기억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 미안하였다.
“형사들이 쫒고 있어. 이대로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골목을 보며 말했다. 골목에서는 형사들이 또 다시 지나쳐갔고, 선우는 그
즉시 몸을 숨겼다.
“일단 내가 먼저 나갈게, 넌 잠시만 여기 있어.”
선우는 지현을 안고서는 이곳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현의 손은 선우의 양쪽 어깨를
꽉 쥐고 있었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무언의 답이었다.
“같이 움직이면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준다는 약속을…….”
선우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지현이 자신의 어깨를 꽉 쥐는 힘이 더 강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널 두고 가지 않을게.”
선우는 마음을 달리 하였다. 지현을 이곳에 두고, 자신홀로 저들을 유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그의 어깨를 꽉 잡은 후, 이내 더 파고들며 안겼다.
선우는 지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피살당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신에게 라면 하나 준 사람을 이토록 믿고 따르는 것인지, 그 당시의 무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골목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쪽과 연결된 골목을 통해 나간 것 같습니다.”


약 서른 명의 인원이 골목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찾지 못하였고, 박태식이 이끄는 형사 팀이
먼저 다시 큰 길로 나와 설장호의 앞에 섰다.
“놓친 거야?”
설장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
“어쩌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갔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겠지. 연락을 받고 우리가 온 시간이 약 10 분 정도 후였으니, 10 분이면 삼성역을 벗어날 수도 있는
시간이지.”
설장호는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시계를 보았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후부터 계산해도 벌써 30 분이 지난
상태였다.
“일단 인원을 한 곳으로 모와. 그리고 다시 움직이자.”
설장호는 곧 돌아온 국정원 대원들에게도 말했다. 그리고 약 3 분 후에 나머지 국정원 소속 인원들도 모두
모였고, 박태식의 형사 팀도 모였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그 순간 설장호와 박태식의 전화벨이 동시에 울렸다.
“네? 아…….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전화를 받았고, 잠시의 통화를 서로 듣기만 한 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너와 내가 받은 전화 내용이 같은 모양이다. 위에서 이렇게 진행한다고 하니, 그렇게 따를
수밖에, 그리고 천재적인 형사나리가 내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데, 억울해도 참아.”
“별말씀을…….”
두 사람이 받은 전화내용은 차현태가 내린 명령이었다. 모두 각기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한곳으로 모여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각 부처 수장들의 의견에 따라, 그 해당 팀을 총 지휘할 수장은 설장호가 된 것이며,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순수하게 명령에 따랐다.
“청와대 경호실은 연락받은 것 없어?”
곧 태정민이 경호원들과 함께 큰 길로 나오자, 설장호가 물었다.
“뭐…….아시겠지만 우리는 직할이지 않습니까? 그 누구의 명령이 아닌, 오로지 대통령님의 명령만
이행하니, 두 분께서 어떤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저희들과는 별개인 듯합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물음에 답하였다.
“하긴…….누가 청와대 경호실에 명령을 내리겠어. 일단 태식이와 나는 함께 움직인다. 그러니 정민이
너는 청와대 경호실 인원을 데리고 따로 움직여. 하지만 정보 공유는 꼭해야한다. 어느 누가 일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 우리가 서열 싸움 하고 있는 그 시간만큼, 어린 지현이가 고통 받는 시간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 명심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요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어찌합니까?”
박태식이 물었다.
“뭘 어찌해? 이미 이곳에서 벗어났다면 다른 곳으로 갔겠지. 항상 인근 CCTV 를 감시하고 있으니, 또
다른 이동경로가 보인다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설장호는 태연스럽게 말하였고, 곧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걱정되며 불안하신 모양이군요.”
그의 행동을 보며, 박태식이 물었다.
“왜?”
“그냥. 실장님의 행동 때문에요. 아직도 그 버릇은 여전한가 봅니다. 걱정이 많아지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담배를 꺼내 무는 습관 말입니다.”
“뭔 소리야. 담배는 그냥 피는 거지…….뭔 놈의 걱정…….”
“담배 끊으셨잖아요.”
박태식의 말을 듣고, 애써 부인하려던 그의 옆에서 태정민이 못을 박는 말을 하자,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지폈다.
“그래…….불안해. 그리고 걱정된다. 고작 열 살 된 아이다. 그 아이가 무슨 잘 못이 있겠어. 다 우리
어른들이 만든 일에 그냥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다. 그리고 지금…….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놈과
함께 있는데, 그 놈이 범인과 관계가 있는 놈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지현이의 곁에 붙어먹은 놈인지…….
그것도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리고 더욱 더 불안한 것은…….우린 아직…….이창민 대사를 죽인 놈이
누군지 모르고, 그 놈이 어디서 지현이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아주 젠장 이지.”
설장호는 자신의 버릇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두 사람에 의해 할 수 없이 자신의 지금 심정을 모두
말하였다.

‘띠리리리’
그리고 곧바로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 내 뱉으며 전화를 받았다.
“추선우의 핸드폰 번호? 그래 불러봐.”
설장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던 박태식과 태정민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할 준비를 하였다.

“010-4462-**** 오케이! 수고!”


추선우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고, 그 번호가 설장호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모두 기록했어? 이 번호가 지금 지현이를 데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추선우란 놈의 전화번호다. 신중히
접근하고, 또 신중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움직였다. 가장 먼저 설장호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웅~’
추선우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가 진동으로 웅웅거리자 화면을 보았다.
“모르는 번호인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이 그동안 제출하였던 이력서에 관하여 해당 회사에서 온
연락일 것이라 믿으며 기쁜 마음으로 받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걸려오는 전화가
진정 면접에 관한 전화일 지언정, 무턱대고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현도 그와 함께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0000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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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 고마워요 삼촌.”
선우는 다시 한 번 지현을 보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지현은 그를 올려다보며 손을 꼭 잡고 답했다.
“자식…….고맙긴. 내가 한 약속이잖아. 이래봬도 삼촌의 꿈이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가는 거야. 그곳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이 내 꿈이야.”
선우는 지현에게 자신의 목표를 말하였다. 생뚱맞게 튀어나온 말이지만, 자신의 꿈이 이런 것이니,
믿어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비록 열 살의 어린 여자아이가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 선우는 자신을 믿고 있는 지현에게 더 큰 믿음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왜 경호원이 되지 않았어요?”
“하…….”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자신의 목표를 말하고 난 뒤, 주먹을 꽉 쥐며 멋있는 척 서 있었고,
곧 지현이 경호원이 되지 못한 이유를 묻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주먹이 자동적으로 힘이 풀려버리고
있었다.
“그게…….세상 살기가 쉽지 않네. 여러모로 갖춰야 할 것이 너무 많더라. 그런데 난 그런 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도전도 해보지 못한 실정이야. 우울하지?”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지현이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될 거에요. 삼촌의 꿈. 꼭 이루어질 것이에요.”
지현이 웃었다. 그러자 선우도 웃었다.

-다행이다…….조금 전의 그 악몽을 다시 잊은 듯하다. 그래…….넌 아직 어려. 고통이라는 것보다는


즐거움을 더 느껴야하고, 절망이라는 것보다는 희망이라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해…….그것이 네
나이에 맞는 생각이며 행동이다. 앞으로 내가 더 조심할게.-

선우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홀로 생각하였다. 되도록 지난날의 악몽 같은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설장호의 전화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곧바로 박태식이 다시 나섰다.

‘우~웅.’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다. 아주 돌아가면서 제대로 실험해 볼 심상인데…….이래봬도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추선우는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며 말한 뒤, 곧 지현의 손을 잡고 설장호 일행이 있는 쪽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 한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에 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시간에 관계없이 이것저것 많이 먹어야 할 나이이기에 어느덧 열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 것에 미안하여 본 것이었다.

“배고프지?”
“네…….”
선우는 물었다. 그러자 지현은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일단, 지금 사정으로 봐서 우리가 편히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닌 듯 해.”
선우는 형사들에게 쫒길 때, 주위에 있던 한 시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민이 지현을 보며 뉴스에 나온
여자아이라고 말했으니, 이미 지현에 대한 정보는 여러 곳에 다 전달이 되었을 것이라 여겼다.
“잠시 기다려. 내가 가서 먹을 것 좀 사올게.”
선우는 지현을 노출 시킬 수 없었다. 지금처럼 그저 평범하게 지나치며, 이동하는 경우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식당 같은 곳은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에, 혹시나 지현의 사진을 본
사람이 있다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선우가 지현을 홀로 남겨두고 먹을 것을 사러 가려 하였다. 하지만 지현은 그의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 있다, 해가지면 그 때 같이 가요. 같이 가서 먹을 것만 사가지고 나와요.”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그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있겠다는 말이었다.
“일단가자. 여기서 시간 보내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가자.”
선우는 지현의 말을 들은 후, 그녀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도착한 곳은
다시 달동네였다.

“오전에 이곳을 수색했으니, 어쩌면 더 안전할 수도 있는 곳이라 여겨서…….”


달동네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지현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달동네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형사들이나 기타, 지현을 찾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 말은 했지만, 일종의 도박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없으면 마음 편히 집으로 향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다시 만난다면 영락없이 잡힐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선우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잘 살피며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다행이 없다.”
다시 연립주택에 도착했지만, 걱정하였던 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택 입구에서서 다시 한 번
위를 올려다보았고, 아래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뭐해?”
“깜짝이야!”
그 순간 선우의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선우는 놀라 주먹을 휘둘뻔 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급히
선우의 뒤로 다시 움직였다.
“왜 그리 놀래? 도둑질했어?”
“도둑질은 무슨. 그냥 술래잡기야 술래잡기. 넌 이제오는거야?”
선우를 아는 체 한 여인은 집주인의 딸인 은주였다. 그녀의 나이 또 한 27 세로 선우와 같았고, 170
센티가 넘는 키에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모의 여인이었다.
무너져가는 달동네에서 그나마 연립주택이나, 몇 땅을 소유한 아주머니의 딸답게 그녀의 외모는
도시적이었다.
“그런데 쟤는 누구야?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아이네.”
은주는 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몸을 낮춰 지현과 눈높이를 함께 하였다.
“이름이 뭐야? 예쁘게 생겼네.”
은주가 손을 내밀며 물었지만, 지현은 선우의 뒤로 더 몸을 숨기며, 그녀의 손이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보다. 집에 아주머니 계셔?”
“아마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아니야. 일단 올라가자.”
선우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행동이 평소답지 않아,
은주마저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에 계단을 올랐다.

“다녀왔어.”
은주가 집에 들어서자, 선우와 지현도 곧바로 함께 따라 들어섰다.
“넌 왜? 여기로 들어와?”
“그럴 이유가 좀 있어.”
“다녀왔어? 어…….선우총각도 왔네.”
“네 아주머니. 그리고 아까 주신…….”
“그보다 오전에 선우총각이 나간 후에 웬 사람들이 찾아왔었어. 직장동료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 직장에
다닌 거야?”
선우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첫 정보를 입수하였고, 그 하나만으로 많은 정보를 입수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 아이…….고아가 아니잖아. 아까 뉴스를 봤는데…….”
아주머니가 지현을 보며 말하자, 곧바로 선우가 아주머니 앞으로 이동한 뒤, 아주머니와 은주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세상에…….그런 일이 있었어?”
은주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집에서 TV 를 통해 지현의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저 아이를 보호하는 거야?”
은주가 물었다.
“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저 꼬맹이를 혼자 보낼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현이가 날 믿고 있어.”
은주는 부엌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어 다시 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 미쳤어? 뉴스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금 저 아이를 찾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야. 대통령과 기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네가 상대가 될 것 같아?”
은주는 도저히 선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내용만을 본다면, 지현을 찾는
인물은 적어도 국가기관이며, 그 모든 지시를 내린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말이었다. 그들로부터 지현을
보호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보호가 아니라 납치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어서 연락해서 저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해. 그래야 네가 살아.”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어. 무엇보다 지현이가 그들을 믿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라고 지현이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보장이 없어.”
“넌 보장이 있고? 정신 차려! 그러다 너까지 죽어!”
은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지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곧 추선우가 은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집주인 아주머니가 지현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아니야…….저 이모가 하는 말은 다른 말이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저 이모가 오늘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너한테 한 말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 알았지?”
아주머니는 진정 엄마 미소를 지으며 지현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선우가 막고 있는
손이 떨어지면 다시 한 번 큰소리 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선우는 애써 은주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와 지현앞에 섰다.
“그나저나…….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도 모르고 하신 말씀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당분간 제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우는 아주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은주의 말로 인하여 상처 입을 지현을 달래주었고, 또 진정으로
지현을 걱정하고 있는 그녀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여길 당분간 떠나있던 뭘 하던, 배불리 먹고 움직여.”
아주머니는 급히 밥을 짓기 시작하였고, 반찬도 새로 만들며,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정말…….이 아이를 보호할거야?”
은주는 여전히 지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말했잖아. 내가 한 약속이야. 그 약속은 지켜야지.”
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고, 지현의 눈빛은 은주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쭈. 어린 얘가 눈빛이 맵네. 어른을 그런 눈으로 보며 안 돼. 그리고 이 아저씨를 뭘 믿고 네가
따라다녀? 그냥 경찰서로 가서 도와달라고 해. 그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
“너부터 말을 예쁘게 해봐. 그럼 지현이의 눈빛도 변할 것 아냐. 그리고 사람이 한 말을 지금까지 뭐로
들었어? 얘가 경찰도 믿지 못한다고 하잖아.”
“뭐야? 나 참. 어이가 없네. 우리 집에서 공짜로 먹고 자고 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고작 하루 밖에
보지 않은 아이의 편을 들어?”
“이건 편드는 게 아니잖아. 제발…….현실적으로 생각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 붙들고 물어봐라. 누가 제정신인지. 어째
싸울 상대가 없어 대통령과 맞짱 뜰 생각을 해.”
은주는 여전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은주의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지현의 눈매는 더욱 더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은주는 아직 뉴스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지현을 국가기관에서 찾는다는
것만은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인 이창민이 죽었고, 그 죽음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가 지현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0000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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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지현을 찾는 사람이 국가기관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 다들 먹어.”
잠시 후, 아주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을 내 놓았다.
“지현이…….많이 먹고 힘내. 그리고 이삼촌 잘 따라다녀. 이 삼촌이 다른 것은 몰라도 싸움은 진짜 잘해.
그리고 착해…….그러니까 지현이를 나쁜 사람들로부터 꼭 지켜줄 수 있을 거야.”
아주머니는 지현을 향해보며 또 다시 엄마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러지 지현도 은주를 바라보는 매섭던
눈빛이 아닌, 진정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넌! 말 좀 예쁘게 해! 겉모습만 예쁘면 뭐해. 머리가 비고, 마음이 차가운데.”
“엄마는 대체 누구 엄마야!”
아주머니의 말에 은주는 버럭 소리치며 다시 지현을 노려보았다.
“지현아. 예쁘게 자라, 그리고 이 이모처럼 겉모습만 예쁜 여자가 아닌, 마음이 예쁜 여자가 돼.
알았지?”
“네…….”
지현은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서 많이 먹어. 배고프겠다.”


아주머니는 지현의 앞으로 각종 반찬과 함께 고기를 옮겨두며 말했다.
지현은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반찬들을 집어먹으며 밥을 먹기 시작하였고, 그 밥을 먹으면서 점점 지현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현의 눈물을 닦아주거나, 말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눈앞에 보이는 지현의 눈물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지현의 머릿속에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픔과 함께, 그동안 부모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슬픈 눈을 한 채, 밥을 먹고 있는 지현이었고, 어린 지현이 더 아픈 마음을 겪지 않도록 모두가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은주는 지현의 행동이 꼴불견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식사를 마친 후, 날이 어두워지자, 선우와 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똘똘하기도 하지. 그리고 꼭…….이 삼촌 곁에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그 나쁜 놈들 다 잡을 때까지.
이 삼촌이 지현이를 지켜줄거야.”
아주머니는 지현의 앞에 몸을 낮추어 앉은 뒤, 눈높이를 맞추며 말하였다. 그리고 지현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지현은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애써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거…….”
아주머니는 선우를 불러, 부엌으로 오게 한 뒤, 선우에게 카드 한 장을 주었다.
“이게 뭐에요?”
“내 카드야. 나이 들어 쓸데도 없어. 지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할거야. 현금을 계속
들고 다닐 수 없으니,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 카드에서 인출해 써.”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이가 어른을 믿는 다는 것은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거야. 아이들은 부모를 믿고 자라. 하지만
지현이는 이제 믿을 부모가 없어. 그리고 모두에게 불신이 생긴 아이냐. 하지만 지현이가 널 믿고 있어.
넌…….적어도 지금 현재는 지현이의 부모와 같은 상황이야.”
선우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진정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보증금을 뛰어넘은 미납 월세도 있는
마당에 자신의 돈을 선 듯 내주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주머니…….”
“꼭…….선우가 내 아들 같아서 그래. 어찌 살다보니, 아빠 없이 은주를 키웠는데, 너도 알다시피 저
년이 머리가 비었어…….그냥 겉모습만 잘 난 년이야. 그런데 넌 아니잖아. 꼭…….훌륭한 인물이 될 것
같아. 그러니 내가 너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고 생각해.”
선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월세로 인하여 괜히 피해 다닌 세월이 미안하였다.
이렇게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인 것을 모르고, 무조건 피해 다니기만 하였으니, 그 미안함은 더욱 더
컸다.
“가 봐…….”
선우는 부엌에서 나왔다. 그리고 27 살 은주와 열 살의 지현이 서로 마주보며 기싸움이라도 하는 듯 한
장면을 보았다.

‘탁!’
“아야!”
그러자 아주머니가 은주의 뒤통수를 쳤다.
“나잇값 좀 제대로 해라…….어디 할 짓이 없어서, 열 살 난 조카뻘 된 아이에게 눈을 후라리고
지랄이야.”
아주머니의 거친 말이 술술 나오자, 지현은 놀란 눈으로 아주머니를 보았다.
“지현아.”
그리고 자신의 딸인 은주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억양과 표정으로 지현을 불렀다.
“잘 가고…….다음에 꼭 아주머니 집에 놀러와야 해?”
“네…….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다시 한 번 지현을 안아주었고, 지현도 아주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선우와 지현은 주인집을 나섰다. 어둑해진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보이고 있었고,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가자…….”
선우는 지현의 손을 꼭 잡고 달동네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유모를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각하. 모두 모였습니다.”
같은 시각. 차현태는 현재 이창민에 관한 사건과 함께, 이지현을 찾고 있는 인물들을 모두 청와대
회의실로 모이도록 하였고, 곧 비서실장이 집무실로 들어와 보고하였다.
“가지.”
차현태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회의실로 향하였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차현태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모두 앉게나.”
차현태가 착석한 후, 말하였고, 모두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차현태는 회의실에 앉은 인물들을 보았다.
회의실에는 국정원장과 함께, 설장호가 있었고, 또 경찰청장과 함께, 박태식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검찰총장은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둔 채, 혼자 앉아 있었으며, 청와대 경호실장과 태정민을 비롯하여
경호원들은 자리에 앉지 않은 채, 모두 서 있었다.
“먼저…….국정원 소속 설장호 실장입니다. 현재 경찰과, 검찰 쪽의 인원을 통솔, 지휘할 인물입니다.”
비서실장이 설장호를 가리키며 말하였고,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개는
국정원장이 직접 하였다.
“그 예하로, 경찰을 대표하여 온 박태식 형사와 우리 청와대를 대표한 경호실 태정민 팀장입니다.”
박태식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태정민도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인사하였다. 태정민은 이미
차현태와 안면이 있기에 별다른 소개가 없었고, 박태식에 관한 소개는 경찰청장이 직접 하였다.
“검찰 쪽은 없습니까?”
국정원과 경찰 쪽의 인원은 보였지만, 검찰 쪽에서 검찰총장만이 자리하고 있기에 검찰총장을 보며 물었다.
‘똑똑.’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비서실장이 직접 문을 열어주자, 20 대 후반의 미모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박태식의 고개가 숙여졌고, 설장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검찰 쪽에서 지원하는 인원을 대표한 강서진 검사입니다.”
그녀는 차현태를 보며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곧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설장호와
박태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외교부장관은 현재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이번 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비서실장이 자리하지 않은 외교부장관을 두고 말했고, 차현태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얼굴 표정들을 보아하니, 나를 제외하고는 서로 간에 모두 안면이 있는 듯합니다. 맞습니까?”
차현태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네.”
설장호가 짧게 답했다.
“무슨 인연으로 만났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차현태가 다시 물었다.
“사실…….이 두 친구는 물론, 저기 서 있는 청와대 경호원 태정민까지 모두 저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래요? 설장호 실장께서 그토록 발이 넓은 사람인지 몰랐군요.”
설장호의 말에 차현태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발이 넓다기 보다…….제가 워낙 오지랖이 넓어 이일 저일 다 뛰어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박태식 형사나, 강서진 검사. 그리고 태정민 경호원을 모두 알았습니다. 또 한…….저 세 친구가
저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설장호는 세 사람의 우월함을 말하였고, 차현태는 그 말을 들은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설장호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차현태는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리고 박태식과 강서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을 경호하는 태정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태정민이 인정하는 인물이니,
그만큼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서론은 이쯤에서 접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지금…….지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통성명을 하는 시간에는 차현태의 표정이 온화한 듯 보였었다. 하지만 곧 본론으로 들어가, 지현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그의 표정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현재. 이지현의 위치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지금 현재도 서울 시내 모든
CCTV 를 감시하여 행방을 쫒고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넓은 지형에 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단축하세요. 지난밤의 사건으로
인하여, 아직도 공포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움직이는데,
홀로 움직이는 여자아이 하나 찾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지현양은 혼자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가 그의 말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여겨 말한 뒤, 한 편으로는 홀로
움직이는 지현을 찾지 못한 것에 답답함을 나타냈다. 그러자 설장호가 곧바로 다시 답했다.

“지현이가 혼자 움직이고 있지 않다? 그럼 동행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차현태가 다시 물었고, 설장호가 답한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빔 프로젝트에 자신이 들고 있는
스마트기기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회의실 조명을 조금 어둡게 만들었다.

0000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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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실 파일은 현재 이지현양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 된, 한 사내에 대한 보고입니다.”
설장호가 브리핑을 하기 위하여 앞쪽으로 섰고, 빔프로젝트에서 아직 화면이 송출되지 않고 있을 때,
모두를 향해 보며 말했다.
‘팟’
그리고 이내 화면이 송출되었고, 한 장의 이력서와 같은 내용처럼 보이는 서류가 떴다.
“무엇입니까?”
차현태가 화면을 보며 물었다.
“국정원의 수사팀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이 파일은 현재 이지현양과 함께 있는 사내의 신상기록입니다.
이름 추선우. 나이 27 세. 무직이며, 지금까지 사회경험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백수입니다.”
차현태는 화면을 보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상적인 외모를 지녔습니다. 키도 크며, 신체적인 불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곧 다음 차트로 넘어가며 설장호의 말이 끊겼다. 그리고 모두의 눈은 화면에 뜬 차트를 보았다.
“그가…….지금까지 약 5 년간 인터넷을 통해 국내 경호업체에 보낸 이력서들입니다.”
선우가 경호원이 되기 위하여 국내 모든 경호업체의 홈페이지에 작성한 이력서 내용이 떴다. 모두는 그의
이력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실수를 범할 뻔 한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이력서 내용은 너무나 간단하였다.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 마지막으로 자신의 최종학력이
적혀 있었다. 가족관계란에는 무(無)라는 한 글자만 적혀 있었고, 그마저도 한자가 틀렸다. 또 한 학력
란은 단 한 줄을 적어두었고, 사회 이력란은 모두가 공란이었다.
“그 사내가 지현양을 인질로 데리고 있는지…….아니면 보호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
것입니까? 그리고 차트를 보니, 우리 청와대 경호실에도 이력서를 보냈었군요.”
그의 이력서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화면을 보며, 차현태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선우는 국내 사설
경호업체는 물론, 청와대 경호실에까지 이력서를 보낸 인물이었다.
“네. 아직 이 사내가 어떤 의도로 지현양과 함께 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청와대 경호원 특별 채용이 있었는데, 그 때 들어온 이력서입니다.”
차현태의 말에 경호실장이 답을 주었다.
“우리 청와대에 이력서를 보낼 정도면 그에 맞는 실력이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오지
못한 것을 보니 낙방한 모양인데. 그래…….어느 부분이 부족하던가요?”
차현태는 경호실장의 말을 들은 후, 그를 향해 보며 물었다. 그러자 청와대 경호실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경호 실장. 왜 답이 없습니까?”
“사실…….면접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차현태는 경호실장의 말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서류…….면접에서 낙방 처리를…….”
“네? 무슨 말입니까? 서류면접에서 낙방이라니요? 그럼…….이력서 내용만보고 면접도 보지 않은 채,
낙방시킨 것입니까?”
“네…….죄송합니다.”
‘쾅!’
차현태의 표정이 조금씩 매섭게 변하고 있었고, 이내 경호실장의 확답이 들리자, 그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호 실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회의실 안에 앉은 모두가 놀란 눈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지금…….내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한, 나의 정책에 대해…….경호실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정책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이내 차현태의 큰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회의실에 울려 퍼졌고, 모두는 고개 숙여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하다고 끝날 일입니까! 내가 뭐라 했습니까! 이 나의 경제를 이끈답시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대기업들이 실천으로 옮기고 있지 않으니, 적어도 국가기관에서라도 새로운 인재를 등용할 때,
학력과 집안 환경은 철저하게 배제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서류면접이라는 단계도 없애라고 했습니다.
그깟 종잇조각 하나로 어찌 사람을 평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서류면접이 아닌, 직접 얼굴을 보며,
그 사람의 현재 가치를 중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내가 한 말을 어찌 내 곁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이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차현태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지며, 회의실에 모인 모두의
표정이 굳어지게 만들었고, 심장은 빠른 속도로 뛰게 만들었다.
“비서실장님.”
“네. 각하.”
“지금 즉시. 올해 년도, 각 공기업 및 국가기관의 신입사원 기록을 가져오세요. 내가 직접! 모두
확인하겠습니다!”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그저 이창민의 사건으로 인하여 모두 모였고, 그의 딸인 지현을 현재
데리고 있는 추선우의 파일 하나가 공개되었지만, 그 파일하나로 전혀 다른 방향에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그에 따른 지원 자격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검찰과 경찰처럼 특별히 그에 맞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 기관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외적인
모든 곳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학력제한 및, 가정형편에 대한 모든 자격조건을 빼십시오!”
“알겠습니다.”
차현태의 눈매는 진정 매서웠다. 자신이 내세운 정책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실천되지 않았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그였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올라온 모든 결재서류마저 거짓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설 실장, 계속하세요.”
잠시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차현태는 브리핑을 하고 있던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보신 내용대로, 추선우는 자신이 입사원서를 넣은 모든 곳에서 단 한 번의 전화도 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조금 전, 각하께서 말씀하셨던 학력 및 기타 제안을 먼저 따져보고 사람을 뽑는 현상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이어졌고, 차현태의 표정은 더욱 더 일그러지며, 그의 표정변화만으로 그 곳에 앉은
모두는 가시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일단. 이 추선우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받지 않고 있기에, 저희쪽 뜻을 그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넣었다면 해당 회사에서 온 연락이라 생각하고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설장호의 말이 이어졌고, 곧 차현태가 다시 물었다.
“네. 통상적으로 그렇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저를 비롯하여 경찰 쪽의 박태식과 태정민도 연락을 해
보았지만, 수신음만 갔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신 것은 있습니까?”
“아무래도…….지현양이 추선우에게 다른 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말?”
“네,”
“무슨 말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차현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쉽게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 물었다.
“일종의 믿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믿음?”
“네. 사건의 초기로 다시 넘어가 생각하면, 이런 답변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사건 초기. 공항에
도착하여, 이창민대사 부부와 이지현양을 태우고 운전한 사람은 대사부부와 15 년을 함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운전사는 돌변하여 차량을 외진 곳에 세웠고, 곧 자신은 차에서 내린 뒤, 다른 사람을 차에
타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이미 그 현장을 녹화한 CCTV 를 통해 모두 보신
내용입니다.”
설장호의 말을 모두 들은 후, 믿음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가는 차현태였다. 15 년간 함께 한 운전사라면,
지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지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배신한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믿음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사라진 지현이가 어째서 처음 보는 추선우란 사내를 따라다니며, 또 그에게 자신을
보호하도록 부탁했을까요? 그리고 추선우란 인물은 왜 지현을 데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에 대한 답도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앞 서 말씀드렸듯이 아직 그 내용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지현양이 추선우라는 사내의 곁에서 그를 믿고 따르고 있는지, 또, 추선우는 무슨 생각으로 지현양을
데리고 다니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차현태의 이어지는 물음에 설장호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꼭…….지현양이 그 사내를 믿고 따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조용하던 순간, 검찰총장이 입을 열었다.
“이유는요?”
차현태가 물었다.
“지현양에 대해서는 이미 전국적으로 뉴스를 통해 보도가 되었습니다. 살해당한 이창민 대사의 유일한
핏줄이라는 것도 알려졌고, 또 사진도 배포가 되었습니다.”
회의실에 앉은 모두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국정원에서 알아냈다는 그의 정보.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뻔 한 답이 나옵니다. 나이 27 세에 무직,
통장잔고 30 원. 그리고 정부에서 찾고 있는 여자아이…….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바로 돈입니다.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졌으니, 충분히 지현양의 몸값으로 엄청난 금액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차현태를 보았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와 태정민, 그리고
박태식의 표정은 검찰총장의 말에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참…….총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묻고자 한 것이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차현태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그는 검찰총장을 보며 말했다.
“무엇입니까?”
“오늘 낮. 뉴스에서 지현양의 사진까지 배포가 되었더군요. 누구의 뜻으로 배포된 것입니까?”
“제가 내린 명령입니다. 유일한 목격자이며, 이창민 대사의 유일한 핏줄이기도…….”
“지금!”
“!!!”
검찰총장이 차현태의 질문에 어깨에 힘을 주며 답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차현태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놀란 눈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0001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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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지현양을 찾고 있는 사람이 우리뿐이라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진정 그렇게 생각하여 사진까지
배포한 것입니까?”
“…….”
차현태의 차가운 눈빛에서 나오는 으름장과 같은 어투에 모두는 아무런 말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이창민대사를 죽인 놈…….한 놈인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 모르는 그 놈들도
지금! 지현양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 놈들이 지현양의 모습을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지현이라는 열
살 된 여자아이에 대해 모를 수도 있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차현태가 흥분한 이유였다. 그의 말처럼 그들은 이창민만을 살해할 목적일수도 있었고, 또 한 부부만을…
….그리고 그 가족을 모두 죽일 목적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는 것이었다. 이지현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다는 상황을 두고 일을 진행했어야 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차현태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뉴스가 보도된 후, 길거리에서 이지현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을 때, 이미 추선우가
혼잣말로 격하게 중얼거렸던 말이기도 하였다.
“죄…….죄송합니다. 단지…….공포에 떨며 어디에서 움츠려 있을지 모를 이지현양을 생각하여,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고자 한 결정이었습니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미처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검찰총장은 고개 숙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서두르세요. 추선우에 관한 것도 더 많이 알아보고, 또, 만에 하나 진정 추선우가 이지현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린 그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지현양이 현재 유일하게
믿고 있는 사람이 그라면…….그를 돕고, 또! 아직 밝혀내지 못한 범인도 서둘러 밝혀내세요! 그들보다
먼저…….우리가 지현양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차현태는 계속하여 소리쳤다. 진정 국정업무보다 더 급한 사안으로 다루는 듯 한 그였다. 대통령으로써
나랏일을 하고 돌아온 사람을 챙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자신이 할 일은 모두 하는
인물이었다. 국정운영에 전혀 차질이 없도록 이 사안을 다루고 있는 인물이었다.
“범인을 알아내기 위하여 움직이는 부서는 서둘러 알아내고, 또 이지현양을 찾아 보호해야 할 팀은
하루라도 빨리 이지현양을 찾아 보호하세요. 그리고. 추선우에 대한 생각도 여러 방면으로 해 보세요.
그가…….지현이의 몸값을 요구할 목적이 아닌…….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생각하며, 지현이의 경호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는 조용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한 목소리가 아닌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추선우에 대한
말을 하였을 때, 경호실장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꿈. 바로 경호원이었다. 5 년 동안 수십 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그 답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차현태의 말처럼 추선우는 자신의 꿈을 위해, 지금 지현을 경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두르세요.”
“네! 알겠습니다!”
계속하여 흥분하며, 소리쳤던 차현태의 마지막 말에는 힘이 없었다.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부탁과 같은 명령을 내렸고, 그 즉시 모든 부처의 수장들과 관련 인물들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리’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20 시 30 분. 성북동 북정마을 앞 도로에서 지현양이 CCTV 에 포착되었습니다.”
“뭐! 북정마을!”
설장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20 시 47 분. 17 분이 지났다. 북정마을에서 어디로 이동하였는지, 바로 확인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은 설장호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만을 보고 있었다.
“움직일 준비하지. 지현양이 다시 북정마을에서 움직인다.”
“북정마을요? 우리가 오전에 수색했던 곳 아닙니까?”
설장호의 말에 박태식이 다시 물었다.
“그래. 우리가 수색했던 곳이지. 그리고 지금 추선우가 그 곳을 다시 찾았다. 그는 이미 우리가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움직인 것이다. 의외로 잔머리 굴리는 놈 같은데…….나 설장호를 우습게 보지마라
추선우…….”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곳에서 가장마지막에 철수한 조직이 바로 설장호의 국정원이었다. 설장호는
물론, 박태식과 태정민이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렸다면, 그곳에도 사람을 심어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잡을 수 있었던 추선우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일단 태식이 너는 다시 북정마을로 가서, 그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나 봐. 추선우가 북정마을로
돌아갔다면 아마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났을 것이야. 그리고 그 아주머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설장호의 명령을 들은 후, 곧바로 움직이려 하였다.
“나도…….박형사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순간, 검찰 쪽 지원인물인 강서진 검사가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검사와 형사는 같이 움직이지 않나요? 그러니 박형사가 움직이면, 그 현장 지휘를 제가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해서요.”
설장호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박태식은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이지 마라. 어차피 너의 상관이다. 네가 아무리 뛰어나도, 넌 형사고 서진이는 검사야. 명령에
따라야지. 그래 같이 움직여라. 하지만…….만에 하나 그 어떤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 즉시 연락하는 것을
잊지마라.”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지만, 박태식은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장호를
보며, 뭔가 깊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한 표정과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의 인연이 참 우습지…….”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우리도 움직이시죠.”
설장호와 함께 태정민이 두 사람을 보았고,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경호실에서는 이제 너 혼자 움직일 거야?”
“아닙니다. 경호실장님께서 지목한 인원 다섯 명이 같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래.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리고 그 머릿수에 대해 쪽팔리는 일은 만들지마라.”
“우리 청와대 경호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쪽팔리는 일은 절대 만들지도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국정원에서나 쪽팔린 경험 하지 마십시오.”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정확히 그 말을 다시 되돌려주는 한 방을 먹였다. 그리고 곧 설장호의
팔짱을 끼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창민대사 부부의 장례식에 참석은…….”
모두가 나간 후, 회의실에 홀로 앉은 차현태에게 비서실장이 물었다.
“가봐야죠. 그리고 발인 때, 대사의 영정사진은 누가 듭니까?”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고, 다시 물었다. 유일한 핏줄인 지현이 없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창민대사 부부내외는 모두 고아입니다. 훌륭하게
자라신 분이지만,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세상천지 단 세 명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지현양만이 상주가 되어 있습니다.”
차현태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세상천지 등 붙일 곳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만들었고, 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하루아침에 생을 달리한 가족이었고, 그 장례마저 편히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상주인


이지현은 자신이 상주라는 것을 모르는 이제 고작 열 살의 어린아이였다. 더군다나 자신이 자신 부모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발인 때…….특정한 일정 없으면 시간 비워두세요. 영정사진은 내가 직접 들겠습니다.”


“네? 그건 안 됩니다 각하! 어찌…….”
“뭐가 안 된다는 것입니까! 대통령이면, 함께 일한 동료의 영정사진은 들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쓸데없는 법이라도 있다면 당장 개정하세요! 젠장!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쓸데없는 법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이 이제 없는 듯합니다.”
차현태는 또 다시 흥분한 상태로 소리쳤다. 그리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각 부처는 이번 사건의 단 하나의 단서라도 찾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꼬박
하루가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 이창민의 차를 운전한 운전기사의 행방은 물론, 직접 살인을 저지른
인물로 판단되는 CCTV 에 찍힌 인물의 신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북정마을을 오르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북정마을 입구에 도착한 박태식이 그에게 보고한 후, 달동네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있다니…….”
박태식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강서진의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녀는 진정 화려한 집안에서 자란
여인이기에,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인 광경이 서울인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곳도 서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서울시민입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시고, 진정 같은
시민을 보는 눈빛으로 대하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박태식이 말하였고, 곧 서둘러 더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은 쉽게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투피스의 치마정장에 굽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그런 복장으로 오르막을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태식은 그녀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오로지 꼭대기에 있는 다 쓰러질 듯한 연립을 향해
움직였다.

“삼촌. 어디로 가는거에요?”


한 편. 북정마을을 이미 벗어난 선우와 지현이었다. 지현은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번쩍거리고 있는 도심을
본 뒤, 선우를 향해 물었다.
“삼촌이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만나고 서울을 벗어나자.”
선우는 지현의 물음에 웃는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삼성역 일대였다.
지현의 눈에는 모든 간판들이 너무나 화려해 보였다. 번쩍번쩍 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오색찬란하였다.
그리고 지현의 눈에 보인 대부분의 간판은 유흥업소의 간판들이었다.

“어이! 선우!”
잠시 동안 그 일대에 서 있었고, 곧 한 여인이 손을 흔들며 선우를 불렀다. 선우는 그녀를 보며 손을
들었고, 지현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그녀는 거의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굽 높은 힐을 신고 있었고, 얼굴은 화장으로 몇 겹을 칠한 듯, 진정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쩐 일이야?”
“당분간 너를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작별인사를 하러왔어?”
“어디가? 그리고 저 얘는 누구야?”
그녀의 눈에 지현이 보였다. 자신을 노려보는 듯 매서운 눈빛을 하면서도 선우의 뒤로 숨어 있는
지현이었다.

0001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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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신세가 비슷해져버린 아이야.”
“우리랑 신세가 비슷해져버린 아이? 그게 무슨 말이야. 고아면 고아지, 비슷하다는 말은…….”
“일단 긴 말은 하지 못해.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우리가 한 약속도 잘 기억하고, 오래전 떠나온
고아원 식구들을 모두 다시 만나는 날에는 서로가 떳떳하게 자신의 명함을 줄 수 있는 날이 되자는 약속.
그 날까지만 너도 이런 일을 하는 거야. 알지?”
그녀는 선우를 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선우의 말처럼 그녀도 선우와 함께 오래전 문을 닫은 고아원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당시 고아원을 떠나온 사람들 중, 선우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여인이었다.
“무슨…….일인데?”
그녀는 선우의 말을 들은 후, 신중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우리의 약속만 지켜줘. 나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담배냄새와 술 냄새가 아닌, 여인의 향기를 맡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진정 그녀는 선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응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다시 지현을 향해 보았다.
“그래…….약속 지킬 거야. 그러니 너도 조심해.”
무슨 사연인지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애써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은
뒤,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야! 빨리 들어와! 지정손님이야!”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는 선우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한 사내가 주점에서 뛰어나오며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선우의 뒷모습을 보며 그 사내와 함께 주점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그 언니 누구에요?”
선우의 손을 잡고 전철역으로 향하던 지현이 선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삼촌의 친구. 아주 오래전의 친구이며, 지금도 삼촌에게서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야.”
“가족?”
“그래.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삼촌은 고아원에서 자랐어. 그리고 조금 전, 그 친구는 삼촌과 같은
고아원에 있었고,”
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고 걸으며, 자신의 과거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지현은 표정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고아…….그 말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세상에 자신의 핏줄이 있을 것이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고아…….그리고 지금은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된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와는 다른 고아였다. 선우는 훗 날, 자신의 핏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있을
것이지만, 이제 지현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그냥…….혼자가 되어버린 것을 열 살 나이에 알게 된 지현이었다.
두 사람은 삼성역에 도착하였고, 곧 전철을 타기 위하여 내려갔다.

“선우총각 없는데요.”
같은 시각. 박태식은 주인집을 찾았고, 곧 아주머니가 그를 보며 오전과는 다른 눈빛을 하며 답하였다.
“어디로 갔는지…….”
“내가. 세 들어 사는 총각이 어디로 가는지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진정 오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박태식은 필시 주인아주머니가 추선우를 만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 역시, 이들이 오전에는 선우의 직장동료라고 했지만, 지금은 동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차갑게 나가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지금 범인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박태식의 뒤로 서 있던 강서진이 아주머니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범인요? 이봐요! 선우가 뭘 잘 못했는데, 범인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정확히 죄명이 밝혀지지 않는
한, 범인이라는 단어가 아닌, 용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되지 않나요?”
“…….”
강서진과 박태식은 멍하니 있었다. 강서진의 범인이라는 단어 하나에 두 사람을 쏘아보며 말한 인물은
은주였다. 그리고 그녀는 독한 눈빛으로 강서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요. 난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검사는…….”
“검사면! 무고한 시민을 그냥 범인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고 다녀도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선우의 죄명이
뭡니까? 죄명이 무엇인데, 범인이라고 단정하며 소리치는거에요!”
밀리지 않았다. 강서진의 말에 은주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은주와 함께
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추선우와 연락이 된다면, 꼭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박태식이 애써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돌리려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인사한 뒤, 강서진을
끌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뭐야. 재수 없게. 검사면 저딴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나간 후, 은주는 큰 소리로 말했고, 그녀의 말은 문 앞에 서 있던 강서진의 귀에 들렸다.
“젠장…….어디서 못 배운 여자가 감히 나한테…….”
“성격 좀 고치십시오. 저 여자 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저 여자 분이 못 배운 사람인지 어찌 아십니까?
제발…….사람의 주위환경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못된 습관을 좀 버리십시오.”
박태식은 문 앞에서 씩씩거리며 서 있던 강서진을 보며 말한 뒤, 서둘러 연립주택을 내려오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래.”
같은 시각. 아직 어느 지역을 선택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던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삼성역입니다! 조금 전, 삼성역 CCTV 에 지현이 잡혔습니다. 3 분 전입니다.”
“오케이!”
설장호는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태정민도 함께 덩달아 서둘렀다.
“삼성역에서 지현이 포착되었다. 넌 서둘러 태식이에게 연락하여 움직이도록 하고, 넌 국정원에 연락해서
2 호선 일대 모든 역의 CCTV 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보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동 중, 태정민을보며 박태식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도록 한 뒤, 국정원 소속 부하직원에게는 2
호선의 모든 역 CCTV 를 실시간 보고하도록 명령 내렸다.
“강 검사님 가시죠! 추선우와 지현의 위치가 포착되었습니다!”
박태식은 태정민에게 연락을 받은 후, 여전히 씩씩거리고 서 있던 강서진에게 말하였고, 그제야 강서진은
연립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위치가 저들에게 발각된 모양이네…….병신같이 고작 어린아이 하나 데리고 제대로 숨어 다니지도


못해!”
박태식의 큰 목소리는 집안까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은주는 격한 말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늦은 시간이지만, 전철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지현은 선우의 손을 꼭 잡은 채, 그의 곁에서 단 한


걸음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주위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괜찮아. 삼촌이 있잖아.”


선우는 불안해하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꽉!’
그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지현의 손아귀 힘이 갑자기 강하게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왜? 어디 아파?”
선우는 곧바로 몸을 낮추어 지현의 눈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지현은 선우의 눈을 보지 않은 채, 어느 한
방향을 보며 심하게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선우는 지현이 보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지현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무슨…….일이야? 왜 그래? 지현아.”
‘와락!’
다시 한 번 지현의 안부를 묻자, 지현은 선우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사람…….”
“!!!”
단 한마디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의 눈빛은 변하였다. 또 한 자신의 몸에서 소름이 돋는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디에 있어?”
선우는 지현을 안은 채, 그녀의 귀에 대고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물었다.
“앞에…….”
지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선우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다시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시선높이에서는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갈색 점퍼…….”
다시 들린 지현의 한 마디에 선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약 5 미터 정도 앞으로 서 있는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를 보았다.
선우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살며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약 50 대의 사내로, 흰머리가 곳곳에 나 있었고,
얼굴에 주름도 꽤 많아 보였다.
“누구야?”
선우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현에게 물었다.
“운전기사…….”
“!!!”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겁이 난 것은 아니었다. 운전기사라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
같은 전철에 탈 확률은 희박하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시끄러운 때에 얼굴을 내놓고 서울 일대를 돌아다닐
정도의 강심장은 아닐 것이었다.
즉. 지현의 말처럼 그가 진정 운전기사가 맞는다면,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 내렸기에,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선우였다.
“옷만으로 그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어. 네 눈높이에서 저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잖아.”
선우의 말 대로였다. 지현의 눈높이에서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 점퍼…….아빠가 운전기사에게 선물한다고 해서, 내가 직접 고른 점퍼에요.”


“!!!”
지현의 한마디에 그가 지현이 말한 운전기사라 믿었다.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직접 선물한 옷을
기억하고 있던 지현이었다. 그리고 운전기사는 자신과 함께 15 년을 함께 한 사람이 준 옷을 입고, 남은
생존자마저 잡고자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0001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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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전철에서 내리자. 삼촌이 안을 테니, 눈을 감아. 절대 저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지 마. 그렇게
할 수 있지?”
선우는 지현을 보며 말했고, 지현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선우의 말처럼 그 순간 지현은
곧바로 눈을 감았다.
선우는 전철이 곧 정차한다는 방송을 듣고, 지현을 올려 안았다. 지현은 고사리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선우는 내리는 방향으로 섰고, 곁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 역시 선우와 함께,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섰다.

-이번 정차할 역은 역삼. 역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선우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곁눈으로 여전히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지현을 더 꽉 안았다.

‘스르르륵’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렸다. 선우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틈을 이용하여 침착하게 함께 내렸고, 역시
곁눈으로 옆을 보자, 갈색점퍼의 사내도 함께 내렸다.

-몇 명인지 모르겠군. 저 아저씨 한 명이라면 따돌리는 것은 쉽다. 상대하는 것도 쉽다. 문제는 이곳에
한패가 있다면, 지현이 위험할 수 있다.-
선우는 사람들 틈에서 이동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였고, 또 갈색점퍼의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사내는 선우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어디 역이야?”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곧바로 물었다.
“역삼역입니다. 현재 CCTV 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역과 연결된 CCTV 화면을 실장님
스마트기기로 연결하여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함께 서둘러 역삼역으로 향하였고, 향하던 중, 태정민은 박태식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팟’
그리고 곧 스마트기기에 역삼역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설장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추선우…….”
그리고 그 화면에 추선우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지현을 꼭 안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즉…….추선우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받았던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설장호는 이동 중, 스마트기기에 뜬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모든 인원이 역삼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국정원 소속 인원들과 함께, 경호원들이 서둘러


내려서 역삼역으로 향하였지만, 설장호와 태정민은 차량에서 내리지 않은 채, 계속하여 영상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추선우를 기준으로 좌측 15 도, 갈색점퍼, 우측 30 도 검은색 정장. 역시 우측 33 도 청바지에 티셔츠,


후방 5 미터 청색 운동복…….지금까지 이동하며 계속 본 영상에서 추선우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공통된
사람들입니다.”
태정민은 자신이 본 영상 속 화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여 설장호에게 말했다.
“역시…….네 눈에도 보였어? 정확하다. 네 명…….우리가 이동 중, 접한 영상에서 정확히 추선우의
주위를 돌고 인물들이다. 그럼 추선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린 이유는 이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 갈색점퍼…….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얼굴이지 않아?”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도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를 주시하여 보았다.
“잠시만요…….”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이리저리 뭔가를 찾았다.
“이 놈…….”
“!!!”
그리고 설장호가 들고 있던 스마트기기 옆으로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찾은 사진 한 장을 대조하였다. 그
순간 설장호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이창민 대사의 차량 운전기사, 이장구다. 아주 제대로 걸렸군. 모두에게 바로 알리고, 추선우와
지현양의 주위로 붙도록 해, 그리고 이 네 명에 대해서 주시하고, 갈색점퍼는 현행범으로 현장 체포를
명한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도 차량에서 내려 역삼역으로 향하였다.

“사람이 너무 많다.”
같은 시각. 박태식의 경찰병력과 설장호의 국정원, 그리고 태정민의 경호원들까지 역으로 다 내려왔다.
하지만 박태식의 말처럼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는다.-

모두가 어디부터 움직여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각자의 귀에 착용하고 있던 블루투스를 통해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역삼역 안에 추선우와 이지현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미 우리보다 먼저 그 두 사람에게
붙은 놈들도 있다. 바로 이창민대사의 운전기사인 이장구와 함께, 아직 신원파악이 되지 않은 세 명. 그
네 명이 지금 두 사람의 곁을 맴돌고 있다. 지금부터, 갈색점퍼의 사내, 그리고 키는 약 190 센티
정도되는 검은 정장을 입은 놈.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놈. 마지막으로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놈.
이 네 놈에게 붙는다. 그리고 갈색점퍼. 그 놈은 이창민 대사의 운전기사니, 현장에서 절대 놓치지마라.-

모두의 귀에 설장호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추선우와 이지현을 잡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에게


접근하고 있는 의문의 사내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지현아…….삼촌이 뛸 거야. 그러니 더 꼭 잡아.”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추선우가 지현에게 말했다. 그는 역삼역을 바로 나가지 않고, 같은 곳 일대를
조금 돌았다.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이 본 것처럼, 자신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네 명을 보았다.
‘각기 다른 곳에서 조여 오겠다? 하지만 생각을 잘 못했어. 나를 막으려면 오히려 한 곳에서 모여 나를
덮쳐야 너희들이 이긴다.’
추선우는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른 눈빛을 하며 중얼거렸고, 곧 정확히 자신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네
사람을 순식간에 돌아보며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젠장…….눈치 차린 모양인데요. 이대로 그냥 덮치죠.”


정확히 자신들만을 빠른 속도로 보며 지나쳐가는 추선우의 눈빛을 본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말했고,
모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꽉 잡아 지현아!”
“!!!”
선우가 소리쳤고, 그 소리는 역삼역 안으로 들어선 설장호와 태정민, 박태식의 귀에도 그대로 들렸다.
“모두 움직여!”
설장호의 큰 목소리도 그 순간 함께 들렸고, 추선우의 눈빛은 정확히 설장호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었어!”
그리고 선우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그의 옆으로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서며
말하였고, 선우의 눈빛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퍽!’
“!!!”
하지만 오히려 선우의 돌려차기 한 방에 그가 나가 떨어졌다. 지현을 안고서도 그의 몸은 무척 가벼웠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자자마, 곧바로 몸을 돌려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고, 나머지 세 명도 빠르게 선우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전철이 들어서는 방송이 들렸다. 그리고 추선우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세 명을 고루 보았다.


“네 놈은 누구냐? 누군데 우리 일에 끼어든 것이냐?”
잠시 후, 쓰러져 있는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사내를 지나치며, 청바지를 입은 사내가 다시 선우의 앞을
막으며 물었다.

“나? 난…….지현이의 삼촌이며, 지현의 경호원이다!”

‘퍽!’
그 역시 한 방이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 마저 눕힌 뒤, 시선을 돌려 다시 설장호를 보았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다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차 곧 출발합니다.-
도착한 열차가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선우는 전철문 입구에 섰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향해 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보았다.
“태정민. 경호원을 데리고 전철에 탑승해라. 그리고 박태식. 경찰들과 추선우를 쫒는 이놈들을 모조리
잡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선우와의 눈빛을 끊지 않은 채, 두 사람에게 명령 내렸고, 곧 태정민은 전철 문이 닫히기 전,
경호원들과 함께 서둘러 전철로 올라탔다. 그리고 선우도 지현을 안은 채, 전철로 올라탔고, 곧바로 전철
문이 닫혔다.

“어이…….아저씨들은 우리와 볼일이 있을 것 같은데.”


선우의 주위를 맴돌았던 세 명의 사내와 이장구중, 이장구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는 서둘러 전철 문이
닫히기 전, 전철에 승차하였지만, 나머지 두 명은 추선우에게 일격을 당해, 쓰러져 있는 바람에 전철
안으로 승차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곧 그들의 뒤로 박태식이 서며 말했고, 그의 주위에는 십 수 명의
형사들이 서서 네 사람을 보고 있었다.
“태정민. 넌 지금부터 추선우를 전담 마커 한다. 그가 어디서 내리는지 확인하고. 지현양의 상태를
확인해서 보고해. 그리고 네 놈 중, 이장구와 거구의 검은색 정장을 입은 놈이 함께 전철에 함께 탔다.
이장구는 갈색점퍼에 약 50 대 초반의 사내다. 명심해라. 그 놈. 이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놈이다. 절대 놓치지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전철에 올라타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추선우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임무는 태정민에게 넘겨주었다. 비록 중요한 단서를 지니고 있는 이장구마저,
아슬아슬하게 전철에 올라타면서 그를 놓쳤지만, 누구의 사주를 받고 움직였는지는 알아볼 수 있는 두
명의 사내는 박태식에 의해 잡혀 있었다.
“일단 이 놈들은 모두 연행하고, 나머지는 서둘러 2 호선의 노선을 따라 이동한다. 추선우와 지현이가
사당역방향으로 향한 전철을 타고, 역삼역을 빠져나갔고, 중요단서를 쥐고 있는 이장구마저 전철을 탔다.
비록 태정민과 함께 청와대 경호원들이 함께 승차하였지만, 어떤 일이 전개될지 모른다. 모두 지원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박태식을 보며 말했다. 그 즉시 박태식은 몇 형사들에게 현장에서 체포한 두 명을 연행토록 명령
내렸고, 서둘러 강서진과 함께 2 호선의 이동 노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0001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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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를 얻어 전철을 세우는 것이…….”
명령을 내린 후, 형사들에 의해 끌려가는 두 명의 사내를 보고 서 있던 설장호를 보며 국정원 소속
부하직원이 말했다.
“쓸데없는 공권력이다. 너의 말처럼 지현양을 구하고자 전철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피해보는 사람은 수백 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일일이 이 사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승객이 있을 경우…….이런 복잡해진다. 그게 지금 현실이다.”
설장호는 현실을 말했다. 전철 안에는 위급상황시 열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그
위급상황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지 않는 한, 그 위급상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 역마다 설치되어 있는 모든 CCTV 를 전철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촬영하도록 집중시켜.
그리고 추선우와 이지현, 그리고 운전기사와 검은색 정장의 사내가 어느 역에서 하차하는지 정확하게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 국정원 수사팀에 연락하여 2 호선 내에 설치된 모든 CCTV 를 집중하도록 명령 내렸다.

“화려하더군. 추선우…….지현을 안고 그런 몸놀림이라니…….사실 조금 놀랐다.”


설장호는 조금 전 있었던 추선우의 움직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역삼역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역삼역은 한 차례 소란으로 모든 승객들이 어리둥절해 있었고, 경찰쪽 인원과 국정원쪽 인원 몇 명이
역삼역 관계자를 통해 해명하는 방송을 하였다.

“모두 천천히 앞으로 이동한다. 우선적인 타깃은 갈색점퍼를 입은 50 대 초반의 사내와 190 센티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다. 그리고 차선이 추선우와 이지현이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열차의 마지막 꼬리부분에 승차하였다. 그리고 점차 앞쪽 칸으로 이동하며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지현아. 괜찮아?”
열차가 출발한 후, 한 참이 지나서야 선우는 지현을 보며 물었다. 그제야 지현은 눈을 뜨며 선우를
보았고, 그를 와락 안았다.
“삼촌은…….괜찮아요?”
“나? 난 괜찮지. 이래봬도 삼촌이 좀 강해.”
선우는 지현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전철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조금 전. 그 놈 뭡니까? 그냥 여자아이 하나라 하지 않았습니까?”


한 편. 운전기사인 이장구와 함께 전철에 어렵게 몸을 실은 검은 정장의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들 또 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열차의 앞부분에 타 있었고, 추선우와 지현이 승차한 열차의 중간부분을 향해 보며
서 있었다.
“처음 보는 놈이다. 그리고 조금 전 역삼역에서 우리의 동태를 미리 파악한 듯, 국정원과 경찰들이
있었다. 심지어 청와대 경호원들까지 보였다. 일이 더럽게 꼬여가고 있어. 그저 뉴스를 통해 지현이 그
차량에 있었고, 살아있다는 것을 안 후, 어렵게 따라붙었는데…….젠장.”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의 물음에 이장구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말하였다.
“국정원? 청와대 경호원? 그들이 국정원 소속이며, 청와대 경호원이라는 것을 어찌 압니까?”
“예전. 이창민대사를 따라 함께 간 자리에서 보았던 놈이다. 국정원 비밀수사팀 실장, 설장호…….아주
기억 속에 딱 박혀 있는 놈이었지. 그리고 대사를 따라다니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인물. 바로 대통령.
그와 함께 붙어 있는 인물쯤이야 단번에 알 수 있지.”
이장구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두 인물에 대해 말하였다. 이 역시 외교관의 차량을 운전하는 인물이
우연찮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라 말하였다.
“일단. 무엇보다 이지현을 데리고 있는 놈이 누군지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 차량에 이지현이 있었다는
것은 내가 진정 몰랐지만, 멍청한 놈들에 의해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우리의 임무는
실패가 되어버렸어. 이창민의 가족 몰살이 계약조건이다. 그런데…….이지현이 살아있으니, 다시
진행해야 한다.”
이장구는 쓴 표정을 지었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여겼지만, 단 한명을 처리하지 못하였다. 바로
이지현. 더군다나,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 목격한 인물이기에, 더 초조해하며, 서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 중에 이창민가족의 몰살이라는 말과 함께, 계약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이 암시되었다. 무엇보다 이장구가 말한 계약이라는 것이 몰살이기에, 차현태가 말했던
이지현에 대한 것을 이들이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미 물 건너 간 순간이었다.
“그거야 형님 잘 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형님은 차량을 정해진 곳에 세워두었고, 그 후의 일은 그
킬러라는 놈. 그 놈이 더 잘 알아서 처리해야지…….”
“시끄러…….결국은 내가 운전하고 온 차량이다. 그런데, 내가 그 안에 이지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전적으로 모든 것은 내 잘못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계약한 그들에게 내가 하는 말은
오로지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장구는 사내의 물음에 답하며, 다시 열차의 중간부분을 향해 보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을 뚫고, 중간부분으로 가, 추선우를 마주친다고 하여도, 이 상황에서 어찌 할 방법은 없는 듯하였다.

더군다나, 추선우가 자신과 함께 행동한 두 명을 너무나 쉽게 제압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자칫


그를 잡으러 갔다가, 되레 자신들이 잡히는 경우가 일어날지 몰랐다.
이장구는 마지막 목표를 눈앞에 두고서도, 다가서지 못하는 신세였다.
“일단. 철수하자. 그리고 윗선에 다시 보고하여 행동하도록 하자.”
“네. 형님.”
-이번 역은 방배. 방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곧 방배역에 열차가 정차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삼촌. 어디까지 가는거에요?”


쉼 없이 좌우를 살피고 있던 추선우에게 지현이 물었다.
“어? 어…….그러게 어디로 가지? 삼촌이 지현이 데리고 갈 곳은 이쪽 방향이 아니었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선우는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조금 전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던 매서운 눈빛이 아닌,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다시…….내려서 돌아가야해요?”
“아니. 그냥 이대로 가자. 사당역에서 버스로 다시 갈아타면 돼.”
선우는 여전히 그녀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한 뒤, 다시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빛으로 전철의 앞쪽과
뒤쪽을 보았다.
‘치이이이’
곧 열차는 방배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전철문이 열리며, 일부 승객들이 내렸고, 이장구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도 내렸다.

-출입문 닫습니다.-

“팀장님. 앞쪽 세 번째 열차 칸에서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가 하차하였습니다.”


열차의 출입문이 닫힌다는 방송이 나온 후, 열차 문을 통해 외부를 확인한 경호원이 태정민에게 말했다.
“젠장…….일단 너희 셋. 내려서 그 놈들을 쫒는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의 명령에 경호원 세 명은 문이 닫히기 전, 아슬아슬하게 열차에서 하차하였다. 그리고 곧 문은
닫혔고, 열차가 출발하였다.
“태정민입니다. 이장구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방배역에 하차하여, 저희 쪽 인원 세 명이 함께
내렸습니다.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양이 아직 열차에서 하차하지 않아, 저와 한 명의 경호원이 그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태정민은 곧바로 블루투스를 통해 설장호와 박태식에게 알렸고, 그 순간 박태식은 곧바로 방배역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방배역을 지나, 계속하여 2 호선 전철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철이 출발하면서, 앞 칸에서 내린 사람들이 추선우의 눈에 하나씩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눈에 지현이 말한 이장구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들을 본 후, 지현을 향해 시선을 내려 보았다. 다행히 지현은 그 두 사람을 보지 않은
듯하였다.

“다음 역에 내리자.”
그들이 내린 것을 확인하였으니, 다음 역에 내리더라도 그들과 마주칠 염려는 없었다. 지금까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빛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같은 열차 안에
태정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너흰 저쪽! 나머지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같은 시각. 방배역에 도착한 박태식은 서둘러 인원배치를 하였다. 방배역에서 이장구가 내렸다는 제보를
받았기에, 그가 방배역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개찰구를 통과해야하기에, 방배역을 나오는 개찰구마다
인원을 배치하였다.

“헉헉…….우리가 할 일은 이지현양 보호 아니었어? 그런데 왜 그 운전기사를 쫓아다녀?”


박태식과 형사들에 비해, 조금 더 늦게 도착한 강서진이 박태식을 보며 거친 호흡을 하고 물었다.
“임무가 이지현양의 보호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용의자가 보였는데, 그냥 넘깁니까? 그리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복장으로 현장에 뛰어들 것이면 처음부터 따라나서지 마십시오. 사무실에 앉아 제가
보내는 정보만 받아서 처리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녀의 물음에 박태식은 매서운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개찰구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너…….많이 거칠어졌다. 언제부터…….”
“팀장님. 저기…….”
강서진이 박태식의 말에 화를 내려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형사 한 명이 박태식을 부르며 개찰구 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장구와 함께, 검은 정장의 사내가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시선처리 잘해라. 녀석이 우리를 먼저 보면 일은 틀어진다.”


박태식은 모든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형사들은 모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그저 평범한
시민행세를 하고 있었다.

00014 경호원 =====================================================================


====
                          
“강서진…….”
하지만 의외의 인물로 인하여 이장구의 걸음이 멈춰 섰다. 바로 강서진. 그의 시선에 강서진이 보였고,
곧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장구!”
그 순간 강서진의 시선에도 그가 보였다. 강서진은 곧바로 그의 본명을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순간
박태식의 표정이 변하면서, 강서진을 노려본 뒤, 곧바로 이장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젠장! 모두 이장구를 잡는다!”
이장구가 개찰구를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려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에 의해 이장구는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은 채, 다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박태식과 함께 형사들도 개찰구를 넘어 뛰기
시작하였다.
“이장구입니다!”
이장구가 계단을 다시 내려왔지만, 그 아래에는 청와대 경호원 세 명이 다가서고 있었고, 셋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래저래 다 따라붙고 있었군!”


이장구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리고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박태식과 형사들을 보았다.
“형님. 이곳은 내가 잠시 맡겠습니다. 형님은 몸을 피하십시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말한 뒤, 그는 곧바로 세 명의 경호원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며, 경호원의 시선이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에게 집중되었고, 그 순간 세 명의 시야에서 잠시
자유롭게 된 이장구는 전철 철길로 뛰어내린 뒤, 철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젠장! 뭣들해! 그 놈이 목표가 아니잖아!”


박태식이 계단을 내려오며 소리쳤고, 그제야 경호원들의 시선도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 이장구를
찾고 있었다.
‘퍽퍽!’
“이 새끼는 대체 뭐야!”
박태식의 말에 경호원들의 시선이 돌아서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의 주먹은 아주 빠르고 매섭게 자신
앞에 서 있는 경호원 두 명을 고루 눕힌 뒤, 반대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190 센티가 넘는 거구의 몸에서 휘둘러지는 주먹의 강도는 엄청난 충격을 전달하며, 두 명의 경호원을
바로 바닥에 눕힌 것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너희들은 저 놈을 쫒고! 우리 형사 팀은 이장구를 쫒는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승객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고, 경호원들은 박태식의
명령대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를 쫒기 시작하였다.
박태식은 형사 몇 명과 철길로 뛰어내린 뒤, 어둠속으로 사라진 이장구를 찾기 위하여 움직였다.

-이번 역은 사당! 사당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전철은 사당역에 도착하였다. 추선우는 이지현의 손을 잡고 전철에서 내린 뒤, 좌우를 살펴보았다.


“가자.”
일단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하여 눈에 띄는 공통된 인물도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개찰구를 향해 걸었고, 사당역을 빠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조심히 뒤를 쫒는다.”
추선우가 내린 뒤, 곧 태정민과 한 명의 경호원도 내렸다. 두 사람은 추선우가 알지 못하도록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붙고 있었다.

“실장님! 사당역입니다. 사당역 3 번 출구에 추선우와 이지현이 포착되었습니다!”


방배역을 지나 사당역에 거의 다다르고 있을 때였다. 설장호에게 국정원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왔고, 그는
곧바로 3 번 출구 방향으로 차량을 돌렸다.
“모두 신중해라! 일단 이지현의 안전이 우선이다. 역삼역에서 추선우의 움직임을 보았다면 쉽게 상대할
놈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리고…….무엇보다 이지현이 쇼크 상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차량은 곧바로 3 번 출구 앞으로 돌아 들어왔다. 차량이 정차하자마자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일제히 내렸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곧 설장호가 하차하였다.

“어디로 갔지?”
같은 시각. 추선우의 뒤를 일정거리를 유지한 채, 쫒고 있던 태정민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졌다. 그 역시
3 번 출구 앞까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사당역이라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외부 CCTV 도 감시하고 있지?”
“네. 3 번 출구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장면이 CCTV 에 목격되었지만, 그 후, 지상으로 올라온 장면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야?”
3 번 출구라는 말에 모든 대원들이 3 번 출구 앞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그 후의 행방이 찍힌 화면이
없다는 말에 설장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천천히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선우…….”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였다. 3 번 출구의 반대방향에서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빌어먹을…….”
설장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고, 곧 3 번 출구 위로 올라선 태정민도 반대편에 있는 추선우를 보며
표정이 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전히 추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실장님. 3 번 출구 인근에는 지현양이 없습니다.”
“당연하지…….그 놈은 저 앞에 있으니까…….”
한 대원이 인근을 수색한 후 말하였고, 설장호는 여전히 추선우를 보며 그의 말에 답하였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정확히 반대쪽을 향해 돌아섰고, 설장호의 옆으로 태정민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의 옆에
서서 반대편에 서 있는 추선우를 향해 함께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추선우의 시선도 이내 설장호와 태정민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지현이를 보았다.
“가자…….”
그는 지현의 손을 잡은 뒤, 경기도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줄지어 정차해 있는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서둘러 이동한다! 차량을 돌리고, 4 번 출구 인근 CCTV 를 통해 추선우와 지현이 어디로 향하는 버스에
타는지 확인해!”
설장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일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국정원 대원 몇 명이 다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으며, 곧 태정민은 차량을 막고, 그 넓은 도로를 횡단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도로를 건너자, 몇 남은 국정원 소속 대원들도 함께 도로를 건너기 시작하였다.

“빵빵!”
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이동하던 차량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렸고, 운전자들의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태정민과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며, 오로지
추선우가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저 새끼들 대체 뭐야! 뭔데 도로를 저리 당당하게 무단횡단하고 지랄들이야!”
운전자 일부는 그들을 향해 창문을 열어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여전히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없습니다.”
곧 설장호마저 반대편으로 건너오자, 먼저 건너왔던 대원이 그에게 보고하였다.
“CCTV 확인해.”
설장호는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원들은 서둘러 CCTV
영상을 확보하려 하였고, 설장호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정차에 있는 버스안도
둘러보았지만, 추선우와 지현은 보이지 않았다.
태정민의 눈도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보이는 것은 그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실장님…….CCTV…….보십시오.”
곧 한 대원이 다가와 국정원에서 보내준, CCTV 영상이 재생중인 스마트기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가
내민 영상을 보며 설장호와 태정민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젠장…….”
CCTV 영상에서 보인 것은 추선우와 지현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처럼
행동하였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과천방향으로 더 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CCTV 는 그 뒤로
없었다.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들이 줄줄이 정차하는 바람에 반대편에서 그의 행동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과, 이 이후로 과천방향으로 더 이상 설치된 CCTV 가 없다는 것이 설장호와 태정민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든 것이었다.
“일단…….몇 대원들은 과천방향으로 더 오른다. 그리고 몇 명은 이 일대를 더 돌아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보았지만, 보기 좋게 놓쳤다. 그리고 태정민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설장호보다 더 가까이서 추선우를 추격한 인물이지만, 바로 앞에서 놓치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는 지난 날. 두 사람이 한 말이 딱 맞아 떨어져버린 격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장난 섞인 어투로 서로
쪽팔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그 어떤 상황보다 굉장히 창피한 상황이
연출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장구! 계속 이대로 가면 들어오는 전철에 몸이 아작 난다!”


한 편. 박태식은 몇 형사들과 함께 철길을 걸으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들여오는 답은 없었다.
“큰일 났군…….”
박태식은 함께 철길로 들어선 팀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이장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을 감지한
것이었다.
또 다른 곳.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를 뒤쫓았던 청와대 경호원들도 보기 좋게 그를 놓치고 말았다. 세
사람은 멍하니 서 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유독 검은 정장을 입고, 키가 큰 사내들이 무척 많이 보이고
있는 늦은 저녁의 방배역이었다.
“팀장님께 한 소리 들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과 청와대 경호원, 그리고 형사팀…….모두가 보기 좋게 자신들의 눈 바로 앞에서 잡아야 할 모든
목표물을 다 놓쳐버렸다.
고작 역삼역에서 두 인물을 잡은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들이 아닌 추선우가 잡아다놓은 물고기와
같은 것이었다.
“없습니다. 과천방향으로 더 올랐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잠시 후. 과천방향으로 올랐던 대원들이 돌아와 설장호에게 보고하였고, 곧 사당역 일대를 돌아본
대원들도 그를 찾지 못했다는 보고를 하였다.

‘띠리리리’
보고를 받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설장호는 곧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0001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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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우…….”
추선우였다.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첫 마디는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설장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없이 휴대전화를 들고만 있었다.
“추선우…….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지현입니다. 잠시라도…….잠시라도 그 공포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설장호는 추선우와 통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사당역이라 그를 찾는 것은
어려웠다.
“지현은 우리가 보호한다. 그리고 너도 겪어보았으니 알 것이다. 역삼역에서 네 명…….즉 이번 사건은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적어도 네 명. 아니…….어쩌면 그 이상의 인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
설장호는 추선우에게 지금 현재 상황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역삼역에서 추선우의 앞을 막은
의문의 인물이 네 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이장구이며, 이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인물들이 끝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아직 차량에 들어가 이창민 부부를 직접 살해한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현이를 보호하는 것에는 당신들이 더 효과적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보호만 한다고 약속
할 수 있겠습니까? 지현에게 아무런 물음도 없이 보호만 해 줄 수 있습니까?”
“…….”
추선우의 물음에 설장호는 곧바로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건…….뉴스를 통해 일부만 접했습니다. 정확한 내막은 저 역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들도 그


이상 아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지현을 데리고 간다면,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이 어린
아이에게 계속하여 물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지현은 그 당시의 일을 또 다시 떠 올려야 합니다. 그
고통…….아십니까? 어린 나이에 절대 머릿속에 담아두지 말아야 할 기억들…….그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십니까?”
추선우는 아무런 말 없는 설장호에게 묻고, 또 물었다.
“네가 지현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로는 부족하다. 넌 지현을 알지 못한다. 지현이도 너를 알지
못한다. 단지 순간적인 연민에 의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본다. 지현이를 우리 쪽으로 데리고
와라. 내가 약속한다. 지현이에게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죄송합니다. 훗 날…….지현이를 쫒는 그들이 모두 잡혔다는 소식이 있을 때, 그 때…….제가 직접
지현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가 지금하고 있는 이 모든 행동에 대한 죗값도 받겠습니다.”
“추선우! 너의 말대로 넌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현이 너의 곁에 있겠다고 하여도, 아직
어린아이다! 넌! 지현을 유괴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침착하였던 설장호가 소리쳤다. 그러자 주위사람들이 다시 설장호를 보았다. 태정민도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붙었고, 국정원소속 대원들도 모두 그의 곁으로 붙었다.
“지현은…….제가 경호하겠습니다. 비록 당신들보다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현의 마음은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설장호의 떨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그리고 또 다시 아무런 말없이 휴대전화를 들고만 있었다.
“현실을 직시해라.”
그리고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현실을 직시하였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그들로부터 지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이 현실을 직시한 것이냐! 이제 열
살이다! 열 살 된 여자아이를 죽이려 한다! 그것도 어떤 새끼들인지 알 수 없는 놈들이 열 살 된 아이를
죽이려 해! 그런데! 그런데! 네 놈 혼자서 그들로부터 지현을 지킨다는 것이 현실을 직시한 것이냔
말이야!”
설장호의 목소리는 또 다시 커졌다. 사당역에 서 있던 수많은 시민들의 눈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태정민은 물론, 국정원 소속 대원들까지도 모두 그를 보고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지현이가 보고 있네요.”
“추선우. 한 가지만 말한다. 방심하지마라…….네가 방심하면 그 순간 열 살의 어린 여자아이의 목숨마저
끝난다.”
‘뚜뚜뚜’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전화도 끊겼다. 설장호는 잠시 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이미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실장님…….”
태정민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추선우…….”
전화기를 서서히 내리며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리고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추선우가 뭐라고 한 것입니까?”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차량으로 이동하여 승차하였고, 곧
태정민이 다시 따라와 차량에 함께 승차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또…….불안하고 초조하십니까?”
“그래. 불안하다. 불안해서 미치겠다. 대체 어떤 새끼들인지 얼굴이라도 봤으면 이렇게 불안하지 않겠다.
헌데! 국정원이고 검찰청이고 어디 한 곳에서도 이미 하루가 꼬박 지나버린 사건의 용의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젠장 할!”
설장호의 거친 말은 끝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하지만 용의자라고 알아낸 인물은
고작 운전기사였던 이장구 한 명이다. 그의 범행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인물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설장호의 마음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더욱 더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설장호가 탄 차량은 사당역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은 사당역 4 번 출구


인근 번화가 한쪽 모퉁이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추선우는 경기도행 버스들이 정차하고 있을 때, 과천방향으로 조금 올라선 뒤, 좁은 길을 통해 사당역
번화가로 숨어들었다. 버스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바람에 반대편에서 그의 행동이 보이지 않았으며, 4 번
출구 이후로 설치된 CCTV 가 없었기에 그의 이동이 CCTV 에도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지현을 데리고 서울을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추선우였다.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추선우는 지현을 데리고 다시 사당역 인근으로 나왔다.
주위의 수많은 CCTV 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두 사람이 서 있는
곳 사방에는 CCTV 가 설치된 곳이 없었다.

“돌아가자. 숨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듯해. 되도록 지현을 돕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맞서자. 그래서
이겨내자. 그렇게 할 수 있지?”
추선우는 몸을 낮춰 지현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지현은 그의 말을 듣고, 아무런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떨지도 않았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추선우의 선행이 고맙게
느껴지고 있는 그녀였다.
“젠장…….추선우. 대체 뭐야…….뭘 쳐 먹은 놈이기에 겁대가리가 없어. 알지도 못하는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왜 지 목숨까지 담보로 저 따위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추선우를 잡지 못하여 화가 오른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아이 하나에 자신의 목숨을 내
걸고 있는 그가 어이없었던 것이었다.

‘띠리리리’
차량이 움직인 후, 박태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젠장…….”
“젠장…….”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 뱉었다.
“이장구를 놓친 모양이군. 넌 무슨 전화인데 쓴 소리를 내뱉어?”
먼저 전화를 끊은 설장호가 말했고, 곧 같은 말을 내뱉은 태정민에게 물었다.
“방배역에서 내렸던 경호원입니다. 이장구와 검은 정장의 사내가 서로 다른 길로 향하였고, 박태식
팀장이 이장구를 쫒고, 우리 대원이 검은 정장의 사내를 쫒았는데, 놓쳤답니다.”
“아주…….제대로 엿 먹은 하루군. 추선우도 눈앞에서…….이장구도 눈앞에서 놓쳤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고, 곧 이동 중인 차량의 차창 밖을 보았다.

“어? 선우야?”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선우는 수많은 CCTV 를 피하기 위하여 사당역에서 택시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저녁 때,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던 어릴 적 친구의 술집 앞이었다. 때마침 일을 끝내고
나오는 그녀가 잠이 든 지현을 안고, 건물 한 쪽 모퉁이에 서 있는 선우를 보았다.
“뭐야? 어디 간다며?”
그녀는 선우를 보며 다시 물었고, 선우는 답 없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하루만 재워주라.”
선우의 말에 그녀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폈고, 그 곳에 잠이 든 지현을 눕혔다. 잠이 든 지현을 보며 선우는
미소를 지었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선우를 그녀는 보고 있었다.

“이제 말해. 무슨 일이야?”


“오늘 하루, 무척 힘들었다.”
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그녀의 원룸 한쪽으로 가서 몸을 눕혔다.
진정, 이유라도 듣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지친 듯 보이는 선우를 보며 묻지 않았다.

“미희야.”
그녀가 씻고 나왔다. 담배냄새와 술 냄새가 온 몸을 덮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선우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응?”
“우리를 버린 부모는 어딘가에 있겠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건 왜…….”
“아니. 그냥…….만약에 두 번 다시 부모를 만날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루 전날까지 부모님과
웃으며 지냈는데,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으면…….그 기분은 우리와 같은 고아가 느끼는 기분과 같을까?”
그녀는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술 냄새와 담배냄새가 아닌, 향긋한 향을 풍기며 앉았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저녁 때…….네가 한 말이야. 저 아이. 우리와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린 아이라고 했어. 그리고 지금 한
말. 저 아이를 두고 한 말이지?”
그녀는 지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래…….저 아이의 일이야. 이지현…….이제 고작 열 살이다.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아이…….”
그녀는 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과거의 그도 함께 떠 올렸다. 유독 혼자가 된 아이를 보살피던 그.
과거에도 선우는 고아원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정말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다. 외로움…….자신이 겪어
보았기에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혼자 남게 된 아이를 언제나 보살펴 주었던
선우였다.

그리고 지금. 고아원에서 나온 세월이 10 년이 넘었다. 그 후로 고아원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보진


않았지만, 지금. 그 아이들보다 더 고통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을 지현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0001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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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현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지현의 옆으로 몸을 뉘었다. 그 순간 지현은 미희의 품으로 몸을
돌렸고, 그녀의 품을 파고들며 더 깊게 안겼다.
“이 아이…….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간직한 채 살아갈 거야. 아마도 평생 잊지 않겠지. 하지만…….난
믿어. 너라면 이 아이의 기억속 고통이 사라지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넌…….추선우니까.”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긴 지현을 안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곧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선우에게 보이지 않았다.
과거…….지금 이들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지현으로 하여금 잠시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유는 지현이…….지금 자신들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 과거를 절대 잊지
않고, 계속하여 품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국정원내 한 사무실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설장호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녹화된
CCTV 영상 속, 추선우의 행동을 다시 보고 있었다.

“추선우…….추선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몇 몇 영상을 보면서, 한 영상을 정지시켜 자세히 보았다. 지현을 안고 있는 그.
진심이 느껴지고 있는 그의 눈빛이 보였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를 위하여 스스로 위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이며, 판단이라 느껴졌다.

“삼촌. 일어나요.”
다음 날. 언제나 홀로 눈을 뜨던 선우는,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 일로 네가 늦잠을 다 자고 그래?”
멍하니 앉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선우를 보며 미희가 물었다. 그리고 선우의 눈빛은 미희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지현을 보았다.
“둘이…….친해졌어? 지현아…….괜찮아?”
선우는 믿음이 사라져버린 아이라 여겼던 지현이 미희와 너무 다정히 선 채,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 이모가 요리를 가르쳐주고 있었어요.”
“이모? 하하…….내 나이가 벌써 이모라고 불릴 나이가 되어버린거네…….”
미희는 지현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지현은 미희를 보며 눈웃음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지현이가 너 준다고 토스트를 직접 만들고 있었어. 의외로 요리솜씨가 좋은데.”
미희는 지현의 옆에 서서 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미희와 지현은 서로를 보며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씻고나와. 모처럼 나도, 함께 먹는 아침식사라는 것을 해보자.”
미희는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고, 곧 지현도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삼촌…….아침에 봐도 멋있다.”
“응? 아…….하…….”
지현의 깜찍한 애교 섞인 말에 선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욕실로 향하였다.

‘웅~웅~’
선우가 욕실로 들어간 뒤, 곧바로 선우의 휴대전화가 웅웅거렸다. 미희는 그의 휴대전화를 본 뒤, 다시
욕실을 향해 보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은주라는 이름이 떴다. 그리고 전화기를 지현에게 보여주자,
지현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지현에게 물었다.
“삼촌 집…….주인의 딸이에요. 교양 없고…….미운 이모에요.”
“그래? 그럼…….우리 장난 한 번 쳐볼까?”
두 여인은 씨익하고 미소를 지은 뒤, 곧 미희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추선우씨 휴대전화입니다.”


“어? 누구세요? 그거 선우 휴대전화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지금 선우가 샤워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대신 전해…….”
“뭐! 샤워! 야! 너 누구야! 누군데 선우전화를 받고, 선우는 왜 샤워를 하고 지랄인데!”
은주는 선우가 샤워중이라는 미희의 말에 발끈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하였고, 두 여인은 여전히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기 어디야! 어떤 모텔이야!”
“모텔은 아니고요. 제 집입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누구신데 초면에 반말로 화를 내시나요? 혹시 선우의
애인이라고 되시나요? 만약 애인이라면 제가 실수한 것이고요.”
미희는 은주의 목소리가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두고, 계속하여 장난을 이어가고 있었다.
“애…….애인은 무슨! 그냥…….뭐 그냥…….”
“뭐하는 거야?”
미희의 말에 은주의 답은 더듬거렸고, 곧 선우가 욕실에서 나왔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미희가 받은 듯한
소리가 들려 씻지 않은 채, 속옷차림으로 그대로 나왔다.
“여보세요?”
그리고 미희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
“야! 너 뭐야! 엄마가 애써 모은 돈으로 애 밥이나 먹이라했더니, 여자를 껴안고 자! 너 미쳤어!”
선우가 전화를 받자마자, 은주의 격한 말이 이어졌고, 선우는 미희를 노려보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아…….맞다. 내가 전화했지. 어제 너를 찾는 사람이 너의 행방을 찾았다면 급히 움직였는데,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아주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줘.”
“그…….그래.”
“끊을게.”
“잠깐…….너…….정말 여자하고 하룻밤…….”
“시끄러. 내가 그럴 처지냐 지금. 제발 철 좀 들어. 그리고 분위기 봐서 한 번 더 들릴게.”
“그래…….알았어.”
추선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미희를 노려보았다.
“아니…….난 그냥 지현이가 미운 이모라고 하기에 장난 좀…….”
“앞으로 내 전화는 함부로 받지 마. 알았지?”
“그래…….그럴게. 그런데 너…….내가 아무리 편한 친구래도 그렇지…….속옷만 입고 너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거 아냐? 그것도 여자가 두 명이나 있는데 말이야.”
“뭐?”
선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하였고, 곧 미희가 답하고 난 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자신의 몸을 보았다.
“하하…….젠장.”
선우는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두 여인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고, 미희와
지현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한 참을 웃었다.

같은 시각. 청와대 회의실에서는 하나의 동영상이 재생 중이었고, 차현태는 굳은 표정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뛰고 있는 각 부처 인물들이 모두 앉아, 같은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영상은 어제 하루. 지현양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추선우에 관한 영상입니다. 영상은 역삼역 안에서
이장구와 의문의 사내 3 명이 그의 곁으로 다가설 때, 지현양을 안고 그들을 막는 장면이었으며, 이어지는
영상은 사당역에서 국정원소속 대원들을 따돌리고, 유유히 현장을 벗어난 영상입니다.”
해당 영상에 대해 설장호가 설명을 덧붙였다. 차현태의 굳어있는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영상을
접한 모두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설실장의 생각이 뭔가? 저 영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자네는 물론, 어제 함께 움직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무능했다는 것만을 보여주는 꼴 아닌가?”
국정원장이 영상을 모두 본 뒤, 설장호를 향해 보며 물었다.
“네. 영상을 보셨으면 국정원장님과 같은 생각을 모두가 하실 것입니다. 저 영상에서 우리 국정원은 물론,
형사팀, 그리고 청와대 경호원 팀도 모두 한 일이 없습니다. 오로지 지현양을 안고 있는 추선우가 모두
한 일입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말을 모두 인정하였다. 진정 영상을 보면, 의문의 사내 두 명을 잡아 놓은 것도
추선우였고, 그가 국가기관의 유능한 인물들을 모두 따돌리고, 현장을 벗어난 것도 이들에게는 창피한
일이었다.
“설실장이 이 영상을 보여주는 것에는,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차현태는 국정원장과는 다른 질문을 하였다. 정확히 설장호의 생각을 읽은 듯, 그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추선우…….여기에 계신 모두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은 5 년 동안 수많은
경호업체에 이력서를 제출한 것과, 통장잔고가 고작 30 원이라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 추선우가 왜
지현양을 경호하겠다고 말했는지, 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지현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지…….그에
대해서는 대통령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라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추선우가 지현양을 데리고
있으니, 그를 잡아, 지현양을 인도받도록 하라는 것뿐입니다. 저 역시…….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었습니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현태를 보며 말을 시작하였고, 곧 회의실에 앉은 모두를 고루 보며 말을
끝냈다. 차현태는 사건 발생 다음 날,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그가 왜
지현양을 돕는지에 대해 확인하라는 말을 하였었다. 하지만 그 외에 그 어떤 누구도 그 말을 한 인물은
없었다.
“설실장의 말 중에, 추선우가 지현양을 경호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누가 한 말입니까?”
차현태가 설장호의 말 중, 의문이 생긴 부분에 대해 다시 물었다.
“어제. 사당역에서 추선우와 통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들었습니다. 지현양을 스스로
경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요?”
“지현양이 겪었던 그 고통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고통요?”
“이틀 전, 좁은 차량 안에서 부모님이 살해되는 동안, 그 모든 순간에 대한 고통이라 말하였습니다.
지현양이 눈으로 직접보고 귀로 직접 들었던 그 시간. 그 시간동안 촬영된 영상을 우리 모두는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인근 CCTV 를 통해 보았습니다. 약 20 분. 그 시간동안 지현양은 차량 안에 있었습니다.
살인범에 의해 고통의 소리를 지르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모두 듣고도 20 분 동안 지현양은 마치 죽은 듯
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이 지현양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지현양의 고통을 들어주기 위하여 자신이 지현양을 경호하겠다고 한 말은…….그도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가 되는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미 전국에 뉴스로 중계되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현태가 다시 물었고, 설장호는 답했다. 모두가 그의 답을 들은 후, 검찰총장을 향해 보았다. 뉴스의
모든 내용은 물론, 그 곳에 이지현이 있었다는 것도 함께 언론에 공개한 인물이 바로 검찰총장이기
때문이었다.

0001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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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지금 설실장은 추선우가 지현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길을 택했다는 뜻으로도 풀이가 되는데,
맞는가?”
이번엔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물었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해서, 진심으로 지현양을 경호한다는 판단은
이릅니다. 하지만…….적어도 지현양을 안고, 이장구를 피해 현장을 벗어날 때...그 때의 영상 속
추선우의 눈빛은 진심이라 보여집니다.”
“이보게 설실장. 어떤 일이든 냉정하게 판단하여 처리하던 자네가 눈빛만으로 어찌 사람을 판단하는가?
만약 눈빛이 선하다면, 그는 평생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과 같은 말 아닌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검찰총장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돌리고자, 다시 물었다.
“총장님의 말씀처럼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빛…….세상 모든 것이
거짓을 말해도, 사람의 눈빛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그 눈빛이 주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설장호는 총장의 질문에 그를 보며 답했다. 그리고 한 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모두가 조용하였고,
정지된 영상 속에 보이고 있는 추선우와 지현을 향해 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습니까?”


잠시 후, 차현태가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지현양을 데리고 있는 추선우를 추격하며, 그를 잡는 것을 중단 할 예정입니다.”
“!!!”
모두가 놀란 눈이었다. 차현태는 물론, 각 부처의 수장과, 그를 오랫동안 알아왔던 박태식, 태정민의
눈도 놀란 눈이었다.
“무슨 말인가? 지금 저 영상만 보아도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도망 다니는 것이 훤히 보이는데, 어째서
추선우를 쫒지 않겠다는 것인가?”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물었다.
“쫒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그를 잡는다는 것을 중단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검찰총장은 답답하다는 듯 한 어투로 다시 물었고, 그 순간 차현태가 영상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모두를 향해 보며 말했다.
“쫒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아닌, 그를 잡는다는 것을 중단한다는 말은, 다른 쪽으로 해석하면, 그를
이용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한데…….맞습니까?”
“네. 정확합니다.”
차현태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였고, 그 해석은 설장호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였다.
“지금 현재 추선우가 지현양을 데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미 역삼역에서
보았듯이, 우리뿐 아니라 이번 사건을 주도한 그 인물, 또는 조직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은 그의 입을 향해 집중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우리마저 추선우를 추격하여 그를 잡고자 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그 인물, 또는
조직을 도와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금씩 이해가고 있었다. 모두가 보았듯이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추선우가 지현을 돕고 있다는 것은 다들
눈으로 확인하였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굳이
자신들마저 추선우의 적으로 다가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여 움직였던 대사를 죽인 놈들입니다. 평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삼역에서
마치, 추선우와 지현양을 찾아다녔다는 듯, 그들은 두 사람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났습니다.
이미…….그들도 우리와 같은…….어쩌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추적시스템으로 지현양의 뒤를 쫒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는 신중한 표정을 하였다. 전국 CCTV 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추선우를 쫒고 있는 국정원과 맞먹는…….
또는 그 이상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는 설장호의 말에 모두의표정은 무척 진지해졌다.
“그들은 다시 추선우와 지현양의 곁으로 다가설 것입니다. 우린…….그 때를 이용할 것입니다.”
“추선우를…….미끼로 이용하겠다?”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국정원장이 지금까지 설장호가 한 말을 이해한 듯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위험성도 따릅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그들보다 늦게 지현과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인다면…….추선우는 물론, 지현양의 목숨마저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 정보와 기동성 싸움이라는 말이었다. 저들보다 먼저 정보를 입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저들보다 먼저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이었다.
“설실장이 지금까지 한 말을 종합해보면, 지현의 경호는 추선우에게 맡긴다는 것과, 그를 이용하여
이창민 대사를 죽인 인물, 또는 조직을 잡아내겠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현을 경호하는 추선우를
지원한다는 것…….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것입니까?”
“네. 현재로써는 지현양이 추선우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직 정확하게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추선우도 지현양을 진심으로 돕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추선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원하며, 또 그를 이용하여 아직 베일에 가려진 그 인물들을 모조리
다 끌어 낼 생각입니다.”
설장호는 어제까지 추선우를 잡고자 쫒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돕고자 하는 인물로 나섰다.

어제 역삼역과 사당역에서 녹화된 CCTV 영상을 밤새도록 접한 후, 그의 심적 변화가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설장호라는 단 한사람의 결정이었고, 일종의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위험합니다. 설실장의 말처럼 자칫 우리의 정보수집이 늦거나, 또는 이동이 늦는다면, 그들이 먼저
지현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추선우라는 놈이 진정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현양을 경호할지…….아니면 혼자라도 살고자, 지현양을 버려두고 꽁무니를 뺄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검찰총장이 설장호의 의견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내세웠다. 오히려 그의 말이 더 현실적이었다. 추선우
하나를 믿고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과 도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저는…….우리 국정원의 정보수집을 믿으며, 또 한 박태식과 태정민의 기동성을 믿습니다. 그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보다 더 강하게 다가서서…….”
“그런 추상적인 생각만으로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네. 현실을 조금 더 신중하게 따져보게.
나도 물론 국정원을 믿고, 우리 검찰이나 경찰, 그리고 경호원들도 다 믿네. 하지만 그 믿음가지고
너무나 위험한 도박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네.”
설장호는 자신을 따르는 모두를 믿고 일을 진행하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청장도 총장의 의견과 같은 생각을 말하였다.
“그럼…….추선우를 잡고, 지현양을 우리 쪽으로 데리고 온다면…….그들은 어찌 하실 생각입니까? 설마
…….이장구나, 아니면 차량 안으로 들어가 직접 이창민 부부를 죽인 그 인물만이 이번 사건의 전부라
판단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죠? 우리가 지현양을 데리고 오면, 지현양의 안전은 보장되겠지만, 그 순간
…….숨어있는 진정한 뿌리는 그대로 땅 밑에 숨어 버릴 것입니다. 그들이…….국정원은 물론,
국가기관을 충분히 뒤엎을 수 있는 힘을 지닌 놈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감히 국정원과
국가기관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 이창민 대사를 죽인 그들은 찾을
수 없을뿐더러…….왜 이창민 부부를 죽였는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모두의 입은 다시 닫혔다. 이 또 한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위험을 안고
이번사건의 배후까지 모두 찾아내느냐,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지현을 구하며, 살해용의자만을
잡는 것으로 끝내느냐…….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설 실장.”
잠시 동안 침묵만이 있었다. 그리고 차현태가 시선을 돌려 설장호를 보며 그를 불렀다.
“네. 대통령님.”
“우린.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설 실장에게 지현양에 관해서는 모든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번 일…….설
실장의 뜻대로 진행하세요.”
“…….”
모두가 아무런 말이 없을 때였다. 그 누구도 확답을 주지 않을 때, 차현태가 답을 주었고, 각 부처
수장들은 아무런 말없이 차현태를 보았고, 곧 설장호를 보았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나, 아침이 되었습니다. 추선우란 사내가 지현양을 데리고 있고, 이장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의문의 사내 두 명을 체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씩 의문이
풀려가겠지만,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우리가 늦을수록, 지현이
느껴야하는 고통은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차현태의 말이 끝난 후,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하였고, 곧 그가 회의실을 나서자,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설 실장.”
“네. 국정원장님.”
곧바로 국정원장이 설장호를 불렀다.
“진정…….추선우를 지원할 것인가?”
“네. 지원할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를 잡아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더 확실하며,
안전하게 지현양을 경호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현양에게 다가서는 그 인물들…….그
놈들을 모조리 잡아내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을 보고 있는 모두를 보며 다시 한 번 확답을 주었다. 국정원장은 잠시 그를 보고 있었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으니, 일의 진행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겠네. 하지만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
자네의 그 믿음이 불신으로 돌아선다면…….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현이 마저 부모 곁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네.”
“…….”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추선우가 어떤 인물인지도 알지 못한다. 단지 영상 속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보았다는 이유로 설장호는 그를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말처럼. 그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게 되는 날에는 열 살의 어린 아이마저 잃게 되는
것이었다.

각 부처 수장들도 이어 회의실을 나갔다. 그리고 설장호의 곁에는 박태식과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이
있었다.

0001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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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진짜 그 놈을 도우실 생각입니까?”
태정민이 국정원장과 같은 물음을 다시 하였다. 태정민은 자신의 추적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 추선우를
잡고자, 사당역 위, 도로를 횡단한 인물이었다.
“젠장…….너에게도 내가 같은 말을 또 하리? 그냥…….시키는 대로 하자. 좀.”
설장호는 태정민을 향해 조금은 매섭고, 거친 어투로 말하였다.
“그리고. 역삼역에서 잡은 두 놈. 그 두 놈에 대해서 알아낸 것 있어?”
곧 박태식에게 물었고, 박태식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째…….잡아놓은 물고기마저 구워먹을 생각을 하지 않냐. 당장 두 놈을 족쳐서 뭐라도 알아내.”
“알겠습니다.”
전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통화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다시 말하자, 박태식은 답을
한 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설장호는 박태식이 나간 후, 전화기를 들었다.

“나야. 지금 이 순간부터, 추선우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찾아낸다. 그의 어린 시절은 물론, 그의


주변사람. 심지어 그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자주 먹는지도 확인하고, 항상 서울 시내는 물론, 경기도까지
설치된 모든 CCTV 를 실시간 감시한다.”
설장호는 국정원 수사팀에 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다시 일러주었고,
자신이 할 말만을 한 채, 전화기를 끊었다.
“그가 CCTV 가 설치된 곳으로 움직여야만 잡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의 전화기를 추적하여…
….”
“단순히 그가 소지한 물질적인 것에 너무 신경 써서 혼선을 만들지마라.”
“네?”
태정민은 수천대가 넘는 CCTV 를 감시하는 것과 함께, 그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CCTV 가 없는
곳에서 움직이는 그의 위치라도 파악하자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설장호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그래. 그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여 따라가는 것은 쉽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곧
추선우라는 법이 있어? 그의 휴대전화가 추선우의 몸속에 쳐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분신처럼
언제나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보면 휴대전화를 추적하여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현실에서는 용의자가 바보는 아니다. 즉. 추선우가 바보가 아닌 이상, 어제의 일로 인하여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휴대전화를 계속하여 들고 다닐 인물도 아니지.”
설장호는 자신이 왜 그 흔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지 않는지 말하였다.
“그래도. 용의자 검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입니다. 그 추적으로…….”
“그럼. 해봐. 추선우가 어제 너를 따돌리고 눈앞에서 유유히 사라진 것을 두고, 기분이 상한 모양인데,
네 생각대로 추적해봐. 그리고 보고와 함께 움직여 봐.”
설장호는 전화기 위치추적에 미련을 두고 있는 태정민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현재 기분상태도 그대로
말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태정민은 대통령을 경호하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 인물을 듣도보지도 못한
추선우가 쉽사리 따돌린 것에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그 놈들 족쳐봤어?”
잠시 후, 역삼역에서 잡은 두 인물의 조사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자 박태식은 강남서에 도착하였고,
곧바로 물었다.
“그게…….헛수고 한 것 같습니다.”
“헛수고?”
“네. 그 두 놈. 중국 애들인데 불법체류자입니다. 뭐. 신원을 확인할게 없어요. 그냥…….이곳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며 잘도 버티고 있었던 놈들입니다.”
“염병…….그 놈들 어디 있어?”
형사의 말에 박태식은 표정을 구기며 물었고, 곧 두 사내가 조사를 받은 취조실로 향하였다.
“이 나라가 그리 만만했어! 네 놈들이 들어와 사람을 죽일 정도로 그리 만만 해!”
박태식은 취조실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내를 향해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두 사내는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고만 있었다.
“몇 알아낸 것은 이장구가 이놈들에게 백 만원씩 준다고 했답니다.”
“백 만원?”
“네. 열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죽여, 완벽하게 처리하면 그 대가로 백 만원씩 받기로 하여, 돈도 없고
하니 그냥 눈 딱 감고 일처리를 하려 했답니다.”
취조를 계속하고 있던 형사가 몇 더 알아낸 내용을 말하자, 박태식의 표정은 처음보다 더욱 더 일그러진
채, 두 사내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았다.
“남의 땅에 몰래 들어와 사는 것도 모자라, 몰래 사람까지 죽이려 했고…….그 대가로 백 만원씩 받기로
해? 이런 미친 새끼들이…….!”
“참으십시오. 박팀장님. 일단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비록 불법체류자지만,
우리나라 현실상 강압적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개 같다는 거지! 이런 새끼들이 넘어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데, 우린 이 새끼들을
죽이지 못해! 젠장!”
박태식은 곧 취조실을 문을 발로 차며 소리치고 나갔다. 두 사내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박태식을 향해
보았고, 형사들도 그를 보며 서 있었다.

‘띠리리리’
“네!”
“네 소리치고 지랄이냐?”
박태식이 취조실을 나오자마자 설장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화가 가시지 않아 그에게도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냥…….더러워서요.”
“뭐가?”
“추선우가 잡아놓은 놈이 불법체류자랍니다. 그리고 이장구에게 백 만원씩 받기로 하고 지현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답니다. 아주 지랄 같은 상황인데…….저 놈들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네요…….”
“지랄 같아도 참아라. 곧…….그 법안이 모두 바뀔 것이다. 지금 대통령께서 그에 관련한 모든 법안도 다
수정하기 위하여 뛰고 계신다. 진정 빌어먹을 법안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아. 어째…….불법체류자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지…….엿 같아도 조금만 참아.”
설장호는 박태식이 소리친 이유를 들은 후, 그 역시 표정을 잔뜩 구긴 채 말하였다. 너무나 많은
불법체류자로 인하여 자국민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조치가 미비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부족했던 조치로 인하여 한 여자아이의 목숨이 사라질 뻔 한 것이었다.
“일단. 그 놈들 더 족쳐보고, 더 이상 건질게 없다고 하여도, 절대…….중국으로 그냥 돌려보내지 마라.
이 땅에서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도 이 땅에서 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청와대를 나와 국정원으로 들어서며 그와 통화를 하였다. 곧 통화를 끝낸 후,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수사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추선우에 관한것과 이장구에 관한 것…….뭔가 더 확인된 것 있어?”


설장호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국정원 대원들에게 물었다.
“어제 사당역 이후로 추선우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그리고 이장구의 행방도 아직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 난감하군. 그리고 어제 이장구와 함께 있었던 그 키 큰 놈. 그 놈에 대해서는 알아낸 것 있어?”
설장호는 대원의 답을 들은 후, 인상을 찌푸렸고, 곧 이장구와 함께 움직였던 장신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에 대해 물었다.
“네. 여기…….”
그의 말에, 한 대원이 사무실 벽에 설치된 메인화면에 한 인물자료를 띄웠다.

“이름 강철호. 나이 31 세. 폭력전과로 세 번 다녀왔습니다. 해병대 특전사 출신이며, 이놈…….


운동경력이 화려합니다. 태권도, 유도, 주짓수, 무에타이…….뭐. 격투운동은 거의 다 배운 놈입니다.”
설장호는 메인화면에 띄워진 강철호를 주시하여 보고 있었고, 곧 대원이 그의 화려한 전적에 대해
말하였다.
“태정민의 경호원 두 명을 쉽게 눕히고 도망칠만 하네…….그래. 이놈은 그 외에 다른 특이점 없어?”
“네. 혹시나 하여, 이창민 대사의 차량에 들어가 직접 살해를 한 용의자와 대조해보았지만, 일단 키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이창민대사를 죽인 인물의 키는 대략 180 센티 정도지만, 이놈은 190 센티가 넘습니다.
그리고 얼굴의 윤곽도 다릅니다. 즉…….직접적으로 살해한 놈은 아니지만, 만만하게 볼 놈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째…….이런 괴물 같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 더 많은지…….”
설장호는 화면 속 강철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원들 배치는 모두 해두었어?”
“네. 북정마을을 중점으로 배치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각 역의 CCTV 를 중점으로 실시간 확인중입니다.
추선우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면, 그 즉시 그의 위치가 포착될 것입니다.”
“그래. 한 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여 앉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곧 문자메세지창을
열었다.

-내일 오전 9 시. 이창민대사 부부 발인이다. 지현이가 봐야하지 않겠나.-

내용을 작성한 후, 받는 전화번호에 추선우의 번호를 입력하였다. 그리고 전송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껀데?”
같은 시각. 미희의 집에서 나온 추선우에게 그녀가 물었다.
“아직은 몰라. 당분간은 떠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네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올게. 그리고 연락은
내가할게. 이 휴대전화…….이제 못 쓸 것 같거든.”
선우는 휴대전화를 들어보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우웅’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선우는 문자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지현을 보았다. 그 문자는 조금
전, 설장호가 작성한 문자였다.
“갈게. 다음에 보자.”
선우는 문자 내용을 지현에게 보여주지 않았고, 미희에게 인사하였다. 지현은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미희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어린 지현을 꼭 안아주었다.
선우는 그녀의 집을 나와 얼마가지 않아,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자신의 휴대전화를 인근 상가 앞
쓰레기통에 버렸고, 그 모습은 미희와 지현이 보지 못하였다.

“난…….당신이 일러준 대로 처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 놈이 더 살았으니 그 놈마저


처리하라? 이건 계약에 없던 것 아닙니까?”
한 편. 이장구는 경기도 외곽의 한 전원주택 건설현장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강철호가 함께 붙어 있었고, 두 사람을 마주하며 시멘트 포대위에 앉은 사내가 말했다.

두 사람의 앞으로 앉은 그는, 사건 당일, 차량 안으로 들어가 직접 이창민 부부를 살해한 장본인이었다.

0001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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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그 순간에는 이창민의 딸이 차량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그의 차를 몰고 온 사람은 당신입니다. 하다못해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라도
들렸을 것이고, 룸미러를 잠시만 봤어도 그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몰랐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장구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연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어린여자아이가
차량에 있었고, 부모와 함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리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지현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네. 그리고 이창민대사가
딸은 따로 온다고 나에게 말했었어. 그래서 난 그 말을 믿었던 것이고…….”
“이유가 어찌되었던, 난 내가 할 일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잔금을 조속한 시일 내에
입금하십시오. 만에 하나…….입금이 늦어지면 제 성질을 잘 알고 계실 테니, 후일에 대한 것은 장담드릴
수 없겠습니다.”
“뭐야? 듣자듣자하니 싸가지가 없네!”
이장구의 말을 듣고, 곧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답하자, 곧바로 강철호가 그의 앞으로 다가선 뒤,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보며 소리쳤다.
“이 놈도 킬러입니까?”
흥분한 강철호에 비해 그는 강철호를 올려본 뒤, 다시 이장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차분한 어투로 물었다.
“아니네. 그냥 내 곁에 있는 동생이야.”
“그래요? 그럼 말 좀 잘 전해주시지 그랬습니까? 내 앞에서 쓸데없는 객기는 곧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잘
전해주십시오. 그럼…….”
그는 이장구를 보며 말한 뒤, 시선을 돌려 다시 강철호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가려 할
때, 강철호가 그의 팔을 잡아 세웠다.
“허허…….지금 내 몸에 손을 덴 것 같은데…….맞는가?”
그는 자신의 팔을 잡은 강철호를 올려보며 물었다. 아주 날카로운 눈빛. 차가운 음성. 순간적으로
이장구의 눈동자가 잠시 떨리고 있었다.
“물러나라. 철호.”
이장구가 강철호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이게 뭡니까? 이 새끼가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탁!. 퍽!’
“…….”
강철호는 이장구의 말을 듣고도 오히려 그의 팔을 더 강하게 잡으며 소리쳤지만, 이내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190 센티가 넘는 강철호가 공사 중인 건물 벽에 강하게 부딪히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도 이장구는 아무런 말없이 처음에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벽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강철호를 보고만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과 행동이 명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3 일 드리겠습니다. 3 일안에 나머지 돈을 입금해


주십시오.”
그는 여전히 차가웠다. 태정민의 경호원 두 명을 손쉽게 제압한 강철호를 단 한방에 기절시킨 인물이었고,
목소리에 떨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냉정함으로 이장구에게 말했다.
“열 살의 여자아이네. 자네에게는 무척 쉬운 일 아닌가.”
“열 살의 여자아이면, 형님에게도 쉬운 일입니다. 굳이 나 같은 전문적인 킬러를 고용하지 않아도…….”
“한 놈이 붙어있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지현의 곁에 붙어서, 내 동생 두 명을 경찰서로 보냈네.
여기서 자네에게 한 가지 더 일거리를 주고, 그 보수를 챙겨준다면…….일을 마저 끝내주겠는가?”
자신의 말을 자르고 이어서 들린 이장구의 말에 그는 이장구를 빤히 보고 있었다.
“열 살의 여자아이 하나에 그 아이를 지키는 정의의사도 하나…….원하는 목은 여자아이 하나입니까?
아니면 그 정의의사도의 목도 함께 원하십니까?”
“여자아이 하나의 목이네.”
“그럼. 여자아이 하나의 목값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놈의 목을 딸 생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 끈질기게 붙는다면, 그 놈의 목값은 내가 서비스로 제공해 드리죠.”
“마저…….끝내주겠다는 뜻인가?”
“계약은 성사되었습니다. 아직 받지 못한 잔금은 이번 일을 끝내고 난 뒤에 함께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나머지 죽여야 할 한 놈. 그 아이의 사진을 주십시오.”
이장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사진폴더에서 이지현의 사진을 찾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지현의 사진이었고, 그는 잠시 동안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죽여야 할 대상을 보며 정을 느끼지 마십시오. 오히려 몸에 해롭습니다.”
그는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거의 뺏다시피 낚아챈 후, 이지현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은 뒤, 그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를 전송하였다.
“기간은 3 일안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 일안에 이 여자아이의 시신이 뉴스매체를 통해 전국에
전파되는 것으로 이 계약이 종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3 일 이내에 잔금을 입금 바랍니다. 그럼
…….아참…….저 놈 일어나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내 몸에
손대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일러주십시오.”
그는 이장구를 향해 고개를 살짝 까닥거리는 행동을 한 후,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이장구는
쓰러진 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강철호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팀장님, 추선우의 휴대전화 위치 확인되었습니다!”


잠시 후. 태정민에게 한 경호원이 다가서며 소리쳤다. 태정민은 설장호와 박태식과는 별개로 추선우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여 그의 뒤를 쫒겠다는 말을 하였고, 지금 그 위치가 확인 된 것이었다.
“서둘러 이동한다!”
태정민은 그 즉시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이 이동하는 목적지에 대해 설장호에게 알렸다.

“대치동…….조금 전 태정민이 알려준 위치다.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그 곳에서 잡혔다고 하니, 그 일대의
CCTV 를…….”
“실장님. 추선우와 지현양입니다!”
“!!!”
설장호는 태정민에게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대치동 일대 CCTV 를 집중하여 확인하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 그의 부하직원이 메인화면으로 CCTV 영상 하나를 띄우며 소리쳤다.
“어디쯤인가? 대치동인가?”
“아닙니다. 성북동 방향입니다.”
“성북동?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이군. 일단 북정마을 인근에 있는 대원들에게 알리고, 그를 잡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며 그의 곁으로 다가서는 놈들을 잡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태정민 팀장에게는 알리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대치동으로 향한다는…….”
“한 번은 느껴봐야 할 일이다. 그러니 그 놈에게는 신경 끄고 우리대원들 움직이도록 해, 박태식에게는
내가 연락한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추선우의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자신이 미련을 둔,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대해,
직접 그 현실을 느껴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박태식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박태식은 급히
강남서를 나서기 시작하였다.
“나도 같이가!”
그가 나가자, 경찰서 입구 쪽에서 강서진이 다가서며 소리쳤다.
“…….”
그리고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러고…….가시게요?”
“편하게 입고 오라며! 그래서 운동복으로 입은 거잖아.”
그녀는 하얀색 명품 운동복에 머리띠를 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넘긴 뒤, 하얀색 고급
운동화까지 신고, 박태식과 함께 움직이려던 형사들 앞으로 서 있었다.
“네…….네…….뭐. 정장보다는 편하겠네요. 그럼 가시죠.”
“어디로 가는데?”
“북정마을입니다. 추선우와 지현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일대 CCTV 에 찍혔고, 설
실장님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래? 북정마을? 잘 됐네. 이번엔 내가 그 계집에 콧대를 아주 눕혀놓지.”
“…….”
강서진은 북정마을이라는 말에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계집이라 일컫어진 여인이 누군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은주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강서진은 은주에게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었다. 검사며,
부유하게 자랐고, 모두가 올려다보는 생활을 한 그녀에게 달동네에 사는 당돌한 여인이 자신을 무시한
것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삼촌…….그 못된 이모한테 가는 거야?”


이미 설장호가 확인한 것처럼 추선우와 지현은 북정마을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리고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던 지현이 선우에게 물었다. 이제 그녀는 선우에게 말을 아주 편히 하고 있었다.
“응.”
“왜? 난 그 못된 이모 싫던데. 아주머니는 좋지만, 그 이모는…….”
“아주머니 뵈러 가는 거야. 그 아주머니가 너에게 맛있는 것 사주라며 카드를 주셨는데…….그거
돌려드리려고. 괜히 피해가 갈 듯 해서 말이야.”
선우가 북정마을로 다시 향한 이유였다. 집주인이 준 카드. 아직 그 카드를 단 한 번도 사용치 않았다
지금 자신을 쫒고 있는 인물이 국가기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만에 하나 이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죄 없는 아주머니까지 이 일에 연류가 될 것이라 여겨 돌려주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따로 준 돈이 있어. 그 돈은 염치없지만 사용해야 해. 하지만 카드는 아니야. 너무 위험성이
따라붙어.”
추선우는 지현이 묻지 않은 말까지 해주었다. 지현은 그의 판단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곧 북정마을 입구 쪽에 도착하였다. 선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정마을로 오르는 입구마다 전에 보이지
않던 CCTV 가 몇 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CCTV 를 살짝 피해, 몸을 돌려 서 있었다.

“쉽지 않을 것 같다.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졌어.”


하루아침에 늘어난 CCTV 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아저씨들이 머리 좀 쓰고 있나보다. 지현아…….일단 다시 돌아 내려가자.”
선우의 눈은 바삐 움직였다. CCTV 가 설치된 곳을 향해 정면으로 서지 않았으며, 곁눈으로 그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북정마을 일대에 서 있었던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있다는 것도 이미 간파하였다.

“이런 곳에 그런 차림과, 그런 차량으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의심이다. 잠복의 기본은 알고 오는 것인지…


….”
추선우는 그들의 눈을 피하고, CCTV 의 눈을 피하며, 다시 내려갔고, 곧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0002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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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여깁니다.”
같은 시각. 태정민과 함께 경호원들은 추선우의 휴대전화를 추적하여 그 일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한
상가 앞에 멈춰 섰고, 경호원 한 명이 상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문을 열지 않은 상가인데…….이 안에 있는 건가.”
상가 문은 닫혀있었다. 태정민은 상가 앞으로 다가가 안을 보았다. 작은 음식점으로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는 식당이었다.

‘우~웅!, 우~웅!’
그 순간 태정민이 서 있는 자리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태정민을
비롯하여 경호원들의 시선이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다.

“이 놈은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
같은 시각. 은주는 연신 추선우에게 전화 중이었다. 하지만 수신음만 들릴 뿐, 받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어투로 소리쳤다.
“팀장님…….”
“엎어 봐.”
쓰레기통을 보며 한 경호원이 태정민을 부르자, 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짧게 말했고, 곧 한 경호원이
쓰레기통을 들어 엎었다.
“젠장…….”
그리고 곧바로 들린 태정민의 쓴 소리…….그의 눈에는 많은 쓰레기와 함께, 주인에게 버림받은
휴대전화가 홀로 웅웅거리며 울고 있었다.

‘띠리리리’
은주는 연신 추선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하려던 순간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응? 모르는 전화번호인데. 스팸전화인가?”
서울의 지역번호를 나타내는 02 로 시작되는 일반 전화번호이기에, 그녀는 넘쳐나는 스팸전화라 여기고
있었다.

“제발 좀 받아라.”
하지만 그녀의 전화벨이 울리게 만든 인물은 추선우였다. 이미 자신의 휴대전화가 위치추적이 되고 있을
것이라 여긴 그는 전화기를 버렸고, 북정마을 인근 공중전화박스에서 그녀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수신음만 길게 울린 뒤, 전화를 받지 않자, 곧바로 다시 전화하였다.

“같은 번호네.”
“받아봐라. 스팸전화가 동시에 두 번 오는 일은 드물잖아.”
또 다시 같은 번호가 찍히자, 그녀가 말했고, 곧 아주머니가 그녀의 옆을 지나쳐가며 말했다.
“네. 여보세요?”
아주머니의 말에 그녀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선우? 그런데 이 번호는 뭐야? 너 전화기를 어쩌고?”
“일단 긴말할 수 없어. 잠시 마을입구로 내려와.”
“입구? 그런데 왜? 네가 올라와. 나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오려면 힘들어.”
“그럴 사정이 있어. 그냥 좀 내려와.”
다짜고짜 내려오라는 말에 화를 내려하였지만, 전화기는 끊겼다.
“뭐야? 내가 지 마누라라도 돼? 이래라저래라야!”
은주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선우의 행동이 기분이 나빠, 자신의 전화기를
보며소리쳤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요 앞에. 선우가 왔는데, 올라올 수 없다네. 잠시 다녀올게.”
그녀는 투덜거렸지만, 이내 간단하게 옷을 챙겨 입고, 모자를 눌러쓴 뒤, 집을 나섰다.

“그 못된 이모 말고, 아주머니가 오시면 안 돼?”


“미안해. 네가 미워하는 이모지만, 아주머니는 한 번 내려왔다 올라가시려면 너무 힘들어 하시니까. 네가
좀 이해해줘.”
전화를 끊은 뒤, 지현이 선우를 보며 말하였고, 선우는 다시 몸을 낮춰 지현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박스 앞 도로에 박태식과 강서진이 탄 차량이 지나쳐갔고, 그 뒤로 형사들이 탄
차량이 지나쳐갔다. 추선우와 박태식,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못하였고, 곧 추선우가 다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박태식은 차량에서 내리며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아직. 그 후로 추선우의 행방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인근을 떠나지 않은 것 같으니, 주위를
잘 살피고, 혹시 그와 마주친다고 하여도 우리 계획을 잊지마라. 우린 그를 잡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형사들에게 위치를 배치해 주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장하겠네…….”
그리고 중얼거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의 눈에도 너무나 잘 보이는 국정원 소속 인물들이었다. 비록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냥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한 쪽 귀에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 위하여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있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까지
모두 같은 행동들이었다.
또 한. 자신들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도 문제였다. 이런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같은 모델의 SUV
차량들이 이미 네 대가 보이고 있었다. 이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자신이
목표물이라 여겨지는 인물에게는 너무나 잘 보이는 그들의 행동이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갔다. 국정원소속 인물들이 이런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국제적 임무가 많았던 이들에게 한 사내와 어린아이를 추적하라는 것이 처음부터 맞지 않은 임무였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박팀장. 저기…….”
북정마을 입구에서 잠복근무 같지 않은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강서진이 박태식을 불렀고, 한 쪽을 가리켰다.
“주인집 딸?”
은주였다. 그녀가 모자를 눌러쓰고 내려왔지만, 강서진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나 잘 보였다.
“추선우에게 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죠. 일단 국정원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검사님과 저만 저 여자의 뒤를 쫒죠.”
“왜? 저들도…….”
“일단요. 만에 하나 저 여자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라면, 이곳이 텅 비워지지
않겠습니까?”
“오…….의외로 똑똑한데.”
강서진은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만 은주의 뒤를 쫒는다는 말을 이해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봐도 범상치 않은 국정원 인물을 추선우가 이미 눈치 채고 은주를
따로 불러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전화박스.”
그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그녀의 뒤를 따라 약 3 분정도 내려오자, 전화박스에서 추선우의 모습이
강서진의 눈에 들어왔고, 박태식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났다.
“추선우…….포착했습니다.”
“그래! 어디야? 북정마을이야?”
그 즉시 박태식은 설장호에게 보고하였고, 사무실에 띄워져 있는 수많은 CCTV 를 보고 있던 설장호가 놀란
눈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네 북정마을 초입부분입니다.”
“지현은? 지현도 함께 있나?”
“네. 지현도 보입니다.”
“다행이군. 지난밤을 잘 보낸 모양이군. 일단 접촉은 뒤로 미룬다. 그냥 살펴봐. 그리고 이 후로 최대한
그의 곁으로 붙어, CCTV 가 없는 곳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그의 뒤를 네가
직접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전화를 끊은 후, 천천히 더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아직 추선우는 박태식의 얼굴을 모른다. 지난
사당역에서도 박태식은 없었다. 설장호와 태정민은 자신의 뒤를 쫒았었지만, 박태식은 방배역에서
이장구를 쫒았었다.

‘띠리리리’
“추선우. 찾았냐?”
박태식과 통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태정민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설장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그게…….쓰레기통에 휴대전화만 버려져 있네요…….제대로 또 한 방 먹었습니다.”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그의 휴대전화를 들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 한 번 겪어봤으면 됐다. 지금부터라도 더 확실하게 움직여. 지금 추선우는 북정마을에 있다.
그리고 박태식이 그와 붙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추선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다. 그에게
당한 쪽팔림은 잊어, 지현이의 안전이 먼저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여라.”
“네.”
태정민도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의 말처럼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이, 평범한 사내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으니, 그 망신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너 뭐야? 왜 오라 가라…….”
은주는 선우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막은 추선우가 주위를 둘러본 후, 전화박스
안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왜 그래?”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지현을 향해 시선을 내려 보았다.
“요 꼬맹이 아직도 눈빛이 무섭네. 야! 어른한테 그런 눈빛하면 못 써!”
은주는 지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고, 지현은 조금 전보다 더 매서운 눈빛으로 은주를 노려보았다.
“그만해. 일단 이거 받아.”
“이거 뭐야?”
“아주머니 카드. 지금 상태로는 이카드를 사용하면 아주머니도 괜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돌려 드리는 거야. 그리고 현금 있으면 좀 주고 가.”
“현금? 야! 내가 무슨 네 개인금고야? 현금을 달라며 척하고 주게. 그리고 네 전화 받고 그냥 대충입고
나오느라 돈도 안 가져 나왔어.”
그녀는 선우의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옷차림을 가리켰다. 진정 편한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온 그녀였다.
“알았어. 그리고 혹시 지난 번 나를 찾아왔던 그 사람들 다시 왔었어?”
“그 사람들? 형사와 검사 말이야? 아니 오지는 않았어. 내가 그 사람들 오면…….”
은주는 선우의 물음에 답하다말고 말을 멈췄고, 한 쪽 방향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왜…….그래?”
“그…….사람들이야.”
“!!!”
말을 하다 멈춘, 그녀의 행동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히 강서진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고,
그녀의 말에 추선우가 놀랐지만, 절대 은주가 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확실해?”
“확실해. 저 정신 나간 여자검사. 잊을 수가 없거든.”
은주는 강서진을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서서히 몸을 낮춰 지현을 향해 보았다.
“지현아.”
“응. 삼촌.”
“어제처럼 삼촌이 지현이 안고 다시 뛸 거야. 어제처럼 삼촌을 꼭 안고 떨어지지 않을 수 있지?”
“응.”
추선우는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0002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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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야.”
“왜?”
“내가 저들을 따돌리려면 너의 도움이 필요해. 잠시…….아주 잠시만 저들을 막아 세워줘.”
“그야…….식은 죽 먹기지. 저 정신 나간 검사에게 내가 할 말이 좀 많거든. 그리고 다음번에 연락하면,
미리 현금을 준비해 줄게. 그런데…….네가 꼭 이 꼬맹이를 보호해야 해?”
“그 답은 나중에 해 줄게. 그리고 부탁할게. 아주머니께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다시 연락할게.”
“걱정 말고 가라. 그리고 경호원이 꿈이라는 놈이, 어찌 여자아이 하나 제대로 경호하지 못해서 매번
쫓겨 다녀. 저 놈들 네 상대가 안 되잖아. 그냥 확 밀어버리지…….”
“난…….민간인이야…….저들과 상대할 수 없는 민간인…….”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은주는 선우의 말을 듣고, 강서진을 노려보고 있는
자신의 눈에 더욱 더 강한 힘을 주었다.
“가자…….지현아.”
추선우는 곧 몸을 낮춰 지현을 향해 말한 뒤, 그녀를 살며시 들어 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정확하게
박태식과 강서진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후, 곧바로 전화박스를 나와 뛰기 시작하였다.

“젠장!”
박태식은 정확히 추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빠르게 전화박스를 벗어나 지현을 안고 뛰는 추선우를
보며 두 사람도 함께 그 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아저씨! 아줌마!”
“!!!”
그 순간 은주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곧 그들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마주섰다.
“아줌마? 야!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어제부터 버릇없게 감히 검사에게…….”
“지금 이러고 있을 때입니까! 젠장!”
박태식은 강서진의 말을 듣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는 선우를 쫒기 위하여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은주가 박태식의 앞을 막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아가씨! 이건 공무집행 방해로 연행되는 행동입니다! 지금…….”
“공무집행 방해라뇨? 난 지금 당신들이 공무집행중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어제일로 반가워서 대화나
하려고…….”
“이 여자가 정말!”
박태식의 말에 은주는 능청맞은 어투로 말하였고, 그녀의 행동에 강서진이 소리쳤다. 그리고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선우의 품에 안긴 지현의 눈에, 두 사람을 막고 서 있는 은주가 보였다.

“생각보다…….붙은 놈들이 많네.”


그리고, 박태식과 강서진을 피해 북정마을 초입부분을 빠져나오고 있는 추선우와 지현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인물. 바로 이장구로부터 지현의 목을 의뢰받은 사내였다.
“추선우를 놓쳤습니다! 지금 북정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박태식은 자신의 몸을 껴안은 은주를 힘겹게 뿌리치고, 추선우의 뒤를 쫒으며, 설장호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자신을 껴안은 은주를 힘으로 제압한다면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지만, 이 역시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서진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곁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
은주의 몸에 손을 델 수 없으니, 같은 여자인 강서진이 박태식을 껴안고 있는 은주를 떼어내었고, 그
즉시 박태식은 다시 추선우의 뒤를 쫒았으며, 강서진은 그녀와 마주하여 섰다.

“정말 어이없네. 어째서 우리를 막는 거야!”


강서진은 은주를 향해보며 소리쳤다.
“무슨…….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친구가 위험한 듯한데…….돕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진작
계속 걸렸는데, 왜 자꾸 반말이에요? 내가 당신 부하직원이야!”
은주의 목소리가 커졌고, 곧 형사들과 함께, 국정원 소속 인물들이 강서진과 은주의 곁으로 다가섰다.
“검사님.”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박팀장을 지원해! 조금 전 추선우가 지현을 안고 북정마을을 빠져나갔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의 말에 형사들과 국정원 소속 인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너…….계속 우리 일에 끼어들면 죄를 물을 것이야. 두 번 다시 추선우를 돕지마라. 그를 돕는 것은…….
우리가 한다. 그러니 괜한 일에 끼어들어 낭패보지마라.”
“도와? 웃기고 있네. 돕는다는 사람들이 얘를 죽이려고 덤벼들어? 그리고…….너희들 다 덤벼도
선우에게는 상대도 안 돼. 그 놈은…….진짜 경호원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놈이거든.”
은주는 강서진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말했고, 곧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 대단한 놈이 백수로 5 년을 보내고, 통장잔고가 30 원이야? 참 대단한 놈이네.”
“그건! 너희들이 사람 보는 눈들이 없어서 그래! 그깟 종잇조각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니, 진정 인재가
누군지 어찌 알겠어?”
은주는 강서진의 말에 단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서진이 그녀에게 밀리는 듯하였다.
“일단…….오늘은 그냥 간다. 너…….다시 한 번 충고하는데, 이 일에 끼어들지 마라. 그래야 오래
산다.”
강서진은 은주를 노려보며 충고하였다. 하지만 은주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콧방귀를 끼며, 그녀의 말을
무시하였다.

“성북로 23 길! 좌측으로 틀었다!”


“네! 알겠습니다!”
한 편. 추선우는 박태식을 피해 북정마을을 벗어나며, 곳곳에 설치된 CCTV 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는 방향마다 설치된 CCTV 영상을 보며, 실시간으로 박태식과 태정민에게 그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설장호였다.
“실장님. 여기.”
“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던 설장호를 한 대원이 불렀고, 그는 여전히
모니터를 주시한 채 답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는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다른 대원에게 자신이 보던 모니터를 확인토록
하였고, 자신은 해당 대원의 곁으로 이동하였다.
“뭔데?”
“북정마을 초입부분에서 뛰어내려온 추선우의 모습이 찍힌 영상마다 이 인물이 찍혔습니다.”
설장호는 그가 가리키는 영상을 뚫어지게 보았다. 영상속 인물은 검은색 바지에 군화, 그리고 검은색
재킷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인물이었다.
“누군지 확인 가능하겠어?”
“모자를 너무 깊게 눌러쓰고 있어, 인물 확인은 불가합니다.”
“불가란 말을 없다. 확인해. 그 어떤 방향에서든 녀석의 얼굴이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영상에 찍힌 인물을 주시하였다. 우연일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역시 추선우를 쫒는
인물이라 여길 수도 있었다.
“추선우의 뒤를 쫒는 것이 아니라, 지현을 쫒고 있는 인물이라면 이번 사건과 관련된 놈이다. 저 놈도
함께 모니터링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지금. 추선우의 곁으로 의문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정확히 해당 인물이 어떤 놈인지 확인이 불가하다.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재킷, 모자를 눌러썼으며, 군화를 신었다. 박태식은 그대로 추선우의 뒤를 따르고,
국정원 소속은 다른 길을 돌아 넓은 도로면에서 대기하라.”
설장호는 곧바로 해당 인물에 대한 인상착의를 박태식과 태정민에게 알려주었고, 곧 국정원소속
인원들에게 앞질러 가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팀장님. 저기!”
그 순간 북정마을 인근에 도착한 태정민쪽에서 설장호가 말한 인물이 포착되었다. 비록 추선우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뒤를 쫒고 있는 인물을 접한 것이었다.
“쫒아!”
그 즉시 차량을 멈춰 세웠고, 태정민과 함께, 세 명의 경호원이 내려서 움직였다. 차량을 운전하여 온
경호원은 곧바로 다시 차량을 돌려, 해당 길과 연결된 큰 도로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젠장! 보이지 않네!”
박태식은 쉬지 않고 따라 내려왔다. 하지만 너무나 길이 많이 꺾여 있기에 추선우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박태식!”
“네.”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우측 길을 통해 내려가라! 그 길이 곧 큰 도로와 연결된다. 쭉 따라 내려가면
쌍다리 앞이다. 추선우의 이동경로를 보면 그 길과 마주할 확률이 높다.”
“알겠습니다!”
CCTV 를 통해 박태식의 위치를 확인한 설장호가 그의 움직임을 체크해 주었다. 추선우가 움직이는 경로를
파악하여, 그 보다 먼저 내려가, 그와 마주할 수 있는 위치를 알려준 것이었다.
박태식은 곧바로 뛰기 시작하였고, 곧 그의 옆으로 형사 팀의 차량과 국정원의 차량이 내려오다 멈춰 섰다.

“팀장님. 타십시오.”
“젠장…….편이들 살고 있네.”
박태식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뛰어내려왔지만, 그의 형사팀원들은 모두 차량으로 이동하여 내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 내려오는 국정원 소속 인물들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태정민!"
"네! 실장님!“
“30 미터 앞 쪽이다. 추선우의 위치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의문의 사내놈은 보인다. 놓치지마라.
추선우를 쫒는 놈이던, 지현이를 쫒는 놈이던, 무조건 잡아 족쳐!”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렀다. 경호원들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추선우의 뒤를 쫒고 있는 사내 역시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실장님! 추선우의 모습이 다시 잡혔습니다!”
추선우의 뒤를 쫒는 사내의 모습은 간혹 보였지만, 추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다시 CCTV 에 포착되었다.
“어디야?”
“실장님께서 예상하신대로 쌍다리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곳에서 태정민 팀장과 조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일단 그의 뒤쪽에서는 박태식이 따라붙었고, 앞쪽에서는 태정민이 붙었다. 비록 그의 뒤를
쫒는 다른 인물이 포착되긴 하였지만, 인원이 많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0002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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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힘들지 않아?”
자신을 안고 한 참을 뛰어내려온 것을 알고 있는 지현이었다. 비록 여자아이이며,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들고 뛰기에는 꽤 무게가 나가는 편이었다.
“괜찮아. 삼촌 튼튼하다고 했잖아. 걱정 말고 꼭 안겨있어.”
추선우는 지현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연신 시선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그녀를 안은 손이 저려오고 있었지만, 쉬지 않고 계속하여 뛰기 시작하였다.

‘척…….’
한 쪽 길모퉁이를 돌 때였다. 그의 앞으로 이장구가 고용한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추선우는 자신의 앞
쪽으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며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그대로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쓴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고, 추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채, 조금은 가픈 숨을 내 쉬고 있었다.

‘떠벅 떠벅’
사내가 먼저 움직였다. 추선우는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다시 지현을 꼭 안았고, 지현도 자신을 더 강하게 안은 선우의 손을 느끼며, 추선우를 더 꼭 안았다.

“팀장님!”
두 사람의 거리가 거의 3 미터 정도로 좁혀지고 있을 때였다. 태정민의 경호원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즉시 그 사내의 걸음도 멈췄다.
“정의의사도…….너와 관계없는 일에 목숨 걸지마라.”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 차가운 어투였다. 정확히 선우를 향해 숙인 고개를 들어 보이며
말하였고, 그와 눈이 마주친 선우의 몸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 듯 한 느낌이 일어났다.
“저 놈…….얼굴 캐치해라.”
정확히 추선우의 뒤쪽으로 설치된 CCTV 가 고개들은 그 사내의 얼굴을 포착하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설장호가 대원에게 말하였다.
“쌍다리 앞 쪽, 세 번째 골목 모퉁이다. 추선우와 그 의문의 사내가 조우했다. 목표를 변경한다.
추선우를 보내주고, 추선우의 뒤를 태정민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박태식은 의문의 사내를 잡는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변경된 명령을 하달하였다. 박태식에게 추선우의 뒤를 따르도록 명령했지만, 그 명령을
변경하여 태정민에게 붙도록 하였다. 그리고 박태식은 형사 팀을 움직여, 선우와 조우한 해당 인물을
잡도록 하였다.

“오늘은 서로 안면만 익힌 것으로 하자. 하지만 내가 정한 시간이 3 일이라, 너를 곧 다시 찾아갈 것이다.


그 때…….그 아이만 내어준다면 넌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너의 목도 함께
떨어진다. 명심해라 꼬맹아.”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추선우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인 뒤,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팀장님! 저깁니다!”
그가 추선우의 앞을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 들 때, 그의 모습이 형사 팀에 포착되었고, 곧 박태식은 물론,
그와 함께 움직이던 모든 형사가 다 움직였다.
“태정민. 모습을 숨긴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추선우의 뒤를 붙어라.”
“알겠습니다.”
사내가 추선우의 곁에서 멀어졌고, 박태식이 그를 쫒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던 태정민을 멈추게 하였고, 그의 곁으로 다가서는 것을 막아 세웠다.

“삼촌…….무서워…….”
“미…….미안해.”
지현은 가만히 서 있는 선우를 더 꼭 안으며 말했고, 그 순간 지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진작
지현의 귀를 막았어야 했지만, 그와 마주친 그 순간. 선우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잠시만 참아. 곧 내려줄게.”
선우는 다시 지현을 안고 뛰었다.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고, 곧 큰 길로 나온 뒤, 도로변에 있는
제과점으로 들어섰다. 이곳에도 CCTV 가 있지만, 일단은 긴장된 자신의 몸도 추슬러야 하며, 겁에 질린
지현의 마음도 진정시켜야 했다.

“추선우…….성북 2 동 소재 제과점으로 들어섰습니다.”


“태정민에게 알리고, 붙어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CCTV 를 확인한 대원이 말했고, 설장호는 의자에 몸을 앉히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비록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추선우를 돕고자 움직인 것이지만, 오히려 그에게 실수를 범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박태식…….어찌됐나? 녀석을 잡았나?”
긴장이 풀린 설장호가 박태식에게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다.
“박태식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봐.”
답변이 없어 대원에게 그의 위치파악을 물었다. 그리고 대원들은 그 즉시 박태식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없습니다. 인근 CCTV 에 박팀장의 모습이 잡히는 곳은 없습니다.”
“뭔 소리야? 조금 전까지 그 의문의 사내를 뒤쫓았는데, 사라졌다니? 다른 팀원들이라도 찾아 봐.”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팀장과 함께 움직였던 형사들 모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설장호는 앉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였다. 수많은 CCTV
영상이 모니터에서 지나쳐가고 있지만, 그 일대의 모든 CCTV 가 촬영하고 있는 화면에는 박태식은 물론,
그와 함께 움직였던 형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실장님…….저기.”
그리고 다른 CCTV 영상을 보며 한 대원이 말했고, 그 영상을 메인화면에 띄웠다.
“대체…….저 놈 정체가 뭐야?”
CCTV 에 잡힌 인물은 의문의 사내였다. 그는 골목을 나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곧 CCTV 를 향해
살짝 고개를 들어 시선을 준 후, CCTV 가 설치된 반대방향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뭔가 일이 생긴 듯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전이었다. 한 대원을 말에 시선을 해당 CCTV 의 영상으로 돌렸고, 그 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놀란 듯,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우왕좌왕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젠장…….어서 사람을 보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영상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박태식이 몸을 비틀거리며 나오고 있었고, 곧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태정민!”
“네. 실장님!”
“지금 즉시 쌍다리 앞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박태식이 쓰러져 있을 것이다! 어서 병원으로 후송해라!”
“네? 무슨 말씀입니까? 박 팀장이 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어서 서둘러!”
“추선우는요? 이놈은…….”
“일단 경호원 한 놈만 붙여 놔라.”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을 받고 그 즉시 움직였다.
“대체 뭐야…….추선우와 조우한 후, 박태식이 따라 붙은 뒤, 고작 10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박태식과
형사들이 저 꼴이라니…….”
설장호는 모니터를 보며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진정 10 분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박태식은 물론
형사 일곱 명이 한 사내에게 모조리 당한 것이었다.

“대체…….이 놈들 다 어디로 간 거야?”


같은 시각. 강서진은 그제야 쌍다리 앞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은주와 실랑이 끝에 그녀를 떼어내고 다시
내려왔지만, 모두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골목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었다.
“태정민!”
그 순간 자신의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태정민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고,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태정민은 뛰던 발걸음을 멈춰 세운 뒤, 그녀를 보았고, 곧 그녀에게 경호원 한 명을 보낸 뒤, 자신은
설장호가 일러준 곳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박팀장님!”
현장에 도착하였다. 난장판이었다. 박태식을 비롯하여 형사 일곱 명이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박태식을 제외하고는 형사들 모두가 팔, 다리 하나씩 부러져 있었다. 곧 국정원 소속 인원들도
도착하였다. 이들은 다른 길을 막기 위하여 움직였었고, 설장호의 명령으로 해당위치로 서둘러 온
것이었다. 각기 차량에 부상자를 싣고, 서둘러 병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태정민입니다.”
“어찌되었나?”
박태식을 차량에 태우고 병원으로 후송 중, 설장호에게 현 상황을 보고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박태식 팀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팔, 다리 하나씩
부러졌습니다. 당분간 함께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임무는 다른 놈들이 하면 된다.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
“네.”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를 끝낸 후, 그 자리에서 블루투스를 뽑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전개에 그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주 큰 변수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저 추선우의 곁을 돌면서 다가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잡아 족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놈이 다가섰다.
고작 한 놈이 다가선 것에 너무 안일한 판단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단 한 놈에게 형사 팀 전원이
뻗어버린 순간이었다.

“화면에 잡혔던 그 놈…….그 놈의 신상을 1 시간 안에 털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목소리는 굉장히 날카롭게 들였다. 꽉 깨문 이가 다 어스러질 정도였고, 그의 표정은 진정
악마의 표정과도 같은 형태로 변해갔다.

“삼촌…….”
제과점에 들어선 후, 선우는 간단하게 빵 몇 개를 산 후, 지현에게 주었고, 지현은 빵을 먹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 선우를 불렀다.
“응? 왜?”
“아니야…….삼촌도 좀 먹어.”
“그래. 같이 먹자.”
선우는 그 사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 앞에 선 인물로 인하여 두 손이 떨린
순간은 처음이었다. 그저 다가서며 한 마디를 한 것뿐이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추선우는 아직도 제과점에 있나?”


“네.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과점 맞은편으로 경호원 한 명이 대기 중이었고, 사무실에서는 설치된 CCTV 를 전담하여 체크하고 있던
대원이 설장호의 물음에 답했다.
“박태식과 형사 일곱 명을 상대하고도 멀쩡하게 그 곳을 벗어났다…….젠장…….뭐하고 산 놈이야. 만약
그 놈이 다시 추선우와 조우한다면, 뻔 한 결과가 나온다. 추선우도 죽고, 지현도 죽는다. 생각을
달리해야 하나…….”
설장호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를 믿고 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계획에 이미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1 시간이 지나갔다. 설장호는 다시 제과점 앞 CCTV 를 확인하고 있던 대원에게 물었다.

0002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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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1 시간 지났는데, 아직 나오지 않는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당 CCTV 를 보았다.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고, 체크하고 있는 대원은
잠시도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태정민. 현재 제과점 앞에 있는 경호원이 누구야?”
“제가 지금 제과점 앞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강 검사님도 병원으로 왔고, 강남서에서도 왔으니, 저까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제과점으로 움직였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그래? 그럼 제과점으로 들어가라. 들어가서 확인해.”
“네? 추선우와 조우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1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나오지 않아. 쉽게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직접 확인해. 그 놈과
마주칠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설장호는 이미 추선우가 제과점을 나간 것이라 판단 내렸다. 비록 정문을 촬영하고 있는 CCTV 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건물 뒤편이나, 옆 골목으로 연결된 통로만 있다면, 충분히 정문을 통과하지 않더라고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지랄맞군…….하나하나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판단을 단 하나도 하지 못했어…….그
의문의 사내도 그렇고, 또 제과점으로 들어간 추선우가 다른 방향으로 그 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
….아주 내가 제대로 미쳐가는구나.”
설장호는 자책하였다. 자신의 모든 지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 잘못된 지휘로 인하여,
자칫 박태식은 물론, 형사 일곱 명의 목숨마저 잃을 뻔하였다.

“없습니다.”
잠시 후, 태정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이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으니, 그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다시 확인하겠다. 인근에서 대기하라.”
“네.”
설장호는 힘없는 목소리로 명령을 하달한 뒤, 대원들에게 서둘러 추선우를 찾도록 명령 내렸다.

“실장님. 신원조회 나왔습니다.”


“!!!”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그 의문의 사내에 대한 신원조회 결과가 나왔다.
“뭐야 이게…….”
하지만 화면에 뜬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 이름도 없었고, 나이도 없었다. 그저 'K‘
라는 단 한 글자만이 떠 있었다.
“이거 우리 시스템으로 조회한 것 맞아?”
“네. 그래서 이 정도라도 나온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정보 확인 시스템은 일반인이 사용하는 시스템과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출생신고가 된
사람이라면, 그의 모든 기록을 다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을 이용하고도 해당
인물에 대한 기록은 'K'라는 단 한 글자 뿐이었다.
“미치겠네…….더 상위보안으로 접근해서 확인해봐.”
“국정원장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그 놈의 허가 허가! 허가 받으려 기다리다 사람 죽는다! 제발 위급상황일 때는 그 놈의 절차란 것 좀
어찌 무시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방법 없어!”
설장호는 대원의 말에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뭘 하나를 하려면 이토록 그쳐야 할 절차가 많았다. 선 조치
후, 보고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언제나 이 문제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설장호는 끝내 폭발하며 소리쳤고, 자신이 직접 상위보안레벨을
뽑아들고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에게는 상위보안급 레벨 정보가 몇 개 있었다. 그의 업무가 주로 비밀업무가 많기에 상위기관에
보고 없이 직접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몇 있었다.

“나왔습니다.”
검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K'라는 의문의 사내에 대한 정보가 떴다.
“뭐야…….이 새끼는?”
화면에 뜬 자료를 보며 설장호의 표정이 구겨졌고, 곧 거친 말이 내뱉어졌다.

“이름 석강수. 나이 37 세. 국가정보원 특수임무팀장. 2012 년 상관명령불복종 및 살해혐의로


영구재명?”
그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을 읽어보던 설장호의 표정은 더욱 더 구겨졌다. 그리고 살인이 아닌 살해혐의로
국정원에서 쫓겨난 인물이었다.
“젠장…….우리 선배네.”
따져보면 설장호의 선배였다. 자신보다 먼저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던 인물이었다.
“실장님.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뭐야?”
설장호는 석강수의 자료가 뜬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매치되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대원이 보인 자료를 보았다. 그리고 설장호의 눈동자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고, 곧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바로 대원이 해당인물과 대조한 자료는 이창민 대사를 죽였던 범인이 차에서 내릴 때 찍힌 영상의
정지화면이었다. 비록 주위가 어둡고, 모자를 눌러 썼기에 해당인물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그의 복장이
조금 전, 북정마을에서 찍힌 영상과 아주 흡사하였다.
“선배고 나발이고, 너 이 새끼…….제대로 걸렸다.”
설장호는 확신하였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확신하였다. 이창민 대사를 죽인 인물의
체형과 추선우를 쫒을 때 찍혔던 그의 체형. 그리고 복장. 일치하는 부분이 꽤 있었기에 설장호는
확신하였다.
“당장. 이놈에 대한 모든 것을 찾아. 오늘 밤 안으로 찾아 나에게 가져온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모니터 속 석강수를 보며 말했고, 곧 더욱 더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실장님. 제과점으로 들어갔던 추선우와 지현양의 위치입니다. 이미 성북동을 빠져나왔습니다. 현재


혜화문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설장호의 눈빛은 여전히 모니터에 띄워진 석강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한 대원이 추선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혜화문? 시간상으로 보면 제과점에서 얼마 있지 않아 나온 것이군. 일단 태정민에게 알리고, 난 지금
바로 박태식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 보겠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여전히 석강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가며 메인모니터에 뜬
석강수를 다시 한 번 본 뒤, 박태식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하였다.
추선우와 지현의 위치가 확인되었으니, 그 두 사람의 곁으로 먼저 움직여야 하지만, 박태식의 안부도
알아봐야 하기에 병원에 들른 후, 곧바로 태정민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지현이를 앞에서 보았는데, 그냥 살려두고 왔다니? 일을 빨리 끝낼수록 자네에게
이롭고…….”

“어차피 3 일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안에 정해진 목표의 목이 떨어졌다는 대답만 들으면 되는 것이니
너무 서둘지 마십시오. 그 시간 안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한 편. 자신이 죽여야 할 목표물을 앞에 두고서도 그냥 돌아서 간, 석강수는 곧바로 이장구에게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그의 설명을 들은 이장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보다. 그 정의의사도…….흥미롭더군요.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뒤를 형사들과 국정원소속 인물들이 쫒고 있는데도, 굳이 그 아이를 꼭 안고
경호한다는 것이…….”
“목표는 그 놈이 아니다. 아이만 서둘러 죽여. 그리고 당분간 몸을 숨겨라. 네 말처럼 이미 일이
커져버렸다. 형사들은 물론, 국정원이 붙었다. 하물며 청와대 경호원까지 붙었으니,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일처리가 끝난 후, 당분간은…….”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뭐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내 걱정보다는
형님 걱정이나 하며 잘 도망 다니구려. 상황을 보아하니 잡히며 그냥 목이 날아갈 것 같은데…….대체 뭘
얼마나 먹었기에 이리 대담한 일을 하는 거요?”
“그런 쓸데없는 물음은 하지 마라. 어차피 그런 것까지 묻고 일을 진행하는 네가 아니잖아.”
“하긴…….나야 뭐 정해진 돈만 받으면 되는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소. 나에게 줄 액수도 만만찮은데,
얼마나 받았기에 목을 내놓고 이런 일을 하는지 그냥 궁금해서 말이오.”
한 시가 급한 이장구와는 달리, 석강수는 오히려 스릴을 느낄만한 일거리를 다시 찾은 것에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설장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추선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본 인물이 없었다. 설장호는
CCTV 에 찍힌 그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눈빛만으로 추선우의 진심을 확인하였다. 설장호에 이어
석강수도 추선우와의 단 한 번의 조우로 인하여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감을 잡은 것이었다.

“지현아. 잠시만.”
한 편. 성북동을 빠져나온 추선우와 지현은 국정원 사무실에서 확인한대로, 혜화문 인근이었다. 추선우는
곧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서며 지현에게 말했고, 주위를 살핀 뒤, 은주에게 전화하였다.
“잘 도망쳤어?”
전화를 받자마자, 은주가 물었다. 선우가 먼저 말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가 선우일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물었다.
“그래. 고마워. 이래저래 아주머니와 너에게 신세를 많이 진다.”
“간질거리는 말은 필요 없고. 지금 어디야?”
“어디? 미안해, 혹시나 해서 말이야. 너의 전화도 추적되고 있을 수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어디냐고?”
“혜화문 인근이야.”
선우는 진심 은주의 휴대전화도 혹시나 그들이 추적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조금 전의 일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그녀에게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여 끊으려 하였지만, 은주의 집요한
물음에 어쩔 수 없이 현 위치를 알려주었다.

“기다려, 집에가 몇 가지 챙겨서 30 분 안에 갈 테니까?”


“왜? 위험해, 그리고 혹시…….”
“시끄러. 네가 걱정돼서 이러는 것은 아니야, 넌 상관없지만, 그 꼬맹이, 여자아이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여자아이인데, 내가 17 년 전에 입던 옷을 입히고, 씻기지도 않고, 뭐냐 그게…….기다려
택시타면 곧 가니까.”
선우는 은주의 말을 듣고, 자신의 다리를 꼭 붙들고 있는 지현을 내려 보았다. 아침에 미희의 집에서
대충 씻고 나왔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얼룩진 얼굴이었다.
은주와 통화를 끝낸 후, 선우는 몸을 낮추어 지현을 보았다. 지현은 자신을 보는 선우를 향해 마냥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의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는 마음의 안정이 다시 찾아온 듯 한 그녀의 표정이었다.

“지현아.”
“응?”
“그…….말이야. 지현이가 못된 이모라고 한 이모…….”
“왜? 그 사람들한테 잡혔데?”
선우는 은주가 이곳으로 온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려 하였다.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듣자마자 지현은 의외로
놀란 눈을 한 채, 선우에게 물었다.
“아니. 잡힌 것은 아닌데, 지현이가 안전한지 보고자…….이곳으로 온다는데 어떡하지? 그냥 가라고
할까?”
“…….”
지현은 선우의 말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불과 1 시간 정도 전까지 만하더라도, 은주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였다. 하지만 지금 지현의 머릿속에는 선우의 품에 안겨 그 곳을 벗어날 때, 필사적으로 형사들을
온 몸으로 막아 세우던 그녀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0002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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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고 해?”
다시 물었다.
“아니…….신세를 졌으니까 고맙다는 말은 전해줘야지. 오라고 해. 단지 고맙다는 말만 전하려고 하는
거야. 다른 뜻은 없어. 그러니 삼촌도 오해하지 마. 내가 그 못된 이모를…….”
“알아. 우리 지현이가 착하잖아. 지현이 말처럼 신세를 졌으니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지.”
선우는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역시 열 살의 어린 아이가 챙겨서 한 말은 아니지만, 지현도 조금
전의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0 분 후, 은주가 도착하였다. 지현은 은주를 제대로 보지 않고 여전히 선우의 옆에 서 있었고, 은주는


지현을 보며 곁으로 다가섰다.
“그래도 조금 전과는 다르네. 선우의 뒤로 숨어들더니 이제는 옆에 서서 나를 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좀
풀린 듯한데, 우리 이참에 더 친해져볼까?”
은주는 지현의 앞에 선 후, 선우가 하는 것처럼 몸을 낮춰 앉은 뒤,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후, 말하였다.
“무슨 말이야?”
선우가 은주의 말을 듣고 물었다.
“좀 씻기고 옷을 다른 것으로 사 입혀야겠어. 주위를 둘러봐라, 누가 요즘 이런 옷을 입고 다녀? 아무리
남자라도 그렇지, 여자아이 패션에 신경도 좀 써라.”
은주는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선우를 보며 말하였고, 곧 다시 지현을 향해 보며 손을 내밀었다.
“가자. 이 못된 이모하고 지현이가 오늘은 좀 친해져보자.”
은주는 웃으며 말했고, 지현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잠시 동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선우를 향해
보았고, 선우가 미소를 짓자, 다시 은주를 향해 본 뒤,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너도 좀 씻어. 냄새나서 안아주지도 못하겠다.”


“야! 네가 왜 나를 안아줘?”
선우는 은주의 직설적인 말에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하였고, 그의 말과 붉어진 얼굴을 본 지현이 미소를
지었다.

“태정민입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약 3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태정민이 탄 차량이 있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래? 이제부터는 절대 시야에서 놓치지마라. 너도 보았으니, 지금 지현을 쫒는 놈이 어느 정도의
놈인지 알 것이다. 박태식이 당했으니, 신중히 행동하고.”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서 추선우와 지현, 그리고 은주가 함께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차후의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그는 곧 박태식과 형사들이 입원한 병실로 들어섰다.
“괜찮나?”
병실에 들어서자, 박태식은 서 있었고, 나머지 형사들은 모두 몸 일부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를 보며, 박태식이 인사하였고, 누워있던 형사들도 인사를 하려 하였지만,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모두 그대로 있어. 박팀장과 대화 할 테니, 자네들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나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박태식만을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휴게실로 들어가 그를 보았다.
“넌. 별다른 문제없어?”
“네. 보시다시피 그냥 반창고 몇 개 붙인 것이 전부입니다.”
“다행이군. 그럼 넌 곧바로 다시 움직인다. 형사팀 인원을 다시 배치해. 경찰특공대쪽은 물론, 독한
놈들로 다시 구성하고…….”
“그 놈. 누구입니까?”
설장호가 박태식에게 새로운 팀 구성을 요구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박태식이 물었다.
“석강수.”
“석강수?”
“그래. 내 선배였던 인간인데, 우리 국정원 내에서는 이미 독종이라고 별명이 붙은 인간이야. 지금은
영구제명되서 쫓겨났는데, 이런 짓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다.”
박태식은 석강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설장호에게 그의 대한 말을 들은 후, 성북동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놈. 그냥 살인기계.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우리 형사들을 제압하면서, 단 한 치의 인간이라 볼 수
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녀석에게 잡히는 순간. 팔, 다리 하나는 무조건 아작 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박태식은 그와 마주하였던 순간을 말하였다. 이미 설장호는 석강수에 대해 알고 있기에, 크게 놀라는
눈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추선우는 어찌 되었습니까? 그 놈이 붙었다면…….”
“걱정 말고 몸이나 추슬러. 지금 태정민이 붙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무사하고, 지금부터 태정민이
완벽하게 밀착경호를 할 것이니, 반창고 떼면 다시 나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박태식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다시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태식과
형사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혜화문 쪽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띠리리리’
태정민에게 전화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려는 순간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혜화문 인근인가?”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먼저, 현 위치를 물었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쫒기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지금 한가롭게 쇼핑을 즐기고 있습니다.”
“쇼핑? 뭔 소리야? 자세히 보고 있는 것 맞아?”
“네. 맞습니다.”
“아주…….정신이 빠져나가버린 모양이군. 알았어. 나도 인근이니 곧 합류하겠다.”
“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는 자신의 전화를 보며 서 있었다.
“쇼핑…….그래. 정신이 외출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도움 된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린 후, 곧 태정민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팀장님. 지현의 추격은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장호와 통화를 마친지 약 20 분 후, 곧바로 경호원 한 명이 말하였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난감하네. 우리 쪽에는 여자가 없는데.”
태정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현과 은주가 목욕탕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안 씻을 거야?”
목욕탕 앞에 선, 은주가 선우에게 물었다.
“난. 잠시 몇 가지만 알아보고 올게. 그리고 목욕을 끝내더라도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나오지마.
알았지?”
“걱정 마. 네가 몰라서 그렇지 여자는 목욕탕 들어가면 최소 두 시간이다. 그러니 네 일을 잘 보고 와.
그리고 전화하면 나갈게. 지현아 들어가자. 오늘 이 못된 이모가 지현이 몸에 있는 더러운 먼지를 아주
말끔하게 씻겨주고, 조금 전에 우리가 산 예쁜 옷도 입어보자.”
은주는 선우에게 말한 뒤, 다시 지현에게 말하였고, 지현은 선우를 향해 보았다.
“그래. 못된 이모와 잠깐만 있어. 삼촌이 일이 있어서 잠시 볼 일 보고 올 테니까. 알았지?”
“응. 빨리와야해.”
“그래.”
지현은 선우를 안아주며 말했고, 선우도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태정민이보고 있었다.

“일단. 목욕탕 앞에서 너희 둘은 대기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추선우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나와 함께


움직인다.”
“아니. 추선우의 뒤는 너와 나만 쫒고, 나머지는 지현이를 경호해.”
태정민이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난 뒤, 곧바로 차량 옆에서 설장호가 담배를 물고 중얼거렸다.
“오셨어요?”
“그래. 그런데 추선우 손이 빈손이네. 쇼핑했다며?”
“네. 잔뜩 샀는데, 조금 전에 지현과 함께 목욕탕으로 들어간 집주인 딸이 들고 들어갔습니다.”
“지현이 옷을 산 모양이군. 그나저나 대체 추선우란 놈도 이해할 수 없는데, 저 집주인 딸이란 여자도
이해할 수 없군. 왜 굳이 위험을 사서 겪어보려 하는지 원…….”
설장호는 추선우의 주변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보기 힘든 시대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주변 사람들은 참으로 타인을 잘 돕고 있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추선우. 이동합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추선우는 목욕탕 앞에서 주위를 살핀 뒤, 곧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경호원의 말에 태정민과 설장호도 함께 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추선우가 목표는 아니지만, 목욕탕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일단 외부로부터 어느정도는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기에, 외부에서 움직이는 추선우를 추격하는 것이었다.

“안되겠다. 마냥 그 놈에게 지현을 맡겨둘 수 없을 것 같으니 우리가 직접 움직이자.”


한 편. 이장구는 석강수가 지현보다는 추선우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여겨, 강철호와 함께
따로 지현을 찾아 일을 마무리 하려 하였다.
“그 놈. 대단한 놈 같기는 하더만요.”
강철호는 이장구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당한 그 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강함을 몸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그 놈은 강하다. 아주 강해. 내가 이창민대사를 따라다니며, 수없이 봐 왔던 놈들 중에서 그런
놈은 진정 처음이었다.”
이미 이장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석강수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위하여 그 놈을 국정원에서 내치도록 계략을 꾸몄고, 그에게 살해누명을 씌워 쫒아냈지.
그리고 그 복수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는데, 이놈이 지금 엉뚱한 놈에게 꽂혀있다.
이장구의 말에 지난 과거에 관한 말이 나왔다. 석강수는 국정원에서 살해혐의로 영구제명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장구가 꾸민 계략이란 뜻이었다.
석강수가 제명된 그 전부터 이미 이 계획은 진행 중이었다는 말과 같았다. 냉혈인간이라 불렸던 석강수가
필요했던 일. 점차 이창민의 죽음에 관한 것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한 편. 목욕탕에서부터 홀로 움직이고 있는 추선우의 뒤를 쫒고 있는 태정민과 설장호였다. 태정민은
혜화문 인근에서 다시 북정마을로 향하는 그를 보며 설장호에게 물었다.
“이틀 동안 지현을 데리고 움직였으니, 자신이 볼 일을 보지 못했었지. 아마도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을까?”
태정민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는 듯하였다. 이틀 전, 불연 듯 찾아온
지현으로 인하여 이틀 동안 추선우는 다른 일정을 전혀 보지 않았다. 오로지 지현의 곁에 붙어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은 국정원에서 CCTV 로 확인했었다.

비록 새벽시간에 그의 행방을 놓쳤지만,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일을 보러 다녔다고 생각지 않은


설장호였다.

0002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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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로 계속 가면 다시 북정마을입니다.”
잠시 동안 그와 일정거리를 두고 쫒았다. 그리고 행로를 보면 다시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에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집으로 가는 건가…….”
북정마을로 향하는 것이 맞는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고 여겼다. 바로 자신의 집. 북정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북정마을로 향했지만, 결국 잠복중인 인원에 의해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


내려왔었다. 이에 자신홀로 다시 북정마을로 향한 것이라 생각했다.

“쌍다리입니다.”
북정마을로 오르는 길인 쌍다리 앞에 멈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추선우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쌍다리
앞은 오전에, 모든 추격을 따돌렸던 마지막 장소였다.
“아직 인근에 형사들이 많습니다. 오전에 있었던 박태식 팀장의 일로 인하여 형사들이 주변정리를 하고
있는데, 왜 다시 이곳으로 왔을까요?”
“그야…….나도 모르지. 일단 좀 더 살펴보자. 그리고 저 형사들은 이번 일을 모른다. 박태식과 같은
팀들도 아니고, 또 내가 받아들인 형사들도 아니야, 단지 오전에 있었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온
형사들인데, 문제는 이번 사건의 주범이 석강수라는 것이다. 저들도 필시 인근 CCTV 를 확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석강수는 물론, 지현이와 추선우의 얼굴도 공개된다. 일단 박태식에게 말해서 저들이 이
일에서 손 떼도록 해 두어야겠군.”
추선우가 이곳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지나쳐 갈 일이었다. 오히려 추선우가 다시 이곳으로 향한
것이 일을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설장호에게 알려주는 역할까지 해 주었다.

“뭔. 어린애의 몸에서, 때가 이리 많아.”


한 편. 목욕탕에 들어간 은주는 지현을 돌려 앉힌 뒤, 등을 씻겨주고 있었다. 은주는 곱상하게 생긴
지현의 외모와는 달리, 지현의 몸에서 생각보다 많은 때가 나오자, 장난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이 목걸이는 꽤 비싸 보이는데, 벗어놓고 들어오자.”
지현의 등을 때 타월로 밀어주고 있을 때,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몇 번 걸리자, 목걸이를 자세히
보며 말했다.

“안돼요.”
그러자 지현은 재빨리 몸을 바로 세우며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미안해. 난 그냥 목걸이가 예쁜데 내가 때 타월로 너무 밀어서 혹시나 목걸이에 흠집이라도
생길까해서…….”
“이 목걸이…….아버지께서 준거에요. 그리고 만약에…….만약에 아버지나,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때…….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지현은 목걸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목걸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지현의 말을
들은 후, 은주는 목걸이에 시선을 주었다. 어린 지현에게 그런 말을 남길 정도면 지현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미래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 딸에게 그런
말을 남겼을 리 없을 것이었다.
“이모는…….그냥 예뻐서 그런 거야. 네가 싫다면 계속하고 있어. 하지만…….몸에 붙은 더러운 때는
모두 씻자. 아주 문지르고 문질러도 계속 나온다.”
은주는 잠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바꾸기 위하여 웃으며 말했고, 지현도 자신의 손에 목걸이를 꽉 쥔
채, 다시 등을 돌려 그녀의 앞에 앉았다.
은주는 지현의 등을 밀어주며, 다시 한 번 목걸이를 보았다.

한 편. 추선우는 여전히 쌍다리 주위만을 맴돌고 있었다. 이에 설장호와 태정민도 덩달아 그 주변을 더욱
더 자세히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북정마을로 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뭘 특별히 행동하는 것도 없고, 당최 모르겠네요.”
쌍다리 앞에 도착한 지, 어느덧 30 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쌍다리 주변만을 맴돌고 있는 것을 두고 태정민이 말했다.
“지금 즉시, 쌍다리 인근 주변 CCTV 를 모두 확인해봐. 나와 태정민이 보일 것이고, 추선우도 간간히
보일 것이다. 그 외에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만 한 놈이 있는지 확인해봐.”
이에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연락하여 주변을 확인토록 명령 내렸다. 두 사람의 눈은 추선우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니, 다른 수많은 눈을 이용하겠다는 그의 뜻이었다.
“실장님…….저기.”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태정민이 어느 한 쪽을 주시하여 보고 있었고, 곧 뭔가 의문점을 발견했는지,
설장호에게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추선우가 정확히 태정민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설장호의
눈빛은 추선우가 향하는 곳, 태정민이 가리킨 곳을 향해 아주 매섭게 집중되어 있었다.

“긴장해라 태정민…….”
“네?”
“우리가 찾던 놈이 한 놈 더 나타났다.”
설장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리는 듯 들리고 있는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의
시선에도 자신의 눈으로 본 인물이 점 차, 확연히 들어오고 있었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였다.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석강수는 아직도 쌍다리 인근에 있었다. 수많은 형사들이
현장에서 사건 수습을 하고 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현장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추선우가 다시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를 찾고
있었다는 듯, 그의 곁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마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를 약속이나 한 듯, 한 명은 기다리고 있고,
한 명은 찾아오고…….”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은 물론, 각 부처 수장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를 믿으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고, 국정원장은 그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면, 지현마저 위험해 질 것이라 말하였었다.
그리고 지금…….자신의 믿음이 불신으로 바뀔 수도 있는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할까요? 더 붙을까요? 아니면 이쯤에서 지원요청을…….”
“확인한다. 추선우와 석강수. 두 놈이 한통속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귀로 직접 듣는다.”
“네? 그럼 지금 지원 없이 석강수라는 저 괴물과, 추선우를 모두 상대하겠다는 뜻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태정민은 직접 석강수에 대해 그의 힘을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박태식을 비롯하여 형사 일곱 명을 곱게 눕힌 오전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설장호 또 한, 석강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황에, 단 둘이서 저 괴물 같은 두 명을 상대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지원요청해도 그들이 도착하면 이미 현장에는 우리 둘 밖에 남지 않는다. 무의미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저…….형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설장호의 말을 듣던 중, 태정민은 현장 수습을 하고 있는 형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 일에 대해 저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들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라
여겨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설장호는 석강수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젠장…….일단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여차하면 우리 둘이서 둘 다 상대하자. 기껏 해봐야 너와 나,


팔, 다리 하나씩 부러지겠지.”
설장호는 아직 추선우를 믿는다는 말과 같았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자신의 팔, 다리를
내어주겠다는 각오를 말했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 똥씹은 얼굴은 뭐야?”


“아니요…….그냥 대단해서요.”
“뭐가?”
“팔, 다리 부러지는 것이 마치, 그냥 한 대 얻어터지는 정도로 말씀하시니…….”
“한 대, 얻어터지는 거나, 부러지는 거나. 아픈 것은 매한가지다. 그냥 달걀로 얼굴한번 문지르는 것과
병원 신세 지는 것의 차이일 뿐이지. 싫으면 물러나. 나 혼자 할 테니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 이래봬도 청와대 경호원 소속입니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인데, 상대가
무섭다고 물러나면, 그게 어디 경호원입니까?”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만약 지금 박태식과 함께 있었다면, 난 깔끔하게 물러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넌 아니지. 대통령을 경호하는 놈이 상대가 무섭다고 물러나면 그 경호원 자리를 내 놓아야지,”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석강수의 곁으로 향하고 있는 추선우를 향해 조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가시죠.”
곧 태정민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앞장서자, 설장호는 그의 뒤를 따르며 미소를 지었고, 곧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수많은 형사들을 한번 힐끗 보며, 석강수와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가 움직이자, 석강수는 굽이진 골목 안으로 들어섰고, 곧 추선우도 그 골목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조금 떨어지자.”
쌍다리를 지나 굽어진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시야에서 추선우가 잘 보이지 않자, 조금씩 더 다가선 것이,
그와 거리를 10 미터도 채 벌리지 않고 있는 것에 설장호가 앞서 걷는 태정민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골목 모퉁이. 추선우가 그 모퉁이를 돌자, 다시 빠르게 따라붙었고, 고개를 살짝 내밀자마자,
추선우의 등이 약 5 미터 정도 앞에서 보임과 동시에, 약 10 미터 정도 앞부분에서 석강수가 다른 방향을
보며 서 있는 것이 태정민의 눈에 보였다.
“젠장…….간 떨어지는지 알았네.”
태정민은 빠르게 몸을 숨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설장호도 태정민의 곁에 바짝 붙어서, 혹시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까하여 귀를 세우고 있었다.

‘띠리리리’
“!!!”
아주 조용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태정민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고, 석강수는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추선우를 향해 잠깐 돌린 뒤, 그를 향해 손가락을 뻗어 좌우로 흔든 후, 곧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추선우도 그 즉시 다른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젠장…….”
그리고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서 무음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전화기를 보며 쓴 소리를 내뱉었고,
설장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그를 지나쳐, 이미 모습을 다 감춰버린 석강수와 추선우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야!”
곧 태정민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전화를 받았다.

0002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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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왜?”
“지금 목욕탕 앞입니다.”
“그래. 너희들에게 목욕탕 앞을 지키라고 했으니, 당연히 목욕탕 앞이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전화해서
위치를 다시 말 하냔 말이야!”
쓸데없는 보고로 인하여 추선우와 석강수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을 놓쳤다고 여긴 태정민이었다.
“지금…….목욕탕 앞에 이장구와 함께 강철호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뭐야! 그 놈들이 거길 어찌 알고 와! 제대로 본 것 맞아?”
경호원의 말에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큰소리치며 말하자, 곧 설장호가 다가와 그를 보았다.
“알았어. 지금 간다. 그러니 절대 그들이 지현이와 만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경호해!”
“네!”
태정민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보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이장구와 강철호가 지금 목욕탕 앞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지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따라붙은 듯합니다. 일단 지현양의 안전이 우선이니 추선우를 잠시 홀로 두고,
지현에게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는 표정을 구기며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주위를 다시 한 번 두리번거렸다.
추선우의 심증을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믿음이 불신으로
바뀔 것 같은 불안한 마음만을 가진 체, 다시 지현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움직이려 하였다.
‘띠리리리’
그 순간 이번엔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왜?”
국정원 사무실이었다.
“지금…….실장님이 계신 곳에서 전방 30 미터 앞, 좌측으로 꺾이는 골목에 석강수가 서 있습니다.”
“!!!”
이미 이곳을 모두 벗어났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석강수는 벗어나지 않았다. 국정원 사무실에서
인근에 설치된 CCTV 에 석강수의 모습이 잡혔고, 그 내용을 곧바로 설장호에게 알려주었다.

설장호는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전방 30 미터 앞, 좌로 꺾이는 골목. 하지만 현 위치에서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가?”
“네. 그리고 추선우의 모습도 잡혔습니다. 그 역시 좌측 25 미터부근 골목길 모퉁이에 몸을 기댄 체, 서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벗어나지 않았다. 진정 목적을 두고 만나려는 것으로 밖에 풀이가 되지 않았다.
“알았다. 계속 감시해.”
“네.”
설장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방 30 미터와 좌측 25 미터 부근을 번갈아가며 한 번씩 보았다. 하지만
좌측 25 미터 부근, 추선우가 있는 지역은 굽어진 골목으로 인하여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정민.”
“네.”
“지금 즉시 목욕탕 앞으로가서, 경호원 팀과 합류해라. 그리고 절대 이장구가 지현을 만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막아. 목욕탕에 협조를 구해서라도 지현이 목욕탕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해. 그리고
이장구와 강철호, 두 놈을 잡아, 아니…….두 놈 중, 한 놈이라도 잡아.”
“실장님은요?”
“아무래도…….석강수를 만나야 될 팔자인가보다. 난 여기서 석강수와 추선우를 만나겠다.”
“…….”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현재 이들의 목표는 지현의 안전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가 이창민 대사를 죽인 용의자인 석강수다. 공교롭게도 현재 두 가지 목표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기에 서로 다른 목표물을 향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태식이라도 몸이 성한 상태라면 목욕탕으로 보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간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태정민과 설장호. 이 두 명이었고, 그 두 명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팀원들뿐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에 하나 석강수와 추선우…….두 놈이 한패라면…….”
“말했잖아. 두 놈이 한패라면 이 모든 계획은 전면 수정해야 하며, 내 팔,다리 하나를 내어준다고
말이야.”
태정민은 조금 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가 대단한 멘탈을 지녔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말을 들으니, 불안감만 증폭되는 듯 하였다.
“어서가라. 이장구가 벌써 목욕탕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우리가 이 계획을 실행할 때, 가장 중요시 했던
부분을 기억할 것이다. 빠른 정보입수와 함께, 빠른 이동성. 만에 하나 이 두 가지가 상대보다 늦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목표를 잃게 된다.”
자신을 홀로 두고 움직여야 하는 것에 태정민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 설장호가,
청와대 회의실에서 했던 말을 다시 일러주었다.
항시 대상의 뒤를 쫒으며 지원하되, 만에 하나 상대보다 늦는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꼭
명심하라는 국정원장의 말까지 모두 떠올리며 일러주었다.

“잠시 후…….뵙겠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은 곱창에 소주한잔하자.”
태정민은 그에게 인사한 뒤 말하였고, 설장호는 곧 석강수가 서 있는 전방을 향해 걸으며 말하였다.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며 태정민은 서둘러 목욕탕 방향으로 움직였고, 설장호는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정확하게 전방을 향해 주시하며 걷고 있었다.

“석강수!”
설장호는 약 10 미터 정도 거리를 둔 후,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목욕탕으로 향하던 태정민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았고, 골목 한 쪽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추선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이거…….아무리 내가 영구제명 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배는 영원한 선배 아닌가…….설장호.”
몸을 숨기고 있던 석강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고, 검은색 재킷에 검은색바지,
그리고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렇지…….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지…….하지만 말이야. 나에게 선배란 것은 존중을 의미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선배는 선배라 부르지도 않지. 나를 잘 알면서 선배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
테고…….”
설장호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추선우의 뒤를 쫒으며, 추선우를 볼 때 나타났던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날카로움을 보이고 있었다.

“이 마을. 참 좋다. 굽이진 골목길로 인하여 몸을 숨기기에도 좋고, 또 사람들도 적고. 비명소리를 듣고
그 누가 찾아온온다고해도 굽이진 골목으로 인하여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참 좋다.”
석강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골목은 상당히 굽이진 곳이
많았다. 길게는 몇 십 미터까지 쭉 뻗어있지만, 대부분의 골목들은 5 미터 10 미터도 못가 다시 굽어지고,
또 다른 골목과 만나며 또 굽어져 있었다.
“한 가지만 묻자. 왜 그런 것인가?”
“왜? 아하…….이창민을 죽인 것? 그것을 묻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이유는 간단하지 않겠나. 국정원에서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 영구제명 시켰다. 비록 살인범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아,
철창신세는 면했지만, 인생이 바뀌어버렸지. 그래서 생각했다. 이미 찍힌 낙인이니, 그 낙인에 맞는 일을
해보자 하였다. 마침 나의 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더군. 그래서 잡았지.
아주 따뜻한 손을 말이야.”
설장호의 표정은 더욱 더 날카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입으로 누명이라고 말하니, 그 누명을
벗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명을 진실로 바뀌게 해버린 그의 결정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장호야.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이창민을 죽인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에게 이 일을 의뢰한 놈들


…….생각보다 아주 크다. 그리고 얽힌 것이 너무나 많다. 그 엉킨 실타래는 절대 풀 수 없다. 너무나
꼬이고 꼬여 있는 실타래다.”
석강수는 설장호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얽히고…….꼬이고 꼬여서 다시 풀 수 없다면, 그냥 자르면 디는 것이다. 잘라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라면 그냥 태워버리면 되는 것이다. 우린…….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건
아마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설장호는 석강수와는 달리,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묻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많을수록 일은 복잡해지는 것이다. 질문보다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라.”
설장호가 곧바로 또 하나의 질문을 하려하자, 석강수가 다시 시선을 설장호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이제
그의 눈빛도 처음과는 달라보였다. 눌러쓴 모자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시선. 진정 독기를 품고 있는 듯 한
그의 눈빛이었다.

“추선우…….그를 왜 만나려 하는 것인가?”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을 듣고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질문을 하였다.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매우 중요하였다.
“추선우? 그 놈은 누군가?”
“…….”
다른 답은 필요치 않았다. 석강수가 말한 이 한마디가 충분한 답이 되었다. 석강수는 추선우를 모른다.
즉. 두 사람이 약속하여 만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다행이군…….내 팔,다리 하나를 내어줄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잔뜩 구겨져 있던 표정을 잠시나마 풀며 말하였고, 이내 미소까지 지은
뒤, 천천히 석강수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재 이들이 서 있는 골목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좌측 골목에서 추선우의 모습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장구는!”
한 편. 목욕탕으로 향한 태정민은 경호원 팀이 잠복하여 있는 차량으로 올라타자마자 곧바로 물었다.
“저깁니다.”
한 경호원이 손가락으로 목욕탕에서 좌측으로 약 10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액세서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이장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0002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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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부어도 제대로 부은 노인네군. 어제 역삼역과 방배역에서 우리가 지현의 뒤를 따라붙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아주 대놓고 또 지현이의 뒤를 붙어? 우리를 우습게보던지, 아니면 진정 간을 내놓고
다니는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태정민의 시야에도 정확하게 이장구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철호와 함께 나란히 서 있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지현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보이면 조금 더 자세히 보려는 듯 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위치는 대충 잡아 온 것 같은데, 정확하게 지현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는 듯 한 행동이군.”
그들의 행동을 보며 태정민은 정확하게 말하였다. 이장구와 강철호는 지현이 있는 인근까지는 쉽게 왔지만,
지현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기에, 지나다니는 또래의 아이를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이었다.
“뭘 기다려. 저 두 놈. 우리가 잡아야 될 놈이다. 그리고 어제 방배역에서 당한 수모는 갚아줘야지.”
태정민은 두 사람이 정확하게 이장구와 강철호라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 채비를 하였다.
“혹시 목욕탕에서 지현이 나올 수도 있으니, 너희 둘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두 명은 나를 따라 움직여.”
“네.”
태정민이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액서사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이장구를 향해 보았고, 곧 강철호의 눈이
태정민과 함께 있는 경호원을 향해 보고 있었다.

“젠장…….청와대 경호원들입니다.”
태정민과 함께 내린 경호원은 지난 날, 방배역에서 강철호에게 일격을 당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그를
놓쳤던 두 명이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강철호가 이장구를 보며 말했다.
“오히려 더 확실해졌다. 저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지현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일단
네가 저들을 유인해라. 난 지현을 찾아보겠다.”
“알겠습니다.”
이장구도 태정민을 보았다.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이장구가 말했고, 강철호는 어제
이들을 쉽게 상대한 기억이 있기에, 다가서고 있는 그들을 향해 오히려 다가가고 있었다.
“어제의 수모…….오늘은 돌려줘야지.”
“보는 눈들이 많으니, 괜한 민폐를 일으켜서는 안 돼, 사람의 유동이 적은 적당한 곳으로 끌고가서 죽기
전까지만 패줘.”
“네. 팀장님.”
경호원의 말에 태정민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의식한 듯 말하였고, 곧 답을 한 경호원이 아주 빠르게
강철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장구!”
그리고 태정민은 두 명의 경호원이 움직임과 동시에 이장구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그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하였고, 이미 자신에게 경호원 두 명이 빠르게 다가오자, 강철호는 이장구를 향해 다가서는
태정민을 붙들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어제일은 우리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냥 키만 큰 놈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주먹이 맵더라.
그래서 오늘은 우리 주먹도 좀 맵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어때? 이런 곳에서 힘자랑 해봤자, 손해 보는
놈은 너다. 적당히 한적한 곳으로 움직이자.”
경호원은 태정민의 말처럼 그의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강철호를 유인할 목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강철호는
태정민을 피해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이장구를 걱정하는 듯, 쓴 표정을 지으며 두 경호원을
노려보았다.
경호원의 말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주먹질을 하면, 자신에게 이득 볼 것은 전혀 없었다. 경찰이 와도
저들은 대통령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기에, 결국 자신만 당하는 것을 알고서 경호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강철호였다.
이미 한 차례 이들에게 자신의 주먹맛을 보여주었으니, 자신에 차 있었던 강철호였다.

“곧 쌍다리 인근이다. 실장님의 상황은?”


한 편. 국정원 소속 대원들도 빠르게 쌍다리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설장호의 특별한 명령이
없었지만, 이미 CCTV 로 확인 된 상황이니, 사무실에서 직접 국정원 소속 대원들을 해당 지역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아직입니다. 아직 세 사람이 그대로 서 있기만 합니다.”
다행이었다. 누가 누구를 향해 주먹을 뻗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자칫 세 명이 서로 적으로 간주되어
주먹을 뻗는다면, 가장 이익 보는 인물은 석강수였다. 비공식적으로 추선우와 설장호는 동맹이지만,
동맹이라 생각지 않고 있는 추선우가 설장호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면, 이는 석강수를 돕는 일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추선우…….”
“추선우? 장호 네가 조금 전, 나에게 말한 놈이 이놈인가? 우연이군. 난 이놈이 추선우란 것은 몰랐지만,
네 말대로 난 이놈을 만나고 싶었다.”
설장호가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자 석강수가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설장호를 본 뒤, 곧바로 시선을 돌려 석강수를 보았다. 이미 설장호는
사당역에서 한 번 마주쳤기에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마주친 인물. 목소리만으로
자신에게 위압감을 선사해준 석강수를 다시 보며 서 있었다.
“추선우. 물러나라. 지금까지 네가 한 일과 지금의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저 놈은…….”
“당신이…….지현의 아버지를 죽인 놈인가?”
“…….”
설장호는 추선우를 뒤로 물러나도록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추선우는 석강수를 향해보며
물었고, 그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석강수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예사롭지 않다고는 느꼈다. 역시 예상대로 거칠군. 이보게, 정의의사도…….네가 무슨 영문으로 내가
잡을 타깃을 안고 다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상대를 잘 못 만난 듯하다. 난 지금까지 내가 찍은
타깃을 단 한번도…….”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네가 지현의 아버지를 죽였는지 만 말해.”
“…….”
석강수가 긴 연설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연설이 시작되고 난 뒤, 곧바로 추선우의 격한 물음에
석강수의 이가 꽉 깨물어졌고, 설장호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집중되었다.
“이보게 장호. 내가 지금 이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다는 것은…….내가 그만큼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감히…….나에게 저따위 말을 하는 어린놈을 앞에 두고, 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말이야.”
석강수는 매서운 눈빛을 설장호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인간이 되었다기보다. 천하의 석강수를 잡아먹을 신성이 등장한 것에 겁먹은 듯 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상황 아닌가?”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그러자 석강수의 주먹은 더욱 더 강하게 쥐어지고, 꽉
깨문 이는 어스러질 듯 빠드득거리고 있었다.
“많이 컸다. 설장호. 내 앞에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애송이가 이제 아예 나와 말장난을 하고
있구나.”
“조금 전에 네가 말했지? 입이 떠벌리는 많은 말은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이야. 네가
이창민을 죽였다는 것이 확실시되었으니. 더 이상 말은 하지말자. 내 임무 상…….내가 죽더라도 너를
잡아야하니 말이야.”
설장호는 조금씩 석강수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석강수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설장호를 보았고,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고 있는 추선우를 마저 보았다.
“장호야.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어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내가 그토록 가르치지 않았나?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딱 그 짓이다.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 들어오는 짓…….그렇게 죽고 싶은가?”
“여전히…….쓸모없는 말이 많네!”
자신을 상대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한 설장호를 보며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도록 말하자,
곧바로 추선우의 입에서 격한 말이 다시 나왔다. 그 순간 설장호의 걸음도 멈추었고, 설장호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석강수의 시선이 추선우에게 돌아섰다.
“지금…….나에게 한 말인가?”
석강수의 매서운 눈빛이 추선우에게 고정되며, 여전히 꽉 깨문 이를 한 채, 물었다.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미련한 짓이다? 그래…….진정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하지만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그 자리…….기꺼이 찾아가보고 싶지 않을까?”
추선우는 석강수를 정확히 노려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넌. 그만 물러나라 추선우. 이제부터는 내가 처리한다. 넌 지현이를 보호하고 있지만, 민간인이다. 이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막아 세웠다. 진정 젊은 혈기로 자칫 석강수에게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송장하나
치워야 하는 상황까지 전개될 것이 뻔하였다.
“아니요. 전 지현을 지켜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이놈을…….”
“지현을 지킨다면 지현이 곁에 있어야지 왜 여기에 있어!”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오히려 석강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설장호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추선우의 시선이 서서히 설장호를 향해 돌아섰다.
“네 말처럼…….지현이를 지키고자 하는 놈이 지현이를 버려두고 여기에서 뭐하나? 지금 지현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건가? 지현이 곁에 네가 어제 전철역에서 마주쳤던 운전기사가 붙었다. 그 놈이…….
지금 지현의 곁에 붙어있다.”
“!!!”
추선우는 모르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전화하기 전까지 목욕탕에서 나오지 말라는 당부는 하고 왔지만,
마음 속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서가라…….넌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지현이를 보호하는 것에만 열중해라. 내가…….허락한 것은


딱…….거기까지다.”
설장호는 추선우와의 직접적인 대면에서 그를 보내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는 그토록 잡고자
하였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난 뒤에는 그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설장호가 직접 추선우를
보며,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다.

“거기! 뭐하는 사람들이오!”


잠시 조용하였다. 그리고 곧 박태식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인근을 수사 중이던 형사들의 눈에 세
사람이 보였고, 한 형사가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어서가라 추선우. 지현은 네가 아니면 다시 웃으며 거리를 거닐 수 없는 아이다.”
“…….”
설장호의 이 한마디에 추선우의 눈빛은 돌아섰다. 자신이 아니면 거리를 거닐 수 없는 아이. 진정 그의
한마디는 추선우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거…….내가 생각했던 만남이 너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군. 장호야…….난 너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저 꼬맹이를 다시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꼬맹이…….오늘 만남은 얼굴을 익힌 것만으로
만족하자. 3 일이다. 3 일안에 난 너를 무조건 다시 찾아간다. 기다리고 있어.”
추선우가 그 현장을 벗어나기 전, 석강수가 말했다. 그리고 석강수가 먼저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0002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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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해! 어서 잡아!”
석강수가 몸을 서서히 뒤로하며 골목을 빠져나가려 할 때, 형사 한 명이 소리쳤고, 그와 같이 있던
형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추선우. 너도 가라!”
석강수가 벗어나자, 설장호는 곧바로 추선우에게 소리쳤고, 추선우도 자신이 나온 골목을 다시
돌아들어서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석강수를 쫒던 형사들과 함께, 마저 석강수의 뒤를 쫒기 위하여 뛰었다.
설장호가 갑자기 움직이자, 다른 형사들도 모두 그를 향해 움직였고, 추선우는 아무런 추격도 당하지
않은 채, 비교적 자유롭게 지현의 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굽이진 골목이라, 쉽게 찾지 못하겠습니다.”


석강수의 뒤를 쫒았던 형사들이 멈춰 섰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석강수로 인하여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곧 설장호도 그 자리에 도착하여 멈췄다. 그리고 나머지 형사들도 마저 도착하면서 설장호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하였다.

“당신 뭐야? 뭔데…….”


“실장님.”
형사가 설장호의 앞에 서서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신분을 묻는 순간,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곧바로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선 뒤, 형사들과 대치하여 섰다.
“물러나라. 형사들이다.”
설장호는 형사들과 대치한 국정원소속 대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하였고, 곧 자신의 신분증을 앞에 서 있는
형사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내민 신분증을 본 뒤, 곧바로 신원조회를 하는 형사는 그의 신분증이 위조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국정원 소속이 왜…….”
형사는 그의 신분증을 확인한 후, 그들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물었다.
“여러 가지 많은 일이 겹쳐 있습니다. 일단 자세한 내용은 제가 국정원으로 돌아가는 즉시, 지역
경찰서장에게 문서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오전의 사건이 그저 단순한 폭행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형사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신분증을 돌려주었고, 그와 함께 서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일단 지현쪽으로 움직인다. 그곳에 이장구가 나타났고, 태정민이 막고 있다. 만에 하나 추선우가
도착하기 전, 태정민쪽이 당하면 진정 일이 복잡해진다.”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태정민이 쉽게 당할 인물은 아니지만, 박태식처럼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두고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바삐 움직인 대원들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주위를 다시 두리번거렸고, 석강수가 모습을 감춘 마지막 지역을 향해
보고 있었다.

“석강수…….아직 이곳에 있나?”


그리고 국정원 사무실에 연락하여 그의 위치를 물었다.
“아닙니다. 인근 CCTV 에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추선우 역시 쌍다리를 벗어났고, 지금 그의 이동방향은
혜화문 쪽입니다.”
“그래. 알았다. 추선우의 위치는 언제나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석강수의 위치도 절대 놓치지마라.”
“네. 실장님.”
설장호는 쉽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 그리고 그를 잡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무조건 잡아야 하는 인물이었지만, 그를 잡지
못하였다.
인근을 수사하던 형사들은 물론, 국정원 소속 대원들까지 합류하였지만, 그의 모습은 사라졌고, 더 이상
쫒지 않았다. 충분히 그를 잡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결국 석강수를 그냥 보내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늘 만남은 내가 선배에게 주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3 일이라고 하셨으니, 그 3 일안에 다시 지현의


앞에 모습을 보이겠지요. 그 날은…….오늘과 같은 행운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가…….내가
당신을 선배로 대접하는 마지막 순간이었으니까요.”
설장호는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홀로 중얼거렸다. 선배로써…….그리고 자신에게 국정원
소속일원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쳐 준 스승으로써…….그에게 마지막 배려를 준 것이라 말하였다.
“설장호…….진정 많이 컸구나. 이제 내가 너를 피해 다녀야 할 시기인가 보군…….”
쌍다리를 완전히 벗어난 석강수. 그 역시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설장호의 성장을 보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인물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하는 인물로 성장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쉽게 상대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는 설장호가 한 말과,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이 일치하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선배로써 마지막 시간을 준 것이었고, 석강수는 그가 준 마지막 시간임을 알고서 물러난
것이었다.

“이장구…….그만 뜁시다. 나이 들어 이 무슨 개고생입니까.”


한 편, 이장구의 뒤를 쫒았던 태정민은 나이 쉰 살이 넘은 이장구의 걸음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장구는 필사적으로 도망친 것이지만, 태정민은 느슨하게 그의 뒤를 쫒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 들 때, 그의 뒤에서 마치, 마실 나온 사람처럼 뒷짐을 지며 말하였다.
이장구는 강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50 대 초반의 사내였다. 어떤 목적에 의해 이창민을
살해하는 일에 가담하였지만,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20 대 후반인 태정민을
따돌리는 것도 무리였고,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원팀장인 그에게 주먹을 뻗는 것도 무리였다.

“헉 헉…….역시 나이가드니 힘들군.”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이내 이장구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헐떡거리는 숨이 목끝까지 차오르자, 숨이
넘어갈 듯, 가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차피 더 이상 도망 다녀봐야 형량만 늘어납니다. 그냥 갑시다. 가서…….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세요. 그래야만 지금까지의 죗값에 대해 조금이라도 감형될 것 아닙니까.”
태정민은 아예 골목 벽에 몸을 기댄 채, 헐떡거리고 있는 이장구를 향해보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에게 경어조차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과 거의 두 배 정도 차이나는 나이이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구는 겨우 숨을 고르고 난 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난…….그저 깊숙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곧 떨어질 낙엽에 불과한 존재네…….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그 뿌리는 굉장히 깊고, 튼튼하지. 쉽게 끝내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까. 그 깊고 튼튼하게 박혀 있는 뿌리가 뭔지를 말하세요. 그래야 당신이 삽니다. 나이 들어
철창에 갇히면 누가 당신을 거들떠보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그냥 이쯤에서…….”
“그래…….내가 가지…….내가 직접 가서 말하지.”
태정민은 그에게 무력을 사용치도 않았다. 꼬박꼬박 높임말을 해주며, 어른으로써 대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장구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정,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태정민을 향해 두 팔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였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태정민은 굳은 표정을 푼 후, 그의 곁으로 움직였다.

‘띠리리리’
자신에게 순순히 두 팔을 내밀은 이장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순간,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어찌됐어?”
“지금 막, 이장구는 잡았습니다. 아니…….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두 손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강철호는?”
“지금 두 명의 경호원이 그에게 붙었습니다. 곧 그도 잡힐 것입니다.”
태정민은 이장구를 보며 설장호와 통화하고 있었고, 이장구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며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곧. 추선우가 목욕탕 앞에 도착할 것이다. 지현이 나올 수도 있으니, 지현의 눈에 이장구가
보이지않도록하고, 넌 추선우를 만나라.”
“네? 추선우를 만나라고 하는 것은…….”
“그 놈. 직접 보니 눈빛이 진심이었다. 거짓이 없었어. 그를 만나서, 우리는 너를 쫒는 것이 아니며,
지현을 데리고 가지도 않겠다고 말해. 단지…….뒤에 붙어서 움직이겠다는 말만 해.”
“…….”
태정민은 쉽게 답하지 못하였다. 이창민대사의 유일한 핏줄이며, 이 모든 사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증인과도 같은 사람이 지현이다. 그런 지현을 듣도 보도 못한 민간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민간인입니다. 그에게 지현을…….”
“그래. 민간인이지. 하지만 지금현재, 유일하게 지현의 마음을 얻은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열 살 된 아이의 마음도 헤아려야한다.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도록 해서는 안 돼.”
태정민은 굳은 표정으로 통화하였다. 설장호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을 경호하는 자신들보다
더 추선우를 믿고 있는 설장호의 뜻을 마냥 받아들이기에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수사의 최고 권한은 설장호에게 있었다. 그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태정민은 이장구를 끌고 다시 경호원 차량으로 왔다.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는 이장구를 안에 태웠고,
차량 안을 보았다.
“강철호는 아직이야?”
“네. 형호와 관식이가 갔는데, 그 한 놈을 이리 오래 상대하니 저희들도 이상하다고 여겨지지만, 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기다리고만 있는 중입니다.”
태정민의 눈빛이 변하였다. 그리고 이장구를 향해보았다. 이장구는 아무런 말없이 차창 밖을 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약 30 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형호와 관식이 움직인 방향은?”
“액서사리 매장 옆,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태정민은 경호원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뒤, 경호원이 말한
골목을 향해 움직였다.

00029 경호원 =====================================================================


====
                          
‘띠리리리’
한 편. 목욕탕 안에서는 은주가 지현에게 새로 산 옷을 입혔고, 거울 앞에 서서, 마저 단장을 도와주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직 목욕탕 안이지?”
추선우였다.
“그래. 넌 어디야?”
“곧 도착해. 약 5 분 후에 나와,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래”
은주는 통화를 끝낸 후, 다시 지현을 보았다. 깔끔하게 목욕도 하였고, 새로 산 옷도 입으니, 진정
요즘아이들처럼 보이는 지현이었다.

“예쁘네. 가자. 선우 삼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은주는 지현의 머리를 한 번 더 만져주며 말했고, 지현은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은주를 보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형호! 관식! 대체 뭐하는 거야!”


골목 안으로 들어선 태정민은 두 경호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당연히 자신의 팀원이 강철호를 쉽게
제압했을 것이라 믿고 소리친 것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고, 태정민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 한 놈 잡는데, 무슨 시간이…….”
태정민은 골목 안으로 더 들어서며 홀로 중얼거리다 말고, 눈동자를 심하게 떨고 있었다.
“형호! 관식!”
자신의 눈앞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고, 서둘러 그들의 곁으로 움직이며
소리쳤다.

“추선우다…….”
같은 시각. 목욕탕 앞에 있던 경호원의 눈에 추선우가 보였다.
“팀장님께 알려야겠군.”
태정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액서사리 매장 옆 골목에서 태정민이
뛰쳐나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태정민이 골목에서 나오기 바로 전, 추선우가 그 골목을
지나쳐 목욕탕 앞으로 움직였기에,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팀장님의 행동이 이상한데. 내가 나가볼 테니 이장구를 잘 보고 있어.”
한 명의 경호원이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쉽게 태정민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액서사리
매장으로 가려면 목욕탕을 지나쳐가야한다. 하지만 그 앞에는 추선우가 서 있었다.
“실장님. 추선우가 목욕탕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추선우의 좌측으로 약 10 미터 거리에 태정민
팀장입니다. 왠지…….태정민 팀장의 표정이 뭔가에 놀란 듯 한 표정입니다.”
설장호가 탄 차량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가장먼저 시선을 준 곳이 목욕탕 쪽이었고, 곧 그 옆으로
태정민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일단. 경호원 차량에 이장구가 있을 것이다. 그를 인계받아 국정원으로 호송하고, 두 명만 나를 따라
움직인다.”
“네. 실장님.”
설장호의 눈에도 태정민의 행동은 평소답지 않았다. 진정 무언가에 놀란 듯, 주위만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약 10 미터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추선우를 태정민이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설장호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국정원소속 대원은 설장호의 명령대로 경호원 차량에 탑승해 있는 이장구를 인계받았고, 그 즉시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장구를 감시하던 경호원도 급히 차에서 내려 태정민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삼촌.”
“모두 대기!”
설장호를 비롯하여 현장에 남은 인원이 모두 추선우의 눈을 피해 태정민에게 가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목욕탕에서 지현이 나오며 추선우를 불렀고, 추선우는 지현을 보자마자 곧바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곧 은주가 나오며 물었다.
“일단. 벗어나자.”
추선우는 은주의 물음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둘러 현재위치를 벗어나고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추선우와 지현이 움직이는 방향에 있던 설장호 및 대원들은 급히 몸을 숨겼다.

이미 그와 한차례 만났기에, 굳이 몸을 숨기며 피하지 않아도 되지만, 설장호는 지현의 마음이 안정되어
보이는 지금의 순간에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은 것이었다.
추선우가 지나쳐 간 후, 설장호는 곧 한명의 대원에게 추선우의 뒤를 쫒도록 명령 내렸고, 자신은 곧바로
태정민이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야? 추선우를 만나라고 했더니…….”


“강철호…….그 놈을 놓쳤습니다.”
“…….”
태정민은 설장호가 자신의 곁에 다가와 지금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물었지만,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강철호를 놓쳤다는 말을 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현 상황을 인지하였다. 강철호를 놓쳤다는 것은, 그를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두 명의 경호원이 당했다는 말과 같았다.
그로인하여 태정민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우려하였던, 변수가 일어난 순간이기도 하였다.

“경호원들 생명은 지장 없는가?”


“강철호…….강철호…….”
설장호의 물음에 여전히 답은 없었다. 오로지 강철호가 주위에 있을 것이라 믿고, 주위를 둘러보고만
있었다.
곧 설장호는 경호원들에게 눈짓을 주며, 현장으로 움직이도록 하였고, 태정민의 양쪽 어깨를 바로잡아
보았다.
“태정민…….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이라고 하여도, 모두가 천하무적은 아니다. 그들보다 더 강한 놈들도
있기 마련이야. 정신 차려라. 그 놈을 잡아야지.”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의 눈동자는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두 경호원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박태식이 입원한 병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기에, 같은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박태식의 형사 팀은 석강수에게…….청와대 경호원은 강철호에게…….젠장…….어느 한 곳도 만만하게


볼 놈이 없는데, 고작 그 두 놈이 시작에 불과한 놈들이라니…….”
설장호는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는 경호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국정원으로 돌아간다. 추선우의 뒤는 우리 대원이 쫒고 있으니, 우린 자네가 잡은 이장구를
족쳐본다. 그 놈이 순순히 모든 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 일은 쉽게 해결될 것이고,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머리통을 열어서라도 진실을 확인한다.”
설장호의 표정도 굳어졌다. 하루 동안 박태식의 형사 팀과 청와대 경호원이 당했다. 석강수의 강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철호에 대해서는 의외였다.

“집으로 가자.”
한 편. 혜화문 인근을 벗어난 후, 추선우가 은주에게 말했다.
“집? 또 그놈들이 있으면…….”
“아니. 없어. 그러니 집으로 가자.”
추선우는 쌍다리 인근에서 설장호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쫒고자 한 인물이 아니며,
지원하는 인물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이 무력으로
상대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장구를 잡았습니까?”
같은 시각. 차현태에게 이장구의 체포소식이 전해졌고, 그는 집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네. 조금 전, 국정원 조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설장호 실장이 직접 조사할 것이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이번 사건의 전말도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입니다.”
차현태는 당장이라도 국정원으로 가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는
그가 쉽게 움직이도록 허락하지 않는 자리였다.

국정원 조사실에는 이장구와 설장호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외부로 국정원장 및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조사내용을 듣기 위하여 자리하였다.
조사실에 앉은 이장구의 눈에는 설장호만 보일 뿐이지만, 조사실 안, 대형 거울을 통해 그 안에 자리한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의 모습과 대화내용을 다 들을 수 있었다.

‘똑똑’
조사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노크소리가 들리고, 국정원 소속 대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틀 전, 이창민 대사가 탄 차량 안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복원하였습니다.”
“…….”
대원의 말에 이장구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그가 들고 있는 작은 USB 를 보았다. 시간을 딱 맞춘 듯,
이장구가 체포된 후, 차량 안에 설치되어 있던 파손된 블랙박스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도 모두 복구가 끝난
상태였다.
대원은 곧 노트북에 USB 를 연결하였고, 그 영상은 외부에 있는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모두가 함께
공유하여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빠. 오늘 아저씨 생신 맞아?-


-그래. 오늘 아저씨 생신이야. 우리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운전해주신 고마운 분이야.-

복원된 영상을 재생하자, 지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고, 곧 이창민이 지현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장구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 설장호는 노트북화면을 돌려 그가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영상의 초반부분은 이장구가 아직 차량에 타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 지현이가 산 선물을 아저씨가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우리 지현이가 며칠을 다니며 고른 선물이니
말이야.-

이장구의 눈동자는 더욱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두 부녀가 나누는 대화는 진정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저씨에게 깜짝 선물을 해줘야 하니까. 지현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엄마 치마 속에 잘


숨어있어. 아빠가 아저씨한테는 지현이가 다음 비행기로 도착한다고 했거든, 알았지?-
-응.-

영상 속에서는 지현의 해맑은 표정이 그대로 찍혀 있었고, 이창민과 그의 부인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지현이 고른 선물이 담긴 가방은 이창민의 부인 옆으로 놓여있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치마 속으로 빠르게 숨어들어가는 지현의 모습도 보였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둘러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곧 이장구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가 차량에 올라타는 영상이 나왔다. 이장구는 영상을 보며 자신이 입은
갈색점퍼를 손으로 꽉 잡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제가 대사의 업무를 끝냈으니, 다시 외국으로 나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아저씨의 도움이 많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차량이 출발하였고, 이창민은 이장구에게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하지만 이장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이창민의 말은 들렸지만, 이장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량은 약 1 시간 정도를 달렸고, 그 동안에도 지현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0003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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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딥니까?-

1 시간여가 지난 후, 이창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장구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장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차량에서 곧바로 내렸고, 이창민의 표정이 굳어진 채, 차량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대사님…….고생 많이 하셨는데, 너무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석강수…….”
영상에는 곧 한 사내가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과 함께, 진정 차갑고 묵직한 어투가 들렸다.
그 순간 설장호의 입에서는 석강수의 이름이 불려졌다.
-누…….누군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죠. 왜? 왜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 또 한, 그 왜? 라는
것에 대한 답은 모릅니다. 그냥 대사님의 목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청을 들어주는
것뿐입니다. 먼 외국 땅에서 살고 있으면, 이 조그마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냥 눈감고 계시지
그러셨습니까? 왜 굳이 사사건건 다 캐고 다니셔서 생을 일찍 마감하려 하십니까? 뭐…….더 긴말을 하면
대사님의 마음만 더 아플 테니 이쯤에서 접겠습니다. 그럼…….첫 대면인데 저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이창민의 떨리는 목소리에 이어, 석강수의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가 차안에서 들렸지만, 그 때도 지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지현의 어머니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더 꽉 잡아, 치마속에 있는 지현의 모습이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수많은 비명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피가 튀기기 시작하였지만, 칼을 쥔 석강수의


손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하여 피는 튀기고 있었고, 이내 두 사람의 비명소리마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모두는 영상을 보며 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국정원장은 물론, 각 부처 수장들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이장구에게 법을 집행하고픈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보다 더욱 더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 바로
이장구의 앞에 앉은 설장호의 눈빛이었다.
그의 두 주먹은 꽉 쥐어지고 있었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반면에 이장구는 고개를 숙였고, 흐느끼는 듯,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미…….미안합니다.”
이장구의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을 푸는
인물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더 날카롭고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이창민대사 부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지현에게 절대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 누구보다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기어이 설장호의 목청이 커졌다. 그는 꽉 쥔 두 주먹을 풀어 그의 멱살을 잡은 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고, 이장구는 계속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설장호에게는 태정민과 같은 어른 공경이란 없었다. 설장호에게 이장구는 그저 죄인일 뿐이다.
죄인에게는 그 이상의 어떤 대우도 해주지 않는 인물이 바로 설장호다.

“그리고 차 안에 있었던 지현양이 산 선물이 담긴 가방은 차량 안에 없었습니다.”


곧 USB 를 들고 들어온 대원이 설장호에게 말했다.
“그 가방…….내가 가져갔소. 그리고 그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을 내가 가졌소.”
“내용물이 무엇이었나? 지현이가 너 같은 쓰레기에게 주려고 한 선물이 무엇이었어!”
설장호는 그의 말에 더욱 더 크게 소리치며 물었다.
“이 옷…….그 가방에 든 것은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었소. 난…….이것이 나에게 줄 선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소, 더군다나…….지현이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는…….”
‘퍽!’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설장호였다. 그의 입에서 지현의 이름이 계속 나오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뻗었다. 이장구는 조사실 구석으로 밀려나 넘어졌지만, 그 어떤 누구도 설장호의 행동을 말리려는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난 아는 것이 없소. 그저…….대사의 일가족을 모두 죽이면, 우리가족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준다고 하였소.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이 제시한 금액은 내 평생을
살아서 모아도 어림없을 정도의 거액이었소.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말했소. 우리의 뿌리는 깊다고 하였소.
아주 깊게, 깊게 파 묻혀있어, 그 누구도 실체를 알 수 없으며, 아주 거대하고 튼튼하기에, 감히
무너뜨리려 하지도 않았지만, 이창민대사가 감히 그 뿌리를 파내려 하고 있다고 하였소, 그리고…….내가
이창민 가족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인다고 그들이 말했소. 그 말이 전부요.”
“결국! 네 놈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다른 가족을 모두 죽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쓰러진 이장구가 마저 몇 마디를 하자,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내가…….아는 것이 더 있다면 모두 말하겠지만, 진정 아는 것이 이것뿐이오.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며,
그냥 돈만 받았을 뿐이오.”
이장구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후회였다. 자신과 함께 15
년을 생활한 사람들을 단 한순간 잘 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모두 죽게 만들었다.

어제 까지만도 후회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장구였다. 하지만 영상…….차량 내부를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 속, 지현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였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고, 다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두 번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 차적으로 나를 이용하여 쉽게 이창민 대사를 죽이려 했을 것이오. 화면 속에 나온


석강수는 내가 고용한 인물이지만, 그들이 지현이 살아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에는 누구를 더 고용했는지
알 수 없소.”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에 더욱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화면 속 석강수가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듯하지만,
그는 그저 이장구가 고용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더 큰 문제는 지현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그 알 수 없는 조직이 또 다른 킬러를 고용하였을 수도 있다는 말은 충분히 모두를 놀라게 할 말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즉. 석강수가 아니라도 지현의 뒤를 쫒는 인물이 더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지금 즉시. 청와대로 가봐야겠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대통령에게 알리고, 이장구가 말하는 그 조직…….
그 땅 속 깊숙이 박혀 있다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내야겠습니다.”
국정원장이 말했다. 복원된 영상은 물론, 이장구가 한 말. 그리고 영상 속에서 석강수가 한 말을 모두
종합하여, 이들이 말한 더 깊은 뿌리에 대해 알아내려 한 것이었다.
영상이 복원되면서 차량 안에 지현이 있었다는 것을 이장구나 석강수가 알지 못한 이유를 밝힐 수 있었다.
지현의 어머니는 자신의 몸속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몇 번이나 파고들었지만, 그 순간에도 지현을
보호하고자 자신이 잡은 치맛자락을 절대 놓지 않았고, 지현도 그 순간에는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또 한, 전철 안에서 지현이 이장구가 입은 옷만 보며 그가 이장구라는 것을 알았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직접 고른 선물이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옷만을 보며, 이장구임을 알 수
있었던 지현이었다.

“설 실장. 일단 이장구는 국정원 조사실에 수감해 둔다. 지금 즉시 청와대로 움직일테니 준비해.”


곧 국정원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거울 안에 있던 모두는 조사실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는
조사실을 나서지 않았고, 이장구를 계속하여 노려보고 있었다.
“실장님. 이장구를 통해, 강철호와 석강수를 이번 일에서 물러나도록…….”
“아니. 연락하지 않는다. 석강수와 강철호. 만에 하나 이장구의 연락을 받고 숨어버린다면, 그 두 놈을
잡지 못한다. 숨기 전에…….찾아오는 놈을 잡아야지.”
국정원대원이 설장호를 보며 말했지만, 설장호의 생각은 달랐다. 진정 두 사람이 이장구의 연락을 받고,
숨어버린다면 그들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충분히 강한 놈들이라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죄가 확실한 상황에서 숨도록 그냥 버려두지 않겠다는 설장호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이창민대사를 살해한 증거가 확실한 석강수는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할 인물이었다.

“이장구를 수감하고,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누구도 이장구를 만나게 하지마라. 그리고 국정원소속
대원을 현재 추선우가 있는 곳으로 보내서 그를 경호하라.”
“네. 실장님.”
설장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장구는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뿌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더 없었고, 자신의 의뢰로 일을 진행하였던 석강수와 강철호도 막아 세우지 못했다.
설장호는 차가운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조사실을 나섰고, 곧 앞 서 출발한 각 부처 수장들의 뒤를 따라
청와대로 향하였다.

해는 저물었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실에는 불이 밝혀졌다. 차현태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각 부처


수장들도 자리하여 앉아있었다. 그리고 수장들의 뒤로, 설장호와 함께 곳곳에 상처치료를 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박태식, 그리고 강서진과 태정민이 서 있었다.
차현태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차량 내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본 후였다.
“이장구가 말한 것과, 영상 속, 석강수가 한 말…….그 속에서 공통된 말은 깊게 묻혀있는 뿌리라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차현태가 물었지만, 그 누구도 답하지 못하였다. 그 하나만으로 그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현재로써는 그 어떤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전혀 예측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국정원장이 현 시점에서 핵심 내용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을 알렸다.
“결국. 이창민대사가 무엇을 알아냈는지가 관건이군요.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한가지…….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차현태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가 그를 보며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집중되었다.
“무엇입니까?”
차현태가 물었다.
“그들은 이창민대사를 죽였습니다. 즉. 자신들의 치부를 들추어낸 장본인을 죽였기에, 굳이 어린
지현마저 죽이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그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고 이장구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다른 쪽으로 풀이하면 지현도 그들의 치부를 알고 있을 수도 있기에…….그들이 꼭
지현을 죽여야 하는 명분이 더 확실해 집니다.”
“!!!”
모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제 고작 열 살 된 어린 여자아이가 그들을 묶을, 치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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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열 살이네. 지현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설마 이창민대사가 지현에게 무엇이라도
말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꼭…….말을 전해줘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무슨 뜻입니까?”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고, 그 물음에 곧바로 답하자, 차현태가 그를 보며 물었다.
“그들의 치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만약 그 자료를 지현이 가지고 있다면…….그들이 왜 지현마저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더 분명해집니다.”
모두는 놀란 눈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이창민이 지현에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말하지 않더라도, 그 정보가 담긴 자료를 맡겨둔 것이라면, 충분히 그들이 지현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었다.
“만약…….그 자료가 있다면, 지현양이…….그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라 봅니까?”
차현태가 다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아마…….지현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창민대사는 이 일을 엎을 만한 사람이 찾도록 지현에게
무언가 남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그
기록만으로 뿌리가 깊은 그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 기록이 지현에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였나? 이 사건이 있은 후,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었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저들이 필사적으로 지현이를 찾아다니는 것. 가족몰살이 목적이 아니라도, 열 살 된 아이가 자신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고, 설장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자네의 추측성 생각만으로 판단내릴 문제는 아니네, 그들이 왜 지현마저 죽이려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어야 해. 그저 자료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추측성 판단은 필요치 않아.”
검찰총장이 말했다. 그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대사의 죽음. 그리고 더 큰 움직임. 단지
추측만으로 무언가를 결정짓기에는 무척 큰 사건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이장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지금도 지현양을 쫒고 있습니다. 지현양은 안전한
것입니까?”
차현태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후, 모두를 고루 본 뒤, 마지막 시선이 설장호에게 멈추며 그에게
물었다.
“현재. 지현은 추선우와 함께 있으며, 저희 국정원 대원이 붙어 있습니다. 또 한, 청와대로 오기 전,
국정원소속 대원들을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곧바로 연락이 올 것입니다.”
“이제 그만…….지현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좋지 않겠나? 언제까지 민간인에게 맡겨둘
참인가? 그리고 이장구가 말했듯이, 그 존재도 알 수 없는 그들이 보낸 킬러가 만에 하나 총이라도 들고
있고, 가까이 붙지 않더라도 먼 곳에서 지현양을 저격한다면…….마지막 증인마저 잃게 되는 것이네.”
설장호가 차현태의 물음에 답한 뒤, 곧바로 검찰총장이 말했다. 그의 말은 각 부처 수장들의 고개를
끄덕거리도록 만들었다. 한 명의 민간인에게 맡겨두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는 결론이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이 끝난 후,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에 들린 볼펜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지현이…….추선우를 뭐라 부릅니까?”
조용한 가운데, 차현태가 설장호를 보며 뜬금없는 물음을 하였다.
“삼촌…….이라고 부릅니다.”
“삼촌요? 참 가까워 보이는 단어네요. 모두가 알다시피 이창민대사에게는 혈육이 없습니다. 그의
부인에게도 혈육이 없습니다. 지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삼촌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추선우에게 삼촌이라는 말과 함께, 모두가 영상으로 보았듯이 친근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이지만, 이미 지현은 자신의 부모가 모두 죽은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삼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추선우의 곁에서 이틀
전의 일을 잊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잊기
위함 일수도 있습니다.”
차현태는 지현이 어떤 마음으로 추선우의 곁에 붙어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이 역시
추측 일뿐이었다. 직접 지현에게 들은 것이 아니며, 그저 차현태가 혼자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국정원장님.”
“네.”
“검찰총장님.”
“네.”
“경찰청장님.”
“네.”
차현태는 각 부처 수장들을 불렀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외교부장관을 제외하고는 이번
사건을 풀어야 할, 각 부처 수장들을 모두 불러보았다.
“이번 사건…….그냥 단순하게 처리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그들이 어찌하여 모든 것을 숨기며
버텨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부터는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엇이든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무조건 찾으십시오. 이창민 대사가 하고픈 말들…….그 말을 직접 들을 수 없지만,
그 말이 기록된 기록지가 있다면 꼭 찾아내십시오. 과거에 외교관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기록이 있다면 그
기록도 찾으십시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한…….그들이 법을 어긴 자들이거나, 집단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엄중히 다루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현양을 서둘러 국정원으로 데리고 와서 안전하게…….”
“아니요. 지현양의 경호는 추선우가 그대로 유지합니다.”
“!!!”
차현태의 말이 끝난 후, 곧 국정원장이 답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차현태의 눈빛이 변하며 단호한 답을 주었고, 모두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 상태로써는 추선우가 지현양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며…….”


“맞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누군지 모르기에 추선우에게 지현양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고, 뻗은 가지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는 거대한 조직임을 비유하는 말일 것입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그곳이 안전하다고 모두 장담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 이 청와대도 안전하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모르니, 여기에도 그들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또 다시 놀랐다. 차현태의 마지막말은 진정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누군지 모르니, 현재 자리하고 있는
이들 중에도 그 뿌리에 속한, 줄기에 속한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현재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추선우입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지현양을
경호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가 봐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정원의 사람들. 검찰청 사람들.
경찰청사람들. 이들 중, 추선우는 그 어떤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두를 경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지현양을 그들에게서 보호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모두는 차현태의 말을 다 들은 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누군지 모르니,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는
확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사람. 바로 추선우는 적어도 지현을 진심으로 경호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눈으로 보았다.

“설장호 실장.”
“네. 대통령님.”
다시 조용해진 가운데 차현태는 설장호를 불렀다.
“지금 이시간부로 지현양의 신변보호 책임자는 설장호실장입니다. 각 부처 수장들께서도 지현양에 관한
것은 설 실장에게 모두 권한을 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수장들께서는 곧 미국에서 돌아오는 외교부장관과
함께, 그 뿌리라는 조직에 대해 알아내십시오. 이창민대사가 하고자 했던 말 중, 단 일부라도
알아내십시오.”
수장들은 쉽게 답하지 못하였다. 만에 하나 설장호의 말처럼 지현이 이창민대사가 하고자 한 말이 기록된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현이었다. 그 중요한 인물을 민간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차현태의
말처럼 그 누가 의문의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또 한. 국정원의 설장호실장, 검찰청의 강서진검사, 경찰청의 박태식 형사. 청와대경호실의 태정민팀장.
이 네 명은 지금 이 시간 이후로, 항시 총기휴대를 명합니다. 공포탄은 없습니다. 초발부터 실탄을
장전하세요. 그 어떤 누구라도 지현양의 목숨을 노린다면, 경고사격도 없습니다.”
“!!!”
또 다시 놀란 눈들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네 명을 지목하여 그들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휴대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고사격이 없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의 설장호와 경호원인 태정민에게 총기란 낯설지 않은 무기였다. 그들은 총기휴대가 기본인 만큼,
중대한 사건을 많이 처리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박태식과 강서진은 달랐다. 박태식은 그나마 현장경험이 많기에 총기에 관해 거부감은 적겠지만,
강서진은 처음으로 총을 잡아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추선우와 지현양은. 이 네 사람에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단독만남은 불허합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지현양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네 명 중, 최소 한 명과 함께 동행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차현태의 말에 모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이번 사건에서 믿을 수 있는 네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조차도 믿지 말라는 뜻과 같았다.
“이 회의가 끝나면, 호명 된 네 사람은 그 즉시 추선우와 지현을 만나세요. 그리고 내 뜻을 전하세요.
우리가 지현양을 뺏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추선우에게 지현양을
잘 경호하도록 부탁하세요. 비록 민간인이지만, 그에게 지현을 법적으로 경호할 수 있는 권한을 주세요.”
이어지는 차현태의 말은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돈이 오고 있었다. 진정 경호원에 대한 이력이 전혀 없는 인물에게 중요한 인물의 경호를 맡긴다는 그의
말이었다.

어두운 밤까지 이어지던 회의가 끝났다. 각 부처 수장들은 그 즉시 자신들의 부처로 서둘러 이동하였고,
설장호는 태정민과 박태식, 그리고 강서진을 따로 불러 모았다.

“이장구를 체포하고, 차량 내, 블랙박스 영상을 복구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로 인하여, 여러모로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설장호는 청와대 내, 영접실에서 세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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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인물조차 누군지 모른다. 누가…….어떤 경로로, 어떤 목적으로 지현에게
접근할지도 모른다. 대통령님의 말을 각별히 새겨두어라. 우리 외에…….그 어떤 누구도 지현을 만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 넷은 서로를 믿어야한다. 비록 우리마저도 이장구와 석강수가 말한 그 조직에
포함된 인물이 있을 수 있지만 믿어라. 믿고 함께 움직여라. 만에 하나 믿음이 깨지면, 우린…….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된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이들 역시 그 조직과 관련이 없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믿도록
하였다. 대통령의 명령으로 항시 실탄이 장전된 총을 휴대한다. 만에 하나 믿음이 불신이 되는 그 순간.
자신의 품에 있는 총은 서로의 심장을 향할 것임을 일러주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설장호는 이 세 명과 오랜 친분이 있다. 하지만 태정민은 강서진과의 친분은
없다. 하지만 설장호에 의해 이들의 친분이 보장되는 셈이었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간다. 현재 추선우가 있는 곳이다.”
“네? 북정마을요? 그 놈도 참 대단하네요. 오늘 오전에 북정마을에서 죽도록 도망쳤는데, 또 북정마을로
갔어요?”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아마, 나와 조우가 있었던 쌍다리에서 내가 했던 말뜻을 잘 이해한 모양이다. 우리가 적이
아니며, 동맹이라는 것을 돌려 말했지만, 그 말뜻을 잘 헤아린 모양이지. 서둘러 이동한다. 현재 그 곳에
나가있는 우리 국정원 대원들이 알려준 위치이며, 이미 열 다섯 명의 대원이 나가 있긴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다.”
설장호는 이미 대원들로 하여금 추선우의 위치를 전송받았고, 그 일대를 경계서고 있는 국정원 인원들에
대한 말도 전하였다.
곧 네 사람은 청와대를 나서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선우야. 또 나갈 거니?”
같은 시각. 다시 집으로 찾아온 선우와 지현에게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준 후,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녀는 잠이 든 지현을 무릎위에 앉혀 놓고, 조금씩 흔들어주고 있었고, 은주는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니요. 오늘은 이곳에 있을 것입니다. 염치없지만, 아주머니께서 지현이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그래. 나야 뭐 상관없다만, 또 그들이 찾아와서 소리치면, 지현이가…….”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우는 아주머니를 안심시켜주고 있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주머니와 은주에게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넌? 넌 어쩔 거야?”
은주가 물었다.
“나…….잠시만 나갔다 올게.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굴 만나?”
“있어. 꼭 만나서 물어볼 말이 있고, 꼭 답을 들었으면 하는 사람…….금방올거야. 그러니 그때까지만
지현이좀 잘 부탁해.”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주머니는 지현을 안고 있기에 함께 일어서지 못했지만, 은주가 함께
일어서서 그를 보았다.
“나오지마. 지현이 곁에 있어줘.”
“네가 걱정돼서 일어선 것 아니야. 그냥…….그냥 물 좀 먹을까해서…….”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주머니. 저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늦지 않을 테니, 지현이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
선우는 잠 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은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고, 아주머니도,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문을 열고나선 선우를 보았다.

“대체…….이게 무슨 일이람. 아무리 지현이가 탁해도 그렇지, 이런 위험한 일에 끼어들다니 말이야.”


그가 나간 후, 아주머니는 지현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불안하여 말한
것이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지금 이 두 모녀도 위험한 일에 함께 가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놈 천성이 그런 것을 어째.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면서부터 봐 왔잖아. 자기 먹을 것 없어서 굶고
있어도, 동네 노인 분들 주전부리는 다 챙겨주는 놈이잖아. 그런 놈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일부
동네사람들이 그를 그저 한량으로 봐와서 문제지.”
은주는 창가 쪽으로 향하며 아주머니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아래를 보았다. 선우의 모습이
보였고, 시선을 동네 아래로 내리자, 어둠속에서 몇 사내들이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불안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선우를 믿는 듯, 창가에서 멀어지며, 아주머니의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지현을 향해보았고, 지현의 목선을 따라 살짝 보이는 목걸이를 보았다.

“참. 목걸이에 대한 말을 선우에게 안했네.”


“목걸이?”
대뜸 생각난 듯 중얼거리자, 아주머니가 다시 되물었다.
“응. 오늘 지현이하고 목욕탕에 갔는데, 목걸이를 걸고 있었어. 너무 예뻐 보여서 혹시 흠집이
생길까하여 벗어놓으라고 했는데, 사색하며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 뭐라더라…….얘, 아빠가 이
목걸이는 지현이가 믿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라고 했다나…….”
그녀의 말에 아주머니의 시선도 지현의 목선에서 살짝 보이는 목걸이로 시선이 갔다.

“추선우는 아직 그대로인가?”
같은 시각. 설장호는 북정마을 초입부분에 도착한 뒤, 곧바로 대원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네. 아직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
“왜?”
“추선우입니다.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래? 지현도 함께 있는가?”
“아닙니다. 혼자입니다. 아마 지현은 집에 두고 나온 모양입니다.”
“지금 올라가고 있으니, 그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 그리고 항시 그 집 부근에는 대원들을
배치해둬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그 어떤 누구도 집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설장호 일행은 서둘렀다. 추선우가 집밖으로 나왔다는 보고와 함께, 혹시 그와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추선우씨…….”
추선우는 집 바로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약간 아래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내들을 보았다.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잠시만…….기다리십시오. 곧 실장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고자 하시니…….”
“실장?”
“네. 역삼역과 사당역, 그리고 오늘 오후 쌍다리 앞. 당신과 마주섰던 사람입니다.”
“아…….잘됐네요. 나도 그 사람을 만나려고 나온 것인데, 찾아온다고 하니, 내가 찾아가야하는 수고를
들게 해주네요.”
추선우는 설장호를 만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들었던 말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잠시 후, 아래쪽에서 설장호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추선우는 그 중에서도 정확하게
설장호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는가?”
설장호가 도착하였다. 그는 추선우를 한 번 본 후, 곧 대원들에게 물었다.
“네. 줄 곧, 인근을 경계하고 있지만, 별다른 징후는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대원들을 모두, 집 인근에 집결시키고, 경계를 더 강화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 대원들을 모두 추선우의 집 인근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추선우를 향해보았다.

추선우는 그와 눈이 마주친 뒤, 함께 올라온, 태정민과 박태식, 그리고 강서진을 한 번씩 보았다.

“정식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겠지만, 초면은 아닐 테다. 난 국정원 소속이며, 국가 관련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설장호 실장이다. 그리고 이쪽은 강남서 박태식 형사. 이쪽은 검찰청 강서진검사. 그리고
자네가 엿 먹인 청와대 경호원소속 태정민 팀장이다.”
설장호는 자신과 함께 올라온 세 명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된 태정민에 대해서는 지난 날,
사당역에서의 일을 떠 올리는 듯 한 말을 하였다.
“지금 상황에 긴말 늘어놓을 처지도 아니니, 짧게 말하겠다. 이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은, 낮에 내가
했던 말을 이해했다고 봐도 되는가?”
설장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말에 대해 묻고자 당신을 만나려 하였습니다.”
추선우가 설장호를 빗대어 당신이라는 말을 하자, 세 명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는 설장호를
제외하고는 아직 나머지 세 명이 추선우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래? 나를 만나려고 혼자 나서다니…….지현에 대한 경호는 포기한 것인가?”
“아니요. 지현의 경호는 유효합니다. 포기란 없습니다. 단지…….당신이 한 말에 대해…….”
“넌…….경호원의 자격이 없다!”
“!!!”
자신의 말에 대해 선우가 답을 하였지만, 그 답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는 그의 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한 밤에 울려 퍼지는 그의 큰 목소리에 추선우가 놀란 눈을 하였고, 나머지 세 명도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추선우외에는 지현을 경호할 인물이 없다고 말한 장본인이 바로 설장호였다. 그로인하여
대통령마저 추선우에게 지현의 경호를 맡겼다. 하지만 지금. 그는 추선우에게 그런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
“난…….난 누구보다 더 지현을…….”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고. 내가 낮에 한 말을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어긴 놈이다. 그런 놈이
무슨 경호원이 되겠다는 것인가!”
추선우가 그의 말에 대해 자신의 뜻을 말하려고 하였지만, 곧바로 설장호는 그의 말을 자르며 다시
소리쳤다.

“경호원은…….자신이 경호를 맡은 존재에게서 단 일보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 경호원의 눈에서


경호대상자가 사라지는 순간. 그 경호는 이미 틀린 것이다. 내가 낮에도 말했다. 너의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넌 지현을 버려두고 석강수를 만나기 위하여 쌍다리로 움직였다. 만약…….그 순간에 지현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겼다면 어찌되었을까? 너 하나만을 믿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 어린 아이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겼다면…….넌…….너의 미래는 물론, 어린 아이의 미래마저도 잃어버린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

추선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저 경호원이라 함은 경호대상자를 잘 지켜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여겼던 추선우였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을 해석하면, 추선우는 지현을 지켜주는 척 행동했을 뿐,
경호원으로써 그녀를 지켜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0003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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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경호원이라고 했나?”
“네…….”
“처음부터 다시 배워라. 경호원은 절대…….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자신이 경호해야 할 대상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경호원이다. 그런데…….그 그림자가 홀로 다녀? 진심으로 지현을 아끼고,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면, 기본부터 다시 배워라. 그래야 지현을 지킬 수 있는 경호원이 될 수 있다.”
추선우의 눈동자는 떨렸다. 비록 5 년 동안 제출한 이력서에 대한 답은 단 한 차례도 듣지 못했지만,
자신감은 언제나 간직하고 있었다.
연락만 오면 그 어떤 경호라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만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경호의 기본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강하다는 그 하나만을 믿고,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고 지낸 세월밖에 되지 않았다.

“태정민.”
“네. 실장님.”
“넌…….지금부터 추선우와 함께 지낸다.”
“네?”
“이 놈에게 경호원이 무엇인지, 그 기본부터 가르쳐라.”
태정민은 그 즉시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못하였다. 설장호는 대통령이 직접 인정한
이번사건의 지휘권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명령은 곧 자신이 경호하고 있는 대통령의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매서운 눈빛으로 추선우를 향해보며 답했다.
“박태식은 믿을만한 형사들을 몇 추려서 북정마을 인근을 계속 경계한다. 그리고 강서진은…….넌
박태식을 지원해.”
“네? 실장님. 저 이래봬도 검사입니다. 검산데 형사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라는 것은…….”
“그럼 네가 일선에 서든가? 그건 너희둘이 알아서하되, 절대 구멍을 만들지마라. 작은 구멍이라도
쥐새끼는 충분히 들어온다.”
강서진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스로 인정되는 그의 말이었다.
박태식과의 관계상 자신이 지휘권을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박태식에게 명령을 받아야
할 처지인 그녀였다.
“그럼…….지금 이 순간부터 정해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다.”
“잠깐만요.”
설장호의 마지막 말이 있은 후, 모두 움직이려던 찰라, 추선우가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무엇인가?”
“뭔가…….착오가 있는 듯 한데요. 난…….당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신분은 아닙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함께 지내야하며, 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저들이 막아서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현이
때문에요? 지현이의 안전을 위해 마치 결계처럼 이 마을을 완전 뒤덮고 있겠다는 뜻인가요?”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도 추선우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지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둘러싸고 있는 것을 지현이 본다면, 과연
잠깐이라도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할까요? 천만에요. 지현은 불안해 할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친다면,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과거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에 대한 것은
생각하고 움직이신 것입니까? 조금 전 나에게 말했죠? 경호에 기본도 되어 있지 않다고요. 네. 당신의
말을 들으니, 진정 난 경호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당신들은 경호에 기본이 아닌…
….인간의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듯합니다.”
“뭐야!”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이 기어이 큰소리쳤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추선우의 곁으로 한 발 다가서서
소리쳤고, 곧 설장호가 그를 막아 세웠다.
“인간의 기본?”
설장호가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네. 인간의 기본. 당신들은 지금 모든 것을 당신들의 임무로만 계산합니다. 지현의 안전. 그래요.
지현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렇게 결계마냥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최고겠죠.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또 이 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당신의 말처럼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이제부터 안전하니 마음껏 놀라 하는 것보다. 진정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도
평소처럼 지낼 수 있도록, 주변 모든 것의 그림자처럼 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지현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도 불안해하지 않으며, 진정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장호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그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보고만 있었다.

“추선우.”
“말씀하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부름에 툭명스러운 어투로 답했다.
“지현의 안전…….네가 책임진다고 확답을 줄 수 있는가?”
“말했지 않습니까? 지현은…….내가 지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들이 지현을 죽이고자 달려드는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목을 노리는 놈들에게서 지현만은 꼭 지켜낼 수 있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가 원하는 확답을 주었다. 진정 목소리에 거짓이 없어 보이는 그의 말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 전까지 날카로웠던 눈빛을 풀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국가 최고기관이라는 국정원에서도 아직 지현의 목을 노리고 있는 존재에 대해
밝혀내지 못했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며, 왜? 지현이를 죽이려하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곧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칠 것이다. 그 순간이 되면, 우리가 지현의
안전에 소홀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물론 너를 지원하는 것도 소홀해 질 수 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지현을 안전하게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장호는 민간인인 추선우에게 지금 현재 상황을 거짓 없이 말하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하여,
세 명의 눈동자는 흔들거렸지만, 설장호는 또렷한 눈빛으로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참. 말 많으신 분이네. 백 번, 천 번의 말보다 직접 경험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나에게 죽더라도 지현을 지켜라고 백번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백번을
지키고도 백 한 번째 내가 죽고, 지현이 잘 못되면 백번은 아무소용이 없는 것처럼.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진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냥…….지킵니다.”
설장호는 물론, 세 명의 인물들도 모두 추선우를 보았다. 무식한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든 그의 말이었다. 딱 옛 말에 나온 것처럼 무식하면 용감해 보인다는 뜻이 지금 추선우를 두고 나온
말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 이시간부로 추선우의 말처럼 여기에 있는 모두는 이 마을의 그 어떤 것의 그림자가 된다. 지현의
곁에 있지만, 지현의 곁에 없는 듯 행동하라.”
설장호는 추선우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세 명은 설장호를 빤히 보았다. 고집불통이며, 자신의
의견을 쉽게 꺾지 않는 인물로 유명한 설장호가 추선우의 한마디에 자신의 뜻을 꺾은 것이 의아하여 보고
있는 것이었다.
“움직여.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지현의 목을 노리고 다가서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말했듯이 구멍을
만들지마라. 작은 구멍은 곧 큰 구멍이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설장호가 마저 말하였고, 세 명은 설장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이미 들었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생각보다 무식하지만, 생각보다 현명하기도 하다. 그리고 내 뜻을 잘 이해해줘서 고맙다. 너에


대해 몇 알아보고자, 지금까지 한 말이었다. 넌…….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으로 넌…….지현을
경호하는 삼촌이 된다. 명심해라. 삼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명심해라.”
설장호는 추선우의 앞으로 한 달 더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삼촌…….지현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했다. 삼촌은 가족이다. 비록 부모님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되는 것이었다.

“삼촌…….”
그리고 나지막이 그 말을 되새겼다. 집주인에게 지현을 소개할 때 했던 단 한 번의 거짓말이 이제는
자신을 지칭하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경호원삼촌. 추선우는 자신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척’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추선우에게 설장호는 새로운 휴대전화를 건넸다. 추선우는 자신을 추격하는
설장호를 따돌리기 위하여 자신의 휴대전화를 버렸었다.
“뭡니까?”
“이제부터 너와 우린 한배를 탔다. 지현에 대한 모든 것을 너에게 주는 대신, 우리의 도움도 거절 없이
받아야한다. 그것이 조건이다. 네가 지현을 경호하도록 허락하는 조건.”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건넨 휴대전화를 보았다. 충분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도망자 신세가 아니었다. 민간인인 자신에게 국가의 중요한 증인을 경호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그들의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추선우는 자신이 얻고자하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설장호의 뜻을 알았으며, 지금의 상태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였고, 설장호가 한 말처럼 지현의 그림자가 되려 하였다.

“설장호입니다.”
추선우가 집으로 향한 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다.
“내일 아침. 뉴스에 이번 사건이 종결되었음을 발표하겠습니다. 체포한 이장구의 소행이며, 금품을 노려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이장구만으로 끝내려는 건가?”
“아닙니다. 혼란입니다. 뉴스를 통해 이번 사건이 이장구의 단독범행이라 말하여, 그 뿌리라는 놈들에게
혼란을 줄 예정입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해서…….종결과 함께 비공개로 그들의 목을 조여 보겠습니다.”
설장호의 계획이 변경되었다. 언론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있을 그들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뜻을 알렸다.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그는 그 즉시 검찰총장과 경찰총장에게 연락하여 설장호의 뜻을
전했고, 그 제물로 이장구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북정마을에는 늦은 밤이지만, 진정 어둠과 동화된 듯,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북정마을을 나와,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이장구에게 아직 묻지 않은 자신의 궁금함을 묻기


위함이었다.

0003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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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었어?”
같은 시각. 추선우가 다시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주가 거실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보며 물었다.
“아무 일 없었어. 지현이는?”
“깊은 잠에 든 듯하여, 방에다 눕혀 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곧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오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자신홀로 지현을
경호하고자 나선 것이지만, 가장 걱정하였던 부분이 바로 잠자리였다. 자신은 아무 곳에서나 잘 수
있지만, 어린 지현은 그렇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첫 날은 자신의 고아원 친구인 미희의 집을 찾았고, 이튿날인 오늘은 다시 집으로 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된데다, 자신과 지현을 따듯하게 받아주는 두 사람에 의해 추선우의 마음은 한 결 편해지고
있었다.

‘딩동’
곧 설장호가 준,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휴대전화 샀어?”
은주가 그의 휴대전화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답 없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내일. 오전 9 시 이창민대사 발인이다. 대통령께서 직접 영정사진을 들고 나설 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


일대에는 수많은 경호원과 함께, 정부관계자 및, 기업인들도 대거 참석할 것이다. 지현이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적절한 시간에 함께 움직이도록 할 테니,
준비해둬라.-

“무슨 문잔데, 표정이 굳어져?”


은주가 문자 메시지를 읽고 있는 선우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선우는 문자내용을
은주에게 보여주었다.
“내일이구나…….지현이 부모님 발인…….어떡하지…….그런데 문자 보낸 사람이 누구야?”
문자 내용을 모두 읽은 후, 방에서 고이 자고 있는 지현을 생각하며, 시선을 방문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발신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국정원 소속이래. 정확하게는 몰라. 하지만 지현을 돕기 위하여 온 사람이라고 하니, 믿고 있는 거야.”
“국정원? 그…….뭐냐 그…….아무튼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곳 아냐?”
은주는 추선우의 말을 듣고, 말을 더듬거리며 놀란 눈으로 말했다. 평생 살아오면서 국가기관이라고는
우체국을 드나든 것이 전부인 그녀에게 국정원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소름 돋는 단어일 뿐이었다.

“이장구는?”
늦은 시각. 국정원에 도착한 설장호는 곧바로 대원에게 물었다. 그의 취조를 다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로 향하였기에, 자신의 궁금증 몇 가지를 더 묻고자 함이었다.
“수감실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를 찾는 사람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설장호는 혹시나 하여 물었다. 이장구를 국정원에 두고, 그를 찾는 인물이 있었다면, 그 역시 의심의
대상으로 여기려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장구를 찾은 인물은 없었다.
곧 이장구가 있는 수감실로 갔다. 늦은 시간이지만, 이장구는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자신이 입은
갈색점퍼를 꽉 쥐고 있었다.
“네가 그런다고 지현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마라. 넌…….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일 뿐이다.”
설장호에게는 죄인에 대한 그 어떤 배려는 없다. 오로지 죄인은 죄인으로만 대해주는 그였다.
“용서를 바라는 것은 아니오. 아니…….용서를 해준다고 해도 내가 그 용서를 받을 자격은 없소.”
이장구는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내일 아침…….당신은 이창민대사를 죽인 살인범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일은 네가 모든
것을 끌고간다.”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앉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내려진 결정에 대해 알려주었다.
“역시…….그것만이 현명한 답이겠지요. 분명, 내가 깊숙이 뿌리내린 놈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언제나 그
말을 무시하지. 썩은 나뭇가지만 쳐 내면 뭐하나…….그 나무를 썩게 만드는 원인을 쳐내지 못하니, 또
썩게 되는 것이지 않겠소.”
이장구는 설장호의 계획을 모른다. 그에게 계획을 일러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설장호의 두
주먹을 꽉 쥐도록 만들었다. 그저 지나쳐가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언제나 그랬다. 쳐내야 할 것이 분명 있지만, 쳐내지 못하고 겉만 쳐낸다. 속은 다 썩어


들어가도, 겉만 다듬고 마무리한다. 그리하여 또 썩는다…….지금까지 되풀이되었던 현상이다. 고쳐지지
않았던 현상.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차현태의 굳은 의지, 그리고 그의 의지를 받쳐줄 인물들. 지금까지 썩고, 또 썩어 들어갔던 그 모든 것을


뿌리째, 다 뽑아내려는 의지가 이들에게는 있다.
다만 이장구는 그것을 모를 뿐이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만, 자신도 또 다른 피해자이며, 진정
가해자라 말 할 수 있는 이들은 또 다시 숨어들어가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다른 할 말은 없는가?”
설장호는 그에게 마지막 할 말을 물었다.
“없소. 아니…….있소.”
“무엇인가?”
이장구는 고개 숙인 채, 말한 뒤, 곧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다시 말했다.
“이창민대사의 발인. 아마 그들은 내일 있을 이창민대사의 발인식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오. 준비 잘
하시오. 내가 고용한 석강수도 막지 못했으니, 석강수를 비롯하여, 그 뿌리에 가담한 인물들이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 일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대부분의 경호원이 나설 것이며,
우리 국정원과 함께, 검찰과 경찰에서도 인원이 움직일 것이다. 제 아무리…….”
“타인의 말을 깊게 듣지 않는구려.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그 뿌리…….어떤 인물이 가담되어 있는지 알 수
없소. 대통령의 경호원? 국정원? 검찰? 경찰? 믿지 마시오.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 진정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알 것이라 믿소.”
이장구는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하였다. 진정 지현을 쫒을 때와는 다른 어투였으며, 그녀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말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 말은 이미 차현태가 한 말이었다. 깊은 뿌리에 속한 인물들. 그들은 진정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차현태도 모두에게 일러주었었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과 함께, 심지어 자신조차도
믿지 말라는 뜻을 밝혔었다.
“만약…….내일 그들 중, 단 한 놈이라도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뿌리를 통째로 드러내도록 다 밝혀 낼
것이다. 너의 말처럼 그들이 내일을 그냥 흘려보내려 하지 않는 듯, 나 역시 내일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장구는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을 보았다. 설장호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장구는 그가 한 말에
진정 그동안 숨어있던 뿌리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한 가지 묻겠다.”
이장구에게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물었고, 그에 대한 답을 하면서, 또 답을 들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더 다가가 앉으며,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려주겠소.”
이장구도 그의 눈을 보며 답했다.
“삼성역. 그리고 혜화문인근…….넌 정확하게 지현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뒤를 쫒았다. 무엇을 이용한
것인가?”
모두가 궁금했을 물음이었다. 그의 말처럼 이장구는 마치 삼성역에서 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와 함께, 같은 전철을 탔고, 같은 칸에서 추선우의 손을 잡고 있는 지현과 마주하고 있었었다.
그리고 혜화문 인근의 목욕탕. 추선우와 설장호가 쌍다리에서 석강수를 만나고 있을 때, 이장구는 은주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선 지현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일대에 머물러 있었었다.
“내…….휴대전화를 잘 관리하시오.”
“무슨 뜻인가?”
물음에 대한 답은 없이, 이장구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대해 말했다.
“내 휴대전화에는 지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소.”
“!!!”
설장호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들이 CCTV 를 통해 추선우와 지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송받는 것처럼,
그들도 휴대전화로 누군가를 통해 지현의 위치를 전송받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예 해당 휴대전화에
지현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말은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이창민대사는 외교관이오. 그것도 외교관으로 살기 힘든 미국에서 대사로 지냈소. 그의 딸…….지현이가
그 험한 곳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을 것이라 보시오. 외교관의 가족은 항시 살해표적이 되는 것이
요즘이오. 해서 이창민대사는 지현에게 언제나 그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소지하게 하였소.
그리고 이창민과 그의 부인의 휴대전화와, 나의 휴대전화. 유일하게 이 세 대의 휴대전화에 지현의
위치를 수신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하였고, 언제나 그녀의 위치를 원하는 시간에 바로 알아 낼 수
있도록 해 두었소.”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수감실 문을 열어, 대원에게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가져오도록
소리쳤다.

잠시 후, 그의 휴대전화를 가져오자, 곧바로 자신이 그의 휴대전화를 켰다.


전원이 들어오자, 오늘 하루 동안 그가 수신하지 못하였던 많은 문자가 삽시간에 전송되고 있었다.
“수신되는 문자에서 핵심은 없을 것이오. 그들은 이미 내가 국정원에 수감된 것을 알 것이니,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오.”
설장호가 그의 휴대전화에 전송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이장구가 휴대전화를 보지도 않은 채,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수신되는 문자는 대부분이 광고성 스팸문자였다. 심지어 석강수와 강철호가 보낸
문자도 없었다.
“휴대전화 메인화면에, 지현이라고 되어 있는 어플을 가동해 보시오.”
이장구는 설장호에게 말했고, 설장호는 많은 폴더와 어플 중, 지현이라고 적힌 어플을 클릭하였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며, 지도가 화면에 떴고, 약 3 초 후, 북정마을 중심부에서 붉은 점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 깜박거리고 있는 곳에 지현이 있다는 뜻이오. 이미 지현의 위치를 알고 있을테니,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은 잘 알 것이오.”
설장호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록 아주 정확하게 그녀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대 30 미터 근방은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이 장치…….진정 세 명에게만 있는 것이 확실한가?”
“내가 알기로는 세 명까지였소. 더 이상은 이창민대사가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설장호는 북정마을에서 깜박거리고 있는 붉은 점을 계속하여 보았다. 움직임은 없었다. 그리고 진정
마음만 먹는다면, 사방 30 미터 안에 있는 지현을 찾아내는 것은 쉬울 것이라 보였다.
“하지만…….너무 안중하지 마시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세 대요. 즉…….내가 모르는 것이 더 있을
수도 있으며, 그 중에서 뿌리에 가담한 놈들의 손에도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오.”
설장호는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서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이장구를 본 후, 곧 국정원
대원을 다시 불렀다.
“이창민 대사가 살해된 차량 안에서, 이창민 대사는 물론, 그의 부인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의 목록을
확인하였나?”
“네.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설장호의 떨리는 눈동자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손마저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0003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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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잠시 후, 대원이 소지품 목록을 가지고 왔다. 설장호는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넘겼다. 사건당시 두
부부가 입었던 옷부터, 옷의 색깔. 그리고 반지등. 몸에 부착되어 있던 것과 차량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위치와 함께 크기, 무게, 종류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없다…….”
하지만, 진정 있어야 할 소지품이 없었다. 바로 두 사람의 휴대전화였다. 이장구가 말한, 지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휴대전화의 행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설장호는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장구를 향해 보았다.
“이 장치가 지현의 위치를 수신 받는다면, 지현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송출할 장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서둘러 행방이 사라진 두 대의 휴대전화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두 대의 휴대전화를 찾는 것보다,
지현에게서 송출되는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 여겨 물었다.
“목걸이…….지현에게는 이창민대사가 직접 선물한 목걸이가 있소. 그 목걸이 안에 위치를 송출하는
장치가 있소.”
설장호는 그 즉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태정민에게 연락을 하였다.

“네. 실장님.”
“경계를 더 강화하라.”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늦은 밤이라 개미한마디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용할수록…….위험도는 높아지는 것이다.”
“…….”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정 어둠속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곧 그의 마지막 말에 눈매가 매섭게 변한 뒤, 시선을 돌려 추선우가 있는 집으로
향하면서 박태식에게 설장호의 명령을 하달하였고, 박태식은 잠복중인 형사들에게 내용을 다시 전달하였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추선우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지현의 목에 목걸이가 걸려 있다. 그 목걸이를 지현의 몸에서 떼어내라.”


“무슨 말씀입니까? 목걸이요? 난 보지 못했…….”
“아. 맞아.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
늦은 밤 전화하여 뜬금없이 목걸이 타령을 하는 설장호의 말뜻을 모르고 있었지만, 목걸이라는 말에, 또
다시 잊고 있었던 은주가 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 목걸이. 지현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즉시 지현의 몸에서 떼어내라.”
선우는 답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이 든 지현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취침
등을 밝힌 채, 고이 잠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합니까? 이 목걸이가…….”
“이장구가 직접 밝힌 것이다. 거짓은 없다. 그리고 그 목걸이가 내보내는 신호를 받을 기계 중, 두 대의
기계가 우리 수중에 없다. 서둘러라.”
추선우는 지현의 곁으로 움직였다. 설장호가 말한 목걸이를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은주가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치를 수신할 수 있는 기계 중, 두 대의 기계가 행방이 사라졌다는 말에 놀란
눈으로 서둘러 잠든 지현의 곁으로 몸을 낮춰 앉았다.
선우는 지현을 살며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잠결에 선우의 품에 안기며,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목덜미로
목걸이의 연결고리가 보이고 있었다.
“있습니다.”
“제거해,”
추선우는 은주를 보았고, 은주는 지현을 안고 있는 선우의 앞에 마주선 뒤, 지현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연결고리를 살며시 잡았다.
은주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목걸이를 떼어 내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에 그녀는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목걸이를 지현의 목에서 떼어내었다.
지현은 무척 피곤했는지,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대로 추선우의 품에 안겨 자고 있었고,
새벽에 때 아닌 두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는 아주머니마저, 영문도 모른 채, 숨죽이고 있었다.

“떼어 내었습니다.”
추선우는 다시 지현을 아주머니 옆에 눕혔고, 아주머니는 지현이 깨지 않도록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사람은 다시 거실로 나왔다.
“가지고 나와라. 집 밖으로 나오면 태정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목걸이를 태정민에게 건네줘라.”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답 없이 지현의 목걸이를 보았다. 목걸이에는 지현의 이름을
나타내는 듯, 이니셜이 적혀 있었고, 이니셜 아래에 아주 작게 몇 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목걸이의 펜던트를 이리저리 다 살펴보아도, 위치를 추적할 만한 장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이 목걸이가 지현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까?”
추선우는 목걸이를 들어 자세히 보면서 설장호에게 물었다.
“목걸이 속, 어느 부분에 그런 장치가 있는지는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였기에,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니 확인하기 위함이다. 태정민에게 목걸이를 주고, 넌 지현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라.”
설장호는 서둘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와 달리 급박해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추선우는 목걸이의 주인인 지현의 의견을 듣지 않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현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설장호의 말을 믿었고, 통화를 끝낸 후, 목걸이를 들고, 집을 나서려 하였다.

“어디가?”
은주가 물었다.
“이 목걸이가 지현의 위치를 지금까지 알려주고 있었다고 해. 그래서 그 국정원사람에게 이 목걸이를
주려고…….”
“그 목걸이. 지현의 아버지가 지현이에게,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만 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어.
그래서 그런지 목욕탕에서도 몸에서 떼지 않았었고, 내가 만지자, 화를 내는 듯한 표정까지 지었어.”
추선우가 목걸이를 설장호게 건네준다는 말을 들은 후, 그녀는 지현에게서 들은 말을 그에게 해 주었다.
그러자 추선우는 문을 열고 나서려던 자신의 동작을 멈추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처음 들었다. 지현에게 소중한 물건. 그런 물건을 허락 없이 타인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현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향해 보았다.

“실장님, 추선우에게 연락하였습니까?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려라. 곧 나올 것이다. 그리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라. 소음기를 장착하고,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하라.”
“네.”
설장호의 명령을 받고, 급히 추선우의 집 앞으로 온 태정민은 추선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의 굵직한 어투에 짧게 답한 후, 자신의 총에 장전된 실탄을 확인하였고,
곧 소음기를 장착하였다.
설장호는 이장구에게서 들은 위치추적은 이미 그들도 시작했다는 것을 가정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들이
다가섰을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총기사용 허가를 내리는 것이었다.

“응?”
소음기 장착을 끝내자, 곧 그의 곁눈으로 집 모퉁이 어둠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태정민은 어둠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듯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기위하여, 총구를 겨눈
채,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젠장…….”
그리고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는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후, 격한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에는 집 모퉁이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에 집 인근을 경계서던 국정원소속 대원 두 명이 온 몸에 피를 흘린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정민은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박태식이 있는 곳과 반대방향의 길목 약간 아래쪽에서
두 명의 사내가 급히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쥐구멍 사이로 잘 도 들어선 모양이군.”


태정민은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그들이 지현의 목을 가지러 온 인물들이라 장담하였다. 그리고 단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태정민의 전화를 받은 설장호는 곧바로 추선우에게 다시 전화하였다.
“뭐하는가? 지금 밖에서 태정민이 기다리고 있다. 늦으면 늦을수록, 그들이 지현의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든다. 서둘러라.”
“아무래도 지현에게 이 목걸이에 대해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선우! 의견을 물을 시간이 없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삼성역에서 마치 지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주쳤던 이장구를 기억해라. 그 때. 마주쳤던 사람이 이장구가 아니라, 진정 지현의 목을 그 자리에서
가져가야 할 놈이었다면, 그 순간 이미 지현은 죽었을 것이다.”
추선우가 망설이자, 설장호의 직설적인 큰 고함소리가 들렸고, 은주에게까지 들렸다. 그리고 설장호의
마지막말에 추선우의 눈동자가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지금 북정마을에는 우리 쪽 사람들이 많다. 만에 하나 그들이 이미 다가섰다고 하여도, 쉽게 지현이
있는 그 곳까지 가지 못한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누차 말했듯이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들은…….”

-실장님!-

그와 통화 중, 그의 전화기에서 누군가 설장호를 급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일입니까?”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급하여 물었다. 하지만 답변이 바로 오지 않았고, 설장호가 뛰는 듯 한, 발자국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젠장…….”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난 뒤, 그의 격한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서둘러라. 목걸이를 태정민에게 주고, 넌 지현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라.”
답을 듣지 못했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격한 목소리만을 들었을 뿐, 그 이유를 듣지 못한 채,
전화기는 끊어졌다.

“잠시…….나갔다 올게.”
선우는 설장호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뭔가 일이 틀어진 듯 한 그의 억양만으로 충분히 현 상태가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은주에게 말하며, 급히 나가려 할 때, 은주는
추선우의 손을 잡았다.
“그…….국정원 아저씨가 한 말…….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 그 말은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야.
그리고 그 목걸이. 지현에게는 무척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잊지 마.”
은주는 추선우에게 다시 당부하였다. 추선우는 이 목걸이를 떼어냄으로써, 지현이 안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은주는 비록 지현이 안전해 질 수 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을 잃는다는
것에, 가슴 아파 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멀리가지 않을 거야. 이 앞에서 그 태정민이란 사람만 만날게. 그리고 너의 말처럼 가족이 지현이에게
남긴 유일한 물품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이해하였다. 비단 그녀의 말을 들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고아였다.
가족이라는 존재자체를 모르며, 그 가족이 남긴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현은
달랐다. 부모가 남긴 물품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목걸이는 이제
지현이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는 선물일 것이었다.
0003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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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추선우는 1 층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았다.

“뭐야. 태정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집 앞으로 나왔지만, 태정민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결계처럼 철저하게 이 집을 봉쇄하듯 서 있었던
인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가?”
같은 시각. 설장호는 수감실 안에서 국정원대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뜬 채, 죽어 있는 이장구가 보였다.
“제가 수감실을 지키고 있었고, 또 수감실 CCTV 를 확인하였지만, 외부에서 누가 찾아온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스스로 혀를 깨물고 자결한 듯합니다.”
이장구가 죽었다. 많은 의문을 주고, 답은 주지 않은 채, 그가 죽었다. 국정원대원의 말처럼 수감실을
찾아온 인물은 없었다. 또 한 누군가가 이장구에게 무선으로 그의 자결을 유도할만한 여건도 되지 않았다.
“일이…….더럽게 꼬이는군.”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이장구는 검찰로 송치되며, 각종 언론을 통해, 그가 밝힐
말도 많았었다. 또 한, 아침에 있을 발인식 때, 그가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설장호의 계획이 실천되기 위하여, 가장먼저 포문을 열어줄, 이장구가 죽음으로써, 설장호의 계획은 또
다시 변경되어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풀어놓겠다는 말을 하였고, 지현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 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는 말해주었다. 또 한, 그 뒤로 그가 밝혀줄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설장호의 머릿속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었다.

‘띠리리리’
독한 눈빛으로 이장구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박태식이었다.
“조용하더니 폭풍이 생각보다 빨리 몰아쳤습니다.”
“그들이 모습을 보였나?”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그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였고, 죽은 이장구를 한 번 더 본 뒤,
수감실을 나서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되물었다. 이미 이장구의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설장호였다.
“아직 그들의 모습을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형사쪽 인원 두 명과, 국정원 소속 인원 세 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습니다.”
“!!!”
설장호의 바쁜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떨려오고 있었고, 손마저 떨려오고 있었다.
“추선우는? 추선우가 지금 지현에게서 떼어낸 목걸이를 들고 태정민을 만나러 나왔을 것이다. 서둘러
목걸이를 받아서, 그 곳을 벗어나라.”
설장호는 다음 계획을 급히 알렸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하였던 일이 벌어진 것에 그의 심장소리는 굉장히
크게 요동치며 들려오고 있었다.
북정마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지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다가섰고, 그 길목에 있던 대원들을 모두
죽이고 간 것이었다. 즉. 그들은 이장구가 말한 위치추적장치가 탑재 된,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인물들이라 볼 수 있었다.

“실장님. 이 어둠이 길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곧 박태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무슨 뜻이야?”
“태정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집 입구에는 추선우만 서 있습니다.”
“뭐야! 태정민에게 그 쪽으로 움직여라 말한 시간이 벌써 10 분 이상 지났다. 그런데 그곳에 없어?”
“네. 추선우 혼자입니다.”
이래저래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설장호의 답답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일단 주위에 흩어져 있는 모든 형사들과 대원들을 집 앞으로 집결시켜라. 그리고 자네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실탄을 확인하고, 소음기를 장착하라. 추선우에게는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
“네.”
전화를 끊자마자, 박태식이 강서진은 물론, 총을 소지한 인물들에게 실탄 확인 및, 소음기 장착을
명하였다.

“태정민씨는 없습니다.”
곧 추선우에게 설장호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목걸이는 가지고 있나?”
“네.”
“추선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
그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의 긴박감이 다시 전해지는 듯하였다. 추선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전화를 받고
있었고, 곧 아래에서 박태식과 강서진 및, 일부 형사들과 국정원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와 만나기로 했던, 태정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지금으로써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직접, 그 목걸이를 가지고 북정마을을 벗어나라.”
방법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목걸이를 지현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만이 위급한 상황을 넘기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지현이 곁에서 또…….”
“네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지현이 곁에서 떨어져야만 지현의 위치가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는다!
서둘러!”
“!!!”
지금까지 급박하게 들려왔던 설장호의 목소리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미 그들이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또 한. 태정민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미 그들이 가까이 다가선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자신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올려 지현이 있는 집을 보았다. 또 한


설장호가 한 말도 함께 떠올랐다.
경호원은 절대 경호대상자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 그 예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지현과 떨어져야만, 지현이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젠장…….이런 변수도 있다는 것을 왜 말하지 않았는지…….”


추선우는 목걸이를 꽉 쥐었다. 그리고 표정을 구기며 중얼거린 뒤, 신고 있던 운동화를 고쳐 신기
시작하였다.
아래쪽에서는 박태식이 자신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추선우는 저들과 함께 움직이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 여기며, 그들 곁으로 움직이려 하였다.

‘팟!’
“!!!”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올라오고 있던 박태식 일행 중, 어둠으로 인하여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명이 머리에 뭔가의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밀려나며 쓰러졌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이며,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추선우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박태식 일행이 올라서고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길목을 통해
빠르게 북정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원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설장호의 말을 우선 실행으로 옮겨야 될 상황임을 깨달았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국정원 소속 대원들을 보낸다.”
같은 시각. 설장호가 서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재 국정원에 있는 자신의 대원들을 모두 집합시켰고, 그
즉시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이장구가 죽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북정마을에서 사건이 터졌다.


사라진 두 대의 휴대전화. 그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소행일까? 하지만…….누가…….젠장.
머리통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군.”
설장호는 북정마을로 향하던 차량 안에서 새벽에 갑작스레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자
하였지만, 머릿속만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누구지?”
설장호의 말을 듣고, 빠르게 북정마을을 내려오고 있던 중, 골목 모퉁이를 돌 때, 어둠속에서 누군가
정확히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주시하여 보고 있는 것을 느낀 추선우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핏 핏 핏!’
“젠장!”
지금 상황에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자들을 자세히 보려는 것이 실수였다. 잠시 멈춘 사이, 그들은
추선우를 향해 세 발을 총을 쏘았지만, 다행히 그의 바로 옆으로 빗나갔고, 추선우는 그 즉시 쓴 소리를
내 뱉으며,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계속 쫓아와라. 지현이 아닌 나를 쫒아서 나의 눈에 너희들의 면상을 보여라.”
추선우는 자신의 뒤를 쫒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고, 진정 날다람쥐처럼 북정마을의 굽이진
골목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돌아서 내려가고 있었으며, 그의 뒤로 어둠속을 뚫고, 두 명의 사내가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들고, 역시 빠르게 그의 뒤를 쫒고 있었다.

“팀장님. 조용합니다.”
총격이 있은 후, 약 5 분 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곧 형사 한 명이 박태식에게 말했고, 그는
그 즉시 총에 맞아 쓰러진 형사의 곁으로 움직였다.
“젠장…….이 어둠속에서도 정확하게 관자놀이를 통과시켰군. 일단 너희 둘은 시신을 들고 내려가라.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 추선우의 집으로 움직인다.”
박태식의 표정은 굉장히 날카롭게 변하였다. 이미 자신의 눈으로 이 일대에 잠복 중이던 경찰과 국정원
소속 인원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장본인을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검사님도 내려가십시오. 아마…….”
“아니. 나도 이번 사건을 일선에서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조금 전, 추선우가
집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북정마을을 내려가는 것을 보았어. 그 말은 추선우가 지현의 곁에서
떨어졌다는 뜻이지. 일단 집 인근에 우리 사람이 없으니, 한 사람의 눈이라도 더 보태야하지 않겠어?”
의외였다. 검사지만, 사리구별하지 못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조금 전, 결정은 박태식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쾅!’
“제기랄!”
상대가 총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추선우의 발걸음은 자신이 평소 내딛는 보폭보다 더 넓었고, 속도가
빨랐다. 그로 인하여 평소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던 내리막길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등유를 담는
통이 쌓여 있는 곳과 부딪히며 넘어졌다.

‘핏핏픽!’
하지만 앉아서 상처를 볼 틈도 없었다. 곧바로 세 발의 총알이 날아와 그의 바로 옆 드럼통을 뚫고
들어갔고, 추선우는 다시 몸을 일으킨 뒤,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젠장. 저 놈들도 이 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하네. 내가 항상 다니는 최고의 지름길을 선택하여
내려왔는데, 그 빠르기가 나와 비슷하니…….”
추선우는 방향을 틀어 다시 내려가며 중얼거렸고, 뒤 따라 오던 그들이 방향을 틀기 전, 곧 앞에 보이는
오래되고, 약 1 미터 70 센티 정도 되는 담벼락을 짚고 단 번에 담을 넘은 후, 그 즉시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담벼락 틈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뒤를 쫒아 내려오던 인물들을 보려 하였다.

0003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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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드럼통이 쌓여있던 골목 모퉁이를 돌며,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줄기차게
따라 내려오다, 속도를 줄여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 설장호란 사람의 말이 맞군. 저들은 지금 정확하게 이 목걸이가 주는 위치를 받고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에 설장호의 말이 진실인 것을 알았다. 북정마을 꼭대기에서부터, 거의 아래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려왔었다. 저들 역시 쉬지 않고 뒤따라 내려왔지만, 추선우가 멈추자, 그들도 멈춘 채,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담벼락의 좁은 틈사이로 계속하여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어느새 그들이 담벼락 앞까지
다가섰다.

‘척…….’
추선우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보일지언정, 이 좁은 틈 사이로
자신의 눈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담벼락을 향해 보고 있었고, 곧
한 명이 담벼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팟!’
“!!!”
진정 놀라 소리칠 뻔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담벼락 틈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던 얼굴만 뒤로 떼어낼 뿐,
소리치지 않았고, 그대로 좁은 틈이라도 없는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숨죽이고 붙어 있었다.

잠시 후, 추선우는 다시 틈을 통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한 명은 총구를 여전히 겨누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담벼락을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추선우는 다가서는 그를 본 후, 다시 고개를 들어, 담벼락의 윗부분을 보았다. 다가서는 그가 담벼락
가까이에 붙어 이곳을 넘어 본다면, 충분히 추선우의 위치는 보이게 되는 구조였다.
추선우는 손에 쥔,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고, 곧 다시 시선을 담벼락
위로 올렸다. 그러자 담벼락에 다가선 사내가 들고 있는 총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였고, 곧 그의 얼굴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탁!’
“으아아악!”
“!!!”
선우는 자신의 머리위로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들고 있던 총을 잡은 손을 아주 빠르게 잡은
뒤, 그대로 몸을 낮추었고, 그 힘에 의해, 총을 들고 있던 사내의 팔은 담벼락에 걸쳐지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고통을 호소하는 고함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북정마을 꼭대기에서
지현이 있는 집을 경계 서던 박태식과 강서진 및, 모든 대원들이 놀란 눈으로 소리가 들린 아랫방향을
향해보았다.
하지만 워낙 굽어진 곳이 많고, 어둠이 짙어 어디서 소리가 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픽픽픽픽픽!’
사내의 팔이 부러지며, 총을 놓쳤고, 그는 주저앉아 부러진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을 때, 다른 한 명은
추선우가 몸을 숨기고 있는 담벼락을 향해 여러 차례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팔이 부러진 그가 떨어뜨린 총을 주었고, 곧바로 몸을 바짝 땅에 붙인 후, 낡은 벽을 뚫고
지나쳐가는 총알을 피하고 있었다.

‘탁!’
“!!!”
잠시 후, 두 명 중, 한명은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한 발 한발, 총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팔이
부러졌던 사내가 몸을 일으킨 뒤, 담벼락을 짚고, 곧바로 담을 넘었다.
“쥐새끼!”
“!!!”
담을 넘어선 그가 담벼락너머, 몸을 숙이고 있던 추선우를 본 뒤, 진정 이를 꽉 깨문 듯 한 목소리로
소리쳤고, 추선우는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운 후, 그를 보았다.

‘팟!’
“젠장!”
그 순간, 담벼락 건너편에서 다른 한명이 추선우의 머리 부분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다행히 담벼락
끝부분에 맞아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추선우는 그 즉시 다시 몸을 숙였다.

‘퍽!’
담 너머 날아오는 총알은 피했지만, 그 순간 담을 넘어온 사내는 몸을 숙인 추선우의 얼굴을 부러지지
않은 다른 한 팔로 그대로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몸이 옆으로 미끄러지자, 담을 넘지 않고,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의 눈에 담벼락 틈 사이로 추선우의 몸이 간간히 보이자. 빠르게 담벼락을 향해 다가섰다.

‘탁 탁탁 퍽!’
추선우는 밀리는 몸의 균형을 잡고자, 담벼락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자 담을 넘어온 팔이 부러진
사내가 그를 향해 다시 주먹을 뻗고, 발을 뻗었지만, 이번엔 조금 전과 달랐다. 그가 내지르는 주먹과
발차기를 모두 막은 뒤, 그에게서 뺏은 총을 쥔 손을 더욱 더 꽉 쥐었고, 그대로 그의 얼굴을 정확하게
날렸다.
그 충격은 그냥 맨주먹으로 내리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엄청난 충격이 전해진 사내는 울퉁불퉁한
땅을 제대로 밟지 못한 채, 몸의 균형을 잃었고, 추선우는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다시 한 방을 먹이려
다가서자, 곧 담벼락을 짚고, 담벼락 위로 올라선 다른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목표가 아니지만…….넌 충분히 내 손에 죽을 가치가 있는 놈이다.”
그는 담벼락 위에 걸터 선 뒤, 추선우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그로인하여 추선우는 비틀거리는
사내에게 일격을 가할 타이밍을 놓쳤고, 오히려 다른 한 명에게 자신의 목이 저당 잡힌 순간이 된
것이었다.
추선우의 손에도 총은 있지만, 그는 아직 정식으로 총을 쏜 경험이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냥 일종의
둔기라 여길 수 있는 총일뿐이었다.
“뭐해! 당장 죽여 버려!”
담벼락에 선 그가 망설이는 듯하자, 추선우에 의해 팔이 부러진 사내가 자신의 부러진 팔을 부여잡은 뒤,
소리쳤고, 담벼락 위에 선 사내는 추선우를 향해 눈을 내리깔며,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였다.

‘핏!’
“!!!”
추선우의 눈은 담벼락위에 올라선 사내가 든 총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 까지 보였다.
하지만 사내가 들고 있던 총의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담벼락 위에서 그의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툭!’
‘쿵!’
추선우는 담벼락위에 올라선 사내가 몸을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그의 몸이
휘청거렸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둘째였다. 추선우는 그 자리에서 약간 뒤로 물러난 후, 높이 1 미터 70
센티인 담벼락 위를 밟고 서서 휘청거리는 사내의 발목을 돌려차기로 걷어찼고, 그 충격에 사내는 담벼락
위에서 넘어지며,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추선우가 있는 곳과 반대로 떨어졌다

“젠장. 어두워서 제대로 겨냥하기 힘들군.”


그리고 태정민이 홀로 중얼거렸다. 담벼락 위에 오른 사내가 추선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전, 먼저
총의 방아쇠를 당긴 인물은 태정민이었고, 그로 인하여 담벼락 위에 올라섰던 사내의 어깨에 총알이
스치며 몸이 휘청거렸던 것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추선우!”
곧 태정민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목소리는 추선우는 물론, 집 인근에 서 있던 박태식의 귀에도
들어갔다.

“태정민? 조금 전 그 목소리 태정민 아니었습니까?”


박태식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강서진에게 물었고, 강서진도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내려 보았지만, 도통 보이는 것은 어둠속에서 간간히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뿐이었다.
진정 확인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집인근을 경호하는 인원이 없기에, 섣부른 움직임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제길…….한 놈이 더 따라붙었나.”
추선우와 함께 마주하고 서 있던 팔이 부러진 사내가 쓴 소리를 내 뱉으며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그 표정…….내 머릿속에 남을 너의 마지막 표정이다.”
‘슉! 퍽퍽퍽!’
팔이 부러진 사내는 그 고통도 심하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참고 버텼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인물이라 하여도, 한쪽팔만으로 제대로 된 움직임을 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다.
디딤발을 놓기도 쉽지 않은 지형이었지만, 추선우는 그를 향해 한 발을 내딛으며, 아주 빠르고 강하게
주먹을 뻗었고, 첫 일격이 제대로 그의 면상에 가해진 후, 곧 이어진 두 번의 주먹도 적중하면서, 사내는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에게서 뺏은 총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처리하겠지만, 아직 추선우에게는 총기를 사용할 허가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는 권총을 소지할 자격이 없는 민간인이었기에, 오로지 맨주먹으로 그를 상대한 것이었다.

추선우는 그가 쓰러지자, 곧바로 담벼락을 짚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면서, 자신의 눈에 비친 영상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태정민의 화려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비록 상대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고 하지만, 태정민의 움직임은
진정 놀라웠다. 빠르며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듯하였다.

‘덜썩.’
이내 그 사내마저 쓰러졌다. 태정민은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았고, 곧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총을 든 상대를 앞에 두고도 대단한 담력이군. 손가락 힘만으로 너의 목은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렵지 않았는가?”
태정민은 담벼락을 향해 걸으며 물었고, 곧 담벼락 너머에도 한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저 놈의 팔은 아작 난 모양이군. 네가 한 것인가?”
이내 시선을 추선우에게 돌리며 다시 물었다.
“내가 살고자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팔 하나 부러진다고 저 놈이 죽을 것도 아니고,
부러진 팔이라도 입은 살아있으니, 저 놈을 심문하는데 지장은 없을 듯해서요…….”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태정민의 눈은 그를 향해 곧바로 보고 있었다. 정식적으로 절차를 밟지
않은 경호원은 절대 경호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 태정민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경호하는 그였기에,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지현의 경호를 맡긴다는 말을 하였을 때, 그 누구보다 반대의견을 표시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금 전 일어난 단 한 번의 일로 인하여,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는 눈을 달리하고 있었다.

“태정민! 추선우!”
곧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장호는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들고 움직였기에, 지금 추선우가 들고 있는
지현의 목걸이에서 내보내고 있는 위치를 받을 수 있었고, 정확히 그 위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된 것인가? 집 앞에서 만나도록 했는데, 여기까지 왜 내려온 것인가?”
“일이…….조금 꼬였습니다. 일단 이 놈과 함께, 담벼락 너머 쓰러진 놈을 족쳐보면 이장구가 말한
내용의 일부라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태정민이 그의 물음에 답하였고,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대원에게 담 너머 있는 한 명을 확인토록 하였다.

0003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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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곧 담벼락 뒤편을 확인한 대원의 눈에도 추선우와 일전을 벌인 사내가 보였고,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네가 처리하였나?”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우연찮게 길모퉁이를 돌았는데, 담벼락위에 총을 든 놈이 있기에, 무작정 당겼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추선우가 또 한 놈과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태정민은 설장호가 보지 못하였던 부분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설장호의 눈은 추선우의 손으로 향해
돌아갔다. 그의 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이 있었고,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총은…….아직 너에게는 무리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설장호에게 건네주었다. 태어나 권총은
처음 손에 쥐어보았으며, 쉽게 사용할 무기는 아니었다.
“두 놈 모두, 국정원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추선우. 목걸이는 가지고 있나?”
설장호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명령한 뒤, 추선우를 향해보며 물었고, 추선우는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설장호는 현 상황에서 누가 죽고, 누가 살아있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무엇보다 추선우가 가지고 온
목걸이가 더 중요하였다. 그 목걸이를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북정마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이번
임무인 지현을 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며, 그 목걸이가 혹여 이장구가 말한 부분도 어느 정도 해석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동료의 죽음보다 더 큰 일을 위하여 목걸이에 먼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 목걸이에 설치된, 추적 장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손상시켜서는 안 되는 것을 명심해라.”
“네. 실장님.”
설장호는 추선우가 들고 있던 목걸이를 받은 후, 곧바로 대원에게 넘겨주었고, 그 즉시 대원은 목걸이를
받은 후, 의문의 두 사내를 끌고,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목걸이…….이창민대사가 지현이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입니다. 부디…….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추선우는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의 말처럼 이창민 대사가 딸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다. 위치를 추적하는
장치만을 제거한 후, 다시 돌려 줄 것이다. 일단 지현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설장호는 그의 말에 답한 후, 목걸이를 북정마을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 곧바로 지현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이장구가 말한 이창민의 뜻이 담긴 기록이, 혹시 그 목걸이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태정민. 넌 어디로 갔었어?”
“저 두 놈이 끝이 아닙니다.”
“더…….있단 말인가?”
북정마을 위로 오르던 길에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태정민은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눈빛을 멈추지 않은 채, 답하였고, 설장호의 변한 눈빛이 태정민에게 돌아가며 다시 물었다.
“내가 집 인근에서 발견한 놈이 두 놈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 그 두 놈은 아닙니다. 그들의 뒤를
쫓았지만, 그들은 이미 북정마을을 벗어나고 있었으니까요. 그에 반해, 저 두 놈은 아마 추선우를
위에서부터 추격하여 따라온 모양인데…….”
“맞습니다. 집을 벗어나, 얼마 내려오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저 두 놈도 끝이 아닙니다.
박태식 형사님이 있었던 곳에서도 총격전이 있었고, 무엇보다, 저들은 저의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어둠속에서 저와 속도를 맞춰가며 움직였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말이 끝나기 전, 자신이 겪은 상황을 설명하였고, 곧 박태식 쪽에서 일어났던
상황까지 설명한 뒤, 자신의 뒤를 쫒았던 두 사내의 행동에 대해서도 말하자, 설장호의 걸음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저 두 놈이…….너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하며 움직였다는 말인가?”
“정확하게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동안에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저들도
쉬지 않고 뒤따라 왔습니다. 그리고 담벼락을 넘어 저의 움직임이 멈추자, 저들도 일정거리를 두고 멈춘
채, 천천히 이동하였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이 변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두 사내를 데리고 국정원으로 향하고 있던
대원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즉시…….두 놈의 몸을 수색해라.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그 휴대전화에 지현이라고 적힌 어플이
있는지 확인해라.”
설장호는 그들이, 사라진 두 대의 휴대전화를 소지하였을 것이라 보고 말했다.

