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경호원 텍본 (완)
경호원 텍본 (완)
====
화창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4 층으로 지어진 낡은 빌라의 옥상 한 쪽 구석에 지어진 옥탑방.
그 앞에 평상을 놓고, 들어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은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그는 부모님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있던 고아원은 인정받던 고아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고아원은 급박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았다.
그 때, 그 고아원에 있던 모든 아이들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다른
고아원으로 옮겨졌지만, 15 세가 넘은 아이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봐야 했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하여 16 세의 나이에 고아원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갖은
고생하며, 버티고 버텼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독하게 버티고 버텼다.
지금 그의 나이는 27 세. 보증금 백 만원에 월세 20 만원의 옥탑방 세입자…….그런 고생하며 버티고
버텼지만, 지금 현재 그의 상황은 이랬다.
고아원을 나온 후, 착실하게 살던 그는 세상의 짙은 어둠을 너무나 몰랐다. 10 년을 넘게 벌어 모은 모든
재산을 지인에게 다 사기당하고, 다시 밑바닥으로 내려앉은 그였다.
‘꼬르륵…….’
움직이지 않아도 위장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려준다. 야간에 물류아르바이트와 평일엔
이삿짐이나 막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갈 자금을 마련하며 살던 그였다.
튼튼한 몸과 제대로 박힌 정신이지만, 그에게 일을 맡기는 곳은, 이 곳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대학생과 고등학생까지 가세하여, 경쟁이 치열한 지금이었다.
그는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라면을 사러 움직였다. 장마가 시작된 후, 오늘처럼 맑은 날씨가 없었었다.
이런 화창한 날에, 일거리가 들어와야 하지만, 그 일마저도 이미 엄청난 경쟁에 의해,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오늘도 라면이야?”
구멍가게 아주머니께서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본인이 본인 돈으로 라면을 먹는데, 굳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는가. 그는 애써 응답을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어른의 물음이라,
어설픈 미소를 보내고, 라면 두 봉지를 달랑 들고 다시 옥탑방으로 향하였다.
“멀쩡하게 생긴 놈이 빈둥거리니, 대한민국에 발전이 없지.”
그의 귀가 저 멀리 떨어졌을 때, 그런 말을 하면 좋았을 것이었다. 그가 고작 구멍가게에서 5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마치 확성기를 입에 데고 떠들고 있는 것 마냥 큰 소리로 아주머니가 말하였고,
주위에 있던 몇 어른들이 한심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다.
“우울하다 정말…….”
우울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 사람들은 그의 과거 10 년을 알지 못한다. 지난 과거에 어찌
살았던 지금 현재 보이는 모습이 주변인들이 보는 모습일 뿐이다. 모든 상황은 본인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본인이 훌륭하면, 주위의 부러운 눈빛을 받지만, 본인이 한심하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응?”
라면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던 길에, 빌라 옆 골목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마치 아이들 숨바꼭질을 하는 듯, 이리저리 살피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쓰레기 옆에 있으면 냄새난다.”
그는 그 아이의 곁으로 움직인 후,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너무나 큰 동작으로 뒤로 넘어지며, 그를 보고
놀란 눈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 친구들과 장난을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며, 경계를 하는 듯하였고, 손과 발은 너무나 심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보았다. 수상하게 보이는 인물은 없었고, 오로지 그를 보며, 한심한 듯
보고 있었던 동네 어른들만 보이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그는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계속되는 그 아이의 행동. 필시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시선은 그가 내민 손이 아닌, 다른 한 손이 들고 있는 라면에 집중되고
있었다.
“배고파?”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고 생라면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다시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들린 라면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사내아이처럼 바가지머리에, 반바지, 그리고 반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굉장히 더럽혀져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나는 아이였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옥탑방으로 향하였다. 부모가 있으면 이 아이를 찾고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그는 일단 그 아이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 경찰에 연락을 주려 하였다.
옥탑방에 도착한 후,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아…….안 돼요.”
“응?”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가 전화기를 들자,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안 된다는 말. 부모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일 텐데, 그가 전화하는 것을 한사코 말리려 하였다.
“부모님께서 너를 찾을 거야. 그러니 어서 집으로…….”
“죽었어요.”
“응?”
“죽었다고요.”
“!!!”
아이가 하는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진지하며, 정확히 음성에 공포감이 실린 듯하였다. 그는
다시 그 아이를 보았다. 충혈 된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고, 무더운 여름이지만, 계속하여 몸도 떨고
있었다.
“안되겠다. 일단 병원부터가자.”
먹고 살 돈은 없지만, 아이의 상태가 더 위급해 보여 한 말이었다.
“배고파요. 밥부터 주세요. 그럼 제가 알아서 갈게요.”
말을 너무나 잘 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행동으로 보아, 일단 병원이 우선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충혈 된 눈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럼. 내가 라면을 끊여 줄 테니, 일단 씻어. 너…….너무 냄새난다. 그리고 내가 어린이옷이 없으니,
일단 내 티를 꺼내놓을께 그거라도 입고 있어.”
그리고 그는 아이를 욕실로 들이밀었다. 아이는 씻지 않으려 계속 주춤하였지만, 자신도 자신에게 나는
냄새가 지독했는지, 잠시의 반항이 있은 후, 조용히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라면을 맛있게 끊이기
시작하였다.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밥이라도 먹여서 가까운 파출소에 데려다 주려 한 그였다.
“너…….너…….여자애야?”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주미 한국대사가 한국 땅에서 피살된 내용이 전파를 타고 있었고,
아이는 라면을 먹다말고, TV 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동자를 심하게 떨고 있었다.
곧 뉴스화면에는 CCTV 에 녹화된 화면이 나오고 있었고, 차량이 정차한 후, 운전사가 차에서 내린 뒤,
곧 또 다른 한 사내가 차안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차량은 약 2 분간 굉장히 흔들거렸고, 복면을 한 채, 차량 안으로 들어섰던 사내가 유유히 걸어 나온 뒤,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사내가 그 자리를 벗어난 후, 뉴스가 전하는 방송의 CCTV 화면이 고속으로 재생되었고, 약 5 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차량 뒷문을 열고, 한 아이가 기어서 나온 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곳을 벗어나는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서…….설마…….”
그는 TV 에서 시선을 뗀 후,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영상
속 주인공이 이 아이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조금 전 아이에게 물어보았던, 부모님에 관한 것에 아이의 답도 생각을 하였다. 죽었다는 말…….즉. 이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10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저런 상황을 겪고 난 뒤에도 아이는 의외로
침착해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피살사건이 아닌, 국제적 사건이 가미된 것이라 발표를 하였습니다.
정부요원은 물론, 대한민국의 검,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이 번 사건의 용의자인 CCTV 속
인물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뉴스가 마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라면을 그 아이의 앞으로
밀었다.
“먹어.”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아이는 잠시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곧 고개를 들어, 눈에 맺힌 눈물을
애써 참으며, 라면을 먹기 시작하였다.
“우린, 검, 경찰과 따로, 이창민 대사의 딸인 이지현을 찾아 경호합니다. 서둘러 인원을 편성하고,
움직이세요.”
각 부처의 수장들이 회의실을 나선 후, 곧바로 경호 실장을 회의실로 불러들인 차현태는 그에게 임무를
하달하였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은 대통령님과 그 가족을 경호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그러니…….”
“청와대에 앉아, 보고만 받는 나를 무엇으로부터 보호를 하려는 것입니까? 나의 보호보다, 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인물을 조금 전, 직접 눈으로 다 보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국적으로 해외에서 거주하는
국민들을, 나를 대신하여 보살펴 준 대사입니다. 그런 사람이 타국도 아닌 고국의 땅에서 피살되었는데,
그냥 이렇게 앉아서 보고만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서두르세요. 이제 고작 10 살인 어린 아이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죽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꼭 살아있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하루가 지난 지금. 어디에서 얼마나 큰 공포감을 안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그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경호실장의 말에 차현태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경호실장의 말이 옳은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말
그대로 청와대속 인물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그런 조직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타당치 않은 처사였다.
하지만 차현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을 먼저 선택하는 인물이었다.
경호실장은 차현태의 명령으로 경호실로 돌아온 뒤, 청와대 경호원 몇 명을 추려내기 시작하였다.
-이창민 대사 피살 사건으로 인하여,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에서는 해당 CCTV 화면을 정밀하게
분석한 후, 그의 운전기사인 장 모 씨가 이 번 사건에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고 보며, 현재 자취를 감춘
장 모 씨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또 한 외교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국제적인 사건으로 분류한 뒤, 이창민 대사가 근무하였던 미국에 협조를 요청하였습니다.-
“부모…….님. 이야기지?”
그는 어렵게 물었다. 그러자 이지현의 서툰 젓가락질이 멈추었다.
“…….”
“말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다 먹었으면 나가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유를 알아야…….”
“제가…….알아서 할게요. 라면 잘 먹었습니다.”
진정 열 살 된 아이의 말과 행동이라 볼 수 없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피살되는 모습을 모두
목격하였겠지만, 침착하였다. 비록 몸은 계속 떨고 있었지만, 울며 소리치지도 않았다.
“뭘 혼자 알아서 해? 그리고 어딜 나가려고? 옷도 없어. 이대로 네가 알아서 한다면 뭐 어찌 할 건데?
만에 하나 그 놈들이 이 뉴스를 보았다면 네가 살아있는 것을 알고…….”
그는 이지현의 말을 들은 후,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곧 말을 다 잇지 못하였다. 이제 열 살 된
아이에게 자신의 말은 너무나 심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선우 총각 있어?”
그 순간 문 앞에서 50 대 중후반의 여인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그의 이름은 선우였다. 그리고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후,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이지현을 본 뒤, 문
앞으로 이동하여 좁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녀는 집주인이었다. 6 개월 동안 우연찮게 잘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마주쳤다.
“어찌된 거야. 벌써 6 개월 치가 밀렸어. 보증금을 넘어갔고…….어?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야?”
집주인 아주머니는 선우를 향해 월세 이야기를 하다말고,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이지현을 보며
물었다.
“네? 아…….제 조카입니다.”
“조카? 선우총각, 고아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조카가…….”
“네. 고아죠…….그리고 저 아이는 제가 있던 고아원에서 나온 아이인데,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네요.
그런데 먹일 것이 라면밖에 없어서…….”
집주인은 선우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이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작은 교자상위에 놓인 라면을 끊인 냄비를
보았다.
“저런 어린 아이에게 라면이 뭐야 라면이! 그리고 옷은 또 저게 뭐고? 내려와. 집에 찾아보면 우리 은주
입던 옷이 있을 거야.”
선우는 그녀를 보았다. 밀린 월세로 인하여 당장이라도 집을 빼라고 말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지현을 보며 안스러웠는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오라 말한 뒤, 먼저 내려갔다.
“와…….예쁘네.”
곧 지현이 옷을 입고 나왔다. 열 살 나이의 여자아이가 치마를 입었을 경우가 가장 예쁘지만, 아쉽게도
치마가 없어 바지를 입혔다. 하지만 진정 지현에게 딱 맞는 옷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잘 입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지현은 그녀를 향해 인사하였다.
“어쩜. 예의도 바르네. 아니야. 이 옷은 이 아줌마가 선물로 줄게, 잘 입고. 밥도 잘 챙겨먹고 다녀.”
집주인은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지현은 선우의 옆으로 다가선 뒤, 선우의 손을
잡았다.
“삼촌. 나 잘 어울려?”
지현은 선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생겨 있었지만, 눈에는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보였다.
“그래…….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 지현이. 꼭 천사 같다.”
선우는 눈물을 애써 참고 미소를 짓고 있는 지현을 보며 가슴이 아픈 듯하였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지만, 지현의 눈을 보며, 진정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듯하였다.
“그리고 선우총각. 이거…….”
“네?”
“라면만 먹이지마. 많이 먹고 뛰어 놀 나이인데, 라면가지고 되겠어? 나중에 선우총각의 꿈인 경호원
되어 돈 벌면 내가 이자 제대로 받아낼테니, 그냥 준다고 생각지 말고.”
선우는 주인아주머니가 준 봉투를 보았다. 세상이 참 차갑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그 차가움이 모두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뛰어넘고, 백수로 있는 선우에게서 돈이 마땅히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는 그에게 선 듯 돈을 주었다.
선우는 지현을 데리고 주인집을 나왔다. 그리고 주인집 대문이 닫히자, 지현은 지금까지 꼭 잡고 있던
선우의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너. 이제 열 살이다. 어린아이답게 말해. 그리고 네가 죄송할 것 없어. 엄연히 따지면 나도 네 득에
이익을 본 것이야. 가자. 너도 뉴스를 봐서 알거야. 지금 우리나라 검, 경찰이 널 찾는다. 너를
보호하고자 찾고 있어. 나보다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를 위해…….”
“아니에요. 난…….가지 않을거에요.”
“왜?”
“그 사람들이 나를 보호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야? 너도 뉴스 봤잖아. 너희 부모님을 그렇게 만든 나쁜 사람을 잡고, 너를 꼭…….”
“아빠…….엄마. 그렇게 만든 사람도 우리가족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
선우는 놀란 눈으로 지현을 보았다. 이 말은 범인을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지현이 범인을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일 수도 있었다.
“너…….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
하지만 확실한 답은 없었다. 지현은 선우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고, 매서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열
살의 여자아이가 짓는 표정이라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선우의 표정도 매섭게 변해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인하여 이 어린 아이까지 죽이려 했는지, 뉴스 속
영상에서 나왔던 그 살인범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저 라면을 먹이고, 지현을 파출소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지만, 지현의 말을 들은 후, 선우의 그
생각은 점 차 변해가고 있었다.
경찰과 검찰은 서둘렀다. 국정원에서도 혹시나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뉴스로 인하여 지현의 생존이
확인되었기에, 이창민 부부에 이어 이지현까지 살해할 위험도가 있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인원을
선출하여 북정마을로 보냈다.
선우와 지현은 연립주택을 나섰다. 빌라라고 하지만, 그냥 다 허물어지기 직전의 연립주택에 가까운
건물이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가파른 내리막길이기에 선우는 지현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지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선우의 손을 꼭 잡았다.
“응?”
좁은 골목을 돌아, 조금 더 넓은 골목으로 돌아서자, 이곳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가 보였고, 선우의
시선에 범상치 않은 인물 몇 사람이 구멍가게 주인에게 뭔가 사진을 보이며 묻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듯하다. 뒤로 돌아가자.”
선우는 그들이 지현을 보호하기 위하여 찾아온 인물인지, 아니면 지현을 죽이기 위하여 찾아온 인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주치지 않으려 다시 방향을 돌려 다른 골목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서둘러가자.”
선우는 이들에 비해 달동네 지리를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동선을 피해 달동네를 거의 다 내려왔다.
그리고 곧 큰 길에 접어들었고, 그 순간 경찰병력이 탄 차량들이 그 입구에 도착하여, 서둘러 위로
오르고 있었다.
선우의 직감에 그들의 행동은 형사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현을 그들의 손에 인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녀가 한 말이 떠올라 그러지 못한 채, 경찰병력과 간만의 차이로 달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치 좋군.”
가장 먼저 꼭대기까지 오른 국정원소속 인원들은 모두 한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라 말하고 있는 이 동네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실장님. 저기…….”
한가롭게 경치구경을 하고 있던 중, 한 대원이 다가서며 좁은 골목길 아래를 가리켰다. 그리고 실장의
시선이 돌아선 곳에 박태식이 보이고 있었다.
“박태식…….저 놈이 경찰병력을 이끄는 팀장인가보네.”
실장은 그의 모습을 보며 안면이 있는 듯 한 말을 하였다.
“설 실장님께서 직접 움직이셨습니까?”
곧 박태식도 꼭대기에 도착하여 그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그래.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나나 자네와 같은 베테랑이 배정되었겠지. 그리고 어쩐일로 경찰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이나 싶더니, 자네가 팀장으로 나선 것이군. 그래. 뭔가 찾은 것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지현양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CCTV 가 이곳 북정마을 입구라, 일단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선배까지 계시니, 우리 정보도 이제 어느 정도 맞아가고 있는 듯 하네요.”
박태식은 형사들에게 손짓하여, 이곳으로 오르며 많은 집들을 수색하였고 곧, 조금 전까지 추선우와
이지현이 있었던 연립주택을 수색토록 명령내린 뒤, 실장의 옆으로 다시 서며, 친분감을 내세우는 듯 한
억양으로 말했다.
“실장님.”
“팀장님.”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상태였다. 곧 두 사람의 부하직원이 동시에 두 사람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박태식이 물었다.
“지현양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하대원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놀란 듯, 서둘러 움직였다.
“네. 맞아요. 이 아이였어요.”
이지현의 행방을 아는 인물은 추선우의 집주인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지현과 함께 있었으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우리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선우총각의 조카라고 했어요.”
“선우총각의 조카?”
“네. 고아로 자란 총각인데, 참 착하게 살아온 총각이에요. 여러모로 너무 순둥이라 사기당해 모든
재산을 다 날렸지만, 세상천지 그런 놈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댁들은 누구신지…….?”
두 사람은 그 즉시 부하대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부하대원들은 선우의 집인 옥탑 방으로 움직였다.
“설장호 실장님.”
부하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다시 꼭대기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려 할 때, 골목 아래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태정민?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설장호를 부른 인물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선출 된 다섯 명의 경호원 중 한 명인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슈트가 진정 잘 어울리는 29 살의 청년이었다.
“뭐. 설 실장님께서 직접 이렇게 오신 내용과 같지 않겠습니까?”
“하…….역시 대통령께서 바로 움직이셨군.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에서까지 사람을 보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실. 그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저희들도 이런 임무는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어쩌겠습니까? 명령이니
따라야죠.”
“그래. 지금까지 이 나라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대통령이라 평가받는 분이시니, 그 선택도 많은 것을
고려하여 내린 것일 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지현양이 없다. 우리가 한 발 늦었어. 그리고 조금
전, 박태식이 이곳을 다녀갔으니, 그놈을 잘 아는 너라면, 그놈의 뒤만 잘 따라다녀도 지현이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을테지. 서둘러라.”
설장호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박태식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어투였다.
“자존심 상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지금 바로 태식이에게 연락해서 정보공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정민은 경호원을 이끌고 애써 올라온 달동네를 다시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한 편, 달동네를 찾은 국정원, 경찰, 청와대 경호원들과 간만의 차이로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벗어난
선우와 지현은, 달동네를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인근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배불러?”
한 편. 근사한 밥한끼는 아니지만, 밤새 꼬박 굶고, 라면 하나만을 먹은 지현은 분식집에서 배불리
분식을 먹었고, 다 먹은 듯, 수저를 내려놓은 그녀를 보며 선우가 물었다.
“삼촌…….”
“삼촌? 야야…….그건 내가…….”
지현은 선우를 삼촌이라 불렀다. 그리고 선우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그저 농담이었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지현의 눈빛을 보며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였다.
“그래. 말해.”
선우는 지현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맑았고, 초롱초롱했지만, 너무나 깊은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듯 한 눈빛이었다.
“나…….보호해줄 수 있어요? 나…….그 사람들한테 잡혀가지 않도록…….”
“걱정 말라고 했지? 그리고 참 다행으로 내가 지금 백수야. 할 일이 없어. 그래서 너와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네가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까지, 내가 함께 가줄게.”
선우는 지현의 목소리가 무척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참으로 놀라웠다.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열 살의 아이가 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잊지…….않을거에요. 그리고 도망치지 않을거에요. 삼촌이 옆에 있어준다면, 아빠. 엄마…….그렇게
만든 사람들. 누군지 꼭 찾아서 벌주고 싶어요.”
지현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어린아이의 증오가 이토록 무섭게 느껴지는지 처음 알았다.
“이 삼촌이. 꼭! 꼭 함께 있어줄게.”
지현은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한 채, 선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선우도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지현의 지금 미소와 표정을 본다면, 살인마도 살인을 멈추고 그녀를 도울 정도였을 것이다.
“나가자.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아내려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야 하는 거야.”
“네. 삼촌.”
두 사람은 분식집을 나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은 처음 이곳을 들어올 때보다 더 밝은 표정들이었다.
-지난 밤 있었던 이창민 대사의 피살사건으로 인하여, 외교부와 국정원이 나섰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사안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하여 이창민 대사가 그동안 업무를 보았던 각 국가에 전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한 것입니다. 또 한 검찰과 경찰은 전국에 이창민 대사의 딸인 이지현양의 사진을
배포하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살아남은 그녀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추선우…….”
곧 박태식이 설장호에게서 받은 선우에 관한 정보를 모두 읽었다. 그리고 그의 사진도 함께 보았다.
“추선우라…….”
같은 시각. 태정민에게도 그 정보는 들어갔다.
“모두와 공유하고, 현재 이지현을 데리고 있는 인물은 27 세의 추선우라는 놈이다. 그의 이력이 별로
없어, 마땅히 찾아 나설 곳도 없다. 하지만 그냥 무조건 찾아. 전국의 CCTV 는 물론, 차량 블랙박스를
이용해서라도 찾아. 그게 답이다.”
박태식은 그 즉시 명령 내렸고, 같은 시각. 설장호는 그제야 달동네에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태정민도 나머지 네 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추선우와 이지현을 찾기 위하여 움직였다.
“저곳이야?”
“네.”
분식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지난 밤. 이창민이 피살당한 장소에 도착하였다. 이미 경찰들에 의해 현장은
수습되었지만, 인근에 수많은 형사들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갈 수는 없겠다.”
선우의 눈에는 주위에 있는 모두가 형사들로 보였다. 단 한명도 그냥 구경하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뭔가 단서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형사들이 너무 많아.”
지현을 뒤에 세워두고 그 현장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지현을 보았을 때, 지현은 자신의
눈을 꼭 감고 귀를 막고 있는 행동을 하였다.
“왜…….그래?”
대답이 없었다. 지현은 조금씩 몸마저 떨기 시작하였다.
“젠장. 충격이 오나보다.”
선우는 지현을 들어 안은 뒤,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당시의 기억이
현장을 보면서 다시 기억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채,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고, 그의 모습은 인근에 있던 형사들의 눈에도 보였다.
“저 놈 뭐야? 확인해봤어?”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형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오며 선우와 지현을 쫒기 시작하였고, 선우는 지현을 안고 달리던
중, 시선을 돌려 그들이 따라 붙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젠장…….”
선우는 떠 빨리 달렸다. 하지만 열 살 된 아이를 안고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맨몸으로 달려오는
형사들의 뜀박질이 훨씬 빨랐다.
-뉴스?-
‘킥!’
설장호가 해당지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몇 명의 형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그의
앞으로 섰다.
“형사?”
설장호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이미 국정원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설장호도 자신의 신분을
곧바로 밝히며 그들에게서 서둘러 정보를 받으려 하였다.
“지현아. 괜찮아?”
선우는 골목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절묘하게 그들과 마주치지 않았고, 곧 고급 빌라의 안쪽 주차장
구석으로 몸을 숨긴 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지현에게 물었다.
지현은 그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생각을 깊게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였다. 어린나이에 충격적인 일을 겪었는데, 그것을 단 하루 만에 또 다시 기억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 미안하였다.
“형사들이 쫒고 있어. 이대로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선우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골목을 보며 말했다. 골목에서는 형사들이 또 다시 지나쳐갔고, 선우는 그
즉시 몸을 숨겼다.
“일단 내가 먼저 나갈게, 넌 잠시만 여기 있어.”
선우는 지현을 안고서는 이곳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현의 손은 선우의 양쪽 어깨를
꽉 쥐고 있었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무언의 답이었다.
“같이 움직이면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준다는 약속을…….”
선우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지현이 자신의 어깨를 꽉 쥐는 힘이 더 강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널 두고 가지 않을게.”
선우는 마음을 달리 하였다. 지현을 이곳에 두고, 자신홀로 저들을 유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현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그의 어깨를 꽉 잡은 후, 이내 더 파고들며 안겼다.
선우는 지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피살당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신에게 라면 하나 준 사람을 이토록 믿고 따르는 것인지, 그 당시의 무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그 순간 설장호와 박태식의 전화벨이 동시에 울렸다.
“네? 아…….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전화를 받았고, 잠시의 통화를 서로 듣기만 한 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너와 내가 받은 전화 내용이 같은 모양이다. 위에서 이렇게 진행한다고 하니, 그렇게 따를
수밖에, 그리고 천재적인 형사나리가 내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데, 억울해도 참아.”
“별말씀을…….”
두 사람이 받은 전화내용은 차현태가 내린 명령이었다. 모두 각기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한곳으로 모여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각 부처 수장들의 의견에 따라, 그 해당 팀을 총 지휘할 수장은 설장호가 된 것이며,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순수하게 명령에 따랐다.
“청와대 경호실은 연락받은 것 없어?”
곧 태정민이 경호원들과 함께 큰 길로 나오자, 설장호가 물었다.
“뭐…….아시겠지만 우리는 직할이지 않습니까? 그 누구의 명령이 아닌, 오로지 대통령님의 명령만
이행하니, 두 분께서 어떤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저희들과는 별개인 듯합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물음에 답하였다.
“하긴…….누가 청와대 경호실에 명령을 내리겠어. 일단 태식이와 나는 함께 움직인다. 그러니 정민이
너는 청와대 경호실 인원을 데리고 따로 움직여. 하지만 정보 공유는 꼭해야한다. 어느 누가 일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 우리가 서열 싸움 하고 있는 그 시간만큼, 어린 지현이가 고통 받는 시간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 명심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요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어찌합니까?”
박태식이 물었다.
“뭘 어찌해? 이미 이곳에서 벗어났다면 다른 곳으로 갔겠지. 항상 인근 CCTV 를 감시하고 있으니, 또
다른 이동경로가 보인다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설장호는 태연스럽게 말하였고, 곧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걱정되며 불안하신 모양이군요.”
그의 행동을 보며, 박태식이 물었다.
“왜?”
“그냥. 실장님의 행동 때문에요. 아직도 그 버릇은 여전한가 봅니다. 걱정이 많아지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담배를 꺼내 무는 습관 말입니다.”
“뭔 소리야. 담배는 그냥 피는 거지…….뭔 놈의 걱정…….”
“담배 끊으셨잖아요.”
박태식의 말을 듣고, 애써 부인하려던 그의 옆에서 태정민이 못을 박는 말을 하자,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지폈다.
“그래…….불안해. 그리고 걱정된다. 고작 열 살 된 아이다. 그 아이가 무슨 잘 못이 있겠어. 다 우리
어른들이 만든 일에 그냥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다. 그리고 지금…….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놈과
함께 있는데, 그 놈이 범인과 관계가 있는 놈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지현이의 곁에 붙어먹은 놈인지…….
그것도 알 수 없어 불안하다. 그리고 더욱 더 불안한 것은…….우린 아직…….이창민 대사를 죽인 놈이
누군지 모르고, 그 놈이 어디서 지현이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아주 젠장 이지.”
설장호는 자신의 버릇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두 사람에 의해 할 수 없이 자신의 지금 심정을 모두
말하였다.
‘띠리리리’
그리고 곧바로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 내 뱉으며 전화를 받았다.
“추선우의 핸드폰 번호? 그래 불러봐.”
설장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던 박태식과 태정민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할 준비를 하였다.
‘우웅~’
추선우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가 진동으로 웅웅거리자 화면을 보았다.
“모르는 번호인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이 그동안 제출하였던 이력서에 관하여 해당 회사에서 온
연락일 것이라 믿으며 기쁜 마음으로 받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걸려오는 전화가
진정 면접에 관한 전화일 지언정, 무턱대고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현도 그와 함께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설장호의 전화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곧바로 박태식이 다시 나섰다.
‘우~웅.’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다. 아주 돌아가면서 제대로 실험해 볼 심상인데…….이래봬도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추선우는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며 말한 뒤, 곧 지현의 손을 잡고 설장호 일행이 있는 쪽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 한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에 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시간에 관계없이 이것저것 많이 먹어야 할 나이이기에 어느덧 열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 것에 미안하여 본 것이었다.
“배고프지?”
“네…….”
선우는 물었다. 그러자 지현은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일단, 지금 사정으로 봐서 우리가 편히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닌 듯 해.”
선우는 형사들에게 쫒길 때, 주위에 있던 한 시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민이 지현을 보며 뉴스에 나온
여자아이라고 말했으니, 이미 지현에 대한 정보는 여러 곳에 다 전달이 되었을 것이라 여겼다.
“잠시 기다려. 내가 가서 먹을 것 좀 사올게.”
선우는 지현을 노출 시킬 수 없었다. 지금처럼 그저 평범하게 지나치며, 이동하는 경우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식당 같은 곳은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에, 혹시나 지현의 사진을 본
사람이 있다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선우가 지현을 홀로 남겨두고 먹을 것을 사러 가려 하였다. 하지만 지현은 그의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 있다, 해가지면 그 때 같이 가요. 같이 가서 먹을 것만 사가지고 나와요.”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그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있겠다는 말이었다.
“일단가자. 여기서 시간 보내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가자.”
선우는 지현의 말을 들은 후, 그녀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그리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도착한 곳은
다시 달동네였다.
“다행이 없다.”
다시 연립주택에 도착했지만, 걱정하였던 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택 입구에서서 다시 한 번
위를 올려다보았고, 아래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뭐해?”
“깜짝이야!”
그 순간 선우의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선우는 놀라 주먹을 휘둘뻔 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급히
선우의 뒤로 다시 움직였다.
“왜 그리 놀래? 도둑질했어?”
“도둑질은 무슨. 그냥 술래잡기야 술래잡기. 넌 이제오는거야?”
선우를 아는 체 한 여인은 집주인의 딸인 은주였다. 그녀의 나이 또 한 27 세로 선우와 같았고, 170
센티가 넘는 키에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모의 여인이었다.
무너져가는 달동네에서 그나마 연립주택이나, 몇 땅을 소유한 아주머니의 딸답게 그녀의 외모는
도시적이었다.
“그런데 쟤는 누구야?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아이네.”
은주는 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몸을 낮춰 지현과 눈높이를 함께 하였다.
“이름이 뭐야? 예쁘게 생겼네.”
은주가 손을 내밀며 물었지만, 지현은 선우의 뒤로 더 몸을 숨기며, 그녀의 손이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보다. 집에 아주머니 계셔?”
“아마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아니야. 일단 올라가자.”
선우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행동이 평소답지 않아,
은주마저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에 계단을 올랐다.
“다녀왔어.”
은주가 집에 들어서자, 선우와 지현도 곧바로 함께 따라 들어섰다.
“넌 왜? 여기로 들어와?”
“그럴 이유가 좀 있어.”
“다녀왔어? 어…….선우총각도 왔네.”
“네 아주머니. 그리고 아까 주신…….”
“그보다 오전에 선우총각이 나간 후에 웬 사람들이 찾아왔었어. 직장동료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 직장에
다닌 거야?”
선우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첫 정보를 입수하였고, 그 하나만으로 많은 정보를 입수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 아이…….고아가 아니잖아. 아까 뉴스를 봤는데…….”
아주머니가 지현을 보며 말하자, 곧바로 선우가 아주머니 앞으로 이동한 뒤, 아주머니와 은주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세상에…….그런 일이 있었어?”
은주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집에서 TV 를 통해 지현의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저 아이를 보호하는 거야?”
은주가 물었다.
“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저 꼬맹이를 혼자 보낼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현이가 날 믿고 있어.”
은주는 부엌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어 다시 지현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 미쳤어? 뉴스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금 저 아이를 찾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야. 대통령과 기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네가 상대가 될 것 같아?”
은주는 도저히 선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내용만을 본다면, 지현을 찾는
인물은 적어도 국가기관이며, 그 모든 지시를 내린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말이었다. 그들로부터 지현을
보호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보호가 아니라 납치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어서 연락해서 저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해. 그래야 네가 살아.”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어. 무엇보다 지현이가 그들을 믿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라고 지현이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보장이 없어.”
“넌 보장이 있고? 정신 차려! 그러다 너까지 죽어!”
은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지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곧 추선우가 은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집주인 아주머니가 지현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아니야…….저 이모가 하는 말은 다른 말이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저 이모가 오늘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너한테 한 말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 알았지?”
아주머니는 진정 엄마 미소를 지으며 지현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선우가 막고 있는
손이 떨어지면 다시 한 번 큰소리 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선우는 애써 은주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와 지현앞에 섰다.
“그나저나…….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도 모르고 하신 말씀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당분간 제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우는 아주머니가 무척 고마웠다. 은주의 말로 인하여 상처 입을 지현을 달래주었고, 또 진정으로
지현을 걱정하고 있는 그녀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여길 당분간 떠나있던 뭘 하던, 배불리 먹고 움직여.”
아주머니는 급히 밥을 짓기 시작하였고, 반찬도 새로 만들며,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정말…….이 아이를 보호할거야?”
은주는 여전히 지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말했잖아. 내가 한 약속이야. 그 약속은 지켜야지.”
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고, 지현의 눈빛은 은주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쭈. 어린 얘가 눈빛이 맵네. 어른을 그런 눈으로 보며 안 돼. 그리고 이 아저씨를 뭘 믿고 네가
따라다녀? 그냥 경찰서로 가서 도와달라고 해. 그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
“너부터 말을 예쁘게 해봐. 그럼 지현이의 눈빛도 변할 것 아냐. 그리고 사람이 한 말을 지금까지 뭐로
들었어? 얘가 경찰도 믿지 못한다고 하잖아.”
“뭐야? 나 참. 어이가 없네. 우리 집에서 공짜로 먹고 자고 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고작 하루 밖에
보지 않은 아이의 편을 들어?”
“이건 편드는 게 아니잖아. 제발…….현실적으로 생각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 붙들고 물어봐라. 누가 제정신인지. 어째
싸울 상대가 없어 대통령과 맞짱 뜰 생각을 해.”
은주는 여전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은주의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지현의 눈매는 더욱 더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은주는 아직 뉴스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지현을 국가기관에서 찾는다는
것만은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인 이창민이 죽었고, 그 죽음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가 지현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 다들 먹어.”
잠시 후, 아주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을 내 놓았다.
“지현이…….많이 먹고 힘내. 그리고 이삼촌 잘 따라다녀. 이 삼촌이 다른 것은 몰라도 싸움은 진짜 잘해.
그리고 착해…….그러니까 지현이를 나쁜 사람들로부터 꼭 지켜줄 수 있을 거야.”
아주머니는 지현을 향해보며 또 다시 엄마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러지 지현도 은주를 바라보는 매섭던
눈빛이 아닌, 진정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넌! 말 좀 예쁘게 해! 겉모습만 예쁘면 뭐해. 머리가 비고, 마음이 차가운데.”
“엄마는 대체 누구 엄마야!”
아주머니의 말에 은주는 버럭 소리치며 다시 지현을 노려보았다.
“지현아. 예쁘게 자라, 그리고 이 이모처럼 겉모습만 예쁜 여자가 아닌, 마음이 예쁜 여자가 돼.
알았지?”
“네…….”
지현은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식사를 마친 후, 날이 어두워지자, 선우와 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똘똘하기도 하지. 그리고 꼭…….이 삼촌 곁에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그 나쁜 놈들 다 잡을 때까지.
이 삼촌이 지현이를 지켜줄거야.”
아주머니는 지현의 앞에 몸을 낮추어 앉은 뒤, 눈높이를 맞추며 말하였다. 그리고 지현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지현은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애써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거…….”
아주머니는 선우를 불러, 부엌으로 오게 한 뒤, 선우에게 카드 한 장을 주었다.
“이게 뭐에요?”
“내 카드야. 나이 들어 쓸데도 없어. 지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할거야. 현금을 계속
들고 다닐 수 없으니,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 카드에서 인출해 써.”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이가 어른을 믿는 다는 것은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거야. 아이들은 부모를 믿고 자라. 하지만
지현이는 이제 믿을 부모가 없어. 그리고 모두에게 불신이 생긴 아이냐. 하지만 지현이가 널 믿고 있어.
넌…….적어도 지금 현재는 지현이의 부모와 같은 상황이야.”
선우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진정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보증금을 뛰어넘은 미납 월세도 있는
마당에 자신의 돈을 선 듯 내주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주머니…….”
“꼭…….선우가 내 아들 같아서 그래. 어찌 살다보니, 아빠 없이 은주를 키웠는데, 너도 알다시피 저
년이 머리가 비었어…….그냥 겉모습만 잘 난 년이야. 그런데 넌 아니잖아. 꼭…….훌륭한 인물이 될 것
같아. 그러니 내가 너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고 생각해.”
선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월세로 인하여 괜히 피해 다닌 세월이 미안하였다.
이렇게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인 것을 모르고, 무조건 피해 다니기만 하였으니, 그 미안함은 더욱 더
컸다.
“가 봐…….”
선우는 부엌에서 나왔다. 그리고 27 살 은주와 열 살의 지현이 서로 마주보며 기싸움이라도 하는 듯 한
장면을 보았다.
‘탁!’
“아야!”
그러자 아주머니가 은주의 뒤통수를 쳤다.
“나잇값 좀 제대로 해라…….어디 할 짓이 없어서, 열 살 난 조카뻘 된 아이에게 눈을 후라리고
지랄이야.”
아주머니의 거친 말이 술술 나오자, 지현은 놀란 눈으로 아주머니를 보았다.
“지현아.”
그리고 자신의 딸인 은주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억양과 표정으로 지현을 불렀다.
“잘 가고…….다음에 꼭 아주머니 집에 놀러와야 해?”
“네…….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다시 한 번 지현을 안아주었고, 지현도 아주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선우와 지현은 주인집을 나섰다. 어둑해진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보이고 있었고,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가자…….”
선우는 지현의 손을 꼭 잡고 달동네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유모를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각하. 모두 모였습니다.”
같은 시각. 차현태는 현재 이창민에 관한 사건과 함께, 이지현을 찾고 있는 인물들을 모두 청와대
회의실로 모이도록 하였고, 곧 비서실장이 집무실로 들어와 보고하였다.
“가지.”
차현태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회의실로 향하였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차현태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모두 앉게나.”
차현태가 착석한 후, 말하였고, 모두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차현태는 회의실에 앉은 인물들을 보았다.
회의실에는 국정원장과 함께, 설장호가 있었고, 또 경찰청장과 함께, 박태식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검찰총장은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둔 채, 혼자 앉아 있었으며, 청와대 경호실장과 태정민을 비롯하여
경호원들은 자리에 앉지 않은 채, 모두 서 있었다.
“먼저…….국정원 소속 설장호 실장입니다. 현재 경찰과, 검찰 쪽의 인원을 통솔, 지휘할 인물입니다.”
비서실장이 설장호를 가리키며 말하였고,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개는
국정원장이 직접 하였다.
“그 예하로, 경찰을 대표하여 온 박태식 형사와 우리 청와대를 대표한 경호실 태정민 팀장입니다.”
박태식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태정민도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인사하였다. 태정민은 이미
차현태와 안면이 있기에 별다른 소개가 없었고, 박태식에 관한 소개는 경찰청장이 직접 하였다.
“검찰 쪽은 없습니까?”
국정원과 경찰 쪽의 인원은 보였지만, 검찰 쪽에서 검찰총장만이 자리하고 있기에 검찰총장을 보며 물었다.
‘똑똑.’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비서실장이 직접 문을 열어주자, 20 대 후반의 미모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박태식의 고개가 숙여졌고, 설장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검찰 쪽에서 지원하는 인원을 대표한 강서진 검사입니다.”
그녀는 차현태를 보며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곧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설장호와
박태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외교부장관은 현재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이번 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비서실장이 자리하지 않은 외교부장관을 두고 말했고, 차현태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얼굴 표정들을 보아하니, 나를 제외하고는 서로 간에 모두 안면이 있는 듯합니다. 맞습니까?”
차현태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네.”
설장호가 짧게 답했다.
“무슨 인연으로 만났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차현태가 다시 물었다.
“사실…….이 두 친구는 물론, 저기 서 있는 청와대 경호원 태정민까지 모두 저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래요? 설장호 실장께서 그토록 발이 넓은 사람인지 몰랐군요.”
설장호의 말에 차현태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발이 넓다기 보다…….제가 워낙 오지랖이 넓어 이일 저일 다 뛰어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박태식 형사나, 강서진 검사. 그리고 태정민 경호원을 모두 알았습니다. 또 한…….저 세 친구가
저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설장호는 세 사람의 우월함을 말하였고, 차현태는 그 말을 들은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설장호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차현태는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리고 박태식과 강서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을 경호하는 태정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태정민이 인정하는 인물이니,
그만큼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서론은 이쯤에서 접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지금…….지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통성명을 하는 시간에는 차현태의 표정이 온화한 듯 보였었다. 하지만 곧 본론으로 들어가, 지현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그의 표정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현재. 이지현의 위치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지금 현재도 서울 시내 모든
CCTV 를 감시하여 행방을 쫒고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넓은 지형에 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단축하세요. 지난밤의 사건으로
인하여, 아직도 공포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움직이는데,
홀로 움직이는 여자아이 하나 찾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지현양은 혼자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가 그의 말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여겨 말한 뒤, 한 편으로는 홀로
움직이는 지현을 찾지 못한 것에 답답함을 나타냈다. 그러자 설장호가 곧바로 다시 답했다.
‘띠리리리리’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20 시 30 분. 성북동 북정마을 앞 도로에서 지현양이 CCTV 에 포착되었습니다.”
“뭐! 북정마을!”
설장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20 시 47 분. 17 분이 지났다. 북정마을에서 어디로 이동하였는지, 바로 확인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은 설장호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만을 보고 있었다.
“움직일 준비하지. 지현양이 다시 북정마을에서 움직인다.”
“북정마을요? 우리가 오전에 수색했던 곳 아닙니까?”
설장호의 말에 박태식이 다시 물었다.
“그래. 우리가 수색했던 곳이지. 그리고 지금 추선우가 그 곳을 다시 찾았다. 그는 이미 우리가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움직인 것이다. 의외로 잔머리 굴리는 놈 같은데…….나 설장호를 우습게 보지마라
추선우…….”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곳에서 가장마지막에 철수한 조직이 바로 설장호의 국정원이었다. 설장호는
물론, 박태식과 태정민이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렸다면, 그곳에도 사람을 심어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잡을 수 있었던 추선우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일단 태식이 너는 다시 북정마을로 가서, 그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나 봐. 추선우가 북정마을로
돌아갔다면 아마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났을 것이야. 그리고 그 아주머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설장호의 명령을 들은 후, 곧바로 움직이려 하였다.
“나도…….박형사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순간, 검찰 쪽 지원인물인 강서진 검사가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검사와 형사는 같이 움직이지 않나요? 그러니 박형사가 움직이면, 그 현장 지휘를 제가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해서요.”
설장호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박태식은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이지 마라. 어차피 너의 상관이다. 네가 아무리 뛰어나도, 넌 형사고 서진이는 검사야. 명령에
따라야지. 그래 같이 움직여라. 하지만…….만에 하나 그 어떤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 즉시 연락하는 것을
잊지마라.”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지만, 박태식은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장호를
보며, 뭔가 깊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한 표정과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어이! 선우!”
잠시 동안 그 일대에 서 있었고, 곧 한 여인이 손을 흔들며 선우를 불렀다. 선우는 그녀를 보며 손을
들었고, 지현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그녀는 거의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굽 높은 힐을 신고 있었고, 얼굴은 화장으로 몇 겹을 칠한 듯, 진정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쩐 일이야?”
“당분간 너를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작별인사를 하러왔어?”
“어디가? 그리고 저 얘는 누구야?”
그녀의 눈에 지현이 보였다. 자신을 노려보는 듯 매서운 눈빛을 하면서도 선우의 뒤로 숨어 있는
지현이었다.
“조금 전, 그 언니 누구에요?”
선우의 손을 잡고 전철역으로 향하던 지현이 선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삼촌의 친구. 아주 오래전의 친구이며, 지금도 삼촌에게서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야.”
“가족?”
“그래. 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삼촌은 고아원에서 자랐어. 그리고 조금 전, 그 친구는 삼촌과 같은
고아원에 있었고,”
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고 걸으며, 자신의 과거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지현은 표정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고아…….그 말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세상에 자신의 핏줄이 있을 것이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고아…….그리고 지금은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된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와는 다른 고아였다. 선우는 훗 날, 자신의 핏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있을
것이지만, 이제 지현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그냥…….혼자가 되어버린 것을 열 살 나이에 알게 된 지현이었다.
두 사람은 삼성역에 도착하였고, 곧 전철을 타기 위하여 내려갔다.
“선우총각 없는데요.”
같은 시각. 박태식은 주인집을 찾았고, 곧 아주머니가 그를 보며 오전과는 다른 눈빛을 하며 답하였다.
“어디로 갔는지…….”
“내가. 세 들어 사는 총각이 어디로 가는지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진정 오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박태식은 필시 주인아주머니가 추선우를 만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 역시, 이들이 오전에는 선우의 직장동료라고 했지만, 지금은 동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차갑게 나가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지금 범인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박태식의 뒤로 서 있던 강서진이 아주머니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범인요? 이봐요! 선우가 뭘 잘 못했는데, 범인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정확히 죄명이 밝혀지지 않는
한, 범인이라는 단어가 아닌, 용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되지 않나요?”
“…….”
강서진과 박태식은 멍하니 있었다. 강서진의 범인이라는 단어 하나에 두 사람을 쏘아보며 말한 인물은
은주였다. 그리고 그녀는 독한 눈빛으로 강서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요. 난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검사는…….”
“검사면! 무고한 시민을 그냥 범인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고 다녀도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선우의 죄명이
뭡니까? 죄명이 무엇인데, 범인이라고 단정하며 소리치는거에요!”
밀리지 않았다. 강서진의 말에 은주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은주와 함께
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추선우와 연락이 된다면, 꼭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박태식이 애써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돌리려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인사한 뒤, 강서진을
끌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뭐야. 재수 없게. 검사면 저딴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나간 후, 은주는 큰 소리로 말했고, 그녀의 말은 문 앞에 서 있던 강서진의 귀에 들렸다.
“젠장…….어디서 못 배운 여자가 감히 나한테…….”
“성격 좀 고치십시오. 저 여자 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저 여자 분이 못 배운 사람인지 어찌 아십니까?
제발…….사람의 주위환경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못된 습관을 좀 버리십시오.”
박태식은 문 앞에서 씩씩거리며 서 있던 강서진을 보며 말한 뒤, 서둘러 연립주택을 내려오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래.”
같은 시각. 아직 어느 지역을 선택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던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삼성역입니다! 조금 전, 삼성역 CCTV 에 지현이 잡혔습니다. 3 분 전입니다.”
“오케이!”
설장호는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태정민도 함께 덩달아 서둘렀다.
“삼성역에서 지현이 포착되었다. 넌 서둘러 태식이에게 연락하여 움직이도록 하고, 넌 국정원에 연락해서
2 호선 일대 모든 역의 CCTV 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보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동 중, 태정민을보며 박태식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도록 한 뒤, 국정원 소속 부하직원에게는 2
호선의 모든 역 CCTV 를 실시간 보고하도록 명령 내렸다.
“강 검사님 가시죠! 추선우와 지현의 위치가 포착되었습니다!”
박태식은 태정민에게 연락을 받은 후, 여전히 씩씩거리고 서 있던 강서진에게 말하였고, 그제야 강서진은
연립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꽉!’
그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지현의 손아귀 힘이 갑자기 강하게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왜? 어디 아파?”
선우는 곧바로 몸을 낮추어 지현의 눈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지현은 선우의 눈을 보지 않은 채, 어느 한
방향을 보며 심하게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선우는 지현이 보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지현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무슨…….일이야? 왜 그래? 지현아.”
‘와락!’
다시 한 번 지현의 안부를 묻자, 지현은 선우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사람…….”
“!!!”
단 한마디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의 눈빛은 변하였다. 또 한 자신의 몸에서 소름이 돋는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디에 있어?”
선우는 지현을 안은 채, 그녀의 귀에 대고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물었다.
“앞에…….”
지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선우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다시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시선높이에서는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갈색 점퍼…….”
다시 들린 지현의 한 마디에 선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약 5 미터 정도 앞으로 서 있는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를 보았다.
선우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살며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약 50 대의 사내로, 흰머리가 곳곳에 나 있었고,
얼굴에 주름도 꽤 많아 보였다.
“누구야?”
선우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현에게 물었다.
“운전기사…….”
“!!!”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겁이 난 것은 아니었다. 운전기사라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
같은 전철에 탈 확률은 희박하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시끄러운 때에 얼굴을 내놓고 서울 일대를 돌아다닐
정도의 강심장은 아닐 것이었다.
즉. 지현의 말처럼 그가 진정 운전기사가 맞는다면,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 내렸기에,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선우였다.
“옷만으로 그 사람이라 단정할 수 없어. 네 눈높이에서 저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잖아.”
선우의 말 대로였다. 지현의 눈높이에서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선우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곁눈으로 여전히 갈색점퍼를 입은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지현을 더 꽉 안았다.
‘스르르륵’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렸다. 선우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틈을 이용하여 침착하게 함께 내렸고, 역시
곁눈으로 옆을 보자, 갈색점퍼의 사내도 함께 내렸다.
-몇 명인지 모르겠군. 저 아저씨 한 명이라면 따돌리는 것은 쉽다. 상대하는 것도 쉽다. 문제는 이곳에
한패가 있다면, 지현이 위험할 수 있다.-
선우는 사람들 틈에서 이동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였고, 또 갈색점퍼의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사내는 선우와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어디 역이야?”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곧바로 물었다.
“역삼역입니다. 현재 CCTV 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역과 연결된 CCTV 화면을 실장님
스마트기기로 연결하여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함께 서둘러 역삼역으로 향하였고, 향하던 중, 태정민은 박태식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팟’
그리고 곧 스마트기기에 역삼역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설장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추선우…….”
그리고 그 화면에 추선우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지현을 꼭 안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즉…….추선우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받았던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설장호는 이동 중, 스마트기기에 뜬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같은 시각. 박태식의 경찰병력과 설장호의 국정원, 그리고 태정민의 경호원들까지 역으로 다 내려왔다.
하지만 박태식의 말처럼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는다.-
“꽉 잡아 지현아!”
“!!!”
선우가 소리쳤고, 그 소리는 역삼역 안으로 들어선 설장호와 태정민, 박태식의 귀에도 그대로 들렸다.
“모두 움직여!”
설장호의 큰 목소리도 그 순간 함께 들렸고, 추선우의 눈빛은 정확히 설장호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었어!”
그리고 선우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그의 옆으로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서며
말하였고, 선우의 눈빛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퍽!’
“!!!”
하지만 오히려 선우의 돌려차기 한 방에 그가 나가 떨어졌다. 지현을 안고서도 그의 몸은 무척 가벼웠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자자마, 곧바로 몸을 돌려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고, 나머지 세 명도 빠르게 선우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퍽!’
그 역시 한 방이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 마저 눕힌 뒤, 시선을 돌려 다시 설장호를 보았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다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차 곧 출발합니다.-
도착한 열차가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선우는 전철문 입구에 섰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향해 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보았다.
“태정민. 경호원을 데리고 전철에 탑승해라. 그리고 박태식. 경찰들과 추선우를 쫒는 이놈들을 모조리
잡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선우와의 눈빛을 끊지 않은 채, 두 사람에게 명령 내렸고, 곧 태정민은 전철 문이 닫히기 전,
경호원들과 함께 서둘러 전철로 올라탔다. 그리고 선우도 지현을 안은 채, 전철로 올라탔고, 곧바로 전철
문이 닫혔다.
“모두 천천히 앞으로 이동한다. 우선적인 타깃은 갈색점퍼를 입은 50 대 초반의 사내와 190 센티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다. 그리고 차선이 추선우와 이지현이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열차의 마지막 꼬리부분에 승차하였다. 그리고 점차 앞쪽 칸으로 이동하며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지현아. 괜찮아?”
열차가 출발한 후, 한 참이 지나서야 선우는 지현을 보며 물었다. 그제야 지현은 눈을 뜨며 선우를
보았고, 그를 와락 안았다.
“삼촌은…….괜찮아요?”
“나? 난 괜찮지. 이래봬도 삼촌이 좀 강해.”
선우는 지현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전철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출입문 닫습니다.-
전철이 출발하면서, 앞 칸에서 내린 사람들이 추선우의 눈에 하나씩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눈에 지현이 말한 이장구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들을 본 후, 지현을 향해 시선을 내려 보았다. 다행히 지현은 그 두 사람을 보지 않은
듯하였다.
“다음 역에 내리자.”
그들이 내린 것을 확인하였으니, 다음 역에 내리더라도 그들과 마주칠 염려는 없었다. 지금까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빛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같은 열차 안에
태정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디로 갔지?”
같은 시각. 추선우의 뒤를 일정거리를 유지한 채, 쫒고 있던 태정민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졌다. 그 역시
3 번 출구 앞까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사당역이라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외부 CCTV 도 감시하고 있지?”
“네. 3 번 출구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장면이 CCTV 에 목격되었지만, 그 후, 지상으로 올라온 장면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야?”
3 번 출구라는 말에 모든 대원들이 3 번 출구 앞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그 후의 행방이 찍힌 화면이
없다는 말에 설장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천천히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선우…….”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였다. 3 번 출구의 반대방향에서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빌어먹을…….”
설장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고, 곧 3 번 출구 위로 올라선 태정민도 반대편에 있는 추선우를 보며
표정이 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전히 추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실장님. 3 번 출구 인근에는 지현양이 없습니다.”
“당연하지…….그 놈은 저 앞에 있으니까…….”
한 대원이 인근을 수색한 후 말하였고, 설장호는 여전히 추선우를 보며 그의 말에 답하였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정확히 반대쪽을 향해 돌아섰고, 설장호의 옆으로 태정민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의 옆에
서서 반대편에 서 있는 추선우를 향해 함께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추선우의 시선도 이내 설장호와 태정민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지현이를 보았다.
“가자…….”
그는 지현의 손을 잡은 뒤, 경기도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줄지어 정차해 있는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서둘러 이동한다! 차량을 돌리고, 4 번 출구 인근 CCTV 를 통해 추선우와 지현이 어디로 향하는 버스에
타는지 확인해!”
설장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일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국정원 대원 몇 명이 다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으며, 곧 태정민은 차량을 막고, 그 넓은 도로를 횡단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도로를 건너자, 몇 남은 국정원 소속 대원들도 함께 도로를 건너기 시작하였다.
“빵빵!”
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이동하던 차량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렸고, 운전자들의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태정민과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며, 오로지
추선우가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저 새끼들 대체 뭐야! 뭔데 도로를 저리 당당하게 무단횡단하고 지랄들이야!”
운전자 일부는 그들을 향해 창문을 열어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여전히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없습니다.”
곧 설장호마저 반대편으로 건너오자, 먼저 건너왔던 대원이 그에게 보고하였다.
“CCTV 확인해.”
설장호는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원들은 서둘러 CCTV
영상을 확보하려 하였고, 설장호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정차에 있는 버스안도
둘러보았지만, 추선우와 지현은 보이지 않았다.
태정민의 눈도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보이는 것은 그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실장님…….CCTV…….보십시오.”
곧 한 대원이 다가와 국정원에서 보내준, CCTV 영상이 재생중인 스마트기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가
내민 영상을 보며 설장호와 태정민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젠장…….”
CCTV 영상에서 보인 것은 추선우와 지현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처럼
행동하였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과천방향으로 더 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CCTV 는 그 뒤로
없었다.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들이 줄줄이 정차하는 바람에 반대편에서 그의 행동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과, 이 이후로 과천방향으로 더 이상 설치된 CCTV 가 없다는 것이 설장호와 태정민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든 것이었다.
“일단…….몇 대원들은 과천방향으로 더 오른다. 그리고 몇 명은 이 일대를 더 돌아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보았지만, 보기 좋게 놓쳤다. 그리고 태정민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설장호보다 더 가까이서 추선우를 추격한 인물이지만, 바로 앞에서 놓치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는 지난 날. 두 사람이 한 말이 딱 맞아 떨어져버린 격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장난 섞인 어투로 서로
쪽팔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그 어떤 상황보다 굉장히 창피한 상황이
연출되어버린 것이었다.
‘띠리리리’
보고를 받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설장호는 곧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실장님…….”
태정민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추선우…….”
전화기를 서서히 내리며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리고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추선우가 뭐라고 한 것입니까?”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차량으로 이동하여 승차하였고, 곧
태정민이 다시 따라와 차량에 함께 승차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또…….불안하고 초조하십니까?”
“그래. 불안하다. 불안해서 미치겠다. 대체 어떤 새끼들인지 얼굴이라도 봤으면 이렇게 불안하지 않겠다.
헌데! 국정원이고 검찰청이고 어디 한 곳에서도 이미 하루가 꼬박 지나버린 사건의 용의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젠장 할!”
설장호의 거친 말은 끝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하지만 용의자라고 알아낸 인물은
고작 운전기사였던 이장구 한 명이다. 그의 범행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인물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설장호의 마음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더욱 더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지현을 데리고 서울을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추선우였다.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추선우는 지현을 데리고 다시 사당역 인근으로 나왔다.
주위의 수많은 CCTV 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두 사람이 서 있는
곳 사방에는 CCTV 가 설치된 곳이 없었다.
“돌아가자. 숨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듯해. 되도록 지현을 돕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맞서자. 그래서
이겨내자. 그렇게 할 수 있지?”
추선우는 몸을 낮춰 지현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지현은 그의 말을 듣고, 아무런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떨지도 않았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추선우의 선행이 고맙게
느껴지고 있는 그녀였다.
“젠장…….추선우. 대체 뭐야…….뭘 쳐 먹은 놈이기에 겁대가리가 없어. 알지도 못하는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왜 지 목숨까지 담보로 저 따위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추선우를 잡지 못하여 화가 오른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아이 하나에 자신의 목숨을 내
걸고 있는 그가 어이없었던 것이었다.
‘띠리리리’
차량이 움직인 후, 박태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젠장…….”
“젠장…….”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 뱉었다.
“이장구를 놓친 모양이군. 넌 무슨 전화인데 쓴 소리를 내뱉어?”
먼저 전화를 끊은 설장호가 말했고, 곧 같은 말을 내뱉은 태정민에게 물었다.
“방배역에서 내렸던 경호원입니다. 이장구와 검은 정장의 사내가 서로 다른 길로 향하였고, 박태식
팀장이 이장구를 쫒고, 우리 대원이 검은 정장의 사내를 쫒았는데, 놓쳤답니다.”
“아주…….제대로 엿 먹은 하루군. 추선우도 눈앞에서…….이장구도 눈앞에서 놓쳤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고, 곧 이동 중인 차량의 차창 밖을 보았다.
“어? 선우야?”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선우는 수많은 CCTV 를 피하기 위하여 사당역에서 택시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저녁 때,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던 어릴 적 친구의 술집 앞이었다. 때마침 일을 끝내고
나오는 그녀가 잠이 든 지현을 안고, 건물 한 쪽 모퉁이에 서 있는 선우를 보았다.
“뭐야? 어디 간다며?”
그녀는 선우를 보며 다시 물었고, 선우는 답 없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하루만 재워주라.”
선우의 말에 그녀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폈고, 그 곳에 잠이 든 지현을 눕혔다. 잠이 든 지현을 보며 선우는
미소를 지었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선우를 그녀는 보고 있었다.
“미희야.”
그녀가 씻고 나왔다. 담배냄새와 술 냄새가 온 몸을 덮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선우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응?”
“우리를 버린 부모는 어딘가에 있겠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건 왜…….”
“아니. 그냥…….만약에 두 번 다시 부모를 만날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루 전날까지 부모님과
웃으며 지냈는데,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으면…….그 기분은 우리와 같은 고아가 느끼는 기분과 같을까?”
그녀는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술 냄새와 담배냄새가 아닌, 향긋한 향을 풍기며 앉았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저녁 때…….네가 한 말이야. 저 아이. 우리와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린 아이라고 했어. 그리고 지금 한
말. 저 아이를 두고 한 말이지?”
그녀는 지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래…….저 아이의 일이야. 이지현…….이제 고작 열 살이다.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아이…….”
그녀는 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과거의 그도 함께 떠 올렸다. 유독 혼자가 된 아이를 보살피던 그.
과거에도 선우는 고아원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정말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다. 외로움…….자신이 겪어
보았기에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혼자 남게 된 아이를 언제나 보살펴 주었던
선우였다.
“추선우…….추선우…….”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몇 몇 영상을 보면서, 한 영상을 정지시켜 자세히 보았다. 지현을 안고 있는 그.
진심이 느껴지고 있는 그의 눈빛이 보였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를 위하여 스스로 위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이며, 판단이라 느껴졌다.
“삼촌. 일어나요.”
다음 날. 언제나 홀로 눈을 뜨던 선우는,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 일로 네가 늦잠을 다 자고 그래?”
멍하니 앉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선우를 보며 미희가 물었다. 그리고 선우의 눈빛은 미희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지현을 보았다.
“둘이…….친해졌어? 지현아…….괜찮아?”
선우는 믿음이 사라져버린 아이라 여겼던 지현이 미희와 너무 다정히 선 채,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 이모가 요리를 가르쳐주고 있었어요.”
“이모? 하하…….내 나이가 벌써 이모라고 불릴 나이가 되어버린거네…….”
미희는 지현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지현은 미희를 보며 눈웃음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지현이가 너 준다고 토스트를 직접 만들고 있었어. 의외로 요리솜씨가 좋은데.”
미희는 지현의 옆에 서서 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미희와 지현은 서로를 보며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씻고나와. 모처럼 나도, 함께 먹는 아침식사라는 것을 해보자.”
미희는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고, 곧 지현도 선우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삼촌…….아침에 봐도 멋있다.”
“응? 아…….하…….”
지현의 깜찍한 애교 섞인 말에 선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욕실로 향하였다.
‘웅~웅~’
선우가 욕실로 들어간 뒤, 곧바로 선우의 휴대전화가 웅웅거렸다. 미희는 그의 휴대전화를 본 뒤, 다시
욕실을 향해 보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은주라는 이름이 떴다. 그리고 전화기를 지현에게 보여주자,
지현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지현에게 물었다.
“삼촌 집…….주인의 딸이에요. 교양 없고…….미운 이모에요.”
“그래? 그럼…….우리 장난 한 번 쳐볼까?”
두 여인은 씨익하고 미소를 지은 뒤, 곧 미희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설 실장.”
잠시 동안 침묵만이 있었다. 그리고 차현태가 시선을 돌려 설장호를 보며 그를 불렀다.
“네. 대통령님.”
“우린.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설 실장에게 지현양에 관해서는 모든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번 일…….설
실장의 뜻대로 진행하세요.”
“…….”
모두가 아무런 말이 없을 때였다. 그 누구도 확답을 주지 않을 때, 차현태가 답을 주었고, 각 부처
수장들은 아무런 말없이 차현태를 보았고, 곧 설장호를 보았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나, 아침이 되었습니다. 추선우란 사내가 지현양을 데리고 있고, 이장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의문의 사내 두 명을 체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씩 의문이
풀려가겠지만,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우리가 늦을수록, 지현이
느껴야하는 고통은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차현태의 말이 끝난 후,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하였고, 곧 그가 회의실을 나서자,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설 실장.”
“네. 국정원장님.”
곧바로 국정원장이 설장호를 불렀다.
“진정…….추선우를 지원할 것인가?”
“네. 지원할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를 잡아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더 확실하며,
안전하게 지현양을 경호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현양에게 다가서는 그 인물들…….그
놈들을 모조리 잡아내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을 보고 있는 모두를 보며 다시 한 번 확답을 주었다. 국정원장은 잠시 그를 보고 있었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으니, 일의 진행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겠네. 하지만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
자네의 그 믿음이 불신으로 돌아선다면…….살아남을 수 있었던 지현이 마저 부모 곁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네.”
“…….”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추선우가 어떤 인물인지도 알지 못한다. 단지 영상 속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보았다는 이유로 설장호는 그를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말처럼. 그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게 되는 날에는 열 살의 어린 아이마저 잃게 되는
것이었다.
각 부처 수장들도 이어 회의실을 나갔다. 그리고 설장호의 곁에는 박태식과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이
있었다.
“그 놈들 족쳐봤어?”
잠시 후, 역삼역에서 잡은 두 인물의 조사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자 박태식은 강남서에 도착하였고,
곧바로 물었다.
“그게…….헛수고 한 것 같습니다.”
“헛수고?”
“네. 그 두 놈. 중국 애들인데 불법체류자입니다. 뭐. 신원을 확인할게 없어요. 그냥…….이곳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며 잘도 버티고 있었던 놈들입니다.”
“염병…….그 놈들 어디 있어?”
형사의 말에 박태식은 표정을 구기며 물었고, 곧 두 사내가 조사를 받은 취조실로 향하였다.
“이 나라가 그리 만만했어! 네 놈들이 들어와 사람을 죽일 정도로 그리 만만 해!”
박태식은 취조실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내를 향해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두 사내는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고만 있었다.
“몇 알아낸 것은 이장구가 이놈들에게 백 만원씩 준다고 했답니다.”
“백 만원?”
“네. 열 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죽여, 완벽하게 처리하면 그 대가로 백 만원씩 받기로 하여, 돈도 없고
하니 그냥 눈 딱 감고 일처리를 하려 했답니다.”
취조를 계속하고 있던 형사가 몇 더 알아낸 내용을 말하자, 박태식의 표정은 처음보다 더욱 더 일그러진
채, 두 사내를 향해 매섭게 노려보았다.
“남의 땅에 몰래 들어와 사는 것도 모자라, 몰래 사람까지 죽이려 했고…….그 대가로 백 만원씩 받기로
해? 이런 미친 새끼들이…….!”
“참으십시오. 박팀장님. 일단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비록 불법체류자지만,
우리나라 현실상 강압적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개 같다는 거지! 이런 새끼들이 넘어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데, 우린 이 새끼들을
죽이지 못해! 젠장!”
박태식은 곧 취조실을 문을 발로 차며 소리치고 나갔다. 두 사내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박태식을 향해
보았고, 형사들도 그를 보며 서 있었다.
‘띠리리리’
“네!”
“네 소리치고 지랄이냐?”
박태식이 취조실을 나오자마자 설장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화가 가시지 않아 그에게도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냥…….더러워서요.”
“뭐가?”
“추선우가 잡아놓은 놈이 불법체류자랍니다. 그리고 이장구에게 백 만원씩 받기로 하고 지현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답니다. 아주 지랄 같은 상황인데…….저 놈들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네요…….”
“지랄 같아도 참아라. 곧…….그 법안이 모두 바뀔 것이다. 지금 대통령께서 그에 관련한 모든 법안도 다
수정하기 위하여 뛰고 계신다. 진정 빌어먹을 법안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아. 어째…….불법체류자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지…….엿 같아도 조금만 참아.”
설장호는 박태식이 소리친 이유를 들은 후, 그 역시 표정을 잔뜩 구긴 채 말하였다. 너무나 많은
불법체류자로 인하여 자국민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조치가 미비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부족했던 조치로 인하여 한 여자아이의 목숨이 사라질 뻔 한 것이었다.
“일단. 그 놈들 더 족쳐보고, 더 이상 건질게 없다고 하여도, 절대…….중국으로 그냥 돌려보내지 마라.
이 땅에서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도 이 땅에서 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청와대를 나와 국정원으로 들어서며 그와 통화를 하였다. 곧 통화를 끝낸 후,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수사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내용을 작성한 후, 받는 전화번호에 추선우의 번호를 입력하였다. 그리고 전송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껀데?”
같은 시각. 미희의 집에서 나온 추선우에게 그녀가 물었다.
“아직은 몰라. 당분간은 떠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네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올게. 그리고 연락은
내가할게. 이 휴대전화…….이제 못 쓸 것 같거든.”
선우는 휴대전화를 들어보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우웅’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선우는 문자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지현을 보았다. 그 문자는 조금
전, 설장호가 작성한 문자였다.
“갈게. 다음에 보자.”
선우는 문자 내용을 지현에게 보여주지 않았고, 미희에게 인사하였다. 지현은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미희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어린 지현을 꼭 안아주었다.
선우는 그녀의 집을 나와 얼마가지 않아,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자신의 휴대전화를 인근 상가 앞
쓰레기통에 버렸고, 그 모습은 미희와 지현이 보지 못하였다.
두 사람의 앞으로 앉은 그는, 사건 당일, 차량 안으로 들어가 직접 이창민 부부를 살해한 장본인이었다.
“대치동…….조금 전 태정민이 알려준 위치다.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그 곳에서 잡혔다고 하니, 그 일대의
CCTV 를…….”
“실장님. 추선우와 지현양입니다!”
“!!!”
설장호는 태정민에게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대치동 일대 CCTV 를 집중하여 확인하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 그의 부하직원이 메인화면으로 CCTV 영상 하나를 띄우며 소리쳤다.
“어디쯤인가? 대치동인가?”
“아닙니다. 성북동 방향입니다.”
“성북동?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이군. 일단 북정마을 인근에 있는 대원들에게 알리고, 그를 잡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며 그의 곁으로 다가서는 놈들을 잡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태정민 팀장에게는 알리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대치동으로 향한다는…….”
“한 번은 느껴봐야 할 일이다. 그러니 그 놈에게는 신경 끄고 우리대원들 움직이도록 해, 박태식에게는
내가 연락한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추선우의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자신이 미련을 둔,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대해,
직접 그 현실을 느껴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박태식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박태식은 급히
강남서를 나서기 시작하였다.
“나도 같이가!”
그가 나가자, 경찰서 입구 쪽에서 강서진이 다가서며 소리쳤다.
“…….”
그리고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러고…….가시게요?”
“편하게 입고 오라며! 그래서 운동복으로 입은 거잖아.”
그녀는 하얀색 명품 운동복에 머리띠를 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넘긴 뒤, 하얀색 고급
운동화까지 신고, 박태식과 함께 움직이려던 형사들 앞으로 서 있었다.
“네…….네…….뭐. 정장보다는 편하겠네요. 그럼 가시죠.”
“어디로 가는데?”
“북정마을입니다. 추선우와 지현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일대 CCTV 에 찍혔고, 설
실장님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래? 북정마을? 잘 됐네. 이번엔 내가 그 계집에 콧대를 아주 눕혀놓지.”
“…….”
강서진은 북정마을이라는 말에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계집이라 일컫어진 여인이 누군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은주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강서진은 은주에게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었다. 검사며,
부유하게 자랐고, 모두가 올려다보는 생활을 한 그녀에게 달동네에 사는 당돌한 여인이 자신을 무시한
것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웅!, 우~웅!’
그 순간 태정민이 서 있는 자리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태정민을
비롯하여 경호원들의 시선이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다.
“이 놈은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
같은 시각. 은주는 연신 추선우에게 전화 중이었다. 하지만 수신음만 들릴 뿐, 받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어투로 소리쳤다.
“팀장님…….”
“엎어 봐.”
쓰레기통을 보며 한 경호원이 태정민을 부르자, 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짧게 말했고, 곧 한 경호원이
쓰레기통을 들어 엎었다.
“젠장…….”
그리고 곧바로 들린 태정민의 쓴 소리…….그의 눈에는 많은 쓰레기와 함께, 주인에게 버림받은
휴대전화가 홀로 웅웅거리며 울고 있었다.
‘띠리리리’
은주는 연신 추선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하려던 순간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응? 모르는 전화번호인데. 스팸전화인가?”
서울의 지역번호를 나타내는 02 로 시작되는 일반 전화번호이기에, 그녀는 넘쳐나는 스팸전화라 여기고
있었다.
“제발 좀 받아라.”
하지만 그녀의 전화벨이 울리게 만든 인물은 추선우였다. 이미 자신의 휴대전화가 위치추적이 되고 있을
것이라 여긴 그는 전화기를 버렸고, 북정마을 인근 공중전화박스에서 그녀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수신음만 길게 울린 뒤, 전화를 받지 않자, 곧바로 다시 전화하였다.
“같은 번호네.”
“받아봐라. 스팸전화가 동시에 두 번 오는 일은 드물잖아.”
또 다시 같은 번호가 찍히자, 그녀가 말했고, 곧 아주머니가 그녀의 옆을 지나쳐가며 말했다.
“네. 여보세요?”
아주머니의 말에 그녀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선우? 그런데 이 번호는 뭐야? 너 전화기를 어쩌고?”
“일단 긴말할 수 없어. 잠시 마을입구로 내려와.”
“입구? 그런데 왜? 네가 올라와. 나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오려면 힘들어.”
“그럴 사정이 있어. 그냥 좀 내려와.”
다짜고짜 내려오라는 말에 화를 내려하였지만, 전화기는 끊겼다.
“뭐야? 내가 지 마누라라도 돼? 이래라저래라야!”
은주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선우의 행동이 기분이 나빠, 자신의 전화기를
보며소리쳤다.
한 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갔다. 국정원소속 인물들이 이런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국제적 임무가 많았던 이들에게 한 사내와 어린아이를 추적하라는 것이 처음부터 맞지 않은 임무였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박팀장. 저기…….”
북정마을 입구에서 잠복근무 같지 않은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강서진이 박태식을 불렀고, 한 쪽을 가리켰다.
“주인집 딸?”
은주였다. 그녀가 모자를 눌러쓰고 내려왔지만, 강서진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나 잘 보였다.
“추선우에게 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죠. 일단 국정원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검사님과 저만 저 여자의 뒤를 쫒죠.”
“왜? 저들도…….”
“일단요. 만에 하나 저 여자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라면, 이곳이 텅 비워지지
않겠습니까?”
“오…….의외로 똑똑한데.”
강서진은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만 은주의 뒤를 쫒는다는 말을 이해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봐도 범상치 않은 국정원 인물을 추선우가 이미 눈치 채고 은주를
따로 불러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전화박스.”
그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그녀의 뒤를 따라 약 3 분정도 내려오자, 전화박스에서 추선우의 모습이
강서진의 눈에 들어왔고, 박태식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났다.
“추선우…….포착했습니다.”
“그래! 어디야? 북정마을이야?”
그 즉시 박태식은 설장호에게 보고하였고, 사무실에 띄워져 있는 수많은 CCTV 를 보고 있던 설장호가 놀란
눈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네 북정마을 초입부분입니다.”
“지현은? 지현도 함께 있나?”
“네. 지현도 보입니다.”
“다행이군. 지난밤을 잘 보낸 모양이군. 일단 접촉은 뒤로 미룬다. 그냥 살펴봐. 그리고 이 후로 최대한
그의 곁으로 붙어, CCTV 가 없는 곳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그의 뒤를 네가
직접 따라붙어.”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전화를 끊은 후, 천천히 더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아직 추선우는 박태식의 얼굴을 모른다. 지난
사당역에서도 박태식은 없었다. 설장호와 태정민은 자신의 뒤를 쫒았었지만, 박태식은 방배역에서
이장구를 쫒았었다.
‘띠리리리’
“추선우. 찾았냐?”
박태식과 통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태정민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설장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그게…….쓰레기통에 휴대전화만 버려져 있네요…….제대로 또 한 방 먹었습니다.”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그의 휴대전화를 들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 한 번 겪어봤으면 됐다. 지금부터라도 더 확실하게 움직여. 지금 추선우는 북정마을에 있다.
그리고 박태식이 그와 붙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추선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다. 그에게
당한 쪽팔림은 잊어, 지현이의 안전이 먼저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여라.”
“네.”
태정민도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의 말처럼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이, 평범한 사내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으니, 그 망신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너 뭐야? 왜 오라 가라…….”
은주는 선우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막은 추선우가 주위를 둘러본 후, 전화박스
안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왜 그래?”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지현을 향해 시선을 내려 보았다.
“요 꼬맹이 아직도 눈빛이 무섭네. 야! 어른한테 그런 눈빛하면 못 써!”
은주는 지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고, 지현은 조금 전보다 더 매서운 눈빛으로 은주를 노려보았다.
“그만해. 일단 이거 받아.”
“이거 뭐야?”
“아주머니 카드. 지금 상태로는 이카드를 사용하면 아주머니도 괜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돌려 드리는 거야. 그리고 현금 있으면 좀 주고 가.”
“현금? 야! 내가 무슨 네 개인금고야? 현금을 달라며 척하고 주게. 그리고 네 전화 받고 그냥 대충입고
나오느라 돈도 안 가져 나왔어.”
그녀는 선우의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옷차림을 가리켰다. 진정 편한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온 그녀였다.
“알았어. 그리고 혹시 지난 번 나를 찾아왔던 그 사람들 다시 왔었어?”
“그 사람들? 형사와 검사 말이야? 아니 오지는 않았어. 내가 그 사람들 오면…….”
은주는 선우의 물음에 답하다말고 말을 멈췄고, 한 쪽 방향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왜…….그래?”
“그…….사람들이야.”
“!!!”
말을 하다 멈춘, 그녀의 행동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정확히 강서진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고,
그녀의 말에 추선우가 놀랐지만, 절대 은주가 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확실해?”
“확실해. 저 정신 나간 여자검사. 잊을 수가 없거든.”
은주는 강서진을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서서히 몸을 낮춰 지현을 향해 보았다.
“지현아.”
“응. 삼촌.”
“어제처럼 삼촌이 지현이 안고 다시 뛸 거야. 어제처럼 삼촌을 꼭 안고 떨어지지 않을 수 있지?”
“응.”
추선우는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젠장!”
박태식은 정확히 추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빠르게 전화박스를 벗어나 지현을 안고 뛰는 추선우를
보며 두 사람도 함께 그 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아저씨! 아줌마!”
“!!!”
그 순간 은주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곧 그들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마주섰다.
“아줌마? 야!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어제부터 버릇없게 감히 검사에게…….”
“지금 이러고 있을 때입니까! 젠장!”
박태식은 강서진의 말을 듣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는 선우를 쫒기 위하여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은주가 박태식의 앞을 막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아가씨! 이건 공무집행 방해로 연행되는 행동입니다! 지금…….”
“공무집행 방해라뇨? 난 지금 당신들이 공무집행중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어제일로 반가워서 대화나
하려고…….”
“이 여자가 정말!”
박태식의 말에 은주는 능청맞은 어투로 말하였고, 그녀의 행동에 강서진이 소리쳤다. 그리고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선우의 품에 안긴 지현의 눈에, 두 사람을 막고 서 있는 은주가 보였다.
“지금. 추선우의 곁으로 의문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정확히 해당 인물이 어떤 놈인지 확인이 불가하다.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재킷, 모자를 눌러썼으며, 군화를 신었다. 박태식은 그대로 추선우의 뒤를 따르고,
국정원 소속은 다른 길을 돌아 넓은 도로면에서 대기하라.”
설장호는 곧바로 해당 인물에 대한 인상착의를 박태식과 태정민에게 알려주었고, 곧 국정원소속
인원들에게 앞질러 가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팀장님. 저기!”
그 순간 북정마을 인근에 도착한 태정민쪽에서 설장호가 말한 인물이 포착되었다. 비록 추선우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뒤를 쫒고 있는 인물을 접한 것이었다.
“쫒아!”
그 즉시 차량을 멈춰 세웠고, 태정민과 함께, 세 명의 경호원이 내려서 움직였다. 차량을 운전하여 온
경호원은 곧바로 다시 차량을 돌려, 해당 길과 연결된 큰 도로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젠장! 보이지 않네!”
박태식은 쉬지 않고 따라 내려왔다. 하지만 너무나 길이 많이 꺾여 있기에 추선우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박태식!”
“네.”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우측 길을 통해 내려가라! 그 길이 곧 큰 도로와 연결된다. 쭉 따라 내려가면
쌍다리 앞이다. 추선우의 이동경로를 보면 그 길과 마주할 확률이 높다.”
“알겠습니다!”
CCTV 를 통해 박태식의 위치를 확인한 설장호가 그의 움직임을 체크해 주었다. 추선우가 움직이는 경로를
파악하여, 그 보다 먼저 내려가, 그와 마주할 수 있는 위치를 알려준 것이었다.
박태식은 곧바로 뛰기 시작하였고, 곧 그의 옆으로 형사 팀의 차량과 국정원의 차량이 내려오다 멈춰 섰다.
“팀장님. 타십시오.”
“젠장…….편이들 살고 있네.”
박태식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뛰어내려왔지만, 그의 형사팀원들은 모두 차량으로 이동하여 내려오고
있었고, 그 뒤로 내려오는 국정원 소속 인물들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태정민!"
"네! 실장님!“
“30 미터 앞 쪽이다. 추선우의 위치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의문의 사내놈은 보인다. 놓치지마라.
추선우를 쫒는 놈이던, 지현이를 쫒는 놈이던, 무조건 잡아 족쳐!”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렀다. 경호원들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추선우의 뒤를 쫒고 있는 사내 역시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실장님! 추선우의 모습이 다시 잡혔습니다!”
추선우의 뒤를 쫒는 사내의 모습은 간혹 보였지만, 추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다시 CCTV 에 포착되었다.
“어디야?”
“실장님께서 예상하신대로 쌍다리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곳에서 태정민 팀장과 조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일단 그의 뒤쪽에서는 박태식이 따라붙었고, 앞쪽에서는 태정민이 붙었다. 비록 그의 뒤를
쫒는 다른 인물이 포착되긴 하였지만, 인원이 많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척…….’
한 쪽 길모퉁이를 돌 때였다. 그의 앞으로 이장구가 고용한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추선우는 자신의 앞
쪽으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며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그대로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쓴 사내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고, 추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채, 조금은 가픈 숨을 내 쉬고 있었다.
‘떠벅 떠벅’
사내가 먼저 움직였다. 추선우는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다시 지현을 꼭 안았고, 지현도 자신을 더 강하게 안은 선우의 손을 느끼며, 추선우를 더 꼭 안았다.
“팀장님!”
두 사람의 거리가 거의 3 미터 정도로 좁혀지고 있을 때였다. 태정민의 경호원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즉시 그 사내의 걸음도 멈췄다.
“정의의사도…….너와 관계없는 일에 목숨 걸지마라.”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 차가운 어투였다. 정확히 선우를 향해 숙인 고개를 들어 보이며
말하였고, 그와 눈이 마주친 선우의 몸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 듯 한 느낌이 일어났다.
“저 놈…….얼굴 캐치해라.”
정확히 추선우의 뒤쪽으로 설치된 CCTV 가 고개들은 그 사내의 얼굴을 포착하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설장호가 대원에게 말하였다.
“쌍다리 앞 쪽, 세 번째 골목 모퉁이다. 추선우와 그 의문의 사내가 조우했다. 목표를 변경한다.
추선우를 보내주고, 추선우의 뒤를 태정민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박태식은 의문의 사내를 잡는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변경된 명령을 하달하였다. 박태식에게 추선우의 뒤를 따르도록 명령했지만, 그 명령을
변경하여 태정민에게 붙도록 하였다. 그리고 박태식은 형사 팀을 움직여, 선우와 조우한 해당 인물을
잡도록 하였다.
“팀장님! 저깁니다!”
그가 추선우의 앞을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 들 때, 그의 모습이 형사 팀에 포착되었고, 곧 박태식은 물론,
그와 함께 움직이던 모든 형사가 다 움직였다.
“태정민. 모습을 숨긴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추선우의 뒤를 붙어라.”
“알겠습니다.”
사내가 추선우의 곁에서 멀어졌고, 박태식이 그를 쫒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던 태정민을 멈추게 하였고, 그의 곁으로 다가서는 것을 막아 세웠다.
“삼촌…….무서워…….”
“미…….미안해.”
지현은 가만히 서 있는 선우를 더 꼭 안으며 말했고, 그 순간 지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진작
지현의 귀를 막았어야 했지만, 그와 마주친 그 순간. 선우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잠시만 참아. 곧 내려줄게.”
선우는 다시 지현을 안고 뛰었다.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고, 곧 큰 길로 나온 뒤, 도로변에 있는
제과점으로 들어섰다. 이곳에도 CCTV 가 있지만, 일단은 긴장된 자신의 몸도 추슬러야 하며, 겁에 질린
지현의 마음도 진정시켜야 했다.
“삼촌…….”
제과점에 들어선 후, 선우는 간단하게 빵 몇 개를 산 후, 지현에게 주었고, 지현은 빵을 먹으며, 멍하니
앉아 있는 선우를 불렀다.
“응? 왜?”
“아니야…….삼촌도 좀 먹어.”
“그래. 같이 먹자.”
선우는 그 사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 앞에 선 인물로 인하여 두 손이 떨린
순간은 처음이었다. 그저 다가서며 한 마디를 한 것뿐이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없습니다.”
잠시 후, 태정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이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으니, 그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다시 확인하겠다. 인근에서 대기하라.”
“네.”
설장호는 힘없는 목소리로 명령을 하달한 뒤, 대원들에게 서둘러 추선우를 찾도록 명령 내렸다.
언제나 이 문제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설장호는 끝내 폭발하며 소리쳤고, 자신이 직접 상위보안레벨을
뽑아들고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에게는 상위보안급 레벨 정보가 몇 개 있었다. 그의 업무가 주로 비밀업무가 많기에 상위기관에
보고 없이 직접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몇 있었다.
“나왔습니다.”
검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K'라는 의문의 사내에 대한 정보가 떴다.
“뭐야…….이 새끼는?”
화면에 뜬 자료를 보며 설장호의 표정이 구겨졌고, 곧 거친 말이 내뱉어졌다.
바로 대원이 해당인물과 대조한 자료는 이창민 대사를 죽였던 범인이 차에서 내릴 때 찍힌 영상의
정지화면이었다. 비록 주위가 어둡고, 모자를 눌러 썼기에 해당인물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그의 복장이
조금 전, 북정마을에서 찍힌 영상과 아주 흡사하였다.
“선배고 나발이고, 너 이 새끼…….제대로 걸렸다.”
설장호는 확신하였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확신하였다. 이창민 대사를 죽인 인물의
체형과 추선우를 쫒을 때 찍혔던 그의 체형. 그리고 복장. 일치하는 부분이 꽤 있었기에 설장호는
확신하였다.
“당장. 이놈에 대한 모든 것을 찾아. 오늘 밤 안으로 찾아 나에게 가져온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모니터 속 석강수를 보며 말했고, 곧 더욱 더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어차피 3 일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안에 정해진 목표의 목이 떨어졌다는 대답만 들으면 되는 것이니
너무 서둘지 마십시오. 그 시간 안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한 편. 자신이 죽여야 할 목표물을 앞에 두고서도 그냥 돌아서 간, 석강수는 곧바로 이장구에게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그의 설명을 들은 이장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보다. 그 정의의사도…….흥미롭더군요.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뒤를 형사들과 국정원소속 인물들이 쫒고 있는데도, 굳이 그 아이를 꼭 안고
경호한다는 것이…….”
“목표는 그 놈이 아니다. 아이만 서둘러 죽여. 그리고 당분간 몸을 숨겨라. 네 말처럼 이미 일이
커져버렸다. 형사들은 물론, 국정원이 붙었다. 하물며 청와대 경호원까지 붙었으니,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일처리가 끝난 후, 당분간은…….”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뭐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내 걱정보다는
형님 걱정이나 하며 잘 도망 다니구려. 상황을 보아하니 잡히며 그냥 목이 날아갈 것 같은데…….대체 뭘
얼마나 먹었기에 이리 대담한 일을 하는 거요?”
“그런 쓸데없는 물음은 하지 마라. 어차피 그런 것까지 묻고 일을 진행하는 네가 아니잖아.”
“하긴…….나야 뭐 정해진 돈만 받으면 되는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소. 나에게 줄 액수도 만만찮은데,
얼마나 받았기에 목을 내놓고 이런 일을 하는지 그냥 궁금해서 말이오.”
한 시가 급한 이장구와는 달리, 석강수는 오히려 스릴을 느낄만한 일거리를 다시 찾은 것에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설장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추선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본 인물이 없었다. 설장호는
CCTV 에 찍힌 그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눈빛만으로 추선우의 진심을 확인하였다. 설장호에 이어
석강수도 추선우와의 단 한 번의 조우로 인하여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감을 잡은 것이었다.
“지현아. 잠시만.”
한 편. 성북동을 빠져나온 추선우와 지현은 국정원 사무실에서 확인한대로, 혜화문 인근이었다. 추선우는
곧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서며 지현에게 말했고, 주위를 살핀 뒤, 은주에게 전화하였다.
“잘 도망쳤어?”
전화를 받자마자, 은주가 물었다. 선우가 먼저 말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가 선우일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물었다.
“그래. 고마워. 이래저래 아주머니와 너에게 신세를 많이 진다.”
“간질거리는 말은 필요 없고. 지금 어디야?”
“어디? 미안해, 혹시나 해서 말이야. 너의 전화도 추적되고 있을 수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어디냐고?”
“혜화문 인근이야.”
선우는 진심 은주의 휴대전화도 혹시나 그들이 추적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조금 전의 일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그녀에게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여 끊으려 하였지만, 은주의 집요한
물음에 어쩔 수 없이 현 위치를 알려주었다.
“지현아.”
“응?”
“그…….말이야. 지현이가 못된 이모라고 한 이모…….”
“왜? 그 사람들한테 잡혔데?”
선우는 은주가 이곳으로 온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려 하였다.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듣자마자 지현은 의외로
놀란 눈을 한 채, 선우에게 물었다.
“아니. 잡힌 것은 아닌데, 지현이가 안전한지 보고자…….이곳으로 온다는데 어떡하지? 그냥 가라고
할까?”
“…….”
지현은 선우의 말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불과 1 시간 정도 전까지 만하더라도, 은주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였다. 하지만 지금 지현의 머릿속에는 선우의 품에 안겨 그 곳을 벗어날 때, 필사적으로 형사들을
온 몸으로 막아 세우던 그녀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00024 경호원 =====================================================================
====
“가라고 해?”
다시 물었다.
“아니…….신세를 졌으니까 고맙다는 말은 전해줘야지. 오라고 해. 단지 고맙다는 말만 전하려고 하는
거야. 다른 뜻은 없어. 그러니 삼촌도 오해하지 마. 내가 그 못된 이모를…….”
“알아. 우리 지현이가 착하잖아. 지현이 말처럼 신세를 졌으니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지.”
선우는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역시 열 살의 어린 아이가 챙겨서 한 말은 아니지만, 지현도 조금
전의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정민입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약 3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태정민이 탄 차량이 있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래? 이제부터는 절대 시야에서 놓치지마라. 너도 보았으니, 지금 지현을 쫒는 놈이 어느 정도의
놈인지 알 것이다. 박태식이 당했으니, 신중히 행동하고.”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서 추선우와 지현, 그리고 은주가 함께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차후의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그는 곧 박태식과 형사들이 입원한 병실로 들어섰다.
“괜찮나?”
병실에 들어서자, 박태식은 서 있었고, 나머지 형사들은 모두 몸 일부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를 보며, 박태식이 인사하였고, 누워있던 형사들도 인사를 하려 하였지만,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모두 그대로 있어. 박팀장과 대화 할 테니, 자네들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나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박태식만을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휴게실로 들어가 그를 보았다.
“넌. 별다른 문제없어?”
“네. 보시다시피 그냥 반창고 몇 개 붙인 것이 전부입니다.”
“다행이군. 그럼 넌 곧바로 다시 움직인다. 형사팀 인원을 다시 배치해. 경찰특공대쪽은 물론, 독한
놈들로 다시 구성하고…….”
“그 놈. 누구입니까?”
설장호가 박태식에게 새로운 팀 구성을 요구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박태식이 물었다.
“석강수.”
“석강수?”
“그래. 내 선배였던 인간인데, 우리 국정원 내에서는 이미 독종이라고 별명이 붙은 인간이야. 지금은
영구제명되서 쫓겨났는데, 이런 짓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다.”
박태식은 석강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설장호에게 그의 대한 말을 들은 후, 성북동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놈. 그냥 살인기계.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우리 형사들을 제압하면서, 단 한 치의 인간이라 볼 수
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녀석에게 잡히는 순간. 팔, 다리 하나는 무조건 아작 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박태식은 그와 마주하였던 순간을 말하였다. 이미 설장호는 석강수에 대해 알고 있기에, 크게 놀라는
눈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추선우는 어찌 되었습니까? 그 놈이 붙었다면…….”
“걱정 말고 몸이나 추슬러. 지금 태정민이 붙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무사하고, 지금부터 태정민이
완벽하게 밀착경호를 할 것이니, 반창고 떼면 다시 나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박태식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다시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태식과
형사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혜화문 쪽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띠리리리’
태정민에게 전화하여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려는 순간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혜화문 인근인가?”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먼저, 현 위치를 물었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쫒기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지금 한가롭게 쇼핑을 즐기고 있습니다.”
“쇼핑? 뭔 소리야? 자세히 보고 있는 것 맞아?”
“네. 맞습니다.”
“아주…….정신이 빠져나가버린 모양이군. 알았어. 나도 인근이니 곧 합류하겠다.”
“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는 자신의 전화를 보며 서 있었다.
“쇼핑…….그래. 정신이 외출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도움 된다.”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린 후, 곧 태정민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팀장님. 지현의 추격은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장호와 통화를 마친지 약 20 분 후, 곧바로 경호원 한 명이 말하였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난감하네. 우리 쪽에는 여자가 없는데.”
태정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현과 은주가 목욕탕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안 씻을 거야?”
목욕탕 앞에 선, 은주가 선우에게 물었다.
“난. 잠시 몇 가지만 알아보고 올게. 그리고 목욕을 끝내더라도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나오지마.
알았지?”
“걱정 마. 네가 몰라서 그렇지 여자는 목욕탕 들어가면 최소 두 시간이다. 그러니 네 일을 잘 보고 와.
그리고 전화하면 나갈게. 지현아 들어가자. 오늘 이 못된 이모가 지현이 몸에 있는 더러운 먼지를 아주
말끔하게 씻겨주고, 조금 전에 우리가 산 예쁜 옷도 입어보자.”
은주는 선우에게 말한 뒤, 다시 지현에게 말하였고, 지현은 선우를 향해 보았다.
“그래. 못된 이모와 잠깐만 있어. 삼촌이 일이 있어서 잠시 볼 일 보고 올 테니까. 알았지?”
“응. 빨리와야해.”
“그래.”
지현은 선우를 안아주며 말했고, 선우도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태정민이보고 있었다.
“추선우. 이동합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추선우는 목욕탕 앞에서 주위를 살핀 뒤, 곧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경호원의 말에 태정민과 설장호도 함께 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추선우가 목표는 아니지만, 목욕탕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일단 외부로부터 어느정도는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기에, 외부에서 움직이는 추선우를 추격하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한 편. 목욕탕에서부터 홀로 움직이고 있는 추선우의 뒤를 쫒고 있는 태정민과 설장호였다. 태정민은
혜화문 인근에서 다시 북정마을로 향하는 그를 보며 설장호에게 물었다.
“이틀 동안 지현을 데리고 움직였으니, 자신이 볼 일을 보지 못했었지. 아마도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을까?”
태정민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는 듯하였다. 이틀 전, 불연 듯 찾아온
지현으로 인하여 이틀 동안 추선우는 다른 일정을 전혀 보지 않았다. 오로지 지현의 곁에 붙어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은 국정원에서 CCTV 로 확인했었다.
“쌍다리입니다.”
북정마을로 오르는 길인 쌍다리 앞에 멈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추선우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쌍다리
앞은 오전에, 모든 추격을 따돌렸던 마지막 장소였다.
“아직 인근에 형사들이 많습니다. 오전에 있었던 박태식 팀장의 일로 인하여 형사들이 주변정리를 하고
있는데, 왜 다시 이곳으로 왔을까요?”
“그야…….나도 모르지. 일단 좀 더 살펴보자. 그리고 저 형사들은 이번 일을 모른다. 박태식과 같은
팀들도 아니고, 또 내가 받아들인 형사들도 아니야, 단지 오전에 있었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온
형사들인데, 문제는 이번 사건의 주범이 석강수라는 것이다. 저들도 필시 인근 CCTV 를 확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석강수는 물론, 지현이와 추선우의 얼굴도 공개된다. 일단 박태식에게 말해서 저들이 이
일에서 손 떼도록 해 두어야겠군.”
추선우가 이곳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지나쳐 갈 일이었다. 오히려 추선우가 다시 이곳으로 향한
것이 일을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설장호에게 알려주는 역할까지 해 주었다.
“안돼요.”
그러자 지현은 재빨리 몸을 바로 세우며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미안해. 난 그냥 목걸이가 예쁜데 내가 때 타월로 너무 밀어서 혹시나 목걸이에 흠집이라도
생길까해서…….”
“이 목걸이…….아버지께서 준거에요. 그리고 만약에…….만약에 아버지나,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때…….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지현은 목걸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목걸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지현의 말을
들은 후, 은주는 목걸이에 시선을 주었다. 어린 지현에게 그런 말을 남길 정도면 지현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미래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 딸에게 그런
말을 남겼을 리 없을 것이었다.
“이모는…….그냥 예뻐서 그런 거야. 네가 싫다면 계속하고 있어. 하지만…….몸에 붙은 더러운 때는
모두 씻자. 아주 문지르고 문질러도 계속 나온다.”
은주는 잠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바꾸기 위하여 웃으며 말했고, 지현도 자신의 손에 목걸이를 꽉 쥔
채, 다시 등을 돌려 그녀의 앞에 앉았다.
은주는 지현의 등을 밀어주며, 다시 한 번 목걸이를 보았다.
한 편. 추선우는 여전히 쌍다리 주위만을 맴돌고 있었다. 이에 설장호와 태정민도 덩달아 그 주변을 더욱
더 자세히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북정마을로 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뭘 특별히 행동하는 것도 없고, 당최 모르겠네요.”
쌍다리 앞에 도착한 지, 어느덧 30 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쌍다리 주변만을 맴돌고 있는 것을 두고 태정민이 말했다.
“지금 즉시, 쌍다리 인근 주변 CCTV 를 모두 확인해봐. 나와 태정민이 보일 것이고, 추선우도 간간히
보일 것이다. 그 외에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만 한 놈이 있는지 확인해봐.”
이에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연락하여 주변을 확인토록 명령 내렸다. 두 사람의 눈은 추선우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니, 다른 수많은 눈을 이용하겠다는 그의 뜻이었다.
“실장님…….저기.”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태정민이 어느 한 쪽을 주시하여 보고 있었고, 곧 뭔가 의문점을 발견했는지,
설장호에게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추선우가 정확히 태정민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설장호의
눈빛은 추선우가 향하는 곳, 태정민이 가리킨 곳을 향해 아주 매섭게 집중되어 있었다.
“긴장해라 태정민…….”
“네?”
“우리가 찾던 놈이 한 놈 더 나타났다.”
설장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리는 듯 들리고 있는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의
시선에도 자신의 눈으로 본 인물이 점 차, 확연히 들어오고 있었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였다.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석강수는 아직도 쌍다리 인근에 있었다. 수많은 형사들이
현장에서 사건 수습을 하고 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현장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추선우가 다시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를 찾고
있었다는 듯, 그의 곁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마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를 약속이나 한 듯, 한 명은 기다리고 있고,
한 명은 찾아오고…….”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은 물론, 각 부처 수장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를 믿으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고, 국정원장은 그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면, 지현마저 위험해 질 것이라 말하였었다.
그리고 지금…….자신의 믿음이 불신으로 바뀔 수도 있는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 할까요? 더 붙을까요? 아니면 이쯤에서 지원요청을…….”
“확인한다. 추선우와 석강수. 두 놈이 한통속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귀로 직접 듣는다.”
“네? 그럼 지금 지원 없이 석강수라는 저 괴물과, 추선우를 모두 상대하겠다는 뜻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태정민은 직접 석강수에 대해 그의 힘을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박태식을 비롯하여 형사 일곱 명을 곱게 눕힌 오전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설장호 또 한, 석강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황에, 단 둘이서 저 괴물 같은 두 명을 상대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지원요청해도 그들이 도착하면 이미 현장에는 우리 둘 밖에 남지 않는다. 무의미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저…….형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설장호의 말을 듣던 중, 태정민은 현장 수습을 하고 있는 형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이 일에 대해 저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들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라
여겨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설장호는 석강수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시죠.”
곧 태정민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앞장서자, 설장호는 그의 뒤를 따르며 미소를 지었고, 곧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수많은 형사들을 한번 힐끗 보며, 석강수와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가 움직이자, 석강수는 굽이진 골목 안으로 들어섰고, 곧 추선우도 그 골목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조금 떨어지자.”
쌍다리를 지나 굽어진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시야에서 추선우가 잘 보이지 않자, 조금씩 더 다가선 것이,
그와 거리를 10 미터도 채 벌리지 않고 있는 것에 설장호가 앞서 걷는 태정민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골목 모퉁이. 추선우가 그 모퉁이를 돌자, 다시 빠르게 따라붙었고, 고개를 살짝 내밀자마자,
추선우의 등이 약 5 미터 정도 앞에서 보임과 동시에, 약 10 미터 정도 앞부분에서 석강수가 다른 방향을
보며 서 있는 것이 태정민의 눈에 보였다.
“젠장…….간 떨어지는지 알았네.”
태정민은 빠르게 몸을 숨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설장호도 태정민의 곁에 바짝 붙어서, 혹시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까하여 귀를 세우고 있었다.
‘띠리리리’
“!!!”
아주 조용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태정민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고, 석강수는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추선우를 향해 잠깐 돌린 뒤, 그를 향해 손가락을 뻗어 좌우로 흔든 후, 곧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추선우도 그 즉시 다른 골목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그 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젠장…….”
그리고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서 무음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전화기를 보며 쓴 소리를 내뱉었고,
설장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그를 지나쳐, 이미 모습을 다 감춰버린 석강수와 추선우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야!”
곧 태정민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뵙겠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은 곱창에 소주한잔하자.”
태정민은 그에게 인사한 뒤 말하였고, 설장호는 곧 석강수가 서 있는 전방을 향해 걸으며 말하였다.
설장호의 뒷모습을 보며 태정민은 서둘러 목욕탕 방향으로 움직였고, 설장호는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정확하게 전방을 향해 주시하며 걷고 있었다.
“석강수!”
설장호는 약 10 미터 정도 거리를 둔 후,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목욕탕으로 향하던 태정민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았고, 골목 한 쪽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추선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이거…….아무리 내가 영구제명 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배는 영원한 선배 아닌가…….설장호.”
몸을 숨기고 있던 석강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고, 검은색 재킷에 검은색바지,
그리고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렇지…….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지…….하지만 말이야. 나에게 선배란 것은 존중을 의미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선배는 선배라 부르지도 않지. 나를 잘 알면서 선배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
테고…….”
설장호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지금까지 추선우의 뒤를 쫒으며, 추선우를 볼 때 나타났던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날카로움을 보이고 있었다.
“이 마을. 참 좋다. 굽이진 골목길로 인하여 몸을 숨기기에도 좋고, 또 사람들도 적고. 비명소리를 듣고
그 누가 찾아온온다고해도 굽이진 골목으로 인하여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참 좋다.”
석강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골목은 상당히 굽이진 곳이
많았다. 길게는 몇 십 미터까지 쭉 뻗어있지만, 대부분의 골목들은 5 미터 10 미터도 못가 다시 굽어지고,
또 다른 골목과 만나며 또 굽어져 있었다.
“한 가지만 묻자. 왜 그런 것인가?”
“왜? 아하…….이창민을 죽인 것? 그것을 묻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이유는 간단하지 않겠나. 국정원에서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나를 살인범으로 몰아 영구제명 시켰다. 비록 살인범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아,
철창신세는 면했지만, 인생이 바뀌어버렸지. 그래서 생각했다. 이미 찍힌 낙인이니, 그 낙인에 맞는 일을
해보자 하였다. 마침 나의 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더군. 그래서 잡았지.
아주 따뜻한 손을 말이야.”
설장호의 표정은 더욱 더 날카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입으로 누명이라고 말하니, 그 누명을
벗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명을 진실로 바뀌게 해버린 그의 결정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묻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많을수록 일은 복잡해지는 것이다. 질문보다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라.”
설장호가 곧바로 또 하나의 질문을 하려하자, 석강수가 다시 시선을 설장호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이제
그의 눈빛도 처음과는 달라보였다. 눌러쓴 모자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시선. 진정 독기를 품고 있는 듯 한
그의 눈빛이었다.
“이장구는!”
한 편. 목욕탕으로 향한 태정민은 경호원 팀이 잠복하여 있는 차량으로 올라타자마자 곧바로 물었다.
“저깁니다.”
한 경호원이 손가락으로 목욕탕에서 좌측으로 약 10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액세서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이장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젠장…….청와대 경호원들입니다.”
태정민과 함께 내린 경호원은 지난 날, 방배역에서 강철호에게 일격을 당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그를
놓쳤던 두 명이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강철호가 이장구를 보며 말했다.
“오히려 더 확실해졌다. 저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지현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일단
네가 저들을 유인해라. 난 지현을 찾아보겠다.”
“알겠습니다.”
이장구도 태정민을 보았다.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이장구가 말했고, 강철호는 어제
이들을 쉽게 상대한 기억이 있기에, 다가서고 있는 그들을 향해 오히려 다가가고 있었다.
“어제의 수모…….오늘은 돌려줘야지.”
“보는 눈들이 많으니, 괜한 민폐를 일으켜서는 안 돼, 사람의 유동이 적은 적당한 곳으로 끌고가서 죽기
전까지만 패줘.”
“네. 팀장님.”
경호원의 말에 태정민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의식한 듯 말하였고, 곧 답을 한 경호원이 아주 빠르게
강철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장구!”
그리고 태정민은 두 명의 경호원이 움직임과 동시에 이장구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그를 향해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하였고, 이미 자신에게 경호원 두 명이 빠르게 다가오자, 강철호는 이장구를 향해 다가서는
태정민을 붙들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어제일은 우리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냥 키만 큰 놈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주먹이 맵더라.
그래서 오늘은 우리 주먹도 좀 맵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어때? 이런 곳에서 힘자랑 해봤자, 손해 보는
놈은 너다. 적당히 한적한 곳으로 움직이자.”
경호원은 태정민의 말처럼 그의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강철호를 유인할 목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강철호는
태정민을 피해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이장구를 걱정하는 듯, 쓴 표정을 지으며 두 경호원을
노려보았다.
경호원의 말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주먹질을 하면, 자신에게 이득 볼 것은 전혀 없었다. 경찰이 와도
저들은 대통령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기에, 결국 자신만 당하는 것을 알고서 경호원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강철호였다.
이미 한 차례 이들에게 자신의 주먹맛을 보여주었으니, 자신에 차 있었던 강철호였다.
“추선우…….”
“추선우? 장호 네가 조금 전, 나에게 말한 놈이 이놈인가? 우연이군. 난 이놈이 추선우란 것은 몰랐지만,
네 말대로 난 이놈을 만나고 싶었다.”
설장호가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자 석강수가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설장호를 본 뒤, 곧바로 시선을 돌려 석강수를 보았다. 이미 설장호는
사당역에서 한 번 마주쳤기에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마주친 인물. 목소리만으로
자신에게 위압감을 선사해준 석강수를 다시 보며 서 있었다.
“추선우. 물러나라. 지금까지 네가 한 일과 지금의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저 놈은…….”
“당신이…….지현의 아버지를 죽인 놈인가?”
“…….”
설장호는 추선우를 뒤로 물러나도록 말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추선우는 석강수를 향해보며
물었고, 그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석강수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예사롭지 않다고는 느꼈다. 역시 예상대로 거칠군. 이보게, 정의의사도…….네가 무슨 영문으로 내가
잡을 타깃을 안고 다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상대를 잘 못 만난 듯하다. 난 지금까지 내가 찍은
타깃을 단 한번도…….”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네가 지현의 아버지를 죽였는지 만 말해.”
“…….”
석강수가 긴 연설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연설이 시작되고 난 뒤, 곧바로 추선우의 격한 물음에
석강수의 이가 꽉 깨물어졌고, 설장호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집중되었다.
“이보게 장호. 내가 지금 이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다는 것은…….내가 그만큼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감히…….나에게 저따위 말을 하는 어린놈을 앞에 두고, 내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말이야.”
석강수는 매서운 눈빛을 설장호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인간이 되었다기보다. 천하의 석강수를 잡아먹을 신성이 등장한 것에 겁먹은 듯 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상황 아닌가?”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그러자 석강수의 주먹은 더욱 더 강하게 쥐어지고, 꽉
깨문 이는 어스러질 듯 빠드득거리고 있었다.
“많이 컸다. 설장호. 내 앞에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애송이가 이제 아예 나와 말장난을 하고
있구나.”
“조금 전에 네가 말했지? 입이 떠벌리는 많은 말은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이야. 네가
이창민을 죽였다는 것이 확실시되었으니. 더 이상 말은 하지말자. 내 임무 상…….내가 죽더라도 너를
잡아야하니 말이야.”
설장호는 조금씩 석강수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석강수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설장호를 보았고,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고 있는 추선우를 마저 보았다.
“장호야.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어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내가 그토록 가르치지 않았나?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딱 그 짓이다.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 들어오는 짓…….그렇게 죽고 싶은가?”
“여전히…….쓸모없는 말이 많네!”
자신을 상대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한 설장호를 보며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도록 말하자,
곧바로 추선우의 입에서 격한 말이 다시 나왔다. 그 순간 설장호의 걸음도 멈추었고, 설장호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석강수의 시선이 추선우에게 돌아섰다.
“지금…….나에게 한 말인가?”
석강수의 매서운 눈빛이 추선우에게 고정되며, 여전히 꽉 깨문 이를 한 채, 물었다.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미련한 짓이다? 그래…….진정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하지만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그 자리…….기꺼이 찾아가보고 싶지 않을까?”
추선우는 석강수를 정확히 노려보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넌. 그만 물러나라 추선우. 이제부터는 내가 처리한다. 넌 지현이를 보호하고 있지만, 민간인이다. 이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
설장호는 추선우를 막아 세웠다. 진정 젊은 혈기로 자칫 석강수에게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송장하나
치워야 하는 상황까지 전개될 것이 뻔하였다.
“아니요. 전 지현을 지켜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이놈을…….”
“지현을 지킨다면 지현이 곁에 있어야지 왜 여기에 있어!”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오히려 석강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설장호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추선우의 시선이 서서히 설장호를 향해 돌아섰다.
“네 말처럼…….지현이를 지키고자 하는 놈이 지현이를 버려두고 여기에서 뭐하나? 지금 지현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건가? 지현이 곁에 네가 어제 전철역에서 마주쳤던 운전기사가 붙었다. 그 놈이…….
지금 지현의 곁에 붙어있다.”
“!!!”
추선우는 모르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전화하기 전까지 목욕탕에서 나오지 말라는 당부는 하고 왔지만,
마음 속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띠리리리’
자신에게 순순히 두 팔을 내밀은 이장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순간,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어찌됐어?”
“지금 막, 이장구는 잡았습니다. 아니…….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두 손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강철호는?”
“지금 두 명의 경호원이 그에게 붙었습니다. 곧 그도 잡힐 것입니다.”
태정민은 이장구를 보며 설장호와 통화하고 있었고, 이장구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며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곧. 추선우가 목욕탕 앞에 도착할 것이다. 지현이 나올 수도 있으니, 지현의 눈에 이장구가
보이지않도록하고, 넌 추선우를 만나라.”
“네? 추선우를 만나라고 하는 것은…….”
“그 놈. 직접 보니 눈빛이 진심이었다. 거짓이 없었어. 그를 만나서, 우리는 너를 쫒는 것이 아니며,
지현을 데리고 가지도 않겠다고 말해. 단지…….뒤에 붙어서 움직이겠다는 말만 해.”
“…….”
태정민은 쉽게 답하지 못하였다. 이창민대사의 유일한 핏줄이며, 이 모든 사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증인과도 같은 사람이 지현이다. 그런 지현을 듣도 보도 못한 민간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민간인입니다. 그에게 지현을…….”
“그래. 민간인이지. 하지만 지금현재, 유일하게 지현의 마음을 얻은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열 살 된 아이의 마음도 헤아려야한다.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도록 해서는 안 돼.”
태정민은 굳은 표정으로 통화하였다. 설장호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을 경호하는 자신들보다
더 추선우를 믿고 있는 설장호의 뜻을 마냥 받아들이기에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수사의 최고 권한은 설장호에게 있었다. 그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태정민은 이장구를 끌고 다시 경호원 차량으로 왔다.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는 이장구를 안에 태웠고,
차량 안을 보았다.
“강철호는 아직이야?”
“네. 형호와 관식이가 갔는데, 그 한 놈을 이리 오래 상대하니 저희들도 이상하다고 여겨지지만, 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기다리고만 있는 중입니다.”