“없습니다. 휴대전화 자체가 없습니다.”


“!!!”
잠시 후, 답변이 들려왔고 설장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장구는 분명 세 대의 휴대전화에
지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두 사내의 몸에는 휴대전화
자체가 없었다. 즉…….휴대전화 없이 추선우의 위치를 그들이 간파하고 있었다는 뜻과 같았다.
“젠장…….대체 어찌 돌아가는 거야…….”
목걸이가 보내주는 신호를 받아 움직였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휴대전화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시스템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그들은 휴대전화
없이, 추선우의 위치를 정확하게 따라 붙었다는 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저기…….설장호 실장님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걸었고, 곧 꼭대기를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자, 집 인근을 경계서고 있던
형사의 눈에 설장호가 보였고, 그는 박태식을 향해보며 말했다.
“지현의 안전에는 이상 없는가?”
“네. 추선우씨가 나간 뒤, 아직 이 집을 드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보다 태정민…….조금 전
그 목소리는 뭐였나?”
설장호는 박태식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물었고 박태식은 물음에 답한 후,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추선우가 지현의 목을 노리고 온 두 놈과 마주하고 있기에 소리친 것입니다. 그보다…….추선우의 말을
들으니, 총격전이 있었다고 하던데…….”
태정민은 그의 물음에 답한 후, 추선우에게 들었던 내용에 대해 물었다.
“총격전이라기보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민후가 당했어. 실장님의 전화를 받고, 집 인근으로
향하던 길에 어둠속을 뚫고 날아온 총알에 목숨을 잃었어.”
설장호의 눈은 더욱 더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장구가 죽자마자, 사건은 바로 이어서 터졌고,
그로인하여 대원 여섯 명의 목숨을 잃었다.
“내 불찰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조금 더 빨리 이장구에게 이와 같은 답을
들었다면…….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지휘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그의 눈동자는 떨려왔다.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지휘하고 있는 자신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라 말하였다.

이장구를 잡아두고, 더 많은 질문을 한 후, 청와대로 향하였다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문을 다 끝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장의 명령에 의해 파손된 블랙박스
영상과 이장구가 말한 일부를 서둘러 보고하기 위하여 움직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집 앞에 서 있는 모두가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설장호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상부에서 이 문제로 인하여 책임을 묻는다면, 면책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여섯 명의 대원이
죽었고,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이장구마저 죽었으니, 그에 대한 징계는 내려질 것이었다.
또 한. 정보면서에 그들보다 뒤쳐진 것이 이번 일을 만든 발단이 되었다. 정보가 늦고, 이동성이
떨어지면, 저들에게 모든 것을 뺏길 것이라는 국정원장의 말이 있었었다. 그 말이 지금 딱 일어난
것이었다.
설장호는 이장구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였지만, 저들보다 늦었다. 그리고 정보를 입수한 후, 곧바로
움직였지만, 이 역시 저들보다 늦었다. 정보와 이동성,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였던 부분이 모두 저들보다
늦었기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이장구가 국정원 수감실에서 죽었다.”


“!!!”
모두가 설장호의 매서운 표정을 보고 있을 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을 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를 조사하면서 얻어낸 정보에 의해 그나마 이정도의 피해로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국정원에 있는 놈을 누가 죽였다는 것입니까? 설마 국정원 안에도 그 뿌리에 가담한 놈들이 있는
것입니까?”
박태식이 물었다.
“누가 죽였는지는 모른다. 현재로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왜? 왜 자결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죽었다.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며, 우리에게 협조할 것이라 말한
놈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설장호는 간밤에 일어난 이장구에 관한 말을 하였다. 모두는 여전히 믿기 힘들어하는 표정들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소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모두의 머릿속을 멍하니 만들어놓고
있었다.
“일단. 여기에 있는 모두는 해가 뜰 때까지 대기한다. 우리가 잡은 놈은 두 놈. 하지만 태정민과
추선우의 말을 들으면 눈으로 목격한 놈은 더 있었다. 아직 그들이 이곳을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주변 경계를 더욱 더 철저히 하고, 주변 수색도 강화한다. 박태식은 형사병력을 더 투입하고, 나와 함께
온 국정원 소속 대원들은 북정마을 일대를 모두 뒤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 모두는 집 인근을 경계서기 위하여 움직였다.

“대체…….누구냐…….어떤 놈들이기에 이토록 빠르고 쉽게 타깃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냐…….어떤


집단인지 모르지만…….이번엔 결코 네 놈들 뜻대로 일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숨겨가며, 또 숨어서 버텨왔는지는 모르지만…….이번엔…….네 놈들의 모든 것이 다 까발려 질 것이다.”
설장호는 모든 인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한 채, 홀로 중얼거렸다.
이장구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있다고 여기지만, 그 의미를 도통 떠 올릴 수 없기에 더욱 더 답답한
그였다.
그리고 지현이 잠들어 있는 집을 향해 올려보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총을 든 상대와 마주했을 때, 그 기분이 어떠하던가?”


조금 전까지 매섭던 표정을 풀며, 총을 들었던 두 사내와 실전을 벌인 경험은 추선우가 처음 겪어 본
경험이라 여기며, 그에게 물었다.

0003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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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었습니다. 쏘면 죽는 것이고, 쏘지 않으면 살 것이라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무식하지만 현명한 생각이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과 달리,
목숨을 내놓고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총을 든 상대와 마주하였을 때, 잡다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네
생각처럼 쏘면 죽는 것이고, 내가 먼저 쏘면 사는 것이다. 그것만 생각한다. 다른 잡다한 생각은 오히려
쓸데없는 행동을 만들어내고,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설장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경호원이 꿈이라고 하였지만, 진정 많은 것이 부족해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 점 차…….자신이 경호원으로써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며, 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났던 총격전으로 인하여, 곳곳에 남아 있는 피의 흔적이나, 기타


흔적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진정 간밤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아침을 보여주고
있는 북정마을 이었다.
“일단. 추선우는 계속하여 지현의 옆에 있는다. 그리고 박태식은 새벽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생을
달리한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한다. 그들의 장례를 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해라.”
“알겠습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추선우도 집으로 오르지 않은 채, 이들과 함께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점차 보이고 있을 때, 설장호는 박태식을 보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추선우가 지현의 곁에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설장호도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죽은 자신의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직접 연락하여 가족을 위로해 주어야 했다.
“태정민과 강서진은 이곳에 남는다. 집 인근이 아닌, 추선우와 함께 집으로 들어서라. 그리고 태정민의
경호원과 형사들은 집 인근을 경계하라.”
“알겠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추선우와 함께 있도록 한 명령에 거부감을 보였던 태정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설장호의 명령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채, 곧바로 답했다.

새벽에 일어난 사건 이후, 형사병력과 국정원병력이 북정마을 인근을 모조리 수색하였다. 별 다른 징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설장호는 다시 국정원으로 향하기 위하여 몸을 돌려세웠다. 북정마을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힘이 없어보였다. 자신의 잘 못된 지휘로 인하여 여섯 명의 목숨을 잃은 것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돌아가 할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장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알아야하며, 또


위치추적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없이, 그들이 어찌 추선우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의 위치를 추적했는지도
알아내야 했다.

“괜찮아?”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은 집으로 들어섰다. 밤새 잠을 청하지 않고, 추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던 은주가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
“괜찮아. 지현이는?”
“아직 자고 있어.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들어온 거야?”
은주는 태정민과 강서진을 본 후, 추선우에게 물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은
여전하였다.
“이제…….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그 때는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한 배를 탔습니다.
우리가 추선우씨는 물론, 지현양을 도와야하고, 두 사람도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강서진이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은주에게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모두 말하려고 할 때, 태정민이
그녀의 앞을 막았고, 그녀의 말도 막았다. 굳이 이번 일과 관련 없는 은주에게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말할 것 같은 그녀의 말을 막은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현이 깨어나면, 이곳을 나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지현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자르고 태정민이 은주를 보며 말했다. 그 순간 추선우의 눈빛이 태정민에게 향하였다.
“지현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은…….”
“다른 뜻은 없다. 새벽에 너 역시 겪었듯이, 이미 이곳 일대는 그들이 알고 있다. 이곳에 지현이
있었다는 것을 감지한 그들이 언제 다시 올 것인지는 알 수 없기에, 지현이 지낼 곳을 다시 알아본다는
것이다. 걱정마라, 그렇다고 국정원은 물론 여타 다른 국가기관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에 그 어떤 토도 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추선우를 인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은주에게는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톡톡 쏘는 듯 한 반말로 답하였고, 또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비록 지현의 위치를 나타내던 목걸이는 설장호에게 넘어가, 국정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들은 이미 이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이 일대를 맴돌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계속하여 지현을 이곳에 둔다면,
지현은 물론, 아주머니나 은주에게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삼촌.”
곧 방문이 열리며 지현이 눈을 비비고 나섰고, 추선우를 불렀다. 추선우는 그 즉시 지현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낮추어 지현과 눈높이를 함께 하였다.
“지현이…….잘 잤어?”
“응. 그런데 목걸이가 없어. 아빠가 준 목걸이가…….”
“아…….그 목걸이? 삼촌이 잠깐 빌렸어. 어제 지현이가 자는데, 목걸이의 줄이 끊어져서, 삼촌이
수리하려고 아침에 수리점에 맡겼어. 수리가 끝나면 바로 가지고 올게.”
“그 목걸이 꼭 가져와야 해, 알았지? 삼촌.”
“그래. 삼촌이 꼭 다시 가져올게.”
추선우는 지현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둘러말했고, 지현은 추선우의 말을 거짓 없이 받아들였다.
“삼촌…….저 사람들…….”
그리고 이내 지현의 눈에 태정민과 강서진이 보였고, 곧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저 삼촌과 이모가 그 나쁜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 이제부터 삼촌과 함께 지현이 곁에 있을 거야.
“안녕…….”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과 태정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였지만, 지현은 여전히
추선우의 품에 안겨,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저 삼촌과 이모가 지현이에게 나쁜 짓을 하면, 이 삼촌이 혼내줄게.”
“하하…….하하…….”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하였지만, 받아주지 않은 지현에게 선우가 안심시켜려 한 말이, 두 사람의 눈썹을
씰룩거리도록 만들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미소는 풀지 않은 상태였다.
“아주머니. 잠시 지현이와 방에 좀…….”
“그래 그래.”
지현이가 잠에서 깨자, 함께 나온 아주머니는 추선우의 말에 지현의 손을 잡았고, 지현은 추선우를 한 번
더 안은 뒤, 곧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은주야.”
아주머니와 지현이 방안으로 들어선 후, 추선우는 은주를 불렀다.
“너와 아주머니에게 미안하게 됐다. 난 그냥 단순한…….”
“지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후회란 뜻이야. 너…….지현이를 지켜주겠다고 한 말을 후회하는
거야?”
은주는 추선우의 말이 끝나기 전, 자신이 먼저 할 말을 하였다. 은주는 추선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진정으로
지현을 위하여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후회가 없기를 바랐다.
“지현이를 지켜준다고 말한 것에는 후회가 없어. 하지만 아무런 연관도 없는…….”
“웃기네. 너도 지현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그런데 넌 목숨까지 내놓고 다니잖아. 그에 비하면 나하고
엄마는 그냥 지현이를 안고 있는 것 밖에 안 돼. 괜히 멋진 척 말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해.”
은주는 추선우가 다른 말을 일체 하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하고자 한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태정민과 강서진은 두 사람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진정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른 것이었다. 자칫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 두 사람은 오히려 자신들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으며, 또 물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방편을 마련할 것입니다. 일단 아주머니와 은주씨의
거처도 따로 마련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이곳을 알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내리는 결정이니,
불편하더라도 함께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후, 강서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진정 초면에는 서로 죽일 듯이 다투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딩동-
-딩동-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강서진의 말이 끝난 후,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의 휴대전화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자 수신을
알리는 음이 들렸다.

-오전 9 시에 있을 발인식에 대비하여 인원배치를 한다. 그리고 지현을 데리고 너희 셋은 수원 연화장으로


먼저 움직인다. 그곳에 우리 대원들과 청와대경호실 인원들이 미리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이미 연화장 일대 경호원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태정민이 인솔하여 움직여라.-

세 사람은 동시에 들어온 설장호의 문자를 본 후, 서로를 보았다. 곧 발인식이며, 이창민대사의 연고지인
수원에 있는 연화장에서 화장을 할 예정이었다.
이에 설장호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지만, 지현에게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이도록 할
예정이었고, 그에 대한 모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렸다.

“오늘…….굉장히 긴 하루가 될 듯 하군요.”


태정민이 문자를 모두 읽은 후,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뜻은 쉽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창민의
발인이니, 지현이 살아있다고 여긴다면 필시 지현이 그곳에 나타날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의 말처럼, 그들도 오늘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며, 설장호쪽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기에, 굉장히 긴 하루가 긴장 속에 이어질 것을 말하였다.

“대체 이 무슨 일인가!”
한 편. 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후, 설장호가 국정원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 있던 국정원장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이장구의 죽음에 대한 보고를 받고,
평소보다 일찍 국정원으로 나섰고, 설장호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물었다.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어 다시 찾아왔을 때까지는 아무런 정황도 포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장구에게서 일부 몇 내용을 추가로 확인하였고, 그에 대해 현재 북정마을에 있는 박태식과 강서진,
그리고 태정민에게 이에 대한 대비를 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고 있을 때, 이장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설장호는 진실을 말하였다. 하지만 비단 그의 말이 진실이라 하여도, 모든 계획마저 다 수정되어야 할
상황이기에, 국정원장의 일그러진 표정은 다시 펴지지 않고 있었다.

0004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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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조금 전 보고들은 바, 북정마을에서 경계를 서던 형사와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또 한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설장호! 대체 일을 어찌 하는 거야!”
국정원장은 그에게서 진실을 들을 때까지 참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확답을 듣자마자 더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어찌 할 텐가? 이미 자네의 의견대로 오늘 아침 8 시. 기자회견이 준비되어 있네. 검찰총장이 직접 이번
사건의 종결을 알릴 것이며, 이장구에 대한 내용도 함께 나갈 것인데…….이장구가 죽었으니…….”
“이장구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비밀로 하였으면 합니다.”
“뭐라! 이장구의 죽음을 알리지 말자? 자네 제정신인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사건을 모두 뒤집어쓰게 된 이장구의 죽음마저도 거짓으로 보고한다? 자네 정말…….”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채, 격한 억양으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이장구가 지목되고, 그가 모든 범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라 말하는 것도 국민들을
속이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의 죽음마저도 비밀에 붙인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자신들의 치부를 일부라도 알고 있는 이장구가 죽은 것을 알면, 그들은 더 완벽하게 숨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장구가 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이장구를 죽이든지, 아니면 이창민
대사가 남겼을지 모르는 자료를 찾기 위하여 지현양을 찾기 위해서라도 계속하여 움직일 것입니다.”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자네가…….이토록 독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군. 그래…….자네의 말처럼 이장구의 죽음은 숨긴다고 하자,
그 뒤는 어찌할 것인가?”
“잡아야죠. 이창민대사 부부를 죽인 진짜 범인은 물론,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만든 놈들…….
그 놈들을 잡아야죠.”
설장호의 답을 들은 국정원장은 여전히 그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장구의 죽음을 알린다고
그들을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이번 사건이 종결되는 즉시 모두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진정
오랫동안 숨어서 무언가를 뒤흔들고 살아온 그들을 찾을 때까지…….또 그들을 잡을 때까지만…….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였다. 모든 책임을 회피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책임을 훗날로 미뤄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자네를 커버해 줄 수 있는 힘은 그다지 크지 않네. 자네도 알다시피…….내 권력 위에 있는
인물은 수두룩하네. 그들이 이번 사건의 내막을 알고, 또 그들 중, 이장구가 말한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면, 진정 나조차도 어찌될지 모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가 모든 것을 안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다시 설장호를 보았다. 국정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있었던 그가 가장 믿는 인물이 설장호였다.
진정 타협이란 없는 인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유일에 가까운 국정원 인물이었다.
“곧…….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다. 내가 검찰총장에게 이장구의 죽음을 알릴 것이고, 자네의
뜻도 알릴 것이다. 하지만…….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이장구가 말한…….또 이창민대사가 하려던 말…….
그 속에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진정 너와 나는 물론,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이라면…….들쑤셔 놓는 것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국정원장은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전한 후,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나간 후, 설장호의 표정은
더욱 더 매섭게 변해갔다.
“거짓? 국민들에게 알릴 진실을 숨기는 거짓? 그래 맞습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것이 모두 거짓입니다.
하지만…….지금까지…….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준 것 중, 진실이 과연 몇 개나 있겠습니까? 지금
제가 하는 거짓은…….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거짓을 다 밝혀내기 위한 거짓입니다. 기다리십시오.
현명하고 정직하게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일조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두 눈을 떨면서 자신의 의지를 다시 말했다. 그의 말처럼 참으로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수많은 진실 중, 진정으로 진실 되게 국민들을 보며 알린 내용은 몇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과 같이 그 뿌리라는 거대 조직이 버젓이 유지되며, 정부보다 더 큰 힘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8 시 아침뉴스에 이번 사건의 종결을 알리는 내용이 나올 것이다.-

곧. 세 명의 휴대전화에 설장호의 두 번째 메시지가 전송되었고, 모두 그 내용을 읽은 후, 서로의 눈을


보았다.
“이곳에 지현이 있으니, 일단 나가서 확인하시죠.”
추선우가 말했다. 설장호가 말한 뉴스내용에는 이창민대사의 이름이 거론 될 것이며, 이장구도 화면에
나올 것이었다. 비록 이장구는 죽었지만, 그의 자료화면을 내 보낼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지현에게
충격이 갈 것을 우려하여 집 밖으로 나서자는 말을 하였다.

두 사람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곧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 입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집이라, 일부러 이곳까지 오르는 사람들은 없었고, 곳곳에 형사병력과 경호원, 그리고
국정원대원들이 서성거리는 것만이 보이고 있었다.
“어찌 하시려는 것이지? 설 실장님의 계획은 이장구가 이 모드 것을 끌어안고 가는 것인데, 이장구가
죽었으니, 그에 대해서는 어떤 발표를 할 것인지가 궁금하네.”
강서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세 사람은 아직 설장호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설장호의 계획은
변함이 없었다. 이장구가 죽었지만, 그가 죽지 않은 상태에 진행하려던 계획을 변함없이 진행하고자 하는
설장호의 생각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검찰청입니다. 금일 이창민대사의 피살 사건에 있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그의 운전기사 이장구씨에 대해 검찰의 조사 결과가 알려질 예정입니다.-

시간에 맞춰 태정민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TV 를 켰고, 모두는 뉴스앵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설장호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TV 를 시청하고 있었고, 차현태도 이창민의 발인식에 앞서,
검찰청의 발표를 듣고자 집무실에서 TV 를 시청 중이었다.

-지난 7 월 15 일 밤 11 시경 일어난 이창민대사의 피살 사건은 그의 운전기사인 이장구씨의 소행으로


조사결과 밝혀졌습니다. 그는 이창민대사의 금품을 노렸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시점을
범행시점으로 정한 뒤, 그와 친분이 있는 석강수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모두 받았습니다.
이에 이창민대사의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이장구를 구속수감하고, 현재 도피중인 석강수를 전국에 지명
수배할 예정입니다.-

검찰총장의 브리핑은 간단하였다. 정확히 설장호가 일러준 내용대로 발표하였고,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장에 있던 많은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창민대사의 딸인 이지현양은 어찌되었습니까? 첫 뉴스 보도 때, 이지현양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지현양도 피살되었습니까?-

곧 한 기자가 지현에 대해 먼저 물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현양에 대해서는 확인되는 즉시,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답 역시 설장호가 미리 예시해준 답이었다. 검찰총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침착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이장구씨가 주범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장구씨는 15 년간 이창미대사의 운전기사로 일해 왔습니다.


왜 굳이 그가 임기가 끝난 시점을 노렸습니까?-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조사 결과, 그가 그 시점을 명확하게 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우발적인 살해도 함께 포함된 듯


…….-
-우발적인 범행. 항상 그 어떤 일이 일어나면 우발적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게 되면
감형이라는 특혜를 주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럼 이번에도 그의 범행이 우발적인 것이 확실시 된다면,
이장구씨도 감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검찰총장의 답변이 끝나기 전에, 다른 한 여 기자가 곧바로 직설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많은
기자들이 검찰총장의 입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기자의 말처럼, 그동안 살인사건에서 많이 등장한 말이 우발적인 범행, 또는 정신질환적 범행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로인하여 사형이 무기징역이 되고, 무기징역이 20 년 형, 또 감형되어 15 년 형. 이런
식이었다.

-이장구에 대한 그 어떤 감형도 없을 것입니다. 이장구는 오늘부로 검찰로 송치될 것이며, 그의 모든


죄가 다 밝혀지는 즉시, 법 집행을 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검찰총장은 그 여기자를 보며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을 주며 말했다. 검찰은 죄인에게 최대의 구형을
선고하려 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그들에게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판결이었다.
이에 검찰총장은 마치 검찰이 죄인들의 구형을 낮게 측정하는 것처럼 비유한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이장구가 주범이고, 내가 공범이라…….대체 뭘 먹으면 저딴 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같은 시각. 수원의 한 모텔에서 옷을 챙겨 입고,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석강수가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이장구가 잡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현에 대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어제. 쌍다리앞에서 다시 만났던 추선우를 다시 한 번 만나기 위하여 이창민 부부의
화장이 진행될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간 떨리는군. 하나같이 진실이라고는 없지만, 거짓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라니…….”
국정원장도 TV 를 보며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지금 검찰총장이
발표하고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인 것을 알고 있기에, 몸이 떨리는 것은 더 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아니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TV 를 보고 있지만, 설장호는 전혀 떨림이 없었다. 하물며
눈동자조차 떨리지 않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검찰총장이 홀로 중얼거린 말처럼, 거짓만이 지금까지
숨겨졌던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고 믿는 설장호였다.

TV 를 시청한 시청자들의 의견도 가지각색이었다. 지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와중에


석강수의 잔인무도한 범행을 말하는 이도 있었고, 이장구의 짐승 같은 행동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뉴스 내용에서 언급되었던 부분. 딱 그 내용만을
두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있었고, 또 검찰총장이 발표한 뉴스내용을 모두 믿었다.

0004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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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숨어있는 진범에 대한 생각은 일체 하지 않았다. 아주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로지 몇 몇, 상석에 앉아 있는 인물들뿐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도피중인 석강수를 체포한 뒤, 그를 심문하여 이장구의 심문내용과 대조한 후, 다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오래 끌지 않았다. 특종의 냄새를 맡는 기자들을 상대로 그들과 시간싸움을 벌이는
것은 힘든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질문이 이어질 것이며,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오히려 이번 기자회견이 더 악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검찰총장님. 질문 있습니다!-

기자회견장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검찰총장을 향해 기자들은 연신 손을 들어 외쳤지만, 검찰총장은 그들을


외면한 채, 그대로 회견장을 나섰다.
그가 나선 후, 기자들은 연신 자신의 노트북에 기사내용을 작성하기 바빴고, 궁금증이 많이 남았지만,
검찰총장이 말한 내용에 살을 더 붙이며, 서둘러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깨끗하지 못한 회견이었습니다.”
뉴스를 모두 시청한 차현태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자신이 보고 들어도, 검찰총장의 내용은 매끄럽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를 던져버린 상태였다. 설장호의 의견대로 일을 진행시켰지만, 그 중간에
여러모로 많은 변수가 생겨나고 있는 지금이었다.

“대통령님. 시간되었습니다. 서둘러 움직이겠습니다.”


곧 비서실장이 들어서며 말했다. 9 시 발인이라, 시간이 촉박하였다. 차현태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가 움직이자, 청와대 경호원이 모두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대통령께서 이동을 시작하셨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자신이 보아야 할 지점에서 절대 눈을 떼지마라.
그 한 번의 실수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이동 중, 경호원들에게 차현태의 경호에 대한 당부를 하였다. 평소의 평범한
이동이라면 그리 삼엄한 경호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달랐다. 여러모로 많은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시기였기에, 경호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설장호는 여전히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발인식 참석을 하지 않는다. 곧바로 수원연화장으로
갈 예정이기에 아직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었다.

“실장님.”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국정원대원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새벽에 있었던 사고로 인하여 생을 달리한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장례는 합동장례로 치룰 것이며, 이 또 한 유족들과 모두 이야기를 해 둔 상황입니다.”
설장호의 가슴은 또 다시 탁탁 막히는 듯하였다. 자신과 함께 한 대원들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잃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가슴은 찢어지며, 한 쪽이 도려 나가는 듯 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는 언제나 이와 같은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변수 중,
새벽에 또 하나의 변수가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래…….일단 장례식장은 오늘 밤 찾아가겠다. 몇 몇 대원들에게 알리고, 시간이 되는 인원들은 모두
장례식장으로 찾아가도록 해둬.”
“알겠습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부하직원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또 한 자신이 맡은 일로 인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지현양의 목걸이에서 떼어낸 추적 장치입니다.”
곧 대원이 어린아이 손톱보다 더 작은 칩을 그의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설장호는 대원들의 장례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는 슬픈 눈동자였지만, 이내 추적 장치에 대한 보고를 다시 받을 때는 아주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한 채, 책상위에 놓여 있는 작은 추적 장치를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꺼낸 후, 어플을 작동시켰고, 잠시 후, 정확하게 현재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화면이 휴대전화에 떴다.
“목걸이에서 떼어내었지만, 추적 장치의 작동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이대로 계속 추적
장치가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들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더 잘된 일이지, 이 목걸이에서 떼어낸 추적 장치는 내 방을 절대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이 추적 장치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고 그들이 온다면…….나를 만나게 되겠지.”
대원의 말에 설장호가 추적 장치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오히려 목걸이에서 떼어낸 후, 추적
장치의 작동이 멈추지 않을까 걱정하였던 그였다. 하지만 다행히, 추적 장치의 작동은 이어지고 있었고,
여전히 현재 위치를 내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지현의 목걸이에 다른 것은 없었나?”
“네. 이 장치가 탑재된 펜던트만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나머지 목걸이 전체는 순금으로 된
목걸이입니다.”
“그래? 알았네. 수고했어. 그리고 잠시 후,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일 테니, 대원들을 준비시켜 둬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의 목걸이에서 이창민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저 일반적인 목걸이일 뿐이었다.
대원이 두고 간 추적 장치와 함께, 목걸이를 보았다. 그저 평범한 금목걸이에, 가로 2 센티, 세로 0.5
센티 정도 되는 직사각형 모양에 아무런 무늬도 없는 펜던트가 있었다.

“지현이의 이니셜인가…….그리고 이 숫자는…….”


설장호는 그제야 목걸이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북정마을에서 추선우에게 목걸이를 받았을 때는 서둘러
북정마을에서 목걸이가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그 목걸이를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목걸이에는 추선우가 보았듯이, 지현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이니셜과 함께, 숫자가 적혀있었다.

“A-0715. 무엇을 의미하는 알파벳과 숫자일까…….”


설장호는 펜던트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그저 평범하게 적어놓은 알파벳과 숫자는 아닐
것이었다. 이 또한 무언가를 의미할 것이라 여겨지지만, 하나의 알파벳과 네 개의 숫자만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준비 다 마쳤어.”
같은 시각. 북정마을에서도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일 모든 채비를 마쳤다. 아주머니와 은주는 지현에게
새로운 옷을 입혔고, 곧 은주가 지현을 데리고 나오며 말했다.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태정민이 말했다. 발인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연화장으로 곧바로 갈 것이기에, 시간이 그리 촉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도착하여, 먼저 도착해 있는 팀들과 합류한 후, 움직여야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삼촌. 어디가?”
지현이 추선우에게 물었다. 추선우는 곧바로 답하지 않은 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 앉으며 지현을
보았다.
“지현아.”
“응?”
추선우는 지현의 눈을 한동안 보고 있은 후, 어렵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지현은 의외로 해맑은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오늘…….지현이 아빠, 엄마…….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날이야.”
“…….”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그냥 두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지현에게 거짓 없이 말해주었고, 지현은 조금 전까지 해맑은 표정으로 추선우를 보고
있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아무런 말없이, 추선우를 보고만 있었다.
“아빠, 엄마…….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우리 지현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자.”
추선우의 눈동자에도 어느새 눈물이 맺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자연스럽게 맺히고 있었다.
“아빠…….엄마…….하늘나라에 가시면, 나쁜 사람들은 이제 만나지 않겠지?”
“그럼. 하늘나라에는 모두가 착한 사람들만 있어. 그리고 그 하늘나라에서 아빠, 엄마가 지현이를 언제나
보고 계실거야. 그러니까 지현이는 건강하고 해맑게 지내야해. 그래야 아빠,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시지.”
추선우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지현을 보며 말했다. 지현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두
손을 살며시 올리며, 추선우의 볼을 만졌다.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는 듯, 그의 눈을 손으로
살며시 문질러 주었다.
“그런데 삼촌이 왜 울어? 아빠, 엄마가 행복하게 잘 계시려면 나에게 해맑게 웃도록 말하고서는 삼촌이
울면 어떡해.”
지현은 추선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고, 곧 두 팔로 추선우의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삼촌…….나…….아빠, 엄마 잘 지내시도록 항상 웃을 거야. 그런데 삼촌이 울면,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지현은 추선우를 꼭 안고서 말했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방으로 들어섰고, 은주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향해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강서진과 태정민도 어느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자신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지현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하는 말과,
어린아이가 처한 환경으로 인하여, 모두의 가슴에 눈물이 한 움큼 맺혀 있었다.
“가자…….우리 지현이가 아주 건강하고 해맑게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지.”
이내 추선우는 다시 그녀를 보며 웃음을 보이고 말했다. 그러자 지현도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지만,
지현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아주 맑은 눈물이 하나씩 맺히고 있었다.

“북정마을에서 지금 나섭니다.”
집을 나온 후, 태정민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이동상황을 알렸다.
“나도 지금 연화장으로 향한다. 명심해라 태정민. 그들은 현재 지현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다. 자칫,
허술한 행동으로 지현을 데리고 움직인다면, 북정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들이 따라 붙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태정민의 눈은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고, 추선우의 눈빛도 아주 매섭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단 두 분은 우리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당분간만 이 곳을 비워두겠습니다.”
함께 따라 나온 아주머니와 은주에게 강서진이 말했고, 곧 형사 팀에서 두 사람을 데리고 가기 위하여
옆으로 다가섰다.
“검찰청 소속 형사들입니다.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실 것입니다.”
강서진은 세 명의 형사에게 마저 명령을 하달한 뒤,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였고, 태정민도 두
사람을 향해 인사하였다.

0004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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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아…….잘 다녀와.”
아주머니는 눈물이 여전히 멈추지 않은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고, 곧 은주는 지현을 한 번
안아주었다.
“잘 다녀와. 그리고 다녀와서 이 못된 이모와 쇼핑하러가자, 더 예쁜 옷을 사야지.”
“응…….이모.”
은주는 꼭 안은 지현에게 말했고, 지현도 은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진정 못된 이모라
생각하였던 은주가 지현을 그 누구보다 더 챙겨주는 듯하였다.
“움직이겠습니다.”
북정마을 꼭대기에서부터,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도 일이었다. 차량이 위로 올라설 수 없기에, 차량이
이동 가능한 부분까지는 걸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동 중, 자칫 그들에게 발각된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새벽에 이미


어둠속에서 박태식의 형사팀 한 명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명중시킨 인물이 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현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따로 손 쓸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지현을 꼭 안은 추선우의 주위로 태정민과 함께, 청와대 경호원들이 섰고, 그 주위로 또 몇 명의
형사들이 섰다.

진정, 뛰어난 저격수라 할지라도 지현을 향해 단 한발의 총알로 적중시키기는 힘들도록 지현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은주야. 무슨 일이야? 저 사람들은 누군데…….또 선우총각이 무슨 사고쳤어?”


동네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은주에게 물었다. 그리고 물음을 한 아저씨의
말에 집주인 아주머니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이씨 아저씨가 선우에 대해 뭘 안다고 또 사고 쳤다는 말을 해? 이씨 아저씨! 선우총각이 사고치는 것
봤어? 봤냐고?”
아주머니는 그 사내를 향해 소리쳤고, 아저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본 뒤,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대체…….어찌된 사람들이 사람의 환경만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지랄이야. 잘 알지도 못하면 그냥
가만히 있던가.”
아주머니는 계속하여 씩씩거리며 홀로 중얼거렸고, 은주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며, 추선우의 뒤를
따라 내려오면서, 추선우의 품에 안긴 지현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지현도 불안한 눈빛으로 은주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곧. 차량에 도착합니다. 도착하면 곧바로 차량을 이용하여 이동 할 것입니다.”


약 50 미터 정도를 내려가면 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지점이었다. 차현태의 명령으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직접 보내준 차량이며, 웬만한 총격으로는 차량 내부에 승차한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없는
차량이었다.

“검사님. 북정마을 입구, 쌍다리쪽으로 차량한대가 올라갑니다. 창문을 짙게 썬팅하여 내부 확인은


불가합니다.”
차량에 거의 다다르고 있을 때, 북정마을 초입부분 곳곳에서 북정마을로 오르는 길목을 체크하고 있던
형사에게 연락이 왔고, 그 순간 강서진은 태정민을 향해 보았다.
“해당 차량이 올라오는 길과 현재 우리 차량이 정차되어 있는 길이 서로 같은 길입니다.”
태정민이 아래를 향해 보며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은 곧바로 현 위치에 서 있는 형사들에게 앞서 내려가
해당 차량을 검문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저 일반적이 차량일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는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야 할 때였다.

“추선우. 나와 청와대 경호원이 엄호한다. 지현을 안고 차량까지 뛰어.”


태정민은 해당 차량이 올라오기 전, 먼저 차량에 탑승할 생각이었다. 태정민의 말이 끝나자, 추선우는
지현을 더 꼭 안았고, 천천히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리막길을 평지처럼 달리기
시작하였다.

“해당 차량. 약 1 분 후, 모퉁이를 돌며, 우리 차량과 마주하게 됩니다.”


준비되어 있는 차량 앞에 다다랐을 때, 올라오는 차량을 향해보며 형사가 말했고, 그 즉시 태정민은
준비된 차량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지현과 추선우를 먼저 탑승토록 한 뒤, 자신과 함께, 강서진이
이어 탔고, 곧바로 차량문을 닫았다.
“나머지는 모두 골목을 통해 아래로 내려간다.”
곧바로 태정민이 현재 위치에 있는 모든 대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그 즉시 현장에 있던 대원들은 은주와
아주머니마저 데리고 각자,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골목으로 몸을 숨긴 후, 올라오는 차량의 눈에 띄지
않도록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차량을 그냥 보내라.”
곧 지현과 추선우가 탄 차량이 다시 북정마을을 내려가기 시작할 때, 올라오는 차량을 검문하도록
명령받았던 형사에게 검문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올려 보내라는 명령을 다시 내렸다.
그 즉시 형사들은 해당차량을 보며, 그냥 지나쳐갔고, 곧 모퉁이를 돌아 차량이 올라오자, 지현과
추선우가 탄 차량은 반대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비록 차량 한 대만이 이동할 수 있는 좁은 길이었지만, 길 한쪽으로 갓길처럼 공터가 마련되어 있어, 그
공터를 이용하여 두 대의 차량은 서로 짙게 선팅된 차량 내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쳐갔고, 골목 곳곳에
숨어있던 형사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은주와 아주머니는 골목을 따라 도보로 다시 내려가며, 초입부분에
대기하고 있는 차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대통령님. 지현이 북정마을을 빠져나왔다는 보고입니다.”


북정마을을 벗어난 후, 곧바로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설장호는 그 내용을 청와대 경호
실장에게 연락하여, 지현이 북정마을을 빠져나온 소식을 차현태가 접하게 되었다.
“선택을 잘 한 것인지 모르겠군. 만약 그들이 지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린다면, 연화장에서 지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곳으로 지현을 데리고 가는 것이 잘 선택한 것인지…….”
차현태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설장호의 말대로 지현에게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여주도록
하자는 의견을 따르긴 하였지만, 너무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지현이 도착하면, 그 어떤 누구보다 지현의 경호에 만전을 기한다.”


“네. 실장님.”
같은 시각. 설장호는 연화장으로 향하던 길에 먼저 도착하여, 연화장 일대를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알렸다.
“대어를 잡으려면 미끼 또한 그에 맞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비록 지현이 위험에 노출되겠지만, 그로
인하여 숨겨졌던 그들을 색출해 낼 수 있다면…….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국정원장은 물론, 모두가 지현이 연화장으로 향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는 감행하였다. 그의 말처럼 지현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계획이지만, 이 보다 더 확실한 미끼는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현재 설장호에게는 지현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인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었다.

“따라붙은 차량은 없는가?”


“네. 현재 북정마을을 벗어난 후, 서울 남부를 벗어나는 동안 같은 차량이 계속하여 붙은 것은
없습니다.”
태정민은 이동 중, 후방을 계속 보며 물었다. 그리고 지현이 탄 차량 뒤로 따라붙은, 대원들이 탄
차량에게 물었고, 그들은 계속하여 도로후방을 주시하면서 혹여나 미행 붙은 차량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곧바로…….연화장으로 향한다.”
“네.”
따라붙은 차량이 없다는 보고에 다시 몸을 돌려 편히 앉은 태정민이 말했고, 차량은 그대로 수원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조용한 동네군…….서울에 이런 동네가 아직도 있다니…….”


한 편. 조금 전 북정마을로 올라온, 짙게 선팅된 차량 안에서 검은 색 정장을 입은 네 명의 사내가
내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내린 사내는 북정마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확인해라.”
“네.”
곧 짧은 한마디를 하였고, 곧바로 함께 내린 세 명의 사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세 사내가 먼저 서둘러 북정마을 꼭대기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고, 그 뒤로 마지막에 내린 사내는 뒷짐을
지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북정마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들은 또 뭐지?”
동네 사람들은 아침부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에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묻고 있었다.
“저기…….말씀 좀 묻겠습니다.”
곧 사내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이씨 아저씨라 부른 사내 앞에 멈춘 후, 그를 보며 말했다.
“그 참…….오늘 무슨 날인감. 못 보던 사람들이 이리 많이 보이니 말이야.”
이씨 아저씨는 그 사내를 빤히 보며 중얼거렸고, 곧 사내는 그의 앞으로 다가선 후, 사진 한 장을 보였다.
“혹시. 이 여자아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씨 아저씨는 그가 내민 사진을 빤히 보았다. 그리고 곧 몇 몇 동네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이 아이…….조금 전, 선우총각이 안고 내려갔던 아이 아닌감?”
“그러게. 딱 보니 그 아이 같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보며, 자신들이 조금 전, 본 것을 말했고, 그들의 말에 사내의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이 아이가…….여기 있었습니까?”
사내는 그들의 말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뭐.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아침에 처음 보았수. 선우총각의 품에 안겨 웬 낯선 사람들의
틈에 싸여 내려갔는데, 혹시 선우총각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오? 만약 선우총각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라면
한 발 늦었수. 조금 전에 내려갔으니 말이오.”
이씨 아저씨는 조금 전에 있었던 모든 상황을 그에게 거짓 없이 모두 말하였다. 이미 이들은 추선우를
달갑게 보지 않는 사람들인데다. 주인아주머니에게 한 소리 들은 것이 있어, 아침부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선우? 이 여자아이를 안고 간 사람이 선우라는 사람입니까?”
“그렇소. 추선우라고, 백수로 지내던 놈인데, 저기 꼭대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총각이오. 하는 것도 없이
매일 빈둥거리는 놈인데, 저기 주인아주머니가 착해서 월세가 밀려도 그냥 봐줬던 놈이오.”
사내는 이씨 아저씨의 말에 시선을 돌려 가장 위쪽에 있는 집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씨 아저씨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후, 위로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참…….생긴 것은 마치 조폭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인사성이 참 밝네.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게


아니군.”
위로 오르는 그를 보며 이씨 아저씨가 말했다. 이들은 조금 전까지 추선우를 겉모습만보고 판단했던
인물들이었다.

0004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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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벽에 잡혔던 신호를 토대로 온 것이지만, 아무래도 현재 국정원에서
잡히고 있는 신호가 맞는 듯합니다.”
“아니…….그 신호는 진짜일수 있지만, 지현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지현은 조금 전에 이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추선우란 놈이 지현을 꼭 안고 내려갔다고 하니…….추선우란 놈에 대해 알아봐라.”
“네.”
먼저 북정마을 꼭대기를 오른 후, 주변을 살폈던 세 사내가 다시 내려오며 그에게 보고하였고, 사내는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전, 이씨 아저씨에게 들은 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 북정마을 꼭대기, 추선우와 지현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아주머니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조금 전, 내려갔던 차량에 타깃이 있었군…….”


그리고 조금 전, 자신들의 차량과 마주치며 내려간 차량을 떠올렸고, 홀로 중얼거린 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접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한 발 늦었습니다. 지현은 조금 전 이곳을 벗어났습니다.”
“그래? 아쉽게 되었군. 그럼 추적 장치의 신호대로 지현은 국정원에…….”
“아닐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지휘하는 놈으로 설장호가 배정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설장호…….그리
허술한 놈이 아닙니다. 그 놈은 목표로 하는 놈을 잡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미끼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는 놈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기 이곳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의문의 사내와 통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모두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으로
북정마을 꼭대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지현이 어디로 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전화기 건너편 사내가 물었다.
“미끼를 물어야 할 목표물들이 많은 곳, 바로 연화장입니다. 오늘 수원연화장에는 국내 귀빈들은 물론,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각국의 대사들과 함께, 국외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모여듭니다. 그 중…….이번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필시 나타날 것이라 믿는 설장호는 지현을 연화장으로 데리고 가, 그곳에서 미끼를
던져 놓을 것입니다.”
사내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며, 정확하게 설장호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듯하였다.
“미끼를 던졌다면, 강태공을 위해서라도 한 번은 물어줘야지. 움직이게나.”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곳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 뱉었고, 곧 지금까지 무표정에 가깝던 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인다.”
“네.”
사내의 말에 다른 세 명의 사내는 일체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하는 말 한마디에 바로
움직임을 감행하는 이들이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차현태가 이창민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다. 이에 많은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대통령이 한 정치인의 영정사진을 개인적인 판단 하에 들고 있는 것에 의아함을 나타내는 인물들도 있었다.

“참…….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대통령이…….영정사진을 들고 있다…….어째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


않은가?”
조금 떨어진 곳, 주차장 건물 한편에 서 있는 몇 인물들은 차현태의 행동에 대해 어이없어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의 직계 가족이라면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자칫 정치적인 요소가 묻어 날 수 있기에 곳곳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연화장으로 이동하실 것입니까?”


곧 그들의 앞으로 몇 사내가 다가섰고, 그 중 한 사내가 물었다. 그들 역시 온통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가봐야지. 이래저래 이 나라를 대표하여 먼 곳에서 일하다가 말년에 죽어버린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때는 인연이 깊은 사이였으니, 마지막은 봐 줘야지.”
“그 말은 제대로 하십시다. 어디 이창민의 마지막을 보러 가는 것이오? 그저 차대통령이 움직인다고 하니,
혹여나 싶어 따라가는 것 아니오?”
키가 약간 작고, 그들 중에서 그나마 윗선에 자리한 듯 보이는 인물이 사내의 말에 답하였고, 곧 또 다른
이의 말에 모두는 잠시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즉…….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서 뿌리에 가담된 듯 한 뉘앙스는 풍겨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단지 차현태나 이창민과
일종의 대립이 있었다는 정도의 뉘앙스는 있었지만, 지현에 대한 이야기가 일체 나오지 않았으며, 또 한.
이창민이 남겼을지 모르는 말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지현이, 연화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북정마을에서 벗어난 후, 줄곧 아무런 일없이 수원연화장에 차량은 들어섰고, 곧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기다려라. 곧 도착한다.”
설장호도 인근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태정민은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먼저 차량에서 내렸다. 지현을
태운 차량은 주차장이 아닌, 연화장을 지나쳐 더 안쪽으로 들어왔으며, 그 일대는 이미 국정원소속
대원들과 청와대 경호원 일부가 진을 치고 있었지만, 강서진의 검찰 쪽과 박태식의 형사 쪽에서는 그
누구도 일대 경계에 나선 인물이 없었다.
“일단. 제가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 차량 문을 잠그시고, 따로 연락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태정민은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차량문은 모두 잠갔고, 안에서 문을 열지 않는 한,
외부에서는 절대 문을 열수도 없으며, 차량을 파손하여 내부로 들어서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다.

태정민은 주변을 다시 둘러보며, 몇 청와대 경호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태정민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경호원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였다는 무언의 행동을 보여주었고, 경호원 역시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의 행동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곧 설장호의 차량도 연화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이창민의 영구차는 들어서지 않은 상태였으며,
조문객 또 한 아직 연화장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일반인들의 화장으로 인하여, 몇 몇 조문객이 보일 뿐이었다.

“어딘가?”
설장호는 차량을 주차한 후,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연화장 뒤쪽입니다.”
“그래? 내가 그쪽으로 가지.”
설장호는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후, 곧 연화장을 지나쳐 뒤로 향하였다. 연화장 뒤쪽에도 몇 대의
차량이 서 있었다. 일반인의 차량도 있지만, 짙게 선팅된 승합차는 대부분 국정원차량이나, 청와대
경호실 차량이었다.

“여깁니다.”
태정민이 먼저 설장호를 발견하였고,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지현은?”
“무사히 있습니다. 그보다…….일반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총격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지. 일단 지현에게 가보세.”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짧게 답하였고, 곧 지현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설장호가 도착한 후,
연화장 인근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눈빛이 모두 날카롭게 변했으며,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집중되었다.

“오셨습니까?”
설장호가 차량에 도착하자, 강서진이 문을 열며 인사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후,
처음으로 지현과 서로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설장호가 지현을 직접 본 것은 역삼역과 사당역에서였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자신만이 지현을 보았고,
지현은 자신을 보지 않은 상태였다. 또 한. 새벽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설장호는 집에 잠들어 있던
지현을 보지 않고, 해가 뜬 후, 곧바로 국정원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자네가 맡겨두었던 목걸이를 찾아왔네.”
설장호는 잠시 동안 지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곧 정장 안주머니에서 지현의 목걸이를 꺼낸 후,
추선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추선우가 목걸이를 건네받았고, 곧 지현의 목에 걸어주었다. 지현은 추선우가 목걸이를 다시 걸어주고
있을 때, 설장호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에 이런 눈빛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처음 볼 때, 저런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부드러운 눈빛입니다. 실장님도 곧 적응되실 것입니다.”
지현의 눈빛을 본 강서진이 말했다. 아직 지현에게 믿음을 보여주지 않은 설장호였기에, 많은 것에
불신이 생긴 지현의 눈빛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모든 준비는 다 해두었다. 일대에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물론, 대통령님의 지시로,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지원하고 있다. 즉…….이 상황에서 지현에게 다가서는 놈이 있다면 진정
강심장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정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단순한 조직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연화장을 중심으로 연화장 초입부분과
인근에는 약 백 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청와대 경호실과 국정원소속 대원들이며,
모두 실탄을 장전한 총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추선우.”
“네.”
“넌…….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태정민과 강서진도 함께 붙어 있으며,
지현의 모습이 어느 한쪽 방향에서 절대 1 초 이상 보이지 않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의 말처럼 원거리에서 저격을 한다면, 적어도 1 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지현의 모습이 같은
방향에서 1 초 이상 보이지 않도록 커버한다면,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한 가까이 다가서는 인물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현을 가운데 두고, 그 바로 측근에는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을 세워두고, 그 외부로 검찰 쪽 형사들과, 청와대경호원들이 둘러싸는 형식으로 지현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0004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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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잠시 후,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박태식입니다. 지금 영구차가 연화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박태식의 전화였다. 그의 팀원은 장례식장에서부터 영구차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으며, 장례식장을 벗어난
영구차가 연화장으로 향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장례식장에서는 별 일 없었나?”
“네. 뭐 아시겠지만, 대통령이 움직였으니, 그 일대의 많은 것이 통제되었고, 경호도 삼엄하여 감히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박태식은 장례식장에서의 내용을 보고하였다. 삼엄한 경계로 인하여, 일반인들에게 불편함이 있었겠지만,
대통령이란 신분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에, 삼엄한 경호는 당연한 것이라 보는 일반인들이었다.
“모두 준비한다. 영구차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설장호는 박태식에게 들었던 보고내용을 모두에게 알렸고, 곧 태정민과 강서진, 그리고 설장호도, 각자
자신들의 부하대원에게 현 상황을 모두 전해주었다.
지금까지도 눈 하나 제대로 깜빡거리지 못하고 있던 대원들은 지금부터 더욱 더 눈을 깜빡거리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각기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자신이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에서 절대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설장호…….아주 큰 판을 벌이고 말았군.”


모두가 살벌하리만큼 경계를 서고 있을 때, 연화장 안쪽에서는 일반인들과 함께 몸을 섞은 석강수가
있었다.
그는 이미 화장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인 일반인들과 함께, 아주 자연스럽게 연화장에 들어섰고, 곧
그 안에서 외부를 보며 설장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일대에 수많은 인원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들이 모두 연화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최고의 방패는 바로 평범한 일반인들이었다.
제 아무리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고 하여도, 연화장에 이미 예약된 일반인들의 화장을 모두 취소할 권한은
없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일반인들과 함께, 이창민 부부의 화장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영구차량. 들어갑니다.”
곧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영구차가 연화장에 들어선다는 박태식의 보고가 다시 왔고, 이에 모든 대원들은
주변일대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각 인원들은 만에 하나 단 하나라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을 발견한다면, 그 즉시 망설이지 말고 보고한다.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짓고 행동하지마라.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다. 눈으로 보고, 보고만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다시 한 번 대원들에게 모두 각인시켜 주었다. 의심이가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일절 금하였다.
보고만 할 뿐이며, 그에 대한 결정은 오로지 자신만이 내리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된 판단에 의해, 잡을 수 있는 존재들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준비해.”
곧 차량 안을 향해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현을 보았다. 지현은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 긴장하고 있는 모두와는 달리, 현 상황을 제대로 인지 할 수 없는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누구도 모르지만, 추선우는
지현의 표정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바로 이창민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표정이었다.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이 행복하게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추선우의 말을 지현은 그대로 믿고 있으며, 지금 그 행동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하군.”
가장 먼저, 연화장 초입부분에 배치되어 있던 대원들의 눈에 영구차와 함께, 줄지어 들어오는 엄청난
고급승용차와 승합차, 그리고 대통령의 차량까지 보면서, 그들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으며, 심장마저
아주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영구차, 진입합니다.”
곧 초입부분의 대원에게서 무전이 왔으며, 진정 영구차 뒤로 길게 이어지는 차량들을 보며,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차량 한 대당, 한 명씩이 눈을 주어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경계를 서고 있던 한 대원에게서 무전이 왔다. 그의 말처럼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차량이 이어서 들어오고
있었고, 진정 차량 한 대당, 경계서는 한 명의 대원이 눈길을 준다고 하여도, 다 커버하기는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차량이 길게 늘어져 들어서고 있었다.
“핑계는 없다.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 이창민대사의 영구차량을 따라 들어서는 모든 차량을
감시하고, 또 내리는 모두를 다 감시한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내리는지, 내린 인원이 몇
명인지 모조리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곁에서 떨어져 나가는 인원을 체크한다.”
“알겠습니다.”
진정 말은 쉬운 말이었다. 수많은 차량이 몇 대인지를 기억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모든 대원들에게 말했다.
차량은 물론, 모든 인원과 함께, 같은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 중, 같이 행동하지 않는 인원까지도
체크하도록 하였다. 분명 불가능한 명령이지만, 이들은 그 명령에 따라야하며, 오차 없이 실행해야만
한다.

곧 영구차량은 화장터 앞에 멈추었다. 곧이어 가장 먼저 들어선 차량이 차현태가 탄 차량이었고, 그 뒤로


줄줄이 경호원차량이 들어서며, 경호원이 내린 뒤, 차현태의 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화장터에 있던 일반인들은 때 아닌 대통령의 행차에 얼얼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고, 일부는 이미
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기에, 차현태가 이곳에 모습을 보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이창민대사의 시신이 화장을 시작하면, 곧 청와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알았네.”
처음 계획은 이창민의 영정사진까지만 들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연화장까지 찾아왔고, 곧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경호실장이 지체된 시간이 오버된 것을 말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화장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장지까지 다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하였다.
영정사진을 다시 들은 차현태는 고인이 잠든 관을 보았고, 곧 화장이 이루어질 곳에 이창민의 영정사진을
내려놓았다.
그의 모든 장례절차를 함께 지켜봐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차현태의 마음 한 편을 아프게 하였고,
곧 시선을 돌려가며, 혹시나 보일 지현을 찾는 듯 한 눈빛을 보였다.

수많은 차량에서 내린 조문객들은 화장장 안에 들어서지 못한 채, 그 외부에 서서 담배를 물거나, 서로


대화하고 있었고, 그 모든 상황을 경계서든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들의 눈에 넣고 있었다.
“아직 별다른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차현태가 영정사진을 내려놓은 뒤, 잠시 동안 그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주변을 경계서든 대원들은 속속
설장호에게 현장보고를 하고 있었다.

“가지…….”
영장사진을 내려놓은 뒤, 잠시 동안 영정사진을 보고 있었고, 곧 차현태가 움직였다. 그러자 청와대
경호원들도 모두 그의 주위를 따라 움직였다.
“설 실장…….”
영정사진을 내려놓은 후, 화장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차현태의 눈에 설장호가 보였다. 그는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곧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설장호는 차현태를 본 후,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의 옆으로 다가선 후, 지현이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차현태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에, 또 다른 변수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표정변화에 신경을 쓰는 듯하였다.
“잘…….마무리 해 주게나.”
“네. 대통령님.”
차현태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보고 있었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주변을 보았다.
아직 이창민의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몇몇 조문객이 보이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이창민과 함께 업무를 본 경험이 있는 지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시 동안 영정사진을 보고 있은 후, 하나, 둘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태정민. 지현을 데리고 들어온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가 나가면서, 경호원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과 국, 내외 인사들이 차현태를 배웅하기
위하여 움직이자, 곧바로 지현을 데리고 들어서도록 명령하였다.
“실장님의 명령을 잘 이해해라. 절대 지현의 모습이 같은 방향에서 1 초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의 말에 추선우가 답했고, 그 즉시 경호원들도 함께 답한 뒤, 추선우는 지현을 들어 안은 채, 얇은
점퍼로 그녀의 모습을 감추었다.
“7 번 화장장이다.”
설장호가 이창민의 화장이 진행 중인 방을 말하였고, 태정민은 곧바로 추선우의 앞에 서서 7 번
화장장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그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당분간 막는다.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추선우와 지현이 안으로 들어선 후, 태정민은 경호원들에게 말했고, 그 즉시 입구를 막아선 경호원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장장 안에는 지현과 추선우,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 강서진만이 들어갔고, 그
외의 경호원들은 모두 입구를 완전히 막아서고 있었다.

“지현아…….아빠, 엄마에게 인사해야지.”


추선우는 지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현의 눈에는 자신의 부모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지현의 눈에도 그 사진은 익숙한 사진인 듯하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미소를 품은 표정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서두르자.”
차현태는 물론, 지현도 오래 지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 처지에는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것이라, 간단하게 예만 갖추려는 것이었다.
강서진은 지현의 손을 잡고, 약 한 평 정도 되는 낮은 단상위로 올랐다. 부모님의 사진을 앞에 두고,
절을 하려는 것이었다.
지현은 강서진의 도움으로 부모의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두 번의 절을 하였다. 진정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절이었다.
두 번의 절을 마친 후, 지현은 살며시 걸어 부모님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고사리 손을 뻗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고,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하였다.

“주변 상황 어떤가?”
설장호는 지현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지자, 각기 주변을 경계서고 있는 대원들에게 물었다.
“이상 징후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빠져나가신 후, 그 뒤를 따라 수많은 차량이 함께 나가면서,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눈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차현태가 이동하면서, 그에게 눈도장이라도 받으려는 인사들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차현태가 없는 자리에서 굳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0004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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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감시한다. 지현이 이곳을 완벽하게 다시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 시선을 다른 곳에 두지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초조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오래 지체될수록 지현의 위험도는 점차 더 높아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현을 강제로 끌고 다시 나가지는 못하였다.
제 아무리 숨어있는 그들을 찾아내고자 함이지만, 그렇다고 어린 아이가 부모를 만나는 마지막 순간을
뺏고 싶지는 않았다.

“실장님.”
“무엇인가?”
약 5 분 동안 더 시간은 지체된 후였다. 지현은 여전히 부모님의 사진을 보며 울고 있었고, 추선우와
강서진이 옆으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리고 그 때, 주변을 경계서든 한 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설장호에게 들렸다.
“주차장쪽, 차량들에서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몇 사내가 보입니다.”
“팀장님!”
한 대원의 보고가 설장호에게 들어오자마자, 또 다시 다른 대원에게서 태정민을 부르는 무전이 동시에
들어왔다.
“무엇인가?”
“북정마을에서 본 SUV 차량…….들어서고 있습니다.”
“!!!”
주차장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포착되었다는 것에 놀란 설장호에 이어, 이번엔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섰다는 보고에 태정민과 강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역시…….지현을 목표로 한 차량이었군.”
태정민은 그 즉시 경호원들에게 해당 차량을 주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설장호도 국정원대원들에게
주차장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박태식.”
그리고 설장호는 곧바로 박태식에게 무전을 보냈다.
“네. 실장님.”
박태식은 차현태가 떠난 후, 연화장 인근을 수색 중이었고, 곧 설장호의 무전을 받고 답하였다.
“형사병력을 연화장에 집중시킨다. 아무래도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주차장 쪽을 확인하라.”
“알겠습니다. 곧 형사병력 모두를 연화장 출입구마다 배치하고, 제가 직접 주차장 쪽을 확인하겠습니다.”
박태식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천천히 걸어 지현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고 있는 추선우에게 눈짓을 주었고, 그가 주는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 본,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지현아…….이제 삼촌하고 나가야할 것 같아. 부모님께서 좋은 곳으로 가시려면 준비를 해야 하신데.


그러니 우리 지현이는 삼촌하고 나가자.”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지현은 이제 고개마저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곧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들어, 추선우에게 안기며 또 다시 큰 소리를 내고 울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움직여라. 그리고 태정민. 경호원들과 함께, 지현의 주위를 감싼다. 절대…….절대 지현의
노출이 같은 방향에서 1 초 이상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한다.”
“네.”
급해지고 있었다. 설장호는 이미 지현으로 하여금, 지현을 찾아온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였기에, 더 이상 지현을 이곳에 지체하도록 할 필요는 없었다. 즉. 지현은 부모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고, 또 설장호가 생각하였던 미끼 역할을 충분히 다 한 것이었다.
“길을 열고, 차량이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절대 뛰지마라, 주위의 시선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지현을 안고, 화장장을 나가려던 추선우에게 설장호가 말했다. 추선우는 지현을 다시 한 번 꼭 안은 뒤,
그에게 답했고, 입구를 막고 서 있던 경호원들이 길을 열자, 태정민과 강서진도 함께, 지현의 옆에서
바짝 붙은 채 나서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곧 화장터에 도착합니다.”


곧바로 연락이 왔다. 주차장에서 내린 인물들이 화장터까지 걸어오는데는 채 1 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곧 화장터 안으로 들어설 것임을 알렸다.
“모두 집중하라. 그리고 화장터 안에 있는 대원들은 현재 목격된 인물들이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고,
외부에 있는 인물들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먼저 움직인 지현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는 그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곧 외부에 있는 대원들에게 그들을 막아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쪽으로.”
화장장을 나서자마자, 차량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개인적인 차량이 화장터 입구를 막을 수 없기에,
처음 주차되어 있던 장소까지 움직여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정민은 방향을 잡아 말했고, 곧 열
명에 이르는 경호원과 형사들이 지현과 추선우를 완전히 막아선 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젠장…….하필 일반인들도 거의 다 빠져나가버린 상태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래도 주위에 일반인들이 꽤 보였었다. 하지만 화장이 끝난 후, 장지를 위해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이동하면서, 유독 지현일행이 움직이는 모습은 너무나 잘 보이고 있었다.
이에 태정민은 주변에 있는 산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비록 산 주위나, 그 안으로 대원들이 매복하여
있겠지만, 혹시나 다른 변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핏!’
“!!!”
“젠장! 모두 뭐하는 거야!”
태정민의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량을 거의 20 미터 정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한 형사가
어깨에 총상을 입으며 쓰러졌고, 그로 인하여 지현을 감싸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지현의 모습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이 큰소리로 외쳤고, 그의 목소리는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이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나섰던 설장호의 귀에 들어갔다.

“태정민! 뭐야!”
곧바로 설장호가 무전으로 소리쳤다.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한 명이 당했습니다!”
“젠장! 매복중인 놈들은 뭐하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
설장호는 이내 주위에 매복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추선우! 지현을 감싸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경호원 팀은 추선우와 지현을 감싸고, 형사 팀은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확인해!”
태정민은 곧바로 추선우에게 계속된 이동을 명령 내렸고, 곧 경호원들이 추선우와 지현을 감쌌다. 하지만
이미 대열이 무너져버린 상황이라, 지현의 모습은 계속하여 같은 방향에서 2~3 초간 노출되고 있었다.

‘픽!’
“으아악!”
“뛰어라! 추선우!”
또 다시 경호원 한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에 태정민은 추선우에게 소리쳤고, 추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뒤,
차량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픽 픽픽픽!’
“젠장! 주변 매복 대원들 뭐하는 거야!”
연화장 초입부분과 납골당부분에 위치한 대원들을 뺀다고 하여도, 화장장 인근에만 약 50 명 이상의
대원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재 지현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인물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장장 좌측 9 시 방향. 검은 모자.”
곧 무전으로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설장호를 비롯하여 태정민과 각 대원들의 시선이 모두
해당 방향으로 향하였다.
‘픽 픽픽!’
그 즉시 두 사람은 동시에 총을 꺼내들어 그곳을 향해 총을 쏘았다. 자신들의 귀에 들린 무전이라면,
매복중인 대원의 목소리라 단정 지었고, 해당방향을 주시한 채, 총을 쏜 것이었다.
‘탁!’
그리고 그 때.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해당 차량 안으로 급히 들어간 뒤, 앞을 보았다.
차량 앞 쪽으로는 태정민과 함께 경호원, 형사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보며 총을 쏘고 있었고, 곧 그
뒤편으로 설장호까지 가세하여 총을 쏘고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은 더 이상 없는 듯 보였다.

때 아닌 총격전으로 인하여, 화장장 인근에 있던 몇 남은 일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바빴지만, 그 누구도 현 상황에 대해 신고하는 이들이 없었다. 단지 공포에 의해 그 자리를
벗어나기만 바빴다.
추선우는 지현을 자신의 품에 꼭 안은 채, 차량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지현아…….잠시만 나갔다 올게.”


“안 돼. 삼촌. 나 무서워.”
추선우는 그들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지현은 꽉 잡은 추선우의 손을 놓지 않으며 말했고, 부모의
영정사진을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은 지현을 본 후, 지현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그녀를
다시 살며시 안아주었다.
“뭐해! 서둘러 차량 이동시킨다!”
주시하고 있는 방향에서 총알이 날아오지 않자, 태정민이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차량으로 시선을
돌리자, 운전석의 차량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는 운전할 대원이 있지 않았다.
필시 언제나 위급상황을 대비하여 차량운전을 맡은 대원은 운전대를 놓지 않도록 명령 내렸다. 하지만 이
위급한 상황에 운전대원이 보이지 않았다.

“태정민! 강서진! 차량으로 이동해라!”


차량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설장호가 태정민에게 명령 내렸고, 곧 강서진과 함께, 몸을 낮추며 차량으로
다가섰다. 조금 전까지 한 곳에서 발사되고 있던 총알은 이제 더 이상 날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설장호를
비롯하여 일대 대원들은 여전히 그곳을 매서운 눈빛으로 주시하여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안전하게 차량에 올라탄 후, 태정민이 곧바로 운전석으로 앉았다. 그리고 시동을 켰고, 그
즉시 설장호와 대원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치며, 연화장을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아주…….영화를 찍고 있군. 저격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도 하지 않은 채, 무전 보고만으로 총을 쏜다?


설장호…….많이 변했구나.”
석강수였다. 그는 연화장 안, 화장실 안에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상황을 다 본 후, 웃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는 국정원 소속 대원 한 명이, 쓰러진 채 누워 있었고, 석강수의 손에는
대원들이 착용하고 있던 블루투스가 들려 있었다.

“설장호. 참으로 한심하다. 천하의 설장호가 무전을 받고 자세한 확인도 없이 사격을 개시한다? 믿기
힘들군. 내가 말한 그 검은 모자는 보았는가? 그 타깃을 눈으로 보고 총을 쏜 것이냐? 설장호.”
이내 석강수는 블루투스를 들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하였고, 그의 말은 일대 잠복중인 대원들은 물론,
설장호의 귀에도 들어가고 있었다.

“석강수…….”
설장호는 놀라는 눈빛이 아닌, 매서운 눈빛과 어금니를 꽉 깨문 어투로 말하였고, 그의 말은 연화장을
빠져나가려던 태정민의 귀에도 들려왔다.

0004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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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
그 순간 태정민이 몰던 차량이 급정거를 하였고,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탓에 모두가 앞으로
넘어졌지만, 추선우는 재빨리 지현을 안아, 그녀에게 충격이 없도록 자신의 몸으로 충격을 대신해 주었다.

“괜찮아?”
그리고 지현을 보며 물었고, 지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젠장…….뭐야 이놈들은…….”
태정민의 격한 목소리에 추선우와 강서진의 시선이 차량 앞으로 향하였다. 조금 전, 무전으로 들린
석강수의 목소리에 의해 태정민이 급정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차량 앞에는 대형 SUV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고, 해당 차량은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차량이었다. 그리고 네 명의 사내 중, 세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으며, 곧바로 지현이 탄 차량 옆으로 또 다른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안을 보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량 안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고 하여 내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곧 차량 앞으로 가서 전면 유리를 통해 안을 보려 하였지만,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어째…….이런 차량으로 운전을 할까…….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그는 계속하여 차량 안을 두리번거렸지만, 도저히 안이 보이지 않아 홀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밀고 나간다. 추선우. 지현의 눈과 귀를 막아라.”
태정민은 차량에서 내려, 앞에 선, 네 명의 사내를 상대하고자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저 벗어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지현이 없는 상태라면, 십중팔구 그는 문을 열고, 그들의 앞에 나섰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현으로 인하여
괜한 일을 만들어 시간을 지체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태정민은 꺼져버린 차량 시동을 다시 걸려 하였다. 하지만 차량은 틱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시동은
걸리지 않고 있었다.

“어찌…….된 거지. 이 차량은 대통령의 경호에 사용되는 차량이다. 이렇게 쉽게…….”


태정민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해당차량은 차현태가 직접 내준 차량이며, 안전 면에서는
최고를 자랑한다. 하지만 차량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태정민은 자신의 할 말을 끊은 채, 쓴
표정을 지었다.
“이런…….개새끼…….”
그리고 더욱 더 격한 말을 내 뱉었다. 태정민이 욕한 상대는 바로 이 차량을 운전한 운전 대원이었다.
그가 위급상황에서 자리를 비운 것부터 의심을 했어야 하지만, 조금 전에는 그런 상황조차 되지 않았다.

“실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화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태정민은 차량 주위를 맴돌고 있는 네 명의 사내를 고루 보며,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뭐야? 왜 아직 연화장이야!”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에 귀 기우리고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태정민의 무전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지금쯤이면 충분히 연화장을 빠져나가 안전한 곳까지 이동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차량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대원들 중에서도 이미 그 뿌리에 속한 놈들이 있는
듯합니다.”
“!!!”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조금 전 상황에서
운전대원이 없었던 것과, 차량이 고장 난 부분을 생각하였고, 이내 고개를 들어 산기슭에 몸을 숨기고
지현과 추선우를 경호하려 배치한 대원들을 향해 보았다.

“없다…….”
그제야 설장호의 눈에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말 그대로 50 명은 족히 넘을 눈들이 연화장을
주시하여 있었을 것이기에, 다시 지현과 추선우가 차량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진정 조금 전까지 서로 무전을 주고받던 대원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심지어 설장호의 무전에는 그 어떤
잡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불과 3 분 정도 전까지만하더라도 이곳을 향해 누군가 총을 쏘았다. 하지만 지금은 진정 정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멍청한 결정이었다. 설장호.”


“!!!”
적막만이 흐르고 있을 때, 석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설장호를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 일에 가담한 인물은 아주 거대하다고 내가 말했었다. 아마, 이장구도 말했겠지. 그런데도 그들의
타깃인, 꼬마를 수면위로 끌어내다니 말이야. 넌…….너무나 멍청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석강수는 설장호의 이번 결정이 그의 실수라 말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회의에서도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을 수차례 했었다. 심지어 차현태도 자신마저 믿지
말라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이 일대 배치된 대원들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원들에게
제대로 된 배신을 겪고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인명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석강수…….어디에 있는가?”
설장호는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물었고, 그의 목소리는 연화장에 남아 있는 모든 대원들에게도 다 들렸으며,
석강수의 귀에도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나를 찾을 것이 아니라, 네 놈이 어떻게
이 난항을 뚫고, 그 어린 계집아이를 안전하게 빼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내
목소리…….혹시 그 정의의사도도 듣고 있는가?”
석강수는 설장호의 물음에 자신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설장호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말하였고, 곧 추선우에 대한 물음을 하였다.
“석강수…….네 놈이 이들과 한 패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물러나라.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추선우가
듣지 못한다. 그러니…….”
“그래? 그 놈은 내 말을 듣지 못한다? 그럼…….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군. 직접…….그 놈을 찾아
나설 수밖에…….”
“석강수!”
설장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석강수는 자신이 할 말만을 한 후, 블루투스를 자신의 귀에서 다시 떼어내며,
화장실에서 서서히 나서기 시작하였다.

“태정민! 아무도 믿지마라! 차량 문을 절대 열지 말고 대기하라!”


설장호는 석강수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안 후, 태정민에게 소리쳤다. 태정민 역시 조금 전,
석강수의 말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현을 안고 있는 추선우를 보고 있었고,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차량 외부에서 내부를 보려 하는 사내들을 향해 보았다.
설장호의 말처럼 추선우의 귀에는 블루투스가 없었다. 그러기에 조금 전, 자신을 찾고 있는 석강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즉시 연화장 정문으로 향한다! 모두 움직여!”
설장호는 서둘렀다. 석강수가 움직인다는 말은 곧 지현의 위험과 직결되는 부분이었기에, 자신과 함께
있던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그를 따르는 청와대 경호원들과 국정원소속 대원들,
그리고 형사들이 일제히 설장호의 뒤를 따라 정문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설장호는 그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모두가 빠져나갔다.”
이동 중에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매복 중이던 대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연화장 인근에
배치되어 있었던 많은 대원들이 죽지 않은 것이라면, 그들도 이미 뿌리에 속한 놈들이란 간단한 답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왜? 모두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정 지현을 노리고자 마음먹었다면,
물러날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지현의 뒤를 쫒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정 50 명을 넘어, 초입부분에 있었던 대원들까지, 거의 백 여명에 이르는 인원들이
진정 모두 사라져버린 것은 어찌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장님!”
곧 주차장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한 대원이 설장호를 큰 소리로 불렀고, 그 즉시 설장호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였다.
“박태식…….팀장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후, 그의 눈에 보인 인물은 박태식이었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던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라는
설장호의 명령으로 움직였던 박태식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석강수…….석강수…….”
“지금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겠습니다.”
설장호의 눈빛은 더욱 더 매서웠으며, 모든 이가 다 어스러질 정도로 꽉 깨문 채, 석강수의 이름을
말하였다. 이곳에서 석강수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번에도 박태식을 이렇게 만든 인물은 석강수라 여겼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연화장쪽을 향해 보았다.
“석강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석강수가 보였다. 그는 여전히 위, 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으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향해 고개를 약간
들어, 그 역시 매서운 눈빛을 설장호에게 보여주었다.
“설장호…….너무 매서운 눈빛하지마라, 아쉽게도 이번엔 내가 그 놈을 친 것이 아니다.”
“!!!”
석강수가 확실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석강수는 박태식을 눕힌 장본인이 본인이 아니라는 말을, 국정원
대원에게서 뺏은 블루투스를 통해 설장호에게 말하고 있었고, 그의 말은 태정민과 강서진에게도
들여왔으며, 일대에 있는 대원들에게도 모두 들렸다.
“너도 알겠지만, 난…….그 추선우란 놈을 보러왔다. 다른 놈에겐 관심 없다.”
석강수가 하는 말은 현재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다 들리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추선우만은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있지 않기에,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태정민과 강서진이 다시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여러모로 골치 아프군. 일단 이 놈들을 어찌 좀 떼어내야겠습니다.”
태정민이 무전을 들은 후, 정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차량 외부에는 여전히 네 명의 사내가 둘러싸고
있었고, 차량은 시공이 걸리지 않고 있었다.

“일단 검찰 쪽 형사들을 이곳으로 오도록 해볼게. 만약을 대비해서 고속도로에서부터 연화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대기하라고 했으니, 지금 연락하면 10 분 이내에 도착할거야.”
믿을 만한 구석이 없었다. 곧 강서진이 검찰 쪽 형사들을 말하였다.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검찰 쪽
형사들은 지금 이곳에 단 한명도 없었다.
연화장 인근을 경계 서던 인물들은 국정원소속 대원들과 경호원, 그리고 박태식의 경찰 쪽이었다. 이에
반해 검찰 쪽 인원은 지현이 연화장을 나선 후, 그녀를 외부에서 경호하기 위하여 대기 중이었기에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강서진은 곧바로 자신의 직속 형사들에게 연락하였고, 그들은 강서진의 말처럼 고속도로에서부터,


연화장으로 통하는 길목을 중점으로 곳곳에서 모두의 시선을 피한 채, 잠복 중이었다.

0004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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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팅팅팅!’
“!!!”
지원요청을 끝내고 난 뒤, 차량 후미 부분에 수발의 총알이 날아와 팅겨나가갔고, 그 소리에 추선우의
시선이 후미로 향하자, 차량 뒤쪽에서 국정원대원들이 입은 복장과 동일한 복장을 한 사내들 몇 명이
소음기를 장착한 총을 들고 차량을 향해 쏘고 있었다.

“형님. 저 놈들 너무 쉽게 총을 쏘는데요.”
“저들도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가진 놈들이다. 다…….그 영감탱이에게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놈들이지…….
우리와 달리 합법적으로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놈들이니, 저 놈들 총알에 맞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몸만
숨기고 있어.”
“네. 형님.”
차량 후미에서 총을 쏘며 다가서는 그들을 보며, SUV 차량에서 내린 사내가 말하자, 우두머리는 다가서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았고, 곧 다급하지도 않은 여유 있는 어투로 말한 뒤, 차량 앞쪽으로
이동하였다.
차량 전체가 방탄이기에, 후미에서 아무리 총을 쏜다고 하여도, 그 총알이 앞쪽에 선 자신들에게 와 닿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들의 총알 세례가 멈출 때까지, 그저 서 있을 생각이었다.
“젠장. 뒤쪽에도 붙었군.”
차량에 맞은 총알이 팅겨나가는 소리에 태정민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앞에 보이는 네 명만이 전부였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차량에서 내려 한 바탕 뛰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후미에서도 이미 다른 인물들이 붙은
것에 이저리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하…….적당한 훼방꾼은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너무 난잡해져버렸군. 대체…….저 여자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저 놈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총부터 쏘고 난리인가…….”
석강수는 연화장 앞부분에서 저 멀리 보이고 있는 추선우가 탄 차량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고, 곧바로 설장호를 향해 보며 손을 들어 해당 방향을 가리켰다.
“저 차량…….저 안에 그 여자아이기 있고, 추선우란 놈이 있는가보군. 내 말이 맞는가? 설장호.”
석강수의 무전에 설장호는 시선을 천천히 돌려 연화장으로 들어서는 초입부분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나무와 차량들 사이로 지현이 탄 차량이 보였고, 몇 명의 인원이 총을 겨냥한 채,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석강수…….네가 지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은 물러나라. 추선우가 목적이라면, 그 놈과의
만남은 주선해 주겠다. 그러니…….”
“잔머리 굴리지마라. 적이 적을 돕고, 또 적이 적을 죽이는 이런 상황에서 혼자 움직이는 나만큼 큰
이득을 볼 인물은 없다. 난…….오로지 나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니 말이야.‘
설장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석강수의 말처럼 석강수에게는 모두가 적이다. 아군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몸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기에, 여기에 있는 그 어떤 누구보다 가장 편한 인물이 석강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그냥 버리라는 설장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다시 서서히 연화장 안으로 들어서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서둘러라…….지금 즉시 지현이 탄 차량을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석강수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신과 함께 주위에 있는 대원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
내렸고, 박태식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즉시 입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주차장에 몇 남은 민간인들은 저 멀리 벌어지고 있는 총격전에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차량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차량에 시동을 걸고 그 곳을 빠져나가려 하였다.
“젠장! 지금 뭣들하는거야!”
갑작스러운 일반인들의 행동에 설장호가 소리쳤다. 연화장을 나갈 수 있는 길은 한 곳 뿐이었다. 바로
지금 지현이 있는 곳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총격전과 함께, 사람이 죽어있는 것을 본 일반인들은 연화장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오로지 그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초입부분을 그냥 지나쳐 가려는 것이었다.

“서둘러라!”
설장호는 자칫 민간인들의 피해마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소리쳤고, 대원들이 급히 움직였지만,
민간인들이 탄 차량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설장호는 곧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량들을 보았다. 그리고 박태식의 형사 팀이 타고 온, 승합차를 찾은
후,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박태식을 잘 보살펴라.”
설장호는 박태식 곁에 남아 있는 두 명의 대원에게 말한 뒤, 그대로 그의 차량을 몰고 초입부분으로
빠르게 향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인들의 차량입니다. 자칫 저들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쏜다면 낭패입니다.”
차량 후미에서 다가서고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보고 있던 추선우의 시선에 곧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일반인들의 차량이 몇 대 보였고, 태정민과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실장님! 어찌된 일입니까? 민간인의 차량이…….”
“살고자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니, 그 누가 이곳에 더 있으려
하겠는가.”
설장호는 급히 차량을 몰고 입구 쪽으로 향해가는 일반인의 차량 뒤를 따르며, 태정민의 무전에 답하였다.
그의 말처럼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일 뿐이었다. 진정 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본 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들뿐이었다.
우려와 달리 민간인이 탄 차량을 향해, 후미에서 다가서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총을 쏘지 않았고, 그냥
자신들의 앞을 지나쳐가도록 버려두었다.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이 탄 차량을 막고 서 있던 사내들도 그저
일반인의 차량은 아무런 저지 없이 보내고 있었다.
“차량 문을 열지 않으면, 저들은 절대 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 그러니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자.”
차량 옆을 지나쳐가는 민간인 차량들을 보며 강서진이 말했다. 하지만 지현은 점차 공포감이 극대화에
이르고 있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차량으로 날아오는 총알 소리와 함께, 차량을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 지현은 그 당시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차량에서 내려야겠습니다. 지현에게 쇼크가 오는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지현의 귀를 꽉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차량의 흔들림과 함께, 추선우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꼭, 지난날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듯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픽픽픽픽!’
“!!!”
순간 차량 후미에 서 있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복장을 한 사내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차량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네 명의 사내들도 몸을 더 낮추고 있었다.
‘킥!’
“어서 움직여!”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뛰어가던 자신의 대원들보다 더 빠르게 차량으로 이동하였고, 이동 중, 차량
후미를 공략하던 그들을 자신의 대원들이 하나, 둘 눕히자, 차량 옆으로 자신의 차량을 바짝 붙인 뒤,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태정민은 굳게 잠겨있던 차량 문을 열었고, 곧바로 추선우에게 설장호의 차량으로 옮겨 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탁!’
“!!!”
하지만 차량문이 열리면서, 차량 앞쪽에 있던 사내들이 차량 양 옆쪽으로 빠르게 다가섰고, 한 명은
설장호를 향해 총을 겨냥하였지만, 설장호가 먼저 그를 향해 총을 쏘면서 그는 다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이동하였던 이들은 그 즉시 차량문을 열어 추선우의 머리를 잡아 당겼고, 추선우가
뒤로 밀려나면서, 꽉 안고 있던 지현은 자신의 품에서 태정민을 향해 밀어주었다.

“추선우!”
태정민은 그의 이름을 부른 뒤, 추선우에게 넘겨받은 지현을 강서진에게 곧바로 다시 건네주며, 서둘러
설장호의 차량으로 타도록 하였고, 총을 꺼내 열린 문을 향해 쏘면서, 강서진이 설장호의 차량으로 옮겨
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추석우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를 향해서는 추선우의 움직임에 의해
총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차량 두 대가 모두 승합차라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강서진은 지현을 안고 바로 설장호의 차량으로 이어탈
수 있었다.

‘치리리리. 탁!’
강서진이 서진을 안고, 설장호가 있는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태정민은 곧바로 자신이 타고 있는 차량문을
아주 빠르게 닫았다.

‘팅팅팅팅!’
그 순간, 추선우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던 사내 옆으로 또 다른 사내가 서서 곧바로 총을 쏘았지만, 이미
방탄이 된 차량문이 다 닫히면서, 지현이 옮겨 탄 차량에는 일체 피해가 가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그 즉시 설장호는 아주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그 차량을 향해 마저 총을 쏘려든 그들을
향해 태정민이 열린 차량 문틈으로 먼저 총을 쏘며, 네 명 중, 두 명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날려버렸다.

“삼촌!”
추선우와 태정민을 남겨두고 차량은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지현은 추선우와 떨어지자, 차량
후미를 보며 큰소리로 추선우를 불렀다.
“안정시켜.”
설장호는 사이드밀러를 통해 후미를 본 후, 강서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강서진은 지현을 꼭
안아주며, 자신도 시선을 돌려 차량 뒤편을 보았다.
‘픽픽픽!’
이어 설장호의 부대원들이 도착하면서, 그 뒤로 남아있던 일부 인물들을 모조리 눕히고 있었다.
‘탁!’
추선우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당긴 사내에 의해 차량 외부로 나오게 되었고, 자신의 몸이 완전히
노출되었지만 당황하지 않은 채,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의 손목을 잡아 강하게 조이며, 자신의
회전시켰고, 우두머리격인 사내는 추선우를 향해 총을 쏘려 하였지만, 그 즉시 태정민이 차랑안에서 열린
문을 통해 추선우를 엄호해 주면서 그의 몸을 다시 낮추게 만들었다.

‘퍽! 퍽!’
추선우는 자신의 몸이 회전되면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사내의 손까지 다 꺾이자, 잡고 있던
머리채가 자유롭게 풀림과 동시에, 그를 향해 정확하게 면상을 날렸고, 충격으로 밀려나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공중 뒤돌려차기로 다시 한 번 면상을 날리며, 그를 도로 끝 수로로 떨어뜨렸다.

00048 경호원 =====================================================================


====
                          
‘픽픽픽!’
그 순간 태정민에 의해 몸을 숙이고 있던 우두머리가 시야에 추선우가 들어오자 그를 향해 총을 쏘았지만,
추선우는 그 즉시 차량 후미로 돌아가 몸을 범퍼 위로 올리며, 그가 쏜 총알이 모두 차량에 맞아
팅겨나가도록 하였다.
태정민은 열린 문으로 손을 내밀어, 그를 향해 남은 총알을 몇 발 쏘았고, 그 역시 차량 앞으로 몸을
피하며, 태정민이 쏜 총알을 모두 피하였다.
차량 전체가 방탄이니,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않는 한, 해당 목표에게 서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곧 설장호의 부대원들이 차량에 다가섰다. 그들은 차량 후미에서 총을 쏘든 인물들을 모두 제거한 후,
다가섰고, 차량 후미에 붙어, 범퍼 위로 올라선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위로 올라서세요!”
‘픽픽픽!’
추선우는 차량으로 다가선 그들에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차량 앞으로 몸을 숨긴 사내가 차량
하부를 통해 반대편, 후미에 있던 대원들의 발목을 겨냥하여 정확하게 명중시켰고, 그로 인하여 대원들이
쓰러졌고, 쓰러진 대원들의 머리를 향해 총알 한발씩을 정확하게 먹이고 있었다.
추선우는 이와 같은 상황을 미리 생각하여, 차량 범퍼 위로 올라서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다가선
대원들은 차량 앞부분에 있던 인물을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틱틱’
“제길…….”
태정민은 열린 문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차량 앞쪽에 있는 사내를 보았고, 곧바로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내 그의 총에서는 틱틱거리는 음성만 들려오고,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추선우! 어서 타라!”
태정민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졌지만, 탄창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추선우를 향해 소리쳤고,
그 즉시 추선우가 차량 안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그의 곁눈에 한 사내가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추선우는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석강수였다. 그는 너무나 여유로운 걸음으로 추선우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고, 차량 안에서 후미에 있는 추선우를 보고 있던 태정민의 눈에도 석강수가 보였다.

“추선우! 어서 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열린 차량 문으로 우두머리격인 사내가 태정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는 석강수에게 시선이 팔리면서, 그가 다가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태정민이었다.

“대통령님은 안전하신가?”
설장호는 차량을 몰고, 되도록 연화장을 멀리 벗어나고 있었고, 이동 중, 차현태를 경호하는 경호
실장에게 연락하였다.
“네. 지금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연화장은 쑥대밭이 되었네. 대통령께서 벗어나시자마자, 그들이 모습을 보인 듯 해. 일단 대통령께서
안전하시다니, 서둘러 청와대로 모시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연화장으로 지원대를 보내겠습니다.”
“아니…….누가 와도 도움은 되지 않을 듯하네. 이미 그곳에 잠복해 있던 대원들마저 모두 한통속이었어.
이제…….진정 믿을 만한 놈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지.”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곧 그의 눈빛은
차현태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차현태가 물었다.
“아닙니다. 설 실장인데…….각하께서 잘 도착하셨는지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그래? 난 무사하니, 지현을 무사히 다시 데리고 나오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일러주게.”
“알겠습니다.”
경호 실장은 차현태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굳어버린 표정으로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청와대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가 경호실장과 통화를 끊자마자,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금. 진입하겠습니다.”
검찰 쪽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강서진의 연락을 받고, 연화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곧 연화장에
진입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틱틱’
“피차…….총 쏘는 데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군.”
한 편. 태정민을 향해 정확하게 총을 겨누고 있던 사내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역시 총알이 바닥난
상태였다. 태정민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고, 사내의 표정도 어이없는 듯, 자신이 들고 있는 총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곧 총을 바닥에 던진 후, 차량 안으로 들어섰다.

‘치리리리!’
그 즉시 태정민은 반대편 차량문을 열고, 차량 밖으로 나온 후, 차량 후미에 서 있는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였고, 그도 곧바로 따라 나온 후, 차량 후미로 돌아서다. 유유히 걸어오는 석강수를 보며 행동을
멈추었다.

“괴물이…….둘이라…….오금 저리는군.”
태정민은 걸어오는 석강수를 본 뒤, 또 다시 차량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고, 추선우는 그런
태정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웃음이 나와?”
“그럼. 웁니까? 어차피…….저 놈들을 뚫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니, 한 놈씩 맡죠?”
“자신 있어?”
“뭐…….팔, 다리 하나정도만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한 말은 설장호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죽지 않으면, 팔, 다리 하나정도만 주면 된다는 말. 지금 추선우는 딱 설장호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가서는 석강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이상하군. 이 일대에 백여명의 대원이 숨어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고작 서른 명도 안 돼. 그마저도 누구 편인지 몰라…….대체…….어찌 얽히고설킨 것인지…….도통
이해를 할 수 없어.”
석강수가 곧 다가섰다. 그리고 태정민과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차량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넌…….어느 쪽인가? 내가 죽여야 할 쪽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 목표를 둔 쪽인가?”


석강수는 그를 향해서도 물었다. 즉. 두 사람도 안면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래저래…….조건이 맞지 않은 상황이 되었군. 일단…….난 여기에서 빠진다. 차량 안을 보니 내
목표는 이미 이곳을 벗어난 듯하니,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지.”
석강수의 물음에 그는 차량의 열린 문을 통해 안을 한 번 더 확인 한 뒤 말하였다.
“그래? 그럼 목표를 찾아가라.”
석강수는 그를 보며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 사내의 외모 또 한 평범하지 않지만, 석강수는 그보다 더
한 기세를 지닌 듯하였다.
“하지만…….목표가 없어도, 갚아야 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저 놈이 내 동생 셋을 죽였으니, 그에 대해
보답은 해 줘야 할 것 같아서…….네가 가져갈 놈은 누군가? 난…….왼쪽에 선 놈만 원한다.”
그대로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아니었다. 사내는 석강수의 말에 순순히 물어나지 않았고, 태정민을
가리키는 듯 말하였다.
“그럼…….나와 굳이 충돌을 할 일은 없겠군. 내가 원하는 놈은 그 옆에 선 놈이다. 적당히 한 놈씩
나눠가지면 되겠군.”
“지랄들 하네.”
“…….”
두 사내가 태정민과 추선우를 사이에 두고, 누가 누굴 잡아먹을 지를 결정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자,
추선우가 둘 모두를 향해 번갈아보며 격한 말을 내뱉었고, 그 순간 석강수는 물론, 사내의 눈썹도
씰룩거렸다.

“네가…….추선우인가?”
곧 사내가 물었다.
“내 이름은 또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군. 그래…….내가 추선우다!”
추선우는 그의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였고, 그 순간 사내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일체의 망설임 없이
추선우를 향해 다가섰다.
‘탁! 퍽!’
그 순간 태정민이 그의 주먹을 막아섰지만, 그의 큰 덩치로 인하여 뒤로 밀려났고, 곧 그는 태정민의
복부를 걷어차며, 더 뒤로 밀려나도록 만들었다.

“지현은…….어디에 있나?”
그리고 추선우와 마주하였다. 그는 선글라스 속 눈동자를 부르르 떨며 물었고, 추선우는 그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 쪽은 내 먹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석강수가 빠르게 다가서며 소리쳤고, 곧 주먹을 강하게 뻗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의 주먹을 피하였고, 석강수의 주먹은 차량 뒷 창문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네 놈 먹이에만 신경 써라. 이놈은 내가 볼 일이 있는 놈이다.”
석강수는 사내에게 말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젠장…….뭔 발길질이 이리 매워!”


곧 태정민이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지며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복부를 걷어찬 사내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며 소리쳤다.
“꽤…….맷집이 있는 모양이네. 한 방이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그 고통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사내는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맵긴 한데…….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더군. 충분히 한 바탕 놀아볼만 하다. 다시 해보자.”
태정민은 여전히 자신의 복부를 만지며, 그에게 여유가 있다는 듯 말하였고, 석강수가 그의 말을 들은 후,
사내를 향해 보았다.

‘애애애앵앵!’
“딱…….재밌게 한바탕 놀아볼까 했는데…….아쉽게 되었군.”
사내는 인근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태정민을 보며 말했고, 곧 석강수와 추선우도 나란히
한 번씩 훑어본 뒤, 서서히 걸음을 뒤로 하기 시작하였다.
“꼬리 내리는 것이냐!”
“기회는 다음에도 있다. 너…….기억해 두지. 그리고 저기 서 있는 저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나,
추선우와 너…….살아있어라. 다음에는 진정…….오장육부가 몸속에서 뛰쳐나올 정도의 고통을 주마.”
경찰의 사이렌 소리에 그가 발걸음을 뒤로하자, 태정민이 소리쳤고, 그는 태정민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좌, 우로 흔든 뒤, 추선우와 태정민을 고루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시선을 석강수에게 돌린 뒤, 매서운
눈빛만을 준 채, 길 한 쪽 수로를 건너뛰며 산속으로 들어섰다.

“추선우…….빨리 끝내자.”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경찰의 사이렌소리에도 물러나지 않은 채, 자신과 약 2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서있는 추선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경찰이 다가올 시간 안에 충분히 추선우에게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줄 자신감이 있었던 그였다.
“나야…….상관없지만, 넌 괜찮을까?”
추선우는 그의 첫 인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다리를 완전히 묶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느꼈던 인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설장호가 늘 하는 말을 빗대어 자신이 사용한 것처럼, 죽지 않으면,
팔, 다리 하나 주는 셈치고, 맞짱을 뜬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주눅 들지 않고 그의 말에 오히려 여유
있는 어투로 묻기까지 하였다.

0004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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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호가 참 도움 되지 않는 것을 가르친 모양이군.”
‘슉 슉슈슉 탁!’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석강수는 차량 뒷 창문에 맞대어 있던 주먹을 거둬들이며 말했고, 곧바로
추선우를 향해 연속적인 주먹을 뻗었지만, 추선우는 갑작스럽게 뻗어진 그 모든 주먹을 다 피하였고,
석강수가 몸을 돌리며 뒤돌려 차기를 한 것은 태정민이 어느새 추선우와 몸이 교차되면서 두 손을 위로
올려 막아섰다.
“여러모로…….불리하지 않을까?
태정민은 그 즉시, 석강수의 발을 밀어낸 후,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석강수도 만만치 않았다. 태정민이
뻗은 주먹과 발을 아주 편한 상태로 모두 피하면서, 간간히 그를 향해 주먹을 내 뻗었고, 불시에
감행되는 석강수의 공격에 의해, 태정민도 방어를 하고 있었다.

‘애애애앵!’
점차 사이렌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리자, 석강수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번갈아 보았다.

“너희 둘…….다음에 꼭 다시 보자.”


석강수도 이제 두 사람 모두를 타깃으로 둔 것이었다. 추선우를 상대하고파 그를 찾았지만, 태정민도
그의 심기를 건드려 놓은 것이었다. 이미 앞 서 몸을 숨긴 사내가 두 사람을 타깃으로 정하였고, 이내
석강수마저 두 사람을 동시에 타깃으로 정하였다는 뜻을 보인 뒤, 곧 연화장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고, 그를 향해 뒤따라가려던 추선우를 태정민이 잡아 세웠다.
“우선은 현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겨야하며, 지현이 무사히 빠져나갔는지
확인해야한다.”
태정민의 말이 맞았다. 석강수의 뒤를 쫒는 것보다, 현장에서 총상으로 인하여 쓰러진 대원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곧 경찰차량이 도착하였다. 경찰차량의 일부는 두 사람의 곁에 멈춰 섰고, 또 일부는 계속 안으로


들어서며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곧이어 형사들이 탄 승합차가 들어오며, 태정민의 앞에 멈춰 섰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형사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태정민에게 달려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일단…….박팀장님을 병원으로 후송해. 그리고 이 일대를 모두 뒤져라. 썩을 놈의 인간들이 모두 다른
배에 올라탔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에 배치된 모든 경호원들과 국정원소속 대원들, 그리고 형사들이 우릴 공격했다. 믿는 도끼에 아주
제대로 한 방 먹었지. 아직 벗어나지 못한 놈들이 있을 거다. 그러니 모조리 뒤져서 찾아.”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형사에게 명령내린 뒤, 그제야 바닥에 몸을 앉혔고, 곧 추선우도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추선우가 물었다.
“어째…….여자아이 하나 경호하는 게, 대통령 경호보다 더 어렵다. 그보다…….넌 경호를 해 본 적도
없다는 놈이 벌써 총을 든 놈을 두 번째 만났는데, 겁이 나지도 않았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먼저 쏘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라고요. 총을 든 놈 앞에서
잡다한 생각은 살 기회마저 버린다는 설 실장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말에 웃으며 답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현에게 가봐야겠습니다.”
“그래…….가봐야지. 너의 임무가 지현을 밀착 경호하는 것이니, 가봐야지…….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태정민도 함께 일어섰다. 그리고 곧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래? 다행이군. 일단 박태식을 병원으로 보내라. 그 후에 다시 연락한다. 그리고 추선우를 바꿔줘.”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 후, 추선우를 찾았고, 곧 추선우가 전화를 건네받자마자, 설장호는 전화기를
지현에게 주었다.
“받아. 삼촌이다.”
설장호의 말에 지현은 지금까지 공포에 쌓여있던 표정을 풀고,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삼촌!”
곧바로 큰소리로 추선우를 불렀다.
“지현아. 괜찮아?”
“응. 난 괜찮아. 삼촌은?”
“삼촌도 괜찮지. 삼촌이 말했잖아. 삼촌은 아주 강해서, 다치지도 않아. 그러니 걱정말고, 옆에 있는
이모 말 잘 듣고 있어, 삼촌도 곧 갈게.”
“응. 삼촌. 빨리와.”
지현은 추선우와 통화를 한 후에야 비로소 매섭게 뜬 눈과, 공포에 싸여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 지현이가 웃을까?”
조금 전까지 진정 공포에 쌓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추선우와 통화 한 번 한 것으로 그녀의 표정이 풀렸고,
미소마저 짓자, 강서진이 물었다.
“삼촌이…….이모 말 잘 듣고 있으라고 했어요.”
“그래? 삼촌이 그랬어? 우와…….지현이 삼촌은 이모를 좋아하나보네.”
“아니에요! 삼촌은 지현을 좋아해요. 그리고 은주이모를 좋아하고, 미희이모를 좋아해요.”
“하하…….하하…….이모가 너무 많구나.”
강서진은 그녀의 긴장이 풀린 것을 보며, 농담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사색하며, 그녀에게
소리쳤고, 곧 지현의 입에서 은주와 미희의 이름이 나오자, 강서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연화장의 일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다. 너와 지현을 집주인 아주머니가 있는 곳에 내려주겠다.
그리고 그 곳으로 추선우를 보내겠다.”
“네. 실장님.”
설장호는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연화장에 배치된 인원만으로 충분히 그 곳에 모습을 보인 인물들을 모조리
다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의 충분한 인원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각부터가 잘 못 되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명령으로 연화장에 배치된 인원이 모두 다른 배에
올라 탄 인물들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배에 올라탄 인원들에 의해 모조리 죽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약 백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찾아가며 죽이는 것은
진정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장호는 후자의 생각보다 전자의 생각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배신한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우린. 여길 마저 정리하고 간다.”
강서진이 보내준 형사들에 의해 박태식은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고, 연화장 내에 있던 부상자와
사망자들도 모두 정리되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화장장으로 향하며 추선우에게 말했고, 추선우도 그가
말한 정리가 무엇인지 알아들은 듯. 화장장으로 향하였다.

화장장 안으로 들어선 후, 두 사람의 시선에 보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연화장의 관계자들도
모두 자리를 피하면서, 이창민의 화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태정민은 곧 연화장 관계자를 찾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이창민의 화장을 마저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창민의 화장이 마저 진행되고 있을 때, 태정민과 추선우는 화장장 외부로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높지 않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곳에 매복해 있었던 대원들은 진정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많은 인원이 죽은 것이라면 현재 저 산속에 시체로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모두
빠져나갔을 경우, 그 인원들이 어떤 경로로 빠져나갔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찌 생각해?”
태정민이 물었다.
“무얼…….말입니까?”
“오늘 아침. 이곳에 올때까지만해도, 연화장 인근에 있는 모든 대원들은 우리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그 생각은 빗나갔지. 그 많은 대원들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힘. 누구여야
가능할까?”
태정민은 이내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도 주위를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현재 지현을 돕는 인물은 최상위층 인물인 대통령을 시작으로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과
외교부다. 진정 대한민국에서 최상위에 앉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지현을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의 물음처럼, 그 최상위층 인물이 지현을 돕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통령인 차현태는 물론, 국정원과 검찰청, 경찰청을
모두 가지고 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만은 확실한 듯합니다. 오늘…….진정 대범하게 이런 일을 자행한 그 조직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물. 그 이상의 인물일 것입니다.”
추선우는 정확히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그들의
힘은 이미 자신이 속한 이 조직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연화장으로 향하는 오늘 아침에 설장호가 한 말도 떠올랐다. 진정 오늘…….지현을 죽이고자 그들이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들은 진정 강한 인물들일 것이라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들은 강하다는
것을 느꼈고, 직접 경험도 하였다.

“지현아. 괜찮아?”
설장호는 지현과 강서진을 집주인 있는 곳에 내려주었고, 곧 지현을 보며 은주가 다가서서 그녀를
안아주며 물었다.
집주인과 은주는 경기도 외곽의 한 펜션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일대에는 설장호의 부하들이 모두
자리하여 두 사람을 경호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명령으로 집주인과 은주를 경호하고 있던 모든 대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았다.
짧게는 3 년. 길게는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설장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너희들 중, 내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난…….그 놈이 누가 되었던 그 자리에서 목을 친다.
그러니…….나의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지 않도록 부탁한다.”
설장호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진정 그들을 믿고, 오랫동안 함께 한 시간이지만, 연화장의 일을 떠
올리면, 오래한 시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지금 현재의 생각만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고, 설장호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곧 집주인 아주머니와 인사하였고, 강서진에게 몇 명령을 하달한 뒤, 다시
지현을 보며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섰다.
“지현아.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선우삼촌이 올 거야. 그러니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와 이모 말 잘 듣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설장호의 말에 지현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거린 후, 아주머니의 품에 안겼다. 아주머니는 연화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지현의 행동이 그저 설장호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였다.

“지금 즉시, 검찰 쪽 형사들도 이곳으로 모이도록 한다. 되도록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하며, 자네가
명령내리는 인물 외에,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위치를 말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마지막으로 강서진에게 다시 몇 명령을 하달한 뒤, 그는 곧장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0005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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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서는 국정원장과 함께, 검찰총장이 먼저 만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설장호로부터 연화장의 일을
보고받은 뒤, 곧바로 만남을 가졌고, 설장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인가? 그들이 연화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니 말이야?”
설장호가 국정원장실로 들어서자마자,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며 물었다.
연화장에는 국정원장은 물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자리하지 않았었다.
이들은 외교부장관과 함께, 이창민이 국외에서 어떤 일에 연루가 되어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비밀리에
만나고 있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기관 수장들이 움직였던 연화장에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었다.
“일단…….연화장 인근을 경호하도록 배치된 인원 선발은 누가 한 것입니까?”
국정원장의 물음에 설장호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먼저 물었다.
“자네의 명령이지 않은가? 자네가 국정원소속 대원들과 청와대 경호실 인원을 직접 선발하여 현장배치를
하지 않았는가?”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에서 나온 물음에 대해, 국정원장이 오히려 더 난색을 표하며 그에게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새벽에 일어난 북정마을 사건으로 인하여, 그 인원을 선발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청와대 경호 실장에게…….”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명령은 없었다는 뜻을 말하였고, 곧 자신이 명령한 인물을 말하던
순간, 말을 잇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무슨…….말인가? 그럼 설마 경호실장이?”
설장호의 입에서 경호실장의 말이 나옴과 동시에, 그가 말문을 막자,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다.
“오늘 아침. 경호 실장에게 연화장 인근 경호원 배치를 부탁하였습니다. 즉…….경호실의 인원은 청와대
경호실장이, 그리고 국정원의 인원은 제가 시간이 되지 않아, 선발된 인원을 연화장으로 보내라는 명령만
내렸습니다. 하지만…….제가 연화장에 도착했을 때 보였던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제가 평소에 보던
인물이 없었습니다.”
설장호는 잠시 동안 연화장 인근에 있었던 자신의 부하직원의 얼굴을 떠 올렸다. 자신과 직접 움직였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눈에 익숙지 않은 인물들이 몇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설장호는 그들이 국정원
소속이 아니라, 경호실 인원이라고 생각하였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청와대 경호 실장에게 연락하였다.

“대통령께서는 잘 도착하셨는가?”
“네.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창민 대사의 장지가 잘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물어보십니다.”
“그건. 곧 마무리 할 것이네. 그 보다 내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설장호는 경호 실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도 이미 15 년 넘게 알고 지냈으며, 그의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금전적인 이유로 그가 다른 배에 올라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는 그 믿음이 거의 바닥에 와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에 대해 믿음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설장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윗단계에서부터 하나하나 알아볼 예정이었다.
“말씀하십시오.”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전혀 긴장하거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자네가 보낸 청와대 경호실 인원. 그들을 연화장 어느 지역으로 배치하였나?”
이 하나의 물음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의 심기는 불편해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자신이 배치한
경호원들이 지현을 직접 공격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선발한 경호원은 연화장에서부터, 납골당 부분을 연결하는 통로구간입니다. 그리고 연화장 인근
산속에는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대부분 진을 치고 있었으며, 그 외 하늘공원 방향으로 우리 청와대 경호실
인원 일부가 배치되었었습니다.”
경호 실장은 자신의 명령으로 배치된 인원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산속에서부터
날아온 총알은 모두 국정원에 속한 인원이 발사한 총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알았네. 이번 연화장에 배치된 인원들의 명단 확보가 필요하니, 자네가 직접 선출하였다는 경호실 인원
명단을 넘겨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화장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대통령님께 보고는 어찌 합니까? 필시…….언론을
통해 직접 접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에 대한보고는 내가 직접 하겠네. 그러니 자네는 인원명단만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청와대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에 대해 잠시의 망설임이나 기타, 말을 더듬는 현상은 일체 없었다. 그로
인하여 설장호는 이번 경호원 배치에 대해 경호 실장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감소하고 있었다.
“경호실장이 뭐라 하는가? 그가 지목했던 인원이 화장장을 기준으로…….”
“아닙니다. 경호실장이 배치한 인원은 화장장에서 납골당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일체 총격전이 없었습니다. 단지…….박태식이 그 길목에 있는 주차장에서 당했고, 또
의문의 사내가 탑승하였던 SUV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는 것도 청와대 경호실에서 먼저 알려준
내용입니다.”
경호실장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국정원장이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 당시 자신이 직접 들었고,
보았던 상황을 떠 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SUV 차량을 가장먼저 알아보고
태정민에게 보고했던 인물은 청와대 경호원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차장 쪽에 있었다. 또 한, 하늘공원에 배치되었던 경호원들도 설장호의 명령으로
주차장에서 움직이던 이들을 봉쇄하고자 움직였었다. 즉.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은 모두 태정민과
설장호의 명령대로 다 움직였던 것이었다.
“문제는…….우리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라는 뜻이군.”
설장호의 말을 모두 들은 후, 국정원장이 말하였다. 그 당시 인근에 배치된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국정원 소속 인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설장호가 도착하기 전, 이미 진을 치고 있었고, 그가 도착한
후에 하나하나 움직이기 시작하였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지정한 인원들의 행동은 모두 설장호와 태정민의 명령에 의한 행동들이었지만, 국정원
소속 인원들의 움직임은 그 어떤 명령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까?”
이어 검찰총장이 물었다.
‘똑똑’
총장의 물음이 있은 후, 곧바로 노크소리가 들렸고, 경찰청장이 들어섰다. 그는 박태식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가 입원한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연화장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박태식 형사가 중상입니다. 어째서 연화장에…….”
“지금. 그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고 있는 중입니다. 잠시 앉으십시오.”
경찰청장이 들어서며 흥분한 목소리로 묻자,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그도 자리에
앉았다.
“답해보게.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인가?”
경찰청장이 들어서며, 잠시 중단되었던 대화가 이어졌고, 국정원장은 설장호에게 다시 질문하였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누가 인원을 배치했는지부터 알아야하며, 또 누가 현장에
배치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자신이 내리지 않은 명령을 이행한 이들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지만, 그 명령을 내린 장본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그의 뜻이었다.
“지금 즉시, 국정원 내, 국정원소속 인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명령권을 가진 자들을 모조리 회의실로
집합시키게. 그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대원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아마…….소용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국정원장은 국정원내의 명령권을 가진 고위직 인사들을 모조리 회의실로 집합시킬 요량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그를 보았다.
“왜? 소용없다는 뜻인가? 분명 명령을 내렸기에 국정원 대원들이…….”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인 것이라면, 원장님의 말씀대로 국정원내 명령권자의 명령을 받고 모두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그들이 국정원 소속 인원이 아니라면, 그 명령권자가 꼭 국정원 소속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이 또한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국정원 대원들을 움직이게 하였다면, 그 명령을 내린 인물이 필시
국정원 내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국정원 소속 인물이 아니라면, 설장호의 말처럼 국정원내에
그들을 움직이게 한 명령권자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저의 명령을 중간에서 전달한 인물이 누군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네의 명령을 전달한 자?”
설장호의 굳은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그의 말에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다.
“네. 오늘 아침. 새벽에 있었던 북정마을의 총격전으로 인하여, 제가 직접 국정원으로 향하지 못하였기에,
지현에게서 받은 목걸이와 함께, 저의 대원에게 인원을 선발하여, 연화장으로 향할 것을 명령
내렸습니다. 하지만 목걸이를 받은 대원에게는 명령권이 없습니다. 그가 제 명령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일단 그 부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럼…….그 문제는 해당 대원에게 묻는다면 바로 답이 나오겠군. 그리고 지현에게서 받은 목걸이라면,
혹시 이장구가 말한 위치추적이 가능한 목걸이를 말하는 건가?”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목걸이에 관한 것도 함께 물었다.
“목걸이에 대한 것은 해당 대원이 저에게 직접 목걸이에서 빼낸 위치 추적 장치를 건네주었고, 그건 제가
보관중에 있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의 명령을 상부에 전달한 자와 목걸이에 관한 것을 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청와대
경호 실장은 경호실 인원과 함께, 국정원 인원을 위치에 맞도록 배치한 것뿐이었다.
즉. 그도 국정원소속 인원을 직접 선발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필시 국정원 대원이 설장호의 명령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였고, 전달받은 인물이 인원을 선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서두르게. 지현의 목걸이를 건네받은 대원에게서 그 답을 알아내고, 또 그 답으로 연화장에 배치된
인물들을 모두 알아내게.”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이번 판단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내심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가 너무나 잘 보이는 문제점을 안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005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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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호 실장.”
해당 대원을 만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설장호를 검찰총장이 불렀다.
“네.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어떤가?”
“무슨 뜻입니까?”
검찰총장의 짧은 물음에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며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자네가 한 말을 종합하면, 그 누구를 의심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네. 누가 적인지도 모르며,
누가 아군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네. 하지만 자네…….그 누구도 자네를 의심하지는 않아. 왜 그렇다고
보는가?”
“…….”
아주 무서운 질문이었다. 검찰총장의 말처럼, 많은 의심이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누구도 설장호를
의심하는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보면, 그가 의심을 받을 만한 일들이 꽤 많이
일어났다.

새벽에 죽은 이장구의 일부터, 북정마을로 괴한이 침투한 시간. 그리고 연화장으로 지현을 데리고
가야하는 이유. 또 한 그로 인하여 일어난 일들. 수많은 것이 설장호를 시작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
누구도 설장호라는 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설장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검찰총장을 노려본 후,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물었다.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게. 심지어 차현태 대통령도 의심해야 할 시점이네. 하물며, 이모든 것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자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나.”
맞는 말이었다. 검찰총장의 이 한마디에 국정원장과 경찰청장도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매서워진
눈빛으로 설장호를 향해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그 누가 봐도 제가 내린 결정에 의해 많은 변수가 만들어졌군요. 이장구의
죽음과 그에 맞게 일어난 북정마을의 사건. 그리고 연화장. 총장님의 말씀처럼 이 모든 것이 제가 지시한
내용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군요.”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고,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의 눈빛마저
매섭게 변해있자, 그들의 눈빛을 본 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홀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하나는 알고 또 하나는 알지 못하십니다. 만에 하나…….제가 이장구를 죽이고, 북정마을에
있는 지현의 위치를 그 조직에 알려주며, 또 연화장에 배치된 인물들마저 조종한 것이라면…….지금 왜…
….제가 지현을 보호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계신 분들 중…….지현의 위치를 알고 계신 분
계십니까? 또 한. 연화장에서 지현을 안고 빠져나온 사람이 저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십시오. 제가 만약 지현을 죽이고자 한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습니다. 그냥…….지현을 찾아가
방아쇠 한 번만 당기면 끝입니다.”
설장호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도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는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도 떠 올렸다. 비록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발단도
제공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모든 사건을 잠재우고 있는 인물 또 한 설장호였다.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이 세 사람에게 고루 와 닿은 뒤, 설장호는 국정원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세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으며, 다시 설장호가 나선 문을 향해 바라보았다.

“제길…….”
설장호는 국정원장실을 나선 후,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이내 쓴
표정과 격한 한 마디를 내 뱉은 후, 국정원장실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훗 날…….지현을 데리고 마음 편히 이곳에 다시 와라. 오늘은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한 편. 이창민의 화장을 마친 후, 이창민부부의 유골함은 연화장 안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해 주었고,
태정민이 추선우를보며 말했다.
진정, 가족 한 명 없이, 아주 외로운 장례를 끝마친 두 부부의 사진을 보며 추선우의 눈빛은 괜히
흔들거리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이며, 이들과 그 어떤 감정도 없지만, 그저 사진 속 두 부부의 미소를 보며 눈물이
맺히고 있는 그였다.
“가지. 이래저래 알아볼 것이 너무나 많아졌다. 아마 설실장님의 머릿속은 터져버릴지도 몰라.”
태정민은 정확하게 설장호의 지금 심정을 알고 있었다. 비록 설장호가 직접 인원선출을 한 것이 아니지만,
이 모든 책임은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인명피해까지 또 발생하였기에, 상부에서는 설장호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추선우는 연화장을 둘러보았다. 이어지는 화장은 없었기에 그나마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장님. 지금 막 장지를 마쳤습니다. 지현에게로 향하겠습니다.”


태정민은 검찰 쪽 형사들이 타고 온 차량 한 대를 지원받은 후, 추선우와 함께 승차하였고, 곧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이동상황을 알렸다.
“태정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태정민은 곧바로 차량을 출발시키려 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만으로 이미 윗선에서 뭔가 암시가 내려온 듯
한 억양이었기에, 차량을 출발시키지 않고,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이어폰을 휴대전화에 연결하여,
추선우에게 한 쪽을 주었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그가 건네준 이어폰을 받아 귀에 고정하였다.
“말씀하십시오.”
“상부에서 이번 일로 인하여,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나의 판단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였지만, 결국 윗선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른다. 절대…….절대 지현의 위치를 상부에
알리지마라. 강 검사에게는 내가 따로 연락할 것이다. 지금부터…….우린. 우리만 믿는다.”
“…….”
설장호의 말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았다. 어느 정도 예측은 하였지만, 이미 결단이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었다.
“그럼…….앞으로 상부의 지시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태정민으로써는 난처할 뿐이었다. 강서진은 검찰 쪽 인물이며, 설장호는 국정원소속이다. 또 한 박태식은
경찰쪽 인물이기에, 각자의 최고 상석인물이라면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이다.
하지만 태정민에게 있어 최고의 수장은 바로 대통령이었다. 설장호의 말을 따른다면, 대통령의 명령 또
한 무시해야 할 상황이었다.
“태정민.”
“네.”
“경호 실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들을
믿지 않는다. 이번 사건…….어느 선에서부터 시작된 사건인지 모른다. 누구의 명령으로 연화장을
장악했는지, 어떤 인물이 최상위에 앉아 있는지…….그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절대…….절대
믿지마라.”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어렵게 답했다. 아니…….답은 쉽게 하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태정민의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 후였다.
“지현의 위치는 문자로 보내주겠다. 문자를 확인함과 동시에 삭제하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통화는 끊어졌다. 두 사람은 또 다시 멍하니 있었다.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추선우에게 있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인물은 없었다.
누구의 명령을 꼭 따라야하며,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하지만 앞 서 말했듯이,
태정민은 달랐다. 그는 오전에 자신을 향해 연신 총알을 퍼 부었던 산을 향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검찰 쪽 형사들에 의해, 말끔하게 치워진 연화장 안의 사건현장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멈췄다.

“무슨 생각하는가?”
그리고 추선우에게 물었다.
“아무런 생각 없습니다. 어차피…….전 지현을 보호해주고자 마음먹었고, 그 마음에 변함은 없습니다.
그러니…….팀장님은 팀장님의 생각대로 움직이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또 생각하였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었다.

차량은 연화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일반인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납골당을 찾아오는 일반인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오전에 일어난 일을 찾아볼 수 있는 그 어떤
현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전. 화장장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한 언론 보도를 철저하게 막으십시오. 오전에 연화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국민들이 알아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향해보며 말했다. 그리고 검찰총장이 답을 하였다. 앞 서, 지난 3 일
전 있었던 이창민의 피살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해, 지현에게 피해가 갔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번
연화장 사건마저 언론에 다시 보도되면, 국민들은 금일 오전에 있었던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었다.
사건 종료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곧바로 연화장에서 일어난 총격전이 보도된다면, 이번 사건을
전면 제 검토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 뻔 한 일이었으며, 제대로 된 수사 없이 사건을
종료한 것으로 인하여, 이번 사건을 맡았던 국정원과 외교부, 그리고 검찰과 경찰의 무능함을 말하는
국민들의 질타도 이어질 것이 뻔 한 일이었다.

‘띠리리리’
청와대에서는 차현태가 오전 업무에 대한 보고를 다 받은 후,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고, 비서실장이
집무실을 나서자, 곧바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현태는 울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통화버튼을 눌렀다.
“설 실장입니다.”
“설 실장? 자네가 어째서 나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는 것인가? 자네와 더불어 이번 사건을 맡은 인물은
모두 비서실장을 통해 나에게…….”
“죄송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무례함을 무릅쓰고 전화 드렸습니다.”
차현태는 설장호가 자신에게 직접 전화한 것을 두고, 몇 말을 하려던 찰라,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집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무슨…….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차현태는 설장호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또 무엇보다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한 것을
두고, 주변에서 알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감지한 후, 조용한 어투로 물었다.
“오늘 오전. 연화장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 내가 있을 때까지는 조용하지 않았는가? 혹여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네. 대통령께서 연화장을 벗어나시면서, 함께 연화장으로 온 인원 중, 약 80%는 그 즉시 대통령님의
뒤를 따라 연화장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약 5 분후에 나머지 인원들도 거의 연화장을 빠져나갔고, 그 후에
…….그들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
차현태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놀란 눈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집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핀 뒤, 창가 쪽으로 향하여 섰다.

00052 경호원 =====================================================================


====
                          
“그들을…….보았는가?”
“아닙니다. 그들이 누군지는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단지…….연화장을 경계서든 모든 인원들이 다 등을
돌렸고, 그들이 지현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우리 쪽 인원이 반격에 나서자, 정말 거짓말처럼 모두 그
곳에서 사라졌습니다.”
“!!!”
차현태는 또 다시 놀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연화장에 갔을 때도,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또 한 자신이 떠나자마자 지현을 노렸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현은. 안전한가?”
“네. 지현은 안전합니다. 지금 현재 강 검사와 함께 있으며, 추선우가 세 들어 살던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이 함께 있습니다. 또 한,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몇 국정원 대원들이 지현이 있는 곳을
경호하고 있습니다.”
“추선우는? 추선우란 사내가 지현을 경호한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그가 연화장에서 무슨 변고라도
당한 것인가?”
“아닙니다. 그는 태정민팀장과 함께, 그들이 연화장에서 지현의 뒤를 쫒지 못하도록 막아 세웠고, 저와
강 검사가 지현을 데리고 연화장을 나왔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지금 지현은 어디에 있는가?”
“…….”
연화장에서 있었던 일과 함께, 지현의 안전을 확인한 차현태가 지현의 위치를 묻자, 설장호는 그에게
지현의 위치를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태정민과 강서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지현의 위치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장호는 그에게 보고를 하면서도, 지현의 위치만은 알리지 않았다. 이미 태정민에게 말한 것처럼 자신의
말에 대한 행동을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알았네. 자네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네. 그리고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 태정민팀장도 나에게 지현의
위치를 알리지 않을 것 같군. 맞는가?”
“그 또 한 죄송합니다. 그리고 태정민팀장…….이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청와대
경호실이 아닌, 이번 사건을 전담하는 요원으로 저와 함께 움직이고 싶습니다. 또 한…….이번 사건에
가담한 인물들…….그들의 자리가 어디까지 올라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적어도
대통령님과 힘겨루기를 할 정도의 자리라는 것…….그것만은 확신합니다. 부디…….주변을 잘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
차현태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에 맞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어느 곳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성을 보이고 있는 그였다.
“아무쪼록…….지현을 잘 보호하게. 그리고 나 또 한, 좌시하고만 있지 않겠네. 내 쪽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내가 자체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네.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을 벗어나기 전에, 차현태에게 현 상황을 보고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다는
말은 전하지 않았다.
통화를 끊은 후, 차현태는 전화기를 들고 한 동안 가만히 있었고, 곧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또 다른
휴대전화 하나를 꺼내들었다.

‘딩동’
잠시 후, 국정원 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선 설장호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차후의 보고나, 통화연결은 이 번호로 하게, 내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기 전 사용한 전화네, 수신음이
10 초가 넘어가도 내가 받지 않는다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 문자로 남기게, 확인 후, 연락
주겠네.-

차현태의 문자였다. 그는 문자와 함께 찍힌 번호를 따로 저장하였고, 곧 자신의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지현의 목걸이에서 뺀 위치추적장치를 꺼내려 하였다.
“없다…….”
필시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고, 자신의 사무실은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현의 목걸이에서 빼낸 위치추적장치가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없는 상태였다.
“이장구의 휴대전화.”
곧바로 죽은 이장구의 휴대전화도 찾았다.
“다행이군. 누군지 모르지만 내 방까지 자유롭게 들어온 모양인데…….제대로 놀아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설장호는 책상서랍이 아닌, 자신의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틈에 놓아둔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찾아들며 중얼거렸다. 만일의 일에 대비하여, 휴대전화와 함께, 지현의 목걸이에서 빼낸 위치추적장치는
서로 다른 곳에 보관하였고, 누군지 모르지만, 그의 방을 찾아온 손님은 지현의 위치추적장치만을 찾은
후, 그 방을 나선 것이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책상 위 인터폰을 보며, 1 번을 눌렀다.

-네. 실장님.-

“내가 없을 때, 내 방에 들어온 사람이 있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국정원장님의 명령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모든 시간을 다 체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 알았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내가 따로 연락을 줄 때까지 절대 내 사무실에 누가 드나들 수


없도록 해주게. 심지어 그 사람이 국정원장님이라도…….절대 내 사무실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해주게.”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의 비서에게 물어보았고, 답을 들었다.


“국정원장님…….무엇을 알아보려 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설마…….국정원장님께서 이 일에 가담하신
것은 아닐 테지요? 아닐 것이라 믿겠습니다. 원장님은…….제가 가장 존경하였던 인물이니 말입니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비서의 말에 의하며, 그가 비서에게 뭔가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리를 비웠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어느 누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각 사무실 입구에 CCTV 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 CCTV 의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올 멍청한 손님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또 한. 이장구의 죽음에 관한 것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었다. 이미 국정원내에 그 조직에 가담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확신이 되었기에, 충분히 CCTV 를 조작하여 이장구를 죽였든지, 아니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압박을 가한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접니다.”
한 편. 연화장에서 벗어난 의문의 사내는 한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북정마을에서처럼 또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찌 되었는가?”
“뭐. 제 동생 세 놈의 목숨만 넘겨주는 마이너스 상황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조금은 나이가 든 사내의 물음에 자신의 뒷목을 어루만지며, 임무의
실패와 함께, 같이 움직였던 세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 보다. 혹시 저 외에 다른 인물에게도 그 꼬마아이의 목을 가져오라 명령을 내리신 것이 있습니까?”
“너 하나면 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어떤 놈에게도 따로 부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네가 보기 좋게
실패했으니, 다른 놈을 또 더 붙여봐야겠구나. 그런데…….그 말은 왜 묻는 것인가?”
사내는 석강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진정 두 사람은 서로 초면이었지만, 사내는 석강수도 자신과
통화중인 인물에게서 명령을 받았을 것이라 여겼다.
“연화장에서 그 꼬마아이를 찾는 듯 한 놈이 한 놈더 있었습니다. 아주 묵직하게 생겼는데…….보통 놈은
아닌 듯 하였습니다.”
사내는 자신이 느낀 석강수에 대한 감정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 놈이 누군지도 알아봐라. 그리고 어째 네 놈 같은 전문가가 깔아준 멍석에서도 제대로 놀지 못하고
일을 망치는 것인가?”
“뭐…….창피한 말이지만, 경호원들이 의외로 잘 막아섰습니다. 그 중에서 추선우라는 북정마을에 사는
젊은 놈이 있는데…….그 놈이 꼬마여자아이를 안고 다니는 듯합니다.”
“추선우? 청와대 경호실이나, 설장호가 아니고, 민간인이 지현을 안고 다닌다? 제대로 본 것인가?”
“네. 사실 민간인에게 조롱당한 느낌이니, 제가 말을 둘러할 수도 있지만, 어르신께 제가 뭐. 농담이나
거짓을 보고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놈…….민간인이며, 지금도 아마 그 꼬마아이 옆에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 알았네. 일단 잠시 몸을 숨기고 있게, 연화장내의 CCTV 를 손보지 않았으니, 너의 얼굴이 잡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민간인…….추선우란 놈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알아봐서 연락을
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사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 연화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추선우와 태정민.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두 인물에 대해 다시 떠 올리고 있었다.

“삼촌!”
한 편. 추선우와 태정민은 설장호가 보내준 메시지의 위치대로 경기도 외곽의 펜션에 도착하였고, 펜션
앞마당에서 은주의 품에 안겨 있던 지현이, 차에서 추선우가 내리자 그를 향해 다가서며 안겼다.
“지현이는 괜찮지?”
추선우는 자신에게 안긴 지현을 보며 물었고, 지현은 그저 아무런 말없이 그를 꼭 안고만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지현이 혼자 떨어지게 만들어? 네가 그러고도 경호원이야?”
은주는 추선우를 보자마자 그를 걱정하는 눈빛을 하면서도 그에게 톡톡 쏘는 어투로 말하였고, 추선우는
그런 은주를 보며 그저 미소만 지어주었다.
“연화장은 정리했어?”
강서진은 태정민의 곁으로 다가서며 연화장의 일에 대해 물었다.
“네. 장지까지 모두 마무리하였고, 연화장의 모든 것도 정리하였습니다. 또 한, 연화장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오전의 상황이 기록된 CCTV 영상도 모두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검사님의
득분입니다. 검사님께서 그 때, 형사들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아마 이렇게 살아서 다시 오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태팀장이 나에게 목숨 한 번 빚진 거네. 앞으로 내 목숨을 대신하여 한 번 죽을 준비는 해
둬.”
“네? 하하…….뭐. 그러죠.”
비록 살벌한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그 살벌한 시간을 애써 다시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강서진은 무거운
분위기로 변할 수 있었던 순간을 농담으로 전환시키며,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잠시나마 미소를 짓도록 해
주었다.

“실장님, 전화 받으셨습니까?”
분위기를 변환시킨 후, 태정민은 곧 강서진을 한 쪽으로 데리고 간 뒤, 물었다.
“받긴 했는데,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총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전화가 온다면 뭐라고 둘러말해야 하는지…….”
‘띠리리리’
“깜짝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서진의 전화벨이 울렸다.

0005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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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총장님인데…….”
지금까지 오지 않던 연락이 자신에 대해 말이 나옴과 동시에 걸려왔고,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강서진이
태정민에게 물었다.
“일단. 받으십시오. 그리고 지현의 위치를 묻는다면 모른다고 하십시오. 지금 설 실장님이 없으니, 일단
말을 돌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은 크게 한 호흡을 한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총장님.”
“지금 어딘가?”
“네. 지금…….검찰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검찰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연화장에서 지현과 함께 벗어나지 않았나? 그런데 왜 검찰청으로…….혹시
지현과 함께 오는 건가?”
“아닙니다. 저 혼자 가고 있습니다. 지현은 추선우씨와 함께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강서진은 이어지는 총장의 질문에 계속하여 거짓 보고를 하면서,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듯,
한 손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추선우와 지현이 단독으로 둘만 움직인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오전에 그 꼴을 당하고도 민간인에게
지현을 맡겨? 청에 도착하면 당장 내 방으로 와!”
“아…….알겠습니다.”
검찰총장의 큰 목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들려왔다. 강서진은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듯 천천히
전화기를 든 손마저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 쓸어내렸고, 태정민은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들어가면 반 죽겠지?”
강서진은 총장의 목소리만으로 이미 온 몸에 공포감이 찾아온 듯,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일단. 검찰청으로 향하십시오. 설 실장님이 돌아오시면, 이에 대해 다른 방편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지현의 위치는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그래…….그러지…….하. 간 떨리네. 난 일단 검찰청으로 돌아갈게. 그리고 그 후의 일은 나중에 따로
알려줘.”
“네.”
강서진은 그 길로 곧장 서울로 향하였다. 아직 설장호에게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만 홀로 서울로 향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나저나…….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현이 혼자만 우리 쪽으로 온 거야? 넌 뭐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오전에 지친 몸으로 연화장을 벗어난 탓에, 추선우를 보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잠이 든 지현을 아주머니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은주는 지현이 강서진과 함께 온 것을 두고
그에게 물었다. 지현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오늘 아침인데, 고작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그녀 홀로 있게 한 것에 대해 궁금하였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되도록 지현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지만, 오늘처럼 지현과 떨어져야 할 상황이
오면, 네가 좀 보살펴 줘. 지현이가 너와 아주머니는 잘 따르니, 괜찮을 거야.”
“웃겨. 야! 내가 지현이 경호원이야? 나도 내가 할 일이 있어. 그런데…….”
“시끄러. 그리고 네가 할 일이 뭐가 있어? 그 나이 처먹고 직장도 구하지 않은 채, 매일같이 엄마 등골만
빼먹는 년이 뭐가 할 일이 있어?”
추선우의 말에 은주가 대꾸를 하자마자, 곧바로 아주머니가 지현을 눕혀놓고 난 뒤, 방에서 나오며
그녀의 등을 쳤고, 곧 그녀에 대해 아주머니의 독설이 나오자, 추선우는 은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탁해.”
그리고 짧게 한마디 한 후, 펜션 외부에 서서 주위를 보고 있는 태정민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엄마. 엄마는 대체 누구 엄마야? 왜 선우한테 계속 내 흉을 보이냔 말이야?”
“흉인지 알면 고쳐. 어째 선우와 같은 나이인데, 이리 차이가 나? 그 나이면 이제 여자도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해. 그런데 넌 뭐야? 책임은 고사하고, 아주 하나밖에 없는 엄마 등골을 휘게
만들잖아.”
두 모녀의 대화는 진정 직설적이었다. 돌려 말하는 것이 일체 없었다. 그냥 정곡을 마구마구 찌르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었다.

“검사님은…….”
홀로 서 있는 태정민을 보며 추선우가 물었다.
“여러모로 복잡해지는 일을 조금이나마 풀고자 검찰청으로 향하셨다. 그래도 걱정마라. 난 다시 경호실로
돌아갈 일도 없고, 또 잠시 후면 설 실장님이 오신다. 설 실장님이 오시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하고,
우린 설 실장의 명령대로만 움직인다. 그게 다야.”
태정민은 진심으로 설장호를 믿는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가 한 번은 의심할 것이지만, 태정민만은 그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을 듯, 설장호라면 굳건히 믿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차량…….들어옵니다.”
곧, 한 국정원 대원이 말했고, 모두가 펜션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향해 보았다.
“누구차야?”
“설장호 실장님 차량으로 보입니다.”
태정민은 해당 차량을 처음 보았기에, 혹시나 국정원 대원들이 해당 차량에 대해 알까하여 물었고,
예상대로 그들은 해당 차량이 설장호의 차량임을 바로 확인하였다.
곧, 차량은 펜션 앞 주차장에 정차하였고, 차량 문이 열리며 설장호가 내렸다.
국정원 대원들이 이미 설장호의 차량임을 말해주었기에, 해당 차량에 대해서는 굳이 경계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오셨습니까?”
그가 차에서 내리자, 태정민이 다가서며 말했고, 곧 국정원 대원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인사하였다.
“다음부터는 이곳으로 향하는 차량에도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라. 이 차량이 내 차량인 것은 맞지만,
승차한 사람이 나라는 보장은 없다. 이와 같은 일은 지금 이순간까지다. 내가 미리 말했듯이, 이제는
우리만 믿는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매서웠다. 국정원에서 그가 어떤 말을 듣고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말이
설장호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는 알 수 있는 그의 표정과 말이었다.
“지현은?”
“지금 자고 있습니다.”
지현의 안부를 물었고, 추선우가 답했다.
“강 검사는 어디로 갔나?”
“검찰총장님에게 연락이 오는 바람에, 둘러댄다고 말한 것이 검찰청으로 향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해서…
….하는 수 없이 검찰청으로 갔습니다.”
강서진에 대해서는 태정민이 답을 주었다.
“강 검사에게는 추후 알려주기로 하고, 일단 들어간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것을
경계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알려주겠다.”
설장호의 눈매는 여전히 매서웠다. 지금까지 잠시 잠깐이라도 보였던 그의 여유로운 표정과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굵직한 어투, 자신 스스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국정원 대원들은 여전히 펜션 외곽을 경계서고 있었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설장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은주와 아주머니는 지현이 잠에서 깨면서 혹여나 오전의 일로 인하여 놀랄 것을 우려하여 옆에 있도록
방안으로 들어섰고, 설장호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그리고 굳은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어찐 된 일입니까? 왜 국정원장님이나 기타 수장들이 실장님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까?”
곧바로 태정민이, 이미 통화상으로 들었던 내용에 대해 물었다.
“일이 꼬였으니, 당연히 의심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일이 잘 풀리면 박수를 보내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내치는 것이 현실이다."
설장호의 말을 십분 이해가고 있었다. 잘되면 내 탓이오, 못되면 네 탓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있었고,
변함이 없는 말이었다.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있은 후, 추선우가 물었다.
“넌. 어찌할 생각인가? 지현의 곁에 계속 붙어 있을 생각인가?”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제가 먼저 지현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지켜야죠.”
“오전에 그리 죽을 뻔 한 일을 겪고도 지현과의 약속으로 인하여 경호를 계속 이어갈 참이다? 이런
말인가?”
“네. 경호원이라 함은 내가 지키고자 한 것을 내 목숨을 내놓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추선우는 겉으로 그저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진심이란 것은 설장호와 태정민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식적으로 경호원이란 직업도 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와 한 약속으로 인하여 그는 진정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경호원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앞으로 네가 할 일에도 변함은 없다. 넌 지현을 경호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 너희 두 사람이 만난 인물, 한 명은 석강수다. 그 놈은 이미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본 놈이다. 하지만 나머지 한 놈. 그 놈은 누군지 모른다. 예전 같으면 그 놈의 신상을 단 번에
털어버리겠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힘들다.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무턱대고
국정원의 인력과 장비를 빌릴 수 없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은 연화장에서 만난 두 인물을 다시 떠 올렸다. 한 명은 석강수이며,
그는 추선우를 목표로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 그는 진정 처음
보는 인물이었으며, 누구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 검사님을 검찰청에 심어두는 것은 어떻습니까?”
곧 추선우가 강서진을 말하였다.
“강 검사를 검찰청에?”
“네. 설 실장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생각하면, 설 실장님도 앞으로 국정원에서 자유롭게 무언가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태정민팀장님 역시, 경호실에서 오는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하셨으니, 남은 한 명은 강서진 검사님뿐입니다. 비록 박태식 형사님이 계시지만,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검사님을 검찰청에 심어두고, 여러 가지 도움을 얻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리 있는 추선우의 의견이었다. 그의 말처럼 현재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강서진이었다.
태정민에 대해서는 경호실에서 따로 명령을 내리지 못하도록 말 할 것이기에, 그 역시 편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었다. 또 한 설장호는 이미 국정원장은 물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의 눈에 의심을
받고 있으니, 그 누구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강서진은 달랐다. 지현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이미 전하였고, 그로 인하여 검찰총장이


검찰청으로 불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검찰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강서진을 굳이
다시 빼낼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0005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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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검사. 대체 어찌된 일인가? 왜 지현과 같이 있지 않고, 그 민간인에게 지현을 맡겨둔 것인가?”
한 편. 검찰청에 도착하여, 곧바로 검찰총장실로 향한 강서진을 보자마자 총장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이는 이미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지현의 경호를 추선우에게 맡겼고, 우린
그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설장호 실장과 태정민팀장. 모두 지현의 곁에 있을 수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지현을 경호하는 인물은 추선우가 되는 것입니다.”
강서진은 총장의 질문에 대해 답했다. 진정 그를 만나러 가는 시간까지는 심장이 벌렁거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었다. 하지만 그와 마주하며, 그의 질문을 듣자마자, 곧바로 답까지 저절로 떠오르는
현상이었다.
“지금…….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가?”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북정마을에서도 그렇고, 또 연화장에서도
일은 터졌습니다. 비록 지현양은 무사하지만, 그에 따른 사망자와 함께,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어찌 보면 그들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강서진은 진정 달라보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일체 없었으며, 오히려 총장의 물음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또렷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자네는…….어찌할 생각인가? 설장호의 명령을 따를 참인가?”
하지만 곧 우려하였던 그의 질문이 나오자, 강서진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설장호의 명령을 따른다면,
그녀는 그 즉시 검찰청을 나서야 할 판이었고, 그렇지 않는다고 말하면, 설장호의 뒤를 쫒아야 할 판이
될 수도 있었다.

“말해보게.”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그녀에게 총장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총장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자신의 전화기를 보았다.
“통화가 끝나면 답을 듣겠네.”
총장은 전화기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선 뒤, 한쪽 구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강서진의
휴대전화에도 문자가 수신되고 있었다.

-넌. 검찰청에 남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지원한다.-

설장호의 문자였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삭제하였고, 고개를 들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총장이 전화를 끊었고, 다시 강서진의 앞으로 와서 앉았다.
“이제 말해보게. 설장호쪽에 설 텐가? 아니면 검찰 쪽에 설 텐가?”
“정확하게 무슨 의미를 두고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검사입니다.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고 명령권자는 대통령도 아닌, 바로 검찰총장님입니다.”
그녀는 설장호의 문자내용에따라 곧바로 답하였다. 그녀의 답을 듣자마자 총장의 눈빛이 조금은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답을 한 후, 그녀가 총장을 보며 물었다.
“무엇인가?”
“왜…….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대통령은 물론, 국정원장님과 총장님, 그리고 경찰청장님도 설
실장을 믿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연화장의 일이 있은 후, 모두가 설 실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강서진은 대범하게 나섰다. 간 떨린다고 말한 것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전혀 떨림도 없었고,
오히려 조금은 강한 눈빛을 주며, 총장에게 직접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자네와 설장호의 친분은 모두가 알고 있네. 우리보다 설장호를 더 따를 것이라 생각도 했었고, 하지만
자네는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검찰의 자리에 앉은 것이 딱 어울리네.”
총장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강서진과 설장호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녀의 가족관계를
들먹이고 있었다.
“자네는 검사의 자리에 남아, 훗날에는 나의 자리까지 올라와야 하는 인물이야. 내가 왜 많고 많은
검사들 중, 이번 사건에서 자네를 지목했는지 아는가?”
총장은 계속하여 강서진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질문만을 하고 있었다.
“모릅니다.”
“바로 자네의 아버지 때문이야. 자네의 아버지가 나에게 부탁하시더군. 이번 사건에 자네를 꼭
포함시켜달라고 말이야.”
“아버지가…….그런 부탁을 하셨습니까?”
강서진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자신의 집안이 법관과 검사, 그리고 정치인의 집안이며, 사업가
집안이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 고루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물급 집안임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설장호…….그는 너무나 뛰어난 인재네. 감히 그 누가 설장호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인물은 대단해. 하지만 너무나 강하면 오히려 그 강함을 무너뜨리고자 덤벼드는 사람이 많아지네.
설장호…….그가 이번 사건을 지휘하게 되면서, 각 기관의 수장들은 창피함을 당했네.”
강서진의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그녀가 두 번째 물음을 했을 때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청탁을 했느냐는 물음을 하자, 그에 대한 확답은 하지 않은 채, 그제야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답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조금은 떨려왔다.
“외교부장관, 경찰청장, 그리고 나. 사실 우리 세 사람은 설장호가 이번 사건을 총 지휘한다고 해도,
특별히 마찰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국정원장은 다르지. 설장호는 국정원 소속이며, 원장의
명령을 이행해야 할 인물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였지, 오히려 원장이 설장호의 명령으로 그를 지원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조금씩 이해가고 있었다. 이들은 설장호란 인물이 직급에 비해, 너무나 큰 권력을 쥐게 된 것을 두고
서로 견제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정원장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만으로 이들이 그 뿌리에 가담한 인물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단지 설장호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지금부터라도 설장호를 다시
내려앉히려는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설 실장을 의심한다고 하신 말씀은…….”
“다른 뜻은 없었네. 하지만 이번 연화장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임을 모두가
알았지. 만에 하나 이마저 그냥 넘어간다면, 설장호는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을 만들 수 있네. 그리고 그
때…….그 때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나올지도 모르며, 자칫 지현의 안전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네.”
들어보면 총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의 말처럼 세 번의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설장호에게는
그 어떤 징계도 없었다. 만에 하나 이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간 후,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아마 더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기에, 그들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지금부터…….자네는 설장호의 뒤를 쫒아야하네. 그의 곁으로 가서 지현에 관련된 정보와, 또 이동경로
등.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줘야 하네. 설장호는 자네가 자신의 편에 선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네.”
진정, 우려하고 걱정하였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결국 설장호의 뒤를 쫒는 임무가 주어졌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비록 이들에게 전해 줄 답은 모두가 설장호의 입에서 나오는 답이 되겠지만, 그래도 강서진으로써는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가보게. 우린 지금부터, 설장호가 했던 것처럼 전국의 CCTV 를 모조리 확인하며, 또 이창민이 남긴
유품들을 조사하여 그가 남겼다고 생각되는 그 말을 찾을 테니, 자네는 설장호와 함께 움직이며, 항상
그에 대한 내용을 우리에게 보고해주게.”

‘띠리리리’
총장은 다시 한 번, 강서진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해주었고, 그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알았네. 지금 즉시 형사들을 보내고, 그 일대를 수색하게. 그리고 연화장에서 찍혔던 모든
영상이 기록된 CCTV 화면을 분석하고, 그 일대에 있었던 모든 놈들을 다 체크해.”
그는 강서진이 아직 자신의 사무실을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를 하였다. 그의 통화내용을 들은
강서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화장의 CCTV 확보는 이미 태정민도 하였다고 했기에, 그
분석은 충분히 자신들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들을 출동시킨다는 말은 어쩌면 지현이 있는 위치가
발각되었을 확률이 있는 말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서진은 그에게 인사한 후, 곧바로 총장실을 나섰고, 그에 맞춰 전화기를 서서히 내려놓은 총장은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강서진이 나선 문을 향해 보았다.
“접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하였다.
“어찌 되었습니까? 강 검사가 설장호의 곁으로 다시 갈 것 같습니까?”
그가 전화를 건 인물은 국정원장이었다. 그리고 원장은 그에게 바로 물었다.
“갈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말을 하였지만, 강서진은 그의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돈과
권력보다는 인간미를 더 중시하는 여자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지만,
설장호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총장은 강서진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녀에게는 진심으로 믿는다는 듯 말하였지만, 결국…….그녀도
설장호와 한 배에 탄 인물로 확정한 것이었다.
“그나저나…….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설 실장에게 권한을 주었고, 또 그는
그 권한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여러 곳에서 일이 터지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아직
그 놈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마저 설장호의 앞을 막는다면…….”
“너무 깊게 생각지 마십시오. 우린 우리대로 그놈들을 찾으면 됩니다. 설장호가 너무 기세등등하니, 그
버릇을 좀 고쳐놓고자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설장호가 계획한 모든 것이 실패하였고, 그에 따라 인명피해도 났으니, 우리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두 사람의 통화내용 중, 국정원장의 말에는 악의적인 것이 없었다. 단순하게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설장호를 잠시 내려앉히겠다는 뜻뿐이었다. 그 외에 그 어떤 이유도 없는 듯 보였다.

이들도 그 의문의 조직인 뿌리에 대해 여전히 찾아 나서고 있었으며, 설장호와 같은 목표를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은 검찰총장의 입에서 나왔다. 즉.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는 두 사람도 뿌리에 가담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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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저 강서진입니다.”
강서진은 총장실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조금 전, 총장님께서 형사들을 어디론가 보낸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혹여…….지현이 있는 위치가…….”
“심리전에 넘어가지 마라. 이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의 차량을 따라온 차량도 없었다. 또 한 태정민이
이곳으로 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총장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쉽게
흔들리지마라.”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진정 걱정되어 서둘러 전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설장호는 전혀 다급함이 없었다.
이 또 한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총장님과의 대화는 모두 끝났나?”
“네. 지금 다시 설 실장님께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총장님의 명령인가?”
“네.”
강서진은 검찰청 안에서 그와 통화중이었고, 통화중 주변을 계속하여 둘러보았다.
“이곳의 정보를 가져오라는 뜻이겠군.”
“맞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줘야지. 단…….이곳으로 향하지 말고,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호수로 오게. 그곳에서
나와 따로 만나세. 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봐야겠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몇 마디에, 이미 총장의 의도마저 다 알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기에 그녀에게 현재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을 알려주었고, 그곳으로 향해 올 것을 말하였다.
곧 강서진은 검찰청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서둘렀다.

“강서진 검사. 조금 전, 검찰청 정문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녀가 검찰청을 나서자마자, 검찰청 정문에 서 있던 한 대의 차량 안에 앉은 사내가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연락을 하였다.
“따라붙어라.”
“네. 총장님.”
강서진은 설장호의 명령대로 현재 지현이 있는 곳이 아닌, 의왕시 소재 호수로 향하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뒤를 한 대의 승용차가 쫒고 있었다.
즉 설장호의 말처럼, 총장은 지현의 위치를 알고 있지 못하였고, 강서진이 자신의 말을 듣고, 급히
이동할 것을 생각한 후, 그녀가 이동할 때, 그녀의 뒤를 미행할 생각이었다.

“잠시. 강 검사를 만나고 올 것이다. 그 안에 태정민은 오늘 연화장에서 있었던 내용이 기록된 CCTV 를
분석하고, 추선우는 절대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현재 이곳에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모두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도록 지시하겠다.”
“알겠습니다.”
곧 설장호도 강서진을 만나기 위하여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와 함께 국정원에서 나와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은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정원에서 오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오로지
설장호의 명령만을 이행하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 태정민이 한 말처럼 정말 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어둠이
점차 내려앉고 있었다.

“대통령님. 경호실장입니다.”
청와대의 집무실에 홀로앉아, 낮에 설장호와 통화했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차현태를 경호실장이
찾았다.
“들어오게.”
차현태는 자신의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덮고, 경호 실장을 맞이하였다.
“무슨 일인가?”
“설장호 실장에 관한 일입니다. 그리고 태정민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태정민 팀장에게는 내가 따로 내린 명령이 있네, 당분간은 그 어떤 누구도 태정민팀장과 통화하기가 힘들
것이네.”
경호실장의 말이 끝나기 전에, 차현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설장호와 통화한 내용을
실천중에 있는 것이었다.
“왜…….그런 결정을 하신 것입니까? 혹여…….설장호실장과 통화를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그의 말에
의해…….”
“경호 실장.”
“네. 대통령님.”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조금은 격분한 듯, 목소리 톤이 점차 높아지자, 그의 말을 자르며 차현태가 그를
불렀다.
“설 실장과의 친분이 얼마나 되는가?”
“15 년입니다.”
“15 년. 15 년이면, 아주 많은 것을 서로가 알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설 실장이 어떤 상황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네도 잘 알겠군. 내 말이
맞는가?”
“…….”
차현태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경호실장이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낮에 설장호의 전화를 받은 후,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느꼈다. 그럴 때, 때마침 검찰총장의 연락을
받았고, 자신과 오랜 친분을 가지고 있는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생각이 검찰총장과의 통화 후,
점차 증폭되고 있었다.
“네…….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생각하는 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내 차현태의 물음에 답하였다.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그를 돕지는 못하고, 오히려…….”
“저는 돕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설장호실장이 먼저 청와대 경호실을 의심하였습니다. 이는…….이미
자신의 계획에 우리 청와대 경호실을 배제하고, 우리 또 한 그 뿌리라는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먼저 설 실장을 의심하며, 그의 목을 조여 보겠다? 뭐 이건가?”
차현태는 창가를 보고 있었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시선을 매섭게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내 사람이네. 나를 경호해야 할 경호원들의 수장이야. 그런데…….내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난 자네에게 내 목숨을 맡겨둘 수가 없어. 나와 자네의 인연도 한해, 두해가 아닌데…….”
“대통령님.”
차현태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전, 경호실장이 그를 보며 불렀다.
“설장호 실장. 그는 뛰어난 인물입니다. 지금 현재, 저를 비롯하여,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이 그의
목을 조인다고 하여도, 자신의 목을 내어줄 인물이 아닙니다.”
경호 실장은 차현태의 눈을 보며,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과 어투로 말문을 열었고, 국정원장이
검찰총장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뜻을 담은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누가…….설 실장의 목을 조일지 모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고자
한다면…….그들과 동침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현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행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자네의 말은…….설 실장을 치고 들어오는 이들을 파악하고자, 그들과 잠시 한 배를 탄다는 뜻인가?”
“맞습니다. 설장호 실장이 비록 저를 의심하여도, 전 그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정도를 걸어온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가 진심으로 지현양을 돕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한…….제가
대통령님께 목청을 높인 이유는…….”
“나 조차도 의심의 대상이라는 것이 유효하다는 뜻이겠지.”
“죄송합니다.”
“아니네. 지금 현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자네의 생각과 행동, 모두 이해하네. 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절대…….설 실장을 의심하지 말게. 그 누가 어떤 방법으로 다가설지 모르네. 그 누구를
의심하더라도 자네와 난…….설 실장을 믿어줘야하네.”
경호실장의 본심을 알았다. 차현태는 진정 모두가 설장호를 밀어내며, 그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서 가장 오래있어야 할 인물 중, 한 명인 경호실장이 설장호를
믿어준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나저나…….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이 설 실장과 돌아섰으니, 이제부터 설 실장의
지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따로 생각한 것이 있다? 그 역시 나에게 비밀이겠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대통령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대통령님의 주위에 대해
아직 믿음이 없기에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는 그의 말에 서운할수도 있었지만, 경호실장의 본심을 알게 된 후부터, 단 한 번도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설장호를 지원하는 방향이니, 자신에게 말하지 못할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서둘러 움직이게. 모든 것에서 홀로 떨어져나왔다고 믿는 설장호에게 자신을 돕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게. 그리고 고맙네. 자네마저 돌아선다면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렇게 나와 뜻을
같이 하니…….다시 한 번 고맙네.”
“설 실장은 제 벗이며, 무엇보다 그를 잘 알고 있기에,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곧바로 대통령님의 명령을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경호 실장은 집무실을 나섰다. 차현태는 다시 창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조금 전까지 불편했던
심정에 어느 정도는 안심의 기운이 돌고 있었다.

“서지호입니다.”
경호 실장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하시던가?-


그의 전화를 받은 인물은 국정원장이었다.
“대통령께서는 여전히 설 실장을 믿고 계십니다. 여러 곳에서 설 실장을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대통령께서는 초심대로 설 실장을 지원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행이군. 검찰총장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양반이 지금 외교부장관은 물론, 경찰청장도
구워삶은 듯하네. 그렇다고 그가 뿌리라는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확증이 없으니, 이래저래 낭패였는데,
대통령께서 설 실장을 지원하겠다고 하시니, 우린…….주변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도록, 비밀리에 설
실장을 지원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경호실장, 서지호로 인하여, 서지호와 차현태, 그리고 국정원장의 본심을 알게 되었다. 차현태는
처음부터 설장호를 믿고 있었고, 국정원장은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있던 자리에서 설장호를 의심하는
그들과 잠시 같은 뜻을 내비치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그 후, 검찰총장과의 통화시에 그는 설장호를
믿는다는 뉘앙스를 던져놓았었다. 그리고 서지호와의 통화로 그의 본심도 확실히 알게 된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이 무슨 의도로 설장호를 역으로 칠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차현태의 경호실과 국정원은
그들이 알지 못하도록 설장호를 지원할 것임이 밝혀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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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소재의 호수입니다.”
한 편. 강서진의 뒤를 쫒았던 검찰청 인물은 강서진의 차량이 의왕시의 한 호수에 정차하는 것을 보며,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해당 위치를 알려주었다.
“곧. 사람을 보내지. 절대…….강서진의 뒤를 놓치지마라.”
-알겠습니다.-
검찰총장은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의 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발송하였다.
-경기도. 의왕시. 호수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아주 짧은 문자였다. 누구에게 보내는 문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설장호를 돕는 뜻이 담긴
문자가 아님은 알 수 있었다.
“이쪽이네.”
설장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호수를 내다보며 서 있었고, 곧 강서진의 차량이 정차한 후,
설장호는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드는 태연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강서진은 그의 곁으로 다가선 뒤, 그의 안부를 물었다. 국정원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겪고 난 뒤, 그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야 뭐…….그보다 붙은 인물이 있는 듯한데. 어디서부터 붙어 온 것인가?”
“검찰청에서부터 줄 곧 붙어 왔습니다. 아무래도 검찰총장님께서 저에게 미행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검찰청과 경찰청은 둘째치고라도, 실장님께서 몸담고 계신
국정원에서도 실장님을 의심하고 있다니…….”
“의심은…….말 그대로 의심일 뿐이다. 계속하여 일이 틀어지니 의심은 당연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시기가 지금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강서진은 진정 설장호가 걱정되어 불안한 표정을 풀지 못한 채, 묻고 있었지만, 의외로 설장호의 표정은
여유가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며, 어디서 목을 조여 올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한 듯 보였다.
“그래. 총장이 자네에게 무슨 임무를 내리던가?”
“설 실장님의 주위에 붙어, 정보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의 음성은 여유가 있었고, 강서진은 검찰총장이 자신에게 하달한 명령에 대해 말해주었다.
“잘 됐군. 그 양반이 나에 대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줘야지. 하지만…….나를 의심한 대가는 제대로
치르도록, 그 정보에 독을 담아 줄 것이다.”
“…….”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은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았다. 정확히 그의 말뜻을 알지 못하지만,
진정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검찰총장과 맞대결을 펼치겠다는 뜻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같은 시각. 펜션에서는 태정민이 설장호의 명령으로 연화장에서 찍혔던 모든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고,
산속에서 매복 중이던 인물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쏜 후, 자신을 비롯하여 경호원들과 형사들이 맞대응을
하자,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긴 후, 일제히 산을 넘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고스란히 영상에 찍혀
있었다.
“정말…….철저하게 계획된 움직임입니다.”
영상을 함께 본, 추선우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들은 대통령 및, 주요인사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총격전으로 주위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곧 자신들도 뒤로 빠져나가는 역할만을 수행한 것으로 보였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진정 철저하게 계획된 행동들로 보였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CCTV 영상만으로는 이들의 얼굴조차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산속에서 몸을 숨기고 총을 쏜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곳곳의 나무들과 풀로 인하여 얼굴이 거의 가려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CCTV 성능이 떨어지는
관계로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역할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듯 보이면서, 만에 하나 그 누가 잡히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진정 지현을 잡을 인물을 투입하기 위하여,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은 그들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놈…….이놈이 누군지를 알고 싶군.”
그리고 이내, SUV 차량에서 내린 인물이 잡힌 영상을 보며 태정민의 눈빛이 매섭게 변한 뒤, 중얼거렸다.
이와 같은 인물을 투입하기 위하여, 연화장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여기는 태정민이었다.
추선우도 해당 인물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석강수가 따라 붙은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에, 그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의 명령으로 붙은 인물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신분이 궁금하였다.
“살벌하군…….”
의문의 사내와 대치하고 있었던 영상은 차후, 설장호가 오면 다시 검토하기로 한 후, 또 다른 영상을
보며, 태정민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가 접한 영상은 박태식과 함께, 몇 형사들이 SUV 차량에서 내린
인물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두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영상이 고스란히 잡혀 있었다.
이는 지난 날, 석강수가 박태식의 형사 팀을 제압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저 툭툭 치며,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그들의 행동이었다.
“연화장 인근에 매복해 있던 인물들과, 하늘공원쪽 인물들, 그리고 초입부분의 인물들. 모두 자세히 보면,
산 속에 있던 이들과 초입부분에 있던 형사 몇 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에 반해 하늘공원에 있던 인물들은 곧바로 박태식 형사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즉…….
하늘공원쪽에 있는 인원들은 박태식 형사를 돕고자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 공원…….그 곳에 있는 인원은 청와대 경호원들이다.”
계속하여 몇 영상을 더 보았고, 지금까지 본 영상을 토대로 추선우는 나름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후, 태정민의 눈동자도 이리저리 영상 속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고,
곧 하늘공원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경호실은 진정 우리를 돕고자 움직인 것이지 않습니까?”
태정민의 말이 있은 후, 영상을 마저 보며 추선우가 말했다. 이미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태정민은
청와대 경호실장과의 연락을 모두 끊어둔 상태였다.

“젠장…….”
하지만 영상을 보면, 경호실은 박태식을 돕기 위하여 움직인 것이 확실하게 찍혀있었고, 곧 태정민은
표정이 굳어지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곧 전원을 꺼 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원을 켰다.

‘윙! 윙~윙!’
전원이 들어오자, 연이어 수많은 문자가 전송되고 있었고, 그 문자의 발신자는 모두 경호실장 서지호였다.
“이래저래…….한 쪽의 의심이…….많은 것을 의심하게 만들어 버렸군. 잠시 통화 좀 하고 올 테니, 마저
영상을 보고 있어.”
태정민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연신 수신되고 있는 문자메시지가 모두 경호실장 서지호에게서 오고 있다는
것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추선우에게 말했다.
펜션을 나온 후, 메시지를 모두 읽은 태정민은 서지호에게 연락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실장님. 태정민팀장의 휴대전화 전원이 켜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청와대 경호실에서는 한 경호원이 태정민의 휴대전화 전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서지호에게 알렸다.
“위치는?”
“경기도 성남 외곽입니다.”
“지금 즉시 인원을 보낸다.”
“네. 알겠습니다.”
의문의 멘트였다. 차현태와 국정원장에게 설장호를 지원한다고 말했던 서지호는 태정민의 휴대전화 위치가
확인되자마자, 곧바로 경호원들을 해당위치로 보내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접고, 설장호의 명령을 이해하기 위하여, 서지호에게 연락하지
않은 채, 앞에 보이는 온통 검은 숲을 향해 보고 있었다.

“삼촌…….”
해가 저문 후, 점차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며, 잠에 들었던 지현이 잠에서 깬 후, 방문을
열고나오며 거실에 앉아 영상을 확인하고 있던 추선우를 보며 잠이 들 깬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불렀다.
“지현이. 잘 잤어?”
“응. 그런데 배고파.”
“그래그래. 일단 먹을 것 좀 준비해야겠다.”
추선우는 지현을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현에게 미안하였였다. 지현이 하루 동안 먹은 것이 없었다.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간 하루였기에, 어린아이의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하루였다.
추선우는 곧바로 부엌으로 간 후, 이곳저곳을 확인하였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준비되어 있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미처 먹을 것을 장만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추선우는 다시 지현의 곁으로 걸어가 그녀의 앞에 몸을 낮춰 앉으며 지현의 눈을 보았다.
“조금만 참아. 삼촌이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올게.”
“넌. 안 돼.”
추선우가 지현에게 말하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은주가 말했다.
“넌. 이곳저곳 어디에서나 다 감시의 대상이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지현이 곁에서 떨어지면 안 되고,
그러니 내가 다녀올게.”
은주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갑을 챙겨 펜션을 나섰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잡지
못하였다. 그녀의 말처럼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디…….가십니까?”
은주가 펜션 문을 열고 나오자,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지현이 깼는데, 배가 고프다네요. 펜션 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좀 사 오려고요.”
은주는 그의 물음에 답하며, 주변을 보았다. 그저 검은 산들만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나가야
상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은 어두웠다.
“자네 둘. 이 분과 함께 외부를 다녀와라.”
비록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태정민도 어쩔 수 없었다. 어른들이야 잠시의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다지만, 어린 아이의 배고픔까지 참도록 할 수는 없었다.
태정민의 명령으로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이 은주와 함께 나섰다.
“일단. 자네는 다시 검찰청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나와 만난 이야기를 하고, 지현의 위치를 묻는다면,
이곳…….호수의 위치를 말해줘라.”
“알겠습니다.”

한 편. 강서진과의 만남을 끝낸 후, 설장호는 그녀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서진은 그의 임무를 받은 후,


다시 검찰청으로 향하였고, 설장호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꽤…….많이 왔군.”
그리고 주위에서 움직이는 인원들을 체크한 듯, 홀로 중얼거렸다. 설장호는 이미 검찰총장이 강서진의
뒤를 쫒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도착한 곳 일대를 샅샅이 뒤질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현재 지현이 있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강서진을 부른 것이었다.

0005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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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설장호는 그들의 움직임을 본 후, 자신의 차량에 탔고, 또 다시 움직이지
않은 채, 그 곳에 가만히 있었다.

“저기 편의점이네요.”
같은 시각. 두 명의 국정원 대원과 함께 외부로 나온, 은주는 이동 중 보이는 편의점을 찾았고, 차가
정차하자, 곧바로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두 명의 국정원대원은 편의점 외부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그녀는 안에서 먹을 것을 장만하고 있었다.

“국정원 차량이다.”
그리고 곧. 편의점 일대를 지나쳐가던 한 대의 차량에서 편의점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은주가 타고 이동한 차량은 국정원대원들이 타는 차량으로 해당 기관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보는 기관에서는 그 차량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먼 곳으로 숨어들었군. 일단 지금 상황을 알리고 뒤를 쫒는다.”
“네.”
차량 안에 탄 인원은 총 네 명이었다. 그리고 뒤쪽에 앉은 사내의 말에 그 즉시 한 명은 어디론가
전화하였고, 나머지는 그의 말에 답했다.

“가요.”
장을 다 보고 나온 은주가 두 사람에게 말했고, 곧 두 대원은 주변을 다시 살핀 후, 편의점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차량 이동합니다.”
“차량 라이트를 모두 끄고 조용히 미행한다.”
“네.”
짙은 어둠이었다. 라이트를 모두 소등한 채, 뒤를 쫒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또
한 훈련으로 인하여 이미 몸에 적응된 상태처럼 보였다.

‘띠리리리’
은주를 기다리며, 배고픔에 힘이 없어 보이는 지현을 안고 있던 추선우의 전화벨이 울렸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 한 뒤, 곧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실장님입니다.”
추선우가 말했다. 그러자 그의 전화를 태정민이 건네받은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태정민입니다.”
“아무 일 없는가?”
태정민이 전화를 받자, 설장호가 차량 안에서 여유 있게 의자를 뒤로 눕힌 후, 몸을 누운 채, 편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아무 일 없습니다. 단지…….지현이 깨면서 배가 고프다고 하기에, 집주인 아주머니의 딸이 먹을
것을 사러…….”
“지금 뭐라고 했나? 먹을 것을 사러 외부로 나갔다는 것인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자세를 급히 바로 잡은 후, 굳은 음성과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네. 먹을 것이 없어서…….”
“지금…….제정신이야! 우리의 처지를 알지 못해! 태정민! 지금 즉시 주변을 경계해라. 그리고 들어서는
차량을 주시해! 그리고…….기억해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떠 올려라. 그들은 항시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역삼역, 북정마을, 연화장…….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모든 곳에서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태정민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정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짙은 어둠이 있고, 또 한 현재 이곳의
위치가 연화장이나, 북정마을, 그리고 지현과 관계된 그 어떤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큰
걱정 없이 은주를 외부로 보냈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처럼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그들이 먼저
움직였었다.
진정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시 빨랐다.

“알겠습니다. 경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곧 갈 테니, 철저히 경계해라.”
태정민이 답한 후,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설장호도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려 하였지만,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호수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몇 대의 차량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젠장…….생각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설장호는 자신의 차량이 움직이자, 곧바로 따라 움직인 차량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을 따돌리고 여유 있게 다시 돌아가려 하였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못하였다.
“추선우. 지현을 방으로 들여보내라.”
“네?”
“내가 선택을 잘 못한 것 같다. 너무 방심했어.”
갑자기 태정민이 서두르자, 추선우는 무의식중에 지현을 더 꼭 끌어안았고, 지현도 추선우를 더
끌어안았다.
태정민의 다급함에 방안으로 지현을 데리고 들어선 후,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아주머니의 옆으로 지현을
내려놓았다.

“어…….내가 잠시 잠이 든 모양이었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아주머니가 말하였고, 곧 자신의 옆에 있는 지현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아주머니. 지현이 좀 부탁할게요.”
추선우는 비몽사몽간인 아주머니에게 말한 뒤, 지현을 보았다.
“지현아. 아주머니 곁에 잠시만 있어, 삼촌 잠깐만 밖에 나갔다 올게.”
“응. 삼촌.”
다행히 아직 잠이 덜 깬 지현이지만, 추선우에게서 쉽게 떨어져 주었다. 추선우는 곧장 밖으로 나온 뒤,
펜션을 나섰고, 먼저 나온 태정민은 남아있는 세 명의 국정원 대원에게 주변을 경계하도록 명령 내렸다.

“차량 들어옵니다.”
주변경계를 명령내린 후, 모두 정면을 주시할 때,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한 대의 차량이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우리 쪽 차량인지 알 수 없다. 철저히 주시한다.”
“알겠습니다.”
이미 설장호가 한 말이 있었다. 비록 차량을 확인하더라도, 그 안에 탄 사람이 우리 쪽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을 하였기에, 태정민은 물론, 모두의 눈빛이 들어서고 있는 차량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기…….뒤를 따르는 차량이 있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라이트를 밝히고 들어서는 한 대의 차량에 주시되어 있을 때, 추선우는 태정민의 옆으로
서며, 해당 차량 뒤로 라이트를 끈 차량이 더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태정민의
눈빛이 더욱 더 커졌다.
“젠장…….”
그리고 그의 눈에도 뒤따르는 차량이 그제야 보였다. 비록 차량 자체가 보인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차량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차량 안에서 휴대전화 불빛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즉시 태정민은 세 명의
대원에게 총기사용 허가를 내렸다.

‘팟’
“!!!”
모두가 총기를 꺼내 들 때, 조용히 뒤 따르던 차량이 라이트를 밝혔다. 이미 그들의 눈에도 불이 밝혀져
있는 펜션이 보인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더 이상 은밀히 미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기에, 라이트를
밝히고, 차량 속도를 올리고 있는 그들이었다.

‘팅팅팅!’
“젠장! 꽉 잡으십시오!”
라이트가 밝혀지자마자, 앞 서 달리던 은주가 탄 차량으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였고, 총알은 차량
외부에 맞아 팅겨나가고 있었다. 이에 대원은 은주에게 몸을 숙이며, 차량 안을 꽉 잡도록 한 뒤, 빠르게
펜션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고, 뒤 따르던 차량도 속도를 내며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긴장하며, 펜션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두 대의 차량을 보고 있을 때,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네.”
설장호였다.
“아무 일 없는가?”
“은주가 탄 차량 뒤로 한 대의 차량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량에서 총을 쏜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젠장. 지금부터 넌 내 명령에 따른다. 지금 즉시 지현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나라. 펜션 뒤쪽 산길을
따라 조금만 벗어나면,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 시내로 접어들 것이다. 서둘러.”
“하지만…….”
“그곳에 남은 사람은 그 운명에 맡긴다. 넌 아주머니와 함께 지현을 데리고 서둘러 벗어나.”
추선우는 점점 다가서는 차량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면, 진정 저들의 시야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 명이 다가서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인하여 한 명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무작정 그 곳을 벗어나도록
명령내리고 있었다.
“추선우. 너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억해라. 그리고 지현과 한 약속을 기억해라. 넌 지현을 경호하는
것이지, 태정민과 함께 대원들을 돕는 것이 임무가 아니다.”
설장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그 한마디에 추선우의 결심도 섰다. 비록 냉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말처럼 추선우의 목적은 지현의 경호다. 그 누구를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현만을 경호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그 즉시 펜션 안으로 들어섰고, 곧바로 지현과 아주머니를 데리고 펜션 밖으로 나왔다.

“태팀장님…….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태정민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태정민도 이미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추선우가 쉽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서둘게 하였다.

“은주는…….은주도…….”
“걱정 마십시오. 지금 따님이 타고 있는 차량은 방탄차량입니다. 차안에 있으니 안전하며, 곧 저희도
뒤따라 움직이겠습니다.”
태정민은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들어서고 있는 차량을 향해 본
뒤,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 서둘러라.”
태정민이 다시 말했고, 추선우는 그 즉시 지현을 안고, 아주머니와 함께, 펜션 뒤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잠시만 기다려서, 도착하는 차량에서 내린 은주와 함께 이동할 수 있지만, 그 잠깐의 시간으로 인하여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기에 서두르는 것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펜션 뒤쪽으로 돌아서자 작은 산책로가 보였고, 곧 그 산책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팅팅팅팅’
차량이 더 가까이 다가서며 차량에 맞아 팅겨나가는 총알이 뿜어내는 불빛도 잘 보이고 있었다.
“뒤 차량을 향해 사격!”
총을 쏠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 차량이 들어오자, 태정민이 큰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세 명의 대원은 그의
명령과 함께, 뒤로 따라붙은 차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온통 검게 변한 세상에서 발사되는 총알로 인하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뒤따르던 차량에도 총알이
맞으며 팅겨나가고 있었다.

‘끽!’
이어 은주가 탄 차량이 펜션 주차장에 들어서며 정차하였고, 곧바로 한 대원이 내리며, 따라오는 차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차량을 펜션 뒤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넌 은주씨를 데리고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라.”


“알겠습니다.”
한 명의 대원이 내린 후, 은주마저 내리려 할 때, 태정민이 큰소리로 말하였고, 그 즉시 먼저내린 대원이
차량 문을 닫자, 운전석에 앉은 대원은 곧바로 차량을 펜션 뒤쪽으로 끌고 간 뒤, 은주를 내리게 하였다.

00058 경호원 =====================================================================


====
                          
“이 길을 따라 가면 산책로입니다. 그리고 산책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곧 시내가 나옵니다. 그곳으로
향하십시오.”
“엄마는요? 그리고 선우와 지현이도…….”
“팀장님이 이곳으로 움직이라 하였으니, 아마 그 분들도 이곳으로 움직였을 것입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그의 말에 은주는 산책로로 빠르게 접어든 후,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대원은 태정민의
명령과는 달리 다시 펜션 앞으로 나오며 총을 들어 들어서는 차량을 향해 쏘기 시작하였다.

“팀장님! 차량이 더 들어옵니다!”


들어서고 있는 한 대의 차량을 향해 연신 총을 쏘고 있을 때, 펜션을 들어서는 길목으로 몇 대의 차량이
더 보이자, 대원이 소리쳤다.
“이미 이곳이 노출된 모양이다. 뒤로 빠져서 너희들도 피한다.”
“아닙니다. 팀장님께서 피하십시오.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태정민은 그들에게 먼저 피하도록 명령 내렸지만, 그들은 오히려 태정민에게 먼저 피하도록 말했다.
뒤 따라 들어서는 차량이 보이자마자, 거의 앞까지 들어섰던 차량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차량에서
내린 인물들이 펜션 앞에 있는 태정민 일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퍽 퍽퍽’
“엎드려!”
그들이 내린 후에 곧바로 국정원소속 대원 세 명이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태정민은 서둘러
남은 두 명에게 소리쳤고, 그들은 몸을 낮춘 후, 뒤로 움직이면서 계속하여 총을 쏘고 있었다.
“펜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쉴 새 없이 총알이 날아오자, 한 대원이 말했다,
“펜션 안으로 들어서면 그 즉시 독안에 든 쥐가 된다. 차라리 숲속으로 피하라. 내가 엄호하겠다.”
태정민은 탄창을 교체한 뒤, 말했고, 곧 두 명의 대원도 탄창을 다시 교체한 후, 정면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몇 발의 총알을 더 날려준 뒤, 빠르게 주변 숲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픽픽’
‘퍽퍽’
하지만 두 명의 대원이 숲속으로 들어서기 전, 어둠속에서 발사된 총알이 정확하게 두 명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쳐갔고, 대원 두 명마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젠장…….”
태정민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잘 못된 판단하나로 인하여, 순식간에 대원 다섯 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이미…….늦은 건가…….”
연이어 들어서는 차량들 뒤로, 그제야 설장호가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이곳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 더 많은 적을 끌고 오게 되는 것이기에, 그들을 따돌리고 오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이미 수많은 차량이 펜션으로 향하고 있으며, 또 펜션 일대에서
총격전으로 보이는 작은 불빛들이 중간 중간 보이는 것을 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와대 경호실. 태정민 팀장이다!”


두 대원이 죽은 후, 몇 분간 총격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곧 자신의 총알마저 모두 바닥났고, 잠시 몸을
낮추고 있던 태정민은 인상을 찌푸린 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난 뒤, 연신
퍼 부어지고 있던 총알세례도 멈추었다.
태정민은 낮추고 있던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렸고, 곧 정차되어 있던 차량
옆을 통과하며, 어둠속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그들의 정체가 보이고 있었다.
점점 밝은 곳으로 사내들이 나서고 있었고, 이어서 들어서는 차량에서도, 몇 사내가 내리고 있었다.
“태정민…….팀장님…….”
곧 해당 인물들의 얼굴이 태정민에게도 보였고, 그들 중, 한명이 그의 옆으로 서며 태정민을 불렀다.
“나를 알고 있는가? 어디 소속인가?”
“설장호, 태정민, 강서진, 박태식. 그리고 추선우…….당신뿐 아니라 지금 내가 말한 이 모두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 소속이냐고요? 글쎄요. 어디 소속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워낙
광범위하게 뻗어있기에…….”
그는 태정민의 옆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움직이며 말했고, 곧 뒤에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 인물들이
다가서자, 그들을 향해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든 후, 펜션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있었다.
“누구의 명령을 따르는지만 말해. 그것만 말하면 나를 죽여도 좋다.”
태정민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 감싸고 있는 그들을 본 후, 자신의 이름을 말한 사내에게 물었다.
“영화를 많이 보셨나봅니다. 꼭 이럴 때보면 이미 죽을 사람이니 뭐 알려줘도 상관없겠지…….라고
말하며, 모두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영화입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어차피 죽을 놈이면
그냥 죽으면 되는 것이지, 죽는 마당에 궁금함을 해소해서 뭐가 좋겠습니까?”
그는 태정민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담배를 꺼내 물며 다른 말을 하였다.

“아무도 없습니다.”
곧 펜션 안을 수색하였던 인물들이 다시 나오며 그에게 말했고, 시선을 주위로 돌리자, 주변을
수색하였던 인원들도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잘 도망치도록 하셨군요. 역시 청와대의 수장을 경호하는 인물답습니다. 어디로
빼돌렸습니까? 어디로…….”
“펜션 뒤쪽으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가 태정민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곧바로 한 부하가 펜션 뒤쪽으로 산책로가
있다는 것을 말했다.
사내는 그 즉시 몇 인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해당인원들은 서둘러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내 총알보다 인원이 많군.”


같은 시각.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 입구에서 펜션방향을 보고 있던 설장호는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총알갯수를 확인한 후,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가봐야겠지. 태정민을…….”
총알의 개수가 모자란다고 물러날 설장호는 아니었다. 실탄 장전을 마친 후, 차량에 시동을 걸고 펜션을
향하려 할 때, 룸미러로 몇 대의 차량 불빛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이자, 홀로 중얼거리던 말을
멈추었고, 매서운 눈빛으로 후방을 주시하였다.
“젠장…….어지간히도 많이 모여드는군.”
이미 차량을 후진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었다. 차량 뒤로 보이는 차량의 불빛도 몇 대는 되어
보였고, 차량을 전진하여 빠르게 달린다고 하여도, 그들이 총을 쏜다면 총알을 모두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좀 보고 저승문턱을 밟아야겠군.”
설장호는 차량 시동을 다시 껐다. 그리고 차량 뒤에서부터 총을 겨냥한 채, 자신의 차량으로 다가서는
인물들을 사이드밀러로 보았고, 그에 맞춰 차 창문까지 내려주었다.

“설장호 실장님…….”
곧, 한 인물이 차량 옆으로 서며, 열린 창문을 통해 설장호를 확인한 후,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의 말에 설장호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태정민 팀장님.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 꼬맹이만 넘기면 됩니다. 그럼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결혼도


하셔야 하며, 부모님도 모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꼬맹이 하나로 인하여 인생을 버리시면
너무나 아깝지 않겠습니까?”
한 편. 펜션에서는 여전히 태정민을 앞에 두고, 그의 주위에서 그의 머리를 겨냥한 몇 인물이 함께
있었고, 가장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섰던 사내가 지현의 위치를 계속하여 그에게 묻고 있었다.
“서로 피차일반인 것 같군.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으니, 나 역시 네가 궁금해 하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겠지. 누군지는 모르며, 어디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도 영화 좀 그만 봐야겠군. 꼭
이런 상황이오면, 나 같은 처지에 놓인 놈은 자신 혼자 살고자 비밀을 모조리 다 폭로하더군. 그리고
결국은 죽게 되고 말이야…….하지만 이 역시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니, 내가 너희들에게 지현의 위치를
말할 필요는 없겠지.”
사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는 매서운 눈빛을 하며, 하늘을 향해 보는 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청와대 경호실…….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차현태 대통령을 진심으로 지키는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서지호실장이 진정 차현태 대통령을 도와, 그 꼬맹이를 잘 보호할 것이라 보십니까? 세상 너무 순진하게
사셨습니다. 세상은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속이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야…….내가 살 수 있으니까요.”
그는 다시 고개를 내리며 태정민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그리고 청와대…….왜 다들 그 여자아이를 보호하는 척 하면서, 다들 그
여자아이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할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냥 보호하고자 한다면, 지원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니…….왠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는 이내 총구를 태정민의 머리 방향으로 돌리며 말했고, 또 물었다. 그의 말은 태정민이 그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였다.
처음부터 지현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나섰던 인물은 설장호였다. 그리고 설장호로부터 그녀의 위치를
파악한 뒤, 자신을 더불어, 몇 명이 지현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차현태는 물론,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도 연신 지현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꼬맹이의 위치를 말씀하시지 않으시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잘 가십시오.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꼬맹이의 위치는 우리가 스스로 알아내겠습니다.”
그는 태정민의 눈앞으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태정민은 자신의 한 쪽 눈을 다 덮은
총구에도 절대 눈을 감지 않고 부릅뜬 채,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픽!’
“!!!”
그 순간 발사된 총알.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 한 발의 총알이 쏘아졌고, 곧 태정민의 눈을 겨냥하고
있던 사내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태정민은 물론, 그에게 총을 겨냥하고 있던 모든 사내들이
놀란 눈으로 서 있었다.
‘픽픽 픽픽’
이내 어둠속에서 수십 발의 총알이 소리 없이 날아오고 있었으며, 펜션 곳곳에 서 있던 의문의 사내들을
모조리 눕히고 있었다.
태정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으며, 어둠속에서 잠시잠깐 불빛을 발하며, 발사되는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여전히…….강심장이십니다. 태정민 팀장님.”


약 30 초간 쏟아졌던 총알세례가 멈춘 후, 주변에 서 있던 모두가 쓰러졌다. 그리고 곧 어둠속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걸어 나오며, 태정민을 보고 웃음을 보인 채 말하고 있었다.
“지용석…….네가 어찌 이곳에…….”
태정민에게도 안면이 있는 얼굴 인 듯, 태정민은 놀란 눈빛을 한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곧
주변에서 약 십여명에 이르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들의 뒤로 설장호가
모습을 보였다.

“설 실장님? 어째서…….경호실 인원과 함께…….”


태정민은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의 말처럼 지금 설장호와 함께 모습을 보인 인물은
청와대 경호실에 속한 경호원들이었고, 태정민이 직접 이름을 부른 인물은 청와대경호실에서, 또 다른
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 지용석이었다.

0005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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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납득하기가 좀 힘들겠지. 나도 납득하기가 힘들었으니 말이야.”
그의 옆으로 설장호가 뚜벅뚜벅 걸어오며 말했고, 여전히 태정민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왜 경호실 인원과 함께 움직이시는 것입니까? 설 실장님께서 저에게 경호실과는 그
어떤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태정민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절대 경호실을 믿지 말며, 현재 지현의 곁에 있는 사람들만 서로 믿는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깬 것이기에 태정민이 놀란 눈을 한 것이었다.
“일단 지현의 안전부터 확인해야겠지.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갔는가?”
설장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답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 그를 보고만
있었고, 곧 지용석이 그의 옆으로 서며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무엇인가?”
태정민은 그가 건넨 휴대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직접 확인하십시오. 전…….실장님의 명령으로 이동한 것뿐입니다.”
“실장님? 경호실장님을 말하는 건가?”
“네. 전화 받아보십시오. 그 분 성격상 전화기 오래들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용석의 말에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귀를 향해 움직였다.
“언제 자네의 휴대전화가 다시 전원이 들어오는지 기다렸네. 다친 곳은 없는가?”
서지호는 조금 전, 태정민의 휴대전화 전원이 들어오자, 그 순간 곧바로 그의 위치를 파악하였고,
누군가에게 이동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명령을 받고 이동한 인물들이 설장호의 뒤로 들어섰던
인물들이며, 그들에게 자초지정을 들은 설장호는 그들과 함께, 태정민을 구하고자 펜션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다른 말은 듣지도, 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찌된 것입니까?”
하지만 태정민은 서지호가 자신의 안부를 묻고 있어도, 그에 대한 답은 없었고, 여전히 매서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에게 지현의 안전에 대한 답을 듣지 않았던 설장호가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보면서 경호실장과의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여러모로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설 실장님에게 듣고, 지금 너에게 보내준
인원을 잘 이용해라. 그들은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에서도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따로 움직이게
하고 있다. 비록 지용석에 관해서는 몇 양반들이 알고 있겠지만, 나머지 놈들은 차현태 대통령께서 직접
따로 움직이도록 명령내린 인물들이니,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통화를 끊지 않은 채, 펜션 안으로 들어가 설장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너의 휴대전화는 지금부로 죽은 전화기가 된다. 절대 켜지 마라. 지금 내가 전해준 휴대전화를
이용한다. 모든 내용은 그 휴대전화를 통해 너에게 알리겠다. 그럼…….마지막까지 꼭 임무를 완수해주기
바란다.”
“실장님. 실장님!”
통화가 끊어졌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묻지 못한 채, 통화가 끊어졌고, 태정민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설장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 서지호실장과 설장호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다 듣지 못한 상태이기에, 마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듯,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지낸 하루라 여겨지고 있었다.

“인근에 지현은 없습니다.”


곧 펜션 안으로 지용석이 들어서며 말했다.
“내가 내린 명령이니, 지현은 이미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야. 펜션 뒷길을 따라 가면 산책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번화가로 가면 지현을 만난다. 움직여라.”
“네. 실장님.”
“잠깐!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절대…….절대 지현의 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설장호와 지용석의 대화를 듣던 중, 그들이 지현의 뒤를 쫒는다는 말에 태정민이 곧바로 지용석의 앞으로
움직이며, 그의 멱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놔줘라. 지금 이 인원이 움직여야.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할 수 있다. 추선우가 아무리 지현을 잘
경호한다고 하여도, 그 놈은 총이 없다. 필시 총을 가진 놈이 따라갔을 것이다. 어디서 불쑥 나타난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그놈들을 잡기 위해서는 총을 가진 자들이 움직여야지.”
설장호는 여유 있게 소파에 몸을 앉히며 말했다. 태정민은 그의 행동이 진정 이해가지 않고 있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저토록 한가롭게 있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지금
설장호의 모든 행동은 태정민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있었다.

“앉아. 지금부터 변화된 모든 내용을 너에게 알리겠다. 그리고 이 변화된 내용은 사실…….나도 좀
전에야 알게 되었다. 대통령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며, 대통령을 경호하는
임무를 가진 너에게 있어, 대통령의 명령이 어쩌면 내 명령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판단은 네가 직접 한다.”
태정민은 멱살을 잡고 있는 지용석을 노려보면서 설장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의 명령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시되는 명령이었다.
태정민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지용석을 다시 한 번 보았고, 곧 그의 멱살을 풀어주며, 설장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같은 시각.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아주머니와 함께 산책로를 따라 계속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곧
뒤쪽에서 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고, 그 즉시 아주머니와 함께 몸을 낮추며, 산책로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긴 하였지만,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기에, 몸을 잠깐만 낮춰 숨어도 지나가는 이들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곧 곳곳에 세워져 있는 가로등 아래로 뒤따라오던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은주야.”
은주였다. 차량에서 내린 후, 줄 곧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였던 그녀가 먼저 출발하였던 추선우 일행을
따라잡은 것이었다.
“엄마.”
은주는 어둠속에서 나온 아주머니를 보며 달려오던 속도를 늦춘 뒤, 곧 멈췄고, 아주머니를 격하게
안았다. 그리고 곧 지현과 추선우도 보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서둘러 벗어나야해, 아마 그놈들이 내 뒤를 따라 오고 있을 거야.”
은주는 차량에서 내린 후, 곧바로 움직였지만, 필시 그들도 자신이 움직였던 길을 따라 오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 놈들…….누군지는 봤어?”
“내가 그 놈들 얼굴을 본다고 뭘 알겠어.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아마 태정민팀장인가 하는
사람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 같더라. 날아오는 총알이 너무 많았어.”
“…….”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동 중, 추선우가 펜션상황을 묻자, 은주는 최악의
상황임을 말해주었고, 그로 인하여 추선우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았다.

‘픽!’
“!!!”
그 순간, 어둠속에서 잠깐의 불빛이 보이더니, 이내 총알이 날아왔다. 지현을 안고 뛰는 것으로 속도가
늦춰진 것은 아니었다. 나이로 인하여 걸음이 느린 아주머니로 인하여 속도를 더 빨리 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로인하여 뒤늦게 출발한 은주에게도 따라잡혔으며, 곧 은주의 뒤를 따라온 이들에게도 포착되었고,
어둠을 뚫고 날아온 총알이 아주머니의 바로 옆 나무를 적중시키자, 놀란 아주머니가 몸을 낮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엄마. 일어나! 여기서 앉으면 어떡해!”


은주는 아주머니로 인하여 모두가 잡힐 것을 우려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두 다리는 이미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저앉은 몸은 도저히 일어서지지 않았고, 은주는
다급한 나머지 아주머니를 일으키며, 부축하였지만, 연이어 발사되는 총알로 인하여,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은주야. 지현을 안아."
“응?”
추선우는 지현을 은주에게 주며 말했고, 얼떨결에 지현을 받은 은주는 그 순간 곧바로 몸을 돌리며, 만에
하나 날아올 총알에 지현을 보고하고자 하는 동작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가
주저앉은 아주머니를 일으키며, 산책로 바로 옆, 풀이 무성한 어둠속으로 움직였다.
“여기서 잠시만 있어. 지현아, 삼촌 잠시만 나갔다올게, 은주이모와 조용히 있을 수 있지?”
지현은 추선우의 말을 듣고, 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추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미소를 지었고, 곧 산책로로 뛰쳐나온 뒤, 약 3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그들을 향해 노려보았다.

“저 놈…….”
그리고 그들의 눈에도 추선우가 보였다.
‘픽픽’
그 순간 두 사내의 손에 들린 총이 곧바로 추선우를 겨냥하였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추선우는 자신을 향해 총이 겨냥되는 순간 곧바로 몸을 움직였고, 그 후에 발사된 두 사람의 총알은 그가
서 있었던 곳을 지나, 뒤에 있던 나무에 꽂혔다.
“쫒아!”
추선우는 지현이 있는 곳, 반대편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고, 그들은 총을 든 손을 내린 뒤, 곧바로
그곳으로 뛰기 시작하여, 곧 추선우가 몸을 숨겼던 지역에 다다르기 전, 움직임을 조심하며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바스락’
‘픽픽픽’
짙은 어둠과 함께 조용한 정막이 흐르고 있었기에,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인하여, 두 사내는 해당물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고,
약 세 발 정도씩을 발포한 후, 멈췄다.
“젠장…….뭐가 보여야 말이지.”
가로등이 있는 곳은 어느 정도 어둠을 밝히고 있지만, 진정 가로등의 불빛이 뻗어나가지 못한 부분은
너무나 짙은 어둠만이 있었다.

“콜록 콜록”
“!!!”
그 순간 예기치 못하게 지현의 기침소리가 들렸고, 두 사내의 귀와 눈은 곧바로 해당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은주와 아주머니는 너무나 놀란 눈으로 지현의 입을 막긴 하였지만, 이미 지현의 기침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어간 후라,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지현아…….아저씨와 놀자. 아저씨가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했고, 인형도 사놨어. 그러니…….”
“바스락.”
‘픽픽’
기침소리가 들린 부근 가까이가자, 한 사내가 사탕발린 말을 하였고, 그 순간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들리자, 해당 방향을 향해 또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0006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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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사내는 총을 쏜 곳을 주시하여 보며 다가서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후방을 주시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추선우가 현재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 것을 알고 있기에, 후방을 더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죽었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주 꼬맹이 하나가 사람 피말리는군.”
이리저리 총구를 돌려가며 어둠속을 확인하고 있던 사내는 지현을 빗대어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하였고, 곧
짙은 어둠속에서 비교적 밝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의 옷자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빙고…….”
그는 지현을 찾고자 잔득 움츠리고 있던 몸을 그제야 펴고, 해당지역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바스락.’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겨눈 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뒤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곧 한 사내가 시선을 바로 돌렸다.

‘탁! 퍽퍽!’
“!!!”
바스락 소리와 함께 뒤를 경계하여 보고 있던 사내가 해당방향으로 총구를 돌리는 순간, 어느새 총을 든
손은 자신의 손은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혀있었고, 지현이 있는 위치를 향해 보고 있던 사내가 그 소리에
몸을 돌렸지만, 이어지는 추선우의 돌려차기에 그의 손에 들린 총마저 떨어졌고, 곧 그가 다시 몸을
바로잡자, 곧바로 또 한 번의 발차기가 날아와 그의 면상을 날렸다.

‘퍽퍽퍽!’
그리고 추선우에 의해 손이 잡혀있던 사내는 자신의 손에 총이 있지만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부분에 추선우의 손바닥이 어느새 막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자, 몸을 뒤로 빼려하였지만, 그 즉시 추선우의 주먹이 날아와 면상을 날렸고, 연이어 또 한
번의 주먹과 함께, 돌려차기가 들어오면서 그 역시 산책로 앞으로 쓰러졌다.

어둠속에서 불시에 모습을 보인 추선우로 인하여, 총을 든 두 명의 사내가 전혀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한 채, 단 몇 초 만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또 올수도 있으니, 서둘러가자.”


뒤 따라오던 두 명의 사내를 삽시간에 제압한 후, 추선우는 다시 지현을 안으며 말했고, 총을 쏘던 두
사내가 쓰러진 것을 보고서야 아주머니의 발길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는 총을 든 인물을 상대할 수 없다고 말한 설장호의 생각을 완전히 비켜나게 만든 추선우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어둠을 이용하여, 총을 든 두 사내를 제압하였고, 또 다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이들을
피하기 위하여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서지호 실장님이 그렇게 말하였습니까? 그리고 그 말이 모두 대통령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정말입니까?”
한 편. 펜션에서는 설장호에게 지금 현재 변화되고 있는 일을 모두 들은 태정민이 여전히 매서운 표정을
지은 채, 묻고 있었다.
“나도…….아직은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서지호…….그 놈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또 믿을 수 있는 말이라 본다. 지금 대통령께서는 그 누구보다 더 이 일의 발단이 된 그 뿌리라는 조직을
캐내려하신다. 하지만 수년간…….아니 어쩌면 수십 년간 아주 깊게 숨어있던 그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으시겠지.”
“실장님. 이곳을 습격한 인원의 신상파악이 끝났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 지용석이 다시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고, 그 누구보다 그들의 신분이
궁금하였던 태정민이 지용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소속이던가?”
설장호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북정마을에서 잡은 두 사내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었었다. 그리고 연화장에서 잡은 인원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써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이곳에서 잡은 인물에 대한 신원확인은 지용석이 모두 끝냈고, 그들의
신원이 밝혀지면, 뿌리라는 조직의 실체가 하나씩 밝혀지게 되기에, 그의 목소리에 조금의 떨림이 있었던
것이었다.

“먼저. 가장처음 확인되는 인물은, 태정민 팀장에게 총을 겨누었던 인물로, 그는 국정원


소속이었습니다.”
“!!!”
설장호는 눈동자만 살짝 흔들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나머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태정민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설장호는 나머지 인원에 대한 신분도
물었다.
“죄송합니다. 나머지 인원은 특별히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 경호실이나, 검찰,
경찰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하였습니다.”
“민간인? 신분조회를 제대로 한 것이 맞아?”
태정민은 그의 보고에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연화장에서 찍혔던 영상을 확인하였고, 서지호가
박태식을 돕기 위하여 움직였다는 증거가 포착되었지만, 이에 대한 서지호의 생각을 아직 제대로 듣지
않은 상태였기에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지용석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 그였다.
“네. 신원조회는 모두 정확합니다. 국정원소속이라는 한 인물만 제외하면 모두 민간인입니다.”
“총을 들었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정확하게 대원들을 저격하였다. 그런데 민간인이라고?”
“추선우도 민간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님의 명령으로 지현양을 경호합니다. 민간인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생활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태정민은 그의 신원조회를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지만, 이내 지용석의 말을 들은 후, 그 말에 반박할
만한 말을 떠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추선우도 민간인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더 지현의 가까이에서 그녀를 경호하고 있다.
“국정원 소속이라…….국정원에서 지현을 찾고자 따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건가?”
“아직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힘듭니다. 국정원장께서 따로 사람을 운영하는지, 아니면, 그저
국정원에 소속된 인원이 그 뿌리에 가담한 것인지…….아직은 확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그 줄기를 따라가면 곧 뿌리에 닿지 않겠습니까?”
지용석은 설장호의 물음에 답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았다.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태정민의 눈빛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태정민마저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되고 있을 때,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 알았다. 지금 곧 움직이겠다.”
지용석은 짧은 통화를 끊은 후, 두 사람의 곁으로 섰다.
“지금은 누구를 믿고 믿지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펜션 뒤로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나섰던
대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도심으로 향하는 산책로 중간부분에서 두 사내가 기절해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다행히 인근에 혈흔은 없다고 하니, 지현을 데리고 이동한 추선우 일행에게 별다른
총상이나, 부상은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지금 즉시, 대원들 모두를 이동시킨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지용석은 펜션을 나선 뒤, 경호실 인원에게 각기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펜션 안에서
창문을 통해 외부를 보고 있던 태정민의 눈동자는 여전히 매서우면서도 떨리고 있었다.

“정민아…….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자. 저들이 진정 우리를 돕는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 그리고


서지호와 대통령께서도 우리를 돕는다면 진정 좋겠지, 하지만 네 생각처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오로지 지현을 생각해라, 저들에게 믿음이 없더라도, 우린
추선우를 믿고 있다. 그리고 서지호의 말처럼 우린 저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추선우를 지원한다. 변한
것은 없다. 단지…….우리를 돕는다는 대통령과 서지호의 심증을 확인하기 전까지, 우린…….저들과 함께,
절대 지현의 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현의 경호는 전적으로 추선우에게 맡기고 우린 그의 주변만을
맴돌며 지원한다.”
“!!!”
지용석이 나간 후,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태정민을 불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심정을 말하였다.
자신 또 한 그들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믿고자 하려는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처음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즉 지현의 곁에 있는 자신들 외에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에는 변함이 없었다.
단지…….지용석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고, 그가 청와대 경호실장인 서지호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그저 믿고 있다는 행동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 말을 태정민에게 하려 하였지만, 지용석이 계속하여 함께 붙어 있었기에 그 말을
태정민에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제야 태정민은 설장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의 수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믿음을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힘은…….전적으로 빌려 쓰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믿음인지, 아니면 환심을 얻기 위한 술수였는지는…….차후에 결정짓는다는
말이었다.

“내려가자.”
같은 시각. 산책로의 끝부분까지 다다르자, 추선우가 말했고, 곧 도심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어둠속에서
헤매던 것과는 달리, 도심의 불빛은 화려해 보였다.
“일단. 지현이에게 뭐 좀 먹여야겠어. 하루 종일 애를 굶겼으니, 우린 지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거야.”
은주가 추선우의 품에 안긴 지현을 보며 말했다. 비록 먹을 것을 사기 위하여 나섰다가 이와 같은 봉변을
당했지만, 은주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결코 머릿속에 담아두려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곧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불빛을 발하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그리고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번화가에서 조금 안쪽으로 자리 잡은 분식집을 들어섰다.
배를 채우기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처지가 아니었기에, 여러
가지로 많은 종류가 있는 분식집을 택하여 들어선 것이었다.

“너희들은 이곳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따라붙는다.”


곧 펜션에서도 모두가 그곳을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일차적으로 선발대가 산책로를 따라
움직였고, 그 뒤로 설장호와 함께 태정민, 그리고 지용석이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장을
완벽하게 정리한 후, 마지막 인원이 그곳을 벗어날 예정이었다.

0006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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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펜션에서 나와, 산책로로 접어들자,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실장님.”
서지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현의 안전은 확인하였나?-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현의 안전이 확인되는 즉시,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지용석은 서지호에게 일체의 거짓 없이 정확한 정보를 보고 중에 있었다. 그의 보고를 들은 후, 설장호와
태정민의 눈빛은 서로 교차하였고, 그 두 사람의 눈빛을 지용석은 보지 못하였다.
-설 실장님께 전화기를 건네라.-
“네.”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보고받은 후, 서지호가 말했고, 곧 지용석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설장호에게
건네주었다.
“말하게.”
전화기를 건네받은 설장호는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께서 지현의 안전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계십니다. 비록…….연화장에서의 일이 모두에게
불신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결국 그들에게 좋은 일만 만들어 준 상황이라 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를 믿고, 믿지 않고는 전적으로 설 실장님께서 선택할 일입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십시오.-
서지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의 말이 모두 끝났지만, 설장호는 아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그저
전화기를 다시 지용석에게 주었다.
“전할 말씀은 다 전하셨습니까?”
전화기를 다시 건네받은 지용석이 서지호에게 물었다.
-절대…….설 실장님의 주위에서 떨어지지 마라, 비록 믿음이 없는 지금의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 믿음을 버리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용석은 서지호와 통화를 끝낸 후, 두 사람보다 약 2 미터 정도 뒤를 따르며 걷기 시작하였다.

“어찌되었는가? 설 실장이 우릴 믿겠는가?”


통화가 끝난 후, 청와대에서는 차현태가 서지호에게 물었다.
“아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연화장의 일이 큰 것 같습니다. 연화장에서의 녹화영상을 제대로
분석하면, 저의 지시내용을 모두 알겠지만, 지금 현재로는 그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듯합니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물음에 답하였다. 연화장에서 찍힌 영상을 모두 확인한다면, 오해는 풀릴 것이라
말하였지만, 이미 태정민과 추선우가 해당 영상을 모두 보았다. 영상을 본 후, 태정민의 마음이 조금은
돌아섰지만, 여전히 오해는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연화장에서 녹화된 영상은 어느 기관에서 가지고 갔는가?”
곧 차현태가 연화장의 영상에 대해, 어느 기관에서 조사 중인지를 물었다.
“저희 청와대 경호실은 물론, 국정원과 검찰청, 경찰청에서 모두 분석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속
화면이 깨끗하지 못한데다, 총을 쏜 인원들에 대한 신상을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영상이었습니다.”
이미 영상을 접한 서지호가 말했고, 그의 말에 차현태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그런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 냈는데도, 그들의 신상을 밝혀낼 단 하나의 단서도 찾지 못한 것에 답답한 심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자자. 드십시오. 너무 오랜만에 자리를 만들어 죄송합니다.”


한 편. 서울 삼성역 일대, 무역센터 뒤편에 자리한 대형 한정식 식당 안에서는 유독 하나의 방에서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외의 모든 방과 테이블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식당 곳곳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마네킹처럼 서 있었고, 식당
종업원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는 듯, 움직임마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방 안에는 네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평균나이는 약 50 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모두 하나같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60 대 초반의 나이에 비해 잘 관리된 몸 상태에 맞도록 깔끔한 슈트를 입고 지적인 안경까지 착용한,
백발의 사내.
그에 비해 큰 체격을 소유하고, 계량한복을 입은 채, 부채를 들고 앉은 60 대 초반의 사내.
귀 뒤로 목선을 타고 문신이 온 몸을 덮은 듯 보이는 50 대 중반의 사내.
마지막으로 그들을 고루 보며 지금까지 방안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홀로 떠들었던 40 대 중반의 사내.
네 명의 사내만이 이토록 큰 한정식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종업원들은 그 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며, 모두가 식당 입구 쪽에 마련된 대기실에 앉아서 식당 내부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모두 보셨습니까?”
계속하여 홀로 떠들던 사내가 모두를 고루 보며 물었다.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의 물음에 깔끔한 슈트를 입고 앉은 사내가 생선살을 발라 먹으며 물었다.
“네.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그 기자회견을 보고 자칫 웃음보가 터져 실성 할
뻔 하였습니다.”
그는 아침의 기자회견을 떠 올리는 듯, 또 다시 웃음을 보이며 말하였지만,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굳은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웃으십시오. 세상사는 것이 지금까지 다 이렇지 않았습니까? 고작 검찰총장이 떠벌리는 말 한마디에
이토록 긴장들 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웃음소리에 아무도 장단을 맞추지 않자, 그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그들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급변한 채, 이를 꽉 깨문 상태로 말하였고, 그의 표정과 어투에 조금 전까지 인상을
찌푸리던 세 사람이 조금씩 표정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홀로 떠들던 사내가…….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사내 중, 나이와 외모 상으로는 가장
어린 인물이지만, 그의 권력을 보여주는 단 한마디였다. 세 사람은 그의 한마디에 구겨졌던 인상까지
풀며, 그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이번 일은 신중히 대처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들어셨습니까?”
그의 구겨진 표정을 보며 슈트를 입은 사내가 생선살을 발라먹으며 물었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그냥 지나갈 것입니다. 어디 이런 일이 한해, 두해 있었습니까? 그
때마다 그저 몇 놈 쳐내는 것으로 다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이번에는 다를 것 같습니다.”
“…….”
슈트를 입은 사내의 말에 40 대 중반의 사내가 인상을 풀지 않은 채 말하였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계량한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가 물잔에 담긴 물을 마신 뒤 말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아무런 말없이 그를
보았다.
“다르다? 그래…….어느 면에서 다르다고 보십니까?”
40 대 중반의 사내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경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창민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저 외국에서 한국정부를 대변하는 역할만 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가 밝혀낸
우리의 사업.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 오던 사업이지만, 그 누가 캐내려하지도 않았고, 캐낸 들, 돈 몇
푼에 조용히 눈감고 살아왔습니다.”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의 말을 듣고, 모두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고, 생선살을 발라먹던 슈트를 입은
사내의 손동작도 멈추었다.
“이창민은 우리의 사업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막고자 한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로인하여 목이 날아가긴 하였지만, 아직…….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일이 터진 후, 48 시간 안에 해결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 안에서는 우리가 하고자 한 일에 대해 단 한 번의 실패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안일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의 운전기사를 믿었고, 또 일처리를 위해 움직였던
몇 인물들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틀어졌습니다. 이창민의 딸은 살아있고, 이창민이
남겼을지 모르는 그 어떤 증거자료도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이 끝난 후, 모두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었고,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식당 안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아주 미세한 움직임마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제가 아주 오랜만에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라도…….회장님의 심기를
편안하게 해드리고자, 우리가 직접 움직이자는 뜻으로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40 대 중반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고, 다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앞으로 48 시간 안에, 이 일을 종결합시다. 이창민이 남겼을지 모르는 증거자료를 회수하고, 또
살아남은 그의 여식인 이지현의 목을 치고, 또…….”
“말은 쉽습니다.”
사내의 말이 또다시 끊겼다. 이번엔 문신이 온 몸을 덮은 듯 보이는 사내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뭐…….우리의 권력이 한 나라의 정부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게 사실이니 당연히
인정하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야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경우가
없었기에 48 시간 안에 뭐든지 해결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국정원은 물론, 검찰, 경찰,
외교부, 심지어 청와대경호실까지 나섰습니다. 비록 그 모든 곳에 우리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이미
오늘 오전 이창민의 화장이 진행된 수원연화장에서의 영상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미리 손을 써서,
매복한 인원을 다 매수하였고, 그저 열 살의 어린아이 하나 잡는 것이기에, 한 명의 킬러만 투입하면
끝날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보기 좋게 실패하였습니다.”
문신을 한 사내의 말에 모두는 해당 영상을 이미 입수하여본 듯, 잠시 풀었던 인상을 다시 구기고 있었다.
“국정원의 설장호. 청와대 경호실의 태정민.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두 놈은 그냥 평범한 놈으로 봐서는
큰 코 다칩니다. 제대로 확인하고 한 번에 목을 치지 않는 한, 오히려 그들의 목을 치기 위하여 다가섰던
우리 사람들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문신을 한 사내의 말은 무게감이 있었다. 가벼운 어투도 아니었으며, 그의 입에서 나온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모두의 머릿속에 마치 영상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한 놈이 더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가 부채를 펼쳐,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영상을 보셨으니 아실 것입니다. 북정마을과 연화장. 지현을 안고 있는 민간인…….모두 그 놈을 잊고
계시는군요.”
그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설장호와 태정민만이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머릿속에서는 또 한 명이 떠올랐다.

0006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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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추선우였다. 영상에서 보았고, 북정마을에서의 일은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회장님.”
네 명의 사내가 진정 신중한 표정과 어투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방문 앞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그의 물음에 문신을 한 사내가 답했다.
“약 두 시간 전, 경기도 외곽에서 국정원차량을 발견하였다는 보고와 함께, 인원을 보냈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그래. 기억하고말고. 국정원차량이 성남외곽에서 버젓이 돌아다니기에 쫒으라고 했지, 그래…….그에
대한 답이 왔는가?”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의 말에 그는 굳은 표정을 풀며, 그의 말에 답한 뒤, 다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총 11 명이 현장으로 움직였는데, 단 한명도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위치가 포착된 곳으로 사람을 보냈고, 그 답이 왔습니다.”
“답이…….무엇인가?”
“직접 보시겠습니까?”
사내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문신을 한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네주었고, 곧 하나의 영상을 재생하였다.
재생된 영상을 보기 위하여 모두가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고, 모두의
표정이 더욱 더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해당 영상은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으로 태정민을 향하여 총을 쏘는 부분부터, 설장호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신이 보낸 인원이 모조리 죽어나가는 영상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설장호…….”
그리고 그는 이를 꽉 깨문 채 모든 이가 다 어스러질 정도로 설장호의 이름을 불렀다.
“설장호와 함께 모습을 보인 놈들은 국정원소속이 아닙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으로 이름은 지용석.
태정민과 함께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실장인 서지호보다 더 인정받는 두 인물입니다.”
곧 설장호와 함께 움직인 지용석에 대해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통령께서…….제대로 한 번 놀아보시려 하는 듯한데, 그 장단에 맞춰 드려야지요. 모두…….영상을 잘
보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대로 48 시간 안에 이 일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오늘 만남은 이쯤에서 접고, 48 시간 후. 다시 이곳에서 회장님과 함께 만나기로 하겠습니다.”
아직 식탁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40 대 중반의 사내는 영상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그가 일어나자, 나머지 세 사람도 함께 일어섰다.
“우리…….이번엔 내기라는 것을 한 번 해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모두 방을 나서려던 찰라, 문신을 한 사내가 제안을 하였다.
“내기요?”
그의 말에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가 물었다.
“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회장님의 심려를 끼쳐드린 것도 있고하니, 우리 중, 누가 이창민의 모든
것과, 그의 여식,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 지용석의 목을 가져오는지 내기한 번 합시다. 참…….그
민간인도 함께 포함입니다. 그들의 목을 먼저 가져오는 이에게 차기 회장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
세 사람은 그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최고 수장자리를 걸고 이번 일을
마무리하자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회장님의 건강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두고, 각지에 뻗어있는 우리 조직의
수뇌부들이 차기 회장에 대해 거론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니, 뭐…….제안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 하군요.
모두 이의가 없다면, 그 제안…….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0 대 중반의 사내가 답을 내렸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의 어떤 말없이, 식당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그들이 나서자, 비로소 식당 안에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애들을 풀어라.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 기관의 수장들 목은 칠 수 없으니, 그들의 팔, 다리 역할을 하는


모두를 모조리 친다. 설장호를 중심으로 태정민과 지용석, 검찰청의 강서진과 경찰청의 박태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현을 안고 뛰는 민간인 추선우…….시간은 48 시간을 주겠다. 그 시간 안에 답을
가져오너라.”
“네. 회장님.”
식당을 벗어나자마자, 가장먼저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은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였다. 그의 이름은
최기수다. 그는 오랫동안 이 나라에 뿌리를 박고 있는 비밀의 조직에서 정치계에 손을 뻗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지광에게 지원을 보내라. 48 시간이다. 그 안에 적어도 세 놈의 목은 가져오도록 명령 내려라.”


“네. 회장님.”
이어서 움직이는 인물은 우수광이란 인물이었다. 그는 나이에 비해 몸관리가 잘 되어 있고, 깔끔한
슈트를 입고 있었던 사내로, 그 역시 비밀조직에 몸담고 있는 인물이며, 경제계에 손을 뻗어놓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연화장에서 SUV 차량을 타고 나타났던 인물 중, 수장인 이지광을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지금 즉시, 경기도 성남일대를 모조리 뒤진다. 그곳에서 그들을 놓쳤으니, 그 일대에 있는 놈들에게
움직이도록 명령 내려라.”
“네. 회장님.”
다음으로 정구석이 움직였다. 그는 모든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을 듯 보였던 인물로써, 그 역시
비밀조직에서 주먹세계를 거느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펜션으로 보냈던 자신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은
것에 대해, 성남일대의 건달조직들을 움직여, 설장호를 비롯하여 모두를 잡도록 명령 내렸다.

“다들 바삐 움직이겠지. 정치계와 경제계, 그리고 주먹계를 모두 거느리고 있는 우리조직에서 이 같은


작은 소동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토록 발버둥을 치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참 우습군.”
세 사람에 비해, 40 대 중반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던 사내는 의외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의 이름은
고민국으로 그는 한국의 정부기관 및 기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숨어있는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수장이며, 그의 권력 또 한 막강한 편이었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기관에 자신의 수하들이 신분을 숨기며 국가의 일을 하고 있으니, 나머지 세 사람의
권력이 높다고 하여도, 이 젊은 인물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만에 하나 고민국의 눈 밖에 난다면, 자신의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여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어디든, 고민국이 관리하는 수하가 있기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행 급행열차에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 조직을 모체로 두고, 그 안에서 각 분류별로 나뉘어 수장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각기 정치계와 경제계, 그리고 주먹세계와 함께, 각 기관에 수많은 인물을 심어놓고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숨겨진 비밀조직의 일원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각 기관의 수장들이 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했듯이 일부다. 그 기관에 속한
인물 중, 일부가 이들과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었다.

“큰 회장님께 보고는 언제쯤 하실 것입니까?”


고민국은 차량에 편히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있었고, 곧 그의 옆에 앉은 미모의 젊은 여인이 물었다.
“그 늙은이 좀 쉬게 해주자.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 될 텐데, 말년에 이런 일로 조직 내에서 괜한
손가락질 받으면 인생 말년이 너무 초라해 질 것 아닌가.”
“네. 알겠습니다.”
고민국은 여인의 말에 여전히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고, 여인은 별다른 대꾸 없이 바로 답하였다.
“그리고. 오늘 밤. 넌 내 곁에 있거라. 요즘 들어 몸이 뻐근한 것이 마사지 좀 받아야겠다.”
“네. 준비해놓겠습니다.”
곧 고민국은 그녀의 짧은 미니스커트 속으로 손을 살며시 밀어 넣으며 하얀 속살을 더듬거리며 말했고,
그녀는 그의 행동에도 당황하거나, 거부하지 않은 채, 답만 하였다.

한 편. 추선우 일행은 분식집에서 굶주린 배를 채운 후, 다시 번화가로 나왔다. 되도록 식당에서


오래시간을 끌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려 하였지만, 영업집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너무 오래 있는
것은 민폐라 여겼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집도 갈 수 없고, 그런다고 다시 펜션으로 갈 수도 없고, 정말 그 태정민인가


하는 사람은 죽은거아냐? 설장호란 사람도 그렇고 말이야. 버젓이 네 연락처를 두 사람 다 알고 있을
텐데,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잖아.”
아주머니가 지현과 함께 화장실에 간 사이, 은주가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의 자리에 앉아있지도 못했겠지.”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짧게나마 직접 경험한 두 사람이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였다.
“그래. 네 말처럼 쉽게 당할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겠지. 하지만…….그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 붙었다면…….그 땐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설 실장이란 사람과 태정민이란 사람도 강하지만,
그들보다 강한 사람은 세상 어딘가에 또 존재 할 테니 말이야.”
너무 비관적인 말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주의 말을 들은 후, 내심 불안한 마음이 추선우의 곁에 맴도는
듯하였다.
자신도 주먹과 주먹간의 격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이길 자신이 있을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숫자도 많았다. 그리고 설장호의 말도 갑자기 떠올랐다.
제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총을 든 자 앞에서는 그 강함이 무색하다고 하였다.
“이동하자. 네 말이 꼭 맞는다고 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진정 네 말처럼 그 사람들이
당했다면, 지금 여기 어딘가에는 지현을 찾는 그들이 있을 것이야.”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직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설장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은, 은주의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인근을 모두 수색하고 있습니다. 곧. 지현양의 위치가 파악될 것입니다.”


곧 펜션을 벗어나 도심으로 내려온 지용석앞으로 먼저 도착하여 인근을 수색하였던 경호실 인원이
다가서며 보고하였다. 그의 보고에 설장호와 태정민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장호는 이미 펜션에서부터 이어진 산책로가 이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보인


번화가에 당황하지 않았지만, 태정민은 물론, 지용석과 경호실 인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빛들이었다.

“잠시…….화장실 좀 다녀와야겠군.”
설장호는 지용석이 듣도록 비교적 큰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공용화장실로 향하였다.
“따라 붙어라.”
그와 태정민이 함께 화장실로 향하자, 지용석이 경호원에게 말했고, 그 즉시 두 명의 경호원이 두 사람과
함께 움직였다.

“똥 싸는 것까지 함께 보고 있을 것인가?”
화장실로 들어선 후, 설장호가 좌변기가 설치된 안으로 들어서자, 한 경호원이 그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 것이 보였고, 설장호는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0006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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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닙니다.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시인가? 아니면 경호인가? 감시라면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고, 경호라면 내가 자네보다 더 뛰어나니
신경 쓰지 말게.”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고, 곧 경호원이 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경호원이 문에서 떨어지는 인기척이 들리자, 설장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위잉~’

지현을 안고 번화가를 벗어나기 시작한 추선우는 곧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 즉시 한
손으로 지현을 안은 후,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자, 은주가 다가서며 그와 함께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지현의 경호는 네 몫이다. 절대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은
북정마을로 보낸다. 그곳에 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한…….너의 뒤에도 항상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문자내용을 모두 읽은 추선우의 눈빛은 의외로 흔들리거나, 놀란 듯 한 눈빛이 아니었다.


“뭐야? 이게 다야? 괜찮냐? 밥은 먹었냐? 어디냐? 다들 살아 있느냐? 뭐 이런 말은 없고, 아주 책임만
잔뜩 떠넘기는 말 같잖아.”
문자 내용을 함께 본 은주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추선우는 문자를 본 뒤, 지금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걱정이 이제야 머릿속에서 떠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비록 설장호와 태정민은 무사하다는 말이 없었지만, 추선우는 문자내용 중, 마지막 구절에 나와 있는
그림자라는 말에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는 설장호가 말한 경호원이었다. 경호원은 언제나 경호대상자의 그림자처럼 지내야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지금 항상 주위에는 그림자가 있다는 말은 자신의 곁에 설장호와 태정민이 붙어 있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가자. 이제부터는 나 혼자 이 녀석을 보호한다.”


추선우는 자신의 품에 안겨 어느새 다시 잠이 든 지현을 더 꼭 안으며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은주와
아주머니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추선우의 말뜻을 달리 해석하였다. 앞으로 혼자 보호한다는 말은, 진정 설장호와 태정민이
그들에게 죽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늦었습니다. 이만 금일의 내용에 대한 보고를 하려합니다.”


주변 일대를 모두 뒤졌다. 하지만 지현을 찾지 못하였고,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지용석은 서지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하여 설장호의 앞에서며 말했다.
“한 가지만 묻자.”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바로 앞으로 서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서지호 실장…….진정 지현을 경호하겠다고 나선 것인가? 아니면 그 역시…….”
“말씀드린 대로 서지호 실장님은 저에게 두 분을 도와 지현을 경호하도록 명령내리셨습니다. 그 외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뜻은. 대통령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태정민은 조금 더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연화장의 영상을 모두 보았기에, 서지호가 이끄는 경호실은
연화장의 사건에 포함된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 그에 대한 확실한 무언가를
원하여 물었다.
“서지호에게 연락하게. 그리고 나 좀 바꿔주게.”
곧 설장호가 지용석을 보며 말했고, 지용석은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서지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받으십시오.”
서지호가 전화를 받은 후, 지용석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설장호에게 건네주었다.
“서지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생각도, 다른 뜻도 없습니다. 처음…….대통령님과 함께 모두가 했던 그 생각과 뜻…….
그대로입니다. 어디서부터 의심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의심은 오로지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과 국정원장…….적어도 이 두 분은 진정으로 설 실장님을 돕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만 명심하십시오. 어떤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권력은…….어쩌면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권력일수도 있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의 짧은 물음에 자신은 물론, 차현태와 국정원장의 뜻까지 함께 말해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처음 의심이 시작된 부분을 다시 떠 올렸다.
연화장에서의 일이 있은 후, 검찰총장이 가장처음 자신을 의심하는 멘트를 날렸다. 그 후부터는 자신이
모두를 의심하였다. 경호실과, 국정원장. 그리고 차현태까지…….이들은 진정 자신을 의심한적이 없지만,
자신을 의심한 검찰총장의 한마디에 의해 이 모두를 먼저 의심하게 된 자신이었다.

-연화장의 영상. 자세히 분석하십시오. 그럼…….적어도 우리의 의심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펜션에서의 일을 생각하면…….진정 숨어있던 그들이 움직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용석의 부탁으로
그곳에서 죽은 인물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국정원소속이었던 것을 확인하였고, 총기를 소지한
민간인들도, 그저 평범한 민간인은 아닐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금부터…….진정 그들과 전쟁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우리끼리 하는 집안싸움은 그들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 됩니다.-

서지호는 연화장의 일을 다시 검토하도록 설장호에게 말했다. 그리고 펜션에서의 일을 다시 떠 올렸다.


그의 말처럼 펜션으로 찾아온 이들은 국정원소속이라 밝혀졌지만, 자신은 모르는 인물이었다. 즉.
국정원장이 아니면, 누군가가 국정원내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을 움직이도록 명령내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자네의 말대로 연화장의 일은 검토해보겠네. 그리고 대통령님…….옆에 계신가?”
설장호는 서지호가 차현태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물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서지호의 말이 끝난 후, 곧 차현태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말하게.-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지현양을 위한 일이며, 또 한 이창민이 남겨놓은 자료를 찾기 위함입니다.
어디서 어떤 놈이, 어떤 방식으로 다가서는지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신중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원은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그 지원은
언제까지나 그 놈들을 잡기 위한 지원이지, 지현을 돕는 지원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지원의
경호는 추선우에게 모두 맡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그 놈들 목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모조리 다…
….모조리…….쳐 내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와 통화중, 꽉 다문 이가 으스러질 정도로 격하게 말했다. 그 누가 대통령과 통화하며
그런 어투로 통화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랬다. 그리고 차현태는 그의 어투를
이해하였다. 상대가 누구든…….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설장호의 의지가 보이는 어투였기
때문이었다.
-몸조심하게. 우리 또 한, 그들에 대해 찾아낸다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뿌리까지 모조리 다
파헤쳐 낼 것이네. 그러니…….그들을 응징할 자네와 태정민…….그리고 추선우는 꼭 버티고 있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럼…….다음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는 지용석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고, 곧 태정민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지용석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어떤 말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답하였고, 곧 지용석의 앞으로 설장호가 다가섰다.
“일단 자네들은 따로 움직이게. 나와 태팀장도 따로 할 일이 있네. 이 말은 대통령께서 직접 하신 말이니,
이제부터 굳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아도 되네. 하지만 정 믿지 못한다면 지금 바로 서지호에게
전화하여 확인해보게나.”
설장호는 지용석에게 말한 뒤, 태정민의 곁으로 다시 움직였고, 곧 그와 함께 화려한 불빛들이
반짝거리는 번화가로 들어섰다.

“뒤…….쫒을까요?”
두 사람이 번화가로 들어서자, 경호실 인원이 지용석에게 물었다.
“아니…….쫒지 않는다. 저 사람들의 위치를 알고자 한다면, 바로 알 수 있겠지. 지금 즉시. 오늘 하루
…….설장호실장과 태정민팀장의 전화기 발신 및 수신추적을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뒤를 쫒겠다는 경호실 인원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 곧 해당 대원에게 두 사람이 오늘 하루
통화한 내용을 모두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지용석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경호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직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용석은 보고 있었고, 그 두 사람을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거야?”


한 편. 성남을 벗어난 추선우 일행은 다시 북정마을로 향하는 듯하였고, 그로인하여 은주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제…….아주머니와 넌 빠져.”
“뭐? 야! 너 말이 그게 뭐야? 지금 우리에게 저 집을 다시 들어가라는 거야? 안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고,
또 그 놈들이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놈들이 들이닥치면, 그 땐…….그 땐
어찌하라고!”
은주는 추선우의 말이 어이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곳을 서둘러 벗어나기 위하여 경호까지 받으며
벗어났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원위치가 되는 것에 어이없어하는 은주였다.
“엄마! 어딜 올라가?”
하지만 아주머니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내용은 중요치 않았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도중에,
아주머니는 북정마을의 초입부분으로 벌써 발을 들이고 있었고, 그녀의 행동에 은주가 소리쳤다.
“그래. 네 말처럼 그들이 이곳을 알고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대로 계속 떠돌아다닌다고 안전하지
않아. 펜션에서도 그렇고…….그리고 아주머니…….나이가 드셔서 힘들어 하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곳은 너무 위험해. 위험해서…….”
추선우가 아주머니를 보며 말하였지만, 은주는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떠돌아다니며 힘든 것이 더 나은
편이라고 말하려던 찰라, 추선우는 손가락으로 북정마을 위쪽을 가리켰다.

“응?”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북정마을 꼭대기인 자신의 집이 보였고, 비록 개미처럼 작아 보이지만, 몇 인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0006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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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아직 그 놈들이 있잖아!”
은주는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추선우는 너무나 태연한 척, 그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아닐 거야.”
“그걸 어찌 알아? 그들인지 아닌지를 어찌 아냐고?”
“만약…….그들이라면 저렇게 대놓고 움직일까? 절대 아니지. 그들은 숨어있어야하니까. 지금 저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설장호 실장이 배치해둔 사람일거야. 너와 아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야.”
은주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위를 향해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대체 무엇을 보고 확신하는지 모르지만, 추선우는 저들이 설장호의 사람일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가봐…….아주머니께 너무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제…….편히
계시도록 하자.”
은주는 이어지는 추선우의 말에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진정 추선우의 말처럼 지친 하루를 보낸 듯,
하루사이에 너무나 늙어버린 듯 보였다.
“확실해?”
은주는 다시 물었다.
“가봐. 가면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알거야.”
추선우가 다시 말했고, 은주는 또 다시 위를 향해 보았다.
“그럼. 너도 함께 가. 그래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난 못가. 지현이도 못가.”
“그럼 나도 안가! 대체 뭘 믿고…….”
“날 믿어. 넌…….나를 믿을 수 있잖아.”
은주가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추선우의 말에 은주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난…….지현을 데리고 따로 움직일 거야. 그리고 이건 누군가를 믿기에 내린 결정이야. 너도 안전하고,
아주머니도 안전하며, 지현이도 안전할 수 있는 길. 그 길을 택하고 있는 거야.”
은주는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것으로부터 믿음이 갑자기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추선우는 의심이 가득했던 오늘 하루와는 달리, 모든 것을 믿고 있는 눈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믿음은 식사를 마친 후, 설장호가 보낸 휴대전화 내용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이미 북정마을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두었다는 내용을 추선우에게 알려주었었다. 더 이상, 이
위험에서부터, 집주인 아주머니와 은주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을 미리 마련해 두었었고,
추선우는 그의 뜻에 맞게, 두 사람을 다시 북정마을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지현이는…….지현이도…….”
“아니. 말했잖아. 나와 지현이는 안 돼. 그들의 목표는 너와 아주머니가 아닌 지현이야. 지현이와 함께
있다면 두 사람도 그들의 타깃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러니…….이 모든 것이 정리될 때까지…….그
때까지만 지현이를 잠시 잊고 있어.”
은주는 잠이 든 지현을 보았다.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미 지현에
대해 감정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부모를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지현을 보는 은주의 눈빛은 추선우를 향해 보던 눈빛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올라가. 시간이 오래 지체될수록, 나와 지현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시간이 줄어든다.”
그 말에 은주는 흔들거리는 눈동자를 멈추고, 추선우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없이 있었고, 곧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나중에 만나면 내가 소주한 잔 살게.”
“그래…….”
은주는 추선우를 안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녀의 말에 추선우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곧 은주는 주저앉아 있는 아주머니 곁으로 이동하였고,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킨 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북정마을의 꼭대기에 자리한 자신의 집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도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서 잠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북정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입니다. 그가 북정마을에 왔습니다.”


그리고 검은색 SUV 차량 안에서 한 사내가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우리가 지원하는 인물이다. 지켜만 본다. 다른 의문 상황은 없는가?”
그리고 그의 전화를 받은 인물은 청와대 경호실장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자신의 경호원인물에게 추선우를
지원한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설장호와 태정민이 서지호를 의심하고 있는 부분과는 전혀 다른 그의
말이었다.
“네. 없습니다. 국정원소속 인원이 두 모녀의 집을 경계하고 있고, 그 외에 다른 움직임을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알았다. 절대 국정원 소속 인원들과 마찰을 일으키지마라. 비록 그들이 설실장의 식구라고 하여도,
아직은 누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팀은 추선우의 곁에 붙여둔다. 나머지는
그대로 잠복한다.”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으며, 서지호의 생각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순간이 되었다. 이미 경호원들이
북정마을 인근에 배치되어 있었고, 지금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들의 힘만으로 그리 찾아 헤매던
추선우를 바로 잡을 수 있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그의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였고, 오로지 뒤를 따라 그림자처럼 붙도록 하였다.

은주는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말처럼 그녀의 집주위를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설장호의
사람들이었다. 설장호는 국정원내에서 자신의 비서에게 북정마을 경계를 맡도록 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은주와 아주머니에게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말을 남겼었다.

은주는 북정마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추선우 홀로 선택했던 일이지만, 도움을 주고 싶었던 두 모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 홀로 선택한 일에 대해 홀로 책임을 지려는 그였고, 은주는 마음 한 편에 괜한
통증이 일고 있는 듯하였다.

“앞으로 진정, 지현의 경호는 추선우에게 모두 맡기실 것입니까?”


같은 시각. 지용석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길에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그것이 지현을 더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어째서 그것이 지현을 더 위한 길입니까? 북정마을. 연화장, 그리고 펜션. 모두 보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물, 불 가리지 않습니다. 이창민에 관한 것이 지현에게도 남아 있을 것을 우려하여 지현의 목을
노리고 있는데, 어째서…….”
“정민아.”
태정민은 진정 설장호의 결정을 믿을 수 없기에 다시 한 번 그의 생각을 듣고자 물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하였고, 그로인하여 다시 한 번 소리쳐 물으려 할 때, 설장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처음…….우리가 추선우를 보았을 때, 그 때를 기억하고 있어?”
“네…….당연히 잊을 수 없습니다. 추선우가 실장님은 물론, 저와 검찰, 경찰까지 모두 농락하고
따돌렸지 않습니까?”
“그래. 맞아. 추선우는 민간인이지만, 보통 놈이 아니다. 믿어라. 그는 충분히 지현을 경호할 수 있는
놈이다.”
“그 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총 든 놈이 있지 않습니까? 그 때 우리는 총을 쏘지 않았지만, 지금 이놈들은
총을 마치 주먹질보다 더 쉽게 사용합니다. 이런 와중에…….”
“그래서 우리가 추선우의 그림자가 되려는 것이다. 지현의 그림자가 추선우고, 우린 추선우의 그림자가
된다. 그래서 지현을 찾아드는 그 불나방들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뒷목을 내려친다.
그래야…….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며, 그 놈들을 잡아낼 수 있다.”
태정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을 생각하였다. 북정마을과 연화장. 그리고 펜션. 세
곳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모두 인명피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세 곳의 공통점은 모두 준비된 상태에
있던 그들에게 제대로 뒷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들을 뒤에서 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무엇으로 칠 생각이십니까? 우리에게 이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인력으로…….”
“서지호.”
“경호 실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아직 확신은 없지만, 우린 서지호는 물론, 대통령도 이용한다. 그들이 우리를 믿고 지원한다고
하였으니, 그 믿음을 이용해야지…….”
“…….”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연화장의 내용이 녹화되었던 영상이 갑자기 떠올랐다.
“혹시…….연화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녹화된 영상을 보셨습니까?”
태정민은 추선우와 함께 확인하였던 영상에 대해 그에게 말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네, 가지고 있는가?”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은 차량을 한 쪽으로 비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받아둔 영상을
재생하여 그에게 보여주었다.
“서지호실장…….이 영상을 보시면 실장님은 진정 연화장 사건에서 우리를 지원하고자, 경호실 인원을
동원하였다는 것이 보입니다.”
설장호도 그 영상을 이제야 보게 되었고, 서지호의 행동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진정 서지호는 모든 것의 의심속에서도 굳굳하게 설장호를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지호를 만나봐야겠다.”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태정민은 펜션에서 진작 이 영상을 설장호에게 보였다면, 그 자리에서 다른
결정이 나왔을 것이라 여겼다. 서지호의 명령으로 지용석이 투입되었고, 그와 함께 온 경호실 인원을
움직여, 다시 지현의 곁에서 추선우를 도와 경호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의 계획은 진행 중이었다. 지현은 추선우 홀로 경호하며,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위치파악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떼어놓았다.

추선우의 휴대전화도 이미 버려졌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전화기는 설장호가 따로 준비해준 전화기였으며,


그 위치추적은 힘들도록 해 두었다. 또 한, 지현의 목걸이에 장착되어 있던 위치추적도 떼어내었지만, 그
추적 장치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실하였다.

“이장구의 휴대전화…….”
갑작스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이장구의 휴대전화가 떠올랐다.
이장구의 휴대전화는 지현의 목걸이에 설치되어 있던 장치의 위치를 추적하였으니, 그의 휴대전화에는
지금 현재 지현의 목걸이에서 분리해 놓은, 위치추적장치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0006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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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구의 휴대전화네…….지현의 목걸이에 장착되어 있던 위치추적장치를 통해 그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이 깔려있지.”
자신의 손에 들린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태정민에게 해당 휴대전화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곧 휴대전화에는 생각대로 지현의 목걸이에서 분리한 장치의 위치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위치는…….”
휴대전화 화면에 위치가 표시되자, 태정민의 눈동자가 떨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북정마을…….”
북정마을이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점차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현재 북정마을에는 은주와 아주머니가 도착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미리 도착해 있던 인물들은 바로 설장호의 사람인 비서이며, 그와 함께 국정원소속
인원들이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젠장…….전혀 다른 곳을 믿고, 믿어야 할 곳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정민이 쓴 소리를 내 뱉었고, 그 순간 곧바로 차량을 급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늦는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늦어.”
설장호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국정원내에서 그 어떤 누구보다 더 믿고 있었던 자신의 비서였다.
하지만 그를 너무 믿은 것이었다. 자신의 사무실에 지현의 목걸이에서 떼어낸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은 비서였다.
하지만 그 장치가 없어졌을 때, 설장호는 비서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외부의 침입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에게 묻기만 하였었다.

“왜…….왜 네가 있는 곳에서 위치확인이 되는 것이냐…….”


설장호는 급히 이동하는 중, 홀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함께 근무하였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고,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비서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공교롭게도 그 비서가 움직인, 북정마을에서 위치 추적 장치가 반응하고 있었고, 정확하게
북정마을을 가리키고 있는 중이었다.
설장호는 마음속과 머릿속이 동시에 복잡해지고 있었다. 태정민의 말처럼, 믿어야 할 곳을 의심하고,
의심을 해 보아야 할 곳은 그저 믿고만 있었던 자신이었고, 또 이로 인하여 인명피해가 일어난다면, 진정
자신의 머릿속을 마치 그들이 다 꿰뚫고 있는 듯 한 느낌마저 들 그였다.
“추선우. 그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선우에게…….”
“아니. 추선우에게 위험을 찾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현을 안고 있는 추선우가 두 모녀를 구하고자
간다면, 오히려 위험 속으로 지현을 안고 뛰어드는 것 밖에 되지 않으며, 자칫…….네 사람 모두 잃게
된다. 다른 방도를…….”
“서지호 실장.”
태정민은 급한 나머지 추선우를 떠 올렸다. 하지만 설장호의 생각은 달랐다. 위험에서 멀어져야 할
추선우를 위험이 있는 곳으로 굳이 찾아가도록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곧
태정민은 서지호를 떠 올렸다.
“해봐야겠군.”
설장호도 서지호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즉시 전화기를 들었다.

“네, 실장님.”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지호는 전화수신음이 한 번도 제대로 울리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사람을 보내주게.”
설장호는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정확한 설명 없이 경호실 인원을 북정마을로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북정마을? 그곳 인근에도 제가 사람은 이미 보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설 실장님의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굳이 서로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북정마을 아래에 잠복 시켜두었습니다. 그런데
…….”
“잘 됐군. 그럼…….지금 즉시 사람을 올려 보내게.”
“네? 그럼 국정원 인원과 마찰이…….”
“정확히…….다시 말하지만 누가, 우리가 찾는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내가
오늘 아침 지현의 목걸이에서 떼어낸 위치 추적 장치를 분실하였고, 그 분실한 위치 추적 장치가 현재
북정마을에 있다.”
“!!!”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목걸이…….내 사무실에서 사라졌네. 그럼…….내가 지금 누굴 의심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네. 내가


지금가고 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연락하는 것이네.”
서지호는 그와 통화 중에, 급히 다른 전화기를 들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지금 즉시…….북정마을로 오른다. 모두 실탄 장전하고 국정원 소속인원을 모두 확인하라.”
-알겠습니다.-
서지호의 명령으로 북정마을 아래에 잠복하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이 모두 실탄을 장전하고
소음기를 장착한 후, 북정마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서지호.”
“네. 실장님.”
서지호가 청와대 경호실 인원에게 명령을 내리는 소리를 들은 후, 설장호가 그를 불렀다.
“의심을 다시 믿음으로 바꿀 수 있도록…….해보세.”
그의 말에 서지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거렸고, 태정민의 표정도 변하였다. 이는 연화장의
영상이 아주 큰 한 몫을 한 것이었다.
그 영상하나로 설장호는 서지호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태정민도 자신의 상관인 서지호에 대한 믿음을
다시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한 밤중의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추선우는 이미 북정마을 벗어났고, 청와대 경호실 인원은 골목, 골목을
돌아 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은주와 아주머니를 안전하게 집안까지 들여보낸 후, 그 일대를 경계서고 있는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모두 검은 밤하늘에서 움직이고 있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 인원들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북정마을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는 시점에 설장호의 비서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네 실장님.”
설장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그가 현재 자신의 명령으로 북정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위치를 물었다.
“북정마을입니다. 어디십니까?”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은 잘 도착하였나?”
설장호는 그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였고, 그의 물음에 답은 하지 않은 채, 은주와 아주머니에 대해 물었다.
“네. 약 30 분전에 도착하여, 휴식중입니다. 그리고 그 일대를 저희 국정원 인원이 경계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선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만이 집으로 왔습니다.”
“추선우와 지현은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
비서는 두 모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말하였고, 곧 추선우에 대해 말하자, 설장호의 답이 곧바로 나왔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디십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니. 네가 올 필요 없다. 지금 내가 북정마을로 가고 있으니 말이야.”
“…….”
또 다시 비서는 말을 이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곧 시선을 북정마을 아래로 내리자, 어둠속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실장님…….”
“왜 그러는가?”
“혹여…….저를 의심하고 계신 것입니까?”
비서는 어둠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몇 인물들이 보이자, 설장호에게 조금은 날카로운 어투로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그냥…….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곳으로 누군가 오르고 있는 듯해서요. 혹시 제가
알지 못하는 인물들을 이곳으로 보내셨나 해서 여쭤 보는 것입니다.”
“…….”
설장호는 비서의 이 말 한마디로 그가 자신과는 다른 배에 올라탔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과 같은 배에 탄 인물이라면,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해서 보낸 인물이 아니라, 지현의 목을
노리고 찾아온 손님이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말을 먼저 하였다. 그 말은 지금 북정마을 꼭대기로 오르고 있는
인물들이 설장호나, 아니면 그와 같은 배에 탄 인물이 보낸 사람들이라 먼저 생각을 한 것이기에,
설장호는 그의 본심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최광민.”
“네. 실장님.”
설장호는 잠시 말을 이어하지 않았고, 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현의 목걸이에 장착되어 있었던 위치 추적 장치…….자네가 가지고 있는가?”
“…….”
최광민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설장호가 이 말을 자신에게 곧바로 물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었다.

“왜…….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장구의 휴대전화. 그 전화기까지는 내 사무실에서 가져가지 못했더군. 그래서 난 그 휴대전호를 들고
있고, 그 휴대전화로 인하여 지금 지현의 목걸이에서 떼어 낸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네.”
최광민은 여전히 어둠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위로 오르고 있는 인원들을 보면서, 곧 꼭대기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무언의 손짓으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집 주위에 있던 약 십여명의 인원들이 모두 하나같이 자신이 소지한 총에 안전장치를 해제한 후,
소음기를 확인하였고, 곧바로 아래를 향해 겨냥하기 시작하였다.
“그 위치…….여기로 표시가 되고 있나보군요?”
최광민은 손짓으로 모든 명령을 다 내린 듯, 다시 설장호와 통화를 이어하였고, 말을 돌려하지 않으며,
침착한 어투로 물었다.

“자네도…….그 비밀조직에 가담한 인물이었나? 이장구를 죽인 것도 자네인가? 그리고 내 방에서 지현의


추적 장치를 가져간 것도 자네인가?”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동안 의문이 있었던 것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자신이 생각한 답과 같을 것이라 여겼다.

“실장님…….그저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바둥바둥 살아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이니, 다른


것도 알아봐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설장호는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답변이지만, 점차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토록 손, 발이 잘 맞았던 인물이었으며, 지금까지 그가 다른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하였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입에서 직접 말을 들었고, 이미 그동안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최광민…….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오십시오. 제가 죽는지, 아니면 설 실장님이 죽는지…….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뚜뚜 뚜뚜’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최광민이 끊은 것이 아니라, 설장호가 먼저 끊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붉어질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꽉 다문 이가 어스러질 정도로 이를 바드득 갈고 있었다.

0006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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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같은 시각.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이 거의 꼭대기 부분에 도착하였고, 그들을 지휘하는 인물이 서지호에게
연락하여 보고하였다.
“신중해라. 그들도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비밀조직에 가담한 놈들이라면,
그들의 손아귀에는 죄 없는 민간인 두 명이 있다.”
“알겠습니다. 신중하게 접근하겠습니다.”
서지호는 아직 최광민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해당 대원은
서지호와 연락을 끊지 않은 채, 경호원들을 이끌고 천천히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고, 그에 맞춰 꼭대기에
있던 최광민의 국정원 대원들의 눈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삼촌. 은주이모와 아주머니는?”


같은 시각. 북정마을을 벗어나, 삼성역 인근까지 온 추선우였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던
지현이 깨면서 주위에 은주와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자 물었다.
“지현이 깼어? 은주이모와 아주머니께서는 집으로 가셨어. 너무 힘드시니까. 아주머니께서는 쉬셔야
하시거든.”
추선우는 지현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지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관계없는 두 사람이 괜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추선우도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마저 곁을 떠나기를
바라지 않고 있는 지현이었다.
“당분간 삼촌하고 서울을 떠나 있을 거야. 지현이의 아버지, 어머니의 일이 모두 정리되고, 또 그런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다 잡히면, 그 때…….다시 오자.”
추선우는 지현에게 숨김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라 말을 돌려 해 줄 수도 있지만, 이미 모든
현실을 다 직시하고 있는 듯 한 지현에게 그런 거짓말은 오히려 더 독이 될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지현이 모자 쓰는 거 좋아해?”
삼성역에 다다르기 전, 추선우는 한 의류상점앞에 멈춰선 후, 지현에게 물었다. 설장호가 처음 자신을
추격할 때, 그가 서울시내에 있는 모든 CCTV 를 이용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로인하여 지금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도 CCTV 를 이용하여 자신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지현에게 모자를 씌울 생각이었고, 또 한 뉴스를 통해 지현을 본 민간인들의 눈도 피할 요량이었다.
“응. 좋아해.”
“그래? 그럼 우리 나란히 모자하나 사서 쓸까?”
추선우는 지현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지현도 그의 미소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현은 추선우가 왜 이런 물음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그저 그의 말에 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상점에서 모자를 산 후, 푹 눌러 쓴 채, 삼성역으로 향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며, 가장처음 자신의 위치가 이장구와 설장호에게 노출되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박상식. 어찌되었나? 국정원대원들은 제압하였나?”


한 편. 약 10 여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경호원들이 북정마을을 진압하기 위하여 올라선다는 보고를
받은 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서지호는 다시 해당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의외군요. 설 실장님이 보낸 사람이라 여겼는데, 서 실장님이 보낸 경호원들이었습니까?”
“!!!”
서지호의 눈동자가 커지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고, 늦은 밤이지만, 그의 옆에 함께 있던 차현태의
눈동자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최광민…….”
“네. 최광민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어찌된 일인가? 왜…….자네가?”
“설장호 실장님과 같은 물음을 하셨는데, 그 답은 설장호 실장님께 직접 들으십시오. 그리고 일을 너무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냥 조용히…….조용히 그 계집만 넘겨주면 될 일을 왜 이리 많은 피해를 만들며
고생하십니까?”
최광민은 자신의 발아래 죽어 있는 경호원들을 하나하나 발로 툭툭 차보며 그와 통화중이었다. 약
십여명이 위로 올랐지만, 모두 최광민의 국정원대원들에게 죽임을 당하 꼴이었다.
최광민은 이미 설장호가 자신의 뜻을 알았으니, 인정사정 볼 것이 없었다. 반면에 서지호의 경호원들은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서지호의 명령으로 먼저 공격을 시도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로인하여 최광민의
국정원 쪽이 더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현을 데리고 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죄 없는 두 모녀의 목이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
최광민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고, 그 순간 서지호와 차현태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사람을 보내게. 그리고 설 실장에게도 알려 서둘라하게. 아니…….설 실장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하겠네.”
차현태가 바삐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책상서랍에서 오래된 전화기를 꺼내들었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각 기관에서 충분히 내용도청을 할 수 있는 휴대전화기였지만, 얼마 전
설장호에게 따로 알려준 전화기는 도청이 어려운 전화기였다.
“네 대통령님.”
설장호는 생각지 못한 차현태의 연락에 당황한 듯 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북정마을로 오르던 경호원들이 모두 당했네.”
“!!!”
역시 설장호에게도 그의 말은 충격이었다.
“약 10 분후면 도착입니다. 제가…….수습하겠습니다.”
“이쪽에서도 사람이 곧 나갈 것이네. 되도록…….더 이상의 인명피해가 없길 바라네. 특히…….민간인의
피해는 더더욱 없어야 함을 명심하게.”
차현태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지금까지 인명피해가 있긴 하였지만, 민간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자칫 두 모녀의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차현태의 손은 점점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픽 픽!’
“!!!”
한 편. 청와대 경호원들을 모두 제압한 후, 그 시신을 한 쪽으로 옮기고 있던 국정원 대원들이
어둠속에서 날아온 총알에 의해 쓰러졌고, 그것을 본 최광민은 곧바로 몸을 낮추어 은주의 집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섰다.
“더 숨어들은 모양이군. 모조리 잡아 족쳐라.”
“네.”
그는 은주의 집으로 향하면서 나머지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국정원소속, 최광민입니다.”
최광민은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힐끗힐끗 보면서 은주의 집 초인종을 계속 누르며 자신의 신분을
말하였다.
“네. 무슨 일이세요?”
집에 도착하여 모처럼 샤워를 한 후, 옷을 입고 나온 은주는 최광민의 목소리를 듣고, 문 앞에 서서
물었다.
“급히…….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지 모르는 놈들이 접근하였습니다. 서둘러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광민은 은주에게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속내는 완벽하게 숨기면서,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은주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일체의 의심 없이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고, 곧바로 잠이 든 아주머니가 있는
방으로 움직이며, 아주머니를 깨웠다.
문이 열리자 최광민은 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잠그고 난 뒤, 창가로 다가서며 아래의 상황을 보았다.
“저 놈은…….”
그리고 아래에서 하나, 둘 죽어나가는 국정원대원들을 보고 있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 올라간다.”
같은 시각. 설장호와 태정민이 북정마을 아래 도착하였다. 설장호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서둘러
위로 오르며 말했고, 그 뒤로 태정민이 따라 올랐다.

‘띠리리리’
북정마을 초입부분에 오르자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찌되었는가? 제압했는가?”
서지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물었다.
“실장님의 생각이 맞은 듯합니다. 최광민이 그 조직에 가담한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 경호실 대원들이
전멸했습니다.”
“!!!”
설장호는 열심히 뛰어올라가던 걸음을 멈추며 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고, 그
옆으로 태정민도 함께 동작을 멈추었다.
설장호는 이미 최광민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을 쉽게
제압할 정도로 최광민이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모두 당한 것인가? 자네의 경호원들이라면…….”
“그 쪽은 우리에게 마음 놓고 총을 쏠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우리 쪽은 확인이 필요치 않았습니까?
그래서…….”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손마저 바르르 한 차례 떨고 있었다. 이 또한 자신의 실수였다.
최광민과 통화를 하였고, 그가 뿌리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서지호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로인하여 서지호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니, 확인을 먼저
하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이지만, 최광민은 달랐다. 이미 자신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다는 것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한 사과는 차후에 하지. 일단 최광민을 먼저 잡는다.”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전화기를 끊었고 곧바로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서지호는 그가 자신에게 할 사과는 설장호의 부하가 자신의 부하직원을 죽인 것에 대한 사과를 생각하였다.
하지만 설장호가 말하는 사과는 자신이 미리 알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사과였다.
“경호실 인원이 모두 당했다. 최광민이 어떤 놈들을 끌어들여 경호실인원을 제압했는지 모르니 신중히
행동한다.”
“네? 경호실이 당했다고요? 정말입니까?”
태정민은 서지호와의 통화내용을 이제야 들었다. 그리고 놀란 눈을 한 채, 물었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한 편. 최광민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은주는 그의 말을 듣고, 아주머니와 함께,
간단하게 짐을 챙겨 나서며 물었다.
“잠시. 대기하겠습니다. 바로 밑에서 그 놈들이 나타났는데, 저희 대원들이 모두 당한 모양입니다. 일단
문을 잠근 상태에서 지원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
아주머니는 너무나 놀라 다시 주저앉았고, 은주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비록 자신들이 선택하여 지현의
곁에 머물기는 하였지만, 그 여파가 굉장히 크게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었다.

00067 경호원 =====================================================================


====
                          
‘딩동’
“!!!”
약 5 분 후, 초인종이 눌려졌고, 세 사람은 놀란 눈으로 문을 향해 보았다. 최광민은 자신의 총에 실탄을
확인하였고, 문을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지원은 언제 오나요? 그리고 그 놈들이…….”


“조용히 하십시오. 밖에 그놈들이 있습니다. 자칫 목소리만으로 그놈들은 목표물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으니, 살고 싶다면 입을 다물고 계십시오.”
최광민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지금 문 앞에 서 있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은주의
목소리에 대해 약간은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하였다.

“어째서…….어째서 네가 여기에 온 것인가?”


최광민은 지금 문 앞에 서 있는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도저히 알지 못한
듯,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딩동. 딩동’
연이어 초인종이 다시 눌려졌고, 그 때마다 은주와 아주머니의 심장소리는 더 커지며 빨라지고 있었다.

“혹시 아주머니나 은주씨 연락처를 받아놓은 것이 있나?”


거의 꼭대기에 다다를 때쯤 설장호가 태정민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연락처를 받은 것은 있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연락처는 강 검사가…….제가
지금 연락해 보겠습니다.”
태정민은 은주의 연락처를 강서진이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즉시 강서진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강서진도 잠이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화수신음이 두 번정도 울리자 곧바로 받았다.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지금 집주인아주머니나 그녀의 딸인 은주씨의 연락처 좀 알려주십시오.”
강서진은 태정민의 물음에 뭔가 일이 꼬인 것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두 사람의 연락처를
태정민에게 알려주었다.
“어딘데?”
“북정마을입니다. 일단 급하니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서진은 태정민에게 위치를 확인받자마자 곧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자신의 뒤로 항상 검찰청 인원이
따라 붙는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태정민의 목소리만으로도, 지금의 상황은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띠리리리’
문 앞을 주시하며 서 있던 최광민의 귀에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더욱 더 매섭게
변하며 문을 주시하였다.

‘띠리리리’
또 다시 울리는 전화벨에 최광민의 날카로운 시선이 두 모녀에게로 돌아서자, 곧바로 은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주씨?”
“누구세요?”
“저. 태정민입니다.”
“!!!”
은주는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받지 않으려 하였지만, 추선우가 어떤 번호로 연락을 다시 할지 모르기에
받았었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이 태정민이라는 말에 놀란 눈을 하였다.
“살아…….계셨어요?”
진정 은주는 태정민이 죽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고, 지금 통화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지금…….국정원소속 인원과 함께 있습니까?”
“네.”
“젠장…….”
“네? 젠장 이라니요? 왜 욕을…….”
“아닙니다. 은주씨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부터 듣기만 하십시오. 혹시…….그 국정원사람이
바로 옆에 있습니까?”
“아니요. 전 따로 방에 있습니다. 지금 문 앞에서 어떤 놈들이 국정원소속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문까지
다가섰는데, 살아남은 국정원 사람이 그 사람을 막고 있어요.”
“!!!”
태정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필시 경호원들은 모두 당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욱 더 놀란 것은 최광민이 오히려 숨어있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몰라요. 그냥 초인종만 누르고 있습니다.”
확인이 가능하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즉시 아주머니와 함께 방에 들어가셔서 나오지 마십시오. 절대…….
국정원소속 인원도 믿지 마시고, 문 앞에 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도 믿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거의 도착하였습니다. 문 앞에 선 인물을 제압하면 그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은주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최광민은 여전히 문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 뒤로
아주머니는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성남의 펜션을 벗어나다, 산책로에서 경험한
총격에 의해 이 모든 상황이 무서워진 것이었다.

“엄마. 엄마.”
은주는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머니를 불렀고, 은주의 목소리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리자, 은주는
손짓으로 오라는 듯 표시하였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몸을 일으킨 후, 은주가 부르는 곳으로 움직였고,
그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서도, 최광민은 문을 주시한 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호실 인원입니다.”
꼭대기에 도착한 후, 태정민의 눈에는 한쪽으로 마치 쓰레기더미처럼 싸여있는 시체들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과 함께 근무한 경호원들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쪽은 국정원인원이다…….젠장. 어떤 놈이기에 국정원과 경호원을 모조리 눕힌 거야…….”
곧이어 설장호는 최광민과 함께 움직였던 국정원인원을 확인하였다. 그들 역시 총상을 입은 후, 모두
죽어 있었다.
한 밤중에 소란이 일고 있지만, 이 모든 총격은 소음기가 장착된 탓에, 고요한 밤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았다. 그로인하여 마을 주민들은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한 채,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띠리리리’
다시 은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태정민인 것을 알고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받았다.
“지금…….제압에 들어갑니다. 절대 문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주머니와 함께, 문을 걸어 잠그고
꼭 숨어계십시오.”
“알겠습니다.”
은주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아주머니와 함께,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 모두 끝났을 것이라 여겼지만, 오히려 더 위급한 상황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삼촌. 이제는 그 나쁜 사람들 따라오지 않아?”


“응. 이제는 따라오지 않아. 만약 따라와도 삼촌이 절대 지현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 마.”
하지만, 북정마을의 상황과는 달리 추선우는 아무런 추격도 받지 않은 채, 어느새 사당역까지 도착하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동하였기에, 만에 하나 CCTV 에 두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고 하여도, 그 순간
곧바로 신원확인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다.

“회장님. 삼성역에서부터, 모자를 눌러쓰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이동하던 두 사람이 사당역에 하차한
모습이 CCTV 에 잡혔습니다. 체격으로 보아, 우리가 찾아야 할 지현과 그녀를 경호한다는 민간인
추선우로 보입니다.”
같은 시각. 정구석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자신의 초호화 오피스텔에서 늦은 시간까지 한가롭게 와인을
마시며 있었고, 그의 옆으로는 세 명의 여인이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정구석의 옆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다가서며, 현재 추선우와 지현으로 보이는 인물을
찾았다는 보고를 하였다.

“백태야?”
“네. 회장님,”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의 이름은 백태였다. 정구석을 보좌하는 인물이며, 그의 경호원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엄청난 거구의 몸이며, 검은 정장이 몸에 딱 붙어, 마치 다 찢어질 듯 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이창민이…….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냈는지 아느냐?”
정구석은 대뜸 백태에게 이창민에 관한 말을 꺼내 물었다. 주어진 48 시간 안에 지현을 잡아,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었고, 그 타깃이 눈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그에게 하였다.
“아직…….정확한 내막을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다.”
“네? 하오시면…….”
백태는 정구석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물음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조직은 거대하다. 그리고 국제적이다. 이 땅에 눈 먼 땅과 돈. 심지어 권력까지…….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우린 그 눈먼 땅과 돈을 챙기고, 또 권력을 챙기며, 오랫동안 버텨왔고, 아무런 탈도 없었다.
만에 하나 우리 일을 알아낸 놈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 몇 푼이면 모두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처음으로 이 썩어빠진 나라에서 대통령이 나섰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각 국가기관의 수장들
중, 우리의 사람이 없다. 고작 그들의 밑바닥에서 발이나 닦아주는 놈들이 몇 있을 뿐이다.”
정구석은 여인이 따른 한잔의 와인을 마시며 말했고, 곧 다른 한 여인이 안주를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대통령만 남겨두고 모조리 목을 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이 있은 후, 백태가 선글라스 속 눈동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모조리 목을 치면 되지. 그러면 아주 쉽게 해결되지.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예전 같지 않다. 그
놈들의 목을 친다는 것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이번에는 누구하나 제대로
죽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구석은 삼성동 한식당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비록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주 복잡한 계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사당역에서 지현으로 보이는 아이가 포착되었다고?”


“네.”
정구석은 잠시 동안 자신의 주위에 있던 여인의 살결을 만지고 있었고, 곧 백태가 처음 말한 부분을 다시
물었다.
“이지광을 보내라. 그리고 지현을 경호한다는 그 민간인에게 세상에서 함부로 참견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꼭 느끼도록 해주어라.”
“알겠습니다.”
정구석은 백태에게 명령을 내렸고, 백태는 그 즉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곳을 벗어났다.

정구석은 자신의 곁에 있는 여인의 살결을 만지면서도,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화장에서의 일을 대갚아 주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그 빚을 갚을 시간이
빨리 찾아왔군요.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백태는 곧바로 이지광에게 연락하였고, 이지광은 연화장에서 진 빚을 갚고자 그 즉시 사당역으로 움직였다.

이지광은 연화장에서 자신의 부하 세 명을 잃었던, SUV 차량에서 내렸던 인물이었다.

0006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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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즉시 경호원 인원을 북정마을로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한 편. 서지호는 경호실 인원을 북정마을로 더 보낼 것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이미 최광민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으니, 지금 그 현장에는 설장호와 태정민만이 그들과 교전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미 최광민의 국정원소속 인원도 의문의 인물에게 모두 살해당하였고, 그 속으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움직이고 있는 시점이었다.
“더…….이상의 피해를 막고자 한다면 보내야겠지. 하지만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니네. 잠시…….설
실장의 연락을 기다리세.”
차현태는, 마음 같아서는 서지호의 말처럼 더 많은 인력을 보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내릴 문제가 아니었다. 청와대의 경호원도 정해진 인원이 있으며, 이미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딩동’
한 편. 북정마을 꼭대기에서는 또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있었고, 최광민은 손에 쥔 권총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위하여 첫 발을 올려놓았다.
“…….”
계단 아래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은주의 집 문 앞에 서 있던 인물은 매서운 눈빛으로 아래를 본 뒤,
다시 위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없는데요.”
곧 태정민과 설장호가 은주의 집 앞에 섰고, 태정민이 집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설장호에게
말했다.
“넌…….문 앞을 지킨다.”
“실장님은요?”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했으니, 필시 그 누군가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래에서
올라왔고, 우리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는 위로 올랐을 것이지. 넌 여기서 대기한다.”
“위험합니다. 제가 오르겠습니다.”
“아니. 내가 위험하면 너도 위험해.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강하고…….만에 하나 일이 잘 못되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았으니, 젊은 네가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집안에 있는 최광민도 그리 만만찮은 놈이다. 비록 실전에 투입된 놈은
아니지만, 잔머리로 지금까지 나를 속여 왔던 놈이야. 만약 그 놈과 맞닥들인다면, 내 대신…….죽빵 한
방만 제대로 날려줘라.”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농담이 섞인 진담을 말했고, 태정민은 그의 뜻대로
자신이 문 앞을 지키며, 최광민에게 제대로 된 죽빵 한 방을 먹이고자 생각하였다.
이내 설장호는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은 은주의 집 앞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내부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곧 연립 옥상으로 올라섰다. 그곳에는 추선우가 살고 있는 옥탑방이 있었고, 옥상 곳곳에는
사용하지 않는 각종 가재도구나, 전자제품들이 싸여 있었다.

“두 번은…….너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설장호.”


“!!!”
옥상으로 오른 뒤, 총을 겨냥하여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던 설장호에게 어둠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였다. 그가 최광민의 국정원대원들을 모조리 죽이고, 은주의 집 앞에서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누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최광민은 그의 무서움을 알기에, 그를 본 후, 스스로 몸을 숨기며, 떨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가…….여기에는…….”
“위치추적…….내가 처음 이곳 북정마을에 모습을 보였을 때,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여기로 다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알 텐데.”
그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현재 지현의 목걸이에 탑재되어 있던 추적 장치의 위치가 여기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석강수도 그 추적 장치가 나타내는 표시를 보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 추적 장치가 지현의 목걸이에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그 장치를
최광민이 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로인하여 이곳에 지현이 있고, 자신이 목표로 하였던
추선우도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이곳으로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헛수고 한 것이다. 석강수.”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어둠속에서 무방비상태로 서 있는 석강수를 보며 말했다.
“헛수고? 지금 지현의 위치가 여기로 표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헛수고라…….그렇다면 그 추선우가
지현의 경호를 포기한 것인가?”
“아니. 추선우는 지현을 경호하고 있다. 하지만 지현이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지.”
“무슨 말인가? 지현이 여기에 없다? 그럼 신호가 잘 못되었다는 말인가?”
석강수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무방비상태로 서 있던 자세를 풀고, 어둠속에서 점차 밝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매서운 눈빛으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신호는 잘 못 된 것이 없다. 그 신호는 지금…….최광민이 내 보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최광민? 너의 비서 말인가? 그 놈이 왜?…….설마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착각하지마라. 너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그 최광민이 감히 나의 등에 비수를 꽂았고,
나를 엿 먹이고 있다는 것뿐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석강수는 이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하였다. 결코 웃음이 나올 타이밍이 아니었지만, 그는 조용한
어둠속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를 내었고, 그의 웃음소리는 문 앞에 선 태정민과, 은주의 집안에
있는 최광민의 귀에도 들렸다.
“이래저래…….뒤통수 잘 맞고 다니는구나. 그러기에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이야.
그 놈들…….대체 어찌 생겨먹은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많은 곳에 줄기를 뻗어놓았다. 심지어…….
네 와이프도 그들의 손에 넘어갔는지 모르지. 하하하”
석강수는 또 다시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설장호의 손에 들린 총이 미세한 흔들림을
보였고,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손가락은 여러 차례 까닥거리고 있었다.
“장호야.”
석강수는 천천히 설장호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설장호의 손에 들린 총의
흔들림이 멈추었고, 방아쇠에 올려진 손의 흔들림도 멈추었다.
“내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인생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정의? 국정원에서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모두가 정의로운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너부터 생각해봐라. 넌…….정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보는가? 지금 네가 지현이라는 그 꼬마아이를 위하여 설치고 다니는 것이 정의로 인하여 자발적인
움직임이라 자부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석강수는 어느새 설장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만에 하나 설장호가 방아쇠를 당긴다면, 그는 꼼짝없이
머리통이나 심장을 그에게 내어주어야 할 거리였다.
하지만 떨고 있지 않았고, 목소리에도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왜 킬러의 길을 택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설장호는 자신의 앞에 선 그의 물음에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었다. 유능한 인재였던 석강수. 국정원에서도
언제나 대우받던 그가 살인누명을 쓰고, 쫓겨났다. 그리고 어느 날 킬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창민을
죽였다. 그가 그리 변화된 이유. 그 이유를 지금 말하려는 듯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죽여야 할 놈이 너무 많았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겠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몰려 그들에 의해 쫓겨나듯 물러난 사람도 있겠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난 나를 몰아낸 놈. 그리고 그에 일조 한 놈들. 말 한마디로 사람 목을 쳐
내는 것이 너무나 쉽다고 여기는 놈들. 그놈들에게 자신들 목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맛보게 해주려 이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뿐이었다. 죽여야 될 놈을 죽였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
그 자리에 또 같은 놈이 앉았기 때문이지. 죽여도, 죽여도 또 그런 놈이 앉는다. 그게 이 바닥이다.”
설장호의 눈동자는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말은 이미 자신도 다 이해하며, 알고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직접 겪었다. 검찰총장의 단 한마디에 자신의 입지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을
경험하였다. 비록 차현태나 국정원장, 그리고 서지호와 같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의 말처럼, 누군가가 작정하고 몰아내고자 한다면, 그가 대통령이라도 그 자리만을 유지한
채,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나에게 이창민의 죽인 죗값을 받겠다면, 그 시일은 연기해라. 이장구가 죽으면서 내가 굳이 그
꼬맹이까지 죽여야 할 명분은 사라졌다. 하지만 추선우라는 놈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아직…….
내가 죽여야 할 놈이 더 남아 있으니까 말이야.”
석강수는 이제 설장호의 뒤쪽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총구는 그의 움직임에 맞춰 돌아서지
않았다.
“죽여야 할 놈…….그 놈들 속에 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글쎄. 누굴까? 하지만 걱정마라, 지현이라는 꼬마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태정민도 아니며, 강서진도
아니다. 그렇다고 추선우도 아니다. 난…….단지…….”
‘쾅!’
“!!!”
석강수의 말이 끝나기 전, 옥상 바로 아래에서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설장호는 빠르게
움직이며, 옥상난관에서 아래를 향해 보았다.
“최광민…….”
최광민이었다. 그는 은주의 집 거실 유리창을 깨고 2 층에서 뛰어내려 빠르게 북정마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곧바로 태정민이 연립 앞쪽으로 뛰어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로 갔습니까!”
태정민이 위로 올려다보자, 설장호가 난관에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일단. 아주머니와 은주씨의 안부부터 확인한다.”
태정민은 최광민의 뒤를 쫒을 생각이었지만,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서둘러 계단으로 올라서며,
은주에게 전화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의 전화를 받은 은주는 장롱 속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였고, 거실
유리창이 박살난 것을 보며 놀란 눈을 한 채, 문을 열어주었다.
“괜찮으십니까?”
태정민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주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가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보며 살며시
안아주었다.

00069 경호원 =====================================================================


====
                          
“안전한가?”
곧 옥상에서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깨진 유리창으로 머리를 내밀며 안전하다는 답을 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다시 몸을 돌리며 뒤를 보았다. 하지만 이미 석강수는 없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채, 그를 또 다시 보내주게 된 것이었다.
석강수의 말처럼 이창민의 죽인 인물은 바로 석강수다. 충분히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명분은 있지만,
설장호는 그에게 겨누어진 총구에서 결국 총알을 내뿜지 않았고, 지난 북정마을에서처럼, 그를 보내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설장호는 어두운 옥상 주위를 둘러보았고, 휑한 바람만이 불고 있는 옥상을 본 뒤, 곧. 옥상에서 내려와


은주의 집으로 들어섰고, 놀란 아주머니와 함께, 주저앉아 있는 은주를 보며 서 있었다.
“일단. 이곳을 정리한다. 서지호에게 연락하여 이곳을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부탁해라.”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검찰 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인근 시체들을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 앞에서 강서진이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그녀는 태정민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북정마을로 향하였고, 예상대로 검찰 쪽 인물들이 그녀의 뒤를 쫒아오는 바람에,
북정마을의 시체더미를 보게 된 것이었다.

“네가 여길 왜 와?”
설장호는 그녀의 출현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가 움직였으니 당연히 검찰 쪽에서 따라붙었을
것이며, 또 한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다시 검찰총장의 눈과 귀에 고스란히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리가 우선이죠. 그 후의 일은 그 후에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유리창이 깨지는
소음으로 인하여, 불이 밝혀진 몇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에 시체더미가
보인다면…….그게 더 큰 일로 번지지 않을까요?”
강서진의 말에 설장호는 그녀를 잠시 동안 보고 있었다. 언제나 서툴며, 뭔가 부족한 듯 보였던 그녀지만,
가끔은 자신보다 더 빠른 결정을 내리며, 움직이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한 그였다.
“이래저래 검찰총장에게 제대로 뒷목 잡힌 꼴이 되었군.”
설장호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에는 만족하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총장에게
꼬투리를 잡힌 꼴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두 사람이 이 모두를 다 죽였을 리는 없을 테고, 누가 또 있었습니까?”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후, 아주머니는 은주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었고, 거실에서 깨진 유리
창문을 보며 강서진이 물었다.
“말하자면 복잡하다. 일단 자네는 저 두 사람을 데리고 여길 벗어나게. 나와 태정민은 지금 즉시
대통령님을 만나봐야겠어.”
“지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아십니까?”
강서진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시계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 자정은 넘지 않았지만, 곧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이 울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상관없다. 지금부터라도 흩어진 모든 것을 다시 조합해 봐야한다. 최광민이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을 노출시켰다는 것은 그 놈을 조종한 실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들과 한 배를 탄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의 표정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라고 해
봐야, 석강수나 이지광이었다. 하지만 연화장에서 있었던 사건을 시작으로,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강서진은 설장호의 말대로 두 사람을 데리고 다시 북정마을을 벗어났다. 자칫 설장호의 또 다른


판단오류가 일어날 뻔 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석강수가 아니었다면, 최광민에게 이 두 모녀의 목숨이
날아갔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석강수의 등장으로 다행히 목숨은 구할 수 있었고, 두 번 다시
곤욕에 빠뜨리지 않기 위하여 강서진에게 직접 부탁한 것이었다.

“설 실장과 태정민 팀장. 지금 청와대로 오고 있습니다.”


“그래? 북정마을을 진압한 것인가? 두 모녀는? 죄 없는 민간인은 무사한가?”
“네. 조금 전 강서진 검사가 현장을 찾았고, 강서진검사의 뒤를 쫒아온, 검찰청 인원에 의하여 현장도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모녀는 강서진검사와 함께 북정마을을 벗어났습니다.”
한 편. 설장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서지호는 곧바로 그 내용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사건 발생 이틀
후까지 함께 하였지만, 연화장의 사건 이후, 입지가 곤란해진 설장호를 다시 본다는 것에 차현태의
마음은 무거웠다.

같은 시각. 추선우는 사당역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CCTV 를 속이며,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현아. 졸리지 않아?”


“괜찮아. 아까 잠을 잤더니 지금은 졸리지 않아.”
열 살 아이에게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낮에 잠을 청한 탓에, 늦은
시간이지만, 말똥말똥 눈을 뜨고, 추선우의 물음에 답하였다.
정확히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자칫 어린 지현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하여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너의 얼굴을 보니 더욱 더 반갑구나…….”
그리고 늦은 시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사당역에서 정구석의 경호원인 백태의 명령으로
추선우를 쫒기 시작한 이지광의 눈에 추선우의 모습이 잡히자, 그는 입 꼬리를 올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설장호와 태정민이 청와대로 향했다? 그리고 북정마을에는 지현을 데리고 있는 추선우가 아예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 편. 북정마을을 빠져나온 최광민은 그 즉시 고민국에게 북정마을에서 있었던 내용을 알렸다. 고민국은
뿌리 조직의 일원으로 국가의 각 기관에 파고들은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책임자였고, 국정원에서 설장호의
비서로 숨어 지냈던 최광민에게 지현을 잡도록 명령 내렸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나같이…….쓸모없는 놈들뿐이군. 이미 한 차례 폭풍을 몰고 지나쳐갔으니, 쑥대밭이 된 북정마을에
우리의 타깃이 다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고. 설장호와 태정민이 청와대로 갔다면, 차대통령이 또
다른 결단을 내릴 것인데…….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군.”
고민국은 새벽으로 넘어선 시간에 때 아닌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삼성역 인근 한식당에서 자신 있게
내기에 동참하였고, 48 시간 안에 정해진 타깃의 목을 누가 더 많이 가져오느냐에 따라 차기 회장 자리에
앉는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시점이지만, 고민국에게는 모든 것이 다시 초기화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일단. 몸을 숨기고 대기하라. 설장호가 너의 신분을 알았으니, 너의 목은 설장호에게 저당 잡힌 상황이
된다. 다른 놈을 움직이게 할 테니, 당분간 숨어있어.”
“알겠습니다.”
최광민은 고민국의 명령을 받은 후, 그 즉시 북정마을을 더 멀리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낭패군. 오, 갈 곳 없다는 그 추선우인가 하는 놈이 다시 북정마을로 올 것이라 여겼는데, 결국 두


모녀만 보내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의외로 잔머리 꽤나 굴리는 놈이었군.”
고민국은 정구석과는 달리, 아직 추선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북정마을에서 기다리면
자연스레 모두가 올 것이라 여겼지만, 북정마을로 돌아온 사람은 두 모녀뿐이었고, 그마저도 잡는 것에
실패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민국은 그 현장에 석강수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최광민이 석강수를 본 것에
대하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석강수로 인하여 일을 그르친 것이라면, 자신의 목은
바로 날아갈 것이기에, 최광민은 그에게 석강수의 등장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설 실장. 자네가 지금 한 말에는 많은 위험이 함께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 편. 청와대에 도착하여, 차현태와 만난 설장호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였던 모든 것을 다시
말해주었다.
오해에서 시작된 불신으로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쳐온 3 일이었고, 그 3 일안에 숨겨져있었던 그들은 편히
일을 진행하여 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에 차현태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미 연화장은 물론, 펜션에서도 모습을 보였던 인물들 중,
일부는 국정원소속 인원들과,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이었다. 또 한 조금 전 북정마을에서도 오랫동안
설장호와 함께 근무하였던 최광민이 이미 그들과 함께 움직였던 인물임이 밝혀지면서, 국가기관에 꽤 많은
그들 조직원이 숨 쉬고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알아내어 색출해 낼 방법은 있는가?”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밝히지 않는 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마땅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이창민이 뭔가를 알아냈고, 그로인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너무나 큰 덩어리가 숨어있었고, 그 덩어리가 이제 통째로 떨어져 나올
상황이었다.
“국정원과 외교부, 그리고 검찰과 경찰 쪽에도 이미 그들과 한 배를 탄 사람들이 있다는 말인데…….그
수장이라고 그들과 한 배를 타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창민대사의 일로 인하여 지금 국가의 중요 기관
수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그 맞댄 머리 중, 누군가의 머리가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차현태의 말에 설장호가 답하였고, 그의 답으로 인하여, 차현태는 더욱 더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누구를 의심해야 하며, 또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도통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직접 묻는다고 하여, 사실대로 말할 인물은 없을 것이었다.
“일단. 각 수장들을 내일 아침 일찍 만나겠네. 자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말고, 태정민팀장도 참석치
말게, 나와 서지호 실장이 그들을 만날 것이며, 그들의 의중을 들어보겠네.”
한 편으로는 차현태의 생각이 더 올바른 판단이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설장호가
그 자리에 낀다면,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일이었다.

“지현은…….추선우가 계속 경호중인가?”
잠시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던 차현태가 물었다.

0007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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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북정마을은 물론, 되도록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도록 말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북정마을 앞에서 추선우가 목격된 후, 저희 경호원 한 팀을 붙여두었습니다.”
차현태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하였고, 곧바로 서지호가 이어서 답하였다. 서지호는 북정마을을 찾았던
추선우를 목격한 경호원의 보고를 받은 후, 그에게 한 팀을 붙여놓았었다.
“그나저나, 자네의 생각처럼 추선우에게 따로 움직이도록 한 것은 잘 한 것인지 모르겠군. 지금처럼 여러
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만에 하나 우리의 눈 밖으로 움직이면, 그를 돕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찾지 못하면, 그들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추선우…….그리 만만한 민간인이 아닙니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믿고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물론, 서지호도 추선우에
대한 것을 잘 모른다. 그를 이토록 믿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사당역입니다. 추선우와 지현의 곁에서 약 30 미터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하여 두
사람을 주시하는 놈이 있습니다.”
“!!!”
추선우의 뒤로 붙었던 경호원 팀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고, 곧 추선우의 곁에 누군가 붙었다는 말에
놀란 눈을 한 채, 설장호를 보았다.
“신원확인 가능한가?”
“인근 상가 3 층에서 한 대원이 그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경호원이 말하였고, 통화가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 후,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서지호는 그가 메시지로 보내준 사진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스마트기기에 연결하였고, 곧 사진을
열어보았다.

“그 놈이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태정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나머지는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았다.
비록 설장호도 그 당시 그와 조우가 있었지만, 쏟아지는 총알세례로 인하여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현을 태운 채, 서둘러 연화장을 벗어났었다.
“연화장. 저와 추선우의 앞을 막았던 놈입니다.”
태정민의 설명이 나오자마자, 설장호는 곧바로 서지호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거의 뺏다시피 하였다.
“사당역 어디부근인가?”
“사당역 13 번 출구, 편의점 인근입니다. 추선우의 동선에 맞춰,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절대…….절대 시야에서 놓치지마라. 지금 곧 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태정민도 함께 일어섰다. 두 사람이 일어서자, 차현태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보았다.
“인원이 더 필요치 않겠는가?”
차현태가 물었다.
“일단. 현장에 있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는 조금 전 말씀하신대로 아침
일찍 각 부처 수장들을 만나, 그들의 의중을 파악해 주십시오.”
“알았네. 조심하게.”
설장호와 태정민이 바로 움직였고, 서지호는 다시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바로 따라붙도록 명령 내렸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두 모녀를 데리고 자신이 홀로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온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고 있었다.
“어디야?”
설장호였다.
“집으로 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의 형사 팀은 아직 자네를 잘 따르고 있지?”
“네? 아…….네.”
“그럼. 부탁하나 하지. 지금 즉시 자네와 함께 움직였던 형사들을 사당역으로 보내주게. 아무래도…….
추선우의 뒤에 사람이 붙은 것 같다.”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강서진은 또 다시 옷을 챙겨 입었고, 그녀의 행동에 은주와 아주머니가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아무 일 아닙니다. 그냥 편히 계십시오. 이곳은 문만 열어주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절대…….그 누가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강서진은 아주머니와 은주를 보며 말한 뒤, 곧바로 집을 나섰고, 그녀가 급히 움직이는 탓에, 은주와
아주머니는 또 다시 괜한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덮어오는 듯하였다.
설장호가 말한 강서진의 형사 팀은 연화장에서 추선우와 태정민을 구해낸 팀이었다. 강서진의 명령에 의해
연화장으로 급히 움직였고, 그로인하여 석강수와 이지광이 물러났던 것이었다.

자정이 넘은 사당역 인근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추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휴식을 취해야 할 상황이지만, 마땅히 휴식을 취할만한 장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자신
홀로 선택한 일로 인하여, 더 이상 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추선우였다.
“상황변화는 없는가?”
설장호는 사당역으로 급히 움직이는 동안, 또 다시 사당역에서 추선우를 지원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계속하여 뒤 따르고만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녀석을 덮칠까요?”
“아니. 기다려라. 사당역이면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에 하나 녀석이 돌발행동을 보인다면, 자칫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계속 주시하여…….”
“왜? 말을 다 잇지 않는가?”
설장호는 자신에게 현장보고를 하던 경호원의 말이 끊기자, 당황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한 놈이 아닙니다. 그 놈의 주위에 또 다른 놈들이 다가섰습니다. 뭔가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듯합니다.”
“젠장! 일단 경호원 몇 명을 추선우에게 먼저 다가서도록 붙여라. 그놈들에게 추선우의 곁에 우리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더욱 더 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경호원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경호원
중, 두 명에게 손짓으로 표시하며, 추선우의 곁에 붙도록 하였다.
“형사 팀은 어찌되었나?”
설장호는 곧바로 강서진에게 전화하여 사당역으로 움직이고 있는 형사 팀의 위치를 물었다.
“약 10 분 후, 도착예정입니다.”
“서둘러라. 지금 추선우의 뒤로 연화장에서 보았던 놈이 붙었다.”
“네? 석강수 말입니까?”
“아니. 또 다른 놈.”
“또 다른 놈이라면…….SUV 차량에서 내린 놈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서둘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저래 시간은 촉박하였다. 자신이 도착하는 시간도 약 10 분 후다. 10 분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간이기에, 설장호의 마음은 더 초조해지며, 급해지고 있었다.
“움직여라.”
그리고 추선우가 사당역 13 번 출구 안쪽 공용주차장쪽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지광이 자신의 곁에
있던 인물들에게 알렸고, 곧 그들은 추선우를 향해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씨.”
“!!!”
그들이 거의 다가서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경호원이 먼저 추선우의 곁을 다가서며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추선우는 재빨리 지현을 안아 올리며 그들을 경계하였고, 그의 곁으로 다가선 경호원에 의해,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던 이지광의 부하들은 추선우를 외면한 채, 그저 앞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저 놈들은 누군가…….설마 다른 쪽에서도 저 놈의 위치를 파악하여 붙은 것인가?”
그 모습을 본 이지광이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추선우의 곁에 붙은 인물이 경호원이란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정구석과 함께 이번 사건을 일으킨 네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보낸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흩어지지 않고, 모두 자리 지킨다. 추선우의 곁에 붙은 인원은 사방 1 미터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두 명의 경호원이 추선우의 곁에 붙자마자, 경호팀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곧바로 각 팀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그 즉시 해당 경호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모두 멈춘 채, 이지광과 그의 인물들을 감시하고만
있었다.
“설장호 실장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지금 일대에 의문의 인물들이 다가서고 있으니, 저희들이 함께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의 곁에 붙은 경호원이 그에게 말했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추선우의 눈빛이 변화며, 주위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돌리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설장호였고, 추선우는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그와 통화를 하였다.

-지금 즉시, 네 곁에 붙은 인원과 함께 움직인다. 생각보다 빠르게 놈들이 너를 찾았다. 아마도 내가


너를 찾은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겠지. 그리고. 연화장에서 봤던 놈…….그 놈이 지금 네 곁에
붙었다.-

“!!!”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 그의 눈빛이 더욱 더
매서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고, 약 50 미터 전방. 한 무리가 담배를 물고 있는 지점에서 이지광의 모습이
추선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보입니다.”
-보이는가? 이제부터 그 놈의 눈에서 벗어난다.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마라. 넌…….지현을 경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놈들은 우리가 커버한다. 넌 너의 곁에 붙은 인원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해라.-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추선우의 눈빛은 정확히 이지광을 향해 고정되었고, 그의 눈빛을 마치 본 듯한
이지광의 표정도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 쪽 사람이 아니군. 아무래도 저 꼬맹이를 보호하고자 붙은 놈들이겠지.”
이지광은 먼 거리지만,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후,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접니다.”
지난 날. 북정마을에서처럼 그는 정구석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지금…….타깃 곁으로 몇 놈이 붙었는데, 아마도 또 다른 타깃이 다가설 모양입니다. 어찌할까요?
원하신다면 모조리 다 잡아서 목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지광…….네가 강한 놈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상대도 그리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다. 그 꼬맹이


곁으로 다가서는 놈이라면 설장호와 태정민이다. 두 놈 다 국정원과 청와대경호실에서도 알아주는 인재다.
그런 놈들을…….-

“제가 언제…….상대의 강함을 따지며 일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냥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지난


연화장에서는 한 발 물러났지만, 오늘은...여러모로 저희쪽이 더 유리한 입장입니다.”
이지광은 정구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할 말을 하였다. 정구석은 이지광이 자신의 말을 자르자,
그 순간은 잠시 눈썹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다시 풀며 그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00071 경호원 =====================================================================


====
                          
-유리하다?-
“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당역 13 번출구쪽은 번화가입니다. 즉…….인간들이 많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만에 하나
총격전이 벌어진다면…….누가 더 손해를 보겠습니까?”
정구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잡아보게. 그 뒤는 내가 책임지겠네.-
“감사합니다. 그럼…….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지광은 통화를 끊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인물들에게 몇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들은 그 즉시 이지광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젠장. 뭐야!”
이지광의 패거리들이 뭔가 작정을 한 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자,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모든
경호원들의 눈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경호원을 이끄는 팀장이 쓴 표정을 지으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이지광. 그래…….이런 일은 너 같은 독한 놈이 해야 한다. 잃을 것이 없는 놈. 딱 제격이지…….”
정구석은 이지광과 통화를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직까지 여인을 곁에 두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으며, 곧 그가 일어나자, 그가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기며, 세 명의 여인은 그를 데리고 욕탕으로
향하였다.

‘끽!’
같은 시각. 설장호와 태정민이 도착하였고, 곧 이어 옆으로 강서진도 도착하여 차량을 주차하였다.
“나와 태정민은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인다. 너와 형사 팀은 이지광을 찾아.”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차량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강서진과 함께 도착한 형사 팀들도
서둘러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설장호는 곧바로 추선우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실장님께서 보냈다는 인원과 함께, 주차장 외부 쪽을 돌아 번화가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지금 나와 태정민이 사당역에 도착하였다. 빛이 없는 방향으로 향하지마라. 그 어둠이 이로울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헤로울수도 있다. 지금 즉시, 공용 주차장 쪽으로 움직인다. 나와 태정민이
그쪽으로 향하겠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의 연락을 받은 후, 지현을 더 꽉 안은 채, 주차장 방향으로 향하였고, 그의 양 옆으로
경호원 두 명이 밀착하여 붙은 뒤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실장님! 녀석들이 아무래도 눈치 깐 모양입니다. 모두 다 한꺼번에 흩어졌습니다!”
추선우와 통화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에, 경호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의 말에 설장호의
눈은 사방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조건 먼저 찾아! 이곳에서 그들이 돌발행동을 벌인다면, 인명 사고다!”
“알겠습니다!”
진정 대형 사고라 할 수 있는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이었다. 이미 이지광이 정구석에게 한 말처럼,
이곳에서는 설장호쪽보다 이지광쪽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현아. 삼촌 꼭 잡아.”
“응. 삼촌.”
추선우는 주변을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지현을 꽉 안은 채 말했고, 그의 말에 지현도 추선우의 옷깃을
강하게 잡으며 답했다.

‘퍽!’
‘슉슉 퍽퍽!’
그 순간 추선우의 옆으로 어둠속에서 뭔가 날아와 한 경호원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곧바로 다른 한
경호원이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그 역시 뒤이어 휘둘러진 각목에 의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슉!. 탁탁 퍽!’
추선우는 자신의 옆에 있던 두 경호원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곧바로 지현을 안아 돌리며, 경호원을
쓰러뜨린 인물의 시야에 지현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향을 틀었고, 그 순간 각목을 들고 있던 한 인물이
각목을 강하게 휘둘렀지만, 추선우가 주차된 차량 틈으로 몸을 빠르게 숨기자, 각목은 차량을 강타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을 일으킨 추선우가 지현을 안은 채, 어렵게 발을 뻗어 올리며, 옆차기로 상대를 뒤로
밀어냈고, 곧바로 차량들 틈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저기!”
그리고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주차장 입구방향으로 들어서던 태정민의 시선에 그 모습이 보인 후,
그가 먼저 움직이며 소리치자, 곧바로 설장호도 태정민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리 사람들 외에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잡는다!”
설장호는 이동 중, 강서진과 경호 팀장에게 무전으로 알렸고, 곧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는 각자의
대원들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현재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그 상대를 찾아내는 방법으로는 최상이었다. 그들도 빠르게 움직이는
추선우를 잡고자, 빠르게 움직일 것이기에, 정확히 어디를 향해서 뛰고 있던,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잡도록 한 것이었다.

‘퍽 퍽!’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비록 주 타깃인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주차장의 어두운
면을 통해 차량들 틈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외, 추선우를 추격하던 인물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강서진의 형사들은 서로 안면이 없지만, 이미 설장호에게 받은 무전으로 인하여, 이유
없이 뛰는 듯 보이는 놈들을 이유막론하고 먼저 잡아채고 있는 시점이었다.

“추선우. 주차장을 끼고 왼쪽으로 돈다. 그리고 도로변으로 나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뒤를 따르며 전화로 연락을 취하였고, 그의 말에 의해 추선우는 주차장의 왼쪽 편으로
보이는 도로를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픽픽!’
“!!!”
“젠장. 지랄 맞군.”
약 40 미터 정도 앞 쪽에서 추선우가 차량들 틈으로 움직이며, 도로변으로 뛰는 것이 설장호의 눈에
보이자마자, 곧바로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추선우의 바로 옆에 있는 차량들을 맞췄고, 그로인하여
설장호와 태정민이 놀란 눈을 한 채, 주변을 보았지만, 급히 움직이면서, 추선우의 뒤를 쫒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지현아. 괜찮아?
“응 삼촌. 그런데 무서워.”
추선우는 곧 건물 과 건물 틈으로 몸을 숨긴 뒤, 지현을 보며 물었다. 지현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고, 이내 눈물을 쏟을 듯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삼촌이 있잖아.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자.”
추선우는 지현을 다시 꽉 안아주며 말했고, 곧 머리를 살짝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
총이 발사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주차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설장호와 태정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음기를 장착하였기에, 이곳의 사람들이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피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 필시 두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지만, 태정민의 말처럼, 소음기가 장착된 총이었기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총소리가 크게 울렸다면, 민간인들이 우왕좌왕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몸을 피하기는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의 왕래는 변함이 없었고,
그로인하여 만에 하나 그들이 쏜 총에 민간인이 맞는다며, 여러모로 복잡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잡아!”
강서진과 함께 움직인 형사들의 몸놀림도 화려하였다. 그들은 오랜 형사생활로 인한 경험으로, 이지광과
함께 움직였던 이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었고, 강서진은 더 큰소리로 외쳤다.
이에 주변에 있던 민간인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강서진은 다시 이지광을 찾기 위하여 몇
형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민간인들은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난 상황이라 인지를 하면서도 그 자리를 피하려는 인물들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며, 지금의 상황의 찍기 바빴다.

‘띠리리리’
“네.”
건물틈사이에서 주변을 보고 있던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곧바로 받으며 몸을 낮추었다. 만에
하나 어둠속에서 휴대전화의 불빛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 될 것을 미리
생각하여 움직인 것이었다.

-괜찮나?-
“네.”
-절대 몸을 일으키지마라. 아직 너에게 총을 쏜 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숨기고 있어.-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통화를 끊은 후, 다시 지현을 안아 올리며,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픽!’
‘팅!’
간발의 차이였다. 추선우가 얼굴을 내밀자마자, 곧바로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추선우의 얼굴 옆을 스친
듯, 그의 볼에는 아주 미세한 자국이 살짝 남았고, 곧바로 다시 몸을 낮춘 추선우는 건물 틈 끝부분으로
보이는 반대편 도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생각보다 쉽지 않네.”
그리고 추선우가 몸을 숨긴 건물에서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건물 틈에 있던 이지광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정구석에게 이곳에 온 모두를 잡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정구석의 말처럼, 상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녀석이 반대편으로 갔으니, 나도 주차장을 지나쳐야겠는데…….저 두 놈이 모두 뒤 따라오면 내가 좀
벅차겠지…….”
이지광은 여전히 건물 틈에 몸을 숨긴 채, 주차장에서 몸을 낮추며 다가서고 있는 설장호와 태정민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시선을 주위로 돌리자, 아직 경호원과 형사들에게 잡히지 않은 자신의 부하 한
명이 자신을 향해 마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보고 있었다.
이에 이지광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가락으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가리켰고, 그는
그의 손짓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듯,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주차장 중앙에서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이야야앗!”
어둠속에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보인 그를 보며, 태정민이 먼저 다가섰고, 곧 설장호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건물 틈에서 누군가 아주 빠르게 나오며, 주차장을 지나쳐 가는 것이 그의 곁눈에 보이고
있었다.

“이지광…….”
곁눈으로 본, 물체를 더 정확하게 보고자,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차량들 틈으로 빠르게 반대편
건물로 이동하는 이지광의 모습이 설장호의 시야에 확실하게 잡히고 있었다.

0007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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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민! 그 놈을 맡아! 난 이지광을 쫒겠다!”
“네? 이지광을 혼자서요!”
설장호는 이지광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고, 설장호의 목소리를 들은 태정민은 놀란
눈으로 그를 향해 보며 소리쳤다.

‘퍽!’
그 순간 그의 앞에 있던 사내의 주먹이 그대로 태정민의 얼굴에 와 닿았고, 그 충격에 넘어지면서도
이지광의 뒤를 쫒기 시작하는 설장호를 향해 보았다.
“젠장! 너에게 볼 일 없다!”
곧바로 다시 일어난 태정민은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소리쳤고, 단 한 방에 그는 뒤로
데구루루 구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멈춘 자리에서 강서진과 함께 형사 팀이 도착하였고, 그
뒤로 경호원 팀이 합류하고 있었다.
“어찌 된 거야?”
“일단, 이놈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나머지 놈들 다 잡았어?”
강서진의 물음에 답한 뒤, 곧이어 도착한 경호원 팀을 보며 물었다.
“네. 일단 보이는 놈들은 모두 잡아 족쳤습니다. 그리고 형사 팀과 함께 우리 경호원 팀이 그 놈들을
연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설 실장님은…….”
“이지광의 뒤를 쫒았다. 급하니 이놈도 마저 처리하고, 나머지는 함께 움직인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지광을 경험해 본 인물은 태정민과 추선우가 유일하였다. 그리고 그가 석강수와
비등한 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도 두 명 뿐이었다.

“삼촌. 무서워.”
한 편. 추선우는 건물 틈을 나와 도로변을 돌아서며, 다시 사당역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뒤로 이지광이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허리춤에 숨기며 쫒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설장호가 바로 따라붙고 있었지만, 태정민과 강서진 일행은 그와 거리가 벌어지면서
마저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간 거야?”
태정민은 쓴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필시 설장호가 움직였던 방향으로 나왔지만, 거리에는
일반인들뿐이었고, 그 누구도 바삐 움직이거나, 당황하는 사람이 없었다.
즉. 그들은 이지광은 물론, 설장호도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다…….”
설장호의 시선에도 이지광이 사라졌다. 그의 바로 뒤에서 쫒아왔다고 여겼지만,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설장호는 추선우가 움직였던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야에 아무도 보이지
않기에,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지광은 정확히 추선우의 뒤를 쫒아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곧 13 번 출구
아래로 다시 내려가는 추선우가 그의 시야에 아주 잠깐 보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을 택하겠다? 좋은 생각이다 추선우. 지금 시간이면 전철역은 정막만이 남아있지, 딱…….
네가 죽기 좋은 장소를 택했군.”
이지광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홀로 중얼거린 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네!”
시야에서 놓쳐버린 추선우에게 다시 붙고자 설장호는 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어디야?”
“사당역 13 번 출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래? 일단 되도록 몸을 숨겨라. 전철역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없으니, 움직이는 것보다 한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이 더 이롭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좌우를 살폈고, 이내 화장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뒤를 따라 이지광도 바로 내려왔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숨어있겠다? 그런다고 어린아이를 달고 어디까지 숨어있을 수 있겠는가?”


이지광은 홀로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이제는 전철도 끊겼기에, 전철을 타고자
내려오는 사람들도 없었고, 간간히 노숙을 하는 사람들만이 그의 눈에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아무런 반응도,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네가 내려간 시간과, 내가 내려온 시간. 그 짧은 시간 안에 몸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곳…….”
이지광은 홀로 중얼거리며 뭔가 생각하였고, 이내 시선을 한 곳으로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이 마지막 머문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은 조금 전, 추선우가 움직였던 방향이었다.

새벽시간이며, 노숙자 외에는 사람들마저 없었기에, 정막이 흐르고 있는 전철역이었다. 사당역


외부에서는 시끌벅적한 음악소리가 들리고 있어도, 진정 이 안은 고요함만이 흐르고 있는 지금이었다.
이지광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화장실을 향해 움직였고, 곧 화장실 입구에 선 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을 번갈아 보았다.
“추선우가 사내니…….여자화장실은 들어설 수 없을 것이고…….”
이지광은 홀로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말한 것과는 달리 여자화장실 방향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좌변기가 설치된 곳을 향해 보았다. 여자화장실에는 소변기가 따로 없기에, 모든 것이 문이
설치된 좌변기뿐이었다.
“역시…….”
그리고 좌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의 모든 문이 열려있었다. 그는 피식거리는 웃음과 함께 다시 몸을 돌려
남자화장실로 향하였다. 문이 모두 열려있다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남자화장실로 바로 움직인 것이었다.
“모든 전철이 끊긴 시점에서 누가 전철역까지 내려와 볼일을 볼까?”
남자화장실로 들어온 이지광의 눈에는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좌변기가 설치된 하나의 문이 보였다.
그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 안전장치를 풀고,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고, 곧 닫힌 문 앞에 섰다.
몸을 숙여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려 하였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화장실 문은 거의 밑바닥까지 문이 닿을
정도였기에, 몸을 숙인다고 하여도 누가 안에 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우연찮게 잘 찾아들어온 모양인데…….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아.”


‘픽픽픽픽픽픽’
이지광은 화장실 문, 바닥부분이 아닌, 정면을 보며 총을 쏘았고, 소음기가 장착된 총은 여러 발이
발사되었지만, 문이 박살나는 소리 외에는 다른 소음을 만들지 않고 있었다.
‘쾅!’
“!!!”
그리고 그 순간. 이지광이 연신 총을 쏘고 있던 문이 아닌, 바로 옆에서 열려있던 화장실 안에서
추선우가 모습을 보이면,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추선우가 바로 모습을 보이자,
그는 손에 들린 총구의 방향을 돌리지 못한 채, 정확하게 자신의 안면을 추선우에게 내어주었다.
‘차르르르’
손에 들고 있던 총마저 놓쳤고, 그 총은 다른 화장실 문 안으로 들어갔다.
“너…….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숨어살다 나타난 놈이냐?”
“숨어살긴 누가 숨어살아. 난 내 집에서 살고 있었을 뿐이다.”
이지광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고, 그의 물음에 추선우는 자세를 바로잡아 서며 말했다.
“아이…….여자아이가 없군…….”
“안전한 곳에 잘 숨겨두었다. 너 같은 놈에게 지현을 쉽게 내어줄 수 없지.”
“안전한 곳? 하하…….잔머리에 당한 꼴이군.”
이지광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홀로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있는 남자화장실 옆,
여자화장실에서는 네 개의 열린 문 중, 가장 안쪽에서 지현이 머리를 숙인 채, 좌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추선우는 이지광을 피해 화장실 방향으로 온 뒤, 자신 홀로 이지광을 상대하고자, 지현을 여자화장실로
보냈다. 지현은 지금의 상황에 자신이 추선우의 옆에 붙어있다는 것 자체가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무섭고 두려웠지만, 추선우의 말대로 홀로 여자화장실로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지광의 눈을 교란시키기 위하여,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문을 절대 닫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여
그 말에 따랐다.
이는 화장실의 문이 열려있는 것과, 닫혀 있는 것으로 사람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추선우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조금 전, 딱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실장님 어디로 가신 겁니까?”


같은 시각.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설장호는 13 번 출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에 태정민을 비롯하여 모두가 13 번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쾅!’
“정말…….보통은 아니군. 나 같은 놈을 이토록 쉽게 상대하는 놈이 또 있을 줄이야.”
한 편. 화장실 안에서는 때 아닌 소란으로 인하여 전철역내에서 노숙을 하던 노숙자 몇 명이 화장실 앞에
서 있었고, 곧 이지광은 이를 꽉 깨문 어투로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내…….꿈이 경호원이다. 고작 너 같은 놈에게 내가 경호 맡은 인물을 쉽게 내어준다면, 난…….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
추선우는 입가에서 약간의 피를 흘리며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이지광의 입가에도 약간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호원이 꿈이라…….좋군. 이참에 네 꿈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이지광의 공격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진정 빠른 주먹과 발차기를 연달아 퍼붓고 있었다. 마치
액션영화에서나오는 모든 화려한 동작을 다 보이는 듯, 빠르게 움직였고, 추선우도 마치 각본처럼 그의
모든 공격을 피하며, 방어하고, 또 간간히 주먹을 뻗으며 그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모두 흩어져서 찾아!”


잠시 후, 설장호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이지광의 표정이 굳어졌다.
“난감하네…….모조리 다 잡아가려 했는데, 한 놈도 잡지 못 하고, 오히려 내 목을 내줘야 할 판이니…
….”
이지광은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고, 곧 다시 주먹을 꽉 쥐며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지현아! 지현아! 어디 있어!”


그 순간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목소리에 여자화장실에서는 큰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그
인기척에 맞춰 이지광의 눈썹도 씰룩거렸다.
“좋은…….미끼가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군.”
그 인기척은 지현이 움직인 소리였다. 강서진의 목소리에 의해 지현이 반응하며, 몸을 움직이다 나온
소리였고, 하필, 이지광이 화장실 입구 쪽에서 있었으며, 추선우가 안쪽이었다.
지현이 강서진의 목소리를 듣고, 화장실 밖으로 나선다면, 영락없이 이지광의 손에 먼저 잡힐 것이었다.

“나오너라…….아가야…….”
이지광은 서서히 걸음을 뒤로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를 향해 보고 있던 추선우가 서서히
그의 곁으로 더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00073 경호원 =====================================================================


====
                          
‘타닥…….’
이어 여자화장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확실히 들리자, 이지광은 그 즉시 빠르게 몸을 돌려 여자화장실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뒤를 추선우가 바로 따라 붙었다.

“지현아! 문을 잠궈!”
“!!!”
“저쪽이다! 모두 움직여!”
추선우의 고함소리를 들은 설장호가 소리쳤고, 모든 인원이 화장실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지현은 이미 자신의 앞에 선 이지광의 모습을 보며 몸이 얼어붙어버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퍽!’
이지광은 여자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눈에 보인 지현을 향해 다가서려 하였지만, 그 즉시 바로
뒤에서 추선우의 옆차기가 정확하게 날아와 꽂혔고, 그 충격에 세면대에 몸이 부딪혔다.
세면대에 몸이 부딪히면서 세면대의 거울 일부가 박살났고, 추선우는 쓰러진 이지광에게 연이은 공격을
감행하지 않은 채, 곧바로 지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이미 지현에게 전가 되어버린 공포가 더 번지기 전에 그녀의 눈과 귀를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몸을 비틀거리며 이지광이 일어섰고, 그는 자신이 부딪히며, 세면대의 거울이 일부 깨진 것을 보고,
깨진 거울을 손에 쥐었다.

“지현아. 괜찮아. 괜찮으니까.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어서…….삼촌이 옆에 있잖아.”


추선우는 이미 온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한 지현을 안정시키는 것에 온통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로인하여
자신의 바로 뒤에서 뾰족한 깨진 유리를 들고 다가서는 이지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고, 이지광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깨진 유리를 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지광! 더 이상 움직이면 머리통 날아간다!”


이지광이 추선우의 뒤에서 유리조각을 내려찍으려 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설장호가 화장실 문 앞으로 서며
그를 향해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추선우는 곧바로 일어나 지현을 안아 올린 뒤, 이지광을 보며 섰다.
“하…….시간을 잘 도 맞춰 오시는군. 그리고 내 이름을 제대로 말하는 것 보니, 이제…….다시 국정원에
들어가 앉은 모양인데…….”
이지광은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가 정확히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자신들이 계획했던
부분에 대해 차질이 생긴 것을 말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으니, 자신의 신분을 알기 위해서는 설장호가 다시 국정원에 들어앉아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아직 국정원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지광의
신분을 알아낸 것은 청와대 경호실이란 것을 이지광은 모르고 있었다.
“이지광. 손에 든 유리조각을 내려놓아라.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면 이런 짓을 애초에 하지도 않았지. 난…….킬러다. 의뢰받은 일은 무조건 처리하는
킬러. 그리고 내가 의뢰받은 목은…….바로 여기에 있는 모두다! 이야앗!”
이지광은 설장호의 말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서서히 시선을 추선우에게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목청을
올리며, 추선우를 향해 유리조각을 든 손을 빠르게 휘둘려 하였다.
‘탁!’
하지만 그의 손은 추선우의 한 손에 잡혔다. 지현을 한 손으로 안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에게
휘둘러진 그의 손을 잡았다.

‘픽!’
그리고 그 순간 설장호가 든 총에서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그 총알은 이지광의 허벅지를 그대로
적중시켰다.
‘덜썩.’
이지광은 허벅지에 총알이 꽂히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소리 내지도 않았다.
심지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결국…….내가 너희들의 손에 잡히고 말았군. 하지만…….나를 통해서 뭔가를 알아내려 하지마라. 난…
….너희들보다. 그 양반들이 더 무서우니 말이야.”
이지광은 화장실 벽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그의 이 한마디로 인하여 이번 일을
사주한 인물들이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을 넘어,
청와대보다 더 무섭다는 말을 그가 직접 한 꼴이 되었다.
“이지광을 연행해.”
설장호는 더 긴말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아니…….이 자리에서는 듣지 않으려 하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지현이 바로 앞에 있었고, 무엇보다 지현이 그가 하는 말을 들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찮나?”
형사들에 의해 이지광이 끌려 나간 뒤, 설장호가 추선우의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고, 곧 지현을 향해
보았다.
“네. 괜찮습니다.”
“지현이는?”
“괜찮아요…….”
지현의 떨리는 목소리에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린 여자아이가 겪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그녀를 안전한 곳에 두고, 범인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마음은 더
아팠다.
어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가설지 모르는 것이 최대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여긴
곳에서 만에 하나 그들의 조직에 가담된 자가 있다면, 영락없이 지현의 목을 그냥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미 설장호가 가장 믿고 있었던 최광민의 배신이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지현을 처음 볼
때, 국정원으로 데려가 그녀를 보호하려 하였었다. 하지만 추선우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추선우에게
그녀의 경호를 맡겼다.
만에 하나 그 당시, 추선우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지현을 국정원으로 데리고 갔더라면,
그녀는 이미 최광민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추선우에게 지현을 맡겨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추선우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직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에게만 지현의 곁에 머물 수 있는 특혜가 있는 지금이었다.

“시간이 늦었다. 머물 곳은 찾았는가?”


설장호는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자정이 지나, 새벽으로 이어진 시간이며, 지현이 피곤해 할 것이기에
물었다.
“아직…….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지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꼭
지켜내겠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하면서 지현을 더 꼭 안았고, 지현도 추선우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그의 목을 더 꼭 껴안았다.
“일단. 잠시라도 쉴 곳을 찾아야겠다. 강 검사.”
“네.”
“지현이 쉴만한 인근 숙박업소를 찾아라. 그리고 자네가 아침이 될 때까지 함께 있어준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은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답하였고, 곧 태정민이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이지광은 킬러다. 총까지 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팔, 다리 하나 내어줄 생각으로 덤빈 것이야?”
“총 든 놈한테는 팔, 다리가 아니고 머리통이나 심장입니다. 그리고 한 방이면 그냥 가는 거죠.”
태정민의 농담 섞인 말에 추선우 역시 농담을 섞어 답해주었고, 조금 전까지 긴장감이 맴돌았던 시간을
모두 순식간에 잊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대통령님께 보고하마.”
곧 아침이 다가올 시간이었다. 태정민이 서지호에게 보고하였고, 서지호는 그 시간까지 여전히 잠을
청하지 않은 채, 집무실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차현태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 일도 많겠군. 비서실장이 출근하는 즉시 내 방으로 오라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차현태는 보고를 받은 후, 매서운 눈빛으로 서지호에게 말했고, 서지호는 고개 숙여 답한 뒤, 집무실을
나섰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이 되고, 각 부처 수장들과 함께, 비서실장이 집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국정원장이 차현태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밤새…….어떤 일이 있었는지…….여러분들께서는 보고를 받지 못하셨나봅니다.”
차현태는 그의 질문에 모두를 고루 보며 다시 되물었다.
“아직…….아무런 보고가 없었습니다. 혹여…….그 조직에 관한 것이라도 뭔가 나온 것이 있습니까?”
경찰청장이 답하였고, 그가 다시 물었다.
“검찰은…….강서진 검사가 이번 일에 투입되었고, 경찰은 박태식 형사가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설장호 실장이 투입되었지요. 여기서 박태식 형사는 현재 병상이라 보고를 할 수 없었을 테고…
….설장호 실장과 강서진검사는 충분히 두 분께 보고를 할 수 있었던 입장인데…….”
차현태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본 후, 다시 차현태를 향해 보았다. 진정 두 사람의 표정은
차현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이창민대사가 무엇을 알아내려 했는지. 또 무엇을 알아냈는지. 또…
….그를 그리 만든 사람들은 누군지…….뭐라도 밝혀낸 것이 있습니까?”
이번 질문은 차현태의 표정도 매서웠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능하다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정보 면에서도 가장 빠르게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앉은 사람들은
그 기관의 수장들이었다.
“아직…….정확한 것은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창민 대사가 근무하였던 각 나라의 외교관들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얻고자 하였지만, 그 어떤 것과도 관련된 것이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외교부장관이 차현태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도 차현태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국정원에서도 계속하여 북정마을과, 연화장에서 있었던 내용들을 토대로, 그 때 투입되었던 인원을
찾아내고 있지만,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 한 서울 각 지역에 설치된 CCTV 를
토대로 추선우와 지현양의 동태를 살피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조만간 정보가 입수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국정원장이 보고하였고, 여전히 차현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어제. 북정마을에서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설장호 실장의 비서인 최광민이 지현양을 잡고자 함정을 파
두었지만, 실패한 듯 보였습니다. 최광민은 잡지 못했지만,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추선우가 살던 집의 집주인과 그녀의 딸은 강서진 검사가 따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
다음으로 검찰총장이 차현태에게 보고하자, 외교부장관은 물론,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0007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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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와 같은 내용을 이제야 말씀하시는게요?”
국정원장이 그를 쏘아보며 거친 어투로 물었다. 조금 전, 차현태가 왜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냐는
물음을 하였을 때도, 검찰총장은 그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지금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시는 눈치들입니다. 그러니 발로 뛰고, 대원들을 더 움직이셔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린 어제 북정마을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중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지현양의
신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어제 일로 인하여,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어지는 검찰총장의 말에 모두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기만 하였다. 정보공유가 최우선인 지금의 상황에
검찰쪽만 따로 움직이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들…….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셨습니까?”
곧 차현태가 모두를 다시 보며 물었다. 검찰총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굳은 표정이었다. 검찰총장은 어제
북정마을에서 있었던 일에 강서진이 움직인 것을 자랑스럽게 모두에게 말하였지만, 차현태는 그마저 보는
눈을 매섭게 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검찰총장이 새벽의 일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강서진의
보고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강서진을 미행하였던 검찰 쪽 인원들에 의해 보고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총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어제. 북정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조사는 하고 계시지요?”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국정원 소속이었습니다. 비록 모두가 시체였지만,
시체라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토록 하겠습니다.”
총장은 차현태의 질문에 어깨에 힘마저 주며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국정원소속 인원들의 시체만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네? 무슨 말씀을…….”
차현태는 그의 말을 다 들은 후, 다시 그를 보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질문하자, 검찰총장의 표정이 변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어제…….북정마을에서는 국정원소속 최광민의 배신에 의해, 우리 청와대 경호원들도 열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은 왜 없으십니까?”
“!!!”
차현태의 말은 그 자리에 앉은 모두의 귀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청와대 경호실 인원마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국정원과 청와대가 서로 총격을 가했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대통령님을 생각해서…….”
“나를 생각한다? 무엇으로 나를 생각하여 그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까? 난…….내 걱정을 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총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더욱 더 더듬거렸다. 그리고 곧 차현태가 모두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들어보았다.
“어제…….북정마을 이후에, 사당역에서 또 한 차례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
밤새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난 상황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밤새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차현태가 유일하였다. 그 누구보다 더 발 벗고 뛰어다닐 것이라 말했던 모두가 밤새
편히 잠들어 있던 시간에 일어났던 모든 것을 차현태는 뜬 눈으로 지새며,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새벽, 사당역에서 추선우의 뒤를 미행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차현태가 다시 말을 이어하자, 경호실장 서지호가 하나의 영상을 빔프로젝트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주위에 붙었던 경호원들이 휴대전화영상으로 찍은 내용을 재생시켰고, 그 내용에서는 이지광이
추선우의 뒤를 쫒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모두의 눈에는 이지광이 초면이었다.
“죄송합니다.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밤새 편이들 주무셨으니 어찌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수장들께서 편히 잠을 청한 시간에 열
살의 꼬마아이는 살해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호한 인물은 민간인입니다. 정말…….
그대들의 자리가 아깝기만 할 뿐입니다!”
차현태의 큰 목소리는 모두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모든 일을 부하 직원에게 맡기고 편한 밤을
보내던 사이, 진작 지켜야 할 인물이 자칫 죽임을 당할 뻔 한 일이 밤새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차현태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 있었다.
“국정원장님.”
“네.”
“설장호 실장을 믿습니까? 그에게 이번 일을 맡겨주었다면, 끝까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왜 지원이 없습니까? 그러니까 설장호 실장이 국정원장님께 보고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왜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설장호 실장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장들이란 사람이 그를 믿지 않고 의심합니다. 그러니 설 실장이…….누구에게 이와 같은 일을
보고하겠습니까?”
국정원장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설장호를 믿는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을 설장호에게 보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설장호는 국정원 자체를 믿지 않고,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었다.
“잘 들으십시오. 지금 그대들이 편하게 밤을 보낸 이아침에도, 현장을 누비며, 생명을 담보로 뛰고 있는
이 사람들은 단 하나의 단서라도 찾고, 지현을 보고하고자,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현장을 뛰어다니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그들이 더 많은 정보와 기동성으로 지금
움직임을 점차 드러내고 있는 그 조직의 목을 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차현태의 말에 모두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었다. 다만…….검찰총장의 한 마디에 의해, 자연스럽게 지원이 끊겨버리는 현상이 만들어진
것뿐이었다.
“설장호 실장에게 연락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이 먼저 답을 하였다. 그는 진작 지원을 하려는 뜻을 서지호를 통해 말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한 번 돌아서 들어가는 바람에 설장호가 바로 믿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국정원장이 직접 설장호에게 연락하고, 처음처럼 그의 뒤를 완벽하게 지원했었다면, 연화장 이후에
일어난 펜션사건이나, 사당역에서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검찰 쪽은 여전히 설장호 실장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검찰은 따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다음으로 검찰총장에게 물었다. 이 모든 의심의 발단이 된 것이 검찰총장의 확실하지 않은 말 한마디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의 답이 무척 궁금하였던 차현태였다.
“아닙니다. 지원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은 차현태의 매서운 눈을 보며 답했다. 그 역시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자 발 벗고 나서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에게 너무나 큰 권한이 가는 것을 두고, 약간의 오해가 일어났던 것이었다.
“경찰은 박태식 형사가 중상이니, 다른 인원으로 대처하세요. 그리고 박형사에 관하여 그가 완쾌 될 수
있도록 지원하세요.”
“알겠습니다.”
유독 박태식은 이번 사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석강수에게 한 차례 당하고 난 뒤,
이지광에게도 당했다.
“그럼. 앞으로…….우리는 그 놈들을 찾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더 이상…….한 배를 탄 사람들 간의
오해는 용서치 않겠습니다.”
차현태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의 말도 진심이었다. 오해에서 시작된 의심이 결국 많은 인명피해를
만들어 내었기에, 더 이상의 인재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비서실장은 아직 입니까?”
모두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였고, 그들의 답변도 들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집무실에 들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해야 할 비서실장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서지호를 보며 차현태가 물었다.
“네. 연락을 취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변도 아직 없었습니다.”
“혹여…….비서실장도 그들과…….”
공교롭게도 그 조직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때에 맞춰 비서실장의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최광민처럼 그 역시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라 여겨지는 검찰총장이었고, 차현태를 보며 의심을 해야
함을 말하려던 찰라, 조금 전 차현태가 한 말이 떠올라 말을 잇지 않았다.
“비서실장에 관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수장들께서는 오늘 안으로, 그들에 대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찾아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의실을 먼저 빠져나오며 서지호에게 눈짓을 주었고, 서지호도 곧
그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총장님.”
“왜 그러십니까?”
“어제의 일에 대해 왜 서로 정보공유를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만약 어제 바로 연락을 주셨다면, 그
조직에 관해 더 빨리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차현태과 서지호가 나간 후,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물었다. 그의 말처럼 어제 북정마을에서의 일만
모두가 공유했어도, 사당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합시다. 일단 오늘…….각 부서를 대표하여 움직였던 대원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보고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실마리를 풀어 나가봅시다.”
외교부장관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 국정원장도 자리에서 일어선
후,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설실장.”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네. 국정원장님.”
설장호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사당역 인근 숙박업소에서 추선우와 함께 지현이 잠든 바로 옆방에
있었고, 지현은 강서진과 함께 밤을 보냈다.
“국정원으로 들어오게. 자네를 의심한 것은 내가 사과하겠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 놈들의 목을
조여보세.”
국정원장은 자신의 진심을 말하였다. 서지호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말을 건넸고,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국정원에서 뵙겠습니다.”
설장호의 답이 없었던 단 몇 초 동안 국정원장의 마음은 초조하였다. 하지만 이내 들린 그의 답변에
화색을 띄며 그와의 통화를 끝냈고, 곧 서지호를 만나기 위하여 차현태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차현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서둘러 청와대를 나섰고, 국정원장은 집무실
앞에서 들어가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기만 하였다.

0007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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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님. 들어오십시오.”
그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서지호가 집무실 문을 열며 말했고, 국정원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없어야지요. 우리가 믿지 않으면, 그놈들은 더 활개를 칠 것이며,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음지에
숨어서 이 모든 것을 웃으며 지켜보고만 있을 것입니다.”
차현태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인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왜 그들을 잡지 못했는지도 생각하였다. 그리고 답은 간단하였다. 바로 지금처럼 서로를
의심하는 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인물들 중, 단 한명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들을 잡아야 하지만, 돈 몇
푼에 그들의 손에 놀아났던 과거의 인물들이었다. 그로인하여 그들은 더 깊이 숨어서도, 자신들이 꿈꾼
모든 일을 다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제부터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없도록 해 주십시오. 오늘로써 4 일째이지만, 벌써
우리가 잃은 대원은 수십 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결단코 그놈들을
모조리 다 잡아내십시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이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듯, 얼굴에도 여유가 보이고 있었다. 이미 국정원 내에서도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최광민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설장호이며, 그가 직접 국정원에서 그 조직과 함께
움직이는 이들을 모조리 쳐 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늘. 우린 각자의 부서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을 다 밝혀낸다.”


한 편. 설장호는 숙박업소에서 새벽을 보낸 후, 추선우를 비롯하여 지현과 강서진, 태정민을 앞에 두고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말하였다.
지현이 없는 자리에서 말하고 싶지만, 새벽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절대 추선우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 모든 말을 하였다.
“추선우.”
“네.”
자신이 할 말을 모두 한 뒤, 설장호는 추선우를 불렀다.
“너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만큼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인인 너에게
맡겨둔다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네가 선택한 일이며, 그 일에 대해 네가 책임을 진다는 말을
하였으니, 이제부터 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겠다. 그러니…….지현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라 여기며 행동하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추선우 역시 설장호의 눈을 바로 보며 답했다.
“그럼. 다시 움직인다. 추선우는 지현의 그림자가 되고, 태정민의 경호원 팀은 추선우의 그림자가 된다.
강서진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다 동원하여 이들을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원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진정 누가 어디서 목을 조여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와 지현을 두고, 모두는 각자의 부서로 돌아갔다.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향하였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저 각 부서에서 일을 처리하고자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의 인원을 다시 재검토
할 것이었고, 태정민은 차현태로부터 직접적인 명령을 듣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강서진도
검찰총장으로부터, 앞으로의 일 진행에 대해 모든 것을 전해들을 예정이었다.

“삼촌. 배고파.”
“아. 그래그래. 밥 먹으러 가자.”
역시, 아직은 서툴렀다. 새벽 내내 그리 뛰게 만들어놓고, 아직 지현의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지난밤처럼 다시
모자를 눌러썼고, 사당역으로 움직였다.
비록 설장호와 태정민, 강서진이 각 부서로 돌아간 후지만, 추선우의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청와대의 경호실 인원과 함께, 강서진이 자신의 형사팀 인원 몇을 붙여놓았다.
지난 새벽,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추선우의 뒤를 붙어서 움직인 덕분에 이지광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항상 추선우의 뒤에 그림자가 함께 하도록 하였다.

“회장님. 이지광이 연행되었습니다.”


한 편. 정구석은 밤새 여인과 술을 마신 후, 늦은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고, 곧 그의 방 문 앞에서
백태가 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에 정구석의 눈이 떠졌고, 그의 양 옆으로 누워있던 여인이 벌거벗은 몸을 한 채, 그의 양쪽
팔에서 떨어져 나왔다.
“기다려라.”
정구석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하였고, 곧 침대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이지광이 잡혔다? 결국 설장호에게 잡힌 것인가?”
“아직 정확한 내용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설장호가 아니라…….그 민간인에 의해 잡힌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간인? 지현을 안고 다닌다는 그 민간인 말인가?”
“네.”
“하하. 이거 아침부터 대단한 말을 듣고 있군. 천하의 이지광이 민간인에게 목을 내주었다? 어제 먹은
술이 달아나는군.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라. 그리고 다른 양반들이 어찌 움직이지는지도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확인 후,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백태는 그에게 인사한 후, 다시 물러났고, 정구석은 방문을 닫은 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곧
자신과 함께 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벌거벗은 여인들도 하나, 둘 침대에서 일어나 벌거벗은 몸을 한 채,
정구석의 곁으로 걸어왔다.
“다들 물러가라. 오늘은 혼자 있겠다.”
여인들이 다가서며 그의 몸을 더듬거렸지만, 정구석은 여전히 매서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하였고, 곧
여인들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가운을 걸치고 그의 방을 나섰다.
“설장호가 대단하다고 여겼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는 말이군…….그 민간인. 제대로 놀아보자는
뜻으로 받아주겠다.”
정구석은 홀로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 뒤, 내 뱉은 후, 홀로 중얼거렸다.

“시간은 가고 있다. 설장호와 강서진, 그리고 지현과 이창민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자료…….그리고
민간인. 대체 왜 이 시간까지 단 하나의 보고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같은 시각. 계량한복을 주로 입고, 조직 내에서 정치쪽 인물들을 주로 만나는 최기수가 자신의 비서에게
묻고 있었다.
“어제…….사당역에서 한 차례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그의 말에 비서는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새벽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정구석 회장쪽 사람으로 판단되며, 그가 어제 지현을 안고 있는 민간인을 쫒다,
설장호쪽에 잡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 하하하. 정회장이 아침부터 속쓰리겠구만. 그래. 설장호가 그리 만만한 놈은 아니지, 그런 놈을
잡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와 비등한 놈을 보내든지, 아니면 많은 인물과 함께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을 보내야지.”
최기수는 비서의 보고를 들은 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말하였다.
“하지만…….보고에 의하면, 정구석 회장이 보낸 그 킬러를 잡은 놈이 설장호가 아니라, 민간인이라는
내용이 지배적입니다.”
“뭐라? 민간인이 킬러를 잡아? 확실한 것인가?”
“아직 확실히 검토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의외군. 정구석이 기용했다면 보통 놈은 아닐 텐데, 그놈을 잡은 놈이 민간인이라…….재밌게
돌아가는군.”
최기수도 추선우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지 지현을 안고 달리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하였지만, 그가 이지광을 잡은 것을 알고 난 뒤, 그에 대한 생각 자체를 모조리 바꾸고 있는
최기수였다.

“회장님. 오늘…….기업인들 만찬이 있습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한 편. 정구석과 최기수가 새벽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직 내에서
경제인들을 주로 다루는 인물인 슈트차림의 우수광에게는 전혀 다른 보고가 들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설장호를 잡아 족치자. 48 시간 안에 제대로 된 놈을 잡아가야, 차기 회장 자리에 앉기 편해진다.
아마도 정구석이나 최기수는 어제부터 벌써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국은 그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우린 뒤늦게 출발하는 대신, 제대로 된 놈을 잡자.”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만찬은 취소하고 애들을 좀 모아두겠습니다.”
“그래.”
우수광도 움직일 채비를 하였다. 조직의 핵심인물인 네 명 중, 가장 먼저 움직였던 인물은 정구석이었다.
그는 북정마을로 사람을 보냈고, 그날 아침에는 이지광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에 연화장을 움직였던 인물은 고민국이었다. 고민국은 조직 내에서 각 기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조직원들을 모두 통합하여 관리하기에, 자신의 말 한마디로 연화장에 배치된 저격수들을 모조리
통솔할 수 있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최기수와 우수광이 후발주자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생했네.”
한 편. 청와대로 돌아온 태정민을 보며 차현태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태정민은
지금까지 자신이 차현태를 믿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였다.
“앞으로…….절대 우리 쪽 사람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네. 그러니 앞으로 자네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와 서지호실장과의 연락을 끊어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추선우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한 편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자칫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라 우려하고 있었지만, 모두 망상일 뿐이었다.
“지금즉시 인원을 제정비하고,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게.”
“알겠습니다.”
태정민에게 휴식을 주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지금 현재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많지 않기에 이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는 태정민에게 편한 날이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모두 흩어졌던 마음을 한 곳에 다시 모이도록 한 인물은 차현태였다. 그가 모두의 마음을 다시


모았고, 모두 한 뜻으로 비밀조직을 모조리 캐내기 위하여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0007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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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앞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사용해야 할 사무실이네.”
같은 시각. 국정원으로 돌아온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장과 함께 국정원 내의 새로운 사무실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대북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던 인물들이 사용하던 사무실로, 많은 장비가 갖춰져 있었고, 인원
또 한 오랜 시간 국정원장과 함께 근무하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설장호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어서 오십시오. 설장호 실장님.”


모두 그를 반겨주었다. 이들에게 국내의 다른 업무는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었다. 오로지 이들은
대북 관련하여, 북쪽에 관한 업무만을 주었기에, 이들에게 이번 사건을 일으킨 조직원에 의한 그 어떤
영향력도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라 보았다.
설장호도 그들을 보며 한 결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국정원장의 말처럼, 만에 하나 그 숨겨진 조직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들과 접촉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자신이 원하는 팀을 얻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든 장비들도 훑어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북쪽까지도 훤히 뚫어볼 수 있는 장비들이 즐비하였고, 실시간으로 위성을 통해 서울시내를 바로 볼 수
있는 장치도 있었기에 무엇보다 빠르게 추선우의 뒤를 지원할 수 있으며, 그의 곁에 다가서는 이들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재정비되고, 그들이 움직임과 동시에, 그들을 잡기 위한 움직임도 함께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각. 추선우와 지현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채, 사당역 인근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두 사람의 모든 것이 달리 보이겠지만, 그들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지현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그들의 시선을 더 중시해야 할 시점이었다.

‘띠리리리’
한 편. 차현태와 서지호의 든든한 지원을 다시 받기 시작한 태정민은 경호실 인원을 재정비한 후,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려 할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현재 사당역에서 추선우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경호원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사당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출발한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절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마라.”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기 시작하였다. 비록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붙어있고, 형사 팀이 붙어있지만, 지금부터
어떤 누가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에게도 벅찬 상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어느
정도의 권력이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으니, 만만의 준비를 하는 그였다.
“지금 즉시, 추선우의 곁으로 붙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태정민이 차현태에게 보고하였고, 곧 서지호에게도 보고를 마친 후, 청와대를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경호를 부탁하네.”
차현태는 집무실의 창문을 통해 청와대를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서지호는 사당역에
있는 대원들에게 다시 연락하여 철저한 경호를 명령 내렸다.

“간이…….부어도 제대로 부은 것이지…….”


한 편. 사당역에 있는 추선우의 위치는 또 다시 정구석에게 노출되었다. 이미 지난 밤 백태에 의해
위치가 노출 된 후, 이지광이 직접 찾아왔었고, 이번에도 서울시내의 모든 CCTV 를 이용하여 그를 찾고
있는 정구석쪽에 의해 그의 위치가 잡혔다.
그리고 백태는 새벽에 그 난리를 겪고도 아직 사당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한가롭게 식당으로 들어선 그의
모습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새로운 팀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휘하였던 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장비도 달랐으며, 준비완료와 함께 가동하기 시작한 위성추적장치의 영상은 곧바로 사당역에서
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오고 있는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바로 잡히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 메인 화면은 추선우를 무조건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제대로 놀아보자.”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지금까지 숨어서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던 그들을 모조리 다 끌어내기
위한 눈처럼 보였다.
“태정민.”
-네. 실장님.-
준비를 마친 후, 곧바로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지금부터 나와 너. 그리고 강서진검사와 추선우는 다른 이어마이크를 사용한다. 주파수를 모두 맞추고,
이어마이크를 착용하며, 숨소리까지도 모두 듣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지금 사당역으로 향하고 있으며, 추선우를 만나 장비를 지원하겠습니다.-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검찰청과 경찰청이 모두 한 몸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었다. 각
기관에서 현장을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모두 공통된 장비가 지원되었다.
그 장비로 인하여 실시간으로 모든 대화와 함께, 현장내용을 전달하고, 그 내용은 청와대의 서지호와
국정원의 설장호, 그리고 검찰청과 경찰청의 해당 부서에서 실시간으로 내용을 주고받을 것이었다.

“추선우.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이동방향을 추적하겠습니다.”


식당에서 나온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은 설장호에게 제대로 보이고 있었고, 모니터링 하던 대원이
설장호에게 알렸다.

“실장님. 대통령님께서 하실 말씀이 계시답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설장호의 이어마이크에서 서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현재 태정민의 귀에도 들리고 있었고, 곧 태정민이 들고가는 장비를 추선우가 착용하면, 추선우의 귀에도
함께 들리는 내용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추선우와 지현을 서울 외곽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서울에서는 두 사람의 움직임도
포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며, 또 한 그들도 쉽게 두 사람을 쫒지 못할 것 아닌가.-
“생각을 하지 않은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차적인 목적은 도망이 아닙니다. 그들을 피해 다니기만
한다면 문제없지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서울 외곽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 모르며, 또 한 대규모로 움직인다면, 우리의 기동성이 그들보다 느릴 수
있습니다. 서울 전역에서는 우리가 더 빠르고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기에, 그들이 더 수면위로 오를
때 까지만…….두 사람을 서울에서 움직이도록 할 예정입니다.”
설장호도 차현태가 한 말을 생각하지 않은 부분은 아니었다. 경기도 성남의 외곽에서 몸을 숨겼을 때가 그
좋은 예였다. 아무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그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때…….서지호가 보낸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 각지에서 이미 수많은 인력을 배치해 두었고, 추선우가 서울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을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었다.
-알았네. 아무쪼록 지현의 생명에 지장 없도록 일처리를 해주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오로지 지현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에게는 더 큰 것이 있었다. 지현의 안전도
지키면서, 숨어있는 그들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도 빠르고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서울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최적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것을 항시 귀에 착용한다. 그리고 명심해라. 항상 너와 지현의 뒤에는 나와 설 실장님이 있다. 그리고


강 검사와 형사들도 있으니, 그들과 조우 한다고해도 걱정하지마라. 꼭 지켜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섭다면 애초에 이런 시작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꿈이 경호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떤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을 경호중에 있습니다.”
태정민은 사당역 인근에서 추선우를 만나 이어마이크를 그에게 건네며 말하였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입가에 미소를 지은 뒤,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지현아. 이 삼촌들이 그 나쁜 사람들 모두 잡고나면, 우리 지현이하고 삼촌하고 이모, 모두가 다
놀이공원에 놀러갈까?”
“응. 삼촌.”
태정민은 지현에게도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현도 이제는 태정민에게 웃음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에게도 삼촌이라는 말을 하자, 태정민의 눈동자가 잠시 떨려왔다.
“그래. 꼭 약속 지킨다. 삼촌들과 이모들이…….그 놈들 모두 잡아줄게.”
태정민은 지현을 살며시 안으며 말해주었고,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현은 웃었다. 아직 자신의 부모가 살해되던 그 때를 잊지 않았지만, 웃었다.
-추선우. 잘 들리는가?-
“네. 잘 들립니다.”
태정민에게서 받은 이어마이크를 착용하자마자,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너의 모든 말은 우리 모두가 함께 듣는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말도 네가 함께 듣는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진정 처음느껴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TV 에서 보면 경호원들은 항상 귀에 무엇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도 그들과 같은 것을 귀에 착용하였고, 진정 이 나라에서 쉽게 만나지 못할
인물들과 함께 숨 쉬며 뛰게 되었다.
-바로 움직인다. 그들은 언제나 지현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실시간으로 추선우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CCTV 가 아닌 위성을 통해서 넓은 방향으로 보며,
인근 CCTV 를 통해 더 생생하게 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태정민…….아예 붙어서 함께 움직일 참인가보군.”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인물은 비단 설장호 뿐만은 아니었다. 정구석의 경호원인 백태도 인근에
설치된 CCTV 를 통하여 지금의 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이었다.
백태는 곧 현재 상황을 정구석에게 알렸고, 정구석은 여전히 가운 하나만을 걸친 채,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창가를 향해 보며 서 있었다.
“13 시간이 지나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35 시간. 그 안에 놈을 잡는다.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정구석은 조직 내, 다른 인물들보다 자신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백태가 CCTV 를 통해 사당역인근을 보고 있을 때, 이미 사당역 인근에는 고민국의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또 한, 최기수와 함께, 우수광이 보낸 인물들도 하나, 둘, 목표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지만, 현재
사당역에 있는 그 누구도 그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0007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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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나 화장실.”
지현이 추선우의 손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추선우가 몸을 낮춰 지현을 안아
올렸다.
“잠시…….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에게 말한 뒤, 조금 전 식사를 하고 나온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 둘, 함께 들어가서 경호한다.”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과 함께 도착한 대원들 중, 두 명을 지목하며 함께 움직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 중, 한
명의 표정이 조금은 매섭게 변한 뒤, 추선우와 지현이 들어섰던 식당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인근 사방 50 미터 부근을 조사한 결과, 한 자리에서 이유 없이 계속하여 서성거리는 인물이 총
일곱 명입니다.”
“일곱 명?”
설장호는 모니터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고 있었고, 곧 한 대원이 주변 인근을 확인한 내용을 알리자,
설장호의 시선은 그가 모니터링하고 있는 화면으로 돌아섰다.
“이곳과 이곳, 그리고 여기…….총 일곱 명인데, CCTV 로 확인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이유
없이 서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거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 서 있을 수도 있지만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었다. 대원의 말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가기에는 뭔가 불길한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었다.
태정민은 곧바로 두 대원에게 해당 인물들을 조사토록 명령 내렸다. 일반인을 불시 검문하는 것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 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 편. 화장실은 남, 여가 따로 들어가는 곳이라, 지현이 들어간 여자화장실로 추선우는 함께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강서진이 계속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검찰청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그녀였다.
“저희가 보고 있겠습니다. 추선우씨도 화장실을 다녀오십시오.”
추선우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섰던 대원이 말을 건넸고, 추선우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은 뒤, 화장실을
향해 보았다.
“괜찮습니다.”
추선우의 말에 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고, 그의 표정변화를 추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여기는 제가 있겠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그의 표정변화에 의해 불길한 느낌을 받은 추선우지만, 표정을 밝게 한 채,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식당을 나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태정민. 식당 안으로 들어서라. 추선우와 함께 들여보낸 대원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네?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추선우가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는
식당외부에 있는 태정민에게 말했고, 태정민은 그 즉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실장님. 여기 보십시오.”
그 순간 사무실 안에서 인근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대원이 갑작스레 설장호를 불렀고, 곧바로 그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뭔가?”
설장호는 그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해당 모니터에는 조금 전,
인근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일곱 명을 확인하도록 보낸 대원들의 움직임이 각기 보이고 있었고, 그 중,
세 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지만, 그저 일어나는 실랑이는 아닌 듯합니다.”
“인근 CCTV 연결해.”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인근에 설치된 CCTV 에 접속하였고, 해당 지역의 영상이 조금 더 상세하게 보이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젠장. 모두 지현의 곁으로 붙어!”
설장호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고, 그 순간 추선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변함과 동시에, 태정민과 함께 왔던 대원이 추선우를 보며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민간인이…….간이 너무 부었어.”
“!!!”
그리고 그의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는 추선우뿐 아니라 태정민과 설장호의 귀에도 들어갔다.
‘슛!’
‘탁!’
그는 곧바로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작은 칼을 꺼내 추선우를 향해 휘둘렀지만, 그 순간 그와 함께
들어섰던 다른 대원이 칼을 휘두르는 그의 손을 잡았고, 추선우는 곧바로 그의 복부를 걷어찬 뒤,
여자화장실로 빠르게 들어섰다.
“뭐야!”
그리고 이어 들어온 태정민이 두 대원의 격투장면을 보며 소리쳤고, 그로인하여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식당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뭔가…….일이 터진 모양이군.”
그리고 식당에서 우르르 나오는 손님들로 인하여, 인근 CCTV 를 통해 보고 있던 백태가 홀로 중얼거린 뒤,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부하에게 서둘러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지현아!”
갑작스러운 대원의 행동에 의해 추선우는 여자화장실로 들어서서 지현을 찾았고, 지현은 소변을 보고
나오며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달려와 추선우에게 안겼다.
“추선우!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난다!”
식당 내부의 영상은 설장호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로 식당안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추선우! 움직여라!”
지현을 안고 화장실을 나서자, 식당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조금 전,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인물을
상대하기 위하여 태정민과 다른 대원이 그와 마주하고 있었고, 손님들은 이미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태정민. 추선우와 함께 식당을 나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인근에 누군가가 붙었다는 것은 확인하였지만, 태정민과
함께 움직였던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변심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그 어떤 기관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경호실이기에, 그들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오산이었다. 이미 그들의 힘이 더 이상 뻗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쪽으로!”
태정민이 추선우와 함께 나서며, 식당외부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붙었고, 강서진의 형사 팀이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해당 인물을 제압하고자 움직였다.
“실장님. 인근에서 움직이는 인물이 많습니다.”
사당역 인근에서 움직임이 계속하여 포착되고 있었다. 이미 수상하다고 여긴 일곱 명을 확인하고자
다가섰던 대원들도 하나 둘,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젠장…….CCTV…….우리만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군.”
설장호는 해당 영상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추선우와 지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고 빠른 시간에 그의 곁으로 붙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당역 인근에서
조금 전의 일로 인하여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설장호는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들 역시…….CCTV 나 다른 장비를 통해서 지현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식당에서 빠져나온 뒤, 주위를 둘러보며,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이동하려던 찰라, 때마침 강서진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급히 움직이는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겠습니다.”
태정민이 말했고, 강서진은 지금의 상황을 바로 듣고 싶었지만,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졌다.

-강서진! 세 사람을 데리고 사당역을 벗어난다!-


“네?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설장호의 무전도 함께 왔고, 강서진은 세 사람을 태운 뒤, 사당역을 바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10 우 7406. 쥐색 SUV 차량이다. 쫒아라!”


그리고 백태는 그 현장을 CCTV 를 통해 보고 있었고, 강서진이 타고 온 차량을 보며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알렸다.
“생각보다 빠르고, 많이들 움직이는군.”
백태는 강서진의 차량이 사당역을 벗어나 동작대교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그녀의 차량 뒤로 몇 대의 차량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강 검사의 차량 뒤로, 세 대의 차량이 붙었습니다.”
“차량이 또 있습니다. 방배역 방향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해당 차량으로 돌진하는 차량이 두 대 더
있습니다.”
인근 영상을 넓게 보며 한 대원이 말하자, 곧바로 또 다른 대원이 방배역 인근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다가서는 차량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이군. 태정민.”
“네.”
“차량 뒤로, 다섯 대의 차량이 붙었다. 네가 운전석에 앉는다.”
“아닙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강서진이 말했다. 그녀는 눈에 독기를 품은 듯,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동작대교를 향해 바로 달리고 있었고, 곳곳에 차량이 막히지만, 아주 잘 피해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회장님. 잠시…….영상 좀 보시겠습니까?”


곧 최기수와 우수광쪽에서도 사당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내용이 보고되고 있었다. 아직 두 사람은
고민국과 정구석에 비해 한 발 늦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좀 하자…….왜 항상 늦는가? 이러다가 정구석이나 고민국이 이놈들을 먼저 잡는다면, 이 큰
조직을 내손에 쥘 수 있는 날은 아예 사라진다.”
최기수가 사당역에서 조금 전 일어났던 상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하였고, 우수광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고민국의 사람이 사당역에서, 그리고 정구석의 사람들이 방배역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었고, 조금 전,
식당 안에서 추선우를 향해 칼을 들었던 인물은 고민국이 관리하는 조직원이었으며,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태정민과 함께 오랫동안 근무하였던 인물이었다.

“사당역의 일은 처리되었습니다.”
곳곳의 CCTV 를 통해 강서진의 차량을 추적하고 있던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말했다. 그는 조금 전,
식당에서 일어난 일고 함께, 인근에서 벌어진 대원들과 몇 사내들의 실랑이에 대한 보고를 한 것이었다.
“식당에서 추선우에게 칼을 들었던 놈은 물론, 그곳에서 우리 대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놈들 모두를
연행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차량을 추적하는 메인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젠장! 저 놈들은 어찌 알고 오는 거야!”


강서진은 이내 동작대교 방향으로 차량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CCTV 나 기타 위성을 이용한 추적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녀의 거친 말에 설장호가 답했다.

0007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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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놈들이 어찌 CCTV 를 확인합니까? 그거 허가 없이는 모두 불법 아닙니까?”
강서진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으로 물었다.
“지금…….저 놈들 자체가 불법인데, 그거하나 하지 못하겠습니까? 일단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마시고
저들을 따돌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녀의 말에 옆 자리에 앉은 태정민이 말했고, 추선우는 지현을 안은 채, 시선을 뒤로 돌리며, 뒤따르는
차량들을 보고 있었다.

“삼촌. 무서워.”
“괜찮아. 여기에 삼촌하고 이모하고 다 있잖아. 걱정하지 말고, 지현이는 삼촌 품에 안겨있어. 알았지?”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긴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추선우도 그녀를 더 꼭 안아주며 말한 뒤,
차량의 룸미러를 보며 태정민과 시선을 마주하였다.
“우리 쪽 대원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설장호는 곳곳의 CCTV 를 계속하여 연결해가며, 강서진의 차량을 주시하고 있었고, 곧 대원에게 물었다.
“현재, 서울역 인근에 있습니다. 강 검사의 차량을 마중하러 보낼까요?”
“아니. 그곳에서 대기시킨다. 차량을 이동한 추격이기에, 차량이 붙는다고 그들을 잡아 세울 수는 없어.
자칫 무리한 제압은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서울역에서 대기토록하고, 차후의 명령을 기다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차량이 동작대교를 넘어 용산방향으로 유턴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마이크를 들었다.

-차량을 서울역으로 이동시킨다.-


“네? 서울역으로 말입니까? 그리 복잡한 곳으로…….”
-서울역에 우리 국정원쪽 대원이 대기 중이다. 서울역에서 차량을 세우고 서울역 안으로 들어선다.-
“알겠습니다.”
마땅히 방법은 없었다. 차량을 이용하여 계속적인 움직임을 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 정차해야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소가 서울역이란 말에 강서진이 의아해 했지만, 그곳에 이미 대원이
대기 중이란 말에 곧바로 서울역으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차량을 더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한 편. 백태는 정구석을 찾아가, 현재 강서진의 차량을 쫒고 있는 자신들의 인원을 더 추가하겠다는
보고를 하였다.
“우리 쪽 인원만 쫒고 있나?”
“아닙니다. 고민국회장쪽에서 붙었고, 곧 최기수회장과, 우수광 회장 쪽에서도 움직이는 인원이
포착되었습니다.”
정구석은 가운을 벗고 정장을 입은 채, 그의 말에 다시 물음을 하였고, 곧 백태가 다시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여 보고하였다.
“모두…….똥줄 타는 모양이겠군. 48 시간이면 내일 저녁 9 시까지다. 그 안에 단 한 놈이라도 잡는
인물이 차기 회장 자리에 않을 확률이 높아지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덤벼들겠지.”
정구석은 담배를 꺼내 물며 홀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리 경쟁이지만, 같은 식구끼리 목을 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인원을 더 추가시켜라.”
“네. 회장님.”
정구석은 오늘 안에 뭔가 결판을 보려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비단 정구석 뿐만 아니었다. 가장
많은 인원을 확보하고 있는 고민국쪽에서는 이미 여러 곳의 정보를 빠르게 입수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설장호의 명령인 서울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국정원 소속 인원들 속에도 이미 그의 사람을 심어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기수와 우수광은 많은 인원이 아니, 제대로 된 인물을 몇 투입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서울역이다. 모두 내릴 준비해.”
강서진의 차량이 곧 서울역 인근에 도착하였고, 강서진은 룸미러를 통해 뒤에 탄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끽!’
‘빵빵!’
서울역이 좌측에 보이자마자, 강서진은 중앙선을 넘어 곧바로 서울역 택시 승강장을 지나치며 인도로
차량을 올렸고, 그로인하여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차량을 보며, 일부 운전자는 연신 욕을 하고 있었다.

“강 검사의 차량이 서울역에 진입하였습니다.”


곧. 사무실에서 대원이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인원을 바로 움직이도록 하고, 일부 팀은 네 사람을 경호하여 움직이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서울역에서 차량이 정차된 후, 차량에서 내리는 네 사람의 모습이 서울역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보이고
있었고,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명령 내렸다.
‘끽 끽, 끽!’
이어서 뒤쫓아 오던 차량들도 중앙선을 넘어 서울역으로 진입하였고, 그로인하여 일대의 사람들은 급히 그
곳을 피하며, 차량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먼저 도착한 강서진의 차량에 의해 인근에 있던 경찰들이 움직이면서, 뒤에 도착한
고민국과 정구석의 부하가 탄 차량을 저지하고 있었다.

“차량을 이리 주차하면 어떡합니까! 당장…….”


‘픽!’
“!!!”
경찰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차량에서 내린 한 사내는 정확히 해당
경찰관을 향해 총을 쏘았고, 경찰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로인하여 주변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고, 출동했던
경찰들은 가스총을 들어 그들을 겨냥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들고 있는 총은 가스총이란 것을 잘 알며, 조금 전 그들이 쏜 총은 실탄이 장전된 총이란 것을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보아 알고 있기에, 허리춤에 찬 가스총을 들어 겨냥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들이었다.

“뭣들해! 대원들 투입시켜!”


설장호는 이미 그들이 경찰관을 향해 총을 쏜 것을 보았기에 급하였다. 서둘러 국정원대원들을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고, 곧 CCTV 에 국정원 인원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픽픽’
국정원 인원들도 모두 실탄을 장전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추선우 일행의 뒤를 따라 서울역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로인하여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재밌군. 서울역 한 복판에서 총격전이라…….”


한 편. 그 영상은 백태를 비롯하여 정구석도 함께 CCTV 를 통해 보고 있었고, 고민국과 최기수, 우수광도
서울역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해당 영상을 접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CCTV 쯤은 간단히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설장호만이 CCTV 로 그 곳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인명피해가 늘어납니다. 서울역에 사람이 너무 많아요!”


강서진은 세 사람과 함께 서울역 안으로 들어서며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어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서울역 안 CCTV 도 모두 연결해.”


설장호는 곧 한 대원에게 말했고, 대원은 서울역 안에 설치된 수많은 CCTV 를 모두 메인화면에 띄웠다.
“사람이…….많습니다.”
모두의 눈에 보였다. 서울역에는 평일 오전이지만 진정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설장호의 눈매는 매섭게 변하였다. 서울역 외부에도 사람이 많지만, 그 안에도 만만찮은 사람들로 인하여,
만에 하나 그들이 서울역 안으로 들어가 총을 쏜다면 인명피해는 필시 일어날 것으로 보였다.
“모두 서울역 출입구를 막는다. 모든 대원들을 입구 쪽으로 움직이도록 해.”
“알겠습니다.”
방법은 한가지였다. 그들이 서울역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야하기에, 입구를 막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주…….지랄들을 하는군. 머릿수가 많다고 모든 것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서울역 입구 쪽으로 급히 움직이는 국정원대원과 또 자신과 같은 목적을 둔
인물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것을 보며,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마치 정구석의 경호원인 백태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회장님. 박석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곧 최기수의 비서가 그에게 다가서며 보고를 하였다. 백태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인물의 이름이
박석이며, 그는 최기수가 보낸 킬러였다.

“회장님. 도태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우수광의 비서도 우수광에게 자신이 고용한 인물이 현장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목표는 지현이다. 설장호가 현장에 있다면 그 놈의 목을 먼저 치고 싶지만, 그가 없으니, 가장 큰


목표물인 지현의 목을 친다.”
“알겠습니다.”
우수광은 오로지 지현의 목을 가지려 하였다. 그녀의 목을 치는 것으로 현재 이 일이 이토록 번지게 된
것을 모두 막겠다는 것이었고, 자신이 가장 큰 우위를 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우수광이 고용한 도태라는 인물은 이미 킬러의 바닥에서는 이름 꽤 나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설장호는 물론, 태정민도 그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최기수가 고용한 박석이라는 인물은 알려진 인물이 아니기에, 목표를 향해 접근하기가 더 용이하지만,
우수광이 고용한 도태는 그리 쉽게 목표물까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아예, 서울역을 다 막아버릴 참인가…….”


서울역의 CCTV 를 통해 영상을 보고 있는 정구석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냥. 밀어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백태는 망설임이 없었다. 국정원소속 인원들이 실탄을 장전하고 있다지만, 그들은 민간인 보호를 위하여
쉽게 총을 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미 자신들의 목을 내놓고 현장으로 움직인
인물들이기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것이었다.
“서울역으로 이동한 것은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우리 쪽이 불리합니다.”
서울역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강서진이 중얼거렸고, 그녀의 말은 현장에 있는 추선우와 태정민도
공감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으로 이동하였지만, CCTV 를 보고 있는 설장호도 공감하고 있었다.
서울역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들이 도착하기 전 미리 민간인을 대피시켜 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결단이었다.

“서울역 역사에 연락하여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록해라.”


“알겠습니다.”
일단 민간인을 그 현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역사에 문제가 발생하여, 모든 승객께서는 급히 비상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서울역사에 연락이 되었고, 역장은 그 내용을 곧바로 방송으로 내보내면서, 역사
관련자들이 서둘러 현장으로 나서며 인원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대피통로는 서울역 출입구가 아닌, 반대편의 이동통로, 그 통로를 이용하여 다시 서울역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00079 경호원 =====================================================================


====
                          
-너희들도 민간인과 함께 그곳을 벗어난다.-

CCTV 에 민간인의 이동이 보이자, 설장호가 말했다.


“아닙니다. 이들과 함께 이동한다면, 또 다시 위험을 이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그들을 대피시키는 것인데, 함께 움직이면, 결국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추선우씨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린…….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이어 태정민이 그의 말을 거들었다. 설장호는 무엇보다 이들의 안전을 더 챙기고 싶었기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대기하기를 자처하였다.
-강서진.-
“네 실장님.”
-지금. 그들도 이 CCTV 를 통해 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민간인과 함께 이동하지 않고, 넌 지현만을
데리고 다른 통로를 이용하여 몸을 숨긴다. 그리고 추선우와 태정민. 너희둘은 CCTV 가 설치된 곳에서
절대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너희들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그곳에 지현도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면서,
한 편으로는 강서진이 지현을 데리고 그곳을 피하는 것이다.-
일종의 눈속임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도 CCTV 를 통해 이곳을 보고 있으니, CCTV 에서 숨지 않으면서도,
지현을 다른 곳으로 숨기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강서진에게 건네주었다.
“삼촌과 정민삼촌이 나쁜 사람들 혼내주고 갈 테니까. 지현이는 서진이모와 함께 안전한 곳에 있어.”
“삼촌…….”
지현은 강서진의 품으로 옮겨지면서, 추선우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가자. 지현아.”
서진은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 중, 가장 큰 목표가 지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총을 든, 단 한 놈에게라도 지현의 모습이 보인다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장님. 지현과 강 검사가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에 있던 모든 민간인들도 대피를
완료하였습니다.”
의외로 빠르게 민간인들이 움직여주었다. 이미 외부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말이 퍼지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더 빠르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지금부터 절대…….긴장을 놓지마라. 민간인들이 서울역을 다 벗어날 때까지만 버틴다. 그 뒤에는 두


사람도 서울역을 벗어난다.-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에 답하면서 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추선우를 보았다.
“총을 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넌 아직 정식적으로 총기를 휴대해야 할…….”
-태정민.-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보고 있는 추선우에게 말했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가 태정민을
불렀다.
“네. 실장님.”
-곧 우리 대원들이 서울역 안으로 들어설 것이다. 한 대원에게 총기를 받아, 추선우에게 지급한다.-
“네! 말도 안 됩니다! 추선우는 아직…….”
“그들은 총을 가졌다. 맨손으로 총을 든 놈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 것으로 충분하다. 불법
운운하지 않는다. 일단 살고 본다. 지급해.-
태정민이라고 그에게 총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그들은 육탄전보다
원거리에서 그냥 마구잡이로 총을 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어렵게 답한 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보여주었고, 간단하게
총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알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꿈인데, 설마 총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겠습니까? 지급된다면 사고 없이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비록 답은 잘 하였지만, 추선우는 실탄 사격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실장님. 서울역 입구에 배치된 국정원 인물들에게 변화가 있습니다.”
설장호는 서울역사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한 대원이 서울역 입구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며 설장호에게 말했다.
“뭐야…….”
설장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그 놈들은 독안에 든 쥐입니다. 이대로 밀어붙이겠습니다.”


고민국의 비서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고민국은 이미 최광민을 시작으로 국정원 내에 꽤 많은 자신의
식구들을 심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서울역에 출동한 국정원소속 대원들 중, 거의 대다수가 이미
고민국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는 이미 한 차례 비슷한 경험을 하였었다. 바로 연화장에서도 고민국에 의해 그곳에 출동하였던 모든
인물들이 다 매수당했던 상황이었고, 그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가 영상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현의 뒤를 쫒았던 이들이 서울역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배치시켰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곧
계단을 올라, 서울역으로 들어서려던 이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들여보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국정원을 장악했다는 뜻인가…….”
설장호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최광민이 배신할 당시에는 그저 일부 몇
명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 서울역에 배치된 국정원소속 인원들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서울역의 인원, 누가 파견한 것인가?”


매서운 눈빛으로 대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대원들이 서로의 눈만을
보고 있었다.
“누가 보낸 것이야?”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우리 쪽에서 보낸 인물이 아닌 듯합니다.”
“젠장…….이미 정보는 막을 수 없이 새고 있었다는 뜻이군.”
사무실 안에 있는 대원들은 서울역으로 대원을 출동시킨 인물이 없었다. 즉. 누구의 명령 없이
서울역으로 이동한 국정원 대원들이란 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들과 한 손을 잡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곧 한 대원이 다른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의 시선이 그 영상에 집중되었다.
그 영상에는 같은 국정원 대원끼리 서로 총격전을 주고받는 영상이 있었고, 이미 안으로 들어선 몇
인원들을 다른 인원이 제압하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왜 같은 편끼리 총격전이야!”


그리고 그 장면은 현장에서 태정민과 추선우의 시선에도 잘 보이고 있었고, 태정민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곧 물품보관함 옆으로 몸을 피한 채, 큰소리로 말했다.
“실장님, 여기…….”
-보고 있다. 아무래도 최광민때처럼 이미 어떤 놈이 먼저 손을 쓴 모양이다. 일단 그곳에서 피한다.-
설장호는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는 물품보관소를 향해 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울역에서 총격전이라니?”
그리고 이 상황은 곧바로 차현태에게 보고되고 있었고, 연이어 국정원장과 총장, 청장에게까지 모두
보고가 들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지원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가 말했고,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차현태는 검찰과 경찰에 직접 연락하여 인원 지원을
부탁하였다.

“실장님. 대통령님의 전화입니다.”


설장호의 눈빛은 역사 안을 보여주고 있는 영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곧 차현태의 연락을
대원이 알렸다.
“네. 대통령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총격전이라니요? 조금 전까지 이런 보고는 없었는데. 왜 갑자기 서울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차현태는 사실 확인을 위하여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오전 일찍부터
지금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보고하였다.
“민간인 피해는 없습니까?”
“네. 다행히, 역장의 도움으로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는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국정원대원들 중, 이미 그들과 한 배를 탄 놈들뿐입니다.”
“지현은? 추선우가 그곳에 있다면 지현도 있습니까?”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곧 지현도 현장에 있다는 것으로 생각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아닙니다. 지현은 강 검사가 데리고 서울역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서울시내의 CCTV 는
저희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그들도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사당역에서부터 따라붙었고, 지현이
움직이는 동선을 그대로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차현태는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그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만졌다.
“인명피해는 물론, 우리 쪽 피해도 없어야 합니다. 지금 검찰과 경찰에 지원요청을 하였으니, 되도록
몸을 숨기고 있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설장호와의 통화를 끝낸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밖을 보면서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설장호는 여전히 메인모니터에 띄워진 영상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물품보관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번호…….”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숫자의 조합이 낯익었다. 물품보관함 위로, 큰 팻말이 있었고, 팻말에는 A-
0450~A0500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알파벳과 함께 네 자리의 숫자…….”
설장호는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이내 눈동자를 크게 떴다.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숫자다!”
알파벳과 함께 조합되어 있는 네 자리의 숫자, 설장호는 곧바로 서울역 안 전체에 자리하고 있는
물품보관함을 찾도록 한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대원은 서울역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보관함 번호를 찾기 시작하였고, 곧 설장호가 말한 숫자가 속한
팻말을 찾았다.
“실장님. 서울역 매표소 대각선 맞은편으로 비치된 물품보관소의 번호가 A-0700~A-0750 입니다.”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숫자는 A-0715 였다. 그리고 지금 모니터에 비춰진 물품보관함의 번호 속에
이 번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태정민.”
“네.”
“매표소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물품보관함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물품보관함 중, A-0715 번을 찾아.”
“네? 지금 이 와중에 물품보관함은 왜…….”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번호다. 그 번호가 서울역사에 비치된 물품보관소의 번호였어.”
“네? 알겠습니다.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설장호가 태정민에게 내린 명령은 추선우도 함께 들었다. 두 사람은 서울역 출입구를 보며, 서서히 해당
물품보관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00080 경호원 =====================================================================


====
                          
‘픽픽픽!’
“젠장!”
하지만 이동은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서울역사안에 보이자마자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왔고, 두
사람의 옆으로 지나쳐가며, 팅겨나갔다.
“우리 쪽 인원은 어찌되었습니까?”
태정민은 움직임을 제한받자 곧바로 설장호에게 물었다.
-모두 당했다. 서울역에서 대기 중인 우리 쪽 인원들은 이미 그들과 한 배를 탄 놈들이었다.-
“아주…….세상천지 다 적이군. 어찌합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물품보관함으로 이동하기가
어렵습니다.”

‘팅팅팅팅’
무전 중에도 총알은 여지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더 바짝 붙였고, 고개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뒤로 빠지자. 지금 상황에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원수의 차이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직 추선우는 총을 건네받지 못하였기에,
원거리 공격을 그저 피하고만 있어야 할 판이었다.

두 사람은 물품보관함 사이로 있는 작은 비상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고, 그 통로는 곧 역사 아래를


지나는 열차 선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CCTV 에서 사라졌습니다.”


비록 CCTV 에서 모습을 감추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살고자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비상계단을 통해
이동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CCTV 에서도 두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빠져나간 것인가?”
그리고 모든 영상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구석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살고자 숨은 것뿐입니다. 그보다…….검찰과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정구석의 말에 백태는 다른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영상에는 서울역 외부로 수십 대의 경찰차와 함께,
형사들 차량 및, 경찰특공대 차량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죽어라고 내 보낸 놈들이다. 죽더라도 상관없으니, 지현의 목을 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정구석에게 현장에 있는 그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검찰과 경찰에서 지원이 도착하였다. 잠시만 더 몸을 숨기고 있어.”


“알겠습니다.”
선로로 내려선 뒤, 잠시 선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곧 설장호로부터 듣던 중 반가운 말이 들려왔다.
한, 두 놈이라면 모를까. 수십 명의 인원이 총을 들고 덤비는 것은 제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당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는 설장호의 말처럼 얌전히 숨어있는 것이 신상에 이로운 것이었다.
“저기…….”
그리고 모두가 제대로 두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최기수와 우수광쪽에서는 선로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을 찾았고, 곧 각기 박석과 도태에게 두 사람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에 반해, 가장 많은 인원과 함께, 가장 먼저 움직였던 정구석과 고민국은 여전히 서울역 안, 밖에서


경찰특공대 및 형사,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실장님. 선로 아래로 이동한 태정민팀장과 추선우의 모습입니다.”


곧 설장호도 두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였고,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현재 위에서는 총격전이 한 창
벌어지고 있지만, 두 사람은 그나마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서진. 어딘가?”
두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였으니, 또 다른 두 사람의 위치도 확인해야 했다.
“지금. 역사관계자들과 함께, 비상통로를 통해 외부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 일단 외부로 바로 나오지 않는다. 외부에 또 다른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상황을 살핀 후, 서울역을 빠져나와서 곧바로 숭례문 방향으로 움직여라. 그곳으로 다른 인물을
보내겠다.”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강서진은 지현을 데리고 안전한 통로를 통해 서울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는 이미
엉망이었고, 또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에, 경찰이나, 형사들 틈으로도 움직이지 않도록 하였다.

숭례문 방향으로 향할 것을 말하였고, 곧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을 하였다.


강서진은 이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만에 하나 설장호가 보낸 인물이 또 다시
배신한다면, 진정 자신은 그 순간을 어찌 이겨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숭례문 방향으로 향할 것을 부탁하였다.

“실장님. 여기 좀 보십시오. 선로 아래로 누군가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대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선로 아래쪽으로 설치된 CCTV 를 통해
잡힌 두 사람의 뒤로 또 다른 인물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가?”
“조금 더, 앞쪽으로 다가오면 얼굴인식이 가능합니다.”
설치된 CCTV 에서 조금 멀리 있기에 그 인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점차 앞으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고, 그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설장호의 눈동자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도태…….”
“네? 도태? 실장님. 지금 도태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홀로 중얼거린 말이지만, 그 말은 태정민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움직임을 멈춘 채,
설장호에게 물었다.
“태정민. 정신 바로 차린다. 도태가 붙었다. 저 새끼가 어찌 다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너의 뒤에
붙어서 움직인다.”
“실장님. 또 한 놈이 있습니다.”
도태를 확인한 후, 곧바로 다른 인물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는 박석이었다.
“저 놈은 처음 보는 놈인데…….일단 두 놈이 붙었다. 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은 불가하다. 하지만
적어도 너와 내가 알고 있는 도태라면 총은 절대 쓰지 않는다. 태정민…….”
“네.”
“총을 추선우에게 건네고, 네가 도태를 맡아라. 그리고 추선우.”
“네.”
“넌…….또 다른 한 놈을 잡는다. 지금 서울역 위에서는 우리 쪽이 우세하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그들을 제압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너희 둘을 따라 움직인 두 놈…….그 두 놈은 너희들이 잡는다.”
“알겠습니다.”
태정민과 추선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정확히 서울역사 바로 아래선로였다. 사람들은 없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안내방송으로 인하여 서울역을 모두 빠져나갔다. 그리고 들어오는 열차도 없었다.
이미 각 기관에 현 상황이 보고되었고,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차단한 상태였다.

“물품보관함…….저 안에 우리가 찾던 비밀이 있을 수 있다…….”


설장호는 또 다시 시선을 역사 안으로 돌렸다. 어느 정도 진압이 되었고, 그 많던 무리들이 거의 다
죽던지, 생포되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의 시선은 A-0715 의 물품보관함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누군가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홀로 그 물품보관함을 주시하고만 있는 상태였다.

“태정민!”
“…….”
아무도 없는 역사아래의 선로. 그곳에서 태정민을 부르는 굵직한 음성이 들렸고, 곧 태정민의 시선이
돌아섰다.
“오랜만이구나. 도태.”
태정민은 그의 음성을 듣고, 도태란 것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미 설장호와 태정민이 그를 잘
알고 있기에, 이 세 사람의 관계도 궁금한 상황이었다.
“우연찮게…….그 쪽 두 사람이며, 이쪽에도 두 사람이군.”
곧 박석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자 도태의 시선이 뒤로 약간 돌아섰고, 대각선으로 보이는 한 인물을
보았다.
네 사람의 조우는 설장호를 비롯하여 최기수와 우수광이 함께 보고 있었다. 고민국과 정구석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인원을 움직였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서울역사 안, 밖에서 모두
제압당하고 있었다.

“젠장. 하나같이 쓸모없는 놈들뿐이군.”


이에 정구석이 담배를 꺼내 물려 쓴 말을 내 뱉었다. 인원수가 많으면, 적어도 단 한 놈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어림없었던 상황이었다.
이는 고민국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자신이 보낸 모든 인원이 경찰특공대 및, 형사들에게 제압당하는
것을 앉은자리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여기…….”
그리고 그제야 두 사람의 모니터에도 또 다른 영상이 잡히고 있었다. 바로 역사 아래의 선로에서 마주한
네 사람의 모습이었다.
“저건…….누가 보낸 인물들이야?”
정구석이 모니터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정확히 누가 보낸 인물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지만, 지금 이 놈…….이놈의 이름은 도태라는 놈으로,
킬러의 세계에서는 꽤 높은 레벨을 지닌 놈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선 놈은 박석이라는 놈인데, 명성은 도태에 비해 형편없지만, 지금까지 맡은 의뢰에
대해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놈입니다.”
설장호와 달리 백태는 두 사람을 다 알고 있었다. 도태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석에 관해서는 백태의 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도태와 박석이라…….고회장쪽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최회장과 우회장이 보낸 놈들 같군…….”
백태의 말을 들은 후, 정구석이 추리를 해 보았다. 자신이 보내 인물이 아닌 것은 확실하였다. 그리고 각
국가기관에 숨어 지내는 조직원을 관리하기도 바쁜 고민국이 보낸 인물이 아닌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남은 인물은 최기수와 우수광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매치가 되는 순간이었다.


최기수는 정치계 쪽이다. 그리고 우수광은 경제계 쪽이다.
즉. 정치깡패와 경제깡패는 언제나 단 한방에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 것이기에, 이들 세계에서는
킬러고용이 비교적 많은 것을 정구석이 생각한 것이었다.

“재밌겠군. 일단 한 번 보자. 여기서 저 두 놈이 잡히면, 우린 설장호나 지현을 잡는 것만이 남은


기회지만, 만에 하나 저 두 놈에게 박석과 도태가 잡히면…….아주 좋은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저 두 놈을 평범한 놈으로 잡을 수 없다는 정보 말이야.”
정구석은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내 뱉으며 말했고, 곧 백태는 여러 대의 모니터에 각기 다른
곳에서 현 지역을 촬영하고 있는 CCTV 영상을 하나씩 배정하여 모두 재생하고 있었다.

0008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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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현재 서울역 인근에 설치된 모든 CCTV 를 다 확인하였고, 우리 외에 그 해당 CCTV 가 내 보내는
영상을 받고 있는 곳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한 편. 국정원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설장호가 역사 아래 선로를 비추고 있는 영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곧 한 대원이 해당지역의 CCTV 영상을 수신 받고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여 추적중임을
보고하였다.

“되도록 많은 인원을 보낸다. 그리고 실탄장전을 필수로 하고, 현장을 덮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곧바로 한 대원이 어딘가로 연락하여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모니터에 뜬 영상을 보고 있었다.

CCTV 영상을 수신 받고 있는 곳에 꼭 그들이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관련된 이들은 꼭 있을
것이라 여겼다. 되도록 많은 인원을 보내며, 단 하나의 단서라도 잡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현재
서울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설장호였다.

“이거…….대작영화를 보는 느낌이군.”
때 아닌 영화 관람이었다. 정구석과 고민국, 최기수와 우수광은 현재 서울역 아래에서 곧 벌어질 일에
대해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고, 설장호의 눈도 해당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실장님. 대체 누가 온다는 것입니까? 지금 지현을 데리고 이동 중이라, 자칫 그들의 눈에 들까 심장


떨려 죽겠습니다.”
온통 모니터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설장호의 귀에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장호는 곧바로 시계를
보았다.
“곧 도착한다. 숭례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마중 오는 인물이 누군지라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현을
꼭 안은 채, 걷기만 하였다.

‘빵빵’
그 순간 차량 한 대가 옆으로 다가와 멈춘 채, 창문이 열렸다.
“아…….”
강서진은 멈춘 차량 안을 보며 어색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은주이모!”
은주였다. 그리고 지현이 강서진의 품에서 내려와 곧바로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은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곧 강서진도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올라탔다.
“어찌…….된 일이에요? 왜 은주씨가?”
“모르겠어요. 설 실장님이 갑자기 전해서 이곳으로 가서 지현을 데리고 서둘러 이동하라고만 했어요.”
강서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또 다시 국정원 사람이나, 청와대 경호실에서 사람이 나올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은주였다. 자신과 함께 자신의 오피스텔로 온 은주였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곧바로 서울역 인근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설장호가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낸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지금의 상황에 은주와 같이 믿을 만한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실장님. 의외네요. 어찌 민간인에게 도움을…….”


-추선우도 민간인이다. 그리고 지현이 믿는 사람이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잔말 말고
이동하고,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연락해라.-
“네. 알겠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이지만,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강서진이었다.

“아주 좋다. 넓고, 위험하고, 사람 없고, 딱 누구하나 죽어나가기 좋은 장소 아닌가?”


한 편, 도태의 말처럼 시끄러운 역사안과는 달리, 역사 아래 선로는 고요하며, 네 사람만이 서 있었다.
“그…….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놈을 잡을 것인가? 청와대 경호원인가? 아니면 저 민간인인가? 네가
먼저 선택해라.”
도태는 자신의 대각선 건너편으로 있는 박석을 보며 물었다. 자신을 모르는 도태와는 달리, 박석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과 추선우를 번갈아 보았다.
“도태. 오랜만에 보는데 우리의 옛정을 생각해서 너와 내가 회포를 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태정민은 도태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보며 말했다. 태정민은 도태란 인물을 잘 알기에, 추선우가 그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것이었다.
“어쩐다…….난 나와 같은 뜻으로 움직인 저 친구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했는데, 이미 나를 지목한 상대가
있으니…….어쩔 수 없이 내가 청와대를 잡아야겠군.”
도태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여유 있는 표정과 어투로 말하였고, 곧 박석을 보았다.
“뭐…….어떤 놈을 잡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먼저 죽이는 놈이 나머지도 죽이는 것으로 하지.”
박석은 자신 있는 어투였다. 자신이 상대할 추선우를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역사 안이 진압되면, 그 즉시 선로로 대원들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역사안만 정리한다. 선로 아래는 그 어떤 대원도 보내지 않는다.”
한 편. 국정원 사무실의 대원이 설장호에게 역사 안쪽 상황이 정리가 되어가자, 출동한 인원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려는 보고를 하였다.
하지만 설장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 어떤 대원도 아래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막는 것이었다.
“네? 그럼…….저 상황을 보고만 계실 것입니까?”
대원이 의아하여 물었다.
“조금 전 모두가 보았다. 누가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른다. 만에 하나 지금 출동한 놈들 중에서도 그들의
편에 속한 놈들이 있다면, 아래에 있는 저 두 사람의 목숨은 그냥 떨어진다. 믿음이 없으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장호의 생각도 일리는 있었다. 믿었던 국정원소속 대원이 서울역에서도 변심하였다. 만에 하나 검찰과
경찰, 그리고 경찰특공대가 출동하지 않았다면, 태정민과 추선우의 목은 이미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설장호는 그들마저도 네 사람의 결전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곧바로 서울 역사안을 제압하고자 출동하였던 검찰, 경찰의 수장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은 역사
안만을 정리한 후, 모두가 역사주변을 에워싸기만 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역사 아래로 내려서지 못하도록 단속하였고, 그 모습에 지금 상황을 CCTV 로 보고
있던 최기수, 우수광, 고민국, 정구석은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자신만만하다는 뜻인가? 왜 경찰특공대를 내려 보내지 않는 거지?”
가장먼저 의심을 자아낸 인물은 정구석이었다. 이미 자신이 보낸 모든 인물이 다 제압당한 상태에서,
굳이 시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최기수와 우수광이 보낸 인물이 태정민이나 추선우를 잡게 된다면, 자칫 많은 것을
준비하고도 두 사람에게 회장 자리를 양보해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차나 전철도 들어서지 않고…….기분 묘하군. 이미 이 상황을 모두가 보고 있거나, 알고 있다는
뜻인데…….멍석을 깔아주었으니, 한바탕 놀아줘야겠지.”
도태가 철로로 내려서며 말했다. 서울역에는 수시로 전철과 기차가 드나든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대의 전철이나 기차가 오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넓게 놀자. 난…….태정민과 놀 테니. 넌 저 민간인과 놀아라.”
도태가 태정민을 향해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가 다가서자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총을 건네주었고, 그 모습은 도태와 박석이 보았다.
“한바탕 신나게 노는데, 총은 빼자. 만약 총을 사용할 마음이 있었다면, 이곳으로 오기 전 , 네 놈들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박석이 말했다. 도태는 처음부터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놈이란 것을 잘 알기에 총기를
추선우에게 준 것이었다. 하지만 박석의 말을 들은 후, 그 역시 총기 사용은 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하였다.
“어찌…….할까요?”
추선우가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만에 하나 총기 사용으로 인하여 괜한 불똥이 튈 수 있기도 한 상황이다. 넌 아직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인물이 아니니…….만약을 일을 대비하여 저놈 말처럼 총기는 빼자.”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차후의 일에 대해 걱정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게 준 총기를 다시 건네받았고, 그 총기는 한 쪽으로 놓아두었다.
“역시…….너의 그 마음은 진정 내 마음에 쏙 든다. 이제…….놀아보자.”
태정민의 행동을 본 후, 도태가 말했고, 도태는 그 즉시 태정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움직이자, 박석도 추선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태팀장이 총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는 임무 중…….”


“그냥 지켜본다.“
설장호도 태정민의 행동을 다 보았다. 하지만 대원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저 싸움실력을
발휘하는 장소나, 때는 아니었다. 이미 인명피해가 발생하였고, 서둘러 그들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총기를 내려놓고, 결국 싸움실력을 자랑하는 꼴 밖에 되지 않기에 한 말이었다.

설장호의 눈매는 여전히 매서웠다. 도태에 대해서는 태정민이 어느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비밀에 싸여있는 인물인 박석이, 추선우를 어찌 상대할지 궁금하였다.

먼저 도태의 주먹이 태정민을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은 디딤발이 자유롭지 못한 철로 위에서 서로 주먹과


발을 뻗어가며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서로에게 일격을 가하지는 못하였다.
또 한, 철로에 다리가 걸리며 넘어지는 태정민을 잡고자, 움직이던 도태도 발을 잘 못 디뎌 넘어지고
있었다.
“이거…….자유롭지 못하군.”
제대로 된 움직임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였다. 도태는 태정민을 보며, 승강장 쪽을 가리켰다. 두 사람
모두 디딤발이 자유롭지 못한 것에 공감하며, 두 사람은 승강장으로 올라섰다.
‘탁. 탁탁’
하지만 추선우와 박석은 여전히 철로 위에서 서로를 향해 주먹과 발을 뻗었고, 서로 단 일격도 허용하지
않은 채, 방어를 하며,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저…….민간인도 보통이 아닙니다. 박석이 총을 들지 않은 것도 의아하지만, 그의 싸움실력은 도태와
비등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저 민간인…….그저 평범한 놈은 아닙니다.”
추선우와 박석의 격전을 보며, 백태가 말했다. 백태는 지금 영상을 접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도태와 박석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박석을 상대하는 추선우를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0008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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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놈이…….지현을 경호한다? 민간인 주제에 제대로 된 놈을 붙여놓았군.”
백태의 말을 들은 후, 정구석이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박석을 현장으로 보낸 우수광도
추선우를 달리보고 있었다.
우수광은 박석이 추선우는 물론, 태정민도 쉽게 제압할 것이라 자신하였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니,
오히려 밀리는 듯 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퍽!’
“오호. 저 놈…….진정 물건인데.”
설장호를 제외하고, 영상을 보고 있던 네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내 뱉었다. 모두가 함께 본
영상은 바로 추선우와 박석이었다.
그리고 추선우가 박석의 공격을 막은 후, 몸을 공중에 띄워 돌려차기를 감행하였고, 그 돌려차기가 아주
제대로 적중되면서 박석이 철로 위로 넘어졌다.

“추선우…….”
설장호는 홀로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추선우가 어느 정도의 실력은 가진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움직임을 보니, 그저 객기로 지현을 경호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너…….제대로다. 다시 한 번 하자.”
추선우의 돌려차기를 허용한 뒤,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다시 일어선 박석이 말했다.
“얼마든지…….”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자세를 잡았고, 박석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탁탁탁.’
한 편. 승강장 위로 자리를 옮긴 태정민과 도태의 움직임도 화려하였다. 디딤발이 자유로워지며, 두
사람의 진정한 실력이 눈으로 보이고 있었다.
액션영화를 본다고해도 될 정도로 두 사람의 공, 방은 화려하였다. 도태의 발차기가 나오면, 그에 맞는
방어나, 회피로 적절한 움직임을 보인 후,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는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공격도 적절하게 피하며, 다시 공격을 감행하는 도태였다.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만, 언제까지 시간을 잡아둘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정해진 시간에 출발해야 할, 기차와 전철이 모두 지체된 시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한 편. 서울역사에서는 역장이 경찰특공대장을 보며 말했다. 이에 대장도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못할
입장에 놓이고 있었다.

“실장님. 현장을 지휘하는 경찰특공대 대장의 연락입니다.”


곧 설장호에게 연락이 왔고, 그는 경찰특공대의 전화를 받았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5 분 후, 진압에 들어가며, 10 분 후, 모든 기차와 전철의 운행을 시작하십시오.”
설장호가 잡을 수 있는 시간은 5 분이었다. 그 안에 결정이 나지 않는다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는
것이었다.
“하…….그 놈들 진정 징허네. 어찌 저토록 잘 싸우는 거야? 아무리 청와대 경호실 인물이라고 하지만,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놈을 저리 가지고 놀고, 또 저 민간인은 대체 정체가 뭐야. 저 놈은 태정민보다 더
한 놈이잖아.”
네 사람의 눈에는 도태와 박석이 밀리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밀리고 있었다. 태정민은 청와대의
경호원답게 도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였지만, 추선우에 대해서는 모두가 놀란 눈들이었다.
오히려 박석이 완전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며,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킬러가 민간인을 상대로 단 일격도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놀랄 뿐이었다.

“너…….대체 뭐냐.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놈이냐?”


박석은 이미 입가에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움직임은 둔해졌다. 그리고 눈가에는 서서히 멍이
시퍼렇게 올라서고 있었고, 자신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물었다.
“저번에도 누군가 물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놈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답은 같다. 난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지금까지 줄곧 한 곳에서 잘 살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만난
네놈들이 불운일 뿐이다.”
추선우는 이미 박석이라는 킬러를 잡은 것과 같았다. 박석은 자신이 지금껏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면서 단
한 번도 실패한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지금의 상황이 더욱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태정민이나, 설장호를 상대하며 자신이 이런 몰골이 되었다면 그 이해는 더 빨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민간인…….민간인을 상대로 자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은 자신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었다.

‘퍽!’
또 다른 장소, 태정민과 도태의 몰골은 서로 비등하였다. 터질 곳은 터지고, 멍들 곳은 멍들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안에 서로는 적절하게 공격을 허용하였고, 서로 비등하게 상처를 입고 서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주먹이 도태의 복부에 그대로 적중되면서, 도태가 살짝 한 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제길…….쪽팔리는군.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리 쉽게 내려앉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야…….”
도태가 다시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고, 곧 태정민도 한 쪽 눈이 부어오른 상태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쪽에서 박석이란 놈이 서둘러 그 민간인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군.”
도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정민을 잡지 못할 것이라
자신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이곳을 살아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태정민에게 잡히고자
한 생각도 없었다.

“실장님. 저 민간인…….진정 놀랍습니다.”


국정원의 사무실에 있는 모든 대원들이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설장호도 같은 느낌이었다.

-태정민. 조금만 버텨라. 추선우가 올라선다.-


“네? 하하…….그렇지 않아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태정민은 이어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설장호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곧 그의 목소리는
청와대의 서지호는 물론, 은주로 인하여 안전한 곳으로 이동 중인 강서진의 귀에도 들려왔다.

“어찌되었는가? 서울역에서 또 다시 인명피해가 일어났는가?”


“아닙니다. 지금 추선우가 박석이라는 첫 번째 킬러를 제압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정민을 돕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편. 차현태는 지금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어 답답하였고, 곧 서지호에게 물었다. 서지호는
조금 전, 설장호의 목소리를 들은 후, 현재의 상황을 추측하여 차현태에게 설명하였고, 차현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아직…….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너무 시끄러운 상황들만 만들어지고 있네, 서둘러 뭐라도 알아내야
할 텐데…….”
차현태는 마음이 불편하였다. 어디선가 수없이 많은 인원들이 지현을 잡고자 나오고 있지만, 진작 잡아야
할 핵심인물은 단 한 놈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통령님. TV 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곧 집무실로 한 경호원대원이 들어서며 말했고, 그의 말에 서지호가 TV 를 켰다.
-이곳은 서울역입니다. 현재 서울역 안에서는 테러진압을 하는 듯, 경찰특공대가 출동하였습니다. 아직
어떤 상황인지, 또 무슨 이유로 일어난 테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울역 안에 있던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총격전과 함께, 몇 인물들이 서울역을 장악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이미…….언론보도가 시작되었군.”
차현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이와 같은 큰 일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강서진이 차량을 끌고, 서울역 앞 인도를 진입할 때부터 언론사가 주위에 있기에 곧바로 현장 보도는 이미
예측된 일이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네. 네…….알겠습니다.”
“누군가?”
짧게 답을 한 후, 전화를 끊자, 차현태가 물었다.
“검찰총장입니다. 언론 보도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으며, 서둘러 이와 관련된 보도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이래저래 세상천지 다 알려지겠지. 어차피…….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니, 아예 드러내놓고 그
놈들을 잡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차현태는 서지호를 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지현의 안전을 위하여 일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막았었다.
하지만 서울역에서의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이에 차현태는 모든 것을 오픈하자는 말을 꺼내들었다.
“그럼…….각 기관의 수장들을 다시 불러들이겠습니다.”
“아니. 바쁜 사람들 오가라 할 수 없으니, 내가 직접 연락하겠네. 그리고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새로운 물을 받아봐야지.”
차현태는 모든 계획을 다 수정할 생각이었다. 더 이상 비밀에 붙이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공개하며,
지금의 세상에 이런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심상이었다.

차현태의 연락을 받은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정확하게 누군지 모르는 인물들이다. 그들을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추측성 발언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또 숨어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차현태의 생각처럼 모든 것을 오픈 시킨 뒤, 그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주자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었다.
“지금 즉시, 설 실장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게.”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말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차현태의 말을 전하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설장호도 받아들였다. 이미 서울역에서의 일로 인하여 더 이상 비밀수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두 체포해!”
그 시간. 경찰특공대가 역사 밑으로 내려섰고, 도태와 박석을 체포하였다.
도태는 박석이 철로위로 올라설 것이라 믿었지만, 자신의 눈에 보인 인물은 추선우였다. 그로인하여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않았었다.

경찰특공대에 의해 두 사람이 끌려간 후, 추선우는 태정민의 옆으로 섰다.

“괜찮으십니까?”
“이거…….쪽팔린다. 너는 어째 멀쩡한데, 나만 소대병력과 싸운 꼴같잖아.”
태정민은 그의 외모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몰골은 적어도 전치 6 주
이상은 돼 보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 흔한 코피마저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추선우, 태정민. 괜찮은가?-


곧 두 사람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던 설장호가 두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보시다시피요. 이제…….좀 누워있어도 되겠습니까?”
태정민은 그의 무전을 들은 후, 긴장이 풀린 어투로 말했고, 곧 이어마이크를 착용한 서지호와 강서진이
미소를 지었다.

“이모…….우리 삼촌은 괜찮지?‘


이동 중, 그녀의 미소를 보며 지현이 물었다.
“그래. 괜찮아. 두 삼촌이 지금 나쁜 놈들 모두 잡았어.”
“그럼…….다시 삼촌에게로 가자 이모. 응?”
난처하였다. 상황이 종료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아직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곳으로 다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장님. 어찌할까요?”
곧 설장호에게 물었다.

00083 경호원 =====================================================================


====
                          
설장호는 잠시 답을 주지 않은 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에 비친 사물함을 보고 있었다.
“지현을 데리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네? 실장님. 아직 이곳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이어마이크를 통해 들리자, 승강장 바닥에 누워있던 태정민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곧 전철과 기차가 다시 들어설 것이고, 민간인이 움직인다.
그곳의 위험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경찰특공대를 남겨둘 것이다. 그리고 곧, 이 영상을 함께 보고 있는
그 놈들의 목도 쳐 낼 것이다.”
설장호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지금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미 설장호는
해당 CCTV 영상을 수신 받고 있는 지역으로 대원들을 보낸 상태였다.

‘띠리리리’
한 편. 모든 영상을 다 접한 후, 최기수와 우수광, 고민국과 정구석이 쓰디 쓴 표정을 지고 있을 때, 네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알았다.”
네 사람은 짧게 답한 후,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각 기관에 뿌리내리고 숨어있는 조직원들이
있기에, 현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제보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전, 네 사람에 온 연락은 모두 이 내용이었다. CCTV 를 수신받는 곳에 모두 있으니, 자칫 출동한


설장호의 대원에 의해 잡힐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정보는
빠져나갔고, 그들은 그곳을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네.”
설장호는 아직 서울역에 있는 추선우를 불렀다.
-잠시 후, 지현이 다시 서울역으로 도착할 것이다. 이미 언론에 많은 것이 보도되면서, 그녀의 생존도
보도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숨기지 않고, 그들을 잡는다. 그리고 지현을 마중해라. 지현을 만나, 내가
말한 곳으로 이동해라.-
“어디로 말입니까?”
-물품보관함. A-0715.-
추선우와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서로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 서울역 안에서 총격전이
있었던 당시에도 설장호는 두 사람에게 해당 물품보관함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 때는 너무나
많이 날아오는 총알로 인하여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구부린 허리를 쭉 펴며 고개를 들었고, 곧 승강장으로 내려서는 몇
몇의 승객들을 보았다.
“아이러니 하지? 조금 전까지 죽여라…….하며 총을 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모두가 그냥
승강장으로 내려온다. 저 위에 경찰특공대도 있고, 또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움직인다…….정해진 자신들의 길을 가기 위하여 움직인다.”
태정민은 점차 늘어나는 승객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곧 이어마이크를 착용한 모두에게 들렸다.
조금 전까지 위급상황이며,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단 몇 분 만에 평소와 같이
변해가고 있는 주변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 듯 한 승객들의 표정이었다.
“올라가자. 이들에게 위험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주는 것이 상책이다.”
태정민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없으면, 이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추선우는 태정민을 부축하여 서울역사를 올라섰다. 그리고 곧 설장호가 말한 물품보관함 앞으로 다가섰다.

“A-0715"
태정민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정확히 설장호가 말한 물품보관함 앞으로 섰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보았다.
“잠겨있습니다.”
-당연히 잠겨 있을 것이다. 그 열쇠는 아마도 지현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현을 마중 나가서
데리고 다시 해당 물품 보관함으로 이동한다.-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가 답하였고, 그의 눈은 여전히 해당 물품보관함을 주시하고 있었다.
“실장님. CCTV 를 수신하는 네 곳으로 출동했던 대원들의 보고입니다.”
곧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미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현장이 비워있는 상태였다. 정보가 새어 나갔으니, 그곳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한 탓이었다.

“해당지역의 명의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곧바로 연행해.”


“알겠습니다.”
이미 텅 비어버린 집이지만, 명의자가 있을 것이었다. 명의자를 확인 후, 연행토록 명령내린 뒤, 다시
그의 시선은 물품보관함을 향해 돌아섰다.

“지현이 도착했습니다.”
다시 빙빙 돌아 서울역으로 도착한 지현에 대해 강서진이 무전으로 알렸다.
그 즉시 추선우와 태정민이 서울역 외곽으로 나섰고, 두 사람이 움직이자, 경찰특공대 대원 일부가 함께
움직이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태정민이 막아 세웠다. 그리고 추선우 홀로 지현이 도착한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선우야. 괜찮아?”
현장에 도착하자, 은주가 차량에서 내리며 추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네가…….왜?”
더 이상 은주와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폐를 끼치고 있는 지금이었다.
“일단 사정설명은 다음에 하고, 설 실장님이 말한 부분부터 해결하자.”
강서진이 두 사람의 만남에 찬 물을 끼얹는 말을 하였다. 곧 지현도 차량에서 내려 추선우의 품에 안겼다.

“괜찮아?”
“응 삼촌. 삼촌도 괜찮아?”
“그래.”
추선우는 지현을 안아 올리며 말했고, 곧 그녀를 안은 채, 서울역 안으로 들어섰다.
“삼촌…….”
그리고 지현의 눈에 태정민이 보이자, 지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를 보았다.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어 몰골이 일그러져 있는 그의 표정은 지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서 내려와 태정민에게 향하였고, 곧 태정민이 몸을 낮춰 그녀를 보자, 지현은 손을
뻗어 태정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삼촌은 괜찮아. 이정도야 뭐…….지현이가 빨간 약 한 번 발라주며 거뜬히 나을 거야.”
태정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지현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곧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태정민은 그녀를 안아주었고, 토닥거려 주었다.

-오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서둘러 사물함을 확인해라.-


설장호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당사물함을 보며
돌아서자, 그들의 뒤로 수많은 기자들이 다가서며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지금 그 아이. 고 이창민대사의 딸인 이지현 양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정부에서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뒷배경이 물품보관함이었고, 곧 해당뉴스는 자리를
피한, 최기수와 우수광, 고민국과 정구석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이지현…….역시 살아있었군.”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현의 생존. 그 생존이 직접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지현이 살아있다는
가정을 하고 움직였지만, 지금처럼 확실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정보는 처음 입수한 것이었다.
“기자들을 물려.”
설장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이를 꽉 깨문 채 말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대원이 현장에 있는 대원들에게
연락하여 이 내용을 전달하였다.
“자세한 상황은 차 후, 정식적인 내용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위급상황이니, 기자들께서는 잠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과 경찰특공대들에 의해 기자들의 앞이 막혔다. 그리고 설장호는 물론,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모든 대원들의 눈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경찰특공대나, 대원들 중, 또 다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자칫 지현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모두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서둘러 사물함을 확인한다.-


설장호는 다시 서둘렀다. 그리고 세 사람은 곧 사물함을 보았다. 그리고 역사관계자에게 알려 해당
사물함의 열쇠를 가지고 오도록 하였다.
“물품보관함에…….뭔가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뉴스를 계속하여 보고 있던 정구석의 뒤로 백태가 서서 말했다. 그의 말에 정구석은 자세를 바로
잡아 앉은 뒤, 뉴스화면에 보이는 지현이 선 곳을 주시하여 보고 있었다.
“저…….사물함에 뭔가 있는가?”
같은 시각. 차현태의 눈에도 사물함 앞에서 뭔가 찾는 듯 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그들이 보여 서지호에게
물었다.
“아직…….자세한 보고를 받은 바 없습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그에게서 사물함의번호에 대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받은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뉴스를 보면서 화면에 비친 그들의 행동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뉴스를 내 보내고 있는 저 카메라를 막아. 지현이 사물함 인근에 있는 것을 찍는


모든 카메라를 막아.”
설장호는 현장에 있는 태정민에게 말했고, 곧 태정민과 강서진이 해당 카메라를 확인하여 막기 시작하였다.

“사물함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물함에 유독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두의 행동이 네 사람의 눈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뭔가 찾아냈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계속된 TV 노출로 인하여 저들이 눈치 챘을 수도 있겠군…….”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뒤늦게 TV 로 송출되는 카메라를 차단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오랜 시간 네
사람의 모습이 같은 지역에서 송출되었고, 또 한 사물함을 보며 뭔가 하려던 행동들을 모두 보았을 것이라
여겼다.
“지금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신상은 모두 확보한 것이겠지?”
설장호는 노파심에 물었다.
“네. 이미 여러 차례 저들에게 당한 상태라, 현재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대장은 물론, 대원들도 모두
신상확인과 함께, 가족관계까지 확보한 상태입니다.”
혹시나 하는 처방전이었다. 저들을 믿지 못하여 역사 아래로도 내려 보내지 않았었다. 만에 하나 저
현장에 그들과 손잡은 인물이 있다면, 또다시 낭패 볼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00084 경호원 =====================================================================


====
                          
“열쇠를 가져왔지만, 맞지 않는군요.”
역사 관계자가 해당 칸의 열쇠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열쇠는 특이하게 생겼었다.

“실장님, 열쇠가 맞지 않습니다.”


-지현이의 목걸이를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사물함을 열고자 지현을 다시 위험지역으로 오게 한 것이었다. 태정민은 그 순간 설장호의 말을 잠시 잊고
있었다.
곧 설장호의 명령대로 지현에게 부탁하였고, 지현은 순순히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추선우에게
건네주었다.

“맞습니다.”
지현의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확인하였고, 그 펜던트의 한 쪽 부분에 작은 홈이 있었다. 그 홈을
좌우로 조작하였고, 곧 그곳에서 작은 열쇠처럼 생긴 것이 나왔다.
“저 펜던트를 최광민이 확인하였으니, 그도…….저 열쇠에 대한 비밀은 알고 있었겠군.“
설장호는 최광민을 떠 올렸다. 펜던트에서 위치추적장치를 제거하도록 명령 내렸던 인물이 최광민이었다.
그는 이미 저 안에 열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고를 설장호에게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 보고를 하였다면, 설장호가 목걸이에
대한 비밀을 바로 알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에…….서류가 있습니다.”
생각대로 그 사물함 안에는 모두가 찾고 있던 물건이 있었다. 바로 이창민이 발견한 그 조직의 실체에
대한 보고서였다.

“답답하군. 모두 움직여라. 서둘러 서울역으로 사람을 보내고, 움직일 수 있는 모두를 움직이도록 해!”
같은 시각. TV 화면에 더 이상 지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네 사람은 바빠지고 있었다. 서둘러 명령을
하달하였고, 각 회장의 비서들은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모두를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다.

-서둘러 서류를 가지고 움직인다. 절대…….국정원이나, 검찰청, 경찰청으로 향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보관한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이 머무는 장소를 찾아가겠다.-
설장호는 그들에게 직접 찾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어디를 가도 믿을 수 있는 곳이 현재로써는
없기에 설장호의 명령은 이해하기 쉬웠다.
다섯 사람은 그 즉시 서울역을 벗어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서둘러 주차된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잠시 대기…….”
차량으로 가던 중, 갑자기 태정민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야?”
강서진이 물었다.
“저 차량…….버리고, 다른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만에 하나 저 차량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태정민의 생각에 추선우가 공감을 표시하였다. 해당 차량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한 것이었다.
“잠시 기다려봐.”
강서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한 사내의 곁으로 움직였다.
“장형사. 차량 가지고 왔지?”
바로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검찰 쪽 형사를 찾았고, 그에게서 차량을 인도받았다.
“네. 검사님.”
“일단 급해서 그러니 자네 차량좀 빌릴게. 그리고 내 차량과 함께, 저기 있는 차량은 각별히 주의해서
이동시켜줘.”
“알겠습니다.”
해당 형사도 지금의 상황을 잘 알기에 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강서진에 의해 다른 차량을 구했고,
곧바로 다섯 사람은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오늘 서울역에서 있었던 총격전은 대테러진압을 위한 훈련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미리 공지 후, 훈련에


입하면, 국민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기에, 공지를 하지 않은 채, 훈련을 감행한 것을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서울역의 모든 것이 정리된 후, 경찰청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테러 훈련이라고 말하였지만, 이미


뉴스화면에 지현의 모습이 잡혔고,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 또 한 언론플레이로 위기를 넘기는
상황은 만들 수 있었다.

“어디로 가지?”
서울역을 벗어나, 경기남부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강서진이 물었다.
-일단 서울을 벗어난다. 그리고 경기도 남부방향, 안산으로 향한다. 그곳의 방파제로 향하면, 휴게소가
있다. 그곳에서 본다.-
“알겠습니다.”
위치는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강서진이 운전대를 잡았고, 차량은 곧바로 해당위치로 출발하였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서 상처 입은 태정민의 얼굴을 만져주고 있었다. 이는 첫 만남 때,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분위기였다.

“나. 잠시 나갔다 올 테니, 현장에서 잡은 놈이나, 죽은 놈. 그리고 도태와 함께, 추선우가 상대한
놈들을 모조리 심문해.”
“알겠습니다.”
자신이 직접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이창민이 남긴 서류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만날 장소로 떠나기 전, 서지호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대통령님. 지금 설장호 실장이 이창민 대사가 남긴 서류를 확인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 정말 이창민 대사가 남긴 것이 있는가?”
“네. 확인 후, 곧바로 연락 주기로 하였으니, 답이 오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차현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닷새 동안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이제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덩어리를 얻어낸 것이었다.
서지호는 설장호를 지원하기 위하여 경호실 인원 세 명을 따로 보냈다. 국정원에서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
좋겠지만, 이미 국정원에서 배신이 가장 많았기에,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은 채, 만날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쾅!’
그리고 서울역 앞에 주차되어 있던 강서진의 차량과, 또 은주가 몰고 온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해당 차량에 승차한 후, 시동을 걸자마자 폭발음과 함께, 차량이 전복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은 연신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였고, 방송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무서운 놈들이군. 서울역 한복판에서 차량폭파라…….”


태정민의 곁으로 이동하던 중, 차량 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그 내용을 접한 설장호가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제…….더 이상 우리도 물러나지 못할 것 같군요. 48 시간 이내에 누군가를 잡는 사람이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른다는 내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합시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대원이 급습하기 전, 자리를 피한 네 사람은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 안은 네 사람과 함께, 각기 경호를 책임지는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고민국이
물 한잔을 마시며 말했다.
“생각보다 그들도 강하게 나오니, 이거…….예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군요.”
곧 최기수가 모두를 고루 보며 말했다. 언제나 사건이 터지면 돈 몇 푼으로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달랐다.
돈으로 매수하기 위하여 다가서기조차 벅찬 인물들이었다. 대통령인 차현태를 시작으로, 설장호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과 추선우. 이들을 돈으로 매수하기 쉽다고 여겼지만, 아예 그들 곁으로 다가서지조차
못한 상황이었다.
“차 대통령이야 어찌 할 수 없다지만, 나머지는 의외입니다. 우리가 돈을 제시하면 혹시…….그 돈을
넙죽 받을 놈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수광이 물었다. 우수광은 경제인을 대상으로 인맥을 넓혀 놓은 사람이기에, 돈에 대해서는 나머지 세
사람보다 더 월등한 편이었다.
“설장호…….그 놈은 돈으로 절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사실 그 놈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지난 번 사건에서도 웬만한 놈들은 다 주머니를 가득 채웠지만, 유독 설장호만은 그 주머니를
채워주려던 사람은 물론, 주머니를 채운 모두를 다 잡아 쳐 넣은 인물입니다.”
차현태보다 더한 인물이라면 그가 설장호였다. 절대 금전적으로 그를 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정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태정민…….그 놈은 돈이 많습니다. 경호원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 돈을 벌고자 하는 일은 아닙니다.”
이어서 최기수가 태정민에 대해 말했다. 정치계에 많은 인맥을 두고 있는 최기수는 태정민의 집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태정민이 그리 돈이 많습니까?”
“많다마다요. 그의 부모가 미국에서 꽤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뭐, 우리나라의 S 기업이나 H 기업은
그들에게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최기수를 제외하고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강서진도 돈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 부모 또한 재벌이며, 가족 대부분이 판사와 검사 출신들입니다.
아주 법이라면 칼 같은 집안입니다.”
강서진도 어찌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을 처리하기 위하여 구성된 인물이 돈으로
절대 매수할 수 없는 인물들로만 구성된 상황이었다.
“그…….민간인은 어떻습니까? 민간인이며, 우리 백태가 알아본 바로는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그저
거지인생을 살아온 고아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돈 아니겠습니까?”
가장 매수하기 쉬운 인물이라 여겨졌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기에, 돈이라면 다 될 듯 한
인물이 바로 추선우였다. 그리고 정구석의 말에 모두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그 놈은 언제나 태정민과 함께 다닙니다. 어찌 따로 만날
것입니까?”
우수광이 정구석을 보며 물었다.
“다…….방법이 있습니다. 그 놈이 고아출신이며, 그 고아원이 어딘지…….이미 백태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곧…….그의 인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그 인맥을 이용하여…….그 놈을 따로 불러낼
것입니다.”
정구석은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백태였다.
백태는 그의 경호원임과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을 다 관리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가지고 왔는가?”
한 편. 설장호는 만날 장소에 도착하였고, 곧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태정민에게 물었다.
안산에서 대부도로 연결되는 아주 긴 방파제위에 지어진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것이 정말 있긴 있었군요.”
강서진이 서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직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류의 겉
포장지만 보며 긴장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삼촌…….졸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 있었고, 곧 졸음이 오는지, 그의 품을 더 파고들며 말했다.

0008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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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쉴 수 있는 곳을 찾자. 지현도 그렇고 태정민의 상태도 완전치 않으니, 휴식할 공간을 먼저 찾아
이동한다.”
지현의 말이 가장 반가운 사람은 태정민이었다. 그는 도태와 일전을 벌인 후, 잠시의 휴식도 없이 바로
이동하였고, 온 몸에서 통증이 일고 있는 중이었다.

대부도를 향해 들어서면, 그곳에는 아주 많은 펜션이 있었다. 휴가철이긴 하지만, 빈 펜션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부도를 지나, 선재도로 더 들어서자, 진정 조용하며 인적이 드문 휴양지와 같은
곳이 나왔다.
강서진은 그 일대의 펜션을 빌렸고, 곧 모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태정민은 곧바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자네도 좀 쉬어. 나머지는 나와 강 검사가 확인하겠네.”


추선우를 보며 설장호가 말하였다. 벌써 며칠 째, 제대로 된 잠을 청하지 못했던 모두였다. 특히
추선우와 태정민은 많은 움직임을 하였고, 몸이 천근만근일 것이었다.
“지현은 내가 재울게.”
은주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은주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곧 지현을 데리고 펜션의 한
쪽 방으로 데리고 가 눕혔다.

“진짜 피곤했던 모양이네.”


살며시 눕힌 후, 새근새근 잠든 지현을 보며 추선우가 말했다.
“그럼…….열 살 된 아이가 무슨 체력이 있겠어. 아침부터 도망 다니고, 또 도망 다니고, 누군가 쉴 새
없이 죽이려 달려드는데, 어른이라도 쓰러지겠다.”
그의 말에 은주는 가시가 담긴 말을 하였다. 그녀의 눈매가 아주 매서웠다. 추선우는 그냥 한 말이지만,
그 말을 들은 은주는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왜…….이런 일에 참견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아. 너의 성격이 그렇고, 또…….그 성격을 알기에 나와
엄마도 참견했어. 하지만…….너무 일이 커져버렸어. 엄마는…….엄마는…….”
생각지 못하였다. 지현만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애꿎은 두 모녀가 그로인하여 힘든 생활을 겪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총격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었다.
“미안해…….”
“너에게 그런 말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니야. 엄마…….그래 엄마도 걱정돼. 하지만 지현이…….지현이는
불쌍해. 이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아이인데…….언제까지 이리 도망만 다니며 살게 할 수는 없잖아.”
은주는 설장호와 강서진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두
사람의 귀에 들어갔고, 방에서 드러누운 태정민의 귀에도 들어갔다.

“실장님…….”
강서진이 설장호를 나지막이 불렀다. 하지만 설장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모두가 이 나라에서 한 자리씩 하는 사람들이라며? 모두가 유능하다며? 그런데 이게 뭐야? 열 살 된


여자아이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서 이런 고생을 시켜. 그러고도 이 나라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어?”
은주는 진심이었다. 비단 지현이 걱정되어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가 총격전으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 화가 난 것도 있었다.

“내일…….은주 씨와 그녀의 어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어머니의 치료를 돕도록 해라.”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도 진정 은주와 아주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다.
힘든 순간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 준 두 모녀의 힘도 컸다. 하지만 진정 두 모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였다.
“네.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서진이 답하였고, 두 사람의 시선은 다시 방문을 향해 돌아섰다.
은주와 지현이 자리 잡아 누웠고, 태정민도 어느새 코를 골며 깊은 숙면에 취해 있었다.
추선우는 펜션 밖으로 나와 바다를 향해 보며 서 있었다.

“열어…….보십시오.”
강서진은 서류를 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설장호에게 말했다. 이 서류봉투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에 따라,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었다.
이창민이 말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진정, 그동안 음지에서 이 나라의 최고
권력행세를 하고 살았던 그들을 모조리 쳐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차현태가 따로 알려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설장호입니다.”
차현태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곧바로 받았다.
“지금…….사물함에서 꺼낸 봉투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청와대로 가지고 가려 합니다.”
자신이 먼저 보려하지 않았다.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신의 머리를 강타할 충격의 강도가 다를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권력자인 차현태가 먼저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내린 것이었다.
“지금…….출발할 텐가?”
“네. 지금 출발하면, 두 시간 이내에 청와대에 도착할 것입니다. 모두…….자리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차현태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진정 닷새 만에 처음으로 그들에 대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설장호는 봉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를 강서진은 보고만 있었다.

“열어보지 않으십니까?”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잖은가. 대통령님께서 먼저 보실 것이네. 그리고 각 부처 수장들과 함께…….이
내용을 확인할 것이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 후, 먼저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그가 펜션을 나오자, 추선우가 홀로 밖에 있었고, 설장호는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어쩌면…….이 일을 빨리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너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게 하지 않기 위하여
서둘겠다.”
“…….”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듣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장호는 다시 서울로 향하였고, 추선우는
펜션을 들어가지 않은 채, 홀로 여전히 밖에 서 있었다.

“찾았습니다.”
한 편. 추선우를 매수할 목적으로 그를 유인할 미끼를 물색하고 있던 중, 딱 맞는 미끼를 찾았다는
보고를 정구석이 들었다.
네 사람은 여전히 강남의 식당에 있었고, 백태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눈과 귀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직접 데리고 오겠습니다.”
백태는 정구석에게 고개 숙여 말하였고, 곧 그가 찾았다는 미끼의 사진이 뜬 노트북의 화면을 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주었다.

“여자?”
정구석이 노트북 화면에 뜬 사진을 보며 물었다. 그 화면에는 삼성역 일대의 번화가에서 CCTV 영상에
찍힌 추선우의 모습과 함께, 지현이 있었고, 또 그 옆으로 한 여인이 있었다.
“이름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사진 상으로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바로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상이 어디에서부터 찍혔는지를 다 본
백태가 자신 있게 말했고, 곧바로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영상의 캡처한 사진에 찍힌 여인은, 추선우의 어릴 적 고아원 친구인 미희였다.
“백태가 서두르고 있으니, 추선우를 유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백태가 나선 후, 정구석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들도 각기 자신들의 경호원을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백태처럼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이가 없었다.
“왜…….들어오지 않아요?”
강서진도 밖으로 나왔다. 지현과 은주는 안방에서 자고 있으며, 태정민은 작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싫어 밖으로 나오자, 추선우가 먼 바다를 보며 서 있었다.
“그냥…….그냥…….”
추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답을 쉽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자신으로 인하여 지금 힘들어 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늘어난 것을 지금 더 깊이 느끼고 있는 그였다.
아주머니와 은주는 진작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성격상, 지현을 보고
그냥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 한 것이었다.
“은주씨와 아주머니…….꼭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선우씨에게도 충분히 보상을…….”
“보상 따위를 바라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지현이, 지현이를 보는 순간 돕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돕고 싶은 마음만을 가지고 돕고 있는 것입니다. 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지현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강서진은 그를 빤히 보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볼 수 없는 인물이라 여겼다.

그리고 추선우는 은주와 아주머니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 또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인 미희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기 있군. 들어가서 끌고나와라.”


“알겠습니다.”
한 편, 백태는 이미 삼성역 인근 번화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미희가 일을 하는 한 주점 앞에 섰고, 곧
함께 사내에게 명령을 내렸다.
“뭐야! 이 새끼들이 감히 어딜 와서 행패야! 우리 아가씨를 빼가? 이런 미친…….”
쉽게 될 일은 아니었다. 성행중인 주점에서 그것도 지명이 많은 미희를 그저 끌고 나가는데, 해당 주점
사내들이 보고만 있을리 없었다. 곧바로 거친 말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고, 곧 들어갔던 사내들이
미희를 끌고 밖에까지 나오는 동안에도 사내들의 주먹질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주점을 관리하는 인물 중, 그나마 상석에 앉은 인물로 보이는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나오다 백태를
보며 말을 멈추었다.

“백태…….형님.”
그는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말했고, 곧 백태가 한 번 씨익하고 웃자, 그는 그 자리에서 덜썩 주저앉아
버렸다.
“모두…….모두 멈춰!”
사내는 주저앉은 상태에서 큰소리로 외쳤고, 미희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가…….데리고 가도 되겠지?”
“무…….물론입니다. 얼마든지 데리고 가십시오.”
백태는 주저앉은 사내를 내려 보며 물었고, 사내는 여전히 벌벌 떨며 그의 말에 답하였다.

백태로 인하여 미희는 그들의 손으로 쉽게 넘어왔다. 그리고 백태의 앞으로 이동하였다.

0008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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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미희는 진정 처음 보는 인물이라 물었다. 간혹 손님 중, 특별난 손님들이 있어, 이와 같이 술집에서 그냥
빼내려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있었다. 미희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라 여기며 물었지만, 사뭇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추선우…….”
“선우…….선우를 아세요? 선우…….지금 어디 있나요?”
미희는 백태의 입에서 선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동자를 크게 하여 물었다. 그러자 백태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선우의 부탁으로 이렇게 왔습니다. 지금 함께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태는 여유 있는 미소와 어투로 미희에게 말했고, 미희는 선우의 이름을 말한 백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나서기 시작하였다.

“곧. 설장호 실장이 도착하면 이창민 대사가 하려던 말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시각. 차현태는 외교부장관을 비롯하여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자 나섰던 모든 수장들을 다 집무실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동안 숨어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원장이 자신 있게 말하였다. 숨어 있기에 찾을 수 없다 뿐이지,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힌트라도 찾게 된다면 그들이 어디에 숨어들어도 다 찾아내겠다는 그의 말이기도 하였다.
“이지현에게 더 이상의 고통은 가지 않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일처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현의 안전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쯤인가? 지금쯤이면 도착해야 할 시간 아닌가?”


설장호가 말한 시간이 초과되고 있기에 차현태가 서지호를 보며 물었다.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서지호는 곧 전화기를 들어 그에게 연결을시도하고 있었다.
“어디십니까?”
통화가 되었고, 곧 설장호가 전화를 받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진입했는데, 길이 주차장이군. 조금 더 걸릴 듯 해. 되도록 빨리 가도록 하겠네.”
퇴근시간이며, 서울로 오르는 차량이 가장 많은 시간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설장호는 꽉 막힌 도로위에서 차량이 거의 멈추다 시피 한 채,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고, 간간히
조수석위에 놓인 서류철을 향해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설 실장이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조금 늦는다고 알려왔습니다. 잠시만 더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가 차현태에게 말했고, 차현태는 모두를 보며 말했다. 언제나 교통체증이 있기에 약속시간은 조금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을 시간대였다.

“데리고 왔습니다.”
한 편. 백태는 미희를 데리고 네 사람이 모여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곧 정구석을 향해 보며 말했다.
“오호…….아름다운데. 하긴 그 주점 여인들이 좀 아름답기는 하였지…….그 보다…….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움직여봐.”
정구석은 미희를 아래위로 한 번 쭉 훑어본 뒤 말하였고, 곧 백태를 향해보며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백태가 답했고, 곧 그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무엇…….입니까?”
미희는 처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추선우…….우린 그놈을 잡아야한다. 그러니 그 놈을 우리에게 오도록…….네가 전화해라.”
백태가 미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정 이들은 선우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던 미희였다.
“선우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선우는…….”
“너의 입에서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오직 한 상황뿐이다. 바로 추선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그 놈을
우리 쪽으로 오도록 유인할 때, 그 때만 입을 열면 된다. 그 외적으로 입을 열면…….그 고운 입술이
어찌 될지 몰라.”
미희가 몇 가지 물어보려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많은 말은 나오지 못하였다. 단 몇 마디에
백태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소름까지 돋는 듯하였다.
“추선우…….연락해라.”
백태가 다시 한 번 말했고, 미희는 그들을 보며 온 몸을 떨고만 있었다.

“이만…….들어가세요.”
같은 시각. 추선우는 여전히 펜션 외부에 있었고, 강서진도 함께 있은 후, 안으로 들어서다 그를 보며
말했다.
“먼저…….들어가세요. 잠시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하지만 추선우는 바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답을 하였지만, 여전히 눈빛은 먼 바다를 향해 보며
답했다.
강서진은 그의 모습을 잠시 보고 있은 후, 곧 펜션 안으로 들어섰고, 은주가 방에서 나오며 그녀를
보았다.

“일어나셨어요?”
강서진이 물었다.
“어머니…….우리 어머니는 안전하신 거죠?”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물음만 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은주 씨가 이곳으로 이동하였으니, 필시 설 실장님은 어머니께 그에 준한 경호를
붙여두었을 것입니다.”
강서진은 그녀의 걱정을 떨쳐줄 말을 하였다. 자신이 있는 것보다 더 강한 경호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설 실장이 많이 늦는군.”
한 편. 여전히 도로위에서 시간을다 보내고 있는 설장호였으며, 그로 인하여 그를 기다리던 차현태가
홀로 중얼거렸다.
“차가 막히니 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 듯합니다.”
이에 국정원장이 답하였다. 그의 말처럼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 그러지는 못하였다.
차라리 좀 늦더라도 자신의 차량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을 택한 설장호였다.

“팀장님. 고속도로 CCTV 를 누군가 해킹하고 있습니다.”


한 편. 설장호가 떠난 후, 국정원 사무실에서 서울시내는 물론, 경기 수도권 지역의 모든 CCTV 를 수신
받고 있는 곳을 파악하고 있던 그들의 눈에 또 한 곳에서 CCTV 를 수신 받는 곳이 확인되었다.
“어디 고속도로야?”
“서해안 고속도로 끝부분입니다. 서울 진입로이며, 현재 이 영상입니다.”
팀장의 말에 한 대원이 해당지역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빼곡하게 차량이 들어서 있었고, 그 중앙에
설장호의차량이 마치 포위당한 듯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설 실장님의 차량?”
팀장의 눈에도 그의 차량이 보였다. 비록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방에서 찍은 카메라 영상에 해당
번호판이 자세히 보였고, 또 안에 승차한 사람의 모습도 어느 정도 자세히 보이고 있었다.
“왜…….이 영상이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있을까요?”
의문이었다. 많고 많은 CCTV 중 유일하게 이 영상만 현재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설 실장님께 확인 요청한다.”
곧바로 팀장이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있는 지역이 어딘데, 이 지역만 따로 CCTV 를 보낸단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진정 서울시내에는 수없이 많은 CCTV 가 설치되어 있다. 그
중에서 유독 자신이 지나쳐가고 있는 길에 설치된 CCTV 만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지금 즉시 그 곳을 확인한다. 그리고 내가 있는 지역 주변의 모든 CCTV 를 다 확인해라. 불규칙한
행동을 자행하는 모든 것을 다 감지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현 상황을 인지하였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만을 보는 눈. 그 눈이 지금까지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국정원 내 사무실 대원들이 인근 CCTV 를 모조리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현재 설장호의
주변을 샅샅이 뒤져가며, 불규칙한 행동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찾고 있었다.

“어디쯤이십니까?”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연락하였고, 서지호는 기다리던 설장호의 연락을 받자마자 위치를 물었다.
“그보다. 지금 나를 표적으로 나만을 보는 눈이 따라다닌다. 확인 좀 해줘야겠어.”
“네? 사실입니까?”
서지호의 눈빛이 변하며 그에게 물었고, 그의 변한 눈빛은 차현태가 곧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아무래도…….늦을 것 같으니, 자리한 양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자리한 모두를 한 번씩 훑어보았고, 곧 전화를 끊은 후, 차현태에게 현
상황을 알렸다.
“사실인가?”
“네.”
“그의 안전이 우선이다. 사람을 보내게.”
“무슨…….일이십니까?”
서지호의 말을 다 들은 후, 차현태는 현장으로 급히 사람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옆에서
듣던 검찰총장이 물었다.
“지금. 설 실장의 주변으로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정확히 설장호 실장을 노린 듯, 그의
모든 것을 뒤따르며 보는 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확인에 들어갈 것입니다.”
서지호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고, 모두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런데…….왜 그런 말을 우리를 보며 날카롭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서지호의 눈빛과 음성을 들은 후, 경찰청장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굳이 서지호가 자신들을 향해 매섭게
노려보며 할 말은 아니었다.
“모두…….왜 그런지 모르겠습니까?”
차현태가 그 이유를 모르는 듯,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자, 직접 그들을 보며 물었다.
“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지금. 설장호 실장이 이창민대사가 남겼을지 모르는 그 서류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여기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그거야…….그렇지요.”
차현태의 말에 국정원장이 총장과 청장을 보며 말했다.
“그럼…….왜…….지금 설장호 실장만 유독 누군가의 눈빛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겠습니까? 현재 강서진
검사나, 태정민팀장. 그리고 지현이와 추선우. 모두가 아닌, 유독 설장호 실장만 왜 눈이 붙었을까요?”
그제야 모두는 서지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의심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설장호가 서류를
가지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정 여기에 앉은 사람들뿐이었다.

0008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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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최기수와 우수광, 고민국과 정구석도 이창민의 서류가 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알았지만, 그
서류가 어디로 이동 중이며, 누구의 손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대통령 집무실에 앉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그 서류가 누구의 손에 있으며, 지금쯤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지금…….우리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의심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의심한다는 말을한 적은 없습니다. 확인입니다. 지금 서지호
팀장이 확인할 것입니다. 과연 누가…….설장호 실장의 뒤에 눈을 붙여 두었는지, 바로 확인할
것입니다.”
차현태가 국정원장의 말에 답하였고, 모두는 그 순간 언짢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의심을 거두기 전에는 절대 이번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하였지만, 또 다시 그
의심의 불꽃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펜션에서는 아직 선우가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고, 곧 먼 바다를 보며 크게 한 호흡을
들이마신 후, 눈을 살며시 감자,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지?”
선우는 자신의 전화벨이 울리는 것은 오로지 설장호 팀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전화는 설장호가
준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선우야.”
“미희? 미희야? 네가 어찌 이 번호를 알아?”
선우는 놀란 눈이었다. 설장호가 또 다시 다른 번호를 연락을 취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뜬금없이 미희가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잠시…….나 좀 볼 수 있을까?”
“너를…….? 왜 무슨 일 있어? 그리고 이 번호 어찌 알았어?”
“번호 아는 것은 쉬워. 내가 일하는 곳 사람들 중에 그런 번호 하나는 쉽게 알아내는 사람들도 많아.”
미희는 자신의 바로 눈앞에 날카로운 칼날이 이리저리 둥근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것을 보고 추선우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정, 심장이 떨리며 터져버릴 것 같지만, 실수하면 그 즉시 눈동자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미희야…….”
“왜?”
선우는 미희의 어투가 평소와 동일하였지만, 평소답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먼저 자신을 보자고 한 적이 없었다.
서로가 잘 되어, 모든 것에서 부끄러움이 없을 때, 그 때 연락하자는 말을 한 후, 그 당시 고아원
동기들이 모두 흩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무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와 미희는 서로 연락하고 지냈었다. 이미 선우는 미희가 술집에서 직업여성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단 한 번도 이상한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친구…….그리고 직업. 그 이상
그 어떤 것도 없었던 그녀였다.
“어디서 볼까?”
선우는 이미 미희가 난처한 상황에 접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자처하였다.
“삼성역…….아니. 내가 그쪽으로 갈게. 어디야?”
미희는 자신이 있는 삼성역에서 보려 하였지만, 곧 백태가 그녀에게 메모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
메모지는 직접 간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니야. 이곳은 멀어, 너 혼자 오기에는 더욱 더 힘들어, 내가 갈게,”
선우의 목소리는 이미 그들도 다 듣고 있었다. 그리고 선우가 홀로 움직인다는 말에 서로를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안다면, 그곳에 지현이 있을 것이기에 일을 더 편하게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가 홀로 움직인다는 말에 계획을 수정해야 할 판이었다.
선우는 누군가 미희를 잡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지만, 그들이 지금 설장호가 찾는 인물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술집을 드나드는 손님들 중, 괜한 시비를 거는 인물이라 여겨, 몇 마디를 해주려는
것뿐이었다.
“그래…….그럼 네가 와. 이 곳 삼성역 인근 탄천주차장으로…….”
“그래. 지금 가면 두 시간 정도가 걸릴 거야. 괜찮지?”
“응. 괜찮아. 그럼 그 때 봐.”
미희는 만날 장소를 말하고 난 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였고, 곧 통화를 끊은 후,
백태를 향해 보았다.

“추선우…….그 놈, 대체 뭐하는 놈인가?”


곧 정구석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냥…….친구입니다. 고아원 친구.”
“지랄하지 말고, 고아원 친구란 것은 알아, 그리고 그게 자랑은 아니니까 더 말하지 말고, 그 놈에
대해서 말하라는 거야. 고아 놈 주제에 왜 그리 설치고다녀.”
정구석은 그녀의 말에 버럭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고, 곧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마저 말하였다.
“내가…….마음만 먹으면 세상 그 어떤 놈도 목을 칠 수 있다. 그런데…….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모르지만, 그 추선우란 놈이 지금! 내 일을 모조리 망치고 있어. 그런 놈을 용서해 줘야할까? 아니지?
용서는 안 되겠지? 네가 생각해도 용서하는 것은 무리지?”
정구석은 그녀의 앞에서 계속하여 말하였다. 말 중간 중간에 침을 튀기며,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는 듯
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며 물었다.
“그렇죠. 용서는 안 되겠죠. 추선우가…….당신들을 말이에요!”
“…….”
미희의 말에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정구석의 눈썹이 씰룩거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다시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 년의 목숨이 몇 개지?”
“하나입니다.”
“그렇지? 하나지? 난 왜 이런 여자들은 목숨이 대,여섯개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짝!’
정구석은 그녀를 노려본 후, 백태를 향해 손가락으로 까닥거린 뒤, 그를 보며 물었고, 백태의 답을 들은
후, 다시 몸을 앞으로 더 당겨 미희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한 뒤, 가차 없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내 앞에서 괜한 객기는 곧 목숨 하나 날아가는 것과 같다. 머리 쓰지 마라. 내가 죽인 여자만 해도 이미
한 트럭은 넘는다.”
“…….”
미희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을 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아무런 말없이, 그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놀라지 않네? 내가 죽인 여자가 한 트럭이 넘는다고 말했는데, 놀라지 않는다…….하…….
아이러니하군.”
보통은 그 말을 듣고 난 뒤, 바로 기절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금 강심장이라 말할 수 있는 여자는 놀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한다. 하지만 미희는 아무런 행동도…….또 말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강한 척 하지마라. 어차피 네가 추선우를 불러들였다. 그것도 저승으로 가는 막차에 타도록
네년이 직접 친구를 데리고 타는 거야.”
정구석은 미희의 강심장에 대해 더 이상 장난치려 하지 않았다. 곧바로 현실을 말해주었고,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애들을 보내라. 그 놈이 움직였던 영상들을 보면,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역…….박석을 그리 쉽게 제압할 것이라고는 진정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야.”
곧 고민국과 최기수가 서로의 눈을 마주친 후, 고민국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모두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마지막 영상이 보았던 서울역에서의 일을 떠 올렸다.
박석이라는 킬러를 마치 어린아이를 가지고 놀 듯 대하던 그. 그런 인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인물을 다시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 놈이 설장호와 태정민도 끌고 올까요?
네 사람의 명령이 모두 동시에 떨어진 후, 곧 백태가 정구석을 보며 물었다.
“생각하지 못했었군. 그 놈과 지현만 불러내려 했는데, 설장호와 태정민이 움직인다?”
“설장호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백태의 말에 정구석이 이런저런 생각을 마저 하려 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고민국이 설장호에 대한 말을
하였다.
“어찌 장담하시는 것입니까?”
최기수가 물었다.
“설장호는 지금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던 그 서류를 들고 말입니다.”
“네!”
모두는 놀랐다. 그 말을 지금에서야 하는 것도 놀랐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그를
보며 놀란 것이었다.
“우리가 찾던 것이 바로 그 서류와 함께 이지현의 목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가 청와대로 향하고
있는데, 어찌 그리 태연한 것입니까?”
고민국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여 정구석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다…….수를 써 놓았으니, 태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이쪽은 이쪽이 맡은 일을 마저
끝내도록 하십시오.”
모두는 그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람을 붙인 것입니까?”
우수광이 그를 보며 물었다.
“내가 거느리는 녀석들이 몇 명인지, 나조차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아주 쉽게 모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타깃의 이름을 말하고, 그 놈의 곁에 붙어서 그 놈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오는 놈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부와 명예가 따를 것이다…….이 한마디가 많은 놈의 인생을 다
바꿔놓고 있는 중입니다.”
“!!!”
그제야 모두는 고민국의 힘을 실감하는 듯 놀란 눈을 하였다. 네 사람 모두 한가닥 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정치계, 경제계, 주먹계…….진정 이 세 곳에 힘을 뻗어놓은 최기수와 우수광, 그리고
정구석이 당연히 강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처음 이들의 만남에서 보았듯이 그 누구도 나이어린 고민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었다. 자신의 말처럼 고민국은 자신이 거느리는 인물이 몇 명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명령을 내린 후, 누가 움직이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결과를 가져오는 인물에게 포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움직일 것이었다. 그 포상을 받기 위하여 움직일 것이니, 누가 되던, 몇
명이던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누군가가 답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설장호의 뒤에 이미 사람을 붙여놓았다는 것입니까?”
다시 정구석이 물었다. 그리고 고민국은 그들을 향해 보며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는 이미 설장호의 국정원 팀이 확인한 내용이었고, 청와대에도 보고가 된 내용이었다.

0008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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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동 중이 설장호의 뒤를 쫓고 있기에 그에 대한 확인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서지호가 현재 청와대 집무실에 모인 모두를 쓴 표정으로 본 것이었다.
설장호가 서류를 들고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이들만 알고 있다고 여긴 서지호의 잘 못된 판단이었다. 이미
설장호의 곁에 붙은 인물은 고민국의 사람이며, 청와대는 어쩌면 다시 불신의 기운이 맴돌지 모르는
일이었다.

“젠장. 한 두 놈이 아니군. 설 실장님께 면밀히 보고해.”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국정원 내의 비밀사무실에서 그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팀장의 눈에는 여전히
설장호의 주변을 계속하여 맴돌고 있는 몇 대의 차량이 보이고 있는 것까지 확인하였다.
“처음부터 따라 붙은 것인가?”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설장호에게 보고하였고, 설장호는 이들이 처음부터 붙은 것인지를 물었다. 만약 처음부터 뒤따라 붙은
것이라면, 지금 서해안 펜션에 있는 이들까지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바로 확인해라.”
“네. 실장님.”
설장호는 룸미러와 사이드밀러를 통해 뒤와 좌우를 살폈다. 하지만 차량들을 예의주시하여 보지 않았기에,
어느 차가 뒤따라 붙은 차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친구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같은 시각. 추선우는 미희의 전화내용대로 미희를 만나기 위하여 나설 채비를 한 후, 강서진에게
말하였다.
“어디를 가시려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고, 은주도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딜 가?”
그리고 은주도 물었다.
“잠시…….나갔다 올게, 나로 인하여 또 위험에 처한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도와야…….”
“제정신이야! 그 친구가 누군데! 너에게 친구가 또 어디 있어! 정신 차려. 지금 여기에 네가 지킨다고
큰소리친 지현이 있어. 그런데 또 버려두고 간다고? 너 정말…….”
“은주씨의 말이 맞습니다. 그 친구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추선우씨 혼자에게도 위험하지만, 지현에게도 위험합니다. 생각을 다시 하십시오.”
은주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이 그녀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추선우는 두 여인을 보았다. 그리고 한
여인이 다시 떠올랐다. 필시 미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임을 알고 있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현실이었다.
“설 실장님이 서류를 들고 갔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난 뒤에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합니다.”
강서진이 다시 말하였다. 지금의 상황에 설장호가 없기에 마땅히 명령권을 가진 인물이 없다는 말을 돌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녀의 말을 쉽게 납득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중시 여긴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필시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이 지현이든, 미희든, 지금의
순간에는 두 사람 모두가 추선우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지현을 데리고 움직이겠습니다.”


“!!!”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추선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강서진과 은주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고, 곧 방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나온, 태정민의 눈동자도 커져 있었다.
“지현을 데리고 이동한다니? 어딜 말이야?”
태정민이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지금…….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제가 가지 않으면…….”
“그 친구가 죽는다? 뭐 이런 말?”
“네…….그렇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을 보며 현재 상황을 말하였다. 그러자 태정민은 그의 앞으로 더 다가서며 말했고,
추선우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을 주었다.
“누가 전화를 했을까? 그 친구? 그 친구가 직접 너에게 전화를 했을까? 아니면…….다른 친구를 통해서
전화를 했을까?”
태정민은 그의 눈을 빤히 보며 물었다.
“친구가…….직접 했습니다.”
“평소와 같았나?”
“아닙니다. 평소와…….아니 같았습니다. 평소와 같은 어투였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질문에 대해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사실대로 말하려다 말고, 다시 말을 고쳐하였다.
“추선우. 너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친구를 구하는 것은 좋아, 아주 좋은 일이다. 이미 은주씨도 너를
친구라 생각하고 여러 번 도와주었으니, 친구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지금은 그 때가 다르다.
은주씨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지금 네가 찾아가려 하는 친구. 그
친구는 무슨 연유로 너를 찾는지 알 수 없다.”
추선우는 태정민을 보았다. 그의 말은 바로 이해가 와 닿고 있었다. 은주는 처음부터 지금의 모든 상황을
함께 겪어온 사람이다. 그로인하여 그녀에게는 누군가가 충분히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미희는 아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미희를 본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과 그 어떤 연관성도 찾지 못한다. 그러기에 태정민의 말은 바로 이해가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그 친구에게 가야하나?”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를 본 후, 다시 은주를 향해 보았다.
“네. 가야합니다.”
“그럼…….가봐라. 지현은 내가 보살피고 있을게.”
“!!!”
모두가 놀란 눈으로 태정민을 보았다. 진정 그가 추선우의 마음을 돌릴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에 확신이 더 서도록 한 것뿐이었다.
“태정민! 지금 뭐하는거야!”
강서진이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소리쳤다.
“진정하십시오. 그 누구도 추선우를 막을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추선우에게 우리가 해 준 것이
있습니까? 그에게 경호원 자격이라도 주었습니까? 월급이라도 줍니까? 그냥 평범한 민간인입니다. 그
민간인이 다시 제 앞길을 찾아 간다고 하는데, 어찌 말립니까?”
태정민은 강서진의 말에 답한 뒤, 거실에 앉아 TV 를 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TV 를 보고만 있었다.
“제…….정신이야? 태정민.”
“네. 제정신입니다. 말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추선우는 민간인입니다. 그가 지현이를 보호하겠다고
말했고, 우린 그 말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럼 그가 하는대로 잘 따라줘야하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추선우가 혼자 가지 않고, 지현을 데리고 간다는 것만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정민은 태평스러웠다. 진정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고, 겪었던 인물이 너무나 태평스럽게
추선우를 외부로 다시 내 몰 생각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 실장님께 물어봐야겠어.”
강서진은 태정민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기에,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지금 상황에 서울로 간다? 누굴 만난다는 말은 하던가?”


“모르겠습니다. 직접 통화해 보십시오.”
강서진은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곧바로 전화기를 추선우에게 건네주었다.
“요점만 말해. 나도 지금 상황이 그다지 좋지않다.”
“무슨…….일이 있습니까?”
추선우는 그의 첫 마디에 표정을 구기며 바로 되물었다.
“누군가 나의 뒤를 제대로 밟은 모양인데, 지금 어디서부터 밟고 따라왔는지를 확인중이다. 만약…….그
시발점이 펜션부터라면 그 즉시 그곳에서 모두 나와야한다.”
“!!!”
추선우는 놀란 눈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마저 보았다.
“그럼…….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만약 이곳에서부터 밟은 것이 확인된 후, 움직인다면 그 역시 늦을
수 있습니다.”
추선우는 행동을 늦추려 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면 그 즉시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래야만 후에 탈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나도 네 생각에 동참한다. 태정민 좀 바꿔.”
설장호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곧 태정민과의 통화를 원했다.
“네.”
“지금 즉시 모두를 데리고 그 곳을 벗어난다. 너의 상처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뒤를 제대로 밟힌 것 같다.
어느 누가 따라붙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움직인다.”
“어디로 갑니까?”
“서울. 이왕 이렇게 된 것…….추선우도 친구를 구하고, 우린 청와대로 바로 움직이자. 그래도 그 어떤
곳보다 지금 현재로써는 가장 안전한 곳이 청와대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을 마저 보았다. 어디 하나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하였지만, 설장호의
말처럼 그나마 안전한 곳은 청와대였다.
이창민의 모든 것을 걱정해주는 차현태가 있으며, 무엇보다 서지호를 비롯하여 경호실 인원들이 있으니,
그들이 그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도, 쉽게 지현을 향해 다가서지는 못할 것이었다.
“실장님.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태정민과 통화를 하고 있던 중, 곧바로 국정원 사무실에서 설장호에게 연락을 하였다.
“어디서부터인가?”
“지금 현재, 실장님 주변에 있는 모든 차량들을 조회한 결과, 그 중, 두 대가 서해안의 선재도에서부터
따라붙었습니다. 정확히 선재도 어디에서부터 붙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선재도에서 빠져나와 선재대교를
건너는 실장님의 차량의 뒤로 그들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당 차량은 현재 실장님의 차량 뒤로 세 번째
차량입니다.”
설장호는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려 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에 서 있는 대형트럭으로 인하여 그 뒤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선재도 어딘지는 모른다…….하지만 그 일대에서부터 붙었다?”
“네.”
“알았어. 일단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나를 쫓는 듯한 행동을 하는 모든 것을 다 찾아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 사무실과 연락을 끊은 후, 곧바로 태정민과의 통화를 이어하였다.
“지금 즉시 그 곳을 벗어난다. 아무래도 그 인근에서부터 붙은 모양인데, 정확하게 위치를 확인하기
불가하다. 그러니 바로 움직여라. 지난 번, 성남의 펜션을 기억한다면, 기다리고 있어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지난 성남에서의 일이 무척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성남에서 자칫 조금만 늦었다면, 아마 자신의 머리통에 터널이 뚫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와 함께 지용석이 때마침 도착하여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게 된 것이었다.
“지금 바로 서울로 이동합니다.”
“서울?”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오전에 그 난리를 치고, 겨우 서울을 벗어났는데, 다시 그
난리통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로 갑니다.”
“청와대? 설마…….그곳으로 바로 들어갈 참이야?”
“네. 지금으로써는 가장 안전한 곳이며, 그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비록 처음부터 청와대로
갔으며 안전할 수 있었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처음에는…….그 어떤 곳도 믿을 수 없었기에
지금부터라도 믿음이 있는 곳으로 일단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추선우.”
태정민은 강서진에게 말을 전한 후, 추선우를 불렀다.

0008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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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넌…….친구에게로 간다. 하지만 지현은 내가 데리고 간다. 네가 경호를 한다고 자신하였지만, 나 역시
지현에게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너와 내가 약속을 한 것이니, 둘 중 한사람이라도 지현을
지켜야지…….그리고 넌. 지현도 지켜야하지만, 지금 궁지에 몰린 친구도 구해야하니, 일단 넌
친구에게로 가라.”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방안에 잠들어 있는 지현을 보기 위하여 방으로 들어갔다.
지현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잘 버텨주고 있었다.
“네가 한 약속이니까 꼭 지켜. 지금 가는 곳에 있는 친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현을 버려두고 갈
정도이니, 너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 수 있어. 하지만…….꼭 다시 돌아와. 지현에게…….”
“그래. 그럴게.”
곧 은주가 따라 들어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선우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잠시동안 지현을 보고
있었고, 다시 시선을 돌려 은주를 보며답했다.
“추선우. 네가 먼저 움직인다. 우린 그 다음에 서울로 향하겠다.”
“네.”
태정민의 말에 추선우가 먼저 펜션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지현을 두고 움직이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미희가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서는 지현을 잠시나마 떨어뜨려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거 가져가.”
추선우가 펜션을 나서려하자, 은주가 그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아니야. 내가 알아서 갈게.”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 길을 알아? 차도 없어. 우린 차량 한 대로 이동했어.
버스는 타고가야 할 것 아냐.”
은주는 그가 다시 돌려준 지갑을 받은 후,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지갑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으로 해요.”
두 사람의 실랑이가 있을 때, 강서진이 펜션을 나서며 자신의 지갑을 주었다.
“왜. 당신 지갑을 선우가 써야하죠?”
은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민간인입니다. 하지만 우린 공무원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공무집행중이니, 사용되는 금액은 다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돈보다야 나라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은주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지갑을 바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자신의 돈을 사용하지 않고, 나라의
돈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였다. 강서진의 말처럼 지금은 공무집행중이다. 굳이 사비를 들여 쓸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세요. 그 돈도 모두 지급됩니다.”
강서진은 아예 추선우에게 전용 택시를 말하였다. 이곳에서 서울까지 가는 택시라면 진정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올 것이었다.
“아닙니다. 버스를 타도…….”
“친구가 위급하지는 않나보네요. 조금 전까지는 아주 급한 것처럼 말하더니, 버스타고 언제 서울까지
가려는 것입니까?”
맞는 말이었다. 버스타고 세월나 네월아하며 갈 상황은 아니었다. 추선우는 그녀의 말대로 택시를 타기
위하여 그녀가 건네준 지갑을 받은 후, 곧바로 움직였다.
“자자. 우리도 움직이자. 이래저래 그들이 우리의 뒤를 잘도 따라붙는 듯 한데, 우리도 제대로
움직여보자.”
강서진이 소리쳤다. 결코 그녀가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그녀의 말을 듣고,
웃으며,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잠에든 지현을 안아 올렸고, 은주는 나머지 짐을 챙겼다. 그리고 강서진은 운전석에 앉아 차량 시동을
걸었다.

“여기…….”
한 편. 설장호의 뒤에 붙은 이들이, 이미 선재도 부근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었고, 곧 그들의 눈에
추선우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역시…….선재도에 있었나?”
CCTV 를 해킹하고 그 영상을 받아보고 있는 고민국의 부하들도 선재도 인근 CCTV 를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직 이들은 자신들의 곁으로 설장호의 국정원소속 인원들이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국정원에서 설장호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북전담반의 사무실에서, 서울은 물론 경기 각
지역의 CCTV 영상이 자신들 외에 다른 곳에서 수신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지금 그곳으로 대원을
출동시켜 둔 상황이었다.
“선재도입니다.”
선재도에서 나서는 추선우와 강서진의 모습을 포착한 고민국의 부하는 곧바로 고민국에게 상황을
보고하였다.
“선재도? 그 민간인 추선우도 그곳에 있나?”
“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져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 보고하고 하였다.
“두 팀? 민간인과 지현이 그들과 따로 움직이는 것인가?”
“아닙니다. 민간인 혼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가 함께 움직입니다.”
“추선우…….이곳으로 혼자 올 심상이군.”
보고에 의해 추선우가 홀로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왜 함께 움직이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 것일까요?”
우수광이 고민국의 말을 들은 후, 모두를 보며 물었다. 서울까지 함께 온 후, 인근에서 따로 움직이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었다.
“뭐…….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는 눈들을 교란시켜보고자 하는 그들의 작전이겠지요. 하지만 이미…….그
작전은 우리에게 발각되었으니, 어디…….어떻게 나오나 봅시다.”
고민국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추선우를 맞이할 인물을 탄천주차장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선우가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그를 맞을 준비를 하자는 최기수의 말이었다. 이미 박석이나
도태가 당했고, 또 이지광도 당했었다. 민간인이라 우습게 볼 인물이 아니기에,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보낼 인물도 신중하게 골라야했다.
“우리 쪽에서 보낼까요?”
“뭐. 이쪽저쪽 구분할 필요 있겠습니까? 지금은 회장자리를 두고 하는 내기가 아니니, 각자…….그 놈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을 보냅시다.”
“!!!”
그들의 대화에 미희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백태에 의해 한 쪽 구석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대화 내용이 귀에 모두 들어오고 있었다.

‘안 돼…….안 돼 선우야.’
이미 늦은 후회였다. 미희는 조금 전, 자신의 눈에 겨누어진 칼날의 무서움에 선우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큰 위험을 선물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후회했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추선우가 이들의 계획에서 모두 이겨나가는 것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청와대로 출발했습니다.”
한 편. 강서진은 선재도를 벗어나면서,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조심해라. 아마 너희 뒤에도 그들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는 따로 움직였습니다. 우린 중간에 멈추지 않고 바로 청와대로 가겠습니다.”
“그래…….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도로 사정이 내 생각같지 않다.”
너무나 꽉 막혀 있는 도로였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설장호는 아직도 청와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계속하여 그의 주위에는 미행을 따라 붙은 차량이 있었다.
“난해하군…….”
설장호는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린 뒤, 다시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강 검사.”
강서진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네.”
“혹시 자네가 아는 인물 중, 기동대 애들 있어?”
“기동대요? 경찰기동대 말입니까?”
“그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좀 보내줘. 두 놈이 오라고 해. 이 차 좀 끌고가야 하니까 말이야.”
“아…….네 알겠습니다. 위치를 말씀해주시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설장호는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국도위에도 차가 꽉 막혀 있었지만, 그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택배 오토바이를 본 것이었다.
강서진은 설장호에게서 받은 위치를 곧바로 자신과 안면이 있는 형사계 계장에게 보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를 지원하기 위하여 두 대의 기동대를 현장으로 보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요시간은 약 5 분이라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그제야 굳은 표정을 조금은 풀 수 있었다.

잠시 후, 두 대의 경찰 기동대 오토바이가 도착하였고, 이미 전달된 내용처럼, 한 명은 설장호의 차량에


타서 차량을 이동시키기 시작하였고, 설장호는 그가 내린 오토바이를 타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젠장…….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쫓고 있던 이들은 눈앞에서 자신들의 곁을 저 멀리 떠나가는 설장호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장호…….놓쳤습니다.”
“뭐라? 꽉 막힌 도로에 서 있는 놈을 왜 놓쳐!”
곧 고민국에게 보고하였고, 고민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씩 놈들을 돕는 이들이 나오는군. 불신을 잔뜩 심어주었는데도 믿는다? 그래…….그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 등 한 번 찍혀보는것도 괜찮겠지.”
고민국은 이내 진정한 뒤, 다시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한 쪽 구성에 앉아 있는 미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데리고가라. 가서…….추선우를 맞이해.”


고민국의 명령이 있은 후, 백태는 그의 명령에 답 없이 정구석을 보았다. 지금까지 계속 고민국이 거의
명령을 다 내리는 듯 한 행동을 취했지만, 결과적으로 백태는 정구석의 사람이며, 추선우를 잡을 미끼인
미희를 손에 쥐고 있는 인물도 정구석이다.
정구석은 자신을 보고 있는 백태를 손짓으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귓속말로 몇 마디를 한 뒤, 움직이도록
하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속에서 우리가 서로 숨겨야 하는 일은 만들지 말기로 합시다.”
정구석의 행동에 고민국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숨기는 것이라…….뭐. 내가 뭘 숨기는지는 모르지만, 내 부하에게 내가 개인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도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과 공유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생활입니다. 내가 저 놈에게 집에 있는 내
속옷 좀 가져달라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까지 공유를 하자는 말입니까?”
“내 말은…….”
“그만 하십시오. 그 애들도 아니고…….각자 다 자신들의 생각이 있을테니, 조금 전 상황은 고회장께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신게요.”
최기수가 두 사람을 중재시키듯 말하였고, 정구석은 다시 백태를 향해 눈짓을 주며, 자신이 조금 전 한
말을 그대로 이행하도록 하였다.

0009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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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국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어차피 미끼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정구석이기에 그저…….그 미끼에
낚싯대 하나만 더 던져 놓는꼴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설장호 실장. 청와대 입구를 들어섰다는 보고입니다.”


같은 시각. 기동대의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빠르게 청와대로 들어선 설장호에 대한 보고가 차현태에게
알려졌고, 지금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듯 가만히 앉아 있던 각 부처 수장들의 시선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차현태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향해보았다. 그리고 저 앞에서 기동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서는
설장호를 보았다.

“오토바이 아닌가?”
차현태는 설장호가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서지호도 그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여 잠시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곧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차현태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먼저 그의 안부를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지금 강서진검사와 태정민팀장이 지현을 데리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 내용 역시 이 자리에서 처음 보고를 받는 것이라 놀랄 일이었다.
그토록 안전한 곳에 지현을 두자고 했을 때, 그 어떤 곳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여 민간인인 추선우에게
맡겼었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의 이름은 쏙 빠지고 지현을 데리고 청와대로 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선우는…….그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또 다른 미끼를 물어주기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또 다른 미끼? 설마…….그들이 다른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차현태가 그를 보며 물었다.
“네. 아무래도 추선우의 벗을 이용하여, 그와 지현을 끌어들이려 미끼를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럼. 추선우를 도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사람을 더 붙여주고…….”
“추선우는…….스스로 앞길을 잘 청소하고 갈 놈이니…….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의 말을 자르며 모두를 보고 말하였다. 무엇을 보고 추선우가 그들을 모두 청소하고 올
것이라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칫…….일이 잘못될 것을 우려한 차현태의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진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다른 사람을 움직이자는 차현태의 호의를 거절하였고, 오로지 추선우에게 그 일을 다
맡겨둘 것을 다시 강조하여 말하였다.
“그럼…….지현양은 지금 태팀장과 강 검사가 데리고 오는 것인가?”
곧 검찰총장이 물었다.
“네. 잠든 지현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현을 안고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민간인인
은주씨입니다.”
“은주?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국정원장이 물었다. 그러자 설장호는 그와 함께 다른 수장들의 눈빛을 모두 보았다.
“은주씨를…….모두가 모르는 듯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또 다른 민간인이며, 이에 대한보고도 이미 수차례
하였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민간인은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왜 지현을 또 다른 민간인이 데리고 오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않은가?”
“말씀대로 중요한 것은 왜 지현을 또 민간인이 데리고 오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왜 그
민간인이 데리고 오는지에 대한 이유는 이미 수차례 말씀드린 내용을 기억하신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지만
…….여기에 계신 모두가…….그 내용은 머릿속에 전혀 담아두지 않고 계신 모양입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는 차현태를 보았다. 그곳에 있는 다른 수장들과는 달리,
차현태는 은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의 눈빛이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지현이 신세를 진, 추선우가 살던 집의 집주인 딸 아닌가? 그녀에게 필시 더 이상의 관여는 하지 않도록
말하였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도록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아는데…….”
차현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나오자마자, 나머지는 그때야 은주라는 인물을
기억해 내는 표정들이었다.
“네. 대통령님의 명령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었지만, 서울역 사태에서 믿을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아, 제가 다시 부탁을 한 것입니다.”
설장호는 은주가 왜 또 관여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렇다고 또 민간인을…….”
“그 민간인들이 아니고서야! 지금 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계신분들…….지난
엿새 동안 무엇을 알아내셨습니까? 일은 하고 계십니까? 이 일을 다 파헤쳐 볼 마음은 있으신 것입니까?
대체…….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검찰총장이 은주의 개입에 대해 한 소리 하려다, 오히려 설장호에게 모두가 큰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들을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수장들이란 사람들이 사건이 터진 후, 시간이 지나도록 어찌
단 하나의 단서도 찾아내지 못하며, 민간인들의 도움까지 받도록 하는 것에 대해 설장호의 고함소리를
듣고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불과 아침에 모두가 다시 믿음을 가지고, 이 일을 파헤치자는 말을 하였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믿음을 수장들이 스스로 깨고 있는 듯 한 분위기였다.

“진정…….일을 해결할 마음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지금까지 이어져 온 그들의 습성처럼…….또


다시 숨어들어가도록 내버려두려 시간을 지체하시는 것입니까!”
“!!!”
무서운 말이었다. 이 한마디는 여기에 있는 인물들도 그 조직에서 이미 매수한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설장호의 말에 신빙성을 두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엿새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단서라고 하는 모든 것을 찾은 인물은 민간인과 설장호였다. 그 단서들을 찾기 위하여 해외도
다녀오고, 또 많은 인력을 동원하였던 수장들에게서는 단 하나의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설 실장. 말을 너무…….”
“아닙니다. 설 실장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검찰총장이 그를 매섭게 보며 말하려 할 때, 곧 차현태가 그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지금 이들은 이창민이 남긴 서류를 개봉하기 전, 신경이 굉장히 날카롭게 변해 있는 것이었다. 그
서류속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모르기에 더욱 더 예민해진 듯하였다.
“내가 먼저 말하려던 것도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여느 수장들께 많은 부탁을 하였습니다. 서둘러 달라는
말을 수차례 하였습니다. 하지만…….돌아온 답변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차현태가 말을 이어하며,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의 말에 수장들의 고개는 절로 숙여지고 있었다.
조사한다, 확인중이다. 등 많은 말을 하였지만, 결국 조사하고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지현이 민간인의 손에 의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간인의 고마움은 둘째 치고, 그
민간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차현태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해지고 있었다.
“여러 수장분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왜 더 빨리 확인하지 못하고, 왜 더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이었던 북정마을과 연화장, 그리고 성남의 펜션과 또 다시
북정마을…….그리고 서울역. 어찌 생각하면 가장 처음 시작된 북정마을의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지현양은 더 고통스러워했고,
민간인의 도움은 더 많아졌습니다.”
차현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싶은 던 말이 많았다는 듯,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그저 그렇게 지내지만은 않았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고,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후, 경찰청장이 말을 이어하였다. 검찰총장과 달리, 경찰청장은 지금까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박태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현장에 투입된 경찰쪽 인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경찰 지원을 해주었다. 서울역에서도 경찰특공대를 그 즉시 급파하여, 더 많은
인명피해가 생길 수 있었던 사건을 막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놀고 먹는 사람들이라면, 나라에서 그런 자리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노력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가 그들을 보며 당부의 말을 전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내 설장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실 차현태의 말이 나오기 전, 자신이 그 말을 모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현태가 대신 말해주는 득에,
자신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 서류…….모두가 찾는 서류입니다. 우리 뿐 아니라, 그들도 찾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서류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류의 행방을 지현이 알고 있을 것이라 간주하여
그녀를 죽이려 했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서류가 담긴 봉투를 들어보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은 그 봉투에 향해 있었다.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지 모르는 봉투, 그 봉투의 내용에 따라, 이 사건의 답 또 한 달라지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그 봉투를 차현태의 앞으로 가져와 살며시 내려놓았다.

“열어…….보십시오.”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서류봉투안에 든 서류를 가장 먼저 만져볼 수 있는 혜택은
차현태에게 돌아갔다.
차현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봉투를 보았다. 눈동자는 떨려오고 있었고, 손마저도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차현태가 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봉합된 봉투의 끝부분을 잘라냈고, 곧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
단 한 장을 눈에 넣은 차현태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 한 장만으로도 얼마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님. 무슨 내용입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아주 큰…….아주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차현태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곧 설장호가 그의 옆으로 섰다. 그도 서류의 내용을 보기 위함이었다.
“…….”
설장호는 차현태와 달리, 떨림없는 눈동자로 서류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무슨 내용이기에, 대통령님과 설 실장의 반응이 서로 다른 것입니까?”
나머지는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하였다. 곧 설장호의 손짓으로 서지호가 다가섰다. 그 순간 모든 수장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자신들보다 더 낮은 인물인 서지호에게 먼저 보여야 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서류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한 눈빛들이었다.
서지호는 내용을 확인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0009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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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입니까? 우리도 함께 좀 보십시다.”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향해보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곧 그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검찰총장의 손에 서류가 넘어가자, 외교부부터, 국정원, 그리고 경찰청까지 모두가 그 서류를 보려
총장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들도 서류의 첫 면에서부터 흔들거리는 눈동자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이 내용이 무엇입니까?”


검찰총장이 차현태를 보며 물었다.
“나라의 기밀문서는 물론, 나라의 토지, 그리고 보물들의 해외유출관련 자료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국정원장이 하였고, 세 사람의 시선이 국정원장에게 향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기밀문서란 것도 그렇고, 나라의 토지? 그게 뭡니까? 혹시 정부명의로 된 땅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보물은 뭐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국보를 말하는 것일테고…….”
검찰총장이 국정원장을 보며 다시 물었다.
“대통령님. 이 문서가 어찌 이창민대사의 손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소유의 토지거래내역
…….이건 또…….”
국정원장은 물론, 외교부장관도 이해할 수 없는 서류의 앞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음장을 넘기자, 몇 몇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었다.
“이 이름들은…….”
“아마도 그 뿌리라는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서류의 다음장에 적힌 이름들을 보며 검찰총장이 다시 말을 하자, 설장호가 그에 대한 추측을 말했다.
“그럼 더 기다릴 필요없지 않은가? 이름이 확인되었으니, 이 이름들을 토대로 모조리 잡아들인다면, 쉽게
해결 될 것 아닌가?”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그의 말처럼 그리 간단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성별이라도 나눠져 있다면 더 수월할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었고,
딱 이름만 나열되어 있었다.

“다음 장은 무엇입니까?”
나머지 한 장에 대해 궁금하여 청장이 물었고, 곧 총장이 나머지 한 장을 향해 넘겼다.
“!!!”
나머지 한 장에 찍힌 사진 한 장. 그 한 장의 사진에 모두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 사진은 여러장의 사진을 이리저리 합성하여 만든 누군가의 인물사진으로 그 사진 속에는 지금 이곳에
자리한 모두의 얼굴이 다 나와 있었다.
청와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차현태부터, 그를 경호하는 서지호와 태정민, 그리고 국정원장과 함께,
국정원에서 나서는 설장호, 검찰총장과 청장의 저녁식사. 그리고 외교부장관이 해외 순방길에서 골프 친
장면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찍힌 사진이 모두 합성 처리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되어 있었고, 그
사진의 모습은 또 다른 한 사람을 표시하고 있는 듯하였다.
“누군지…….아시겠습니까?”
필시 사람의 얼굴 형태로 합성된 사진이지만, 딱히 이 사람이다라고,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이 사람을 안다고해서…….이 사람이 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차현태를 보았다. 그의 말처럼 이 사람이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누군지 알면 그 내막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설장호가 다가서며 말했고, 검찰총장이 들고 있는 서류를 살며시 빼가면서 서서히 차현태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이 서류는 이 순간부터 저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검사가 보관합니다.”
“이보게 설실장. 그 서류로 인해 더 많은 내용을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인데…….그 것을 자네만…….”
“더 많은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지만, 더 많은 것을 숨길 수도 있는 자료입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단지 몇 개의 기밀문서와 함께, 토지 등 보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사진들로 하여, 또 다른 하나의 사진을 합성시켜 만든, 단 세장의 서류였지만, 이 서류로
인하여, 더 많은 것을 숨기는 것은 가능할 정도였다.

“그럼 그 서류를 왜 들고 온 것인가? 공유를 하고자 들고 온 것 아닌가?”


검찰총장이 설장호의 행동을 보며 물었다.
“공유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공유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
그의 말은 차현태마저 놀라게 하기 충분하였다.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그들을 막을 수 있을 정도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중심에서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고 있는 설장호는 애초에 공유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공유를 하지 않겠다니 말이야?”
“제가 이 서류를 이곳까지 들고 온 이유…….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검찰총장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자신이 직접 다른 질문을 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국정원장이 물었다.
“바로 의심입니다. 내가 이 서류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의심할 것입니다.
이미 지난번에도 의심을 하였으니, 두 번 의심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아주
중요한 자료…….저들도 찾고 있을 이 자료를 나 혼자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면…….그 의심을 제가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그래서 가져온 것입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통령님의 손으로 직접. 그 내용을
확인코자 가지고 온 것입니다. 결코…….이 내용을 공유하여, 혹시 모를 그들에게 정보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애초에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멍하니 설장호를 보았다. 설장호는 아직도 그 누구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지금 자신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이들만을 믿고 있는 인물이었다.

“추선우…….삼성역 도착하였습니다.”
같은 시각. 미희의 연락을 받고 삼성역에 도착한 그의 뒤로 고민국의 부하가 고민국에게 보고하였다.
“이제…….탄천주차장까지 길 안내만 잘하면 되는 것이군.”
고민국은 전화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고, 곧 정구석은 미희를 데리고 간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추선우가 도착했다. 탄천주차장이 좀 시끄러울 듯한데, 장소는 제대로 잡은 것 같아? 바로 앞이
강남서다…….자칫 경찰들이…….”
“문제없습니다. 시끄러워 지기전에…….추선우의 목만 떨구고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정구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몸을 바로
앉혔다.
“이제 곧 쇼가 시작될 듯 합니다. 탄천주차장 CCTV 를 수신 받도록 해 보겠습니다.”
정구석이 웃으며 말하였고, 모두 그를 보았다.
“아직도 CCTV 화면을 따로 수신 받고 있었던 것입니까? 만에하나 지난번처럼 그들의 추적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모두 잡히고 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치며 찾아다녀도…….지금 전국의 CCTV 를 해킹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찾아낸다고해도, 그저 헛걸음 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구석은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팀장님. CCTV 의 화면을 해킹한 이들을 찾아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의 보고입니다.”


같은 시각. 정구석의 말을 그대로 이어서 하는 듯, 설장호가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그 모든 CCTV 를 다
해킹하며, 수신 받았던 곳을 습격한 국정원 대원이 설장호가 없는 현재를 총괄 지휘하는 팀장에게
보고하였다.
“놈들은 다 잡았는가?”
“그것이…….직접 영상으로 보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말을 더듬거렸던 대원이 곧 영상하나를 바로 띄웠다.
“!!!”
그 순간 팀장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놀란 눈으로 메인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현장을 덮쳤는데, 온통 부비트랩들이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 총 아홉명이 모두 사망하였고,
지금 또 다시 그 현장을 수습하기 위하여 대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팀장은 놀란 눈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CCTV 를 해킹한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치 전문적인 집단의 소행처럼, 그 현장을 덮친 대원들 모두가 설치된 부비트랩에의해, 각기
제대로 손을쓰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한 장면이 그대로 그곳에 설치된 CCTV 영상에 찍혀, 이곳으로
송신된 것이었다.
“젠장…….일단 설 실장님에게 보고한다.”
팀장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현장을 급습한 대원들은 말 그대로 대북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대원들이었다.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계산하여 움직이는 이들이 모두 당한 것에 팀장은 자신 홀로 무언가를 결정내리지
못할 것 만 같았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차현태를 비롯하여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서류에 대한 보관과 함께, 앞으로 진행할 내용을
알려주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라면…….”
-급합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짧게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하지만 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였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와 수장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집무실 한 쪽으로 이동하여 전화를 마저 받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모두 전달 받은 후, 놀란 눈으로 서지호를 향해 보았다.
서지호는 그의 눈빛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암시하는 듯하였고, 즉시 그의 옆으로 이동하였다.
“무슨…….일입니까?”
서지호가 물었다.
“CCTV 를 해킹한 놈들을 잡으러 갔는데, 모두 당했네.”
“그들도 이미 준비를 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설장호는 서지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뭔가 생각하는 듯하였다.
“왜…….그러십니까?”
서지호가 물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겠지만, 이제 모든 것에
대비하는 습관도 있다는 말인데…….그렇다면 지금 친구를 구한답시고 따로 움직이는 추선우에게도 이들이
뭔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덤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설장호는 추선우를 믿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친구를 이용했다는 것은, 곧 그를 이용하여 추선우를
잡겠다는 의도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추선우 홀로 해결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를 보냈고, 또
차현태가 지원을 보내자는 말도 무시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자신이 내린 그 모든 결정이 후회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0009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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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추선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에게 사람을 붙여야겠네.”
“네? 갑자기 추선우는 왜?”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었어. 그의 강함을 믿고 있지만, 그보다 더 악독같은 그 놈들을 생각지
못하였어.”
설장호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줄곧 CCTV 를 통해 추선우를 따라다녔지만, 오늘 그를
보고나서도 그의곁에 사람을 더 붙여놓지 않았었다.
태정민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고, 서울역의 일도 큰 사건이었지만, 그 후의 대처를 서류하나 때문에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길…….이 서류에 너무 정신이 팔려버렸었다.”
설장호는 곧바로 차현태에게 다가가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차현태도 놀란 눈으로 그의 말을 들은 후,
서둘러 서지호에게 지원을 명령내렸다.

“무슨 일인가?”
국정원장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한 곳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위치가 확인되면,
여기계신 분들의 도움도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물음에 답한 뒤,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네. 실장님.-
국정원에 있는 팀장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지금 바로 추선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알려줘.”
-지금 추선우의 위치는 삼성역을 지나, 탄천주차장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설장호와는 달리, 사무실에서는 처음 설장호의 명령대로 하나의 모니터는 계속하여 추선우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고, 설장호의 물음이 나오자마자 그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탄천주차장?”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계속 주시하고, 그 일대 이상한 놈들이 있는지도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곧 모두를 향해 보았다.
“지금 추선우가 그들이 파 놓은 함정으로 들어갑니다. 난 그냥 아주 사소한 미끼라 생각하였고, 그
미끼를 추선우가 물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아무래도 미끼를 뿌린 놈은 추선우를 그냥
보내려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모두가 그를 보았다. 민간인 은주는 알지 못해도 추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위험에 처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굳이…….나설 필요 없지 않은가? 이미 지현은 태팀장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네. 지현이와
함께 움직일 때나 우리와 같은 운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지현이 이곳으로 오면…….”
“검찰총장님…….”
설장호가 서둘고 있는 것을 본 검찰총장이 한 마디 하였고,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이
그를 향해 쏘아보며 이를 깨문 어투로 그를 불렀다.
“현실을 바로 직시하라는 것이네. 지금은 추선우를 지원할 때가 아니라, 지현을 데리고 오는 태팀장쪽에
사람을 더 붙여야 한다는 말이네, 우리가 지켜야 할 인물이 지현이지, 그 민간인은 아니지 않은가.”
설장호는 그를 매섭게 보고 있기만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의 면상에 주먹이라도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현태가 자리하고 있기에 참고 있는 그였다.
“추선우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지현의 목숨도 없었습니다. 그가 한 일을 떠 올린다면, 우린 그를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설장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성질이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설실장의 말처럼, 그 민간인은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처음에 그가 없었다면 지현도 없다는
설실장의 말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차현태가 설장호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쉽게 뜻을 굽히지 않은 듯, 지원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일단. 바로 앞이 강남서이니, 강남서에서 인원을 보내주십시오.”
설장호는 검찰총장을 뛰어넘어 경찰청장에게 바로 부탁하였다.
“지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네. 경찰이 나가면 아무래도 그 일대에 추선우를 치려는 놈들이 피할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자네의 말처럼 믿음이네. 만에 하나 우리 쪽에서 그 뿌리에 가담한 형사나,
경찰이 있다면, 이 역시 역효과가 나오지 않을까해서 말이야.”
청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어느 기관에 어떤 누가, 몇 명이나 숨어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남서의 형사들이나 경찰들이라고,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일단은 보내세요. 그 뒤로 저희 경호원 인원도 보내겠습니다.”
서지호가 바로 나서서 말했다. 이미 서지호는 그들 곁을 지원하는 한 명의 인물을 지명해 두었었다. 바로
성남의 펜션에서 태정민의 목숨을 구한 지용석 팀장이었다.
그는 서지호의 명령으로 그 후로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설장호를 지원하는 하나의 팀을 꾸려 움직이고
있었고, 서지호는 그들을 바로 탄천주차장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미 CCTV 를 해킹한 놈들을 잡으러 갔던 우리 국정원대원들이 모두 죽었다. 그만큼 이들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 우리 역시 준비를 제대로한 후, 접근해야 한다. 무턱대로 붙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다.”
설장호는 말하지 않았던 국정원대원들이 죽음에 대해 말했다. 모두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들은 것이 없으니 그 내용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도 없을 것이었다.
“국정원 대원이 죽었다는 것인가?”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에 의해, 그 조직이 얼마나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다가서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인명피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하나하나에 더 관심을 주고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설장호는 다시 모두를 향해보며 말했다. 경찰청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강남서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국정원장도 따로 국정원 대원들을 현장으로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여전히 다른 지원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였다.
설장호는 그를 본 후, 매서운 눈빛을 거둬들였고, 곧 차현태의 앞으로 섰다.

“전…….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조심하게.”
“그리고 이것…….이것은 대통령님께서 보관해 주십시오. 추선우와 함께…….다시 오겠습니다.”
설장호는 서류를 차현태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그렇게 찾던
서류…….그 서류가 대통령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 태정민과 지현이가 도착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지현은
쉬어야하고, 지현을 안정시켜 줄 인물은 은주씨와 태팀장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알았네. 그리 하겠네.”
차현태가 답하였다. 설장호가 한 말을 모두 바로 이해한 것이었다. 태정민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움직일 인물이었다.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움직이면, 애써 청와대 안으로 데리고 온,
지현을 다시 외부로 나서게 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에게 인사한 후, 다시 각 수장들에게 인사하였고, 곧바로 현장으로 움직였다.
모두는 그의 뒷모습을 본 후, 다시 차현태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차현태의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유, 무는 아직 확인하기 힘들었다.

-실장님. 저 지용석입니다.-
청와대를 나서자마자, 경호원 지용석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어딘가?”
-지금 탄천주차장쪽입니다.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아주…….제대로 많은 것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아예 멍석을 깔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앞이 강남서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을 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강남서 애들도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즉…….저들의 죄가 없으니, 강남서에서도 별다른 손을 쓰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알았다. 곧 도착하니, 주시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자신들의 행동을 숨기며, 모두의 시선을 피하면서 일을 처리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예 멍석을 깔고 대기중이었다. 즉. 그 누가 찾아와도 자신들이 계획한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추선우…….네가 저들의 미끼를 물지마라…….저들이 너를 물어, 수면위로 오르도록 해야 한다…….넌…
….내 말을 잘 알 것이라 본다.’
설장호는 탄천주차장으로 향하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가 미끼를 무는 것이 아닌, 그들이 추선우를
물게 한다는 말.
설장호는 이미, 여러 차례 추선우를 미끼로 던져놓은 적이 많았었다. 그로 하여 숨어있는 그들의 일부를
계속하여 찾아왔었다. 이번에도 일종의 그런 뜻은 가지고 있었었다.
하지만 상황이 역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이미 그들이 추선우가 미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추선우는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 것이었다.
이는 백태가 이미 한 말에서도 나왔었다. 강남서가 바로 앞이니 어렵지 않겠냐는 정구석의 말에, 목표만
제대로 치고, 바로 빠져나가니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임을 말하였다.
즉. 백태는 이미 설장호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까지 다 계산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추선우. 탄천주차장 도착입니다.-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주파수를 3 으로 맞춘다.”
설장호는 곧바로 이어마이크의 주파수 변경을 명령 내렸다. 이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마이크 주파수를 3 으로 맞춰라. 그리고 네 뒤로 내가 서 있으니, 네가 생각하는대로 움직여라.-
설장호는 그 즉시, 추선우에게 문자메시지를 전송하였다.

‘띵동’
탄천주차장에 도착한 후,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추선우는 수신된 문자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몸을 낮춰 앉은 뒤, 이어마이크의 주파수를 변경하였다.
“들리나?”
-네. 들립니다. 그런데…….여기는 왜? 그 서류가 더 중요…….-
“지금은 네가 더 중요하다. 지금 이 일대에 그들이 있고, 또 우리도 있다. 누가 누구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냥할지는 모른다. 하지만…….절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총을 겨누지 마라.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놈이 총을 겨눈다면…….그 자리에서 사살하라. 우리가 죽는 것보다, 그 놈들이 죽는
것이 더 좋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모든 인물들에게 일종의 살인면허를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권한으로 그런 큰 권한을 줄 수 없지만, 설장호의말대로, 그들에게서 죽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방아쇠를 당겨야하는 것이었다.

“회장님. CCTV 수신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백태가 자리를 비우고 난 뒤, 고민국의 수하가 다가서며 식당 한 편으로 마련되어 있는 대형 TV 에
스마트기기를 연결하였다.

0009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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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은 TV 에 집중되어 있었다. 백태가 마련한 쇼를 구경하기 위하여 모두가 화면을 향해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곧 화면이 수신되면서 탄천주차장쪽의 영상이 TV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뭐야? 조용히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렇게 판을 벌려놓고 있다면 필시…….”


“정 회장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많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있겠습니까?”
화면이 보이자마자 최기수가 놀란 눈으로 정구석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우수광이 그를 보며 답을
하였다.
정구석은 백태에게 작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모든 면에서 철저하다고 생각하는
백태가 이런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오류를 범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지…….지금의 저 상황도
이미 백태가 다 계산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은 어디에 있는가?”


최기수가 자신의 비서에게 물었다.
“저기 뒤쪽. 약간 물러나 있습니다. 서둘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에 만에 하나, 퇴로를 보고 도망친다면,
그의 목을 바로 치기 위해서 뒤로 빠져있는다고 하였습니다.”
최기수의 부하는 몇 명 안 돼 보였다. 화면에 자세히 잡히지는 않지만, 약 일곱 명 정도만이 한쪽
구석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우리 애들은 어디에 있는가?”


다음은 우수광이 물었다.
“강남서 앞쪽에 있습니다.”
“뭐라? 강남서 앞쪽? 여차하면 바로 끌려 들어갈 수 있는데 왜 강남서 앞쪽에 있다는 말인가?”
우수광은 자신의 부하가 자리한 위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되도록 모두가 강남서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우수광의 사람들은 강남서의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말은 우수광은 물론이고,
그 안에 있는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애들은 자리 잘 잡고 있겠지?”


고민국이 물었다.
“네. 회장님.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회장님의 힘이 없으셨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이 일은 우리 백태가…….”
고민국의 비서가 하는 말에 정구석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하려다. 그가 다른 영상을 TV 로 재생하자,
그의 말문이 막혔다.
“보이십니까? 선재도에서부터 청와대의 모든 CCTV 를 해킹하여 우리가 찾아야 할 모든 인물들이 지금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추선우를 잡을 미끼를 찾는데도 우리 CCTV 가 한
몫 하지 않았습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십시오. 회장님들.”
고민국의 비서는 머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세 사람을 향해 보며 말했다. 굳이 인정하고 자시고를 떠나,
해당 영상을 보면 고민국의 활약이 많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기…….백태가 보이는군요. 그리고 목숨이 아홉 개라도 되어 보이는 계집도 보이고요. 그럼 추선우가
바로 나타난다는 말인데…….”
정구석이 말했고, 곧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백태와 함께 미희가 그의 옆으로 걷고 있었고,
그 일대는 이미 네 명의 회장이 보낸 엄청난 숫자의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주차장 외곽으로는
강남서에서 나온 형사들과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잡아넣을 수 있지만, 아직 이들의 죄명이 없기에, 자칫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튈 수 있어,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A-13 번 주차구역. 제가 만나야 할 친구입니다.”


추선우의 눈에 미희가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마이크를 통해 알렸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인근에
있는 모두가 그 지역을 보았다.
“저…….덩치 큰 사내 말인가? 그 사내를…….”
“아닙니다. 그 사내의 곁에 붙은 여자입니다. 제 고아원 친구이며, 저에게 있어 가족과도 같은
녀석입니다.”
모두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백태에게서 시선을 돌려 미희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고아원 친구라는 말에
설장호가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지용석.”
“네. 실장님.”
“너와 너의 대원들은 저 덩치를 막아. 그리고 이미 알겠지만,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적이라고 보면 된다.
어찌 변할지 모르니 모두 두 눈 부릅뜨고, 특히…….추선우와 함께, 그 친구의 안전을 우선으로 한다.
모두 움직일 채비해라.”
“아닙니다. 저의 안전은…….”
“시끄러. 넌 민간인이다. 쓸데없이 목숨 날릴 필요없다. 나라에서 돈 받아 쳐 먹는 우리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넌 아니야. 넌…….너를 위해서만 살아가라.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말한 뒤, 곧바로 움직일 채비를 하였다. 그리고 지용석과 함께, 나머지
대원들도 움직였다. 하지만 인원수의 차이는 엄청났다. 일개 분대 병력과 대대병력이 전쟁을 붙기 전처럼
느껴졌다.
“강남서의 지원? 받아도 되는 것입니까?”
이동 중, 지용석이 물었다.
“이미 청장이 내린 명령이다. 여기에 있는 강남서 형사들은 우리가 아닌 저들을 잡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움직여.”
“알겠습니다.”
지용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점차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와는 다른 방향에서 추선우가 미희를
향해 빠르게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추선우가 움직입니다. 백태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네 명의 회장에게 고민국의 비서가 설명을 하고 있었고, 곧 그들의 시선은 백태를
향해 돌아섰다.
“저 놈은 누구야? 또 다른 놈들이 붙잖아.”
추선우를 보고 있을 때, 다른 방향에서 백태를 향해 다가서는 지용석을 보며 정구석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혼자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지 놈 목을 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알고 오는데, 혼자 오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네 양아치 몇 명을 데리고 온 것뿐일 것입니다. 설마…….설장호가
민간인에게 국가기관의 인재들을 내 놓겠습니까?”
고민국의 비서가 하는 말에 모두는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느낌은 일반인들과는 달라 보이는 그들이었다.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사람은 경찰들 아닌가?”


다시 CCTV 가 주차장 주변을 비추자, 그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그리고 최기수가 물었다.
“평범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경찰들이 나와 있는 것뿐일 것입니다. 별다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설마 한 명의 민간을 위해 나라에서…….”
“저기…….설장호 아닌가?”
“!!!”
비서가 계속하여 다른 설명을하고 있을 때, 정구석이 모니터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고, 그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커지며 해당 화면을 보았다.
“설장호…….”
분명 설장호였다. 그가 지금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며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다른 CCTV 를 통해 잡히고
있었다.
“어찌된 것이냐? 설장호가 이런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설장호가 여기에
있어?”
고민국은 비서를 보며 소리쳤다. 필시 서류가 그들의 손에 넘어갔고, 또, 청와대로 모두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니 굳이 한 명의 민간인을 위해 다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보듯이 설장호의 모습은 CCTV 화면에 고스란히 잡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백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설장호가 추선우를 돕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나보군.”
조금 전까지 모두의 표정은 명작영화를 관람하고자 들떠 있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표정들이
모두 바뀌었다. 추선우가 미끼를 물기 위하여 찾아 올 때, 지현만을 데리고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도 물 건너 간 것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설장호만은 이 미끼를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현은 오지 않았고, 설장호가 왔다.
“젠장…….그럼 주위에 움직이는 모두가 이미 추선우를 돕고자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군.”
정구석이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추선우 혼자라면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기껏 해봐야
동네 양아치 수준일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가 움직이고 있으니, 그들은 동네양아치에서 적어도 국정원
소속 인원으로 신분상승이 되어버린 격이었다.

‘띠리리리’
정구석은 그 즉시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네 회장님.”
“지금. 주위에 설장호가 있다. 그리고 국정원소속인지,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너의 곁으로 붙고 있다.
조심하거라.”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 같은 놈을 챙겨주셨으니, 그 은혜에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어느 정도 계산은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안심이군. 부탁하네.”
“네. 회장님.”
정구석은 백태의 안전이 진심으로 걱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백태는 이미 설장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것처럼. 이에 대한 준비마저도 다 해 놓은 상태였다.
“인원이 많다. 누가 누구를 공격할지 모르니, 절대…….절대 우리들끼리 서로 총을 겨누는 일은 없도록
해라.”
설장호는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인원이 무척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설장호의 명령으로 이곳으로 온 사람들뿐이니, 인근에 진을 치고
있는 강남서 인원들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님. 태정민 팀장이 탄 차량이 청와대로 들어왔다는 보고입니다.”


한 편. 청와대에는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렇게 청와대로 데리고 오고 싶어
하였던 지현이 온 것이기에, 차현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와대 입구까지 나가 섰다.

잠시 후 차량이 도착하였고, 태정민이 잠이든, 지현을 안고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이 운전석에서 내렸고,
곧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잘 오셨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차현태가 태정민과 강서진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마지막으로 은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안내에 따라 모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 서지호는 모든 경호원들에게 밀착 경호를 명령내렸다. 그 어떤 누구도 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막아 세우고 있었다.
“이쪽으로…….”
차현태는 그들을 데리고 영접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서지호는 곧바로 영접실 사방을 다 막아섰다.

“삼촌…….여긴 어디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지현이 눈을 떴다. 그녀는 태정민의 품에 안긴 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여기…….여기는…….”
“지현아? 혹시…….나를 기억하니?”
태정민이 알려주려 할 때, 차현태가 그녀의 앞으로 서며 물었다.

0009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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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은 잠시 그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하였고, 두 손을 벌려 그의
품으로 옮겨가려 하였다.
태정민과 은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였다. 처음에는 추선우외에 그 어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고,
태정민과 은주도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지현이 뻗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차현태를 보자마자 지현은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고, 그의 품으로 가 안겼다.

“아저씨…….”
지현의 울음 섞인 한 마디. 그 한마디로 영접실 안에 있던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한 방울의 눈물을
자동적으로 맺히게 만들고 있었다.
“괜찮다…….괜찮아. 이렇게 네가 살아있으니. 아빠, 엄마도 마음을 놓으실거야.”
차현태는 그녀를 꼭 안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태정민과 서지호는 잠시나마 차현태에게 믿음이 없었던 그
순간을 그제야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실장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까? 한 참 전에 출발하였는데.”
“다른 곳에 일이 있어서 먼저 움직였네. 그보다 배고프지 않은가? 지현이가 많이 배고플텐데, 맛있는
것이라도 좀 먹였으면 하는군.”
차현태는 태정민의 물음에 대충 답하였다. 자세한 답을 하고자 한다면, 태정민의 성격상 계속 물을
것이기에, 서둘러 답하고서는 화제를 바꾸는 말을 하였다.

“조리장께서 주무시지 않는다면, 지금 만들 수 있는 요리 중, 최고의 요리를 부탁한다고 좀 전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가 바로 움직였다. 서지호도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표정이 한껏 풀리고 난 뒤였다.
이들은 현재, 지현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마음이 모두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탄천주차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마음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우는…….괜찮겠죠?”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사실 이들에게 지현이 중요하지만, 은주에게는
선우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태정민에게 물었다.
“걱정마세요. 잠시 대통령님께 인사하고 난 뒤, 제가 추선우의 곁으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태정민은 은주의 말에 웃으며 답하였고, 그나마 그의 말을 들은 후, 은주의 표정이 잠시나마 밝아지고
있었다.
차현태는 지현을 안고서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고, 곧 주방장은 청와대 내에 있는 남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저씨…….아빠, 엄마가…….”
“말하지 말거라.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잠시만 참고 있거라. 꼭…….꼭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테니 말이야.”
차현태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지현이 차현태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녀가 차현태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와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차현태는 지현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인생의 삶의 모두 다
살고 난 뒤, 그 생을 마감하는 이를 보내는 것도 가슴이 아프다. 하물며 아직 사랑 받으며, 부모 품에서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에 부모를 떠나보냈으니, 그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차현태는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님. 지현양의 안전은 이쪽에서 책임진다고 하지만, 문제는 추선우쪽입니다. 이미 태팀장이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려 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지호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차현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어, 태정민에게는 탄천주차장을
말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태정민의 눈빛을 보고 그를 불렀다.
“태팀장.”
“네. 대통령님.”
차현태가 태정민만을 부르자, 은주와 강서진은 서로 눈을 마주친 뒤, 다시 차현태와 태정민을 향해
보았다.
차현태는 설장호의 부탁을 듣지 않았다. 그는 태정민에게 모든 내용을 다 전달하였고, 그로인하여
태정민의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미 그가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주 깊게
계획되어 있는 작전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작전속으로 추선우가 들어갔지만, 이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맡은 추선우가 대신 재물이 되고
있는 것이라 느끼고 있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
태정민이 차현태를 보며 말한 뒤, 몸을 돌려 가려던 순간 서지호가 그의 팔을 잡았다.
“잠시 기다려라.”
서지호의 눈빛은 매서웠다. 태정민은 그의 눈빛을 보며 잠시 서 있었고, 곧 은주가 두 사람의 곁으로
움직였다.

“혹시…….선우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은주는 불길한 느낌에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 많은 대원들이 추선우씨를 돕고자 움직이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일단
청와대 의료진들에게 은주씨의 건강상태를…….”
“제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건강상태를 체크 받나요? 지금…….지금 선우가 어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이렇게, 이렇게 태연하게들 있어야 하는 건가요?”
은주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현의 눈동자가 흔들거리며 천천히 차현태의 품에서
내려와 은주의 곁으로 움직였다.
“이모…….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삼촌이 어찌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삼촌이 없어. 항상 곁에 있겠다고
했는데, 왜 삼촌이 없어. 태삼촌…….우리 삼촌 어딨어?”
지현은 은주를 향해 물어본 뒤, 다시 태정민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자 태정민은 몸을 낮춰 그녀와
눈높이를 함께 하였다.
“삼촌이 갈 거야. 삼촌이 가서…….우리 지현이 삼촌 데리고 올게. 그러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아니야. 나도 갈래. 나도 삼촌 따라 가서, 우리 삼촌 데리고 올래. 가자 삼촌. 가서…….”
“지현이는 이모와 있자.”
지현이 태정민을 조르며 계속 매달리고 있자, 은주가 이를 꽉 깨문 후, 다시 표정을 풀고, 지현을 보며
말했다.
“은주이모. 이모도 같이 가자, 같이 가서…….”
“우리가 가면 삼촌이 위험해. 지현이는 삼촌이 위험한 것이 좋아?”
“아니. 아니야! 그런 것 싫어!”
“그럼…….태삼촌에게 맡기고 지현은 이모와 함께 여기에 있자. 알았지?”
지현은 은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힘없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시선을 올려 태정민을 보았다.
“삼촌…….우리 삼촌하고 같이 올 거지?”
“그래. 삼촌이 빨리 가서 데리고 올게. 그러니까 은주이모 말 잘 듣고, 또 저기 아저씨가 맛있는 음식을
준다고 하니까. 배불리 먹고 있어.”
태정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차현태를 향해 가리키며 아저씨라는 말을 하였지만,
그 순간 아무도 그 말에 대해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지현이 부르는 차현태의 이름이었기에, 당연히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었다.

“갈 것이야?”
태정민이 몸을 일으킨 뒤, 영접실을 나서려 할 때, 서지호가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가야합니다. 가서 그 놈을 도와야합니다.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그런 민간이이 왜…….왜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며,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태정민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고, 은주가 지현을 살며시
껴안았다.
“가보겠습니다.”
“나도 같이가.”
태정민이 나서려 할 때, 강서진도 함께 따라나섰다.
“우리가 모두가면 은주씨와 지현만 남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만에 하나 청와대 내에서 그
조직에 가담한 인물이 나온다면, 막을 수 있는 확률은 없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침투가 되었을 것이지만, 강서진은 그냥 검사다…….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냥 검사일 뿐이었다.
“내가…….남아있는다고 도움이 될까?”
“네. 적어도…….지현과 또 지현을 안고 있는 은주씨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은 시선을 돌려 두 여인을 보았다. 생각지 못하였다. 자신이 두 사람을 보호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두 여인은 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고,
태정민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서실장…….태팀장에게 지원을 붙여주게.”
태정민이 자신에게 인사한 후, 영접실을 나서자, 차현태는 곧바로 서지호를 불러 말했다.
“이미 청와대의 경호원 숫자가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자칫 대통령님을 경호해야 할 최소한의 숫자마자
채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서지호가 그의 말에 반대하였다.
“이곳에 있는 나를 보호해서 뭐하겠는가? 설마 그들이 이곳까지 들어온다고 하여도, 나를 향해 총을
쏘지는 못할 것일세. 자네도 있고…….또 나를 향해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 할 테니 말이야.”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는 그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청와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몸담고, 이곳 생활을 계속 이어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루아침에 바뀐 다른
사람이 청와대로 들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태팀장에게 지원을 붙이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고, 곧 경호실에 연락하여 다섯명의 인원을 선발하여 태정민에게 붙여주었다.
“태정민.“
서지호는 청와대를 서둘러 벗어나려는 그의 앞으로 섰다.
“주파수 3 이다. 그럼 설실장님과 바로 연결될 것이다.”
그는 이어마이크를 따로주었다. 현재 설장호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사용하는 이어마이크 대신, 다른 것을
착용하고 탄천주차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 서지호의 뒤로 서는 다섯명의 경호원을 보며 태정민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 다섯명은 자신과 가장 처음부터 이 일을 맡았던 인물이며, 지금 다시…….한 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쉽게 될 것 같지 않군. 그 쪽은 어떤가?”


한 편, 설장호가 탄천주차장으로 움직이며 현재 상황을 보고 말했고,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은 지용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찬가지입니다. 많기도 많고, 또 뭐하는 놈들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갑자기 치고들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용석의 시선에 보인 딱 그대로였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들이 왜 여기에 모인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 모두가 움직인다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인원수였다.

“추선우. 넌 그대로 친구만을 향해 움직여라. 주변은 우리 쪽에서 해결한다.”


-인원이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설장호의 말에 대한 답은 추선우가 아닌 태정민이 하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설장호는 놀랐지만,
추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곧 지용석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태팀장님이 이런 곳에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용석이 이어마이크를 통해 말했고, 곧 탄천주차장 입구로 한 대의 차량이 아주 빠르게 내려서고 있었다.

0009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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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타고 온 차량인가?”
“저 아니면 이런 미친 짓을 누가 하겠습니까?”
설장호의 물음에 태정민이 답했고, 그는 아주 빠르게 차량을 몰고 들어와, 가장 많은 무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에 떡하니 주차하였다.
“주차장에서 그리 몰려다니면 괜한 의심받는다…….그냥 집에들 가라.”
태정민은 차량에서 내린 뒤,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인원수로 보아, 한 대씩만 맞아도 저승문턱은 충분히
밟고 올 정도로 많은 인원수였지만, 태정민은 아직 서울역에서 도태에게 맞은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들 앞에 선 후, 괜한 멋진 척 포즈를 잡고 무게 있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저 놈은 또 뭔가?”
한 편. CCTV 를 확인하고 있던 네 명의 회장들 눈에도 너무나 눈에 띄게 등장하는 태정민은 잘 보이고
있었다.
“태정민이군…….”
최기수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제길…….오라는 놈은 오지 않고, 쓸데없는 놈들만 다 모여 드는군. 설장호에…….태정민까지…….”
정구석도 마찬가지로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고민국과 우수광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비록 머릿수로는 저들보다 월등하게 앞서 있지만, 문제는 능력이다. 저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 탄천주차장에 모인 이들에게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은 백태 혼자였다. 다른 이들이 있다고하여도, 아직 그들에 대한 어떤 능력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백태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회장들도 알고 있을 정도이니, 그의 강함이 그나마 믿을만한 것이었다.

“어차피…….저 놈들 다 잡기위하여 움직였는데, 한꺼번에 다 처리해버립시다.”


우수광이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애초에 회장 자리를 두고 내기를 할 때,
저들의 목까지 내기에 걸었었다. 그러니 지금…….저들이 오히려 찾아와준 것에 감사하며, 모조리 목을
치자는 그의 말이었다.

“움직여라.”
가장 먼저 고민국이 전화기를 들고 한 마디 하였다. 그러자 모니터 한 쪽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녀석들이 움직인다. 목표가 누군지 모르니 적당하게 거리두고 움직이며, 여차하면 그냥 머리통을 날려.
그 책임은 내가 진다.”
설장호는 현재 탄천주차장에서 자신이 하는 말을 이어마이크를 통해 듣는 모두에게 살인면허를 주었다.
이미 한 번 받은 면허지만, 또 다시 들으니, 모든 대원들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총이 들려지게 되었다.

“움직여!”
점차 모두의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때, 백태가 큰소리로 말했고, 그 즉시 인근에 있던 또 다른
무리들이 그의 뒤를 막아섰다.
그리고 백태는 미희를 데리고 탄천주차장 위로 뻗은 도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젠장! 저 새끼 뭐야! 왜 저리 튀어!”


추선우와 함께, 백태의 곁으로 움직이던 지용석이 격한 말을 내뱉었다. 그의 곁으로 조금씩 더 다가서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그를 놓쳐버렸고, 자신의 앞에 수없이 많은 사내들이 떡하니 막아선
것을 보고만 있었다.

“제가 움직입니다.”
“뭐? 네가? 넌 어디…….”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가 분명 자신보다 뒤에서 다가서는 것을 보았던 지용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보려는 순간. 이미 탄천주차장 위 도로를 뛰어가는 추선우가 보였고, 그 뒤를
태정민이 이어서 뛰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저리 빨리 움직였지?”
지용석은 멍하니 선 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찌 저리 타깃을 따라
잘 움직이는지가 궁금하였다.

“백태를 지원해라.”
곧 최기수가 한 쪽 끝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일곱명의 사내에게 명령 내렸다. 그들은 퇴로를 막아 세울
작정이었지만, 백태가 주차장을 벗어나며, 그의 뒤로 추선우와 태정민이 따르는 것을 보았다. 설장호를
잡고자 그 곳에 계속 둘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여, 바로 움직여 백태를 돕도록 하였다.
“아무리 백태가 뛰어나도…….태정민과 저 놈을 둘 다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최기수는 정구석을 보며 말했다. 정구석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칫 정구석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으니, 미리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대로 쭉 쫓는다. 이곳은 나와 서용석이 정리한다.”
설장호는 추선우와 태정민에게 백태를 쫓도록 하였고, 탄천주차장에 모인 수많은 사내들을 감당하는 것은
서용석과 자신만이 처리한다는 말을 하였다.
“실장님. 농담이시죠? 이 많은 놈들을 어찌 정리합니까?”
서용석은 가만히 있었다. 아직 그 어떤 누구와도 주먹을 뻗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먼저 날아오던,
먼저주먹이 날아가던, 그 시작을 알리는 행동이 있다면, 대규모 난투극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였다.
“어차피…….이런 일이 우리 전문이지 않은가? 녀석들 보아하니, 여기에 있는 놈들 거의 대부분은
바람잡이로 둔 것 같은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설장호의 말에 지용석이 주위를 보았다.
“아무리 바람잡이라도 뻗은 주먹에 한 대씩 맞으면 결국 머리통 날아갑니다.”
지용석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인원수로 보나, 뭐로 보나 이미 서로 맞짱
뜨면 어느쪽이 더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였다.
“그래도 해라. 이게 임무다. 어차피 이 사건을 돕기로 하였다면, 제대로 하자.”
지용석은 그저 평범한 경호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이며, 그의 실력 또 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하지만 그 뛰어난 실력이라도 설장호에게는 신입 대원 수준의 대우를 받는
그였다.
마치 태정민과 서지호가 설장호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지난 성남의 펜션에서는 저를 그리 따돌리고 무시하시더니…….마음이 왜 갑자기 바뀌신 것입니까?”


지용석은 점점 많은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해 다가서며 이어마이크를 통해 그에게 물었고, 그의
물음은 백태의 뒤를 쫓고 있는 추선우와 태정민의 귀에도 들렸다.
“많은 생각은 하지마라. 그 당신에는 믿을 놈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나를 돕는 놈이라면 내가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아주 간단한 답이었다. 나를 돕고 있으니, 믿어야한다. 이론적으로 딱 맞는 말이지만,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

가장 처음 배신감을 느낀 인물은 석강수였다. 그리고 그 뒤로 국정원에서 자신의 수발을 들었던


최광민이었다. 또 한 연화장과 성남 펜션에서도 모두 같은 대원들에게 당했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 석강수와 최광민은 진정 설장호에게 충격이었다.

“할 일이 많다. 서둘자.”
설장호는 곧 무리들 안으로 움직였고, 지용석도 움직였다. 또 한 지용석과 함께 움직인 청와대
경호원들도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움직였다.

“백태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한 편. 탄천주차장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최기수가 정구석에게 물었다.
“나도…….아직 정확히 백태의 생각을 듣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냥 지켜 볼 뿐입니다.”
정구석은 아직 백태의 생각을 모른다. 단지 지켜보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이들에게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대가 바뀌니, 그 영상도 따라 움직이겠지요?”
고민국을 향해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계속하여 CCTV 를 수신 받던 인물이 고민국쪽 사람이기에 그를 보며
한 말이었다.
“당연합니다. 기다리십시오.”
고민국은 그 즉시 비서에게 알렸고, 비서는 백태의 이동동선과 함께, 추선우와 태정민의 이동경로가 찍힌
CCTV 를 전송토록 명령 내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제물들이 한꺼번에 한 곳으로 다 움직이면 좋겠지만…….민간인과 태정민만을 따로
잡는 것도 괜찮고, 또 설장호를 따로 잡는것고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수광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 잠시 잊고 있었던 탄천주차장쪽의 상황이 궁금하여,
한 쪽 구석의 작은 모니터로 옮겨진 탄천쪽 CCTV 를 향해 보았다.
“지금…….저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고민국이 말을 더듬거렸다. 모두가 그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모두가 고민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아주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던 탄천주차장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진정 대형모니터에서 선을 제거한
후, 작은 모니터로 영상을 옮기는 그 짧은 시간 안에 탄천 쪽에는 텅 비어 있는 진정 차량들만 있는
주차장과 같아 보였다.
“우리 쪽 인원은 백태를 지원하기 위하여 움직였다고 하더라도…….다른 회장님들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최기수가 물었다. 최기수는 자신의 부하들이 한 쪽 모퉁이로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곧
백태가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그를 지원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곧바로 그들은 움직였다. 또 한 정구석의 부하들은 백태가 움직였으니, 그를 따라
이동했을 것이었다. 남은 인원은 우수광과 고민국쪽이었다.

“어찌된 일이냐?”
고민국이 자신의 비서에게 물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투입시킨 인원이 총 50 여명입니다. 그 인원이 한꺼번에 사라질 리 없는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민국의 비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직접 명령 내려 사람을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 몇 분 사이에 그 많은 인원이 다 사라지자, 서둘러 원인을 확인코자 움직였다.

“우리 쪽은 뭐…….다들 죽었던지 도망갔겠지.”


반면에 우수광은 여유 있는 태도였다.
“지금…….그런 말로 넘어 갈 때가 아닙니다. 설장호를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지만, 태정민과 그
민간인을 잡는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었던지…….도망갔다고요? 대체…….”
“우리들끼리 이렇게 큰소리로 내 봤자, 이득 볼 것은 없습니다. 원인을 확인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지요.”
고민국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 지난 연화장때처럼 꽤 많은 인원을 투입시켰다.
하지만 이번엔 후퇴 명령을 따로 내리지도 않았었다.
“인근 CCTV 를 연결하여, 조금 전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을 다시 재생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고민국의 비서가 다시 다가서며 말했고, 모두 시선을 탄천 쪽을 비추고 있는 CCTV 에 집중하였다.

“저…….저 놈은?”
설장호와 지용석이 조금씩 움직이며, 그 무리들을 잡기 시작할 때, 강남서에서도 형사들과 경찰들이
내려와 두 사람을 지원하였다.
그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 무리들 속에서 아주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 또 하나의 인원이 있었다.

바로 그를 보며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0009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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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민은 북정마을에서 지현을 잡는 것에 실패한 후, 석광수에 의해 자신의 부하 모두를 잃었고, 그도
석광수에게 죽을 고비를 맞이하였지만, 때마침 찾아온 설장호에 의해 겨우 그곳을 도망쳤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민국의 명령없이 다시 모습을 보인 듯하였다.
“지금 즉시 최광민에게 연락해라.”
고민국은 비서에게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비서는 그 즉시 전화기를 돌렸다.

“회장님. 최광민입니다.”
최광민이 전화를 받자, 곧 휴대전화를 고민국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짓인가? 왜 사람들을 데리고…….”
-죄송합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지만, 저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내가 너를 살리는 것이다. 나의 명령을 어기면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다. 헌데…….누구에게…….”
-안녕하신가?-
고민국이 더욱 더 날카롭게 쓴 표정을 지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처음 듣는 목소리가 고민국의 귀에 들려왔다.
“누구냐?”
-내가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니, 그건 차츰 말하기로하고, 내가 한 가지 묻자. 너희들 누구냐?
누군데 숨어서 그토록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나?-
고민국은 휴대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변경한 뒤, 모두가 그와의 통화내용을 듣도록 하고 있었다.
“네가 누군지를 먼저 말한다면 우리도 말해주겠다.”
고민국이 다시 그의 신분을 물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놈들도 아닌 듯한데, 피차 선수끼리 이런 시간 장난 하지말자.-
모두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그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통화중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최광민을 조종할 정도니, 그의 힘은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며, 또 최광민에게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자세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들었을 텐데도 이토록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필시 이 또 한
만만찮은 상대라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최광민을 잡고 있다는 것은, 그 힘도 만만찮다는 말인데…….어떤가? 나와 함께
손을 잡아 보겠는가?”
-지랄하지 마라.-
“!!!”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그 한마디에 네 사람은 공통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그런 말을 한 인물이 없었다.
진정 처음 듣는 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말을 들었으니, 네 사람의 머릿속이 온통 뒤집혀지고 있을
것이었다.
-이장구를 기억하는가?-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전에, 고민국의 심장은 다시 터질 듯 하였다.
이장구는 이창민의 운전기사로, 국정원 조사실에서 자살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나오자,
고민국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누구냐…….누군데 이장구를 알아?”
-나? 난 그 이장구란 사람에게 살인청탁을 받은 인물인데, 결국 돈도 받지 못하고…….경찰에게 쫓기는
신세만 되어 있고…….그래서 어디서 돈을 받고, 어떤 놈에게 화풀이를 해야 할 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놈을 찾았지, 이놈에게서 네 놈들 이야기를 들었고, 네놈들에게 돈을 받은 후, 그 화풀이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네 사람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아직 통화중인 인물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자네가 누군지 말해준다면…….우리가 그 대가를 충분히 지급해 주겠네. 돈이라면 지금 바로 계좌로
송금해 주겠네. 말만하게. 얼마였나? 이장구에게서 받기로 한 금액이 얼마였나?”
고민국은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이창민의 목을 따는데 걸린 금액이 10 억. 그리고 그 여식을 잡아 족치는데 걸린 금액이 10 억.


합이 20 억이야. 지금 바로 송금한다면, 확인 후, 내가 다시 연락하겠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네 사람은 서로 손으로 사인을 주고받는 듯하였다.
“그러지. 계좌번호를 알려주게, 5 분 이내에 그 금액을 바로 보내주겠네. 그러니 통화는 끊지 말게, 우리
또한 그 돈에 맞는 정보는 알아야하니 말이야.”
고민국은 서둘러 비서에게 해당금액을 송금 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그리고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가 알려준 계좌번호로 20 억을 그 자리에서 바로 송금처리
하였다.

“송금하였네. 이제…….자네가 누군지…….”


‘뚜뚜뚜뚜’
“이봐! 이봐!”
송금을 하였다는 말을 전하자마자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계속
통화중이라 나오고 있었다.
“젠장! 그 새끼가 누군지 바로 확인해! 그리고 최광민! 그 놈의 목도 가져와라!”
“네. 회장님!”
고민국은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쳤다. 국정원에서 죽었고, 자신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이장구를 말한 사람. 그가 누군지 이들은 전혀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장구라면…….이창민의 운전기사를 말하는 것입니까?”


분이 가시지 않아, 씩씩거리고 있는 고민국을 향해보며 최기수가 물었다.
고민국을 제외하면 이장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즉. 이창민을 죽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고민국이었다는 말이었다.
“이장구가 고용한 킬러 같은데…….어떤 놈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민국은 미처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장구를 죽이면, 이창민에 대한 수사가 진척이
없을 것이며, 또 한 자신들에 대한 비밀도 숨겨진 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장구가 고용한 인물에 의해 신경이 날카롭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백태쪽을 먼저 확인합시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이 그 민간인이었으니, 탄천 쪽에 있는 설장호는
잠시 뒤, 다시 확인토록 하지요.”
정구석이 말했다. 고민국이 최광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수하인 백태를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도 일단은 백태에게 가 있었다. 설장호를 잡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 주변을 먼저
정리하면서 들어가려는 생각들이었고, 그 첫 번째로 민간인이면서 쓸데없이 끼어든 추선우를 잡는
것이었다.

“다시 연결했습니다.”
잠시, 탄천쪽의 상황에 몰입해 있던 상황이었고, 곧 대형 모니터에 백태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모두 그
영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삼성역 주변에 백태 외에 정 회장님의 사람이 있습니까?”
백태가 삼성역 일대 유흥가 쪽으로 걸어가자 최기수가 정구석을 보며 물었다.
“우리야 전국구 아닙니까? 삼성역쪽이라고해서, 백태의 수하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구석은 사실 전국에 뻗어있는 조직원들을 다 알지 못한다. 그 모든 관리를 백태가 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 운영만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백태는 미희를 끌고 유흥가를 들어섰고, 일부 유흥가의 여인들과, 사내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너를 보는 눈들이 어떤가? 사람으로 보는 눈들이라 생각하는가?”


백태는 미희의 머리채를 잡으며 물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팔을 잡아끌고 오던 것과는 완전 다른
행동이었다.
미희는 유흥가에 있는 사람들을 매일같이 봐 왔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진정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손에 머리채가 잡힌 채, 그들의 눈빛을 봐야하는 것이 불편하였다.
“형님.”
곧 백태의 옆으로 미희를 데리고 영업을 하던 유흥업소의 사내가 나와 그에게 인사하였다.
“지금. 이 계집을 찾기 위하여 한 놈이 다가설 것이다. 막아라.”
“알겠습니다.”
그는 미희를 본 뒤, 다시 백태의 명령에 고개 숙여 답하였다. 그리고 곧장 몇 사내들을 더 불러 모은 뒤,
다가서는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희는 백태에 의해 끌려가면서, 시선을 돌려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눈동자는 떨려오고 있었다.

‘내가…….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야…….’

그녀는 떨고 있었다. 단지 그 순간이 무서워서 행동한 결과가 참으로 무섭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저기…….저 놈이군.”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본 것 같습니다. 미희를 불러내고 그 앞에서 한 여자아이를 안고 있던 그 놈
말입니다.”
사내의 말에 그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추선우를 기억하는 듯 말하였고,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보았다는 듯, 그 상황을 떠 올리고 있었다.
“그래…….그 놈이었군.”
사내도 떠 올렸다. 그는 여 종업원들 중, 미희를 특히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내였다. 그리고 미희가
선우와 함께 웃으며 가는 것을 보았던 인물이었다.
“가차 없다. 그냥 쳐라.”
“알겠습니다.”
그의 나지막한 말에 사내들이 일제히 추선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삼성역 일대입니다. 근처 유흥업소의 건달들이 추선우와 그 뒤를 이어 따라오는 태정민


팀장에게 주먹을 뻗고 있습니다.-
한 편. 국정원 사무실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다 CCTV 로 확인하고 있었고, 곧 내용을 설장호에게 알렸다.
“장사 그만 하고 싶은 놈들인가 보지. 지금 즉시 내가 갈 것이다. 강남서 형사들과 함께 움직일 테니,
너희들은 계속 추선우와 태정민을 확인해라. 오늘부로…….삼성역 유흥가는 사라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용석에게 무전을 보냈고, 곧바로 삼성역 유흥가로 움직였다. 설장호는 강남서 형사들에게
협조 요청을 해 둔, 경찰서장의 도움으로 인하여 그들을 데리고 쉽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도 유흥가로
움직였다.

“젠장! 이 새끼들은 뭐야!”


때 아닌 건달들의 주먹질에 의해, 태정민이 소리쳤고, 곧 자신보다 약 20 미터 정도 앞에서 그들과
주먹질을 있는 추선우가 보였다.
“추선우! 그냥 달려! 가서 그 놈만 족쳐!”
태정민이 소리쳤다. 하지만 쉽게 뚫고 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두 명이라면 쉽게 쳐 나갈 수 있겠지만,
역시 머릿수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다.

‘애애애앵!’
“일찍도 오시는군.”
곧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건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다.
“오늘부로 이 새끼들 영업은 끝이다. 모조리 잡아!”
설장호가 소리쳤고, 그 소리에 건달들이 우르르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기 바빴다.
“추선우, 친구를 따라가라.”
설장호가 이어마이크를 통해 말했고, 추선우는 주위가 물러나자 곧바로 뛰기 시작하였다.
“태정민 지원하고.”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도 이어 달렸다.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자, 그 장면을 모두 보고 있던 정구석이 다시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0009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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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호가 움직이면서 삼성역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버렸다. 계획은 있는가?”
그의 무전에 백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곧 유흥가를 벗어나 조금은 외진 안쪽으로 이동하여 그
자리에 멈춰섰다.
“계획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 민간인만을 목표로 한 계획이었으니, 그 놈의 목은 따고 가겠습니다.”
백태의 말을 들은 후, 정구석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의 말이 곧 그 자리가 백태의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너무…….극단적인 말은 하지 맙시다. 우리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가 백태와 하는 통화를 들은 최기수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수광과 고민국의 사람들은 탄천주차장에서
최광민에 의해 쉽게 흩어져버렸지만, 최기수의 인물들은 곧바로 백태의 뒤를 따라 움직였었다.

“이래저래…….서로 같은 처지에 앉으신 회장님을 두었으니, 힘을 보태봅시다.”


곧 한 쪽 건물 틈에서 한 무리의 사내가 나오며 백태에게 말했고, 그 장면도 전봇대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모두가 보게 되었다.
“지금 쫓아오는 놈은 두 놈. 민간인과 태정민. 충분히 저들이 그 두 놈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장호가 다가서기 전, 그 자리를 다시 벗어나면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최기수가 말했고, 정구석이 그를 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장님.-
“왜”
삼성역 유흥가를 강남서에 맡기고 곧바로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던 그에게 국정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지금 그들이 마지막 장소로 보이는 듯 한 어두운 곳에서 민간인과 태정민 팀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몇 놈이나 되는데?”
-인원수는 인질을 포함하여 아홉 명입니다. 인원수가 많지 않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의 말에 설장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고, 뒤를 이어 지용석도 빠르게 움직였다.
“상대가 누구야?”
이동중에 바로 물었다.
-일단. 인질을 데리고 움직인 놈이 백태라는 놈입니다.-
“백태……. 이름 참 마음에 들지 않는군.”
설장호는 대원의 말에 농담을 하였다. 하지만 대원은 농담을 주고받을 표정이 아닌 듯하였다.
-신중해야 합니다. 백태는…….설 실장님과 비슷한 수준의 킬러라고 보시면 됩니다.-
“!!!”
조금 전까지 농담처럼 여유가 있었다. 아홉 명이면 충분히 추선우와 태정민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의해 듣고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놈 더 있습니다.-
“또 있어?”
-뒤 늦게 나온 일곱 명 중, 그들의 우두머리가 병따개라는 닉네임을 가진 놈인데, 그 이유가…….타깃을
정하면 무조건 목을 딴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입니다.-
“!!!”
설장호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는 지용석에게 손짓으로 서둘도록 명령 내렸고, 지용석도 바로 움직였다.
“일단. 인근 확인 잘하고, 경찰인원들도 붙여! 지금 바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삼성역의 모든 처리를 강남서에 맡기고 바로 움직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었다.
일단 백태라는 인물이 자신과 버금가는 인물이라 하였으니, 자신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병따개. 그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리 와서 좀 들게.”
한 편. 차현태는 주방장에게 요리를 부탁하였고, 주방장은 기꺼이 지현을 위해 요리를 해 주었다.
그리고 은주와 강서진도 함께 움직였다.
모든 요리는 영접실로 직접 배달이 되었고, 서지호가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그 곳은 그 누구도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거리가 멀어 이어마이크가 연결되지 않아,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무 일 없나?”
설장호의 전화였고, 서지호는 현재 나란히 둥글게 모여앉아 있는 모두를 향해 보고 있었다.
“네 아무 일 없습니다.”
“다행이군. 일단 이 쪽은 바쁘다. 추선우와 태정민이 쉽게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일단 그곳의 모든
경호는 네가 책임자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지현과 민간인 은주씨의 안전은 책임져라.”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와 통화내용에 대해, 자신의 표정으로 그 내용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몸을 돌려
통화를 하였다.
“무슨 일인가?”
통화를 끊자마자 차현태가 물었다.
“설실장입니다. 지금 탄천쪽의 일은 정리가 되었지만, 추선우씨의 친구는 아직 구하지 못한 상황이라
계속 뒤 쫒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하는군.”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에 답한 뒤, 다시 지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지현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녀는 손에 든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왜…….먹지 않느냐?”
“삼촌이…….삼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먹어. 삼촌이 돌아왔는데, 네가 배가고파서 안아줄 힘이 없다면, 삼촌이 좋아하겠어? 그러니까 먹어…
….먹고 힘내. 힘내서 삼촌이 돌아오면 꽉 안아줘.”
은주가 지현에게 다시 포크를 쥐게 하며 말했다. 차현태와 강서진은 지현에게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 자신의 동생을 대하듯, 밥 먹지 않는다고 소리치며, 다독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더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 사람은 은주였다. 이들에게 추선우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부하보다는 덜 할 것이었다. 하지만 은주에게는 그 어떤
누구보다 추선우가 더 중요하기에, 그 답답함은 오히려 지현보다 더 한 그녀였다.
“천하의 백태형님을 이렇게 만났으니, 그 전설적인 것도 좀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시각. 병따개는 백태의 옆으로 다가서며 그를 노려보는 듯, 강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누군가? 누구의 밑에서 일하는가?”
병따개가 백태를 알아도, 백태는 병따개를 모르고 있는 듯하였다. 비록 탄천에서 눈빛은
주고받았을지언정,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 그였다.
“뭐…….저 같은 조무래기의 이름을 다 기억하실 필요는 없으니, 기분나빠하지 않겠습니다. 저…….
병따개라고 합니다.”
“병따개!”
그의 한 마디에 백태의 표정이 잠시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은 잘 기억하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저를…….아십니까?”
병따개가 물었다.
“대단하군. 천하의 병따개가 이런 곳에 오다니 말이야. 내 기억속의 병따개는 부산을 주 무대로 하며,
일본 야쿠자들만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인간이라 들었는데…….맞는가?”
“맞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냥 건달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개입이 좀 많습니다. 무슨 놈의 정치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좀 많긴 합니다. 그리고 일본 놈들 들어서는 것도 좀
봐줘야하고, 또 일본 정치인들 머리카락에 힘들어가는 것 부러뜨려야하고…….좀 바쁘지만, 우리 최기수
회장님께서 직접 부르셨으니…….이 정도는 움직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최기수가 정치 쪽을 많이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된 인물이 병따개였다.

사실 병따개는 백태처럼 정구석의 손에 들어와야 하는 인물이었다. 정구석이 전국의 주먹조직들을


다스리고 있으니, 당연히 그의 밑으로 와야 하지만, 병따개는 주먹조직이라기 보다, 정치인들 따까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세력이 워낙 커졌고, 일본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또 한, 정구석이 다가서기 전, 그를 먼저 알아보고 손에 넣은 인물이 바로 최기수였다.


그래서 병따개는 주먹조직과도 같지만, 유일하게 정구석이 아닌 최기수의 손에 들어가 있는 인물이었다.
“골치 아픈 놈이 몇 놈 있다고 하셔서 처리하고 곧바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백태 형님을
뵈었으니, 그 실력도 좀 보고 싶기도 합니다.”
병따개는 그의 손에 잡혀 있는 미희를 보며 말했다.
“천하의 백태형님이 인질극이라…….이건 뭐…….쪽팔린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병따개를 향해 쉽게 주먹을 뻗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벌이는 일기토라면 자신이 있지만, 그와 함께 있는 여섯 명, 그 역시 만만찮은 놈들이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재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재물의 용도는 그렇지
않다. 오로지…….그 놈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까지가 이 재물의 역할이고, 그 후는 보내준다.”
“하하하. 그러셔야죠. 천하의 백태형님이 쪽팔리게 민간인을 잡고 인질극이라니…….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말입니다…….우리와 같은 레벨이 있는 조직이나 건달들은 상대해주는데…….양아치나
민간인에게는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병따개는 이내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그를 보고 말했다. 자신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 무는 것에
대해 화가 나지만, 말 그대로 지금은 참고 있는 백태였다.

“백태 앞에서 담배라…….최 회장님 식구들…….조심하셔야겠습니다. 천하의 백태가…….”


“백태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가 인정했다는 것으로 아는데…….”
정구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최기수가 영상을 보며 말했고, 그 영상을 마저 접한 정구석이 가만히 있었다.
최기수의 말처럼 자신의 바로 앞에서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고 있는 병따개를 보며 백태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미희야!”
“!!!”
그 순간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은주는 놀란 눈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눈물만 글썽거리고 있었다.
“외쳐라…….그럼 넌 살아서 돌아간다.”
백태가 이를 꽉 깨문 상태에서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영화…….너무 많이 보신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저 여자가 외칠 필요 있겠습니까? 설마…….그
뭐냐…….그 서프라이즈…….이런 것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죠?”
백태의 말에 병따개가 다시 태클을 걸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백태는 그의 말을 듣고도 참고 있었다.

0009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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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여기에 네 놈이 찾아야 할 아가씨가 있다!”
“!!!”
병따개가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은주가 놀란 눈을 하고 있을 때, 골목 모퉁이를 바로 돌아 들어서는
추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실장님. 추선우와 그들이 조우하였습니다.-


“그래? 알았네. 지금 서둘고 있네.”
설장호는 서둘렀다. 이미 그곳에 있는 두 명이 어떤 인간들인지 알기에 더 서둘렀고, 곧바로 태정민도
추선우의 뒤를 따라 와, 그의 옆에 섰다.

“2 대 8 이라…….내가 네 명을 맡을 테니. 네가 네 명을 맡아.”


태정민은 그들의 인원수를 보며 말했고, 서서히 앞으로 가려고 하였다.
“아니요. 태팀장님이 일곱 명을 맡으십시오.”
“뭐? 인원이 여덟 명이면 딱 반씩 나눠야지.”
“전…….저 한 놈만 치겠습니다.”
그의 말이 듣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듣고 난 뒤, 태정민은 바로 이해하였다.
추선우는 다른 이들이 아닌 자신의 친구를 납치한 백태를 주 타깃으로 정하고 그만을 상대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지. 설마 맞아죽기야 하겠는가. 여차하면 팔, 다리 하나 내어주면 되지.”
“이놈들이…….”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은 이어마이크를 통해 다 듣게 되었고, 또 팔,
다리 하나 내어준다는 말은, 설장호의 명언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실장님. 늦게 오시면 재미없습니다. 서둘러 오십시오.”
태정민이 웃으며 말했고, 그 순간 추선우가 바로 백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성질은…….”
그의 움직임에 태정민도 지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탁!’
‘탁! 퍽퍽퍽!’
“!!!”
“태팀장님!”
추선우가 백태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그 주먹은 백태의 한손에 너무나 쉽게 막혔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은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이 뻗은 주먹은 병따개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바로 잡혔고, 그를 막고 서 있던 여섯 명의
수하들에 의해 단번에 한방씩 바로 허용하며 다시 떨어져 나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인원이 많더라도 태정민의 실력정도면 적중타 하나는 나올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태정민은 저 멀리 나가 떨어졌고, 추선우의 얼굴도 백태의 한 손에
거의 다 잡혀 들어갈 정도였다.

“너의…….역할은 여기까지다 살고 싶다면 벗어나라.”


백태는 미희를 놔주며 말했지만, 미희는 움직이지 못하였다.
‘퍽!’
그리고 미희를 놔 준, 손에서 뻗어진 주먹은 정확하게 추선우의 면상을 날렸고, 추선우도 공중에 몸이 뜬
채, 다시 날아가 떨어졌다.

“젠장…….뭐…….저런 놈이 다 있습니까? 주먹이 망치 갔네요.”


추선우가 곧바로 다시 몸을 서서히 일으키며 말했고, 그의 몸이 순식간에 다시 일어서자, 백태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는 태정민을 향해 보았다.
“일어나지 않으십니까?”
“젠장…….속이 터질 정도로 아프다.”
추선우는 한 방을 맞았지만, 태정민은 여섯방의 주먹과 발차기를 한 번에 허용하면서, 타격이 큰
모양이었다.

“선우야!”
곧 미희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를 안았다.
“부럽다…….”
태정민은 여전히 누운 채,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고, 미희는 선우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며 만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러니 어서 여길 피해. 이곳은 나와 이 분이 정리할 것이야.”
“늦었지만 우리도 있다.”
곧 설장호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지용석과 함께, 청와대 경호원들도 도착하여, 인원수에서는 오히려 더
많아진 상황이었다.

“인원이 늘었네. 그리고 저 놈이 설장호란 놈이겠지요?”


병따개가 설장호를 향해보며 물었고, 백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민간인의 안전이 우선이다. 이 여인과 추선우씨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난다.”
지용석이 함께 온 경호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곧 경호원들이 움직이자, 설장호가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는 경호원을 막아 세웠다.
“그 놈은 놔 둬. 한 방 얻어맞았으니,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있을거야.”
설장호의 말 대로였다.
“미희만 부탁합니다.”
추선우가 미희를 그들의 곁으로 인도하며 말했다.
“아니야. 선우야 너도 같이 가. 같이가서…….”
“아니. 나…….너를 이렇게 만든 저 놈에게 볼 일이 있어. 곧 끝내고 갈게, 집으로 가 있어.”
추선우의 말이 끝나자, 지용석이 다시 눈짓을 주었고, 경호원들은 그녀를 데리고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미희는 그곳을 떠나려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시작할까?”
설장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고, 그 순간 곧바로 설장호의 옆으로 추선우가 달려 나가며 백태를 향해
움직였다.

“저 놈…….성질이 꼭 태정민 너와 같다.”


“그러니…….이 꼴 나는 것 아닙니까?”
설장호가 그의 움직임을 보며 말하였고, 태정민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저 놈…….보통이 아닙니다. 단 한방도…….”
“저 놈이 병따개다. 타깃의 목을 무조건 따고 본다는 그 놈 말이야.”
“!!!”
태정민도 놀란 눈을 하였다. 청와대 경호원으로써 그런 조직 건달들을 모두 알 리는 없지만, 병따개는
아는 듯,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너도 기억나지?”
“네. 물론입니다. 부산…….대통령님께서 부산에 갔을 때, 그 때 일본 야쿠자도 부산에서 움직였고, 그
야쿠자를 모조리 다 쳐낸 놈이 저 놈 아닙니까?”
태정민은 그와의 만남에 대한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래저래 저 쪽도 한 주먹들 하는 놈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설장호가 자신쪽에 선,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지용석 및 그의 경호원 몇 명에게 말하였다.
“서로 머릿수를 계산하니 비슷하긴 한데…….이거 상대가 제대로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병따개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고, 곧 그의 수하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미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로 소수의 인원이지만, 그들의 실력은 웬만한 조직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저 놈은 제가 좀 만나겠습니다.”
병따개가 움직이자, 태정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생각지 않고 그냥 달려들었다가 제대로 한 방 맞고
물러난 첫 만남이었지만,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지용석, 지원해라.”
“네. 알겠습니다.”
지용석은 병따개를 제외하고 그의 수하들을 상대할 목적이었다.
곧 태정민이 먼저 움직이고 난 뒤, 그 뒤로 지용석이 바로 움직였고, 또 병따개와 그의 수하들도
다가오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추선우. 넌 구경하고 있을 참인가?”
태정민이 움직였지만, 가만히 서 있는 추선우를 보며 설장호가 말했고, 추선우는 눈길을 돌려 백태를
향해 보았다.
“저 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아니. 저 놈은 네가 상대할 놈이 아니다. 너도 태정민을 도와…….”
“아니요. 저 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설장호가 백태를 상대하려 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설장호의 말을 자르며 자신이
곧바로 백태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고, 설장호는 그를 붙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재밌는데요. 마치 영화같지 않습니까?”


네 명의 회장은 삼성역 외곽, 외진 곳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을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 느긋하게 앉아서
담배를 물고 보았다.
“저…….민간인. 대체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군요. 천하의 백태에게 주먹을 뻗기 위하여 다가서다니
말입니다.”
고민국이 영상을 보며 말했고, 정구석은 그저 담배만 입에 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거기…….잠깐.”
한 편. 미희를 데리고 다시 삼성역으로 돌아가던 세 명의 대원과 미희의 앞으로 두 명의 사내가 다가섰고,
곧 그들을 불러 세웠다.
“물러나라. 우린 청와대 경호원…….”
“알아. 너희들이 경호원인 것 알아.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
“!!!”
경호원들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들보다 조금은 어두운 곳에 서 있기에 그들의
생김새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의 무게감과 함께, 자신들이 경호원인 것을 알면서 다가서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설장호…….추선우…….저 안쪽에 있는가?”
“!!!”
놀란 눈을 다시 진정시키기도 전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두 사람의 이름에 미희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보려 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두운 곳에서 점차 밝은 곳으로 나왔고, 경호원과 함께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석강수…….”
한 경호원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바로 석강수였다. 한 동안 잠잠하다고 여겼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함께 움직인 인물은 최광민이었다.
설장호의 비서이며, 북정마을에서 청와대 경호원을 모조리 죽인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최광민의 부하를 모두 처리하고, 은주와 아주머니를 우연찮게 구한 인물이 바로
석강수였다.
그런 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의아하였고, 또 탄천 쪽에서의 일도 석강수에 의해 최광민이
모든 인물들을 다 물러나게 만들었던 상황이었다.
“대답을 쉽게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위에 있긴 있나보군. 그럼…….너희들은 그냥가라. 너희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은 아니니 말이야.”
석강수는 그들을 지나치며 말했고, 곧 한 경호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퍽!’
“젠장! 이놈들 대체 뭐야!”
같은 시각. 지용석은 자신과 서로 주먹질을 벌이고 있는 병따개의 수하들이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소리쳤고, 태정민도 병따개의 수준 높은 실력에 고전하고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긴 아니군.”
설장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느 누구를 지원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띠리리리’
순간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국정원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그 쪽으로 또 한 명의 인물이 접근중입니다.-
“또? 어떤 놈이 또 오는거야? 그리고 이 곳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일단 지원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지금 바로 지원요청해서, 이곳으로 인원을 보내.”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놈은 누구야? 우리 쪽 사람이라면 자네가 이토록 급히 연락하지 않았을테고, 저 쪽
사람인가?”
-아무래도…….저 쪽 놈 같습니다. 민간인을 데리고 삼성역으로 향하던 경호원들이 모두 순식간에
당했습니다.-
“!!!”
조금 전까지 여유가 있었던 설장호였다. 하지만 미희를 데리고 간 모두가 당했다는 말에 설장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0009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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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은?”
-다행히 민간인은 그들이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명의 경호원이 단
한명에게 단 10 초 만에 모두 제압당했습니다.-
“!!!”
또 다시 놀란 눈이었다. 아무리 허당이라고 하여도, 경호원이라면 기본적인 운동신경은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물 세 명을 단 10 초 만에 제압했다는 것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일단 그 놈을 주시해라. 이곳으로 다가설 때, 다시 나에게 알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해당 인물이 누군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돕고자 온 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 수 있었다.
“서둘러 정리하자. 또 다른 손님이 오는 듯 하다.”
설장호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에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지용석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지만,
그들 역시 다가오는 이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저기…….저…….저놈은 최광민 아닙니까?”


한 편. 영상을 보고 있던 네 사람 중, 우수광의 눈에 최광민으로 보이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조금 전, 탄천 쪽의 일을 해결하고자, 최광민의 위치를 찾고 있었고, 그의 위치가 현재 백태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광민의 옆에 선 놈은 누구입니까? 혹시 저 놈이 조금 전 고회장고 통화하였던…….”
정구석이 이어 말했고, 곧 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를 보기 위하여 화면 가까이 다가섰다.
“이 놈이 누군지 확인 할 수 있겠습니까?”
고민국이 이를 꽉 깨문 채 물었고, 곧 최기수가 자신의 비서를 불렀다.
비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거렸고, 곧 외부로 나가는 듯하였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우리 애들이 그의 신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최기수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하였고, 고민국은 다시 시선을 돌려 최광민을 보았다.
자신의 돈 20 억 원을 가로챈 인물이 비록 의문의 인물일지라도, 이 모든 일을 만든 인물이 바로
최광민이기에, 그는 최광민의 목을 대시 받으려 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띠리리리’
설장호가 한 참, 병따개의 부하들을 눕히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거의 다 왔어?”
-네! 바로 뒤로 약 20 미터 후방입니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의 동작이 멈추었고, 그는 시선을 돌려 후방을 보았다.
격전 중, 갑자기 멈추고 시선까지 돌린 설장호를 향해 주먹을 뻗으려던 병따개의 부하를 태정민이 쳐 내며
설장호를 보았다.
“지금 어디다 한 눈을 팔고 계신 것입니까!”
태정민이 소리쳤지만, 여전히 설장호의 시선은 후방을 향해 돌아서 있었고, 그런 설장호의 주위에서
덤벼드는 병따개의 수하들을 태정민과 함께, 지용석, 그리고 그의 경호원들이 모두 쳐 내고 있었다.
“제길…….불길하다고 느껴졌는데…….딱 맞아 떨어지고 있군.”
그리고 설장호의 시선에 석강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한 백태와 거의 비등하게 힘을 겨루고 있던 추선우는 백태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던지자,
설장호의 옆으로 날아와 넘어진 후,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백태를 향해 다시 뛰어가려던 추선우의 팔을 설장호가 잡아 세웠다.

“다른…….손님이 찾아왔다.”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추선우의 시선이 그가 머문 시선 끝으로 이동하였다.
“석강수…….”
추선우가 중얼거렸고, 곧 그의 입에서 석강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태정민과 지용석의 움직임마저도
멈춰섰다.
“젠장…….저 놈은 여길 또 어찌 알고 왔답니까!”
태정민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백태와 병따개 쪽도 희한하게 석강수의 등장에 맞춰 모든 동작을 멈춘 후, 그를 향해 보았다.
“이런 이런…….이런 화려한 파티가 이런 구석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석강수는 자신을 보고 있는 모두를 향해서며 두 팔을 벌려 말했고, 백태와 병따개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어이! 거기 술 처먹었으면 조용히 집에 가서 마누라나 껴안고 자!”
병따개가 그를 보며 큰소리로 외쳤고, 곧 두 팔을 벌리고 있던 석강수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름이 뭔가?”
석강수는 정확하게 병따개의 눈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쇠를 깎는 듯 들리면서
순간적으로 모두가 소름이 돋는 듯하였다.

“알아냈습니다.”
같은 시각. 네 명의 회장들이 눈을 크게 뜨며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최기수의 부하가 다시 들어서며
말했다.
“그래? 이름이 뭔가?”
“저 놈의 이름은 석강수라는 놈으로, 얼마 전까지 모든 것이 비밀에 덮여 있던 놈입니다. 하지만
이창민을 죽이고 난 뒤, 그의 딸을 죽이려 하면서 설장호에게 신분이 발각되어, 지금 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백태와 병따개를 향해 보았다.
“저 놈…….어떤 놈인가?”
“짧게 설명드리면…….설장호의 선배며, 설장호가 유일하게 공포를 느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
“낭패군. 저 놈이 우리쪽에 선 놈이라면 아주 큰 천군이지만, 만에하나 설장호와의 정을 생각해서
설장호쪽에 선다면…….”
“설장호 쪽은 아닌 듯합니다.”
최기수가 인상을 구기며 말하고 있을 때, 정구석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모니터 안 영상은 석강수의 곁으로 움직인, 지용석이 그가 뻗은 단 한방의 주먹에 의해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리는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나서지마라…….내가 관심있는 놈은 저 놈 하나다. 그러니 설장호…….너도 나서지마라.”


석강수는 여전히 추선우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하나의 먹이를 두고, 두 맹수가 싸워야 할 상황이 벌어질까?”
“두 맹수? 너…….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백태는 추선우가 자신과 격전 중, 석강수에게 시선을 주고 있자, 석강수 또 한 강자라 여기며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석강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다른 뜻을 말했다.
“뭐. 맹수가 뭐고, 난 상관없으니, 난 내 볼일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어이 거기! 하던 것 마저 하지!”
백태와 석강수의 매서운 눈빛이 서로 부딪히고 있었지만, 병따개에게는 별 상관없는 듯, 그는 태정민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이쪽은 이쪽에서 알아서 하십시오. 난 저 놈의 입을 좀 막아야겠습니다.”
태정민이 병따개의 앞으로 움직이며 말했고, 곧 지용석이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태정민의 바지자락을
잡았다.
“정신…….돌아왔어? 그럼 일어나서 주먹 뻗을 준비나 해라.”
지용석은 조금 전, 석강수의 주먹에 맞아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경호원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인물이었기에, 순간적으로 당한 적중타에 오랫동안 기절해 있지는 않았다.
“젠장…….저승 문턱을 밟고 오는 듯 하였습니다.”
지용석이 자신의 얼굴 턱선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고, 그의 말에 병따개와 백태의 시선이 잠시
석강수에게 돌아갔다.

“오래 시간 끌지말자, 지난 번, 연화장때처럼 시간 끌면서 지원군 붙이면, 또 물러나야 한다. 그러니


빨리 끝내고 빨리 들어가서 자자.”
석강수가 말했고, 그의 말에 추선우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려다, 설장호가 막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넌…….하던 일이나 마저해라. 일단 저 놈은 내가 최대한 막고 있겠다. 그러니…….빨리 끝내고
돌아와.”
설장호가 석강수의 곁으로 움직였고, 추선우는 백태와의 격전을 마무리하라는 말을 남겼다.

“설장호. 넌 나서지 말라고했다. 난 이제 이창민이나, 그의 딸에게는 관심 없다. 오로지 저 놈…….”


“저 녀석은 민간인이다. 그리고 넌…….이미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되어 있고, 내손에 잡혀야 할
놈이야. 그러니 내가 상대한다.”
석강수의 말이 끝나기 전, 그의 말을 자르고 설장호가 그의 앞으로 더 다가섰다.
“뭐. 정 그렇다면 잠시 몸이라도 풀어줘야지. 어이! 추선우!”
석강수는 다가오는 설장호를 마중하기 위하여 움직이며 중얼거린 뒤, 곧 백태를 향해 움직이는 추선우를
큰 소리로 불렀다.
“오래 시간끌지말자! 둘 중, 먼저 상대를 제압하는 쪽은 가차 없이 달려드는 것으로 하자!”
석강수가 큰소리로 말했고, 그 말은 백태의 신경을 더 자극하였다. 자신의 우세가 아니라, 자신이
추선우에게 질 것이라는 말을 석강수가 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너…….보통 놈은 아니었구나.”
백태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선, 추선우를 보며 인상을 구길 만큼 구긴 후,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보통 놈이었다면 이런 무식한 일에 끼어들었을까? 그렇진 않았겠지. 그리고 난. 너란 놈을 몰라.
하지만 내 친구를 건드린 것은 후회하게 될 거야.”
‘퍽퍽, 퍽’
“!!!”
“저게 뭡니까! 백태가 왜…….!”
추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아주 빠르게 주먹을 뻗었고, 그 주먹을 그대로 허용한 백태가 뒤로
밀려나면서, 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선우의 뒤돌려 차기가 제대로 적중하자, 큰 덩치의
백태가 바닥에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영상을 보고 있던 네 명의 회장이 벌떡 일어나 놀란 눈들이었고, 우수광이 말을 잇지 못한 채,
얼버무리고 있었다.
“저 놈…….대단한데.”
태정민과 일전 중, 잠시 소강상태로 뒤로 물러나 있던 병따개가 그의 움직임을 본 후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태정민은 물론, 지용석도 놀란 눈들이었다.
“역시…….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설장호 자네의 눈도 틀리지 않았고 말이야.”
설장호와 석강수도 서로 주먹을 뻗기 전, 일어난 일이라 조금 전의 상황을 모두 보았다. 순간적이었고.
아주 제대로 다 들어간 세 번의 공격이었다.

“일어나라. 그 정도로 누울 놈이었다면, 이런 무식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겠지. 일어나라.”


“…….”
모두가 추선우의 승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추선우는 오히려 넘어진 백태를 향해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모두가 아무런 말없이 백태를 향해 보고 있었다.
“맵군…….민간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갖춘 놈 갔다. 너…….경호원인가?”
추선우의 말처럼, 백태는 일어섰다. 두 번의 주먹과 함께, 연이은 뒤돌려 차기는 아주 강력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세 방을 동시에 모두 맞고도 백태는 일어서고 있었다.
“그렇지! 백태가 저리 쉽게 뻗을 놈은 아니지! 그렇지 않습니까. 정 회장님.”
백태가 일어서자, 우수광이 정구석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정구석의 표정은 이미 굉장히 일그러져 있었다.

0010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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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백태가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수차례 이와 같은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백태에게 주먹을 적중시킨 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그런데 저 놈이…….”
정구석은 담배를 꺼내 물며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그저 꽉 깨물었고, 곧 자근자근 씹기 시작하였다.
“어쨌든 빨리 끝내는 사람이 한 놈을 치는 것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석강수가 다시 말했고, 그는 최광민에게 자신의 윗자킷을 벗어던진 후, 설장호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젠장. 서둘러 지원군을 보내야 하는데…….강남서와 강동서에 연락을 해 두었고…….에…….또…….”


한 편. 영상을 보고 있는 국정원 사무실의 팀장은 이리저리 현 상황을 여러 곳에 알리며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지원과 확실한 지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지호실장과…….강서진검사.”
생각해 낸 인물이 두 사람이었다. 팀장은 곧바로 서지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누구십니까?”
서지호는 전화를 받은 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 신원을 물었다. 그리고 팀장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곧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삼성역의 일을 모두 알리고 있었다.
서지호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서지호는 전화를 끊은 후, 차현태를 향해보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잠을 청하지 않은 채, 지현과
함께 놀아주고 있는 차현태였다.

“무슨 일인가?”
차현태가 그의 눈빛이 무언가의 불길함을 말할 것 같은 느낌에 그의 곁으로 다가서서 조용하게 물었다.
서지호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에게 모두 알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도 굳어졌다.
“저희에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친구가 관여된 일입니다.”
두 사람의 비밀적인 대화에 은주가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의 눈매는 매서웠고, 목소리마저 날카로웠다.
“지금은 어렵겠습니다. 아침 날이 밝으면…….”
“아니요. 지금 말씀해주세요.”
“강 검사님까지 왜 이러십니까?”
은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있을 때, 강서진이 나서서 답변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서지호가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고, 곧 차현태를 보았다.

차현태는 어쩔 수 없이 두 여인에게 지금의 상황을 모두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현에게만은 여전히 비밀로


하고 있었다.

은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절부절못하였다.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검찰청 형사들도 지원을 보내겠습니다.”


강서진이 말했다.
“지금 청장님의 지시로 강남서와 강동서가 움직였고, 곧 경찰특공대도 움직일 것입니다.”
강서진의 말에 이어 서지호가 현재 지원이 되고 있는 인원과 부서에 대해 말하였고, 차현태는 다시 시선을
돌려 지연을 보았다.
너무나 늦은 시간이라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단. 새벽이라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네. 최대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다 현장으로 보내고,


경고사이렌을 먼저 발동시키도록 하게. 많은 인원이 다가서면, 제 아무리 그 놈들이 강심장이라고 하여도,
그 곳을 물러날 것이네.”
차현태가 마저 말한 뒤, 그는 지현을 재우기 위하여 움직였다.
“은주씨가 지현이를 좀 부탁합니다. 전.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따로 연락드릴게요.”
강서진은 은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두 여인이 마치 견원지간처럼 으르렁 거렸지만, 지금은
마치 친 자매처럼 가까워 보이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은주가 답했고, 그녀는 곧 지현의 곁으로 움직였다.
졸고 있던 지현은 차현태가 다가서며 안고 재우려 하자, 그를 향해 손을 뻗다가, 곧 은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안겼다.
“죄송합니다. 지현은 제가 재우겠습니다.”
은주의 말에 차현태는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다시 일어섰다.
“따로 방을 안내하겠습니다. 서 실장. 지현과 은주씨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게.”
“네. 알겠습니다.”
서지호가 앞 서 움직였고, 그 뒤로 은주가 지연을 안고 움직였다. 지연은 많이 졸렸는지, 은주에게 안긴
후, 1 분도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곳에서 계십시오. 이곳은 현재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 안으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
자체가 방탄이며, 방음이고, 또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외부에서는 이 문을 절대 열수 없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은주는 안도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마치 원룸처럼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살림살이부터, 가전제품과 심지어 먹을 식량도
모두 갖춰 있었다.
은주는 지연을 한 쪽으로 눕힌 뒤, 다시 문 쪽으로 향해 걸어가 서지호를 보았다.
“이 문은 한 번 닫히면 밖에서나 안에서는 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절대 열 수도 없습니다. 혹여 안에서 무언가 하실 말씀이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옆에 보이는 인터폰을
통해 연락하십시오. 그럼 곧바로 제가 오겠습니다.”
서지호는 은주에게 이 방의 사용설명에 대해 말하였고, 은주는 그의 말대로 주변을 모두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쉬십시오. 강서진 검사가 한 말처럼 지금 모두가 추선우씨는 물론, 우리 대원들을 구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휴식을 취하십시오.”
서지호의 따뜻한 말에 은주는 조금 전까지 화가 난 듯 한 표정을 풀고, 그에게 미소를 지은 뒤, 고개를
다시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곧 서지호가 물러나고 은주는 문을 닫은 후, 안으로 있는 여러 개의 잠금장치를 모두 작동시켰다.

“모두 현장으로 가고! 도착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 나온 강서진은 그 즉시 검찰청 형사들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현장으로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강남서입니다. 인근이기에 5 분후면 바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곧 답이 왔고, 강서진은 서둘러 청와대를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인원을 대피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창, 재밌는 액션영화를 보는 듯, 네 사람이 영상에 넋을 잃고 있을 때, 한 비서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우수광의 말에 그는 또 다른 모니터에 찍히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경찰들입니다. 그리고 이들뿐 아닙니다. 삼성역 번화가 인근 초입부분의 영상에는 경찰특공대까지
들어섰습니다.”
“젠장!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인데, 똥마려워서 화장실 가야하는 듯한 느낌이잖아!”
그의 말에 최기수가 큰소리쳤고, 모두가 그를 보았다. 표현이 좀 지저분하긴 하였지만, 모두가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엔딩을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서야 하는 기분이었다.
“일단 백태에게 알려라.”
“네 회장님.”
정구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비서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병따개도 물러나게 해. 저런 놈을 이리 허무하게 경찰에 넘겨주는 것은 아깝다.”
“네 회장님.”
이어서 최기수도 병따개를 물러나도록 하였다.
하지만 고민국은 최광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괘씸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를 경찰에 넘기는
것보다, 자신이 잡아서 그 죄를 추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영상만 보고 있었다.
“고회장은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정구석이 그를 보며 물었다.
“저 놈. 설장호와 마주하고 있는 저 놈. 석강수…….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설장호가
대단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그 설장호를 주무르고 있으니…….말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영상에는 설장호가 석강수에게 고전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수많은 주먹과
발차기 등,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액션을 보이고 있는 설장호였지만, 석강수는 그의 모든
공격을 너무나 쉽게 피해버리고 있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추선우와 거의 비등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었다. 그리고 곧 그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고
있었다.
“받아라…….그 정도의 시간은 준다.”
그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고 있자 추선우가 주먹을 뻗으려하다 말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백태는
추선우를 매섭게 노려본 후, 자신의 안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네.”
짧게 답했다.
“지금 그곳에서 물러나라, 경찰특공대는 물론, 경찰병력이 곧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백태는 순순히 정구석의 말을 따랐다. 바로 앞에 있는 추선우를 더 상대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의 괜한 개인감정으로 정구석에 미움 받을 짓은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쯤에서 물러난다.”
“뭐? 뭐라고요! 지금 한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의 말에 가장 놀란 인물은 병따개였다. 그는 한 창 태정민과 지용석을 두들겨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러난다. 만약…….나와의 결판을 짓고 싶다면 따로 따라나서라. 얼마든지 응해주겠다.”
백태는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추선우를 향해 보며 고개를 좌, 우로 저었다. 따라가지
말라는 그의 말이었다.
“하…….한 참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곧 병따개도 최기수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는 짜증섞인 어투로 중얼거린 뒤, 태정민과 지용석을 번갈아
보았다.

“너희 둘. 청와대 경호원이라고? 그 자리…….저 민간인에게 넘겨줘라. 그런 실력으로 무슨 대통령을


경호한다고 지랄들이냐?”
그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백태와 추선우는 서로 비등하였다.
얼굴의 상처나 기타 어딜 보아도 비슷한 격전이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태가 병따개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태정민과 지용석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백태를 일대일로 상대한 추선우지만, 자신들은 병따개를 2 대 1 로 상대하였다. 그런데도 얻어터졌다. 할
말은 없는 것이었다.

“물러난다? 뭔가 또 다시 지원이 있다는 말이군. 그리고 그 지원에 대해 저 놈들은 이미 알았다는 말이고


…….”
백태와 병따개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 석강수가 홀로 중얼거렸다.
이 두 사람의 격전도 뜨거웠다. 하지만 누가 승자라 말할 수는 없었다. 비록 더 얻어터진 사람은
설장호지만, 치명타를 더 허용한 인물은 석강수로 보이고 있었다.

0010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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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호…….나도 가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저 놈과의 인사는 또 다시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군.”
석강수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 때는 언제나 그 불길함이
적중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백태와 병따개가 뒤로 빠진 것처럼, 그도 서서히 뒤로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애애앵!-
“경찰이었군. 지원을 요청해 두었었나? 이 모든 것이 지난 번 연화장과 같은 상황이군. 이보게,
설장호.”
석강수는 계속하여 들려오는 경찰의 사이렌소리를 듣고 난 뒤 혼자 중얼거렸고, 곧 설장호를 보았다.
“북정마을에서 내가 한 말을 잘 기억해라. 그리고 추선우. 넌 언젠가는 나와 제대로 된 격전을 벌일 날이
있을 것이다. 넌…….내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이니까 말이야.”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최광민이 들고 있는 윗자킷을 다시 받은 후,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아…….젠장…….이거 쪽팔려서 고개 못 들고 다니겠다.”


석강수마저 물러나자, 가장먼저 설장호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고, 이어서 태정민과 지용석도
주저앉으며 그와 같은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물론, 몇 경호원들의 시선이 추선우에게 향하였다.

“왜…….그러십니까?”
“앞으로 네가 청와대 경호원해라. 병따개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젠장…….”
태정민이 그의 물음에 답한 뒤, 고개를 숙였고, 그의 옆으로 추선우가 다가가 앉았다.
“혹시…….빈자리 있나요? 저 면접 볼 수 있는 건가요?”
“뭐?”
추선우의 말에 세 사람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추선우는 진심으로 태정민에게 물은 것이지만, 이 세 사람은 그의 말을 모두 농담으로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원. 만약 그 곳에 자리가 있다고 하여도, 그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태정민의
농담에 괜한 추선우의 기분만 잠시 들 떴던 상황이었다.
“어쨌든. 넌 대단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놈보다 대단하다.”
설장호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태정민도 그를 향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지용석은 그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까지 하였다.

“모두!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수상한 놈은 모조리 잡아!”


곧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강남서와 강동서는 물론, 경찰특공대까지 올라섰으며, 순식간에 그 일대에는
수많은 형사들로 꽉 차 버렸다.

“왜…….진작 이런 방법은 사용치 않았습니까?”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말하지 않았나? 난 그냥 추선우를 돕고자 혼자 온 것뿐이다. 그냥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것뿐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국가에 귀속된 인물들 중, 청와대의 경호원이다. 이런 사사로운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지. 그래서 나 혼자 온 것이야.”
“그럼. 이건 뭡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이렇게 다 불렀으면, 쪽팔리지도 않고, 또 이렇게 얻어터지지도
않았겠죠.”
지용석이 주위의 수많은 형사들과 경찰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곧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이렇게 다 올 줄 알았다면 불렀겠지. 하지만 난…….진짜 혼자서 추선우를 돕고자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혼 자 온 것이잖아.”
설장호는 그들의 계속된 구박을 피하고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온 몸이 마치 다 부서지는
듯 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하…….안되겠다. 석강수…….그 새끼한테 너무 얻어터졌나보다.”


설장호는 이내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태정민과 지용석도 누웠고, 경호원들도 누웠다. 하지만
유일하게 혼자 서 있는 사람은 추선우였다.
그는 여전히 체력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곧 강서진이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미희가 함께 서 있었고, 추선우는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봐. 난 괜찮지? 저 사람들이 피곤해서 쓰러져 있는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아.”


추선우는 미희를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미희는 추선우의 얼굴 곳곳을 보며 상처가 있는 곳을
손으로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서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 있었다.
“그…….구해야 하는 친구가 여자 친구더라고…….난 몰랐어.”
설장호가 그녀의 표정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아는 듯, 바로 말하였고, 그녀는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이거…….양다리인가요?”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추선우가 누굴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두 사람 다 친구인지. 정확하게 알기
전에는 뭐라 확정짓기 어렵지 않을까요?”
강서진의 말에 지용석이 추선우와 미희를 보며 말했다.
“여자와 남자는…….친구가 될 수 없다. 그렇지? 태정민.”
"네? 아 네. 뭐…….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서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태정민이 당황하며 답하였고, 곧 설장호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래…….이성간의 친구는 없다. 친구란…….목욕탕을 함께 갈 수 있어야 친구지…….”
“아…….그건 좀…….”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과 지용석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강서진도 그의 말에 표정을 구겼다.
“일단 병원으로 후송하겠습니다. 지금 박태식도 거의 완쾌되고 있고, 또 경찰병원으로 옮겼으니, 모두 한
곳에서 얼굴 상처나 세어보면서 계십시오.”
강서진이 곧 올라선 의무대원들에게 세 사람을 후송할 것을 명령 내렸고, 그녀는 추선우와 미희의 옆으로
갔다.

“추선우.‘
“네. 검사님.”
“검사?”
“아…….인사해. 이 분은…….”
“검찰청 강력계 검사 강서진입니다. 그리고 추선우를 감시해야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잠시
자리 좀…….”
강서진의 말에 미희는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지만, 추선우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한 뒤, 곧 강서진의 앞으로 섰다.
“민간인입니다. 너무 겁주시면…….”
“은주씨는요? 은주씨는 어쩌고 또 여자와…….”
“네? 여기서 왜 은주가 나옵니까? 은주도 친구도 미희도 친구입니다. 그런데…….”
“선우씨는 그렇게 생각해도,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판단 잘 하세요.”
선우는 멍하였다. 지금 상황에서 은주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가는 강서진이 이해가지 않았다.

미희는 곧 다시 선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검사님이 뭐래? 너…….잡아간데?”


“아니. 날 왜 잡아가.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마. 그보다…….다친곳은 없어?”
“응. 괜찮아. 그러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쉬자.”
“!!!”
추선우와 미희가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강서진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며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추선우는 재빨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미희를 데리고 한 쪽으로 이동하였다.
“미희야. 사실 내가 지금 자유롭지 못해. 저번에 그 꼬마아가씨 봤지?”
“지현이 말이야?”
“그래 지현이. 사실 나…….지현이를 경호하고 있는 중이야. 그 아이에게 사정이 생겼거든, 그리고
여기에 있는 강 검사님과 , 조금 전에 보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 아이를 경호하고 있어. 그래서 난
자유롭게 어디를 갈 수 없어. 미안해.”
미희는 추선우를 올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주었다.
“너…….꿈을 이루었구나.”
미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려 하였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때, 그 때 당당하게
모두의 앞에 서자는 이들의 약속이 떠올랐고, 지금 미희는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꿈을 이룬 추선우를
보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이야. 나의 꿈…….”
선우는 미희의 눈에 맺히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흐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여전히 강서진에게는
꼴사나운 장면이었다.
이래저래 은주와의 첫 만남에서는 티격태격 이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붙은 정이라고 은주가 더
마음속에 자리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선우씨는 이동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변보호는 강남서에서 할 것입니다. 그러니…….”