태정민의 눈빛이 변하였다. 그리고 이장구를 향해보았다. 이장구는 아무런 말없이 차창 밖을 보고만
있었다.
“추선우다…….”
같은 시각. 목욕탕 앞에 있던 경호원의 눈에 추선우가 보였다.
“팀장님께 알려야겠군.”
태정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액서사리 매장 옆 골목에서 태정민이
뛰쳐나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태정민이 골목에서 나오기 바로 전, 추선우가 그 골목을
지나쳐 목욕탕 앞으로 움직였기에,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팀장님의 행동이 이상한데. 내가 나가볼 테니 이장구를 잘 보고 있어.”
한 명의 경호원이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쉽게 태정민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액서사리
매장으로 가려면 목욕탕을 지나쳐가야한다. 하지만 그 앞에는 추선우가 서 있었다.
“실장님. 추선우가 목욕탕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추선우의 좌측으로 약 10 미터 거리에 태정민
팀장입니다. 왠지…….태정민 팀장의 표정이 뭔가에 놀란 듯 한 표정입니다.”
설장호가 탄 차량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가장먼저 시선을 준 곳이 목욕탕 쪽이었고, 곧 그 옆으로
태정민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일단. 경호원 차량에 이장구가 있을 것이다. 그를 인계받아 국정원으로 호송하고, 두 명만 나를 따라
움직인다.”
“네. 실장님.”
설장호의 눈에도 태정민의 행동은 평소답지 않았다. 진정 무언가에 놀란 듯, 주위만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약 10 미터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추선우를 태정민이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설장호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삼촌.”
“모두 대기!”
설장호를 비롯하여 현장에 남은 인원이 모두 추선우의 눈을 피해 태정민에게 가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목욕탕에서 지현이 나오며 추선우를 불렀고, 추선우는 지현을 보자마자 곧바로 안아 올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곧 은주가 나오며 물었다.
“일단. 벗어나자.”
추선우는 은주의 물음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둘러 현재위치를 벗어나고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추선우와 지현이 움직이는 방향에 있던 설장호 및 대원들은 급히 몸을 숨겼다.
이미 그와 한차례 만났기에, 굳이 몸을 숨기며 피하지 않아도 되지만, 설장호는 지현의 마음이 안정되어
보이는 지금의 순간에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은 것이었다.
추선우가 지나쳐 간 후, 설장호는 곧 한명의 대원에게 추선우의 뒤를 쫒도록 명령 내렸고, 자신은 곧바로
태정민이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집으로 가자.”
한 편. 혜화문 인근을 벗어난 후, 추선우가 은주에게 말했다.
“집? 또 그놈들이 있으면…….”
“아니. 없어. 그러니 집으로 가자.”
추선우는 쌍다리 인근에서 설장호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쫒고자 한 인물이 아니며,
지원하는 인물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이 무력으로
상대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장구를 잡았습니까?”
같은 시각. 차현태에게 이장구의 체포소식이 전해졌고, 그는 집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네. 조금 전, 국정원 조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설장호 실장이 직접 조사할 것이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이번 사건의 전말도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입니다.”
차현태는 당장이라도 국정원으로 가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는
그가 쉽게 움직이도록 허락하지 않는 자리였다.
국정원 조사실에는 이장구와 설장호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외부로 국정원장 및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조사내용을 듣기 위하여 자리하였다.
조사실에 앉은 이장구의 눈에는 설장호만 보일 뿐이지만, 조사실 안, 대형 거울을 통해 그 안에 자리한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의 모습과 대화내용을 다 들을 수 있었다.
‘똑똑’
조사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노크소리가 들리고, 국정원 소속 대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틀 전, 이창민 대사가 탄 차량 안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복원하였습니다.”
“…….”
대원의 말에 이장구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그가 들고 있는 작은 USB 를 보았다. 시간을 딱 맞춘 듯,
이장구가 체포된 후, 차량 안에 설치되어 있던 파손된 블랙박스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도 모두 복구가 끝난
상태였다.
대원은 곧 노트북에 USB 를 연결하였고, 그 영상은 외부에 있는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모두가 함께
공유하여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복원된 영상을 재생하자, 지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고, 곧 이창민이 지현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장구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 설장호는 노트북화면을 돌려 그가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지현이가 산 선물을 아저씨가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우리 지현이가 며칠을 다니며 고른 선물이니
말이야.-
이장구의 눈동자는 더욱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두 부녀가 나누는 대화는 진정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상 속에서는 지현의 해맑은 표정이 그대로 찍혀 있었고, 이창민과 그의 부인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지현이 고른 선물이 담긴 가방은 이창민의 부인 옆으로 놓여있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치마 속으로 빠르게 숨어들어가는 지현의 모습도 보였다.
곧 이장구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가 차량에 올라타는 영상이 나왔다. 이장구는 영상을 보며 자신이 입은
갈색점퍼를 손으로 꽉 잡았다.
차량이 출발하였고, 이창민은 이장구에게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하지만 이장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이창민의 말은 들렸지만, 이장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기는 어딥니까?-
1 시간여가 지난 후, 이창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장구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장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차량에서 곧바로 내렸고, 이창민의 표정이 굳어진 채, 차량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석강수…….”
영상에는 곧 한 사내가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과 함께, 진정 차갑고 묵직한 어투가 들렸다.
그 순간 설장호의 입에서는 석강수의 이름이 불려졌다.
-누…….누군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죠. 왜? 왜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 또 한, 그 왜? 라는
것에 대한 답은 모릅니다. 그냥 대사님의 목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청을 들어주는
것뿐입니다. 먼 외국 땅에서 살고 있으면, 이 조그마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냥 눈감고 계시지
그러셨습니까? 왜 굳이 사사건건 다 캐고 다니셔서 생을 일찍 마감하려 하십니까? 뭐…….더 긴말을 하면
대사님의 마음만 더 아플 테니 이쯤에서 접겠습니다. 그럼…….첫 대면인데 저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이창민의 떨리는 목소리에 이어, 석강수의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가 차안에서 들렸지만, 그 때도 지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지현의 어머니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더 꽉 잡아, 치마속에 있는 지현의 모습이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미…….미안합니다.”
이장구의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을 푸는
인물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더 날카롭고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이창민대사 부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지현에게 절대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 누구보다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기어이 설장호의 목청이 커졌다. 그는 꽉 쥔 두 주먹을 풀어 그의 멱살을 잡은 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고, 이장구는 계속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설장호에게는 태정민과 같은 어른 공경이란 없었다. 설장호에게 이장구는 그저 죄인일 뿐이다.
죄인에게는 그 이상의 어떤 대우도 해주지 않는 인물이 바로 설장호다.
어제 까지만도 후회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장구였다. 하지만 영상…….차량 내부를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 속, 지현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였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고, 다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두 번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때의 시간이었다.
“이장구를 수감하고,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누구도 이장구를 만나게 하지마라. 그리고 국정원소속
대원을 현재 추선우가 있는 곳으로 보내서 그를 경호하라.”
“네. 실장님.”
설장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장구는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뿌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더 없었고, 자신의 의뢰로 일을 진행하였던 석강수와 강철호도 막아 세우지 못했다.
설장호는 차가운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조사실을 나섰고, 곧 앞 서 출발한 각 부처 수장들의 뒤를 따라
청와대로 향하였다.
“설장호 실장.”
“네. 대통령님.”
다시 조용해진 가운데 차현태는 설장호를 불렀다.
“지금 이시간부로 지현양의 신변보호 책임자는 설장호실장입니다. 각 부처 수장들께서도 지현양에 관한
것은 설 실장에게 모두 권한을 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수장들께서는 곧 미국에서 돌아오는 외교부장관과
함께, 그 뿌리라는 조직에 대해 알아내십시오. 이창민대사가 하고자 했던 말 중, 단 일부라도
알아내십시오.”
수장들은 쉽게 답하지 못하였다. 만에 하나 설장호의 말처럼 지현이 이창민대사가 하고자 한 말이 기록된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현이었다. 그 중요한 인물을 민간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차현태의
말처럼 그 누가 의문의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또 한. 국정원의 설장호실장, 검찰청의 강서진검사, 경찰청의 박태식 형사. 청와대경호실의 태정민팀장.
이 네 명은 지금 이 시간 이후로, 항시 총기휴대를 명합니다. 공포탄은 없습니다. 초발부터 실탄을
장전하세요. 그 어떤 누구라도 지현양의 목숨을 노린다면, 경고사격도 없습니다.”
“!!!”
또 다시 놀란 눈들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네 명을 지목하여 그들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휴대하도록 명령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고사격이 없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의 설장호와 경호원인 태정민에게 총기란 낯설지 않은 무기였다. 그들은 총기휴대가 기본인 만큼,
중대한 사건을 많이 처리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박태식과 강서진은 달랐다. 박태식은 그나마 현장경험이 많기에 총기에 관해 거부감은 적겠지만,
강서진은 처음으로 총을 잡아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추선우와 지현양은. 이 네 사람에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단독만남은 불허합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지현양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네 명 중, 최소 한 명과 함께 동행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차현태의 말에 모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이번 사건에서 믿을 수 있는 네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조차도 믿지 말라는 뜻과 같았다.
“이 회의가 끝나면, 호명 된 네 사람은 그 즉시 추선우와 지현을 만나세요. 그리고 내 뜻을 전하세요.
우리가 지현양을 뺏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추선우에게 지현양을
잘 경호하도록 부탁하세요. 비록 민간인이지만, 그에게 지현을 법적으로 경호할 수 있는 권한을 주세요.”
이어지는 차현태의 말은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돈이 오고 있었다. 진정 경호원에 대한 이력이 전혀 없는 인물에게 중요한 인물의 경호를 맡긴다는 그의
말이었다.
어두운 밤까지 이어지던 회의가 끝났다. 각 부처 수장들은 그 즉시 자신들의 부처로 서둘러 이동하였고,
설장호는 태정민과 박태식, 그리고 강서진을 따로 불러 모았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이들 역시 그 조직과 관련이 없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믿도록
하였다. 대통령의 명령으로 항시 실탄이 장전된 총을 휴대한다. 만에 하나 믿음이 불신이 되는 그 순간.
자신의 품에 있는 총은 서로의 심장을 향할 것임을 일러주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설장호는 이 세 명과 오랜 친분이 있다. 하지만 태정민은 강서진과의 친분은
없다. 하지만 설장호에 의해 이들의 친분이 보장되는 셈이었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간다. 현재 추선우가 있는 곳이다.”
“네? 북정마을요? 그 놈도 참 대단하네요. 오늘 오전에 북정마을에서 죽도록 도망쳤는데, 또 북정마을로
갔어요?”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아마, 나와 조우가 있었던 쌍다리에서 내가 했던 말뜻을 잘 이해한 모양이다. 우리가 적이
아니며, 동맹이라는 것을 돌려 말했지만, 그 말뜻을 잘 헤아린 모양이지. 서둘러 이동한다. 현재 그 곳에
나가있는 우리 국정원 대원들이 알려준 위치이며, 이미 열 다섯 명의 대원이 나가 있긴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다.”
설장호는 이미 대원들로 하여금 추선우의 위치를 전송받았고, 그 일대를 경계서고 있는 국정원 인원들에
대한 말도 전하였다.
곧 네 사람은 청와대를 나서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선우야. 또 나갈 거니?”
같은 시각. 다시 집으로 찾아온 선우와 지현에게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준 후,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녀는 잠이 든 지현을 무릎위에 앉혀 놓고, 조금씩 흔들어주고 있었고, 은주는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니요. 오늘은 이곳에 있을 것입니다. 염치없지만, 아주머니께서 지현이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그래. 나야 뭐 상관없다만, 또 그들이 찾아와서 소리치면, 지현이가…….”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우는 아주머니를 안심시켜주고 있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주머니와 은주에게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넌? 넌 어쩔 거야?”
은주가 물었다.
“나…….잠시만 나갔다 올게.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굴 만나?”
“있어. 꼭 만나서 물어볼 말이 있고, 꼭 답을 들었으면 하는 사람…….금방올거야. 그러니 그때까지만
지현이좀 잘 부탁해.”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주머니는 지현을 안고 있기에 함께 일어서지 못했지만, 은주가 함께
일어서서 그를 보았다.
“나오지마. 지현이 곁에 있어줘.”
“네가 걱정돼서 일어선 것 아니야. 그냥…….그냥 물 좀 먹을까해서…….”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주머니. 저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늦지 않을 테니, 지현이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
선우는 잠 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나섰다. 은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고, 아주머니도,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문을 열고나선 선우를 보았다.
“추선우는 아직 그대로인가?”
같은 시각. 설장호는 북정마을 초입부분에 도착한 뒤, 곧바로 대원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네. 아직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
“왜?”
“추선우입니다.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래? 지현도 함께 있는가?”
“아닙니다. 혼자입니다. 아마 지현은 집에 두고 나온 모양입니다.”
“지금 올라가고 있으니, 그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 그리고 항시 그 집 부근에는 대원들을
배치해둬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그 어떤 누구도 집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설장호 일행은 서둘렀다. 추선우가 집밖으로 나왔다는 보고와 함께, 혹시 그와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추선우씨…….”
추선우는 집 바로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약간 아래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내들을 보았다.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잠시만…….기다리십시오. 곧 실장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당신을 만나고자 하시니…….”
“실장?”
“네. 역삼역과 사당역, 그리고 오늘 오후 쌍다리 앞. 당신과 마주섰던 사람입니다.”
“아…….잘됐네요. 나도 그 사람을 만나려고 나온 것인데, 찾아온다고 하니, 내가 찾아가야하는 수고를
들게 해주네요.”
추선우는 설장호를 만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들었던 말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잠시 후, 아래쪽에서 설장호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추선우는 그 중에서도 정확하게
설장호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는가?”
설장호가 도착하였다. 그는 추선우를 한 번 본 후, 곧 대원들에게 물었다.
“네. 줄 곧, 인근을 경계하고 있지만, 별다른 징후는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대원들을 모두, 집 인근에 집결시키고, 경계를 더 강화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 대원들을 모두 추선우의 집 인근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추선우를 향해보았다.
“태정민.”
“네. 실장님.”
“넌…….지금부터 추선우와 함께 지낸다.”
“네?”
“이 놈에게 경호원이 무엇인지, 그 기본부터 가르쳐라.”
태정민은 그 즉시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못하였다. 설장호는 대통령이 직접 인정한
이번사건의 지휘권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명령은 곧 자신이 경호하고 있는 대통령의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매서운 눈빛으로 추선우를 향해보며 답했다.
“박태식은 믿을만한 형사들을 몇 추려서 북정마을 인근을 계속 경계한다. 그리고 강서진은…….넌
박태식을 지원해.”
“네? 실장님. 저 이래봬도 검사입니다. 검산데 형사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라는 것은…….”
“그럼 네가 일선에 서든가? 그건 너희둘이 알아서하되, 절대 구멍을 만들지마라. 작은 구멍이라도
쥐새끼는 충분히 들어온다.”
강서진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스로 인정되는 그의 말이었다.
박태식과의 관계상 자신이 지휘권을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박태식에게 명령을 받아야
할 처지인 그녀였다.
“그럼…….지금 이 순간부터 정해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다.”
“잠깐만요.”
설장호의 마지막 말이 있은 후, 모두 움직이려던 찰라, 추선우가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무엇인가?”
“뭔가…….착오가 있는 듯 한데요. 난…….당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신분은 아닙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함께 지내야하며, 왜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저들이 막아서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현이
때문에요? 지현이의 안전을 위해 마치 결계처럼 이 마을을 완전 뒤덮고 있겠다는 뜻인가요?”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도 추선우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지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둘러싸고 있는 것을 지현이 본다면, 과연
잠깐이라도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할까요? 천만에요. 지현은 불안해 할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친다면,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과거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에 대한 것은
생각하고 움직이신 것입니까? 조금 전 나에게 말했죠? 경호에 기본도 되어 있지 않다고요. 네. 당신의
말을 들으니, 진정 난 경호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당신들은 경호에 기본이 아닌…
….인간의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듯합니다.”
“뭐야!”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이 기어이 큰소리쳤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추선우의 곁으로 한 발 다가서서
소리쳤고, 곧 설장호가 그를 막아 세웠다.
“인간의 기본?”
설장호가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네. 인간의 기본. 당신들은 지금 모든 것을 당신들의 임무로만 계산합니다. 지현의 안전. 그래요.
지현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렇게 결계마냥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최고겠죠.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또 이 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당신의 말처럼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이제부터 안전하니 마음껏 놀라 하는 것보다. 진정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도
평소처럼 지낼 수 있도록, 주변 모든 것의 그림자처럼 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지현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도 불안해하지 않으며, 진정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장호는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그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보고만 있었다.
“추선우.”
“말씀하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부름에 툭명스러운 어투로 답했다.
“지현의 안전…….네가 책임진다고 확답을 줄 수 있는가?”
“말했지 않습니까? 지현은…….내가 지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들이 지현을 죽이고자 달려드는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목을 노리는 놈들에게서 지현만은 꼭 지켜낼 수 있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가 원하는 확답을 주었다. 진정 목소리에 거짓이 없어 보이는 그의 말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 전까지 날카로웠던 눈빛을 풀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국가 최고기관이라는 국정원에서도 아직 지현의 목을 노리고 있는 존재에 대해
밝혀내지 못했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며, 왜? 지현이를 죽이려하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곧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칠 것이다. 그 순간이 되면, 우리가 지현의
안전에 소홀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물론 너를 지원하는 것도 소홀해 질 수 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지현을 안전하게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설장호는 민간인인 추선우에게 지금 현재 상황을 거짓 없이 말하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하여,
세 명의 눈동자는 흔들거렸지만, 설장호는 또렷한 눈빛으로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삼촌…….지현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했다. 삼촌은 가족이다. 비록 부모님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되는 것이었다.
“삼촌…….”
그리고 나지막이 그 말을 되새겼다. 집주인에게 지현을 소개할 때 했던 단 한 번의 거짓말이 이제는
자신을 지칭하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경호원삼촌. 추선우는 자신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척’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추선우에게 설장호는 새로운 휴대전화를 건넸다. 추선우는 자신을 추격하는
설장호를 따돌리기 위하여 자신의 휴대전화를 버렸었다.
“뭡니까?”
“이제부터 너와 우린 한배를 탔다. 지현에 대한 모든 것을 너에게 주는 대신, 우리의 도움도 거절 없이
받아야한다. 그것이 조건이다. 네가 지현을 경호하도록 허락하는 조건.”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건넨 휴대전화를 보았다. 충분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도망자 신세가 아니었다. 민간인인 자신에게 국가의 중요한 증인을 경호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그들의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추선우는 자신이 얻고자하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설장호의 뜻을 알았으며, 지금의 상태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였고, 설장호가 한 말처럼 지현의 그림자가 되려 하였다.
“설장호입니다.”
추선우가 집으로 향한 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였다.
“내일 아침. 뉴스에 이번 사건이 종결되었음을 발표하겠습니다. 체포한 이장구의 소행이며, 금품을 노려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이장구만으로 끝내려는 건가?”
“아닙니다. 혼란입니다. 뉴스를 통해 이번 사건이 이장구의 단독범행이라 말하여, 그 뿌리라는 놈들에게
혼란을 줄 예정입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해서…….종결과 함께 비공개로 그들의 목을 조여 보겠습니다.”
설장호의 계획이 변경되었다. 언론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있을 그들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뜻을 알렸다.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그는 그 즉시 검찰총장과 경찰총장에게 연락하여 설장호의 뜻을
전했고, 그 제물로 이장구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북정마을에는 늦은 밤이지만, 진정 어둠과 동화된 듯,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딩동’
곧 설장호가 준,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휴대전화 샀어?”
은주가 그의 휴대전화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답 없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이장구는?”
늦은 시각. 국정원에 도착한 설장호는 곧바로 대원에게 물었다. 그의 취조를 다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로 향하였기에, 자신의 궁금증 몇 가지를 더 묻고자 함이었다.
“수감실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를 찾는 사람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설장호는 혹시나 하여 물었다. 이장구를 국정원에 두고, 그를 찾는 인물이 있었다면, 그 역시 의심의
대상으로 여기려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장구를 찾은 인물은 없었다.
곧 이장구가 있는 수감실로 갔다. 늦은 시간이지만, 이장구는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자신이 입은
갈색점퍼를 꽉 쥐고 있었다.
“네가 그런다고 지현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마라. 넌…….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일 뿐이다.”
설장호에게는 죄인에 대한 그 어떤 배려는 없다. 오로지 죄인은 죄인으로만 대해주는 그였다.
“용서를 바라는 것은 아니오. 아니…….용서를 해준다고 해도 내가 그 용서를 받을 자격은 없소.”
이장구는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내일 아침…….당신은 이창민대사를 죽인 살인범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일은 네가 모든
것을 끌고간다.”
설장호는 그의 앞으로 앉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내려진 결정에 대해 알려주었다.
“역시…….그것만이 현명한 답이겠지요. 분명, 내가 깊숙이 뿌리내린 놈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언제나 그
말을 무시하지. 썩은 나뭇가지만 쳐 내면 뭐하나…….그 나무를 썩게 만드는 원인을 쳐내지 못하니, 또
썩게 되는 것이지 않겠소.”
이장구는 설장호의 계획을 모른다. 그에게 계획을 일러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설장호의 두
주먹을 꽉 쥐도록 만들었다. 그저 지나쳐가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없다…….”
하지만, 진정 있어야 할 소지품이 없었다. 바로 두 사람의 휴대전화였다. 이장구가 말한, 지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휴대전화의 행방이 사라진 것이었다.
설장호는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장구를 향해 보았다.
“이 장치가 지현의 위치를 수신 받는다면, 지현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송출할 장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서둘러 행방이 사라진 두 대의 휴대전화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두 대의 휴대전화를 찾는 것보다,
지현에게서 송출되는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 여겨 물었다.
“목걸이…….지현에게는 이창민대사가 직접 선물한 목걸이가 있소. 그 목걸이 안에 위치를 송출하는
장치가 있소.”
설장호는 그 즉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태정민에게 연락을 하였다.
“네. 실장님.”
“경계를 더 강화하라.”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늦은 밤이라 개미한마디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용할수록…….위험도는 높아지는 것이다.”
“…….”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정 어둠속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곧 그의 마지막 말에 눈매가 매섭게 변한 뒤, 시선을 돌려 추선우가 있는 집으로
향하면서 박태식에게 설장호의 명령을 하달하였고, 박태식은 잠복중인 형사들에게 내용을 다시 전달하였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추선우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떼어 내었습니다.”
추선우는 다시 지현을 아주머니 옆에 눕혔고, 아주머니는 지현이 깨지 않도록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사람은 다시 거실로 나왔다.
“가지고 나와라. 집 밖으로 나오면 태정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목걸이를 태정민에게 건네줘라.”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아무런 답 없이 지현의 목걸이를 보았다. 목걸이에는 지현의 이름을
나타내는 듯, 이니셜이 적혀 있었고, 이니셜 아래에 아주 작게 몇 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목걸이의 펜던트를 이리저리 다 살펴보아도, 위치를 추적할 만한 장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이 목걸이가 지현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까?”
추선우는 목걸이를 들어 자세히 보면서 설장호에게 물었다.
“목걸이 속, 어느 부분에 그런 장치가 있는지는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였기에,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니 확인하기 위함이다. 태정민에게 목걸이를 주고, 넌 지현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라.”
설장호는 서둘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와 달리 급박해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추선우는 목걸이의 주인인 지현의 의견을 듣지 않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현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설장호의 말을 믿었고, 통화를 끝낸 후, 목걸이를 들고, 집을 나서려 하였다.
“어디가?”
은주가 물었다.
“이 목걸이가 지현의 위치를 지금까지 알려주고 있었다고 해. 그래서 그 국정원사람에게 이 목걸이를
주려고…….”
“그 목걸이. 지현의 아버지가 지현이에게,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만 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어.
그래서 그런지 목욕탕에서도 몸에서 떼지 않았었고, 내가 만지자, 화를 내는 듯한 표정까지 지었어.”
추선우가 목걸이를 설장호게 건네준다는 말을 들은 후, 그녀는 지현에게서 들은 말을 그에게 해 주었다.
그러자 추선우는 문을 열고 나서려던 자신의 동작을 멈추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처음 들었다. 지현에게 소중한 물건. 그런 물건을 허락 없이 타인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현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향해 보았다.
“응?”
소음기 장착을 끝내자, 곧 그의 곁눈으로 집 모퉁이 어둠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태정민은 어둠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듯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기위하여, 총구를 겨눈
채,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젠장…….”
그리고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는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후, 격한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에는 집 모퉁이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에 집 인근을 경계서던 국정원소속 대원 두 명이 온 몸에 피를 흘린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정민은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박태식이 있는 곳과 반대방향의 길목 약간 아래쪽에서
두 명의 사내가 급히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실장님!-
“잠시…….나갔다 올게.”
선우는 설장호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뭔가 일이 틀어진 듯 한 그의 억양만으로 충분히 현 상태가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은주에게 말하며, 급히 나가려 할 때, 은주는
추선우의 손을 잡았다.
“그…….국정원 아저씨가 한 말…….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 그 말은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야.
그리고 그 목걸이. 지현에게는 무척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잊지 마.”
은주는 추선우에게 다시 당부하였다. 추선우는 이 목걸이를 떼어냄으로써, 지현이 안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은주는 비록 지현이 안전해 질 수 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을 잃는다는
것에, 가슴 아파 할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멀리가지 않을 거야. 이 앞에서 그 태정민이란 사람만 만날게. 그리고 너의 말처럼 가족이 지현이에게
남긴 유일한 물품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이해하였다. 비단 그녀의 말을 들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고아였다.
가족이라는 존재자체를 모르며, 그 가족이 남긴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현은
달랐다. 부모가 남긴 물품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목걸이는 이제
지현이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는 선물일 것이었다.
00036 경호원 =====================================================================
====
집을 나온 추선우는 1 층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았다.
“어찌된 일인가?”
같은 시각. 설장호는 수감실 안에서 국정원대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뜬 채, 죽어 있는 이장구가 보였다.
“제가 수감실을 지키고 있었고, 또 수감실 CCTV 를 확인하였지만, 외부에서 누가 찾아온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스스로 혀를 깨물고 자결한 듯합니다.”
이장구가 죽었다. 많은 의문을 주고, 답은 주지 않은 채, 그가 죽었다. 국정원대원의 말처럼 수감실을
찾아온 인물은 없었다. 또 한 누군가가 이장구에게 무선으로 그의 자결을 유도할만한 여건도 되지 않았다.
“일이…….더럽게 꼬이는군.”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이장구는 검찰로 송치되며, 각종 언론을 통해, 그가 밝힐
말도 많았었다. 또 한, 아침에 있을 발인식 때, 그가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설장호의 계획이 실천되기 위하여, 가장먼저 포문을 열어줄, 이장구가 죽음으로써, 설장호의 계획은 또
다시 변경되어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풀어놓겠다는 말을 하였고, 지현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 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는 말해주었다. 또 한, 그 뒤로 그가 밝혀줄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설장호의 머릿속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었다.
‘띠리리리’
독한 눈빛으로 이장구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박태식이었다.
“조용하더니 폭풍이 생각보다 빨리 몰아쳤습니다.”
“그들이 모습을 보였나?”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그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였고, 죽은 이장구를 한 번 더 본 뒤,
수감실을 나서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되물었다. 이미 이장구의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설장호였다.
“아직 그들의 모습을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형사쪽 인원 두 명과, 국정원 소속 인원 세 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습니다.”
“!!!”
설장호의 바쁜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떨려오고 있었고, 손마저 떨려오고 있었다.
“추선우는? 추선우가 지금 지현에게서 떼어낸 목걸이를 들고 태정민을 만나러 나왔을 것이다. 서둘러
목걸이를 받아서, 그 곳을 벗어나라.”
설장호는 다음 계획을 급히 알렸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하였던 일이 벌어진 것에 그의 심장소리는 굉장히
크게 요동치며 들려오고 있었다.
북정마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지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다가섰고, 그 길목에 있던 대원들을 모두
죽이고 간 것이었다. 즉. 그들은 이장구가 말한 위치추적장치가 탑재 된,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인물들이라 볼 수 있었다.
“태정민씨는 없습니다.”
곧 추선우에게 설장호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목걸이는 가지고 있나?”
“네.”
“추선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
그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의 긴박감이 다시 전해지는 듯하였다. 추선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전화를 받고
있었고, 곧 아래에서 박태식과 강서진 및, 일부 형사들과 국정원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와 만나기로 했던, 태정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지금으로써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직접, 그 목걸이를 가지고 북정마을을 벗어나라.”
방법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목걸이를 지현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만이 위급한 상황을 넘기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지현이 곁에서 또…….”
“네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지현이 곁에서 떨어져야만 지현의 위치가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는다!
서둘러!”
“!!!”
지금까지 급박하게 들려왔던 설장호의 목소리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미 그들이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또 한. 태정민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미 그들이 가까이 다가선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팟!’
“!!!”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올라오고 있던 박태식 일행 중, 어둠으로 인하여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명이 머리에 뭔가의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밀려나며 쓰러졌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이며,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추선우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박태식 일행이 올라서고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길목을 통해
빠르게 북정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원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설장호의 말을 우선 실행으로 옮겨야 될 상황임을 깨달았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국정원 소속 대원들을 보낸다.”
같은 시각. 설장호가 서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재 국정원에 있는 자신의 대원들을 모두 집합시켰고, 그
즉시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누구지?”
설장호의 말을 듣고, 빠르게 북정마을을 내려오고 있던 중, 골목 모퉁이를 돌 때, 어둠속에서 누군가
정확히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주시하여 보고 있는 것을 느낀 추선우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핏 핏 핏!’
“젠장!”
지금 상황에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자들을 자세히 보려는 것이 실수였다. 잠시 멈춘 사이, 그들은
추선우를 향해 세 발을 총을 쏘았지만, 다행히 그의 바로 옆으로 빗나갔고, 추선우는 그 즉시 쓴 소리를
내 뱉으며,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계속 쫓아와라. 지현이 아닌 나를 쫒아서 나의 눈에 너희들의 면상을 보여라.”
추선우는 자신의 뒤를 쫒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고, 진정 날다람쥐처럼 북정마을의 굽이진
골목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돌아서 내려가고 있었으며, 그의 뒤로 어둠속을 뚫고, 두 명의 사내가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들고, 역시 빠르게 그의 뒤를 쫒고 있었다.
“팀장님. 조용합니다.”
총격이 있은 후, 약 5 분 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곧 형사 한 명이 박태식에게 말했고, 그는
그 즉시 총에 맞아 쓰러진 형사의 곁으로 움직였다.
“젠장…….이 어둠속에서도 정확하게 관자놀이를 통과시켰군. 일단 너희 둘은 시신을 들고 내려가라.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 추선우의 집으로 움직인다.”
박태식의 표정은 굉장히 날카롭게 변하였다. 이미 자신의 눈으로 이 일대에 잠복 중이던 경찰과 국정원
소속 인원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직 그 장본인을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검사님도 내려가십시오. 아마…….”
“아니. 나도 이번 사건을 일선에서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조금 전, 추선우가
집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북정마을을 내려가는 것을 보았어. 그 말은 추선우가 지현의 곁에서
떨어졌다는 뜻이지. 일단 집 인근에 우리 사람이 없으니, 한 사람의 눈이라도 더 보태야하지 않겠어?”
의외였다. 검사지만, 사리구별하지 못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조금 전, 결정은 박태식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쾅!’
“제기랄!”
상대가 총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추선우의 발걸음은 자신이 평소 내딛는 보폭보다 더 넓었고, 속도가
빨랐다. 그로 인하여 평소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던 내리막길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등유를 담는
통이 쌓여 있는 곳과 부딪히며 넘어졌다.
‘핏핏픽!’
하지만 앉아서 상처를 볼 틈도 없었다. 곧바로 세 발의 총알이 날아와 그의 바로 옆 드럼통을 뚫고
들어갔고, 추선우는 다시 몸을 일으킨 뒤,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젠장. 저 놈들도 이 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하네. 내가 항상 다니는 최고의 지름길을 선택하여
내려왔는데, 그 빠르기가 나와 비슷하니…….”
추선우는 방향을 틀어 다시 내려가며 중얼거렸고, 뒤 따라 오던 그들이 방향을 틀기 전, 곧 앞에 보이는
오래되고, 약 1 미터 70 센티 정도 되는 담벼락을 짚고 단 번에 담을 넘은 후, 그 즉시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추선우는 담벼락의 좁은 틈사이로 계속하여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어느새 그들이 담벼락 앞까지
다가섰다.
‘척…….’
추선우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보일지언정, 이 좁은 틈 사이로
자신의 눈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담벼락을 향해 보고 있었고, 곧
한 명이 담벼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팟!’
“!!!”
진정 놀라 소리칠 뻔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담벼락 틈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던 얼굴만 뒤로 떼어낼 뿐,
소리치지 않았고, 그대로 좁은 틈이라도 없는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숨죽이고 붙어 있었다.
‘탁!’
“으아아악!”
“!!!”
선우는 자신의 머리위로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들고 있던 총을 잡은 손을 아주 빠르게 잡은
뒤, 그대로 몸을 낮추었고, 그 힘에 의해, 총을 들고 있던 사내의 팔은 담벼락에 걸쳐지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고통을 호소하는 고함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북정마을 꼭대기에서
지현이 있는 집을 경계 서던 박태식과 강서진 및, 모든 대원들이 놀란 눈으로 소리가 들린 아랫방향을
향해보았다.
하지만 워낙 굽어진 곳이 많고, 어둠이 짙어 어디서 소리가 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픽픽픽픽픽!’
사내의 팔이 부러지며, 총을 놓쳤고, 그는 주저앉아 부러진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을 때, 다른 한 명은
추선우가 몸을 숨기고 있는 담벼락을 향해 여러 차례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팔이 부러진 그가 떨어뜨린 총을 주었고, 곧바로 몸을 바짝 땅에 붙인 후, 낡은 벽을 뚫고
지나쳐가는 총알을 피하고 있었다.
‘탁!’
“!!!”
잠시 후, 두 명 중, 한명은 여전히 총구를 겨눈 채, 한 발 한발, 총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팔이
부러졌던 사내가 몸을 일으킨 뒤, 담벼락을 짚고, 곧바로 담을 넘었다.
“쥐새끼!”
“!!!”
담을 넘어선 그가 담벼락너머, 몸을 숙이고 있던 추선우를 본 뒤, 진정 이를 꽉 깨문 듯 한 목소리로
소리쳤고, 추선우는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운 후, 그를 보았다.
‘팟!’
“젠장!”
그 순간, 담벼락 건너편에서 다른 한명이 추선우의 머리 부분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다행히 담벼락
끝부분에 맞아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추선우는 그 즉시 다시 몸을 숙였다.
‘퍽!’
담 너머 날아오는 총알은 피했지만, 그 순간 담을 넘어온 사내는 몸을 숙인 추선우의 얼굴을 부러지지
않은 다른 한 팔로 그대로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몸이 옆으로 미끄러지자, 담을 넘지 않고,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의 눈에 담벼락 틈 사이로 추선우의 몸이 간간히 보이자. 빠르게 담벼락을 향해 다가섰다.
‘탁 탁탁 퍽!’
추선우는 밀리는 몸의 균형을 잡고자, 담벼락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자 담을 넘어온 팔이 부러진
사내가 그를 향해 다시 주먹을 뻗고, 발을 뻗었지만, 이번엔 조금 전과 달랐다. 그가 내지르는 주먹과
발차기를 모두 막은 뒤, 그에게서 뺏은 총을 쥔 손을 더욱 더 꽉 쥐었고, 그대로 그의 얼굴을 정확하게
날렸다.
그 충격은 그냥 맨주먹으로 내리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엄청난 충격이 전해진 사내는 울퉁불퉁한
땅을 제대로 밟지 못한 채, 몸의 균형을 잃었고, 추선우는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다시 한 방을 먹이려
다가서자, 곧 담벼락을 짚고, 담벼락 위로 올라선 다른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목표가 아니지만…….넌 충분히 내 손에 죽을 가치가 있는 놈이다.”
그는 담벼락 위에 걸터 선 뒤, 추선우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그로인하여 추선우는 비틀거리는
사내에게 일격을 가할 타이밍을 놓쳤고, 오히려 다른 한 명에게 자신의 목이 저당 잡힌 순간이 된
것이었다.
추선우의 손에도 총은 있지만, 그는 아직 정식으로 총을 쏜 경험이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냥 일종의
둔기라 여길 수 있는 총일뿐이었다.
“뭐해! 당장 죽여 버려!”
담벼락에 선 그가 망설이는 듯하자, 추선우에 의해 팔이 부러진 사내가 자신의 부러진 팔을 부여잡은 뒤,
소리쳤고, 담벼락 위에 선 사내는 추선우를 향해 눈을 내리깔며,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였다.
‘핏!’
“!!!”
추선우의 눈은 담벼락위에 올라선 사내가 든 총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 까지 보였다.
하지만 사내가 들고 있던 총의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담벼락 위에서 그의 몸이 한 차례
휘청거렸다.
‘툭!’
‘쿵!’
추선우는 담벼락위에 올라선 사내가 몸을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그의 몸이
휘청거렸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둘째였다. 추선우는 그 자리에서 약간 뒤로 물러난 후, 높이 1 미터 70
센티인 담벼락 위를 밟고 서서 휘청거리는 사내의 발목을 돌려차기로 걷어찼고, 그 충격에 사내는 담벼락
위에서 넘어지며,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추선우가 있는 곳과 반대로 떨어졌다
태정민의 화려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비록 상대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고 하지만, 태정민의 움직임은
진정 놀라웠다. 빠르며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듯하였다.
‘덜썩.’
이내 그 사내마저 쓰러졌다. 태정민은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았고, 곧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총을 든 상대를 앞에 두고도 대단한 담력이군. 손가락 힘만으로 너의 목은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렵지 않았는가?”
태정민은 담벼락을 향해 걸으며 물었고, 곧 담벼락 너머에도 한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저 놈의 팔은 아작 난 모양이군. 네가 한 것인가?”
이내 시선을 추선우에게 돌리며 다시 물었다.
“내가 살고자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팔 하나 부러진다고 저 놈이 죽을 것도 아니고,
부러진 팔이라도 입은 살아있으니, 저 놈을 심문하는데 지장은 없을 듯해서요…….”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태정민의 눈은 그를 향해 곧바로 보고 있었다. 정식적으로 절차를 밟지
않은 경호원은 절대 경호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 태정민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경호하는 그였기에,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지현의 경호를 맡긴다는 말을 하였을 때, 그 누구보다 반대의견을 표시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금 전 일어난 단 한 번의 일로 인하여,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는 눈을 달리하고 있었다.
“태정민! 추선우!”
곧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장호는 이장구의 휴대전화를 들고 움직였기에, 지금 추선우가 들고 있는
지현의 목걸이에서 내보내고 있는 위치를 받을 수 있었고, 정확히 그 위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된 것인가? 집 앞에서 만나도록 했는데, 여기까지 왜 내려온 것인가?”
“일이…….조금 꼬였습니다. 일단 이 놈과 함께, 담벼락 너머 쓰러진 놈을 족쳐보면 이장구가 말한
내용의 일부라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태정민이 그의 물음에 답하였고,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대원에게 담 너머 있는 한 명을 확인토록 하였다.
“저기…….설장호 실장님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걸었고, 곧 꼭대기를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자, 집 인근을 경계서고 있던
형사의 눈에 설장호가 보였고, 그는 박태식을 향해보며 말했다.
“지현의 안전에는 이상 없는가?”
“네. 추선우씨가 나간 뒤, 아직 이 집을 드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보다 태정민…….조금 전
그 목소리는 뭐였나?”
설장호는 박태식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물었고 박태식은 물음에 답한 후,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추선우가 지현의 목을 노리고 온 두 놈과 마주하고 있기에 소리친 것입니다. 그보다…….추선우의 말을
들으니, 총격전이 있었다고 하던데…….”
태정민은 그의 물음에 답한 후, 추선우에게 들었던 내용에 대해 물었다.
“총격전이라기보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민후가 당했어. 실장님의 전화를 받고, 집 인근으로
향하던 길에 어둠속을 뚫고 날아온 총알에 목숨을 잃었어.”
설장호의 눈은 더욱 더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장구가 죽자마자, 사건은 바로 이어서 터졌고,
그로인하여 대원 여섯 명의 목숨을 잃었다.
“내 불찰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조금 더 빨리 이장구에게 이와 같은 답을
들었다면…….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지휘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그의 눈동자는 떨려왔다.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지휘하고 있는 자신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라 말하였다.
새벽에 일어난 사건 이후, 형사병력과 국정원병력이 북정마을 인근을 모조리 수색하였다. 별 다른 징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설장호는 다시 국정원으로 향하기 위하여 몸을 돌려세웠다. 북정마을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힘이 없어보였다. 자신의 잘 못된 지휘로 인하여 여섯 명의 목숨을 잃은 것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은 집으로 들어섰다. 밤새 잠을 청하지 않고, 추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던 은주가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
“괜찮아. 지현이는?”
“아직 자고 있어.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들어온 거야?”
은주는 태정민과 강서진을 본 후, 추선우에게 물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은
여전하였다.
“이제…….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그 때는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한 배를 탔습니다.
우리가 추선우씨는 물론, 지현양을 도와야하고, 두 사람도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강서진이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은주에게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모두 말하려고 할 때, 태정민이
그녀의 앞을 막았고, 그녀의 말도 막았다. 굳이 이번 일과 관련 없는 은주에게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말할 것 같은 그녀의 말을 막은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현이 깨어나면, 이곳을 나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지현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자르고 태정민이 은주를 보며 말했다. 그 순간 추선우의 눈빛이 태정민에게 향하였다.
“지현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은…….”
“다른 뜻은 없다. 새벽에 너 역시 겪었듯이, 이미 이곳 일대는 그들이 알고 있다. 이곳에 지현이
있었다는 것을 감지한 그들이 언제 다시 올 것인지는 알 수 없기에, 지현이 지낼 곳을 다시 알아본다는
것이다. 걱정마라, 그렇다고 국정원은 물론 여타 다른 국가기관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다.”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에 그 어떤 토도 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추선우를 인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은주에게는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톡톡 쏘는 듯 한 반말로 답하였고, 또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비록 지현의 위치를 나타내던 목걸이는 설장호에게 넘어가, 국정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들은 이미 이 위치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이 일대를 맴돌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계속하여 지현을 이곳에 둔다면,
지현은 물론, 아주머니나 은주에게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삼촌.”
곧 방문이 열리며 지현이 눈을 비비고 나섰고, 추선우를 불렀다. 추선우는 그 즉시 지현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낮추어 지현과 눈높이를 함께 하였다.
“지현이…….잘 잤어?”
“응. 그런데 목걸이가 없어. 아빠가 준 목걸이가…….”
“아…….그 목걸이? 삼촌이 잠깐 빌렸어. 어제 지현이가 자는데, 목걸이의 줄이 끊어져서, 삼촌이
수리하려고 아침에 수리점에 맡겼어. 수리가 끝나면 바로 가지고 올게.”
“그 목걸이 꼭 가져와야 해, 알았지? 삼촌.”
“그래. 삼촌이 꼭 다시 가져올게.”
추선우는 지현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둘러말했고, 지현은 추선우의 말을 거짓 없이 받아들였다.
“삼촌…….저 사람들…….”
그리고 이내 지현의 눈에 태정민과 강서진이 보였고, 곧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저 삼촌과 이모가 그 나쁜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 이제부터 삼촌과 함께 지현이 곁에 있을 거야.
“안녕…….”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과 태정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였지만, 지현은 여전히
추선우의 품에 안겨,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저 삼촌과 이모가 지현이에게 나쁜 짓을 하면, 이 삼촌이 혼내줄게.”
“하하…….하하…….”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하였지만, 받아주지 않은 지현에게 선우가 안심시켜려 한 말이, 두 사람의 눈썹을
씰룩거리도록 만들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미소는 풀지 않은 상태였다.
“아주머니. 잠시 지현이와 방에 좀…….”
“그래 그래.”
지현이가 잠에서 깨자, 함께 나온 아주머니는 추선우의 말에 지현의 손을 잡았고, 지현은 추선우를 한 번
더 안은 뒤, 곧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은주야.”
아주머니와 지현이 방안으로 들어선 후, 추선우는 은주를 불렀다.
“너와 아주머니에게 미안하게 됐다. 난 그냥 단순한…….”
“지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후회란 뜻이야. 너…….지현이를 지켜주겠다고 한 말을 후회하는
거야?”
은주는 추선우의 말이 끝나기 전, 자신이 먼저 할 말을 하였다. 은주는 추선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진정으로
지현을 위하여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후회가 없기를 바랐다.
“지현이를 지켜준다고 말한 것에는 후회가 없어. 하지만 아무런 연관도 없는…….”
“웃기네. 너도 지현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그런데 넌 목숨까지 내놓고 다니잖아. 그에 비하면 나하고
엄마는 그냥 지현이를 안고 있는 것 밖에 안 돼. 괜히 멋진 척 말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해.”
은주는 추선우가 다른 말을 일체 하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하고자 한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태정민과 강서진은 두 사람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진정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른 것이었다. 자칫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저 두 사람은 오히려 자신들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으며, 또 물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방편을 마련할 것입니다. 일단 아주머니와 은주씨의
거처도 따로 마련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이곳을 알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내리는 결정이니,
불편하더라도 함께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후, 강서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진정 초면에는 서로 죽일 듯이 다투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딩동-
-딩동-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강서진의 말이 끝난 후,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의 휴대전화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자 수신을
알리는 음이 들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들어온 설장호의 문자를 본 후, 서로를 보았다. 곧 발인식이며, 이창민대사의 연고지인
수원에 있는 연화장에서 화장을 할 예정이었다.
이에 설장호는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지만, 지현에게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이도록 할
예정이었고, 그에 대한 모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렸다.
“대체 이 무슨 일인가!”
한 편. 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후, 설장호가 국정원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 있던 국정원장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이장구의 죽음에 대한 보고를 받고,
평소보다 일찍 국정원으로 나섰고, 설장호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물었다.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어 다시 찾아왔을 때까지는 아무런 정황도 포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장구에게서 일부 몇 내용을 추가로 확인하였고, 그에 대해 현재 북정마을에 있는 박태식과 강서진,
그리고 태정민에게 이에 대한 대비를 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고 있을 때, 이장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설장호는 진실을 말하였다. 하지만 비단 그의 말이 진실이라 하여도, 모든 계획마저 다 수정되어야 할
상황이기에, 국정원장의 일그러진 표정은 다시 펴지지 않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설장호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TV 를 시청하고 있었고, 차현태도 이창민의 발인식에 앞서,
검찰청의 발표를 듣고자 집무실에서 TV 를 시청 중이었다.
검찰총장의 브리핑은 간단하였다. 정확히 설장호가 일러준 내용대로 발표하였고,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장에 있던 많은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검찰총장의 답변이 끝나기 전에, 다른 한 여 기자가 곧바로 직설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많은
기자들이 검찰총장의 입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기자의 말처럼, 그동안 살인사건에서 많이 등장한 말이 우발적인 범행, 또는 정신질환적 범행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로인하여 사형이 무기징역이 되고, 무기징역이 20 년 형, 또 감형되어 15 년 형. 이런
식이었다.
검찰총장은 그 여기자를 보며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을 주며 말했다. 검찰은 죄인에게 최대의 구형을
선고하려 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그들에게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판결이었다.
이에 검찰총장은 마치 검찰이 죄인들의 구형을 낮게 측정하는 것처럼 비유한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이장구가 주범이고, 내가 공범이라…….대체 뭘 먹으면 저딴 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같은 시각. 수원의 한 모텔에서 옷을 챙겨 입고,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던 석강수가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이장구가 잡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현에 대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어제. 쌍다리앞에서 다시 만났던 추선우를 다시 한 번 만나기 위하여 이창민 부부의
화장이 진행될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간 떨리는군. 하나같이 진실이라고는 없지만, 거짓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라니…….”
국정원장도 TV 를 보며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지금 검찰총장이
발표하고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인 것을 알고 있기에, 몸이 떨리는 것은 더 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아니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TV 를 보고 있지만, 설장호는 전혀 떨림이 없었다. 하물며
눈동자조차 떨리지 않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검찰총장이 홀로 중얼거린 말처럼, 거짓만이 지금까지
숨겨졌던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고 믿는 설장호였다.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오래 끌지 않았다. 특종의 냄새를 맡는 기자들을 상대로 그들과 시간싸움을 벌이는
것은 힘든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질문이 이어질 것이며,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오히려 이번 기자회견이 더 악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검찰총장님. 질문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회견이었습니다.”
뉴스를 모두 시청한 차현태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자신이 보고 들어도, 검찰총장의 내용은 매끄럽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를 던져버린 상태였다. 설장호의 의견대로 일을 진행시켰지만, 그 중간에
여러모로 많은 변수가 생겨나고 있는 지금이었다.
“실장님.”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국정원대원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새벽에 있었던 사고로 인하여 생을 달리한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장례는 합동장례로 치룰 것이며, 이 또 한 유족들과 모두 이야기를 해 둔 상황입니다.”
설장호의 가슴은 또 다시 탁탁 막히는 듯하였다. 자신과 함께 한 대원들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잃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가슴은 찢어지며, 한 쪽이 도려 나가는 듯 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는 언제나 이와 같은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변수 중,
새벽에 또 하나의 변수가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래…….일단 장례식장은 오늘 밤 찾아가겠다. 몇 몇 대원들에게 알리고, 시간이 되는 인원들은 모두
장례식장으로 찾아가도록 해둬.”
“알겠습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부하직원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또 한 자신이 맡은 일로 인하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지현양의 목걸이에서 떼어낸 추적 장치입니다.”
곧 대원이 어린아이 손톱보다 더 작은 칩을 그의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설장호는 대원들의 장례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는 슬픈 눈동자였지만, 이내 추적 장치에 대한 보고를 다시 받을 때는 아주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한 채, 책상위에 놓여 있는 작은 추적 장치를 보았다.
“준비 다 마쳤어.”
같은 시각. 북정마을에서도 수원연화장으로 움직일 모든 채비를 마쳤다. 아주머니와 은주는 지현에게
새로운 옷을 입혔고, 곧 은주가 지현을 데리고 나오며 말했다.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태정민이 말했다. 발인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연화장으로 곧바로 갈 것이기에, 시간이 그리 촉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도착하여, 먼저 도착해 있는 팀들과 합류한 후, 움직여야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삼촌. 어디가?”
지현이 추선우에게 물었다. 추선우는 곧바로 답하지 않은 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 앉으며 지현을
보았다.
“지현아.”
“응?”
추선우는 지현의 눈을 한동안 보고 있은 후, 어렵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지현은 의외로 해맑은 표정을
한 채, 답했다.
“오늘…….지현이 아빠, 엄마…….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날이야.”
“…….”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그냥 두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지현에게 거짓 없이 말해주었고, 지현은 조금 전까지 해맑은 표정으로 추선우를 보고
있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아무런 말없이, 추선우를 보고만 있었다.
“아빠, 엄마…….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우리 지현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자.”
추선우의 눈동자에도 어느새 눈물이 맺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자연스럽게 맺히고 있었다.
“아빠…….엄마…….하늘나라에 가시면, 나쁜 사람들은 이제 만나지 않겠지?”
“그럼. 하늘나라에는 모두가 착한 사람들만 있어. 그리고 그 하늘나라에서 아빠, 엄마가 지현이를 언제나
보고 계실거야. 그러니까 지현이는 건강하고 해맑게 지내야해. 그래야 아빠,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시지.”
추선우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지현을 보며 말했다. 지현은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두
손을 살며시 올리며, 추선우의 볼을 만졌다. 그리고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는 듯, 그의 눈을 손으로
살며시 문질러 주었다.
“그런데 삼촌이 왜 울어? 아빠, 엄마가 행복하게 잘 계시려면 나에게 해맑게 웃도록 말하고서는 삼촌이
울면 어떡해.”
지현은 추선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고, 곧 두 팔로 추선우의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삼촌…….나…….아빠, 엄마 잘 지내시도록 항상 웃을 거야. 그런데 삼촌이 울면,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지현은 추선우를 꼭 안고서 말했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방으로 들어섰고, 은주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향해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강서진과 태정민도 어느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자신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지현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하는 말과,
어린아이가 처한 환경으로 인하여, 모두의 가슴에 눈물이 한 움큼 맺혀 있었다.
“가자…….우리 지현이가 아주 건강하고 해맑게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지.”
이내 추선우는 다시 그녀를 보며 웃음을 보이고 말했다. 그러자 지현도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지만,
지현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아주 맑은 눈물이 하나씩 맺히고 있었다.
“북정마을에서 지금 나섭니다.”
집을 나온 후, 태정민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이동상황을 알렸다.
“나도 지금 연화장으로 향한다. 명심해라 태정민. 그들은 현재 지현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다. 자칫,
허술한 행동으로 지현을 데리고 움직인다면, 북정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들이 따라 붙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태정민의 눈은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고, 추선우의 눈빛도 아주 매섭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단 두 분은 우리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당분간만 이 곳을 비워두겠습니다.”
함께 따라 나온 아주머니와 은주에게 강서진이 말했고, 곧 형사 팀에서 두 사람을 데리고 가기 위하여
옆으로 다가섰다.
“검찰청 소속 형사들입니다.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실 것입니다.”
강서진은 세 명의 형사에게 마저 명령을 하달한 뒤,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였고, 태정민도 두
사람을 향해 인사하였다.
진정, 뛰어난 저격수라 할지라도 지현을 향해 단 한발의 총알로 적중시키기는 힘들도록 지현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저 사람들은 또 뭐지?”
동네 사람들은 아침부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에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묻고 있었다.
“저기…….말씀 좀 묻겠습니다.”
곧 사내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이씨 아저씨라 부른 사내 앞에 멈춘 후, 그를 보며 말했다.
“그 참…….오늘 무슨 날인감. 못 보던 사람들이 이리 많이 보이니 말이야.”
이씨 아저씨는 그 사내를 빤히 보며 중얼거렸고, 곧 사내는 그의 앞으로 다가선 후, 사진 한 장을 보였다.
“혹시. 이 여자아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씨 아저씨는 그가 내민 사진을 빤히 보았다. 그리고 곧 몇 몇 동네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이 아이…….조금 전, 선우총각이 안고 내려갔던 아이 아닌감?”
“그러게. 딱 보니 그 아이 같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보며, 자신들이 조금 전, 본 것을 말했고, 그들의 말에 사내의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이 아이가…….여기 있었습니까?”
사내는 그들의 말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뭐.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아침에 처음 보았수. 선우총각의 품에 안겨 웬 낯선 사람들의
틈에 싸여 내려갔는데, 혹시 선우총각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오? 만약 선우총각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라면
한 발 늦었수. 조금 전에 내려갔으니 말이오.”
이씨 아저씨는 조금 전에 있었던 모든 상황을 그에게 거짓 없이 모두 말하였다. 이미 이들은 추선우를
달갑게 보지 않는 사람들인데다. 주인아주머니에게 한 소리 들은 것이 있어, 아침부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선우? 이 여자아이를 안고 간 사람이 선우라는 사람입니까?”
“그렇소. 추선우라고, 백수로 지내던 놈인데, 저기 꼭대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총각이오. 하는 것도 없이
매일 빈둥거리는 놈인데, 저기 주인아주머니가 착해서 월세가 밀려도 그냥 봐줬던 놈이오.”
사내는 이씨 아저씨의 말에 시선을 돌려 가장 위쪽에 있는 집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씨 아저씨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후, 위로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차량을 주차한 후,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연화장 뒤쪽입니다.”
“그래? 내가 그쪽으로 가지.”
설장호는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후, 곧 연화장을 지나쳐 뒤로 향하였다. 연화장 뒤쪽에도 몇 대의
차량이 서 있었다. 일반인의 차량도 있지만, 짙게 선팅된 승합차는 대부분 국정원차량이나, 청와대
경호실 차량이었다.
“여깁니다.”
태정민이 먼저 설장호를 발견하였고,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지현은?”
“무사히 있습니다. 그보다…….일반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총격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지. 일단 지현에게 가보세.”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짧게 답하였고, 곧 지현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설장호가 도착한 후,
연화장 인근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눈빛이 모두 날카롭게 변했으며, 모든
대원들의 시선이 설장호에게 집중되었다.
“오셨습니까?”
설장호가 차량에 도착하자, 강서진이 문을 열며 인사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후,
처음으로 지현과 서로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설장호가 지현을 직접 본 것은 역삼역과 사당역에서였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자신만이 지현을 보았고,
지현은 자신을 보지 않은 상태였다. 또 한. 새벽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설장호는 집에 잠들어 있던
지현을 보지 않고, 해가 뜬 후, 곧바로 국정원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자네가 맡겨두었던 목걸이를 찾아왔네.”
설장호는 잠시 동안 지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곧 정장 안주머니에서 지현의 목걸이를 꺼낸 후,
추선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추선우가 목걸이를 건네받았고, 곧 지현의 목에 걸어주었다. 지현은 추선우가 목걸이를 다시 걸어주고
있을 때, 설장호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에 이런 눈빛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처음 볼 때, 저런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부드러운 눈빛입니다. 실장님도 곧 적응되실 것입니다.”
지현의 눈빛을 본 강서진이 말했다. 아직 지현에게 믿음을 보여주지 않은 설장호였기에, 많은 것에
불신이 생긴 지현의 눈빛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모든 준비는 다 해두었다. 일대에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물론, 대통령님의 지시로,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지원하고 있다. 즉…….이 상황에서 지현에게 다가서는 놈이 있다면 진정
강심장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정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단순한 조직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연화장을 중심으로 연화장 초입부분과
인근에는 약 백 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청와대 경호실과 국정원소속 대원들이며,
모두 실탄을 장전한 총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추선우.”
“네.”
“넌…….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태정민과 강서진도 함께 붙어 있으며,
지현의 모습이 어느 한쪽 방향에서 절대 1 초 이상 보이지 않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추선우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의 말처럼 원거리에서 저격을 한다면, 적어도 1 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지현의 모습이 같은
방향에서 1 초 이상 보이지 않도록 커버한다면,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한 가까이 다가서는 인물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현을 가운데 두고, 그 바로 측근에는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을 세워두고, 그 외부로 검찰 쪽 형사들과, 청와대경호원들이 둘러싸는 형식으로 지현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영구차량. 들어갑니다.”
곧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영구차가 연화장에 들어선다는 박태식의 보고가 다시 왔고, 이에 모든 대원들은
주변일대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각 인원들은 만에 하나 단 하나라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을 발견한다면, 그 즉시 망설이지 말고 보고한다.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짓고 행동하지마라.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린다. 눈으로 보고, 보고만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다시 한 번 대원들에게 모두 각인시켜 주었다. 의심이가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일절 금하였다.
보고만 할 뿐이며, 그에 대한 결정은 오로지 자신만이 내리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된 판단에 의해, 잡을 수 있는 존재들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준비해.”
곧 차량 안을 향해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현을 보았다. 지현은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 긴장하고 있는 모두와는 달리, 현 상황을 제대로 인지 할 수 없는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누구도 모르지만, 추선우는
지현의 표정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바로 이창민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표정이었다.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이 행복하게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추선우의 말을 지현은 그대로 믿고 있으며, 지금 그 행동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하군.”
가장 먼저, 연화장 초입부분에 배치되어 있던 대원들의 눈에 영구차와 함께, 줄지어 들어오는 엄청난
고급승용차와 승합차, 그리고 대통령의 차량까지 보면서, 그들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으며, 심장마저
아주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영구차, 진입합니다.”
곧 초입부분의 대원에게서 무전이 왔으며, 진정 영구차 뒤로 길게 이어지는 차량들을 보며,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차량 한 대당, 한 명씩이 눈을 주어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경계를 서고 있던 한 대원에게서 무전이 왔다. 그의 말처럼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차량이 이어서 들어오고
있었고, 진정 차량 한 대당, 경계서는 한 명의 대원이 눈길을 준다고 하여도, 다 커버하기는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차량이 길게 늘어져 들어서고 있었다.
“핑계는 없다.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 이창민대사의 영구차량을 따라 들어서는 모든 차량을
감시하고, 또 내리는 모두를 다 감시한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내리는지, 내린 인원이 몇
명인지 모조리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곁에서 떨어져 나가는 인원을 체크한다.”
“알겠습니다.”
진정 말은 쉬운 말이었다. 수많은 차량이 몇 대인지를 기억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모든 대원들에게 말했다.
차량은 물론, 모든 인원과 함께, 같은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 중, 같이 행동하지 않는 인원까지도
체크하도록 하였다. 분명 불가능한 명령이지만, 이들은 그 명령에 따라야하며, 오차 없이 실행해야만
한다.
“가지…….”
영장사진을 내려놓은 뒤, 잠시 동안 영정사진을 보고 있었고, 곧 차현태가 움직였다. 그러자 청와대
경호원들도 모두 그의 주위를 따라 움직였다.
“설 실장…….”
영정사진을 내려놓은 후, 화장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차현태의 눈에 설장호가 보였다. 그는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곧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설장호는 차현태를 본 후,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그의 옆으로 다가선 후, 지현이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차현태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지만, 자신의 행동 하나에, 또 다른 변수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표정변화에 신경을 쓰는 듯하였다.
“잘…….마무리 해 주게나.”
“네. 대통령님.”
차현태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보고 있었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주변을 보았다.
아직 이창민의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몇몇 조문객이 보이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이창민과 함께 업무를 본 경험이 있는 지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시 동안 영정사진을 보고 있은 후, 하나, 둘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서두르자.”
차현태는 물론, 지현도 오래 지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 처지에는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것이라, 간단하게 예만 갖추려는 것이었다.
강서진은 지현의 손을 잡고, 약 한 평 정도 되는 낮은 단상위로 올랐다. 부모님의 사진을 앞에 두고,
절을 하려는 것이었다.
지현은 강서진의 도움으로 부모의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두 번의 절을 하였다. 진정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절이었다.
두 번의 절을 마친 후, 지현은 살며시 걸어 부모님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고사리 손을 뻗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고,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하였다.
“주변 상황 어떤가?”
설장호는 지현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지자, 각기 주변을 경계서고 있는 대원들에게 물었다.
“이상 징후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빠져나가신 후, 그 뒤를 따라 수많은 차량이 함께 나가면서,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눈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차현태가 이동하면서, 그에게 눈도장이라도 받으려는 인사들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차현태가 없는 자리에서 굳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실장님.”
“무엇인가?”
약 5 분 동안 더 시간은 지체된 후였다. 지현은 여전히 부모님의 사진을 보며 울고 있었고, 추선우와
강서진이 옆으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리고 그 때, 주변을 경계서든 한 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설장호에게 들렸다.
“주차장쪽, 차량들에서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몇 사내가 보입니다.”
“팀장님!”
한 대원의 보고가 설장호에게 들어오자마자, 또 다시 다른 대원에게서 태정민을 부르는 무전이 동시에
들어왔다.
“무엇인가?”
“북정마을에서 본 SUV 차량…….들어서고 있습니다.”
“!!!”
주차장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포착되었다는 것에 놀란 설장호에 이어, 이번엔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섰다는 보고에 태정민과 강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역시…….지현을 목표로 한 차량이었군.”
태정민은 그 즉시 경호원들에게 해당 차량을 주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설장호도 국정원대원들에게
주차장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박태식.”
그리고 설장호는 곧바로 박태식에게 무전을 보냈다.
“네. 실장님.”
박태식은 차현태가 떠난 후, 연화장 인근을 수색 중이었고, 곧 설장호의 무전을 받고 답하였다.
“형사병력을 연화장에 집중시킨다. 아무래도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주차장 쪽을 확인하라.”
“알겠습니다. 곧 형사병력 모두를 연화장 출입구마다 배치하고, 제가 직접 주차장 쪽을 확인하겠습니다.”
박태식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천천히 걸어 지현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고 있는 추선우에게 눈짓을 주었고, 그가 주는 눈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 본,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이쪽으로.”
화장장을 나서자마자, 차량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개인적인 차량이 화장터 입구를 막을 수 없기에,
처음 주차되어 있던 장소까지 움직여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정민은 방향을 잡아 말했고, 곧 열
명에 이르는 경호원과 형사들이 지현과 추선우를 완전히 막아선 채,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젠장…….하필 일반인들도 거의 다 빠져나가버린 상태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래도 주위에 일반인들이 꽤 보였었다. 하지만 화장이 끝난 후, 장지를 위해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이동하면서, 유독 지현일행이 움직이는 모습은 너무나 잘 보이고 있었다.
이에 태정민은 주변에 있는 산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비록 산 주위나, 그 안으로 대원들이 매복하여
있겠지만, 혹시나 다른 변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핏!’
“!!!”
“젠장! 모두 뭐하는 거야!”
태정민의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량을 거의 20 미터 정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한 형사가
어깨에 총상을 입으며 쓰러졌고, 그로 인하여 지현을 감싸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지현의 모습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이 큰소리로 외쳤고, 그의 목소리는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이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나섰던 설장호의 귀에 들어갔다.
“태정민! 뭐야!”
곧바로 설장호가 무전으로 소리쳤다.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한 명이 당했습니다!”
“젠장! 매복중인 놈들은 뭐하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아?”
설장호는 이내 주위에 매복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추선우! 지현을 감싸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경호원 팀은 추선우와 지현을 감싸고, 형사 팀은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확인해!”
태정민은 곧바로 추선우에게 계속된 이동을 명령 내렸고, 곧 경호원들이 추선우와 지현을 감쌌다. 하지만
이미 대열이 무너져버린 상황이라, 지현의 모습은 계속하여 같은 방향에서 2~3 초간 노출되고 있었다.
‘픽!’
“으아악!”
“뛰어라! 추선우!”
또 다시 경호원 한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에 태정민은 추선우에게 소리쳤고, 추선우는 지현을 꼭 안은 뒤,
차량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픽 픽픽픽!’
“젠장! 주변 매복 대원들 뭐하는 거야!”
연화장 초입부분과 납골당부분에 위치한 대원들을 뺀다고 하여도, 화장장 인근에만 약 50 명 이상의
대원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재 지현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인물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장장 좌측 9 시 방향. 검은 모자.”
곧 무전으로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설장호를 비롯하여 태정민과 각 대원들의 시선이 모두
해당 방향으로 향하였다.
‘픽 픽픽!’
그 즉시 두 사람은 동시에 총을 꺼내들어 그곳을 향해 총을 쏘았다. 자신들의 귀에 들린 무전이라면,
매복중인 대원의 목소리라 단정 지었고, 해당방향을 주시한 채, 총을 쏜 것이었다.
‘탁!’
그리고 그 때.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해당 차량 안으로 급히 들어간 뒤, 앞을 보았다.
차량 앞 쪽으로는 태정민과 함께 경호원, 형사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보며 총을 쏘고 있었고, 곧 그
뒤편으로 설장호까지 가세하여 총을 쏘고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은 더 이상 없는 듯 보였다.
“설장호. 참으로 한심하다. 천하의 설장호가 무전을 받고 자세한 확인도 없이 사격을 개시한다? 믿기
힘들군. 내가 말한 그 검은 모자는 보았는가? 그 타깃을 눈으로 보고 총을 쏜 것이냐? 설장호.”
이내 석강수는 블루투스를 들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하였고, 그의 말은 일대 잠복중인 대원들은 물론,
설장호의 귀에도 들어가고 있었다.
“석강수…….”
설장호는 놀라는 눈빛이 아닌, 매서운 눈빛과 어금니를 꽉 깨문 어투로 말하였고, 그의 말은 연화장을
빠져나가려던 태정민의 귀에도 들려왔다.
“괜찮아?”
그리고 지현을 보며 물었고, 지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젠장…….뭐야 이놈들은…….”
태정민의 격한 목소리에 추선우와 강서진의 시선이 차량 앞으로 향하였다. 조금 전, 무전으로 들린
석강수의 목소리에 의해 태정민이 급정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차량 앞에는 대형 SUV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고, 해당 차량은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차량이었다. 그리고 네 명의 사내 중, 세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으며, 곧바로 지현이 탄 차량 옆으로 또 다른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안을 보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없다…….”
그제야 설장호의 눈에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말 그대로 50 명은 족히 넘을 눈들이 연화장을
주시하여 있었을 것이기에, 다시 지현과 추선우가 차량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진정 조금 전까지 서로 무전을 주고받던 대원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심지어 설장호의 무전에는 그 어떤
잡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불과 3 분 정도 전까지만하더라도 이곳을 향해 누군가 총을 쏘았다. 하지만 지금은 진정 정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실장님!”
곧 주차장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한 대원이 설장호를 큰 소리로 불렀고, 그 즉시 설장호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였다.
“박태식…….팀장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후, 그의 눈에 보인 인물은 박태식이었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던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라는
설장호의 명령으로 움직였던 박태식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석강수…….석강수…….”
“지금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겠습니다.”
설장호의 눈빛은 더욱 더 매서웠으며, 모든 이가 다 어스러질 정도로 꽉 깨문 채, 석강수의 이름을
말하였다. 이곳에서 석강수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번에도 박태식을 이렇게 만든 인물은 석강수라 여겼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연화장쪽을 향해 보았다.
“석강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석강수가 보였다. 그는 여전히 위, 아래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으며,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향해 고개를 약간
들어, 그 역시 매서운 눈빛을 설장호에게 보여주었다.
“설장호…….너무 매서운 눈빛하지마라, 아쉽게도 이번엔 내가 그 놈을 친 것이 아니다.”
“!!!”
석강수가 확실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석강수는 박태식을 눕힌 장본인이 본인이 아니라는 말을, 국정원
대원에게서 뺏은 블루투스를 통해 설장호에게 말하고 있었고, 그의 말은 태정민과 강서진에게도
들여왔으며, 일대에 있는 대원들에게도 모두 들렸다.
“너도 알겠지만, 난…….그 추선우란 놈을 보러왔다. 다른 놈에겐 관심 없다.”
석강수가 하는 말은 현재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다 들리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추선우만은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있지 않기에,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태정민과 강서진이 다시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여러모로 골치 아프군. 일단 이 놈들을 어찌 좀 떼어내야겠습니다.”
태정민이 무전을 들은 후, 정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차량 외부에는 여전히 네 명의 사내가 둘러싸고
있었고, 차량은 시공이 걸리지 않고 있었다.
“일단 검찰 쪽 형사들을 이곳으로 오도록 해볼게. 만약을 대비해서 고속도로에서부터 연화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대기하라고 했으니, 지금 연락하면 10 분 이내에 도착할거야.”
믿을 만한 구석이 없었다. 곧 강서진이 검찰 쪽 형사들을 말하였다.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검찰 쪽
형사들은 지금 이곳에 단 한명도 없었다.
연화장 인근을 경계 서던 인물들은 국정원소속 대원들과 경호원, 그리고 박태식의 경찰 쪽이었다. 이에
반해 검찰 쪽 인원은 지현이 연화장을 나선 후, 그녀를 외부에서 경호하기 위하여 대기 중이었기에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형님. 저 놈들 너무 쉽게 총을 쏘는데요.”
“저들도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가진 놈들이다. 다…….그 영감탱이에게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놈들이지…….
우리와 달리 합법적으로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놈들이니, 저 놈들 총알에 맞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몸만
숨기고 있어.”
“네. 형님.”
차량 후미에서 총을 쏘며 다가서는 그들을 보며, SUV 차량에서 내린 사내가 말하자, 우두머리는 다가서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았고, 곧 다급하지도 않은 여유 있는 어투로 말한 뒤, 차량 앞쪽으로
이동하였다.
차량 전체가 방탄이기에, 후미에서 아무리 총을 쏜다고 하여도, 그 총알이 앞쪽에 선 자신들에게 와 닿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들의 총알 세례가 멈출 때까지, 그저 서 있을 생각이었다.
“젠장. 뒤쪽에도 붙었군.”
차량에 맞은 총알이 팅겨나가는 소리에 태정민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앞에 보이는 네 명만이 전부였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차량에서 내려 한 바탕 뛰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후미에서도 이미 다른 인물들이 붙은
것에 이저리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하…….적당한 훼방꾼은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너무 난잡해져버렸군. 대체…….저 여자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저 놈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총부터 쏘고 난리인가…….”
석강수는 연화장 앞부분에서 저 멀리 보이고 있는 추선우가 탄 차량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고, 곧바로 설장호를 향해 보며 손을 들어 해당 방향을 가리켰다.
“저 차량…….저 안에 그 여자아이기 있고, 추선우란 놈이 있는가보군. 내 말이 맞는가? 설장호.”
석강수의 무전에 설장호는 시선을 천천히 돌려 연화장으로 들어서는 초입부분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나무와 차량들 사이로 지현이 탄 차량이 보였고, 몇 명의 인원이 총을 겨냥한 채,
서서히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석강수…….네가 지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은 물러나라. 추선우가 목적이라면, 그 놈과의
만남은 주선해 주겠다. 그러니…….”
“잔머리 굴리지마라. 적이 적을 돕고, 또 적이 적을 죽이는 이런 상황에서 혼자 움직이는 나만큼 큰
이득을 볼 인물은 없다. 난…….오로지 나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니 말이야.‘
설장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석강수의 말처럼 석강수에게는 모두가 적이다. 아군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몸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기에, 여기에 있는 그 어떤 누구보다 가장 편한 인물이 석강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그냥 버리라는 설장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다시 서서히 연화장 안으로 들어서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서둘러라…….지금 즉시 지현이 탄 차량을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석강수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신과 함께 주위에 있는 대원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
내렸고, 박태식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즉시 입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주차장에 몇 남은 민간인들은 저 멀리 벌어지고 있는 총격전에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차량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차량에 시동을 걸고 그 곳을 빠져나가려 하였다.
“젠장! 지금 뭣들하는거야!”
갑작스러운 일반인들의 행동에 설장호가 소리쳤다. 연화장을 나갈 수 있는 길은 한 곳 뿐이었다. 바로
지금 지현이 있는 곳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총격전과 함께, 사람이 죽어있는 것을 본 일반인들은 연화장 입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오로지 그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초입부분을 그냥 지나쳐 가려는 것이었다.
“서둘러라!”
설장호는 자칫 민간인들의 피해마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소리쳤고, 대원들이 급히 움직였지만,
민간인들이 탄 차량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설장호는 곧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량들을 보았다. 그리고 박태식의 형사 팀이 타고 온, 승합차를 찾은
후,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박태식을 잘 보살펴라.”
설장호는 박태식 곁에 남아 있는 두 명의 대원에게 말한 뒤, 그대로 그의 차량을 몰고 초입부분으로
빠르게 향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인들의 차량입니다. 자칫 저들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쏜다면 낭패입니다.”
차량 후미에서 다가서고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보고 있던 추선우의 시선에 곧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일반인들의 차량이 몇 대 보였고, 태정민과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실장님! 어찌된 일입니까? 민간인의 차량이…….”
“살고자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니, 그 누가 이곳에 더 있으려
하겠는가.”
설장호는 급히 차량을 몰고 입구 쪽으로 향해가는 일반인의 차량 뒤를 따르며, 태정민의 무전에 답하였다.
그의 말처럼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일 뿐이었다. 진정 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본 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들뿐이었다.
우려와 달리 민간인이 탄 차량을 향해, 후미에서 다가서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총을 쏘지 않았고, 그냥
자신들의 앞을 지나쳐가도록 버려두었다.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이 탄 차량을 막고 서 있던 사내들도 그저
일반인의 차량은 아무런 저지 없이 보내고 있었다.
“차량 문을 열지 않으면, 저들은 절대 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 그러니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자.”
차량 옆을 지나쳐가는 민간인 차량들을 보며 강서진이 말했다. 하지만 지현은 점차 공포감이 극대화에
이르고 있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차량으로 날아오는 총알 소리와 함께, 차량을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 지현은 그 당시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차량에서 내려야겠습니다. 지현에게 쇼크가 오는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지현의 귀를 꽉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차량의 흔들림과 함께, 추선우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꼭, 지난날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듯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픽픽픽픽!’
“!!!”
순간 차량 후미에 서 있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복장을 한 사내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차량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네 명의 사내들도 몸을 더 낮추고 있었다.
‘킥!’
“어서 움직여!”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뛰어가던 자신의 대원들보다 더 빠르게 차량으로 이동하였고, 이동 중, 차량
후미를 공략하던 그들을 자신의 대원들이 하나, 둘 눕히자, 차량 옆으로 자신의 차량을 바짝 붙인 뒤,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태정민은 굳게 잠겨있던 차량 문을 열었고, 곧바로 추선우에게 설장호의 차량으로 옮겨 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탁!’
“!!!”
하지만 차량문이 열리면서, 차량 앞쪽에 있던 사내들이 차량 양 옆쪽으로 빠르게 다가섰고, 한 명은
설장호를 향해 총을 겨냥하였지만, 설장호가 먼저 그를 향해 총을 쏘면서 그는 다시 몸을 숨겼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이동하였던 이들은 그 즉시 차량문을 열어 추선우의 머리를 잡아 당겼고, 추선우가
뒤로 밀려나면서, 꽉 안고 있던 지현은 자신의 품에서 태정민을 향해 밀어주었다.
“추선우!”
태정민은 그의 이름을 부른 뒤, 추선우에게 넘겨받은 지현을 강서진에게 곧바로 다시 건네주며, 서둘러
설장호의 차량으로 타도록 하였고, 총을 꺼내 열린 문을 향해 쏘면서, 강서진이 설장호의 차량으로 옮겨
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추석우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를 향해서는 추선우의 움직임에 의해
총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차량 두 대가 모두 승합차라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강서진은 지현을 안고 바로 설장호의 차량으로 이어탈
수 있었다.
‘치리리리. 탁!’
강서진이 서진을 안고, 설장호가 있는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태정민은 곧바로 자신이 타고 있는 차량문을
아주 빠르게 닫았다.
‘팅팅팅팅!’
그 순간, 추선우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던 사내 옆으로 또 다른 사내가 서서 곧바로 총을 쏘았지만, 이미
방탄이 된 차량문이 다 닫히면서, 지현이 옮겨 탄 차량에는 일체 피해가 가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그 즉시 설장호는 아주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그 차량을 향해 마저 총을 쏘려든 그들을
향해 태정민이 열린 차량 문틈으로 먼저 총을 쏘며, 네 명 중, 두 명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날려버렸다.
“삼촌!”
추선우와 태정민을 남겨두고 차량은 빠르게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지현은 추선우와 떨어지자, 차량
후미를 보며 큰소리로 추선우를 불렀다.
“안정시켜.”
설장호는 사이드밀러를 통해 후미를 본 후, 강서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강서진은 지현을 꼭
안아주며, 자신도 시선을 돌려 차량 뒤편을 보았다.
‘픽픽픽!’
이어 설장호의 부대원들이 도착하면서, 그 뒤로 남아있던 일부 인물들을 모조리 눕히고 있었다.
‘탁!’
추선우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당긴 사내에 의해 차량 외부로 나오게 되었고, 자신의 몸이 완전히
노출되었지만 당황하지 않은 채,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사내의 손목을 잡아 강하게 조이며, 자신의
회전시켰고, 우두머리격인 사내는 추선우를 향해 총을 쏘려 하였지만, 그 즉시 태정민이 차랑안에서 열린
문을 통해 추선우를 엄호해 주면서 그의 몸을 다시 낮추게 만들었다.
‘퍽! 퍽!’
추선우는 자신의 몸이 회전되면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사내의 손까지 다 꺾이자, 잡고 있던
머리채가 자유롭게 풀림과 동시에, 그를 향해 정확하게 면상을 날렸고, 충격으로 밀려나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공중 뒤돌려차기로 다시 한 번 면상을 날리며, 그를 도로 끝 수로로 떨어뜨렸다.
“괜찮으십니까?”
곧 설장호의 부대원들이 차량에 다가섰다. 그들은 차량 후미에서 총을 쏘든 인물들을 모두 제거한 후,
다가섰고, 차량 후미에 붙어, 범퍼 위로 올라선 추선우를 보며 물었다.
“위로 올라서세요!”
‘픽픽픽!’
추선우는 차량으로 다가선 그들에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차량 앞으로 몸을 숨긴 사내가 차량
하부를 통해 반대편, 후미에 있던 대원들의 발목을 겨냥하여 정확하게 명중시켰고, 그로 인하여 대원들이
쓰러졌고, 쓰러진 대원들의 머리를 향해 총알 한발씩을 정확하게 먹이고 있었다.
추선우는 이와 같은 상황을 미리 생각하여, 차량 범퍼 위로 올라서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다가선
대원들은 차량 앞부분에 있던 인물을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틱틱’
“제길…….”
태정민은 열린 문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차량 앞쪽에 있는 사내를 보았고, 곧바로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내 그의 총에서는 틱틱거리는 음성만 들려오고,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추선우! 어서 타라!”
태정민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졌지만, 탄창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추선우를 향해 소리쳤고,
그 즉시 추선우가 차량 안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그의 곁눈에 한 사내가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추선우는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석강수였다. 그는 너무나 여유로운 걸음으로 추선우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고, 차량 안에서 후미에 있는 추선우를 보고 있던 태정민의 눈에도 석강수가 보였다.
“추선우! 어서 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열린 차량 문으로 우두머리격인 사내가 태정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는 석강수에게 시선이 팔리면서, 그가 다가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태정민이었다.
“대통령님은 안전하신가?”
설장호는 차량을 몰고, 되도록 연화장을 멀리 벗어나고 있었고, 이동 중, 차현태를 경호하는 경호
실장에게 연락하였다.
“네. 지금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연화장은 쑥대밭이 되었네. 대통령께서 벗어나시자마자, 그들이 모습을 보인 듯 해. 일단 대통령께서
안전하시다니, 서둘러 청와대로 모시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연화장으로 지원대를 보내겠습니다.”
“아니…….누가 와도 도움은 되지 않을 듯하네. 이미 그곳에 잠복해 있던 대원들마저 모두 한통속이었어.
이제…….진정 믿을 만한 놈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지.”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곧 그의 눈빛은
차현태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차현태가 물었다.
“아닙니다. 설 실장인데…….각하께서 잘 도착하셨는지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그래? 난 무사하니, 지현을 무사히 다시 데리고 나오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일러주게.”
“알겠습니다.”
경호 실장은 차현태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굳어버린 표정으로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청와대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가 경호실장과 통화를 끊자마자,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금. 진입하겠습니다.”
검찰 쪽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강서진의 연락을 받고, 연화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곧 연화장에
진입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틱틱’
“피차…….총 쏘는 데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군.”
한 편. 태정민을 향해 정확하게 총을 겨누고 있던 사내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역시 총알이 바닥난
상태였다. 태정민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고, 사내의 표정도 어이없는 듯, 자신이 들고 있는 총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곧 총을 바닥에 던진 후, 차량 안으로 들어섰다.
‘치리리리!’
그 즉시 태정민은 반대편 차량문을 열고, 차량 밖으로 나온 후, 차량 후미에 서 있는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였고, 그도 곧바로 따라 나온 후, 차량 후미로 돌아서다. 유유히 걸어오는 석강수를 보며 행동을
멈추었다.
“괴물이…….둘이라…….오금 저리는군.”
태정민은 걸어오는 석강수를 본 뒤, 또 다시 차량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고, 추선우는 그런
태정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웃음이 나와?”
“그럼. 웁니까? 어차피…….저 놈들을 뚫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니, 한 놈씩 맡죠?”
“자신 있어?”
“뭐…….팔, 다리 하나정도만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한 말은 설장호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죽지 않으면, 팔, 다리 하나정도만 주면 된다는 말. 지금 추선우는 딱 설장호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가서는 석강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이상하군. 이 일대에 백여명의 대원이 숨어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고작 서른 명도 안 돼. 그마저도 누구 편인지 몰라…….대체…….어찌 얽히고설킨 것인지…….도통
이해를 할 수 없어.”
석강수가 곧 다가섰다. 그리고 태정민과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차량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네가…….추선우인가?”
곧 사내가 물었다.
“내 이름은 또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군. 그래…….내가 추선우다!”
추선우는 그의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였고, 그 순간 사내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일체의 망설임 없이
추선우를 향해 다가섰다.
‘탁! 퍽!’
그 순간 태정민이 그의 주먹을 막아섰지만, 그의 큰 덩치로 인하여 뒤로 밀려났고, 곧 그는 태정민의
복부를 걷어차며, 더 뒤로 밀려나도록 만들었다.
“지현은…….어디에 있나?”
그리고 추선우와 마주하였다. 그는 선글라스 속 눈동자를 부르르 떨며 물었고, 추선우는 그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 쪽은 내 먹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석강수가 빠르게 다가서며 소리쳤고, 곧 주먹을 강하게 뻗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의 주먹을 피하였고, 석강수의 주먹은 차량 뒷 창문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네 놈 먹이에만 신경 써라. 이놈은 내가 볼 일이 있는 놈이다.”
석강수는 사내에게 말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애애애앵앵!’
“딱…….재밌게 한바탕 놀아볼까 했는데…….아쉽게 되었군.”
사내는 인근에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태정민을 보며 말했고, 곧 석강수와 추선우도 나란히
한 번씩 훑어본 뒤, 서서히 걸음을 뒤로 하기 시작하였다.
“꼬리 내리는 것이냐!”
“기회는 다음에도 있다. 너…….기억해 두지. 그리고 저기 서 있는 저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나,
추선우와 너…….살아있어라. 다음에는 진정…….오장육부가 몸속에서 뛰쳐나올 정도의 고통을 주마.”
경찰의 사이렌 소리에 그가 발걸음을 뒤로하자, 태정민이 소리쳤고, 그는 태정민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좌, 우로 흔든 뒤, 추선우와 태정민을 고루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 시선을 석강수에게 돌린 뒤, 매서운
눈빛만을 준 채, 길 한 쪽 수로를 건너뛰며 산속으로 들어섰다.
“추선우…….빨리 끝내자.”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경찰의 사이렌소리에도 물러나지 않은 채, 자신과 약 2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서있는 추선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경찰이 다가올 시간 안에 충분히 추선우에게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줄 자신감이 있었던 그였다.
“나야…….상관없지만, 넌 괜찮을까?”
추선우는 그의 첫 인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다리를 완전히 묶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느꼈던 인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설장호가 늘 하는 말을 빗대어 자신이 사용한 것처럼, 죽지 않으면,
팔, 다리 하나 주는 셈치고, 맞짱을 뜬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주눅 들지 않고 그의 말에 오히려 여유
있는 어투로 묻기까지 하였다.
‘애애애앵!’
점차 사이렌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리자, 석강수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번갈아 보았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형사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태정민에게 달려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일단…….박팀장님을 병원으로 후송해. 그리고 이 일대를 모두 뒤져라. 썩을 놈의 인간들이 모두 다른
배에 올라탔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에 배치된 모든 경호원들과 국정원소속 대원들, 그리고 형사들이 우릴 공격했다. 믿는 도끼에 아주
제대로 한 방 먹었지. 아직 벗어나지 못한 놈들이 있을 거다. 그러니 모조리 뒤져서 찾아.”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형사에게 명령내린 뒤, 그제야 바닥에 몸을 앉혔고, 곧 추선우도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추선우가 물었다.
“어째…….여자아이 하나 경호하는 게, 대통령 경호보다 더 어렵다. 그보다…….넌 경호를 해 본 적도
없다는 놈이 벌써 총을 든 놈을 두 번째 만났는데, 겁이 나지도 않았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먼저 쏘면 죽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라고요. 총을 든 놈 앞에서
잡다한 생각은 살 기회마저 버린다는 설 실장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추선우는 태정민의 말에 웃으며 답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현에게 가봐야겠습니다.”
“그래…….가봐야지. 너의 임무가 지현을 밀착 경호하는 것이니, 가봐야지…….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태정민도 함께 일어섰다. 그리고 곧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화장장 안으로 들어선 후, 두 사람의 시선에 보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연화장의 관계자들도
모두 자리를 피하면서, 이창민의 화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태정민은 곧 연화장 관계자를 찾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이창민의 화장을 마저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창민의 화장이 마저 진행되고 있을 때, 태정민과 추선우는 화장장 외부로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높지 않은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곳에 매복해 있었던 대원들은 진정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많은 인원이 죽은 것이라면 현재 저 산속에 시체로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모두
빠져나갔을 경우, 그 인원들이 어떤 경로로 빠져나갔는지도 의문이었다.
“어찌 생각해?”
태정민이 물었다.
“무얼…….말입니까?”
“오늘 아침. 이곳에 올때까지만해도, 연화장 인근에 있는 모든 대원들은 우리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그 생각은 빗나갔지. 그 많은 대원들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힘. 누구여야
가능할까?”
태정민은 이내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도 주위를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현재 지현을 돕는 인물은 최상위층 인물인 대통령을 시작으로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과
외교부다. 진정 대한민국에서 최상위에 앉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지현을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정민의 물음처럼, 그 최상위층 인물이 지현을 돕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통령인 차현태는 물론, 국정원과 검찰청, 경찰청을
모두 가지고 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만은 확실한 듯합니다. 오늘…….진정 대범하게 이런 일을 자행한 그 조직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물. 그 이상의 인물일 것입니다.”
추선우는 정확히 그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그들의
힘은 이미 자신이 속한 이 조직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연화장으로 향하는 오늘 아침에 설장호가 한 말도 떠올랐다. 진정 오늘…….지현을 죽이고자 그들이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들은 진정 강한 인물들일 것이라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들은 강하다는
것을 느꼈고, 직접 경험도 하였다.
“지현아. 괜찮아?”
설장호는 지현과 강서진을 집주인 있는 곳에 내려주었고, 곧 지현을 보며 은주가 다가서서 그녀를
안아주며 물었다.
집주인과 은주는 경기도 외곽의 한 펜션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일대에는 설장호의 부하들이 모두
자리하여 두 사람을 경호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명령으로 집주인과 은주를 경호하고 있던 모든 대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았다.
짧게는 3 년. 길게는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설장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너희들 중, 내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난…….그 놈이 누가 되었던 그 자리에서 목을 친다.
그러니…….나의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지 않도록 부탁한다.”
설장호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진정 그들을 믿고, 오랫동안 함께 한 시간이지만, 연화장의 일을 떠
올리면, 오래한 시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지금 현재의 생각만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고, 설장호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곧 집주인 아주머니와 인사하였고, 강서진에게 몇 명령을 하달한 뒤, 다시
지현을 보며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섰다.
“지현아.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선우삼촌이 올 거야. 그러니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와 이모 말 잘 듣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설장호의 말에 지현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거린 후, 아주머니의 품에 안겼다. 아주머니는 연화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지현의 행동이 그저 설장호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였다.
“지금 즉시, 검찰 쪽 형사들도 이곳으로 모이도록 한다. 되도록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하며, 자네가
명령내리는 인물 외에,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위치를 말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마지막으로 강서진에게 다시 몇 명령을 하달한 뒤, 그는 곧장 국정원으로 향하였다.
“대통령께서는 잘 도착하셨는가?”
“네.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창민 대사의 장지가 잘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물어보십니다.”
“그건. 곧 마무리 할 것이네. 그 보다 내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설장호는 경호 실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도 이미 15 년 넘게 알고 지냈으며, 그의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금전적인 이유로 그가 다른 배에 올라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는 그 믿음이 거의 바닥에 와 있는 상태였다. 모든 것에 대해 믿음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설장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윗단계에서부터 하나하나 알아볼 예정이었다.
“말씀하십시오.”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전혀 긴장하거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자네가 보낸 청와대 경호실 인원. 그들을 연화장 어느 지역으로 배치하였나?”
이 하나의 물음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의 심기는 불편해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자신이 배치한
경호원들이 지현을 직접 공격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선발한 경호원은 연화장에서부터, 납골당 부분을 연결하는 통로구간입니다. 그리고 연화장 인근
산속에는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대부분 진을 치고 있었으며, 그 외 하늘공원 방향으로 우리 청와대 경호실
인원 일부가 배치되었었습니다.”
경호 실장은 자신의 명령으로 배치된 인원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산속에서부터
날아온 총알은 모두 국정원에 속한 인원이 발사한 총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알았네. 이번 연화장에 배치된 인원들의 명단 확보가 필요하니, 자네가 직접 선출하였다는 경호실 인원
명단을 넘겨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화장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대통령님께 보고는 어찌 합니까? 필시…….언론을
통해 직접 접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에 대한보고는 내가 직접 하겠네. 그러니 자네는 인원명단만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청와대 경호 실장은 설장호의 말에 대해 잠시의 망설임이나 기타, 말을 더듬는 현상은 일체 없었다. 그로
인하여 설장호는 이번 경호원 배치에 대해 경호 실장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감소하고 있었다.
“경호실장이 뭐라 하는가? 그가 지목했던 인원이 화장장을 기준으로…….”
“아닙니다. 경호실장이 배치한 인원은 화장장에서 납골당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일체 총격전이 없었습니다. 단지…….박태식이 그 길목에 있는 주차장에서 당했고, 또
의문의 사내가 탑승하였던 SUV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는 것도 청와대 경호실에서 먼저 알려준
내용입니다.”
경호실장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국정원장이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그 당시 자신이 직접 들었고,
보았던 상황을 떠 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북정마을에서 보았던 SUV 차량을 가장먼저 알아보고
태정민에게 보고했던 인물은 청와대 경호원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차장 쪽에 있었다. 또 한, 하늘공원에 배치되었던 경호원들도 설장호의 명령으로
주차장에서 움직이던 이들을 봉쇄하고자 움직였었다. 즉.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은 모두 태정민과
설장호의 명령대로 다 움직였던 것이었다.
“문제는…….우리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라는 뜻이군.”
설장호의 말을 모두 들은 후, 국정원장이 말하였다. 그 당시 인근에 배치된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국정원 소속 인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설장호가 도착하기 전, 이미 진을 치고 있었고, 그가 도착한
후에 하나하나 움직이기 시작하였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지정한 인원들의 행동은 모두 설장호와 태정민의 명령에 의한 행동들이었지만, 국정원
소속 인원들의 움직임은 그 어떤 명령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까?”
이어 검찰총장이 물었다.
‘똑똑’
총장의 물음이 있은 후, 곧바로 노크소리가 들렸고, 경찰청장이 들어섰다. 그는 박태식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가 입원한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연화장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박태식 형사가 중상입니다. 어째서 연화장에…….”
“지금. 그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고 있는 중입니다. 잠시 앉으십시오.”
경찰청장이 들어서며 흥분한 목소리로 묻자,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그도 자리에
앉았다.
“답해보게. 국정원에 속한 인물들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인가?”
경찰청장이 들어서며, 잠시 중단되었던 대화가 이어졌고, 국정원장은 설장호에게 다시 질문하였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누가 인원을 배치했는지부터 알아야하며, 또 누가 현장에
배치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자신이 내리지 않은 명령을 이행한 이들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지만, 그 명령을 내린 장본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그의 뜻이었다.
“지금 즉시, 국정원 내, 국정원소속 인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명령권을 가진 자들을 모조리 회의실로
집합시키게. 그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대원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아마…….소용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국정원장은 국정원내의 명령권을 가진 고위직 인사들을 모조리 회의실로 집합시킬 요량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그를 보았다.
“왜? 소용없다는 뜻인가? 분명 명령을 내렸기에 국정원 대원들이…….”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인 것이라면, 원장님의 말씀대로 국정원내 명령권자의 명령을 받고 모두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그들이 국정원 소속 인원이 아니라면, 그 명령권자가 꼭 국정원 소속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이 또한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국정원 대원들을 움직이게 하였다면, 그 명령을 내린 인물이 필시
국정원 내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국정원 소속 인물이 아니라면, 설장호의 말처럼 국정원내에
그들을 움직이게 한 명령권자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저의 명령을 중간에서 전달한 인물이 누군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네의 명령을 전달한 자?”
설장호의 굳은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그의 말에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다.
“네. 오늘 아침. 새벽에 있었던 북정마을의 총격전으로 인하여, 제가 직접 국정원으로 향하지 못하였기에,
지현에게서 받은 목걸이와 함께, 저의 대원에게 인원을 선발하여, 연화장으로 향할 것을 명령
내렸습니다. 하지만 목걸이를 받은 대원에게는 명령권이 없습니다. 그가 제 명령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일단 그 부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럼…….그 문제는 해당 대원에게 묻는다면 바로 답이 나오겠군. 그리고 지현에게서 받은 목걸이라면,
혹시 이장구가 말한 위치추적이 가능한 목걸이를 말하는 건가?”
국정원장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목걸이에 관한 것도 함께 물었다.
“목걸이에 대한 것은 해당 대원이 저에게 직접 목걸이에서 빼낸 위치 추적 장치를 건네주었고, 그건 제가
보관중에 있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의 명령을 상부에 전달한 자와 목걸이에 관한 것을 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청와대
경호 실장은 경호실 인원과 함께, 국정원 인원을 위치에 맞도록 배치한 것뿐이었다.
즉. 그도 국정원소속 인원을 직접 선발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기에, 필시 국정원 대원이 설장호의 명령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였고, 전달받은 인물이 인원을 선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서두르게. 지현의 목걸이를 건네받은 대원에게서 그 답을 알아내고, 또 그 답으로 연화장에 배치된
인물들을 모두 알아내게.”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이번 판단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내심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가 너무나 잘 보이는 문제점을 안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죽은 이장구의 일부터, 북정마을로 괴한이 침투한 시간. 그리고 연화장으로 지현을 데리고
가야하는 이유. 또 한 그로 인하여 일어난 일들. 수많은 것이 설장호를 시작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
누구도 설장호라는 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설장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검찰총장을 노려본 후,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물었다.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게. 심지어 차현태 대통령도 의심해야 할 시점이네. 하물며, 이모든 것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자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나.”
맞는 말이었다. 검찰총장의 이 한마디에 국정원장과 경찰청장도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매서워진
눈빛으로 설장호를 향해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그 누가 봐도 제가 내린 결정에 의해 많은 변수가 만들어졌군요. 이장구의
죽음과 그에 맞게 일어난 북정마을의 사건. 그리고 연화장. 총장님의 말씀처럼 이 모든 것이 제가 지시한
내용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군요.”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고,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의 눈빛마저
매섭게 변해있자, 그들의 눈빛을 본 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홀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하나는 알고 또 하나는 알지 못하십니다. 만에 하나…….제가 이장구를 죽이고, 북정마을에
있는 지현의 위치를 그 조직에 알려주며, 또 연화장에 배치된 인물들마저 조종한 것이라면…….지금 왜…
….제가 지현을 보호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계신 분들 중…….지현의 위치를 알고 계신 분
계십니까? 또 한. 연화장에서 지현을 안고 빠져나온 사람이 저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십시오. 제가 만약 지현을 죽이고자 한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습니다. 그냥…….지현을 찾아가
방아쇠 한 번만 당기면 끝입니다.”
설장호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도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는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도 떠 올렸다. 비록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발단도
제공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모든 사건을 잠재우고 있는 인물 또 한 설장호였다.
“제길…….”
설장호는 국정원장실을 나선 후,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이내 쓴
표정과 격한 한 마디를 내 뱉은 후, 국정원장실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무슨 생각하는가?”
그리고 추선우에게 물었다.
“아무런 생각 없습니다. 어차피…….전 지현을 보호해주고자 마음먹었고, 그 마음에 변함은 없습니다.
그러니…….팀장님은 팀장님의 생각대로 움직이십시오.”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또 생각하였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었다.
차량은 연화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일반인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납골당을 찾아오는 일반인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오전에 일어난 일을 찾아볼 수 있는 그 어떤
현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띠리리리’
청와대에서는 차현태가 오전 업무에 대한 보고를 다 받은 후,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고, 비서실장이
집무실을 나서자, 곧바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현태는 울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통화버튼을 눌렀다.
“설 실장입니다.”
“설 실장? 자네가 어째서 나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는 것인가? 자네와 더불어 이번 사건을 맡은 인물은
모두 비서실장을 통해 나에게…….”
“죄송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무례함을 무릅쓰고 전화 드렸습니다.”
차현태는 설장호가 자신에게 직접 전화한 것을 두고, 몇 말을 하려던 찰라,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집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무슨…….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차현태는 설장호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또 무엇보다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한 것을
두고, 주변에서 알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감지한 후, 조용한 어투로 물었다.
“오늘 오전. 연화장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 내가 있을 때까지는 조용하지 않았는가? 혹여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네. 대통령께서 연화장을 벗어나시면서, 함께 연화장으로 온 인원 중, 약 80%는 그 즉시 대통령님의
뒤를 따라 연화장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약 5 분후에 나머지 인원들도 거의 연화장을 빠져나갔고, 그 후에
…….그들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
차현태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놀란 눈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집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핀 뒤, 창가 쪽으로 향하여 섰다.
‘딩동’
잠시 후, 국정원 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선 설장호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차후의 보고나, 통화연결은 이 번호로 하게, 내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기 전 사용한 전화네, 수신음이
10 초가 넘어가도 내가 받지 않는다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 문자로 남기게, 확인 후, 연락
주겠네.-
-네. 실장님.-
-알겠습니다.-
“접니다.”
한 편. 연화장에서 벗어난 의문의 사내는 한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 북정마을에서처럼 또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찌 되었는가?”
“뭐. 제 동생 세 놈의 목숨만 넘겨주는 마이너스 상황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조금은 나이가 든 사내의 물음에 자신의 뒷목을 어루만지며, 임무의
실패와 함께, 같이 움직였던 세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 보다. 혹시 저 외에 다른 인물에게도 그 꼬마아이의 목을 가져오라 명령을 내리신 것이 있습니까?”
“너 하나면 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어떤 놈에게도 따로 부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네가 보기 좋게
실패했으니, 다른 놈을 또 더 붙여봐야겠구나. 그런데…….그 말은 왜 묻는 것인가?”
사내는 석강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진정 두 사람은 서로 초면이었지만, 사내는 석강수도 자신과
통화중인 인물에게서 명령을 받았을 것이라 여겼다.
“연화장에서 그 꼬마아이를 찾는 듯 한 놈이 한 놈더 있었습니다. 아주 묵직하게 생겼는데…….보통 놈은
아닌 듯 하였습니다.”
사내는 자신이 느낀 석강수에 대한 감정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 놈이 누군지도 알아봐라. 그리고 어째 네 놈 같은 전문가가 깔아준 멍석에서도 제대로 놀지 못하고
일을 망치는 것인가?”
“뭐…….창피한 말이지만, 경호원들이 의외로 잘 막아섰습니다. 그 중에서 추선우라는 북정마을에 사는
젊은 놈이 있는데…….그 놈이 꼬마여자아이를 안고 다니는 듯합니다.”
“추선우? 청와대 경호실이나, 설장호가 아니고, 민간인이 지현을 안고 다닌다? 제대로 본 것인가?”
“네. 사실 민간인에게 조롱당한 느낌이니, 제가 말을 둘러할 수도 있지만, 어르신께 제가 뭐. 농담이나
거짓을 보고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놈…….민간인이며, 지금도 아마 그 꼬마아이 옆에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 알았네. 일단 잠시 몸을 숨기고 있게, 연화장내의 CCTV 를 손보지 않았으니, 너의 얼굴이 잡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그 민간인…….추선우란 놈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알아봐서 연락을
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사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곧 연화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추선우와 태정민.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두 인물에 대해 다시 떠 올리고 있었다.
“삼촌!”
한 편. 추선우와 태정민은 설장호가 보내준 메시지의 위치대로 경기도 외곽의 펜션에 도착하였고, 펜션
앞마당에서 은주의 품에 안겨 있던 지현이, 차에서 추선우가 내리자 그를 향해 다가서며 안겼다.
“지현이는 괜찮지?”
추선우는 자신에게 안긴 지현을 보며 물었고, 지현은 그저 아무런 말없이 그를 꼭 안고만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지현이 혼자 떨어지게 만들어? 네가 그러고도 경호원이야?”
은주는 추선우를 보자마자 그를 걱정하는 눈빛을 하면서도 그에게 톡톡 쏘는 어투로 말하였고, 추선우는
그런 은주를 보며 그저 미소만 지어주었다.
“연화장은 정리했어?”
강서진은 태정민의 곁으로 다가서며 연화장의 일에 대해 물었다.
“네. 장지까지 모두 마무리하였고, 연화장의 모든 것도 정리하였습니다. 또 한, 연화장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오전의 상황이 기록된 CCTV 영상도 모두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검사님의
득분입니다. 검사님께서 그 때, 형사들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아마 이렇게 살아서 다시 오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럼 태팀장이 나에게 목숨 한 번 빚진 거네. 앞으로 내 목숨을 대신하여 한 번 죽을 준비는 해
둬.”
“네? 하하…….뭐. 그러죠.”
비록 살벌한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그 살벌한 시간을 애써 다시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강서진은 무거운
분위기로 변할 수 있었던 순간을 농담으로 전환시키며,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잠시나마 미소를 짓도록 해
주었다.
“실장님, 전화 받으셨습니까?”
분위기를 변환시킨 후, 태정민은 곧 강서진을 한 쪽으로 데리고 간 뒤, 물었다.
“받긴 했는데,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총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전화가 온다면 뭐라고 둘러말해야 하는지…….”
‘띠리리리’
“깜짝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서진의 전화벨이 울렸다.
“검사님은…….”
홀로 서 있는 태정민을 보며 추선우가 물었다.
“여러모로 복잡해지는 일을 조금이나마 풀고자 검찰청으로 향하셨다. 그래도 걱정마라. 난 다시 경호실로
돌아갈 일도 없고, 또 잠시 후면 설 실장님이 오신다. 설 실장님이 오시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하고,
우린 설 실장의 명령대로만 움직인다. 그게 다야.”
태정민은 진심으로 설장호를 믿는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가 한 번은 의심할 것이지만, 태정민만은 그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을 듯, 설장호라면 굳건히 믿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차량…….들어옵니다.”
곧, 한 국정원 대원이 말했고, 모두가 펜션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향해 보았다.
“누구차야?”
“설장호 실장님 차량으로 보입니다.”
태정민은 해당 차량을 처음 보았기에, 혹시나 국정원 대원들이 해당 차량에 대해 알까하여 물었고,
예상대로 그들은 해당 차량이 설장호의 차량임을 바로 확인하였다.
곧, 차량은 펜션 앞 주차장에 정차하였고, 차량 문이 열리며 설장호가 내렸다.
국정원 대원들이 이미 설장호의 차량임을 말해주었기에, 해당 차량에 대해서는 굳이 경계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오셨습니까?”
그가 차에서 내리자, 태정민이 다가서며 말했고, 곧 국정원 대원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인사하였다.
“다음부터는 이곳으로 향하는 차량에도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라. 이 차량이 내 차량인 것은 맞지만,
승차한 사람이 나라는 보장은 없다. 이와 같은 일은 지금 이순간까지다. 내가 미리 말했듯이, 이제는
우리만 믿는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매서웠다. 국정원에서 그가 어떤 말을 듣고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말이
설장호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는 알 수 있는 그의 표정과 말이었다.
“지현은?”
“지금 자고 있습니다.”
지현의 안부를 물었고, 추선우가 답했다.
“강 검사는 어디로 갔나?”
“검찰총장님에게 연락이 오는 바람에, 둘러댄다고 말한 것이 검찰청으로 향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해서…
….하는 수 없이 검찰청으로 갔습니다.”
강서진에 대해서는 태정민이 답을 주었다.
“강 검사에게는 추후 알려주기로 하고, 일단 들어간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것을
경계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알려주겠다.”
설장호의 눈매는 여전히 매서웠다. 지금까지 잠시 잠깐이라도 보였던 그의 여유로운 표정과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굵직한 어투, 자신 스스로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국정원 대원들은 여전히 펜션 외곽을 경계서고 있었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설장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은주와 아주머니는 지현이 잠에서 깨면서 혹여나 오전의 일로 인하여 놀랄 것을 우려하여 옆에 있도록
방안으로 들어섰고, 설장호는 태정민과 추선우를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말해보게.”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그녀에게 총장이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총장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자신의 전화기를 보았다.
“통화가 끝나면 답을 듣겠네.”
총장은 전화기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선 뒤, 한쪽 구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강서진의
휴대전화에도 문자가 수신되고 있었다.
설장호의 문자였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삭제하였고, 고개를 들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총장이 전화를 끊었고, 다시 강서진의 앞으로 와서 앉았다.
“이제 말해보게. 설장호쪽에 설 텐가? 아니면 검찰 쪽에 설 텐가?”
“정확하게 무슨 의미를 두고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검사입니다.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고 명령권자는 대통령도 아닌, 바로 검찰총장님입니다.”
그녀는 설장호의 문자내용에따라 곧바로 답하였다. 그녀의 답을 듣자마자 총장의 눈빛이 조금은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답을 한 후, 그녀가 총장을 보며 물었다.
“무엇인가?”
“왜…….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대통령은 물론, 국정원장님과 총장님, 그리고 경찰청장님도 설
실장을 믿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연화장의 일이 있은 후, 모두가 설 실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강서진은 대범하게 나섰다. 간 떨린다고 말한 것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전혀 떨림도 없었고,
오히려 조금은 강한 눈빛을 주며, 총장에게 직접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자네와 설장호의 친분은 모두가 알고 있네. 우리보다 설장호를 더 따를 것이라 생각도 했었고, 하지만
자네는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검찰의 자리에 앉은 것이 딱 어울리네.”
총장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뜬금없이 강서진과 설장호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녀의 가족관계를
들먹이고 있었다.
“자네는 검사의 자리에 남아, 훗날에는 나의 자리까지 올라와야 하는 인물이야. 내가 왜 많고 많은
검사들 중, 이번 사건에서 자네를 지목했는지 아는가?”
총장은 계속하여 강서진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질문만을 하고 있었다.
“모릅니다.”
“바로 자네의 아버지 때문이야. 자네의 아버지가 나에게 부탁하시더군. 이번 사건에 자네를 꼭
포함시켜달라고 말이야.”
“아버지가…….그런 부탁을 하셨습니까?”
강서진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자신의 집안이 법관과 검사, 그리고 정치인의 집안이며, 사업가
집안이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 고루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물급 집안임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설장호…….그는 너무나 뛰어난 인재네. 감히 그 누가 설장호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인물은 대단해. 하지만 너무나 강하면 오히려 그 강함을 무너뜨리고자 덤벼드는 사람이 많아지네.
설장호…….그가 이번 사건을 지휘하게 되면서, 각 기관의 수장들은 창피함을 당했네.”
강서진의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그녀가 두 번째 물음을 했을 때 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청탁을 했느냐는 물음을 하자, 그에 대한 확답은 하지 않은 채, 그제야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답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조금은 떨려왔다.
“외교부장관, 경찰청장, 그리고 나. 사실 우리 세 사람은 설장호가 이번 사건을 총 지휘한다고 해도,
특별히 마찰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국정원장은 다르지. 설장호는 국정원 소속이며, 원장의
명령을 이행해야 할 인물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였지, 오히려 원장이 설장호의 명령으로 그를 지원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조금씩 이해가고 있었다. 이들은 설장호란 인물이 직급에 비해, 너무나 큰 권력을 쥐게 된 것을 두고
서로 견제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정원장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만으로 이들이 그 뿌리에 가담한 인물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단지 설장호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지금부터라도 설장호를 다시
내려앉히려는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설 실장을 의심한다고 하신 말씀은…….”
“다른 뜻은 없었네. 하지만 이번 연화장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임을 모두가
알았지. 만에 하나 이마저 그냥 넘어간다면, 설장호는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을 만들 수 있네. 그리고 그
때…….그 때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나올지도 모르며, 자칫 지현의 안전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네.”
들어보면 총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의 말처럼 세 번의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설장호에게는
그 어떤 징계도 없었다. 만에 하나 이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간 후, 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아마 더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기에, 그들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지금부터…….자네는 설장호의 뒤를 쫒아야하네. 그의 곁으로 가서 지현에 관련된 정보와, 또 이동경로
등.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줘야 하네. 설장호는 자네가 자신의 편에 선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네.”
진정, 우려하고 걱정하였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결국 설장호의 뒤를 쫒는 임무가 주어졌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비록 이들에게 전해 줄 답은 모두가 설장호의 입에서 나오는 답이 되겠지만, 그래도 강서진으로써는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가보게. 우린 지금부터, 설장호가 했던 것처럼 전국의 CCTV 를 모조리 확인하며, 또 이창민이 남긴
유품들을 조사하여 그가 남겼다고 생각되는 그 말을 찾을 테니, 자네는 설장호와 함께 움직이며, 항상
그에 대한 내용을 우리에게 보고해주게.”