“강 검사님.”
강서진이 서둘러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는 듯 말을 서둘고 있을 때, 선우가 그녀를 불렀다.
“네. 말씀하십시오.”
“미희. 저와 정말 오랜 친구사이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고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 몸을
기댈 만한 처지가 되지 않습니다.”
강서진은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시선을 돌려 미희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마치 선우에게서
미희를 떼어놓려고 많은 수를 생각하던 여인처럼 보였지만, 지금 강서진의 눈빛은 달라보였다.

‘고아…….’

그리고 홀로 그 단어를 생각하였다. 추선우도 고아다. 고아…….세상천지 혼자라는 말이었다.

“미희씨…….라고 했나요?”
강서진은 미희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녀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네.”
“집이 어디십니까?”
“대치동 인근 원룸입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일단 그 일대에 저희 검찰청 형사들을 미리 배치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다시 나오십시오. 그들이 미희씨를 미끼로 사용했으니, 미희씨 역시…….그들에게 노출된
것입니다.”
선우는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향해 고개숙여 인사를 하였다.
“선우씨에게 인사 받으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희씨 역시 은주씨와 집주인 아주머니처럼 그들에게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기에, 따로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아무튼요. 감사합니다.”
강서진은 애써 말을 돌려 하려하였지만, 이미 그녀의 얼굴에는 미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표정으로
나오고 있었다.
“가자. 내가 함께 가줄게. 괜찮겠죠?”
추선우가 말했고,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곧 검찰청
형사들 중, 일부를 두 사람의 뒤에 따르도록 하였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대통령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한 편, 서지호는 강서진의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그 내용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정말인가?”
“네. 다행히 강서진 검사는 물론, 강남서와 강동서, 그리고 경찰특공대가 늦지 않게 도착하였답니다.
그리고 설 실장과 태팀장, 그리고 서용석 팀장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경찰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상처는…….상처가 깊은가?”
모두 무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는 표정이 밝았지만,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에 차현태의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0010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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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곧 퇴원을 준비 중인 박태식 형사와 함께, 이틀 정도면 다시 체력을 회복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그들뿐인가? 그 상황에서 설 실장마저 병원으로 갔다면 추선우씨는 더 위중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그들만 병원으로 후송한 것인가? 설마 민간인이라…….”
“아닙니다.”
차현태는 국정원과 경호원소속 인원들만 병원으로 보낸 것이라 생각하여, 표정을 매섭게 한 뒤,
서지호에게 물었다.
“모두가…….병원신세를 질 정도로 상처를 입었지만, 추선우씨는 바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경미한
상처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인가? 설실장과 태팀장마저 병원으로 가야하는데…….추선우씨가 멀쩡하다…….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하는 인물 중,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놈과 격전을 벌였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놈을 제압할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차현태는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모두를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민간인이란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
것이라 생각하였었다. 하지만 서지호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차현태의 표정은 잠시나마 밝아지고 있었다.
“아침…….해가 밝는 즉시, 설 실장이 가져온 서류의 검토를 시작하겠네. 각 부처의 장관들을 서둘러
들어오도록 명하고, 관련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게.”
“하지만 설 실장과 태팀장이 병원에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참석은…….”
“내가 직접 설장호 실장과 통화하여 그 내용을 알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차현태는 결정을 내렸다. 이창민이 남긴 서류, 그 서류의 모든 것을 다 파헤쳐, 숨겨져 있는 그 뿌리를
모두 뽑아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차현태는 모든 부서의 수장들을 청와대 집무실로
집결시켰다.

“대통령님. 진정 그 서류에 대한 공개와 함께, 모든 것을 조사하실 계획이십니까?”


회의 시작과 함께 차현태의 말을 들은 국정원장이 물었다. 기밀문서이며, 자칫 국가의 정보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서류를 공개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었다.
“네. 모두 공개할 것입니다.”
“어제…….설실장이 이에 대한 모든 것을 자신이…….”
“어제. 설 실장은 그 조직의 습격을 받아 병원에 있습니다. 설장호 실장은 물론, 태정민과 지용석도 모두
병원에 있습니다. 단 한사람. 민간인 추선우만이 현재 지현의 곁으로 와 있을 뿐입니다.”
“네? 설마. 민간인을 청와대로 불러들인 것입니까?”
차현태의 말에 국정원장이 다시 놀란 눈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차현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곧
서지호에게 눈짓을 주었다.
서지호는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간 뒤, 잠시 후, 추선우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설마했는데, 진심으로 민간인을 청와대에 불러들인 것이었다.
“대통령님.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입니다. 아무런 경계나 경호원 없이, 어찌 민간인을…….”
“추선우는 지금까지 지현을 경호하였고, 또 설 실장과 태팀장을 도와 그 조직과도 맞섰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지금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다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그런 의심이 먼저 나옵니까?”
차현태가 국정원장을 보며 물었다. 국정원장은 자신의 직무상 어쩔 수 없는 의심이었다.
추선우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인물인지는 그 누구라도 모른다.
통장잔고 30 원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가, 어찌 열 살의 꼬마를 쉽게 돕는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그 처음부분부터 의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믿고 있으니, 그냥 따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 했습니다. 혹시…….”
“의심은 이제 그만합니다. 지금까지 그를 봐왔다면, 적어도 여기에 앉아있는 그 누구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더 이상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차현태의 굳은 표정에서 나온 이 한마디는 모두의 입을
봉해버렸다.
“더 이상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며, 더 이상 물러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찾고, 또 쳐낼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부터 모든 부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원을 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차현태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수장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부서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미 고민국이 각 부서의 인물들을 관리하고 있기에, 지난 연화장은 물론, 사당역. 그리고 펜션과 새벽에
있었던 탄천주차장의 모든 일을 다 관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각 부서에 몸담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마음 놓고 지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검찰총장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이미 국정원장이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다른 그 어떤 부서보다 뿌리에 가담되어 있던 인원이 많았던 국정원이었다. 그로인하여 국정원장은 쉽게
설장호의 뒤를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었었다.
“국정원 쪽은 설 실장이 따로 움직일 것이며, 우리 경호실은 서지호 실장의 명령하에, 태팀장이 따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청은 강서진검사가 그대로 이끌 것이며, 경찰청은 박태식 팀장이 다시
지휘를 할 것입니다.”
“박태식은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그는 퇴원합니다. 그리고 경찰청장님.”
“네. 대통령님.”
차현태는 자신의 말이 있은 후, 곧 경찰청장이 박태식에 대해 말하자, 그를 보며 다시 불렀다.
“제가. 청장님보다 더 빨리 경찰쪽 일을 확인하는 것은…….뭔가 잘 못된 것이라 보이지 않습니까?”
청장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먼저 알고 차현태에게 보고를 해야 할 판에, 자신은 모르는 일을 차현태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니, 숙인 고개는 당연히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확인하여 바로 팀인원을 맞추겠습니다.”
청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차현태는 다시 모두를 고루 보았다.
“처음과 같아졌습니다. 모두가 다시 제자리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제는 쳐 낼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추선우…….비록 민간인이지만, 국정원과 검찰, 경찰에서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여러 수장들께서는 이 마지막 기회에 그 놈들을 모조리 잡아야 하는 각오를 다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는 추선우를 앞에 세워두고 수장들을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얼떨결에 대한민국 각 부서의 수장들을
보며 서 있게 되었고,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서 실장.”
차현태는 곧 서지호를 불렀고, 서지호는 원본 파일을 복사한 서류를 그들에게 모두 한 장씩 나눠주었다.
“어제 발견한 이창민 대사의 서류를 한 장씩 카피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각기 각부서에서 모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에는 필시 암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름만 적혀있는 부분에서도 뭔가 암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름을 다 나열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판단에 나온 것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여러 수장들께서 제대로 된 답변을 대통령님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지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지난 날, 차현태에게 그렇게 구박을 받았어도, 그들은 아직까지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하물며 비밀의
문서가 발견되어 설장호가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 문서를 다시 보고자 하는 수장들도 없었다.
이에 서지호가 조금은 격한 말을 내 뱉었어도, 차현태는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장들을 향해 더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시간을 주어, 오늘 자정까지입니다.”
“네? 자정까지라 하시면…….”
“자정까지. 그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명단은 또 무엇이며, 그 명단에 속한 인원이 누구인지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나와 있는 사진으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인물, 그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내십시오.”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그를 보았다. 이미 일주일간 그 조직에 대해 알아낸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설장호를 비롯하여 현장에서 움직인 이들은 알아낸 것이 있었어도, 책상에 앉아 입만으로
명령만을 내리던 이들이 알아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서류 하나를 건졌다고, 시간을 단 하루를 주며, 모든 것을 알아오라고 하니, 이들의 표정이
멍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통령님. 그래도 이건…….”
“더 이상 시간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놈들을 수면위로 끌어내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사냥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차현태의 표정은 매서웠다. 진정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를 잡아야 하는 킬러처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움직이십시오.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차현태의 말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집무실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이에 서지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그를 보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지호의옆에 서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를 CCTV 에서만 보았고,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첫 만남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수장들이었다.

수장들이 모두 나간 후, 차현태는 추선우의 옆으로 섰다. 자신도 그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지현이를 위하여 노력해 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고, 이내 차현태가 그의 고개를 다시 들도록 하였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은주와 지현이는…….”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지금은 그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니, 대통령님과 저를 믿으시고, 추선우씨는 그
조직을 찾아내는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은 보고 싶었다. 비록 단 하루지만, 요 근래 계속 붙어 다녔기에 하루를 보지 않아도, 괜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지호의 말도 믿지만,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지현의 앞에 서면, 지현이 다시
따라 움직일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석강수나 백태...그리고 병따개가 또 붙을 경우. 그녀까지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은
추선우에게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보고 싶으시다면…….”
“아닙니다. 그만 가겠습니다. 잘 있다고 하니 믿어야죠. 그리고 제가 지금 나타나봤자. 서로에게 이득
볼 것이 없습니다. 적당히 잘 말해주세요. 그리고 꼭…….꼭 돌아온다는 말을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우는 청와대까지 왔지만, 결국 은주와 지현을 보지
않은 채, 다시 청와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0010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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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우는 서지호가 붙여준,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경호원이 운전중인 차량으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입원한 병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두 분…….아니 세 분은 괜찮으시겠죠?”
이동 중, 추선우가 경호원들을 보며 물었다.
“설 실장님이야, 원래 이 바닥에서는 전설적인 분이시니,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태팀장님도 사실 설
실장님과 거의 동급의 인물이라 괜찮을 테고…….문제는 지용석 팀장님과 그 대원들인데…….”
“왜요?”
두 사람에 대해서는 금방 일어날 것처럼 말하였지만, 지용석에게는 그리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용석 팀장은 그리 맷집이 좋지 않습니다. 때리면 맞긴 맞는데, 적어도 3 일은 그냥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대충 이해는 가고 있었다. 지용석이 꽤 빠르고 강해보이기는 하였지만, 그가 병따개의 수하들과 겨눌 때,
수없이 때리고 난 뒤, 한 두 대 맞고, 뻗어버리는 것을 몇 번 보았었다.
경호원의 말처럼 강하긴 하지만, 맷집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 병원신세를 더 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였다.

-어제 저녁 탄천주차장의 화면입니다. 험상궂은 인물들이 약 백여명 정도가 주차장을 완전 장악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은 대치동의 외진 곳입니다. 가로등이 몇 꺼져 있기에 분위기가
어두웠고, 또 그 곳에 설치된 CCTV 가 단 한 대 뿐이라, 하나의 영상만을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경찰병원에서는 설장호와 함께, 태정민, 지용석이 한 방에 누워 있었고, 곧 그 세 사람의 눈에는 어제


자신들이 겪은 그 모든 장소와 일들이 고스란히 뉴스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보고 멍하니 있었다.
“아주. 정보는 무척 빠르군요. 필시 민간인은 추선우와 그의 여자 친구밖에 없었는데, 저 외진 곳에서의
격전은 대체 누가 언론에 제공한 것일까요?”
태정민이 뉴스를 보며 물었지만 그 답을 설장호가 알리는 없었다.

“세 분께서 아주 스타가 되셨습니다.”


곧 병실 문이 열리면,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박태식이었다. 박태식은 연화장에서
이지광에게 당한 후, 병원신세를 지었고, 아직까지 병원에 있는 상태였다.
“다들.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하지 않습니까? 이리 나돌아 다닐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완쾌하여 다시
현장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사내의 만남이 있은 후, 곧바로 강서진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일을 진행한 사람 중, 유일하게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그 어떤 힘든 일도 겪지 않은
여인이었다.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아니네. 이참에 강 검사도 추선우씨와 함께 현장을 조금 더 누비면 어떨까해서 말이야.”
그녀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하자, 그는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은 후, 짝다리를 짚으며 섰다.
“이래뵈도, 저 현장경험 많습니다. 가장 처음인 북정마을부터, 연화장, 그리고 사당역과 서울역. 모두
저도 현장에 있었고, 위험한 상황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왜. 저는 아무런 일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말하고 계십니까?”
그녀의 말에 설장호는 물론 태정민도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모든 현장에서 그녀는 다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위험한 상황도 함께 겪었었다.
생각하면,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자신들이 못난 것이지, 절대 강서진이 위험한 일에 가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각 부서수장들께서 서류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많은 인력을 동원할
예정입니다.”
강서진은 곧 설장호를 보며 말하였다. 그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어제의 서류는 자신이 직접 관리하며, 그
비밀도 자신이 다 캐 낼 것처럼 말하였지만, 하루도 지나기 전에, 그 서류가 이미 전 부서에 다 돌고
있는 것을 두고, 강서진이 약간 화가 난 듯 한 표정이었다.
“실장님…….”
그리고 태정민이 그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시간이야…….내가 괜한 고집으로 그 서류의 진위를 나혼자서 캐내려면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그 피해도 커진다는 것을 어제 알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야.”
모두는 설장호를 보았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그 서류를 공개하였으니, 그 서류의 내용을 그들이 확인 후, 더 아래로 숨어버리면…….이제는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조직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잘 선택하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은 나눠지는 것이 현명한 판단입니다. 혼자 짊어지고 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이 그의 옆으로 서서히 다가섰다.
“멋진 말은…….여자한테 하는거야. 매번 남자한테 이런 말을 하니 여자 친구가 없지.”
강서진은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단 한마디로 인하여 다시 웃게 만들었다.
“추선우는?”
설장호가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서지호 실장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 아침. 각 부서 수장들께서
대통령님께 아주 제대로 한 방 맞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추선우를 칭찬하셨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아주 삭막했다고 합니다.”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순간 추선우의 기분은 어땠겠나. 아무래도 그 순간에는 대통령님의 판단이 옳지 않은 것이었네.
아무리 추선우가 뛰어나도, 그들 앞에서 자랑이라니…….”
설장호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다. 추선우는 민간인이다. 그들과 경쟁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하물며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을 앞에두고, 대통령이 직접 그의 칭찬을 늘어놓았으니, 자신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통령님께서 해 주신 것은 아주 속 시원합니다.”
태정민이 설장호의 말을 듣고도 그는 오히려 시원스러움을 말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저 또 한 총장님의 명령으로 자칫 검찰청에 박혀 있을 처지였었고, 또 박형사와 태정민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칭찬은 둘째 치고 의심만 받았습니다. 설 실장님도 그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태정민의 말에 이어 강서진이 몇 말을 더 붙여 하였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옳은 말이었다. 현장에서
뛰는 모두는 진정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이리저리 고군분투하였지만, 수장들은 책상에 앉아서 단 하나의
단서도 얻지 못하고 있었었다.

‘똑똑’
모두가 이번 차현태의 발언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열렸다.

“영웅이 오셨군.”
추선우가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를 보며 강서진이 미소를 짓고 말했고, 모두가 그를 반겨주었다.
많이 달라진 대우였다. 처음에는 민간인인 추선우를 모두가 잡고자 하였고, 또 그 후에도 그에게서 이번
일에 대해 별다른 임무를 부여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임무도 더 중요해졌다.
“다들 추선우씨 이야기로 이렇게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멍하니 선 그를 보며 강서진이 말했고,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현과 은주씨는 만나보았는가?”


곧 설장호가 물었다.
“아니요. 만나지 않고 왔습니다.”
“이유가 있는가?”
그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 하였고,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괜한 걱정을 만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일단 서 실장님이 지현이와 은주에게는 잘 말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사실…….한 번 보고 오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을 겪고나니 그런 것은 이 일이 모두 마무리되고 난 뒤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설장호가 그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병원 침대에 몸을 뉘었고, 모두가 그를 보았다.
“다시 누우면 어떡합니까? 어서 일어나서…….”
“아직 환자다. 내일까지 치료해야 한데. 그리고 졸리다 좀 자자.”
처음이었다. 항상 무뚝뚝하고, 또 자신이 맡은 임무가 종결되지 않으면 잠은 아예 자지 않던 그였다.
“이 참에 모두 푹 좀 쉬자. 추선우씨도 어디서 잠 좀 자. 그래야 다시 뛰지. 그래야. 그 놈들을 잡지.”
태정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 몸이 피곤하면 그들을 잡기 전에 먼저 쓰러질 처지였다. 요 며칠간 잠다운
잠을 잔 기억이 없는 모두였다.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도 아예 윗 자킷을 벗은 후, 보호자 간이침대를 하나 꺼내어 누었다.

“강검사님.”
“왜?”
그녀의 행동에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불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이렇게 남자들만 수두룩하게 있는 곳에서…….”
“나도 몰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런 짓을 왜 하는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그 어떤
누구의 눈치 보는 것도 힘들어, 잠을 자지 못하니, 화장이 둥둥 뜬다. 이 미모에 화장이 뒷받침되어
화려함을 뽐냈는데…….이건 뭐…….”
강서진은 태정민의 말을 들으며, 아예 눈까지 감은 채 그의 말을 농담으로 다 받아치고 있었고, 모두는
한 바탕 큰 소리로 웃었다.
설장호도 몸을 돌려 누운 뒤, 이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 곳에서 자리펴고 누울수도 없었고, 곧 조용히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설장호가 몸을 일으켰고, 신발을 신었다.

“어디가십니까?”
그가 움직이자, 태정민이 바로 물었다.
“화장실 간다. 이런 것까지 너에게 다 보고하리.”
“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것입니다. 다녀오십시오.”
태정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설장호는 병실을 나온 뒤, 좌, 우를 살폈고, 곧 추선우가 움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추선우는 휴게실 인근에서 TV 가 켜져있는 곳에 앉은 후, 멍하니 TV 를 보며 있었다.

“힘들텐데 좀 자라.”
곧 설장호가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가 오자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 하였지만, 이내
설장호가 그의 팔을 잡아 다시 앉혔다.
“힘들지 않아?”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힘들다는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던 생활에서, 이런 생활은 정말 없었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물음을 듣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답하였다.
“지구상에 사람은 많아.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도 다 달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리고
매일같이 죽어라 일만하는 세상. 매일같이 놀고먹어도 돈이 남아도는 삶을 사는 세상. 그리고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가는 세상.”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살던 세상은 그냥 일반적인 세상이야. 취업난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 그게 딱 기본적인
세상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숨기는 것이 많고, 또 알아내야 하는 것이 많아. 죽기
싫으며 죽여야 하고, 더럽더라도, 고개 숙이고 웃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세상이야.”
설장호의 말은 모두 이해되고 있었다. 추선우는 진정 얼마 전까지 그냥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취직만을 기대하던 젊은이였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신의 꿈이 경호원이었지만, 이런 삶을 사는
경호원이라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하였다.

0010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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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이쯤에서 빠져도 상관없다. 그 누구도 너에게 그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다.”
“빠지고 싶은 생각을 하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힘들다고 지현이를 그냥
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몰랐으면 관심이 없었겠지만, 이미 알았고, 또 지현이의 슬픈 눈동자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추선우는 진심이었다. 예전에도 설장호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하였었다. 그때도 선우는 이와 같은 답변을
하였었다. 변함은 없었다. 그 생각 그대로였다.
“넌. 꼭 꿈을 이룬다. 적어도 내가보기에는 그래.”
설장호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TV 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 실장님은…….가족이 어떻게 되십니까?”
선우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설장호는 TV 를 향해 고정하고 있던 눈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난…….가족이 없네.”
“죄송합니다. 나이가 있으신듯하여 결혼하셨을 것이라…….”
“예전에는 있었지…….”
“…….”
선우는 그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에 선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처럼 고아가 아니라. 항상 곁에 있었던 가족을 잃었다는 그의 말이었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목숨 하나만을 관리해서는 안 되네. 가족이 항상 함께 하지…….
그리고 그 능력이 되지 않으면 모두 잃게 되는 것이네.”
설장호의 과거 중, 일부였다. 그와 알게 된지 고작 8 일이 넘어가고 있지만, 거의 1 년은 함께 한 듯 한
많은 사건을 보냈다. 그리고 듣게되는 그의 과거. 추선우는 그를 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죄송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미안할 것 없네. 자네의 잘못도 아닌데 뭐가 미안한가. 다 내 잘 못이고, 내 무능력함 때문이지.”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선우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후회하는 삶은 살지 말게. 그리고 적어도…….자신 곁에 있는 사람은…….꼭 지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설장호의 말. 추선우에게는 아주 크게 와 닿고 있었다. 추선우가 고아라는 것은 그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함께 있는 사람을 지켜주라는 말. 그 의미는 아주 컸다.
지현은 물론, 은주와 집주인아주머니, 그리고 미희. 더 넓게 나가면 설장호를 포함하여 태정민과
강서진등, 모두가 이제는 추선우의 곁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후회하는 삶.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내가 선택한 것이니,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추선우는 다시 병실로 돌아가고 있는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오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돌아오시네요.”


설장호가 병실로 돌아오자. 강서진이 창가를 보며 선 채 물었다.
“잠들지 않았나?”
“이 상황에 잠이 오겠습니까?”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이 그에게 답하였고, 곧 설장호의 시선은 병실 침대에서 진정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태정민과 지용석을 보았다.
“태팀장은 며칠간 잠을 자지 않았으니 이해하고, 또 지용석은 하도 얻어터졌으니 이해합니다. 하지만 난
멀쩡하고, 또 휴식도 취했는데, 잠이 오겠습니까?”
혹시나 자신의 말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하여 강서진은 다시 말하였고, 설장호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함께 창가를 보며 섰다.
“난. 강서진이 이런 위험한 일에 계속 몸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지도 않았네.”
“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이정도의 위험에 몸을…….”
“자네의 집안. 판사며 국회의원이며, 또 검사며 사업가지 않은가. 그런 대단한 집안에서 외동딸이 이런
위험한 일에 계속하여 뛰어다니는 것을 안다면…….과연 허락할까?”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구겼다.
“이건 제 일입니다. 여기서 왜 가족상황이 나옵니까? 집에 돈이 많고, 아버지가 대단하고, 오빠가
대단한 것이지, 제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제 일을 가족과 연관시키지 말아주십시오.”
설장호는 그녀를 보았다. 진작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녀에 대한 생각은 사대부집
아가씨였다.
하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그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이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그 짧은 대화가
지금까지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중, 가장 사람다운 대화였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갈 때, 때마침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냥…….한대씩 쥐어 팰까요?”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어도, 잠에서 깨지 않은 두 사람을 보며 강서진이 말했다.
“외모에 맞게…….말도 곱게 하자.”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전화기를 들며 말했고, 곧 전화기에 찍힌 발신자를 보았다.

“그래.”
그는 병실 침대에 걸터앉으며 편안하게 전화를 받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국정원 사무실에서, 팀장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죽지는 않아. 무슨 일이야?”
-조금 전, 국정원장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원장님이 왜?”
-저희에게 서류 하나를 주고 가셨습니다.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서류인데. 서류 속 이름에 대해 공통된
점이나, 기타 뭔가 주시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조건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가셨습니다.-
“알았어. 저녁 때 사무실로 갈 테니 대기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현태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서류를 주며, 그 서류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라고 말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정원장은 그 서류를 설장호가 지휘하는 대북전담
요원들에게 주고 간 것이었다.

“나에게 맡기는 것인가…….아니면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해당 서류를 주고 간 이유는 위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었다.
“하지만 왜…….모두가 아닌 그 한 장만 주고 간 것이지…….”
이것 또 한 의문이었다. 주려면 세 장을 모두 주고 가야 하지만, 유독 많은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하나의
서류만을 주고 간 것이 설장호의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강서진이 다가서며 물었다.
“아니야. 그보다 자네는 검찰총장님이 따로 연락하거나, 뭐 알아보라는 것 없어?”
“없습니다. 저에게 검찰청에 앉아, 설 실장님의 정보만을 받아오라고 하셨던 분이었고, 지금은 당신의
권력보다 더 높은 권력이 나를 외부로 돌게 만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저에게 뭔 일을 맡기겠습니까?”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며칠 전, 검찰총장이 설장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녀에게 총장의 지시를 이행하고, 그 정보를
다시 빼내도록 시켰다.
즉. 그녀는 잠시나마 이중스파이를 하였지만, 지금은 설장호쪽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총장도
알기에, 만에 하나 그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그녀에게 지금의 일을 맡길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우리 쪽 팀원을 다시 정비한다. 믿을 만한 인물만 모이고, 나머지 지원이 필요하면, 그 때에
맞춰, 무작위로 지원을 요청한다. 미리 언질을 하지 않고, 무작위로 한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지원은 국정원과 경호원, 그리고 검찰과
경찰이었다. 앞으로도 지원은 그 곳에서 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미리 알리는 것이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어디로 이동하며, 또 어디서 인원을 추가하여 대기하며, 누구를 경호하고, 지원하는지, 일체 비밀로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에하나 지원이 필요할 경우 그 때에 맞춰 바로 지원요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그 정보로 계획 또 한 미리 세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추선우씨는 앞으로 계속 함께…….”


“계속 함께 할 것입니다.”
강서진이 설장호에게 추선우에 대해 묻자, 곧 병실문이 바로 열리며 추선우가 들어서서 답하였다.
“앞으로도, 전, 설 실장님은 물론, 강 검사님과 태팀장님의 명령을 받아 계속 일을 할 것입니다.”
추선우가 다시 확답을 주었다. 설장호는 이미 휴게실에서 그의 마음을 다 알아들었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강서진은 추선우를 다시 보고만 있었다.

“위험한 일입니다. 굳이 이 위험한 일에…….”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잖아. 아무런 보수도 없이, 아무런 명예도 없이 그냥 하겠다고 하잖아. 그럼
내버려 둬.”
강서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가 창가를 보며 말했고, 곧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태정민과 지용석을
툭툭 치며 깨웠다.
두 사람은 그 즉시 벌떡 일어나 멀뚱한 눈으로 주변을 살핀 후, 다시 설장호를 보았다.

“벌써…….하루가 지난 것입니까?”
태정민이 말했다. 병원에서 다음 날까지 입원을 하라 하였기에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다음날이라 여겼다.
“하루는 무슨. 1 시간 지났다. 그러니 일어나. 1 시간이면 이틀 치 잠을 잔거야.”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과 지용석이 큰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추선우를 보았다.
“안 잤어?”
태정민이 그를 보며 물었다.
“잠이 쉽게 오지 않네요.”
“이런 판국에 잠을 자는 것이 더 신기하지.”
“강 검사님도 저기서 대 자로 뻗어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난 안자. 그리고 난 여자야. 남정네들이 수두룩한 방에서 어찌 잠을 자. 누구 혼사길 막을 일 있어?”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이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조금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고, 곧 다시 몸을 바로 세운
뒤, 추선우의 옆으로 섰다.
“미리 말하지만, 이 일은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행운이 계속 따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행운…….지금까지 바란 적도 없으니까요.”
추선우의 답에 설장호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어제 미희를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선우는 새벽에 미희를 따로 보호해 준, 강서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나한테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민간인이 아무런 죄 없이, 우리가 잡아야 할 놈들에게 타깃이
된 것이기에,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그런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새벽에 강서진은 미희를 따로 경호하였다. 자신의 형사 팀을 붙여놓았고, 미희의 집이 아닌, 강서진이
따로 마련한 숙소로 그녀를 데리고 갔으며, 여형사 두 명을 함께 붙여놓았다.
“앞으로도 미희씨는 물론, 은주씨와 아주머니도 안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것은 몰라도
대통령님께서 이번 일로 인하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것을 강조하셨기에 우린 그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강서진의 모든 말은 업무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강서진은 미희에 대해 듣고 난 뒤, 결정을 달리한
것이었다.
0010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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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어났으면 움직인다. 각 부처 수장들께서 무엇을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우린 그 정보를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이번엔…….우리가 먼저 놈들을 제대로 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모두 답했다. 그리고 곧 박태식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웃고 있었다.
“저도 함께 갑니다. 그리고 이번엔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습니다.”
박태식은 몸이 완쾌된 것은 아니지만,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여겨 퇴원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형사 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에 대한 대가를 꼭 그들에게
지불해 주려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믿을 만한 사람들로만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그 사람들만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절대…….절대 그 외의 인원은 우리가 움직이고, 계획하는 그 어떤 것도 알아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다시 모인 팀원들을 보며 말했고, 모두 힘차게 답하였다.

한 차례 아주 큰 폭풍을 만나 잘 이겨낸 것과 같았다. 모두가 죽을 고비를 한 번씩 넘겼고, 이제 그에


대한 대가를 그들에게 받을 차례가 된 것이었다.

‘띠리리리’
“어쩜 이리도 타이밍을 잘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곧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녀는 발신자를 보며 말했다.
“네. 실장님.”
경호실 실장 서지호였다.
“네. 지금 모두 깨어났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 실장님이 옆에 계신데 바꿔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서지호와 통화 중, 현재 상황을 말한 뒤, 곧 전화기를 설장호에게 건네주었다.

“왜?”
-몸은 좀 괜찮습니까?-
“내가 무슨 전쟁터에 나갔다 왔어? 왜 다들 내 몸 걱정들이야. 난 문제없다. 그러니 전화한 용건만
말해.”
설장호는 무뚝뚝하게 답한 뒤, 용건을 물었다.
-오늘 자정까지 각 부처 수장들이 서류에 대한 정보를 보고할 것입니다. 그 정보에 맞춰 설 실장님께서
직접 움직여주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준비 중이잖아.”
-그리고 문제는 그 정보의 신빙성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렸지만, 누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들이 알아낸
정보에 만약 트랩이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당합니다. 그러니…….-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에 대한 신빙성은 확인할 수 있다. 걱정 말고 자넨 청와대에
있는 우리식구들의 안전이나 책임져.”
-알겠습니다. 그럼…….대통령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서지호와 통화를 끝낸 후, 다시 모두를 향해보았다.

“오늘 자정에 건너오는 정보는 우리에게 독이 될 수 있고, 또 약이 될 수 있다.”


“무슨 뜻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이 물었다.
“약이 되는 것은 만에하나 해당 정보를 준 사람의 임무를 수행 중, 우리에게 다가서는 놈들이 있다면, 그
정보를 준 사람이 뿌리조직에 가담한 사람이 되겠지. 그 사람이 국정원장이든, 청장이든 총장이든,
아니면 외교부장관이든…….누구라도 상관없이 우리에게 정보를 주고, 그 현장에 나선 우리에게 또 다른
놈이 붙는다면, 그 정보의 제공자가 한 패다. 이건 약이야.”
“그럼 독은 무엇입니까?”
설장호의 말을 다 들은 후,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우리가 그 함정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 한마디에 독이 무엇인지 바로 와 닿는 모두였다. 설장호의 말처럼 약은 누구가를 쳐 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독은…….이 세상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란 말이었다.
“뭐. 어차피 내 놓은 목이니, 누가 치던간에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모르는 놈이 쳤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태정민이 침대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참 태평스러운 말이지만, 한 편으로는 무서운 뜻도 함께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래. 너의 말처럼 이왕 그런 일이 생긴다면, 모르는 놈에게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겠지.
그러니…….항상 주위를 조심해라. 네 옆에 서 있는 그 누군가가 너에게 비수를 꽂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설장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태정민의 옆에는 지용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이 지용석을 보았고,
지용석은 순간, 태정민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 한 말이었다.
박태식의 합류로 처음에 모였던 인원이 다시 모였다. 하지만 그 처음과 지금은 많은 것이 달랐다.
이제는 상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권력은 아주 강했다. 많은 인원을 대동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물론, 각 부처 수장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래. 모두가 다시 움직이니 이제는 그 무리를 모두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일만 남았군.”


한 편. 서지호는 설장호와 나눈 대화 내용을 차현태에게 알렸고, 차현태는 창가를 향해보며 선 뒤, 홀로
중얼거렸다.
“오늘 자정까지 수장들께서 정보를 가지고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로 생각하신 것이 있습니까?”
서지호가 차현태에게 물었다.
“없네. 난 그 사람들을 믿고 있어. 믿어야만 이번 사건을 풀 수 있으니, 믿는 것이네.”
서지호의 표정이 살짝 변하였다. 무언가 대책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믿는 것이었다. 그들이 정보를
가져오지 않는 것에 대한 대처는 없고, 그저 믿고만 있다는 말이었다.

“대체 뭡니까?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고, 또 완벽하다고 했는데, 또 다시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한 편. 새벽에 본 화려한 영화에서 결말이 영 찝찝하다는 느낌이 드는 네 사람이었다. 그리고 참지 못한
최기수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
모두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자신들의 화려한 저택을 버려두고 강남 번화가에 있는 식당을
전세 낸 것처럼 모여앉아서 꼬박 하루를 다 보내고 있는 이들이었다.
“일단 모두 흩어집시다.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저들의 움직임도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우수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힘이 없어보였다. 새벽에 영화처럼 CCTV 를 볼때까지만해도
힘이 남아도는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 최기수와 마찬가지로 끝마무리가 시원찮은 것에 기운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모두 돌아가셔서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십시오.”
“…….”
최기수와 우수광이 일어서서 나가려고 할 때, 정구석의 말이 들렸고, 모두는 그를 보았다.
“살기 위한…….방안이라…….꼭 우리가 모두 잡힐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최기수가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우수광의 표정도 그와 별 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정회장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유비무환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대비하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저 놈들을 잡고자 별에 별 지랄을 다 떨었지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기분이 우울하네요.”
이어 고민국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으며, 또 마음만 먹으면 각
부처를 들쑤실 수 있는 인물이 고민국이지만, 지금은 그도 힘이 없는 상태로 보였다.
“큰 회장님께 말씀을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의 이야기를 듣던, 우수광이 말했고, 곧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큰 회장님께서 아시면 진정 엄청난 전쟁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야하며, 우리조직이 보존되어야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고민국에 이어, 곧 최기수가 우수광의 말을 이해하는 듯 말하였고, 모두가 다시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일단. 흩어집시다. 밤새 우리가 본 영상으로 인하여 또 그들이 치고 들어올 수 있으니, 서둘러 흩어지고
다시 연락합시다.”
정구석이 말하였다. 이미 몇 차례 국정원에서 CCTV 영상을 수신받은 이유로 현장을 덮친 기억이 있었다.
이곳도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에 그가 서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두. 잠을 좀 자두십시오. 당분간 수면부족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최기수가 먼저 나가며 말했고, 그의 뒤를 이어 우수광과 함께 정구석이 나갔다.
하지만 고민국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하였다.

“그…….최광민과 함께 있던 놈 말이야…….”
그는 눈을 살며시 뜨며 말했고, 곧 비서가 다가서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놈을 만나고 싶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고, 곧바로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민국은 석강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기수가 병따개를 움직였고, 정구석은 백태를 가지고 있다.
우수광은 아직 특별히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지만, 고민국도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떠 오른 인물이 석강수였다. 천하의 설장호를 가지고 노는 듯 즐겼던 인물. 그 인물이 고민국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것이었다.

“회장님.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은 후, 급히 전화를 하였던 비서가 다시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고, 조금 전까지 굳은
표정이었던 고민국의 얼굴이 조금은 풀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자. 피곤하구나.”
“네 회장님.”
고민국도 마저 일어섰다. 그리고 그제야 그 식당에 있던 종업원들이 숨을 쉬는 듯,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이는 지난 번 한식당에서의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하였다.

“난 국정원에 들렸다 갈 것이니, 너희들은 모든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한 편. 설장호 일행은 병원에서 오후가 된 시간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곧 설장호는 오전에 받은
전화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국정원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 있어야 합니까? 대기하라고만 했지. 어디서 대기하라는 말이 없지 않았습니까?”
설장호가 자리를 뜬 후, 추선우가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그를 보았다.
잠시 휑한 바람이 부는 듯 하였다. 당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그들을 잡고자 다짐하며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갈 곳 없는 기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모두였다.
“젠장…….”
태정민이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전화기를 들어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와 짧은 통화를 마친 후, 전화를 끊었고 모두가 그를 보았다.
“어디에 있으래?”
“설실장님 집요.”
“뭐? 왜 그 집에 있어야 해? 그 노인네 냄새 진동하는 곳에 말이야.”
“에? 강검사님은 실장님 집을 가 보셨습니까?”
태정민의 말에 강검사가 손사래를 치며 쓴 표정을 지은 채 말하자, 즉시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그게…….말이야.”
순간적으로 자신의 말실수가 나온 듯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나고 있었다.
“너도. 가봤잖아! 그 뭐야. 그 옛날에 실장님 칼 맞았을 때 말이야.”
“아…….그랬지.”
강서진의 말에 태정민도 그 때가 기억이 나는 듯 바로 생각해 내었다.

0010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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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실장님이 칼 맞았을 때요?”
추선우가 그녀의 말을 듣고 물었다.
“그래요. 추선우씨는 모르지만, 설실장님에게 아주 힘든 나날이 있었습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하고 일단 실장님의 명령이니 그 곳으로 향하지요.”
모두는 설장호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저기. 강검사님. 아까 하신 말씀 말입니다. 설실장님이 칼에 맞았다는 말…….”
“그게 말이야.”
추선우가 재차 물었지만, 그녀는 시원스럽게 답하지 않았다.

“5 년 전. 설실장님의 가족 이야기야.”
“…….”
태정민이 말을 이어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에 추선우는 오전에 병원에서 듣다말은 그의 과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설실장님의 가족을 살해하기 위하여 움직인 놈들이 있었어. 그들은 어두운 밤, 설실장님의 집을
습격하였고, 그 당시에 집에 있던 설실장님의 부인과 딸이 괴한에 의해 살해당했지.”
“…….”
가족을 잃은 마음이 어느 정도의 아픔인지 추선우는 알지 못하지만, 말만 들어도 그 아픔이 전해져 오는
듯 하였다.
“그리고 때마침 집으로 들어서던 실장님이 그를 보았고, 그는 실장님을 향해 칼을 휘두른 뒤, 도망치려
하였지만, 실장님에게 잡히고 말았지. 하지만 그 때 방안에서 희미하게 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로인하여 시선을 돌린 실장님의 배에 그는 칼을 꽂은 후, 곧바로 그곳을 벗어났어.”
추선우는 설장호가 왜 그토록 지현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딸을 살리지 못했던 그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았고,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후, 범인은 자수하였고, 모든 죄를 자백하면서 그 혼자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사건을 마무리가
되어버렸어. 하지만 그 당시 나와 강검사님은 설실장님과 함께 업무를 보던 사람들이었고, 그 사건이
그저 단순한 강도살인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윗선에서는 이미 사건을 덮어버렸지.”
점점 설장호란 인물이 왜 그토록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으며, 또 믿지 않으며, 또 이번 사건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과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고, 그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하려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 후에도 실장님은 칼에 맞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그 놈의 배후를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어.
그러던 어느 날, 실장님께서 출근을 하지 않아, 그 집을 갔을 때, 청소를 하지 않은 방안에서 온갖
냄새와 함께,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실장님이 있었지. 아마 강검사님은 그 때 맡았던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나보군.”
강서진은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사연에 의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심지어 지현에 관한 일을 다 알고 난 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추선우였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설장호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추선우의 눈동자에는 한
방울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괜한 어두운 이야기 집어치우고 빨리가자.”


강서진이 여전히 차창밖을 보며 말했고, 운전을 맡은 지용석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모. 삼촌은 언제와. 삼촌 보고 싶은데.”


한 편. 은주와 함께 있던 지현은 어젯밤부터 보지 못한 추선우를 찾고 있었다.
“삼촌이 좀 바빠.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현이가 좋아하는 모두가 삼촌을 돕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우린 여기서 삼촌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은주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지현은 은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지현과 은주씨의 안전에는 문제없는가?”
“네. 그리고 이곳은 청와대입니다.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 한 곳곳에 설치된 CCTV 는
경호실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지현과 은주씨가 있는 방 앞에는 세 대의 CCTV 가 가동 중이고,
세 명의 대원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서지호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비록 청와대 안이지만, 그 안전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보다…….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지호는 보고를 마친 후,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무엇인가?”
“비서실장 말입니다.”
“…….”
서지호의 말에 차현태는 아무런 말없이 표정이 구겨지고 있었다.

4 일 전, 차현태가 비서실장을 찾았지만, 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었다. 그 후에 비서실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명령을 내렸지만, 그에 대한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하였고, 그 후에 여러 가지 사건이
터져버리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물이 비서실장이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책임지던 인물이 사라졌지만, 차현태가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옆에 24 시간 서지호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호가 목적이지만, 그는 차현태의 비서역할까지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을 정도였기에, 차현태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행방은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인가?”
“네. 그래서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갑자기 사라진 시점에 국정원의 최광민도 설실장의 등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만에하나 그도 조직에 가담된 인물이라면 청와대도 안전하다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지호의 말대로였다. 비서실장은 차현태의 모든 일정을 다 꿰뚫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설장호의
비서였던 최광민처럼 그 도 그와 같은 생각으로 다가선다면, 차현태는 물론, 지현과 은주도 그리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서실이 동요하지 않도록, 비밀리에 그의 행방을 더 찾아보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만이 마음을 달리한 것인지, 아니면 비서실 전체가 달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5 년 전과 다를 것이 없군.”
한 편. 설장호의 집에 도착한 후, 그의 집으로 들어선 태정민이 말했고, 추선우는 눈앞이 멍해지는 듯
했다.
자신의 옥탑방보다 더 넓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지만, 창가에는 커튼이 빛을 막고 있었고, 집안의
냄새는 빠져나가지 못해,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눈이 멍해진 이유는 그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집안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TV 는 물론, 냉장고와 식탁. 심지어 밥그릇이나 수저도 없었다. 한마디로 집안에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이
단 하나도 없이 그저 텅 비어 있는 집과 같았다.
“이런 곳에서 실장님이 사시고 계셨습니까?‘
추선우가 물었다.
“그래. 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이 모든 것도 다 필요치 않다고 하시며 다 태워버리신 분이지.”
추선우는 천천히 걸어가 빛을 막고 있는 커튼부터 거뒀다. 그러자 환한 빛이 집안을 밝게 해주었고,
거실에는 마치 햇빛이 처음 들어오는 듯 한 분위기였다.
“환기부터 시키자, 머리가 어지럽다.”
강서진이 창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외부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내부의 공기에 모두가 현기증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창문이 열리면서 외부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섰고, 내부의 공기가 외부로 나가면서 집안의 냄새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집안의 공기정화를 좀 시킨 후, 태정민이 강서진을 보며 물었다.
“모르지, 국정원에 들렸다고 온다고 했으니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강서진의 답을 들은 후, 태정민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고, 곧 지용석과 박태식도 함께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강서진과 추선우만이 남았다. 추선우는 잠시 거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후, 안방으로
보이는 방문을 열었다.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도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아예 없었다. 그냥 텅 빈 방이었으며, 곳곳에
곰팡이까지 보이고 있었다.
“집안을 다 돌아봐도 같을거에요.”
강서진이 추선우의 뒤로 서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설장호의 이런 생활을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설 실장님의 가족…….”
“가족 이야기는 그만하죠. 이래저래 좋은 일도 아닌데, 계속하여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추선우는 그녀의 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일과 좋지 않을 일이 있는 것이었다.
그 중에 설장호의 가족사는 좋지않은 일로 분류를 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한 동안 냄새나는 집 안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한 편. 국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보는 따가운 몇 눈빛들을 외면한 채, 설장호는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고, 곧 팀장과 함께 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였다.
“길게 시간 잡을 수 없다. 서류와 함께 국정원장이 한 말을 그대로 말해봐.”
설장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인사를 건너뛰며 곧바로 자리에 앉아 몇 가지 필요서류를
챙기며 팀장에게 말했다.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 서류 한 장을 건네며 이 안에 있는 수많은 이름 중, 공통점이
있다면 찾아내고, 또 뭔가 구린내가 나는 놈이 있다면 그것도 찾아내라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할 일을 왜 아래로 내려 보내고 지랄인지…….”
설장호는 팀장의 말을 들은 후, 홀로 중얼거리며 쓴 표정을 지었고, 곧 자신이 찾던 서류를 찾았는지,
몸을 바로 세워 팀장을 향해 보았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내린 명령만 이행한다. 그 서류에 나열 된 이름들을 알아볼 필요도
없고, 알아낸다고해도, 나 외에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돼.”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팀장이 바로 답하였고, 곧 팀원들도 그를 향해 고개 숙여 답하였다.
이 팀은 대북전담팀으로 설장호와는 함께 작업한 인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장을 비롯하여 팀원들 전체가
설장호의 후배들이며, 그와 친분이 두텁기에 설장호의 명령을 이들은 잘 이행하고 있었다.

“다른 내용도 있는가?”


설장호는 사무실을 나서기 전, 팀장에게 다시 물었다.
“없습니다. 국정원장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래. 일단 이 내용에 대해서는 나에게 알렸다는 말을 하지마라. 너희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답변을 요구하면, 알아낸 것이 없다고 말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여전히 국정원장에게 믿음이 없는 상태였다. 그가 굳이 설장호에게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로지 단 하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던 인물 중, 대부분이
국정원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설장호는 국정원 인원들을 대거 믿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CCTV 관리 잘해라. 항상 우리를 중심으로 확인하고, 또 우리 외에 어디서 CCTV 내용을 수신
받는지를 확인하여 모조리 다 덮쳐.”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강남번화가의 한 식당으로 대원들을 보냈습니다.”
“단 하나라도 그냥 무시하지마라. 의심이 있다면 그 어디라도 다 덮쳐.”
“네! 실장님.”
팀장이 답하였고, 설장호는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그에게 뭔가 중요한 말을 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에게
전한 말은 없었다. 단지 국정원장이 준 서류에 대해서는 무시하라는 듯 한 뜻이 담긴 말만 남긴 것이었다.

0010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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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호…….”
설장호가 사무실에서 나오자,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표정이 매섭거나 음성이 날카롭지는 않았다. 그저 그를 보는 평범한 눈빛에 평범한 어투였다.
“어디냐?”
설장호는 국정원 건물을 나서며 태정민에게 전화하여 위치를 물었다.
“집에서 대기하라고 하셔서, 지금 실장님 댁에 있습니다.”
“약 30 분 후, 지난 날 성남의 그 펜션에서 다시 만난다. 서둘러라.”
“네? 그 펜션요? 그럼 처음부터 그곳으로 가라고 하시면…….”
‘탁!’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이 설장호의 말에 토를 달고 몇 말을 더 하려 할 때, 강서진이 그의 전화를 뺏은 후, 짧게 답하고
바로 통화를 끊었다.
“통화는 짧게…….그리고 적이 누군지 모르니 신중하게…….”
“…….”
태정민은 그제야 설장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강서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통화를 길게 하면 위치가 노출 될 수 있으며, 또 정해진 약속장소로 바로 움직이게 되면, 누군가가 뒤로
쉽게 붙을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이에 설장호는 같은 팀이지만, 그 팀원들을 모두 뺑뺑 돌게 만들었고, 통화는 아주 짧게 하며 필요한
말만하고 끊었다.

“지금 바로 움직인다. 그런데…….성남의 펜션이 어디야?”


강서진이 먼저 움직이려 하였지만, 그녀는 그 현장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은주와 아주머니, 지현이었다. 그 후에 설장호와 지용석이 합류한 것이었다.
즉. 강서진만 빼고 모두가 그 위치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서둘죠.”


태정민이 나섰고, 그녀도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발걸음은 그리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는 듯
하였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 있을 때, 그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작전으로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밀지
모릅니다.”
그의 행동을 보며 강서진이 말하였고, 그제야 추선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최광민이 도착하였습니다.”


한 편. 고민국은 최광민과 함께 움직였고, 또 자신의 돈 20 억원을 꿀꺽한 석강수를 만나보고 싶어
하였었다. 그리고 그의 비서가 최광민에게 연락하였고, 곧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기 직전이었다.
“그 놈은…….그 놈도 함께 왔는가?”
고민국은 최광민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석강수에게 관심이 있었기에, 비서에게 다시 물었다.
“함께 왔습니다.”
“들여보내라.”
고민국은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석강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자신이 그 많은 인원을 총괄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은 없었었다. 하지만 새벽에 보여준 석강수의 카리스마에 그가 반한 것이었다.
천하의 설장호를 기죽게 만든 인물이니, 그 누구라도 마음에 들어 할 인물이 바로 석강수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곧 최광민이 먼저 들어섰고,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개숙여 그에게 사과하였다. 하지만 고민국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지 않았다. 곧 따라 들어오는 석강수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석강수는 고민국의 사무실로 들어선 후,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숙여라. 어디라고 감히 고개를…….”
‘턱!’
“!!!”
그가 고민국에게 인사 없이, 그저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두고 비서가 그에게 쓴 표정을 지으며
한 소리하려 하였지만, 그 순간 석강수의 손이 뻗어지며, 그의 면상을 그대로 잡아 벽에 아주 강하게
들이밀었다.
“난…….내가 고개를 숙여야겠다고 인정한 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인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석강수의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어투에 비서는 자신의 안면을 모두 감싼 그의 손바닥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짝짝짝’
“…….”
그리고 고민국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이에 석강수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서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나 고민국이란 사람이오. 그리고 당신에게 살인청부를 하였던, 이장구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외다.”
고민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서며, 악수를 청하는 듯 한 행동을 하며 말했지만, 그의 말
끝부분에 이장구의 이름이 나오자, 석강수의 표정이 더욱 더 매섭게 변하였다.

“이장구…….네가 죽인 것인가?”
“!!!”
석강수의 한 마디에 고민국은 물론, 그의 비서와 최광민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하…….이런 상황은 내가 처음이라 뭐라 표현을 하지 못하겠군. 지금까지 나에게 이런 어투의 말을
뱉은 인간이 없어서 말이야.”
고민국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지만, 석강수의 표정은 여전히 매서웠다.
“두 번 묻지 않는다. 네가…….”
“내가 죽이고 죽이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넌 내 돈 20 억을 먹었다. 그렇다면 이장구에게 받을 돈은
충분히 받은 듯 한데…….”
석강수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고민국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고, 석강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뒤, 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이장구…….네가 죽였나?”
그리고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누구를 앞에 두고도 식은땀이 흐르지 않았던 고민국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앞에 두고 겁에 질린 표정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직? 그래…….이창민을 죽이는 일부터가 평범한 놈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지, 그 조직…….얼마나
강한지 내가 직접 겪어 봐도 되겠는가?”
석강수는 여전히 그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석강수의말이 나오는 매 순간마다 최광민의 심장은 타
들어가는 듯하였다.
자신은 고민국이란 인물을 잘 알고, 또 그가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기에, 감히
석강수와 같은 말을 내 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고민국을 모른다. 하물며 그가 속한 조직은 더더욱 모른다. 그러기에 40
대 중반의 고민국을 보며 자신이 주눅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지불한다. 단…….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었을 때만 그 돈은 네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오히려 이장구라는 머저리 같은 놈을 거쳐서 받는 돈의 액수보다는 더 많지 않을까?”
고민국은 그의 눈을 정확하게 노려보며 말했고, 석강수도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최광민.”
“네? 아 네…….”
석강수는 고민국의 눈을 노려보면서, 최광민을 불렀고, 그는 당황한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그의 말에
답하였다.
“네가 말한 사람이 이 사람인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물론, 각 국가부처의 핵심 인물들을 손에 쥐고 계신 분으로…….”
“핵심 인물 좋아하네…….핵심인물이라 함은. 적어도 설장호 같은 놈은 되어야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그냥 인물이야. 구성원이란 말이지, 즉…….네가 말한 핵심인물이라는 것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석강수는 최광민의 말을 들은 후, 여전히 고민국의 눈을 바로보며 답하였고, 고민국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입가에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든다…….아주 마음에 들어.”
그리고 점차 웃음을 보이며 말하였고, 그의 입가에 번져나가는 웃음에, 지금까지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시선만을 보이고 있던 석강수의 입에서도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 곳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한 편. 강서진 일행이 먼저 성남의 펜션에 도착하였고, 차에서 내린 태정민이 말하였다.
태정민은 며칠 전, 이곳에서 자칫 자신의 목숨이 다 하는 순간을 맞이할 뻔하였다, 그 순간 설장호와
지용석이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춰 나타났고,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상황이 있었다.
“죽지 않았으니 잊어버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곧 추선우도 그 펜션을 마주보며 서서
올려다보았다.
그에게도 이 펜션은 특별하였다. 바로 은주의 생명이 다 할 뻔 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과거의 아픔은 잊자.”
강서진이 추선우와 태정민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곧 미소를 지으며 모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 펜션은 누가 소유한 것입니까? 저번에도 궁금했었는데…….”
태정민이 물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오긴 하였지만, 누구의 명의로 된 펜션인지는 알 수 없었었다.
“죽지 않았으니 과거는 잊어라했다. 그냥 잊어. 그리고 앞으로 어찌 살아갈 것인지만 생각해라.”
강서진이 재차 말하였고, 두 사람은 그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만 살짝 숙였다.
“저기. 실장님께서 오시는 듯합니다.”
설장호가 들어서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 외부를 보던 지용석이 말하였다.
“이곳으로 오라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자, 태정민이 그에게 바로 물었다. 결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니기에
석연찮은 기분에 말한 것이었다.
“앞으로 이곳을 우리 사무실로 사용한다.”
“네? 이곳을요? 여기서 무엇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 흔한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에서 무엇으로 그 놈들을 알아내고 쳐 낸다는 것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태정민의 물음은 모두의 물음과 같았다. 진정 아무것도
없는 그저 텅 빈 펜션이었다. 몸을 숨기고 있기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누군가를 찾아다녀야 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저들이 수면위로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위로 오른 놈의 목을 친다.”
설장호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소파에 몸을 앉히며 말했다. 그의 행동에 네 사람은 그저 멍하니 그를
보고만 있었다.
“기다린다니요?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 지현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마냥 기다린다면…….”
“추선우.”
추선우가 그의 말에 조금은 격한 어투로 말하자, 설장호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넌. 민간인이라고했다. 이 일에서 빠져도 좋다고 했다. 만약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여기서 네 의견을 말할 입장은 못 되잖아.”
“!!!”
설장호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더 추선우를 인정해 주던 사람이 설장호였다.
하지만 국정원에 다녀온 후, 그가 완전 달라진 태도로 추선우를 대하고 있었다.

“실장님. 뭐가 잘 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왜 추선우씨에게…….”


강서진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여 바로 물었다.

0010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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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 된 것은 없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
모두…….잘 생각해 봐.”
아무리 생각한다고 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이었다. 국정원에서 뭔가 일이 생겨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해가 빠르게 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변한 그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추선우에게 갑작스러운 차가움을 보이고 있는 그였다.
‘띠리리리’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통화버튼을 눌렀다. 마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시간에 맞춰
걸려온 전화인 듯 보일 정도였다.
“알았다. 계속하여 주시해라.”
그는 상대편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고만 있었고, 곧 답을 한 후,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여전히 감은
눈은 감겨 있었다.

“실장님. 뭐라도…….”
“기다린다. 그것만 할 것이다.”
모두가 답답하였다. 기다린다고 뭐가 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맨땅에라도 헤딩하며 찾아다니는 것이 더
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나오고, 이에 대해 뭔가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처럼 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그들이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은 강서진과 태정민의 성격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 듯하였다.

태정민은 다시 펜션 밖으로 나갔고, 그의 뒤를 이어 추선우도 함께 따라 나갔다.

“대체! 뭐가 잘 못 된 거야. 왜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


태정민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땅을 걷어차며 소리쳤고, 추선우가 그를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뭔가 이유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변하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추선우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갑자기 변할 사람이 아니지. 그런데 갑자기 변했어. 그러니까 더 미친다는 거야.”
태정민은 또 다시 땅을 걷어차며 소리쳤고, 그 소리는 펜션 안에 있는 설장호의 귀에도 그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실장님. 정말 이렇게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까?”
강서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기다린다고 하였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자네도 나가서 땅이라도 걷어차.”
설장호는 지금 태정민이 땅을 걷어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강서진에게도 같은 말을 하였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설장호를 보며 혀를 찼다.

곧이어 그녀도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오자, 추선우의 시선은 펜션 안으로 돌아섰다. 이제 펜션 안에는
설장호와 박태식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내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를 보고 있는 추선우의 눈과 박태식의 눈이
마주쳤다.
박태식은 뭔가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을 전달하려 하는 듯, 추선우를 보며 움직였지만, 추선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박태식은 추선우가 그저 멍하니 서 있자, 창가로 다가섰고, 곧 커튼으로 내부를 가려버렸다.
“박형사님이 저에게 무슨 행동을 취했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자, 추선우는 몸을 돌린 후, 조금 전 박태식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따라하며
태정민에게 말했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동안 떨어져 있어서 실장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나보지. 그리고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것이 아니잖아. 왜…….왜!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야!”
태정민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우렁찬 소리에도 여전히 설장호는 눈을 감은 채,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실장님.”
박태식이 설장호의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말해.”
설장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답했다.
“이렇게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을 찾지 못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덥석 물고 흔들만한 미끼를 던져 놓으신 것이 있는지…….”
“그런 것 없다. 그냥 기다린다. 그러니 자네도 답답하면 나가서 땅이나 걷어 차.”
“아닙니다. 제가 답답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실장님의 명령만 이행하면 되는데, 굳이 저리 설치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설장호의 감은 눈동자가 잠시 좌, 우로 움직이는 듯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은 그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였다.
“실장님께서 다른 명령을 하달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곧 박태식이 뒤로 물러나, 주방으로 향하면서 말하였고, 싱크대의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들이마셨다.
설장호는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한 박태식을 보았고, 곧 몸을
돌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펜션 밖의 세 사람을 보았다.

‘숨은 놈을 찾기 위해서는 주변에 숨은 놈부터 쳐 내는 것이 우선이다.’

설장호는 홀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가 왜 갑자기 모든 태도를 바꿨는지는 이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설장호는 자신의 곁에 있는 인물 중에서도 그 조직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 진동모드로 변경하였고, 다시 눈을 살며시 감았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있었다. 성남 펜션으로 온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해는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었고, 펜션 외부로 나왔던 세 사람은 여전히 외부에서 먼 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태식은 펜션 안에 있는 작은 방에서 몸을 뉘우고 있었고, 설장호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 밤 자정까지라 했는데, 아직 각 부처 수장들에게는 연락이 없는가?”


어느덧 저녁 8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차현태는 시계를 보며 서지호에게 물었다.
“네.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설 실장은? 그에게서도 아직 연락은 없는가?”
“네. 설장호 실장은 지금 태정민과 강서진검사, 그리고 박태식형사와 추선우씨를 데리고 성남의 펜션에
있습니다.”
“성남의 펜션? 그곳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차현태도 아직 설장호의 생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기에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궁금하여 물었다.
“죄송합니다. 저 역시 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설 실장이 그곳으로 간 이유는 필시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도 그 내용이라는 것이 궁금하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지현양의 경호에는 문제가 없도록 계속 신경 써 주게나.”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지금까지 하루가 바쁘도록 빠르게 지나쳐갔지만, 오늘처럼
아무런 일도 없고, 무료한 기분이 든 것은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처음이었다.

“이모. 오늘도 삼촌은 안와?”


한 편. 지현은 이틀 째, 추선우가 보이지 않자, 이제는 불안한 듯, 은주를 보며 물었다.
“요즘 삼촌이 너무 바빠. 하지만 걱정하지 않기로 했지? 삼촌은 곧 올 거야. 그리고 우리 지현이를 꼭
안아줄거야.”
은주는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불안감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실장님.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있는 것은 정말 시간낭비입니다. 그들은 이런 시간에도


어디론가 움직이고, 또 숨어들며, 또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것인데, 우리는…….”
“기다려라. 곧 그 놈들이 먼저 움직일 것이다.”
참다못한 태정민이 다시 펜션 안으로 들어와 설장호의 앞에 서서 말했지만, 설장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에 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은 지나갔다. 어느덧 자정을 알리는 듯, 설장호의 전화가 웅웅거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제야 소파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고, 눈을 떴다.
모두가 그를 보았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설장호만을 보고 있었던 그들이었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뭔가…….답변이라도 온 것이 있는가?”
서지호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차현태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자정까지 답을 달라는 말을 하였기에, 그
자정의 시간을 기다린 듯, 시간이 되자, 곧바로 서지호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아직입니다. 자정을 넘겼지만, 그 누구도 아직 청와대를 찾은 분은 안계십니다.-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었다. 자정까지라는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대한 피드백은 꼭
와야 하는 것이었다.
서류의 내용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든 없든, 필시 그에 대한 답은 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없었다. 그 누구도 차현태에게 답을 주지 않고 자정을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먼저 움직여보겠다.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곧바로 연락을 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세 사람을 보았고, 곧 작은 방 문이 열리며 박태식이 아주 긴 잠을 잔 듯,
기지개를 피며 밖으로 나왔다.
“강서진.”
“네.”
설장호는 대뜸 강서진을 불렀고, 그녀는 이제야 뭔가 움직인다는 생각에 곧바로 답했다.
“자넨 지금 즉시 총장님께 연락하여 대통령님의 명령에 대한 답을 듣는다. 그리고 박태식은 청장님께
연락하여 그 답을 듣는다. 그리고 난…….국정원장에게 연락할 것이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각 부처 수장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할 답을 왜 자신들이
먼저 알아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서둘러 움직인다.”
“네…….”
설장호의 말에 할 수 없이 답은 하였지만, 아직도 이들은 설장호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총장님. 저 강서진입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인물은 강서진이었다. 그는 검찰총장에게 연락하여 차현태가 말한 것에 대한 확인여부를
묻고 있었다.
“그럼. 대통령님께는 보고를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까?”
총장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강서진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그에게 따지듯이 묻는 듯하였다.
“알겠습니다. 총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뭐라 따로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강서진의 통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3 분 정도의 통화가 이어졌고, 전화를 끊은 강서진의
표정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태정민이 다가서며 물었다.
“어찌. 대통령의 말을 이리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 실장님. 검찰총장님과 통화했는데, 아침에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서류에 관련된 내용보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강서진은 진정 어이가 없다는 듯 한 표정이었지만, 의외로 설장호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0010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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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이어서 박태식도 경찰청장과의 통화가 끝났는지, 힘없는 어투로 마지막 인사를 한 후 통화를 끊었다.
“뭐야? 청장님도 마찬가지야?”
강서진이 박태식에게 물었다. 그러자 박태식은 그저 고개만 몇 번 끄덕거렸다.
“대체 뭐야? 다들 뭐하자는건데.”
강서진은 지금 이 순간의 모든 상황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실장님은 어찌 되셨습니까?”
아직 통화를 하지 않은 설장호에게 태정민이 다가서며 물었다. 태정민은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서지호는 물론, 차현태에게도 전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들어야 할 답변도 너희들과 별 반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설장호는 태정민의 물음에 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웅 우웅’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설장호의 전화가 웅웅거리며 울었고, 그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든 채,
상대편에서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알았네. 계속 주시하게.”
설장호는 짧게 답변만 한 뒤, 나머지 네 사람을 한 번씩 쭉 훑어보았다.
“다들…….준비는 하고 있는가?”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준비라니요?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뜬금없는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지금…….이곳으로 우리를 찾아올 손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중,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출발 할 것이다.”
“네!”
모두가 놀란 눈이었다. 이곳으로 온 것은 서지호와 차현태를 제외하고는 현재 외부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장담하듯 이곳으로 올 손님이 있다고 하였고, 그의 말에 모두가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누가…….찾아온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설마…….그 조직에서 나오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온다는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태정민이 이어서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판단 잘해라. 뒤로 빠지는 길은 네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에게 총을 줄 수 없으니, 그 퇴로를 잘
이용하라는 뜻이야.”
설장호는 추선우에게만 살짝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중, 퇴로라는 것은 지난
날, 은주와 아주머니를 데리고 펜션 뒤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그가 왜 이런 말을 지금에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지난 날, 총격전에 의하여
걱정되어 하는 말이라면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무언가 일을 진행하고자 하여 그가 하는 말이라면,
추선우는 그 퇴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하자.”


여전히 모두가 이해할 수 없었다. 뭐라도 속 시원히 말한다면, 그에 대해 생각하고 또 행동을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냥 설장호의 말대로 움직여야만 할 상황이었다.
“태정민.”
“네?”
설장호는 펜션 밖으로 나서며 태정민을 불렀다.
“지난 번. 너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었던 놈. 그 놈을 기억하나?”
“기억이고 뭐고 있습니까? 그냥 그 순간을 넘긴 것이 제 일생일대의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태정민에게는 그럴 것이었다. 정말 천운이 아니고서야, 눈앞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총을 맞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것이었다.
“그 순간. 그 때. 과연 누가 그 정보를 흘렸고, 또 누가 이곳으로 사람을 보냈을까? 그건 생각해
보았나?”
그 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한 것이 없었던 태정민이었다. 그저 설장호와 함께, 지용석이 다가섰고,
그들을 모조리 제압했던 것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이번에도…….”
“넌 내 뒤에서 함께 움직인다.”
태정민은 그제야 설장호가 하려던 말을 알 수 있었다. 설장호는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를 미끼로
던져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미끼를 물기 위하여 대어들이 다가설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번 성남펜션으로 찾아온 이들은, 외부로 나갔던 은주를 발견하고 따라붙은 것뿐이었다.
누군가가 연락하여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이런 미끼 역할은 오랜만입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와 함께 펜션 밖으로 나서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설장호는 태정민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리며 몇 번 토닥거리기만 하였다.
“우리도 나가지, 대체 누가 찾아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실장님의 말은 들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이어서 강서진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추선우와 지용석이 함께 따라 나서려 하였고, 그 순간
박태식이 추선우를 불렀다.
“네?”
추선우는 그가 부르자 다시 펜션 안으로 들어섰고, 그 모습을 보며 강서진과 지용석이 다시 한 번 본 뒤,
그저 펜션을 마저 나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추선우가 그에게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이거 너무 이상하잖아요. 설 실장님께서 원래 저런 분이 아니셨는데, 오늘따라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계신 듯해서요.”
그의 말은 추선우도 공감하는 말이었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본 것은 8 일째이지만, 그를 보고 지나쳐 온
시간동안 오늘 같은 경우의 그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저도 그런 것은 느꼈습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지금 설 실장님께서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그렇다고 그게 문제될 것은 아닌 것이라 생각됩니다.”
추선우는 박태식의 말을 그리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필시 달라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로인하여 뭔가 일이 틀어지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혹시…….설 실장님과 그 조직이 서로…….”


“!!!”
박태식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밖으로 나서려던 추선우의 뒤에서 박태식이 말을 흐려하자, 추선우는 그 순간
놀란 눈을 한 채, 걸음을 멈춰 섰다.
“지금…….설 실장님과 그 조직의 연관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추선우는 시선을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
“내 말은…….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설장호 실장을 의심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연화장에서도 나를 비롯하여 우리 형사들이 모두 당했는데도, 지현만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고, 또
…….”
“그만하십시오. 확실한 물증이 없고서야, 심증만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추선우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려, 그에게 한 마디 한 후, 곧장 펜션을 나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박태식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추선우씨. 박형사와 무슨 대화를 했기에 그리 표정이 좋지않아요?”


그가 나오자마자, 강서진이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설장호의 시선이 잠시 돌아섰고,
태정민도 두 사람을 향해 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병원에 있느라,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몇 가지 묻기에, 그에
대해 답을 준 것 뿐입니다.”
“그래요? 하긴…….박형사가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궁금하기도 하겠군.”
추선우는 박태식과 나눈 대화를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추선우의 시선을 피하는 듯,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고, 추선우는 설장호를 조금 전보다 더 매섭게
노려보듯 보고 있었다.

“어째 새벽으로 갈수록 이곳은 더 밝아지는 듯 한 느낌이네요.”


박태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펜션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지용석이 하늘을 본 뒤, 다시 주변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시간은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주변은 너무나 잘 보이는 듯 환해
보이고 있을 정도였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고, 또 하늘에 별도 많다. 저 작은 불빛들이 이 어둠을 밝혀주는 것과 같겠지.”
강서진이 기지개를 피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녀의 말처럼 주변에 가로등이라고는 없었고, 불빛은 오로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빛에도 눈은 적응하여, 어둠속을 잘 보고 있을 정도였다.
“실장님.”
강서진이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까? 청장님이나 총장님은 물론, 국정원장님도 대통령님께 아무런 답을
주지 않은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이곳으로 우리를 찾아올 손님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강서진의 물음은 모두의 물음이었다. 모두가 설장호를 향해보며 섰고, 곧 추선우의 눈빛이 다시 매섭게
그를 향해보고 있었다.

“찾아올 손님은 이미 와 있는데, 그가 움직이지 않고 있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네! 벌써 그들이 왔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펜션안에 있던 박태식이
문을 열고 나섰다.
“그들이 왔다니, 어디에 있습니까?”
박태식은 권총을 빼 들고 나오며 물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밖에 있던 그 누구도 아직은 권총을
꺼내들지 않고 있었다.
“이미 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다른 뜻이 있는 듯합니다.”
곧 추선우가 설장호를 보며 말했고, 강서진과 태정민이 추선우를 보았다.
“오늘따라 추선우씨도 이상하네. 대체 다들 뭘 잘 못 먹은거야? 왜 이리 다들 변했어?”
강서진은 추선우의 어투가 변한 것에 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추선우의 눈빛은 여전히 매섭게 설장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추선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해라. 그래야 네가 살고, 그 조직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산다.”
설장호는 그를 보지 않은 채 말하였고, 그의 말에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향하였다.
“대체 무슨 말들입니까? 추선우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말입니까?”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답이 없었다. 오로지 펜션 앞에서 어두운
들판만을 향해보며 서 있었다.
“답답하네. 대체 뭔 일들인지, 속 시원히 말 좀 해보세요.”
태정민이 설장호와 추선우를 번갈아보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답변이 없었다.

“혹시…….추선우씨가 그 조직과 연결이라도…….”


“!!!”
모두가 잠시 조용하고 있을 때, 박태식이 말을 흐렸고, 그 말에 추선우는 물론, 설장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놀란 눈으로 박태식을 향해보았다.

0011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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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사! 그게 무슨 뜻이야! 왜 추선우씨가…….”
강서진이 박태식을 보며 소리쳤다.
“박형사님의 말은 추선우가 그들과 내통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이어서 태정민도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여전히 넓은 터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내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민간인 추선우에 관한 정보가 너무 없지
않습니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지현을 보호한다고 나서는 것도 그렇고…….쉽게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박태식은 두 사람의 물음에 그리 당황하지도 않고,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를 향해보았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에 대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추선우씨…….뭐라도 변명을 해 보세요. 박형사가 근거도 없는 말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강서진이 기어이 추선우를 보며 조금은 날카로운 어투로 물었고, 그녀의 물음에 박태식의 표정이 변하였다.
“제가…….뭐라 말을 해야 합니까? 변명을 한다는 것은 박형사님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전 그런 변명을 할 말한 것이 없습니다.”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는 침착한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을 향해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까? 이미 그들이 이곳에 와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씀은 혹여
…….”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미 다 나온 듯 하다.”
강서진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설장호는 그제야 시선을 돌리며 그들을 보고 섰다.
강서진과 태정민을 보았고, 박태식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이 네 사람을 고루
보았지만, 그는 지용석을 보지 않았다.

“지팀장.”
“네. 실장님.”
설장호는 지용석을 불렀다.
“지난 번. 성남펜션을 우리가 칠 때, 그들 대부분은 국정원과 청와대 경호원 소속이었다. 기억하는가?”
“네. 기억합니다.”
“그것은 저도 기억합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지용석이 답하였고, 곧바로 태정민도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답하였다.
“모두가 기억한다. 강서진을 제외하고는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기억한다. 그런데…….그 일에 대해
박형사는 어찌 잘 알고 있을까?”
“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마지막 말에 박태식에 관한 말이 나오자, 모두가 박태식을 향해 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이번엔 박태식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박태식. 넌 그 때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펜션에 관한 것은 일체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너에게 그
상황을 전달한 사람이 없다.”
박태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그는 그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박태식은 이곳 펜션위치를 알고 있었다.
설장호가 펜션으로 향하라는 말을 하였을 때, 강서진만 이곳 펜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즉.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는 이곳의 위치를 박태식은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그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모두가 전화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은 경찰청장님께 연락하지 않았다. 맞는가?”
“…….”
설장호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가 그를 보았고,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설장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찰청장은…….나에게 직접 연락하였다. 그리고 자네의 퇴원소식등. 기타 내용을 그 분은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어제 아침. 대통령님께 처음으로 자네의 퇴원 및, 자네가 우리 팀에 합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처럼 경찰청장은 차현태에게 한 소릴 들었었다. 자신이 거느리는 부하직원에 대한 정보를 차현태가
먼저 알고 있었고, 그로인하여 차현태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은 청장이었다.

청장은 그 후에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박태식에 관한 것을 물었다. 설장호는 함께 움직인 그 누구도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박태식에게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그 때까지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조금 전 펜션 안에서 추선우에게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었다고 하였지만, 이미 설장호는


추선우의 그 말이 거짓임을 다 알고 있었다.

“박태식…….이제부터 숨기지마라. 그래야 네가 산다.”


설장호는 직설적으로 바로 말하였고, 박태식은 자신 혼자 들고 나온 권총을 조금 더 꽉 쥐기 시작하였다.
“박태식은 가장 처음 북정마을에 진입했을 때, 자신의 대원을 미끼로 지현을 끌어내려 하였다. 그리고
연화장에서도 자신을 제외한 두 대원이 죽었는데도, 그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다. 하지만 우리는 피가
많이 묻은 그를 위급환자라 느끼고 있었다.”
설장호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지용석을 제외하고는 그 순간들을 모두 떠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북정마을에서, 한 대원이 머리에 총을 관통당할 때, 그의 머리에 총알이 박히기 전, 먼저 몸을
낮춘 행동을 취한 그의 모습이 추선우의 기억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본 사람은 추선우 혼자지만, 이미 박태식은 그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총을 쏠 것임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실장님께서 그 북정마을의 일을 다 알고 계십니까? 실장님께서 시키신 일입니까?”


박태식이 물었다. 그의 말처럼 그 자리에는 설장호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습을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가 보았고, 그 인근에는 설장호를 따르는 국정원 대원들도
있었다는 것을 박태식은 모르고 있었다.
비록 설장호가 없었지만, 가장 초기, 설장호를 믿고 따르던 대원들이 죽기 전에는 그 현장에 있었고, 그
이야기를 설장호에게 해 주었던 것이었다.

“박태식. 내가 알고 있는 박태식은 돈 몇 푼에 놀아날 인물이 아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인가?”


설장호는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박태식은 자신의 손에 들린 권총을 들어 올리며 추선우를 향해
겨냥하였다.

“뭐하는 겁니까!”
태정민이 곧바로 추선우의 앞으로 다가서며, 박태식이 겨눈 총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래저래…….설 실장님의 머리를 속인다는 것은 쉽지 않네요. 저를 믿고 계신 분이라, 제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팀으로 들어가면 많은 정보를 얻고, 또 쉽게 지현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연화장에서도 쇼를 좀 한 것이고, 며칠간 병원신세도 졌으니, 의심은 더 멀어지고, 나를 더
곁에 둘 것이라 생각하여 짜 낸 각본이었는데…….”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박태식은 태정민과 강서진이 모두 잘 알고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잡아야 할
조직에 속한 인물일 것이라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은 그들이었다.
“우린…….가장 처음부터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보며 이 사건을 맡았다. 바로 이창민 대사의
운전기사였던 이장구. 그리고 킬러로 돌아온 석강수. 또 한 수많은 국정원대원들과 경찰들…….나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가족 같았던 최광민까지…….모두 그 동안 믿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그 때 있었던 사건들을 생각해냈다. 그의 말처럼 처음부터 배신으로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후로 의심이 불신을 만들었고, 하나 둘,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불신을
심어주려 추선우를 걸고 넘어졌지만, 보기 좋게 박태식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박태식이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뭐. 난 사실 자세히 알지는 못했는데, 청장님과 통화를 하던 중에 확신이 들더군.”
“그럼. 조금 전, 실장님이 짧게 통화한 사람이?”
“그래. 청창님이시네. 의심쩍은 부분을 해결하고자, 말을 편히 한 것이었네. 박형사는…….내가
청장님과 통화중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청장님과 통화했다는 말을 하였지.”
“…….”
박태식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럼. 애초에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나를 다시 이 팀에 합류시킨
것입니까?”
“너를 시작으로…….이제부터는 단 한 놈도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잡아 족치려고 말이야.”
“!!!”
설장호의 표정이 아주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둠속 넓은 밭에서 여러 개의
불빛이 환하게 비춰지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박태식의 얼굴을 향해 집중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서…….설마. 이 모든 것을 따로 준비하셨습니까?”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박태식의 앞으로 다가갔고, 자신의 눈을
향해 집중적으로 조명이 쏘아지고 있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박태식은 설장호가 자신의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박태식…….넌 이제 돌아가라.”
‘퍽!’
설장호는 박태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았고, 그 충격에 박태식이 뒤로
넘어지자, 이내 그를 비추던 수많은 불빛들이 일제히 소등되었다.

‘탁탁탁’
곧 펜션 뒤쪽에서 몇 사람들이 나오며 쓰러진 박태식의 앞으로 섰다.
“그 놈을 끌고가서, 이지광과 함께 쳐 넣어라. 나머지도 곧 다 쳐 넣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날카로운 어투에 그들은 답하였고, 이내 박태식을 일으킨 뒤, 그를 끌고 펜션 뒤쪽으로
사라졌다.
“실장님…….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이런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셨습니까?”
강서진이 물었고, 설장호는 국정원에 들려, 팀장에게 받았던 서류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이창민 대사의 서류 아닙니까?”
그가 보인 서류는 이창민이 서울역 물품보관함에서 숨긴 서류였으며, 차현태가 직접 국정원장에게 주고,
그 내용을 파악하라고 하였던 서류였다.
“그래. 이창민 대사가 암시하려던 서류지. 그리고 지금 이 서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두 번째 장 서류이며, 대통령님께서 국정원장에게 준 서류네.”
서류만을 보았을 때, 박태식이 그 조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이것으로 어찌 박형사가…….”
“국정원장은 이미 두 번째 서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 서류를 일부러 내가 맡고
있는 팀에 전달하였더군. 그리고 난 그 서류를 확인하였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네.”
강서진이 다시 물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는 자신이 해당 서류에서 국정원장이 확인한
내용을 자신도 확인했다는 말을 하였다.

0011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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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많은 이름들. 그 이름들의 각기 첫 글자. 그리고 마지막 글자, 첫 글자를 세로로 읽어 내려가면
국가기관의 부서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글자를 세로로 읽어 내려가면 또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이
나열된다. 아주 단순한 방식이지만, 그 누가 이런 단순한 방식을 암호로 쓸까하여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한 이창민 대사의 재치이기고 하지.”
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과 태정민은 서류의 앞으로 다가가 눈을 닦고 자세히 보았다.

“정말이네. 정말 국가기관이 있고, 그 줄에 맞게 이름이 있다.”


태정민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첫 번째 줄에 보이는 기관이 바로 국정원이었고,
최광민이었다. 이 서류를 조금 더 빨리 찾고, 또 빨리 파악하였다면 일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이 서류의 내용을 모두 파악하였으니, 이 공식에 맞춰. 그 놈들을 모조리 잡아 족친다.
그리고 조금 전. 박태식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 손님은 우리가 제대로
접대해준다.
“그럼 제가 총장님과 통화한 내용도…….”
“총장님도 이미 국정원장과의 통화로 인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다. 또 한 대통령님도 알고 계신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숨은 놈을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야.”
강서진은 지금에서야 검찰총장의 말이 이해가고 있었다. 제 아무리 깡다구가 있다고 하여도, 어찌
대통령의 명령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시하는 수장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놀란 그녀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미 국정원장의 손에 의해 시작이 되면서, 모두 숨은 인물을 하나하나 다 끌어내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었다.

설장호를 제외한 모두가 이와 같은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미리 말을 다 맞춰 두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박태식의 연락을 받은 그들이 이곳으로 곧 올 것이다. 모든 준비는 철저히 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실장님…….”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답한 뒤, 그를 다시 불렀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이와 같은 작전을 세우신 것입니까?”


“알게 된 것은 내가 국정원에 갔을 때이며, 이미 그 당시에 국정원장은 두 번째 서류에 대한 모든 비밀을
풀었고, 그 내용을 나에게만 먼저 알리기 위하여 그 서류를 내가 맡은 팀원들의 팀장에게 주고 간
것이었어.”
그의 말을 들은 후, 그가 국정원에 들어간 후, 갑자기 뭔가 급변하게 돌아간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럼. 국정원장님만 알고 계신 것입니까? 청장님이나 총장님. 그리고 대통령님은…….”
“국정원장과 함께, 청장, 총장님은 알고 있지, 하지만 외교부와 대통령님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시네.”
태정민과 지용석의 표정이 살짝 변하였다. 그 두 사람은 청와대 사람이다.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은 대통령을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왜? 대통령님께는 알리지 않으십니까?”
이에 그 이유가 궁금한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안전이다.”
“안전요?”
“그래. 안전. 이미 서지호 실장과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비서실장이 사라진 시기가 5 일전이라고 하였다.
갑작스레 그가 사라지면서 일단 청와대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있었지.”
“그것과 이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태정민의 말처럼 어찌 생각하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면 아주 많은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일단.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조금 전, 박태식이 우리에게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타깃이 된다. 다행이 우린 먼저 정보를 입수하였기에 그에 대한 방편을 마련하게 된 것이었다.”
청와대에 차현태를 경호하는 경호실이 있고, 서지호가 그 경호를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 그
외적인 다른 힘이 작용하여 차현태는 물론, 현재 청와대에 있는 지현이 마저 공격해 온다면, 쉽게 막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차라리 현재는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럼.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세분은 그에 대한 방편을 마련해두고있는 것입니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강서진의 말처럼 대통령이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다면, 이 나라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설장호의 말대로 한다면, 현재 이 내용을 알고 있는 국정원장과 청장, 총장은 그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고, 다른 뜻으로는 그들도 이 조직과 함께 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찾아오는 손님을 모두 잡고 난 뒤에 다시한다. 추선우와 태정민.”
설장호는 강서진의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은 하지 않은 채, 추선우와 태정민을 불렀다.
“네.”
“너희 둘은 펜션 뒤쪽 산책로를 경계한다. 잘 알겠지만, 그 산책로는 번화가로 연결되면, 이리 늦은
시간에는 유동인구가 없다. 즉…….움직이는 놈이 있다면 의심부터 가져라.”
“알겠습니다.”
강서진에 비해, 추선우와 태정민은 별 많은 의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저 설장호의 명령대로 곧바로
펜션 뒤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곧 지용석이 다시 설장호의 곁으로 다가섰다.

“저는…….”
“넌 나와함께 이곳을 경계한다. 강서진도 이곳으로 온다.”
지용석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한 뒤, 곧바로 강서진도 자신의 곁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강서진은 초기 어리바리 한 여인이라 모두가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섬세하며 잘 따져드는 타입의
여인이었다.

펜션에서 나오기 전,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자신의 곁에 붙어서 움직이라 말하였고, 추선우에게는 펜션


뒤쪽 퇴로를 잘 이용하라는 말을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곁에는 지용석과 강서진만 남아있고, 정작 자신이 미리 언질을 해 두었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곳으로 보내 놓은 상황이었다.
‘우웅~’
함께 있던 인원들을 분산시킨 후, 곧바로 설장호의 전화가 웅웅거리며 울고 있었다.
“네.”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상대방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며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 박태식은 입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흘린 정보를 듣고 찾아오는 놈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장님.”
전화속 인물은 경찰청장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어제 탄천주차장의
일에서는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지원한 인물이었다.
그의 명령에 의해, 일대 경찰서의 모든 경찰이 다 움직였고, 경찰특공대마저 움직이면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날 뻔 하였던 현장이 빠르게 마무리 되었던 것이었다.
“일단 일대에 있는 경찰특공대의 도움이 클 것입니다. 그리고 박태식에 대해서는 선처를 특별히 바라지
않겠습니다. 제대로 된 법 집행을 바랍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박태식과 설장호는 꽤 오랜 친분을 유지한
사이란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죄 앞에서는 그 어떤 누구도 선처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설장호는 더했다. 만에 하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라 하여도, 그 죄에 대한 선처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각 부처와 이야기 하여 청와대에서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설장호는 오늘 새벽이 지난 후에는 차현태에게 서류에
대한 사실을 알릴 것이란 말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곧 전화를 끊은 후, 전방을 주시하여 보았고, 저 멀리서 차량 불빛으로 보이는 헤드라이트 두
개가 반짝거리면서 보인 뒤, 이내 그 뒤로 몇 대의 차량이 더 보이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는군., 준비하지.”


모두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차량들의 숫자도 많았다. 진정 설장호의 말처럼, 박태식이 연락하여
그들이 이리 찾아오고 있는 듯 하였다.
“꽤 많네요.”
그리고 그 차량들의 불빛은 펜션 뒤쪽, 산책로로 오른 추선우와 태정민의 눈에도 보였고, 추선우가
줄줄이 들어서는 차량들을 보며 말했다.
“박태식…….이 새끼가 언제부터…….”
태정민의 표정은 매섭게 변하였다. 설장호는 물론, 태정민도 박태식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평소에 자신이 알고 지내던 그 박태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도 자신이 잡아야 할 조직의 일원이 밝혀졌다. 이미 자신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계속하여 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에 태정민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린, 저쪽 일은 신경 끈다. 오로지 산책로만 책임지며, 조직에 관련된 놈들이라면 그 어떤 놈이라도


모조리 쳐 낸다.”
“그래야죠.”
태정민이 먼저 펜션 앞쪽부분에서 시선을 돌려 산책로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곧 추선우도 함께 몸을 돌린
뒤, 그와 함께 산책로를 보았다.
“그 형사 놈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곳에 설장호는 물론, 추선우도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리고 번화가 쪽이 아닌, 또 다른 주택가 쪽에서 이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는 길목을 오르며 석강수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번화가 쪽에서 연결되는 통로에 이미, 경찰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여, 다른 이동경로를
선택한 것이었고, 그로인하여 이미 누군가가 다가설 것임을 그들이 알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내용을 고민국은 물론, 그 어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다른 경로를 통해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중얼거렸다.
만약 석강수가 이 내용에 대해, 자신을 고용한 고민국에게 알렸다면, 지금 펜션 정면에서 다가서고 있는
그들의 모든 움직임이 다 멈췄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석강수는 고민국에게 고용된 인물이 되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잡고자 하는
인물은 추선우뿐이었다.
어제 새벽에는 백태에 의해 추선우을 양보한 것이지만, 오늘은 그를 일이 없으니, 자신은 오히려 이
순간을 잘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병따개가 투입되었나?”
“네.”
같은 시각, 최기수도 비서에게 물었다. 이미 박태식에 의해 정보가 제대로 들어왔으니, 이번기회에
방해가 되고 있는 모두를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최기수도 병따개를 펜션으로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병따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태정민과 아직 결정짓지 못한 일로 인하여, 그 일대에 경찰이 쫙
깔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고하지 않은 채, 산책로를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옆에는 여섯명의 부하가 따르고 있었다.

0011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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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그 놈들 목을 치고, 청와대의 주인에게 귀띔이라도 해 주어야겠군.”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고, 곧 펜션에서 모든 것이 결정지어지게 되면, 청와대에 있는 차현태와 지현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종결을 말해보려는 고민국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비단 고민국 뿐만 아니었다. 최기수나 정구석, 그리고 우수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 한 것을 강조하여 현재 이 조직의 최고 수장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있었다.

어두운 밤. 아니…….새벽이었다. 조용한 산속 구석에 자리한 펜션의 앞으로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고, 전방을 주시하고 서 있던 세 명은 몸을 낮춘 뒤, 그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끽.’
곧 차량 한 대가 펜션 앞마당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몇 사내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손에는 K2 소총이 들려 있었다.

“젠장. 어째 군용 총기가 저리 쉽게 저들의 손에 들어가 있는 거야?”


설장호는 한 쪽 구석의 어둠속에 몸을 숨긴 후, 그들을 향해 보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 들린 소총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한국은 무기를 자유롭게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더더욱 군용 총기는 더 소지하기 힘든
것이지만, 지금 차에서 내리는 인원은 대부분 K2 소총을 들고 있었다.

“오늘…….결정짓는다. 모두 움직여.”
곧 모든 차량들이 다 들어선 후, 한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큰 소리로 명령 내렸고, 차량 주변에
있던 약 50 여명에 이르는 사내들이 펜션을 둘러싸며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탁!’
한 편. 산책로를 따라 들어섰던 석강수의 귀에 나뭇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동작을 멈춘 뒤,
주변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약 10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펜션을 향해 걸아가고 있는 병따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병따개는 석강수를 기억 못하더라도, 석강수는 그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척척척척!’
“!!!”
석강수가 병따개의 곁으로 가려던 순간, 그 일대에서 갑자기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몸을 일으키며 총을 겨냥하였고, 석강수는 그 즉시 몸을 낮추어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들에 의해, 병따개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의 수하들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님…….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경찰특공대가 모두 모습을 보인 뒤, 그들의 곁으로 다가서자, 병따개의 한 부하가 병따개를 보며 말했고,
병따개는 그를 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야아앗!”
“!!!”
병따개의 부하 여섯 명은 곧바로 경찰특공대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그로인하여 경찰특공대가
정조준 하고 있던 타깃이 흩어지면서 그 틈에 병따개는 빠르게 이동하며 어둠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모습을 본 석강수도 천천히 몸을 뒤로 다시 빼며, 어둠속을 이용하여 병따개가 이동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산책로 쪽입니다. 조금 전, 이쪽을 통해 펜션으로 향하는 듯 보이던 인물을 제압하려 하였으나, 그 중,


한 명을 놓쳤습니다.-
펜션에 들어선 수많은 사람들을 숨어서 보고 있던 설장호에게 무전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 무전은
이어마이트를 통해 들려오는 무전이라 현재 펜션 앞에 있는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설장호는 경찰특공대의 무전을 받은 후, 다시 펜션 앞마당을 보았다. 이곳으로 향하던 모든 인원들이 다
들어선 듯, 더 이상 어둠을 뚫고 들어서는 자동차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설장호는 매서운 시선으로 펜션앞 마당에 있는 인물들을 향해 본 뒤, 곧바로 이어마이크를 통해
명령을 하달하였다.

‘팟팟팟’
“!!!”
그 순간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수많은 대원들이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펜션 앞을 비추었고,
갑작스러운 불빛에 의해 펜션 앞마당을 장악하였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엉거주춤하였다.
“움직이지마라. 머리통 날아간다!”
곧 확성기를 통해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목소리에 우왕좌왕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려던
사내들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불을 보고 찾아든 나방을 죽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 그냥 다…….불태워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이다.”
설장호는 펜션 앞마당에서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고, 강서진과 지용석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 즉시 산책로도 지원한다. 그곳에서 경찰특공대의 매복을 뚫고 도망친 놈이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놈을 잡아 족쳐야지.”
설장호가 다시 말했고, 강서진과 지용석이 움직이려 할 때, 저 멀리 펜션을 들어서는 길목 입구에서 또
다시 차량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실장님…….”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아직 차량 내부 확인은 불가합니다. 어찌할까요? 저들은 이미 펜션 앞의 상황을 모두 보고 움직인
이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한 번에 모두 몰려 올 것이라 여겼고, 그 첫 번째로
들어서는 이들을 모두 잡아 족치면 그것으로 일망타진 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들은 시간차 공격처럼, 먼저 불에 타 죽을 불나방을 보내고 난 뒤, 면역을 가진 채, 다시 들어설
인물들로 나뉘어 진입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모두 신중히 대처한다. 현재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고, 불빛을 모두 들어서는 차량을 향해 비춘다.
그리고 펜션 앞마당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압송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정면을 주시하며 모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펜션 앞마당을 비추고 있던 불빛은 다시 방향을
돌려 펜션으로 들어서고 있는 차량들을 향해 비추었다.

‘픽!’
‘쨍그랑!’
“!!!”
그 즉시 총알이 날아와 강력한 빛을 발산하는 헤드라이트를 깨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모두가 놀라 그
즉시 몸을 숙여 앉았다.
“모두. 정조준!”
설장호도 그냥 물러나지 않으려 하였다. 저들이 총으로 맞선다면 이쪽도 같은 총으로 맞서주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설장호의 목소리는 어둠속에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는 산책로에서 대기중인 추선우와 태정민의 귀에도
들려왔다.
“제대로 머리 쓰며 들어오고 있다. 저들의 움직임에 많은 생각을 더한 것이라면, 이쪽도 그리 만만찮다는
뜻인데.”
펜션의 앞부분을 보며, 태정민이 말하였고, 곧 추선우의 시선은 산책로의 좌우를 향해 돌아섰다.

“어디서 올까요?”
“그거야 모르지. 일단 주위를 잘 보고…….”
태정민이 추선우의 질문에 답하고 있을 때, 자신의 눈에서 한 사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시선도 그 사내에게로 돌아섰다.

-산책로 지역 매복 팀입니다. 더 이상 펜션방향으로 진입하지 않겠습니다. 실장님의 명령대로 펜션 방향


주위 100 미터 부분부터는 그 일대만을 경계하며 그 누구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산책로에 경찰특공대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들은 석강수를 보지는 못했지만, 병따개를 놓쳤다.
그렇기 때문에 산책로를 전체 다 수색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산책로를 따라 한 사내가 너무나 편안하게 오르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경찰특공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조심해라. 추선우.”


태정민이 말하였다. 지금 시간은 새벽 2 시를 넘기고 3 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산에
오르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입구 쪽에 경찰특공대가 진을 치고 있기에 일반 사람들은 쉽게 오르지 않을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점점 사내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태정민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놈이다…….”
병따개였다. 그는 자신의 부하가 희생한 덕에 경찰특공대의 포위망을 뚫고 산책로를 따라 펜션방향으로
이동하였고, 곧 추선우와 태정민이 서 있는 방향까지 오르게 되었다.
“한 놈이 더 있습니다.”
태정민의 시선이 병따개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추선우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목격하였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였다. 그리고 그의 출현은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던 병따개의 눈에도 보였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길을 따라 나와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을 보니, 적은 아닌 듯 하군요.”


병따개는 추선우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석강수를 보았고, 곧 그의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보이자,
그에게 물었다.
“너에게 아군이 되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네 앞 가름만 잘해라.”
석강수는 병따개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답을 주었다. 하지만 병따개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그저 헛웃음만 지었고, 다시 시선을 돌려 앞 쪽을 보았다.
어둠이 짙었다. 가로등이 밝혀져 있다고 하지만, 그 일대만이었다. 지난번처럼 조금만 외곽으로 빠지면
어둠속으로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였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다시 만나서 반갑다.”


먼저 병따개가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그의 옆으로 석강수도 섰다.
“이제야…….제대로 너를 맞이하게 되는구나.”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우연찮게도, 두 사람이 각기 다른 타깃을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따개는 태정민을, 그리고 석강수는 추선우를 타깃으로 둔 것이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3 시다. 해가 뜨려면 적어도 두 시간의 시간적 여유는 있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
산책로와 연결된 부분에는 경찰들이 입구를 막고 있더군. 즉…….다른 방해꾼이 없다는 것이지.”
석강수가 말했다. 그의 말은 이미 누군가의 작전으로 멍석이 깔렸다는 뜻을 말해주고 있었고, 이 멍석은
설장호가 깔아준 것이 되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면 아주 길다. 대통령을 경호한다는 놈이 저 정도의 실력이면,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은 가져야 할 것 같더군. 그리고 너…….듣자하니 그냥 민간인이라 하던데…….
네가 훨씬 났다.”
병따개는 어제 새벽에 태정민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하였다. 태정민은 또 다시 표정이 구겨졌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는 듯, 추선우를 보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0011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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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 말이 맞다. 넌 강해. 적어도…….대통령을 경호한다는 우리보다는 말이야.”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려 병따개를 보았다.
“하지만…….결국 승자가 누군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다시 바뀌지 않을까? 내가 오늘…….여기서 너를
눕히면, 내가 선 이곳의 자리가 그래도 나에게는 어울리겠지?”
“하하하!”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병따개가 어둠속 정막을 깨는 듯 한 아주 크게 웃었다.
“그리 당하고도 네가 이길 수 있다? 뭐 하룻밤 새에 무공이라도 습득하셨나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많으면…….꼭 패한다. 그냥 주먹을 뻗어.”
“…….”
병따개가 태정민에게 어이없다는 듯 말을 할 때, 추선우가 그의 말을 자르며 한마디 하였고, 이에
병따개의 시선이 추선우에게로 향하였다.

“너…….살아있어라.”
그리고 짧게 한마디 한 후, 병따개는 곧바로 태정민을 향해 움직였다.
“저 놈이 살아있는다면, 내가 진다는 말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병따개의 말을 듣고, 석강수가 그의 뒤에서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추선우가 살아남는다면, 석강수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실장님! 저 놈들 대체 뭡니까?”
같은 시각. 펜션 전방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은 자신들을 비추고 있는 헤드라이트를 모조리 다 박살내면서
그대로 돌진하듯 달려오고 있었고, 이에 인근에 매복한 인원들을 지휘하던 대원이 설장호에게
이어마이크를 통해 물었다.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나? 그냥 저 놈들의 뜻에 따라 움직여준다. 총을 쏘는 놈에게는 같이 쏘고,
주먹을 뻗는 놈에게는 같이 주먹을 뻗어. 그리고 쓸데없는 희생은 하지마라. 법 때문에 총을 쏠 수
없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만은 내가 모두 책임진다.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자신과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모든 대원들에게 말하였고, 그들은 답을 하였다.

총기사용허가.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허용되는 것도 아니며, 또 한 그 사용으로 인하여


인명피해가 났을 때, 무조건 정당방위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모든 책임은 설장호가 가지고가며, 이제부터라도 쓸데없는 희생은 다 막고자 하는
그의 각오였다.

달려오는 차량들을 향해 매복 중이던 모든 대원들의 총기가 난사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소음기를 장착하고
있기에 총을 발포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는 차량 안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총소리로 인하여 괜한 일이 퍼져나가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모두가 소음기를 장착한 채, 총을 발포하고 있었다.
“강서진.”
“네. 실장님.”
“넌. 펜션 안으로 들어간다.”
“아닙니다. 저도…….”
“잔말 말고 들어가. 들어가서 지금의 상황을 국정원과 검찰, 경찰에 알린다. 그리고 서지호에게도
알려.”
“네? 모두에게 말입니까?”
강서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비밀에 붙이고자 이렇게 몰래 움직였는데, 이제와서는 또 모두에게
알린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모두에게 알린다.”
“이유가 있습니까?”
강서진이 이유를 물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인다는 것은 보통의 권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정도의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놈이 있다면, 지금 그는 그 조직과 계속하여 정보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설장호의 말을 들었지만,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다.
“청와대…….그곳에도 이런 놈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제야 설장호의 말뜻을 이해하였다. 이미 서류가 모두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핵심
인원들이 모여 있는 펜션으로 이정도의 인원을 보냈다는 것은, 서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조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 서류는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함께 외교부에서 가지고 있으며, 원본은
청와대에 있는 중이었다.

즉…….이와 같은 많은 인원을 움직이게 하면서도, 또 서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확실하지는


않지만, 설장호는 현재 서류를 가지고 있는 이들 중, 최소한 한 명이, 그 조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실장님의 생각처럼 이분들 중 한명이라면…….누군지 모르는데 모두에게 연락하는 것은…….”


“너의 연락을 받고,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자신이 지휘한 내용이면 도망칠 것이고…….그렇지
않다면…….그 놈을 잡기 위하여 모두가 바삐 움직이겠지.”
강서진은 모든 것을 이해하였다. 즉, 조직에 가담되어 있던 그렇지 않든, 이 모든 내용을 듣게 되면 하는
행동이 다를 것이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지용석.”
“네. 실장님.”
강서진이 펜션 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지용석을 곁으로 불렀다.
“넌. 나의 곁에 붙어있는다. 죽어도…….내 곁에서 죽는다.”
“네?”
무서운 말이었다.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최근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설장호의
표정과 어투는 진정, 이번에는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농담이다. 긴장을 풀어라. 이미 매복중인 우리 인원이 많다. 제 아무리 저들이 몰려온다고 하여도,
미리 대기 중인 이들을 쳐 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용석은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이 한 숨을 안도의 한숨이었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그의 농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에 안도의 한 숨이 나온 것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찾아오는 이들보다는 숨어서 기다리는 이들이 더 유리한 것이었다. 그것이 전쟁이던
무엇이든, 공격하는 이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매복중이라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더 이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선 펜션 앞으로는 어둠속에서 작은 불빛만이 순간적으로 반짝거릴 뿐이었다.


총에서 뿜어내는 불꽃이었고, 그 불꽃을 뿜으며 총알이 날아가 상대를 죽이고 있었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오로지 불빛만이 모두 멈춰야만이 누가 살아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펜션으로 다가서는 차량이 있을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펜션 앞에서 지용석과 함께 몸을
숨긴 채, 어둠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퍽!’
한 편. 산책로에서는 네 사람의 재회로 인하여 사나이들의 주먹질이 한 창이었다.
그리고 역시 먼저 얼굴을 내밀어 준 인물은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은 병따개의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피하지 못한 채, 그가 뻗은 주먹을 허용하였고, 뒤로 밀려나면서 나뭇가지에 걸려 또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라. 어째 그토록 다리가 부실하냐?”
병따개는 넘어진 태정민을 보며 말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역시…….저 놈이 한 수 위다. 저 놈의 움직임은 정말 싸움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움직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병따개의 말에 태정민은 넘어진 몸을 일으키며 그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화려하였다. 추선우의 움직임은 어둠속에서도 너무나 화려하게 보이고 있었다. 천하의 석강수를
맞이하면서도, 절대 밀리지 않고 있는 듯 하였다.

“너. 대통령의 경호원이라면 적어도 저 정도의 레벨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병따개는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후. 그래 맞아. 적어도 저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야 대통령을 보호할 수는 있지. 하지만 말이야. 지금은
저런 주먹질로 대통령을 죽이려 달려드는 놈이 없어. 바로 이런 것으로 달려들지.”
태정민은 자신의 품안에 간직하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며 병따개를 향해 겨냥한 뒤 말하였고, 그의 행동에
병따개가 잠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드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웃어?”
어이없는 그의 표정이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자신 앞에서 그가 웃고 있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팍팍 갔나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사나이들의 주먹질에 총을 꺼내들겠나?”
병따개는 그가 겨눈 총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그 총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일인데, 그깟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들 무슨 소용이겠어? 일단 살고보는거다.”
태정민은 그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총을 거두지 않았고, 그를 향해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병따개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추선우와 석강수를 보았다.


“부럽군. 내가 저 쪽에 가서 싸워했는데…….이놈이 이런 놈일지 내가 몰랐었군.”
그는 추선우와 석강수의 주먹질을 보며 정말 부러운 듯 한 눈빛을 주며 말하였다.
“시끄러!”
‘픽!’
‘탁!’
하지만 태정민은 끝까지 그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고, 기어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가 쏜 총알은
병따개를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그의 옆에 있던 나무를 적중시켰다.

“젠장. 지난 번 입은 상처로 인해 팔이 떨리는군.”


경호원의 사격술은 일품이다. 비록 주위가 어둡다고 하여도, 자신과 거의 5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대상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팔이 심하게 떨렸다. 핑계라 말할 수 있지만, 태정민의 오른팔은 지난 번, 삼성역에서
병따개와의 일전 때, 상처를 입었고, 그 충격에 의해 권총을 정조준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기랄!”
‘픽픽픽픽!’
태정민은 크게 소리치며, 권총을 난사하였다. 하지만 이미 나무들 뒤로 몸을 숨겨버린 병따개를
적중시키는 못하였고, 애꿎은 나무들만 총알받이가 되고 있었다.
‘퍽!’
그리고 태정민의 행동으로 인하여, 잠시 그를 본다고 시선을 돌려버린 추선우의 한쪽 볼에 석강수의
주먹이 그대로 내리 꽂혔다.
“추선우!”
태정민은 자신의 괜한 행동으로 인하여 추선우에게 피해가 간 것에 놀라 소리쳤다.
“태정민…….상황판단 잘해라. 누군 총을 쏘지 못해 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진작 총을 쏘고 싶었다면 네
놈의 머리를 먼저 날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지난번에 한 약속. 그 약속으로 인하여 네 놈의
머리통에 총알 박아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강수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둠속 산책로를 따라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던 인물은 병따개였다. 즉.
그는 이미 추선우와 태정민을 발견하고 걸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총을 사용치 않았다. 또 한, 어둠속에서 그와 함께 모습을 보였던, 석강수도 만에 하나 총을


쏠 생각이 있었다면, 어둠속에서 벌써 누군가를 향해 총을 쏘았을 것이었다.

0011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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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총은 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이 입으로 한 말을 때문이었다.
석강수는 추선우와 정식으로 주먹을 뻗어보고자, 며칠을 기다렸고, 또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만났다. 그러기에 그와 정식으로 주먹을 뻗어 승패를 결정짓고자 하였다.
병따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 삼성역에서의 격전에서 그는 태정민과 지용석을 모두 눕혔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제대로 승부를 짓자는 말을 남기고 그곳에서 벗어났었다.

“제길…….”
석강수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은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자신이 쏜 총알이 나무를 빗맞으며
혹여나 잘 못 뻗어나간다면, 자칫 그 총알이 추선우에게 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추선우. 다시하자.”
석강수는 넘어진 추선우가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조금 전에 적중한 자신의 일격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넌. 어찌 할 텐가? 계속하여 총을 쏘겠다면…….나 역시 너와는 총으로 상대해주겠다.”


병따개는 나무 뒤편으로 몸을 숨긴 채, 태정민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만약 총을 들고 모두가 쏜다면 가장 불리한 인물이 추선우였다. 그는 총이 없다.
그러기에 가장 불리하며, 무엇보다 국정원소속이었던 석강수의 사격술은 뛰어날 것이었다.

태정민은 추선우를 본 후,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추선우를 보았고, 석강수를 본 후,


다시 나무 뒤에 숨은 병따개를 보았다.

“나와라. 다시 하겠다.”
결국 총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치 않았다. 그들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괜한 주먹질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마음에 걸렸다. 총기를 들 수 없는 민간인. 그렇다고 저들처럼 쉽게 총을 소지할 수도
없는 민간인이 바로 추선우였다.
“마음을 돌린 것인가?”
병따개가 나무 뒤에서 나오며 물었다.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자존심 때문도 아니다. 바로 이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민간인
때문이다.”
그의 말에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았다. 가장먼저 추선우라는 민간인에게 관심을 보였던 킬러. 그가 바로
석강수였다.
“생각 잘했다. 총을 쏘면 필시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되었던, 너희가 되었던…….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죽는다. 하지만…….주먹다짐을 한다면 적어도 죽는 것은 면할 수 있다.”
석강수의 말에 병따개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건 네 생각이다. 난 내가 찍은 놈의 목은 꼭 딴다. 그래서 병따개다.”
병따개는 석강수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이든, 총이든, 일단 타깃을 정했다면 끝을 보는
인물이었다.
“그건…….너희 둘이서 알아서 할 것이고, 난…….저 놈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반병신만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평생을 지금의 일에 대해 후회하며 살도록 말이야.”
“…….”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굳은 표정을 하였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하하하. 나보다 더 지독한 놈이구나.”
병딱개가 큰소리로 웃은 후, 석강수를 향해보며 말했고, 석강수는 다시 추선우를 본 후, 주먹을 쥐었다.
“이어서하자. 괜한 것으로 잠시 중단되니, 기분이 영 찝찝하다. 이제부터 중단되는 것은 둘 중 하나가
일어나지 못할 때다.”
석강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추선우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제대로 놀아보자. 지난밤의 방해꾼이 없는. 그리고 저들보다 화끈한 주먹질을 위해서 말이야.”
병따개도 움직이며 말했다. 그는 지난 삼성역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결정짓지 못한 것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무리를 꼭 짓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나오는 민간인 추선우를 밟아주기 위하여, 더욱 더 강하고 빠르게 일을 마무리 하려 하였다.

‘퍽 퍽!’
병따개는 역시 빨랐다. 총을 내려놓고, 주먹으로 결판을 짓기로 결정지은 후, 처음으로 뻗은 주먹은
정확하게 태정민의 양 볼에 한 방씩 먹혀 들어갔다.
그저 평범한 주먹질이라 생각할 수 있는 주먹이었지만, 무슨 영문이지, 태정민은 그의 주먹을 쉽게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허용하였고, 또 다시 뒤로 밀려나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이거 이거…….너무 재미없다. 그냥 뻗으니까 맞고, 맞으니까 넘어지네.”


그의 행동에 병따개는 다시 주먹의 힘을 풀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두 번의 주먹을 허용하고서도
넘어진 채, 미소를 지었다.

“웃네?”
그의 미소를 보며 병따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태정민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시하자.”
그리고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고, 그를 보며 병따개의 표정도 변하였다. 조금 전까지
여유가 있었던 그의 표정이었지만, 태정민의 입가에 묻어나는 미소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여 표정이
굳어진 것이었다.
“너…….뭔가를 생각한 것인가?”
“뭐. 별로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병따개가 물었고, 태정민은 의외로 답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또 다시 더욱 더 굳어졌고, 이내
태정민은 그를 향해 바로 달려들었다.

‘탁탁 턱턱!’
두 번의 발차기가 연속으로 뻗어졌고, 병따개는 그의 발차기를 막았지만, 발차기의 미는 힘에 의해 몸이
뒤로 밀려났다.

‘탁!’
“!!!”
그리고 뒷걸음이 세 번쩍도 갔을 때, 그는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며 균형을 잃었고, 그 순간 병따개는
태정민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젠장…….”
‘퍽! 퍽퍽!’
쓴 소리를 내 뱉었지만,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태정민은 그가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고, 그 즉시
주먹을 아주 빠르게 뻗었고, 첫 주먹이 병따개의 얼굴에 그대로 꽂힌 후, 뒤 이어서 발차기가 연결되면서
그 두 번의 공격도 모두 허용한 병따개는 뒤로 한 참을 밀려나가 나무에 부딪히며 멈췄다.

아무도 없는 적막만이 흐르던 성남 외곽의 한적한 산책로에서는 추선우와 석강수가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이 밟는 나뭇잎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저 쪽은 태정민이 뭔가 수를 터득한 모양이군.”
석강수의 시선이 태정민과 병따개에게로 잠시 돌아갔다. 지난 날, 병따개의 움직임을 보았기에, 그가
쉽게 태정민을 제압할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의 상황은 반대상황이었다.
오히려 병따개가 태정민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쪽 일은 저쪽이 알아서 합니다. 그러니 아저씨는 아저씨 일을 먼저 생각하시죠.”
추선우는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곳에까지 신경을 쓰는 그에게 말했고, 석강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저쪽에 변수가 생겨 잠시 본 것뿐이다. 만에 하나 병따개가 먼저 주저앉으면 태정민이 이곳으로 올
것이니, 그에 대한 생각도 해두어야 하지 않겠나.”
석강수는 여유가 있었다. 추선우는 그와 잠시 동안 겨룬 시점에서 그는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사내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실장님. 저들을 움직이게 한 놈은 아직 입니까?”


같은 시각. 어둠속에 매복해서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총을 쏘고 있던 인원들을 총괄하는 인물이
설장호에게 무전으로 물었다.
“지금 확인중이다. 그러니 그냥 보이는 놈들은 다 잡아 족쳐.”
설장호는 그의 질문에 대해 거친 답을 주었고, 곧 펜션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펜션 안에서는 강서진이 각 부처 수장들은 물론, 청와대까지 연락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강서진은 국정원장과의 통화를 막 끝냈다. 국정원장은 설장호에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건네주었고, 그
정보에 의해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실장님. 국정원장님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CCTV 를 수신 받은 곳을 향해 대원을 출동시킨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알았다. 이어서 마저 연락해라.”
“네.”
강서진은 국정원장과의 통화내용을 그에게 알렸다. 설장호는 그에 대해 무표정으로 답하였고, 여전히
몸을 낮춘 채, 어둠속에서 연신 발하고 있는 불꽃을 보고 있었다.

“누가 이번 작전에 중심에 있는 것인가? 모습을 드러내라. 당장 목을 치러 갈 것이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국정원장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하였었다. 그리고 경찰청장과
검찰총장, 외교부장관…….누군가 그 중심에 있을 것이었지만, 아직은 정확한 인물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몸을 낮춘 채, 계속하여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용석은 그의 뒤에 함께 서서
정면을 주시하면서도, 잠시 잠깐씩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총장님. 저 강서진입니다.”
강서진은 국정원장에 이어 총장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국정원장님께 연락은 받았네. 그곳으로 많은 인원이 다가섰다고 하던데…….정말
박태식이 그 쪽 사람이었나?”
“네. 하지만 아직 그 중심인물을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알았네. 나도 확인 할 테니 몸조심하게.”
검찰총장과도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와 이루어진 통화 속에서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평소와
다름없었고, 위치를 말하는 대신, 그곳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아직 이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듯 하였다.

“총장님도 아니다. 그럼 누구지?”


강서진은 곧바로 경찰청장에게로 연락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청장님은 아니겠지. 박태식을 잡을 때, 설 실장님과 계속적으로 통화를 하였던 사람이 청장님이라고
했어. 그리고 청장님이 박태식을 잡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니…….청장님은 아니야.”
강서진은 지레짐작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었다.
청장은 펜션으로 온 후부터 설장호와 계속적인 통화를 주고받았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에게 특별히 전화하여 내용을 알아 볼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외교부는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곳은 청와대였다. 강서진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서지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0011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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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강 검사님.”
전화 수신음이 채 한 번도 울리기 전에 서지호가 전화를 받았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성남 펜션에서의 일이라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강서진이 말을 꺼내기 전, 서지호가 먼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말하였다.
“혹시…….그 외적인 요소도 알고 계십니까?”
“외적인 요소라 함은…….”
“지금 펜션으로 의문의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총격이 바로 이어졌는데 혹시…….”
“그에 대한 내용은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성남펜션으로 가기 전, 태정민에게서 연락을 받아 그곳의
상황을 알고 있지만, 지금 현재, 성남 펜션에 의문의 사람들이 찾아온 것은 처음 듣는 일입니다.”
서지호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 모른체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서지호가
그런 상황을 애써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변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서진은 역시 길게 통화하지 않았다. 서지호도 지금 찾아온 이들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탈칵’
강서진이 모두와 통화를 끝낸 후, 곧바로 펜션 문이 열리며 지용석이 들어왔다.
“통화 하셨는지요?”
그는 문을 닫은 후, 곧바로 강서진에게 물었다.
“모두와 통화를 했는데…….역시 의심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 실장님께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강서진은 자신이 통화한 내용을 종합하여 설장호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펜션을 나서려 하였다.
“지금 외부에는 아직도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설 실장님께서 저에게 안으로 들어가 강 검사님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용석을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걷은 후,
외부를 보았다.
지용석의 말처럼 외부에는 아직도 어둠속에서 이리저리 불꽃이 튀는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꽤…….길게 이어지네요.”
“아무래도 어둠속이라 제대로 된 저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지용석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고 있었다. 낮이라면 모를까. 어두운 밤에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강서진은 다시 창가를 통해 외부를 보았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외부를 보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창가는 위험합니다.”
그녀가 창을 통해 외부를 계속하여 보고 있자, 지용석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도
창가에서 멀어지지 않은 채, 계속하여 떨리는 눈동자로 펜션 앞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었다.

‘없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하였고, 그 때, 자신의 심장이 더욱 더 크게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펜션 앞에서 몸을 숨기고, 어둠속을 보고 있던 설장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지용석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퍽!’
“제대로 다시하자, 그 짧은 순간에 이곳의 지형을 이용하는 잔머리를 쓸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한 편. 산책로에서는 병따개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태정민이 산책로 바닥에 이리저리 울퉁불퉁하게
솟아나있는 나무뿌리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것을 두고 말하였다.
가로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바닥을 일일이 보면서 상대와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단 병따개 뿐만은 아니었다.
태정민도 나무뿌리에 걸려 이미 넘어졌었고, 추선우와 석강수도 보통 때처럼 편하게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곳에서의 격전은 제대로 된 승부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승부는 내야겠지.”
병따개의 말에 석강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꼬맹아. 이런 것이 바로 사회다. 넌 이제 막 이런 사회에 발을 들이밀었겠지만, 우린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삶을 살았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면 말이야…….
저 병따개처럼 주변 환경이라는 것은 오로지 핑계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는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병따개와 태정민을 보았다. 누가 이기고 지는가는 두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주변의 환경이 변수를 만들수도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이 변수마저도 승부의 한 몫으로 계산하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병따개의 움직임은 화려하였다. 디딤발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의 공격은 아주
매섭게 이어졌고, 태정민이 계속하여 밀려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집중해라.”
곧 추선우를 향해 석강수가 다시 다가섰다. 그는 웬만한 킬러들이 두려워한다는 설장호를 주무르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민간인이 추선우를 상대하는 것은 진정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추선우는 연신 그를 향해 자신의 주먹과 발을 뻗었다. 하지만 역시 석강수는 달랐다.
이지광을 상대할 때는 이처럼 허공에 주먹을 뻗는 상황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석강수를 앞에두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뻗어도, 추선우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멈춰서고 있었다.
‘탁탁탁!’
병따개는 태정민을 계속하여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태정민도 삼성역에서처럼 그리 쉽게 자신의
안면을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병따개 역시 울퉁불퉁한 지면에 의해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기에,
주먹을 뻗어도 힘이 없었고, 발을 뻗어도 속도와 묵직함이 덜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마찬가지였다.
태정민의 공격 역시 병따개에게는 너무나 쉽게 막히고 있었다. 주먹은 둘째 치고 발을 뻗어도 그의
근처까지 가지도 못한 채,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젠장…….”
서로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서로가 원하는 행동을 서로가 취하지 못하니, 격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성남은 이미 쑥대밭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한 편. 새벽에도 잠을 청하지 않은 채, 성남의 일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최기수를 비롯한 네 명의 회장은
최기수의 사무실에 모여 술 한 잔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아직 여유가 있는 듯 보였다.
“그나저나…….고회장님은 어찌 그 놈을 구워삶으셨습니까?”
곧 우수광이 고민국을 향해 물었다. 그가 말하는 인물은 석강수였다.
“뭐…….다 돈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장호 같은 놈이야 돈으로 매수되지 않지만, 다른 놈들은 모두
돈이면 됩니다.”
“지금…….이런 정보를 준 그 사람처럼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고민국의 말에 정구석이 물었다. 그리고 고민국은 웃으며 답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을 제공해준 인물. 이들은 그 인물에 의해 성남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냈다. 그리고
석강수는 산책로 부근을 오를 때, 이 정보를 준 인물이 형사라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뒷받침하듯 설장호는 박태식을 잡도록 명령 내렸다.
즉. 이 정보를 준 인물이 경찰 쪽 인물이며, 그가 박태식이라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그나저나…….그 사람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리 편히들 앉아계십니까? 이정도로 우리가 편히앉아
술을 마셔도 될 정도의 사람입니까?”
우수광이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그를 본 후, 다시 고민국을 보았다.
“믿으셔도 될 사람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 정도의 권력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민국이 술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성남으로 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 그리고 석강수나 병따개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 비록 석강수와 병따개가
고민국과 최기수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그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위해서는 그만큼 확실한
정보와 뒷배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민국은 그 확실한 뒷배를 믿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오늘이 지나면 저쪽이던, 이쪽이던…….두 곳 중 한 곳은 발칵 뒤집어 질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어지는 고민국의 말에 우수광이 물었다.
“설장호…….그 놈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번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움직였으니, 그에 대한 권력층이
어디쯤인지를 가늠할 놈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를 파악할 수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민국의 말이 끝나자, 최기수가 술 한 잔을 마신 후, 말했다.
“그렇지요. 보통의 인물이라면 그 정도로 파악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놈은
설장호입니다. 비록 차현태 대통령이 나섰고, 그는 권력자지만, 그 권력을 남용하는 인간이 못됩니다.
하지만 설장호는 다릅니다. 그놈은 자신이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다 까밝힐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고민국에게 향하였다. 그리고 술 한 잔을 먹은 후 안주를 먹는 것은 고민국의 말에서 나온
설장호로 대신하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모두가 쉽게 보았던 인물이지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던 설장호를 안주삼아 입에 바르고,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퍽 퍽!’
같은 시각. 태정민은 역시 병따개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디딤발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공평한 입장에서 삼성역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일어나라.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네가 나에게 이기고자 한 것이라며, 그에 걸맞은 힘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병따개는 처음 몇 번은 태정민에게 밀리는 듯, 그의 공격을 계속 허용하였지만, 지금은 완전 다른
상황이었다.
“헉 헉…….”
태정민은 지쳤다. 그에게 공격을 허용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오히려 불편한 지형으로 인하여 더 많은
체력을 소비해버린 탓이었다.
“넌. 역시 안 된다. 저 놈에게 너의 경호원 타이틀을 넘겨주고, 네가 그냥 민간인으로 살아라.”
헉헉 거리는 그의 앞으로 병따개가 다가섰고, 그는 태정민을 내려 보며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고, 그의 면상에 제대로 된 주먹을 다시 한 방 날렸다.

태정민은 뒤로 날아가듯 밀려나 넘어졌다. 그리고 나무에 부딪혔고, 일어서지 못한 채, 자신을 보고 있는


병따개를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석강수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는 석강수와 비등한 힘을 겨루고
있었다. 자신과는 전혀 달랐다.
대통령을 경호한다는 청와대 경호실. 그곳에서도 태정민은 팀장의 직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쓰러졌다. 민간인 추선우가 아직 버티고 있는 상황에 그가 쓰러졌다.

0011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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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 놈처럼 너를 병신으로 만들지는 않아. 그냥 그대로 쉬어라. 내가 널 죽여 봐야 뭐하겠나. 그냥
우리 회장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도록, 그 설장호인가 하는 놈의 팔다리만 하나씩 부러뜨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의 말에 태정민은 어이없게도 그 상황에서 실소를 보이고 있었다.
“웃어?”
그의 실소에 병따개가 의아한 듯 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혼자 웃는 것이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꼭 누가 한 말이 떠올라서 말이야. 여차하면 팔, 다리
하나씩 주면 된다는 것…….그런데 아직 내 팔,다리가 붙어있으니, 아직 주지 않아서 말이야.”
병따개는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그의 앞으로 더 다가가 주저앉은 그를 보며 앉았다.
“무슨 말이냐?”
“그냥…….아직 내 팔다리가 붙어있으니…….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지.”
‘퍽!’
“…….”
태정민은 주저앉은 채, 주먹조차 들 수 있는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눈높이와 맞춰 앉아있는
병따개의 눈 부위에 주먹을 뻗어 올리며 한 방 먹였다.
하지만 그 주먹은 강하지 않았다. 그냥 살며시 다가와 살며시 눈두덩에 내려앉은 듯 한 느낌이었다.
병따개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를 매섭게 보았다.
태정민은 두 팔을 밑으로 쭉 뻗어 내리며, 모든 힘이 풀린 듯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손 끝
감각에서 뭔가 잡히는 것이 느껴졌고, 그 순간 태정민의 손이 조금 전보다는 빠르게 움직이며, 주저앉은
자신의 뒤로 손을 옮겼다.
“정…….그렇게 팔, 다리를 주고 싶다면, 받아가지.”
병따개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들었다. 자신의 닉네임과 걸맞게
그는 자신이 상대한 태정민의 최후를 보려 하는 것이었다.

“너…….정말 괴물이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


한 편. 태정민의 상황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추선우는 석강수와 비등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고, 이에
석강수는 그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상대의 힘을 칭찬하는 것은 고맙지만, 지금은 그 칭찬이 오히려 당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칭찬을 달갑게 받지 않았다. 그저 쓴 표정으로 두 주먹만을 꽉 쥐고 있을 뿐, 그에게 힘을
가하거나, 뒤로 물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너와 달리 저 쪽은 이제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석강수는 추선우의 뒤쪽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보였다. 병따개가 작은 단검을 꺼내, 힘없이
주저앉아있는 태정민을 보며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고, 곧 추선우가 들리도록 그에게 말하였다.
추선우는 그가 한 말에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석강수를 향해서 그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태정민의 최후가 말이야.”
석강수는 자신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자신만을 노려보고 있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살 운명이라면 살겠지요. 하지만 지금. 그가 죽을 운명이라면 죽을 것입니다. 내가 도와준다고 한 들.
그가 살아날 운명이 아니면 말입니다.”
석강수는 웃었다. 진정 킬러의 세계에서 킬러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이기도 하였다.
킬러들은 되도록 서로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지금은 동지일수도 있지만, 차후에는
자신의 목을 치러 올 수도 있는 킬러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도 이제 결판을 낼까?”
석강수는 다시 추선우를 향해 다가서며 움직였다. 그를 보는 눈빛도 달리 하였다. 주먹은 더욱 더 강하게
쥐고 있었다.
자신이 할 말처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였다.

“이제…….불꽃을 뿜고 있는 총성이 멈추는 듯합니다.”


한 편. 펜션에서는 여전히 강서진이 창가에서서 이리저리 설장호는 찾는 듯 바삐 눈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녀의 옆으로 지용석이 다가서며 말했다.
순간 강서진은 그의 곁에서 조금 더 떨어지며, 창가의 끝부분으로 섰고, 그녀의 행동에 지용석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그러십니까?”
“아니…….아닙니다. 그런데…….설 실장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용석이 커튼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 제 앞에 있었는데, 제가 들어오고 난 뒤에 사라지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마 저들이 쏜 총에 맞기야 하셨겠습니까?”
지용석은 당황하지 않은 채, 그저 창가를 통해 외부를 보며 말했다. 필시 설장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당황하여 주변을 더욱더 면밀하게 봐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용석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강서진이 펜션의 문 앞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설 실장님께서 강 검사님을 펜션 외부로 나서지 못하도록 잘 막고 있도록 명령 내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총알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니.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가봐야겠어.”
조금 전까지 강서진은 그에게 말을 높여하였다. 태정민이나 박태식처럼, 편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말을 높여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지용석을 노려보며 말을 낮춰하였고, 그녀의 변화에 지용석의
시선이 창가에서 서서히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냥 이곳에 계시는 것이 몸에 좋습니다. 괜히 나가셔서 총에 맞아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하지 마시고,
그냥 여기에 계십시오. 설 실장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당연히 이곳으로 들어오시지 않겠습니까?”
강서진은 이제 그의 목소리마저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으로 온 후, 그들과 내통한 인물로
박태식을 압송하였다. 그를 압송한 것으로 더 이상 이 무리에는 그 조직과 연관된 이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지금 지용석의 모든 말과 행동이 평소와는 너무나 달리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뿜고 있는 불꽃이 없군요. 이쪽 아니면 저쪽…….두 곳 중, 한 곳은 전멸한 모양인데,


과연 누가 전멸했을까요?”
강서진이 펜션 문을 열고 나서려 할 때, 지용석의 소름 돋는 목소리가 도 들려왔다. 그녀는 문을 열지
못한 채. 창가를 내다보고 있는 지용석을 향해 떨리는 눈으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뭐가 잘 못 되었습니까?”
지용석이 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마저도 강서진에게는 소름 돋게 들리고 있었다.
“저와 함께 나가실까요? 지금까지 있었던 총성의 승자가 누구인지…….함께 확인을 해 보겠습니까?”
강서진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은 물론, 마음마저도 모든 것이 다 정지된 듯 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그가 이토록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일을 처리하며 함께 다니는 같은 팀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강서진은 차갑고 무섭게 느껴지는 그를 보며 그 어떤 공포보다 더 한 공포가 온
몸을 점차 감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잘 가라.”
한 편. 산책로에서는 병따개가 태정민의 앞에서 자신의 칼을 돌리며, 그의 목을 향해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고, 곧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였다.

‘픽!’
“…….”
병따개가 들고 있는 칼이 태정민의 목에 와 닿기 전이었다. 병따개가 웃고 있었고, 태정민도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칼날을 보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곧 병따개의 모든 동작이 멈추었고, 그의 표정도 무표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반면에 태정민은
그를 향해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기랄…….”
병따개의 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몸을 옆으로 뉘우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
약간 기우려진 언덕 아래로 천천히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이럴 땐, 천운을 타고 난 놈이라니까.”


태정민은 굴러 떨어지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는 자신이 버린 총이 들려있었다.
병따개와 일전을 벌이면서 이리저리 밀려나다, 마지막에 몸이 부딪힌 나무의 옆으로 자신이 버렸던 총이
놓여있었다.
태정민은 그 총에 의해 자신을 살려놓고 가는 병따개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오게 하려고, 그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이었다.
다행히 병따개는 태정민의 꼬임에 넘어갔고,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그로인하여 주먹조차 뻗기 힘들었던 태정민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병따개를 향해, 손에 쥔 총만
살짝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겼고, 총을 벗어난 총알은 바로 앞에 목표를 두고 정확하게 병따개의 복부를
뚫고 들어갔다.

병따개가 죽은 뒤, 태정민은 추선우와 석강수가 일전을 벌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들어. 거리가 약 20 미터 정도 떨어진 석강수를 명중시키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젠장…….가보자…….”
그래도 앉아서 멀뚱히 추선우가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만큼, 추선우는
의외로 석강수와 계속하여 비등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넌 정말 신비롭다. 그냥 그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석강수는 자신이 국정원에 몸담고 있던 시절, 북한에서 넘어왔던 조직을 상대했을 때도, 이처럼
신중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추선우는 평범한 민간인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과 비등한 힘을 겨루고 있었다.
“너. 설장호와 느낌이 너무나 비슷하다. 그래서…….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석강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는 물론, 그 주먹의 묵직함.
그리고 이어지는 발차기들이 추선우의 얼굴을 향해 여러 번 뻗어지고 있었지만, 추선우는 그의 공격을
모두 막거나 잘 피해가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난…….그냥 민간인입니다. 당신이 나를 왜 이토록 경계하며 잡고자 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당신을 꼭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주먹을 피하면서 차분한 어투로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투가 석강수의 기분을 더욱 더
난폭하게 만들고 있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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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긴장하거나 다급해하지 않고, 너무나 침착하게 대응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내가 간다.”


태정민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비틀거리며 두 사람의 곁으로 이동하며 중얼거렸고, 이동 중, 몇 번을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할 정도로 그의 체력은 거의 바닥나 있는 상태였다.

“나가보시죠.”
같은 시각. 지용석은 여전히 강서진을 보며 서 있었고, 그녀에게 미소까지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문 손잡이를 잡아 천천히 돌렸다. 지용석의 말처럼 외부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 누가 승자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며, 만에 하나 치고 들어온 이들이 승자라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강서진의 심장에는 총알이 날아오 꽂힐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용석과 집안에 있는 것이 더 괴로운 듯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문을 열었다.

‘탁!’
“!!!”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누군가 강서진의 입을 막으며 뒤에서 끌어안아 돌렸고, 곧바로 펜션 옆쪽을 통해
아래로 그녀를 끌고 내려갔다.
강서진은 발버둥을 쳤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데다, 자신의 입을 막고 끌어당기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지용석도 따라 나왔다. 하지만 조금 전 나갔던 강서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어디로간거야?”
지용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강서진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도 입을 막고 있는 사람에
의해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끌어당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설장호였다. 그가 왜 자신의 입을 막고 끌어당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지금
설장호도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설장호가 강서진의 입을 막은 손을 풀어주자, 강서진이 바로 물었다.
“일단 산책로를 따라 뒤로 이동한다. 서둘러.”
이유가 궁금하였다. 자신이 펜션 안으로 들어선 후의 상황의 궁금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는 곧바로 답을
주지 않았고, 그녀를 데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산책로를 따라 펜션을 벗어나고 있었다.

“대체…….다 잡은 고기를 왜 놓치는거야!”


그 순간. 지용석의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강서진의 걸음이 멈추었다.
“지팀장…….지팀장이 왜…….”
“작은 작전을 하나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는데, 정확하게 놈이 걸려들었다.”
산책로를 조금 더 내려온 후, 강서진이 물었고, 설장호는 그녀의 물음에 답을 준 뒤, 더 아래로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두 사람이 내려가는 방향의 중간부분에는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석강수가 서로 힘을 겨루고
있는 지점이었다.

“그렇다면…….박태식형사외에 지용석팀장도 그들과…….”


“아니. 지용석이만 그들과 한패다. 박태식은 아니야.”
“네?”
강서진은 다시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태식이 그들과 내통하고
있는 인물이라 말하며 그를 잡았었다.
하지만 그가 아니고 지용석이 그들과 내통한 인물이라 말하니, 도저히 지금 상황이 납득하기 힘든
그녀였다.
“박태식은 나는 물론, 자네와도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녀석이다. 그리고 우린 그 놈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설장호는 산책로를 내려가며 박태식에 대한 이야기를 갑자기 꺼냈다.
“하지만…….펜션 안에서 실장님이 경찰청장과 통화하던 도중이라 하였고, 박태식이 청장과 통화도 하지
않은 채, 보고를 하였다는 거짓말을 해서, 그가 뿌리조직과 연관이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
“박태식과는 이미 펜션으로 오기 전부터 말을 맞춰둔 상황이다. 그 놈은 돈이나, 기타 명예 때문에
자신의 두 아들이 믿고 살아가는 그 아버지란 명함을 버릴 인물은 아니야. 그리고 지용석…….그 놈이
그들과 내통자라는 것은 나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이어서 박태식에 대해 다시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도 박태식에 대해서는 잘 아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럼. 실장님께서는 누구를 의심하여 이와 같은 일을 계획하신 것입니까?”


바로 이 의문이었다. 박태식이 아니고, 또 지용석이 그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설장호가 색출해 내려는 인물은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자신이었다. 즉이 세 명중에 한 명이
그들과 내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설장호의 말이었다.
“설마…….태정민과 저를 의심하신 것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그러자 설장호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내가 의심한 사람은 너희들이 아니다. 바로…….너희들을 움직이게 하는 그 수장. 그들이 어떤 말을
내뱉는가에 따라 그를 잡아내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지용석이 자신의 성격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먼저 움직이더군.”
설장호는 강서진이 펜션 안으로 들어간 뒤의 상황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지용석은 강서진이 들어가자, 설장호의 뒤에서 그를 계속하여 주시하는 듯,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총알들이 발사되는 상황에서 그는 전면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설장호를 뒤에서
치고자 하는 생각을 한 듯, 그의 뒷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그리고 기회가 여의치 않자, 강서진을 이용하여 설장호를 치려는 듯, 펜션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고, 그
때 때마침 외부에서 밀고 들어서는 인물들이 이미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설장호의 사람들을 제압하는
듯 보이자, 그는 더 이상 본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었다.
모든 상황을 듣고 난 뒤, 강서진은 또 다시 소름이 온 몸을 돋는 듯 하였다.

“일단 자네와 통화한 사람 중, 의심 가는 사람은 없었나?”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며 강서진에게 물었다.
“전혀 없었습니다. 국정원장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려 하였고, 또 서지호 실장은 아직 펜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통령님도 지금의 상황은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총장님과 청장님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가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일단 총장님은 지원을 더 해주실 수도 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을 다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장님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설장호의 걸음이 멈추었다.
“왜? 청장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지?”
“그거야 실장님께서 이미 펜션 안에서 청장님과…….”
설장호의 물음에 그녀는 왜 자신이 청장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말하다 말고, 말을 끊은 채,
서서히 설장호를 보며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조금 전, 실장님께서는 펜션 안에서 청장님과 통화를 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박태식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청장. 그런데 그가 어째서 박태식이 움직였던 모든 곳에
지원을 서둘러 해 줄 수 있었을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가 다시 말을 이어하였다. 그러자 강서진의 눈동자는 더욱 더 심하게
떨려왔다.
설장호의 말처럼, 청장은 박태식이 입원한 것도 알지 못하였고, 퇴원한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설장호가 그와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하였으니, 박태식이 아니라면 그에게 연락을 취하여 이 상황을
알려줄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박태식은 펜션에서 청장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었다. 그 역시 이들 중, 뿌리조직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 있을 것이라는 설장호의 말에 연기를 한 것 이었다.
그리하여 추선우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분위기를 자신의 곁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연출하였지만, 그는
청장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지금 즉시 청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강서진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를 멈추지 못한 채, 수신음을 듣고 있었다.
“청장님, 저 강서진 검사입니다.”
곧 청장이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로 자신을 밝혔다.
“상황이 어찌되었는가? 그리고 박태식이 왜 설장호에게 잡혀 압송되는 것인가?”
“…….”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그 후의 말을 이어하지 못하였다. 이 한마디로 인하여 이미 무언가가
결정이 되어버린 듯 하였다.
박태식이 설장호의 명령으로 압송되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었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청장이 알고 있었다. 압송되고 있는 박태식이 전화했을리는 없다. 그리고 박태식은 설장호의
말처럼 이미 말을 맞춰둔 상황이라, 그가 굳이 지금의 상황을 청장에게 알릴 이유가 없었다.
결론은 한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청장에게 이 내용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지용석이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장님이 결정하신 것이니,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보다…….혹여


이창민대사의 서류, 그 서류에 대해서는 알아내신 것이 있으십니까?”
강서진은 전화한 목적을 달리 말하였고, 청장은 그녀의 말에 깊은 한 숨만을 쉬었다.
“도통 알지 못하겠더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차후에 다시 뭔가 알아내는 것이 있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보았다.
이미 경찰청장의 말이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청장은 청와대에서
차현태에게 박태식에 관한 말을 들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에게 서류에 관해서도 내용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강서진과 통화를 할 때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태정민과 추선우를 찾아 합류한다. 그리고 경찰특공대를 조심해라. 만에 하나 청장이 그들과
한 패를 이룬 것이라면, 그가 수장으로 있는 경찰특공대도 그의 명령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설장호는 서둘렀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둘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경찰청장이 의심된다면, 그와 관련된 모두를 의심해야 할 판이었다.

“찾아라. 당장 이곳을 모두 뒤져서라도 찾아!”


한 편, 펜션에서는 지용석의 고함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날, 이곳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설장호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태정민도 구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다시 그들의 목을 가져가려는 행동을 하였다.
“미리 정보를 준 덕분에 이놈들을 모조리 칠 수 있었다.”
곧 어둠속에서 한 사내가 나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가로등이 설치된 펜션의 앞마당으로 나섰다.

0011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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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였다. 정구석의 오른팔인 백태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용석이 준 정보로 인하여 이미
매복중인 이들을 모조리 잡아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저번과 같은 상황이지만, 이번엔 서로 반대의 입장을 느껴보도록 만들어주려는 너의 생각은 좋았다.
그런데 보는바와 같이 그 뜻은 이루지 못했군.”
백태는 이미 자리를 떠난 설장호와 강서진을 찾는 듯, 펜션의 문을 열어 안을 보며 말했다.
“곧 잡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 회장님께는 약속한 금액을 제 날짜에 정확하게 입금하시라는 말만
전해주십시오.”
“물론이지. 약속만 지키면 그 대가는 꼭 지불한다. 그것이 우리 회장님의 장점이지. 간혹…….약속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돈만 받아 처먹는 벌레 같은 놈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백태는 지용석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인물은 최기광이었다. 최기광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 버티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나저나…….역시 돈이 좋긴 좋군. 차현태 대통령은 물론, 경호실장인 서지호에게도 인정받고 심지어


설장호에게도 인정받는 네가…….우리 쪽으로 이리 쉽게 넘어오니 말이야.”
백태는 지용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고, 그 순간 지용석의 표정은 굳어졌다.
“하지만 아쉽다. 조금만 더 설장호를 잡고 있었다면, 너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이 입금되었을 텐데…….
아쉽군.”
그는 펜션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몇 사내들에게 손짓으로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라는 표현을 하면서
말하였고, 지용석은 시선을 돌려 산책로 방향을 향해 보았다.

“제길…….”
그리고 쓴 말을 내 뱉은 후, 표정을 더욱 더 구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용석팀장이 언제부터 그들과 연결이 된 것입니까?”


한 편. 산책로를 따라 계속하여 이동하던 중, 강서진이 뒤를 한 번 본 후, 다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아직 그가 왜? 그리고 언제부터 그들과 함께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해.”
“이유는요?”
“여기 펜션. 지난 날, 태정민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그 때, 지용석이 지원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을 구했고, 나를 도왔다. 그 때 만약 지용석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굳이 태정민의
죽음을 막을 필요는 없었겠지. 그리고 나를 살려둘 필요도 없었을 테고 말이야.”
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은 그 후에 지용석의 행동을 기억나는 부분만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마땅히 그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삼성역. 그 때도 지용석은
태정민을 도와 병따개를 상대하였다.
만약 그 때부터라도 그들과 연관이 있었다면 굳이 병따개에게 자신의 얼굴을 내주면서까지 설장호와
태정민을 도울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 머리 아프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용석이 언제부터 그들과 내통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였다.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고 있는 그녀였다.

“너…….다음부터는 나와 서로 만나지 말자.”


한 편. 설장호와 강서진이 산책로 끝부분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석강수는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말하였고,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추선우가 서 있었다.
추선우 역시 입가에 피를 머금고 있지만, 석강수보다는 덜하였다.
“젠장…….이건 뭐 완전 내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오고 있군.”
석강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추선우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니 그건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 그는 비틀거리며 한손에는 천근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권총을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약 10 미터 정도로 다가섰어도, 그는 쉽게 권총을 들어 석강수를
겨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총을 든다고 하여도, 겨냥을 해야 한다. 특히 권총은 더욱 더 조준이 힘든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의 바로 코앞에서 방아쇠를 당겨야 그를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손에 힘은 다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저 놈은 정말 싸움의 신인가보군. 어째 상대하는 놈마다 그 상대가 누구더라도 다 잡아 족치니 원…….”


태정민은 석강수와 비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궁지로 몰고 있는 추선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로써, 상대의 강함을 떠나, 그 상대를 무조건 제압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고된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아올린 그였다. 하지만 그는 민간인 추선우의 앞에서는, 하염없이 작아지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펜션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전화벨이 울렸고, 곧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회장님.”
그는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 아주 느긋한 자세와 표정으로 정구석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정리는 되었는가?”
“아쉽게도…….설장호가 미리 수를 써서 뒤로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대는
이미 완벽하게 포위해 두었으니, 이제부터는 너구리 사냥을 해 보려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설장호가 눈을 감았다는 보고를 듣고 싶군. 잘 마무리하고 오너라.”
“네 회장님.”
통화를 끊은 후, 백태는 아예 소파에 몸을 뉘우더니 이내 편히 누워버렸고, 지용석은 여전히 펜션 앞에서
산책로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서둘러라! 오늘 안에 설장호의 목을 가지고 가는 놈에게는 평생 먹고 살 돈이 지급된다!”


한 편.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던 사내들에게 한 사내가 소리쳤고, 마치 사냥을 나선 사냥꾼들처럼
그들은 사내의 말에 더욱 더 눈에 불을 켜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합니까?”
강서진은 불안하였다. 위에서는 필시 지용석과 함께 온 이들이 자신들을 따라 이동중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래로는 경찰특공대가 이미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믿는지는 간단하다.”


“네?”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답을 하였고,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너를 살려주는 놈. 그 놈만 믿어라.”
아주 쉽게 생각하면 그의 말이 바로 정답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는 이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곧 강서진의 표정은 굳어진 채, 설장호를 보았다.
“목숨을 구해준다고 해도, 믿지 못할 놈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지용석 때문이었다. 지용석은 설장호와 태정민을 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목을 치러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고만 있었다.

“헉 헉!”
산책로 아래쪽에서는 태정민이 두 사람과 거의 5 미터 거리를 두고 아예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석강수의 호흡은 더욱 더 거칠게 들려오고 있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의외로 더 힘을 가진 듯 하였다. 지친 석강수와는 달리, 그는 아직도 주먹을 들고
뻗을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젠장. 역시 젊은 것이 좋군. 나이가 들다보니 장시간 격투는 힘들군.”
석강수는 추선우에게 많은 일격을 당해서 지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체력적인 문제가 나온 것이었다.
그는 킬러다. 킬러는 무엇이든 오래 시간을 끌지 않는다. 속전속결이기에 굳이 체력단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달랐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기본적인 체력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실력을 쌓아올린
인물이었다. 그리고 젊다. 40 대인 석강수에 비해 20 대인 추선우가 당연히 체력 면에서는 우세할
것이었다.
“태정민. 넌 이놈처럼 되려면 평생을 걸려도 힘들다.”
석강수는 이미 태정민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과 5 미터 거리를 두고, 총을 들고 있으니
그것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친 눈빛으로 태정민을 보고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네 놈 걱정이나해라.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네가 죽는
것은 맞는데, 어찌 죽여야 할지 고민이다. 그냥 총 한방으로 깔끔하게 정리할지. 아니면 이대로
추선우에게 죽도록 맞아서 죽게 버려둘지. 어느 쪽이 너에게는 더 좋을까?”
태정민은 땅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난 뒤에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석강수는 웃었다. 그의 말이
웃기게 들린 것이었다.
“네 말처럼 이래죽나, 저래죽나 매한가지긴 하군. 하지만 말이야. 내가 그리 쉽게 죽지는 않아.”
석강수는 태정민의 말에 답한 뒤, 다시 추선우를 보며 움직였다. 그리고 추선우도 그를 향해 다시
다가섰다.

‘픽!’
“!!!”
그 순간. 석강수의 귀를 스치며 한 발의 총알이 날아왔고, 그 총알은 그대로 날아가, 추선우의 머리카락
일부를 휘날리게 하며 스쳐갔다.

“추선우! 엎드려!”
“!!!”
그 순간 태정민은 자신의 남은 힘을 모두 짜내는 듯 소리쳤고, 추선우는 그 즉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고함소리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던 설장호와 강서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서두르자.”
설장호와 강서진이 뛰기 시작하였다. 다급해진 태정민의 목소리였기에, 필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어떤 놈이…….”
석강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했고, 곧 천천히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산책로
아래쪽에서는 병따개의 수하를 잡았던 경찰특공대 인원들이 위로 오르고 있었다.
“제길…….”
석강수는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몸을 낮추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추선우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강하게 인상을 찌푸렸고, 곧 어둠속으로 서서히 몸을 파묻고 있었다.
석강수는 경찰특공대가 병따개의 부하를 다 잡아들였으니, 필시 자신마저도 잡을 것이라 여겨 미리 피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경찰특공대가 이리저리 사방을 경계하며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추선우는 엎드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직 펜션의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와


강서진은 경찰청장과 관련된 그 어떤 인물도 믿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췄다. 하지만 아직 추선우와
태정민은 그 내용을 알지 못하기에, 다가서는 경찰특공대가
자신들을 돕는다고 여긴 것이었다.

태정민도 위로 오르고 있는 경찰들을 보았다.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며 조준레이저를 쏘고 있었고, 그


레이저 빛은 간혹 태정민의 눈에 정확하게 겨냥되기도 하였다.

0011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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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우는 그들에게 현 상황을 알리고, 어둠속으로 숨어버린 석강수를 찾는데 협조를 해 줄 것을 말하기
위하여 그들의 앞으로 더 다가서고 있었다.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선 뒤, 태정민의 상태를 확인코자 그에게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추선우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태정민의 얼굴과 몸 일부에는 몇 개의 레이저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선우는 시선을 돌려 올라서고 있는 경찰특공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다가서며 손을 흔들어
조준이 잘 못되었음을 알리려 하였다.

“타깃. 정조준 하였습니다.”


경찰특공대가 확실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태정민을 정조준하고 있었고, 그에게 이미 수십 개의 레이저가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특공대를 이끌고 올라선 인물 중, 가장 앞 쪽에 선 사내가 연락을 취하였다.

“펜션 쪽은 실패했다. 그 쪽이라도 제대로 밀어라.”


“네.”
상대의 답에 의해, 사내는 곧바로 경찰특공대의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일제히 자세를 잡은
뒤, 겨냥된 태정민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연락을 취한 인물은 석강수와 병따개가 산책로로 올랐다는 보고를 설장호에게 했던
사내였다.

“어째서…….어째서!”
추선우가 그들의 행동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내려오던 설장호와 강서진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고,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더 빨라졌다.
“저 놈도 함께 보낸다.”
사내는 추선우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몇 개의 레이저가 추선우의 가슴부분과 얼굴에 집중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이토록 오래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군.”
사내는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태정민과 추선우를 향해 손을 살짝 들어주었다.

“끝내라.”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뒤, 몸을 돌려 세웠다.
‘픽픽픽픽픽!’
‘띠리리리’
같은 시각. 펜션 앞마당에 서 있던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 실장…….”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아직 지용석이 그들과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네. 실장님.”
지용석은 평소와 같은 음성으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찌 된 거야? 태정민은 전화도 받지 않고, 또 설 실장님과 강 검사도 연락이 안 돼. 지금 일이
복잡해진 거야?”
서지호는 지용석에게 현재의 상태를 물었다. 하지만 지용석은 그의 물음에 대해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지용석. 무슨 일이야? 왜 답이 없어?”
서지호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용석은 답을 주지 않았고, 펜션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펜션 안에는 백태가 여전히 소파에 몸을 뉘운채 누워있었고,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듯,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무슨소리야? 마지막이라니?”
지용석은 백태를 보며 서지호의 물음에 답했고, 서지호는 그의 뜬금없는 대답에 다시 물었다.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죽거나, 죽을 고비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고,
서지호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차현태의 눈빛도 달라지고 있었다.
“지용석. 넌 어딘가?”
서지호가 조금 전보다 더 묵직한 어투로 물었다.
“성남 펜션입니다.”
“누구와 있는가?”
서지호는 바로 질문을 바꿨다. 이미 설장호와 태정민, 강서진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용석만이
유일하게 연락을 받고 있으니, 지용석만 나머지 세 사람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가 누구와 있다고 말씀드리면, 그 사람을 아십니까?”
“지용석!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넌 지용석이다! 청와대 경호실 팀장 지용석!”
지용석의 말에 서지호는 차현태를 앞에 두고도 목소리를 높였고, 그의 행동에 차현태의 눈빛은 더욱 더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서지호의 곁으로 움직였다.
“편한 길이 있는데 너무 돌아가면서 거친 길을 택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편한 길을
택했습니다. 빠르고 편한 길. 전…….그 길을 따라 편하게 가겠습니다.”
‘뚜뚜 뚜뚜.’
지용석은 자신이 할 말을 다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서지호는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고, 이내
시선을 돌려 차현태를 보았다.

“무슨 일인가? 지용석 팀장이 왜?”


“지용석이 그들과 손을 잡은 모양입니다.”
“!!!”
차현태는 놀란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비서실장이 사라졌을 때도, 아직은 청와대 안에서 그들과 내통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 첫 내통자의 이름이 차현태에게 들린 것이었다.
차현태는 천천히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있은 후, 곧 서지호를 보았다.
“설 실장과 태정민, 강 검사가 지용석팀장에 대해 알고 있는가?”
차현태는 서지호를 보며 물었다.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지용석이 말하길, 세 사람이 이미 죽었든지, 아니면 죽을 고비를 겪고 있는
것이기에 연락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쾅!’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는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이런 모습은 진정 처음이었으며,
새벽이지만 때마침 잠에서 깨 차현태를 보고자 한 지현을 데리고 차현태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두
사람에게 차현태의 격한 행동이 보이면서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은주이모. 아저씨가 왜 저래?”


지현이 차현태를 본 후, 은주에게 물었다. 은주는 그 순간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이내 진정한 듯
정신을 차린 후, 지현을 보았다.
“원래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힘들어, 하나하나 신경 쓸 일이 많거든. 아마도
대통령아저씨가 무언가 일이 잘 되지않아 저러실거야.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그만 돌아가자.”
은주는 지현이 대통령의 행동으로 인하여 자칫 불안해 할 것을 우려하여 말을 돌려 해주었고, 곧 시선을
돌려 그의 행동을 생각하였다.
차현태와 서지호가 동시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금 현재로써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이창민대사에 관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격한 행동들로 미루어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은주였다.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며, 국정원장이 잠에 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서지호에게 명령을
하달하였고, 서지호는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무슨 일인가?”
하지만 차현태의 생각과는 달리, 국정원장은 잠에 들어있지 않았다. 서지호의 전화가 수신음이 채 한
번이 들리기도 전에 국정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서지호는 곧바로 차현태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이른 새벽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직 잠에 들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차현태의 말에 국정원장이 답을 주었고, 곧 차현태는 지금의 상황을 그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주었다.

“정말입니까? 설 실장이…….”
국정원장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비록 눈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 또 한 계속하여 전화를
걸고 있어도, 설장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던 차, 서지호에게
연락이온 것이며, 차현태가 현 상황에 대해 일어날 수도 있는 경우를 말해주었다.
“일단. 국정원에서 믿을 수 있는 인원들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차현태와의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가만히 있었고, 이내 전화를 다시 들었다.
“지금 즉시. 설장호 실장을 지원할 것이니 대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게.”
그는 짧게 한 마디를 한 뒤, 전화를 끊었고, 다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 초점 없는 눈빛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우리 쪽에서 더 보낼 사람이 있습니까?”


한 편, 차현태도 지금의 상황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서지호에게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을 물었다.
“죄송합니다. 현재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없습니다. 경호실 인원도 현재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두고 있습니다.”
차현태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뭔가 확실하게 밀어 붙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럴 만한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에 협조를 요청하겠습니다.”
곧 서지호가 그에게 말하였고, 전화기를 드려는 순간 차현태가 그를 향해 말없이 손을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
“생각을…….말입니까?”
서지호는 그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함께 지원하고 움직였던 검찰과 경찰에게 지원을
요청한다는 말에 생각을 더 한다고 하니,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용석팀장…….그의 말을 종합해서 생각을 하면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네.”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도 지용석의 말을 떠 올려보았다.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지용석은 경호실 사람이네. 그리고 우리 경호실 사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니, 그가 홀로 설 실장이나,
태정민을 상대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렇다면…….”
“외부의 힘이 더 추가 돼야 하는 것인데, 추가된 인원은 아마도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일
것이네. 하찮은 동네 양아치들을 데리고 설 실장을 상대하려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생각을 해보아야 할 판이었다. 지용석이 설장호와 태정민을 상대하려면
차현태의 말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건달들을 데리고 설장호를 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가장 유력한 조직이라 함은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군인들일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은 그리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찰도 그리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남는 조직. 많은 인원이 있으며,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또 강한 사람들이 있고,
비교적 자유롭게 어디론가 드나들 수 있는 조직. 바로 경찰이었다.

“설마…….청장이?”
서지호는 말을 흐리며 그에게 묻는 어투로 말하였고, 차현태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과 일단
서지호의 생각이 일치함을 알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비단 두 사람 뿐만은 아니었다. 바로 설장호도 현재 청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0012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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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실 것입니까? 만에 하나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검찰입니다.
그렇다고 검찰에 속한 형사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서지호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만에 하나 청장이 그들과 손잡았다면 청장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경찰들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의 명령대로 움직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설장호를 잡도록 명령을 내렸다면, 그 명령대로 형사와 경찰들은 설장호를 잡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대체 뭐야!”
한 편. 태정민과 추선우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하려던 산책로 부근에서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
총알이 순식간에 발사되었고, 그 순간 경찰특공대 인원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의해 지휘를 하였던 사내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고, 곧 산책로 더
아랫부분에서 몇 사내들이 우르르 올라서고 있었다.

“동작 그만! 움직이면 머리통 날아간다!”


곧 귀에 익숙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태정민은 그제야 잔뜩 긴장하고 있던 표정을 풀며, 손에
겨우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추선우도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 추선우의 눈에 보인 인물이
바로 박태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박태식은 뿌리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서 설장호에 의해 압송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버젓이
나와 있으니, 추선우가 반가울리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웃었다. 그는 설장호의 계획은 알지 못하였지만, 자신이 믿고 의지한 형님 같은
박태식을 자신만은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띠리리리‘
박태식은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올라서고 있었고, 곧 산책로 윗부분에서는 설장호와 강서진이 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며 박태식은 더욱 더 환하게 웃었다.
“여보세요?”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지호였다.
“안녕하십니까? 저 박태식입니다.”
“!!!”
박태식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이유는 박태식도 경찰 쪽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박형사님이 왜 나에게…….”
“마땅히 전화해서 지금의 상황을 알려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말입니다.”
서지호는 말을 흐리며 그에게 물었고, 박태식은 서지호의 생각과는 달리 밝은 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남 펜션. 그리고 벌레 같은 새끼들 말입니다.”
“!!!”
서지호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 때까지도 서지호는 박태식이 경찰 쪽의 명령을 수행하는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벌레 같은 새끼라는 격한 말에 그 인물들이 설장호와 태정민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박태식은 당연히 서지호도 자신을 믿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편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나?”
곧 설장호가 태정민과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통화중인 박태식을 보았다.
박태식은 그를 향해 고개 숙인 뒤, 다시 통화를 이어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태정민을 옮겨야겠군. 추선우. 자네는 어떤가?”
“전…….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경찰이…….”
“그 일에 대해서는 일단 이곳을 벗어난 후에 알려주겠다. 서둘러 벗어난다.”
설장호는 추선우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채, 태정민을 부축하였고, 곧 그 모습을 본 박태식이 함께 온
형사들에게 손짓하여 태정민을 부축토록 하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정겨운 목소리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태식은 설장호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자, 서지호에게 말했고, 그 순간에도 서지호는 두 눈을 바르르
떨며 차현태를 보고 있었다.
“지현은 괜찮은가?”
“!!!”
설장호가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지현에 대해 안부를 묻자, 서지호가 또 다시 놀란 눈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괘…….괜찮으십니까?”
서지호는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괜찮네. 박형사가 제 때 와주었어.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모두가 안전하게 되었네. 그보다 지용석이…
….”
“그 놈과 통화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말할 필요 없겠군. 일단 그에 대한 방편은 자네가 생각해보게. 난…….잡아야 할 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니, 그 놈들을 잡아 족쳐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와 통화를 하는 동안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저기. 실장님.”
통화를 막 끊으려던 찰라, 서지호가 설장호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지금 상황.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지용석이 그 놈들과 손을 잡고, 또 경찰쪽
인물이 의심되는데, 그 와중에 박형사가 실장님을 돕고…….참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긴 설명은 필요 없네.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자네가 생각하는 것. 그것이 모두 진실이네. 그리고
박태식. 나와 함께 15 년은 넘은 놈이네, 내가 이놈을 모를 리 없지. 그러니 박형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지용석을 잡아 족칠 방안을 마련하게, 그리고 대통령님께는 전달을 잘 해주게.”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서지호의 표정이 풀리고 있었다. 이에 차현태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그의 표정변화에 대해 궁금하였던 차현태가 물었다.
“다행히. 성남 펜션 쪽에서는 모두가 살아서 그 곳을 빠져나온 모양입니다.”
“그래? 그것이 정말인가?”
“네. 조금 전 설 실장과 통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의심하였던 경찰쪽 인물 중. 박태식이란
형사가 있는데, 그 형사가 모두를 구했다고 합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박태식을 떠 올렸다. 처음 이 팀이 구성될 때, 경찰 쪽을 대표해서
구성원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자세한 외모는 기억에 없지만, 만약 그가 경찰 쪽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설장호 실장을 돕는 것이라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그를 따르는 형사들도 있을 것이니. 현장에서 보다 빠르게 설 실장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 한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경찰 쪽은 모두가 청장의 명령하에 설장호와 그
일행을 잡도록 명령이 하달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태식처럼 설장호를 돕는 인물과 함께,
또 청장의 명령을 듣지 않고, 경찰의 정도를 걷고 있는 형사들도 있을 것이었다.
그 모두를 다 의심하지 못하고, 청장과 한 손을 잡은 이들을 따로 색출해야니, 그것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지용석이 문제입니다. 그가 왜 그들과 손을 잡았으며, 언제부터였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지금 당장, 지용석 팀장의 정보를 가져오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네.”
차현태는 무턱대로 지용석을 그들과 연관지어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 그를 잘 알고 있는
차현태였기에, 그가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먼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서둘러 내려가셔야겠습니다. 이쪽 경찰특공대가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이 저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또


다른 인원이 투입될 것입니다.”
한 편.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던 속도를 높이고자 박태식이 말했고, 추선우는 그를 향해 노려보았다.
펜션에서 그는 뿌리와 손을 잡은 사람으로 판명되어 설장호의 명령으로 압송되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모두를 돕고 있고, 그 누구도 그의 행동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니 뒤통수가 따가워서 원…….”


박태식은 추선우의 눈빛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당시의 일을 설명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된 일이냐면 말이야…….”
결국 박태식이 자신의 따가운 뒤통수를 보호하고자 추선우에게 그 때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네? 그럼 처음부터 실장님과 다 계획하신 것입니까?”


추선우는 그의 말을 다 들은 후,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비단 추선우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설장호가 강서진에게 한 말처럼, 자신과 박태식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왜? 두 분만 그리 하신 것입니까?”
추선우가 다시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제대로 수면위로 끌어내려면 그에 따르는 미끼가 필요했던 것이지.”
“마음에 걸리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굽니까?”
박태식의 말에 힘없이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가던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경찰청장.”
“네! 청창님요?”
설장호의 답에 추선우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태정민도 놀랐지만 그는 놀라 소리칠 기운조차 없었다.
“그래서 경찰 쪽인 박형사님과만…….”
“그래. 여러모로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사람들만이도 그 뜻을 서로 공유하려 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인 순간이었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추선우가 박태식을 보며 그제야 매섭던 눈빛을 풀며 말을 흐렸고, 곧 설장호가 더 말을 이어하였다.
그러자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태정민이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은 강하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용석. 그가 우리 쪽에 숨어들은 뿌리쪽 사람이었다.”
“!!!”
이번엔 태정민도 놀란 눈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같은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기에 더욱 더 놀란
것이었다.
“사…….실입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태정민을 보았다. 그 누구도 조금 전, 설장호의 말에 놀란 사람이
그란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조금 전. 그 놈 때문에 목 내놓고 올 뻔했어.”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강서진이 하였다. 그는 지용석과 단 둘이서 펜션 안에 있었고, 그 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몸에는 소름이 돋는 듯, 온 몸이 오싹해지고 있었다.

“지용석이 왜…….그리고 그 놈은 삼성역에서 나를 도와 병따개를 상대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 놈이 보이지 않군. 이미 이쪽의 계획을 알고 있는 그들이 병따개란 놈에게 이 기회를
저버리게 하지 않을 것인데 말이야.”
태정민의 말을 듣던 중, 병따개에 대해 설장호가 물었다. 모든 계획을 다 세우고, 지용석은 물론, 뿌리와
손잡은 고위직 인물로 인하여 설장호의 모든 계획이 다 그들에게 넘어갔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 놈, 저 뒤쪽 어딘가에서 죽어 있을 것입니다.”
“뭐?”
그의 답에 강서진이 놀라 물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 놈…….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제 손에 총이
들려있기에 그냥 당겼습니다.”
태정민은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강서진이 그를 보고 있을 때, 설장호가 태정민의 옆으로
섰다.

0012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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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펜션에 도착했을 때, 너희들에게 살인면허를 줬다. 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는 그 놈들을 모조리 죽여.”
설장호의 말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펜션에 도착했을 때를 기억하였다. 죽지 말고 죽이라는 말을
설장호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태정민은 병따개를 죽인 것이었다.
“그리고 석강수도 있었습니다.”
“!!!”
설장호는 병따개에 대한 말만 듣고, 서둘러 이동하려 하였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추선우의 말에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석강수라 했나?”
“네. 석강수가 확실하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놈이었습니다.”
설장호의 질문에 추선우가 답하였고, 다시 태정민이 확답을 주었다. 그러자 설장호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국정원을 떠난 후, 홀로 킬러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그 어떤 누구와도 함께 일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였다.
하지만 그가. 뿌리와 손잡고 움직인다는 확정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설장호는 떨리는 눈동자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석강수라는 괴물에 뿌리라는 권력이
더해지면, 그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놀랐습니다. 저기 추선우…….설마 저 친구가 그 석강수라는 놈과 비등하게…….아니지 오히려


그 놈을 더 몰아붙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
이 또 한 놀랄 말이었다. 두 사람의 격전을 모두 보았던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는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믿을 수 없는 그의 말이었다. 그 누구보다 석강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설장호였다. 그가 민간인
추선우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목격자의 증언이었다. 태정민이 본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설장호는 다시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이 한 여자아이를 경호하겠다고 나섰을
때까지만해도 살해위협에 금방 떨어져 나갈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그는 지현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잡기 힘들다고
여겼던 인물마저도 그가 잡으려 하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곧 박태식의 도움으로 산책로를 무사히 내려온 후, 미리 준비되어 있던 승합차를 이용하여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때까지도 펜션안에서는 백태가 여유롭게 음악을 듣고 있었고, 지용석은 펜션 앞마당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주변을 보고 있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음악을 듣다, 음악이 끊기며 들려오는 벨소리에 잠시 인상을 구긴 후, 전화를 받았다.
-산책로 끝까지 내려왔는데, 그들은 없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들려오는 목소리만 듣고 난 뒤, 그대로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보며, 펜션 앞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지용석을 보았다.
“지지리 복도 없는 새끼…….”
그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우선 병원으로 가서 태팀장을…….”


“아니. 우리 집으로 간다.”
“네?”
한 편. 성남을 벗어난 후, 상태가 말이 아닌 태정민의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려던 말을 하였지만,
강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장호가 말하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태정민의 치료를 하지 않아서 놀란 것이 아니라, 그 아무것도 없고 냄새나는 집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것에
놀란 눈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로 인하여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만약 우리의 예상대로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는 검찰과 외교부까지 손을 뻗어 함께 하자는 말을 할 것이다.”
그가 주변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만에 하나 청장이 마음먹고 이들을 잡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면,
지금 뿌리 조직의 최고 자리에 앉아 있는 네 명의 회장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네 사람을 잡아 낼
것이었다.
설장호는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 맛을 제대로 보았다면 필시 검찰과 외교부, 국정원까지
손을 뻗겠지만, 이미 국정원은 그의 손을 뿌리친 듯 보였다.
만약 검찰과 외교부로 손을 뻗어, 그 손을 만에 하나 그들이 잡는다면, 일은 더욱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뿌리조직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었다. 아니. 그런 모습조차도
그들이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용석과 같이, 그들의 모든 움직임이 최근 들어서 변화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이들은 최근에 뿌리에 매수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또 한, 최기수가 지난 날, 한 말처럼 현재 나라의 각 부처를 책임지는 수장들 중에는 자신들의 식구가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돕는 수장이 있다는 뜻이니, 이 말만으로 보아도,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그 기간은 무척 짧은 기간일 것이다.
“모두 철수한다.”
백태가 펜션 안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리고 펜션 일대에 있던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철수합니까?”
한 사내가 물었다.
“좋은 기회였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일단 모두 철수한다. 그리고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빠르게 움직였고, 또 다시 성남 펜션에서는 시체들이 즐비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떤가? 그동안 정붙이고 지내던 놈들과 이리 헤어지니…….느낌이 새롭지 않은가?”
백태는 지용석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기회를 줘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모두 그 쪽 책임입니다. 난…….이 기회를 만들고자 내 사람들과
정을 끊었고, 당신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단 번에 끝내야 내가 당신들과 손을 잡은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 아닙니까?”
지용석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백태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그쪽에서 백날을 일해 봐야, 이쪽에서 하루를 일한 것보다 보수가 적지 않나. 그러니 이참에
청와대경호원이 아닌, 우리 쪽 경호원이 되는 것은 어떤가?”
백태의 제안에 지용석의 눈빛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어차피 이제는 청와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다고 이런 일을 계속 이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설장호와 태정민을 잡을 계획만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한 보수만을 챙긴 뒤, 숨어 지내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돈은 받겠지만, 설장호와 태정민이 살아있으니, 자신을 찾아낼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실장과 태정민 팀장이 죽을 때까지만입니다.”
“그래. 어차피 우리도 그 후에는 너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라.”
백태는 그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거린 후, 자신이 먼저 대기중인 승용차에 탑승하였고, 곧 그 차량은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날은 밝았다. 아침이 되면서 새벽에 보이지 않던 수많은 시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지용석은 눈을 감았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이들도 필시 있을 것이었다.

‘띠리리리’
지용석도 그곳을 벗어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설장호…….”
설장호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네. 실장님.”
전화를 받았다.
“지용석. 참 어려운 선택을 한 모양이구나. 언제부터였나?”
설장호는 일행과 함께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을 쉬게 한 뒤, 그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삼성역…….그 후에 백태란 놈이 다가섰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뿌리와 손을 잡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 순간을 떠 올렸다.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 백태와 병따개. 그리고 자신과 추선우, 태정민과 지용석. 모두가 서로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석강수와 최광민도 있었다. 그 중에서 백태가 뿌리조직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 자신이 손을 뻗으면 그 손을 잡을 사람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선택한 사람이 지용석이었다.
설장호는 애초에 말이 먹히지 않은 인물이니, 손을 내밀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태정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부하대원들에게 손을 뻗을 정도로 급하지는 않았다. 팀장 정도의 직급이 있으니, 청와대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도 있을 것이며, 또 한 그 정도의 힘도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그에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강하고, 핵심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민간인이었다. 즉. 자신 외에 동원할 힘이
없으니, 손을 뻗어봐야 이익 볼 것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집안이 어렵다고 그런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그 순간부터 넌…….다시는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설장호는 지용석에게 끝까지 화를 내지 않았고, 마치 동생을 타이르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몸…….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지용석은 그의 말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지용석이 뭐랍니까?”
태정민이 아픈 몸을 가누며 겨우 물었다.
“몸조심하라는군.”
“뭐에요? 지금 당장 그 놈을 잡아와서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그만 쉬어라. 밤새 도망 다니고 긴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태정민이 죽을 맛이니, 죽지 않게 간호 좀
해주고…….추선우.”
통화내용을 말하자, 강서진이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 뒤, 추선우를 불렀다.
“네.”
“잠시 나 좀 보자.”
설장호가 추선우를 데리고 방안을 나섰다. 강서진과 박태식은 두 사람을 잠시 본 뒤, 다시 반시체가 되어
있는 태정민을 보았다.

“어째 같이 싸웠는데, 저 놈은 저리 멀쩡하고, 매번 너만 이리 터져?”


태정민을 보며 박태식이 말했다. 그러자 태정민은 웃을 힘도 없는 듯, 겨우 입 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으로 그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피곤하지 않아?”
거실로 나온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석강수와 일전을 벌인것도 대단한데, 벌써 며칠 째야? 오늘은 쉬어라. 그리고
내일도 쉬어, 당분간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다.”
“네? 그럼 그들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것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이지. 일단
청장이 그들과 손잡은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물증이 없다. 그것을 증명한 증거를 가져야 하지만, 없어.”
그저 생각뿐이었다.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확신은 없다. 그냥 심증만 있을 뿐이다.

0012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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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이 만약 그들과 움직인다면, 여러모로 우리는 맹수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토끼에 불과하다. 경찰과
검찰, 외교부가 나서면 그 어떤 죄 없는 인간도 죄가 만들어진다. 뭐…….다행히 국정원장이 바보가
아니라 일이 더 꼬이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설장호는 지금의 긴박한 상황을 농담도 함께 섞어가며 말하고 있었다.
“국정원장님. 그 분은 믿을 만 한 사람입니까?”
“믿지 않아. 그런데 지금은 믿어야해.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만약…….그 사람마저 뿌리에
매수되었다면, 우린 정말 승산 없는 싸움을 한다.”
추선우는 설장호를 보았다. 그를 알고 난 후,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승산 없는 싸움. 지금까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비서였던


최광민이 그들과 손잡았을 때도, 또 그 전에 연화장은 물론, 여러 곳에서의 배신들을 경험할 때도,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도 지친 듯 보였다.

“아직. 누가 이길지는 모릅니다. 비록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모르지만, 하나하나
수면위로 꺼 집어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곧 그 놈들의 실체도 모조리 다 꺼낼 것입니다.”
추선우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도 그를 보았다. 민간인…….그냥 민간인이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나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 같은 사람을 채용하지 않은 수많은 경호업체들이 모두다 멍청이들이군. 다 문 닫아야 해.”
“네. 맞습니다. 청와대도 문 닫아야 합니다.”
“뭐?”
“하하하.”
어려운 상황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었고,
추선우도 그 농담을 받아주었다.
청와대…….추선우는 그곳에도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
이력서를 제출하였지만, 아예 열람마저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이 모든 것에 중심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어버렸다.
“일단 쉬어라. 조금 전, 한 말처럼 내일은 일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저들의 동태만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휴식이다. 지금 상황에 쉬어도 될지 모르지만 휴식이다. 추선우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이틀…….아니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추선우의 행동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자신도 다른 방으로 들어섰다.

“은주이모, 그런데 삼촌은 왜 이리 안와? 혹시 나 버리고…….”


“아니요. 삼촌은 지금 너무 바빠서 그래, 그리고 바쁜 삼촌이 돌아오면 지현이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삼촌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린 여기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그렇게 지내고 있자.”
한 편. 청와대에서는 지현이 새벽에 깬 후, 잠에 들지 않은 채, 은주에게 물었다.
지현은 새벽에 차현태의 격한 행동을 본 후, 추선우가 더욱 더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이모. 나 아저씨 좀 만나고 올게.”
지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차현태를 만나기 위하여 문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지현아. 지금은…….”
‘스르르르’
지현이 문을 열 때, 은주가 지현을 잡으려 하였다. 그리고 그 때 문이 열리며, 앞에서는 차현태가 서서
지현을 내려 보고 있었다.
“지현이가 일찍 일어났구나.”
차현태는 몸을 낮춘 후, 지현을 보며 인사했다.
“아저씨. 우리 삼촌은 언제와요?”
“삼촌?”
지현의 말에 차현태는 누구를 삼촌이라 부르는지 잊은 듯 했지만, 곧 은주가 입모양으로 추선우를
말해주었다.
“아. 삼촌은 곧 올 거야. 지금은 일이 바빠서 그래. 일 끝나면 바로 온다고 했으니, 우리 조금만 더
기다리자.”
차현태는 지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고, 지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지현아. 이모하고 산책할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여기오고 난 뒤에 밖을 한 번도 나가지 못했네.”
그녀가 울려 할 때, 은주가 말을 꺼냈고, 곧 서지호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긍정적인 표정을 지어주었다.

“제가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대통령인 차현태를 경호하는 것이 아니라, 은주와 지현을 경호하고자 자처한 것이었다.
“그래. 자네가 지켜주게. 비록 청와대 안에서의 나들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어떤 쪽에서도 눈을 뗄
수 없으니 자네가 신경 좀 써 주게.”
“네. 대통령님.”
은주는 지현을 데리고 서지호와 함께 청와대 건물을 나섰다.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외부를 나와 보는
듯 하였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 구름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은주는 괜한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이모. 괜찮아?”
지현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비록 키가 작아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지현은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이모는 괜찮아. 그러니 지현이도 삼촌이 올 때까지 참는 거야 알았지?”
“응. 이모”
한 결 마음이 편해진 듯 하였다. 이틀 전, 밤에 부랴부랴 청와대로 올 때까지만도 마음은 불안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일을 경험한 후, 처음으로 마음이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평소에 느끼던 그런 불안하며,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없었다. 맑은 하늘처럼,
그녀의 마음속도 맑아진 듯 하였다.
차현태는 두 여인의 보았다. 부모를 잃었지만, 슬픔에 잠겨있지 않은 꼬마아이, 그리고 민간인지만,
기꺼이 그 아이를 위하여 곁에 있어주는 여인.
차현태는 추선우와 더불어 은주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일어나서 밥 좀 먹어 봐.”


같은 시각. 설장호의 집에서는 박태식이 컵라면을 들고 들어서며 말했고, 한 쪽 구석으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이 들었던 강서진이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우리 강 검사님은 어째 세면도 하지 않고 주무시고 일어나셨는데도 천사 같습니다.”
“농담을 진담처럼 하면 어찌합니까. 형님.”
“뭐야!”
박태식이 강서진의 얼굴을 보며 접대성 멘트를 하는 순간, 온 몸이 찌푸덩하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태정민이 겨우 눈을 뜨며 말하자, 곧바로 강서진이 다가서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환자다. 그러다 목 부러지면 모두 강 검사 책임이야.”
곧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며 그 광경을 목격한 뒤 말하자, 강서진은 태정민을 노려본 후, 다시 박태식을
보고 미소를 지은 뒤, 그가 들고 온 컵라면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추선우는 어디 있습니까?”
태정민이 몸을 일으키며 방 안을 보았지만, 추선우가 보이지 않아 물었다.
“아침 일찍 나갔다.”
“네!? 설마 떠난 것입니까?”
설장호의 답에 모두가 놀라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럴 놈이라면 진작 떠났겠지. 머리가 답답하다고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 곧 돌아올 거야.”
"지금 상황에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만에 하나 그들이 추선우를…….“
“그건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 일단 먹어. 박형사가 아침 일찍 나가서 사온 것이니 든든히 먹어, 그리고
오늘도 집안에서 푹 쉰다.”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설장호는 태연한 척 컵라면을 들어 한 입 크게 삼키고 있었다.
추선우는 설장호의 집 앞의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이런 일을 경험한 이 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이는 은주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였다. 비록 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안함.
지금 추선우도 딱 그런 느낌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설장호가 준 전화기는 이미 어딘가에서 박살이 났는지 없었고,
자신의 손에는 설장호의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띠리리리’
청와대 뒤쪽, 한 적한 곳에서 모처럼 햇볕을 맞으며 지현과 은주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저. 추선우입니다.”
“네?”
서지호는 설장호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잠시 당황한 듯 하였다.
“무슨…….일로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까? 그리고 이건 실장님 전화기…….”
“실장님께서 빌려주셨습니다. 곁에…….은주 있습니까?”
서지호는 그제야 추선우가 직접 전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민간인 은주는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설장호도 지현만을 생각하였지만, 은주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추선우, 그는 다른 사람보다 은주를 더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잠시만…….기다리십시오.”
서지호는 미안하였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현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두 민간인에 대해서 너무나
소원했던 것이었다.
“추선우씨…….전화입니다.”
“!!!”
서지호는 두 여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두 여인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놀란 눈으로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빠르게 달려와 서로 전화기를 잡으려 하였다.
“그래. 지현이 먼저…….”
은주는 지현에게 양보하였다. 그리고 서지호를 보았다. 27 살의 여인이 마치 군대 간 애인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달려오는 것이 순진해 보였고, 또 그 순간에도 지현이 먼저 떠올라 양보한 것을 알았다.
은주는 지현이 빨리 통화하고,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으면 하였다.

“삼촌. 언제와?”
“지현이 건강하지? 삼촌 조금 있으면 갈 거야. 그러니 은주이모 말 잘 듣고, 꼭 은주이모와 붙어있어.
알았지?”
“응. 삼촌. 그러니까 빨리 와.”
“응. 그래. 그리고 은주 이모 좀 바꿔줄래.”
지현은 추선우와 통화 중,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리고 은주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며, 자신도 모르게
은주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하였다.
은주는 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울음이 터져버린 지현을 달래주어야 하기에 추선우와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미안해 선우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잘 지내고 있는 거면 길게 통화하지말자, 그러니 건강하게 빨리
돌아와.”
은주는 지현을 보며 선우에게 자신이 할 말을 모두 하였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전화기를 끊었고, 곧바로
서지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은주는 지현을 안고 한 쪽에 자리한 벤치에 앉았다. 따뜻한 햇볕을 이불삼아 지현을 안은 채, 은주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서지호는 은주를 보며 잠시 그대로 있었다. 참 강한 여인…….은주는 그런 여인이라 여겨졌다.

통화를 끊은 후, 추선우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은주와 길게 통화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듯 하였다.
추선우는 놀이터에서 일어났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무언가에 의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은 이런 세계를 알고 있을까? 하긴…….나도 이런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왔으니…….”
추선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 지금 그런 세계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민간인으로 살 때는 단 한 번도 상상을 하지 못했던 그런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그였다.

0012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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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 아침 뉴스 봤냐? 북한 공작원이 넘어온 것 아니야? 어떻게 펜션 앞에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다
죽을 수 있어?”
“!!!”
놀이터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 순간 지나가는 두 사내의 대화에 추선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게. 진짜 간첩이 넘어온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하였다. 북한 공작원이 아니고서야 그런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길 것이었다.

추선우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들을 지나치며 설장호의 집으로 향하였다.

“어딜 다녀와. 어서 밥 먹어.”


날을 꼬박 새고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한 상태에서 먹는 밥이라 제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허기진 배는 달래야 하니 꾸역꾸역 다 먹고 있었고, 곧 추선우가 들어오자 태정민이 가장 먼저 말했다.

“그 보다. 뉴스에 펜션관련 보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컵라면을 권하던 순간 태정민의 손이 떨렸고, 곧 한쪽으로 앉아 있는 설장호를 보았다.
“직접…….보았나?”
“아닙니다. 놀이터 앞을 지나쳐가던 두 남자가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뉴스를 보았다고 하였으니,
아마 언론 보도가 된 모양입니다.”
추선우가 그의 물음에 답하였다.
“이제…….그들도 모든 것을 오픈하고 바로 달려들겠다…….이거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장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박태식이 물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 북정마을은 물론, 연화장에서의 그 큰일도 단 한 번의 언론 보도가 없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언론을 막아 세웠던 것이지. 하지만 오늘 새벽에 있었던 성남 펜션…….그대로 방송을
탔다면,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설장호의 말에도 신빙성은 있었다.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사건은 단 한 번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이는 검찰과 경찰이 모두 철저하게 막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어제 경찰청장을 의심한 후, 곧바로 언론에 공개되는 일이 터지면서, 경찰청장은 물론,
검찰총장도 그들의 손에 매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일단 조금 더 알아보자. 강 검사는 검찰 쪽. 그리고 박태식은…….아니다 일단 넌 빠져있는다. 만에
하나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자네에게 필시 연락이 먼저 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후, 강서진은 다시 검찰총장에게 연락하였다. 어제 새벽에 연락했을 당시만도 총장은 그
어떤 의문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강서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 줄 것임을 말하였다.

“어딘가? 지금 난리가 났네. 경찰 쪽에서 자네를 살인혐의로 고발하고, 검찰 쪽에서 검사가


배정되었어.”
“네!?
그녀의 전화를 받자마자, 총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인사도 건너뛰며 말했고, 스피커폰으로 되어 있던
상황에 들린 그의 목소리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강서진을 보았다.
“언제…….접수된 내용입니까?”
강서진은 의외로 담담하게 물었다.
“신고접수 시간은 새벽 4 시로 되어있네. 자네가 경찰을 죽였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부터, 일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다가, 결국 오늘 아침 업무 시작과 함께 검찰에 정식으로 신고가 들어왔네.”
총장은 사건 내막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저…….혼자입니까?”
“태정민팀장과 설장호 실장도 마찬가지네, 모두 경찰에서 오늘 아침 검찰로 사건 접수가 되었네.
아무래도…….경찰 쪽에서 그 뿌리에 가담한…….”
“총장님.”
강서진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 그를 불렀다.
“말해보게.”
“새벽…….성남 펜션에서 경찰특공대가 저희쪽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뭐야? 그게 사실인가?”
강서진의 말에 총장은 처음 듣는 보고인 냥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리고 펜션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그에게 소상하게 알렸다. 검찰총장은 그녀의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중간 중간 놀라는 말을 내 뱉었다.
“혹여…….총장님께는 경찰쪽 연락이 없었습니까?”
“경찰쪽 연락이라니? 무슨 연락을 말하는 건가? 혹여 청장이 자네들을…….”
“아닙니다. 경찰특공대가 갑작스럽게 돌변한 것을 두고 괜한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강서진은 총장이 청장과 각별한 사이란 것을 잘 알기에 근 순간 곧바로 말을 돌려하였다.
“경찰특공대를 움직인 사람이라면 특공대장도 배제할 수 없네. 그리고 만약 그 무리의 수장을 탓하는
것이라면, 지난 연화장때 있었던 경찰, 국정원, 청와대의 모두를 탓해야 하는 것이네.”
총장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연화장에서는 검찰 쪽만 빼고 모두가 배신했던 때였다. 경찰, 국정원,
청와대 모두가 그 순간 돌변하였기에, 조금 전 강서진이 한 말을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면, 검찰을 빼고
모든 수장들이 다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흘렸을까요? 펜션에서의 일은 새벽녘에 어둠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울러 산책로를 진입하는
모든 길을 다 막고 있었으니, 일반인들이 왕래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라니…….”
태정민이 컵라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일반 시민이 목격하여 신고를 할 만한 여건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불꽃이 이리저리 발산되었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소음기를 장착한 후, 서로를
향해 발포하였기에, 소음으로 인하여 신고를 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퍼트린 듯합니다.”
박태식이 말했다.
“오늘은 아무생각없이 휴식을 취한다. 머리가 복잡해도 쉬어라.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오고 있다는 것과 같다.”
설장호는 방 한쪽으로 누우며 말했다. 태평스럽다고 말할 수도있지만, 지금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다. 자칫 그들을 잡을 기회가 다가왔을 때,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어렵게 찾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는 설장호를 보고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 휴식을 취할 정도로 느긋함을 누려도 되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 선 것이었다.

“저…….”
모두가 조용히 설장호를 보고 있을 때, 추선우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말해.”
설장호는 누운 채,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지현과 은주, 그리고 미희를 보고와도 되겠습니까?”
“지금 이 상황에 단독 행동은…….”
“보고와라.”
“실장님!”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이 반대의견을 내세웠지만, 설장호는 추선우의 부탁을 단번에 허락하였다.
“위험합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독으로…….”
“여기서 누구하나 그 사람들을 걱정해준 사람이 있는가? 있으며 말해보게. 우린 우리의 일을 위해서 뛰는
것이지만, 추선우는 아니다. 그는 민간인이야.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또 다른 민간인이 위험에 처했다.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
설장호의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현의 안전은 모두가 책임 질 것이었다. 하지만 은주와
미희는 설장호의 말처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이지만, 추선우의 친구다.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강서진이 말했다.
“검사님보다는 제가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박태식이 말했다.
“아니. 강 검사가 함께 움직여라. 박태식은 청장의 연락을 기다린다. 우리의 의심대로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라면 필시 자네를 이용하여 우리의 위치를 물을 것이다.”
“그건 강 검사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청장이 그들과 손잡았다면, 필시 총장님도 그들이 내민 손을
잡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검사님이라고…….”
“지금은 아니야. 지금 우리가 의심하는 사람은 청장이다. 총장은 아직이야, 그러니 강 검사가 움직여.”
박태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말을 더 이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저 말없이 추선우를 보고
있는 태정민이었다.
그는 청와대 소속이기에 함께 움직인다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가 몸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다.
함께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없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다가섰을 때, 오히려 추선우의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강서진이 움직이고, 모두는 휴식이다. 내가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절대 이 집에서 나서지 않는다.”
설장호는 이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누웠다.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따른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추선우가 일어섰고, 곧 강서진도 함께 일어섰다.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보며 그저 손만 흔들어 줄 뿐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집을 나선 후, 추선우가 강서진에게 물었다.
“난 괜찮아요. 그보다 미안하네요. 실장님의 말을 듣고나니 그동안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삼성역에서 본 미희씨도, 그리고 지현을 지키고 있는 은주씨도. 모두가 추선우씨의 친구인데
우린 너무…….”
“괜찮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이 선택한 일입니다. 미희는 스스로 뛰어든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일로
인하여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추선우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보이며 답하였다. 삼성역에서 일어난 일로 인하여, 미희에게는 강서진이 두
명의 경호원을 붙여두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강남서 형사들을 붙여놓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인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경찰을 붙여두었다면, 또 다시 그녀를 미끼로 추선우를 끌어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설장호의 집을 벗어나 미희가 있는 곳으로 먼저 향하였다. 미희는 대치동 일대 오피스텔에서


경호를 받으며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강서진의 집에 있었지만, 미희의 불편으로 인하여 자신의
오피스텔로 옮긴 것이었다.
두 사람은 미희가 있는 오피스텔 인근에 도착하였다.

“경호원이…….”
오피스텔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경호원들이 보이지 않아. 추선우가 불안한 듯 한 음성으로 말을 흐렸다.
“일단 앉아계세요. 내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추선우가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피스텔을 지키는 형사들은 강서진의 사람이었다. 그로인하여
추선우보다는 강서진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른 것이었다.
강서진은 오피스텔 앞으로 다가선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항시 미희가 있는 오피스텔 근처를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해 두었다.
하지만 그 인근 어디에도 형사들은 없었다.

추선우는 불길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찌…….된 일입니까?”
형사들이 없었다. 강서진은 형사들을 찾느라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지만, 어디에도 자신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0012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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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추선우가 오피스텔의 입구에 서서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은 불안한 듯 한 표정을 지은 채,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연락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전화를 걸려하자, 추선우가 그녀의 앞으로 서며 말했다.
“혹여…….그들도 뿌리와 연결이 된 사람들이라면, 아마 검사님의 연락을 받고 이곳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미희가 있는지만 보고 미희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강서진은 추선우의 말을 듣고,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의 말처럼 만약 그들이
강서진이나, 설장호가 자신들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 자칫 스스로 함정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주위를 한 번 더 두리번거린 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미희의 집 앞에 선 추선우는 초인종을 바로 누르지 않고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혹여 그들이…….”
“전화기 좀 빌려주십시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한시라도 급한 지금 상황에 전화하는 것보다 초인종을
누르고 그녀를 바로 데리고 벗어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초인종을 누르고…….”
“외부에 그들이 없다고 내부에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화기를 빌려달라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만약 초인종을 누른 후, 그들이 인터폰을
먼저 본다면 이 역시 그들의 계획에 넘어가는 순간이 되는 것이었다.
강서진은 그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었다. 추선우는 곧바로 미희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난 뒤, 문
앞에서 내부의 소리를 들으려 몸을 더 가까이 이동하였다.

“전화벨 소리는 들립니다.”


다행히 오피스텔 내부에서 미희의 전화기가 울고 있었다.
“여보세요?”
미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추선우는 잠시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전화를 걸었으며 말씀을 하세요.”
미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여전히 추선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뚜뚜뚜.’
두 번의 물음이 있은 후, 전화기는 끊어졌다. 그리고 추선우는 곧바로 다시 번호를 불렀다.

“누구세요? 전화를 하셨으며 말씀을 하세요.”


미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여전히 추선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고,
그의 행동을 강서진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뚜뚜뚜’
전화기는 또 끊어졌다. 그리고 추선우는 다시 전화를 하였다.

“너 뭐하는 새끼야! 계속 장난전화하면 목이 날아간다!”


“!!!”
세 번째 전화를 받은 사람은 미희가 아니었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내부에 있습니다.”
이번에 그녀가 아닌 추선우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이들이 내부에서 미희를 경호하고자,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섰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명령은 필시 외부에서 경호하도록 하였으며, 무엇보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외간 남자 두 명이 들어앉아서
경호를 부탁할 미희가 아니라는 것은 추선우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어떡하지?”
강서진이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명령내린 사람들도 이미 그들과 한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와 강서진의 뇌리에는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저들은…….검찰 쪽 형사야. 내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들인데…….만약 저들도 뿌리와 연관이 있다면…
….”
결론이 바로 나오고 있었다. 검찰 쪽 형사들마저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이는 필시 검찰에도 그 조직과
연관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았다.
“일단 안에 있는 놈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추선우가 말하였고, 그녀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들이 먼저 다가설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 외부로 나오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문 옆의 벽으로 기대어 계십시오.”
추선우는 강서진에게 말한 뒤, 문을 향해 보았다.

‘딩동.’
무슨 생각이 있는지, 추선우는 곧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미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선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후,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그는 인터폰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몸을 숨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딩동 딩동.’
추선우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엔 미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친구입니다.”
미희는 자신과 함께 있는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라는 말에 두 사내는 인터폰을 보았다.
추선우가 생각한 것처럼, 강서진이 경호를 부탁했던 두 형사는 그녀의 집 안에 들어서 있었다.
“그냥 돌려보내. 지금 상황에 친구는 무슨 놈의 친구야.”
미희의 말을 들은 형사들은 거친 말을 내 뱉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문 앞에 바로 서 있는 추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추선우는 두 주먹을 더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입니다. 그냥 돌려보내더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희는 사내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상관없어 그냥 돌려보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나 보군요. 만에 하나 제가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저 친구가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누가 더 힘들어질까요?”
미희는 한 형사의 말에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두 형사가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은 후, 미희를
다시 보았다.

“1 분이다. 1 분 이내에 돌려보내.”


“네.”
한 형사가 말했고, 미희는 곧 문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여전히 벽에 몸을 붙이고 있었고, 추선우는 문 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참으로 다행이었다. 현재 미희의 경호를 맡긴 두 형사가 추선우의 얼굴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문 앞에 서서 문으로 다가서고 있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 뒤로 물러나며 문
앞에 섰다.
미희는 크게 한 호흡을 한 뒤,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서서히 열었고, 그 순간에 두 형사는 방안에서 총을
들고 문을 향해 겨냥하고 있었다.

‘스르르르.’
문이 열리고, 문 앞에는 추선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연 미희의 눈동자에는 잔뜩 눈물이 고여
있었다.
추선우는 그녀의 눈물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안으로 달려 들어서지 않았다. 미희를 보고만
있었고, 미희도 추선우를 보고만 있었다.

“잘…….지냈어?”
추선우는 그녀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미희도 아주 짧게 답하였고, 그 순간 한 방울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추선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젠장! 잡아!”
미희가 문 앞에서 추선우의 손에 의해 갑자기 끌려 나가자, 안에 있던 형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미희는 그 순간 곧바로 강서진에게 인도되었고, 강서진은 그녀를 감싸며 빠르게 오피스텔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문 옆의 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고, 두 사람과 같이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퍽!’
곧바로 두 형사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추선우의 일격에 한 명이 먼저 문 앞에서 쓰러지고, 나머지 한
명은 권총을 들어 추선우를 겨냥하려 하였다.
‘퍽! 퍽퍽퍽!’
하지만 그의 권총보다 추선우의 주먹이 더 빨랐다. 권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기 전, 추선우의 주먹은
연이어 그의 면상을 가격하였으며, 먼저 쓰러진 형사보다 더 처참하게 당한 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
쓰러졌다.
추선우는 쓰러진 두 형사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문 앞에 쓰러진 형사를 끌고
안으로 들어선 뒤, 두 형사를 방안에 나란히 눕혔다.

“선우는요! 선우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합니다.”


곧바로 오피스텔을 나온 미희는 강서진의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소리쳤다.
“기다리세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아니요. 내가…….”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추선우씨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곁으로 다시 움직이면…….추선우씨가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미희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함께 나서려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강서진을 보고만
있었다.
“문을 잠그고, 몸을 낮추고 있으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강서진은 그녀에게 몇 당부를 한 뒤, 오피스텔로 향해 움직였다.
미희는 심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였지만, 그녀의 말대로 추선우를 향해 다가서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강서진은 조심스럽게 오피스텔로 다시 올랐고, 곧 미희가 있는 오피스텔 문 앞에 섰다.

“추선우씨.”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이미 추선우가 그들을 제압했다는 것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오피스텔의 문이 열리며 추선우가 서 있었다.

“뭐해요? 어서 벗어나야…….”
“기다리겠습니다.”
“네? 누구를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그녀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그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그들. 그들이 저 두 놈에게 명령을 내렸을 것이니
그에 대한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강서진은 그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 팀원과 합류하여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추선우의 눈빛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실장님께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미희를 데리고 청와대로 가 주십시오. 뒤따라가겠습니다.”
강서진은 망설였다. 자신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다리세요. 실장님께 연락하겠습니다.”
강서진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함께, 추선우의 선택에 대해 알려주었다.

“추선우는 그곳에 둔다. 그리고 강 검사는 민간인을 데리고 청와대로 향해라.”


“네? 그럼 추선우씨는…….”
“내가 가겠다. 그러니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
“알겠습니다.”
자신이 있는 것보다 설장호가 지원하는 것이 더 든든한 상황이었다.
강서진은 설장호와의 통화내용을 추선우에게 알렸고, 추선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곧바로 차량으로 향한 뒤, 추선우의 생각을 미희에게도 알려주었다.
미희는 불안하였다. 떨리는 눈동자는 여전히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지 못하였다. 자신이
막는다고 추선우가 자신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서진은 차량을 바로 출발시켰고, 차량이 떠나자마자, 그 반대편에서 또 다른 차량이 들어서고 있었다.

승합차량이었으며, 그 안에서 다섯 명의 사내가 내렸다.


0012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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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한 번 미끼로 사용한 여자지만, 그래도 위에서 시키니 다시
시도해봐야지.”
한 사내가 차에서 내리며 말한 뒤,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우린 담배 한 대 피고 들어갈 테니까.”
다섯 명 중, 세 명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두 명은 담배를 태우지 않는 듯, 먼저 오피스텔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쓰러진 두 사내를 오피스텔 안에 있는 헤어드라이기 선으로 팔을 묶어 둔 채, 두 형사의 품에
있는 전화기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었다.

‘삑삑삑삑.’
그 순간 누군가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추선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몸을
기댔다.
“잘 들 지키고 있는 거야?”
두 사내가 먼저 들어서며 말하였지만, 이미 들려오는 답변이 있을 리 없었다.
“뭣들해? 왜 대답이…….”
두 사내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서며 거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형사가 손이 묶인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순간 벽 쪽으로 몸을 기대있던 추선우가 보였다.

‘와장창!’
“!!!”
오피스텔 앞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세 명의 사내 위로 먼저 올라갔던 한 사내가 떨어져 내리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뭐야!”
곧바로 소리치며, 위를 향해 보았지만, 깨진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이는 없었다.
“올라가 봐!”
한 사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가 담배를 끄고 빠르게 올라섰다.
‘쾅!’
계단을 오르자마자, 오피스텔 문이 열리며 나머지 한 사내도 팅겨 나오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오피스텔 안에서 추선우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너 뭐야! 뭐하는 새낀데…….”


“어떤 새끼가 내린 명령인지만 말해. 그럼 너희들은 산다.”
한 사내가 소리쳤지만, 이내 너무나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추선우로 인하여 말문이 막혀 버렸고,
곧바로 들린 그의 날카로운 어투에 두 사내의 몸은 경직되는 듯 하였다.
“기회는 두 번 주지 않는다. 어떤 새끼가 내린 명령인지만 말해. 그래야 너희 모두가 산다.”
추선우는 그들을 향해 다가서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그 장본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어려웠다.
“그냥 죽여!”
계단 아래에서 추선우의 목소리를 들었던 나머지 한 사내가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두 사내가 추선우의
곁으로 바로 달려들었다.
‘쾅쾅’
아래에 있던 사내는 위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소리로만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웠다.

잠시 조용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아래에 있던 사내가 천천히 계단위로 오르고 있었다.

“잡았어?”
그리고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다. 사내는 자신이 올라온 아래를 한 번 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2 층을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곧 더 오르자 복도에 쓰러져 있는 두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그는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큰 일 났습니다. 지금 대치동 오피스텔인데, 웬 놈이 들어와 난리를 쳐 놨습니다.”
그는 이곳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그에게만 들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뒤로 빠져나가…….”
그는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 순간 자신의 곁눈에 누군가가 보였고, 말을 잇지 못한
채, 2 층에서 내려 보고 있는 추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계속하여 어떤 말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라와라.”
추선우는 그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은 이미 자신의 발이 아닌 상태가
되어버린 사내였다.
추선우의 단 한마디가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한 억양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제길…….”
이내 또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곧바로 1 층으로 다시 내려가려 하였지만, 몸을
돌릴 때, 자신의 곁눈에는 무언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퍽!’
추선우의 주먹이었다. 추선우는 2 층 복도에서 몸을 날려, 계단 중간에 서 있는 그의 면상을 그대로
가격하였다.
그 한 방에 사내는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 벽에 부딪혔다.
그 후로 그의 손에 들린 전화기는 아주 조용하였다.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끊어진
전화기는 아니었다.
추선우는 쓰러진 그의 옆으로 다가섰고, 이내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누구냐?”
“…….”
그리고 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추선우의 물음에 답은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가 추선우의 신원을 물었다.
“추선우다. 미희를 목표로 움직였다면 내가 누군지는 잘 알 것이다. 이제…….네가 누군지 밝혀.”
추선우의 목소리는 더욱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겁 없는 민간인이었군. 말만 들었지만 정말 이토록 겁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네 놈에게서 칭찬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추선우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더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다시 말했다.
-형사가 그 민간인을 잡고 있고, 또 형사인지, 건달인지 알 수 없는 놈들이 다가선 것을 보면. 얼추
추리가 되지 않나? 내가 누군지보다는 이 모든 것의 배후가 더 중요치 않을까?-
그는 추선우가 신분을 밝힌 후, 잠시 당황한 어투였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듯 그에게
말했다.
“그럼. 그 놈이 누군지 말해. 네 놈보다 더 뒤에 숨어 있는 놈이 있다면 그 놈만 말하면 된다.”
-…….-
자신의 말을 바로 받아들인 추선우가 일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물음에 답하자, 또 다시 당황한 듯, 그는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너. 나와 따로 만나자.-
그는 추선우에게 제안하였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의 제안을 듣고 잠시 말없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곧바로 설장호가 오피스텔 1 층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그는 추선우의 표정을 보며 말없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설장호가 온 모양이군. 그 놈과는 따로 할 말이 없으니, 만약 내 제안이 마음에 든다면 너만 와라.-

‘뚜뚜뚜뚜’
전화기는 끊어졌다. 추선우는 끊어진 전화기를 서서히 내리며 설장호를 보았다.
“누구와 통화한 것인가? 강 검사의 말을 들으니, 두 놈이라고 하던데, 이놈과 밖에 떨어져 있는 그
놈인가?”
설장호는 계단 중간에 쓰러진 사내를 보며 물었다. 이미 오피스텔 앞에 한 놈이 창문을 뚫고 떨어졌기에
두 명이 모두 보인 것이었다.
“2 층에 더 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두 명이 아니었어?”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계단을 올랐다. 그러자 복도에 두 명이 쓰러져 있었고, 또 오피스텔 안에도
네 명이 더 있었다.
“이런 놈들을 혼자서…….”
설장호는 그들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지만, 총을 든 놈들을 너무나 쉽게
제압한 듯 보였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세. 어떤 놈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살고봐야하는 것이네.”


추선우는 이곳에서 다가오는 그들을 기다리려 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는 달랐다. 기다린다고 잡을
놈이었다면, 애초부터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 중, 한 명과 통화했습니다.”
“정말인가? 혹시 이름을 말하던가? 아니면 소속이라도 말하던가?”
설장호는 계단을 다시 내려가다 말고 그의 앞으로 서며 물었다.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안했습니다. 저만 따로 만나기를 원하니 그 제안에 응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래? 답을 주었는가?”
설장호는 계단을 위와 아래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물었다.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놈을 만나야겠습니다. 어떤 놈인지 봐야, 그 놈 뒤에 숨은
놈을 끌어내지 않겠습니까?”
추선우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쉬운 말은 언제나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지 모를 놈을 만난다는 것부터가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서로가 자신을
보호하고자,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나온다면 결국 인원수가 적은 쪽이 제압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에 하나 청장의 명령으로 움직인다면, 필시 대규모 인원이 움직일 것이지만, 그에 반해
경찰 병력을 움직이지 못하는 설장호 쪽에서는 소규모 인원이 나올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곳을 피하고 난 뒤에 생각한다. 어서 서둘러.”
그들이 더 다가선다고해서 두려움에 서둘러 벗어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시끄러움이었다. 오피스텔
앞에는 이미 한 사내가 창문을 깨고 떨어져 있었고, 곧 이들이 깨면 또 다시 시끄러워진다. 설장호는
동네 한 복판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면 자칫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서둘고 있는 것이다.
추선우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전화기를 다시 본 후, 곧바로 오피스텔을 나왔다.
“어디…….갔지?”
오피스텔 문을 열고 1 층 정문을 나온 후, 골목에 뻗어 있어야 할 사내가 보이지 않아 설장호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2 층에서 떨어졌다고 무조건 중상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추선우에게 일격을
당한 상태로 떨어졌기에 안전하게 착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그가 이곳을 벗어나 이 상황을 알렸다는 말과 같았다.

“서두르자.”
설장호가 말했고, 먼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가 올라타자마자, 사이드밀러를 통해 승합차
한 대가 아주 빠르게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제길…….”
설장호는 쓴 말을 내 뱉은 후, 급하게 차량을 출발시켰고, 그 뒤로 승합차가 바짝 따라붙었다.
“꽉 잡아.”
설장호는 대치동을 벗어나, 삼성역 방향으로 차량을 몰았다. 그리고 그 뒤로 승합차도 아주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빵빵빵빵!’
설장호는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내달렸다. 삼성역 사거리의 도로는 다른 일반도로 두, 세배는 될 정도의
차선이 있지만, 언제나 차량이 즐비하여 막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 속을 통과하며 경적을 울리는 설장호는 사이드밀러와 룸미러를 통해 뒤따르는 승합차를 계속하여
견제하였다.

‘띠리리리’
이리저리 정신없이 차량을 몰고 있을 때, 추선우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었다.
추선우는 설장호를 본 후, 천천히 손을 얹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금…….도망가는 차에 타고 있는 건가?”
추선우는 차량의 뒤를 쫒고 있는 승합차 안에, 지금 자신과 통화하는 이가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0012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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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내가 그 차량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애들이 오피스텔에 도착했는데, 차량이 무섭게
돌아나가는 것을 보고 쫒는다고 하던데, 혹시 그 차에 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말이야.”
“하얀색 승합차. 네 놈이 보낸 것인가?”
그의 말을 듣고, 추선우가 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하하. 우리나라에 하얀색 승합차가 한, 두 대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보낸 놈인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이 차를 끌고 자살하려고 덤비는지…….알 수 없지 않은가?”
추선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뒤 따르는 승합차를 뒤로 물러나게 해라.”
추선우는 일종의 잔꾀를 부리고 있었다. 이미 상대가 먼저 자신을 만나고자 했으니, 그것으로 흥정을
하는 그였다.
“만나야지. 네 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만나야지.”
그는 여유가 있는 어투였다.
“차량의 속도를 늦춰라. 그리고 뒤따르는 승합차가 먼저 앞질러 갈 것이다. 그 승합차를 따라와라.”
추선우가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설장호가 룸미러를 통해 뒤차량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으며 속도를 늦췄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낸 차가 앞질러간다고해서 뒤로 빠져 도망갈 생각은하지마라, 이미 그 뒤로도 서,
너대의 차량이 붙고 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차량속도를 더욱 더 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 속 사내가 한 말처럼
승합차가 조금씩 앞질러 가기 시작하였다.
짙게 선팅된 유리라 안의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몇 명이 타고 있는지, 또 어떤 우락부락한 놈들이 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 따라와라.”
전화기 건너편 사내가 말했고, 추선우는 설장호를 보았다.
“우리 쪽에 나 외에 한 명이 더 있다. 괜찮은가?”
“뭐. 머릿수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얼마든지 허락되니 끌어 모을 수 있는 머리는 다 끌고와라.”
상대는 여전히 느긋하였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와 함께 움직이는 인물이 설장호란 것을 알면서도 그는
너무나 태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조금 전 통화할 때, 얼핏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함께 움직이는 놈이
설장호인가?”
설장호는 자신의 이름을 아는 듯 말하는 전화기속 남자의 말에 눈동자가 살짝 커지며 전화기를 보았다.
“설장호라도 상관하지는 않는다. 그냥 앞서가는 차량의 뒤만 따라와라.”
역시 설장호란 것을 알면서도 그는 설장호마저도 자신과의 만남에 합류하도록 말하고 있었다.
“그럼 잠시 후에 보자. 기다리고 있겠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은 앞 서 가는 차량의 후미에 서있었다. 필시 뒤 따르고 있는 중이지만, 한편으로는
쫒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어떤 놈인지 궁금하군.”


설장호는 긴장이 없었다. 몇 명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입가에 미소마저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앞서간 승합차는 올림픽대로를 따라 이동하였고, 곧 선유도 주차장으로 방향을 잡아 들어갔다.
“장소 좋은데.”
설장호는 여전히 여유 있는 어투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과 어투가 결국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추선우는 알고 있었다.
“다른 분들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설장호가 선유도 주차장으로 핸들을 돌릴 때, 추선우가 물었다.
“연락하면 그들도 온다. 그럼 우린 팀원들을 죽을 장소로 인도하는 것 밖에 안 돼.”
역시였다. 설장호는 긴장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천하무적이라 말하던 설장호라도,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차량이 멈추었군.”
곧 앞 서 가던 승합차가 멈췄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인원은 없었다.

‘띠리리리리’
정확하게 설장호의 차량도 멈추자, 추선우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용기가 가상하군. 설장호라면 몰라도 넌 내가 다시 봤다. 그 대가로 아주
즐거운 시간을 줄 테니 서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선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만 들었고, 전화기는 끊어졌다.

시선을 올려 승합차를 보자, 그제야 차 안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살벌하군.”
차량에서 내린 사내들을 보며 설장호가 말했다. 덩치가 곰만하며, 환한 대낮에 각목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낭팬데. 우리 차에는 각목도 없고, 야구방망이도 없어.”
설장호는 다가서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추선우는 차량 문을 열고 내렸다.
“역시…….겁이 없다.”
그의 행동을 보며 설장호가 중얼거렸고, 곧 자신도 차에서 내려 앞에 선 덩치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뭔…….북극도 아니고, 하나같이 북극곰처럼 생겼냐?”


설장호가 그들의 외모를 빗대어 말하자, 그들은 그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 낮에 때 아닌 건달들의 등장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둘러 피하는 것을 보며 추선우가 말했고, 설장호도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듯 한
답을 주었다.
“하지만 서둘러 먼저 끝내버리면 큰 문제는 없다. 경찰이 오기 전에 마무리하고 가자.”
설장호가 움직이며 말했다. 그리고 추선우도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두 사람이 서두르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바로 경찰. 대낮에 각목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설치는 건달들을
보았으니, 아무리 신고정신이 사라졌다고 하여도, 필시 한 사람은 경찰에 신고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청장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경찰들이 다가설 것이고, 일은 더 복잡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대통령님. 강서진 검사가 도착하였습니다.”


“뭐? 강 검사가?”
같은 시각. 서지호는 차현태에게 강서진이 미희를 데리고 청와대를 찾은 보고를 하였다.
“어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게.”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곧 강서진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그가 이리 서두르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바로 현재 은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안부였다.

펜션을 벗어난 후, 그들이 무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늘 불안하였다.


“어서 오게.”
곧 강서진과 미희가 청와대 집무실로 들어섰고, 차현태는 두 사람을 반겼다.
“죄송합니다. 일을 되도록 빨리 마무리하려 하였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뻗어있는 놈들이라…….”
“알고 있네.”
강서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현태는 그녀와 미희를 보며 답했다.
“모두…….안전한가? 다친 사람은?”
“모두 괜찮습니다. 다친 사람도 없으며, 지금은 수면위로 떠오를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강서진은 차현태에게 거짓보고를 하고 있었다. 태정민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았고, 또 설장호와
추선우가 대치동까지 왔다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누군가? 그리고 이런 위험한 상황에 설 실장이나 태정민이 아닌 자네가 직접
이곳으로 왔는가?”
차현태는 미희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자칫 단독 행동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며 물었다.

“이 쪽은 추선우씨의 친구로, 은주씨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돕다 곤경에 처한 사람입니다.”


강서진은 미희에 대한 보고는 하였지만, 끝내 자신이 왜 혼자 왔으며, 또 설장호와 태정민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런 무식한 놈들과 놀아보니 온 몸의 근육이 욕하고 난리가 아니겠군.”


같은 시각. 설장호는 거구의 몸으로 각목을 휘두르는 건달들을 하나씩 때려눕히며 말했다.
“이런 놈들은 옆구리에서 약간 위쪽, 겨드랑이 부분을 치며 그냥 뻗는다. 한 번 해 봐!”
설장호는 거구의 사내들을 의외로 쉽게 쓰러뜨렸고, 그가 자신만의 방식인냥 큰소리로 말하자, 추선우도
그가 한 말을 듣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거구의 사내들에게 설장호가 말한 부분을 강타하였다.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비곗살로만 이루어진 그들이 한 방에 덜썩 주저앉고 있었다.
“신기한데요.”
추선우는 설장호의 방법이 너무나 잘 먹히는 것을 두고 신기하였다. 덩치가 크고, 비곗살이 출렁거리는
사내들을 상대할 때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충격을 제대로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온통 비곗살로 덮여 있으니, 때려봐야 몸 안의 근육이나, 뼈에는 그다지 통증을 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겨드랑이 밑 부분에서 옆구리의 약 한 뼘 정도 위부분을 가격하자, 거짓말처럼 비곗덩어리들이
푹푹 쓰러지고 있었다.

“이야아앗!”
첫 승합차에서 내린 거구들을 다 눕히고 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승합차의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고함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목도 야구방망이도 아니었다. 그저 맨주먹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싸움이라면 환영이다.”
그들을 보며 설장호가 말했다. 주먹싸움이라면 이미 이골이 난 설장호였으며, 천하의 백태도 인정한
추선우였기에, 두 사람에게 맨주먹으로 달려드는 것은 승산 없는 격투와 같았다.

“대단한데…….”
그리고 두 사람의 모든 움직임을 고급 세단 안에서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앉아 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추선우와 통화한 장본인이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인물이었다.

‘띠리리리’
그가 액션영화를 보듯 설장호와 추선우의 격투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한 후,
여전히 편안 자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이구. 최 회장님. 점심은 드셨습니까?”
그에게 전화한 사람은 최기수였다. 그리고 그와 통화하면서 이토록 편한 자세로, 또 이토록 편한 어투로
통화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세 명의 회장들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또 한 사람이 그와 편하게 통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병따개를 그리 보내시고 난 뒤에 마음이 울적하셨을 것 같은데, 제가 오늘 좋은 선물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최기수와 통화중에도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부하가 다 쓰러지고 뻗어나가지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선물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최기수의 어투.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을 높이지 않았던 그가. 지금 자신과 통화중인 이
사내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설장호와 추선우. 그 두 놈이 지금 제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그냥 확 주먹을
쥐어서 손바닥 안에 있는 놈들을 다 뭉개버릴까요? 아니면 손바닥위에서 더 재롱을 떨도록 둘까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그리 해드리겠습니다.”
곧 두 번째 차량에서 내린 사내들마저 모두 쓰러지자, 통화중인 사내는 손을 살짝 흔들었고, 그 신호를
받은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신호를 주자, 곧 세 번째 승합차에서 또 다시 사내들이 내리고 있었다.

0012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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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서바이벌이야 뭐야? 계속해서 한 무리씩 나오지 말고, 그냥 다 나와라.”
설장호는 세 번째 승합차에서 내린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세 번째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의외로
평범해 보였다. 각목도 없고, 그렇다고 맨주먹으로 달려들 것 같지도 않았다.
‘척!’
하지만 앞 선 두 대의 차량에서 나온 놈들보다 더 독한 놈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길…….”
그들은 세 명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설장호와 추선우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에 설장호가 당황스러운
표정에서도 쓴 소리를 내 뱉었다.
대낮이며 사람들이 많은 공원에다가, 또 올림픽대로를 지나쳐가는 수많은 차량들이 있는데도, 세 사람은
정확하게 추선우와 설장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이건…….생각 못했다.”
설장호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부분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을 겨누고 있을 뿐, 총을 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총구가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회장님께서 직접 오신다고 하니,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경찰들은 물려주십시오. 아마도 신고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신고를 받고 경찰이 오면 이 좋은 구경은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사내는 경찰 출동을 막아줄 것을 최기수에게 부탁하였다. 그리고 이 한마디가 이미 경찰청장을 최기수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
신고 접수된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근무태만이다. 하지만 신고가 들어가도 경찰이
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명령은 높지 않은 자리에서는 결코 내릴 수 없는 명령이기도 하였다.

“선유도로 향할 것이다. 채비해라.”


최기수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네 명의 회장을 만나는 자리가 아닌, 전혀 다른 자리에
처음으로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움직인다. 네 명의 거물급 인물 중, 가장 처음으로 움직인 인물이 최기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기분 더럽다.”
한 편. 선유도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총만 겨누고 있는 그들을 보며 설장호가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어찌할까요?”
추선우가 물었다.
“너 같으면 지금 이 순간 어찌 대처할 것 같은가?”
오히려 설장호가 되레 그에게 물었다.
“전…….그냥 도망칩니다. 저들이 명사수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움직이는 사람을 권총으로
명중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찌 그리 잘 알아?”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무표정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즉 추선우의 말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았다.
자신은 국정원 소속 실장이다. 그리고 태정민은 청와대 경호실 팀장이다. 그런 사람들도 움직이는 물체를
권총으로 저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번. 북정마을…….저를 추격하던 놈들이 뒤에서 따라붙었는데, 그 놈들은 저와 약 10 미터 거리를


두고 바로 뒤로 붙었지만, 저를 명중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만으로 모든 것을 다 단정하는 것은 아니지?”
추선우의 말은 일부 몇 명을 두고 한 말이라, 설장호는 단지 그것으로 지금과 같은 말을 한 것은 아니라
여겼다.
“설마…….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어두운 밤에 몰래 움직인 놈들이…….저격수도 없이 권총을 들고
다녔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권총을 들고 목표를 제거하기 위하여 움직인 그들에게 저격은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추선우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결국 추선우에게 되레 잡혀 국정원으로 끌려간 신세가
되었었다.

“그럼…….도망칠까?”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한 편으로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띠리리리’
그 순간 추선우의 주머니에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그 놈입니다.”
“받아.”
‘척’
추선우는 설장호에게 전화기를 보인 후, 곧 주변을 둘러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를 만나자고 했던 놈이 꼬리 내린 것인가? 어째 이런 놈들을 내보내고 네 놈은 나오지 않아?”
-그냥 좀 노는 거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인데 제대로 놀다가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도망칠 생각하지마라.
달리는 놈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하지마라. 지금 네 놈들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그
놈들의 저격술은…….권총으로도 네 놈의 눈만을 노려 작살 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니 말이야.

추선우는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바로 곁에서 듣고 있었던것과 같은 말을
하였지만, 놀라는 표정으로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잠시만 기다려라. 너희 두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계시다. 곧
도착하니, 그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정리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할
상황이었다.
자칫 경찰이 도착하면 일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어찌할까요? 이러고 있으면 경찰이옵니다. 경찰이 오면 여러모로…….”
-걱정마라. 경찰은 오지 않는다.-
“!!!”
추선우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는지, 그가 답을 주었고, 그 답은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지게
만들었다.
“무슨…….뜻인가?”
추선우가 아닌 설장호가 물었다.
“하…….난 왜 설 실장과 통화하면 이리 두려울까. 천하의 설장호실장…….그 목소리만으로 나를
흥분시키는구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 순간 곧바로 전화기속의 인물이 내는 목소리의 특성을 살려 누군지
추리하려 하였다. 이미 자신을 아는 듯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니, 돌려 말하면, 자신도 그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이다. 경찰은 오지 않는다. 비록 내가 그 정도의 힘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사람은 충분히 그 정도의 힘이 있으니, 경찰정도는 막을 수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느긋하게
목이나 내밀고 기다려라.-
사내는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내가 어느 차량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지금 총을 들고 서 있는 저 놈들을 만에 하나라도 제거 하게 되면, 마지막
승합차에 네 명의 사내가 승차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 놈들마저 제압하면 자유다. 이곳을 빠져나가도
잡지 않는다.-
그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여유 있게 담배까지 꺼내 물고서는 말하였다.
“넌 어디에 있나?”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나? 나도 여기에 있다. 너희들이 다음 세 번 째 승합차에 탄 놈들까지 제거하고 이곳을 바로 떠나지
않는다면, 나와 만날 수도 있겠지.-
그는 담배를 길게 들이마신 후, 다시 내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곧 선유도 입구에서 고급 승용차가 줄지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만 끊어야겠다. 너희들을 보고자 친히 걸음하신 분을 마중해야 하니 말이야.-
그가 전화를 끊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은 저 멀리 선유도 입구에서 들어서는 고급 승용차들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그 승용차는 전화한 사내와는 정 반대의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곧 설장호와 추선우의 옆을 지나쳐가며 짙게 선팅된 유리 속에서 두 사람의 표정을 보는 최기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지나쳐가고 있었다.

“설장호…….추선우…….오늘이 너희 둘의 제삿날이다.”
최기수는 기분이 들떴다. 다른 회장들에 비해 자신이 가장먼저 이번 사건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장호와 추선우를 잡게되는순간을 곧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띠리리리’
“네 회장님.”
“시작해보게. 내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럼…….좋은 시간되십시오.”
최기수는 차량을 주차한 후, 곧 사내에게 연락하였고, 사내는 그의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총을 든 세
명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내에게 신호를 주자, 그는 그 즉시 세 명의 사내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추선우. 뛰어라.”
설장호가 그들의 신호를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랜 경험상으로 느껴지는 직감에 의해 그에게 말했고,
추선우는 그 즉시 빠르게 몸을 틀어 좌측으로 뛰면서 주차된 차량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픽픽픽픽!’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말하고 난 뒤, 약 1 초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다행히 추선우는 좌측, 설장호는 우측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조준방향을 흔들어놓았고, 장소가
주차장인 만큼, 주차된 차량들이 많기에 그 사이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빠른데.”
사내는 차안에서 편히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차량들 틈으로 숨어들은 두 사람을 찾고자 눈동자를
돌렸다.
이는 최기수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총알을 피하며 숨은 두 사람을 찾고자 하면서도, 조금 전까지
환했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꼭…….그 대가가 바로
따라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총알을 피하는 놈들이라…….이거 뭐 영화 속 영웅들도 아니고…….”
차 안에서 사내는 여전히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까지 설장호나 추선우가 몇
차례 총을 든 킬러를 피해, 그들을 제압했던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탁!’
“!!!”
잠시 후.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땅으로 내려앉는 듯 보였고, 그 순간 두 사내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퍽퍽!’
“!!!”
두 사내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가자마자, 우측에서 설장호가 움직였고, 그는 총을 든 두 사내의
중앙으로 서면서 동시에 두 사내에게 일격을 가했다.
그 충격에 그들은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곧 다시 자세를 잡아 바로 선 후, 설장호를 보았다.
“이제 그냥 맨주먹으로 싸워야하는데 괜찮겠나? 어렵다면 마지막 차량에서 대기중인 놈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
설장호는 두 사내를 보며 말했고, 곧 시선을 그들의 뒤로 돌리자, 조금 전, 총을 든 한 사내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추선우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사내가 들고 있던 총이 들려있었다.

“어찌할까. 공교롭게도 이번엔 우리 쪽에서 총을 든 것 같은데, 우리도 총을 쏠까?”


설장호가 추선우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두 사내의 시선이 추선우를 향해 돌아섰다.

‘띠리리리’
최기수는 쓴 표정을 지으며, 사내에게 전화하였다.
“네 회장님.”
“괜찮겠습니까? 이미 총이 뺏긴듯한데…….더 준비한 것은 없는 것이오?”
최기수는 불안한 듯 그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의 여유는 이제 그의 얼굴에 남아있지 않는 듯 하였다.
사내는 조수석에 앉은 수하에게 신호를 주었고, 곧 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마지막 차량에 앉은 이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차르르르’
그리고 마지막 차량의 문이 열리며 네 명의 사내가 나왔다.

00128 경호원 =====================================================================


====
                          
“환장하겠네…….”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 설장호의 격한 말이 다시 나왔다. 처음에 보였던 각목을 든 곰 만한 사내들에 이어,
두 번째는 맨주먹을 뻗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총을 든 세 놈이었고, 그에 이어 나온 네 명의
손에는 사시미가 들려있었다.
경찰이나, 기타 건달들을 제압하는 직업을 둔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종류이기도 하였다.

사시미는 살짝만 스쳐도 상처가 깊게 나는 것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몸속 장기를 손상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다 갖춘 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사내가 최기수에게 물었다.
“하하하. 마음에 들군요. 비록 사람의 숫자는 적으나, 그만큼 정예라 할 수 있겠지요?”
“네. 제가 거느리고 있는 애들 중, 가장 칼을 잘 다루는 놈들입니다. 제 아무리 설장호라고 하여도…….
스치면 그냥 저승행 열차에 탑승합니다.”
그는 웃었다. 최기수도 웃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두 사람. 바로 설장호와
추선우였다.
추선우는 그들을 본 후, 천천히 이동하여 설장호의 옆으로 섰다. 그리고 그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전…….아직 총을 들 자격이 없습니다. 가져가십시오.”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추선우가 죽을 고비에 처해있더라도 그에게 총을 주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법 때문이었다. 민간인이 총을 들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갖춰야한다.
비록 살고자 덤벼드는 놈을 죽일수도 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괜한 문제꺼리를 단 하나도 만들지
않으려는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그가 건네준 총을 받은 후, 총알의 잔여갯수를 확인하였다.
“두 발…….”
총알의 여분은 두 발이었다. 그리고 남은 인원은 일곱명. 추선우에게 총을 뺏겼던 사내가 일어나면서
일곱명으로 되었다.
그리고 두 자루의 총은 차량 밑으로 밀려들어간 듯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추선우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설장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총은 내가 들었다. 그러니 저들보다 우세한 힘을 가진 사람도 나야. 그러니 넌 내 뒤에 붙어있어.”
설장호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왜 다들 이리 늦어. 그리고 실장님은 어디에 가신거야?”


같은 시각. 설장호의 집에 남은 태정민은 아직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듯, 자리에 누워서 중얼거리고
있었고, 곧 그의 옆으로 박태식이 다가와 앉았다.
“추선우는 친구를 만난다며 강 검사님과 함께 갔고, 설 실장님은 강 검사의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왜
우린 이렇게 있어야하지?”
박태식이 누워있는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그야…….우리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태정민이 누운 채 말하였고, 이내 몸을 돌려 벽을 보며 다시 누웠다.
“하…….나 같은 인재를 잘 이용해야지. 이런 곰팡이 냄새 하는 집에 쳐 박아두면 어째…….”
박태식은 태정민의 행동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집안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곰팡이 향만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각자의 일을 본다며 나간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는 강서진이 안절부절못하여 청와대 영접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무슨…….걱정이라도 있습니까?”
곧 서지호가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는 서지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그에게
말하면 곧바로 차현태에게도 내용이 전달될 것이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차현태는 어제 성남 펜션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서진이 그렇게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저기…….서 실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강서진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며 서지호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서지호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정황을 결국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안부가 걱정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였다.
“저…….정말입니까?”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자신도 그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모두 들었기에,
조금 전까지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듣고 나니, 그의 심장은 급하게 뛰기 시작하였다.
“미희씨의 오피스텔이 어디입니까?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야겠습니다.”
서지호가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곳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디론가 이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을 벗어났을 때, 이미
추선우씨가 그곳에 있는 형사들을 제압했으니, 그 보고가 저들에게 들어갔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곳에
남아있지 않고, 아마 그들을 만나러 움직였던지…….그것도 아니면 그들에 의해 잡혔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서진은 최악의 상황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알고, 현실을 접했을 때, 그 최악의
상황만이라도 면한다면,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있을 것이기에 최악의 상황만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알아보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하였고, 현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제야 영접실에 있는 의자에
몸을 앉혔다.

“미희이모!”
한 편. 미희는 지현을 만났다. 지현은 이미 미희를 알고 있기에 그녀가 반가웠다. 하지만 은주는 미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추선우가 위험한 곳을 자처하여 간 것을 알기에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잘 지냈어?”
미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현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은주의 눈에 보인 지현의 미소, 미희와
얼마만큼의 친분을 쌓아두었는지 모르지만, 지현의 미소가 최근 들어 본 그 어떤 미소보다 더 환해 보였다.
“난 잘 지내는데, 삼촌이 안와. 어디 간다고 갔는데, 오지 않아. 이모는 삼촌 봤어?”
지현이 물었다. 그리고 미희는 고개를 들어 은주를 보았다. 은주는 미희를 향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삼촌을 봤어. 그리고 삼촌이 일끝나면 지현이 선물사야해서, 뭘 사야하는지 이모에게 물었어.”
미희는 지현에게 말을 돌려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이…….내 선물을 산데?”
“응. 그래서 이모가 몰래 알아봐 준다고 했는데…….지현이가 뭘 갖고 싶을까?”
미희의 속마음은 울고 있었다. 지현에게 현재 추선우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고, 또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추선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린 지현에게 돌아갈 상처는 아주 크다는 것을 알기에 더 울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부모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어린 소녀는 추선우라는 한 사람에 의해 그 슬픔을 가슴에
그저 담아두고만 있었다.
“나…….삼촌이 필요해.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지현이 답했다. 그러자 은주와 미희가 다시 시선을 마주하였다. 지현은 열 살이지만, 지금 현재는 열
살의 어린여자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부모의 사망도 다 알지만 참고 견딘 아이다.
그리고 지금. 지현이 말한 삼촌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여인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말이었다.
“그래…….우리 지현이는 삼촌이 필요하구나. 이모도 삼촌이 필요한데. 그럼 지현이와 이모가 같이
삼촌을 기다릴까?”
“응. 이모.”
지현은 웃었다. 그리고 미희는 마음속으로 더 크게 울었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일을 겪었다. 그러니 단 한 가지만 바랄 뿐이었다.
무사히…….무사히. 예전처럼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국정원에서 사람이 움직일 것입니다. 설 실장님의 명령을 이행했던 대북전담팀에게 현 사실을
알렸고, 그들이 서울의 모든 CCTV 를 분석하여 현재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한 편. 서지호는 국정원에 연락하여,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던 팀장에게 다시 답변까지 들었다. 그
답변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자,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 검사님은 계십시오. 만약 검사님마저 다시 움직이시면, 대통령님께서 지금 현재의 상황을 달리 해석
하실 것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보고를 하고서는 뭔가 일이 있는 것처럼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차현태가
본다면, 그의 마음이 불안해 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어쩔 수 없이 나서지 못하고 청와대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이 놈들 보통이 넘는다.”


한 편. 선유도에서는 설장호의 한 쪽 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가 차량들 틈으로 몸을 숨기며
쓴 소리를 내 뱉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달랐다. 그는 몸을 숨기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사시미를 들고 달려드는 이들과 맞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저 놈…….정말 괴물이군.”
설장호는 조금 전, 대치동 오피스텔에서 그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 그
아쉬움을 모두 달래고 있었다.
화려한 그의 몸놀림은 사시미마저 모조리 다 피해가고 있었다.

“회장님. 저기 위를 보십시오.”
최기수는 추선우의 화려함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조수석에 앉은 비서가 그를 보며 말한 뒤,
올림픽대로 위와 함께 한강공원 주변. 그리고 하늘을 향해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이미 수없이 많이 모여 있었다. 마치 영화촬영장을 보는 듯 한 느낌으로 그들은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넋을 놓고 보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아무래도…….너무 판이 커져버리는 듯 합니다.”
비서의 말대로였다. 그저 경찰을 잠시 잡아두고, 서둘러 끝내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에
구경꺼리가 된 상황이었다.
“회장님…….”
"상관없다. 계속 진행해라.“
비서의 우려와는 달리 최기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에게 연락하여 계속 진행하라는 답을 보냈다.
추선우와 통화했던 사내는 최기수의 대담함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필시 이 순간의 모든 것은
방송으로 전파를 탈 것이었다.
심지어 일반 시민들이 촬영하는 내용은 개인 블러그나, 동영상전문 사이트에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었다.
하지만 최기수는 멈추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 상황에서 설장호가 승리한다면, 자칫 자신의 신원노출도
우려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기회에 설장호는 물론, 저 놈의 목도 꼭 쳐야한다.”
최기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는 단지 사내의 말에 의해, 좋은 구경꺼리를 보려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면서 그의 가벼운 마음은 점차 독하게 변해갔다.

“회장님.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칫 저희들의 신분도 노출 될 수 있습니다.”


최기수와는 달리 추선우와 통화했던 사내쪽은 불안하였다. 최기수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지만, 아직 이 사내에게는 그 어떤 것이 뒤에 있는지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0012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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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선에서 애들을 뒤로 빼는 것이…….”
“놔둬라. 최 회장이 있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미 저기 하늘에서 찍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방송국이겠지. 이 모든 것을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사람. 하지만 저런 놈들이 있어도 뒤로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최 회장도 이 후의 일을 미리 계산해두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그냥
밀고나가.”
“알겠습니다.”
사내는 최기수를 믿고 있었다.
처음에 권총을 들었던 사내들은 총을 놓쳤기 때문에 맨주먹으로 싸워야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쉽게
제압당했다. 하지만 사시미를 들고 달려드는 이들. 이들의 실력은 적어도 병따개와 동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스윽!’
“!!!”
사시미의 날카로운 칼날이 이번엔 추선우의 팔꿈치 윗부분을 스쳐지나가면서, 추선우가 뒤로 물러났다.
“괜찮은가!”
설장호도 이미 한 방을 스쳐갔기에 그 쓰라림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이와
같은 경험이 많아 이골이 난 상태지만, 추선우는 이런 경우가 처음일 것이라 생각하여 소리쳐 물었다.
“괜찮습니다.”
추선우의 왼쪽 팔꿈치 윗부분에서는 그새 많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속보입니다. 현재 선유도 주차장에서는 폭력조직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칼부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상수 기자입니다.-

한 편. 뉴스속보가 전해지면서, 지금까지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속보에 눈과 귀를


기우렸다.
곧 영상은 선유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칼부림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으며, 그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듯, 놀란 눈을 TV 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뭣들해! 당장 출동해!”
한 편. 현장의 머리위에서 날고 있던 헬리콥터가 내 보내는 영상이 전해지면서 검찰청에서는 검찰총장이
큰소리로 명령을 직접 하달하였다.
이는 청장을 의심하고 있는 시점에 혹여 검찰총장도 청장의 말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반전시키는
상황이었다.
검찰총장의 명령으로 검사들과 형사들이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야 할 경찰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강 검사님. 지금 선유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영상으로 잡히며, 뉴스에 떴습니다. 아무래도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 같습니다.”
한 편. 청와대에서 아직 두 사람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던 강서진에게 서지호가 다가서며 말했다.
그녀는 그 즉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관련 동영상을 찾기 시작하였다.
영상을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색어 1 위로 올라와 있는 선유도 난투극이라는 제목을 클릭하자마자,
관련 영상은 이미 수십 개를 넘어 등록되어 있었다.
“정말입니다.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에요.”
단 하나의 영상을 접하자, 해당 영상에 보인 인물이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들도 이런 상황이 연출 될 것이라 알고 있을 텐데…….정말 아예 드러내놓고 움직이려나
봅니다.”
서지호도 영상을 보았다. 틀림없는 두 사람이었다.

“회장님. 뉴스 보셨습니까?”
당황하기는 정구석과 고민국, 우수광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새롭게 계획을 세워 한 번에 몰아붙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 생각지 못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누가 내린 명령입니까?”
고민국이 물었다.
“난 아니요.”
“나도, 저런 명령은 내린 적 없소.”
정구석과 우수광이 아니라고 하니,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최기수라
답이 바로 나왔다.
“최 회장이…….”
정구석이 쓴 표정을 지으며 최기수의 이름을 말했고, 곧바로 고민국이 최기수에게 전화하였다.
“어찌된 일입니까?”
최기수는 고민국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칼부림에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그 두 놈을 잡습니다. 기다리세요.”
최기수는 고민국의 말에 답하고서는 이내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지금…….이 영상은 뉴스로 보도중입니다. 혹여…….회장님께서 보실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
최기수는 전화를 끊으려다 고민국의 말에 아무런 말없이 표정만 구겼다. 이들이 말하는 회장. 바로
뿌리조직의 최고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회장님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점차 저들이 목을 조여오니 그 전에 처단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단하려는 것입니다.”
최기수는 잠시 말문을 열지 않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뜻을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제길…….아무래도 일이 더 빠르게 정리될 것 같군.”
그가 전화를 끊자, 고민국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을 서둘러 선유도로 보내야겠습니다. 필시 이 영상은 청와대에서도 봤을 것이고,
또 국정원장이 보았다면 지원이 갈 것입니다. 그 전에 최 회장이 하려던 일을 우리가 마무리합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이참에 결정을 지으려 하는 고민국이었다.
그의 말에 두 사람도 서둘러 연락을 취하였고, 그들의 연락을 받은 이들이 선유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국정원에서는 물론, 청와대에서도 몇 인원이 출발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대통령님께서 모르고


계시니…….”
“다 보았네.”
서지호가 강서진에게 현재 진행 중인 움직임에 대해 말하자, 곧 두 사람의 뒤에서 차현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된 일인가? 왜 두 사람이 선유도에서 저런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차현태의 표정은 매서웠다. 목소리도 날카로웠다. 하지만 서지호와 강서진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보게. 왜…….왜 저 두 사람이…….”
“오피스텔. 미희씨를 데리러갔다고 그 오피스텔에서 경호중인 형사들이 저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곁에서 미희씨를 데리고 나온 후, 추선우씨가 그들의 수장을 기다린다하여, 설
실장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 저도 조금 전 접했습니다.”
강서진이 다 말하였다.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니, 차라리 대통령의 권력을 빌려 지원을 받겠다는 그녀의
생각이었다.
차현태는 잠시 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서 실장.”
“네.”
“국정원장에게 연락했나?”
“네.”
“우리 쪽에서는?”
“경호원도 몇 명은 선유도로 보냈습니다.”
차현태는 현재 상황에서 어찌 대처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서지호는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전과는 달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생방송으로 뉴스보도가 되었으니, 저들이 이제 결정을
지으려는 것 같군. 지원가능한 곳에 연락하여, 현재 선유도를 지원하게.”
차현태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마땅히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지원이 가능하다면 그 역시 도움이 되는 것이니, 서지호는 서둘기 시작하였다.
“강 검사는 지금 즉시 지현이 곁으로 움직이게.”
“네? 저도 선유도로…….”
“자네가 있을 곳은 선유도보다 지현의 곁이네, 함께 있어주게.”
어찌 생각하면 차현태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었다. 살벌하게 사시미가 휘둘러지고, 총알이 날아오는
곳에서 굳이 힘들게 나설 필요는 없었다.

‘촥 촥!’
“추선우! 그만 몸을 피해!”
역시 사시미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들과의 격전은 쉽지 않았다. 총알도 피한다는 수식어까지 붙은
추선우지만, 사시미를 든 이들에게 이미 대,여섯곳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에 설장호가 추선우의 곁으로 붙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제가 물러나면, 설 실장님은 그냥 죽습니다. 그나마 제가 버티고 있으니 살아계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추선우는 이 와중에도 농담을 하였다.
“너. 죽으면 장례도 없다. 그냥 한강에 던져버린다.”
“어차피 연고도 없습니다. 그리 하십시오.”
농담을 던졌지만, 그에게 상처가 된 말을 한 설장호였다. 너무나 상황이 좋지 않아,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니, 그가 고아라는 사실을 순간 잊은 그였다.

‘애애애앵!’
“!!!”
설장호와 추선우가 서로 등을 맞대어 섰고, 설장호의 상처는 이미 위급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 순간 선유도 주차장을 들어서는 승용차에서 사이렌이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뭐야? 왜 경찰이 오고 그래!”


최기수가 놀란 눈으로 차량을 보며 소리쳤다.
“경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미 경찰은…….”
“시끄럽다. 일단 벗어나라. 일이 더 복잡해지면…….”
비서가 그에게 말하는 것을 자르고 자신이 다시 소리쳤지만, 이내 자신도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수십 대의 차량들을 보았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한 이유는 사이렌을 울리고 들어서는 차량들 뒤로 이어지는 차량이 눈에 익은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저들에게 지원군이 온 만큼, 우리에게도 지원군이 온 모양이다. 계속 밀어.”
최기수는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사내에게도 계속 밀어붙이도록 말했다. 이미 사이렌을 울리고 들어서는
차량들이 수십 대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라, 최기수와 달리 사내는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 우리는 벗어나야…….”


“제길…….어찌해야하지…….”
사내의 비서가 다시 재촉했지만, 그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여기서
도망가면 살 수 있겠지만, 그 후에는 최기수에게 죽을 것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와 추선우가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최기수의 전화벨이 울렸다.
“최 회장님. 지금이라도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사내가 연락하였다. 하지만 최기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설장호와 추선우가 쓰러질 것이기에,
그 장면을 직접 보고자 하였다.
“그럼…….저라도 피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것만으로도 서 회장은 할 일을 모두 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은 따로
챙겨드리지요.”
“알겠습니다. 그럼…….다음에 뵙죠.”
사내는 서둘렀다. 그에게 먼저 물러난다는 말을 하며, 그 즉시 자신의 목을 먼저 칠 것이라 여겼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말이 나왔다. 더군다나 보상까지 따로 챙겨준다니, 위험한 곳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0013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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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차량들이 들어서고 있을 때, 사내가 탄 차량은 다시 빠져나가려 하였다.
“단 한 대의 차량도 나서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서지호의 부탁으로 검찰에서 나온 검사들이 주차장 길목을 모두 차단했다.
그런데다 뒤에 따라 들어서는 차량들을 아예 입구에서부터 막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출발한 차량은 검찰의 지원으로 쉽게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에, 사내의 표정은
굳어졌다.
하지만 최기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쓰러지기 직전의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어서…….어서 마지막을 장식해!”
최기수는 차량 안에서 소리쳤다. 단 한 번씩만 더 사시미가 스쳐 지나가면 골칫거리인 두 사람을 아예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회장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기수의 눈길과는 달리, 그와 같은 차량에 탄 수하는 주변 분위기를 보았다.
“한 번이다…….단 한번만 스쳐 가면 된다…….”
하지만 최기수의 귀에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두 사람. 그 두 사람만이 현재 자신의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제길…….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겠군.”


한 편. 고민국과 함께, 우수광, 정구석이 보낸 사람들이 최기수를 돕고자 선유도 주차장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 되었다. 일부는 먼저 들어갔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차량들은 검찰의 지시에 의해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여기 내려서 들어가겠습니다.”
차량을 진입시킬 수 없으니, 내려서 맨 몸으로 들어서겠다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한 사내의 말이 수십 대에 탑승한 모든 사내들을 다 내리도록 만들었다.

“팀장님. 저기.”
설장호를 돕고자 주차장으로 급하게 이동하던 대북전담팀 팀장에게 그의 대원이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젠장. 차를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막아야지!”
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검찰에서 지원을 했지만, 그들은 지원 내용대로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서두른다. 설 실장님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난다.”
“알겠습니다.”
검찰의 지원이 있긴 하였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 팀장이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했고,
모두가 급히 움직였다.

“추선우…….내가 길을 열 테니 넌 뒤로 빠져라.”
“동방예의지국은 노인공경입니다. 어르신부터 빠져 나가십시오.”
설장호의 출혈은 이미 심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나마 출혈이 덜 한 편이라 설장호의 말에
농담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앉아 계십시오. 제가 더 젊으니 제가 더 움직여 보겠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를 부축하며 살며시 주차된 차량에 몸을 기대게 앉혔다.
설장호는 강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보다 더
한 놈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저 놈. 저 놈이 이 일을 이토록 길게 늘어지도록 만든 놈이다. 어서…….어서! 저 놈을 쳐!”


최기수는 흥분하였다. 설장호는 이미 주저앉은 것을 보았으니, 그에 대한 시선은 거두었고, 추선우에게
시선을 주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어린놈이 아주 대단하구나.”
사시미를 든 네 명은 아직 건재하였다. 총을 든 이들은 모두 제압당한 상태지만, 이 네 명은 서회장의
말처럼, 정예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 차량들 수색하고, 수상한 놈들은 모조리 잡아!”


“네!”
국정원에 이어 검찰총장의 지시로 움직인 검사들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이제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들의 편에 선 놈들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최기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두 사람의 마지막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자칫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죽어라! 애송이!”
이내 사시미를 든 사내들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픽픽픽픽!’
그 순간 국정원에서 온 이들과 검사들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추선우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서기 전, 그들은 달려오던
속도에 맞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빨리 좀 오지…….”
설장호는 앉은 자리에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추선우는 자신에게 다가서던 이들이 쓰러지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든 휴대전화를 보았다.
자신을 만나고자 한 서회장을 찾고 싶었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낮춰 눈을
편하게 감고 있는 설장호를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곧 국정원 팀장이 다가섰다. 그는 주저앉은 설장호를 보며 물었고, 설장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표시했다.
“어서 설 실장님을 병원으로 옮긴다!”
곧바로 명령을 하달하였고, 함께 온 이들이 설장호를 부축하여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제길…….제길! 저 놈들의 목숨은 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최기수는 소리쳤다. 차 문을 발로차고, 주먹으로 내 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버리고 있는 순간이었다.
“저기…….”
추선우가 시선을 돌리며 서회장을 찾고 있을 때,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였고, 추선우는
팀장에게 해당 차량을 가리켰다.
“모두 수색해!”
그는 남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추선우도 함께 움직였다. 그 차량 안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서회장이 홧김에 몸을 격하게 움직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량을 출발시켜!”
최기수의 수하가 소리쳤고, 곧바로 차량은 급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려 하였다.

“잡아!”
팀장의 큰 목소리에 검사들도 해당 차량을 보았다. 그리고 최기수와 함께 온 몇 대의 차량에서 그의
수하들이 내리며 차량으로 다가서는 이들을 막아 세우려 하였다.
“모조리…….모조리 다 잡아!”
팀장은 격하게 소리치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최기수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추선우도 급히 움직였다. 그는 해당 차량에 최기수가 아닌 서회장이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차량을 쫒고 있는 중이었다.
최기수의 수하들이 앞을 막았지만, 추선우는 그들을 모두 제쳐두고 차량으로 바로 뛰었고, 수하들은
국정원 대원들과 검사들이 대신 상대하고 있었다.

“이 틈에 우린 빠져나간다.”
최기수가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서회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상황에 자신의 앞길을 열어준 것과 같은 최기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량이 바로 빠져나갈 수 없으니, 모두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서회장은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주변 사람들의 틈으로 숨어들려 하였다.

“검사님. 저기 저 놈…….수상합니다.”
하지만 한 형사의 눈에 그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검사는 그 즉시 서회장을 잡도록
형사들을 내려 보냈고, 뒤 늦게 합류한 고민국의 수하들은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이미 늦은 것이다. 현장에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자신들이
뛰어들어 최기수를 돕기에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모두 철수…….”
결국 한 사내가 말했고, 최기수를 돕고자 내려왔던 사내들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서서히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잠시. 신분증 좀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서회장은 이동 중, 계속하여 최기수가 탄 차량을 보고 있었고, 곧 그의 앞으로 형사들이 다가서며
신분증을 요구하였다.
서회장은 형사들을 보았다. 자신의 수하가 두 명. 그리고 형사들은 네 명이었다. 수하에게 명령 내려
형사를 밀어내고 도주할 수 도 있지만, 이미 주위에는 형사들이 더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제길…….”
그는 결국 쓴 소리만을 내 뱉은 후, 도망치는 최기수를 향해 독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픽픽픽픽!’
최기수가 탄 차량은 주차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미 주차장 출구 쪽에 형사들의 차량이 막고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차량을 돌려 주차장 안을 빙빙 돌 뿐이었다.
“회장님.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주차장을 도는 것만으로 해결 방법은 없었다. 이에 수하는 최기수에게 말했고, 최기수는 눈동자를 떨며
자신의 손에 쥔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찌되었습니까?”
전화를 받은 인물은 고민국이었다. 그는 곧바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아무래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해결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계십시오.”
고민국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최기수가 탄 차량은 그 즉시 주차장 한
편에서 멈춰 섰다.
검사들과 국정원 대원들, 그리고 추선우가 해당 차량 곁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탈칵’
차량 문이 열리며 최기수가 먼저 내렸다. 추선우는 그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손들어!”
검사들은 그를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러자 최기수는 멀뚱한 눈을 한 채, 손을 들어올렸다.
“왜…….왜들 그러시오. 난 그저 바람이나 쐬러 이곳에 왔는데, 신기한 구경꺼리가 생겨 보고 있었소.
그러다 급한 약속으로 인하여 가려는데…….”
“쓸데없는 말은 오히려 상황을 더 좋지 않게 만든다.”
그의 말은 팀장에게 먹히지도 않았다. 팀장은 최기수가 이 모든 것을 지시한 인물로 낙점한 상황이었다.
비록 최기수란 사람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었다.

“설 실장님. 해당 인물을 잡았다는 보고입니다.”


설장호는 정신을 반쯤 놓은 채, 차량으로 옮겨졌고, 곧 병원으로 가려던 찰라, 국정원 대원의 보고를
받았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차를 이동시켜 봐.”
“네.”
설장호는 뒷좌석에 편히 앉아 말했고, 곧 그가 탄 차량은 최기수가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이 어렵게 된 듯 합니다. 최 회장이 빠져나올 구멍이 없군요.”


그리고 선유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다. 이에 고민국이
그와의 통화내용을 말하자, 우수광과 정구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놈입니다.”
설장호가 탄 차량이 최기수의 옆으로 서서히 다가설 때, 국정원 대원이 말했고, 그 때 설장호는 힘겹게
눈을 뜨며 최기수를 향해 보았다.

0013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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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힘없던 눈동자가 번쩍 떠지며, 이리저리 갈 곳을 잃은 듯 급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최기수!”
그는 최기수를 알고 있었다.

“추선우! 저 놈을 잡아!”
설장호는 자신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더라도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외쳤다. 그리고 최기수의
앞에 있던 추선우는 물론, 국정원대원들과 검사들이 설장호를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최기수를 보았다.

최기수는 눈동자를 떨었다. 조금 전까지도 당당하게 자신이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믿고 있었던 그는


설장호와 눈이 마주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심정이 보이는 눈빛으로 돌아섰다.

“잡아!”
국정원팀장의 명령으로 국정원대원들이 최기수의 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수하들이 앞을 막았지만,
그들이 국정원 대원을 막아설 힘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하여 국정원 대원들을 막으며 마지막까지도 최기수를 보호하고자 몸싸움을 서슴지
않았다.

‘퍽퍽퍽!“
“!!!”
하지만 추선우에게는 몸싸움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는 최기수의 앞을 막은 수하들에게 고루 한
주먹씩을 나눠주었고, 그들은 단 한 방씩에 뒤로 밀려나며 쓰러졌다.
“하하하하. 쿨럭 쿨럭!”
추선우의 통쾌한 행동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아픔을 참고 있던 설장호가 큰소리를 내며 웃은 뒤, 다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모습에 국정원대원들이 서둘러 병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최기수는 독한 눈빛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네 놈…….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누군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 지현의 아버지…….이창민대사와 연관된 놈이라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최기수가 먼저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추선우의 말에 오히려 최기수가
눈을 먼저 돌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두려울 것이 없다는 최기수였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모니터 상에서만 봐 온, 설장호와 추선우를 직접
앞에서 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려움에 눈을 내리깔고, 몸을 떨었다.

최기수가 국정원대원들에 의해 잡혔다. 그리고 그 장면은 헬리콥터에서 촬영 중인 방송카메라에 그대로


잡혀, 전국적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최 회장이…….”
고민국이 눈동자를 떨며 말을 흐렸다. 우수광과 정구석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랫동안 이 사회의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숨어있었던 네 명의 회장들. 그들 중, 지금 한 명이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힌 것과
같았다.
“이제 어찌합니까? 회장님께는 최 회장에 대한 보고를 어찌 올려야 합니까?”
우수광이 뉴스를 시청하는 눈길을 돌리지 못한 채 말하였다.
“회장님이 아시기전에, 최 회장을 저들의 손에서 빼내야…….”
‘띠리리리리’
고민국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국은 아주 천천히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보았다.

“!!!”
그 순간 그의 눈이 더욱 더 놀란 눈으로 커지고 있었다.
“누굽니까?”
정구석이 물었다.
“회장님이십니다.”
“!!!”
그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던 회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연락했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네. 회장님.”
고민국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나오는 뉴스. 무슨 내용인가?-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이 나왔다. 고민국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물음에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 일은 저희들이…….”
-시끄럽다! 당장 내 방으로 와!―
변병의 여지는 없었다. 뭐라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회장의 늙고 거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들려왔고,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 있기만 하였다.

-오늘 낮, 선유도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모두 내용을 숨기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한 조직 폭력배들의 이권 다툼이라 발표는 하였지만, 검사와 경찰 외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이권다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들입니다.-

날이 어두워졌다. 낮에 있던 모든 일은 정리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찍었던 영상들은 그 순간 검색어 1


위를 달리고 있었다.
또 한 뉴스에서는 선유도 주차장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내보내며,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방송을 내 보내고 있었다.

“대체 어찌 그리 잘 숨기고 있었습니까?”


한 편. 태정민과 박태식은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설장호의 집에서 하루 종일 TV 도 시청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 탓에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강서진의 연락을 받고서야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올 수 있었다.
또 한 강서진은 서지호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차현태에게 모든 것을 비밀로 하려 하였지만, 이미
차현태도 뉴스를 통해 그 상황을 접하면서 선유도 주차장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아니.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은주와 미희. 그리고 지현이었다. 이 세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선유도 주차장의 일은 절대 함구였다.
설장호는 반쯤 시체가 된 듯 보였다. 하지만 외관상 상처다. 내부손상이 없기에 그리 깊은 상처가 아닌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는 모두의 눈빛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처음이지 않아요?”
강서진이 설장호를 보며, 모두에게 물었다.
“네. 처음입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답했다. 처음이라는 말은 설장호가 병원신세를 지는 것을 떠나, 붕대를 돌돌 감고,
정말 미라처럼 있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사람의 시선은 추선우에게로 향하였다.
“내가 저런 느낌이었다니까요.”
그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추선우는 팔과 허벅지 부분에 사시미에 베인 상처를 치료 중이었고,
얼굴에는 반창고 몇 개만을 붙여놓았다. 그 역시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사시미가
그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간 흔적은 몇 곳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내가 추선우씨와 함께 누군가와 대적할 때, 왜 추선우씨는 멀쩡한데 저만 그런지 물었죠? 딱 이런
상황입니다. 지금도 똑같은 놈들을 두 사람이 상대했는데, 추선우씨는 간단하게 치료하고 있는데, 설
실장님은 미라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태정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계속 이런 상황이었다. 분명 같은 상대를 접하고, 같이 움직였지만,
결국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추선우와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추선우가 뒤로 빠져서 기회만을 보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그리고 심할 정도로 상대와 맞부딪혔다. 하지만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와 함께 그들을
상대했던 태정민이나, 설장호였다.

“추선우씨. 다른 곳은 아프지 않아요?”


강서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네. 보시다시피…….처음에는 팔과 다리에 피가 많이 나오기에 놀랐지만, 뭐, 버틸 만 했습니다.”
“천직이네. 천직. 그냥 경호원이 천직이야.”
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이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자신이 경호실 팀장이며, 지금 그 자리에 경호
실장마저 와 있는 상황에서 태정민은 마치 서지호가 듣도록 설레발을 늘어놓고 있는 것과 같았다.
“최기수…….어찌되었나?”
모두가 농담을 던지며, 사건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시간 중에 가장 화기애애한 듯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설장호가 붕대를 징징 감은 얼굴로 물었다.
“최기수…….국정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의 질문에 서지호가 신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놈. 그 어떤 놈도 그 놈을 만나지 못하도록 해. 그 누구도 안 돼. 회사 사람이라고 찾아오던지,
아니면 변호사라도…….그 어떤 놈이라도 만나게하지마라.”
“하지만…….변호사를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그 놈의 죄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감금은…….”
“내 말만 들어…….다른 놈 말 듣지마라.”
서지호가 말했지만, 이내 설장호가 다시 말하자, 모두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설장호가 그런다면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란 것이 있을 것이다. 다만…….
변호사마저 그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함이었다.
“미리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놈을 국정원에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말이 많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있은 후, 태정민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 현장에 검찰과 경찰이 있었는데, 왜 국정원에서 그를 데리고 갔는지에 대해, 최기수의 측근들이 연신
국정원 전화통을 불나게 만들고 있답니다.”
태정민은 국정원 소속 대원이 아니지만, 국정원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국정원에서 그들을 막고는 있지만, 합당한 이유가 없을시, 계속적으로 그를 잡아둘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서지호가 말했다.
“너희들은 국정원 소속도 아니면서 어찌 그리 국정원의 일을 잘 알고 있어?”
설장호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 붕대 속에서 입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잘도 보고 잘도 묻고 있었다.

“제가…….태팀장님과 통화를 좀 했습니다.”


곧 병실 문이 열리며, 대북전담팀장이 들어서며 말했다.
“넌 왜 와. 너마저 오면 최기수를 누가 잡고 있어?”
설장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 국정원에서 이제 자신이 믿는 팀은 오로지 대북전담팀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장님께 직접…….최기수를 잡고 계십니다.”
“!!!”
모두가 놀랐다. 그의 말은 설장호도 놀라게 했다. 국정원장이 그를 책임지고 있다면, 아주 큰 도박을
하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를 계속 잡고 있다면, 국정원장은 그들과 손잡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최기수를 보낸다면, 국정원장도 이미 그들과 손을 잡은 것과 같았다.
여러모로 설장호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있었다. 국정원장이 그를 놓치지 않는다면 일은 편하겠지만,
만에 하나 애써 잡은 최기수를 데리고 그가 사라진다면, 이제부터는 국정원장도 잡으러 뛰어다녀야 할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믿어보시죠.”
대북전담팀장이 말했다. 설장호는 그의 말에 아무런 답 없이 몸을 돌려 누웠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자신에게 이창민대사의 서류 내용을 전달한 사람. 바로 국정원장이었다. 그것만을 본다면 국정원장은
그들을 잡는 사람이다. 하지만 연화장. 그 때를 생각하면 또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자자. 일단 환자들 좀 쉬게 합시다.”


두 사람은 이미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을 지경까지 갔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워낙 좋아진
탓인지, 단 몇 시간만에 입을 열고 농담마저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다. 휴식이 우선인 환자이기에, 태정민이 모두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추선우…….”
모두 병실을 나선 후,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추선우를 불렀다.
병실은 2 인실이기에, 모두가 나가자 두 사람만 남은 상황이었다.

0013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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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다. 쉬어라.”
부드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너무나 짧고 고마운 말을 전하였다. 추선우는 그를 보았다. 등
돌리고 누워있는 그를 보았다.
“실장님도 쉬십시오.”
그도 인사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다. 아니…….설장호가 죽을 고비를
맞이하였지만, 추선우에 의해 생명을 부지하였다.
고맙다는 말로 끝낼 수 없는 고마움이 그에게 있었다.

“대단하신 국정원장을 이렇게 앞에서보니 느낌이 새롭군요.”


같은 시각. 대북전담팀장의 말대로 최기수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이었다. 그리고 최기수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국정원장도 그를 아는 듯 공손한 어투로 인사하였다. 하지만 그의 눈매는 절대 공손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국정원장님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었는데……. 그건 알고


있습니까?”
최기수가 국정원장을 보며 조금은 건들거리는 태도와 어투로 말했다.
“오랫동안 시도하셨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아셔야죠. 왜 아직도 이런
구차한 짓거리를 하고 계십니까?”
“!!!”
국정원장의 말에 최기수의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보다 먼저 변한 것은 국정원장의 어투였다.
처음의 공손함은 딱 그 처음뿐이었다. 그 후부터는 진정으로 용의자를 대하는 듯 한 어투와 표정으로 변한
국정원장이었다.
“우리를…….이길 수 있을 것이라 봅니까?”
잠시 동안 그를 매섭게 노려보던 최기수가 물었다.
“얼마 전까지는 이길 수 없는 거대 권력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지금은 그 권력을 충분히 잡을
수도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니…….이제부터라도 자만하지 마십시오.”
“설장호…….그 놈 때문에 기가 아주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의 말에 최기수가 다리를 바꿔 꼬운 뒤, 다시 말했다.
“꼭 설 실장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당신들을 수면위로 꺼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목을
치려했는데, 그 날이 오늘부터 시작되려나 봅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최기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반면에 국정원장의 표정은 환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보면, 국정원장은 뿌리에 가담한 인물이 아니라, 뿌리를 잡기 위하여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임이 밝혀지고 있었다.
“우리 중에…….당신들과 악마의 계약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국정원장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상황을 직접 묻고 있었다. 이미 설장호가 청장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국정원장은 그 누구도 따로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묻는 것이니, 나에게 되묻지 말고, 답을 하십시오.”
최기수가 되묻자, 국정원장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차피…….일이 아주 복잡하게 돌아갈 것 같은데, 궁금증 해결은 직접 해 보십시오.”
최기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국정원장도 다시 묻지 않았다.
“원장님. 또 다시 최기수의 측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변호사까지 동반하여 왔는데…….”
“돌려보내.”
곧 한 대원이 들어서며 말했지만, 국정원장은 단호했다. 그 누구도 최기수를 만나지 못하게 하라는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말이 전달된 것도 아닌 상황에, 이미 국정원장은
최기수를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법을 어기시는 것입니까?”
최기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
“당신들에게는 대한민국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법의 보호를 받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최기수라하여도, 국정원장을 이겨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한 편. 네 명의 회장이 떠받드는 한 명의 회장이 있었고, 그 회장이 지금. 최기수를 제외한 세 명의
회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세 명 모두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나에게 미안한 것이 있긴 있나보군.”
늙은 목소리였다. 세 명의 젊은 여인이 나체로 한 노인의 늙고 축 늘어진 살을 비비며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의 옆으로는 건장한 사내 네 명이 각기 장검을 손에 쥐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세 명의
회장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된 일인지만 말하고 가라.”
회장은 자신의 늘어진 살에 탱탱한 여인의 살이 닿자, 그 여인의 몸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창민대사의 일입니다.”
“이창민? 아직도 그 일이 처리되지 않은 것인가? 이창민을 죽여, 그의 입을 막도록 명령내린 것이 보름은
되었다. 그런데…….그런데 아직도 그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고민국이 답하자, 회장은 가느다랗게 뼈만 남은 손으로 여인의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비명을 지르거나, 인상을 찌푸릴 수 없었다.
그저 늙은 노인을 보며 웃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그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런데 왜 최기수가 잡혀? 최기수가 이번 일과
상관있다는 것이 밝혀졌나?”
“아닙니다.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최 회장을 다시 빼내려
하고 있습니다.”
회장의 말에 이번엔 정구석이 답했다. 그러자 그의 매서운 눈빛이 정구석에게 향하였다.

“내 권력으로 너희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마라. 그러는 순간…….너희들이라도 목은 날아간다.”


“아…….알겠습니다.”
노인의 한마디에 노인의 옆에 있던 사내 네 명 중, 세 명이 장검을 뽑아들고 세 명의 회장에게 뻗었다.
“그래도…….오랫동안 내 밑에서 일을 했으니, 도움은 줘야지. 그래…….그 놈은 지금 어디로
잡혀갔나?”
회장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한 후에 다시 온화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물었다.
“국정원으로 갔다합니다.”
“국정원? 왜 국정원인가?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국정원으로 간 이유가 있는가?”
회장은 고민국의 말을 들은 후, 납득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것이…….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놈들 중, 그들을 지휘하는 자가 설장호란 자로…….
그가 국정원 소속입니다.”
“설장호…….설장호…….듣던 이름인데…….”
회장마저 설장호란 이름을 기억에서 찾으려는 듯하였다.
“국정원장을 매수하면 일은 편하지 않은가?”
“그것이. 지금까지 수차례 국정원장을 매수하려 하였으나, 다른 놈들과는 달리 아주 고집불통입니다.
돈이나 계집. 권력 따위로 그를 매수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회장이 쉬운 답이라 말하였지만, 곧 정구석이 하는 말을 들은 후, 고개를 살짝 들어 세 명을 향해 다시
보았다.
“돈과 계집. 권력을 무시한다? 하하하. 그 놈.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내가 되기에는 걸렀군. 그럼 그
놈이 안 된다면, 설장호를 매수해.”
회장은 국정원장에 관한 말을 들은 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 후, 곧바로 설장호를
매수하라 하였다.
“그 놈은…….국정원장보다 더 독한 놈입니다.”
고민국이 답했고, 곧 회장의 매서운 눈빛이 다시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재밌구나…….돈과 권력, 여자를 싫어하는 놈들이 나의 목을 조우기 시작한다…….그렇다면 기꺼이 내가
그 상대역을 해 주지.”
회장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나체의 여인들도 함께 몸을 일으켰고, 그녀들의 탱탱한 살들이 세
명의 회장들의 눈에 보였다.
“마음에 들면 한 명씩 가져가게. 난 이제 다른 애들을 찾아봐야겠어.”
회장이 일어섰다. 정말 축 늘어진 모든 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는 딱이었다.
하지만 그런 몸에도 예쁘고 젊은 여자들이 붙어있다. 바로 돈과 권력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의 돈과 권력을 여자들에게 쏟는다.
“돌아가서. 너희들은 최기수를 빼낼 궁리를 해라. 난…….국정원장과 설장호를 다듬어줘야겠다.”
“한 명이…….더 있습니다.”
회장이 가운을 걸치고 나서며 말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정구석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추선우라는 민간인입니다.”
“민간인? 지금 나에게…….그런 민간인 하나까지 다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인가?”
정구석의 말은 오히려 회장의 분노를 더 높이는 말이었다.
“회장님. 정 회장이 말한 민간인. 보통 놈은 아닙니다.”
정구석의 말에 늙어서 튀어나오려던 눈을 하고 있던 그에게 장검을 들고 있던 수하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길이 수하에게로 향하였다.
“네 놈도 아는가?”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뉴스에서 나온 그 놈을 말하는 것이라면…….그냥 넘길 놈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정구석의 말은 그의 귀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수하의 말은 그의 귀에 쏙쏙 다 들어간
것과 같았다.
“그 놈이 맞는가?”
회장이 정구석을 보며 물었다.
“네. 회장님. 그 놈입니다.”
“하찮은 것들.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우리조직이 고작 민간인 한 명에게 이리 목을 걸고 있다니…
….”
회장은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벌거벗은 여인 세 명은 나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세 명의
회장들을 보고 있었다.
“썩 꺼져!”
하지만 세 명의 회장에게도 그녀들의 몸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늙은 노인의 살결을 비비던 여인의 몸을
그들이 탐할 리 없었다.
“국정원장과 설장호는 이해하지만, 그 민간인은 어쩌다 이 일에 끼어들었는지 확인했는가?”
회장은 곧 자신의 침실로 향한 뒤, 수하에게 물었다. 그리고 수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정의…….웃기는군. 멋모르는 젊은 놈이 정의라 앞세워 멋진척하다 인생 끝을 달리는 것을 모르고
있나보군.”
회장은 수하의 말을 모두 들은 후, 웃었다. 그리고 곧 손을 휘휘저어 수하들을 내보내자, 침실에서는 또
다른 젊은 여성 세 명이 벌거벗은 몸으로 나와 그의 곁으로 다가서서 살을 부비기 시작하였다.

“잘 주무셨습니까?”
다음 날. 아침부터 병실로 모두 찾아왔다. 그리고 박태식이 먼저 인사하였다.
아침 일찍 찾아와 깨우려고 한 것이지만, 이미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보며 서 있었다.
“벌써 그리 서 계셔도 되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내가 무슨 다리가 부러졌냐. 숨을 못 쉬냐. 그저 외관상 상처 좀 입었다고 너무 호들갑들 떨지마라.”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창가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과 강서진, 태정민은 그의 밝은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0013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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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정민이에게는 미안하다.”
“네? 저에게 뭐가 미안하단 말씀입니까?”
설장호의 갑작스러운 말에 태정민이 이유를 물었다.
“지난 날, 병따개와의 일전으로 녹초가 되어버린 너는 병원도 가지 못하게 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다 넣어두었는데, 난 이렇게 호화스러운 병실에서 치료도 잘 받고 있으니 말이야.”
“에이…….괜찮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태정민은 딱 괜찮다는 말까지만 했어도 설장호가 더 미안함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뒤로 이어지는
말에 결국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을 덤으로 얻어가게 되었다.
“그나저나. 최기수를 왜 붙들고 계신 것입니까? 그가 이창민대사의 일과 무슨…….”
“그는 권력자다. 하지만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은 권력자지. 충분히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가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고도 남을 놈이 최기수다.”
태정민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했다. 최기수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은 설장호 한 명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최기수를 국정원으로 잡아들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었다.
“최기수…….그 놈이 이창민대사의 일과 연관이 없다고 하여도, 그 놈을 들쑤시면…….이창민대사의 일이
나온다. 그리고 그 놈과 연관된 몇 놈이 더 나온다. 명심해라…….그 놈은 꼭 잡아둬라. 절대 외부로
다시 나서도록 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최기수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할 인물이라는 설장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매섭게 변했다.
“일단 두 분은 병원에서 마저 치료를 하십시오. 지금 병실 앞에는 국정원 팀원 몇 명이 대기 중이며,
병원 내부 인근에는 검찰 쪽 인원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강서진이 말했다. 이미 최기수가 잡혔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었기에, 그들의 조직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기에 강서진은 검찰 쪽 인원을 병원 곳곳에 상주시켜 놓았고, 병실 앞에는 설장호가 믿고 있는
팀원들만을 세워두었다.
“자네들도 조심하게, 강 검사가 말했듯이 최기수가 우리 손에 있으니, 그들은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야. 만에 하나 그 놈들 손에 잡히면, 그들이 할 행동은 딱 정해져있다.”
모두가 설장호가 하려는 말뜻을 알고 있었다. 최기수를 빼내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인질교환식의
방식이다.
그러기에 더욱 더 자신의 몸은 스스로 잘 간수하라는 뜻이었다.

“그 누구도 병실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잘 경계서야 합니다.”


“네. 검사님.”
두 사람을 남겨두고 다시 병실을 나섰다. 강서진은 병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당부하였고, 그들은 그녀에게 고개 숙여 답했다.
“이대로 그냥 있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사람은 휴게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캔 커피를 들고 앉으며 태정민이 말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도 이곳에서 설 실장님을 경호해야 해. 실장님의 말씀처럼 최기수란
놈이 대단하다면, 필시 자신의 현재 처지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기 위하여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를 잡기
위해 온다. 비록 검찰과 국정원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박태식이 말했다. 비록 태정민도 아직 체력이 완쾌된 것은 아니지만, 곰팡이 나는 집에서 하루라도
쉬었다고, 어느 정도의 체력은 회복한 상태였다.
서지호는 청와대에서 지현과 함께, 두 민간인을 경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었고, 국정원장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최기수를 잡아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점점 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군.”


세 사람이 나간 후, 설장호는 창가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추선우가 묻자, 설장호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걱정? 내가 걱정이라도 있어 보이는 얼굴인가?”
설장호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묻는 그의 질문에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되물었다.
“아닙니다. 걱정이 있어 보이는 얼굴은 아닌데, 걱정을 해야 할 것만 같은 표정이셔서…….‘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천천히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자네의 말처럼 걱정거리가 있네. 최기수…….그 놈이 만약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이번 사건은 꽤
대단한 권력자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할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선우는 최기수에 대해 모른다. 당연히 강서진이나 태정민도 모르니, 민간인인 추선우가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설장호가 걱정할 정도의 인물.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가 속한 권력층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일단. 몸부터 좀 낫자. 죽을 고비를 넘기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정말
오래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직장을 다시 구하고 싶다.”
설장호는 창가에서 멀어지며, 침대로 가 누웠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를 보았다. 태연스러운 행동이지만,
그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회장님. 사람이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보내겠습니다.”


같은 시각. 지난 날 세 명의 회장들로부터, 설장호와 추선우에 대한 보고를 받은 회장의 곁으로 그의
경호원이 다가서며 말했다.
“최기수가 잡혔고, 또 우수광과 고민국, 정구석이 두려워하는 사람. 그 놈들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하군.
보내라…….보내고 난 뒤, 1 시간마다 다시 나에게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회장님.”
늙은 회장은 잠시라도 젊은 여성의 살을 부비지 않으면 죽는 듯, 여전히 그의 옆에는 젊고 예쁜 여성이
맨살을 드러내놓고, 늙은 살에 자신들의 탱탱한 살을 부비고 있었다.
“그나저나…….최기수회장은 어찌할까요? 그냥 그대로 두었을 경우. 자칫 우리 조직에 대해 발설이라도
하는 날에는...”
“최기수가 그리 멍청하지 않다. 하지만…….너의 말도 일리는 있으니, 적당한 때를 봐서, 그를 빼내오지
못할 것 같다면, 그냥 편히 보내줘라.”
“네. 회장님.”
늙은 회장에게 자비란 없었다. 최기수가 얼마나 오랜시간동안 그의 곁에서 보좌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가감하게 쳐 낼 준비를 서슴치않았다.

“대체…….나를 언제까지 잡아둘 참이오?”