‘띠리리리’
총장은 다시 한 번, 강서진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해주었고, 그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알았네. 지금 즉시 형사들을 보내고, 그 일대를 수색하게. 그리고 연화장에서 찍혔던 모든
영상이 기록된 CCTV 화면을 분석하고, 그 일대에 있었던 모든 놈들을 다 체크해.”
그는 강서진이 아직 자신의 사무실을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를 하였다. 그의 통화내용을 들은
강서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화장의 CCTV 확보는 이미 태정민도 하였다고 했기에, 그
분석은 충분히 자신들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들을 출동시킨다는 말은 어쩌면 지현이 있는 위치가
발각되었을 확률이 있는 말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서진은 그에게 인사한 후, 곧바로 총장실을 나섰고, 그에 맞춰 전화기를 서서히 내려놓은 총장은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강서진이 나선 문을 향해 보았다.
“접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하였다.
“어찌 되었습니까? 강 검사가 설장호의 곁으로 다시 갈 것 같습니까?”
그가 전화를 건 인물은 국정원장이었다. 그리고 원장은 그에게 바로 물었다.
“갈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말을 하였지만, 강서진은 그의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돈과
권력보다는 인간미를 더 중시하는 여자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지만,
설장호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총장은 강서진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녀에게는 진심으로 믿는다는 듯 말하였지만, 결국…….그녀도
설장호와 한 배에 탄 인물로 확정한 것이었다.
“그나저나…….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직접 설 실장에게 권한을 주었고, 또 그는
그 권한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여러 곳에서 일이 터지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아직
그 놈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마저 설장호의 앞을 막는다면…….”
“너무 깊게 생각지 마십시오. 우린 우리대로 그놈들을 찾으면 됩니다. 설장호가 너무 기세등등하니, 그
버릇을 좀 고쳐놓고자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설장호가 계획한 모든 것이 실패하였고, 그에 따라 인명피해도 났으니, 우리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두 사람의 통화내용 중, 국정원장의 말에는 악의적인 것이 없었다. 단순하게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설장호를 잠시 내려앉히겠다는 뜻뿐이었다. 그 외에 그 어떤 이유도 없는 듯 보였다.
이들도 그 의문의 조직인 뿌리에 대해 여전히 찾아 나서고 있었으며, 설장호와 같은 목표를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은 검찰총장의 입에서 나왔다. 즉.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는 두 사람도 뿌리에 가담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잠시. 강 검사를 만나고 올 것이다. 그 안에 태정민은 오늘 연화장에서 있었던 내용이 기록된 CCTV 를
분석하고, 추선우는 절대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현재 이곳에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모두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도록 지시하겠다.”
“알겠습니다.”
곧 설장호도 강서진을 만나기 위하여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와 함께 국정원에서 나와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은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정원에서 오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오로지
설장호의 명령만을 이행하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 태정민이 한 말처럼 정말 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어둠이
점차 내려앉고 있었다.
“대통령님. 경호실장입니다.”
청와대의 집무실에 홀로앉아, 낮에 설장호와 통화했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차현태를 경호실장이
찾았다.
“들어오게.”
차현태는 자신의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덮고, 경호 실장을 맞이하였다.
“무슨 일인가?”
“설장호 실장에 관한 일입니다. 그리고 태정민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태정민 팀장에게는 내가 따로 내린 명령이 있네, 당분간은 그 어떤 누구도 태정민팀장과 통화하기가 힘들
것이네.”
경호실장의 말이 끝나기 전에, 차현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설장호와 통화한 내용을
실천중에 있는 것이었다.
“왜…….그런 결정을 하신 것입니까? 혹여…….설장호실장과 통화를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그의 말에
의해…….”
“경호 실장.”
“네. 대통령님.”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조금은 격분한 듯, 목소리 톤이 점차 높아지자, 그의 말을 자르며 차현태가 그를
불렀다.
“설 실장과의 친분이 얼마나 되는가?”
“15 년입니다.”
“15 년. 15 년이면, 아주 많은 것을 서로가 알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설 실장이 어떤 상황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네도 잘 알겠군. 내 말이
맞는가?”
“…….”
차현태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경호실장이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낮에 설장호의 전화를 받은 후,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느꼈다. 그럴 때, 때마침 검찰총장의 연락을
받았고, 자신과 오랜 친분을 가지고 있는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생각이 검찰총장과의 통화 후,
점차 증폭되고 있었다.
“네…….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생각하는 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내 차현태의 물음에 답하였다.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그를 돕지는 못하고, 오히려…….”
“저는 돕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설장호실장이 먼저 청와대 경호실을 의심하였습니다. 이는…….이미
자신의 계획에 우리 청와대 경호실을 배제하고, 우리 또 한 그 뿌리라는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먼저 설 실장을 의심하며, 그의 목을 조여 보겠다? 뭐 이건가?”
차현태는 창가를 보고 있었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시선을 매섭게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내 사람이네. 나를 경호해야 할 경호원들의 수장이야. 그런데…….내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난 자네에게 내 목숨을 맡겨둘 수가 없어. 나와 자네의 인연도 한해, 두해가 아닌데…….”
“대통령님.”
차현태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전, 경호실장이 그를 보며 불렀다.
“설장호 실장. 그는 뛰어난 인물입니다. 지금 현재, 저를 비롯하여,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이 그의
목을 조인다고 하여도, 자신의 목을 내어줄 인물이 아닙니다.”
경호 실장은 차현태의 눈을 보며,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과 어투로 말문을 열었고, 국정원장이
검찰총장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뜻을 담은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누가…….설 실장의 목을 조일지 모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고자
한다면…….그들과 동침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현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행동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자네의 말은…….설 실장을 치고 들어오는 이들을 파악하고자, 그들과 잠시 한 배를 탄다는 뜻인가?”
“맞습니다. 설장호 실장이 비록 저를 의심하여도, 전 그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정도를 걸어온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가 진심으로 지현양을 돕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한…….제가
대통령님께 목청을 높인 이유는…….”
“나 조차도 의심의 대상이라는 것이 유효하다는 뜻이겠지.”
“죄송합니다.”
“아니네. 지금 현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자네의 생각과 행동, 모두 이해하네. 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절대…….설 실장을 의심하지 말게. 그 누가 어떤 방법으로 다가설지 모르네. 그 누구를
의심하더라도 자네와 난…….설 실장을 믿어줘야하네.”
경호실장의 본심을 알았다. 차현태는 진정 모두가 설장호를 밀어내며, 그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서 가장 오래있어야 할 인물 중, 한 명인 경호실장이 설장호를
믿어준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나저나…….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경찰청장이 설 실장과 돌아섰으니, 이제부터 설 실장의
지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따로 생각한 것이 있다? 그 역시 나에게 비밀이겠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대통령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대통령님의 주위에 대해
아직 믿음이 없기에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는 그의 말에 서운할수도 있었지만, 경호실장의 본심을 알게 된 후부터, 단 한 번도 서운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설장호를 지원하는 방향이니, 자신에게 말하지 못할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서둘러 움직이게. 모든 것에서 홀로 떨어져나왔다고 믿는 설장호에게 자신을 돕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게. 그리고 고맙네. 자네마저 돌아선다면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렇게 나와 뜻을
같이 하니…….다시 한 번 고맙네.”
“설 실장은 제 벗이며, 무엇보다 그를 잘 알고 있기에,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곧바로 대통령님의 명령을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경호 실장은 집무실을 나섰다. 차현태는 다시 창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조금 전까지 불편했던
심정에 어느 정도는 안심의 기운이 돌고 있었다.
“서지호입니다.”
경호 실장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검찰과 경찰이 무슨 의도로 설장호를 역으로 칠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차현태의 경호실과 국정원은
그들이 알지 못하도록 설장호를 지원할 것임이 밝혀진 것이었다.
같은 시각. 펜션에서는 태정민이 설장호의 명령으로 연화장에서 찍혔던 모든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고,
산속에서 매복 중이던 인물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쏜 후, 자신을 비롯하여 경호원들과 형사들이 맞대응을
하자,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긴 후, 일제히 산을 넘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고스란히 영상에 찍혀
있었다.
“정말…….철저하게 계획된 움직임입니다.”
영상을 함께 본, 추선우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들은 대통령 및, 주요인사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총격전으로 주위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곧 자신들도 뒤로 빠져나가는 역할만을 수행한 것으로 보였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진정 철저하게 계획된 행동들로 보였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CCTV 영상만으로는 이들의 얼굴조차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산속에서 몸을 숨기고 총을 쏜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곳곳의 나무들과 풀로 인하여 얼굴이 거의 가려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CCTV 성능이 떨어지는
관계로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역할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듯 보이면서, 만에 하나 그 누가 잡히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진정 지현을 잡을 인물을 투입하기 위하여,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은 그들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놈…….이놈이 누군지를 알고 싶군.”
그리고 이내, SUV 차량에서 내린 인물이 잡힌 영상을 보며 태정민의 눈빛이 매섭게 변한 뒤, 중얼거렸다.
이와 같은 인물을 투입하기 위하여, 연화장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여기는 태정민이었다.
추선우도 해당 인물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석강수가 따라 붙은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기에, 그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의 명령으로 붙은 인물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신분이 궁금하였다.
“살벌하군…….”
의문의 사내와 대치하고 있었던 영상은 차후, 설장호가 오면 다시 검토하기로 한 후, 또 다른 영상을
보며, 태정민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가 접한 영상은 박태식과 함께, 몇 형사들이 SUV 차량에서 내린
인물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두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영상이 고스란히 잡혀 있었다.
이는 지난 날, 석강수가 박태식의 형사 팀을 제압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저 툭툭 치며,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그들의 행동이었다.
“연화장 인근에 매복해 있던 인물들과, 하늘공원쪽 인물들, 그리고 초입부분의 인물들. 모두 자세히 보면,
산 속에 있던 이들과 초입부분에 있던 형사 몇 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에 반해 하늘공원에 있던 인물들은 곧바로 박태식 형사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즉…….
하늘공원쪽에 있는 인원들은 박태식 형사를 돕고자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 공원…….그 곳에 있는 인원은 청와대 경호원들이다.”
계속하여 몇 영상을 더 보았고, 지금까지 본 영상을 토대로 추선우는 나름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난 후, 태정민의 눈동자도 이리저리 영상 속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고,
곧 하늘공원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경호실은 진정 우리를 돕고자 움직인 것이지 않습니까?”
태정민의 말이 있은 후, 영상을 마저 보며 추선우가 말했다. 이미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태정민은
청와대 경호실장과의 연락을 모두 끊어둔 상태였다.
“젠장…….”
하지만 영상을 보면, 경호실은 박태식을 돕기 위하여 움직인 것이 확실하게 찍혀있었고, 곧 태정민은
표정이 굳어지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곧 전원을 꺼 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원을 켰다.
‘윙! 윙~윙!’
전원이 들어오자, 연이어 수많은 문자가 전송되고 있었고, 그 문자의 발신자는 모두 경호실장 서지호였다.
“이래저래…….한 쪽의 의심이…….많은 것을 의심하게 만들어 버렸군. 잠시 통화 좀 하고 올 테니, 마저
영상을 보고 있어.”
태정민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연신 수신되고 있는 문자메시지가 모두 경호실장 서지호에게서 오고 있다는
것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추선우에게 말했다.
펜션을 나온 후, 메시지를 모두 읽은 태정민은 서지호에게 연락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삼촌…….”
해가 저문 후, 점차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며, 잠에 들었던 지현이 잠에서 깬 후, 방문을
열고나오며 거실에 앉아 영상을 확인하고 있던 추선우를 보며 잠이 들 깬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불렀다.
“지현이. 잘 잤어?”
“응. 그런데 배고파.”
“그래그래. 일단 먹을 것 좀 준비해야겠다.”
추선우는 지현을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현에게 미안하였였다. 지현이 하루 동안 먹은 것이 없었다.
너무나 긴박하게 돌아간 하루였기에, 어린아이의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하루였다.
추선우는 곧바로 부엌으로 간 후, 이곳저곳을 확인하였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준비되어 있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미처 먹을 것을 장만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추선우는 다시 지현의 곁으로 걸어가 그녀의 앞에 몸을 낮춰 앉으며 지현의 눈을 보았다.
“조금만 참아. 삼촌이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올게.”
“넌. 안 돼.”
추선우가 지현에게 말하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은주가 말했다.
“넌. 이곳저곳 어디에서나 다 감시의 대상이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지현이 곁에서 떨어지면 안 되고,
그러니 내가 다녀올게.”
은주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갑을 챙겨 펜션을 나섰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잡지
못하였다. 그녀의 말처럼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디…….가십니까?”
은주가 펜션 문을 열고 나오자,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지현이 깼는데, 배가 고프다네요. 펜션 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좀 사 오려고요.”
은주는 그의 물음에 답하며, 주변을 보았다. 그저 검은 산들만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나가야
상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은 어두웠다.
“자네 둘. 이 분과 함께 외부를 다녀와라.”
비록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태정민도 어쩔 수 없었다. 어른들이야 잠시의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다지만, 어린 아이의 배고픔까지 참도록 할 수는 없었다.
태정민의 명령으로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이 은주와 함께 나섰다.
“일단. 자네는 다시 검찰청으로 돌아가게. 그리고 나와 만난 이야기를 하고, 지현의 위치를 묻는다면,
이곳…….호수의 위치를 말해줘라.”
“알겠습니다.”
“저기 편의점이네요.”
같은 시각. 두 명의 국정원 대원과 함께 외부로 나온, 은주는 이동 중 보이는 편의점을 찾았고, 차가
정차하자, 곧바로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두 명의 국정원대원은 편의점 외부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그녀는 안에서 먹을 것을 장만하고 있었다.
“국정원 차량이다.”
그리고 곧. 편의점 일대를 지나쳐가던 한 대의 차량에서 편의점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은주가 타고 이동한 차량은 국정원대원들이 타는 차량으로 해당 기관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보는 기관에서는 그 차량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먼 곳으로 숨어들었군. 일단 지금 상황을 알리고 뒤를 쫒는다.”
“네.”
차량 안에 탄 인원은 총 네 명이었다. 그리고 뒤쪽에 앉은 사내의 말에 그 즉시 한 명은 어디론가
전화하였고, 나머지는 그의 말에 답했다.
“가요.”
장을 다 보고 나온 은주가 두 사람에게 말했고, 곧 두 대원은 주변을 다시 살핀 후, 편의점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차량 이동합니다.”
“차량 라이트를 모두 끄고 조용히 미행한다.”
“네.”
짙은 어둠이었다. 라이트를 모두 소등한 채, 뒤를 쫒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또
한 훈련으로 인하여 이미 몸에 적응된 상태처럼 보였다.
‘띠리리리’
은주를 기다리며, 배고픔에 힘이 없어 보이는 지현을 안고 있던 추선우의 전화벨이 울렸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 한 뒤, 곧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실장님입니다.”
추선우가 말했다. 그러자 그의 전화를 태정민이 건네받은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태정민입니다.”
“아무 일 없는가?”
태정민이 전화를 받자, 설장호가 차량 안에서 여유 있게 의자를 뒤로 눕힌 후, 몸을 누운 채, 편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아무 일 없습니다. 단지…….지현이 깨면서 배가 고프다고 하기에, 집주인 아주머니의 딸이 먹을
것을 사러…….”
“지금 뭐라고 했나? 먹을 것을 사러 외부로 나갔다는 것인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자세를 급히 바로 잡은 후, 굳은 음성과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네. 먹을 것이 없어서…….”
“지금…….제정신이야! 우리의 처지를 알지 못해! 태정민! 지금 즉시 주변을 경계해라. 그리고 들어서는
차량을 주시해! 그리고…….기억해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떠 올려라. 그들은 항시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역삼역, 북정마을, 연화장…….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모든 곳에서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태정민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정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짙은 어둠이 있고, 또 한 현재 이곳의
위치가 연화장이나, 북정마을, 그리고 지현과 관계된 그 어떤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큰
걱정 없이 은주를 외부로 보냈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말처럼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그들이 먼저
움직였었다.
진정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시 빨랐다.
“어…….내가 잠시 잠이 든 모양이었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아주머니가 말하였고, 곧 자신의 옆에 있는 지현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아주머니. 지현이 좀 부탁할게요.”
추선우는 비몽사몽간인 아주머니에게 말한 뒤, 지현을 보았다.
“지현아. 아주머니 곁에 잠시만 있어, 삼촌 잠깐만 밖에 나갔다 올게.”
“응. 삼촌.”
다행히 아직 잠이 덜 깬 지현이지만, 추선우에게서 쉽게 떨어져 주었다. 추선우는 곧장 밖으로 나온 뒤,
펜션을 나섰고, 먼저 나온 태정민은 남아있는 세 명의 국정원 대원에게 주변을 경계하도록 명령 내렸다.
“차량 들어옵니다.”
주변경계를 명령내린 후, 모두 정면을 주시할 때,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한 대의 차량이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우리 쪽 차량인지 알 수 없다. 철저히 주시한다.”
“알겠습니다.”
이미 설장호가 한 말이 있었다. 비록 차량을 확인하더라도, 그 안에 탄 사람이 우리 쪽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을 하였기에, 태정민은 물론, 모두의 눈빛이 들어서고 있는 차량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기…….뒤를 따르는 차량이 있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라이트를 밝히고 들어서는 한 대의 차량에 주시되어 있을 때, 추선우는 태정민의 옆으로
서며, 해당 차량 뒤로 라이트를 끈 차량이 더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태정민의
눈빛이 더욱 더 커졌다.
“젠장…….”
그리고 그의 눈에도 뒤따르는 차량이 그제야 보였다. 비록 차량 자체가 보인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차량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차량 안에서 휴대전화 불빛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즉시 태정민은 세 명의
대원에게 총기사용 허가를 내렸다.
‘팟’
“!!!”
모두가 총기를 꺼내 들 때, 조용히 뒤 따르던 차량이 라이트를 밝혔다. 이미 그들의 눈에도 불이 밝혀져
있는 펜션이 보인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더 이상 은밀히 미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기에, 라이트를
밝히고, 차량 속도를 올리고 있는 그들이었다.
‘팅팅팅!’
“젠장! 꽉 잡으십시오!”
라이트가 밝혀지자마자, 앞 서 달리던 은주가 탄 차량으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였고, 총알은 차량
외부에 맞아 팅겨나가고 있었다. 이에 대원은 은주에게 몸을 숙이며, 차량 안을 꽉 잡도록 한 뒤, 빠르게
펜션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고, 뒤 따르던 차량도 속도를 내며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긴장하며, 펜션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두 대의 차량을 보고 있을 때,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네.”
설장호였다.
“아무 일 없는가?”
“은주가 탄 차량 뒤로 한 대의 차량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량에서 총을 쏜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젠장. 지금부터 넌 내 명령에 따른다. 지금 즉시 지현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나라. 펜션 뒤쪽 산길을
따라 조금만 벗어나면,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 시내로 접어들 것이다. 서둘러.”
“하지만…….”
“그곳에 남은 사람은 그 운명에 맡긴다. 넌 아주머니와 함께 지현을 데리고 서둘러 벗어나.”
추선우는 점점 다가서는 차량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면, 진정 저들의 시야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 명이 다가서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인하여 한 명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무작정 그 곳을 벗어나도록
명령내리고 있었다.
“추선우. 너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억해라. 그리고 지현과 한 약속을 기억해라. 넌 지현을 경호하는
것이지, 태정민과 함께 대원들을 돕는 것이 임무가 아니다.”
설장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그 한마디에 추선우의 결심도 섰다. 비록 냉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말처럼 추선우의 목적은 지현의 경호다. 그 누구를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현만을 경호하는
것이었다.
“태팀장님…….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태정민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태정민도 이미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추선우가 쉽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서둘게 하였다.
“은주는…….은주도…….”
“걱정 마십시오. 지금 따님이 타고 있는 차량은 방탄차량입니다. 차안에 있으니 안전하며, 곧 저희도
뒤따라 움직이겠습니다.”
태정민은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들어서고 있는 차량을 향해 본
뒤,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 서둘러라.”
태정민이 다시 말했고, 추선우는 그 즉시 지현을 안고, 아주머니와 함께, 펜션 뒤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잠시만 기다려서, 도착하는 차량에서 내린 은주와 함께 이동할 수 있지만, 그 잠깐의 시간으로 인하여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기에 서두르는 것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펜션 뒤쪽으로 돌아서자 작은 산책로가 보였고, 곧 그 산책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팅팅팅팅’
차량이 더 가까이 다가서며 차량에 맞아 팅겨나가는 총알이 뿜어내는 불빛도 잘 보이고 있었다.
“뒤 차량을 향해 사격!”
총을 쏠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 차량이 들어오자, 태정민이 큰 목소리로 말했고, 곧 세 명의 대원은 그의
명령과 함께, 뒤로 따라붙은 차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온통 검게 변한 세상에서 발사되는 총알로 인하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뒤따르던 차량에도 총알이
맞으며 팅겨나가고 있었다.
‘끽!’
이어 은주가 탄 차량이 펜션 주차장에 들어서며 정차하였고, 곧바로 한 대원이 내리며, 따라오는 차량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퍽 퍽퍽’
“엎드려!”
그들이 내린 후에 곧바로 국정원소속 대원 세 명이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태정민은 서둘러
남은 두 명에게 소리쳤고, 그들은 몸을 낮춘 후, 뒤로 움직이면서 계속하여 총을 쏘고 있었다.
“펜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쉴 새 없이 총알이 날아오자, 한 대원이 말했다,
“펜션 안으로 들어서면 그 즉시 독안에 든 쥐가 된다. 차라리 숲속으로 피하라. 내가 엄호하겠다.”
태정민은 탄창을 교체한 뒤, 말했고, 곧 두 명의 대원도 탄창을 다시 교체한 후, 정면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몇 발의 총알을 더 날려준 뒤, 빠르게 주변 숲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픽픽’
‘퍽퍽’
하지만 두 명의 대원이 숲속으로 들어서기 전, 어둠속에서 발사된 총알이 정확하게 두 명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쳐갔고, 대원 두 명마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젠장…….”
태정민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잘 못된 판단하나로 인하여, 순식간에 대원 다섯 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이미…….늦은 건가…….”
연이어 들어서는 차량들 뒤로, 그제야 설장호가 펜션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이곳으로
향할 수 있었지만, 그럴 경우 더 많은 적을 끌고 오게 되는 것이기에, 그들을 따돌리고 오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이미 수많은 차량이 펜션으로 향하고 있으며, 또 펜션 일대에서
총격전으로 보이는 작은 불빛들이 중간 중간 보이는 것을 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곧 펜션 안을 수색하였던 인물들이 다시 나오며 그에게 말했고, 시선을 주위로 돌리자, 주변을
수색하였던 인원들도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잘 도망치도록 하셨군요. 역시 청와대의 수장을 경호하는 인물답습니다. 어디로
빼돌렸습니까? 어디로…….”
“펜션 뒤쪽으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가 태정민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곧바로 한 부하가 펜션 뒤쪽으로 산책로가
있다는 것을 말했다.
사내는 그 즉시 몇 인원에게 눈짓을 주었고, 해당인원들은 서둘러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 실장님…….”
곧, 한 인물이 차량 옆으로 서며, 열린 창문을 통해 설장호를 확인한 후,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의 말에 설장호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픽!’
“!!!”
그 순간 발사된 총알.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 한 발의 총알이 쏘아졌고, 곧 태정민의 눈을 겨냥하고
있던 사내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태정민은 물론, 그에게 총을 겨냥하고 있던 모든 사내들이
놀란 눈으로 서 있었다.
‘픽픽 픽픽’
이내 어둠속에서 수십 발의 총알이 소리 없이 날아오고 있었으며, 펜션 곳곳에 서 있던 의문의 사내들을
모조리 눕히고 있었다.
태정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으며, 어둠속에서 잠시잠깐 불빛을 발하며, 발사되는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태정민은 그가 건넨 휴대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직접 확인하십시오. 전…….실장님의 명령으로 이동한 것뿐입니다.”
“실장님? 경호실장님을 말하는 건가?”
“네. 전화 받아보십시오. 그 분 성격상 전화기 오래들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용석의 말에 태정민은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귀를 향해 움직였다.
“언제 자네의 휴대전화가 다시 전원이 들어오는지 기다렸네. 다친 곳은 없는가?”
서지호는 조금 전, 태정민의 휴대전화 전원이 들어오자, 그 순간 곧바로 그의 위치를 파악하였고,
누군가에게 이동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명령을 받고 이동한 인물들이 설장호의 뒤로 들어섰던
인물들이며, 그들에게 자초지정을 들은 설장호는 그들과 함께, 태정민을 구하고자 펜션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다른 말은 듣지도, 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찌된 것입니까?”
하지만 태정민은 서지호가 자신의 안부를 묻고 있어도, 그에 대한 답은 없었고, 여전히 매서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에게 지현의 안전에 대한 답을 듣지 않았던 설장호가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보면서 경호실장과의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여러모로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설 실장님에게 듣고, 지금 너에게 보내준
인원을 잘 이용해라. 그들은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에서도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따로 움직이게
하고 있다. 비록 지용석에 관해서는 몇 양반들이 알고 있겠지만, 나머지 놈들은 차현태 대통령께서 직접
따로 움직이도록 명령내린 인물들이니,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통화를 끊지 않은 채, 펜션 안으로 들어가 설장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너의 휴대전화는 지금부로 죽은 전화기가 된다. 절대 켜지 마라. 지금 내가 전해준 휴대전화를
이용한다. 모든 내용은 그 휴대전화를 통해 너에게 알리겠다. 그럼…….마지막까지 꼭 임무를 완수해주기
바란다.”
“실장님. 실장님!”
통화가 끊어졌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묻지 못한 채, 통화가 끊어졌고, 태정민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설장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 서지호실장과 설장호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다 듣지 못한 상태이기에, 마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듯,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지낸 하루라 여겨지고 있었다.
“앉아. 지금부터 변화된 모든 내용을 너에게 알리겠다. 그리고 이 변화된 내용은 사실…….나도 좀
전에야 알게 되었다. 대통령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며, 대통령을 경호하는
임무를 가진 너에게 있어, 대통령의 명령이 어쩌면 내 명령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판단은 네가 직접 한다.”
태정민은 멱살을 잡고 있는 지용석을 노려보면서 설장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의 명령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시되는 명령이었다.
태정민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지용석을 다시 한 번 보았고, 곧 그의 멱살을 풀어주며, 설장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같은 시각.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아주머니와 함께 산책로를 따라 계속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곧
뒤쪽에서 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고, 그 즉시 아주머니와 함께 몸을 낮추며, 산책로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긴 하였지만,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기에, 몸을 잠깐만 낮춰 숨어도 지나가는 이들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곧 곳곳에 세워져 있는 가로등 아래로 뒤따라오던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은주야.”
은주였다. 차량에서 내린 후, 줄 곧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였던 그녀가 먼저 출발하였던 추선우 일행을
따라잡은 것이었다.
“엄마.”
은주는 어둠속에서 나온 아주머니를 보며 달려오던 속도를 늦춘 뒤, 곧 멈췄고, 아주머니를 격하게
안았다. 그리고 곧 지현과 추선우도 보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서둘러 벗어나야해, 아마 그놈들이 내 뒤를 따라 오고 있을 거야.”
은주는 차량에서 내린 후, 곧바로 움직였지만, 필시 그들도 자신이 움직였던 길을 따라 오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 놈들…….누군지는 봤어?”
“내가 그 놈들 얼굴을 본다고 뭘 알겠어.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아마 태정민팀장인가 하는
사람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 같더라. 날아오는 총알이 너무 많았어.”
“…….”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동 중, 추선우가 펜션상황을 묻자, 은주는 최악의
상황임을 말해주었고, 그로 인하여 추선우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았다.
‘픽!’
“!!!”
그 순간, 어둠속에서 잠깐의 불빛이 보이더니, 이내 총알이 날아왔다. 지현을 안고 뛰는 것으로 속도가
늦춰진 것은 아니었다. 나이로 인하여 걸음이 느린 아주머니로 인하여 속도를 더 빨리 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로인하여 뒤늦게 출발한 은주에게도 따라잡혔으며, 곧 은주의 뒤를 따라온 이들에게도 포착되었고,
어둠을 뚫고 날아온 총알이 아주머니의 바로 옆 나무를 적중시키자, 놀란 아주머니가 몸을 낮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저 놈…….”
그리고 그들의 눈에도 추선우가 보였다.
‘픽픽’
그 순간 두 사내의 손에 들린 총이 곧바로 추선우를 겨냥하였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추선우는 자신을 향해 총이 겨냥되는 순간 곧바로 몸을 움직였고, 그 후에 발사된 두 사람의 총알은 그가
서 있었던 곳을 지나, 뒤에 있던 나무에 꽂혔다.
“쫒아!”
추선우는 지현이 있는 곳, 반대편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고, 그들은 총을 든 손을 내린 뒤, 곧바로
그곳으로 뛰기 시작하여, 곧 추선우가 몸을 숨겼던 지역에 다다르기 전, 움직임을 조심하며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바스락’
‘픽픽픽’
짙은 어둠과 함께 조용한 정막이 흐르고 있었기에,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인하여, 두 사내는 해당물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고,
약 세 발 정도씩을 발포한 후, 멈췄다.
“젠장…….뭐가 보여야 말이지.”
가로등이 있는 곳은 어느 정도 어둠을 밝히고 있지만, 진정 가로등의 불빛이 뻗어나가지 못한 부분은
너무나 짙은 어둠만이 있었다.
“콜록 콜록”
“!!!”
그 순간 예기치 못하게 지현의 기침소리가 들렸고, 두 사내의 귀와 눈은 곧바로 해당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은주와 아주머니는 너무나 놀란 눈으로 지현의 입을 막긴 하였지만, 이미 지현의 기침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어간 후라,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지현아…….아저씨와 놀자. 아저씨가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했고, 인형도 사놨어. 그러니…….”
“바스락.”
‘픽픽’
기침소리가 들린 부근 가까이가자, 한 사내가 사탕발린 말을 하였고, 그 순간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들리자, 해당 방향을 향해 또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탁! 퍽퍽!’
“!!!”
바스락 소리와 함께 뒤를 경계하여 보고 있던 사내가 해당방향으로 총구를 돌리는 순간, 어느새 총을 든
손은 자신의 손은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혀있었고, 지현이 있는 위치를 향해 보고 있던 사내가 그 소리에
몸을 돌렸지만, 이어지는 추선우의 돌려차기에 그의 손에 들린 총마저 떨어졌고, 곧 그가 다시 몸을
바로잡자, 곧바로 또 한 번의 발차기가 날아와 그의 면상을 날렸다.
‘퍽퍽퍽!’
그리고 추선우에 의해 손이 잡혀있던 사내는 자신의 손에 총이 있지만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가락이 들어가는 부분에 추선우의 손바닥이 어느새 막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자, 몸을 뒤로 빼려하였지만, 그 즉시 추선우의 주먹이 날아와 면상을 날렸고, 연이어 또 한
번의 주먹과 함께, 돌려차기가 들어오면서 그 역시 산책로 앞으로 쓰러졌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되고 있을 때,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 알았다. 지금 곧 움직이겠다.”
지용석은 짧은 통화를 끊은 후, 두 사람의 곁으로 섰다.
“지금은 누구를 믿고 믿지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펜션 뒤로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나섰던
대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도심으로 향하는 산책로 중간부분에서 두 사내가 기절해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다행히 인근에 혈흔은 없다고 하니, 지현을 데리고 이동한 추선우 일행에게 별다른
총상이나, 부상은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지금 즉시, 대원들 모두를 이동시킨다.”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지용석은 펜션을 나선 뒤, 경호실 인원에게 각기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펜션 안에서
창문을 통해 외부를 보고 있던 태정민의 눈동자는 여전히 매서우면서도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태정민은 설장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의 수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믿음을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힘은…….전적으로 빌려 쓰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믿음인지, 아니면 환심을 얻기 위한 술수였는지는…….차후에 결정짓는다는
말이었다.
“내려가자.”
같은 시각. 산책로의 끝부분까지 다다르자, 추선우가 말했고, 곧 도심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어둠속에서
헤매던 것과는 달리, 도심의 불빛은 화려해 보였다.
“일단. 지현이에게 뭐 좀 먹여야겠어. 하루 종일 애를 굶겼으니, 우린 지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거야.”
은주가 추선우의 품에 안긴 지현을 보며 말했다. 비록 먹을 것을 사기 위하여 나섰다가 이와 같은 봉변을
당했지만, 은주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결코 머릿속에 담아두려 하지 않았다.
“한 놈이 더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가 부채를 펼쳐,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영상을 보셨으니 아실 것입니다. 북정마을과 연화장. 지현을 안고 있는 민간인…….모두 그 놈을 잊고
계시는군요.”
그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설장호와 태정민만이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머릿속에서는 또 한 명이 떠올랐다.
“회장님.”
네 명의 사내가 진정 신중한 표정과 어투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방문 앞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그의 물음에 문신을 한 사내가 답했다.
“약 두 시간 전, 경기도 외곽에서 국정원차량을 발견하였다는 보고와 함께, 인원을 보냈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그래. 기억하고말고. 국정원차량이 성남외곽에서 버젓이 돌아다니기에 쫒으라고 했지, 그래…….그에
대한 답이 왔는가?”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의 말에 그는 굳은 표정을 풀며, 그의 말에 답한 뒤, 다시 물었다.
“죄송합니다. 총 11 명이 현장으로 움직였는데, 단 한명도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위치가 포착된 곳으로 사람을 보냈고, 그 답이 왔습니다.”
“답이…….무엇인가?”
“직접 보시겠습니까?”
사내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문신을 한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네주었고, 곧 하나의 영상을 재생하였다.
재생된 영상을 보기 위하여 모두가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고, 모두의
표정이 더욱 더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해당 영상은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으로 태정민을 향하여 총을 쏘는 부분부터, 설장호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신이 보낸 인원이 모조리 죽어나가는 영상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설장호…….”
그리고 그는 이를 꽉 깨문 채 모든 이가 다 어스러질 정도로 설장호의 이름을 불렀다.
“설장호와 함께 모습을 보인 놈들은 국정원소속이 아닙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으로 이름은 지용석.
태정민과 함께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실장인 서지호보다 더 인정받는 두 인물입니다.”
곧 설장호와 함께 움직인 지용석에 대해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통령께서…….제대로 한 번 놀아보시려 하는 듯한데, 그 장단에 맞춰 드려야지요. 모두…….영상을 잘
보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대로 48 시간 안에 이 일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오늘 만남은 이쯤에서 접고, 48 시간 후. 다시 이곳에서 회장님과 함께 만나기로 하겠습니다.”
아직 식탁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40 대 중반의 사내는 영상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그가 일어나자, 나머지 세 사람도 함께 일어섰다.
“우리…….이번엔 내기라는 것을 한 번 해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모두 방을 나서려던 찰라, 문신을 한 사내가 제안을 하였다.
“내기요?”
그의 말에 계량한복을 입은 사내가 물었다.
“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회장님의 심려를 끼쳐드린 것도 있고하니, 우리 중, 누가 이창민의 모든
것과, 그의 여식,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 지용석의 목을 가져오는지 내기한 번 합시다. 참…….그
민간인도 함께 포함입니다. 그들의 목을 먼저 가져오는 이에게 차기 회장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
세 사람은 그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최고 수장자리를 걸고 이번 일을
마무리하자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회장님의 건강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두고, 각지에 뻗어있는 우리 조직의
수뇌부들이 차기 회장에 대해 거론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니, 뭐…….제안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 하군요.
모두 이의가 없다면, 그 제안…….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0 대 중반의 사내가 답을 내렸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의 어떤 말없이, 식당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그들이 나서자, 비로소 식당 안에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지금 즉시, 경기도 성남일대를 모조리 뒤진다. 그곳에서 그들을 놓쳤으니, 그 일대에 있는 놈들에게
움직이도록 명령 내려라.”
“네. 회장님.”
다음으로 정구석이 움직였다. 그는 모든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을 듯 보였던 인물로써, 그 역시
비밀조직에서 주먹세계를 거느리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펜션으로 보냈던 자신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은
것에 대해, 성남일대의 건달조직들을 움직여, 설장호를 비롯하여 모두를 잡도록 명령 내렸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기관에 자신의 수하들이 신분을 숨기며 국가의 일을 하고 있으니, 나머지 세 사람의
권력이 높다고 하여도, 이 젊은 인물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만에 하나 고민국의 눈 밖에 난다면, 자신의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여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어디든, 고민국이 관리하는 수하가 있기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행 급행열차에 올라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 조직을 모체로 두고, 그 안에서 각 분류별로 나뉘어 수장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각기 정치계와 경제계, 그리고 주먹세계와 함께, 각 기관에 수많은 인물을 심어놓고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숨겨진 비밀조직의 일원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각 기관의 수장들이 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했듯이 일부다. 그 기관에 속한
인물 중, 일부가 이들과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화장실 좀 다녀와야겠군.”
설장호는 지용석이 듣도록 비교적 큰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공용화장실로 향하였다.
“따라 붙어라.”
그와 태정민이 함께 화장실로 향하자, 지용석이 경호원에게 말했고, 그 즉시 두 명의 경호원이 두 사람과
함께 움직였다.
“똥 싸는 것까지 함께 보고 있을 것인가?”
화장실로 들어선 후, 설장호가 좌변기가 설치된 안으로 들어서자, 한 경호원이 그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 것이 보였고, 설장호는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위잉~’
지현을 안고 번화가를 벗어나기 시작한 추선우는 곧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 즉시 한
손으로 지현을 안은 후,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자, 은주가 다가서며 그와 함께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지현의 경호는 네 몫이다. 절대 지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그리고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은
북정마을로 보낸다. 그곳에 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한…….너의 뒤에도 항상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연화장의 영상. 자세히 분석하십시오. 그럼…….적어도 우리의 의심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펜션에서의 일을 생각하면…….진정 숨어있던 그들이 움직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용석의 부탁으로
그곳에서 죽은 인물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국정원소속이었던 것을 확인하였고, 총기를 소지한
민간인들도, 그저 평범한 민간인은 아닐 것이라 여겨집니다. 지금부터…….진정 그들과 전쟁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우리끼리 하는 집안싸움은 그들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 됩니다.-
“뒤…….쫒을까요?”
두 사람이 번화가로 들어서자, 경호실 인원이 지용석에게 물었다.
“아니…….쫒지 않는다. 저 사람들의 위치를 알고자 한다면, 바로 알 수 있겠지. 지금 즉시. 오늘 하루
…….설장호실장과 태정민팀장의 전화기 발신 및 수신추적을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뒤를 쫒겠다는 경호실 인원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 곧 해당 대원에게 두 사람이 오늘 하루
통화한 내용을 모두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지용석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경호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직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용석은 보고 있었고, 그 두 사람을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응?”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북정마을 꼭대기인 자신의 집이 보였고, 비록 개미처럼 작아 보이지만, 몇 인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은주는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말처럼 그녀의 집주위를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설장호의
사람들이었다. 설장호는 국정원내에서 자신의 비서에게 북정마을 경계를 맡도록 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은주와 아주머니에게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말을 남겼었다.
은주는 북정마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추선우 홀로 선택했던 일이지만, 도움을 주고 싶었던 두 모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 홀로 선택한 일에 대해 홀로 책임을 지려는 그였고, 은주는 마음 한 편에 괜한
통증이 일고 있는 듯하였다.
“이장구의 휴대전화…….”
갑작스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이장구의 휴대전화가 떠올랐다.
이장구의 휴대전화는 지현의 목걸이에 설치되어 있던 장치의 위치를 추적하였으니, 그의 휴대전화에는
지금 현재 지현의 목걸이에서 분리해 놓은, 위치추적장치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네, 실장님.”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지호는 전화수신음이 한 번도 제대로 울리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즉시 북정마을로 사람을 보내주게.”
설장호는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정확한 설명 없이 경호실 인원을 북정마을로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북정마을? 그곳 인근에도 제가 사람은 이미 보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설 실장님의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굳이 서로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북정마을 아래에 잠복 시켜두었습니다. 그런데
…….”
“잘 됐군. 그럼…….지금 즉시 사람을 올려 보내게.”
“네? 그럼 국정원 인원과 마찰이…….”
“정확히…….다시 말하지만 누가, 우리가 찾는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내가
오늘 아침 지현의 목걸이에서 떼어낸 위치 추적 장치를 분실하였고, 그 분실한 위치 추적 장치가 현재
북정마을에 있다.”
“!!!”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한 밤중의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추선우는 이미 북정마을 벗어났고, 청와대 경호실 인원은 골목, 골목을
돌아 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은주와 아주머니를 안전하게 집안까지 들여보낸 후, 그 일대를 경계서고 있는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모두 검은 밤하늘에서 움직이고 있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 인원들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북정마을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는 시점에 설장호의 비서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네 실장님.”
설장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그가 현재 자신의 명령으로 북정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위치를 물었다.
“북정마을입니다. 어디십니까?”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은 잘 도착하였나?”
설장호는 그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였고, 그의 물음에 답은 하지 않은 채, 은주와 아주머니에 대해 물었다.
“네. 약 30 분전에 도착하여, 휴식중입니다. 그리고 그 일대를 저희 국정원 인원이 경계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선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만이 집으로 왔습니다.”
“추선우와 지현은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
비서는 두 모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말하였고, 곧 추선우에 대해 말하자, 설장호의 답이 곧바로 나왔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디십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니. 네가 올 필요 없다. 지금 내가 북정마을로 가고 있으니 말이야.”
“…….”
또 다시 비서는 말을 이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곧 시선을 북정마을 아래로 내리자, 어둠속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실장님…….”
“왜 그러는가?”
“혹여…….저를 의심하고 계신 것입니까?”
비서는 어둠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몇 인물들이 보이자, 설장호에게 조금은 날카로운 어투로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그냥…….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곳으로 누군가 오르고 있는 듯해서요. 혹시 제가
알지 못하는 인물들을 이곳으로 보내셨나 해서 여쭤 보는 것입니다.”
“…….”
설장호는 비서의 이 말 한마디로 그가 자신과는 다른 배에 올라탔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과 같은 배에 탄 인물이라면,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해서 보낸 인물이 아니라, 지현의 목을
노리고 찾아온 손님이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설장호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말을 먼저 하였다. 그 말은 지금 북정마을 꼭대기로 오르고 있는
인물들이 설장호나, 아니면 그와 같은 배에 탄 인물이 보낸 사람들이라 먼저 생각을 한 것이기에,
설장호는 그의 본심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최광민.”
“네. 실장님.”
설장호는 잠시 말을 이어하지 않았고, 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현의 목걸이에 장착되어 있었던 위치 추적 장치…….자네가 가지고 있는가?”
“…….”
최광민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설장호가 이 말을 자신에게 곧바로 물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었다.
“최광민…….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오십시오. 제가 죽는지, 아니면 설 실장님이 죽는지…….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뚜뚜 뚜뚜’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최광민이 끊은 것이 아니라, 설장호가 먼저 끊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붉어질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꽉 다문 이가 어스러질 정도로 이를 바드득 갈고 있었다.
“지현이 모자 쓰는 거 좋아해?”
삼성역에 다다르기 전, 추선우는 한 의류상점앞에 멈춰선 후, 지현에게 물었다. 설장호가 처음 자신을
추격할 때, 그가 서울시내에 있는 모든 CCTV 를 이용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로인하여 지금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도 CCTV 를 이용하여 자신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지현에게 모자를 씌울 생각이었고, 또 한 뉴스를 통해 지현을 본 민간인들의 눈도 피할 요량이었다.
“응. 좋아해.”
“그래? 그럼 우리 나란히 모자하나 사서 쓸까?”
추선우는 지현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지현도 그의 미소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현은 추선우가 왜 이런 물음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그저 그의 말에 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픽 픽!’
“!!!”
한 편. 청와대 경호원들을 모두 제압한 후, 그 시신을 한 쪽으로 옮기고 있던 국정원 대원들이
어둠속에서 날아온 총알에 의해 쓰러졌고, 그것을 본 최광민은 곧바로 몸을 낮추어 은주의 집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섰다.
“더 숨어들은 모양이군. 모조리 잡아 족쳐라.”
“네.”
그는 은주의 집으로 향하면서 나머지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국정원소속, 최광민입니다.”
최광민은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힐끗힐끗 보면서 은주의 집 초인종을 계속 누르며 자신의 신분을
말하였다.
“네. 무슨 일이세요?”
집에 도착하여 모처럼 샤워를 한 후, 옷을 입고 나온 은주는 최광민의 목소리를 듣고, 문 앞에 서서
물었다.
“급히…….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지 모르는 놈들이 접근하였습니다. 서둘러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광민은 은주에게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속내는 완벽하게 숨기면서,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은주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일체의 의심 없이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고, 곧바로 잠이 든 아주머니가 있는
방으로 움직이며, 아주머니를 깨웠다.
문이 열리자 최광민은 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잠그고 난 뒤, 창가로 다가서며 아래의 상황을 보았다.
“저 놈은…….”
그리고 아래에서 하나, 둘 죽어나가는 국정원대원들을 보고 있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 올라간다.”
같은 시각. 설장호와 태정민이 북정마을 아래 도착하였다. 설장호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서둘러
위로 오르며 말했고, 그 뒤로 태정민이 따라 올랐다.
‘띠리리리’
북정마을 초입부분에 오르자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찌되었는가? 제압했는가?”
서지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물었다.
“실장님의 생각이 맞은 듯합니다. 최광민이 그 조직에 가담한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 경호실 대원들이
전멸했습니다.”
“!!!”
설장호는 열심히 뛰어올라가던 걸음을 멈추며 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고, 그
옆으로 태정민도 함께 동작을 멈추었다.
설장호는 이미 최광민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을 쉽게
제압할 정도로 최광민이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모두 당한 것인가? 자네의 경호원들이라면…….”
“그 쪽은 우리에게 마음 놓고 총을 쏠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우리 쪽은 확인이 필요치 않았습니까?
그래서…….”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손마저 바르르 한 차례 떨고 있었다. 이 또한 자신의 실수였다.
최광민과 통화를 하였고, 그가 뿌리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서지호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로인하여 서지호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니, 확인을 먼저
하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이지만, 최광민은 달랐다. 이미 자신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다는 것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한 사과는 차후에 하지. 일단 최광민을 먼저 잡는다.”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전화기를 끊었고 곧바로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서지호는 그가 자신에게 할 사과는 설장호의 부하가 자신의 부하직원을 죽인 것에 대한 사과를 생각하였다.
하지만 설장호가 말하는 사과는 자신이 미리 알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사과였다.
“경호실 인원이 모두 당했다. 최광민이 어떤 놈들을 끌어들여 경호실인원을 제압했는지 모르니 신중히
행동한다.”
“네? 경호실이 당했다고요? 정말입니까?”
태정민은 서지호와의 통화내용을 이제야 들었다. 그리고 놀란 눈을 한 채, 물었지만,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한 편. 최광민이 조직에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은주는 그의 말을 듣고, 아주머니와 함께,
간단하게 짐을 챙겨 나서며 물었다.
“잠시. 대기하겠습니다. 바로 밑에서 그 놈들이 나타났는데, 저희 대원들이 모두 당한 모양입니다. 일단
문을 잠근 상태에서 지원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
아주머니는 너무나 놀라 다시 주저앉았고, 은주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비록 자신들이 선택하여 지현의
곁에 머물기는 하였지만, 그 여파가 굉장히 크게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었다.
‘딩동. 딩동’
연이어 초인종이 다시 눌려졌고, 그 때마다 은주와 아주머니의 심장소리는 더 커지며 빨라지고 있었다.
‘띠리리리’
문 앞을 주시하며 서 있던 최광민의 귀에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더욱 더 매섭게
변하며 문을 주시하였다.
‘띠리리리’
또 다시 울리는 전화벨에 최광민의 날카로운 시선이 두 모녀에게로 돌아서자, 곧바로 은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주씨?”
“누구세요?”
“저. 태정민입니다.”
“!!!”
은주는 처음 보는 전화번호라 받지 않으려 하였지만, 추선우가 어떤 번호로 연락을 다시 할지 모르기에
받았었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이 태정민이라는 말에 놀란 눈을 하였다.
“살아…….계셨어요?”
진정 은주는 태정민이 죽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고, 지금 통화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지금…….국정원소속 인원과 함께 있습니까?”
“네.”
“젠장…….”
“네? 젠장 이라니요? 왜 욕을…….”
“아닙니다. 은주씨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부터 듣기만 하십시오. 혹시…….그 국정원사람이
바로 옆에 있습니까?”
“아니요. 전 따로 방에 있습니다. 지금 문 앞에서 어떤 놈들이 국정원소속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문까지
다가섰는데, 살아남은 국정원 사람이 그 사람을 막고 있어요.”
“!!!”
태정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았다. 필시 경호원들은 모두 당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욱 더 놀란 것은 최광민이 오히려 숨어있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몰라요. 그냥 초인종만 누르고 있습니다.”
확인이 가능하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즉시 아주머니와 함께 방에 들어가셔서 나오지 마십시오. 절대…….
국정원소속 인원도 믿지 마시고, 문 앞에 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도 믿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거의 도착하였습니다. 문 앞에 선 인물을 제압하면 그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후, 은주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최광민은 여전히 문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 뒤로
아주머니는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성남의 펜션을 벗어나다, 산책로에서 경험한
총격에 의해 이 모든 상황이 무서워진 것이었다.
“엄마. 엄마.”
은주는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머니를 불렀고, 은주의 목소리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리자, 은주는
손짓으로 오라는 듯 표시하였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몸을 일으킨 후, 은주가 부르는 곳으로 움직였고,
그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서도, 최광민은 문을 주시한 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호실 인원입니다.”
꼭대기에 도착한 후, 태정민의 눈에는 한쪽으로 마치 쓰레기더미처럼 싸여있는 시체들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과 함께 근무한 경호원들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쪽은 국정원인원이다…….젠장. 어떤 놈이기에 국정원과 경호원을 모조리 눕힌 거야…….”
곧이어 설장호는 최광민과 함께 움직였던 국정원인원을 확인하였다. 그들 역시 총상을 입은 후, 모두
죽어 있었다.
한 밤중에 소란이 일고 있지만, 이 모든 총격은 소음기가 장착된 탓에, 고요한 밤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았다. 그로인하여 마을 주민들은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한 채,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띠리리리’
다시 은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태정민인 것을 알고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받았다.
“지금…….제압에 들어갑니다. 절대 문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주머니와 함께, 문을 걸어 잠그고
꼭 숨어계십시오.”
“알겠습니다.”
은주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아주머니와 함께,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 모두 끝났을 것이라 여겼지만, 오히려 더 위급한 상황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회장님. 삼성역에서부터, 모자를 눌러쓰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이동하던 두 사람이 사당역에 하차한
모습이 CCTV 에 잡혔습니다. 체격으로 보아, 우리가 찾아야 할 지현과 그녀를 경호한다는 민간인
추선우로 보입니다.”
같은 시각. 정구석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자신의 초호화 오피스텔에서 늦은 시간까지 한가롭게 와인을
마시며 있었고, 그의 옆으로는 세 명의 여인이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 정구석의 옆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가 다가서며, 현재 추선우와 지현으로 보이는 인물을
찾았다는 보고를 하였다.
“백태야?”
“네. 회장님,”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의 이름은 백태였다. 정구석을 보좌하는 인물이며, 그의 경호원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엄청난 거구의 몸이며, 검은 정장이 몸에 딱 붙어, 마치 다 찢어질 듯 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이창민이…….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냈는지 아느냐?”
정구석은 대뜸 백태에게 이창민에 관한 말을 꺼내 물었다. 주어진 48 시간 안에 지현을 잡아,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었고, 그 타깃이 눈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그에게 하였다.
“아직…….정확한 내막을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다.”
“네? 하오시면…….”
백태는 정구석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물음을 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조직은 거대하다. 그리고 국제적이다. 이 땅에 눈 먼 땅과 돈. 심지어 권력까지…….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우린 그 눈먼 땅과 돈을 챙기고, 또 권력을 챙기며, 오랫동안 버텨왔고, 아무런 탈도 없었다.
만에 하나 우리 일을 알아낸 놈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 몇 푼이면 모두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처음으로 이 썩어빠진 나라에서 대통령이 나섰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각 국가기관의 수장들
중, 우리의 사람이 없다. 고작 그들의 밑바닥에서 발이나 닦아주는 놈들이 몇 있을 뿐이다.”
정구석은 여인이 따른 한잔의 와인을 마시며 말했고, 곧 다른 한 여인이 안주를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대통령만 남겨두고 모조리 목을 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이 있은 후, 백태가 선글라스 속 눈동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모조리 목을 치면 되지. 그러면 아주 쉽게 해결되지.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예전 같지 않다. 그
놈들의 목을 친다는 것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이번에는 누구하나 제대로
죽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구석은 삼성동 한식당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비록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주 복잡한 계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딩동’
한 편. 북정마을 꼭대기에서는 또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있었고, 최광민은 손에 쥔 권총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위하여 첫 발을 올려놓았다.
“…….”
계단 아래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은주의 집 문 앞에 서 있던 인물은 매서운 눈빛으로 아래를 본 뒤,
다시 위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없는데요.”
곧 태정민과 설장호가 은주의 집 앞에 섰고, 태정민이 집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며, 설장호에게
말했다.
“넌…….문 앞을 지킨다.”
“실장님은요?”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했으니, 필시 그 누군가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래에서
올라왔고, 우리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는 위로 올랐을 것이지. 넌 여기서 대기한다.”
“위험합니다. 제가 오르겠습니다.”
“아니. 내가 위험하면 너도 위험해.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강하고…….만에 하나 일이 잘 못되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았으니, 젊은 네가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집안에 있는 최광민도 그리 만만찮은 놈이다. 비록 실전에 투입된 놈은
아니지만, 잔머리로 지금까지 나를 속여 왔던 놈이야. 만약 그 놈과 맞닥들인다면, 내 대신…….죽빵 한
방만 제대로 날려줘라.”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농담이 섞인 진담을 말했고, 태정민은 그의 뜻대로
자신이 문 앞을 지키며, 최광민에게 제대로 된 죽빵 한 방을 먹이고자 생각하였다.
이내 설장호는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은 은주의 집 앞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내부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곧 연립 옥상으로 올라섰다. 그곳에는 추선우가 살고 있는 옥탑방이 있었고, 옥상 곳곳에는
사용하지 않는 각종 가재도구나, 전자제품들이 싸여 있었다.
“어디로 갔습니까!”
태정민이 위로 올려다보자, 설장호가 난관에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일단. 아주머니와 은주씨의 안부부터 확인한다.”
태정민은 최광민의 뒤를 쫒을 생각이었지만,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서둘러 계단으로 올라서며,
은주에게 전화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의 전화를 받은 은주는 장롱 속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였고, 거실
유리창이 박살난 것을 보며 놀란 눈을 한 채, 문을 열어주었다.
“괜찮으십니까?”
태정민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주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가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보며 살며시
안아주었다.
“네가 여길 왜 와?”
설장호는 그녀의 출현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가 움직였으니 당연히 검찰 쪽에서 따라붙었을
것이며, 또 한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다시 검찰총장의 눈과 귀에 고스란히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리가 우선이죠. 그 후의 일은 그 후에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유리창이 깨지는
소음으로 인하여, 불이 밝혀진 몇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에 시체더미가
보인다면…….그게 더 큰 일로 번지지 않을까요?”
강서진의 말에 설장호는 그녀를 잠시 동안 보고 있었다. 언제나 서툴며, 뭔가 부족한 듯 보였던 그녀지만,
가끔은 자신보다 더 빠른 결정을 내리며, 움직이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한 그였다.
“이래저래 검찰총장에게 제대로 뒷목 잡힌 꼴이 되었군.”
설장호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에는 만족하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총장에게
꼬투리를 잡힌 꼴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두 사람이 이 모두를 다 죽였을 리는 없을 테고, 누가 또 있었습니까?”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후, 아주머니는 은주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었고, 거실에서 깨진 유리
창문을 보며 강서진이 물었다.
“말하자면 복잡하다. 일단 자네는 저 두 사람을 데리고 여길 벗어나게. 나와 태정민은 지금 즉시
대통령님을 만나봐야겠어.”
“지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아십니까?”
강서진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시계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 자정은 넘지 않았지만, 곧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이 울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상관없다. 지금부터라도 흩어진 모든 것을 다시 조합해 봐야한다. 최광민이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을 노출시켰다는 것은 그 놈을 조종한 실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그들과 한 배를 탄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두 사람의 표정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라고 해
봐야, 석강수나 이지광이었다. 하지만 연화장에서 있었던 사건을 시작으로,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같은 시각. 추선우는 사당역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CCTV 를 속이며,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와 태정민이 청와대로 향했다? 그리고 북정마을에는 지현을 데리고 있는 추선우가 아예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 편. 북정마을을 빠져나온 최광민은 그 즉시 고민국에게 북정마을에서 있었던 내용을 알렸다. 고민국은
뿌리 조직의 일원으로 국가의 각 기관에 파고들은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책임자였고, 국정원에서 설장호의
비서로 숨어 지냈던 최광민에게 지현을 잡도록 명령 내렸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나같이…….쓸모없는 놈들뿐이군. 이미 한 차례 폭풍을 몰고 지나쳐갔으니, 쑥대밭이 된 북정마을에
우리의 타깃이 다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고. 설장호와 태정민이 청와대로 갔다면, 차대통령이 또
다른 결단을 내릴 것인데…….일이 복잡하게 돌아가는군.”
고민국은 새벽으로 넘어선 시간에 때 아닌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삼성역 인근 한식당에서 자신 있게
내기에 동참하였고, 48 시간 안에 정해진 타깃의 목을 누가 더 많이 가져오느냐에 따라 차기 회장 자리에
앉는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시점이지만, 고민국에게는 모든 것이 다시 초기화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일단. 몸을 숨기고 대기하라. 설장호가 너의 신분을 알았으니, 너의 목은 설장호에게 저당 잡힌 상황이
된다. 다른 놈을 움직이게 할 테니, 당분간 숨어있어.”
“알겠습니다.”
최광민은 고민국의 명령을 받은 후, 그 즉시 북정마을을 더 멀리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지현은…….추선우가 계속 경호중인가?”
잠시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던 차현태가 물었다.
“그 놈이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태정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고, 그의 목소리에 나머지는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보았다.
비록 설장호도 그 당시 그와 조우가 있었지만, 쏟아지는 총알세례로 인하여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현을 태운 채, 서둘러 연화장을 벗어났었다.
“연화장. 저와 추선우의 앞을 막았던 놈입니다.”
태정민의 설명이 나오자마자, 설장호는 곧바로 서지호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거의 뺏다시피 하였다.
“사당역 어디부근인가?”
“사당역 13 번 출구, 편의점 인근입니다. 추선우의 동선에 맞춰,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절대…….절대 시야에서 놓치지마라. 지금 곧 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태정민도 함께 일어섰다. 두 사람이 일어서자, 차현태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보았다.
“인원이 더 필요치 않겠는가?”
차현태가 물었다.
“일단. 현장에 있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는 조금 전 말씀하신대로 아침
일찍 각 부처 수장들을 만나, 그들의 의중을 파악해 주십시오.”
“알았네. 조심하게.”
설장호와 태정민이 바로 움직였고, 서지호는 다시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바로 따라붙도록 명령 내렸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두 모녀를 데리고 자신이 홀로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온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고 있었다.
“어디야?”
설장호였다.
“집으로 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의 형사 팀은 아직 자네를 잘 따르고 있지?”
“네? 아…….네.”
“그럼. 부탁하나 하지. 지금 즉시 자네와 함께 움직였던 형사들을 사당역으로 보내주게. 아무래도…….
추선우의 뒤에 사람이 붙은 것 같다.”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강서진은 또 다시 옷을 챙겨 입었고, 그녀의 행동에 은주와 아주머니가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아무 일 아닙니다. 그냥 편히 계십시오. 이곳은 문만 열어주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절대…….그 누가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강서진은 아주머니와 은주를 보며 말한 뒤, 곧바로 집을 나섰고, 그녀가 급히 움직이는 탓에, 은주와
아주머니는 또 다시 괜한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덮어오는 듯하였다.
설장호가 말한 강서진의 형사 팀은 연화장에서 추선우와 태정민을 구해낸 팀이었다. 강서진의 명령에 의해
연화장으로 급히 움직였고, 그로인하여 석강수와 이지광이 물러났던 것이었다.
자정이 넘은 사당역 인근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추선우는 지현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휴식을 취해야 할 상황이지만, 마땅히 휴식을 취할만한 장소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자신
홀로 선택한 일로 인하여, 더 이상 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추선우였다.
“상황변화는 없는가?”
설장호는 사당역으로 급히 움직이는 동안, 또 다시 사당역에서 추선우를 지원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계속하여 뒤 따르고만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녀석을 덮칠까요?”
“아니. 기다려라. 사당역이면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에 하나 녀석이 돌발행동을 보인다면, 자칫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계속 주시하여…….”
“왜? 말을 다 잇지 않는가?”
설장호는 자신에게 현장보고를 하던 경호원의 말이 끊기자, 당황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한 놈이 아닙니다. 그 놈의 주위에 또 다른 놈들이 다가섰습니다. 뭔가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듯합니다.”
“젠장! 일단 경호원 몇 명을 추선우에게 먼저 다가서도록 붙여라. 그놈들에게 추선우의 곁에 우리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더욱 더 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경호원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경호원
중, 두 명에게 손짓으로 표시하며, 추선우의 곁에 붙도록 하였다.
“형사 팀은 어찌되었나?”
설장호는 곧바로 강서진에게 전화하여 사당역으로 움직이고 있는 형사 팀의 위치를 물었다.
“약 10 분 후, 도착예정입니다.”
“서둘러라. 지금 추선우의 뒤로 연화장에서 보았던 놈이 붙었다.”
“네? 석강수 말입니까?”
“아니. 또 다른 놈.”
“또 다른 놈이라면…….SUV 차량에서 내린 놈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서둘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저래 시간은 촉박하였다. 자신이 도착하는 시간도 약 10 분 후다. 10 분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간이기에, 설장호의 마음은 더 초조해지며, 급해지고 있었다.
“움직여라.”
그리고 추선우가 사당역 13 번 출구 안쪽 공용주차장쪽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지광이 자신의 곁에
있던 인물들에게 알렸고, 곧 그들은 추선우를 향해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씨.”
“!!!”
그들이 거의 다가서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경호원이 먼저 추선우의 곁을 다가서며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추선우는 재빨리 지현을 안아 올리며 그들을 경계하였고, 그의 곁으로 다가선 경호원에 의해,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던 이지광의 부하들은 추선우를 외면한 채, 그저 앞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저 놈들은 누군가…….설마 다른 쪽에서도 저 놈의 위치를 파악하여 붙은 것인가?”
그 모습을 본 이지광이 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추선우의 곁에 붙은 인물이 경호원이란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정구석과 함께 이번 사건을 일으킨 네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보낸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흩어지지 않고, 모두 자리 지킨다. 추선우의 곁에 붙은 인원은 사방 1 미터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두 명의 경호원이 추선우의 곁에 붙자마자, 경호팀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곧바로 각 팀원들에게 명령
내렸고, 그 즉시 해당 경호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모두 멈춘 채, 이지광과 그의 인물들을 감시하고만
있었다.
“설장호 실장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지금 일대에 의문의 인물들이 다가서고 있으니, 저희들이 함께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의 곁에 붙은 경호원이 그에게 말했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추선우의 눈빛이 변화며, 주위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돌리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설장호였고, 추선우는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그와 통화를 하였다.
“!!!”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 그의 눈빛이 더욱 더
매서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고, 약 50 미터 전방. 한 무리가 담배를 물고 있는 지점에서 이지광의 모습이
추선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보입니다.”
-보이는가? 이제부터 그 놈의 눈에서 벗어난다.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마라. 넌…….지현을 경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놈들은 우리가 커버한다. 넌 너의 곁에 붙은 인원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해라.-
설장호와 통화를 끝낸 후, 추선우의 눈빛은 정확히 이지광을 향해 고정되었고, 그의 눈빛을 마치 본 듯한
이지광의 표정도 매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 쪽 사람이 아니군. 아무래도 저 꼬맹이를 보호하고자 붙은 놈들이겠지.”
이지광은 먼 거리지만,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후,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접니다.”
지난 날. 북정마을에서처럼 그는 정구석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지금…….타깃 곁으로 몇 놈이 붙었는데, 아마도 또 다른 타깃이 다가설 모양입니다. 어찌할까요?
원하신다면 모조리 다 잡아서 목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젠장. 뭐야!”
이지광의 패거리들이 뭔가 작정을 한 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자,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모든
경호원들의 눈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경호원을 이끄는 팀장이 쓴 표정을 지으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이지광. 그래…….이런 일은 너 같은 독한 놈이 해야 한다. 잃을 것이 없는 놈. 딱 제격이지…….”
정구석은 이지광과 통화를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직까지 여인을 곁에 두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으며, 곧 그가 일어나자, 그가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기며, 세 명의 여인은 그를 데리고 욕탕으로
향하였다.
‘끽!’
같은 시각. 설장호와 태정민이 도착하였고, 곧 이어 옆으로 강서진도 도착하여 차량을 주차하였다.
“나와 태정민은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인다. 너와 형사 팀은 이지광을 찾아.”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차량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강서진과 함께 도착한 형사 팀들도
서둘러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설장호는 곧바로 추선우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실장님께서 보냈다는 인원과 함께, 주차장 외부 쪽을 돌아 번화가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지금 나와 태정민이 사당역에 도착하였다. 빛이 없는 방향으로 향하지마라. 그 어둠이 이로울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헤로울수도 있다. 지금 즉시, 공용 주차장 쪽으로 움직인다. 나와 태정민이
그쪽으로 향하겠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의 연락을 받은 후, 지현을 더 꽉 안은 채, 주차장 방향으로 향하였고, 그의 양 옆으로
경호원 두 명이 밀착하여 붙은 뒤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실장님! 녀석들이 아무래도 눈치 깐 모양입니다. 모두 다 한꺼번에 흩어졌습니다!”
추선우와 통화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에, 경호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의 말에 설장호의
눈은 사방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조건 먼저 찾아! 이곳에서 그들이 돌발행동을 벌인다면, 인명 사고다!”
“알겠습니다!”
진정 대형 사고라 할 수 있는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이었다. 이미 이지광이 정구석에게 한 말처럼,
이곳에서는 설장호쪽보다 이지광쪽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현아. 삼촌 꼭 잡아.”
“응. 삼촌.”
추선우는 주변을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지현을 꽉 안은 채 말했고, 그의 말에 지현도 추선우의 옷깃을
강하게 잡으며 답했다.
‘퍽!’
‘슉슉 퍽퍽!’
그 순간 추선우의 옆으로 어둠속에서 뭔가 날아와 한 경호원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곧바로 다른 한
경호원이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그 역시 뒤이어 휘둘러진 각목에 의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슉!. 탁탁 퍽!’
추선우는 자신의 옆에 있던 두 경호원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곧바로 지현을 안아 돌리며, 경호원을
쓰러뜨린 인물의 시야에 지현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향을 틀었고, 그 순간 각목을 들고 있던 한 인물이
각목을 강하게 휘둘렀지만, 추선우가 주차된 차량 틈으로 몸을 빠르게 숨기자, 각목은 차량을 강타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을 일으킨 추선우가 지현을 안은 채, 어렵게 발을 뻗어 올리며, 옆차기로 상대를 뒤로
밀어냈고, 곧바로 차량들 틈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실장님! 저기!”
그리고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주차장 입구방향으로 들어서던 태정민의 시선에 그 모습이 보인 후,
그가 먼저 움직이며 소리치자, 곧바로 설장호도 태정민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리 사람들 외에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잡는다!”
설장호는 이동 중, 강서진과 경호 팀장에게 무전으로 알렸고, 곧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는 각자의
대원들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현재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그 상대를 찾아내는 방법으로는 최상이었다. 그들도 빠르게 움직이는
추선우를 잡고자, 빠르게 움직일 것이기에, 정확히 어디를 향해서 뛰고 있던, 빠르게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잡도록 한 것이었다.
‘퍽 퍽!’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비록 주 타깃인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주차장의 어두운
면을 통해 차량들 틈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외, 추선우를 추격하던 인물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강서진의 형사들은 서로 안면이 없지만, 이미 설장호에게 받은 무전으로 인하여, 이유
없이 뛰는 듯 보이는 놈들을 이유막론하고 먼저 잡아채고 있는 시점이었다.
“지현아. 괜찮아?
“응 삼촌. 그런데 무서워.”
추선우는 곧 건물 과 건물 틈으로 몸을 숨긴 뒤, 지현을 보며 물었다. 지현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고, 이내 눈물을 쏟을 듯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삼촌이 있잖아.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자.”
추선우는 지현을 다시 꽉 안아주며 말했고, 곧 머리를 살짝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
총이 발사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주차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설장호와 태정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음기를 장착하였기에, 이곳의 사람들이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피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 필시 두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지만, 태정민의 말처럼, 소음기가 장착된 총이었기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총소리가 크게 울렸다면, 민간인들이 우왕좌왕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몸을 피하기는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의 왕래는 변함이 없었고,
그로인하여 만에 하나 그들이 쏜 총에 민간인이 맞는다며, 여러모로 복잡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잡아!”
강서진과 함께 움직인 형사들의 몸놀림도 화려하였다. 그들은 오랜 형사생활로 인한 경험으로, 이지광과
함께 움직였던 이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었고, 강서진은 더 큰소리로 외쳤다.
이에 주변에 있던 민간인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지만, 강서진은 다시 이지광을 찾기 위하여 몇
형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민간인들은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난 상황이라 인지를 하면서도 그 자리를 피하려는 인물들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며, 지금의 상황의 찍기 바빴다.
‘띠리리리’
“네.”
건물틈사이에서 주변을 보고 있던 추선우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곧바로 받으며 몸을 낮추었다. 만에
하나 어둠속에서 휴대전화의 불빛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 될 것을 미리
생각하여 움직인 것이었다.
-괜찮나?-
“네.”
-절대 몸을 일으키지마라. 아직 너에게 총을 쏜 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숨기고 있어.-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통화를 끊은 후, 다시 지현을 안아 올리며,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픽!’
‘팅!’
간발의 차이였다. 추선우가 얼굴을 내밀자마자, 곧바로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추선우의 얼굴 옆을 스친
듯, 그의 볼에는 아주 미세한 자국이 살짝 남았고, 곧바로 다시 몸을 낮춘 추선우는 건물 틈 끝부분으로
보이는 반대편 도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생각보다 쉽지 않네.”
그리고 추선우가 몸을 숨긴 건물에서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건물 틈에 있던 이지광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정구석에게 이곳에 온 모두를 잡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정구석의 말처럼, 상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녀석이 반대편으로 갔으니, 나도 주차장을 지나쳐야겠는데…….저 두 놈이 모두 뒤 따라오면 내가 좀
벅차겠지…….”
이지광은 여전히 건물 틈에 몸을 숨긴 채, 주차장에서 몸을 낮추며 다가서고 있는 설장호와 태정민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시선을 주위로 돌리자, 아직 경호원과 형사들에게 잡히지 않은 자신의 부하 한
명이 자신을 향해 마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보고 있었다.
이에 이지광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가락으로 설장호와 태정민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가리켰고, 그는
그의 손짓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듯,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주차장 중앙에서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이야야앗!”
어둠속에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보인 그를 보며, 태정민이 먼저 다가섰고, 곧 설장호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건물 틈에서 누군가 아주 빠르게 나오며, 주차장을 지나쳐 가는 것이 그의 곁눈에 보이고
있었다.
“이지광…….”
곁눈으로 본, 물체를 더 정확하게 보고자,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차량들 틈으로 빠르게 반대편
건물로 이동하는 이지광의 모습이 설장호의 시야에 확실하게 잡히고 있었다.
‘퍽!’
그 순간 그의 앞에 있던 사내의 주먹이 그대로 태정민의 얼굴에 와 닿았고, 그 충격에 넘어지면서도
이지광의 뒤를 쫒기 시작하는 설장호를 향해 보았다.
“젠장! 너에게 볼 일 없다!”
곧바로 다시 일어난 태정민은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소리쳤고, 단 한 방에 그는 뒤로
데구루루 구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멈춘 자리에서 강서진과 함께 형사 팀이 도착하였고, 그
뒤로 경호원 팀이 합류하고 있었다.
“어찌 된 거야?”
“일단, 이놈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나머지 놈들 다 잡았어?”
강서진의 물음에 답한 뒤, 곧이어 도착한 경호원 팀을 보며 물었다.
“네. 일단 보이는 놈들은 모두 잡아 족쳤습니다. 그리고 형사 팀과 함께 우리 경호원 팀이 그 놈들을
연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설 실장님은…….”
“이지광의 뒤를 쫒았다. 급하니 이놈도 마저 처리하고, 나머지는 함께 움직인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지광을 경험해 본 인물은 태정민과 추선우가 유일하였다. 그리고 그가 석강수와
비등한 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도 두 명 뿐이었다.
“삼촌. 무서워.”
한 편. 추선우는 건물 틈을 나와 도로변을 돌아서며, 다시 사당역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뒤로 이지광이 소음기가 장착된 총을 허리춤에 숨기며 쫒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설장호가 바로 따라붙고 있었지만, 태정민과 강서진 일행은 그와 거리가 벌어지면서
마저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간 거야?”
태정민은 쓴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필시 설장호가 움직였던 방향으로 나왔지만, 거리에는
일반인들뿐이었고, 그 누구도 바삐 움직이거나, 당황하는 사람이 없었다.
즉. 그들은 이지광은 물론, 설장호도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다…….”
설장호의 시선에도 이지광이 사라졌다. 그의 바로 뒤에서 쫒아왔다고 여겼지만,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설장호는 추선우가 움직였던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야에 아무도 보이지
않기에,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지광은 정확히 추선우의 뒤를 쫒아 13 번 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곧 13 번 출구
아래로 다시 내려가는 추선우가 그의 시야에 아주 잠깐 보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을 택하겠다? 좋은 생각이다 추선우. 지금 시간이면 전철역은 정막만이 남아있지, 딱…….
네가 죽기 좋은 장소를 택했군.”
이지광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홀로 중얼거린 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네!”
시야에서 놓쳐버린 추선우에게 다시 붙고자 설장호는 그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어디야?”
“사당역 13 번 출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래? 일단 되도록 몸을 숨겨라. 전철역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없으니, 움직이는 것보다 한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이 더 이롭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좌우를 살폈고, 이내 화장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뒤를 따라 이지광도 바로 내려왔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쾅!’
“정말…….보통은 아니군. 나 같은 놈을 이토록 쉽게 상대하는 놈이 또 있을 줄이야.”
한 편. 화장실 안에서는 때 아닌 소란으로 인하여 전철역내에서 노숙을 하던 노숙자 몇 명이 화장실 앞에
서 있었고, 곧 이지광은 이를 꽉 깨문 어투로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내…….꿈이 경호원이다. 고작 너 같은 놈에게 내가 경호 맡은 인물을 쉽게 내어준다면, 난…….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
추선우는 입가에서 약간의 피를 흘리며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이지광의 입가에도 약간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호원이 꿈이라…….좋군. 이참에 네 꿈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이지광의 공격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진정 빠른 주먹과 발차기를 연달아 퍼붓고 있었다. 마치
액션영화에서나오는 모든 화려한 동작을 다 보이는 듯, 빠르게 움직였고, 추선우도 마치 각본처럼 그의
모든 공격을 피하며, 방어하고, 또 간간히 주먹을 뻗으며 그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오너라…….아가야…….”
이지광은 서서히 걸음을 뒤로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그를 향해 보고 있던 추선우가 서서히
그의 곁으로 더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지현아! 문을 잠궈!”
“!!!”
“저쪽이다! 모두 움직여!”
추선우의 고함소리를 들은 설장호가 소리쳤고, 모든 인원이 화장실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지현은 이미 자신의 앞에 선 이지광의 모습을 보며 몸이 얼어붙어버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퍽!’
이지광은 여자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눈에 보인 지현을 향해 다가서려 하였지만, 그 즉시 바로
뒤에서 추선우의 옆차기가 정확하게 날아와 꽂혔고, 그 충격에 세면대에 몸이 부딪혔다.
세면대에 몸이 부딪히면서 세면대의 거울 일부가 박살났고, 추선우는 쓰러진 이지광에게 연이은 공격을
감행하지 않은 채, 곧바로 지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이미 지현에게 전가 되어버린 공포가 더 번지기 전에 그녀의 눈과 귀를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몸을 비틀거리며 이지광이 일어섰고, 그는 자신이 부딪히며, 세면대의 거울이 일부 깨진 것을 보고,
깨진 거울을 손에 쥐었다.
‘픽!’
그리고 그 순간 설장호가 든 총에서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그 총알은 이지광의 허벅지를 그대로
적중시켰다.
‘덜썩.’
이지광은 허벅지에 총알이 꽂히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소리 내지도 않았다.
심지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결국…….내가 너희들의 손에 잡히고 말았군. 하지만…….나를 통해서 뭔가를 알아내려 하지마라. 난…
….너희들보다. 그 양반들이 더 무서우니 말이야.”
이지광은 화장실 벽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그의 이 한마디로 인하여 이번 일을
사주한 인물들이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을 넘어,
청와대보다 더 무섭다는 말을 그가 직접 한 꼴이 되었다.
“이지광을 연행해.”
설장호는 더 긴말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아니…….이 자리에서는 듣지 않으려 하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지현이 바로 앞에 있었고, 무엇보다 지현이 그가 하는 말을 들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찮나?”
형사들에 의해 이지광이 끌려 나간 뒤, 설장호가 추선우의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고, 곧 지현을 향해
보았다.
“네. 괜찮습니다.”
“지현이는?”
“괜찮아요…….”
지현의 떨리는 목소리에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린 여자아이가 겪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그녀를 안전한 곳에 두고, 범인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마음은 더
아팠다.
어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가설지 모르는 것이 최대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여긴
곳에서 만에 하나 그들의 조직에 가담된 자가 있다면, 영락없이 지현의 목을 그냥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미 설장호가 가장 믿고 있었던 최광민의 배신이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지현을 처음 볼
때, 국정원으로 데려가 그녀를 보호하려 하였었다. 하지만 추선우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추선우에게
그녀의 경호를 맡겼다.
만에 하나 그 당시, 추선우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지현을 국정원으로 데리고 갔더라면,
그녀는 이미 최광민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추선우에게 지현을 맡겨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추선우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직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에게만 지현의 곁에 머물 수 있는 특혜가 있는 지금이었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이 되고, 각 부처 수장들과 함께, 비서실장이 집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국정원장이 차현태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밤새…….어떤 일이 있었는지…….여러분들께서는 보고를 받지 못하셨나봅니다.”
차현태는 그의 질문에 모두를 고루 보며 다시 되물었다.
“아직…….아무런 보고가 없었습니다. 혹여…….그 조직에 관한 것이라도 뭔가 나온 것이 있습니까?”
경찰청장이 답하였고, 그가 다시 물었다.
“검찰은…….강서진 검사가 이번 일에 투입되었고, 경찰은 박태식 형사가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설장호 실장이 투입되었지요. 여기서 박태식 형사는 현재 병상이라 보고를 할 수 없었을 테고…
….설장호 실장과 강서진검사는 충분히 두 분께 보고를 할 수 있었던 입장인데…….”
차현태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본 후, 다시 차현태를 향해 보았다. 진정 두 사람의 표정은
차현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이창민대사가 무엇을 알아내려 했는지. 또 무엇을 알아냈는지. 또…
….그를 그리 만든 사람들은 누군지…….뭐라도 밝혀낸 것이 있습니까?”
이번 질문은 차현태의 표정도 매서웠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능하다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정보 면에서도 가장 빠르게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앉은 사람들은
그 기관의 수장들이었다.
“아직…….정확한 것은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창민 대사가 근무하였던 각 나라의 외교관들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얻고자 하였지만, 그 어떤 것과도 관련된 것이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외교부장관이 차현태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도 차현태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국정원에서도 계속하여 북정마을과, 연화장에서 있었던 내용들을 토대로, 그 때 투입되었던 인원을
찾아내고 있지만,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 한 서울 각 지역에 설치된 CCTV 를
토대로 추선우와 지현양의 동태를 살피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조만간 정보가 입수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국정원장이 보고하였고, 여전히 차현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어제. 북정마을에서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설장호 실장의 비서인 최광민이 지현양을 잡고자 함정을 파
두었지만, 실패한 듯 보였습니다. 최광민은 잡지 못했지만, 국정원 소속 인원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추선우가 살던 집의 집주인과 그녀의 딸은 강서진 검사가 따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
다음으로 검찰총장이 차현태에게 보고하자, 외교부장관은 물론, 국정원장과 경찰청장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비서실장은 아직 입니까?”
모두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였고, 그들의 답변도 들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집무실에 들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해야 할 비서실장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서지호를 보며 차현태가 물었다.
“네. 연락을 취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변도 아직 없었습니다.”
“혹여…….비서실장도 그들과…….”
공교롭게도 그 조직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때에 맞춰 비서실장의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최광민처럼 그 역시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라 여겨지는 검찰총장이었고, 차현태를 보며 의심을 해야
함을 말하려던 찰라, 조금 전 차현태가 한 말이 떠올라 말을 잇지 않았다.
“비서실장에 관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수장들께서는 오늘 안으로, 그들에 대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찾아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의실을 먼저 빠져나오며 서지호에게 눈짓을 주었고, 서지호도 곧
그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총장님.”
“왜 그러십니까?”
“어제의 일에 대해 왜 서로 정보공유를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만약 어제 바로 연락을 주셨다면, 그
조직에 관해 더 빨리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차현태과 서지호가 나간 후, 국정원장이 그를 보며 물었다. 그의 말처럼 어제 북정마을에서의 일만
모두가 공유했어도, 사당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합시다. 일단 오늘…….각 부서를 대표하여 움직였던 대원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보고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실마리를 풀어 나가봅시다.”
외교부장관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 국정원장도 자리에서 일어선
후,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설실장.”
설장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네. 국정원장님.”
설장호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사당역 인근 숙박업소에서 추선우와 함께 지현이 잠든 바로 옆방에
있었고, 지현은 강서진과 함께 밤을 보냈다.
“국정원으로 들어오게. 자네를 의심한 것은 내가 사과하겠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 놈들의 목을
조여보세.”
국정원장은 자신의 진심을 말하였다. 서지호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말을 건넸고,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국정원에서 뵙겠습니다.”
설장호의 답이 없었던 단 몇 초 동안 국정원장의 마음은 초조하였다. 하지만 이내 들린 그의 답변에
화색을 띄며 그와의 통화를 끝냈고, 곧 서지호를 만나기 위하여 차현태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차현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서둘러 청와대를 나섰고, 국정원장은 집무실
앞에서 들어가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기만 하였다.
추선우와 지현을 두고, 모두는 각자의 부서로 돌아갔다.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향하였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저 각 부서에서 일을 처리하고자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의 인원을 다시 재검토
할 것이었고, 태정민은 차현태로부터 직접적인 명령을 듣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강서진도
검찰총장으로부터, 앞으로의 일 진행에 대해 모든 것을 전해들을 예정이었다.
“삼촌. 배고파.”
“아. 그래그래. 밥 먹으러 가자.”
역시, 아직은 서툴렀다. 새벽 내내 그리 뛰게 만들어놓고, 아직 지현의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지난밤처럼 다시
모자를 눌러썼고, 사당역으로 움직였다.
비록 설장호와 태정민, 강서진이 각 부서로 돌아간 후지만, 추선우의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청와대의 경호실 인원과 함께, 강서진이 자신의 형사팀 인원 몇을 붙여놓았다.
지난 새벽,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추선우의 뒤를 붙어서 움직인 덕분에 이지광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인하여 항상 추선우의 뒤에 그림자가 함께 하도록 하였다.
“시간은 가고 있다. 설장호와 강서진, 그리고 지현과 이창민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자료…….그리고
민간인. 대체 왜 이 시간까지 단 하나의 보고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같은 시각. 계량한복을 주로 입고, 조직 내에서 정치쪽 인물들을 주로 만나는 최기수가 자신의 비서에게
묻고 있었다.
“어제…….사당역에서 한 차례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그의 말에 비서는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새벽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정구석 회장쪽 사람으로 판단되며, 그가 어제 지현을 안고 있는 민간인을 쫒다,
설장호쪽에 잡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 하하하. 정회장이 아침부터 속쓰리겠구만. 그래. 설장호가 그리 만만한 놈은 아니지, 그런 놈을
잡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와 비등한 놈을 보내든지, 아니면 많은 인물과 함께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을 보내야지.”
최기수는 비서의 보고를 들은 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말하였다.
“하지만…….보고에 의하면, 정구석 회장이 보낸 그 킬러를 잡은 놈이 설장호가 아니라, 민간인이라는
내용이 지배적입니다.”
“뭐라? 민간인이 킬러를 잡아? 확실한 것인가?”
“아직 확실히 검토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의외군. 정구석이 기용했다면 보통 놈은 아닐 텐데, 그놈을 잡은 놈이 민간인이라…….재밌게
돌아가는군.”
최기수도 추선우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지 지현을 안고 달리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하였지만, 그가 이지광을 잡은 것을 알고 난 뒤, 그에 대한 생각 자체를 모조리 바꾸고 있는
최기수였다.
“고생했네.”
한 편. 청와대로 돌아온 태정민을 보며 차현태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태정민은
지금까지 자신이 차현태를 믿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였다.
“앞으로…….절대 우리 쪽 사람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네. 그러니 앞으로 자네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와 서지호실장과의 연락을 끊어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추선우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한 편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자칫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라 우려하고 있었지만, 모두 망상일 뿐이었다.
“지금즉시 인원을 제정비하고,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게.”
“알겠습니다.”
태정민에게 휴식을 주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지금 현재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많지 않기에 이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는 태정민에게 편한 날이 없을 것만 같았다.
‘띠리리리’
한 편. 차현태와 서지호의 든든한 지원을 다시 받기 시작한 태정민은 경호실 인원을 재정비한 후,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이려 할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현재 사당역에서 추선우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경호원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사당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출발한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절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마라.”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기 시작하였다. 비록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붙어있고, 형사 팀이 붙어있지만, 지금부터
어떤 누가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에게도 벅찬 상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어느
정도의 권력이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으니, 만만의 준비를 하는 그였다.
“지금 즉시, 추선우의 곁으로 붙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태정민이 차현태에게 보고하였고, 곧 서지호에게도 보고를 마친 후, 청와대를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경호를 부탁하네.”
차현태는 집무실의 창문을 통해 청와대를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서지호는 사당역에
있는 대원들에게 다시 연락하여 철저한 경호를 명령 내렸다.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새로운 팀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휘하였던 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장비도 달랐으며, 준비완료와 함께 가동하기 시작한 위성추적장치의 영상은 곧바로 사당역에서
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오고 있는 추선우와 지현의 모습이 바로 잡히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 메인 화면은 추선우를 무조건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제대로 놀아보자.”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지금까지 숨어서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던 그들을 모조리 다 끌어내기
위한 눈처럼 보였다.
“태정민.”
-네. 실장님.-
준비를 마친 후, 곧바로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지금부터 나와 너. 그리고 강서진검사와 추선우는 다른 이어마이크를 사용한다. 주파수를 모두 맞추고,
이어마이크를 착용하며, 숨소리까지도 모두 듣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지금 사당역으로 향하고 있으며, 추선우를 만나 장비를 지원하겠습니다.-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검찰청과 경찰청이 모두 한 몸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었다. 각
기관에서 현장을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모두 공통된 장비가 지원되었다.
그 장비로 인하여 실시간으로 모든 대화와 함께, 현장내용을 전달하고, 그 내용은 청와대의 서지호와
국정원의 설장호, 그리고 검찰청과 경찰청의 해당 부서에서 실시간으로 내용을 주고받을 것이었다.
“실장님. 여기 보십시오.”
그 순간 사무실 안에서 인근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대원이 갑작스레 설장호를 불렀고, 곧바로 그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뭔가?”
설장호는 그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해당 모니터에는 조금 전,
인근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일곱 명을 확인하도록 보낸 대원들의 움직임이 각기 보이고 있었고, 그 중,
세 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지만, 그저 일어나는 실랑이는 아닌 듯합니다.”
“인근 CCTV 연결해.”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인근에 설치된 CCTV 에 접속하였고, 해당 지역의 영상이 조금 더 상세하게 보이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젠장. 모두 지현의 곁으로 붙어!”
설장호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고, 그 순간 추선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변함과 동시에, 태정민과 함께 왔던 대원이 추선우를 보며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민간인이…….간이 너무 부었어.”
“!!!”
그리고 그의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는 추선우뿐 아니라 태정민과 설장호의 귀에도 들어갔다.
‘슛!’
‘탁!’
그는 곧바로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작은 칼을 꺼내 추선우를 향해 휘둘렀지만, 그 순간 그와 함께
들어섰던 다른 대원이 칼을 휘두르는 그의 손을 잡았고, 추선우는 곧바로 그의 복부를 걷어찬 뒤,
여자화장실로 빠르게 들어섰다.
“뭐야!”
그리고 이어 들어온 태정민이 두 대원의 격투장면을 보며 소리쳤고, 그로인하여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식당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뭔가…….일이 터진 모양이군.”
그리고 식당에서 우르르 나오는 손님들로 인하여, 인근 CCTV 를 통해 보고 있던 백태가 홀로 중얼거린 뒤,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부하에게 서둘러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지현아!”
갑작스러운 대원의 행동에 의해 추선우는 여자화장실로 들어서서 지현을 찾았고, 지현은 소변을 보고
나오며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달려와 추선우에게 안겼다.
“추선우!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난다!”
식당 내부의 영상은 설장호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로 식당안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추선우! 움직여라!”
지현을 안고 화장실을 나서자, 식당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조금 전,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인물을
상대하기 위하여 태정민과 다른 대원이 그와 마주하고 있었고, 손님들은 이미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태정민. 추선우와 함께 식당을 나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인근에 누군가가 붙었다는 것은 확인하였지만, 태정민과
함께 움직였던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 변심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그 어떤 기관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경호실이기에, 그들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오산이었다. 이미 그들의 힘이 더 이상 뻗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쪽으로!”
태정민이 추선우와 함께 나서며, 식당외부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붙었고, 강서진의 형사 팀이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해당 인물을 제압하고자 움직였다.
“실장님. 인근에서 움직이는 인물이 많습니다.”
사당역 인근에서 움직임이 계속하여 포착되고 있었다. 이미 수상하다고 여긴 일곱 명을 확인하고자
다가섰던 대원들도 하나 둘,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젠장…….CCTV…….우리만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군.”
설장호는 해당 영상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추선우와 지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고 빠른 시간에 그의 곁으로 붙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당역 인근에서
조금 전의 일로 인하여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설장호는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들 역시…….CCTV 나 다른 장비를 통해서 지현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식당에서 빠져나온 뒤, 주위를 둘러보며,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이동하려던 찰라, 때마침 강서진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급히 움직이는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겠습니다.”
태정민이 말했고, 강서진은 지금의 상황을 바로 듣고 싶었지만,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
여겨졌다.
고민국의 사람이 사당역에서, 그리고 정구석의 사람들이 방배역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었고, 조금 전,
식당 안에서 추선우를 향해 칼을 들었던 인물은 고민국이 관리하는 조직원이었으며,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태정민과 함께 오랫동안 근무하였던 인물이었다.
“사당역의 일은 처리되었습니다.”
곳곳의 CCTV 를 통해 강서진의 차량을 추적하고 있던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말했다. 그는 조금 전,
식당에서 일어난 일고 함께, 인근에서 벌어진 대원들과 몇 사내들의 실랑이에 대한 보고를 한 것이었다.
“식당에서 추선우에게 칼을 들었던 놈은 물론, 그곳에서 우리 대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놈들 모두를
연행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차량을 추적하는 메인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삼촌. 무서워.”
“괜찮아. 여기에 삼촌하고 이모하고 다 있잖아. 걱정하지 말고, 지현이는 삼촌 품에 안겨있어. 알았지?”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긴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추선우도 그녀를 더 꼭 안아주며 말한 뒤,
차량의 룸미러를 보며 태정민과 시선을 마주하였다.
“우리 쪽 대원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설장호는 곳곳의 CCTV 를 계속하여 연결해가며, 강서진의 차량을 주시하고 있었고, 곧 대원에게 물었다.
“현재, 서울역 인근에 있습니다. 강 검사의 차량을 마중하러 보낼까요?”
“아니. 그곳에서 대기시킨다. 차량을 이동한 추격이기에, 차량이 붙는다고 그들을 잡아 세울 수는 없어.
자칫 무리한 제압은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서울역에서 대기토록하고, 차후의 명령을 기다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의 차량이 동작대교를 넘어 용산방향으로 유턴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마이크를 들었다.
“서울역이다. 모두 내릴 준비해.”
강서진의 차량이 곧 서울역 인근에 도착하였고, 강서진은 룸미러를 통해 뒤에 탄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끽!’
‘빵빵!’
서울역이 좌측에 보이자마자, 강서진은 중앙선을 넘어 곧바로 서울역 택시 승강장을 지나치며 인도로
차량을 올렸고, 그로인하여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차량을 보며, 일부 운전자는 연신 욕을 하고 있었다.
‘픽픽’
국정원 인원들도 모두 실탄을 장전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추선우 일행의 뒤를 따라 서울역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로인하여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아주…….지랄들을 하는군. 머릿수가 많다고 모든 것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서울역 입구 쪽으로 급히 움직이는 국정원대원과 또 자신과 같은 목적을 둔
인물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것을 보며,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마치 정구석의 경호원인 백태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회장님. 박석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곧 최기수의 비서가 그에게 다가서며 보고를 하였다. 백태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인물의 이름이
박석이며, 그는 최기수가 보낸 킬러였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서울역사에 연락이 되었고, 역장은 그 내용을 곧바로 방송으로 내보내면서, 역사
관련자들이 서둘러 현장으로 나서며 인원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대피통로는 서울역 출입구가 아닌, 반대편의 이동통로, 그 통로를 이용하여 다시 서울역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여전히 메인모니터에 띄워진 영상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물품보관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번호…….”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숫자의 조합이 낯익었다. 물품보관함 위로, 큰 팻말이 있었고, 팻말에는 A-
0450~A0500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알파벳과 함께 네 자리의 숫자…….”
설장호는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이내 눈동자를 크게 떴다.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숫자다!”
알파벳과 함께 조합되어 있는 네 자리의 숫자, 설장호는 곧바로 서울역 안 전체에 자리하고 있는
물품보관함을 찾도록 한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대원은 서울역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보관함 번호를 찾기 시작하였고, 곧 설장호가 말한 숫자가 속한
팻말을 찾았다.
“실장님. 서울역 매표소 대각선 맞은편으로 비치된 물품보관소의 번호가 A-0700~A-0750 입니다.”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숫자는 A-0715 였다. 그리고 지금 모니터에 비춰진 물품보관함의 번호 속에
이 번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태정민.”
“네.”
“매표소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물품보관함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물품보관함 중, A-0715 번을 찾아.”
“네? 지금 이 와중에 물품보관함은 왜…….”
“지현의 목걸이에 적혀 있던 번호다. 그 번호가 서울역사에 비치된 물품보관소의 번호였어.”
“네? 알겠습니다.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설장호가 태정민에게 내린 명령은 추선우도 함께 들었다. 두 사람은 서울역 출입구를 보며, 서서히 해당
물품보관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팅팅팅팅’
무전 중에도 총알은 여지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더 바짝 붙였고, 고개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뒤로 빠지자. 지금 상황에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원수의 차이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직 추선우는 총을 건네받지 못하였기에,
원거리 공격을 그저 피하고만 있어야 할 판이었다.
“빠져나간 것인가?”
그리고 모든 영상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구석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살고자 숨은 것뿐입니다. 그보다…….검찰과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정구석의 말에 백태는 다른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영상에는 서울역 외부로 수십 대의 경찰차와 함께,
형사들 차량 및, 경찰특공대 차량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죽어라고 내 보낸 놈들이다. 죽더라도 상관없으니, 지현의 목을 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정구석에게 현장에 있는 그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도태…….”
“네? 도태? 실장님. 지금 도태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홀로 중얼거린 말이지만, 그 말은 태정민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움직임을 멈춘 채,
설장호에게 물었다.
“태정민. 정신 바로 차린다. 도태가 붙었다. 저 새끼가 어찌 다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너의 뒤에
붙어서 움직인다.”
“실장님. 또 한 놈이 있습니다.”
도태를 확인한 후, 곧바로 다른 인물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는 박석이었다.
“저 놈은 처음 보는 놈인데…….일단 두 놈이 붙었다. 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은 불가하다. 하지만
적어도 너와 내가 알고 있는 도태라면 총은 절대 쓰지 않는다. 태정민…….”
“네.”
“총을 추선우에게 건네고, 네가 도태를 맡아라. 그리고 추선우.”
“네.”
“넌…….또 다른 한 놈을 잡는다. 지금 서울역 위에서는 우리 쪽이 우세하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그들을 제압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너희 둘을 따라 움직인 두 놈…….그 두 놈은 너희들이 잡는다.”
“알겠습니다.”
태정민과 추선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정확히 서울역사 바로 아래선로였다. 사람들은 없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안내방송으로 인하여 서울역을 모두 빠져나갔다. 그리고 들어오는 열차도 없었다.
이미 각 기관에 현 상황이 보고되었고,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차단한 상태였다.
“태정민!”
“…….”
아무도 없는 역사아래의 선로. 그곳에서 태정민을 부르는 굵직한 음성이 들렸고, 곧 태정민의 시선이
돌아섰다.
“오랜만이구나. 도태.”
태정민은 그의 음성을 듣고, 도태란 것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미 설장호와 태정민이 그를 잘
알고 있기에, 이 세 사람의 관계도 궁금한 상황이었다.
“우연찮게…….그 쪽 두 사람이며, 이쪽에도 두 사람이군.”
곧 박석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자 도태의 시선이 뒤로 약간 돌아섰고, 대각선으로 보이는 한 인물을
보았다.
네 사람의 조우는 설장호를 비롯하여 최기수와 우수광이 함께 보고 있었다. 고민국과 정구석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인원을 움직였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서울역사 안, 밖에서 모두
제압당하고 있었다.
CCTV 영상을 수신 받고 있는 곳에 꼭 그들이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관련된 이들은 꼭 있을
것이라 여겼다. 되도록 많은 인원을 보내며, 단 하나의 단서라도 잡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현재
서울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설장호였다.
“이거…….대작영화를 보는 느낌이군.”
때 아닌 영화 관람이었다. 정구석과 고민국, 최기수와 우수광은 현재 서울역 아래에서 곧 벌어질 일에
대해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고, 설장호의 눈도 해당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빵빵’
그 순간 차량 한 대가 옆으로 다가와 멈춘 채, 창문이 열렸다.
“아…….”
강서진은 멈춘 차량 안을 보며 어색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은주이모!”
은주였다. 그리고 지현이 강서진의 품에서 내려와 곧바로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은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곧 강서진도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올라탔다.
“어찌…….된 일이에요? 왜 은주씨가?”
“모르겠어요. 설 실장님이 갑자기 전해서 이곳으로 가서 지현을 데리고 서둘러 이동하라고만 했어요.”
강서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었다. 또 다시 국정원 사람이나, 청와대 경호실에서 사람이 나올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은주였다. 자신과 함께 자신의 오피스텔로 온 은주였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곧바로 서울역 인근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설장호가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낸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지금의 상황에 은주와 같이 믿을 만한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곧바로 서울 역사안을 제압하고자 출동하였던 검찰, 경찰의 수장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은 역사
안만을 정리한 후, 모두가 역사주변을 에워싸기만 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역사 아래로 내려서지 못하도록 단속하였고, 그 모습에 지금 상황을 CCTV 로 보고
있던 최기수, 우수광, 고민국, 정구석은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자신만만하다는 뜻인가? 왜 경찰특공대를 내려 보내지 않는 거지?”
가장먼저 의심을 자아낸 인물은 정구석이었다. 이미 자신이 보낸 모든 인물이 다 제압당한 상태에서,
굳이 시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최기수와 우수광이 보낸 인물이 태정민이나 추선우를 잡게 된다면, 자칫 많은 것을
준비하고도 두 사람에게 회장 자리를 양보해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차나 전철도 들어서지 않고…….기분 묘하군. 이미 이 상황을 모두가 보고 있거나, 알고 있다는
뜻인데…….멍석을 깔아주었으니, 한바탕 놀아줘야겠지.”
도태가 철로로 내려서며 말했다. 서울역에는 수시로 전철과 기차가 드나든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대의 전철이나 기차가 오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넓게 놀자. 난…….태정민과 놀 테니. 넌 저 민간인과 놀아라.”
도태가 태정민을 향해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가 다가서자 태정민은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총을 건네주었고, 그 모습은 도태와 박석이 보았다.
“한바탕 신나게 노는데, 총은 빼자. 만약 총을 사용할 마음이 있었다면, 이곳으로 오기 전 , 네 놈들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박석이 말했다. 도태는 처음부터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놈이란 것을 잘 알기에 총기를
추선우에게 준 것이었다. 하지만 박석의 말을 들은 후, 그 역시 총기 사용은 하지 않는 놈이라
생각하였다.
“어찌…….할까요?”
추선우가 태정민을 보며 물었다.
“만에 하나 총기 사용으로 인하여 괜한 불똥이 튈 수 있기도 한 상황이다. 넌 아직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인물이 아니니…….만약을 일을 대비하여 저놈 말처럼 총기는 빼자.”
태정민은 설장호의 명령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차후의 일에 대해 걱정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게 준 총기를 다시 건네받았고, 그 총기는 한 쪽으로 놓아두었다.
“역시…….너의 그 마음은 진정 내 마음에 쏙 든다. 이제…….놀아보자.”
태정민의 행동을 본 후, 도태가 말했고, 도태는 그 즉시 태정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움직이자, 박석도 추선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설장호의 눈매는 여전히 매서웠다. 도태에 대해서는 태정민이 어느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비밀에 싸여있는 인물인 박석이, 추선우를 어찌 상대할지 궁금하였다.
‘퍽!’
“오호. 저 놈…….진정 물건인데.”
설장호를 제외하고, 영상을 보고 있던 네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내 뱉었다. 모두가 함께 본
영상은 바로 추선우와 박석이었다.
그리고 추선우가 박석의 공격을 막은 후, 몸을 공중에 띄워 돌려차기를 감행하였고, 그 돌려차기가 아주
제대로 적중되면서 박석이 철로 위로 넘어졌다.
“추선우…….”
설장호는 홀로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추선우가 어느 정도의 실력은 가진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움직임을 보니, 그저 객기로 지현을 경호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너…….제대로다. 다시 한 번 하자.”
추선우의 돌려차기를 허용한 뒤,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다시 일어선 박석이 말했다.
“얼마든지…….”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자세를 잡았고, 박석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탁탁탁.’
한 편. 승강장 위로 자리를 옮긴 태정민과 도태의 움직임도 화려하였다. 디딤발이 자유로워지며, 두
사람의 진정한 실력이 눈으로 보이고 있었다.
액션영화를 본다고해도 될 정도로 두 사람의 공, 방은 화려하였다. 도태의 발차기가 나오면, 그에 맞는
방어나, 회피로 적절한 움직임을 보인 후,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는 태정민이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공격도 적절하게 피하며, 다시 공격을 감행하는 도태였다.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만, 언제까지 시간을 잡아둘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정해진 시간에 출발해야 할, 기차와 전철이 모두 지체된 시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한 편. 서울역사에서는 역장이 경찰특공대장을 보며 말했다. 이에 대장도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못할
입장에 놓이고 있었다.
‘퍽!’
또 다른 장소, 태정민과 도태의 몰골은 서로 비등하였다. 터질 곳은 터지고, 멍들 곳은 멍들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안에 서로는 적절하게 공격을 허용하였고, 서로 비등하게 상처를 입고 서
있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주먹이 도태의 복부에 그대로 적중되면서, 도태가 살짝 한 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제길…….쪽팔리는군.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리 쉽게 내려앉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야…….”
도태가 다시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고, 곧 태정민도 한 쪽 눈이 부어오른 상태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쪽에서 박석이란 놈이 서둘러 그 민간인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군.”
도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정민을 잡지 못할 것이라
자신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이곳을 살아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태정민에게 잡히고자
한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또 숨어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차현태의 생각처럼 모든 것을 오픈 시킨 뒤, 그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주자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었다.
“지금 즉시, 설 실장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게.”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말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차현태의 말을 전하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설장호도 받아들였다. 이미 서울역에서의 일로 인하여 더 이상 비밀수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두 체포해!”
그 시간. 경찰특공대가 역사 밑으로 내려섰고, 도태와 박석을 체포하였다.
도태는 박석이 철로위로 올라설 것이라 믿었지만, 자신의 눈에 보인 인물은 추선우였다. 그로인하여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않았었다.
“괜찮으십니까?”
“이거…….쪽팔린다. 너는 어째 멀쩡한데, 나만 소대병력과 싸운 꼴같잖아.”
태정민은 그의 외모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몰골은 적어도 전치 6 주
이상은 돼 보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 흔한 코피마저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실장님. 어찌할까요?”
곧 설장호에게 물었다.
‘띠리리리’
한 편. 모든 영상을 다 접한 후, 최기수와 우수광, 고민국과 정구석이 쓰디 쓴 표정을 지고 있을 때, 네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그래? 알았다.”
네 사람은 짧게 답한 후,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각 기관에 뿌리내리고 숨어있는 조직원들이
있기에, 현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제보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추선우.-
“네.”
설장호는 아직 서울역에 있는 추선우를 불렀다.
-잠시 후, 지현이 다시 서울역으로 도착할 것이다. 이미 언론에 많은 것이 보도되면서, 그녀의 생존도
보도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숨기지 않고, 그들을 잡는다. 그리고 지현을 마중해라. 지현을 만나, 내가
말한 곳으로 이동해라.-
“어디로 말입니까?”
-물품보관함. A-0715.-
추선우와 태정민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서로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 서울역 안에서 총격전이
있었던 당시에도 설장호는 두 사람에게 해당 물품보관함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 때는 너무나
많이 날아오는 총알로 인하여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구부린 허리를 쭉 펴며 고개를 들었고, 곧 승강장으로 내려서는 몇
몇의 승객들을 보았다.
“아이러니 하지? 조금 전까지 죽여라…….하며 총을 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모두가 그냥
승강장으로 내려온다. 저 위에 경찰특공대도 있고, 또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움직인다…….정해진 자신들의 길을 가기 위하여 움직인다.”
태정민은 점차 늘어나는 승객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곧 이어마이크를 착용한 모두에게 들렸다.
조금 전까지 위급상황이며,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단 몇 분 만에 평소와 같이
변해가고 있는 주변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 듯 한 승객들의 표정이었다.
“올라가자. 이들에게 위험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주는 것이 상책이다.”
태정민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없으면, 이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추선우는 태정민을 부축하여 서울역사를 올라섰다. 그리고 곧 설장호가 말한 물품보관함 앞으로 다가섰다.
“A-0715"
태정민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정확히 설장호가 말한 물품보관함 앞으로 섰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보았다.
“잠겨있습니다.”
-당연히 잠겨 있을 것이다. 그 열쇠는 아마도 지현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현을 마중 나가서
데리고 다시 해당 물품 보관함으로 이동한다.-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가 답하였고, 그의 눈은 여전히 해당 물품보관함을 주시하고 있었다.
“실장님. CCTV 를 수신하는 네 곳으로 출동했던 대원들의 보고입니다.”
곧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미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현장이 비워있는 상태였다. 정보가 새어 나갔으니, 그곳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한 탓이었다.
“지현이 도착했습니다.”
다시 빙빙 돌아 서울역으로 도착한 지현에 대해 강서진이 무전으로 알렸다.
그 즉시 추선우와 태정민이 서울역 외곽으로 나섰고, 두 사람이 움직이자, 경찰특공대 대원 일부가 함께
움직이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태정민이 막아 세웠다. 그리고 추선우 홀로 지현이 도착한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선우야. 괜찮아?”
현장에 도착하자, 은주가 차량에서 내리며 추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네가…….왜?”
더 이상 은주와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폐를 끼치고 있는 지금이었다.
“일단 사정설명은 다음에 하고, 설 실장님이 말한 부분부터 해결하자.”
강서진이 두 사람의 만남에 찬 물을 끼얹는 말을 하였다. 곧 지현도 차량에서 내려 추선우의 품에 안겼다.
“괜찮아?”
“응 삼촌. 삼촌도 괜찮아?”
“그래.”
추선우는 지현을 안아 올리며 말했고, 곧 그녀를 안은 채, 서울역 안으로 들어섰다.
“삼촌…….”
그리고 지현의 눈에 태정민이 보이자, 지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를 보았다.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어 몰골이 일그러져 있는 그의 표정은 지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서 내려와 태정민에게 향하였고, 곧 태정민이 몸을 낮춰 그녀를 보자, 지현은 손을
뻗어 태정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삼촌은 괜찮아. 이정도야 뭐…….지현이가 빨간 약 한 번 발라주며 거뜬히 나을 거야.”
태정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지현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곧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태정민은 그녀를 안아주었고, 토닥거려 주었다.
“이지현…….역시 살아있었군.”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현의 생존. 그 생존이 직접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지현이 살아있다는
가정을 하고 움직였지만, 지금처럼 확실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정보는 처음 입수한 것이었다.
“기자들을 물려.”
설장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이를 꽉 깨문 채 말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대원이 현장에 있는 대원들에게
연락하여 이 내용을 전달하였다.
“자세한 상황은 차 후, 정식적인 내용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위급상황이니, 기자들께서는 잠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과 경찰특공대들에 의해 기자들의 앞이 막혔다. 그리고 설장호는 물론,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모든 대원들의 눈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경찰특공대나, 대원들 중, 또 다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자칫 지현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모두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물함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물함에 유독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두의 행동이 네 사람의 눈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뭔가 찾아냈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계속된 TV 노출로 인하여 저들이 눈치 챘을 수도 있겠군…….”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뒤늦게 TV 로 송출되는 카메라를 차단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오랜 시간 네
사람의 모습이 같은 지역에서 송출되었고, 또 한 사물함을 보며 뭔가 하려던 행동들을 모두 보았을 것이라
여겼다.
“지금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신상은 모두 확보한 것이겠지?”
설장호는 노파심에 물었다.
“네. 이미 여러 차례 저들에게 당한 상태라, 현재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대장은 물론, 대원들도 모두
신상확인과 함께, 가족관계까지 확보한 상태입니다.”
혹시나 하는 처방전이었다. 저들을 믿지 못하여 역사 아래로도 내려 보내지 않았었다. 만에 하나 저
현장에 그들과 손잡은 인물이 있다면, 또다시 낭패 볼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지현의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확인하였고, 그 펜던트의 한 쪽 부분에 작은 홈이 있었다. 그 홈을
좌우로 조작하였고, 곧 그곳에서 작은 열쇠처럼 생긴 것이 나왔다.
“저 펜던트를 최광민이 확인하였으니, 그도…….저 열쇠에 대한 비밀은 알고 있었겠군.“
설장호는 최광민을 떠 올렸다. 펜던트에서 위치추적장치를 제거하도록 명령 내렸던 인물이 최광민이었다.
그는 이미 저 안에 열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고를 설장호에게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 보고를 하였다면, 설장호가 목걸이에
대한 비밀을 바로 알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에…….서류가 있습니다.”
생각대로 그 사물함 안에는 모두가 찾고 있던 물건이 있었다. 바로 이창민이 발견한 그 조직의 실체에
대한 보고서였다.
“답답하군. 모두 움직여라. 서둘러 서울역으로 사람을 보내고, 움직일 수 있는 모두를 움직이도록 해!”
같은 시각. TV 화면에 더 이상 지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네 사람은 바빠지고 있었다. 서둘러 명령을
하달하였고, 각 회장의 비서들은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모두를 움직이도록 명령 내렸다.
-서둘러 서류를 가지고 움직인다. 절대…….국정원이나, 검찰청, 경찰청으로 향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보관한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이 머무는 장소를 찾아가겠다.-
설장호는 그들에게 직접 찾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어디를 가도 믿을 수 있는 곳이 현재로써는
없기에 설장호의 명령은 이해하기 쉬웠다.
다섯 사람은 그 즉시 서울역을 벗어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서둘러 주차된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잠시 대기…….”
차량으로 가던 중, 갑자기 태정민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야?”
강서진이 물었다.
“저 차량…….버리고, 다른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만에 하나 저 차량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태정민의 생각에 추선우가 공감을 표시하였다. 해당 차량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한 것이었다.
“잠시 기다려봐.”
강서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한 사내의 곁으로 움직였다.
“장형사. 차량 가지고 왔지?”
바로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검찰 쪽 형사를 찾았고, 그에게서 차량을 인도받았다.
“네. 검사님.”
“일단 급해서 그러니 자네 차량좀 빌릴게. 그리고 내 차량과 함께, 저기 있는 차량은 각별히 주의해서
이동시켜줘.”
“알겠습니다.”
해당 형사도 지금의 상황을 잘 알기에 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강서진에 의해 다른 차량을 구했고,
곧바로 다섯 사람은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지?”
서울역을 벗어나, 경기남부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강서진이 물었다.
-일단 서울을 벗어난다. 그리고 경기도 남부방향, 안산으로 향한다. 그곳의 방파제로 향하면, 휴게소가
있다. 그곳에서 본다.-
“알겠습니다.”
위치는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강서진이 운전대를 잡았고, 차량은 곧바로 해당위치로 출발하였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서 상처 입은 태정민의 얼굴을 만져주고 있었다. 이는 첫 만남 때,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분위기였다.
“나. 잠시 나갔다 올 테니, 현장에서 잡은 놈이나, 죽은 놈. 그리고 도태와 함께, 추선우가 상대한
놈들을 모조리 심문해.”
“알겠습니다.”
자신이 직접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이창민이 남긴 서류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만날 장소로 떠나기 전, 서지호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대통령님. 지금 설장호 실장이 이창민 대사가 남긴 서류를 확인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 정말 이창민 대사가 남긴 것이 있는가?”
“네. 확인 후, 곧바로 연락 주기로 하였으니, 답이 오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차현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닷새 동안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이제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덩어리를 얻어낸 것이었다.
서지호는 설장호를 지원하기 위하여 경호실 인원 세 명을 따로 보냈다. 국정원에서 사람이 함께 움직이면
좋겠지만, 이미 국정원에서 배신이 가장 많았기에,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은 채, 만날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쾅!’
그리고 서울역 앞에 주차되어 있던 강서진의 차량과, 또 은주가 몰고 온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해당 차량에 승차한 후, 시동을 걸자마자 폭발음과 함께, 차량이 전복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은 연신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였고, 방송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가지고 왔는가?”
한 편. 설장호는 만날 장소에 도착하였고, 곧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태정민에게 물었다.
안산에서 대부도로 연결되는 아주 긴 방파제위에 지어진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것이 정말 있긴 있었군요.”
강서진이 서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직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류의 겉
포장지만 보며 긴장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삼촌…….졸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 있었고, 곧 졸음이 오는지, 그의 품을 더 파고들며 말했다.
“실장님…….”
강서진이 설장호를 나지막이 불렀다. 하지만 설장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내일…….은주 씨와 그녀의 어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어머니의 치료를 돕도록 해라.”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도 진정 은주와 아주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다.
힘든 순간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 준 두 모녀의 힘도 컸다. 하지만 진정 두 모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였다.
“네.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서진이 답하였고, 두 사람의 시선은 다시 방문을 향해 돌아섰다.
은주와 지현이 자리 잡아 누웠고, 태정민도 어느새 코를 골며 깊은 숙면에 취해 있었다.
추선우는 펜션 밖으로 나와 바다를 향해 보며 서 있었다.
“열어…….보십시오.”
강서진은 서류를 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설장호에게 말했다. 이 서류봉투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에 따라,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었다.
이창민이 말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진정, 그동안 음지에서 이 나라의 최고
권력행세를 하고 살았던 그들을 모조리 쳐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차현태가 따로 알려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설장호입니다.”
차현태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곧바로 받았다.
“지금…….사물함에서 꺼낸 봉투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청와대로 가지고 가려 합니다.”
자신이 먼저 보려하지 않았다.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신의 머리를 강타할 충격의 강도가 다를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권력자인 차현태가 먼저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내린 것이었다.
“지금…….출발할 텐가?”
“네. 지금 출발하면, 두 시간 이내에 청와대에 도착할 것입니다. 모두…….자리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차현태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진정 닷새 만에 처음으로 그들에 대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설장호는 봉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를 강서진은 보고만 있었다.
“열어보지 않으십니까?”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잖은가. 대통령님께서 먼저 보실 것이네. 그리고 각 부처 수장들과 함께…….이
내용을 확인할 것이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 후, 먼저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그가 펜션을 나오자, 추선우가 홀로 밖에 있었고, 설장호는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어쩌면…….이 일을 빨리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너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게 하지 않기 위하여
서둘겠다.”
“…….”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듣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장호는 다시 서울로 향하였고, 추선우는
펜션을 들어가지 않은 채, 홀로 여전히 밖에 서 있었다.
“찾았습니다.”
한 편. 추선우를 매수할 목적으로 그를 유인할 미끼를 물색하고 있던 중, 딱 맞는 미끼를 찾았다는
보고를 정구석이 들었다.
네 사람은 여전히 강남의 식당에 있었고, 백태의 말을 들은 후, 모두의 눈과 귀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직접 데리고 오겠습니다.”
백태는 정구석에게 고개 숙여 말하였고, 곧 그가 찾았다는 미끼의 사진이 뜬 노트북의 화면을 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주었다.
“여자?”
정구석이 노트북 화면에 뜬 사진을 보며 물었다. 그 화면에는 삼성역 일대의 번화가에서 CCTV 영상에
찍힌 추선우의 모습과 함께, 지현이 있었고, 또 그 옆으로 한 여인이 있었다.
“이름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사진 상으로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바로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상이 어디에서부터 찍혔는지를 다 본
백태가 자신 있게 말했고, 곧바로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영상의 캡처한 사진에 찍힌 여인은, 추선우의 어릴 적 고아원 친구인 미희였다.
“백태가 서두르고 있으니, 추선우를 유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백태가 나선 후, 정구석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들도 각기 자신들의 경호원을 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백태처럼 뾰족한 방법을 제시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이가 없었다.
“왜…….들어오지 않아요?”
강서진도 밖으로 나왔다. 지현과 은주는 안방에서 자고 있으며, 태정민은 작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싫어 밖으로 나오자, 추선우가 먼 바다를 보며 서 있었다.
“그냥…….그냥…….”
추선우는 그녀의 물음에 답을 쉽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자신으로 인하여 지금 힘들어 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늘어난 것을 지금 더 깊이 느끼고 있는 그였다.
아주머니와 은주는 진작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성격상, 지현을 보고
그냥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 한 것이었다.
“은주씨와 아주머니…….꼭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선우씨에게도 충분히 보상을…….”
“보상 따위를 바라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지현이, 지현이를 보는 순간 돕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돕고 싶은 마음만을 가지고 돕고 있는 것입니다. 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지현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강서진은 그를 빤히 보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볼 수 없는 인물이라 여겼다.
그리고 추선우는 은주와 아주머니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 또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인 미희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태…….형님.”
그는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말했고, 곧 백태가 한 번 씨익하고 웃자, 그는 그 자리에서 덜썩 주저앉아
버렸다.
“모두…….모두 멈춰!”
사내는 주저앉은 상태에서 큰소리로 외쳤고, 미희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가…….데리고 가도 되겠지?”
“무…….물론입니다. 얼마든지 데리고 가십시오.”
백태는 주저앉은 사내를 내려 보며 물었고, 사내는 여전히 벌벌 떨며 그의 말에 답하였다.
백태로 인하여 미희는 그들의 손으로 쉽게 넘어왔다. 그리고 백태의 앞으로 이동하였다.
“추선우…….”
“선우…….선우를 아세요? 선우…….지금 어디 있나요?”
미희는 백태의 입에서 선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동자를 크게 하여 물었다. 그러자 백태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선우의 부탁으로 이렇게 왔습니다. 지금 함께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태는 여유 있는 미소와 어투로 미희에게 말했고, 미희는 선우의 이름을 말한 백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나서기 시작하였다.
“곧. 설장호 실장이 도착하면 이창민 대사가 하려던 말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시각. 차현태는 외교부장관을 비롯하여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자 나섰던 모든 수장들을 다 집무실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동안 숨어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원장이 자신 있게 말하였다. 숨어 있기에 찾을 수 없다 뿐이지,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힌트라도 찾게 된다면 그들이 어디에 숨어들어도 다 찾아내겠다는 그의 말이기도 하였다.
“이지현에게 더 이상의 고통은 가지 않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일처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현의 안전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는 중이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한 편. 백태는 미희를 데리고 네 사람이 모여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곧 정구석을 향해 보며 말했다.
“오호…….아름다운데. 하긴 그 주점 여인들이 좀 아름답기는 하였지…….그 보다…….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움직여봐.”
정구석은 미희를 아래위로 한 번 쭉 훑어본 뒤 말하였고, 곧 백태를 향해보며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백태가 답했고, 곧 그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무엇…….입니까?”
미희는 처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추선우…….우린 그놈을 잡아야한다. 그러니 그 놈을 우리에게 오도록…….네가 전화해라.”
백태가 미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정 이들은 선우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던 미희였다.
“선우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선우는…….”
“너의 입에서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오직 한 상황뿐이다. 바로 추선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그 놈을
우리 쪽으로 오도록 유인할 때, 그 때만 입을 열면 된다. 그 외적으로 입을 열면…….그 고운 입술이
어찌 될지 몰라.”
미희가 몇 가지 물어보려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많은 말은 나오지 못하였다. 단 몇 마디에
백태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소름까지 돋는 듯하였다.
“추선우…….연락해라.”
백태가 다시 한 번 말했고, 미희는 그들을 보며 온 몸을 떨고만 있었다.
“이만…….들어가세요.”
같은 시각. 추선우는 여전히 펜션 외부에 있었고, 강서진도 함께 있은 후, 안으로 들어서다 그를 보며
말했다.
“먼저…….들어가세요. 잠시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하지만 추선우는 바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답을 하였지만, 여전히 눈빛은 먼 바다를 향해 보며
답했다.
강서진은 그의 모습을 잠시 보고 있은 후, 곧 펜션 안으로 들어섰고, 은주가 방에서 나오며 그녀를
보았다.
“일어나셨어요?”
강서진이 물었다.
“어머니…….우리 어머니는 안전하신 거죠?”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물음만 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은주 씨가 이곳으로 이동하였으니, 필시 설 실장님은 어머니께 그에 준한 경호를
붙여두었을 것입니다.”
강서진은 그녀의 걱정을 떨쳐줄 말을 하였다. 자신이 있는 것보다 더 강한 경호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설 실장이 많이 늦는군.”
한 편. 여전히 도로위에서 시간을다 보내고 있는 설장호였으며, 그로 인하여 그를 기다리던 차현태가
홀로 중얼거렸다.
“차가 막히니 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 듯합니다.”
이에 국정원장이 답하였다. 그의 말처럼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 그러지는 못하였다.
차라리 좀 늦더라도 자신의 차량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을 택한 설장호였다.
“어디쯤이십니까?”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연락하였고, 서지호는 기다리던 설장호의 연락을 받자마자 위치를 물었다.
“그보다. 지금 나를 표적으로 나만을 보는 눈이 따라다닌다. 확인 좀 해줘야겠어.”
“네? 사실입니까?”
서지호의 눈빛이 변하며 그에게 물었고, 그의 변한 눈빛은 차현태가 곧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아무래도…….늦을 것 같으니, 자리한 양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자리한 모두를 한 번씩 훑어보았고, 곧 전화를 끊은 후, 차현태에게 현
상황을 알렸다.
“사실인가?”
“네.”
“그의 안전이 우선이다. 사람을 보내게.”
“무슨…….일이십니까?”
서지호의 말을 다 들은 후, 차현태는 현장으로 급히 사람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옆에서
듣던 검찰총장이 물었다.
“지금. 설 실장의 주변으로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정확히 설장호 실장을 노린 듯, 그의
모든 것을 뒤따르며 보는 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확인에 들어갈 것입니다.”
서지호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고, 모두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런데…….왜 그런 말을 우리를 보며 날카롭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서지호의 눈빛과 음성을 들은 후, 경찰청장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굳이 서지호가 자신들을 향해 매섭게
노려보며 할 말은 아니었다.
“모두…….왜 그런지 모르겠습니까?”
차현태가 그 이유를 모르는 듯,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자, 직접 그들을 보며 물었다.
“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지금. 설장호 실장이 이창민대사가 남겼을지 모르는 그 서류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여기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그거야…….그렇지요.”
차현태의 말에 국정원장이 총장과 청장을 보며 말했다.
“그럼…….왜…….지금 설장호 실장만 유독 누군가의 눈빛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겠습니까? 현재 강서진
검사나, 태정민팀장. 그리고 지현이와 추선우. 모두가 아닌, 유독 설장호 실장만 왜 눈이 붙었을까요?”
그제야 모두는 서지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의심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설장호가 서류를
가지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정 여기에 앉은 사람들뿐이었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펜션에서는 아직 선우가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고, 곧 먼 바다를 보며 크게 한 호흡을
들이마신 후, 눈을 살며시 감자,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지?”
선우는 자신의 전화벨이 울리는 것은 오로지 설장호 팀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전화는 설장호가
준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선우야.”
“미희? 미희야? 네가 어찌 이 번호를 알아?”
선우는 놀란 눈이었다. 설장호가 또 다시 다른 번호를 연락을 취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뜬금없이 미희가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잠시…….나 좀 볼 수 있을까?”
“너를…….? 왜 무슨 일 있어? 그리고 이 번호 어찌 알았어?”
“번호 아는 것은 쉬워. 내가 일하는 곳 사람들 중에 그런 번호 하나는 쉽게 알아내는 사람들도 많아.”
미희는 자신의 바로 눈앞에 날카로운 칼날이 이리저리 둥근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것을 보고 추선우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정, 심장이 떨리며 터져버릴 것 같지만, 실수하면 그 즉시 눈동자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미희야…….”
“왜?”
선우는 미희의 어투가 평소와 동일하였지만, 평소답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가 먼저 자신을 보자고 한 적이 없었다.
서로가 잘 되어, 모든 것에서 부끄러움이 없을 때, 그 때 연락하자는 말을 한 후, 그 당시 고아원
동기들이 모두 흩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무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와 미희는 서로 연락하고 지냈었다. 이미 선우는 미희가 술집에서 직업여성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단 한 번도 이상한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친구…….그리고 직업. 그 이상
그 어떤 것도 없었던 그녀였다.
“어디서 볼까?”
선우는 이미 미희가 난처한 상황에 접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자처하였다.
“삼성역…….아니. 내가 그쪽으로 갈게. 어디야?”
미희는 자신이 있는 삼성역에서 보려 하였지만, 곧 백태가 그녀에게 메모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
메모지는 직접 간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니야. 이곳은 멀어, 너 혼자 오기에는 더욱 더 힘들어, 내가 갈게,”
선우의 목소리는 이미 그들도 다 듣고 있었다. 그리고 선우가 홀로 움직인다는 말에 서로를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안다면, 그곳에 지현이 있을 것이기에 일을 더 편하게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가 홀로 움직인다는 말에 계획을 수정해야 할 판이었다.
선우는 누군가 미희를 잡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지만, 그들이 지금 설장호가 찾는 인물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술집을 드나드는 손님들 중, 괜한 시비를 거는 인물이라 여겨, 몇 마디를 해주려는
것뿐이었다.
“그래…….그럼 네가 와. 이 곳 삼성역 인근 탄천주차장으로…….”
“그래. 지금 가면 두 시간 정도가 걸릴 거야. 괜찮지?”
“응. 괜찮아. 그럼 그 때 봐.”
미희는 만날 장소를 말하고 난 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였고, 곧 통화를 끊은 후,
백태를 향해 보았다.
“여기…….”
한 편. 설장호의 뒤에 붙은 이들이, 이미 선재도 부근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었고, 곧 그들의 눈에
추선우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역시…….선재도에 있었나?”
CCTV 를 해킹하고 그 영상을 받아보고 있는 고민국의 부하들도 선재도 인근 CCTV 를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직 이들은 자신들의 곁으로 설장호의 국정원소속 인원들이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국정원에서 설장호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북전담반의 사무실에서, 서울은 물론 경기 각
지역의 CCTV 영상이 자신들 외에 다른 곳에서 수신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지금 그곳으로 대원을
출동시켜 둔 상황이었다.
“선재도입니다.”
선재도에서 나서는 추선우와 강서진의 모습을 포착한 고민국의 부하는 곧바로 고민국에게 상황을
보고하였다.
“선재도? 그 민간인 추선우도 그곳에 있나?”
“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져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 보고하고 하였다.
“두 팀? 민간인과 지현이 그들과 따로 움직이는 것인가?”
“아닙니다. 민간인 혼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가 함께 움직입니다.”
“추선우…….이곳으로 혼자 올 심상이군.”
보고에 의해 추선우가 홀로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왜 함께 움직이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 것일까요?”
우수광이 고민국의 말을 들은 후, 모두를 보며 물었다. 서울까지 함께 온 후, 인근에서 따로 움직이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었다.
“뭐…….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는 눈들을 교란시켜보고자 하는 그들의 작전이겠지요. 하지만 이미…….그
작전은 우리에게 발각되었으니, 어디…….어떻게 나오나 봅시다.”
고민국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추선우를 맞이할 인물을 탄천주차장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선우가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그를 맞을 준비를 하자는 최기수의 말이었다. 이미 박석이나
도태가 당했고, 또 이지광도 당했었다. 민간인이라 우습게 볼 인물이 아니기에,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보낼 인물도 신중하게 골라야했다.
“우리 쪽에서 보낼까요?”
“뭐. 이쪽저쪽 구분할 필요 있겠습니까? 지금은 회장자리를 두고 하는 내기가 아니니, 각자…….그 놈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을 보냅시다.”
“!!!”
그들의 대화에 미희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백태에 의해 한 쪽 구석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대화 내용이 귀에 모두 들어오고 있었다.
‘안 돼…….안 돼 선우야.’
이미 늦은 후회였다. 미희는 조금 전, 자신의 눈에 겨누어진 칼날의 무서움에 선우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큰 위험을 선물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후회했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추선우가 이들의 계획에서 모두 이겨나가는 것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청와대로 출발했습니다.”
한 편. 강서진은 선재도를 벗어나면서, 설장호에게 보고하였다.
“조심해라. 아마 너희 뒤에도 그들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는 따로 움직였습니다. 우린 중간에 멈추지 않고 바로 청와대로 가겠습니다.”
“그래…….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도로 사정이 내 생각같지 않다.”
너무나 꽉 막혀 있는 도로였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설장호는 아직도 청와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계속하여 그의 주위에는 미행을 따라 붙은 차량이 있었다.
“난해하군…….”
설장호는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린 뒤, 다시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강 검사.”
강서진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네.”
“혹시 자네가 아는 인물 중, 기동대 애들 있어?”
“기동대요? 경찰기동대 말입니까?”
“그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쪽으로 좀 보내줘. 두 놈이 오라고 해. 이 차 좀 끌고가야 하니까 말이야.”
“아…….네 알겠습니다. 위치를 말씀해주시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설장호는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국도위에도 차가 꽉 막혀 있었지만, 그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택배 오토바이를 본 것이었다.
강서진은 설장호에게서 받은 위치를 곧바로 자신과 안면이 있는 형사계 계장에게 보냈고, 그는 곧바로
설장호를 지원하기 위하여 두 대의 기동대를 현장으로 보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요시간은 약 5 분이라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그제야 굳은 표정을 조금은 풀 수 있었다.
“젠장…….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쫓고 있던 이들은 눈앞에서 자신들의 곁을 저 멀리 떠나가는 설장호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장호…….놓쳤습니다.”
“뭐라? 꽉 막힌 도로에 서 있는 놈을 왜 놓쳐!”
곧 고민국에게 보고하였고, 고민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씩 놈들을 돕는 이들이 나오는군. 불신을 잔뜩 심어주었는데도 믿는다? 그래…….그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 등 한 번 찍혀보는것도 괜찮겠지.”
고민국은 이내 진정한 뒤, 다시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고, 곧 한 쪽 구성에 앉아 있는 미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토바이 아닌가?”
차현태는 설장호가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서지호도 그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여 잠시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곧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차현태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먼저 그의 안부를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지금 강서진검사와 태정민팀장이 지현을 데리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 내용 역시 이 자리에서 처음 보고를 받는 것이라 놀랄 일이었다.
그토록 안전한 곳에 지현을 두자고 했을 때, 그 어떤 곳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여 민간인인 추선우에게
맡겼었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의 이름은 쏙 빠지고 지현을 데리고 청와대로 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선우는…….그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또 다른 미끼를 물어주기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또 다른 미끼? 설마…….그들이 다른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차현태가 그를 보며 물었다.
“네. 아무래도 추선우의 벗을 이용하여, 그와 지현을 끌어들이려 미끼를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럼. 추선우를 도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사람을 더 붙여주고…….”
“추선우는…….스스로 앞길을 잘 청소하고 갈 놈이니…….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의 말을 자르며 모두를 보고 말하였다. 무엇을 보고 추선우가 그들을 모두 청소하고 올
것이라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칫…….일이 잘못될 것을 우려한 차현태의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진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다른 사람을 움직이자는 차현태의 호의를 거절하였고, 오로지 추선우에게 그 일을 다
맡겨둘 것을 다시 강조하여 말하였다.
“그럼…….지현양은 지금 태팀장과 강 검사가 데리고 오는 것인가?”
곧 검찰총장이 물었다.
“네. 잠든 지현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현을 안고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민간인인
은주씨입니다.”
“은주?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국정원장이 물었다. 그러자 설장호는 그와 함께 다른 수장들의 눈빛을 모두 보았다.
“은주씨를…….모두가 모르는 듯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또 다른 민간인이며, 이에 대한보고도 이미 수차례
하였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민간인은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왜 지현을 또 다른 민간인이 데리고 오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않은가?”
“말씀대로 중요한 것은 왜 지현을 또 민간인이 데리고 오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왜 그
민간인이 데리고 오는지에 대한 이유는 이미 수차례 말씀드린 내용을 기억하신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지만
…….여기에 계신 모두가…….그 내용은 머릿속에 전혀 담아두지 않고 계신 모양입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는 차현태를 보았다. 그곳에 있는 다른 수장들과는 달리,
차현태는 은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의 눈빛이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지현이 신세를 진, 추선우가 살던 집의 집주인 딸 아닌가? 그녀에게 필시 더 이상의 관여는 하지 않도록
말하였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도록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아는데…….”
차현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나오자마자, 나머지는 그때야 은주라는 인물을
기억해 내는 표정들이었다.
“네. 대통령님의 명령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었지만, 서울역 사태에서 믿을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아, 제가 다시 부탁을 한 것입니다.”
설장호는 은주가 왜 또 관여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렇다고 또 민간인을…….”
“그 민간인들이 아니고서야! 지금 그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계신분들…….지난
엿새 동안 무엇을 알아내셨습니까? 일은 하고 계십니까? 이 일을 다 파헤쳐 볼 마음은 있으신 것입니까?
대체…….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검찰총장이 은주의 개입에 대해 한 소리 하려다, 오히려 설장호에게 모두가 큰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들을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수장들이란 사람들이 사건이 터진 후, 시간이 지나도록 어찌
단 하나의 단서도 찾아내지 못하며, 민간인들의 도움까지 받도록 하는 것에 대해 설장호의 고함소리를
듣고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불과 아침에 모두가 다시 믿음을 가지고, 이 일을 파헤치자는 말을 하였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믿음을 수장들이 스스로 깨고 있는 듯 한 분위기였다.
“설 실장. 말을 너무…….”
“아닙니다. 설 실장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검찰총장이 그를 매섭게 보며 말하려 할 때, 곧 차현태가 그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지금 이들은 이창민이 남긴 서류를 개봉하기 전, 신경이 굉장히 날카롭게 변해 있는 것이었다. 그
서류속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모르기에 더욱 더 예민해진 듯하였다.
“내가 먼저 말하려던 것도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여느 수장들께 많은 부탁을 하였습니다. 서둘러 달라는
말을 수차례 하였습니다. 하지만…….돌아온 답변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차현태가 말을 이어하며,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의 말에 수장들의 고개는 절로 숙여지고 있었다.
조사한다, 확인중이다. 등 많은 말을 하였지만, 결국 조사하고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지현이 민간인의 손에 의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민간인의 고마움은 둘째 치고, 그
민간인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차현태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해지고 있었다.
“여러 수장분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왜 더 빨리 확인하지 못하고, 왜 더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이었던 북정마을과 연화장, 그리고 성남의 펜션과 또 다시
북정마을…….그리고 서울역. 어찌 생각하면 가장 처음 시작된 북정마을의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지현양은 더 고통스러워했고,
민간인의 도움은 더 많아졌습니다.”
차현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싶은 던 말이 많았다는 듯,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그저 그렇게 지내지만은 않았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고,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후, 경찰청장이 말을 이어하였다. 검찰총장과 달리, 경찰청장은 지금까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박태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현장에 투입된 경찰쪽 인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경찰 지원을 해주었다. 서울역에서도 경찰특공대를 그 즉시 급파하여, 더 많은
인명피해가 생길 수 있었던 사건을 막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놀고 먹는 사람들이라면, 나라에서 그런 자리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노력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가 그들을 보며 당부의 말을 전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내 설장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실 차현태의 말이 나오기 전, 자신이 그 말을 모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현태가 대신 말해주는 득에,
자신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 서류…….모두가 찾는 서류입니다. 우리 뿐 아니라, 그들도 찾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서류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류의 행방을 지현이 알고 있을 것이라 간주하여
그녀를 죽이려 했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서류가 담긴 봉투를 들어보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은 그 봉투에 향해 있었다.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지 모르는 봉투, 그 봉투의 내용에 따라, 이 사건의 답 또 한 달라지는 것이었다.
“열어…….보십시오.”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서류봉투안에 든 서류를 가장 먼저 만져볼 수 있는 혜택은
차현태에게 돌아갔다.
차현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봉투를 보았다. 눈동자는 떨려오고 있었고, 손마저도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차현태가 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봉합된 봉투의 끝부분을 잘라냈고, 곧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
단 한 장을 눈에 넣은 차현태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 한 장만으로도 얼마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님. 무슨 내용입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아주 큰…….아주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차현태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곧 설장호가 그의 옆으로 섰다. 그도 서류의 내용을 보기 위함이었다.
“…….”
설장호는 차현태와 달리, 떨림없는 눈동자로 서류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무슨 내용이기에, 대통령님과 설 실장의 반응이 서로 다른 것입니까?”
나머지는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하였다. 곧 설장호의 손짓으로 서지호가 다가섰다. 그 순간 모든 수장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자신들보다 더 낮은 인물인 서지호에게 먼저 보여야 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서류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한 눈빛들이었다.
서지호는 내용을 확인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00091 경호원 =====================================================================
====
“무엇입니까? 우리도 함께 좀 보십시다.”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향해보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는 곧 그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검찰총장의 손에 서류가 넘어가자, 외교부부터, 국정원, 그리고 경찰청까지 모두가 그 서류를 보려
총장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들도 서류의 첫 면에서부터 흔들거리는 눈동자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장은 무엇입니까?”
나머지 한 장에 대해 궁금하여 청장이 물었고, 곧 총장이 나머지 한 장을 향해 넘겼다.
“!!!”
나머지 한 장에 찍힌 사진 한 장. 그 한 장의 사진에 모두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 사진은 여러장의 사진을 이리저리 합성하여 만든 누군가의 인물사진으로 그 사진 속에는 지금 이곳에
자리한 모두의 얼굴이 다 나와 있었다.
청와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차현태부터, 그를 경호하는 서지호와 태정민, 그리고 국정원장과 함께,
국정원에서 나서는 설장호, 검찰총장과 청장의 저녁식사. 그리고 외교부장관이 해외 순방길에서 골프 친
장면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찍힌 사진이 모두 합성 처리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되어 있었고, 그
사진의 모습은 또 다른 한 사람을 표시하고 있는 듯하였다.
“누군지…….아시겠습니까?”
필시 사람의 얼굴 형태로 합성된 사진이지만, 딱히 이 사람이다라고,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이 사람을 안다고해서…….이 사람이 이번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차현태를 보았다. 그의 말처럼 이 사람이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누군지 알면 그 내막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설장호가 다가서며 말했고, 검찰총장이 들고 있는 서류를 살며시 빼가면서 서서히 차현태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이 서류는 이 순간부터 저와 태정민, 그리고 강서진검사가 보관합니다.”
“이보게 설실장. 그 서류로 인해 더 많은 내용을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인데…….그 것을 자네만…….”
“더 많은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지만, 더 많은 것을 숨길 수도 있는 자료입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단지 몇 개의 기밀문서와 함께, 토지 등 보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사진들로 하여, 또 다른 하나의 사진을 합성시켜 만든, 단 세장의 서류였지만, 이 서류로
인하여, 더 많은 것을 숨기는 것은 가능할 정도였다.
“추선우…….삼성역 도착하였습니다.”
같은 시각. 미희의 연락을 받고 삼성역에 도착한 그의 뒤로 고민국의 부하가 고민국에게 보고하였다.
“이제…….탄천주차장까지 길 안내만 잘하면 되는 것이군.”
고민국은 전화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고, 곧 정구석은 미희를 데리고 간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추선우가 도착했다. 탄천주차장이 좀 시끄러울 듯한데, 장소는 제대로 잡은 것 같아? 바로 앞이
강남서다…….자칫 경찰들이…….”
“문제없습니다. 시끄러워 지기전에…….추선우의 목만 떨구고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정구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몸을 바로
앉혔다.
“이제 곧 쇼가 시작될 듯 합니다. 탄천주차장 CCTV 를 수신 받도록 해 보겠습니다.”
정구석이 웃으며 말하였고, 모두 그를 보았다.
“아직도 CCTV 화면을 따로 수신 받고 있었던 것입니까? 만에하나 지난번처럼 그들의 추적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모두 잡히고 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치며 찾아다녀도…….지금 전국의 CCTV 를 해킹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찾아낸다고해도, 그저 헛걸음 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구석은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차현태를 비롯하여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서류에 대한 보관과 함께, 앞으로 진행할 내용을
알려주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라면…….”
-급합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짧게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하지만 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였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와 수장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집무실 한 쪽으로 이동하여 전화를 마저 받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모두 전달 받은 후, 놀란 눈으로 서지호를 향해 보았다.
서지호는 그의 눈빛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암시하는 듯하였고, 즉시 그의 옆으로 이동하였다.
“무슨…….일입니까?”
서지호가 물었다.
“CCTV 를 해킹한 놈들을 잡으러 갔는데, 모두 당했네.”
“그들도 이미 준비를 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설장호는 서지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뭔가 생각하는 듯하였다.
“왜…….그러십니까?”
서지호가 물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일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겠지만, 이제 모든 것에
대비하는 습관도 있다는 말인데…….그렇다면 지금 친구를 구한답시고 따로 움직이는 추선우에게도 이들이
뭔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덤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설장호는 추선우를 믿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친구를 이용했다는 것은, 곧 그를 이용하여 추선우를
잡겠다는 의도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추선우 홀로 해결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를 보냈고, 또
차현태가 지원을 보내자는 말도 무시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자신이 내린 그 모든 결정이 후회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국정원장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한 곳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위치가 확인되면,
여기계신 분들의 도움도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물음에 답한 뒤,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네. 실장님.-
국정원에 있는 팀장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지금 바로 추선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알려줘.”
-지금 추선우의 위치는 삼성역을 지나, 탄천주차장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설장호와는 달리, 사무실에서는 처음 설장호의 명령대로 하나의 모니터는 계속하여 추선우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고, 설장호의 물음이 나오자마자 그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탄천주차장?”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계속 주시하고, 그 일대 이상한 놈들이 있는지도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곧 모두를 향해 보았다.
“지금 추선우가 그들이 파 놓은 함정으로 들어갑니다. 난 그냥 아주 사소한 미끼라 생각하였고, 그
미끼를 추선우가 물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아무래도 미끼를 뿌린 놈은 추선우를 그냥
보내려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모두가 그를 보았다. 민간인 은주는 알지 못해도 추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위험에 처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굳이…….나설 필요 없지 않은가? 이미 지현은 태팀장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네. 지현이와
함께 움직일 때나 우리와 같은 운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지현이 이곳으로 오면…….”
“검찰총장님…….”
설장호가 서둘고 있는 것을 본 검찰총장이 한 마디 하였고,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의 매서운 눈빛이
그를 향해 쏘아보며 이를 깨문 어투로 그를 불렀다.
“현실을 바로 직시하라는 것이네. 지금은 추선우를 지원할 때가 아니라, 지현을 데리고 오는 태팀장쪽에
사람을 더 붙여야 한다는 말이네, 우리가 지켜야 할 인물이 지현이지, 그 민간인은 아니지 않은가.”
설장호는 그를 매섭게 보고 있기만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의 면상에 주먹이라도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현태가 자리하고 있기에 참고 있는 그였다.
“추선우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지현의 목숨도 없었습니다. 그가 한 일을 떠 올린다면, 우린 그를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설장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성질이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설실장의 말처럼, 그 민간인은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처음에 그가 없었다면 지현도 없다는
설실장의 말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차현태가 설장호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쉽게 뜻을 굽히지 않은 듯, 지원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일단. 바로 앞이 강남서이니, 강남서에서 인원을 보내주십시오.”
설장호는 검찰총장을 뛰어넘어 경찰청장에게 바로 부탁하였다.
“지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네. 경찰이 나가면 아무래도 그 일대에 추선우를 치려는 놈들이 피할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자네의 말처럼 믿음이네. 만에 하나 우리 쪽에서 그 뿌리에 가담한 형사나,
경찰이 있다면, 이 역시 역효과가 나오지 않을까해서 말이야.”
청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어느 기관에 어떤 누가, 몇 명이나 숨어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남서의 형사들이나 경찰들이라고, 그 조직에 가담되어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일단은 보내세요. 그 뒤로 저희 경호원 인원도 보내겠습니다.”
서지호가 바로 나서서 말했다. 이미 서지호는 그들 곁을 지원하는 한 명의 인물을 지명해 두었었다. 바로
성남의 펜션에서 태정민의 목숨을 구한 지용석 팀장이었다.
그는 서지호의 명령으로 그 후로 태정민과 추선우, 그리고 설장호를 지원하는 하나의 팀을 꾸려 움직이고
있었고, 서지호는 그들을 바로 탄천주차장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미 CCTV 를 해킹한 놈들을 잡으러 갔던 우리 국정원대원들이 모두 죽었다. 그만큼 이들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 우리 역시 준비를 제대로한 후, 접근해야 한다. 무턱대로 붙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다.”
설장호는 말하지 않았던 국정원대원들이 죽음에 대해 말했다. 모두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들은 것이 없으니 그 내용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도 없을 것이었다.
“국정원 대원이 죽었다는 것인가?”
국정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에 의해, 그 조직이 얼마나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다가서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인명피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하나하나에 더 관심을 주고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설장호는 다시 모두를 향해보며 말했다. 경찰청장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강남서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국정원장도 따로 국정원 대원들을 현장으로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여전히 다른 지원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였다.
설장호는 그를 본 후, 매서운 눈빛을 거둬들였고, 곧 차현태의 앞으로 섰다.
-실장님. 저 지용석입니다.-
청와대를 나서자마자, 경호원 지용석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어딘가?”
-지금 탄천주차장쪽입니다.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아주…….제대로 많은 것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아예 멍석을 깔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앞이 강남서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을 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강남서 애들도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즉…….저들의 죄가 없으니, 강남서에서도 별다른 손을 쓰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알았다. 곧 도착하니, 주시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자신들의 행동을 숨기며, 모두의 시선을 피하면서 일을 처리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예 멍석을 깔고 대기중이었다. 즉. 그 누가 찾아와도 자신들이 계획한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추선우…….네가 저들의 미끼를 물지마라…….저들이 너를 물어, 수면위로 오르도록 해야 한다…….넌…
….내 말을 잘 알 것이라 본다.’
설장호는 탄천주차장으로 향하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가 미끼를 무는 것이 아닌, 그들이 추선우를
물게 한다는 말.
설장호는 이미, 여러 차례 추선우를 미끼로 던져놓은 적이 많았었다. 그로 하여 숨어있는 그들의 일부를
계속하여 찾아왔었다. 이번에도 일종의 그런 뜻은 가지고 있었었다.
하지만 상황이 역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이미 그들이 추선우가 미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추선우는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 것이었다.
이는 백태가 이미 한 말에서도 나왔었다. 강남서가 바로 앞이니 어렵지 않겠냐는 정구석의 말에, 목표만
제대로 치고, 바로 빠져나가니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임을 말하였다.
즉. 백태는 이미 설장호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까지 다 계산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띵동’
탄천주차장에 도착한 후,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추선우는 수신된 문자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몸을 낮춰 앉은 뒤, 이어마이크의 주파수를 변경하였다.
“들리나?”
-네. 들립니다. 그런데…….여기는 왜? 그 서류가 더 중요…….-
“지금은 네가 더 중요하다. 지금 이 일대에 그들이 있고, 또 우리도 있다. 누가 누구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냥할지는 모른다. 하지만…….절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총을 겨누지 마라.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놈이 총을 겨눈다면…….그 자리에서 사살하라. 우리가 죽는 것보다, 그 놈들이 죽는
것이 더 좋으니 말이야.”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모든 인물들에게 일종의 살인면허를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권한으로 그런 큰 권한을 줄 수 없지만, 설장호의말대로, 그들에게서 죽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방아쇠를 당겨야하는 것이었다.
‘띠리리리’
정구석은 그 즉시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네 회장님.”
“지금. 주위에 설장호가 있다. 그리고 국정원소속인지,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너의 곁으로 붙고 있다.
조심하거라.”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 같은 놈을 챙겨주셨으니, 그 은혜에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어느 정도 계산은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안심이군. 부탁하네.”
“네. 회장님.”
정구석은 백태의 안전이 진심으로 걱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백태는 이미 설장호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것처럼. 이에 대한 준비마저도 다 해 놓은 상태였다.
“인원이 많다. 누가 누구를 공격할지 모르니, 절대…….절대 우리들끼리 서로 총을 겨누는 일은 없도록
해라.”
설장호는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인원이 무척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설장호의 명령으로 이곳으로 온 사람들뿐이니, 인근에 진을 치고
있는 강남서 인원들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차량이 도착하였고, 태정민이 잠이든, 지현을 안고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이 운전석에서 내렸고,
곧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삼촌…….여긴 어디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지현이 눈을 떴다. 그녀는 태정민의 품에 안긴 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여기…….여기는…….”
“지현아? 혹시…….나를 기억하니?”
태정민이 알려주려 할 때, 차현태가 그녀의 앞으로 서며 물었다.
“아저씨…….”
지현의 울음 섞인 한 마디. 그 한마디로 영접실 안에 있던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한 방울의 눈물을
자동적으로 맺히게 만들고 있었다.
“괜찮다…….괜찮아. 이렇게 네가 살아있으니. 아빠, 엄마도 마음을 놓으실거야.”
차현태는 그녀를 꼭 안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태정민과 서지호는 잠시나마 차현태에게 믿음이 없었던 그
순간을 그제야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실장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까? 한 참 전에 출발하였는데.”
“다른 곳에 일이 있어서 먼저 움직였네. 그보다 배고프지 않은가? 지현이가 많이 배고플텐데, 맛있는
것이라도 좀 먹였으면 하는군.”
차현태는 태정민의 물음에 대충 답하였다. 자세한 답을 하고자 한다면, 태정민의 성격상 계속 물을
것이기에, 서둘러 답하고서는 화제를 바꾸는 말을 하였다.
“선우는…….괜찮겠죠?”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사실 이들에게 지현이 중요하지만, 은주에게는
선우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태정민에게 물었다.
“걱정마세요. 잠시 대통령님께 인사하고 난 뒤, 제가 추선우의 곁으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태정민은 은주의 말에 웃으며 답하였고, 그나마 그의 말을 들은 후, 은주의 표정이 잠시나마 밝아지고
있었다.
차현태는 지현을 안고서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고, 곧 주방장은 청와대 내에 있는 남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저씨…….아빠, 엄마가…….”
“말하지 말거라.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잠시만 참고 있거라. 꼭…….꼭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테니 말이야.”
차현태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지현이 차현태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녀가 차현태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와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차현태는 지현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인생의 삶의 모두 다
살고 난 뒤, 그 생을 마감하는 이를 보내는 것도 가슴이 아프다. 하물며 아직 사랑 받으며, 부모 품에서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에 부모를 떠나보냈으니, 그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차현태는 눈물을 흘렸다.
“갈 것이야?”
태정민이 몸을 일으킨 뒤, 영접실을 나서려 할 때, 서지호가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가야합니다. 가서 그 놈을 도와야합니다.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그런 민간이이 왜…….왜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며,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태정민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고, 은주가 지현을 살며시
껴안았다.
“가보겠습니다.”
“나도 같이가.”
태정민이 나서려 할 때, 강서진도 함께 따라나섰다.
“우리가 모두가면 은주씨와 지현만 남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만에 하나 청와대 내에서 그
조직에 가담한 인물이 나온다면, 막을 수 있는 확률은 없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침투가 되었을 것이지만, 강서진은 그냥 검사다…….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냥 검사일 뿐이었다.
“내가…….남아있는다고 도움이 될까?”
“네. 적어도…….지현과 또 지현을 안고 있는 은주씨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은 시선을 돌려 두 여인을 보았다. 생각지 못하였다. 자신이 두 사람을 보호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두 여인은 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고,
태정민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서실장…….태팀장에게 지원을 붙여주게.”
태정민이 자신에게 인사한 후, 영접실을 나서자, 차현태는 곧바로 서지호를 불러 말했다.
“이미 청와대의 경호원 숫자가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자칫 대통령님을 경호해야 할 최소한의 숫자마자
채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서지호가 그의 말에 반대하였다.
“이곳에 있는 나를 보호해서 뭐하겠는가? 설마 그들이 이곳까지 들어온다고 하여도, 나를 향해 총을
쏘지는 못할 것일세. 자네도 있고…….또 나를 향해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 할 테니 말이야.”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는 그를 잠시 보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청와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몸담고, 이곳 생활을 계속 이어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루아침에 바뀐 다른
사람이 청와대로 들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태팀장에게 지원을 붙이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고, 곧 경호실에 연락하여 다섯명의 인원을 선발하여 태정민에게 붙여주었다.
“태정민.“
서지호는 청와대를 서둘러 벗어나려는 그의 앞으로 섰다.
“주파수 3 이다. 그럼 설실장님과 바로 연결될 것이다.”
그는 이어마이크를 따로주었다. 현재 설장호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사용하는 이어마이크 대신, 다른 것을
착용하고 탄천주차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 서지호의 뒤로 서는 다섯명의 경호원을 보며 태정민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 다섯명은 자신과 가장 처음부터 이 일을 맡았던 인물이며, 지금 다시…….한 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저 놈은 또 뭔가?”
한 편. CCTV 를 확인하고 있던 네 명의 회장들 눈에도 너무나 눈에 띄게 등장하는 태정민은 잘 보이고
있었다.
“태정민이군…….”
최기수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제길…….오라는 놈은 오지 않고, 쓸데없는 놈들만 다 모여 드는군. 설장호에…….태정민까지…….”
정구석도 마찬가지로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고민국과 우수광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비록 머릿수로는 저들보다 월등하게 앞서 있지만, 문제는 능력이다. 저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 탄천주차장에 모인 이들에게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은 백태 혼자였다. 다른 이들이 있다고하여도, 아직 그들에 대한 어떤 능력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백태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회장들도 알고 있을 정도이니, 그의 강함이 그나마 믿을만한 것이었다.
“움직여라.”
가장 먼저 고민국이 전화기를 들고 한 마디 하였다. 그러자 모니터 한 쪽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녀석들이 움직인다. 목표가 누군지 모르니 적당하게 거리두고 움직이며, 여차하면 그냥 머리통을 날려.
그 책임은 내가 진다.”
설장호는 현재 탄천주차장에서 자신이 하는 말을 이어마이크를 통해 듣는 모두에게 살인면허를 주었다.
이미 한 번 받은 면허지만, 또 다시 들으니, 모든 대원들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총이 들려지게 되었다.
“움직여!”
점차 모두의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때, 백태가 큰소리로 말했고, 그 즉시 인근에 있던 또 다른
무리들이 그의 뒤를 막아섰다.
그리고 백태는 미희를 데리고 탄천주차장 위로 뻗은 도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제가 움직입니다.”
“뭐? 네가? 넌 어디…….”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가 분명 자신보다 뒤에서 다가서는 것을 보았던 지용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보려는 순간. 이미 탄천주차장 위 도로를 뛰어가는 추선우가 보였고, 그 뒤를
태정민이 이어서 뛰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저리 빨리 움직였지?”
지용석은 멍하니 선 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찌 저리 타깃을 따라
잘 움직이는지가 궁금하였다.
“백태를 지원해라.”
곧 최기수가 한 쪽 끝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일곱명의 사내에게 명령 내렸다. 그들은 퇴로를 막아 세울
작정이었지만, 백태가 주차장을 벗어나며, 그의 뒤로 추선우와 태정민이 따르는 것을 보았다. 설장호를
잡고자 그 곳에 계속 둘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여, 바로 움직여 백태를 돕도록 하였다.
“아무리 백태가 뛰어나도…….태정민과 저 놈을 둘 다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최기수는 정구석을 보며 말했다. 정구석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칫 정구석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으니, 미리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대로 쭉 쫓는다. 이곳은 나와 서용석이 정리한다.”
설장호는 추선우와 태정민에게 백태를 쫓도록 하였고, 탄천주차장에 모인 수많은 사내들을 감당하는 것은
서용석과 자신만이 처리한다는 말을 하였다.
“실장님. 농담이시죠? 이 많은 놈들을 어찌 정리합니까?”
서용석은 가만히 있었다. 아직 그 어떤 누구와도 주먹을 뻗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먼저 날아오던,
먼저주먹이 날아가던, 그 시작을 알리는 행동이 있다면, 대규모 난투극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였다.
“어차피…….이런 일이 우리 전문이지 않은가? 녀석들 보아하니, 여기에 있는 놈들 거의 대부분은
바람잡이로 둔 것 같은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설장호의 말에 지용석이 주위를 보았다.
“아무리 바람잡이라도 뻗은 주먹에 한 대씩 맞으면 결국 머리통 날아갑니다.”
지용석은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인원수로 보나, 뭐로 보나 이미 서로 맞짱
뜨면 어느쪽이 더 심한 상처를 입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였다.
“그래도 해라. 이게 임무다. 어차피 이 사건을 돕기로 하였다면, 제대로 하자.”
지용석은 그저 평범한 경호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는 인물이며, 그의 실력 또 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하지만 그 뛰어난 실력이라도 설장호에게는 신입 대원 수준의 대우를 받는
그였다.
마치 태정민과 서지호가 설장호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할 일이 많다. 서둘자.”
설장호는 곧 무리들 안으로 움직였고, 지용석도 움직였다. 또 한 지용석과 함께 움직인 청와대
경호원들도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움직였다.
“어찌된 일이냐?”
고민국이 자신의 비서에게 물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투입시킨 인원이 총 50 여명입니다. 그 인원이 한꺼번에 사라질 리 없는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민국의 비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직접 명령 내려 사람을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 몇 분 사이에 그 많은 인원이 다 사라지자, 서둘러 원인을 확인코자 움직였다.
“저…….저 놈은?”
설장호와 지용석이 조금씩 움직이며, 그 무리들을 잡기 시작할 때, 강남서에서도 형사들과 경찰들이
내려와 두 사람을 지원하였다.
그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 무리들 속에서 아주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 또 하나의 인원이 있었다.
“회장님. 최광민입니다.”
최광민이 전화를 받자, 곧 휴대전화를 고민국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짓인가? 왜 사람들을 데리고…….”
-죄송합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지만, 저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내가 너를 살리는 것이다. 나의 명령을 어기면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다. 헌데…….누구에게…….”
-안녕하신가?-
고민국이 더욱 더 날카롭게 쓴 표정을 지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처음 듣는 목소리가 고민국의 귀에 들려왔다.
“누구냐?”
-내가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니, 그건 차츰 말하기로하고, 내가 한 가지 묻자. 너희들 누구냐?
누군데 숨어서 그토록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나?-
고민국은 휴대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변경한 뒤, 모두가 그와의 통화내용을 듣도록 하고 있었다.
“네가 누군지를 먼저 말한다면 우리도 말해주겠다.”
고민국이 다시 그의 신분을 물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놈들도 아닌 듯한데, 피차 선수끼리 이런 시간 장난 하지말자.-
모두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그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통화중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최광민을 조종할 정도니, 그의 힘은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며, 또 최광민에게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자세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들었을 텐데도 이토록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필시 이 또 한
만만찮은 상대라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최광민을 잡고 있다는 것은, 그 힘도 만만찮다는 말인데…….어떤가? 나와 함께
손을 잡아 보겠는가?”
-지랄하지 마라.-
“!!!”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그 한마디에 네 사람은 공통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그런 말을 한 인물이 없었다.
진정 처음 듣는 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말을 들었으니, 네 사람의 머릿속이 온통 뒤집혀지고 있을
것이었다.
-이장구를 기억하는가?-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전에, 고민국의 심장은 다시 터질 듯 하였다.
이장구는 이창민의 운전기사로, 국정원 조사실에서 자살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나오자,
고민국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누구냐…….누군데 이장구를 알아?”
-나? 난 그 이장구란 사람에게 살인청탁을 받은 인물인데, 결국 돈도 받지 못하고…….경찰에게 쫓기는
신세만 되어 있고…….그래서 어디서 돈을 받고, 어떤 놈에게 화풀이를 해야 할 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놈을 찾았지, 이놈에게서 네 놈들 이야기를 들었고, 네놈들에게 돈을 받은 후, 그 화풀이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네 사람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아직 통화중인 인물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자네가 누군지 말해준다면…….우리가 그 대가를 충분히 지급해 주겠네. 돈이라면 지금 바로 계좌로
송금해 주겠네. 말만하게. 얼마였나? 이장구에게서 받기로 한 금액이 얼마였나?”
고민국은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었다.
“다시 연결했습니다.”
잠시, 탄천쪽의 상황에 몰입해 있던 상황이었고, 곧 대형 모니터에 백태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모두 그
영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삼성역 주변에 백태 외에 정 회장님의 사람이 있습니까?”
백태가 삼성역 일대 유흥가 쪽으로 걸어가자 최기수가 정구석을 보며 물었다.
“우리야 전국구 아닙니까? 삼성역쪽이라고해서, 백태의 수하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구석은 사실 전국에 뻗어있는 조직원들을 다 알지 못한다. 그 모든 관리를 백태가 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 운영만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백태는 미희를 끌고 유흥가를 들어섰고, 일부 유흥가의 여인들과, 사내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내가…….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야…….’
그녀는 떨고 있었다. 단지 그 순간이 무서워서 행동한 결과가 참으로 무섭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저기…….저 놈이군.”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본 것 같습니다. 미희를 불러내고 그 앞에서 한 여자아이를 안고 있던 그 놈
말입니다.”
사내의 말에 그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추선우를 기억하는 듯 말하였고, 그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보았다는 듯, 그 상황을 떠 올리고 있었다.
“그래…….그 놈이었군.”
사내도 떠 올렸다. 그는 여 종업원들 중, 미희를 특히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내였다. 그리고 미희가
선우와 함께 웃으며 가는 것을 보았던 인물이었다.
“가차 없다. 그냥 쳐라.”
“알겠습니다.”
그의 나지막한 말에 사내들이 일제히 추선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애애애앵!’
“일찍도 오시는군.”
곧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건달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다.
“오늘부로 이 새끼들 영업은 끝이다. 모조리 잡아!”
설장호가 소리쳤고, 그 소리에 건달들이 우르르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기 바빴다.
“추선우, 친구를 따라가라.”
설장호가 이어마이크를 통해 말했고, 추선우는 주위가 물러나자 곧바로 뛰기 시작하였다.
“태정민 지원하고.”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도 이어 달렸다.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이자, 그 장면을 모두 보고 있던 정구석이 다시 백태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실장님.-
“왜”
삼성역 유흥가를 강남서에 맡기고 곧바로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던 그에게 국정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지금 그들이 마지막 장소로 보이는 듯 한 어두운 곳에서 민간인과 태정민 팀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몇 놈이나 되는데?”
-인원수는 인질을 포함하여 아홉 명입니다. 인원수가 많지 않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의 말에 설장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고, 뒤를 이어 지용석도 빠르게 움직였다.
“상대가 누구야?”
이동중에 바로 물었다.
-일단. 인질을 데리고 움직인 놈이 백태라는 놈입니다.-
“백태……. 이름 참 마음에 들지 않는군.”
설장호는 대원의 말에 농담을 하였다. 하지만 대원은 농담을 주고받을 표정이 아닌 듯하였다.
-신중해야 합니다. 백태는…….설 실장님과 비슷한 수준의 킬러라고 보시면 됩니다.-
“!!!”
조금 전까지 농담처럼 여유가 있었다. 아홉 명이면 충분히 추선우와 태정민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에 의해 듣고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놈 더 있습니다.-
“또 있어?”
-뒤 늦게 나온 일곱 명 중, 그들의 우두머리가 병따개라는 닉네임을 가진 놈인데, 그 이유가…….타깃을
정하면 무조건 목을 딴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입니다.-
“!!!”
설장호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는 지용석에게 손짓으로 서둘도록 명령 내렸고, 지용석도 바로 움직였다.
“일단. 인근 확인 잘하고, 경찰인원들도 붙여! 지금 바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삼성역의 모든 처리를 강남서에 맡기고 바로 움직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었다.
일단 백태라는 인물이 자신과 버금가는 인물이라 하였으니, 자신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병따개. 그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리 와서 좀 들게.”
한 편. 차현태는 주방장에게 요리를 부탁하였고, 주방장은 기꺼이 지현을 위해 요리를 해 주었다.
그리고 은주와 강서진도 함께 움직였다.
모든 요리는 영접실로 직접 배달이 되었고, 서지호가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그 곳은 그 누구도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거리가 멀어 이어마이크가 연결되지 않아,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무 일 없나?”
설장호의 전화였고, 서지호는 현재 나란히 둥글게 모여앉아 있는 모두를 향해 보고 있었다.
“네 아무 일 없습니다.”
“다행이군. 일단 이 쪽은 바쁘다. 추선우와 태정민이 쉽게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 일단 그곳의 모든
경호는 네가 책임자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지현과 민간인 은주씨의 안전은 책임져라.”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와 통화내용에 대해, 자신의 표정으로 그 내용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몸을 돌려
통화를 하였다.
“무슨 일인가?”
통화를 끊자마자 차현태가 물었다.
“설실장입니다. 지금 탄천쪽의 일은 정리가 되었지만, 추선우씨의 친구는 아직 구하지 못한 상황이라
계속 뒤 쫒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하는군.”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에 답한 뒤, 다시 지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지현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녀는 손에 든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왜…….먹지 않느냐?”
“삼촌이…….삼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먹어. 삼촌이 돌아왔는데, 네가 배가고파서 안아줄 힘이 없다면, 삼촌이 좋아하겠어? 그러니까 먹어…
….먹고 힘내. 힘내서 삼촌이 돌아오면 꽉 안아줘.”
은주가 지현에게 다시 포크를 쥐게 하며 말했다. 차현태와 강서진은 지현에게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은주는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 자신의 동생을 대하듯, 밥 먹지 않는다고 소리치며, 다독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더 가슴이 아프고, 답답한 사람은 은주였다. 이들에게 추선우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부하보다는 덜 할 것이었다. 하지만 은주에게는 그 어떤
누구보다 추선우가 더 중요하기에, 그 답답함은 오히려 지현보다 더 한 그녀였다.
“천하의 백태형님을 이렇게 만났으니, 그 전설적인 것도 좀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시각. 병따개는 백태의 옆으로 다가서며 그를 노려보는 듯, 강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누군가? 누구의 밑에서 일하는가?”
병따개가 백태를 알아도, 백태는 병따개를 모르고 있는 듯하였다. 비록 탄천에서 눈빛은
주고받았을지언정,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 그였다.
“뭐…….저 같은 조무래기의 이름을 다 기억하실 필요는 없으니, 기분나빠하지 않겠습니다. 저…….
병따개라고 합니다.”
“병따개!”
그의 한 마디에 백태의 표정이 잠시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름은 잘 기억하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저를…….아십니까?”
병따개가 물었다.
“대단하군. 천하의 병따개가 이런 곳에 오다니 말이야. 내 기억속의 병따개는 부산을 주 무대로 하며,
일본 야쿠자들만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인간이라 들었는데…….맞는가?”
“맞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냥 건달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개입이 좀 많습니다. 무슨 놈의 정치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좀 많긴 합니다. 그리고 일본 놈들 들어서는 것도 좀
봐줘야하고, 또 일본 정치인들 머리카락에 힘들어가는 것 부러뜨려야하고…….좀 바쁘지만, 우리 최기수
회장님께서 직접 부르셨으니…….이 정도는 움직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최기수가 정치 쪽을 많이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된 인물이 병따개였다.
“미희야!”
“!!!”
그 순간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렸고, 은주는 놀란 눈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눈물만 글썽거리고 있었다.
“외쳐라…….그럼 넌 살아서 돌아간다.”
백태가 이를 꽉 깨문 상태에서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영화…….너무 많이 보신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저 여자가 외칠 필요 있겠습니까? 설마…….그
뭐냐…….그 서프라이즈…….이런 것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죠?”
백태의 말에 병따개가 다시 태클을 걸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백태는 그의 말을 듣고도 참고 있었다.
‘탁!’
‘탁! 퍽퍽퍽!’
“!!!”
“태팀장님!”
추선우가 백태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그 주먹은 백태의 한손에 너무나 쉽게 막혔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은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이 뻗은 주먹은 병따개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바로 잡혔고, 그를 막고 서 있던 여섯 명의
수하들에 의해 단번에 한방씩 바로 허용하며 다시 떨어져 나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인원이 많더라도 태정민의 실력정도면 적중타 하나는 나올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태정민은 저 멀리 나가 떨어졌고, 추선우의 얼굴도 백태의 한 손에
거의 다 잡혀 들어갈 정도였다.
“선우야!”
곧 미희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를 안았다.
“부럽다…….”
태정민은 여전히 누운 채,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고, 미희는 선우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며 만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러니 어서 여길 피해. 이곳은 나와 이 분이 정리할 것이야.”
“늦었지만 우리도 있다.”
곧 설장호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지용석과 함께, 청와대 경호원들도 도착하여, 인원수에서는 오히려 더
많아진 상황이었다.
“그럼…….시작할까?”
설장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고, 그 순간 곧바로 설장호의 옆으로 추선우가 달려 나가며 백태를 향해
움직였다.
“거기…….잠깐.”
한 편. 미희를 데리고 다시 삼성역으로 돌아가던 세 명의 대원과 미희의 앞으로 두 명의 사내가 다가섰고,
곧 그들을 불러 세웠다.
“물러나라. 우린 청와대 경호원…….”
“알아. 너희들이 경호원인 것 알아.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
“!!!”
경호원들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들보다 조금은 어두운 곳에 서 있기에 그들의
생김새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의 무게감과 함께, 자신들이 경호원인 것을 알면서 다가서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설장호…….추선우…….저 안쪽에 있는가?”
“!!!”
놀란 눈을 다시 진정시키기도 전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두 사람의 이름에 미희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보려 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두운 곳에서 점차 밝은 곳으로 나왔고, 경호원과 함께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석강수…….”
한 경호원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바로 석강수였다. 한 동안 잠잠하다고 여겼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함께 움직인 인물은 최광민이었다.
설장호의 비서이며, 북정마을에서 청와대 경호원을 모조리 죽인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최광민의 부하를 모두 처리하고, 은주와 아주머니를 우연찮게 구한 인물이 바로
석강수였다.
그런 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의아하였고, 또 탄천 쪽에서의 일도 석강수에 의해 최광민이
모든 인물들을 다 물러나게 만들었던 상황이었다.
“대답을 쉽게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위에 있긴 있나보군. 그럼…….너희들은 그냥가라. 너희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은 아니니 말이야.”
석강수는 그들을 지나치며 말했고, 곧 한 경호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퍽!’
“젠장! 이놈들 대체 뭐야!”
같은 시각. 지용석은 자신과 서로 주먹질을 벌이고 있는 병따개의 수하들이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소리쳤고, 태정민도 병따개의 수준 높은 실력에 고전하고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긴 아니군.”
설장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느 누구를 지원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띠리리리’
순간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국정원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그 쪽으로 또 한 명의 인물이 접근중입니다.-
“또? 어떤 놈이 또 오는거야? 그리고 이 곳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일단 지원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지금 바로 지원요청해서, 이곳으로 인원을 보내.”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놈은 누구야? 우리 쪽 사람이라면 자네가 이토록 급히 연락하지 않았을테고, 저 쪽
사람인가?”
-아무래도…….저 쪽 놈 같습니다. 민간인을 데리고 삼성역으로 향하던 경호원들이 모두 순식간에
당했습니다.-
“!!!”
조금 전까지 여유가 있었던 설장호였다. 하지만 미희를 데리고 간 모두가 당했다는 말에 설장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띠리리리’
설장호가 한 참, 병따개의 부하들을 눕히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거의 다 왔어?”
-네! 바로 뒤로 약 20 미터 후방입니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의 동작이 멈추었고, 그는 시선을 돌려 후방을 보았다.
격전 중, 갑자기 멈추고 시선까지 돌린 설장호를 향해 주먹을 뻗으려던 병따개의 부하를 태정민이 쳐 내며
설장호를 보았다.
“지금 어디다 한 눈을 팔고 계신 것입니까!”
태정민이 소리쳤지만, 여전히 설장호의 시선은 후방을 향해 돌아서 있었고, 그런 설장호의 주위에서
덤벼드는 병따개의 수하들을 태정민과 함께, 지용석, 그리고 그의 경호원들이 모두 쳐 내고 있었다.
“제길…….불길하다고 느껴졌는데…….딱 맞아 떨어지고 있군.”
그리고 설장호의 시선에 석강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한 백태와 거의 비등하게 힘을 겨루고 있던 추선우는 백태가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던지자,
설장호의 옆으로 날아와 넘어진 후,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백태를 향해 다시 뛰어가려던 추선우의 팔을 설장호가 잡아 세웠다.
“다른…….손님이 찾아왔다.”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추선우의 시선이 그가 머문 시선 끝으로 이동하였다.
“석강수…….”
추선우가 중얼거렸고, 곧 그의 입에서 석강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태정민과 지용석의 움직임마저도
멈춰섰다.
“젠장…….저 놈은 여길 또 어찌 알고 왔답니까!”
태정민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백태와 병따개 쪽도 희한하게 석강수의 등장에 맞춰 모든 동작을 멈춘 후, 그를 향해 보았다.
“이런 이런…….이런 화려한 파티가 이런 구석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석강수는 자신을 보고 있는 모두를 향해서며 두 팔을 벌려 말했고, 백태와 병따개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어이! 거기 술 처먹었으면 조용히 집에 가서 마누라나 껴안고 자!”
병따개가 그를 보며 큰소리로 외쳤고, 곧 두 팔을 벌리고 있던 석강수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름이 뭔가?”
석강수는 정확하게 병따개의 눈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쇠를 깎는 듯 들리면서
순간적으로 모두가 소름이 돋는 듯하였다.
“알아냈습니다.”
같은 시각. 네 명의 회장들이 눈을 크게 뜨며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최기수의 부하가 다시 들어서며
말했다.
“그래? 이름이 뭔가?”
“저 놈의 이름은 석강수라는 놈으로, 얼마 전까지 모든 것이 비밀에 덮여 있던 놈입니다. 하지만
이창민을 죽이고 난 뒤, 그의 딸을 죽이려 하면서 설장호에게 신분이 발각되어, 지금 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백태와 병따개를 향해 보았다.
“저 놈…….어떤 놈인가?”
“짧게 설명드리면…….설장호의 선배며, 설장호가 유일하게 공포를 느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
“낭패군. 저 놈이 우리쪽에 선 놈이라면 아주 큰 천군이지만, 만에하나 설장호와의 정을 생각해서
설장호쪽에 선다면…….”
“설장호 쪽은 아닌 듯합니다.”
최기수가 인상을 구기며 말하고 있을 때, 정구석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모니터 안 영상은 석강수의 곁으로 움직인, 지용석이 그가 뻗은 단 한방의 주먹에 의해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리는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서지호는 전화를 받은 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 신원을 물었다. 그리고 팀장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곧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삼성역의 일을 모두 알리고 있었다.
서지호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서지호는 전화를 끊은 후, 차현태를 향해보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잠을 청하지 않은 채, 지현과
함께 놀아주고 있는 차현태였다.
“무슨 일인가?”
차현태가 그의 눈빛이 무언가의 불길함을 말할 것 같은 느낌에 그의 곁으로 다가서서 조용하게 물었다.
서지호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에게 모두 알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도 굳어졌다.
“저희에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친구가 관여된 일입니다.”
두 사람의 비밀적인 대화에 은주가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의 눈매는 매서웠고, 목소리마저 날카로웠다.
“지금은 어렵겠습니다. 아침 날이 밝으면…….”
“아니요. 지금 말씀해주세요.”
“강 검사님까지 왜 이러십니까?”
은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있을 때, 강서진이 나서서 답변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서지호가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고, 곧 차현태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여기…….”
우수광의 말에 그는 또 다른 모니터에 찍히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경찰들입니다. 그리고 이들뿐 아닙니다. 삼성역 번화가 인근 초입부분의 영상에는 경찰특공대까지
들어섰습니다.”
“젠장!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인데, 똥마려워서 화장실 가야하는 듯한 느낌이잖아!”
그의 말에 최기수가 큰소리쳤고, 모두가 그를 보았다. 표현이 좀 지저분하긴 하였지만, 모두가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엔딩을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서야 하는 기분이었다.
“일단 백태에게 알려라.”
“네 회장님.”
정구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비서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병따개도 물러나게 해. 저런 놈을 이리 허무하게 경찰에 넘겨주는 것은 아깝다.”
“네 회장님.”
이어서 최기수도 병따개를 물러나도록 하였다.
하지만 고민국은 최광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괘씸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를 경찰에 넘기는
것보다, 자신이 잡아서 그 죄를 추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영상만 보고 있었다.
“고회장은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정구석이 그를 보며 물었다.
“저 놈. 설장호와 마주하고 있는 저 놈. 석강수…….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설장호가
대단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그 설장호를 주무르고 있으니…….말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영상에는 설장호가 석강수에게 고전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수많은 주먹과
발차기 등,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액션을 보이고 있는 설장호였지만, 석강수는 그의 모든
공격을 너무나 쉽게 피해버리고 있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추선우와 거의 비등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었다. 그리고 곧 그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고
있었다.
“받아라…….그 정도의 시간은 준다.”
그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고 있자 추선우가 주먹을 뻗으려하다 말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백태는
추선우를 매섭게 노려본 후, 자신의 안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네.”
짧게 답했다.
“지금 그곳에서 물러나라, 경찰특공대는 물론, 경찰병력이 곧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백태는 순순히 정구석의 말을 따랐다. 바로 앞에 있는 추선우를 더 상대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의 괜한 개인감정으로 정구석에 미움 받을 짓은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쯤에서 물러난다.”
“뭐? 뭐라고요! 지금 한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의 말에 가장 놀란 인물은 병따개였다. 그는 한 창 태정민과 지용석을 두들겨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러난다. 만약…….나와의 결판을 짓고 싶다면 따로 따라나서라. 얼마든지 응해주겠다.”
백태는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추선우를 향해 보며 고개를 좌, 우로 저었다. 따라가지
말라는 그의 말이었다.
“하…….한 참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곧 병따개도 최기수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는 짜증섞인 어투로 중얼거린 뒤, 태정민과 지용석을 번갈아
보았다.
-애애애앵!-
“경찰이었군. 지원을 요청해 두었었나? 이 모든 것이 지난 번 연화장과 같은 상황이군. 이보게,
설장호.”
석강수는 계속하여 들려오는 경찰의 사이렌소리를 듣고 난 뒤 혼자 중얼거렸고, 곧 설장호를 보았다.
“북정마을에서 내가 한 말을 잘 기억해라. 그리고 추선우. 넌 언젠가는 나와 제대로 된 격전을 벌일 날이
있을 것이다. 넌…….내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이니까 말이야.”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말한 뒤, 최광민이 들고 있는 윗자킷을 다시 받은 후,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왜…….그러십니까?”
“앞으로 네가 청와대 경호원해라. 병따개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젠장…….”
태정민이 그의 물음에 답한 뒤, 고개를 숙였고, 그의 옆으로 추선우가 다가가 앉았다.
“혹시…….빈자리 있나요? 저 면접 볼 수 있는 건가요?”
“뭐?”
추선우의 말에 세 사람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추선우는 진심으로 태정민에게 물은 것이지만, 이 세 사람은 그의 말을 모두 농담으로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원. 만약 그 곳에 자리가 있다고 하여도, 그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태정민의
농담에 괜한 추선우의 기분만 잠시 들 떴던 상황이었다.
“어쨌든. 넌 대단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놈보다 대단하다.”
설장호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태정민도 그를 향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지용석은 그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까지 하였다.
“괜찮으십니까?”
곧 강서진이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미희가 함께 서 있었고, 추선우는 미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추선우.‘
“네. 검사님.”
“검사?”
“아…….인사해. 이 분은…….”
“검찰청 강력계 검사 강서진입니다. 그리고 추선우를 감시해야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잠시
자리 좀…….”
강서진의 말에 미희는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지만, 추선우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한 뒤, 곧 강서진의 앞으로 섰다.
“민간인입니다. 너무 겁주시면…….”
“은주씨는요? 은주씨는 어쩌고 또 여자와…….”
“네? 여기서 왜 은주가 나옵니까? 은주도 친구도 미희도 친구입니다. 그런데…….”
“선우씨는 그렇게 생각해도,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판단 잘 하세요.”
선우는 멍하였다. 지금 상황에서 은주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가는 강서진이 이해가지 않았다.
‘고아…….’
“미희씨…….라고 했나요?”
강서진은 미희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녀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네.”
“집이 어디십니까?”
“대치동 인근 원룸입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일단 그 일대에 저희 검찰청 형사들을 미리 배치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다시 나오십시오. 그들이 미희씨를 미끼로 사용했으니, 미희씨 역시…….그들에게 노출된
것입니다.”
선우는 강서진의 말을 들은 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향해 고개숙여 인사를 하였다.
“선우씨에게 인사 받으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희씨 역시 은주씨와 집주인 아주머니처럼 그들에게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기에, 따로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아무튼요. 감사합니다.”
강서진은 애써 말을 돌려 하려하였지만, 이미 그녀의 얼굴에는 미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표정으로
나오고 있었다.
“가자. 내가 함께 가줄게. 괜찮겠죠?”
추선우가 말했고,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곧 검찰청
형사들 중, 일부를 두 사람의 뒤에 따르도록 하였다.
이미 고민국이 각 부서의 인물들을 관리하고 있기에, 지난 연화장은 물론, 사당역. 그리고 펜션과 새벽에
있었던 탄천주차장의 모든 일을 다 관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각 부서에 몸담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마음 놓고 지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검찰총장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이미 국정원장이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다른 그 어떤 부서보다 뿌리에 가담되어 있던 인원이 많았던 국정원이었다. 그로인하여 국정원장은 쉽게
설장호의 뒤를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었었다.
“국정원 쪽은 설 실장이 따로 움직일 것이며, 우리 경호실은 서지호 실장의 명령하에, 태팀장이 따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청은 강서진검사가 그대로 이끌 것이며, 경찰청은 박태식 팀장이 다시
지휘를 할 것입니다.”
“박태식은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그는 퇴원합니다. 그리고 경찰청장님.”
“네. 대통령님.”
차현태는 자신의 말이 있은 후, 곧 경찰청장이 박태식에 대해 말하자, 그를 보며 다시 불렀다.
“제가. 청장님보다 더 빨리 경찰쪽 일을 확인하는 것은…….뭔가 잘 못된 것이라 보이지 않습니까?”
청장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먼저 알고 차현태에게 보고를 해야 할 판에, 자신은 모르는 일을 차현태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니, 숙인 고개는 당연히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확인하여 바로 팀인원을 맞추겠습니다.”
청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차현태는 다시 모두를 고루 보았다.
“처음과 같아졌습니다. 모두가 다시 제자리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제는 쳐 낼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추선우…….비록 민간인이지만, 국정원과 검찰, 경찰에서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여러 수장들께서는 이 마지막 기회에 그 놈들을 모조리 잡아야 하는 각오를 다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현태는 추선우를 앞에 세워두고 수장들을 보며 말했다. 추선우는 얼떨결에 대한민국 각 부서의 수장들을
보며 서 있게 되었고,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서 실장.”
차현태는 곧 서지호를 불렀고, 서지호는 원본 파일을 복사한 서류를 그들에게 모두 한 장씩 나눠주었다.
“어제 발견한 이창민 대사의 서류를 한 장씩 카피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각기 각부서에서 모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에는 필시 암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름만 적혀있는 부분에서도 뭔가 암호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름을 다 나열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판단에 나온 것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여러 수장들께서 제대로 된 답변을 대통령님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지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지난 날, 차현태에게 그렇게 구박을 받았어도, 그들은 아직까지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하물며 비밀의
문서가 발견되어 설장호가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 문서를 다시 보고자 하는 수장들도 없었다.
이에 서지호가 조금은 격한 말을 내 뱉었어도, 차현태는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장들을 향해 더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시간을 주어, 오늘 자정까지입니다.”
“네? 자정까지라 하시면…….”
“자정까지. 그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명단은 또 무엇이며, 그 명단에 속한 인원이 누구인지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나와 있는 사진으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인물, 그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내십시오.”
차현태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그를 보았다. 이미 일주일간 그 조직에 대해 알아낸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설장호를 비롯하여 현장에서 움직인 이들은 알아낸 것이 있었어도, 책상에 앉아 입만으로
명령만을 내리던 이들이 알아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서류 하나를 건졌다고, 시간을 단 하루를 주며, 모든 것을 알아오라고 하니, 이들의 표정이
멍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통령님. 그래도 이건…….”
“더 이상 시간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놈들을 수면위로 끌어내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사냥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차현태의 표정은 매서웠다. 진정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를 잡아야 하는 킬러처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움직이십시오.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차현태의 말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집무실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이에 서지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그를 보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지호의옆에 서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를 CCTV 에서만 보았고,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첫 만남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수장들이었다.
“두 분…….아니 세 분은 괜찮으시겠죠?”
이동 중, 추선우가 경호원들을 보며 물었다.
“설 실장님이야, 원래 이 바닥에서는 전설적인 분이시니,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태팀장님도 사실 설
실장님과 거의 동급의 인물이라 괜찮을 테고…….문제는 지용석 팀장님과 그 대원들인데…….”
“왜요?”
두 사람에 대해서는 금방 일어날 것처럼 말하였지만, 지용석에게는 그리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용석 팀장은 그리 맷집이 좋지 않습니다. 때리면 맞긴 맞는데, 적어도 3 일은 그냥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대충 이해는 가고 있었다. 지용석이 꽤 빠르고 강해보이기는 하였지만, 그가 병따개의 수하들과 겨눌 때,
수없이 때리고 난 뒤, 한 두 대 맞고, 뻗어버리는 것을 몇 번 보았었다.
경호원의 말처럼 강하긴 하지만, 맷집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 병원신세를 더 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였다.
‘똑똑’
모두가 이번 차현태의 발언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열렸다.
“영웅이 오셨군.”
추선우가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를 보며 강서진이 미소를 짓고 말했고, 모두가 그를 반겨주었다.
많이 달라진 대우였다. 처음에는 민간인인 추선우를 모두가 잡고자 하였고, 또 그 후에도 그에게서 이번
일에 대해 별다른 임무를 부여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누구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임무도 더 중요해졌다.
“다들 추선우씨 이야기로 이렇게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멍하니 선 그를 보며 강서진이 말했고,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강검사님.”
“왜?”
그녀의 행동에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불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이렇게 남자들만 수두룩하게 있는 곳에서…….”
“나도 몰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런 짓을 왜 하는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그 어떤
누구의 눈치 보는 것도 힘들어, 잠을 자지 못하니, 화장이 둥둥 뜬다. 이 미모에 화장이 뒷받침되어
화려함을 뽐냈는데…….이건 뭐…….”
강서진은 태정민의 말을 들으며, 아예 눈까지 감은 채 그의 말을 농담으로 다 받아치고 있었고, 모두는
한 바탕 큰 소리로 웃었다.
설장호도 몸을 돌려 누운 뒤, 이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 곳에서 자리펴고 누울수도 없었고, 곧 조용히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설장호가 몸을 일으켰고, 신발을 신었다.
“어디가십니까?”
그가 움직이자, 태정민이 바로 물었다.
“화장실 간다. 이런 것까지 너에게 다 보고하리.”
“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것입니다. 다녀오십시오.”
태정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설장호는 병실을 나온 뒤, 좌, 우를 살폈고, 곧 추선우가 움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추선우는 휴게실 인근에서 TV 가 켜져있는 곳에 앉은 후, 멍하니 TV 를 보며 있었다.
“힘들텐데 좀 자라.”
곧 설장호가 그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가 오자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 하였지만, 이내
설장호가 그의 팔을 잡아 다시 앉혔다.
“힘들지 않아?”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힘들다는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던 생활에서, 이런 생활은 정말 없었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물음을 듣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답하였다.
“지구상에 사람은 많아.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도 다 달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리고
매일같이 죽어라 일만하는 세상. 매일같이 놀고먹어도 돈이 남아도는 삶을 사는 세상. 그리고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가는 세상.”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살던 세상은 그냥 일반적인 세상이야. 취업난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 그게 딱 기본적인
세상이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숨기는 것이 많고, 또 알아내야 하는 것이 많아. 죽기
싫으며 죽여야 하고, 더럽더라도, 고개 숙이고 웃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세상이야.”
설장호의 말은 모두 이해되고 있었다. 추선우는 진정 얼마 전까지 그냥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취직만을 기대하던 젊은이였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신의 꿈이 경호원이었지만, 이런 삶을 사는
경호원이라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하였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갈 때, 때마침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냥…….한대씩 쥐어 팰까요?”
설장호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어도, 잠에서 깨지 않은 두 사람을 보며 강서진이 말했다.
“외모에 맞게…….말도 곱게 하자.”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전화기를 들며 말했고, 곧 전화기에 찍힌 발신자를 보았다.
“그래.”
그는 병실 침대에 걸터앉으며 편안하게 전화를 받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국정원 사무실에서, 팀장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죽지는 않아. 무슨 일이야?”
-조금 전, 국정원장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원장님이 왜?”
-저희에게 서류 하나를 주고 가셨습니다.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서류인데. 서류 속 이름에 대해 공통된
점이나, 기타 뭔가 주시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조건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가셨습니다.-
“알았어. 저녁 때 사무실로 갈 테니 대기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설장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현태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서류를 주며, 그 서류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라고 말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정원장은 그 서류를 설장호가 지휘하는 대북전담
요원들에게 주고 간 것이었다.
“벌써…….하루가 지난 것입니까?”
태정민이 말했다. 병원에서 다음 날까지 입원을 하라 하였기에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다음날이라 여겼다.
“하루는 무슨. 1 시간 지났다. 그러니 일어나. 1 시간이면 이틀 치 잠을 잔거야.”
설장호의 말에 태정민과 지용석이 큰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추선우를 보았다.
“안 잤어?”
태정민이 그를 보며 물었다.
“잠이 쉽게 오지 않네요.”
“이런 판국에 잠을 자는 것이 더 신기하지.”
“강 검사님도 저기서 대 자로 뻗어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난 안자. 그리고 난 여자야. 남정네들이 수두룩한 방에서 어찌 잠을 자. 누구 혼사길 막을 일 있어?”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이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조금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고, 곧 다시 몸을 바로 세운
뒤, 추선우의 옆으로 섰다.
“미리 말하지만, 이 일은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행운이 계속 따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행운…….지금까지 바란 적도 없으니까요.”
추선우의 답에 설장호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어제 미희를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선우는 새벽에 미희를 따로 보호해 준, 강서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나한테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민간인이 아무런 죄 없이, 우리가 잡아야 할 놈들에게 타깃이
된 것이기에,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그런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새벽에 강서진은 미희를 따로 경호하였다. 자신의 형사 팀을 붙여놓았고, 미희의 집이 아닌, 강서진이
따로 마련한 숙소로 그녀를 데리고 갔으며, 여형사 두 명을 함께 붙여놓았다.
“앞으로도 미희씨는 물론, 은주씨와 아주머니도 안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것은 몰라도
대통령님께서 이번 일로 인하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것을 강조하셨기에 우린 그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강서진의 모든 말은 업무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강서진은 미희에 대해 듣고 난 뒤, 결정을 달리한
것이었다.
00105 경호원 =====================================================================
====
“모두 일어났으면 움직인다. 각 부처 수장들께서 무엇을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우린 그 정보를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이번엔…….우리가 먼저 놈들을 제대로 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모두 답했다. 그리고 곧 박태식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웃고 있었다.
“저도 함께 갑니다. 그리고 이번엔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습니다.”
박태식은 몸이 완쾌된 것은 아니지만,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여겨 퇴원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형사 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에 대한 대가를 꼭 그들에게
지불해 주려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믿을 만한 사람들로만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그 사람들만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절대…….절대 그 외의 인원은 우리가 움직이고, 계획하는 그 어떤 것도 알아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다시 모인 팀원들을 보며 말했고, 모두 힘차게 답하였다.
‘띠리리리’
“어쩜 이리도 타이밍을 잘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곧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녀는 발신자를 보며 말했다.
“네. 실장님.”
경호실 실장 서지호였다.
“네. 지금 모두 깨어났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 실장님이 옆에 계신데 바꿔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서지호와 통화 중, 현재 상황을 말한 뒤, 곧 전화기를 설장호에게 건네주었다.
“왜?”
-몸은 좀 괜찮습니까?-
“내가 무슨 전쟁터에 나갔다 왔어? 왜 다들 내 몸 걱정들이야. 난 문제없다. 그러니 전화한 용건만
말해.”
설장호는 무뚝뚝하게 답한 뒤, 용건을 물었다.
-오늘 자정까지 각 부처 수장들이 서류에 대한 정보를 보고할 것입니다. 그 정보에 맞춰 설 실장님께서
직접 움직여주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준비 중이잖아.”
-그리고 문제는 그 정보의 신빙성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렸지만, 누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들이 알아낸
정보에 만약 트랩이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당합니다. 그러니…….-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에 대한 신빙성은 확인할 수 있다. 걱정 말고 자넨 청와대에
있는 우리식구들의 안전이나 책임져.”
-알겠습니다. 그럼…….대통령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서지호와 통화를 끝낸 후, 다시 모두를 향해보았다.
“그…….최광민과 함께 있던 놈 말이야…….”
그는 눈을 살며시 뜨며 말했고, 곧 비서가 다가서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놈을 만나고 싶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고, 곧바로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민국은 석강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기수가 병따개를 움직였고, 정구석은 백태를 가지고 있다.
우수광은 아직 특별히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지만, 고민국도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떠 오른 인물이 석강수였다. 천하의 설장호를 가지고 노는 듯 즐겼던 인물. 그 인물이 고민국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것이었다.
“5 년 전. 설실장님의 가족 이야기야.”
“…….”
태정민이 말을 이어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에 추선우는 오전에 병원에서 듣다말은 그의 과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설실장님의 가족을 살해하기 위하여 움직인 놈들이 있었어. 그들은 어두운 밤, 설실장님의 집을
습격하였고, 그 당시에 집에 있던 설실장님의 부인과 딸이 괴한에 의해 살해당했지.”
“…….”
가족을 잃은 마음이 어느 정도의 아픔인지 추선우는 알지 못하지만, 말만 들어도 그 아픔이 전해져 오는
듯 하였다.
“그리고 때마침 집으로 들어서던 실장님이 그를 보았고, 그는 실장님을 향해 칼을 휘두른 뒤, 도망치려
하였지만, 실장님에게 잡히고 말았지. 하지만 그 때 방안에서 희미하게 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로인하여 시선을 돌린 실장님의 배에 그는 칼을 꽂은 후, 곧바로 그곳을 벗어났어.”
추선우는 설장호가 왜 그토록 지현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딸을 살리지 못했던 그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았고,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후, 범인은 자수하였고, 모든 죄를 자백하면서 그 혼자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사건을 마무리가
되어버렸어. 하지만 그 당시 나와 강검사님은 설실장님과 함께 업무를 보던 사람들이었고, 그 사건이
그저 단순한 강도살인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윗선에서는 이미 사건을 덮어버렸지.”
점점 설장호란 인물이 왜 그토록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으며, 또 믿지 않으며, 또 이번 사건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과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고, 그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하려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 후에도 실장님은 칼에 맞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그 놈의 배후를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어.
그러던 어느 날, 실장님께서 출근을 하지 않아, 그 집을 갔을 때, 청소를 하지 않은 방안에서 온갖
냄새와 함께,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실장님이 있었지. 아마 강검사님은 그 때 맡았던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나보군.”
강서진은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사연에 의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심지어 지현에 관한 일을 다 알고 난 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추선우였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설장호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추선우의 눈동자에는 한
방울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5 년 전과 다를 것이 없군.”
한 편. 설장호의 집에 도착한 후, 그의 집으로 들어선 태정민이 말했고, 추선우는 눈앞이 멍해지는 듯
했다.
자신의 옥탑방보다 더 넓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지만, 창가에는 커튼이 빛을 막고 있었고, 집안의
냄새는 빠져나가지 못해,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눈이 멍해진 이유는 그런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집안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TV 는 물론, 냉장고와 식탁. 심지어 밥그릇이나 수저도 없었다. 한마디로 집안에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이
단 하나도 없이 그저 텅 비어 있는 집과 같았다.
“이런 곳에서 실장님이 사시고 계셨습니까?‘
추선우가 물었다.
“그래. 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이 모든 것도 다 필요치 않다고 하시며 다 태워버리신 분이지.”
추선우는 천천히 걸어가 빛을 막고 있는 커튼부터 거뒀다. 그러자 환한 빛이 집안을 밝게 해주었고,
거실에는 마치 햇빛이 처음 들어오는 듯 한 분위기였다.
“환기부터 시키자, 머리가 어지럽다.”
강서진이 창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외부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내부의 공기에 모두가 현기증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창문이 열리면서 외부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섰고, 내부의 공기가 외부로 나가면서 집안의 냄새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한 편. 국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보는 따가운 몇 눈빛들을 외면한 채, 설장호는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고, 곧 팀장과 함께 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였다.
“길게 시간 잡을 수 없다. 서류와 함께 국정원장이 한 말을 그대로 말해봐.”
설장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인사를 건너뛰며 곧바로 자리에 앉아 몇 가지 필요서류를
챙기며 팀장에게 말했다.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 서류 한 장을 건네며 이 안에 있는 수많은 이름 중, 공통점이
있다면 찾아내고, 또 뭔가 구린내가 나는 놈이 있다면 그것도 찾아내라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할 일을 왜 아래로 내려 보내고 지랄인지…….”
설장호는 팀장의 말을 들은 후, 홀로 중얼거리며 쓴 표정을 지었고, 곧 자신이 찾던 서류를 찾았는지,
몸을 바로 세워 팀장을 향해 보았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내린 명령만 이행한다. 그 서류에 나열 된 이름들을 알아볼 필요도
없고, 알아낸다고해도, 나 외에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돼.”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팀장이 바로 답하였고, 곧 팀원들도 그를 향해 고개 숙여 답하였다.
이 팀은 대북전담팀으로 설장호와는 함께 작업한 인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장을 비롯하여 팀원들 전체가
설장호의 후배들이며, 그와 친분이 두텁기에 설장호의 명령을 이들은 잘 이행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곧 최광민이 먼저 들어섰고,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개숙여 그에게 사과하였다. 하지만 고민국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지 않았다. 곧 따라 들어오는 석강수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석강수는 고민국의 사무실로 들어선 후,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숙여라. 어디라고 감히 고개를…….”
‘턱!’
“!!!”
그가 고민국에게 인사 없이, 그저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두고 비서가 그에게 쓴 표정을 지으며
한 소리하려 하였지만, 그 순간 석강수의 손이 뻗어지며, 그의 면상을 그대로 잡아 벽에 아주 강하게
들이밀었다.
“난…….내가 고개를 숙여야겠다고 인정한 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인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석강수의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어투에 비서는 자신의 안면을 모두 감싼 그의 손바닥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짝짝짝’
“…….”
그리고 고민국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이에 석강수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서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나 고민국이란 사람이오. 그리고 당신에게 살인청부를 하였던, 이장구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외다.”
고민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서며, 악수를 청하는 듯 한 행동을 하며 말했지만, 그의 말
끝부분에 이장구의 이름이 나오자, 석강수의 표정이 더욱 더 매섭게 변하였다.
“이장구…….네가 죽인 것인가?”
“!!!”
석강수의 한 마디에 고민국은 물론, 그의 비서와 최광민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하…….이런 상황은 내가 처음이라 뭐라 표현을 하지 못하겠군. 지금까지 나에게 이런 어투의 말을
뱉은 인간이 없어서 말이야.”
고민국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지만, 석강수의 표정은 여전히 매서웠다.
“두 번 묻지 않는다. 네가…….”
“내가 죽이고 죽이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넌 내 돈 20 억을 먹었다. 그렇다면 이장구에게 받을 돈은
충분히 받은 듯 한데…….”
석강수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고민국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고, 석강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뒤, 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이장구…….네가 죽였나?”
그리고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누구를 앞에 두고도 식은땀이 흐르지 않았던 고민국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앞에 두고 겁에 질린 표정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직? 그래…….이창민을 죽이는 일부터가 평범한 놈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지, 그 조직…….얼마나
강한지 내가 직접 겪어 봐도 되겠는가?”
석강수는 여전히 그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석강수의말이 나오는 매 순간마다 최광민의 심장은 타
들어가는 듯하였다.
자신은 고민국이란 인물을 잘 알고, 또 그가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기에, 감히
석강수와 같은 말을 내 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고민국을 모른다. 하물며 그가 속한 조직은 더더욱 모른다. 그러기에 40
대 중반의 고민국을 보며 자신이 주눅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실장님. 뭐라도…….”
“기다린다. 그것만 할 것이다.”
모두가 답답하였다. 기다린다고 뭐가 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맨땅에라도 헤딩하며 찾아다니는 것이 더
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나오고, 이에 대해 뭔가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처럼 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그들이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은 강서진과 태정민의 성격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 듯하였다.
곧이어 그녀도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오자, 추선우의 시선은 펜션 안으로 돌아섰다. 이제 펜션 안에는
설장호와 박태식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내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를 보고 있는 추선우의 눈과 박태식의 눈이
마주쳤다.
박태식은 뭔가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을 전달하려 하는 듯, 추선우를 보며 움직였지만, 추선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박태식은 추선우가 그저 멍하니 서 있자, 창가로 다가섰고, 곧 커튼으로 내부를 가려버렸다.
“박형사님이 저에게 무슨 행동을 취했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자, 추선우는 몸을 돌린 후, 조금 전 박태식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따라하며
태정민에게 말했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동안 떨어져 있어서 실장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나보지. 그리고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것이 아니잖아. 왜…….왜!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야!”
태정민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우렁찬 소리에도 여전히 설장호는 눈을 감은 채,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실장님.”
박태식이 설장호의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말해.”
설장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답했다.
“이렇게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을 찾지 못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그들이 덥석 물고 흔들만한 미끼를 던져 놓으신 것이 있는지…….”
“그런 것 없다. 그냥 기다린다. 그러니 자네도 답답하면 나가서 땅이나 걷어 차.”
“아닙니다. 제가 답답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실장님의 명령만 이행하면 되는데, 굳이 저리 설치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설장호의 감은 눈동자가 잠시 좌, 우로 움직이는 듯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은 그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였다.
“실장님께서 다른 명령을 하달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곧 박태식이 뒤로 물러나, 주방으로 향하면서 말하였고, 싱크대의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들이마셨다.
설장호는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한 박태식을 보았고, 곧 몸을
돌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펜션 밖의 세 사람을 보았다.
“뭔가…….답변이라도 온 것이 있는가?”
서지호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차현태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자정까지 답을 달라는 말을 하였기에, 그
자정의 시간을 기다린 듯, 시간이 되자, 곧바로 서지호에게 연락하여 물었다.
-아직입니다. 자정을 넘겼지만, 그 누구도 아직 청와대를 찾은 분은 안계십니다.-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었다. 자정까지라는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대한 피드백은 꼭
와야 하는 것이었다.
서류의 내용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든 없든, 필시 그에 대한 답은 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없었다. 그 누구도 차현태에게 답을 주지 않고 자정을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먼저 움직여보겠다.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곧바로 연락을 해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통화를 끊은 후, 세 사람을 보았고, 곧 작은 방 문이 열리며 박태식이 아주 긴 잠을 잔 듯,
기지개를 피며 밖으로 나왔다.
“강서진.”
“네.”
설장호는 대뜸 강서진을 불렀고, 그녀는 이제야 뭔가 움직인다는 생각에 곧바로 답했다.
“자넨 지금 즉시 총장님께 연락하여 대통령님의 명령에 대한 답을 듣는다. 그리고 박태식은 청장님께
연락하여 그 답을 듣는다. 그리고 난…….국정원장에게 연락할 것이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각 부처 수장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할 답을 왜 자신들이
먼저 알아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서둘러 움직인다.”
“네…….”
설장호의 말에 할 수 없이 답은 하였지만, 아직도 이들은 설장호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총장님. 저 강서진입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인물은 강서진이었다. 그는 검찰총장에게 연락하여 차현태가 말한 것에 대한 확인여부를
묻고 있었다.
“그럼. 대통령님께는 보고를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까?”
총장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강서진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그에게 따지듯이 묻는 듯하였다.
“알겠습니다. 총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뭐라 따로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강서진의 통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3 분 정도의 통화가 이어졌고, 전화를 끊은 강서진의
표정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태정민이 다가서며 물었다.
“어찌. 대통령의 말을 이리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 실장님. 검찰총장님과 통화했는데, 아침에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서류에 관련된 내용보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강서진은 진정 어이가 없다는 듯 한 표정이었지만, 의외로 설장호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웅 우웅’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설장호의 전화가 웅웅거리며 울었고, 그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든 채,
상대편에서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알았네. 계속 주시하게.”
설장호는 짧게 답변만 한 뒤, 나머지 네 사람을 한 번씩 쭉 훑어보았다.
“다들…….준비는 하고 있는가?”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준비라니요?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뜬금없는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지금…….이곳으로 우리를 찾아올 손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중,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출발 할 것이다.”
“네!”
모두가 놀란 눈이었다. 이곳으로 온 것은 서지호와 차현태를 제외하고는 현재 외부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장담하듯 이곳으로 올 손님이 있다고 하였고, 그의 말에 모두가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누가…….찾아온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설마…….그 조직에서 나오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온다는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태정민이 이어서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판단 잘해라. 뒤로 빠지는 길은 네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에게 총을 줄 수 없으니, 그 퇴로를 잘
이용하라는 뜻이야.”
설장호는 추선우에게만 살짝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중, 퇴로라는 것은 지난
날, 은주와 아주머니를 데리고 펜션 뒤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그가 왜 이런 말을 지금에서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지난 날, 총격전에 의하여
걱정되어 하는 말이라면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무언가 일을 진행하고자 하여 그가 하는 말이라면,
추선우는 그 퇴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팀장.”
“네. 실장님.”
설장호는 지용석을 불렀다.
“지난 번. 성남펜션을 우리가 칠 때, 그들 대부분은 국정원과 청와대 경호원 소속이었다. 기억하는가?”
“네. 기억합니다.”
“그것은 저도 기억합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지용석이 답하였고, 곧바로 태정민도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답하였다.
“모두가 기억한다. 강서진을 제외하고는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기억한다. 그런데…….그 일에 대해
박형사는 어찌 잘 알고 있을까?”
“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마지막 말에 박태식에 관한 말이 나오자, 모두가 박태식을 향해 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이번엔 박태식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박태식. 넌 그 때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펜션에 관한 것은 일체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너에게 그
상황을 전달한 사람이 없다.”
박태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그는 그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박태식은 이곳 펜션위치를 알고 있었다.
설장호가 펜션으로 향하라는 말을 하였을 때, 강서진만 이곳 펜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즉.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는 이곳의 위치를 박태식은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각 부처 수장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그 내용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모두가 전화하였다.
하지만 박태식은 경찰청장님께 연락하지 않았다. 맞는가?”
“…….”
설장호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가 그를 보았고, 박태식은 아무런 말없이 설장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찰청장은…….나에게 직접 연락하였다. 그리고 자네의 퇴원소식등. 기타 내용을 그 분은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어제 아침. 대통령님께 처음으로 자네의 퇴원 및, 자네가 우리 팀에 합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말처럼 경찰청장은 차현태에게 한 소릴 들었었다. 자신이 거느리는 부하직원에 대한 정보를 차현태가
먼저 알고 있었고, 그로인하여 차현태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은 청장이었다.
“뭐하는 겁니까!”
태정민이 곧바로 추선우의 앞으로 다가서며, 박태식이 겨눈 총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래저래…….설 실장님의 머리를 속인다는 것은 쉽지 않네요. 저를 믿고 계신 분이라, 제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팀으로 들어가면 많은 정보를 얻고, 또 쉽게 지현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연화장에서도 쇼를 좀 한 것이고, 며칠간 병원신세도 졌으니, 의심은 더 멀어지고, 나를 더
곁에 둘 것이라 생각하여 짜 낸 각본이었는데…….”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박태식은 태정민과 강서진이 모두 잘 알고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잡아야 할
조직에 속한 인물일 것이라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은 그들이었다.
“우린…….가장 처음부터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보며 이 사건을 맡았다. 바로 이창민 대사의
운전기사였던 이장구. 그리고 킬러로 돌아온 석강수. 또 한 수많은 국정원대원들과 경찰들…….나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가족 같았던 최광민까지…….모두 그 동안 믿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그 때 있었던 사건들을 생각해냈다. 그의 말처럼 처음부터 배신으로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 후로 의심이 불신을 만들었고, 하나 둘,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불신을
심어주려 추선우를 걸고 넘어졌지만, 보기 좋게 박태식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박태식이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뭐. 난 사실 자세히 알지는 못했는데, 청장님과 통화를 하던 중에 확신이 들더군.”
“그럼. 조금 전, 실장님이 짧게 통화한 사람이?”
“그래. 청창님이시네. 의심쩍은 부분을 해결하고자, 말을 편히 한 것이었네. 박형사는…….내가
청장님과 통화중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청장님과 통화했다는 말을 하였지.”
“…….”
박태식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럼. 애초에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나를 다시 이 팀에 합류시킨
것입니까?”
“너를 시작으로…….이제부터는 단 한 놈도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잡아 족치려고 말이야.”
“!!!”
설장호의 표정이 아주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둠속 넓은 밭에서 여러 개의
불빛이 환하게 비춰지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박태식의 얼굴을 향해 집중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서…….설마. 이 모든 것을 따로 준비하셨습니까?”
태정민이 놀란 눈으로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는 박태식의 앞으로 다가갔고, 자신의 눈을
향해 집중적으로 조명이 쏘아지고 있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박태식은 설장호가 자신의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박태식…….넌 이제 돌아가라.”
‘퍽!’
설장호는 박태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았고, 그 충격에 박태식이 뒤로
넘어지자, 이내 그를 비추던 수많은 불빛들이 일제히 소등되었다.
‘탁탁탁’
곧 펜션 뒤쪽에서 몇 사람들이 나오며 쓰러진 박태식의 앞으로 섰다.
“그 놈을 끌고가서, 이지광과 함께 쳐 넣어라. 나머지도 곧 다 쳐 넣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날카로운 어투에 그들은 답하였고, 이내 박태식을 일으킨 뒤, 그를 끌고 펜션 뒤쪽으로
사라졌다.
“실장님…….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이런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셨습니까?”
강서진이 물었고, 설장호는 국정원에 들려, 팀장에게 받았던 서류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이창민 대사의 서류 아닙니까?”
그가 보인 서류는 이창민이 서울역 물품보관함에서 숨긴 서류였으며, 차현태가 직접 국정원장에게 주고,
그 내용을 파악하라고 하였던 서류였다.
“그래. 이창민 대사가 암시하려던 서류지. 그리고 지금 이 서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두 번째 장 서류이며, 대통령님께서 국정원장에게 준 서류네.”
서류만을 보았을 때, 박태식이 그 조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이것으로 어찌 박형사가…….”
“국정원장은 이미 두 번째 서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 서류를 일부러 내가 맡고
있는 팀에 전달하였더군. 그리고 난 그 서류를 확인하였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네.”
강서진이 다시 물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는 자신이 해당 서류에서 국정원장이 확인한
내용을 자신도 확인했다는 말을 하였다.
“저는…….”
“넌 나와함께 이곳을 경계한다. 강서진도 이곳으로 온다.”
지용석의 물음에 설장호가 답한 뒤, 곧바로 강서진도 자신의 곁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강서진은 초기 어리바리 한 여인이라 모두가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섬세하며 잘 따져드는 타입의
여인이었다.
“병따개가 투입되었나?”
“네.”
같은 시각, 최기수도 비서에게 물었다. 이미 박태식에 의해 정보가 제대로 들어왔으니, 이번기회에
방해가 되고 있는 모두를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최기수도 병따개를 펜션으로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병따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태정민과 아직 결정짓지 못한 일로 인하여, 그 일대에 경찰이 쫙
깔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고하지 않은 채, 산책로를 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밤. 아니…….새벽이었다. 조용한 산속 구석에 자리한 펜션의 앞으로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고, 전방을 주시하고 서 있던 세 명은 몸을 낮춘 뒤, 그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끽.’
곧 차량 한 대가 펜션 앞마당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몇 사내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손에는 K2 소총이 들려 있었다.
“오늘…….결정짓는다. 모두 움직여.”
곧 모든 차량들이 다 들어선 후, 한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큰 소리로 명령 내렸고, 차량 주변에
있던 약 50 여명에 이르는 사내들이 펜션을 둘러싸며 천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탁!’
한 편. 산책로를 따라 들어섰던 석강수의 귀에 나뭇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동작을 멈춘 뒤,
주변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약 10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펜션을 향해 걸아가고 있는 병따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병따개는 석강수를 기억 못하더라도, 석강수는 그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척척척척!’
“!!!”
석강수가 병따개의 곁으로 가려던 순간, 그 일대에서 갑자기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몸을 일으키며 총을 겨냥하였고, 석강수는 그 즉시 몸을 낮추어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들에 의해, 병따개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의 수하들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님…….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경찰특공대가 모두 모습을 보인 뒤, 그들의 곁으로 다가서자, 병따개의 한 부하가 병따개를 보며 말했고,
병따개는 그를 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야아앗!”
“!!!”
병따개의 부하 여섯 명은 곧바로 경찰특공대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그로인하여 경찰특공대가
정조준 하고 있던 타깃이 흩어지면서 그 틈에 병따개는 빠르게 이동하며 어둠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모습을 본 석강수도 천천히 몸을 뒤로 다시 빼며, 어둠속을 이용하여 병따개가 이동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팟팟팟’
“!!!”
그 순간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수많은 대원들이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펜션 앞을 비추었고,
갑작스러운 불빛에 의해 펜션 앞마당을 장악하였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엉거주춤하였다.
“움직이지마라. 머리통 날아간다!”
곧 확성기를 통해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목소리에 우왕좌왕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려던
사내들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불을 보고 찾아든 나방을 죽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 그냥 다…….불태워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이다.”
설장호는 펜션 앞마당에서 모두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고, 강서진과 지용석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 즉시 산책로도 지원한다. 그곳에서 경찰특공대의 매복을 뚫고 도망친 놈이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놈을 잡아 족쳐야지.”
설장호가 다시 말했고, 강서진과 지용석이 움직이려 할 때, 저 멀리 펜션을 들어서는 길목 입구에서 또
다시 차량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실장님…….”
곧 이어마이크를 통해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아직 차량 내부 확인은 불가합니다. 어찌할까요? 저들은 이미 펜션 앞의 상황을 모두 보고 움직인
이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한 번에 모두 몰려 올 것이라 여겼고, 그 첫 번째로
들어서는 이들을 모두 잡아 족치면 그것으로 일망타진 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들은 시간차 공격처럼, 먼저 불에 타 죽을 불나방을 보내고 난 뒤, 면역을 가진 채, 다시 들어설
인물들로 나뉘어 진입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모두 신중히 대처한다. 현재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고, 불빛을 모두 들어서는 차량을 향해 비춘다.
그리고 펜션 앞마당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압송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정면을 주시하며 모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펜션 앞마당을 비추고 있던 불빛은 다시 방향을
돌려 펜션으로 들어서고 있는 차량들을 향해 비추었다.
‘픽!’
‘쨍그랑!’
“!!!”
그 즉시 총알이 날아와 강력한 빛을 발산하는 헤드라이트를 깨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모두가 놀라 그
즉시 몸을 숙여 앉았다.
“모두. 정조준!”
설장호도 그냥 물러나지 않으려 하였다. 저들이 총으로 맞선다면 이쪽도 같은 총으로 맞서주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설장호의 목소리는 어둠속에 울려 퍼졌고, 그 목소리는 산책로에서 대기중인 추선우와 태정민의 귀에도
들려왔다.
“제대로 머리 쓰며 들어오고 있다. 저들의 움직임에 많은 생각을 더한 것이라면, 이쪽도 그리 만만찮다는
뜻인데.”
펜션의 앞부분을 보며, 태정민이 말하였고, 곧 추선우의 시선은 산책로의 좌우를 향해 돌아섰다.
“어디서 올까요?”
“그거야 모르지. 일단 주위를 잘 보고…….”
태정민이 추선우의 질문에 답하고 있을 때, 자신의 눈에서 한 사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추선우의 시선도 그 사내에게로 돌아섰다.
산책로에 경찰특공대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들은 석강수를 보지는 못했지만, 병따개를 놓쳤다.
그렇기 때문에 산책로를 전체 다 수색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산책로를 따라 한 사내가 너무나 편안하게 오르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경찰특공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놈이다…….”
병따개였다. 그는 자신의 부하가 희생한 덕에 경찰특공대의 포위망을 뚫고 산책로를 따라 펜션방향으로
이동하였고, 곧 추선우와 태정민이 서 있는 방향까지 오르게 되었다.
“한 놈이 더 있습니다.”
태정민의 시선이 병따개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추선우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목격하였다.
“석강수…….”
바로 석강수였다. 그리고 그의 출현은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던 병따개의 눈에도 보였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너…….살아있어라.”
그리고 짧게 한마디 한 후, 병따개는 곧바로 태정민을 향해 움직였다.
“저 놈이 살아있는다면, 내가 진다는 말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병따개의 말을 듣고, 석강수가 그의 뒤에서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추선우가 살아남는다면, 석강수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실장님! 저 놈들 대체 뭡니까?”
같은 시각. 펜션 전방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은 자신들을 비추고 있는 헤드라이트를 모조리 다 박살내면서
그대로 돌진하듯 달려오고 있었고, 이에 인근에 매복한 인원들을 지휘하던 대원이 설장호에게
이어마이크를 통해 물었다.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나? 그냥 저 놈들의 뜻에 따라 움직여준다. 총을 쏘는 놈에게는 같이 쏘고,
주먹을 뻗는 놈에게는 같이 주먹을 뻗어. 그리고 쓸데없는 희생은 하지마라. 법 때문에 총을 쏠 수
없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만은 내가 모두 책임진다.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자신과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모든 대원들에게 말하였고, 그들은 답을 하였다.
달려오는 차량들을 향해 매복 중이던 모든 대원들의 총기가 난사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소음기를 장착하고
있기에 총을 발포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는 차량 안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총소리로 인하여 괜한 일이 퍼져나가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모두가 소음기를 장착한 채, 총을 발포하고 있었다.
“강서진.”
“네. 실장님.”
“넌. 펜션 안으로 들어간다.”
“아닙니다. 저도…….”
“잔말 말고 들어가. 들어가서 지금의 상황을 국정원과 검찰, 경찰에 알린다. 그리고 서지호에게도
알려.”
“네? 모두에게 말입니까?”
강서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비밀에 붙이고자 이렇게 몰래 움직였는데, 이제와서는 또 모두에게
알린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모두에게 알린다.”
“이유가 있습니까?”
강서진이 이유를 물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인다는 것은 보통의 권력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정도의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놈이 있다면, 지금 그는 그 조직과 계속하여 정보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설장호의 말을 들었지만,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다.
“청와대…….그곳에도 이런 놈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제야 설장호의 말뜻을 이해하였다. 이미 서류가 모두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핵심
인원들이 모여 있는 펜션으로 이정도의 인원을 보냈다는 것은, 서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조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 서류는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경찰청장과 함께 외교부에서 가지고 있으며, 원본은
청와대에 있는 중이었다.
“지용석.”
“네. 실장님.”
강서진이 펜션 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지용석을 곁으로 불렀다.
“넌. 나의 곁에 붙어있는다. 죽어도…….내 곁에서 죽는다.”
“네?”
무서운 말이었다.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최근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설장호의
표정과 어투는 진정, 이번에는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농담이다. 긴장을 풀어라. 이미 매복중인 우리 인원이 많다. 제 아무리 저들이 몰려온다고 하여도,
미리 대기 중인 이들을 쳐 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용석은 이어지는 설장호의 말에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이 한 숨을 안도의 한숨이었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그의 농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에 안도의 한 숨이 나온 것이었다.
설장호의 말처럼 찾아오는 이들보다는 숨어서 기다리는 이들이 더 유리한 것이었다. 그것이 전쟁이던
무엇이든, 공격하는 이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매복중이라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더 이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퍽!’
한 편. 산책로에서는 네 사람의 재회로 인하여 사나이들의 주먹질이 한 창이었다.
그리고 역시 먼저 얼굴을 내밀어 준 인물은 태정민이었다. 태정민은 병따개의 빠르고, 정확한 공격을
피하지 못한 채, 그가 뻗은 주먹을 허용하였고, 뒤로 밀려나면서 나뭇가지에 걸려 또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라. 어째 그토록 다리가 부실하냐?”
병따개는 넘어진 태정민을 보며 말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역시…….저 놈이 한 수 위다. 저 놈의 움직임은 정말 싸움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움직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병따개의 말에 태정민은 넘어진 몸을 일으키며 그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화려하였다. 추선우의 움직임은 어둠속에서도 너무나 화려하게 보이고 있었다. 천하의 석강수를
맞이하면서도, 절대 밀리지 않고 있는 듯 하였다.
“웃어?”
어이없는 그의 표정이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자신 앞에서 그가 웃고 있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팍팍 갔나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사나이들의 주먹질에 총을 꺼내들겠나?”
병따개는 그가 겨눈 총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은 그 총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일인데, 그깟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들 무슨 소용이겠어? 일단 살고보는거다.”
태정민은 그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총을 거두지 않았고, 그를 향해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제기랄!”
‘픽픽픽픽!’
태정민은 크게 소리치며, 권총을 난사하였다. 하지만 이미 나무들 뒤로 몸을 숨겨버린 병따개를
적중시키는 못하였고, 애꿎은 나무들만 총알받이가 되고 있었다.
‘퍽!’
그리고 태정민의 행동으로 인하여, 잠시 그를 본다고 시선을 돌려버린 추선우의 한쪽 볼에 석강수의
주먹이 그대로 내리 꽂혔다.
“추선우!”
태정민은 자신의 괜한 행동으로 인하여 추선우에게 피해가 간 것에 놀라 소리쳤다.
“태정민…….상황판단 잘해라. 누군 총을 쏘지 못해 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진작 총을 쏘고 싶었다면 네
놈의 머리를 먼저 날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지난번에 한 약속. 그 약속으로 인하여 네 놈의
머리통에 총알 박아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강수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둠속 산책로를 따라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던 인물은 병따개였다. 즉.