날이 밝았지만, 최기수는 여전히 감금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이 또한 필시 불법이지만, 불법 운운할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나야 이 사실을 말 할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그 어떤 누구도 최기수를 만나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최기수는 식사를 직접 들고 들어서는 국정원장을 보며 물었다.
“당신의 입에서 진실이 나올 때까지…….그 때까지 당신은 내 손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국정원장은 식사를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매일같이 화려한 식단으로 식사를 즐겼던 최기수에게
지금의 식사는 개밥만도 못한 식사였다.
김치찌개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식단이었고, 다른 반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국정원이 이리 불법을 자행하니, 대체 이 나라 기관에서 믿을만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기수는 김치찌개를 보며 쓴 표정을 짓고 말했다.
“불법이라…….당신을 감금한 것에 대한 불법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불법이 있습니까?”
“나를 감금한 것도 그렇고, 또 대체 이 밥은 뭡니까? 지금 이것을 나에게 먹으라고 준 것입니까? 아무리
죄를 지어도 밥은 먹여야 하는 것이 법인데, 대체 뭘 먹으라고 준 것인지 원…….”
최기수는 뻔뻔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였다.
“먹기 싫다면 먹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말하는 이런 식단.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식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당신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고자 뛰어다닙니다.”
“뭐야!”
결국 최기수의 목청이 다시 커졌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김치찌개를 다 들어 엎으며 소리쳤고,
김치찌개의 일부 음식물이 국정원장의 얼굴과 옷에 묻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원장님!”
그 순간 감금실 문이 열리며, 국정원 대원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몰골을 본 후, 최기수를
쏘아보았다.
“당장 이 놈의 죄를 물어야겠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게. 아직 설 실장이 이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죄를 찾지 못하였어. 어중간한 죄목으로 쳐 넣어봐야
또 나온다. 그러니…….한 번에 제대로 쳐 넣을 수 있는 죄목을 찾을 때까지…….이 사람에게 말을
조심하고, 존중해주게.”
국정원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대원들은 답답한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최 회장님.”
국정원장이 감금실을 나서려 할 때,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불렀다.
최기수는 아무런 말없이 그의 얼굴을 보며 서 있었다.
“그 김치찌개…….그 어떤 음식보다 맛납니다. 하지만 이미 당신의 입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들이 바닥에
너저분하게 떨어졌으니, 배가 고프시다면…….그 떨어진 음식이라도 잘 핥아먹어 보십시오.”
국정원장은 이 말을 한 후, 감금실을 나섰고, 대원들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조금이라도 풀며, 최기수를
보았다.

“최기수씨. 다음 식사시간까지 일체 음식지급은 없습니다.”


대원들은 테이블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식들을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나서며 말했다.
최기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제까지 그는 초호화 식단은 물론, 모든 것에 최상위 대접을 받아오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동네 똥개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버린 것에 두 주먹이 절로 쥐어지고
있었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쉽지 않겠습니다. 아예 국정원 정문도 통과하기가 힘듭니다.”


한 편, 세 명의 회장에 의해 몇 명의 사내가 최기수를 빼내오고자 국정원 안으로 들어서려 하였지만,
아예 정문조차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찌합니까? 만에 하나 우리가 최 회장을 빼내지 못한다면, 필시 회장님이 직접 나서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들 알다시피 최 회장의 운명은 딱 두 가지로 압축될 것입니다.”
현장 보고를 받은 고민국이 두 명의 회장에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운명. 죽던가…….아니면 불구로 살아남던가…….”
모두가 고민국이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였다.
“혹시…….그 석강수란 놈…….그 놈을 움직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놈이 과거 국정원소속이라고 하였으니,
혹시나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골똘하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때, 우수광이 입을 열었다.
석강수는 고민국에게 20 억 원을 받은 인물이며, 그 돈으로 인하여, 고민국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다.
비록 성남 펜션에서 추선우와 일전을 벌이다, 박태식이 들어서며 물러나긴 하였지만, 그는 아직도
추선우와 남은 일전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만에 하나 고민국이 다시 연락한다면, 충분히 그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일 인물이었다.
“연락해 보겠습니다.”
고민국도 잠시 잊고 있었다. 성남펜션의 일이 있은 후, 그 후로는 일체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기에, 그의
생사조차도 모르고 지내왔었다.

고민국은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석강수에게 연락하였다.

0013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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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수신음이 채 3 초도 울리지 않아, 석강수가 전화를 받았고, 고민국은 그의 안부대신에 위치를 물었다.
“자네가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않아, 최 회장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네. 그에 대한 책임은 다해야하지
않겠나?”
-…….-
고민국의 말에 두 명의 회장은 전화기 건너편의 답변에 대해 기대감을 가진 채, 전화기로 자신들의 머리를
더 들이밀었다.
하지만 들여오는 답변은 없었다. 그저 굵직한 숨소리만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왜? 답이 없는가?”
고민국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지요. 지금 당장 추선우의 목을 쳐 내겠습니다.-
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답은 이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이에 고민국은 두 회장을 다시 본 후,
심호흡을 하였다.
“어차피 설장호와 추선우는 우리 쪽에서 어느 정도 담금질을 해서, 병원에 쳐 넣어두었네. 그 둘을 잡는
것은 자네 같은 인물이 하지 않아도 충분해. 그러니…….자네에게는 다른 제안을 하고 싶은데,
받아주겠나?”
세 명의 회장은 또 다시 그의 답을 기다리는 듯,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의외로 순순히 고민국의 제안을 받아주고 있는 석강수였다.
“지금 국정원에 최 회장이 감금되어 있는데, 우리 쪽 변호사는 물론,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
동원하고 있지만, 도통 만날수가 없어. 그래서…….”
-국정원 안에 감금되어 있다면 그를 빼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난 이미 국정원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나에게 국정원의 일을…….-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만에 하나 최 회장을 조속한 시일 내에 빼내지 못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자네의 목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네.”
고민국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그가 직접 움직이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죽이는 것이라면 해볼 수 있지만, 데리고 나오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세 명의 회장은 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비록 서로 경쟁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래도 서로 목을 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기수의 입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그의 목을 치는 것 밖에
없었다.
이는 늙은 회장이 이미 실행에 옮긴 계획이었다. 그의 권력에 의해 누군가 국정원으로 들어설 것이며,
그가…….최기수의 목을 쳐 낼 것이기에, 세 명의 회장은 그 전에 최기수를 살릴 다른 방도가 있는지를
알아본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죽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당신들께서 말하는 그 권력. 매일같이 권력의 최상위계층에 있다면서 어찌 국정원하나를 구워삶지
못했습니까? 그 권력을 이용하여 무사히 빼 내 보십시오.-
아무런 말없이 표정만 굳어져 있는 세 사람에게 석강수는 제대로 한 방을 먹이는 말을 남겼고, 곧 전화를
끊었다.

“제길…….”
끊어진 전화를 보며, 우수광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이제 어찌합니까? 정말 회장님께서 직접 최 회장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정구석이 다시 모두를 보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마땅히 답을 내놓을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놈들이 있다. 필시 주변에 두 놈을 경호하고자 붙은 놈들이 있을


것이니, 각별히 조심해서 목표물만 제거하고 나온다.”
“알겠습니다.”
한 편.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중이 병원으로 먼저 늙은 노인의 명령을 받은 이들이 도착하였다.
세 명의 사내였고, 그저 평범하게 생긴 샐러리맨들이었다. 우락부락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날카로워보이는 인상도 아니었다. 그저…….서류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서는 평범한 인물들과 같은
외모였다.

세 명의 사내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예상처럼 딱 봐도 형사며,


국정원소속 사람이라고 느껴질 인물들이 병원 내에 수두룩하였다.
하지만 세 사람과 반대로 그들은 세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병원이기에 하루에도 수십 명의 보험관계자들이 병원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세 사람의 외모가 딱 보험관계자로 보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병원을 쉽게 들어섰다.


“7 층.”
먼저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중인 입원실부터 확인하였다. “명심해라. 회장님의 명령이니, 이 한 번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면, 우리가 여기서 죽어도 그 대가는 가족에게 충분히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늙은 회장의 명령을 이행하기에 앞서, 마치 명령을 이행하다 죽을 것을 미리 생각하는 듯 한
대화를 나누었다.
세 사람은 7 층으로 바로 향하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7 층에 도착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7 층에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두 사람이 입원중인 병실을 지키기 위하여 대기 중인 인원들이었다.
세 사람이 7 층에 도착하자, 그들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 즉시 세 사람을 제지하는 인물은 없었다. 7 층 전체가 두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만은 피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순간부터, 그들의 모든 행동과
입모양은 7 층에 있는 모든 국정원대원들의 눈에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었다.

세 사람은 7 층 복도 좌, 우를 살폈다. 그리고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한 병실이 아닌, 그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집중되어 있던 그들의 시선도 그 때서야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목표물을 바로 제거하는 것은 어려울 듯 하다. 주위를 분산시키고, 한 명만 목표물에 접근한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작전을 다시 계획하였다. 그리고 곧 한 병실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서 한 놈만 죽여라.”
“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의 병실이었다. 그들은 계획대로 7 층에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일반인을 제물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두 명이 병실로 들어서고, 한 명은 병실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섰다.

“으아악!”
잠시 후, 약 3 분이 지난 시간에 병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7 층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해당 병실로
향하였다.
간호사와 의사가 서둘러 뛰기 시작하였고,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시선도 그곳을 집중되었다.
“가서 확인해.”
“알겠습니다.”
국정원소속 대원 세 명이 움직였다. 총 아홉 명이 대기 중이었고, 그 중 세 명이 비명소리가 들린 병실로
이동하였다.

‘쾅!’
그 순간 비명소리가 들린 병실에서 조금 전, 들어갔던 두 명의 사내가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나왔다.
“!!!”
그 모습에 의사와 간호사가 놀라 뒷걸음을 쳤고, 다가서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총을 꺼내들었다.

“하하하하!”
두 사내는 웃었다. 아주 큰 소리로 웃었고, 비명소리가 난 후, 웃음소리가 들리자, 7 층에 입원중이
환자들이 하나, 둘 병실에서 나오며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뭣들해! 잡아!”
국정원 대원이 소리쳤고, 아홉 명 중, 세 명만이 설장호와 추선우의 병실 앞을 지킨 채, 나머지가 두
명을 제지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무턱대로 총을 쏘며 제압할 수 없었다.
국정원 대원들이 다가서자, 두 명은 손에 피를 묻힌 채, 히히거리며 복도 끝으로 서서히 이동하였고,
국정원대원들이 그 병실을 지나쳐가며 두 사람을 쫒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에서 환자복을 입은 한 사내가 놀라는 척 행동하며 벽에 기댄 채, 다시 나오고
있었다.
환자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점차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곳까지 왔고,
곧바로 그 부분도 지나, 설장호와 추선우가 있는 병실방향으로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세 명의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입원중인 병실방향에도 이미 세
개의 병실이 더 있기에, 환자복을 입고 비틀거리는 사내가 해당 병실의 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7 층은 때 아닌 비상사태로 난장판이었다. 복도에는 피가 이리저리 난무해 있었고, 직접 그 광경을 본


같은 병실 환자들이 놀라 병실에서 뛰쳐나왔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였지만, 자신들의 눈앞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쉽게
진정될 리가 없었다.

“여기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다 한 의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모두가 겁에 질려 쉽게 병실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가서 도와드려라.”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섯 명의 대원들이 두 사람을 쫒기 위하여 움직였다. 비록 자신들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설장호와 추선우를 노리고 온 놈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뒤쫓는
것이었다.
또 다시 두 명의 대원이 쓰러져 기진맥진해 있는 환자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의사를 돕고자 움직였다.
그리고 두 명의 대원이 다가서자, 의사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두 명이 마저 움직이자, 이제 병실 앞에는 단 한 사람의 국정원대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체…….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사내가 마지막 남은 대원 옆을 지나쳐가며 물었다.
“지금 확인중입니다. 그러니 안전한 곳으로…….”
‘스윽!’
국정원대원이 그의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목을 향해 뭔가 다가왔다 가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목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나오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려 하였다. 그 순간 환자복을 입은
사내는 그가 쓰러지기 전, 그를 부축하여 환자휴게실 안으로 바로 들어섰다.
이미 모든 것이 계획된 듯, 환자 휴게실 안에는 단 한명의 환자도 없었다.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사내. 그는 세 명의 사내 중, 화장실로 들어갔던 사내이며, 그 안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작전이 시행되자, 환자처럼 행동한 킬러였다.
그는 설장호와 추선우의 병실 앞에 섰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하였다.

“오늘이 당신들의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그는 홀로 중얼거린 뒤, 병실 문을 서서히 열었다.

“다들 아무런 문제없습니까?”


한 편. 식사를 하고자, 병실을 잠시 자리를 비운 강서진과 태정민, 박태식은 병원 로비를 들어서며,
경계중인 형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강서진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강서진이 답을 들은 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들었고, 곧 두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하였다.

‘후다다닥!’
그 때. 병원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보였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병원 경호원들도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그들의 움직임에 태정민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흐렸다. 그리고 서둘러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려
하였지만, 이미 엘리베이터는 7 층에서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제길!”
태정민이 쓴 소리를 내 뱉은 후, 계단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이어 박태식도 오르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병원 로비에 있는 형사들을 이끌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0013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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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같은 시각. 늙은 회장의 옆에서 장검을 들고 있는 한 경호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냐?”
-시작되었습니다. 곧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주 짧은 통화였다. 경호원은 통화가 끝난 후, 통화내용을 늙은 회장에게 알려주었다.
“설장호와 그 민간인을 치는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군. 난 국정원에 있는 최기수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날 것이라 여겼는데 말이야. 어쨌든…….결과가 전해지면 알려라.”
“네. 회장님.”
그는 여전히 젊은 여인의 살결을 느끼며 색에 빠져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사내가 병실을 들어섰다. 그리고 병실 안에는 설장호와 추선우가 눈을 감은 채,


잠에 들어있었다.
“그렇게…….편히 자는 것이다…….영원히.”
그는 조금 전, 국정원소속 대원의 목을 가른 작은 단검을 꺼내들며 중얼거렸다.
“누가 보낸 킬러인가?”
“!!!”
하지만 그가 칼을 들고, 한 발짝을 움직이는 순간,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행동도 멈추었다.
곧 설장호가 일어섰고, 추선우도 몸을 일으키며 그를 보았다.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무리 둔하다고해도, 외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편히 잠을 자겠는가?
어떤 미친놈이 실성하여 지르는 비명과 웃음소리라도 잠이 깨겠다.”
설장호가 마저 몸을 다 일으키며 말했다. 그리고 추선우는 자신의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빼며 그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그래…….그래. 이렇게 나와야 제 맛이지. 그냥 쉽게 죽이면 나도 재미가 없지.”
그는 단검을 이리저리 휙휙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칼을 들고 있다고 하여 추선우가 물러날 사람은
아니었다.
추선우는 얇은 이불을 들어 손에 감싼 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착!’
추선우가 다가서자, 킬러는 단검을 아주 빠르게 회전시키며 순식간에 추선우의 팔을 그었다. 하지만
이불이 돌돌 말려있기에 직접적인 상처를 주진 못하였다.
그래도 이불이 순식간에 갈라지며 찢어지는 것을 보고,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듯, 설장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행하게도 지금 이 두 사람은 사시미의 무서움을 절실하게 느끼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라,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순순히…….목을 내밀어라.”
그는 자신의 칼 솜씨를 뽐내는 듯, 계속하여 단검을 이리저리 휙휙 돌리면서 다가섰다.
‘탁!’
하지만 그가 추선우와 거의 1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다가설 때, 추선우는 이불을 감은 손을 뻗어, 칼을
든 그의 손을 아주 강하게 밀쳐냈다.
“젠장!”
킬러는 칼을 든 손을 뻗어 추선우를 찌르려 하였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추선우의 손이 뻗어지면서,
칼을 든 손에 충격이 가해졌고, 그로인하여 칼을 놓치고 말았다.
“킬러라면 칼 없이도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뭐…….킬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킬러는 그래…….그 놈은 칼 없이도 백가지의 살인방법으로 백 명을 모두 다르게 죽일 수 있는
놈이다.”
설장호가 그의 당황하는 눈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예를 들어 말하는 인물은 석강수였다.
“시끄러!”
그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추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장창!’
“!!!”
곧 계단을 통해 7 층까지 올라온 일행의 눈앞에서 병실 문이 박살나며, 환자복을 입은 사내가 팅겨 나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들어가!”
복도에서 보면, 환자의 얼굴생김새가 자세히 보이지 않기에, 환자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지금 팅겨나온
사람이 설장호나 추선우일 것이라 생각하며 강서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형사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갔고, 그 순간 병실 안에서 추선우가 걸어 나오며 환자복을 입은 또
다른 사내의 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추선우씨?”
강서진은 그를 보며 불렀고, 추선우의 동작은 그 순간 멈추었다.
“뭣들해! 저 놈을 잡아!”
추선우가 그를 쳤다면, 그가 킬러라는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강서진의 큰 목소리에
형사들이 일제 다가서며 그를 제압하였고, 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추선우를 올려보았다.
“누가 보낸 놈이야!”
곧바로 태정민이 달려와 그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인상만 찌푸린 채, 추선우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추선우…….”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한 명의 의사는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잔인해 보일 정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 회장의 경호원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세 명은 그에게 전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경호원은 전화를 받았고, 지금 곧바로 일이 진행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즉. 이 세 사람 외에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바로 7 층 간호사실 앞에서 실신하며 쓰러지는 환자를 도와달라고 외친 의사. 그가 모두가 모여 있는 곳을
보며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 뒤,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허리춤에 감추고 있던 총을
서서히 꺼내들기 시작하였다.

‘픽!’
방아쇠가 당겨졌다.
“!!!”
“추선우씨!”
순간 추선우의 몸이 옆으로 밀려나며 병실 복도 끝부분의 벽에 강하게 부딪혔고, 강서진이 놀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총을 든 의사는 또다시 한 발을 발사하였지만, 추선우의 앞으로 형사들이 나서면서 그들이 대신 총을
맞았다.
“젠장! 비켜! 네 놈들에게 줄 선물이 아니다!”
의사는 소리쳤다. 그는 계속하여 앞으로 다가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픽픽!’
“으윽!”
하지만 총은 그 혼자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총을 쏘는 쪽에는 검사와 형사, 그리고 청와대
경호원까지 있기에 모두가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다만 먼저 총을 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를 향해 한 형사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그 뒤를 이어 박형사와 함께 태정민도 방아쇠를 당겼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수발의 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쳐가며 쓰러진 채, 즉사하였다.

“추선우씨!”
강서진은 총을 맞고 뒤로 밀려나 정신을 잃은 추선우를 흔들어 깨웠다.
“…….”
외부의 시끄러움에 설장호가 병실을 나왔다. 그는 총을 맞고 쓰러진 추선우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이라도 이 일을 자행한 장본인을 잡아 목을 치려는 듯 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어서 응급실로 옮겨!”
강서진이 소리쳤고, 형사들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또 한 같이 총상을 입은 형사들도 다른 형사들의
도움으로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따라갔지만, 강서진과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의사복장으로 손에는 권총을 들고 눈을 감지 않은 채 죽어있는 그를 보았다.

“어떤 새끼인지…….꼭 내가 죽인다.”


설장호는 눈을 감지 않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내 병실로 다시 들어가 전화기를
들었다.
-자네가 나에게 전화를 주다니…….어쩐 일인가?-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다. 그는 국정원장을 의심했던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그에게 직접
연락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가 총상을 입은 뒤, 그는 절대 연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다.
“지금…….최기수가 앞에 있습니까?”
설장호는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물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처럼 최기수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앞에 있네.”
“바꿔주십시오.‘
국정원장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전화기를 최기수의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누군데 나에게 전화를 건네주는 것입니까?”
“직접 받아보십시오.”
최기수가 물었지만, 국정원장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설장호의 목소리만으로 지금 이들로 인하여 뭔가
일이 틀어진 것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네 놈이 최고 윗선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더 위에 누가 있는가?”
설장호는 최기수가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이거…….버릇이 없구나. 지금 국정원장도 나에게 높임말로 심문을 하는데, 고작 실장이라는 놈이…….”
“주둥이 찢어버리기 전에 쓸데없는 말은 하지마라.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한다. 네 놈 위에 누가 있나?”
“!!!”
최기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아주 심하게 일그러졌고, 이를 꽉 깨문 채, 국정원장을 보고 있었다.
“설장호. 네 놈이 나를 잡았다고 내가 너를 잡지 못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난…….이곳에 오래있지
않는다. 곧 나간다. 그리되면 가장 먼저 너의 그 버릇없는 입부터 내가 손봐주마.”
최기수는 이가 어스러질 정도로 꽉 깨문 채 말했다.
“내가 말했었다. 내가 묻는 말 외에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래 나갈
수 있지. 하지만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니라도 이미…….네 놈의 목을 치러 벌써 네 놈이
잘 아는 이들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하하! 영화를 많이 봤구나. 그건 영화다. 뭐…….다른 조직들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다. 벌써 10 년은 물론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굴을 보며 살았다. 마치 형제처럼…….”
“20 년 동안 네 놈들을 잡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랬겠지. 지금처럼 한 놈이 잡혔을 때…….과연 그들이 20
년의 우정을 생각하며 네 놈의 목을 구하고자, 국정원을 제 발로 찾아올까? 네 놈이야 말로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구나. 그런 우정은 없다. 너희 같은 더러운 새끼들에게는 더욱 더 없다.”
“…….”
최기수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금 설장호가 하는 말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할 것조차 아니었다.

자신이 잡힌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다 자신이 잡혔다고 함께 한 사람들이 배신할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아니 배신을 넘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는 더욱 더 생각지 못하였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은 빈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하여도,
오랫동안 비밀에 쌓여있었던 조직을 건재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과감히 잡힌 인물의 목을 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추선우가 누군가가 보낸 킬러에 의해 총상을 입었다. 물론 네 놈은 아닐 테고, 네 놈과 함께


움직이는 이들 중 한 명이겠지. 하지만 명심해라. 나와 추선우를 잡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더 깊이 숨어들어가려면…….나와 추선우가 아닌, 오히려 네 놈의 목을 확실히 쳐
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조만간 누군가가 네 놈을 찾아갈 것이다.”
“!!!”
최기수는 처음듣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에게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단 하나도 접하지 못하게
하니, 처음 듣는 이야기가 확실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기 위한 킬러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설장호의 마지막 말. 더 깊이
숨어들어가기 위해서는 불리한 위치에 놓인 측근의 목을 먼저 친다는 것…….이 말이 최기수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0013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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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기분 더럽군.”
최기수는 설장호와의 통화가 끝나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국정원장에게 건네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국정원장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조금 전, 병원으로 킬러가 왔습니다. 그리고 추선우가 총상을 입어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
국정원장도 놀란 눈을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었다.
“위급한가?”
“아닙니다. 다행히 몸을 옆으로 서 있었기에, 왼쪽 팔을 적중하여 뚫은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 말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킬러가 뛰어난 저격술을 가졌다면 추선우의
팔이 아닌, 머리를 적중시켰을 것이었다.
하지만 팔에 맞았고, 그 충격으로 밀려나 벽에 부딪히면서 기절한 추선우였다.
“지금부터 최기수를 찾아오는 놈들에게 사람을 붙여 주십시오. 그 놈들이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그 현장을 포착하여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알겠네.”
설장호는 더 이상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최기수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다못해 그의 변호사도 필시 누군가를 만날 것이기에, 그 중에서 설장호의 시선에 들어오는 놈이 있다면,
그 역시 이번 사건과 함께 엮을 준비를 하고 있는 그였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는 병실을 다시 나섰다. 그리고 병실 맞은편의 환자 휴게실에 국정원 대원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그제야 보였다.

“젠장…….”
그는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강서진의 시선도 함께 돌아섰다.
“웁!”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눈에는 목덜미에 한 줄의 선명한 선을 긋고 죽어 있는 국정원
대원이 보였다.
설장호는 두 주먹을 꽉 쥐었고, 곧 강하게 휘둘며, 휴게실 유리창을 박살내버렸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꽉 쥐어진 손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곧 다른 대원들이 시체를 수습하여 나갔다. 국정원소속 중에서도 일부 특정 임무를 가진 이들은 죽고 난
뒤에도 병원이 아닌 국정원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들도 그런 부류였다.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소속 인물들, 그 중심에 설장호가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대원이 죽어서 옮겨진 곳이 아닌, 총상을 입고 응급실로 옮겨진 추선우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의 뒤로 강서진도 함께 따라 움직였다.

“어찌되었는가?”
응급실에 도착하자, 태정민과 박태식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서 있었고, 곧 설장호의 물음에 두
사람이 다가섰다.
“이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 총알 하나 맞았다고 무슨 수술이야?”
설장호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일반인이 총알을 맞았으며 수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처럼 몇 번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야 수술 없이도 총알을 제거할 수 있겠지만,
생전 처음 총알이 몸속에 박히게 된 추선우에게는 수술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민간인입니다. 자칫…….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곧 태정민이 다시 말했다. 그 순간에도 설장호는 추선우가 민간인인 것을 알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민간인
아닌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설장호는 괜한 신경질적인 어투로 물었다.
“아직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뭐. 급소를 통과한 것도 아니고, 신경이나, 기타 위험한 곳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리 위급할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박태식이 이어 말하였지만, 여전히 설장호의 표정은 굳어진 채, 펴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병원의 모든 CCTV 를 다 확인하고, 이 일이 어찌하여 일어났는지, 그 첫 부분이 어딘지를 찾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수술실 앞, 의자에 덜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수술실이라는 불 켜진 안내판을
보았다.
“뭣들해? 어서 병원관계자에게 협조구해서 확인해.”
“네? 아네. 알겠습니다.”
자신의 말이 다 끝났어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태정민과 박태식을 보며 다시 말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답한 뒤, 서둘러 움직였다.
“괜찮을 것입니다.”
강서진이 그의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제길…….내가 너무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최기수를 잡은 뒤, 그가 스스로 모든 것을 까발릴 것이라
생각했다.”
“이유는요?”
설장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물었다.
“그런 조직의 습성이 원래 그런 식이다. 혼자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 동급의 윗선이나, 그보다 더 높은
놈이 있다면, 기회는 없다. 잡힌 놈은 그냥 죽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설장호는 자신이 왜 최기수를 내버려두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래 숨어살았던 놈들은, 더 오래 숨어살기 위하여, 위험이 감지되면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버젓이 꼬리가 잡혀있는데…….이놈을 자르지 않고 몸통을 드러낼까? 천만에 말씀이지, 가차
없이 자르고 더 깊이 숨어서 다시 꼬리를 길러낼 놈들이 바로 이런 세계에 있는 놈들이다.”
이해가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자, 함께 한 이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최기수…….어떤 사람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설장호 밖에 없기에, 그를 어찌 다뤄야하는지 몰라 물었다.
“최기수…….그 놈은 오래전부터 정치인들을 만나, 인맥을 쌓아오던 놈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자신은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부를 축적했지.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잡지
못했다.”
“네? 설마 그 정치인들 때문에요?”
강서진은 그의 불법적인 것을 포착하고도 잡지 못했다는 말에 놀라 물었다.
“정치인? 그런 놈들을 잡아넣기는 쉬워. 하지만 그 쉬운 일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다.”
이 말은 굳이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강서진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전국 최고의 범법자는
정치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권력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도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
국민들을 위해 내세운 정책을 실현하다 어쩔 수 없이 생긴 피해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또
세금낭비를 이어한다.
그런데도 그들을 잡지 못한다. 그 더러운 권력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잡아 쳐 넣을 권력이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그런 놈들을 조종했던 최기수이니, 그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잡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그 때까지는 설장호란 인물이 없었다. 국정원이 그저 평범한 범죄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설장호가 나섰다. 정치인이고 나발이고, 죄 지은 놈은 무조건 잡아
쳐 넣는 성격의 설장호가 나섰기에, 최기수도 긴장하고 있는 지금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그리고 곧 담당 주치의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섰다.
“추선우씨 보호자 분 되십니까?”
그는 설장호가 아닌 강서진을 보며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설장호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강서진은 사복이었기에, 지레짐작으로 추선우의 보호자가 강서진이라 생각하였다.
“네. 맞습니다. 어찌 되었습니까?”
강서진의 물음에 설장호가 더 긴장한 듯, 의사의 입만 보고 서 있었다.
“워낙 건강한 청년이라 일단 실탄은 잘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합병증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움직이는데 지장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만다행이었다. 설장호는 그제야 긴장한 표정을 풀며, 보호자 대기석에 자리 잡아 앉았다.
“곧 병실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니, 환자 곁에 있어 주십시오.”
주치의는 마저 말을 전하고 난 뒤, 다시 수술실로 향하였다.
이내 강서진도 설장호의 옆으로 자리 잡아 앉았다.

“죄 짓는 기분입니다.”
강서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설장호는 그녀의 기분을 잘 아는 듯,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자신들과 같이 이런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민간인이기에, 죄책감이 밀려오는 듯
하였다.
“일단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해. 수상한 놈은 물론, 추선우에게 총을 쏜 그 의사의 주변을 모두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명령을 내린 뒤, 눈을 서서히 감았다. 강서진은 곧장 움직였다. 이미 태정민과
박태식이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하고 있으니, 자신은 추선우에게 총을 쏜 의사에 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움직였다.
설장호는 멍하니 앉아 서서히 눈을 뜨고, 전화기를 들었다.

‘띠리리리리’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설장호가 전화한 것이었다.
“네. 실장님.”
“청와대는 아무 일 없나?”
“네.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좀 이상하군요. 청와대는…….이라고 하셨는데, 다른 곳에 일이
터졌습니까?”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병원에서 난리가 일어났었다.”
“난리요?”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나와 추선우의 목을 노렸다.”
“네!?”
서지호는 놀란 눈을 한 채, 전화기를 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향하였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대통령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차현태는 지현과 은주,
미희와 함께 있기에, 자칫 통화내용이 그들에게 전달 될 것을 우려하여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누구의 소행입니까?”
“아직 어떤 놈인지 몰라. 그러니 답답하다. 서둘러 그 놈들을 잡아내야 하는데…….”
“단서가 될 만 한 것이 있다면 보내주십시오. 이쪽에서도 확인하여 뭔가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는 통화중, 계속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강 검사와 태정민이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하고 있으니,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보내주겠네.”
“알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고 계십시오.”
“그래.”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지금 상황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 누구보다 추선우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 세
사람을 지키는 사람이기에, 그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 여겼다.
서지호는 설장호의 전화를 받은 후,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 실장님.”
그의 뒤로 경호원이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
“대통령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지금 가지.”
서지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표정을 바로잡고, 집무실로 향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설 실장과 추선우에게 따로 병문안을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차현태는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서지호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저…….당분간은 어려울 듯합니다.”
“어렵다? 왜 그러는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차현태의 물음에 서지호는 다시 주변을 살핀 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조금 전, 설 실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설 실장에게? 무슨 일이던가?”
“오늘 병원에서 총격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라!”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에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그의 놀라는 목소리로
인하여, 다시 집무실로 돌아오던 세 여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0013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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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지현아.”
미희는 차현태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지현이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는 것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지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곧 은주가 미희에게 조용히 하라는 뜻의 행동을 취한 뒤, 세
여인은 집무실 앞문에 멈춘 채, 차현태와 서지호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누구를 타깃으로 한 총격전이었나? 설 실장과 추선우가 목적이었나?”


“!!!”
이어서 들린 차현태의 질문은 서지호의 귀는 물론, 문 앞에 선, 세 여인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지현의 눈동자가 흔들거리며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 하였지만, 은주가 지현의 팔을 잡아
세웠다.
“다행이 킬러는 두 사람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전혀 생각지 못한 그곳의
의사가 총을 꺼내 추선우씨를 쏘았다고 합니다.”
“!!!”
‘덜썩.’
“!!!”
차현태가 놀랐고, 문 앞에서 선, 세 여인도 놀랐다. 그리고 충격이 전해졌는지, 지현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곧 지현이 넘어지면서 흘러나온 소리에 차현태와 서지호가 놀라 문 앞으로 움직였다.
“지현아!”
그리고 문 앞에서 쓰러진 지현을 보며 차현태가 몸을 숙여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서지호의 시선은
두 여인에게 돌아갔다.

“다…….들으신 것입니까?”
그리고 물었다. 이미 두 여인의 매서운 눈빛만으로 자신과 차현태의 대화내용이 이 두 여인에게 다 들어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서 의사를 데리고 오게.”
차현태는 기절한 지현을 안아 흔들며 소리쳤고, 곧 의사를 호출하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선우가…….선우가 어찌되었습니까?”
미희가 서지호를 노려보며 물었다. 비단 질문은 미희가 한 것이지만, 은주의 매서운 시선도 함께 받아야
할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차현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차현태는 지현에게만 모든 신경이 다 가 있는 듯, 두
여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말씀해 주세요. 선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주가 다시 물었다.
“지금 막 수술을 끝냈습니다.”
‘덜썩.’
서지호의 답변이 나오자 미희마저 주저앉았다. 하지만 은주는 더욱 더 매서운 눈빛으로 서지호를 보았고,
이내 매서운 시선을 차현태에게로 돌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은 잘 끝났고, 워낙 건강한 사람이라 바로 일상생활로 들어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대체 당신들은 뭐하고 있었나요?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람이
총을 맞는 동안에 당신들은 뭘 하고 있었나요!”
은주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청와대 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삼촌…….”
지현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첫마디가 추선우를 찾는 목소리였다. 차현태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삼촌…….삼촌은요?”
이내 정신이 다 돌아온 지현이 차현태에게 물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그녀에게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 참 대단하군요. 나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고작 민간인 한 명에게 신세지고, 그것도 모자라
민간인이 죽을 고비에 처한 것도 막아내지 못하니 말이에요.”
은주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대통령이 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자신 할 말을 모두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차현태는 물론, 서지호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저씨. 삼촌에게 가보 싶어요.”
지현은 차현태를 보며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한 채 부탁하였다. 차현태는 그녀의 눈을 보며 함께 눈물이
고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 들 좀 해보세요!”
답답함에 은주가 다시 소리쳤다.
“지금…….확인해 보겠습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설장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모두 알렸다.

“난감하군…….”
설장호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미 병원까지 킬러가 들어왔고, 또 의사가 총을 쏘았으니, 그 어떤
놈도 믿지 못하는 곳이 병원이 되어버렸다.
“일단 대기해라. 상황봐서 1 시간 이내에 연락하마.”
“네. 실장님.”
서지호가 통화를 끊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였다.
“1 시간 후, 다시 연락 주기로 하였습니다. 1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지호가 은주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은주의 표정은 단 한명도 용서하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지현아. 나와 함께 삼촌에게 가자.”
은주는 결국 지현을 보며 말했다.
“안됩니다! 지금 상황은…….”
“지금 상황이 어떤데요? 이렇게 지현을 안전하게 데리고 있으니, 선우는 죽어도 상관없는 상황인가요?
그런가요?”
서지호가 막아 세웠지만, 은주의 이어지는 말에 결국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럼…….저희 쪽에서 경호를 하겠습니다.”
차현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코 지현을 청와대 외부로 보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 상황이었다.
이미 설장호와 추선우가 당할 뻔 하였으니, 지현이 나타난다면, 그들은 지현을 타깃으로 밀려들어올
것이었다.
“서 실장.”
“네.”
“지현과 함께, 두 여인을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게.”
“…….”
서지호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차현태의 결정에 대해 반박한다고해서 그 반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곧 해가 저뭅니다. 자칫 지현은 물론, 두 분도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내일
아침 일찍…….”
“지금 가겠습니다.”
서지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은주에게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건
지현도 마찬가지였다. 지현은 지금 당장 선우에게 가자는 듯, 서지호를 향해 눈물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다녀오게.”
차현태는 아주 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서지호의 말처럼 곧 어둠이 내리면, 주변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경호해야 할 상대에게 다가서는 인물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차현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 여인을 병원으로 보내려는 그의 마음 또 한 편치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현의 아픈
눈동자를 볼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띠리리리’
여전히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있는 설장호는 손에 든 전화기가 울자, 화면을 내려 보았다.
“왜?”
서지호를 확인 한 후, 다시 편하게 전화를 받았다.
“일이 좀…….생겼습니다.”
“제발 일 좀 터졌다는 말은 안 들었으면 한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연락드렸습니다.”
“뭔데?”
설장호는 서지호의 다급함과는 달리, 느긋하게 앉아서 그와 통화중이었다.
“실장님의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 바로 세 여인이 병원으로 가려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그렇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이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 세 사람 외에 또 누가 있을까.”
“…….”
설장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놀라지도 않았으며, 그저 처음 자세 그대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어찌…….할까요?”
“대통령님께서 허락까지 하신 마당에 나라고 별수 있어? 네가 알아서 잘 데리고 와.”
“실장님!”
서지호가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설장호는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제길…….”
태연스럽게 통화하였지만, 설장호의 머릿속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주 타깃을 움직이게 만들다니…….”
설장호는 그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어이없는 말만 나오고 있었다.
“실장님. 병원 CCTV 를 모두 확보했습니다. 지금 확인중이며, 이르면 오늘 안에 어떤 놈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에 대해서도…….”
“잠시 후. 지현이가 이곳으로 온다.”
“네!?”
수술실 앞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앞으로 강서진이 다가와 그의 명령에 대해 이행중인
내용을 말하다말고, 그가 하는 말을 들은 후, 그녀 역시 어이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말이…….됩니까? 지금 이곳으로 지현을 데리고 온다면 필시 그들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미 의사 한 명이 추선우씨에게 총을 쏘았으니, 또 어떤 놈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허락하신 말이니 잠자코 따라.”
설장호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지금 이 모든 것이 지현을 보호하고자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그
중심에 지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서진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아직 지현이 안전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험지역으로 직접 들어선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을 다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대로 그냥 계실 것입니까?”
강서진은 답답하여 다시 물었다.
“대통령께서 직접 허락했으니, 그에 걸맞은 경호를 해서 데리고 오겠지. 너무 깊게 생각지마라.”
강서진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인물이 자신이 그동안 봐 오던 설장호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강서진은 더 이상 말을하지않고, 수술실 앞을 벗어났다. 그녀가 벗어난 후, 설장호는 감은 눈을 다시
떴다.
“제기랄…….”
그리고 또 다시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지금 즉시 인원 보충하고, 병원 의사 및 간호사, 아니…….병원에 있는 사람들 신상을 모조리 다
확인해!”
설장호가 가만히 있는 동안 강서진은 바삐 움직였다. 검찰 쪽에서 지원 나온 인원들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녀 역시 불가능한 명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대책이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지금 지현이가 이곳으로 온다.”
“네!?”
태정민이 물었고,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반응도 처음 강서진의 반응과 같았다.
“지금 이곳으로 온단 말입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안되겠습니다. 제가 직접 서 실장님께 연락해
보겠습니다.”
“대통령님의 허락으로 움직이는거다.”
태정민은 지현을 데리고 올 사람이 서지호란 것을 알기에, 그에게 전화하여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서진의 말에 그의 동작은 멈추었다.
“실장님은 뭐라 하십니까?”
“그냥…….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는데…….미치겠다.”
태정민은 설장호라면 다른 대책을 세울 것이라 생각하여 물었지만, 다른 대책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주
타깃이 위험지역으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 뿐이었다.
“일단. 준비를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해봐야겠습니다.”
설장호가 손을 놓았다고 마냥 그대로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태정민이 다시 이동하였고, 강서진은
병원로비에서 자신의 명령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검찰 쪽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설장호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국정원장에게 다시 연락을 취하였다.

-추선우는 어떤가?-
국정원장은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추선우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 놈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국정원에서 믿을 만한 놈들 좀 추려서 병원으로 보내주십시오.”
-일이 또 터질 모양이군.-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듣고, 뭔가 위험한 요소가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한 듯 물었다.
“지현이 이곳으로 옵니다.”
-!!!-
국정원장마저도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였다.

0013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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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생각인가?-
“대통령님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라고 합니다.”
-죽어라 하니, 진짜 죽일 모양이군. 알았네. 사람은 내가 추려보지.-
국정원장은 그와 통화를 끝낸 후, 원장실을 벗어나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이 내용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뿐이군.”
설장호는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비록 위험지역이지만, 그들이 알지 못한다면, 이곳 또 한 위험한
지역이라 말할 수 없는 곳이기에, 그들이 지현의 이동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어찌되었는가?”
한 편. 늙은 회장은 1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경호원에게 물었다.
“아직 연락이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이 잘 처리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는 매시간 보고하도록 명령 내렸다. 하지만 1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은 경호원의
말처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뜻과 같았다.
“다시 병원으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겠습니다.”
“아니다.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해라.”
“네. 알겠습니다.”
늙은 회장의 말에 경호원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병원이 난장판이군.”
같은 시각. 병원 앞에는 고민국과 함께, 정구석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병원
로비를 보았고, 고민국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검찰 쪽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일이 잘 처리된 것인지, 아니면 틀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정구석이 말했다. 일이 잘 처리되었어도, 저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며, 또 한 일이 틀어졌어도
저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기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처지였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애들을 좀 보냈으니, 뭔가 답이 올 것입니다.”
고민국과 정구석이 답답한 마음에 직접 움직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만 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대동하여 왔기에, 그들을 병원 안으로 들여보낸 고민국이었다.
“잠시…….신분증 확인 좀 하겠습니다.”
고민국의 부하들이 병원로비를 들어서자, 검찰 쪽 형사들이 그들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신분증은 왜 검사하는 것입니까? 이제 병문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까?”
고민국의 수하가 강하게 반박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단 한사람의 반박으로 인하여, 그
후부터 형사들이 협조를 요청해도 사람들의 협조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낭패군…….”
강서진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비교적 사람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단 한사람으로 인하여
비협조적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왜 내가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말하면 제시하겠다니까요. 이유 없이 신분증 요구는


불법 아닙니까?”
재차 협조를 요청했지만, 그들이 협조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더 반박하며 나서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이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보고 있지 못한 강서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가 그녀를 향해 보았다.
“총격전이라면…….설마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에요?”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은 모두 해결하였지만, 만에 하나 또 다시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여러분의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경찰의 요청에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서진이 해명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반박하던 일부 사람들은 경찰의 요청에 쉽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제길…….”
하지만 고민국의 부하들은 그녀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선 형사가 다시 부탁하자, 그들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하여 신분증을 내 보였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들을 병원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하지만 그저 겉모습만 확인한
꼴과 같았다.
신분상 문제가 없다고, 위험요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 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형사들은 신분증 검사만으로 더 이상의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이들을 병원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이런 식의 검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군.”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고민국의 부하가 비웃는 듯 한 말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7 층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7 층에 다다르자 그곳은 아직도 엉망이었다. 환자들은 모두 다른 병실로 옮겨지면서 7 층 전체의 병실은 텅


비어있었고, 몇 명의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병원관계자들만이 남아 사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형사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이곳에 입원중인 환자분들은 모두 9 층으로 병실을 옮기셨습니다. 병문안을 오신 것이라면 9 층으로
가십시오.”
고민국의 부하들을 보며, 형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왜 갑자기 환자들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범인은 잡았지만, 병원 환자들 몇 명이 중경상을 입고 치료 중에 있습니다.”
형사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비록 상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해당 형사는 지금 상황을 그들에게 모두
말해주었다.
이는 괜한 의심으로 병원전체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병원 측의 요청에 의해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을 당부한 탓이었다.
어차피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라면, 입원환자들에게서 낮에 있었던 일을 모두 들을 테니, 굳이 거짓을
말해 병원이미지를 더 실추시킬 필요가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들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였다. 그리고 9 층이 아닌 아래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누가 총에 맞았고, 누가 중상인지 확인해야하는데…….난감하군.”


병원에 직접 투입되었지만, 지금과 같은 삼엄함 속에서는 자칫 의심을 살 수 있기에 깊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1 층으로 내려오자, 여전히 1 층 로비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야? 이곳으로 지현이 온다는 말 말이야?”


“그렇다니까요. 대체 몇 번을 말합니까?”
그들이 1 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말하고 있던
박태식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렸고, 곧 태정민이 짜증 섞인 어투로 답했다.
곧 그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오자, 두 사람의 입은 막혔지만, 이미 중요한 대화는 그들이 모두 들은
상태였다.
“지현? 어디서 들어온 이름인데…….”
하지만 그들은 이창민의 딸 이름을 잘 알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설장호와 추선우를 잡는데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기에, 지현의 이름은 그다지 많이 거론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찌되었는가?”
곧 그들이 병원을 빠져나왔고, 주차장으로 향한 뒤, 기다리고 있던 고민국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고민국이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정확히 누가 총에 맞았는지 알 수 없지만, 필시 설장호와 추선우, 둘 중 한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이유는?”
부하의 말에 고민국이 다시 물었다.
“그저 일반인의 총상이라면, 지금 저들이 아닌, 그저 경찰들이 들이닥쳐 사건을 조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태정민도 있고, 또 강서진과 박태식형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기 안쪽…….저 복장은
국정원 복장입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고 있었다.
비록 누가 총상을 입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필시 설장호와 추선우. 두 사람 중, 한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은 들고 있었다.
“고회장…….저기 저 놈은?”
고민국이 부하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달리하고 있을 때, 정구석이 병원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설마!”
고민국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마자, 그는 놀란 눈으로 해당 인물을 보았다.
바로 늙은 회장이 보낸 그의 경호원이었다. 그것도 항상 회장의 옆에서 경호하던 네 명 중, 한명이라
더욱 더 놀란 눈을 한 고민국이었다.
“저 놈이 여기를 왜 온 거지?”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늙은 회장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경호원을 다른 곳으로 내 보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경호원 중 한 명을 외부로 단독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알아봐라.”
“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태정민과 박태식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고민국의 명령으로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 할 때,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들은 대화를 말하였다.
“무슨 내용이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현이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온다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표정과
말이었습니다.”
“!!!”
부하의 말 한마디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 하였다.
“확실히 지현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알았다. 가서 저 놈을 확인해라.”
“네. 회장님.”
부하가 자리를 떠나자, 고민국과 정구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모든 것이 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지현이 온다는 것은 추선우에게 변고가 생겼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바로 주 타깃이 움직이니, 이곳으로 모든 인원을 다 투입시켜도 될 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움직여야겠습니다.”
정구석이 말했고, 고민국은 그 즉시 어디론가 전화하였다. 그리고 정구석도 전화를 바로 하였다.

두 사람은 자신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원을 다 움직이도록 만들 속셈이었다.


그리고 장소도 최적이었다. 자신들은 굳이 이 병원의 일반인들 안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상대는
이모든 것을 다 신경 써야 할 판이기에, 모든 것이 다 유리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중이었다.

‘띠리리리’
“무슨 일이냐?”
고민국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늙은 회장에게 연락하였다. 지금까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에 늙은 회장의 힘이 더 뒷받침된다면, 여기서 모든 것을 다 끝낼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연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 곧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잘됐군. 내가 몇 놈을 보내 줄 테니, 잘 해결해라.”
“네. 회장님.”
“참. 그곳에 수만이가 가 있다. 그 놈이라면 이창민의 딸은 물론, 설장호와 추선우의 목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네의 부하나 내가 보내주는 놈들이 혹여, 수만이가 하는 일에 방해만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라.”
“네. 회장님.”
고민국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장호에게 당한 것을 이제 모두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인 듯,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00139 경호원 =====================================================================


====
                          
“회장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정구석이 물었다.
“지원군을 보내준다고 하시는군요. 이참에 우리도 우리식구들을 불러서 한바탕 잔치나 합시다.”
고민국은 연신 입가에 번져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우회장님께도 연락해서 함께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구석이 우수광을 들먹였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이 궁금하여 병원으로 직접 왔지만, 우수광은 자신의
거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나도 가봐야죠. 곧 가겠습니다.”
정구석의 전화를 받은 우수광도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최회장쪽은 어찌해야합니까? 석강수인가 하는 놈도 포기한 모양이던데, 이대로 회장님의 뜻에
따라 그냥 보내야 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기에 왜 혼자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셨는지 원…….”
병원에서의 일이 잘 해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최기수의 일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빼내고 싶었지만, 국정원장을 구워삶을 방도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띠리리리’
곧 정구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 애들은 준비되었나?”
-네 회장님.“
백태였다. 그는 아직 건재하였다. 다른 회장들에 비해, 정구석에게는 백태라는 아주 든든한 경호원이
남아있었다.
“그럼 곧바로 병원으로 보내라. 회장님께서도 지원을 해 주시니, 이번 기회에 모조리 다 쓸어내야겠다.”
-굳이…….우리 쪽 애들을 다 모아서 들어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구석은 한 번에 다 몰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태는 그와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인가?”
-이미 많은 인원이 병원에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 쪽에서도 지원군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 인원만도 이미 백여명에 이르게 될지 모릅니다. 오히려…….그 많은
인원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정구석은 백태의 말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승리 확률은 높다. 하지만
백태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정구석이 다시 물었다.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명령에 다른 뜻을 내비칠 리 없기에 물은 것이다.
-한쪽에서 지원하는 것이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쪽과 고회장님쪽, 그리고 우회장님쪽도
사람을 보내면, 모두가 다른 쪽에서 모여드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지.”
-그럼. 오히려 적이 누군지, 또 서로 타깃을 죽이려 달려들다, 서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정구석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늙은 회장이 고민국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다.
타깃을 향해 다가서는 그의 경호원을 그 어떤 누구도 방해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하지만 백태의 말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과연 그 말이 제대로 들어갈 지가 의문이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알았다. 일단 우리 애들은 대기시켜둬라.”
-네. 회장님.“
정구석은 백태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고민국에게 백태의 말을 전했다.
“부럽습니다.”
고민국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었지만, 또 다시 백태라는 충신에 대해 부러움을 나타냈다.
“고회장님께서도 백태같은 충신하나는 거느리지 그러셨습니까?”
정구석은 고민국을 보며 말했다. 고민국도 충신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로 이지광이었다. 이지광은
태정민을 거의 잡았지만, 추선우에 의해 제압당해 국정원으로 끌려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잡은 인물이 석강수지만, 그는 충신이라기보다, 관리하기 힘든 충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끌어들인 인물. 바로 지용석이었다. 태정민과 같은 청와대 경호팀장이며,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충신이 아니라, 돈으로 의해 최근에 끌어들인 인물이기에, 그리 믿을만한 구석은
되지 못했다.
“추선우씨 보호자분.”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는데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추선우가 나오자, 간호사가
그의 보호자를 찾았다.
“네.”
그리고 설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올 수 있으니 보호자분께서 곁에 계셔
주십시오.”
간호사의 말을 듣고, 설장호는 수술 침대에 누워서 병원복도 형광등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추선우를 내려
보았다.
“괜찮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은 맞을 만 하네요. 괜찮습니다.”
팔에 맞은 총알만을 제거하는 것이기에 부분마취를 중점으로 하였고,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미약한 전신마취도 함께 해둔 상황이었지만,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제대로 듣고, 답을 하였다.
“마취가 덜 풀린 모양이군. 총을 맞고 괜찮다고 하니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부터 자네는 이 일에 손을 떼게. 우리가 모두 해결하겠네.”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는 잠시 잡은 추선우의 손을 다시 놓아주며 말했고, 추선우는 자신의 손을
벗어나는 설장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총 맞고 물러나면 억울하죠. 실장님이라면 그냥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추선우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설장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그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거두었다.
도저히 이해하려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추선우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고 있었다.
“쉬어라. 너의 병실까지 같이 가주지 못한다.”
“괜찮습니다. 죽을병에 걸려 수술한 것도 아닌데, 일 보십시오.”
설장호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추선우도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두 사람을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말하고 돌아서는 것에 웃음도 나왔지만, 두 사람은 어쩌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의사선생님, 저 일어서서 가도 되겠습니까?”
“네. 뭐. 전신 마취는 아니었으니,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취를 했기에…….”
의사가 전신마취에 대해 말하려던 순간 추선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괜찮겠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주먹 몇 대 맞고 난 뒤의 기분이네요. 괜찮습니다.”
추선우는 이내 두 다리로 일어섰다. 잠시 비틀거림이 있긴 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로섰다.
“말씀드렸듯이, 부분 마취와 함께, 미약한 전신마취도 했던 상황입니다. 마취가 풀리는 시간이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몇 분에서 몇 시간은 힘드실 것입니다.”
의사는 주의사항을 하나하나 일러주었지만, 추선우는 그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팔뚝에 박힌 총알
하나를 빼는데 마치 대수술을 한 것과 같은 대우를 하니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했던 상황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추선우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별에 별 사람이 다 있지.”


“네. 아무리 팔뚝에 박힌 총알을 뺀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출혈도 심했고, 당분간 왼손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 할 텐데, 저리 갑자기 움직이면…….”
간호사는 추선우를 걱정하였다.
‘실장님…….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나를 편히 두고 혼자 죽으러 가실 생각이십니까?’
추선우는 의사와 간호사가 뒤에서 보고 있지만, 인상을 찌푸린 채, 홀로 생각하였다. 설장호의 그 표정과
어투.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딱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띵’
추선우가 수술실에서 벗어나며, 홀로 계단으로 향해 계단의 한쪽으로 자리 잡아 앉았을 때, 수술실 앞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늙은 회장의 경호원인 수만이 내렸다.
그는 혼자였다. 늙은 회장이 자신의 수하 몇 명을 함께 보낸다고 고민국에게 말했지만, 수만은 거의
대부분 단독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술실 앞에 서서 좌, 우를 살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수술실 앞에서 수술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만 앉아 있었다.
“참 대단하지 않아? 아무리 팔뚝에 총알이 박혔다고해도, 수술 끝나자마자 마취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걸어가겠다는 환자나. 또 그 환자를 그냥 버려두고 가는 보호자나…….참 대단해.”
수만이 수술실 앞에 서 있을 때, 간호사 두 명이 지나가며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표정을
구겼다.
“저기…….실례하겠습니다.”
수만은 곧 수술실에서 나오는 또 다른 간호사를 잡아 세웠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수술 환자 중에 추선우나, 설장호의 이름이 있습니까?”
“설장호씨란 분은 없었고요. 추선우씨는 조금 전 수술을 끝내고 홀로 걸어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수만은 인상을 더욱 더 찌푸린 채, 답하였고, 곧 몸을 돌려 세웠다.
“늦었군. 운이 좋은 모양이구나. 추선우.”
수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동하기 전,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술실에 멈추는 엘리베이터는 하나, 그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움직였다는 말이군.”
수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수술실에 멈추는 엘리베이터가 단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좌, 우. 방향을 모두 살폈지만 엘리베이터는 단 하나였다.
“저기. 수술실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는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까?”
수만은 주변을 둘러보다, 간호사가 지나가자 그녀에게 물었다.
“네. 보호자분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이곳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중증환자등 대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이동하는 환자들은 수술실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합니다.”
큰 병원에서 수술실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고작 하나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수술실 내부로
엘리베이터가 더 마련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후,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이해가고 있는 수만이었다.
“그럼. 대부분 간단한 수술을 마친 환자는…….”
“저기 외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병실로 이동합니다.”
“계단을 이용한 것이군.”
곧바로 추선우가 계단을 이용하여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만은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다시 몸을 돌려 좌, 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좌측으로 뻗어있는 복도를 따라 움직였고, 그 끝에 있는
비상계단을 보았다.
“네 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나를 만난다는 것을 감사해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지옥을 보게 될
테니 말이야.”
문 앞에 선, 수만은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서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추선우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계단에 앉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0014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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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간 것인가. 위로 간 것인가…….’
수만은 계단의 위와 아래를 보았다. 그 어디에도 사람이 움직이면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적막이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병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끄러운 상황들은 이 계단에서는 전혀 딴


세상처럼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위로가면 그가 입원했던 7 층 병실이 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갈 놈이라면 굳이 혼자 갈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아래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아래로 움직였을 확률이 높겠군.’
수만은 계단의 위, 아래를 다시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자, 곧 추선우는 한 층 위, 계단에서 움츠려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조금 전 내려간 수만의 뒤를 보며 다시 수술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비록 그의 뒷모습을 선우가 보았지만, 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찾아온 킬러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1 층 로비에 도착하였고, 그 즉시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원장님.”
국정원장이었다.
-어딘가? 지금 대원들을 데리고 병원에 도착하였네.-
“네? 원장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설장호는 걸음을 멈추며 전방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병원 정문에는 국정원장이 서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듯 한 그의 얼굴이었다.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말로 인하여 생겨버린 오해가 아직도
그를 보는 눈빛을 그리 반갑게 하지 않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을 돕고자 직접 찾아온 그를 보며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앞 쪽입니다.”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말했고, 곧 원장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하였다.
“국정원장님.”
원장이 설장호를 보고 있을 때, 그의 옆으로 강서진이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
“오랜만이군.”
“네. 그보다 여긴…….”
“설 실장이 지원요청을 하였네. 지현양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군. 사실인가?”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계속하여 보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검찰 쪽은 물론 지원이 가능한 곳에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국정원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몰랐었네. 하지만 설 실장이 나에게 처음으로 요청한 지원이네. 당연히 움직여야하지 않겠나.”
국정원장의 시선은 여전히 설장호에게 향해있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뒤로, 대북전담팀장과 함께, 몇
명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설장호는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는 듯,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자네가 믿을 만한 사람들은 이놈들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일세.-
원장은 저 멀리 서 있는 설장호에게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를 통해 말했다. 그러자 설장호의 시선은
흔들거렸고, 입가에 미소가 더 짙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대북전담팀장님은 알겠지만, 나머지 분들은 연세가 좀 계신 듯한데…….”
“설장호의 생명줄들이지.”
“네? 실장님의 생명줄요?”
강서진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을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병원 1 층은 민간인 출입을 통제한다.”


“하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병문안도 있으며, 환자들의…….”
“그들에게 전해. 살고 싶다면 1 층으로는 이동을 하지 말라고 말이야.”
강서진이 국정원장의 말에 다른 뜻을 내 보였지만, 이어지는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설 실장님의 성격. 다른 곳에서 배운 것이 아니네요. 딱 원장님입니다.”
그녀는 국정원장의 모든 것을 어쩌면 설장호가 그대로 가져간 것이라 여겨졌다.
거침없는 판단과 거침없는 말들. 무엇이든지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며, 직설적으로 내 뱉는 어투. 딱
설장호였다.
“너희들은 병원 정문부터 검문하고, 국정원 팀은 병원 내부를 지킨다. 그리고 지현이 도착하면, 그 옆에
최소 다섯 명이 붙으며, 저격을 대비하여 저격이 용이한 모든 지역을 다 체크하고 경계한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이 직접 움직였으니, 그를 따르는 최정예 요원들도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믿을 수 있고, 설장호가 믿는 사람들을
물색하여 함께 왔다.

“죄송…….했습니다.”
설장호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군. 자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이제 그만 잊게.”
설장호의 말을 들은 국정원장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국정원장, 하지만 그의
작은 키에서 나오는 기세는 아마 설장호가 따라가기 힘든 기세일 수도 있었다.

“저쪽도 만만찮게 준비한 모양이군.”


주차장에서 병원내,외부를 보고 있던 고민국이 홀로 중얼거렸다.
“자칫 우리 쪽이 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원수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늙은 회장의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국정원소속이며
검찰이다. 만만하게 상대할 인물들이 아님은 그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목은 정해져 있으니, 그 목만 제거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저리
많은 인간들을 다 쳐 낼 필요가 없단 말이지요.”
고민국은 늙은 회장을 믿고 있었다. 그가 보낸 수만이라는 인물, 비록 단 한 명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이지만, 지금 민간인 한 명이 일을 이정도로 끌고 온 것을 감안하면, 그 기대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의 지원으로 병원 내, 외부는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 로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서지호였다.
“약 10 분 후 도착이다. 괜찮겠나?”
“이미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으셨는데, 괜찮고 말고 할 것이 무엇입니까?”
태정민은 서지호에게 거친 어투로 말했다.
“나에게 너무 거칠게 말하지 마라, 나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야.”
서지호는 청와대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자신의 목은 내놓고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세 명의 민간인은 꼭 보호해야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었다.
“아직 추선우씨에게 총을 쏜 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놈을 죽이긴 하였지만, 그 한 놈이
끝이 아닐 것이기에 더욱 더 불안한 것입니다.”
태정민은 병원상황을 다시 한 번 서지호에게 알렸다. 그 만큼 위험요소가 남아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여
들어서라는 말이었다.
“걱정마라. 청와대 경호실 최고 요원들로만 구성하여 경호중이다. 이건 뭐. 대통령님 이동하는 것보다 더
엄한 경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서지호는 조금 과장된 말로 표현하였지만, 그만큼 경호에 만전을 기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설 실장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지금 국정원장님도 도착해 있습니다.
국정원장님이 대단위 국정원 대원들을 배치시키는 바람에 한결 편하기는 합니다.”
“…….”
태정민은 국정원장이 현장에 있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서지호의 반응은 의외였다. 국정원장이
도착했다면 아주 큰 지원군이 온 것인데도, 서지호의 표정은 의외로 더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곧 도착이다, 가서보자.”
서지호는 더 이상 통화를 끌지 않은 채,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이 탄 차량이 아닌 뒤 차량으로 함께
움직이는 세 명을 보는 듯 뒤돌아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절대 세 명의 민간인의 피해는 없어야한다. 죽어도 너희들이 죽어.
알았는가?”
-네.-
서지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청와대 경호원들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경호원들과
함께 있는 세 명의 민간인에게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곧 지현이 도착한다는 전화입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다가가 지현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일부는 정문, 그리고 일부는 로비를 담당하고, 주변 수색을 강화한다. 그리고 강 검사는 가서 추선우를
데리고 로비로 내려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의 도착에 맞춰, 그녀와 함께 오는 은주와 미희의 안전까지 고려하여 최고의 방어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강서진에게 명령 내렸다.
“참. 지금 추선우는 병실에 없을 것이다.”
“네? 그럼 어디에?”
“어딘가로 떠돌고 있겠지. 찾아서 데리고 와.”
설장호의 말이지만, 참으로 듣기 싫은 말이었다. 강서진은 그저 말을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는 뜻이 담긴
설장호의 말이 거북하게 들려왔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대체 무엇 때문이지…….”


강서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유도 한강공원에서의 일이 있기 전까지와 그 후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추선우가 총을 맞았을 때, 그 때도 달라졌다.
한 층 더 거칠게 변한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강서진이었다.

“어디로 가야 만나는거야 대체…….”


강서진은 추선우를 찾고자 먼저 수술 후, 이동할 예정이었던 9 층 병실로 향하였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처럼 병실에는 없었다. 그 뒤로 병원내 휴게실과 함께, 건물 내부에 있을 만한 곳은 다 돌아보고
있었다.
“힘드네. 젠장.”
평소 거친 말을 잘 하지 않던 그녀도 이제는 거친 말이 그냥 술술 나올 정도였다.
“여긴…….”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7 층에 도착하였다. 바로 추선우가 총을 맞았던 곳이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강서진은 그가 입원했던 병실. 즉 그가 총을 맞았던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병실 바로 앞.
휴게실 창문은 아직도 설장호의 주먹에 맞아 깨져버린 유리창이 그대로였고, 그 안으로 추선우가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강서진은 잠시 그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심지어 옥상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추선우는 없습니다.”


“!!!”
강서진은 휴게실 앞에서 추선우를 보고 있을 때, 곧 7 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추선우의 이름이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0014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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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진은 곧바로 휴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추선우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7 층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모든 환자들과 관계자들이 9 층으로 이동하였습니다.”
7 층으로 들어선 인물은 수만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늙은 회장의 부하들이 7 층에 관한 것을 그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는 부하를 대동하지 않고 움직이는 인물이지만, 추선우를 찾기 위해서 늙은 회장의 부하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는 부하의 말을 듣고, 바로 이동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7 층의 안내데스크 앞에 서 있었고, 곧
추선우의 병실 부근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쪽은 추선우가 사고 전 있었던 병실 쪽입니다.”
그가 움직이자 부하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추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추선우는 휴게실로 들어와 문을 닫은 채, 문 앞에 서 있는 강서진을 보았고, 곧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 앞은 휴게실입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들이 다가서고 있었다. 수만과 함께 부하 세 명이 움직이고 있었고, 모두가 살벌해 보일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 그들과 맞닥들인다면, 무조건 사망이었다. 살아남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었다.
추선우는 어렵게 몸을 일으키며 강서진의 곁으로 이동하려 하였다.
강서진은 점점 다가서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들었고, 곧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검사님…….웁.”
추선우가 강서진을 부르려고 할 때, 강서진은 그의 품으로 빠르게 다가서며 그를 안은 채, 소파에 몸을
눕혔고, 그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키스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좋겠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열렬하게 사랑놀이를 하다니 말이야.”


강서진이 추선우의 입술을 훔칠 때, 그 때에 맞춰 휴게실 앞에는 수만과 함께 그의 부하들이 도착하였고,
휴게실 문을 열려 하였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남녀의 키스에 의해 문을 열지 않고 외부에서
잠깐 보고만 서 있었다.
“어찌할까요? 심심한데 떼어놓을까요?”
“그만 간다. 우린 타깃만 잡는다.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마라.”
“네. 알겠습니다.”
조금씩 발자국이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입술을 훔친 강서진은 여전히 그와 입술을 붙인
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잠시 후,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저들로부터 저를 보호하고자 하신 행동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추선우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 추선우는 지금 상황에서 그들과 부딪힌다면, 승산 없는
싸움이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이 갑작스러웠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떼어내지도 않았고, 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우리 쪽 사람들과 합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서둘러 움직이겠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말투가 군대식으로 변하셨습니까? 너무 어색한데요.”
그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당황하거나,
긴장하거나, 혹은 겁이 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대식 말투가 나오는 사람이 꽤 많다.
그리고 지금 강서진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추선우에게 딱딱한 군대식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일단 내려가요. 되도록 우리 사람들이 많은 1 층 로비로 움직여야해요.”


강서진은 그의 말에 평소와 같은 말을 하려 했지만, 이제 그 말도 더욱 더 어색하게 들려왔다. 마치 3
류배우가 대사를 읊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그녀였다.
추선우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강서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항상 추선우는 그냥 추선우였다.
그 이상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인데 강서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시죠.”
추선우가 먼저 앞장서며 말했다.
“네? 네…….네.”
여전히 그녀는 어색하리만큼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조금 전, 수만과 함께 그의 부하들이 7 층을 모두 훑어보고 간 후라, 7 층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요.”
계단은 무리였다. 만에 하나 계단에서 그들을 만나면 그냥 잡히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다리는 멀쩡하지만 그래도 아직 수술직후라 움직임이 평소 같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빠른 움직임에
추선우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7 층 안내데스크를 중심으로 약 10 미터 거리를 두고 양쪽으로 엘리베이터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추선우가 입원했던 병실 쪽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추선우의 손을 잡아끌며 그
반대편의 엘리베이터로 향한 뒤, 버튼을 눌렀다.
추선우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였다. 엘리베이터는 고정된 장소였다. 만에 하나 상대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대기 중이라면 그 순간을 빠져나갈 길은 절대 없는 것이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양쪽 모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내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양쪽 엘리베이터 중, 어느 것을 선택하여 탈 것인지를 잠시 고민하였고, 곧 추선우가 강서진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7 층?”
그리고 계단을 이용하여 3 층까지 걸어 내려간 수만은 3 층 병실을 확인하고자 병실 복도로 들어섰을 때,
그의 눈에 7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이 보였다.
“아까 그 남녀 아닐까요?”
“확인한다.”
“네. 알겠습니다.”
수만의 말에 부하 중, 한명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즉 7 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해당 층에서
멈추게 하기 위하여 버튼을 눌러놓은 것이었다.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 두 남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수만은 그 당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얼굴 확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두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 병실은 사람들의 이동이 있는 편입니다. 병원관계자도 있고…….1 층과는 전혀 다른 세상


같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부하들이 복도 좌, 우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1 층은 지금 마치 전쟁을 준비 중인 것처럼 분주하며 긴장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3 층은 아니었다. 그저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다.
“우리의 목표는 그 놈이다. 다른 놈은 신경쓰지마라.”
“네. 알겠습니다.”
수만은 다른 곳으로 일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만을 보며 서 있었다.

“1 층으로 가면 국정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경호에 나서고 있을거에요. 그리고 곧 지현이 도착하면서


청와대 경호실까지 합류하게 되며, 지현이 도착하면 병원 안에서 지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추선우씨가
곧바로 청와대 차량으로 올라탈 것이니 미리 생각해 두세요.”
“네!? 지현이 온다고요?”
그러고 보면 선우는 이와 같은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수술 후, 아직 그 누구도 지현이 이곳으로
온다는 말을 추선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띵’
그리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는 3 층에 도착하였고, 멈추었다.
“!!!”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추선우와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문은 스스르 열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없는데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수만과 함께 부하들이 내부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내부는 아무도 없었다.
“와우. 화끈하네.”
“!!!”
그리고 반대편 엘리베이터, 그곳에는 그 앞을 지나쳐가던 환자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확인해!”
수만이 소리쳤다. 그리고 부하들이 빠르게 이동하였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있었다.
환자들이 환호성을 지른 이유는 또 다시 강서진이 추선우를 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3 층에 머물자, 혹여 그들과 맞닥들일 것을 우려하여 또 다시 연극을 한 것이지만, 이번엔
환자들의 눈만 호강시켜주는 행동이었다.
그 후, 수만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강서진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고, 그의 부하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 전, 문이 완전히 닫혔다.

“제길!”
“어서 내려간다!”
수만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부하들이 서둘러 계단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려갔고, 수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서 멈추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1 층…….”
엘리베이터는 1 층에서 멈췄다. 수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뒤, 계단을 이용하여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그 엘리베이터 앞에는 태정민과 함께 박태식이 서 있었다.
“어? 찾으셨네요.”
태정민이 추선우를 보며 말했지만, 강서진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계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계단에서 내려오는 놈들을 잡아!”
“네?”
“어서!”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소리치자, 두 사람은 영문을 알지 못했지만, 이유 없이 그녀가 소리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계단 앞으로 이동하였다.

‘덜컥!’
곧 비상계단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태정민과 함께 박태식이 그들을 보며 섰다.
“이 놈들입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한 놈이 더 있다. 네 명이 추선우씨의 목을 노리고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
그녀의 큰 목소리에 1 층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하였다.
“젠장!”
세 사내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태정민이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발로 강하게 밀어 차며 닫은 후, 그 앞으로 이동하였다.
“간이 부어도 제대로 부었지. 지금 이 상황에서 또 다시 타깃을 노려?”
태정민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했고, 곧 비상계단으로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세 명의
사내는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서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멈칫’
그리고 비상계단을 통해 1 층으로 내려오던 수만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비상계단 외부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0014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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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샅샅이 뒤진다!”
그가 지하로 이동하자마자, 곧바로 1 층 비상계단 문이 열리며 박태식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그와 함께
움직이는 형사들이 계단을 통해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강서진과 추선우가 위에서 내려왔고, 그들을 목격한 곳도 7 층이라고 하였으니, 아래가 아닌 위로 오르는
것이었다.

‘띠리리리’
비상계단 앞에서 세 명의 사내를 제압한 후, 태정민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병원으로 들어선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서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이 내용을 알렸고,
설장호는 강서진과 함께 있는 추선우를 향해 걸었다.
“추선우를 경호하며 지금 도착하는 청와대 차량으로 이동한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추선우를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그제야 잡고 있던 추선우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아당겼다.
“강서진. 함께 움직인다.”
설장호가 명령 내렸다. 비단 추선우의 행동을 보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 자칫 강서진도
위험할 수 있다고 여겨 그녀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청와대 차량이군. 드디어 타깃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지현이 병원으로 온다는 통보를 받은 후부터는 되도록 외부차량의 진입을 막은 상태였지만, 그 전에 이미
주차장에 들어와 있던 고민국과 정구석의 눈에 청와대 차량이 보이자, 고민국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겠군요.”
정구석도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한 뒤, 병원 로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회장님께서 보낸 수만이라는 놈. 그 놈이 추선우를 제거했을까요? 얼핏 듣기로는 그 놈의
실력이 대단하여 타깃을 보면 1 분 이내에 모든 결정을 본다고 하던데.”
정구석이 말했다. 이미 병원 안으로 그가 들어간 시간이 꽤 되었다. 하지만 아직 병원에서는 이렇다 할
바쁜 움직임들이 보이지 않았다. 즉. 수만이 아직 추선우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란 결론이었다.

“추선우. 움직여라.”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는 병원로비 입구를 보았다. 바로 앞으로 청와대에서 나온 차량으로 보이는 세단이
서 있었고, 그 안에서 곧 서지호가 내리고 있었다.
“저…….차량입니까?”
“아직 몰라요. 서 실장이 알려줄 것입니다.”
병원정문을 향해 다가설수록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긴장된 시선 그대로였다. 그리고 곧 서지호가
차량 한 대의 문을 열어주었다.
“저 차량이군요. 서둘러 바로 탑승하겠습니다.”
서지호가 문을 열어주자 강서진이 말했고, 두 사람은 국정원 대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곧바로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순순히 보낼 수는 없지!”


“!!!”
그 순간 병원 안쪽에서 한 사내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곧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픽픽픽픽!’
“모두 진압해!”
설장호가 소리쳤다. 그들은 이미, 병원 안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들이었다. 이렇게 추선우를 보내게
되면 그 기회가 날아가는 것이기에, 자신들이 죽더라도 결판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국의 부하와 늙은 회장이 보낸 부하들이 함께 가세하면서, 그들의 인원수도 만만치 않았다.
“어서 차량에 탑승한다!”
설장호가 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추선우를 경호하던 국정원소속 대원들 중, 일부는 그들이 쏜 총알에
맞아 쓰러졌지만, 생명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조용했던 병원은 청와대에서 온 차량이 들어서자마자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주 타깃이 움직인 것이니, 그들도 이 기회를 그냥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었으며, 그들에 맞서 경호원


쪽도 절대 그들에게 타깃을 내 주지 않을 것이기에 긴장감은 더욱 더 극에 달하고 있었다.

“모두 엄호!”
서지호가 소리쳤고, 추선우가 탈 차량을 둘러싸며 일제히 주변을 경계하여섰다. 하지만 외부는 어둡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기에 그 틈에 나오는 이들이 있다면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추선우 나옵니다.”
곧 추선우가 병원로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추선우!?”
그리고 그 모습은 고민국과 정구석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고, 두 사람은 놀란 눈을 하였다. 즉 수만이
실패했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회장님께서 노발대발 하실 것입니다. 서둘러 저 놈이라도 잡아내야 합니다.”
정구석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차량에서 내려, 자신이 직접 총으로 추선우를 죽이려 하였다.
‘탁.’
하지만 고민국이 그를 잡아 세웠다.
“위험한 행동은 곧 최 회장님과 같은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기다리십시오. 이미 이 병원에 들어선 우리
쪽 사람만도 수두룩합니다. 그 놈들이 그냥 병원에 앉아서 쉬어라고 들여보낸 것은 아닙니다.”
고민국은 의외로 여유가 있었다. 이미 추선우가 청와대 차량에 몸을 싣기 바로 전이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시작해.”
그리고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한 후, 딱 한마디만을 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있는 주차장 반대편 쪽 주차장에서 트럭 한 대가 시동을 걸었고, 곧 라이트를 아주 밝게
비추며 로비 정문을 보았다.

“뭐야!”
서지호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트럭은 급발진을 하며 로비 앞에 주차된 차량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로비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던 청와대 차량은
급발진한 트럭에 의해 강한 충돌을 일으키며, 그대로 밀려나 반대편 주차장까지 쓸고 지나쳐갔다.
추선우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강서진의 눈동자도 심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서지호의 눈동자는
떨림이 없었다.

“트럭을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 쪽 차량의 생존자를 확인해!”


이내 서지호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추선우와 강서진의 손을 잡았다.
“이동한다.”
나지막하게 두 사람을 향해보며 말했지만, 지금 추선우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현은 물론,
유일한 친구인 은주와 미희도 저 안에 타고 있을 것이었다.
그 세 사람이 동시에 사라지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제 정신일리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곧 설장호와 태정민도 나왔다. 그리고 설장호가 물었다.
“시간 없습니다. 일단 추선우씨와 설 실장님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에게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며 멍한 눈으로
트럭을 보고 있는 추선우의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뒤를…….부탁드립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국정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곧 국정원장과 함께 왔던 설장호의
동기들도 모두 그를 향해 웃었다.
서지호의 안내로 그들은 병원 뒤쪽, 응급실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청와대 차량임을
나타내는 차량 세 대가 있었다.

“삼촌!”
추선우는 조금 전의 일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멍하니 끌려오고 있었고, 곧 지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시선을 돌렸다.
“지현아…….”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단 며칠 만에 보는 것이지만,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동생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네, 추선우.”
곧 은주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은주는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이미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에 잠겨 있었다.
미희는 아무런 말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은주는 물론, 지금까지
추선우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강서진마저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야?”
설장호가 물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서둘겠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의해 모두 차량에 탑승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추선우의 품으로 안겼다. 비록 한
쪽 팔이 총알에 맞아 힘을 받을 수 없지만, 추선우는 지현을 한 손으로 안아 올린 뒤, 차량에 탑승하였다.
설장호와 태정민은 서지호와 함께 차량에 탔고, 지현과 은주, 미희가 한 차량에 탔다. 그리고 강서진은
청와대 경호원들과 함께 마지막 차량에 승차한 후, 병원을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박형사…….”
강서진은 병원응급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박태식이 보이지 않아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지하주차장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각. 강서진의 명령으로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수만을 경계하던 박태식은 계단을 통해 7 층까지
이동한 뒤, 다시 아래로 내려와 지하주차장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그곳에도 아무도 없다는 형사들의 보고를 받았다.
“모두 철수.”
박태식은 결국 수만을 찾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
그리고 그 순간. 철수 명령을 듣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던 한 형사가 차량 옆으로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듯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대기.”
박태식은 나머지 형사들을 모두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해당지역을 손짓으로 가리켰고, 모든 형사들이
총알을 장전한 후,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픽픽픽픽!“
“!!!”
순식간이었다. 네 명의 형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박태식과
살아남은 한 명의 형사가 차량으로 몸을 숨겼다.
“대체 어디서 날아온 총알입니까?”
형사가 물었다.
“낸들 알겠냐.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찌 한 것인지 원.”
박태식은 차량들 틈에 몸을 숨긴 후, 전방을 주시하여 보며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조용한 가운데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죽어있는 형사들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서서히 이동한다.”
박태식은 전방을 주시하며 형사에게 말했고, 형사도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이동하였다.
‘픽’
‘퍽!’
“!!!”
원샷 원킬이라는 말이 실감나고 있는 박태식이었다. 차량들이 많았고, 이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확하게
단 한 발의 총알로 형사의 머리를 그대로 명중시켰다.
박태식은 차량들 틈에 몸을 완전히 붙였다. 자신이 지금 상대하는 인물이 어느 정도의 저격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이미 확인이 절로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제길…….”
박태식은 쓴 소리를 내 뱉으며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생각지 못한 박태식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지하 주차장입니다. 그리고 일이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형사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
설장호는 그의 몇 마디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병원의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주 타깃을 데리고 이동하는 길이기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0014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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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층으로 올라가라,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라면 너를 도울 것이다.”
박태식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조금씩 몸을
빼면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탈칵’
“…….”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뒤통수에서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추선우…….어디에 있나?”
수만이었다. 지금까지 수만 혼자, 형사들을 모조리 다 눕히고 있었다.
“어쩐다…….이미 이곳을 벗어났는데 말이야.”
“벗어나? 허튼수작하면 머리통 날아간다. 어디에 있나?”
“내가 죽게 생겼는데 거짓말을 하겠어? 1 층 로비에서 청와대 차량을 이용하여 벗어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1 층으로 가보시던가.”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에 총이 겨눠져 있지만, 떨지 않은 채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수만은 잠시 생각한
후, 박태식을 일으켜 세운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1 층으로 간다.”
수만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박태식에게 아주 반가운 말이었다. 설장호가 이미 1 층에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1 층으로 가기만 하면 자신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1 층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수만은 박태식의 뒤통수에 총을 겨눈 채, 서서히 걸어 나왔다.
설장호의 말처럼 1 층에는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형사들과 청와대
경호원 소속 인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형사기에, 되도록 형사들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국정원장은 박태식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수만도 보았다. 로비에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들
모두가 자신을 향해 보고 서 있기만 하였다.
“원장님…….이 놈 간이 부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추선우를 찾고 있어요. 이 놈 제정신 아니죠?”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에는 총이 겨눠져 있을 지언정 지금의 상황에서도 추선우를 찾는 그가 도저히
이해가지 않아 국정원장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왜 그런 눈들이십니까? 어서…….저를 도와주셔야죠.”
박태식이 이상함을 느낀 듯, 국정원장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과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의 충격이라면 아주 아작이 난 듯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늦게 충돌하여 추선우까지 보냈으면


금상첨화인데…….아깝군요.”
한 편. 주차장에서는 트럭이 몰고 지나쳐 간 승용차에 지현이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정구석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일단 추선우가 벗어난 것 같으니 우리도 벗어나야겠습니다. 이곳에 더 있어봐야 국정원장이 설치고
다니며, 사람 잡아내는 것만 보게 될 테니 말입니다.”
비록 추선우는 죽이지 못했지만, 지현을 죽였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가진 두 사람은 아직 우수광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트럭과 충돌한 차량 주위에는 아직도 청와대 경호원 몇 명이 서 있었다. 하지만 트럭이 밀고 지나쳐간
차량 안에는 단 한명의 경호원도 없었다.
두 대의 차량 모두 빈 차량이었다는 것을 이미 경호원들은 다 알고 있지만, 시선을 돌리기 위하여
계속하여 연극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원장님. 어서 이놈의 목을 치십시오. 저 목이 뻣뻣해지는 것이 불편합니다.”


박태식은 국정원장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원장이 총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놈은 무조건 잡아주십시오.”
박태식은 국정원장을 향해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국정원소속 대원들을 바삐 움직이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설 실장님의 생명줄이라는 사람들과, 대북전담팀장등, 전담팀원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다들 어디로 간 것입니까?”
박태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겨눈 총을 들고
박태식을 보고 있었다.
박태식은 여전히 이상하였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을 봐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 국정원장은
박태식을 보면서도, 총은 수만에게 향해있었다.
즉. 아직은 누굴 겨냥하여 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자네가 혹여 배신했을 수도 있으니, 내가 한 가지만 묻겠네.”
국정원장은 박태식을 의심한다며 그를 보며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슨…….”
“설 실장은 어디로 갔나? 자네 뒤에 있는 놈은 신경 쓰지 말게, 자네의 말처럼 우리가 방아쇠를 한
번씩만 당겨도 저 놈은 죽어. 그러니 걱정 말고 말해보게.”
국정원장은 박태식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박태식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국정원장을 보았고, 또 주변을 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설 실장이 어디로 갔냐는 것은 이놈에게 그 위치를 말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왜 지금…….”
“묻는 말에 대답만 한다. 설 실장…….어디로 갔나?”
박태식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을 믿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도 설장호의 믿음을
얻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국정원장…….설마.”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머리통은 날아간다.”
박태식이 눈동자를 떨며 국정원장을 보고 있을 때, 그에게 총을 겨눈 수만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제길. 이래서 사람은 믿으면 배신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 딱 맞는 말이었군.”
박태식은 눈에 힘을 풀며 중얼거렸다. 국정원장은 절대 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라 여겼다.
그렇게 믿도록 그가 행동했다.
"어서 말해!“
수만이 다시 소리쳤다.
“젠장!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내가 어찌 알겠어! 나를 버리고 가버렸는데, 난들 알겠냐고!”
수만의 큰 목소리에 그 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박태식이 소리쳤다.
수만은 정면과 좌, 우. 그리고 뒤를 보았다. 추선우는 물론, 설장호와 강서진, 그리고 태정민 등. 함께
움직였던 이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즉. 박태식이 지하주차장에서 한 말이 모두 맞는 말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넌. 내 방패간 된다.”
수만이 뒤로 천천히 이동하며 말했다.
“뭔 짓이야? 네 놈과 국정원장이 한 패가 아니야?”
박태식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모두 정리하면 국정원장과 수만이 한
패가 되어야 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만이 그들을 경계하면서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방패로 삼았다.
“제길…….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냐고!”
‘픽!’
“!!!”
박태식은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어 소리쳤고, 그 소리에 맞춰,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던 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어찌 된 거야?”
한 편. 병원을 안전하게 벗어난 후, 설장호가 서지호에게 물었다.
“일단 대통령님께서 따로 마련해주신 곳으로 이동한 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세 대의 차량은 파주로 이동하였다. 군부대가 많은 곳이며, 차현태가 따로 마련해둔 별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설장호도 처음와본 곳이었다. 하지만 서지호와 태정민은 차현태를 경호하면서 몇 번 와본 듯하였다.
세 대의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서지호를 중심으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네 사람과 일행이 모두
내렸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내가 안을게.”
은주가 그의 앞으로 서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한 쪽 팔로만 그녀를 안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보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온 지현을 품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모두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고, 은주와 미희가 함께
따라 들어섰다.
그리고 강서진의 눈빛이 그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강 검사님.”
“응?”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부르자, 강서진이 당황한 듯, 그를 보며 답했다.
“지현을 보니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추선우씨가 걱정되어 보는 것입니까?”
그녀의 눈빛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물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무슨. 그냥이야. 참 대단한 사람들 같아서 본거야.”
강서진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도록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방으로
향하였다.
강서진의 말을 모두가 이해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민간인이면서 그 누구보다 더
강하게 버텨나가고 있는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앉으십시오.”
서지호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모두를 다른 방으로 불렀다.
“추선우씨가 나오면 함께 듣죠.”
강서진이 말했다.
“그래. 추선우를 제외하고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잠시 기다리자.”
설장호가 강서진의 말을 거들었다.

잠시 후, 지현을 눕혀놓고 추선우가 나왔다. 그리고 두 여인도 함께 나왔다.


굳이 두 여인에게까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설장호는 그 여인들마저도 함께
들어서도록 하였다.
“이제 말해보게.”
모두가 궁금했던 내용이기에 서지호를 모두 바라보았다.
“일단 지현을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무리한 결정이었지만, 이 역시 대통령님의 뜻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서지호의 첫 말에 추선우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정말 지현이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차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 그 차를 트럭이 덮쳤으니,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대통령님의 뜻이 무엇이었나?”
설장호가 다시 그 뜻에 대해 물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누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국정원에서, 그리고
검찰과 경찰에서 이미 많은 고위직 인물들이 그들과 손잡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라고 안전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청와대라고 모두 차현태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다. 그와 뜻이 맞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아직 비서실장의 행방을 전혀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여.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지현을 청와대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빼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해가고 있었다. 지현이 추선우를 보기 위하여 병원으로 향한다면, 그들 편에 서 있는 이들은 굳이
그것을 말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현이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그저 그들에게 지현이 병원으로 간다는 보고만 올리면 되는 것이기에, 그들의 눈에 의심받지 않고
청와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0014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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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 저를 비롯하여 청와대 수석 경호원들을 붙였습니다. 태정민이 알다시피 현재 이곳으로 함께
온 경호원은 대통령님을 최측근에서 경호하는 인물들입니다. 즉. 그만큼 강하며, 또 차현태 대통령님이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차현태는 강수를 둔 것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책임지는 수석 경호원들을 모두 외부로 돌렸다. 이 모든
것이 지현의 안전을 위한 그의 결정이었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태정민과 강서진, 추선우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지현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들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버티는데, 지현을 위험지역으로 내 몬다고
하니, 그를 믿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그렇다고해도 굳이 지현을 병원까지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되지 않았습니까? 병원 인근에서 기다리다가
그곳에서 합류해도…….”
“그들의 눈. 어디까지라고 보십니까?”
추선우가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그의 말을 자르고 서지호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힘은 아직 우리 중, 그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우리가 어느
정도의 힘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즉 알지 못하는 쪽, 다 알고 덤비는 쪽, 누가 이길까요?”
서지호는 모두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면서도 모두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린 지현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대신, 지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그들의 눈도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 절대 지현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움직였습니다.”
추선우는 병원로비 입구에서 겪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서지호는 그런 상황까지 다
고려한 것이었다.
지현이 병원으로 가면 가장 먼저 추선우와 만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추선우가 움직이는
동선에 지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준비해두었던 모든 계획을 실천에 옮길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고민국은 트럭을 움직여 지현이 타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던 차량을
밀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지현이 죽었을 것이라 단정하였다.
이 모든 것이 서지호와 차현태가 미리 구상하였고, 그 작전대로 다 결정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현을 병원으로 데리고와야만했던 이유도 모두 이해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 그 눈들을 피하고, 그들을 속이기 위하여 철저한 계획 속에 다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나한테라도 미리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태정민이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보며 서운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물론. 너에게라도 말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는 곧바로 설실장님에게 들어갈 것이고, 설
실장님의 주변에는 이미 국정원소속 인원들이 즐비하다고 들었다.”
태정민과 통화 시, 국정원장과 함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두 병원에 들어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지호의 표정이 밝지 않은 이유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후, 태정민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 말은 국정원에 아직도 그들과 연결된 선이 있다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
서지호의 확답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 그렇다는 말은 서지호가 이미 국정원소속 대원들 중,
그들과 손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누구인가?”
설장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 모두가 그의 입만을 주시하고 있었고, 서지호는 자신을 보는 모두를 향해
고루 보았다.

“국정원장님!”
한 편. 병원에서는 국정원장이 총에 맞아 뒤로 밀려나 쓰러졌고,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그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
박태식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의 행동이 이상하여 그를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수만을 향해
정조준을 하고 있었고, 국정원소속 대원들도 자신이 아닌 그를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국정원장은 자칫 잘 못된 판단에 의해 박태식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만의 손에 들린 방아쇠는 여전히 박태식의 머리에 겨누어져있었다. 즉. 수만이 방아쇠를 당겨
국정원장을 쏜 것이 아니었다.

“설장호를 놓쳤어.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지 못하겠는데.”


“…….”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 수만의 옆으로 섰고, 박태식의 곁눈에 그들이 보이고 있었다.
“당신들이…….”
박태식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강석중, 민관호, 여형석.”


“!!!”
병원에서 박태식의 옆으로 세 사람이 설 때, 별장에서는 서지호의 입에서 세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놀란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왜…….”
바로 설장호였다. 서지호가 거론한 세 사람. 그들은 국정원장이 직접 다시 부른 설장호의 동기들이었다.
설장호가 믿고, 설장호를 믿는다는 그들. 그들이 지금 수만의 옆으로 서 있는 이들이었다.
“믿을 수 없군. 그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가? 그들은…….”
“강석중. 현역시절 설 실장님과 라이벌이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국정원에서
은퇴하였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설장호가 믿지 못한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서지호는 세 사람 중, 강석중에 대한 말을 하였다.
“그리고 민관호. 그 역시 대북전담을 맡은 유능한 인재였지만, 마녀사냥에 먹이가 된 케이스였죠.
마지막으로 여형석. 뭐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여형석은 설 실장님과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은퇴 후, 지금 그의 삶은 바닥입니다. 도박에 술. 여자. 처자식을 모두 버리고 그리 살아온 놈인데, 그
조직의 손길은 마치 천사의 손길 아니었겠습니까?”
서지호의 말은 오로지 설장호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머지는 그 세 사람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기에, 놀라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국정원장님이 그들을 다시 불렀을까요?”
추선우가 물었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국정원장은 그 당시의 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다면 굳이 다시 부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지. 명예회복.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을 알려주고, 명예를 다시 찾도록 권유한다면,
그들은 목숨을 내 놓고라도 설 실장님을 도울 것이라 생각하셨지. 하지만 그게 오산이었다. 국정원장보다
그 조직이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 사람. 비록 서지호가 말한 내용
그대로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명예를 더욱 더 더럽히면서까지 그들과 손잡을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석강수를 예를 들어 생각하시면 이해가 더 빠를 것입니다.”
아주 좋은 예였다. 서지호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던 모두가 그들이 어떤 놈인지
바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넨…….그 내용을 어찌 알았나?”
서지호의 너무나 상세한 설명에 오히려 의심이 생긴 설장호가 그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서지호는 그의 물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강석중, 민관호, 여형석. 곧 설장호를 잡으러 갈 것이다.-
문자를 보여주었고, 그 내용이었다.
“누가 보낸 것인가?”
당연히 발신자가 궁금한 상황이었다.
“저도 이 번호를 알지 못하기에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예측하면 어느 정도는 답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이 세 사람과 설 실장님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보내지 않았을까요?”
서지호의 말에 설장호는 공통된 사람을 기억해내려하였다.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장이 그들을 불렀으니, 이 내용은 국정원장이 모르는 일이었다.
“석강수.”
설장호가 깊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추선우가 한 마디 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그를 보았다.
“석강수?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추선우의 말에 서지호가 물었다.
“그래…….석강수. 그 놈이라면 이 모든 것에 다 공통된 인물이다.”
서지호가 추선우에게 물었지만, 설장호는 추선우의 말이 확실하다는 뜻을 보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조직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사람. 제가 지금까지 본 인물 중에
석강수 한 사람만이 떠올라 한 말입니다.”
추선우가 자신이 그를 생각한 이유를 말했다.
“수신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나?”
설장호가 물었다.
“해봤는데 받지 않습니다.”
서지호가 답했고, 설장호는 다시 문자 메시기를 보낸 발신번호를 받아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설장호. 많이 늙었구나. 이제야 전화를 하는 것을 보니 말이야.-
수신음이 길게 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 추선우의 추측처럼
석강수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그의 위치를 물었다. 지난 성남펜션 이후, 그의 행방을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위치가 궁금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자네에게 이 문자를 바로 보내려했는데, 그렇게 되면 내
자존심이 또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좀 돌리고 돌려보려 하다, 서지호가 떠 올라
문자를 발송했는데, 어찌 그 문자를 보고 나에게 다시 답이 오는 시간이 3 시간이나 넘게 걸리는가?-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의 전화기에 수신된 문자가 찍힌 시간을 보았다. 그리고 서지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세 시간 전에 수신된 문자라면 충분히 설장호에게 미리 알렸고, 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이 내용을 이제야 그에게 알려준 것이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왜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인가? 넌 그들과 손잡은 인간이다.
그들이 잘돼야 너에게 떨어지는…….”
-내가 고작 그 돈 몇 푼을 받고자 내 집과 식구들과도 같았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조리 죽기를
바라겠나. 그리고 국정원장 노인네도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이래나 저래나 나를 국정원에 들어서게
만든 사람이니 말이야.-
석강수는 국정원소속 전 대원으로써 마지막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었다는 뜻을 말했다.
“그들…….그들은 어디에 있나?”
-이거 왜 이르는 건가? 내가 하나를 알려줬다고 아예 통째로 다 벗겨먹을 생각인가? 딱 여기까지네, 난
그들에게 돈을 받았고, 그 대가로 지금 자네가 물은 것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네.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날날을 기대하겠네.-
석강수는 전화를 끊었다. 설장호는 끊어진 전화기를 보고 있었다.
“제길…….”
그리고 한 마디 쓴 소리를 내 뱉은 후,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너의 말이 맞군. 석강수였어. 그 놈이 나에게 아주 큰 빚을 던져주고 간 것이다.”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했다.

0014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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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빠져라. 이곳은 우리가 정리하겠다.”
한 편. 병원에서는 강석중이 수만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강석중은 아주 덩치가 크며, 우락부락하게
생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박태식이 눈동자를 떨었다.
“당신들이 왜…….”
다시 물었다. 그러자 곧 민관호와 여형석도 수만의 옆으로 서며 박태식을 보았다.
“왜? 그야 돈이지. 나라에서 필요하다고 실컷 써먹을 때는 언제고, 필요 없으니 그냥 헌신짝처럼
버리는데, 너 같으면 그 기분을 참고 살아가겠나?”
민관호가 답했다. 민관호는 안경을 쓰고,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처럼 보였다.
“저기 보이지? 지금 국정원장이 쓰러졌다고, 국정원소속 대원이랍시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공격을 가하지
않아. 왜 그럴까?”
여형석이 국정원장을 부축하여 서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너 때문에? 천만에, 국정원에서는 말이야. 임무를 위해서는 민간인은 물론, 그 일에 방해되는 모두를
죽여, 그래서 임무를 완수해. 그게 국정원이야.”
여형석의 말에 박태식의 눈동자가 떨리며 국정원장을 향해 보았다. 그는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서서 박태식을 보고 있었다.
“로비 앞, 차량에서의 쇼는 아주 대단했다. 나도 그 차량에 지현인가 하는 여자아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텅 비어있는 차들이더군.”
강석중의 말에 수만의 표정이 변하였다. 자신이 병원에 투입되었지만, 결국 그 어떤 성과도 만들지
못하고 모든 타깃을 다 놓쳐버린 것이기에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일단 빠지자. 이곳에 있으면 그냥 총알받이다.”
여형석이 다시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박태식을 방패삼아 뒤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원장님. 어찌할까요?”
국정원장의 지시가 없으니, 국정원 대원들이 행동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강석중의
말처럼 이들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이미 수십 발의 총알이 난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발의 총알도
아직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박형사를 구해야하니, 신중하게 행동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그 와중에도 박태식을 걱정하였다. 박태식은 수만의 손에 의해 뒤로 끌려가고 있었고, 그
뒤로 세 명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모두 죽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국정원장의 명령이기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원장님.”
곧 로비정문에서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던 대북전담팀장과 팀원들이 들어서며 국정원장의 총상을 보았다.
“잘 들어라! 조동민. 원장님 잘 모시고, 오래 살아라!”
그를 보며 민관호가 소리쳤다. 민관호는 조동민이 국정원에 들어오기 전, 대북전담팀을 이끌었던
인물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동민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뭐해! 서둘러 응급실로 모셔!”
조동민이 소리쳤다. 그제야 대원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잡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장을 응급실로 옮기기에 바빴다.
다행히도 현재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병원이기에 곧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그 놈들을 잡는다!”
국정원장은 총기 사용을 불허하였지만, 조동민은 아니었다. 그는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는 인물이기에,
설장호는 이미 총기 사용을 다 허가한 상태였다.
조동민의 명령으로 모두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박태식을 인질로 삼고 빠져나가는 그들을 막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조동민의 앞에서 조금 전과 같은 인질극이 있었다면, 조동민은 바로 방아쇠를 당겨
박태식을 먼저 죽이고, 나머지를 모조리 죽일 인물이었다.
그것이 설장호가 가르쳐 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주춤했던 상황은 조동민의 명령으로 다시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한 편. 수만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늙은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 수만입니다.”
그리고 그의 전화를 받은 다른 경호원이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회장님.”
그리고 때마침 병원에서 지현의 죽음을 목격한 듯,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서는 고민국과
정구석이이었다.
회장은 전화를 먼저 받느라, 두 사람에게는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주었다.
회장은 수만의 전화를 받으면서 조금씩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고민국과 정구석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의 날카로운 표정에 당황하지 않았다. 무슨 전화인지는 모르지만, 늙은 회장이 아직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풀어주기 위한 답변으로 지현의 죽음을 알리려는 두 사람이었다.
“알았다. 일단 돌아와라. 그리고 그 형사 놈의 목은 쳐라.”
회장은 수만에게 명령을 내린 뒤, 전화를 다시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
“어찌되었나?”
늙은 회장은 수만에게서 들은 정보를 두 사람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병원내용을 물었다.
“무슨 내용으로 통화를 하신지는 모르지만, 그 표정…….저희들이 풀어드리겠습니다.”
“나의 표정을 풀어준다? 그래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자.”
늙은 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노려보았다.
“조금 전, 병원에서 우리의 주 타깃인 이창민 대사의 딸, 이지현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
‘창창!’
“!!!”
고민국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늙은 회장이 손을 들었고, 그 순간 그의 경호원 두 명이 장검을 들어 두
사람의 목에 들이밀었다.
“회…….회장님.”
두 사람은 늙은 회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떨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지현이 죽어? 직접 확인하였나?”
“그…….근처에 사람이 너무 많아 직접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차량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렸고,
내부를 박살내버렸으니, 살아날 가능성은…….”
“그 차안에, 지현이라는 계집이 없다면? 그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나?”
“!!!”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늙은 회장의 말처럼 그런 가능성은 생각지 않았다. 그저 추선우가
해당차량에 탑승하려는 것을 보고, 지레짐작한 그들만의 생각이었다.
“너희들 목은 몇 개라도 되는 것 같구나. 내가 지금까지 이 조직을 이끌어 오면서 너희들 같은 머저리는
처음 본다.”
회장의 거침없는 말은 두 사람의 귀에 쏙쏙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 자신들이 하는 모든 말은 변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집은 벗어났다. 그리고 설장호와 추선우도 벗어났다. 우리가 잡아야 할 놈들은 단 한 놈도 잡지
못하고, 모두 벗어났다.”
“!!!”
다시 놀란 눈들이었다. 모조리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작전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고도 이들은 좋다고 실실거리며 회장에게 온 것이었다.
“정구석.”
“네. 회장님.”
늙은 회장은 전국의 주먹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구석을 불렀다.
“네가 데리고 있는 놈 중에 백태라고 있나?”
“네. 회장님.”
“그 놈을 나에게 데리고 와라. 내가 긴히 쓸 데가 있다.”
“아…….알겠습니다.”
정구석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백태를 알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백태는 지방
건달로 지내고 있었고, 정구석의 눈에 띠어 그의 오른팔이 된 인물이었다.
그리고 늙은 회장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민국.”
이어서 고민국도 불렀다.
“네. 회장님.”
“석강수. 그 놈은 어디에 있는가?”
“!!!”
백태를 말하는 것도 놀라웠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란 말이 들려왔다.
“그…….그 놈은.”
“그 놈을 만나고 싶다. 데리고 와라.”
“아…….알겠습니다.”
늙은 회장은 부탁하는 어투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명령이다. 그리고 그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지금 자신들의 목에 와 닿아있는 날카로운 장검의 칼날뿐이었다.
“그만 돌아가라. 병원에서의 일은 용서하겠다.”
자칫, 지금 당장 목이 떨어져 나갈 위기였다. 하지만 용서가 돌아왔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용서지만,
늙은 회장은 두 사람을 용서하는 대신, 그 두 사람에게 있어 충신이나, 뛰어난 용병킬러였던 백태와
석강수를 그 앞에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민국에 비해 정구석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백태는 언제라도 부르면 올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석강수는 아니었다. 그는 고민국의 부름을 이미 몇 차례 거절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낭패군.”
늙은 회장의 집에서 벗어난 고민국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연락해 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그 놈이 의외로 제 발로 잘 찾아올지 말입니다.”
정구석이 그를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말 그대로 말 뿐이었다. 자신이 직접 겪는 일이 아니기에 말은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고민국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석강수에게 연락하였다.
-이래저래 실패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보기좋게 한 방 먹은 듯 하던데…….어찌 괜찮으십니까?-
석강수는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비꼬는 듯한 억양으로 물었다. 당장이라도 그가 앞에 있었다면 목을
비틀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는 그의 목은커녕, 손목도 잡기 힘든 판국이었다.
“시간되면 만났으면 하네.”
-이유는요?-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나를 만나고자 한다? 누굴까요? 설장호와 추선우가 아니라면 굳이 나를 만나자고 할 놈은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회장님이시네. 회장님께서 자네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시니 시간을 내주게.”
-회장님? 어떤 회장을 말하는 것입니까? 듣자하니 이쪽저쪽 다들 회장이라 부르던데…….-
“우리 조직을 결성하신 분이시네.”
-!!!-
고민국과 통화를 시작한 이례 처음으로 석강수가 놀란 눈을 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네 명의 회장위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자신을 찾는 다는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언제…….가면 됩니까?-
고민국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석강수가 퇴짜를 놓는다면 이래저래 자신의 입지는
좁아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석강수가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고민국은 그 즉시 만날 것을 제안했고, 석강수도 그 제안에 따랐다.
정구석도 백태에게 연락하였다. 백태는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고, 정구석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찰라,
늙은 회장이 자신을 보자는 말에 잠시 당황하긴 하였지만, 이내 정구석의 명령으로 늙은 회장의집으로
향하였다.

0014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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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회장님께서 왜 그 두 사람을 만나려 하시는 걸까요?”
회장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였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자신들을
앞에 두고 그런 표정으로 두 사람을 불렀으니, 머릿속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우회장님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으로 오시라 말은 전했지만, 우리가 먼저 나와 버렸으니…
….”
두 사람을 기다리며, 늙은 회장의 집 앞에 있던 중, 정구석은 우수광을 떠 올렸다,
집에 있던 사람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니 나오라는 말을 하고서는 진작 두 사람은 그곳을 벗어난 것에
우수광이 괜한 오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연락을 해 두어야겠습니다.”
고민국이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십니까?”
-그러는 고회장님은 어디십니까? 나에게 병원으로 와서 좋은 구경을 하라 하시고서는 대체 이거 뭡니까?-
“무슨…….일이라도 있습니까?”
고민국은 그의 말에 눈빛을 달리하며 물었다.
-그냥 병원 로비 앞에서 차량 두 대가 전소되어있고, 1 층에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우왕좌왕거리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찾던 설장호나 이지현, 그리고 추선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요.-
우수광은 상황의 변화를 전혀 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단 여러 가지 일이 착오가 생긴 모양입니다. 지금 회장님 댁 앞이니 그리 오십시오.”
고민국은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기 오는군.”
약 1 시간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백태가 먼저 도착하였고, 정구석이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왜…….이곳으로?”
백태는 늙은 회장을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자신을 부른 늙은 회장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때마침 석강수도 오는군.”
백태에 이어 석강수도 도착하고 있었다. 그는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온 듯, 저 아래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강심장이야, 자칫 자신의 얼굴이 지명수배 되어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다니 말이야.”
그의 행동에 두 사람은 혀를 차고, 백태는 석강수를 노려보듯 하였다.

“늦은 시간에 부른 만큼, 충분히 내가 납득할 만한 대화가 있어야 함은 기억해 두십시오.”


석강수는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백태의 시선이 석강수를 향해 돌아섰다.
“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놈이라면 돈을 주는 사람의…….”
“주둥이 닥쳐라. 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돈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고자 돈을 받고 일을
하지 않는다.”
“!!!”
백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두 회장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백태와 석강수. 과연 두 사람이
힘을 겨루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궁금하였다.
“일단 들어가지.”
고민국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고, 백태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운 채, 정구석의 뒤를 따라 회장의 집으로
들어섰다.

“회장님. 고회장과, 정회장이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경호원이 그 내용을 알렸다.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나 보자.”
늙은 회장이 일어섰다. 여전히 그의 옆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알몸으로 누워 있었고, 노인의 손은
여인의 중요부위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여인들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대로 있었다.
곧 두 회장과 함께 백태와 석강수가 들어왔다.
석강수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변 분위기를 훑었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는 백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정구석이 많은 여자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았지만,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누가…….백태고, 누가 석강수인가?”
늙은 회장이 두 사내를 보며 물었다.
“제가 백태입니다.”
“…….”
백태가 인사하였다. 하지만 석강수는 굳이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만큼 그와 연관된 것이 없기에 그저
보고만 있었다.
반면에 백태는 정구석이 윗사람으로 모시는 사람이라 당연히 고개를 90 도로 숙여 인사하였다.
“머리를 숙여라.”
석강수를 보며 그의 경호원 한 명이 이를 꽉 물고 말했다. 하지만 석강수의 머리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라 말한 경호원을 향해 보았다.
“먼저 누군지를 알아야 내가 머리를 숙일지, 아니면 머리 숙이는 것을 볼지…….판단하지 않을까?”
‘!!!“
고민국과 정구석은 물론, 백태와 함께 늙은 회장의 경호원이 놀란 눈을 하였지만, 의외로 늙은 회장은
아무렇지 않게 석강수를 보고 있었다.
“놀랍군. 이런 분위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과연 놀라워.”
늙은 회장이 누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몸도 알몸이었고, 그를 감싸고 있는 여인도
알몸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석강수의 눈에는 더럽게 보이고 있었다.
“옷이나 좀 입고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뭐야! 이 새끼가!”
석강수는 도저히 눈으로 보고 있을 수 없어 말했고, 곧바로 늙은 회장의 경호원이 장검을 뽑아 석강수의
목을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석강수는 자신의 목에 와 닿아있는 장검을 보았다.

“장검으로 내 목을 자르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내 손에 들린 단검이 내 놈 오장육부를 난도질 하는 것이


빠를까?”
“!!!”
경호원이 우세하다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호원의 장검이 석강수의 목에 있지만, 석강수의 손에
들린 단검은 어느새 그의 심장부분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즉.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죽는다. 하지만 석강수는 전혀 떨림 없는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칼을 거둬라.”
늙은 회장이 말하자, 경호원이 장검을 뒤로 거뒀다.
‘퍽!’
“!!!”
하지만 석강수는 자신의 단검을 거두지 않았다. 장검이 자신의 목에서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주먹을 뻗어
경호원의 면상을 날렸고, 경호원이 넘어지자 다른 경호원들이 놀라 장검을 뽑았지만 이내 늙은 회장의
만류로 모두 동장을 멈추었다.
“너의 목숨은 몇 개가 되는가보군.”
늙은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체의 여인들이 그에게 가운을 걸쳐주었다.
“첫 대면에 내가 흉측한 모습을 보인 모양이군. 사과하지.”
의외였다. 늙은 회장이 먼저 석강수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인마냥 고민국과 정구석이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두고 나머지는 나가라.”
“네? 회장님. 저희들도…….”
“회장님의 말씀 듣지 못했습니까? 나가계십시오.”
회장의 말에 고민국이 몇 말을 하려 하였지만, 이내 경호원이 그의 앞을 막으며 말하자, 두 사람은 다른
말없이 그저 몸을 돌려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앉아라.”
두 회장이 나가자 늙은 회장은 두 사람을 자리에 앉도록 했다.
“내가 안전하다 여길 때. 그 때 앉겠습니다. 그러니 이대로 있게 해 주십시오.”
석강수는 그의 말에 또 다시 토를 달았다. 경호원의 눈빛이 살벌했지만, 그 누구도 석강수에게 칼을 뻗지
못했다.
“안전하지 않으니 서 있겠다? 그것이 오히려 몸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테니 좋은 선택이긴 하군.
그래 마음대로 하게.”
늙은 회장은 석강수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백태마저 선 채로 늙은 회장을 봐야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일단 나를 먼저 소개하는 것인 순서인 듯하니, 내 소개를 하겠네.”
“회장님.”
늙은 회장의 말에 경호원들이 그를 보며 당황한 눈빛을 보이고 말했다.
“괜찮다. 이놈들이 나를 친다면 너희들이 죽었다는 말과 같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될 것이다.”
석강수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설장호가 그토록 알아내려고 하는 인물, 그가 지금 자신 앞에 있다. 얼굴은
알게 되었지만, 이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 이름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내 이름은 이수호 라고 하네. 이름은 좋은데 하는 짓이 아주 질 나쁜 일이라…….이름값은 하지
못하네.”
그의 이름은 이수호였다. 그리고 뿌리조직을 만든 장본인이며, 네 명의 회장 위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을
소유자가 바로 이수호다.
“이제 자네에 대해 좀 알아봐도 되겠나?”
이수호는 석강수를 보며 물었다.
“석강수입니다. 뭐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라 봅니다.”
석강수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 뒤,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서 있는 세 명의 경호원을 보았다.
원래 네 명이지만, 지금 네 명 중, 한명인 수만은 병원에 있기에 한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이었다.
“석강수와 백태.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고민국과 정구석의 수하더군.”
“수하는 무슨. 난 그의 그에게 받은 돈이 있어 그 돈 값을 해 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부하니
어쩌니 하는 말은 앞으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하하!”
석강수가 그의 말에 기분이 나쁜 나머지, 그를 쏘아보며 말하자, 경호원들은 이미 인상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지만, 의외로 이수호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전 국정원소속이며 이미 설장호와 추선우를 대적하였다고 들었다. 맞는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절대 섣부른 판단으로 두 사람을 생각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두 사람의 주먹에 인생 끝나게 됩니다.”
“말을 가려가면서 하라!”
석강수의 직설적인 말에 경호원이 다시 나서자, 이수호의 표정이 굳어지며 경호원을 노려보았다.
“내가 하는 질문이었으며, 나에게 하는 답변이다. 내가 따로 말할 때까지 나서지 마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자신의 경호원을 나무랬다.
“내가 두 사람을 보자고 한 이유를 말해도 되겠나?”
두 사람 모두 궁금했던 상황이었다.
“백태는 정구석의 오른팔이지만, 내가 듣기로는 아주 뛰어난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군을 생각하는 것도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나고 말이야.”
“…….”
백태는 이미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다 확인한 그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석강수. 자네는 특별한 이유 없이 킬러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인생을 끝낼 것인가?”
“…….”
석강수도 그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를 보고만 있었다.
“지금부터, 난 개혁을 단행한다. 지금현재 나의 밑에는 네 명의 회장이 있다. 정치 쪽의 최기수, 주먹
쪽의 정구석, 경제 쪽의 우수광, 그리고 각 국가부처에 숨어있는 이들을 관리하는 고민국, 이렇게 네
명의 회장을 두고 있다. 그것은 알고 있는가?”
“네. 알고 있습니다.”
이수호의 말에 백태만 답을 하였다. 당연히 석강수는 그가 하는 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석강수는 모르겠지.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알아둬라. 네가…….해야 할 일이니 말이다.”
“!!!”
이 한마디가 두 사람의 눈과 귀를 놀래키고 있었다. 자신의 말대로 네 명의 회장이 있다. 비록 최기수가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지만, 생존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모두를 쳐내고 그 자리에 두 사람을 앉힌다는 말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 그건…….”
“너의 대한 충심은 안다. 넌 정구석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다. 나의 명령보다 그의 명령을 더 따를
것이니 말이야.”
“…….”
백태는 다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수호의 말처럼 자신은 정구석의 명령이 최우선이다. 제 아무리
이수호가 명령을 내린다고 하여도, 백태는 그 말을 정구석에게 전하고 그의 명령을 기다릴 인물이다.
백태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수호는 경호원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갔다.

0014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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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지금 우리는 수십 년간 잘 숨어있던 권력을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쉽게 해결 할 수 있었던 일 하나로 이미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에 대해서는 아는가?”
이수호가 다시 물었다.
“혹시…….지현이라는 꼬마 여자아이를 말하는 것입니까?”
석강수가 물었다.
“그래. 그 아이를 말하는 거지. 하지만 자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그 아이 하나를 죽이지 못했다.
왜 일까?”
석강수는 다시 입을 닫았다. 그 일에 대해 자신이 한 몫 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설장호가 나서기 전, 추선우의 품에 있을 때 그 일을 마무리하였다면 지금처럼 이토록 길게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길어졌다. 지현은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되레 당하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고작 몇 명이네, 그 몇 명에서 여자아이 하나를 철통 경호하네. 대단하지 않은가?”
이수호가 석강수를 보며 물었다.
“사람의 많고 적음은 필요치 않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지현을 살려야한다는 뜻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쪽은 그리 강한 의지는 없습니다. 그저 밑에 애들에게 명령내리고, 앉아서 눈으로
보고만 있습니다. 일이 이리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면 그 누구보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윗대가리에 앉은 이들은 움직이지도 않으니…….”
석강수는 다시 거친말을 내 뱉었다. 그러자 경호원 한 명이 장검에 손이 갔지만, 이미 이수호가 한 말이
있기에 장검을 뽑아들지는 않았다.

“너의 말이 모두 맞다. 내가 너무 앉아만 있었어. 당연히 말만하면 모든 것이 처리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일이 틀어졌어. 틀어져도 너무 틀어졌어.”
이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벌거벗은 여인들도 함께 일어났다.
“회장님, 정 회장입니다.”
이수호가 일어나자 정구석이 안으로 들어섰다.
“정구석.”
“네. 회장님.”
“자네가 우리 조직에서 생활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네? 약 15 년 정도 됩니다.”
“15 년이라. 오래되었군. 그 세월동안 자네는 우리조직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정구석은 그가 묻는 질문에 대한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내려 백태를 보며 힌트를
얻을까하였지만, 무슨 영문인지 자신의 충신인 백태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네가 15 년간 한 것이라고는 뱃속에 음식들만 쳐 넣고, 머릿속에 똥만 쳐 넣은 것이 전부다. 네가 한
것이 없어. 전국의 주먹들을 관리해라 했는데, 지금 어떤가? 이런 판국에 자네의 명령으로 자네를 돕고자
올라온 놈이 누가 있는가?”
이수호는 정확하게 정구석의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정구석은 주먹을 관리하는 인물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명령을 받고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선 인물이 없다. 유일하게 나선 인물이라면 이지광이 전부였다.
또 한 부산의 주먹인 병따개는 정구석이 아닌 최기수의 명령으로 움직였다. 그것만 보더라도 정구석은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세월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니야 아니야. 죄송할 것은 없어. 어차피 내가 내려준 벼슬 아닌가. 그러니…….이제 그 벼슬을 내가
다시 가져가겠네.”
“네!?”
이수호의 말에 정구석과 백태가 놀란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 정구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며 자신의
곁눈으로 무언가 번쩍 거리는 것이 보였다.
정구석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옆에는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장검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회…….회장님.”
‘스윽!’
“!!!”
정구석은 아주 짧은 말 한마디를 내 뱉었다. 그리고 목에 선명한 칼자국이 새겨졌다.
백태는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그건 석강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수호는 네 명의
회장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그의 힘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네 명의 회장들의 힘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네가 보필해야 할 주군이 누군가?”
이수호는 백태를 보며물었다. 백태의 눈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최소 10 년간 자신이 주군으로 보살피던
정구석의 목이 떨어졌다.
그렇게 강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것과 같았던 정구석의 목도 떨어질 때는 순식간이었다.
“제가…….모셔야 할 주군은 이수호 회장님이십니다.”
“그래 그래, 바로 그런 답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말이야…….때와 장소를 잘 타야하고, 무엇보다
기회가 왔을 때는 의리고 나발이고 다 버려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잘 살아야 의리고 나발이고 다
따라오는 것이다.”
이수호는 백태의 앞으로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백태야. 넌 이제부터 주먹과 정치계를 담당하는 회장의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에서 나를 보필하라.”
“네. 회장님.”
백태는 고개 숙이며 답했다. 이수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석강수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고민국을 데리고 들어와라.”
“!!!”
이미 정구석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기에 고민국의 목도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회…….회장님!”
고민국은 들어서자마자 이미 피가 묻힌 바닥을 보았다. 하지만 정구석은 치워지고 없었다.
“민국아.”
“네. 회장님.”
“지금 우리 조직에 몸담고 있는 놈들 중, 국가부처에서 활동이 가능한 놈은 몇 놈이나 되는가?”
“대략…….백여 명쯤 됩니다.”
고민국은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피도 이 바닥에 뿌려질 것이라 생각하며 신중하게
답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라…….”
“네. 회장님.”
“내가 처음 너에게 이 직책을 줄 때, 그 때 우리가 가용하능한 인물이 몇 명이나 되었는가?”
“…….”
이수호의 물음에 고민국의 입이 닫혔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말하라.”
“7 천 명이었습니다.”
“그래 7 천명이었지, 정확하게 내 기억 속에도 7 천명이었다. 그런데 15 년 사이 백 명으로 줄었다.
이유가 무엇이겠나?”
이수호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가 다가올수록 고민국의 눈동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무능한 놈을 그 자리에 앉혀 둘 수 없게 되었다.”
“회…….회장님.”
이수호는 고민국의 바로 앞으로 섰다. 그리고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고민국은 그 웃음을
받을 수 없었다.
이수호의 옆으로 다가서는 경호원, 그는 정구석의 목을 칠 때와 같이 시퍼런 날이 서 있는 장검을 들어
고민국의 목을 향해 들이밀었다.
“수고했다.”
이수호의 짧은 한마디가 고민국의 기억에 남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석강수는 또 다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15 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신과 함께 한 이들의 목을 너무나 쉽게
쳐 내는 것이 놀라웠다.
“이제부터 고민국과 우수광이 관리하였던 것은 석강수. 자네가 한다.”
“!!!”
석강수는 물론 백태도 놀란 눈이었다. 백태는 10 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조직과 함께했다.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한 때 이 조직을 잡고자 움직였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에게 조직의 핵심을 맡기는 것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또 한, 아직 우수광과 최기수는 살아있다. 그들이 살아있는 와중에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하겠는가?”
이수호가 석강수의 뒤로 서며 물었다.
석강수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하니 할 수 없었다. 뭐라 시원스러운 답을 하고 싶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겠다. 지금부터 설장호와 추선우. 그리고 이지현을
잡아라.”
“알겠습니다.”
석강수는 결정지었다. 자신의 앞 길이 어찌 열릴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수호의 말을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회장에게 정식으로 인사올려라.”
“네. 회장님.”
백태와 석강수에게 확답을 들은 후, 이수호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정식으로 두 사람을 소개하였다.
조금 전까지 석강수에게 장검을 들이밀려고 했던 경호원들도 이수호의 한 마디에 다른 말없이 그의 뜻을
받았고, 장검을 치운 뒤,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자네들에게 충신을 붙여 줄 것이네, 잘 활용하게.”
이수호는 두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수호가 거느리는 경호원들은 이 네 명 외에도 더 존재한다. 다만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네 명이 그를 곁에서 보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앉아서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만, 지금의 사정으로는 어렵고, 일이 해결되면 한 잔
하도록 하지.”
“네. 회장님.”
이수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여인의 살결을 만지며 말했고, 두 사람은 곧 그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백태는 하늘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필하던 정구석의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는 이수호를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시 잡고,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마음을 가지려는 듯, 그의 표정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었다.
석강수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수호의 앞에서 놀란 심정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그의 마음을 얻고 나니
자신의 등 뒤에 더 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권력의 날개를 단 느낌이었다.

“앞으로 자주 뵐 듯 합니다.”
백태가 먼저 석강수에게 악수를 권하였다. 백태는 지난 날 삼성역에서 설장호와 석강수가 힘을 겨루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 뒤로 그와 단 둘이 만나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정구석이
아닌 고민국과 손을 잡으면서 단 둘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버렸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던 두 인물을 대신하여 직접 그 자리에 앉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그 권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난…….한 자리에 그리 오래 앉아있는 성격도 아니고, 무엇보다 과거에
당신들을 잡고자 설치고 다녔던 놈이니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백태와 달리 석강수는 그의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이수호에 의해 아주 큰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것이 훗 날 어떤 일을 만들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특히. 석강수에게 주어진 힘은, 누구를 위해, 어느곳을 위해 사용될지는 오로지 석강수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0014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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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헤어졌다. 마치 다시 보시 않을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석강수를
백태는 아무런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단 몇 분 만에 두 회장의 목이 날아갔다. 이 땅의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이지만, 그들도 어찌 보면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생의 마지막 날이었고, 두 사람은 그리 세상을 등졌다.

“최기수는 어찌되었는가?”
이수호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곧. 처리 될 것입니다.”
“빨리 처리해라.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네. 회장님.”
이수호는 최기수마저 목을 떨굴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기에 이수호가
강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한 어찌 보면 지금 현재로써는 최기수가 가장 안전한 곳에 있기도 하였다.
제 아무리 권력이 대단하다는 이수호지만, 그가 들어서지 못하는 곳에 있으니, 최기수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나를 내 보내 줘!”
하지만 그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면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임을 모르기에, 감금 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우수광은 어찌 되었나?”
“지금 이쪽으로 오라 하겠습니다.”
고민국과 정구석의 목을 떨구었으니, 우수광도 마저 쳐 내려는 이수호였다.
“회장님. 우수광이 왔습니다.”
“그래? 수고를 덜어주는군.”
이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수광이 들어올 문을 향해 보며 섰다.

“회장님.”
우수광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머리를 숙이며 그에게 안부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수호는 그저 웃으며
그를 보고만 있었다.
“왜 혼자인가?”
이수호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아 네…….고회장과 정 회장이 먼저 이곳에 와 있겠다며 저 또 한 이쪽으로 오라고 하여…….”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군. 난 모르고 있었네. 그럼 우회장을 고회장과 정 회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게.”
“네. 회장님.”
경호원이 답했고, 우수광도 그에게 인사한 후, 다시 방을 나왔다.
“고회장과 정 회장은 어디에 있소?”
우수광은 길을 안내하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따라오시면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우수광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갔고, 곧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십시오.”
“알았네. 수고하게.”
우수광은 그의 안내에 의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너무 어두컴컴한 내부를 보며 놀라 멈칫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두 회장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불을 끄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회장님께서 오시면 불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요?”
우수광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벽을 더듬거렸고, 곧 스위치를 눌렀다.
“!!!”
불이 밝혀지며 우수광의 눈앞에 목에 한 줄의 선명한 선을 긋고 죽어 있는 고민국과 정구석이 보였다.
“어…….찌된 일이요?”
“두 분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서둘러 보내드리겠습니다.”
우수광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 흔들거리는 눈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경호원의 장검이
그의 머리 위부터 허리까지 일직선상으로 긋고 내려오면서 우수광의 목숨 줄도 끊어 놓았다.

“당분간 여기서 체력을 회복한 후, 정보를 수집하여 그들의 목을 조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편, 별장에서는 서지호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는 환자가 두 명이다. 아니 엄연히
따지면 태정민까지하여 세 명이다. 힘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부상 중이니, 그들을 만난다고 한 들, 이겨
낼 수 있을지 모르기에 무엇보다 지금은 휴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서지호의 말에 설장호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휴식이 중요하였다. 그 누구보다 추선우의
휴식이 급선무였다.
비록 총알 하나를 빼내는 일이지만, 이는 민간인에게 아주 큰 충격이다. 자신들과 달리 생각해야 하기에,
설장호는 추선우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반면에 추선우는 지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도 가슴 아프지만, 마음 편히
부모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고, 마음 편히 친구들과 뛰어놀지도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파오고 있었다.
“현재 병원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박태식 형사를 찾아 그를 데리고 함께 이곳으로 오도록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모두가 편히 앉았지만, 박태식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했던 상황이었다.
이에 서지호가 병원 측에 남아있는 경호원들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여, 박태식을 돕도록 하였다.

한 편. 병원에서는 주차장으로 이동한 수만이 여전히 박태식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고, 그의 뒤로 세


명이 함께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돈을 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의 거금을 주었으니, 그에 대한 가치는 해주어야지.
설장호와 추선우란 놈은 우리가 잡을 테니, 당신은 당신 볼일을 보시오.”
뒤를 경계하며 수만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던 강석중이 말했다.
수만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거렸고, 박태식을 끌고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수만의 임무는 추선우를 잡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이곳을 떠났으니 굳이 자신의 임무대로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에 강석중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위험지역을 벗어나려 하였다.

‘픽픽픽!’
“!!!”
그 순간 대북전담팀장인 조동민 이끄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주차장으로 내려와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국정원장이 죽어 가는데 복수라도 하려고 내려온 모양이군.”
여형석이 몸을 숨기며 말했고, 곧 모두가 차량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수만은 달랐다. 그는 숨는 것이 아니라 박태식을 본 후,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다.
“넌 내 방패가 된다.”
수만은 이동 중, 박태식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곧 조동민의 시야에 들어왔다.
‘픽!’
“으악!”
“…….”
수만은 박태식을 방패로 생각하며 그를 앞세워 이동하였다. 하지만 수만의 생각과는 달리 조동민은
박태식을 방패삼아 일어난 수만을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박태식의 팔뚝을 관통하여 지나치며, 그 뒤에 있던 수만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수만은 쓴 소리를 내 뱉으며 조동민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팔을 관통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박태식을 보며 총구를 겨누었다.
“필요 없는 방패는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수만이 그를 보며 말했고, 박태식의 표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웃으며 수만을 보고 있었다.

‘픽픽!’
‘척!’
수만이 박태식의 머리에 총알을 쏘려는 순간, 조동민은 다시 수차례 총을 더 쏘았고, 수만이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도록 하였다.
박태식은 그 틈에 차량들 틈으로 몸을 이끌고 숨어들었고, 수만은 자신의 방패였던 박태식을 놓치면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엄호하라!”
수만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세 명은 국정원 소속 대원들을 상대로 총을 쏘며 수만이 뒤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 놈도 내 보내지 마라!”
조동민이 다시 소리치자, 국정원대원들이 세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고, 조동민은 그 틈에
총상을 입은 박태식을 향해 다가섰다.

“괜찮습니까?”
“하하. 총을 쏘고 괜찮냐고 물으니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군요. 고맙습니다. 젠장!”
조동민의 물음에 박태식이 웃으며 말한 뒤,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난 뒤에 곧바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래도 후배들이 잘 큰모양이군. 아주 저격실력이 대단한데.”
자신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석중은 국정원 대원들을 칭찬하는 말을 하였다.
수만은 옆구리에 입은 상처를 손으로 꽉 누른 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하여 이동하였다.

“멈춰라.”
수만은 총격전이 일고 있는 지역을 간신히 벗어난 후, 자신의 차량에 거의 다 다다랐고, 곧 차 문을
열려고 할 때, 그의 뒤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만은 잠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며 그를 보았다. 그들은 서지호와 함께
온 경호원이며, 세 명이었다.
“박태식 형사와 함께 있지 않군. 내려가서 박형사의 생사를 확인해라.”
“네.”
한 경호원이 두 명의 경호원에게 명령 내렸고, 곧 두 명이 모두 움직이고 난 뒤, 그와 수만만이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 실수하는거다.”
수만은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하고자, 더 꽉 누르면서도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
“총상을 입은 건가? 하하하! 네 놈이 누구의 밑에서 움직이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꽤 당돌하게 행동하더니
꼴좋군.”
경호원은 수만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그가 조금 전 1 층로비에서 했던 행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행동으로 당당하게 나섰지만, 지금은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몸을 움츠려 있는
꼴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넌…….어떤 놈의 명령으로 움직이는가?”
경호원이 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수만이 그 말에 답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만은 입모양으로 뭔가 중얼거리는 듯 말하였다.
경호원은 그의 입모양을 보았다. 자신에게 뭔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수만은 자신의 차량에 등을 기댄 채, 서서히 몸을 숙였다. 옆구리를 스쳐간 총알에 의해 고통이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죽기 전에 할 말은 하고자 한 모양이군.”
경호원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그와 약 1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선 채, 그를 내려 보았다.
“말해라. 이쯤이면 네가 하는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그의 말에 수만이 고개를 들어 또 다시 입만 서서히 열리며 중얼거리자, 경호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뭐라는거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경호원은 조금 더 앞으로 다가섰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 수가 없잖아. 뭐라는거야!”
그는 소리치며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스윽!’
“!!!”
그 순간, 수만의 손이 아주 빠르게 그의 목을 스쳐지나갔고, 경호원은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서서히
수만의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0014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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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죽는다는 말을 한 것이다.”
수만은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덜석.’
경호원은 수만을 향해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수만은 그대로 자신의 차량에 올라탄 뒤,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약 3 분 뒤, 조동민과 함께 경호원과 박태식이 현장에 도착하였다.
경호원은 목에 선명한 칼자국을 남기고 죽어있었으며, 수만은 이미 그 곳을 벗어나고 없었다.
“젠장.”
박태식이 쓴 소리를 내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떤 차량도 움직이는 차량이 없었다.

‘띠리리리’
곧 경호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서지호가 연락한 것이다.
“박형사님?”
“박형사님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장철호 대원이 조금 전 사망했습니다.”
“!!!”
서지호는 놀란 눈을 하였고, 방안에 있던 모두가 그를 보았다.
“알았다. 일단 박형사님을 이곳으로 모셔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북전담팀 팀장 조동민이라는 사람도 함께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서지호는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를 보았다.
“조동민이란 사람이 함께 있다고 합니다.”
“같이 와라.”
“네.”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모두 이동합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병원 정리는 현재 남아있는 국정원 대원들께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동민 팀장님은 저희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경호원의 말에 조동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설장호의 명령처럼 병원의 모든 정리는 남은 국정원
대원들이 정리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잠시 전화 좀 바꿔주십시오.”
경호원이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박태식이 말했고, 그는 전화기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설 실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서지호는 박태식의 말에 전화기를 설장호에게 주었다. 박태식은 설장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조금 전
로비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국정원장이 총상을 입은 것과, 수만에 관한 말, 그리고 세 명의 국정원 소속 대원들에 관한 말이었다.
“세 명은 어찌되었나?”
설장호의 물음에 박태식이 조동민을 보았다. 조동민은 세 사람의 사살했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다.
“세 명 모두. 사살하였답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한 때 둘 도 없는 동기였으며, 서로 뜻을 같이하고 업무를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운명이 어긋나 지금의 적으로 만났지만, 과거의 추억은 모두가 잘 간직한 채,
마무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곧 조동민의 부하대원들이 강석중과 민관호, 여형석의 시체를 수습하고 한 쪽으로 눕혀놓았다.
‘띠리리리’
곧 국정원장의 전화벨도 울렸다.
“어딘가? 무사히 나간 것인가?”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박태식에게 소식을 들은 후, 그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괜찮으십니까?”
“이런 총알 어디 한, 두 번 맞아보았겠나.”
국정원장은 치료를 받으며 그에게 답했다.
“그건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나이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현장에 나타나지
마십시오. 국정원장님이 만에 하나 잘 못되면 전 형수님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원장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참. 오래 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그래. 이 일이 마무리되면 언제 우리 집사람과 술이나 한잔 하세.”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끊은 후, 설장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더 굳어있었다. 슬픔도 있었고, 괴로움도 있었다.
“국정원장님은 괜찮으시다 합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노인네가 생명줄은 길어. 과거에 수차례 총상을 입었는데도 그 때마다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살아남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우리 일을 마무리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들은 현재 새로운 적이 탄생한 것을 모르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최기수와 연관된 인물들은 이제
없다. 고민국과 정구석, 우수광이 모두 죽었지만, 이들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그 세 명을 찾을 것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들을 찾고자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다 책임질게. 원장님이 없을 때, 나도 공을 좀 세우려고 해.


최기수를 심문하여 뭔가 하나의 정보라도 빼내면, 그건 내 공이지만, 자네의 공도 있어. 그리고 더 나가
우리 국정원의 공이잖아.”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최기수가 감금된 감금실을 지키던 대원의 앞으로 약 40 대 중반의 국정원 소속
인물이 최기수를 감시하던 대원 앞에 서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께서 그 어떤 누구도 최기수를 만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참 답답하네. 이렇게 잡아만 놓는다고 뭔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생각해보게. 저 놈이 지금 뭔가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전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봐. 이 또 한 시간낭비 아닌가?”
그는 감시하는 대원에게 계속하여 최기수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잠시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국정원장님께서 10 분마다 한 번씩 전화하셔서 최기수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기수의 영상을 찍어 원장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 알았어. 10 분이 아니라, 5 분이면 돼.”
그는 대원의 말에 웃으며 말한 뒤, 그의 주머니에 살며시 뭔가를 찔러주었다.
“퇴근하면서 술이나 한잔 해.”
그의 말에 감시하던 대원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국정원장님께서 전화하셨으니, 약 8 분 정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전에 나오십시오.”
“그러지.”
대원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40 대 중반의 국정원소속 인물은 최기수를 만나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최기수는 그가 들어오자 고개를 들어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그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것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국정원 인물은 감금실에 들어서자마자, 감금실 안에 있는 마이크를 찾아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CCTV 도 모두 끈 후, 최기수를 향해 다시 보았다.
최기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불안한 눈빛을 하였다.
“이렇게 사셔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 여기서 나가셔도 회장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
최기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말. 그 한마디에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국정원 인물이 누구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회장님이 보낸건가?”
최기수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를 향해보며 물었다.
“네.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다행이군. 그런 나 좀 데리고 나가주게. 이런 밀페된 좁은 공간에 있자니 미칠 지경이네.”
최기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정회장님과 고회장님, 그리고 우회장님의 일은 알고 계십니까?”
“무슨...말인가?”
최기수는 그를 보는 기쁜 표정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세 명의 이름에 최기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최회장님을 기다리다 목이 빠져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
최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를 향해 보았다.
“나...난...아직 할 일이...”
“할 일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조용히 인생 하직 하십시오.”
“!!!”
그는 자신의 안 주머니에서 작은 바늘을 꺼냈다. 최기수를 향해 다가선 뒤, 그를 살며시 껴 안았다.
최기수는 공포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소리친다고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살며시 안고 있는 그를 향해 멍하니 눈동자를 떨고 있을 뿐이었다.
“세 분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십시오. 먼저 가신 분들이 아마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최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기수의 뒷 목으로 뭔가 작은 바늘이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듯 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지도 못한 채,
최기수가 바르를 떨기 시작하자, 국정원 대원은 그를 안은 뒤, 살며시 다시 의자로 데리고 와 의자에
앉혀주었다.
“서서 죽으면 내출혈도 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자에 앉아 몸이라도 편하게 죽어가십시오.”
그는 앉은 채, 더 이상 미동을 하지 않는 최기수를 보며 말한 뒤, 감금실 문을 열고 나섰다.
최기수는 엎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일반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과 같이 앉은 자세로 그렇게 눈을 뜨고
죽었다.

“뭐 좀, 알아내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가 나오자 감금실 앞을 지키던 대원이 물었다.
“알아내고 자시고도 없어. 저렇게 멍하니 앉아서 아무말도 하지 않으니 원...”
그는 대원에게 최기수가 자신이 나올 때까지는 살아있음을 알리려 일부러 그에게 최기수를 보도록 하였다.
대원의 눈에도 최기수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괜한 고생하셨습니다. 가 보십시오.”
대원은 그에게 인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곧 이수호의 경호원이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국정원 관계자였다. 그는 최기수를 만나고 나온 뒤, 곧바로 이수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찌되었는가?”
“최기수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지금...저 세상으로 보내주고 오는 길입니다.”
“수고했다. 자네는 그대로 국정원을 떠나게, 곧바로 통장으로 돈을 보내주겠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수호는 전화를 끊은 후, 경호원 한 명을 불렀다.
“장구형에게 보답을 해줘라.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면 안되니 제대로 처리해 줘.”
“네. 회장님.”
이수호의 명령을 받은 경호원은 그 길로 곧장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마자, 잠시 후, 수만이
안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녀석들을 놓쳤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다. 그건 네 잘 못이 아니야. 일을 그리 잘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고민국과 정구석의 잘못이지, 가서 쉬어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수만의 잘 못을 용서해주었다.
“수만아.”
“네. 회장님.”
그가 이수호에게 인사한 후, 방을 나서려던 찰라, 이수호는 그를 불렀다.
“몸을 바로 세워보거라.”
이수호의 말에 수만의 표정이 잠시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상처를 입었나?”
“죄송합니다. 국정원에 소속되어 있는 놈 중, 한 놈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수만은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0015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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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랜만에 네가 상처를 입은 모습을 보는구나. 그 만큼 상대도 만만찮다는 뜻이겠지. 가서
치료하거라. 조만간 그 놈들의 목을 사냥하러 움직일 것이다.”
“네. 회장님.”
수만이 나가자, 이수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감히...네 경호원에게 상처를 입혀? 그 대가는 충분히 돌려주겠다.”
이수호는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고민국과 정구석의 목을 너무나 가볍게 쳐 낸 인물이지만,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경호하는 한 경호원의 상처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
한 편. 최기수를 죽이고 서둘러 한국땅을 떠나려는 장구형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서둘 것을 재차
말하였고, 계속하여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갑자기...”
“잔말 말고 좀 해. 지금 떠나지 않으면 우리 가족 모두가 위험해.”
그는 아내에게 소리치면서 서둘러 마지막 짐을 차에 실은 후, 아내와 딸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이제 당분간 한국에는 올 수 없어. 그러니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고...”
장구형이 아내와 딸에게 말하다 말고, 룸 밀러를 통해 자신의 차량 뒤로 한 대의 차량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것을 보며 말을 흐렸다.
“여보...왜그래요?”
아내는 그의 표정이 범상치 않아 물었다.
“안전벨트 잘 메고 있어. 차를 좀 급하게 몰거야.”
장구형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쾅!’
장구형의 차는 자신의 집 앞에서 폭발했다. 시동을 걸자마자 차 전체가 터지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장구형과 아내, 그리고 17 세의 딸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회장님. 장구형이 떠났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폭발된 차량 뒤에 있던 차에는 이수호의 경호원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차가 폭발하자마자,
이수호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알렸다.
“내가 곁에 두고 있는 외에는 두 번 다시 같은 놈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다. 한 번 일을 맡았으면 훗 날을
위해 그 놈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도 올바른 일이다.”
이수호는 여인이 따르는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석강수 회장님.”
“...”
한 편. 석강수는 이수호의 신의를 얻어 졸지에 뿌리조직의 회장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허름한 집으로 들어서려 할 때, 누군가 뒤에서 그를 회장이라 불렀다.
“역시...내가 있는 곳 쯤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건가?”
석강수는 동작을 멈춘 후, 자신을 부른 이들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이수호회장님의 명령으로 앞으로 석강수 회장님을 보필할 사람들이며, 제가 이 인원의 팀장인
어호선입니다.”
석강수는 그를 보았다. 그의 체격과 나이는 추선우와 거의 비슷하였다. 또 한 그가 중심이되어 앞으로
자신의 곁에서 함께 움직일 인원은 다섯명이었다
이들은 오로지 석강수의 명령을 이해하도록 이수호가 특별히 내려준 회장취임 선물이었다.
“어호선.”
“네. 회장님.”
“지금 즉시 내가 잡아야 할 타깃이 어디에 있는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거처를 새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오늘부터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석강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기거하던 오피스텔을 보았다. 비록 좁고 낡은 오피스텔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꼭 가야하나?”
“조직의 보는 눈들도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조직의 회장님이신데, 이런 곳에 계신다는 것은...”
“알았다. 안에서 몇가지 필요한 것만 챙겨 올테니, 그 동안 타깃의 위치를 알아둬라.”
“네. 회장님.‘
어호선은 그의 명령을 받은 후, 곧바로 나머지 네 명에게 각기 무언가 내용을 전달하였고, 그들은
그순간부터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제길...좋은 것인지, 나쁜것인지 모르겠군.”
석강수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곳곳에 쌓여있는 빈 맥주캔들과 다 먹은 컵라면. 그리고 담배갑등,
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런 생활이 좋은데 말이야...”
그는 이제부터 자유란 것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자신에게 회장자리를 주었지만, 이미 고민국과 정구석의 몰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즉 최상위 인물이 아니기에, 언제라도 목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했다.
지금처럼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그 의뢰에 맞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더 행복한 나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의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석강수는 이수호의 제안을 받았다. 싫던 좋든 이제부터 그는
이수호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석강수는 몇 가지만 챙겨서 오피스텔을 나왔다. 그러자 정문 앞에는 대형 세단이 서 있었고, 곧 어호선이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어주었다.
“앞으로 이런 것은 하지마라. 나도 손이 있다.”
“네. 알겠습니다.”
어호선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답만 하였다.
곧 차량은 오피스텔을 벗어낫다.

“최기수가 어찌 되었는지 확인해 봐.”


한 편. 국정원장은 병원에서 치료를 다 마치고 나오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약 15 준 전에 연락이 왔었습니다. 최기수는 아무 문제없이 그저 이렇게 앉아서 멍하니 있다고 합니다.”
국정원의 말에 한 대원이 휴대전화로 전송된 최기수의 사진을 그에게 보이며 말했다.
국정원장은 사진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이런...”
그리고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지금 즉시 감금실 대원에게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수술을 마친 뒤, 최기수의 동태를 살피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하지만 전송된 전화기속 사진. 필시 그의 눈에는 최기수의 모든 것이 수상해 보였다.
“잠시 기다려라.”
국정원장은 대원이 건네주는 전화기를 받았다.
-네. 원장님.-
감금실을 지키는 대원은 원장의 전화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최기수를 확인한다.”
“네? 최기수를 말입니까? 지금 그는 명상에 잠긴 듯...”
“잔말말고 어서 확인 해!”
국정원장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원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감금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기수씨! 최기수씨!”
그는 최기수를 수차례 불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멍한 눈을 한 채,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최기수씨!”
한 번더 그를 향해 소리치며 그의 팔을 잡았다.
‘툭!’
“!!!”
그가 최기수의 팔을 잡자마자, 최기수는 곧바로 쓰러지며 테이블 위에 머리를 강하게 쳐 박았다.
“무슨 일이야?”
국정원장이 그에게 물었다.
“최...최기수가 죽었습니다.”
“!!!”
국정원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특별한 관계자들 외에는 특별한 인물을
만날 수 도 없는 국정원에서 이번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인물이며 용의자인 최기수가 죽었다.
“누가...다녀갔는가?”
국정원장의 날카로운 음성이 대원의 귀를 칼로 찢는 듯 파고들고 있었다.
“자...장구형 실장님께서...”
“야이 새끼야! 넌 내 말이 말같이 들리지 않아! 내가 나 외에 그어떤 누구도 최기수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라했다! 그런 내 말이 네 놈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나!”
대원이 말을 흐리자, 국정원장의 목소리는 병원전체에 울려퍼질 정도로 크게 들려왔고, 그의 옆에 있던
대원들은 국정원장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듯 놀란 눈들을 한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지금 즉시, 내가 간다. 내가 도착하기 전, 그 어떤 누구도 최기수를 보지 못하도록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의 표정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다. 유력한 용의자이며, 많은 단서를 쥐고 있는 최기수가
죽었으니, 그 조직에 대해 찾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장호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국정원장은 국정원으로 돌아가기 전,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딘가?”
설장호는 아직 별장에 있다. 말 그대로 지금은 상처치료 휴식이 우선이기에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그 보다, 최기수는 아직도 묵비권입니까?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요?”
설장호는 그에게 현 위치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묻고자 하는 질문은 바로 하였다.
지난 날,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최기수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오는 모두의 뒤를 밟도록 명령내렸다. 하지만
최기수를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 돌아가는 길에 술집을 들러서 갔다.
곧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노출 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이면서, 자신들의 뒤를 누군가 항상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행동하는 이들이었다.

“최기수가 사망했네.”
“…….”
국정원장이 최기수의 사망소식을 설장호에게 알렸지만, 설장호의 반응은 의외였다. 추선우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잡아놓은 최기수에게 단 하나의 정보도 얻지 못하고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장호는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하네. 내가 그 놈을…….”
“원장님께서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그 놈들이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최기수의 죽음은 비단 그 한 놈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최기수의 죽음이 무언가와 연이어 연결될 것임을 국정원장에게 알렸다.
“다른 일이 또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직의 중심이 최기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고, 또 그를
죽인 놈이 최기수보다 더 윗선에 앉은 놈이라면 최기수와 동급으로 움직인 놈들도 아마 잡으려 할
것입니다.”
“동급이라니…….무슨 말인가?”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북정마을과 연화장, 그리고 성남펜션등. 지현과 저, 그리고 추선우를 잡고자 여러 킬러가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서 눈에 띠는 것이 바로 청와대 경호원들과 국정원 소속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는
말입니다. 즉…….최기수 혼자 청와대, 국정원, 검찰과 경찰등. 그 곳의 사람들을 전부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원장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지난 며칠을 떠 올려보았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총구를 돌렸던 이들이 많다. 최기수가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스케일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최기수. 과거의 행적을 보면 그와 함께 다니던 놈들이 있었습니다. 과거 석강수도 그 조직을 한
번 치고자 나섰을 때,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최기수와 함께 또 다른 회장이라는 놈들이
있었다는 석강수의 말이었습니다.”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까지 꺼냈다. 석강수는 이미 이수호에게 자신이 과거 뿌리조직을 잡아내고자 나선
적이 있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도 이수호는 그에게 회장 자리를 내어주었고, 설장호는 지금 그 당시 석강수에게 들었던 말을
국정원장에게 한 것이다.

0015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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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최기수와 연결된 놈들이 누군지를 먼저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최기수와 함께 선유도 주차장에게
잡은 놈을 조금 더 족쳐보십시오. 그와 추선우가 연락을 하였고, 그 연락으로 최기수가 그 곳에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알았네. 국정원 쪽의 일은 내가 수습할 테니, 자네는 지현을 잘 챙겨주게.”
“네. 국정원장님.”
통화를 끊은 후, 모두가 설장호를 보았다. 최기수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들에게는 크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이들은 최기수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놈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기수의 사망으로 그 조직을 알아내는 일이 조금 더 돌아가게 되었다.”
“뭐. 어차피 그 놈이 누군지도 몰랐고, 그 놈에게서 뭔가를 얻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이 답하며 몸을 벽에 기댔다.
이들은 지금 휴식중이다. 총상을 입은 환자도 있고, 사시미로 온 몸이 베인 상처를 입은 환자도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맞아 기력이 없는 환자도 있다.
그렇지만 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일이 꼬인다. 오로지 두 발로
뛰면서 이 꼬인 일을 풀어나가야 하는 판국이었다.
“박태식이 총상을 입었다고 하니, 자네가 그를 봐주게.”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박태식은 총알이 관통하고 지나갔다. 몸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상처를 잘 봐주며, 총알이
뚫고 지나간 곳을 치료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부탁하였고,
그가 답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찌 나에게 총을 쏠 생각을 하셨습니까?”


한 편. 대통령의 별장으로 향하던 길에 박태식은 자신에게 총을 쏜 조동민을 보며 물었다.
“도박입니다. 살면 살 수 있는 것이고, 죽으면 그냥 죽는 도박입니다.”
“네?”
박태식은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도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외로 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은 도박입니다.”
조동민의 말을 서지호가 거들고 나섰다.
“인질이 민간인이라도 이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합니다. 단지 죽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쏠 자신이 있어야만 가능하지요.”
서지호의 말에 박태식은 조동민을 보았다.
“제가…….권총 쏘는 실력은 좀…….떨어지는 편입니다.”
조동민은 박태식의 눈과 마주치지 않게 창가를 보며 답했고, 박태식은 어색한 웃음을 애써 짓고 있었다.

“1 세대 회장들이 물러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는 군. 석강수와 백태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거라.”
“네. 회장님.”
한 편. 이수호는 최기수마저 제거한 보고를 받은 후, 네 사람이 가지고 있던 권력승계를 빠르게 진행토록
하였다.
“그런데, 석강수란 놈은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 경호원이 물었다.
“지켜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믿음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나에게 믿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지원해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경호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말은 듣지 않았다.
석강수는 이수호가 마련한 새로운 집으로 들어선 후,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서
창가를 보며 있었다.
“나를 믿는 것은 좋은데,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러다 뒤통수 제대로 맞습니다.”
석강수는 창가에 서서 야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수호와 반대로 이수호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지금까지 15 년 동안 조직의 권력을 가지고 살아오던 네 명의 회장이
하루아침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석강수와 백태라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 차지하였다.
또 한, 최기수로 인하여 하나하나 알아내려고 했던 설장호의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할 판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의 일은 다음 날, 인터넷뉴스와 모든 언론매체 1 면을 장식하면서 전 국민이 다 알게 되었다.
“대통령님. 서지호 실장이 돌아왔습니다.”
박태식만 데려다주고, 곧바로 청와대로 와야 할 서지호는 아침이 밝은 후에야 청와대로 돌아왔다.
“일은 잘 해결 되었나?”
“네. 대통령님. 모든 것이 대통령님의 생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일에 대해 답을 들었다.
“이제부터 우리 쪽에서도 그 놈들과 연관된 놈들을 모두 찾아내서 쳐야하네. 특히…….행적을 감춘
비서실장의 위치부터 서둘러 찾아내게.”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과 경찰, 검찰이 온통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어젯밤에 더욱 더 확실해 지면서, 차현태는
청와대에 숨어있는 그들 조직의 일원을 색출해 내는데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알아낸 것이 있는가?”
국정원장은 총상을 치료한 후, 아침이 밝자마자 곧바로 서회장이란 사내를 찾아갔다.
서회장은 선유도 주차장에서 추선우와 설장호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며, 최기수의 측근이었다.
“네. 이름은 서충식이며 여러모로 많은 곳에 손을 뻗어놓은 사업가입니다.”
“사업가?”
의외였다. 그는 미희를 감시했고, 그곳으로 찾아갔던 추선우를 잡기 위하여 선유도 주차장으로
움직였었다.
일반적인 사업가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을 뻗은 모든 사업체는 다 확인하였나?”
“네. 일반적으로 모두 평범한 기업체였습니다. 그런데 한 곳. 서창기업이라는 곳이 수상합니다.”
“이유는?”
국정원장은 대원이 기업명을 말한다고해도, 그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원이
수상하다고 여겼으니,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물었다.
“서창기업. 직원수가 약 서른 명인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령회사지. 자금세탁이나 기타 누군가의 뒤를 봐주는 곳. 지금즉시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생각을 오래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확인부터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는 곧 설장호에게 다시 연락하였다.

“간밤 잘 보냈는가?”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정도로 죽지 않네. 그리고 선유도에서 추선우와 통화했던 놈. 그 놈의 이름은 서충식이며 사업가야.
그런데 이놈이 수상한 곳을 운영 중이라 지금 사람을 보낼 것이네.”
국정원장은 서충식에 대해 별다른 심문을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이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뭔가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듯 한데, 그 변화를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알았네, 자네도 조심하게,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는 대로 연락 주겠네.”
국정원장은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서충식을 향해 움직였다.
“제길…….이러고 앉아 있으니 몸이 쑤셔 환장하겠군.”
특별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쉬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특히 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랬다. 태정민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래자네.”
추선우는 미희, 은주와 함께 지현의 옆에 있었고, 새벽에 지친 몸을 누운 채, 잠이 들고 난 뒤 아직도
깨지 않고 곤히 자고 있는 지현을 보며 선우가 말했다.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찾으면 애들은 오래 자.”
은주가 지현의 이마를 만져주며 말했다.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괜히 이런 일에 끼어들게 만들어서…….”
“네가 나와 미희씨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야. 그들이 강제로 끌고 들어온 거지.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은주의 말이었다. 그는 추선우를 단 한 번도 질책한 적이 없었다.
“당분간만 더 부탁할게. 곧 끝날 거야.”
“지현이는 걱정 마. 네 몸이나 잘 관리해. 나중에 지현이가 다시 평소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그 때 옆에 있어줘야 할 것 아니야.”
은주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추선우도 지현을 보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비록 단 며칠간 지현과 함께 하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생겨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래야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 생각토록 해줘야지.”
추선우도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자신이 과거 혼자라는 외로움에 지쳐 살았을 때가 떠올랐다.
절대 지현에게는 그런 아픔과 외로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문 앞에는 강서진이 서서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검사님. 뭐하세요?”
박태식이 응급처치를 한 팔을 붙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그냥 세 사람의 대화가 너무 짠해서…….”
“걱정 마세요. 잘 이겨 낼 것입니다. 그보다…….배고프지 않으세요?”
박태식은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병원이나 다녀와. 아무리 총알이 관통하여 지나갔다고해도, 네 팔 안에 있는 모든 신경을 다 뒤틀어
놓았을 것인데, 그냥 붕대만 감아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갈 것입니다. 서 실장이 곧 병원을 알아봐준다고하니, 아침 먹고 바로 다녀올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가 걱정해? 괜히 팔 아파서 중요한 시점에 끙끙거리지 말라고 한 말이야.”
그녀는 박태식을 지나쳐가며 말했고, 곧 소파에 몸을 앉혔다.
“지금부터 움직일 테니 모두 준비해두게.”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소파에 몸을 앉힌 후, 한 쪽 방에서 설장호와 조동민이 나서며 나누는 대화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 태정민과 다른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설장호를 보며 섰다. 마치 설장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한 두 사람이었다.
“움직이게.”
“네.”
조동민은 곧바로 다시 별장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최기수가 죽었으니, 다른 놈을 족쳐봐야지.”
“다른 놈이라면?”
“추선우와 연락하여 나와 추선우를 선유도 주차장으로 인도한 놈. 그 놈이 죽은 최기수를 대신하여 정보를
줄 것이라 생각하여 움직이는 것이야.”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내린 명령을 알려주었고, 곧 지현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강서진이 방안을 보려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세 사람이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지현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곤히 자고 있었다.
“예쁘군.”
설장호는 지현의 자는 모습을 보며 마치 아빠미소처럼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잠시 추선우 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내 미희와 은주를 보며 말했다.
“또…….위험한 곳으로 가나요?”
은주가 곧바로 물었다.
“아닙니다. 이제 추선우는 직접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제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정부에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앞으로 추선우씨는 절대 그들을 잡고자 앞서지 않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두 여인이 안정할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아직 총상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데리고 또
다시 움직인다는 말을 한다면 두 여인이 참지 않을 것 같았던 분위기였다.
0015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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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우를 데리고 나온 후,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현재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서충식을 심문하여 그 정보를 얻은 후, 곧바로 움직일 것이다. 일단
박태식은 오전에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합류한다. 그리고 추선우는 내가 조금 전 말했듯이 일단은
안정이다. 서충식을 잡아 족치는 일에는 빠진다.”
“…….”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지금 현재로서는 자신이 나선다고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그의 행동이었다.
“그리고…….여러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이 일은 차츰 알게 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성남
펜션에서의 일이 있은 후, 행적을 알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석강수와 지용석이겠지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태정민이 답했다.
“그래. 그 두 놈이 사라졌다. 석강수는 언젠가 다시 나올 것이지만, 문제는 지용석이다. 그는 청와대를
잘 안다. 그가 어떤 마음을 먹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청와대의 분위기도 바뀐다.”
태정민이 가장 신중하게 들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며, 무엇보다 지용석과는 친분이 있다. 그리고
그의 강함도 잘 알고 있고, 그가 움직인다면 그를 막을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용석은 그 강함에 독함까지 가졌을 것이다. 자신이 몸담아오던 청와대 경호실을 등졌으니, 그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독함이 함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추선우. 지현이를 잘 부탁한다.”
곧 모두가 준비를 마쳤다. 설장호의 명령대로 추선우는 별장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지현과 은주,
미희와 함께 별장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국정원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식사는…….”
“병원 가서 먹어.”
박태식은 진심으로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의 말을 강서진이 딱 잘라버렸고, 설장호를 보았다.
“서둘러 움직여라.”
설장호도 강서진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모두가 다시 움직였다. 아니…….추선우를 제외하고 모두가
움직였다.
강서진은 별장을 나서기 전, 거실에 서서 배웅하는 추선우를 보았다.
곧 모두가 별장을 나선 후에도 그녀는 신발을 신는다며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모두가 문 밖으로 나간 후에 강서진은 신발을 다 신었는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추선우를 보았고,
별장 안을 보았다.
은주와 미희는 지현과 함께 방에 있기에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웁.”
강서진은 추선우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고, 곧 그의 앞으로 다가선 후, 그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몸 잘 챙기고 계십시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어제 병원에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키스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녀가 입술을 맞추자, 추선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나갔다. 그래도 추선우는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뭐해?”
곧 문이 열리고 은주가 나오며 물었다.
“응? 아냐…….아무것도, 그냥 사람들 나가는 것을 보니 이상해서…….”
“뭐가 이상해? 저 사람들은 원래 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넌 아냐. 넌 저들이 말하는
민간인이야. 굳이 이런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 나설 필요는 없어.”
은주는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 지현이 곁에 있다. 그녀를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굳이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설치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래. 나설 필요 없지. 이제 여기서 지현이와 너, 그리고 미희하고 있으면 돼.”
“맞아. 저 사람들의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마. 네가 지현을 보호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감해. 하지만
지현의 아버지를 죽인 놈들을 잡고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들은 후, 지난 며칠간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잡고자 설치고 다녔다.
그 순간에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다 그들은 미희를 인질로 삼아 자신을 불러냈다.
그 때부터 더욱 더 그들을 잡아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깊어졌었다.
“이제부터 우리와 있자. 그러면 우리들 중 누구도 다치지 않잖아.”
추선우는 은주를 보았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깊었다. 아무런 일 없이 주인집 딸로 잘 살아가던
그녀에게 지금의 고초를 겪게 한 것이 미안했다.
“미안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 듣고싶어서 한 말은 아니야. 그리고 지난 일은 앞으로 다가올 일로 다 갚아.”
은주는 그의 말을 듣고,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녀는 이리저리 주방 곳곳을 보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으로 향하였다.
방문을 열자 미희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행동을 하였다. 지현이 깰까하여 조용하라는 뜻이었다.
지현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피곤함이 꽤 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괜찮을까요?”
한 편. 국정원으로 향하던 길에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뭐가?”
“추선우씨 말입니다. 만에 하나 그 곳에 그 놈들의 손이 뻗친다면 추선우씨가 지현을 잘 보호할 수
있을까해서요.”
“지현도 지현이지만, 추선우씨도 걱정이지.”
태정민의 말에 이어 강서진이 추선우를 걱정하는 말을 하자,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왜 그런 눈들로 봐요? 맞는 말 아닌가? 추선우씨는 뭐 인조인간 로봇이라도 돼요? 추선우씨도 사람이라
걱정하는 것인데 다들 그리 보니…….”
“그냥 대견해서 본 것인데, 평소답지 않게 설명이 너무 자세합니다.”
그녀의 말에 태정민이 그녀를 빤히 보며 말하자, 강서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쪽 볼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어, 급히 시선을 차창 쪽으로 돌렸다.
“별장에는 청와대 경호원인원들이 배치되어있다. 모두 수석경호원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설장호는 별장에 배치되어 있는 경호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서지호가 특별히 차현태를 경호해야 할
인원들을 빼 준 것이라 그들의 실력은 추선우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것이라 믿었다.

“서 실장.”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는 차현태가 서지호를 불렀다.
“지용석…….은 어찌되었나? 그의 행방은 찾았나?”
“죄송합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차현태는 이미 청와대 경호원 중, 지용석이 그들과 손잡은 것을 알고, 또 비서실장이 그들과 손을 잡고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용석 같은 유능한 인재가 돈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에게 진작 신경을 쓰고,
힘이 되어주었더라면…….”
“그의 가족들에게 현재 지용석의 상황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용석이 알지 못하게 지원을
해주고 왔습니다.”
“잘했다. 비록 지용석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해도, 아직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으니, 자네가
설득을 잘 해보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에게 답한 후, 잠시 집무실을 나와 지용석에게 연락을 하였다.
하지만 수신음만 길게 가고 있을 뿐,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용석…….어디에 있는 것이냐?”
서지호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띠리리리.’
한 편. 조금 전까지 수신음이 길게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던 지용석은 또 다시 울리는 전화기를 보았다.
“말하십시오.”
하지만 이번엔 전화를 받았고, 짧게 용건을 묻는 말을 하였다.
-잘 숨어있는 것인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수호의 새로운 신하가 된 백태였다.
“하고자 하는 말만 하십시오.”
하지만 지난 번 성남펜션에서도 그렇고, 지용석은 백태와 그리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돈에 의해 잠시 맺은 동맹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였다.
-어제 지현과 설장호, 추선우를 모두 놓쳤다.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모두 놓쳤다.-
“어디 한, 두 번 있는 일입니까?”
지용석은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릴 말을 하였고, 백태는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지용석에게 이 조직과의 거래가 일회용인 것처럼 백태에게 지용석도 일회용이었다. 성남펜션에서의
일이 잘 처리되었더라면, 다시 보지 않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그에게 원치 않는 연락을 다시하고 있는 백태였다.
-설장호와 추선우는 지현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모두가 상처를 입었으니, 지금보다 더
안전한 곳을찾아 갔을 것이다. 떠오르는 곳이 없는가?-
백태는 지용석이 경호원이란 것을 안다. 그러니 그는 대통령이 따로 움직이는 곳을 알 것이라 믿었다.
지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권력 중, 최대 권력이 대통령이기에, 그가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주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질문을 왜 나에게 하는 것입니까? 난 대통령 경호원이지, 그들의 경호원이…….”
-그래서 묻는 것이다. 대통령이 숨어있을 만한 곳. 그런 곳을 묻는 것이다.-
지용석은 자신의 말을 자르고 들린 백태의 말에 잠시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확인 후, 전화하지요.”
지용석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금 현재 지현과 추선우가 있는
별장이었다.
그도 경호원이라 대통령이 자주 가며, 여론에 알려지지 않은 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이라면…….”
지용석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현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가 백태와 손잡은 이유는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기 위함이었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국정원에 도착한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그는 국정원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지용석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서지호였다. 그는 계속하여 지용석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지용석은 그의 전화만을 받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집을 등지고 나간 놈이 집전화를 받을 리 없지. 기다려라. 집나간 놈은 자신이 급할 때 꼭…….집으로
전화한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서지호는 불안했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그가 지금 지현과 추선우가 있는 별장으로 차현태를 데리고 가장 많이 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현재 별장에 있는 경호원에게 연락하였다.
“네. 실장님.”
“절대 별장에서 멀어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경호원들의 임무가 지현의 보호였다. 그들이 별장을 벗어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다시
당부하였다. 그만큼 현재 그의 마음이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설장호가 국정원에 들어서자, 모두가 그를 보았다. 설장호도 자신을 보는 그들을 보았다.
이들 중, 자신에게 총을 들이밀 놈도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절대…….절대 표정으로 들어내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곧 그는 한 대원의 안내로 서충식이 있는 감금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국정원장이 먼저 와 있었다.

0015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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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는가?”
“괜찮으십니까?”
“보시다시피 아직 살아있네.”
설장호의 안부에 국정원장은 총상을 입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저 놈입니까?”
곧 설장호가 감금실 안에 있는 서충식을 보며 물었다.
“여러모로 아주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놈인데, 말을 하지 않아.”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곧바로 감금실 안으로 들어섰다.
“…….”
설장호가 들어서자, 서충식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와 시선을 피하려 하였다.
“나를 죽이려고 한 놈이 내 눈을 피해?”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앉으며 시선을 돌린 그의 얼굴을 잡아 자신을 똑바로 보도록 하였다.
“너에게 명령내린 놈이 최기수란 것을 알아. 그런데…….최기수가 사망했다.”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설장호의 말에 서충식은 여전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시선을 돌렸다.
“그래. 모르겠지. 몰라야 하는데…….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너를 잡으려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어. 최기수를 죽인 것처럼, 너도 죽이려고 말이야.”
설장호는 담배를 꺼내 물며 그를 보고 말했다. 서충식은 그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떨며 그와 잠시잠깐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지?”
설장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 서충식은 불과 이틀 전에 반 시체가 되어가던 그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멀쩡하게 앉아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눈이군.”
“사시미가…….”
“그래. 사시미가 스쳐갔지. 그것도 아파 죽을 정도로 살을 도려내며 스쳐갔지. 그러니 그 기억이 다시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해라. 지금 당장이라도 내 놈의 몸에 나와 같은 상처를 주고 싶으니 말이야.”
서충식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다시 묻겠다. 최기수가 국정원에서 죽었다. 그리고 너도 국정원에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누가
최기수를 죽였는지 아직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즉…….지금 네 놈의 근처에도 누군가가 너를 죽이고자
준비 중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서충식의 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내가…….모든 것을 말하면 지켜줄 수 있는 것이오?”
“그건 장담할 수 없다. 최기수도 우리가 지켜주는 가운데 죽었다. 그러니 네가 우리에게 정보를
준다고해도 너의 생명을 보장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서충식은 다시 그를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을 듣고 무조건 보호해준다는 말을 먼저 할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설장호는 달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하지 않고는 너의 자유다. 하지만 말한다고 너를 죽이고, 말하지 않는다고 너를 살려주진 않아.
넌…….그냥 죽는다.”
“!!!”
말을 돌려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서충식은 두 손마저 떨고 있었다.
“담배…….한 개비만 주십시오.”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설장호는 그에게 담배를 꺼내 주며 불까지 붙여주었다.
서충식은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다시 내 뱉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보았다.
“최기수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 중, 세 명의 회장이 더 있습니다.”
“!!!”
서충식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외부에서 감금실을 보고 있던 국정원장과 태정민 등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설장호의 표정변화는 없었다. 심문대상자를 앞에 두고 흔들리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최기수를 포함하여 네 명이란 말이군. 그리고 최기수가 죽었으니 세 명이 더 남아있다는 말이고.”
“네. 그렇습니다.”
서충식은 의외로 정확하게 조직에 관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네 명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조직의 수장들인가?”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국정원장의 눈도 매섭게 서충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젠장. 위에 또 있다는 말이군요.”
서충식의 입에서 답이 나오자마자, 태정민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네 명의 회장에 대해 알아냈으니, 그
네 명을 잡는다면 지금의 모든 상황을 다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위에 또 있다는 말인가?”
“네.”
서충식은 설장호의 질문에 하나하나 정확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그 위로도 여러 명으로 나뉘어져 있는가?”
설장호는 체계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질문만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가 얼핏 듣기로는 네 명의 회장 위로는 단 한명의 인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모든 명령을 내리고 네 명의 회장은 그 명령을 수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서충식은 아주 좋은 정보를 술술 내 뱉고 있었다.
“가장 위에 앉은 놈은 한 놈이고, 그 아래에 네 명의 회장이 있다? 굳이 네 명으로 나누어 둔 이유가
있는가?”
“설실장님의 질문은 정말 단 하나도 쓸모없는 질문이 없군요.”
설장호의 심문내용을 듣고 있던 태정민이 물었다.
“설장호의 전문이네. 그 어떤 놈이라도 설장호가 심문하면 단 몇 번의 질문만에 핵심을 다 빼낼 수
있지.”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은 설장호를 다시 보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긴 하지만, 그가
국정원에서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기에, 모두가 설장호를 쉽게 보지 않는지에 대해
궁금하였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설장호는 대상자를 앞에 두고 절대 긴장하거나, 표정변화를 두지
않는다. 말의 떨림도 없고, 정확하게 원하고자 하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만을 한다.
“네 명의 회장은 각기 하는 일이 다릅니다.”
서충식은 자신의 앞에 앉은 설장호의 눈을 이제는 제대로 보면서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 명의 회장. 즉 최기수와 고민국, 우수광과 정구석이 조직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대단하군요. 저리 체계적으로 조직을 꾸려나가며, 나라의 윗선에 있는 양반들과 손을 잡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태정민의 말에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국정원장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조직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석강수도 이 조직을 찾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꼬리를 잡아도 몸통은 사라졌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내지 못한 세월이었다.
“그럼 최기수가 죽었으니, 정치계에는 빈자리가 만들어졌겠군. 그리고 어쩌면 이미 그 자리를 누군가로
채우고, 최기수를 죽였을 수도 있고 말이야.”
설장호는 지금 조직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으로 보지 않았는데도 눈으로 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담배 하나만 더 태워도 되겠습니까?”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담배와 라이터를 밀어주었다. 원래 담배는 줘도 라이터는 건네주지 않는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모두 주었다.
서충식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길게 내 뱉었다.
“아무래도 내가 설장호실장님에게 부탁하나만 해야겠습니다.”
서충식이 그를 보며 말했다.
“말해 봐.”
설장호는 절대 그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이 또 한 인격무시라 할 수 있지만, 설장호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가장 윗선에 앉은 사람이 난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국정원에 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서충식은 담배를 몇 번이나 흡입한 후에야 말을 이어하였다.
“결론이 뭔가?”
“최기수가 죽었다면, 아마 나머지 세 명의 회장의 목숨도 어찌되었는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표정의 변화를 주지 않았던 얼굴에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네 명의 회장. 제가 듣기로는 15 년 전에 함께 그 조직에 가담한 이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분야를 책임지고 있지만, 한 곳이 뚫리면 전체를 갈아엎을 것입니다. 15 년 전처럼 말입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심장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15 년 전에 네 명의 회장이 동시에
들어왔다. 즉. 그의 말처럼 그전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들도 동시에 죽었을 확률이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죽었고, 또 동시에 새로운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너의 생각은 나머지 세 명도 죽었으니, 그 자리에 다른 놈이 앉았을 확률이 높다?”
“네.”
“그런데. 나에게 부탁할 것이 무엇인가? 새로운 사람이 앉았다면 오히려 네가 살 확률은 더 높지
않은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기존의 인물을 쳐 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굳지 국정원에 잡혀있는 사람을 찾아들어와서까지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이곳에서 나가지 않게 해주고, 항상 한 명의 대원을 나에게 붙여 주십시오.”
“…….”
설장호는 그의 부탁이라는 것을 듣고 난 뒤, 아무런 말없이 그를 보았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보는가?”
“아닙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최기수 회장이 죽은 것처럼 그들도 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필시 나 혼자 있을 때를 노리고 올 것입니다.
하지만 국정원 대원이 항시 붙어있다면 그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로 나가는 순간,
내 목은 바로 떨어질 것입니다.”
서충식은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그런 것이라면 도움을 주겠다. 그리고 네가 한 말…….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충분히 너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을 고려해보겠다.”
설장호는 그에게 마지막 말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를 다시 내려 보았다.
“그 담배 선물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너의 흡연은 내가 허락하겠다.”
파격적이었다. 초조하며 불안한 이들에게 담배는 안정제와 같았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이들에게 담배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설장호의 배려는 서충식의 눈동자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고작. 담배 한 갑으로 그의 눈을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설장호가 감금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모두 그를 향해 둘러섰다.

“지금 즉시 최기수와 고민국, 우수광과 정구석에 대해 조사하고, 그와 연관된 놈들을 모조리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감금실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국정원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태정민과 강서진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네. 알겠습니다.”
“쉬지 않아도 되겠는가?”
설장호가 서충식에게서 얻은 결과를 두고 곧바로 움직이려 하였다. 그러자 국정원장이 그의 안부를 물었다.
“죽지 않습니다. 어디 사시미에 한, 두 번 살점을 내어줬습니까.”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였다. 국정원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자네도 늙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20 대의 팔팔한 청춘에 그의 밑으로 들어와 날고, 뛰고를 반복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40 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년사내가 되었다.
체력도 떨어졌을 것이며, 모든 것이 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력만은 오히려 더 젊었을 때보다
강한 것 같았다.

0015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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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여기였군.”
한 편. 백태의 연락을 받고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용석은 자신이 생각한곳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곳은 대통령의 별장이었고, 추선우와 지현이 있는 곳이었다.
지용석의 시선에 몇 명의 경호원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수석 경호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통령께서 이곳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이동에 비해 경호원의 숫자가 너무 적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아닌 그 누군가를 경호한다는 말인데.”
지용석은 경호원의 숫자만으로 현재 이곳에 차현태가 없다는 것을 바로 추리해냈다.
“이곳에 있는 건가.”
그리고 결정 내렸다. 차현태가 지현을 각별히 대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러기에 청와대 안에
있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외부로 나서야 하는 지현을 위해 자신의 경호원을 충분히 내어 줄 인물이라
생각했다.
지용석은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지현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그는 백태에게 지금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수고했다. 이번 일이 자네의 마지막 임무이길 바란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족들과 함께 떠나라.
평생 찾지 않겠다.-
지용석은 그와 통화를 끊은 후, 잠시 동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곧 가겠습니다.”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는 부모님으로 보이는 노인 두 명과, 두 아이, 그리고 여인이 다정하게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지용석은 휴대전화를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당당하게 별장 정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응? 지용석팀장?”
그가 정문을 통해 들어서자, 경호를 맡고 있던 이들에게 그가 보였다. 그리고 한 경호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지용석을 보았다.
“지용석 팀장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비록 수석경호원들이 더 직위가 높긴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팀장급 이상의 인물들에게는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그들은 지용석이 그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차현태와 서지호가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정민이 수석경호원들을 찾아가
지용석이 배신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즉. 그 누구도 지용석이 그들과 손잡았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알리지 않았기에 경호원이라도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지용석은 한 경호원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별장 앞까지 갔다. 그러자 경호원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지용석팀장이라고 해도 이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탁! 퍽퍽 픽!’
별장 현관문을 지키는 경호원은 두 명이었다. 그리고 별장 뒤로 두 명이 더 있지만, 그들은 현관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용석은 자신의 앞을 막은 경호원의 손을 잡아 꺾은 뒤, 순식간에 등과 목덜미를 내려쳤고, 총을 들고
나머지 한 명의 심장을 쐈다.
“응?”
순식간에 수석경호원 두 명이 쓰러졌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서 뭔가 인기척이 들린 것을 은주가 들었고,
그녀는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왜?”
그녀가 현관문을 열어보려 할 때, 추선우가 방안에서 나오며 물었다.
“외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외부는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 그리고 그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외에는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이 안으로 절대 들어설 수도 없어. 그러니
외부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하다 여겨져도 그냥 잊어.”
추선우의 말에 그녀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손을 다시 걷어 들였다.
“그래. 이 별장은 대통령이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 그만큼 내부는 안전하겠지.”
은주도 그의 말을 듣고 난 뒤, 외부에서 들린 소리를 잊고 다시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현관문 바로 앞에는 지용석이 몸을 낮춘 채, 앉아있었다.
“앞 쪽에 두 명…….뒤쪽에 두 명…….수석 경호원을 모두 보내지는 않았겠지. 네 명이면 그래도
대통령을 경호하는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보낸 것이군.”
지용석은 두 명의 수석 경호원을 제거한 후, 다시 천천히 별장 뒤를 돌아 움직였다.
“역시…….”
그리고 그곳에도 두 명이 있었다. 지용석의 생각처럼 딱 네 명이 경호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

‘픽픽!’
지용석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두 명의 경호원을 아주 쉽게 제거하였다. 제 아무리
수석경호원이라고 하여도,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지는 못한다.
“쓸데없는 놈들은 모두 제거. 이제 집 안에 누가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하겠군.”
지용석은 외부를 정리하고 난 후, 내부를 확인하고자 움직였다. 무턱대고 내부로 들어섰을 때, 설장호를
비롯하여 태정민과 추선우 모두가 있다면 오히려 자신의 목이 먼저 날아갈 것이다.
지용석은 별장 외부 뒤쪽으로 돌아간 뒤, 바닥에 있는 쇠로된 뚜껑 같은 것을 잡아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지용석은 이미 이곳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곳에 비상통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별장에 연락해 보았는가?”


한 편. 설장호는 네 명의 회장에 대한 정보가 수집 되는대로 즉시 움직이기 위하여 대기 중이었고, 곧
설장호가 태정민에게 물었다.
“아직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태정민이 답과 동시에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몇 초간 전화기를 보며 그대로 있었다.
“왜…….그래?”
강서진이 그에게 물었다.
“연락처…….”
모두가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다. 추선우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버렸다. 그리고 설장호가
준 것마저도 잃어버렸다.
즉. 지금 추선우는 휴대전화가 없다는 말이었다.
“외부 경호원들에게 연락해봐.”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이 외부 경호원에게 연락하였다. 하지만 수신음만 계속 울릴 뿐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호원 중 단 한명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 태정민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연락이…….되지 않습니다.”
끝내 그 어떤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강서진이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녀가 간다고 한 들,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검찰 쪽 형사들을 이끌고 다녀오겠습니다. 현재 설 실장님은 물론, 태정민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녀를 빤히 보았다. 가끔은 천방지축 같고, 또 가끔은 유능한 검사 같을 때도 있지만, 요즘
들어 천방지축은 사라지고, 모든 것을 제대로 처리하려는 그녀로 보였다.
“괜찮겠나?”
“네. 다녀오겠습니다.”
설장호의 허락 하에 강서진이 움직였다. 그녀는 국정원에서 나와 서둘러 별장으로 향하였고, 향하는 길에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이미 국정원에서 나오기 전에 검찰청에 협조 요청을 해 둔 상태에서 다시 전화기를 꺼내들 이유는 없었다.

‘띠리리리’
별장 안에서 한가롭게 TV 를 보고 있던 은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그녀는 처음 보는 발신번호에 통화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서 받아. 지현이 깬다.”
곧 미희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느 샌가 두 사람도 지현을 사이에 두고 함께 있었던 시간이 좀
되어서인지,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네.”
그녀는 미희의 말에 서둘러 통화버튼을 눌렀다.
“은주씨? ”
“누구세요?”
“저 강서진검사입니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강서진이 은주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녀는 국정원에서 태정민이 경호원들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했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은주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있던 첫 날. 북정마을에 갔을 때,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었었다.
“별장에 아무 문제없습니까?”
“문제요? 없는데요?”
“아…….다행이군요. 외부 경호원들이 연락이 되지 않아 지금 제가 별장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외부 경호원들요? 그럼 조금 전 있었던 그 소리가…….”
“네? 소리요?”
강서진은 잠시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지만, 이어 들리는 그녀의 말에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네. 현관문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지만, 문을 열어주려 할 때 선우가 말려서요. 그래서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강서진의 눈동자는 더욱 더 크게 변해가고 있었다.
“절대 문을 열어줘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죠?”
“네. 그럴게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제가 지금 갑니다. 가서 확인할 테니 절대 내부의 문은 열어주지 마십시오.”
“네.”
강서진은 더욱 더 서둘렀다. 이동 중, 자신의 팀에 속한 형사들을 모조리 별장으로 오도록 다시 한 번
연락하였고,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향했다.
“누군데?”
곧 추선우도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강 검사님인데, 외부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하시네. 그리고 지금 외부
경호원들이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
“!!!”
그녀의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곧 경호원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추선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경호원이 연락이 되지 않아?”
“응.”
추선우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그녀에게 물었고 답을 들었다. 자신의 꿈이 경호원이기에 경호원의
기본적인 것은 다 알고 있다. 경호원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전화를 받아야한다. 만에 하나 전화나 무전을
받지 않는다면 거의 십중팔구 그 경호원은 사망한 것이다.
추선우는 창가로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외부를 보았다. 정문에 있어야 할 두 명의 경호원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현이 좀 깨워줘. 그리고 한쪽 방으로 모두 모여 있어.”
“왜?”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다.”
“!!!”
두 여인은 놀란 눈을 하였다. 이곳은 안전하다고 말한 지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외부
경호원이 죽고, 손님이 찾아왔다.
이는 청와대에 비하면 그냥 위험이 노출되어 있는 하나의 집일뿐이었다.

두 여인은 서둘러 지현이 잠든 방으로 이동하였고, 곧 그녀를 깨웠다.

“삼촌은?”
지현은 눈을 뜨자마자 추선우를 찾았다.
“삼촌은 거실에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나갈 수 없어. 잠시 여기서 대기하자.”
미희가 지현을 안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추선우가 방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지현이 깼어?”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이내 지현이 깬 것을 확인한 후, 부드러운 눈빛과 어투로 지현을
보며 물었다.
“응. 삼촌.”
지현은 이내 몸을 일으켜 추선우에게 다가가 안겼다.

0015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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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아. 삼촌이 잠시 일을 좀 해야 해, 그러니 이모들과 잠깐만 있어.”
“또…….나가야해?”
“아니. 거실에 있을 거야. 하지만 절대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응 삼촌. 삼촌이 나가지 않는다면 나도 따라 나가지 않을 거야.”
지현은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답했다. 추선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두 여인을 보았다.
“잘 부탁해.”
“걱정 마. 그런데 정말 너 혼자 괜찮겠어?”
은주가 물었다.
“괜찮아.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문은 열면 안 돼, 알겠지?”
추선우가 다시 당부하였다. 그리고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내 추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었다.
“삼촌…….”
“응?”
“이제…….다른 곳으로 가지마.”
“알았어. 삼촌은 이제부터 지현이 옆에만 있을게.”
지현의 말에 추선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내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방문을 굳게 잠갔다.
두 여인과 지현은 방문을 향해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 우리는 이대로 있자. 삼촌 말 잘 들어야지 그치?”
은주가 지현을 보며 말했다. 지현도 불안한 마음인 듯,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은주의 말을 들은
후, 어색하지만 환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거실에 혼자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고, 2 층과


지하로 통하는 길까지 모두 몇 개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숫자가 좀 되기에, 눈으로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찾아오는 손님을 숨어서 마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추선우는 소파로 향해 걸었다. 그리고 소파위에 앉았다. 숨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을 내놓고 집으로
들어서는 이를 맞이하겠다는 뜻이었다.
곧 부엌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추선우의 시선이 부엌으로 향했다.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거실에 앉아있는 추선우와 부엌에서 나오는 지용석.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고, 그 시선에서는 마치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듯 한 분위기였다.
“추선우…….”
지용석이 먼저 추선우의 이름을 불렀다.
“지용석팀장…….”
다음으로 추선우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부른 후에도 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절대 섣불리 움직여서 좋을 것이 없는 상대란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용석은 추선우가 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선유도 주차장에서
있었던 칼부림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 그를 향해 바로 달려들지 않는 그였다.
만에 하나 추선우가 총상을 입은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면, 지용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목을 치려
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가족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철컥.’
부엌에 선 지용석이 한 동안 그를 보고 있었고, 이내 네 명의 경호원을 죽인 권총을 들어 올리며
장전하였다.
추선우는 그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그가 총을 들었다고 갑자기 움직이면, 그의 손에 들린
권총의 방아쇠는 그만큼 빨리 당겨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줄이 길구나. 너 혼자인가?”
지용석이 물었다.
“그래…….운 좋게도 나 혼자 여기에 있다.”
“운이 좋다? 지금의 상황은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곧 내가 너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지.”
지용석의 말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들렸다. 그 순간 지현이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이내 은주와 미희가 그녀를 잡아 다시 안았다.
“듣지 않아야 해. 보지도 말아야 해. 그냥…….그냥 삼촌만 다시 오기를 기다려 지현아.”
미희가 말했다. 그리고 지현은 그녀를 더욱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군.”


지용석은 추선우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는 않지만, 그 대상이 지용석 팀장이라면 기다린 보람은 있군요.”
지용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설 실장은 어디에 있나?”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운이 좋게도 이곳에는 나 혼자 있습니다. 보시다시피…….내 몰골이 말이 아니라
이제 나를 데리고 다니지 않을 모양입니다.”
추선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 손을 벌린 채 말했다. 이미 지용석도 백태에게 이틀 전의 일과 어제의
일을 모두 들었기에 추선우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인지하고 찾아왔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변하신 것입니까? 돈 때문입니까?”
추선우는 총을 들고 서 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 돈 때문이지. 너도 돈 때문에 지현을 경호한다는 것 아닌가?”
“!!!”
지용석의 말은 방안에 있는 세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현이 놀란 눈으로 문을 향해 보았다.
“아니야 아니야…….삼촌을 잘 알잖아 그치?”
지현은 열 살이다. 누군가 말을 하면 그 말을 거의 다 믿어버리는 나이였다. 하지만 두 이모가 그녀의
옆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돈? 내가 돈 때문에 지현을 경호한다? 그래. 그렇다고 하지요. 그럼. 나에게 누가 돈을 줄까요? 내가
돈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한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줘야 너의 말이 성립되는 것 아닌가요?”
추선우의 말에 지용석이 다시 눈썹을 씰룩거렸다.
“대통령이 줄까? 아니면 설 실장님? 과연 누가 나에게 돈을 주려할까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도
나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창가를 향해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용석의 총도 천천히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목숨을 건 일을 한다? 그 말을 누가 믿을 것이라 생각하나?”
“누구에게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난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린
나이에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선택한 일. 그리고 그 일은…….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슉!’
‘픽픽픽!’
추선우는 창가에 다가선 뒤, 창틀에 놓인 작은 화분을 살며시 들어 올리면서 말하였고, 이내 자신의 말이
다 끝나자 화분을 그를 향해 던졌다.
그 순간 지용석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분을 피하면서 세 발의 총을 쏘았고, 추선우는 그 즉시 소파 뒤로
몸을 숨긴 뒤, 빠르게 돌아 움직이며 지용석의 근처로 다가섰다.

‘슉!’
‘픽!’
“퍽!‘
거실의 소파는 거실 두 면을 둘러 니은자로 꺾여있는 소파였다. 그리고 지용석이 부엌에서 나오며 서 있던
자리는 소파와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화분을 던지면서 그것을 피하고자 몸을 움직인 지용석이 니은자의 끝부분까지 움직였고,
추선우는 소파의 뒤를 타고 빠르게 돌아서 끝부분에서 뛰어올라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지용석의 총에서는 총알이 뿜어져 나갔고, 지용석이 추선우의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뒤, 뒤로 밀려나 부엌의 중앙에서 멈춰 섰다.
“젠장…….”
그리고 추선우의 격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군. 내가 총을 쏘려고 한 곳은 너의 심장부분이다. 그런데 왼쪽 팔에서 피가 나다니…….”
지용석은 그제야 추선우의 몸이 더욱 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의 총알을 피하며, 빠르게 움직였고, 또 주먹을 강하게 뻗으면서 순간적으로 무리한 움직임을
보여, 겨우 상처를 덮어놓은 곳이 터지면서 피가 다시 흘러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시미에 베인 자국이라면 길게 피가 흘러나올 것이고, 그렇다고 사시미가 팔뚝을 쿡 찔렀다고 하면 찌른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리저리 휘저어 놓았을 것인데…….피가 마치 총알을 맞은 것처럼 어느 한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구나.”
지용석은 경호원답게 상처만으로 무엇에 의해 입은 상처인지 대략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총상을 입었었나?”
그는 추선우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대한민국에 총을 든 놈이 이리 많은지 몰랐습니다. 뭐 개나 소나 다 총을 들고 다니니 태어나 처음으로
몸에 총알도 박아봤네요.”
추선우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총상을 입은 사실을 말하면, 지용석은 자신이 살고자 그의
상처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었다.
“나에게 상처를 말하는 것은 실수한 것이다. 네가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의 수장을 경호하는 경호원들보다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용석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총에는 이제 한 발의 총알이 남았다. 너와 나. 두 중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이 남은 한 발의 총알로
쓰러진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다. 어떤가?”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입니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 괜한 허풍을 떠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추선우의 말에도 그는 총을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풀며, 다시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거실을 향해 걸어 나왔고, 추선우는 그가 거실로 나오도록 더 뒤로 물러나 주었다.

“젠장! 뭔 놈의 차들이 이리 많아!”


한 편. 파주에 있는 별장으로 급히 움직이고 있던 강서진은 자유로가 꽉 막혀버린 것을 두고 격한 말을 내
뱉었다.
‘띠리리리’
“어디십니까?”
씩씩거리고 있던 그녀에게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물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둘러 가야하는데, 길이 꽉 막혀버렸네요.”
검찰청 소속 형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들도 강서진과 마찬가지로 꽉 막힌 도로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일단 여러 경로를 알아보시고 서둘러 가겠습니다. 그러니 형사님들도 서둘러주세요.”
강서진은 전화를 끊은 후, 내비게이션을 통해 가장 빠른 길을 다시 검색하였다.
“이래저래 막히지 않는 곳이 없군.”
주말도 아니지만, 파주로 향하는 여러 길목들이 오늘따라 모두 꽉꽉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차가 너무 막혀있습니다.”
그리고 차가 막혀 현장으로 빨리 가지 못하는 사람은 비단 강서진쪽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용석의 연락을 받고 백태의 명령으로 이동 중인 이들도 꽉 막힌 도로에서 어찌하지 못한 채, 그저
도로가 다시 뚫릴 때까지 천천히 거북이 운전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쾅!’
“역시. 쉽지 않은 상대군요.”
별장에서는 추선우가 지용석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지용석은 추선우의 상처 입은 곳을 집중적으로
가격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미 왼쪽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추선우의 움직임은 모든 면에서
지용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모. 무서워.”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로 인해 지현이 겁에 질려있었다. 미희가 지현을 꼭 안은 채, 그녀의 귀를
막아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외부의 소음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기다려…….기다리면 삼촌이 문을 열고 들어올 거야.”
은주가 다시 미희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더 보태며 지현의 귀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미 공포가 몸에 번져버린 지현에게 귀를 막고 소리를 차단 한다고해서 그녀의
생각마저 다 막아버릴 수는 없었다.

00156 경호원 =====================================================================


====
                          
“강 검사는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시각. 최기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에 대한 조사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에 대기 중인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연락해 봐.”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곧바로 그녀에게 연락하였다.

“아…….뭐라고 하지.”
강서진은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설장호에게 은주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직접 움직인 이유까지 다 말해야 할 처지였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젠장. 욕먹더라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검사님 도착하셨습니까?”
“그게…….아직이야. 도로가 꽉 막혀서 차가 움직이지를 않아.”
일단 지금 현재 자신의 상황부터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아직 별장의 일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겠네요.”
“저…….그게 말이야.”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태정민이 곧바로 물었다.
“사실. 내가 은주 씨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가는 도중에 은주 씨에게 연락을 했는데…….외부의 경호원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해.”
“!!!”
태정민의 표정이 변하자, 곧바로 설장호의 표정마저 변하고 있었다.
“무슨…….말씀이십니까? 별장에 연락을 취했는데, 외부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니요?
설마…….”
“그래 설마야. 설마 하는 마음에 서둘고는 있지만 차가 막혀서 움직이지를 못해.”
태정민의 표정이 더욱 더 굳어지자, 설장호가 그의 전화를 받아 들었다.
“자세히 말해.”
그의 굵직한 말 한마디가 나오자, 강서진은 마치 저승사자의 음성을 들은 듯 놀란 눈을 한 채, 지금의
모든 상황을 그에게 다 알려주었다.
“일단 전화 끊는다. 넌 서둘러 별장으로 향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오래 통화하지 않았다. 어차피 강서진도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니, 오래 시간 끌어서 더
알아낼 정보도 없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서지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설명하였다.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 확인토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도 놀란 눈이었다. 수석경호원 네 명을 보냈는데 모두 연락두절이며, 무엇보다 지용석이 연락이
되지 않으니, 더욱 더 불안해하는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그 즉시 차현태를 찾아간 후, 지금의 상황을 모두 알렸다.

“가장 빠른 수단을 이용하여 별장으로 향하게.”


차현태는 망설이지 않았다. 서지호를 직접 별장으로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다.

“그런 일이 있는가?”
설장호도 국정원장에게 바로 보고하였다. 서지호와는 달리 설장호는 그에게 보고한 이유가 있었다.
“헬리콥터를 띄우겠습니다.”
별장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하늘을 이용하는 길 밖에 없었다. 이에 국정원장의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헬리콥터를 수배하려는 그였다.
“서둘러 움직이게.”
국정원장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지금은 지현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녀를
보호하고자 지금까지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일을 진행하는 상황이기에 그녀가 자칫 잘 못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세 명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곧바로 연락 주십시오.”
“알았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부탁한 뒤, 곧바로 태정민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파주로 향하였다.

같은 시각. 서지호도 차현태의 승인으로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직접 파주로 이동하고 있었다.

‘와장창!’
“너도 괴물이군.”
별장에서는 두 사람이 격돌한지 약 10 여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추선우의 팔에는 더욱 더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지용석의 얼굴에도 꽤나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쪽팔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와 이정도로…….아니 오히려 나를 제압하는 것이 놀랍다.”
지용석의 말대로였다. 추선우는 왼쪽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지용석이 더 밀리는 상황이었다.
“과거 전설적인 킬러라고 말하던 이지광이나, 도태. 그리고 병따개까지, 너에게 모두 무릎을 꿇은 이유가
이제야 실감나는군.”
지용석이 말하는 세 명은 그의 말처럼 살인에서는 알아주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병따개를 제외하고 두
사람은 추선우에게 모두 당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이미 기세가 많이 꺾여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팔에 감각도 없어졌네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팔이 잘려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추선우도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팔의 통증이 심할 정도를 넘어가 이제 감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움직임이 약간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말씀하십시오.”
-어찌되었나? 설장호와 추선우, 지현은 잡았나?-
백태였다.
“세 명이 다 있으면 아마 제가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지금 추선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 있을 힘조차 없네요. 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숨으려 했는데…….쉽지 않겠습니다.”
지용석은 백태와의 통화 시에도 추선우를 보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가 통화를 끝낼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채, 기다려주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곧 우리 사람들이 도착한다.-
“그 잠시가 아마도 이쪽 지원군이 오는 시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괜한 피해 더 만들지 말고, 이곳으로
오는 놈들은 돌려보내십시오. 그냥…….나 혼자 안고 가겠습니다.”
지용석의 말에 백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수고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네가 살아남는다고해도, 너와의 계약은 그것으로 끝내겠다. 그리고 약속한
금액은 모두 지급하겠다.-
백태는 의외의 말을 하였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고, 곧 지용석이 추선우를 보았다.

“누군지 아는가?”
자신이 조금 전 통화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돈을 지불할 사람이겠죠.”
“그래. 돈을 지불할 사람이지. 그리고 이 놈…….곰곰이 생각하니 너와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군.”
“…….”
추선우는 그의 말에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었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 중에 누군가가 지용석에게 돈을
지불하고 이 일을 의뢰한 것이란 말이었다.
“누굽니까?”
추선우는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물으면 답을 해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백태…….기억나는가?”
“!!!”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역에서 미희를 인질로 삼았던 인물이 백태였다. 추선우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 놈,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나도 몰라. 난 그저 돈만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야.”
추선우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지용석의 곁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따위는 이제 관심조차 없었다. 미희에게 고통을 준 백태를 찾고자 지용석만을 보고 다가서고 있는
추선우였다.
‘퍽!’
그리고 내질러진 주먹. 지금까지 그에게 맞은 주먹보다 훨씬 더 매운 주먹이 지용석의 얼굴을 가격하였고,
그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고 넘어지며, 부엌에 있는 식탁에 부딪혔다.
‘철컥’
그리고 그의 옆으로 식탁위에 놓여있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이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처음에 내가 한 말대로 한다면, 서 있는 사람이 쓰러진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쓰러져있고 넌 서있어. 하지만 총은 내 손에 있다.”
지용석은 권총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추선우도 그가 총을 들자, 급히 움직이던 걸음을 멈춘
후, 그를 보았다.

“안 돼. 지현아!”
지용석이 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을 때, 방안에서 은주의 목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방으로 향하였다.
“지현이 저 방안에 있는 모양이었군.”
지용석의 말에 추선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삼촌! 삼촌!”
끝내 지현의 공포가 그녀를 컨트롤 하지 못할 정도로 번져버린 상황이었다. 지현은 두 여인의 품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면서 소리쳤고, 추선우의 눈빛은 방을 향해 본 뒤, 다시 권총을 들고 있는
지용석을 향해 돌아갔다.
“총알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어찌할 것인가?”
지용석이 물었다. 추선우는 그 순간 그의 곁으로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남은 총알이 한발이니, 그가
자신을 쏘면 그 한발은 사라진다.
지금 추선우는 이들의 최종 목표가 지현이기에, 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용석이 남은 한발의
총알로 지현의 곁을 찾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남은 한 발의 총알을 받아주려 움직이는 것이었다.
지용석은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넌…….대단하다.”
그리고 지용석은 권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냥하였다.
“!!!”
이에 놀란 추선우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고, 그를 향해 떨리는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지금. 백태가 이곳으로 사람을 보냈다. 내가 살고 죽고를 떠나, 그는 너와 설장호, 그리고 지현을
제거하고자 제대로 된 킬러들을 이쪽으로 보냈다.
“…….”
지용석은 백태의 계획 중, 이곳을 치는 계획을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백태. 그는 누군가의 수하가 될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 권력이 달리면, 그는 그 권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다.”
지용석은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백태에 관한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만이 머릿속을 다 덮고 있었다.
“꼭…….마지막까지 버텨서 네가 이겨내라.”
‘픽!’
“!!!”
지용석은 추선우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에
놀란 추선우가 심하게 눈동자를 떨었고, 식탁에서 쓰러져 죽은 지용석을 보고 있었다.
굳이 스스로 자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용석은 죄책감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경호해야 하는 일을 하는 그. 하지만 그 경호대상자를 죽여야 하는 일과 손을 잡았으니, 그에게는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을 것이었다.
비록 추선우가 강하다고 하지만,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다시 이곳을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가
도망친다하여 추선우가 뒤쫓지 않을 것이게 도망가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모든 죄책감을 다 안고 가려는 그의 마지막 선택일수도 있었다.

추선우는 그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꺼내온 후, 그를 덮어주었다.

00157 경호원 =====================================================================


====
                          
그는 다시 지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똑똑’
“!!!”
노크소리에 은주와 미희, 지현이 놀란 눈으로 문을 향해 보았다.
“나야.”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지현이 가장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그에게 안겼다.
추선우는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전해지고 있었지만, 지현을 뒤로 밀쳐내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선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은주는 식탁을 향해 보았다. 이불에 덮여있는 것이 무엇인지 은주와 미희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곳을 떠나야해. 더 많은 이들이 오고 있어.”
추선우는 지용석이 목숨을 버리면서 알려준 정보를 그냥 흘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 정보대로 그들이
온다면 더 이상 그들을 막을 힘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지현아 이모가 안을게, 지금 삼촌이 아파서 지현이를 잘 안아주지 못해.”
은주가 추선우에게 안겨있는 지현에게 말했다. 지현도 그의 팔을 보았다. 피가 흘러내리면서 아예 검붉은
색의 옷이 되어버렸다.
지현은 은주에게 안겼다. 그리고 미희가 추선우를 부축하였다.
곧바로 별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지용석이 말한 이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서둘러 나간다면
그들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운전은 내가 할게.”
별장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모퉁이로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량을 보며 은주가 말했다.
그녀는 지현을 잠시 내려놓고 차로 이동하였다.
‘탈칵.’
다행이 문이 열려있었고, 차 키도 꽂혀있었다. 은주와 미희는 누군가가 잠시 세워둔 차량이라 생각했지만,
추선우는 이 차량이 지용석의 차량이라 생각하였다.
차량은 서둘러 별장을 벗어났다. 약 5 분 정도 만에 일반 도로에 진입하였고, 다른 일반 차량들과 함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저기.”
추선우가 탄 차량이 일반도로에 진입한 후, 곧바로 그 위로 설장호가 탄 헬리콥터가 보였고, 태정민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별장을 가리켰다.
“경호원들이군.”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경호원의 시체들. 하늘에서 보니 정문에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이 쓰러져 있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고 있었다.
곧 헬리콥터는 별장 뒤 편 헬리콥터 정류장에 내렸고, 그 순간 하늘에서 또 하나의 헬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청와대 헬기입니다.”
그 헬기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대통령님이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넌 저 헬기를 마중해라. 내가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
설장호는 서둘러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헬기에서는 서지호가 내렸고, 곧바로
태정민과 함께 별장으로 들어섰다.
“…….”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서서 부엌을 향해보고 있는 설장호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너무나 불안한 마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서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누구…….입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네.”
설장호도 확인 전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필시 시체란 것은 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현은요?”
서지호가 다시 물었다.
“일단 별장에는 없다. 여기에 있는 시체가 누구냐에 따라 지현의 행방도 알 수 있겠지.”
설장호의 말대로였다. 이불에 덮인 시체가 추선우면, 이미 지현은 그들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라면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다시 도주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제가 걷어보겠습니다.”
태정민이 나섰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이불을 망설임 없이 걷어냈다.
“지용석…….”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서지호와 태정민은 놀란 눈이었다.
“머리에 총을 쏘았습니다. 설마 추선우씨가…….”
“아니. 추선우는 총을 쏘지 않는다. 그리고 총은 지용석이 들고 있어. 즉…….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는 뜻이야.”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가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지용석도 결국 추선우에게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요?”
서지호가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은 생각하였다. 이미 지용석이 한 말처럼, 날고뛴다는 킬러들도
추선우에게는 모두 패했다.
그리고 경호실에서 차현태를 초근접 경호를 주로 맡았던 지용석마저 추선우에게는 패한 상황이 되었다.
“일단 서 실장은 지용석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가족에게 알려라. 그리고 되도록 그의 장례는 제대로
진행되도록 해주고.”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보았다. 거실에는 여러 곳에 총알이 박힌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거실 중앙에는 한 자리에 서서 흘린 피처럼 꽤 많은 피가 흘린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누구의 피 일까요?”
태정민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추선우의 피야.”
불길한 예감이었지만, 아니기를 빌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태정민의 질문이 있은 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피의 주인이 추선우임을 바로 말하였다.
“이 정도의 피라면 서 있는 것조차 힘들 것입니다. 서둘러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찾아야합니다.”
태정민은 불안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안한 사람은 설장호였다.
마치 이 사건이 일어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지현을 지켜냈던 그 때. 그리고 지금. 추선우는 다시 혼자의 힘으로 지현을 경호하며
지켜내고 있었다.
단지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그가 심한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약 30 분 동안 별장 안을 다 돌아보았다. 혹시나 별장 안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없었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면 그들을 찾기가 쉬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간만의 차로
그들을 목격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별장에는 차량이 없었기에 그들이 차량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털컥!’
세 사람이 다시 거실에 모였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강서진이 들어섰다. 그리고 세 사람은 그녀를 보았다.
“모두…….무사합니까?”
“넌! 뭐하는 놈이야!”
그녀의 물음에 설장호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굵직하면서도 화가 난 어투의 목소리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강 검사님도 이동 중에 은주 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고함소리에 태정민이 설장호를 말리며 말했다.
“다시 연락해보세요. 그러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이 설장호의 앞으로 서며, 강서진을 보고 말했다. 그녀는 조금 전 설장호의 고함소리로 머리가
멍해져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
하지만 전화벨 소리는 방안에서 들리고 있었고, 곧 지현이 누워있던 곳 옆으로 은주의 휴대전화가
놓여있었으며, 발신자의 전화번호에 강서진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지금 즉시 인근 도로는 물론 모든 경로를 다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서지호에게 명령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빈 방에 홀로 남겨진 은주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검찰 쪽 형사들에게 연락해서 이쪽으로 오지 말고, 주변을 살피도록 명령 내려.”
그녀의 뒤로 설장호가 문앞에서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은주의
전화기만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강서진!”
이내 설장호의 큰 고함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네…….”
그리고 그녀의 힘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설장호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호통 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서지호는 이 사실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차현태는 자신이 계획한 일의 일부가 제대로 진행된 것에 마음
놓고 있었지만, 단 하루 만에 모든 상황이 다 뒤집어지면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강서진은 검찰 쪽 형사들에게 주변 수색을 명령 내렸다. 지금 이들은 추선우가 차량을 이용하여 파주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별장 주변을 위주로 수색에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리고 별장 인근에 도착한 백태의 부하들은 별장 주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태정민과 서지호, 그리고
강서진을 보며 중얼거린 뒤, 곧바로 백태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자세히 확인할 수 없는가?”
백태는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원했다. 추선우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지용석이 죽은 것인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답한 후, 곧 별장을 들어서는 도로 입구 쪽에 차량을 정차한 후, 별장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개인사유지입니다. 오르실 수 없습니다.”
그가 위로 오르려하자, 반대로 위에서 내려오던 태정민이 그를 본 후, 말했다.
“아. 그렇군요. 길을 잘 못 들어서 혹시나 이 길인가 싶어 왔는데, 아니라니 돌아가야겠군요.”
사내는 그저 평범한 옷차림이었기에, 태정민이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길이 나 있으니, 집이 있다는 얘긴데,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
“개인사유지라 했습니다. 그런 것 까지 당신에게 다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뭐…….”
태정민은 그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고, 곧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젠장…….딱딱하게 굴기는…….”
그는 홀로 중얼거린 뒤, 다시 차에 올라탔다.
“정면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다. 뒤로 돌아서 별장 쪽으로 진입하자.”
그는 차에 탄 후, 함께 타고 있던 세 명의 사내에게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내의 차량은 곧 길을 따라 다시 도로에 올라선 뒤, 얼마가지 않아, 산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외길로 접어들었고, 얼마가지 않아 차량을 세운 뒤, 네 명의 사내가 내렸다.
“저들의 신경이 날카롭다. 괜한 실랑이 만들지 말고, 저들의 눈에 띄면 그냥 내려오너라.”
“네. 형님.”
사내의 말에 모두 답했고, 세 사람은 각기 산을 중심으로 다른 방향에서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괜찮아?”
한 편. 별장을 벗어난 후, 운전 중인 은주가 추선우를 부축하고 있는 미희에게 물었다.
“열이 나는 것 같아.”
출혈이 심한데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으니, 열이 오른 모양이었다. 지현은 미희의 말에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고, 추선우는 눈을 감은 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부터가야하지 않을까?”
미희가 말했다. 하지만 은주는 그리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추선우의 치료도
치료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만에 하나 그들의 눈에 지현이 발각되면 자신들에게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0015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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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안 돼.”
“왜? 이모! 병원 가야해! 삼촌이 아프잖아!”

은주의 말에 지현이 소리쳤다. 하지만 은주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으려했다. 이 모든 것이 지현을 위한


일임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 말을 듣고 지현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으로 인하여 추선우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지현을 위해 추선우를 병원으로 데리고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면, 지현은 아마도 추선우 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그를 살리고자 어린 나이에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하고도 남을 지현이라 여기고
있었다.

“일단. 내가 아는 곳으로 가자.”

은주는 가야할 곳을 떠 올렸는지 이동방향을 잡았고, 곧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전화기를 별장에 두고 왔나보다.”

전화기를 찾았지만, 주머니 어디에도 전화기는 없었다.

“여기.”

미희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그녀에게 주었다.

“생각이 나지 않아…….생각이…….”
그녀는 별장에 있을 때 걸려온 강서진의 전화번호를 떠올리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저히 그녀의 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은주는 다른 번호를 눌렀다.

“엄마. 나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래? 그럼 내가 그곳으로 갈게.”

아주머니는 은주와 통화를 마친 후,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강서진의 호의로 인하여, 북정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줄곧 강서진의 집에 있었었다.

“북정마을로 갈 거야?”

은주의 말에 지현이 그녀를 보았다. 지현에게도 북정마을은 남다른 곳이었다. 자신의 부모를 잃고,
추선우를 처음 만난 곳이며, 은주도 처음만난 곳이었다.

“일단 북정마을에 도착하면 미희가 먼저 우리 집을 확인해 줘. 선우는 도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나설 수 없어서 그래. 그들은…….내 얼굴을 알고 있거든.”

은주가 자신의 집마저 편히 갈 수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미희도 이미 백태에 의해 한 번은 얼굴이


노출되었지만, 그건 백태가 있을 때나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차량은 어느새 북정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이미 말한 대로 미희가 먼저 내려 은주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엄마?”

때마침 아주머니도 집을 향해 북정마을 입구에서 위로 오르려 하였다.

“엄마.”

은주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서둘러 뛰어왔고, 은주를 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선우는?”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은주는 그녀를 보며 시선을 뒷좌석으로 돌리자, 아주머니의
시선도 뒷좌석으로 돌아섰다.

“!!!”
그녀는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차에 올라탄 뒤, 다시 선우를 향해 보았다.

“선우야! 괜찮은 거야?”

아주머니가 물었지만, 선우는 답을 하지 못한 채,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어떡해?”

은주가 물었다.

“그 사람들은? 선우를 돕는다는 사람들이 있었잖아.”

아주머니는 화가 난 표정으로 설장호 일행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은주는 별장에서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안되겠다. 일단 치료를 해야 해.”


“그래서 지금 친구를 집으로 보내봤어. 혹시나 그 사람들이 있나해서…….”
“친구? 친구 누구?”
“있어. 선우의 친구이고 내 친구야.”

아주머니는 또 다시 괜한 사람의 지금의 일에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선우를 데리고 만석이네 병원으로 가자.”


“아! 맞다. 만석이 아저씨 병원이 여기 앞이지.”

아주머니의 말에 은주는 그제야 누군가 떠오른 듯,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차량을
끌고 이동하였다.

“여긴가…….”

같은 시각. 미희는 은주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주변을 기웃거리며 홀로 중얼거렸다.


은주네 집 인근에는 그 어떤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국정원소속 사람들은 물론, 하다못해 마을
사람들조차도 없었다.
미희는 천천히 걸어 2 층으로 향하였다.
곧 은주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문 앞에 선 그녀는 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탈칵’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문이 열렸고, 미희가 문을 잡아당기자,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그녀의 집안이 보였다.

“…….”

엉망이었다. 유리창은 깨져있었고, 먼지가 쌓여있었다. 집안 가재도구는 다 흩어져 있었다. 마치 건물을


무너뜨리기 전, 필요한 짐만을 들고 사람들이 떠난 후의 모습과 같아보였다.
미희는 집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주의 방으로 보이는 작은 방앞에섰다. 옷장은 물론, 책상
서랍까지도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다시 걸어서 안방으로 향하였다. 마찬가지였다. 도둑이 들어도 이보다 더 심하게
파헤쳐 놓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누구요?”
“!!!”

안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녀의 뒤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란 미희가 뒤돌아보았다.

“아…….네. 은주 친구인데, 집이…….”

그녀는 노인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말하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 후, 말을 흐렸다.

“은주 친구였구먼…….은주의 소식은 듣지 못한 거요?”


“네.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서 은주 좀 볼까했는데…….”

미희는 노인을 경계하며 말했다. 노인은 집안으로 들어섰고, 곧 완전히 깨져버린 거실 창문을 보며 섰다.

“살아있는지나 모르겠소. 몇 주 전, 이상한 사람들이 들이닥쳐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

노인은 미희에게 북정마을에서 추선우와 은주, 지현이 겪은 일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희는 북정마을의 일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지현이라는 아이를 돕기 위하여 추선우가
나섰고, 또 추선우를 돕고자 은주가 나섰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현으로 인하여 추선우는 물론, 은주와 은주의 어머니마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주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은주가 다른 친구들에게 갔을 수도 있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미희는 더 이상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서둘러 그곳을 나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노인은 미희의 뒷모습을 보며 측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희는 처음 차에서 내렸던 곳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왜 선우가 이 모양이 되어서…….”

같은 시각. 은주는 선우를 데리고 만석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개인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만석이라는 사내는 선우를 아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일단 급해. 그러니 자네가 어찌 좀 해봐.”

아주머니는 급했다. 그에게 서둘 것을 당부하였고, 지현은 이제 기력조차 없이 힘없게 누워있는 선우를


눈물 맺힌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엄마. 일단 선우하고 지현이좀 부탁해. 난 친구를 다시 데리러가야겠어.”

은주는 미희가 걱정되었다. 지금 시간이면 충분히 자신의 집을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기에 서둘기


시작하였다.
미희는 그 자리에서 서서 계속하여 좌, 우를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은주가 없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인근 어디에도 없습니다. 혹시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을까요?”

한 편. 별장 앞마당으로 나와 있는 설장호의 앞으로 서지호가 다가서며 말했다.

“차량…….”
“네. 별장 안에 지용석이 죽어있으니, 그가 타고 온 차량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용석이 죽었나?”

별장 앞마당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몰래 인근까지 숨어들어간 사내의 귀에 들어갔다.


인근을 수색하라는 명령은 내렸지만, 그 인원이 많지 않기에, 이들이 다가서는 것을 제대로 잡아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사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후, 몸을 돌려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리고 백태에게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그에게 제대로 알렸다.

-알았다. 일단 지용석이 죽고, 추선우가 그곳에 없다니, 괜히 나서지 마라. 너희들이


설장호를 잡을 정도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돌아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는 백태와 전화를 끊은 후, 차량에 올라타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곁눈에 누군가 보였고, 곧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당신…….평범한 놈은 아니었군.”

태정민이었다. 그는 별장입구에서부터, 산 주위를 돌며 수상한 것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입구에서 만난 사내를 다시 만났고,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내는 태정민을 보며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곧 그의 뒤로 함께 움직였던 나머지 세 명의 사내도


산에서 내려와 합류하였다.

“저 곳에서 내려온 것이라면 별장을 본 것인데, 너희 누구냐?”

태정민은 사내 네 명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향해 더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분명 이 근처라고 해서 왔는데, 아니라고 하기에 다시 산 뒤로 돌아서 확인해 본 것뿐입니다. 뭐가 잘


못되었습니까?”

사내는 다가서는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그 말을 듣고도, 그의 앞으로 더 다가섰다.

“내가 분명 이곳은 사유지라 말했었다. 들어서지 말라고 한 경고를 무시했으니, 당연히 잘 못된 것이지.”

태정민은 곧 그의 앞으로 완전히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겁이 나지 않나보네. 아무리 네가 싸움을 잘 한다고해도 우린 네 명이야. 그것도 너보다


체격이 큰 네 명.”

사내는 이내 태정민을 보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여전히 그의 앞에 서서


그를 보았다.
“네 명이건 다섯 명이건. 잘 못된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너희…….누구냐?”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네 사내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듯, 눈짓을 주었고, 이내 세 명은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도망갈 생각마라. 여기서는…….”


‘퍽! 퍽퍽퍽!’
“우린! 네 놈의 목을 가지러 온 저승사자다 새끼야!”

태정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연타 적으로 주먹을 날리자, 태정민은 그


주먹을 모두 허용한 뒤,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아무리 겁대가리가 없어도,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어야지. 우리가 여기서 이리 서성거리면 다 그 놈을


잡으러 온 것이라 여겨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잡으러 왔다는 것은 그 정도의 힘도 된다는 뜻이고
말이야.”

사내는 쓰러져 있는 태정민의 앞으로 더 다가서며 말했다.

“젠장…….내가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라.”


“지랄은…….꼭 힘없는 새끼들이 몸 상태 타령하고 그런다니까.”
“하하하.”

태정민의 앞으로 다가선 사내가 그를 보며 비웃는 듯 말하자, 곧 뒤로 물러났던 세 명의 사내도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0015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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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민, 일어나라.”
“!!!”

사내가 태정민을 보며 더 다가서려 할 때, 산을 내려오던 서지호의 목소리에 사내는 놀란 눈으로 시선을


돌려 서지호를 보았다.

“분위기가…….있어 보이는데.”

서지호는 천천히 산을 마저 내려온 뒤, 태정민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저런 놈의 주먹을 맞다니 창피하네요.”


“아직 몸이 완전치 않아서 그럴 거야. 일단 쉬어라.”

태정민은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리고 서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사내의 앞으로 다가섰다.

“두 놈 다 똑같네.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인원수가…….”


‘퍽퍽퍽퍽!’
“!!!”

사내는 서지호가 하는 행동이 조금 전, 태정민이 하는 행동과 너무나 흡사하여 그에게도 같은 말을 하려


했지만, 어느 샌가 서지호의 주먹은 그가 태정민에게 가했던 수만큼 면상을 네 차례나 가격하였다.

‘덜썩.’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자리에서 덜썩 주저앉았다.

“이 새끼가!”

사내가 주저앉자 나머지 세 명이 서지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태정민과 레벨자체가 달라보였다. 세 명의 주먹은 그저 허공을 향해 몇 차례 질러지고
있을 뿐, 서지호의 몸에는 전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서지호가 뻗은 주먹은 일체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없었다. 뻗는 족족 상대의 면상에 정확하게
꽂혔다.

“저 놈…….대체 뭐야?”

1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세 명의 사내마저 주저앉았고, 한 사내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저앉자, 서지호를 보며 중얼거리다,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전하시네요.”

태정민은 그의 움직임을 보며 말했다.

“이놈들 족쳐보면 추선우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근에 강서진검사의 형사들이 있다고하니,


그들을 불러 이놈들을 별장으로 옮긴다.”
“네.”

서지호는 달랐다. 태정민에게 주먹을 뻗은 사내는 물론, 물러나 있던 사내마저 단 1 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닥에 다 드러눕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백태의 명령으로 추선우를 잡고자 움직인 이들이다. 즉. 보통의 실력은 넘는 이들이지만,
서지호에게는 그저 동네 양아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곧 형사들이 연락을 받고 왔으며 사내들을 모두 별장으로 데리고 갔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후, 강서진이 주변을 모두 돌아보고 난 뒤, 다시 별장을 들어서며 설장호의 눈을 보지 못한 채 말했다.

“인근에 있다면 이미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겠지. 일단 추선우가 갈 만한 곳을 모두 확인한다. 그리고


태정민은 박태식이 오면 이놈들을 더 족쳐봐.”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은 거실에 엎드려 있는 네 명의 사내를 보았다. 그들은 그냥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얌전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즉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놈들 누굽니까?”

강서진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인근에서 서성거리기에 잡았는데,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나봅니다.”

그녀의 질문에 서지호가 답했다. 그리고 강서진은 다시 그들을 보았다.

“이들이 추선우를 보았을까요?”


“아니. 보진 못한 것 같다. 보았다면 이곳이 아니라 그의 뒤를 쫒았겠지.”

설장호의 답이 맞았다. 그의 행방을 모르니 이곳에서 서성거린 것이었다.


“미희야.”

한 편. 북정마을에서는 은주가 다시 원래 자리로 왔고, 그 순간에도 그 자리에서 멈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미희는 은주가 돌아오자 그때서야 한 숨을 내 쉬었다.

“미안해. 선우를 병원에 데리고 가느라. 잠시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병원? 병원은 안 된다고 했잖아?”
“엄마 아는 병원이 있어서. 그 아저씨는 선우도 잘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야.”

은주의 말에 미희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저 병간호를 하여 완쾌된다면 그렇게라도 할 수 있지만,


총상에 의한 출혈은 병간호로 될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 은주의 어머니로 인하여 추선우를 병원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선우가 워낙 건강한 놈이라, 꽤 많은 양의 피를 흘렸는데도 한 숨 푹자고나면 깨어날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의사가 아주머니에게 추선우의 상태를 알려주었고, 아주머니의 옆에서 꼭 안겨있던 지현은
의사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많은 눈물을 머금은 눈빛도 함께 있었다.

“엄마. 어떻게 됐어?”

곧 은주와 미희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누구보다 마음이 편해진 사람은 지현이었다.

‘띠리리리리’

한 편. 석강수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새롭게 옮긴 집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곧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그는 짧은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의 말씀을 이행하지 않으십니까?-

백태였다. 백태는 이미 별장의 일은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있었다.

“이행합니다. 하지만 그리 서둘 필요가 있습니까? 모든 것은 차근차근 계획 하에 제대로 움직여야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백태에 비해 석강수는 여유가 있었다.

-조금 전, 지용석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별장으로 보낸 네 명의 부하도 모두 그들에게 잡혔습니다.


생각보다 그들이…….-
“그건 백태회장의 책임이죠. 그것을 왜 나에게 전화해서 따지듯이 말합니까? 내가 별장으로 가라고 한
적도 없었고, 그들을 빨리 잡도록 서둘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리 전화해서 갑자기 회장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느냐고 말하니, 당황스럽군요.”

백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들어보면 그의 말이 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10 년 넘게 봐


왔던 지난 네 명의 회장은 이 정도로 냉랭한 답은 하지 않았었다.
비록 모두 경쟁자였지만, 그래도 위급할 때는 형제들보다 더 똘똘 뭉쳤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지금 석강수는 완전 다른 사람 일을 말하는 듯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로…….움직이죠.-

백태도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그리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상대를 알지 못하니 그리 당하는 것이다. 전직 회장의 밑에서 비서로 오래 살았으면 뭐하는가. 상대가
누군지를 파악하지 않고 덤비는 습성을 지우지 못했는데 말이야.”

석강수는 백태를 전직 회장들과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들도 추선우나 설장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비다, 결국은 자신들의 목까지 내준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백태가
딱 그 뒤를 잇는 행동을 하는 것에 석강수가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그냥 움직인다고 그들이 잡힐 것 같았으면, 벌써 잡혔지 않겠는가. 머리를 써라 머리를…….”

석강수는 백태를 빗대어 계속 홀로 중얼거렸다.

“회장님. 우린 언제쯤 움직일까요?”

곧 그의 옆으로 이수호가 내준 네 명의 부하가 다가서며 물었다.

“기다려라. 찾아 헤매지 않아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온다. 그리고 너.”


“네. 회장님.”

석강수는 한 명의 사내를 지목하였다.

“지금 바로 북정마을로 향해라. 그곳에 가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집 2 층이 추선우를 돕는 여자의집이다.


그 인근에서 한동안 국정원 대원들이 경계를 섰다. 하지만 지금은 없을 것이다. 가서…….그 집과 연관된
인맥들 좀 알아봐라.”
“네. 알겠습니다.”

역시 석강수는 백태와 달랐다. 그는 추선우를 직접 치기 보다는 그 주변을 이용하여 추선우를 자신의


곁으로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 요량이었다.
이는 이미 백태가 미희를 이용하여 추선우를 불러낸 적이 있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을 자신하였다.
석강수는 다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눈을 살며시 감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별장에서는 네 명의 사내를 무릎 꿇게 한 뒤, 그의 앞에 태정민이 서 있었고, 그들은 태정민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박태식이 곧 도착한다. 그와 함께 이놈들을 조져.”


“알겠습니다.”

태정민이 혼자 있을 때는 그를 노려보았지만, 곧 서지호가 방에서 나오며 태정민에게 말할 때, 사내들은


서지호를 보며 고개를 숙여 한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국정원에서는…….”
‘띠리리리’

설장호가 국정원 말을 꺼낼 때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원장님.”

때마침 국정원장이 직접 전화를 먼저 하였다.


-조금 전, 서충식이 살해당했네.-
“!!!”

국정원장의 말에 설장호의 표정이 변했다. 최기수에 이어 서충식까지 국정원 안에서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서충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조직의 모든 것을 설장호에게 다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변보호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결국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를 그들에게 내준 것과 같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보다 최기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의 회장에 대해서는…….”


-조금 전 뉴스에 나왔네, 고민국과 정구석, 그리고 우수광이 모두 칼에 베인 상처를 가지고 시체로
발견되었어.-
“!!!”

설장호는 또 다시 놀란 눈이었다. 그 세 명이 죽었을 수도 있다는 말은 이미 서충식에게 들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한 것이 없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였다. 서충식의 말대로 그 세 명도 최기수와 같이 세상을 등졌다.

“알겠습니다. 이제 정말 멘 땅에 헤딩할 일만 남았군요.”

설장호는 답답하였다. 최기수를 잡았고, 또 서충식에 의해 점점 더 접근한 것이라 여겼지만, 최고 자리에


앉은 회장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곁으로 점점 더 다가오는 설장호를 막기 위하여 아예 모든 싹을 다
잘아버린 것과 같았다.

-그래도 서충식이 말했듯이, 그들이 죽었으니, 또 그들의 자리를 꿰찬 놈이 있을 것이네, 지금 그것을


알아보고 있으니, 확인되는 즉시 바로 알려주겠네.“

원장의 말에 설장호도 서충식이 한 말을 떠 올렸다. 모두가 한날에 죽고, 또 새로운 인물이 모두 같은


날에 들어왔다는 말이 떠올랐다.

“네 명을 쳐내고, 다시 네 명을 앉힌 건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네 명을 쳐냈으니, 필시 네 명이 더 추가될 것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또 아닐 수도 있기에 머릿속만 복잡해지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설장호의 머리는 이리저리 복잡함만 남게 되었다.

“강서진 뭐해?”

설장호는 붙잡은 네 명을 보았지만, 자신이 직접 그들을 심문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려 강서진을 보며 물었다.

“네? 아네…….이거 은주씨 휴대전화인데, 패턴을 풀고 주소록에 들어가면 혹시 연락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해서요.”

그녀의 말에 설장호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은주의 휴대전화를 뺏다시피
하였다.

0016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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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온 전화는 없었나?”
“네. 없었습니다. 전화라도 걸려왔다면 뭐라도 힌트를 얻겠지만, 아직 단 한통도…….”
‘띠리리리’

은주의 전화기만을 보며 말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단 한통도 걸려오지 않던 전화가 걸려온 것에,
강서진이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설장호를 보았다.

“받아.”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설장호가 말했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은주의 휴대전화를 보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
-검찰청입니다. 현재 고객님께서 사용 중인 통장이…….-
“어디라고요?”
-검찰청입니다.-

강서진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검찰청 어디 소속이죠?”
-여긴 검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너 이 새끼 잡히면 죽는다! 내가 검사야 새끼야!”
‘뚜뚜뚜뚜’

강서진의 거친 말이 튀어나왔고,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지금까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모두가 본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은주씨도 대단하군요. 자신의 휴대전화가 없는 것을 알면 찾고자 연락을 할 텐데, 아


예 없어진 것을 모르는지…….”

태정민이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태정민의 말처럼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단 한통의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아이고야. 뭔 놈의 차가 이리 막히는지 원!”

곧 박태식이 별장으로 들어서며 투덜거렸다.

“무슨…….일입니까?”

박태식은 자신을 보는 모두의 눈빛이 평소 같지 않아 물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앞으로 무릎을 꿇고 앉은


네 사내를 보았다.

“저 놈들은 또 누굽니까?”
“네가 이놈들 심문해라. 추선우를 잡고자 온 놈들인데,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네? 추선우를요? 그런데 추선우는 어디에 있습니까?”

설장호의 답에 박태식은 거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추선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

“사라졌다.”
“네? 사라져요?”

박태식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이 놈들 잡아 족치면 뭔가 알 수 있겠지. 시작해.”


“이 새끼들을 그냥!”

설장호의 말에 박태식이 두 팔을 걷어 올리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섰다.

“서 실장은 청와대로 돌아가서 지금의 상황을 대통령님께 다시 알리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돌아가서
인원을 확보하여 북정마을로 향해라.”
설장호는 국정원장이 보내줄 정보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 지금의 상황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얻고, 사라진 추선우와 지현을 찾는 것을 서둘러야만했다.
그의 명령으로 서지호는 다시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향하였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향하였다.

“이 새끼들아!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민간인 암살이라니! 네 놈들 목이 몇 개라도 되는 거야!”

박태식은 네 명의 사내를 노려보며 이런저런 쌍욕을 다 내 뱉으면서 그들에게 소리쳤다.

네 명의 사내는 자신들의 입도 험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박태식에 견주니 그냥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그들을 박태식에게 맡기고, 설장호는 태정민을 데리고 별장 마당으로 나왔다.

“최기수와 더불어, 서충식이 알려준 정보에 속해있는 세 명의 회장도 목이 날아갔다. 아마 최상위


회장이라는 인물이 그 자리에 다른 놈을 앉혔을 것인데, 도통 짐작 가는 놈이 없어.”

설장호는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네 명이 모두 죽었다면 그 밑에 있는 놈들은요? 예를 들어 지난 번 삼성역에서 만났던 그 백태라는 놈.


그 놈의 행방도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는 그를 보았다. 필시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백태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늙어가는가보군. 기억력이 가물가물해.”

설장호는 물고 있던 담배를 끈 후,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여 백태에 대한 조사도 의뢰하였다.

“일단 난 여기에 있겠다. 너도 움직여서 추선우와 지현을 찾아.”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쉴 틈이 없었다. 지난 날 병따개와의 일전때 쌓인 피로와 상처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연일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요?”

한 편. 병원에서는 모두 잠을 자고 있는 추선우를 향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희가 물었다.

“우리 집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모두 강 검사님의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아주머니가 지현을 보며 말했다. 이미 자신의 집은 쑥대밭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자신이나 은주는 몰라도, 미희와 지현, 그리고 추선우까지 모두 데리고강서진의 오피스텔로 가는
것은 민폐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강서진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그나저나 지현이 밥은 먹였어?”

아주머니는 추선우와 함께 지현을 가장 많이 걱정했던 사람이었다. 아침나절부터 이런 고생을 했으니,


아마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서 지현이 데리고 밥이라도 먹고 와,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게.”

아주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세 사람 중,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굶으면 안 돼. 어서 가서 먹어.”

아주머니는 지현을 향해보며 말했고, 곧 미희가 지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래. 먹어야해. 지난번에도 말했지. 지현이 건강해야 삼촌도 빨리 일어난다고 말이야. 그러니 이모와
함께 가서 밥 먹자.”

미희의 말에 지현이 다시 한 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글썽거리는 눈으로


미소를 지은 뒤, 미희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다녀올게요.”
“나도 같이가.”

미희와 지현이 나가려 할 때, 은주도 나섰다.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외부로 나섰을 때, 그들이 지현을
목격한다면 미희의 힘만으로는 지현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다못해 빗자루를 들어 휘두를 수 있는 사람도 은주였다.
세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 은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동네지만,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가자.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어.”

은주가 앞장섰다. 미희는 지현의 손을 잡고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지만, 은주는 길을 안내하면서도


주변을 계속하여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와, 한 쪽 길로 접어 들 때, 때마침 석강수가 보낸 사내가 그 앞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간만의 차로 서로를 마주할 수 없었다. 은주와 미희는 그를 모르지만, 사내는 이미 석강수로부터
지현의 사진을 받았기에 지현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바로 북정마을로 향합니다.”

한 편. 검찰청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서진은 검찰총장에게 보고 한 후, 인원을 데리고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한 때 검찰총장도 그들과 손잡은 인물이라 여겼지만, 이는 선유도 사건으로 일단락되었다.
오로지 지금 현재는 경찰청장만이 의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물증이 없기에 그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태정민은 추선우의 상처가 깊기에 인근 병원을 먼저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주 인근의 병원에서는
추선우를 찾을 수 없었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여전히 별장 마당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국정원장님.”
-백태의 행방을 찾았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대치동에서 목격되었네.-
“의외의 인물요?”
-석강수네.-
“!!!”

석강수가 한동안 잠잠하였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신경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대치동에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의아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추선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건이 있었던 병원
이후로, 그도 추선우의 뒤를 추격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혼자…….움직였습니까?”
-아니네. CCTV 를 확인했는데, 네 명의 사내와 함께 대치동 호화오피스텔로 들어선 것이 목격되었네.-

여러 가지 의문을 만든 상황이었다. 석강수가 돈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놓고


대치동에 호화스러운 오피스텔을 장만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까?”


-일단 그 주변을 더 확인하고 있네. 새로운 내용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주겠네. 그리고 백태는 어찌 할
텐가? 자네가 움직이기 곤란하다면 조동민을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지금 제가 별장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확실한 정보가 들어오면 연락 주십시오.”

백태와 석강수에 관한 정보가 들어왔다. 백태에 관해서는 이미 그 조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가 그들과 손잡고 뒤쫓은 일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인물은 아니었다.

“석강수…….무슨 꿍꿍이냐.”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설 실장님!”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별장 문이 열리며 박태식이 나왔다.

“뭐라도 알아냈어?”
“제가 누굽니까? 저런 양아치들 신상 털어내는 것은 전문 아닙니까.”

박태식은 네 명의 사내에게 정보를 얻어낸 것이었다.

“일단 저 놈들을 보낸 인물은 백태입니다. 그리고 백태의 권력이 막강해졌다고 합니다.”


“권력이 막강해져?”
“네. 저 놈들 말로는 백태가 정구석의 후계자로 그 자리에 앉는 바람에 자신들의 입지도 더 올라갔다며
일을 쉽게 처리하고 두둑한 돈을 받을 요량이었다고 합니다.”

설장호는 하나의 의문이 풀리고 있었다. 백태의 권력이 강해지면, 그는 그 권력을 제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말은 이미 서충식에게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백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제대로 보이기 위한 전초전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지금 국정원에서 백태의 뒤를 쫒고 있다. 나도 움직일 테니. 이곳은 자네 형사 팀들이 맡게.”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형사들도 함께 움직였기에, 충분히 네 명은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설장호는 다시 헬기를 이용하여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조동민에게 연락하여 함께
백태를 만나러 갈 것을 알렸다.

“회장님. 백태가 별장의 일을 보고하기 위하여 연락을 하였습니다.”

한 편. 이수호의 경호원이 그에게 전화기를 보이며 말했다.

“말해라.”

이수호는 전화를 받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별장의 일은 실패했습니다. 설장호는 없었고, 지현과 추선우가 있었지만, 믿었던 지용석이
추선우에게 무릎을 꿇었고, 이어서 보낸 네 명의 부하마저도, 그들에게 잡힌 상황입니다.”

회장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이를 진행한 백태의 보고였다. 하지만 이수호의 인상만 찌푸리게 만들어
놓았다.

“추선우란 놈에게 모두 잡힌 것인가?”


“아닙니다. 지용석만 추선우에게 잡힌 상황이며, 나머지 네 명은 서지호에게 잡혔습니다.”
“서지호?”
“네. 청와대 경호실장입니다.”

이수호는 서지호에 관한 말은 오늘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가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는 한 마디에 인상이


더욱 더 구겨지고 있었다.

0016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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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서 아주 제대로 된 지원을 하고 계신모양이군.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야 할 경호원마저 내 주니
말이야.”

이수호는 서지호가 차현태의 곁에서 떨어진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엔 성공하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백태를 용서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잠시 동안 뭔가 생각을 하는 듯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있었다.

“장태야.”
“네. 회장님.”

그는 곧 한 명의 경호원의 이름을 불렀다. 현재는 수만이 상처를 치료중이라, 자신 곁에 붙어 있는


경호원은 세 명이었다. 그리고 장태라는 경호원은 지난 날, 우수광의 목을 단 번에 쳐 낸 인물이었다.

“네가…….청와대를 다녀와야겠다.”
“알겠습니다.”

역시 이수호의 말이라면 그 어떤 물음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청와대를 다녀오라는 말이었지만, 청와대를 그리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장태는
그의 명령에 답한 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대통령님. 청와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 생각지 마십시오. 청와대에도 시퍼런 칼날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수호는 경호원이 들고 있는 장검을 보며 말했다.

“이동한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설장호는 조동민과 함께 백태가 있다는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백태는 강한 놈이다. 섣불리 그를 대적할 생각은 접어두고, 생포가 힘들다고 여겨질 때는 사살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지휘 하에 조동민의 팀원들이 모두 움직였다. 그들에게도 살인면허는 있지만, 설장호가
내려주는 살인면허는 더욱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같은 시각. 은주는 식당에서 나오며 자신의 배를 만졌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주는 밥을 먹었고, 오늘


아침에는 라면만을 먹고 움직였다.
비록 집에서 만든 맛있는 반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불리 먹고 나니 긴박했던 오전의 일을 잊는 듯 한
기분이었다.

“가자. 가서 선우가 일어나는 것을 봐야지.”

지현도 오늘은 밥을 먹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밥을 먹은 후, 두 이모와 함께 다시 병원으로


향하였다.

“들어가자.”

병원 입구에 서서,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본 은주가 말했고, 세 사람은 곧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북정마을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나오면 바로 보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병원으로 딱 들어선 후에 그 앞길로 강서진이 탄 차량이 지나쳐갔고, 강서진은 형사들에게


북정마을에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체 당신이 누군데 은주의 일을 묻고 다니냐고!”

한 편. 석강수의 명령으로 북정마을에서 은주의 인맥에 대해 알아보던 사내는 동네 주민들의 고함소리에


제대로 된 상황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행방불명된 상황이라 조사차…….”


“그러니까! 어디서 나왔기에 조사를 하냔 말입니다! 형사요? 형사면 신분증을 보여주고 협조를
요청해야죠!”

마을 사람들에게 몇 질문만 하면 은주의 행방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내였다.


이미 추선우와 은주로 인하여 마을 전체에 총격전과 함께 국정원, 경찰등이 수차례 다녀갔으니, 협조를
얻는 것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검사님 저기…….”

곧 강서진과 함께 올라서는 형사의 눈에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한 사내가 보였다.

“가서 확인하세요. 나머지 인원은 인근을 더 확인합니다.”

강서진의 명령에 두 명의 형사가 다가서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은주의 집으로 바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은 또 누구요?”

형사들이 다가서며 이유를 묻자, 사내로 인하여 예민해진 마을 사람들이 형사들에게도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경찰입니다.”

형사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였고, 그 순간 석강수의 명령으로 온 사내의 표정이 변한 후,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형사셨구먼. 그럼 이 사람과도…….어? 저 사람 어디가?”

마을 사람이 사내를 가리키며 말하려 할 때, 그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고, 그 모습에 형사들이 그를


향해 보았다.

“장 형사, 확인해 봐.”


“네.”

형사가 더 다가서려하자, 그는 이내 빠르게 몸을 돌려 길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잡아!”

형사의 큰 목소리에 은주의 집으로 향하던 강서진의 시선과 함께, 인근을 수색하기 위하여 흩어졌던
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강서진이 이어마이크를 통해 물었다.

“누군지 확인 불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보고 도망치고 있기에 잡으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놓치지마세요.”

강서진의 시선은 형사들을 피해 북정마을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사내가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쫒지 않았다. 자신은 은주의 집을 먼저 확인하고, 그 내용을 설장호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집이…….”

강서진의 눈에 보인 은주의 집은 이미 미희가 보고 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미희와는 또 다른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인하여 한 민간인의 집이 무너진 것과
같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아가씨가 오셨구만.”

곧 미희가 있을 때 들어왔던 노인이 다시 들어서며 강서진을 보고 말했다.

“다른 아가씨라 하시면…….”

오전에 은주 친구라면서 한 아가씨가 왔었는데, 아가씨도 은주 친구인가보네.“

“네?. 아 네…….”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친구들은 이리 찾아오는데, 은주가 어디에 있는지 원…….”

노인은 또 다시 창가를 향해보고 섰다.


“혹시 오전에 찾아온 친구가 이름이라도 말하지 않던가요?”
“이름은 무슨…….그냥 집이 이렇게 된 것을 둘러보고 난 뒤에, 놀란 눈으로 가버렸는데.”

강서진은 혹여나 미희가 온 것이 아닌지 생각하였다. 만에 하나 미희가 온 것이라면 인근에 추선우가 함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

강서진은 급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미희일수도 있다는 생각 하에 급히 서두르는 것이었다.

“그 놈은 어찌됐습니까?”

강서진은 은주의 집은 나온 후, 곧바로 형사들에게 이어마이크를 통해 석강수의 부하에 대해 물었다.

“인근에서 놓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북정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였으니, 잡도록 하겠습니다.”

형사의 말은 강서진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굽이굽이 연결되어 있는


좁은 골목들을 보며 놀랐었다.
그 사이로 연신 도망친다면, 이 길을 잘 알고 있지 않는 한,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마을 외곽 시내를 돌아보고 있겠습니다. 그 놈…….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서둘러 내려가면서 형사들에게 다시 당부하였다. 그저 은주의 친구나, 기타 직장동료로써


은주의 행방을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도망쳤다는 것 하나로 그도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을 둔 것이었다.
강서진은 마을 입구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수상한 행동을 하거나, 몇 몇이
모여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동네의 일상처럼 보였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설장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북정마을은 어떤가? 추선우가 그곳으로 간 흔적이라도 있는가?-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동네 어르신 한분이 오전에 은주친구로 보이는 아가씨가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미희씨일수도 있다는 생각 하에 주변을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래. 태정민을 그쪽으로 보낼 테니 함께 움직여.-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태정민에게 연락하여 북정마을로 향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리고 그는 백태가 있는 곳으로 조동민의 팀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신중하게 대처한다. 만약 우리가 가는 곳에 백태가 있다면 그 놈을 쉽게 생각해서 상대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동 중, 대원들에게 대처방법을 말해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이 바로 백태였다.


백태는 이미 설장호가 그 실력을 눈으로 본 인물이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더 우위를 점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죠.”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내용을 전달 받은 후, 곧바로 다시 강서진에게 연락하여 그녀의 현재 위치를 물었다.


“지현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인가?”

같은 시각. 서지호에게 상황보고를 들은 차현태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현을 청와대 외부까지 벗어나게 한 것과, 별장까지 데리고 간 것은 잘 처리되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지용석으로 인하여 별장의 위치가 발각되면서 일이 틀어져버린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조금 더 확실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과거를 운운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고, 서둘러 지현을 찾아보게. 지현을 보호하는
추선우의 상처가 심하다고 했으니. 서둘러야 하네.”
“알겠습니다.”

서지호의 마음도 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직접 외부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차현태의 곁에
남았고, 태정민을 도울 세 명을 청와대 외부로 내 보냈다.

“여깁니다.”

설장호가 먼저 백태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대원이 한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데서 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야할까요?”

조동민이 오피스텔만 보고 말했다. 이미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오피스텔은 서울에서도 가격이 만만찮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한 초호화 오피스텔이었다.

“이런 곳은 말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누가 줘도 우리는 살 수 없어.”

설장호가 답하며 들어섰다. 그의 말처럼 그냥 집을 준다고해도 한 달을 살 수 있는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누가 그저 준다면 그 즉시 팔아치워서 다른 곳에다 집을 몇 채나 더 사두는 것이 오히려 이익일
것이라 말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서며 설장호 일행을 막아섰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의 말에 조동민이 신분증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경비원은 시선을 돌려 메인 안내데스크를 보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설장호 일행을 데리고 안내데스크로 이동하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내데스크에 있는 한 사내가 다시 물었다.

“신분증을 보여드렸습니다. 조용히 협조 부탁드립니다.”

조동민이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분증은 확인했는데, 왜? 협조를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국정원에서 할 일 없이 이곳으로 왔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곳은 워낙 유명하신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서요.”

안내데스크에 있던 사내의 말에 설장호의 표정이 실룩거렸다. 그리고 곧 그 로비중앙을 통하여 승강기를


향해 걸어가는 여인을 빤히 보았다.

0016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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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민이와 태광이는 저 여인을 쫒아가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직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안내데스크에 있던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설장호를 보았고, 곧 조금 전 지나쳐간 여인을 쫒기 위하여 움직였던 두 명의 대원을 보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경비원은 화를 내며 안으로 들어서려는 대원을 저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설장호가 그를 먼저 막고 섰다.

“협조를 하던, 협조를 하지 않던, 그건 당신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살인범이 있고, 국가의 위협
존재가 있다는 정보가 확실한 상황에서, 당신의 이런 선택에 의해 그를 놓치게 되면, 당신에게도 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설장호의 눈매는 이미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단 몇 마디를 내 뱉었을 뿐이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녀석이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수색한다. 그리고 다른 놈은 몰라도 그 놈은 절대 놓치지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가 움직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것이 필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개의치 않은 듯, 백태가 있다는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한 여인의 뒤를 먼저 쫒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두 대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그녀와 일정거리를 두고 조심히 뒤쫓고 있었다.

“9 층입니다.”

그녀가 내렸던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이어마이크를 통해 작은 목소리로 알려 준 후, 다시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리자, 갑자기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의 멈춘 걸음에 맞춰, 두 대원의 걸음도 멈추었고, 곧 몸을 돌려 하나의 문 앞에 서서 문을 향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등을 보인 채 서 있었고, 이내 그녀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의
문이 열리면서 사내 몇 명이 나오고 있었다.

“누굽니까?”

그 중 한 사내가 여인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 따라온 놈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을 두고 따라왔는지는 내가 모르지.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녀의 말은 두 대원에게 들렸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의 추격이 들통 난 것을 알고서는 몸을 바로 세워서,


다가서는 사내들을 보았다.

“역시 여자의 감각은 무섭군. 미행이라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통난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두 대원 중, 철민이란 이름을 가진 대원이 다가서는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아냐 아냐. 너희들의 추격이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야. 단지…….운이 없던 것뿐이지.”


“운이 없다?”
철민의 말에 한 사내가 손가락을 좌, 우로 흔들며 말했다.

“지금 너희들이 온 이곳 9 층은 말이야. 모두 우리 식구들이 사용하는 층이라…….외부에서 오는 사람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거든.”
“…….”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초호화 오피스텔의 한 층을 모두 사용할 정도라면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 놈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냥 조용히 보내줄 마음은 없으니까. 어디 실력이나 한 번 보자.”


사내들이 더 앞으로 다가섰지만, 철민과 태광이라 불린 두 대원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다가서는 그들을
맞이할 요량으로 떡하니 서 있었다.
“강심장인데. 우리를 상대로 두 명이서…….”
‘띵.’

두 대원의 행동을 보며 어이없는 눈빛을 하며 말하자,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사람이 더 있었네…….”

그리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는 설장호와 함께 조동민이 내렸고, 몇 대원들도 함께 내렸다.

“서…….설장호!”

한 사내가 설장호를 알아보았다. 그는 눈동자를 바르르 떨며 설장호를 보았고, 이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를 알아?”

설장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로 물러난 사내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애들…….다 나오라고 해라.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다고 말이야.”


“네.”

그는 곧 자신의 뒤에 선 사내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설장호를 향해 보았다.

“순간 당황해서 내가 보이지 말아야 할 꼴을 보이고 말았군. 설마 이곳으로 설장호가 직접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야.”

사내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신 스스로 창피했음을 말하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다시 잡은 후,


설장호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우르르’

곧 오피스텔 끝 부분에서 사내들이 더 모습을 보이며, 설장호 일행을 노려보았다.


새롭게 더 나타난 이들은 각자 손에 사시미와 함께 각목과 쇠파이프 등을 들고 서 있었다.

“살벌하네요.”

그들을 모습을 보면서도 조동민은 긴장하지 않은 채, 오히려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재밌지 않은가? 천하의 설장호가 제 발로 찾아와서 목을 내놓고 가다…….아주 내가 쓰고 싶은


소설 속 대사로 딱인데 말이야.”
사내는 자신의 뒤로 이미 20 명이 넘는 인원이 더 추가되자 기세등등한 듯,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철민과 태광의 옆을 지나쳐서, 두 사람의 앞으로 섰다.

“머릿수가 아주 많아. 그렇다면 이곳에 내가 찾는 놈이 있을 수도 있겠군.”


“뭐야!”

설장호의 말에 사내가 소리쳤고, 곧 자신의 뒤에 선 이들을 향해 손을 들어 설장호 일행을 치도록 명령


내렸다.

‘픽!’
“!!!”

사내의 명령에 맞춰 모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설장호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들어, 가장 먼저


움직였던 놈의 다리를 겨냥하여 쏘았다.
그 순간 모두의 걸음이 다 멈추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또 한. 9 층의 모든 상황은 9 층 어딘가의 방에 있는 듯, 백태가 CCTV 를 통해 모두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장호…….”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음 누구인가?”

단 한방의 총알로 인하여 20 명이 멈춰 섰다. 그들의 손에는 아쉽게도 총이 없었다. 모두가 사시미와 같은
날카로운 것을 들고 있었지만, 총 앞에서는 그냥 회나 뜨는 칼 밖에 되지 않았다.

“총알이 20 발은 넘지 않을 것 같은데.”

가장 앞쪽에 선 사내가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척척척척’
“…….”

그 순간 설장호의 뒤에 서 있던 조동민을 시작으로 국정원 대원들이 일제히 총을 꺼내 들었다.

“이제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분명해 졌는가?”

설장호가 이번엔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설장호가 다가오는 걸음에 맞춰 뒤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하였고, 이내 설장호가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사내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섰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다. 지금 여기서 길을 열어주면 죽는 놈은 단 한 놈도 없다. 하지만 끝까지 길을


막는다면 우리의 손에 들린 총이 품고 있는 총알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네 놈들의 오장육부를 다
뚫어놓겠다.”
“!!!”

말만 들어도 섬뜩한 순간이었다.

“시간은 오래주지 않는다. 지금부터 셋을 센다. 그 안에 선택해라.”

설장호는 오피스텔 복도에 줄줄이 서 있는 그들을 향해보며 말한 뒤, 숫자를 세기 시작하였다.

“셋.”
그리고 셋까지 모두 센 후, 다시 그를 보았다.

‘저벅, 저벅…….’

그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그의 뒤로 서 있던 20 여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양 옆으로 비켜서기


시작하였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내걸지 마라. 그런다고 백태가 네 놈들의 목숨 값을
제대로 지불할 놈도 아니다.”

설장호는 복도에 늘어서 있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의 눈빛이 서로서로 교차하기 시작하였다.

“필요 없는 놈들…….”

CCTV 로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태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곧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십시오.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그가 일어서자, 이수호가 내준 네 명의 경호원 중, 세 명이 문 앞으로 서며 말했고, 곧 뒤늦게 들어온


여인도 문 앞으로 이동하여 섰다.

“괜찮겠나?”
“저희들이 할 일입니다. 그러니 백태 회장님께서는 이곳을 나서십시오.”

설장호가 오피스텔 복도 끝을 돌기 전에 백태를 먼저 나서게 하려는 그들이었다.


백태는 서둘렀다. 아직 설장호가 복도 끝을 돌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가 나와서 다른 통로를 이용하여
오피스텔을 빠져나간다고 하여도 그를 잡지 못할 상황이었다.
백태는 설장호가 복도를 돌기 전, 복도 끝의 다른 통로로 몸을 숨기며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복도에는
세 명의 경호원과 여인이 서서 복도 끝을 막 돌아서 들어서는 설장호를 보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포즈들이네.”

설장호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설장호 실장님을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여인이 앞쪽으로 서며 말했다.

“백태가 참으로 훌륭한 충신들을 곁에 두고 있었군.”


‘픽!’
“…….”

하지만 그녀도 설장호의 앞에서는 여성이 아닌 그저 잡아야 할 한 인물에 불과한 여인이었다.


설장호는 그녀의 다리를 향해 총을 쏘았고, 그녀는 허벅지에 총알이 명중되었지만, 비틀 거린 후, 벽을
잡고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뭣들해. 모두 잡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설장호가 큰소리로 말하자, 조동민과 함께 국정원 대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설장호는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앞에 있는 이들이 이미 마중하고 있다는 것은 백태가
벌써 이곳을 벗어났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그였다.
세 명의 경호원과 여인은 단 30 초 만에 총상을 입고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쳐온 20 명의 사내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기만 하였다.

“너희들은 내거 선처를 말해줄 것이다. 순순히 자백하고, 죗값을 받은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설장호는 길을 열어준 20 명에게는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려했던 세 명의 경호원과


여인에게는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모조리 잡아 쳐 넣어.”
“네.”

설장호의 격한 말에 조동민이 이어마이크를 통해 오피스텔 외부에서 대기 중인 국정원 대원들을


올라오도록 명령 내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국정원에서 나오고 그래.”

안내데스크에 있던 사람들은 국정원 대원들이 더 안으로 들어서자 서로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국정원 대원들이 급히 들어설 때, 그들과 반대로 백태는 다시 로비로 나와 오피스텔을 나가고
있었다.

0016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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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백태는 오피스텔을 나서면서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있는 곳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정확하게 알고 찾아온 설장호를 보며 쓴 표정을 지은 뒤, 그대로 오피스텔을 벗어났다.

“강 검사님.”

한 편,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북정마을에 도착하였고, 곧 강서진을 찾았다.


“뭔가 힌트라도 찾았습니까?”
“아직이야. 은주씨네 집에서는 아침에 누군가 다녀갔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그 사람
이 미희씨인 것 같아. 그래서 이 인근에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찾지 못하겠어.”

강서진의 말에 태정민도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만약 미희씨가 맞는다면 추선우도 이 인근에 있을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병원들을 다 찾아다녀


보셨습니까?”
“아직 이야. 일단 인근을 먼저 돌아보고 근처 병원엘 들려볼 생각이었거든.”
“그럼 제가 돌아보겠습니다. 강 검사님께서는 인근 병원을 찾아보십시오.”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따로 움직이며, 빠르게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선우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입니까?”

같은 시각. 의사인 만석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말하자면 길어. 나중에 내가 시간나면 찾아와서 한 편의 소설을 말해 줄 테니까. 지금은 그저 선우의 몸


좀 잘 보살펴 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총상이라 저희들은 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냥 한번만 눈감아줘. 하루, 이틀 보고 산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야.”
만석의 말에 아주머니가 그의 팔을 톡톡 치며 말했다.

“일단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군가 선우를 찾으면 그런 사람 없다고 딱 잡아떼라고 병원의사나


간호사에게는 알려주었으니, 염려 말고 선우가 깨어날 때까지라도 계십시오.”
“고마워 만석이.”

만석은 추선우가 총상을 입은 상황에서부터 이미 병원관계자들의 입단속을 시켜둔 상황이었다.

“삼촌!”

아주머니가 의사를 만나고 있을 때, 추선우가 침대에서 살며시 눈을 뜨자, 지현이 가장먼저 그를 보며


소리쳤다.
지현의 목소리에 은주와 미희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추선우를 보았다.

“괜찮아?”

미희가 그를 보며 글썽거리는 눈을 한 채 물었다.

“명줄은 길어서 좋겠다.”

은주도 그를 보며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절대 여성스러운 물음은 아니었다.

“내가 오래 쉬었어?”
“오래는 무슨. 고작 두, 세 시간 잤다.”

추선우의 물음에 은주가 말했다. 하지만 추선우가 치료를 받은 후, 잠에 들었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는 6


시간 정도가 지난 상황이었다.

“삼촌…….괜찮아?”

지현은 두 여인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추선우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추선우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지현을 보았다.

“삼촌이 잠을 오래잤나보네. 지현이를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 지


현이…….건강하지?”

추선우의 말에 지현은 참고 있던 눈물을 끝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말없이 지현을 안아주었다. 두 여인도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일어났는가?”
“만석 아저씨?”

곧 만석과 아주머니가 들어섰고, 만석이 추선우를 보면서 물었다. 추선우는 자신이 만석의 병원으로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이제 푹 자고 일어났으니 움직여야지. 천하의 추선우가 총알 하나


먹었다고 이리 오래자면 추선우가 아니지.”

만석은 추선우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자칫 출현이 많아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만석의


말처럼 워낙 건강했던 사람이라 회복도 빠르게 진행된 그였다.
추선우는 곧 침대에서 일어나 섰다.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역시 만석아저씨는 허준선생님이 환생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치료하실 수 있으세요.”
추선우는 그를 보며 농담을 하였다. 하지만 농담 속에 섞인 진담이었다. 이틀 전,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처럼 움직임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석의 치료를 받은 후, 그의 몸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상당히 좋아진 듯 하였다.

“내가 허준선생님이 아니라, 너의 몸이 지쳐있었던거야. 그리 지친 몸으로 뛰어다녔으니, 몸이 버티지를


못하지, 푹 자는 것이 자네에게는 최고의 약이라 생각해서 수면제 좀 과하게 투여한 것뿐이야.”

만석은 웃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지현을 경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잠을 제대로 청한 적이 없었다. 길어봐야 하루 두 시간
정도였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면서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상태였고, 총상까지 입으니, 치료를 해도
회복이 느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장 일곱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숙면을 취했으니, 그동안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 것으로
인하여 컨디션이 아주 좋아진 것이었다.

“듣자하니, 한 곳에 오래 머물 팔자가 아니라고 하던데, 갈 곳이 없다면 내가 좋은 곳을 소개해줘도


되겠나?”

의외의 말이었다. 이미 아주머니가 추선우의 입장을 그에게 말해주었기에, 그는 추선우와의 인연으로


인하여 그에게 도움을 주려 하였다.

“작은 동네라 여겼는데, 막상 하나하나 찾아다니려니 꽤 큰 동네네.”

한 편, 강서진은 동네의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추선우가 입원한 병원까지는
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편의점 앞에서 주저앉아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헛걸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곧 그녀의 앞으로 태정민도 다가섰고, 그도 함께 그녀의 옆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없어?”
“네. 없어요. 오늘 아침에 은주 씨의 집에 온 친구가 미희 씨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미희라 단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태정민의 말처럼 미희가 아닌 그저
일반적인 친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조금만 더 찾자, 물어보니 이제 병원도 몇 개 남지 않았더라.”


“그러죠.”

오래앉아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일어섰고, 이제는 같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응? 여기도 병원이 있었네.”

알아본 병원만을 찾아다니고 있던 중, 입구가 아주 좁은 병원이 있어, 강서진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만석병원?”
“병원이 맞긴 맞네요.”

강서진이 병원 간판을 읽은 후, 태정민도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았다.


그리고 만석병원은 현재 추선우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들어가 보자.”

강서진이 먼저 앞서서 들어섰다. 그러자 병원에는 노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노인 전문 병원인 것 같은데요.”

태정민이 말했다.

“그래도 확인한다. 이런 병원일수록 추선우가 숨어들기는 딱 안성맞춤이니까 말이야.”


“…….”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서서 내부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춰 만석이 두 사람의 옆을


지나쳐가다 두 사람의 입에서 추선우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눈을 하였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며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추선우가 입원한 병실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저기…….말씀 좀 묻겠습니다.”

강서진과 태정민은 병원 카운터로 이동하여 간호사에게 말했다.

“혹시 이 병원에 추선우씨란 사람이 입원하거나, 치료받은 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어느 보험사에서 오셨죠?”

강서진의 물음에 간호사는 두 사람이 보험사에서 온 사람이라 여겨 물었다.

“보험사는 아니고요. 그냥 그런 사람이 치료를 받거나, 입원한 기록이 있는지만 확인할까해서요.”


“죄송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환자분의 신상을 공개 해 드릴수가 없습니다.”

강서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들린 병원에서는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병원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는지, 강서진이 원하는 답을 모두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만 신상을 공개해준다는 간호사의 말이었다.

“검찰입니다.”

강서진은 어쩔 수 없이 신분증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니요. 제 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검사라고 하셔도 이유란 것이 있을 것이고, 또 법을


수호하시는 분이시니 법을 잘 아실 것이라 봅니다.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협조문을 보내주십시오.”

강서진과 태정민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저 동네의 작은 병원이라 우습게보았지만, 그녀는


대형병원 관계자 보다 더 까다롭게 절차를 따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이유는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저희들도 안 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병원에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노인들을 보았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겠네.”


“왜 그러세요?”

만석이 병실로 들어오자마자 급히 말하는 것을 듣고, 은주가 물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밑에서 어떤 사람들이 선우를 찾고 있어.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선우가 숨어들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과 한패일
가능성이 커.”

모두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괜찮겠어?”

미희가 물었다.
“이곳에서 그들과 마주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그리고 만석아저씨도 피해를 보고…….”

추선우는 더 이상 지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서둘렀다.


추선우는 만석의 도움으로 병원 관계자 전용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1 층으로 내려왔고, 뒤 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바로 이동하였다.

“지금 바로 내가 일러준 곳으로 가. 그곳에 가면 너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만석은 다시 한 번 추선우에게 말했고, 아주머니는 만석을 안아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 일이 모두 정리되면 돌아와서 술 한 잔 하자.”
“네 아저씨.”

간단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모두 차에 올라탔다. 운전은 여전히 은주가 하며, 추선우와 지현은 몸을
낮추어 외부에서 안을 봐도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어떡하죠. 이 병원이 뭔가 걸리기는 한데.”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태정민이 병원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난 검찰청에 연락해서 협조문을 이곳으로 보내도록 할게, 그 동안 넌 남은 두 곳의


병원을 더 확인해.”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곧바로 검찰청으로 연락을 시도하였고, 태정민은 몸을 돌려 강서진이 말한 남은 두 곳의


병원으로 향하려 하였다.

“어?”

그 순간 자신의 앞을 지나쳐 나가는 차량 한 대를 보며 태정민이 멈춰 섰다.

“왜? 무슨 일이야?”

강서진이 그의 표정과 행동을 보며 물었다.

“저 차…….”
“저 차가 왜?”
“지용석 팀장 차입니다.”
“뭐!”

멍하니 서서보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태정민의 눈이 정확하다면 저 차안에 추선우와 지현이 타고


있다는 말이었다.

0016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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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서둘러 차를 따라가야지!”


강서진이 차를 따라 뛰며 소리쳤다. 하지만 사람과 차의 속도차이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뛰기 시작할 때쯤 이미 차량은 저 멀리 도로 끝에 도착한 후, 모서리를 돌아나가고 있었다.

“뭐해. 어서 차가지고 와!”

강서진은 급했다. 지금 눈앞에서 놓치면 어쩌면 다시는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은주의 전화기가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것을 보았기에, 이대로 떠나면 영영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띠리리리’
“추선우의 행방은 찾았어?”

강서진은 차량을 쫒으면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설장호는 연락을 받자마자 물었다.

“찾은 것 같은데 또 놓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북정마을인데, 이곳에서 지용석의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차량이 이동 중이라 쫒지 못한
상황입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차량번호하고 차종을 말해.”


“잠시 만요.”

강서진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전화기를 태정민에게 건네주었다.

“네. 차량번호는 10 우. 74**이며 쥐색 SUV 차량입니다.”


“알았어. 일단 최대한 따라 붙을 때까지 붙어.”
“네.”

전화를 끊은 후, 태정민은 곧바로 자신의 차량에 올라탔고, 이내 강서진도 따라 타자마자 바로


출발하였다.

“연락을 해라 추선우…….”

강서진과 통화를 끝내고 설장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두 올라와 백태의 부하들을 모조리
잡아 연행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백태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오피스텔 안에서 그의 PC 를 열어 직접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고, 태정민이 말한 차량의 위치추적을 부탁하였다.

“한 가지가 알아봐 주실 것이 더 있습니다.”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더 말하였다.

“현재 이곳 오피스텔의 시세를 감안하면, 결코 일반적인 사업가나 웬만한 재벌이라도 한 층을 모두 임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왔을 때, 백태의 부하로 보이는 놈이 이 층 전체가 한 사람의 것이라고 했으며, 같은
식구들만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이 오피스텔 9 층의 소유자나 또는 임대 명의자가 누군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 놈이 누군지를 확인하여 찾아 잡아 족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 것 같습니다.”
“알았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다시 백태의 PC 를 확인하였다.

“도망가기 바빴던 모양이군. PC 에 중요한 것을 모두 남기고 자리를 떴구나 백태.”


설장호는 그의 PC 를 확인하며 그래도 허탕 친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제길! 없어졌습니다.”

겨우겨우, 차량을 이끌고 지용석의 차량이 이동한 경로를 잡아 따라가기 시작하였지만, 눈앞에는
지용석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설 실장님의 연락을 기다려봐야겠습니다.”

태정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강 검사님.”

태정민이 그녀를 불렀다.

“어? 어 그래?”
“괜찮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태정민은 강서진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지현의 안전보다 추선우가 걱정된 눈이었다.

“그렇겠지? 안전하겠지?”

강서진은 이내 글썽거리는 눈을 한 채,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더 숙였다.

‘띠리리리’

지용석의 차량을 놓친 후, 길 한 쪽으로 차량을 정차한 뒤, 기다리고 있던 중,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네가 말한 차량은 지금 강원도로 향하고 있다.”


“강원도요?”
“일단 계속 이동중이라 어디가 종착지인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 차에 추선우와 지현이 타고 있다면
끝까지 따라붙어라. 지금 바로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다행히 빠른 시간 안에 차량의 위치추적이 이루어졌고, 태정민은 곧장 영동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설장호는 백태의 PC 에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눈에 익은 하나의
이름이 그의 PC 에서 발견되었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석강수의 이름 옆에, 정치와 부서인원관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정치와 부서관리? 무슨 뜻이지.”

석강수의 이름 옆에 함께 나열되어있는 글의 해석은 쉽지 않았다.

“실장님. 모두 연행했습니다. 일단 국정원으로 돌아가서 그 놈들을 족쳐봐야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이 PC 들고 와.”
“알겠습니다.”

한 대원이 들어서서 상황보고를 하였고, 곧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띠리리리’

오피스텔 방을 나서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국정원장님.”
“그 오피스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일단 필요한 절차를 걸쳐 누가 최종 명의자인지
확인중인까. 확인 되는대로 연락하겠네.”
“최종명의자요? 무슨 말입니까?”

설장호는 오피스텔을 나서며 그의 말에 대해 다시 물었다.

“명의자가 많아. 그 한 놈 한 놈을 다 확인중인데, 그 놈들이 누구와 연관이 있는지도 확인중이야. 만약


확인되면, 그 최종명의자가 아마도 이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닐까 생각하네.”

국정원자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지금 현재 백태가 있었던 이곳의 오피스텔 하나의 가격이 거의
10 억을 호가한다. 그런 오피스텔이 9 층에만 20 개가 있었다.
그러니 임대가 아니라 구매라면 200 억이란 돈을 이곳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직원들을 위해 200 억 원의
집을 마련할 오너는 절대 없었다.

“지금 국정원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잡은 놈을 족쳐서 백태란 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또 백태가 남기고 간 아주 귀한 정보도 분석을 해봐야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의 뒤에서 백태의 PC 를 들고 오는 대원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 말한 차량 말인데, 누구의 차량인가?”


“추선우의 행방을 찾는데 도움이 될 차량입니다.”
“그래? 아무쪼록 무사히 있기만 하면 좋으련만…….”

국정원장도 추선우에 대한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그의 신변이 걱정되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난다니 느낌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좋다.”

한 편. 은주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모처럼 밝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미희의 표정도 밝았다. 아주머니의 표정도 밝았으며, 추선우와 지현의 표정도 밝았다.
추선우는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 지현을 보며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현을 데리고 서울을 벗어났다면
지금처럼 지현을 고생시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리 웃으며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그는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차량은 곧 영월방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설장호는 백태의 오피스텔에서 압수한 PC 를 들고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후, 곧바로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지용석의 차량이 영월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목적지가 영월 같으니 도착하자마자 찾아.”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차량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강원도 영월이라면 도심은 작게 형성되어 있지만, 워낙 넓고
띄엄띄엄 뻗어 있는 곳이 많기에 깊숙이 숨어들면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회장님. 백태회장이 찾아왔습니다.”

한 편. 백태는 자신의 은신처를 설장호에게 뺏기고 난 뒤, 이수호를 찾아왔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이미 별장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용서를…….”


“오피스텔로 설장호가 들이닥쳤습니다.”
“!!!”

이수호는 백태가 별장의 일에 대해 직접 찾아와 용서를 다시 구할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였지만, 이내


백태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장호가…….그 오피스텔에 왔다?”


“네.”
“그 놈이…….그 놈이 어떻게 알고 그곳을 와!”

이수호의 늙은 고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지만, 여전히 그의 몸에 딱 붙어서 살을 비비고 있는 젊은


여인들은 놀라지도 않은 채, 백태를 향해 요염한 눈빛만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놈이 설장호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꼭 그 놈을 잡아 목을 비틀어 놓겠습니다.”

백태는 이수호의 날카로운 눈매를 그대로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찾아라. 감히…….나에게서 배신을 하는 놈이 있다는 것은 내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네. 알겠습니다.”

백태는 고개 숙여 답했다. 그리고 이수호는 인상을 구긴 채, 자신의 곁에 있는 여인의 몸을 강하게 꽉


잡았다.

“주변 놈들 단속을 철저히 해라.”


“알겠습니다.”

곧 백태가 나간 후, 이수호는 경호원들에게 이를 갈며 말했다.

“장태야.”
“네. 회장님.”

이수호는 곧 자신의 경호원 중,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당분간 백태와 함께 움직여라. 어떤 놈이 백태를 노리고 그의 은신처를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의 모든 수족을 다 잃었으니. 네가 곁에서 함께 있어주거라.”

“네. 회장님.”

장태는 크다. 아주 큰 덩치에 장검을 손에 들고 있었고, 인상 또 한 험악하게 생겼었다.

“백태. 회장님.”

장태는 이수호의 명령을 바로 이행하였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백태를 찾아가 이수호가 내린


명령을 그에게 알렸다.

“고맙군.”

백태는 장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자신의 곁으로 보내준 네 명의 경호원을 설장호에게
바로 뺏겼고, 그에 대한 분통함이 갑자기 떠오른 그였다.

“일단 은신처에 대한 일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장태는 백태의 표정만으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띠리리리’

그 순간 백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말해라.”

설장호가 들이닥쳤던 오피스텔이 아닌, 자신이 회장이 되기 전, 거주하였고, 정구석을 보필할 때


거느리고 있던 사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용석에 관한 일입니다.-

백태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나마 지용석은 자신이 원했던 일 중,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일처리를
하려 했던 사람이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지용석의 시신은 국정원에서 수습한 뒤, 청와대로 옮겨져, 가족들에게 인도될 것이다. 신경 끄라.”

백태는 그의 시신에 관해 말했다.

-그런 것은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그의 부하는 다른 말을 하려는 암시를 하였다.

0016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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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지용석의 차량. 혹시나 그 놈이 딴 마음을 먹고 도주할 것을 우려하여 차량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해
두었는데…….죽었다는 놈의 차량이 지금 강원도 영월에 있습니다.-

“!!!”

백태가 놀란 눈을 하며 전화를 받자, 장태는 그의 눈을 보았다.

“확실한가?”
-네. 몇 번을 더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놈이 살아서…….-
“아니. 지용석은 죽었다.”
-네? 그럼 차량은…….-
“지용석이 아니라, 추선우가 움직인 것이지, 지금 당장 그놈의 목을 가지러 가겠다. 준비해두거라.”
-네. 알겠습니다.-

백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정보는 아주 큰 정보가
되었다.
지금 현재 추선우 일행이 강원도로 향한 것을 아는 이들은 국정원 쪽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백태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원을 모두 영월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편. 석강수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셨고, TV 를 보면서 또 책도 읽었다.

“회장님.”
“말해.”

그를 옆에서 보좌하도록 이수호가 직접내어준 경호원이 그를 불렀다.

“조금 전, 백태회장님쪽에서 들어온 소식이 있습니다.”


“그래? 백태가 또 움직인 건가?”
“아닙니다. 이번엔 백태회장님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설장호가 직접 백태회장님의 은신처를
습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조직은 아주 오랫동안 숨어 지내는 것은 최고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대체 어찌 숨어있었기에 설장호에게 은신처를 내 주고 그런가...”

경호원의 말에 석강수는 놀라지도 않았다.

“백태가 잡힌 건가?”

하지만 같이 살아가기로 했으니, 그의 안부정도는 물어보는 석강수였다.

“다행히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피신하셨고, 지금은 이수호 회장님의 곁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뭐. 잡히지 않았다면 다시 시작하면 되겠네. 급하지 않은 일은 당분간 바로 알리지마라, 좀 쉬겠다.”

경호원들은 석강수를 보았다. 하지만 표정을 구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수호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석강수의 사람이 된 인물이었다.
백태가 어떻게 된 것보다, 석강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이들에게는 더 중시되는 것이었다.

“백태가 발버둥을 치며 별에 별 짓을 다해도…….설장호를 잡기는 힘들다. 설장호 그놈이 어떤 놈인데 너


같은 놈에게 잡히겠는가. 오히려 잡으러가서 목을 내어주고나 오지 말게.”

석강수는 두 눈을 감은 채, 안락의자에 앉아 여유를 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곳쯤 되는 것 같은데.”

한 편. 만석이 알려준 주소대로 은주는 운전하여 영월의 어느 한 펜션 앞에 멈췄다.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따라 이동하다, 왼쪽으로 나있는 굽이진 길로 들어서고도 한 참을 더
온 상태였다.
은주는 차량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동강의줄기로 보이는 작은 강물이 있었고, 옆으로는
작은 호수도 하나 보였다. 그리고 펜션도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30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여인이 나오며 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고만석씨라고…….”


“만석 오라버니요? 만석 오라버니가 왜…….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은주가 만석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는 놀란 눈을 한 채, 은주에게 물었다.

“아니요.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만석삼촌과 한 동네에 오래 살아온 사람인데요, 만석삼촌이


이곳으로 가서 이 메모지를 전해주라고 하셔서요.”

은주는 그녀에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여인은 은주가 주는 메모지를 줄줄이 읽어 내려가다가 이내
시선을 차량 안으로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차량 안을 보았다.

“총상 환자에요?”
“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총알도 제거했고, 또 상처치료도 만석 삼촌이 잘 해주셔서
괜찮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인은 서둘러 차량 안에 있는 추선우를 안으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현이 추선우의 옆에서 바짝
붙어 그를 부축하는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다.

“꼬마아가씨가 힘이 장사인가보네.”

여인은 지현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쪽은 저희 어머니시고, 만석삼촌과는 벌써 30 년지기 친구와도 같은 분이십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혹시 그렇다면 지금 두 분께서 은주씨와 은주씨 어머니 되세요?”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만석 오라버니가 가끔 편지에 두 분 이야기를 적어놓으시거든요.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은주와 아주머니는 표정이 밝아졌다. 여인의 어투와 행동으로 보아, 절대 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펜션인데도 전화번호가 없네요.”

추선우가 펜션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변을 둘러보다 느낀 것을 말했다.

“네. 저희 펜션은 연락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힐링을 중점으로 한 곳이기에, 이곳으로 온 사람들은
족쇄와도 같은 전화기에서 벗어나도록 해드립니다. 물론…….손님들이 가지고 온 휴대전화도 원한다면
저희들이 대신 보관해 드리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잠시 기력을 회복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펜션을 알리는 그 어떤 정보가 없었다. 전화번호도 없었고, 큰 길에서부터 이곳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마저도 없었다.
그저 이곳을 어쩌다 온 사람들이 다시 오게 되고, 또 입소문을 통해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면 예약도 안 되고, 운영이 쉽지 않겠네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예약은 편지로만 받습니다. 그리고 제가 답장을 하고, 그 답장이 곧 예약증서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힘들게 운영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이해서 찾는 사람이 꽤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만석이 전화상으로 미리 알려주지 않고, 메모를 남겨준 이유도 함께 알 수 있었다.