그는 이미 추선우와 태정민을 발견하고 걸어온 것이었다.
“제길…….”
석강수의 말을 들은 후, 태정민은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자신이 쏜 총알이 나무를 빗맞으며
혹여나 잘 못 뻗어나간다면, 자칫 그 총알이 추선우에게 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추선우. 다시하자.”
석강수는 넘어진 추선우가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조금 전에 적중한 자신의 일격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나와라. 다시 하겠다.”
결국 총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치 않았다. 그들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괜한 주먹질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마음에 걸렸다. 총기를 들 수 없는 민간인. 그렇다고 저들처럼 쉽게 총을 소지할 수도
없는 민간인이 바로 추선우였다.
“마음을 돌린 것인가?”
병따개가 나무 뒤에서 나오며 물었다.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자존심 때문도 아니다. 바로 이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민간인
때문이다.”
그의 말에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았다. 가장먼저 추선우라는 민간인에게 관심을 보였던 킬러. 그가 바로
석강수였다.
“생각 잘했다. 총을 쏘면 필시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되었던, 너희가 되었던…….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죽는다. 하지만…….주먹다짐을 한다면 적어도 죽는 것은 면할 수 있다.”
석강수의 말에 병따개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건 네 생각이다. 난 내가 찍은 놈의 목은 꼭 딴다. 그래서 병따개다.”
병따개는 석강수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이든, 총이든, 일단 타깃을 정했다면 끝을 보는
인물이었다.
“그건…….너희 둘이서 알아서 할 것이고, 난…….저 놈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반병신만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평생을 지금의 일에 대해 후회하며 살도록 말이야.”
“…….”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굳은 표정을 하였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하하하. 나보다 더 지독한 놈이구나.”
병딱개가 큰소리로 웃은 후, 석강수를 향해보며 말했고, 석강수는 다시 추선우를 본 후, 주먹을 쥐었다.
“이어서하자. 괜한 것으로 잠시 중단되니, 기분이 영 찝찝하다. 이제부터 중단되는 것은 둘 중 하나가
일어나지 못할 때다.”
석강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추선우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제대로 놀아보자. 지난밤의 방해꾼이 없는. 그리고 저들보다 화끈한 주먹질을 위해서 말이야.”
병따개도 움직이며 말했다. 그는 지난 삼성역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결정짓지 못한 것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무리를 꼭 짓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나오는 민간인 추선우를 밟아주기 위하여, 더욱 더 강하고 빠르게 일을 마무리 하려 하였다.
‘퍽 퍽!’
병따개는 역시 빨랐다. 총을 내려놓고, 주먹으로 결판을 짓기로 결정지은 후, 처음으로 뻗은 주먹은
정확하게 태정민의 양 볼에 한 방씩 먹혀 들어갔다.
그저 평범한 주먹질이라 생각할 수 있는 주먹이었지만, 무슨 영문이지, 태정민은 그의 주먹을 쉽게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허용하였고, 또 다시 뒤로 밀려나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웃네?”
그의 미소를 보며 병따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태정민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시하자.”
그리고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고, 그를 보며 병따개의 표정도 변하였다. 조금 전까지
여유가 있었던 그의 표정이었지만, 태정민의 입가에 묻어나는 미소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여 표정이
굳어진 것이었다.
“너…….뭔가를 생각한 것인가?”
“뭐. 별로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병따개가 물었고, 태정민은 의외로 답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또 다시 더욱 더 굳어졌고, 이내
태정민은 그를 향해 바로 달려들었다.
‘탁탁 턱턱!’
두 번의 발차기가 연속으로 뻗어졌고, 병따개는 그의 발차기를 막았지만, 발차기의 미는 힘에 의해 몸이
뒤로 밀려났다.
‘탁!’
“!!!”
그리고 뒷걸음이 세 번쩍도 갔을 때, 그는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며 균형을 잃었고, 그 순간 병따개는
태정민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젠장…….”
‘퍽! 퍽퍽!’
쓴 소리를 내 뱉었지만,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태정민은 그가 휘청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고, 그 즉시
주먹을 아주 빠르게 뻗었고, 첫 주먹이 병따개의 얼굴에 그대로 꽂힌 후, 뒤 이어서 발차기가 연결되면서
그 두 번의 공격도 모두 허용한 병따개는 뒤로 한 참을 밀려나가 나무에 부딪히며 멈췄다.
아무도 없는 적막만이 흐르던 성남 외곽의 한적한 산책로에서는 추선우와 석강수가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이 밟는 나뭇잎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저 쪽은 태정민이 뭔가 수를 터득한 모양이군.”
석강수의 시선이 태정민과 병따개에게로 잠시 돌아갔다. 지난 날, 병따개의 움직임을 보았기에, 그가
쉽게 태정민을 제압할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의 상황은 반대상황이었다.
오히려 병따개가 태정민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쪽 일은 저쪽이 알아서 합니다. 그러니 아저씨는 아저씨 일을 먼저 생각하시죠.”
추선우는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곳에까지 신경을 쓰는 그에게 말했고, 석강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저쪽에 변수가 생겨 잠시 본 것뿐이다. 만에 하나 병따개가 먼저 주저앉으면 태정민이 이곳으로 올
것이니, 그에 대한 생각도 해두어야 하지 않겠나.”
석강수는 여유가 있었다. 추선우는 그와 잠시 동안 겨룬 시점에서 그는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사내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총장님. 저 강서진입니다.”
강서진은 국정원장에 이어 총장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국정원장님께 연락은 받았네. 그곳으로 많은 인원이 다가섰다고 하던데…….정말
박태식이 그 쪽 사람이었나?”
“네. 하지만 아직 그 중심인물을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알았네. 나도 확인 할 테니 몸조심하게.”
검찰총장과도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와 이루어진 통화 속에서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평소와
다름없었고, 위치를 말하는 대신, 그곳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아직 이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듯 하였다.
‘탈칵’
강서진이 모두와 통화를 끝낸 후, 곧바로 펜션 문이 열리며 지용석이 들어왔다.
“통화 하셨는지요?”
그는 문을 닫은 후, 곧바로 강서진에게 물었다.
“모두와 통화를 했는데…….역시 의심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 실장님께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강서진은 자신이 통화한 내용을 종합하여 설장호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펜션을 나서려 하였다.
“지금 외부에는 아직도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설 실장님께서 저에게 안으로 들어가 강 검사님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용석을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걷은 후,
외부를 보았다.
지용석의 말처럼 외부에는 아직도 어둠속에서 이리저리 불꽃이 튀는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꽤…….길게 이어지네요.”
“아무래도 어둠속이라 제대로 된 저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지용석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고 있었다. 낮이라면 모를까. 어두운 밤에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강서진은 다시 창가를 통해 외부를 보았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외부를 보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창가는 위험합니다.”
그녀가 창을 통해 외부를 계속하여 보고 있자, 지용석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도
창가에서 멀어지지 않은 채, 계속하여 떨리는 눈동자로 펜션 앞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었다.
‘없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하였고, 그 때, 자신의 심장이 더욱 더 크게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펜션 앞에서 몸을 숨기고, 어둠속을 보고 있던 설장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퍽!’
“제대로 다시하자, 그 짧은 순간에 이곳의 지형을 이용하는 잔머리를 쓸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한 편. 산책로에서는 병따개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태정민이 산책로 바닥에 이리저리 울퉁불퉁하게
솟아나있는 나무뿌리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것을 두고 말하였다.
가로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바닥을 일일이 보면서 상대와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단 병따개 뿐만은 아니었다.
태정민도 나무뿌리에 걸려 이미 넘어졌었고, 추선우와 석강수도 보통 때처럼 편하게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곳에서의 격전은 제대로 된 승부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승부는 내야겠지.”
병따개의 말에 석강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꼬맹아. 이런 것이 바로 사회다. 넌 이제 막 이런 사회에 발을 들이밀었겠지만, 우린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삶을 살았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면 말이야…….
저 병따개처럼 주변 환경이라는 것은 오로지 핑계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는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병따개와 태정민을 보았다. 누가 이기고 지는가는 두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주변의 환경이 변수를 만들수도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이 변수마저도 승부의 한 몫으로 계산하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병따개의 움직임은 화려하였다. 디딤발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의 공격은 아주
매섭게 이어졌고, 태정민이 계속하여 밀려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집중해라.”
곧 추선우를 향해 석강수가 다시 다가섰다. 그는 웬만한 킬러들이 두려워한다는 설장호를 주무르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민간인이 추선우를 상대하는 것은 진정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추선우는 연신 그를 향해 자신의 주먹과 발을 뻗었다. 하지만 역시 석강수는 달랐다.
이지광을 상대할 때는 이처럼 허공에 주먹을 뻗는 상황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석강수를 앞에두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뻗어도, 추선우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멈춰서고 있었다.
‘탁탁탁!’
병따개는 태정민을 계속하여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태정민도 삼성역에서처럼 그리 쉽게 자신의
안면을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병따개 역시 울퉁불퉁한 지면에 의해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기에,
주먹을 뻗어도 힘이 없었고, 발을 뻗어도 속도와 묵직함이 덜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마찬가지였다.
태정민의 공격 역시 병따개에게는 너무나 쉽게 막히고 있었다. 주먹은 둘째 치고 발을 뻗어도 그의
근처까지 가지도 못한 채,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젠장…….”
서로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서로가 원하는 행동을 서로가 취하지 못하니, 격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퍽 퍽!’
같은 시각. 태정민은 역시 병따개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디딤발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공평한 입장에서 삼성역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일어나라.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네가 나에게 이기고자 한 것이라며, 그에 걸맞은 힘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병따개는 처음 몇 번은 태정민에게 밀리는 듯, 그의 공격을 계속 허용하였지만, 지금은 완전 다른
상황이었다.
“헉 헉…….”
태정민은 지쳤다. 그에게 공격을 허용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오히려 불편한 지형으로 인하여 더 많은
체력을 소비해버린 탓이었다.
“넌. 역시 안 된다. 저 놈에게 너의 경호원 타이틀을 넘겨주고, 네가 그냥 민간인으로 살아라.”
헉헉 거리는 그의 앞으로 병따개가 다가섰고, 그는 태정민을 내려 보며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고, 그의 면상에 제대로 된 주먹을 다시 한 방 날렸다.
“잘 가라.”
한 편. 산책로에서는 병따개가 태정민의 앞에서 자신의 칼을 돌리며, 그의 목을 향해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고, 곧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였다.
‘픽!’
“…….”
병따개가 들고 있는 칼이 태정민의 목에 와 닿기 전이었다. 병따개가 웃고 있었고, 태정민도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칼날을 보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곧 병따개의 모든 동작이 멈추었고, 그의 표정도 무표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반면에 태정민은
그를 향해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기랄…….”
병따개의 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몸을 옆으로 뉘우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
약간 기우려진 언덕 아래로 천천히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병따개가 죽은 뒤, 태정민은 추선우와 석강수가 일전을 벌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들어. 거리가 약 20 미터 정도 떨어진 석강수를 명중시키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젠장…….가보자…….”
그래도 앉아서 멀뚱히 추선우가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만큼, 추선우는
의외로 석강수와 계속하여 비등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나가보시죠.”
같은 시각. 지용석은 여전히 강서진을 보며 서 있었고, 그녀에게 미소까지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강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문 손잡이를 잡아 천천히 돌렸다. 지용석의 말처럼 외부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 누가 승자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며, 만에 하나 치고 들어온 이들이 승자라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강서진의 심장에는 총알이 날아오 꽂힐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용석과 집안에 있는 것이 더 괴로운 듯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문을 열었다.
‘탁!’
“!!!”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누군가 강서진의 입을 막으며 뒤에서 끌어안아 돌렸고, 곧바로 펜션 옆쪽을 통해
아래로 그녀를 끌고 내려갔다.
강서진은 발버둥을 쳤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데다, 자신의 입을 막고 끌어당기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지용석도 따라 나왔다. 하지만 조금 전 나갔던 강서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어디로간거야?”
지용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강서진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도 입을 막고 있는 사람에
의해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끌어당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설장호였다. 그가 왜 자신의 입을 막고 끌어당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지금
설장호도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설장호가 강서진의 입을 막은 손을 풀어주자, 강서진이 바로 물었다.
“일단 산책로를 따라 뒤로 이동한다. 서둘러.”
이유가 궁금하였다. 자신이 펜션 안으로 들어선 후의 상황의 궁금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는 곧바로 답을
주지 않았고, 그녀를 데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산책로를 따라 펜션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여의치 않자, 강서진을 이용하여 설장호를 치려는 듯, 펜션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고, 그
때 때마침 외부에서 밀고 들어서는 인물들이 이미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설장호의 사람들을 제압하는
듯 보이자, 그는 더 이상 본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었다.
모든 상황을 듣고 난 뒤, 강서진은 또 다시 소름이 온 몸을 돋는 듯 하였다.
“제길…….”
그리고 쓴 말을 내 뱉은 후, 표정을 더욱 더 구기고 있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펜션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전화벨이 울렸고, 곧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회장님.”
그는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 아주 느긋한 자세와 표정으로 정구석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정리는 되었는가?”
“아쉽게도…….설장호가 미리 수를 써서 뒤로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대는
이미 완벽하게 포위해 두었으니, 이제부터는 너구리 사냥을 해 보려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설장호가 눈을 감았다는 보고를 듣고 싶군. 잘 마무리하고 오너라.”
“네 회장님.”
통화를 끊은 후, 백태는 아예 소파에 몸을 뉘우더니 이내 편히 누워버렸고, 지용석은 여전히 펜션 앞에서
산책로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헉 헉!”
산책로 아래쪽에서는 태정민이 두 사람과 거의 5 미터 거리를 두고 아예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석강수의 호흡은 더욱 더 거칠게 들려오고 있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의외로 더 힘을 가진 듯 하였다. 지친 석강수와는 달리, 그는 아직도 주먹을 들고
뻗을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젠장. 역시 젊은 것이 좋군. 나이가 들다보니 장시간 격투는 힘들군.”
석강수는 추선우에게 많은 일격을 당해서 지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체력적인 문제가 나온 것이었다.
그는 킬러다. 킬러는 무엇이든 오래 시간을 끌지 않는다. 속전속결이기에 굳이 체력단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추선우는 달랐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기본적인 체력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실력을 쌓아올린
인물이었다. 그리고 젊다. 40 대인 석강수에 비해 20 대인 추선우가 당연히 체력 면에서는 우세할
것이었다.
“태정민. 넌 이놈처럼 되려면 평생을 걸려도 힘들다.”
석강수는 이미 태정민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과 5 미터 거리를 두고, 총을 들고 있으니
그것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친 눈빛으로 태정민을 보고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네 놈 걱정이나해라.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네가 죽는
것은 맞는데, 어찌 죽여야 할지 고민이다. 그냥 총 한방으로 깔끔하게 정리할지. 아니면 이대로
추선우에게 죽도록 맞아서 죽게 버려둘지. 어느 쪽이 너에게는 더 좋을까?”
태정민은 땅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난 뒤에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석강수는 웃었다. 그의 말이
웃기게 들린 것이었다.
“네 말처럼 이래죽나, 저래죽나 매한가지긴 하군. 하지만 말이야. 내가 그리 쉽게 죽지는 않아.”
석강수는 태정민의 말에 답한 뒤, 다시 추선우를 보며 움직였다. 그리고 추선우도 그를 향해 다시
다가섰다.
‘픽!’
“!!!”
그 순간. 석강수의 귀를 스치며 한 발의 총알이 날아왔고, 그 총알은 그대로 날아가, 추선우의 머리카락
일부를 휘날리게 하며 스쳐갔다.
“추선우! 엎드려!”
“!!!”
그 순간 태정민은 자신의 남은 힘을 모두 짜내는 듯 소리쳤고, 추선우는 그 즉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태정민의 고함소리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던 설장호와 강서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서두르자.”
설장호와 강서진이 뛰기 시작하였다. 다급해진 태정민의 목소리였기에, 필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어떤 놈이…….”
석강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했고, 곧 천천히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산책로
아래쪽에서는 병따개의 수하를 잡았던 경찰특공대 인원들이 위로 오르고 있었다.
“제길…….”
석강수는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몸을 낮추고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추선우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강하게 인상을 찌푸렸고, 곧 어둠속으로 서서히 몸을 파묻고 있었다.
석강수는 경찰특공대가 병따개의 부하를 다 잡아들였으니, 필시 자신마저도 잡을 것이라 여겨 미리 피하는
것이었다.
추선우는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경찰특공대가 이리저리 사방을 경계하며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어째서!”
추선우가 그들의 행동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내려오던 설장호와 강서진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고,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더 빨라졌다.
“저 놈도 함께 보낸다.”
사내는 추선우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몇 개의 레이저가 추선우의 가슴부분과 얼굴에 집중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이토록 오래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군.”
사내는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태정민과 추선우를 향해 손을 살짝 들어주었다.
“끝내라.”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뒤, 몸을 돌려 세웠다.
‘픽픽픽픽픽!’
‘띠리리리’
같은 시각. 펜션 앞마당에 서 있던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 실장…….”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아직 지용석이 그들과 한 배를 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네. 실장님.”
지용석은 평소와 같은 음성으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찌 된 거야? 태정민은 전화도 받지 않고, 또 설 실장님과 강 검사도 연락이 안 돼. 지금 일이
복잡해진 거야?”
서지호는 지용석에게 현재의 상태를 물었다. 하지만 지용석은 그의 물음에 대해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지용석. 무슨 일이야? 왜 답이 없어?”
서지호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용석은 답을 주지 않았고, 펜션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펜션 안에는 백태가 여전히 소파에 몸을 뉘운채 누워있었고,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듯,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무슨소리야? 마지막이라니?”
지용석은 백태를 보며 서지호의 물음에 답했고, 서지호는 그의 뜬금없는 대답에 다시 물었다.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죽거나, 죽을 고비를 겪고 있을 것입니다.”
“!!!”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고,
서지호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차현태의 눈빛도 달라지고 있었다.
“지용석. 넌 어딘가?”
서지호가 조금 전보다 더 묵직한 어투로 물었다.
“성남 펜션입니다.”
“누구와 있는가?”
서지호는 바로 질문을 바꿨다. 이미 설장호와 태정민, 강서진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용석만이
유일하게 연락을 받고 있으니, 지용석만 나머지 세 사람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가 누구와 있다고 말씀드리면, 그 사람을 아십니까?”
“지용석!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넌 지용석이다! 청와대 경호실 팀장 지용석!”
지용석의 말에 서지호는 차현태를 앞에 두고도 목소리를 높였고, 그의 행동에 차현태의 눈빛은 더욱 더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서지호의 곁으로 움직였다.
“편한 길이 있는데 너무 돌아가면서 거친 길을 택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편한 길을
택했습니다. 빠르고 편한 길. 전…….그 길을 따라 편하게 가겠습니다.”
‘뚜뚜 뚜뚜.’
지용석은 자신이 할 말을 다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서지호는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고, 이내
시선을 돌려 차현태를 보았다.
‘쾅!’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차현태는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이런 모습은 진정 처음이었으며,
새벽이지만 때마침 잠에서 깨 차현태를 보고자 한 지현을 데리고 차현태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두
사람에게 차현태의 격한 행동이 보이면서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설 실장이…….”
국정원장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비록 눈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 또 한 계속하여 전화를
걸고 있어도, 설장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던 차, 서지호에게
연락이온 것이며, 차현태가 현 상황에 대해 일어날 수도 있는 경우를 말해주었다.
“일단. 국정원에서 믿을 수 있는 인원들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차현태와의 전화를 끊은 후, 잠시 가만히 있었고, 이내 전화를 다시 들었다.
“지금 즉시. 설장호 실장을 지원할 것이니 대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게.”
그는 짧게 한 마디를 한 뒤, 전화를 끊었고, 다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 초점 없는 눈빛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설마…….청장이?”
서지호는 말을 흐리며 그에게 묻는 어투로 말하였고, 차현태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과 일단
서지호의 생각이 일치함을 알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비단 두 사람 뿐만은 아니었다. 바로 설장호도 현재 청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뭐야!”
한 편. 태정민과 추선우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하려던 산책로 부근에서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
총알이 순식간에 발사되었고, 그 순간 경찰특공대 인원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의해 지휘를 하였던 사내가 놀란 눈을 하고 있었고, 곧 산책로 더
아랫부분에서 몇 사내들이 우르르 올라서고 있었다.
“띠리리리‘
박태식은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올라서고 있었고, 곧 산책로 윗부분에서는 설장호와 강서진이 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며 박태식은 더욱 더 환하게 웃었다.
“여보세요?”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지호였다.
“안녕하십니까? 저 박태식입니다.”
“!!!”
박태식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차현태를 보았다. 이유는 박태식도 경찰 쪽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박형사님이 왜 나에게…….”
“마땅히 전화해서 지금의 상황을 알려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말입니다.”
서지호는 말을 흐리며 그에게 물었고, 박태식은 서지호의 생각과는 달리 밝은 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남 펜션. 그리고 벌레 같은 새끼들 말입니다.”
“!!!”
서지호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그 때까지도 서지호는 박태식이 경찰 쪽의 명령을 수행하는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벌레 같은 새끼라는 격한 말에 그 인물들이 설장호와 태정민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박태식은 당연히 서지호도 자신을 믿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편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나?”
곧 설장호가 태정민과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통화중인 박태식을 보았다.
박태식은 그를 향해 고개 숙인 뒤, 다시 통화를 이어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태정민을 옮겨야겠군. 추선우. 자네는 어떤가?”
“전…….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경찰이…….”
“그 일에 대해서는 일단 이곳을 벗어난 후에 알려주겠다. 서둘러 벗어난다.”
설장호는 추선우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채, 태정민을 부축하였고, 곧 그 모습을 본 박태식이 함께 온
형사들에게 손짓하여 태정민을 부축토록 하였다.
“무슨 일인가?”
그의 표정변화에 대해 궁금하였던 차현태가 물었다.
“다행히. 성남 펜션 쪽에서는 모두가 살아서 그 곳을 빠져나온 모양입니다.”
“그래? 그것이 정말인가?”
“네. 조금 전 설 실장과 통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의심하였던 경찰쪽 인물 중. 박태식이란
형사가 있는데, 그 형사가 모두를 구했다고 합니다.”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박태식을 떠 올렸다. 처음 이 팀이 구성될 때, 경찰 쪽을 대표해서
구성원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자세한 외모는 기억에 없지만, 만약 그가 경찰 쪽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설장호 실장을 돕는 것이라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그를 따르는 형사들도 있을 것이니. 현장에서 보다 빠르게 설 실장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 한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경찰 쪽은 모두가 청장의 명령하에 설장호와 그
일행을 잡도록 명령이 하달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태식처럼 설장호를 돕는 인물과 함께,
또 청장의 명령을 듣지 않고, 경찰의 정도를 걷고 있는 형사들도 있을 것이었다.
그 모두를 다 의심하지 못하고, 청장과 한 손을 잡은 이들을 따로 색출해야니, 그것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지용석이 문제입니다. 그가 왜 그들과 손을 잡았으며, 언제부터였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지금 당장, 지용석 팀장의 정보를 가져오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네.”
차현태는 무턱대로 지용석을 그들과 연관지어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 그를 잘 알고 있는
차현태였기에, 그가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먼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띠리리리’
백태는 음악을 듣다, 음악이 끊기며 들려오는 벨소리에 잠시 인상을 구긴 후, 전화를 받았다.
-산책로 끝까지 내려왔는데, 그들은 없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들려오는 목소리만 듣고 난 뒤, 그대로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보며, 펜션 앞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지용석을 보았다.
“지지리 복도 없는 새끼…….”
그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띠리리리’
지용석도 그곳을 벗어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설장호…….”
설장호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네. 실장님.”
전화를 받았다.
“지용석. 참 어려운 선택을 한 모양이구나. 언제부터였나?”
설장호는 일행과 함께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태정민을 쉬게 한 뒤, 그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삼성역…….그 후에 백태란 놈이 다가섰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뿌리와 손을 잡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 순간을 떠 올렸다.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 백태와 병따개. 그리고 자신과 추선우, 태정민과 지용석. 모두가 서로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석강수와 최광민도 있었다. 그 중에서 백태가 뿌리조직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 자신이 손을 뻗으면 그 손을 잡을 사람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선택한 사람이 지용석이었다.
설장호는 애초에 말이 먹히지 않은 인물이니, 손을 내밀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태정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부하대원들에게 손을 뻗을 정도로 급하지는 않았다. 팀장 정도의 직급이 있으니, 청와대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도 있을 것이며, 또 한 그 정도의 힘도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그에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추선우는 강하고, 핵심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민간인이었다. 즉. 자신 외에 동원할 힘이
없으니, 손을 뻗어봐야 이익 볼 것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집안이 어렵다고 그런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그 순간부터 넌…….다시는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설장호는 지용석에게 끝까지 화를 내지 않았고, 마치 동생을 타이르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몸…….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지용석은 그의 말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지용석이 뭐랍니까?”
태정민이 아픈 몸을 가누며 겨우 물었다.
“몸조심하라는군.”
“뭐에요? 지금 당장 그 놈을 잡아와서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그만 쉬어라. 밤새 도망 다니고 긴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태정민이 죽을 맛이니, 죽지 않게 간호 좀
해주고…….추선우.”
통화내용을 말하자, 강서진이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설장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 뒤, 추선우를 불렀다.
“네.”
“잠시 나 좀 보자.”
설장호가 추선우를 데리고 방안을 나섰다. 강서진과 박태식은 두 사람을 잠시 본 뒤, 다시 반시체가 되어
있는 태정민을 보았다.
“피곤하지 않아?”
거실로 나온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석강수와 일전을 벌인것도 대단한데, 벌써 며칠 째야? 오늘은 쉬어라. 그리고
내일도 쉬어, 당분간 이곳에서 나가지 않는다.”
“네? 그럼 그들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것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이지. 일단
청장이 그들과 손잡은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물증이 없다. 그것을 증명한 증거를 가져야 하지만, 없어.”
그저 생각뿐이었다.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확신은 없다. 그냥 심증만 있을 뿐이다.
“아직. 누가 이길지는 모릅니다. 비록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모르지만, 하나하나
수면위로 꺼 집어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곧 그 놈들의 실체도 모조리 다 꺼낼 것입니다.”
추선우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설장호도 그를 보았다. 민간인…….그냥 민간인이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나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 같은 사람을 채용하지 않은 수많은 경호업체들이 모두다 멍청이들이군. 다 문 닫아야 해.”
“네. 맞습니다. 청와대도 문 닫아야 합니다.”
“뭐?”
“하하하.”
어려운 상황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었고,
추선우도 그 농담을 받아주었다.
청와대…….추선우는 그곳에도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
이력서를 제출하였지만, 아예 열람마저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이 모든 것에 중심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어버렸다.
“일단 쉬어라. 조금 전, 한 말처럼 내일은 일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저들의 동태만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휴식이다. 지금 상황에 쉬어도 될지 모르지만 휴식이다. 추선우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이틀…….아니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추선우의 행동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자신도 다른 방으로 들어섰다.
‘띠리리리’
청와대 뒤쪽, 한 적한 곳에서 모처럼 햇볕을 맞으며 지현과 은주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저. 추선우입니다.”
“네?”
서지호는 설장호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잠시 당황한 듯 하였다.
“무슨…….일로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까? 그리고 이건 실장님 전화기…….”
“실장님께서 빌려주셨습니다. 곁에…….은주 있습니까?”
서지호는 그제야 추선우가 직접 전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민간인 은주는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설장호도 지현만을 생각하였지만, 은주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추선우, 그는 다른 사람보다 은주를 더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잠시만…….기다리십시오.”
서지호는 미안하였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현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두 민간인에 대해서 너무나
소원했던 것이었다.
“추선우씨…….전화입니다.”
“!!!”
서지호는 두 여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두 여인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놀란 눈으로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빠르게 달려와 서로 전화기를 잡으려 하였다.
“그래. 지현이 먼저…….”
은주는 지현에게 양보하였다. 그리고 서지호를 보았다. 27 살의 여인이 마치 군대 간 애인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달려오는 것이 순진해 보였고, 또 그 순간에도 지현이 먼저 떠올라 양보한 것을 알았다.
은주는 지현이 빨리 통화하고,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으면 하였다.
“삼촌. 언제와?”
“지현이 건강하지? 삼촌 조금 있으면 갈 거야. 그러니 은주이모 말 잘 듣고, 꼭 은주이모와 붙어있어.
알았지?”
“응. 삼촌. 그러니까 빨리 와.”
“응. 그래. 그리고 은주 이모 좀 바꿔줄래.”
지현은 추선우와 통화 중,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리고 은주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며, 자신도 모르게
은주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하였다.
은주는 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울음이 터져버린 지현을 달래주어야 하기에 추선우와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미안해 선우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잘 지내고 있는 거면 길게 통화하지말자, 그러니 건강하게 빨리
돌아와.”
은주는 지현을 보며 선우에게 자신이 할 말을 모두 하였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전화기를 끊었고, 곧바로
서지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은주는 지현을 안고 한 쪽에 자리한 벤치에 앉았다. 따뜻한 햇볕을 이불삼아 지현을 안은 채, 은주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서지호는 은주를 보며 잠시 그대로 있었다. 참 강한 여인…….은주는 그런 여인이라 여겨졌다.
“저…….”
모두가 조용히 설장호를 보고 있을 때, 추선우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말해.”
설장호는 누운 채,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지현과 은주, 그리고 미희를 보고와도 되겠습니까?”
“지금 이 상황에 단독 행동은…….”
“보고와라.”
“실장님!”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이 반대의견을 내세웠지만, 설장호는 추선우의 부탁을 단번에 허락하였다.
“위험합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독으로…….”
“여기서 누구하나 그 사람들을 걱정해준 사람이 있는가? 있으며 말해보게. 우린 우리의 일을 위해서 뛰는
것이지만, 추선우는 아니다. 그는 민간인이야.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또 다른 민간인이 위험에 처했다.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
설장호의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현의 안전은 모두가 책임 질 것이었다. 하지만 은주와
미희는 설장호의 말처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이지만, 추선우의 친구다.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강서진이 말했다.
“검사님보다는 제가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박태식이 말했다.
“아니. 강 검사가 함께 움직여라. 박태식은 청장의 연락을 기다린다. 우리의 의심대로 청장이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라면 필시 자네를 이용하여 우리의 위치를 물을 것이다.”
“그건 강 검사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청장이 그들과 손잡았다면, 필시 총장님도 그들이 내민 손을
잡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검사님이라고…….”
“지금은 아니야. 지금 우리가 의심하는 사람은 청장이다. 총장은 아직이야, 그러니 강 검사가 움직여.”
박태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말을 더 이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저 말없이 추선우를 보고
있는 태정민이었다.
그는 청와대 소속이기에 함께 움직인다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가 몸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다.
함께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없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다가섰을 때, 오히려 추선우의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강서진이 움직이고, 모두는 휴식이다. 내가 따로 명령을 내릴 때까지 절대 이 집에서 나서지 않는다.”
설장호는 이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누웠다.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따른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추선우가 일어섰고, 곧 강서진도 함께 일어섰다.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보며 그저 손만 흔들어 줄 뿐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집을 나선 후, 추선우가 강서진에게 물었다.
“난 괜찮아요. 그보다 미안하네요. 실장님의 말을 듣고나니 그동안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삼성역에서 본 미희씨도, 그리고 지현을 지키고 있는 은주씨도. 모두가 추선우씨의 친구인데
우린 너무…….”
“괜찮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이 선택한 일입니다. 미희는 스스로 뛰어든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일로
인하여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추선우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보이며 답하였다. 삼성역에서 일어난 일로 인하여, 미희에게는 강서진이 두
명의 경호원을 붙여두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강남서 형사들을 붙여놓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인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경찰을 붙여두었다면, 또 다시 그녀를 미끼로 추선우를 끌어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경호원이…….”
오피스텔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경호원들이 보이지 않아. 추선우가 불안한 듯 한 음성으로 말을 흐렸다.
“일단 앉아계세요. 내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추선우가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피스텔을 지키는 형사들은 강서진의 사람이었다. 그로인하여
추선우보다는 강서진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른 것이었다.
강서진은 오피스텔 앞으로 다가선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항시 미희가 있는 오피스텔 근처를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해 두었다.
하지만 그 인근 어디에도 형사들은 없었다.
추선우는 불길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찌…….된 일입니까?”
형사들이 없었다. 강서진은 형사들을 찾느라 이리저리 눈길을 돌렸지만, 어디에도 자신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뚜뚜뚜’
전화기는 또 끊어졌다. 그리고 추선우는 다시 전화를 하였다.
“어떡하지?”
강서진이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명령내린 사람들도 이미 그들과 한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와 강서진의 뇌리에는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저들은…….검찰 쪽 형사야. 내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들인데…….만약 저들도 뿌리와 연관이 있다면…
….”
결론이 바로 나오고 있었다. 검찰 쪽 형사들마저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이는 필시 검찰에도 그 조직과
연관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았다.
“일단 안에 있는 놈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추선우가 말하였고, 그녀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들이 먼저 다가설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 외부로 나오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문 옆의 벽으로 기대어 계십시오.”
추선우는 강서진에게 말한 뒤, 문을 향해 보았다.
‘딩동.’
무슨 생각이 있는지, 추선우는 곧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미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선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후,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그는 인터폰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몸을 숨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딩동 딩동.’
추선우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엔 미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친구입니다.”
미희는 자신과 함께 있는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라는 말에 두 사내는 인터폰을 보았다.
추선우가 생각한 것처럼, 강서진이 경호를 부탁했던 두 형사는 그녀의 집 안에 들어서 있었다.
“그냥 돌려보내. 지금 상황에 친구는 무슨 놈의 친구야.”
미희의 말을 들은 형사들은 거친 말을 내 뱉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문 앞에 바로 서 있는 추선우의 귀에
들려왔다.
추선우는 두 주먹을 더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입니다. 그냥 돌려보내더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희는 사내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상관없어 그냥 돌려보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나 보군요. 만에 하나 제가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저 친구가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누가 더 힘들어질까요?”
미희는 한 형사의 말에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두 형사가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은 후, 미희를
다시 보았다.
‘스르르르.’
문이 열리고, 문 앞에는 추선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연 미희의 눈동자에는 잔뜩 눈물이 고여
있었다.
추선우는 그녀의 눈물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안으로 달려 들어서지 않았다. 미희를 보고만
있었고, 미희도 추선우를 보고만 있었다.
“잘…….지냈어?”
추선우는 그녀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미희도 아주 짧게 답하였고, 그 순간 한 방울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추선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젠장! 잡아!”
미희가 문 앞에서 추선우의 손에 의해 갑자기 끌려 나가자, 안에 있던 형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미희는 그 순간 곧바로 강서진에게 인도되었고, 강서진은 그녀를 감싸며 빠르게 오피스텔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문 옆의 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고, 두 사람과 같이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퍽!’
곧바로 두 형사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추선우의 일격에 한 명이 먼저 문 앞에서 쓰러지고, 나머지 한
명은 권총을 들어 추선우를 겨냥하려 하였다.
‘퍽! 퍽퍽퍽!’
하지만 그의 권총보다 추선우의 주먹이 더 빨랐다. 권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기 전, 추선우의 주먹은
연이어 그의 면상을 가격하였으며, 먼저 쓰러진 형사보다 더 처참하게 당한 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
쓰러졌다.
추선우는 쓰러진 두 형사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문 앞에 쓰러진 형사를 끌고
안으로 들어선 뒤, 두 형사를 방안에 나란히 눕혔다.
“추선우씨.”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이미 추선우가 그들을 제압했다는 것을 믿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오피스텔의 문이 열리며 추선우가 서 있었다.
“뭐해요? 어서 벗어나야…….”
“기다리겠습니다.”
“네? 누구를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그녀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그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그들. 그들이 저 두 놈에게 명령을 내렸을 것이니
그에 대한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강서진은 그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 팀원과 합류하여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추선우의 눈빛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실장님께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미희를 데리고 청와대로 가 주십시오. 뒤따라가겠습니다.”
강서진은 망설였다. 자신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다리세요. 실장님께 연락하겠습니다.”
강서진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함께, 추선우의 선택에 대해 알려주었다.
‘삑삑삑삑.’
그 순간 누군가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추선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몸을
기댔다.
“잘 들 지키고 있는 거야?”
두 사내가 먼저 들어서며 말하였지만, 이미 들려오는 답변이 있을 리 없었다.
“뭣들해? 왜 대답이…….”
두 사내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서며 거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형사가 손이 묶인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순간 벽 쪽으로 몸을 기대있던 추선우가 보였다.
‘와장창!’
“!!!”
오피스텔 앞 입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세 명의 사내 위로 먼저 올라갔던 한 사내가 떨어져 내리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뭐야!”
곧바로 소리치며, 위를 향해 보았지만, 깨진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이는 없었다.
“올라가 봐!”
한 사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가 담배를 끄고 빠르게 올라섰다.
‘쾅!’
계단을 오르자마자, 오피스텔 문이 열리며 나머지 한 사내도 팅겨 나오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오피스텔 안에서 추선우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잡았어?”
그리고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없었다. 사내는 자신이 올라온 아래를 한 번 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2 층을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곧 더 오르자 복도에 쓰러져 있는 두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그는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큰 일 났습니다. 지금 대치동 오피스텔인데, 웬 놈이 들어와 난리를 쳐 놨습니다.”
그는 이곳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그에게만 들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뒤로 빠져나가…….”
그는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 순간 자신의 곁눈에 누군가가 보였고, 말을 잇지 못한
채, 2 층에서 내려 보고 있는 추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계속하여 어떤 말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라와라.”
추선우는 그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은 이미 자신의 발이 아닌 상태가
되어버린 사내였다.
추선우의 단 한마디가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한 억양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제길…….”
이내 또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격한 말을 내 뱉은 후, 곧바로 1 층으로 다시 내려가려 하였지만, 몸을
돌릴 때, 자신의 곁눈에는 무언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퍽!’
추선우의 주먹이었다. 추선우는 2 층 복도에서 몸을 날려, 계단 중간에 서 있는 그의 면상을 그대로
가격하였다.
그 한 방에 사내는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 벽에 부딪혔다.
그 후로 그의 손에 들린 전화기는 아주 조용하였다.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끊어진
전화기는 아니었다.
추선우는 쓰러진 그의 옆으로 다가섰고, 이내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누구냐?”
“…….”
그리고 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추선우의 물음에 답은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가 추선우의 신원을 물었다.
“추선우다. 미희를 목표로 움직였다면 내가 누군지는 잘 알 것이다. 이제…….네가 누군지 밝혀.”
추선우의 목소리는 더욱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겁 없는 민간인이었군. 말만 들었지만 정말 이토록 겁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네 놈에게서 칭찬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추선우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더 이를 꽉 깨문 어투로 다시 말했다.
-형사가 그 민간인을 잡고 있고, 또 형사인지, 건달인지 알 수 없는 놈들이 다가선 것을 보면. 얼추
추리가 되지 않나? 내가 누군지보다는 이 모든 것의 배후가 더 중요치 않을까?-
그는 추선우가 신분을 밝힌 후, 잠시 당황한 어투였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듯 그에게
말했다.
“그럼. 그 놈이 누군지 말해. 네 놈보다 더 뒤에 숨어 있는 놈이 있다면 그 놈만 말하면 된다.”
-…….-
자신의 말을 바로 받아들인 추선우가 일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물음에 답하자, 또 다시 당황한 듯, 그는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너. 나와 따로 만나자.-
그는 추선우에게 제안하였다. 그리고 추선우는 그의 제안을 듣고 잠시 말없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곧바로 설장호가 오피스텔 1 층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그는 추선우의 표정을 보며 말없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설장호가 온 모양이군. 그 놈과는 따로 할 말이 없으니, 만약 내 제안이 마음에 든다면 너만 와라.-
‘뚜뚜뚜뚜’
전화기는 끊어졌다. 추선우는 끊어진 전화기를 서서히 내리며 설장호를 보았다.
“누구와 통화한 것인가? 강 검사의 말을 들으니, 두 놈이라고 하던데, 이놈과 밖에 떨어져 있는 그
놈인가?”
설장호는 계단 중간에 쓰러진 사내를 보며 물었다. 이미 오피스텔 앞에 한 놈이 창문을 뚫고 떨어졌기에
두 명이 모두 보인 것이었다.
“2 층에 더 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두 명이 아니었어?”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계단을 올랐다. 그러자 복도에 두 명이 쓰러져 있었고, 또 오피스텔 안에도
네 명이 더 있었다.
“이런 놈들을 혼자서…….”
설장호는 그들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추선우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지만, 총을 든 놈들을 너무나 쉽게
제압한 듯 보였다.
“서두르자.”
설장호가 말했고, 먼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가 올라타자마자, 사이드밀러를 통해 승합차
한 대가 아주 빠르게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제길…….”
설장호는 쓴 말을 내 뱉은 후, 급하게 차량을 출발시켰고, 그 뒤로 승합차가 바짝 따라붙었다.
“꽉 잡아.”
설장호는 대치동을 벗어나, 삼성역 방향으로 차량을 몰았다. 그리고 그 뒤로 승합차도 아주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빵빵빵빵!’
설장호는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내달렸다. 삼성역 사거리의 도로는 다른 일반도로 두, 세배는 될 정도의
차선이 있지만, 언제나 차량이 즐비하여 막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 속을 통과하며 경적을 울리는 설장호는 사이드밀러와 룸미러를 통해 뒤따르는 승합차를 계속하여
견제하였다.
‘띠리리리’
이리저리 정신없이 차량을 몰고 있을 때, 추선우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었다.
추선우는 설장호를 본 후, 천천히 손을 얹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금…….도망가는 차에 타고 있는 건가?”
추선우는 차량의 뒤를 쫒고 있는 승합차 안에, 지금 자신과 통화하는 이가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따라와라.”
전화기 건너편 사내가 말했고, 추선우는 설장호를 보았다.
“우리 쪽에 나 외에 한 명이 더 있다. 괜찮은가?”
“뭐. 머릿수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얼마든지 허락되니 끌어 모을 수 있는 머리는 다 끌고와라.”
상대는 여전히 느긋하였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와 함께 움직이는 인물이 설장호란 것을 알면서도 그는
너무나 태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조금 전 통화할 때, 얼핏 설장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함께 움직이는 놈이
설장호인가?”
설장호는 자신의 이름을 아는 듯 말하는 전화기속 남자의 말에 눈동자가 살짝 커지며 전화기를 보았다.
“설장호라도 상관하지는 않는다. 그냥 앞서가는 차량의 뒤만 따라와라.”
역시 설장호란 것을 알면서도 그는 설장호마저도 자신과의 만남에 합류하도록 말하고 있었다.
“그럼 잠시 후에 보자. 기다리고 있겠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은 앞 서 가는 차량의 후미에 서있었다. 필시 뒤 따르고 있는 중이지만, 한편으로는
쫒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차량이 멈추었군.”
곧 앞 서 가던 승합차가 멈췄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인원은 없었다.
‘띠리리리리’
정확하게 설장호의 차량도 멈추자, 추선우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용기가 가상하군. 설장호라면 몰라도 넌 내가 다시 봤다. 그 대가로 아주
즐거운 시간을 줄 테니 서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선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만 들었고, 전화기는 끊어졌다.
“살벌하군.”
차량에서 내린 사내들을 보며 설장호가 말했다. 덩치가 곰만하며, 환한 대낮에 각목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낭팬데. 우리 차에는 각목도 없고, 야구방망이도 없어.”
설장호는 다가서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추선우는 차량 문을 열고 내렸다.
“역시…….겁이 없다.”
그의 행동을 보며 설장호가 중얼거렸고, 곧 자신도 차에서 내려 앞에 선 덩치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이야아앗!”
첫 승합차에서 내린 거구들을 다 눕히고 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승합차의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고함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목도 야구방망이도 아니었다. 그저 맨주먹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싸움이라면 환영이다.”
그들을 보며 설장호가 말했다. 주먹싸움이라면 이미 이골이 난 설장호였으며, 천하의 백태도 인정한
추선우였기에, 두 사람에게 맨주먹으로 달려드는 것은 승산 없는 격투와 같았다.
“대단한데…….”
그리고 두 사람의 모든 움직임을 고급 세단 안에서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앉아 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추선우와 통화한 장본인이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인물이었다.
‘띠리리리’
그가 액션영화를 보듯 설장호와 추선우의 격투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한 후,
여전히 편안 자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이구. 최 회장님. 점심은 드셨습니까?”
그에게 전화한 사람은 최기수였다. 그리고 그와 통화하면서 이토록 편한 자세로, 또 이토록 편한 어투로
통화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세 명의 회장들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또 한 사람이 그와 편하게 통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병따개를 그리 보내시고 난 뒤에 마음이 울적하셨을 것 같은데, 제가 오늘 좋은 선물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최기수와 통화중에도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부하가 다 쓰러지고 뻗어나가지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선물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최기수의 어투.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을 높이지 않았던 그가. 지금 자신과 통화중인 이
사내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설장호와 추선우. 그 두 놈이 지금 제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그냥 확 주먹을
쥐어서 손바닥 안에 있는 놈들을 다 뭉개버릴까요? 아니면 손바닥위에서 더 재롱을 떨도록 둘까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그리 해드리겠습니다.”
곧 두 번째 차량에서 내린 사내들마저 모두 쓰러지자, 통화중인 사내는 손을 살짝 흔들었고, 그 신호를
받은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신호를 주자, 곧 세 번째 승합차에서 또 다시 사내들이 내리고 있었다.
“제길…….”
그들은 세 명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설장호와 추선우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에 설장호가 당황스러운
표정에서도 쓴 소리를 내 뱉었다.
대낮이며 사람들이 많은 공원에다가, 또 올림픽대로를 지나쳐가는 수많은 차량들이 있는데도, 세 사람은
정확하게 추선우와 설장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이건…….생각 못했다.”
설장호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부분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을 겨누고 있을 뿐, 총을 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총구가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기분 더럽다.”
한 편. 선유도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총만 겨누고 있는 그들을 보며 설장호가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어찌할까요?”
추선우가 물었다.
“너 같으면 지금 이 순간 어찌 대처할 것 같은가?”
오히려 설장호가 되레 그에게 물었다.
“전…….그냥 도망칩니다. 저들이 명사수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움직이는 사람을 권총으로
명중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찌 그리 잘 알아?”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무표정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즉 추선우의 말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았다.
자신은 국정원 소속 실장이다. 그리고 태정민은 청와대 경호실 팀장이다. 그런 사람들도 움직이는 물체를
권총으로 저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도망칠까?”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한 편으로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띠리리리’
그 순간 추선우의 주머니에 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그 놈입니다.”
“받아.”
‘척’
추선우는 설장호에게 전화기를 보인 후, 곧 주변을 둘러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를 만나자고 했던 놈이 꼬리 내린 것인가? 어째 이런 놈들을 내보내고 네 놈은 나오지 않아?”
-그냥 좀 노는 거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인데 제대로 놀다가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도망칠 생각하지마라.
달리는 놈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하지마라. 지금 네 놈들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그
놈들의 저격술은…….권총으로도 네 놈의 눈만을 노려 작살 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니 말이야.
“
추선우는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바로 곁에서 듣고 있었던것과 같은 말을
하였지만, 놀라는 표정으로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잠시만 기다려라. 너희 두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계시다. 곧
도착하니, 그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정리하고 이곳을 벗어나야 할
상황이었다.
자칫 경찰이 도착하면 일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어찌할까요? 이러고 있으면 경찰이옵니다. 경찰이 오면 여러모로…….”
-걱정마라. 경찰은 오지 않는다.-
“!!!”
추선우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는지, 그가 답을 주었고, 그 답은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지게
만들었다.
“무슨…….뜻인가?”
추선우가 아닌 설장호가 물었다.
“하…….난 왜 설 실장과 통화하면 이리 두려울까. 천하의 설장호실장…….그 목소리만으로 나를
흥분시키는구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그 순간 곧바로 전화기속의 인물이 내는 목소리의 특성을 살려 누군지
추리하려 하였다. 이미 자신을 아는 듯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니, 돌려 말하면, 자신도 그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이다. 경찰은 오지 않는다. 비록 내가 그 정도의 힘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사람은 충분히 그 정도의 힘이 있으니, 경찰정도는 막을 수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느긋하게
목이나 내밀고 기다려라.-
사내는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내가 어느 차량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지금 총을 들고 서 있는 저 놈들을 만에 하나라도 제거 하게 되면, 마지막
승합차에 네 명의 사내가 승차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 놈들마저 제압하면 자유다. 이곳을 빠져나가도
잡지 않는다.-
그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여유 있게 담배까지 꺼내 물고서는 말하였다.
“넌 어디에 있나?”
설장호가 다시 물었다.
-나? 나도 여기에 있다. 너희들이 다음 세 번 째 승합차에 탄 놈들까지 제거하고 이곳을 바로 떠나지
않는다면, 나와 만날 수도 있겠지.-
그는 담배를 길게 들이마신 후, 다시 내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곧 선유도 입구에서 고급 승용차가 줄지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만 끊어야겠다. 너희들을 보고자 친히 걸음하신 분을 마중해야 하니 말이야.-
그가 전화를 끊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은 저 멀리 선유도 입구에서 들어서는 고급 승용차들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그 승용차는 전화한 사내와는 정 반대의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설장호…….추선우…….오늘이 너희 둘의 제삿날이다.”
최기수는 기분이 들떴다. 다른 회장들에 비해 자신이 가장먼저 이번 사건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장호와 추선우를 잡게되는순간을 곧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띠리리리’
“네 회장님.”
“시작해보게. 내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럼…….좋은 시간되십시오.”
최기수는 차량을 주차한 후, 곧 사내에게 연락하였고, 사내는 그의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총을 든 세
명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내에게 신호를 주자, 그는 그 즉시 세 명의 사내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추선우. 뛰어라.”
설장호가 그들의 신호를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랜 경험상으로 느껴지는 직감에 의해 그에게 말했고,
추선우는 그 즉시 빠르게 몸을 틀어 좌측으로 뛰면서 주차된 차량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픽픽픽픽!’
설장호가 추선우에게 말하고 난 뒤, 약 1 초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다행히 추선우는 좌측, 설장호는 우측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조준방향을 흔들어놓았고, 장소가
주차장인 만큼, 주차된 차량들이 많기에 그 사이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빠른데.”
사내는 차안에서 편히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차량들 틈으로 숨어들은 두 사람을 찾고자 눈동자를
돌렸다.
이는 최기수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총알을 피하며 숨은 두 사람을 찾고자 하면서도, 조금 전까지
환했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꼭…….그 대가가 바로
따라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총알을 피하는 놈들이라…….이거 뭐 영화 속 영웅들도 아니고…….”
차 안에서 사내는 여전히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까지 설장호나 추선우가 몇
차례 총을 든 킬러를 피해, 그들을 제압했던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탁!’
“!!!”
잠시 후.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땅으로 내려앉는 듯 보였고, 그 순간 두 사내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퍽퍽!’
“!!!”
두 사내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가자마자, 우측에서 설장호가 움직였고, 그는 총을 든 두 사내의
중앙으로 서면서 동시에 두 사내에게 일격을 가했다.
그 충격에 그들은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곧 다시 자세를 잡아 바로 선 후, 설장호를 보았다.
“이제 그냥 맨주먹으로 싸워야하는데 괜찮겠나? 어렵다면 마지막 차량에서 대기중인 놈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
설장호는 두 사내를 보며 말했고, 곧 시선을 그들의 뒤로 돌리자, 조금 전, 총을 든 한 사내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추선우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사내가 들고 있던 총이 들려있었다.
‘띠리리리’
최기수는 쓴 표정을 지으며, 사내에게 전화하였다.
“네 회장님.”
“괜찮겠습니까? 이미 총이 뺏긴듯한데…….더 준비한 것은 없는 것이오?”
최기수는 불안한 듯 그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의 여유는 이제 그의 얼굴에 남아있지 않는 듯 하였다.
사내는 조수석에 앉은 수하에게 신호를 주었고, 곧 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마지막 차량에 앉은 이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차르르르’
그리고 마지막 차량의 문이 열리며 네 명의 사내가 나왔다.
“마음에 드십니까?”
사내가 최기수에게 물었다.
“하하하. 마음에 들군요. 비록 사람의 숫자는 적으나, 그만큼 정예라 할 수 있겠지요?”
“네. 제가 거느리고 있는 애들 중, 가장 칼을 잘 다루는 놈들입니다. 제 아무리 설장호라고 하여도…….
스치면 그냥 저승행 열차에 탑승합니다.”
그는 웃었다. 최기수도 웃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두 사람. 바로 설장호와
추선우였다.
추선우는 그들을 본 후, 천천히 이동하여 설장호의 옆으로 섰다. 그리고 그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전…….아직 총을 들 자격이 없습니다. 가져가십시오.”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설장호는 추선우가 죽을 고비에 처해있더라도 그에게 총을 주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법 때문이었다. 민간인이 총을 들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갖춰야한다.
비록 살고자 덤벼드는 놈을 죽일수도 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괜한 문제꺼리를 단 하나도 만들지
않으려는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그가 건네준 총을 받은 후, 총알의 잔여갯수를 확인하였다.
“두 발…….”
총알의 여분은 두 발이었다. 그리고 남은 인원은 일곱명. 추선우에게 총을 뺏겼던 사내가 일어나면서
일곱명으로 되었다.
그리고 두 자루의 총은 차량 밑으로 밀려들어간 듯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추선우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설장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총은 내가 들었다. 그러니 저들보다 우세한 힘을 가진 사람도 나야. 그러니 넌 내 뒤에 붙어있어.”
설장호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무슨…….걱정이라도 있습니까?”
곧 서지호가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는 서지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그에게
말하면 곧바로 차현태에게도 내용이 전달될 것이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차현태는 어제 성남 펜션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서진이 그렇게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저기…….서 실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강서진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며 서지호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서지호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정황을 결국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안부가 걱정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였다.
“저…….정말입니까?”
서지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자신도 그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모두 들었기에,
조금 전까지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듣고 나니, 그의 심장은 급하게 뛰기 시작하였다.
“미희씨의 오피스텔이 어디입니까?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야겠습니다.”
서지호가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곳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어디론가 이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을 벗어났을 때, 이미
추선우씨가 그곳에 있는 형사들을 제압했으니, 그 보고가 저들에게 들어갔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곳에
남아있지 않고, 아마 그들을 만나러 움직였던지…….그것도 아니면 그들에 의해 잡혔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서진은 최악의 상황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알고, 현실을 접했을 때, 그 최악의
상황만이라도 면한다면,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있을 것이기에 최악의 상황만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알아보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하였고, 현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제야 영접실에 있는 의자에
몸을 앉혔다.
“미희이모!”
한 편. 미희는 지현을 만났다. 지현은 이미 미희를 알고 있기에 그녀가 반가웠다. 하지만 은주는 미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추선우가 위험한 곳을 자처하여 간 것을 알기에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잘 지냈어?”
미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현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은주의 눈에 보인 지현의 미소, 미희와
얼마만큼의 친분을 쌓아두었는지 모르지만, 지현의 미소가 최근 들어 본 그 어떤 미소보다 더 환해 보였다.
“난 잘 지내는데, 삼촌이 안와. 어디 간다고 갔는데, 오지 않아. 이모는 삼촌 봤어?”
지현이 물었다. 그리고 미희는 고개를 들어 은주를 보았다. 은주는 미희를 향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삼촌을 봤어. 그리고 삼촌이 일끝나면 지현이 선물사야해서, 뭘 사야하는지 이모에게 물었어.”
미희는 지현에게 말을 돌려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이…….내 선물을 산데?”
“응. 그래서 이모가 몰래 알아봐 준다고 했는데…….지현이가 뭘 갖고 싶을까?”
미희의 속마음은 울고 있었다. 지현에게 현재 추선우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고, 또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추선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린 지현에게 돌아갈 상처는 아주 크다는 것을 알기에 더 울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부모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어린 소녀는 추선우라는 한 사람에 의해 그 슬픔을 가슴에
그저 담아두고만 있었다.
“나…….삼촌이 필요해.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지현이 답했다. 그러자 은주와 미희가 다시 시선을 마주하였다. 지현은 열 살이지만, 지금 현재는 열
살의 어린여자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부모의 사망도 다 알지만 참고 견딘 아이다.
그리고 지금. 지현이 말한 삼촌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여인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말이었다.
“그래…….우리 지현이는 삼촌이 필요하구나. 이모도 삼촌이 필요한데. 그럼 지현이와 이모가 같이
삼촌을 기다릴까?”
“응. 이모.”
지현은 웃었다. 그리고 미희는 마음속으로 더 크게 울었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일을 겪었다. 그러니 단 한 가지만 바랄 뿐이었다.
무사히…….무사히. 예전처럼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 국정원에서 사람이 움직일 것입니다. 설 실장님의 명령을 이행했던 대북전담팀에게 현 사실을
알렸고, 그들이 서울의 모든 CCTV 를 분석하여 현재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한 편. 서지호는 국정원에 연락하여,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던 팀장에게 다시 답변까지 들었다. 그
답변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자,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 검사님은 계십시오. 만약 검사님마저 다시 움직이시면, 대통령님께서 지금 현재의 상황을 달리 해석
하실 것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보고를 하고서는 뭔가 일이 있는 것처럼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차현태가
본다면, 그의 마음이 불안해 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어쩔 수 없이 나서지 못하고 청와대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저기 위를 보십시오.”
최기수는 추선우의 화려함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조수석에 앉은 비서가 그를 보며 말한 뒤,
올림픽대로 위와 함께 한강공원 주변. 그리고 하늘을 향해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이미 수없이 많이 모여 있었다. 마치 영화촬영장을 보는 듯 한 느낌으로 그들은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넋을 놓고 보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아무래도…….너무 판이 커져버리는 듯 합니다.”
비서의 말대로였다. 그저 경찰을 잠시 잡아두고, 서둘러 끝내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에
구경꺼리가 된 상황이었다.
“회장님…….”
"상관없다. 계속 진행해라.“
비서의 우려와는 달리 최기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에게 연락하여 계속 진행하라는 답을 보냈다.
추선우와 통화했던 사내는 최기수의 대담함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필시 이 순간의 모든 것은
방송으로 전파를 탈 것이었다.
심지어 일반 시민들이 촬영하는 내용은 개인 블러그나, 동영상전문 사이트에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었다.
하지만 최기수는 멈추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 상황에서 설장호가 승리한다면, 자칫 자신의 신원노출도
우려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기회에 설장호는 물론, 저 놈의 목도 꼭 쳐야한다.”
최기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는 단지 사내의 말에 의해, 좋은 구경꺼리를 보려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설장호와 추선우를 보면서 그의 가벼운 마음은 점차 독하게 변해갔다.
‘스윽!’
“!!!”
사시미의 날카로운 칼날이 이번엔 추선우의 팔꿈치 윗부분을 스쳐지나가면서, 추선우가 뒤로 물러났다.
“괜찮은가!”
설장호도 이미 한 방을 스쳐갔기에 그 쓰라림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이와
같은 경험이 많아 이골이 난 상태지만, 추선우는 이런 경우가 처음일 것이라 생각하여 소리쳐 물었다.
“괜찮습니다.”
추선우의 왼쪽 팔꿈치 윗부분에서는 그새 많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뭣들해! 당장 출동해!”
한 편. 현장의 머리위에서 날고 있던 헬리콥터가 내 보내는 영상이 전해지면서 검찰청에서는 검찰총장이
큰소리로 명령을 직접 하달하였다.
이는 청장을 의심하고 있는 시점에 혹여 검찰총장도 청장의 말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반전시키는
상황이었다.
검찰총장의 명령으로 검사들과 형사들이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야 할 경찰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회장님. 뉴스 보셨습니까?”
당황하기는 정구석과 고민국, 우수광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새롭게 계획을 세워 한 번에 몰아붙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 생각지 못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누가 내린 명령입니까?”
고민국이 물었다.
“난 아니요.”
“나도, 저런 명령은 내린 적 없소.”
정구석과 우수광이 아니라고 하니,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최기수라
답이 바로 나왔다.
“최 회장이…….”
정구석이 쓴 표정을 지으며 최기수의 이름을 말했고, 곧바로 고민국이 최기수에게 전화하였다.
“어찌된 일입니까?”
최기수는 고민국의 전화를 받으면서도 칼부림에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그 두 놈을 잡습니다. 기다리세요.”
최기수는 고민국의 말에 답하고서는 이내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지금…….이 영상은 뉴스로 보도중입니다. 혹여…….회장님께서 보실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
최기수는 전화를 끊으려다 고민국의 말에 아무런 말없이 표정만 구겼다. 이들이 말하는 회장. 바로
뿌리조직의 최고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회장님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점차 저들이 목을 조여오니 그 전에 처단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단하려는 것입니다.”
최기수는 잠시 말문을 열지 않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뜻을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제길…….아무래도 일이 더 빠르게 정리될 것 같군.”
그가 전화를 끊자, 고민국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을 서둘러 선유도로 보내야겠습니다. 필시 이 영상은 청와대에서도 봤을 것이고,
또 국정원장이 보았다면 지원이 갈 것입니다. 그 전에 최 회장이 하려던 일을 우리가 마무리합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이참에 결정을 지으려 하는 고민국이었다.
그의 말에 두 사람도 서둘러 연락을 취하였고, 그들의 연락을 받은 이들이 선유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촥 촥!’
“추선우! 그만 몸을 피해!”
역시 사시미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들과의 격전은 쉽지 않았다. 총알도 피한다는 수식어까지 붙은
추선우지만, 사시미를 든 이들에게 이미 대,여섯곳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에 설장호가 추선우의 곁으로 붙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제가 물러나면, 설 실장님은 그냥 죽습니다. 그나마 제가 버티고 있으니 살아계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추선우는 이 와중에도 농담을 하였다.
“너. 죽으면 장례도 없다. 그냥 한강에 던져버린다.”
“어차피 연고도 없습니다. 그리 하십시오.”
농담을 던졌지만, 그에게 상처가 된 말을 한 설장호였다. 너무나 상황이 좋지 않아,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니, 그가 고아라는 사실을 순간 잊은 그였다.
‘애애애앵!’
“!!!”
설장호와 추선우가 서로 등을 맞대어 섰고, 설장호의 상처는 이미 위급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 순간 선유도 주차장을 들어서는 승용차에서 사이렌이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띠리리리’
설장호와 추선우가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최기수의 전화벨이 울렸다.
“최 회장님. 지금이라도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사내가 연락하였다. 하지만 최기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설장호와 추선우가 쓰러질 것이기에,
그 장면을 직접 보고자 하였다.
“그럼…….저라도 피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것만으로도 서 회장은 할 일을 모두 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은 따로
챙겨드리지요.”
“알겠습니다. 그럼…….다음에 뵙죠.”
사내는 서둘렀다. 그에게 먼저 물러난다는 말을 하며, 그 즉시 자신의 목을 먼저 칠 것이라 여겼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말이 나왔다. 더군다나 보상까지 따로 챙겨준다니, 위험한 곳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다.
“팀장님. 저기.”
설장호를 돕고자 주차장으로 급하게 이동하던 대북전담팀 팀장에게 그의 대원이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젠장. 차를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막아야지!”
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검찰에서 지원을 했지만, 그들은 지원 내용대로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서두른다. 설 실장님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난다.”
“알겠습니다.”
검찰의 지원이 있긴 하였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 팀장이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했고,
모두가 급히 움직였다.
“추선우…….내가 길을 열 테니 넌 뒤로 빠져라.”
“동방예의지국은 노인공경입니다. 어르신부터 빠져 나가십시오.”
설장호의 출혈은 이미 심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나마 출혈이 덜 한 편이라 설장호의 말에
농담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앉아 계십시오. 제가 더 젊으니 제가 더 움직여 보겠습니다.”
추선우는 설장호를 부축하며 살며시 주차된 차량에 몸을 기대게 앉혔다.
설장호는 강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보다 더
한 놈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죽어라! 애송이!”
이내 사시미를 든 사내들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픽픽픽픽!’
그 순간 국정원에서 온 이들과 검사들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추선우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서기 전, 그들은 달려오던
속도에 맞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빨리 좀 오지…….”
설장호는 앉은 자리에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추선우는 자신에게 다가서던 이들이 쓰러지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든 휴대전화를 보았다.
자신을 만나고자 한 서회장을 찾고 싶었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낮춰 눈을
편하게 감고 있는 설장호를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곧 국정원 팀장이 다가섰다. 그는 주저앉은 설장호를 보며 물었고, 설장호는 힘겹게 손을 들어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표시했다.
“어서 설 실장님을 병원으로 옮긴다!”
곧바로 명령을 하달하였고, 함께 온 이들이 설장호를 부축하여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차량을 출발시켜!”
최기수의 수하가 소리쳤고, 곧바로 차량은 급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려 하였다.
“잡아!”
팀장의 큰 목소리에 검사들도 해당 차량을 보았다. 그리고 최기수와 함께 온 몇 대의 차량에서 그의
수하들이 내리며 차량으로 다가서는 이들을 막아 세우려 하였다.
“모조리…….모조리 다 잡아!”
팀장은 격하게 소리치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최기수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추선우도 급히 움직였다. 그는 해당 차량에 최기수가 아닌 서회장이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차량을 쫒고 있는 중이었다.
최기수의 수하들이 앞을 막았지만, 추선우는 그들을 모두 제쳐두고 차량으로 바로 뛰었고, 수하들은
국정원 대원들과 검사들이 대신 상대하고 있었다.
“이 틈에 우린 빠져나간다.”
최기수가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서회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상황에 자신의 앞길을 열어준 것과 같은 최기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량이 바로 빠져나갈 수 없으니, 모두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서회장은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주변 사람들의 틈으로 숨어들려 하였다.
“검사님. 저기 저 놈…….수상합니다.”
하지만 한 형사의 눈에 그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검사는 그 즉시 서회장을 잡도록
형사들을 내려 보냈고, 뒤 늦게 합류한 고민국의 수하들은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이미 늦은 것이다. 현장에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자신들이
뛰어들어 최기수를 돕기에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모두 철수…….”
결국 한 사내가 말했고, 최기수를 돕고자 내려왔던 사내들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서서히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픽픽픽픽!’
최기수가 탄 차량은 주차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미 주차장 출구 쪽에 형사들의 차량이 막고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차량을 돌려 주차장 안을 빙빙 돌 뿐이었다.
“회장님.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주차장을 도는 것만으로 해결 방법은 없었다. 이에 수하는 최기수에게 말했고, 최기수는 눈동자를 떨며
자신의 손에 쥔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찌되었습니까?”
전화를 받은 인물은 고민국이었다. 그는 곧바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아무래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해결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계십시오.”
고민국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최기수가 탄 차량은 그 즉시 주차장 한
편에서 멈춰 섰다.
검사들과 국정원 대원들, 그리고 추선우가 해당 차량 곁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탈칵’
차량 문이 열리며 최기수가 먼저 내렸다. 추선우는 그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손들어!”
검사들은 그를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러자 최기수는 멀뚱한 눈을 한 채, 손을 들어올렸다.
“왜…….왜들 그러시오. 난 그저 바람이나 쐬러 이곳에 왔는데, 신기한 구경꺼리가 생겨 보고 있었소.
그러다 급한 약속으로 인하여 가려는데…….”
“쓸데없는 말은 오히려 상황을 더 좋지 않게 만든다.”
그의 말은 팀장에게 먹히지도 않았다. 팀장은 최기수가 이 모든 것을 지시한 인물로 낙점한 상황이었다.
비록 최기수란 사람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의 행동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었다.
“저 놈입니다.”
설장호가 탄 차량이 최기수의 옆으로 서서히 다가설 때, 국정원 대원이 말했고, 그 때 설장호는 힘겹게
눈을 뜨며 최기수를 향해 보았다.
“추선우! 저 놈을 잡아!”
설장호는 자신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더라도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외쳤다. 그리고 최기수의
앞에 있던 추선우는 물론, 국정원대원들과 검사들이 설장호를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최기수를 보았다.
“잡아!”
국정원팀장의 명령으로 국정원대원들이 최기수의 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수하들이 앞을 막았지만,
그들이 국정원 대원을 막아설 힘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하여 국정원 대원들을 막으며 마지막까지도 최기수를 보호하고자 몸싸움을 서슴지
않았다.
‘퍽퍽퍽!“
“!!!”
하지만 추선우에게는 몸싸움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는 최기수의 앞을 막은 수하들에게 고루 한
주먹씩을 나눠주었고, 그들은 단 한 방씩에 뒤로 밀려나며 쓰러졌다.
“하하하하. 쿨럭 쿨럭!”
추선우의 통쾌한 행동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아픔을 참고 있던 설장호가 큰소리를 내며 웃은 뒤, 다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모습에 국정원대원들이 서둘러 병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최기수는 독한 눈빛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네 놈…….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누군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 지현의 아버지…….이창민대사와 연관된 놈이라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최기수가 먼저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추선우의 말에 오히려 최기수가
눈을 먼저 돌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두려울 것이 없다는 최기수였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모니터 상에서만 봐 온, 설장호와 추선우를 직접
앞에서 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려움에 눈을 내리깔고, 몸을 떨었다.
“최 회장이…….”
고민국이 눈동자를 떨며 말을 흐렸다. 우수광과 정구석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랫동안 이 사회의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숨어있었던 네 명의 회장들. 그들 중, 지금 한 명이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힌 것과
같았다.
“이제 어찌합니까? 회장님께는 최 회장에 대한 보고를 어찌 올려야 합니까?”
우수광이 뉴스를 시청하는 눈길을 돌리지 못한 채 말하였다.
“회장님이 아시기전에, 최 회장을 저들의 손에서 빼내야…….”
‘띠리리리리’
고민국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국은 아주 천천히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보았다.
“!!!”
그 순간 그의 눈이 더욱 더 놀란 눈으로 커지고 있었다.
“누굽니까?”
정구석이 물었다.
“회장님이십니다.”
“!!!”
그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던 회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연락했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네. 회장님.”
고민국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나오는 뉴스. 무슨 내용인가?-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이 나왔다. 고민국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물음에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 일은 저희들이…….”
-시끄럽다! 당장 내 방으로 와!―
변병의 여지는 없었다. 뭐라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회장의 늙고 거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들려왔고,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 있기만 하였다.
-오늘 낮, 선유도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모두 내용을 숨기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한 조직 폭력배들의 이권 다툼이라 발표는 하였지만, 검사와 경찰 외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정원 소속 대원들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이권다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들입니다.-
“처음이지 않아요?”
강서진이 설장호를 보며, 모두에게 물었다.
“네. 처음입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답했다. 처음이라는 말은 설장호가 병원신세를 지는 것을 떠나, 붕대를 돌돌 감고,
정말 미라처럼 있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사람의 시선은 추선우에게로 향하였다.
“내가 저런 느낌이었다니까요.”
그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추선우는 팔과 허벅지 부분에 사시미에 베인 상처를 치료 중이었고,
얼굴에는 반창고 몇 개만을 붙여놓았다. 그 역시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사시미가
그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간 흔적은 몇 곳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내가 추선우씨와 함께 누군가와 대적할 때, 왜 추선우씨는 멀쩡한데 저만 그런지 물었죠? 딱 이런
상황입니다. 지금도 똑같은 놈들을 두 사람이 상대했는데, 추선우씨는 간단하게 치료하고 있는데, 설
실장님은 미라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태정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계속 이런 상황이었다. 분명 같은 상대를 접하고, 같이 움직였지만,
결국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추선우와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추선우가 뒤로 빠져서 기회만을 보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그리고 심할 정도로 상대와 맞부딪혔다. 하지만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와 함께 그들을
상대했던 태정민이나, 설장호였다.
“추선우…….”
모두 병실을 나선 후,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추선우를 불렀다.
병실은 2 인실이기에, 모두가 나가자 두 사람만 남은 상황이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다음 날. 아침부터 병실로 모두 찾아왔다. 그리고 박태식이 먼저 인사하였다.
아침 일찍 찾아와 깨우려고 한 것이지만, 이미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보며 서 있었다.
“벌써 그리 서 계셔도 되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내가 무슨 다리가 부러졌냐. 숨을 못 쉬냐. 그저 외관상 상처 좀 입었다고 너무 호들갑들 떨지마라.”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창가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박태식과 강서진, 태정민은 그의 밝은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길…….”
끊어진 전화를 보며, 우수광이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이제 어찌합니까? 정말 회장님께서 직접 최 회장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정구석이 다시 모두를 보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마땅히 답을 내놓을 사람은 없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7 층에 도착하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7 층에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두 사람이 입원중인 병실을 지키기 위하여 대기 중인 인원들이었다.
세 사람이 7 층에 도착하자, 그들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 즉시 세 사람을 제지하는 인물은 없었다. 7 층 전체가 두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만은 피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순간부터, 그들의 모든 행동과
입모양은 7 층에 있는 모든 국정원대원들의 눈에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었다.
“으아악!”
잠시 후, 약 3 분이 지난 시간에 병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7 층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해당 병실로
향하였다.
간호사와 의사가 서둘러 뛰기 시작하였고, 국정원소속 대원들의 시선도 그곳을 집중되었다.
“가서 확인해.”
“알겠습니다.”
국정원소속 대원 세 명이 움직였다. 총 아홉 명이 대기 중이었고, 그 중 세 명이 비명소리가 들린 병실로
이동하였다.
‘쾅!’
그 순간 비명소리가 들린 병실에서 조금 전, 들어갔던 두 명의 사내가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나왔다.
“!!!”
그 모습에 의사와 간호사가 놀라 뒷걸음을 쳤고, 다가서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총을 꺼내들었다.
“하하하하!”
두 사내는 웃었다. 아주 큰 소리로 웃었고, 비명소리가 난 후, 웃음소리가 들리자, 7 층에 입원중이
환자들이 하나, 둘 병실에서 나오며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뭣들해! 잡아!”
국정원 대원이 소리쳤고, 아홉 명 중, 세 명만이 설장호와 추선우의 병실 앞을 지킨 채, 나머지가 두
명을 제지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무턱대로 총을 쏘며 제압할 수 없었다.
국정원 대원들이 다가서자, 두 명은 손에 피를 묻힌 채, 히히거리며 복도 끝으로 서서히 이동하였고,
국정원대원들이 그 병실을 지나쳐가며 두 사람을 쫒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에서 환자복을 입은 한 사내가 놀라는 척 행동하며 벽에 기댄 채, 다시 나오고
있었다.
환자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점차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곳까지 왔고,
곧바로 그 부분도 지나, 설장호와 추선우가 있는 병실방향으로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세 명의 국정원소속 대원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입원중인 병실방향에도 이미 세
개의 병실이 더 있기에, 환자복을 입고 비틀거리는 사내가 해당 병실의 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여기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다 한 의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모두가 겁에 질려 쉽게 병실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가서 도와드려라.”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섯 명의 대원들이 두 사람을 쫒기 위하여 움직였다. 비록 자신들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설장호와 추선우를 노리고 온 놈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뒤쫓는
것이었다.
또 다시 두 명의 대원이 쓰러져 기진맥진해 있는 환자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의사를 돕고자 움직였다.
그리고 두 명의 대원이 다가서자, 의사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두 명이 마저 움직이자, 이제 병실 앞에는 단 한 사람의 국정원대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체…….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사내가 마지막 남은 대원 옆을 지나쳐가며 물었다.
“지금 확인중입니다. 그러니 안전한 곳으로…….”
‘스윽!’
국정원대원이 그의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목을 향해 뭔가 다가왔다 가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목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나오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려 하였다. 그 순간 환자복을 입은
사내는 그가 쓰러지기 전, 그를 부축하여 환자휴게실 안으로 바로 들어섰다.
이미 모든 것이 계획된 듯, 환자 휴게실 안에는 단 한명의 환자도 없었다.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사내. 그는 세 명의 사내 중, 화장실로 들어갔던 사내이며, 그 안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작전이 시행되자, 환자처럼 행동한 킬러였다.
그는 설장호와 추선우의 병실 앞에 섰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하였다.
‘후다다닥!’
그 때. 병원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보였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병원 경호원들도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그들의 움직임에 태정민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흐렸다. 그리고 서둘러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려
하였지만, 이미 엘리베이터는 7 층에서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제길!”
태정민이 쓴 소리를 내 뱉은 후, 계단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이어 박태식도 오르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병원 로비에 있는 형사들을 이끌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00135 경호원 =====================================================================
====
‘띠리리리’
같은 시각. 늙은 회장의 옆에서 장검을 들고 있는 한 경호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냐?”
-시작되었습니다. 곧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주 짧은 통화였다. 경호원은 통화가 끝난 후, 통화내용을 늙은 회장에게 알려주었다.
“설장호와 그 민간인을 치는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군. 난 국정원에 있는 최기수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날 것이라 여겼는데 말이야. 어쨌든…….결과가 전해지면 알려라.”
“네. 회장님.”
그는 여전히 젊은 여인의 살결을 느끼며 색에 빠져있었다.
“추선우씨?”
강서진은 그를 보며 불렀고, 추선우의 동작은 그 순간 멈추었다.
“뭣들해! 저 놈을 잡아!”
추선우가 그를 쳤다면, 그가 킬러라는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강서진의 큰 목소리에
형사들이 일제 다가서며 그를 제압하였고, 그는 쓴 표정을 지으며 추선우를 올려보았다.
“누가 보낸 놈이야!”
곧바로 태정민이 달려와 그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인상만 찌푸린 채, 추선우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추선우…….”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한 명의 의사는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잔인해 보일 정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 회장의 경호원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세 명은 그에게 전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경호원은 전화를 받았고, 지금 곧바로 일이 진행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즉. 이 세 사람 외에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바로 7 층 간호사실 앞에서 실신하며 쓰러지는 환자를 도와달라고 외친 의사. 그가 모두가 모여 있는 곳을
보며 추선우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 뒤,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허리춤에 감추고 있던 총을
서서히 꺼내들기 시작하였다.
‘픽!’
방아쇠가 당겨졌다.
“!!!”
“추선우씨!”
순간 추선우의 몸이 옆으로 밀려나며 병실 복도 끝부분의 벽에 강하게 부딪혔고, 강서진이 놀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총을 든 의사는 또다시 한 발을 발사하였지만, 추선우의 앞으로 형사들이 나서면서 그들이 대신 총을
맞았다.
“젠장! 비켜! 네 놈들에게 줄 선물이 아니다!”
의사는 소리쳤다. 그는 계속하여 앞으로 다가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픽픽!’
“으윽!”
하지만 총은 그 혼자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총을 쏘는 쪽에는 검사와 형사, 그리고 청와대
경호원까지 있기에 모두가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다만 먼저 총을 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를 향해 한 형사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그 뒤를 이어 박형사와 함께 태정민도 방아쇠를 당겼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수발의 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쳐가며 쓰러진 채, 즉사하였다.
“추선우씨!”
강서진은 총을 맞고 뒤로 밀려나 정신을 잃은 추선우를 흔들어 깨웠다.
“…….”
외부의 시끄러움에 설장호가 병실을 나왔다. 그는 총을 맞고 쓰러진 추선우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이라도 이 일을 자행한 장본인을 잡아 목을 치려는 듯 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어서 응급실로 옮겨!”
강서진이 소리쳤고, 형사들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또 한 같이 총상을 입은 형사들도 다른 형사들의
도움으로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따라갔지만, 강서진과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의사복장으로 손에는 권총을 들고 눈을 감지 않은 채 죽어있는 그를 보았다.
“젠장…….”
그는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강서진의 시선도 함께 돌아섰다.
“웁!”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눈에는 목덜미에 한 줄의 선명한 선을 긋고 죽어 있는 국정원
대원이 보였다.
설장호는 두 주먹을 꽉 쥐었고, 곧 강하게 휘둘며, 휴게실 유리창을 박살내버렸다.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꽉 쥐어진 손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곧 다른 대원들이 시체를 수습하여 나갔다. 국정원소속 중에서도 일부 특정 임무를 가진 이들은 죽고 난
뒤에도 병원이 아닌 국정원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들도 그런 부류였다.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소속 인물들, 그 중심에 설장호가 있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대원이 죽어서 옮겨진 곳이 아닌, 총상을 입고 응급실로 옮겨진 추선우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의 뒤로 강서진도 함께 따라 움직였다.
“어찌되었는가?”
응급실에 도착하자, 태정민과 박태식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서 있었고, 곧 설장호의 물음에 두
사람이 다가섰다.
“이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 총알 하나 맞았다고 무슨 수술이야?”
설장호는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일반인이 총알을 맞았으며 수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처럼 몇 번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야 수술 없이도 총알을 제거할 수 있겠지만,
생전 처음 총알이 몸속에 박히게 된 추선우에게는 수술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민간인입니다. 자칫…….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곧 태정민이 다시 말했다. 그 순간에도 설장호는 추선우가 민간인인 것을 알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민간인
아닌 인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설장호는 괜한 신경질적인 어투로 물었다.
“아직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뭐. 급소를 통과한 것도 아니고, 신경이나, 기타 위험한 곳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리 위급할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박태식이 이어 말하였지만, 여전히 설장호의 표정은 굳어진 채, 펴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병원의 모든 CCTV 를 다 확인하고, 이 일이 어찌하여 일어났는지, 그 첫 부분이 어딘지를 찾아.”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수술실 앞, 의자에 덜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수술실이라는 불 켜진 안내판을
보았다.
“뭣들해? 어서 병원관계자에게 협조구해서 확인해.”
“네? 아네. 알겠습니다.”
자신의 말이 다 끝났어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태정민과 박태식을 보며 다시 말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답한 뒤, 서둘러 움직였다.
“괜찮을 것입니다.”
강서진이 그의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제길…….내가 너무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최기수를 잡은 뒤, 그가 스스로 모든 것을 까발릴 것이라
생각했다.”
“이유는요?”
설장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물었다.
“그런 조직의 습성이 원래 그런 식이다. 혼자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 동급의 윗선이나, 그보다 더 높은
놈이 있다면, 기회는 없다. 잡힌 놈은 그냥 죽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설장호는 자신이 왜 최기수를 내버려두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래 숨어살았던 놈들은, 더 오래 숨어살기 위하여, 위험이 감지되면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버젓이 꼬리가 잡혀있는데…….이놈을 자르지 않고 몸통을 드러낼까? 천만에 말씀이지, 가차
없이 자르고 더 깊이 숨어서 다시 꼬리를 길러낼 놈들이 바로 이런 세계에 있는 놈들이다.”
이해가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자, 함께 한 이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최기수…….어떤 사람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설장호 밖에 없기에, 그를 어찌 다뤄야하는지 몰라 물었다.
“최기수…….그 놈은 오래전부터 정치인들을 만나, 인맥을 쌓아오던 놈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자신은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부를 축적했지.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잡지
못했다.”
“네? 설마 그 정치인들 때문에요?”
강서진은 그의 불법적인 것을 포착하고도 잡지 못했다는 말에 놀라 물었다.
“정치인? 그런 놈들을 잡아넣기는 쉬워. 하지만 그 쉬운 일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다.”
이 말은 굳이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강서진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전국 최고의 범법자는
정치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권력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도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
국민들을 위해 내세운 정책을 실현하다 어쩔 수 없이 생긴 피해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또
세금낭비를 이어한다.
그런데도 그들을 잡지 못한다. 그 더러운 권력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잡아 쳐 넣을 권력이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그런 놈들을 조종했던 최기수이니, 그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잡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그 때까지는 설장호란 인물이 없었다. 국정원이 그저 평범한 범죄에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설장호가 나섰다. 정치인이고 나발이고, 죄 지은 놈은 무조건 잡아
쳐 넣는 성격의 설장호가 나섰기에, 최기수도 긴장하고 있는 지금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그리고 곧 담당 주치의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섰다.
“추선우씨 보호자 분 되십니까?”
그는 설장호가 아닌 강서진을 보며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설장호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강서진은 사복이었기에, 지레짐작으로 추선우의 보호자가 강서진이라 생각하였다.
“네. 맞습니다. 어찌 되었습니까?”
강서진의 물음에 설장호가 더 긴장한 듯, 의사의 입만 보고 서 있었다.
“워낙 건강한 청년이라 일단 실탄은 잘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합병증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움직이는데 지장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만다행이었다. 설장호는 그제야 긴장한 표정을 풀며, 보호자 대기석에 자리 잡아 앉았다.
“곧 병실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니, 환자 곁에 있어 주십시오.”
주치의는 마저 말을 전하고 난 뒤, 다시 수술실로 향하였다.
이내 강서진도 설장호의 옆으로 자리 잡아 앉았다.
“죄 짓는 기분입니다.”
강서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설장호는 그녀의 기분을 잘 아는 듯,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자신들과 같이 이런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민간인이기에, 죄책감이 밀려오는 듯
하였다.
“일단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해. 수상한 놈은 물론, 추선우에게 총을 쏜 그 의사의 주변을 모두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명령을 내린 뒤, 눈을 서서히 감았다. 강서진은 곧장 움직였다. 이미 태정민과
박태식이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하고 있으니, 자신은 추선우에게 총을 쏜 의사에 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움직였다.
설장호는 멍하니 앉아 서서히 눈을 뜨고, 전화기를 들었다.
‘띠리리리리’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설장호가 전화한 것이었다.
“네. 실장님.”
“청와대는 아무 일 없나?”
“네.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좀 이상하군요. 청와대는…….이라고 하셨는데, 다른 곳에 일이
터졌습니까?”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병원에서 난리가 일어났었다.”
“난리요?”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나와 추선우의 목을 노렸다.”
“네!?”
서지호는 놀란 눈을 한 채, 전화기를 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향하였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대통령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차현태는 지현과 은주,
미희와 함께 있기에, 자칫 통화내용이 그들에게 전달 될 것을 우려하여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누구의 소행입니까?”
“아직 어떤 놈인지 몰라. 그러니 답답하다. 서둘러 그 놈들을 잡아내야 하는데…….”
“단서가 될 만 한 것이 있다면 보내주십시오. 이쪽에서도 확인하여 뭔가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는 통화중, 계속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강 검사와 태정민이 병원내 CCTV 를 모두 확인하고 있으니,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보내주겠네.”
“알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고 계십시오.”
“그래.”
설장호는 서지호에게 지금 상황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 누구보다 추선우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 세
사람을 지키는 사람이기에, 그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 여겼다.
서지호는 설장호의 전화를 받은 후,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 실장님.”
그의 뒤로 경호원이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
“대통령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지금 가지.”
서지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표정을 바로잡고, 집무실로 향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설 실장과 추선우에게 따로 병문안을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차현태는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서지호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저…….당분간은 어려울 듯합니다.”
“어렵다? 왜 그러는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차현태의 물음에 서지호는 다시 주변을 살핀 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조금 전, 설 실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설 실장에게? 무슨 일이던가?”
“오늘 병원에서 총격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라!”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에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그의 놀라는 목소리로
인하여, 다시 집무실로 돌아오던 세 여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다…….들으신 것입니까?”
그리고 물었다. 이미 두 여인의 매서운 눈빛만으로 자신과 차현태의 대화내용이 이 두 여인에게 다 들어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서 의사를 데리고 오게.”
차현태는 기절한 지현을 안아 흔들며 소리쳤고, 곧 의사를 호출하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선우가…….선우가 어찌되었습니까?”
미희가 서지호를 노려보며 물었다. 비단 질문은 미희가 한 것이지만, 은주의 매서운 시선도 함께 받아야
할 서지호였다.
서지호는 차현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차현태는 지현에게만 모든 신경이 다 가 있는 듯, 두
여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말씀해 주세요. 선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주가 다시 물었다.
“지금 막 수술을 끝냈습니다.”
‘덜썩.’
서지호의 답변이 나오자 미희마저 주저앉았다. 하지만 은주는 더욱 더 매서운 눈빛으로 서지호를 보았고,
이내 매서운 시선을 차현태에게로 돌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은 잘 끝났고, 워낙 건강한 사람이라 바로 일상생활로 들어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대체 당신들은 뭐하고 있었나요?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람이
총을 맞는 동안에 당신들은 뭘 하고 있었나요!”
은주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청와대 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삼촌…….”
지현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첫마디가 추선우를 찾는 목소리였다. 차현태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삼촌…….삼촌은요?”
이내 정신이 다 돌아온 지현이 차현태에게 물었다. 하지만 차현태는 그녀에게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 참 대단하군요. 나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고작 민간인 한 명에게 신세지고, 그것도 모자라
민간인이 죽을 고비에 처한 것도 막아내지 못하니 말이에요.”
은주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대통령이 앞에 있는데도 그녀는 자신 할 말을 모두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차현태는 물론, 서지호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저씨. 삼촌에게 가보 싶어요.”
지현은 차현태를 보며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한 채 부탁하였다. 차현태는 그녀의 눈을 보며 함께 눈물이
고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 들 좀 해보세요!”
답답함에 은주가 다시 소리쳤다.
“지금…….확인해 보겠습니다.”
서지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설장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모두 알렸다.
“난감하군…….”
설장호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미 병원까지 킬러가 들어왔고, 또 의사가 총을 쏘았으니, 그 어떤
놈도 믿지 못하는 곳이 병원이 되어버렸다.
“일단 대기해라. 상황봐서 1 시간 이내에 연락하마.”
“네. 실장님.”
서지호가 통화를 끊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였다.
“1 시간 후, 다시 연락 주기로 하였습니다. 1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지호가 은주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은주의 표정은 단 한명도 용서하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지현아. 나와 함께 삼촌에게 가자.”
은주는 결국 지현을 보며 말했다.
“안됩니다! 지금 상황은…….”
“지금 상황이 어떤데요? 이렇게 지현을 안전하게 데리고 있으니, 선우는 죽어도 상관없는 상황인가요?
그런가요?”
서지호가 막아 세웠지만, 은주의 이어지는 말에 결국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럼…….저희 쪽에서 경호를 하겠습니다.”
차현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코 지현을 청와대 외부로 보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 상황이었다.
이미 설장호와 추선우가 당할 뻔 하였으니, 지현이 나타난다면, 그들은 지현을 타깃으로 밀려들어올
것이었다.
“서 실장.”
“네.”
“지현과 함께, 두 여인을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게.”
“…….”
서지호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차현태의 결정에 대해 반박한다고해서 그 반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곧 해가 저뭅니다. 자칫 지현은 물론, 두 분도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내일
아침 일찍…….”
“지금 가겠습니다.”
서지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은주에게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건
지현도 마찬가지였다. 지현은 지금 당장 선우에게 가자는 듯, 서지호를 향해 눈물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다녀오게.”
차현태는 아주 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서지호의 말처럼 곧 어둠이 내리면, 주변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경호해야 할 상대에게 다가서는 인물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차현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 여인을 병원으로 보내려는 그의 마음 또 한 편치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현의 아픈
눈동자를 볼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띠리리리’
여전히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있는 설장호는 손에 든 전화기가 울자, 화면을 내려 보았다.
“왜?”
서지호를 확인 한 후, 다시 편하게 전화를 받았다.
“일이 좀…….생겼습니다.”
“제발 일 좀 터졌다는 말은 안 들었으면 한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연락드렸습니다.”
“뭔데?”
설장호는 서지호의 다급함과는 달리, 느긋하게 앉아서 그와 통화중이었다.
“실장님의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 바로 세 여인이 병원으로 가려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그렇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이놈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 세 사람 외에 또 누가 있을까.”
“…….”
설장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놀라지도 않았으며, 그저 처음 자세 그대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어찌…….할까요?”
“대통령님께서 허락까지 하신 마당에 나라고 별수 있어? 네가 알아서 잘 데리고 와.”
“실장님!”
서지호가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설장호는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제길…….”
태연스럽게 통화하였지만, 설장호의 머릿속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주 타깃을 움직이게 만들다니…….”
설장호는 그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어이없는 말만 나오고 있었다.
“실장님. 병원 CCTV 를 모두 확보했습니다. 지금 확인중이며, 이르면 오늘 안에 어떤 놈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에 대해서도…….”
“잠시 후. 지현이가 이곳으로 온다.”
“네!?”
수술실 앞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앞으로 강서진이 다가와 그의 명령에 대해 이행중인
내용을 말하다말고, 그가 하는 말을 들은 후, 그녀 역시 어이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말이…….됩니까? 지금 이곳으로 지현을 데리고 온다면 필시 그들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미 의사 한 명이 추선우씨에게 총을 쏘았으니, 또 어떤 놈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허락하신 말이니 잠자코 따라.”
설장호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지금 이 모든 것이 지현을 보호하고자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그
중심에 지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추선우는 어떤가?-
국정원장은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추선우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 놈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국정원에서 믿을 만한 놈들 좀 추려서 병원으로 보내주십시오.”
-일이 또 터질 모양이군.-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듣고, 뭔가 위험한 요소가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한 듯 물었다.
“지현이 이곳으로 옵니다.”
-!!!-
국정원장마저도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였다.
“병원이 난장판이군.”
같은 시각. 병원 앞에는 고민국과 함께, 정구석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병원
로비를 보았고, 고민국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검찰 쪽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일이 잘 처리된 것인지, 아니면 틀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정구석이 말했다. 일이 잘 처리되었어도, 저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며, 또 한 일이 틀어졌어도
저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기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처지였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애들을 좀 보냈으니, 뭔가 답이 올 것입니다.”
고민국과 정구석이 답답한 마음에 직접 움직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만 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대동하여 왔기에, 그들을 병원 안으로 들여보낸 고민국이었다.
“잠시…….신분증 확인 좀 하겠습니다.”
고민국의 부하들이 병원로비를 들어서자, 검찰 쪽 형사들이 그들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신분증은 왜 검사하는 것입니까? 이제 병문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까?”
고민국의 수하가 강하게 반박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단 한사람의 반박으로 인하여, 그
후부터 형사들이 협조를 요청해도 사람들의 협조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낭패군…….”
강서진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비교적 사람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단 한사람으로 인하여
비협조적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이었다.
“어찌되었는가?”
곧 그들이 병원을 빠져나왔고, 주차장으로 향한 뒤, 기다리고 있던 고민국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고민국이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정확히 누가 총에 맞았는지 알 수 없지만, 필시 설장호와 추선우, 둘 중 한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이유는?”
부하의 말에 고민국이 다시 물었다.
“그저 일반인의 총상이라면, 지금 저들이 아닌, 그저 경찰들이 들이닥쳐 사건을 조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태정민도 있고, 또 강서진과 박태식형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기 안쪽…….저 복장은
국정원 복장입니다.”
부하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고 있었다.
비록 누가 총상을 입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필시 설장호와 추선우. 두 사람 중, 한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은 들고 있었다.
“고회장…….저기 저 놈은?”
고민국이 부하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달리하고 있을 때, 정구석이 병원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설마!”
고민국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마자, 그는 놀란 눈으로 해당 인물을 보았다.
바로 늙은 회장이 보낸 그의 경호원이었다. 그것도 항상 회장의 옆에서 경호하던 네 명 중, 한명이라
더욱 더 놀란 눈을 한 고민국이었다.
“저 놈이 여기를 왜 온 거지?”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늙은 회장은 단 한 번도 자신의 경호원을 다른 곳으로 내 보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경호원 중 한 명을 외부로 단독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알아봐라.”
“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태정민과 박태식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고민국의 명령으로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 할 때,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들은 대화를 말하였다.
“무슨 내용이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현이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온다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표정과
말이었습니다.”
“!!!”
부하의 말 한마디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 하였다.
“확실히 지현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알았다. 가서 저 놈을 확인해라.”
“네. 회장님.”
부하가 자리를 떠나자, 고민국과 정구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모든 것이 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지현이 온다는 것은 추선우에게 변고가 생겼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바로 주 타깃이 움직이니, 이곳으로 모든 인원을 다 투입시켜도 될 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움직여야겠습니다.”
정구석이 말했고, 고민국은 그 즉시 어디론가 전화하였다. 그리고 정구석도 전화를 바로 하였다.
‘띠리리리’
“무슨 일이냐?”
고민국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늙은 회장에게 연락하였다. 지금까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에 늙은 회장의 힘이 더 뒷받침된다면, 여기서 모든 것을 다 끝낼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연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 곧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잘됐군. 내가 몇 놈을 보내 줄 테니, 잘 해결해라.”
“네. 회장님.”
“참. 그곳에 수만이가 가 있다. 그 놈이라면 이창민의 딸은 물론, 설장호와 추선우의 목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네의 부하나 내가 보내주는 놈들이 혹여, 수만이가 하는 일에 방해만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라.”
“네. 회장님.”
고민국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장호에게 당한 것을 이제 모두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인 듯,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띠리리리’
곧 정구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래. 애들은 준비되었나?”
-네 회장님.“
백태였다. 그는 아직 건재하였다. 다른 회장들에 비해, 정구석에게는 백태라는 아주 든든한 경호원이
남아있었다.
“그럼 곧바로 병원으로 보내라. 회장님께서도 지원을 해 주시니, 이번 기회에 모조리 다 쓸어내야겠다.”
-굳이…….우리 쪽 애들을 다 모아서 들어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구석은 한 번에 다 몰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태는 그와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인가?”
-이미 많은 인원이 병원에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 쪽에서도 지원군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 인원만도 이미 백여명에 이르게 될지 모릅니다. 오히려…….그 많은
인원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정구석은 백태의 말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승리 확률은 높다. 하지만
백태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정구석이 다시 물었다.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명령에 다른 뜻을 내비칠 리 없기에 물은 것이다.
-한쪽에서 지원하는 것이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쪽과 고회장님쪽, 그리고 우회장님쪽도
사람을 보내면, 모두가 다른 쪽에서 모여드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지.”
-그럼. 오히려 적이 누군지, 또 서로 타깃을 죽이려 달려들다, 서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정구석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늙은 회장이 고민국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다.
타깃을 향해 다가서는 그의 경호원을 그 어떤 누구도 방해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하지만 백태의 말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과연 그 말이 제대로 들어갈 지가 의문이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알았다. 일단 우리 애들은 대기시켜둬라.”
-네. 회장님.“
정구석은 백태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고민국에게 백태의 말을 전했다.
“부럽습니다.”
고민국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었지만, 또 다시 백태라는 충신에 대해 부러움을 나타냈다.
“고회장님께서도 백태같은 충신하나는 거느리지 그러셨습니까?”
정구석은 고민국을 보며 말했다. 고민국도 충신을 거느리고 있었다. 바로 이지광이었다. 이지광은
태정민을 거의 잡았지만, 추선우에 의해 제압당해 국정원으로 끌려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잡은 인물이 석강수지만, 그는 충신이라기보다, 관리하기 힘든 충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끌어들인 인물. 바로 지용석이었다. 태정민과 같은 청와대 경호팀장이며,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충신이 아니라, 돈으로 의해 최근에 끌어들인 인물이기에, 그리 믿을만한 구석은
되지 못했다.
“추선우씨 보호자분.”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는데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추선우가 나오자, 간호사가
그의 보호자를 찾았다.
“네.”
그리고 설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올 수 있으니 보호자분께서 곁에 계셔
주십시오.”
간호사의 말을 듣고, 설장호는 수술 침대에 누워서 병원복도 형광등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추선우를 내려
보았다.
“괜찮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은 맞을 만 하네요. 괜찮습니다.”
팔에 맞은 총알만을 제거하는 것이기에 부분마취를 중점으로 하였고,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미약한 전신마취도 함께 해둔 상황이었지만, 추선우는 설장호의 말을 제대로 듣고, 답을 하였다.
“마취가 덜 풀린 모양이군. 총을 맞고 괜찮다고 하니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웃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부터 자네는 이 일에 손을 떼게. 우리가 모두 해결하겠네.”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는 잠시 잡은 추선우의 손을 다시 놓아주며 말했고, 추선우는 자신의 손을
벗어나는 설장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총 맞고 물러나면 억울하죠. 실장님이라면 그냥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추선우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설장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그를 보며 매서운 눈빛을
거두었다.
도저히 이해하려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추선우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고 있었다.
“쉬어라. 너의 병실까지 같이 가주지 못한다.”
“괜찮습니다. 죽을병에 걸려 수술한 것도 아닌데, 일 보십시오.”
설장호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추선우도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두 사람을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말하고 돌아서는 것에 웃음도 나왔지만, 두 사람은 어쩌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의사선생님, 저 일어서서 가도 되겠습니까?”
“네. 뭐. 전신 마취는 아니었으니,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취를 했기에…….”
의사가 전신마취에 대해 말하려던 순간 추선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괜찮겠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주먹 몇 대 맞고 난 뒤의 기분이네요. 괜찮습니다.”
추선우는 이내 두 다리로 일어섰다. 잠시 비틀거림이 있긴 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로섰다.
“말씀드렸듯이, 부분 마취와 함께, 미약한 전신마취도 했던 상황입니다. 마취가 풀리는 시간이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몇 분에서 몇 시간은 힘드실 것입니다.”
의사는 주의사항을 하나하나 일러주었지만, 추선우는 그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팔뚝에 박힌 총알
하나를 빼는데 마치 대수술을 한 것과 같은 대우를 하니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했던 상황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추선우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띵’
추선우가 수술실에서 벗어나며, 홀로 계단으로 향해 계단의 한쪽으로 자리 잡아 앉았을 때, 수술실 앞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늙은 회장의 경호원인 수만이 내렸다.
그는 혼자였다. 늙은 회장이 자신의 수하 몇 명을 함께 보낸다고 고민국에게 말했지만, 수만은 거의
대부분 단독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술실 앞에 서서 좌, 우를 살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수술실 앞에서 수술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만 앉아 있었다.
“참 대단하지 않아? 아무리 팔뚝에 총알이 박혔다고해도, 수술 끝나자마자 마취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걸어가겠다는 환자나. 또 그 환자를 그냥 버려두고 가는 보호자나…….참 대단해.”
수만이 수술실 앞에 서 있을 때, 간호사 두 명이 지나가며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표정을
구겼다.
“저기…….실례하겠습니다.”
수만은 곧 수술실에서 나오는 또 다른 간호사를 잡아 세웠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수술 환자 중에 추선우나, 설장호의 이름이 있습니까?”
“설장호씨란 분은 없었고요. 추선우씨는 조금 전 수술을 끝내고 홀로 걸어가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수만은 인상을 더욱 더 찌푸린 채, 답하였고, 곧 몸을 돌려 세웠다.
“늦었군. 운이 좋은 모양이구나. 추선우.”
수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동하기 전,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술실에 멈추는 엘리베이터는 하나, 그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움직였다는 말이군.”
수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수술실에 멈추는 엘리베이터가 단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좌, 우. 방향을 모두 살폈지만 엘리베이터는 단 하나였다.
“저기. 수술실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는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까?”
수만은 주변을 둘러보다, 간호사가 지나가자 그녀에게 물었다.
“네. 보호자분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이곳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중증환자등 대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이동하는 환자들은 수술실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합니다.”
큰 병원에서 수술실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고작 하나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수술실 내부로
엘리베이터가 더 마련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후,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이해가고 있는 수만이었다.
“그럼. 대부분 간단한 수술을 마친 환자는…….”
“저기 외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병실로 이동합니다.”
“계단을 이용한 것이군.”
곧바로 추선우가 계단을 이용하여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만은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다시 몸을 돌려 좌, 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좌측으로 뻗어있는 복도를 따라 움직였고, 그 끝에 있는
비상계단을 보았다.
“네 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나를 만난다는 것을 감사해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지옥을 보게 될
테니 말이야.”
문 앞에 선, 수만은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서서히 문을 열었다.
‘띠리리리’
설장호는 1 층 로비에 도착하였고, 그 즉시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원장님.”
국정원장이었다.
-어딘가? 지금 대원들을 데리고 병원에 도착하였네.-
“네? 원장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설장호는 걸음을 멈추며 전방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병원 정문에는 국정원장이 서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듯 한 그의 얼굴이었다.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말로 인하여 생겨버린 오해가 아직도
그를 보는 눈빛을 그리 반갑게 하지 않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신을 돕고자 직접 찾아온 그를 보며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앞 쪽입니다.”
설장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말했고, 곧 원장의 시선도 그에게로 향하였다.
“국정원장님.”
원장이 설장호를 보고 있을 때, 그의 옆으로 강서진이 다가서며 그를 불렀다.
“오랜만이군.”
“네. 그보다 여긴…….”
“설 실장이 지원요청을 하였네. 지현양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군. 사실인가?”
국정원장은 설장호를 계속하여 보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검찰 쪽은 물론 지원이 가능한 곳에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국정원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몰랐었네. 하지만 설 실장이 나에게 처음으로 요청한 지원이네. 당연히 움직여야하지 않겠나.”
국정원장의 시선은 여전히 설장호에게 향해있었다. 그리고 국정원장의 뒤로, 대북전담팀장과 함께, 몇
명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설장호는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는 듯,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자네가 믿을 만한 사람들은 이놈들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일세.-
원장은 저 멀리 서 있는 설장호에게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를 통해 말했다. 그러자 설장호의 시선은
흔들거렸고, 입가에 미소가 더 짙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대북전담팀장님은 알겠지만, 나머지 분들은 연세가 좀 계신 듯한데…….”
“설장호의 생명줄들이지.”
“네? 실장님의 생명줄요?”
강서진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을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했습니다.”
설장호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군. 자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이제 그만 잊게.”
설장호의 말을 들은 국정원장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국정원장, 하지만 그의
작은 키에서 나오는 기세는 아마 설장호가 따라가기 힘든 기세일 수도 있었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의 지원으로 병원 내, 외부는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 로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태정민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서지호였다.
“약 10 분 후 도착이다. 괜찮겠나?”
“이미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으셨는데, 괜찮고 말고 할 것이 무엇입니까?”
태정민은 서지호에게 거친 어투로 말했다.
“나에게 너무 거칠게 말하지 마라, 나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야.”
서지호는 청와대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자신의 목은 내놓고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세 명의 민간인은 꼭 보호해야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었다.
“아직 추선우씨에게 총을 쏜 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놈을 죽이긴 하였지만, 그 한 놈이
끝이 아닐 것이기에 더욱 더 불안한 것입니다.”
태정민은 병원상황을 다시 한 번 서지호에게 알렸다. 그 만큼 위험요소가 남아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여
들어서라는 말이었다.
“걱정마라. 청와대 경호실 최고 요원들로만 구성하여 경호중이다. 이건 뭐. 대통령님 이동하는 것보다 더
엄한 경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서지호는 조금 과장된 말로 표현하였지만, 그만큼 경호에 만전을 기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설 실장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지금 국정원장님도 도착해 있습니다.
국정원장님이 대단위 국정원 대원들을 배치시키는 바람에 한결 편하기는 합니다.”
“…….”
태정민은 국정원장이 현장에 있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서지호의 반응은 의외였다. 국정원장이
도착했다면 아주 큰 지원군이 온 것인데도, 서지호의 표정은 의외로 더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곧 도착이다, 가서보자.”
서지호는 더 이상 통화를 끌지 않은 채,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이 탄 차량이 아닌 뒤 차량으로 함께
움직이는 세 명을 보는 듯 뒤돌아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절대 세 명의 민간인의 피해는 없어야한다. 죽어도 너희들이 죽어.
알았는가?”
-네.-
서지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청와대 경호원들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경호원들과
함께 있는 세 명의 민간인에게는 일체 들리지 않았다.
“곧 지현이 도착한다는 전화입니다.”
태정민은 설장호에게 다가가 지현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일부는 정문, 그리고 일부는 로비를 담당하고, 주변 수색을 강화한다. 그리고 강 검사는 가서 추선우를
데리고 로비로 내려와.”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의 도착에 맞춰, 그녀와 함께 오는 은주와 미희의 안전까지 고려하여 최고의 방어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강서진에게 명령 내렸다.
“참. 지금 추선우는 병실에 없을 것이다.”
“네? 그럼 어디에?”
“어딘가로 떠돌고 있겠지. 찾아서 데리고 와.”
설장호의 말이지만, 참으로 듣기 싫은 말이었다. 강서진은 그저 말을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는 뜻이 담긴
설장호의 말이 거북하게 들려왔다.
“강 검사님…….웁.”
추선우가 강서진을 부르려고 할 때, 강서진은 그의 품으로 빠르게 다가서며 그를 안은 채, 소파에 몸을
눕혔고, 그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키스를 하기 시작하였다.
“미…….안합니다.”
잠시 후,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저들로부터 저를 보호하고자 하신 행동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추선우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 추선우는 지금 상황에서 그들과 부딪힌다면, 승산 없는
싸움이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이 갑작스러웠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떼어내지도 않았고, 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우리 쪽 사람들과 합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서둘러 움직이겠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말투가 군대식으로 변하셨습니까? 너무 어색한데요.”
그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당황하거나,
긴장하거나, 혹은 겁이 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대식 말투가 나오는 사람이 꽤 많다.
그리고 지금 강서진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추선우에게 딱딱한 군대식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띵’
그리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는 3 층에 도착하였고, 멈추었다.
“!!!”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추선우와 강서진은 놀란 눈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문은 스스르 열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없는데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수만과 함께 부하들이 내부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내부는 아무도 없었다.
“와우. 화끈하네.”
“!!!”
그리고 반대편 엘리베이터, 그곳에는 그 앞을 지나쳐가던 환자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확인해!”
수만이 소리쳤다. 그리고 부하들이 빠르게 이동하였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있었다.
환자들이 환호성을 지른 이유는 또 다시 강서진이 추선우를 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3 층에 머물자, 혹여 그들과 맞닥들일 것을 우려하여 또 다시 연극을 한 것이지만, 이번엔
환자들의 눈만 호강시켜주는 행동이었다.
그 후, 수만의 큰 목소리가 들리자, 강서진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고, 그의 부하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 전, 문이 완전히 닫혔다.
“제길!”
“어서 내려간다!”
수만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부하들이 서둘러 계단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려갔고, 수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서 멈추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1 층…….”
엘리베이터는 1 층에서 멈췄다. 수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뒤, 계단을 이용하여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그 엘리베이터 앞에는 태정민과 함께 박태식이 서 있었다.
“어? 찾으셨네요.”
태정민이 추선우를 보며 말했지만, 강서진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계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계단에서 내려오는 놈들을 잡아!”
“네?”
“어서!”
“네.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소리치자, 두 사람은 영문을 알지 못했지만, 이유 없이 그녀가 소리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계단 앞으로 이동하였다.
‘덜컥!’
곧 비상계단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태정민과 함께 박태식이 그들을 보며 섰다.
“이 놈들입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한 놈이 더 있다. 네 명이 추선우씨의 목을 노리고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
그녀의 큰 목소리에 1 층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하였다.
“젠장!”
세 사내는 황급히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태정민이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발로 강하게 밀어 차며 닫은 후, 그 앞으로 이동하였다.
“간이 부어도 제대로 부었지. 지금 이 상황에서 또 다시 타깃을 노려?”
태정민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했고, 곧 비상계단으로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세 명의
사내는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서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멈칫’
그리고 비상계단을 통해 1 층으로 내려오던 수만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비상계단 외부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비상계단 앞에서 세 명의 사내를 제압한 후, 태정민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병원으로 들어선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서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이 내용을 알렸고,
설장호는 강서진과 함께 있는 추선우를 향해 걸었다.
“추선우를 경호하며 지금 도착하는 청와대 차량으로 이동한다.”
설장호의 명령으로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추선우를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그제야 잡고 있던 추선우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아당겼다.
“강서진. 함께 움직인다.”
설장호가 명령 내렸다. 비단 추선우의 행동을 보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 자칫 강서진도
위험할 수 있다고 여겨 그녀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추선우. 움직여라.”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는 병원로비 입구를 보았다. 바로 앞으로 청와대에서 나온 차량으로 보이는 세단이
서 있었고, 그 안에서 곧 서지호가 내리고 있었다.
“저…….차량입니까?”
“아직 몰라요. 서 실장이 알려줄 것입니다.”
병원정문을 향해 다가설수록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긴장된 시선 그대로였다. 그리고 곧 서지호가
차량 한 대의 문을 열어주었다.
“저 차량이군요. 서둘러 바로 탑승하겠습니다.”
서지호가 문을 열어주자 강서진이 말했고, 두 사람은 국정원 대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곧바로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모두 엄호!”
서지호가 소리쳤고, 추선우가 탈 차량을 둘러싸며 일제히 주변을 경계하여섰다. 하지만 외부는 어둡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기에 그 틈에 나오는 이들이 있다면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추선우 나옵니다.”
곧 추선우가 병원로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추선우!?”
그리고 그 모습은 고민국과 정구석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고, 두 사람은 놀란 눈을 하였다. 즉 수만이
실패했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회장님께서 노발대발 하실 것입니다. 서둘러 저 놈이라도 잡아내야 합니다.”
정구석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차량에서 내려, 자신이 직접 총으로 추선우를 죽이려 하였다.
‘탁.’
하지만 고민국이 그를 잡아 세웠다.
“위험한 행동은 곧 최 회장님과 같은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기다리십시오. 이미 이 병원에 들어선 우리
쪽 사람만도 수두룩합니다. 그 놈들이 그냥 병원에 앉아서 쉬어라고 들여보낸 것은 아닙니다.”
고민국은 의외로 여유가 있었다. 이미 추선우가 청와대 차량에 몸을 싣기 바로 전이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시작해.”
그리고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한 후, 딱 한마디만을 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있는 주차장 반대편 쪽 주차장에서 트럭 한 대가 시동을 걸었고, 곧 라이트를 아주 밝게
비추며 로비 정문을 보았다.
“뭐야!”
서지호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트럭은 급발진을 하며 로비 앞에 주차된 차량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로비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던 청와대 차량은
급발진한 트럭에 의해 강한 충돌을 일으키며, 그대로 밀려나 반대편 주차장까지 쓸고 지나쳐갔다.
추선우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강서진의 눈동자도 심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서지호의 눈동자는
떨림이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곧 설장호와 태정민도 나왔다. 그리고 설장호가 물었다.
“시간 없습니다. 일단 추선우씨와 설 실장님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겠습니다.”
서지호는 설장호에게 말했다. 그러자 강서진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며 멍한 눈으로
트럭을 보고 있는 추선우의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뒤를…….부탁드립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국정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곧 국정원장과 함께 왔던 설장호의
동기들도 모두 그를 향해 웃었다.
서지호의 안내로 그들은 병원 뒤쪽, 응급실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청와대 차량임을
나타내는 차량 세 대가 있었다.
“삼촌!”
추선우는 조금 전의 일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멍하니 끌려오고 있었고, 곧 지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시선을 돌렸다.
“지현아…….”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단 며칠 만에 보는 것이지만,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동생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네, 추선우.”
곧 은주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은주는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이미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에 잠겨 있었다.
미희는 아무런 말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은주는 물론, 지금까지
추선우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강서진마저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야?”
설장호가 물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서둘겠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의해 모두 차량에 탑승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현은 추선우의 품으로 안겼다. 비록 한
쪽 팔이 총알에 맞아 힘을 받을 수 없지만, 추선우는 지현을 한 손으로 안아 올린 뒤, 차량에 탑승하였다.
설장호와 태정민은 서지호와 함께 차량에 탔고, 지현과 은주, 미희가 한 차량에 탔다. 그리고 강서진은
청와대 경호원들과 함께 마지막 차량에 승차한 후, 병원을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박형사…….”
강서진은 병원응급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박태식이 보이지 않아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잠시 대기.”
박태식은 나머지 형사들을 모두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해당지역을 손짓으로 가리켰고, 모든 형사들이
총알을 장전한 후,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픽픽픽픽!“
“!!!”
순식간이었다. 네 명의 형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박태식과
살아남은 한 명의 형사가 차량으로 몸을 숨겼다.
“대체 어디서 날아온 총알입니까?”
형사가 물었다.
“낸들 알겠냐.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찌 한 것인지 원.”
박태식은 차량들 틈에 몸을 숨긴 후, 전방을 주시하여 보며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조용한 가운데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죽어있는 형사들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서서히 이동한다.”
박태식은 전방을 주시하며 형사에게 말했고, 형사도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이동하였다.
‘픽’
‘퍽!’
“!!!”
원샷 원킬이라는 말이 실감나고 있는 박태식이었다. 차량들이 많았고, 이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확하게
단 한 발의 총알로 형사의 머리를 그대로 명중시켰다.
박태식은 차량들 틈에 몸을 완전히 붙였다. 자신이 지금 상대하는 인물이 어느 정도의 저격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이미 확인이 절로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제길…….”
박태식은 쓴 소리를 내 뱉으며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어딘가?”
설장호는 생각지 못한 박태식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지하 주차장입니다. 그리고 일이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형사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
설장호는 그의 몇 마디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병원의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주 타깃을 데리고 이동하는 길이기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탈칵’
“…….”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뒤통수에서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추선우…….어디에 있나?”
수만이었다. 지금까지 수만 혼자, 형사들을 모조리 다 눕히고 있었다.
“어쩐다…….이미 이곳을 벗어났는데 말이야.”
“벗어나? 허튼수작하면 머리통 날아간다. 어디에 있나?”
“내가 죽게 생겼는데 거짓말을 하겠어? 1 층 로비에서 청와대 차량을 이용하여 벗어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1 층으로 가보시던가.”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에 총이 겨눠져 있지만, 떨지 않은 채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수만은 잠시 생각한
후, 박태식을 일으켜 세운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1 층으로 간다.”
수만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박태식에게 아주 반가운 말이었다. 설장호가 이미 1 층에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1 층으로 가기만 하면 자신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1 층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수만은 박태식의 뒤통수에 총을 겨눈 채, 서서히 걸어 나왔다.
설장호의 말처럼 1 층에는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형사들과 청와대
경호원 소속 인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형사기에, 되도록 형사들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국정원장은 박태식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수만도 보았다. 로비에 있는 국정원소속 대원들
모두가 자신을 향해 보고 서 있기만 하였다.
“원장님…….이 놈 간이 부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추선우를 찾고 있어요. 이 놈 제정신 아니죠?”
박태식은 자신의 머리에는 총이 겨눠져 있을 지언정 지금의 상황에서도 추선우를 찾는 그가 도저히
이해가지 않아 국정원장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왜 그런 눈들이십니까? 어서…….저를 도와주셔야죠.”
박태식이 이상함을 느낀 듯, 국정원장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과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거야?”
한 편. 병원을 안전하게 벗어난 후, 설장호가 서지호에게 물었다.
“일단 대통령님께서 따로 마련해주신 곳으로 이동한 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세 대의 차량은 파주로 이동하였다. 군부대가 많은 곳이며, 차현태가 따로 마련해둔 별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설장호도 처음와본 곳이었다. 하지만 서지호와 태정민은 차현태를 경호하면서 몇 번 와본 듯하였다.
세 대의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서지호를 중심으로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네 사람과 일행이 모두
내렸다.
지현은 추선우의 품에 안겨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내가 안을게.”
은주가 그의 앞으로 서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한 쪽 팔로만 그녀를 안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보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온 지현을 품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서지호의 말에 모두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추선우는 지현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고, 은주와 미희가 함께
따라 들어섰다.
그리고 강서진의 눈빛이 그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강 검사님.”
“응?”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부르자, 강서진이 당황한 듯, 그를 보며 답했다.
“지현을 보니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추선우씨가 걱정되어 보는 것입니까?”
그녀의 눈빛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물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무슨. 그냥이야. 참 대단한 사람들 같아서 본거야.”
강서진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도록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방으로
향하였다.
강서진의 말을 모두가 이해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민간인이면서 그 누구보다 더
강하게 버텨나가고 있는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앉으십시오.”
서지호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모두를 다른 방으로 불렀다.
“추선우씨가 나오면 함께 듣죠.”
강서진이 말했다.
“그래. 추선우를 제외하고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잠시 기다리자.”
설장호가 강서진의 말을 거들었다.
“국정원장님!”
한 편. 병원에서는 국정원장이 총에 맞아 뒤로 밀려나 쓰러졌고,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그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
박태식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의 행동이 이상하여 그를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수만을 향해
정조준을 하고 있었고, 국정원소속 대원들도 자신이 아닌 그를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국정원장은 자칫 잘 못된 판단에 의해 박태식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하지만…….
수만의 손에 들린 방아쇠는 여전히 박태식의 머리에 겨누어져있었다. 즉. 수만이 방아쇠를 당겨
국정원장을 쏜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
설장호는 그의 위치를 물었다. 지난 성남펜션 이후, 그의 행방을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위치가 궁금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자네에게 이 문자를 바로 보내려했는데, 그렇게 되면 내
자존심이 또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좀 돌리고 돌려보려 하다, 서지호가 떠 올라
문자를 발송했는데, 어찌 그 문자를 보고 나에게 다시 답이 오는 시간이 3 시간이나 넘게 걸리는가?-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의 전화기에 수신된 문자가 찍힌 시간을 보았다. 그리고 서지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세 시간 전에 수신된 문자라면 충분히 설장호에게 미리 알렸고, 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이 내용을 이제야 그에게 알려준 것이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왜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인가? 넌 그들과 손잡은 인간이다.
그들이 잘돼야 너에게 떨어지는…….”
-내가 고작 그 돈 몇 푼을 받고자 내 집과 식구들과도 같았던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모조리 죽기를
바라겠나. 그리고 국정원장 노인네도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이래나 저래나 나를 국정원에 들어서게
만든 사람이니 말이야.-
석강수는 국정원소속 전 대원으로써 마지막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었다는 뜻을 말했다.
“그들…….그들은 어디에 있나?”
-이거 왜 이르는 건가? 내가 하나를 알려줬다고 아예 통째로 다 벗겨먹을 생각인가? 딱 여기까지네, 난
그들에게 돈을 받았고, 그 대가로 지금 자네가 물은 것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네.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날날을 기대하겠네.-
석강수는 전화를 끊었다. 설장호는 끊어진 전화기를 보고 있었다.
“제길…….”
그리고 한 마디 쓴 소리를 내 뱉은 후,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너의 말이 맞군. 석강수였어. 그 놈이 나에게 아주 큰 빚을 던져주고 간 것이다.”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했다.
‘띠리리리’
한 편. 수만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늙은 회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 수만입니다.”
그리고 그의 전화를 받은 다른 경호원이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회장님.”
그리고 때마침 병원에서 지현의 죽음을 목격한 듯,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서는 고민국과
정구석이이었다.
회장은 전화를 먼저 받느라, 두 사람에게는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주었다.
회장은 수만의 전화를 받으면서 조금씩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고민국과 정구석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의 날카로운 표정에 당황하지 않았다. 무슨 전화인지는 모르지만, 늙은 회장이 아직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풀어주기 위한 답변으로 지현의 죽음을 알리려는 두 사람이었다.
“알았다. 일단 돌아와라. 그리고 그 형사 놈의 목은 쳐라.”
회장은 수만에게 명령을 내린 뒤, 전화를 다시 경호원에게 건네주었다.
“어찌되었나?”
늙은 회장은 수만에게서 들은 정보를 두 사람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병원내용을 물었다.
“무슨 내용으로 통화를 하신지는 모르지만, 그 표정…….저희들이 풀어드리겠습니다.”
“나의 표정을 풀어준다? 그래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자.”
늙은 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노려보았다.
“조금 전, 병원에서 우리의 주 타깃인 이창민 대사의 딸, 이지현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
‘창창!’
“!!!”
고민국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늙은 회장이 손을 들었고, 그 순간 그의 경호원 두 명이 장검을 들어 두
사람의 목에 들이밀었다.
“회…….회장님.”
두 사람은 늙은 회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떨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지현이 죽어? 직접 확인하였나?”
“그…….근처에 사람이 너무 많아 직접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차량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렸고,
내부를 박살내버렸으니, 살아날 가능성은…….”
“그 차안에, 지현이라는 계집이 없다면? 그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나?”
“!!!”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늙은 회장의 말처럼 그런 가능성은 생각지 않았다. 그저 추선우가
해당차량에 탑승하려는 것을 보고, 지레짐작한 그들만의 생각이었다.
“너희들 목은 몇 개라도 되는 것 같구나. 내가 지금까지 이 조직을 이끌어 오면서 너희들 같은 머저리는
처음 본다.”
회장의 거침없는 말은 두 사람의 귀에 쏙쏙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 자신들이 하는 모든 말은 변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집은 벗어났다. 그리고 설장호와 추선우도 벗어났다. 우리가 잡아야 할 놈들은 단 한 놈도 잡지
못하고, 모두 벗어났다.”
“!!!”
다시 놀란 눈들이었다. 모조리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작전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고도 이들은 좋다고 실실거리며 회장에게 온 것이었다.
“정구석.”
“네. 회장님.”
늙은 회장은 전국의 주먹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구석을 불렀다.
“네가 데리고 있는 놈 중에 백태라고 있나?”
“네. 회장님.”
“그 놈을 나에게 데리고 와라. 내가 긴히 쓸 데가 있다.”
“아…….알겠습니다.”
정구석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백태를 알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백태는 지방
건달로 지내고 있었고, 정구석의 눈에 띠어 그의 오른팔이 된 인물이었다.
그리고 늙은 회장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민국.”
이어서 고민국도 불렀다.
“네. 회장님.”
“석강수. 그 놈은 어디에 있는가?”
“!!!”
백태를 말하는 것도 놀라웠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란 말이 들려왔다.
“그…….그 놈은.”
“그 놈을 만나고 싶다. 데리고 와라.”
“아…….알겠습니다.”
늙은 회장은 부탁하는 어투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명령이다. 그리고 그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지금 자신들의 목에 와 닿아있는 날카로운 장검의 칼날뿐이었다.
“그만 돌아가라. 병원에서의 일은 용서하겠다.”
자칫, 지금 당장 목이 떨어져 나갈 위기였다. 하지만 용서가 돌아왔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용서지만,
늙은 회장은 두 사람을 용서하는 대신, 그 두 사람에게 있어 충신이나, 뛰어난 용병킬러였던 백태와
석강수를 그 앞에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민국에 비해 정구석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백태는 언제라도 부르면 올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석강수는 아니었다. 그는 고민국의 부름을 이미 몇 차례 거절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낭패군.”
늙은 회장의 집에서 벗어난 고민국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연락해 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그 놈이 의외로 제 발로 잘 찾아올지 말입니다.”
정구석이 그를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말 그대로 말 뿐이었다. 자신이 직접 겪는 일이 아니기에 말은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고민국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석강수에게 연락하였다.
-이래저래 실패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보기좋게 한 방 먹은 듯 하던데…….어찌 괜찮으십니까?-
석강수는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비꼬는 듯한 억양으로 물었다. 당장이라도 그가 앞에 있었다면 목을
비틀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는 그의 목은커녕, 손목도 잡기 힘든 판국이었다.
“시간되면 만났으면 하네.”
-이유는요?-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나를 만나고자 한다? 누굴까요? 설장호와 추선우가 아니라면 굳이 나를 만나자고 할 놈은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회장님이시네. 회장님께서 자네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시니 시간을 내주게.”
-회장님? 어떤 회장을 말하는 것입니까? 듣자하니 이쪽저쪽 다들 회장이라 부르던데…….-
“우리 조직을 결성하신 분이시네.”
-!!!-
고민국과 통화를 시작한 이례 처음으로 석강수가 놀란 눈을 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네 명의 회장위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였다. 하지만 그가 직접 자신을 찾는 다는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언제…….가면 됩니까?-
고민국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석강수가 퇴짜를 놓는다면 이래저래 자신의 입지는
좁아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석강수가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고민국은 그 즉시 만날 것을 제안했고, 석강수도 그 제안에 따랐다.
정구석도 백태에게 연락하였다. 백태는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고, 정구석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찰라,
늙은 회장이 자신을 보자는 말에 잠시 당황하긴 하였지만, 이내 정구석의 명령으로 늙은 회장의집으로
향하였다.
“저기 오는군.”
약 1 시간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백태가 먼저 도착하였고, 정구석이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왜…….이곳으로?”
백태는 늙은 회장을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자신을 부른 늙은 회장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때마침 석강수도 오는군.”
백태에 이어 석강수도 도착하고 있었다. 그는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온 듯, 저 아래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강심장이야, 자칫 자신의 얼굴이 지명수배 되어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다니 말이야.”
그의 행동에 두 사람은 혀를 차고, 백태는 석강수를 노려보듯 하였다.
“회…….회장님!”
고민국은 들어서자마자 이미 피가 묻힌 바닥을 보았다. 하지만 정구석은 치워지고 없었다.
“민국아.”
“네. 회장님.”
“지금 우리 조직에 몸담고 있는 놈들 중, 국가부처에서 활동이 가능한 놈은 몇 놈이나 되는가?”
“대략…….백여 명쯤 됩니다.”
고민국은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피도 이 바닥에 뿌려질 것이라 생각하며 신중하게
답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라…….”
“네. 회장님.”
“내가 처음 너에게 이 직책을 줄 때, 그 때 우리가 가용하능한 인물이 몇 명이나 되었는가?”
“…….”
이수호의 물음에 고민국의 입이 닫혔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말하라.”
“7 천 명이었습니다.”
“그래 7 천명이었지, 정확하게 내 기억 속에도 7 천명이었다. 그런데 15 년 사이 백 명으로 줄었다.
이유가 무엇이겠나?”
이수호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가 다가올수록 고민국의 눈동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무능한 놈을 그 자리에 앉혀 둘 수 없게 되었다.”
“회…….회장님.”
이수호는 고민국의 바로 앞으로 섰다. 그리고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고민국은 그 웃음을
받을 수 없었다.
이수호의 옆으로 다가서는 경호원, 그는 정구석의 목을 칠 때와 같이 시퍼런 날이 서 있는 장검을 들어
고민국의 목을 향해 들이밀었다.
“수고했다.”
이수호의 짧은 한마디가 고민국의 기억에 남는 마지막 말이 되었다.
석강수는 또 다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15 년이라는 세월동안 자신과 함께 한 이들의 목을 너무나 쉽게
쳐 내는 것이 놀라웠다.
“이제부터 고민국과 우수광이 관리하였던 것은 석강수. 자네가 한다.”
“!!!”
석강수는 물론 백태도 놀란 눈이었다. 백태는 10 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조직과 함께했다. 하지만 석강수는
달랐다. 그는 한 때 이 조직을 잡고자 움직였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에게 조직의 핵심을 맡기는 것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또 한, 아직 우수광과 최기수는 살아있다. 그들이 살아있는 와중에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하겠는가?”
이수호가 석강수의 뒤로 서며 물었다.
석강수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하니 할 수 없었다. 뭐라 시원스러운 답을 하고 싶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겠다. 지금부터 설장호와 추선우. 그리고 이지현을
잡아라.”
“알겠습니다.”
석강수는 결정지었다. 자신의 앞 길이 어찌 열릴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수호의 말을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회장에게 정식으로 인사올려라.”
“네. 회장님.”
백태와 석강수에게 확답을 들은 후, 이수호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정식으로 두 사람을 소개하였다.
조금 전까지 석강수에게 장검을 들이밀려고 했던 경호원들도 이수호의 한 마디에 다른 말없이 그의 뜻을
받았고, 장검을 치운 뒤,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자네들에게 충신을 붙여 줄 것이네, 잘 활용하게.”
이수호는 두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수호가 거느리는 경호원들은 이 네 명 외에도 더 존재한다. 다만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네 명이 그를 곁에서 보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앉아서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만, 지금의 사정으로는 어렵고, 일이 해결되면 한 잔
하도록 하지.”
“네. 회장님.”
이수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여인의 살결을 만지며 말했고, 두 사람은 곧 그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자주 뵐 듯 합니다.”
백태가 먼저 석강수에게 악수를 권하였다. 백태는 지난 날 삼성역에서 설장호와 석강수가 힘을 겨루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 뒤로 그와 단 둘이 만나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정구석이
아닌 고민국과 손을 잡으면서 단 둘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버렸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던 두 인물을 대신하여 직접 그 자리에 앉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그 권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난…….한 자리에 그리 오래 앉아있는 성격도 아니고, 무엇보다 과거에
당신들을 잡고자 설치고 다녔던 놈이니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백태와 달리 석강수는 그의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이수호에 의해 아주 큰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것이 훗 날 어떤 일을 만들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특히. 석강수에게 주어진 힘은, 누구를 위해, 어느곳을 위해 사용될지는 오로지 석강수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최기수는 어찌되었는가?”
이수호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곧. 처리 될 것입니다.”
“빨리 처리해라.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네. 회장님.”
이수호는 최기수마저 목을 떨굴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기에 이수호가
강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한 어찌 보면 지금 현재로써는 최기수가 가장 안전한 곳에 있기도 하였다.
제 아무리 권력이 대단하다는 이수호지만, 그가 들어서지 못하는 곳에 있으니, 최기수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나를 내 보내 줘!”
하지만 그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면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임을 모르기에, 감금 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우수광은 어찌 되었나?”
“지금 이쪽으로 오라 하겠습니다.”
고민국과 정구석의 목을 떨구었으니, 우수광도 마저 쳐 내려는 이수호였다.
“회장님. 우수광이 왔습니다.”
“그래? 수고를 덜어주는군.”
이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수광이 들어올 문을 향해 보며 섰다.
“회장님.”
우수광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머리를 숙이며 그에게 안부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수호는 그저 웃으며
그를 보고만 있었다.
“왜 혼자인가?”
이수호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아 네…….고회장과 정 회장이 먼저 이곳에 와 있겠다며 저 또 한 이쪽으로 오라고 하여…….”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군. 난 모르고 있었네. 그럼 우회장을 고회장과 정 회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게.”
“네. 회장님.”
경호원이 답했고, 우수광도 그에게 인사한 후, 다시 방을 나왔다.
“고회장과 정 회장은 어디에 있소?”
우수광은 길을 안내하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따라오시면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우수광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갔고, 곧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십시오.”
“알았네. 수고하게.”
우수광은 그의 안내에 의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너무 어두컴컴한 내부를 보며 놀라 멈칫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두 회장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불을 끄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회장님께서 오시면 불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요?”
우수광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벽을 더듬거렸고, 곧 스위치를 눌렀다.
“!!!”
불이 밝혀지며 우수광의 눈앞에 목에 한 줄의 선명한 선을 긋고 죽어 있는 고민국과 정구석이 보였다.
“어…….찌된 일이요?”
“두 분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서둘러 보내드리겠습니다.”
우수광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 흔들거리는 눈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경호원의 장검이
그의 머리 위부터 허리까지 일직선상으로 긋고 내려오면서 우수광의 목숨 줄도 끊어 놓았다.
‘픽픽픽!’
“!!!”
그 순간 대북전담팀장인 조동민 이끄는 국정원소속 대원들이 주차장으로 내려와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국정원장이 죽어 가는데 복수라도 하려고 내려온 모양이군.”
여형석이 몸을 숨기며 말했고, 곧 모두가 차량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수만은 달랐다. 그는 숨는 것이 아니라 박태식을 본 후,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다.
“넌 내 방패가 된다.”
수만은 이동 중, 박태식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곧 조동민의 시야에 들어왔다.
‘픽!’
“으악!”
“…….”
수만은 박태식을 방패로 생각하며 그를 앞세워 이동하였다. 하지만 수만의 생각과는 달리 조동민은
박태식을 방패삼아 일어난 수만을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박태식의 팔뚝을 관통하여 지나치며, 그 뒤에 있던 수만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수만은 쓴 소리를 내 뱉으며 조동민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팔을 관통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박태식을 보며 총구를 겨누었다.
“필요 없는 방패는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수만이 그를 보며 말했고, 박태식의 표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웃으며 수만을 보고 있었다.
‘픽픽!’
‘척!’
수만이 박태식의 머리에 총알을 쏘려는 순간, 조동민은 다시 수차례 총을 더 쏘았고, 수만이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도록 하였다.
박태식은 그 틈에 차량들 틈으로 몸을 이끌고 숨어들었고, 수만은 자신의 방패였던 박태식을 놓치면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엄호하라!”
수만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세 명은 국정원 소속 대원들을 상대로 총을 쏘며 수만이 뒤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한 놈도 내 보내지 마라!”
조동민이 다시 소리치자, 국정원대원들이 세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고, 조동민은 그 틈에
총상을 입은 박태식을 향해 다가섰다.
“괜찮습니까?”
“하하. 총을 쏘고 괜찮냐고 물으니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군요. 고맙습니다. 젠장!”
조동민의 물음에 박태식이 웃으며 말한 뒤,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난 뒤에 곧바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그래도 후배들이 잘 큰모양이군. 아주 저격실력이 대단한데.”
자신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석중은 국정원 대원들을 칭찬하는 말을 하였다.
수만은 옆구리에 입은 상처를 손으로 꽉 누른 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하여 이동하였다.
“멈춰라.”
수만은 총격전이 일고 있는 지역을 간신히 벗어난 후, 자신의 차량에 거의 다 다다랐고, 곧 차 문을
열려고 할 때, 그의 뒤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만은 잠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며 그를 보았다. 그들은 서지호와 함께
온 경호원이며, 세 명이었다.
“박태식 형사와 함께 있지 않군. 내려가서 박형사의 생사를 확인해라.”
“네.”
한 경호원이 두 명의 경호원에게 명령 내렸고, 곧 두 명이 모두 움직이고 난 뒤, 그와 수만만이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 실수하는거다.”
수만은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하고자, 더 꽉 누르면서도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
“총상을 입은 건가? 하하하! 네 놈이 누구의 밑에서 움직이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꽤 당돌하게 행동하더니
꼴좋군.”
경호원은 수만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그가 조금 전 1 층로비에서 했던 행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행동으로 당당하게 나섰지만, 지금은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몸을 움츠려 있는
꼴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넌…….어떤 놈의 명령으로 움직이는가?”
경호원이 그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수만이 그 말에 답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만은 입모양으로 뭔가 중얼거리는 듯 말하였다.
경호원은 그의 입모양을 보았다. 자신에게 뭔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수만은 자신의 차량에 등을 기댄 채, 서서히 몸을 숙였다. 옆구리를 스쳐간 총알에 의해 고통이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죽기 전에 할 말은 하고자 한 모양이군.”
경호원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그와 약 1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선 채, 그를 내려 보았다.
“말해라. 이쯤이면 네가 하는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그의 말에 수만이 고개를 들어 또 다시 입만 서서히 열리며 중얼거리자, 경호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뭐라는거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경호원은 조금 더 앞으로 다가섰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 수가 없잖아. 뭐라는거야!”
그는 소리치며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스윽!’
“!!!”
그 순간, 수만의 손이 아주 빠르게 그의 목을 스쳐지나갔고, 경호원은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서서히
수만의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
그리고 약 3 분 뒤, 조동민과 함께 경호원과 박태식이 현장에 도착하였다.
경호원은 목에 선명한 칼자국을 남기고 죽어있었으며, 수만은 이미 그 곳을 벗어나고 없었다.
“젠장.”
박태식이 쓴 소리를 내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떤 차량도 움직이는 차량이 없었다.
‘띠리리리’
곧 경호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서지호가 연락한 것이다.
“박형사님?”
“박형사님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장철호 대원이 조금 전 사망했습니다.”
“!!!”
서지호는 놀란 눈을 하였고, 방안에 있던 모두가 그를 보았다.
“알았다. 일단 박형사님을 이곳으로 모셔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북전담팀 팀장 조동민이라는 사람도 함께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서지호는 대원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를 보았다.
“조동민이란 사람이 함께 있다고 합니다.”
“같이 와라.”
“네.”
서지호는 설장호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모두 이동합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병원 정리는 현재 남아있는 국정원 대원들께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동민 팀장님은 저희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경호원의 말에 조동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설장호의 명령처럼 병원의 모든 정리는 남은 국정원
대원들이 정리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잠시 전화 좀 바꿔주십시오.”
경호원이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박태식이 말했고, 그는 전화기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설 실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서지호는 박태식의 말에 전화기를 설장호에게 주었다. 박태식은 설장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조금 전
로비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국정원장이 총상을 입은 것과, 수만에 관한 말, 그리고 세 명의 국정원 소속 대원들에 관한 말이었다.
“세 명은 어찌되었나?”
설장호의 물음에 박태식이 조동민을 보았다. 조동민은 세 사람의 사살했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다.
“세 명 모두. 사살하였답니다.”
설장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한 때 둘 도 없는 동기였으며, 서로 뜻을 같이하고 업무를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운명이 어긋나 지금의 적으로 만났지만, 과거의 추억은 모두가 잘 간직한 채,
마무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곧 조동민의 부하대원들이 강석중과 민관호, 여형석의 시체를 수습하고 한 쪽으로 눕혀놓았다.
‘띠리리리’
곧 국정원장의 전화벨도 울렸다.
“어딘가? 무사히 나간 것인가?”
설장호였다. 설장호는 박태식에게 소식을 들은 후, 그에게 바로 연락하였다.
“괜찮으십니까?”
“이런 총알 어디 한, 두 번 맞아보았겠나.”
국정원장은 치료를 받으며 그에게 답했다.
“그건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나이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 현장에 나타나지
마십시오. 국정원장님이 만에 하나 잘 못되면 전 형수님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설장호의 말에 원장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참. 오래 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그래. 이 일이 마무리되면 언제 우리 집사람과 술이나 한잔 하세.”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끊은 후, 설장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더 굳어있었다. 슬픔도 있었고, 괴로움도 있었다.
“국정원장님은 괜찮으시다 합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노인네가 생명줄은 길어. 과거에 수차례 총상을 입었는데도 그 때마다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살아남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우리 일을 마무리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들은 현재 새로운 적이 탄생한 것을 모르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최기수와 연관된 인물들은 이제
없다. 고민국과 정구석, 우수광이 모두 죽었지만, 이들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그 세 명을 찾을 것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들을 찾고자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국정원 인물은 감금실에 들어서자마자, 감금실 안에 있는 마이크를 찾아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CCTV 도 모두 끈 후, 최기수를 향해 다시 보았다.
최기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불안한 눈빛을 하였다.
“이렇게 사셔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 여기서 나가셔도 회장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
최기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말. 그 한마디에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국정원 인물이 누구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회장님이 보낸건가?”
최기수는 주변을 둘러본 뒤, 그를 향해보며 물었다.
“네.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다행이군. 그런 나 좀 데리고 나가주게. 이런 밀페된 좁은 공간에 있자니 미칠 지경이네.”
최기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다.
“정회장님과 고회장님, 그리고 우회장님의 일은 알고 계십니까?”
“무슨...말인가?”
최기수는 그를 보는 기쁜 표정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세 명의 이름에 최기수의 표정이
변하였다.
“최회장님을 기다리다 목이 빠져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
최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를 향해 보았다.
“나...난...아직 할 일이...”
“할 일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조용히 인생 하직 하십시오.”
“!!!”
그는 자신의 안 주머니에서 작은 바늘을 꺼냈다. 최기수를 향해 다가선 뒤, 그를 살며시 껴 안았다.
최기수는 공포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소리친다고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살며시 안고 있는 그를 향해 멍하니 눈동자를 떨고 있을 뿐이었다.
“세 분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십시오. 먼저 가신 분들이 아마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최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기수의 뒷 목으로 뭔가 작은 바늘이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듯 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지도 못한 채,
최기수가 바르를 떨기 시작하자, 국정원 대원은 그를 안은 뒤, 살며시 다시 의자로 데리고 와 의자에
앉혀주었다.
“서서 죽으면 내출혈도 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자에 앉아 몸이라도 편하게 죽어가십시오.”
그는 앉은 채, 더 이상 미동을 하지 않는 최기수를 보며 말한 뒤, 감금실 문을 열고 나섰다.
최기수는 엎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일반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과 같이 앉은 자세로 그렇게 눈을 뜨고
죽었다.
“뭐 좀, 알아내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가 나오자 감금실 앞을 지키던 대원이 물었다.
“알아내고 자시고도 없어. 저렇게 멍하니 앉아서 아무말도 하지 않으니 원...”
그는 대원에게 최기수가 자신이 나올 때까지는 살아있음을 알리려 일부러 그에게 최기수를 보도록 하였다.
대원의 눈에도 최기수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괜한 고생하셨습니다. 가 보십시오.”
대원은 그에게 인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곧 이수호의 경호원이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국정원 관계자였다. 그는 최기수를 만나고 나온 뒤, 곧바로 이수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찌되었는가?”
“최기수는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지금...저 세상으로 보내주고 오는 길입니다.”
“수고했다. 자네는 그대로 국정원을 떠나게, 곧바로 통장으로 돈을 보내주겠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수호는 전화를 끊은 후, 경호원 한 명을 불렀다.
“장구형에게 보답을 해줘라.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면 안되니 제대로 처리해 줘.”
“네. 회장님.”
이수호의 명령을 받은 경호원은 그 길로 곧장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마자, 잠시 후, 수만이
안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녀석들을 놓쳤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다. 그건 네 잘 못이 아니야. 일을 그리 잘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고민국과 정구석의 잘못이지, 가서 쉬어라.”
“네. 회장님.”
이수호는 수만의 잘 못을 용서해주었다.
“수만아.”
“네. 회장님.”
그가 이수호에게 인사한 후, 방을 나서려던 찰라, 이수호는 그를 불렀다.
“몸을 바로 세워보거라.”
이수호의 말에 수만의 표정이 잠시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상처를 입었나?”
“죄송합니다. 국정원에 소속되어 있는 놈 중, 한 놈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수만은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어딘가?”
설장호는 아직 별장에 있다. 말 그대로 지금은 상처치료 휴식이 우선이기에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그 보다, 최기수는 아직도 묵비권입니까?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요?”
설장호는 그에게 현 위치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묻고자 하는 질문은 바로 하였다.
지난 날,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최기수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오는 모두의 뒤를 밟도록 명령내렸다. 하지만
최기수를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 돌아가는 길에 술집을 들러서 갔다.
곧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노출 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이면서, 자신들의 뒤를 누군가 항상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행동하는 이들이었다.
“최기수가 사망했네.”
“…….”
국정원장이 최기수의 사망소식을 설장호에게 알렸지만, 설장호의 반응은 의외였다. 추선우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잡아놓은 최기수에게 단 하나의 정보도 얻지 못하고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장호는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하네. 내가 그 놈을…….”
“원장님께서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그 놈들이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최기수의 죽음은 비단 그 한 놈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최기수의 죽음이 무언가와 연이어 연결될 것임을 국정원장에게 알렸다.
“다른 일이 또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직의 중심이 최기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고, 또 그를
죽인 놈이 최기수보다 더 윗선에 앉은 놈이라면 최기수와 동급으로 움직인 놈들도 아마 잡으려 할
것입니다.”
“동급이라니…….무슨 말인가?”
국정원장은 설장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북정마을과 연화장, 그리고 성남펜션등. 지현과 저, 그리고 추선우를 잡고자 여러 킬러가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서 눈에 띠는 것이 바로 청와대 경호원들과 국정원 소속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는
말입니다. 즉…….최기수 혼자 청와대, 국정원, 검찰과 경찰등. 그 곳의 사람들을 전부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원장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지난 며칠을 떠 올려보았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총구를 돌렸던 이들이 많다. 최기수가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스케일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최기수. 과거의 행적을 보면 그와 함께 다니던 놈들이 있었습니다. 과거 석강수도 그 조직을 한
번 치고자 나섰을 때,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최기수와 함께 또 다른 회장이라는 놈들이
있었다는 석강수의 말이었습니다.”
설장호는 석강수의 말까지 꺼냈다. 석강수는 이미 이수호에게 자신이 과거 뿌리조직을 잡아내고자 나선
적이 있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도 이수호는 그에게 회장 자리를 내어주었고, 설장호는 지금 그 당시 석강수에게 들었던 말을
국정원장에게 한 것이다.
“알아낸 것이 있는가?”
국정원장은 총상을 치료한 후, 아침이 밝자마자 곧바로 서회장이란 사내를 찾아갔다.
서회장은 선유도 주차장에서 추선우와 설장호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며, 최기수의 측근이었다.
“네. 이름은 서충식이며 여러모로 많은 곳에 손을 뻗어놓은 사업가입니다.”
“사업가?”
의외였다. 그는 미희를 감시했고, 그곳으로 찾아갔던 추선우를 잡기 위하여 선유도 주차장으로
움직였었다.
일반적인 사업가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을 뻗은 모든 사업체는 다 확인하였나?”
“네. 일반적으로 모두 평범한 기업체였습니다. 그런데 한 곳. 서창기업이라는 곳이 수상합니다.”
“이유는?”
국정원장은 대원이 기업명을 말한다고해도, 그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원이
수상하다고 여겼으니,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물었다.
“서창기업. 직원수가 약 서른 명인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령회사지. 자금세탁이나 기타 누군가의 뒤를 봐주는 곳. 지금즉시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생각을 오래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뭔가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무조건 확인부터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는 곧 설장호에게 다시 연락하였다.
“간밤 잘 보냈는가?”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정도로 죽지 않네. 그리고 선유도에서 추선우와 통화했던 놈. 그 놈의 이름은 서충식이며 사업가야.
그런데 이놈이 수상한 곳을 운영 중이라 지금 사람을 보낼 것이네.”
국정원장은 서충식에 대해 별다른 심문을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이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뭔가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듯 한데, 그 변화를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알았네, 자네도 조심하게,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는 대로 연락 주겠네.”
국정원장은 통화를 끊은 후, 곧바로 서충식을 향해 움직였다.
“제길…….이러고 앉아 있으니 몸이 쑤셔 환장하겠군.”
특별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쉬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특히 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랬다. 태정민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래자네.”
추선우는 미희, 은주와 함께 지현의 옆에 있었고, 새벽에 지친 몸을 누운 채, 잠이 들고 난 뒤 아직도
깨지 않고 곤히 자고 있는 지현을 보며 선우가 말했다.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찾으면 애들은 오래 자.”
은주가 지현의 이마를 만져주며 말했다.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괜히 이런 일에 끼어들게 만들어서…….”
“네가 나와 미희씨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야. 그들이 강제로 끌고 들어온 거지.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은주의 말이었다. 그는 추선우를 단 한 번도 질책한 적이 없었다.
“당분간만 더 부탁할게. 곧 끝날 거야.”
“지현이는 걱정 마. 네 몸이나 잘 관리해. 나중에 지현이가 다시 평소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그 때 옆에 있어줘야 할 것 아니야.”
은주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추선우도 지현을 보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비록 단 며칠간 지현과 함께 하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생겨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래야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 생각토록 해줘야지.”
추선우도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자신이 과거 혼자라는 외로움에 지쳐 살았을 때가 떠올랐다.
절대 지현에게는 그런 아픔과 외로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문 앞에는 강서진이 서서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검사님. 뭐하세요?”
박태식이 응급처치를 한 팔을 붙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그냥 세 사람의 대화가 너무 짠해서…….”
“걱정 마세요. 잘 이겨 낼 것입니다. 그보다…….배고프지 않으세요?”
박태식은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병원이나 다녀와. 아무리 총알이 관통하여 지나갔다고해도, 네 팔 안에 있는 모든 신경을 다 뒤틀어
놓았을 것인데, 그냥 붕대만 감아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갈 것입니다. 서 실장이 곧 병원을 알아봐준다고하니, 아침 먹고 바로 다녀올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가 걱정해? 괜히 팔 아파서 중요한 시점에 끙끙거리지 말라고 한 말이야.”
그녀는 박태식을 지나쳐가며 말했고, 곧 소파에 몸을 앉혔다.
“지금부터 움직일 테니 모두 준비해두게.”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소파에 몸을 앉힌 후, 한 쪽 방에서 설장호와 조동민이 나서며 나누는 대화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 태정민과 다른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설장호를 보며 섰다. 마치 설장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한 두 사람이었다.
“움직이게.”
“네.”
조동민은 곧바로 다시 별장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물었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최기수가 죽었으니, 다른 놈을 족쳐봐야지.”
“다른 놈이라면?”
“추선우와 연락하여 나와 추선우를 선유도 주차장으로 인도한 놈. 그 놈이 죽은 최기수를 대신하여 정보를
줄 것이라 생각하여 움직이는 것이야.”
설장호는 조동민에게 내린 명령을 알려주었고, 곧 지현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강서진이 방안을 보려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세 사람이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지현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곤히 자고 있었다.
“예쁘군.”
설장호는 지현의 자는 모습을 보며 마치 아빠미소처럼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잠시 추선우 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설장호는 이내 미희와 은주를 보며 말했다.
“또…….위험한 곳으로 가나요?”
은주가 곧바로 물었다.
“아닙니다. 이제 추선우는 직접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제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정부에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앞으로 추선우씨는 절대 그들을 잡고자 앞서지 않을 것입니다.”
설장호는 두 여인이 안정할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아직 총상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데리고 또
다시 움직인다는 말을 한다면 두 여인이 참지 않을 것 같았던 분위기였다.
00152 경호원 =====================================================================
====
추선우를 데리고 나온 후,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현재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서충식을 심문하여 그 정보를 얻은 후, 곧바로 움직일 것이다. 일단
박태식은 오전에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합류한다. 그리고 추선우는 내가 조금 전 말했듯이 일단은
안정이다. 서충식을 잡아 족치는 일에는 빠진다.”
“…….”
추선우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지금 현재로서는 자신이 나선다고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그의 행동이었다.
“그리고…….여러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이 일은 차츰 알게 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성남
펜션에서의 일이 있은 후, 행적을 알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석강수와 지용석이겠지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태정민이 답했다.
“그래. 그 두 놈이 사라졌다. 석강수는 언젠가 다시 나올 것이지만, 문제는 지용석이다. 그는 청와대를
잘 안다. 그가 어떤 마음을 먹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청와대의 분위기도 바뀐다.”
태정민이 가장 신중하게 들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며, 무엇보다 지용석과는 친분이 있다. 그리고
그의 강함도 잘 알고 있고, 그가 움직인다면 그를 막을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용석은 그 강함에 독함까지 가졌을 것이다. 자신이 몸담아오던 청와대 경호실을 등졌으니, 그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독함이 함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추선우. 지현이를 잘 부탁한다.”
곧 모두가 준비를 마쳤다. 설장호의 명령대로 추선우는 별장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지현과 은주,
미희와 함께 별장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국정원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식사는…….”
“병원 가서 먹어.”
박태식은 진심으로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의 말을 강서진이 딱 잘라버렸고, 설장호를 보았다.
“서둘러 움직여라.”
설장호도 강서진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모두가 다시 움직였다. 아니…….추선우를 제외하고 모두가
움직였다.
강서진은 별장을 나서기 전, 거실에 서서 배웅하는 추선우를 보았다.
곧 모두가 별장을 나선 후에도 그녀는 신발을 신는다며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모두가 문 밖으로 나간 후에 강서진은 신발을 다 신었는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추선우를 보았고,
별장 안을 보았다.
은주와 미희는 지현과 함께 방에 있기에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웁.”
강서진은 추선우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고, 곧 그의 앞으로 다가선 후, 그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몸 잘 챙기고 계십시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어제 병원에서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키스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녀가 입술을 맞추자, 추선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나갔다. 그래도 추선우는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뭐해?”
곧 문이 열리고 은주가 나오며 물었다.
“응? 아냐…….아무것도, 그냥 사람들 나가는 것을 보니 이상해서…….”
“뭐가 이상해? 저 사람들은 원래 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넌 아냐. 넌 저들이 말하는
민간인이야. 굳이 이런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 나설 필요는 없어.”
은주는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 지현이 곁에 있다. 그녀를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굳이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설치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래. 나설 필요 없지. 이제 여기서 지현이와 너, 그리고 미희하고 있으면 돼.”
“맞아. 저 사람들의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마. 네가 지현을 보호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감해. 하지만
지현의 아버지를 죽인 놈들을 잡고자 나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
추선우는 은주의 말을 들은 후, 지난 며칠간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잡고자 설치고 다녔다.
그 순간에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다 그들은 미희를 인질로 삼아 자신을 불러냈다.
그 때부터 더욱 더 그들을 잡아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깊어졌었다.
“이제부터 우리와 있자. 그러면 우리들 중 누구도 다치지 않잖아.”
추선우는 은주를 보았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깊었다. 아무런 일 없이 주인집 딸로 잘 살아가던
그녀에게 지금의 고초를 겪게 한 것이 미안했다.
“미안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 듣고싶어서 한 말은 아니야. 그리고 지난 일은 앞으로 다가올 일로 다 갚아.”
은주는 그의 말을 듣고,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녀는 이리저리 주방 곳곳을 보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으로 향하였다.
방문을 열자 미희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행동을 하였다. 지현이 깰까하여 조용하라는 뜻이었다.
지현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피곤함이 꽤 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괜찮을까요?”
한 편. 국정원으로 향하던 길에 태정민이 설장호에게 물었다.
“뭐가?”
“추선우씨 말입니다. 만에 하나 그 곳에 그 놈들의 손이 뻗친다면 추선우씨가 지현을 잘 보호할 수
있을까해서요.”
“지현도 지현이지만, 추선우씨도 걱정이지.”
태정민의 말에 이어 강서진이 추선우를 걱정하는 말을 하자,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왜 그런 눈들로 봐요? 맞는 말 아닌가? 추선우씨는 뭐 인조인간 로봇이라도 돼요? 추선우씨도 사람이라
걱정하는 것인데 다들 그리 보니…….”
“그냥 대견해서 본 것인데, 평소답지 않게 설명이 너무 자세합니다.”
그녀의 말에 태정민이 그녀를 빤히 보며 말하자, 강서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쪽 볼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어, 급히 시선을 차창 쪽으로 돌렸다.
“별장에는 청와대 경호원인원들이 배치되어있다. 모두 수석경호원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설장호는 별장에 배치되어 있는 경호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서지호가 특별히 차현태를 경호해야 할
인원들을 빼 준 것이라 그들의 실력은 추선우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것이라 믿었다.
“서 실장.”
같은 시각. 청와대에서는 차현태가 서지호를 불렀다.
“지용석…….은 어찌되었나? 그의 행방은 찾았나?”
“죄송합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차현태는 이미 청와대 경호원 중, 지용석이 그들과 손잡은 것을 알고, 또 비서실장이 그들과 손을 잡고
어딘가에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용석 같은 유능한 인재가 돈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에게 진작 신경을 쓰고,
힘이 되어주었더라면…….”
“그의 가족들에게 현재 지용석의 상황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용석이 알지 못하게 지원을
해주고 왔습니다.”
“잘했다. 비록 지용석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해도, 아직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으니, 자네가
설득을 잘 해보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그에게 답한 후, 잠시 집무실을 나와 지용석에게 연락을 하였다.
하지만 수신음만 길게 가고 있을 뿐,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용석…….어디에 있는 것이냐?”
서지호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띠리리리.’
한 편. 조금 전까지 수신음이 길게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던 지용석은 또 다시 울리는 전화기를 보았다.
“말하십시오.”
하지만 이번엔 전화를 받았고, 짧게 용건을 묻는 말을 하였다.
-잘 숨어있는 것인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수호의 새로운 신하가 된 백태였다.
“하고자 하는 말만 하십시오.”
하지만 지난 번 성남펜션에서도 그렇고, 지용석은 백태와 그리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돈에 의해 잠시 맺은 동맹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였다.
-어제 지현과 설장호, 추선우를 모두 놓쳤다.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모두 놓쳤다.-
“어디 한, 두 번 있는 일입니까?”
지용석은 백태의 눈썹이 씰룩거릴 말을 하였고, 백태는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지용석에게 이 조직과의 거래가 일회용인 것처럼 백태에게 지용석도 일회용이었다. 성남펜션에서의
일이 잘 처리되었더라면, 다시 보지 않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그에게 원치 않는 연락을 다시하고 있는 백태였다.
-설장호와 추선우는 지현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모두가 상처를 입었으니, 지금보다 더
안전한 곳을찾아 갔을 것이다. 떠오르는 곳이 없는가?-
백태는 지용석이 경호원이란 것을 안다. 그러니 그는 대통령이 따로 움직이는 곳을 알 것이라 믿었다.
지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권력 중, 최대 권력이 대통령이기에, 그가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주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질문을 왜 나에게 하는 것입니까? 난 대통령 경호원이지, 그들의 경호원이…….”
-그래서 묻는 것이다. 대통령이 숨어있을 만한 곳. 그런 곳을 묻는 것이다.-
지용석은 자신의 말을 자르고 들린 백태의 말에 잠시 아무런 말없이 전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확인 후, 전화하지요.”
지용석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금 현재 지현과 추선우가 있는
별장이었다.
그도 경호원이라 대통령이 자주 가며, 여론에 알려지지 않은 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이라면…….”
지용석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현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가 백태와 손잡은 이유는 추선우와
설장호를 잡기 위함이었다.
‘띠리리리’
같은 시각. 국정원에 도착한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그는 국정원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지용석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서지호였다. 그는 계속하여 지용석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지용석은 그의 전화만을 받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집을 등지고 나간 놈이 집전화를 받을 리 없지. 기다려라. 집나간 놈은 자신이 급할 때 꼭…….집으로
전화한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서지호는 불안했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그가 지금 지현과 추선우가 있는 별장으로 차현태를 데리고 가장 많이 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현재 별장에 있는 경호원에게 연락하였다.
“네. 실장님.”
“절대 별장에서 멀어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경호원들의 임무가 지현의 보호였다. 그들이 별장을 벗어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서지호는 다시
당부하였다. 그만큼 현재 그의 마음이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설장호가 국정원에 들어서자, 모두가 그를 보았다. 설장호도 자신을 보는 그들을 보았다.
이들 중, 자신에게 총을 들이밀 놈도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절대…….절대 표정으로 들어내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곧 그는 한 대원의 안내로 서충식이 있는 감금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국정원장이 먼저 와 있었다.
“지금 즉시 최기수와 고민국, 우수광과 정구석에 대해 조사하고, 그와 연관된 놈들을 모조리 확인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감금실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국정원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태정민과 강서진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네. 알겠습니다.”
“쉬지 않아도 되겠는가?”
설장호가 서충식에게서 얻은 결과를 두고 곧바로 움직이려 하였다. 그러자 국정원장이 그의 안부를 물었다.
“죽지 않습니다. 어디 사시미에 한, 두 번 살점을 내어줬습니까.”
설장호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였다. 국정원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자네도 늙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20 대의 팔팔한 청춘에 그의 밑으로 들어와 날고, 뛰고를 반복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40 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년사내가 되었다.
체력도 떨어졌을 것이며, 모든 것이 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정신력만은 오히려 더 젊었을 때보다
강한 것 같았다.
“응? 지용석팀장?”
그가 정문을 통해 들어서자, 경호를 맡고 있던 이들에게 그가 보였다. 그리고 한 경호원이 의아한
눈빛으로 지용석을 보았다.
“지용석 팀장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비록 수석경호원들이 더 직위가 높긴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팀장급 이상의 인물들에게는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그들은 지용석이 그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차현태와 서지호가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정민이 수석경호원들을 찾아가
지용석이 배신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즉. 그 누구도 지용석이 그들과 손잡았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알리지 않았기에 경호원이라도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지용석은 한 경호원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별장 앞까지 갔다. 그러자 경호원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지용석팀장이라고 해도 이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탁! 퍽퍽 픽!’
별장 현관문을 지키는 경호원은 두 명이었다. 그리고 별장 뒤로 두 명이 더 있지만, 그들은 현관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용석은 자신의 앞을 막은 경호원의 손을 잡아 꺾은 뒤, 순식간에 등과 목덜미를 내려쳤고, 총을 들고
나머지 한 명의 심장을 쐈다.
“응?”
순식간에 수석경호원 두 명이 쓰러졌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서 뭔가 인기척이 들린 것을 은주가 들었고,
그녀는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왜?”
그녀가 현관문을 열어보려 할 때, 추선우가 방안에서 나오며 물었다.
“외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외부는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 그리고 그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외에는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이 안으로 절대 들어설 수도 없어. 그러니
외부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하다 여겨져도 그냥 잊어.”
추선우의 말에 그녀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손을 다시 걷어 들였다.
“그래. 이 별장은 대통령이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 그만큼 내부는 안전하겠지.”
은주도 그의 말을 듣고 난 뒤, 외부에서 들린 소리를 잊고 다시 거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현관문 바로 앞에는 지용석이 몸을 낮춘 채, 앉아있었다.
“앞 쪽에 두 명…….뒤쪽에 두 명…….수석 경호원을 모두 보내지는 않았겠지. 네 명이면 그래도
대통령을 경호하는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보낸 것이군.”
지용석은 두 명의 수석 경호원을 제거한 후, 다시 천천히 별장 뒤를 돌아 움직였다.
“역시…….”
그리고 그곳에도 두 명이 있었다. 지용석의 생각처럼 딱 네 명이 경호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
‘픽픽!’
지용석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두 명의 경호원을 아주 쉽게 제거하였다. 제 아무리
수석경호원이라고 하여도,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지는 못한다.
“쓸데없는 놈들은 모두 제거. 이제 집 안에 누가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하겠군.”
지용석은 외부를 정리하고 난 후, 내부를 확인하고자 움직였다. 무턱대고 내부로 들어섰을 때, 설장호를
비롯하여 태정민과 추선우 모두가 있다면 오히려 자신의 목이 먼저 날아갈 것이다.
지용석은 별장 외부 뒤쪽으로 돌아간 뒤, 바닥에 있는 쇠로된 뚜껑 같은 것을 잡아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지용석은 이미 이곳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곳에 비상통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띠리리리’
별장 안에서 한가롭게 TV 를 보고 있던 은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그녀는 처음 보는 발신번호에 통화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서 받아. 지현이 깬다.”
곧 미희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느 샌가 두 사람도 지현을 사이에 두고 함께 있었던 시간이 좀
되어서인지,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네.”
그녀는 미희의 말에 서둘러 통화버튼을 눌렀다.
“은주씨? ”
“누구세요?”
“저 강서진검사입니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강서진이 은주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녀는 국정원에서 태정민이 경호원들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했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은주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있던 첫 날. 북정마을에 갔을 때,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었었다.
“별장에 아무 문제없습니까?”
“문제요? 없는데요?”
“아…….다행이군요. 외부 경호원들이 연락이 되지 않아 지금 제가 별장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외부 경호원들요? 그럼 조금 전 있었던 그 소리가…….”
“네? 소리요?”
강서진은 잠시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지만, 이어 들리는 그녀의 말에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네. 현관문 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지만, 문을 열어주려 할 때 선우가 말려서요. 그래서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강서진의 눈동자는 더욱 더 크게 변해가고 있었다.
“절대 문을 열어줘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죠?”
“네. 그럴게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제가 지금 갑니다. 가서 확인할 테니 절대 내부의 문은 열어주지 마십시오.”
“네.”
강서진은 더욱 더 서둘렀다. 이동 중, 자신의 팀에 속한 형사들을 모조리 별장으로 오도록 다시 한 번
연락하였고,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향했다.
“누군데?”
곧 추선우도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강 검사님인데, 외부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하시네. 그리고 지금 외부
경호원들이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해.”
“!!!”
그녀의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곧 경호원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추선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경호원이 연락이 되지 않아?”
“응.”
추선우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그녀에게 물었고 답을 들었다. 자신의 꿈이 경호원이기에 경호원의
기본적인 것은 다 알고 있다. 경호원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전화를 받아야한다. 만에 하나 전화나 무전을
받지 않는다면 거의 십중팔구 그 경호원은 사망한 것이다.
추선우는 창가로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외부를 보았다. 정문에 있어야 할 두 명의 경호원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현이 좀 깨워줘. 그리고 한쪽 방으로 모두 모여 있어.”
“왜?”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다.”
“!!!”
두 여인은 놀란 눈을 하였다. 이곳은 안전하다고 말한 지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외부
경호원이 죽고, 손님이 찾아왔다.
이는 청와대에 비하면 그냥 위험이 노출되어 있는 하나의 집일뿐이었다.
“삼촌은?”
지현은 눈을 뜨자마자 추선우를 찾았다.
“삼촌은 거실에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나갈 수 없어. 잠시 여기서 대기하자.”
미희가 지현을 안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추선우가 방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지현이 깼어?”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이내 지현이 깬 것을 확인한 후, 부드러운 눈빛과 어투로 지현을
보며 물었다.
“응. 삼촌.”
지현은 이내 몸을 일으켜 추선우에게 다가가 안겼다.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거실에 앉아있는 추선우와 부엌에서 나오는 지용석.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고, 그 시선에서는 마치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듯 한 분위기였다.
“추선우…….”
지용석이 먼저 추선우의 이름을 불렀다.
“지용석팀장…….”
다음으로 추선우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부른 후에도 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절대 섣불리 움직여서 좋을 것이 없는 상대란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용석은 추선우가 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선유도 주차장에서
있었던 칼부림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 그를 향해 바로 달려들지 않는 그였다.
만에 하나 추선우가 총상을 입은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면, 지용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목을 치려
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가족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철컥.’
부엌에 선 지용석이 한 동안 그를 보고 있었고, 이내 네 명의 경호원을 죽인 권총을 들어 올리며
장전하였다.
추선우는 그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그가 총을 들었다고 갑자기 움직이면, 그의 손에 들린
권총의 방아쇠는 그만큼 빨리 당겨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줄이 길구나. 너 혼자인가?”
지용석이 물었다.
“그래…….운 좋게도 나 혼자 여기에 있다.”
“운이 좋다? 지금의 상황은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곧 내가 너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지.”
지용석의 말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들렸다. 그 순간 지현이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이내 은주와 미희가 그녀를 잡아 다시 안았다.
“듣지 않아야 해. 보지도 말아야 해. 그냥…….그냥 삼촌만 다시 오기를 기다려 지현아.”
미희가 말했다. 그리고 지현은 그녀를 더욱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슉!’
‘픽!’
“퍽!‘
거실의 소파는 거실 두 면을 둘러 니은자로 꺾여있는 소파였다. 그리고 지용석이 부엌에서 나오며 서 있던
자리는 소파와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추선우가 화분을 던지면서 그것을 피하고자 몸을 움직인 지용석이 니은자의 끝부분까지 움직였고,
추선우는 소파의 뒤를 타고 빠르게 돌아서 끝부분에서 뛰어올라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지용석의 총에서는 총알이 뿜어져 나갔고, 지용석이 추선우의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한
뒤, 뒤로 밀려나 부엌의 중앙에서 멈춰 섰다.
“젠장…….”
그리고 추선우의 격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군. 내가 총을 쏘려고 한 곳은 너의 심장부분이다. 그런데 왼쪽 팔에서 피가 나다니…….”
지용석은 그제야 추선우의 몸이 더욱 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의 총알을 피하며, 빠르게 움직였고, 또 주먹을 강하게 뻗으면서 순간적으로 무리한 움직임을
보여, 겨우 상처를 덮어놓은 곳이 터지면서 피가 다시 흘러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시미에 베인 자국이라면 길게 피가 흘러나올 것이고, 그렇다고 사시미가 팔뚝을 쿡 찔렀다고 하면 찌른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리저리 휘저어 놓았을 것인데…….피가 마치 총알을 맞은 것처럼 어느 한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구나.”
지용석은 경호원답게 상처만으로 무엇에 의해 입은 상처인지 대략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총상을 입었었나?”
그는 추선우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대한민국에 총을 든 놈이 이리 많은지 몰랐습니다. 뭐 개나 소나 다 총을 들고 다니니 태어나 처음으로
몸에 총알도 박아봤네요.”
추선우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총상을 입은 사실을 말하면, 지용석은 자신이 살고자 그의
상처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었다.
“나에게 상처를 말하는 것은 실수한 것이다. 네가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의 수장을 경호하는 경호원들보다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용석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총에는 이제 한 발의 총알이 남았다. 너와 나. 두 중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이 남은 한 발의 총알로
쓰러진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다. 어떤가?”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입니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 괜한 허풍을 떠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추선우의 말에도 그는 총을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풀며, 다시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거실을 향해 걸어 나왔고, 추선우는 그가 거실로 나오도록 더 뒤로 물러나 주었다.
‘쾅!’
“역시. 쉽지 않은 상대군요.”
별장에서는 추선우가 지용석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지용석은 추선우의 상처 입은 곳을 집중적으로
가격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미 왼쪽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추선우의 움직임은 모든 면에서
지용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모. 무서워.”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로 인해 지현이 겁에 질려있었다. 미희가 지현을 꼭 안은 채, 그녀의 귀를
막아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외부의 소음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기다려…….기다리면 삼촌이 문을 열고 들어올 거야.”
은주가 다시 미희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더 보태며 지현의 귀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미 공포가 몸에 번져버린 지현에게 귀를 막고 소리를 차단 한다고해서 그녀의
생각마저 다 막아버릴 수는 없었다.
“아…….뭐라고 하지.”
강서진은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설장호에게 은주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직접 움직인 이유까지 다 말해야 할 처지였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젠장. 욕먹더라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검사님 도착하셨습니까?”
“그게…….아직이야. 도로가 꽉 막혀서 차가 움직이지를 않아.”
일단 지금 현재 자신의 상황부터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아직 별장의 일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겠네요.”
“저…….그게 말이야.”
태정민의 말에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태정민이 곧바로 물었다.
“사실. 내가 은주 씨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가는 도중에 은주 씨에게 연락을 했는데…….외부의 경호원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해.”
“!!!”
태정민의 표정이 변하자, 곧바로 설장호의 표정마저 변하고 있었다.
“무슨…….말씀이십니까? 별장에 연락을 취했는데, 외부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니요?
설마…….”
“그래 설마야. 설마 하는 마음에 서둘고는 있지만 차가 막혀서 움직이지를 못해.”
태정민의 표정이 더욱 더 굳어지자, 설장호가 그의 전화를 받아 들었다.
“자세히 말해.”
그의 굵직한 말 한마디가 나오자, 강서진은 마치 저승사자의 음성을 들은 듯 놀란 눈을 한 채, 지금의
모든 상황을 그에게 다 알려주었다.
“일단 전화 끊는다. 넌 서둘러 별장으로 향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오래 통화하지 않았다. 어차피 강서진도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니, 오래 시간 끌어서 더
알아낼 정보도 없는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서지호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런 일이 있는가?”
설장호도 국정원장에게 바로 보고하였다. 서지호와는 달리 설장호는 그에게 보고한 이유가 있었다.
“헬리콥터를 띄우겠습니다.”
별장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하늘을 이용하는 길 밖에 없었다. 이에 국정원장의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헬리콥터를 수배하려는 그였다.
“서둘러 움직이게.”
국정원장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지금은 지현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녀를
보호하고자 지금까지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일을 진행하는 상황이기에 그녀가 자칫 잘 못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세 명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곧바로 연락 주십시오.”
“알았네.”
설장호는 국정원장에게 부탁한 뒤, 곧바로 태정민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파주로 향하였다.
‘와장창!’
“너도 괴물이군.”
별장에서는 두 사람이 격돌한지 약 10 여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추선우의 팔에는 더욱 더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지용석의 얼굴에도 꽤나 많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쪽팔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와 이정도로…….아니 오히려 나를 제압하는 것이 놀랍다.”
지용석의 말대로였다. 추선우는 왼쪽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지용석이 더 밀리는 상황이었다.
“과거 전설적인 킬러라고 말하던 이지광이나, 도태. 그리고 병따개까지, 너에게 모두 무릎을 꿇은 이유가
이제야 실감나는군.”
지용석이 말하는 세 명은 그의 말처럼 살인에서는 알아주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병따개를 제외하고 두
사람은 추선우에게 모두 당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이미 기세가 많이 꺾여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팔에 감각도 없어졌네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팔이 잘려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추선우도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팔의 통증이 심할 정도를 넘어가 이제 감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띠리리리’
두 사람의 움직임이 약간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지용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말씀하십시오.”
-어찌되었나? 설장호와 추선우, 지현은 잡았나?-
백태였다.
“세 명이 다 있으면 아마 제가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지금 추선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 있을 힘조차 없네요. 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숨으려 했는데…….쉽지 않겠습니다.”
지용석은 백태와의 통화 시에도 추선우를 보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가 통화를 끝낼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채, 기다려주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곧 우리 사람들이 도착한다.-
“그 잠시가 아마도 이쪽 지원군이 오는 시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괜한 피해 더 만들지 말고, 이곳으로
오는 놈들은 돌려보내십시오. 그냥…….나 혼자 안고 가겠습니다.”
지용석의 말에 백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수고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네가 살아남는다고해도, 너와의 계약은 그것으로 끝내겠다. 그리고 약속한
금액은 모두 지급하겠다.-
백태는 의외의 말을 하였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고, 곧 지용석이 추선우를 보았다.
“누군지 아는가?”
자신이 조금 전 통화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돈을 지불할 사람이겠죠.”
“그래. 돈을 지불할 사람이지. 그리고 이 놈…….곰곰이 생각하니 너와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군.”
“…….”
추선우는 그의 말에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었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 중에 누군가가 지용석에게 돈을
지불하고 이 일을 의뢰한 것이란 말이었다.
“누굽니까?”
추선우는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물으면 답을 해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백태…….기억나는가?”
“!!!”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역에서 미희를 인질로 삼았던 인물이 백태였다. 추선우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 놈,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나도 몰라. 난 그저 돈만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야.”
추선우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지용석의 곁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따위는 이제 관심조차 없었다. 미희에게 고통을 준 백태를 찾고자 지용석만을 보고 다가서고 있는
추선우였다.
‘퍽!’
그리고 내질러진 주먹. 지금까지 그에게 맞은 주먹보다 훨씬 더 매운 주먹이 지용석의 얼굴을 가격하였고,
그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고 넘어지며, 부엌에 있는 식탁에 부딪혔다.
‘철컥’
그리고 그의 옆으로 식탁위에 놓여있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이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처음에 내가 한 말대로 한다면, 서 있는 사람이 쓰러진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쓰러져있고 넌 서있어. 하지만 총은 내 손에 있다.”
지용석은 권총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추선우도 그가 총을 들자, 급히 움직이던 걸음을 멈춘
후, 그를 보았다.
“안 돼. 지현아!”
지용석이 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을 때, 방안에서 은주의 목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방으로 향하였다.
“지현이 저 방안에 있는 모양이었군.”
지용석의 말에 추선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삼촌! 삼촌!”
끝내 지현의 공포가 그녀를 컨트롤 하지 못할 정도로 번져버린 상황이었다. 지현은 두 여인의 품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면서 소리쳤고, 추선우의 눈빛은 방을 향해 본 뒤, 다시 권총을 들고 있는
지용석을 향해 돌아갔다.
“총알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어찌할 것인가?”
지용석이 물었다. 추선우는 그 순간 그의 곁으로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남은 총알이 한발이니, 그가
자신을 쏘면 그 한발은 사라진다.
지금 추선우는 이들의 최종 목표가 지현이기에, 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용석이 남은 한발의
총알로 지현의 곁을 찾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남은 한 발의 총알을 받아주려 움직이는 것이었다.
지용석은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넌…….대단하다.”
그리고 지용석은 권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냥하였다.
“!!!”
이에 놀란 추선우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고, 그를 향해 떨리는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지금. 백태가 이곳으로 사람을 보냈다. 내가 살고 죽고를 떠나, 그는 너와 설장호, 그리고 지현을
제거하고자 제대로 된 킬러들을 이쪽으로 보냈다.
“…….”
지용석은 백태의 계획 중, 이곳을 치는 계획을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백태. 그는 누군가의 수하가 될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 권력이 달리면, 그는 그 권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다.”
지용석은 추선우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백태에 관한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추선우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만이 머릿속을 다 덮고 있었다.
“꼭…….마지막까지 버텨서 네가 이겨내라.”
‘픽!’
“!!!”
지용석은 추선우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에
놀란 추선우가 심하게 눈동자를 떨었고, 식탁에서 쓰러져 죽은 지용석을 보고 있었다.
굳이 스스로 자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용석은 죄책감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경호해야 하는 일을 하는 그. 하지만 그 경호대상자를 죽여야 하는 일과 손을 잡았으니, 그에게는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을 것이었다.
비록 추선우가 강하다고 하지만,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다시 이곳을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가
도망친다하여 추선우가 뒤쫓지 않을 것이게 도망가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모든 죄책감을 다 안고 가려는 그의 마지막 선택일수도 있었다.
“실장님. 저기.”
추선우가 탄 차량이 일반도로에 진입한 후, 곧바로 그 위로 설장호가 탄 헬리콥터가 보였고, 태정민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별장을 가리켰다.
“경호원들이군.”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경호원의 시체들. 하늘에서 보니 정문에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이 쓰러져 있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고 있었다.
곧 헬리콥터는 별장 뒤 편 헬리콥터 정류장에 내렸고, 그 순간 하늘에서 또 하나의 헬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청와대 헬기입니다.”
그 헬기를 보며 태정민이 말했다.
“대통령님이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넌 저 헬기를 마중해라. 내가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
설장호는 서둘러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헬기에서는 서지호가 내렸고, 곧바로
태정민과 함께 별장으로 들어섰다.
“…….”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서서 부엌을 향해보고 있는 설장호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너무나 불안한 마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서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누구…….입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네.”
설장호도 확인 전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필시 시체란 것은 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현은요?”
서지호가 다시 물었다.
“일단 별장에는 없다. 여기에 있는 시체가 누구냐에 따라 지현의 행방도 알 수 있겠지.”
설장호의 말대로였다. 이불에 덮인 시체가 추선우면, 이미 지현은 그들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라면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다시 도주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제가 걷어보겠습니다.”
태정민이 나섰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이불을 망설임 없이 걷어냈다.
“지용석…….”
설장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서지호와 태정민은 놀란 눈이었다.
“머리에 총을 쏘았습니다. 설마 추선우씨가…….”
“아니. 추선우는 총을 쏘지 않는다. 그리고 총은 지용석이 들고 있어. 즉…….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는 뜻이야.”
태정민의 말에 설장호가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지용석도 결국 추선우에게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요?”
서지호가 물었다. 그리고 설장호와 태정민은 생각하였다. 이미 지용석이 한 말처럼, 날고뛴다는 킬러들도
추선우에게는 모두 패했다.
그리고 경호실에서 차현태를 초근접 경호를 주로 맡았던 지용석마저 추선우에게는 패한 상황이 되었다.
“일단 서 실장은 지용석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가족에게 알려라. 그리고 되도록 그의 장례는 제대로
진행되도록 해주고.”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보았다. 거실에는 여러 곳에 총알이 박힌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거실 중앙에는 한 자리에 서서 흘린 피처럼 꽤 많은 피가 흘린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누구의 피 일까요?”
태정민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추선우의 피야.”
불길한 예감이었지만, 아니기를 빌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태정민의 질문이 있은 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피의 주인이 추선우임을 바로 말하였다.
“이 정도의 피라면 서 있는 것조차 힘들 것입니다. 서둘러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찾아야합니다.”
태정민은 불안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안한 사람은 설장호였다.
마치 이 사건이 일어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지현을 지켜냈던 그 때. 그리고 지금. 추선우는 다시 혼자의 힘으로 지현을 경호하며
지켜내고 있었다.
단지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그가 심한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털컥!’
세 사람이 다시 거실에 모였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강서진이 들어섰다. 그리고 세 사람은 그녀를 보았다.
“모두…….무사합니까?”
“넌! 뭐하는 놈이야!”
그녀의 물음에 설장호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굵직하면서도 화가 난 어투의 목소리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강 검사님도 이동 중에 은주 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고함소리에 태정민이 설장호를 말리며 말했다.
“다시 연락해보세요. 그러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정민이 설장호의 앞으로 서며, 강서진을 보고 말했다. 그녀는 조금 전 설장호의 고함소리로 머리가
멍해져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
하지만 전화벨 소리는 방안에서 들리고 있었고, 곧 지현이 누워있던 곳 옆으로 은주의 휴대전화가
놓여있었으며, 발신자의 전화번호에 강서진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지금 즉시 인근 도로는 물론 모든 경로를 다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과 서지호에게 명령 내렸다. 그리고 강서진은 빈 방에 홀로 남겨진 은주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검찰 쪽 형사들에게 연락해서 이쪽으로 오지 말고, 주변을 살피도록 명령 내려.”
그녀의 뒤로 설장호가 문앞에서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은주의
전화기만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강서진!”
이내 설장호의 큰 고함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네…….”
그리고 그녀의 힘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설장호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호통 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서지호는 이 사실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차현태는 자신이 계획한 일의 일부가 제대로 진행된 것에 마음
놓고 있었지만, 단 하루 만에 모든 상황이 다 뒤집어지면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강서진은 검찰 쪽 형사들에게 주변 수색을 명령 내렸다. 지금 이들은 추선우가 차량을 이용하여 파주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별장 주변을 위주로 수색에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리고 별장 인근에 도착한 백태의 부하들은 별장 주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태정민과 서지호, 그리고
강서진을 보며 중얼거린 뒤, 곧바로 백태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자세히 확인할 수 없는가?”
백태는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원했다. 추선우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지용석이 죽은 것인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답한 후, 곧 별장을 들어서는 도로 입구 쪽에 차량을 정차한 후, 별장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개인사유지입니다. 오르실 수 없습니다.”
그가 위로 오르려하자, 반대로 위에서 내려오던 태정민이 그를 본 후, 말했다.
“아. 그렇군요. 길을 잘 못 들어서 혹시나 이 길인가 싶어 왔는데, 아니라니 돌아가야겠군요.”
사내는 그저 평범한 옷차림이었기에, 태정민이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길이 나 있으니, 집이 있다는 얘긴데,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
“개인사유지라 했습니다. 그런 것 까지 당신에게 다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뭐…….”
태정민은 그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고, 곧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젠장…….딱딱하게 굴기는…….”
그는 홀로 중얼거린 뒤, 다시 차에 올라탔다.
“정면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다. 뒤로 돌아서 별장 쪽으로 진입하자.”
그는 차에 탄 후, 함께 타고 있던 세 명의 사내에게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내의 차량은 곧 길을 따라 다시 도로에 올라선 뒤, 얼마가지 않아, 산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외길로 접어들었고, 얼마가지 않아 차량을 세운 뒤, 네 명의 사내가 내렸다.
“저들의 신경이 날카롭다. 괜한 실랑이 만들지 말고, 저들의 눈에 띄면 그냥 내려오너라.”
“네. 형님.”
사내의 말에 모두 답했고, 세 사람은 각기 산을 중심으로 다른 방향에서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괜찮아?”
한 편. 별장을 벗어난 후, 운전 중인 은주가 추선우를 부축하고 있는 미희에게 물었다.
“열이 나는 것 같아.”
출혈이 심한데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으니, 열이 오른 모양이었다. 지현은 미희의 말에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고, 추선우는 눈을 감은 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부터가야하지 않을까?”
미희가 말했다. 하지만 은주는 그리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추선우의 치료도
치료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만에 하나 그들의 눈에 지현이 발각되면 자신들에게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병원은 안 돼.”
“왜? 이모! 병원 가야해! 삼촌이 아프잖아!”
“여기.”
“생각이 나지 않아…….생각이…….”
그녀는 별장에 있을 때 걸려온 강서진의 전화번호를 떠올리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저히 그녀의 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은주는 다른 번호를 눌렀다.
“엄마. 나야.”
아주머니는 은주와 통화를 마친 후,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강서진의 호의로 인하여, 북정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줄곧 강서진의 집에 있었었다.
“북정마을로 갈 거야?”
은주의 말에 지현이 그녀를 보았다. 지현에게도 북정마을은 남다른 곳이었다. 자신의 부모를 잃고,
추선우를 처음 만난 곳이며, 은주도 처음만난 곳이었다.
“일단 북정마을에 도착하면 미희가 먼저 우리 집을 확인해 줘. 선우는 도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나설 수 없어서 그래. 그들은…….내 얼굴을 알고 있거든.”
“엄마?”
“엄마.”
은주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서둘러 뛰어왔고, 은주를 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선우는?”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안부를 물었다. 은주는 그녀를 보며 시선을 뒷좌석으로 돌리자, 아주머니의
시선도 뒷좌석으로 돌아섰다.
“!!!”
그녀는 놀란 눈으로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차에 올라탄 뒤, 다시 선우를 향해 보았다.
“엄마 어떡해?”
은주가 물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은주는 그제야 누군가 떠오른 듯,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차량을
끌고 이동하였다.
“여긴가…….”
‘탈칵’
“…….”
“…….”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다시 걸어서 안방으로 향하였다. 마찬가지였다. 도둑이 들어도 이보다 더 심하게
파헤쳐 놓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누구요?”
“!!!”
미희는 노인을 경계하며 말했다. 노인은 집안으로 들어섰고, 곧 완전히 깨져버린 거실 창문을 보며 섰다.
노인은 미희에게 북정마을에서 추선우와 은주, 지현이 겪은 일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희는 북정마을의 일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지현이라는 아이를 돕기 위하여 추선우가
나섰고, 또 추선우를 돕고자 은주가 나섰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현으로 인하여 추선우는 물론, 은주와 은주의 어머니마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주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미희는 더 이상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서둘러 그곳을 나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노인은 미희의 뒷모습을 보며 측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희는 처음 차에서 내렸던 곳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은주는 선우를 데리고 만석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개인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만석이라는 사내는 선우를 아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차량…….”
“네. 별장 안에 지용석이 죽어있으니, 그가 타고 온 차량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용석이 죽었나?”
-그 말이 정말인가?-
그는 백태와 전화를 끊은 후, 차량에 올라타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곁눈에 누군가 보였고, 곧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당신…….평범한 놈은 아니었군.”
“내가 분명 이곳은 사유지라 말했었다. 들어서지 말라고 한 경고를 무시했으니, 당연히 잘 못된 것이지.”
“분위기가…….있어 보이는데.”
‘덜썩.’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자리에서 덜썩 주저앉았다.
“이 새끼가!”
“저 놈…….대체 뭐야?”
“여전하시네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놈들 누굽니까?”
병원에서는 의사가 아주머니에게 추선우의 상태를 알려주었고, 아주머니의 옆에서 꼭 안겨있던 지현은
의사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많은 눈물을 머금은 눈빛도 함께 있었다.
곧 은주와 미희도 도착하였다. 그리고 추선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누구보다 마음이 편해진 사람은 지현이었다.
‘띠리리리리’
“네.”
-알겠습니다. 그럼 따로…….움직이죠.-
“상대를 알지 못하니 그리 당하는 것이다. 전직 회장의 밑에서 비서로 오래 살았으면 뭐하는가. 상대가
누군지를 파악하지 않고 덤비는 습성을 지우지 못했는데 말이야.”
석강수는 백태를 전직 회장들과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들도 추선우나 설장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비다, 결국은 자신들의 목까지 내준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백태가
딱 그 뒤를 잇는 행동을 하는 것에 석강수가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국정원에서는…….”
‘띠리리리’
“네. 원장님.”
“네 명을 쳐내고, 다시 네 명을 앉힌 건가…….”
“강서진 뭐해?”
그녀의 말에 설장호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은주의 휴대전화를 뺏다시피
하였다.
은주의 전화기만을 보며 말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단 한통도 걸려오지 않던 전화가 걸려온 것에,
강서진이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설장호를 보았다.
“받아.”
“여보…….”
-검찰청입니다. 현재 고객님께서 사용 중인 통장이…….-
“어디라고요?”
-검찰청입니다.-
“검찰청 어디 소속이죠?”
-여긴 검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너 이 새끼 잡히면 죽는다! 내가 검사야 새끼야!”
‘뚜뚜뚜뚜’
태정민이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태정민의 말처럼 곧바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단 한통의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무슨…….일입니까?”
“저 놈들은 또 누굽니까?”
“네가 이놈들 심문해라. 추선우를 잡고자 온 놈들인데,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네? 추선우를요? 그런데 추선우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라졌다.”
“네? 사라져요?”
“서 실장은 청와대로 돌아가서 지금의 상황을 대통령님께 다시 알리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돌아가서
인원을 확보하여 북정마을로 향해라.”
설장호는 국정원장이 보내줄 정보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 지금의 상황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얻고, 사라진 추선우와 지현을 찾는 것을 서둘러야만했다.
그의 명령으로 서지호는 다시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향하였고, 강서진은 검찰청으로 향하였다.
“그래. 먹어야해. 지난번에도 말했지. 지현이 건강해야 삼촌도 빨리 일어난다고 말이야. 그러니 이모와
함께 가서 밥 먹자.”
“다녀올게요.”
“나도 같이가.”
미희와 지현이 나가려 할 때, 은주도 나섰다.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외부로 나섰을 때, 그들이 지현을
목격한다면 미희의 힘만으로는 지현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다못해 빗자루를 들어 휘두를 수 있는 사람도 은주였다.
세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 은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동네지만,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띠리리리’
“네. 국정원장님.”
-백태의 행방을 찾았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대치동에서 목격되었네.-
“의외의 인물요?”
-석강수네.-
“!!!”
“석강수…….무슨 꿍꿍이냐.”
설장호는 홀로 중얼거렸다.
“설 실장님!”
“뭐라도 알아냈어?”
“제가 누굽니까? 저런 양아치들 신상 털어내는 것은 전문 아닙니까.”
설장호는 하나의 의문이 풀리고 있었다. 백태의 권력이 강해지면, 그는 그 권력을 제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말은 이미 서충식에게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백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제대로 보이기 위한 전초전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말해라.”
회장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이를 진행한 백태의 보고였다. 하지만 이수호의 인상만 찌푸리게 만들어
놓았다.
“장태야.”
“네. 회장님.”
“네가…….청와대를 다녀와야겠다.”
“알겠습니다.”
“이동한다.”
“백태는 강한 놈이다. 섣불리 그를 대적할 생각은 접어두고, 생포가 힘들다고 여겨질 때는 사살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지휘 하에 조동민의 팀원들이 모두 움직였다. 그들에게도 살인면허는 있지만, 설장호가
내려주는 살인면허는 더욱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들어가자.”
“검사님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은 또 누구요?”
형사들이 다가서며 이유를 묻자, 사내로 인하여 예민해진 마을 사람들이 형사들에게도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경찰입니다.”
“잡아!”
형사의 큰 목소리에 은주의 집으로 향하던 강서진의 시선과 함께, 인근을 수색하기 위하여 흩어졌던
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집이…….”
“네?. 아 네…….”
강서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 놈은 어찌됐습니까?”
‘띠리리리’
“네. 실장님.”
“알겠습니다. 지금 가죠.”
서지호의 마음도 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직접 외부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차현태의 곁에
남았고, 태정민을 도울 세 명을 청와대 외부로 내 보냈다.
“여깁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협조를 하던, 협조를 하지 않던, 그건 당신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살인범이 있고, 국가의 위협
존재가 있다는 정보가 확실한 상황에서, 당신의 이런 선택에 의해 그를 놓치게 되면, 당신에게도 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9 층입니다.”
“누굽니까?”
“사람이 더 있었네…….”
“서…….설장호!”
“나를 알아?”
‘우르르’
“살벌하네요.”
그들을 모습을 보면서도 조동민은 긴장하지 않은 채, 오히려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픽!’
“!!!”
“설장호…….”
“다음 누구인가?”
단 한방의 총알로 인하여 20 명이 멈춰 섰다. 그들의 손에는 아쉽게도 총이 없었다. 모두가 사시미와 같은
날카로운 것을 들고 있었지만, 총 앞에서는 그냥 회나 뜨는 칼 밖에 되지 않았다.
“총알이 20 발은 넘지 않을 것 같은데.”
‘척척척척’
“…….”
“셋.”
그리고 셋까지 모두 센 후, 다시 그를 보았다.
‘저벅, 저벅…….’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내걸지 마라. 그런다고 백태가 네 놈들의 목숨 값을
제대로 지불할 놈도 아니다.”
설장호는 복도에 늘어서 있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의 눈빛이 서로서로 교차하기 시작하였다.
“필요 없는 놈들…….”
“괜찮겠나?”
“저희들이 할 일입니다. 그러니 백태 회장님께서는 이곳을 나서십시오.”
“뭣들해. 모두 잡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설장호가 큰소리로 말하자, 조동민과 함께 국정원 대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설장호는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앞에 있는 이들이 이미 마중하고 있다는 것은 백태가
벌써 이곳을 벗어났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그였다.
세 명의 경호원과 여인은 단 30 초 만에 총상을 입고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쳐온 20 명의 사내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기만 하였다.
“모조리 잡아 쳐 넣어.”
“네.”
백태는 오피스텔을 나서면서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있는 곳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정확하게 알고 찾아온 설장호를 보며 쓴 표정을 지은 뒤, 그대로 오피스텔을 벗어났다.
“강 검사님.”
“삼촌!”
“괜찮아?”
“내가 오래 쉬었어?”
“오래는 무슨. 고작 두, 세 시간 잤다.”
“삼촌…….괜찮아?”
“일어났는가?”
“만석 아저씨?”
곧 만석과 아주머니가 들어섰고, 만석이 추선우를 보면서 물었다. 추선우는 자신이 만석의 병원으로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역시 만석아저씨는 허준선생님이 환생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치료하실 수 있으세요.”
추선우는 그를 보며 농담을 하였다. 하지만 농담 속에 섞인 진담이었다. 이틀 전,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처럼 움직임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석의 치료를 받은 후, 그의 몸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상당히 좋아진 듯 하였다.
한 편, 강서진은 동네의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추선우가 입원한 병원까지는
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편의점 앞에서 주저앉아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헛걸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없어?”
“네. 없어요. 오늘 아침에 은주 씨의 집에 온 친구가 미희 씨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미희라 단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태정민의 말처럼 미희가 아닌 그저
일반적인 친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석병원?”
“병원이 맞긴 맞네요.”
태정민이 말했다.
“저기…….말씀 좀 묻겠습니다.”
강서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들린 병원에서는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병원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는지, 강서진이 원하는 답을 모두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만 신상을 공개해준다는 간호사의 말이었다.
“검찰입니다.”
“가자.”
“괜찮겠어?”
미희가 물었다.
“이곳에서 그들과 마주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그리고 만석아저씨도 피해를 보고…….”
간단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모두 차에 올라탔다. 운전은 여전히 은주가 하며, 추선우와 지현은 몸을
낮추어 외부에서 안을 봐도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어?”
“왜? 무슨 일이야?”
“저 차…….”
“저 차가 왜?”
“지용석 팀장 차입니다.”
“뭐!”
‘띠리리리’
“추선우의 행방은 찾았어?”
“연락을 해라 추선우…….”
겨우겨우, 차량을 이끌고 지용석의 차량이 이동한 경로를 잡아 따라가기 시작하였지만, 눈앞에는
지용석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강 검사님.”
“어? 어 그래?”
“괜찮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태정민은 강서진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지현의 안전보다 추선우가 걱정된 눈이었다.
“그렇겠지? 안전하겠지?”
‘띠리리리’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석강수…….”
‘띠리리리’
“네. 국정원장님.”
“그 오피스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일단 필요한 절차를 걸쳐 누가 최종 명의자인지
확인중인까. 확인 되는대로 연락하겠네.”
“최종명의자요? 무슨 말입니까?”
국정원자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지금 현재 백태가 있었던 이곳의 오피스텔 하나의 가격이 거의
10 억을 호가한다. 그런 오피스텔이 9 층에만 20 개가 있었다.
그러니 임대가 아니라 구매라면 200 억이란 돈을 이곳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직원들을 위해 200 억 원의
집을 마련할 오너는 절대 없었다.
“지금 국정원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잡은 놈을 족쳐서 백태란 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또 백태가 남기고 간 아주 귀한 정보도 분석을 해봐야겠습니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장태야.”
“네. 회장님.”
“네. 회장님.”
“백태. 회장님.”
“고맙군.”
백태는 장태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자신의 곁으로 보내준 네 명의 경호원을 설장호에게
바로 뺏겼고, 그에 대한 분통함이 갑자기 떠오른 그였다.
‘띠리리리’
“말해라.”
-지용석에 관한 일입니다.-
백태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나마 지용석은 자신이 원했던 일 중,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일처리를
하려 했던 사람이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지용석의 시신은 국정원에서 수습한 뒤, 청와대로 옮겨져, 가족들에게 인도될 것이다. 신경 끄라.”
“!!!”
“확실한가?”
-네. 몇 번을 더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놈이 살아서…….-
“아니. 지용석은 죽었다.”
-네? 그럼 차량은…….-
“지용석이 아니라, 추선우가 움직인 것이지, 지금 당장 그놈의 목을 가지러 가겠다. 준비해두거라.”
-네. 알겠습니다.-
백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정보는 아주 큰 정보가
되었다.
지금 현재 추선우 일행이 강원도로 향한 것을 아는 이들은 국정원 쪽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백태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원을 모두 영월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편. 석강수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셨고, TV 를 보면서 또 책도 읽었다.
“회장님.”
“말해.”
“백태가 잡힌 건가?”
“다행히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피신하셨고, 지금은 이수호 회장님의 곁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뭐. 잡히지 않았다면 다시 시작하면 되겠네. 급하지 않은 일은 당분간 바로 알리지마라, 좀 쉬겠다.”
경호원들은 석강수를 보았다. 하지만 표정을 구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수호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석강수의 사람이 된 인물이었다.
백태가 어떻게 된 것보다, 석강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이들에게는 더 중시되는 것이었다.
“이곳쯤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은주는 그녀에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여인은 은주가 주는 메모지를 줄줄이 읽어 내려가다가 이내
시선을 차량 안으로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차량 안을 보았다.
“총상 환자에요?”
“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총알도 제거했고, 또 상처치료도 만석 삼촌이 잘 해주셔서
괜찮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인은 서둘러 차량 안에 있는 추선우를 안으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현이 추선우의 옆에서 바짝
붙어 그를 부축하는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다.
“꼬마아가씨가 힘이 장사인가보네.”
은주와 아주머니는 표정이 밝아졌다. 여인의 어투와 행동으로 보아, 절대 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네. 저희 펜션은 연락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힐링을 중점으로 한 곳이기에, 이곳으로 온 사람들은
족쇄와도 같은 전화기에서 벗어나도록 해드립니다. 물론…….손님들이 가지고 온 휴대전화도 원한다면
저희들이 대신 보관해 드리고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영월이…….넓네.”
“특별히 이곳으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야. 누군가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봐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잖아.”
백태가 직접 영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백태가 영월로 향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설장호는 여전히 국정원에서 백태의 PC 를 확인 중에 있었고, 서지호는 차현태의 명령으로 추선우를 찾아
지원할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그리고 강서진과 태정민은 구석진 길을 찾아들어가며 지용석의 차량을 찾고 있었다.
또 한, 추선우 일행은 지현을 만난 이례 지금까지의 표정 중, 가장 여유 있는 표정들을 지으며, 여인이
내준, 참외를 먹고 있었다.
은주가 그의 말에 답했다.
추선우는 직감을 말했다. 그리고 차량위치 추적이란 것도 아주 쉬운 요즘이라 그들이 지용석의 차량을
쉽게 찾아 낼 것이라 생각하였다.
“내가 다녀올게.”
“괜찮겠어?”
은주가 일어서며 말하자, 추선우가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 아직은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정말이세요?”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곧 나갈 채비를 하였고, 은주도 서둘러 지용석의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겨두려 움직였다.
“아니. 우린 다른 곳을 친다. 백태가 나에게 힌트를 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함정을 파 놓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PC 가 알려주는 모든 것을 다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띠리리리’
“네.”
-국정원 조동민 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까?”
-지용석 팀장의 차량이 고씨동굴 인근에서 멈췄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조동민의 연락을 받은 태정민은 곧바로 강서진에게 위치를 말하였고 고씨동굴 방향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한 편. 백태도 지용석의 차량위치를 확인하였다. 백태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이수호가 내준 장태를
데리고 직접 영월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불행과, 하나의 다행이었다. 불행은 태정민이 추선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다행은 백태도 추선우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걸려?”
“여기서 곧장 가면 바로 있습니다. 한 5 분정도 걸리니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가시죠.”
국정원과 백태의 부하들이 확인한대로 지용석의 차량은 고씨동굴 앞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되었다. 그리고
여인이 은주에게 말했다.
“서둘러가죠.”
여인이 다시 말했다. 그러자 은주는 여인의 차량으로 올라탄 뒤,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인의 차량이 출구 쪽을 돌아 빠져나오고 있을 때, 태정민의 차량은 입구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또 한 곧바로 백태의 부하들이 탄 차량도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은주는 아슬아슬하게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 근처가 맞아?”
“네. 조동민 팀장이 이 근처에…….아! 저기 있네요.”
‘띠리리리’
“찾았나?”
“서둘러간다.”
“네. 회장님.”
태정민이 물었다.
강서진은 앞에 보이는 숙소를 본 후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바로 움직였고, 두 사람이 지용석의
차량에서 멀어지자마자, 백태의 부하들이 지용석의 차량 옆으로 왔다.
“저들은 인근 숙소를 찾을 것이다. 저들과 마주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놈들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없다는데요.”
한 편. 은주와 여인은 돌아가는 길에 만석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 순간에도 은주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만약을 생각한 그녀의 판단이었다. 전화기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고 있기에, 그 전화를 누가
주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설장호나 강서진과 같은 사람들이 주웠다면 전화를 해도 도움이 될 것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이동 중에 급히 이동하느라, 어딘가에 전화기를 흘렸고, 이민 별장 쪽에도 그들이 온 것을 알고 있기에,
별장 인근에 있던 그들이 전화기를 주워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특히나 지금은 더욱더 전화를 할 수 없었다. 펜션 주인인 여인도 마찬가지로 전화기가 없다.
그러니 가게전화나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지역번호가 휴대전화에 뜰 것이고,
전화번호만으로 이곳이 어딘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두 여인은 곧장 펜션으로 향하였고, 고씨동굴 앞 유원지의 주차장에서는 태정민과 강서진, 그리고 백태의
부하들이 지용석의 차량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동하죠.”
“그 놈은 결국 오지 않았나?”
“네.”
백태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물었다.
“태정민은?”
“조금 전, 주차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애들을 붙였습니다.”
“알았다. 지용석의 차는 어디에 있는가?”
백태는 부하의 안내에 따라 지용석의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내부를 보았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내부는 자세히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시내에게 하루를 지낸다. 숙소를 알아보고, 몇 놈은 시내를 돌아다니면 그 놈들의 흔적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자~! 오늘은 기분 좋게 삼겹살 파티를 하자!. 선우의 쾌유도 빌면서 고기로 영양분도 좀 채우자!”
은주는 펜션 앞마당으로 삼겹살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추선우도 웃었다. 이대로 이곳에서 그냥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현은 행복했다. 추선우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부모를 잃은 후, 최고의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추선우는 자신을 보고 웃는 지현을 안아주었다. 어리지만 결코 마음은 어리지 않은 지현이를 꼭
안아주었다.
오랜만이라는 단어가 아닌, 처음으로 모두가 함께 모여 앉은 자리였다. 은주와 아주머니, 그리고
추선우는 가끔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미희와 지현이 함께 한 자리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어두워졌네.”
강서진은 여전히 동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굳이 서울로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에서 하루를 지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한 편,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설장호는 조동민의 팀원들을 데리고 경기도 안산의 폐공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뭔가 있습니까?”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지금부터 확인하면 우리가 찾던 조직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다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하네요.”
“작동시켜봐.”
설장호의 말에 한 대원이 PC 전원을 켰고, 나머지 PC 도 모두 전원을 올린 뒤, 모니터의 전원도 켰다.
“이곳을 버리려는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설장호는 영상을 보며 말했다. 그 영상은 추선우가 지현을 데리고 사당역을 나오는 장면이 녹화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는 설장호와 태정민도 보였다.
바로 자신들이 지현을 찾고자 움직였을 때, 지현을 데리고 사당역에서 자신들을 농락했던 그 때의
영상이었다.
“경찰청장입니다…….”
“이것도 가져간다.”
“네.”
“얼마 전의 영상이군.”
“이놈들 아주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잠시 멈춰봐.”
“왜 그러는가?”
“저 놈. 병원에서 박태식 형사를 인질로 잡고, 추선우를 찾아다녔던 놈입니다.”
영상에는 수만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마저 재생하자, 설장호의 국정원 동기들이 배신한 영상이
보였고, 그 때 설장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후로 지하주차장에서 조동민이 박태식의 팔뚝을 관통하는 총을 쏜 후, 수만을 잡기 위하여 움직였던
영상과 함께, 청와대 경호실 대원이 수만에게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장면까지 다 녹화되어 있었다.
“실력자입니다.”
“저 놈이 누군지 알아봐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내용을 더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저장된 영상들이 어떤 내용들인지 알았고,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서 옮기는 것이었다.
“밀어버려야지.”
“네? 밀어버린다는 말씀은…….”
“적이 있던 곳을 그냥 두면 적은 다시 온다. 그 때를 노려 그 놈들을 잡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예 이 모든곳을 다 밀어버리고, 그 놈들이 열 받아서 먼저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더
좋아.”
“지금 당장 밀어버릴까요?”
“일단 이 공장이 누구의 명의로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그 명의자를 족쳐, 지금 백태가 있던 오피스텔의
명의자도 확인중이니, 이곳과 명의가 같거나, 또는 연관이 있는 놈이라면, 그 놈은 무조건 잡아 족친다.”
“꽤 넓은 터 같은데, 모두 문을 닫은 모양입니다.”
“사회가 이 모양인데, 중소기업이 버티는 것도 대단한 거지…….”
“젠장…….회장님께 연락해야겠다.”
“사실인가?”
“네. 회장님. 조금 전, 창고로 설장호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설장호를 목격했던 부하는 곧바로 백태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백태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넌 다녀와.”
“일단 서울로 가서 설 실장님과 서 실장님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이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밤에 움직이지는 마십시오.”
“…….”
“지현이도 잘 먹었어?”
“응. 이모.”
“고맙습니다.”
“잠이 오지 않지?”
“안 잤어?”
추선우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오늘은 즐거웠다. 지현을 만난 후, 가장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만 이 하루는 오늘 하루로 끝난다. 내일은 또 다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다 뭡니까?”
“정보야. 백태를 잡을 수 있는 정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놈을 잡을 수 있는 정보.”
“CCTV 녹화 화면이네요.”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움직였던, 그리고 추선우와 지현이 움직였던 모든 것이 찍힌 CCTV 화면이야.”
“설마설마했는데, 진실이었군요.”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했다.
오히려 경찰병력을 더 풀어서 그 놈들을 잡고자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청장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 더
무서웠던 것이야. 그래서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었지.”
“빼도 박도 못하겠네요.”
“일단 내일. 검찰총장에게 이 정보를 넘겨주고, 총장이 직접 청장을 잡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뭐. 매번 조심해야죠.”
“우리 쪽에서도 준비 단단해 둘 것이다. 일단 추선우와 지현이 영월에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바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왜요?”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만이라도 두 사람은
자유롭게 되는 거야. 잠시일지도 모르지만, 그 자유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 영상의 진위여부는?”
“조작 없는 영상입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같은 시각. 설장호가 준 영상을 받은 서지호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영상을 차현태에게 보여주었다.
차현태는 놀란 눈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물었고, 서지호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서지호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 청장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경찰병력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사라지면, 필시 자신을 잡기 위하여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기에,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을 의심해 봐야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여, 강 검사와 함께, 태정민을 영월에 있도록 하고, 그들을
찾아 경호하도록 명령 내려놓았습니다.”
“잘했네. 그리하게.”
차현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걱정의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지현이 무사하다는 안도와 함께, 그들을
이대로 영영 찾지 못할 경우에 대한 걱정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통령의 명령을 이행할 국가부처는 많았다. 하지만 차현태는 이번 이창민대사의 일에 대해서는 청와대
경호실과 국정원, 그리고 검찰에게만 그 권한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 함께 움직였던 외교부는 배제하였다. 이창민의 죽음이 외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점점 더
지배적으로 내려지면서 외교부를 뺀 것이었다.
설장호는 청장을 만나기 위하여 검찰로 향하였다.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했지만, 청장을 직접 만나 몇
가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질질 끌고 왔던 것에 꽤 많은 정보를 입수하게
되어, 마지막 자리에 앉은 이수호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기다려라. 곧 한 방에 대어를 물 수 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린 그 때 움직인다. 자잘한 놈들에게
시선을 줄 필요가 없이, 딱 우리가 원하는 놈만 잡을 수 있는 기회…….곧 온다.”
같은 시각. 이수호는 늦은 아침식사 중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옆으로 경호원이 다가서며 백태의 연락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였다.
“알고 있다. 도심에 없으면 외곽을 나갔겠지. 빌어먹을…….지용석의 차량을 계속하여 이용할 것이라
여겼는데, 잔 머리를 굴린 것이 확실하다.”
“그나저나, 어제 청와대 경호원 태정민과 강서진 검사를 여기서 보았다는 부하의 말이 있었던 같은데…….
그것에 대한 확인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태가 물었다.
백태는 장태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추선우와 지현은 충분히 자신의 부하들만으로 찾을 수 있다고
결론내린 그였다. 하지만 이동하다보면 필시 태정민과 강서진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견제코자 장태를 움직이게 한 그였다.
모두가 움직였지만, 백태는 숙소에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석강수에게 연락하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영월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누구를 쫒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군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그런데 그리 느긋하게…….”
-느긋하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당신이 그리 급히 움직인다고 나도 그리 움직여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니…….서로 각자 알아서 일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
“속도 쓰릴 것이다 백태. 하지만 그렇게 움직인다고 설장호를 잡지는 못해. 설장호는 말이야…….절대
정면으로 들이밀어서 이길 수 있는 승산이 있는 놈이 아니거든.”
석강수는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설장호와 마주친 북정마을에서도 그를 피했다. 그 뒤로도 설장호와
마주치면 거의 뒤로 물러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하지만 그가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설장호를 잡기 위한 완벽한 것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물러났던 그였다.
“아무리 친하다고해도, 아가씨인데 머리카락 정리부터, 입 옆으로 묻어난 침자국은 좀 지우고 인사해라.”
그녀를 보며 미희가 말했다. 은주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거울 앞으로 섰다. 그리고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보더니, 싱크대로 가서 손에 물을 좀 묻힌 후, 머리카락을 쓸어내렸고, 곧 입술 옆으로 묻어나온
침자국을 닦았다.
미희와 아주머니, 그리고 펜션 주인은 그녀를 보며 멀뚱한 눈을 하고만 있었다.
펜션 안에 세 사람만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물 차갑지 않아?”
같은 시각. 추선우와 지현은 동강 줄기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지현이 물가에 들어가 이리저리
첨벙거리자, 강원도의 차디찬 물을 잘 알고 있는 추선우가 물었다.
지현은 해맑게 웃었다. 추선우도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함께 미소 지어 주었지만, 아직은 그녀의 미소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 검사님. 어디십니까?”
한 편. 강서진의 숙소에 도착한 태정민은 숙소에 그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연락하여 물었다.
“이리오세요.”
“왜?”
“식사도 안하셨잖아요. 밥이라도 좀 먹고 찾아다녀야 힘이 나죠. 이렇게 찾아다니다. 눈앞에 추선우를
보아도 쫒아갈 힘조차 없겠습니다.”
“비빔밥 두 그릇 주세요.”
“안전…….때문이겠지?”
“네. 우리에게 연락하면, 또 그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 실장님의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도 추선우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고요.”
“식사 나왔습니다.”
“뒤쪽분도 비빔밥이죠?”
“네. 맛있어 보이네요.”
종업원은 두 사람에게 식사를 먼저 제공한 뒤, 장태에게도 물었다. 그러자 장태는 여전히 정면만을
주시한 채 종업원의 말에 답하였다.
‘띠리리리’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잘 먹었습니다. 여기 얼마입니까?”
장태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먹는 비빔밥 값까지 다 계산하며 말하였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와
멈췄다.
“맛있게 드십시오.”
태정민은 그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그리고 강서진의 손을 잡아끌며 말하였고, 곧 두 사람이 주차장
쪽으로 향하려 할 때, 주차장 쪽에서도 몇 사내가 담배를 태우며 태정민의 차량 앞에 서 있었다.
곧 장태가 두 사람의 뒤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 순간 강서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태정민은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장태는 여유가 있었다. 비록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두 사람의 곁으로 더
다가서며 물었다.
“소리 칠 것입니다.”
장태는 태정민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섰다. 하지만 태정민도 청와대 경호실 인원이다. 그가 다가선다고
하여 물러날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강서진이 곁에 있기에, 그녀에게 무슨 변고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뒤로 물러서고 있을 뿐이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이라는 사람이 뭐가 무서워서 뒷걸음을 칩니까? 뒤에 있는 강 검사가 대통령이 아니라,
목숨 걸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어서 뒷걸음을 치는 것입니까?”
‘애애애앵!’
“…….”
“뛰십시오.”
태정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강서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강서진은 태정민의 손을 꽉
잡은 채,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이내 두 사람은 경찰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이없군…….”
장태는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며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곧 두 사람을 에워싸려던 사내들에게
수신호를 보내 뒤로 물러나도록 하였다.
강서진은 경찰차에 다다르자, 자신의 신분증을 보이며 장태를 향해 가리켰다. 그러자 경찰차에서 세 명의
경찰이 내렸고, 그 중 두 명이 장태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경찰관 두 명이 장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장태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스윽 스윽’
“!!!”
“지금 바로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저놈들에게 가스총은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서둘러 벗어나서 지원을
요청해야 하니 서둘러 주십시오.”
‘애애애앵!’
장태가 두 명의 경찰관을 죽이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백태의 부하들이 태정민을 향해
다가서고 있을 때, 또 다른 경찰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한,두대가 아닌 다섯 대의 경찰차가 한꺼번에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길…….”
“현장에 CCTV 가 있을 것이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에게 보내. 그리고 오늘 오전, 경찰청장이 체포된 것을
강서진에게 알려주고, 경찰들의 지원이 앞으로 제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해줘.”
“알겠습니다.”
장태는 현장을 벗어난 후, 곧바로 백태에게 연락하여 조금 전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백태는 장태의
성격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일이 더 복잡하게 된 것이지만, 그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비록 자신보다 아래의 사람이지만, 결국은 이수호의 사람이기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그였다.
의외의 일로 인하여 경찰의 협조가 이루어지면서 영월의 주변 수색이 수월하게 되었다.
“엄마. 어디가?”
“아주머니, 함께 가요.”
추선우는 이곳에도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은주와 미희를 제외하고 네 사람은 펜션 여주인의 차를 타고 펜션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차량이 일반 도로로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그 뒤로 경찰차가 펜션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서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차창을 열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추선우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잘 살고 있는 한 가정을 힘든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으니, 미안함이 없을 수 없을 것이었다.
“누님 계세요?”
“은주야…….경찰이 왔는데.”
“경찰?”
“누님. 안계세요?”
“손님이세요?”
“네. 어제 왔는데요.”
“아. 그러셨구나.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해요. 연락처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데 어찌들 알고 다들
찾아오시는지 말이에요.”
‘!!!’
“아 참. 혹시 이런 사람들 보셨나요?”
“전화라도 좀 있던가.”
“지현이 신발 끈이 풀렸네.”
“삼촌.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추선우는 급했다. 그는 아직 경찰청장이 체포된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지금의 경찰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는 그 조직의 명령에 의해 청장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를 찾아야겠다. 서둘러 돌아가야겠어.”
“저기…….거기요!”
“!!!”
그리고 해당 경찰관의 보고를 들은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곧 펜션 여주인이 그녀를
부축하여 차로 이동하였다.
“이보게, 무슨 일인가?”
“아. 누님. 지금은 제가 좀 바빠요. 그러니 나중에 들릴게요.”
“영월시장이랍니다. 지금 바로 가보시겠습니까?”
“서둘러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애애애앵!’
“지현아 괜찮아?”
“응. 삼촌. 그런데 삼촌이 힘든 것 같아.”
“이 길 끝부분을 지나치면서 몸을 숨기자.”
‘탁!’
백태는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장태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었다. 장태가 주차장에서 경찰관을 죽이지만
안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네. 회장님.-
“이곳에서는 안 되겠네. 그만 서울로 돌아가게나. 이쪽 영월의 일은 내가 정리하고 올라가겠네.”
백태는 장태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구겼다. 필시 자신의 명령을 이행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이수호의
명령을 다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응?”
“추선우…….”
태정민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관할경찰서 팀장도 서둘러 형사들을 출동시켜 인근을
수색토록 명령 내렸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주변을 샅샅이 뒤질 것입니다. 추선우씨와 지현이 도보로 이동 중이니 인근에 몸을 숨기기는 용이하나,
멀리 가지 못하도록 봉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띠리리리’
-어떻게 됐어?-
설장호였다.
“일단 이곳에 있다는 것은 확인하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경찰들이 동원되어 찾고
있습니다.”
-그들보다 앞서야한다. 명심해라 추선우는 부상 중이다. 그리고 너와 강서진을 공격하려던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공원 주차장 한 복판에서 경찰을 죽일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니다. 그러니 서둘러라.-
“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자신이 직접 영월까지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백태가 남긴 수많은 자료들을
모두 검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자리에 앉은 놈을 추리해 내고, 그 놈의 목을 치는 것을
진행코자 하였다.
“가시죠.”
강서진에게도 말했다. 그녀는 추선우가 지금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곳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더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주 좋군.”
“체력이 엄청나군.”
장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돌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았지만, 대부분이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두 사람 외에는 걷는 사람이 없었다.
“추선우!”
“!!!”
결국 장태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큰 목소리 추선우의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추선우와 지현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추선우는 자신과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뒤에서 걸어오며 손을 흔들고 있는 장태를 보았다.
범상치 않은 외모이며,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역시 조직에 가담되어 있는 인물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삼촌…….”
장태는 웃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추선우의 움직임은 장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달랐다.
그는 열 살의 여자아이를 안고, 오르막길을 마치 100 미터 전력질주를 하는 듯 달리기 시작하였다.
장태는 생각을 고쳐하며 자신도 뛰기 시작하였다. 비록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맨 몸으로 뛰는 자신이
금방 추선우를 따라 잡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선돌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네? 관광지를 향해…….”
“추선우씨가 이곳으로 가면 선돌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갈 까요? 전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선돌방향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쫒아오는 경찰들을 피하기 위하여 어느 한 방향을 잡아 뛰고만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태는 여유가 있었다. 이미 주차장에서 태정민과 강서진의 앞에서 보여준 여유가 경찰을 죽이고 난
뒤에도 느긋했던 여유. 그는 여느 킬러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추선우는 그를 보았다.
“몸은 풀렸나?”
“언제나 준비된 상태다. 네가 준비되었다면 시작하지.”
“선돌까지 가실 것입니까?”
“그만…….내려갈까요?”
“추선우!”
“!!!”
“지금. 지금 듣지 못했어?”
“네? 무슨 소리를요?”
“차 좀 돌려주세요. 더 올라가봐야겠습니다.”
‘퍽!’
‘퍽!’
“지현입니다.”
“지현아!”
“?”
“이 차에 타고 있어.”
강서진은 지현을 차에 태워준 뒤, 형사과장에게 지현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녀도 태정민이 움직였던
곳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추선우!”
강서진은 지현이 알려준 곳까지 온 후,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태정민도 주변을 둘러보며 추선우를 불렀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제길…….어디에 있는 거야.”
곧 강서진이 도착하여 서로 지역을 나누어 확인할 것을 말했다. 태정민은 곧바로 길 외곽으로 움직여 산
길 아래쪽을 보았다.
가파른 절벽과도 같은 곳이 많았지만, 의외로 평평한 곳도 꽤 있어 보였다.
“내려가 보자.”
‘퍽!’
‘퍽!’
“백태가 너를 보낸 것인가?”
“나를 보낸 사람은 따로 있지.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백태회장님이다. 얼핏
듣자하니 너와도 인연이 있다고 하던데…….”
‘퍽!’
“이번엔 제대로지 않은가?”
“다시 와 봐.”
“응? 지금 뭐라고 했나? 다시 오라는 말은…….조금 전에 있었던 내 공격이 쓸모없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란 말인데…….”
“잘 알고 있다면 다시 해 봐. 정확하고 묵직하게, 단 한 방에 나를 보내버릴 정도로 강하게 해봐.”
‘띠리리리’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탁! 퍽퍽퍽!’
“이쯤 되면 그냥 누워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추선우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수만과는 달리, 장태는 추선우의 총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수호를 경호하고 있었을
뿐이기에, 추선우가 병원에서 입은 총상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었다.
“자. 다시 해보자.”
“또? 또 다시 오란 말이냐?”
“이번엔 제대로 하자. 솜방망이 주먹은 사양하겠다. 그러지 제대로 힘을 실어서 뻗어.”
‘슉!’ 탁!‘
‘탁! 퍽퍽퍽퍽!’
“이번엔 내가 제대로 들어간 것 같은데.”
“하…….하늘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군.”
추선우는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쓰러진 상대에게 다가가 짓밟으며 마무리를 할 수 있었지만,
추선우는 장태가 이미 자신에게 해 주었던 한 번의 기회를 그대로 다시 돌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추선우!”
“…….”
추선우가 태정민을 부르지 않자, 결국 장태가 직접 태정민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고 있었다.
태정민은 장태의 목소리를 들은 후, 놀란 눈을 한 채, 아래를 더 보았다. 그러자 약간 평평한 공터에 서
있는 장태의 모습이 보였고, 조금 더 머리를 빼서 보자 그 맞은편으로 추선우가 서 있었다.