“영월이…….넓네.”

같은 시각. 영월로 접어들은 태정민이 영월 초입부에 만들어져 있는 지역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심을 먼저 찾아보고,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주변을 먼저 둘러보자, 그것도 구석구석을 먼저 둘러보자.”
“네?”

태정민은 숙소와 함께, 병원 및 각종 편의시설이 있는 도심부분에 그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의 생각은 달랐다.

“특별히 이곳으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야. 누군가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봐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잖아.”

태정민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심에 있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도심에 거주한다면 굳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숨어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깊숙하고, 더 안전하다고 여겨졌기에 이동한 것이라 생각
돼.”

태정민은 그녀를 빤히 보았다. 간혹 가다 진지한 표정으로 많은 추리를 해 내는 그녀가 신기할 나름이었다.

“그러죠. 그럼 어디부터 확인할까요?”

일단 말을 그렇게 하였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원도 영월에는 도심을


중심으로 곳곳으로 뻗은 작은 길들과 함께, 2~3 가구만 모여 사는 소규모 마을도 있었고, 또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마을도 있었기에, 주변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은 더 넘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일단 돌아보자, 설 실장님이 다시 지용석 팀장의 차량위치를 파악하고 알려준다면 아마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설장호의 연락을 기다리며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지만, 강서진은 그 짧은 시간도 움직이며 활용하려 하였다.

“회장님. 지금 민식이가 애들을 이끌고 영월로 출발했습니다.”

같은 시각. 백태가 이수호의 집을 나온 후, 그의 앞으로 과거 자신의 부하였던 사내가 다가서며 말했다.

“알았다. 너희들도 출발해라. 난 여기에 있는 장태와 함께 가겠다.”


“알겠습니다.”

백태의 말에 사내가 장태를 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백태가 함께 움직인다는 말을 하였으니,


백태가 믿는 인물이라 여겼다.

“가자. 설장호가 내 수족을 잘라냈으니, 난 설장호의 주변을 잘라내야겠다.”


“알겠습니다.”

백태가 직접 영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백태가 영월로 향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설장호는 여전히 국정원에서 백태의 PC 를 확인 중에 있었고, 서지호는 차현태의 명령으로 추선우를 찾아
지원할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그리고 강서진과 태정민은 구석진 길을 찾아들어가며 지용석의 차량을 찾고 있었다.
또 한, 추선우 일행은 지현을 만난 이례 지금까지의 표정 중, 가장 여유 있는 표정들을 지으며, 여인이
내준, 참외를 먹고 있었다.

“저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추선우는 참외를 먹으며 지용석의 차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왜? 우리 저거 없으면 어디를 갈 수가 없어.”

은주가 그의 말에 답했다.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 차량은 우리차량이 아니잖아. 그 놈들과 손을 잡은 지용석의


차니, 아무래도 그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추선우는 직감을 말했다. 그리고 차량위치 추적이란 것도 아주 쉬운 요즘이라 그들이 지용석의 차량을
쉽게 찾아 낼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누군가 이쪽으로 찾아오면 어차피 차를 타고 이동하지 못 할 테니…….있어나


마나하네.”

은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추선우와 같은 뜻을 말해주었다.

“내가 다녀올게.”
“괜찮겠어?”

은주가 일어서며 말하자, 추선우가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 아직은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내가 내 차량으로 뒤따라가서, 다시 은주 씨를 태워올게요.”

여인이 함께 일어서며 말했다.

“정말이세요?”

은주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만석 오라버니가 보내신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찬거리도 좀 사고, 또 오라버니에게 연락도하고,


겸사겸사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곧 나갈 채비를 하였고, 은주도 서둘러 지용석의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겨두려 움직였다.

두 여인이 나간 후, 추선우는 지현과 함께 앞에 보이는 강가로 향하였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갖는 여유다운 여유였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섰고, 지현이 추선우의 옆에서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추선우를
올려보았다.

“삼촌. 아프지 않아?”


“응. 하나도 안 아파. 삼촌이 원래 좀 강하잖아. 이정도야 뭐 금방 다 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추선우는 몸을 낮춰 앉은 뒤, 지현을 마주보며 말했다. 지현은 큰 눈동자가 흔들리며 눈물이 맺히고


있었지만, 이내 눈물을 훔치며 웃는 얼굴로 추선우를 안았다.

“삼촌…….아프면 안 돼. 그리고 지현이가 삼촌 사랑하는 거 알지?”


“그래. 삼촌도 우리 지현이 사랑해. 그러니 지현이도 아프면 안 돼.”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이며, 만난 지 보름 정도가 지나가고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위한 마음이 되어있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0016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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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지용석팀장의 차량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강원도 영월의 고씨동굴 인근에서
정차된 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한 편. 설장호는 여전히 백태의 PC 를 모두 훑어보고 있었고, 곧 조동민이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태정민에게 위치 알려주고, 대원들을 준비시켜둬라.”


“네? 저희들도 영월로 가는 것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조동민이 물었다.

“아니. 우린 다른 곳을 친다. 백태가 나에게 힌트를 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함정을 파 놓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PC 가 알려주는 모든 것을 다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백태의 PC 에 담긴 많은 정보를 다 보았다. 자신이 몰랐던, 아니,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엄청난 정보들이 담겨있었지만, 이런 귀한 정보를 백태가 그냥 흘려놓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함정이라고 하여도 확인은 불가피하였다. 이번에도 그 조직을 놓치면 앞으로 다시 찾아낼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띠리리리’

한 편. 설장호의 연락을 기다리며 영월의 구석구석을 다 찾아다니고 있던 태정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국정원 조동민 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까?”
-지용석 팀장의 차량이 고씨동굴 인근에서 멈췄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조동민의 연락을 받은 태정민은 곧바로 강서진에게 위치를 말하였고 고씨동굴 방향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회장님. 지용석의 차량이 강원도 영월 고씨동굴 인근에서 멈췄다고 합니다.”


“서둘러라. 강원도는 한 번 숨어들어 가면 몇 십 년이 지나도 찾을 수 없는 곳이 허다하다, 숨어들기
전에 그 놈의 목을 친다.”
“네. 알겠습니다.”

한 편. 백태도 지용석의 차량위치를 확인하였다. 백태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이수호가 내준 장태를
데리고 직접 영월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불행과, 하나의 다행이었다. 불행은 태정민이 추선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다행은 백태도 추선우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걸려?”
“여기서 곧장 가면 바로 있습니다. 한 5 분정도 걸리니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서진의 물음에 태정민이 답하면서 차량 속도를 조금 더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차량 뒤로 약 100 미터 거리를 두고, 백태의 부하들이 따라 붙고 있었지만, 태정민도,
또 백태의 부하들도 지금 같은 방향으로 서로가 달리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이제 가시죠.”
국정원과 백태의 부하들이 확인한대로 지용석의 차량은 고씨동굴 앞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되었다. 그리고
여인이 은주에게 말했다.

“이런 곳은 참 공기 좋네요. 물도 맑고…….”


“네. 좋아요.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좋아요.”

은주는 여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맑은 물줄기로 흐르고 있는 동강을 보면서


마음도 편해지고 있었다.

“서둘러가죠.”

여인이 다시 말했다. 그러자 은주는 여인의 차량으로 올라탄 뒤,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인의 차량이 출구 쪽을 돌아 빠져나오고 있을 때, 태정민의 차량은 입구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또 한 곧바로 백태의 부하들이 탄 차량도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은주는 아슬아슬하게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 근처가 맞아?”
“네. 조동민 팀장이 이 근처에…….아! 저기 있네요.”

태정민이 강서진의 물음에 답하고 있을 때, 곧 그의 눈에 지용석의 차량이 보였다.


태정민은 급히 차량을 세운 후, 차량 내부를 보았다. 하지만 사람은 없었다. 차량문도 잠겨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놈들이 있군.”

그리고 그 앞을 백태의 부하들이 차량에 탄 뒤, 지나쳐가면서 태정민을 보고 말했다.

‘띠리리리’
“찾았나?”

그는 곧바로 백태에게 연락하였고, 백태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여기에 그 녀석들이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 지용석의 차량을 찾았는데, 우리보다 먼저


청와대의 태정민이 지용석의 차량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그의 보고를 받은 백태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차량 안에 그들이 있는가?”


-아닙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태정민도 그들을 만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 그럼 서둘러라, 태정민이 왔다면 곧 설장호도 도착한다는 말이다. 그놈마저 합류하면 일이 어렵게
된다.”
-알겠습니다.-

백태는 통화를 끊은 후, 쓴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간다.”
“네. 회장님.”

백태의 말에 운전사는 차량속도를 더 올리며 서둘러 영월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찾아보죠.”

일단 차량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인근에 있을 것이라 여겨 태정민이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은주 씨나 미희 씨는 모르지만, 추선우씨라면 이 차를 타고 계속하여 이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그런 상황에 이리 사람들이 많은 곳에다 주차를 하고, 어디를 갔다고 보기에는 힘들어.”

급히 움직이려던 태정민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정말…….그러네요. 총상을 입어 상처까지 깊은데,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


몸으로 여기다 주차를 하고 어디론가 걸어서 가기에는 이곳이 참 어중간한 장소고요…….”

태정민도 이상함을 느꼈다.

“일단 저기 숙소와 함께, 주변만 잠깐 돌아보자, 그리고 인근에서 기다려보자.”

강서진은 앞에 보이는 숙소를 본 후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바로 움직였고, 두 사람이 지용석의
차량에서 멀어지자마자, 백태의 부하들이 지용석의 차량 옆으로 왔다.

“깨끗하게 비우고 간 것을 보니 다시 오지 않을 놈들이다. 이곳에 차만 주차하고 시선을 따돌린


모양이군.”

그들도 차량 안을 보며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잡아내고 있었다.

“저들은 인근 숙소를 찾을 것이다. 저들과 마주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놈들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부하의 말에 함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곧 도착할 백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없다는데요.”

태정민은 숙소관계자들에게 추선우 일행에 대해 물었지만, 답변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총상을 입은 남자하나와 여자 두 명, 그리고 열 살의 어린 여자아이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기억될
것이었다.
하지만 숙소관계자들은 물론, 인근 상가의 사람들마저도 그들을 본 사람들이 없었다.

“아무래도 강 검사님 말씀처럼 위치추적을 따돌리기 위하여 차량만 여기다 둔 모양입니다.”

숙소만 둘러보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강서진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지용석의 차량을 보았다.
혹시나 자신에게 남겼을 수도 있을 메모지를 찾으려 하였다.
하지만 없었다. 메모지는 둘째 치고 쓰레기 하나도 없는 아주 깨끗한 차량이었다.

“어떡할까요? 차량의 위치추적만 믿고 온 것인데, 이제 어떻게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죠?”

태정민이 물었지만, 강서진이라고 마땅한 수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들고 있는 은주의 휴대전화가


울려주고, 전화를 한 사람이 은주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단 근처에서 대기하자.”


“네.”

그녀의 표정을 보며 다른 말을 하지 못한 태정민이었다.


백태의 부하들도 모두 헛수고를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지용석의 차량 인근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백태의 부하에게 다가선 뒤, 보고를 하였다.

“대기한다. 곧 백태회장님께서 오시면 그분의 명령을 따른다.”


“네. 알겠습니다.”

이들도 주차장 인근에서 대기하기로 하였다.

한 편. 은주와 여인은 돌아가는 길에 만석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 순간에도 은주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만약을 생각한 그녀의 판단이었다. 전화기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고 있기에, 그 전화를 누가
주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설장호나 강서진과 같은 사람들이 주웠다면 전화를 해도 도움이 될 것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이동 중에 급히 이동하느라, 어딘가에 전화기를 흘렸고, 이민 별장 쪽에도 그들이 온 것을 알고 있기에,
별장 인근에 있던 그들이 전화기를 주워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특히나 지금은 더욱더 전화를 할 수 없었다. 펜션 주인인 여인도 마찬가지로 전화기가 없다.
그러니 가게전화나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지역번호가 휴대전화에 뜰 것이고,
전화번호만으로 이곳이 어딘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서 상처가 괜찮아질 때까지 쉬죠.”


“네. 아…….잠시 만요.”

여인의 말에 은주도 웃으며 말한 후, 곧바로 앞에 보이는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기력회복에는 고기가 최고죠. 이제 가요.”

은주는 웃으며 말했고, 그녀도 은주의 미소에 함께 미소를 지어주었다.


여인은 은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두 여인은 곧장 펜션으로 향하였고, 고씨동굴 앞 유원지의 주차장에서는 태정민과 강서진, 그리고 백태의
부하들이 지용석의 차량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아. 다른 곳을 더 찾아보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후면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니, 그 후부터는 더욱 더 찾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기에 강서진이 무료한 시간을 더 이상 보내지 않으려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동하죠.”

태정민도 그녀와 같은 시간이었다. 차로 돌아올 것이라면 벌써 돌아오고 남을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추선우가 상처를 입고 있기에 오랫동안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지용석의 차량은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라는 결론도 내려졌다.
태정민이 차량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바로 앞으로 백태가 탄 차량이 지나쳐갔다.
하지만 너무나 짙게 선팅이 되어 있는 차량이기에 차 내부에 탄 사람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백태도 태정민과 강서진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갔다.
곧 백태의 차량은 이미 도착해 있는 부하들의 앞으로 가서 정차하였고, 그가 내리기 바로 전에, 태정민의
차량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차량 한 대가 곧바로 따라붙어 나갔다.

“그 놈은 결국 오지 않았나?”
“네.”
백태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물었다.

“태정민은?”
“조금 전, 주차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애들을 붙였습니다.”
“알았다. 지용석의 차는 어디에 있는가?”

백태는 부하의 안내에 따라 지용석의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내부를 보았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내부는 자세히 보이지 않고 있었다.

0016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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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안에 그 어떤 물품도 없습니다.”
“이미 차를 버렸다는 말이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백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량위치를 추적하여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동하였다.


하지만 차량은 버려졌고, 산골 구석구석으로 너무나 많은 길이 나 있는 영월을 일일이 다 뒤져보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오늘은 시내에게 하루를 지낸다. 숙소를 알아보고, 몇 놈은 시내를 돌아다니면 그 놈들의 흔적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백태는 곧바로 차량에 다시 올라탄 뒤, 영월 시내로 향하였다.

“자~! 오늘은 기분 좋게 삼겹살 파티를 하자!. 선우의 쾌유도 빌면서 고기로 영양분도 좀 채우자!”

은주는 펜션 앞마당으로 삼겹살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추선우도 웃었다. 이대로 이곳에서 그냥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현은 행복했다. 추선우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부모를 잃은 후, 최고의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추선우는 자신을 보고 웃는 지현을 안아주었다. 어리지만 결코 마음은 어리지 않은 지현이를 꼭
안아주었다.
오랜만이라는 단어가 아닌, 처음으로 모두가 함께 모여 앉은 자리였다. 은주와 아주머니, 그리고
추선우는 가끔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미희와 지현이 함께 한 자리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어두워졌네.”

결국 태정민과 강서진은 추선우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어둠을 맞이하였고, 어둠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동강을 바라보며 강서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죠.”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난. 여기 있을게. 넌 서울에 다녀와.”

강서진은 여전히 동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굳이 서울로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에서 하루를 지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숙소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태정민은 그녀의 눈빛이 슬퍼 보이는 것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 뒤, 숙소를 알아보기 위하여 나섰다.
태정민이 자리를 비켜주자, 그녀는 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속에 갑자기 자리잡아버린
추선우가 그리운 그녀였다.

한 편,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설장호는 조동민의 팀원들을 데리고 경기도 안산의 폐공장에
도착하였다.

“실장님. 이곳은 어딥니까?”

조동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백태의 PC 에 저장되어 있던 내용 중, 이곳이 있었다. 꽤 많은 곳이 있었지만, 이곳이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설장호는 오늘 하루, 다른 외부 움직임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백태의 PC 만을 검토하였고, 저녁


무렵에서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뭔가 있습니까?”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지금부터 확인하면 우리가 찾던 조직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다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설장호는 조동민의 물음에 답한 후, 폐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공장안은 외부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공장이 폐업하고 쓸모없는 자재들만이 공장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냥 일반적인 폐공장과 다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조동민의 말이었다. 하지만 함께 온 대원들의 눈에도 그냥 폐공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문을 닫은 공장이라면 굳이 백태의 PC 에 저장되어 있을 필요는 없겠지. 지금부터 공장안을 샅샅이


뒤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백태의 PC 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정보 중, 유독 이곳의 공장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저 평범한 공장이라면 그리 많이 나열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 여겼다.
대원들은 공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설장호는 특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만을 둘러보았다.

“실장님. 이곳을 보십시오.”

약 5 분 정도가 지난 후에, 한 대원이 설장호를 불렀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는 물론, 조동민도 함께 그곳으로 움직였다.

“화려하네요.”

조동민이 말했다. 공장 내부에 있는 사무실이었고, 그 안으로는 여러 대의 PC 와 함께 모니터, 그리고


중앙에는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작동시켜봐.”
설장호의 말에 한 대원이 PC 전원을 켰고, 나머지 PC 도 모두 전원을 올린 뒤, 모니터의 전원도 켰다.

“이상합니다. 만약 이런 곳에 조직의 정보가 담긴 내용이 있다면 왜 치우지 않고 이대로 두고 모두


떠났을까요?”

조동민이 물었다. 그의 말처럼 만약 이곳이 설장호가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거나, 아니면 모조리 다 치우던가 박살내버렸을 것이었다.

“이곳을 버리려는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설장호는 전원이 들어온 PC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백태의 PC 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연찮게 그의 PC 를 손에 넣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많은 정보를 얻어낸
설장호였다.

“CCTV 를 확인하는 시스템입니다.”

전원이 들어온 후, PC 의 메인화면에 떠 있는 몇 가지 폴더 중, 하나의 폴더를 클릭하자, 서울시내에


설치된 CCTV 화면 중, 일부가 녹화된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지현을 안고 있는 추선우를 찾았던 그 때였군.”

설장호는 영상을 보며 말했다. 그 영상은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사당역을 나오는 장면이 녹화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는 설장호와 태정민도 보였다.
바로 자신들이 지현을 찾고자 움직였을 때, 지현을 데리고 사당역에서 자신들을 농락했던 그 때의
영상이었다.

“실장님. 이 영상을 보십시오.”

곧 다른 대원이 다른 PC 에 저장되어 있는 하나의 영상을 확인한 후, 설장호에게 말했다.


설장호와 조동민은 해당 PC 가 연결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북정마을 인근과 연화장입니다.”

초기의 일이었다. 북정마을에서 추선우의 뒤를 쫒을 때 북정마을 인근에 설치된 CCTV 에 찍힌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있었고, 또 연화장에서의 일이 모두 찍혀 있었다.

“북정마을의 영상은 이미 저희쪽 자료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화장의 영상은 저희 쪽과 다릅니다.”

조동민이 한 말 그대로였다. 연화장에서 찍힌 영상은 대부분이 멀리 찍혀있어 사람의 얼굴 형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영상에는 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경찰청장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증거를 찾고 싶어 하던 하나의 증거가 여기서 나오고 있었다. 바로 경찰청장이었다.


연화장의 입구를 책임지고 맡았던 경찰병력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던 그 때였다. 하지만 그 때 당시 그
이유가 각 국가기관에 속해있던 조직의 일원이 모두 연화장에 투입되면서 일어난 일이라 결정짓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상. 그 모든 경찰병력을 지휘하며, 차현태가 연화장을 들어설 때, 경찰청장이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찰들을 지휘하는 이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 장면이 찍혀있었고, 그 장면이 있은 후,
경찰병력이 모두 뒤로 빠져나가며 버스차고지 부분을 통해 완전히 벗어나는 장면까지 다 찍혀 있었다.

“제대로 하나 건졌군. 이 영상을 국정원으로 가져간다.”


“알겠습니다.”
해당 파일을 따로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여기도 있습니다.”

또 다른 대원이 다른 영상을 찾아냈다.


해당 영상은 삼성역에서 있었던 미희의 인질극에 관한 영상이었다.
그 때 당시의 일은 전혀 확인한 것이 없었었다. 주변 CCTV 도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해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고, 뭔가 그 당시의 일을 직접 확인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있었다. 삼성역 인근 무역센터 뒤쪽의 번화가 골목을 지나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까지 미희를 끌고 가는 백태의 모습이 다 찍혀 있었고, 그 중간 중간에 백태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의 얼굴까지도 비교적 자세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방향까지 잘 잡혀있는 영상들이 꽤
있었다.

“이것도 가져간다.”
“네.”

계속하여 PC 를 확인하였다. 그냥 모든 PC 를 다 들고 국정원으로 향한 뒤, 마음 놓고 확인하는 것이 더


좋지만, 설장호는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 국정원으로 가져가기 전, PC
내용의 일부라도 미리 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백태의 오피스텔에서도 그 와중에 백태의 PC 를 열어 하나하나 확인했던 그 때였다.
대부분의 영상들이 서울시내의 CCTV 와 함께, 사설 CCTV 영상까지 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추선우와 지현이 있었다.

“실장님의 모습도 있습니다.”

곧 또 다른 영상을 확인한 대원이 말했다. 설장호는 자신의 모습이 찍힌 영상이라는 말에 시선을 돌려


해당 영상을 보았다.

“얼마 전의 영상이군.”

영상은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한 병원의 병실과 복도 영상이었다.

“이놈들 아주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병원 영상은 병원 관계자의 도움 없이는 빼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병원에서 의사가 추선우에게 총을 쏘았기에, 병원내의 영상이나, 기타 기록들을 접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멈춰봐.”

영상을 보고 있던 조동민이 어느 한 부분을 보며 말했다.

“왜 그러는가?”
“저 놈. 병원에서 박태식 형사를 인질로 잡고, 추선우를 찾아다녔던 놈입니다.”

영상에는 수만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마저 재생하자, 설장호의 국정원 동기들이 배신한 영상이
보였고, 그 때 설장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후로 지하주차장에서 조동민이 박태식의 팔뚝을 관통하는 총을 쏜 후, 수만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영상과 함께, 청와대 경호실 대원이 수만에게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장면까지 다 녹화되어 있었다.

“실력자입니다.”
“저 놈이 누군지 알아봐라.”
“네. 알겠습니다.”

아직 설장호는 수만과 조우한 적이 없었다.

“저놈의 실력은 백태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수도 있습니다.”

조동민이 수만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며 말했다.

“그렇지? 저 놈의 움직임은 수준급이다. 절대 백태의 밑에서 움직일 놈은 아니야.”


“그럼 혹시…….”
“그래. 서충식이 말했던 그 한 명의 회장이라는 놈이 이제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말일수도 있어.”

아주 큰 단서를 확보한 순간이었다. 이들은 지난 날 설장호가 국정원에서 받은 CCTV 의 영상 자료들을


모두 수집하고 있었다.
즉. 해당기관에 이들과 손잡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PC 를 모두 국정원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먼저 PC 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한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내용을 더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저장된 영상들이 어떤 내용들인지 알았고,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서 옮기는 것이었다.

0016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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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이곳은 어찌할까요?”

조동민이 폐공장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밀어버려야지.”
“네? 밀어버린다는 말씀은…….”
“적이 있던 곳을 그냥 두면 적은 다시 온다. 그 때를 노려 그 놈들을 잡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예 이 모든곳을 다 밀어버리고, 그 놈들이 열 받아서 먼저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더
좋아.”

설장호는 폐공장을 나서며 말했다.

“지금 당장 밀어버릴까요?”
“일단 이 공장이 누구의 명의로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그 명의자를 족쳐, 지금 백태가 있던 오피스텔의
명의자도 확인중이니, 이곳과 명의가 같거나, 또는 연관이 있는 놈이라면, 그 놈은 무조건 잡아 족친다.”

설장호가 폐공장을 나오며 말했다. 외부로 나오자 주변 모든 지역이 다 폐공장이었다.

“꽤 넓은 터 같은데, 모두 문을 닫은 모양입니다.”
“사회가 이 모양인데, 중소기업이 버티는 것도 대단한 거지…….”

설장호는 불 꺼진 공장들을 보며 말했다. 연신 기계가 가동되고, 사람들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지만, 아예 불마저 다 꺼져있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단 한 곳도 나지 않았다.
대원들은 PC 를 차량에 싣고 있었다. 그리고 폐공장 한 쪽 부근에서 몇 사내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젠장…….회장님께 연락해야겠다.”

그들은 서서히 그 자리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인근을 더 살펴보시겠습니까?”

폐공장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얻고, 또 PC 를 차에 실은 뒤, 조동민은 폐공장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설장호에게 물었다.

“아니. 오늘은 이놈들만 검토해도 밤을 다 지새워야 할 것 같다. 그만가자.”

설장호는 백태의 PC 에서 딱 한 곳을 선택했고, 그곳으로 왔다. 그리고 어쩌면 조직에서 가장 위에 앉아


군림하는 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설장호가 백태의 PC 에 있는 많고 많은 곳 중에 이곳으로 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으로 먼저 와야 할
이유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설장호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 뒤,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사실인가?”
“네. 회장님. 조금 전, 창고로 설장호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설장호를 목격했던 부하는 곧바로 백태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백태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오피스텔과 창고…….정확하게 알고 움직이는구나. 설장호.”

백태의 눈썹은 쉴 새 없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있던 오피스텔은 정구석이 사용하던 곳이었다.


비록 명의는 정구석이 아니지만, 그 오랜시간동안 경찰이나, 검찰이 단 한 번도 들이닥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설장호가 들이닥쳤고, 이번에 폐공장까지 정확하게 꼬집어 움직였다는 것은 누군가 정보를 주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설장호를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오피스텔은 물론, 폐공장까지 들이닥쳤다면 필시 내부에서


그에게 정보를 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회장님의…….”
“우선. 추선우와 지현을 잡는다. 지금 당장 설장호를 잡을 수 없으니, 그 놈의 움직임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손에 쥐는 방법밖에 없다.”

백태는 부하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생각처럼 지금 당장 폐공장으로 간다고 하여도


설장호를 잡을 수 없다. 아니 설사 그와 마주친다고 하여도 그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추선우나 지현을 손에 쥔다면 그 어떤 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를 손에 쥐었기에, 설장호가 최강의
방패를 쥐고 있다고 하여도 뚫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쉬지 않고 찾아라. 분명 그 놈들은 여기에 있다.”


“알겠습니다.”

백태는 서둘렀다. 설장호가 더욱 더 자신의 목을 치기 위하여 다가서는 것이 보였기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설장호의 날카로운 칼날이 끝내 자신의 목을 쳐 낼 것이라 생각하였다.

“검사님.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한 편. 태정민은 서울로 향하지 않는다는 강서진을 위해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넌 다녀와.”
“일단 서울로 가서 설 실장님과 서 실장님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이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밤에 움직이지는 마십시오.”
“…….”

태정민은 걱정되었다. 그녀를 데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와우. 오늘 너무 잘 먹은 것 같아요.”

같은 시각. 은주는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로 배를 채우자 포만감에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어


자신의 배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지현이도 잘 먹었어?”
“응. 이모.”

미희는 지현을 보며 물었다. 한참 먹고 자랄 나이에 이리저리 쫒기며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였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원 없이 맛있는 고기를 먹은 듯하였다.

“고맙습니다.”

추선우는 아주머니와 펜션 여주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다 돌려 받을 거야. 그러니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 밀린 월세부터…….내 생명수당까지 다


청구할거야.”

아주머니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웃었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두였다.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펜션이라고 하지만, 방이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쓰는 방과함께, 두 개의 방이 더 있으니, 여자 분과


남자분이 나눠서 잠을 자면 되겠네요.”

밤이 점점 더 깊어질 때, 여주인은 잠자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지현은 추선우의 곁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다.

“지현이가 삼촌하고 자고 싶은 모양이구나?”

은주가 물었다. 그러자 지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럼. 지현은 선우하고 자고, 우리 세 명이 함께 자자.”

은주의 말을 듣고, 지현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지현이 잠이 들고, 추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펜션 주위로는 몇 개의 가로등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다른 펜션들의 불빛 외에는
인근에 사람이 살 만 한 집은 없었다.
추선우는 강을 내려다보며 앉았다.

“잠이 오지 않지?”
“안 잤어?”

은주가 나오며 물었다. 추선우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며 물었다.

“잠이 오지 않아. 오늘처럼만 살면 정말 살만난다고 말하고 싶은데, 오늘은 오늘로써 끝일 수도 있잖아.”

추선우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오늘은 즐거웠다. 지현을 만난 후, 가장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만 이 하루는 오늘 하루로 끝난다. 내일은 또 다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강 검사님이나, 설 실장님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아?”


은주가 물었다. 추선우는 당연히 그 두 사람에게는 연락을 하고 싶을 것이었다.

“아니. 지금은 하고싶지않아.”


“왜?”
“지금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있는 것이 좋잖아. 두 사람에게 연락하면 이쪽으로 바로 오겠지. 하지만
며칠 동안 지내보니, 그 사람들이 움직이면 또 다른 사람들도 움직이게 되더라. 그리고 위험요소가 꼭
발생하고 말이야.”

은주는 추선우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가장 처음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움직일 때는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국정원과 청와대경호실, 그리고 검찰과 경찰까지 모두 합세하니, 아주 큰 덩어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며 지현의 목은 물론, 추선우까지 잡으려하는 지금이었다.

“그냥, 당분간만 이렇게 지내자.”


“그래.”

추선우는 그들이 이곳까지 오게 되는 날이 멀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망을 다 훑어


볼 수 있는 국정원에서 이들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싶은 그였다.

“그래서? 강 검사만 두고 온 건가?”


“네.”

자정이 거의 넘어설 때, 태정민은 국정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설장호에게 강서진에 대해 말해주었다.


설장호는 폐공장에서 입수한 정보를 검토하느라, 잠도 자지 않은 채, 몇 개의 PC 를 모두 확인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건 다 뭡니까?”
“정보야. 백태를 잡을 수 있는 정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놈을 잡을 수 있는 정보.”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듣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CCTV 녹화 화면이네요.”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움직였던,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이 움직였던 모든 것이 찍힌 CCTV 화면이야.”

이미 몇 개의 영상을 모두 훑어본 설장호는 그 속에서 꽤 많은 정보를 입수한 표정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보가 꽤 많았나봅니다.”


“그래. 아주 많아. 백태는 물론, 그동안 우리가 찾아서 잡고자했던 놈들에 관한 정보가 수두룩하다.”

비단 CCTV 영상만을 보고 한 말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백태는 추선우와 지현, 설장호의


움직임이 담긴 영상 외에도, 자신이 움직였던 영상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는지도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상 속, 대화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내일. 경찰청장을 친다.”


“네? 청장을요?”

이미 설장호는 연화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번 폐공장에서 발견한 PC 에서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곳에서 청장이 연화장 입구 쪽 경찰들을 모두 빼내는 영상과 함께, 그가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영상까지 모두 입수하였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실이었군요.”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했다.
오히려 경찰병력을 더 풀어서 그 놈들을 잡고자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청장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 더
무서웠던 것이야. 그래서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었지.”

설장호는 경찰청장이 찍힌 몇 개의 영상을 태정민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빼도 박도 못하겠네요.”

태정민이 보아도 이미 경찰청장은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일단 내일. 검찰총장에게 이 정보를 넘겨주고, 총장이 직접 청장을 잡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뭐. 매번 조심해야죠.”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은 마저 영상을 더 보며 답하였다. 그러자 설장호는 병원주차장에서 찍혔던 영상을


태정민에게 보여주었다.

0016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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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굽니까?”

태정민이 본 영상은 이수호의 경호원인 수만이 찍힌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의 화려한 살인기술에 놀란


눈을 한 채, 물었다.

“아직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적은 확실해. 청와대 수석 경호원의 목을 단 숨에 잘라낸 놈이다.”

태정민의 눈은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 점점 나온다는 것은…….”


“그 조직의 마지막 놈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결론이자.”

설장호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수호는 며칠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네 명의 회장의


목을 쳐내고, 그 자리에 백태와 석강수를 앉혔다.
새로운 개혁을 단행한 그였지만, 백태의 모든 것은 설장호의 정보망에 다 잡혀 버린 현재였다.

“우리 쪽에서도 준비 단단해 둘 것이다. 일단 추선우와 지현이 영월에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바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왜요?”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만이라도 두 사람은
자유롭게 되는 거야. 잠시일지도 모르지만, 그 자유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설장호의 말은 지금 추선우가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추선우가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를 그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하였다.

“내일부터 우린 또 하나의 적을 쳐낸다. 청장을 쳐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난 이


영상을 검찰과 청와대에 전했다.”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경찰청장을 바로 잡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지원을 요청한 그였다.


검찰이 동원되어도 그가 조직의 힘을 믿고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게 할 생각이었다.

“이 영상의 진위여부는?”
“조작 없는 영상입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가 준 영상을 받은 서지호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영상을 차현태에게 보여주었다.
차현태는 놀란 눈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물었고, 서지호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청장을 먼저 잡을 것입니다. 그의 힘이 경찰병력을 다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니, 애초에


차단할 생각입니다.”
“알았네.”

차현태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지금 현재는 조직에 관련된 인분들을 하루빨리 쳐 내는 것이 우선이기에,


시간을 두고 생각할 여유란 없었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답을 들은 후, 곧바로 설장호에게 그 답을 주었고, 검찰총장도 답을 들었다.

“내일 아침, 6 시에 청장의 자택에서 그를 체포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이 차현태에게 직접 연락하여 그의 명령을 이행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지금당장은 아니었다. 경찰청장의 죄가 확실해졌지만, 지금 당장 그를 잡아들이며 수사를 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 정보는 현재 설 실장과 저, 그리고 대통령님과 검찰총장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만에 하나 내일 아침, 경찰청장이 이미 이 내용을 알고 도주를 시도한 상황이 포착된다면,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 청장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경찰병력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사라지면, 필시 자신을 잡기 위하여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기에,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을 의심해 봐야한다는 말이었다.

“알았네.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처리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현과 추선우는 현재 강원도 영월에 있습니다. 그리고 강 검사가 그들을 찾기
위하여 갔지만, 설 실장은 그들을 잠시 그대로 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눈동자가 잠시 흔들거렸지만, 이내 설장호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도


아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여, 강 검사와 함께, 태정민을 영월에 있도록 하고, 그들을
찾아 경호하도록 명령 내려놓았습니다.”
“잘했네. 그리하게.”

차현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걱정의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지현이 무사하다는 안도와 함께, 그들을
이대로 영영 찾지 못할 경우에 대한 걱정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현의 곁에는 추선우가 붙어 있습니다. 비록 상처를 입어 치료중이지만, 그의 경호


실력은 이미 입증된 상태입니다. 충분히 지현을 잘 경호할 것입니다.”

차현태의 표정만으로 그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 서지호가 말했다. 그러자 차현태는 그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이루어진 작전대로 검찰은 경찰청장의 자택 앞에서 대기 중이었고, 총장이 직접


청장의 자택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약 1 시간 후, 총장과 함께 청장이 자택에서 나오자, 곧바로 검사 몇 명이 청장을 체포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은 전국적으로 방송되지 않았다. 청장이 자택에서 체포되는 핫이슈였지만,
비밀리에 이루어진 일이기에 그 어떤 언론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대통령님. 조금 전 경찰청장을 자택에서 체포했다는 보고입니다.”

서지호는 차현태에게 청장의 체포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차현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경찰청장은 차현태가 대통령에 당선 된 후, 직접 청장자리에 앉힌 인물이었다. 자신의 측근이며, 자신과
함께 꽤 오랫동안 함께 한 인물이었다.

“청장이 체포되었으니, 그를 심문하여 이 조직의 끝을 꼭 밝혀내게.”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명령을 이행할 국가부처는 많았다. 하지만 차현태는 이번 이창민대사의 일에 대해서는 청와대
경호실과 국정원, 그리고 검찰에게만 그 권한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 함께 움직였던 외교부는 배제하였다. 이창민의 죽음이 외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점점 더
지배적으로 내려지면서 외교부를 뺀 것이었다.
설장호는 청장을 만나기 위하여 검찰로 향하였다.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했지만, 청장을 직접 만나 몇
가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질질 끌고 왔던 것에 꽤 많은 정보를 입수하게
되어, 마지막 자리에 앉은 이수호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라 여겼다.

태정민은 아침 일찍 영월로 향하였다.

“회장님.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만 계실 것입니까?”

한 편. 석강수는 회장 자리에 앉은 후부터 일체 움직임을 하지 않았다. 이에 이수호가 내어준 그의


경호원이 직접 물었다.

“급히 움직인다고 일이 잘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백태회장을 보면 알지 않은가. 그는 회장 자리에


앉자마자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자신의 은신처는 물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뭐하고
다니는지도 알지 못하지 않은가.”

석강수는 여전히 느긋하였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달랐다. 백태가 비록 모든 것을 뺏기고 실패하였지만,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이수호의 기분을 맞춰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라. 곧 한 방에 대어를 물 수 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린 그 때 움직인다. 자잘한 놈들에게
시선을 줄 필요가 없이, 딱 우리가 원하는 놈만 잡을 수 있는 기회…….곧 온다.”

석강수는 눈매를 매섭게 한 뒤,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그저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며 여유 있게 있는


그였지만, 그 또 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회장님. 백태회장이 영월에서 계속하여 지현의 행방을 쫒겠다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같은 시각. 이수호는 늦은 아침식사 중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옆으로 경호원이 다가서며 백태의 연락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였다.

“그리해야지. 집도 절도 없는 놈인데, 뭐라도 하나 건져와야지.”

이수호는 식사를 하며 경호원의 말에 답했다.

“장태가 함께 움직였으니, 백태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영월을 모두 다 엎어버리더라도, 꼭 그


계집아이와 함께 추선우의 목을 가져오도록 일러둬라.”
“네. 회장님.”

경호원은 그 즉시 백태에게 연락하여 이수호의 뜻을 전해주었다.


“오늘 안으로 그 놈들을 찾는다.”

백태는 경호원의 연락을 받은 후, 자신의 부하들에게 곧바로 명령 내렸다.

“차라리 도시라면 CCTV 라도 활용하겠지만, 이런 시골에서 조금만 더 외곽으로 빠져나가버리면 그들의


움직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부하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난 뒤, 장태가 백태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알고 있다. 도심에 없으면 외곽을 나갔겠지. 빌어먹을…….지용석의 차량을 계속하여 이용할 것이라
여겼는데, 잔 머리를 굴린 것이 확실하다.”

하루가 꼬박 지나도, 고씨동굴 주차장에 주차된 지용석의차량으로 그 누구도 오지 않자, 백태는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청와대 경호원 태정민과 강서진 검사를 여기서 보았다는 부하의 말이 있었던 같은데…….
그것에 대한 확인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태가 물었다.

“해 봐야지. 그 일에 대해서는 네가 알아봐라. 그들도 아마 추선우와 지현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 자네의 실력을 선물해줘라.”
“알겠습니다.”

백태는 장태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추선우와 지현은 충분히 자신의 부하들만으로 찾을 수 있다고
결론내린 그였다. 하지만 이동하다보면 필시 태정민과 강서진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견제코자 장태를 움직이게 한 그였다.
모두가 움직였지만, 백태는 숙소에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석강수에게 연락하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석강수는 여전히 여유 있는 어투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영월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누구를 쫒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군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그런데 그리 느긋하게…….”
-느긋하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당신이 그리 급히 움직인다고 나도 그리 움직여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니…….서로 각자 알아서 일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

석강수는 백태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순간 백태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격한 말을 내 뱉지 않았다. 이미


끊어진 전화기에 소리쳐봐야,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석강수…….네 놈의 생각이 뭐냐?”

백태는 석강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이수호의 눈에 띄어 회장 자리에 앉았지만,


그럴만한 믿음이 있는가도 확신하지 않는 그였다.

“속도 쓰릴 것이다 백태. 하지만 그렇게 움직인다고 설장호를 잡지는 못해. 설장호는 말이야…….절대
정면으로 들이밀어서 이길 수 있는 승산이 있는 놈이 아니거든.”
석강수는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설장호와 마주친 북정마을에서도 그를 피했다. 그 뒤로도 설장호와
마주치면 거의 뒤로 물러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하지만 그가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설장호를 잡기 위한 완벽한 것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물러났던 그였다.

0017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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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잘 잤어?”

펜션에서는 모처럼 원 없이 잠을 잔 모두였다. 은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그녀를 본 모두가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친하다고해도, 아가씨인데 머리카락 정리부터, 입 옆으로 묻어난 침자국은 좀 지우고 인사해라.”

그녀를 보며 미희가 말했다. 은주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거울 앞으로 섰다. 그리고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보더니, 싱크대로 가서 손에 물을 좀 묻힌 후, 머리카락을 쓸어내렸고, 곧 입술 옆으로 묻어나온
침자국을 닦았다.
미희와 아주머니, 그리고 펜션 주인은 그녀를 보며 멀뚱한 눈을 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선우하고 지현이는?”

펜션 안에 세 사람만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아침 일찍 강가로 갔어.”


“그래? 그런 나도 가서…….”
“가긴 어디를 가. 두 사람이 그냥 좀 있게 나 둬, 그리고 넌 아침준비 좀 하고,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는데, 아침준비라고 하니 좀 뭐하지만, 다들 피곤해서인지 선우를 빼고는 모두 늦잠을 잤어.”

그녀가 강가로 나가려 할 때, 아주머니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당연하고, 이들도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해본적이 거의 없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모처럼
머릿속을 완벽하게 비우고 원 없이 잠을 청한 날이었다.
은주는 강가로 가고 싶었지만,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후, 부엌을 향해 보았다. 조금 전 싱크대에서 손에
물을 묻힐 때까지는 별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부엌에서는 펜션 주인이 아침식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두 손을 걷어 올리며 말하였고, 곧 펜션 주인을 보며 웃었다.

“물 차갑지 않아?”

같은 시각. 추선우와 지현은 동강 줄기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현이 물가에 들어가 이리저리
첨벙거리자, 강원도의 차디찬 물을 잘 알고 있는 추선우가 물었다.

“시원해. 그리고 너무 좋아. 삼촌.”

지현은 해맑게 웃었다. 추선우도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함께 미소 지어 주었지만, 아직은 그녀의 미소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 검사님. 어디십니까?”
한 편. 강서진의 숙소에 도착한 태정민은 숙소에 그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연락하여 물었다.

“주변을 좀 둘러보고 있어.”


“그러니까요. 주변이 어디입니까?”

강서진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약 10 분 후, 태정민이 그곳으로 왔다.

그녀가 있던 곳은 고씨동굴 주차장이었다. 혹시나 다시 돌아올까 하여 아침부터 기다렸던 그녀였다. 아니


…….정확하게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모를 그녀였다.

“이리오세요.”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손을 잡아끌었다.

“왜?”
“식사도 안하셨잖아요. 밥이라도 좀 먹고 찾아다녀야 힘이 나죠. 이렇게 찾아다니다. 눈앞에 추선우를
보아도 쫒아갈 힘조차 없겠습니다.”

태정민은 조금은 거친 어투로 말하였고, 곧 그녀를 데리고 주차장 인근 식당가로 들어섰다.


각종 나물로 만든 비빔밥에 칼국수등. 먹을 것이 꽤 많아 보였다.

“비빔밥 두 그릇 주세요.”

태정민은 한 가게 들어서자마자, 강서진에게 묻지도 않은 채 주문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자리에 앉은 후, 또 다시 은주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어제 설 실장님이 말했습니다. 당분간 추선우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은주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자, 태정민은 어제 설장호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안전…….때문이겠지?”
“네. 우리에게 연락하면, 또 그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 실장님의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도 추선우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고요.”

태정민의 말이 야속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 비빔밥 한 그릇 주십시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 뒤로 곧 한 사내가 자리 잡아 앉으며 비빔밥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태정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이리 좋은 날씨에 영월 구경이나 해야 하는데, 사람이나 찾아다녀야하니


답답하네요.”
“!!!”

잠시 조용하던 순간, 조금 전에 들어온 사내가 홀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지며, 고개를 돌려 그를 보려 하였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나무젓가락을 집어든 사람. 바로 백태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강서진을 찾아 나선
장태였다.

“여기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연인끼리 여행오신 것입니까?”

장태는 두 사람의 뒤로 자리 잡아 앉은 채 물었다.


“네…….뭐. 그렇죠.”

태정민이 그의 물음에 말을 얼버무리며 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세 사람의 눈빛은 매서웠으며,


당장이라도 무슨 사단이 날 듯 한 분위기였다.

“부럽군요. 나도 한 때는 연인과 여행을 자주 다녔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인과도 멀어지게


되고, 일에만 몰두하게 되더군요. 두 사람은 부디 오래가시기 바랍니다.”

장태는 목소리의 높낮이가 일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말하였다.

“식사 나왔습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러던 중, 종업원이 비빔밥을 들고 와 두 사람의 테이블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뒤쪽분도 비빔밥이죠?”
“네. 맛있어 보이네요.”

종업원은 두 사람에게 식사를 먼저 제공한 뒤, 장태에게도 물었다. 그러자 장태는 여전히 정면만을
주시한 채 종업원의 말에 답하였다.

“식사는 맛있게 하십시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밥은 잘 챙겨먹고


해야죠.”

장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두 사람의 눈동자를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곧 장태에게도 비빔밥이 나오고 장태는 수저를 들어 밥을 비비고 난 뒤, 한 숟가락 크게 뜨며 입안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에 비해 두 사람은 쉽게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가 설장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전화를 받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강서진을 홀로 두고, 외부로 나가 전화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리는데, 피해야 할 전화인가 봅니다.”

장태는 입 안 가득 밥을 넣은 뒤, 오물거리며 말했다.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태정민은 통화버튼을 누른 후, 짧게 한마디를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장태의 뒷모습을 보며 앉아 있었다.


그를 보자니 밥이 쉽게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그녀였다.

“잘 먹었습니다. 여기 얼마입니까?”

장태가 먼저 일어섰다. 식사가 나온 지 채 5 분도 지나지 않아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였다.

“저기 저 두 분의 식사까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다정해 보이는 것이 꼭 저의 옛날이 생각나서요.”

장태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먹는 비빔밥 값까지 다 계산하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와
멈췄다.

“맛있게 드십시오.”

장태는 딱 한마디를 남기고 가게를 나갔다. 곧 태정민의 시선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돌아섰다.

“아무래도 저들도 이곳으로 온 모양입니다.”

그가 나간 후, 태정민은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강서진은 수저를 살며시 내려놓은 뒤, 장태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서둘러 추선우를 찾아야겠어. 저놈이 만약 그들이라면, 이미 영월을 쥐 잡듯이 뒤지고 있을 거야.”

강서진은 밥을 채 한 수저도 뜨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곧 태정민도 따라 일어서며 그녀의 뒤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걸음은 바로 멈추었다.

“제가…….밥이 너무 맛있어서 밥값까지 지불해 드렸는데, 한 수저도 제대로 뜨지 않고 나오시는군요.


입맛이 맞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장태가 한 쪽으로 자리 잡아 앉은 채, 담배를 태우며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고맙지만 오늘 식사는 제대로 먹지 못하겠네요. 급한 일이 있어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태정민은 그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그리고 강서진의 손을 잡아끌며 말하였고, 곧 두 사람이 주차장
쪽으로 향하려 할 때, 주차장 쪽에서도 몇 사내가 담배를 태우며 태정민의 차량 앞에 서 있었다.

“어린 계집과 한 사내를 찾는데,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곧 장태가 두 사람의 뒤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 순간 강서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태정민은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그런 사람이야 주변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태정민이 천천히 몸을 돌려 장태를 보며 물었다.

“뭐. 그냥 묻고 싶었습니다. 두 분께서 어쩌면 내가 찾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요.”

이 한마디에 태정민과 강서진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정확하게


추선우와 지현을 찾고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자신들이 누군지도 이미 알고 다가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르신다면, 다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장태가 조금 더 다가서며 말했다. 그러자 태정민은 강서진의 손을 꽉 잡은 뒤, 자신의 뒤로 그녀를


이동시켰다.

“두 분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의 태정민팀장과 검찰청 강서진


검사라고 있는데, 그 두 사람과 두 분이 너무나 닮았어요. 혹시…….그 두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까?”

장태는 여유가 있었다. 비록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두 사람의 곁으로 더
다가서며 물었다.

“말을 하지 못하시는군요. 뭐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정확하니, 굳이 답을


들을 필요는 없지요.”
장태는 주차장 쪽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손짓으로 뭔가 신호를 주자, 주차장에서 태정민의 차량 앞을
막고 있던 사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리 칠 것입니다.”

그들이 움직이자 강서진이 장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소리치신다? 치십시오. 소리친다고 이 사람들이 돕기나 할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과 상관이 없는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게 인간이지요.”

장태는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0017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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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죠. 그냥 뒤로 다가가서 살며시 목만
따면 될 일인데, 왜 굳이 인사까지 하며 서로 얼굴을 보겠습니까? 난 그냥…….당신들과 첫 인연을
만들었는데, 바로 헤어져야 하는 것으로 인하여 얼굴이나 익히고 가자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장태는 태정민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섰다. 하지만 태정민도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다. 그가 다가선다고
하여 물러날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강서진이 곁에 있기에, 그녀에게 무슨 변고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뒤로 물러서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들이 찾는 사람. 우리가 먼저 찾아서 목을 칠 것입니다. 감히! 우리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죄는


절대 용서치 않겠습니다.”

장태의 표정과 어투가 변하였다. 그 순간 강서진은 태정민의 손을 꽉 잡으며 놀란 눈을 하였고, 태정민은


장태의 눈을 똑바로 보며 강서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뒤로 조금씩 물러서고 있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라는 사람이 뭐가 무서워서 뒷걸음을 칩니까? 뒤에 있는 강 검사가 대통령이 아니라,
목숨 걸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어서 뒷걸음을 치는 것입니까?”

장태는 태정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적당한 장소를 다시 물색하는 것이 어때? 이런 곳에서 만에 하나 나와 강 검사님을 친다고 하여도,


무사히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야. 그러니 제대로 된 장소를 선택해. 그곳으로 함께 가주겠다.”
“오호. 역시 보통은 아닙니다. 청와대 경호실을 그냥 들어간 것은 아니었군요. 그런 모습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난 여기서 일을 해결하고 싶군요.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난 주변 상황을 절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이면 보이는 대로 일을 마무리하면 끝입니다. 그 후는 뭐 알아서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장태는 두 주먹을 서서히 쥐기 시작한 뒤, 태정민의 앞을 더 다가섰고, 곧 주차장에서 온 사내들도 두


사람을 에워싸듯 주변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애애애앵!’
“…….”

막 움직이려 할 참이었다. 그 순간 주차장을 돌아 들어서던 경찰차가 사이렌을 짧게 울렸고, 그 소리에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뛰십시오.”

태정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강서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강서진은 태정민의 손을 꽉
잡은 채,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이내 두 사람은 경찰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이없군…….”

장태는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며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곧 두 사람을 에워싸려던 사내들에게
수신호를 보내 뒤로 물러나도록 하였다.
강서진은 경찰차에 다다르자, 자신의 신분증을 보이며 장태를 향해 가리켰다. 그러자 경찰차에서 세 명의
경찰이 내렸고, 그 중 두 명이 장태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두 분께서는 이곳에 계십시오.”

남은 한 경찰이 두 사람에게 말한 뒤, 곧 무전으로 관할 경찰서에 지금의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잠시 협조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찰관 두 명이 장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장태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신분증 좀 제시해 주십시오.”


“신분증을 분실하여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장태는 경찰관의 물음에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였고, 곧 시선을 다시 저 뒤로 서 있는 태정민과 강서진에게


돌렸다.

“현장에서 신고가 바로 들어왔기에 확인을 해야 하니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뭐. 대한민국 법이 그렇다면야 보여드려야죠. 한데 말입니다…….”

장태가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려는 행동을 하며 말하다말고 동작을 멈춘 뒤, 말도 멈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표정이 날카롭게 변하여 두 명의 경찰관을 보았다.

‘스윽 스윽’
“!!!”

순식간이었다. 장태는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이 아닌, 아주 작고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두 명의 경찰관


목을 그대로 스쳐지나갔고, 그 순간 남은 경찰관이 가스총을 꺼내 들었지만, 태정민이 그의 손을 잡은 뒤,
매서운 눈빛으로 장태를 향해 보았다.

“지금 바로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저놈들에게 가스총은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서둘러 벗어나서 지원을
요청해야 하니 서둘러 주십시오.”

경찰관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들고 있던 가스총을 든 손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습니다, 타시죠.”

경찰관이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말하였다. 두 명의 동료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만, 그 동료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 물러나는 것이었다.
모두가 비겁하다 말할 수 있지만, 그의 행동이 오히려 더 옳은 행동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경찰이 죽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거렸다.

“어서 벗어나야 합니다.”

경찰관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사님은 경찰과 함께 벗어나십시오. 전 저놈이 누군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정민은 강서진만 차에 태웠다. 하지만 강서진이 곱게 혼자 그곳을 벗어날 인물은 아니
었다.

‘애애애앵!’

장태가 두 명의 경찰관을 죽이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백태의 부하들이 태정민을 향해
다가서고 있을 때, 또 다른 경찰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한,두대가 아닌 다섯 대의 경찰차가 한꺼번에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빠르네. 서울보다 훨씬 더 완벽한 치안을 보이고 있군.”

불과 5 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차가 더 들어서는 것을 보며 장태가 말했다.


태정민을 향해 다가서던 사내들이 경찰차가 더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장태에게 시선을 돌리자, 장태는 모두
물러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장태는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서 태정민을 보고 있었고, 이내 미소를 지은 뒤, 태정민에게 손을 쭉 뻗어
주먹을 꽉 쥐는 행동을 하였다.
그리고 몸을 서서히 돌려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지원 온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장태를 잡을 수 없었다.

“제길…….”

태정민은 두 손만 꽉 쥔 채 표정을 구겼다. 상대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죄 없는 경찰관 두


명의 목숨만 그에게 내준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경찰서로 가서 저놈들을 확인해야겠습니다.”

태정민의 시선은 여전히 매서웠고, 곧 지원 온 경찰들이 인근을 수색하기 시작할 때,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경찰차를 타고 관할 경찰서로 향하였다.

“경찰서? 무슨 일로 경찰서를 간 건가?”

관할 경찰서에 도착한 후,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현장에 CCTV 가 있을 것이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에게 보내. 그리고 오늘 오전, 경찰청장이 체포된 것을
강서진에게 알려주고, 경찰들의 지원이 앞으로 제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해줘.”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만약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경찰청장의 지시로


인하여 경찰들은 이들에게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청장이 체포되면서 모든 경찰병력의 지휘권이 당분간 1 차장에게 이임되었고, 그는
다행히도 국정원장과 친분이 있으며, 과거에 국정원장과 함께 이 조직을 잡고자 나섰던 인물이었다.

관할 경찰서에는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경찰병력을 증원하여 장태를 잡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도,


추선우와 지현을 찾는데도 협조하기로 하며,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경찰이 붙었다? 일단 몸을 숨겨라.”

장태는 현장을 벗어난 후, 곧바로 백태에게 연락하여 조금 전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백태는 장태의
성격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일이 더 복잡하게 된 것이지만, 그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비록 자신보다 아래의 사람이지만, 결국은 이수호의 사람이기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그였다.
의외의 일로 인하여 경찰의 협조가 이루어지면서 영월의 주변 수색이 수월하게 되었다.

“시내에 다녀와야 하는데,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편. 펜션에서는 저녁때 먹을 찬거리를 준비하고자 펜션 여주인이 시내를 나가려 하면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럴까요? 영월까지 왔는데,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네요.”

아주머니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함께 나갈 준비를 하였다.

“엄마. 어디가?”

곧 은주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엄마, 제정신이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잘 못하면 이곳마저 들통 난다고. 그럼 어디로 갈


거야? 갈 때있어?”

은주의 말에 아주머니는 그녀를 무표정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실수한 모양이네요. 괜한 말을 꺼내서…….”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도 잘 못하신 것 없습니다. 함께 다녀오세요. 아니…….우리도 함께 나갈까요?”

은주의 말에 펜션 여주인이 당황하며 말하자, 곧 추선우가 지현과 함께 손을 잡고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너도 제정신이 아니야! 지금 상황이…….”


“그래. 지금상황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야. 하지만 아주머니의 마음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추선우의 말에 은주는 매서운 눈빛으로 추선우를 본 뒤, 아무런 말없이 그냥 방으로 들어섰다.

“다녀오세요. 은주의 곁에 제가 있을게요.”

미희가 말한 뒤, 은주가 들어선 방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 함께 가요.”

지현이 아주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굳은 표정으로 있던 아주머니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지현을 보았다.

“그래. 아주머니하고 다녀오자.”

추선우는 이곳에도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은주와 미희를 제외하고 네 사람은 펜션 여주인의 차를 타고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차량이 일반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그 뒤로 경찰차가 펜션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서고
있었다.

“역시 강원도라 공기도 좋네.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아주머니는 차창을 열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추선우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잘 살고 있는 한 가정을 힘든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으니, 미안함이 없을 수 없을 것이었다.
“누님 계세요?”

곧 펜션으로 들어섰던 경찰차에서 경찰관이 내리며 펜션 여주인을 찾는 듯 말했다.


경찰관의 목소리에 방안에 있던 미희가 나와 펜션 앞을 보았다.

“은주야…….경찰이 왔는데.”
“경찰?”

미희의 말에 은주는 놀란 눈을 한 채, 방에서 나와 문 앞을 보았다.


두 명의 경찰관이었고, 그들의 손에는 사진으로 보이는 종이가 들려있었다.

“어떡할까? 경찰이니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은주는 미희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였다. 경찰이라고 모두가 자신들을 돕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누님. 안계세요?”

경찰관이 다시 여인을 불렀다. 그리고 누님이라는 말에 이곳 펜션 여주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0017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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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곳에 여행 온 거야. 알았지?”

일단 그들을 만나려는 은주였다. 그리고 미희와 함께 미리 말을 맞춘 뒤, 펜션 현관문을 열었다.

“누님…….어? 아니네. 죄송합니다. 혹시 펜션 주인께서 어디 가셨습니까?”


“잘 모르겠네요. 친구와 방에서 잠을 자다 이제 일어나서요.”

경찰관의 물음에 은주는 눈을 비비며 답했다.

“손님이세요?”
“네. 어제 왔는데요.”
“아. 그러셨구나.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해요. 연락처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데 어찌들 알고 다들
찾아오시는지 말이에요.”

경찰관은 은주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은주의 시선은 그가 들고 있는 사진으로 향했다.

‘!!!’

은주의 눈이 사진에 머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날 뻔하였다. 경찰관이 들고


있는 사진에는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있었다.

“아 참. 혹시 이런 사람들 보셨나요?”

경찰관은 자신의 손에 들린 사진을 은주에게 보여주었다.

“아니요. 우린 어제 이곳에 와서 잘 모르겠네요.”

은주는 어색함을 보이지 않으려 최대한 평범한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빨리 찾아야하는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원…….일단 알겠습니다. 혹시 주인이 오면 박순경이 다녀갔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경찰관이 돌아가자마자, 문을 닫은 후, 경찰차가 나가는 것을 보기 위하여 펜션 2 층으로 올라가 길을


향해 보았다.
경찰차는 펜션을 벗어난 후, 멈추지 않은 채, 곧바로 도로로 진입하여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큰일이야. 이곳 경찰들이 선우와 지현을 찾고 있어. 어떡하지. 지금 시내에 나갔는데, 시내에게


경찰들이 있을 것 아냐.”

은주는 안절부절못하였다. 어제 그녀는 지용석을 차를 끌고 시내를 지나 고씨동굴 주차장까지 갔었다.


가는 길에 대충 시내까지의 거리도 확인하였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에 걸어서 시내까지 나갈
수도 없었다.

“전화라도 좀 있던가.”

휴대전화가 없는 것이 이리 답답함을 느낄지 몰랐었다.

“영월시내에요. 이곳 닭강정이 참 맛있는데, 들어갈 때 사들고 들어가요.”

한 편. 아주머니와 추선우는 영월시장에 도착하였다. 펜션 여주인은 시장의 명물이라며 닭강정을


추천하였고, 지현이 그녀의 말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우리 지현이가 닭강정이 먹고 싶나보구나. 일단 장보고 들어갈 때 사들고 들어가서 먹자.”


“네.”

아주머니의 말에 지현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추선우의 손을 꼭 잡은 채, 영월시장을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지현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대사의 딸로 태어나 항상 좋은 것만 보고 먹었으며,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그녀에게 한국적 풍경은 다소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고, 또 웃음이 절로 나는 먹거리들이 많아서
그녀에게는 별천지와 같았다.

“지현이 신발 끈이 풀렸네.”

시장을 돌아보다 추선우가 지현을 내려 볼 때, 그녀의 신발 끈이 풀려있었다. 추선우는 지현을 세워두고


몸을 낮추어 신발 끈을 묶기 시작하였고, 지현도 머리를 낮추어 자신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추선우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뭐냐 그…….지현인가 하는 꼬마와 추선우라는 사람을 왜 여기서 찾는 거야? 서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

그 순간 추선우와 지현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리는 듯 하였다. 두 사람의 이름이 영월에서 불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찰관들은 서로 수다를 떨며 몸을 낮추고 있는 추선우의 옆을 지나쳐갔고, 곧 그들이 다 지나간 후에
추선우가 몸을 일으킨 뒤, 지현을 안아 올렸다.

“삼촌.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추선우는 급했다. 그는 아직 경찰청장이 체포된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지금의 경찰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는 그 조직의 명령에 의해 청장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를 찾아야겠다. 서둘러 돌아가야겠어.”

추선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주머니를 찾았다. 하지만 그리 넓지 않은 시장 안에서 아주머니와 펜션


여주인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삼촌. 경찰이 또 와.”

추선우의 뒤로 경찰이 다가오자, 그에게 안겨있는 지현이 추선우에게 알렸다.


추선우는 어쩔 수 없이 시장을 벗어나야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곧 장 지현을
안은 채, 시장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저기…….거기요!”

하지만 두 사람의 움직임은 또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던 두 명의 경찰관에게 보였고, 해당 경찰관이


목소리를 높여 불렀지만, 추선우는 지현을 안은 채, 그 길로 곧바로 뛰기 시작하였다.

-영월시장입니다. 추선우와 이지현으로 보이는 사람이 목격되었습니다. 지금 두 팀이 쫒고 있습니다.-

경찰관은 그 즉시 관할경찰서에 보고하였다.

“!!!”

그리고 해당 경찰관의 보고를 들은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곧 펜션 여주인이 그녀를
부축하여 차로 이동하였다.

“여기 잠시만 계십시오.”

펜션 여주인은 아주머니를 차에 앉혀놓고 급히 움직이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보게, 무슨 일인가?”
“아. 누님. 지금은 제가 좀 바빠요. 그러니 나중에 들릴게요.”

한 경찰관을 잡아 물어보려 하였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이동하기만 바빠 보였다.

“영월시장이랍니다. 지금 바로 가보시겠습니까?”

경찰서로 들어온 정보는 곧장 태정민과 강서진이 타고 움직이는 경찰차량에 전달되었고, 운전하던


경찰관이 물었다.

“서둘러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애애애앵!’

강서진이 답하자, 경찰관은 사이렌을 울리며 영월시내를 지나쳐 시장 쪽으로 움직였다.


곧 시장에 도착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경찰들마저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시내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차량으로, 또 두 발로 그를 쫒고 있는데, 아이를 안고 뛰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경찰관은 그를 쫒고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해당 경찰관의 말에 강서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사람들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돕도록 하는 것이니 위협적인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마십시오!”

해동 경찰관의 말에 강서진이 목청을 높여 말하자, 경찰관은 곧바로 사과하였다.


비록 자신들의 직속 검사는 아니지만, 서울검찰청소속 검사의 말이니 무조건 따라야 할 상황이었다.

“다시 시내로 가겠습니다.”

강서진과 태정민은 추선우의 이동방향에 맞춰 다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탄 경찰차가


시장의 주차장 앞부분을 지나칠 때, 그 바로 앞에는 아주머니가 탄 차량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아주머니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는 바람에 조금 전 바로 앞에서 지나쳐간 경찰차에 태정민과
강서진이 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만약 아주머니가 두 사람을 보았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추선우를 돕고자 하는 일이라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또 한 태정민과 강서진이 그녀를 보았다면, 굳이 추선우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 어떤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저 서로가 탄 차량만이 바로 앞에서 지나쳐갈 뿐이었다.

“지현아 괜찮아?”
“응. 삼촌. 그런데 삼촌이 힘든 것 같아.”
“이 길 끝부분을 지나치면서 몸을 숨기자.”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하여도 열 살의 여자아이를 안고 계속하여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경찰차와


경찰관의 어느 정도 따돌린 상황에서 길의 끝부분을 돌아 휴식을 취하려 하였다.

‘탁!’

추선우는 골목으로 들어서며 몸을 바로 숨겼고, 잠시 후, 그 앞으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쳐갔다.

“도시에 경찰차가 아예 도로를 다 덮어버릴 정도입니다.”

한 편. 아직도 숙소에서 절대 나서지 않고 있던 백태에게 부하가 다가서며 말했다. 이미 백태의 눈과


귀에도 경찰차와 사이렌소리가 보이며 들려왔다.

“장태가 만든 일이 아주 크게 벌어지고 말았구나.”

백태는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장태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었다. 장태가 주차장에서 경찰관을 죽이지만
안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잠잠할 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백태는 부하에게 명령내린 뒤, 곧바로 장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네. 회장님.-
“이곳에서는 안 되겠네. 그만 서울로 돌아가게나. 이쪽 영월의 일은 내가 정리하고 올라가겠네.”

백태는 장태를 서울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미 그를 잡고자 깔린 경찰들로 인하여, 지금 이 순간


추선우와 지현을 본다고 하여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보였다.

-큰 회장님께서 저에게 내린 임무입니다. 절대 회장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명령에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명령은 제가 따를 수 없습니다. 이미 큰 회장님께 저에게 내려주신 임무가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태는 장태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구겼다. 필시 자신의 명령을 이행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이수호의
명령을 다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응?”

조금 전 백태와 전화통화를 마친 장태는 영월 시내 외곽부분에 차를 주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월시내에게 선돌바위 부분으로 지현을 안고 달려가는 추선우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추선우…….”

장태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장 차를 이동시켜 그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젠장! 눈앞에서 놓쳤다는 것이 말이 되요!”

수십 명의 경찰이 추선우를 쫒았다. 그것도 지현을 안고 있는 추선우를 쫒고 있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놓쳤고, 그로인하여 강서진의 날카로운 음성이 경찰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일단 인근에 있는 것은 확실하니 더 찾아보겠습니다.”

태정민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관할경찰서 팀장도 서둘러 형사들을 출동시켜 인근을
수색토록 명령 내렸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아주머니는 여전히 영월시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자신이 괜한 말을 꺼내는 바람에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녀였다.

“일단 펜션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곧 펜션 여주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돌아가요? 선우와 지현을 두고요?”

아주머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을 두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경찰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잠시 후에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서 기다리면 답이 올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답답했다. 집에 가서 기다린다고 그 답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 줄 답은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경찰들이 찾는 이유라면 도움이 되는 이유 아닙니까?”

펜션 여주인이 물었다. 그녀는 지난밤에 지금의 모든 일을 다 들었다. 그래서 경찰이라면 오히려


그들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하여 물었다.

“아니에요.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게 어찌 된 것이 경찰이고 뭐고,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니까요.”

아주머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문득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놀란


눈으로 서둘러 그녀의 차량에 올라탔다.

0017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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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러세요?”
“아니에요. 서둘러 돌아가요.”

펜션 여주인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을 두고 가는 것에


노발대발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여 서둘러 가자고 하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놈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내 얼굴도 알고 있을 텐데…….’

그녀가 서둘러 돌아가려는 이유였다. 그녀는 지난 날 성남펜션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곳을 벗어나면서 날아오는 총알로 인하여 주저앉아 한 참을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갑자기 몸을 떨며 안절부절 못하자, 펜션 주인은 서둘러 영월시장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주변을 샅샅이 뒤질 것입니다. 추선우씨와 지현이 도보로 이동 중이니 인근에 몸을 숨기기는 용이하나,
멀리 가지 못하도록 봉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 편. 형사과장이 직접 형사들과 경찰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 내용을 강서진과 태정


민에게 알리고 있었다.

‘띠리리리’

보고 내용을 들은 후,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떻게 됐어?-

설장호였다.

“일단 이곳에 있다는 것은 확인하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경찰들이 동원되어 찾고
있습니다.”
-그들보다 앞서야한다. 명심해라 추선우는 부상 중이다. 그리고 너와 강서진을 공격하려던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공원 주차장 한 복판에서 경찰을 죽일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니다. 그러니 서둘러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이 직접 영월까지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백태가 남긴 수많은 자료들을
모두 검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자리에 앉은 놈을 추리해 내고, 그 놈의 목을 치는 것을
진행코자 하였다.

“서둘겠습니다. 모두 움직여 주십시오.”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태정민이 형사들에게 다시 당부하였고, 형사들과 경찰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시죠.”

강서진에게도 말했다. 그녀는 추선우가 지금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곳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더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주 좋군.”

같은 시각. 추선우는 선돌 주변으로 이동하였고, 그를 따라오던 장태가 곧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변 한쪽으로 차량을 세운 후,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자신의 뒤로 장태가 따라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장태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그였다.
“삼촌. 힘들지 않아?”
“괜찮아. 조금만 더 가자.”

지현이 물었다. 영월시장에서부터, 줄 곧 자신을 안고 움직이는 그가 얼마나 힘들지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을 내려놓지 않은 그였다.
추선우는 이동 중에 계속하여 뒤를 보았다. 꽤 많이 걸었고, 꽤 멀리 이동한 상태라 잠시의 휴식은 허락
될 것 같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체력이 엄청나군.”

장태는 그의 뒤를 계속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어느새 1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절대 자신의 품에 안긴 지현을 내려놓지 않는 것에 놀란 그였다.

“지금 녀석을 치면 두 팔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아 쉽게 제압할 수 있겠군. 다행히 인근에 사람도 많이


없고 말이야.”

장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돌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았지만, 대부분이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두 사람 외에는 걷는 사람이 없었다.

“추선우!”
“!!!”

결국 장태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큰 목소리 추선우의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추선우와 지현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추선우는 자신과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뒤에서 걸어오며 손을 흔들고 있는 장태를 보았다.
범상치 않은 외모이며,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역시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삼촌…….”

지현은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가 되었다. 추선우를 만나 그의 품에 안겨 도망치던 그 때가 떠오른


지현이었다.

“지현아. 삼촌 품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추선우는 지현을 자신의 품으로 더 꽉 끌어안으며 말한 뒤, 서서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하하하! 열 살의 아이를 안고 그리 뛰면 지친다!”

장태는 웃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추선우의 움직임은 장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달랐다.
그는 열 살의 여자아이를 안고, 오르막길을 마치 100 미터 전력질주를 하는 듯 달리기 시작하였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장태는 생각을 고쳐하며 자신도 뛰기 시작하였다. 비록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맨 몸으로 뛰는 자신이
금방 추선우를 따라 잡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쪽으로 가면 선돌이라는 관광명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쫒기는 입장에서 굳이 관광명소를 갈 필요가…


….”
“제가 분명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쫒는 것이 아니라,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계속 범인을 쫒는
것처럼 말하나요!”
형사과장의 말에 강서진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는 강서진이 이미 몇 번이나 한 말이지만,
경찰들의 습관상 범인을 쫒는 것에 더 가깝기에 그런 말이 쉽게 나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형사과장은 그녀에게 고개 숙여 답하였다.

“선돌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네? 관광지를 향해…….”
“추선우씨가 이곳으로 가면 선돌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갈 까요? 전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선돌방향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쫒아오는 경찰들을 피하기 위하여 어느 한 방향을 잡아 뛰고만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서진의 말을 들은 형사과장은 곧 선돌방향으로 방향을 잡아 움직였다.


달리는 차량에서 강서진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바람처럼 자신의 마음은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뛰어라, 충분히 너의 체력에 감탄하고 있다.”

장태는 추선우를 거의 따라 잡았다. 불과 10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의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추선우도 더 이상의 뜀박질은 체력낭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추선우가 멈췄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장태도 멈췄다.

“넌 대단하다. 단지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직접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과히 평범함을 넘어선


인간이군.”

장태는 의외로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목표가 나라면 아이는 보내주자.”


“목표? 애석하게도 둘 다 목표야. 너의 목과 저 아이의 목.”

장태의 입에서 들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을 감지한 추선우는 그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지현의 귀를


막아주었다.

곧 추선우는 지현을 내려놓았다.

“팔이 잘 움직이지 않을 테니 시간을 주겠다. 팔을 풀고, 몸도 풀어라. 영상에서 보았


던 것처럼 화려한 너의 움직임을 경험하고 싶다.”

장태는 여유가 있었다. 이미 주차장에서 태정민과 강서진의 앞에서 보여준 여유가 경찰을 죽이고 난
뒤에도 느긋했던 여유. 그는 여느 킬러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하지만 너를 이곳에서 만났고, 또 나 혼자서 만난 상황이니, 너의 말대로 아이는 보내주겠다.”

장태는 길을 열어주며 말했다.

“원래는 회장님께서 너희 둘의 목을 원하셨지만, 난 사실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다른 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아이는 보내라.”

의외였다. 장태는 길을 완벽하게 열어주며 다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지현아, 이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면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을 거야. 그곳으로 가서 경찰서가 어딘지


물어보고 경찰서에 가 있어. 삼촌이 곧 따라갈게.”
추선우는 지현과 눈높이를 맞춰 앉으며 말했다. 지현은 또 다시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붙어 있으려하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곁에 있으면 추선우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현아 미안해. 삼촌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말했는데…….”


“삼촌. 언제나처럼…….다시 올 거지?”

지현의 말에 추선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거렸다. 지현은 지금까지 항상 이런 생각만으로 지내왔을 것이라


여겼다. 부모님을 떠나보냈으니, 다시 올 수 있는 사람을 매일같이 기다렸을 것이었다.

추선우는 지현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지현도 선우를 안아주었다.

“약속은 약속이다. 아이는 손대지 않을 테니 마음 놓고 내려 보내라.”

추선우는 그를 보았다.

“기다려라. 서로 믿을만한 친분이 없으니, 아이를 차선 반대편으로 해서 보내겠다. 그러니 넌 절대


차선을 건너지 마라.”
“뭐. 네 놈만 여기 남는다면야…….좋을 대로 해도 된다.”

추선우는 장태의 말을 들은 후, 지나다니는 차량이 없을 때 지현을 안고 차도로 반대방향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녀를 내려놓았다.

“지현아. 이 길로 곧장 내려가. 그리고 내가 한 말대로 해 알았지? 삼촌이 곧 갈 거야.”

추선우는 다시 지현을 안아주었고, 그녀를 내려가도록 하였다.


지현은 의외로 담담하게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대 그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떨어져야만 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열 살의
여자아이였다.
추선우는 장태와의 약속대로 다시 차선을 건너왔다. 그리고 장태와 마주하여 섰다.

“몸은 풀렸나?”
“언제나 준비된 상태다. 네가 준비되었다면 시작하지.”

장태의 체격은 추선우보다 컸다. 그리고 그는 이수호가 아끼는 네 명의 경호원 중 한 명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곁에 둘 정도이니, 장태의 실력은 보지 않아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선돌까지 가실 것입니까?”

차량은 선돌을 향해 더 올라가고 있었고, 형사과장이 다시 물었다.

“그만…….내려갈까요?”

태정민이 강서진을 보며 물었다. 꽤 많은 거리를 올라오는 동안 그를 보지 못했으니, 서둘러 다른 길을


찾아보려는 의도였다.

강서진은 망설였다. 조금 더 갈 것인지, 아니면 차를 돌려 다른 길을 확인할 것인지를 두고 망설였다.

“검사님.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차량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돌리


겠습니다.”
아무런 답이 없던 그녀에게 형사과장이 말했고, 강서진은 주변을 다시 둘러본 후,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0017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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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은 다시 길을 내려오고 있었고, 반대로 강서진과 태정민은 그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간격은 약 5 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형사과장이 말한 차를 돌릴 수 있는 공터까지 지현이 도착하기에는 아직 백여 미터 이상 남은
상태지만, 차를 끌고 이동하는 이들에게 4 백 미터는 금방이었다.

곧 차량은 유턴지역에 도착하였고, 형사과장은 차를 돌렸다. 강서진은 돌아가는 차를 따라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다시 보았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지현의 모습은 굽이진 길의 모서리 부분에서 보이지 않고 있었다.


차량은 돌아섰다. 그리고 지현은 그 때서야 모서리 부분을 지나치며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라도 강서진이 시선을 돌린다면 그녀를 볼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체념한 듯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가만히 있었다.

“추선우!”
“!!!”

그 순간. 장태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길을 따라 내려오던 지현이 그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강서진의 귀에도 정확하게 추선우라는 세 글자가 귀에 들어왔다.

“지금. 지금 듣지 못했어?”
“네? 무슨 소리를요?”

하지만 강서진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장태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차 좀 돌려주세요. 더 올라가봐야겠습니다.”

강서진의 말에 형사과장이 당황했지만, 태정민이 재차 부탁하였고, 형사과장은 다시 적당한 위치에서


차를 돌려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지현도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장태의 큰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음성처럼 들려온 그녀였다.
지현은 아래로 내려가던 발길을 돌려 위로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고, 그 뒤로 강서진의 차량이 올라오고
있었다.

“넌. 대단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놈보다 대단하다.”

같은 시각. 추선우와 장태는 길가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터를 잡은 후,


화려한 몸놀림으로 서로의 힘이 격돌하고 있었다.
장태는 이수호를 측근에서 경호하는 것만큼 자신의 힘은 그 어떤 곳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퍽!’
‘퍽!’

장태가 먼저 추선우의 얼굴을 가격하였고, 추선우는 그의 주먹을 맞은 후 뒤로 밀려나면서 발을 뻗어 그의


복부를 가격하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타격을 입고 뒤로 물러나며 넘어졌지만, 이내 곧바로 일어나 다시 서로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았다.
“잠시만요! 저기!”

다시 차를 돌려 올라오던 중, 길 한쪽으로 걸어가는 지현의 뒷모습을 본 강서진이 소리쳤고, 형사과장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저기. 지현이 아니야?”

강서진이 앞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태정민이 앞을 보았다.

“지현입니다.”

그 순간 강서진이 차에서 내려 곧바로 지현에게 달려갔고, 태정민고 차에서 내려 움직였다.

“지현아!”
“?”

강서진의 목소리에 위로 올라가던 지현이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고 참고 있었던


눈물이 한 번에 쏟아지는 듯,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삼촌은? 삼촌은 어디 갔어?”


“저기 위에요. 무서운 아저씨가 다가와서 삼촌을 데리고 갔어요.”
“!!!”

태정민은 지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강서진은 지현을 안은 뒤, 형사과장을 향해


손을 흔들어 차량을 이동시켰다.

“이 차에 타고 있어.”

강서진은 지현을 차에 태워준 뒤, 형사과장에게 지현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녀도 태정민이 움직였던
곳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선돌 부근이다! 모두 이곳으로 출동하기 바란다.”

형사과장은 그 즉시 지원요청을 하였다. 영월시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들이 일제히 선돌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강서진은 지현이 알려준 곳까지 온 후,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태정민도 주변을 둘러보며 추선우를 불렀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제길…….어디에 있는 거야.”

인근까지는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추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넌 아래로 내려가 봐. 난 선돌방향으로 더 올라갈게.”


“네.”

곧 강서진이 도착하여 서로 지역을 나누어 확인할 것을 말했다. 태정민은 곧바로 길 외곽으로 움직여 산
길 아래쪽을 보았다.
가파른 절벽과도 같은 곳이 많았지만, 의외로 평평한 곳도 꽤 있어 보였다.
“내려가 보자.”

주변 시선을 피해 서로 죽일 듯이 싸울만한 곳으로는 길 외곽으로 가파른 산길 이 제격이었다.


태정민은 주변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계속 위로 올라
선돌방향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퍽!’
‘퍽!’

한 편. 두 사람의 힘은 거의 비등하다고 할 정도로 한 번 공격을 허용하면 연이어 곧바로 한 번의 공격을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백태 회장님이 너를 왜그토록 찾아다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백태?”

추선우는 그의 입에서 백태의 이름이 나오자 눈매를 매섭게 뜨며 되물었다.


백태와는 이미 한 번의 조우가 있었기에 그를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미희를 인질로 잡았던 놈이기에
꼭 한 번은 다시 만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백태가 너를 보낸 것인가?”
“나를 보낸 사람은 따로 있지.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백태회장님이다. 얼핏
듣자하니 너와도 인연이 있다고 하던데…….”

장태는 꽉 쥐었던 두 주먹을 풀어 흔들며 손에 묻어난 땀을 닦은 후, 다시 주먹을 쥐고 추선우를 보았다.

“백태는 어디에 있나?”


“어딘가에서 너의 목을 기다리고 계시겠지. 그러니 순순히 너의 목만 나에게 넘겨라. 그럼 지현인가 하는
여자아이의 목은 내가 관심가지지 않겠다.”

장태는 이미 지현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직접 본 인물이었다. 아니 백태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추선우와


지현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자신 혼자 추선우를 잡아 이수호에게도 인정을
받으려는 생각이었다.

“나와는 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난 너에 대해서, 그리고 그 여자아이에 대해서 알게 된 시기가 고작


3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마라.”

장태는 다시 주먹을 꽉 쥐며 추선우를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바로 내 질렀고,


추선우는 그의 주먹을 보며 뒤로 한 발 물러났지만, 이내 그의 뒤돌려 차기가 정확하고 빠르게 회전되며
들어오는 것을 추선우는 피하지 못하였다.

‘퍽!’
“이번엔 제대로지 않은가?”

정확하게 안면을 내 주었다. 그의 발차기는 아주 묵직했으며, 추선우의 몸이 약간 뜬 채 옆으로 돌아


넘어질 정도였다.
장태는 쓰러진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입가에 묻어난 피를 닦으며 다시 일어섰다.

“다시 와 봐.”
“응? 지금 뭐라고 했나? 다시 오라는 말은…….조금 전에 있었던 내 공격이 쓸모없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란 말인데…….”
“잘 알고 있다면 다시 해 봐. 정확하고 묵직하게, 단 한 방에 나를 보내버릴 정도로 강하게 해봐.”

장태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꽉 쥐었던 두 손을 더욱 더 꽉 쥐며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모두 이곳을 철저하게 수색한다.”

한 편. 형사과장의 연락으로 인근 경찰서의 경찰병력과 형사들이 대거 출동하여 인근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지현은 형사과장의 차 안에서 외부를 보고만 있었다. 그 누구보다 더 직접 나가서 추선우를 찾고 싶은
사람이 지현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추선우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경찰서로 찾아가 경찰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경찰들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말을 하였었다.
지현은 지금 그 말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 외부로 나갔을 때,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사람에 의해 화를 입게 되면 지금까지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띠리리리’

열심히 추선우를 찾고 있던 태정민의 전화기가 울었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추선우는 찾았어? 지현은?-


“일단 지현은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추선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현을 확보했는데 추선우가 없다니? 그럼 지현과 추선우가 떨어져 있었단 말이야?“

태정민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설장호의 말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이곳 경찰들과 합류하여 추선우를 찾고, 또 오늘 아침에 저와 강 검사를 협박했던 놈이 누구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놈인지도 다 확인하겠습니다.”
-서둘러라. 추선우가 지현을 떨어뜨려 놓았다면 필시 그에게 위험이 붙었다는 말과 같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와 통화를 끝낸 후, 더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한 편, 강서진은 선돌까지 와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추선우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 멍하니 선 채 중얼거렸고, 곧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듯 하였다.
선돌 일대에는 때 아닌 경찰들의 출동으로 인하여 주변을 관광 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리둥절해 있었다.
마치 간첩이나,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는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탁! 퍽퍽퍽!’
“이쯤 되면 그냥 누워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태정민이 아래로 더 내려가고 있지만, 아직 이 두 사람의 움직임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장태의 주먹은 추선우의 얼굴과 복부를 정확하게 강타하면서 추선우의 입 주변에는 꽤 많은 양의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이상하군. 팔에서 왜 피가나는것인가?”

장태는 추선우의 팔을 보며 물었다. 그는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무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피가 날 만한 곳이 아닌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리자 의아하여 물었다.

0017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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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신경 쓸 시간이 있는 것을 보니 나를 이길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뜻이군.”

추선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미 만석이 치료해준 곳의 실밥이 다시 터져버린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상처를 입고 있었었군.”

수만과는 달리, 장태는 추선우의 총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수호를 경호하고 있었을
뿐이기에, 추선우가 병원에서 입은 총상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이정도의 힘을 겨룬다? 이거 네 놈의 상처가 없었다면 내가


오히려 궁지에 몰릴 뻔하였다는 말과 같군.”

장태는 그의 팔뚝에서 점점 더 검붉게 솟아나오는 듯 보이는 피를 보며 말했다.

“나도 그리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 이 팔과 지금의 상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이 팔을 자유자재 사용하고 있었지만 너의 힘을 제대로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러닝 속옷의 끝부분을 잡은 후, 찢은 뒤,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꽉 묶기 시작하였다.

“꼭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고도 전쟁을 마저 끝내려는 영웅처럼 보이잖아.”

장태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자. 다시 해보자.”
“또? 또 다시 오란 말이냐?”

이미 자신의 원, 투 펀치는 물론, 발차기까지 모조리 허용하고서도 허세를 부리는 듯 한 행동을 하는


추선우를 보며 장태의 눈썹이 씰룩거린 채 되 물었다.

“이번엔 제대로 하자. 솜방망이 주먹은 사양하겠다. 그러지 제대로 힘을 실어서 뻗어.”

추선우는 양쪽 어깨를 한 번씩 번갈아가며 주무른 뒤, 손목을 돌렸고, 발목도 돌려본 뒤, 그를 향해


움직이며 말했다.
장태는 자신의 체중을 실어 날린 두 번의 펀치와 한 번의 발차기를 마치 어린아이가 두드리는 정도로
평가한 그의 말에 눈썹을 씰룩거리며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는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슉!’ 탁!‘
‘탁! 퍽퍽퍽퍽!’
“이번엔 내가 제대로 들어간 것 같은데.”

조금 전과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니 영상만을 볼 때는 같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서로


바뀐 순간이었다.
추선우는 그가 뻗은 주먹을 한 손으로 쳐낸 후, 곧바로 자신의 주먹을 뻗었고, 추선우의 주먹을 바로
받아 낸 장태에게 추선우는 몸을 돌리며 다른 한손을 힘차게 휘두른 뒤, 손등으로 장태의 면상을 날렸다.
그리고 그 충격에 뒤로 약간 물러난 그를 보며 곧바로 두 번의 주먹을 더 가격한 뒤, 뒤돌려 차기로 그의
면상을 다시 날리자, 장태가 이번엔 뒤로 밀려나며 넘어졌다.

“하…….하늘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군.”

장태는 드러누운 채, 강원도의 높은 하늘을 바로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상대를 눕혀만 보았지, 내가 이렇게 누워있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 그럼 이번에 새로운 것도 배워보도록 해라. 네 놈이 뻗은 주먹에 쓰러지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놈을 쓰러뜨리는 주먹도 있다는 것을 배워둬.”

추선우는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쓰러진 상대에게 다가가 짓밟으며 마무리를 할 수 있었지만,
추선우는 장태가 이미 자신에게 해 주었던 한 번의 기회를 그대로 다시 돌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꽤 오랫동안 숨어 살아온 우리 조직이었는데, 이번에 그 상대를 제대로 만난 것 같군.”

장태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수호가 이끄는 조직은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하세계를


평정하고, 더 나가 정부위에 군림하는 권력 질을 행하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지금, 그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15 년간 회장 자리를 지키며 왔던 정구석과 최기수, 고민국과 우수광이 죽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며 백태와 석강수가 그 자리를 채웠지만, 15 년이란 세월은 고사하고, 자리를 이어받은 지 단 며칠
만에 목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선우!”
“…….”

두 사람이 다시 마주보고 섰을 때, 태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주시하여 보았다.

“지원군이 온 모양이군. 목소리를 듣자하니 내가 이미 만난 놈 같은데, 그 놈과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그러니 내려오도록 해라.”

장태는 고씨동굴 맞으면 주차장에서 이미 태정민을 만난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두 명의 경찰관을


죽이는 것으로 넘어갔지만, 그 때 해결하지 못한 것을 지금이라도 해결하려는 그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말처럼 자신을 부르는 태정민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고 있었다.

“네가 말하는 조직. 그 조직의 수장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추선우는 장태에게 이수호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넌 민간인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왜 중요하지? 지금은 네가 사는 것이 더 우선이지


않은가? 네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해 주겠다. 여기다!”
“!!!”

추선우가 태정민을 부르지 않자, 결국 장태가 직접 태정민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고 있었다.
태정민은 장태의 목소리를 들은 후, 놀란 눈을 한 채, 아래를 더 보았다. 그러자 약간 평평한 공터에 서
있는 장태의 모습이 보였고, 조금 더 머리를 빼서 보자 그 맞은편으로 추선우가 서 있었다.
태정민은 이미 장태가 어떤 놈인지 경험한 상태라,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괜찮아?”

태정민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지현이…….”


“지현은 강 검사님이 무사히 데리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저 놈부터 박살내고 보자.”

태정민은 추선우가 걱정하는 부분을 말한 뒤, 장태를 향해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는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려하더니, 이제는 두 팔을 걷어붙이며 달려들겠다? 추선우라는 아주


든든한 지원이 곁에 있기에 나오는 자신감인가?”

장태는 그의 행동을 보며 말했다.

“뒤로 빠져 있어. 이놈은 내가 잡지.”

장태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이 인상을 구기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추선우의 팔을 보았다.

“젠장. 그 놈의 팔은 나을만하면 터지고 그러는군.”

태정민은 추선우의 팔에 고이는 피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앞으로 나가 장태와 마주하여 섰다.

“상처 입은 놈과 일전을 벌이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나와 해결하지 못한 일도


마음에 걸릴 것이고, 그러니 나와 한바탕 놀아보자.”

태정민은 장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장태는 그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웃어?”
“그래 웃기는군.”

태정민의 행동을 보며 장태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처럼 해주겠다는 듯, 두


주먹을 앞을 뻗어 태정민을 향해 가리켰다.

“와라. 네 말처럼 상처 입은 놈을 상대하자니 자존심이 구겨졌다. 그러니 멀쩡한 네 놈을 잡고, 다시


저놈을 상대하면 서로 비슷할 것 같으니, 너부터 상대해주겠다.”

장태의 목표가 바뀌었다.

“괜찮겠습니까?”

추선우가 태정민에게 물었다.

“쉬어. 너에게 이런 고생을 주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되도록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지현의 곁으로
가라.”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지 않은 채, 장태만을 노려보며 그의 말에 답했다.

“아래쪽입니다!”

그 순간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들의 시선에도 세 사람이 보였고, 곧 한 경찰이 큰소리로 외치자,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지원군이 꽤 많군. 이렇게 되면 나에게는 승산이 전혀 없겠군.”

장태는 추선우 혼자를 상대하는 것도 벅찼었다. 그런데다 태정민까지 합세하였으니, 그 두 사람만으로


이미 승패는 났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경찰들과 형사들이 모두 내려오기 시작하였고, 순식간에 약 20 명에 이르는
경찰들이 장태를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뭣들해! 저 놈을 잡아!”

곧 형사과장이 형사들에게 소리쳤고, 장태는 자신에게 다가서는 형사들을 하나, 둘 보고 있었다.

“머릿수가 많아도…….”
‘퍽퍽퍽퍽!’
“!!!”

장태는 자신에게 다가서는 형사들을 보며 중얼거린 뒤, 이내 가장 앞쪽에 서 있는 형사의 면상을 먼저


날리며, 이어서 인근에 있는 경찰과 형사들에게 고루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보며 형사과장이 놀란 눈으로 보았고, 곧 형사들을 더 붙였지만, 장태의 강함에 오히려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놈이 없으면, 머릿수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장태의 실력은 생각 외였다. 아무리 작은 소규모 도시의 형사들이라고 하여도, 강력계 형사들은 기본적인
격투 술을 익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마치 초등학생 다루는 듯, 쉽게 다루며 단 한방씩에 눕히는 장태는 곧바로 태정민을 향해
움직였다.

‘탁!’

태정민은 자신에게 휘둘러진 그의 주먹을 두 손으로 막으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고, 곧 장태가 태정민을


향해 노려보았다.

“네가 나서라. 이런 샌드백 따위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저 내 주먹에 맞아 터지는 샌드백일
뿐이다.”

장태는 쓰러진 형사들과 경찰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정말 단 일격으로 모두를


바닥에 뒹굴도록 만들어버렸고, 끝내 태정민에게 다시 주먹을 뻗은 인물이었다.

“손들어!”

하지만 형사과장은 달랐다. 그는 총을 꺼내들어 장태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 못했군.”

장태는 형사과장을 보며 말했다.

“첫 탄은 공포탄일 것이고, 다음 탄알부터는 살을 파고드는 실탄이겠지?”

장태는 형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권총의 탄알배열을 알고 있었다.

‘탕!’
“!!!”

형사과장은 하늘을 향해 첫 공포탄을 소비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인근에 있던 강서진의 귀에 들렸고,


놀란 눈으로 아래를 향해 보았다.

“너의 말이 맞는다면 이제부터는 실탄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형사과장은 다시 총을 그에게 겨누며 물었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해도 총알을 피할 정도로 위인이 아니지.”


장태는 두 손을 천천히 위로 들었다.

0017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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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해! 저 놈을 체포해!”

형사과장은 그에게 겨눈 총을 거두지 않은 채, 쓰러진 형사들에게 소리쳤고, 형사들이 하나, 둘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탁!’
“!!!”

하지만 장태는 그리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체포하고자 다가선 형사의 팔을 잡아 꺾은 뒤,


주차장에서 두 명의 경찰의 목을 그었던 칼을 꺼내 형사의 목에 들이밀었다.

“총알을 피할 수는 없어도, 막을 방법은 많지.”

총을 겨누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안일한 태도로 그에게 다가선 것이 화근이었다.

“이 놈을 살리고 싶다면 뒤로 물러나라. 그리고 이놈이 죽어도 좋다면 나를 쏴라.”


장태는 형사의 목에 칼을 더 들이밀며 말했다. 형사과장은 총을 들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탕! 탕!’
“!!!”

형사과장은 물론, 형사들이 뒤로 천천히 물러날 때, 어디선가 총을 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그리고


장태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형사가 다리에 총을 맞은 뒤, 몸이 내려지자, 두 번째로 발사된 총알은 장태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되었다.
모두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쪽으로 서 권총을 들고 서 있는 강서진이 보였다.

“검사님…….”

태정민은 그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탄을 쏘지 않았던 그녀였다.


강서진은 장태가 쓰러진 것을 보고 곧바로 자신이 총을 쏘았던 형사에게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를 보며 사과하였다. 형사는 총알이 허벅지에 꽂히면서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강서진을 보는 눈빛은 독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형사는 오히려 강서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지난 번, 수만에게 인질로 잡혔던 박태식을


구하고자, 조동민이 그의 팔에 총을 쏘고, 수만을 공격했던 것과 흡사하였다.
그 후에 설장호는 모두에게 조동민과 같은 결단력을 가질 것을 권하였다.
인질을 구하고, 범인을 잡는 것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인질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 말했다.
비단 이 방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질을 구하는 것 중, 가장 높은 성공률을 보인 방법이었다.

형사의 안부를 물은 후, 강서진은 태정민을 지나쳐 추선우의 곁으로 갔다.

“괜찮아요?”
그리고 물었다. 추선우는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괜찮습니다.”

그가 답했다.

“시신을 수습하고! 인근에 이놈의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샅샅이 뒤지고 영월을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 검색을 철저히 하라!”

형사과장은 형사들에게 명령내린 뒤, 강서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찾으시는 분들은 다 찾으신 것입니까?”


“네.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람 외에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물음에 답한 뒤, 죽은 장태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검찰청에서 협조공문을 영월경찰서로 보내왔습니다. 누구를 찾아야하는지 알고


있으니, 일단은 동료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가 계십시오.”

형사과장은 그녀에게 인사한 뒤, 장태의 시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영월관할지역을 검문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지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추선우는 지현의 안전이 궁금하였다.

“삼촌…….삼촌…….”

같은 시각. 지현은 형사과장의 차 안에서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추선우를 부르고 있었다.


형사과장의 차량 주변에는 형사들이 지현을 경호하는 듯 외부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곧 도로
아래에서 추선우와 강서진, 태정민이 그의 차량으로 다가왔다.

“지현아.”

추선우는 차량 문을 열고 지현을 안아 올렸다. 지현은 추선우를 꼭 안았다.

“우선 병원으로 가서 치료부터 해야겠습니다.”

강서진은 지현을 안아 올린 추선우의 팔에서 또 다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과장님. 차량을 좀 빌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형사과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의 차량을 빌린 뒤, 병원으로 급히 향했다.

“병원으로 가지 마시고 제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주세요.”


“안 돼요. 지금…….”
“병원보다 안전한 곳입니다.”

강서진은 그의 상처치료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이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추선우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운전방향을 잡았다.

“아무 일 없겠지?”
한 편. 펜션에서는 아주머니가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은주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 왜 나가자고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냔 말이야!”


은주는 아주머니에게 소리쳤다.

“괜찮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희가 아주머니의 앞으로 앉으며 말했다. 딸에게 큰 소리를 듣고, 우울함이 더 커졌지만, 미희의 말을
들은 후, 그녀는 미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차가 들어오네요.”

펜션 주인이 창밖을 보고 있었고, 곧 펜션으로 들어서는 차량을 보며 말했다.


은주가 가장먼저 창가로 향했고, 곧 아주머니와 미희도 창가로 향하여 들어서는 차량을 보았다.

“처음 보는 차인데.”

펜션 주인도 알지 못하는 차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을 리도 없었다.

‘탁!’

곧 차량 문이 열렸고, 펜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량에 집중되고 있었다.

“내가 나가볼게요. 여기 계세요.”

펜션 주인이 나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누군지 모르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펜션주인이 나선 것이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경치가 참 좋네요. 공기도 아주 맑고요. 그런데 이 펜션은 왜 손님을 따로 받지 않나봅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덩치가 아주 큰 사내 세 명과 호리호리한 키를 가진 한 사내였다. 총 네 명의


사내가 내렸고, 주변을 둘러보며 펜션주인에게 말했다.

“네. 저희 펜션은 편지로만 예약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예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여주인은 그들의 외모가 범상치 않은 것을 알고 서둘러 보내려 하였다.

“우린 그냥 물어 본 것입니다. 워낙 경치가 좋아서 언제나 예약이 가능할까했는데, 편지로만 받는다니 별


수 없군요. 다음에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은 호리호리한 사내의 말을 들은 후,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아. 참참.”

사내가 돌아서서 차에 타기 전, 다시 여주인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지.”

그는 다시 여주인의 곁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혹시. 이 펜션에 예약 받지 않은 손님이 무작정 들어온 적은 없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펜션은 편지로만 예약을 받고, 그 예약자분들만 오셔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미 편지로 예약하고 온 사람이란 말이군요.”
사내는 펜션 안을 정확히 노려보며 말했고, 곧 펜션 안에 있던 아주머니와 은주, 미희가 몸을 뒤로 빼며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물론입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약을 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확인을 해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당신들 경찰이에요?”

사내의 말에 여주인이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과 음성으로 물었다.

“뭐. 경찰은 아닌데, 우리가 꼭 찾아야 할 놈이 있어서 말이에요. 혹시나 그 놈이 여기에 있을까해서
물어보는 건데…….”
“찾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여행 온 사람들은 여자 분만 세 명입니다. 그런 와중에 경찰이
아닌 당신들이 뭔가를 찾는다며 들어서면, 그 분들이 과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주인은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여자 세 명이라고 했습니까?”


“네. 모녀가 여행 온 것입니다.”
“남자는 없습니까?”
“몇 번을 말해요. 모녀가 여행 온 것이고, 남자는 없어요. 이런 와중에 계속하여 당신들이 들어서려고
한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뭐. 그리 할 필요까지는 없고요. 우리가 찾는 사람이 20 대 후반의 사내와 열 살의 여자아이인데…….
혹시 지나가다 그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한 번 주시겠습니까?”

사내는 여주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최대한 태연한 척 자연스럽게 명함을
받은 후, 그들을 향해 다시 보았다.

“여자들만 있다고 하니, 괜한 오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들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빼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가네요.”

펜션 안에서는 그들의 차가 나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곧 펜션 문이 열리며


여주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래요?”

은주가 물었다.

“역시 선우총각과 지현을 찾는 것 같아. 나에게 두 사람을 보게 되면 이쪽으로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주고
갔어.”

은주는 그녀가 보여준 명함을 건네받아 보았다. 이름도 없었고, 그저 연락처 하나만 떡하니 적혀있었다.

“어서 선우를 찾아봐야겠어. 선우를 찾아서…….”

은주가 추선우를 찾고자 밖으로 나서려 할 때, 조금 전에 보았던 네 명의 사내가 걸어서 펜션으로


다가서는 것이 은주의 눈에 보였다.

“문 잠가요!”

순간 은주가 큰소리로 말하였고, 펜션 주인이 놀란 눈으로 몸을 돌려 펜션 입구 문을 잠갔다. 그리고


빠르게 뛰어 펜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의 문을 다 잠그고 있었다.
“이런다고…….저들이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

미희가 거실에 홀로서서 펜션 정문으로 다가선 그들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동작이 바로 멈추었다.

‘와장창!’
“!!!”
"우리가 찾는 사람은 찾는 사람인데…….여자 네 명이 있다고 하니 그냥 가기가 좀 그래서 말이야. “

그들은 이곳에 추선우와 지현이 있다고 여겨서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여자들만 있다는
펜션주인의 말에 안으로 들어서려는 것이었다.

“정말이네. 여자들만 네 명이야.”

덩치 큰 한 사내가 네 명을 고루 보며 말했다.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우리도 네 명인데 그 쪽도 네 명이니 말입니다.”

호리호리한 키의 사내가 정중한 어투로 말하자, 은주가 그를 향해 노려보았다,

“난. 그런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어. 넌 내가 직접 다스려주겠다.”


“그만두지 못해!”

그가 은주에게 다가서려 할 때, 아주머니가 은주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막은 아주머니를 아주 간단하게 밀치며 은주의 앞으로 섰다.

‘짝!’

하지만 은주도 그리 호락호락한 여인은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밀치고, 무례한 행동을 한 그의 뺨을
내리쳤고, 순간 그 안은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하…….이거 기분 더럽네. 어디서 계집이 감히!”


‘턱!’

그는 순식간에 은주의 목을 꽉 잡아 벽으로 밀친 뒤,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0017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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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격이 드러나도록 만들지 마라,”

그는 은주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세 명의 덩치 큰 사내에게 눈 깃을 주자, 그들은


각자 한 여인씩 잡으려 움직였다.

“차가 있네.”

같은 시각. 펜션 입구로 강서진이 운전하는 차가 들어서고 있었고, 처음 보는 차가 펜션을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것에 의아한 눈을 하였지만, 이내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조금 더 빨리 차를 몰고 펜션으로
향하였다.

“지현아. 차에서 나오지 마. 그리고 강 검사님도 안에 계십시오. 안에서 지현을 경호해 주십시오.”

차가 도착하기 전, 추선우가 말했고, 지현은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떼쓴다고 될 일과,
되지 않을 일을 잘 구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강서진의 차가 도착하자마자. 태정민과 추선우가 바로 내렸다.

“제길!”

그리고 태정민의 격한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의 눈에는 이미 박살나버린 펜션의 창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새끼야!”
“!!!”

태정민은 깨진 유리를 더 박살내며 안으로 들어서면서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네 명의 여자를 범하려던


이들의 모든 동작이 다 멈추었다.

“넌 뭐야?”

곧 덩치 큰 사내가 그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방안에는 은주의 비명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너희들 모두 죽는다!”

추선우는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 따위에는 신경도 없었다. 곧바로 덩치 큰 사내에게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를 강타한 뒤, 곧 갈비뼈와 겨드랑이 사이를 주먹을 내리치자, 비곗살로 덮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덩치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자 태정민은 안방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는 은주의 옷을 힘으로
벗기려 애쓰는 호리호리한 키의 사내가 보였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태정민은 그를 향해 바로 달려들었고, 추선우는 아주머니를 일으켜 준 뒤, 곧바로 달려드는 또 하나의


덩치도 아주 간단하게 제압하였다.

두 명의 덩치는 거실에서 각각 아주머니와 펜션주인을 범하려 하였지만, 추선우에게 단 일격에 쓰러졌다.


추선우는 태정민이 들어갔던 방이 아닌 다른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또 다른 덩치가 미희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선우야.”

미희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추선우의 표정은 매섭게 변하였고, 추선우를 본 덩치가 인상을 구기며 그에게
다가섰지만, 그 역시 단 일격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추선우는 구석에 주저 앉아있는 미희를 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보고 있는 미희를 보다, 이내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미안해.”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태정민은
호리호리한 키의 사내를 거의 죽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뒤에야 은주의 만류로 멈추었다.

“괜찮습니까?”

태정민은 그때서야 은주에게 안부를 물었다. 은주는 그의 목소리에 눈에 고인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살며시 안겼다.
태정민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주먹에 맞아 쓰러진 사내를 쏘아보면서 은주를 다독거려 주었다.

‘애애애앵!’
잠시 후 경찰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리고, 형사과장과 함께 몇 형사들이 펜션에 도착하였다.
지현을 지키고 있던 강서진이 형사과장에게 연락하여 그를 부른 것이었다.
형사들이 오면서 펜션 안으로 들어섰던 사내들도 모두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아주 컸다.

네 명의 여인은 태어나 처음으로 무서운 순간을 맞이했었다.

“지금 이시간부로 펜션인근에 경찰병력을 배치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형사과장이 펜션주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무서움이 온몸에 전해져버린 순간이라 그녀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안전한 곳을 찾고자 영월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추적은 끝이 없었다. 단 하루 만에 영월에서
그들에게 발각되었고, 또 다시 피해 다니니만 못한 일이 만들어졌다.
추선우는 아주머니와 은주, 미희를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하여 이어지는 일들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설 실장님께 지금의 상황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지금 바로 헬기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태정민이 펜션 외부에서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또…….어디론가 가야하나요?”

은주가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북정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강서진의 집, 그리고


청와대에서 영월까지 피해왔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다고 여긴 은주였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 어디를 가도 안전하다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닥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오는 헬기는 여러분을 태우고 국정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태정민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헬기가 다시 돌아갈 종착지를 말해주었다.

“국정원은…….안전할까요?”

은주가 물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그녀에게 바로 답을 주지 못했다.


그 어디에도 안전하다 장담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들의 손은 너무나 많이, 길게 뻗어져 있었다.

“그래도 가. 그 어떤 곳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이라면 그곳을 찾아가.”

태정민이 확답을 주지 못한 상황에서 추선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은주는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눈물이
맺혀있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현이도 가. 강 검사님도 가십시오.”

추선우의 목소리가 완전히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지현마저 가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현을 먼저 생각하며, 그녀를 자신의 곁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그의 눈매와 목소리, 차가우면서도 무섭게 들려왔다.

“왜 나까지 가야하는 것입니까? 난 이 일을…….”


“가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위험한 곳을 스스로 찾아들지 마십시오.”

추선우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은주와 미희를 보았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그녀들에게
전해지지만, 결코 표정으로 그 미안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아주머니에게도 정중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은주와 미희가 추선우는 보는 눈빛과 달리,
어머니가 아들을 모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다시 올 거지?”
“그럼요. 돌아가서 밀린 월세 드려야죠.”

아주머니는 추선우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추선우를 안아주었고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현의 앞에 서서 몸을 낮춰 앉았다.

“지현아.”
“…….”

지현은 그의 부름에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보려하지도 않았다.

“삼촌이…….지현이에게 너무 미안해. 지켜주고 싶은데, 너무 위험하네. 그래서 지현이를 더 잘 지켜줄


수 있는 삼촌에게로 보내고 싶어. 삼촌 마음 이해하지?”

지현은 끝까지 추선우의 눈을 보지 않으려 하였다. 추선우는 지현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러자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며 지현은 추선우를 안았다.

“삼촌.”

열 살의 여자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잘 버티고 지내왔다. 그러기에 더 이상


곁에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추선우였다.

“태팀장님은 저와 함께 남아주십시오.”
“네가 가라고해도 가지 않을 참이었다. 어떤 새끼가 이곳까지 와서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지, 그 놈의
얼굴을 내가 꼭 보고 돌아간다.”

추선우는 태정민에게 말했다.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이 일을 중점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은 추선우가 아닌 태정민과 강서진이었다. 하지만 영월에서의 사건 이후, 추선우가 변했다.
그가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지현을 끝까지 쫒고 있는 그들을 찾고, 또 은주와 미희를 욕보이게 하려했던
그들의 수장을 꼭 찾아 그 대가를 지불해주려 하였다.

형사과장은 경찰들을 이끌고 자신이 펜션에 상주하기로 하였다.

이미 이곳에 그들이 왔으니, 또 다시 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헬기가 도착합니다.”

펜션에서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헬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조동민이 직접 헬기에서 내렸다.

“괜찮습니까?”

조동민은 강서진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고, 곧 태정민과 추선우에게 안부를 물었다.

“국정원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서둘겠습니다.”

조동민의 말에 강서진은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안겼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추선우도 당황하였지만, 은주와 미희의 눈빛은 더욱 더 당황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보통 때의 눈빛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미 그는 강서진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추선우가 말한 대로 헬기에는 강서진을 비롯하여 지현과 아주머니, 그리고 은주와 미희가 모두 탑승하였다.
그리고 의외로 조동민은 탑승하지 않은 채, 헬기를 이륙시키려 하였다.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두 사람의 돕고자 하는 마음은 진적에 있었지만, 설 실장님의 명령까지 더해지니 제가 원하는 바가 된


것입니다.”
“네?”
“이곳에…….백태가 있습니다.”
“!!!”

조동민이 헬기를 타고 가지 않은 이유였다. 그리고 백태가 이곳에 있다는 확증이 나온 것이었다. 그 어떤


놈보다 더 만나고 싶고, 꼭 만나야 하는 인물이 백태였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추선우와 태정민의 눈빛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일단 추선우씨는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먼저 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조동민은 달랐다. 상처를 입었다고 휴식이란 특혜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추선우가 원하는
바였다.
경찰들의 도움으로 추선우는 영월의 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치료를 마친 후, 곧 일행과 합류하였다.

그 사이 지현일행을 태운 헬기는 국정원에 도착하였고, 설장호가 직접 마중 나온 후,


그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 어떤 누구도 이 사람들과의 조우는 허락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당부가 아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 아주머니와 은주, 그리고 미희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였다.
일반인에게 이런 고생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사과였다.
설장호의 사과에 그 동안 표정이 굳어있었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조금은 펴지고 있었다.
하지만 펜션에서 겪은 수치로 인하여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설장호는 이들을 범하려던 사내들에게 철퇴를 내릴 것을 검찰청에 직접 부탁하였다.
더군다나 현장에 강서진이 있었으니, 검사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이기에 그들에게 선처란 없을 것이었다.

“지현이도 이분들과 함께 선우삼촌을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

설장호는 표정을 풀고 지현의 앞에 몸을 낮춰 앉은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현은 눈물을 머금은


눈을 흔들며 그의 말에 답했다.

네 사람은 설장호의 보호아래 국정원에서 따로 보호를 받을 예정이었다.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들 외에는
네 사람의 곁으로 일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였다.

0017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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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즉시 폐공장에서 얻은 정보를 분석하고, 각기 해당되는 놈들은 다 잡아들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네 사람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했고, 대원들만을
각기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명령 내렸다.

“장태가 죽었다는 것이 정말인가?”


“네. 회장님. 그리고 서울에서 오던 성수가 괜한 짓을 하는 바람에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괜한 짓이라니?”
“오늘 길에 회장님의 명령으로 주변 펜션을 둘러보다, 여주인이 운영하는 펜션에 세 명의 여인이 여행을
왔는데, 그 집을 덮친 모양입니다.”
“미친놈들…….그런 놈들은 더 이상 내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신경쓰지마라.”
“네. 회장님.”

한 편. 백태는 장태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부하가 영월로 오는 길에 체포된 소식을 접했다. 부하들의
체포에는 당연하다는 듯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장태의 죽음에 대해서는 충격이 큰 편이었다.
이수호를 경호하는 네 명의 경호원이었고, 그 힘은 막강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하니,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가 궁금하였다.

“일단 경찰이 영월을 완전히 뒤지고 있으니, 조심히 움직인다. 만에 하나 그들의 의심을 살 경우. 모든
것은 알아서 처리하라.”
“알겠습니다.”

백태는 장태의 죽음과 함께, 영월 경찰들이 모든 시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월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돌아가도 회장님의 볼 면목은 없다. 여기서 추선우와 지현을 잡지 못한다면, 여기서 죽는다.”

백태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이수호가 다시 준 기회지만, 아직 그 기회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군다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석강수에 비해 자신이 더 많이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수후에게 더 큰 피해만 준 경우였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한 편.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합류한 추선우에게 조동민이 물었다.

“네. 훨씬 좋네요.”
“그래도 조심해야해. 또 터지면 그 상처만 벌써 몇 번째 봉합하는지 원…….”

태정민이 그의 팔을 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죽기야 하겠습니까?”


“과다출혈은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여건이 됩니다.”
“…….”

태정민의 말에 추선우가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을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은 조동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자, 두 사람은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런데 이곳에 백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추선우가 물었다.

“어젯밤. 설 실장님과 함께 안산의 산업단지 안에 있는 폐공장을 급습했는데,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그 놈의 주 목적은 추선우와 이지현. 이 두 사람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여 그
놈과 연관이 있는 놈들을 확인하다, 몇 놈이 영월로 향하는 것을 방법용 CCTV 로 확인했습니다.”
조동민이 이곳에 백태가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 단서를 말해주었다.
“그것만으로 이곳에 백태가 있다는 것은…….”
“백태…….그 놈이 서울에서 탄 차량이 CCTV 에 찍혔고, 그 차량이 톨게이트를 통과한 곳이 영월입니다.”

더 이상 물을 말은 없었다. 처음에 한 말만으로는 백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니, 확신이 선 것이었다.

“일단 그의 차량을 추적하고 있고, 그 놈의 부하였던 이들이 이용한 차량도 모두 추적하고 있으니, 답이
오는 대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조동민은 그 짧은 사이에 많은 준비를 하고 영월로 왔다. 비단 그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설장호가


준비한 것이지만, 그는 직접 움직이며 백태를 잡으려고 하였다.

“네 사람은…….이제 안전하겠죠?”

추선우가 조동민에게 물었다.

“설장호 실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절대 국정원에서 나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나서게 되면 그 네 분도 함께 나서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설 실장님은 그 네 분의 곁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닐 것입니다.”

추선우와 태정민의 표정은 그제야 풀리고 있었다. 어디하나 안전한 곳이 없으니 마음이 편할 날도 없었다.

‘띠리리리’

잠깐의 대화를 마친 후, 곧바로 조동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말해.”
-백태의 차량은 계속 추적중입니다. 그리고 백태의 부하가 탄 차량 중, 두 대가 고씨동굴 앞,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정보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그들의 이동경로를 잘 파악하지 못하여 CCTV 를 잘 활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영월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영월시내를 전부 뒤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보겠습니다. 한 놈씩 잡다보면 백태가 나서겠죠.”

조동민의 말에 곧바로 세 사람은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영월 관할 경찰차량도 움직였다.


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한 후, 해당 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의 차량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선 이 차들을 확인하겠습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조동민이 말했고, 곧 형사와 경찰들이 다가와 문을 강제로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동민과 추선우, 태정민은 조금 뒤로 물러나며 가게 앞으로 자리를 비켜나 있었다.
혹시나 그들이 이 근처에 있고, 다가서다 자신들을 발견하고 뒤로 물러날 것을 생각하여 미리 뒤로 빠져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남의 차에서 뭐하는 거요!”

차량 한 대의 문을 개방하고 나머지 차량 한 대도 개방하려 할 때,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사내 여섯 명이


나서며 소리쳤다.

“공무집행중입니다.”
“공무집행? 무슨 업무집행을 하는데 선량한 시민의 차를 그리 막 따고 지랄이냐고!”
그들은 경찰을 뒤로 밀치며 소리쳤다.
“이 사람들이! 지금 공무집행중이며, 그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을 모릅니까!”

형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형사의 말도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모두 동작 그만!”

그 순간 조동민이 나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가 그를 향해 보았다. 그들의 눈에 조동민은 낯설었다.


설장호나 태정민, 추선우라면 이미 몇 번은 보았겠지만, 조동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이들이었다.

“넌. 또 뭐야?”
“이 놈들 모두 잡으세요.”

한 사내가 조동민을 보며 물었지만, 조동민은 답 없이 형사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형사와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 여섯 명을 체포하려 하였지만, 그들도 그리 만만한 놈들은 아니었다.

‘퍽퍽!’
“!!!”

그 순간 태정민이 나서며 두 명의 얼굴을 강타하였고, 곧 또 다른 사내의 멱살을 잡은 후,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공무집행이라면 집행으로 알고 협조를 해 새끼들아!”

태정민은 이미 세 명을 눕히고 난 뒤에도 나머지 세 명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태정민…….”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태정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자, 곧 한 쪽 팔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추선우도 보였다.

“뒤로 빠진다.”
“네? 뒤로 빠진다니요?”

두 사람을 확인한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머지 두 명의 사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퍽퍽!’

그리고 이내 추선우의 앞차기와 돌려차기에 각각 한 방씩 얻어맞은 사내가 그 자리에서 툭툭 쓰러졌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제길…….”
“기분 나쁘더라도 이해해라. 우리가 살아야하니 너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너도 살 수 있는 길이 있어.”

남은 한 사내의 쓴 소리에 태정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살짝 변하며 태정민을 보았다.

“백태가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그럼 넌 살아남는다.”

원하는 것은 단 한사람이었다. 이들과 같은 그의 부하들을 잡고자 조동민까지 남은 것이 아니었다.


태정민의 말에 부하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세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돌리며 쓰러진
동료를 보았다.

“당신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백태회장님을 그리 쉽게 상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그 놈이 어디있는지만 말해. 그럼 넌 이 자리에서 바로 풀려난다.”
조동민은 그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었다. 국정원과 청와대, 그리고 경찰이 움직인 현장에서 잡힌
상황이지만, 백태의 위치를 말하면 그 자리에서 풀려난다는 것과 같았다.
사내는 고민하는 듯 조동민과 태정민을 본 후, 다시 쓰러진 동료를 보았다.

“동료도 함께 풀려난다. 그리고 다시는 너희들을 찾지 않는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면 너희들은 살 수
있다.”

조동민이 망설이는 듯, 보이는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우리가 여기서 도망간다고해도 백태회장님이…….”


“백태의 목은 오늘부로 떨어진다.”
“!!!”

사내가 말을 흐렸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말이 들렸고, 사내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들이 추선우를
보았다.
이미 이들도 추선우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선우는 법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민간인 신분이기에 그를 그저 빤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라. 어차피 이 사람의 말이 곧 우리의 뜻과 같다. 너희들이 그 놈의 은신처를


알려주지 않아도, 백태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추선우를 보고 있는 그들을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기회는 있을 때 잡는 것이란 말이 있지. 그리고 지금이 딱 너희들이 살 수 있는 기회야. 어떻게 할


것인가? 잡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보낼 것인가?”

이어 조동민까지 나섰다. 세 사람이 모두 백태를 잡고자 하는 마음이 같았고, 무엇보다 이들이 이미


영월을 다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백태의 부하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뭔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말…….우리는 잡지 않는 것입니까?”
“사실 너희들 같은 놈들 잡아서 콩밥 먹여봐야 선량한 국민들 세금만 낭비다. 그러니 너희들 잡아 넣는
것보다야 굵직한 놈 한 놈을 잡아넣고 세금도 아끼는 방법이 좋잖아.”

태정민이 한 사내의 말에 답하였다. 그러자 다시 그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교차하고 있었다.

“**모텔입니다. 3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좋아 좋아. 일단 확인을 해야 하니 확인되는 즉시 바로 풀어주겠다. 그러니 잠시만 참아.”

결국 그들은 백태의 은신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태정민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조동민은 곧바로 형사들에게 이 내용을 알린 뒤, 해당 모텔을 포위하도록 명령 내렸다.

“쉽지 않은 선택인데, 너희들은 찾아온 기회를 잘 잡은 것이다. 잠시만 경찰서에서 대기하라. 그리고
백태가 잡히면 그 즉시 자유를 주겠다.”

조동민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약속의 뜻을 전해주었고, 그들의 표정은 아주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듯, 기쁘지도,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표정을 한 채, 서로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0017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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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추선우가 가장먼저 나섰다. 그 누구보다 먼저 백태를 만나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였으니, 그가 서두르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태정민과 조동민도 해당 모텔로 바로 향하였다.

“회장님. 경찰차가 이리 들어서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조동민의 연락을 받은 관할 경찰서에서는 강력계 형사들은 물론,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해당모텔을 모조리 포위하였다. 이에 백태의 부하가 창가를 보고 있은 후, 그 내용을 백태에게 알렸다.

“나의 위치를 알아낸 건가?”

백태는 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쉽지 않을 것이며, 또 이렇게 정확하게 알고 찾아온 듯,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보아, 우리 쪽에서
정보를 흘린 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백태는 부하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더욱 더 심하게 구겼다. 또 한 지금은 장태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호가 보내준 장태라도 곁에 있었다면 이 순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백태였다.

“일단 퇴로를 확보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뒤로 물러나십시오. 저희들이 전방에서 저들을 막겠습니다.”

부하들이 나섰다. 아직 그의 부하는 많다. 충신이라고 할 인물들도 꽤 있는 편이었다.

“두 번째구나 설장호. 정확하게 나의 위치를 파악하여 나의 목을 치러 다가서는 것이 말이야.”

백태는 이 순간도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라 여겼다. 서울의 오피스텔과 이곳. 단 이틀
만에 두 곳의 은신처가 너무나 빨리 알려지는 바람에 그는 설장호의 이름을 말하며 이를 갈았다.

“회장님, 경찰들이 포위만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데, 그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은신처를 알았다면 경찰이 바로 들이닥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하의 말처럼 경찰은
그저 모텔을 둘러싸고만 있을 뿐이었다.

“설장호를 기다리겠지.”

백태는 설장호가 올 것이라 단정하고 있었다.

“회장님.”

부하가 다시 재촉하였다. 백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텔의 복도를 걸어 비상계단으로 움직였다.

“이쪽입니다.”

1 층에 다다르기 전, 부하가 다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2 층에서 1 층의 중간부분에 쪽문이 하나 있었고,


백태는 그 문을 보고 서 있었다.

“이곳주인이 불법성매매 단속이 적발되었을 경우, 성매매 여성을 따로 빼돌리는 비밀통로라고 했습니다.”

백태는 부하의 말을 들은 후, 모텔 주인을 보았다. 그는 백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반쯤


숙이고만 있었다.

“어디로 연결된 통로인가?”


“뒷 건물의 빈 사무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뒷건물?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면 외부에서도 보이지 않는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저 환풍기 정도로 보일 것입니다.”

쪽문의 크기로 보아 사람이 이리저리 왕래할 것처럼 보이지 않기에, 외부에서도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었다.

“일단 이 위기를 모면하고 내가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너에게 그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다.”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모텔주인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리고 부하가 문을 열었고, 곧 백태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부하 세 명도 함께 움직였다.

“여깁니까?”

백태가 조금 전, 모텔을 빠져나간 후, 조동민과 함께 태정민이 도착하였고, 추선우가 내리자마자 모텔로


들어서려 하였다.

“추선우씨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당신에게는 아직 이런 법적 권한이 없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며 조동민이 말렸다. 그의 말처럼 추선우는 그저 민간인이다. 그가 누군가를 잡고자


영업점에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추선우는 모텔로 들어서지 못하고 조동민과 태정민만이 형사들과 함께 모텔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모텔로 들어선 후, 모텔 밖으로 사내들의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추선우는 3 층을 올려다본 후, 다시 시선을 돌리며 모텔의 주변을 보았다.
이미 백태는 여러 번 현장에서 잘 빠져나간 전적이 있기에, 완벽하게 봉쇄했다고 해도, 그는 또 다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미 설장호의 포위망도 뚫고 건물을 빠져나간 것을 알고 있기에 건물 주변을 더욱 더 샅샅이 확인하려는
그였다.
모텔을 돌아 뒤쪽으로 향할 때, 옆 건물과 연결되는 통로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통로의 앞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들어가 움직일 정도는 아니군.”

이미 모텔 주인이 말했듯이 외부에서 볼 때는 그저 환풍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추선우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다른 곳을 확인하려 하였지만, 뭔가 미심쩍은 부분에 다시 환풍기와 같은
것을 보았다.

“환풍기가 이리 낮게 설치될 이유가 없잖아.”

말 그대로였다. 1 층에 환풍기가 있고, 그 높이를 위로 하지 않은 채, 옆 건물 1 층과 2 층 사이 정도로


연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추선우는 그 즉시 환풍기가 연결된 뒷 건물로 향했다.

“!!!”

그리고 때마침 뒷건물의 정면에서 외부로 나서는 백태의 모습이 추선우의 눈에 정확하게 보였다.

“백태!”
“!!!”

추선우의 큰 목소리에 백태는 놀란 눈을 돌려 그를 보았다. 그리고 모텔안을 수색하던 태정민과 조동민의


귀에도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재빨리 모텔의 외부를 보았다.

“저깁니다!”

태정민의 눈에 먼저 추선우의 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추선우가 뛰어가기 시작하는 곳의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백태와 함께 사내 네 명이 함께 있었다.

“백태입니다!”

두 사람의 눈에 백태가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헛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바로 알았기에 서둘러


움직였다.

“추선우! 그를 쫒지마라!”

태정민은 계단을 내려오며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가 추선우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서둘러 내려와 모텔에서 보았던 곳으로 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백태가 움직였고, 그 뒤를
추선우가 따라 간 것이었다.

“젠장! 서둘러 찾아야 합니다!”

태정민이 소리치자, 일부 형사들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고, 곧 조동민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퍽퍽!’
“오늘 여기서! 네 놈은 죽는다!”

추선우는 백태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그를 뒤에서 경호하던 부하 두 명을 금세 따라잡아 한 방씩을 먹인


뒤, 백태를 향해 소리쳤다.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피하십시오.”

나머지 두 명의 부하가 그와 함께 도망치다말고 멈춘 채 말했다.

“저 놈은 보통이 아니다.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백태는 이미 추선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에게 패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 이곳에서 그와 대적하다 자칫 다른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자신이 붙잡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도망치는 그였다.

“어린놈이 잘도…….”
‘퍽퍽!’

두 명의 부하가 추선우를 향해 다가서며 인상을 찌푸린 채 몇 말을 하려 하였지만, 그들의 입은 다


열리지도 못하였다. 어느 샌가 날아온 추선우의 주먹이 두 사람의 입을 먼저 막았고, 연이어 내 질러진
주먹은 두 사람을 마저 땅에 눕도록 만들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보면서 경찰에 신고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들의 신고는 지금 추선우를
제대로 도와주고 있는 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띠리리리’

모텔 주변에서 추선우를 찾고 있던 태정민과 함께 움직였던 한 형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뭐? 영월시장쪽 골목이라고? 알았어.”


“뭡니까?”
“네. 지금 시민의 신고가 들어온 곳이 영월시장쪽입니다. 그곳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서둘겠습니다.”

태정민은 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곧바로 조동민에게도 이 내용을 전했고, 그도 영월시장으로 향하였다.


“넌. 내가 특별히 따로 만나고 싶었다. 따라와라.”

백태는 자신의 부하들을 너무나 쉽게 제압한 후, 곧바로 뒤따라오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는 곧 영월시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금은 사용치 않는 곳이며, 어둠이 짙었고, 간간히 설치된
백열등에 의해 그 주변만 살짝 밝은 지하주차장이었다.
먼저 내려간 백태의 뒤를 따라 추선우도 내려갔다. 두 사람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지만, 시장
상인들이나, 기타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눈에는 관심 밖의 상황이었다.

“어서오너라. 이렇게 너를 독대하니 느낌이 새롭군.”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백태의 목소리였다.

“설장호가 이곳으로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네가 직접 나를 찾아 나설 줄이


야…….이건 뭐 개나 소나 나를 우습게보고 있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군.”

백태는 여전히 어둠속에서 홀로 떠들고 있었다.

“너에게 명령내리는 자가 누구냐?”

추선우는 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지만, 잠시 후, 이번에 자신이 직접 한 가지 질문을 하였다.

“잊었나보구나, 추선우. 난 백태다. 네가 그리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나를 잡고자


한다면 설장호가 왔어야했는데, 그놈은 오지 않고…….”
“쓰레기 하나 치우는데 그런 고급인력이 올 필요까지는 없다.”
“!!!”

백태는 어둠속에서 자신의 입지가 어느 정도 선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지만, 곧바로 들린 추선우의 한


마디에 어둠속에서도 그의 매서운 눈빛은 너무나 잘 보이고 있었다.

“너…….죽고 싶은 것이구나.”
“죽어도 너는 잡고 죽는다. 나와라 백태.”
“!!!”

백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10 년간 자신을 깔보던 사람은 정구석을 비롯하여 네 명의 회장이었다.


아니…….그들도 자신을 깔보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 정도라는 것만 알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말들. 마치 자신을 양아치로 생각하고 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넌! 오늘 죽는다!”
“누가 먼저 죽는가는 이 주차장을 나가는 사람이 알겠지.”

추선우는 그의 말에 답한 후, 한 쪽 어둠속을 향해 그대로 달려갔다.

'퍽!‘
“!!!”

그리고 정확하게 백태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백태는 그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에 와 닿았다는 것보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서 움직였는지에 대해 더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0018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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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너 같은 놈은 죽을 때까지 절 때 쓰러지면 안 된다. 그래야 서 있는 네 놈을 샌드백처럼 칠
수 있으니 말이야.”
“!!!”

백태는 처음으로 일대 일 싸움에서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렵거나, 자신이
패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두근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강자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었다. 그는 강하다. 지금까지 백태를
쉽게 상대한 인물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설장호였다.
그가 아니고서야 자신을 잡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설장호와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자신이 대적하려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너. 설장호와 비슷하구나.”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끌지말자. 난 단 한 번도 그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네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가치도 없다.”

백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하나의 백열등이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 켜져 있었다.

“그리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서로 면상을 보고 설쳐야 재밌지 않을까?”

그를 보며 추선우가 말했다. 추선우도 하나의 백열등 아래에서 서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는 약 5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샅샅이 뒤져라!”

조동민과 태정민이 영월시장에 도착하였다. 곧 조동민의 큰 목소리에 형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이곳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지요.”

태정민의 말이 있은 후, 곧바로 조동민이 말했다. 무언가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다를 것이었다.

“백태가 있는 것은 확실한 모양입니다.”


“왜 그런 장담을 하십니까?”

태정민과 조동민이 서로 함께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태정민이 먼저 말을 꺼냈고, 조동민이


물었다.

“추선우. 지금 추선우가 쫒고 있는 놈은 백태가 확실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놈이 죽어라 쫒을


리가 없으니까요.”

이미 모텔에서 추선우가 백태를 쫒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고, 그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백태라 짐작하였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추선우가 그리 행동해야 하는 사람은 백태와 석강수, 두 사람 뿐이라는 것을 태정민은 잘
알고 있었다.
시장을 외곽을 계속하여 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상황이 없었다. 제보도 더 이상 없었고, 사람들의
우왕좌왕도 아예 없었다.

“주변을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시장을 다 돌아보았지만,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영월시장으로 이동했다는 제보를 받긴 하였지만,


정확하게 목격한 사람이 없기에 그 뒤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제법이구나.”

같은 시각. 지하주차장에서는 두 사람의 주먹이 어둠속에서 수차례 뻗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치명타를 주진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백태는 추선우의 실력에 놀란 표정이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보고 싶어졌다. 다시 밖으로 나가자.”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백태가 말했다.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어, 희미하게나마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바닥에는 어지럽게 늘려있는 잡다한 물건들과 쌓여있는 짐들로 인하여 진지함이 반감되는 것에서
느낀 생각이었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해준다. 하지만 명심해라. 오늘 넌! 절대 두 다리로 걸어서 영월을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추선우의 표정은 매서웠다. 그리고 그의 말에 백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동하여 주변을 다시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려 할 때쯤, 영월시장을 모조리 다 훑어보았던 형사들과 경찰이 다가서며
보고하였다.

“일부 경찰관 몇 명만을 배치하고 모두 주변을 다시 살피겠습니다.”

조동민은 형사에게 변경된 명령을 내린 뒤, 주변을 둘러보고, 태정민과 함께 영월시장 뒤쪽으로 향해


움직였다.
추선우가 먼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백태가 이어 걸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약 5 미터 정도였다.

백태는 조금씩 밝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는 추선우를 보면서 눈빛을 달리하였다.

“마음을 달리해야겠다. 지금 외부에는 나를 잡고자 태정민이 서성거리고 있겠지. 이대로 외부로 나가면
제대로 된 실력을 보기도 전에 내가 잡힐 테니, 그냥 이곳에서 놀자.”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추선우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추선우는 지하주차장 입구에 가까웠기에 빛에 의해 모습이 비교적 잘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백태는
여전히 어둠속에 있었다.
그리고 밝은 곳에 서서 어두운 곳을 보니 추선우의 눈에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백태의 눈에는
추선우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야앗!”

그 순간 백태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그가 어둠속에서 뛰쳐나오자 추선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보았다.

‘탁!’

백태는 추선우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하여 수를 쓴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다니는 단검을
뽑아들었고, 단 일격에 그의 목을 치고자 그를 밝은 곳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5 미터 거리를 두고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백태가 휘두른
칼은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혔다.

“죽어라…….추선우.”

백태는 칼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추선우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서는 단검을 밀쳐내려 하였지만, 상처 입은 왼팔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가
누르는 힘을 밀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악!”

백태는 곧 추선우의 왼쪽 팔에서 피가 묻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 한 후, 한쪽으로 그의 상처부분을 강하게


눌렀고, 추선우의 비명소리가 지하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

그리고 때마침 인근을 수색 중이던 경찰관 두 명이 그 소리를 들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온 소리 같은데.”

지하주차장으로 시선을 내리며 보았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 두


사람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려갈 볼까?”
“에이…….무섭잖아. 난 언제나 이 지하주차장이 무섭더라고.”

한 명의 경찰이 아래로 내려가려 하였지만, 곧 다른 한 명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하긴. 좀 그렇긴 해.”

아래로 내려가려던 한 명의 경찰마저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추선우는 팔의 감각이 점차 무뎌지는 듯 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힘마저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백태의 힘은 여전하였다. 그는 이내 한 번 더 추선우의 상처부위를 강하게 내리친 뒤, 곧바로 두
손으로 칼날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탁!’

칼날이 추선우의 눈에 바로 내려와 꽂히기 전, 추선우는 갖갖으로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피했고, 곧 몸도
뒤로 빠지며 그의 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헉헉…….”

하지만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왼쪽 팔은 이제 힘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운이 좋구나.”

백태는 추선우가 있던 곳에 꽂힌 칼을 다시 뽑으며 말했다.

“너는 다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너도 똑같구나.”


“무슨 소린가?”

추선우는 왼쪽팔을 잡은 채 그를 노려보며 말했고, 그가 하는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백태가 물었다.

“그래도 네 놈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양아치 짓을 네 놈이 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양아치? 지금 나에게 한 말인가?”


“여기에 네 놈 외에 또 누가 있는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고자 한다면…….그대로 해 주겠다.”

추선우는 왼쪽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말했고, 곧 상처 입은 손을 세차게 한 번 앞으로 쭉 뻗은 후,


자세를 잡았다.
“오늘…….너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무조건 죽겠구나.”
“아니. 잘 못된 말이다.”
“잘못 되었다?”
“그래. 오늘 죽는 놈은 백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제대로 된 말이다.”
“…….”

백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추선우는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피를 한 손으로 훔쳐내며 그를


향해 다가섰다.
추선우는 어둠속에서 점차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칼을 든 백태에게 먼저 공격을 가하였다. 백태는
칼을 들고 있기에 다가오는 그의 주먹이나 발을 향해 뻗기만 해도 무조건 자신이 이기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퍽!’
“!!!”

하지만 그건 자신만의생각뿐이었다. 추선우가 어둠속에서 나오며 발을 뻗어 올리는 행동을 하였기에 발을


향해 시선을 내렸지만, 그의 얼굴을 강타한 것은 추선우의 발이 아닌 주먹이었다.
발이 올라오려다 멈춘 후, 곧바로 주먹이 날아와 시선을 내린 백태의 면상을 날린 것이었다.

‘쾅!’

그 충격에 백태가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이로써 백태는 추선우에게만 두 번째 넘어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였다.

“너. 이 새끼…….”

백태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쓴 소리를 내 뱉었다. 그리고 칼을 잡아들어 그를 향해 달려 갈 채비를 하였다.

“!!!”

하지만 자신이 가기 전, 추선우가 다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놀란 눈을 한 채, 몸을 주춤거렸다.

자신은 어둠속에 있었고, 추선우가 밝은 곳에 있었으니, 그가 어둠속으로 먼저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달려왔고, 또 다시 주먹을 뻗었다.

‘슉!’

하지만 그의 주먹이 어둠속으로 들어오기 전, 주먹의 위치를 파악했던 백태는 몸을 숙이며 그의 주먹을
피하였다.

‘퍽!’
“!!!”

하지만 딱 그 주먹까지만이었다. 몸을 낮추어 주먹을 피하였지만, 이번에 발이 그대로 올라와 백태의


턱을 향해 가격하였고, 백태는 그 큰 덩치가 다시 뒤로 밀려나며 넘어졌다.
연속으로 두 번의 공격을 다 허용한 꼴이 되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보고자 한 것이었다면 밝은 곳보다 이런 곳이 더 좋다. 그리고 네 놈의 말처럼 밝은


곳에서 너와 실력을 겨루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추선우는 넘어진 백태를 정확하게 노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백태는 다시 일어서며 그를 보았다. 자신이 한 말처럼 밝은 곳에서 그와 대적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단조로운 주먹과 발차기를 자신이 이리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둠과 함께, 주변 상황이
변수였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서 이미 어둠과 주변에 익숙해져버린 추선우보다 백태가 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나라고…….어둠을 그냥 어둠으로 생각하겠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백태는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한 뒤,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들어 천천히 돌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너의 행동…….그 행동이 나에게 오히려 더 유리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군.”


“…….”

추선우는 그를 향해 말했고, 백태는 또 다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슉! 슉슉슉!’

추선우는 정확하게 백태를 향해 주먹을 내 지르고 있었다. 백태는 그의 주먹을 이리저리 피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휘두른 칼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먹을 향해 칼을 휘둘렀지만, 그 칼날이 주먹에 닿기 전, 이미 추선우의 품으로 주먹은 돌아간 후였다.

0018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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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군.”
“적어도 너 보다는…….”

백태는 추선우가 어둠속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행동을 모두 간파하여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해보자. 이번에도 내 칼을 피할 수 있을지 보겠다.”

백태는 여전히 칼날을 놓지 않고 있었다.


추선우는 백열등 아래에서 약간 자리를 옮겨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백태도 그의 행동을 보며 자신의
머리위에 있는 백열등을 본 뒤, 옆으로 비켜났다.
두 사람은 어둠속으로 각자 들어섰고, 그냥 얼핏 보이게는 주차장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추선우. 팔에 난 상처가 꽤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가보군. 그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우렁차니 말이야.”

잠시 소강상태였고, 조용하였다. 하지만 백태의 말처럼 추선우의 팔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는 팔을 타고


내려온 뒤, 손가락 끝에서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진 피는 곧 바닥에 고인 물위로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 네 놈 말처럼 무척이나 아프다. 그러니 빨리 끝내자.”

추선우는 의 말을 들은 후, 어둠속에서 자신의 팔을 보았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백태의 말처럼


피는 뚝뚝 떨어질 만큼 꽤 많이 나오고 있을 것이었다.
추선우는 어둠속을 보았다. 백태가 몸을 숨겼던 곳을 향해 보고 있었고,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이는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정확하게 백태를 향해 움직였던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백태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추선우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소리는 들리지만, 정확하게 어느 방향인지를 잡지 못한 그였다.

‘슉!’
“!!!”
‘탁!’
백태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자, 소리가 들리는 부분으로 강하게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자신이 휘두른 칼은 나무 판에 아주 강하게 내리꽂히는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에
백태가 놀라 뒤로 재빨리 몸을 뺏지만, 이미 칼날의 뾰족한 부분은 나무판자 하나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

“제길…….”

그는 쓴 소리를 내 뱉으며 다시 정면을 향해 보았다.

‘퍽!’
‘와장창!’

여지없이 추선우의 주먹이 날아왔다. 어떻게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고 주먹을 뻗는지를 알 수 없었다.
백태는 뒤로 밀려나며 곧바로 다시 일어섰고, 손에 쥔 칼은 이미 날카로움을 잃어버렸으니, 더 이상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바닥에 버려버렸다.

“오너라.”

백태가 넘어진 곳은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고, 자신의 모습은 이제 추선우에게 잘 보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어둠속으로 몸을 피하기에는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지금이라도 말해라. 네 놈 위에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한 놈이 누군지 말하면 적어도 너의 목은 붙어 있을


것이다.”

추선우가 곧 어둠속에서 나오며 말했다. 백태는 그의 모습이 점차 두렵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설장호와 닮았군.”

그의 모습을 보고, 말을 들으며, 백태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떠 오른 인물이 바로


설장호였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이 추선우지만, 그는 지금 설장호를 앞에 두고 있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없습니다. 인근 어디에도 두 사람의 흔적은 없습니다.”

한 편. 영월시장을 벗어난 후,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하자, 태정민이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인근에는 이미 수많은 경찰들이 깔려있었던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백태는 경찰을 피해 이리저리 숨어


다녀야 하지만, 추선우는 아닙니다. 오히려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니, 굳이 경찰들의 시선을
피할 필요는 없지요.”

조동민의 말은 이곳으로 추선우는 오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주변에 경찰들이 많았고, 그 누구도 그를


보지 못하였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다시…….영월시장으로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역시 가능성은 그 한 곳 밖에 없었다. 주변을 모두 둘러보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곳이 현재로써는 가장


유력했다.

‘쾅! 쾅쾅!’

같은 시각. 지하주차장에서는 지하에 내려놓은 물건들이 이리저리 부서지고 두 사람이 넘어지고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지하주차장 외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귀에는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설마 너 같은 놈에게 이런 꼴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잠시 후,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백열등 아래에서 얼굴 전체가 피 범벅이 된 백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같은 놈은 세상에 많아. 네 놈이 만난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 그런 것이지.”

반면에 추선우의 얼굴은 그리 험하게 당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단지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하여 창백한 얼굴이 되어 있었지만, 외부에 난 상처는 백태가 훨씬 심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이 조금 편해지나 싶었는데, 어디서 너 같은 괴물이 나와서, 나의 인생을 막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백태는 자신의 시선을 가리는 듯,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비록 백수였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어린 아이가


찾아와 내 인생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내 인생을 막았다고는 생각지 않아. 오히려 내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추선우는 지현이 자신을 찾아왔던 그 날이 떠올랐다. 굶주리고 겁에 질린 어린아이. 그 아이를 돕고자


시작했던 일이 이토록 크고 굵직한 인간들이 연결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던 그였다.

“나도 이제는 쉬고 싶다. 그러니 빨리 끝내자. 네 놈 위에 있는 그 놈이 누군지만 말해. 그럼 지금 당장


끝내주겠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백태는 웃었다. 그는 추선우가 강한 인물이라는 것을 오늘 지금 이 순간 모두 실감하였다. 그리고 믿었다.


하지만 이수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가 입 밖으로 내 뱉는 말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넌. 그 사람의 근처도 가지 못한다. 그 사람은 이미…….이 나라에서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
되어 있으니 말이야.”

백태는 이수호에 대해 알고 있다. 그의 권력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의 강함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곧 죽음의 길로 스스로 찾아들어가는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해! 죽어도 내가 죽는다!”

추선우의 고함소리는 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제 외부를 지나쳐가던 사람들의 귀에도 범상치 않게
들려왔다.

“지하주차장에 뭔 일이 있나? 아까부터 계속 뭔가 부서지고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던데 말이야.”

상인들은 지하주차장을 향해보며 섰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려 하였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곧 경찰관이 다가서며 물었다.

“안에서 뭔 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해서 말이야. 자네들이 한 번 내려가 봐.”

상인들은 늘 그곳을 왔다 갔다 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듣던 소리들이 아니라 망설였고,


다행히 때마침 온 경찰에게 대신 확인토록 말했다.
두 명의 경찰은 조금 전에도 지하주차장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확인해봐야겠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이 찾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의문의 소리마저 들린다니 확인은 해야 할


상황이었다.

추선우는 백태의 앞으로 더 다가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고작 2 미터 정도였다. 그리고 딱 중앙에


백열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처음부터 네 놈은 범상치 않았다.”

백태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슉 탁!’
“!!!”

하지만 추선우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그의 멱살을 순식간에 잡은 후, 뒤로 밀치며 벽에 부딪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백태의 체구는 아주 컸다. 추선우에 비해 머리하나는 더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추선우의 팔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넌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곧 네가 말하는 그 대단한 놈도 내 손으로 잡는다.”

추선우는 그를 보는 눈을 아주 매섭게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매서운 눈은 백태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백열등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밀쳐지는 바람에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나를 잡고, 또 한 사람이 남지 않았나?”

백태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물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석강수.”
“!!!”

추선우는 그의 입에서 석강수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눈을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백태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석강수를 알고 있지?”

추선우는 아직 그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삼성역에서도 두 사람은


안면이 없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성남 펜션에서 병따개와 석강수가 함께 움직였지만,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였다.

“석강수는 지금 나와 함께 그 한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네가 잡아야 할 인물이니


말하는 거다.”

백태의 멱살을 잡은 추선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손을 떠는군. 그 놈에 대해서 느낀 것이 심했나보구나.”

백태는 추선우의 떨림으로 그가 생각하고 있는 석강수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석강수는 어디에 있지?”


“그건 나도 모른다. 우린 철저하게 각기 일이 분리되어 있고, 또 각자의 일에는 별 관심도 없으니
말이야.”

추선우는 다시 그를 올려보았다.

“아무도 없는데요.”
“…….”

그 순간 경찰들과 상인들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조용하였다. 이미 추선우와 백태의 대화가


끝나고, 침묵이 흐르고 있던 순간이라 어둠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쥐가 움직이면서 뭔가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경찰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 좀 밝혀놓고 사십시오. 이건 뭐. 이안에서 범죄가


일어나도 아무도 모르겠습니다.”

경찰의 말대로였다. 지금 이 안에는 아주 큰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상인협회에 말해서 보완좀 해야겠어. 올라가자고.”

그들은 더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대충 둘러본 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다시 위로 올라서기


시작하였다.

“저것이 사람이다. 이곳에서 난 소리를 듣고 내려왔지만, 자칫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서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넌…….”
“저런 사람도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올라간 후, 백태가 말했고, 추선우가 그의 목을 더 꽉 조우며 말했다.

“별 다른 상황은 없습니까?”

상인들과 경찰들이 올라서자마자, 다시 영월시장으로 온 태정민이 그들에게 물었다.

“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내려갔는데, 쥐가 움직이다 물건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확인하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입구에서 그저 훑어본 것만으로 안을 다 확인한 것처럼 말했다.


태정민과 조동민은 지하주차장을 보았고, 잠시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0018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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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백태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추선우의 손아귀 힘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을 느끼자, 곧바로 그의 손을


잡은 후, 자신의 숨통을 열었고, 옆으로 재빨리 이동하여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한 쪽 팔로만 힘을 지탱하려니 오랫동안 힘을 지속시키지 못하는구나.”


백태는 이미 추선우의 힘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상처로 인하여 힘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추선우는 흘러내린 피로 인하여 체력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곧 네가 쓰러질 것 같으니, 내가 그 시간을 단축시켜 주겠다.”

백태는 손을 더듬거린 후, 어둠속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지 못하였지만,


충분히 손으로 들 수 있고, 촉감도 딱딱했으니,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탁! 슉! 퍽!’
“하하하!”
“!!!”

예상대로 자신의 손에 잡힌 것은 딱딱한 각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세차게 휘두르자


각목 끝으로 묵직하게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들렸고, 그는 큰 소리를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곧 주차장 외부에 있던 조동민과 태정민의 귀에 들려왔다.

“이 안에 있었군.”

태정민이 바로 움직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자 어둠이 짙었다. 곳곳에 설치된 백열등만으로는
지하주차장 안을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퍽!’
“!!!”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충격음이 들렸고, 시선을 돌렸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퍽퍽퍽퍽!’

곧이어 연달아 소리가 들리면서 태정민과 함께 내려온 조동민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추선우!”
“!!!”

태정민이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백태가 놀란 눈을 한 채 지하주차장 입구를 보았다.

‘탁!’
“웁!”

입구를 보고 있던 그의 앞으로 갑자기 손이 뻗어지면서 정확하게 면상을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백태는 또


다시 넘어졌다.

“지금까지 그리 맞았는데,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백태는 자신이 휘두른 각목에 추선우가 맞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가 휘두른 각목에는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그저 어둠속에서 휘두른 그의 각목은 마대자루를 쌓아놓은 곳을 수차례 때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마치 사람을 때리는 느낌과 같았을 것이었다.

“석강수도 곧 네 놈의 곁으로 보내주겠다.”


‘퍽!’
“촤르르르르!‘
“…….”

추선우는 그의 멱살을 잡은 후, 바로 세웠고, 곧 그에게 말한 뒤, 정확하게 그의 면상을 다시 한 번


가격하자, 백태는 큰 덩치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리다 넘어지면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가 뒤로 밀려나면서 백열등 아래에서 주춤거렸고, 곧 그의 모습은 입구에 선 두 사람의 눈에
아주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퍽!’

비틀거리며 서 있던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있을 때, 곧바로 추선우는 그를 향해 달려들어


돌려차기로 그의 복부를 그대로 가격하였고, 백태는 또 다시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나며 이번엔 태정민과
조동민이 서 있는 바로 앞까지 밀려와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아래를 내려 보았다. 백태의 얼굴 전체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눈동자를 바르르 떨고 있었다.

“백태…….”

조동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시선이 어둠속으로 향하였다.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고, 곧 밝은 곳으로 나오자 왼쪽 팔 전체가 모두 붉게 변해있는 추선우가
두 사람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추선우!”

태정민이 소리치며 그의 곁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지금 즉시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태정민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천하의 백태를 잡은 순간을 기뻐하고 싶었지만, 추선우의 안색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에 1 초라도 빨리 그를 병원에 데려다 줄 심상이었다.
태정민이 추선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 뒤, 조동민은 자신의 발아래 쓰러져 있는 백태를 향해 내려
보았다.

“백태. 네 놈 꼴이 말이 아니구나.”

조동민의 목소리를 듣고,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던 백태가 살며시 눈을 떠 그를 보았다.

“조동민…….오랜만이구나.”

조동민이 백태를 아는 듯, 백태도 조동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하였다.
조동민은 그의 몰골을 보았다. 상반신만 외부의 빛에 의해 잘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반신만으로도
그의 상처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잡고자 했던 백태가 내 앞에 이런 몰골로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추선우…….그 친구가 그리


강한가?”
“강하다? 그래…….아주 강하더군. 숨겨진 그 한분을 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

조동민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찾아다녔다는 그 한 놈에게 추선우가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이 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치료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의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네.”

조동민은 자신이 직접 백태를 데리고 병원으로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영월관할 형사들에게 백태를 맡겼다.
그리고 홀로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천하의 백태가 민간인에게 일대일로 맞짱뜨서 잡혔다니…….믿기가 힘들군.”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게 빨아들였다.

‘띠리리리’

그 순간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조금 전, 태정민에게 연락받았다. 백태를 잡았나?-


“네. 믿기 힘들지만 백태가 추선우에게 잡혔습니다.”
-믿기 힘든 것은 알지만, 앞으로 더 믿기 힘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일단 자네가 백태를 이곳까지
압송해라.-
“알겠습니다. 간단한 치료를 한 후, 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조동민은 전화를 끊은 후,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앞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 난다라…….”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홀로 중얼거린 뒤, 곧 백태를 후송한 병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이러면 이곳을 깁스로 봉인해 둘 수밖에 없습니다.”

한 편. 추선우를 치료해 주었던 병원의사는 또 다시 상처부위가 터져 피를 흘린 채, 기절하여 온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지 말고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아예 팔을 봉인시켜버리십시오. 다시는


치료부분이 터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태정민은 자신의 팔이 아니라고 말을 쉽게 내 뱉었지만, 의사고 간호사고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한바탕


웃었다.

“선우는 괜찮나요?”

같은 시각. 설장호는 네 여인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현재 영월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두 말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은주가 추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추선우는 지금 병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상처가 난
부분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온 것 외에는 다른 상처는 없다고 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 말하네요. 당신들은 그런 말이 그리 쉽게 나오나요?”
“…….”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그런 상처에 대한 민감함이 둔했다. 하지만 일반인은 달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사과하였다.

“선우는 언제 오나요? 만나보고 싶습니다.”


“치료를 끝마친 후, 곧바로 헬기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국정원에 도착하는 즉시, 그와 만나도록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설장호는 은주의 말에 고분고분하였다. 국정원에서 주로 국제적인 일을 관리하며 별에 별 일을 다 경험한


그였지만, 의외로 민간인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그였다.
은주의 말을 다 들은 후, 그의 시선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지현에게로 향하였다.

“지현아.”

그리고 그녀의 곁으로 가서 그녀를 불렀다.


지현은 대답대신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선우 삼촌이 오면 웃어줘야지.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선우삼촌이 더 힘들잖아.”

웃으며 말했다. 지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열 살의 여자아이가 미소가


어색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즐겁고 마냥 웃음이 끊이지 않아야 할 나이에 그녀는
슬픔을 먼저 알아버렸기에 웃음이 어색하게 나오고 있었다.

네 여인을 만난 후, 설장호는 곧바로 다시 회의실로 향하였다.

“백태를 잡았다는 말이 사실인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국정원장이 그에게 물었다.

“네. 추선우가 격투 끝에 녀석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추선우가 치료를 마친 후, 국정원에 도착하는 즉시


백태에게서 얻은 정보를 분석할 것이며, 조동민이 끌고 올 백태와도 심문을 통해 정보를 더 수집할
예정입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거짓 없이 말했다.

“꽤 오래 걸렸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지금 민간인 한 명이 해결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모든 것에


신중함을 기하게. 그리고 백태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는 확실하게 다 얻어야하네. 이미 정구석과
최기수, 우수광과 고민국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지녔던 네 명이 누군가에 의해 목일 날아갔으니, 그 위에
앉은 놈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가늠하겠지만,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네.”
“알겠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이 당부하였지만, 그의 당부가 있기 전에 이미 설장호는 이번에야 말로 길고 길게 끌고 오던 그


숨은 조직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뜻을 가졌다.

“백태의 치료는 끝났습니다. 서울로 압송하겠습니다.”

백태의 치료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중범죄를 뛰어넘어, 그는 법의 심판을 받으면 거의


100%로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죄인이라고 죽을병에 걸렸거나, 상처를 입었다면
치료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법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백태의 압송은 제가 지휘합니다. 그를 압송할 인력과 함께 차량을 지원해 주십시오.”

조동민이 백태의 압송을 맡았다. 아주 큰 인물이기에 차량보다는 헬기로 바로 압송하려 하였지만, 이


역시 예산문제라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이동에도 헬기는 취소되었다. 그 역시 차량을 이용하여 다시 서울로 와야 할 운명이었다.

0018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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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예산은 다 어디다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구한 날 술쳐먹고, 골프치고, 그럴 돈은 있어도
이런 중차대한 일에 헬기 한 번 띄울 돈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에 설장호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필시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중,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헬기 하나를 제대로 띄우지 못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비록 예산을 운운하면 말하기 하였지만, 이 모든 것에도 어쩌면 그들의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 추선우와 함께 서울로 향하겠습니다.”

추선우의 치료로 끝났다. 태정민은 추선우와 단 둘이서 서울로 향할 것을 말하였고, 조동민은 백태를
압송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영월관할 형사들과 함께 서울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아무쪼록 일 없이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조동민이 태정민과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압송차량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건 안 돼! 넌 서울로 바로 가야해. 가서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명도 해야 하고, 또 지현이도 봐야해.”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백태가 국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겠습니다. 태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미 국정원 안에 있는 최기수도 쉽게 죽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뻥뚫린 도로 위에서 저 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습니까?”
“…….”

맞는 말이었다. 태정민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던


최기수가 그냥 쉽게 죽었다. 그것도 국정원 안에서 죽었기에 더욱 더 큰 충격이었다.

“알았어. 우리가 뒤에서 협조하며 움직이도록 하자.”

태정민고 곧 꼬리를 내렸다. 조동민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곧바로 백태의 압송을 시작하였다.

“백태가…….그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 사실인가?”

같은 시각. 이수호에게 지금의 상황이 보고되었다. 그 어떤 누가 이 모든 상황을 알리는지는 모르지만,


이수호는 가만히 앉아서 젊은 여인의 살결만 탐하고 있어도, 세상의 흐름을 모두 간파하고 있는 늙은
여우였다.

“지현과 추선우를 잡고자 영월에 갔었는데, 오히려 추선우에게 목을 내준 꼴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수만이 답했다. 수만은 조동민에 의해 총상을 입은 후, 그 치료를 모두 끝내고 난 뒤, 다시


복귀하였다.

“장태에 이어 백태가 녀석의 손에 목을 내준 꼴이군.”


“무슨…….말씀이신지요? 장태도 녀석에게 잡혔습니까?”

수만이 물었다. 수만은 치료를 하느라 장태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잡힌 것이 아니라 죽었다.”


“!!!‘
수만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랜세월동안 함께 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네
명의 경호원에게 위협을 가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위협의 단계를 넘어 목을 쳐내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 것에 수만의 눈은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백태가 모든 것을 다 발설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조직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증거인멸이다. 누가 할 텐 가?”
“제가 하겠습니다.”

이수호는 모두가 걱정하는 것처럼 백태마저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인물로 수만이 자진하여 손을 들었다.

“괜찮겠는가?”
“백태 회장을 잡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태를 죽였다는 것은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꼭 그놈에게 장태의 원한을…….”
“장태를 죽인 사람은 그가 아닌 강서진 검사다.”
“…….”

수만이 눈동자를 흔들거리며 두 주먹을 꽉 쥐고 말하고 있을 때, 곧 이수호의 경호원 중, 덩치가 가장 큰


경호원이 장태를 죽인 장본인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자, 수만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 뒤, 그대로
멈춰있었다.

“강서진검사? 그녀가 어떻게?”


“총이지. 그녀는 검사다. 충분히 실탄을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여자다.”

그는 다른 경호원보다 조금 더 크고 굵은 장검을 손에 들고 있었고, 수만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을


바로 하였다.

“모조리…….다 쳐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섣부른 행동은 하지마라, 장태가 당한 것도 있지만, 백태가 잡힐 정도라면 그냥 그리 쉽게 보고 넘길
일은 아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가려 할 때, 경호원이 다시 그에게 말했다.

“석관 형님께서는 걱정하시는 부분을 잘 이해하며 움직이겠습니다.”


“…….”

수만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석관. 그의 이름은 장석관으로 이수호의 경호원 네 명 중, 서열 2 위에 속한 인물이다. 아니 경호원 네
명중이 아닌, 이수호를 지키기 위하여 이수호의 곁에 있는 모든 인물들을 통틀어 서열 2 위에 있는 인물이
바로 장석관이었다.

“고광 형님께서는 다른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수만은 곧 다른 한 명의 경호원에게도 물었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난 다른 곳에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의 첫 번째 임무와 마지막 임무는


오로지 회장님을 보필하는 것이지, 누가 죽고 살았는지에 관심은 없다."

이수호의 바로 옆에서 언제나 붙어있는 인물. 바로 고광이라는 인물로, 이수호의 측근 서열 1 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호리호리하며 190 센티가 넘는 큰 키, 장검을 든 손에서 솟아오르는 잔 핏줄과
근육들. 칼로 살을 도려내려고해도, 칼이 살을 잘라내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탄탄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고광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후, 수만이 다시 인사하였고, 이수호도 아무런


말없이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광아.”
“네. 회장님.”

수만이 나간 후, 이수호는 고광을 불렀다.

“쓸 만한 애들 좀 모아둬라. 아무래도 내가 설장호와 그 추선우란 놈에게 선물을 좀 보내야겠다.”


“알겠습니다. 준비해 두겠습니다.”

이수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결코 평범한 생각은


아닐 것임을 그의 표정만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영월에서는 백태의 압송을 시작하였다. 강력계 형사 열 명과 경찰차 열 대에 경찰관 30 명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태정민과 추선우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너를 위한 대접으로는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지 않나?”

백태와 함께 승차한 조동민이 그를 보며 물었다.

“그렇군. 이거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나 같은 놈을 서울로 데리고 가는데 이리 많은 병력이 동원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이리 동원되어버리면, 영월은 누가 지키나? 군인들이?
아니면 영월시민들이?”

백태는 자신이 탄 차량의 앞과 뒤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경찰차를 보며 말했다.

“너만 없으면 영월은 조용해, 사고 없던 마을에 네 놈이 나타나면서 사고가 생겼으니, 넌 평생 영월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조동민의 말에 백태는 같은 차에 승차한 영월 형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펜션을 지키고 있었던
형사과장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

“그런데 추선우는 어디에 있나? 그 놈…….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걱정마라. 네 놈을 잡은 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석강수를 칠 기세다. 그리고 그 뒤로 네 놈들이
뒤로 꽁꽁 숨겨놓은 그 한 놈을 찾을 것이다.”

조동민이 답을 주었다. 그의 답에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려졌다.

“석강수를 잡는 것은 내가 뭐라 말 할 수 없겠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내가 한 마디 하고


싶군.”

백태는 압송 중, 조동민의 말에 창가를 보며 말했다.

“석강수는 이미 설장호나 추선우가 안면이 있으니 그 놈을 잡는 것은 쉽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잡으려는


그 한 분은 추선우가 같은 놈이 나서서 잡을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백태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조동민은 그저 한쪽귀로 듣고, 또 다른


귀로 흘려버리는 듯 한 표정이었다.
-내가 한 가지 알려줄까?-

백태의 말이 끝난 후, 곧 조동민의 무전기를 통해 스피커 음성으로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태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후, 조동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내가 깜빡 잊고 마이크를 끄지 않았을 뿐이야. 그래서 저 뒤에서 따라오는


태정민과 추선우의 귀에 너의 말이 들어갔을 뿐이야.”

조동민은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조동민은 처음부터 마이크를 외부음성 녹음으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백태가 하는 말들은 조동민과 같은 주파수를 맞추어 이어마이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두의 귀에 라이브로 그대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추선우…….넌 내가 다시 잡는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마라. 넌 지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해. 사형당하지 않는다면 백발이 돼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의 말이 끝난 후, 조동민이 백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추선우씨. 이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하십시오.”

조동민은 추선우에게 다시 말했다.

-백태. 네가 죽을 고비를 맞이해도 네 놈 위에 앉은 놈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석강수는 어떨까? 그놈에게 너와 같은 충성심이 있을까?-
“!!!”

생각지 못하였다. 자신과 같이 오랜 시간 이수호의 밑에서 일했다면 충성심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는 아니었다. 그는 떠돌이 킬러였다. 그리고 최근에 이수호의 손길에 끌려 손을 잡은 인물이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나보군.”

백태의 놀란 표정을 보며 조동민이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정민과 추선우는 그의 표정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

“석강수…….그 놈이 그리 쉽게 잡힐 것 같은가?”
-잡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넌 어땠나? 너도 쉽게 잡힐 인물은 아니었지만, 결국엔 잡혔으니, 그
놈이라고 잡지 못할 법은 없겠지.-

백태의 표정은 더욱 더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 한 명이 이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더 나가 그의 기세가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자신의 조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모두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초비상이 걸린 듯, 설장호가 국정원 대원 일부를 정문에 배치하였고, 그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감금실까지도 초밀착 경호를 지시해 두었다.

“최기수와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네.”

곧 국정원장이 그의 곁으로 서며 말했다.

“안되죠. 최기수 하나로 족합니다. 두 번의 실수는 없도록 내가 그 놈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참입니다.”
설장호는 네 명의 여인이 국정원으로 온 순간부터 절대 국정원을 나서지 않고 있었다.
확인할 것이 있다면 대원을 외부로 보내 확인하고, 그 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0018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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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라.”

수만은 톨게이트를 지나치자마자 임시 갓길에 주차하여 있었고, 곧 무전을 받은 후, 톨게이트를 향해


보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펑!’
‘끽!’
“뭐야!”

백태가 탄 승합차가 톨게이트를 나서자마자, 옆 차선에서 갑자기 차량이 타이어펑크를 내며 방향을 돌렸고,
해당차량은 공교롭게도 백태가 탄 차량이 지나쳐간 그 톨게이트의 길목을 막았다.
이에 조동민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친 뒤, 뒤를 향해 보았다.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조동민은 이어마이크를 통해 태정민에게 물었다.

-앞, 뒤로 막혔습니다. 일단 경찰차가 더 뒤로 빠지면 옆 차선을 이용하여 바로 따라붙겠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달리십시오.-

이미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고속도로에서는 자신들도 위험하기에, 톨게이트를 나온 후, 일반


도로에서 백태를 잡겠다는 그들의 뜻이었다.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조동민은 앞서 먼저 빠져나간 두 대의 경찰차에게 무전을 보내 백태가 탄
승합차의 앞과 뒤를 경호하도록 명령하였고, 곧바로 한 대의 경찰차가 승합차의 뒤로 따라붙었다.

“주변 놈들부터 제거한다.”

수만도 움직였다. 그의 명령에 승용차 몇 대가 속력을 내며 경찰차의 옆으로 붙었다.

“저 차 왜 저래?”

경찰차를 운전하는 경찰이 그 차량들을 보며 의아한 눈빛들을 보내고 있었다.

‘쾅!’
“!!!”

하지만 그 순간 차량들은 갑자기 핸들을 돌리며 경찰차를 향해 돌진하였고, 충격에 의해 경찰차가


전복되며 승합차의 후미를 따라가던 경찰차는 더 이상 따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젠장! 녀석들이 붙은 모양입니다.”

태정민은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고, 조동민에게 무전을 보냈다.

“차 좀 빼 봐요!”
태정민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 뒤로 차량들이 줄을 길게 서 있기에 쉽게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안되겠습니다. 앞에 펑크 난 차량을 옮기는 것이 더 빠를 듯 합니다.”

추선우가 말했다. 그리고 차량에서 내리려하자, 태정민이 그의 팔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어. 저들의 타깃에 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잖아.”

태정민의 말대로였다. 비록 저들이 백태를 타깃으로 잡았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 와중에 추선우가
보인다면, 백태에 이어 추선우도 충분히 타깃으로 삼을 그들이었다.
태정민은 자신의 차량 뒤로 있는 경찰차에 연락하여 앞쪽의 차량을 빼도록 하였다.

“쉬지 않고 달리세요. 절대 멈추면 안 됩니다!”

조동민은 차량 안에서 소리쳤다. 이미 그들이 백태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차가 멈추면


그 즉시 백태는 죽을 것이었다.

‘쾅!’

이어서 앞쪽으로 달리던 경찰차도 전복당하며 몇 바퀴나 굴러 가드라인에 부딪힌 후에야 멈추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승합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차량들이 붙습니다.”

승합차의 주변에도 차량들이 붙었다. 조동민은 좌, 우로 붙은 차량들을 보았고, 백태도 해당 차량들을


보았다.

“끝내라.”

수만은 승합차 뒤를 따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곧 두 대의 승용차는 승합차를 향해 바짝


붙기 시작하였다.

“더 속도를 내십시오!”

조동민은 양쪽으로 붙는 차량들을 보며 소리쳤지만, 승합차의 특성상 고급 세단을 따돌릴 정도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백태는 차창을 통해 아래를 보았다. 하지만 승용차는 워낙 짙은 선팅이 되어 있었기에 안은 보이지도
않았다.

“잘 가십시오. 백태 회장님.”

수만은 차창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승합차와 함께 한 차선 더 떨어진 상태로 나란히 이동하면서


그를 향해 보고 말했다.
백태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도 정확하게 수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새끼!”

그리고 조동민의 눈에도 수만이 보였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 날 병원에서 한 차례 조우가 있었었다.


그리고 수만은 조동민이 쏜 총에 맞아 상처를 입었었다.

“차가 처리되었습니다.”

톨게이트를 막고 있던 차량이 빠지면서 태정민은 엄청난 속도로 승합차를 향해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지금 따라붙고 있으니,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 조절을 하십시오.-

태정민이 곧바로 무전을 보냈고, 조동민은 운전사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였다.

‘끽!’

승합차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고, 양쪽으로 있던 두 대의 승용차는 속도를 맞춰서
늦추지를 못하여 서로 강하게 부딪힐 뻔 하였지만, 핸들을 다시 돌리며 다행히 충돌은 피하였다.

“뭣들해! 죽여!”

수만은 승용차를 운전하는 부하들에게 소리쳤고, 그들도 속도를 낮추어 승합차와 다시 나란히 움직이려
하였다.

‘픽픽픽픽!’
“펑!”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조동민은 총을 꺼내 다가서는 차량의 타이어를 향해 쏘았고, 네 발 중, 한


발이 타이어에 명중되면서 한 대의 차량은 뱅글뱅글 돌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탕탕탕탕탕탕!‘
“뭐야! 저 새끼들은 어디서 총을 구한거야!”

조동민은 몸을 낮추며 소리쳤다.

“저런 총이야 말 한마디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나저나 저 새끼들은 내가 여기 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라 쏘아 되고 있군.”

백태는 정확하게 수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미 수만에게 자신도 타깃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의 눈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한다는 것은 모조리 죽이겠다는 뜻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디야! 아직 멀었어!”

총격을 받고 있는 조동민이 국정원 대원들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국도로 접어드십시오.”

조동민의 부대원들이 도착하였다. 그는 부대원들의 도착에 맞춰, 차량의 핸들을 돌리게 하여


고속화도로를 나서도록 하였다.

“따라붙어!”

승합차가 갑자기 속도를 낮춘 후, 나가는 길을 통해 국도로 접어들자, 그곳을 지나친 수만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야! 저 새끼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수만의 명령에 세 대의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바로 유턴을 하였다. 그리고 역주행을 시작하였다.


이에 운전자들이 격한 어투로 소리쳤지만, 딱 그 순간뿐이었다. 역주행을 시작한 차량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린 뒤, 나가는 길을 통해서 국도로 빠져나갔다.
“3 대가 붙었습니다!”

조동민과 백태가 탄 차량이 국도로 빠져나가면서, 수만의 차량도 고속도로에서 유턴까지 하는 강수를
두면서 그 차량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 뒤로 태정민의 차량이 붙으며 조동민에게 알렸고, 또 그 뒤로는 경찰차들이 따라붙었다.

“너희들은 어디야!?”

조동민은 국정원 소속 대원들의 차량이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아 전화로 연락하며 소리쳤다.

“지금 바로 붙고 있습니다.”

번잡한 도시로 들어서니 차량들이 많았다. 하지만 승합차는 멈추지 않았다. 신호를 무시하고, 또 차선을
다 무시하면서 도로를 달렸고, 그 뒤로 수만의 차량도 똑같이 달렸다.

“설 실장님. 지금 조동민 팀장이 서울시내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 붙었는데,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한편. 국정원에서는 설장호에게 현재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그 놈이 보낸 자들이겠지. 그리고 그 목표를 백태로 잡았을 테고 말이야.”

설장호는 놀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섰다.

“지금 즉시 조동민이 움직이는 곳의 CCTV 를 연결하고, 그에게 동선을 알려라. 또 한 경찰청과 검찰청에
연락해서 해당 차량을 모두 잡아.”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CCTV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사무실로 이동하며 말했다.

“찾아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찾아와주니 오히려 고맙군.”

설장호는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찾아온 놈이니, 확실히 잡아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탕탕탕탕!’
“!!!”

도심 한 복판에서의 총격전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모두 도망치고,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 새끼! 누군 총이 없어서 안 쏘는 줄 아나!”

그들의 뒤로 붙은 태정민이 소리쳤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들마저 총을 쏜다면 자칫 민간인 피해가
속출할 것이 뻔하였다.

-뉴스속보입니다. 지금 현재, 한남대교 방향으로 달리는 차량들에서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언론은 빨랐다. 현재의 상황을 헬기까지 띄워 모두 촬영하면서 실시간으로 뉴스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젠장. 저런 방송국에서도 이런 것을 촬영하기 위해 헬기를 띄우는데, 중범죄 자를 압송하는데 고작


경찰차와 승합차지원이라니!”
하늘에 뜬 헬기를 보며 조동민이 쓴 소리를 내 뱉었다.

“그것이 세상이다. 내가 먹고 죽을 돈은 있어도, 남을 살려줄 돈은 없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지.”

백태가 느긋하게 자리에 앉은 채 말했다.

“잠시 잊었나보구나 백태. 지금 저 놈들은 내가 목적이 아니라 네 놈의 목이 목적이다. 난 여기서 차량을


세워두고 도망가면 돼. 하지만 넌 그냥 이 차 안에 있어야 한다.”

조동민은 그의 느긋함에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러자 백태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난 어차피 여기서 살아남아도 죽어. 이래죽나. 저래죽나 마찬가지라면, 마음의 여유라도 좀 찾아보고
죽는 것이 났지 않을까?”

백태는 이미 포기상태였다. 자신의 목은 이수호에게 저당 잡힌 상태이며, 지금 자신의 뒤를 쫒는 인물이


이수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수만인 것을 확인하였으니,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인지한
그였다.

‘띠리리리’

조동민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지금 즉시 차량을 잠실구장으로 진입시켜라.”


“네? 잠실구장요? 그곳은 왜…….”
“대원들을 대기시켜둘 것이다. 일단 무엇보다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하니, 텅 빈 넓은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CCTV 를 보며 해당차량을 어디로 이동시켜야 가장 안전한지를 미리 확인하였다. 그리고 선택된


곳은 잠실야구장이었다. 경기가 없는 상태이기에 주차장은 물론, 일대가 모두 비어있는 상황이었으며,
그곳으로 유인하면 뒤 따라 붙은 놈의 면상을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번잡한 도로를 역주행과 신호 무시로 모두 통과하면서 잠시구장으로 차량이 이동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태정민의 전화벨도 울렸다.

“네. 실장님.”
-지금 조동민이 백태를 데리고 잠실구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곳에서 뒤 따르는 놈을 잡는다. 절대
놓치지마라.-
“알겠습니다.”

태정민에게도 계획을 알렸다. 태정민은 그 즉시 차량을 빠르게 몰려 세 대의 차량을 더 바짝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이번엔 수만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회장님.”

그에게는 이수호가 직접 전화하였다.

00185 경호원 =====================================================================


====
                          
“지금. 백태의 뒤를 쫒고 있나?”
“네.”
“너의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것을 설장호가 보고 있다면 너를 잡기
위한 함정을 만들어 둘 것이다.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뉴스가 만든다. 그를 잡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지만,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뉴스를 접한 이수호는 설장호의 계획을 정확하게 캐치하여 수만에게 알려주었다.

“차량을 돌린다.”
“네? 더 쫒지 않습니까?”

수만은 이수호의 연락을 받은 후, 계획을 변경하였다. 계속하여 뒤 쫒는다면 저들이 파 놓은 함정에


그대로 걸려들 것을 이미 이수호로부터 들었기에 물러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굳이 저 놈들이 파 놓은 웅덩이로 스스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기회를 다시 볼 것이니 물러나라.”
“네. 알겠습니다.”

수만의 명령으로 맹추격을 감행하던 차량들이 일제히 차량을 급하게 유턴시키며 돌아갔다.

“저놈들 뭐야! 그냥 돌잖아!”

생각지 못하였다. 그들이 계속 승합차를 따라붙어야 설장호의 계획이 실행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획을 발설한 것처럼 그들은 차량을 돌려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제길! 쫒자!”

돌아가는 차들을 그냥 보내고 국정원으로 향하는 백태를 더 감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차량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대해 추선우도 반기는 표정이었다.

“괜찮지?”

태정민은 자신의 결정으로 인하여 자칫 추선우가 다른 의견을 내 놓을 것을 염려하여 미리 물었다.

“태팀장님이 돌리지 않았다면 아마 제가 핸들을 꺾어 돌렸을 것입니다.”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은 웃었다. 그리고 그의 차량이 유턴하여 수만의 뒤를 쫒자, 따라오던 영월의
경찰차량들도 일제히 차량을 돌려 수만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어찌 된 거야?”

설장호는 CCTV 영상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실장님. 조동민 팀장님 전화연결입니다.”


“무슨 일인가?”

팀원의 말에 설장호는 곧바로 그의 전화를 받아들었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낌새를 차린 모양입니다. 차를 돌렸는데, 뒤따라오던 태팀장과 함께 영월의 경찰들이
그 뒤를 따라 붙는 중인 것 같습니다.”

조동민은 그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흘러가는 정황만으로 그럴 것임을 말하였다.

“일단 넌 무조건 백태를 데리고 국정원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국정원 대원들에게 태정민을 지원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곧장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차량을 돌려 태정민을


지원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형님. 뒤에 차량이 붙었습니다. 경찰차도 몇 대 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간을 빼놓고 다니는 놈같군. 그대로 이동하여 의왕으로 들어서라. 그곳 호수의 한적한
곳에서 저 놈들을 잡는다.”
“알겠습니다.”

수만은 되도록 서울을 벗어난 상태에서 뒤따르는 인물들을 상대해주려 하였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뉴스속보가 전해지고, 경찰과 검찰이 국정원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으니, 서울바닥
전체가 검, 경찰로 깔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들이 위험해지기에, 검, 경찰이 깔리기 전,
서울을 벗어나 결판을 보려는 것이었다.

‘띠리리리’
“네 석관형님.”

수만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고, 전화를 한 인물은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2 위인 장석관이었다.

“지금 너의 차량 주변으로 애들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이 보답은 꼭 해드리겠습니다.”

장석관은 이수호의 자택에서 그에게 연락하였고, 발 빠르게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쾅!’

수만과 석관의 통화가 끝난 후, 약 10 분 정도가 지났을 때, 태정민의 뒤를 따라오던 경찰차가 갑자기


전복당하며 몇 바퀴를 굴러 가드라인에 충돌하였다.

“뭐야!”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본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다른 놈이 또 붙은 모양입니다.”

추선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경찰차들 옆으로 대형 덤프트럭이 다가서며 그냥


치고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아주 제대로 놀아보려고 판을 키우고 있군.”

태정민은 룸미러를 통해 빠르게 다가서는 덤프트럭을 보며 말했다.

-지금 국정원 팀원들이 태팀장님의 주변으로 붙을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잠시 후, 조동민의 무전이 들어왔고, 그의 무전을 받은 후, 사이드밀러와 룸밀러를 통해 국정원 차량들을
찾고 있었다.

“저기 있습니다.”

추선우의 눈에 국정원 차량으로 보이는 세 대의 차량이 보였고, 그 차량들은 빠르게 태정민의 차량으로
붙기 시작하였다.

-이어마이크의 무전 주파수는 3 입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그의 뒤를 쫒으십시오. 그리고 그 놈은


지난 날 추선우씨가 입원 병원에서 박태식 형사를 인질로 잡았던 놈입니다.-
“네!?. 정말입니까?”
-네. 지금 백태를 죽이려고 달려든 인물은 그 자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백태를 죽이지 못하였으니,
지난날 병원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추선우씨의 목을 노리려는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면상을 충분히 볼 수 있었지만, 그 순간 강서진이


자신의 입술을 훔치는 바람에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었다.

“잘 되었군요. 이참에 그 놈의 낯짝이나 보겠습니다.”

추선우는 그 마저 잡기를 원했다. 이미 백태를 잡았으니, 그를 더 족쳐가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를 가지고 있는 놈이 더 붙는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수만이 탄 차량은 성남방향으로 향하였다.

“또 성남이야. 제기랄.”

태정민은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자신에게 성남은 그리 좋은 기억을 남겨둔 곳이 아니었다.


병따개를 상대하며 거의 죽다 살아난 기억이 있기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되도록 서울을 벗어나 한 적한 곳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우리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잡도록 하죠.”

태정민에 비해 추선우는 성남에서의 일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었다. 비록 석강수를 잡지 못했지만, 그


괴물 같은 인간과 비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상황이었었다.

“성남 펜션 방향입니다.”

꼭 자신들의 대화를 들은 것 마냥, 수만의 차량은 지난 날 그 장소 그대로인 성남 펜션 방향으로 향하였다.

“어째서 저 펜션을 다들 알고 있는 거지?”

태정민은 차를 뒤쫓으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미 백태가 그 펜션을 알고 있기에, 수만이라고 꼭 알지


못하라는 법은 없었다.

“뒤 따르던 경찰차가 모두 사라졌어.”

태정민은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며 말했다. 이미 그들의 뒤를 따르던 경찰차는 덤프트럭에 의해 다 전복


당했고, 저 멀리서 덤프트럭이 계속하여 따라 붙고 있었다.

-덤프트럭은 우리 쪽에서 저지하겠습니다. 그 놈을 쫒으십시오.-

곧 무전을 통해 국정원 대원의 무전이 들려왔다. 조동민에 의해 두 사람을 돕도록 한 인물들이 덤프트럭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태정민이 말했고, 그는 수만의 차량을 바짝 뒤쫓기 시작하였다.

“형님. 다 떨어져 나가고 고작 한 대의 차량이 붙었습니다. 이쯤에서 저지할까요?”

수만의 부하가 그에게 무전으로 뒤의 상황을 알렸다.

“아니다. 저들이 숨었던 곳, 그곳에서 저들의 마지막을 장식해줘야겠다. 그리고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놈. 그 놈은 내가 직접 친다.”
“알겠습니다.”

수만은 추선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임무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겨준 인물. 바로
추선우였기에, 그를 이번에는 제거하려는 마음이었다.

수만의 차량은 정확하게 성남펜션에 도착한 뒤, 멈춰 섰다. 지난날의 사건에 대한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국정원에서도 또 한 이들에게도 이곳의 흔적은 되도록 빨리 치워야 하는 공통점이 있었었다.

“이곳에서 백태회장이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하였지?”


“네. 바로 이곳입니다.”

수만이 펜션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고, 한 사내가 다가와 답했다.

“이런 요새와도 같은 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지금까지 끌고 오다니. 백태회장도


어지간히 무능력하군.”

수만은 백태를 저평가하고 있었다.

“차가 따라 들어옵니다.”

수만의 부하가 태정민의 차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수만을 비롯하여 여섯 명의 부하는 들어오는
차량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백태의 압송차량이 들어옵니다.”

같은 시각. 조동민과 백태가 탄 승합차가 국정원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이 보고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전달되었다.
설장호는 국정원 정문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해당 차량이 들어서는 것을 본 후, 국정원 본관건물
정문으로 향하였다.

“다시 말한다. 절대 백태의 주변에 그 어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다시 당부하였다. 이미 국정원 안에서 두 명의 인물의 잃었기에 더 신중함을 기하는 중이었다.

“백태가 들어오는가?”

정문으로 나서는 설장호를 보며, 국정원장이 다가서서 물었다.

“네. 드디어 대어가 하나 들어옵니다.”

백태는 정말 큰 인물이었다. 비록 정구석의 밑에 있던 인물이지만, 어찌 보면 정구석보다 더 뛰어나며 큰


인물이 바로 백태였다.
“백태입니다.”

곧 차량이 정차하였고, 조동민에 의해 백태가 수갑을 찬 채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백태.”

그의 앞으로 설장호가 다가서며 말했다. 자신 앞에 선 설장호는 본 백태의 표정은 의외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에게서 정보를 뜯어내려는 수작 같은데, 시작하기 전에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어떤가? 난 절대…….


우리 조직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너에게 알려줄 생각이 없으니 말이야.”
“상관없다. 네가 알려주지 않아도, 다른 놈들은 알려줄 수 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석강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백태는 이미 이와같은 말을 추선우에게 들었기에,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끌고가라.”

설장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리고 굵직한 어투로 말하자, 조동민이 그를 끌고 이동하였고, 그


주변으로 국정원 대원들이 둘러싸서 이동하였다.

“자네가 직접 심문할 텐가?”


“네. 제가 합니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을 것이며, 자리를 비우지도 않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물음에 백태를 노려보며 답했다.

“어서 오시게.”

같은 시각. 성남펜션에서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반기는 듯, 수만이 양 팔을 벌리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과 추선우는 그의 얼굴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도 알지 못하기에
긴장감이나, 두려움은 일체 없었다.

“누가 두목인가?”

이미 수만이 두 팔을 벌려 마중하였지만, 태정민은 그들을 모두 고루 보며 물었다.

“이거…….이렇게 나오면 나 또 한 다른 대접을 해줘야하는데…….”

수만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호화스러운 대접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달라져도 별 상관은 없다. 그러니 시간끌지말고 빨리 끝내자.”

추선우가 그의 말을 듣고, 수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추선우…….”

수만은 그를 보며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0018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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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하다보니 우리가 인원수가 많아. 그래서 고민이다. 이놈들에게 너희
둘을 맡겨둘까. 아니면 나 혼자 상대할까…….고민이다.”
“고민하지마라. 머리카락도 얼마 없어 보이는데, 고민하면 그 마저도 없어진다. 그러니…….그냥 한 번에
다 붙어.”
“…….”

추선우는 수만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를 향해 걸으며 말했고, 이미 인원수에서 차이가나지만,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추선우를 보며 수만의 눈썹이 씰룩거려졌다.

“죽이지만 말고, 적당히 데리고 놀아라.”

수만은 부하들에게 명령 내렸다. 그러자 여섯 명의 부하는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섯 명의 부하들이 달려든 후, 수만은 담배를 꺼내 물며 불을 붙였다.

“!!!”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의 주먹이 그대로 자신의 얼굴 앞으로 날아왔고, 수만은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나, 힘겹게 그의 주먹을 피하였다.

“적의 수가 많을 때는 한 놈만 죽도로 팬다. 그리고 되도록 그 한 놈은 우두머리이어야 한다.”

추선우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섯 명의 부하가 있지만, 추선우는 그들의 공격을 모두 피한 뒤,


곧바로 수만에게 달려들었던 것이었다.

“대단하다는 말은 이제 하지 않겠다. 넌 충분히 그 이상의 놈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으니 말이야.”

수만은 추선우를 보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부하가 추선우를 공격하고자 달려들었다.

“멈춰라.”

수만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추선우와 수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대로 멈춰선 채, 두 사람을
향해보고만 있었다.

“이 놈은 건드리지마라. 내가 직접 사냥한다.”
“알겠습니다.”

수만이 위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처지 또 한 비슷하였다.


두 사람 모두 총을 맞았고, 상처를 치료한 상태였다. 비록 추선우의 상처가 계속하여 터져버리면서
고생했지만, 추선우는 팔. 그리고 수만은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었다.
움직이는 데는 오히려 수만이 더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총상을 입었다고 핸디캡을 안고 싸운다는 말은 하지마라.”

수만은 추선우가 총상을 입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의를 들어 보이며 자신 또 한 총상을


입은 흔적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리하면 어느 누가 더 핸디캡을 안고 싸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너와 나…….동등한 입장에서


싸운다.”

수만이 다시 옷자락을 내리며 말했다. 그리고 추선우를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그 순간 태정민은 여섯 명을 상대로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날과는 달리 그의 몸은 무척
가벼워보였고, 여섯 명을 상대하면서도 아직 상처를 입지 않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힘드시면 그냥 한 대 맞고 드러누워계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추선우는 아직 수만과 격전을 벌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힘겹게 여섯 명과 겨루는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정말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놈들 눈빛이 너무 달라.”

태정민은 여섯 명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차기를 이리저리 잘도 피하면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의외로
여섯 명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듯 해보였다.

“혼자 다닌다고 하던데…….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이 더 보기 좋을 것 같다. 저런 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머릿수로 상대를 제압했다는 불명예스러운 말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야.”

추선우는 태정민이 상대하는 여섯 명을 빗대어 형편없음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만도 추선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언제나 혼자 움직였다. 지금에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부하를 거느리고 움직였지만, 추선우의 말처럼, 자신 혼자 움직인 것만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난 역시 혼자 하는 스타일이야. 저런 놈들을 믿고 움직인 내가 바보 같군.”

수만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과 격전을 벌이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태정민의 실력이 워낙 월등하기에 보통의 인물이라면 그의
옷깃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아직도 싸우지 않고 서로 눈빛만 주고받고 있어? 둘이 연애하냐?”

태정민이 마지막 한 놈의 얼굴에 자신의 주먹을 그대로 꽂은 후, 그가 쓰러지자 가픈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짝짝짝”

수만은 태정민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지랄한다. 네 놈에게 박수 받고자 이런 행동을 하지않아. 마음 같아서는 그냥 총으로 머리통 한 방씩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러면 너무 빠르게 숨통을 끊어놓는 것 같아서 두들겨 패서 스트레스라도
날리고자 한 거다.”

태정민은 여전히 가픈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쉬십시오. 이놈은 내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제 못 움직이겠다. 그 놈은 네가 처리해라.”

태정민은 쓰러진 여섯 명을 마저 발로 한 방씩 더 강하게 차면서 말했다. 혹여 라도 이들이 다시


일어난다면 남은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자만심인가?”
“자신감이지.”

수만은 자신의 앞에 선 채, 자신을 노려보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총상 입은 팔을 이리저리


휙휙 돌려보며 답했다.

“시작하자. 태팀장님의 말처럼 너와 내가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눈빛만 마주친 것 같다.”

추선우가 먼저 움직였다. 비록 왼쪽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충분히 수만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였다.

“태팀장과 추선우의 위치는 확인했는가?”


같은 시각. 백태를 무사히 국정원까지 연행한 후, 설장호에게 인도한 조동민은 자신의 대원들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두 사람을 쫒는 덤프트럭을 저지하느라,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알았다. 주변을 더 살펴봐라.”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CCTV 를 확인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리고 덤프트럭을 저지한 대원들은 성남 방향으로 향하는 길가에 전복된 덤프트럭을 보고 있었고, 한
대원이 그 안에서 운전하던 사내를 끌고 나왔다.

“이 놈을 국정원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주변을 살핀다.”


“네. 알겠습니다.”

이들은 SUV 세대로 덤프트럭을 전복시킨 사람들이었다.


사고현장으로 경찰차들이 줄기차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한 승용차에서 강서진이 내렸다.

“태팀장과 추선우씨는 어디에 있나요?”

강서진은 국정원 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대원들도 그녀를 잘 알고 있기에, 정확한 답을 주려 하였지만,


현재로써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팀장님. 여기입니다.”

CCTV 를 확인하는 사무실로 이동한 조동민에게 한 대원이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일전을 벌였던 바로 그곳입니다.”

태정민의 차량이 향한 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동민은 그 즉시 대원들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현재 성남펜션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곳 일대에는 CCTV 가 없어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대원은 곧바로 조동민에게 들은 내용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었다. 강서진은 그 즉시 차량에 올라탔고,


자신과 함께 온 형사들을 이끌고 성남펜션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국정원 차량이 움직였다.

“성남 펜션에서 추선우와 태팀장이 그 놈과 조우를 한 모양입니다.”

조동민은 두 사람의 위치를 설장호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즉시 대원들을 그쪽으로 보내고, 자네도 가. 가서 그 놈을 잡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조동민도 현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는 백태를 가둬둔 감금실로 들어섰다.

‘퍽!’
‘퍽!‘

한 편. 펜션에서는 수만과 추선우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누가 우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화려한 액션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서로에게 일격을 주고 뒤로 물러났다.
“세상에…….너 같은 민간인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세상에 너 같은 실력을 가진 나쁜 놈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하하! 추선우 승!”

수만의 말이 끝난 후, 추선우가 그 에게 똑같은 말을 되돌려주자, 태정민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고, 곧


추선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저 놈은 너를 눕힌 후, 더 자근자근 짓밟아주겠다.”
“그건 불가능해. 넌 나를 이기지 못 할 테니 말이야.”
“추선우…….2 승.”

수만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은 진지한 상황이었다. 추선우도 물론 지금의 상황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태정민이었다. 마치 여섯 명의 사내와 격전을 벌인 후, 정신을
놓아버린 듯, 평소와는 다른 어투로 실실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5 분 안에 끝내자. 그 동안 너와 나…….그 누구도 쉬지 말자.”

수만은 추선우를 빨리 눕히고, 태정민의 입을 뭉개버리려는 생각으로 이를 꽉 깨문 채 말했다.


그리고 그 즉시 두 사람의 주먹은 서로의 면상을 향해 날아갔다.

‘퍽퍽’

하지만 추선우의 주먹은 수만을 비켜갔고, 수만의 주먹은 추선우의 안면을 강타한 뒤, 밀려나는 그에게
다시 한 방을 먹였다.

“이제 재미없지?”

수만은 넘어진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태정민을 보았다.


하지만 태정민은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은 채, 계속하여 마주보고 있었다.

“다시 일어서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뻗으면 재미없잖아.”

수만은 자신의 공격으로 추선우가 쓰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추선우는
다시 몸을 일으켰고, 자세를 잡았다.

“너. 주먹이 아주 맵다.”


“내 주먹 뿐 아니라, 내 몸에서 뻗어지는 모든 것은 맵다.”

추선우의 말에 수만은 주먹을 앞으로 천천히 뻗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지. 작은 것이 맵지. 아마 그것도 작을 것 같은데…….”


“너 이 새끼! 5 분만 기다려라. 네 놈의 목을 쳐 준다.”

그의 말에 대해 태정민이 여전히 농담을 섞으며 말하자, 수만은 인상을 구기며 다시 태정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도 5 분이었는데, 지금도 5 분이면, 너의 5 분은 대체 얼마나 있어야하는거냐?”

태정민은 긴장감이 없었다. 수만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그에게는 긴장감은커녕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였다.

“이쪽에 신경 써라!”
‘슉탁탁탁탁! 퍽!’
수만이 태정민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추선우의 공격이 이어졌다. 주먹을 내 지른 후, 앞차기와
옆차기에 이어 다시 주먹이 나가는 것까지는 수만이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몸을 돌리며 강하게
휘어들어간 돌려차기는 막지 못한 채, 정확하게 면상을 내어주었다.

“일어나라. 이정도로 눕지 않는 놈이잖아.”

조금 전의 상황과 정반대였다. 이번엔 추선우가 서서 쓰러진 수만을 향해 내려 보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강타당한 충격이다.
수만의 주먹보다는 추선우의 돌려차기가 더욱 더 큰 충격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0018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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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불리한 곳을 건드리지 말자는 말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얼굴보다 나의 옆구리 쪽의 공격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자세 바로 잡아라.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건강한지를 떠나, 때리는 사람
마음이다. 내가 네 놈의 얼굴을 때리고 싶은데 굳이 옆구리를 때려야하는 이유는 없잖아.”
“맞는 말이지.”

수만은 조금 전 돌려차기에서는 필시 자신의 옆구리를 강타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거리상으로 제대로
적중시키기 힘들었던 머리를 겨냥한 것을 두고 말했지만, 추선우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았음을 말했다.
이어 태정민이 쓰러진 여섯 명 중, 한 명이 꿈틀거리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강타하며 말했다.

수만은 추선우의 공격패턴을 떠나. 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백태가 왜 네 놈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지 알 것 같군.”


“그 놈에게 나를 평가하라는 말을 한 적 없다. 그러니 나를 경험해보고 난 뒤에 네가
직접 나를 평가해라. 그건 허락한다.”

추선우는 다시 주먹을 쥐며 말했다. 수만도 얼굴을 강타당한 시점에서부터 점차 다시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고, 곧 자세를 잡아 추선우를 보았다.

‘띠리리리’

두 사람이 다시 격전을 일으키려는 순간,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하…….우리 누님께서 전화를 다 주시네. 네…….강 검사님.”

강서진이었다.

-어디야?-
“지금요? 지금 성남펜션입니다.”
-성남 펜션인 것은 알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지?-
“네? 우리가 펜션에 있다는 것을 아셨어요?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시다고요? 저런…….검사님께서 오시면
여기 있는 한 놈이 참 불쌍하게 되겠네요.”

태정민은 강서진과 통화하면서 수만을 보며 말했다.

-너 왜 그래? 약 먹었어? 뭐. 일단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고 하니 기다려. 참…….추선우씨는?-


“지금 병원에서 추선우를 잡으려고 다니던 그 한 놈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거 아주 재미나요. 어서
오세요. 신나는 구경거리를…….”
-정신 차려라 태정민!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몰라? 백태를 죽이려 한 놈이다.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그
정도면 어떤 놈이 뒤에 있는지 뻔 하지 않아?-
태정민의 여유와 강서진의 긴박감은 완전 반대였다.
통화를 끊은 후, 태정민은 전화기를 쏘아보았다.

“강 검사님이 이쪽으로 오고 계신다고 하네. 그렇게 되면 저 놈은 어떻게 되는 거야? 강 검사님이 오시면


형사들도 함께 올 것인데, 그냥 잡히겠네.”

태정민의 말에도 수만은 추선우만을 보고 있었다.

“지원군이 오나본데, 그 지원군이 오기 전에 결판내자.”


“원한다면…….”

기다리만하면 지원군의 도움으로 추선우의 승리가 자동적으로 될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정말 화려하군. 누가 저런 놈들을 민간인이라고 생각하겠어.”

또 다시 두 사람의 주먹은 서로의 얼굴과 복부, 급소를 향해 내 질러지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은 여전히
두 사람의 격투를 구경하며 감탄까지 하고 있었다.

“백태, 두 번 묻지 않겠다. 수장이 누구인가?”

한 편, 백태를 직접 심문하기 시작한 설장호는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백태 역시 자신의 눈을 노려보는 설장호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두 번 묻지 마라. 나 역시 대답할 생각이 없으니, 한 번 묻는 질문에 내가 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두


번, 세 번을 물어도 답을 들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백태는 이미 입을 굳게 닫을 생각을 하고 난 뒤에 그를 마주하여 앉은 상태였다.

“여기에 있으면 너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지난 번 최기수나 서충식처럼 그리 쉽게 목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난 상관없다. 어차피 내 목은 내 목이 아니다. 그러니 누가 거둬간다고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내
목이다.”

백태는 쉽지 않았다. 최기수나 서충식처럼 설장호의 말에 생각하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저 설장호의 말이 나오고 난 뒤에는 곧바로 자신의 답을 하였다.

“이제 더 이상 이 조직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난. 이번에야 말로 네 놈이 속한 그 조직의 마지막


뿌리까지 모조리 다 캐내서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렇게 하시던지. 난 이제 상관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대로하면서 잘 살아봐라.”

설장호는 자신의 심문에도 전혀 답이 없는 백태를 노려보았다.

“어쩔 수 없겠군. 넌 여기서 당분간 지낸다. 절대 구치소로 보내지 않아. 여기서 매일같이 벽만 보며
살아가도록 해주마.”
“난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니까 그러네.”

백태는 설장호의 눈을 정확히 노려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똑똑’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한 대원이 들어왔다.


“뭐? 그게 사실인가?”
“네. 실장님.”
“알았다. CCTV 확인 잘하고, 절대 그 놈의 행방을 놓치지마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그의 표정은 다시 백태를 향해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미소가 궁금하지 않나?”


“궁금하지 않다. 그러니 괜한 짓으로 시간낭비하지말고, 그냥 날 감방에 쳐 넣어라.”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너와 함께 그 자리에 앉은 한 놈과 같이 말이야.”
“…….”

지금까지 전혀 표정변화 없이 설장호의 말을 받아쳤던 백태였다. 하지만 조금 전의 말에 그의 눈빛이


변하였고, 설장호를 노려보았다.

“나와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넌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백태는 설장호가 자신을 떠 보기 위한 술수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다.

“석강수…….그 놈이 지금 CCTV 에 잡혔다. 지금까지는 잘 숨어 다녔겠지만, 이제부터 그런 운은 네게


없다.”

설장호의 입에서 석강수의이름이 정확하게 나왔다. 이미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도 비밀리에 이루어진


인사인데, 어떻게 그 누가 알아냈는지 궁금한 백태였다.

“위에 한 놈이 있고, 그 바로 아래로 너와 석강수가 새로 자리매김하여 앉았겠지. 그리고 기존 네 명의


회장들 목이 날아가는 것을 너희들은 다 보았을 테고 말이야.”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저 자신을 떠 보기 위하여 내 뱉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콕콕 집어서 말하고 있었다.

“넌 여기 있어라. 곧 석강수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손에 채워진 은팔찌의 무게가 누가 더 무거운지


내기라도 하게 해 주겠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절대 설장호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던 눈동자가, 그를 천천히
올려보기 시작하였다.

“석강수…….그 놈을 잡으면 나에게도 좀 알려주길 바란다. 그런 놈이 어째서 나와 동급이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백태는 얼마 전에도 궁금해 하던 사안이었다. 석강수를 처음 만난 것은 그에게 살인청부를 의뢰할 때였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그가 그리 강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일체 알지 못했었다.
그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하는 놈이라 여겼었다.

“너와 동급? 웃기는 소리하는군. 석강수가 한 쪽 다리가 부러진다면 너와 동급 정도가 될 것이다.”


“!!!”

백태의 표정이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자신도 이미 꽤 오래전부터 주먹이라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추선우라는 민간인에게 패하여 잡혔고, 이제는
석강수라는 또 다른 놈이 나타나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너에게 직접 석강수의 무서움을 느끼도록 해주겠다.”


설장호는 이 말을 남기고 감금실을 나섰다. 백태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석강수가 비록 이수호의
마음을 얻어 회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정통으로 걸어온 자신보다 레벨이 높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지금 즉시 사당역으로 향한다. 석강수가 거리로 나왔으니, 절대 그를 놓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이 직접 가서 석강수와 대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이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 명의 여인과 한 약속도 있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증인이 될 백태의 보호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부대원들에게 명령만을 내리고 있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쾅!’
‘철푸덕!’
“제기랄…….넌 정말 귀신같은 놈이다.”

같은 시각. 수만이 다시 쓰러졌다. 하지만 이번엔 쓰러진 충격이 꽤 큰 모양이었다. 쉽게 일어서지


못하면서 추선우를 향해 격한 말을 내 뱉고 있었다.

“일어나라. 아직 멀었다.”

추선우는 여전하였다. 상처가 없었고, 입술이 터져 피가 조금 흘러내리는 것뿐이었다.

“차가 들어오네.”

태정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은 성남펜션을 들어서는 저 멀리 나있는 길을
보았다.

“저 차가 이곳까지 오는데 5 분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그 안에 끝내자.”


“저 놈은 왜 계속 5 분 타령이야. 이미 30 분이 넘게 지난 것 같은데 말이야.”

태정민이 그의 말을 듣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5 분이라는 시간은 수만이 추선우를 잡을 수 있겠다고


자신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추선우를 접하니, 오히려 자신이 그 시간 안에 잡힐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수만이 다시 주먹을 쥐며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는 횟수를 더 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수호의 경호원인 그가, 민간인에게 당하기 일보 직전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수만의 실력은 이미 그와 대적했던 모두가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실력은 역시 추선우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자신이 발악하며 제대로 된 싸움실력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추선우는 자신보다 적어도 한 단계는 더 높은
곳에 있는 싸움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퍽! 퍽! 퍽퍽!’

수만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 추선우의 주먹은 그의 복부를 가격하였다.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고 있던
중에, 추선우의 주먹이 다시 그의 턱을 올려쳤다.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나던 그를 향해 추선우는
태권도의 나래차기와 비슷한 발차기로, 그의 복부에 먼저 한 발을 들이민 뒤, 그 자리에서 휘리릭 돌며
돌려차기로 수만의 면상을 정확하게 날렸다.

‘콰당!’
수만이 또 넘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그 충격이 꽤 강한 모양이었다. 처음보다 일어서는 속도가 많이
느려진 수만이었다.

“꼼짝 마!”

잠시 후, 강서진이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총을 꺼내 수만을 향해 겨누었다.

“강서진 검사…….당신이 장태를 죽였습니까?”


“장태? 난 그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괜한 쓸데없는 이름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러니 너도 그냥
순순히 따라가던지, 아니면 그 장태라는 놈과 함께 저승행 셔틀버스에 오르던지, 선택은 네가 해라.”

태정민은 강서진을 보았다. 지금까지 이토록 거칠게 말한 적이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후에


그녀의 순수함은 사라졌고, 어느 샌가 터프함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0018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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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해! 모조리 잡아 쳐 넣어!”

강서진은 자신과 함께 온 형사들에게 명령 내렸고, 형사들은 태정민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모조리 수갑을 채운 뒤, 승합차에 태우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씨. 물러나세요.”

그리고 그녀는 수만을 향해 총을 겨눈 채, 다가서며 말했다.

“이놈을 그리 쉽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이놈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도 있고, 그러니…….”


“그건 당신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당신에게 허락한 것은 지현의 안전이에요. 당신에게 저 놈을
잡고, 정보를 얻어 수장을 잡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강서진은 추선우의 말이 끝나기 전에 버럭 소리치며 화를 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태정민은 물론, 추선우도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함께 온 형사들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무엇보다 수만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무섭군. 대한민국 검사라 이건가.”


“시끄러! 너 같은 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생각 없다. 두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뒤돌아서라.”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추선우의 곁으로 더 다가선 뒤, 그를


뒤로 물러나도록 만들었다.

“물러나세요. 이제부터 우리가 합니다. 그러니 추선우씨는 지현에게로 가세요.”

그녀가 변하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모든 것이 다 날카롭게 변한 듯 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추선우에게 너무 한 것 같아요 검사님.”


“시끄러! 너도 뒤로 물러나. 청와대 경호원이 왜 이런 일에 이리 몰두해! 가서 대통령이나 지켜!”
“…….”

태정민도 그녀가 갑자기 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정민은 곧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뒤로 물러서도록 하였다.
“아무래도 오늘 강 검사님께서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 그냥 시키는대로하자.”

태정민의 말에 추선우는 다시 강서진을 보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무리 총을 들었다고


하여도,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리 쉽게 제압당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어서! 두 팔 머리위에 올리고 손들어!”

강서진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수만은 그녀의 말대로 두 팔을 뻗어 올린 뒤, 머리위에 올리면서 뭐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중얼거림은 강서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모두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단지 입모양으로
뭔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는 거야?”

태정민이 그의 입모양을 보며 묻자, 추선우와 강서진의 시선이 그의 입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수만은 다시 한 번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입모양만 내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크게 말해!”

답답함에 강서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수만이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새끼가…….”

그의 행동에 태정민이 화가 나 욕설을 내 뱉었다.

“가까이 오면 나를 조종하는 사람이 누군지 한 사람에게만 말해주겠다. 궁금한 사람이 와라.”

수만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추선우는 물론,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순간일 수도 있었다.

“한 사람에게만 말할 것이다. 그러니 가장 궁금한 놈이 내 곁으로 와라.”


“웃기는군. 누가 그런 수에 넘어…….”
“어차피 나도 잡힌 몸이 된다. 최기수회장,. 서충식회장, 그리고 백태회장…….잡히면 어찌 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을 텐데…….”

그의 말에 태정민이 콧방귀를 뀌려는 순간, 수만의 말이 다시 이어지자, 모두가 조용히 그를 보았다.


서충식은 그리 큰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에 대한 사망은 그다지 비중 있게 생각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기수가 국정원 안에서 죽고, 또 백태가 국정원으로 압송 중, 수만에게 살해당할 뻔 하였으니, 그가
하는 말에는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즉, 조직에서 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은 인물이라고 하여도, 잡히는 그 순간부터는 적이 되는 것이고,
타깃이 되는 것이었다.

“다가와라. 딱 한 놈에게만 알려준다.”

수만이 다시 말했다. 그러자 잠시 동안 모두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곧 추선우가 움직이려 하였다.

“추선우씨는 빠져계십시오. 이 일은 우리가 합니다.”

그가 움직이려 할 때, 강서진이 먼저 말리고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총을 겨눈 채, 수만을 향해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누구를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네.”

태정민은 궁금하였다. 도저히 뭔가 와 닿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선우 또 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현을 보호한다는 말은 하였지만, 결국은 그녀의 아버지인
이창민을 죽인 당사자를 잡아, 그녀에게 정식으로 사죄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강서진이 말했듯이, 추선우는 민간인이다. 그럴 권한이 없다. 그에게 준 권한은 오로지 지현의
곁에서 그녀를 경호하는 것뿐이었다.
강서진은 총을 겨눈 채, 그의 곁으로 더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수만의 앞으로 약 3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저희들이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녀가 망설이는 듯 하여, 함께 온 형사들이 나서려 하였다.

“난 분명히 말했다. 단 한 사람에게만 말한다. 너희들이 다가서면 난 입을 열지 않겠다.”

수만은 다른 형사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의 입가에 생겨난 미소를 보며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더 다가와라. 적어도 얼굴을 가까이서 봐야 말하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수만은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은 비장하였다. 강서진은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형사들도 근처로 가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강서진이 그의 곁으로 2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더 다가섰다.

“이거…….어디서 꼭 본 듯한데…….”

그 순간 태정민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뭔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는 격한 말을 내 뱉은 뒤, 그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고, 추선우가 갑자기


움직이자, 수만의 표정도 변하였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추선우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며 소리쳤고, 그 순간 강서진이 추선우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기랄! 병원 지하주차장!”

그리고 그 때서야 태정민의 기억속에서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기억에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청와대 경호실 수석경호원의 목을 단칼에 베어내었던 그 순간과 일치하였다.
이에 태정민도 소리치며 자신의 옆에 있던 형사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빼 들었다.

“그래도 모두 바보들은 아니었군!”

수만이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위에 올려두었던 두 손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강서진을 향해 움직였다.

‘탕! 탕! 퍽!’
“…….”

수만이 움직이자마자, 두 발의 총성과 함께 강한 충격음이 들렸다. 그리고 수만은 뒤로 한 참을 밀려나


넘어졌고, 눈을 뜬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추선우는 강서진의 옆으로 다가선 뒤, 그녀를 부축하며 안부를 물었다.

“네…….”

강서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한 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죽은 수만을 향해 보았다.


수만이 칼을 들고 강서진에게 다가설 때, 태정민은 형사의 허리춤에서 빼낸 권총을 들어 쏘았고,
강서진도 추선우를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리기 전, 수만이 움직이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서진이 쏜 총을 맞았지만, 그가 힘껏 뻗은 칼 든 손이 강서진에게 와 닿기
전, 추선우의 나래차기가 수만을 뒤로 날려 보냈다.

수만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는 강서진이 쏜 총알을 머리에 그대로 맞고 즉사하였다.


하지만 태정민이 쏜 총알에는 맞지 않았다. 태정민은 형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의 첫 발이,
공포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급한 나머지, 첫 발이 실탄이라 생각하며 쏜 것이었다.

“잠시 앉으십시오.”

추선우는 강서진을 부축하여 옆으로 앉도록 하였다. 그리고 형사들은 일제히 수만의 곁으로 움직였고,
그의 생사를 다시 확인하였다.

“죽었습니다.”

머리에 총알이 관통 당했으니, 살아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수호의 경호원 네 명중, 두 명인 장태와 수만을 죽인 사람은 공교롭게도 설장호나 추선우가 아닌,
강서진이었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강서진이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태정민에게 설장호가 전화를 하였다.

-어찌되었나?-
“시간 딱 맞춰 전화하셨네요. 조금 전, 백태를 죽이려는 놈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산 채로 잡진
못했습니다.”
-죽었나?-
“네.”
-네가 한 것인가? 아니면 추선우가?-
“아닙니다. 영월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강 검사의 총에 녀석이 사망했습니다.”
-…….-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일단 시신 수습하고, 모두 철수한다. 그리고 언론이 지금 도심 사방을 다 뒤지고 있다. 그 전에 현장을


수습해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대로 모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추선우는 강서진을 부축한 뒤, 그녀의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앉아계십시오. 곧 돌아…….”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추선우가 다시 현장을 수습하기 위하여 움직이려 하자, 강서진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잠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태정민이 차량으로 다가섰다.

“이쪽은 나와 형사들이 처리하고 갈 테니, 넌 강 검사님을 모시고 벗어나라.”


“그래도…….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추선우가 물었다.

“원래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에서는 그 현장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아. 그러니 벗어나. 벗어나서 강
검사님을 데리고 국정원으로 가. 설 실장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강서진을 보았고, 곧 태정민에게 인사하고 난 뒤,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고맙…….습니다.”

현장을 벗어나며, 다시 국도에 접어들었을 때, 강서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 검사님이 저를 도와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추선우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그녀의 말에 답하였고, 그녀는 추선우를 보면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사당역 CCTV 를 모두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석강수의 움직임에 따라 CCTV 가 그의 행보를 모두 찍을


것입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모두가 서둘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백태와 함께, 조직의
핵심임무를 수행하게 된 석강수를 사당역에서 포착하여 그의 뒤를 쫒아 숨겨진 인물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0018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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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를 처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만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같은 시각.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2 위인 장석관이 현재의 상황을 이수호에게 알리자, 그는 자신의 몸에


딱 붙어있던 나체의 여인을 뒤로 밀쳐내며 말했다.

“확인은 해 보았는가?”
“지금 확인 중에 있습니다. 일단 백태가 국정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 쪽 사람에 의해 확인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만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이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백태가 잡혀 들어간 것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그가 10 년이 넘도록
조직과 함께 했고, 무엇보다 조직의 수장이 이수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를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수만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는 그였다. 그 역시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을 곁에서
보호해오던 인물이며,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어진 임무에 대해 실패한 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10 분 이내에 알아봐라. 만에 하나 수만이 변을 당한 것이라면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장석관이 바로 움직였다. 이수호는 이미 고광에게 쓸 만한 인물을 추려두라는 말을 하였었다. 하지만


수만을 믿고 있었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만이 당한 것이라면 더 이상 기다릴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강서진검사와 추선우씨가 먼저 국정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연락입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 대원이 설장호에게 두 사람의 이동상황을 전하였다.

“조동민이 그곳으로 갔을 것인데, 길이 엇갈린 모양이군.”

설장호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돕고자, 조동민을 바로 보냈었다. 하짐나 강서진이 먼저 도착하면서 그의


손길이 필요 없게 되었다.

“조동민에게 연락하여 사당역으로 향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사당역의 일은 되도록 추선우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사당역에서 움직이는 타깃이
바로 석강수였다.
석강수와 추선우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 분명히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모든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경찰들을 배치해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겠습니다.”

한 편. 태정민은 수만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 일대의 주변 정리를 모두 끝냈다. 그리


고 한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놈은 국정원으로 데리고 갑니다. 가는 길에 혹시나 이놈의 조직이 시체를 뺏기 위하여 움직일 수


있으니, 주변경계 확실히 합니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형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자신의 차량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저 멀리 펜션으로 들어서는
초입부분에서 한 대의 차량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는 보았다는 것이겠지.”

그 차량이 그냥 길을 잘 못 든 차량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눈들이 사방에서 덤벼들고


있는 상황이기에, 저 차 역시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차량이라 생각하였다.

“그래? 알았다. 일단 모두 뒤로 물러나라.”

태정민의 생각대로, 뒤로 물러난 차량은 곧바로 장석관에게 연락하여 펜션의 상황을 알렸다.
장석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문 채, 이수호의 곁으로 향하였다.

“어찌 되었는가?”

이수호가 장석관에게 명령을 내린 지, 5 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수만이…….죽었습니다.”
“…….”

장석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만의 죽음을 말했다. 그러자 이수호의 표정이 더욱 더 굳어졌고, 고광의
눈빛마저 매섭게 변하였다.

“아주 오랫동안…….20 년이 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 조직을 찾아내는 이들이 없었다. 찾아내더라도


돈 몇 푼에 그 놈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지금을 달라.”
이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그의 옆에는 나체의 여인들이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국정원에서 나섰다. 그리고 청와대도 나섰다. 우린 이 일로 인하여 나설 곳이라고는 외교부와 검찰,


경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큰 덩치들이 더 설치고 다니고 있어.”

이수호는 이창민을 죽이면서 그로인하여 일어날 파장을 잠재울 준비까지 모두 해 두었었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은. 국정원이 나서면서부터였다.
보통은 외교부가 나서고, 검찰이 나선다. 국정원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창민대사가 북한에
대한 문제를 미국에서 많이 거론한 것으로 인하여, 북한의 소행일수도 있다는 과정이 실렸고, 그로인하여
국정원이 투입되었다.
또 한, 그 어떤 방향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추선우였다. 민간인이 이토록 질기에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는 그 어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창민의 죽음…….그 대가로 받은 것 이상으로 뱉어내고 있군.”

이수호는 한 쪽으로 마련되어 있는 와인 잔을 들었고, 곧 나체의 여인이 와인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모두에게 연락해라. 이번 이창민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파장이 더 확대되고 있으며, 그의 살인을 청부한
그 자들에게도 불똥은 튀게 될 것을 미리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이수호는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주던 장태와 수만의


죽음이 그 어떤 사유에서보다 더 급하게 그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설장호와 강서진, 태정민을 제거해라.”


“알겠습니다.”

드디어 장석관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이수호의 곁에는 고광과 장석관만 남아 있지만, 그 두


사람의 실력은 장태와 수만과는 차원이 달랐다. 또 한 그 두 사람이 거느리고 있는 부하들마저도 거의
대부분이 수만이나 장태 급이었다.

“넌. 대기하고 있는 놈들을 풀어, 추선우를 잡아와라.”


“알겠습니다.”

고광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고광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거느리는 부하들을 시켜
추선우를 사냥하게 하였다.

“이제는 더 물러나지 않겠다. 아니…….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다. 내 목을 아주 천천히 조여오더니,


이네는 아예 두 손을 뻗어 내 목에 얹어놓고 있구나.”

이수호는 와인 잔을 든 손을 바르르 떨며 말했고, 이내 벽을 향해 와인 잔을 강하게 던졌다.

“광아.”
“네. 회장님.”

그는 씩씩거리며 고광을 불렀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도 연락해라. 지금 우리를 돕지 않으면, 이창민에 대한 모든 것을 언론을 통해


발설한다고 일러라.”
“알겠습니다.”

드디어 모두가 움직이게 되었다. 20 년 동안 숨어서 이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조직의 수장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창민을 죽이도록 이수호에게 사주한 인물도 움직이게 되었다.
권력이 권력을 잡고, 또 그 권력이 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강한 권력이라고 하여도, 꼭 무너뜨리는 누군가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강서진검사와 추선우씨가 국정원으로 들어섰습니다.”

두 사람이 국정원으로 들어 온 것을 실시간으로 설장호에게 알렸다. 설장호는 사무실에서 일어나 본관


정문을 향해 나섰다.

“실장님. 안녕하…….”
“이쪽으로 오게.”

추선우는 설장호를 며칠 만에 보는 것이라 그에게 인사를 하여 하였지만, 인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그를 데리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강서진과 추선우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리하는 이유가 다 있을 것이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설장호는 두 사람을 데리고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빈
사무실이었다.

“왜…….그러십니까?”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추선우가 물었다.

“백태를 잡은 것은 고생했다.”
“그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강서진이 설장호를 보며 말을 흐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미 백태가 잡힌 것을 알고, 그를 죽이기 위하여 실천으로 옮겨졌네.”


“알고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으니까요.”

추선우는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놈의 얼굴…….그 전에도 만난 적이 있지 않았나?”


“병원에서 본 놈입니다. 박태식 형사를 인질로 삼았고, 청와대 수석경호원을 죽인 놈이었습니다.”

추선우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래. 그 놈이다. 그리고 영월에서 죽은 놈도 아마 그 놈과 같은 부류에 속한 놈일 것이야.”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는가?”

설장호가 물었다.

“영월에서 그놈. 그리고 성남펜션에서의 그 놈. 두 놈 모두 만만찮은 놈들이었습니다. 그런 놈들이


계속하여 나온다면 우리 쪽이 불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추선우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었다. 추선우가 속한 쪽은 이미 모든 것이 오픈 된 상황이었다.


설장호를 중심으로 강서진과 태정민, 박태식과 추선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이미 그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반대로 이쪽에서는 아직 그 쪽의 인물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알고 있는 놈을 잡고자 움직이면서, 달려드는 놈을 잡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백태를 잡고자 움직이면서 장태를 잡았고, 또 백태를 국정원으로 압송하면서 나타난 수만을 잡았다.
즉. 그 두 놈을 미리 알고 잡기 위하여 움직인 것은 없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먼저 찾아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일단 너희 둘은 당분간 국정원에서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지현은 물론 추선우의 친구


도 만나지 않는다.”
“네? 그건 또 왜입니까?”

추선우가 그의 말에 조금은 격한 어투로 물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


“안전요?”
“그래 안전. 자네도 알다시피 국정원 안에서 최기수와 서충식이 죽었다. 아직 이 안에 그 놈들의 피가
있다는 것이지. 그런 와중에 자네와 지현이 동시에 보인다면, 그들은 필시 두 사람을 모두 살해하기
위하여 움직일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보안을 철저하게 하였지만, 결국 최기수는 죽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직접 지키고


있다지만, 백태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분간만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여러모로 많은 정보를 입수하여 그 놈들을 쳐 나가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지현과 함께, 친구들의 안전을 중시한다고 하니, 설장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강 검사가 추선우와 함께 붙어있어. 그리고 상처부위 치료를 다시하고. 그리고 이것은 국정원
별관에 있는 내 사무실 열쇠야. 내가 보내는 모든 정보를 그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하여 나오지 않아도 될 것이야. 그리고 필요한 것은 모두 공급 할 테니, 당분간만 그 사무실에서
지내.”
“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열쇠를 건네주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급자라 하여도, 성인인 남녀를 한
사무실에 오래 가둬두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서진도 바로 받아들였고, 추선우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설장호가 나간 뒤, 강서진은 추선우의 팔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피가 다시 고여 있는 것을 본 후,


그의 상처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져 주었다.

0019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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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요.”

그 안으로 들어선 추선우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저 사용한지 오래된 하나의 사무실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사무실 안에는 PC 와 함께 대형 모니터도 있었고, 여러 가지 업무를 볼 수 있는 장비 및 장치가 다
되어있었다.
또 한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사무실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다 있었고,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구급약까지
다 구비되어 있었다.

“전쟁이라도 나면 이곳에서 먹고 살아도 될 것 같네요.”

추선우가 농담처럼 말했다.


강서진은 그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다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업무를 보기 위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사무실에 주거까지 가능하도록 만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침대까지…….정말 대단하네요.”

추선우가 먼저 침대로 다가갔다. 아주 넓은 2 층침대가 사무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결코 사무실이


좁다고 느낄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안은 무척 넓은 셈이었다.

-실장님. 사당역에서 석강수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계속 미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두 사람을 따로 있도록 만든 뒤, 곧바로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왔고, 현재 석강수를 미행중인


대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심해라. 석강수 그 놈도 우리 국정원 출신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백태보다 더 어려운 상대를 접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그를 잡기 위하여 출동한


국정원 대원들 모두가 시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사당역 전체를 다 보여주고 있는 CCTV 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석강수가 찍힌 부분에서는 더욱 더 매서운 눈빛으로 그 모니터를 향해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석강수…….이제는 끝내자.”

설장호 홀로 중얼거렸다. 그와 이미 단판을 지을 수 있었던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결국 단판을 짓지


못하고 지금까지 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지가 많이 달라졌다.
석강수는 그저 떠돌이 킬러에서 지금은 오랫동안 이 나라의 권력에 도전해 오던 한 조직의 중간 자리를 꿰
차고 앉은 인간이 되었다.
그에 반해 설장호는 그냥 상대해야 할 적이 늘어난 것이 전부였다.
자신과 함께 이 일을 해결할 인원은 정해져있지만, 잡아야 할 놈은 점점 더 늘어나면서도 이제는 강하다고
말하는 놈들만 남았으니, 그의 머릿속도 복잡할 것이었다.

“회장님. 사당역에서 특별히 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한 편. 석강수는 설장호가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사당역에서 여러 상점들을 이리저리 드나들며, 그저


식사만 하고 있었다.
이에 부하가 그에게 의도가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 나의 모든 행동을 설장호가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곳으로 국정원 애들을 보냈을


것이고.”
“네? 그렇다면 이곳을 피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난 지금 설장호와 게임을 하려는 중이다.”

부하의 말에도 설장호는 또 다시 다른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석강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더 이상 CCTV 로 그를 관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정원 대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확인을 대신하였다.

“보이느냐?”
“네? 무엇이 말입니까?”

석강수는 또 다른 가게에 들어간 후, 자리에 앉자마자 부하에게 말했고, 부하들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되물었다.

“지금 들어서는 놈들. 우리가 처음 보쌈집에 들어갔을 때도 들어왔던 놈이다.”


“…….”

석강수는 이미 사당역 인근에 국정원 대원들이 진을 치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장호가 나를 잡기 위하여 움직이지만, 나를 바로 잡지 않는 것은, 나를 미끼로 누군가를 잡겠다는


생각이겠지.”
“설마…….회장님을?”
“아마도. 그 늙은 영감을 잡고자 설장호가 나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석강수는 이미 설장호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 부하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게임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하가 물었다.

“나를 잡고자 직접 올 것인지. 아니면 대타를 내 보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지…….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난 그 변수 속에 나를 잡을 대타를 내 보낸다에
걸고 있는 중이다.”

석강수는 메뉴판을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자.”
“네?”
“약속장소가 이곳이 아니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석강수는 부하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가게를 나서며 가게 사장에게 사과하였고, 사장도 그의 사과에


웃으며 이해해 주었다.

“그 놈들도 나올 것이다.”

석강수는 가게에서 나온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고, 곧 부하들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정말입니다. 그 놈들도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정확하게 석강수의 생각이 다 맞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한 번 놀아주고, 대타가 나오기를 기다려야겠다.”

석강수는 걷던 걸음을 갑자기 멈춘 후, 부하에게 말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뒤를 보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를 미행하던 세 사람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다른 행동을 했지만, 이미 석강수의
눈에는 그들의 모든 것이 다 보였고, 그저 웃고만 있었다.

“어이!”
“!!!”

석강수는 사당역 번화가 중앙에서 세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고, 그의 행동으로 주변에 있던 국정원
대원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그러고도 국정원 소속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행도 안 되고, 또 미행하다


발각되었는데도, 그 후의 처리도 안 되고…….내가 있을 때는 이런 일 한 번에 모조리 다 집합이었다.”

석강수는 자신의 눈에 보인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한 뒤, 곧바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머문 곳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당황한 눈빛이었다.
-실장님. 석강수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한 대원이 그의 행동을 설장호에게 알렸다.

“CCTV 로 보고 있다. 그 놈의 행동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네 놈들의 모든 것이 석강수에게 들통 났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지랄이고. 그곳에서 너희들이 죽어도 되니, 석강수를 잡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비록 그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석강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였다.
대원들은 설장호의 명령을 들은 후, 곧바로 석강수를 향해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많네.”

석강수는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다. 하지만 여유가 있었다. 어투에도, 또
표정에도 여유가 있었다.

“회장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곳은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나도 좀 놀아봐야겠다. 이미 설장호가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을 텐데, 어디를 숨어도 그 놈의 눈에 다
보인다.”

석강수는 부하의 말을 들은 후,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국정원 대원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서는 석강수를 보며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실장님…….”

그리고 모니터를 향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대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설장호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눈에는 모든 국정원 대원들이 석강수에게 단 일격도
가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총을 쏠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 단 한발이라도 빗나가면서 민간인이 맞는다면, 그 여파는
아주 크게 번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탁! 퍽퍽퍽!’

석강수는 한 대원을 잡은 후, 그의 머리와 복부, 어깨를 차례로 내려친 뒤, 그의 귀에 장착된


이어마이크를 강제로 떼어 내었다.

-즐겁지 않은가? 설장호.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네가 현장에 없구나. 그럼 대타라도 내 보내야 하지


않겠나.-
“!!!”

석강수가 이어마이크를 강제로 뽑아낸 이유였다. 그는 대원이 착용한 이어마이크를 통해 설장호에게


자신이 하고픈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남에서 사당역으로 향하던 조동민의 귀에도 그의 목소리가 상세하게 들렸다.

“대타라…….누굴 말하는가?”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가 말하려던 의도를 물었다.

-추선우…….그 놈을 내게로 보내라. 그럼 이곳에서 조용히 뒤로 빠져나가겠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던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추선우를 현장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석강수. 그만 돌아와라. 넌 국정원 대원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옛날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마라. 너도 알다시피 난 성질이 그리 좋지 못해. 너희 국정원에서는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가 힘들겠지만, 난 달라. 그냥 확 갈겨버리면 돼.-
“…….”

설장호의 표정은 더욱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아니지만, 만약 석강수가 그리 행동하겠다고 하며, 그 놈은 정말 그리 행동할


놈이기에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추선우를 보내라. 그럼 물러난다.-

석강수가 재차 말했다. 하지만 그 때도 설장호의 답은 없었다.

“어때요? 이제는 좀 괜찮아졌어요?”

같은 시각. 강서진은 추선우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에게 물었다.

“네. 한 결 좋네요. 병원에서 치료 받은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추선우도 그녀가 치료해준 팔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지금, 사당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태정민 팀장이 복귀했습니다.”

석강수의 제안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설장호에게 부하가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과 추선우가 왔을 때와는 달리, 그는 사무실에서 나서지 않은 채, 여전히 모니터 속,
석강수를 향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석강수의 주변으로는 이미 국정원 대원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고, 석강수는 물론, 석강수의
부하들도 아무런 피해가 없는 듯 보였다.

-기다릴까? 아니면 이대로 이놈들의 숨통을 끊어버릴까? 선택은 네가 해라. 설장호.-

설장호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를 미행하게 하긴 하였지만, 상대가 석강수라는 것을 잠시 잊은 것이었다.

“석강수.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하하. 이보게, 설장호. 지금 나와 협상을 하는 것인가? 그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결코 적과 타협은
없다…….는 것이 국정원이다. 그런데 몇 명 죽는 것 가지고 벌써 꼬리를 내리는 것인가?-
]
석강수는 웃었다. 설장호를 비웃듯이 웃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이어마이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든 국정원
대원들이 다 듣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석강수, 네 놈은 네가 잡는다.”

같은 시각. 사당역에 거의 도착한 조동민은 홀로 중얼거렸다. 이어마이크를 통해 말하면 석강수가 듣기에


홀로 중얼거린 것이었다.

“실장님. 조동민 팀장이 사당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대원이 CCTV 영상을 가리키며 말하자, 설장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떼어낸 후, 다른 마이크를 귀에 장착하였다.

0019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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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가?”
-네. 저 혼자만 도착했습니다.-

그는 이어마이크를 바꾼 뒤, 주파수를 변경하여 조동민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조동민도 사당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모습이 CCTV 를 통해 설장호의 눈에 들어갈 것을 알고, 이미
모두 입을 맞춘 것처럼 주파수를 바꿔 설장호의 무전을 받았다.

“석강수도 강하지만, 일단 그의 부하들도 만만찮다. 그러니…….”


-일단 해 봐야죠. 저의 팀원들이 저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조동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석강수를 향해 달려갔고, 곧 시야에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답이 늦구나. 정그렇다면 그냥 이놈들의 목은 내가 가져가겠다.-

석강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사당역 번화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 누구도 관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모조리…….죽여!-
“!!!”

여전히 답을 하지 않자, 석강수는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설장호는 놀란 눈으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였다.

‘탕!’
“!!!”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모두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왕좌왕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그곳을 벗어나기 바빴다.

“조동민?”

석강수는 조동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설장호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머리통 날아간다!”

조동민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석강수는 물론, 그의 부하들도 모두 그 자리를 피하는 이는 없었다.

“여기서 총을 쏘겠다? 동민아. 네가 언제부터 그리 사리구분을 하지 못한 것이냐?”


“시끄러! 내가 잡아야 할 놈과의 대화는 하지 않는다. 오로지…….이 총에 있는 총알만이 그 상대와
대화를 원할 뿐이다.”

조동민은 석강수의 말에 소리치며 답하였고, 곧 권총을 들어 올리며 그를 향해 겨누었다.

“무리다. 이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니…….”


‘탕!’
“…….”
석강수는 조동민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 여기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조동민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곧 석강수의 부하 한 명이 다리를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석강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조동민을 향해 보았다.

“겁이 없구나.”
“그런 것을 가지고 다닐 주머니가 없다. 이제 그만 하자.”

조동민은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석강수의 표정은 오히려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장님! 여기요!”

그 순간 대원 한 명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장호를 불렀고, 설장호의 시선에 보인 모니터에는 건물 옥상에


설치된 하나의 CCTV 에서 마치 설장호가 보고 있다는 것을 다 아는 듯, 저격용 총을 들고, 멋진 포즈를
잡으며 몇 사내가 옥상 난관에서 자세를 잡기 시작하였다.

“조동민. 뒤로 물러나라! 옥상에 석강수가 고용한 저격수가 있다!”


-!!!-

조동민은 석강수가 이리 태연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건물 옥상으로 향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곳에 저격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곧바로 그들은 방아쇠를 당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민아. 총을 내려놔라. 여기서 이래봐야 서로 이득 볼 것이 없다. 서로 원하는 것이 있는데, 난 아직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그러니…….”
‘탕!’
“!!!”
“제기랄! 조동민! 어서 몸을 숨겨!”

석강수의 몸이 조금 틀어졌다. 그리고 그의 볼에서는 서서히 한 줄의 선이 그어지고 있었고, 피가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하였다.
조동민은 석강수의 말이 끝나기 전,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총알은 석강수의 볼을 타고 지나쳐갔고,
그로인하여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길 것을 우려하여 설장호가 소리친 것이었다.
하지만 조동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오로지 석강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민아…….결국 네가 원하는 것이 그냥 죽음이라면…….그리 해 주겠다.”

석강수는 그를 향해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겨냥하였다.

-조동민! 어서 도망쳐!-

CCTV 를 통해 현장을 보고 있는 설장호의 목소리가 더욱 더 커졌다. 하지만 무전을 받고도 조동민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석강수는 그를 향해 손가락 총을 겨냥하며 웃고
있었다.

“끝…….”

석강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보며 말했고, 이내 손가락을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서서히


당기고 있었다.

‘탕…….“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를 냈고, 손가락 끝을 후…….하고 불었다.

“그런 장난을 아직도 하나?”


“!!!”
-!!!-

석강수는 이미 저격수를 배치해 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는 설장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동시에 놀란 눈을 하였다.
석강수는 현장에서 놀란 눈으로 조동민을 보고 있었고, 설장호는 사무실에서 영상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저격수가 옥상에 있었다. 그런데 석강수의 명령을 그들이 이행하지 않은 건가?-

설장호는 직접 눈으로 보았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배치된 저격수들에게 뭔가 변고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실장님. 저는 뭐, 그냥 허수아비인줄 아셨습니까?-


“박태식?”

전혀 생각지 못한 박태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사당역에 있는 건물 중,


한 옥상에 비치된 CCTV 에서 박태식이 얼굴을 내밀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보이시나요?-

박태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곳으로 간 것인가? 그리고 언제 움직였어?”


-여러모로 머리 좀 굴려봤습니다. 대통령님의 별장에서 잡은 놈들 말입니다. 그 놈들이 의외로 착한
놈들이더라고요.-

박태식은 서지호와 태정민이 대통령의 별장에서 잡았던 네 명의 사내를 감시하고 있었었다. 그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찾도록 명령 내렸고, 아직도 그 명령을 이행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동민 팀장님이 내 목숨을 한 번 구해주셨으니, 그 은혜는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태식은 지난 날 병원지하 주차장에서의 일을 말했다. 그 일 또 한 설장호도 알고 있었고, 조동민은


더욱 더 잘 알고 있었다.

-팀장님. 놈을 잡으십시오. 사당역 인근 저격수들…….모조리 다 잡아 족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놈을 잡아서 그 은혜에 다시 보답해 드리죠.-

조동민은 그 순간 곧바로 석강수를 향해 총을 겨누었고, 방아쇠를 바로 당겼다.

‘윽!’
“제길!”

하지만 석강수가 맞기 전, 어느새 그의 부하 한 명이 석강수의 앞으로 서며 대신 총을 맞았고, 그 즉시


석강수는 건물 틈으로 이동하여 몸을 숨겼다.

-위치 부탁드립니다!-

석강수가 몸을 숨기면서, 조동민의 시야에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조동민은 그 즉시 설장호에게 CCTV 로


그의 위치를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석강수는 앞에 보이는 보쌈집 건물을 뒤로 등지고 샛길로 빠져나간다. 그 뒤로 넓은 길이 있으며,


그곳으로 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총으로 잡기에는 힘들어.”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죠. 그리고 박형사님.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제가 지금 옥상에 있어 바로 내려가지 못하니, 저 대신 그 놈을 잡아주십시오.-

박태식은 CCTV 화면을 다시 돌려 사당역 아래를 비추었고, 그 즉시 자신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박태식이 내려가면서 그 옥상에는 미리 와서 대기 중이던 석강수의 저격수들이 모조리 형사들에게 잡혀
수갑을 찬 채, 엎드려 있었다.

“저 놈들 모조리 입건하고, 단 한 놈도 내 보내지 마라.”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급히 움직이며 형사들에게 명령 내렸다.

“박태식…….정말 생각지 못하였군.”

설장호는 긴장된 순간을 잘 넘긴 듯,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홀로 중얼거린 뒤,


국정원 내부에 있는 CCTV 를 보았다.

“태정민이 왔었나?”

그는 이미 태정민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었지만, 사당역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네. 약 10 분 정도 지났습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강서진검사와 추선우씨를 찾고 있는 듯 합니다.


함께 있도록 안내를 할까요?”

설장호는 CCTV 를 통해 태정민을 보았다. 그는 국정원 내부를 마치 청와대 안을 다니는 것과 같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무언가 생각이 떠 오른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당역의 일도 다시 모니터를 통해 보았다.
그는 짧은 순간에 새로운 계획이 생긴 듯, 사당역을 비추는 모니터를 본 뒤, 다시 태정민이 거닐고 있는
국정원 안쪽 CCTV 를 번갈아 보았다.

“태정민을 이쪽으로 데리고 오게.”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 판단이 선 듯, 태정민을 자신의 곁으로 오도록 하였다.

“태팀장님.”

태정민은 국정원 내부를 이리저리 다니다, 곧 설장호의 부대원이 부르자, 그를 보았다.

“실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이쪽으로…….”

태정민은 강서진과 추선우를 먼저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성남 펜션에서 수만을 죽인 것으로 인하여


강서진의 마음이 무거울 것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먼저 가려 하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설장호의 부름이니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정말 그냥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같은 시각. 강서진은 추선우의 상처를 치료해 준 후, 사무실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말했다.

“실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이곳도 그리 안전하다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지현이를


만난다면, 그 또 한 위험요소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추선우는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런데…….괜찮으십니까?”

답한 후, 다시 그녀에게 바로 물었다.

“뭐가 말이에요?”
“영월에서와 성남에서 있었던…….”
“추선우씨는 민간인이라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에요. 하지만 전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업무로 인하여
현장에 뛰어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총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고, 또 그 총으로 상대를 죽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추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한 쪽 벽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앞에 서서 답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저 그 앞에 서 있을 뿐,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한 눈빛으로
답하고 있었다.

“앞으로는…….그런 위험한 곳에 가지 마십시오.”


“…….”

추선우의 말에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그저 그냥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강서진의


귀에는 그냥 그저 그렇게 나온 말로 들리지 않았다.
걱정…….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런 말로 들려왔다.

“네…….그럴게요.”

그녀는 답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추선우는 그녀의 답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0019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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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놈이 감히 강 검사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아닌 것은 압니다. 하지만…….앞으로 절대
그러지 마세요.”

추선우도 그녀의 옆에서 책을 보는 눈빛이 아닌, 그냥 초점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선 채,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성남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 하였나?”

한 편. 태정민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설장호가 물었다.

“네. 마침 강 검사님과 함께 온 형사들도 있고, 그래서 그들에게 마무리를 잘 부탁하였습니다.”

태정민은 그의 옆으로 나란히 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도 수십 개의 CCTV 화면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니터를 보았다.

“사당역입니까?”
“그래.”

짧은 물음에 짧은 답이었다.
“석강수가 사당역에 있다.”
“네!?”

그저 사당역을 감시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을 들은 태정민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있습니까? 석강수라면 백태가 말한 그 한 놈을 잡기 위한 아주 좋은 정보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금 조동민과 박태식이 쫒고 있다.”
“네? 박태식 형사가요? 지금 파주 별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태정민도 그가 파주에 아직 있을 것이라 여겼다.

“조동민과 이미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함께 움직이고 있더군. 그리고 아주 좋은 팀워크로 석강수를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놓쳤다.”
“저도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태정민도 사당역으로 향하려 하였다.

“넌. 기다려라. 따로 할 일이 있다.”


“네? 제가 따로요?”

태정민은 의아했다. 항상 팀원을 함께 움직이도록 만들었던 설장호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각개전투를


보이고 있었다.
강서진과 추선우는 국정원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조동민과 박태식은 사당역에서 석강수를 쫒고 있다.
또 한 자신에게는 또 다른 임무를 부여하니, 의아한 눈빛일 수밖에 없었다.

“넌 지금 즉시 안산으로 간다.”
“안산요?”
“그래. 우리 부대원과 함께 안산으로 가면, 내가 지난 번 정보를 얻었던 공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
공장으로 가서…….모조리 다 쓸어버리고 와라.”
“…….”

태정민은 그를 또 다시 멍하니 보았다. 안산은 뭐고, 공장은 뭔지 전혀 알지 못한 그였다.


무엇보다 안산 공장은 조동민과 함께 갔었다. 그에 대한 일을 처리한다면, 태정민보다 조동민이 더
제격이었다. 하지만 조동민이 아닌 태정민을 보내려 하였다.

“지금 가면 됩니까?”
“그래. 바로 움직여라.”

태정민은 그의 명령이라면 되도록 전부 이행하지만, 이번 명령은 그다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국정원 대원들과 함께 다시 국정원을 나섰다.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고 가는 것이라면
이리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그였다.

“실장님. 태정민 팀장을 왜 안산으로 보내신 것입니까? 현재 안산공장은 이미 저들이 다시 장악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정민이 떠난 후, 대원이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래. 그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모든 정보를 다 가져왔으니, 그들은 그곳을 정리하던지,
아니면 다시 그곳을 사용하던지, 둘 중 하나를 결정내리겠지. 그래서 태정민을 보내는 것이다.”

부대원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이라면 더욱 더 국정원 대원을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앞으로 우리 국정원은 석강수와 함께 나머지 숨어 있는 그 한 놈을 잡는 데만 주력을 다 쏟는다.”


설장호는 국정원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대외적인 업무나, 북한관련 업무를 중점으로 보던
국정원이 지금의 사건에 너무 깊게 파고들어간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되었다. 오랫동안 이 조직을 수면위로 끌어올려서 잡으려는 의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설장호는 태정민을 안산공장으로 보낸 정확한 이유를 부대원에게마저 말하지 않았다.

‘띠리리리’

한 편. 설장호가 마련해준 사무실 안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곧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팀장. 어디야?”

태정민의 전화였고, 곧바로 그의 위치를 물었다.

-지금 안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안산? 안산은 왜?”

강서진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가 안산으로 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국정원에 갔었는데, 검사님과 추선우를 만나지도 못하고, 설 실장님의 명령으로 바로 가고 있네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를 몰라? 지금 네가 가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말이야?”

강서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목적을 두고 가는 것은 맞겠지만, 그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대원을


투입하는 것은 설장호답지 않은 것이라 여겼다.

“알았어. 일단 안산 어딘지를 물어봐.”

강서진은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그 위치를 물었다.

-안산 반월공단 내의 **빌딩입니다.-


“알았어. 일단 도착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면 움직이지 말고, 다시 외부로 나와, 항상 전화기 들고
있고.”
-네.-

전화를 끊은 후, 강서진은 추선우를 보았다.

“무슨…….일입니까?”

추선우의 물음에 강서진은 지금 태정민의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가봐야겠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움직임은 할 수 없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움직이시죠.”

추선우도 강서진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두 사람은 곧 사무실 문을 살짝 열고 외부를 보았다.

“되도록 CCTV 와 마주치지 마십시오.”

사무실을 나온 후, 강서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선우는 지금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지 설장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에서 되도록 그의 생각을 따르기 위한 움직임을 우선으로
하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그 몰래 국정원을 나서려는 것이었다.

“실장님. 이쪽을 보십시오.”

두 사람은 그 누구에게 발각되지 않고, 몰래 빠져나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움직임은


설장호가 주시하고 있는 모니터에 떡하니 보이고 있었다.

“왜…….저런 행동으로 움직일까요?”

두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대원이 물었다.

“그대로 버려둔다. 저 두 사람이 국정원을 나설 수 있도록 그대로 버려둔다.”

대원은 또 다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인 후, 또 저리 조심스럽게


외부로 나갈 수 있게 돕는다니, 이래저래 계속하여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대원들이었다.

“서둘겠습니다. 태정민이 먼저 도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곧 국정원 건물을 나선 후, 정문으로 향하면서 강서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말했다.


추선우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두 사람을 중시하여 보는 이가 없었다.

“그냥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괜한 동작으로 더 심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기에,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고 있는 지금. 이대로


편하게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간 뒤, 차량을 몰고 정문으로 향했다.
곧 정문에 다다르자, 경비원이 두 사람의 앞으로 섰다.

“일은 다 보셨습니까?”
“네? 아 네. 뭐 그냥 별 다른 일이 없네요.”

경비원의 말에 강서진이 약간 말을 더듬기는 하였지만, 별다른 물음 없이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의외로 쉽네요.”

국정원을 나선 후, 강서진은 긴장되었던 순간을 잘 벗어난 것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추선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일단 태정민 팀장이 알려준 곳으로 서둘러 가야겠습니다.”

추선우는 룸미러를 통해 국정원 건물을 보며 말했고, 강서진은 안산으로 방향을 잡고 바로 달렸다.

“실장님. 조금 전, 강서진검사와 추선우가 국정원을 벗어났습니다.”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그 두 사람이 그냥 쉽게 나간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이곳의 경계를 뚫고
조심스럽게 나간 것으로 보이는가?”

설장호는 대원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하였다.

“제가 보기에는…….무언가를 피해 몰래 나가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다행이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다. 그보다 사당역에서 절대 시선을 떼지마라. 아직 석강수가 사당역 번화가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그 안에서 우리 팀원들과 조우가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모니터를 집중하여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박태식이 조동민을 구하는 그 순간부터 그의 계획은
새롭게 구성 중이었다.

“젠장. 어디에 있는 거야?”

같은 시각. 사당역에서는 조동민이 이리저리 시선을 다 돌려보았지만, 석강수를 찾을 수 없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박형사님. 뭔가 보입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물론, 의심쩍은 놈들이 단 한 놈도 없어요.”

박태식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석강수는 둘째 치고, 그의 부하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놓치는가…….”

조동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석강수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를 또 놓치게 되었다.

-조동민. 박태식. 그만 복귀한다.-


“네? 복귀하라고요?”

또 다시 설장호의 이해하지 못할 명령이 내려졌다. 조금 전까지 석강수를 잡기 위하여 국정원 대원들을


투입시켰었다. 하지만 이제 또 복귀시키려하니, 그의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조동민과
박태식이었다.

“실장님. 아직 석강수가 사당역에 있습니다.”


-나도 알아. 그 놈은 사당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계속된 추격은 오히려 너희들이 더
위험하게 된다.-
“무슨 말씀입니까? 왜 우리들이…….”
-찾아다니는 놈보다. 찾아다니는 놈을 숨어서 기다리는 놈이 더 유리하다. 어디서 어떤 식으로 너희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을지 모른다. 그러니 철수해.-

조동민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뭐라 반박을 하고 싶지만,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당장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그 놈이 다가선다고 하여도, 사당역에 남아 그 놈을 추격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들린 설장호의 말에 조동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계획…….제대로 된 계획이길 바랍니다.”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인근에 석강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를
버려두고 그곳을 벗어나야하니, 속이 쓰리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조동민 팀장 일원이 사당역에서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조동민의 행동에 대한 보고를 대원이 하였고, 설장호는 조동민과 박태식이 물러나는 것을 본 후,


사무실을 나섰다.
그는 아직 자신의 계획을 그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니 대원들만이
답답한 지경이었다.

0019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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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네. 왜 그러시는거야? 조금 더 압박하면 석강수를 잡을 수 있었는데, 철수하라고
명령내리고, 또 안산공장은 왜 청와대 태정민 팀장이 가는데? 그곳은 우리가 한 번 쓸었던 곳인데 우리를
빼고 왜 그 사람을 보내는지도 모르겠고…….하여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그가 나간 후, 대원들끼리 지금의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와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근무하였지만,


지금처럼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연속으로 내리는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설장호는 사무실을 나와 백태가 감금중인 감금실로 향하였다.

“일찍 돌아오는군. 석강수를 잡지 못한 모양이지?”

백태는 설장호가 생각보다 일찍 자신에게로 돌아오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그 놈을 잡지 못했다.”
“하하하!”

설장호의 답에 백태가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를 쉽게 잡았다고 그 놈도 쉽게 잡힐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지? 그러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은 것이고


말이야?”

백태는 설장호를 보며 그를 비웃는 듯,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설장호를 노려보았다.

“기쁜가?”

설장호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아. 하지만 네 놈이 석강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백태는 설장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내가…….그 놈에게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그 놈을 잡겠다고 ,CCTV 를 해킹하여 제대로 궁지에 몰아넣었는데, 보기 좋게 놓치고
왔으니, 제대로 한 방 먹은 것이지.”

백태는 설장호와는 달리,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산 공장.”
“…….”

그러다 설장호의 입에서 안산공장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웃음소리를 멈추었고, 표정도 굳어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백태의 어투가 변했다. 조금 전까지 아주 여유롭고 즐거움에 가득 찼던 그의 목소리는 뭔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듯 한 목소리였다.

“안산공장. 그 곳으로 태정민이 갔다. 내가 왜? 조동민이 아닌 태정민을 보냈을까?”


“…….”

백태는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너의 대한 모든 것이 다 남아 있었던 안산공장. 그곳에서 내가 얻은 정보는 너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넌…….의외로 석강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알 수 있었다.”

백태의 표정이 더욱 더 심하게 굳어졌다.


이미 안산공장, 즉 폐공장 안에서 얻어 낸 정보에는 백태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있었고,
더군다나, 정구석의 부하로 있던 시절인데도, 석강수에 대한 기록마저 보관 중이었다는 것이 설장호의
눈에 들어간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백태가 눈동자를 흔들거리며 물었다.

“사당역에서 석강수를 놓아준 것…….아니. 처음에는 그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조동민이
당하는 것이라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박태식 형사가 다가섰고, 그로인하여 조동민이 석강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지. 하지만 왜 잡지 못했을까? 총을 쏘지 못해서? 아니면 석강수가 두려워서? 아니
…….그를 놓아주면 더 큰 무언가가 그를 물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지.”

백태는 그의 말을 들은 후에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빤히 보고만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석강수를 이대로 놓아주면 그가 어디로 갈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 날 네


놈이 그런 상황에 어디로 갔는지가 떠오르더군.”
“!!!”

백태의 눈동자가 아주 심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가 자신을 미행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더 깊게 생각하면 그냥 미행했다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기에 놀란 눈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백태는 지난 날 오피스텔이 습격당하면서, 모든 것을 뺏기고 난 뒤에 이수호를 찾아갔다.
그를 찾아간 후, 모든 사정을 말하고, 다시 기회를 얻어 영월로 추선우를 잡기 위하여 갔었다.
설장호는 지금 그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난 뒤에 이들이 가는 곳.
그곳에는 아마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그 인물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백태 때는 그 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다만 CCTV 를 통해 백태가 어디론가 향한
것만을 알 수 있었고, 그 후로는 그 일대에 단 한 대의 CCTV 도 없었기에, 그 후의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짧은 순간에 석강수를 놓아주도록 조동민에게 명령내린 그였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를 놓아주었다.


설장호는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사무실 안에 있던 대원들에게까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사당역에 있는 석강수의 움직임만을 잘 감시하라 일러주었다.

“그리 중요한 미행을 앞두고, 왜 그곳을 지키지 않고 나에게 온 것인가? 지금의 시간에 만에 하나
석강수가 어디론가 움직인다면…….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니 확신하고 명령을 내리지 못할
것 아닌가?”

백태는 그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아 물었다.

“그렇지, 그리 중요한 미끼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내 두 눈으로 확실하게 봐야 다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석강수는 절대 사당역을 그냥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백태는 이 부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면, 한시라도 더 빨리 그곳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며, 그를 놓아준 것이었다.

“석강수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국정원 소속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모든 것을 CCTV 가 다 촬영


중인 것을 알고 있다. 그 와중에 무리하여 사당역을 벗어나면서 위치가 계속하여 꼬리 물리게 된다면…….
결국 석강수는 자신이 가는 마지막 종착지로 우리 모두를 안내하게 되는 것이지.”

백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석강수는 그래서 사당역을 섣불리 벗어나지 않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부를 것이다. 바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도움…….석강수는 곧. 그 놈을 수면위로 나오게 만들 것이다.‘
“!!!”

백태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다. 자신에게 실패했던 계획을 지금 석강수에게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번에는 실패가 아닌, 아주 중요한 핵심을 모두 찾아낼 것만 같은 설장호였다.

“석강수는 누군가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놈의 도움으로 사당역을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절대


사당역에서 그놈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 놈이 향하는 길은, 마지막 놈이 있는 곳으로 잡도록
…….그리 인도할 것이다.”

백태는 설장호의 무서움을 점 차 느끼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생각해내지 못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이미 한 치 앞을 넘어, 두, 세치 앞을 다 계산한 후, 대원들을 각기 그에 맞게
움직이도록 하고 있었다.

“실장님, 태정민 팀장과 대원들이 안산 폐공장에 도착했습니다.”

곧 감금실로 한 대원이 들어서며 백태의 앞에서 현재 진행중인 계획을 말하였다.

“안산공장? 그곳은 왜 간 것인가?”

백태가 물었다.

“왜 갔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설장호의 말은 들었지만, 왜 그곳으로 대원들을 보냈는지 알 수없었다. 더군다나 국정원대원들만이 아닌,


태정민까지 보낸 이유는 더욱 더 알 수 없었다.

“너의 모든 것이 발견된 곳이다. 그리고 넌 지금 여기에 잡혀있다. 이정도면 내가 왜 그곳으로 사람을


보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

이 한마디에 그의 계획을 알게 된 백태였다.

자신이 잡히면서 수만으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도록 한 것은 이미 이곳으로 압송 중 겪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모든 것이 있었던 그 공장을 이수호가 그냥 둘리 없다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다 간파하고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무섭다. 그리고 넌 대단하다. 왜 모두가 너를 두려워하는지 이제야 실감나는군.”

백태는 두 손을 들었다. 그저 국정원에서 오랫동안 자리 차지하며 이런저런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많은 계산속에서 앞으로 있을 일까지 다 생각하며 움직이는 그가 놀라울 뿐이었다.

“이곳에도 그 놈의 부하들이 있겠지. 그 놈들은 나는 물론, 너를 비롯하여 이곳에 있는 모두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시가…….이번에는 독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설장호는 백태를 노려보며 말한 뒤,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도착하였는가?”
-네 실장님.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태정민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기다려라. 기다리면 강 검사와 추선우가 갈 것이다. 그들과 함께 움직여라.”


-네? 그것을…….어떻게 아셨습니까?-

태정민도 그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었었다. 그리고 강서진에게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었다.


그리고 강서진과 통화 중, 설장호가 두 사람을 거의 감금해 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에 설장호가 두 사람에게 이곳을 가르쳐 주었을리도 없다고 여겼다.

“너와 강 검사. 추선우는 그곳에서 그곳으로 오는 놈을 친다. 그리고 사당역에서는 조동민과 박태식이
석강수를 유인하여 친다.”
“!!!”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백태의 눈은 다시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이수호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모든 인원을 다 분산시킨 채, 이미 다가올 것을 알고 기다리겠다는
것과 같았다.

“시작해라.”
“네. 실장님.”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대원은 다시 감금실을 나섰고, 설장호는 백태를 보았다.

“이제부터 나도 이곳을 벗어난다. 너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너를 살리고자, 내


새끼들을 죽이지 않는다.”

백태의 눈은 이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이들을 막고자, 설장호가 직접 감금실을
체크한다고 하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물러나면서, 감금실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걱정마라. 너의 손에 쥐어진 수갑은 풀어주고 간다. 그리고 너를 찾아오는 손님을 네가 직접 맞이해라.


단! 이곳을 벗어나려 애쓴다면…….너의 수명은 그 순간 끝난다.”

설장호는 백태에게 자유를 주면서 동시에 구속도 함께 준 것과 같았다.


오로지 감금실 안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감금실을 벗어나면 그 즉시 머리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을 강조해준 것이었다.
설장호는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백태도 함께 일어섰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일어선 것이지만, 그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시 너를 볼 수 있길 바란다. 백태.”

설장호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뒤, 감금실을 나섰고, 백태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설장호는 모두를 속였다. 하지만 그 모두를 속이면서 얻어내려는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리고 진행되었다. 설장호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곧 가장 뒤에
숨어서 모든 것을 조종하였던 이수호의 얼굴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조동민. 다시 사당역으로 돌아간다.”


-네?-

사당역을 벗어났지만, 다시 돌아가라는 말에 당황한 어투로 물었다.

0019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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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석강수를 잡아 족쳐.”
-바라는 바지만, 왜 지금에서야…….-
“까라면 까. 당장 움직여.”
-네. 알겠습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명령이었다. 조동민은 그 길로 다시 사당역으로 향하였다.


이 모든 것이 국정원 안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이수호의 사람들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행동이었고, 이제
그 모든 것을 다 밝히는 그였다.
박태식에게도 연락을 주었다. 그는 여전히 사당역에 있었고, CCTV 를 통해 송출되는 영상을 받으며 어느
한 식당 계단에 몸을 숨긴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석강수를 찾기 시작하였다.

“지금 즉시 사당역으로 간다.”

설장호도 움직였다. 그는 지현을 비롯하여 네 명의 여인곁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국정원을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 실장이 움직이는가?”
“네. 국정원장님.”

설장호가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본 국정원장이 비서에게 물었고, 비서관도 이미 설장호의 계획을 알고 있는


듯 바로 답하였다.

“지금 즉시 지현을 비롯하여 네 명의 여인이 있는 사무실에 인원을 투입하고, 그 어떤


사람도 다가서지 못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설장호가 마음 편히, 자유롭게 자신의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마음 속


짐을 들어주려 하였다.

“여깁니다.”

곧 강서진과 추선우가 태정민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어떻게 된 거야?”

강서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금의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조금 전 설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래? 그럼 이 모든 것이 설 실장님의 계획?”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하여 우리 모두를 속인 계획 같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우리까지 속이려고…….그런데 이곳은 어디야?”

주변을 둘러봐도 그냥 폐공장이었다. 한 때는 수많은 공장들이 모여 있었지만, 이제는 텅 빈 곳이 더


많은 공장지대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강서진이 물었지만, 태정민이라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리는 없었다. 그 때, 국정원 대원이 세 사람을
인도하여 어디론가 데려갔다.

“저곳에서 백태의 모든 비밀을 얻어냈습니다.”


“백태의 비밀이 저 폐공장에 있었습니까?”

대원의 말에 태정민이 다시 되물었다.

“네. 설 실장님은 저곳에서 백태의 모든 것을 다 확인하였고, 지금 이곳으로 저희를 다시 보냈습니다.”


“이유는요? 이곳으로 당신들을 보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대원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이 다시 물었다.

“그 이유는…….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줄 것을


명령 내렸습니다.”

세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미리 생각하여 결정 내렸다는 것은 알겠지만, 만에 하나


이 계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땐 어쩌려고 이런 말을 남겼는지 의문스러웠다.

“일단. 저 폐공장이 백태의 은신처였다면, 저곳으로 백태를 죽이려했던 이들이 올 것입니다.”

모두가 잠시 가만히 있을 때, 추선우가 폐공장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의외로 똑똑한데.”

태정민이 그의 말을 들은 후, 그에게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말했고, 모두가 잠시나마 긴장 속에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몸을 숨긴 채 대기하겠습니다.”

추선우의 생각을 토대로 강서진이 명령 내렸고, 모두는 그녀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지금 국정원으로 가겠습니다.”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는 서지호가 차현태에게 자신이 이동할 곳을 말하였다.

“그곳에 지현과 함께 민간인들이 있다고 했으니, 잘 경호하게.”


“네. 하지만 이곳도 중요하기에, 대통령님의 경호팀을 새롭게 구성하여 대기시켜두었습니다.”
“그래. 조심히 잘 다녀오게.”

서지호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경호실장이니 차현태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지현을 비롯하여 민간인들이 믿는 사람은 서지호뿐이었다.
다른 경호원들이 붙는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불안감만 줄 뿐이었다.

차현태는 점점 끝이 보이는 이 사건의 결말을 꼭 보려하였다.

수년간 미궁 속에 갇혀있던 인물. 그 인물이 누군지도 궁금하였으며, 그와 연관된 사람들까지도 모조리


다 알아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끌고 왔던 그 조직을 완전히 뭉개버리려는 생각을 하였다.

“회장님. 석강수가 사당역에서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의외로 그들이 석강수의 머리위에


서 움직였습니다.”

한 편, 이수호는 백태는 죽이는 것에도 실패하고, 장태에 이어 수만까지 잃은 상황에 하나 남은


석강수마저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석강수는 구해야한다. 그 놈의 실력이 너무 아까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창민을 죽인 인물이기에,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발설할 수 있는 놈이다.”
“알겠습니다. 곧 석강수쪽으로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석강수쪽의 보고는 장석관이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움직일 것을 말하였다.

“백태의 은신처인 안산 폐공장의 모든 정보를 다 파기하고, 우리 조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고광이 안산 폐공장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이는 현재 설장호가 미리 준비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었고, 그 실천에 맞게, 이들은 뒤늦게 그대로 움직여주고 있는 것과 같았다.

“석강수는 살리고, 백태는 죽여야 한다. 백태는 이미 우리 조직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녀석이다. 그가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장호에게 발설하게 되면…….내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움직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광은 안산 폐공장으로 자신이 직접 움직일 것을 말하였다.


사당역으로 향하는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2 위인 장석관과, 안상폐공장으로 향하는 서열 1 위 고광의
움직임은 이수호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자신의 곁에서 십 수 년 동안 경호를 하던 네 명의 사내가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두 명은 죽었고, 두 명은 그 모두를 죽이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장태나 수만. 그리 쉽게 당할 인물이 아니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강서진의 총에 두 사람이 죽었다.

“이번엔…….내가 죽던지…….아니면 너희가 모조리 죽을 것이다.”

이수호는 이를 갈며 말했다. 20 년 동안 숨어서 권력질을 하던 그가 이처럼 위급한 상황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로 닥쳤고, 자신의 목을 곧 떨구기 위하여 누군가 점점 더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실장님. 조동민 팀장이 먼저 사당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당역으로 향하던 설장호의 이어마이크를 통해, 국정원 사무실에서 CCTV 를 사당역 일대를 모두 보고
있던 대원이 알려주었다.

“조동민. 대기.”

대원의 무전을 들은 후,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무전으로 명령을 하달하였다.

“현재 사당역에 있는 모든 대원들은 지금부터 내 말을 듣는다. 지금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석강수를


데려가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 움직임을 원천봉쇄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가 사당역에 도착하면서 모든 지휘는 조동민이 아닌 설장호가 직접 하게 되었다.


이에 사당역에 배치된 국정원 대원들은 물론, 박태식과 함께 온 형사들도 모두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이곳의 명령은 강서진 검사가 직접 내립니다. 모두 그 명령에 따라주십시오.”

같은 시각. 안산 폐공장에서는 태정민이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하였다.


대원들은 이미 설장호에게 받은 명령이 있기에 그의 말에 모두 고개 숙여 답하였고, 곧 강서진을 보았다.
한 때는 사고뭉치 검사에서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점에 모든 지휘를 맡은 인물이 된 강서진이었다.

사당역에서는 설장호가, 그리고 안산 폐공장에서는 강서진이 지휘하며, 두 곳에서 이번 사건의 모든


전말과 함께,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조직의 수장을 잡아내려 하고 있었다.

“설장호입니다.”

한 편. 설장호는 사당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조동민과 합류하였고, 곧 박태식도 합류하면서 숨어있는


석강수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본 한 사내가 정석관에게 보고하였다.

“설장호가 직접 왔다? 그만큼 석강수가 대단하다는 말이겠지. 회장님의 명령이 있으니, 석강수는 구한다.
움직여라.”
“네. 알겠습니다.”

정석관은 사당역 인근 주차장에 도착한 후, 자신의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설장호를 보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정석관의 부하들은 이미 석강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듯, 그의 명령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검사님. 저기…….”

같은 시각. 안산 폐공장에서 잠복을 하고 있던 대원이 강서진에게 한 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를 비롯하여 태정민과 대원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지난 번, 실장님과 함께 정보를 얻어냈던 백태의 폐공장입니다.”

백태의 폐공장으로 몇 사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광의 모습이 보였다.
고광은 대낮에 한손에는 장검을 들고 서 있었고, 그의 모습에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대에 장검을 들고 다니는 것은 곧바로 체포될 소지가 명백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검을 들고 폐공장 앞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지금 덮칠까요?”

대원이 물었다.

“아닙니다. 잠시 기다려 봅시다. 저 놈이 누군지도 모르며, 또 무엇을 찾기 위해 왔는지 모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후에 덮치겠습니다.”

강서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 저들을 덮치면 죄명이 성립되지 않는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잡을 명분이 없는
인물이었다.
단지 불법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를 체포한다면, 고작 벌금 몇 푼 내고 다시 나올 것이 뻔
하기에,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한 후, 잡겠다는 그녀였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한 편. 차현태의 명령으로 서지호는 국정원으로 향하였고, 곧 그가 국정원에 들어서자, 국정원장이


물었다.
“대통령님의 명령으로 지현을 경호하고자 왔습니다.”

서지호는 그에게 인사하며 답했고, 국정원장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데리고 지현에게로 향하였다.

“무탈 하십니까?”

대원의 안내로 지현이 있는 곳에 도착한 서지호는 곧 아주머니와 함께, 은주, 미희에게 고개 숙이며
안부를 먼저 물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습니다. 그보다 선우는 어디에 있나요? 영월에서 잘 돌아온 것인가요?”

그의 말에 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네. 추선우씨는 영월에서 주요 인물을 잡은 뒤, 그가 흘려준 정보를 토대로, 이 사건의 마지막 놈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모두가 그를 빤히 보고 있었고, 곧 지현이 서지호의 앞으로 다가갔다.

0019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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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언제와요? 왜 삼촌만 그리 바빠요?”

]지현의 물음에 서지호는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였다. 이제 열 살인 그 어린 여자아이도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국정원과 청와대, 검찰과 경찰이 나서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모든 것의 중심에 항상
추선우가 있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인이며, 백수인 추선우가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제 곧 지현과 함께 오랫동안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지현이 조금만 더 참아줘. 알았지?”

서지호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어앉으며, 눈높이를 맞춘 후 말했다.


지현의 눈동자가 떨리며, 눈물이 다시 글썽거렸지만, 이내 글썽거리는 눈물을 닦으며 서지호를 보았다.

“삼촌이 다시오면 이제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거에요.”

지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표정과 어투가 그곳에 있는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금 저와 함께 여기계신 모두는 청와대로 향하실 것입니다.”


“네? 또 청와대에요? 그곳에서 다시 나왔는데, 또 들어가라고요?”

서지호의 말에 은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때는 지현이 추선우씨를 보고 싶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외부로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움직임이 더욱 더 강해지고 있으니,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한 청와대로 여러분을 모실
생각입니다.”

은주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국정원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장이 있는 청와대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었다.

“서 실장의 말을 따르십시오. 국정원이 안전하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알고 있지만,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방지하기 위함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장이 직접 나서서 모두를 보며 말했다.
서지호가 말할 때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국정원장이 말하니, 무척 중대하며, 국가안보가 걸린
말처럼 들리고 있었다.

“지금 헬기가 대기 중입니다. 헬기를 이용하여 청와대로 바로 이동할 것이니 준비해 주십시오.”

백태를 데리고 올 때도 예산문제로 헬기를 띄우지 않았지만, 지현을 비롯하여 민간인 안전에는 헬기를
띄운 상황이었다.
모두는 서지호와 함께 헬기로 이동하였다.

“회장님. 지금 사당역과 안산 폐공장에서 각각 임무를 수행중에 있습니다. 혹시 다른


임무 하달이 있으신지요?”

같은 시각. 이수호는 이제 벌거벗은 여인의 곁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정장을 차려입었고, 곧 그의 옆으로 40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40 대 초반의 사내도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마치 헐크처럼 정장이 터져버릴 듯 온 몸이 근육질로 되어
있었고, 짧은 머리카락에 눈 한쪽에는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 한 큰 키에다, 약간 검은 피부, 꽉 쥔 주먹에는 곳곳마다 굳은살이 잔뜩 베여있었다.

“장두야.”
“네. 회장님.”

이수호는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몸을 전신거울을 통해 보면서, 자신의 뒤로 서 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은 누가 이길 것인지 쉽게 판가름을 하지 못하겠다.”


“아닙니다. 이번에도 회장님이 승리하실 것이며, 또 다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위에 군림하실 것입니다.”
“허허허.”

이장두는 이수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곧 이수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후의 보루는 잘 준비해 두었는가?”


“네.”

이수호는 자신의 방을 나서며 그에게 물었다.

“만에 하나 내가 그들의 손에 잡히게 되면, 나와 바꿀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을 섭외해 두어야한다.”


“염려 마십시오. 절대 회장님이 그들의 손에 잡힐 일은 없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후의 모든 것은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이장두는 이수호의 말에 그가 원하는 답을 제대로 해주었다.


이수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뒤, 곧 현관문을 나섰다. 그가 현관을 열고 나서자, 그의 집 마당이 앞에
보였다.
집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골프장 하나를 앞에 두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아주 큰 대저택이었다.

“가자.”
“네. 회장님.”

드디어 이수호가 집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매일같이 껴안고
있던 벌거벗은 여인을 버리고, 집을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석강수 회장을 찾았습니다.”


같은 시각. 사당역에서는 정석관의 부하가 하나의 건물을 지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석강수를 발견하였고,
곧 그 내용을 정석관에게 알렸다.,

“그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이동 중, 만에 하나 설장호나 그의 부하가 추격한다면, 모조리


죽여라.”
“알겠습니다.”

정석관은 여전히 차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명령에 부하들이 답하였고, 석강수는 정석관이 보낸


부하의 말을 들은 후, 그들과 함께 사당역을 벗어날 준비를 하였다.

“제길…….내가 이 무슨 꼴인가. 몇 가지 미끼를 던져놓고 설장호나 추선우를 불러낼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제대로 당한 꼴이다.”

석강수는 정관석의 부하들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치밀하게 다 생각하여 움직인 것이지만, 이미 설장호는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었던
순간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동하겠습니다. 예상보다 국정원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풀렸습니다.”

석강수를 무사히 데리고 사당역을 벗어나라는 것이 이수호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설장호가 움직였으니, 그를 따르는 대부분의 국정원 대원들이 사당역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
사이를 뚫고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설장호…….이번에 정말 나를 잡고자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구나.”

석강수는 이를 갈며 말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석강수를 잡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 적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미끼일 뿐이었다. 설장호가 세운 계획에 포함된 미끼에 일부였다.

“모두 정신 바짝 차린다! 이곳에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이 있다. 그 놈을 잡으면 그 위에 있는 놈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러니 신경을 집중하라!”

설장호는 사당역을 휘젓고 다니며, 이어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이어마이크를 착용하지 않은 석강수의 귀에도 들렸다.

-쉽게 주차장으로 향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석강수를 데리고 정석관이 있는 주차장까지 이동해야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자, 한 부하가 정석관에게


연락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설장호가 움직이고, 그 부대원이 움직인다. 그리고 사방 곳곳에서는


CCTV 가 그 현장을 직접보고 설장호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그러니 쉽지 않지.”

정석관은 이 모든 상황에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여전히 차에서 경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고, 부하의 무전에도 눈을 뜨지 않은 채, 음악을 들으며
답을 주고 있었다.

“그래도 데리고 와라. 그를 데리고 와야 내 임무가 끝이고, 너희들의 임무도 끝이다.”


-알겠습니다.-

정석관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주변상황으로 인하여 어렵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였다.


프로는 절대 주변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석관이 데리고 있는 모든 부하들은 프로다. 그 어떤 임무도
실패한 적이 없는 정석관의 부하들이었다.
정석관의 명령이니, 이들은 석강수를 데리고 국정원 대원들이 쫙 깔린 사당역을 다시 빠져나갈 준비를
하였다.
“이대로 저들을 보내면 설 실장님의 계획은 끝이 납니다.”

한 편. 안산에서는 폐공장을 노려보고 있는 강서진이 차후의 명령을 하달하지 않자, 국정원 대원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으면, 저들을 잡아 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다리세요.”

국정원 대원들을 답답하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목표를 앞에 두고 잡지 않은 채,


기회를 본다는 것은 그들의 임무 수행 시에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저도 대원들의 생각과 같습니다. 마냥 기다리다 저들이 그냥 이곳을 벗어난다면, 그 후에 저들을 다시


잡을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회…….설 실장님이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그 시나리오를 제대로 숙지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곧 추선우가 폐공장을 향해보며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이 그를 빤히 보았고, 곧 태정민을 본 후, 시선을


휙하고 돌린 뒤, 국정원 대원들을 보았다.

“이미 저 공장이 백태가 숨어있던 곳이 확실하다고하니, 그 볼 것 없이 치겠습니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태정민과 대원들이 그녀를 보았다. 계속하여 기다리지 말고, 먼저 치자는 대원들이 말과, 태정민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는 계속하여 회피하였다. 그리고 지금. 민간인 추선우가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그녀는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이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실천으로 옮기려 준비하였다.

“앞으로 강 검사님은 네가 잡아라. 우린 너의 명령대로 이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것 같다.”

태정민이 나설 준비를 하며 추선우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그저 튀어나온 말은 아니었다. 언제나 추선우의 생각이 다 옳았고, 좋은 결과물도 만들어냈다.
또 한 그녀가 추선우를 달리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태정민이기에, 추선우를 지나치며 한 마디
하였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시선을 천천히 돌리며, 강서진을 향해 보았다.

“증거는…….이미 설 실장님이 가지고 계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대로 녀석을 잡겠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잡고자 기다리는 강서진과는 달리, 추선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이들을 그 때
잠지 못하면, 또 다시 언제 잡아야 할지 모르며, 그 때 잡지 못한 이유로 어떤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왜? 추선우씨가 나섭니까? 이건 우리가 할 일이며, 이미 말씀드렸듯이, 추선우씨는 지현의 안전에만…


….”
“저들을 잡지 못하면 지현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잡겠습니다.”

추선우는 강서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저들을 잡아야 할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저들을 잡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주제넘겠지만, 모두…….저 놈들을 잡도록 나서주십시오.”

추선우는 국정원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추선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라는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전해 들었기에, 그가 하는 말이 부탁이 아닌, 명령으로 충분히 받아줄
수 있었다.

“일단 인원으로 보면 서로 비등합니다. 우리 쪽에서 총을 가지고 있다지만, 먼저 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

국정원 대원이 추선우에게 말했다.

“미끼는 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총을 쏘게 되면, 그 때 반격사격을 하십시오. 그러면


정당방위가 되지 않겠습니까?”

추선우는 또 다시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떨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왜? 당신이 나섭니까! 이건 우리의 일이에요. 총알받이가 되어도 우리가 됩니다!”

그의 결정에 강서진이 반박하고 나섰다.

“내가 할게. 그러면 되는 거죠?”

태정민이 바로 나섰다. 그러자 강서진은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아. 차별대우가 서럽군.”

태정민은 강서진의 행동을 보며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고, 곧 숙인 몸을 일으켜 세운 뒤, 곧바로


창고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태정민의 뒤로, 국정원 대원 두 명도 함께 움직였으며, 추선우는 그들을 본 뒤, 다시 강서진을 보았다.

0019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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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네?”

추선우의 말에 그녀는 당황한 듯 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부터는 실전입니다. 저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 실장님이 우리조차 모르도록 뭔가


계획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라면, 그저 평범한 놈들은 아닐 것입니다.”

민간인 추선우의 말은 민간인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방면으로 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있는 말이었다.

“이 공장은 폐공장인데, 무슨 볼일들이 있어서 이렇게 오신 것입니까?”

곧 태정민은 고광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태정민의 출현으로 고광은 물론, 백태의 은신처를 찾은 모두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태정민…….’

고광은 태정민을 알고 있다. 머릿속으로 그의 이름을 말한 뒤, 그의 뒤로 서 있는 국정원 대원 두 명을


보았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고광은 그 자리에서 단번에 태정민의 목을 벨 수도 있었지만,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대원들은 필시 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행동보다는 말을 먼저 하였다.

“우리가 먼저 물었습니다. 이 공장은 폐공장인데 무슨 볼일일이 있어 온 것입니까?”


“지인의 공장이었는데, 잊고 가져가지 않은 물건이 있어 이렇게 가지러 왔습니다.”
고광은 태정민의 물음에 답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단 세 명에서 이곳에 왔을 리 없기에, 인원이
몇 명 정도 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후방을 지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세 명의 뒤에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이려 하였지만, 추선우는 그들을 막아
세웠다.

“왜요?”

강서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저들은 어쩌면 태정민 팀장을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네? 어째서요?”

강서진은 그의 말에 놀란 되물었다.

“쉽게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저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어떻게 우리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정보망의 차이겠지만, 지금 저들은 태정민 팀장의 뒤로, 누가 있는지를 찾는 중일
것입니다.”

의외였다. 추선우는 지금 고광의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마치 설장호가 상대의 심리를 그대로
파악하여, 그의 다음단계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였다.

“일단은 여기서 대기합니다. 그리고 지원은…….저 혼자 가겠습니다.”


‘탁.’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이 다시 그를 보며 손을 잡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말했듯이 검사님은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검사님께서 잘 못되시면, 제가


힘들어집니다.”
“!!!”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곧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서 검찰청 형사들의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지금 박형사님이 사당역을 지원하고 있으니,
검사님의 형사병력이 필요합니다.”

추선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가 그를 달리 보는 듯 한 눈빛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할게요. 조심하세요.”

강서진은 그의 뜻에 따라 검찰청 형사들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리고 몇 걸음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추었고, 곧 뒤돌아서서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는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다시 정면을 향해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태정민을 지원하기 위하여 움직이려 하였다.

‘와락!’

그 순간 그의 뒤에서 강서진이 다가와 안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국정원 대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추선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뒤에서 안은 강서진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나중에…….나중에 이 모든 것이 해결되면, 저와 데이트 한 번 해주십시오. 그 때는…….검사님의 속을


썩이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하였고, 곧 자신을 안고 있는 그녀의 손을 풀며, 뒤돌아서서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추선우는 그녀에게 인사하였고, 그녀는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데이트해요…….꼭 해요.”

그의 말에 답하면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남은 대원들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나 태정민등. 그와 함께 오랫동안 움직였던 이들은 두 사람의 묘한 기류를 다 눈치
차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뒤돌아서서 빠르게 움직였고, 곧 검찰청으로 연락하여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추선우는 태정민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현재 태정민과 국정원 대원 두 명, 그리고 추선우까지 해서 네 명이지만, 그들은 약 20 명 정도되는
인원이기에, 수적 열세에 있지만, 절대 주눅 들지 않은 채, 그들의 앞에 당당히 섰다.
곧 추선우마저 태정민의곁으로 오자, 고광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둔 네 명의 회장이 언급하였고, 또 장태와 수만이 죽었던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
고광은 당장 칼을 뽑아 그의 목을 치고, 죽은 장태와 수만의 원한을 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인상만 구길 뿐, 그에게도 칼은 뽑아들지 않고 있었다.

“더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잡겠습니다.”
“!!!”

추선우는 그들을 한 번씩 쭉 훑어본 후, 곧바로 말했고, 그의 말은 같은 편에 서 있는 태정민과 대원들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우릴…….잡겠다? 하하하!”

추선우의 말에 고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한 뒤, 곧 큰 소리로 웃었다.

“보아하니 그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우리가 너희를 알고 있듯이, 너희도 우리가 누군지 뻔히 알고 있을 터.
그러니 쓸데없는 신경전은 버리자.”
“…….”

추선우는 직설적이었다. 거침이 없었고, 고광의 앞으로 거의 2 미터 정도까지 다가서며 말했다.


고광이 칼을 뽑아 휘두른다면, 추선우의 목은 단번에 떨어질 거리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을 안다? 그건 무엇으로 장담하는 것입니까?”


“백태…….이곳의 주인이며, 지금 너희들이 찾는 물건의 주인이기도 하지.”
“…….”

고광은 추선우를 완전히 달리보기 시작하였다. 겁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거침도 없었다. 지금 자신을


향해 칼이 겨누어져 있는지, 아니면 총이 겨누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광을
도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태라니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백태가 사람이름 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쉽게 이름이라 단정할만한 이름은 아니지. 그리고
영월에서 죽은 놈과 성남에서 죽은 놈. 그 두 놈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고광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칼을 든 그의 손이 잠시 바르르 떨었고, 그의 매서운


눈빛은 추선우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를 잡겠다고 하였으니, 우리를 잡을만한 준비는 하고 오셨습니까? 설마 이 인원으로


우리를 잡겠다는 것은 아니시지요?”

고광은 추선우를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너희들을 잡는데 인원은 상관없지. 어차피…….우두머리만 잡으면 되니까!“


“!!!”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하면서 곧바로 고광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고광은 약 2 미터 앞에서 바로 질러진
그의 주먹을 보며 놀랐지만, 이내 쉽게 피한 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추선우는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계속된 공격을 감행하였고, 추선우의 행동으로 고광의
부하들이 일제히 창고에서 나오면 추선우를 잡으려 하였다.

“워워. 너희들은 딱 거기까지. 더 이상 움직이면 숨통 끊어진다.”

그들이 움직이자, 태정민이 먼저 총을 꺼내 겨누며 말했고, 곧이어 국정원 대원들도 총을 뽑아들었다.

“계획이 실행된 모양이군. 접근하자.”

추선우의 행동과 태정민의 행동을 멀리서 보던 국정원 대원들이 서로 말하였고, 곧바로 총을 뽑아들고
그들의 곁으로 향하였다.
고광은 자신을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주먹을 휘두르며 발을 뻗는 추선우를 보면서도, 뒤로 더 접근하는
국정원 대원을 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고광은 백태가 잡혔으니, 백태가 불어버릴 많은 정보들을 파기하기 위하여 그의 은신처를 찾아온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백태는 국정원에 있다. 그리고 지금 그를 죽이려고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겠지. 얼마 전, 최기수를 죽인


것처럼 말이야.”
‘슉슉슉!’

추선우는 고광을 향해 계속하여 주먹을 뻗고, 발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고광은 그의 공격을 단 한
번도 쳐내지 않고, 모두 피하고 있었다.

“추선우. 네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구나!”


‘촥!’
“!!!”

고광은 그의 말을 듣고, 계속하여 들고만 있던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장검이


추선우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스르륵’

고광이 휘두른 장검은 추선우의 왼쪽 팔에 감겨있던 붕대를 살짝 걷어냈고, 곧 손에 돌돌 말려있던 붕대는


이내 모두 풀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총은 관통하고 지나가지만, 칼은…….모든 것을 다 베고 지나간다.”

추선우의 행동이 멈추었다. 무엇보다 고광의 칼 솜씨는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추선우의 왼쪽 손은 쉴 새 없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빠르기도 하였기에, 절대 눈으로 보고 그 손에
감겨있는 붕대만을 잘라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고광은 너무나 쉽게 하였다.

“백태는 죽는다. 장태와 수만처럼 죽는다. 그리고 장태와 수만을 죽인 너도…….내 손에 죽는다.”
‘촥 삭삭삭!’
“모두 사격 개시!”

고광은 추선우를 보며 말하면서 점점 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 뒤, 이내 칼을 뽑아들며 그를 향해


휘둘렀다.
추선우는 그가 휘두르는 장검을 이리저리 피하며 뒤로 물러났고, 태정민은 국정원 대원들에게 사격개시를
명하였다.
국정원 대원들과 함께, 곧 뒤에서 합류한 대원들까지 모두 총을 쏘며 추선우를 엄호하였고, 고광은
재빨리 몸을 돌리며 건물 뒤로 숨어들었다.

“저 놈들이 여기를 왔다는 것은, 이미 백태에 대한 정보를 다 읽고 있다는 말이군.”

고광은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긴 뒤, 혼자 중얼거렸고, 곧 몸을 낮춰 앉은 뒤,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회장님.”

이수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수호는 지금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으며, 이장두가 네 명의 경호원을


대신하여 그의 옆에 붙어 있었다.

“장두야.”
“네. 회장님.”

이수호는 고광의 연락을 받은 뒤, 고민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불렀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구나. 설장호를 미리 손보지 못한 잘 못이고, 또 그


민간인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 잘못인 것 같다.”

이수호는 차량 안에서 차창 밖을 보며 말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아직 고광과 장석관이 있고, 또 석강수란 놈도 건재합니다.”


“그래. 건재하지. 하지만 그 세 놈보다 그 두 놈이 더 강하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장두는 그 후로 답을 하지 못하였다.

0019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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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가서 내게 그동안 손을 내밀었던 양반들을 만나봐야겠다. 그들은 이 시국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수호가 매일같이 여인들의 살결에 파 묻혀 살다, 밖으로 나온 이유였다.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만나려는 사람들은 속히 말하는 높은 자리에 앉은 양반이었다. 그들에게 매년, 매번같이 주머니를
채워주었었다.
이제는 그 주머니에 들어간 돈에 대해 값어치를 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하여 그들을 만나려는 이수호였다.

“CCTV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석강수의 움직임은 물론, 의문스러운 놈들은 모조리 잡아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사당동 번화가 입구에서 떡하니 선 채 모든 대원들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시선을 집중하였다. 시꺼먼 정장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들이 우르르 움직이니,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강수를 찾아, 그 놈들이 왔을까요?”
곧 조동민이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백태를 죽이지 못한 것도 있고, 또 석강수가 잡히면 결국 손해 보는 놈들이 지놈들이니, 필시 그를
죽이던 살리던 뭐하던 간에 찾아올 것이다.”
설장호는 사당동 번화가 일대에 이수호의 부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설장호가 움직이니 역시 뭔가 다르군. 별 볼일 없었던 놈들조차도 뭔가 있어 보여.”


같은 시각. 장석관은 자신의 차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저 석강수를 찾고자 이리저리 수색하는 것이 아닌, 석강수를 이용하여 자신을 잡고자 하는 움직이라
보이고 있었다.
“안되겠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장석관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도저히 석강수를 빼 내올 방법이 없었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이
교란작전이었다.
장석관의 명령이 있은 후, 그의 부하들은 석강수가 있는 쪽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그의 명령을 이행할
준비를 하였다.

‘퍽!’
“무슨 짓이야!”
곧 장석관의 부하 한 명이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의 가격하였고, 그로인하여 죄 없던 행인의 일행들이
장석관의 부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문 싸움꾼과 일반인의 싸움은 애초부터 승부가 결정지어져 있었다. 단 한 명의 부하가 시비를
걸었지만, 그들은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 다섯 명이 모조리 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실장님. 현재 위치에서 왼쪽 대각선 두 블록 뒤로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야?”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한 명이 건장한 사내 다섯 명을 눕혔습니다.-
“그래. 알았다. 계속 감시해라.”
그의 움직임은 CCTV 에 잡혔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되었다.
설장호는 그곳으로 부대원을 보냈지만, 자신은 여전히 번화가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식의 장난은 좋지 않다. 그만 나와라…….”
설장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계속하여 시선을 분산시킨다.”
장석관은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부하에게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는 또 다시 현 위치와 정반대되는
곳에서 시민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내용도 설장호에게 보고가 되었고, 설장호는 그곳으로도 대원을 보냈다.
“인원을 분산시켜서 도주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조동민이 장석관의 생각을 그대로 읽은 듯 말하였다.

"이보게 백태. 이렇게 해서 자네에게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죗값을


받겠나.“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국정원장이 직접 백태를 만나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백태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국정원장은 예외였다.
“나에게 좋을 것? 애초에 그런 것을 생각한 적이 없다.”
백태는 그의 말을 무시하였다.
“이대로 그냥 죽을 텐가?”
“나를 죽이겠다? 국민들이 보지 않는다고, 이런 곳에서 나를 그냥 죽여 버리겠다? 국정원이 원래 이런
곳이었나?”
백태는 원장의 말을 들은 후, 어이없는 표정과 어투로 다시 되물었다.
“단단히 오해하고 있군.”
“오해?”
“너를 죽이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알다시피 네가 모신다고 하는 그 회장이라는 수장이 너를 죽이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고 있다. 과거 최기수처럼 말이야.”
“…….”
백태는 아무런 말없이 그를 보았다. 국정원에 있는 최기수가 죽은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만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도 이미 겪었다. 하지만 그는 이수호에 대한 충성에 배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곧 네가 그리 숨기고 있는 이도 잡힐 것이네. 자네도 설장호 실장을 알고 있을 테니, 그가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하여 나서는 것을 느꼈을 것이야.”
백태는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앞에서 호언장담하고 나섰던 설장호를 다시 떠올렸다.
그는 자신 있는 어투였다. 모든 것을 결정짓기 위하여 나선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도, 석강수를 잡아 모든 정보를 다 알아낼 것이라 말했다. 그는…….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임은 백태도 잘 알고 있었다.
“자네는 아직 명백한 죄를 받지 않은 상황이네, 누군가를 직접 죽인 것도 없네. 그 전에 있던 네 명의
회장이라는 사내가 15 년 동안 자행했던 악행 속에도 자네에 대한 기록은 없어. 즉…….자네는 죄 없이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으며, 굳이 죽음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네.”
“…….”
국정원장은 그에게 정보를 받아내기 위해 술수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백태의 죄라면 단 하나, 바로 추선우의 친구인 미희를 납치하려다 미수에 거친 것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가 없기에, 국정원장의 권력으로 마음만 먹는다면, 백태는
무죄로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상황임을 말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게. 이제 곧 설 실장이 석강수를 잡으면 자네에게 주어졌던 기회는 더 이상 효력이 없네.
그리고 자네를 보호하는 것도 하지 않을 것이네. 어차피 그들이 자네의 목을 노리고 있다면, 우리도 필요
없는 인간을 보호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뭔가 생각하는 듯 한 모습 일뿐이었다.
백태의 머릿속은 복잡하였다. 국정원장이 자신을 떠 보기 위하여 그냥 뱉은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설장호는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마무리 하려 할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정보. 폐공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정보만으로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또 한 설장호에게 자신의 오피스텔과 폐공장을 알려준 인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주 정확하게 그곳을 찾아왔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무엇을 말해주면 되겠습니까?”
국정원장이 감금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백태의 입이 열렸고,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들어서 그를 보았다.
국정원장은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앉았다.
“실장님.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박태식 형사의 도움으로 형사들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
대원들을 더 침투시켜서 숨은 놈을 찾아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동민은 답답한 면이 있었다. 국정원대원들과 박태식의 형사들만으로도 사당동번화가 일대를 들쑤시고
다니기에는 충분한 인원이라 여겼다.
“기다려라. 그 놈을 잡고자 마음먹었다면, 너의 생각처럼 머릿수로 밀어붙였다.”
“네? 그럼 왜?”
“내가 원하는 것은 석강수를 잡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석강수가 스스로 숨은 놈을
불러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조동민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석강수가 어떻게 숨은 인물을 불러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백태가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설장호는 그 어떤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리저리 잘 짜 맞췄고, 이미 어느 정도 계산을 한 후에 지금과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 놈들도 총이 있네. 젠장!”


한 편. 폐공장에서는 국정원 대원들과 고광의 부하들의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이에 태정민은 개나 소나 다 들고 다니는 총이 왜 대한민국에서 불법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대로라면 저들의 수장을 잡지 못합니다. 우선 총을 든 놈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추선우의 말이었지만, 태정민도 이미 그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든 놈들끼리의 전쟁은 누가 더
조준사격을 잘하는가에 승패가 달려있다.
아무리 총알이 많아도 사격실력이 형편없다면 총알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단 한 발의 총알이라도, 명사수에 손에 들려있다면, 정확하게 원하는 놈만 목을 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모두!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잡아들인다!”


“일찍도 오셨군.”
고광의 부하들이 연신 총을 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쉽게 앞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을 때, 후방에서
강서진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모두의 시선이 돌아섰다. 그리고 태정민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서진은 폐공장 앞쪽 약 10 미터 부근에서 몸을 숨기고 총알을 피하고 있는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를 보며 웃는 것은 아닐 테고…….역시 사랑의 힘은 강하다. 강 검사님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줄은
내 생전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야.”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추선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신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 뒤,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저를 엄호해 주십시오.”


“어디가게?”
“저 놈을 잡아야죠.”
“뭐? 이렇게 총알이 수없이 날아다니는데, 저 놈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그러니까 엄호를 부탁하는것잖아요. 어서요.”
태정민은 그를 본 후, 다시 강서진을 보았다. 강서진도 날아오는 총알 때문에 앞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한 이미 이 일대의 대부분의 공장이 다 문을 닫은 관계로 총알이 난무하는 상황임에도 그 어떤 누구도
나와서 보는 이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자. 다들 들으셨죠? 추선우를 엄호합니다. 지금 총을 쏘는 무리들과, 저들의 우두머리로
보인 놈이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추선우가 그놈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린 그 부하들을 모조리
묶어두겠습니다.”
태정민이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했다.

청와대 경호실과 국정원 대원들 간의 서열관계를 따지자면 사실 누가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


현재는 설장호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추선우, 강서진이 이 현장을 지휘하는 인물들이기에, 국정원대원들은
그들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추선우가 신호를 주었고, 그 신호에 맞춰 태정민을 비롯하여 국정원 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킨 뒤,
창고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리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추선우는 곧바로 고광이 숨어들었던 다른 공장 건물을 향해 달렸다.

“!!!”
그 모습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무수히 날아오는 총알 속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묶어두세요!”
태정민이 소리쳤고, 모두 폐공장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권총에 장전되는 총알이 모두 소진되었다.

‘탕탕탕탕!’
그 순간 곧바로 폐공장에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을 비롯하여 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낮췄다.

‘촤르르르!’
추선우는 그들이 총을 쏘기 시작할 때, 몸을 낮추며 미끄러지듯이 공장안으로 들어섰고, 다행히 그들의
총알은 추선우를 적중시키지 못하였다.

0019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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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떨리는군.”
태정민은 아슬아슬하게 목적지에 들어선 추선우를 보며 큰 한숨을 쉬고 말했고, 후방에서 보고 있던
강서진도 그 자리에 덜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목숨이 정말 몇 개는 되는 놈 같다.”
태정민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며 앉은 상태에서 함께 앉은 국정원대원들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우린 저놈들을 잡겠습니다. 한 바탕 제대로 놀아보죠.”
태정민은 조금 떨어진 후방 쪽에 있는 강서진을 보며,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했다.
강서진과 함께 온 형사들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지원하고, 자신과 국정원 대원이 접근하겠다는
말이었다.
즉. 조금 전 추선우가 한 것을 그대로 하겠다는 말이었다.
태정민은 이어마이크를 통해 강서진에게 계획을 알려주었고, 강서진은 동원된 형사들에게 내용을 설명한
후, 명령을 하달하였다.

추선우는 고광이 숨어들어갔던 창고로 어렵게 들어간 후, 몸을 낮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고광이 계획하고 들어간 곳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이곳은 다른 창고들에 비해,
안으로 들어서는 정문 외에는 그 어떤 출구가 없었다.
심지어 창문조차도 없는 곳이었고,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백 개의 형광등이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추선우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가 총도 없이 대범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고광
역시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날렵하고 강한 놈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바로 앞에서 총을 든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칼이
아닌 총을 들어 반격할 것이었다.
하지만 고광은 추선우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고, 그 실력은 믿지 못할 정도였다.

‘쿵. 촤르르르르!’
추선우가 창고 안으로 더 들어서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으로 보이는 창고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강서진이 놀란 눈을 한 채, 추선우가 들어간 창고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젠장. 왜 또 저리 가는 거야?”
태정민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쓴 표정을 지은 채 말한 뒤, 곧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이 움직이는 창고
쪽이 아닌, 강서진이 달려가고 있는 창고로 뛰었다.

‘쾅쾅!’
강서진은 완벽하게 닫혀버린 창고 앞에서 창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다른 창고에 비해 사방 모든 곳이
단단한 철로 되어 있는 문은 열리지 않았고, 심지어 쿵쿵 거리는 소리까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야. 이 창고는?”
태정민도 처음 보는 창고였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임의로 제작한 듯한 창고였다.
“어서 문을 열 방법을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녀의 명령에 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가 이리 서두르고,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를 무시했던 지난날의 모든 것에 대해 사과하지.”


“…….”
한 편. 창고 안에서는 추선우가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곧 창고 더 깊숙한 곳에서 고광이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장검을 들고 있었고, 천천히 걸어 나오며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말 의외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민간인이, 설마 우리와 같은 거대 조직을 하나한
밟고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거대조직? 그런 조직이라면 더욱 더 꽉꽉 밟아줘야지.”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보는 눈을 매섭게 한 뒤 말하였고, 곧 그도 고광의 앞으로 조금 더
다가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선우의 실력을 보셔서 알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안에 그 놈이 있다면,
오히려 추선우에게 얻어 터져서 끌려나올 것입니다.”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 방법이 없어 주변만 둘러보다 다시 강서진의 앞으로 온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말할 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휴대전화 알림이 들어왔다.
“누구지?”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첨부된 파일이 있고, 파일 이름이 안상 폐공장과 사당동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아, 자신들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같은 문자 같은데, 제가 열어보겠습니다.”
태정민은 첨부파일을 보았다. 그리고 해당 파일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고, 곧 첨부된 사진도 함께
보면서 운동자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실장님.”
-문자 받았나?-
“네. 받긴 받았는데, 지금 태팀장이 먼저 확인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자입니까?”
강서진은 태정민의 표정을 보면서 설장호에게 물었다.
-현재. 너희들이 맡고 있는 안산 폐공장과, 사당동에 나타난 놈의 인적사항이다.-
“네? 그런데 그런 인적사항을 누가 보낸 것입니까?”
-국정원장님의 전화번호야.-
“네!? 국정원장님요?”
태정민은 문자를 보고 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설장호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쳐 물었다.
죄지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몸이 떨리고 있었다.
-일단 문자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현재…….“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이해는 모두 했습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니,
굳이 이 내용을 육성으로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태정민은 먼저 문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문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강서진도 곧 그의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그녀 역시 모두와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놈들이 지금 이 앞에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러니 섣부른 행동을 삼가고, 팀 전체가 다 움직여라. 잘 못 건드리면 그 놈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두 사람은 설장호의 말을 들으며 눈동자를 심하게 떨었다. 지금 현재 사진에 올라온 인물을 치기 위하여
들어선 사람은 한 명. 바로 추선우였고, 지금 그를 조심하라는 설장호의 당부가 있었다.
“네…….네. 뭐. 잘 알겠습니다. 실장님도 조심하십시오. 그 쪽으로 간 놈도 보아하니 한 이력 하네요.”
-조심해라.-
강서진은 설장호의 짧은 말을 들은 후,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을 보았다.

“젠장. 큰일이네요. 뭐 이런 놈이 다 있습니까?”


태정민은 휴대전화에 첨부파일로 들어온 사진을 클릭하여 더 크게 확대하여 보았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고광의 얼굴이 찍혀있었고, 그에 대한 화려한 전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어서 문을 열어!”
강서진은 그의 이력을 한 번 더 본 뒤, 함께 온 형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형사들이라고 사방이
강철로 꽉 막힌 창고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힘들었다.

“자네의 이 선택은 자네의 앞길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국정원장이 백태를 앞에 두고 그를 보며 말했다.
사당동에 있는 설장호와 안산에 있는 강서진, 태정민의 휴대전화로 고광과 장석관의 사진을 보낸 인물은
국정원장이며, 그는 백태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였다.
“내가 살고자하여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무너져 내리는 조직. 다음기회라는 미련을 버리고자, 한
번에 무너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백태는 국정원장을 정확하게 보며 말했다.
국정원장은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면 최대한 선처를 해준다는 미끼를 던졌었다. 하지만 백태는 그 미끼를
문 것이 아니었다.
미끼를 듣기만 했을 뿐, 물지도 않은 채, 끌려올라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장석관이란 놈이다. 이 인근에 있을 것이니, 모든 차량을 다 확인한다!”
“네. 실장님.”
설장호는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지금에야말로, 완전히 조직을 무너뜨리려 작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하던 일도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었다.
설장호는 백태라는 아주 좋은 미끼를 얻으면서 그로 하여금 많은 것이 밝혀질 것을 예상하였다.
그의 오피스텔과 창고, 그리고 석강수를 적대하며, 믿지 못하는 그의 성격.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조직의 깊은 곳 까지 하나하나 다 드러내려 하였다.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국정원장에게서 받은 정보를 모든 대원들에게 보냈고, 박태식도 설장호에게서
받은 정보를 형사들에게 보내면서, 사당동 일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의 모든 스마트폰에
장석관의 얼굴이 떡하니 기록되었다.
“이제 끝내자…….”
그리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조직의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 있을 이수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회장님. 모두 모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이수호는 화려한 일식집에 앉아 있었고, 곧 장두가 그의 앞으로 서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가보자.”
장두의 말에 이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화려한 일식집에는 종업원만 있었다. 그 어디에도 손님은 없었다.
마치 지난 날, 최기수와 우수광, 정구석과 고민국이 오랜만에 자리하여 만났을 때를 떠올리는 듯,
얼어붙은 종업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식집이었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장두가 먼저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특실 안에 앉아 있던 약 열 명 정도의 남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반겼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다보니, 이제야 다시 또 자리를 이렇게 마련했네요.”
이수호는 자신을 보며 서 있는 이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수호의 눈에는 그들이 모두 자신의 방패로 보이고 있었다.
화려한 금배지를 정장 왼쪽 카라 부분에 달고 있는 사내가 있었고, 또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남녀들이 그를 반겼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리 급히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았고, 곧 한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요즘…….뉴스를 보면 아시겠지만, 꽤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네? 그럼 설마 요 며칠 뉴스에 나오던 사건이 회장님과 연관되어 있던 사건들이었습니까?”
이수호의 말에 한 여인이 그를 보며 물었다.
“진작 끝났어야 할 일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이리 끌고 오는 바람에 제가 요즘 잠을 도통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수호는 그녀의 말에 손수건으로 자신의 이마에 묻어나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전화를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니 회장님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생각지 않았습니까.”
사내는 이수호를 보며 말했다. 이수호는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이 그동안 이들을 주머니에 채워준 돈의
대가를 이제야 제대로 받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서…….여러분들의 도움이 좀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수호는 다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들이 회장님에게 입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데, 그 어떤 것도 다 해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수호는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장두에게 손짓을 하였고, 장두는 곧
일식집 사장에게 신호를 주었다.

0019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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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고급스러운 일식요리가 줄지어 나오면서 모두의 눈과 코를 자극하면서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내가 오늘은 그냥 식사나 한 끼 하자는 생각에 이렇게 모이도록 한 것인데, 괜한 말을 꺼내서…….”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으면 말씀을 하셔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사내는 이수호를 보며 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수호는 미소를 지으며 회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이수호는 수저를 내려놓고 모두를 보았다.
“여러분들이 나를 돕고자 하니, 제가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도 거의 식사를 다 마친 상황이라, 이수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돌렸다.
“지금…….나의 목을 조르며 다가서는 놈이 국정원의 설장호란 놈입니다.”
“…….”
이수호는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였다. 그러자 모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면서 아무런 말없이
그저 이수호를 보고만 있었다.
이수호도 그들의 표정을 보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그 놈을 막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하하하! 두 말하면 잔소리죠. 어디 하찮은 국정원 실장이 저희들과 견주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3 일 이내에, 아니 오늘 안에 그 놈이 옷 벗는 꼴을 직접 보게 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여전히 굵직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은 뒤, 그에게 말했고, 이수호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환해지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들만 믿고 난 일어나보겠습니다. 또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요.”


“네. 살펴 들어가십시오. 이 일은 저희들이 깔끔하게 정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길에도 열 명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였고, 곧 그의 뒤로
국회의원의 금배지를 착용한 사내가 말했다.
이수호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일식집을 나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열 명의 인물은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아주 매서운 표정이었다.

“설장호를…….쳐라?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이수호 회장님.”


가장 앞쪽에 있던 국회의원이 홀로 중얼거리자, 열 명의 남녀가 모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치
이수호를 조롱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시국에 이수호 회장을 돕고자 나서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지
않습니까?”
국회의원의 말에 이어, 한 여인이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러다 뿐이겠습니까. 그것도 설장호입니다. 독하디. 독한 그 놈이 물고 늘어지는데, 어떻게
빠져나가겠습니다. 괜히 이수호 회장을 돕는답시고 나서다가 설장호의 눈에 띄는 날에는 줄줄이
초상입니다.”
이들도 이미 설장호가 이수호를 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아록 있었다.
하지만 이수호에게는 모른 척 대하였고, 이수호는 이들을 말을 믿고 웃는 얼굴로 식당을 나섰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들을 다 믿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라 생각됩니다.”


한 편. 식당에서 나온 이수호는 하늘을 보고 섰고, 곧 장두가 그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장두야.”
“네. 회장님.”
“세상은 말이다. 간신들이 오래 살아남는 법이야. 충신은 자신이 살고자 주군을 버리지 않으니 주군을
대시하여 일찍 죽지. 하지만 간신은 자신이 살고자 주군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수호는 이미 식당 안에서 만난 이들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단지 그 순간만은 표정으로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자. 저들이 나를 죽도록 내버려둔다면, 나 또 한 죽을 때 저들을 다 데리고 갈 것이다.”
이수호는 차량으로 걸으며 말했고, 장두는 그의 뒷모습을 본 후, 식당을 향해 매서운 눈길을 돌렸다.

‘촥!’
‘촤르르르!’
한 편. 창고 안에서 고광과 마주한 추선우는 그가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백태가 한 말처럼 고광이 장검을 들고 있으면, 총든자도 이긴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추선우였다.
“아주 빠르군. 내가 휘두르는 장검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피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길이길이 기억해
두겠다.”
고광은 자신의 장검에 아직도 추선우의 피가 묻어있지 않은 것에 대해 그를 높게 평가하였다.
“조선시대 호위무사도 아니고, 장검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무섭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제대로 해봐.”
“…….”
추선우는 그의 장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만큼 고광이 휘두르는 장검의 날카로움은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추선우는 주변을 둘러 본 후, 왼쪽 기둥에 서 있는 직경 3 센티 정도에 길이 1 미터정도되는 쇠파이프를
보았다.
“들고해라. 기꺼이 허락하마.”
고광은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고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겠지만, 그 말이 너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쇠파이프를 잡아들었다. 쇠파이프는 무게감도 적당했고, 길이와 폭도
적당했다.
충분히 고광의 장검과 일격을 벌일 수 있을 만한 조건을 갖춘 무기였다.
고광은 그가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자세를 보았다. 그저 평범하게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쇠파이프 하나를 손에 쥐었다고, 빈틈이 확 줄어들어보였다.
“운동을 제대로 한 놈 같군.”
“그래? 그저 눈으로 보고도 그리 쉽게 알 수 있다니 대단하다.”
추선우는 쇠파이프를 꽉 쥔 후, 그를 향해 움직이며 말했고,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그를 보며 고광도
자신의 장검을 꽉 쥐었다.
‘창!’
“!!!”
서로를 향해 아주 강하고 빠르며 묵직하게 휘둘러지 장검과 쇠파이프는 불꽃을 튀기며 충돌하였고, 그
충격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자, 고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때? 이제 좀 재밌겠지?”
반면에 추선우는 여유가 생겼다. 고광이 들고 있던 장검에 의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쇠파이프 하나라, 천하의 고광을 완전히 잡아두고 있는 그였다.
‘저 놈. 이런 충격을 주다니.’
고광은 자신의 손에 전달 된 충격에 의해 그를 달리 보았다. 그리고 홀로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휘두른 칼을 쳐 내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그 충격이 이리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오래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그냥 나를 죽이고자 덤벼라. 나도 너를 죽이고자 휘두를 것이다.”
추선우는 다시 고광을 향해 달려가며 말했다.
‘창창창!’
고광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장검을 들고 언제나 먼저 휘두르던 그가, 누군가가 휘두르는 공격을
막으며 뒤로 물러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제기랄!”
고광은 세 번의 공격을 막은 후, 소리쳤고, 이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들며 자신의 장검을 휘둘렀다.
고광이 휘두르는 장검의 날카로움은 추선우를 충분히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빠르기는 둘째 치고, 정교하게 급소를 향해 내려오고, 또 찔러지고, 또 휘둘러지니, 그 공격패턴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나에게 재밌냐고 물었지? 지금은 어떤가? 재미있는가?”
고광이 물었다.
“재미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무서움은 느껴진다. 네가 휘두르는 그 칼. 단 한 번이라도 네 몸을 스쳐지나
가면 내가 죽는다는 것도 실감나고 있다.”
“제대로 파악했다. 난…….같은 자리에 두 번의 칼날이 지나쳐가도록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손에 무엇을 들고 싸운 적은 없지만, 이렇게 들었으니, 너처럼 소름 돋는 말하나 만들자.”
고광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는 진지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진지함이 없어보였다.
“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상대가 정해지면 끝을 볼 때까지 놓지 않는다.”
추선우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광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제기랄! 어떻게 좀 해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같은 시각. 창고 외부에서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주변만 서성거리던 강서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문이라고 보이는 곳도 너무나 굳게 닫혀버렸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놈은 여기서 나오면 잡히는 것이지만, 문제는 추선우가 끌고 나오느냐. 아니면 그 놈이 직접
걸어서 나오느냐 인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이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태정민도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강서진에게는 좋게 들릴 리 없었다.

-석강수! 움직입니다!-
한 편. 사당동에서는 장석관의 사진이 이미 뿌려졌고, 석강수를 찾고 있을 때, 국정원에서 CCTV 를
확인하고 있던 대원이 설장호에게 곧바로 알렸다.
“어디야?”
위치를 물었고,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장석관은 석강수를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 부하들을 시켜 주변으로 시선이 집중되게끔.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행동도 하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CCTV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국정원에서 붙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막을 테니 주차장으로 가십시오. 그곳으로
가시면 장석관님이 계실 것입니다.”
이미 국정원 대원들이 다가서는 것을 확인한 장석관의 부하들이 석강수를 그에게 보내려 하면서 자신들이
앞으로 나서 국정원 대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석강수는 그들의 말을 들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석강수. 홀로 따로 움직입니다.-
“계속 위치를 알려.”
-공용주차장쪽이 아닌, 방배동쪽으로 움직입니다.-
“방배동?”
-네. 아무래도 혼자 따로 이곳을 빠져나갈 모양입니다.-
“알았다. 계속 확인하라.”
장석관의 부하들이 국정원대원들을 막아주는 수고를 자진하였지만, 석강수는 주차장으로 가서 장석관을
만나라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석강수. 역시 쉬운 놈이 아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장호는 석강수가 이동중인 경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중얼거렸고,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조동민이
물었다.
“내 계획은 석강수를 이용하여 더 많은 놈들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놈은 내 생각을 읽었어.”
“생각을 읽다니요?”
“지금 이 순간 그가 자신을 돕는 장석관을 만나면, 장석관의 죄명은 바로 만들어진다. 지금은 장석관이
특별한 죄명이 없다. 그를 잡아도 잡아들일 명분이 없다. 하지만 석강수를 만나기만 하면 그 명분은
만들어지지.”
설장호는 자신의 계획에 있는 일부를 말해주었다. 조동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석강수가 사당역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장석관이 있는 곳이 아닌, 방배동 쪽으로 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0020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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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서 장석관을 잡아라. 저 놈은 내가 잡는다.”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도 석강수를 잡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석강수도 석강수지만, 그 보다 더 지독한 놈인
장석관이 아직 사당역 인근에 있기에 그를 잡는것도 우선이었다.
조동민은 설장호가 없는 시점에 사당동의 모든 대원들을 통솔하기 시작하였다.
국정원 대원들은 그의 명령을 듣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석강수를 데리고 가기 위하여 나섰던
장석관의 부하들은 국정원 대원들과의 격투에서 쉽게 잡히고 말았다.
사당동의 사건은 또 다시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뉴스속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대통령님. 현재 사당동에서의 일이 뉴스속보로 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는 한 경호원이 집무실로 들어와 차현태에게 보고하였고, 그 즉시 TV 를 시청하며
뉴스를 접하고 있는 차현태였다.

또 다른 곳. 이미 이수호가 만나자고 한 일부 사람들은 그와 만날 장소에서 기다리면서 TV 를 시청하고


있었고, 그 내용이 이수호와 관련된 내용임을 알고서는 모두가 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이 어렵게 돌아가는군.”
그 중에서 가장 상석에 앉은 사내가 TV 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점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였고, 상석에 앉은 사내의 얼굴을 모두가 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 바로 차현태를 최측근에서 보좌하였던 비서실장이었다.
“정말 이대로는 모두 다 죽습니다. 어떻게 좀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서실장을 향해 한 사내가 물었다.
“섣불리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 이 사태에 대통령마저 나서고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옆에서 그리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몸을 숨기며 그 사람 곁을 떠나있어야 하는 것을 보면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만큼…….지금 이 사건에 달려든 인물들이 쉽지 않은 인물들이란 말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TV 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곧 이수호가 도착하였고, 이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중하였지만, 비서실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들어서는 이수호를 보고 있었다.
이수호는 안으로 들어선 후, 그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뭐라 말 할 수 없는
처지가 지금 그의 처지였다.
“일이 아주 커져버렸고,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은 이수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이수호보다 더 높은 곳에 앉은
사람마냥 그를 대하고 있었다.
“비서실장.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그의 말을 들은 후, 장두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그에게 물었다.

“그만하거라. 장두야. 비서실장의 말이 맞다. 일이 커졌고,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니 말이야.”


장두와는 달리, 이수호는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도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불과 하루전만해도 벌거벗은 여인을 품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였던 이수호지만,
지금은 의외로 그저 평범한 한 늙은이로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나를 보는 눈들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수호는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모두의 시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했다.
“저리 TV 에서 떠들고 다니는데 모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이수호의 말에 한 사내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이에 장두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고, 그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담배를 다시 접어 담배 각에 넣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렵게 되었다고 하여도, 평소의 습관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렵겠군요.”
이수호는 조금 전, 앞서 만난 이들과는 달리 만나자고 한 이유조차 꺼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위에서 군림하듯 막대한 자금력과 권력으로 지내왔던 지난 과거에서 이제는
내려오십시오. 세상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비서실장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이수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였다.
장두의 표정이 매서울 때는 그래도 긴장하지 않았던 이들이지만, 이수호의 표정이 변하자 그를 보는
자세부터가 바로 고쳐지고 있었다.
“내가 이리 앉아 있으니 모두가 나를 그저 평범한 늙은이로 보는 것 같군요. 하지만 모두 잊고 계신 듯
합니다. 내가…….이수호입니다.”
이수호는 그들을 보며 매섭던 눈길을 잠시 거둔 후, 웃는 얼굴로 자신이 누군지를 말했다.
이들이 자신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무서움을 잊은 듯 하여 한 말이었다.
“장두야.”
“네. 회장님.”
“오늘 이분들에게 내가 누군지 다시 알려드려라.”
“알겠습니다.”
이수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장두에게로 향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비서실장만은 전혀 당황한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은 고마움을 알고, 은혜를 입으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기본적인 사람의 것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 듯 합니다.”
장두는 그들을 고루 보며 말한 뒤, 곧 자신의 정장 안주머니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꺼내들었다.
“!!!”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은 자신들의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픽픽픽픽!’
닫힌 룸 안에서는 잠시 잠깐 총알 내뿜는 총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보였고, 아주 작은 소음만이 들린 채,
붉은 색의 피가 사방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비서실장님.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모두 죽였다. 하지만 장두는 비서실장만은 남겨두었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어찌하면 되겠나?”
“진작 그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회장님이 계신 자리에서 말입니다.”
장두는 그를 향해 권총을 다시 겨누었다. 비서실장은 선글라스 속 눈동자를 떨었다.
이수호가 들어오기 전, 그리 당당하던 그의 눈은 이제 두려움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청와대를 막으십시오. 그것만으로 비서실장님이 하실 일은 끝입니다.”
장두는 그를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서지호가 나서고, 차현태가 직접 청와대 경호실까지 움직여, 조직에 가담된 이들을 찾아내면서, 청와대를
벗어났던 그가 이제는 이수호의 명령을 들도, 다시 들어서야 할 판이었다.

이수호는 식당 앞에서 홀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곧 장두가 내려와 그의 옆으로 섰다.


“어찌되었는가?”
“이쪽에서는 비서실장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래? 한 놈이라도 움직이는 놈이 있다니 다행이군.”
이수호는 이미 자신에게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며 살았던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리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 단 한명이라도 자신을 돕고자 움직이는 이가 있다는 것에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비록 타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래도 비서실장이 움직인다면 꽤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였다.
“나머지는…….어찌할까요?”
이미 조금 전 만난 이들 중,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였기에, 그가 말하는 나머지는 가장 처음에
만난 이들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이수호란 것을 알려줘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장두에게 명령을 내린 뒤, 곧 주차장에서 나오는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럼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 곧 들어가겠습니다.”
장두는 함께 가지 않았다. 이수호만 다시 자택으로 향하였고, 장두는 이수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따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석강수. 방배역 2 번 출구 앞, 편의점에 멈췄습니다.-


한 편. 설장호는 석강수를 찾고 있었고, 곧 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들었다.
설장호는 서둘러 움직인 후, 대원이 알려준 편의점을 향해 보았다.
“석강수…….”
그리고 오랜만에 눈에 들어온 인물, 바로 석강수가 편의점 앞에서 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의 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가 다가서는 것을 알지 못한 듯,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빼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석강수는 마시던 맥주를 멈춘 뒤, 그를
말없이 보고 있었다.
“혼자인가?”
캔 맥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다들 너를 죽이고자 따라온다는 것을 저 멀리 떼어놓고 왔다.”
‘탁’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석강수는 편의점에서 사들고 나온 캔 맥주 중, 한 캔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갈증해소에는 최고다. 마셔라.”
설장호는 그가 내민 캔 맥주를 보았고, 이내 캔을 딴 후, 시원하게 한 모금 마셨다.
“어떤가? 과거 자네와 내가 임무를 완수하고 마셨던 그 맥주맛과 비슷하지 않은가?”
석강수는 그에게 지난 과거를 말하였다.
“아쉽게도 내 머릿속에는 너와 함께 한 추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저…….잡아야 할 놈으로 남았을
뿐이다.”
석강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안산 폐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많이 아쉽기도 하다.”
“무엇이 아쉽다는 것인가?”
“그냥. 이것저것 모든 것이 다 아쉽더군. 지난 과거에는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을…….사람을
죽이는 킬러의 생활을 할 때는 내가 왜 이런 짓을 할까…….하는 생각을 하였고, 지금은…….이 자리에
앉아서 내가 그 동안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설장호는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들은 후, 캔 맥주를 내려놓았다.
“백태의 오피스텔과 안산 창고, 네가 준 그 두 가지 정보만으로도 넌 충분히 지금의 처지를 잘 활용한
것이다.”
“후후…….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백태의 오피스텔과 창고, 백태는 설장호가 너무나 정확하게 자신의 은신처를 찾아오는 것을 두고, 누군가
정보를 흘렸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바로 석강수였다. 그는 백태와 함께 조직의 회장 자리에 앉으면서, 많은 정보와
권력을 손에 쥐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의외의 인물인 설장호에게 풀어주었다. 그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 설장호였다. 하지만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일어나자. 나를 잡으러 왔으니, 나를 잡아가야겠지만, 난 아직 추선우와 볼일이 남았다. 그러니 너에게
그리 쉽게 잡힐 마음은 없다.”
석강수가 설장호에게 정보를 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를 돕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 백태에 대한 정보는 주었지만, 모두가 찾고 있는 인물인 이수호에 관한 정보는 단 한건도 주지
않았다.

0020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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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강수는 편의점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아직 결정짓지 못한 서로간의 빗을 정리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광이와 석관이는 어찌하고 있는가?”


한 편. 자택으로 향하고 있던 이수호는 자신의 명령을 수행중인 두 사람이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물었다.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회장님.”
곧바로 그의 부하가 고광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지만, 고광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곧바로 장석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회장님께서 진행상황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장석관은 전화를 받았고, 부하는 곧바로 이수호의 말을 전하였다.
장석관의 지금 상황을 단 한 치의 거짓 없이 모두 알렸다.
“설장호가 아주 준비를 제대로 하고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군.”
“지금이라도 사당동과 안산 폐공장에 애들을 더 보내겠습니다. 이참에 모두 다 쓸어버리고…….”
“아니다. 그냥 내버려둬라.”
이수호는 부하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두 곳으로 지원군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이수호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위험에 처한 자신의 경호원 두 명을 그대로 버려두고 있었다.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경호한 인물들이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주려하지 않는 이수호였다.

‘창창창! 스윽!’
한 편. 창고에서는 고광의 칼날이 추선우의 쇠파이프를 세 차례 방어한 후, 칼날이 추선우의 왼쪽 팔을
스치며 지나쳐갔다.
“젠장. 또 왼쪽 팔이군.”
추선우는 뒤로 밀려나며 자신의 외팔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왼쪽팔에 총알이 박히고, 좀 괜찮아지나 싶었지만, 곧바로 고광의 칼날이 총알보다 더 깊은 상처를 그의
팔에 새겨놓았다.
“쇠파이프를 아무리 휘둘러도, 칼날에는 이기지 못한다.”
“당연한 말을 그리 개폼잡고 할 필요 없잖아. 그리고 말이야…….그 칼날…….맞아보니 별 것 아니다.”
“웃기지마라. 넌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나의 칼에 목이 날아갈 것을 두려워하며, 이 칼날에 두려워하고
있다.”
추선우의 말에 고광은 자신의 칼날에 묻은 피를 세차게 털어내며 말했다.
“두려워한다? 사실 단칼에 뭐든 끝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는 두려웠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맞아보니
그 두려움이 싹 가시니 오히려 이 상처가 고맙군.”
추선우는 두려웠다.
북정마을과 성남, 한강공원에서 총을 들었던 이들을 상대할 때보다, 지금 이순간이 그에게는 더욱 더 큰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검사님. 폐공장 쪽 녀석들은 모두 잡았습니다.”


추선우가 들어간 폐공장을 이리저리 계속 둘러보고 있던 강서진에게 그의 형사들이 다가와 보고하였다.
“우리 쪽 피해는요?”
“다행히 녀석들도 실탄이 모두 소진되었는지, 더 이상 총을 쏘지 않아, 쉽게 제압하였습니다.”
우려하였던 것 중 , 하나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가장 우려하고 있는 곳은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창창창!’
창고 안에서는 또 다시 장검과 쇠파이프가 부딪히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려왔다.
추선우는 왼쪽 팔에 피를 흘리면서 그와 격전 중이었지만, 아직 고광은 그 어디에도 상처하나 없었다.
“쉽지 않지? 넌 지금까지 너무 쉬운 상대들만 만나왔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고광은 자신의 실력이 우세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였다.
“그래. 확실히 네가 강하다. 하지만 칼날의 매서움에 비해 공격의 매서움은 없다.”
“…….”
추선우는 그를 도발하였다. 이미 그의 칼날은 시퍼렇게 날이 선 채, 추선우의 목을 노리고 있었지만,
더욱 더 맹렬하게 노리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번에 끝내주겠다.”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지 말고, 행동을 해봐.”
추선우는 손에 든 쇠파이프를 꽉 쥐며 말하였고, 고광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두 손으로 장검을 꽉 쥐었다.
“이야앗!”
고광은 우렁찬 고함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다가섰다.

‘창!’
정확하게 고광의 칼날은 추선우의 정수리를 노린 듯,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쳐졌지만, 추선우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그 강한 위력을 막아섰다.
“그래도 칼날보다 쇠파이프가 더 강한 것 같다.”
“!!!”
추선우는 몸을 약간 낮추며, 오른손으로 쇠파이프를 잡고, 두 손으로 내려친 고광의 장검을 막은 후,
그를 향해 올려보며 말했고, 그의 표정을 본 고광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퍽!’
“윽!”
추선우는 상처 입은 왼손을 강하게 휘두르며,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였다.
고광은 갈비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퍽퍽퍽!’
하지만 추선우는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다가서며 주먹을 두 번 휘둘러,
그의 면상을 가격한 뒤, 다시 물러나는 그를 향해 돌려차기로 면상을 다시 한 번 날렸다.
‘콰당!’
고광이 넘어졌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장검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면서 휘리릭 날아가 창고 안에 약 3
미터 높이로 쌓여있는 잡동사니 위로 꽂혔다.
추선우는 쓰러진 고광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젠장. 이 왼팔은 평생 날 원망하며 네 몸에 붙어있겠군.”
피가 꽤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총에 맞았을 때보다, 칼에 베인 상처가 더 깊었고, 더 많은 피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었다.
“장태와 수만. 그리고 백태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되는군.”
고광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놈들은 나 혼자 잡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그놈들보다 네가 약해.”
“!!!”
추선우는 그냥 뱉은 말일수도 있지만, 그 말은 들은 고광은 심장이 떨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고광은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1 위다. 즉. 이수호의 곁에 붙어있는 디들 중, 가장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강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네 놈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 봐라.”
추선우는 그에게 말한 뒤,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저 멀리 던졌다. 그리고 그 쇠파이프는 공교롭게도
고광의 손을 벗어난 칼날이 꽂힌 잡동사니 밑에 떨어졌다.
고광은 그를 보았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을 넘어, 지금은 십 수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모두 다 까 뒤집고 있는 장본인이 된 그였다.
“추선우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왼팔은 자신의 팔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고광은 그의 왼팔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의 얼구을 보았고,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를 향해
그도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넌! 실수한 것이다!”
고광은 그의 왼팔을 향해보며 아주 빠르고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탁!’
“!!!”
하지만 추선우는 자신의 왼팔로 날아오는 그의 주먹을 마치 자연스럽게 감싸듯 몸을 돌리며 그의 주먹을
피하였고, 주먹을 뻗은 힘에 의해 앞으로 무게중심이 실린 고광이 다가오자, 그를 향해 주먹을 뻗어
명치를 가격하였다.
“큭!”
고광은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듯 하였다. 추선우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들어서면서 주먹을 내지른
것이지만, 자신의 주먹은 허공만 가를 뿐, 몸이 앞으로 강하게 쏠리면서, 그의 주먹이 가하는 힘을 두
배로 받은 것이었다.
고광은 비틀거리며 다시 밀려났고, 추선우는 그에게 쉴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지 않았다.
‘퍽퍽!’
연이어 두 번의 주먹이 다시 뻗어졌고, 고광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추지 않고 밀려났다.
“쿨럭!”
뒤로 밀려났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았던 고광은 명치를 가격당한 충격과, 연이어 두 번의 공격을 더
허용한 충격으로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네가 강하다고 자부하지마라,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사람은 꼭 존재한다.”
추선우는 그를 향해보며 말했다.
고광은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라 말할 수 있는 이수호의 곁에서 서열
1 위로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민간인 한명에게 처참하게 당했다.
고광은 피를 토하면서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추선우를 향해 노려보며 다가섰다.
“네 놈의 말처럼!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사람이 꼭 존재한다!”
고광은 그 말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민간인 추선우를 잡을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자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퍽!’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고광이 뻗은 주먹은 추선우의 근처도가지 못하고, 그의 뒤돌려 차기에 오히려 그가
더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는 뒤로 밀려나는 그를 향해 따라가며, 다시 한 번 체중을 실은 돌려차기로 그의
면상을 날렸다.
고광은 그 충격에 뒤로 몇 발자국 더 밀려났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고광은 넘어지지 않고 버티며 밀려나다. 추선우가 던져놓은 원형 쇠파이프를 밟았다.
그로 인하여 공중에 몸이 띄워진 채, 넘어지면서, 잡동사니를 건드렸다.
‘치익!’
“…….”
그리고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 그 위에 꽂혀있던 고광의 장검이 뽑혔고, 3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던 그의 장검은 날카로운 부분을 아래로 하여 떨어지면서, 그 아래 쓰러진 고광의 목젖을 그대로
찔렀다.
추선우는 결코 그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모든 것이 마치 영화 속 우연처럼 하나하나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고광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로써 이수호의 경호원 네 명중, 세 명은 잡힌 것이 아니라 모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덜썩.’
추선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도 풀리고, 무엇보다 요 며칠사이 너무나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왼팔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쾅쾅쾅!’
점점 힘이 빠지려고 할 때, 그때서야 창고 문을 누군가 강하게 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분명 꽤 오래전부터 저 문은 누군가가 계속 치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의 귀에는 이제야
들려오고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젠장. 뭘 눌러야 하는 거야.”
필시 문을 열수 있는 장치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그런 장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추선우씨! 들려요!”
밖에서는 연신 강서진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창고 안에 있는 추선우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강 검사님. 약 10 분후에 공단 관계자가 올 것입니다. 그때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서진과 태정민이 생각지 못하였던 것을 형사가 생각하였고,
그로인하여 공단관리자가 직접 열쇠를 가지고 온다는 말이었다.

0020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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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이면 어떨까?”
한 편. 석강수는 설장호와 함께 예술의전당 뒤쪽의 작은 공터까지 걸어간 후,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말했다.
“너와 내가 마주하는 것은 아마 이것이 마지막일 듯 하다. 여기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을 테니
말이야.”
석강수는 설장호의 선배였다. 그에게 국정원 업무를 지휘하고 가르치며, 적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쳤던
인물이 바로 석강수였다.
“빨리 끝내자. 내가 죽으면 이것으로 끝나겠지만, 만약 네가 죽으면, 난 또 한 놈을 만나야한다.”
“추선우를 말하겠지.”
“그래. 그놈. 마치 너의 신입시절을 보는 듯한 눈을 가진 그놈. 꼭 만나고 싶다.”
석강수는 아직 추선우와의 빚을 정산하지 못하였다.
“시작하자. 너도 알겠지만, 너와나의 기술은 동일하다. 즉…….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지.”
석강수는 설장호를 보며 말한 뒤, 그를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설장호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서는 석강수를 보았다.

‘슉! 스윽!’
석강수의 말처럼 정말 찰나였다. 설장호는 다가서는 석강수를 향해 자세를 잡은 뒤, 주먹을 강하게 내
질렀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의 주먹을 피하며, 그의 복부에 단검을 그대로 찔러 넣었다.
“장호야. 내가 항상 말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고 말이야.”
‘슈욱!’
석강수는 이미 설장호의 복부를 찌른 칼을 뽑은 후, 처음에 칼이 들어갔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하여 다시
한 번 강하게 찔러 넣었다.
“윽!”
설장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왔다.
“방심은 죽음이다. 이 말 또 한 내가 항상 해주었던 말이다.
“그 칼은 기념품이다. 잘 꽂아두어라.”
석강수는 그의 복부에 자신의 단검을 꽂아둔 후, 빼지 않고 말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도 자신의 복부에 꽂힌 단검을 뽑지 않았다.
“너처럼 베테랑은 복부나, 몸에 꽂힌 칼을 뽑지 않아. 하지만 신입들은 아프니까 바로 뽑아버리지,
그것이 자신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행위인 것을 모른 체 말이야.”
추선우와 고광의 격전에 비해, 설장호와 석강수의 격전은 단 1 분안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설장호는 복부에 칼을 꽂은 채, 서서히 몸이 주저앉고 있었다.
“운이 좋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를 보고 병원으로 옮겨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행운이 있다면,
네가 살 수 있는 1%의 행운도 기대해 볼만하겠지.”
석강수는 프로다. 국정원에서도 주로 암살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을 나와서도 그는
킬러로 활동하였다.
즉. 사람의 급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어디를 찌르면 얼마만큼 버틸 수 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난 추선우를 만나러 간다. 힘들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보자, 설장호.”
석강수는 설장호를 버려두고 그곳을 벗어났다.
설장호에게 백태의 비밀 은신처와 그에 대한 모든 것, 그리고 조직에 고나한 것도 모두 설장호에게
넘겨주었던 그가, 지금 또 한번 설장호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조 팀장님! 예술의전당 쪽입니다! 그곳에서 설 실장님이 목격되었는데…….-
“되었는데? 그 뒷말은 왜 없어?”
한 편. 설장호의 명령으로 사당동에서 장석관을 찾고 있는 조동민에게 국정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을 들은 후, 조동민이 대원에게 물었다.
-내려올 때는…….석강수 혼자입니다.-
“!!!”
조동민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는 장석관을 잡기 위하여 사당동 일대 모든 주차장을 다 뒤졌고,
이제 마지막 주차장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대원을 연락을 받았다.
조동민은 마지막 남은 주차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 주차장에는 장석관이 떡하니 차에 타 있었다.
조동민이 움직이면, 충분히 장석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동민은 더 이상 주차장을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 즉시! 예술의전당으로 향한다!”
장석관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설장호의 생존이었다.
석강수가 살아서 나왔다면 설장호가 죽었다고 볼 수 있지만, 조동민은 지체하지 않고, 예술의 전당으로
급히 움직였다.

“물러나는군.”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조동민이 물러나자, 장석관은 그가 이동하는 곳을 향해 보았다.
그들이 모두 차량을 타니, 더 이상의 수색을 하지 않고, 아마도 사당동을 벗어날 것이라 여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석강수는 어떻게 된 거야.”
장석관은 석강수가 설장호의 배에 칼을 꽂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또 다른 곳을 수색하기 위하여 자리를 옮기는 정도로 여겼다.

“왜 너희들뿐인가?”
잠시 후, 장석관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부하들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그들 중, 석강수가 보이지
않아 물었다.
“석강수는 방배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방배동?”
“네. 만에 하나 석강수가 형님을 만나게 되면 여러모로 복잡한 일이 일어나니, 일단은 사당동에 있는
설장호부터 빼낸다고 하였습니다.”
장석관은 조금 전까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아다니던 조동민이 물러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석강수가 설장호를 잡겠다는 뜻이었군. 지금 즉시 석강수의 위치를 확인해라. 이왕 석강수가 밀고 있는
것이라면, 더 확실히 밀어붙인다.”
“알겠습니다.”
장석관은 그저 석강수를 사당동에서 빼내오는 것만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확인한 후, 돕기를
자처한 것이었다.

“어서 문을 열어보세요!”
한 편. 공단관계자가 오자마자, 강서진은 서둘러 창고 문을 열도록 하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 창고문은 전자키로 되어있기에, 번호를 찾아야합니다.”
관계자는 들고 온 서류를 열어 해당 창고의 비밀번호를 확인하였다.
‘차르르르르’
문이 열리자마자, 강서진이 가장 먼저 들어섰고, 그 뒤로 태정민과 함께 국정원대원들이 권총을 들고
겨냥한 채 들어섰다.
“!!!”
강서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쓰러진 추선우였다. 왼쪽 팔에서 또 다시 피가 흘러나와 왼 팔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여 놓은 채, 추선우가 쓰러져있었고, 그 뒤로 고광이 자신의 장검에 의해
죽어있는 모습이 모두의 시선에 들어왔다.
“먼저 추선우를 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태정민은 쓰러진 추선우를 멍하니 보고 있는 강서진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놀란 눈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태정민은 강서진과 함께 온 형사들에게 손짓을 주어, 그들이 추선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갈 것을
명령하였고, 형사들이 추선우를 업은 뒤, 창고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도 강서진은 움직임이 없었다.
“함께 가십시오. 저 놈은 저희들이 수습하고, 국정원에 보고를 하겠습니다.”
태정민이 고광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의 상태를 본 국정원대원이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강서진을 부축하여 병원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병원으로 향하려 차에 타자마자, 조동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됐습니까? 그 놈은 잡았습니까?-
조동민은 설장호에 관한 말을 그에게 하지 않은 채, 결론부터 먼저 물었다.
“네. 잡았습니다. 그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장님이 직접 움직이셨으니, 그 놈도…….”
-이쪽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무슨…….문제입니까?
태정민의 표정이 변하며 물었다.
-사당역에 있는 장석관은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한 석강수의 뒤를 쫒았던 실장님의 행방도 함께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
태정민은 놀란 눈을 한 채, 자칫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 운전 실수를 할 뻔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실장님의 행방을 알 수 없다니요?”
조동민은 태정민의 물음에 조금 전 일어난 일을 모두 알려주었다.
“일단 추선우가 병원으로 향하고 있으니, 병원만 확인하고 제가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씨가 병원에요? 설마 고광을 혼자 상대한 것입니까?-
조동민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어떻게 하다 보니 또 다시 추선우가 홀로 그놈들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직접 가서 하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렀다. 추선우가 다치면서 고광을 잡은 것 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는 설장호가 사라졌다는 말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강서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모든 대원들을 예술의전당 뒤로 보내고, 설장호를 찾아.”


“네.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국정원장이 직접 지시를 하달하고 있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대원들은 서둘러 현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국정원장은 사당역에서부터,
예술의전당까지의 모든 CCTV 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정말인가?”
한 편, 태정민은 조동민에게서 받은 연락을 그대로 서지호에게 알려주었다.
서지호는 설장호가 그들에게 당한 것이라 여기며, 안절부절 못하는 듯 하였다.
“일단 추선우를 병원에 잘 데려다놓고, 서둘러서 설 실장님을 찾아라.”
“네.”
서지호가 전화를 끊은 후, 한동안 멍하니 있자, 곧 차현태가 그의 뒤로 다가섰다.
“무슨 일인데 표정이 좋지 않은가?”
“네? 아 네…….아무것도 아닙니다.”
서지호는 그의 출현에 깜짝 놀라 당황하였지만,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받았네. 설 실장이 석강수를 쫒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던데, 혹시…
….조금 전 전화. 그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서지호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차현태는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뭔가?”
서지호는 차현태가 설장호에 관한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정민에게서 온 연락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하여 그 내용까지 다 말하려 하였다.
숨기려고 하였지만,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여긴 그였다.
“또…….추선우씨가 당한 것인가?”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모든 내용을 전해들은 후, 그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고광이라는 놈을 잡았고, 그로인하여 점점 더 마지막 한 놈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서지호는 차현태가 추선우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도록 희소식 하나를 던져주며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서도록 만들고 있었다.

0020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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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우씨에 관한 것은 절대 지현이 알지 못하도록…….”
“대통령님.”
두 사람의 대화 중, 곧 비서실 직원이 노크와 함께 들어와 차현태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차현태는 자신의 말을 혹여나 그가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지금. 영접실에 민광만 비서실장이 와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비서실 직원조차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차현태와 서지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그가 사라진 후, 다시 모습을 보일 때까지 약 20 일이 정도가 흘렀다.
차현태와 서지호는 서둘러 영접실로 향하였고, 곧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민광만을 보았다.
“대통령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비서실장님. 지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갑자기 사라진 후…….”
“그만하게.”
민광만이 차현태를 보며 고개 숙여 안부를 묻자, 곧바로 서지호가 날카로운 눈매로 몇 말을 하려 할 때,
차현태가 서지호를 막아선 후,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다른 것은 묻지 않겠네. 다시 온 이유가 무엇인가?”
비록 서지호의 말을 막아서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어투나 눈매가 부드러워진 것은 아니었다.
“협박이 심했습니다. 당장 대통령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처자식은 물론, 노모까지 모두…….”
“누구에게 그런 협박을 당한 것인가?”
민광만은 두 손을 벌벌 떠는 연기까지 하며 말했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 차현태의
날선 어투는 여전하였다.
“누군지는…….모릅니다. 단지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하여 당장…….”
“그 전화번호를 알려주십시오.”
“…….”
민광만은 차현태의 질문에 답한다고 한 것이지만, 서지호는 그 답을 쉽게 떠넘기지 않았다.
“전화기까지 모두 잃어버려서, 전화번호를 찾을 수가…….”
“지금 당장 이동통신사에 연락하여 그 때 비서실장님께 걸려온 전화번호를 모두 찾아내십시오.”
“알겠습니다.”
“…….”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으로 무마시키려 하였지만, 서지호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민광만이 사라진 그 때에 맞춰 추선우는 물론, 여러 곳에서 점점 더 심한 압박이 들어올 때였고,
고민국에 의해 각 국가기관에 몸담고 있었던 이들이 행동으로 옮길 때였다.
그래서 민광만도 고민국의 밑에서 그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던 서지호였다.
민광만은 차현태만 만나서 다시 그의 옆에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하였다. 하지만 서지호는 그를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인물로 보였다.
“서 실장님은 내가 그리 못마땅하신가 봅니다.”
민광만은 직접 물었다.
“못마땅해 하다? 하하하. 비서실장님. 지금 그런 질문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당신요? 이보시오! 경호실장!”
“지금 뭣들하는건가!”
서지호가 그를 쏘아보며 답하자, 민광만은 그의 말꼬리를 잡아 늘어지려 하였다. 하지만 차현태의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차현태를 향해 보았다.
“제가 비록 그 당시에는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어쩔 수 없긴 하였지만, 제 진심은 대통령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대통령님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것은…….”
“과거는 과거에 한정되었을 때만…….그 효력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지금. 비서실장님의 처지는
경호실장의 말처럼 그리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
민광만의 시선은 물론, 서지호마저 놀란 눈이었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은 인물이기에, 되도록 말 한마디도 조심해하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민광만을
정확하게 노려보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대통령님…….어떻게 그런 말씀을…….”
“지금 이시간부로 비서실장 민광만은 직위해제합니다. 그리고 검찰은 물론, 국정원 조사까지 받도록 할
테니, 그에 대한 준비는 서 실장이 모두 해주게.”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이런 처사는 없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대통령님의 권한 하나로 청와대 직원을…
….”
“살인미수 및, 불법조직에 가담한 죄. 이정도면 내가 충분히 비서실장을 내 칠 수 있는 명분은 되지
않겠습니까?”
민광만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며 차현태의 부당한 처사를 말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제대로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차현태의 그 말은 이미 자신이 이수호의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국정원에 연락해서 민광만 비서실장을 조사토록 해라.”
“알겠습니다.”
차현태의 명령에 서지호는 곧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민광만은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제 발로 찾아들어와 용서를 빌고, 다시 차현태의 곁에서 지내며, 이수호에게 도움을 주려 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을 위협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
째 빼앗겨 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깁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대원들은 설장호가 사라진 예술의 전당 뒤쪽 동산을 모두 수색하였고, 한 대원이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설장호를 발견하여 소리쳤다.
“어서 병원으로 옮긴다!”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의 큰 목소리에 국정원대원이 빠르게 움직였고, 등산을 나왔던 사람들은 때 아닌 상황에 놀란
눈들이었다.

“추선우를 부탁합니다. 전 설 실장님에게 가보겠습니다.”


한 편. 태정민은 추선우를 입원시킨 후, 강서진에게 뒷일을 부탁하면서, 서둘러 예술의전당으로 향하였다.
“당신…….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태정민이 나간 후, 강서진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추선우의 손을 잡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눈물은 흘러내리지만, 그 눈물을 닦기 위하여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흘러내리게 두면서, 꼭 잡은
그의 두 손도 꼭 잡고 있었다.
“지금 어디십니까?”
태정민은 병원 정문을 나서며 조동민에게 연락하였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네? 제가 지금 그 병원에 있는데…….”
조동민의 말에 태정민은 정문을 향해보며 말하다, 말을 흐리며 들어서고 있는 차량을 보았다.
국정원 차량이었으며, 필시 저 안에 설장호가 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팀장님. 추선우씨도 여기에 있습니까?”
차량이 도착한 후, 조동민이 내리자마자 태정민에게 물었지만, 그의 시선은 뒤따라 들어온 차량에서
설장호를 업고, 병원으로 서둘러 들어서는 국정원대원에게 집중되었다.
“석강수 짓입니다.”
“네? 석강수요? 그 놈이 설 실장님을 저리 만들었단 말입니까?”
조동민의 말에 태정민은 놀란 눈을 한 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조동민은 그에게 사당역에서부터의 모든 것을 다 말해주었다.
“석강수가 설 실장님을 잡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다?”
태정민은 조동민의 말을 들은 후, 홀로 생각하였다. 그가 설장호를 잡고 난 뒤에, 어디로 향할지를 미리
가늠해보고 있는 중이었다.
“석강수…….네 놈이 이리 오겠구나.”
그리고 내린 결론이었다. 태정민도 석강수가 누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태팀장님. 일단 석강수를 잡기 위하여 우리 국정원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를...”
“따로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조동민은 설장호를 태정민에게 맡기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끝나기 전, 태정민은 병원 정문을
향해보며 말했고,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그가 다시 물었다.
“석강수의 마지막 목표는 추선우입니다. 그리고 그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이쪽으로 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애써 나서서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태정민은 이미 석강수의 행보를 다 알고 있다는 뜻으로 말했다.
“하지만 석강수는 사당역에서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추선우씨를 목표로 하였다면, 사당역이
아니라, 지난 번 영월이나, 오늘은 안산의 폐공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조동민은 그의 말에 어패가 있어 물었다.
영월에서도 석강수가 아닌 백태가 그를 찾아갔었다. 그리고 안산 폐공장도 그가 아닌, 고광이 찾아갔었다.
만약 태정민의 말대로라면 그 현장에는 그들이 아닌, 석강수가 있어야 맞는 말이었다.
“단지 그가 몰랐을 뿐입니다. 만약 석강수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백태보다 먼저
추선우를 만나기 위하여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태정민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설 실장님이 저리 되었으니, 마땅히 지금 명령을 내릴 권한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국정원 쪽에서는
국정원대로 움직이십시오. 나와 강서진 검사는 따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태정민의 눈매는 매서웠다.
조동민은 그의 눈매를 본 뒤, 다시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설장호가 입원하였지만, 그는 입원 병실도 가지
않은 채, 곧바로 석강수를 잡고자 나온 것이었다.
“태팀장님의 말을 믿어보죠.”
조동민도 그의 말을 믿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서울시내의 모든 CCTV 를 다 확인하고
있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었다.
이런 와중에 무턱대고 나가서 그를 찾아 해매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인력낭비밖에 되지 않았다.

“국정원장님.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입원소식을 들은 후, 신경이 날카롭게 변해있었고, 그 때에 한 대원이
국정원장실을 들어서며 말했다.
“청와대에서? 누가 연락한 것인가?”
“경호실장 서지호라고 합니다.”
“그래? 연결하게.”
국정원장은 쓴 표정을 지우고 전화를 돌려받았다.
“네. 국정원장입니다.”
-서지호입니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명령으로 비서실장인 민광만을 국정원으로 보내기 전, 국정원장에게 미리 언질을 해
두려는 것이었다.
“정말입니까? 사라졌던 민광만이 스스로 돌아온 것입니까?”
-네. 일단은 자신의 가족들이 위협당해서 피했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적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여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민광만을 국정원으로 보내 조사를 받도록 하려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보내십시오. 지금 국정원에는 백태가 있으니, 그와 대면시키면 의외로 쉽게 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정원장은 민광만을 반겼다. 무엇보다 지금 조직의 핵심인물인 백태가 감금되어 있기에, 그를
이용하려하였다.
“지금 즉시 국정원정문에서 대기하고, 청와대에서 오는 차량을 인도하여 그곳에서 내리는 민광만을 데리고
감금실로 온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서지호에게서 들은 말을 대원들에게 그대로 전하였고, 그들은 정문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0020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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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구나. 좀 쉬어야겠다.”
한 편. 다시 자택으로 돌아온 이수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회장님. 목욕물을 받아두었습니다.”
곧 한 여인이 나체로 들어서며 말했고, 이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욕실로 향하였다.
약 10 평 남짓 되는 욕탕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었고, 욕탕 주변으로 나체의
여인 세 명이 서 있었다.
이수호가 욕탕으로 들어서자, 세 명의 여인이 안으로 함께 들어서며, 그의 어깨와 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장석관에게서 연락이 와 있습니다. 연결해 드릴까요?”
이수호를 안내하여 온 나체의 여인이 그에게 물었다.
“연결해라.”
이수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그의 귀 가까이 이동하였다.
“무슨 일인가?”
-회장님. 조금 전 석강수가 설장호를 잠재운 듯 합니다.-
“뭐라? 그 말이 사실인가?”
힘든 음색으로 그의 전화를 받았지만, 곧 장석관의 말에 이수호는 눈을 번쩍 뜨며, 조금은 높은 톤의
음색으로 물었다.
-네. 아직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전당에서 수많은 국정원대원들이 움직였고, 그 중에 한
대원이 설장호를 업고 빠르게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부하가 말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보고 중, 가장 힘이 되는 보고였다. 이수호는 정말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생겨나면서,
자신의 곁에서 마사지를 하고 있는 여인들의 살을 더듬었다.
“다시 한 번 정확하게 확인하라. 그리고 설장호가 병원에 입원 한 것이 맞는다면, 이번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이수호는 자신의 곁에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을 모두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 명씩
쓰다듬으며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설장호. 그 놈이 없어진다면, 이번 게임의 승자는 나다.”
이수호는 눈매를 매섭게 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전화기를 들고 있던 여인이 이수호를 보았다.
“연결해라.”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기분이라면 그 어떤 전화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회장님.-
“누군가?”
처음 듣는 목소리기에 물었다.
-고광 형님과 함께 움직였던 만수라 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연락한 것인가? 그리고 왜 광이가 하지 않고 네가 연락한 것인가?”
이수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 전까지 환해졌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고광형님이. 조금 전 사망하였습니다.-
“!!!”
이수호의 표정은 완전히 변하였다. 미소는 사라지고, 눈매는 매섭게 변했으며, 눈썹은 씰룩거리고 있었다.
고광은 자신의 경호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서열 1 위인 인물이다. 그가 죽었다는 말에 이수호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광형님과 맞섰던 추선우도 곧 사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추선우가…….홀로 광이와 상대한 것인가?”
-네. 하지만 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고광형님을 당해내는 민간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수라는 사내는 이수호의 기분이 다시 풀리기를 바라며, 최대한 추선우의 죽음을 더 강조하려 하였다.
“추선우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면, 이 기회에 확실하게 목을 쳐라.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알겠습니다.-
추선우가 병원으로 간 것만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웃음이 나올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고광을
잃은 것은 아주 큰 충격이었다.
그러기에 기쁨보다는 아픔이 더 그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순간이었다.
“설장호와 추선우. 두 놈이 나란히 병원에 들어섰다? 그럼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지.”
이수호는 욕탕에 앉은 채,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고 있던 여인에게서 전화기를 받은 후,
이장두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이수호에게 모든 것을 전해들은 그는 고광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수호가 자신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기에 눈동자만 심하게 떨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이다. 장석관도 움직일 것이다. 그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서라도, 꼭 그 두 놈의 목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수호는 장석관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추선우…….네 놈이 정말 고광형님을 죽인 것인가?”
장석관은 이수호에게서 들은 말을 홀로 중얼거렸다. 장태에 이어 수만을 잃었고, 또 다시 고광마저
잃었다. 이 모든 것이 강서진과 추선우라는 두 인물에 의해 일어난 것을 절대 믿을 수 없는 장석관이었다.
장석관은 사당동에 있는 모든 부하들을 집결시켰고, 곧 추선우와 설장호가 입원한 병원을 확인하여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다.
‘띠리리리’
장석관과 이장두에게 모두 연락을 취한 후, 다시 휴식을 취하려 할 때, 이수호의 옆에 있던 여인의 손에
들린 전화기가 다시 울었다.
“석강수입니다.”
여인이 전화발신자를 말해주었다.
“어찌 된 일인가?”
발신자가 석강수라는 말에 이수호는 전화기를 뺏다시피 하며 받은 뒤 곧바로 물었다.
-당분간 설장호는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잘했네. 아주 잘했어? 이렇게 시원스러운 보고를 받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이수호는 장석관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지만, 그 당사자인 석강수의 말을 직접 들으니, 온 몸이 먼저
그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추선우…….그 놈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석강수는 곧바로 추선우의 위치를 그에게 물었다. 이수호라면 필시 그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병원에 있다는 소식만 들었네.”
-병원? 누가 그를 병원에 보낸 것입니까?-
석강수의 어투가 약간 변하였다.
“우리 쪽 경호원이 그 놈과 조우했네.”
-추선우가 병원에 갔다면, 적어도 그와 상대한 회장님의 경호원은 사망했겠군요.-
“!!!”
이수호는 놀란 눈이었다. 고광의 부하가 석강수에게 먼저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알려줄리 없었다. 또
한 장석관은 자신이 말해주기 전, 고광의 죽음을 몰랐었다.
그런 와중에 석강수는 정확하게 추선우와 맞붙었던 고광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자네가…….어떻게 알고 있나?”
-그 놈. 상대해 본 사람만 그 놈을 압니다. 백태는 물론, 그 놈과 마주쳤던 모두가 그런 느낌을 받았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그 놈과 조우한 회장님의 부하가 누구입니까?-
석강수는 이수호에게 추선우가 어떤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인지 할 수 있는 말을 해주었다.
“고광이네. 내 경호원 서열 1 위이며, 15 년 동안 그 어떤 놈에게서도 나를 지켜주었던 놈이었지.”
-회장님의 경호원 서열 1 위가 죽었다면, 회장님의 경호원 모두가 그 놈에게 덤벼도 이겨내지 못했을 것
같군요.-
“…….”
이수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수호는 추선우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에 대해 숱하게 들었기에
들은 소문만으로 그를 얼추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선우…….그 놈에게 너무 쉽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그 놈이 죽어
시체가 되어있지 않는 한, 그 놈은 절대 쉬운 놈이 아닙니다.-
석강수는 이수호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병원이라고 하셨으니, 그 놈이 있는 병원을 찾아 그놈의 목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나를 찾지 마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자리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석강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마지막을 그에게 밀리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수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흔쾌히 그의 뜻을 받아줄 것이라 말했다.
“석강수…….네 놈도 그리 무서운 놈이란 말이군.”
석강수가 추선우를 그리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를 잡고자 직접 움직인다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해석하면
자신이 더 강한 놈이라는 말을 그에게 한 것과 같았다.
이수호는 어느 한 곳을 지정하여 보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었고, 네 명의 여인은 이수호의
신체를 주무르며 마사지를 계속하기 시작하였다.
“응급처치는 모두 끝냈습니다. 다행히 위급한 상황은 모두 넘겼고, 두 분 모두 안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병원에서는 설장호와 추선우에 대한 치료내용이 태정민과 강서진, 조동민에게
전달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그 놈들을 사냥해 보겠습니다.”
태정민은 날카로운 표정을 한 채 말했고, 조동민이 그를 보았다.
“지금 즉시 추선우와 설 실장님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을
석강수나, 기타 두 사람을 찾는 이들이 알도록 할 것입니다.”
“!!!”
태정민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말을 그냥 들으면 아주 놀랄 말이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두 사람의 행보를 숨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알린다니요?”
조동민이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우리가 찾아 나서면 오히려 그들에게 잡힙니다. 지금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준비를 다 갖추고 오는
놈을 맞이한다면…….의외로 쉽게 녀석들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태정민은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것이었다.

“강 검사님. 혹시 지난번 추선우가 총상을 입고 북정마을 인근 병원에서 모두를 따돌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태정민은 강서진에게 물었고, 그녀는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기억해. 그런데 그 병원은 왜?”
“그곳에서 그 놈들을 맞이해 볼 생각입니다. 지난 과거와는 달리 온통 우리사람들만이 진을 치고 있는 그
곳에서 이번에 지 놈들이 당해보란 듯 해 보겠습니다.”
태정민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적이 많은 곳에 자신들이
찾아들어가는 상황만이 연출되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들에게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주려는 태정민이었다.

“그럼 뭘 망설여. 서둘러 준비하자.”


강서진도 바로 수긍하였다. 하지만 조동민은 그 병원을 알지 못하기에, 두 사람의 뜻대로 그 병원이
협조해 줄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태정민은 곧바로 병원에 연락하였고,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
“사…….실입니까? 선우가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누군지 모르는 놈들이 마저 죽이려 찾아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연락을 받은 인물은 만석병원의 만석아저씨였다. 그는 추선우와 은주를 잘 알고 있었고,
주인아주머니와도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기에, 그 누구보다 추선우의 일을 걱정해주는 한 사람이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추선우씨를 꼭 살려야 하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태정민이 한 번 더 부탁하였다.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모든 준비는 해놓죠. 무사히만 데리고 오십시오.-
만석은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말에 답을 주었고, 표정마저 비장한 듯 변하였다.

0020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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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 팀장님과 강 검사님은 인원을 준비해 주십시오. 이제부터…….
우리가 그 놈들에게 만찬을 대접해 줄 차례입니다.”
태정민은 만석에게 확답을 들은 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설장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의외로 태정민이 많은 것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의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조동민은 국정원으로 연락하였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연락하였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준비하려면, 더


많은 인원과 함께 확실한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국정원장은 조동민의 말을 듣고, 흔쾌히 대원들을 해당병원으로 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검찰총장 역시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경찰청도 경찰청장이 없는 지금은 오로지
설장호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이었기에, 지원요청을 하기로 하였다.

“박형사님. 어디십니까?”
태정민은 박태식에게 연락하였다.
-나? 지금 사당역이지. 이곳에서 석강수를 놓쳤고, 그 뭐냐 그…….하여튼 한 놈이 더 있다고해서
찾아다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정원 애들도 다 사라졌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갑자기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전화기를 강서진에게 건네주었다.
“왜?”
강서진은 태정민의 행동을 보며 이유를 물었다.
“그냥. 검사님이 좀 말해주십시오.”
강서진은 그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아무런 의심 없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인데, 태정민이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고 그래? 그리고 넌 어딘데?”
-또 말해요? 저 사당역이고, 석강수를 놓쳤고, 한 놈을 더 잡으려고 하는데, 모두 떠나가고 우리 경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강서진은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에야 태정민이 왜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 와중에도, 박태식에게는 그 어떤 누가 연락하여 현 상황을 알려준


인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강서진은 자신이 총대를 메고 모두 말해주었다.

-하하…….하하…….젠장. 이런 날씨에 우리 경찰병력들은 쉬지도 못하고 그 놈을 잡겠다고 돌아다녔는데,


이미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죠?-
“뭐.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지.”
-태정민에게 전해주세요. 술 한 번 거하게 사라고 말이에요.-
“그 술은 내가 살 테니까. 일단 경찰병력을 데리고 북정마을로 향해.”
-북정마을요?-
박태식은 뜬금없이 북정마을로 향하라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물었고, 강서진은 그에게 지금부터
시행될 계획을 모두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죠.-
설명을 들은 후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던 박태식이었다. 그는 사당역에 있는 모든 경찰병력을 데리고
곧바로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경찰병력마저 물러납니다. 무슨 일일까요?“


박태식이 물러나자, 사당동 인근에서 동태를 살피고 있던 장석관의 부하가 곧바로 장석관에게 연락하여 현
상황을 말해주었다.

“더 살펴라. 난 지금 석강수를 만나 설장호가 어디로 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연락을 받은 장석관은 아무도 없는 사당동에 자신의 부하를 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석강수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석강수는 그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아?”


장석관은 격한 말을 내 뱉으며 소리쳤고, 곧 전화기를 몇 번이나 땅으로 던질 자세를 취하다말고, 다시
전화를 들어 석강수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석강수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이미 30 통이 넘는 부재중전화를 남기고 있는 번호를 보면서도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었다.

“어떤 새끼가 이리 집요해.“


석강수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라면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석강수와 장석관. 두 사람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직접 서로 연락한 적이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수호의 자택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두 사람이 따로 만나는 일도 없었으니, 장석관과는 달리
석강수는 굳이 모르는 전화를 받아 괜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생각이 짧았군. 그곳에서 대기하다, 설장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면, 그 병원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급한 마음에 먼저 나서느라 일이 꼬여버렸군.”
석강수는 예술의전당 인근의 병원들을 다 돌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처럼 그곳에서 한가롭게 기다리고
있었다면, 설장호를 데리고 갈 병원이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입원한 사실이 전해지면, 그곳으로 추선우가 올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놈의 급한 성격 탓에 기다리지 않고
움직인 것이 오히려 일을 더 돌아가게 만들어버린 상황이었다.

“저기 들어옵니다.”
한 편. 서지호의 연락을 받고 민광만을 맞이할 준비를 다 마친 국정원에서는 곧 청와대 차량이 들어서자,
그곳을 향해 움직였고, 차에서 내리는 민광만을 데리고 감금실로 바로 향하였다.

“국정원장님. 청와대에서 압송된 민광만을 조금 전, 백태가 감금되어 있는 옆 감금실로 옮겨두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보고를 받은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며 답했고, 곧바로 민광만을 만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비록 민광만이 조직에 대해 백태보다 아는 것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백태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마음과 함께, 그가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확실한 답을 얻고자 백태와 만나게 하려는
국정원장이었다.

국정원장은 민광만이 아닌, 백태를 먼저 찾았다.


“아직은 자네의 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네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그 한 놈이 꽤 바쁜 모양이군.”
국정원장은 백태를 보며 말한 뒤, 그의 앞으로 앉았다. 이미 백태는 고광과 장석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국정원장에게 주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그 당시 사당동과 안산에 있는 고광과 장석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었다.
하지만 끝내 조직의 최고 수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인물에 대해 연관성을
찾고자, 민광만을 그의 옆으로 붙이려는 것도 있었다.

“고광과, 장석관. 잡았습니까?”


백태는 국정원장을 보며 물었다.
“고광은 사망했네. 하지만 장석관은 아직 잡지 못했지.”
“!!!”
백태는 고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국정원장을 보았다.
“고광이 죽었다는 말입니까? 누가 죽였습니까? 아니…….몇 명이서 그 놈을 죽였습니까?”
백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추선우가 그를 잡았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살지는 못했어.”
백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딱 멈추었다. 고광을 죽인 인물이 누군지에 대해 듣고 난 뒤의 행동이었다.

“역시. 그 놈은 다르군요. 천하의 고광을 잡다니…….고광까지 잡았다면 이제 마지막 그 분에게


다가서기까지 단 한 명이 더 남았군요.”
“단 한 명? 그 놈이 누구인가?”
국정원장은 또 다시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 여겼다. 그저 민광만과 만나게 하기 전,
자신이 준 정보에 대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말해주려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백태에게서 또 다른 정보를 얻고자 그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그 놈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고광이 가장 위에 있는 놈이라면, 그 분에게 다가서는 마지막


관문인 그 사람은…….가장 위에 있는 고광을 아주 쉽게 다루는 인물이니까요.”
이번엔 국정원장의 눈동자가 떨렸다. 고광에 대한 정보는 국정원의 모든 정보를 다 뒤져서 찾아냈다.
그리고 그가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였다.
마지막 관문이라는 놈이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말이었으니, 눈동자가 떨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었다.

“잠시…….기다리게. 자네와 만나게 해 줄 사람이 있네.”


그에게서 마지막관문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하였지만, 말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민광만과 그를 만나게 해주려 하였다.

국정원장의 신호를 받은 대원이 옆 감금실에 있는 민광만을 데리고 백태의 감금실로 들어섰다.


“민광만…….”
백태는 그를 보자마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고, 민광만 역시 그를 보자마자 놀란 눈을
하였다.

“두 사람이 이미 안면이 있다는 것은 민광만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된


순간이겠지.”
“아…….아닙니다! 저 사람이 나를 알지는 몰라도, 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국정원장의 말에 민광만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다. 하지만 이미 백태의 눈길은 그를 알고 있었고,
백태의 입도 그를 알고 있었다.

“민광만. 네 놈이 잡혔다는 것은 각 부처에 숨어있던 우리 사람들의 신원이 밝혀졌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 잡힌 것인가?”
백태는 그가 스스로 청와대를 찾아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민광만과 같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도 꽤 잘 숨겨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난 당신을 모릅니다. 대체…….”
“시끄러! 고민국이 거느리는 각 부처 조직원들 중, 상위레벨에 있는 너희 그룹을 모르지 않는다! 심지어
회장님마저도 너희들에게 부탁까지 할 정도니 말이야!”
“회장?”
백태는 민광만의 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곧 백태의 입에서 회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국정원장의 눈길이 백태에게로 향하였다.
“이미 백태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넌 이제부터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닌, 우리가 잡아
족쳐야 할 놈들과 한패거리로 간주하여 그렇게 대해주겠다.”
국정원장은 백태의 입에서 나온 말만으로 이미 민광만이 그 조직과 한패라는 것을 단정하였고, 그에 맞는
수준으로 대해준다는 말과 함께, 민광만에게 수갑을 바로 채웠다.
“무슨 짓입니까! 왜 나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입니까!”
민광만이 저항하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백태는 실실거리고만 있었다.

0020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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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었다. 이곳에 오면 그 누구도 목숨을 구제받지 못해. 과거 최기수회장도 여기에서 죽었다. 즉…
….더 이상 너도 그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과 같지.”
백태는 저항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민광만의 저항이 멈추었고, 그를 노려보았다.
“난 운이 좋게도 아직 살아있지만, 아마…….지금 이 순간부터 조직 내에서 어떤 누군가는 너의 목을
치기 위하여 국정원으로 들어서겠지. 아니면…….이미 들어와 있었을 수도 있고 말이야.”
“!!!”
민광만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국정원장을 보았고, 또 다시 시선을 돌려 자신에게 수갑을
채우려던 두 사람을 보았다.
“편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더군. 하지만 그 분에 대한 예우는 아끼지 마라. 그 분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마라. 입 밖으로 그분에 대해서 단 한마디라도 나오는 날에는…….내가 직접 네 입을 다
찢어버릴 것이다.”
백태는 이미 국정원에 많은 정보를 주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절대 이수호에 관한 것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민광만에게 한 가지 팁을 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위협적인 말로 협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광만은 백태의 매서운 눈을 보면서 다시 국정원장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백태를 향해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좀 나누게, 난 잠시 통화좀 하고 오겠네.”
국정원장은 맹수우리에 민광만을 던져놓고 가는 것과 같았다.

“민광만은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던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백태와 붙여두었으니, 뭔가


결론이 나올 것 같은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은 곧바로 차현태에게 연락하였고, 지금의 상황을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쪼록 이번엔 모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차현태는 국정원장에게 말했고, 국정원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답을 한 듯, 전화를 끊은 후,
감금실 안을 보았다.

“저 두 놈의 입에서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할 때, 그 때 나를 불러라.”


“네. 원장님.”
국정원장은 그곳에서 계속 대기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CCTV 를 관찰하는 사무실로 이동한 뒤, 사당역
일대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뭔가 찾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의 행동을 보고 대원이 물었다.
“석강수가 사당역에 있었고, 그 후로 예술의 전당으로 이동했다. 그럼 그곳에 있었던 장석관은 어디로
갔을까? 그 놈의 행방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그 놈을 찾아야한다.”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장석관을 찾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고광은 이미 죽었으니, 또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대어는 장석관 뿐이라 여겼다.
“대체 여기서 뭐하는 것입니까? 당신 같은 큰 사람이 이렇게 국정원에 잡혀있다는 것은…….”
“시끄러. 그리고 입 조심해. 어차피 이판사판이지만, 최소의 조직에 대한 예의는 갖추고 있어야한다. 네
놈이 그동안 먹고자고 하는 것을 도와준 사람에 대한 은혜는 잊지 말라는 말이다.”
백태는 민광만을 노려보며 쓴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잠시 후, 국정원장이 다시 감금실로 들어섰고, 두 사람을 한 번씩 고루 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서로 밀린 대화는 잘 하였는가?”
국정원장은 웃는 얼굴을 한 채, 두 사람에게 아주 정다운 어투로 물었다.
“이렇게 우리를 잡아서 살려두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정보를 얻고자 함입니까? 아니면 인격?”
국정원장을 보며 민광만이 물었다.
“너희들에게 인격은 없다. 개새끼나 소 새끼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할 필요는 없지. 너희들은…….
개새끼고 소 새끼보다 못해. 그러니 인격적 대우를 받을 생각은 하지마라.”
“…….”
백태와 민광만은 물론, 함께 있던 국정원 대원 두 명마저도 그의 말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거칠게 말한 적이 없었던 국정원장이었다.

“할 말 있다면 지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선처는 없다.”


국정원장은 다시 선처를 꺼내들었다. 이미 백태가 이 낚시에 제대로 낚였고, 고광과 장석관이라는 정보를
주었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뉴페이스에게도 미끼를 던지고 있는 국정원장이었다.

“백태에게 듣자하니, 이제 그 마지막 한 놈에게 다가서기까지 하나의 관문이 남았다고 하던데, 그 놈이


누군가? 그 놈을 알려준다면 선처의 폭을 넓히겠다.”
국정원장은 백태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백태는 그의 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선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미끼에 대한 한정된 시스템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백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오로지 백태만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민광만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난 왜 보지 않는 것입니까? 저 사람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던 사람이라 하여,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국정원장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단순하게도 너무 빨리 걸려드는군.’
민광만이 자신을 보며 화난 어투로 말하자, 국정원장은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민광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백태가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당신도 이미 이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뭔가 혜택을 받은 모양인데, 그 혜택. 나도 좀 받아봅시다.”
이미 민광만은 국정원장이 던진 미끼를 아주 잘도 꽉 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태의 눈이 신경에 거슬린다면,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국정원장은 민광만이 최대한 편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다 맞춰주려 하였다.
“아닙니다. 어차피 백태가 뭔가 풀어놓은 것 같은데, 내가 하나 더 얹어놓는다고 큰 일 날 것은
없습니다.”
민광만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하였다. 말실수라 할 수도 있지만, 극구 부인하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 나와 버린 것도 모르고 있는 그였다.
“민광만. 조금 전 네가 한 모든 말은 녹음이 되어있다. 그리고 넌 지금 백태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다.
이의 있는가?”
그냥 덮고 넘어간 뒤, 민광만이 내세우는 모든 정보를 다 들은 후, 그에게 지금과 같은 마을 해도 될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그에게 미리 말해주었고, 민광만은 당황한 듯, 백태를 본 뒤, 다시 국정원장을 보며
말없이 그대로 앉아서 눈만 이리저리 돌려서 백태와 국정원장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갑시다. 어차피 내가 부인한다고 속아 넘어갈 위인들도 아니고, 나도 차후에 내가 살 길은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군요.”
민광만은 자신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결국 말하였고, 자신의 죄도 인정하는 말을 해버렸다.
하지만 속이 더 시원해진 그는 본격적으로 국정원에 조직에 대한 정보를 넘겨보고자, 자신의 앞에 있는
백태를 노려보았다.
“지금 국정원장님 궁금해 하는 마지막 관문. 아마도 그 관문은 이장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
민광만은 정확하게 백태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백태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란 눈이었고, 곧 두
주먹을 아주 강하게 쥐고 민광만을 노려보았다.
“이장두? 그 놈은 누구인가?”
국정원장은 백태의 매서운 눈빛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민광만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백태가 끝까지 비밀로 하고 있는 마지막 그 한 사람. 그 사람의 외동아들이 바로 이장두입니다.”
“!!!”
민광만은 아주 큰 정보를 너무나 손쉽게 던져준 꼴이었다. 그의 이 한마디에 백태의 눈동자는 쉬지 않고
흔들거렸고, 국정원장은 그 즉시 감금실 안에 있는 대원에게 이장두에 관한 모든 것을 확인토록 명령
내렸다.
“이장두가 마지막 남은 관문이고, 그가 너희들이 몸담은 조직의 수장이라는 놈의 아들이라면…….충분히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인물로 자격이 되는 놈이군.”
국정원장은 민광만이 준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려 더 많은 추리를 해보고 있었다.
“민광만. 너도 마지막 수장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을 것인가?”
국정원장의 물음에 백태의 시선이 민광만에게 돌아갔다.
“뭐. 생각 같아서는 제가 직접 그 영감탱이에 대해 모두 말하고 싶지만, 백태가 말했듯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밥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니, 그 정보만큼은 나도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민광만의 말을 들은 후에야 백태의 매섭던 눈이 조금은 풀리면서 다시 국정원장에게 돌아섰다.
“아직 시간은 있다. 하지만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장담하지 못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오직 하나. 마지막 그 놈에 대해 알려주는 것뿐이다.”
국정원장은 두 사람을 보며 말한 뒤, 다시 감금실을 나섰다.
“약 10 분 후, 민광만을 다시 옆 감금실로 옮겨두고, 절대 두 사람이 내허락 없이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민광만에게서 들은 정보를 서둘러 분석하여 조동민과 태정민에게 알려주려 하였다.
현재 설장호가 입원중이니, 자신이 얻어낸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사람은 그 두 사람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같은 시각. 태정민은 먼저 만석병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난 뒤, 그 내용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었다.
“그럼 지금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를 데리고 출발할게.”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의 연락을 받은 강서진은 조동민에게 내용을 전달하였고, 태정민의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정민은 만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이것이 다 은주와 선우를 위한 것이라고 하니, 내가 이 병원 문을 닫는 일이
있더라도 돋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석은 기꺼이 태정민의 뜻에 따라 자신의 병원을 모두 비웠다. 그 많던 환자들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두었고, 그들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마쳐둔 상황이었다.
조동민은 지금 계획하고 있는 모든 것을 국정원장에게 알려주었고, 태정민은 청와대에 알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검찰총장에게 알렸고, 각 부처 수장들은 모든 지원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총장님. 제가 부탁한 것. 지금 실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서진은 추선우를 데리고 만석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검찰총장에게 연락하여 자신이 말한 부분을 실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검찰총장은 강서진의 연락을 받은 후, 곧바로 설장호와 추선우가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북정마을의 한
병원에 입원중인 것을 긴급속보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는 지금까지 쉬쉬하며 숨겨왔던 모든 것을 이제 다 밝히고, 정면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과 같았다.
0020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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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TV 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님. 약 5 분 후 긴급뉴스속보가 뜰 것입니다.”
강서진의 부탁에 의한 내용은 곧바로 청와대와 국정원에 알려졌고, 두 사람은 TV 를 켠 후, 긴급으로
전해질 방송을 시청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태정민이 말한 그 내용인가?”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물었다.
“네. 모든 것을 공개하고, 그들과 정면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입니다.”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의 표정은 불안한 듯, 눈동자가 잠시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일동안 최고의 권력에서 버티고 있던 그들이 공개적으로 돌아선 이번 사건에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그였다.
국정원장도 차현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정면 승부를 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는 국정원장이었다.
“원장님. 이장두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TV 를 시청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한 대원이 민광만이 알려준 이장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들어왔다.
국정원장은 서류를 받은 후, 하나하나 넘겨가고 있었다.
“괴물이군. 그런데 아쉽게도 가족관계가 나와 있지 않군.”
이장두에 대한 이력은 모두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관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민광만이 그가
마지막 수장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가족관계만 알 수 있다면 마지막 놈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었다.
국정원장은 서류를 검토한 후, 그대로 덮어서 자신의 옆에 두었고, 검찰총장이 발표한 중요뉴스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번 긴급뉴스는 특별히 각 부처에 모두 전달되었고, 웬만한 관공서에는 모두 이 뉴스를
시청하도록 특별한 지시까지 내려둔 상황이었다.

“회장님, 검찰총장이 직접 발표하는 긴급뉴스입니다. 시청하시겠습니까?”


한 편, 이수호는 욕탕에서 나온 후, 두 여인으로부터 집중적으로 마사지를 받고 있던 그의 옆으로 한
여인이 다가서며 물었다.
“TV 를 켜라.”
그녀의 말에 이수호는 자신의 몸 위에서 마사지를 하고 있던 여인을 옆으로 밀치며 말했고, 곧바로 TV 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강남일대의 병원을 찾아다니던 장석관과 강남대로의 한 병원에 나오던 석강수는 각기 도로와
병원에서 방송되는 검찰총장의 긴급뉴스를 시청하기 위하여 멈춰 섰다.

-…….하여, 현재 국정원 대북전담 실장 설장호실장과 민간인 추선우씨는 북정마을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이번사건으로 인하여 민간인 피해도 있었으며, 국정원과 청와대 그리고 검찰과 경찰의
피해도 상당하였습니다.-

검찰총장은 가장먼저 두 사람이 어느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지를 직접 방송에서 언급하였다. 그러자


장석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석강수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뉴스를 마저 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에 이처럼 극악무도한 조직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우리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과 청와대는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조직을 일망타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의 뉴스속보가 끝났다. 이수호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고, 장석관의 표정은 반대로
밝았다.
석강수의 표정도 이수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또 한 국정원 안에서 TV 를 시청한 백태와 민광만의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상황을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알린다? 무슨 꿍꿍이인가?”


TV 를 본 석강수가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지금과 같은 상황전개가 설장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더 이상 수사망을 좁히지 못하고, 이번 사건을 주도하던 설장호마저 없으니, 마지막 발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신중하게 여러 방향을 두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방송을 내 보낸 것인가?”
석강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이수호의 외동아들로 밝혀진 이장두였다.
그도 뜬금없이 공개수사로 전향하여 모든 것을 밝히려는 검찰의 의도가 궁금하였고, 무엇보다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한 병원을 굳이 검찰총장이 직접 언급하며 공개할 필요가 있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이장두가 TV 를 뚫어버릴 정도로 매서운 눈매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회장님.”
이수호였다.
-어찌 생각하는가?-
“함정이라 할 수 있지만, 누구를 잡기 위한 함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장두는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작전을 구사하여 잡으려 하는 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그래. 네 말처럼 함정일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려는 의도일수도 있다.-
이수호도 석강수를 목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쪼록 신중하게 대처해라. 저들이 지금 벌이는 쇼가 함정인지 아닌지를 떠나,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움직여라.-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걱정 마시고, 편히 쉬고 계십시오. 곧…….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겠습니다.”
이장두는 이수호와 통화를 끝낸 후, 매서운 눈빛을 풀지 않은 채, 이마저 바드득 갈고 있었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향한다.”
반면에 장석관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식한 경호원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느라 골머리 앓을 시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부딪히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즉시 부하들을 북정마을로 보내며 자신도 움직였다.

“설 실장과 추선우씨를 이용하여 석강수를 잡는다는 계획이 제대로 될 것 같은가?”


같은 시각. 차현태는 여전히 불안하였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만에 하나
그들로 하여금 더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그였다.
“잘 될 것입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마쳤으며, 민광만이 국정원장에게 새로운 정보를 더 건넨 것이
있다면, 국정원장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지금의 시간에도 조직의 수장을 찾고자 나서고 있을 것입니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말에 답하면서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민광만이 정보를 주었을까?”
“물론입니다. 그곳에 감금되어 있는 백태를 의식해서라도 아마 많은 정보를 주었을 것입니다.”
서지호는 그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국정원장이 민광만에게서 무엇을 얻어 냈을 것인지를 다 알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지현이의 고통이 하루빨리 끝나고, 평범한 소녀로써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네.”
차현태는 이제 곧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녀에게 가장먼저 자유로운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형님. 준비되었습니다.”
한 편.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다섯 명의 사내가 이장두의 앞에 서서 인사하였고, 이장두는 자신의 시야에
국정원을 두고 있었다.
검찰총장의 긴급 발표가 있었고, 설장호와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공개된 지금이지만, 그는 북정마을이
아닌, 국정원 근처에 있었다.
“조직이 여기서 무너지더라도 배신자를 살려두고 무너지면 다시 재건할 수 없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백태와 민광만의 목을 쳐라.”
“알겠습니다.”
이장두는 다섯 명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자신은 오히려 몸을 돌려 국정원과 멀어지면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선배님. 접니다. 이렇게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잘 길을 열어주십시오. 나머지는
우리 애들이 다 처리할 것입니다.”
이장두는 국정원과 멀어지면서 누군가에게 통화하였고,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끊었다.
“설장호…….추선우. 너희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훤히 보인다만, 그 계획에…….내가 속아주겠다.”
이장두는 북정마을의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함정 속으로 더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해서 나를 맞이하겠다? 정 그런 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지.”


같은 시각. 예술의전당에 한강 쪽으로 쭉 걸어 검찰청 앞까지 다가온 석강수도 검찰총장의 말이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그 함정에 스스로 들어서겠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한 편. 북정마을에는 이미 국정원 사람들과, 검찰, 경찰청 사람들까지 약 백여 명이 주변에 흩어져서
마을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곧 태정민이 북정마을 입구 쪽으로 나오며, 입구 쪽의 인원배치를 새롭게 하고 있는 조동민에게 물었다.
“자유복을 입은 국정원소속 대원 20 명이 북정마을 입구 쪽을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 쪽 30 명은
만석병원 인근을 돌 것이며, 경찰쪽 50 명 중, 40 명은 북정마을 꼭대기인 추선우씨의 집 일대를 경계할
것입니다. 그리고 30 명은 병원에 들어서 있을 것입니다.
조동민은 현재 진행중인 모든 내용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태정민은 더 이상 뒤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오늘의 이 자리에서 숨겨진 인물을 찾아내고, 그 놈을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었다.

“국정원장님. 검찰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검찰청?”
같은 시각. 백태와 민광만을 감금하고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검토하고 있던 국정원장에게 한 대원이
들어와 말했다.
“검찰청이라면 이미 나에게 연락을 주고 왔을 텐데, 어디 소속이라 하던가?”
“그건 국정원장님을 만나 뵙고 말씀드린다고 합니다. 주변의 눈과 귀를 의심해야 할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도 함께 전해왔습니다.”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CCTV 에 찍힌 다섯 명의 사내를 보았다. 그들은 조금 전, 이장두와 함께
있던 다섯 명의 사내였다.
그리고 자신과 검찰청이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검찰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거칠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다려보게.”
국정원장은 그 길로 검찰총장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받지 않는군. 일단 무슨 일로 왔는지를 확인하고, 백태와 민광만을 만난다고 하면, 그냥 돌려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혹시나 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애초부터 모두 막아 세우려는 생각이었다.
“검찰청에서 받은 연락이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국정원대원은 국정원장의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하였지만, 그들은 쉽게 몸을 돌리지 않았다.
“말이 들이지 않소? 검찰청에서 왔다면 검찰청장님의 연락이 우리 국정원장님께 왔을 것이오. 하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대원은 다시 한 번 말했고, 곧 몸을 돌려 가려던 순간, 중앙 복도에서 국가정보원 2 차장인 지형민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원은 그를 보며 고개 숙여 인사하였고, 그는 손을 살짝 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받아넘겼다.
2 차장 지형민은 국가정보원의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고위층 인물로, 원장과 기획실장 다음으로 권력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외형은 마치 특전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탄탄한 몸을 지니고 있었으며, 키가 190 센티는 될 법한
아주 큰 키였다.

0020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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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
“네? 아 네. 검찰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원장님께서 보고받은 바가 없다 하시어 돌려보내려던
참입니다.”
대원은 그의 물음에 답하였고, 곧 지형민이 다시 시선을 돌려 이장두의 부하 다섯 명을 보았다.
“그래도 검찰청에서 왔다고 하니 이유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이쪽은 내가 처리하고 갈 테니, 자네는
원장님께 가서 보고를 마저 하게.”
“알겠습니다.”
대원은 지형민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의심 없이 그에게 다시 인사하였고, 그대로 국정원장실로
향하였다.
지형민은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문 밖에서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서 있는 다섯 명을 보았다.
“이장두가 미리 연락주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이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장두가 부하들을 국정원으로 들여보내고 난 뒤, 돌아서면서 통화했던 인물이 바로 2 차장인
지형민이었다.
국정원 내에서는 그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니, 그에 연락하면 쉽게 국정원 내부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그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원장님. 검찰청에서 왔다던 다섯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대원은 지형민의 말을 그대로 믿고, 국정원장에게 보고하였다. 국정원장은 그의 보고를 들은 후, 조금 전
그들이 서 있었던 곳의 CCTV 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곳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대원들에게 일러둬라. 그 누구도 백태와 민광만의 근처에는 오지 못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자신이 직접 두 사람을 확인하고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 더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바로 백태와 민광만이 준 정보를 토대로 마지막 한 놈을 찾아내기 위하여 매서운 눈을 하고 있는 그였다.
“이쪽으로 가면 감금실이 있다. 그곳에 백태와 민광만이 있으니 조용히 처리하고, 나갈 때는 너희들이
알아서 잘 나가라.”
“알겠습니다.”

지형민은 그들에게 백태와 민광만의 위치를 말해주었고, 곧 주변을 이리저리 살핀 후, 다섯 명의 사내 중,


한 사내에게 작은 가방을 건네주었다.
그 가방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다섯 자루 있었고, 여분의 탄알도 함께 있었다.
“국정원장실까지는 가지 못할 것이다. 그 곳까지는 너무 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어. 그러니 백태와
민광만을 죽이고 돌아서 나가라.”
“그건…….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들어온 곳이니, 제대로 한 번 휘젓고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지형민의 말에 한 사내가 그를 보며 입 꼬리를 올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지형민의 표정이 굳어진
채, 그를 노려보았다.
“이장두가 코흘리개 때부터 봐 왔던 나다. 감히 너희 같은 양아치들이 나를…….”
‘픽!’
“말이 너무 많습니다. 우린 이장두 형님께 딱 하나의 명령만 받았습니다. 국정원 안에 있는 놈은 단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죽이라는 명령 말입니다.”
지형민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인상을 찌푸리며 지적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자신이 직접 건네준 총에
자신이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총알의 숫자만큼 이 곳의 인간을 죽인다. 특히…….백태와 민광만, 그리고 국정원장을 우선으로 한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지형민의 도움으로 국정원에 들어올 수 있었고, 그의 도움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듯,
그마저도 죽인 뒤, 타깃을 제거하기 위하여 바로 움직였다.
“국정원장님. CCTV 영상을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이 정보를 분석하고 있을 때, 한 대원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며 그에게 말했고, 원장은 그의
표정을 본 뒤, 자신의 PC 로 CCTV 화면을 전송받아 보았다.
“…….”
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검찰청에서 왔다던 이들이며, 그들을 돌려보냈다고
하였지만, 버젓이 국정원 안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들고, 국정원 대원들을 죽여 가며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뭣들해! 저 새끼들이 국정원을 사격장으로 사용하잖아!”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고, 곧 대원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겠다…….이거군.”
국정원장은 국정원으로 들어선 그들을 보며 쓴 표정을 지은 채, 홀로 중얼거렸다.

“저곳인가?”
같은 시각. 장석관은 북정마을에 도착하여 만성병원을 보며 말했다.
그는 검찰총장의 뉴스속보를 전해들은 후, 아무런 의심 없이 만석병원으로 왔으며, 지금도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경찰들과 국정원 관계자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오로지 만석병원만 보고 이동 중이었다.
“설장호와 추선우. 너희 두 사람에 의해 지금의 이 일이 이토록 꼬이게 된 것이다. 고작 너희 두 사람에
의해…….”
장석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 뒤, 만석병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 날 만석병원은 노인 전용병원처럼 젊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다.
장석관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곳이 노인병원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저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장석관이군.”
그가 병원으로 들어선 후, 병원입구와 복도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원장실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한
조동민이 말했다.
“저 놈을 잡지 못하고 사당동에서 철수했지.”
말을 이어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조동민은 장석관보다 석강수가 먼저 와 주기를 기다렸다.
“병원 외부 상황은 어떤가?”
-조금 전 들어간 장석관 외에 다른 이들은 없습니다. 아마도 혼자 온 것 같습니다.-
국정원 대원이 조동민의 물음에 답했다.
“혼자 공을 세워 수장에게 귀여움을 받아 볼 심상이었나 보군.”
조동민은 CCTV 를 통해 장석관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북정마을 입구와 그 인근. 그리고 병원 주변을 잘 감시한다. 혹시라도 석강수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
즉시 알린다.”
-알겠습니다.-
석강수가 목표였지만, 그렇다고 제 발로 찾아온 놈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움직이죠.”
태정민이 말했고, 곧 조동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복도로 나섰다.
“말씀 좀 물읍시다.”
자신이 함정에 들어선 것을 알지 못한 채, 장석관은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혹시 추선우와 설장호씨의 병실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장석관은 대범하게도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병실을 물었고, 그의 질문을 받은 간호사는 PC 로
무언가를 찾는 듯하였다.
“203 호실에 입원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올라가봐도 되나요?”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경찰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 같던데요.”
“아…….그래요. 알겠습니다. 뭐 저도 경찰이니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관은 간호사의 말을 들은 후, 눈웃음을 보내주었고, 곧 그녀가 말한 203 호를 향해 2 층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장석관 올라갑니다.”
그가 2 층으로 오르자, 안내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는 곧바로 무전으로 그의 이동을 알렸고, 203 호에 있던
경찰들은 그 즉시 졸고 있는 듯 한 연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대한민국 경찰은 저래서 안 된다니까. 검찰총장이 직접 언급하며 보호를 요청했을 텐데, 저러고
잠이나 자고 있으니 말이야.”
장석관은 졸고 있는 두 경찰을 보며 혀를 찬 뒤, 곧 천천히 걸어 203 호로 다가섰다.
203 호는 2 층 복도 끝이었으며,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은 쇠창살처럼 된 방범창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장석관이 203 호 문 앞에 있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냈습니다. 고광을 태팀장쪽에서 잡았으니, 이놈은 우리가 잡죠.-
장석관이 203 호 앞에 서 있을 때, 원장실에서는 태정민이 CCTV 를 보며 말했고, 곧 203 호 안에 있는
조동민이 답했다.
203 호에는 조동민과 함께 세 명의 국정원 대원들이 잠복 중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피곤하실 텐데 조금 쉬십시오.”
장석관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경찰에게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놀란 눈을 하며
깬 두 경찰은 그를 보며 멀뚱히 서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경찰청에서 나왔는데, 두 사람이 잘 있는지 확인 차 왔습니다.”
장석관은 경찰청을 말하면서 두 경찰을 안심시키는 말을 하였고, 두 경찰은 그를 보며 경례하였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죠?”
“네. 물론입니다.”
장석관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에 모두가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것에 절로 미소가 생겨나고 있는
그였다.
“먹이가 들어갑니다. 잘 낚아채십시오.”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태정민이 홀로 중얼거렸고, 태정민의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장석관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사당동에서 그리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놈이 제 발로 잘 찾아왔군.”
그를 맞이한 사람은 조동민이었다. 그는 병실 안에서 창가를 등지고 서서, 문을 열고 들어선 장석관을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고, 곧 장석관의 옆으로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이 다가섰다.
“…….”
장석관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선, 두 명의 국정원 대원들을 번갈아 보며 쓴 표정을 지은 뒤, 다시
조동민을 보며 이를 갈았다.
“좋게 좋게 가자. 이미 고광이 죽었고, 백태와 민광만이 국정원에 수감되었다. 즉 너에게 줄 기회란 두
가지 밖에 없어. 죽던지…….아니면 국정원으로 가던지. 선택은 네가 해라.”
조동민은 후하게 인심 쓰는 듯 그에게 말했고, 장석관은 두 주먹만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수갑 채워!”
조동민이 그를 노려보며 말한 뒤, 곧바로 큰 목소리로 다시 외쳤고,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은 그의 팔을
잡아 꺾으며 벽으로 밀어붙인 뒤, 거칠게 다루었다.
“주변 상황 어떤가?”
-아직 조용합니다. 다른 인물은 없습니다.-
조동민은 장석관을 잡은 후, 만석병원 외부에 진을 치고 있는 대원에게 물었다.
그는 만에 하나 장석관을 잡을 때, 석강수가 들어오면 피라미를 잡으려다 대어를 놓치는 꼴이 될 수
있기에 긴장하고 있었었다.
하지만 장석관은 피라미가 아니다. 이수호의 경호원 중, 서열 2 위에 속한 아주 큰 놈이지만, 지금
조동민에게는 그가 피라미일 수밖에 없었다.
설장호를 그리 만든 석강수가 그에게는 대어이기 때문이었다.
“장석관을 국정원으로 압송할 대원은 서둘러 이놈을 국정원으로 데리고 간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이수호의 경호원이며, 그 권력이 상당했던 장석관은 참으로 어이없게 너무나 쉽게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이수호의 곁을 지키는 네 명의 경호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호원이 된 행운아이기도
하였다.

한 편. 국정원은 사상 최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국정원 안에서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감금실 앞을 지키던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자, 민광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서서 소리쳤지만,
그의 물음에 답해주는 대원은 없었다.
0020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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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걸렸지만, 이것이 정해진 운명이었지.”
그에 반해 백태는 여유롭게 감금실에 앉아서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왔어야 할 그들이 이제야
온 것이라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익힌 놈들이군.”
다섯 명이 들어선 것이지만, 국정원 안에 있던 수많은 국정원 대원들은 그들이 쏜 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CCTV 로 보고 있던 원장이 홀로 중얼거렸다.
“저들의 목표는 백태와 민광만이다. 그 문만 지켜라. 그러면 저들이 스스로 다가선다.”
“알겠습니다.”
원장은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복도에서 그들을 만나 괜한 희생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전하였다.
대원들은 일제히 모든 복도를 비웠고, 백태와 민광만이 있는 감금실로 이동하였다.
“뭐야? 대체 뭐야? 왜 국정원 안에서 총을 들고 다녀?”
민광만은 대원들을 보며 계속하여 물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여전히 답하지 않은 채, 감금실 문 옆의
복도로 몸을 기댄 채, 정면 복도에서 다가설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국정원장은 지금 국정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할이기에, 이와 같은
중대 사안은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는 국정원장이었다.
차현태는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지호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안전이 우선이니, 절대 원장실에서 나서지 마십시오.”
차현태는 그와 통화를 끊은 후, 서지호를 다시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서지호는 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경계가 엄한 국정원에 그들이 들어섰네. 이미 수많은 국정원
대원들을 죽이고, 지금 백태와 민광만을 죽이기 위하여 다가서고 있다더군.”
차현태는 국정원장에게서 들은 보고를 서지호에게 알려주었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고민국이란 놈이 각 부처에 조직원을 숨겨두었고, 그 조직원 중 한 놈이
국정원안에서 문을 열어주고 길을 안내한 것이라면, 천하의 국정원이라도 뚫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서지호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철통경계를 한다고해도, 안방 문을 열어주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국정원의 일은 국정원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보다 북정마을의 일을 더 중시하셔야 합니다. 그곳에는
…….추선우라는 민간인이 미끼로 나섰으니 말입니다.”
서지호의 말에 차현태는 추선우를 다시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민간인인 그에게 너무나 큰일을 계속하여
맡기고 있는 지금이었다.
“새로…….들어온 소식은 없는가?”
차현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직은…….”
‘띠리리리’
차현태에게 보고를 하려던 찰라,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미끼를 문 놈이 있는가?”
태정민이 전화한 것이며,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물었다.
태정민은 조금 전 만석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서지호는 그 소식을 바로 차현태에게
알렸다.
“하나하나 풀려나가고 있군. 장석관이란 인물은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의 경호원이고, 그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인물이라고 하였으니,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네, 꼭 유용한 정보를 빼내고 이번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였으면 하네.”
차현태는 지현을 생각하며 말했고, 서지호는 곧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있는 방으로 향해 걸었다.

“선우는요? 선우는 괜찮나요?”


그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미희가 다가와 물었다. 예전에는 미희보다 은주가 먼저 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은주의 물음이 없었다.
“삼촌은요?”
다시 지현이 다가서며 서지호에게 물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 그 조직의 핵심인물들을 하나하나 잡았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곧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서지호는 미희와 지현을 보며 말하였고, 미희와 지현도 서로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제가 직접 와서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는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인사한 후, 다시 나서려 하였다.
“태정민…….”
“…….”
그가 나가려 할 때, 은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고, 방안에 있던 아주머니와 미희, 지현이 그녀를
보았다.
“태정민 팀장님은 무사한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난 영월에서 태정민은 겁탈 당할 뻔 한 은주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은주는 태정민을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태팀장은 지금 이번 작전을 모두 지휘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 없으며, 그의 작전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단 한 사람도 다치는 사람 없이 일이 마무리 될 것입니다.”
서지호는 은주의 물음에 답한 뒤, 그녀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였고, 곧 방을 나섰다.
그리고 세 사람은 은주를 보고 있을 뿐, 그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들…….이들은 그 때 당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고, 함께 그런 변을 당할 뻔 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
당시 가장 급박했던 은주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태정민이기에, 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태정민에게 연락하여, 저 여인이 안부를 묻는다는 말을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은주의 말을 태정민에게 그대로 전해주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았고, 경호원을
시켜 대신 전해주었다.

태정민은 은주의 말을 전해들은 후,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은주가 자신을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그였다.
“왜 그리 싱글벙글이야? 설 실장님과 추선우씨가 아픈 것이 그리 좋아?”
“네? 뭘 또 그리 같다 붙입니까? 그냥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며, 이런 우울한 분위기좀 벗어나려 해 본
것뿐입니다.”
강서진이 그의 모습을 보며 날카로운 어투로 묻자, 태정민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보고 답했다.
“그래. 네 말처럼 이런 우울한 분위기 싫다.”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 한 말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추선우에게 마음이 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가, 순간적으로 실수를 한
것이었다.

-북정마을 입구. 석강수 출현입니다.-


“!!!”
두 사람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고, 조동민은 그런 두 사람을 이리저리 보며 자신도 그저 침묵에
동참하고 있을 때, 조동민에게 무전이 들어왔다.
“석강수가 확실해?”
-네. 마을 입구 12 번 CCTV 입니다.-
조동민은 그 즉시 12 번 CCTV 의 영상을 원장실로 끌어왔다.
“석강수…….”
그리고 세 사람의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석강수.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멈칫거리지도
않은 채, 북정마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어디로가는거지?”
하지만 그는 병원이 아닌 북정마을 위로 오르고 있었고, 더 이상 CCTV 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그의
행보를 더 이상 원장실에 앉아서 확인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태정민이 나섰다.
“나도 같이가.”
곧바로 강서진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조동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두 분 모두 계십시오. 설 실장과 추선우씨가 깨어나면 보셔야 할 것 아닙니까?”
조동민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말했고, 곧 자신이 직접 대원들을 이끌고 북정마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병실로 가봐야겠습니다.”
석강수가 도착하였으니, 원장실에 앉아서 CCTV 만 확인하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설장호와 추선우가 입원한 병실로 향하였고, 그 뒤로 석강수가 찍혔던 CCTV 에 또 한
사람이 찍히고 있었다.
바로 이장두였다.
국정원장은 이장두에 관한 정보는 아직 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이장두가 그냥 당당히 걸어서 만석병원으로 향하고 있어도, 그 누구하나 그를 예의주시하여 보지
않았다.
“정말 이 두 사람은 신기해도 너무 신기합니다. 선우 녀석이야 내가 오랫동안 이 놈을 치료해봐서 알지만,
이 사람도 선우 녀석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때마침 만석이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고 있었고, 곧 두 사람이 들어오자
시선을 돌려 말했고, 강서진은 그의 말뜻을 몰라 물었다.
“죽어도 백번은 더 죽었을 위인들인데, 참 끈질기게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정말입니까? 곧 깨어날 것 같습니까?”
만석의 말에 강서진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고, 만석은 곧 추선우의 침대 앞으로 다가가 추선우를
보았다.
“일어나봐 이놈아. 아름다운 아가씨가 너를 보러 왔잖아.”
만석의 말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추선우를 보았다. 그러자 이불이 이리저리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이불이 걷어지며 추선우가 머리를 내밀었다.
“뭐야? 정신이 든 거야?”
그를 보며 태정민이 물었고, 강서진은 입가에 미소가 생겨나면서도 눈물이 흐르는 듯 하였다.
“선우 뿐만 아니라 저 사람도 이미 깨어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신도
죽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석은 농담으로 말했고, 곧 창가의 침대에 누워있던 설장호도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실장님.”
“그런 목소리로 부르지마라. 그런 목소리는 정말 내가 죽었을 때, 그 때…….내 영정사진 앞에서 그리
불러라.”
설장호는 강서진의 눈물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말한 뒤, 이내 침대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다리에도 칼날을 맞았기에 아직 목발 없이는 거동이 그리 편치 않은 그였다.
그에 반해 추선우는 또 다시 멀쩡하게 서서 설장호의 옆으로 섰다.
“내 옆에 오지마라. 어떻게 같이 입원했는데, 넌 멀쩡하고 나만 죽을 놈처럼 보이니, 내가 약한 놈이라
생각할 것 아닌가. 그러니 내게 붙지 말고, 저기 강 검사에게 가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와.”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의 시선을 강서진에게 향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고, 이내 말없이
안아주었다.
“어라…….이렇게 되면 은주는? 은주는 뭐가되는거야?”
만석은 추선우의 행동을 보며 의아하고 놀란 눈을 한 채 물었다.
“은주씨의 그 님은 저쪽에 있습니다.”
만석의 말에 설장호가 태정민을 가리키며 말하자, 만석은 도저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병실 안에 있는 모두를 보기만 하였다.
설장호는 직접 그 현장을 보진 않았지만, 서지호에게 들었고, 또 태정민에게 그 사건에 대한 보고도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그였다.
“저 놈들 어떻게 들어서게 된 것인지, CCTV 를 다시 확인 해.”
한 편. 국정원에서는 다시 이장두의 부하 다섯 명과 국정원 대원들이 대치중에 있었다.
이에 국정원장은 저들이 들어오게 된 그 순간이 포착된 영상을 찾도록 명령 내렸다.
국정원에서 고작 다섯 명을 죽이지 못하느냐 말할 수 있지만, 이들 또 한 전문적으로 이런 임무를 타고난
자들이기에,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모두 앞으로! 전방 15 미터 최루탄 투척!”
곧 국정원 내의 특수대원들이 투입되었고,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0021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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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주시! 움직이는 이들에 대해 발포 명령을 내리지, 반대편에 있는 대원들은 절대 신체를 내밀지
않는다.”
특수대원의 팀장은 최루탄을 투척한 후, 반대편에 있을 대원들에게도 이어마이크의 주파수를 맞춰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의 명령대로 백태와 민광만의 감금실 앞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대원들이 모두 몸을 낮춰 더
안으로 들어섰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최루탄을 투척한지 약 3 분이 지났지만, 해당지역에서 뛰쳐나와야 할 그들은 단 한명도 따로 움직이는
이들이 없었다.
“확인하라.”
팀장은 대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두 명의 대원이 앞을 겨냥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있었다.
‘픽픽!’
“!!!”
하지만 체루가스 속에서 날아온 두 발의 탄알에 의해 두 대원이 그대로 명중당하며 뒤로 넘어졌고, 곧
다른 대원들이 두 대원을 끌고 뒤로 더 물러났다.
이들은 이미 방탄복을 다 입고 나왔기에, 방탄복이 막아주지 않는 부분에 총알이 들어서지 않는 한, 단
몇 발을 총알로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대체 뭐야? 어떻게 저 지독한 최루탄을 맡고도 저리 태연스럽게 움직일 수가 있어?”
팀장이 한 말이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해당 복도에 던져진 최루탄에 의해 대원들의 눈은 따갑고,
코와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리면서, 참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지만, 막상 최루탄을 정통으로 들이 마시고
있을 그들은 마치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 듯 한 행동들이었다.
“팀장님. 적외선 조준기 착용 저격수들이 도착했습니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건물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저격수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열적외선 렌즈를 착용하고 있었고, 그로인하여 최루가스 속에 있을 그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여 저격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사살명령을 받았으니 제거한다.”
저격수들이 자리 잡아 앉자마자 팀장이 그들에게 말했고, 저격수들은 모두가 열적외선 렌즈를 이용하여
최루가스 안에서 움직이는 이들을 감지하였다.
“세 명이 포착됩니다. 지금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세 명? 다섯 명이 침투하였는데, 왜? 세 명만 보여?”
저격수의 말에 팀장이 놀란 눈으로 다시 되물었지만, 그에 대한 이유를 저격수가 알 리 없었다.
그저 가스 안에 보이는 인원이 세 명이니 그 인원을 말했을 뿐이었다.
“세 명이면 두 명이 사라졌다. 주변을 찾아!”
팀장이 다급하여 소리쳤고, 곧 모든 대원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착된 세 명은 처리한다.”
사라진 두 명을 찾고자 이미 포착된 세 명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것에 국정원장이 직접 저격수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픽픽픽!’
저격수들은 그 즉시 포착된 세 명에게 발포하였고, 세 명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확인해라.”
저격당한 그들이 넘어진 것을 저격수로부터 확인받은 후, 곧바로 팀장이 대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대원들이 움직였다.
‘스윽스윽스윽!’
아직 가스가 사라지지 않은 관계로 가스 속으로 그들의 사망을 확인하기 위하여 들어간 대원들은 자신들의
목을 스쳐가는 아주 날카로운 고통을 느꼈고, 그 느낌과 동시에 그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 사망하였다.
“모두 발포!”
대원들이 죽자, 팀장은 큰 소리로 명령 내렸고, 일대에 있는 대원들이 모두 가스 속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 모습을 열적외선 렌즈를 착용한 저격수들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총알이 신체에 적중되는 것은 보이지만 죽지 않습니다.”
저격수들의 눈에는 그들이 총알에 맞긴 하지만,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자, 그들이 방탄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길!”
저격수들의 말에 팀장이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다시 가스 안을 향해 더 발포토록 명령 내렸다.
“국정원에는 뛰어난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이게 뭐야! 고작 몇 명 들어온 것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돼!”
민광만은 소리쳤다. 하지만 백태는 여전히 마음을 다 비운 듯 편히 앉아서 외부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음악소리마냥 듣고 있었다.

‘스윽스윽스윽!’
“!!!”
반대편에서 연신 총을 쏘고 있던, 곧 가스가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백태와 민광만이 있는
곳까지 흘러가면서 주변이 가스에 휩싸일 때, 그 앞을 지키던 국정원 대원의 목에 한 줄기 선이 선명하게
그어지면서 그들도 바닥에 다 쓰러졌다.
“이봐! 이봐! 여기 뭔가 잘 못 된 것 같아!”
민광만은 대원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공포에 몸을 떨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지금 판국에
누구하나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봐 백태! 지금 그들이 바로 앞에 있어! 나를 죽이려한단 말이야!”
민광만은 소리치며 또 소리쳤다. 하지만 백태마저 그의 말은 듣지 않는 듯,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탈칵’
“!!!”
민광만이 감금실 앞을 보며 계속하여 소리치고 있을 때, 감금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민광만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감금실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이런곳에 들어와 살아봐야 뭐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냥 편히 가십시오. 민비서관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그의 목표는 민광만인 듯 하였다.
그는 민광만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곧바로 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고, 들고 있던 칼을 들어
그의 목을 그었다.
‘탈칵’
그리고 또 한 곳, 백태가 있는 곳에도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백태는 그 소리에 서서히 눈을 떴고, 곧 자신 앞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보았다.
“누가 보내서 왔나? 회장님?”
“쉽게 상대한 놈이 아니니, 그 답은…….네가 죽게 될 시점에 알려주도록 하겠다.”
사내는 한손에 단검을 쥐고 백태를 향해 서서히 다가서더니 이내 빠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가 칼을 뻗었다.
‘탁! 스윽!’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리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뻗은 칼은 백태의 손에 잡히면서 칼마저
빼앗겼고, 곧 그 칼날은 자신의 목으로 되돌아와 목을 쳐내고 있었다.

“나를 죽이겠다고 왔으면 적어도 네 놈같은 녀석들 수십은 몰려와야 할 것 아닌가.”


백태는 그를 쉽게 제압한 뒤, 열려있는 문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복도에 가득한 최루탄가스를 보며 섰다.
“이런 것으로 이놈들을 죽이겠다? 국정원도 정보가 그리 좋지 않군.”
백태는 가스 속에서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본 듯, 몇 말을 중얼거린 뒤, 이내 민광만이 감금되어
있던 감금실로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민광만을 제거하고 나오는 사내와 마주하였다.
“민광만같은 놈이야 쉽게 제거했겠지.”
그의 말에 사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손에 든 단검을 이리저리 돌리며 꽉 쥔 후, 백태를 향해
바로 달려들었다.
‘스윽!’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그의 목에도 한줄기 선명한 선이 그어졌고, 그가 바닥에 쓰러진 뒤, 곧 뒤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백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태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최루탄가스가 조금씩 빠져나가면서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고, 그들의 눈에도 백태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국정원 놈들 중, 쓸모 있는 인간은 설장호 한 명 뿐이었나보군. 차라리 추선우를 국정원에 들여놓는
것이 더 낫겠다.”
백태는 버젓이 살아서 나온 세 명을 보며 말했다. 그들을 잡고자, 국정원 내의 대원들이 총을 쏘며 별에
별 짓을 다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그곳에서 나와 백태를 죽이고자
움직인 모양이었다.
“우리 대원들이 죽으면서 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백태의 말처럼 최루탄 가스 속에 있는 그들을 감시하는 인물들은 저격수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열적외선으로 보고 있었고, 그들을 잡고자 진입했던 대원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열이
저격수의 눈을 가린 꼴이 되었다.
그리고 그 틈에 세 명은 다시 빠져나왔고, 뒤로 돌아 백태를 향해 진입했던 것이었다.
“백태…….너라면 저 놈들을 쉽게 잡겠지.”
대원들이 보지 못한 곳은 국정원장이 CCTV 를 통해 보고 있었고,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모니터에는 백태와 마주한 세 명이 서 있었고, 백태는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이런 곳에 계셔봐야 서로에 좋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숨을 거두고 일찍
편안해지십시오.”
세 명 중,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백태에게 말했다.
“그래. 이안에 있어서 좋을 것은 없지, 하지만 꼭 나를 죽이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들어왔으니, 나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이로운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회장님 곁에서 다 죽어나간
놈들을 대신하여 내가 회장님을 도울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말이야.”
백태는 그의 말에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 뒤,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휘리릭’
‘퍽!’
“!!!”
그리고 그 단검은 순식간에 백태의 손을 떠나 날아간 뒤, 세 명 중, 한 명의 목에 그대로 명중하였고,
그가 쓰러지자, 두 명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퍽!’
그 순간 백태는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사내의 면상을 날린 뒤, 곧바로 뒤에 서 있던 사내의 목을 잡아 바로
비틀었고, 곧 그의 손에 있던 단검마저 빼앗은 뒤, 처음에 주먹을 날린 사내가 일어나기 전, 그의 이마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저런 놈을…….어떻게 상대했을까…….”
국정원장은 그 모습을 다 보았다. 순식간이었다. 국정원 대원들이 최루탄을 쏘며 총을 쏘고,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죽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백태는 단 1 분도 지나지 않아 세 명을 모조리 잠재웠다.
“손들어!”
세 명을 모두 잡은 후, 최루탄가스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곧바로 대원들이 다가서며 백태를 향해
소리쳤다.
“항상 문제지. 뒷북을 치기 전에 제대로 해야지, 항상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뒤에 고치려는 그 문제.
대한민국의 모든 기관에 공통적으로 있는 요소 같지 않은가?”
백태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백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의 팔을 잡아 강하게
비튼 뒤, 벽으로 밀어붙인 후, 수갑을 채웠다.
-백태를 만나러 갈 것이다.-
백태를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을 때, 팀장의 이어마이크를 통해 국정원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팀장은
그의 명령으로 백태를 다시 감금실로 데리고 간 뒤, 감시하고 있었다.
곧 국정원장이 안으로 들어섰고, 다른 대원들 모두가 밖으로 나갔다.
“훌륭하더군.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추선우와 같은 민간인에게 잡힌 것인가?”
국정원장은 백태의 눈을 보며 물었다.
“나도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제압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
놈은 다르다. 민간인? 그래 민간인이라 말하지만, 세상에는 너희들은 물론, 나보다 더 강한 민간인은
넘쳐난다. 그리고 추선우는…….그 중 한 명이다.”
백태는 자신보다 추선우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0021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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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나가고 싶지 않은가? 너의 목을 치러하는 그놈…….그 놈에게 조금 전에 대한 빚은
갚아줘야하지 않겠는가?”
“…….”
국정원장의 말에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지금 자신에게 이수호를 쳐라는 말과도 같은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모셨다던 그 한 놈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아낼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도 그 놈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고, 그 기회를 주고자 한다. 어떠한가?”
국정원장은 그를 보며 다시 말했다. 백태는 국정원장을 뚫어지게 보았다.
어차피 이들에게 잡히면 이수호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일어났고,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국정원장의 말이 조금씩 귀에 들어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한다면 너를 다시 외부로 보내주겠다.”
국정원장은 아주 크며 위험한 제안을 그에게 하였다.
만에 하나 그가 이대로 나가서 이수호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수호의 곁에 서게 된다면, 조금
전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처럼, 대원들의 목이 그의 손에 그리 비틀어지고 머리에 칼이 꽂힐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나를 믿는 것인가?”
“아니. 난 절대 너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네 놈은 나를 믿을 것 같다. 적어도 그 놈처럼 너의 목숨을
가져가려하지 않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의 말에 백태의 눈동자가 떨렸다. 국정원장은 자신을 보호했다. 이미 그에게 몇 가지 정보를 준
것도 있지만, 그 정보에 대해 알아내고도, 그를 더 보호했다.
“시간은 많이 줄 수 없네. 우리가 먼저 그 한 놈을 찾아내면, 그 후로는 자네의 도움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곧 감금 실을 나서려 하였다.
“내가…….어떤 결정을 내려도 받아줄 것인가?”
백태는 그의 등 뒤를 보며 물었다.
“받아준다. 다만…….네가 나가서 그 놈과 다시 손을 잡는다면, 그 후부터는 너에 대한 선처는 없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즉결심판을 내릴 것이다. 그것만 명심해라.”
국정원장은 그의 물음에 답한 후, 그대로 감금실을 나섰고, 백태는 그의 말을 생각하는 듯,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그의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없습니다. 분명 이곳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시각. 북정마을 위로 오르던 석강수를 쫒던 조동민과 그의 대원들은 북정마을 꼭대기 부근까지
올라왔지만, 그 어디에도 석강수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더 수색한다. 모두 움직여.”
조동민은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 보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굽이진 골목들이 워낙 많은데다, 집들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어 그 사이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면 절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조동민…….역시 설장호의 핵심인물들은 이곳에 다 와있다는 뜻이군.”
그리고 추선우의 옥탑방이 있는 옥상에서 조동민을 내려다보고 있던 석강수가 홀로 중얼거렸다.
만약 북정마을로 태정민과 강서진이 올라왔다면 두 사람은 은주의 집을 확인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동민은 달랐다.
그는 은주의 집을 알지 못하고, 그곳에 석강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 또 한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동민은 주변을 둘러보다 시선을 올려 옥탑방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옥상에 사람처럼 보였던
무언가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조동민은 주변을 다시 둘러본 후, 은주의 집 계단을 향해 들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필시 자신의 눈에는 누군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을 확인코자 홀로 옥상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각. 이장두는 만석병원의 앞에 서서 병원 간판을 올려보고 있었다.


“이곳이 너희들의 장례식장이 될 것이다.”
이장두는 홀로 중얼거린 뒤, 병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곧 복도의 분위기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건강해 보이는 사내 몇 명과, 안내데스크에 있는 여인들과 환자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 그저 평범한 환자며 간호사로 보이지 않았다.
‘병원 전체를 다 전세 낸 모양이군.’
이장두는 속마음으로 중얼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고, 곧 안내데스크 앞에 멈춰 섰다.
“이 병원은 노인 병원 아니었습니까?”
이장두는 병원으로 들어서면서, 병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나 기타 알림내용을 이미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포스터와 알림내용은 모두 노인복지나, 노인건강에 관한 것들이 전부였다.
“노인병원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두 노인환자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안내데스크에 서 있던 여인은 그의 질문에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답했고, 이장두의 시선은 주변에 있는
환자들을 의식하는 듯, 천천히 돌아서고 있었다.
“그런데, 꼭 모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 분위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이장두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뭐라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대처해야 할 태정민과 강서진은 두 사람이 입원중인
병실로 가 있는 바람에, 지금 이장두가 병원으로 들어선 것을 CCTV 로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기다립니까? 설장호와 추선우를 잡으러 올 사람을 기다립니까?”
“!!!”
아무도 답이 없자, 이장두는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며 물었고, 그러자 그곳에 있는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향해보았다.
“모두가 그리 보면 내가 한 말이 너무나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이장두는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말한 뒤, 곧바로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꺼내들어, 1
층 복도와 안내데스크에서 대기 중인 국정원과 검찰 쪽 인원들을 순식간에 모두 죽이고 있었지만, 그 모든
광경은 2 층에 있던 설장호 일행 중, 그 어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쾅!’
한 편. 옥탑 방까지 오른 조동민이 고개를 내밀어 옥상을 보자마자, 그의 면상에 아주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고, 그로인하여 다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동민아…….오랜만이지?”
석강수는 쇠파이프를 들고 그를 내려 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미 조동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석강수는 아래로 내려가 그의 앞으로 섰다. 그리고 쇠파이프를 들어, 그의 복부를 누르기 시작하였고,
조동민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엇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라. 그래서 주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안으로 들어서도록 해라. 그래야 네가 산다. 그
놈들의 목숨을 대신 이어받으며 네가 사는 것이다. 동민아.”
석강수는 더욱 더 강하게 그의 복부를 누르며 말했지만, 조동민은 끝까지 소리치지 않고 있었다.
“팀장님이 보이지 않는데, 내려가신 건가?”
그 시각. 주변을 수색하고 다시 은주의 집 앞으로 보여들은 대원들은 이곳에 있었던 조동민이 보이지 않자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혼자 가실 분은 아니시지. 주변을 둘러보고 계실 것 같은데…….”
한 대원의 말에 다른 대원이 시선을 돌리며 말할 때, 은주의 집 계단에서 석강수가 정확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순간 그의 온 몸에는 소름이 돋고 있었고, 다른 대원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입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바로 앞에서 마주친 것과 같은 느낌을 제대로 받고 있는 대원이었다.

“석강수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고, 모두가 그의 눈이 멈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석강수가 쇠파이프를 들고, 정말 소름 돋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들을 향해 보고 있었고, 곧
쇠파이프를 위로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모두는 그 쇠파이프가 내려쳐지는 목적지에 누가 있는지를 아는 듯 놀란 눈을 지은 채 말하였고, 곧바로
대원들이 계단을 올라 옥탑 방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나를 보고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다가서다니, 역시 많은 발전을 거두었군.”
석강수는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는 듯 한 말을 한 뒤, 계단을 올라오는 그들을 마중하는 듯 아래를 보며
섰다.
“석강수…….”
그리고 곧 계단을 다 오른 그들은 자신들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 석강수를 보면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올라서라. 그래야 조동민은 구한다.”
석강수는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먼저 움직이는 이들이 없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도
석강수란 존재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설장호가 그에게 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공포는 더욱 더 커진 모양이었다.
“물러나라…….서둘러 내려가서 지원을 요청해. 그래야…….”
‘퍽!’
대원들이 더 오르기 전, 그들의 안전을 위해 조동민은 남아있는 체력을 다 사용하는 듯, 힘겹게 그들을
향해 말했지만, 이내 석강수가 들고 있던 쇠파이프가 내려와 그의 입을 그대로 내려쳤다.
“떠들지 마라. 국정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주 대단한 곳에서 근무하는 놈들이 저리 겁이 많아서야
되겠는가? 저놈들의 담력이라도 볼 겸, 내가 친히 그 테스트를 해 주겠다는 것인데 무엇을 망설이는가?”
그들이 올라서지 않자, 석강수가 내려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대원들은 그가 내려오는 계단 수만큼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너무 쓸데없는 인력들이 많아, 이런 애들이 모두 나랏돈으로 월급을 받고 살 것 아닌가?”


한 편. 이장두는 1 층에 있는 모두를 죽인 뒤, 홀로 중얼거렸고, 곧 병실 문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병실은 모두 비어있었다.
“2 층에 있는 것인가?”
1 층에 없으니 2 층에 모두 모여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곧 계단을 통해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고,
추선우와 강서진에게 잠시 두 사람의 시간을 주기 위하여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휴게실로
향하였다.
“왜 나까지 나와야 하는 거야? 내가 환자 아닌가?”
설장호가 투덜거렸다. 그의 말처럼 환자가 병실에서 쫓겨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전. 원장실에 가서 주변 상황좀 보고 오겠습니다.”
태정민은 곧 휴게실에서 나와 원장실로 들어섰고, 그가 원장실로 향하자마자, 복도 끝에서 이장두가 2
층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여기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군.”
2 층 복도 끝에서 끝을 본 이장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다시 3 층으로 올려려 할 때, 복도
끝 부분 휴게실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림이 들리자, 그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 눈과 귀에 들어온 이상, 그냥 죽어야 하는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마라.”
이장두는 복도 끝 휴게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0021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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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리고 원장실로 들어선 태정민은 1 층의 상황을 그때서야 확인하게 되었고, 곧 그 내용을 설장호에게
알리기 위하여 원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장두는 원장실에 나온 태정민을 보며 걸음을 멈추었고, 태정민고 원장실에서 나오며 곁눈으로 보인
이장두를 보았고, 곧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돌렸다.
‘퍽!’
‘와장창!’
“!!!”
태정민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장두의 주먹은 그의 면상을 바로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난
태정민은 2 층복도 창문을 뚫고 아래로 떨어졌다.
“태정민!”
그 모습을 본 설장호가 목발을 짚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고, 곧 휴게실을 보며 이장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설장호.”
이장두는 설장호를 그대로 노려보며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그의 이름을 불렀고, 설장호는 처음 보는
이장두에게서 석강수를 능가하는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만석과 간호사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몸을 움츠렸고, 설장호를 경호하던 국정원 대원들이 그를 향해 곧바로
달려들었다.

“만석병원이다! 어서 움직여!”
태정민이 1 층으로 떨어지면서 그 모습이 주변에 있던 국정원대원들과 검찰, 경찰들의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국정원 대원이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와장창!’
1 층에 떨어진 태정민을 서둘러 병원으로 옮기려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을 때, 또 다시 1 층 그 자리에
국정원 대원 두 명이 더 떨어졌고,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설장호, 이만 죽어라.”
이장두는 태정민과 함께, 두 명의 대원들을 모두 1 층으로 떨어뜨린 후, 목발을 짚고 있는 설장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네를 상대해서 뭐가 좋을까?”
이장두가 설장호를 향해 걸어갈 때, 반대편 병실 문이 열리며 추선우가 그를 향해 물었다.
“추선우…….”
그의 시선은 이제 추선우에게 향하였다. 설장호와 함께 꼭 죽여야 할 인물이었던 추선우, 그가 지금
자신의 앞에 떡하니 섰고, 그의 몸도 추선우를 향해 돌아섰다.
“그래. 네 말처럼 발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놈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쉬워, 그러니 상대하기 조금
더 까다로운 네 놈을 먼저 잡고 설장호를 잡아야겠다.”
이장두는 추선우를 향해 바로 움직였다. 추선우는 자신의 뒤로 강서진이 서 있기에, 더 안으로 물러나면
강서진도 위험해 질 것을 알고 있었다.
‘슈욱. 탁탁탁. 퍽!’
추선우는 곧바로 병실에서 나오며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이장두는 그의 주먹을 너무나 손쉽게
피하였고, 곧 추선우의 주먹이 다시 뻗어지기 전, 그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리자, 추선우는 그의
돌려차기를 피하지 못한 채, 면상을 허용하면서 복도 벽에 몸을 부딪쳤다.
“추선우. 너도 환자라고 하지만, 넌 보통 놈들과는 다르다. 힘을 제대로 보여 봐라.”
이장두는 추선우를 향해 연타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선우는 잠시 동안 그대로 몸을 낮추고
있었고, 곧 휴게실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설장호과 만석은 앞 병실을 보았고, 그 병실에서 강서진이 모두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겠습니다.”
설장호는 지금 자신의 몸으로 추선우를 돕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남아있는 이들이라도 보호하고자,
강서진과 함께 수를 꾀하고 있었다.
만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그를 부축하였고, 간호사들과 함께 휴게실에서 나와 병실로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병실로 다 들어서자마자, 추선우는 움츠렸던 몸을 일으키며 그를 보았다.
“저들이 병실로 가기까지 시간을 번 것이었나?”
이장두는 그의 행동이 딱 그러했기에 물었다.
“지난 번 병원에서도 내가 얼핏 보았는데, 휴게실에는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더라고, 그래서 병실로
가도록 시간을 좀 벌어본 것이다.”
추선우는 강서진과 키스를 나누었던 그 때의 병원 휴게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때는 휴게실 문을
잠그는 장치가 있었다.
다만 강서진이 수만의 눈을 급히 피하느라,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너는 처음 보는 놈인데, 누가 보내서 온 것인가? 석강수? 아니면 그 놈을 경호한다는 그 경호원 중에 한
명인가?”
추선우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아직 석강수가 오지 않았기에 그가 나타나지 않고 또 다른 부하를 보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수호의 경호원이 있다고 하니, 그의 경호원이 온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석강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내 알바 아니고, 또 경호원이라면 아마도 그 분을 경호하는 자를 말하는
것 같은데…….애석하게도 모두가 네 놈의 손에 다 죽어나갔다.”
“…….”
이장두는 충분히 말을 돌려 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수호의 경호원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알려주었다.
다만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장석관에 대해서는 이장두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이장두는 장석관도 이미
죽은 것이라 단정 짓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
“1 층으로 떨어뜨린 것이 실수였군.”
이장두가 추선우를 향해 움직이려 할 때, 1 층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장두는 곧 몸을 뒤로
서서히 움직이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가 뒤로 물러나자, 그를 놓치지않으려는 듯, 곧바로 따라 움직였고, 이장두는 의외의 행동을
보이는 추선우를 보며 잠시 당황하였지만, 미소를 지은 뒤, 태정민이 떨어졌던 곳 반대 복도의 끝 창문을
깨고 1 층으로 뛰어내렸다.
그곳은 주차장 쪽으로 외부에 몇 대의 차량이 있었고, 그 차량위로 떨어진 이장두는 아무런 상처 없이
그대로 주차장 바닥까지 내려간 뒤, 2 층 복도에 서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는 그를 따라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지금에 자칫 섣부른
행동으로 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이장두를 보았다.
“다음에 보자. 네 놈의 목은 그 때 다시 가지러오겠다.”
이장두는 주차장 안쪽 길을 따라 북정마을 쪽으로 이동하였고, 그 뒤로 국정원대원들과 경찰, 검찰이
올라섰고, 또 주차장 쪽으로도 대원들이 몰려왔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추선우는 그들에게 이장두가 움직였던 곳을 가르쳐 줄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곧바로
병실로 향해 걸었다.

“괜찮은가?”
추선우가 병실로 들어서자, 설장호가 물었고, 곧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안았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설장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도 이장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국정원장이
알려주지 않은 민광만의 정보 탓일 수도 있었다.

“이곳에 가면 넌 다시 나올 수 없다.”
한 편. 장석관을 데리고 국정원 안으로 들어선 대원들은 그를 향해 말했고, 장석관은 난생처음 들어와 본
국정원 내부를 마치 관광하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장석관…….”
그리고 그와 마주친 백태. 장석관은 그의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섰고, 백태도 그를 보며 멈춰
섰다.
“네 놈이 아직도 살아있었나?”
장석관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물었다.
“네가 살아있는 것만큼은 신기하지 않겠지. 그나저나 고생해라. 난 나간다.”
“!!!”
백태의 말에 장석관이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고, 그의 말은 비단 장석관 뿐만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오는 국정원대원들에게도 놀라움을 주었다.
하지만 우선은 장석관을 감금실로 데리고 가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묻지 않았고, 서둘러 그를 데리고 갔다.
“원장님. 장석관을 감금 실에 감금시켰습니다.”
곧 그 내용은 국정원장에게 보고되었고, 그는 곧바로 장석관을 만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이 장석관을 만나기 위하여 감금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괜찮은가?”
설장호의 전화였고, 그는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까? 조금 전 병원으로 어떤 놈이 들어왔는데, 태정민은 물론,
대원들을 너무나 쉽게 다루었습니다. 다행히 추선우가 시간을 벌어주는 바람에 다른 대원들이 투입되면서
그가 물러났습니다.”
설장호는 이장두에 관하여 그가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마도 이장두가 찾아온 모양이군.”
“이장두요?”
“우리가 잡아야 할 마지막 놈의 외아들이라 하더군. 일단 자네가 깨어났으니, 자네의 휴대전화로 그놈에
대해 정보를 보내주겠네.”
국정원장은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조동민이나, 태정민, 강서진에게 줄
수 있지만, 그들이 상대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짐작하에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다행히 설장호가
깨어나면서 이장두에 대한 정보는 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국정원장은 이장두에 관한 정보를 그에게 준 뒤, 곧바로 감금실로 들어가 장석관을 만났다.
“장석관. 네가 마지막 경호원이겠군.”
“!!!”
국정원장의 첫 물음에 장석관의 눈동자가 떨렸다. 몇 명의 경호원이 있고, 그들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백태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태…….이 새끼…….”
장석관은 쓴 표정을 지으며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다시 국정원장을 향해 보았다.
“백태에 대한 욕은…….아껴둬라. 앞으로 더욱 더 심하고 거친 욕을 뱉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은 그의 표정을 보며 말했고, 장석관은 더욱 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 놈을 감금하고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알아내라.”


“네.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백태와 민광만은 직접 만나며 정보를 알아냈다. 하지만 장석관은 대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국정원장실로 바로 향하였다.

‘킥!’
한 편. 국정원에서 백태를 태우고 나온 차량은 북정마을 입구에 차량을 멈춰 세웠고, 그곳에 백태를
내려놓았다.
“너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의 모든 것이 변한다. 기억해라 백태.”
백태를 북정마을 입구에 내려준 대원이 그에게 말하였고, 곧 주변에 있는 국정원대원에게 이어마이크를
통해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도 인근에서 대기하기 시작하였다.
“태정민은 어느 병원으로 데리고 갔나?”
한 편. 만석병원에서는 설장호가 병원 앞에서 대기 중이던 국정원대원이 태정민의 상황을 목격한 뒤,
곧바로 병원으로 호송하였기에 그들을 통솔하였던 대원에게 물었다.
“**병원으로 바로 이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후의 결과에 대한보고는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즉시 확인한다. 그리고 선생님께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은 나라에서 다
할 것입니다.”
설장호는 대원에게 바로 확인토록 명령내린 뒤, 시선을 돌려 만석을 보며 말했다.
“우리 선우를 위한 일이라면 굳이 보상 따위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그놈들만 모두 잡아주십시오.”
만석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0021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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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동민은 왜 보이지 않나?”
이장두에 관한 정보를 들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다시 세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조동민이 보이지 않아
설장호가 물었다.
“조동민 팀장은 약 1 시간 전, 석강수가 북정마을 입구에서 포착되어 그의 뒤를 쫓아 북정마을로
올라갔습니다.”
“1 시간 전? 젠장…….석강수를 다들 너무 무시하는군.”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뒤,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원장실로 가 그 곳에 있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주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북정마을 꼭대기를 확인토록 명령 내렸다.
“북정마을 위로는 CCTV 가 없어 제대로 된 확인 불가하기에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답답하군.”
설장호는 원장실에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 북정마을 인근 CCTV 화면을 돌려가며 하나하나 보면서 말했고,
곧 너무나 낯익은 백태가 북정마을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며 놀란 눈을 하였다.

“백태?”
추선우의 눈에도 그는 분명 백태였다. 두 사람 모두 놀란 눈이었고,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여
전화기를 들었다.
“실장님.”
전화를 걸려는 순간 원장실로 한 대원이 들어섰다. 그는 조금 전, 백태를 태우고 온 대원 중 한 명으로
지금 백태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그에게 설명하였다.
“국정원장님의 뜻인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기에 물었다. 아무리 그가 정보를 주고, 또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이수호에게
반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를 다시 외부로 내 보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백태를 데리고 와라.”
설장호는 잠시 동안 CCTV 에 찍힌 백태를 보고 있었고, 곧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대원은 그 즉시 움직였고, 설장호의 말을 전해들은 백태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곧 백태가 만석병원으로 들어섰다. 지금의 상황은 그 어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서로
절대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들이 지금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백태. 너의 생각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택을 잘해라.”
백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그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비록 그가 의자에 앉아있긴 하지만, 그의 옆에
목발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누군가에게 당한 모양인데, 누구입니까? 고광? 아니면 장석관? 아니지 장석관은 조금 전
국정원으로 잡혀 왔으니 그는 아닐 테고, 고광인가?”
백태는 아직 고광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이렇게 만들 사람은 고광밖에 없다고
여겼다.
“고광은 죽었다.”
설장호는 그의 기대를 한 번에 꺾어버리는 말을 하였다.
“고광이 죽어?”
백태는 눈동자를 떨었다.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1 위인 고광이 죽을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그였다.
“네가…….죽인 것인가?”
“아니. 난 그 놈의 낯짝도 보지 못했다.”
“…….”
백태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며 물었고, 설장호의 답이 나오자마자, 그의 눈빛은 추선우에게로 돌아섰다.
“역시…….넌 보통이 아니다.”
백태는 수만에 이어 장태, 그리고 고광까지 잡아들인 추선우를 보며 말하였다.
고광이 죽었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히 놀랍기도 하지만, 그는 그들 앞에서 놀란 눈빛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섭게 뜬 눈으로 추선우를 보고 있었다.
“고광이 아니라면, 누가 천하의 설장호를 이 꼴로 만들었을까?”
백태는 다시 물었다.
“석강수.”
“!!!”
잊고 있었다. 석강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이름이 바로
석강수였다.
“그 놈. 어디에 있나?”
백태는 석강수가 굳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관계였다.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한가롭게
놀았다는 것 빼고는 그와 굳이 마찰을 일으킬만한 요소도 없었다.
“지금 이곳 북정마을 어딘가에 있다. 우리도 찾고 있으며 그 놈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설장호가 답했고, 백태는 추선우를 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그 놈의 목표가 추선우라고 하였다. 그럼 이곳으로 온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나? 이런 함정 같지도 않은 함정을 만들어놓고 말이야?”
백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원장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 어설픈 함정에 장석관이 걸려들었지. 그리고 그 놈이 간 후에 이장두가 왔고, 석강수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장두? 그 놈이 여길 왔었단 말인가?”
백태는 설장호가 이장두의이름을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이미 민광만이 국정원장에게
말했고, 그 말이 설장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놀란 이유는 천하의 이장두가 이런 허술한 함정에 자발적으로 걸어서 왔다는 것에 놀란 눈이었다.
“이장두가 왔다면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
백태는 이장두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다녀간 곳의 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물었다.
“태정민과 함께 우리 대원 두 명을 병원으로 보냈다. 그 후에 추선우와 마주하였고, 인근에 있던
대원들이 들어서면서 물러났다.”
설장호는 백태가 그리 장담하는 이장두가 다녀가고도 이렇게 살아남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운이 좋았군. 허나 다음부터는 절대 그 놈과 맞서지 마라. 추선우. 네가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고광마저 잡았다니 더욱 더 인정한다. 하지만 이장두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다. 그러니 조심해라.”
백태는 이들에게 이장두에 대한 팁을 알려주었다.
“의외네요. 당신이 정말 마음을 고쳐먹고 우리를 돕기라도 하겠다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
“뭐. 그건 그때 그 때 다르겠지. 하지만 나도 쓸데없는 죽음은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충성을
맹세했던 정구석 회장의 명령이라면 모를까, 다시 생각하니 그 분 외에 다른 사람의 명령을 내가 굳이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백태의 마음이 돌아선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가 비록 국정원장에게 선처를 바라며 정보를 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계기가 아마도 정구석이 아닌 다른 이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과, 그 명령에 의해 그냥
앉은 자리에서 목을 내밀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천하의 설장호와 추선우가 쉽게 움직이지 못할 처지인 듯 한데, 내가 북정마을로 오르겠다.
굳이 그 놈과 피를 볼 사이는 아니지만, 감히 내 목을 가지고 장난한 대가는 돌려줘야지.”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비록 백태가 자신이 한 말처럼 석강수를 상대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그가 한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백태는 곧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었다.

-북정마을입니다! 지금 석강수와 마주했습니다!-


국정원장과 통화가 끝난 후, 곧바로 북정마을로 올라섰던 대원들에게 무전이 왔다.
“조동민은 어디에 있나?”
-아직 팀장님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대원의 답을 들은 후,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중히 행동하라, 그리고 조금 전 백태가 올라섰다. 그 놈은 너희를 상대할 것이 아니라 석강수를
상대하기 위하여 들어섰다. 그 놈을 돕지마라, 여차하면 두 놈 모두 사살하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미 조동민이 석강수에게 당한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을
리 없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마냥 앉아서 돌아오는 답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추선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강서진이 그를
보았다.
“괜찮겠나?”
설장호는 그를 말리려 하지 않았다. 백태가 갔으니, 그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백태도 다시 잡아넣어야 할 인물이기에 그를 말리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 치료중입니다. 그러다가…….”
“북정마을로 향해라.”
“실장님!”
강서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의 명령이 내려졌고, 강서진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이내
추선우가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다녀올게요.”
그리고 딱 한마디만을 하였고, 그녀는 그 후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 하려 하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고, 이미 모든 것이
하나, 둘 다 밝혀지고 있으니, 모조리 다 쓸어낸다.”
설장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추선우를 그를 보며, 다시 강서진을 본 후,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석강수!”
“…….”
백태는 북정마을 꼭대기까지 오른 후, 석강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석강수는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을 백태의 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건물 아래를
보았다.
“백태…….”
설마 했지만, 백태가 떡하니 건물아래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뭐하나? 네가 잡아야 할 설장호와 추선우는 저 아래 병원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더군. 그런데
넌 여기서 피라미들과 놀고 있는 건가?”
백태의 말은 여러 국정원 대원들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상대하기에는 석강수란 인물이 아주 큰 인물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올라간다.”
백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고, 계단 곳곳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다 당했군.”
성한 사람이 없었다. 이마가 깨지고, 팔, 다리가 부러지며, 곧 죽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계단에서 죽어가는 네 놈들 동료를 구하라!”
백태는 답답한 나머지 계단을 오르다말고, 계단창문을 통해 외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소리쳤고,
그의 큰 목소리에 대원들이 서둘러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곳곳에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부축하여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조동민…….”
백태는 곧 옥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층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거의 시체가 되어있는 조동민을 보며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조동민이 여기에 있다. 서둘러 병원으로 데려간다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 보며 소리쳤고, 대원들은 서둘러 위로 올라간 후, 온 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조동민을
병원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의외군. 설장호가 아끼는 조동민이라면 석강수와 그래도 비등한 힘겨루기를 할 것이라 여겼는데, 이건
뭐…….그냥 혼자서 쥐어터진 꼴 같군.”
백태는 그 당시의 일을 알지 못하기에 한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조동민이 제대로 석강수와 마주했다면
아마도 석강수의 몸 일부에 상처가 있을 것이었다.
석강수도 아마 그것을 알기에 먼저 일격을 가한 것이었고, 그로인하여 조동민을 의외로 쉽게 제압했던
그였다.

0021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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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팀장님…….”
추선우는 북정마을로 오르던 중, 대원들의 등에 업혀 급히 내려가는 조동민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고,
곧 시선을 돌려 꼭대기를 향해보며 움직였다.
조동민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던 대원들은 상황을 설장호에게 알렸고, 설장호는 힘없이 몸을 일으킨 뒤,
창문을 향해 아래를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국정원 차량에 급히 실려 가는 조동민을 보았다.
“조 팀장님도 당한 것입니까?”
강서진이 그의 옆으로 서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손에 들린 목발을 들어
강하게 벽을 향해 던져버렸다.
강서진은 그의 행동을 보며 놀랐지만, 그의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지금이라도 당장 북정마을 꼭대기로 인근에 있는 검찰 쪽과 경찰 쪽 형사들을 모두 올려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미끼를 물지 않고 도망간 이장두가 있기에 모두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떻게 되었나?”
한 편. 만석병원에서 설장호와 추선우를 제거하지 못한 채, 다시 빠져나온 이장두는 이수호에게
연락하였고, 이수호는 곧바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함정인 것을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장두는 그에게 보고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놈들을 그리 쉽게 죽일 수 있었다면 네가 나설 필요까지 없었겠지.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그보다
민광만을 비롯하여 나머지 놈들이 모두 내 손에서 떠났다. 그 놈들을 모조리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이수호는 그동안 자신의 돈으로 살아왔다 고해도 과언이 아닐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었다.
하지만 지금. 단 한사람도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만이라도 살고자, 스스로
이수호에 관한 정보를 넘기려는 이들도 보였다.
이에 이수호는 이장두에게 모두를 정리토록 명령 내렸다.
이장두는 국정원으로 보낸 다섯 명을 제외하고 또 다시 몇 부하들에게 이수호의 명령을 그대로 하달하였고,
그들은 전문적인 살생을 익힌 자들답게, 그 명령이 하달 된 후, 이수호의 뜻을 비켜나간 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석강수. 넌 원래 우리 조직에는 어울리지 않는 놈이었다.”


같은 시각. 북정마을 꼭대기에서는 백태와 석강수가 조우하였고, 백태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도 이런 조직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토록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몇
날을 그 회장자리라는 것에 앉아 생활하다보니, 권력을 맛을 제대로 알게 되더군.”
석강수는 백태를 보며 말한 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왜 갑자기 그들의 편에 섰나? 회장의 개로 살아가는 것이 싫어나?”
석강수의 말에 백태가 눈썹을 실룩거렸고, 곧 두 주먹을 꽉 쥐며 그에게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어차피…….너도 그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개 줄이 풀리고, 누군가에게 붙잡혀 간다면,
개주인은 그 개를 다시 찾지 않는다.”
백태는 이수호를 빗대어 말하였고, 석강수도 지금 백태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기에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개 줄이 없으니, 아무나 물어보겠다는 건가?”
“그래. 어차피 개장수에게 잡혀 죽을 처지라면 그동안 개같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개주인 이라도 한 번 물어보려 한다.”
‘착!’
백태는 그를 향해 말한 뒤, 더 빠르게 다가서며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석강수가 쉽게
피하면서 다시 거리가 좀 벌어졌지만, 이내 다시 다가서며 주먹과 발을 뻗어 석강수의 면상을 노리는
백태였다.
이로써 이수호의 아랫자리를 차지한 두 회장의 운명의 격전이 시작되면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인생을
끝내야 할 상황이 오게 되었다.

곧 추선우가 빌라 아래 도착하였고, 아래에 대기 중인 대원들을 보고 섰다.


“설 실장님께서 두 사람의 격전에 참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중, 누가 살아서
나오던, 그 살아서 나온 놈을 잡도록 명령 내렸습니다.”
대원들이 위로 오르지 않은 이유였다. 그들은 힘들게 주먹을 뻗지 않고, 그저 내려오는 놈을 손쉽게
잡기만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위를 올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기다리시면 됩니다. 굳이 올라서셔서…….”
“저 곳은 내가 살던 집입니다. 내 집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추선우는 대원의 말이 끝나기 전, 그를 향해보며 말한 뒤, 그대로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계단을 오르면서 2 층에 도착하였다. 은주의 집이었고, 문이 열려있었다.
마치 강제 철거되는 집처럼 가재도구가 다 흩어져 있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추선우를 그 집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은주에게 미안하였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곳곳에 묻어있는 피들을 보았다. 석강수를 상대하려던 대원들의 피라 여겨졌다.

‘쾅!’
그가 3 층에 올랐을 때, 옥상에서 큰 충격음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 위로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곧 옥상 문 앞에 도착하였고, 서서히 옥상을 상황이 그의 눈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추선우!”
“…….”
그를 반긴 인물은 석강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한손에는 백태의 멱살이 잡혀있었고, 석강수의 다른
손에는 조동민의 머리를 내려쳤던 쇠파이프가 들려있었다.
“이런 놈은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 없다. 내가 살고자함이니 이해해라.”
석강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보고 있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조동민팀장과 대원들 모두를 그 쇠파이프로 상대했나?”
추선우는 그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에 너무나 많은 피가 묻어나, 붉은색이 아닌 검붉은 색을 하고 있기에
물었다.
“말하지 않았나? 내가 살고자 함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퍽!’
“!!!”
그리고 이내 백태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다시 휘둘렀고, 백태는 그 충격에 머리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면서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이런 놈은 정말 어렵다. 덩치도 크고, 또 힘도 세지. 자칫 잘 못 받으면 그냥 한 방에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쳐야하지.”
석강수는 쓰러진 백태를 발로 밟으며, 그의 머리를 한 번 툭툭 친 뒤,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그만해라.”
“아니. 이런 놈은 죽어야한다. 비록 개같이 살았어도, 주인을 물면 바로 죽는 것이 개 같은 인생이야.
그러니 죽어야지.”
‘퍽!’
“…….”
백태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국정원장에게 결국 마지막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석강수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다.
국정원장과 설장호는 백태가 석강수와 비등한 일전을 벌일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석강수는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백태는 죽었다. 이미 조동민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정원 대원들이 죽거나 다쳤고, 백태마저 죽었지만, 석강수는 상처가 없었다.
“딱…….이 놈까지만 잡고 내려가려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왔으니, 너까지 여기서 정리하고,
병원에서는 설장호만 정리하도록 하겠다.”
석강수는 다시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조동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는 그는 쇠파이프를 이용하여 모두를
상대했다.
오히려 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석강수는 쇠파이프를 들어 이리저리 돌리면서 추선우를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를 보며
피하거나, 당황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이리저리 뱅뱅 돌고 있는 쇠파이프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석강수의 눈만을 보고
서 있었다.

‘띠리리리’
한 편. 침묵으로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왜?”
서지호였다.
-지금 상황에 대해 대통령님께서 궁금해 하십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차현태는 검찰총장이 직접 방송까지 하며 미끼를 던져놓았으니, 그 미끼를 누가 물었는지가 궁금하였다.
“상황이 좋지 않다.”
-무슨 뜻입니까?-
설장호는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만 내 보내고 있었다.
“그 한 놈이 누군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석강수와 이장두란 놈이 찾아왔었다.”
-석강수가요? 그 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지호는 이장두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석강수에 관한 것이 더 궁금하여 물었다.
“몰라. 그 놈을 상대하려 백태가 올라갔고, 추선우도 올라갔다.”
-네!? 그곳에 왜 백태가 있습니까? 백태는 지금 국정원에…….-
“자세한 것은 국정원장에게 물어보고, 난 지금 상황만 알려주는 거야.”
서지호가 백태에 관해 물으려하자, 그는 단번에 그에 대한 말은 자르고 자신이 할 말만을 하였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혹시…….부상자나 사망자는…….”
묻는 서지호도 말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아직 사망자에 대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자는 상당하다, 그 중에서…….태정민과
조동민의 상태가 심하다.”
-!!!-
서지호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었다. 은주에게 내용을 알려줘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 병원입니까? 제가 가보겠습니다.-
“**병원이야, 지금 우리 쪽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태정민에게는 네가 가라.”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는 곧바로 차현태에게 북정마을의 현황을 보고하였고, 그는 그 즉시 **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희생 없이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군.”
차현태는 서지호의 보고를 받은 후, 집무실 창문을 통해 푸른 잔디를 보며 중얼거렸다.

‘쾅!’
한 편. 석강수는 추선우를 상대하면서 여전히 쇠파이프를 들어 휘두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조동민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쳤기에 쉽게 제압하였고, 백태는 큰 덩치로 인하여 쇠파이프를 더 많이
맞았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달랐다. 그는 석강수가 휘두르는 쇠파이프가 어디로 향할지를 아는 듯, 정확하게 피하고
있었고, 오히려 힘을 들여 쇠파이프를 휘두른 석강수가 치쳐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넌 다르다. 지난 번 성남에서도 너를 겪었지만, 넌 역시 달라.”
석강수는 피가 묻어, 손이 점점 미끄러지는 쇠파이프를 보며 말했다.

‘땡그랑,’
그리고 이내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추선우와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놈을 잡고자 너무 힘을
주면서 쇠파이프를 빠르게 돌리다보니, 무수히 많이 뭍은 피로 인하여 손에서 계속하여 쇠파이프가
미끄러져 내려가니 답답하여 그냥 내려놓는 그였다.
“너와는 주먹과 주먹이 제격인 것 같다. 다시하자.”
석강수는 두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반대로 두 손을 풀었다.

============================ 작품 후기 ============================
2015 년이 이제 1 시간 정도 남았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021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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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쥐어라. 그래야 네 놈이 산다.”
석강수는 그의 손이 풀리자, 눈매를 매섭게 하며 말했다.
“아니…….굳이 네 놈의 상대로 주먹을 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추선우의 말에 석강수가 인상을 찌푸렸고, 곧 그를 향해 바로 움직였다.
제 아무리 여러 사람을 상대하고 그 중에서 백태까지 상대했다고해도, 석강수는 석강수였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은 마치 바람을 가르는 듯 한 소리를 내며 추선우의 눈앞을 스쳐갔고, 곧바로 이어지는
앞차기는 추선우의 복부를 정확하게 가격할 것 같았지만, 추선우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기에, 그의
발차기를 피한 뒤, 다시 자세를 잡아 섰다.
“피하기만 하면 나를 잡지 못한다. 너의 실력을 다시 보여라.”
석강수의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추선우는 그의 주먹을 피한 뒤, 몸을 돌려 팔 전체를 회전시키며
손등으로 그의 안면을 노렸지만, 석강수도 만만찮은 인물이기에 그의 공격을 피하면서, 다시 바닥을
쓸어내는 듯 다리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추선우의 뒤꿈치를 노렸다.
하지만 그 역시 몸을 뒤로 회전하며 피하였고, 약 10 초간 아주 빠르게 전개된 두 사람의 공격은 서로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다시 거리를 벌려놓고 있었다.

“넌 정말 확인이 필요한 인간이다. 내가 국정원에 있을 때, 수많은 놈들을 다 접했지만, 너같은 인간은


처음이다.”
석강수는 추선우의 움직임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석강수는 국정원 시절 대테러와 국제범죄조직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북한의 특수공작부대나 국제적 테러부대를 상대했던 그였지만, 추선우와 같이 이렇게 애를 먹이는 인물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세상에 나같은 놈은 나 뿐이다. 그리고 난 네가 상대했던 그들보다 강하지 않다. 다만...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추선우는 다시 주먹을 쥐며 말했고, 곧바로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추선우의 주먹은 처음과 다름없이 아주 매섭게 석강수의 면상을 노렸다. 하지만 석강수도 이미 입증된
인물이기에 평범한 주먹질은 그에게 전혀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주먹은 서로의 급소를 향해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뻗어졌지만, 서로의 주먹은 서로의 주먹에 또
다시 막히며 제대로 된 타격은 여전히 없었다.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한 편, 빌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국정원 대원들은 옥상을 향해 고개만 치켜들고 있을 뿐, 그
누구하나 위로 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설실장님의 명령이 따로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설장호의 명령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핑계가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석강수는...정말 상대하기 힘든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실장님. 북정마을로 오르겠습니다. 더 이상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석강수를 먼저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흘러가는 시간이 답답했던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답을 주지 않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조금 전에 세 사람이 건물 밖으로 떨어져 나갔으며, 한 때 시끄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북정마을 인근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석강수는 국정원에 있었던 놈이다. 그런 놈을 검찰과 경찰에 넘겨줄 수 없어.”
“지금은 그런 자존심따위를 치켜세울 때가 아닙니다! 이제 끝이 보이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리려 하십니까?
석강수는 그 누가 잡던 잡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놈을 잡아야합니다.”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큰 소리로 말했고, 설장호는 그녀를 보았다.

잠시동안 두 사람은 아무런 말없이 서로를 보고만 있었고, 곧 설장호가 시선을 먼저 돌려 창가를 향해
보았다.
“지금...국정원 대원들은 석강수를 생포하기 위해 대기중이다. 그러니 그를 생포해라. 죽이면 쉽지만
그를 죽이면 뒤에 숨은 놈을 끌어낼 수 없다.”
설장호는 허락하였다. 그리고 강서진은 바로 움직였다. 이동중에 검찰 쪽 형사들에게 연락하였고,
박태식에게도 연락하여 경찰병력까지 북정마을로 오르도록 하였다.
-실장님. 강검사가 북정마을로 움직입니다. 석강수를 검찰에 넘기시려는 것입니까?-
그녀의 움직임을 외부에서 본 국정원 대원들이 설장호에게 무전으로 바로 물었다.
“석강수는 생포한다. 그리고 그 생포는 국정원에서 직접한다. 너희들도 움직여라. 하지만 명심해라.
석강수는...절대 죽여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움직이면서 대기중이었던 모든 국정원 대원들도 북정마을로 올랐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까지 모두 한꺼번에 북정마을로 오르니 북정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탁탁탁 퍽!’
‘촤르르르르!’
“너 이새끼!”
‘퍽!’
‘쾅!’
옥상에서는 약 20 분이 넘는 접전 끝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타격이 나왔다.
추선우의 맹렬한 공격을 방어하고 피했지만, 그의 주먹에 이은 뒤돌려차기가 정확하게 석강수의 복부를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난 석강수가 다시 몸을 바로 세워 욕설을 내 뱉었지만, 이어지는
추선우의 공중 회축에 다시 한 번 얼굴을 내어주며 몸이 한반퀴 돌아 땅에 떨어졌다.
“젠장...총에 맞은 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석강수는 충격이 강하게 전달되었다. 얼굴이 얼얼할 정도이며, 턱이 돌아가버릴 정도의 강한 충격으로
입에서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며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은 후,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모두 올라선다!”
석강수가 다시 일어서며 추선우를 노려볼 때, 아래에서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원군이 올라오는군. 너와의 격전에 결판을 만들어야하는데, 이렇게되면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없게
되겠군.”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바로 선 채 말했다. 그리고 뒤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옥상 입구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그를 잡으려하지 않았다. 그가 물러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석강수!”
석강수가 옥상 난관에 서서 추선우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릴 때, 옥상 입구에서 강서진이 올라선 후,
그를 향해 총을 겨루며 소리쳤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 즉시 옥상난관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그 모습에 놀란 강서진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은 난관으로 향해 달렸다.
강서진은 가만히 서서 난관쪽을 보고 있는 추선우의 옆으로 섰다.
“괜찮...아요?”
그리고 물었다. 추선우는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또 다시 왼쪽 팔에는 피가 조금씩 고이기
시작하였다.

“어서내려가요. 가서 치료를 받고...”


“석강수...이번에는 꼭 잡습니다.”
“네?”
‘타타타닥’
“!!!”
강서진이 그의 팔에서 고이는 피를 보며 서둘러 병원으로 데려가려 하였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난관을
향해 있었고, 곧 이를 꽉 깨물고 말한 뒤, 난관을 향해 그대로 달려갔다.
“선우씨!”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그를 불렀지만, 이미 추선우의 몸은 난관에서 뛰어내리며 공중에서 날고 있었다.

‘탁!’ 데구르르.‘
그는 난관에서 뛰어내린 뒤, 바로 옆 건물의 낮은 옥상을 밟고 내렸고, 곧바로 다시 아래로 뛰어내리며,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저게 가능해?”
국정원 대원과 형사들은 그의행동을 보며 마치 와이어액션을 보는 듯 한 멍한 눈으로 보고만 있을 뿐, 그
누구하나 따라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추선우는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으며, 옥상 난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이 방법 또 한 수없이 해 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가 이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뭣들해! 어서 뒤쫒아!”
강서진은 국정원대원들과 형사들에게 큰소리로 말했고, 자신은 난관쪽으로 향해 저 멀리 골목
중간중간에서 모습이 보였다 사라졌다하는 추선우를 보았다.
“선우씨...”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음같아서는 그의 뒤를 따라 바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뿐 아니라 국정원대원들과 형사들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빌라를 내려가 다시 빌라를 돌고,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였고, 약 7 분 정도가 지나서야 추선우가


뛰어내렸던 그 골목길에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 시간이면 이미 북정마을을 모두 내려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석강수. 다음은 없다. 오늘 넌 나와 무조건 결판을 본다.”


추선우는 골목을 빠르게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퍽!’
‘쾅!’
북정마을 아래부분에 거의 다 내려온 후, 골목 모서리를 돌자마자 석강수의 주먹이 추선우의 면상을
그대로 가격하였고, 추선우의 몸은 뒤로 한 참을 밀려가 쌓아놓은 드럼통에 부딪혔다.
“역시 네가 따라 내려올 것이라 여겼다.”
석강수는 추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먼저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계속 시선을 돌려 뒤를 보았고,
난관에서 뛰어내리면 따라붙은 추선우를 직접 목격하며 골목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였다.
“이곳은 아주 제대로 만들어진 미로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주먹구구식으로 골목길이 형성된 것 같지만,
어떤 길로 가면 마을 아래까지 3 분이면가고, 어떤 길은 또 30 분을 내려와도 여전히 마을의 중턱까지
밖에 오지 못하는 길이 있지.”
석강수는 수없이 뻗어있는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즉. 너처럼 이 길을 잘 알고 있는 놈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우리 두 사람을 눈으로
보고도 이곳까지 쉽게 찾아올 만한 놈은 몇 없다는 말이다.”
석강수는 쓰러진 추선우의 곁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고, 추선우는 그가 다가서자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았다.
“저런. 팔에서 피가 고이는군. 저런 피는 잘 못 맞으면 지혈이 되지않아 쓰러질텐데 말이야.”
석강수는 그의 팔에서 원형으로 고이기 시작하는 피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이미 고광과의 결전때 너무 많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석강수는 그 때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 질 것을 미리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찾아!”
박태식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골목 전체를 내려보며 위치를 알려줄 수 있도록 추선우의
옥상에서 한 명이 남아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모두 내려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길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 강검사님이 계셨지.”
박태식은 이골목, 저골목을 돌며 해매다 곧 강서진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네.”
“지금 옥상입니까?”
“네.”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오히려 박태식은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다.
“잘 되었습니다. 골목으로 모두 내려와버리니, 추선우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곳에서 보시고,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박태식의 말에 강서진은 주저앉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 멀리 박태식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가
흔드는 손을 보았다.
강서진은 잠시동안 마을 아래를 내려보았다. 정말 개미집처럼 무수히 많은 골목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0021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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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마이크 주파수 3 으로 하겠습니다. 국정원대원이 곁에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강서진은 박태식의 말처럼 훤히 보이는 골목에서 추선우를 찾아 모두를 그리 움직이도록 하려하였다.
박태식은 경찰들에게 주파수를 알려주었고, 곧 국정원대원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검사들에게
주파수를 알려주었고, 모두는 강서진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강서진의 눈매는 다시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마을 중간중간부터 아래까지 자신의 말 한마디를 듣고
움직일 사람들을 보았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을 보며 그녀는 추선우를 찾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모습이 보인다면 그 자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탁탁 퍽!’
“제길! 골목이 좁으니 공격도 그렇고 반격도 쉽지않네!”
석강수는 좁은 골목 탓에, 추선우의 주먹을 막고 피하며, 잡아서 돌리려 하였지만, 골목의 폭이 좁아서
몸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라 피할 수 있는 그의 주먹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탁! 퍽퍽퍽!’
복부에 한 차례 공격을 허용한 후,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추선우가 다가서며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석강수의 손에 잡혔고, 곧 몸을 빠르게 일으킨 석강수가 머리로 추선우의 턱을
들이받은 후, 뒤로 밀려나며 휘청거리던 그의 면상을 두 차례 가격하며 뒤로 날려보냈다.
“골목이 좁아서 네 놈을 일격에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날려버리고 있는 것이 아깝다.”
석강수는 몸을 서서히 일으키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석강수의 주먹과 발은 의외로 폭을 넓게하여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골목의 폭이
좁아 주먹을 휘둘지도 못하고, 또 발차기는 더욱 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차기라면 오히려 추선우가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는 태권도가 주 기술이며, 그 외에 일부를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장 중요한 것은 추선우는...전통 싸움꾼이라, 굳이 골목의 폭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런 곳을 내가 택하긴 했지만, 막상 접하니 오히려 내가 더 손해 보는 장소인 것 같다.”
석강수는 골목을 내려오는 추선우를 급습한 상황이지만, 그 때를 잘 못 맞춘 것이라 말했다.
“괜찮다면 장소를 옮겨도 된다.”
“너무 자신하지마라. 네가 나를 꼭 이긴다는 말처럼 들린다.”
추선우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석강수는 두려움이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패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면서 두려움이란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절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이 겉으로 표현됨과 동시에 자신의 목은 그 자리에서
날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없어. 그 어디에도 선우 씨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강서진은 옥상에서 북정마을 곳곳을 다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추선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강 검사님. 추선우는 아직 인가요?-
강서진만큼 박태식도 답답하였다. 복잡한 골목을 이리저리 계속 돌아다녀도 그 길이 그 길처럼 보이니
추선우의 위치를 알고 바로 움직이기를 원했다.
“기다려 봐. 지금 찾고 있는데, 움직임이 없어. 보여야 뭘 말할 거잖아.”
강서진의 말처럼 두 사람이 움직여야 눈에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전혀 움직임이 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대화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소를 정해. 그곳이 어디든 응해준다.”


추선우는 다시 한 번 석강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다.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시간끌지말자,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잡고, 숨어있는 그 놈도 잡는다.”
추선우는 석강수를 잡을 자신이 이미 있는 어투였다.
“제길…….이거 기분 더럽군. 내가 고작 너 같은 놈에게 이리 끌려 다닐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를 처음 본 그 때, 난생처음 사람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으니 말이야.”
두 사람의 생각이 이제 정 반대가 되어버렸다. 석강수는 추선우를 애송이라 생각하고 그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추선우는 그를 처음 본 순간 두려움이 먼저 자신의 머릿속을 장악하였고, 몸이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았었다.
“그래…….기억나는군, 그 첫 만남이 이 근처 아니었나.”
석강수는 그를 처음 본 장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곳을 찾는다면 나를 따라와라.”
추선우는 그가 찾는 장소를 바로 알고 있었다. 이미 이곳의 골목은 추선우가 다 꿰뚫고 있는 곳이기에 그
장소를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 그 장소가 좋을 것 같군. 너를 처음 본 그 장소. 그 때의 느낌을 살려서 너와 다시 만나보고
싶군.”
석강수도 추선우가 말한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추선우는 곧바로 그 곳을 향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은 또 한 번 석강수가
무시당하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등 뒤에 두고 아무런 경계도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추선우의 등 뒤를 보며 인상이 찌푸려진
그였다.

“저기!”
순간 강서진의 눈에 추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고, 그녀의 목소리는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석강수의 귀에 들어갔다.
“강서진…….저 여자도 참 질기군.”
그는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면서 시선을 돌려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너의 입에서 그 딴 말을 들을 만큼 하찮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입에 담지마라.”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이를 깨문 어투로 말만하였다.
“박태식! 왼쪽 두 번째 아래쪽 골목이야 뛰어!”
강서진은 가장 근처에 있는 사람이 박태식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소리쳤다.
박태식은 그녀의 목소리를 이어마이크와 라이브로 직접 듣고 두 번째 아래 골목을 찾으려 이동하였다.
“제기랄. 무슨 놈의 골목이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어!”
박태식은 답답하였다. 석강수의 위치를 알아냈지만, 그곳을 가기가 이리 답답할지 몰랐다.
“진작 이 길좀 익혀둘 것을 그랬군.”
비단 박태식 뿐만은 아니었다. 인근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도 해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아무런 목적 없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골목이었다. 하지만 어떤 특정지역에
무엇을 찾아가기에는 이 골목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외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뭣들해! 이동하잖아!”
강서진은 석강수를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를 쫒지 못하는 것에 화가나 소리쳤다.
“추선우!”
그녀는 답답한 나머지 추선우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너를 부르는데 인사라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쓸데없는 신경쓰지마라. 네 놈을 잡은 후,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추선우는 골목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곧 석강수를 처음 만났던 그 곳에 도착하였다.
“기억나는군. 이쯤에 내가 서 있었고, 넌 이 중간에서 뛰쳐나왔지, 그리고 그 저 끝으로 설장호가 서
있었고 말이야.”
석강수는 그 때의 그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하자.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여기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냥 무릎을 꿇자.”
추선우가 아닌 석강수가 먼저 제안하였다. 그도 이제는 추선우와의 결판을 지으려는 듯하였다.
경찰과 국정원대원들은 다시 북정마을 위로 올라서고 일부는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경찰이고 국정원대원이라는 놈들이 한심하지 않아? 어떻게 이런 시점에 중요한 곳인 이곳의 지리를 전혀
익히지 않고, 이런 함정을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석강수는 이미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왔었다. 그리고 북정마을 위로 오른 이유도 따로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을 그는 미리 생각해둔 것이었다. 자신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굽이진 길 때문에 한 참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선명했다.
한번 두 번 본다고 익혀질 길도 아니었으니, 여차하면 북정마을위로 목표물을 끌어올리면 충분히 모두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석강수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그는 조동민을 비롯하여 백태까지 잡고도 지금 북정마을의 거의 아랫부분까지 아주
편하게 다 내려온 상황이었다.
“시작하자. 너무 말이 많으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으려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말했고, 그가 움직이자, 석강수도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슈욱!’
“!!!”
석강수는 추선우의 선재공격을 피하면서 곧바로 반격에 나서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다른
추선우의 선재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반격은커녕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추선우의 첫 번째 주먹은 허공을 갈랐지만, 곧 두 번째 발차기는 석강수의 복부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석강수는 다시 자세를 잡은 뒤, 추선우를 향해보았다. 그의 공격후 반격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를 상대했던 성남 펜션 뒷산과 삼성역뒷쪽, 그리고 북정마을 옥상. 모든 곳에서 주변에는 방해물이
있었다.
성남펜션에서는 나무가 주변에 나무가 있었고, 삼성역 뒤쪽에서는 병따개등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었다. 그리고 옥상에서는 빨랫줄이나, 기타 옥상에 있는 잡다한 물품이 많았었다.
이 모두가 완벽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한 방해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록 골목이지만, 추선우가 힘을 발휘하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는 공간이었다.
석강수는 지금 제대로 된 추선우를 접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추선우와는 전혀 다른 그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슈욱. 탁탁탁! 퍽퍽!’


‘쾅!’
석강수가 그의 움직임에 대해 주변을 보며 생각하고 있을 때, 추선우의 몸이 약간 뛰어오르더니,
공중에서 앞차기가 먼저 나왔고, 곧 발이 땅에 닿자마자, 옆차기와 돌려차기가 연달아 나오면서 석강수가
제대로 피하지 못한 상황에 몸이 약간 주춤거리자, 추선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따라붙어
나래차기로 그의 복부와 얼굴을 제대로 가격하였다.
“이건 뭐…….내가 샌드백이 된 기분이군.”
추선우의 나래차기는 태권도 선수들에게 맞는 것과 거의 흡사할 정도거나, 그 이상의 파워를 지니고 있는
발차기였다.
석강수는 복부와 얼굴에 가해진 충격이 꽤 강하게 전달되어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주저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일어나라. 이정도로 끝내기에는 너의 죄가 너무 크다.”
추선우는 주저앉은 석강수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고, 그 순간 석강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추선우!”
다시 한 번 강서진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추선우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방해꾼은 신경 쓰지 말자, 네가 하고싶은대로 그대로하자.”
석강수는 그가 자신의 곁으로 오도록 유인하는 듯 한 말을 하였다.

“거기…….뭐요?”
하지만 또 다른 방해꾼이 등장하면서 석강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정마을에서 내려오던 한 사내가 석강수가 주저앉은 곳의 바로 옆 골목에서 나오며 두 사람을 보았고,
놀란 눈을 한 채 묻자, 석강수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며 그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 작품 후기 ============================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0021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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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요?”
석강수는 그의 이름을 물어본 뒤, 추선우를 향해보았다.
“왜…….그러십니까?”
“왜 그러긴요. 당신을 인질로 삼아 저 놈의 머리를 쳐야하는데,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
석강수의 말에 사내는 놀란 눈으로 그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였지만, 석강수는 그의 손을 잡은 뒤, 곧바로
머리를 잡았고, 다시 그의 손을 잡았던 자신의 손을 풀어 그의 목을 그대로 잡았다.

“움직이면 목 비틀어진다. 조용히 있어.”


순식간이었다. 그는 국정원에서 대테러를 제압했던 인물답게, 평범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빠르면서
정확했다.
“마음을 바꿔야겠다. 너를 그냥 상대하는 것은 내 목을 내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놈을
이용해서 너를 잡아야겠다.”
석강수는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기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훈련을 겪은 인물이 바로 그였다.
“이제 다가와라. 하지만 섣부른 행동은하지마라. 네가 잘 못된 행동을 함과 동시에 이 죄 없는 인간의
목은 날아간다.”
“살려주…….”
“입 다물어라. 네가 잘못해도 목은 날아간다.”
석강수는 사내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며 말했고, 곧 사내가 자신의 목에 단검이 다가오자 소리치려
하였지만, 자신의 머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머리를 왼쪽으로 조금 빠르게 돌리며 멈춘 뒤 말하자,
그의 눈동자는 물론 추선우의 눈동자도 심하게 떨려왔다.
“어서 와라. 여기서 끝내자는 나와 너의 말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제 끝내자. 단…….무릎을 꿇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네가 된다.”
추선우는 생각지 못한 전개로 인하여 망설이고 있었다. 민간인을 구하자면 자신이 죽는다. 자신이
살고자한다면 민간인이 죽는다.
그리고 지금…….추선우 자신도 민간인이라는 것을 그는 잊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와라! 와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
“지랄하네! 무릎을 꿇는 새끼는 너야!”
“!!!”
석강수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말하자마자, 곧바로 추선우의 뒤에 있는 골목에서 강서진이 총을 꺼내들고
나오며 석강수를 향해 소리치자, 추선우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강서진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석강수를 노려보며 겨눈 총구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강서진. 네가 이토록 열정적인 검사였다는 것은 정말 몰랐었다. 너의 부모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곳에 시집가고, 편한 삶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처하는지 모르겠군.”
“시끄러 새끼야! 너 같은 놈한테 내 가정사에 관한 말까지 듣고 싶지 않아!”
“…….”
추선우는 그녀를 다시 보았다. 조금 거친 면이 있긴 하였지만, 지금처럼 이토록 거칠게 말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의외구나. 너같이 귀족집안의 공주처럼 자란 여인의 입에서 그리 거친 말들이 술술…….”


“시끄럽다고 했지!”
‘탕!’
“!!!”
모두가 놀란 눈이었다. 인질로 잡혀있는 민간인은 둘째 치고, 석강수와 추선우마저 놀란 눈으로 강서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 있는 듯하였다.

-실장님. 조금 전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강 검사님이 어디쯤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조금 전의 총소리로 인하여 국정원대원들이 설장호에게 연락하였고, 설장호는 목발을 집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라. 북정마을 입구 쪽 부터 다시 올라가면서 찾아!”
설장호는 그들에게 큰소리로 말한 뒤, 이내 이어마이크를 뽑아들며 바닥에 던져버렸다.
“함정을 만들었는데, 그 함정에 오히려 우리가 당한 꼴이 될 수도 있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고, 손은 힘이 꽉 들어가 핏줄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너무 그렇게 거칠게 하지마라. 민간인이 놀라잖아. 그러다가 이 사람이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리면
어찌하겠나.”
석강수는 강서진을 보며 건들거리는 어투로 말했고, 곧 추선우가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이동하였다.
“진정하세요.”
“진정요? 당신은 왜 그래요? 왜 당신 생각만해요!”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의 눈에 맺힌 눈물은 흔들거리고 있었고,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추선우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하…….이건 뭐 3 류 드라마도 아니고, 범인 잡다가 사랑놀이라니…….”
석강수는 두 사람을 보며 말한 뒤, 다시 자신의 손에 잡혀 벌벌 떨고 있는 민간인을 보았다.
“당신은 저들에게 관심 밖이야.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도 않지.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야.”
석강수는 민간인의 머리를 잡아 조금씩 비틀기 시작하며 말하였고, 이내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
그리고 그를 큰소리로 불렀다.
“여기서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이 사람은 살려보내주겠다.”
석강수가 다시 요구했다. 하지만 추선우의 매서운 눈빛만이 그를 향해 돌아서고 있을 뿐이었다.
“넌…….그냥 내 손에 죽는 거다. 그것밖에 너에게 해 줄 것이 없다.”
추선우는 강서진이 들고 있는 총을 살며시 내린 후, 그녀의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해 주었고,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면서 귓속말을 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곧 석강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가서면 이 사람은 죽는다.”
다시 말했지만, 추선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가! 내 말이 말같이 들리지 않아!”
석강수는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추선우가 그의 앞에서 살며시 몸을 낮추는 행동을 취하였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너희 같은 놈들에게는 이런 민간인 하나의 목숨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지.”
석강수는 추선우가 몸을 낮추자, 그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하여 웃으며 말했다.
“석강수. 너에게 내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뭐야!”
추선우는 몸을 낮추면서 그를 향해 말했고, 석강수는 화난 표정으로 소리친 뒤, 자신의 손에 잡힌
민간인의 머리를 잡아 강하게 비틀려 하였다.
“인질을 구하는 최선의 방법은…….인질을 쏴라.”
“!!!”
민간인의 머리를 꺾어 돌리려 할 때 들리는 강서진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어 강서진을 향해 보았다.
‘탕!’
“!!!”
고개를 들어 강서진을 보자마자, 그녀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굉음을 내며 총알이 발사되었고, 곧 칼을
들고 있던 석강수의 손이 뒤로 밀려나면서 잡고 있던 인질마저 놓쳤다.
“쓰레기 같은 새끼!”
‘퍽퍽퍽퍽!’
인질이 석강수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추선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석강수를 향해 주먹을 두 차례 내
지른 후, 그가 뒤로 밀려나자, 다시 그를 따라가 나래차기로 그의 복부와 얼굴을 다시 가격하였다.
‘쾅!’
석강수는 더 멀리 날아갔고, 곧 골목 끝 벽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정신을 잃었다.
“괜찮으십니까?”
강서진은 인질이었던 사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안부를 물었고, 사내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한 채,
그녀를 보며 글썽거리고 있었다.
“강 검사님!”
두 발의 총성을 들었고, 설장호의 명령처럼 북정마을 아래에서부터 다시 올라서던 사람들이 곧 현장에
도착하였고, 박태식이 총을 들고 민간인 앞에 서 있는 강서진을 불렀다.
“석강수는요?”
석강수를 묻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주시하였고,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추선우의 발아래
기절해 있는 석강수가 보이고 있었다.
“뭣들해! 석강수를 체포하고 민간인을 병원으로 옮긴다!”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이 큰소리로 말하자, 형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곧 국정원 대원들이 형사들로부터
석강수를 인도받았다.
“석강수는 우리 국정원에서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어차피 국정원에서 이 인간에게 물어볼 것이 우리보다 더 많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강서진은 기꺼이 그를 국정원에 넘겨주었다. 엄청난 인물이라 검찰에서 체포하면 그 공이 모두 강서진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설장호의 말대로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국정원에 석강수를 넘겼다.
“가요. 이제 병원에 가서 제발 치료 좀 받아요.”
강서진이 다시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고, 추선우는 그런 강서진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안았다.
“다음부터는…….이런 일에 끼어들지 마요.”
강서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추선우보다 더 멋지고 능력 있으며, 재력가인 사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백수이며, 통장잔고가 30 원이고, 당장 내일부터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한 젊은 사내의
앞에서 자신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자신을 느꼈다.
“자자! 우리는 철수한다. 모두 설장호 실장님에게 가서 상황보고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한다.”
박태식의 말이 이어졌고, 국정원 대원들도 그들을 인솔하는 대원이 국정원의 모든 대원들을 이끌고
설장호에게로 향하였다.
“그래? 석강수를 잡았단 말이야?”
“네. 그것도 추선우씨와 강서진검사가 합작으로 그 거물을 잡았습니다.”
잠시 후, 만석병원에 도착한 국정원 대원들과 박태식은 그 현장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두
사람밖에 없었고, 석강수가 쓰러져 있었으니, 두 사람이 그를 잡았을 것이라 여기며 설장호에게
상황보고를 하였다.
“두 사람은 어디에 있나?”
“잠시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고 왔습니다. 곧 올 것입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국정원 대원이 답했고, 설장호는 그제야 힘이 꽉 들어가 있던 손에 힘을 풀기 시작하면서
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러고 보면…….영월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놈들 중, 그 뭐냐, 장석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 검사님과 추선우씨가 잡은 거네요.”
모두 긴장이 풀리면서 박태식이 요 근래 있었던 일을 종합하여 말했다.
생각하니 그의 말이 맞았다. 유능하다는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국정원에서는 단 한 놈도 잡은 것이 없었다.
모두가 민간인인 추선우가 다 잡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석강수를 체포했으니,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심문하고 더
확인할 것이 있다면 확인하기 위하여 그 즉시 국정원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가 국정원으로 향하면서 만석병원과 북정마을 인근에 있었던 국정원 대원들 모두가 철수하였고.
형사들만이 병원 인근과 마을 인근에서 대기 중에 있었다.

“실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잠시 후, 병원으로 돌아온 추선우는 설장호가 보이지 않자, 만석에게 물었다.
“급히 해결할 일이 있다면서 국정원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괜찮아? 어디 상처 좀 보자.”
만석은 그의 질문에 답한 뒤, 그의 팔에서 붉게 번져나간 피를 보며 확인하려 하였다.

0021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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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요. 지금은…….”
“지금 해주세요. 나중은 무슨 놈의 나중! 당장 확인해요!”
추선우도 급히 국정원으로 향하려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에 의해 그의 행동은 딱 막혀버렸다.
만석은 강서진을 보며 당황하였지만, 이내 추선우의 팔을 보고, 그의 팔에 감긴 붕대를 풀고서 상처를
다시 보았다.
“이런…….대체 언제 나으려고 그래. 일단 다시 봉합 할 테니 기다려.”
또 터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지만, 추선우는 잘 버티면서 그 순간순간을 잘 넘기고도
있었다.
만석은 작전으로 인하여 병원 앞 커피숍에 대기 중이었던 병원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다시 들어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서둘러 추선우의 치료에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오늘은 쉬어요. 당신은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도의적인 책임이라
생각한다면 이미 충분히 했어요. 그러니 쉬어요.”
강서진은 치료를 위해 침대에 누운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추선우에게는 아무런 의무가 없다. 도의적인 책임이란 것도 사실은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 못한 것이 전혀 없는 입장에서 무슨 책임을 지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열 살의 꼬마 여자아이를 위해 그는 이 위험한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것뿐이었다.

석강수의 체포소식은 곧 국정원장은 물론, 차현태와 서지호에게도 알려졌다.


그 동안 가장 큰 걸림돌이라 여겼던 인물이 체포되면서 점점 이 사건의 결말이 보이는 것에 모두가 조금은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지호는 보고를 받은 후, 경호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경호원들을 보았다.
“태정민은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그가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경호실은. 마지막까지 임무지원을 하며, 태정민이 다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
짓는다.”
“네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다시 경호실을 나왔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태정민을 이미 만나고 왔었다.
이장두의 일격에 2 층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은 후, 아직까지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그를 두고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고, 이 일을 마무리 할 인원을 선출하였다.
이는 차현태의 명령도 있었으며, 자신의 뜻도 담겨있었고, 무엇보다 태정민의 뜻이 더 깊게 담겨있는
것이었다.
“식사와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신지요?”
서지호는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있는 곳으로 가, 그녀들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아실 테니, 그것부터 말씀해주세요.”
미희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은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은주는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두 손을 미세하게 떨었고, 아주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곧.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여기서 참고 견뎌주시기 바랍니다.”
“선우는요?”
“태팀장님은요?”
미희와 은주가 동시에 두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서지호는 두 여인을 번갈아가며 보았고, 곧
아무런 말없이 자신 앞에 서서 올려보고 있는 지현을 보았다.
“우리 쪽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모두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기 위하여 이곳에서 잘 견뎌주시기 바랍니다.”
서지호는 세 여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세 여인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추선우는 팔에 난 상처가 더 깊어졌고, 태정민은 혼수상태다. 차마 그 말을 이들에게 할 수 없었던
그였다.

서지호는 방에서 나와 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차현태가 보았고, 그는 서지호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힘든 일이지만, 이제 그 결과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우리 모두 소주나
한잔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는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고, 곧 일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석강수와 장석관을 모두 데리고 와.”


날이 저물었지만, 설장호는 국정원에 도착하자마자, 국정원장에게 상황보고를 마치고 곧바로 석강수와
장석관을 심문실로 데려오도록 명령 내렸다.
설장호가 먼저 자리하여 앉아 있었고, 국정원장 및 국정원 각 부처 차장들도 보호유리 안으로 들어선 채
설장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민광만과 백태를 죽이기 위하여 길을 열어준 제 1 차장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장석관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두 명의 국정원대원에 의해 설장호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설장호…….”
그는 설장호를 보자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를 보니 반가워서 그런 것이냐? 얼굴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인다.”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한 뒤,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철을 들어올렸다.
“그것으로 나를 치려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나보구나 설장호. 아무리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에는 인권단체란 아주 좋은 기관에서 인권보호를 해주지. 내가 만약 여기서 학대당하고…….”
‘퍽!’
“!!!”
장석관은 설장호의 행동을 보며 세상물정 어쩌고 하며 말하였지만, 설장호의 손에 들린 서류철은 그대로
내려와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저건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놈의 말처럼 이건 인권단체에서…….”
“조용히 하고 그냥 보고 계십시오. 1 차장님.”
1 차장이 설장호의 행동이 과하다고 여기며 몇 말을 하려 하였지만, 국정원장이 그의 말을 다 자르며
시선을 앞으로 두고 있었다.
“그런 말은 경찰서에서나 하는 것이지, 이런 국정원에서 그런 말이 통할 것이라고 보는가? 그것도 천하의
설장호 앞에서 말이야.”
곧 석강수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고, 장석관의 시선은 그를 향해 돌아섰다.
“잘도 살아있었구나. 설장호.”
석강수도 설장호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설장호를 이리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그 때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석강수.”
“후회? 뭐 후회라고 말하니 내가 한마디만 하겠다. 후회는 말이야…….내가 국정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때부터 내 인생을 후회하며 살아왔다.”
석강수는 설장호를 매섭게 보며 말한 뒤, 이내 표정을 풀고 다시 자세를 편히 잡아 앉았다.
“담배나 한 개비 태우고 시작하자. 추선우를 상대하느라 긴장했더니 니코틴이 당기는군.”
석강수는 자연스러웠다. 설장호는 옆에 서 있는 대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곧 석강수에게 담배를
물려주었다.
“너도 한 대 태워라. 여기서 태우지 못하면 이제 앞으로 담배를 입에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석관에게 담배연기를 내 뱉으며 말했고, 그는 쓴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너도 줄까?”
설장호는 장석관을 향해보며 물었다.
“나를 머저리 취급하는 것인가? 내가 비록 너희들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어 이리 잡혀왔다만, 내가 여기서
나가면…….”
‘퍽!’
장석관이 설장호를 노려보며 말하고 있을 때, 이번엔 석강수가 수갑을 찬 채로, 장석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담배나 태워 새끼야. 사람 말하는 것을 뭐로 들었냐? 이곳에서 쉽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어림없는
소리다. 특히 너 같은 놈은 말이야.”
석강수는 담배를 다시 한 모금 길게 들이마신 뒤, 내 뱉으며 그에게 말했고, 장석관은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끝내 석강수를 향해 주먹을 날리지는 못하였다.
“다 놀았나?”
설장호는 두 사람의 행동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조용하니 그들에게 물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하지말고, 묻고 싶은 것만 물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 답한다.”
“뭐야! 네가 감히 회장님에 대하 말하겠다는 것인가?”
석강수는 담배를 다 태운 후, 설장호의 말에 답했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석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앉아라. 어차피 모든 것은 끝난다. 너나 내가 말하지 않아도, 곧 그 놈이 누군지 설장호는 알아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설장호는 그런 놈이었으니까 말이야.”
석강수는 흥분하는 장석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설장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하였다.
“내가 묻기 전에, 너희들이 아는 것을 말해. 그럼 그 정도에 따라 선처해준다.”
“지랄하네! 너희들의 그런 얄팍한 꾐에 내가 넘어갈 것이라 생각해!”
설장호의 말에 장석관은 또 다시 흥분하며 소리쳤지만, 석강수는 가만히 앉은 채, 설장호를 보았다.
“사실. 내가 아는 것은 많이 없다. 난 고민국이라는 놈과 손잡으면서 이 자리에 올라섰지만, 굳이 내가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석강수는 설장호가 묻지도 않은 말에 대한 답을 차츰 하기 시작하였다.
“저 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저 놈은 우리 국정원을 배신하고 나간 놈입니다. 그러니 혹시나 저
놈이 다른 계획을 세워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정보를 흘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석강수의 입에서 고민국의 이름이 거론되자, 1 차장은 흥분하여 소리치며 석강수의 말을 거짓이라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왜 그러십니까? 1 차장님께서 이리 흥분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듣자하니 이번 임무에 1 차장님 휘하
대원들은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굳이 이리 흥분하여 나설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그의 대처가 조금 급한 것도 있었다. 하여 2 차장이 그를 보며 말하자, 1 차장은 다시 시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였고, 곧 국정원장이 그를 보았다.
“그냥 듣고 계십시오. 석강수가 하는 말이 함정이든 거짓말이든, 2 차장님의 말씀처럼 1 차장님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습니까?”
국정원장도 2 차장과 같은 말을 하였고, 1 차장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너에게 준 권력이 어디까지던가? 이 나라 각 부처 수장정도는 간단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이던가?”
설장호의 물음에 석강수의 시선이 보호유리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곳에 있을 국정원장과 각
부처 차장들을 보고 있었다.
“권력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각 부처 수장? 그래 그 부처가 어딘가에 따라 또 다르겠지.”
석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갑 찬 손을 한 채, 천천히 걸어 보호유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섰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국정원장과 각 부처 차장들을 고루 보는 듯한 시선을 하였다.
“고민국은 각 부처에 몸담고 있는 자신의 조직원을 관리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조직원이 아직도 백여
명이 남아있는 상태고 말이야.”
석강수는 조직의 비밀 중, 일부를 술술히 말하고 있었고, 그의 입이 열릴 때마다 장석관과 1 차장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지고 있었다.
“아마 국정원에도 아직 그 놈의 종자가 남아있겠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쾅!’
석강수는 보호유리 안에 있는 그들을 하나하나 보는 듯 하더니, 이내 유리를 손바닥으로 쾅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이자, 유리 안에 있던 사람들 중, 유독 1 차장만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는 행동을 취하였다.

0021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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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둘러봐라 장호야. 지금 이안에도 있을 수 있고, 또 그 부하가 네 놈일 수도 있잖아.”
석강수는 유리 안을 보면서 다시 시선을 돌려 설장호를 보고 말했다.
“좋은 말이다. 너의 말처럼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지, 나도 그 놈과 손잡았을 수도 있고, 또 여기 있는
대원들도 그럴 수 있지. 또 한 저 안에 있는 양반들도 그럴 수 있고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모두 인정하는 듯 말했고, 곧 목발을 집고 천천히 일어났다.
“석강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그 놈이 누군가?”
설장호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그에게 직접 물었고, 장석관과 1 차장의 눈빛이 심하게 떨리며 석강수를
보았다.
“그 놈이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그놈의 이름도 알아. 그런데 말이야. 내가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다 알려줘야 하지?”
석강수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앞으로 걸어가 그를 마주하여 서서 말했다.
“이유라…….너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앉아있도록 해준다면, 그 이유로 충분할까?”
“…….”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석강수는 잠시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하하하!”
그리고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국정원장님. 외부에 강서진검사와 추선우씨가 심문 장면을 볼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심문실에서는 석강수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보호유리 안으로 연결된 문이 열리며 한 대원이
국정원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들어오게 해.”
그는 흔쾌히 승낙하였고, 곧 보호유리 안으로 강서진과 추선우가 들어서자, 1 차장의 시선이 매섭게
변하였다.
반면에 2 차장과 3 차장은 추선우를 처음 보았고, 그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인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몸은 괜찮은가?”
국정원장이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이곳까지 들어온 사람 중, 민간인은 자네가 최초이자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네.”
“아 네…….”
국정원 심문실까지 민간인이 들어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라는 단
한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예외였다.
그에게는 충분히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특혜까지는 주어줘야 마땅한 지금이기도 하였다.
“나를 살려준다는 조건이라…….참 마음에 드는 답이다 설장호. 그런데 말이야. 혹시 추선우를 내가 한
번 더 볼 수 있는가?”
석강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다시 보며 물었다.
“그는 민간인이다.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민간인은 무슨. 오히려 그 놈이 더 국정원 대원 같고, 청와대 경호원 같으며 검사 같더라. 너희들보다
훨씬 낫다는 뜻이지.”
석강수는 국정원의 수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국정원을 싸잡아 흉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추선우라 국정원장의 시선이 추선우에게 돌아섰다.
“추선우를 안으로 들여보내줘.”
국정원장은 석강수의 뜻대로 추선우를 안으로 들여보내주려 하였다.
강서진은 그가 안으로 들어갈 때, 또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실장님, 추선우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설장호는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추선우가 병원치료중이라 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들여보내.”
설장호는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고, 석강수의 표정은 환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장석관은 추선우를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병원에서 그를 보았기는 하지만, 그때는 설장호로 인하여 그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순간이었다.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그런데 강 검사는 오지 않았나?”


“여기가 네 놈의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불러주는 곳은 아니다. 추선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설장호는 추선우의 옆으로 서며 석강수에게 말했다.

“역시 내 눈은 정확했다. 너를 처음 볼 때 그 눈빛. 넌 분명 크게 될 놈이라 생각했었지. 그리고 그 크게


될 놈은 곧 나를 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때 너를 치려하였다.”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발길이 추선우를 향해 움직일 때,
보호유리 안에 있던 강서진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두 손은 꼭 쥐어지고 있었다.
“너를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그 기회는 언젠가 다시 올 수 있을 것이기에 기다리겠다.”
그는 살벌하리만큼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여기서 살아나갔을 때, 가능한 말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니 꿈도꾸지마라.”


석강수의 차가운 말은 설장호가 단번에 잘라버렸다.
“뭐. 내가 생각도 너의 말과 별 반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인생사는 그 누구도 모르지 않는가.”
“더 이상의 쓸데없는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 하고픈 말만해라.”
추선우는 석강수를 노려보며 말했고, 그의 눈빛을 본 국정원장과 각 차장들은 추선우를 달리보고 있었다.

“이창민 대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 인연들. 이 인연의 끝을 보고 싶은 것 같은데, 그 끝에 선 놈에 대해


알려 주려한다.”
“!!!”
모두가 기다리던 말이지만, 장석관과 1 차장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누군가? 마지막에 숨어있는 놈이 누군가?”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그 놈이 살고 있는 곳과 이름정도. 그리고 허구한 날 여인네들 허벅지나 만지면서
살고 있는 그 모습들…….뭐 그 정도다.”
“녀석의 집과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그 놈을 잡을 수 있다. 누군가?”
설장호가 다시 재촉하였다.
“석강수! 네 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장석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곧 대원들의 힘에 의해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사는 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오피스텔이고, 이름은 이수호다.”


“!!!”
제대로 된 말이 나왔다. 장석관은 충격에 의해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고, 1 차장은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지금 즉시 위치확인하고, 대원들을 대기시킨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마지막 숨은 인물을 찾아내고 그를 잡아 법정에 세우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종결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급히 움직였다. 반면에 이제부터 석강수는 느긋해지고 있었다.
“네 놈…….언젠가는 네 놈의 목을 먼저 친다.”
장석관은 석강수를 노려보며 이를 깨물고 말했다.
“미친놈. 지금까지 너의 조직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이수호는 자신의 곁에서 떨어져 나간 놈의
목은 꼭 친다. 그것이 그 놈의 경호원이었던 네 놈이라도 말이야.”
석강수는 비겁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이수호에 관한 모든 것을 발설하였지만, 그는
비겁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일 수도 있었다.
“선처는 바라지 않는다. 그 놈이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니 뭐 살고자 하는 바람도 없다. 단지…….내가
죽는데 그 놈이 살아서 젊은 여인네들 허벅지를 만지며 사는 것을 보기 싫어서 그래.”
석강수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설장호는 지금의 정보를 곧바로 대원들에게 알리며 이수호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파악하도록 명령 내렸다.
석강수가 의외로 쉽게 정보를 유출하면서 국정원장도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 즉시 보호유리관
속에서 나와 국정원장실로 향하였고, 차장들도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홀로 남아서 유리너머 보이는 추선우를 보았다.
“자네는 이제 치료에 열중해. 곧 녀석을 잡고나면 지현을 봐야한다. 그런데 이런 상처 입은 팔로 지현을
안으면 그 어린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설장호는 추선우를 돌려보내려하였다. 마지막 인물이며,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한다면, 굳이
추선우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요. 선우씨는 가서 치료부터해요.”
강서진이 심문실로 들어서며 말했고, 석강수가 그녀를 보았다.
“강 검사. 정말 대단했어. 그렇게만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유능한 검사가 될 것 같더라.
열심히 해라.”
“시끄러 새끼야!”
“하하하!”
석강수의 말에 강서진은 그를 노려보며 격한 말을 내뱉었고, 석강수는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장석관. 너는 더 할 말이 없는가?”
설장호는 장석관에 대해서도 뭔가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이미 석강수가 준 정보만으로 이수호를 쳐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입이 열 개라도 회장님에 관한 정보를 줄 입은 없다.”
“기대하도 하지 않았다. 이미 석강수가 내 뱉은 말이 네 놈의 입에서 나올 말이었을 테니 말이야.”
설장호는 장석관에게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석강수를 감금실로 데리고 가고, 그에게 만찬을 제공해줘라. 그리고 담배도 태우고 싶다면 줘.”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좋은 정보를 준 대가를 확실히 지급해주고 있었다.
곧 석강수와 장석관은 따로 분리되어 감금되었고, 장석관은 석강수를 노려보았지만, 석강수는 마치
아무런 죄가 없는 듯, 자유로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실장님, 이수호에 관한 정보입니다.”


이름과 사는 곳이 밝혀지면서 이수호에 관한 정보는 순식간에 파악되었다.
“화려한 새끼네.”
그의 정보를 훑어보던 설장호가 말했고, 곧 추선우와 강서진도 그의 정보를 보았다.
두 사람은 아직 설장호의 명령대로 병원으로 향하지 않은 채, 그와 함께 이수호에 관한 정보를 보고
있었다.
“노인네가 나이쳐 먹고도 이런 삶을 살다니…….젊었을 때 얼마나 많은 권력을 쌓고 있었던 거야.”
설장호는 이수호의 나이와 그의 외모, 그리고 권력을 하나하나 보면서 말했고, 그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을 다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외동아들…….이 녀석이었군.”
그리고 이장두의 프로필에서는 아버지가 누군지 없었지만, 이수호의 프로필에서는 이장두에 관한 정보가
있었다.
“이 놈도 잡아야한다. 국정원 대원들을 다 움직여서라도 모조리 잡아낸다.”
“네.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마저 답하고 난 뒤, 빠르게 움직였고, 설장호는 다시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았다.
“이제 가라. 정말 가서 좀 쉬어. 더 이상의 관여는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
설장호는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강서진은 추선우의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마라. 지현이 원하는 결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결과를 꼭 만들어내겠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곧 강서진이 다시 그를 잡아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을 주면 말이야. 강 검사님의 부모님은 사윗감으로 학력이나 집안형편등을 보지 않는다.
아주 튼튼한 사내를 보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넌 아주 백점짜리 사위다. 그런데 지금처럼 상처 입은
모습으로 강 검사의 부모님을 만나면 100%로 퇴짜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똑바로 보며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강서진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설장호를 보았다.

0022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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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 검사 잘 부탁한다.”
그리고 추선우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이제는 추선우의 얼굴까지 붉어지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을 원외로 내 보내고,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중인 병원에 함께 집어넣고 치료를 감시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한 대원에게 명령 내렸고, 그는 추선우와 강서진을 데리고 국정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지금 바로 피하셔야 합니다. 석강수가 잡혀왔는데, 그 놈이 지금 설장호에게 회장님의 모든 것을 다


발설하였습니다.”
한 편. 1 차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가자마자 이수호에게 연락하였고, 이수호는 그의 전화를 받은 후,
눈동자를 떨기 시작하였다.
“지금 즉시 이곳을 벗어날 테니 채비해라.”
이수호는 통화를 끊은 후, 자신의 곁에 있는 비서와 여자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서둘러 이수호를 데리고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장에 도착하면 모두 대기한다. 필시 그놈에게 조금 전 있었던 모든 내용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우리를 마중하던지, 아니면 이미 그곳을 벗어났을 수도 있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함께 가면서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탈칵.’
같은 시각. 조금 전, 이수호에게 모든 정보를 다시 알려준 1 차장 사무실 문이 열리며 국정원장고 함께
2,3 차장과 국정원 대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일이십니까?”
1 차장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그의 물음에 국정원장은 대원에게 시선을 주었고, 한 대원은 USB 를 들고 회의테이블 앞에 놓인 모니터와
연결된 프로젝트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파일 중, 하나의 파일을 골라 재생버튼을 눌렀다.
“!!!”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었고, 그 영상을 접한 1 차장의 눈빛이 변하면서 서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당 영상은 1 차장이 이장두의 부하 다섯 명을 국정원건물 본관으로 들어서도록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자네가 그 이수호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조금 전에 그 놈에게 연락을
취했더군.”
1 차장은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았고, 곧 한 대원이 그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를
뺏다시피 하여 가져온 뒤, 국정원장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즉시 1 차장이 조금 전 전화한 번호가 어디로 이동 중인지 확인한 후, 설 실장에게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이미 그가 고민국이 뿌려놓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려주었다.
바로 마지막 한 놈에게 연락하면 그 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그 위치를 추적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의 생각대로 1 차장은 이수호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래? 그 GPS 화면을 우리 쪽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이 내린 명령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전달되었고, 설장호는 이미 이수호가 그곳을 벗어난 것을 알고,
GPS 화면에서 알려주고 있는 위치로 바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설장호를 막겠습니다.”

한 편, 이수호는 도피의 길에 접어들면서 이장두에게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알렸고, 이장두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이수호의 뒤를 쫒고 있을 설장호를 치기위하여 움직였다.
이장두의 부하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최정예라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장두의 명령이라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도 죽을 충성심을 가진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백태와
민광만을 죽이기 위하여 다시 나올 수 없는 국정원 안으로 망설이지 않고 들어서기도 하였다.
“지금 즉시, 회장님의 뒤를 쫓고 있는 설장호를 친다.”
“알겠습니다.”
이장두는 자신의 남은 부하 일곱 명에게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들은 그 즉시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장두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설장호…….네가 아버지를 쫓는다면, 난 너의 주위를 하나하나 다 쳐 나가겠다.”
이장두의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움직인다고 하여 이수호를 안전하게 도피시킬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하여 설장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의 주위를 모두 쳐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린 곳이 만석병원이었다. 이곳에서 함정을 만들었고, 그 함정에 의해 장석관이
잡혔으며, 무엇보다 석강수가 잡혀 모든 것을 발설하게 되었으니, 그 발단을 제공한 만석병원을 모두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실장님. 앞에 보이는 저 차량 같습니다.”


GPS 화면을 받은 후, 약 30 분이 지났을 때, 용의차량으로 보이는 차량을 발견하자, 대원이 설장호에게
손가락으로 해당차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밀어붙여.”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해당차량을 보며 말했다. 비록 그 안에 이수호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세워놓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같은 시각. 만석병원에서는 만석이 병원업무를 정리하고 퇴근하기 위하여 나섰다.
‘탈칵.’
그리고 이장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
만석은 이미 낮에 이장두를 보았기에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고서 뒷걸음을 쳤고, 만석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의사들이 이장두를 보며 다가섰다.
“이보세요! 누구신데…….”
‘픽!’
“!!!”
의사가 이장두의 앞에 서서 그를 막아 세우려 하였지만, 이장두는 망설임 없이 손에 든 총의 방아쇠를
당겼고, 의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우리가 죽으면…….너희들도 죽는 거다.”
‘픽!’
이장두는 만석을 향해 총을 쏜 뒤 잠시 그대로 서 있었고, 이내 병원을 정리하고 나오는 간호사들을
보았다.
‘픽픽픽!’
그리고 그녀들마저 모두 죽인 뒤, 유유히 병원을 나섰다.
“다음으로 아직 죽지 않은 네 친구들이다 설장호.”
이장두는 만석을 죽인 뒤, 홀로 중얼거리며 그곳을 벗어났다.

‘끽!’
“뭐야!”
한 편. 이수호가 탄 차량이라 확신하던 차량을 밀어붙이려 할 때, 갑자기 옆 차선에서 차량 한 대가
급하게 핸들을 꺾으며 설장호가 탄 차량으로 붙었고, 그에 놀란 대원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저 새끼들은 뭐야!”
설장호가 다시 소리치자, 해당 차량에서 창문이 열리며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차창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픽픽픽픽!’
“제기랄!”
그들은 망설임이라는 것이 없었다. 총구를 차장 밖으로 내보이지마자, 곧바로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여러
발을 총알이 차를 뚫고 안으로 들어섰고, 그 총알에 맞아 한 대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나머지 대원들은 해당차량을 따라붙어!”
현재는 설장호가 탄 차량에만 이상한 차량이 붙어 총을 쏘고 있기에, 나머지 두 대의 차량은 자유로웠다.
이에 설장호는 두 대의 차량에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앞서 달려가는 이수호의 차량을 계속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도로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지나다니는 차량들 속으로도 총알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언제나 불리한 상황은 이들의 몫이었다. 이수호의 부하들에게 민간인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지만,
국정원은 달랐다.
“우리가 쫓아가는 상황이니, 우리 마음대로 방향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쩔 수없다! 일정부분
민간인의 피해가 있더라도 녀석을 놓치지마라!”
설장호의 이런 명령은 처음이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민간인을 먼저 생각하였던 그가, 지금 이수호를
잡기 위하여 민간인을 뒤로 밀어낸 상황이 되었다.
“혼수상태에 있는 놈들을 죽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설장호에게 줄 선물은 마련해야지.”

같은 시각. 이장두가 도착한 곳은 태정민과 조동민, 그리고 석강수에게 당한 국정원 대원들이 입원한
병원이었다.
이장두는 차량을 주차한 후, 병원으로 들어섰고, 환자 안내판에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후 바로
움직였다.
해당 병실로 가는 길에는 몇 몇 국정원 대원들이 보이고 있었다.
이장두는 그들을 지나쳐가며 미소를 지었고, 병실을 향해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보통 사람은 이정도면 팔을 잘라내야 할 상황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사람이
상처가 그렇게 곪아 터져가는데도 연고 바르고 다시 봉합하면 끝이에요?”
이장두가 막 지나쳐간 복도 옆으로 추선우와 강서진이 나왔고, 강서진은 의사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의
팔을 보며 너무나 신기해하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태팀장님 좀 보고가요.”
추선우는 이 병원에 태정민이 입원한 것을 알기에 말했고, 강서진도 기꺼이 허락하였다.
두 사람은 그의 병실을 찾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장두는 승강기를 타고 5 층으로 이미 오르고
있었다.
이장두가 5 층에 도착하자, 1 층 로비보다 더 많은 국정원 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두가 승강기에서 나오자 그를 보는 눈빛들이 모두가 매서웠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곧 그의 앞으로 대원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병문안을 왔습니다.”
“이곳은 현재 민간인은 입원해있지 않습니다.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아니. 제대로 찾아왔다.”
“네?”
‘픽!’
“!!!”
이장두는 이미 5 층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앞에 있는 대원을 바로 죽인 후, 그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마저 꺼낸 뒤, 양쪽으로 있는
국정원대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그냥 승강기타고 가자니까요. 이렇게 계속 걸으면…….”
“5 층까지잖아요. 나이도 젊은데 이 정도는 걸어야죠.”
“하하…….그래요 그래. 젊어서 좋겠네요. 난 30 대고 선우씨는 아직 20 대니 말이에요.”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은 장난 섞인 말을 하였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5 층에 도착하였고, 곧 비상계단 문을 열고 5 층 복도로 나왔다.
“!!!”
그리고 두 사람은 멍하니 선 채, 5 층 복도를 보았다.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추선 우는 강서진의 손을 잡은 뒤, 자신의 뒤로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고양이 새끼처럼 그리 조심하여 걸을 필요 없다.”
“…….”
곧 이장두가 5 층 간호사실에서 나오며 말했고, 그의 손에는 두 자루의 권총이 들려있었으며, 온 몸에는
이미 피가 꽤 많이 묻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를 만나야했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주니 고맙다고 말해야겠군,”


이장두는 복도 중앙으로 서며 말한 뒤, 곧 자신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복도 바닥에 던졌다.
“넌 그냥 총으로 쏴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놈이다. 그리고 우리조직에 너무나 큰 피해를 줬으니,
그만큼의 대가를 돌려받고 네 놈을 죽여야 내 적성이 풀릴 것 같다.”
이장두는 총을 버리고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00221 경호원 =====================================================================


====
                          
“어서 내려가세요. 내려가셔서 지원요청하시고, 설 실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세요.”
추선우는 이장두가 풍기는 기세가 남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그의 느낌은 석강수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다고 할 정도였다.
강서진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계속하여 위도 함께 올려보고 있었다.
추선우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곁에있는다고 도움 될 것도 아니었다. 또 한 그저 병문안
차 온 것이기에, 그녀는 총도 가져오지 않았다.

“5 층에 이장두가 나타났습니다!”
강서진은 비상계단을 통해 1 층에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외쳤고, 1 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보았다.
“…….”
강서진은 아무런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분명 국정원 대원들이 로비에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디에도 국정원 대원들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무슨 일이죠? 5 층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입니까?”
“네? 아 네. 5 층에 살인사건이에요. 지금 살인마가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있어요!”
강서진은 국정원 대원이 있든 없던 소리쳤고, 이에 병원관계자들은 경비를 불러 5 층을 확인하기로 하였다.
강서진은 전화기를 꺼내들었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띠릴리리’
“무슨 일이야? 급한 것 아니면 다음에…….”
-이장두가…….이장두가 병원에 나타났습니다.-
“!!!”
설장호는 지금 이장두가 보낸 최정예 요원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다 이장두가
병원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듯 하였다.
“차 세워.”
“네?”
“차 세워!”
설장호는 차량을 세웠다. 눈앞에 이수호가 있지만, 그를 버려두고 차를 세웠다.
도로 한 복판에 차량이 멈추자, 그 뒤로 따라오던 많은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내 뱉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가 탄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실장님.”
대원이 그를 불렀다.
“지금 즉시 **병원으로 간다.”
“네? 그곳은 왜…….”
“그곳에 이장두가 나타났다.”
설장호의 말을 듣고 대원들이 놀라기는 하였지만, 순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명령을 바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앞쪽에 이수호가 있습니다. 지금 놓치면 그를 언제 또 찾을지 알 수 없습니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는 앞쪽을 주시하였다. 그리고 다시 강서진의 통화내용을 생각하였다.
“이 차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차량은 모두 이수호의 뒤를 쫒는다. 그리고 절대 명심해라,”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전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절대 명심해라. 난 내 새끼들 죽는 것을 볼 수 없다. 죽지마라. 죽기 전에 녀석을 죽여라. 그것이 내
명령이다.”
대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죽이라는 말을 할 정도면, 그
만큼 악이 받쳐있다는 것과 같았다.
“이 차량은 **병원으로 향한다. 어서 움직여.”
설장호는 이수호를 쫓지 않았다. 그를 눈앞에서 버려두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태정민도 있고,
조동민도 있다. 또 국정원 대원들도 있다.
그리고 추선우와 강서진도 있다. 즉 설장호가 근 한 달간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너무나 잘 알게 된
모두가 그곳에 있기에 그는 그곳을 향해 갔다.
강서진은 1 층 로비를 다시 돌아보았다. 정말 단 한명의 국정원 대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강서진 검사님?”
곧 한 사내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잠시…….이쪽으로.”
“누구…….십니까?”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5 층에 오른 놈을 잡기 위하여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로비에 아무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그랬군요.”
강서진은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해소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았고, 그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는 듯
한 행동을 하였다.
“이장두가 혼자 온 것입니까?”
강서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를 보며 물었다.
“혼자 왔습니다. 주변 어디에도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5 층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과 태정민 팀장을 노리고 접근한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현재의 상황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추선우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5 층으로 간 것입니까?”
“네. 그래서 지금 바로 지원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사내는 곧바로 주변 사람들을 보며 신호를 보냈고, 그의 신호를 받은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그가 하는 행동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신호를 받은 대원들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정원 대원들이 아니야.’
강서진은 홀로 생각하였다. 자신이 병원에 왔을 때 1 층 로비에 있던 국정원 대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주고받는 수신호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신호였다.
“일단. 강 검사님께서는 저희 대원들과 함께 계십시오. 추선우씨의 지원은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강서진도 함께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국정원 대원은 그녀를 다른 대원에게 인도하며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추선우씨는…….”
“이장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회장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조동민, 그리고
추선우씨를 죽여야 하니, 그만큼의 준비를 하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립시오.”
대원은 강서진의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다른 대원에게 다시 신호를 주었고, 그 대원은 강서진의 양 팔을
잡은 채 뒤로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강서진은 조금 전 대원 한 말을 들으며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기 시작하였다.
이장두가 나타났다는 말은 전하였지만, 대원의 입에서 회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들은 자신을 돕고자
온 것이 아니라, 추선우를 잡고자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서진은 그 순간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 안면이 있는 국정원 대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저희들과 함께 일단 병원을 벗어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원은 강서진을 데리고 지하주차장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그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여기를 나서야한다. 추선우씨가 위험해.’


강서진은 홀로 중얼거리며 자신과 함께 걷는 두 명의 사내를 보았다.
꽤 많은 인원이 보였지만, 그들은 모두가 5 층으로 올랐고, 강서진을 데리고 병원을 벗어난다는 대원은 두
명이었다.
“저…….잠시, 병원 안내데스크에 신분증을 두고 왔습니다.”
“저희들이 잠시 후,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아니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지금 여기에 추선우씨는 물론
태팀장과 조팀장님도 모두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혼자 갈 수는 없어요.”
강서진은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서 가려 하였다.
‘탁!’
그 순간 사내가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은 뒤, 뒤돌려 세웠다.

“무슨 짓입니까!”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강서진은 버럭 소리치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냥 좋게 좋게 물러나십시오. 강 검사님이야 특별히 우리와 악연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선처를 해 주는 것입니다.”
“!!!”
그들의 본심이 드러났다. 강서진은 이미 처음 이 병원에 들어섰을 때 보았던 국정원 대원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부터 이들을 의심하였다.
마치 지난 날 수원 연화장에서 경찰과 국정원 대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처음 보는 이들이 접근했을
때와 같은 경우였다.
“당신들 누구야?”
“이미 예측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점차 강서진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고, 강서진은 지하주차장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도 없네.’
하필이면 지하주차장에 사람이라고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형병원인데 주차장에 사람이 없으니 이상하죠? 이 모든 것도 이미 다 수를 써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살고 싶으시다면…….”
“지랄하고 있네!”
“!!!”
‘픽픽픽픽!’
한 사내의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곧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와
강서진의 주변에 있는 이들을 단숨에 쓰러뜨리고 있었다.
강서진은 곧바로 몸을 돌려 뒤로 돌아보았고, 곧 입가에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박형사님.”
“강 검사님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위로 올라가 모조리 죽여 버려!”
박태식이 소리쳤다. 그의 명령에 형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박태식은 강서진의 앞으로 섰다.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언제부터 여기 계셨습니까?”
강서진은 박태식의 출현이 무척 반가웠다.
“서지호 실장이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이미 한 차례 모두를 속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여 저에게 경찰병력을 이끌고 이 병원에서 기다려보라고 하였습니다.”
박태식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처럼 수원연화장에서부터 최기수는 물론 최근
민광만까지 모두 국정원 안에서 죽었기에 그들의 뿌리는 아직도 국정원에 남아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서 실장님이요?”
“네. 태정민이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서 실장님이 특별히 정민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써 달라는 당부를 하였습니다.”
박태식은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1 층 로비와 병원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국정원 애들은 모두 잠재웠습니다. 그러니 5 층에 올라섰던
놈들을 정리하면 됩니다.”
박태식은 승강기로 이동하며 말했다.

“이곳에 태정민과 조동민이 있다. 그리고 이제 너까지 있지. 즉. 설장호의 식구들이 다 모여 있다고 봐도
되는 순간이지.”
한 편, 이장두는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해있는 병실 앞에서 추선우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빼고, 나와 놀아보자. 어차피 저 두 사람이야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죽일 수 있잖아.”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그제야 이장두의 시선은 추선우에게로 향하였다.
“네가 그리 강한가?”
이장두는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0022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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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강하다고 말한 적 없다. 단지 네 놈들 같은 쓰레기를 치우고자하니 절로 강해지는
것뿐이겠지.”
추선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앞으로 더 다가서며 말했고, 곧 이장두도 추선우를 보며 바로 섰다.

‘슉!’
추선우는 그의 앞, 약 5 미터 정도를 두고 조금 더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그를 향해 몸을 띄워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이장두는 그의 주먹을 쉽게 피하였고, 그 뒤로 이어지는 추선우의 주먹질과 발차기도 너무나 쉽게
피하고 있었다.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고광과 장태, 그리고 석강수까지 잡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이장두는 추선우의 주먹과 발차기를 모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순간순간 맞춰서 다 피하고 있었다.
막는 것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그의 공격이 있은 후, 반격하는 것도 없었다.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곧 이장두의 수하들이 5 층으로 올라서며 말하였다.

‘띵!’
그리고 곧바로 승강기가 5 층에 멈추었고, 그 안에서 박태식과 강서진, 그리고 형사들이 또 다른
승강기에서 내렸다.
“이곳에는 쓰레기가 많네. 모두 청소 좀 할까.”
박태식이 5 층 복도, 중앙으로 나서며 좌우를 본 후 말했고, 곧 형사들도 모두 두 주먹을 꽉 쥔 후,
이장두쪽을 본 뒤, 다시 그의 부하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보았다.
“추선우! 이쪽은 우리가 막겠다. 그 놈만 잡아!”
박태식은 추선우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오로지 이장두만을 보고 서
있었다.
“공평해지는군. 나도 애초부터 내 부하들이 이 싸움에 끼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데 저 형사 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이장두는 박태식을 보며 말했고, 그의 옆으로 서 있는 강서진을 보았다.
“강 검사가 올라온 것을 보니, 그녀를 죽이도록 내린 명령은 실패한 모양이군.”
이장두는 멀쩡하게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말한 뒤,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있는 것도 보았다.
매서웠고, 날카로웠다. 꽉 쥔 두 주먹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악을 품은 것인가?”
“그래. 네 놈을 죽여야만 풀리는 악을 품었다.”
추선우는 다시 그를 향해 움직이며 답했고, 좁은 복도에서 이어지는 추선우의 화려한 움직임이었지만,
이장두는 그의 모든 공격을 다 피하면서 여전히 맞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회장님. 뒤 따라오던 차량의 숫자가 줄었습니다.”


한 편. 이수호를 경호하던 사내가 그에게 보고하였고, 그제야 이수호는 의자에 몸을 파 묻으며 편한
자세로 앉았다.
“이대로 끝이라 생각했는데, 연명되는군.”
이수호는 자신의 목숨이 더 연장된 것에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따라오는 몇 대의 차량은 뒤에 있는 애들에게 맡기고 회장님의 별장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회장은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답하였다.

“모두 태정민과 조동민의 병실로 이동한다. 이동 중, 눈에 거슬리는 놈은 무조건 잡아!”


설장호는 병원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는 대원들에게 소리쳤고, 그는 여전히 목발을 짚은 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아직 박태식에게 잡히지 않은 몇 명의 눈에 들어갔고, 곧바로 그 상황을 5 층으로
알리려 하였다.
“동작 그만. 움직이면 목 날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도 이미 설장호의 대원들이 다가섰다. 설장호는 병원으로 바로 들어서는 차량 외에도,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지상주차장은 물론, 병원 로비로 들어서는 주변에 있을 의심쩍은 이들을 모두
찾도록 명령을 내려두었다.
“국정원에서 숨은 놈이 많긴 많았나보군.”
그들을 잡긴 하였지만, 그들이 국정원 대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모두 연행해!”
설장호가 병원로비로 들어서자, 곧 로비에서 형사들이 몇 명의 국정원 대원들을 끌고, 수갑을 채운 채
나오는 장면이 그의 눈에 보였다.
“무슨 일인가?”
설장호가 물었다. 형사는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모두 말해주었고,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이
국정원 대원들에게로 향하였다.
“이 새끼들을 모두 국정원으로 보내주게. 모조리 목을 쳐 내버릴 것이네.”
“아…….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음성에 형사들마저 간담이 서늘해진 느낌을 받으며 답했다.
설장호는 다시 5 층을 향해 움직였고, 곧 그가 탄 승강기기 5 층에 도착하였다.
“설 실장님.”
박태식이 그를 보며 인상하였지만, 강서진의 시선은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오로지 이장두를 상대하고
있는 추선우에게 향해 있었다.
“뭐하는 건가?”
설장호도 두 사람의 격전을 보고 있었다. 추선우의 현란한 움직임과, 그 보다 더 현란한 움직임으로 그의
공격을 피하며, 가끔 반격을 가하는 이장두를 보며 물었다.
“저 놈이 총을 내려놓고, 추선우와 정면 승부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장난하고 있을 때인가? 저 새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더 죽여야 정신 차릴 것인가!”
박태식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설장호에게는 여유 따윈 없었다. 그의 엄청난 고함소리에 격전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추선우. 뒤로 물러나라. 너에게 상처치료를 받도록 병원에 보낸 것이지, 병원에서 저 놈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곧 이장두는 다가서는 설장호를 보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설장호, 아직은 네 차례가 아니다. 넌 기다려라. 너에게는 이 보다 더 강한 벌을 내려줘야하니
말이야.”
이장두는 조금 더 뒤로 물러서며 말하였지만, 설장호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척!’
그리고 총을 빼 들고, 정확하게 이장두를 겨냥하였다.
“강한 벌? 미친 새끼. 그 벌은 내가 아니라 네 놈이 받는 것이다.”
‘픽픽픽픽!’
설장호는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말에 답을 준 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미 뒤로 물러나면서 자신이 피할 곳을 찾은 이장두는 곧바로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총알은 그 문에 박히며 그를 명중시키지 못하였다.
“뭣들해! 어서 잡아!”
설장호가 소리쳤다. 그는 목발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였지만, 추선우는 물론 박태식과 강서진까지
있는 마당에 모두가 그를 멍하니 보고 있는 것에 소리쳤다.
박태식이 형사들을 이끌고 바로 움직였고, 강서진은 곧바로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제 물러나요. 정말 당신이 할 일이 아니에요.”


강서진이 다시 말했고, 곧 그의 옆으로 설장호가 나란히 섰다.
“누나 말 잘 들어라. 넌 이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 네 놈을 챙겨. 넌 충분히…….아니 그
누구보다 더 이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한 놈이다.”
설장호는 어렵게 한 손을 목발에서 뗀 뒤,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곧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 문 앞으로 섰다.
“…….”
설장호는 아무런 말없이 병실 안을 보고 있었고, 추선우와 강서진이 그의 표정을 보며 병실 앞으로 갔다.

“저 새끼는 무슨 액션영화배우야? 여기 5 층에서 저딴 짓을 어떻게 하지.”


박태식이 창가에 서서 병실을 보고 있는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추선우가 창가로 다가서며 물었다.
“곧바로 따라 들어왔는데, 여기서 뛰어내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그리고 얼마나 빠른지,
뛰어내리고도 지금 보이지가 않아.”
박태식은 다시 아래를 보며 말했지만, 추선우의 눈빛은 그 아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녀석은 이곳에서 뛰어내려 1 층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뭐?”
“바로 아래층입니다. 지금 즉시 4 층으로 움직이십시오.”
추선우가 다시 움직이며 말했고, 박태식이 그의 말을 들은 후, 아래를 보자, 정말 4 층의 유리가
깨져있었다.

‘탁.’
추선우가 다시 4 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설장호가 문 앞을 나서는 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태정민과 조동민을 부탁한다.”
“…….”
설장호의 나지막한 말이었다. 추선우는 그의 말에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곧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이런 소란 속에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강서진. 추선우와 함께 있는다. 박형사. 나와 함께 그 놈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병실을 나섰다. 목발을 짚고 몸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르게 이동하며 이장두를
잡고자 움직였다.
추선우는 병실 문 앞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보았고, 곧 강서진이 그의 뒤로 다가서며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보지마세요. 당신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뒤로 바짝 다가와 그의 눈 눈을 가린 손을 내리며, 그를 앉은 채 말했다.

추선우는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안은 강서진의 손을 잡았다.


‘띠리리리.’
“어떻게 됐어?”
설장호는 이장두를 잡고자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고, 곧 휴대전화가 울리자마자 받은 후 물었다.
-죄송합니다, 이수호의 가까이 붙었으나, 그의 부하들이 붙는 바람에 그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금 즉시 GPS 를 확인해라, 이수호가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의 휴대전화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굳은 표정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변해갔다. 이수호를 앞에 두고, 태정민과 조동민, 그리고
추선우를 구하고자 그를 버려두고 왔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장두를 눈앞에서 보란 듯이 놓치고 말았다.
거의 끝을 향해 온 것 같지만, 그 끝을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그였다.
“실장님. 이장두는 이미 병원을 벗어난 듯합니다.”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어렵게 이동하고 있었고, 곧 그보다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대원들이 다시
올라오며 그에게 보고하였다.
설장호와 함께 움직였던 국정원 대원들이 병원 인근으로 진을 치고 있지만, 이미 이장두를 한 번 겪어 본
설장호는 그가 충분히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병원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겼다.
설장호는 힘들게 아래층으로 내려왔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5 층으로…….”
“아니다. 로비로 갈 테니 주변을 다시 확인하라. 그리고 박태식을 불러.”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5 층으로 오르지 않고, 1 층으로 내려갔다. 병원 1 층 로비 한쪽으로 마련된 작은 커피숍에 앉은
그는 곧 자신을 찾아온 박태식을 맞이하였다.
“이장두고 여기로 왔다는 것은 이미 태정민과 조동민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장호는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지호 실장이 병원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듣고, 다른 의문
없이 그 명령에 따랐습니다.”
박태식은 서지호의 명령을 설장호에게 말하였다.

00223 경호원 =====================================================================


====
                          

“서지호가 우리 국정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군.”


“사실…….연화장을 생각하면, 서지호 실장의 명령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편입니다.”
설장호의 기분이 충분히 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태식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느낀 그
생각 그대로를 그에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겠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이곳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네? 그럼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박태식은 두 사람이 입원중이 이 병원에 관한 것을 묻는다고 여겼다. 추선우마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겼다.
“이장두는 이수호의 외동아들이다. 즉. 이수호를 살리기 위하여 그는 최악의 발악도 할 것이다.”
박태식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그를 보고만 있었다.
“이장두가 설실장님은 물론, 추선우씨와 정민이, 그리고 강 검사의 주변을 치면서, 이수호에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박태식은 정확하게 설장호가 듣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이수호는 이장두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내 놓지 않겠지만, 이장두는 지금 자신을 내놓고 이수호를
살리려하고 있어.”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을 다시 보았다.
“자네는 지금 이시간부로 추선우와 강서진에게 붙어있어. 강서진이 추선우에게 빠져있어 그녀가 제대로
이번 임무를 수행하기는 힘들어. 반면에 추선우는 이장두를 꼭 잡으려 할 것이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붙어 있겠습니다.”
박태식은 그에게 답한 후, 곧바로 5 층으로 향하였다.
설장호는 이장두를 더 찾아보도록 명령 내렸고, 이수호의 위치가 확인 될 때까지 병원에 있으려 하였다.

‘띠리리리’
1 층 로비에서 창가를 보고 있던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북정마을입니다. 지금 만석병원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장호는 이장두가 추선우는 물론, 자신의 주변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석병원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국정원 대원에게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눈동자는 만석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북정마을로 간다.”
설장호는 추선우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움직였다.

“어떻게 된 것인가?”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설장호는 국정원 대원에게 물었고, 이미 꽤 많은 형사들이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확보한 CCTV 영상이 있습니다.”
국정원 대원이 원장실로 향하며 말했고, 원장실에는 형사들이 먼저 와 있었지만, 설장호가 도착하자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들은 이미 상부의 지시를 받은 이들이기에, 사건 해결의 우선권을 설장호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설장호는 CCTV 를 보았다.
“이장두…….”
이장두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그는 만석병원의 관계자는 물론,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환자고 뭐고를 구분하지 않고 다 죽이고 있었다.
“독한 놈입니다.”
영상을 함께 보던 대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새끼…….꼭 잡아라. 그리고 이 새끼 주변 인물도 잡아. 이놈과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잡아.”
“하지만 그들은 죄가…….”
“이런 미친 새끼를 알고 있다는 것이 죄다. 무조건 잡아.”
설장호는 CCTV 영상을 보며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대원의 말처럼 이장두의 주변사람은 아무런 잘 못이 없다. 그들을 잡아 응징할 수 있는 명분이 없는
상황에 무턱대고 잡아들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일단 연락해서 이장두의 연관된 놈들을 모두 확인하고 잡아들여.”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였고, 함께 있던 형사들도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CCTV 영상을 재생하여 보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놈이 잔인하다고 말해도, 지금 영상 속
이장두와 비교하면 천사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띠리리리’
“뭐야?”
-이수호의 위치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간다. 대원들 대기시켜.”
설장호는 대원의 연락을 받고 바로 움직였다. 만석병원의 영상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 거리며 재생되고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대원들과 함께 이수호가 있는 곳으로 직접 향하기 시작하였다.

“병원에 알아보니,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더군. 푹쉬고 진료 잘 받으면 곧 일어 날 거라고
하더군.”
한 편. 박태식은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조동민의 옆에
앉아 있었고, 곧 박태식이 병원관계자를 만난 후, 그 내용을 두 사람에게 알렸다.
“설 실장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추선우는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을 본 후, 박태식에게 물었다.
“뻔하지. 이수호를 잡겠다고 저리 설치고 다니는데, 이쪽으로 오는 바람에 눈앞에서 이수호를 보낸
모양이더라고.”
“…….”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강서진이 설장호에게 연락했을 때, 그 순간 설장호가 이수호를 쫓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 강서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박태식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설장호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그녀였다.
그리고 설장호가 이수호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눈앞에서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으로 하여금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래도 강 검사와 추선우씨는 걱정 말고 이 두 사람 곁에 있어. 이미 설 실장님이 다시 이수호를 쫓기
시작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박태식은 강서진의 표정을 보며 말했고,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만석병원의 일은 알지 못하기에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설장호…….넌 가장 마지막이다 기다려라.”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찾고 있었던 이장두는 병원을 나서지 않았다.
그는 추선우의 추측처럼 4 층 아래로 바로 들어선 뒤, 곧바로 승강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섰다.
설장호를 비롯하여 국정원 대원들은 그가 4 층으로 내려간 것이기에,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심리를 이용하여, 아래가 아닌 위로 다시 올라서며 모두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상황이 종료되면서 그는 옥상에서 모습을 보이며, 난관에 서서 아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이건 뭐. 몇날 며칠을 굶고사는 것 같으니, 배가 너무 고프네.”
“식사하고 오십시오.”
“아냐. 설 실장님의 명령이야. 두 사람과 함께 움직여라는 명령. 그래서 배가고파도 함께 가면 먹을 수
있지만, 나 혼자 갈 수가 없어.”
박태식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그래요. 우리도 밥을 먹고와요. 조금 전 있었던 일로 인하여 병원에서도 경비원이 더 많이 배치되었고,
또 형사들도 이 병실 앞을 지키고 있으니, 허기를 달래고 와요.”
박태식은 강서진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고, 곧 답을 해야 하는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전, 아직…….”
“일어나요. 가서 먹고와요.”
추선우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강서진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병실을 나섰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의사들 외에는 누구도 병실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병실 앞을 지키는 네 명의 형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두 사람과 함께 승강기 앞으로 섰다.
“이제 끝났으면 하네. 너무 힘들어. 이건 뭐 집에도 가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그 놈만
잡히면 잠이라도 좀 잘 수 있겠구먼.”
박태식은 승강기가 5 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중얼거렸고,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띵.’
‘띵.’
승강기 두 대가 동시에 5 층에 도착하였다. 두 대 모두 아래로 향하는 승강기였으며, 세 사람의 앞에 있는
승강기는 텅 비어 있었다.
강서진이 추선우의 손을 잡고 먼저 승강기에 올랐고, 곧 박태식도 함께 오른 후, 다른 한쪽의 승강기에서
이장두가 내렸다.
이장두는 조금 전까지 병원을 난장판으로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기타 안면을
가릴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5 층으로 내려왔다.
세 사람이 탄 승강기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이장두의 모습이 닫히는 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지나쳐가고있었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추선우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잠시 만요.”
“응? 왜?”
추선우는 갑자기 3 층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고, 박태식이 이유를 물었다.
“일단 두 분은 내려가 계십시오. 5 층 간호사에게 뭔가 물어 볼 것이 있었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물어보고 바로 따라 가겠습니다.”
“같이 가요.”
“아니에요. 제가 금방 물어보고 바로 내려갈게요. 일단 박형사님과 함께 내려가 계세요.”
추선우는 이장두를 보았다. 비록 정확하게 그의 안면을 본 것은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이기에,
옆면만으로 충분히 그를 알아본 추선우였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면 그를 잡기 편하겠지만, 그는 강서진을 보호하고자 혼자 움직이려 한 것이었다.
이장두가 위에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하면 필시 강서진도 함께 갈 것이기에,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미리 막으려는 그였다.
추선우는 3 층에 내려서 다시 5 층으로 향하였고, 그가 비상계단을 통해 5 층에 도착하여 복도를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복도바닥을 물들인 붉은 피였다.

“추선우! 어서 와라!”
이장두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추선우는 고개를 들어 반대편 복도 끝에 서 있는 이장두를 보았다.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만찬이다. 어떤가? 아주 즐겁지 않은가?”
이장두는 미치광이와 같았다. 다행히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이장두의 미치광이 행동으로 인하여, 5 층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다른 층으로 옮겨두었고, 간호사와 의사 몇 명만이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단 몇 명의 인명피해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참 더러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너를 기다리며 준비해 둔 것이다.”
이장두는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몇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추선우는 곧 자신이 올라온 비상계단으로
향한 뒤, 비상계단 문을 걸어 잠갔다.
“역시 넌 마음에 든다. 내가 이쪽은 다 잠갔으니, 이쪽까지는 올 필요 없고, 비상계단을 문을 잠그고,
승강기까지 잠그면,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만 있게 되는 아주 환상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장두는 곧 스마트 폰을 꺼낸 뒤,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였다.
‘덜컹, 덜컹.’
그리고 잠시 후. 승강기 쪽에서 덜컹 거리는 소리가 난 후, 전원이 꺼졌다.

0022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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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완벽하지 않은가. 이제 너와 나. 둘 중 살아남은 놈만 이곳에서 나간다.”
이장두는 복도 끝에 서서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군. 5 층에 뭘 두고 왔다는 것이지? 두고 올 것이 없는데 말이야.”


1 층으로 내려온 박태식은 강서진을 보며 말했고, 강서진은 그 순간 이유모를 소름이 온 몸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봐야겠습니다.”
“다시? 배고프잖아. 밥 먹고 기다리면 올 텐데, 이 앞에서…….”
“먼저 가 계세요. 추선우씨와 함께 갈게요.”
결국 강서진은 다시 5 층으로 향하였다.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않고, 그 직감대로 행동하려는 그녀였다.

‘탁탁탁!’
한 편. 추선우는 이장두를 상대로 좁은 복도에서도 주먹과 발차기를 내 지르며 그를 위협했지만,
이장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추선우의 모든 공격을 다 피하면서 그를 노려보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제대로 해라. 이정도로 나를 잡겠다고 나선 것인가?”
이장두는 추선우를 도발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장난이 아니었다. 진심을 다해 그에게 일격을 가하려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 지르는 경우가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추선우였다.
“안되겠구나. 이제는 내가 가지.”
결국 이장두가 반격에 나섰다.
‘퍽퍽퍽!’
“제길!”
이장두는 추선우와 달랐다. 허공을 향한 주먹같이 보였지만, 그 주먹은 정확하게 추선우의 안면과 복부를
강타하였고,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 넘어졌다.
“싸움은 이렇게 하는 거다. 상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그 상대가 무슨 공격을 하며, 또 어떤 식의
방어를 하는지 보는 것이지.”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를 향해보며 걸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샤악!’
그가 다가서자, 추선우는 아주 빠르게 다리를 회전시키며 바닥을 끌며 돌렸고, 이장두는 그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복숭아뼈에 일격을 허용하고 공중에 몸이 뜬 채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선 뒤, 추선우를 향해 노려보았다.
“상대해보니 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네 놈에게 모두 당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이장두는 추선우와 일전을 몇 번 겨뤄본 뒤, 그에 대한 평가를 바로 내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올라가지 않는 다는 뜻과 같았다.
두 사람은 약 5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선 채,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선우 씨!”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비상계단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서진…….희한하군, 저 대단한 집안의 여신이 어떻게 네 놈에게 마음이 간 것인지 모르겠군.”
이장두는 이미 두 사람을 단 몇 차례 본 것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로 알아낸 인물이었다.
“가서 열어줘라. 강서진은 이곳에서 피의 향연을 충분히 구경할 자격이 있는 여자다.”
“미친 새끼. 이런 짓을 보여주려면, 네 부모님을 데리고 와라. 아니다. 이런 미친 조직을 만든. 네 놈의
아버지를 데리고 와라. 그게 더 좋겠다.
“이 새끼가!”
이장두는 이선우가 이수호를 말하는 것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향해 다가가 주먹을 뻗었다.
‘퍽퍽퍽!’
이장두가 이성을 잠시 접어두고, 동물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지금. 제대로 된 일격을 주어 기선을
제압하려던 추선우였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그가 뻗은 주먹은 또 다시 추선우의 안면부를 제대로
가격하였고, 추선우는 두 번째 다운을 겪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는 다르지? 다를 것이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적인 일에 참견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조직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도록 그냥 두는 것이 좋지.”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를 보며 다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경험한 사람이 없었지. 그러니 다를 것이다. 그리고 겪어라.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더 무서워질 수 있는지, 제대로 겪어라!”
‘퍽퍽퍽!’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의 얼굴을 가격하였고, 그가 뒤로 굴러가자, 한 번 더 따라가서 그의 복부와
얼굴을 다시 가격하였다.
“쿨럭!”
추선우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진 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다가서는 이장두를 보았다.

‘제기랄…….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나온 거야.’
추선우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는 이장두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이고 있었다.
“일어나라. 누워있는 좀 두들겨 주었더니 재미가 없다. 제대로 주먹을 뻗고, 그 주먹을 얼마나 하찮은
주먹인가를 스스로 느끼면서 죽어가라.”
이장두는 추선우가 일어서기를 기다려 주었다.

“왜 내려오지 않아? 뭐해?”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강서진마저 내려오지 않으니, 박태수가 직접 전화하였고, 강서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의 전화를 받아들고만 있었다.
“무슨…….일이야?”
박태식이 다시 물었다.
“5 층…….선우 씨가 들어간 5 층 병실로 향하는 모든 길이 다 막혔어요.”
“!!!”
강서진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박태식의 눈동자가 커지며, 서둘러 안내데스크로 간 뒤, 5 층 비상계단
열쇠를 찾았다.
“어서 서둘러요!”
박태식은 경비원을 향해 소리쳤지만, 갑자기 5 층 열쇠를 가져달라는 말에 어디서 뚝딱 열쇠를 만들 수
없었고, 열쇠를 보관한 곳에서 가져와야하니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은 1 초가 급하니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인가?”
“네. 이곳에서 이수호의 휴대전화 위치가 멈췄습니다.”
한 편. 이수호의 휴대전화 위치를 파악한 후,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따라붙도록 명령 내렸고, 곧 위치를
파악하고 설장호도 그곳에 합류하였다.
이수호의 휴대전화를 한적한 곳에 위치한 펜션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이수호가
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주변 일대의 경계는 소홀하였다.
“어떡할까요? 이대로 그냥 치고 들어가서 이수호를 체포할까요?”
펜션을 향해보고만 있던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물었다.
“조심해라. 허술할수록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곧 설장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차량에서 내려 펜션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수호…….이젠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매듭짓자.”
설장호는 펜션을 향해 올라서는 대원들을 보며 중얼거렸고, 곧 대원들이 펜션의 입구까지 도착한 뒤, 뒤
따라 올라서는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내주며 서로 협동으로 펜션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쾅!’
“!!!”
대원들 중, 3 분의 2 이상이 펜션에 접근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원들이 펜션 문을 열려고 할 때,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펜션 전체가 날아가 버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고, 조금 떨어져 있는 설장호가 탄 차량도
그 폭발음에 유리가 박살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곧 차량 뒤로 있던 대원이 급히 차량으로 다가와 설장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자신의 안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으로 향했던 대원들 모두가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린
것과 같았다.
그의 눈앞에는 펜션이 폭발하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서 불길을 향해 보고만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 전화를 받았다.
-어떤가? 지금까지는 자네가 내 식구를 모두 잡았지만, 이제부터는 자네의 식구도 목을 내 주는 것을
겪어라.-
이수호의 말에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렸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서 이수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수호. 넌 내 손에 죽는다.”
-말을 먼저 하지 마라. 행동을 보이고 말을 해라. 지금까지 말을 먼저 내 뱉은 놈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경우가 없었다. 네 놈 쪽이나, 내 쪽이나…….잘하겠다고 입만 떠벌리는 놈들은 제대로 한 것도
없이 그냥 죽어나갔지.-
이수호는 활활 타오르는 펜션의 맞은 편 언덕 위에서 숲들이 울창한 곳 안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자신의
펜션과 맞바꾼 국정원 대원들이 타는 모습을 보며 설장호와 통화중이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참…….네 부하인가 친구인가 모르겠는데, 추선우라는 놈 있지 않은가?-
이수호는 전화를 끊으려다 추선우의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이어하였다.
“그 친구는 건드리지마라. 네 놈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열심히 직장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을 젊은이다.”
설장호는 이수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다 아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 난 그 놈을 건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 하지만 말이야…….장두가 그 놈과 볼 일이 많은 것
같더군. 그래서 지금쯤 다시 병원에서 한 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을 것 같은데…….-
“이 새끼가!”
이수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는 그에게 거친 욕설을 내 뱉으며 소리쳤고, 곧바로 한 대원에게
전화기를 받은 후, 이수호와 통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박태식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추선우는 어떻게 됐어?”


박택식이 전화를 받자마자 설장호는 곧바로 물었다.
-그…….그것이. 이장두가 다시 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5 층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이 다 막혔습니다.-
“그럼 추선우도 그 놈을 만나러 갈 수 없잖아. 그러니…….”
-이미. 추선우는 그 안에 있었습니다.-
“뭐야!”
설장호는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버럭 소리쳤고, 곧바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들며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가? 장두가 그 추선우와 잘 만났다고 하는가?-


“기다려라. 넌 내가 잡으러간다.”
-날 잡는다? 그런 다리로 어떻게 날 잡으러 올 것인가? 제대로 뛰기나 할 수 있는 건가?-
설장호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자신이 목발을 짚고 있다는 것을 그가 본 적이 없다. 즉.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가 이 인근에서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설장호는 전화기를 빌린 대원에게 다시 전화기를 주는 척하면서 그에게 뭔가 지시를 하달하였다.

“이제 다시 설 수 있겠는가? 나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한 편, 이장두는 추선우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가 일어서자 편한 자세를 취하며
그의 상태를 물었다.
“지금 이순간의 배려는 너에게 꼭 한 번은 다시 돌려주겠다.”
추선우는 그의 건들거리는 행동과 어투를 노려보면서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음성으로 답을 주었다.
“그럼 그 기회를 가지기 위해선 너에게 되도록 많이 맞아야겠군. 그래야 나도 쓰러져서 너에게 시간을
달라 말할 것 아닌가.”
이장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고, 곧
그와 1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선 채, 그를 보며 웃었다.

0022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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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아보자.”
‘슈욱. 슉슉슉 퍽!’
“!!!”
두 남자는 1 미터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여유가 있었던 이장두가 아닌, 입술이 터지고, 눈이
붉게 물든 추선우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한 뒤,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고, 1 미터 앞에서 내 질러진 주먹을
이장두는 뒤로 몸을 움직이며 피했다.
하지만 그 뒤로 추선우의 주먹은 두 차례 더 뻗어졌고, 몸을 180 도로 완전히 돌리며 길게 휘두른
추선우의 주먹이 이장두의 콧 끝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갔다.
그리고 그 후에 추선우의 공중 돌려차기는 이장두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하였고, 이번에 이장두가 바닥에
넘어져 자신을 노려보는 추선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기다려라.”
이장두는 다시 일어섰다.
‘휘청.’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휘청거렸고, 일어서면서 복도의 벽을 손으로 짚었다.
“기회를 주겠다. 정신이 들면 다시 와라.”
추선우는 이장두에게 진 빚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이장두는 잠시 휘청거렸던 몸을 다시 가누고 난 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너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니, 너의 강함은 공격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추선우는 이장두의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이장두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는 추선우를 보면서도 주먹을
쥐어 경계를 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놈에게는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면 다시 일어설 수 없지, 때려는 봤어도 맞은 적이 없으니, 맞는
것에 익숙지 않은 몸은 내 멋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벽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째서 네 놈이 이러지…….”
이장두는 아직도 자신의 몸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없었다. 추선우가 그리 말했어도 그는 맞는 것에
대한 관념이 없기에 어떤 충격이 오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반면에 난 달라. 난 때리는 것보다 더 많이 맞고 살았지. 그래서 맞는 것은 얼마든지 버텨. 그래서 네
놈의 그 무서운 주먹과 발차기도…….의외로 버텨지더라.”
그의 말처럼 추선우는 공격과 방어를 고루 갖춘 정통 싸움꾼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다음부터는 사람 제대로 보고 까불어라.”
‘퍽퍽퍽퍽!’
추선우는 그의 멱살을 살며시 놓아주며 말한 뒤, 그가 멱살이 풀린 틈을 타, 주먹을 뻗으려 할 때,
추선우의 주먹이 먼저 그의 면상을 한 번 날렸고, 곧 뒤로 밀려난 그를 따라가며 두 차례 더 주먹을 날린
뒤, 휘청거리는 그에게 뒤돌려 차기로 복부를 그대로 가격하였다.

‘쾅!’
그가 넘어졌다. 그리고 복도 끝의 벽에 몸을 기댄 채, 헥헥거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를 내려 보며 주먹을 풀었다.
이장두는 강한 놈이다. 하지만 그 강함은 추선우에게는 약함이었다.
추선우는 쓰러진 이장두가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를 그대로 두고, 복도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강서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장두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곧 벽을 잡고 어렵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가 일어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걸어 복도 끝으로 향하였고, 곧 잠긴 문을
열려하였다.

“추선우!”
그 순간 이장두의 큰 목소리가 들리면서 비상계단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선우씨.”
추선우의 시선은 이장두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강서진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향해 있었다.

‘탕!’
‘탕!’
그리고 연이은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장두의 손에 들린 총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두는 서서히 쓰러지면서,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새끼 목청이 커서 잠을 잘 수가 없네.”
이장두의 머리통을 날린 장본인은 태정민이었다. 이장두는 추선우에게 공격당하며 복도 끝까지 밀려가
넘어졌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며 총을 바로 꺼내 들었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선 위치는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 문 바로 앞이고, 어두운 내부에서 이장두를
보고 있었던 태정민과 달리, 이장두는 오로지 추선우만을 보고 있었다.
그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총을 꺼내들어 그를 향해 발사했지만, 총알이 발사되는
총소리는 한 발이 아닌 두 발이 울렸다.

“선우씨!”
그리고 강서진의 울음 섞인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발의 총성. 즉 총알 두 발이 발사되었다. 한 발은 태정민의 총에서 발사되어 이장두를 쏘았고, 한
발은 이장두의 총에서 발사되어 추선우를 쏘았다.
추선우는 이장두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을 그 때서야 보았고, 그가 겨눈 총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그는 이장두의 총으로부터 강서진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장두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추선의 허리 부분에 맞은 뒤, 추선우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강서진은 피가 흘러내리는 추선우를 부둥켜안고 울며 소리쳤다.

“어서 의사 불러!”
곧이어 박태식이 경비원과 함께 열쇠를 가지고 올라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었고, 추선우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그의 허리부분에 입은 총상을 보고 손으로 눌러 지혈하고 있었다.
태정민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몸 곳곳에 상처를 치료한 흔적을 남긴 채, 다리를 끌며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였다.

“괘…….괜찮아?”
태정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보다 더 작게 들렸다.
“어서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서둘렀다. 의사들은 추선우를 급히 수술실로 옮기기 위하여 서둘렀고, 박태식과 강서진은 정신을 잃은
추선우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알겠네. 대원들의 가족들에게는 내가 알리겠네.”


한 편. 설장호는 아직 추선우에 관한 말을 전해 듣지 못했고, 이수호의 펜션에서 생을 달리한 대원들의
죽음을 국정원장에게 알려주었다.
국정원장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대원의 죽음을 알렸다.
“어떻게 되었나?”
국정원장과 통화를 끝낸 후, 곧 명령을 하달했던 대원이 돌아왔다.
“그래?”
“네. 인근에서 이쪽을 볼 수 있는 곳이 저쪽 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미 대원들을 보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외길입니다.”
설장호는 이수호가 이 근처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대원들에게 비밀리에 이
인근을 확인토록 명령 내렸었다.
그리고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고, 대원들은 그쪽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네 놈의 식구들을 내가 잡아갔다고? 그래…….네 녀석은 지독하게도 나쁜 새끼니까 잡아가야지…….
당연히 너도 말이야.”
곧 설장호도 그곳으로 움직이며 격한 말을 내 뱉었고, 소방차와 구급차, 그리고 경찰차들이 꽉
들어차버린 펜션을 본 후, 다시 몸을 돌려 이수호가 있을만한 곳을향해 움직였다.

“가자. 저 정도면 설장호도 가슴 꽤나 아플 것이다.”


설장호의 모습을 계속하여 보고 있었던 이수호는 어느 정도 펜션 상황이 정리되고, 설장호가 그곳을
벗어나는 것을 본 후, 자신도 그곳을 벗어나려 움직였다.
“회장님. 이장두 도련님에게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수호가 차량에 타자마자, 그의 비서가 말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 놈의 끝이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말이다. 가자…….”
설장호의 말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이장두는 자신의 아버지인 이수호를 위하여 충분히 목을 내 놓을
인물이지만, 이수호는 절대 아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내놓을 위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였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 그대로 적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그 어떤 슬픔이나 분노는 없어보였다. 오로지 자신이 아직
살아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끽!’
이수호의 차량이 산에서 내려오다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섰다.