태정민은 이미 장태가 어떤 놈인지 경험한 상태라,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추선우! 괜찮아?”
태정민은 추선우의 팔에 고이는 피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앞으로 나가 장태와 마주하여 섰다.
“웃어?”
“그래 웃기는군.”
“괜찮겠습니까?”
“쉬어. 너에게 이런 고생을 주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되도록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지현의 곁으로
가라.”
“아래쪽입니다!”
그 순간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들의 시선에도 세 사람이 보였고, 곧 한 경찰이 큰소리로 외치자,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머릿수가 많아도…….”
‘퍽퍽퍽퍽!’
“!!!”
장태의 실력은 생각 외였다. 아무리 작은 소규모 도시의 형사들이라고 하여도, 강력계 형사들은 기본적인
격투 술을 익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마치 초등학생 다루는 듯, 쉽게 다루며 단 한방씩에 눕히는 장태는 곧바로 태정민을 향해
움직였다.
‘탁!’
“네가 나서라. 이런 샌드백 따위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저 내 주먹에 맞아 터지는 샌드백일
뿐이다.”
“손들어!”
‘탕!’
“!!!”
‘탁!’
“!!!”
‘탕! 탕!’
“!!!”
“검사님…….”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물었다. 추선우는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괜찮습니다.”
그가 답했다.
“시신을 수습하고! 인근에 이놈의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샅샅이 뒤지고 영월을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을
검문, 검색을 철저히 하라!”
형사과장은 그녀에게 인사한 뒤, 장태의 시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영월관할지역을 검문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삼촌…….삼촌…….”
“지현아.”
“아무 일 없겠지?”
한 편. 펜션에서는 아주머니가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은주에게 물었다.
미희가 아주머니의 앞으로 앉으며 말했다. 딸에게 큰 소리를 듣고, 우울함이 더 커졌지만, 미희의 말을
들은 후, 그녀는 미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차가 들어오네요.”
“처음 보는 차인데.”
‘탁!’
펜션 주인이 나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누군지 모르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펜션주인이 나선 것이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경치가 참 좋네요. 공기도 아주 맑고요. 그런데 이 펜션은 왜 손님을 따로 받지 않나봅니다.”
“네. 저희 펜션은 편지로만 예약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예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 참참.”
“뭐. 경찰은 아닌데, 우리가 꼭 찾아야 할 놈이 있어서 말이에요. 혹시나 그 놈이 여기에 있을까해서
물어보는 건데…….”
“찾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금 여행 온 사람들은 여자 분만 세 명입니다. 그런 와중에 경찰이
아닌 당신들이 뭔가를 찾는다며 들어서면, 그 분들이 과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내는 여주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최대한 태연한 척 자연스럽게 명함을
받은 후, 그들을 향해 다시 보았다.
“누구래요?”
은주가 물었다.
“역시 선우총각과 지현을 찾는 것 같아. 나에게 두 사람을 보게 되면 이쪽으로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주고
갔어.”
은주는 그녀가 보여준 명함을 건네받아 보았다. 이름도 없었고, 그저 연락처 하나만 떡하니 적혀있었다.
“문 잠가요!”
‘와장창!’
“!!!”
"우리가 찾는 사람은 찾는 사람인데…….여자 네 명이 있다고 하니 그냥 가기가 좀 그래서 말이야. “
그들은 이곳에 추선우와 지현이 있다고 여겨서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여자들만 있다는
펜션주인의 말에 안으로 들어서려는 것이었다.
덩치 큰 한 사내가 네 명을 고루 보며 말했다.
그가 은주에게 다가서려 할 때, 아주머니가 은주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막은 아주머니를 아주 간단하게 밀치며 은주의 앞으로 섰다.
‘짝!’
하지만 은주도 그리 호락호락한 여인은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밀치고, 무례한 행동을 한 그의 뺨을
내리쳤고, 순간 그 안은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차가 있네.”
“지현아. 차에서 나오지 마. 그리고 강 검사님도 안에 계십시오. 안에서 지현을 경호해 주십시오.”
차가 도착하기 전, 추선우가 말했고, 지현은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떼쓴다고 될 일과,
되지 않을 일을 잘 구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강서진의 차가 도착하자마자. 태정민과 추선우가 바로 내렸다.
“제길!”
그리고 태정민의 격한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의 눈에는 이미 박살나버린 펜션의 창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새끼야!”
“!!!”
“넌 뭐야?”
“너희들 모두 죽는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자 태정민은 안방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는 은주의 옷을 힘으로
벗기려 애쓰는 호리호리한 키의 사내가 보였다.
“선우야.”
미희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추선우의 표정은 매섭게 변하였고, 추선우를 본 덩치가 인상을 구기며 그에게
다가섰지만, 그 역시 단 일격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추선우는 구석에 주저 앉아있는 미희를 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보고 있는 미희를 보다, 이내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미안해.”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태정민은
호리호리한 키의 사내를 거의 죽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뒤에야 은주의 만류로 멈추었다.
“괜찮습니까?”
태정민은 그때서야 은주에게 안부를 물었다. 은주는 그의 목소리에 눈에 고인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살며시 안겼다.
태정민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주먹에 맞아 쓰러진 사내를 쏘아보면서 은주를 다독거려 주었다.
‘애애애앵!’
잠시 후 경찰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리고, 형사과장과 함께 몇 형사들이 펜션에 도착하였다.
지현을 지키고 있던 강서진이 형사과장에게 연락하여 그를 부른 것이었다.
형사들이 오면서 펜션 안으로 들어섰던 사내들도 모두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아주 컸다.
형사과장이 펜션주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무서움이 온몸에 전해져버린 순간이라 그녀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안전한 곳을 찾고자 영월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추적은 끝이 없었다. 단 하루 만에 영월에서
그들에게 발각되었고, 또 다시 피해 다니니만 못한 일이 만들어졌다.
추선우는 아주머니와 은주, 미희를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하여 이어지는 일들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또…….어디론가 가야하나요?”
“국정원은…….안전할까요?”
태정민이 확답을 주지 못한 상황에서 추선우가 그녀에게 말했다. 은주는 추선우를 노려보았다. 눈물이
맺혀있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추선우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은주와 미희를 보았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그녀들에게
전해지지만, 결코 표정으로 그 미안함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아주머니에게도 정중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은주와 미희가 추선우는 보는 눈빛과 달리,
어머니가 아들을 모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다시 올 거지?”
“그럼요. 돌아가서 밀린 월세 드려야죠.”
아주머니는 추선우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추선우를 안아주었고 토닥거려 주었다.
“지현아.”
“…….”
지현은 끝까지 추선우의 눈을 보지 않으려 하였다. 추선우는 지현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러자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며 지현은 추선우를 안았다.
“삼촌.”
“태팀장님은 저와 함께 남아주십시오.”
“네가 가라고해도 가지 않을 참이었다. 어떤 새끼가 이곳까지 와서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지, 그 놈의
얼굴을 내가 꼭 보고 돌아간다.”
“헬기가 도착합니다.”
펜션에서 약 50 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헬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조동민이 직접 헬기에서 내렸다.
“괜찮습니까?”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태정민이 물었다.
조동민은 달랐다. 상처를 입었다고 휴식이란 특혜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추선우가 원하는
바였다.
경찰들의 도움으로 추선우는 영월의 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치료를 마친 후, 곧 일행과 합류하였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당부가 아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 아주머니와 은주, 그리고 미희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였다.
일반인에게 이런 고생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사과였다.
설장호의 사과에 그 동안 표정이 굳어있었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조금은 펴지고 있었다.
하지만 펜션에서 겪은 수치로 인하여 마음은 편치 않았다.
설장호는 이들을 범하려던 사내들에게 철퇴를 내릴 것을 검찰청에 직접 부탁하였다.
더군다나 현장에 강서진이 있었으니, 검사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이기에 그들에게 선처란 없을 것이었다.
네 사람은 설장호의 보호아래 국정원에서 따로 보호를 받을 예정이었다.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들 외에는
네 사람의 곁으로 일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였다.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네 사람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했고, 대원들만을
각기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명령 내렸다.
한 편. 백태는 장태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부하가 영월로 오는 길에 체포된 소식을 접했다. 부하들의
체포에는 당연하다는 듯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장태의 죽음에 대해서는 충격이 큰 편이었다.
이수호를 경호하는 네 명의 경호원이었고, 그 힘은 막강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하니,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가 궁금하였다.
“일단 경찰이 영월을 완전히 뒤지고 있으니, 조심히 움직인다. 만에 하나 그들의 의심을 살 경우. 모든
것은 알아서 처리하라.”
“알겠습니다.”
백태는 장태의 죽음과 함께, 영월 경찰들이 모든 시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월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돌아가도 회장님의 볼 면목은 없다. 여기서 추선우와 지현을 잡지 못한다면, 여기서 죽는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네. 훨씬 좋네요.”
“그래도 조심해야해. 또 터지면 그 상처만 벌써 몇 번째 봉합하는지 원…….”
태정민이 그의 팔을 보며 말했다.
추선우가 물었다.
“일단 그의 차량을 추적하고 있고, 그 놈의 부하였던 이들이 이용한 차량도 모두 추적하고 있으니, 답이
오는 대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사람은…….이제 안전하겠죠?”
“설장호 실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절대 국정원에서 나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나서게 되면 그 네 분도 함께 나서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설 실장님은 그 네 분의 곁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닐 것입니다.”
추선우와 태정민의 표정은 그제야 풀리고 있었다. 어디하나 안전한 곳이 없으니 마음이 편할 날도 없었다.
‘띠리리리’
“말해.”
-백태의 차량은 계속 추적중입니다. 그리고 백태의 부하가 탄 차량 중, 두 대가 고씨동굴 앞,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정보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그들의 이동경로를 잘 파악하지 못하여 CCTV 를 잘 활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영월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영월시내를 전부 뒤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공무집행중입니다.”
“공무집행? 무슨 업무집행을 하는데 선량한 시민의 차를 그리 막 따고 지랄이냐고!”
그들은 경찰을 뒤로 밀치며 소리쳤다.
“이 사람들이! 지금 공무집행중이며, 그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을 모릅니까!”
“모두 동작 그만!”
“넌. 또 뭐야?”
“이 놈들 모두 잡으세요.”
‘퍽퍽!’
“!!!”
“태정민…….”
“뒤로 빠진다.”
“네? 뒤로 빠진다니요?”
두 사람을 확인한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머지 두 명의 사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퍽퍽!’
“제길…….”
“기분 나쁘더라도 이해해라. 우리가 살아야하니 너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너도 살 수 있는 길이 있어.”
“동료도 함께 풀려난다. 그리고 다시는 너희들을 찾지 않는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면 너희들은 살 수
있다.”
사내가 말을 흐렸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의 말이 들렸고, 사내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들이 추선우를
보았다.
이미 이들도 추선우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선우는 법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민간인 신분이기에 그를 그저 빤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정말…….우리는 잡지 않는 것입니까?”
“사실 너희들 같은 놈들 잡아서 콩밥 먹여봐야 선량한 국민들 세금만 낭비다. 그러니 너희들 잡아 넣는
것보다야 굵직한 놈 한 놈을 잡아넣고 세금도 아끼는 방법이 좋잖아.”
결국 그들은 백태의 은신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태정민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조동민은 곧바로 형사들에게 이 내용을 알린 뒤, 해당 모텔을 포위하도록 명령 내렸다.
“쉽지 않은 선택인데, 너희들은 찾아온 기회를 잘 잡은 것이다. 잠시만 경찰서에서 대기하라. 그리고
백태가 잡히면 그 즉시 자유를 주겠다.”
“쉽지 않을 것이며, 또 이렇게 정확하게 알고 찾아온 듯,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보아, 우리 쪽에서
정보를 흘린 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백태는 부하의 말을 들은 후, 표정을 더욱 더 심하게 구겼다. 또 한 지금은 장태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호가 보내준 장태라도 곁에 있었다면 이 순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백태였다.
백태는 이 순간도 설장호의 명령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라 여겼다. 서울의 오피스텔과 이곳. 단 이틀
만에 두 곳의 은신처가 너무나 빨리 알려지는 바람에 그는 설장호의 이름을 말하며 이를 갈았다.
은신처를 알았다면 경찰이 바로 들이닥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하의 말처럼 경찰은
그저 모텔을 둘러싸고만 있을 뿐이었다.
“설장호를 기다리겠지.”
“회장님.”
“이쪽입니다.”
“이곳주인이 불법성매매 단속이 적발되었을 경우, 성매매 여성을 따로 빼돌리는 비밀통로라고 했습니다.”
쪽문의 크기로 보아 사람이 이리저리 왕래할 것처럼 보이지 않기에, 외부에서도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었다.
모텔주인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리고 부하가 문을 열었고, 곧 백태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부하 세 명도 함께 움직였다.
“여깁니까?”
“!!!”
그리고 때마침 뒷건물의 정면에서 외부로 나서는 백태의 모습이 추선우의 눈에 정확하게 보였다.
“백태!”
“!!!”
“저깁니다!”
태정민의 눈에 먼저 추선우의 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추선우가 뛰어가기 시작하는 곳의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백태와 함께 사내 네 명이 함께 있었다.
“백태입니다!”
“추선우! 그를 쫒지마라!”
태정민이 소리치자, 일부 형사들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고, 곧 조동민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퍽퍽!’
“오늘 여기서! 네 놈은 죽는다!”
“어린놈이 잘도…….”
‘퍽퍽!’
‘띠리리리’
“너…….죽고 싶은 것이구나.”
“죽어도 너는 잡고 죽는다. 나와라 백태.”
“!!!”
“넌! 오늘 죽는다!”
“누가 먼저 죽는가는 이 주차장을 나가는 사람이 알겠지.”
'퍽!‘
“!!!”
그리고 정확하게 백태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백태는 그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에 와 닿았다는 것보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서 움직였는지에 대해 더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백태는 처음으로 일대 일 싸움에서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렵거나, 자신이
패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두근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강자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었다. 그는 강하다. 지금까지 백태를
쉽게 상대한 인물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설장호였다.
그가 아니고서야 자신을 잡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설장호와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자신이 대적하려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를 보며 추선우가 말했다. 추선우도 하나의 백열등 아래에서 서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는 약 5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샅샅이 뒤져라!”
이미 모텔에서 추선우가 백태를 쫒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고, 그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백태라 짐작하였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추선우가 그리 행동해야 하는 사람은 백태와 석강수, 두 사람 뿐이라는 것을 태정민은 잘
알고 있었다.
시장을 외곽을 계속하여 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상황이 없었다. 제보도 더 이상 없었고, 사람들의
우왕좌왕도 아예 없었다.
“주변을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백태가 말했다.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어, 희미하게나마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바닥에는 어지럽게 늘려있는 잡다한 물건들과 쌓여있는 짐들로 인하여 진지함이 반감되는 것에서
느낀 생각이었다.
추선우의 표정은 매서웠다. 그리고 그의 말에 백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려 할 때쯤, 영월시장을 모조리 다 훑어보았던 형사들과 경찰이 다가서며
보고하였다.
“마음을 달리해야겠다. 지금 외부에는 나를 잡고자 태정민이 서성거리고 있겠지. 이대로 외부로 나가면
제대로 된 실력을 보기도 전에 내가 잡힐 테니, 그냥 이곳에서 놀자.”
“이야앗!”
‘탁!’
백태는 추선우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하여 수를 쓴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다니는 단검을
뽑아들었고, 단 일격에 그의 목을 치고자 그를 밝은 곳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5 미터 거리를 두고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백태가 휘두른
칼은 추선우의 손에 의해 잡혔다.
“죽어라…….추선우.”
“으아악!”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
“지하주차장에서 나온 소리 같은데.”
“내려갈 볼까?”
“에이…….무섭잖아. 난 언제나 이 지하주차장이 무섭더라고.”
‘탁!’
칼날이 추선우의 눈에 바로 내려와 꽂히기 전, 추선우는 갖갖으로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피했고, 곧 몸도
뒤로 빠지며 그의 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헉헉…….”
“운이 좋구나.”
‘퍽!’
“!!!”
‘쾅!’
“너. 이 새끼…….”
“!!!”
‘슉!’
하지만 그의 주먹이 어둠속으로 들어오기 전, 주먹의 위치를 파악했던 백태는 몸을 숙이며 그의 주먹을
피하였다.
‘퍽!’
“!!!”
‘슉! 슉슉슉!’
추선우는 정확하게 백태를 향해 주먹을 내 지르고 있었다. 백태는 그의 주먹을 이리저리 피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휘두른 칼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먹을 향해 칼을 휘둘렀지만, 그 칼날이 주먹에 닿기 전, 이미 추선우의 품으로 주먹은 돌아간 후였다.
‘슉!’
“!!!”
‘탁!’
백태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자, 소리가 들리는 부분으로 강하게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자신이 휘두른 칼은 나무 판에 아주 강하게 내리꽂히는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에
백태가 놀라 뒤로 재빨리 몸을 뺏지만, 이미 칼날의 뾰족한 부분은 나무판자 하나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
“제길…….”
‘퍽!’
‘와장창!’
여지없이 추선우의 주먹이 날아왔다. 어떻게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고 주먹을 뻗는지를 알 수 없었다.
백태는 뒤로 밀려나며 곧바로 다시 일어섰고, 손에 쥔 칼은 이미 날카로움을 잃어버렸으니, 더 이상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바닥에 버려버렸다.
“오너라.”
백태가 넘어진 곳은 백열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고, 자신의 모습은 이제 추선우에게 잘 보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어둠속으로 몸을 피하기에는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정말…….설장호와 닮았군.”
‘쾅! 쾅쾅!’
“넌. 그 사람의 근처도 가지 못한다. 그 사람은 이미…….이 나라에서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
되어 있으니 말이야.”
추선우의 고함소리는 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제 외부를 지나쳐가던 사람들의 귀에도 범상치 않게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확인해봐야겠는데.”
‘슉 탁!’
“!!!”
추선우는 다시 그를 올려보았다.
“아무도 없는데요.”
“…….”
“저것이 사람이다. 이곳에서 난 소리를 듣고 내려왔지만, 자칫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서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넌…….”
“저런 사람도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별 다른 상황은 없습니까?”
“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내려갔는데, 쥐가 움직이다 물건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확인하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탁! 슉! 퍽!’
“하하하!”
“!!!”
“이 안에 있었군.”
태정민이 바로 움직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자 어둠이 짙었다. 곳곳에 설치된 백열등만으로는
지하주차장 안을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퍽!’
“!!!”
‘퍽퍽퍽퍽!’
곧이어 연달아 소리가 들리면서 태정민과 함께 내려온 조동민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추선우!”
“!!!”
‘탁!’
“웁!”
백태는 자신이 휘두른 각목에 추선우가 맞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가 휘두른 각목에는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그저 어둠속에서 휘두른 그의 각목은 마대자루를 쌓아놓은 곳을 수차례 때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마치 사람을 때리는 느낌과 같았을 것이었다.
‘퍽!’
“백태…….”
“추선우!”
태정민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천하의 백태를 잡은 순간을 기뻐하고 싶었지만, 추선우의 안색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에 1 초라도 빨리 그를 병원에 데려다 줄 심상이었다.
태정민이 추선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 뒤, 조동민은 자신의 발아래 쓰러져 있는 백태를 향해 내려
보았다.
“백태. 네 놈 꼴이 말이 아니구나.”
“조동민…….오랜만이구나.”
조동민이 백태를 아는 듯, 백태도 조동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하였다.
조동민은 그의 몰골을 보았다. 상반신만 외부의 빛에 의해 잘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반신만으로도
그의 상처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이 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치료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의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네.”
조동민은 자신이 직접 백태를 데리고 병원으로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영월관할 형사들에게 백태를 맡겼다.
그리고 홀로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천하의 백태가 민간인에게 일대일로 맞짱뜨서 잡혔다니…….믿기가 힘들군.”
‘띠리리리’
그 순간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앞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 난다라…….”
“선우는 괜찮나요?”
“추선우는 지금 병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상처가 난
부분에서 다시 피가 흘러나온 것 외에는 다른 상처는 없다고 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 말하네요. 당신들은 그런 말이 그리 쉽게 나오나요?”
“…….”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그런 상처에 대한 민감함이 둔했다. 하지만 일반인은 달랐다.
“지현아.”
추선우의 치료로 끝났다. 태정민은 추선우와 단 둘이서 서울로 향할 것을 말하였고, 조동민은 백태를
압송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영월관할 형사들과 함께 서울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그래도 백태가 국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겠습니다. 태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미 국정원 안에 있는 최기수도 쉽게 죽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뻥뚫린 도로 위에서 저 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습니까?”
“…….”
태정민고 곧 꼬리를 내렸다. 조동민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곧바로 백태의 압송을 시작하였다.
이수호는 모두가 걱정하는 것처럼 백태마저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인물로 수만이 자진하여 손을 들었다.
“괜찮겠는가?”
“백태 회장을 잡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태를 죽였다는 것은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꼭 그놈에게 장태의 원한을…….”
“장태를 죽인 사람은 그가 아닌 강서진 검사다.”
“…….”
“모조리…….다 쳐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섣부른 행동은 하지마라, 장태가 당한 것도 있지만, 백태가 잡힐 정도라면 그냥 그리 쉽게 보고 넘길
일은 아니다.”
“광아.”
“네. 회장님.”
조동민의 말에 백태는 같은 차에 승차한 영월 형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펜션을 지키고 있었던
형사과장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
조동민은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조동민은 처음부터 마이크를 외부음성 녹음으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백태가 하는 말들은 조동민과 같은 주파수를 맞추어 이어마이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두의 귀에 라이브로 그대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추선우…….넌 내가 다시 잡는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마라. 넌 지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해. 사형당하지 않는다면 백발이 돼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표정관리가 되지 않나보군.”
“석강수…….그 놈이 그리 쉽게 잡힐 것 같은가?”
-잡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넌 어땠나? 너도 쉽게 잡힐 인물은 아니었지만, 결국엔 잡혔으니, 그
놈이라고 잡지 못할 법은 없겠지.-
백태의 표정은 더욱 더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 한 명이 이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더 나가 그의 기세가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자신의 조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펑!’
‘끽!’
“뭐야!”
백태가 탄 승합차가 톨게이트를 나서자마자, 옆 차선에서 갑자기 차량이 타이어펑크를 내며 방향을 돌렸고,
해당차량은 공교롭게도 백태가 탄 차량이 지나쳐간 그 톨게이트의 길목을 막았다.
이에 조동민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친 뒤, 뒤를 향해 보았다.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저 차 왜 저래?”
‘쾅!’
“!!!”
“차 좀 빼 봐요!”
태정민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 뒤로 차량들이 줄을 길게 서 있기에 쉽게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태정민의 말대로였다. 비록 저들이 백태를 타깃으로 잡았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 와중에 추선우가
보인다면, 백태에 이어 추선우도 충분히 타깃으로 삼을 그들이었다.
태정민은 자신의 차량 뒤로 있는 경찰차에 연락하여 앞쪽의 차량을 빼도록 하였다.
‘쾅!’
이어서 앞쪽으로 달리던 경찰차도 전복당하며 몇 바퀴나 굴러 가드라인에 부딪힌 후에야 멈추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승합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차량들이 붙습니다.”
“끝내라.”
“더 속도를 내십시오!”
조동민은 양쪽으로 붙는 차량들을 보며 소리쳤지만, 승합차의 특성상 고급 세단을 따돌릴 정도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백태는 차창을 통해 아래를 보았다. 하지만 승용차는 워낙 짙은 선팅이 되어 있었기에 안은 보이지도
않았다.
“잘 가십시오. 백태 회장님.”
“저 새끼!”
“차가 처리되었습니다.”
‘끽!’
승합차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고, 양쪽으로 있던 두 대의 승용차는 속도를 맞춰서
늦추지를 못하여 서로 강하게 부딪힐 뻔 하였지만, 핸들을 다시 돌리며 다행히 충돌은 피하였다.
“뭣들해! 죽여!”
수만은 승용차를 운전하는 부하들에게 소리쳤고, 그들도 속도를 낮추어 승합차와 다시 나란히 움직이려
하였다.
‘픽픽픽픽!’
“펑!”
“탕탕탕탕탕탕!‘
“뭐야! 저 새끼들은 어디서 총을 구한거야!”
“어디야! 아직 멀었어!”
“따라붙어!”
승합차가 갑자기 속도를 낮춘 후, 나가는 길을 통해 국도로 접어들자, 그곳을 지나친 수만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조동민과 백태가 탄 차량이 국도로 빠져나가면서, 수만의 차량도 고속도로에서 유턴까지 하는 강수를
두면서 그 차량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 뒤로 태정민의 차량이 붙으며 조동민에게 알렸고, 또 그 뒤로는 경찰차들이 따라붙었다.
“너희들은 어디야!?”
“지금 바로 붙고 있습니다.”
번잡한 도시로 들어서니 차량들이 많았다. 하지만 승합차는 멈추지 않았다. 신호를 무시하고, 또 차선을
다 무시하면서 도로를 달렸고, 그 뒤로 수만의 차량도 똑같이 달렸다.
“지금 즉시 조동민이 움직이는 곳의 CCTV 를 연결하고, 그에게 동선을 알려라. 또 한 경찰청과 검찰청에
연락해서 해당 차량을 모두 잡아.”
“네! 알겠습니다.”
‘탕탕탕탕!’
“!!!”
그들의 뒤로 붙은 태정민이 소리쳤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들마저 총을 쏜다면 자칫 민간인 피해가
속출할 것이 뻔하였다.
역시 언론은 빨랐다. 현재의 상황을 헬기까지 띄워 모두 촬영하면서 실시간으로 뉴스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난 어차피 여기서 살아남아도 죽어. 이래죽나. 저래죽나 마찬가지라면, 마음의 여유라도 좀 찾아보고
죽는 것이 났지 않을까?”
‘띠리리리’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지금 조동민이 백태를 데리고 잠실구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곳에서 뒤 따르는 놈을 잡는다. 절대
놓치지마라.-
“알겠습니다.”
‘띠리리리’
문제는 언제나 뉴스가 만든다. 그를 잡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지만,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뉴스를 접한 이수호는 설장호의 계획을 정확하게 캐치하여 수만에게 알려주었다.
“차량을 돌린다.”
“네? 더 쫒지 않습니까?”
“굳이 저 놈들이 파 놓은 웅덩이로 스스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기회를 다시 볼 것이니 물러나라.”
“네. 알겠습니다.”
수만의 명령으로 맹추격을 감행하던 차량들이 일제히 차량을 급하게 유턴시키며 돌아갔다.
생각지 못하였다. 그들이 계속 승합차를 따라붙어야 설장호의 계획이 실행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획을 발설한 것처럼 그들은 차량을 돌려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제길! 쫒자!”
돌아가는 차들을 그냥 보내고 국정원으로 향하는 백태를 더 감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정민은 차량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대해 추선우도 반기는 표정이었다.
“괜찮지?”
추선우의 말에 태정민은 웃었다. 그리고 그의 차량이 유턴하여 수만의 뒤를 쫒자, 따라오던 영월의
경찰차량들도 일제히 차량을 돌려 수만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다.
“어찌 된 거야?”
“일단 넌 무조건 백태를 데리고 국정원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국정원 대원들에게 태정민을 지원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띠리리리’
“네 석관형님.”
‘쾅!’
“뭐야!”
“다른 놈이 또 붙은 모양입니다.”
“저기 있습니다.”
추선우의 눈에 국정원 차량으로 보이는 세 대의 차량이 보였고, 그 차량들은 빠르게 태정민의 차량으로
붙기 시작하였다.
“또 성남이야. 제기랄.”
“성남 펜션 방향입니다.”
곧 무전을 통해 국정원 대원의 무전이 들려왔다. 조동민에 의해 두 사람을 돕도록 한 인물들이 덤프트럭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탁합니다.”
태정민이 말했고, 그는 수만의 차량을 바짝 뒤쫓기 시작하였다.
“아니다. 저들이 숨었던 곳, 그곳에서 저들의 마지막을 장식해줘야겠다. 그리고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놈. 그 놈은 내가 직접 친다.”
“알겠습니다.”
수만은 추선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임무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겨준 인물. 바로
추선우였기에, 그를 이번에는 제거하려는 마음이었다.
수만의 차량은 정확하게 성남펜션에 도착한 뒤, 멈춰 섰다. 지난날의 사건에 대한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국정원에서도 또 한 이들에게도 이곳의 흔적은 되도록 빨리 치워야 하는 공통점이 있었었다.
“차가 따라 들어옵니다.”
수만의 부하가 태정민의 차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수만을 비롯하여 여섯 명의 부하는 들어오는
차량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조동민과 백태가 탄 승합차가 국정원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이 보고는 곧바로 설장호에게
전달되었다.
설장호는 국정원 정문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해당 차량이 들어서는 것을 본 후, 국정원 본관건물
정문으로 향하였다.
“백태가 들어오는가?”
“오랜만이구나. 백태.”
“끌고가라.”
“어서 오시게.”
“누가 두목인가?”
“호화스러운 대접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달라져도 별 상관은 없다. 그러니 시간끌지말고 빨리 끝내자.”
“추선우…….”
“!!!”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의 주먹이 그대로 자신의 얼굴 앞으로 날아왔고, 수만은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며
뒤로 물러나, 힘겹게 그의 주먹을 피하였다.
“멈춰라.”
수만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추선우와 수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대로 멈춰선 채, 두 사람을
향해보고만 있었다.
“이 놈은 건드리지마라. 내가 직접 사냥한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여섯 명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차기를 이리저리 잘도 피하면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의외로
여섯 명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듯 해보였다.
“짝짝짝”
“자만심인가?”
“자신감이지.”
“팀장님. 여기입니다.”
“현재 성남펜션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곳 일대에는 CCTV 가 없어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퍽!’
‘퍽!‘
“저 놈은 너를 눕힌 후, 더 자근자근 짓밟아주겠다.”
“그건 불가능해. 넌 나를 이기지 못 할 테니 말이야.”
“추선우…….2 승.”
수만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은 진지한 상황이었다. 추선우도 물론 지금의 상황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태정민이었다. 마치 여섯 명의 사내와 격전을 벌인 후, 정신을
놓아버린 듯, 평소와는 다른 어투로 실실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퍽퍽’
하지만 추선우의 주먹은 수만을 비켜갔고, 수만의 주먹은 추선우의 안면을 강타한 뒤, 밀려나는 그에게
다시 한 방을 먹였다.
“이제 재미없지?”
수만은 자신의 공격으로 추선우가 쓰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추선우는
다시 몸을 일으켰고, 자세를 잡았다.
그의 말에 대해 태정민이 여전히 농담을 섞으며 말하자, 수만은 인상을 구기며 다시 태정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쪽에 신경 써라!”
‘슉탁탁탁탁! 퍽!’
수만이 태정민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추선우의 공격이 이어졌다. 주먹을 내 지른 후, 앞차기와
옆차기에 이어 다시 주먹이 나가는 것까지는 수만이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몸을 돌리며 강하게
휘어들어간 돌려차기는 막지 못한 채, 정확하게 면상을 내어주었다.
수만은 조금 전 돌려차기에서는 필시 자신의 옆구리를 강타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거리상으로 제대로
적중시키기 힘들었던 머리를 겨냥한 것을 두고 말했지만, 추선우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았음을 말했다.
이어 태정민이 쓰러진 여섯 명 중, 한 명이 꿈틀거리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강타하며 말했다.
수만은 추선우의 공격패턴을 떠나. 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띠리리리’
강서진이었다.
-어디야?-
“지금요? 지금 성남펜션입니다.”
-성남 펜션인 것은 알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지?-
“네? 우리가 펜션에 있다는 것을 아셨어요?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시다고요? 저런…….검사님께서 오시면
여기 있는 한 놈이 참 불쌍하게 되겠네요.”
또 다시 두 사람의 주먹은 서로의 얼굴과 복부, 급소를 향해 내 질러지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은 여전히
두 사람의 격투를 구경하며 감탄까지 하고 있었다.
백태는 쉽지 않았다. 최기수나 서충식처럼 설장호의 말에 생각하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저 설장호의 말이 나오고 난 뒤에는 곧바로 자신의 답을 하였다.
“어쩔 수 없겠군. 넌 여기서 당분간 지낸다. 절대 구치소로 보내지 않아. 여기서 매일같이 벽만 보며
살아가도록 해주마.”
“난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니까 그러네.”
‘똑똑’
설장호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그의 표정은 다시 백태를 향해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장호는 자리에서 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절대 설장호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던 눈동자가, 그를 천천히
올려보기 시작하였다.
‘쾅!’
‘철푸덕!’
“제기랄…….넌 정말 귀신같은 놈이다.”
“일어나라. 아직 멀었다.”
“차가 들어오네.”
태정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은 성남펜션을 들어서는 저 멀리 나있는 길을
보았다.
‘퍽! 퍽! 퍽퍽!’
수만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 추선우의 주먹은 그의 복부를 가격하였다.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고 있던
중에, 추선우의 주먹이 다시 그의 턱을 올려쳤다.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나던 그를 향해 추선우는
태권도의 나래차기와 비슷한 발차기로, 그의 복부에 먼저 한 발을 들이민 뒤, 그 자리에서 휘리릭 돌며
돌려차기로 수만의 면상을 정확하게 날렸다.
‘콰당!’
수만이 또 넘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그 충격이 꽤 강한 모양이었다. 처음보다 일어서는 속도가 많이
느려진 수만이었다.
“꼼짝 마!”
“추선우씨. 물러나세요.”
태정민도 그녀가 갑자기 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정민은 곧 추선우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뒤로 물러서도록 하였다.
“아무래도 오늘 강 검사님께서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 그냥 시키는대로하자.”
“뭐라는 거야?”
“할 말 있으면 크게 말해!”
“저 새끼가…….”
“저희들이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수만은 다른 형사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서진은 그의 입가에 생겨난 미소를 보며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수만은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은 비장하였다. 강서진은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고, 태정민과 추선우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형사들도 근처로 가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강서진이 그의 곁으로 2 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더 다가섰다.
“이거…….어디서 꼭 본 듯한데…….”
“젠장!”
“뒤로 물러나십시오!”
“제기랄! 병원 지하주차장!”
그리고 그 때서야 태정민의 기억속에서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기억에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청와대 경호실 수석경호원의 목을 단칼에 베어내었던 그 순간과 일치하였다.
이에 태정민도 소리치며 자신의 옆에 있던 형사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빼 들었다.
수만이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위에 올려두었던 두 손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강서진을 향해 움직였다.
‘탕! 탕! 퍽!’
“…….”
“네…….”
“잠시 앉으십시오.”
추선우는 강서진을 부축하여 옆으로 앉도록 하였다. 그리고 형사들은 일제히 수만의 곁으로 움직였고,
그의 생사를 다시 확인하였다.
“죽었습니다.”
‘띠리리리’
“네. 실장님.”
-어찌되었나?-
“시간 딱 맞춰 전화하셨네요. 조금 전, 백태를 죽이려는 놈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산 채로 잡진
못했습니다.”
-죽었나?-
“네.”
-네가 한 것인가? 아니면 추선우가?-
“아닙니다. 영월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강 검사의 총에 녀석이 사망했습니다.”
-…….-
“앉아계십시오. 곧 돌아…….”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추선우가 다시 현장을 수습하기 위하여 움직이려 하자, 강서진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추선우는 잠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태정민이 차량으로 다가섰다.
그의 말에 추선우가 물었다.
“원래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에서는 그 현장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아. 그러니 벗어나. 벗어나서 강
검사님을 데리고 국정원으로 가. 설 실장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추선우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그녀의 말에 답하였고, 그녀는 추선우를 보면서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모두가 서둘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백태와 함께, 조직의
핵심임무를 수행하게 된 석강수를 사당역에서 포착하여 그의 뒤를 쫒아 숨겨진 인물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확인은 해 보았는가?”
“지금 확인 중에 있습니다. 일단 백태가 국정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 쪽 사람에 의해 확인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만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이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백태가 잡혀 들어간 것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그가 10 년이 넘도록
조직과 함께 했고, 무엇보다 조직의 수장이 이수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를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수만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는 그였다. 그 역시 10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을 곁에서
보호해오던 인물이며, 무엇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어진 임무에 대해 실패한 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사당역의 일은 되도록 추선우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사당역에서 움직이는 타깃이
바로 석강수였다.
석강수와 추선우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 분명히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모든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경찰들을 배치해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겠습니다.”
태정민은 형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자신의 차량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저 멀리 펜션으로 들어서는
초입부분에서 한 대의 차량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태정민의 생각대로, 뒤로 물러난 차량은 곧바로 장석관에게 연락하여 펜션의 상황을 알렸다.
장석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문 채, 이수호의 곁으로 향하였다.
“어찌 되었는가?”
“수만이…….죽었습니다.”
“…….”
장석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수만의 죽음을 말했다. 그러자 이수호의 표정이 더욱 더 굳어졌고, 고광의
눈빛마저 매섭게 변하였다.
이수호는 이창민을 죽이면서 그로인하여 일어날 파장을 잠재울 준비까지 모두 해 두었었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은. 국정원이 나서면서부터였다.
보통은 외교부가 나서고, 검찰이 나선다. 국정원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창민대사가 북한에
대한 문제를 미국에서 많이 거론한 것으로 인하여, 북한의 소행일수도 있다는 과정이 실렸고, 그로인하여
국정원이 투입되었다.
또 한, 그 어떤 방향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추선우였다. 민간인이 이토록 질기에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는 그 어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모두에게 연락해라. 이번 이창민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파장이 더 확대되고 있으며, 그의 살인을 청부한
그 자들에게도 불똥은 튀게 될 것을 미리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고광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고광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거느리는 부하들을 시켜
추선우를 사냥하게 하였다.
“광아.”
“네. 회장님.”
드디어 모두가 움직이게 되었다. 20 년 동안 숨어서 이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조직의 수장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창민을 죽이도록 이수호에게 사주한 인물도 움직이게 되었다.
권력이 권력을 잡고, 또 그 권력이 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강한 권력이라고 하여도, 꼭 무너뜨리는 누군가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실장님. 안녕하…….”
“이쪽으로 오게.”
“왜…….그러십니까?”
“백태를 잡은 것은 고생했다.”
“그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왜 그러는가?”
설장호가 물었다.
추선우는 지현과 함께, 친구들의 안전을 중시한다고 하니, 설장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강 검사가 추선우와 함께 붙어있어. 그리고 상처부위 치료를 다시하고. 그리고 이것은 국정원
별관에 있는 내 사무실 열쇠야. 내가 보내는 모든 정보를 그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하여 나오지 않아도 될 것이야. 그리고 필요한 것은 모두 공급 할 테니, 당분간만 그 사무실에서
지내.”
“네.”
설장호는 강서진에게 열쇠를 건네주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급자라 하여도, 성인인 남녀를 한
사무실에 오래 가둬두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서진도 바로 받아들였고, 추선우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선 추선우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저 사용한지 오래된 하나의 사무실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사무실 안에는 PC 와 함께 대형 모니터도 있었고, 여러 가지 업무를 볼 수 있는 장비 및 장치가 다
되어있었다.
또 한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사무실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다 있었고,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구급약까지
다 구비되어 있었다.
“침대까지…….정말 대단하네요.”
“석강수…….이제는 끝내자.”
“보이느냐?”
“네? 무엇이 말입니까?”
부하가 물었다.
“나를 잡고자 직접 올 것인지. 아니면 대타를 내 보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지…….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난 그 변수 속에 나를 잡을 대타를 내 보낸다에
걸고 있는 중이다.”
“나가자.”
“네?”
“약속장소가 이곳이 아니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 놈들도 나올 것이다.”
“어이!”
“!!!”
석강수는 사당역 번화가 중앙에서 세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고, 그의 행동으로 주변에 있던 국정원
대원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비록 그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석강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였다.
대원들은 설장호의 명령을 들은 후, 곧바로 석강수를 향해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많네.”
석강수는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말하였다. 하지만 여유가 있었다. 어투에도, 또
표정에도 여유가 있었다.
“실장님…….”
‘탁! 퍽퍽퍽!’
“대타라…….누굴 말하는가?”
이미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던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추선우를 현장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석강수. 그만 돌아와라. 넌 국정원 대원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옛날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마라. 너도 알다시피 난 성질이 그리 좋지 못해. 너희 국정원에서는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가 힘들겠지만, 난 달라. 그냥 확 갈겨버리면 돼.-
“…….”
사무실에 있던 대원이 CCTV 영상을 가리키며 말하자, 설장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떼어낸 후, 다른 마이크를 귀에 장착하였다.
“혼자인가?”
-네. 저 혼자만 도착했습니다.-
석강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사당역 번화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 누구도 관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모조리…….죽여!-
“!!!”
‘탕!’
“!!!”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모두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왕좌왕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그곳을 벗어나기 바빴다.
“조동민?”
조동민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석강수는 물론, 그의 부하들도 모두 그 자리를 피하는 이는 없었다.
“겁이 없구나.”
“그런 것을 가지고 다닐 주머니가 없다. 이제 그만 하자.”
조동민은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석강수의 표정은 오히려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장님! 여기요!”
조동민은 석강수가 이리 태연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건물 옥상으로 향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곳에 저격수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곧바로 그들은 방아쇠를 당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동민! 어서 도망쳐!-
“끝…….”
‘탕…….“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저격수가 옥상에 있었다. 그런데 석강수의 명령을 그들이 이행하지 않은 건가?-
설장호는 직접 눈으로 보았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배치된 저격수들에게 뭔가 변고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보이시나요?-
박태식은 서지호와 태정민이 대통령의 별장에서 잡았던 네 명의 사내를 감시하고 있었었다. 그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찾도록 명령 내렸고, 아직도 그 명령을 이행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윽!’
“제길!”
-위치 부탁드립니다!-
박태식은 CCTV 화면을 다시 돌려 사당역 아래를 비추었고, 그 즉시 자신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박태식이 내려가면서 그 옥상에는 미리 와서 대기 중이던 석강수의 저격수들이 모조리 형사들에게 잡혀
수갑을 찬 채, 엎드려 있었다.
“태정민이 왔었나?”
“태팀장님.”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강서진은 추선우의 상처를 치료해 준 후, 사무실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괜찮으십니까?”
답한 후, 다시 그녀에게 바로 물었다.
“뭐가 말이에요?”
“영월에서와 성남에서 있었던…….”
“추선우씨는 민간인이라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에요. 하지만 전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업무로 인하여
현장에 뛰어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총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고, 또 그 총으로 상대를 죽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네…….그럴게요.”
그녀는 답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추선우는 그녀의 답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사당역입니까?”
“그래.”
짧은 물음에 짧은 답이었다.
“석강수가 사당역에 있다.”
“네!?”
“넌 지금 즉시 안산으로 간다.”
“안산요?”
“그래. 우리 부대원과 함께 안산으로 가면, 내가 지난 번 정보를 얻었던 공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
공장으로 가서…….모조리 다 쓸어버리고 와라.”
“…….”
“지금 가면 됩니까?”
“그래. 바로 움직여라.”
“그래. 그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모든 정보를 다 가져왔으니, 그들은 그곳을 정리하던지,
아니면 다시 그곳을 사용하던지, 둘 중 하나를 결정내리겠지. 그래서 태정민을 보내는 것이다.”
‘띠리리리’
“태팀장. 어디야?”
“무슨…….일입니까?”
“일은 다 보셨습니까?”
“네? 아 네. 뭐 그냥 별 다른 일이 없네요.”
“의외로 쉽네요.”
“박형사님. 뭔가 보입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물론, 의심쩍은 놈들이 단 한 놈도 없어요.”
“이대로 놓치는가…….”
조동민은 설장호의 명령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인근에 석강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를
버려두고 그곳을 벗어나야하니, 속이 쓰리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래. 그 놈을 잡지 못했다.”
“하하하!”
“기쁜가?”
“안산 공장.”
“…….”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사당역에서 석강수를 놓아준 것…….아니. 처음에는 그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조동민이
당하는 것이라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박태식 형사가 다가섰고, 그로인하여 조동민이 석강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지. 하지만 왜 잡지 못했을까? 총을 쏘지 못해서? 아니면 석강수가 두려워서? 아니
…….그를 놓아주면 더 큰 무언가가 그를 물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지.”
백태의 눈동자가 아주 심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가 자신을 미행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더 깊게 생각하면 그냥 미행했다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기에 놀란 눈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백태는 지난 날 오피스텔이 습격당하면서, 모든 것을 뺏기고 난 뒤에 이수호를 찾아갔다.
그를 찾아간 후, 모든 사정을 말하고, 다시 기회를 얻어 영월로 추선우를 잡기 위하여 갔었다.
설장호는 지금 그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난 뒤에 이들이 가는 곳.
그곳에는 아마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그 인물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백태 때는 그 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다만 CCTV 를 통해 백태가 어디론가 향한
것만을 알 수 있었고, 그 후로는 그 일대에 단 한 대의 CCTV 도 없었기에, 그 후의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짧은 순간에 석강수를 놓아주도록 조동민에게 명령내린 그였다.
“그리 중요한 미행을 앞두고, 왜 그곳을 지키지 않고 나에게 온 것인가? 지금의 시간에 만에 하나
석강수가 어디론가 움직인다면…….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니 확신하고 명령을 내리지 못할
것 아닌가?”
백태는 이 부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면, 한시라도 더 빨리 그곳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며, 그를 놓아준 것이었다.
“석강수는 그래서 사당역을 섣불리 벗어나지 않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부를 것이다. 바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도움…….석강수는 곧. 그 놈을 수면위로 나오게 만들 것이다.‘
“!!!”
백태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다. 자신에게 실패했던 계획을 지금 석강수에게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번에는 실패가 아닌, 아주 중요한 핵심을 모두 찾아낼 것만 같은 설장호였다.
백태는 설장호의 무서움을 점 차 느끼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생각해내지 못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이미 한 치 앞을 넘어, 두, 세치 앞을 다 계산한 후, 대원들을 각기 그에 맞게
움직이도록 하고 있었다.
백태가 물었다.
“왜 갔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도착하였는가?”
-네 실장님.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너와 강 검사. 추선우는 그곳에서 그곳으로 오는 놈을 친다. 그리고 사당역에서는 조동민과 박태식이
석강수를 유인하여 친다.”
“!!!”
“시작해라.”
“네. 실장님.”
백태의 눈은 이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이들을 막고자, 설장호가 직접 감금실을
체크한다고 하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물러나면서, 감금실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설장호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뒤, 감금실을 나섰고, 백태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설장호는 모두를 속였다. 하지만 그 모두를 속이면서 얻어내려는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리고 진행되었다. 설장호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곧 가장 뒤에
숨어서 모든 것을 조종하였던 이수호의 얼굴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설 실장이 움직이는가?”
“네. 국정원장님.”
“알겠습니다.”
“여깁니다.”
“어떻게 된 거야?”
강서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금의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조금 전 설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모두
알려주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강서진이 물었지만, 태정민이라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리는 없었다. 그 때, 국정원 대원이 세 사람을
인도하여 어디론가 데려갔다.
모두가 잠시 가만히 있을 때, 추선우가 폐공장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의외로 똑똑한데.”
추선우의 생각을 토대로 강서진이 명령 내렸고, 모두는 그녀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당역으로 향하던 설장호의 이어마이크를 통해, 국정원 사무실에서 CCTV 를 사당역 일대를 모두 보고
있던 대원이 알려주었다.
“조동민. 대기.”
“설장호입니다.”
“설장호가 직접 왔다? 그만큼 석강수가 대단하다는 말이겠지. 회장님의 명령이 있으니, 석강수는 구한다.
움직여라.”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저기…….”
“지금 덮칠까요?”
대원이 물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무탈 하십니까?”
대원의 안내로 지현이 있는 곳에 도착한 서지호는 곧 아주머니와 함께, 은주, 미희에게 고개 숙이며
안부를 먼저 물었다.
지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표정과 어투가 그곳에 있는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금 헬기가 대기 중입니다. 헬기를 이용하여 청와대로 바로 이동할 것이니 준비해 주십시오.”
백태를 데리고 올 때도 예산문제로 헬기를 띄우지 않았지만, 지현을 비롯하여 민간인 안전에는 헬기를
띄운 상황이었다.
모두는 서지호와 함께 헬기로 이동하였다.
“장두야.”
“네. 회장님.”
“가자.”
“네. 회장님.”
드디어 이수호가 집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매일같이 껴안고
있던 벌거벗은 여인을 버리고, 집을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한 편. 안산에서는 폐공장을 노려보고 있는 강서진이 차후의 명령을 하달하지 않자, 국정원 대원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태정민과 대원들이 그녀를 보았다. 계속하여 기다리지 말고, 먼저 치자는 대원들이 말과, 태정민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는 계속하여 회피하였다. 그리고 지금. 민간인 추선우가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그녀는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이 추선우의 말을 들은 후, 실천으로 옮기려 준비하였다.
확실한 증거를 잡고자 기다리는 강서진과는 달리, 추선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이들을 그 때
잠지 못하면, 또 다시 언제 잡아야 할지 모르며, 그 때 잡지 못한 이유로 어떤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태정민…….’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후방을 지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세 명의 뒤에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이려 하였지만, 추선우는 그들을 막아
세웠다.
“왜요?”
강서진은 그의 말에 놀란 되물었다.
“쉽게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저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어떻게 우리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정보망의 차이겠지만, 지금 저들은 태정민 팀장의 뒤로, 누가 있는지를 찾는 중일
것입니다.”
의외였다. 추선우는 지금 고광의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마치 설장호가 상대의 심리를 그대로
파악하여, 그의 다음단계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였다.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곧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서 검찰청 형사들의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지금 박형사님이 사당역을 지원하고 있으니,
검사님의 형사병력이 필요합니다.”
‘와락!’
“다녀오겠습니다.”
“데이트해요…….꼭 해요.”
그의 말에 답하면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남은 대원들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나 태정민등. 그와 함께 오랫동안 움직였던 이들은 두 사람의 묘한 기류를 다 눈치
차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뒤돌아서서 빠르게 움직였고, 곧 검찰청으로 연락하여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추선우는 태정민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현재 태정민과 국정원 대원 두 명, 그리고 추선우까지 해서 네 명이지만, 그들은 약 20 명 정도되는
인원이기에, 수적 열세에 있지만, 절대 주눅 들지 않은 채, 그들의 앞에 당당히 섰다.
곧 추선우마저 태정민의곁으로 오자, 고광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둔 네 명의 회장이 언급하였고, 또 장태와 수만이 죽었던 그 현장에 있었던 인물.
고광은 당장 칼을 뽑아 그의 목을 치고, 죽은 장태와 수만의 원한을 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인상만 구길 뿐, 그에게도 칼은 뽑아들지 않고 있었다.
“더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잡겠습니다.”
“!!!”
“우릴…….잡겠다? 하하하!”
추선우는 그의 물음에 답하면서 곧바로 고광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고광은 약 2 미터 앞에서 바로 질러진
그의 주먹을 보며 놀랐지만, 이내 쉽게 피한 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추선우는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계속된 공격을 감행하였고, 추선우의 행동으로 고광의
부하들이 일제히 창고에서 나오면 추선우를 잡으려 하였다.
추선우의 행동과 태정민의 행동을 멀리서 보던 국정원 대원들이 서로 말하였고, 곧바로 총을 뽑아들고
그들의 곁으로 향하였다.
고광은 자신을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주먹을 휘두르며 발을 뻗는 추선우를 보면서도, 뒤로 더 접근하는
국정원 대원을 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고광은 백태가 잡혔으니, 백태가 불어버릴 많은 정보들을 파기하기 위하여 그의 은신처를 찾아온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추선우는 고광을 향해 계속하여 주먹을 뻗고, 발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고광은 그의 공격을 단 한
번도 쳐내지 않고, 모두 피하고 있었다.
‘스르륵’
“백태는 죽는다. 장태와 수만처럼 죽는다. 그리고 장태와 수만을 죽인 너도…….내 손에 죽는다.”
‘촥 삭삭삭!’
“모두 사격 개시!”
“회장님.”
“장두야.”
“네. 회장님.”
장두는 그 후로 답을 하지 못하였다.
“CCTV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석강수의 움직임은 물론, 의문스러운 놈들은 모조리 잡아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사당동 번화가 입구에서 떡하니 선 채 모든 대원들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시선을 집중하였다. 시꺼먼 정장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내들이 우르르 움직이니,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강수를 찾아, 그 놈들이 왔을까요?”
곧 조동민이 설장호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백태를 죽이지 못한 것도 있고, 또 석강수가 잡히면 결국 손해 보는 놈들이 지놈들이니, 필시 그를
죽이던 살리던 뭐하던 간에 찾아올 것이다.”
설장호는 사당동 번화가 일대에 이수호의 부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퍽!’
“무슨 짓이야!”
곧 장석관의 부하 한 명이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의 가격하였고, 그로인하여 죄 없던 행인의 일행들이
장석관의 부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문 싸움꾼과 일반인의 싸움은 애초부터 승부가 결정지어져 있었다. 단 한 명의 부하가 시비를
걸었지만, 그들은 다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 다섯 명이 모조리 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
그 모습에 강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무수히 날아오는 총알 속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묶어두세요!”
태정민이 소리쳤고, 모두 폐공장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권총에 장전되는 총알이 모두 소진되었다.
‘탕탕탕탕!’
그 순간 곧바로 폐공장에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였고, 태정민을 비롯하여 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낮췄다.
‘촤르르르!’
추선우는 그들이 총을 쏘기 시작할 때, 몸을 낮추며 미끄러지듯이 공장안으로 들어섰고, 다행히 그들의
총알은 추선우를 적중시키지 못하였다.
“목숨이 정말 몇 개는 되는 놈 같다.”
태정민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며 앉은 상태에서 함께 앉은 국정원대원들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우린 저놈들을 잡겠습니다. 한 바탕 제대로 놀아보죠.”
태정민은 조금 떨어진 후방 쪽에 있는 강서진을 보며, 국정원 대원들에게 말했다.
강서진과 함께 온 형사들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지원하고, 자신과 국정원 대원이 접근하겠다는
말이었다.
즉. 조금 전 추선우가 한 것을 그대로 하겠다는 말이었다.
태정민은 이어마이크를 통해 강서진에게 계획을 알려주었고, 강서진은 동원된 형사들에게 내용을 설명한
후, 명령을 하달하였다.
‘쿵. 촤르르르르!’
추선우가 창고 안으로 더 들어서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으로 보이는 창고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강서진이 놀란 눈을 한 채, 추선우가 들어간 창고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젠장. 왜 또 저리 가는 거야?”
태정민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쓴 표정을 지은 채 말한 뒤, 곧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이 움직이는 창고
쪽이 아닌, 강서진이 달려가고 있는 창고로 뛰었다.
‘쾅쾅!’
강서진은 완벽하게 닫혀버린 창고 앞에서 창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다른 창고에 비해 사방 모든 곳이
단단한 철로 되어 있는 문은 열리지 않았고, 심지어 쿵쿵 거리는 소리까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야. 이 창고는?”
태정민도 처음 보는 창고였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임의로 제작한 듯한 창고였다.
“어서 문을 열 방법을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녀의 명령에 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가 이리 서두르고,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선우의 실력을 보셔서 알지 않습니까? 만약에 이안에 그 놈이 있다면,
오히려 추선우에게 얻어 터져서 끌려나올 것입니다.”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 방법이 없어 주변만 둘러보다 다시 강서진의 앞으로 온 태정민이 그녀를 보며 말할 때,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휴대전화 알림이 들어왔다.
“누구지?”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첨부된 파일이 있고, 파일 이름이 안상 폐공장과 사당동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아, 자신들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같은 문자 같은데, 제가 열어보겠습니다.”
태정민은 첨부파일을 보았다. 그리고 해당 파일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고, 곧 첨부된 사진도 함께
보면서 운동자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띠리리리.’
그 순간 강서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실장님.”
-문자 받았나?-
“네. 받긴 받았는데, 지금 태팀장이 먼저 확인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자입니까?”
강서진은 태정민의 표정을 보면서 설장호에게 물었다.
-현재. 너희들이 맡고 있는 안산 폐공장과, 사당동에 나타난 놈의 인적사항이다.-
“네? 그런데 그런 인적사항을 누가 보낸 것입니까?”
-국정원장님의 전화번호야.-
“네!? 국정원장님요?”
태정민은 문자를 보고 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설장호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쳐 물었다.
죄지은 것은 아니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몸이 떨리고 있었다.
-일단 문자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현재…….“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이해는 모두 했습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니,
굳이 이 내용을 육성으로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태정민은 먼저 문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문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강서진도 곧 그의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그녀 역시 모두와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놈들이 지금 이 앞에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러니 섣부른 행동을 삼가고, 팀 전체가 다 움직여라. 잘 못 건드리면 그 놈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두 사람은 설장호의 말을 들으며 눈동자를 심하게 떨었다. 지금 현재 사진에 올라온 인물을 치기 위하여
들어선 사람은 한 명. 바로 추선우였고, 지금 그를 조심하라는 설장호의 당부가 있었다.
“네…….네. 뭐. 잘 알겠습니다. 실장님도 조심하십시오. 그 쪽으로 간 놈도 보아하니 한 이력 하네요.”
-조심해라.-
강서진은 설장호의 짧은 말을 들은 후,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곧바로 태정민을 보았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장두가 먼저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특실 안에 앉아 있던 약 열 명 정도의 남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반겼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다보니, 이제야 다시 또 자리를 이렇게 마련했네요.”
이수호는 자신을 보며 서 있는 이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수호의 눈에는 그들이 모두 자신의 방패로 보이고 있었다.
화려한 금배지를 정장 왼쪽 카라 부분에 달고 있는 사내가 있었고, 또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남녀들이 그를 반겼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리 급히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았고, 곧 한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요즘…….뉴스를 보면 아시겠지만, 꽤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네? 그럼 설마 요 며칠 뉴스에 나오던 사건이 회장님과 연관되어 있던 사건들이었습니까?”
이수호의 말에 한 여인이 그를 보며 물었다.
“진작 끝났어야 할 일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이리 끌고 오는 바람에 제가 요즘 잠을 도통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수호는 그녀의 말에 손수건으로 자신의 이마에 묻어나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전화를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니 회장님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생각지 않았습니까.”
사내는 이수호를 보며 말했다. 이수호는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이 그동안 이들을 주머니에 채워준 돈의
대가를 이제야 제대로 받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서…….여러분들의 도움이 좀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수호는 다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들이 회장님에게 입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데, 그 어떤 것도 다 해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수호는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장두에게 손짓을 하였고, 장두는 곧
일식집 사장에게 신호를 주었다.
‘촥!’
‘촤르르르!’
한 편. 창고 안에서 고광과 마주한 추선우는 그가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백태가 한 말처럼 고광이 장검을 들고 있으면, 총든자도 이긴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추선우였다.
“아주 빠르군. 내가 휘두르는 장검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피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길이길이 기억해
두겠다.”
고광은 자신의 장검에 아직도 추선우의 피가 묻어있지 않은 것에 대해 그를 높게 평가하였다.
“조선시대 호위무사도 아니고, 장검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무섭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제대로 해봐.”
“…….”
추선우는 그의 장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만큼 고광이 휘두르는 장검의 날카로움은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추선우는 주변을 둘러 본 후, 왼쪽 기둥에 서 있는 직경 3 센티 정도에 길이 1 미터정도되는 쇠파이프를
보았다.
“들고해라. 기꺼이 허락하마.”
고광은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고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겠지만, 그 말이 너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쇠파이프를 잡아들었다. 쇠파이프는 무게감도 적당했고, 길이와 폭도
적당했다.
충분히 고광의 장검과 일격을 벌일 수 있을 만한 조건을 갖춘 무기였다.
고광은 그가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자세를 보았다. 그저 평범하게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쇠파이프 하나를 손에 쥐었다고, 빈틈이 확 줄어들어보였다.
“운동을 제대로 한 놈 같군.”
“그래? 그저 눈으로 보고도 그리 쉽게 알 수 있다니 대단하다.”
추선우는 쇠파이프를 꽉 쥔 후, 그를 향해 움직이며 말했고,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그를 보며 고광도
자신의 장검을 꽉 쥐었다.
‘창!’
“!!!”
서로를 향해 아주 강하고 빠르며 묵직하게 휘둘러지 장검과 쇠파이프는 불꽃을 튀기며 충돌하였고, 그
충격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자, 고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때? 이제 좀 재밌겠지?”
반면에 추선우는 여유가 생겼다. 고광이 들고 있던 장검에 의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쇠파이프 하나라, 천하의 고광을 완전히 잡아두고 있는 그였다.
‘저 놈. 이런 충격을 주다니.’
고광은 자신의 손에 전달 된 충격에 의해 그를 달리 보았다. 그리고 홀로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휘두른 칼을 쳐 내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그 충격이 이리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오래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그냥 나를 죽이고자 덤벼라. 나도 너를 죽이고자 휘두를 것이다.”
추선우는 다시 고광을 향해 달려가며 말했다.
‘창창창!’
고광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장검을 들고 언제나 먼저 휘두르던 그가, 누군가가 휘두르는 공격을
막으며 뒤로 물러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제기랄!”
고광은 세 번의 공격을 막은 후, 소리쳤고, 이내 추선우를 향해 달려들며 자신의 장검을 휘둘렀다.
고광이 휘두르는 장검의 날카로움은 추선우를 충분히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빠르기는 둘째 치고, 정교하게 급소를 향해 내려오고, 또 찔러지고, 또 휘둘러지니, 그 공격패턴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나에게 재밌냐고 물었지? 지금은 어떤가? 재미있는가?”
고광이 물었다.
“재미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무서움은 느껴진다. 네가 휘두르는 그 칼. 단 한 번이라도 네 몸을 스쳐지나
가면 내가 죽는다는 것도 실감나고 있다.”
“제대로 파악했다. 난…….같은 자리에 두 번의 칼날이 지나쳐가도록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손에 무엇을 들고 싸운 적은 없지만, 이렇게 들었으니, 너처럼 소름 돋는 말하나 만들자.”
고광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는 진지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진지함이 없어보였다.
“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상대가 정해지면 끝을 볼 때까지 놓지 않는다.”
추선우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광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석강수! 움직입니다!-
한 편. 사당동에서는 장석관의 사진이 이미 뿌려졌고, 석강수를 찾고 있을 때, 국정원에서 CCTV 를
확인하고 있던 대원이 설장호에게 곧바로 알렸다.
“어디야?”
위치를 물었고,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장석관은 석강수를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 부하들을 시켜 주변으로 시선이 집중되게끔.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행동도 하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CCTV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국정원에서 붙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막을 테니 주차장으로 가십시오. 그곳으로
가시면 장석관님이 계실 것입니다.”
이미 국정원 대원들이 다가서는 것을 확인한 장석관의 부하들이 석강수를 그에게 보내려 하면서 자신들이
앞으로 나서 국정원 대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석강수는 그들의 말을 들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석강수. 홀로 따로 움직입니다.-
“계속 위치를 알려.”
-공용주차장쪽이 아닌, 방배동쪽으로 움직입니다.-
“방배동?”
-네. 아무래도 혼자 따로 이곳을 빠져나갈 모양입니다.-
“알았다. 계속 확인하라.”
장석관의 부하들이 국정원대원들을 막아주는 수고를 자진하였지만, 석강수는 주차장으로 가서 장석관을
만나라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석강수. 역시 쉬운 놈이 아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장호는 석강수가 이동중인 경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중얼거렸고,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조동민이
물었다.
“내 계획은 석강수를 이용하여 더 많은 놈들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놈은 내 생각을 읽었어.”
“생각을 읽다니요?”
“지금 이 순간 그가 자신을 돕는 장석관을 만나면, 장석관의 죄명은 바로 만들어진다. 지금은 장석관이
특별한 죄명이 없다. 그를 잡아도 잡아들일 명분이 없다. 하지만 석강수를 만나기만 하면 그 명분은
만들어지지.”
설장호는 자신의 계획에 있는 일부를 말해주었다. 조동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석강수가 사당역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장석관이 있는 곳이 아닌, 방배동 쪽으로 향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00200 경호원 =====================================================================
====
“넌 여기서 장석관을 잡아라. 저 놈은 내가 잡는다.”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도 석강수를 잡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석강수도 석강수지만, 그 보다 더 지독한 놈인
장석관이 아직 사당역 인근에 있기에 그를 잡는것도 우선이었다.
조동민은 설장호가 없는 시점에 사당동의 모든 대원들을 통솔하기 시작하였다.
국정원 대원들은 그의 명령을 듣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석강수를 데리고 가기 위하여 나섰던
장석관의 부하들은 국정원 대원들과의 격투에서 쉽게 잡히고 말았다.
사당동의 사건은 또 다시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뉴스속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곧 이수호가 도착하였고, 이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중하였지만, 비서실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 들어서는 이수호를 보고 있었다.
이수호는 안으로 들어선 후, 그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뭐라 말 할 수 없는
처지가 지금 그의 처지였다.
“일이 아주 커져버렸고,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은 이수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치 자신이 이수호보다 더 높은 곳에 앉은
사람마냥 그를 대하고 있었다.
“비서실장.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그의 말을 들은 후, 장두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그에게 물었다.
‘창창창! 스윽!’
한 편. 창고에서는 고광의 칼날이 추선우의 쇠파이프를 세 차례 방어한 후, 칼날이 추선우의 왼쪽 팔을
스치며 지나쳐갔다.
“젠장. 또 왼쪽 팔이군.”
추선우는 뒤로 밀려나며 자신의 외팔을 보며 쓴 표정을 지었다.
왼쪽팔에 총알이 박히고, 좀 괜찮아지나 싶었지만, 곧바로 고광의 칼날이 총알보다 더 깊은 상처를 그의
팔에 새겨놓았다.
“쇠파이프를 아무리 휘둘러도, 칼날에는 이기지 못한다.”
“당연한 말을 그리 개폼잡고 할 필요 없잖아. 그리고 말이야…….그 칼날…….맞아보니 별 것 아니다.”
“웃기지마라. 넌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나의 칼에 목이 날아갈 것을 두려워하며, 이 칼날에 두려워하고
있다.”
추선우의 말에 고광은 자신의 칼날에 묻은 피를 세차게 털어내며 말했다.
“두려워한다? 사실 단칼에 뭐든 끝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는 두려웠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맞아보니
그 두려움이 싹 가시니 오히려 이 상처가 고맙군.”
추선우는 두려웠다.
북정마을과 성남, 한강공원에서 총을 들었던 이들을 상대할 때보다, 지금 이순간이 그에게는 더욱 더 큰
두려움을 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창창창!’
창고 안에서는 또 다시 장검과 쇠파이프가 부딪히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려왔다.
추선우는 왼쪽 팔에 피를 흘리면서 그와 격전 중이었지만, 아직 고광은 그 어디에도 상처하나 없었다.
“쉽지 않지? 넌 지금까지 너무 쉬운 상대들만 만나왔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고광은 자신의 실력이 우세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였다.
“그래. 확실히 네가 강하다. 하지만 칼날의 매서움에 비해 공격의 매서움은 없다.”
“…….”
추선우는 그를 도발하였다. 이미 그의 칼날은 시퍼렇게 날이 선 채, 추선우의 목을 노리고 있었지만,
더욱 더 맹렬하게 노리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번에 끝내주겠다.”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지 말고, 행동을 해봐.”
추선우는 손에 든 쇠파이프를 꽉 쥐며 말하였고, 고광은 그의 말을 들은 후, 두 손으로 장검을 꽉 쥐었다.
“이야앗!”
고광은 우렁찬 고함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다가섰다.
‘창!’
정확하게 고광의 칼날은 추선우의 정수리를 노린 듯,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쳐졌지만, 추선우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그 강한 위력을 막아섰다.
“그래도 칼날보다 쇠파이프가 더 강한 것 같다.”
“!!!”
추선우는 몸을 약간 낮추며, 오른손으로 쇠파이프를 잡고, 두 손으로 내려친 고광의 장검을 막은 후,
그를 향해 올려보며 말했고, 그의 표정을 본 고광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퍽!’
“윽!”
추선우는 상처 입은 왼손을 강하게 휘두르며,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였다.
고광은 갈비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퍽퍽퍽!’
하지만 추선우는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다가서며 주먹을 두 번 휘둘러,
그의 면상을 가격한 뒤, 다시 물러나는 그를 향해 돌려차기로 면상을 다시 한 번 날렸다.
‘콰당!’
고광이 넘어졌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장검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면서 휘리릭 날아가 창고 안에 약 3
미터 높이로 쌓여있는 잡동사니 위로 꽂혔다.
추선우는 쓰러진 고광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젠장. 이 왼팔은 평생 날 원망하며 네 몸에 붙어있겠군.”
피가 꽤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총에 맞았을 때보다, 칼에 베인 상처가 더 깊었고, 더 많은 피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었다.
“장태와 수만. 그리고 백태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되는군.”
고광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놈들은 나 혼자 잡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그놈들보다 네가 약해.”
“!!!”
추선우는 그냥 뱉은 말일수도 있지만, 그 말은 들은 고광은 심장이 떨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고광은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1 위다. 즉. 이수호의 곁에 붙어있는 디들 중, 가장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의 강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네 놈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 봐라.”
추선우는 그에게 말한 뒤,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저 멀리 던졌다. 그리고 그 쇠파이프는 공교롭게도
고광의 손을 벗어난 칼날이 꽂힌 잡동사니 밑에 떨어졌다.
고광은 그를 보았다. 그저 평범한 민간인을 넘어, 지금은 십 수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모두 다 까 뒤집고 있는 장본인이 된 그였다.
“추선우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왼팔은 자신의 팔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고광은 그의 왼팔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의 얼구을 보았고,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를 향해
그도 다가서기 시작하였다.
“넌! 실수한 것이다!”
고광은 그의 왼팔을 향해보며 아주 빠르고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탁!’
“!!!”
하지만 추선우는 자신의 왼팔로 날아오는 그의 주먹을 마치 자연스럽게 감싸듯 몸을 돌리며 그의 주먹을
피하였고, 주먹을 뻗은 힘에 의해 앞으로 무게중심이 실린 고광이 다가오자, 그를 향해 주먹을 뻗어
명치를 가격하였다.
“큭!”
고광은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듯 하였다. 추선우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들어서면서 주먹을 내지른
것이지만, 자신의 주먹은 허공만 가를 뿐, 몸이 앞으로 강하게 쏠리면서, 그의 주먹이 가하는 힘을 두
배로 받은 것이었다.
고광은 비틀거리며 다시 밀려났고, 추선우는 그에게 쉴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지 않았다.
‘퍽퍽!’
연이어 두 번의 주먹이 다시 뻗어졌고, 고광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추지 않고 밀려났다.
“쿨럭!”
뒤로 밀려났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았던 고광은 명치를 가격당한 충격과, 연이어 두 번의 공격을 더
허용한 충격으로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네가 강하다고 자부하지마라,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사람은 꼭 존재한다.”
추선우는 그를 향해보며 말했다.
고광은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라 말할 수 있는 이수호의 곁에서 서열
1 위로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민간인 한명에게 처참하게 당했다.
고광은 피를 토하면서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추선우를 향해 노려보며 다가섰다.
“네 놈의 말처럼!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사람이 꼭 존재한다!”
고광은 그 말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민간인 추선우를 잡을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자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퍽!’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고광이 뻗은 주먹은 추선우의 근처도가지 못하고, 그의 뒤돌려 차기에 오히려 그가
더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곧바로 추선우는 뒤로 밀려나는 그를 향해 따라가며, 다시 한 번 체중을 실은 돌려차기로 그의
면상을 날렸다.
고광은 그 충격에 뒤로 몇 발자국 더 밀려났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고광은 넘어지지 않고 버티며 밀려나다. 추선우가 던져놓은 원형 쇠파이프를 밟았다.
그로 인하여 공중에 몸이 띄워진 채, 넘어지면서, 잡동사니를 건드렸다.
‘치익!’
“…….”
그리고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 그 위에 꽂혀있던 고광의 장검이 뽑혔고, 3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던 그의 장검은 날카로운 부분을 아래로 하여 떨어지면서, 그 아래 쓰러진 고광의 목젖을 그대로
찔렀다.
추선우는 결코 그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모든 것이 마치 영화 속 우연처럼 하나하나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고광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로써 이수호의 경호원 네 명중, 세 명은 잡힌 것이 아니라 모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덜썩.’
추선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도 풀리고, 무엇보다 요 며칠사이 너무나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왼팔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쾅쾅쾅!’
점점 힘이 빠지려고 할 때, 그때서야 창고 문을 누군가 강하게 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분명 꽤 오래전부터 저 문은 누군가가 계속 치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추선우의 귀에는 이제야
들려오고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젠장. 뭘 눌러야 하는 거야.”
필시 문을 열수 있는 장치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그런 장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추선우씨! 들려요!”
밖에서는 연신 강서진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창고 안에 있는 추선우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강 검사님. 약 10 분후에 공단 관계자가 올 것입니다. 그때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서진과 태정민이 생각지 못하였던 것을 형사가 생각하였고,
그로인하여 공단관리자가 직접 열쇠를 가지고 온다는 말이었다.
‘슉! 스윽!’
석강수의 말처럼 정말 찰나였다. 설장호는 다가서는 석강수를 향해 자세를 잡은 뒤, 주먹을 강하게 내
질렀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의 주먹을 피하며, 그의 복부에 단검을 그대로 찔러 넣었다.
“장호야. 내가 항상 말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고 말이야.”
‘슈욱!’
석강수는 이미 설장호의 복부를 찌른 칼을 뽑은 후, 처음에 칼이 들어갔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하여 다시
한 번 강하게 찔러 넣었다.
“윽!”
설장호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왔다.
“방심은 죽음이다. 이 말 또 한 내가 항상 해주었던 말이다.
“그 칼은 기념품이다. 잘 꽂아두어라.”
석강수는 그의 복부에 자신의 단검을 꽂아둔 후, 빼지 않고 말하였다.
하지만 설장호도 자신의 복부에 꽂힌 단검을 뽑지 않았다.
“너처럼 베테랑은 복부나, 몸에 꽂힌 칼을 뽑지 않아. 하지만 신입들은 아프니까 바로 뽑아버리지,
그것이 자신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행위인 것을 모른 체 말이야.”
추선우와 고광의 격전에 비해, 설장호와 석강수의 격전은 단 1 분안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설장호는 복부에 칼을 꽂은 채, 서서히 몸이 주저앉고 있었다.
“운이 좋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를 보고 병원으로 옮겨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행운이 있다면,
네가 살 수 있는 1%의 행운도 기대해 볼만하겠지.”
석강수는 프로다. 국정원에서도 주로 암살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을 나와서도 그는
킬러로 활동하였다.
즉. 사람의 급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어디를 찌르면 얼마만큼 버틸 수 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난 추선우를 만나러 간다. 힘들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보자, 설장호.”
석강수는 설장호를 버려두고 그곳을 벗어났다.
설장호에게 백태의 비밀 은신처와 그에 대한 모든 것, 그리고 조직에 고나한 것도 모두 설장호에게
넘겨주었던 그가, 지금 또 한번 설장호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조 팀장님! 예술의전당 쪽입니다! 그곳에서 설 실장님이 목격되었는데…….-
“되었는데? 그 뒷말은 왜 없어?”
한 편. 설장호의 명령으로 사당동에서 장석관을 찾고 있는 조동민에게 국정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을 들은 후, 조동민이 대원에게 물었다.
-내려올 때는…….석강수 혼자입니다.-
“!!!”
조동민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는 장석관을 잡기 위하여 사당동 일대 모든 주차장을 다 뒤졌고,
이제 마지막 주차장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대원을 연락을 받았다.
조동민은 마지막 남은 주차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 주차장에는 장석관이 떡하니 차에 타 있었다.
조동민이 움직이면, 충분히 장석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동민은 더 이상 주차장을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 즉시! 예술의전당으로 향한다!”
장석관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설장호의 생존이었다.
석강수가 살아서 나왔다면 설장호가 죽었다고 볼 수 있지만, 조동민은 지체하지 않고, 예술의 전당으로
급히 움직였다.
“물러나는군.”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조동민이 물러나자, 장석관은 그가 이동하는 곳을 향해 보았다.
그들이 모두 차량을 타니, 더 이상의 수색을 하지 않고, 아마도 사당동을 벗어날 것이라 여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석강수는 어떻게 된 거야.”
장석관은 석강수가 설장호의 배에 칼을 꽂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또 다른 곳을 수색하기 위하여 자리를 옮기는 정도로 여겼다.
“왜 너희들뿐인가?”
잠시 후, 장석관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부하들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그들 중, 석강수가 보이지
않아 물었다.
“석강수는 방배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방배동?”
“네. 만에 하나 석강수가 형님을 만나게 되면 여러모로 복잡한 일이 일어나니, 일단은 사당동에 있는
설장호부터 빼낸다고 하였습니다.”
장석관은 조금 전까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아다니던 조동민이 물러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석강수가 설장호를 잡겠다는 뜻이었군. 지금 즉시 석강수의 위치를 확인해라. 이왕 석강수가 밀고 있는
것이라면, 더 확실히 밀어붙인다.”
“알겠습니다.”
장석관은 그저 석강수를 사당동에서 빼내오는 것만을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확인한 후, 돕기를
자처한 것이었다.
“어서 문을 열어보세요!”
한 편. 공단관계자가 오자마자, 강서진은 서둘러 창고 문을 열도록 하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 창고문은 전자키로 되어있기에, 번호를 찾아야합니다.”
관계자는 들고 온 서류를 열어 해당 창고의 비밀번호를 확인하였다.
‘차르르르르’
문이 열리자마자, 강서진이 가장 먼저 들어섰고, 그 뒤로 태정민과 함께 국정원대원들이 권총을 들고
겨냥한 채 들어섰다.
“!!!”
강서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쓰러진 추선우였다. 왼쪽 팔에서 또 다시 피가 흘러나와 왼 팔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여 놓은 채, 추선우가 쓰러져있었고, 그 뒤로 고광이 자신의 장검에 의해
죽어있는 모습이 모두의 시선에 들어왔다.
“먼저 추선우를 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태정민은 쓰러진 추선우를 멍하니 보고 있는 강서진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놀란 눈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태정민은 강서진과 함께 온 형사들에게 손짓을 주어, 그들이 추선우를 데리고 병원으로 갈 것을
명령하였고, 형사들이 추선우를 업은 뒤, 창고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도 강서진은 움직임이 없었다.
“함께 가십시오. 저 놈은 저희들이 수습하고, 국정원에 보고를 하겠습니다.”
태정민이 고광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의 상태를 본 국정원대원이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강서진을 부축하여 병원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띠리리리’
병원으로 향하려 차에 타자마자, 조동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됐습니까? 그 놈은 잡았습니까?-
조동민은 설장호에 관한 말을 그에게 하지 않은 채, 결론부터 먼저 물었다.
“네. 잡았습니다. 그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장님이 직접 움직이셨으니, 그 놈도…….”
-이쪽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무슨…….문제입니까?
태정민의 표정이 변하며 물었다.
-사당역에 있는 장석관은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한 석강수의 뒤를 쫒았던 실장님의 행방도 함께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
태정민은 놀란 눈을 한 채, 자칫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 운전 실수를 할 뻔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실장님의 행방을 알 수 없다니요?”
조동민은 태정민의 물음에 조금 전 일어난 일을 모두 알려주었다.
“일단 추선우가 병원으로 향하고 있으니, 병원만 확인하고 제가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추선우씨가 병원에요? 설마 고광을 혼자 상대한 것입니까?-
조동민은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어떻게 하다 보니 또 다시 추선우가 홀로 그놈들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직접 가서 하겠습니다.”
태정민은 서둘렀다. 추선우가 다치면서 고광을 잡은 것 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는 설장호가 사라졌다는 말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강서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정말인가?”
한 편, 태정민은 조동민에게서 받은 연락을 그대로 서지호에게 알려주었다.
서지호는 설장호가 그들에게 당한 것이라 여기며, 안절부절 못하는 듯 하였다.
“일단 추선우를 병원에 잘 데려다놓고, 서둘러서 설 실장님을 찾아라.”
“네.”
서지호가 전화를 끊은 후, 한동안 멍하니 있자, 곧 차현태가 그의 뒤로 다가섰다.
“무슨 일인데 표정이 좋지 않은가?”
“네? 아 네…….아무것도 아닙니다.”
서지호는 그의 출현에 깜짝 놀라 당황하였지만,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받았네. 설 실장이 석강수를 쫒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던데, 혹시…
….조금 전 전화. 그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서지호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차현태는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뭔가?”
서지호는 차현태가 설장호에 관한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하니,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정민에게서 온 연락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하여 그 내용까지 다 말하려 하였다.
숨기려고 하였지만,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여긴 그였다.
“또…….추선우씨가 당한 것인가?”
차현태는 서지호에게 모든 내용을 전해들은 후, 그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고광이라는 놈을 잡았고, 그로인하여 점점 더 마지막 한 놈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서지호는 차현태가 추선우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도록 희소식 하나를 던져주며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서도록 만들고 있었다.
“여깁니다!”
같은 시각. 국정원대원들은 설장호가 사라진 예술의 전당 뒤쪽 동산을 모두 수색하였고, 한 대원이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설장호를 발견하여 소리쳤다.
“어서 병원으로 옮긴다!”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의 큰 목소리에 국정원대원이 빠르게 움직였고, 등산을 나왔던 사람들은 때 아닌 상황에 놀란
눈들이었다.
“박형사님. 어디십니까?”
태정민은 박태식에게 연락하였다.
-나? 지금 사당역이지. 이곳에서 석강수를 놓쳤고, 그 뭐냐 그…….하여튼 한 놈이 더 있다고해서
찾아다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정원 애들도 다 사라졌다.-
태정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갑자기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전화기를 강서진에게 건네주었다.
“왜?”
강서진은 태정민의 행동을 보며 이유를 물었다.
“그냥. 검사님이 좀 말해주십시오.”
강서진은 그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아무런 의심 없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인데, 태정민이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고 그래? 그리고 넌 어딘데?”
-또 말해요? 저 사당역이고, 석강수를 놓쳤고, 한 놈을 더 잡으려고 하는데, 모두 떠나가고 우리 경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실정입니다.-
강서진은 박태식의 말을 들은 후에야 태정민이 왜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죠.-
설명을 들은 후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던 박태식이었다. 그는 사당역에 있는 모든 경찰병력을 데리고
곧바로 북정마을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생각이 짧았군. 그곳에서 대기하다, 설장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면, 그 병원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급한 마음에 먼저 나서느라 일이 꼬여버렸군.”
석강수는 예술의전당 인근의 병원들을 다 돌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처럼 그곳에서 한가롭게 기다리고
있었다면, 설장호를 데리고 갈 병원이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설장호가 입원한 사실이 전해지면, 그곳으로 추선우가 올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놈의 급한 성격 탓에 기다리지 않고
움직인 것이 오히려 일을 더 돌아가게 만들어버린 상황이었다.
“저기 들어옵니다.”
한 편. 서지호의 연락을 받고 민광만을 맞이할 준비를 다 마친 국정원에서는 곧 청와대 차량이 들어서자,
그곳을 향해 움직였고, 차에서 내리는 민광만을 데리고 감금실로 바로 향하였다.
검찰총장의 뉴스속보가 끝났다. 이수호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고, 장석관의 표정은 반대로
밝았다.
석강수의 표정도 이수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또 한 국정원 안에서 TV 를 시청한 백태와 민광만의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형님. 준비되었습니다.”
한 편.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다섯 명의 사내가 이장두의 앞에 서서 인사하였고, 이장두는 자신의 시야에
국정원을 두고 있었다.
검찰총장의 긴급 발표가 있었고, 설장호와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공개된 지금이지만, 그는 북정마을이
아닌, 국정원 근처에 있었다.
“조직이 여기서 무너지더라도 배신자를 살려두고 무너지면 다시 재건할 수 없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는
백태와 민광만의 목을 쳐라.”
“알겠습니다.”
이장두는 다섯 명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자신은 오히려 몸을 돌려 국정원과 멀어지면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선배님. 접니다. 이렇게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번 한 번만 잘 길을 열어주십시오. 나머지는
우리 애들이 다 처리할 것입니다.”
이장두는 국정원과 멀어지면서 누군가에게 통화하였고,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끊었다.
“설장호…….추선우. 너희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훤히 보인다만, 그 계획에…….내가 속아주겠다.”
이장두는 북정마을의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함정 속으로 더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곳인가?”
같은 시각. 장석관은 북정마을에 도착하여 만성병원을 보며 말했다.
그는 검찰총장의 뉴스속보를 전해들은 후, 아무런 의심 없이 만석병원으로 왔으며, 지금도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경찰들과 국정원 관계자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오로지 만석병원만 보고 이동 중이었다.
“설장호와 추선우. 너희 두 사람에 의해 지금의 이 일이 이토록 꼬이게 된 것이다. 고작 너희 두 사람에
의해…….”
장석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 뒤, 만석병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 날 만석병원은 노인 전용병원처럼 젊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다.
장석관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곳이 노인병원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저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장석관이군.”
그가 병원으로 들어선 후, 병원입구와 복도에 설치된 CCTV 를 통해 원장실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한
조동민이 말했다.
“저 놈을 잡지 못하고 사당동에서 철수했지.”
말을 이어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조동민은 장석관보다 석강수가 먼저 와 주기를 기다렸다.
“병원 외부 상황은 어떤가?”
-조금 전 들어간 장석관 외에 다른 이들은 없습니다. 아마도 혼자 온 것 같습니다.-
국정원 대원이 조동민의 물음에 답했다.
“혼자 공을 세워 수장에게 귀여움을 받아 볼 심상이었나 보군.”
조동민은 CCTV 를 통해 장석관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북정마을 입구와 그 인근. 그리고 병원 주변을 잘 감시한다. 혹시라도 석강수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
즉시 알린다.”
-알겠습니다.-
석강수가 목표였지만, 그렇다고 제 발로 찾아온 놈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움직이죠.”
태정민이 말했고, 곧 조동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복도로 나섰다.
“말씀 좀 물읍시다.”
자신이 함정에 들어선 것을 알지 못한 채, 장석관은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혹시 추선우와 설장호씨의 병실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장석관은 대범하게도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병실을 물었고, 그의 질문을 받은 간호사는 PC 로
무언가를 찾는 듯하였다.
“203 호실에 입원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올라가봐도 되나요?”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경찰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 같던데요.”
“아…….그래요. 알겠습니다. 뭐 저도 경찰이니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관은 간호사의 말을 들은 후, 눈웃음을 보내주었고, 곧 그녀가 말한 203 호를 향해 2 층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장석관 올라갑니다.”
그가 2 층으로 오르자, 안내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는 곧바로 무전으로 그의 이동을 알렸고, 203 호에 있던
경찰들은 그 즉시 졸고 있는 듯 한 연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대한민국 경찰은 저래서 안 된다니까. 검찰총장이 직접 언급하며 보호를 요청했을 텐데, 저러고
잠이나 자고 있으니 말이야.”
장석관은 졸고 있는 두 경찰을 보며 혀를 찬 뒤, 곧 천천히 걸어 203 호로 다가섰다.
203 호는 2 층 복도 끝이었으며,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은 쇠창살처럼 된 방범창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장석관이 203 호 문 앞에 있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냈습니다. 고광을 태팀장쪽에서 잡았으니, 이놈은 우리가 잡죠.-
장석관이 203 호 앞에 서 있을 때, 원장실에서는 태정민이 CCTV 를 보며 말했고, 곧 203 호 안에 있는
조동민이 답했다.
203 호에는 조동민과 함께 세 명의 국정원 대원들이 잠복 중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피곤하실 텐데 조금 쉬십시오.”
장석관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경찰에게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놀란 눈을 하며
깬 두 경찰은 그를 보며 멀뚱히 서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경찰청에서 나왔는데, 두 사람이 잘 있는지 확인 차 왔습니다.”
장석관은 경찰청을 말하면서 두 경찰을 안심시키는 말을 하였고, 두 경찰은 그를 보며 경례하였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죠?”
“네. 물론입니다.”
장석관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에 모두가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것에 절로 미소가 생겨나고 있는
그였다.
“먹이가 들어갑니다. 잘 낚아채십시오.”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태정민이 홀로 중얼거렸고, 태정민의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장석관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사당동에서 그리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놈이 제 발로 잘 찾아왔군.”
그를 맞이한 사람은 조동민이었다. 그는 병실 안에서 창가를 등지고 서서, 문을 열고 들어선 장석관을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고, 곧 장석관의 옆으로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이 다가섰다.
“…….”
장석관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선, 두 명의 국정원 대원들을 번갈아 보며 쓴 표정을 지은 뒤, 다시
조동민을 보며 이를 갈았다.
“좋게 좋게 가자. 이미 고광이 죽었고, 백태와 민광만이 국정원에 수감되었다. 즉 너에게 줄 기회란 두
가지 밖에 없어. 죽던지…….아니면 국정원으로 가던지. 선택은 네가 해라.”
조동민은 후하게 인심 쓰는 듯 그에게 말했고, 장석관은 두 주먹만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수갑 채워!”
조동민이 그를 노려보며 말한 뒤, 곧바로 큰 목소리로 다시 외쳤고, 두 명의 국정원 대원은 그의 팔을
잡아 꺾으며 벽으로 밀어붙인 뒤, 거칠게 다루었다.
“주변 상황 어떤가?”
-아직 조용합니다. 다른 인물은 없습니다.-
조동민은 장석관을 잡은 후, 만석병원 외부에 진을 치고 있는 대원에게 물었다.
그는 만에 하나 장석관을 잡을 때, 석강수가 들어오면 피라미를 잡으려다 대어를 놓치는 꼴이 될 수
있기에 긴장하고 있었었다.
하지만 장석관은 피라미가 아니다. 이수호의 경호원 중, 서열 2 위에 속한 아주 큰 놈이지만, 지금
조동민에게는 그가 피라미일 수밖에 없었다.
설장호를 그리 만든 석강수가 그에게는 대어이기 때문이었다.
“장석관을 국정원으로 압송할 대원은 서둘러 이놈을 국정원으로 데리고 간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이수호의 경호원이며, 그 권력이 상당했던 장석관은 참으로 어이없게 너무나 쉽게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이수호의 곁을 지키는 네 명의 경호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호원이 된 행운아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국정원장은 지금 국정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차현태에게 알렸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할이기에, 이와 같은
중대 사안은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는 국정원장이었다.
차현태는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지호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안전이 우선이니, 절대 원장실에서 나서지 마십시오.”
차현태는 그와 통화를 끊은 후, 서지호를 다시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서지호는 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경계가 엄한 국정원에 그들이 들어섰네. 이미 수많은 국정원
대원들을 죽이고, 지금 백태와 민광만을 죽이기 위하여 다가서고 있다더군.”
차현태는 국정원장에게서 들은 보고를 서지호에게 알려주었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고민국이란 놈이 각 부처에 조직원을 숨겨두었고, 그 조직원 중 한 놈이
국정원안에서 문을 열어주고 길을 안내한 것이라면, 천하의 국정원이라도 뚫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서지호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철통경계를 한다고해도, 안방 문을 열어주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국정원의 일은 국정원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보다 북정마을의 일을 더 중시하셔야 합니다. 그곳에는
…….추선우라는 민간인이 미끼로 나섰으니 말입니다.”
서지호의 말에 차현태는 추선우를 다시 떠올렸다. 그의 말처럼 민간인인 그에게 너무나 큰일을 계속하여
맡기고 있는 지금이었다.
“새로…….들어온 소식은 없는가?”
차현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직은…….”
‘띠리리리’
차현태에게 보고를 하려던 찰라,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미끼를 문 놈이 있는가?”
태정민이 전화한 것이며,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물었다.
태정민은 조금 전 만석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서지호는 그 소식을 바로 차현태에게
알렸다.
“하나하나 풀려나가고 있군. 장석관이란 인물은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의 경호원이고, 그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인물이라고 하였으니,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네, 꼭 유용한 정보를 빼내고 이번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였으면 하네.”
차현태는 지현을 생각하며 말했고, 서지호는 곧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있는 방으로 향해 걸었다.
‘스윽스윽스윽!’
“!!!”
반대편에서 연신 총을 쏘고 있던, 곧 가스가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백태와 민광만이 있는
곳까지 흘러가면서 주변이 가스에 휩싸일 때, 그 앞을 지키던 국정원 대원의 목에 한 줄기 선이 선명하게
그어지면서 그들도 바닥에 다 쓰러졌다.
“이봐! 이봐! 여기 뭔가 잘 못 된 것 같아!”
민광만은 대원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공포에 몸을 떨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지금 판국에
누구하나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봐 백태! 지금 그들이 바로 앞에 있어! 나를 죽이려한단 말이야!”
민광만은 소리치며 또 소리쳤다. 하지만 백태마저 그의 말은 듣지 않는 듯,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탈칵’
“!!!”
민광만이 감금실 앞을 보며 계속하여 소리치고 있을 때, 감금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민광만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감금실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이런곳에 들어와 살아봐야 뭐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냥 편히 가십시오. 민비서관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그의 목표는 민광만인 듯 하였다.
그는 민광만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곧바로 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고, 들고 있던 칼을 들어
그의 목을 그었다.
‘탈칵’
그리고 또 한 곳, 백태가 있는 곳에도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백태는 그 소리에 서서히 눈을 떴고, 곧 자신 앞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보았다.
“누가 보내서 왔나? 회장님?”
“쉽게 상대한 놈이 아니니, 그 답은…….네가 죽게 될 시점에 알려주도록 하겠다.”
사내는 한손에 단검을 쥐고 백태를 향해 서서히 다가서더니 이내 빠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가 칼을 뻗었다.
‘탁! 스윽!’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리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뻗은 칼은 백태의 손에 잡히면서 칼마저
빼앗겼고, 곧 그 칼날은 자신의 목으로 되돌아와 목을 쳐내고 있었다.
‘쾅!’
한 편. 옥탑 방까지 오른 조동민이 고개를 내밀어 옥상을 보자마자, 그의 면상에 아주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고, 그로인하여 다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동민아…….오랜만이지?”
석강수는 쇠파이프를 들고 그를 내려 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미 조동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석강수는 아래로 내려가 그의 앞으로 섰다. 그리고 쇠파이프를 들어, 그의 복부를 누르기 시작하였고,
조동민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엇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라. 그래서 주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안으로 들어서도록 해라. 그래야 네가 산다. 그
놈들의 목숨을 대신 이어받으며 네가 사는 것이다. 동민아.”
석강수는 더욱 더 강하게 그의 복부를 누르며 말했지만, 조동민은 끝까지 소리치지 않고 있었다.
“팀장님이 보이지 않는데, 내려가신 건가?”
그 시각. 주변을 수색하고 다시 은주의 집 앞으로 보여들은 대원들은 이곳에 있었던 조동민이 보이지 않자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혼자 가실 분은 아니시지. 주변을 둘러보고 계실 것 같은데…….”
한 대원의 말에 다른 대원이 시선을 돌리며 말할 때, 은주의 집 계단에서 석강수가 정확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순간 그의 온 몸에는 소름이 돋고 있었고, 다른 대원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입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바로 앞에서 마주친 것과 같은 느낌을 제대로 받고 있는 대원이었다.
“석강수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고, 모두가 그의 눈이 멈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석강수가 쇠파이프를 들고, 정말 소름 돋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들을 향해 보고 있었고, 곧
쇠파이프를 위로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모두는 그 쇠파이프가 내려쳐지는 목적지에 누가 있는지를 아는 듯 놀란 눈을 지은 채 말하였고, 곧바로
대원들이 계단을 올라 옥탑 방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나를 보고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다가서다니, 역시 많은 발전을 거두었군.”
석강수는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는 듯 한 말을 한 뒤, 계단을 올라오는 그들을 마중하는 듯 아래를 보며
섰다.
“석강수…….”
그리고 곧 계단을 다 오른 그들은 자신들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 석강수를 보면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올라서라. 그래야 조동민은 구한다.”
석강수는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먼저 움직이는 이들이 없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도
석강수란 존재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설장호가 그에게 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공포는 더욱 더 커진 모양이었다.
“물러나라…….서둘러 내려가서 지원을 요청해. 그래야…….”
‘퍽!’
대원들이 더 오르기 전, 그들의 안전을 위해 조동민은 남아있는 체력을 다 사용하는 듯, 힘겹게 그들을
향해 말했지만, 이내 석강수가 들고 있던 쇠파이프가 내려와 그의 입을 그대로 내려쳤다.
“떠들지 마라. 국정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주 대단한 곳에서 근무하는 놈들이 저리 겁이 많아서야
되겠는가? 저놈들의 담력이라도 볼 겸, 내가 친히 그 테스트를 해 주겠다는 것인데 무엇을 망설이는가?”
그들이 올라서지 않자, 석강수가 내려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대원들은 그가 내려오는 계단 수만큼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만석병원이다! 어서 움직여!”
태정민이 1 층으로 떨어지면서 그 모습이 주변에 있던 국정원대원들과 검찰, 경찰들의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국정원 대원이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와장창!’
1 층에 떨어진 태정민을 서둘러 병원으로 옮기려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을 때, 또 다시 1 층 그 자리에
국정원 대원 두 명이 더 떨어졌고,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설장호, 이만 죽어라.”
이장두는 태정민과 함께, 두 명의 대원들을 모두 1 층으로 떨어뜨린 후, 목발을 짚고 있는 설장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네를 상대해서 뭐가 좋을까?”
이장두가 설장호를 향해 걸어갈 때, 반대편 병실 문이 열리며 추선우가 그를 향해 물었다.
“추선우…….”
그의 시선은 이제 추선우에게 향하였다. 설장호와 함께 꼭 죽여야 할 인물이었던 추선우, 그가 지금
자신의 앞에 떡하니 섰고, 그의 몸도 추선우를 향해 돌아섰다.
“그래. 네 말처럼 발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놈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 쉬워, 그러니 상대하기 조금
더 까다로운 네 놈을 먼저 잡고 설장호를 잡아야겠다.”
이장두는 추선우를 향해 바로 움직였다. 추선우는 자신의 뒤로 강서진이 서 있기에, 더 안으로 물러나면
강서진도 위험해 질 것을 알고 있었다.
‘슈욱. 탁탁탁. 퍽!’
추선우는 곧바로 병실에서 나오며 그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이장두는 그의 주먹을 너무나 손쉽게
피하였고, 곧 추선우의 주먹이 다시 뻗어지기 전, 그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리자, 추선우는 그의
돌려차기를 피하지 못한 채, 면상을 허용하면서 복도 벽에 몸을 부딪쳤다.
“추선우. 너도 환자라고 하지만, 넌 보통 놈들과는 다르다. 힘을 제대로 보여 봐라.”
이장두는 추선우를 향해 연타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추선우는 잠시 동안 그대로 몸을 낮추고
있었고, 곧 휴게실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설장호과 만석은 앞 병실을 보았고, 그 병실에서 강서진이 모두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겠습니다.”
설장호는 지금 자신의 몸으로 추선우를 돕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남아있는 이들이라도 보호하고자,
강서진과 함께 수를 꾀하고 있었다.
만석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그를 부축하였고, 간호사들과 함께 휴게실에서 나와 병실로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병실로 다 들어서자마자, 추선우는 움츠렸던 몸을 일으키며 그를 보았다.
“저들이 병실로 가기까지 시간을 번 것이었나?”
이장두는 그의 행동이 딱 그러했기에 물었다.
“지난 번 병원에서도 내가 얼핏 보았는데, 휴게실에는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더라고, 그래서 병실로
가도록 시간을 좀 벌어본 것이다.”
추선우는 강서진과 키스를 나누었던 그 때의 병원 휴게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때는 휴게실 문을
잠그는 장치가 있었다.
다만 강서진이 수만의 눈을 급히 피하느라,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너는 처음 보는 놈인데, 누가 보내서 온 것인가? 석강수? 아니면 그 놈을 경호한다는 그 경호원 중에 한
명인가?”
추선우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아직 석강수가 오지 않았기에 그가 나타나지 않고 또 다른 부하를 보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수호의 경호원이 있다고 하니, 그의 경호원이 온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석강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내 알바 아니고, 또 경호원이라면 아마도 그 분을 경호하는 자를 말하는
것 같은데…….애석하게도 모두가 네 놈의 손에 다 죽어나갔다.”
“…….”
이장두는 충분히 말을 돌려 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수호의 경호원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알려주었다.
다만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장석관에 대해서는 이장두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이장두는 장석관도 이미
죽은 것이라 단정 짓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
“1 층으로 떨어뜨린 것이 실수였군.”
이장두가 추선우를 향해 움직이려 할 때, 1 층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장두는 곧 몸을 뒤로
서서히 움직이며 말했다.
추선우는 그가 뒤로 물러나자, 그를 놓치지않으려는 듯, 곧바로 따라 움직였고, 이장두는 의외의 행동을
보이는 추선우를 보며 잠시 당황하였지만, 미소를 지은 뒤, 태정민이 떨어졌던 곳 반대 복도의 끝 창문을
깨고 1 층으로 뛰어내렸다.
그곳은 주차장 쪽으로 외부에 몇 대의 차량이 있었고, 그 차량위로 떨어진 이장두는 아무런 상처 없이
그대로 주차장 바닥까지 내려간 뒤, 2 층 복도에 서 있는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는 그를 따라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지금에 자칫 섣부른
행동으로 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이장두를 보았다.
“다음에 보자. 네 놈의 목은 그 때 다시 가지러오겠다.”
이장두는 주차장 안쪽 길을 따라 북정마을 쪽으로 이동하였고, 그 뒤로 국정원대원들과 경찰, 검찰이
올라섰고, 또 주차장 쪽으로도 대원들이 몰려왔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추선우는 그들에게 이장두가 움직였던 곳을 가르쳐 줄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곧바로
병실로 향해 걸었다.
“괜찮은가?”
추선우가 병실로 들어서자, 설장호가 물었고, 곧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안았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설장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도 이장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국정원장이
알려주지 않은 민광만의 정보 탓일 수도 있었다.
“이곳에 가면 넌 다시 나올 수 없다.”
한 편. 장석관을 데리고 국정원 안으로 들어선 대원들은 그를 향해 말했고, 장석관은 난생처음 들어와 본
국정원 내부를 마치 관광하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장석관…….”
그리고 그와 마주친 백태. 장석관은 그의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섰고, 백태도 그를 보며 멈춰
섰다.
“네 놈이 아직도 살아있었나?”
장석관의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물었다.
“네가 살아있는 것만큼은 신기하지 않겠지. 그나저나 고생해라. 난 나간다.”
“!!!”
백태의 말에 장석관이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고, 그의 말은 비단 장석관 뿐만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오는 국정원대원들에게도 놀라움을 주었다.
하지만 우선은 장석관을 감금실로 데리고 가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묻지 않았고, 서둘러 그를 데리고 갔다.
“원장님. 장석관을 감금 실에 감금시켰습니다.”
곧 그 내용은 국정원장에게 보고되었고, 그는 곧바로 장석관을 만나기 위하여 움직였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이 장석관을 만나기 위하여 감금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괜찮은가?”
설장호의 전화였고, 그는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까? 조금 전 병원으로 어떤 놈이 들어왔는데, 태정민은 물론,
대원들을 너무나 쉽게 다루었습니다. 다행히 추선우가 시간을 벌어주는 바람에 다른 대원들이 투입되면서
그가 물러났습니다.”
설장호는 이장두에 관하여 그가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마도 이장두가 찾아온 모양이군.”
“이장두요?”
“우리가 잡아야 할 마지막 놈의 외아들이라 하더군. 일단 자네가 깨어났으니, 자네의 휴대전화로 그놈에
대해 정보를 보내주겠네.”
국정원장은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조동민이나, 태정민, 강서진에게 줄
수 있지만, 그들이 상대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짐작하에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다행히 설장호가
깨어나면서 이장두에 대한 정보는 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국정원장은 이장두에 관한 정보를 그에게 준 뒤, 곧바로 감금실로 들어가 장석관을 만났다.
“장석관. 네가 마지막 경호원이겠군.”
“!!!”
국정원장의 첫 물음에 장석관의 눈동자가 떨렸다. 몇 명의 경호원이 있고, 그들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백태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태…….이 새끼…….”
장석관은 쓴 표정을 지으며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다시 국정원장을 향해 보았다.
“백태에 대한 욕은…….아껴둬라. 앞으로 더욱 더 심하고 거친 욕을 뱉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말이야.”
국정원장은 그의 표정을 보며 말했고, 장석관은 더욱 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킥!’
한 편. 국정원에서 백태를 태우고 나온 차량은 북정마을 입구에 차량을 멈춰 세웠고, 그곳에 백태를
내려놓았다.
“너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의 모든 것이 변한다. 기억해라 백태.”
백태를 북정마을 입구에 내려준 대원이 그에게 말하였고, 곧 주변에 있는 국정원대원에게 이어마이크를
통해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도 인근에서 대기하기 시작하였다.
“태정민은 어느 병원으로 데리고 갔나?”
한 편. 만석병원에서는 설장호가 병원 앞에서 대기 중이던 국정원대원이 태정민의 상황을 목격한 뒤,
곧바로 병원으로 호송하였기에 그들을 통솔하였던 대원에게 물었다.
“**병원으로 바로 이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후의 결과에 대한보고는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즉시 확인한다. 그리고 선생님께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은 나라에서 다
할 것입니다.”
설장호는 대원에게 바로 확인토록 명령내린 뒤, 시선을 돌려 만석을 보며 말했다.
“우리 선우를 위한 일이라면 굳이 보상 따위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그놈들만 모두 잡아주십시오.”
만석은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백태?”
추선우의 눈에도 그는 분명 백태였다. 두 사람 모두 놀란 눈이었고,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여
전화기를 들었다.
“실장님.”
전화를 걸려는 순간 원장실로 한 대원이 들어섰다. 그는 조금 전, 백태를 태우고 온 대원 중 한 명으로
지금 백태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그에게 설명하였다.
“국정원장님의 뜻인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기에 물었다. 아무리 그가 정보를 주고, 또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이수호에게
반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를 다시 외부로 내 보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백태를 데리고 와라.”
설장호는 잠시 동안 CCTV 에 찍힌 백태를 보고 있었고, 곧 대원에게 명령 내렸다.
대원은 그 즉시 움직였고, 설장호의 말을 전해들은 백태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곧 백태가 만석병원으로 들어섰다. 지금의 상황은 그 어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서로
절대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들이 지금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백태. 너의 생각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택을 잘해라.”
백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그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비록 그가 의자에 앉아있긴 하지만, 그의 옆에
목발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누군가에게 당한 모양인데, 누구입니까? 고광? 아니면 장석관? 아니지 장석관은 조금 전
국정원으로 잡혀 왔으니 그는 아닐 테고, 고광인가?”
백태는 아직 고광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설장호를 이렇게 만들 사람은 고광밖에 없다고
여겼다.
“고광은 죽었다.”
설장호는 그의 기대를 한 번에 꺾어버리는 말을 하였다.
“고광이 죽어?”
백태는 눈동자를 떨었다. 이수호의 경호원 서열 1 위인 고광이 죽을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그였다.
“네가…….죽인 것인가?”
“아니. 난 그 놈의 낯짝도 보지 못했다.”
“…….”
백태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며 물었고, 설장호의 답이 나오자마자, 그의 눈빛은 추선우에게로 돌아섰다.
“역시…….넌 보통이 아니다.”
백태는 수만에 이어 장태, 그리고 고광까지 잡아들인 추선우를 보며 말하였다.
고광이 죽었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히 놀랍기도 하지만, 그는 그들 앞에서 놀란 눈빛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섭게 뜬 눈으로 추선우를 보고 있었다.
“고광이 아니라면, 누가 천하의 설장호를 이 꼴로 만들었을까?”
백태는 다시 물었다.
“석강수.”
“!!!”
잊고 있었다. 석강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이름이 바로
석강수였다.
“그 놈. 어디에 있나?”
백태는 석강수가 굳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관계였다.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한가롭게
놀았다는 것 빼고는 그와 굳이 마찰을 일으킬만한 요소도 없었다.
“지금 이곳 북정마을 어딘가에 있다. 우리도 찾고 있으며 그 놈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설장호가 답했고, 백태는 추선우를 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그 놈의 목표가 추선우라고 하였다. 그럼 이곳으로 온다는 말인데, 그래서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나? 이런 함정 같지도 않은 함정을 만들어놓고 말이야?”
백태는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원장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 어설픈 함정에 장석관이 걸려들었지. 그리고 그 놈이 간 후에 이장두가 왔고, 석강수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장두? 그 놈이 여길 왔었단 말인가?”
백태는 설장호가 이장두의이름을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이미 민광만이 국정원장에게
말했고, 그 말이 설장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놀란 이유는 천하의 이장두가 이런 허술한 함정에 자발적으로 걸어서 왔다는 것에 놀란 눈이었다.
“이장두가 왔다면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
백태는 이장두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다녀간 곳의 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물었다.
“태정민과 함께 우리 대원 두 명을 병원으로 보냈다. 그 후에 추선우와 마주하였고, 인근에 있던
대원들이 들어서면서 물러났다.”
설장호는 백태가 그리 장담하는 이장두가 다녀가고도 이렇게 살아남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운이 좋았군. 허나 다음부터는 절대 그 놈과 맞서지 마라. 추선우. 네가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고광마저 잡았다니 더욱 더 인정한다. 하지만 이장두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다. 그러니 조심해라.”
백태는 이들에게 이장두에 대한 팁을 알려주었다.
“의외네요. 당신이 정말 마음을 고쳐먹고 우리를 돕기라도 하겠다는 것입니까?”
강서진이 그의 말을 듣고 물었다.
“뭐. 그건 그때 그 때 다르겠지. 하지만 나도 쓸데없는 죽음은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충성을
맹세했던 정구석 회장의 명령이라면 모를까, 다시 생각하니 그 분 외에 다른 사람의 명령을 내가 굳이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백태의 마음이 돌아선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가 비록 국정원장에게 선처를 바라며 정보를 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계기가 아마도 정구석이 아닌 다른 이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과, 그 명령에 의해 그냥
앉은 자리에서 목을 내밀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천하의 설장호와 추선우가 쉽게 움직이지 못할 처지인 듯 한데, 내가 북정마을로 오르겠다.
굳이 그 놈과 피를 볼 사이는 아니지만, 감히 내 목을 가지고 장난한 대가는 돌려줘야지.”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비록 백태가 자신이 한 말처럼 석강수를 상대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현재로써는
그가 한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백태는 곧 북정마을로 향하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장에게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었다.
“석강수!”
“…….”
백태는 북정마을 꼭대기까지 오른 후, 석강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석강수는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을 백태의 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건물 아래를
보았다.
“백태…….”
설마 했지만, 백태가 떡하니 건물아래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뭐하나? 네가 잡아야 할 설장호와 추선우는 저 아래 병원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더군. 그런데
넌 여기서 피라미들과 놀고 있는 건가?”
백태의 말은 여러 국정원 대원들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상대하기에는 석강수란 인물이 아주 큰 인물이었다.
“기다려라. 내가 올라간다.”
백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고, 계단 곳곳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국정원 대원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다 당했군.”
성한 사람이 없었다. 이마가 깨지고, 팔, 다리가 부러지며, 곧 죽을 사람들처럼 보였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계단에서 죽어가는 네 놈들 동료를 구하라!”
백태는 답답한 나머지 계단을 오르다말고, 계단창문을 통해 외부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에게 소리쳤고,
그의 큰 목소리에 대원들이 서둘러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곳곳에 쓰러져 있는 대원들을 부축하여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조동민…….”
백태는 곧 옥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층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거의 시체가 되어있는 조동민을 보며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조동민이 여기에 있다. 서둘러 병원으로 데려간다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 보며 소리쳤고, 대원들은 서둘러 위로 올라간 후, 온 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조동민을
병원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의외군. 설장호가 아끼는 조동민이라면 석강수와 그래도 비등한 힘겨루기를 할 것이라 여겼는데, 이건
뭐…….그냥 혼자서 쥐어터진 꼴 같군.”
백태는 그 당시의 일을 알지 못하기에 한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조동민이 제대로 석강수와 마주했다면
아마도 석강수의 몸 일부에 상처가 있을 것이었다.
석강수도 아마 그것을 알기에 먼저 일격을 가한 것이었고, 그로인하여 조동민을 의외로 쉽게 제압했던
그였다.