“무슨 일인가?”
“앞에 차량들이 엉켜 있습니다.”
“그래? 잠시 기다리면 풀리겠지.”
이수호는 차량 안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가졌다. 그리고 곧 앞쪽에서 사내가 다가서며 운전석 창문을 몇
번 두드렸다.
하지만 비서는 창문을 내리지 않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차장 외부에서 소리치는 사내의 목소리는 안으로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건지 원…….”
사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던 기사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뭐라고?”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넌 죽는다고 병신아!”
“!!!”
‘픽픽픽픽픽!’
문을 열고 그에게 묻자, 외부의 사내는 그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한 뒤, 곧 창문에 권총을 들이민 후, 여러
발을 한꺼번에 한 곳을 집중하여 쏘았고, 곧 창문이 뚫리며 안으로 들어온 총알은 비서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수호는 외부에서 차량 안으로 들어서려 차량 문을 잡고 흔드는 그들을 보며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뜨며
보았다.
사내들은 차량 밖에서 안으로 향해 몇 차례나 총을 쏘았다. 하지만 차량이 방탄유리로 되어 있기에, 그리
쉽게 뚫리지는 않았다.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누군데 이리 무례하게…….”
이수호는 차량 외부에 선 이들을 향해보며 소리치다말고, 곧 정면에서 목발을 짚고 올라서는 설장호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설장호…….”
그는 곧 설장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 뒤,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설장호는 곧 이수호의 옆으로 섰다. 그리고 목발을 들어 올리며 방탄으로 된 유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문 열어. 그럼 자수한 것으로 간주하고 선처해준다.”
설장호는 목발 끝으로 차창을 계속하여 툭툭 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수호가 그런 말에 쉽게 응할 인물은
아니었다.
이수호는 곧 앞좌석에서 죽은 비서를 옆으로 밀치고 운전석에 앉으려 하였다.
“늙은이가 힘이 남아돌아? 그런 덩치를 앉은 자리에서 밀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설장호는 그의 행동을 보며 비웃는 듯 한 표정을 지었고, 어투고 비웃는 어투로 말했다.
이수호는 그의 말을 듣고, 운전석에 앉은 비서를 밀쳐내는 것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끝까지 문은 열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지원요청이라? 그래 좋지, 이참에 네 놈을 찾아오는 놈들이 누군지 보자. 그래서 그놈들을 차례대로 한
놈씩 잡아족쳐보자.”
설장호는 오히려 그가 하는 행동을 반기고 있었다. 어차피 이수호를 잡은 후, 그와 연관되었던 인물들을
모두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가 지원요청을 하여 사람을 부른다면, 오히려 설장호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0022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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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차량 옆에서 목발로 여전히 창문을 툭툭 치고 있는 설장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십 수 명에 이르는 대원들의 목숨과 바꾼 이수호를 앞에 두고 그를 잡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박태식이 그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 그래? 그 쪽은 어떻게 되었어?”
설장호는 목소리 톤을 조금 높이며 물었다. 그리고 점차 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고, 그의 얼굴
변화는 차 안에 있던 이수호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알았다. 지금 이수호를 정리하고 가겠다.”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한 뒤, 전화를 끊었고, 이내 들고 있던 전화기를 본 후, 다시 차안에 있는
이수호를 보았다.
“이런 개새끼!”
그리고 그를 향해 전화기를 던졌다.
설장호는 박태식으로부터 추선우에 관한 말을 전해 들었다. 마지막까지 잘 버텨왔지만, 마지막 한 순간에
생사의 귀로에 서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하하. 너의 표정을 보아하니 추선우가 죽은 모양이구나. 역시 이장두는 다르다. 그 어떤 놈들이 다


덤볐는데도 잡지 못한 그 놈을 내 아들이…….”
“이장두는 죽었다.”
“…….”
이수호는 연신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다말고,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말을 이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한 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뒤, 멍한 눈을 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고, 자식의 생사에는 관심도 없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아무리 담쌓고 살아온 사이라고 하여도, 절로 눈물이 맺히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나와라. 네 놈의 새끼는 죽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새끼와도 같은 놈도 죽을지 몰라.”
설장호는 목발로 다시 창문을 툭툭 치며 말했고, 곧 그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 자식은 죽었는데, 아직 네 자식이 살아있다는 말이군? 결국 이장두도 그 놈에게 목을 내준 꼴이라니
…….”
이수호는 눈썹을 씰룩거렸고, 곧 차창 밖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설장호를 보았다.
그리고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우리아들…….시신은 볼 수 있는 건가?”
설장호에게 물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수호는 그의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것을 본 후, 굳게 잠겨있던 차문을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국정원 대원들이 차안으로 진입하였고, 이수호의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내리꽂은 뒤,
설장호의 앞으로 꼬꾸라지도록 만들었다.
"놓아줘라.“
설장호는 대원들의 진압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대원들은 꽉 잡고 있던 이수호의 머리를
서서히 놓아주었다.

“일어서라. 기분 같아서는 네 놈의 이장두의 옆에 나란히 눕도록 만들고 싶지만, 정말 거지같은 법


때문에 참고 있는 중이다.”
설장호는 자신의 앞에 선 이수호를 보며 쓴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수호는 설장호를 빤히 보고 있었고, 자신을 노려보는 설장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퍽!’
그 순간 설장호의 주먹이 이수호의 면상을 날렸고. 설장호도 불편한 다리를 지탱해주고 있던 목발을
놓치면서 이수호와 함께 넘어졌다.
“실장님!”
대원들이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서며 그를 부축하여 다시 일으켰지만, 그 누구도 이수호를 일으켜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 앞에서 내 눈을 보고 있지마라. 네 놈의 그 더러운 눈에 나를 남게 하고 싶지 않다.”
설장호는 쓰러진 이수호를 보며 말한 뒤, 몸을 돌려 섰다.
“저 새끼를 국정원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선처고 지랄이고 부탁하는 새끼가 있다면 무조건 함께 쳐
넣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거친 말이 연이어 나왔고, 이수호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그를 올려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에 하나 추선우가 생을 달리한다면…….네 놈의 목의 그의 비석 앞에 걸어둘
것이다.”
설장호는 다시 한 번 이수호를 노려보며 말한 뒤, 목발을 짚고 차로 이동하였고, 곧 대원들이 이수호를
연행하여 차량에 태웠다.

“그래? 이수호를 연행하는 것인가?”


“네. 지금 출발하니, 늦어도 1 시간 이내에 도착할 것입니다.”
“알았네. 녀석을 맞을 준비를 해 두어야지.”
설장호는 이수호를 체포한 뒤, 그 보고를 국정원장에게 바로 하였고, 국정원장은 곧바로 전 대원들에게
이수호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띠리리리’
그리고 차현태에게 연락하였고, 차현태는 자신의 전화벨이 울리자 바로 받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차현태는 전화를 받자마자 포괄적인 질문이 담긴 한마디를 하였다.
“지금 설장호 실장이 이수호를 체포하여 연행중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이장두는 조금 전, 태정민
팀장의 손에 사망하였다.”
이수호와 이장두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태팀장이 이장두를 죽인 것인가?”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장두가 쏜 총에 추선우가 맞았고, 간발의 차로 태정민의 총알이 이장두의
머리를 적중시켰습니다.”
차현태는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국정원 대원이나, 경찰, 검찰, 그리고 경호원들에 대한 죽음보다 민간인
신분인 추선우의 중상 소식은 그를 더 힘들게 하였다.
“알겠습니다. 서 실장을 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차현태는 서지호를 보았다. 그리고 서지호는 그의 통화내용을 듣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지현에게는 알리지 말게. 그리고 자네가 지금 병원을 다녀와야겠어.”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마음이 무거웠다. 민간인이 애초에 이런 일에 개입한 것부터 잘못이지만,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의 결말을 앞에 두고 큰일을 겪게 된 순간이었다.

“실장님. 병원으로 먼저 가실 것입니까?”


한 편. 이수호를 연행하여 국정원으로 향하던 설장호에게 대원이 물었다.
“국정원으로 간다. 이수호가 마지막 인물임이 증명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진심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추선우의 상태를 확인하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추선우의 상황과 바꾼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결과를 제대로
마무리 하려는 그였다.
“원장님. 설장호 실장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설장호가 국정원으로 들어서자, 이번 사건에 개입하였던 대원들 및 국정원장은 이수호를 보기 위하여
움직였다.

“이봐. 설장호를 불러줘. 그에게 할 말이 있다.”


“조용하고 있어. 지금 너희들의 우두머리가 잡혀왔다. 곧 그 놈을 심문하여 지금까지 숨어왔던 조직을
완전히 뭉개버릴 것이다.”
“!!!”
한 편. 석강수는 감금실에서 답답하게 앉아만 있었고, 곧 설장호를 만나게 해 달라는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석강수와 장석관을 놀라게 하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설마 회장님께서 설장호에게 잡히기라도 하셨단 말인가!”
장석관이 큰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감금실을 지키던 대원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설장호…….결국 해 냈군.”
석강수는 조금 전까지 아주 답답한 속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원의 말을 들은 후, 그 답답함은 마치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모두 풀리고 있었다.
“저 놈이 그 수장인가?”
국정원장은 복도를 통해 심문실로 향하던 이수호를 보고, 함께 있는 대원에게 물었다.
“네. 저 놈이 그 오랜시간동안 지하에서 이 나라의 권력층들을 쥐락펴락했던 그 늙은이입니다.”
대원의 답에 국정원장의 시선이 이수호에게 집중되었다.
“내려갈 테니, 차장들도 모두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미 제 1 차장은 이수호와 내통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감금 처리되었다. 그리고 남은 2 차장과 3 차장은
국정원장의 명령으로 다시 심문실로 향하였다.
“저 사람이 이수호입니까?”
심문실로 들어온 고위급 임원들은 이수호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2 차장이 그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지?”
“네. 서류상으로는 그의 나이기 72 세로 되어있지만, 외모상은 이제 60 세에 들어선 인물 같습니다.”
국정원장의 질문에 2 차장이 말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공감할 정도로 이수호의 외모는 젊었다.
“그 동안 편히 살았으니 늙지도 않았겠지요. 이참에 녀석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뿌리 뽑아버려야
합니다.”
3 차장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고, 국정원장도 이수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설장호가 목발을 짚고 들어섰고, 이수호는 그를 다시 빤히 보았다.
“가서 장석관과 석강수를 데리고 와라.”
“네? 그 두 사람을 함께 말입니까?”
설장호는 이수호의 곁에 남은 유일한 사람인 그 두 명을 이수호에게 보여주려 하였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한곳에 모여 눈짓을 주거나, 신호를 주어 뭔가 계획이라도 다시 세운다면 또 다시 일이
복잡해 질 수 있다고 여긴 대원이 재차 물었다.
“데리고 와.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마지막일수도 있는데, 얼굴이라도 실컷 보도록 해줘야지.”
설장호는 이수호를 보며 말했고, 이수호는 설장호의 눈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넌 나의 눈을 1 초 이상 보면 죽는다.”
이수호는 자신이 체포 될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설장호를 빤히 보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폭행을 당했던
터라. 그와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눈길이 다시 돌아가고 있는 그였다.

“회장님.”
곧 장석관이 먼저 들어왔고, 그는 수갑을 찬 채, 이수호의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앉았다.
“일어나라. 여기서도 네 놈들의 서열을 챙긴다면 그 꼴은 내가 다시 보지 않겠다.”
설장호가 장석관의 행동을 보며 매서운 눈빛을 준 채 말했지만, 장석관은 여전히 무릎을 꿇어앉은 채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퍽!’
그 순간 설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목발로 장석관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하였다.
“!!!”
심문실의 보호유리 안에 있던 모든 관계자들이 충분히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말리려는 이들은 없었다.
“녹화장치를 모두 끈다. 그리고 그 어떤 내용도 담을 수 있는 장치를 심문실안에 두지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심문실 안에 있는 대원에게 말했고, 대원은 곧. 심문실 안의 모든 기계장비들의 전원을 내렸다.
“뭐하는 것인가? 녀석과의 대화내용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놈을 쳐 넣을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없어.”
2 차장이 마이크를 통해 심문실에 들리도록 말했다.

0022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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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록 없어도, 이 새끼들을 쳐 넣을 방법은 많습니다. 다만…….그런 합법적인 법을 이용하려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뭐?”
설장호의 답은 모두의 시선을 다시 한 번씩 마주치게 만들었다.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수호를 관리하려는 뜻이 담긴 그의 말이었다.
“지금 설 실장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아십니까?”
2 차장은 국정원장을 보며 물었다.
“나라고 어찌 설 실장의 마음을 모두 알겠나. 단지 지켜보고 있을 뿐이네. 지금까지 그리 해 오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의 결과를 얻은 것이고 말이야. 그러니 지켜보게.”
국정원장은 태평하였다. 2 차장은 설장호를 믿지 못하여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걱정되어 한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마지막 한 놈을 잘 잡아놓고, 만에 하나 잘 못된 하나로 인하여 이수호를 다시 놓아줘야 할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하는 말이었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자네에게 좋을 것이 없네.”
이수호는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을 잠시 보는가 싶더니 이내 눈빛을 약간 낮추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 네 놈에게 이리하여 나에게 좋을 것이 없지. 하지만 그건 걱정마라. 네 놈으로 인하여 내가 좋은
일을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며 말한 뒤, 곧 장석관의 옆으로 갔다.
“장석관.”
그리고 그를 불렀다.
“대답을 하고 하지 않고는 모두 너의 자유다. 넌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며, 법치국가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그러니 말하지 않고 싶은 부분에서는 말하지 마라. 그래서 묵비권이라는 아주
대단한 법도 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장석관의 바로 옆에서 그의 귀에 대고 말하였고, 장석관은 그의 목소리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조종하는 체면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난 너희들에게 대한민국 법이 줄 수 있는 마지막 관용을 베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 때부터는 국정원 소속 설장호의 개인법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 잘하고 답해라.”
설장호는 장석관의 옆을 지나치며 석강수의 곁으로 움직이며 말했고, 곧 석강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섰다.
석강수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설장호의 손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석강수. 넌 이 새끼들보다는 죄가 가볍다고 생각한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이 새끼가 이 모든 것의 발단인데, 왜 죄가 가벼워!”
설장호가 석강수의 가까이서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곧바로 장석관이 설장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말은 똑바로 해라 장석관.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이수호다. 이수호의 명령으로 그의 똘마니 중 한 명인
고민국이 이창민대사의 운전기사인 이장구에게 무언가를 제안하고, 그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였고,
이장구는 석강수에게 이 일을 맡기며,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현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
설장호는 장석관의 입을 완전히 닫아버리도록 만들었다.
“잘 들어. 다시 한 번 더 내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내 말 중에 끼어들면 아가리 날아간다.”
설장호는 장석관을 노려보며 말한 뒤, 곧 석강수를 지나 이수호의 옆으로 이동하였다.
“이창민을 죽이고, 지현도 죽이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이 나라 권력층과
밥이라도 먹고 남은 여생 잘 살아보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이 전해졌지. 이창민의
딸. 이지현이 살아있다는 말 말이야.”
설장호는 이수호의 바로 옆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미 지금까지 일을 맡았던, 최기수나, 우수광, 그리고 고민국과 정구석은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두어, 수습불가였고, 그래서 그 놈들의 목을 쳐서 그 값을 대신 받았을 것이고.”
설장호는 늙은 이수호의 머리에 손까지 올리며 그의 머리를 잡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장석관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이수호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우린 이창민 대사가 남긴 서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서류를 아직 해석하지 못했다. 참…….무능력하지.”
설장호는 세 사람을 앞에 두고, 국정원은 물론, 검찰과 경찰, 심지어 청와대까지 다 싸잡아서 무능력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 무능력하지. 지금 이 모든 상황도 어찌 보면 다, 그 추선우가 해 놓은 일인데 말이야.”
설장호의 말이 끝난 후, 석강수가 말을 이어하였다. 그리고 그 말에 이수호가 피식거리며 웃었고,
장석관도 설장호를 보며 웃었다.
“부인하지 않아. 그 놈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맞다. 그래서 우린 무능하다. 그 말도 인정한다.
하지만…….”
‘퍽!’
“그 말을 너 같은 새끼한테 들을 필요는 없어.”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을 모두 인정하면서, 곧 이수호의 곁을 떠나 그의 옆으로 목발을 짚고 온 뒤,
그대로 주먹을 날려 그를 쓰러뜨린 후, 넘어진 석강수를 보며 말했다.
“도와주지마라. 놈 스스로 일어나 앉도록 버려둬라.”
쓰러진 석강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대원이 다가서자, 설장호는 그들을 모두 세운 뒤, 석강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심문실을 보고 있던 고위관계자들의 눈빛은 각기 다른 눈빛들이었다.


설장호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들은 지금의 행동도 심문의 일종이며 충분히 용납할 수 있다는 눈빛이었지만,
그 반대되는 이들의 눈빛에는 설장호의 행동은 범법행위라 말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꽤 맵군. 주먹에 감정이 아주 많이 실려 있어.”
석강수는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를 보았다.
“내가 네 다리에 칼을 꽂았다고, 그에 대한 감정이 아직도 남았는가?”
“감정? 그 감정이 남았다면 네 놈의 목에 내가 직접 칼을 꽂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감정은 그저
죄인을 대하는 감정으로만 생각해라.”
설장호는 그를 노려보며 말한 뒤, 곧 이수호를 향해 다시 다가섰다.
“지금도 네 머릿속에는 어떤 권력을 이용하여 이곳을 쉽게 나갈 방법을 구상 중에 있겠지? 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다. 네 놈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그 어떤 누구도 알지 못 할 테니 말이야.”
설장호는 이수호의 머릿속을 다 열어보고 있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 곳에도 네 놈의 부하가 있을 테니, 그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놈에 의해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고, 또 누군가를 너를 돕고자 연락을 취해 온다면, 나로서는 아주 감사할 나름이다. 그
놈을 쉽게 잡을 수 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이수호가 뭐라 말하기 전에, 이미 그의 말을 모두 잘라버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하자. 네가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수장인가? 아니면 네 머리위에 앉은 놈이 또
있나?”
“…….”
설장호의 질문에 그 질문을 들은 모두의 눈과 귀는 이수호에게 집중되었다.
이수호가 마지막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그 놈 위에 누군가 또 있다면 일은 다시
복잡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수호는 자신을 보는 수많은 눈들을 보았다. 비록 심문실 안에는 몇 명 없었지만, 보호유리관 안에도
자신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답을 원하나?”
“진실. 그 외에 그 어떤 답도 필요 없다. 진실만 말해.”
이수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고, 설장호는 곧바로 답했다.
“진실이라. 무엇이 진실일까? 내가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장본인이라는 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나도
허수아비에 불과한 인간인 것이 진실일까?”
이수호는 조금 전까지 설장호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 답을 하는 동안은 정확하게 설장호의 눈을 보며
답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나와 말장난하면 늙은 나이에 그래도 잘 달려있는 이가 다 떨어져버릴 것이다. 그러니
장난하지마라.”
설장호는 이수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곧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을 하였다.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군요.”
그의 행동을 보고 있던 한 고위관계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눈에 거슬렸습니까?”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물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저 모든 것이 저 놈들에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이 곳을 촬영하는 모든 것은 철수시킨 상황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휴대전화로
이 영상을 찍고 있다면 또 모를까요?”
국정원장의 말에 보호유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묘한 기류를 내 풍기며 서로의 눈을 이리저리 마주치는
행동들을 하였다.
“시간 오래끌지말자. 어차피 이제 끝낼 것이다. 네 놈위에 누가 있다면 또 그 놈을 잡고자 움직이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매듭짓고, 그 놈은 따로 잡을 것이다.”
설장호는 이 사건을 이수호를 끝으로 끝내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장석관의 눈빛이 이수호에게 향하였다.
“내 위에…….또 누군가가 있다면…….”
“그 놈은 또 숨어들겠지. 하지만 찾는다. 그리고 꼭 잡는다.”
설장호는 이수호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그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장석관을 향해
보았다.
“장석관. 넌 이곳에서 나가면 최소 무기징역이다. 뭐. 더 잘 나온다면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고,
석강수는 무조건 사형이다. 그건 내가 장담한다.”
설장호는 장석관와 석강수를 보며 미리 그들에게 내려질 법의 심판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석강수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쉽군, 이번 의뢰로 인하여 돈 좀 만져보나 싶었는데, 그 돈을 은행에 고스란히 넣어두고 죽는 것이
말이야.”
석강수는 고민국에게 20 억을 받았다. 아니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먹은 것이라해야 정확한 답이 될
것이었다.
“걱정마라. 그 돈은 모두 나라에 환수된다.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지랄은…….또 그 돈을 누군가는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주머니나 채우겠지. 설마 그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인가? 설장호.”
석강수는 설장호의 말을 들후, 콧방귀를 뀌며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래. 네 말처럼 그 돈을 환수한 기관에서는 눈먼 돈이 들어왔다며 주머니를 더 큰 주머니로 바꿔서
챙겨놓겠지. 그리고 하나하나 빼서 자신들의 주머니에 채워넣겠지. 어쩔 수 없는 이 나리의 썩은
고질병이니 말이야.”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을 바로 인정하였다. 그 어떤 범죄나, 기타 나라에 환수되는 돈을 나랏돈으로
생각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들은 드물었다.
거의대부분은 그 돈이 눈먼 돈이며, 주인 없는 돈이라 여긴다. 그리고 이쪽저쪽에서 주머니만 벌린 채,
다가서는 놈들이 수두룩한 것이 이 세상이다.
“이수호의 재산도 환수할 것이다. 그리고 이수호에 관련된 모든 것과 함께 그 모든 것에 관련된 놈들의
재산도 다 환수할 것이다.”
“!!!”
설장호의 말은 더욱 더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석강수는 죄인이다. 이수호도 죄인이다. 하지만 그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지인들에 대한 재산마저 나라에서 빼앗아간다면, 그것은 법으로도 힘든 일이라
여겼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수호가 다시 물었다.

0022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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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 그래 가능하지. 네 놈들의 돈이 어떤 돈인지를 까발리고, 그 돈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며, 또.
나라에 돈이 없으니, 나라의 자산으로 환수하겠다는데, 어떤 양반이 반대하고 나서겠나. 뭐…….네 놈과
관련 있는 놈들은 다 반대하겠지.”
설장호는 이수호를 뚫어지게 보며 말한 뒤, 이내 석강수를 다시 보았다.
“넌 할 말 없나?”
“없다. 어차피 죽는다며? 나가면 사형이라는데, 그 재산이 무슨 소용 있겠나. 단지 내가 사용하지
못해보았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지 뭐.”
석강수는 마음을 비운 듯하였다. 그의 질문에 그리 답한 뒤, 그저 눈을 감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석강수를 데리고 나가라.”
“네. 실장님.”
이제 더 이상 석강수에 대한 질문은 설장호가 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정식으로 재판에 기부될 것이며,
정식으로 검사가 붙어서 그의 죄를 모두 까발리고 그에 합당한 형벌을 내릴 것이었다.
“장석관도 데리고 가. 이 놈은 쓸모가 없다. 그냥 검찰에 넘기고 그 죄를 물어.”
“네. 알겠습니다.”
석강수는 이미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련도 다 버린 상황이었다. 굳이
이런 자리에 앉아서 싫은 소리를 함께 들을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이 나간 후, 심문실에는 설장호와 이수호만 남게 되었다.
“심문이 끝나면 너와 한 약소대로 이장두의 시신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다.”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한 뒤, 그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그에게 밀어주었다.
“태워. 여기서 태우는 담배 맛은 외부에서 태우는 담배 맛하고는 아주 다르다. 그 맛의 차이가 아주 커.”
설장호는 먼저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 후, 한 모금 길게 들이마셨다가 뱉으며 말했다.
이수호는 자신 앞에 놓인 담배를 보았다. 그리고 수갑 찬 손을 올려,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고, 곧
국정원 대원이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여주었다.
“그렇군. 맛이 달라. 아주 달콤하기도 하면서 쓰기도 하군.”
“그래. 그게 바로 네 마음속이다. 지금까지의 달달함은 이제 끝나고, 쓰디 쓴 앞길만이 남아있다는
것이지.”
설장호는 담배를 마저 다 태운 후, 그를 보았다.
“이수호. 진실을 밝혀라. 더 이상 숨어들어갈 때도 없다. 그리고 숨어도 이제는 너의 뒤를 봐 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제 끝내자.”
설장호는 정말 진심이 담긴 말을 그에게 하였다.
이수호는 그를 보았다. 아직 담배를 다 태우지 않았지만,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은 채, 연기 나는 담배를
들고 가만히 앉아서 그를 보았다.
“너와 나. 참으로 오랜 인연이 있었지. 네가 국정원에 처음 들어 올 때부터, 그 때부터 우리를 쫒기
시작하였으니 말이야.”
“그래. 그 때 너희들을 쫒는 사람이 지금의 국정원장님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석강수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너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이수호는 보호유리안에 있을 국정원장을 보는 듯, 시선을 돌려 유리를 보았다.
“난 너희들의 얼굴을 잘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너희들은 내 얼굴을 오늘에서야 처음 보겠지?”
“그래. 아주 황송하게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네 놈의 얼굴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늙은 놈이라 실망이긴 하다.”
설장호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태우며 말했다.
“그 인연. 오늘로써 끝내자. 나도 이제는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티는 것이 어렵다.”
의외였다. 그리 도망 다니려 애썼던 이수호는 설장호를 보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에 보호유리관 안에 있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곧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보았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이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뭔가 뜻이 담긴 듯 보이는 손놀림을 보였다.
국정원장은 그의 손놀림을 보며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귓속말로 뭐라 명령을 내렸고,
보호유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원장이 비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가 궁금한 듯, 국정원장과 비서를
나란히 보고 있었다.

“그간 고생했다. 그래. 네 놈들이 그리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사람이 바로 나. 이수호다. 돈으로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으로 더 높은 권력을 가지며, 대한민국을 손에 넣고 살아왔던 사람. 바로 나다.”
“!!!”
이수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인정하는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일어나자,
대원들이 그를 저지하려 하였지만, 설장호는 대원들을 말리며 그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보기만 하였다.
“이 안에 있는 양반들 중, 내가 아는 양반들이 꽤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나를 오늘 처음 보았을 테고
말이야.”
이수호는 유리관 끝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이며, 마치 그 안을 모두 보고 있는 듯하였다.
“아들을 만나게 해주게. 이제 나에게 더 물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이수호는 유리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본 듯. 곧 고개를 돌려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물어 볼 것은 많아.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은 차후에 다시 하겠다. 약속대로 이장두를 보여주고, 네 놈에
대한 그 후의 처리는 내가 추선우를 보고 온 뒤에 이어서 하겠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눈짓을 주었고, 곧 대원들이 그를 데리고 이장두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이수호가 나서자 보호유리관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나섰다. 그들 중, 서둘러 움직이는 이가 있는가하면,
국정원장과 함께 심문실 안으로 들어와 설장호를 보는 이도 있었다.
“왜 이어서 하지 않았나?”
“이어서 한다고 저 놈이 바로 답할 것도 아니고, 또 서로 지루해지면 지칩니다. 그럼 제대로 된 심문을
할 수가 없으니, 저 놈에게 뭔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난 뒤에, 잠시 쉬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설장호는 이수호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자 기회를 뒤로 미룬
것뿐이었다.

“일단 전 병원부터 다녀오겠습니다. 태정민과 조동민의 상태도 봐야하고, 무엇보다 추선우씨의 상황을
먼저 봐야겠습니다.”
“그리하게.”
국정원장도 그의 말에 바로 답을 주며 움직이도록 하였다. 설장호는 단 숨에 심문실을 나와 목발을 집고
따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일부 관계자들은 그런 설장호의 모습을 보며 표정을 구기기도 하였다.
“참…….가지각색의 표정들이군.”
원장은 그가 나간 후, 그를 보는 눈빛들이 다들 예사롭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띠리리리.’
한 편. 병원의 수술실 앞에서 오매물망 추선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강서진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지금 간다.-
짧은 인사에 짧은 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말없이 전화기는 끊어졌고, 강서진의 시선은 다시 수술실
안으로 향하였다.
“아직 입니까?”
잠시 경찰청에 다녀온 박태식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아직…….”
강서진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수술실을 향해 있었다.

“대통령 아저씨나, 아니면 서지호실장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 편, 청와대에 추선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지현은 방 입구에 있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경호원은 그녀를 보며 잠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곧 무전으로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였다.
“미안하구나. 지금 실장님은 자리를 비우셨고, 대통령께서는 회의중이라는구나.”
지현은 경호원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이 우울해졌다. 꼭 돌아온다고 말하며 다시 헤어진 후, 아직
추선우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한 것에 불안한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연락 좀 해주세요. 정말 답답하네요.”
곧 은주도 함께 나서며 말했고, 그녀의 옆으로 미희도 함께 서 있었다.
경호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세 여인을 보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서 실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서지호에게라도 연락을 취해 이들에게 뭔가 말을 해 줘야 할 상황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경호원은 서지호와 통화를 마치고 세 여인을 보았다.
“지금 서 실장님께서 태팀장님과 추선우씨를 만나러 가셨답니다. 그에 대한 답이 오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경호원의 말에 세 여인은 잠시 얼굴에 화색이 도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힘없는 표정을 지은 채 방으로
들어섰다.
“이모…….삼촌은 괜찮겠지?”
지현은 힘없이 뒤돌아가며 은주에게 물었고, 은주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장님이 만나러 가셨다니까. 곧 삼촌이 돌아올 거야. 그러니 우리 기분 좋게 기다리고 있자.”
곧 미희가 지현의 앞으로 내려앉으며 말했고, 지현은 미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실장님.”
한 편. 병원에 도착한 서지호는 수술실로 향하던 길에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설장호를 보며 불렀다.
“추선우를 보러 가는 것인가?”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걸으며 물었다.
“네. 일단 어떤 상황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대통령님께 보고를 해야 해서요. 그런데 이수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놈의 죄는 모두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리 순순히 검찰로 넘기지는 않아. 녀석을 오랫동안 묶어두고
천천히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 놈과 관련된 놈도 다 찾아야해.”
설장호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으며 말했고, 곧 수술실 앞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박태식이 먼저
보인 뒤, 의자에 앉아 있는 강서진과 태정민이 보였다.
“조동민은 아직도 정신이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군.”
눈에 보이는 사람 중 조동민만 보이지 않자, 설장호는 어두운 표정이 잠시 스쳐가며 말했다.
“보고 내용을 들으니, 석강수에 의해 상태가 중하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려봐야죠.”
서지호는 일단 경호실 식구인 태정민이 정신을 차린 것을 본 뒤, 조동민에 대한 말을 하였다.
“오셨습니까?”
곧 박태식이 두 사람을 보며 인사하였고, 강서진과 태정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였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네. 아직 입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태정민이 답하였다.
“상태는? 의사의 말을 들은 것은 있는가?”
“수술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리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제기랄…….”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강서진을 향해 보았다.
“넌 표정이 왜 그래? 추선우가 죽기라도 했어?”
그녀의 표정을 보며 괜히 목소리를 높이는 설장호였다.
“어디 가서 좀 쉬었다가 와. 이쪽은 태팀장과 박태식이 맡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답했지만, 강서진은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0022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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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다. 어서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하달하였다. 비록 강서진이 검사지만, 지금 현재는 이 팀의 명령권자가
설장호이기에 그의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그녀였다.
서지호가 강서진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곧 이수호에 대한 모든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수호가 국정원에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 놈과
연관 있는 놈들은 모두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그 때를 놓치지마라. 그 놈들을 다시 놓치면 이젠 언제 또
잡아들일지 모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박태식에게 말했고, 두 사람은 고개 숙여 답하였다.
설장호는 곧 수술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인터폰을 눌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후, 간호사가 나오며 이유를 물었다.
“추선우환자. 수술은 언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마냥 기다리고만 있던 이들과는 달리, 설장호는 곧바로 수술 관계자에게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 후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간호사는 곧장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국정원장님. 석강수와 장석관, 그리고 이수호에 관한 체포소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 편. 국정원에서는 회의가 진행 중이었고, 2 차장이 국정원장에게 물었다.
“공식화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놈을 잡기 위해서 쉬쉬 하였지만, 이제 그 놈을 잡았으니,
정부기관에 숨어들어간 놈들도 빼 내야죠.”
국정원장은 이수호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건 설장호와 생각이 같았다. 이수호가 수장이며 그를
잡았기에 조직을 모조리 소탕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줄기에 아직도 붙어있는 놈들을 쳐 내지 않는 한,
제 2 의 이수호는 다시 등장할 것을 알기에 여기서 끝내지 않고 더 파고들어가려는 그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각 기관에 이수호의 체포소식을 전하고, 공식화하여 언론을 통해 국민들도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2 차장이 직접 마무리의 지휘권을 이어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자신이 내린 명령에 대해 모두 말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곧 언론에 보도되면 한 바탕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 때를 노려야지. 자네에게도 꽤 많은 압박이 가해질 것이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게.”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서 들은 말을 태정민과 박태식, 그리고 서지호와 강서진에게도 모두 알려주었다.
또 한 국정원장은 차현태에게도 이와 같은 보고를 올렸고, 차현태는 그 즉시 공식화 하라는 명령을 다시
각 부처에 하달하였다.

-속보입니다. 한 달 전 있었던 이창민대사 살인사건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가 조금 전 국정원대원들에 의해


체포되어 국정원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방송사는 앞 다투어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국민들은 잠시 잊고 있었던 이창민에 대해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딸인 이지현에 대해서 보도가 되면서 사람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나쁜 새끼들! 저 어린 아이까지 다 죽이려 했다니…….”
사람들은 뉴스 내용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정을 몰살시킬 계획이었다는 말에 더욱 더
분노하는 국민들이었다.

‘띠리리리리’
‘우~웅. 우~웅.’
뉴스 속보가 전해지고 난 뒤, 국정원장과 설장호의 생각처럼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였고, 곧
이수호와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끼리도 서로 연락을 취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큰일이지 않습니까? 이수호회장이 잡혔고, 그가 입을 열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 줄초상 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전화상으로 나오는 대화였지만, 그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양하였다.
국회의원은 물론, 부처 장관들도 있었고, 기업인, 변호사등. 정말 나라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설장호와 국정원장의 전화기도 불이 나고 있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국정원장은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같은 어투로 전화를 받았고,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만
듣고 있었다.
“아. 그러셨습니까? 제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그와 통화중에는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답변과 함께, 편안한 음성으로 답하였다.

“지금 즉시 **시 의원 지민창을 체포한다.”


“알겠습니다.”
이수호의 체포를 공식화 한 것이 곧바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고위직
공무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이수호를 석방하거나, 그에 대한 증거불충분을
내세우며, 선처를 바라는 내용들이었다.
이에 국정원장은 더 묻지도 않고, 곧바로 그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 내렸다.
설장호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국정원장보다는 약간 낮은 레벨의 인물들이었지만,
설장호보다는 높은 서열에 앉은 인물들이었다.

“모두 잡아.”
설장호도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단 한 놈도 빠짐없이 전화한 모두를 잡도록 명령 내렸다.
“무슨 짓들이야!”
국정원장의 명령으로 지민창의 사무실에 국정원대원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의 강압적이 체포에 의해
지민창이 소리쳤다.
“입 열지마라. 너에게 면책특권이란 없다. 그냥 잡혀가는 거야.”
지민창은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국정원대원들은 그가 국회의원이 아닌, 그저 한 명의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줄줄이 체포되고 있었고, 국정원에 이어, 검찰과 경찰도 나서서 검찰청과 경찰청에 전화하여
압박을 가한 모두를 다 잡아들이고 있었다.

“추선우씨 보호자분.”
“네!”
외부적으로는 이수호와 관련된 이들이 하나, 둘 체포되고 있을 때, 곧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며 의사와
간호사가 나왔다.
간호사의 목소리에 강서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답했다.
“수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설장호가 강서진을 대신하여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
의사의 말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 한마디에 강서진은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였다.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총알이 장기를 많이 훼손 시켰습니다. 그래서 총알을 빼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 총알이
지나가면서 장기들을 서로 엉키게 만들었고, 그로인하여 수술을 한 번 더 진행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덜썩.’
결국 강서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검사를 데리고 쉬게 해라. 이곳에는 박태식 혼자서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강서진을 데려갈 것을 명령 내렸고, 곧 박태식이 답한 뒤, 그를 남겨두고 모두
수술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언론 쪽에는 추선우씨에 관한 것은 일체 비밀에 붙여놓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숨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설장호는 서지호와 함께 따로 자리하였고, 곧 서지호가 물었다.
“일단 이수호를 잡아넣고, 그 뒤에 또 누가 없다면, 추선우에 관한 문제는 국정원장님과 대통령님,
그리고 각 부처 장관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보상…….관련 논의 말입니까?”
“그래. 민간인이다 보니, 그에 대한 보상은 철저하게 해 줄 것이다.”
설장호는 다시 목발을 집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네도 돌아가 보게. 아직 이 사건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니니, 대통령님의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하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그 길로 다시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병원에 도착하면 추선우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그의 얼굴은 다음에 봐야 할 상황이었다.

“가서 좀 쉬어. 그리고 박태식과 교대해라. 추선우가 수술실에서 나와도 만날 수 없다고 하니, 이 틈에
쉬고. 추선우가 나오면 그 때 활기찬 표정들을 지어야 할 것 아냐.”
설장호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있는 곳으로 향한 뒤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휴식을 취할 생각이 없었다.
“또 명령을 내려야 말을 듣겠나?”
그녀가 바로 움직이지 않자,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고, 곧 태정민이 그녀를 데리고 움직였다.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석강수가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먼저 향하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군. 뭐가 문제인가?”
석강수는 오히려 설장호보다 더 여유 있어 보였다.
“이수호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 놈이 마지막 놈이야.”
석강수는 설장호가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바람이지. 그 놈이 마지막이며, 이제 끝났으면 하는 바람.”
“쓸데없는 깊은 생각은 오히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너에게 가르쳤었다. 잊은 것인가?”
“아니. 그리고 그 말은 딱 맞아. 쓸데없는 깊은 생각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
설장호는 석강수의 앞에 앉으며 그에게 담배를 밀어주었다.
“내가 이수호를 만나러 갔을 때, 그의 곁에 네 명의 경호원이 있었다.”
“수만과 장태, 장석관과 고광이겠지.”
“그래. 그리고 그 네 놈 중, 장석관을 빼면 추선우와 강서진이 다 잡았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수호의 경호원을 처음 보았을 때, 절대 그 누구도 그 놈들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놈들이 잡혔어. 그것도 민간인에게…….정말 놀랐지.”
석강수는 담배를 태우며 웃기까지 하였다.
“이수호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한 번에 다 버려야하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그럼 숨은 놈들도 다 찾는다.”
석강수는 담배를 마저 다 태운 후, 눈을 감고 앉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의자를 돌려
앉았다.
“국정원에서 함께 일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마.”
그의 모습을 잠시 동안보고 있었고, 곧 설장호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며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나눈 후, 감금실을 나서고 있었다.
“자네도 좀 쉬게.”
석강수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만난 국정원장이 설장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끝나니 끝내고 쉬겠습니다.”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뚜벅뚜벅 걸어서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하며 답했다.

“오늘! 꽤 많은 쓰레기를 처리했네. 아마 내일도 한 무더기 나올 것 같더군.”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고, 설장호는 몸을 돌려세우지 않은 채, 아무런 답 없이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어제 오후 **시 지민창 의원을 시작으로 각 부처 고위직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는 현직 국회의원의 체포 사건 중, 가장 많은 인원이며, 검찰은 앞으로도 더 많은
인원이 체포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뉴스의 첫 메인은 이수호 리스트가 장식하고 있었다. 비록 이수호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체포된 공무원들은 대부분 자신 스스로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운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아침 일찍 이수호의 감금실로 향하였다.

0023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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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먹을텐가?”
이수호를 보자마자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아무리 미워도 밥은 먹여야지. 그게 우리나라 법 아닌가. 빌어먹을 법이지. 죄 지은 놈의 밥까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사줘야 하니 말이야.”
설장호는 그에게 밥을 먹이면서도 절대 고운 말을 내뱉지 않았다.
“실장님.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곧 한 대원이 들어와 서류를 내 보였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체포하고, 집안에 있는 것도 모조리 쓸어와.”
“알겠습니다.”
대원이 보인 것은 이수호의 집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의 집에는 아직도 그에게 젊은 살결을 내 보여주었던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설장호였다,
대원은 곧장 이수호의 집을 급습하였고, 그곳에 남아있는 여인들과 집사등. 이수호의 사람을 다
체포하였고,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을 다 찾기 시작하였다.
“밥 먹기 전에, 네가 억울해 할 말한 말을 좀 할까?”
설장호는 식사가 도착하기 전, 이수호에게 담배를 건네며 물었다.
“넌 오늘 재판에 넘겨진다. 물론 너의 권력을 생각하면 재판장에게도 손을 다 써 놓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이제 너에게 손을 뻗지 않아. 뻗어도 얻을 것이 없으니 말이야.”
이수호는 그의 말을 들으며 담배를 들었다. 설장호는 그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고, 다시 그를
보았다.
“너를 위해 죽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바로 너의 아들 이장두. 그리고 너에게 돈을 받아먹고,
너의 뒤를 봐주던 사람은 절대 너를 위해 함께 죽으려 하지 않는다.”
설장호의말을 들으며, 이수호는 담배를 빨아들이는 호흡을 길게 하였다.
이수호는 이미 설장호가 하는 말에 대한 사실을 직접 겪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고, 자신으로 하여금
주머니를 채웠던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린 경우를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이장두가 처리하였다.
“네가 꼭 살려야 할 사람은 우리도 건드리지 않겠다. 하지만 네가 죽이고 싶은 놈들. 그 놈들만 말해라.
너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내가 합법적으로 그 놈들 목을 쳐 주겠다.”
설장호가 제안하였다. 스스로 자신의 손에 있는 리스트를 공개하라는 설장호의 제안이었다.
이수호의 눈은 설장호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단한명도 남지 않았다.
“내가…….살려야 할 사람이라…….그 참 웃기는군. 내가 그리 짧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닌데, 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신세를 꼭 갚아야 할 은인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군.”
이수호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동안 과거를 떠올리며 또 주변 사람을 떠올리는 회상을 하며
말했다.
“그게 인생사다.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자신 옆에 모기떼처럼 줄줄이 붙어서 기생하지, 하지만 손에 쥔
것을 다 놓았을 때, 그 놈들은 절대 희생하려들지 않아.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거든.”
설장호는 이수호에게 담배 한 개비를 더 건네며 말했다.
“살생부를 작성해두었다면 그 살생부를 우리에게 넘겨라. 네가 죽고 없는 세상에 그들이 활개치고
웃는다면,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설장호는 계속하여 이수호를 설득하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이수호의 눈빛은 설장호의 설득에 조금씩
넘어가고 있는 듯 하였다.

‘띠리리리’
이수호와 대화 중, 전화벨이 울렸고, 곧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조금 전, 추선우씨가 2 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설장호는 놀란 눈빛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지만, 들려오는 답변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박태식에게 걸려온 전화가 혹시나 추선우에 관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할까하는 불안감에 놀란
그였지만, 그의 말을 들은 후에 긴장이 풀려서 다시 자리에 앉은 그였다.
“계속 지켜보고 있어. 절대 자리를 비우지마라. 병원 전체를 다 경찰로 도배하더라도 절대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마저 명령을 내린 뒤, 이수호를 향해보았다.

“추선우…….아직 정신을 회복하지 못했나?”


이수호가 물었다.
같은 처지에 있었던 추선우와 이장두였지만, 이장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추선우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지금이었다.
이수호는 자신의 아들이 죽게 된 근본적이 이유를 제공한 자가 추선우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변한
그였다.
이 모든 것은 발단은 추선우도, 이창민도, 지현도, 설장호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그였다.
“내가 너에게 미리 말했었다. 추선우의 상태에 따라. 네 놈도 이장두의 옆에 눕게 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면 추선우의 회복을 기도해라.”
설장호는 전화를 받기 전과 달리 목소리가 차갑고 무거웠다.
이수호는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내 담배를 마저 다 태운 후, 그를 보았다.

“내 집에 있는 여인들, 그 여인들을 모두 잡는다면 나의 살생부를 모두 찾게 될 것이네.”


“!!!”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이수호의 집으로 출동했던 대원에게
연락하여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여인들을 체포할 것을 명하였다.
이수호가 말한 여인은 언제나 나체로 있는 여인들로, 이수호의 늙은 살에 자신들의 탱탱한 살결을 비비던
20 대의 젊은 여성들을 말하고 있었다.
“회장님 집을 굳이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뉴스를 보니 회장님도 잡혔는데, 만에 하나 집에 가서
봉변이라도…….”
같은 시각. 이수호의 집으로 향하던 고급세단에서 한 여인을 향해 한 사내가 말하다 말고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탄 차량이 이수호의 집 인근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세요. 아무래도 이미 경찰이 회장님의 집을 덮친 모양입니다.”
여인은 이수호의 집으로 온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수호의집에 있는 수많은 여인들이 모두
연행되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여인은 집을 지나쳤고, 그 길로 곧장 이수호의 집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 여인은 언제나 이수호의 목욕물을 받아주고, 그의 바로 옆에서 비서역할을 해 주었던 20 대의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들에게서 어떻게 살생부를 찾나?”
설장호는 이수호의 말을 듣고, 그의 여인들을 모두 체포하도록 하였지만, 그녀들에게서 살생부를 찾는
것도 문제였다.
“나의 도움을 받은 인간들…….그 인간들의 숫자와 내가 곁에 두었던 여인들의 숫자가 같다. 그리고
여인들의 은밀한 부분에 그 놈들의 이름을 새겨놓았지. 절대…….절대 벗어날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그런 살생부를 말이야.”
설장호는 다시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석강수를 통해 그의 곁에는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하지만 그 여성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이수호에게는 모두가 중요한
증거자료의 역할을 할 여인들이었다.
종이나 기계에 기록한 것이 아닌, 사람에게 기록하였고, 그 사람을 찾지 않는 한, 절대 내용을 확인 할
수 없도록 만든 장부.
이수호는 그런 장부를 만들어 언제나 자신의 곁에두었고, 그녀들은 자신의 은밀한 부분에 문신처럼 새겨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인하여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여인들을 놓칠 염려는 말게, 그녀들은 절대 내 집에서 나가지도 못할 것이며, 나가서 살 수도 없을
것이야.”
“무슨 뜻이지?”
설장호는 그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곁에 온 여인이다. 다른 가족은 없지. 내가 모두 입양하였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가 먹이고 재우고 입혔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인들이지, 그래서 지금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설장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에게 얻어야 할
정보가 있다. 그 정보를 얻은 후, 이에 대한 문책을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지금은 이수호보다 불쌍한 그
여인들을 먼저 구제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실장님. 식사가 도착했습니다.”


결코 마음이 편치 않지만, 이수호에게 좋은 정보를 받은 후, 식사가 도착하였다. 설장호는 그에게 식사를
밀어주었고, 곧 대원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수갑을 풀어줘.”
설장호는 대원에게 명령 내렸고, 곧 한 대원이 이수호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밥도 먹이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지금 모든 것을 꾹 참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편하게 먹어.”
설장호의 말이 끝난 후, 곧 감금실 문이 열리며 식사하나가 더 들어왔다. 비록 자신과 같은 국밥은
아니지막, 국정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급하게 공수한 백반이었다.
이수호는 그를 보았다.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먹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식사다. 그리고 네가 준 증거들. 유용하게 사용하고 모두 뿌리
뽑겠다. 또 한. 네 놈에게 인생을 바친 그 여인들 꼭…….제대로 된 삶을 찾아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설장호는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으며,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떴고, 곧 나물반찬등, 백반의 기본 반찬들을
정말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들은 다 이수호가 데리고 있었군.”


잠시 후, 이수호의 집에서 체포된 수많은 여성들이 국정원으로 연행되어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들은 경찰서로 연행되어야 하지만, 외교관의 살인사건과 연관된 이수호의 사람들이기에, 특별히
국정원에서 직접 그녀들을 다 연행하고 있었다.
“실장님. 이수호의 집에서 모든 여성들을 다 연행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와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고 있던 설장호의 옆으로 대원이 다가서며 말했고, 곧
설장호의 시선이 이수호에게 향하였다.
“이제 너와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다. 내가 더 물어보고 도 물어볼 것이 많지만, 그 후의 모든 질문은
검찰에서 할 것이다. 협조해라. 그리고 충분히 너의 죗값을 받아라.”
“…….”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한 뒤, 감금실을 나섰고, 이수호는 커피를 마저 마시며, 담배도 마저 태우고
있었다.
“몇 명이야?”
설장호는 연행된 그녀들의 곁으로 향하며 물었다.
“좀 많습니다. 120 명 정도입니다.”
“뭐야? 그리 많은 여자들을 어떻게 집에서 다 먹여 살리고 있었던 거야?”
설장호는 여인들의 인원수를 듣고 놀란 눈을 한 채 되물었다. 한 집에서 120 명이 살려면 정말 궁궐이
아니고서야 힘들 것이라 여겼다.
“이수호의 집을 급습했던 대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궁궐 같았습니다. 일단 집도 크고, 또 지하로고 5
층까지 내려가 있었습니다. 집에 방만 약 70 여개가 만들어져 있었고, 확인해보니 한 방에 두 명의
여인이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대원의 말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수호라면 충분히 그런 집을 만들어놓고 자신만의 하렘을
건설할 수 있는 힘은 충분하였다.

0023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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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명의 여자들을 다 어디로 연행했나?“
“공간이 없었습니다, 해서 체육관으로 모두 연행해 두었습니다.”
120 명을 모두 넣을 곳은 체육관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들을 모두 외부에 세워둘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곧 체육관에 도착하였고, 그곳에 모인 여자들을 보며 눈을 제대로 깜빡거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이 여자들을 확인해야 하는데, 국정원 내의 모든 여직원을 다 동원해야 할 판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늙은 이수호에게 몸을 내놓고 다녔던 여인들이라고 하지만, 그녀들의 몸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되도록 빨리 정리해야 하니, 여직원들을 다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정말 놀란 눈이었다. 120 명의 여자를 한 곳에 모아 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이수호는 120 명의여인들의 미모까지 모두 완벽하게 갖춰놓았다.
단 한명의 여인도 미모가 미흡한 여인이 없었다. 외모는 물론, 몸매와 피부 결도 고왔다.

“실장님. 대기시켰습니다.”
곧 대원이 다가서며 보고하였고, 설장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국정원 소속 여직원들을 보았다.
“너희들에게 맡기는 임무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서도 이수호와 관련된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연은 지금부터 끊는다. 그러면 지난 과거의 잘못은 더 이상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설장호는 그녀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듣는다. 저기 보이는 여인들의 신체 중, 은밀한 부분에 뭔가의 기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 이름 일수도 있으며, 또 다른 암호화처럼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 모든 것을
다 찾아서 기록한다.”
설장호의 말에 여직원들은 일제히 답한 뒤, 아래로 내려갔고, 곧 이동식 탈의실이 체육관 바닥에 놓이고
있었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장부를 여인들의 몸에 기록할 줄이야…….정말 돌 아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여인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할 때, 설장호의 옆으로 대원이 다가서며 말했다.
대원의 말처럼 설장호도 이수호의 머릿속을 색다르게 해석하였다. 그 어떤 사이코도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실장님. 첫 번째 여인에게서 기록이 나왔습니다. 경찰청 치안감인 경찰청국장 나선공입니다.”


여인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명단이 확인되었다.
“하나하나 다 나올 것이다. 경찰청 치안정감에게 연락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해당 인물에 대해
현장체포를 부탁하고, 앞으로 더 나올 것이니, 경찰청 고위직 인사들에게 사람을 붙여놓도록 지시해라.”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경찰청으로 달려가 해당 인물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름이 다 밝혀진 것이 아니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용을 알고 도피할 수 있으니 치안정감에게 미리 사실을 알려놓는
것이었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차장으로 경찰청장이 이수호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경찰청을 임시로
이끌고 있는 수장이다. 그리고 그는 차현태의 사람이며, 설장호와도 안면이 있었다.

“실장님. 국정원 1 차장 박민호차장님의이름도 나왔습니다.”


“…….”
박민호는 이미 국정원장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이장두의 별동대를 국정원 안으로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고, 그와 긴밀한 관계임이 확인되면서 바로 잡혔었다.
설장호는 표정을 구겼다. 국정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 놈들과 연관된 이들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또 다시 나오고 있었고, 1 차장이라면 국정원 서열 다섯손가락안에들어가는 고위직이었다.

“청와대 홍보수석 민경수입니다.”


청와대에서도 나왔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장인 민광만이라는 고위직이 그 조직에 포함되어 있었고,
이장두의 부하에 의해 살해당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홍보수석이라는 또 한명의 고위직이 이수호의 리스트에서 나오자, 이 사실을
곧바로 서지호에게 알렸다.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에게서 들은 정보를 차현태에게 알려주었고, 차현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
즉시 서지호에게 홍보수석을 체포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 뒤로도 정말 많은 인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었다. 대부분이 정치인이었으며, 권력을 쉽게 남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고위직이 꽤 많았다.

“이런 권력들을 곁에 끼고 살았으니, 누가 이놈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설장호는 하나하나 밝혀지는 명단들을 보며 놀란 눈동자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120 명째의 여인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주미 한국대사관인 지영수로 이창민 대사의 후임으로
미국으로 간 대사관입니다.”
마지막 이수호의 리스트가 발표되었다. 마지막 한 명은 대사관으로 이창민의 후임이며, 그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모두가 생각하였다.
한국에서 그를 잡기 위하여 가야 할 판이었다. 인터폴을 통해 그를 잡고자 하여도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워 시간을 끌 것이 분명하였다.
“지금 즉시 미국 측에 협조를 요청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면, 외교관이라 지랄이고 그냥 두들겨 패서라도
잡아서 보내라고 해.”
하지만 설장호에게는 예외였다. 그에게 어려워서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외교관이라 면책특권을
내세운다면 그의 외교관 자격을 박탈시켜서라도 대상을 잡을 그였다.
120 명의 여인에게서 120 명의 명단을 확보하였다. 정말 대한민국의 책임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설장호는 오전에 이수호를 본 후, 이제는 보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설장호는 그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실장님!”
설장호고 목발을 짚고 이수호의 곁으로 가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대원들이 급히 달려오며 설장호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급히…….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 표정만으로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곧바로
이수호가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설장호는 눈동자를 떨며 물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는 입에서 거품을 내 뿜으며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이수호가 보였다.
“실장님과 식사를 마친 후, 약 30 분정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급히 의료진이 들어왔으나 1 분 만에 심장이 멈췄습니다.”
이수호가 죽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어둠속 지하에서 이 나라 권력층을 흔들었던 인물이 국밥 한
그릇에 허무하게 죽었다.
“국밥집에 연락해서 원인파악해봐.”
“네.”
국밥 한 그릇에 세상을 손에 쥐었던 노인의 모습을 보며 설장호는 천천히 걸어서 그의 앞으로 갔다.
“이수호…….이렇게 갈 것을 예상했겠지. 네가 한 짓을 그대로 네가 다시 받는 거다. 세상은 언제나 이리
돌아가는 거니까.”
설장호는 그의 감기지 않은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곧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나 감금실을 나왔다.
“이수호의 장례를 준비해주고, 이 내용도 언론에 공개해.”
“네? 언론에 말입니까? 그래도 이건…….”
“설 실장의 명령대로 하게.”
설장호의 말에 대원들이 머뭇거렸지만 이내 국정원장이 감금실 앞으로 오며 말했다.
“지금 즉시 이수호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움직인 후, 설장호는 자신의 사무실로걷기 시작하였다.
“이수호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 안도하는 놈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120 명의 명단은 확보했지만, 그
120 명이 전부일 것이라는 확답을 이수호에게 듣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설장호는 그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고, 국정원장은 그를 보았다.
“120 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20 년이 넘는 세월이네, 이수호가 이 나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권력층의 주머니를 채워주었어. 그 놈들이 고작 120
명밖에 되지 않겠나?”
맞는 말이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말을 듣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120 명, 1200 명이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품고 가버린 이수호가 원망스럽고, 그가 죽기 전에 미리 물어보지 않은 자신에게
원망스러웠다.
“우선 120 명을 모두 체포하고, 다음을 또 확인하세.”
설장호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국정원장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설장호는 그를 향해
살며시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사무실로 들어섰다.
“제기랄…….”
사무실로 들어선 설장호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사무실 바닥을 보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속보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국회의원은 물론, 정치계의 피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수호리스트를 확보하고 해당 인물을 모두 체포하고 있습니다.-

이수호 리스트에 명단이 기록되어있는 사람들은 빠른 시간 안에 모두잡혀들어가고 있었다.


일부는 국정원으로 잡혀오고, 일부는 경찰, 일부는 검찰로 잡혀가고 있었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과 경찰청등 이제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네 곳은 계속하여 이수호와 관련된
인물들이 발각되고 있었고, 차현태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이순간부로 청와대 내부에 있는 모든 인원의 신분을 다시 확인하게, 단 한명도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어떤 누구라도 설장호실장에게 연락하여 조사를 받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창민이 서울역 물품보관대에 남겨놓았던 서류를 꺼내보았다.
“이 이름들…….”
서류 하나에 적힌 수많은 이름들, 정확하게 이름이라고 나열하기에는 힘들었던 그런 부분이었지만, 조금
전 120 명의 명단을 확인한 후에는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서류에 적힌 이름의 나열은 정방향이 아니었다. 역방향이며 아래에서 위로 보면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은 꽤 눈에 익숙한 이름이 많았다.
경찰청장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국정원 제 1 차장등. 그들의 이름은 이미 이 서류에 다 기록되어
있었고, 설장호는 이창민이 남긴 서류의 내용을 이제야 알게 된 것 뿐이었다.
허무하게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제는 필요 없는 서류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모두를 체포하였다. 단지 그
인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류에 적힌 이름보다 오늘 알아낸 이름이 더 많기에, 서류상의 이름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이름이라 여겼다.
그리고 여러 명의 사진으로 합쳐져서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 낸 사진. 마치 매직아이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지만, 이 제보니 그의 얼굴은 이수호였다.
비록 20 년 전 젊은 나이의 이수호의 모습이지만, 그의 모습은 확실하였다.

이수호리스트의 파장은 나라를 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단 하루 만에 정치계는 물론 경제계와 교육계까지,


이름 좀 있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수호와 관련되어 있었다.

0023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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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명의 여인에게서 얻은 정보에 기록된 120 명을 모두 체포하였습니다.”


다음 날. 만 하루만에 120 명은 모조리 잡혔다. 국정원과 청와대, 검찰과 경찰이 모두 나서서
해당인원들을 잡기 시작하였으니,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설장호에게 대원이 보고하였고, 그는 대원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창밖만 보고 있었다.
“실장님…….”
“알았다. 가서 일봐라.”
“네. 알겠습니다.”
대원이 다시 설장호를 부르자, 그제야 몸을 돌려 그를 보며 말하였고, 곧 목발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20 명. 그 세월동안 고작 120 명이 끝이 아니겠지. 그리고 이번에 빠져나간 놈은 또 어딘가에서 권력
질을 하고 다니겠지…….빌어먹을…….”
설장호의 걱정이었다. 각 부처나 기관에서는 120 명을 잡아내고, 또 조직의 수장인 이수호를 잡은 것으로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와 검찰, 경찰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진작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으로 그들의 박수와 칭찬을
받고 있었다.

이수호가 죽고, 핵심 인물들이 모두 체포되면서 이번 사건은 일단 종결을 알렸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수호에 관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도 실명으로 모두
공개하였다.
국민들은 그 동안 나랏일은 한다면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몇 몇 인물이 이수호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격한 말을 내 뱉고 있었다.

“추선우에 관한 한 달간의 기록은 모두 삭제할 예정이네. 그가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도 삭제될 것이며,


그가 깨어나면 그저 평범한 구직자인 민간인 추선우가 되는 것이네.”
국정원장의 생각이 아니었다. 청와대와 정부, 검찰과 경찰청 모든 곳에서 추선우에 대해 내린 결정이었다.
설장호는 뭐라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숨겨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태정민과 강서진, 그리고 박태식에게 모두 하였고, 그들도
설장호와 같은 반응을 그대로 내 보였다.
화가 나고 주먹이 쥐어지지만, 한 편으로는 그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
“설 실장님. 조동민 팀장이 정신을 회복하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가봐야지. 차를 준비시켜주게.”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모두에게 추선우에 관한 내용을 알린 뒤, 곧 대원의 보고를 듣고 사무실을 나섰다.
조동민은 꼬박 3 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그 긴 어둠속에서 눈을 떴다.

“태정민. 수고했다.”
태정민은 단 이틀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여 청와대로 돌아갔고, 그가 돌아오자 서지호와 청와대 경호실
일원이 모두 그를 반겼다.
“대통령님을 만나 뵙고 인사부터 드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서지호와 경호원들의 환영을 받은 후, 태정민은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곧 차현태를 만났고,
차현태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안아주었다.
집무실을 나온 태정민은 서지호를 다시 만났다.
“지현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지호는 태정민을 데리고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선우…….는요?”
태정민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희가 그를 보며 바로 물었다. 그리고 지현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삼촌은요? 정민이 삼촌과 선우 삼촌이 함께 온다고 하였잖아요. 그런데 왜 삼촌 혼자 왔어요?”
지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태정민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만 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선우…….오지 않나요?”
미희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현의 눈동자는 더욱 더 심하게 떨려왔고, 곧 은주가 미희의 손을 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내가 이야기하고 올게. 지현이와 있어.”
은주는 태정민이 미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짐작하였다. 그래서 지현이 있는 곳을
피해 다른 곳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였다.
“이모…….삼촌에게 무슨 일 있어? 왜 정민이 삼촌이 아무런 말을하지않아? 이모…….이모가 좀
알아봐줘.”
지현은 미희를 잡아 붙들고 그녀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미희라고 지금 당장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싶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고아원 동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마저 떠나면 정말 세상에 혼자가 되는 그녀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은주는 태정민과 함께 자리를 옮겼고, 곧 그에게 바로 물었다.
“당분간, 추선우씨에 관한 모든 것은 극비로 다뤄질 것입니다.”
“왜요? 왜 선우에게…….”
“청와대와 국정원은 물론, 검찰과 경찰에서도 모두 추선우씨에 관한 한 달간의 기록을 삭제할
예정입니다.”
태정민은 은주의 물음에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답을 해주었다.
은주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까지 그리 고생하고 또 고생했는데, 그 동안의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될 것이라는 태정민의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왜…….그래야하죠?”
“그리해야만…….추선우씨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은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이 뭐라고 또 물어 볼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지현에게는 대통령님께서 직접 모든 것을 말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끝났다면…….그 놈들을 모두 잡으신 것인가요?”
태정민의 말에 은주는 눈동자가 조금씩 커지며 물었다. 그리고 이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조직의 수장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조직 직계도에 있는 모두를 체포하였습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은주는 태정민을 보며 눈물이 조금 맺힌 눈동자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추선우로 인하여 굳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이 밝아진 그녀였다.
“그럼. 태팀장님께서는…….”
“저는 당분간 국정원과 청와대를 왕래하며, 이번 사건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주 씨와 미희씨,
그리고 아주머니는 곧 새롭게 마련된 집으로 가실 것입니다.”
“새로운 집요?”
“네. 기존에 살던 집은 이제 사실 수가 없습니다. 만약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은주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만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 중, 한 놈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만약요…….그렇다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은주 씨가 위험해 질
수 있기에, 정부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 자격으로 새로운 집을 구해드릴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여기서
계십시오.”
은주는 달동네에서 언제나 이사를 가고 싶어 하였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그녀를 데려다 준다면 사양해야
했던 과거였다.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달동네에 살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동네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추선우씨에 관한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될 것입니다.”
“네. 알아요. 그리고 믿어요. 태팀장님께서 선우를 잘 보살펴 주시겠죠.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은주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 편의 기쁨에 또 한 편의 슬픔이 그녀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더 이상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태정민에 대해서는 기쁜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이 이제 마무리
되었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추선우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강 검사. 수고했네. 이쪽으로 오게.”


한 편.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돌아와 검찰총장실에 들어섰고, 총장은 그녀를 반겨주었다.
“아픈 곳은 없는가?”
“네. 괜찮습니다.”
총장은 기쁜 얼굴로 물었지만, 강서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추선우라는 한
사내가 모든 것을 다 채워놓고 있었다.
“추선우씨 때문인가?”
“총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병원으로 가 봐도 되겠습니까?”
총장은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답을 하지 않고, 그에게 부탁을 하였다.
총장은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총장님. 강 검사의 부모님께서 강 검사를 보고자 오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쏙
빼시고 그냥 보내시면…….”
“부모님은 내가 만날 것이니 자네는 신경 쓰지 말게.”
총장은 부장검사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싹 바꾸며 말하였고, 곧 강서진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응접실로 향하였다.

“왜? 자네 혼자 오는가?”
총장이 홀로 응접실에 모습을 보이자, 총장과 거의 동년배로 보이는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검사가 그리 한가하지 않네. 바쁜 업무가 있어서 내가 그냥 바로 보냈어.”
총장은 사내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를 마주하고 앉은 두 남녀는 강서진의 부모님이며,
강서진의 아버지는 현재 검찰총장과 동창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난 날. 총장은 강서진에게 아주 강한 경고성
멘트는 물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설장호는 중간 중간에 총장을 꽤 의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은 강서진에게 많은 지원과 함께
기회를 주곤 하였었다.
“그나저나, 내가 얼핏 듣자하니 이번 이수호 사건에 우리 딸도 함께 담당 검사로 나섰던 것 같던데,
자네가 보낸 것인가?”
“하하하. 내가 왜 그런 위험한 일에 친구 딸을 보내겠나. 난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자네 딸을 자네가 더
잘 안다면 이해는 더 빠를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하…….”
총장은 그의 질문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고, 강서진의 부모님은 그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딸을 잘 알고 있기에 뭐라 말을 하지 못하였다.

“또 오셨습니까? 저희들도 안타깝지만 지금 현재는 안으로 들어가실 수 가 없습니다.”


한 편. 병원에서는 여느 중환자들과는 달리, 한 쪽으로 격리되어 다른 중환자들과 다른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추선우를 보기 위하여 강서진이 왔지만, 문 앞에서부터 그녀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었다.

0023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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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잠시 얼굴만이라도 볼 수 없을까요?”
강서진은 간호사에게 부탁하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강 검사님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대통령님께서 오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녀의 모습을 본 주치의가 직접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강서진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녀는 병원 로비에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멍하니 앉아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강 검사…….”
병원로비를 들어서던 설장호가 로비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강서진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는 조동민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그도 이미 추선우를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굳이 만날 수 없는 그를 만나고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강 검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설장호와 함께 병원을 찾은 국정원 대원이 그에게 말했다.
“아니. 혼자 있도록 그냥 둔다. 우린 조동민을 보러 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추선우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병원에서
나서지 않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승강기로 향하며, 그녀를 한 번 더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여인이 아니었다.
천방지축이며, 검사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건망증과 자신이 우월함을 언제나 과시하였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제 숙녀가 되어있는 듯 하며, 완벽하게 검사가 되어 있는 듯 하였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설장호는 조동민의 병실로 들어섰다. 조동민은 그가 들어서자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인사하였다.
“죽었으면 더 죄송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있으니 죄송하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
설장호는 그의 침대를 지나치며 창가로 향해 서서 말했다.
“대원들에게 들으니 조직의 수장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 놈…….몇 년이나 감방에서 썩을 것
같습니까?”
조동민은 아직 이수호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놈? 글쎄. 아마도 평생 나오지는 못할 것이야. 관속에서 말이야.”
“네? 관속이라면…….그 놈이 죽었습니까?”
“애석하게도 국정원에서 국밥 한 그릇에 저승길 올라섰다.”
“…….”
설장호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이 진담인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조직의 수장이라도 잡히면 누군가가 죽여야 한다는 뜻인데…….세상 무섭군요.”
“세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무서운 거지.”
설장호는 창가를 보던 시선을 돌려 조동민을 보며 말했다.
“인간이 인간답게만 산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또 인생이지.”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수호. 그 조직의 수장이다. 그리고 이장두. 이수호의 아들이지. 또 한 그 조직을 15 년 동안 이끌었던
최기수, 고민국, 우수광, 정구석…….모두가 저승 행에 올랐다.”
설장호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잡고자 했던 자들을 모두 잡았지만, 그 모두가
죽었다.
즉. 그들이라고 안전한 목숨을 보장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직의 수장이 죽었으니, 이제 마음은 편해지시겠습니다.”
“마음이 편하다? 그래. 마음이 편해져야하지. 그런데 편하지가 않다. 볼일 보고 닦았지만, 찝찝함이
남은 느낌이야.”
설장호는 모두가 끝이라고 말하는 이번 사건을 끝내지 않은 사람이었다.
“수장을 잡았으니 남은 놈은 잔챙이들 아니겠습니까? 수장을 잃었으니 갈 곳을 잡지 못하는 놈들만 남아서
…….”
“그래. 그런데 그 잔챙이라는 놈들이 수장을 죽이는 머리를 굴렸어. 왜 그랬을까?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수장이 잡혔을 때, 그 수장을 구하고자하지, 죽이려들지 않아.”
설장호는 다시 목발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병실에 있는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서로의
눈을 보았다.
“그럼. 실장님의 생각은 아직도 누군가가 남아서 조직을 이끌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지. 언제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또 다른 일을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설장호는 조동민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문으로 향하였다.
“죽었으면 모를까. 이왕 깨어났으니 몸조리 잘해라.”
설장호는 조동민을 향해 보며 말한 뒤, 병실 문을 나섰고, 농담이겠지만, 진담처럼 들리는 그의 말을
들은 조동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석강수는 어떻게 되었나?”
설장호가 나간 후, 조동민은 병실을 지키는 대원에게 물었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 새끼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내가 쇠파이프로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다.”
조동민은 진심이었다. 자칫 석강수로 인하여 인생을 마감할 뻔 한 자신이었기에, 그 빚을 꼭 갚아주고
싶었다.
“우선 병원을 나서야하니, 몸조리 잘 하십시오. 그 때까지 설 실장님이 석강수를 잘 데리고 있을
것입니다.”
대원은 조동민이 일단 진정해야 하기에,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려하였다.
“강 검사는?”
“아직도 로비에서 홀로 앉아있습니다.”
설장호는 병실에서 나와 승강기를 이용하여 곧장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자신의 눈으로 또 다시 멍하니
앉은 강서진을 보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고 온 대원은 설장호의 생각처럼 그녀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혹시 모르니 강 검사의 주변에 사람을 붙여 놔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대원에게 명령내린 뒤, 곧장 병원을 나섰다.

“오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실 것입니다. 정부에서 직접 선택한 곳이라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셔도 됩니다.”
다음 날. 태정민은 은주 일행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선 후, 은주를 보며 말했다.
“벌써 집을 구하신 것입니까?”
“사실. 은주 씨의 집은 벌써 며칠 전부터 봐 왔습니다. 이미 기존 주택에서 살 수없으니, 그에 맞는 집을
물색해두었고, 어제부로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이 종결됨이 확정되었기에, 오늘 바로 새로운 자택으로
가실 것입니다.”
은주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집 떠나 나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고생한 엄마의
얼굴은 어느새 많이 늙어보였다.
“또 한 생활은 물론, 기타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정신적 피해를 입은 부분까지 모두 보상이 될 것이며,
정신적 치료도 정부에서 지원하여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태정민은 아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미희도 보았다.
“미희씨도 새로운 오피스텔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도 이미 알아두었으니, 모든 것이
안정 되는대로 면접을 보러 가시면 됩니다.”
곧 미희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하지만 미희의 기분은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모…….”
지현은 미희의 표정을 보며 그녀를 살며시 안았고, 미희도 그녀를 안아주었다.
“약 1 시간 후, 청와대를 벗어날 것이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정민은 지현과는 되도록 눈을 맞추려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기에, 그녀의 질문은
자신에겐 무거운 질문이었다.
태정민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현은 그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추선우에 관해 그 어떤 누구보다 더 궁금할 것이 많을 것이지만, 그녀는 질문은커녕, 태정민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있었다.
‘차라리…….그게 좋다.‘
태정민은 자신을 무시하는 그녀의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본다고해도 지금은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자신에게는 좋은 행동이라 생각되었다.
“왜? 서진이가 저렇게 병원에서 밤새 있는 것인가?”
한 편. 강서진의 부모님은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은 강서진을 찾아, 직접 병원으로 왔고,
그녀의 행동을 보며 차장검사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것이 좀 있습니다.”
두 사람과 함께 온 차장검사는 강서진의 아버지 후배로써, 총장의 후배이기도 하기에, 총장의 명령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혹여 이 병원에 검찰청 사람이 입원해 있는 것인가?”
그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검찰청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 이 병원에는 국정원의 대북전담 팀장인 조동민 팀장이
입원해있습니다.”
“국정원? 국정원 대원이 입원했는데, 왜 서진이가 저리 있는 것인가?”
그녀의 아버지는 차장검사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차장검사가 하려는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
“그게…….”
“조동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민간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차장검사가 그의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이을 때, 병원 로비로 들어서던 설장호가 그에게
시원한 답을 해주었다.
“설 실장? 자네 꼴이 그게 뭔가?”
그녀의 아버지는 설장호도 알고 있었다.
“뭐.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것입니다.”
“살다보니 자네가 목발 짚고 걷는 모습도 보게 되는군.”
그녀의 아버지는 설장호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보였다.
“그런데 자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가? 이곳에 민간인이 있는데, 내 딸이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니?
자세히 좀 말해보게.”
그녀의 아버지는 설장호의 팔을 잡아끌었고,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도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말해보게 왜 서진이가…….”
“아빠!”
그가 설장호를 자리에 앉히자마자 심문하듯 물으려 하였으나. 곧바로 그의 뒤에서 강서진이 그를 불렀다.
“아…….서진아…….그게 말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카리스마 있었다. 총장과도 대화할 때 절대 주눅 들지 않았고, 그 누구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설장호도 쉽게 대하던 그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강서진에게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약한 남자가 되고마는 그였다.
“아빠가 왜 여기에 있어? 그리고 설 실장님은 왜 저희 아빠와…….”
“저. 그게 말이다. 이 아빠가 이 근처에…….”
“자네의 남자친구를 보러 오신 것이네.”
“이보게! 설 실장!”
그가 또 말을 버벅거리자,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직설적으로 바로 말하였고, 그는 놀란 나머지 병원
안에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빠. 여긴 공공장소에요.”
“아…….그렇지. 그래. 그렇지. 여긴 공공장소지. 그런데 내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강 검사의 남자친구를 볼 수 없습니다.”
또 다시 말을 버벅거리는 그에게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였다.

0023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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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검사가 되면서 연애한 것이야?”
그녀의 아버지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어머니가 나서서 직접 물었다.
“검사는 연애 못해? 나도 사람이야. 그리고 나이도 이제 시집갈 나이인데,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할 것
아냐.”
그녀는 어머니의 말에 답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 나 당분간 집에 갈 수 없어.”
강서진은 부모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시 로비 한 쪽으로 가서 앉았고, 그녀의 부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 뒤, 설장호를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저 애가 저리 말한 적이 없었네. 대체…….자네가 말한 그 민간인이 누구인가?”
그는 설장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설장호의 입을 보았다.
“그냥. 민간인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평범한 민간인입니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이 병원에 입원해서 내 딸을 저리 힘들게 만들어? 대체 그 평범한 민간인이 누구냔
말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또 다시 소리쳤고, 강서진은 그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설장호를 보던 매섭던 눈빛이 어느새 정말 아빠눈빛으로 변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저 강 검사가 사랑하는 한 사내라고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몇 번 봤었는데, 꽤 괜찮은
녀석이었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그녀의 아버지가 듣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내가 직접 보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어.”
“그러시겠죠. 직접 보셔야겠죠.”
두 남자는 강서진을 보며 서로의 대화를 하고 있었고, 간간히 미소도 함께 지어주었다.
“그 놈 어느 병실에 있나?”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무슨 전염병이라도 걸린 놈이야?”
“하하…….그 정도 병이면 양호하죠. 뭐 어쨌든 지금은 대통령이 와도 볼 수 없으니 기다리십시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들을 노려보는 강서진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연락하지. 오늘은 서진의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네.”
“알겠습니다. 요 며칠간 강 검사의 눈을 볼 수 없어 피해 다녔습니다.”
“그만 가겠네.”
그녀의 아버지는 곧 강서진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한 뒤, 그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설장호는 그가 나선 것을 본 후, 강서진을 보았다.


“아직, 아빠에게 말하기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네 남자로 추선우만한 놈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선우를
보게 되면, 그 즉시 아버지에게 먼저 보여드려라. 그래야…….너나 나나 편해진다.”
설장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다시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로 향해 걸었다.
‘지금의 너의 모습. 그 모습과 마음이 간절하여, 다시…….다시 추선우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설장호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홀로 중얼거렸고, 곧 승강기에 올라탄 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사건이 대체 무슨 사건인지 확인해야겠어.”


한 편, 병원에서 강서진을 보고 돌아가던 그녀의 아버지는 설장호의 말과 함께, 그녀의 행동도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것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궁금증으로 인하여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고, 곧 그녀의
어머니도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차 창밖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이 정말 저와 엄마가 살 집인가요?”


한 편. 정부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은 은주는 경기도 외곽이지만, 그래도 넓은
정원과 함께, 텃밭도 딸린 전원주택을 보며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서지호에게 물었다.
“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집은 말 그대로 이번 사건에 의한 정부입장에서 민간인인 두 분에게 드리는
피해보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즉. 현재 어머니의 앞으로 되어있는 북정마을 주택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럼?”
“네. 북정마을은 곧 재계발이 될 것입니다. 그 때 그 집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나와 은주의 입은 막을 수 있겠지만. 선우는요? 선우는 어떤 보상을 해 줄 것입니까?”
은주의 리액션과는 달리,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서지호를 향해 조금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추선우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서지호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바로 하지 못하였다.
“왜? 말을 하지 못하나요? 선우에게도 이런 집하나 던져주고, 조용히 살라고 하실 건가요?”
의외였다. 은주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토록 선우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제가…….은주 씨에게는 미리 말씀드렸지만, 아주머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군요.”
서지호는 전원주택의 마당 가운데 선 채, 아주머니의 앞으로 더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추선우씨에 관한 모든 것은 극비입니다. 그에게 어떤 보상이 내려지는지도 당연히 극비겠지요. 그리고
추선우씨에 관한 보상이던 뭐든…….그 내용을 정부에서는 아주머니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
은주와 아주머니는 놀란 눈으로 서지호를 보았다. 지금까지 그에게서 이토록 차가운 느낌을 받은 기억이
없던 두 모녀였다.
“그…….말은…….”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두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두 분 앞으로 나온 정부의 보상이라도 잘 챙겨 가십시오.“
두 모녀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의 서지호가 아니었다. 정말 완전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참…….”
서지호가 멍하니 서 있는 두 모녀를 향해 인사한 후 돌아가려 할 때, 그는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이 또 있었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두 모녀가 다시 그를 보았다.
“지금 이시간부로 당분간 이 집은 물론, 두 분의 안전을 위하여 집 인근에 사람이 배치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그림자처럼 숨어서 두 분을 경호할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
은주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현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 이 사건이 진행 중일 때 대하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그의 행동은 점점 더 두 모녀의 표정을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서지호는 전원주택을 나섰다. 그리고 곧 전원주택 입구에 서 있던 사내에게 귓속말로 뭔가 말하였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은주의 표정은 다시 일그러졌고, 아주머니는 그 마당 정 중앙에 주저 앉아버렸다.
“엄마. 일어나. 어차피 우리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어.”
“손해? 너 진짜 독한 년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만 생각해? 선우는? 선우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 그리 쉽게나와!”
아주머니는 은주의 말에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은주는 전원주택 주변에 서 있는 사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았다.
“쉽게 나온 말 아니야. 그리고 저들이 정말 선우에게도 이런 보상을 하려한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아.
모조리 다 엎어버릴거야.”
은주는 아주머니보다 더 독한 면이 있으며, 아주머니보다 더 추선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 독하셔야 합니다. 이 나라…….정부는 국민들의 보상에 그리 많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조직의
수장을 잡았으니, 그에 대한 것만 집중합니다. 그러니 더 화를 내십시오. 그래서 정부를 상대로 큰
목소리를 내십시오.’
두 모녀를 두고 나오던 서지호는 차에 타기 전, 다시 한 번 전원주택을 향해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은주와 아주머니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지호는 두 모녀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모녀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추선우에 관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 그였다.
서지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내려질 보상에 대해 너무자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보상이 터무니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부는 언제나 보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국민과 달랐다.
정부는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최상이라 생각하고,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금전적 보상과
함께,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보상은 달랐다. 국민은 충분한 금전적,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제대로 처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보상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모른다, 그런 국민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같은 사고는 또 터지고, 또 다시 국민들의
피해가 일어난다.

서지호는 은주와 아주머니의 보금자리를 안내해 준 후, 곧바로 미희에게로 향하였다.


미희도 새로운 원룸을 정부로부터 받게 되었다.
그녀가 받은 오피스텔은 정말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미희는 집안으로 들어서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평생을 일해서 벌어도 이런 오피스텔에서는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들고 있는 그녀였다.
“난. 이런 호화스러운 오피스텔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역시였다. 미희는 오피스텔을 소개해준 서지호를 보며 말했고, 그는 미희의 말을 듣고도, 그녀에게
오피스텔을 열쇠를 주었다.
“그냥…….주면 받으십시오.”
“그래도 제가 이런 것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난 그냥 선우의 친구입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것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미희는 계속하여 거절하였다.
“받으십시오! 꼭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를 이끈다는 양반들도 그들에게
급여가 지급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꼬박꼬박 받아갑니다. 그런 인간들도 받아 가는데,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지호의 목청이 커졌다. 미희는 그의 목청이 커지자,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당신이 거절하면 이 오피스텔은 또 다른 어떤 쓸모없는 인간이 하이에나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냥 가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그냥 가지세요, 그냥 받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바로 팔아버리세요.
그래서 돈이라도 두둑하게 챙기세요!”
서지호는 처음에 전원주택을 소개해 준, 두 모녀보다 더 격한 어투로 미희에게 말하였다.
“추선우씨가 그 동한 한 고생에 대한보상의 일부라고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꼭 받으십시오. 적어도…….
나라에서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똥이 되어도 받으십시오.”
미희는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정부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물론, 추선우씨와 은주씨, 그리고 지현이 받아야
할 보상들. 그 보상들은 분명 나라에서 산정하여 각 개인별로 지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그
와중에서도 눈 먼 나랏돈이라며 자신의주머니로 가져가려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서지호는 이와 같은 말은 은주에게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희에게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미희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그가 하는 말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있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이며 친구의 일이었다.
0023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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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지급되는 모든 것은 다 가져가십시오. 당신이 받지 않겠다고, 그 모든 것이 다시 나라로
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지호는 일반적인 민간인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것도 조금은 격한 어투로
말해주었다.
미희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아주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당분간 이 오피스텔 인근에 정부쪽 사람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그에 대한 깊은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지호는 미희에게도 은주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였다. 그리고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오피스텔을
나왔다.
미희는 오피스텔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지호의 말을 듣고 난 뒤에,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다.
“돌아간다.”
서지호는 은주와 미희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녀들이 이 보상을 받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여인에게 보상을 떠 넘기는데 성공했다.
현실을 알려주었다. 받아야 할 것을 쓸모없는 인간들에게 넘겨주지 말라는 현실을 알려주었다.

“두 사람에게 모든 보상을 전해주었습니다.”


서지호는 은주와 미희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안내해 준 후, 그 보고를 차현태에게 하였다.
“고생했네. 그럼 이제 지현과 추선우에 대한 보상을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은주와 미희에 대한 보상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 바로
추선우와 지현이었다.
이 두 사람도 민간인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두 사람이기도 하였다.
서지호는 경호실장이지만, 지금 현재 비서실장과 홍보실장이 모두 이수호리스트에 포함되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경호실장인 서지호가 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현태는 은주와 미희가 떠난 청와대 안의 사무실에 홀로 남은 지현을 찾았다.

“고생했다. 이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날이 곧 올 테니 조금만 더 참거라.”


차현태는 지현을 보자마자 그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선우 삼촌은요? 선우삼촌이 보고 싶어요.”
지현은 자신을 안은 차현태에게 추선우에 관한 것을 물었다. 어제 태정민에게는 묻지 않았던 말이지만,
차현태에게는 물었다.
“곧 만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차현태는 다시 한 번 지현을 안아주며 말하였고, 그의 표정은 조금 매섭게 변해있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듯 한 기분이다.”


한 편, 설장호는 국정원내의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창밖만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띠리리리’
곧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의 시선이 휴대전화로 향하였다.
“무슨 일이야?”
그에게 전화한 사람은 서지호였다.
-은주 씨와 미희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 안내가 끝났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만에 하나 그들이 보상을 거부했다면, 지금쯤 어떤 미치광이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지급될 보상을 손에 넣고자 난리를 치고 있을 텐데 말이야.”
-지현에 대한 보상은 대통령님께서 직접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추선우입니다. 아직 그에 대한 보상은 그
어디에서도 나온 것이 없습니다.-
설장호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자신의 책상으로 이동하여 앉았다.
“추선우에 대한 결정은 아직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모른다. 만에 하나 추선우에 대한 결정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이 순간이 만들어진 진 것은 모두 추선우씨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 허술하다면 저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서지호는 이미 두 사람에 대한 보상처리를 대통령 직속으로 처리하였지만, 문제는 역시 추선우였다.
-이번 사건이 종결 처리되면서 난 이제 힘이 없다. 하지만 자네는 대통령 직속이니, 이번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꼭 내주어야 해.-
“알겠습니다.”
서지호와의 짧은 통화를 끝낸 후,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사무실을 나섰다.
“실장님. 원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가 나오자마자 대원이 말했고, 그는 국정원장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리에 앉게.”
설장호가 들어오자, 국정원장은 그를 자리에 앉도록 한 뒤, 자신도 곧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편치 않지?”
“마음이 편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첫 한마디부터 톡 쏘며 그의 말에 답하였다.

“앞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네. 위선부터 시작하여 모조리 다 쳐내고, 새로운 국정원을 구성할
것이네.”
국정원장의 각오이지만, 그 말은 설장호에게 그리 대단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뭐. 그건 제가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무리나 잘 해주십시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국정원장은 그의 행동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말을 하면 가장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그토록 잡고자 한 놈을 잡았고, 그 조직을 모두 무너뜨렸지만, 정말 개운하지가


않다…….젠장.”
설장호는 국정원장실을 나오며 홀로 중얼거렸고, 목발을 짚은 그의 걸음걸이는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이수호리스트로 인한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주일이 지난 금일. 국정원과 검찰청, 경찰청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정말 조용하였다.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식사와 잠을 청하지 못하고 지냈지만,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한 일주일 동안은 잠만 자고 먹기만 하였다.
각 언론매체는 이수호리스트로 이어지는 각 부처별 인사이동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대통령인 차현태의 명령이 크게 작용하였고, 국가 공무원의 비리를 밝혀내며, 단 하나라도 법을 어긴
것이 발견될 경우, 가차 없이 쳐 내는 강수를 두고 있었다.
하여 국회의원들의 시선도 바빠지고 있었다. 아직 현직 국회의원이기에 바로 쳐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차현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국회의원은 물론, 각 부처 장관 및 차관. 그리고 일반 공무원들까지도 모두 해당되었다.

“칼이 아주 매섭군요. 이러다 나라를 이끌고 가는 공무원들이 모두 옷을 벗을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앞길을 걱정하였다. 자신들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면서
차현태의 단행은 비꼬는 그들이었다.
“대통령님. 이번 단행으로 인하여 말들이 많습니다.”
차현태는 집무실에 앉아 있었고, 곧 서지호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 입들을 모두 다물게 할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쳐 내.”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다고 도움 될 것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할 말만 할
것이고, 그 말은 자신들을 위한 말만일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말은 없으며, 차현태의 강수가 지나치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이수호가 남긴 것이 아주 무섭군.”
한 편. 이수호가 죽은 후, 거의 10 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이수호의 파장은 끝이 없어보였다. 검찰총장은
이수호리스트로 인하여 잡혀온 이들이 또 다른 정보를 공개하면서 물고 물리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잡아들여야 하는 인물이 너무나 많은 것을 두고 말하였다.
“강 검사. 자네는 서울시의원 정태호의원을 잡아들이게.”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표정이 많이 밝아보였다. 일주일 전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린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한
달 전, 당당하고 도도한 그 표정 그대로로 돌아와 있었다.

“설 실장님. 국정원이 아주 썰렁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에서는 설장호가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곧 한 대원이 휴게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텅 빈 국정원이 되더라도 칠 놈은 이번에 다 쳐내야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다음에 또 일어나지
않는다.”
설장호는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이제 그의 손에는 목발이 없었다. 두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고, 창밖을 보고 있던 그의 시선에도
평소와 달리 현저하게 줄어들은 국정원 내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조동민의 퇴원일은 언제인가?”
“네. 병원에서는 아직 2 주이상은 더 입원치료를 요구하지만, 조 팀장은 내일 퇴원을 하고자 주치의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동민은 꽤 많이 호전되어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무슨 힘겨루기까지 하고 그래. 주치의한테 말해서 퇴원해서 죽어도 다 그 놈이 책임질 것이라고 말하고
내일 퇴원시켜.”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조동민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였다. 병원처방대로라면 당연히 더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지만,
조동민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 상황이 악화될 것을 알기에 조동민의 편을 드는 그였다.
“지현을 보러 갈 것이니 준비해두게.”
“알겠습니다.”
커피를 다 마신 설장호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고, 대원은 곧바로 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오늘도 국회의원 및 각 부처 차장급 이상의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검찰에 출두하였습니다. 이는 아직도


남은 이수호의 관련자들을 다 쳐내지 못한 것을 말하며, 검찰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끝이 없는 이수호리스트에 혀를 차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세금으로 주머니를 채워오던 고위직 공무원들이 너무나 많이 연루되어 있었고, 그들이
아직 자신들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더욱 더 화가 나는 국민들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설 실장.”
설장호는 지현을 보기 위하여 청와대에 들렸고, 차현태가 그를 반겼다.
“요즘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시겠습니다.”
설장호는 그를 보자마자 말했고, 차현태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어디 설실장만 하겠습니까? 설실장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이리 고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차현태는 그를 자리로 앉게 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잠을 청하지 못한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에 대해 잘 살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욕 때문이었다.
그들은 차현태의 지시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든 설장호를 싸잡아 욕하고 있는
지금이었다.
“지현은 잘 있습니까?”
설장호는 차현태와 수다를 떨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곧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잘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 주어야 그 어린 아이의 입에 미소가 생겨날지 모르겠군요.”
차현태의 표정이 금세 우울하게 변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표정을 보며 그의 말을 들었고, 곧 차현태의
옆으로 서 있는 서지호를 보았다.
0023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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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서지호는 설장호를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고, 차현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대통령님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군.”
“좋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이창민 대사에 관한 것은 정리가 되었는데, 그 파장이 계속 일고 있고, 또
지현이 가장 기다리는 추선우씨에 대한 것은 그녀에게 알리지도 못하니…….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지
않겠습니까.”
서지호의 말을 듣고 보니 차현태의 심정이 바로 이해되었다.

“여깁니다.”
서지호는 청와대안의 대통령 관저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는 지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 살 아이의 표정이라 할 수 없군. 먹는 것은 잘 먹는가?”
“그다지 먹지도 않습니다. 제가 다 속이 타 들어갑니다.”
설장호의 말에 서지호가 지현을 보며 말했다.
“내가 오늘 지현을 좀 데리고 다녀도 되겠는가?”
“네? 실장님께서요?”
서지호는 그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고, 잠시 동안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님께 허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하였고,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 지현을 향해보고 있었다.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바로 허락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설장호의 부탁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현아.”
차현태의 허락이 있은 후, 설장호는 관저로 들어서며 지현을 불렀고, 지현은 설장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현은 설장호보다는 태정민을 더 반기는 아이였다. 그리고 태정민보다는 추선우를 더 반기는 것이었다.
“오늘 아저씨와 밖에 나가볼까?”
설장호의 말에 지현은 그를 빤히 보고 있었고, 곧 서지호를 향해보았다.
서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지현은 그의 답을 들은 듯, 설장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해주게. 그리고 다른 사람은 붙이지 말게. 나와 단 둘이서 나갈 것이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막고자 하는 배려였다. 만에 하나 경호원들이 함께 움직이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지현을 볼 것이었다.
굳이 그녀를 알아볼 일을 만들어가며 그녀를 데리고 나갈 이유는 없었다.
“아저씨가 오늘 은주이모네 집을 갈 것인데, 지현은 어때?”
“은주이모에게요? 좋아요. 아저씨. 은주이모 보고 싶어요.”
설장호는 지현과 은주, 미희가 열흘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며, 잠시라도 서로의 우울함을 떨쳐버리게 해주려 하였다.

은주의 집 인근에 도착하자,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경호원들이 보였다.

“무슨 대통령 경호도 아니고, 이렇게 쓸데없이 나라의 돈을 사용하나…….”


설장호는 그들을 보며 쓴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주와 아주머니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큰 집을 내 줄 것이면, 자유라도 주어야지. 마치 경호원이 아닌 감시하는 사람처럼 서
있는 그들에게서 절대 자유란 것을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설장호의 차량이 다가서자, 경호원들은 차량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곧 차량을 멈춰 세운
뒤, 차량 내부를 확인하였다.
“실장님께서 여기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왔다. 그리고 너희들 숫자가 너무 많아. 내일 당장 인원을 반으로 줄이고, 일주일 이내에 모두
철수해.”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지호의 명령으로 배치된 경호원들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한 마디에 바로 답하였다. 자신들의
직속상관도 아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몸에 베인 습관이기도 하였다.

“응?”
마당 앞으로 들어서자,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 설장호가 의아한 눈빛을 두었고, 곧 집안을
보았다.
하지만 집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형태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들어가 보자.”
설장호는 지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고, 곧 지현은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뒤, 전원주태올려보았다.
“너무 크지?”
“네? 네…….아주 크네요.”
설장호의 말에 지현이 말을 더듬거렸고, 곧 지현의 손을 잡고 초인종을 눌렀다.
“은주이모!”
초인종을 누르고 난 뒤, 지현이 큰 목소리로 은주를 부르자, 은주는 정말 신발도 신지 않고, 후다닥 달려
나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지현아!”
은주도 지현을 보며 반가움에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았고, 곧 뒤에 서 있는 설장호를 보며 인사하였다.
“잘 계셨습니까?”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거실로 시선을 돌리자, 은주의 어머니와 함께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넌 왜 여기에 있어?”
설장호가 묻자, 태정민은 안절부절 못하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가고 있었고, 곧 은주의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실장님도 아마 어느 정도는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은주가 태팀장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태팀장도 우리 은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우리 모녀를 보살펴주네요.”
그녀의 말에 설장호는 태정민을 다시 보았고, 그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 것이면 미리 말이라도 하던가. 그리고 네가 매일같이 이곳을 경호한다. 나머지 경호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이 말이 오히려 더 좋았다. 눈치 보며 올 필요가 없었고, 당당하게 그녀와 붙어 있어 되는
상황이 설장호로 인하여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오셨으니, 식사라도 하시고 가세요. 제가 지금…….”
“아닙니다. 지현을 데리고 다시 미희씨를 만나보러 가야합니다. 그 전에 은주씨도 만나게 해주고 싶어
이렇게 데려온 것입니다.”
“저도 함께 가요.”
은주의 어머니는 설장호에게 식사라도 대접하려 바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그는 오늘의 일정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은주가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뭐. 그렇게 하십시오. 나갈 채비를 하시고,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설장호는 은주의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후, 먼저 나섰고, 곧 태정민이 뒤 따라 나섰다.
“잘해줘라. 비록 어렵게 산 사람들이지만, 정말 사람 사는 것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미소를 지었고, 설장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추선우씨는…….”
“나도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그 어떤 누구도 그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젠장.”
태정민의 물음에 설장호의 표정이 갑자기 매섭게 변한 뒤, 격한 어투가 나왔다.

“일단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피해 본 사람들이라도 그 악몽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가 먼저 움직였고, 곧 집에서 은주와 지현이 나오며 태정민의 차량으로 올라탔다.
“소외감 팍팍 전해지는군.”
설장호는 지현마저 태정민의 차량으로 가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고, 미희의 집으로 바로 이동하였다.

“추선우…….살아 날 가능성은 있습니까?”


한 편. 설장호는 물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던 그 누구도 추선우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추선우의 주치의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동안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겼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냥 이대로 보내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지만, 그들의 얼굴은 서로를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리 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요?”
“아시겠지만, 대통령님께서 직접 명령내리시고, 국정원장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자연적인
사망인 아닌, 그 외적인 이유로 사망하게 된다면…….저 역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주치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사내의 제안을 거절하는 가 싶더니 이내 말을 바꾸어 그를 향해보며 말했고, 사내는 아무런 말없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 안 되면…….다른 곳으로 옮겨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사내의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리 하십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내가 그에게 부탁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주치의가 앉은 자리에서 답한 뒤, 말을 이었다.
사내는 돌아서 가려던 걸음을 멈춰 그를 향해 보았다.
“이제 조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굳이 추선우씨를 그리 만들어야 하는 이유라도…….”
“받은 것이 있으면…….돌려줘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후후후. 역시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뜻이군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수호 회장의 리스트에서 어떻게
홀로 살아남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으셨으니, 축하드리는 의미에서 그 명령…….그대로
이행하죠.”
주치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는 그가 일어서자마자 서둘러 주치의 실을 나섰고, 주치의는 곧 열쇠를
들어 한 병실로 간 뒤, 그 병실에 누워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전생에 무슨 악연인지는 모르지만, 이 악연도 이제는 끝날 것 같네. 자네도 고생 많았어. 민간인주제에
너무 설치고 다닌 대가라고 생각하게.”
주치의는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는 추선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미희씨도 잘 버티고 있는 듯 하고, 이제 남은 것은 추선우인데…….그 놈을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군.”
잠시 후, 미희까지 잘 있는 것을 보고 나온 설장호는 따라 나온 태정민을 보며 말했다.
“국정원장님도 모르고 계십니까?”
“그 사람이야 잘 알고 있겠지. 하지만 무슨 놈의 극비인지 나에게도 말을 아낀다. 대체 어느 선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
설장호라면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어느 윗선까지 타고 올라가야 추선우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서지호 실장도 모르고 있을까요?”
“그도 마찬가지일거다. 내가 모르니 그 놈도 모르겠지.”
태정민이 물었지만, 설장호가 확신하는 답을 하였다.

0023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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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추선우에 대한 내용을 지현을 빼고라도 은주 씨와 미희 씨에게는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설장호 실장에게도 해주어야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한 편. 서지호는 차현태의 앞에서 추선우에 관한 말을 하고 있었다.
이는 설장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설장호는 모르지만 서지호는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차현태는 서지호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가 있으십니까? 추선우씨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서지호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물었다. 그저 평범하게 생각하면 추선우에 대한 것을 비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활약을 알리고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몇 몇 사람들의 뜻이네. 추선우에 대한 기록을 모두 삭제하고 그가 이번 사건에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 말이야.”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왜 민간인 한 명에게 그리 호들갑들입니까?”
서지호의 질문이 조금은 격앙되었다. 차현태는 그의 질문을 듣고, 눈썹이 약간 씰룩거렸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풀고 서지호를 보았다.
“자네는…….현재 우리가 찾은 것들이 이수호가 남긴 모두라고 생각하나?”
차현태의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서지호는 그의 질문에 대한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수호에 관한 것은 이미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쳐냈고, 또…….”
“20 년이 넘는 세월이었어. 그 세월동안 고작 120 명이 전부라고? 자네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차현태는 지금 얼마 전, 설장호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설장호도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
말했었었다.
“더 있을 것입니다. 분명이 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서지호는 자신이 말을하다말고 말을 끊었고, 곧 놀라는 눈빛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왜. 설장호 실장이나 태정민, 강서진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는가?”
서지호의 눈동자는 주체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차현태를 비롯하여 몇 몇 인물들의 극비내용을
알게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추선우에 대한 치료 내용이나, 그에 대한 정보를 비공개로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몇 인물들의 숨겨진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수호가 끝이 아니야. 이수호는 이 모든 조직의 수장이긴 하지만 그가 끝이 아니며, 필시 이 나라의
권력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인물이 있을 것이야.”
차현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수호로 끝내고, 이 사건을 덮으며, 그동안 끌어왔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지현에게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의 삶을 줄 수 도 있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 미루었다.
바로 이수호의 뒤에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인물은 이미 추선우의 병원에 모습을 보였었고, 주치의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비롯하여 몇 몇 인물들만이 추선우가 어디에
있으며, 병세가 어떤지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치의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서지호의 어투는 차분하였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는 참 많은 가시가 돋아나 있는 듯 하였다.
“국정원장.”
“국정원장의 머리에서 나왔고, 국정원장은 이수호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짐작만 하고 있으며, 그
짐작대로 대통령께서도 움직여 주고 계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모두가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추선우씨를 미끼로 말입니다.”
차현태의 눈빛이 조금은 날카롭게 변한 뒤, 서지호를 보았다. 서지호는 자신과 함께 꽤 오랫동안 지내온
사이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자신의 뜻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그는 추선우를 미끼로 숨은 놈을 찾는다는 차현태의 말을 듣고, 분노하는 눈빛과
어투였다.
“곧 끝날 것이네.”
“곧 끝나겠죠. 추선우씨가 죽던, 그 놈이 잡히던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그는
민간인입니다. 대통령께서 친히 품으셔야 할 민간인입니다.”
서지호는 끝내 화를 풀지 못하고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차현태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하지만 그에게 지금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차현태였다.
“제길…….민간인 한 명을 두고 얼마나 뽕을 뽑으려는 거야.”
서지호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하였다. 그는 집무실에서 나온 후에도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고,
그의 옆을 지나쳐가던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경호실장님. 표정이 많이 어둡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서지호가 집무실의 복도를 지나, 경호실로 향할 때, 거의 한 달 만에 청와대를 찾은 외교부장관이 그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오셨습니까?”
“네. 그런데 실장님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듣자하니 우리 외교부에서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이창민 대사의 일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셨다고 하던데…….그럼 오히려 얼굴이 활짝 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외교부장관은 서지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듣고 온 것처럼 말했고, 서지호는 그저 답 없이
그에게 인사를 한 후, 경호실로 향하였다.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경호실장의 표정이 저리 어두울리 없지.”
외교부장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 뒤, 곧 집무실로 향하였다.
“대통령님. 외교부장관이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차현태는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외교부장관은 집무실로 들어선 후, 머리를 숙여 인사하였고, 곧 차현태가 청한 악수를 하였다.
“그나저나 외교부의 일이 너무 많아서 이번 이창민 대사의 일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 일은 이미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차현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눈을 보며 말했고, 외교부장관은 그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이수호인가…….그 양반의 권력이 아주 대단하더군요. 아예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모조리 다 쳐낼
기세였지 않습니까?”
외교부장관은 이수호리스트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국회의원이 줄줄이 소환되는 것을 두고 말하였다.
“그래도 외교부장관처럼 그런 인간과 연결되지 않고, 정도를 걸어서 정치를 하시는 분도 계시니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차현태는 상석에 앉으며 말한 뒤, 곧 서류 하나를 들어 그에게 밀어주었다.
“무엇입니까?”
“이수호리스트에서 찾은 사람 명단입니다.”
외교부장관은 그가 건넨 서류를 열어보았다. 정말 이 나라에서 한 이름 한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꽤 보이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이수호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이정도의 권력들과 연을 맺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외교부장관은 명단들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말하였다.
“이 모두를 다 잡아들인 것입니까?”
“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잡아들였습니다.”
“제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여 죄송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외교부의 일만해도 하루가 보자라신 분 아니십니까.”
차현태는 외교부장관을 보며 말한 뒤, 다시 그에게 서류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그 서류는 이창민대사가 서울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자료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우리가 해석을
해 놓은 이름들입니다.”
“…….”
외교부장관은 이창민의 서류를 열어보았다. 처음 시작부분의 이름은 이수호가 작성한 이름과 같았다.
그리고 쭉 읽어 내려가면서 이수호의리스트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서류라 생각하였다.
차현태는 서류를 보고 있는 외교부장관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고,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느끼는
외교부장관이었다.
“이창민대사의 서류와 이수호의 리스트…….다 읽어보니 어떻습니까?”
차현태가 묻자, 외교부장관은 서류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대답을 하려 하였지만, 답을 하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수호리스트를 열어보았고, 마지막장을 보았다.
‘131 번. 130 번…….마지막 숫자가 다르다.’
외교부장관은 서류상에 적힌 이름의 앞에 붙은 숫자의 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창민의 서류에는 131 번까지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수호리스트는 130 번까지만 있었다. 즉…….누군가
한 명은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인원이 차이가 나는군요.”
“역시 정확히 보십니다. 한 명이 차이 납니다. 비록 그 한명의 차이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창민 대사는
아마도 131 명이 핵심적인 인물이라 따로 기재를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외교부장관은 다시 이창민의 서류를 펼치며, 이름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차현태는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한명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창민 대사가 남기고 간 자료에서 이름을 나열하는 방식을 알아내고, 그 방식대로 이름을 다 찾아냈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조합되지 않습니다.”
차현태는 자신도 이창민의 서류와 이수호의 서류를 동시에 펼쳐놓고 보면서 말했다.
“남는 글자를 여러 방향으로 대조하면 이름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외교부장관이 서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요. 남은 글자를 이리저리 다 끼워 맞추면 이름하나는 나오겠지요. 그런데 남은 글자는 일곱
글자인데, 일곱 글자를 배열하자니, 나오는 이름이 수백 개가 넘습니다.”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외교부장관의 눈썹이 씰룩거렸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두 종류의 서류를
다시 보았다.
“우리 외교부에서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지금 각 부처가 모두 나서고 있으니, 장관께서도 한 번 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외교부장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차현태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한 후, 집무실을 나섰다.
차현태는 서류를 들어보았다. 아무리 비교하고 또 짜 맞춰봐도 이름을 나열할 수 없었다.

‘띠리리리’
한 편. 차현태의 조치상황을 듣고 격한 반응을 보이며 경호실로 왔던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한 가지만 묻자. 추선우. 어디에 있나? 그리고 왜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가?“-
설장호가 바로 물었다. 서지호는 그에게서 언젠가는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질문이 하필이면 지금에 맞춰 나오는 것이 그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자세히 들은 말이 없습니다.”
서지호는 결국 설장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 자네라면 혹시나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해서 연락한 것인데…….어쩔 수 없겠군. 그만 쉬게.―
“네. 실장님.”
전화를 끊은 후, 서지호의 손은 심할 정도로 떨려오고 있었다.

0023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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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도 모르고 있죠?”
전화를 끊은 설장호에게 태정민이 바로 물었다.
“아니. 이놈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네? 정말입니까? 그런데 왜 실장님이나 저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까?”
태정민은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서지호의 목소리의 떨림 정도를 보면, 이놈도 숨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듯 하였다.
“일단 지현을 다시 청와대로 데려가야 하니,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지현을 데리고 은주와 미희를 만나는 짧은 시간을 가졌다. 비록 사건은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공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아직 주변 흐름을 보아 비공식적으로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다.
설장호는 지현을 데리고 청와대로 향하였고, 그의 뒤를 태정민이 따랐다.

은주와 미희는 일주일 만에 만나 서로 밀린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강 검사가…….정신 줄을 놓은 것 같은데…….”
한 편. 설장호와 태정민이 한가한 것과는 달리, 강서진은 대한민국의 모든 범법자들을 다 잡아들일
기량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현장을 누비고 있었고, 그녀의 모습을 보던 일부 부장검사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들도 강 검사에게 자리 뺏기기 싫으면 열심히 달려.”
그들의 뒤로 차장검사가 지나쳐가며 말을 흘렸고, 그냥 흘러나온 말이라고 듣기에는 너무나 섬뜩했던 탓에
부장검사들이 놀란 눈으로 다시 강서진을 보았다.
“좀 쉬십시오.”
강서진의 열정에 그녀와 함께 움직였던 수사관들이 오히려 걱정되어 말했다.
“아니에요. 나라에서 돈 주고 일 시키는데, 쉬면 안 되죠. 국민들이 조금 더 열심히 뛰어달라고 주는 돈
아니겠어요.”
수사관들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절대 돈 때문에 검사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여인이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는 여인이었다.
“또 어떤 놈이 남았습니까?”
한 놈을 잡아넣고 난 뒤에 잠시의 틈도 없이 강서진은 다음 표적을 물었고, 수사관은 자료를 보여주기를
꺼려하였다.
“추선우씨 때문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으로 가봐. 여기서 이러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만
피곤해진다.”
그녀의 열정을 모두가 곱게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로 인하여 괜한 핀잔을 들어야 하는
동료검사들이나, 상사들은 그녀의 열정을 반기지 않고 있었다.
강서진은 한 부장검사의 말에 잠시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어쩌면 난 선우 씨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녀는 홀로 생각하였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추선우를


잠시 잊기 위하여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말없이 검찰청 복도를 걸어 본관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한 쪽으로 가 휴게소의 벤치에 앉았다.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전화기를 보았다.
“네. 실장님.”
청와대로 향하던 설장호는 강서진에게도 지금의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연락하였다.
-어딘가?-
“검찰청입니다.”
-그래? 지금 청와대로 간다. 아무래도 추선우에 관해서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다. 그것을
확인하고자하는데…….-
“같이 가겠습니다.”
설장호가 물어볼 의견이었다. 하지만 묻기도 전에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서며 답했고, 곧바로 검찰청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무섭다던데…….강 검사도 여자긴 여자였나 보네.”
그녀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 후, 곧바로 검찰청을 나서는 것을 보며, 일부 검사들은 그녀를 비꼬는 말을
하였다.
비록 그녀와 별다른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총장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에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은 그들이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청와대로 향하던 차량은 검찰청에 들러 강서진을 태웠고, 그녀가 정문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며
설장호가 중얼거렸다.
“검사이모.”
“어 그래. 지현이도 안녕. 잘 지내고 있었어?”
강서진은 그녀에게 인사한 후, 그녀를 빤히 보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추선우를 보고 싶어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지현일 것이었다.
강서진은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그녀 앞에서는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검사이모. 어디아파요?”
“응? 왜?”
“이모 얼굴에 뭐가 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강서진은 자신의 얼굴에 작은 종기 같은 것이 이리저리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지현이 까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그녀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였다.
“이모가 오늘 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평범한 여인이라면 얼굴에 난 티로 인하여 신경을 쓰고,
화장으로 덮고 그럴 것이지만, 강서진은 정말 기초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을 그대로였다.
“총장님께 혹시 무슨 말이라도 들은 것 있어?”
청와대로 향하던 길에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말요?”
“그냥 아무런 말. 추선우에 관한 것이면 더 좋고.”
“죄송해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어요.”
설장호는 룸미러를 통해 그녀를 보았다. 얼굴 가득 수심이 깊었지만, 지현을 보며 애써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잘 보였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숨기는 것 같은데…….조금 후에 이야기하자.”
설장호는 지현을 의식하였다. 그녀에게 추선우에 관한 것을 말해주고 싶지만,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기에 뭐라 말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대통령님. 설장호 실장과 태정민팀장, 그리고 강서진검사가 대통령님을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을 대동한 채, 차현태에게 가려 하였다. 지현의 눈을 보면, 그의 마음도 흔들릴 것이라
여겼다.
“들어오게.”
차현태는 설장호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를 만나기 위하여 집무실로 불렀고, 곧 지현과 태정민,
강서진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잘 지내셨습니까?”
차현태는 설장호를 고개 숙여 말하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말을 높여주었다.
“네. 잘 지냈습니다.”
“지현이는 이제 가서 좀 쉬어라. 아저씨가 잠시 후…….”
“아닙니다. 지현이도 들었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들었으면 합니다.”
“…….”
차현태는 이미 설장호가 자신을 만나자고 할 때부터 무슨 물음을 할 것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추선우.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나 차현태가 생각했던 질문이었다. 차현태는 그의 질문을 들은 후,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지현을 향해 보았다.
“일단 앉으십시오. 태팀장과 강 검사도 함께 앉게.”
차현태는 모두를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아무래도 여러분들을 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차현태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서지호도 집무실로 들어섰다.
서지호는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모두가 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며 잠시 당황한 눈빛이었지만, 이내
설장호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추선우에 관한 문제로 여러분들은 물론, 몇 몇 곳에서 많은 관심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추선우에 대한 문제가 왜 극비가 되어야하는지도, 그 어떤 누구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야 추선우에 대한 것을 자세히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다지만, 저희들은 다릅니다.”
차현태의 한 마디가 끝나자, 마치 자신이 하고픈 말을 기다렸다는 듯, 설장호가 그에게 물었다.
“극비로 다루는 것이 그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대통령님. 말씀은 바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차현태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서지호가 또 다시절대 대통령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내 뱉었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서실장.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대통령님 앞에서 그리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알아야합니다. 왜 추선우씨에 관한 모든 것이 극비인지, 왜 추선우씨가 치료중인 것을
우리들조차 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들어야합니다.”
서지호는 차현태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고, 그 자리에 앉은 모두는 서지호와 차현태를 번갈아보았다.
특히 태정민은 지금까지 서지호를 봐 오면서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충격이 좀 있는 편이었다.
“서지호 실장과 잠시 나눈 대화가 있지만, 그 대화를 다시하고, 또 이어하도록 하겠습니다.”
차현태는 이미 이들이 서지호의 말을 듣고, 온 것이 간주하였다.
하지만 서지호는 절대 차현태의 허락 없이 차현태의 입에서 나온 말을 외부로 발설하는 일이 없었다.
단지 차현태가 그의 행동을 보고 지레짐작하여 한 말이었다.

“지금 추선우씨를 이용하여 마지막 놈들을 잡고자 하는 중입니다.”


“!!!”
결국 차현태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그 자리에 앉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환자를 이용하여 그들을 잡는 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검사가
대통령을 노려보며 소리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 검사…….앉아.”
화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 그녀를 보며 설장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어린
지현은 두 눈을 바르르 떨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현은 내 보내는 것이…….”
“아니. 지현도 앉아있어. 그리고 대통령님의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으니, 모든 말을 다 듣고.
그 뒤에 각자가 하고픈 말을 한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말도 자르며 말했고, 모두가 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이성을 잃지 않은
설장호는 다시 차현태를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설장호의 눈매는 매서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였다.
“고맙습니다.”
차현태는 짧게 말한 후, 모두에게 서류를 보여주었다. 이 서류는 외교부장관에게 보여주었던 서류와 같은
서류였다.

“무엇입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이창민대사의 서류, 그리고 이수호의 서류, 두 서류에서 드러난 차이를 보여주는 서류입니다.”
차현태의 말이 이어졌고, 네 사람은 차현태가 준 서류를 보았다.
모두가 외교부장관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많게는 세 사람 정도, 적게는 한 사람이 차이 날 정도의 이름
나열과 마지막 이름이 적힌 부분의 숫자였다.
비록 숫자는 1 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일곱 글자에서 나올 수 있는 이름이 수백 가지라고 하여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사람 수는 최대 세 사람 정도가 될 것 같았다.

0023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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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풀지 못한 부분입니다.”
설장호는 이미 이창민의 서류를 모두 훑어보았었다. 그리고 그 역시 두 서류에 대한 차이를 알아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끝내지 않고, 서류의 차이를 계속하여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누가 이런 작전을 감행하였습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국정원장입니다.”
그 답은 서지호가 하였다. 서지호는 이 부분을 조금 전에 들었었다.
설장호는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장본인이 국정원장이라는 말에 인상을 구겼다.
자신에게 절대 거짓이 없고, 숨길 것이 없다고 여겼던 사람이기에 더욱 더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한 것입니까?”
“이수호가 죽은 후부터, 그리고 120 명을 잡아들인 순간. 더 숨은 놈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습니다.”
설장호는 이수호를 잡고 난 뒤에도 뭔가 개운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짐작 가는 인간이 있습니까?”
설장호의 어투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곧 꼬리가 잡힐 것입니다.”
“이유는요?”
“추선우씨가 살아있다는 내용이 이미 여러 곳에 전달되었고, 극비에 붙여져 있기에, 고위직 인사들만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것과 꼬리가 잡힐 것 같다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설장호는 차현태의 말이 끝나는 부분에서 무조건 하나의 질문을 계속하여 이어하였다.
“말씀드린 듯이, 지금의 프로젝트는 고위직만 알고 있습니다. 설 실장님도 알지 못한다니 어느 정도 선이
되어야 알 수 있을지는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장호의 표정은 점차 굳어지고 있었다. 즉, 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추선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병원 특실에서 개인 주치의에 의해 치료 중에 있습니다.”
차현태는 설장호의 질문에 일체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도 합류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지휘는 여전히 제가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를 똑바로 보며 말했고, 차현태는 그의 말에 그 즉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한 고위직과 국정원장을 만나…….”
차현태는 바로 결정내리지 못한 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였지만,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어디로 연락하시는 것입니까?”
서지호가 물었다.
“설장호입니다.”
서지호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설장호는 자신의 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무슨 일인가?-
전화를 받은 사람은 국정원장이었다.
“지금 청와대입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 직접 모든 내용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프로젝트는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다른 말은 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국정원장님에게 달려가 주먹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니 말입니다.”
“!!!”
역시 설장호였다. 누가 보면 하극상이며 버릇이 없다 할 수 있겠지만, 설장호에게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나에게 날릴 주먹은 잠시만 더 보류시켜두게. 이 일이 잘 마무리가 되면 그 때,
자네의 주먹을 기꺼이 받아주겠네.-
차현태와 달리 국정원장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차현태가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차현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지현을 보았다.
지현도 배신감을 느낀 표정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차현태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 그대로 표정으로
나오고 있었다.
“가자.”
설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역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차현태가 그
문제를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차현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서진과 지현이 가장 먼저 일어섰고, 곧 태정민과 서지호가 일어섰다.
“대통령님의 결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저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셨다면 지금의
상황은 잘 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아실 것입니다.”
서지호가 그에게 말했다. 차현태는 충분히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였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차현태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이들에게 더 이상 위험한 곳에 던져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비밀로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화근을 만들어버린 지금이었다.
차현태는 모두가 나간 집무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리고 곧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설장호 실장이 움직이는 모든 곳에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지원하십시오.”
그도 설장호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더 이상 위험 속으로 던져놓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위험 속으로 내몰고 있는 그였다.

“태정민.”
“네.”
“넌 지금 당장 지현을 데리고 은주 씨에게 간다. 그리고 당분간만 지현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 즉시 지현을 데리고 움직였다.
“강 검사는 자네의 수사관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대통령님이 말한 그 주치의를 만나.”
“알겠습니다.”
강서진에게도 할 일을 배정하였고, 곧 서지호를 보았다.
“자네는 여기에 남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남도록 한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차현태가 모두에게 숨기고 있었던 프로젝트지만, 서지호는 경호실장이다. 절대 대통령의 곁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인물이기에, 그 책임감은 저버리지 않도록 하였다.
“실장님께서는…….”
“난 국정원에 들렀다가 병원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으로 움직였고, 강서진은 병원으로, 그리고 태정민은 지현을 데리고 은주의
집으로 향하였다.
“원장님. 설장호 실장이 찾아왔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장실로 향하였고, 국정원장의 보좌관이 그에게 알렸다.
“길게 말하지 않고, 긴 답변을 듣지 않겠습니다. 왜 우리를 모두 배제한 것입니까?”
설장호는 딱 한가지의 답변을 듣고자 일부러 국정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자네들의 안전. 더 이상 위험 속으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하는 대통령님의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고위직
인사들을 움직였네. 물론…….나도 그 마음에 동참했고 말이야.”
“…….”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눈동자를 떨었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았다.
“우리를 생각하여 우리를 제외시켰다? 그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믿고 믿지 않고는 자네들 몫이야. 하지만 나는 물론, 대통령님의 마음도 같았네. 더 이상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
“그럼! 추선우는요?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어도 고통을 계속 받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설장호의 목청이 커졌다. 그리고 곧바로 국정원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보좌관과 일부 관계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국정원장은 그들을 보며 손을 들어 멈춰 세웠고, 설장호를 향해 다시시선을 돌렸다.
“추선우씨는 안전하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두었고, 주치의가 그 일을 책임지고 진행
중이네, 그리고 만에 하나 추선우를 만나고자 오는 인간이 있다면, 그 놈이 바로 우리가 찾던 놈이 되는
것이네.”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결국은 추선우라는 미끼를 이용하여 대어를 잡겠다는 낚시라는
말이었다.
“만에 하나…….추선우에게 변고라도 생기는 날에는 이 모든 것을 그냥 덮고 가지 않겠습니다.”
설장호는 그에게 경고성 말을 뱉은 후, 그 즉시 국정원장실을 나섰고, 그 길로 곧장 석강수를 향해 갔다.
“얼굴을 보니 제대로 똥 씹었군. 무슨 일인가?”
석강수는 아직도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었다. 장석관은 이미 검찰로 넘겨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설장호가
검찰로 보내지 않고 있었다.
“이수호…….그 놈의 뒤에 그 누구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확실한 것인가?”
지난 번 이야기에 대해 다시 묻고자 온 것이었다.
“내가 느낀 대로 말한 것뿐이다. 혹시 모르지, 그 늙은이 뒤에 어떤 놈이 숨어서 늙은이를 잘 조종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듣고,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뒤에 또 누가 나온 것인가?”
석강수가 물었다.
“지금.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 정도가 더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그로인하여 추선우가
미끼가 되었다.”
“하하하! 어떻게 된 것이 그 추선우는 매번 너희들이 해야 할 일에 미끼역할을 그리도 많이 하는
것인가?”
석강수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말처럼 이미 추선우가 미끼 역할을 한 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까지 미끼 역할을 한다고 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이라…….누가 추측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뭐…….그 늙은이를 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겠지.”
“!!!”
석강수의 이어지는 말에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저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이수호의 뒤에 있는 사람은
이수호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강수의 말처럼 이수호나 조직을 쫓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자라면 그 범위는 더욱 더 확대될
것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군. 항상 생각해라. 적은…….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 있을 경우가 가장 많다.”


“!!!”
석강수는 달랐다. 킬러로 전향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국정원의 전설답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꿰뚫고 있었다.
“신세졌다. 신세는 꼭 갚는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배 있으면 주고가라.”
석강수는 이제 아예 대놓고 그에게 담배를 요구하였다.
설장호는 석강수를 감시하는 대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대원은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주며 불을
붙여주었다.
설장호는 다시 한 번 그를 본 뒤, 감금실을 나섰고, 석강수를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내
뱉었다.
“나도 참…….나를 잡아 죽일 놈에게 도움이나 주고 앉아있다니…….”
석강수는 길게 내 뱉은 담배연기를 보며 중얼거렸고, 더 이상 담배를 빨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껐다.

“어딘가?”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나오면서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지현을 은주 씨에게 데려다주고 가는 길입니다. 병원으로 바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 넌 청와대로 돌아간다.”
“네? 청와대는 왜…….?”
“우리가 잡아야 할 인물이 꼭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청와대로
향해라.”
태정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수호리스트 중, 청와대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잡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이제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청와대는 완벽하게 청소를 한 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청와대로 향한 태정민이었다.

0024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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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네. 실장님.”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를 마친 후, 강서진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추선우는 만났나?”
“아직 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까다롭네요.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린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서둘렀다. 석강수가 준 힌트가 결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예측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실장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1 층 입구에서 강서진이 그를 불렀다.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야? 아니면 그들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야?”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병원원장을 만나기 위하여 바로 움직였다.
“추선우 환자요? 그 환자 조금 전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
병원원장을 만나자, 그가 말한 첫마디는 두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잠시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하여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니요?”
강서진이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직접 들은 말을 하였다.
“누가 그런 말을 전하였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미 추선우씨의 이송은 상부에서 지시를 내린 것이고,
우리병원측은 그 지시에 응한 것뿐입니다.”
병원원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즉. 원장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어느 병원입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어디보자…….아 여기 있네요. 경기도 화성시 **병원이네요. 그런데 의아합니다. 이 병원은 정신지체자
격리전문병원인데, 이곳으로 왜 보내라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
충격이었다. 그리고 미리 추선우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된 순간이었다.

“조금 전에 출발했다고요?”
“네. 30 분 정도 되었네요.”
“혹시 이송을 맡은 담당자를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강서진은 두 눈을 뜨고 있지만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놓은 듯 한 표정이었고,
설장호가 원장에게 바로 물었다.
“어라…….그런데 주치의의 서명이 다르네요. 그리고 이송차량도 우리 병원차량이 아닌, 해당 병원에서
보낸 차량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쪽 병원에서 주치의가 직접 와서 데려간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설장호는 서둘렀다. 병원에서 나온 후, 곧바로 해당 병원에 연락을 취하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환자를 받는다는 기록은 없네요. 아무래도 잘 못 아신 듯 합니다.-
“일이…….꼬이고 있다.”
추선우가 증발하였다. 필시 상부의 지시하고 하니, 누군가 명령을 내렸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추선우의 진료를 맡았던 주치의를 만났다.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추선우씨의 이송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며 명함을 주고
갔습니다.”
설장호는 그가 주는 명함을 받았다.
“이명수? 누군지 아는가?”
강서진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조동민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바로 이명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라.”
“이명수요? 전국에 이명수가 한, 두 명이 아닐 텐데요.”
“알아. 하지만 이 나라 윗선에 앉은 이명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장호는 다시 병원을 나오며 그와 계속 통화하였고, 강서진은 아직도 눈동자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있었다.
“정신 차려!”
결국 설장호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그제야 두 눈에 힘을 주며 설장호를 보았다.
“선우 씨…….어디로 간 것일까요?”
“지금부터 찾아봐야한다. 그러니 정신 줄 놓지마라.”
설장호는 곧바로 병원을 벗어나 화성에 있는 해당병원으로 움직였다.
추선우가 그곳으로 간다는 정보가 없긴 하지만, 직접 가서 보면 혹시나 관련자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설장호가?”
한 편. 추선우의 주치의는 설장호가 다녀가자마자, 지난번 만났던 의문의 사내에게 연락하여 설장호가
다녀간 사실을 알려주었다.
“네. 그리고 아무래도 병원원장을 만나고 온 모양인데, 추선우가 공중에 떠 버렸다는 사실을 안
모양입니다.”
“그래? 설 실장이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비밀에 붙였었는데, 그 놈이 붙다니…….아무래도 차현태가
무슨 냄새를 맡긴 맡은 모양이다. 각별히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주치의는 통화를 끝낸 후,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곧 추선우가 누워있던 병실의 침대를 보았다.
“참 어지간히도 복잡한 삶을 살고 있구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또 죽기 직전인데도 누군가의
미끼가 되어야하니 말이야.”
그는 추선우에게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고, 이내 병실을 나가 복도를 유유히 걸어갔다.

“자네는 왜 다시 여기로 온 것인가?”


한 편. 설장호의 명령으로 청와대로 돌아온 태정민을 보며 차현태가 물었다.
“설 실장님이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곳에서? 이곳에는 서 실장이 있는데, 자네까지 붙을 정도로 이곳에 위험이 있다는 말인가?”
“아직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냥 가서 기다리라고해서 왔습니다.”
차현태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 실장이 이유 없이 자네를 보냈을 리는 없을 테고…….”
차현태는 설장호의 의중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무슨 소리인가? 추선우가 경기도 화성의 **병원으로 이송되다니 말이야!”
설장호는 이동 중,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고, 국정원장도 처음 듣는 말처럼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상부의 지시가 내려졌고, 이명수라는 사람이 명함을 주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혹시…….이명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설장호는 조금은 딱딱한 어투로 물었다.
“이명수?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군.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명수라는 이름은 없네. 아무래도 누군가
중간에서 장난을 친 모양인데, 병원 CCTV 분석은 했는가?”
“급히 확인하느라 CCTV 분석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쪽에서 대원을 보내…….”
“아닙니다. 제가 따로 부탁을 해 두었으니, 국정원장님께 나서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설장호의 답을 들은 국정원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전화기만 들고 있었다.
“알았네.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국정원장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굳어지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지금 즉시 추선우의 이송을 추진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라. 그리고 이명수, 그 명함을 사용한 사람도
누군지 확인해.”
-알겠습니다.-
누구에게 연락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척 긴장한 듯한 어투였고, 전화기를 든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까지 하였다.
‘대체…….어떤 새끼가 그 명함을 사용한 것인가…….’
전화를 끊은 후, 국정원장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홀로 중얼거렸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런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착오가 있는 모양인데,


기존 병원에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 편, 화성에 도착한 후, 곧바로 병원으로 들어섰지만, 병원 관계자의 말은 전화상으로 들었던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실장님,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수호보다는 더 치밀한 놈이다.”
“네? 그렇다면…….”
“이수호를 뒤에서 조종한 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수호를 손에 쥐고 있는 놈일 수도 있지.”
설장호는 그녀의 질문에 답을 주면서도, 추선우가 어디로 향했을 것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병원에서 그런 명령을 내린 놈부터 확인하자.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다.”
두 사람은 다시 서울로 향하였다.
‘띠리리리’
“그래.”
이동 중, 조동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다 알아봤는데요, 이명수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와 검찰, 경찰, 심지어
각 부처의 과장급 이상의 명단도 다 확인했는데, 이명수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명함이 가짜라는 뜻이군.”
-가짜일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작전용 명함을 사용하는 경우일수도 있습니다.-
“작전용 명함?”
-네. 예전에 우리 국정원에서 한국에 들어와 상주했던 북한의 공작원을 잡기 위하여 의심나던 그들에게
가명으로 된 명함을 주었던 것 기억나십니까?-
“!!!”
설장호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때. 명함이 가짜가 아니라, 그 당시에 우리 국정원에서는 가명으로 된 명함을 만들어 해당 회사나
기관에 등록시키고, 그들이 만에 하나 정보를 얻기 위하여 해킹을 시도하더라도 들통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던 그 작전. 그 때 사용했던 명함이라면 가능할 수 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조동민의 말에 설장호는 작전 당시 이명수라는 명함을 만들었던 사람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명수…….이명수…….”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고, 또 다시 불러보던 중,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하나의 이름...바로
이명수라는 이름과 누군가의 얼굴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조동민.”
-네. 실장님.-
“일단 내 말을 듣기만 한다. 지금 즉시 너희 팀원들을 데리고 국정원을 나선다. 그리고 내가 일러준
곳으로 향해가라.”
-네? 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간신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지만, 다시 짐싸서
나가라는 말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언제나 이유 없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기에, 조동민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이명수…….그 이름은 그 사람의 것이었어.”
설장호는 조동민과 통화를 마친 후, 홀로 중얼거렸고, 강서진은 매서운 눈빛의 그를 보고만 있었다.
설장호와 강서진은 다시 서울 병원으로 향한 뒤, 병원 원장을 만나 추선우에 관한 내용을 더 물었다.
“주치의를 만나보십시오, 아무래도 저 보다는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원장은 그 즉시 주취의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네? 무슨 말입니까? 장 선생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요?”
원장이 통화상으로 한 말에 설장호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강서진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추선우가
있었다던 병실로 향하였다.

0024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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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세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강서진은 다짜고짜 병실로 들어섰고, 곧 뒤따라온 설장호도 병실로 들어서자, 병실 관계자들은 두 사람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놔둬라!”
곧 원장도 올라섰다. 그리고 원장의 뒤로는 병원의 각 과장급 의사들이 함께 움직였다.
원장은 병실 간호사와 의사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고, 원장의 목소리에 관계자들은 모두 물러났다.
“확인하십시오.”
원장의 도움으로 추선우가 있던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이 병실은…….”
병실 안으로 들어선 후,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고, 목소리마저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강서진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어느 한 곳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체 뭔가! 어째서 병실이 이런 상태인가!”
병원원장도 안으로 들어섰고, 그도 병실을 보며 놀란 눈을 한 채 관계자에게 물었다.
“장 선생님께서 직접 관리하시고, 또 그 누구도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저희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도 하지 못하고…….”
“닥쳐!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해! 당신들…….당신들 모두 직무유기로 내가 다 쳐 넣을 거야!”
관계자가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자, 강서진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그들의 눈빛은 강서진에게 향하였다.
“원장님. 이건 저희들의 잘 못이 아닙니다. 장 선생님께서…….”
“시끄럽네. 누구의 잘 못을 떠나. 이 곳 병실을 오늘부로 폐쇄하고, 관련자 모두는 내가 직접 검찰에
고발하겠네.”
“원장님!”
원장에게 변명을 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돌아오는 말은 제대로 된 철퇴였다.
강서진은 원장을 본 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건 조금 전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리고
다시 병실 안을 보았다.

쓰레기통도 이것보다는 더 깨끗해 보일 것이었다. 단지 추선우가 누워있는 침대부분만 쓰레기가 없다


뿐이지, 그 주변은 모든 것이 다 쓰레기였다.
보고서에서는 분명 병원의 최상급 특실에서 진료를 받는 중이라 하였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병실은
특실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 매립장소라 해도 될 정도였다.
심지어 주사를 놓은 뒤, 그 주사기로 바닥에 그냥 나뒹굴고 있을 정도였다.

“이 주사 성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설장호는 널브러진 주사들 중 하나를 주워 물었다.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그 외의 효과는 없고요. 그냥 마취제…….”
“마취제도 다량 투여시 환각 증세는 물론, 환자의 신경조직을 변경시키기도 합니다.”
“!!!”
설장호의 질문에 대해 관계자가 답을 주었지만, 그 답마저 거짓이라는 것을 원장이 말하였다.
“모두 나가. 당신들은 내가 준 마지막 기회마저도 스스로 차 버리는 격이야. 이놈들 모두 끌어내!”
원장의 고함소리에 함께 왔던 과장들이 직접 간호사와 의사를 끌어내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검사하여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추선우에게 언제 무슨 약을
얼마만큼 투여했는지도 알았으면 합니다.”
“네. 지금 바로 조치를 취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원장은 설장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원장은 남은 과장들 중 몇 명에게 설장호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도록 명령 내렸고, 그는 여전히 두 사람의
곁에서 병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원장님. 전화 좀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 원장의 옆에 항상 붙어 다니던 의사가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 미사리 인근에서 장 선생님의 시신을 발견하였답니다.”
“!!!”
그의 말을 들은 후, 원장은 물론, 두 사람도 놀란 눈을 하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를 만났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혀 이런 분위기를 예측할 수 없었다.
“어느 경찰서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원래는 강북 쪽 담당인데요. 강남서 박태식 형사가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기를 저에게 주십시오.”
설장호가 원장을 보며 말했고, 원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나야. 그 사람이 확실해?”
설장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물었다.
-실장님? 실장님이 왜 그곳에 계십니까?-
“묻는 말에 대답만 해. 그 사람이 확실해?”
-네. 병원가운은 물론, 신분증과 그라는 것을 나타낼 것을 모두 소지한 채 죽었습니다.-
“자살이야?”
-타살입니다. 그냥 정확하게 단 일격에 보냈습니다.-
“사용된 것은 무엇인가?”
-주사바늘입니다. 누가 의사 아니랄까봐, 주사바늘로 뒷덜미를 길게 찔렀습니다.-
“주사바늘? 그 주사바늘 정밀 분석해.”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곳에 계십니까?-
박태식은 처음에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을 다시 하였다.
“추선우가 사라졌다. 그것도 아주 감쪽같이 눈앞에서 말이야.”
-!!!-
박태식은 놀란 눈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이와 같은 통보를 받지 못하였다.
설장호와 강서진, 태정민은 다시 추선우의 일에 뛰어들었지만, 박태식은 그 명령을 전달받지 못하여,
자신이 할 일을 그냥 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치의가 죽었고, 추선우는 사라졌다. 누가 그를 데리고 갔는지는 이명수라는 명함을 전달한 놈을
잡아야 알 수 있다.”
설장호는 박태식과의 전화통화를 마친 후, 강서진에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명수라는 명함을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이명수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먼저 이곳에서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니, CCTV 를 모두 확인해야겠습니다.”
“그건 우리 쪽에서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가시죠.”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장은 이미 확인해 둔 CCTV 영상을 보기 위하여 경비실로 이동하였다.
“오늘 오전 10 부터, 지금까지. 해당 병실이 있는 층의 모든 CCTV 가 먹통이었습니다. 누가 병실을
들어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경비실에 들려 확인한 결과였다.
“추선우를 알고 빼돌릴 정도이니, 이 정도는 이미 준비 해두고 움직였겠지. 주차장 쪽도 확인 불가겠죠?”
설장호가 물었다.
“네. 주차장에 설치된 총 53 개의 CCTV 가 모두 먹통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경비실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나?”
경비원의 말을 들은 후, 원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희들이 보았을 때는 문제없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단지 저장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 미리 수를
써 놓은 것입니다.”
이 또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한 술수였다. 그 즉시 CCTV 가 먹통이 되면 바로 수리를 하든지 아니면 그에
대한 방편을 마련하겠지만, 보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그 당시에는 아무런 조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병원원장이 곳곳의 CCTV 를 보면서 말했고, 설장호도 그의 말에 인정하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태팀장. 설 실장이 어떤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이곳에 자네를 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선우씨를
찾기 위해서는 여기보다는…….”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지금 현재는 제가 설장호 실장의 명령을 이행중입니다. 제가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며, 대통령님을 경호해야 하는 경호원이지만, 지금은 제가 대통령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는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임무가 끝난 후, 이에 대한 그 어떤 조치도 받겠습니다.”
태정민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 자신의 처지를 말하였다. 또 한 그의 말처럼 태정민은 설장호가 아닌
차현태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아니네. 내가 내린 명령이며, 이번 사건을 해결해야 함이 우선이니 자네의 말이 맞는 말이네.”
차현태는 태정민을 이해 해주었다. 그는 이번 임무를 수행하면서 모든 명령은 설장호로부터 시작되고,
그의 명령을 이행해야함을 강조하였었다.
“태팀장.”
곧 서지호가 그를 불렀고, 태정민은 차현태에게 인사한 후, 집무실을 나섰다.
“네. 실장님.”
“아무래도 대통령님께서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네.”
집무실에서 약간 벗어난 후, 서지호는 집무실 방향을 보며 말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설 실장님도 그리 알고 계신지, 저를 청와대에 붙어 있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모로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 또 한 추선우를 이용하여 숨은 놈을 잡겠다고
지시를 내린 사람이 대통령님이신데, 정작 그 분은 지금 추선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계신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
서지호는 차현태의 행동과 지시가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일단 실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만에 하나 실장님이나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우린 어쩌면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사람을 잡아야 할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정민은 그런 설마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차현태가 여러
가지 의심받을 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님. 왜 우리가 국정원을 나서야 하는 것입니까?”


같은 시각. 조동민이 대원들을 데리고 국정원을 나서려 하자, 부대원들이 그에게 물었다.
“이유는 몰라, 하지만 설 실장님의 명령이니 그대로 이행한다.”
“알겠습니다.”
조동민을 비롯하여 현재 조동민이 이끄는 팀원들은 조동민은 물론, 설장호의 명령에도 그 어떤 토를 달지
않고 명령을 바로 이행하고 있었다.
“조 팀장. 어디를 가는 것인가?”
조동민과 대원들이 국정원 건물을 나서려 할 때. 국정원장이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지금 설장호 실장이 추선우씨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할 일이 있다며 저희들을 그곳으로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
조동민은 국정원장에게 거짓을 보고하였다.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아무런 명령 없이 그저 국정원을
나서도록 한 것뿐이었다.

“설 실장이 지원을 요청했다면 가야지.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건물을 나선 뒤, 곧바로 국정원 정문을 통과하여 나섰다.
“실장님. 조금 전 국정원을 나섰습니다.”
조동민은 국정원을 나온 후, 곧바로 설장호에게 상황을 알렸다.
“지금 즉시, 경기도 파주에 있는 대통령의 별장으로 향한다.”
“네? 그곳은 왜?”
“가. 가서 기다려. 어쩌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내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리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알 수 없었다. 지금 설장호는 태정민과 조동민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들은
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명령에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누구를 잡기위하여 이런 쇼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아무라도 이겨라. 그래야
잡아야 할 놈이 누군지 알 수 있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홀로 중얼거렸다.

0024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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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의 중얼거림은 강서진에게 들렸고, 그녀가 물었다.
“추선우를 미끼로 하여 잡으려는 사람. 그리고 추선우를 미끼로 사용한 사람. 정확하게 그 사람들이
누군지만 밝혀지면 이 게임이 끝난다는 말이지.”
“선우 씨를 미끼로 이용하여 숨은 한 놈을 찾는다는 것은 국정원장님의 아이디어였고, 대통령께서 명령을
내린 것이잖아요. 그럼 미끼를…….제길…….내가 말하고 참 말하기 싫네요.”
강서진은 계속하여 추선우를 미끼에 비유해야하는 것에 갑작스러운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 싫어도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그리고 네 말처럼 대통령님과 국정원장의 지시로 누군가는
움직일 것인데, 그 누군가도 누군지 모르고, 또 그 누군가가 엉뚱한 생각을 품었는지, 추선우의
행방불명에 대해 최상급 레벨자 그 두 사람이 아예 모른다는 것도 그래…….”
“네? 그렇다면…….”
“그래. 정말로 명령을 이행하는 놈들이 딴 주머니 찬 것이던가. 아니면 명령을 내린 두 사람이 이미
계획하여 미끼를 따로 빼돌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
“!!!”
강서진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다. 그의 말은 차현태와 국정원장도 이수호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아무리 그대로 어떻게 두 분이…….”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그 추측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명심해.”
강서진은 두 손이 떨려왔다. 만약 설장호의 말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지금까지 이수호를 잡기 위하여
지원했던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사라진 추선우를 두고, 마지막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대통령인지, 국정원장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설장호였다.
“그런데 조동민 팀장을 왜 국정원에서 나서게 하였고, 태정민 팀장은 왜 청와대에 있도록 하였습니까?”
강서진은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이해하지 못한 두 부분을 물었다.
“내 걱정이며 추측일 뿐이야.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될 것만 같은 추측. 그래서 혹시나
하여 미리 손을 써 둔 것이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청와대는 이제 잡을 사람도 없는데 태팀장을 보내놓고, 국정원은
오히려 잡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데, 조동민팀장을 나오도록 만드니…….이해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맞는 말이었다. 지금 현재는 청와대에 더 이상 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미
이창민과 이수호의 리스트에서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국정원은 아직도 비밀에 쌓여있기에, 누군가가 그 안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곧 알게 된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더 굴리자, 우리가 추선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추선우를
숨긴 놈이 추선우를 우리에게 돌려주도록 말이야.”
강서진은 도통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만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그녀였다.

“국정원장님. 추선우의 주치의 시신을 발견되었습니다.”


“뭐야!?”
주치의의 사망소식은 국정원장의 귀에 들어갔고, 그는 놀란 눈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놈이 죽었다면 누가 이명수라는 명함을 사용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정원장은 눈동자를 떨며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유독 이명수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나저나 추선우를 누가 어디로 데려갔는지,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국정원 대원이 그에게 말했지만, 국정원장의 머릿속에는 주치의가 죽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실장님. 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같은 시각.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처럼 별장에 도착하였고, 그에게 곧바로 도착사실을 알렸다.
“안으로 들어서라. 그곳에 가면 지하에 몇 가지 장비가 있을 것이다. 그 장비를 이용해서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해.”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곳에 가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설장호의 말을 들었었지만,
도착한 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안으로 들어선 후, 지하로 내려가자, PC 와 함께 통신장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난 번, 이곳에 오셨을 때 미리 봐 두신 모양이군.”
조동민은 이와 같은 장비가 있다는 사실을 그가 먼저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지난 번 별장에 왔을 때,
설장호도 이 별장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한 눈빛이었다.
그 당시에는 청와대 경호원소속이었던, 태정민과 서지호, 그리고 지용석만이 이곳의 모든 내부지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두 PC 를 작동시키고 명령을 대기한다.”
조동민은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지금부터 **병원에서 나간 차량들의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의 모든 CCTV 를 다
해킹해서라도 찾아내.”
“네? 그 많은 차량을 모두 말입니까?”
“그래. 그래야만이 죽일 놈은 죽이고, 살 놈은 살린다.”
“알겠습니다.”
정말 한 두 대가 아닐 것이었다. 그 많은 차량들의 목적지를 모두 찾는 것은 시간싸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해야만 하였다.
조동민은 대원들에게 설장호의 명령을 하달하였고, 대원들은 그 즉시 수많은 CCTV 를 다 해킹하며 명령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많은 차량을 다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중점적인 차량만을 감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추선우씨가 의식불명이니, 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차량이라던 지…….”
“죽일 사람을 그리 편하게 데리고 이동하는 범인은 없다. 추선우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려고 이미 마음먹은
놈들이라면, 추선우를 그냥 차에 쑤셔 넣고 병원을 나섰을 것이다. 물론…….트렁크에 넣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그래야 CCTV 에 잡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
강서진은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의식을 차리지 못한 사람을 좌석도 아닌 트렁크에 넣고 갔다는 말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린…….이제 이번 일을 기획한 장본인들을 만나보자.”
“대통령님과 국정원장 말입니까?”
“그래. 그 두 사람을 만나면, 적어도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 아니면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말이야.”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말하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강서진이 또 다른 한 쪽을 말하였다. 그러자 설장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진실이라…….넌 진실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진실이라고 조금 전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그럼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진실이 무엇이라 생각해?”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누가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말하는지 그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순간이었다.
“청와대를 먼저 간다.”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추선우의 위치 파악을 완전히 맡겨 둔 셈이었다.

같은 시각. 국정원장은 석강수가 감금되어 있는 방으로 향하였다.


“어이구야. 이거 원장님께서 직접 나를 다 찾아와주시고, 이거 영광입니다.”
석강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고, 국정원장은 그를 매서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잠시 나가있게.”
국정원장은 자신과 함께 들어선 대원들을 외부로 나서게 한 뒤, 석강수와 단 둘이서 앉았다.
“담배 태우겠는가?”
“아닙니다. 몇 시간 전, 설 실장이 주고 갔는데, 이제 영 입맛에 맞지 않아서 말입니다.”
석강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국정원장은 꺼낸 담배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며 불을 붙였다.
“설 실장이 자네에게 무엇을 물어보았는가?”
“뭐. 이런저런 것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장이 그리 알 필요는 없는 것들입니다. 그냥 그 놈과 제가 과거를
회상하며 담배 한 대 태운 것뿐이니까요.”
석강수는 그의 굳은 표정에 비해 미소를 띤 얼굴을 한 채 답하고 있었다.
“이수호가 끝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안다. 그리고 그 뒤에 누군가 있을 것이고, 그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추선우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하하하!”
국정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후에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
국정원장의 그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말하지 않은 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내가 무슨 천리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사도 아니고, 이곳에 틀어박혀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석강수는 이내 표정을 싹 바꾸어 차가운 눈빛과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 말은. 자네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가 아는 것은 이미 다 말해주었고, 또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내가 여기서 콕
틀어박혀 살았으니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하면 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었다.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아는 것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묻습니까? 내가 혹여 무엇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아니네. 설장호가 오전에 자네를 만나고 간 모양인데,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져서 말일세.”
“하하하하!”
석강수는 아주 큰 목소리로 웃었다.
“그 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면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원장님을 믿지 않겠다는 뜻이겠죠.”
석강수는 예리하였다. 이미 설장호는 전화상으로 국정원장에게 주먹을 날릴 것이라 말하였었다. 그만큼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잘 하십시오. 설장호의 성질을 건드려서 살아남은 놈이 있습니까? 저만 봐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까?
천하의 나 석강수가 설마 설장호도 아닌, 설장호가 데리고 다니는 민간인한테 잡힐 것이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석강수는 기분이 나쁘면서도 표정은 웃었고, 곧 어이없는 듯, 실실거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모양인가보군. 자네의 처리를 서둘러야 하는데, 설 실장이 무슨 영문인지 자네를
검찰에 넘기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군.”
“그 놈은 나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곁에 두고 싶은 모양이죠. 누구처럼 무언가를 숨기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니까요.”
“!!!”
석강수의 말에 국정원장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다.

0024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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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가?”
“그냥 한 말입니다. 왜? 뭔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석강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국정원장의 심장을 정말 찌르고 있는 듯하였다.
“설 실장이 돌아오는 즉시, 자네의 처리를 먼저 서둘도록 하겠네.”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매섭게 말한 뒤, 감금실을 나서려 하였다.
“나한테 고작 그런 질문을 하고자 온 것이 아닐 텐데요. 그냥 그리 가버리면 묻고자하는 것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국정원장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의 말처럼 국정원장은 이런 하찮은 질문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십시오. 내게 묻고자 한 질문을 하십시오. 내가 아는 것이라면 기꺼이 답을 드리겠습니다.”
석강수는 여유 있는 어투와 행동을 보이며 말했고, 반대로 국정원장의 표정은 굉장히 일그러져 있었다.
“뭐. 생각 없으시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석강수의 말에 국정원장은 나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명수.”
“이명수? 그게 누굽니까?”
“2002 년 북한공작원 제거당시 사용한 명함.”
“!!!”
석강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이명수라는 이름만 나왔을 때,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2002 년을 말하자
그의 표정은 아주 매섭게 변하면서 눈동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왜 갑자기 그 말이 나옵니까?”
석강수도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 역시 이명수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오늘 오전, 누군가 병원에서 추선우를 빼 갈 때, 그 명함을 사용했다. 감히…….어떤 새끼가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하는지를 알아야한다.”
국정원장의 표정이 더욱 더 매섭게 변하였다. 또 한 석강수의 눈빛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때 당시. 그 작전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살아있는 사람을 족쳐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석강수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 쉬운 것이라면 이리 걱정하지도 않았겠지.”
“무슨 뜻입니까?”
“그 당시, 그 작전을 알고 있던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은 대통령님과 나, 그리고 자네와 설장호,
조동민과 제 1 차장. 제 3 차장이고, 죽은 사람은 이창민대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지.”
“그럼 그들 중 누군가 초를 치고 있다는 말이군요.”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석강수도 의외로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하지만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모르겠더군. 일단 제 1 차장은 지금 검찰에 잡혔고, 제 3 차장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를 진행 중이야. 그리고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중이고, 설장호는
이 모든 것을 다 파헤치려는 인물이야.”
“그럼 남는 사람은 원장님과 대통령 밖에 없네요. 원장님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 사람을 한 번
족쳐보십시오.”
“!!!”
어차피 죽을 목이라고는 하지만 석강수는 말을 너무 편하게 하고 있었다.
“대통령을 쳐라?”
“한 명 밖에 남지 않았으니, 범인은 대통령이겠네요. 이 모든 것을 다 조종하고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는
권력을 이용하여 민간인의 목을 조이는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사람 밖에
없겠는데요.”
석강수는 이제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지금이기에, 누가
이수호의 뒤에서 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면서도 막장 드라마와 같은 생각에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입니다. 그 사람이 먼저 이것을 눈치 채면,
국정원장의 목을 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석강수의 말에 원장은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았다.
“단!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보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먼저
치기위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
석강수의 이어지는 말에 국정원장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그의 말인 즉, 먼저 치는 쪽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왜? 먼저 치는 쪽이 거짓이라는 말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진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것이
진실이니까요. 하지만 거짓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가진 사람이 말하기 전, 먼저 자신의 것이 진실임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사니까요.”
설장호나 국정원장이나, 석강수에게 아주큰 힌트를 얻는 것은 똑같았다.
지금 국정원장도 석강수에게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거짓과 진실의 공격과 방어에 대해 들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가오는 자를 기다릴 수도 없는 그였다.
“판단 잘 하십시오. 설장호를 잘 알고 있다면, 지금 설장호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놈일 수도 있습니다.”
석강수는 설장호를 잘 알고 있다. 국정원장 또 한 설장호를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설장호지만,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절대 감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대통령님. 설장호 실장과 강서진 검사가 영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는 청와대를 찾아왔고, 곧 보좌관이 차현태에게 알렸다.
“설 실장이?”
차현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추선우의 행방을 찾는 것에도 바쁠 시간에 자신의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영접실로 향하였고, 태정민을 만나고 돌아가던 서지호가 그를 보았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보좌관의 말에 설장호와 강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하였다.
“이 시간에 이곳은 어찌 온 것입니까? 추선우의 행방은 물론, 누가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알아봐야 하지 않습니까?”
차현태는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럴 시간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더 복잡한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니, 그 발단부터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져서 말입니다.”
차현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추선우의 행방을 찾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의
발단을 처리하기 위함이라는 말이지만, 왜 여기로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단 앉으십시오. 실장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들어봐야겠습니다.”
차현태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설장호는 그의 보좌관을 향해 보았다.
설장호의 시선이 보좌관에게 향한 것을 본 차현태는 보좌관을 영접실 밖으로 내 보냈다.
“실장님?”
보좌관이 밖으로 나가자 영접실 문 앞에는 서지호가 서 있었고, 보좌관이 그를 부르자, 서지호는 검지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조용하라는 행동을 보냈다.
보좌관은 별 말 없이 영접실 안을 본 후, 그대로 뒤로 물러났고, 서지호는 영접실 안을 보았다.
“무슨 일로 이곳으로 온 것입니까?”
보좌관이 자리를 비우자 다시 물었다.
“추선우를 이용하여 숨은 놈을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국정원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랬지요.”
“그럼. 국정원장도 이창민 대사의 서류와 이수호 리스트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군요.”
“그렇겠지요. 그래서 나에게 제안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차현태는 설장호의 질문에 거짓 없이 답을 주고 있었고, 설장호의 질문을 영접실 문 밖에서 들은 서지호의
표정은 조금 굳어보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국정원장도 두 사람의 서류를 모두 검토하였고, 그에 대한 차이를
발견하고 나에게 말한 것일 텐데,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차현태는 설장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정원장은 이창민대사의 서류와 함께 이수호에게서 얻은 명단을 대조해 본 것은 맞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두 서류의 차이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건 실장님과 함께 검토한 후에 차이를 찾아냈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대통령님께서는 두 서류의 차이를 언제 아셨습니까? 국정원장이 이
계획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아셨습니까?”
차현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두 서류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추선우가
이장두에게 당한 그 때였다. 그리고 때마침 국정원장도 두 서류의 차이를 알게 된 시점이 그 때쯤이었다.
“서로 비슷한 시점에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알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마 비슷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차현태는 잠시 생각한 후, 그 내용에 대한 답을 주었다.
“두 분께서 비슷한 시기에 두 서류의 차이를 알아내셨고, 두 분께서 뜻도 같이 하셨는데, 지금 그 두
분께서 정작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
차현태는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 현재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번 작전을 계획한 국정원장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추선우를
찾고자 모든 조치상황을 다 취하고 있는 중이니, 너무 그렇게…….”
“추선우를 찾긴 찾는데, 아마 우리가 찾는 뜻과는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말입니까?”
차현태는 자신의 말을 자르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한 그를 보며 어리둥절한 눈을 한 채 물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창민 대사의 서류. 그 서류와 이수호 리스트에 있는 서류에서 일곱 글자가 차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물론 기억납니다. 내가 직접 찾아낸 것이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장님은 그 서류에 대한 차이는 알아도, 어떤 차이인지는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정원장은 나에게 그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이수호의 뒤에 한 놈이 더 있으니 그
놈을 찾아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차현태는 그 때를 떠올리며 국정원장이 한 말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설장호의 말처럼 국정원장은 글자
수에 대한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현태는 일곱 글자의 차이로 인하여 적어도 한 명에서 세 명 정도의 인물이
더 나올 것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한 명이라고 딱 못 박아서 말한 것을 기억해 냈다.
“한 명이라는 확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한 명이라고 딱 못 박아서 말했을까요?”
설장호는 차현태의 떨리는 눈을 보았다. 그리고 영접실 문 앞에서 설장호의 말을 들은 서지호의 목소리고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실장님, 여기서 뭐하십니까?”


“!!!”
곧 태정민이 영접실로 향하다 문 앞에서 가만히 선 채, 영접실 안을 주시하여 보고 있던 서지호에게
물었고, 태정민의 목소리에 설장호와 차현태가 놀란 눈으로 영접실 문을 향해 보았다.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왜 문 밖에서 그리 서 계십니까? 들어오십시오.”
태정민은 영접실로 들어서며 말했지만, 서지호는 자신을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길로 인하여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0024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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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실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 보좌관님께서 이곳에 설 실장님과 대통령님께서 만나고
계시다고하여 와 봤습니다.”
태정민은 두 사람의 매서운 눈길이 서지호에게 향한 것을 모른 체, 설장호에게 인사하였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해 있는 것을 보고 그 눈길이 향한 곳을 보았다.
“서지호 실장님을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십니까?”
태정민은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이 설장호였다. 그리고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자칫 대통령을 잡아야 할 상황까지 연출 될 수 있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설장호는
서지호를 노려보고 있는 것에 태정민의 눈동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왜? 그곳에 서 있었는가?”
차현태가 그에게 물었다.
“아…….아닙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중요한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아서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질문에 말을 더듬거리며 답하였고, 그 억양이 약간 떨리기도 하였다.
‘띠리리리,’
그 순간 차현태의 전화벨이 울렸다.
“국정원장이군.”
“받으십시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으십시오.”
차현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통화버튼을 눌렀고, 설장호는 다시 문 앞에 선 서지호를 향해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차현태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 혹시 설장호 실장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그와 함께 조동민팀장도 어디론가 갔는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국정원장의 목소리는 설장호에게도 들렸다.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추선우를 찾기 위하여 어디론가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린 무엇보다
사라진 추선우를 먼저 찾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 물론 추선우를 먼저 찾아야하는데, 추선우를 데리고 간 놈을 먼저 찾아야 추선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추측해보고 있는데, 도통 떠오르는 인물이 없습니다.-
국정원장은 이미 석강수와 이야기를 나눈 후였다.
“일단 원장님께서는 따로 추선우를 찾아보십시오. 나도 그를 찾아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참. 국정원장님.”
-네. 대통령님.-
차현태는 전화를 끊으려다 말고 설장호를 보면서 국정원장을 다시 불렀다.
“혹시 말입니다…….이창민대사의 서류와 이수호 리스트에서 뭔가 차이가 났다는 것을 감지하고 저에게
추선우를 이용하여 그를 잡자고 하신 것이지 않습니까?”
차현태는 그에게 정확한 답을 듣고자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네. 그랬습니다.-
“혹시. 어떤 차이를 알아내셨습니까? 사실 저도 차이를 알아내긴 하였지만, 국정원장님과 같은 차이인지,
다른 차이인지를 서로 말하지 않았더군요. 당연히 서로 같은 것이라 생각만 하였지 뭡니까.”
차현태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말했고, 그 와 더불어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서류에서 차이는 것은 숫자였습니다. 130 번에서 끝난 이수호 리스트와 131 번까지 가는 이창민대사의
서류. 그래서 한 명이 차이난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님께 알린 것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난 또 국정원장님께서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셨기에
이리 서둘러 일을 처리하려는 듯 하였습니다.”
차현태는 그가 의심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통화하였고, 곧 전화를 끊었다.
“서류를 받은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차이를 보고 작전을 계획한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 차이는 맞는
것입니다. 서류에서 눈에 드러나게 딱 보이는 차이는 단 한명이었습니다.”
차현태는 국정원장에게 자신이 알아낸 일곱 글자의 차이는 말하지 않았다.
“국정원장의 생각도 옳은 것입니다. 난 깊게 파고들었기에 그 내용을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국정원장은
일을 서두르다보니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아낸 정보를 가지고 서둘러 숨은 놈을 찾고자 한 것 같습니다.”
차현태는 조금 전까지 설장호의 말을 듣고, 국정원장을 의심하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와
통화한 후, 그의 말도 맞는 말이기에 그 의심을 거두는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설 실장님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이 그 한 놈을 잡고자 추선우를
이용한 것으로 인하여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수호를 잡기 위하여 많은 지원을 해 준
사람을 의심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를 잡지 않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입니까? 국정원장님을 의심하고 계셨습니까? 정말 지금까지 우리를 지원한 국정원장님을
의심하신 것입니까?”
태정민도 어이가 없는 눈으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설장호에게 강서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 그래…….이유가 있었지. 죽어가는 민간인을 미끼로 이용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나 혼자 별짓을 한
것이 이유긴 이유지.”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강서진과 태정민은 그를 보았다.
“서지호.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었으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알 것이다. 준비…….
잘해라.”
설장호는 서지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영접실을 나섰다. 그리고 강서진과 태정민이 바로 따라 나왔다.
“실장님. 이게 대체 뭡니까? 왜 갑자기 대통령님께 국정원장을 의심하는 말을 꺼낸 것입니까? 그리고
서지호실장에게 한 말은 또 무엇입니까?”
태정민은 그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지 않아 물었다.
“누군가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를 알 수 없어.”
“네, 그건 이미 실장님께서 하신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누군가를 의심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국정원장님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럼 대통령이 거짓을 말하는 것이겠지.”
“!!!”
설장호의 말이 거침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을 바로 의심하는 것은 그가
아니면 감히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의심일 것이었다.
“이 작전을 실행으로 옮긴 두 사람에게 서로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던져주었다. 그로 인하여 진실을
가진 사람은 추선우를 찾을 것이고, 거짓을 가진 사람은 추선우를 죽이려 할 것이며, 더 서두를 것이다.”
설장호는 아주 무서운 것을 두 사람에게 던져준 것이었다.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에게 불신을 던져주면
그 뜻은 무너진다. 설장호는 두 사람 모두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고, 또한, 두 사람 모두가
거짓을 말할 수 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에게 불신이라는 것을 이미 던져 놓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어느 누가 먼저 초조함에 움직이게 되는지를 기다리면서 우린 추선우를 찾는데 열중한다.”
설장호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 청와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가 청와대를 벗어난 후, 차현태는 창밖을 보며 섰다.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였고, 그의


손에는 이창민 대사의 서류와 이수호의 리스트가 들려있었다.
“어렵군.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 것인지…….”
그는 창밖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고, 그의 뒤에는 서지호가 서 있었으며, 태정민은 설장호와 강서진을
보내고 다시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 누구를 의심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또 누구를 믿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나를 이곳에 계속 있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네.”
태정민은 집무실로 향하던 길에 홀로 중얼거렸다. 설장호가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왜
이곳으로 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은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 채,
또 다시 자신은 이곳에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추선우를 찾아볼까.”
청와대에서 나온 설장호의 손에도 이창민의 서류와 이수호의 서류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서류를 비교해보며 말했고,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조동민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네. 실장님. 딱 맞춰 전화하셨습니다.-
“그래? 뭐 좀 알아낸 것 있어?”
-해당시간을 기준으로 추선우씨가 사라진 시간까지를 계산하여 병원에서 나온 차량 중, 의심되는 차량은
총 세 대였습니다.-
“세 대?”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병원에서 나서는 차량들의 최종목적지를 확인하고 있었고, 그 결과가 나왔을
때, 설장호가 딱 맞춰 연락하였다.
“의심된다는 세 대의 목적지가 어디야?”
-네. 세 대의 목적지는 각각 이창민의 자택과 이수호의 자택, 그리고 마지막 한 대는 국정원입니다.-
“그냥 듣기만 했는데도 의심이 되는군. 해당 차들이 의심되는 판단은 무엇으로 두었나?”
목적지만으로도 충분히 의심 가는 상황이지만, 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일단 이창민대사의 자택으로 간 차량의 차주는 이장구로, 이창민의 운전기사였습니다.-
“그 사람은 죽었잖아?”
-네, 사망했는데,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직 그 사람 명의로 된 것이 차뿐만 아니라 주택과
상가, 예금 등.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래? 이장구에 대해 더 자세히 확인해. 그리고 두 대는?”
이장구는 이창민 대사의 운전기사였다. 그리고 그는 국정원에서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의 명의로 된
수많은 재산과 부동산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이었다.
-이수호의 집으로 향한 차는…….참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말해. 어차피 대통령까지 의심하고 나온 판국이야. 그 어떤 놈이 대상이 되어도 이제 놀랍지가 않아.”
설장호는 조금 전, 차현태의 앞에서 국정원장을 의심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차현태마저도 의심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수호의 집으로 향한 차의 차주는 서지호입니다.-
“서지호? 경호실장?”
-네. 맞습니다.-
“!!!”
조동민의 전화 목소리는 강서진에게도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세 번째 차량은?”
설장호는 의외로 서지호의 명의로 된 차량이 이수호의 집으로 향했다고 했는데도 그리 놀라는 눈빛이
아니었고, 더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곧바로 세 번째 차량에 대해 물었다.
강서진은 놀란 눈을 그대로 한 채, 설장호를 보았다. 자신이 이만큼 놀랐는데, 아무렇지 않게 세 번째
차량을 말하는 설장호를 보고 더 놀란 그녀였다.
-세 번째. 국정원으로 들어간 차량은 뭐. 그냥 의심 자체입니다. 국정원장의 차량입니다.-
“!!!”
강서진은 또 다시 놀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장호는 그리 놀라는 눈빛이 아니었다.

0024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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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병원에서 나갈 당시에 국정원장은 국정원에 있었었습니다. 그의 차량을 누군가 이용한 것인데,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국정원장의 차량은 운전기사와 국정원장 외에는 그 어떤 누구도 운전할 수 없습니다.
빌려줄 수도 없습니다.-
세 대의 차량이 향한 곳과, 세 대의 차량이 누구의 명의로 되어있는지를 모두 들었다.
강서진은 정말 놀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듯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지만, 설장호는 의외로
놀라거나 당황한 눈이 아니었다.
“이수호의 집은 나와 강서진이 간다. 그리고 청와대는 태정민이 있고, 데리고 있는 대원들 중, 몇 명을
이창민 대사의 집으로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이 문제군. 국정원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나?”
설장호는 세 대의 차량이 향한 곳을 각각 나누어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국정원으로 들어선 차량을 확인할 국정원 대원이 없었다.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장님의 명령으로 우리팀은 물론, 실장님의 명령으로 움직였던
대원들까지 다 데리고 나온 상황이라…….-
“그래. 내가 내린 명령이니, 그에 대한 잘 못은 나에게 있다.”
-그런데 저희들에게 국정원을 벗어나라고 한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조동민이 그의 명령에 대해 물었다.
“그냥 직감이었었다. 그 안에 내 식구를 두고 내가 빠져나왔으니, 불안해서 말이야. 더군다나 내가
국정원장에게 주먹 한 방 날린다고 지랄을 떨었거든.”
설장호는 조동민의 물음에 답하였고, 조동민은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당황한 눈을 하였다.
“일단 시간을 단축해야 하니 나와 강 검사는 이수호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정원으로 들어서든지
해야지…….다른 방법이 없겠군.”
-실장님. 그러고 보니 국정원에 아직 우리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
설장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동민이 말했다.
“누가 남은 것인가?”
-3 차장님이 아직 국정원에 있지 않습니까?-
“3 차장? 이두식 차장 말이야?”
-네. 2002 년 작전 때 함께하지 않았습니까.-
설장호는 3 차장을 잊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는 그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3 차장은 지금의 사건에 대해 그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이번 사건에서 그 어떤 것도 직접 관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번, 이수호를 심문할 때, 그 때 처음으로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각 차장들이 모두 심문내용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내가 연락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이창민대사의 집으로 출발할 대원을 보내겠습니다.-
설장호는 조동민과 통화를 끊은 후, 강서진을 보았다.
“떨려?”
“네? 네…….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죽었던 이창민 대사의 운전기사의 명의로 된 차. 그리고
서지호실장, 마지막으로 국정원장…….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강서진은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조동민과의 통화 중, 그의 표정변화가 일체 없었기에, 그는 이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 보았다.
“나도 병이지…….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신빙성이 있으면 확인을 해 봐야하는 병.”
“무슨 말입니까?”
설장호는 이수호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중얼거렸고, 강서진이 물었다.
“국정원에서 나오기 전에 석강수를 만났다. 그리고 그 놈에게 별 잡다한 말을 다 들었지.”
설장호는 석강수에게 들은 말을 그녀에게 모두 해주었다.
“가까운 곳에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수호의 뒤에 있는 사람은 이수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뭐 이런 말입니까?”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정확하게 요점만을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그래. 이수호가 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뒤에 누가 있냐가 관건이었지.”
“이수호라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님과 국정원장님을 의심하신 것입니까?”
강서진은 조금 전 청와대에서 있었던 설장호의 행동을 바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별다른 사람이 없잖아. 그리고 대통령의 말처럼 한 명이 아니고, 세 명일 수도 있다. 즉.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
“서지호실장과. 국정원장…….그리고 대통령…….”
강서진은 놀란 눈을 하면서도 자신의 입에서는 세 사람이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이름들만이 생각 날 뿐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수호를 잡도록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네요.”
한 편으로는 그녀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한 달 동안 세 사람의 지원은 대단하였다. 이수호를
완전히 잡아두기 위하여, 그 어떤 누구보다 더 빠르게 대처하였다.
“어쩌면…….이수호를 더 빨리 쳐 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 부분은 설장호의 한 마디로 모두 해결되는 듯 하였다.
이수호를 쳐내야 하는 일. 바로 드러나지 않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였다.
“일단 확인하자.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원래 끝이 없는 법이다. 더 깊은 의심을 하기 전에 정확한 내막을
알아내자.”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 스스로 깊고 깊게 들어서는 의심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택했으며, 더 이상의 의심은
접어두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그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두 사람의 서류를 보았다. 영접실에서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서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보았고, 그는 그 서류에서 또 다른 것을 발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직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자신 홀로 알고 있는 것으로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3 차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3 차장은 설장호의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그리 달갑지 않은 듯 하였다.
“제 전화가 반갑지 않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3 차장님과 저와의 악연보다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지금은 그 악연을 잠시 접어두면 어떻겠습니까?”
설장호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하십시오. 듣기는 하겠습니다.-
3 차장 이두식은 묵직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알려주었다.
-지금…….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입니까?-
이두식은 놀란 눈을 바르르 떨면서 그에게 되물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확실합니다. 그리고 더 정확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다 입 밖으로 내 뱉도록
해야죠.”
이두식은 믿기 어려웠다. 얼마 전 2 차장이 이수호의 아들인 이장두의 부하들을 도와주고, 체포되었다.
그 때도 2 차장을 잡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나섰던 사람이 바로 국정원장이었다.
-일단. 확인해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죠.-
이두식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자신의 사무실을 나섰다.
“국정원은 3 차장이 잠시 막고 있도록 해야지. 이제 태정민에게 알려준다.”
이두식과 통화를 끝낸 후, 다시 태정민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였다.
태정민은 그제야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했는지 와, 지금의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장님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동안 아무런 정황도 포착하지 못했는데…….”
태정민은 주변을 계속하여 두리번거리는 행동을 취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네? 그럼 누구의 머리에서…….”
“석강수. 그 인간의 머릿속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주 많아. 그리고 내가 지나쳐 온 것을
그는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도 그에게 모두 전하였다.
“그 사람은 정말 국정원 체질이었나 봅니다. 어떻게 그 당시에는 적이었는데도 이 모두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었습니까?”
“원래…….동지보다 적이 더 정확하게 보는 법이다.”
설장호의 한마디에 태정민은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박혀있기에, 그 사람이 진실을 숨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편견이 없기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석강수의 눈에는 보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석강수의 말을 믿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요?”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비단 석강수의 말만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수호와 이창민의 서류…….나도 자세한 것을 찾지
못하고 넘어갔는데, 대통령의 말을 들은 후, 내가 놓친 부분을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설장호는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늘은 참 힘든 날이 될 것 같다. 준비 잘하고 있어. 어쩌면 여러 곳에서 한 번에 다 터질 지도 모르니


말이야.”
-말만 들어도 살벌하네요. 일단…….알겠습니다. 명령을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내 명령이 없어도 네가 스스로 알아서 움직 일 때를 알게 될 거야. 그 때는 망설이지마라. 바로
움직여.”
-내가…….스스로 알게 된단 말입니까?-
태정민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느낌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알아서 하라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태정민은 전화기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누구 전화인데 그리 전화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
곧 서지호가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아…….아닙니다. 감히 나한테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놈이 있어서요. 어떤 놈인지 잡아내려고요. 하하
…….”
태정민은 서지호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답을 건너뛰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
서지호는 그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바로 하고 있었다. 누가 부르지 않는 한, 단 한 번도
자신 앞에서 먼저 돌아서서 간 경우가 없었기에, 그의 행동만으로 뭔가 달라진 그를 바로 알아낸 그였다.
“설장호 실장과 통화를 한 것인가?”
서지호는 홀로 중얼거린 뒤, 자신의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였다.

“이곳인데…….어리어리하네요.”
같은 시각. 설장호와 강서진은 이수호의 자택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일대에는 아직도 경찰병력이
주변을 둘러 경계서고 있었다.
설장호는 차에서 내린 뒤, 관계자를 찾았다.
“지금은 이곳에 그 어떤 누구도 들어가게 하지 말라는 검찰총장님의 지시가 계셨습니다.”
관계자는 설장호에게 말하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곧 강서진이 검찰총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00246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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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진이 검찰총장에게 연락을 시도하자, 관계자가 얼굴색이 바뀌며 뭔가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강서진의 앞으로 섰다.
“두 분께서 뭔가 확인을 하신다고 하는데, 제가 너무 절차를 까다롭게 지키려 했나봅니다. 들어가
보십시오.”
그는 두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며 말했고, 설장호는 그의 어색한 미소를 본 뒤, 살짝 고개를 숙이고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총에 총알 장전 잘해두고, 지금 즉시 박태식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이미 두 사람은 그의 어설픈 행동으로 지금의 상황이 합법적인 경계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강서진은 안으로 들어서면서 박태식에게 문자를 보냈고, 곧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집이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이런 곳에서 살려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강서진도 꽤 알아주는 갑부집안이었다. 하지만, 이수호의 집을 들여다 본 후에는 자신의 집안이 그저
평범한 수준에 머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집에 살려면 돈만 가지고는 안 돼. 권력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집에 못산다.”
설장호는 곧 현관 앞에 서며 말했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수호를 잡긴 잡았는데, 그 놈의 집은 지금 처음 들어와보는 것이군.”
설장호는 이수호 집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이건 뭐. 집이 아니고 궁궐이네요. 조선시대 왕의 궁전도 이 보다 작았을 것 같습니다.”
집으로 들어서서 거실까지 걸어가는데만 30 초 이상은 걸린 듯 하였다. 그리고 넓게 퍼진 거실을 보며
섰다.
설장호는 거실에 서서 조동민에게 연락하였다.
“이수호의 집으로 들어섰다는 차. 그 차의 사진을 보내, 그리고 차가 아직 나서진 않았지?”
-네, 들어가는 것만 포착되었고, 아직 나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조동민은 그에게 해당 차량의 사진을 바로 보내주며 차량이 아직 나가지 않은 것을 알려주었다.
“우선 차량을 찾자, 해당 차량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먼저 확인해야해, 그래야 서지호를 족쳐볼 수
있다.”
“네.”
이수호의 집으로 향한 차량은 서지호의 명의로 된 차량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명의로 된 차량이
이수호의 집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거실을 지나 다시 뒤쪽 문으로 향하였고, 곧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앞에 보였다.
“함께 움직인다. 여러 명이면 몰라도 두 명이면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해.”
설장호는 강서진을 혼자 있도록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화려하네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진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을 보며 말했다.
이수호와 이장두가 죽었지만, 그의 재산은 아직 그대로 남은 상태였다.
“이 차량들만 팔아도 서울시내에 대형 아파트를 몇 채나 사겠네요.”
강서진은 주차된 차량들을 보았다. 해외 유명 브랜드로 대당 가격만 최소 3 억 원을 넘는 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기 있군.”
그리고 곧 설장호의 눈에 해당 차량이 보였다.
두 사람은 차량 앞으로 다가섰고, 곧바로 조동민에게 연락하여 차량을 다시 한 번 확인토록 하였다.
-네. 맞습니다. 확실하게 서지호 실장 명의로 된 차량입니다.-
조동민에게 확답을 들은 후, 설장호는 차량 안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군.”
너무 짙은 선팅으로 인하여 차량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이 보이겠습니까?”
“!!!”
설장호가 차량 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주차장 입구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강서진이 놀란
눈을 한 채 뒤돌아보았다.
“협조가 필요하시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 차량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본데, 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조금 전 집 앞을 경계서고 있던 경찰들을 지휘하던 형사였고, 그는 몇 형사를 더 대동한 채,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차량들이 화려하죠? 저도 처음에는 보고 놀랐습니다. 어디서 이런 차량들을 다 구입했는지 부럽기도
하더군요.”
그는 자연스럽게 다가서며 말하였고, 곧 차량 앞에 서서 열쇠를 꽂아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의 차량인데 열쇠까지 형사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설장호가 물었다.
“이 차량들의 열쇠를 모두 새로 맞췄습니다. 집안을 모두 뒤졌는데도 열쇠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차량 업체를 불러 하나하나 다 맞췄습니다. 자, 확인을 해 보시죠.”
그는 웃으며 말했고, 곧 열린 차량 문을 향해 가리켰다.
설장호는 차안을 보았다. 하지만 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깨끗하였다.
“미안하지만, 이 옆 차도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설장호는 해당 차량이 아닌 옆차량도 보기를 원했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옆 차량의 문도 열어주었다.
“이수호가 잡혀간 후, 아무도 타지 않았으니 차가 제대로 움직이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는 차량 안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보며 말했고, 곧 강서진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봤습니다. 그런데 공문에 보면 집 외부만 경계 서도록 되어 있을 텐데, 집안으로도 자주 들어와
보셨나봅니다.”
설장호는 두 대의 차량을 확인한 후, 그를 보며 말했고, 갑작스러운 설장호의 질문에 놀란 그가 당황하는
눈을 하였다.
“뭐. 가끔은 이런 집에 사는 놈이 어떤 생활을 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서 한, 두 번 들어와
봤습니다. 그게 답니다.”
형사는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나 이수호와 조금이라도 피가 섞인 가족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다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 보셨으면 함께 나가실까요?”
형사는 두 사람을 데리고 서둘러 나가려는 듯,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차량 두 대를 본 것뿐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와 강서진검사는 국정원과 검찰청,
그리고 청와대의 명령을 받아, 이번 사건에 연관된 모든 것을 절차 없이 다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니…….우리 일에는 신경 끄고, 집 앞을 잘 지키고 계십시오.”
설장호는 그의 말을 아주 맛있게 씹어버리면서 그의 옆을 지나 다시 집안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동에 형사의 시선이 매섭게 변하였고, 그는 곧 자신의 옆에 있는 형사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실장님. 차량은 있는데 내부가 비었습니다. 혹시…….우리가 잘 못 짚은 것은…….”
“아니. 저 차량은 조금 전까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집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이동하던 중 강서진이 물었고, 설장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차량 두 대의 내부 온도가 달라. 서지호의 명의로 된 차량은 온도가 높다. 즉. 사람이 타고 있었고, 그
숫자도 꽤 되는 편이지, 저 자의 말처럼 이곳에 오래 주차되어있었다면 내부는 그리 따뜻하지가 않아.”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이해한 그녀였다. 지하주차장에 오랫동안 주차되어 있었으니, 내부가 그리
뜨겁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지호의 차량은 내부의 열기가 있다는 것을 그녀도 느꼈다.
“박형사가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우우웅!’
설장호가 강서진에게 묻자마자, 그녀의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울리고 있었다.
“지금 이수호의 집 인근에 대기 중이랍니다. 신호를 보내면 안으로 치고 들어온 다네요.”
“그래? 그럼 지금 바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명령을 내린 뒤, 집으로 향해 올라갔고, 다시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저기, 설장호 실장님.”


설장호가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조금 전 그 형사가 다시 따라와 불렀고, 곧 그의 옆으로 붙은 두
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면 설장호와 강서진을 보고 있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우리가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된 모양이군. ”
“뭐. 그리 생각하셨다면 정답입니다. 사실…….이수호가 잡히면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여겼는데, 설마
이렇게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붙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
그 한마디에 확신이 선 두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이수호의 뒤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을 하고
있었지만, 형사의 말을 들은 후, 확신이 선 상황이었다.
“이수호의 뒤에 있는 놈이 누군가?”
설장호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물었고, 형사는 그의 물음을 듣고, 실실 웃고 있었다.
“되도록 설장호 실장님은 죽이지 말고 조용히 살도록 만들어주라 했는데, 이렇게 되면 그 명령을 따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형사는 설장호를 노려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되도록 나는 살려둬라?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나? 서지호인가? 아니면 국정원장? 그것도 아니면
대통령인가?”
“워워워. 아무리 설 실장님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하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리 술술 내 뱉으면 어디
가서 총 맞기 딱 좋습니다.”
설장호의 입에서는 쉽게 내 뱉을 수 있는 이름들이 아닌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형사는 두 손을 올려
흔들며 말했다.
“우린 뭐…….대통령이나, 국정원장, 경호실장과 같은 그런 윗선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니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윗선?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윗선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서지호가 경호실장이며, 윗선인 것은 어떻게
알았나? 그런 이름하나로 어디쯤 앉은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설장호가 그냥 던진 질문에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명령내린 사람을 까발린 격과 같았다.
설장호는 일부러 그들에게 서지호란 이름만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해당 직책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서지호가 경호실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말해버렸다.
“뭐. 잠시 놀라기는 하였지만, 이제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왜냐면 두 사람은 여기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죠.”
형사는 두 형사에게 마저 눈짓을 주었고, 두 형사는 앞으로 척척 걸어오며 주먹을 꽉 쥐고 뻗었다.
‘퍽퍽!’
“!!!”
하지만 형사는 아주 제대로 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설장호다. 비록 며칠간 목발 신세를 지긴
하였지만, 국정원에서 그를 이겨낼 사람 몇 안 되는 막강한 인물이 바로 설장호였다.
“이런 놈들로 그런 계산을 했다면 서지호가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못한 모양이군.”
설장호는 강서진을 자신의 뒤로 보내며 말했고, 곧 두 주먹을 꽉 쥐고 그 형사를 향해 다가섰다.
‘다다다닥’
하지만 그의 뒤로는 어느새 여러 사내가 더 따라 붙었고, 설장호가 다가서다 걸음을 멈춘 채, 그들을
보았다.

00247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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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뼈가 붙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
설장호는 자신의 다친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한 뒤, 멈춘 걸음을 다시 이동시키며 그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틈에 강서진은 총에 총알을 장전시키고 있었고, 곧바로 장전된 총을 들었다.
‘퍽!’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한 사내가 다가서며 그녀의 뒷덜미를 내리쳤고, 그녀가 쓰러지자 설장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럼 강 검사님의 머리통은 날아갑니다.‘
“!!!”
설장호는 움직임을 멈춘 채, 기절한 강서진의 머리에 총을 겨룬 인물을 보며 놀란 눈을 하였다.

“이래저래 세상 참 복잡하고 더럽지 않습니까?”


“너…….이 새끼…….”
설장호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향한 곳, 그 곳에는 박태식이 서 있었다.
“살다보니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더군요. 엄청난 돈. 비록 명예는 없지만, 명예가 밥 먹여줍니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오로지 돈입니다. 형사생활 십 수 년을 해도 만지지 못한 돈을 이런 일 한 번에 몇 배로
만져보니…….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박태식은 기절한 강서진을 넘어서서, 설장호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설 실장님. 이수호를 잡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좀 일찍 잡으시지 그러셨습니까? 살려야 할
놈들도 다 죽어버렸지 않습니까.”
박태식은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바로 옆에서 서서 말했다. 그러자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렸고, 두
주먹을 꽉 쥐며 그를 향해 뻗으려 하자, 박태식은 눈길을 뒤로 주며 강서진을 가리켰다.
설장호의 시선이 강서진에게 향하자, 그녀의 머리에는 또 다른 형사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실장님의 주먹에 한 대맞은 나는 살 수 있지만, 총에 맞은 강 검사님은 살 수 있을까요? 아마 살기 힘들
것 같은데 말이죠.”
박태식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고, 곧 어깨를 토닥거리는 행동까지 취했다.
정말 맨 정신이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설장호보다 자신이 더 유리한 입장에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그였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설마 저 차량을 미행한 것입니까?”
“추선우. 그는 어디에 숨겼나?”
“추선우? 하하하! 우리가 추선우를 숨겼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하긴…….우리의 목표가 추선우를
잡아 족치는 것이었는데, 이미 병원에 들어서니 추선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탕치고 다시 온 거죠.”
“!!!”
박태식의 말에 설장호의 눈동자는 다시 커지고 있었다. 서지호가 중심이 되어 있는 지금 현재 이 팀에서는
추선우를 잡지 못한 상황이란 말이었다.
“그래서 설 실장님이 또 선수치고 추선우를 빼 돌렸나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그럼 과연
누가 추선우를 빼돌렸을까요?”
박태식이 건들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정작 설장호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병원에서 나간 차량 중, 세 대의 차량이 의심되어 확인했다. 그 중 한 대는 여기, 또 한 대는 이창민의
집, 또 한 대는 국정원이다. 세 곳 중에 한 곳은 추선우를 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역시 국정원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다 확인이 가능합니까? 정말 놀랍습니다.”
박태식은 여전히 건들거리며 그에게 말했고, 곧 형사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형사들은 설장호를 포박하기 시작하였고, 곧 강서진도 함께 포박한 뒤,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차량이 병원에서 나온 차량입니다. 추선우를 실어서 옮기려고 한 차량이죠. 헌데 모두 허탕 쳤습니다.
그래서 추선우 대신…….두 분으로 그 뜻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태식은 두 사람을 차에 태웠고, 곧 차문을 강하게 닫았다.
“제길…….박태식은 생각지도 못했군.”
설장호는 박태식의 비열한 미소를 보며 이를 깨문 채 말했다. 그의 집안생활이 힘들어도 언제나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아오던 그였기에, 그리 의심할 필요는 없었었다.
하지만 가난이 욕심을 부른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에게 누군가 일확천금을 쥐어주며 뭔가 달콤한 말을
던진다면, 가장 쉽게 넘어갈 사람이 바로 박태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
“그럼 잘 계십시오. 운이 좋다면 어딘가로 가버린 추선우가 또 짠하고 나타나서 구해주지 않겠습니까?”
박태식은 두 사람을 차안에 가둔 후, 그대로 주차장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서지호의 차량은 특수 차량이기에, 차 문을 외부에서 잠그면 내부에서는 절대 열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또한 차량의 모든 유리가 방탄이기에 유리를 깨고 나간다는 것도 무리였다.
설장호는 자신의 계획이 서지호의 계획에 밀려난 것을 생각하며 쓴 표정을 지었다.
“연락도 없고,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냥 이곳에 있으면 내가 움직여야 할 때를 알게 된다니…….”
같은 시각. 태정민은 차현태의 집무실 앞에서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고, 곧 차현태가 문을 열고나오며
그를 보았다.
“안으로 들어와보게.”
차현태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를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이 집무실 안으로 막
들어설 때, 그의 뒷모습이 서지호에게 보였다.
서지호는 집무실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딱 닫혀버린 문으로 인하여 내부의 소리가 일체 들리지 않고
있었다.
“무슨…….일이십니까?”
태정민은 그를 보며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 누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데, 그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고, 또 누가 이수호의 뒤를 이어 움직이고 있는데, 그도 누군지 알 수가 없어. 그런데 그들은 지금
다시 차곡차곡 하나하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야.”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말없이 그저 그를 보고만 있었다.
“나에 대해 예전만큼의 믿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지현과 추선우를
믿어보게. 그 두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않겠나?”
차현태 또 한, 이들에게 불신이 된 상황이었다. 비록 그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방면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꽤 많았던 상황이 있었다.
“네.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지현과 추선우는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
지현도 잘 있는지가 걱정되어 잠시라도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하겠습니다…….”
태정민은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답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지현을 걱정하는 말이
나오면서, 그 순간 설장호가 왜 자신을 이곳에 둔 것인지가 생각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급히 지현이 좀 만나야겠습니다.”
“지현이를?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아…….아닙니다. 그냥 단독으로 만나겠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태정민은 차현태에게 양해를 구한 뒤, 급하게 집무실을 나섰고, 곧 열린 집무실의 문 뒤로는 서지호가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서 있었다.

“지현아.”
태정민은 그 즉시 지현에게 갔다.
“네. 정민삼촌.”
지현은 무사하였다. 다행히 컨디션도 좋아 보이는지 미소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삼촌하고 어디 좀 갈까?”
“어디? 선우삼촌보러?”
지현은 태정민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래. 우리 선우삼촌 보러가자. 지금 바로 가자.”
태정민은 거짓말을 하였다.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현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지현은 잔뜩 부풀어 오른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태정민을 격하게 안았다.
“가자.”
태정민은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곧바로 지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이내 자신의
차량으로 바로 이동하였다.

“대통령님, 태정민팀장이 지현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
곧 지현의 방을 경계 서던 경호원이 다가서며 차현태에게 보고하였지만, 차현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태팀장의 뒤로 자네가 따르게, 그리고 태팀장을 도와주게.”
“네? 네. 알겠습니다.”
지현의 방을 경계 서던 경호원은 차현태의 명령을 받은 후, 곧바로 움직였고, 그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본
서지호는 주차장 쪽을 향해 보았다.
“태정민…….”
그리고 태정민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이내 그의 옆자리에 지현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며 놀란 눈을 한 채, 서둘러 차현태에게 향하였다.
“대통령님, 지금 태정민이…….”
“내가 보낸 것이네. 나조차도 믿음이 없으니, 나의 곁에서 지현을 떼어놓아야 하지 않겠나, 나의 뜻이니
자네는 신경 쓰지 말게.”
“!!!”
서지호는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을 한 채, 다시 주차장을 보았고, 이내 태정민의 차량이
청와대를 나서는 것을 보았다.
‘띠리리리’
그 순간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리고, 서지호는 차현태를 본 뒤, 뒤돌아서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설 실장을 잡아뒀습니다. 그런데 정말 추선우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박태식이었다. 그는 서지호에게 대놓고 전화하여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차현태는
서지호의 전화내용을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다리십시오.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지호는 서둘러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실장님! 어디를 가십니까?”
그가 갑자기 움직이자, 경호원들이 나서서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은 채, 서둘러 태정민의 차량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차현태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움직이게.”
아주 짧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여 앉았다.
“대통령님! 서지호 실장님이…….”
“지금 이시간부로 서지호는 경호실장 자격을 박탈한다. 그리고 그를 체포한다.”
“!!!”
차현태의 말에 경호원들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고, 곧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갑자기 서지호 실장님을…….”
경호원들은 믿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차현태를 측근에서 경호했던 그를 하루아침에 내 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척’
차현태는 자신의 책상위로 서류 하나를 내 보였다.
“이것은…….”
“이창민 대사의 서류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진들로 만들어진 한 명의 인물이 보이나?”
“네. 지금은 이 사진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이수호의 젊은 시절이지 않습니까.”
“그래. 이수호의 젊은 시절이, 그리고 그의 얼굴을 만들어 낸 수많은 사진들. 이곳에 나도 있고, 또
설장호실장도 있으며, 이번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 고위직 간부들과 유명 인사들이
대거 사진 속에 담겨있네.”
이 역시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서류를 받았을 때, 사진 속에 자신들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기도 하였었다.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눈이 피곤하더군.”
“네? 이 많은 사진들을 다 보셨단 말입니까?”
정말 돋보기가 아닌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의 작은 사진들을 일일이 다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00248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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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아주 재미난 사진들이 꽤 있더군. 그래도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해서 기다렸는데, 스스로 한
명씩 나서고 있는 중이네.”
차현태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조금 전, 설장호도 한 말이었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까발리게 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 상황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서지호는 움직였고, 박태식은 스스로 자신이 이수호와 연관
있다는 것을 까발렸다.
그들이 지금,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는 다 있을 것이다. 꼭꼭 숨어서 이 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
조용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차현태는 자신의 책상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무수히 많은 사진들로 구성된 이수호의 얼굴.
그리고 그 사진들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찍은 후, 톡톡 쳤다.
그의 손가락이 머문 곳에 있는 작은 사진, 그 사진에는 이수호가 약 50 대 정도의 나이로 보일 때 찍은
사진인 것 같았으며, 그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사람이, 경호실장 서지호였다.
“이창민 대사가 준 이 서류 한 장이, 마지막 남은 놈을 다 찾아낼 것이네.”
경호원들은 정말 눈을 뜨고 봐도 보기 힘들 정도의 사진에서 그 증거를 찾아낸 차현태가 놀라웠다.
PC 로 저장 된 파일이라면 해당 사진을 확대하여 본다고 하지만, 파일이 아닌, 인쇄된 종이 한 장에서 몇
천 장이 넘는 작은 사진으로 구성된 얼굴에서 해당 사진을 찾아내 확인하였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지금 어딥니까?”
한 편, 청와대를 나선 서지호는 태정민의 뒤를 쫒으려 하였지만, 그의 차량을 놓친 후, 박태식에게
연락하였다.
-이수호의 자택입니다. 설마 이곳으로 설 실장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강 검사가 저에게
연락을 하는 득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지금 갑니다. 설장호를 잘 잡고 있으세요.”
-네. 그러죠.-
서지호는 전화를 끊은 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하여 태정민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설장호가 잠잠하게 넘어가나 싶더니, 전혀 생각지 못한 차현태가
물고 늘어질 줄이야.”
서지호는 이동 중, 태정민을 찾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현태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창민의 서류에도 나와 같은 이름을 나열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진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었고, 명단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지.”
서지호는 이창민의 두 번째 서류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비단 서지호뿐 아니라, 이창민의 서류를
받은 모두가 두 번째 서류에 있는 몇 천 장의 사진으로 꾸며진 이수호의 젊은 시절 사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수호를 나타내기 위한 이창민의 생각으로만 판단하였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진들 속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인물이 있다는 것을 차현태가 찾아냈고, 그의
말로 인하여 설장호도 잊고 있었던 그 서류를 다시 보면서 숨겨진 인물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가만히 있는 건가?”
“네. 움직이지도 않네요. 포기한 모양입니다.”
한 편. 서지호의 연락을 받은 박태식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서지호의 차량 안에 감금해 둔, 두
사람을 지키고 있던 형사에게 물었다.
“이 차안에서 나오는 것은 무리야.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하여 만든 차량과 똑같은 방식으로 특수 제작한
차량이기에 열어주지 않는 한, 열 수가 없어.”
박태식은 안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도 보았듯이, 외부에서는 안을 절대 볼 수가 없었다.
“잘 있을 것입니다. 안에서 뭔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한 형사가 박태식의 행동을 보며 말하였다.
“혹시 모르지, 남, 여가 들어가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
박태식의 농담에 주차장에 있던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응? 무슨 차량이지?”
주차장에서는 모두가 농담을 즐기며 웃고 있었고, 곧 이수호의 집 앞으로 검은색 SUV 가 서서히 다가서며
정차하자, 형사들 중 한 명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다가섰다.
“이보시오. 여기 차 세우면 안 됩니다. 저기 올라가셔서…….”
‘위이이잉’
형사가 차량을 옮겨줄 것을 말하고 있을 때, 창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
‘픽!’
“뭐야!”
창문이 한 뼘 정도 열렸을 때, 형사의 눈앞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이 정확하게 겨눠졌고, 그의 눈동자가
커지자마자, 그의 눈을 뚫고 총알이 발사되었다.
형사가 뒤로 밀려나며 넘어지자, 이수호의 집을 경계 서던 형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움직였다.
‘픽픽픽픽!’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곧 SUV 에서 몇 사내들이
내렸고, 잠시 후, 또 다른 SUV 가 더 들어서고 있었다.
“국정원과 이창민 대사의 집으로도 사람을 보냈나?”
“네. 검찰총장님.”
“그래? 그럼 우린 이곳을 정리하고 국정원을 친다.”
“네. 알겠습니다.”
차량에서 내린 사람은 검찰총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강력계 검사들과 함께 이수호의 집을 습격하였다.

‘띠리리리.’
“네 대통령님.”
-도착하셨습니까?-
“네. 지금 막 도착하여 내부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나저나 서지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서지호 뿐만 아닙니다. 오늘 하루…….쓸어내야 할 놈들이 많으니, 바삐 움직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비밀병기는 그냥 그대로 두실 것입니까?”
검찰총장은 집 안으로 들어선 후, 그와 통화하면서 검사들에게 손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하하. 대통령님께서도 연기가 꽤 많이 느셨습니다. 어떻게 정말 감쪽같이 모두를 다 속이실수가
있으십니까?
-숨은 놈을 잡자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일단 이수호의 집을 장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검찰총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현태와 함께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차현태는 꽤 많은 것을 모두에게
숨기며, 지금까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형사님. 외부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형사들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 나가서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주차장에서 설장호와 강서진이 무슨 짓을 하는지 구경이라도 하고자, 차 창문을 조금 열어보려던
박태식에게 한 형사가 말했고, 그는 창문을 열려던 것을 멈춘 채, 그에게 명령하였다.

‘퍽퍽’
“!!!”
형사들이 지하주차장을 나서려던 순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던 검사들과 맞닥들였고, 그들에 의해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굴러 떨어져내렸다.
“박태식 형사…….어쩌다 이 꼴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군.”
“장검사?”
박태식은 거구의 몸에 거친 인상, 건달과도 같은 외모를 지닌 장검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곧 주위
형사들에게 그를 잡도록 손짓을 하였다.
“워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 우리 편이 좀 많거든.”
장검사는 웃으며 그의 행동을 보았고, 곧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형사들의 시선이 주변으로 돌아섰다.
“박태식. 넌 대체 용서할 수가 없겠구나. 너를 그토록 잘 보살폈던 사람이 설장호 실장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뒤통수를 쳐도 아주 제대로 쳤더군.”
장검사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박태식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모조리 잡아!”
곧 검찰총장의 목소리마저 들리자 그곳에 있던 모든 형사들의 눈빛이 놀란 듯. 그를 향해 보았다.
“거…….검찰총장이 직접!”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검사들이 나서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장이 직접 현장에
나서서 검사들의 지휘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박태식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들고 있던 총으로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자신과
함께 이번 일을 꾸몄던 모든 형사들이 그들과 맞설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박태식. 그냥 조용히 가자.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그러면 혹시 알아? 선처라도 해
줄지 말이야.”
장검사는 박태식의 앞에서 웃으며 말하였고, 곧 그의 멱살을 잡아 뒤로 밀쳤다.
“설 실장은 어디에 있나? 우선 이것부터 선처의 대상으로 잡아주지.”
장검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고, 박태식은 자신의주머니에서 서지호의 차량 열쇠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뭐야? 차키? 저 차안에 있어?”
장검사의 말에 검사들이 곧 해당 차량 앞으로 다가섰지만, 안은 보이지 않았다.
장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열쇠를 던져주었고, 그는 차 문을 열었다.
“설 실장님.”
차 문이 열리자, 설장호는 뒤 좌석에 아주 편히 앉아서 검사들을 향해 보고 있었다.
“강 검사!”
설장호의 뒤로 강서진의 모습이 보이자, 검사들이 반대편 문을 열어 강서진을 꺼냈다.
“별 거 아니야. 박태식이 뒷덜미를 후려치는 바람에 기절한 것뿐이야. 하지만…….아주 강하게
후려치더라고.”
설장호는 자신의 포박을 풀어주던 검사를 본 뒤, 곧 강서진을 걱정하던 검사들에게 말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검사들은 그 즉시 박태식을 향해 쏘아보았고,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장검사가 그의
한 쪽 볼을 수차례 내리쳤다.
“죽지 않게만 해라. 죽으면 너도 영창간다.”
그 모습을 보며 검찰총장이 말했고, 그는 곧 설장호에게 다가섰다.

“괜찮습니까?”
“의외군요. 설마 검찰총장님이 이렇게 직접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의아한 눈빛을 한 채 답하였다.
“생각지 못한 일은 앞으로 더 있을 것입니다. 일단…….국정원으로 가실까요?”
검찰총장의 말에 설장호는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총장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난 이창민대사가 준 증거자료를 아무리 훑어봐도 알아낸 것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물론,
인원수도 몰랐고, 대통령께서 알아내신 사진속의 사진, 그 속의 인물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검찰총장은 검사들에게 주변 정리를 마저 하도록 손짓을 한 뒤, 곧 주차장에서 1 층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이게 뭐야? 왜 한 놈도 없어?”


같은 시각. 때 마침 서지호가 이수호의 집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집 앞을 경계서야 할 형사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주변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잘 못 된 모양이군.”
서지호는 그 즉시 일이 꼬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곧 전화기를 꺼내들어 박태식에게 연락하였다.
“서지호?”
서지호는 박태식이 잡힌 것을 알지 못한 채, 그에게 전화하였고, 그의 전화기는 장검사가 대신 들고
있었다.

00249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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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까요?”
장검사가 전화기를 들고,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설장호는 손을 뻗었고, 장검사는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서 실장.”
“!!!”
설장호의 목소리가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서지호였다.
“숨은 놈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놈씩 자발적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보니,
대통령께서 그리 승산 없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의 말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그였다.
“지금 즉시. 아주 깊숙한 곳으로 꼭꼭 숨어라. 그래야 내가 너를 찾는 재미가 있다.”
설장호는 자신이 할 말을 다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지금 즉시 서지호 위치추적하고, 그 뒤를 따라붙어.”
“네. 총장님.”
검찰총장은 설장호가 전화를 끊자마자 검사들에게 알렸고, 검사들은 자신들의 수사병력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제길! 어떻게 된 거야? 왜 박태식의 전화를 설장호가 받아? 분명 박태식이 설장호를 잡아두었다고
했는데…….병신같이 그 놈에게 넘어가 오히려 잡힌 꼴이 된 모양이군.”
서지호는 이수호의 자택을 향해 시선을 올려 본 뒤, 곧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으윽…….”
“강 검사. 괜찮아?”
잠시 후, 강서진이 정신을 차렸고, 그녀를 보며 검찰총장이 물었다.
“총장님? 총장님께서 이곳을…….”
“이제는 결판내야지. 숨은 놈이 누군지, 대통령께서 찾아내셨는데, 그 놈들을 잡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대통령께서 숨은 놈을요?”
강서진은 놀란 눈을 한 채 되물었고, 설장호를 보았다.
그를 본 이유는 한가지였다. 조금 전, 설장호는 차현태를 의심하는 말을 잔뜩 퍼 붓고 나왔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기껏 해봐야 팔, 다리 하나 잘라내겠지.”
설장호는 강서진이 자신을 보는 이유를 아는 듯, 그녀에게 농담을 하였고, 다시 검찰총장을 향해 보았다.
“추선우씨는…….”
강서진이 총장을 보며 물었다. 차현태가 이수호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니, 혹시 추선우에
관한 것을 이들이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걱정말게. 추선우는 곧 만나게 될 것이니 말이야.”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추선우씨의 위치를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답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곧 보게 될 것이야. 그러니 서둘러 이수호의 잔챙이들을 잡자. 아니. 아니지. 잔챙이가 아니라, 어쩌면
이수호보다 더 윗선에 앉은 놈이라고 해야지.”
“윗선요?”
강서진은 이 모든 상황이 궁금증 투성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몇 가지를 아는 듯, 총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 실장님 같은 분이 이창민대사의 단서를 놓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서를
대통령께서 찾아낸 것도 놀랍고요.”
총장과 설장호는 이수호의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고,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제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 쫒은 모양입니다. 그에 반해 대통령께서는 그 누구도 보지 않은 부분을
보시고, 지금과 같은 숨은 놈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설장호는 총장의 말에 답하면서 곧 강서진을 보았다.
“서지호와 함께 한 놈이 더 있으니, 그 놈도 마저 잡아야지.”
설장호가 그녀를 보며 말했고, 총장도 그가 잡으려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듯, 곧바로 검사들에게 이동할
것을 명령 내렸다.

“이수호의 자택에는 검찰청 형사들을 배치시켜두었습니다. 그리고 박태식은 검찰로 이송했으며, 서지호는
추적을 시작하였다.”
검찰총장은 설장호와 함께 이동 중, 차현태에게 연락하여 현 상황을 알렸다.
“저 좀 바꿔 주십시오.”
설장호는 총장이 차현태와 통화중인 것을 알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확실한 증거를 들고, 괜한 의심을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를만한 소지는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 뜻을 아셨으니, 남은 한 놈을 쳐야죠.-
“네. 지금 국정원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설장호의 실수는 차현태가 가볍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국정원에 있는 놈을 치면, 정말 마지막 놈을 다 쳐내는 것일까요?”
검찰총장이 이동 중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줄 수 없었다.
비록 이창민 대사의 서류를 뒤늦게라도 파악하여 숨은 놈을 찾아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끝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확인해봐야 알겠죠. 그 놈이 끝인지…….아니면 또 있을지 말입니다.”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고, 잠시 후, 차량은 국정원 정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검찰총장과 설장호, 그리고 강서진이 앞 선 차량에서 내리고, 그 뒤로 검찰청 차량에서 검사들이 내리자
국정원내의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설장호가 앞장섰고, 그는 곧 제 3 차장에게 연락하여 부탁하였던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가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국정원 복도에서는 국정원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고, 강서진과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보았다.
“아무래도 3 차장이 움직였나봅니다. 서둘러 가보죠.”
곧바로 움직였고,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국정원장실이었다.
“이보게 설 실장.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가? 왜 3 차장이 나를 체포한다는 말을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네의 명령이라고 하는데, 대체 무슨…….”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보자마자 주저리주저리 소리쳤고, 곧 검찰총장과 강서진도 함께 서자, 그는 말을
잇지 않고 세 사람을 빤히 보았다.
“검찰총장님. 당신까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국정원장은 설장호와 그가 함께 서있는 것을 보며 날카로운 시선을 한 채 물었다.
“뭐. 보시다시피요. 숨은 놈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 놈이 여기에 있어서 말입니다. 다행히도 설
실장께서 미리 손을 써 두신 것 같군요.”
검찰총장은 원장실 안의 분위기를 보며 말했다.
원장실은 국정원장을 경호하는 국정원대원들이 원장의 곁에 서서 총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반대로 입구
쪽에는 3 차장을 비롯하여 국정원의 일부 대원들과 간부들이 국정원장을 에워싼 채,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수호에 빌붙어 있던 권력들입니다. 이 자들을 쳐내고 이수호의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곧 3 차장 이두식이 설장호를 보며 말한 뒤, 검찰총장을 보았다.
“뭐. 죄인을 잡는 것이 검찰이 할 일이라 잡기 잡아야합니다. 하지만 누구를 잡느냐가 관건이죠.”
3 차장은 검찰총장이 국정원장을 직접 잡기를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곧 총장의 애매한
말에 그 곳에 있는 모두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지고 있었다.
“국정원장님. 여러모로 참 고생 많으십니다. 그러니 이제 고생 그만하십시오.”
검찰총장은 3 차장을 지나, 국정원장의 곁으로 간 뒤, 그의 바로 앞에서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국정원장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고, 곧 국정원장의 경호원들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검찰총장을
보고 있었다.
“지금 즉시! 국정원 제 3 차장을 체포한다!”
“!!!”
총장은 국정원장을 보며 말한 뒤, 서서히 몸을 돌려 모두를 향해 섰고, 곧바로 큰 목소리로 3 차장을
주시하며 말하자, 검사들과 설장호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 눈으로 3 차장을 보았다.
“무슨 말이오! 왜 나를 잡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3 차장은 검찰총장의 말을 듣고 놀란 눈을 한 채 소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설장호를 향해 노려보았다.
“설 실장! 지금 뭐하자는 거요!”
그를 보고도 소리쳤다. 그러자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자리로 걸어갔고, 곧 그를 보고 섰다.
“원장님. 이창민대사가 남긴 서류를 볼 수 있습니까?”
“서류? 잠시만 기다려보게.”
설장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박태식에게 빼앗겼기에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여깄네.”
국정원장은 그에게 이창민의 서류를 보여주었다. 설장호는 그에게서 건네받은 서류를 들고 3 차장
이두식에게 다가섰다.
“이수호와 이장두의 관계를 알아내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장두의 가족관계에서는 이수호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수호의 가족관계도에서는 이장두가 있더군요.”
설장호의 말은 검찰총장과 이두식만이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검찰총장은 이두식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이장두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이두식. 당신은 이수호의 사촌동생이더군요. 그리고 그 누구도 모르게 이수호를 뒤에서 받쳐주었던
인물이고요. 또 한 국정원에 그리 많은 이수호의 부하가 있도록 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
이어지는 설장호의 설명에 국정원장마저도 놀란 눈을 한 채, 이두식을 보았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척!’
이두식이 어이없다는 듯 그의 말에 반문하려 할 때, 설장호는 이창민의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 증거 역시 두 번째 사진조합과 함께 첫 번째 서류에도 그 힌트가 있었다. 서지호가 이수호를 보며
악수하고 있는 사진에서 조금 더 내려오자, 그곳에는 이수호와 함께 낚시터에서 나란히 낚싯대를 던져두고
환한 표정을 지은 채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우린 이 사진을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 좀 먹었죠. 그리고 첫 번째 서류에 있던 일곱 글자,
그것은 두 사람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당신과 이수호의 가족관계 말입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도 서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국정원장은 아무리 봐도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시력이 되지 못하였다.
또 한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던 서류에서 그 내용이 가족관계를 나타낸다는 것 또 한 국정원장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대통령께서 알아내신 그 일곱 글자를 아주 골머리 앓도록 대조해 봤는데, 이름은 안 나오더군요. 하지만
혹시나 하여 가족관계로 사용되는 호적용어를 대조하였더니, 이수호의 동생으로 당신 이름이 떡하니
나오더군요. 물론…….이름과 함께 소속과 직급까지 도요.”
모두는 설장호를 보고만 있었고, 국정원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한 명의
차이가 난다는 서류상의 내용만으로 그 한명을 쫓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이수호를 잡고자 하였을 때, 참 많은 방해가 있었습니다. 국정원 내에서 잡혀온 놈들이 죽어나가고, 또
국정원대원들이 일을 방해하고…….그 모든 것이 다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보았던 3 차장님께서 내리신
명령이더군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3 차장은 끝까지 발뺌하며 설장호의 말은 거짓이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수호가 점점 가망성이 없어지자, 자신이 살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이수호를
죽이고, 더 이상 그와 관련된 일이 번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었죠.”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한 뒤, 그의 바로 옆에 섰다.
“이수호의 마지막 아침식사. 그곳에 약을 탄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런데 실수했어요. 이수호에게
약을 탈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밥에 약을 탔어야했습니다. 그래야 당신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다.

00250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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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장 이두식을 체포한다!”
그의 말이 끝난 후, 검찰총장이 다시 명령을 내렸고, 검사들이 움직여 그를 체포하였다.
이두식은 처음에는 거세게 저항하였으나, 국정원내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자, 저항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결정적 실수는 바로 이명수라는 명함을 사용한 것입니다.”
“!!!”
체포된 그를 이송하기 전, 설장호는 그가 저지른 결정적 실수를 말하였고, 그 순간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국정원장이었다.
“이명수의 명함은, 2002 년 당신 국정원장님이 사용했던 명함입니다. 당신은 그 명함을 사용함으로써
이번 수사에 혼선을 주려 했습니다. 바로 국정원장이 이수호의 뒷 선이라는 것을 모두가 의심하도록 하려
했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이두식의 눈동자가 떨려오고 있었고, 국정원장의 눈빛은 매섭게 돌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도 이명수란 명함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의외의 인물에게
그 내용을 들었고, 그로인하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설장호는 말을 이어하였고, 곧 국정원장실로 수갑을 찬 석강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그래. 그 이명수에 관한 힌트는 조동민이 주었지만, 결정적인 힌트는 내가 준 것과 다름없지.”
이두식은 석강수를 노려보았다. 석강수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명수란 명함을 본인이 직접 사용할 이유가 없잖아. 그 즉시 자신이라는 것이 탄로 날 텐데 말이야.”
석강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하였고, 이두식의 두 주먹은 꽉 쥐어지고 있었다.
“이제 내가할 일은 끝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나도 검찰청에 가서 조사좀 받고, 편한 곳으로 좀 보내줘.
매일같이 여기서 먹는 국밥도 이제는 지겹다.”
석강수는 설장호를 보며 말한 뒤, 자신 스스로 발길을 돌리며 감금실로 향하였다.
검찰총장은 검사들에게 신호를 주었고, 이두식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검찰청으로 이송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여러모로 국정원장님을 많이 의심하였습니다. 이수호가 국정원을 장악하기 위해서 가장 큰 권력인


원장님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니까요.”
이두식이 연행 된 후, 그와 함께 근무하였던 국정원 대원들도 설장호의 명령 하에 다른 국정원 대원들에
의해 모두 체포되어 국정원내 조사실로 옮겨졌고, 곧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앞으로 서며 말했다.
“이두식이 이수호의 사촌동생이라는 것과, 또 이두식이 국정원 내에서 가장 큰 이수호의 권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보며물었다. 자신은 그토록 오랜 시간 국정원에 있었으면서도, 단 한번도 3 차장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두식은 이번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보고 있었기에, 그가 이번
사건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럼. 이제 이창민대사의 서류와 이수호의 서류에서 나온 인물의 수가 일치하는 건가?”
국정원장은 인원수의 차이를 두고 있었었다. 130 명과 131 명의 차이였고, 조금 전, 이두식이
체포되었으니, 131 명으로 서로 동등한 서류가 된 것이라 말하였다.
“아닙니다. 서로 동등한 서류가 아닙니다.”
“무슨 뜻인가? 서류를 검토하고 확인한 숫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가?”
국정원장은 그의 말을 듣고 곧바로 물었다.
“이창민대사의 서류 중 첫 번째 서류. 이름나열 부분에서 대통령께서는 최소 1 명에서 최대 3 명 정도의
이름이 더 나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두 명의 이름이 더 확보되었고, 조금 전 이두식을
체포한 상황입니다. 또 한 이름뿐 아니라 이두식은 이수호와의 가족관계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자 조합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첫 번째 서류를 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보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두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 명은 누구인가?”
국정원장은 아직 서지호에 대한 정보는 모르고 있었고, 설장호는 서지호에 대한 설명도 그에게 해주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이군. 대통령이나, 나나…….바로 밑에 가장 막강한 놈들을
두고, 찾지 못하고 다녔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곧 이창민이 남긴 서류를 다시 보았다.

“그럼 난, 이창민대사의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그곳에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곧 검찰총장은 이창민의 집으로 움직일 것을 알렸고, 설장호도 함께 움직이기 위하여 나섰다.
“곧 사건이 마무리되면 제가 사과의 뜻으로 술한잔 사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을 보며 말한 뒤, 검찰총장과 함께 국정원장실을 나섰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실을 나서자마자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뭔가 있어?”
때마침 이창민의 집으로 갔던, 조동민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허탕입니다. 이창민대사의 집으로 들어온 이장구의 차량은 이장구의 딸이 운전해서 온 것입니다.-
“딸?”
-네. 조금 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장구의 아내가 그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병문안을 한 후, 다시 돌아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병문안을 하고 돌아왔는데, 왜 자신의 집이 아닌 이창민의 집으로 간 것인가?”
설장호는 조동민의 말 중,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여 물었다.
-이장구. 아직 이창민대사의 집에 기거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주민등록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이창민대사가 자신의 집 한 편에 만들어 준,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설장호는 조동민의 보고를 들은 후, 여러 가지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이장구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창민 대사를 죽도록 버려두었고, 이지현을 쫓는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사후 처리에 대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었다.
비록 그의 죽음 뒤로, 석강수가 나오고, 또 최기수, 정구석, 고민국, 우수광이 등장하면서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지며, 바빴던 것이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다 핑계라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네. 일단 국정원으로 돌아오게.”
-네? 이제 돌아가도 되는 것입니까? 국정원에서의 일은 모두 정리가 된 것입니까?-
조동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물었다.
“그래. 가서 국정원장님을 경호한다.”
-네? 원장님을요? 조금 전에는 원장님으로부터 저를 보호한다고 국정원에서 나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또 들어가서 원장님을 경호하라니…….-
“잔말 말고 까라면 까.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하면서 하자.”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그의 말에 답하였다.
설장호는 오늘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리 하려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제길.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야하는데…….”
한 편. 서지호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운전 중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안전한 곳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그 곳이라면 괜찮겠군.”
그리고 어느 한 곳을 떠올린 듯 표정을 밝게 하며 말한 뒤, 곧바로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운전대를 잡아
돌렸다.

“삼촌…….여기는…….”
같은 시각. 태정민은 지현을 데리고 북정마을로 왔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추선우를 만났던 곳으로 향해
걸었고, 지현은 추선우를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보았다.
“이곳…….너의 운명이 바뀌게 된 곳이잖아.”
태정민은 그녀를 데리고 그녀가 있을 만한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을 생각하여 이곳으로 왔다. 그녀의
마음이 편하며, 또 지현을 노리는 그들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곳이라 여겼다.
두 사람은 곧 빌라 앞에 섰다. 그리고 빌라는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까지 되어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고 깨진 유리에 마친 폐건물처럼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뉘시오?”
두 사람이 빌라 앞에 서자, 한 여인이 다가서며 물었다.
“네? 아 네…….뭐 이 집에 사는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입니다.”
태정민은 여인의 물음에 웃으며 답하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의 친구? 누구의 친구요? 은주를 말하는 것인지, 선우를 말하는 것인지?”
“선우 삼촌과 은주이모. 두 사람 다 알아요.”
여인의 말에 지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은주 씨의 애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아이는 추선우의 조카입니다.”
태정민은 여인을 보며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말했고, 그가 은주의 애인이라는 말에 여인은 다시 한 번
그를 빤히 보았다.
“하…….신기하네. 은주가 이리 반듯하게 생긴 사람을 애인으로 사귈 만 한 년은 아닌데 말이야.”
“하하…….하하…….아주머니. 애도 있는데 말씀 좀 가려가시면서…….하하…….”
여인의 말은 조금 거칠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그녀의 말에 지현의 귀를 살짝 가리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년을 년이라고 하는데 무슨.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야? 이제 이 집에는 은주가 살고있지 않아. 주인이
바뀌었지.”
여인은 깔끔하게 정리된 빌라를 올려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은주 씨의 새로운 집을 구해준 사람이니까요.”
태정민도 빌라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여인은 태정민을 보았다. 그리고 지현을 보았다.
“참 요상하네. 전혀 은주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애인이 되었는지…….”
여인은 홀로 중얼거리며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삼촌. 그런데 이제 은주이모도 여기에 없잖아. 그리고 선우 삼촌도…….”
지현은 말을 흐렸다. 그러자 태정민은 그녀의 앞으로 자세를 낮춰 앉은 뒤, 그녀를 보았다.
“우리. 여기서 선우삼촌 기다릴까? 이 집 주인한테 말해서 우리가 이 집에서 살자. 그래야 선우삼촌이
나중에 돌아와도 쉴 자리가 있을 것 아냐.”
태정민은 지현을 보고 말했고, 지현은 글썽거리는 눈을 한 채, 태정민을 보았다.
“삼촌.”
그리고 그를 안아주었다. 태정민은 지현이 자신을 안자, 자신도 살며시 팔을 올려 그녀를 안아주었다.
“어? 실장님이다.”
“실장님?”
그녀를 안자마자 지현이 조금 들 떤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몸을 돌려 지현이 보고 있는 곳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서지호가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서지호는 자신이 몸을 술길 최적의 장소로
추선우의 집을 택한 것이었다.
이수호의 부하가 치고 들어올 리가 없고, 또 설장호가 자신을 찾겠다고 이곳으로 올리도 없으니,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집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틀어져 버렸다.
“태정민…….”
“실장님…….”
서지호는 태정민을 불렀고, 태정민은 서지호를 불렀다. 하지만 태정민은 서지호가 이수호의 리스트 중,
숨은 한 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00251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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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뭐하는 건가? 그리고 지현을 데리고 이렇게 나오면 그녀의 안전에…….”
“추선우가 돌아올 때까지, 그 때까지 지현은 제가 지킵니다.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처럼 누가 누구의
편에 서 있으며, 또 누가 누구를 죽이려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순간에서 그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대통령님도 말입니다.”
태정민은 아직 차현태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지호에 대한 의심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현은 제가 경호하겠습니다. 그러니 실장님께서는 청와대로 돌아가 대통령님을 경호하십시오.”
태정민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에게 말한 뒤, 몸을 돌려 빌라로 들었다.
그리고 2 층 은주의 집을 지나치며 추선우가 지내고 있었던 옥탑 방까지 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섰을 때, 1 층 계단으로 올라서는 서지호를 계단 틈 사이로 보게 되었다.
“이곳은 삼촌이 있는 집인데…….”
지현은 오랜만에 이곳을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 올렸다.
“사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난 믿지 않았어. 여름에는 덮고, 겨울에는 춥고, 그런데 이런
곳에서 그런 대단한 사람이 살고 있으니,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이었지.”
태정민은 옥상에 놓여있는 평상에 앉으며 말했고, 곧 지현도 그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 곧 옥상으로 들어서는 문을 향해 시선이 고정되었고, 그곳에서 서지호가
옥상으로 나서고 있었다.
“실장님도 여기 와서 앉아보세요. 이곳이 바로 선우삼촌이 지내던 곳이에요.”
지현은 그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의 표정은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아직 서지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은 것은 없지만,
느낌상으로 전해지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던 그였다.
“지현아. 잠시 뒤로 물러나 있어.”
태정민은 지금의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지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지현은 그를
향해 보았다.
“삼촌. 왜 뒤로 가 있어야 해.”
지현은 태정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보며 물었다.
“왜냐면 말이야…….”
‘픽!’
“!!!”
지현의 말에 대한 답은 서지호가 하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총도 답을 주었다.
“삼촌!”
지현은 깜짝 놀라 그를 보며 소리쳤다. 서지호는 총을 꺼내며 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는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면서도 아무런 소음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태정민의 어깨를 관통하여 지나치며 그를 바닥에 쓰러지도록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심장을 뚫어버리고 싶은데. 너와 지낸 세월이 있어서 이것으로 끝낸다. 하지만
지현은 내가 데리고 간다.”
서지호는 총에 맞은 어깨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온 몸을 타고 전해지고 있지만, 지현이 놀랄 것을 우려하여
고통에 대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 삼촌!”
하지만 지현은 그를 계속하여 불렀다. 고통에 몸서리치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불렀다.
“이제 그만. 너도 조용히 가라.”
서지호는 울부짖는 지현을 옆에 두고서 태정민을 향해 보며 말하였다.

“총장님. 조금 전, 이수호의 집에서 하다 말은 말입니다. 지금 추선우씨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 편, 국정원에서 나온 뒤, 어디론가 향하던 그에게 강서진이 다시 물었다.
“저도 궁금하군요. 국정원장님을 완벽하게 속일 정도로 그를 빼내서 데려간 곳이 어디입니까?”
강서진의 질문에 이어 설장호도 다시 같은 질문을 하였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사람은 대단합니다.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빠르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검찰총장은 추선우의 지금 현재 상황을 두 사람에게 알리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서진이 다시 물었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겠군요.”
검찰총장은 두 사람을 보며 말한 뒤, 곧바로 말을 이어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만 할
뿐이었다.
‘띠리리리.’
총장이 뭐라 말을 할 찰라, 강서진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전화를 본 후, 발신자 표시를 보며 표정을
구겼다.
“전화 받아.”
“아니에요. 받지 않아도 될 전화에요.”
전화기에 찍힌 발신자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설장호의 말에 그녀는 전화기를 돌려 꺼버리며 말했다.
“마저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정원장님도 알지 못하고, 또 설 실장님까지
모르도록 대통령님과 단 두 분이서 일을 진행하신 것입니까?”
아버지의 전화를 무시한 채, 그녀는 총장을 보며 조금 전에 그가 하려던 말을 다시 듣기위하여 물었다.

“자네가 추선우의 병문안을 가 있을 때, 그 때 자네의 아버지를 만난 던 때를 기억하는가?”


“네? 그 때라면…….”
“그래. 추선우씨를 걱정하던 자네가 1 층 로비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지.”
강서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는 추선우를 아무도 만날 수 없기에 그의 가까이도 가지 못하였고,
자신의 아버지가 찾아왔어도 그와 나눌 대화조차 없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추선우에 관한 것을 알아보셨네.”
“네!? 민간인을 그리 마음대로…….”
“그 덕분에 추선우씨가 살았다고 하면…….아버지의 권력은 그리 나쁘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총장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고,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 말씀은 강 검사의 아버지께서 추선우에 관해 어떤 조치를 내렸다는 말입니까?”
설장호가 이어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난 추선우를 병원에서 빼내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환자를 그리 대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병원에서 이리저리 들리는 풍문들은 나의 귀를 열게 만들었습니다.”
“풍문?”
“나도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뭐라 정확하게 결정지을 수가 없었지만 강선배님은 망설이지
않으시더군요. 그런 풍문은 발원지가 꼭 있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강서진의 눈동자가 떨리며 이미 꺼버린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았다.
“그럼. 강선배님이 추선우를 다른 곳으로 빼낸 것입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추선우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딸이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었지요.”
“그래서 주치의조차도 속이며 추선우를 다른 곳으로 빼냈다? 그리고 지금 추선우는 강선배님과 함께 있다?
뭐 이런 말입니까?”
검찰총장의 말을 종합하여 생각한 뒤, 설장호가 다시 묻자, 검찰총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서진은 휴대전화를 다시 켰고, 곧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연락하였다.
“선우 씨…….선우 씨가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아버지의 안부는 묻지 않았다,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추선우에 대한 안부를 먼저 물었다.
-서운하구나. 애비 안부를 묻지 않고, 그 놈의 안부를 먼저 물으니 말이야.-
“죄송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요. 아버지…….죄송해요. 가르쳐 주세요.”
강서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검찰총장과 함께 있니?-
“네.”
-그럼 내가 굳이 말할 필요 없겠구나. 총장과 함께 가거라. 그 사람이 너를 그놈 곁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금은 차가운 어투로 말했고, 강서진은 검찰총장을 보았다.
총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고,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 놈을 만나면 내 대신 주먹한 방만 날려줘라. 감히 내 딸을 아프게 한 죗값이라고 말이야. 이만
끊자.-
“아빠!”
그녀의 아버지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강서진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꼭 그 놈을 구해줘서 이런 말을 듣는 기분이구나. 어쨌든 이번 사건이 끝나면 다시 보자.-
그녀의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고, 강서진은 잠시 전화기를 보고만 있었다.
“강선배가 모두 계획한 것입니까?”
설장호가 검찰총장을 보며 물었다.
“원래는 대통령님과 저만 따로 움직이려 했는데, 강선배가 추선우에 관한 것을 알아내는 바람에, 그도
함께 하게 되었지.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린 비밀병기를 잃지 않아도 되었지.”
“비밀병기?”
총장의 답을 들은 후, 설장호가 그가 한 말에 대해 되물었다.
“그래. 비밀병기. 이 모든 사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이 움직이고 있지. 그것도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곳에서 말이야.”
“!!!”
검찰총장의 마지막 말에 강서진이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았고, 총장은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쾅!’
같은 시각. 서지호의 어깨에 총을 쏜 후, 지현을 데리고 가려던 서지호가 갑자기 열린 옥탑방의 문에
의해 쥐고 있던 총을 놓치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지현은 곧바로 쓰러진 태정민의 곁으로 간 후, 그의 어깨를 보며 울었다.
“총 맞아보니 별 것 아니더군요.”
“!!!”
옥탑방 문이 열리며 들린 목소리. 그 목소리에 옥상에 있는 세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태정민은
총상을 입고도 입가에 미소를 지은 뒤,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하였다.
“하하하!”
그리고 이내 더 큰 목소리로 웃었고, 곧 어깨에 통증이 이어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삼…….촌.”
지현은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온 그를 보며 떨리는 눈동자로 서 있었고, 이내 말을 더듬거리며 그를 불렀다.
“우리 지현이…….그 동안 많이 자랐구나. 더 예뻐지기도 하였고 말이야.”
옥탑방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추선우였다. 그는 총상을 입은 부분에 아직도 붕대를 징징 감고 있었지만,
얼굴 안색은 좋아보였다.
그리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내 몸을 낮춰 앉은 뒤, 지현을 안아주었다.
“뭐야!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서지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병원에서 사라진 것은 알고 있지만, 이리 빠르게 회복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그였다.

“분명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다고 했는데…….”


“사실 나도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더군. 그리고 주치의가 의뢰로 치료는
잘 해주더군.”
추선우는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곧 총상을 입은 태정민을 내려 보았다.
“일어나십시오. 그 죽을 것도 아닌데, 엄살은…….”
“하하하. 내가 너처럼 운이 그리 좋은 놈은 아니야. 이번엔 제대로 맞은 것 같다. 그래서…….”
“그래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현을 보살펴 주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지현의 머리를 잡아 태정민에게 향하도록 돌리며 말했다.
“지현아. 지금부터 절대 태정민 삼촌에게서 시선을 떼면 안 돼. 삼촌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도록 네가
도와줘야해. 그리고 삼촌을 보고 있지 않으면 삼촌이 많이 아플 거야. 내 말 알겠지?”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말했고, 지현은 총상을 입은 태정민을 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00252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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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문을 잠그고 계십시오.”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그 옆을 지현이 부축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추선우를 보았다.
“그런 눈빛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자도 아니고…….사내끼리 그런 느끼한 눈빛은 주고받지 맙시다.”
추선우는 그의 눈빛을 피하면 말했다. 그저 돌아와줘서 고맙다는 무언의 눈빛이었지만, 조금 느끼했던
모양이었다.
“지현아. 삼촌 말 잘 들었지. 꼭 정민이 삼촌에게서 눈을 떼면 안 돼. 알았지?”
“응. 삼촌. 그리고 기다릴게. 삼촌이 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게.”
지현은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슬픈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다.
지현과 태정민이 방으로 들어간 후, 추선우는 매서운 시선을 돌려 서지호를 보았다.
“네가…….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하군. 하지만 어차피 지금 죽을 테니 그 궁금증은 해소된 것으로
간주하겠다.”
서지호는 자신을 노려보는 추선우를 향해 말한 뒤, 그의 곁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슉!’
서지호의 주먹은 스피드부터가 달랐다.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의 경호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니,
지금까지의 그 어떤 누구보다 더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 여겼다.
더군다나 추선우는 아직 총상에서 완벽히 완쾌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 지금 추선우씨가 북정마을에 있다는 것입니까?”
강서진은 검찰총장의 답을 들은 후, 깜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비단 강서진 뿐만 아니라, 설장호도 깜짝
놀란 눈으로 검찰총장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설장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그의 곁으로 다가서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
내려졌었다. 하지만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강서진의 아버지가 그를 외부로 빼낸 것이었다.
“이 역시 결론은 좋게 났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구멍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강선배가 권력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이고,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그는 병원에서 추선우를 잘
빼냈습니다.”
검찰총장은 추선우를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정말 만족하는 눈빛이었지만, 결국은 제 살을
깎아먹는 것에 박수를 치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국정원 3 차장 이두식이 이명수라는 명함을 사용해서 추선우를 빼내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함은 3 차장이 준 것이 확실해졌고,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강선배가…….”
“시간차 공격…….”
“시간차 공격?”
설장호의 추리대로라면 강서진의 아버지는 추선우를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두식이 먼저 주치의를
만나 추선우를 빼내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린 총장의 말에 다시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되 내였다.
“누군가가 추선우를 빼낸 것을 다시 빼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쪽도 알지 못하고, 우리 쪽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추선우가 공중에서 사라져버린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이두식이었지만, 그 중간에서 목표를 가로채 간 사람은 바로 강서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금 그를 만나기 위하여 북정마을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서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설장호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지호의 위치가, 공교롭게도 북정마을입니다.”
“네!?”
북정마을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검찰총장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다시 놀란 눈을 하였다.
“북정마을에 추선우가 있다는 것을 서지호가 알고서 간 것입니까?”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두 사람이 한 곳에 있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그저 추선우를 만나러 간다는 것에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이미 가 있다는
말에 설렘이 긴장감으로 변했고, 곧 초조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탁탁탁. 슈욱! 탁!‘


“역시. 그냥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는 소문은 진실이었군.”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호원자리를 차지하고 서 그냥 앉아만 있었던 모양은
아니었나봅니다.”
한 편. 좁은 옥상에서 두 사람의 격전은 아주 빠르며 정확하게 상대를 노리고 있었다.
주먹과 발차기의 모든 스피드는 서지호가 한 수 위였지만, 추선우 역시 그리 쉽게 그에게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허술한 몸은 아니었다.
“계속…….계속 그냥 숨어서 지냈다면 아마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니. 모두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통령이 나를 찾아냈다.”
추선우의 말에 서지호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미 차현태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였다.
“대통령께서 아셨다면 대통령을 먼저 치는 것이 유리했을 것 같은데요. 경호실장인 당신이 대통령의 곁에
붙는 것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추선우는 그의 행동이 모두 잘 못 된 것이라 말하였다.
“뭐. 어차피 일은 저질러졌다.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대대적으로 이수호를 치니, 숨어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이수호가 잡히고 난 뒤에도 잘 숨어있던 놈들마저도 모두 짐싸서
어디론가 숨어들어가려 할 것이다.”
서지호는 차현태의 추리가 의외로 깊고 정확하게 파고들어간 것을 말하고 있었다.
‘끽.’
같은 시각. 북정마을 입구에서는 검찰총장과 설장호, 강서진이 탄 차량이 도착하였고, 곧 서지호의
위치를 추적하여 따라온 검사들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일단 그의 위치는 추선우씨가 살고 있었던 빌라입니다. 그리고 그 일대에 형사병력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검사는 현장 지휘에 대한 보고를 마쳤고, 곧바로 세 사람은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탁! 슉슉슉 퍽!’
서지호는 추선우를 향해 아주 빠르게 발을 뻗어 올렸고, 그 발차기를 한 손으로 막아내자, 연이은 그의
주먹이 세 차례 빠르게 뻗어졌다.
그 세 차례의 주먹은 막지 않고 모두 피한 뒤, 반격을 노리려 할 때, 옥상 바닥에 있던 빨랫줄을 밟으며
반격의 기회를 놓친 추선우에게 이어지는 서지호의 뒤돌려 차기가 정통으로 그의 안면을 가격하였다.
‘와장창!’
추선우는 옆으로 밀려 날아가며, 옥상에 쌓아놓은 잡동사니에 넘어졌고, 그 소리가 너무나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 그리고 선우삼촌이 들어와 안아주면 그 때 눈을 떠.”
너무나 요란한 소리는 태정민의 귀에도 너무나 크게 들려왔다. 당연히 어린 지현에게는 그 소리가 모두
무서울 것이었다.
하지만 태정민마저 놀라 당황하면 지현은 더욱 더 당황할 것이기에, 그녀의 귀를 살짝 막아주며 말했다.
지현은 고개를 돌려 태정민을 보았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꽤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옥탑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난 날.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입었던 그
옷을 보았다. TV 옆에 너무나 잘 개어져 있었다.
잠시 동안 그 옷을 본 후, 곧바로 태정민에게 가져가 그의 어깨를 감싼 뒤, 꼭 꼭 묶어주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의 팔 힘이라 꽉 묶이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지현의 행동을 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할 일은 이수호까지만 딱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그냥 조용히 백수생활로 돌아가 직장이나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네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넌 너무 깊게 파고들어버렸어.”
서지호는 자신의 발차기를 맞은 후, 천천히 일어서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이수호까지만 잡아야한다는 것도 이미 계획에 있었던 것입니까? 그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내가 이수호를 잡은 후에, 그 놈을 이용하여 당신 같은 쓰레기새끼도 다 잡을 것이라는 계획은
왜 세우지 못하셨습니까?”
“…….”
서지호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그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와 태팀장님. 그리고 설 실장님까지. 모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왜냐고? 그 때는 아직 이수호가 잡히지 않았으니까. 그 놈이 잡히고 난 뒤에 너희들이 죽어야한다.
그래야 너희들이 할 일을 다 한 것이니 말이야.”
추선우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서지호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추선우의 말처럼 서지호는 이
모두를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았었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이수호의 부하들로부터 이들을 구해주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유를 들은 것이다. 마지막 목표인 이수호를 잡지 못하였기에, 살려둔
것이었다.
“이수호가 우리에게 잡힐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한 모양이군.”
“아니. 처음에는 어림없는 도전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수호가 잡힐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잡히면, 나를 비롯하여 그와 연을 맺었던 수많은 권력들이 모두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이왕 잡힐 놈이지, 잡히도록 하고, 잡히면 죽이겠다…….뭐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인가?”
“그래. 사실…….나를 비롯하여 이수호와 연관되어있던 놈들은 이수호의 경호원들을 뚫고, 그 놈에게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설 실장은 물론, 태정민과 강서진, 그리고 너라면 충분히 그
경호실을 뚫을 것만 같았다.”
추선우는 총상을 입고 누워있었던 지난 며칠 동안 전혀 몰랐던 모든 것을 다 듣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럼. 우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잘 알 수 있었던 것이 태정민 팀장의 보고 때문이었나?”
“아니. 태팀장은 원래 보고 같은 것을 잘 하지 않는 놈이다. 그에게 보고 받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지쳐
죽는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정보를 보고 받기 위하여 한 사람을 붙여놓았지.”
“그 사람이 누구인가?”
추선우는 아직 박태식이 잡힌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박태식 형사.”
“박태식? 하…….결국 믿는 자들을 이용하여 믿는 도끼에 발등 찍도록 만든 셈이군.”
“그렇지. 설장호와 강서진, 태정민과 박태식, 그리고 나. 우리는 꽤 오래된 인연이지, 그래서 서로
믿음도 컸고, 하지만 그 믿음은 돈 앞에서는 그냥 믿음이라는 단 두 글자의 역할밖에 못한다. 그것이
현실이야.”
추선우의 두 주먹이 더 꽉 쥐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그를 향해 뻗어졌고, 그는 주먹을 피한 뒤, 뒤로
물러나다 추선우를 향해 발을 뻗었다.
날아오는 발을 다시 막은 수, 이번엔 추선우가 돌려차기를 시도하였고, 몸을 낮춰 피한 후, 그의
돌려차기가 다시 돌아가는 시점에 빈틈이 생긴 부분을 보며 주먹을 내 질렀다.

‘퍽!’
하지만 추선우의 돌려차기는 몸이 돌아가는 것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빈틈을
노리려 들어오는 서지호의 주먹은 추선우의 이어지는 옆 차기보다 약간 늦게 추선우의 몸에 와 닿을 뻔
하였다.
즉. 추선우의 옆차기가 먼저 서지호의 복부에 그대로 꽂히며 서지호의 몸이 활처럼 휜 뒤,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00253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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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서지호는 곧바로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그리고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너! 그래 너! 네 놈이 문제였다. 과거에도 이수호를 잡겠다고 설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서지호는 추선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의 말처럼 지난 과거에도 이수호를 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 당시가 오히려 주축 인물들이 더 막강하였다. 현재의 국정원장을 시작으로 설장호와 석강수, 조동민도
있었고, 무엇보다 현재 은퇴한 강서진의아버지도 그 당시에는 차장검사로 현장을 뛰었었다.
하지만 이수호를 잡지 못했었다. 아니 그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 최기수와 같은 네 명의 회장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아주 밑바닥에서만 머물렀던
과거였다.
“과거에는 웃었다. 대한민국의 최대 권력이 되어버린 이수호를 그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오히려 빠진 사람이 더 많고, 추가된 사람이라고 해봐야 너와 차현태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이수호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과 같지.”
서지호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니. 나와 대통령께서 추가되었다고 너희들이 잡힌 것이 아니야. 꼭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추선우는 자신의 1 미터 앞에 선 서지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추선우…….넌 대단한 놈이다. 하지만 이제 끝내자.”
‘슉! 퍽퍽퍽!’
서지호는 1 미터의 거리를 두고 선 채, 빠르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주먹을 몸을 낮추며
피하였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크게 휘둘러 그의 면상을 가격하였다.
몸이 휘청거린 서지호에게 추선우의 돌려차기가 다시 적중하였고, 이내 내려찍기까지 적중하면서,
서지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바닥으로 강하게 넘어졌다.
“그래…….끝내야지. 이제는 나도 좀 쉬고 싶다.”
추선우는 자신의 바로 앞, 바닥에 누워버린 서지호를 내려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돌려 옥탑
방으로 향하였다.
“추선우…….넌 역시 민간인이다. 그 이상이 될 수 없어.”
서지호의 목소리에 추선우는 걸음을 멈춘 뒤, 뒤돌아보았다.
“…….”
추선우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쓰러진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총을 들어 추선우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곳에…….어떻게 딱 총이 떨어져 있었는지 참 운도 좋지 않은가?”
서지호는 이미 자신의총이 어디에 떨어져있는지를 다 계산한 상태였다.
“그냥 한 대 맞고, 주저앉아서 총을 줍고 머리통만 날리려 했는데, 하…….새끼. 연달아 때리니 아주
골이 다 흔들거리네.”
서지호는 턱을 이리저리 만진 후, 다시 머리를 지긋이 눌러보며 말했다.
“너를 죽이고 지현을 데려가면, 그 누구도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특히…….차현태는 더욱 더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서지호는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지현을 데려가려면. 나를 죽이고 데려가라.”
추선우는 오히려 그를 향해 독한 눈빛을 한 채, 말하였고, 이내 그의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총을 맞고 운 좋게 다시 살아났다고, 네가 무슨 불사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넌 그냥 인간이야! 그것도
하찮은 민간인이며, 실업자라고!”
‘탕!’
“!!!”
서지호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는 추선우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고, 이내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삼촌!”
지현은 총성에 놀라 옥탑방 문을 열려하였다. 하지만 태정민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태정민은 그 총성은 추선우를 향해 총성이라 여겼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추선우는…….단 한 번도 총을 쏜 적이 없었다. 총을 가지고 있어도, 오히려 그 총을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그런 민간인이었다.

“아무리…….보잘것없는 민간인이며, 실업자라도. 네 놈 같은 쓰레기보다는 더 인간적이다.”


“강 검사님…….”
강서진이었다. 조금 전의 총성은 강서진이 서지호를 향해 발사한 총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매는 매서웠고, 이를 꽉 깨문 채, 서지호를 향해 말했다.
추선우는 그녀를 보았다. 아직도 서지호를 노려보는 독한 눈빛이 풀리지 않은 그녀였다.
“뭣들해! 서지호를 잡아!”
곧 검찰총장의 명령이 내려졌고, 강서진이 발사한 총알에 의해, 다리를 관통당한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검사들을 보며 질질 기어서 뒤로 물러났지만, 이내 한 검사가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려 마저
기절을 시켜버렸다.
“그 새끼…….주둥이는 살아가지고.”
검사는 기절한 서지호에게 수갑을 채운 뒤, 세 명의 형사들과 함께 서지호를 체포하여 옥상을 내려갔다.

“정말…….살아있군.”
설장호는 추선우를 보았다. 마치 죽을 사람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지금. 거짓말처럼 추선우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가봐.”
설장호는 아직도 총을 들고 매섭게 한 곳을 노려보고 있는 강서진에게서 총을 건네받은 뒤, 말했고,
그녀는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의 그 독한 눈빛은 이제 없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그런 눈빛만이 그녀에게 있었다.
“다행입니다. 자칫 조금만 늦었다면 힘들게 구해낸 사람 어이없게 잃을 뻔 하였습니다.”
검찰총장이 두 사람을 보며 말하였다.
“이제 지현을 찾아 가봐야겠습니다. 추선우가 이리 건강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 하던
아이…….”
“지현은…….이 곳에 있습니다.”
“뭐?”
설장호는 추선우를 데리고 청와대로 향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가 옥탑 방을 가리키며
말했고, 설장호는 놀란 눈으로 옥탑 방을 보았다.
“괜찮아요?”
설장호를 비롯하여 검찰총장은 서둘러 옥탑 방으로 향하였지만, 강서진에게는 지현보다 추선우가 더
중요하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검사님의 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추선우도 이미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요…….나중에.”
강서진은 그의 얼굴을 보며 손을 천천히 뻗어 올린 뒤, 그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문 좀 열어보게.”
옥탑 방 문은 꽉 닫혀 있었다. 이에 검찰총장이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곧 열쇠를 들고 문 앞으로 갔다.

‘탈칵’
“안 돼! 안 돼! 오지 마!”
“…….”
추선우가 옥탑 방 문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문 바로 앞에서는 지현이 방빗자루를 들고 눈을 꼭 감은
채 소리치고 있었다.
“지현아.”
추선우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현은 추선우의 목소리를 듣고,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삼촌…….”
지현의 눈에는 금방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고, 이내 그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다.
“미안한데…….저도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넌 또 왜 그래?”
방 한쪽으로 앉은 태정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설장호가 그를 상태를 보며 물었다.
“보시다시피…….또 영광의 상처를…….”
“영광의 상처는 지랄. 그냥 총에 맞은 것이지 무슨 영광까지 가고 그래.”
설장호가 그의 곁으로 다가선 뒤, 어깨에 입은 총상을 자세히 보았다.
“죽지 않겠네. 병원 가서 치료하고, 한 이틀 푹~ 쉬면 다 괜찮을 거야. 어서 병원과.”
설장호는 태정민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한 뒤, 몸을 돌려 지현에게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몸을
낮춰 앉은 뒤,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선우삼촌하고 매일같이 붙어 있을 수 있겠네.”


“정…….말이에요? 이제 정말 선우삼촌이 다른 곳에 가지 않아요?”
“그럼. 이제부터 선우삼촌이 지현이와 매일같이 있을 수 있어.”
설장호의 말을 듣고, 지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추선우를 껴안았다.
“뭐해? 넌 어서 병원 가.”
곧 자리에서 일어서며 태정민을 본 설장호가 툭하고 한마디 던졌고, 모두가 옥탑방을 나섰다.
태정민은 홀로 멍하니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하…….슬프네.”
태정민은 모두가 나가버린 옥탑 방에서 홀로 벽에 손을 짚은 뒤, 서서히 일어섰다.

“전화를 하던가! 손은 뒀다 어디 쓰려고 그래요!”


“…….”
벽을 짚고 힘들게 몸을 일으켜 세웠고, 곧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그의 앞에 은주가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태정민은 그녀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고, 이내 그녀가 천천히 걸어와 그의 앞에 섰다.
“봐요.”
“네?”
“얼마나 다쳤는지 봐요.”
그녀는 태정민이 어깨에 입은 상처를 보았다.
“대체 다들 이런 환자를 두고 왜 그냥 가고 그래요! 추선우는 이제 멀쩡한데, 환자에게 신경 좀 써주면
안 돼요!”
은주는 소리쳤다. 추선우의 친구이며, 그 어떤 누구보다 선우를 먼저 생각했던 그녀가 지금은 태정민을
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만을 생각하고 있는 그녀가 되어 있었다.

-그래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숨은 놈들을 모두 찾은 것입니까?-


북정마을에서 서지호를 잡은 후, 설장호는 차현태에게 연락하여 현 상황을 알려주었고, 차현태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다고는 장담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지호와 3 차장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있긴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차현태는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초기 몇 몇은 서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수호의 리스트 중, 흔히 말하는 고위급 놈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
“네. 이장두가 이수호의 아들이지만, 그는 백태나 석강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비록 석강수가 뒤늦게
이수호의 리스트에 합류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석강수 정도의 인물이면 충분히 인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설장호와 차현태의 통화내용은 검찰총장과 함께 추선우, 그리고 추선우를 부축하고 있는 강서진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뒤늦게 잡힌 서지호와 국정원 3 차장. 이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서로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각자 이수호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의 질문에 답하면서, 아직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수호라는 하나의 중심을 두고, 그 사방으로 뻗어있는 이들 중, 윗선에 서 있는 몇 몇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서지호와 3 차장을 제외하고도 더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도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이수호가 죽어버렸으니,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은
기록도 없으며, 또 이창민 대사의 서류도 이제 면밀하게 다 파악하였지만,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습니다.”
두 서류의 차이는 단 한사람의 이름만 차이 났었다. 하지만 차현태가 숨은 인물, 두 사람을 찾아내었고,
관계도를 찾아내었다.
그로인하여 서지호와 3 차장을 잡았지만, 설장호는 아직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고 있었다.

00254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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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자세하게 더 파고들겠습니다. 이번에는 더 이상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완전히 막아야죠.”
설장호는 그에게 보고한 뒤, 전화를 끊었고, 곧 태정민을 보았다.
“뭐해? 어서 병원가라니까.”
“지금 가고 있잖아요! 참 너무들 하시네!”
설장호의 말에 은주가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고, 태정민은 은주의 입을 막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애애애앵~’
곧 북정마을 입구 쪽에서 엠블란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올라서고 있었다.
“다쳤다는 놈이 신고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있으면 추선우 꼴 난다. 어째 두 놈이 그리 닮았냐.”
설장호는 추선우와 태정민을 번갈아보며 말하였다.
“실장님…….”
태정민은 그를 보며 나지막이 불렀다. 그저 딱딱하게 말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설장호는
이곳으로 엠블란스를 오도록 하였다.
“어서타고 가. 그리고 완쾌되기 전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말한 뒤, 북정마을을 마저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곧 추선우가 태정민의 옆으로
다가가선 후, 그와 은주를 보았다.
“태팀장님 잘 부탁해.”
은주에게 말했다. 은주는 그를 보았고,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엠블란스에 탑승하였고, 곧 차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향하였다.
“총장님께서는 청와대로 가실 것입니까?”
“그래야죠. 가서 대통령님께 보고도 해야 하고, 또 앞으로 더 잡을 놈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도 청와대를 들렀다가 국정원으로 향해야겠군.”
설장호도 함께 청와대로 향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는 먼저 앞서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추선우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았고, 또 지현도 제대로 지켜낼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추선우가 회복되어 지현과 태정민을 구했고, 또 그를 잡았다.
국정원에서도 숨은 한 놈인 이두식을 잘 찾아냈고, 그를 체포하였다.
또 다른 놈인 서지호를 잡을 때, 비록 태정민이 어깨에 총상을 입긴 하였으나, 숨은 놈들을 쳐 낸 것에
비해서는 아주 미비한 희생이라 여겨졌다.
“이렇게…….10 년간의 전쟁을 마무리 하는 건가…….”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이수호의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10 년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마무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완벽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이수호와 같은 인간은 꼭 나타날 것이라 여겨졌다.

곧 검찰청 차량을 이용하여 모두가 청와대로 향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차현태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집무실로 들어서자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반겼다.
“대통령님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역대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이수호를 잡고자 이리 나셨던 분은
처음이십니다.”
그를 보며 검찰총장이 말했고, 곧 설장호가 그의 앞으로 섰다.
그리고 고개 숙여 먼저 사과의 뜻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먼저 옮겼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전 이미 마음속에서
지웠으니, 설 실장님께서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십시오.”
차현태는 설장호의 실수를 덮어주었다.
“자자. 비록 이수호의 조직이 완벽하게 뿌리 뽑혔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나, 지금 현재로써는 그 조직이
모두 소탕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차현태는 다시 모두를 향해보며 말했고, 그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멈췄다.
“그 누구보다 감사드립니다. 민간인으로써, 지금의 이 상황에 대처하여 지현을 구하고, 또 끝까지 함께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차현태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가 내민 손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기분 좋은 악수를
하였다.
“오늘 저녁은 청와대에서 조촐하게 식사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저녁을 드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차현태는 이들에게 만찬을 제공하려 하였다.
“국정원장님과 함께,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신 모든 분들을 다 초대하려 합니다.”
차현태는 이어서 말했고, 곧 그의 옆으로 보좌관이 다가섰다.

“명단입니다.”
그가 내민 것은 만찬초대 명단이었다.
명단에는 국정원장과 함께 조동민과 그의 팀원들, 그리고 경질된 경찰청장을 대신하여 업무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경찰차장과 형사들, 그리고 검찰청의 검사들. 또 한 민간인으로는 은주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미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초대하세요. 그리고 민간인들은 직접 차를 보내 모셔 오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듣고, 감사의 뜻으로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설 실장께서는 앞으로 지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지현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보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사람이 지현이었다.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롭지 않은 청소년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대통령님. 외교부 장관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연결하십시오.”
보좌관이 다시 다가와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네. 장관님.”
-축하드립니다. 제가 업무상 더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숨은 두 사람을 마저 찾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숨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기서 종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공개로 수사는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차현태는 마치 외교부장관을 겨냥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찬은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알겠습니다. 업무 보십시오.”
차현태는 외교부장관의 불참에 대해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저녁이 되면서 초청했던 사람들이 모두 청와대에 도착하였다.

“건강해 보이니 좋다.”


그리고 추선우는 미희를 만났다. 그녀에게 해 줄 말은 이것뿐이었다.
미희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강서진을 보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미희이모.”
곧 지현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지현이 이제 선우삼촌하고 떨어지지 않아서 좋겠네.”
“응. 이모. 이모도 우리와 같이 살자. 응, 이모.”
미희는 지현의 말을 들은 후,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현의 말처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현은 추선우와 함께
지낼 것이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옆에는 강서진이 함께 할 것을 알고 있기에, 지현의 뜻대로 함께 생활할
수는 없었다.

“어깨는 괜찮습니까?”
곧 응급처치를 받고 청와대로 돌아온 태정민을 보며 추선우가 안부를 물었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태정민은 자신의 어깨를 보며 답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은주가 함께 하고 있었다.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설장호는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따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외의 검사들과 국정원 대원들도 모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거, 약속시간에 늦어 죄송합니다.”


모두가 환한 표정으로 즐거운 만찬을 즐기고 있을 때, 만찬장의 문이 열리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그는 강서진의 아버지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큰 역할을 해 주셨으니 이 자리에 충분히 참석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차현태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차현태를 보며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아빠. 아빠가 여기 오면 어떡해?”
“어떡하긴. 초대했는데, 안 올수도 없고, 또 사위 될 놈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눈으로 확인도 해야 하니
겸사겸사 온 것이지.”
“아빠!”
그의 말에 강서진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고, 곧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다.

“자네. 이리 와보게.”
그는 추선우를 불렀다.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경직된 자세로 선 채,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새 튼튼해진 것을 보니, 뭐 2 세도 튼튼하게 잘 자라겠군.”
“아빠!”
그의 말에 강서진이 다시 소리쳤고, 만찬장은 더 큰 웃음소리로 가득하였다.
모두가 기분 좋게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의 힘든 나날을 지나간 추억처럼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각자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씨는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모두가 돌아가기 시작할 때, 차현태가 직접 그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북정마을로 갈 것입니다. 제가 힘든 시절을 보냈던 곳이며, 가장 편한 곳이니까요.”
그는 달동네로 가려 하였다.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보았다.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과 검찰청까지
그가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였다.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였다.

“난 내 딸을 옥탑 방에 살고 있는 놈에게 보낼 생각은 없네.”


곧 강서진의 아버지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물론, 실업자에게도 줄 수 없고 말이야.”
이어서 다시 말했고, 강서진은 자신의 아버지 옆으로 이동하여 그를 꼬집었다.
“왜 그러느냐? 이건 보통적인 아빠가 하는 말들이다. 당연한 것이야. 대체 어떤 아빠가 딸을 고생스러운
곳으로 시집보내려 하겠어? 내가 너무하다 말하지 마라.”
추선우는 그를 보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자리는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력하여 옥탑 방을 벗어날 것입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것이 문제라면 오늘 당장 해결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당당한 답이 있은 후, 곧 차현태가 그들의 옆으로다가서며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내일부로 추선우씨는 대통령 권한으로 청와대 경호실에 특별 채용할 것입니다. 그러니 실업자는 면하게
될 것이며, 우리 경호원들을 위해, 집도 제공해 줍니다. 그러니 집도 해결됩니다.”
차현태의 말을 듣고, 추선우보다 강서진이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차현태를 보았고, 곧 몇 번이나 고개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말씀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이 친구에게 직장을 선물해 준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강서진의 아버지는 추선우를 본 후, 다시 차현태를 보고 물었다.
“대통령의 특권은 아닙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충분히 권력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차현태는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였다.

00255 경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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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추선우를 일등 신랑감으로 생각합니다. 나에게 딸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차현태가 다시 말을 이어하였고,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건 어림없는 말입니다! 추선우는 내 사윗감이니, 그 누구도 눈독들이지 마십시오!”
“하하하!”
이어서 그녀의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고, 이내 주변 사람들이 큰 소리로 다시 웃었고, 강서진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 문제는 우리 가정사이니,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자네의 옛집에서 그 집에 대한 옛 추억을
모두 정리하게나.”
그녀의 아버지는 추선우를 서둘러 청와대에서 나가도록 하려는 의도인 듯,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를 끌며
나서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지현의 손을 잡은 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오늘은 삼촌과 가자.”
더 이상 지현을 따로 두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는 듯, 그는 지현을 안아 올리며 말했다.
차현태는 그의 행동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강서진도 환한 표정을 지으며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강서진의 아버지는 그들과 다른 표정이었다.
분명 총각과 처녀의 만남인데, 왠지 두 사람 사이에 딸이 하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그였다.

“우리도가죠.”
추선우와 지현, 그리고 강서진이 청와대를 나선 후, 은주도 태정민을 보며 말했고, 태정민은 은주와
은주의 어머니를 데리고 청와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조동민.”
“네. 실장님.”
“네가 미희 씨를 댁까지 모셔다드려.”
“네? 네. 알겠습니다.”
사건이 종결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설장호였다.
“내일부터는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종결하고, 마무리를 짓는 작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에게 내일 진행할 일에 대해 먼저 말하였고, 언론보도를 동원하여 이수호의 만행을 전
국민에게 알리려는 뜻을 미리 밝혔다.
“마지막까지 고생해주십시오.”
차현태는 그의 뜻을 받아들였고, 곧 설장호도 국정원장과 함께 청와대를 벗어났다.

-뉴스속보입니다. 한 달 전, 이창민 대사의 살인사건에 대한 용의자가 검거되었습니다. 검찰은 용의자로


60 대 사업가 이수호씨를 지목하였고, 이수호씨는 정부고위급 관계자들은 물론, 청와대와 국정원,
외교부와 검찰, 경찰에까지 손을 뻗어, 그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지상파 방송은 물론, 뉴스매체들은 일제히 이수호에 관한 내용을 보도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국정원 3 차장 이두식과 청와대 경호실장 서지호, 국정원 2 차장 지형민, 청와대 비서실장
민광만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 비서실장 민광만은 이수호의 조직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나머지는
체포되어 검찰과 국정원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또 한 차대통령은 이수호와 관련된 모두에게 엄중한 법의
처벌을 내릴 것을 각 기관에 명령 내렸습니다.-

“저런 쳐 죽일 놈들! 저 놈들이 지금까지 나라의 중요자리에 앉아있었으니,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기나
했겠어! 그리고 지 놈 살자고 이제 10 살 된 애를 죽이려 해! 이런 나쁜 새끼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TV 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설장호가 각 언론단체 및 기관에 전달한 이수호에 관한 내용은 삽시간에 한국을 덮었다.
이수호와 단 한번이라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소환대상에 포함되었다.
설장호는 주요 핵심인물들을 잡아내며, 이수호를 무너뜨렸다고 보지만, 아직 그의 잔해는 남아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언제나 무언가의 문제를 남겨두었기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아직도 개운하지 않았다.

“실장님. 지난 번 이수호의 집에 있던 여인들 말입니다. 그 여인들의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두통이 있는 듯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설장호에게 조동민이 다가서며 물었다.
“몇 명이었지?”
“총 120 명입니다.”
“모두 조사하였나?”
“네.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도 정확하게 몇 명이 그 집에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창민의 서류에는 없는 자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조차도 서지호와 국정원 3 차장 이두식처럼 위로 오를수록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지내왔다는
진술이었다.
“조사를 마친 후, 별다른 상황이 없다면 부모를 찾도록 지원해줘라. 비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부모며,
또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그녀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그녀들도 필시 이수호와 함께 한 사람들이기에, 소환대상이며 또
한 편으로는 죄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죄인이기 이전에 이수호에게 아름다운 시절을 모두 빼앗겨버린 피해자들이었다.
‘띠리리리’
“네. 설장호입니다.”
여인들에 대한 처리내용을 전달한 뒤, 곧바로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실장님. 지금 추선우가 청와대에 왔습니다.”
태정민의 전화였다.
“청와대? 무슨 일로 아침부터 청와대를…….”
“대통령님의 특별채용. 오늘부터 추선우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며, 대통령님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리고 지현과 함께 청와대 내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중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그 어떤 보답을 해도 부족하겠지만, 경호원이
꿈이었던 그에게 지금의 보답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오늘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야겠군. 시간 비워둬라. 추선우에게도 말하고, 강 검사에게도 알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전화를 끊으면서도 미소를 잊지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표정이 아주 밝군.”


곧 국정원장이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환한 표정으로 웃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추선우에 대한 일이 잘 해결되어 그런가 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청와대로 간다고 하였나?”
“네. 조금 전 태정민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벌써부터 청와대에서 대통령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봅니다.”
“하하하. 청와대에 입성한 사람 중, 최초의 인물이 되겠군.”
국정원장은 웃으며 말한 뒤, 곧 회의테이블에 앉았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가 할 말이 있을 것이라 여겨 물었다.
“아니야. 그냥 와봤어. 그런데 자네의 표정을 보니 기쁜 표정인데, 또 한 편으로는 뭔가 고민이 있는
표정이라서 말이야.”
“역시 국정원장님을 속이지는 못하겠네요. 맞습니다. 기쁜데. 또 한편으로는 개운하지가 않아요. 꼭
잡아야 할 놈이 있는데, 잡지 못한 그런 기분 말입니다.”
설장호는 자신을 정확하게 본 국정원장에게 지금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뭐. 자네나 나나 이 일을 너무 오래해서 그로인해 찾아오는 직업병 일수도 있겠지만, 나도 개운치가
않아. 잡아야 할 놈이 앞에 있는데 잡지 못한 그 기분 말이야. 지금 기분이 딱 그래.”
국정원장도 같은 기분임을 밝혔다.
“원장님 말씀처럼 직업병인가보죠.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강 검사와 술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설장호는 서류를 정리하며 그에게 물었다.
“원래 그런 자리에 나 같은 사람이 끼면 재미가 없네. 서로 현장에서 뛰며 어깨동무하고, 또 위험할 때
바로 곁에서 도와준 사람들끼리 한데 뭉쳐서 그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난 것이네. 자네들끼리 즐거운
시간 보내게나.”
국정원장은 자리에서 일어서 그의 사무실을 나서며 말했고, 설장호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실장님. 석강수가 조금 전, 검찰로 송치되었습니다.”
국정원장이 나간 후, 조동민이 다시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설장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누가…….그의 죄를 묻기로 하였는가?”
“장태훈 검사입니다.”
“그래? 연락한 번 해 봐야겠군.”
장태훈은 설장호가 이수호의 집에서 박태식에게 잡혔을 때, 그를 구해준 검사였다.
“잘 부탁하네.”
설장호는 곧바로 그에게 연락하여 석강수에 대한 수사에 선처를 부탁하였다.
장태훈 역시 석강수를 모르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그가 설장호를 도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다.
“또 한 국정원 2 차장 지형민과 3 차장 이두식은 현장에서 그들의 죄가 이미 인정되었기에, 실형을 면치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가 판사라면 그 새끼들의 재산까지 모조리 다 압수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야.”
설장호는 두 사람에 대한보고도 마저 들었다. 석강수 때와는 달리 두 차장에 대한 실형은 무조건 주어줘야
한다고 말하였다.
“너도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둬라. 술 한 잔 하자.”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고개를 숙이며 답한 뒤, 곧바로 업무를 보기 위하여 나섰다.

“삼촌. 떨지 말고, 잘 해.”


한 편. 청와대에서는 이미 채용이 확정된 추선우가 대통령을 앞에 두고 만나는 자리에 너무 떠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현이 그의 앞에서 두 주먹을 꽉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어떻게 애 보다 더 떨고 그래?”
곧 태정민이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팀장님도 처음 입사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저보다 더 떨었을 것 같습니다.”
“내 머릿속에 나의 신입시절은 없다. 난 처음부터 베테랑이었어. 경호에 천재였지.”
태정민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주먹을 꽉 쥐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고, 지현은 그 모습이 웃겼는지,
피식하며 웃고 있었다.
“웃지 마. 그러다 정민이 삼촌 얼굴 빨개지겠다.”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농담하였지만, 이미 태정민의 얼굴은 붉어지고 있었다.
“역시…….애들 눈은 정확하다. 거짓말을 못하겠네. 지금 집무실로 가봐,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네? 아…….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며 손을 들어 휘휘 저으며 말했고, 그는 또 다시 긴장감이 찾아온 듯, 잔득 경직된
자세로 서서 답했다.

“삼촌. 잠깐만…….”
곧 지현이 그를 보며 손짓으로 몸을 낮추도록 하였고, 추선우는 그녀와 눈높이를 같이하여 앉았다.
‘쪽.’
지현은 추선우의 볼에 키스하였고, 해맑은 미소를 덤으로 보여주었다.
“고마워. 한 결 나아진 것 같아.”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두 명이나 곁에 두다니, 부럽다. 어서 가봐.”
태정민은 지현의 사랑과 강서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에게 자랑하듯 행동한 뒤, 집무실로 향하였다.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네.”
차현태는 추선우를 보며, 악수를 청한 뒤,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 보다 저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앞으로 나를 위해서, 그리고 지현을 위해서 자네의 그 힘을 발휘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큰 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집무실을 들어섰을 때 가졌던 긴장감은 사라졌다.
자신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가졌다. 그것도 경호원 중, 최고라 자부하는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이었다.

00256 완 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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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원으로써의 임무에 대해서는 태정민 팀장에게 하나씩 배워나가게, 자네는 꼭 최고의 경호원이
될 것이네.”
“감사합니다.”
차현태는 추선우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더 전하였다.
추선우는 그와의 짧았지만, 정말 길게 느껴지는 면담을 마친 후, 집무실을 나왔고, 그 앞에는 지현과
태정민이 서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긴장감은 어땠어?”
태정민이 물었다.
“뭐. 사람을 앞에 두고 만나는 것인데 긴장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편안하게 대화 나누고
나왔습니다.”
“삼촌. 거짓말하면 입 꼬리 올라가는 것 모르지? 지금 입 꼬리가 수십 번은 더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추선우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하자, 지현이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조금 전에 알았어. 하지만 지현은 너를 처음 볼 때부터 알았다고 하더군. 네가 곧 돌아온다는 말,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아프지 않다는 말. 그 모든 말을 할 때마다 자네의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씰룩거렸다고 하더군.”
태정민이 말을 덧붙였고,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미안해…….삼촌이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것은…….”
“삼촌은 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한거야. 하지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마. 거짓말은 나쁜 거야.”
“어…….그래. 알았어.”
“하하하. 천하의 추선우가 제대로 임자 만났군.”
태정민이 큰 소리로 말하여 웃자, 지현의 매서운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의 웃음소리고 바로
그쳤다.
“저 뿐만 아닌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집무실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집무실 안에서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차현태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고생도 많이 했고, 또 그 고생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부터
청와대 경호실에 새롭게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
태정민이 그에게 정식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추선우는 차현태가 말할 때와는 달리, 태정민에게서
직접 축하 메시지를 들으니, 이제야 경호원이 된 것이 실감나고 있었다.
“삼촌. 축하해.”
지현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도 함께 맺히고 있었다.
추선우와 태정민은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낮춰 지현을 안아주었다. 비록 부모님의 따뜻한 품은 아닐지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포근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자자. 오늘은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지불받은 날이다. 모두 고생했고, 신나게 마셔.”
저녁 6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모두 광화문 인근의 한 호프집에 모여 앉았고, 설장호가 잔을 들여 말했다.
함께한 자리에는 설장호를 비롯하여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과 조동민, 그리고 지현이 함께하고 있었다.
“실장님은 그 동안 너무 늙으신 듯 합니다. 흰머리가 꽤 많이 보이네요.”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말하자, 설장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나도 이제 이 짓을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너무 늙었어.”
“괜히 우울한 표정 짓지 마십시오. 늙어서 그만 두신다는 말은 10 년 전에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랬나?”
설장호에 대해 조동민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설장호의 농담은 절대 진담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미희 씨가 보이지 않네, 오늘 연락 하지 않은 건가?”
모두 모였지만 미희가 보이지 않아 설장호가 물었다.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 때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아쉽군. 참 많은 고생을 함께 했는데 말이야.”
미희에게는 추선우가 연락하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녀가 간다는 곳, 추선우는 그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미희야.”
미희는 다른 회식자리에 갔다. 모두가 그녀를 반겼다.
“선우는? 선우는 함께 오지 않았어?”
미희는 고아원 출신의 가족들을 만났다. 절대 성공하기 전에는 만나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났다.
“선우는 좀 바빠. 다음에는 같이 올게.”
그녀는 선우대신 선우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이 가족들은 선우와 미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났지만, 이들은 그 일에 대해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정말 성공한 거야?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가족들은 미희를 보며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냥.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연락했어. 사실…….성공은 가족들이 함께 있을
때 더 잘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그들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잠시 가만히
있었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래그래. 우리가 어릴 때 괜한 약속을 했어. 사실 나도 너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정말 미희
아니었으면 난 평생 너희들을 보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몰라.”
미희의 말을 들은 가족들이 하나, 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생활이었는지를 말했다.
“앞으로는 그런 쓸데없는 약속하지말자, 자주보고 서로 도와주고, 정말 가족같이 살자.”
미희는 웃었다. 비록 추선우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다른 가족들을 만나며 정말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참. 내가 추선우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말이야.”
같은 시각. 설장호는 술을 마시다말고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무엇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가 잔을 들다말고 그를 보며 물었다.
“강 검사 울리지 말라. 내가 아는 강 검사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강 검사의 어머니를 울린 적이 없다.
물론 강서진도 울린 적이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을 보았고,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어떻게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라는 거다. 그러니 잘해. 무엇보다 건강하면 좋다. 술도 잘 먹어야하고,
장인어른이 밤늦게 부르면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설장호가 마치 장인어른처럼 말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설장호의 말에 답하였다. 그리고 이내 잔을 들어 모두를 향해 건배를 권했다.
“이모. 삼촌과 결혼해도 나 버리면 안돼요.”
“애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고 그래. 세상에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 생각만
해도 무섭다야.”
어린 지현에게는 어쩌면 굉장히 큰 고민일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서진이 지현을 안아주며 말했고,
지현은 그제야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모두가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또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것과 같이 서로를
안아주며 토닥거려주었다.
지난 50 여 일간의 일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일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하나의 일로 인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은 추선우는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
것이었다.
“여기계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와 지현이의 일이 이렇게 커졌고, 또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모두가 나서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무슨 소리야. 이건 우리의 일이야. 오히려 우리가 너에게 더 감사해야 할 상황이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추선우의 말에 오히려 설장호가 그를 보며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그래. 맞아요. 사실 선우 씨가 아니었다면 지현이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지현이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요.”
강서진이 설장호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추선우는 그냥 민간인이며, 이 일과 전혀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
‘툭.’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술을 먹고 있을 때, 서빙을 보던 여인이 추선우의 옆을 지나치며 그와 부딪혔고,
그와 그녀가 들고 있던 맥주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녀의 허리춤에 있던 휴대폰도 함께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잔이 떨어진 추선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괜찮습니다.”
추선우는 잔이 떨어지며 깨진 탓에 그녀의 휴대전화가 깨진 유리잔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이
주워주려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춰 여인도 함께 몸을 낮춰 앉으며 휴대전화를 주우려 할 때, 그녀의 윗옷의 목 부분이
조금 많이 파여 있는 탓에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추선우는 의도치 않게 그녀의 가슴골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강서진이 곧바로 추선우의 눈을 가리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아저씨! 여기 깨진 잔 좀 치워주세요.”
그녀는 남자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곧바로 종업원이 다가와, 깨진 잔을 치운 후, 그녀의
휴대전화를 주워주었다.
“다른 여자를 보는 눈도 조심해야 해.”
깨진 잔이 치워지고, 여인이 떠난 후, 설장호가 맥주잔에 담긴 술을 마시며 말했고, 태정민이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추선우의 표정은 그들의 농담을 들어주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설마 여인의 가슴골을 처음 본 것인가?”
“실장님! 애도 있는데…….”
설장호의 농담에 강서진이 지현의 귀를 막으며 소리쳤고, 그녀의 시선이 다시 추선우를 향해 돌아섰지만,
그는 아직도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선우 씨.”
“네? 아…….네. 왜요?”
강서진이 다시 그를 부르자, 그때서야 눈에 초점을 맞추는 듯 그녀를 보았다.
“왜 그래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멍해지네요.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술이 갑자기 오른 것처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일어나면서 태정민에게 눈치를 주자,
그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호프집 외부로 나온 추선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태정민이 물었다.
“이수호의 집에 있던 여인들 말입니다.”
“응? 그 여인들? 그 여인들이 왜?”
이 상황에서 갑자기 이수호의 여인들에 대해 묻자, 태정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다시 되물었다.
“신체의 중요부위에 이수호와 관련된 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말도 마라. 가슴에 적어 놓은 여자도 있었고, 엉덩이도 있었고, 심지어 그 중요부위에도
새겨두었다고 하더라.”
태정민은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하며 추선우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왜?”
곧 그에게 질문에 대한 의도를 물었다.
“조금 전에 저와 부딪힌 종업원 말입니다.”
“그래. 그 종업원이 왜?”
“가슴골에…….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추선우는 자신이 본 것을 말했다. 그러자 태정민이 잠시 그를 보더니, 이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녀가 이수호의 여자라도 된다고 생각해? 사실…….여자들 중에 자신이 너무나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중요부위에 새겨 넣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그 중에 한명이겠지. 검찰에서 이수호의 여자들은
다 잡아들였어. 그러니 잊어.”
태정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들춰내고, 또 처음부터 하려니 지난 며칠간의
일이 떠올라 깊게 생각하고 말하려하지 않았다.
추선우도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런 여자들 중, 한명이라 생각하였고, 이내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옷에 술이 다 묻었잖아. 어서 들어가서 씻고 옷갈아입고 다시 나와.”
“네. 사장님.”
실수로 쏟은 맥주로 인하여 종업원은 맥주로 인하여 옷이 젖었고, 끈적거리기까지 하였다.
곧 호프집 사장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녀는 호프집 내에 있는 직원들 휴게실로 향한 뒤, 그 안에 있는 샤워실로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맥주를 쏟은 옷을 벗은 후, 샤워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이 지워지면서 점점
본연의 얼굴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사장이 지워지면서 그녀의 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검찰과 국정원이 이수호의 집을 급습했을 때, 외부에 나와 있었던 여인으로, 차량을 타고 그 앞을
지나쳐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비누거품을 한가득 만든 뒤, 몸에 묻은 끈적거리는 맥주를 닦아내기 시작하여으며, 그녀의 가슴
부분에는 추선우가 본 것처럼 정확하게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 현. 태.-

이 세 글자가 너무나 선명하게 그녀의 가슴 라인을 따라 문신으로 남아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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