“어떻게 되었나?”
한 편. 만석병원에서 설장호와 추선우를 제거하지 못한 채, 다시 빠져나온 이장두는 이수호에게
연락하였고, 이수호는 곧바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함정인 것을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장두는 그에게 보고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놈들을 그리 쉽게 죽일 수 있었다면 네가 나설 필요까지 없었겠지.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그보다
민광만을 비롯하여 나머지 놈들이 모두 내 손에서 떠났다. 그 놈들을 모조리 정리해라.”
“알겠습니다.”
이수호는 그동안 자신의 돈으로 살아왔다 고해도 과언이 아닐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었다.
하지만 지금. 단 한사람도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만이라도 살고자, 스스로
이수호에 관한 정보를 넘기려는 이들도 보였다.
이에 이수호는 이장두에게 모두를 정리토록 명령 내렸다.
이장두는 국정원으로 보낸 다섯 명을 제외하고 또 다시 몇 부하들에게 이수호의 명령을 그대로 하달하였고,
그들은 전문적인 살생을 익힌 자들답게, 그 명령이 하달 된 후, 이수호의 뜻을 비켜나간 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쾅!’
그가 3 층에 올랐을 때, 옥상에서 큰 충격음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 위로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곧 옥상 문 앞에 도착하였고, 서서히 옥상을 상황이 그의 눈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추선우!”
“…….”
그를 반긴 인물은 석강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한손에는 백태의 멱살이 잡혀있었고, 석강수의 다른
손에는 조동민의 머리를 내려쳤던 쇠파이프가 들려있었다.
“이런 놈은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 없다. 내가 살고자함이니 이해해라.”
석강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보고 있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조동민팀장과 대원들 모두를 그 쇠파이프로 상대했나?”
추선우는 그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에 너무나 많은 피가 묻어나, 붉은색이 아닌 검붉은 색을 하고 있기에
물었다.
“말하지 않았나? 내가 살고자 함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퍽!’
“!!!”
그리고 이내 백태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다시 휘둘렀고, 백태는 그 충격에 머리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면서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이런 놈은 정말 어렵다. 덩치도 크고, 또 힘도 세지. 자칫 잘 못 받으면 그냥 한 방에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쳐야하지.”
석강수는 쓰러진 백태를 발로 밟으며, 그의 머리를 한 번 툭툭 친 뒤,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그만해라.”
“아니. 이런 놈은 죽어야한다. 비록 개같이 살았어도, 주인을 물면 바로 죽는 것이 개 같은 인생이야.
그러니 죽어야지.”
‘퍽!’
“…….”
백태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국정원장에게 결국 마지막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석강수에 의해 생을
마감하였다.
국정원장과 설장호는 백태가 석강수와 비등한 일전을 벌일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석강수는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백태는 죽었다. 이미 조동민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정원 대원들이 죽거나 다쳤고, 백태마저 죽었지만, 석강수는 상처가 없었다.
“딱…….이 놈까지만 잡고 내려가려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왔으니, 너까지 여기서 정리하고,
병원에서는 설장호만 정리하도록 하겠다.”
석강수는 다시 쇠파이프를 들어올렸다. 조동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는 그는 쇠파이프를 이용하여 모두를
상대했다.
오히려 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석강수는 쇠파이프를 들어 이리저리 돌리면서 추선우를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를 보며
피하거나, 당황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이리저리 뱅뱅 돌고 있는 쇠파이프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석강수의 눈만을 보고
서 있었다.
‘띠리리리’
한 편. 침묵으로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왜?”
서지호였다.
-지금 상황에 대해 대통령님께서 궁금해 하십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차현태는 검찰총장이 직접 방송까지 하며 미끼를 던져놓았으니, 그 미끼를 누가 물었는지가 궁금하였다.
“상황이 좋지 않다.”
-무슨 뜻입니까?-
설장호는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만 내 보내고 있었다.
“그 한 놈이 누군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석강수와 이장두란 놈이 찾아왔었다.”
-석강수가요? 그 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지호는 이장두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석강수에 관한 것이 더 궁금하여 물었다.
“몰라. 그 놈을 상대하려 백태가 올라갔고, 추선우도 올라갔다.”
-네!? 그곳에 왜 백태가 있습니까? 백태는 지금 국정원에…….-
“자세한 것은 국정원장에게 물어보고, 난 지금 상황만 알려주는 거야.”
서지호가 백태에 관해 물으려하자, 그는 단번에 그에 대한 말은 자르고 자신이 할 말만을 하였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혹시…….부상자나 사망자는…….”
묻는 서지호도 말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아직 사망자에 대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자는 상당하다, 그 중에서…….태정민과
조동민의 상태가 심하다.”
-!!!-
서지호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었다. 은주에게 내용을 알려줘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 병원입니까? 제가 가보겠습니다.-
“**병원이야, 지금 우리 쪽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태정민에게는 네가 가라.”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 서지호는 곧바로 차현태에게 북정마을의 현황을 보고하였고, 그는 그 즉시 **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희생 없이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군.”
차현태는 서지호의 보고를 받은 후, 집무실 창문을 통해 푸른 잔디를 보며 중얼거렸다.
‘쾅!’
한 편. 석강수는 추선우를 상대하면서 여전히 쇠파이프를 들어 휘두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조동민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쳤기에 쉽게 제압하였고, 백태는 큰 덩치로 인하여 쇠파이프를 더 많이
맞았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달랐다. 그는 석강수가 휘두르는 쇠파이프가 어디로 향할지를 아는 듯, 정확하게 피하고
있었고, 오히려 힘을 들여 쇠파이프를 휘두른 석강수가 치쳐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넌 다르다. 지난 번 성남에서도 너를 겪었지만, 넌 역시 달라.”
석강수는 피가 묻어, 손이 점점 미끄러지는 쇠파이프를 보며 말했다.
‘땡그랑,’
그리고 이내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추선우와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놈을 잡고자 너무 힘을
주면서 쇠파이프를 빠르게 돌리다보니, 무수히 많이 뭍은 피로 인하여 손에서 계속하여 쇠파이프가
미끄러져 내려가니 답답하여 그냥 내려놓는 그였다.
“너와는 주먹과 주먹이 제격인 것 같다. 다시하자.”
석강수는 두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추선우는 반대로 두 손을 풀었다.
============================ 작품 후기 ============================
2015 년이 이제 1 시간 정도 남았네요.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한 편, 빌라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국정원 대원들은 옥상을 향해 고개만 치켜들고 있을 뿐, 그
누구하나 위로 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설실장님의 명령이 따로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설장호의 명령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핑계가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석강수는...정말 상대하기 힘든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실장님. 북정마을로 오르겠습니다. 더 이상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석강수를 먼저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흘러가는 시간이 답답했던 강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녀의 말에 답을 주지 않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조금 전에 세 사람이 건물 밖으로 떨어져 나갔으며, 한 때 시끄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북정마을 인근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석강수는 국정원에 있었던 놈이다. 그런 놈을 검찰과 경찰에 넘겨줄 수 없어.”
“지금은 그런 자존심따위를 치켜세울 때가 아닙니다! 이제 끝이 보이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리려 하십니까?
석강수는 그 누가 잡던 잡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놈을 잡아야합니다.”
설장호의 말에 강서진이 큰 소리로 말했고, 설장호는 그녀를 보았다.
잠시동안 두 사람은 아무런 말없이 서로를 보고만 있었고, 곧 설장호가 시선을 먼저 돌려 창가를 향해
보았다.
“지금...국정원 대원들은 석강수를 생포하기 위해 대기중이다. 그러니 그를 생포해라. 죽이면 쉽지만
그를 죽이면 뒤에 숨은 놈을 끌어낼 수 없다.”
설장호는 허락하였다. 그리고 강서진은 바로 움직였다. 이동중에 검찰 쪽 형사들에게 연락하였고,
박태식에게도 연락하여 경찰병력까지 북정마을로 오르도록 하였다.
-실장님. 강검사가 북정마을로 움직입니다. 석강수를 검찰에 넘기시려는 것입니까?-
그녀의 움직임을 외부에서 본 국정원 대원들이 설장호에게 무전으로 바로 물었다.
“석강수는 생포한다. 그리고 그 생포는 국정원에서 직접한다. 너희들도 움직여라. 하지만 명심해라.
석강수는...절대 죽여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강서진이 움직이면서 대기중이었던 모든 국정원 대원들도 북정마을로 올랐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까지 모두 한꺼번에 북정마을로 오르니 북정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탁탁탁 퍽!’
‘촤르르르르!’
“너 이새끼!”
‘퍽!’
‘쾅!’
옥상에서는 약 20 분이 넘는 접전 끝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타격이 나왔다.
추선우의 맹렬한 공격을 방어하고 피했지만, 그의 주먹에 이은 뒤돌려차기가 정확하게 석강수의 복부를
가격하였고, 그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난 석강수가 다시 몸을 바로 세워 욕설을 내 뱉었지만, 이어지는
추선우의 공중 회축에 다시 한 번 얼굴을 내어주며 몸이 한반퀴 돌아 땅에 떨어졌다.
“젠장...총에 맞은 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석강수는 충격이 강하게 전달되었다. 얼굴이 얼얼할 정도이며, 턱이 돌아가버릴 정도의 강한 충격으로
입에서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며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은 후, 추선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모두 올라선다!”
석강수가 다시 일어서며 추선우를 노려볼 때, 아래에서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원군이 올라오는군. 너와의 격전에 결판을 만들어야하는데, 이렇게되면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없게
되겠군.”
석강수는 추선우를 보며 바로 선 채 말했다. 그리고 뒤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옥상 입구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추선우는 그를 잡으려하지 않았다. 그가 물러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석강수!”
석강수가 옥상 난관에 서서 추선우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릴 때, 옥상 입구에서 강서진이 올라선 후,
그를 향해 총을 겨루며 소리쳤다.
하지만 석강수는 그 즉시 옥상난관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그 모습에 놀란 강서진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은 난관으로 향해 달렸다.
강서진은 가만히 서서 난관쪽을 보고 있는 추선우의 옆으로 섰다.
“괜찮...아요?”
그리고 물었다. 추선우는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또 다시 왼쪽 팔에는 피가 조금씩 고이기
시작하였다.
‘탁!’ 데구르르.‘
그는 난관에서 뛰어내린 뒤, 바로 옆 건물의 낮은 옥상을 밟고 내렸고, 곧바로 다시 아래로 뛰어내리며,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저게 가능해?”
국정원 대원과 형사들은 그의행동을 보며 마치 와이어액션을 보는 듯 한 멍한 눈으로 보고만 있을 뿐, 그
누구하나 따라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추선우는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으며, 옥상 난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이 방법 또 한 수없이 해 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석강수가 이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뭣들해! 어서 뒤쫒아!”
강서진은 국정원대원들과 형사들에게 큰소리로 말했고, 자신은 난관쪽으로 향해 저 멀리 골목
중간중간에서 모습이 보였다 사라졌다하는 추선우를 보았다.
“선우씨...”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음같아서는 그의 뒤를 따라 바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뿐 아니라 국정원대원들과 형사들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탁탁 퍽!’
“제길! 골목이 좁으니 공격도 그렇고 반격도 쉽지않네!”
석강수는 좁은 골목 탓에, 추선우의 주먹을 막고 피하며, 잡아서 돌리려 하였지만, 골목의 폭이 좁아서
몸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라 피할 수 있는 그의 주먹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탁! 퍽퍽퍽!’
복부에 한 차례 공격을 허용한 후,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추선우가 다가서며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석강수의 손에 잡혔고, 곧 몸을 빠르게 일으킨 석강수가 머리로 추선우의 턱을
들이받은 후, 뒤로 밀려나며 휘청거리던 그의 면상을 두 차례 가격하며 뒤로 날려보냈다.
“골목이 좁아서 네 놈을 일격에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날려버리고 있는 것이 아깝다.”
석강수는 몸을 서서히 일으키는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석강수의 주먹과 발은 의외로 폭을 넓게하여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골목의 폭이
좁아 주먹을 휘둘지도 못하고, 또 발차기는 더욱 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차기라면 오히려 추선우가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는 태권도가 주 기술이며, 그 외에 일부를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장 중요한 것은 추선우는...전통 싸움꾼이라, 굳이 골목의 폭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런 곳을 내가 택하긴 했지만, 막상 접하니 오히려 내가 더 손해 보는 장소인 것 같다.”
석강수는 골목을 내려오는 추선우를 급습한 상황이지만, 그 때를 잘 못 맞춘 것이라 말했다.
“괜찮다면 장소를 옮겨도 된다.”
“너무 자신하지마라. 네가 나를 꼭 이긴다는 말처럼 들린다.”
추선우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석강수는 두려움이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패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면서 두려움이란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절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려움이 겉으로 표현됨과 동시에 자신의 목은 그 자리에서
날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저기!”
순간 강서진의 눈에 추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고, 그녀의 목소리는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석강수의 귀에 들어갔다.
“강서진…….저 여자도 참 질기군.”
그는 추선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면서 시선을 돌려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너의 입에서 그 딴 말을 들을 만큼 하찮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입에 담지마라.”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이를 깨문 어투로 말만하였다.
“박태식! 왼쪽 두 번째 아래쪽 골목이야 뛰어!”
강서진은 가장 근처에 있는 사람이 박태식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소리쳤다.
박태식은 그녀의 목소리를 이어마이크와 라이브로 직접 듣고 두 번째 아래 골목을 찾으려 이동하였다.
“제기랄. 무슨 놈의 골목이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어!”
박태식은 답답하였다. 석강수의 위치를 알아냈지만, 그곳을 가기가 이리 답답할지 몰랐다.
“진작 이 길좀 익혀둘 것을 그랬군.”
비단 박태식 뿐만은 아니었다. 인근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과 형사들도 해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아무런 목적 없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골목이었다. 하지만 어떤 특정지역에
무엇을 찾아가기에는 이 골목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외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뭣들해! 이동하잖아!”
강서진은 석강수를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를 쫒지 못하는 것에 화가나 소리쳤다.
“추선우!”
그녀는 답답한 나머지 추선우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너를 부르는데 인사라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쓸데없는 신경쓰지마라. 네 놈을 잡은 후, 천천히 올라갈 것이다.”
추선우는 골목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곧 석강수를 처음 만났던 그 곳에 도착하였다.
“기억나는군. 이쯤에 내가 서 있었고, 넌 이 중간에서 뛰쳐나왔지, 그리고 그 저 끝으로 설장호가 서
있었고 말이야.”
석강수는 그 때의 그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하자.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여기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냥 무릎을 꿇자.”
추선우가 아닌 석강수가 먼저 제안하였다. 그도 이제는 추선우와의 결판을 지으려는 듯하였다.
경찰과 국정원대원들은 다시 북정마을 위로 올라서고 일부는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경찰이고 국정원대원이라는 놈들이 한심하지 않아? 어떻게 이런 시점에 중요한 곳인 이곳의 지리를 전혀
익히지 않고, 이런 함정을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석강수는 이미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왔었다. 그리고 북정마을 위로 오른 이유도 따로 있었다.
“거기…….뭐요?”
하지만 또 다른 방해꾼이 등장하면서 석강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정마을에서 내려오던 한 사내가 석강수가 주저앉은 곳의 바로 옆 골목에서 나오며 두 사람을 보았고,
놀란 눈을 한 채 묻자, 석강수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며 그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 작품 후기 ============================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너무 그렇게 거칠게 하지마라. 민간인이 놀라잖아. 그러다가 이 사람이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리면
어찌하겠나.”
석강수는 강서진을 보며 건들거리는 어투로 말했고, 곧 추선우가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이동하였다.
“진정하세요.”
“진정요? 당신은 왜 그래요? 왜 당신 생각만해요!”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의 눈에 맺힌 눈물은 흔들거리고 있었고,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추선우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하…….이건 뭐 3 류 드라마도 아니고, 범인 잡다가 사랑놀이라니…….”
석강수는 두 사람을 보며 말한 뒤, 다시 자신의 손에 잡혀 벌벌 떨고 있는 민간인을 보았다.
“당신은 저들에게 관심 밖이야.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도 않지.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야.”
석강수는 민간인의 머리를 잡아 조금씩 비틀기 시작하며 말하였고, 이내 시선을 돌려 추선우를 보았다.
“추선우!”
그리고 그를 큰소리로 불렀다.
“여기서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이 사람은 살려보내주겠다.”
석강수가 다시 요구했다. 하지만 추선우의 매서운 눈빛만이 그를 향해 돌아서고 있을 뿐이었다.
“넌…….그냥 내 손에 죽는 거다. 그것밖에 너에게 해 줄 것이 없다.”
추선우는 강서진이 들고 있는 총을 살며시 내린 후, 그녀의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해 주었고,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면서 귓속말을 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곧 석강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가서면 이 사람은 죽는다.”
다시 말했지만, 추선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가! 내 말이 말같이 들리지 않아!”
석강수는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추선우가 그의 앞에서 살며시 몸을 낮추는 행동을 취하였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너희 같은 놈들에게는 이런 민간인 하나의 목숨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지.”
석강수는 추선우가 몸을 낮추자, 그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하여 웃으며 말했다.
“석강수. 너에게 내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뭐야!”
추선우는 몸을 낮추면서 그를 향해 말했고, 석강수는 화난 표정으로 소리친 뒤, 자신의 손에 잡힌
민간인의 머리를 잡아 강하게 비틀려 하였다.
“인질을 구하는 최선의 방법은…….인질을 쏴라.”
“!!!”
민간인의 머리를 꺾어 돌리려 할 때 들리는 강서진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어 강서진을 향해 보았다.
‘탕!’
“!!!”
고개를 들어 강서진을 보자마자, 그녀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굉음을 내며 총알이 발사되었고, 곧 칼을
들고 있던 석강수의 손이 뒤로 밀려나면서 잡고 있던 인질마저 놓쳤다.
“쓰레기 같은 새끼!”
‘퍽퍽퍽퍽!’
인질이 석강수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추선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석강수를 향해 주먹을 두 차례 내
지른 후, 그가 뒤로 밀려나자, 다시 그를 따라가 나래차기로 그의 복부와 얼굴을 다시 가격하였다.
‘쾅!’
석강수는 더 멀리 날아갔고, 곧 골목 끝 벽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정신을 잃었다.
“괜찮으십니까?”
강서진은 인질이었던 사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안부를 물었고, 사내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한 채,
그녀를 보며 글썽거리고 있었다.
“강 검사님!”
두 발의 총성을 들었고, 설장호의 명령처럼 북정마을 아래에서부터 다시 올라서던 사람들이 곧 현장에
도착하였고, 박태식이 총을 들고 민간인 앞에 서 있는 강서진을 불렀다.
“석강수는요?”
석강수를 묻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주시하였고,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추선우의 발아래
기절해 있는 석강수가 보이고 있었다.
“뭣들해! 석강수를 체포하고 민간인을 병원으로 옮긴다!”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이 큰소리로 말하자, 형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곧 국정원 대원들이 형사들로부터
석강수를 인도받았다.
“석강수는 우리 국정원에서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어차피 국정원에서 이 인간에게 물어볼 것이 우리보다 더 많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강서진은 기꺼이 그를 국정원에 넘겨주었다. 엄청난 인물이라 검찰에서 체포하면 그 공이 모두 강서진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설장호의 말대로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국정원에 석강수를 넘겼다.
“가요. 이제 병원에 가서 제발 치료 좀 받아요.”
강서진이 다시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고, 추선우는 그런 강서진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안았다.
“다음부터는…….이런 일에 끼어들지 마요.”
강서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추선우보다 더 멋지고 능력 있으며, 재력가인 사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백수이며, 통장잔고가 30 원이고, 당장 내일부터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한 젊은 사내의
앞에서 자신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자신을 느꼈다.
“자자! 우리는 철수한다. 모두 설장호 실장님에게 가서 상황보고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한다.”
박태식의 말이 이어졌고, 국정원 대원들도 그들을 인솔하는 대원이 국정원의 모든 대원들을 이끌고
설장호에게로 향하였다.
“그래? 석강수를 잡았단 말이야?”
“네. 그것도 추선우씨와 강서진검사가 합작으로 그 거물을 잡았습니다.”
잠시 후, 만석병원에 도착한 국정원 대원들과 박태식은 그 현장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두
사람밖에 없었고, 석강수가 쓰러져 있었으니, 두 사람이 그를 잡았을 것이라 여기며 설장호에게
상황보고를 하였다.
“두 사람은 어디에 있나?”
“잠시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고 왔습니다. 곧 올 것입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국정원 대원이 답했고, 설장호는 그제야 힘이 꽉 들어가 있던 손에 힘을 풀기 시작하면서
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러고 보면…….영월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놈들 중, 그 뭐냐, 장석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 검사님과 추선우씨가 잡은 거네요.”
모두 긴장이 풀리면서 박태식이 요 근래 있었던 일을 종합하여 말했다.
생각하니 그의 말이 맞았다. 유능하다는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국정원에서는 단 한 놈도 잡은 것이 없었다.
모두가 민간인인 추선우가 다 잡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석강수를 체포했으니,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심문하고 더
확인할 것이 있다면 확인하기 위하여 그 즉시 국정원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설장호가 국정원으로 향하면서 만석병원과 북정마을 인근에 있었던 국정원 대원들 모두가 철수하였고.
형사들만이 병원 인근과 마을 인근에서 대기 중에 있었다.
“실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잠시 후, 병원으로 돌아온 추선우는 설장호가 보이지 않자, 만석에게 물었다.
“급히 해결할 일이 있다면서 국정원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괜찮아? 어디 상처 좀 보자.”
만석은 그의 질문에 답한 뒤, 그의 팔에서 붉게 번져나간 피를 보며 확인하려 하였다.
서지호는 방에서 나와 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차현태가 보았고, 그는 서지호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힘든 일이지만, 이제 그 결과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우리 모두 소주나
한잔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차현태의 말에 서지호는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고, 곧 일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탈칵.’
같은 시각. 조금 전, 이수호에게 모든 정보를 다시 알려준 1 차장 사무실 문이 열리며 국정원장고 함께
2,3 차장과 국정원 대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일이십니까?”
1 차장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그의 물음에 국정원장은 대원에게 시선을 주었고, 한 대원은 USB 를 들고 회의테이블 앞에 놓인 모니터와
연결된 프로젝트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파일 중, 하나의 파일을 골라 재생버튼을 눌렀다.
“!!!”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었고, 그 영상을 접한 1 차장의 눈빛이 변하면서 서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당 영상은 1 차장이 이장두의 부하 다섯 명을 국정원건물 본관으로 들어서도록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자네가 그 이수호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조금 전에 그 놈에게 연락을
취했더군.”
1 차장은 국정원장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았고, 곧 한 대원이 그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를
뺏다시피 하여 가져온 뒤, 국정원장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즉시 1 차장이 조금 전 전화한 번호가 어디로 이동 중인지 확인한 후, 설 실장에게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은 이미 그가 고민국이 뿌려놓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려주었다.
바로 마지막 한 놈에게 연락하면 그 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그 위치를 추적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의 생각대로 1 차장은 이수호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래? 그 GPS 화면을 우리 쪽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이 내린 명령은 곧바로 설장호에게 전달되었고, 설장호는 이미 이수호가 그곳을 벗어난 것을 알고,
GPS 화면에서 알려주고 있는 위치로 바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설장호를 막겠습니다.”
한 편, 이수호는 도피의 길에 접어들면서 이장두에게 연락하여 지금의 상황을 알렸고, 이장두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이수호의 뒤를 쫒고 있을 설장호를 치기위하여 움직였다.
이장두의 부하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최정예라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장두의 명령이라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도 죽을 충성심을 가진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백태와
민광만을 죽이기 위하여 다시 나올 수 없는 국정원 안으로 망설이지 않고 들어서기도 하였다.
“지금 즉시, 회장님의 뒤를 쫓고 있는 설장호를 친다.”
“알겠습니다.”
이장두는 자신의 남은 부하 일곱 명에게 명령을 하달하였고, 그들은 그 즉시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장두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설장호…….네가 아버지를 쫓는다면, 난 너의 주위를 하나하나 다 쳐 나가겠다.”
이장두의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움직인다고 하여 이수호를 안전하게 도피시킬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하여 설장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의 주위를 모두 쳐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린 곳이 만석병원이었다. 이곳에서 함정을 만들었고, 그 함정에 의해 장석관이
잡혔으며, 무엇보다 석강수가 잡혀 모든 것을 발설하게 되었으니, 그 발단을 제공한 만석병원을 모두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끽!’
“뭐야!”
한 편. 이수호가 탄 차량이라 확신하던 차량을 밀어붙이려 할 때, 갑자기 옆 차선에서 차량 한 대가
급하게 핸들을 꺾으며 설장호가 탄 차량으로 붙었고, 그에 놀란 대원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
세웠다.
“저 새끼들은 뭐야!”
설장호가 다시 소리치자, 해당 차량에서 창문이 열리며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차창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픽픽픽픽!’
“제기랄!”
그들은 망설임이라는 것이 없었다. 총구를 차장 밖으로 내보이지마자, 곧바로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여러
발을 총알이 차를 뚫고 안으로 들어섰고, 그 총알에 맞아 한 대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나머지 대원들은 해당차량을 따라붙어!”
현재는 설장호가 탄 차량에만 이상한 차량이 붙어 총을 쏘고 있기에, 나머지 두 대의 차량은 자유로웠다.
이에 설장호는 두 대의 차량에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앞서 달려가는 이수호의 차량을 계속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도로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지나다니는 차량들 속으로도 총알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언제나 불리한 상황은 이들의 몫이었다. 이수호의 부하들에게 민간인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지만,
국정원은 달랐다.
“우리가 쫓아가는 상황이니, 우리 마음대로 방향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쩔 수없다! 일정부분
민간인의 피해가 있더라도 녀석을 놓치지마라!”
설장호의 이런 명령은 처음이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민간인을 먼저 생각하였던 그가, 지금 이수호를
잡기 위하여 민간인을 뒤로 밀어낸 상황이 되었다.
“혼수상태에 있는 놈들을 죽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설장호에게 줄 선물은 마련해야지.”
같은 시각. 이장두가 도착한 곳은 태정민과 조동민, 그리고 석강수에게 당한 국정원 대원들이 입원한
병원이었다.
이장두는 차량을 주차한 후, 병원으로 들어섰고, 환자 안내판에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후 바로
움직였다.
해당 병실로 가는 길에는 몇 몇 국정원 대원들이 보이고 있었다.
이장두는 그들을 지나쳐가며 미소를 지었고, 병실을 향해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보통 사람은 이정도면 팔을 잘라내야 할 상황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사람이
상처가 그렇게 곪아 터져가는데도 연고 바르고 다시 봉합하면 끝이에요?”
이장두가 막 지나쳐간 복도 옆으로 추선우와 강서진이 나왔고, 강서진은 의사의 말을 들은 후, 추선우의
팔을 보며 너무나 신기해하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태팀장님 좀 보고가요.”
추선우는 이 병원에 태정민이 입원한 것을 알기에 말했고, 강서진도 기꺼이 허락하였다.
두 사람은 그의 병실을 찾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장두는 승강기를 타고 5 층으로 이미 오르고
있었다.
이장두가 5 층에 도착하자, 1 층 로비보다 더 많은 국정원 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두가 승강기에서 나오자 그를 보는 눈빛들이 모두가 매서웠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곧 그의 앞으로 대원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병문안을 왔습니다.”
“이곳은 현재 민간인은 입원해있지 않습니다. 잘 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아니. 제대로 찾아왔다.”
“네?”
‘픽!’
“!!!”
이장두는 이미 5 층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앞에 있는 대원을 바로 죽인 후, 그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마저 꺼낸 뒤, 양쪽으로 있는
국정원대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그냥 승강기타고 가자니까요. 이렇게 계속 걸으면…….”
“5 층까지잖아요. 나이도 젊은데 이 정도는 걸어야죠.”
“하하…….그래요 그래. 젊어서 좋겠네요. 난 30 대고 선우씨는 아직 20 대니 말이에요.”
추선우의 말에 강서진은 장난 섞인 말을 하였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5 층에 도착하였고, 곧 비상계단 문을 열고 5 층 복도로 나왔다.
“!!!”
그리고 두 사람은 멍하니 선 채, 5 층 복도를 보았다.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추선 우는 강서진의 손을 잡은 뒤, 자신의 뒤로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고양이 새끼처럼 그리 조심하여 걸을 필요 없다.”
“…….”
곧 이장두가 5 층 간호사실에서 나오며 말했고, 그의 손에는 두 자루의 권총이 들려있었으며, 온 몸에는
이미 피가 꽤 많이 묻어 있었다.
“5 층에 이장두가 나타났습니다!”
강서진은 비상계단을 통해 1 층에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로 외쳤고, 1 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보았다.
“…….”
강서진은 아무런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분명 국정원 대원들이 로비에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디에도 국정원 대원들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무슨 일이죠? 5 층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입니까?”
“네? 아 네. 5 층에 살인사건이에요. 지금 살인마가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있어요!”
강서진은 국정원 대원이 있든 없던 소리쳤고, 이에 병원관계자들은 경비를 불러 5 층을 확인하기로 하였다.
강서진은 전화기를 꺼내들었고 곧바로 설장호에게 연락하였다.
‘띠릴리리’
“무슨 일이야? 급한 것 아니면 다음에…….”
-이장두가…….이장두가 병원에 나타났습니다.-
“!!!”
설장호는 지금 이장두가 보낸 최정예 요원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다 이장두가
병원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듯 하였다.
“차 세워.”
“네?”
“차 세워!”
설장호는 차량을 세웠다. 눈앞에 이수호가 있지만, 그를 버려두고 차를 세웠다.
도로 한 복판에 차량이 멈추자, 그 뒤로 따라오던 많은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내 뱉고 있었다.
하지만 설장호가 탄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실장님.”
대원이 그를 불렀다.
“지금 즉시 **병원으로 간다.”
“네? 그곳은 왜…….”
“그곳에 이장두가 나타났다.”
설장호의 말을 듣고 대원들이 놀라기는 하였지만, 순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명령을 바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앞쪽에 이수호가 있습니다. 지금 놓치면 그를 언제 또 찾을지 알 수 없습니다.”
대원의 말에 설장호는 앞쪽을 주시하였다. 그리고 다시 강서진의 통화내용을 생각하였다.
“이 차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차량은 모두 이수호의 뒤를 쫒는다. 그리고 절대 명심해라,”
설장호는 이어마이크를 통해 전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절대 명심해라. 난 내 새끼들 죽는 것을 볼 수 없다. 죽지마라. 죽기 전에 녀석을 죽여라. 그것이 내
명령이다.”
대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죽이라는 말을 할 정도면, 그
만큼 악이 받쳐있다는 것과 같았다.
“이 차량은 **병원으로 향한다. 어서 움직여.”
설장호는 이수호를 쫓지 않았다. 그를 눈앞에서 버려두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태정민도 있고,
조동민도 있다. 또 국정원 대원들도 있다.
그리고 추선우와 강서진도 있다. 즉 설장호가 근 한 달간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너무나 잘 알게 된
모두가 그곳에 있기에 그는 그곳을 향해 갔다.
강서진은 1 층 로비를 다시 돌아보았다. 정말 단 한명의 국정원 대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강서진 검사님?”
곧 한 사내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네?”
“잠시…….이쪽으로.”
“누구…….십니까?”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5 층에 오른 놈을 잡기 위하여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로비에 아무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그랬군요.”
강서진은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해소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았고, 그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는 듯
한 행동을 하였다.
“이장두가 혼자 온 것입니까?”
강서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를 보며 물었다.
“혼자 왔습니다. 주변 어디에도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5 층에 있는 국정원
대원들과 태정민 팀장을 노리고 접근한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현재의 상황을 강서진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추선우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5 층으로 간 것입니까?”
“네. 그래서 지금 바로 지원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사내는 곧바로 주변 사람들을 보며 신호를 보냈고, 그의 신호를 받은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서진은 그가 하는 행동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신호를 받은 대원들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정원 대원들이 아니야.’
강서진은 홀로 생각하였다. 자신이 병원에 왔을 때 1 층 로비에 있던 국정원 대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주고받는 수신호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신호였다.
“일단. 강 검사님께서는 저희 대원들과 함께 계십시오. 추선우씨의 지원은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강서진도 함께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국정원 대원은 그녀를 다른 대원에게 인도하며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추선우씨는…….”
“이장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회장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조동민, 그리고
추선우씨를 죽여야 하니, 그만큼의 준비를 하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립시오.”
대원은 강서진의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다른 대원에게 다시 신호를 주었고, 그 대원은 강서진의 양 팔을
잡은 채 뒤로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강서진은 조금 전 대원 한 말을 들으며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기 시작하였다.
이장두가 나타났다는 말은 전하였지만, 대원의 입에서 회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들은 자신을 돕고자
온 것이 아니라, 추선우를 잡고자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서진은 그 순간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 안면이 있는 국정원 대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저희들과 함께 일단 병원을 벗어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원은 강서진을 데리고 지하주차장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강서진은 그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무슨 짓입니까!”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강서진은 버럭 소리치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냥 좋게 좋게 물러나십시오. 강 검사님이야 특별히 우리와 악연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선처를 해 주는 것입니다.”
“!!!”
그들의 본심이 드러났다. 강서진은 이미 처음 이 병원에 들어섰을 때 보았던 국정원 대원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부터 이들을 의심하였다.
마치 지난 날 수원 연화장에서 경찰과 국정원 대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처음 보는 이들이 접근했을
때와 같은 경우였다.
“당신들 누구야?”
“이미 예측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점차 강서진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고, 강서진은 지하주차장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도 없네.’
하필이면 지하주차장에 사람이라고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형병원인데 주차장에 사람이 없으니 이상하죠? 이 모든 것도 이미 다 수를 써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살고 싶으시다면…….”
“지랄하고 있네!”
“!!!”
‘픽픽픽픽!’
한 사내의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곧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와
강서진의 주변에 있는 이들을 단숨에 쓰러뜨리고 있었다.
강서진은 곧바로 몸을 돌려 뒤로 돌아보았고, 곧 입가에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박형사님.”
“강 검사님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위로 올라가 모조리 죽여 버려!”
박태식이 소리쳤다. 그의 명령에 형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박태식은 강서진의 앞으로 섰다.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언제부터 여기 계셨습니까?”
강서진은 박태식의 출현이 무척 반가웠다.
“서지호 실장이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국정원에서 이미 한 차례 모두를 속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여 저에게 경찰병력을 이끌고 이 병원에서 기다려보라고 하였습니다.”
박태식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처럼 수원연화장에서부터 최기수는 물론 최근
민광만까지 모두 국정원 안에서 죽었기에 그들의 뿌리는 아직도 국정원에 남아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서 실장님이요?”
“네. 태정민이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서 실장님이 특별히 정민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써 달라는 당부를 하였습니다.”
박태식은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1 층 로비와 병원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국정원 애들은 모두 잠재웠습니다. 그러니 5 층에 올라섰던
놈들을 정리하면 됩니다.”
박태식은 승강기로 이동하며 말했다.
“이곳에 태정민과 조동민이 있다. 그리고 이제 너까지 있지. 즉. 설장호의 식구들이 다 모여 있다고 봐도
되는 순간이지.”
한 편, 이장두는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해있는 병실 앞에서 추선우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빼고, 나와 놀아보자. 어차피 저 두 사람이야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쉽게
죽일 수 있잖아.”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그제야 이장두의 시선은 추선우에게로 향하였다.
“네가 그리 강한가?”
이장두는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슉!’
추선우는 그의 앞, 약 5 미터 정도를 두고 조금 더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그를 향해 몸을 띄워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이장두는 그의 주먹을 쉽게 피하였고, 그 뒤로 이어지는 추선우의 주먹질과 발차기도 너무나 쉽게
피하고 있었다.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고광과 장태, 그리고 석강수까지 잡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이장두는 추선우의 주먹과 발차기를 모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순간순간 맞춰서 다 피하고 있었다.
막는 것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그의 공격이 있은 후, 반격하는 것도 없었다.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곧 이장두의 수하들이 5 층으로 올라서며 말하였다.
‘띵!’
그리고 곧바로 승강기가 5 층에 멈추었고, 그 안에서 박태식과 강서진, 그리고 형사들이 또 다른
승강기에서 내렸다.
“이곳에는 쓰레기가 많네. 모두 청소 좀 할까.”
박태식이 5 층 복도, 중앙으로 나서며 좌우를 본 후 말했고, 곧 형사들도 모두 두 주먹을 꽉 쥔 후,
이장두쪽을 본 뒤, 다시 그의 부하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보았다.
“추선우! 이쪽은 우리가 막겠다. 그 놈만 잡아!”
박태식은 추선우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추선우는 그를 보지 않은 채, 오로지 이장두만을 보고 서
있었다.
“공평해지는군. 나도 애초부터 내 부하들이 이 싸움에 끼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데 저 형사 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이장두는 박태식을 보며 말했고, 그의 옆으로 서 있는 강서진을 보았다.
“강 검사가 올라온 것을 보니, 그녀를 죽이도록 내린 명령은 실패한 모양이군.”
이장두는 멀쩡하게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말한 뒤, 다시 추선우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있는 것도 보았다.
매서웠고, 날카로웠다. 꽉 쥔 두 주먹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악을 품은 것인가?”
“그래. 네 놈을 죽여야만 풀리는 악을 품었다.”
추선우는 다시 그를 향해 움직이며 답했고, 좁은 복도에서 이어지는 추선우의 화려한 움직임이었지만,
이장두는 그의 모든 공격을 다 피하면서 여전히 맞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척!’
그리고 총을 빼 들고, 정확하게 이장두를 겨냥하였다.
“강한 벌? 미친 새끼. 그 벌은 내가 아니라 네 놈이 받는 것이다.”
‘픽픽픽픽!’
설장호는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말에 답을 준 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미 뒤로 물러나면서 자신이 피할 곳을 찾은 이장두는 곧바로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총알은 그 문에 박히며 그를 명중시키지 못하였다.
“뭣들해! 어서 잡아!”
설장호가 소리쳤다. 그는 목발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였지만, 추선우는 물론 박태식과 강서진까지
있는 마당에 모두가 그를 멍하니 보고 있는 것에 소리쳤다.
박태식이 형사들을 이끌고 바로 움직였고, 강서진은 곧바로 추선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탁.’
추선우가 다시 4 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설장호가 문 앞을 나서는 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태정민과 조동민을 부탁한다.”
“…….”
설장호의 나지막한 말이었다. 추선우는 그의 말에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곧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이런 소란 속에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강서진. 추선우와 함께 있는다. 박형사. 나와 함께 그 놈을 찾는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병실을 나섰다. 목발을 짚고 몸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르게 이동하며 이장두를
잡고자 움직였다.
추선우는 병실 문 앞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보았고, 곧 강서진이 그의 뒤로 다가서며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보지마세요. 당신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강서진은 그의 뒤로 바짝 다가와 그의 눈 눈을 가린 손을 내리며, 그를 앉은 채 말했다.
‘띠리리리’
1 층 로비에서 창가를 보고 있던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북정마을입니다. 지금 만석병원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장호는 이장두가 추선우는 물론, 자신의 주변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석병원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국정원 대원에게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눈동자는 만석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북정마을로 간다.”
설장호는 추선우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움직였다.
“어떻게 된 것인가?”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설장호는 국정원 대원에게 물었고, 이미 꽤 많은 형사들이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확보한 CCTV 영상이 있습니다.”
국정원 대원이 원장실로 향하며 말했고, 원장실에는 형사들이 먼저 와 있었지만, 설장호가 도착하자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들은 이미 상부의 지시를 받은 이들이기에, 사건 해결의 우선권을 설장호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설장호는 CCTV 를 보았다.
“이장두…….”
이장두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그는 만석병원의 관계자는 물론,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환자고 뭐고를 구분하지 않고 다 죽이고 있었다.
“독한 놈입니다.”
영상을 함께 보던 대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새끼…….꼭 잡아라. 그리고 이 새끼 주변 인물도 잡아. 이놈과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잡아.”
“하지만 그들은 죄가…….”
“이런 미친 새끼를 알고 있다는 것이 죄다. 무조건 잡아.”
설장호는 CCTV 영상을 보며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은 채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대원의 말처럼 이장두의 주변사람은 아무런 잘 못이 없다. 그들을 잡아 응징할 수 있는 명분이 없는
상황에 무턱대고 잡아들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일단 연락해서 이장두의 연관된 놈들을 모두 확인하고 잡아들여.”
“알겠습니다.”
설장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국정원 대원들이 움직였고, 함께 있던 형사들도 움직였다.
그리고 설장호는 CCTV 영상을 재생하여 보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놈이 잔인하다고 말해도, 지금 영상 속
이장두와 비교하면 천사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띠리리리’
“뭐야?”
-이수호의 위치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간다. 대원들 대기시켜.”
설장호는 대원의 연락을 받고 바로 움직였다. 만석병원의 영상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 거리며 재생되고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대원들과 함께 이수호가 있는 곳으로 직접 향하기 시작하였다.
“병원에 알아보니,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더군. 푹쉬고 진료 잘 받으면 곧 일어 날 거라고
하더군.”
한 편. 박태식은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설장호의 명령으로 태정민과 조동민의 옆에
앉아 있었고, 곧 박태식이 병원관계자를 만난 후, 그 내용을 두 사람에게 알렸다.
“설 실장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추선우는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을 본 후, 박태식에게 물었다.
“뻔하지. 이수호를 잡겠다고 저리 설치고 다니는데, 이쪽으로 오는 바람에 눈앞에서 이수호를 보낸
모양이더라고.”
“…….”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강서진이 설장호에게 연락했을 때, 그 순간 설장호가 이수호를 쫓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 강서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박태식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설장호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그녀였다.
그리고 설장호가 이수호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눈앞에서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으로 하여금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래도 강 검사와 추선우씨는 걱정 말고 이 두 사람 곁에 있어. 이미 설 실장님이 다시 이수호를 쫓기
시작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박태식은 강서진의 표정을 보며 말했고,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만석병원의 일은 알지 못하기에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설장호…….넌 가장 마지막이다 기다려라.”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찾고 있었던 이장두는 병원을 나서지 않았다.
그는 추선우의 추측처럼 4 층 아래로 바로 들어선 뒤, 곧바로 승강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섰다.
설장호를 비롯하여 국정원 대원들은 그가 4 층으로 내려간 것이기에,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심리를 이용하여, 아래가 아닌 위로 다시 올라서며 모두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상황이 종료되면서 그는 옥상에서 모습을 보이며, 난관에 서서 아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이건 뭐. 몇날 며칠을 굶고사는 것 같으니, 배가 너무 고프네.”
“식사하고 오십시오.”
“아냐. 설 실장님의 명령이야. 두 사람과 함께 움직여라는 명령. 그래서 배가고파도 함께 가면 먹을 수
있지만, 나 혼자 갈 수가 없어.”
박태식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그래요. 우리도 밥을 먹고와요. 조금 전 있었던 일로 인하여 병원에서도 경비원이 더 많이 배치되었고,
또 형사들도 이 병실 앞을 지키고 있으니, 허기를 달래고 와요.”
박태식은 강서진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고, 곧 답을 해야 하는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전, 아직…….”
“일어나요. 가서 먹고와요.”
추선우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강서진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병실을 나섰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의사들 외에는 누구도 병실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박태식은 병실 앞을 지키는 네 명의 형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두 사람과 함께 승강기 앞으로 섰다.
“이제 끝났으면 하네. 너무 힘들어. 이건 뭐 집에도 가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그 놈만
잡히면 잠이라도 좀 잘 수 있겠구먼.”
박태식은 승강기가 5 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중얼거렸고,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띵.’
‘띵.’
승강기 두 대가 동시에 5 층에 도착하였다. 두 대 모두 아래로 향하는 승강기였으며, 세 사람의 앞에 있는
승강기는 텅 비어 있었다.
강서진이 추선우의 손을 잡고 먼저 승강기에 올랐고, 곧 박태식도 함께 오른 후, 다른 한쪽의 승강기에서
이장두가 내렸다.
이장두는 조금 전까지 병원을 난장판으로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기타 안면을
가릴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5 층으로 내려왔다.
세 사람이 탄 승강기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이장두의 모습이 닫히는 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지나쳐가고있었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추선우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잠시 만요.”
“응? 왜?”
추선우는 갑자기 3 층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고, 박태식이 이유를 물었다.
“일단 두 분은 내려가 계십시오. 5 층 간호사에게 뭔가 물어 볼 것이 있었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물어보고 바로 따라 가겠습니다.”
“같이 가요.”
“아니에요. 제가 금방 물어보고 바로 내려갈게요. 일단 박형사님과 함께 내려가 계세요.”
추선우는 이장두를 보았다. 비록 정확하게 그의 안면을 본 것은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이기에,
옆면만으로 충분히 그를 알아본 추선우였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면 그를 잡기 편하겠지만, 그는 강서진을 보호하고자 혼자 움직이려 한 것이었다.
이장두가 위에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하면 필시 강서진도 함께 갈 것이기에,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미리 막으려는 그였다.
추선우는 3 층에 내려서 다시 5 층으로 향하였고, 그가 비상계단을 통해 5 층에 도착하여 복도를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복도바닥을 물들인 붉은 피였다.
“추선우! 어서 와라!”
이장두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추선우는 고개를 들어 반대편 복도 끝에 서 있는 이장두를 보았다.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만찬이다. 어떤가? 아주 즐겁지 않은가?”
이장두는 미치광이와 같았다. 다행히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이장두의 미치광이 행동으로 인하여, 5 층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다른 층으로 옮겨두었고, 간호사와 의사 몇 명만이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단 몇 명의 인명피해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참 더러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너를 기다리며 준비해 둔 것이다.”
이장두는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몇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추선우는 곧 자신이 올라온 비상계단으로
향한 뒤, 비상계단 문을 걸어 잠갔다.
“역시 넌 마음에 든다. 내가 이쪽은 다 잠갔으니, 이쪽까지는 올 필요 없고, 비상계단을 문을 잠그고,
승강기까지 잠그면,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만 있게 되는 아주 환상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장두는 곧 스마트 폰을 꺼낸 뒤,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였다.
‘덜컹, 덜컹.’
그리고 잠시 후. 승강기 쪽에서 덜컹 거리는 소리가 난 후, 전원이 꺼졌다.
‘탁탁탁!’
한 편. 추선우는 이장두를 상대로 좁은 복도에서도 주먹과 발차기를 내 지르며 그를 위협했지만,
이장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추선우의 모든 공격을 다 피하면서 그를 노려보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제대로 해라. 이정도로 나를 잡겠다고 나선 것인가?”
이장두는 추선우를 도발하였다. 하지만 추선우는 장난이 아니었다. 진심을 다해 그에게 일격을 가하려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 지르는 경우가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추선우였다.
“안되겠구나. 이제는 내가 가지.”
결국 이장두가 반격에 나섰다.
‘퍽퍽퍽!’
“제길!”
이장두는 추선우와 달랐다. 허공을 향한 주먹같이 보였지만, 그 주먹은 정확하게 추선우의 안면과 복부를
강타하였고,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 넘어졌다.
“싸움은 이렇게 하는 거다. 상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그 상대가 무슨 공격을 하며, 또 어떤 식의
방어를 하는지 보는 것이지.”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를 향해보며 걸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샤악!’
그가 다가서자, 추선우는 아주 빠르게 다리를 회전시키며 바닥을 끌며 돌렸고, 이장두는 그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복숭아뼈에 일격을 허용하고 공중에 몸이 뜬 채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선 뒤, 추선우를 향해 노려보았다.
“상대해보니 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네 놈에게 모두 당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이장두는 추선우와 일전을 몇 번 겨뤄본 뒤, 그에 대한 평가를 바로 내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올라가지 않는 다는 뜻과 같았다.
두 사람은 약 5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선 채,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선우 씨!”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비상계단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강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서진…….희한하군, 저 대단한 집안의 여신이 어떻게 네 놈에게 마음이 간 것인지 모르겠군.”
이장두는 이미 두 사람을 단 몇 차례 본 것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로 알아낸 인물이었다.
“가서 열어줘라. 강서진은 이곳에서 피의 향연을 충분히 구경할 자격이 있는 여자다.”
“미친 새끼. 이런 짓을 보여주려면, 네 부모님을 데리고 와라. 아니다. 이런 미친 조직을 만든. 네 놈의
아버지를 데리고 와라. 그게 더 좋겠다.
“이 새끼가!”
이장두는 이선우가 이수호를 말하는 것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향해 다가가 주먹을 뻗었다.
‘퍽퍽퍽!’
이장두가 이성을 잠시 접어두고, 동물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지금. 제대로 된 일격을 주어 기선을
제압하려던 추선우였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그가 뻗은 주먹은 또 다시 추선우의 안면부를 제대로
가격하였고, 추선우는 두 번째 다운을 겪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는 다르지? 다를 것이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적인 일에 참견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조직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도록 그냥 두는 것이 좋지.”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를 보며 다시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경험한 사람이 없었지. 그러니 다를 것이다. 그리고 겪어라.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더 무서워질 수 있는지, 제대로 겪어라!”
‘퍽퍽퍽!’
이장두는 쓰러진 추선우의 얼굴을 가격하였고, 그가 뒤로 굴러가자, 한 번 더 따라가서 그의 복부와
얼굴을 다시 가격하였다.
“쿨럭!”
추선우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진 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다가서는 이장두를 보았다.
‘제기랄…….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나온 거야.’
추선우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는 이장두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이고 있었다.
“일어나라. 누워있는 좀 두들겨 주었더니 재미가 없다. 제대로 주먹을 뻗고, 그 주먹을 얼마나 하찮은
주먹인가를 스스로 느끼면서 죽어가라.”
이장두는 추선우가 일어서기를 기다려 주었다.
“이곳인가?”
“네. 이곳에서 이수호의 휴대전화 위치가 멈췄습니다.”
한 편. 이수호의 휴대전화 위치를 파악한 후,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따라붙도록 명령 내렸고, 곧 위치를
파악하고 설장호도 그곳에 합류하였다.
이수호의 휴대전화를 한적한 곳에 위치한 펜션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이수호가
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주변 일대의 경계는 소홀하였다.
“어떡할까요? 이대로 그냥 치고 들어가서 이수호를 체포할까요?”
펜션을 향해보고만 있던 설장호에게 한 대원이 물었다.
“조심해라. 허술할수록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곧 설장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차량에서 내려 펜션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수호…….이젠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매듭짓자.”
설장호는 펜션을 향해 올라서는 대원들을 보며 중얼거렸고, 곧 대원들이 펜션의 입구까지 도착한 뒤, 뒤
따라 올라서는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내주며 서로 협동으로 펜션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쾅!’
“!!!”
대원들 중, 3 분의 2 이상이 펜션에 접근한 상태였다. 하지만 대원들이 펜션 문을 열려고 할 때,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펜션 전체가 날아가 버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고, 조금 떨어져 있는 설장호가 탄 차량도
그 폭발음에 유리가 박살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곧 차량 뒤로 있던 대원이 급히 차량으로 다가와 설장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자신의 안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으로 향했던 대원들 모두가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린
것과 같았다.
그의 눈앞에는 펜션이 폭발하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서 불길을 향해 보고만 있었다.
‘띠리리리.’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 전화를 받았다.
-어떤가? 지금까지는 자네가 내 식구를 모두 잡았지만, 이제부터는 자네의 식구도 목을 내 주는 것을
겪어라.-
이수호의 말에 설장호의 눈썹이 씰룩거렸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서 이수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수호. 넌 내 손에 죽는다.”
-말을 먼저 하지 마라. 행동을 보이고 말을 해라. 지금까지 말을 먼저 내 뱉은 놈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경우가 없었다. 네 놈 쪽이나, 내 쪽이나…….잘하겠다고 입만 떠벌리는 놈들은 제대로 한 것도
없이 그냥 죽어나갔지.-
이수호는 활활 타오르는 펜션의 맞은 편 언덕 위에서 숲들이 울창한 곳 안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자신의
펜션과 맞바꾼 국정원 대원들이 타는 모습을 보며 설장호와 통화중이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참…….네 부하인가 친구인가 모르겠는데, 추선우라는 놈 있지 않은가?-
이수호는 전화를 끊으려다 추선우의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이어하였다.
“그 친구는 건드리지마라. 네 놈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열심히 직장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을 젊은이다.”
설장호는 이수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다 아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 난 그 놈을 건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 하지만 말이야…….장두가 그 놈과 볼 일이 많은 것
같더군. 그래서 지금쯤 다시 병원에서 한 바탕 난리를 피우고 있을 것 같은데…….-
“이 새끼가!”
이수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설장호는 그에게 거친 욕설을 내 뱉으며 소리쳤고, 곧바로 한 대원에게
전화기를 받은 후, 이수호와 통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박태식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너. 기다려라.”
이장두는 다시 일어섰다.
‘휘청.’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휘청거렸고, 일어서면서 복도의 벽을 손으로 짚었다.
“기회를 주겠다. 정신이 들면 다시 와라.”
추선우는 이장두에게 진 빚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이장두는 잠시 휘청거렸던 몸을 다시 가누고 난 뒤 추선우를 향해 보았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너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니, 너의 강함은 공격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추선우는 이장두의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이장두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는 추선우를 보면서도 주먹을
쥐어 경계를 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놈에게는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면 다시 일어설 수 없지, 때려는 봤어도 맞은 적이 없으니, 맞는
것에 익숙지 않은 몸은 내 멋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벽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째서 네 놈이 이러지…….”
이장두는 아직도 자신의 몸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없었다. 추선우가 그리 말했어도 그는 맞는 것에
대한 관념이 없기에 어떤 충격이 오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반면에 난 달라. 난 때리는 것보다 더 많이 맞고 살았지. 그래서 맞는 것은 얼마든지 버텨. 그래서 네
놈의 그 무서운 주먹과 발차기도…….의외로 버텨지더라.”
그의 말처럼 추선우는 공격과 방어를 고루 갖춘 정통 싸움꾼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다음부터는 사람 제대로 보고 까불어라.”
‘퍽퍽퍽퍽!’
추선우는 그의 멱살을 살며시 놓아주며 말한 뒤, 그가 멱살이 풀린 틈을 타, 주먹을 뻗으려 할 때,
추선우의 주먹이 먼저 그의 면상을 한 번 날렸고, 곧 뒤로 밀려난 그를 따라가며 두 차례 더 주먹을 날린
뒤, 휘청거리는 그에게 뒤돌려 차기로 복부를 그대로 가격하였다.
‘쾅!’
그가 넘어졌다. 그리고 복도 끝의 벽에 몸을 기댄 채, 헥헥거리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를 내려 보며 주먹을 풀었다.
이장두는 강한 놈이다. 하지만 그 강함은 추선우에게는 약함이었다.
추선우는 쓰러진 이장두가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를 그대로 두고, 복도 끝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강서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장두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곧 벽을 잡고 어렵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추선우는 그가 일어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걸어 복도 끝으로 향하였고, 곧 잠긴 문을
열려하였다.
“추선우!”
그 순간 이장두의 큰 목소리가 들리면서 비상계단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선우씨.”
추선우의 시선은 이장두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강서진의 시선은 추선우에게 향해 있었다.
‘탕!’
‘탕!’
그리고 연이은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장두의 손에 들린 총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장두는 서서히 쓰러지면서,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새끼 목청이 커서 잠을 잘 수가 없네.”
이장두의 머리통을 날린 장본인은 태정민이었다. 이장두는 추선우에게 공격당하며 복도 끝까지 밀려가
넘어졌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며 총을 바로 꺼내 들었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선 위치는 태정민과 조동민이 입원한 병실 문 바로 앞이고, 어두운 내부에서 이장두를
보고 있었던 태정민과 달리, 이장두는 오로지 추선우만을 보고 있었다.
그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총을 꺼내들어 그를 향해 발사했지만, 총알이 발사되는
총소리는 한 발이 아닌 두 발이 울렸다.
“선우씨!”
그리고 강서진의 울음 섞인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발의 총성. 즉 총알 두 발이 발사되었다. 한 발은 태정민의 총에서 발사되어 이장두를 쏘았고, 한
발은 이장두의 총에서 발사되어 추선우를 쏘았다.
추선우는 이장두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을 그 때서야 보았고, 그가 겨눈 총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그는 이장두의 총으로부터 강서진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장두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추선의 허리 부분에 맞은 뒤, 추선우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강서진은 피가 흘러내리는 추선우를 부둥켜안고 울며 소리쳤다.
“어서 의사 불러!”
곧이어 박태식이 경비원과 함께 열쇠를 가지고 올라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었고, 추선우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그의 허리부분에 입은 총상을 보고 손으로 눌러 지혈하고 있었다.
태정민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몸 곳곳에 상처를 치료한 흔적을 남긴 채, 다리를 끌며 추선우의 곁으로
움직였다.
“괘…….괜찮아?”
태정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보다 더 작게 들렸다.
“어서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서둘렀다. 의사들은 추선우를 급히 수술실로 옮기기 위하여 서둘렀고, 박태식과 강서진은 정신을 잃은
추선우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끽!’
이수호의 차량이 산에서 내려오다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섰다.
“무슨 일인가?”
“앞에 차량들이 엉켜 있습니다.”
“그래? 잠시 기다리면 풀리겠지.”
이수호는 차량 안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가졌다. 그리고 곧 앞쪽에서 사내가 다가서며 운전석 창문을 몇
번 두드렸다.
하지만 비서는 창문을 내리지 않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차장 외부에서 소리치는 사내의 목소리는 안으로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건지 원…….”
사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던 기사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뭐라고?”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넌 죽는다고 병신아!”
“!!!”
‘픽픽픽픽픽!’
문을 열고 그에게 묻자, 외부의 사내는 그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한 뒤, 곧 창문에 권총을 들이민 후, 여러
발을 한꺼번에 한 곳을 집중하여 쏘았고, 곧 창문이 뚫리며 안으로 들어온 총알은 비서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수호는 외부에서 차량 안으로 들어서려 차량 문을 잡고 흔드는 그들을 보며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뜨며
보았다.
사내들은 차량 밖에서 안으로 향해 몇 차례나 총을 쏘았다. 하지만 차량이 방탄유리로 되어 있기에, 그리
쉽게 뚫리지는 않았다.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누군데 이리 무례하게…….”
이수호는 차량 외부에 선 이들을 향해보며 소리치다말고, 곧 정면에서 목발을 짚고 올라서는 설장호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설장호…….”
그는 곧 설장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른 뒤,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설장호는 곧 이수호의 옆으로 섰다. 그리고 목발을 들어 올리며 방탄으로 된 유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문 열어. 그럼 자수한 것으로 간주하고 선처해준다.”
설장호는 목발 끝으로 차창을 계속하여 툭툭 치며 말했다. 하지만 이수호가 그런 말에 쉽게 응할 인물은
아니었다.
이수호는 곧 앞좌석에서 죽은 비서를 옆으로 밀치고 운전석에 앉으려 하였다.
“늙은이가 힘이 남아돌아? 그런 덩치를 앉은 자리에서 밀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설장호는 그의 행동을 보며 비웃는 듯 한 표정을 지었고, 어투고 비웃는 어투로 말했다.
이수호는 그의 말을 듣고, 운전석에 앉은 비서를 밀쳐내는 것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끝까지 문은 열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지원요청이라? 그래 좋지, 이참에 네 놈을 찾아오는 놈들이 누군지 보자. 그래서 그놈들을 차례대로 한
놈씩 잡아족쳐보자.”
설장호는 오히려 그가 하는 행동을 반기고 있었다. 어차피 이수호를 잡은 후, 그와 연관되었던 인물들을
모두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가 지원요청을 하여 사람을 부른다면, 오히려 설장호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회장님.”
곧 장석관이 먼저 들어왔고, 그는 수갑을 찬 채, 이수호의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앉았다.
“일어나라. 여기서도 네 놈들의 서열을 챙긴다면 그 꼴은 내가 다시 보지 않겠다.”
설장호가 장석관의 행동을 보며 매서운 눈빛을 준 채 말했지만, 장석관은 여전히 무릎을 꿇어앉은 채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퍽!’
그 순간 설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목발로 장석관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하였다.
“!!!”
심문실의 보호유리 안에 있던 모든 관계자들이 충분히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말리려는 이들은 없었다.
“녹화장치를 모두 끈다. 그리고 그 어떤 내용도 담을 수 있는 장치를 심문실안에 두지마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심문실 안에 있는 대원에게 말했고, 대원은 곧. 심문실 안의 모든 기계장비들의 전원을 내렸다.
“뭐하는 것인가? 녀석과의 대화내용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놈을 쳐 넣을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없어.”
2 차장이 마이크를 통해 심문실에 들리도록 말했다.
“그간 고생했다. 그래. 네 놈들이 그리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사람이 바로 나. 이수호다. 돈으로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으로 더 높은 권력을 가지며, 대한민국을 손에 넣고 살아왔던 사람. 바로 나다.”
“!!!”
이수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인정하는 말을 내 뱉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일어나자,
대원들이 그를 저지하려 하였지만, 설장호는 대원들을 말리며 그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보기만 하였다.
“이 안에 있는 양반들 중, 내가 아는 양반들이 꽤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나를 오늘 처음 보았을 테고
말이야.”
이수호는 유리관 끝에서부터 천천히 움직이며, 마치 그 안을 모두 보고 있는 듯하였다.
“아들을 만나게 해주게. 이제 나에게 더 물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이수호는 유리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본 듯. 곧 고개를 돌려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물어 볼 것은 많아.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은 차후에 다시 하겠다. 약속대로 이장두를 보여주고, 네 놈에
대한 그 후의 처리는 내가 추선우를 보고 온 뒤에 이어서 하겠다.”
설장호는 대원들에게 눈짓을 주었고, 곧 대원들이 그를 데리고 이장두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이수호가 나서자 보호유리관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나섰다. 그들 중, 서둘러 움직이는 이가 있는가하면,
국정원장과 함께 심문실 안으로 들어와 설장호를 보는 이도 있었다.
“왜 이어서 하지 않았나?”
“이어서 한다고 저 놈이 바로 답할 것도 아니고, 또 서로 지루해지면 지칩니다. 그럼 제대로 된 심문을
할 수가 없으니, 저 놈에게 뭔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난 뒤에, 잠시 쉬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설장호는 이수호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자 기회를 뒤로 미룬
것뿐이었다.
“일단 전 병원부터 다녀오겠습니다. 태정민과 조동민의 상태도 봐야하고, 무엇보다 추선우씨의 상황을
먼저 봐야겠습니다.”
“그리하게.”
국정원장도 그의 말에 바로 답을 주며 움직이도록 하였다. 설장호는 단 숨에 심문실을 나와 목발을 집고
따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일부 관계자들은 그런 설장호의 모습을 보며 표정을 구기기도 하였다.
“참…….가지각색의 표정들이군.”
원장은 그가 나간 후, 그를 보는 눈빛들이 다들 예사롭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띠리리리.’
한 편. 병원의 수술실 앞에서 오매물망 추선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강서진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지금 간다.-
짧은 인사에 짧은 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말없이 전화기는 끊어졌고, 강서진의 시선은 다시 수술실
안으로 향하였다.
“아직 입니까?”
잠시 경찰청에 다녀온 박태식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아직…….”
강서진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의 시선은 수술실을 향해 있었다.
“실장님.”
한 편. 병원에 도착한 서지호는 수술실로 향하던 길에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설장호를 보며 불렀다.
“추선우를 보러 가는 것인가?”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걸으며 물었다.
“네. 일단 어떤 상황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대통령님께 보고를 해야 해서요. 그런데 이수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놈의 죄는 모두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리 순순히 검찰로 넘기지는 않아. 녀석을 오랫동안 묶어두고
천천히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 놈과 관련된 놈도 다 찾아야해.”
설장호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으며 말했고, 곧 수술실 앞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박태식이 먼저
보인 뒤, 의자에 앉아 있는 강서진과 태정민이 보였다.
“조동민은 아직도 정신이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군.”
눈에 보이는 사람 중 조동민만 보이지 않자, 설장호는 어두운 표정이 잠시 스쳐가며 말했다.
“보고 내용을 들으니, 석강수에 의해 상태가 중하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회복되기를 기다려봐야죠.”
서지호는 일단 경호실 식구인 태정민이 정신을 차린 것을 본 뒤, 조동민에 대한 말을 하였다.
“오셨습니까?”
곧 박태식이 두 사람을 보며 인사하였고, 강서진과 태정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였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네. 아직 입니다.”
설장호의 물음에 태정민이 답하였다.
“상태는? 의사의 말을 들은 것은 있는가?”
“수술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리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제기랄…….”
태정민의 말을 들은 후, 설장호는 격한 말을 내 뱉었고, 곧 강서진을 향해 보았다.
“넌 표정이 왜 그래? 추선우가 죽기라도 했어?”
그녀의 표정을 보며 괜히 목소리를 높이는 설장호였다.
“어디 가서 좀 쉬었다가 와. 이쪽은 태팀장과 박태식이 맡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태정민과 박태식이 답했지만, 강서진은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후, 간호사가 나오며 이유를 물었다.
“추선우환자. 수술은 언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마냥 기다리고만 있던 이들과는 달리, 설장호는 곧바로 수술 관계자에게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 후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간호사는 곧장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띠리리리리’
‘우~웅. 우~웅.’
뉴스 속보가 전해지고 난 뒤, 국정원장과 설장호의 생각처럼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였고, 곧
이수호와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끼리도 서로 연락을 취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큰일이지 않습니까? 이수호회장이 잡혔고, 그가 입을 열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 줄초상 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전화상으로 나오는 대화였지만, 그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양하였다.
국회의원은 물론, 부처 장관들도 있었고, 기업인, 변호사등. 정말 나라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설장호와 국정원장의 전화기도 불이 나고 있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국정원장은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같은 어투로 전화를 받았고,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만
듣고 있었다.
“아. 그러셨습니까? 제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원장은 그와 통화중에는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답변과 함께, 편안한 음성으로 답하였다.
“모두 잡아.”
설장호도 국정원장과 마찬가지로 단 한 놈도 빠짐없이 전화한 모두를 잡도록 명령 내렸다.
“무슨 짓들이야!”
국정원장의 명령으로 지민창의 사무실에 국정원대원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의 강압적이 체포에 의해
지민창이 소리쳤다.
“입 열지마라. 너에게 면책특권이란 없다. 그냥 잡혀가는 거야.”
지민창은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국정원대원들은 그가 국회의원이 아닌, 그저 한 명의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줄줄이 체포되고 있었고, 국정원에 이어, 검찰과 경찰도 나서서 검찰청과 경찰청에 전화하여
압박을 가한 모두를 다 잡아들이고 있었다.
“추선우씨 보호자분.”
“네!”
외부적으로는 이수호와 관련된 이들이 하나, 둘 체포되고 있을 때, 곧 수술실 문이 다시 열리며 의사와
간호사가 나왔다.
간호사의 목소리에 강서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답했다.
“수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설장호가 강서진을 대신하여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
의사의 말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 한마디에 강서진은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였다.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태정민이 다시 물었다.
“총알이 장기를 많이 훼손 시켰습니다. 그래서 총알을 빼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 총알이
지나가면서 장기들을 서로 엉키게 만들었고, 그로인하여 수술을 한 번 더 진행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덜썩.’
결국 강서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검사를 데리고 쉬게 해라. 이곳에는 박태식 혼자서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태정민에게 강서진을 데려갈 것을 명령 내렸고, 곧 박태식이 답한 뒤, 그를 남겨두고 모두
수술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가서 좀 쉬어. 그리고 박태식과 교대해라. 추선우가 수술실에서 나와도 만날 수 없다고 하니, 이 틈에
쉬고. 추선우가 나오면 그 때 활기찬 표정들을 지어야 할 것 아냐.”
설장호는 태정민과 강서진이 있는 곳으로 향한 뒤 말했다. 하지만 강서진은 휴식을 취할 생각이 없었다.
“또 명령을 내려야 말을 듣겠나?”
그녀가 바로 움직이지 않자,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고, 곧 태정민이 그녀를 데리고 움직였다.
설장호는 국정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석강수가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먼저 향하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군. 뭐가 문제인가?”
석강수는 오히려 설장호보다 더 여유 있어 보였다.
“이수호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 놈이 마지막 놈이야.”
석강수는 설장호가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바람이지. 그 놈이 마지막이며, 이제 끝났으면 하는 바람.”
“쓸데없는 깊은 생각은 오히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너에게 가르쳤었다. 잊은 것인가?”
“아니. 그리고 그 말은 딱 맞아. 쓸데없는 깊은 생각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
설장호는 석강수의 앞에 앉으며 그에게 담배를 밀어주었다.
“내가 이수호를 만나러 갔을 때, 그의 곁에 네 명의 경호원이 있었다.”
“수만과 장태, 장석관과 고광이겠지.”
“그래. 그리고 그 네 놈 중, 장석관을 빼면 추선우와 강서진이 다 잡았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수호의 경호원을 처음 보았을 때, 절대 그 누구도 그 놈들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놈들이 잡혔어. 그것도 민간인에게…….정말 놀랐지.”
석강수는 담배를 태우며 웃기까지 하였다.
“이수호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한 번에 다 버려야하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그럼 숨은 놈들도 다 찾는다.”
석강수는 담배를 마저 다 태운 후, 눈을 감고 앉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의자를 돌려
앉았다.
“국정원에서 함께 일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마.”
그의 모습을 잠시 동안보고 있었고, 곧 설장호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며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나눈 후, 감금실을 나서고 있었다.
“자네도 좀 쉬게.”
석강수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만난 국정원장이 설장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끝나니 끝내고 쉬겠습니다.”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뚜벅뚜벅 걸어서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하며 답했다.
-어제 오후 **시 지민창 의원을 시작으로 각 부처 고위직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는 현직 국회의원의 체포 사건 중, 가장 많은 인원이며, 검찰은 앞으로도 더 많은
인원이 체포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띠리리리’
이수호와 대화 중, 전화벨이 울렸고, 곧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조금 전, 추선우씨가 2 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설장호는 놀란 눈빛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지만, 들려오는 답변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박태식에게 걸려온 전화가 혹시나 추선우에 관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할까하는 불안감에 놀란
그였지만, 그의 말을 들은 후에 긴장이 풀려서 다시 자리에 앉은 그였다.
“계속 지켜보고 있어. 절대 자리를 비우지마라. 병원 전체를 다 경찰로 도배하더라도 절대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마저 명령을 내린 뒤, 이수호를 향해보았다.
“실장님. 대기시켰습니다.”
곧 대원이 다가서며 보고하였고, 설장호는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국정원 소속 여직원들을 보았다.
“너희들에게 맡기는 임무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서도 이수호와 관련된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연은 지금부터 끊는다. 그러면 지난 과거의 잘못은 더 이상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설장호는 그녀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듣는다. 저기 보이는 여인들의 신체 중, 은밀한 부분에 뭔가의 기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 이름 일수도 있으며, 또 다른 암호화처럼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 모든 것을
다 찾아서 기록한다.”
설장호의 말에 여직원들은 일제히 답한 뒤, 아래로 내려갔고, 곧 이동식 탈의실이 체육관 바닥에 놓이고
있었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장부를 여인들의 몸에 기록할 줄이야…….정말 돌 아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직원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여인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할 때, 설장호의 옆으로 대원이 다가서며 말했다.
대원의 말처럼 설장호도 이수호의 머릿속을 색다르게 해석하였다. 그 어떤 사이코도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실장님!”
설장호고 목발을 짚고 이수호의 곁으로 가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대원들이 급히 달려오며 설장호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급히…….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 표정만으로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곧바로
이수호가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설장호는 눈동자를 떨며 물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는 입에서 거품을 내 뿜으며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이수호가 보였다.
“실장님과 식사를 마친 후, 약 30 분정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급히 의료진이 들어왔으나 1 분 만에 심장이 멈췄습니다.”
이수호가 죽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어둠속 지하에서 이 나라 권력층을 흔들었던 인물이 국밥 한
그릇에 허무하게 죽었다.
“국밥집에 연락해서 원인파악해봐.”
“네.”
국밥 한 그릇에 세상을 손에 쥐었던 노인의 모습을 보며 설장호는 천천히 걸어서 그의 앞으로 갔다.
“이수호…….이렇게 갈 것을 예상했겠지. 네가 한 짓을 그대로 네가 다시 받는 거다. 세상은 언제나 이리
돌아가는 거니까.”
설장호는 그의 감기지 않은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곧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나 감금실을 나왔다.
“이수호의 장례를 준비해주고, 이 내용도 언론에 공개해.”
“네? 언론에 말입니까? 그래도 이건…….”
“설 실장의 명령대로 하게.”
설장호의 말에 대원들이 머뭇거렸지만 이내 국정원장이 감금실 앞으로 오며 말했다.
“지금 즉시 이수호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움직인 후, 설장호는 자신의 사무실로걷기 시작하였다.
“이수호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 안도하는 놈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120 명의 명단은 확보했지만, 그
120 명이 전부일 것이라는 확답을 이수호에게 듣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설장호는 그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고, 국정원장은 그를 보았다.
“120 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20 년이 넘는 세월이네, 이수호가 이 나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20 년이 넘는 시간동안 권력층의 주머니를 채워주었어. 그 놈들이 고작 120
명밖에 되지 않겠나?”
맞는 말이었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말을 듣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120 명, 1200 명이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품고 가버린 이수호가 원망스럽고, 그가 죽기 전에 미리 물어보지 않은 자신에게
원망스러웠다.
“우선 120 명을 모두 체포하고, 다음을 또 확인하세.”
설장호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국정원장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설장호는 그를 향해
살며시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사무실로 들어섰다.
“제기랄…….”
사무실로 들어선 설장호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사무실 바닥을 보며 격한 말을 내 뱉었다.
설장호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창민이 서울역 물품보관대에 남겨놓았던 서류를 꺼내보았다.
“이 이름들…….”
서류 하나에 적힌 수많은 이름들, 정확하게 이름이라고 나열하기에는 힘들었던 그런 부분이었지만, 조금
전 120 명의 명단을 확인한 후에는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서류에 적힌 이름의 나열은 정방향이 아니었다. 역방향이며 아래에서 위로 보면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은 꽤 눈에 익숙한 이름이 많았다.
경찰청장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국정원 제 1 차장등. 그들의 이름은 이미 이 서류에 다 기록되어
있었고, 설장호는 이창민이 남긴 서류의 내용을 이제야 알게 된 것 뿐이었다.
허무하게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제는 필요 없는 서류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모두를 체포하였다. 단지 그
인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류에 적힌 이름보다 오늘 알아낸 이름이 더 많기에, 서류상의 이름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이름이라 여겼다.
그리고 여러 명의 사진으로 합쳐져서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 낸 사진. 마치 매직아이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지만, 이 제보니 그의 얼굴은 이수호였다.
비록 20 년 전 젊은 나이의 이수호의 모습이지만, 그의 모습은 확실하였다.
“태정민. 수고했다.”
태정민은 단 이틀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여 청와대로 돌아갔고, 그가 돌아오자 서지호와 청와대 경호실
일원이 모두 그를 반겼다.
“대통령님을 만나 뵙고 인사부터 드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서지호와 경호원들의 환영을 받은 후, 태정민은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였다. 그리고 곧 차현태를 만났고,
차현태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안아주었다.
집무실을 나온 태정민은 서지호를 다시 만났다.
“지현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지호는 태정민을 데리고 지현과 은주, 미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선우…….는요?”
태정민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희가 그를 보며 바로 물었다. 그리고 지현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삼촌은요? 정민이 삼촌과 선우 삼촌이 함께 온다고 하였잖아요. 그런데 왜 삼촌 혼자 왔어요?”
지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태정민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만 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선우…….오지 않나요?”
미희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현의 눈동자는 더욱 더 심하게 떨려왔고, 곧 은주가 미희의 손을 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내가 이야기하고 올게. 지현이와 있어.”
은주는 태정민이 미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짐작하였다. 그래서 지현이 있는 곳을
피해 다른 곳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였다.
“이모…….삼촌에게 무슨 일 있어? 왜 정민이 삼촌이 아무런 말을하지않아? 이모…….이모가 좀
알아봐줘.”
지현은 미희를 잡아 붙들고 그녀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미희라고 지금 당장 그 이유를 알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싶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고아원 동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마저 떠나면 정말 세상에 혼자가 되는 그녀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은주는 태정민과 함께 자리를 옮겼고, 곧 그에게 바로 물었다.
“당분간, 추선우씨에 관한 모든 것은 극비로 다뤄질 것입니다.”
“왜요? 왜 선우에게…….”
“청와대와 국정원은 물론, 검찰과 경찰에서도 모두 추선우씨에 관한 한 달간의 기록을 삭제할
예정입니다.”
태정민은 은주의 물음에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답을 해주었다.
은주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까지 그리 고생하고 또 고생했는데, 그 동안의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될 것이라는 태정민의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왜…….그래야하죠?”
“그리해야만…….추선우씨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은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이 뭐라고 또 물어 볼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지현에게는 대통령님께서 직접 모든 것을 말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끝났다면…….그 놈들을 모두 잡으신 것인가요?”
태정민의 말에 은주는 눈동자가 조금씩 커지며 물었다. 그리고 이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조직의 수장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조직 직계도에 있는 모두를 체포하였습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은주는 태정민을 보며 눈물이 조금 맺힌 눈동자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 추선우로 인하여 굳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이 밝아진 그녀였다.
“그럼. 태팀장님께서는…….”
“저는 당분간 국정원과 청와대를 왕래하며, 이번 사건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주 씨와 미희씨,
그리고 아주머니는 곧 새롭게 마련된 집으로 가실 것입니다.”
“새로운 집요?”
“네. 기존에 살던 집은 이제 사실 수가 없습니다. 만약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은주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만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 중, 한 놈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만약요…….그렇다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은주 씨가 위험해 질
수 있기에, 정부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 자격으로 새로운 집을 구해드릴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여기서
계십시오.”
은주는 달동네에서 언제나 이사를 가고 싶어 하였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그녀를 데려다 준다면 사양해야
했던 과거였다.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달동네에 살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동네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추선우씨에 관한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될 것입니다.”
“네. 알아요. 그리고 믿어요. 태팀장님께서 선우를 잘 보살펴 주시겠죠.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은주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 편의 기쁨에 또 한 편의 슬픔이 그녀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더 이상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태정민에 대해서는 기쁜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이 이제 마무리
되었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추선우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 자네 혼자 오는가?”
총장이 홀로 응접실에 모습을 보이자, 총장과 거의 동년배로 보이는 사내가 그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검사가 그리 한가하지 않네. 바쁜 업무가 있어서 내가 그냥 바로 보냈어.”
총장은 사내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를 마주하고 앉은 두 남녀는 강서진의 부모님이며,
강서진의 아버지는 현재 검찰총장과 동창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서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난 날. 총장은 강서진에게 아주 강한 경고성
멘트는 물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설장호는 중간 중간에 총장을 꽤 의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은 강서진에게 많은 지원과 함께
기회를 주곤 하였었다.
“그나저나, 내가 얼핏 듣자하니 이번 이수호 사건에 우리 딸도 함께 담당 검사로 나섰던 것 같던데,
자네가 보낸 것인가?”
“하하하. 내가 왜 그런 위험한 일에 친구 딸을 보내겠나. 난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자네 딸을 자네가 더
잘 안다면 이해는 더 빠를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하…….”
총장은 그의 질문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고, 강서진의 부모님은 그의 행동이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딸을 잘 알고 있기에 뭐라 말을 하지 못하였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설장호는 조동민의 병실로 들어섰다. 조동민은 그가 들어서자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인사하였다.
“죽었으면 더 죄송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있으니 죄송하다는 말은 듣지 않겠다.”
설장호는 그의 침대를 지나치며 창가로 향해 서서 말했다.
“대원들에게 들으니 조직의 수장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 놈…….몇 년이나 감방에서 썩을 것
같습니까?”
조동민은 아직 이수호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놈? 글쎄. 아마도 평생 나오지는 못할 것이야. 관속에서 말이야.”
“네? 관속이라면…….그 놈이 죽었습니까?”
“애석하게도 국정원에서 국밥 한 그릇에 저승길 올라섰다.”
“…….”
설장호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이 진담인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조직의 수장이라도 잡히면 누군가가 죽여야 한다는 뜻인데…….세상 무섭군요.”
“세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무서운 거지.”
설장호는 창가를 보던 시선을 돌려 조동민을 보며 말했다.
“인간이 인간답게만 산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또 인생이지.”
설장호는 목발을 짚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수호. 그 조직의 수장이다. 그리고 이장두. 이수호의 아들이지. 또 한 그 조직을 15 년 동안 이끌었던
최기수, 고민국, 우수광, 정구석…….모두가 저승 행에 올랐다.”
설장호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잡고자 했던 자들을 모두 잡았지만, 그 모두가
죽었다.
즉. 그들이라고 안전한 목숨을 보장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직의 수장이 죽었으니, 이제 마음은 편해지시겠습니다.”
“마음이 편하다? 그래. 마음이 편해져야하지. 그런데 편하지가 않다. 볼일 보고 닦았지만, 찝찝함이
남은 느낌이야.”
설장호는 모두가 끝이라고 말하는 이번 사건을 끝내지 않은 사람이었다.
“수장을 잡았으니 남은 놈은 잔챙이들 아니겠습니까? 수장을 잃었으니 갈 곳을 잡지 못하는 놈들만 남아서
…….”
“그래. 그런데 그 잔챙이라는 놈들이 수장을 죽이는 머리를 굴렸어. 왜 그랬을까?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수장이 잡혔을 때, 그 수장을 구하고자하지, 죽이려들지 않아.”
설장호는 다시 목발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병실에 있는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서로의
눈을 보았다.
“그럼. 실장님의 생각은 아직도 누군가가 남아서 조직을 이끌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지. 언제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또 다른 일을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설장호는 조동민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문으로 향하였다.
“죽었으면 모를까. 이왕 깨어났으니 몸조리 잘해라.”
설장호는 조동민을 향해 보며 말한 뒤, 병실 문을 나섰고, 농담이겠지만, 진담처럼 들리는 그의 말을
들은 조동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석강수는 어떻게 되었나?”
설장호가 나간 후, 조동민은 병실을 지키는 대원에게 물었다.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 새끼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내가 쇠파이프로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다.”
조동민은 진심이었다. 자칫 석강수로 인하여 인생을 마감할 뻔 한 자신이었기에, 그 빚을 꼭 갚아주고
싶었다.
“우선 병원을 나서야하니, 몸조리 잘 하십시오. 그 때까지 설 실장님이 석강수를 잘 데리고 있을
것입니다.”
대원은 조동민이 일단 진정해야 하기에,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려하였다.
“강 검사는?”
“아직도 로비에서 홀로 앉아있습니다.”
설장호는 병실에서 나와 승강기를 이용하여 곧장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자신의 눈으로 또 다시 멍하니
앉은 강서진을 보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서진을 보고 온 대원은 설장호의 생각처럼 그녀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혹시 모르니 강 검사의 주변에 사람을 붙여 놔라.”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대원에게 명령내린 뒤, 곧장 병원을 나섰다.
“앞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네. 위선부터 시작하여 모조리 다 쳐내고, 새로운 국정원을 구성할
것이네.”
국정원장의 각오이지만, 그 말은 설장호에게 그리 대단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뭐. 그건 제가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무리나 잘 해주십시오.”
설장호는 국정원장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국정원장은 그의 행동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말을 하면 가장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수호가 남긴 것이 아주 무섭군.”
한 편. 이수호가 죽은 후, 거의 10 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이수호의 파장은 끝이 없어보였다. 검찰총장은
이수호리스트로 인하여 잡혀온 이들이 또 다른 정보를 공개하면서 물고 물리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잡아들여야 하는 인물이 너무나 많은 것을 두고 말하였다.
“강 검사. 자네는 서울시의원 정태호의원을 잡아들이게.”
“알겠습니다.”
강서진은 표정이 많이 밝아보였다. 일주일 전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린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한
달 전, 당당하고 도도한 그 표정 그대로로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설 실장.”
설장호는 지현을 보기 위하여 청와대에 들렸고, 차현태가 그를 반겼다.
“요즘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시겠습니다.”
설장호는 그를 보자마자 말했고, 차현태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어디 설실장만 하겠습니까? 설실장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이리 고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차현태는 그를 자리로 앉게 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잠을 청하지 못한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에 대해 잘 살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욕 때문이었다.
그들은 차현태의 지시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든 설장호를 싸잡아 욕하고 있는
지금이었다.
“지현은 잘 있습니까?”
설장호는 차현태와 수다를 떨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곧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잘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 주어야 그 어린 아이의 입에 미소가 생겨날지 모르겠군요.”
차현태의 표정이 금세 우울하게 변하였다. 설장호는 그의 표정을 보며 그의 말을 들었고, 곧 차현태의
옆으로 서 있는 서지호를 보았다.
00236 경호원 =====================================================================
====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서지호는 설장호를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고, 차현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대통령님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군.”
“좋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이창민 대사에 관한 것은 정리가 되었는데, 그 파장이 계속 일고 있고, 또
지현이 가장 기다리는 추선우씨에 대한 것은 그녀에게 알리지도 못하니…….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지
않겠습니까.”
서지호의 말을 듣고 보니 차현태의 심정이 바로 이해되었다.
“여깁니다.”
서지호는 청와대안의 대통령 관저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는 지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 살 아이의 표정이라 할 수 없군. 먹는 것은 잘 먹는가?”
“그다지 먹지도 않습니다. 제가 다 속이 타 들어갑니다.”
설장호의 말에 서지호가 지현을 보며 말했다.
“내가 오늘 지현을 좀 데리고 다녀도 되겠는가?”
“네? 실장님께서요?”
서지호는 그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고, 잠시 동안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님께 허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호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하였고, 설장호는 그 자리에서 지현을 향해보고 있었다.
차현태는 서지호의 말을 들은 후, 바로 허락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설장호의 부탁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현아.”
차현태의 허락이 있은 후, 설장호는 관저로 들어서며 지현을 불렀고, 지현은 설장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현은 설장호보다는 태정민을 더 반기는 아이였다. 그리고 태정민보다는 추선우를 더 반기는 것이었다.
“오늘 아저씨와 밖에 나가볼까?”
설장호의 말에 지현은 그를 빤히 보고 있었고, 곧 서지호를 향해보았다.
서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지현은 그의 답을 들은 듯, 설장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해주게. 그리고 다른 사람은 붙이지 말게. 나와 단 둘이서 나갈 것이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지현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막고자 하는 배려였다. 만에 하나 경호원들이 함께 움직이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지현을 볼 것이었다.
굳이 그녀를 알아볼 일을 만들어가며 그녀를 데리고 나갈 이유는 없었다.
“아저씨가 오늘 은주이모네 집을 갈 것인데, 지현은 어때?”
“은주이모에게요? 좋아요. 아저씨. 은주이모 보고 싶어요.”
설장호는 지현과 은주, 미희가 열흘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며, 잠시라도 서로의 우울함을 떨쳐버리게 해주려 하였다.
“응?”
마당 앞으로 들어서자,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 설장호가 의아한 눈빛을 두었고, 곧 집안을
보았다.
하지만 집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형태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들어가 보자.”
설장호는 지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고, 곧 지현은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뒤, 전원주태올려보았다.
“너무 크지?”
“네? 네…….아주 크네요.”
설장호의 말에 지현이 말을 더듬거렸고, 곧 지현의 손을 잡고 초인종을 눌렀다.
“은주이모!”
초인종을 누르고 난 뒤, 지현이 큰 목소리로 은주를 부르자, 은주는 정말 신발도 신지 않고, 후다닥 달려
나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지현아!”
은주도 지현을 보며 반가움에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았고, 곧 뒤에 서 있는 설장호를 보며 인사하였다.
“잘 계셨습니까?”
설장호가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리고 거실로 시선을 돌리자, 은주의 어머니와 함께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넌 왜 여기에 있어?”
설장호가 묻자, 태정민은 안절부절 못하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가고 있었고, 곧 은주의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실장님도 아마 어느 정도는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은주가 태팀장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태팀장도 우리 은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우리 모녀를 보살펴주네요.”
그녀의 말에 설장호는 태정민을 다시 보았고, 그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 것이면 미리 말이라도 하던가. 그리고 네가 매일같이 이곳을 경호한다. 나머지 경호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이 말이 오히려 더 좋았다. 눈치 보며 올 필요가 없었고, 당당하게 그녀와 붙어 있어 되는
상황이 설장호로 인하여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오셨으니, 식사라도 하시고 가세요. 제가 지금…….”
“아닙니다. 지현을 데리고 다시 미희씨를 만나보러 가야합니다. 그 전에 은주씨도 만나게 해주고 싶어
이렇게 데려온 것입니다.”
“저도 함께 가요.”
은주의 어머니는 설장호에게 식사라도 대접하려 바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그는 오늘의 일정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은주가 설장호를 보며 말했다.
“뭐. 그렇게 하십시오. 나갈 채비를 하시고,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설장호는 은주의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후, 먼저 나섰고, 곧 태정민이 뒤 따라 나섰다.
“잘해줘라. 비록 어렵게 산 사람들이지만, 정말 사람 사는 것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미소를 지었고, 설장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추선우씨는…….”
“나도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그 어떤 누구도 그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젠장.”
태정민의 물음에 설장호의 표정이 갑자기 매섭게 변한 뒤, 격한 어투가 나왔다.
‘띠리리리’
한 편. 차현태의 조치상황을 듣고 격한 반응을 보이며 경호실로 왔던 서지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설장호였다.
-한 가지만 묻자. 추선우. 어디에 있나? 그리고 왜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가?“-
설장호가 바로 물었다. 서지호는 그에게서 언젠가는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질문이 하필이면 지금에 맞춰 나오는 것이 그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자세히 들은 말이 없습니다.”
서지호는 결국 설장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 자네라면 혹시나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해서 연락한 것인데…….어쩔 수 없겠군. 그만 쉬게.―
“네. 실장님.”
전화를 끊은 후, 서지호의 손은 심할 정도로 떨려오고 있었다.
“강 검사가…….정신 줄을 놓은 것 같은데…….”
한 편. 설장호와 태정민이 한가한 것과는 달리, 강서진은 대한민국의 모든 범법자들을 다 잡아들일
기량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현장을 누비고 있었고, 그녀의 모습을 보던 일부 부장검사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들도 강 검사에게 자리 뺏기기 싫으면 열심히 달려.”
그들의 뒤로 차장검사가 지나쳐가며 말을 흘렸고, 그냥 흘러나온 말이라고 듣기에는 너무나 섬뜩했던 탓에
부장검사들이 놀란 눈으로 다시 강서진을 보았다.
“좀 쉬십시오.”
강서진의 열정에 그녀와 함께 움직였던 수사관들이 오히려 걱정되어 말했다.
“아니에요. 나라에서 돈 주고 일 시키는데, 쉬면 안 되죠. 국민들이 조금 더 열심히 뛰어달라고 주는 돈
아니겠어요.”
수사관들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절대 돈 때문에 검사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여인이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는 여인이었다.
“또 어떤 놈이 남았습니까?”
한 놈을 잡아넣고 난 뒤에 잠시의 틈도 없이 강서진은 다음 표적을 물었고, 수사관은 자료를 보여주기를
꺼려하였다.
“추선우씨 때문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으로 가봐. 여기서 이러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만
피곤해진다.”
그녀의 열정을 모두가 곱게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로 인하여 괜한 핀잔을 들어야 하는
동료검사들이나, 상사들은 그녀의 열정을 반기지 않고 있었다.
강서진은 한 부장검사의 말에 잠시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전화기를 보았다.
“네. 실장님.”
청와대로 향하던 설장호는 강서진에게도 지금의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연락하였다.
-어딘가?-
“검찰청입니다.”
-그래? 지금 청와대로 간다. 아무래도 추선우에 관해서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많다. 그것을
확인하고자하는데…….-
“같이 가겠습니다.”
설장호가 물어볼 의견이었다. 하지만 묻기도 전에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서며 답했고, 곧바로 검찰청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무섭다던데…….강 검사도 여자긴 여자였나 보네.”
그녀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 후, 곧바로 검찰청을 나서는 것을 보며, 일부 검사들은 그녀를 비꼬는 말을
하였다.
비록 그녀와 별다른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총장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에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은 그들이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청와대로 향하던 차량은 검찰청에 들러 강서진을 태웠고, 그녀가 정문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며
설장호가 중얼거렸다.
“검사이모.”
“어 그래. 지현이도 안녕. 잘 지내고 있었어?”
강서진은 그녀에게 인사한 후, 그녀를 빤히 보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추선우를 보고 싶어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지현일 것이었다.
강서진은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그녀 앞에서는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검사이모. 어디아파요?”
“응? 왜?”
“이모 얼굴에 뭐가 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강서진은 자신의 얼굴에 작은 종기 같은 것이 이리저리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지현이 까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그녀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였다.
“이모가 오늘 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평범한 여인이라면 얼굴에 난 티로 인하여 신경을 쓰고,
화장으로 덮고 그럴 것이지만, 강서진은 정말 기초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을 그대로였다.
“총장님께 혹시 무슨 말이라도 들은 것 있어?”
청와대로 향하던 길에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말요?”
“그냥 아무런 말. 추선우에 관한 것이면 더 좋고.”
“죄송해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어요.”
설장호는 룸미러를 통해 그녀를 보았다. 얼굴 가득 수심이 깊었지만, 지현을 보며 애써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잘 보였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숨기는 것 같은데…….조금 후에 이야기하자.”
설장호는 지현을 의식하였다. 그녀에게 추선우에 관한 것을 말해주고 싶지만,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기에 뭐라 말을 해 줄 수도 없었다.
“강 검사…….앉아.”
화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 그녀를 보며 설장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어린
지현은 두 눈을 바르르 떨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현은 내 보내는 것이…….”
“아니. 지현도 앉아있어. 그리고 대통령님의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으니, 모든 말을 다 듣고.
그 뒤에 각자가 하고픈 말을 한다.”
설장호는 서지호의 말도 자르며 말했고, 모두가 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이성을 잃지 않은
설장호는 다시 차현태를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설장호의 눈매는 매서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였다.
“고맙습니다.”
차현태는 짧게 말한 후, 모두에게 서류를 보여주었다. 이 서류는 외교부장관에게 보여주었던 서류와 같은
서류였다.
“무엇입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이창민대사의 서류, 그리고 이수호의 서류, 두 서류에서 드러난 차이를 보여주는 서류입니다.”
차현태의 말이 이어졌고, 네 사람은 차현태가 준 서류를 보았다.
모두가 외교부장관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많게는 세 사람 정도, 적게는 한 사람이 차이 날 정도의 이름
나열과 마지막 이름이 적힌 부분의 숫자였다.
비록 숫자는 1 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일곱 글자에서 나올 수 있는 이름이 수백 가지라고 하여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사람 수는 최대 세 사람 정도가 될 것 같았다.
“태정민.”
“네.”
“넌 지금 당장 지현을 데리고 은주 씨에게 간다. 그리고 당분간만 지현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태정민은 그 즉시 지현을 데리고 움직였다.
“강 검사는 자네의 수사관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대통령님이 말한 그 주치의를 만나.”
“알겠습니다.”
강서진에게도 할 일을 배정하였고, 곧 서지호를 보았다.
“자네는 여기에 남게.”
“알겠습니다.”
서지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남도록 한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차현태가 모두에게 숨기고 있었던 프로젝트지만, 서지호는 경호실장이다. 절대 대통령의 곁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인물이기에, 그 책임감은 저버리지 않도록 하였다.
“실장님께서는…….”
“난 국정원에 들렀다가 병원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으로 움직였고, 강서진은 병원으로, 그리고 태정민은 지현을 데리고 은주의
집으로 향하였다.
“원장님. 설장호 실장이 찾아왔습니다.”
설장호는 곧바로 국정원장실로 향하였고, 국정원장의 보좌관이 그에게 알렸다.
“길게 말하지 않고, 긴 답변을 듣지 않겠습니다. 왜 우리를 모두 배제한 것입니까?”
설장호는 딱 한가지의 답변을 듣고자 일부러 국정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자네들의 안전. 더 이상 위험 속으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하는 대통령님의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고위직
인사들을 움직였네. 물론…….나도 그 마음에 동참했고 말이야.”
“…….”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눈동자를 떨었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았다.
“우리를 생각하여 우리를 제외시켰다? 그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믿고 믿지 않고는 자네들 몫이야. 하지만 나는 물론, 대통령님의 마음도 같았네. 더 이상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
“그럼! 추선우는요?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어도 고통을 계속 받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설장호의 목청이 커졌다. 그리고 곧바로 국정원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보좌관과 일부 관계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국정원장은 그들을 보며 손을 들어 멈춰 세웠고, 설장호를 향해 다시시선을 돌렸다.
“추선우씨는 안전하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두었고, 주치의가 그 일을 책임지고 진행
중이네, 그리고 만에 하나 추선우를 만나고자 오는 인간이 있다면, 그 놈이 바로 우리가 찾던 놈이 되는
것이네.”
설장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결국은 추선우라는 미끼를 이용하여 대어를 잡겠다는 낚시라는
말이었다.
“만에 하나…….추선우에게 변고라도 생기는 날에는 이 모든 것을 그냥 덮고 가지 않겠습니다.”
설장호는 그에게 경고성 말을 뱉은 후, 그 즉시 국정원장실을 나섰고, 그 길로 곧장 석강수를 향해 갔다.
“얼굴을 보니 제대로 똥 씹었군. 무슨 일인가?”
석강수는 아직도 국정원에 감금되어 있었다. 장석관은 이미 검찰로 넘겨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설장호가
검찰로 보내지 않고 있었다.
“이수호…….그 놈의 뒤에 그 누구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확실한 것인가?”
지난 번 이야기에 대해 다시 묻고자 온 것이었다.
“내가 느낀 대로 말한 것뿐이다. 혹시 모르지, 그 늙은이 뒤에 어떤 놈이 숨어서 늙은이를 잘 조종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듣고,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뒤에 또 누가 나온 것인가?”
석강수가 물었다.
“지금.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 정도가 더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그로인하여 추선우가
미끼가 되었다.”
“하하하! 어떻게 된 것이 그 추선우는 매번 너희들이 해야 할 일에 미끼역할을 그리도 많이 하는
것인가?”
석강수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말처럼 이미 추선우가 미끼 역할을 한 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병원 침대에 누워서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까지 미끼 역할을 한다고 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이라…….누가 추측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뭐…….그 늙은이를 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자신을 쫓는 사람들을 잘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일수도 있겠지.”
“!!!”
석강수의 이어지는 말에 설장호의 표정이 변하였다. 그저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이수호의 뒤에 있는 사람은
이수호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강수의 말처럼 이수호나 조직을 쫓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자라면 그 범위는 더욱 더 확대될
것이었다.
“어딘가?”
설장호는 국정원에서 나오면서 태정민에게 연락하였다.
“지현을 은주 씨에게 데려다주고 가는 길입니다. 병원으로 바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 넌 청와대로 돌아간다.”
“네? 청와대는 왜…….?”
“우리가 잡아야 할 인물이 꼭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청와대로
향해라.”
태정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수호리스트 중, 청와대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잡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이제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청와대는 완벽하게 청소를 한 격이었다.
하지만 설장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청와대로 향한 태정민이었다.
“실장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1 층 입구에서 강서진이 그를 불렀다.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야? 아니면 그들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야?”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설장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병원원장을 만나기 위하여 바로 움직였다.
“추선우 환자요? 그 환자 조금 전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
병원원장을 만나자, 그가 말한 첫마디는 두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잠시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하여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니요?”
강서진이 그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직접 들은 말을 하였다.
“누가 그런 말을 전하였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미 추선우씨의 이송은 상부에서 지시를 내린 것이고,
우리병원측은 그 지시에 응한 것뿐입니다.”
병원원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즉. 원장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어느 병원입니까?”
설장호가 물었다.
“어디보자…….아 여기 있네요. 경기도 화성시 **병원이네요. 그런데 의아합니다. 이 병원은 정신지체자
격리전문병원인데, 이곳으로 왜 보내라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
충격이었다. 그리고 미리 추선우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된 순간이었다.
“조금 전에 출발했다고요?”
“네. 30 분 정도 되었네요.”
“혹시 이송을 맡은 담당자를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강서진은 두 눈을 뜨고 있지만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놓은 듯 한 표정이었고,
설장호가 원장에게 바로 물었다.
“어라…….그런데 주치의의 서명이 다르네요. 그리고 이송차량도 우리 병원차량이 아닌, 해당 병원에서
보낸 차량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쪽 병원에서 주치의가 직접 와서 데려간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설장호는 서둘렀다. 병원에서 나온 후, 곧바로 해당 병원에 연락을 취하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환자를 받는다는 기록은 없네요. 아무래도 잘 못 아신 듯 합니다.-
“일이…….꼬이고 있다.”
추선우가 증발하였다. 필시 상부의 지시하고 하니, 누군가 명령을 내렸을 것이었다. 설장호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추선우의 진료를 맡았던 주치의를 만났다.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추선우씨의 이송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며 명함을 주고
갔습니다.”
설장호는 그가 주는 명함을 받았다.
“이명수? 누군지 아는가?”
강서진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설장호는 그 즉시 조동민에게 연락하였다.
“지금 바로 이명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라.”
“이명수요? 전국에 이명수가 한, 두 명이 아닐 텐데요.”
“알아. 하지만 이 나라 윗선에 앉은 이명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장호는 다시 병원을 나오며 그와 계속 통화하였고, 강서진은 아직도 눈동자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있었다.
“정신 차려!”
결국 설장호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그제야 두 눈에 힘을 주며 설장호를 보았다.
“선우 씨…….어디로 간 것일까요?”
“지금부터 찾아봐야한다. 그러니 정신 줄 놓지마라.”
설장호는 곧바로 병원을 벗어나 화성에 있는 해당병원으로 움직였다.
추선우가 그곳으로 간다는 정보가 없긴 하지만, 직접 가서 보면 혹시나 관련자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설장호가?”
한 편. 추선우의 주치의는 설장호가 다녀가자마자, 지난번 만났던 의문의 사내에게 연락하여 설장호가
다녀간 사실을 알려주었다.
“네. 그리고 아무래도 병원원장을 만나고 온 모양인데, 추선우가 공중에 떠 버렸다는 사실을 안
모양입니다.”
“그래? 설 실장이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비밀에 붙였었는데, 그 놈이 붙다니…….아무래도 차현태가
무슨 냄새를 맡긴 맡은 모양이다. 각별히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주치의는 통화를 끝낸 후,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곧 추선우가 누워있던 병실의 침대를 보았다.
“참 어지간히도 복잡한 삶을 살고 있구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또 죽기 직전인데도 누군가의
미끼가 되어야하니 말이야.”
그는 추선우에게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고, 이내 병실을 나가 복도를 유유히 걸어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의 중얼거림은 강서진에게 들렸고, 그녀가 물었다.
“추선우를 미끼로 하여 잡으려는 사람. 그리고 추선우를 미끼로 사용한 사람. 정확하게 그 사람들이
누군지만 밝혀지면 이 게임이 끝난다는 말이지.”
“선우 씨를 미끼로 이용하여 숨은 한 놈을 찾는다는 것은 국정원장님의 아이디어였고, 대통령께서 명령을
내린 것이잖아요. 그럼 미끼를…….제길…….내가 말하고 참 말하기 싫네요.”
강서진은 계속하여 추선우를 미끼에 비유해야하는 것에 갑작스러운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 싫어도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그리고 네 말처럼 대통령님과 국정원장의 지시로 누군가는
움직일 것인데, 그 누군가도 누군지 모르고, 또 그 누군가가 엉뚱한 생각을 품었는지, 추선우의
행방불명에 대해 최상급 레벨자 그 두 사람이 아예 모른다는 것도 그래…….”
“네? 그렇다면…….”
“그래. 정말로 명령을 이행하는 놈들이 딴 주머니 찬 것이던가. 아니면 명령을 내린 두 사람이 이미
계획하여 미끼를 따로 빼돌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
“!!!”
강서진은 놀란 눈을 하며 그를 보았다. 그의 말은 차현태와 국정원장도 이수호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아무리 그대로 어떻게 두 분이…….”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그 추측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명심해.”
강서진은 두 손이 떨려왔다. 만약 설장호의 말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지금까지 이수호를 잡기 위하여
지원했던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사라진 추선우를 두고, 마지막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대통령인지, 국정원장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설장호였다.
“그런데 조동민 팀장을 왜 국정원에서 나서게 하였고, 태정민 팀장은 왜 청와대에 있도록 하였습니까?”
강서진은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이해하지 못한 두 부분을 물었다.
“내 걱정이며 추측일 뿐이야.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될 것만 같은 추측. 그래서 혹시나
하여 미리 손을 써 둔 것이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청와대는 이제 잡을 사람도 없는데 태팀장을 보내놓고, 국정원은
오히려 잡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데, 조동민팀장을 나오도록 만드니…….이해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맞는 말이었다. 지금 현재는 청와대에 더 이상 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미
이창민과 이수호의 리스트에서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국정원은 아직도 비밀에 쌓여있기에, 누군가가 그 안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곧 알게 된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더 굴리자, 우리가 추선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추선우를
숨긴 놈이 추선우를 우리에게 돌려주도록 말이야.”
강서진은 도통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만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그녀였다.
“이곳인데…….어리어리하네요.”
같은 시각. 설장호와 강서진은 이수호의 자택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일대에는 아직도 경찰병력이
주변을 둘러 경계서고 있었다.
설장호는 차에서 내린 뒤, 관계자를 찾았다.
“지금은 이곳에 그 어떤 누구도 들어가게 하지 말라는 검찰총장님의 지시가 계셨습니다.”
관계자는 설장호에게 말하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곧 강서진이 검찰총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화려하네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진이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을 보며 말했다.
이수호와 이장두가 죽었지만, 그의 재산은 아직 그대로 남은 상태였다.
“이 차량들만 팔아도 서울시내에 대형 아파트를 몇 채나 사겠네요.”
강서진은 주차된 차량들을 보았다. 해외 유명 브랜드로 대당 가격만 최소 3 억 원을 넘는 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기 있군.”
그리고 곧 설장호의 눈에 해당 차량이 보였다.
두 사람은 차량 앞으로 다가섰고, 곧바로 조동민에게 연락하여 차량을 다시 한 번 확인토록 하였다.
-네. 맞습니다. 확실하게 서지호 실장 명의로 된 차량입니다.-
조동민에게 확답을 들은 후, 설장호는 차량 안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군.”
너무 짙은 선팅으로 인하여 차량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이 보이겠습니까?”
“!!!”
설장호가 차량 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주차장 입구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강서진이 놀란
눈을 한 채 뒤돌아보았다.
“협조가 필요하시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 차량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본데, 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조금 전 집 앞을 경계서고 있던 경찰들을 지휘하던 형사였고, 그는 몇 형사를 더 대동한 채,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차량들이 화려하죠? 저도 처음에는 보고 놀랐습니다. 어디서 이런 차량들을 다 구입했는지 부럽기도
하더군요.”
그는 자연스럽게 다가서며 말하였고, 곧 차량 앞에 서서 열쇠를 꽂아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의 차량인데 열쇠까지 형사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설장호가 물었다.
“이 차량들의 열쇠를 모두 새로 맞췄습니다. 집안을 모두 뒤졌는데도 열쇠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차량 업체를 불러 하나하나 다 맞췄습니다. 자, 확인을 해 보시죠.”
그는 웃으며 말했고, 곧 열린 차량 문을 향해 가리켰다.
설장호는 차안을 보았다. 하지만 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깨끗하였다.
“미안하지만, 이 옆 차도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설장호는 해당 차량이 아닌 옆차량도 보기를 원했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옆 차량의 문도 열어주었다.
“이수호가 잡혀간 후, 아무도 타지 않았으니 차가 제대로 움직이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는 차량 안을 보고 있는 설장호를 보며 말했고, 곧 강서진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봤습니다. 그런데 공문에 보면 집 외부만 경계 서도록 되어 있을 텐데, 집안으로도 자주 들어와
보셨나봅니다.”
설장호는 두 대의 차량을 확인한 후, 그를 보며 말했고, 갑작스러운 설장호의 질문에 놀란 그가 당황하는
눈을 하였다.
“뭐. 가끔은 이런 집에 사는 놈이 어떤 생활을 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서 한, 두 번 들어와
봤습니다. 그게 답니다.”
형사는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나 이수호와 조금이라도 피가 섞인 가족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다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 보셨으면 함께 나가실까요?”
형사는 두 사람을 데리고 서둘러 나가려는 듯,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차량 두 대를 본 것뿐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와 강서진검사는 국정원과 검찰청,
그리고 청와대의 명령을 받아, 이번 사건에 연관된 모든 것을 절차 없이 다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니…….우리 일에는 신경 끄고, 집 앞을 잘 지키고 계십시오.”
설장호는 그의 말을 아주 맛있게 씹어버리면서 그의 옆을 지나 다시 집안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동에 형사의 시선이 매섭게 변하였고, 그는 곧 자신의 옆에 있는 형사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실장님. 차량은 있는데 내부가 비었습니다. 혹시…….우리가 잘 못 짚은 것은…….”
“아니. 저 차량은 조금 전까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집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이동하던 중 강서진이 물었고, 설장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차량 두 대의 내부 온도가 달라. 서지호의 명의로 된 차량은 온도가 높다. 즉. 사람이 타고 있었고, 그
숫자도 꽤 되는 편이지, 저 자의 말처럼 이곳에 오래 주차되어있었다면 내부는 그리 따뜻하지가 않아.”
설장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이해한 그녀였다. 지하주차장에 오랫동안 주차되어 있었으니, 내부가 그리
뜨겁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지호의 차량은 내부의 열기가 있다는 것을 그녀도 느꼈다.
“박형사가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우우웅!’
설장호가 강서진에게 묻자마자, 그녀의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울리고 있었다.
“지금 이수호의 집 인근에 대기 중이랍니다. 신호를 보내면 안으로 치고 들어온 다네요.”
“그래? 그럼 지금 바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설장호는 명령을 내린 뒤, 집으로 향해 올라갔고, 다시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지현아.”
태정민은 그 즉시 지현에게 갔다.
“네. 정민삼촌.”
지현은 무사하였다. 다행히 컨디션도 좋아 보이는지 미소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삼촌하고 어디 좀 갈까?”
“어디? 선우삼촌보러?”
지현은 태정민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래. 우리 선우삼촌 보러가자. 지금 바로 가자.”
태정민은 거짓말을 하였다. 추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현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지현은 잔뜩 부풀어 오른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태정민을 격하게 안았다.
“가자.”
태정민은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곧바로 지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이내 자신의
차량으로 바로 이동하였다.
“지금 어딥니까?”
한 편, 청와대를 나선 서지호는 태정민의 뒤를 쫒으려 하였지만, 그의 차량을 놓친 후, 박태식에게
연락하였다.
-이수호의 자택입니다. 설마 이곳으로 설 실장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강 검사가 저에게
연락을 하는 득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지금 갑니다. 설장호를 잘 잡고 있으세요.”
-네. 그러죠.-
서지호는 전화를 끊은 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하여 태정민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설장호가 잠잠하게 넘어가나 싶더니, 전혀 생각지 못한 차현태가
물고 늘어질 줄이야.”
서지호는 이동 중, 태정민을 찾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현태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창민의 서류에도 나와 같은 이름을 나열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진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었고, 명단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지.”
서지호는 이창민의 두 번째 서류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비단 서지호뿐 아니라, 이창민의 서류를
받은 모두가 두 번째 서류에 있는 몇 천 장의 사진으로 꾸며진 이수호의 젊은 시절 사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수호를 나타내기 위한 이창민의 생각으로만 판단하였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진들 속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인물이 있다는 것을 차현태가 찾아냈고, 그의
말로 인하여 설장호도 잊고 있었던 그 서류를 다시 보면서 숨겨진 인물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가만히 있는 건가?”
“네. 움직이지도 않네요. 포기한 모양입니다.”
한 편. 서지호의 연락을 받은 박태식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서지호의 차량 안에 감금해 둔, 두
사람을 지키고 있던 형사에게 물었다.
“이 차안에서 나오는 것은 무리야.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하여 만든 차량과 똑같은 방식으로 특수 제작한
차량이기에 열어주지 않는 한, 열 수가 없어.”
박태식은 안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설장호도 보았듯이, 외부에서는 안을 절대 볼 수가 없었다.
“잘 있을 것입니다. 안에서 뭔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한 형사가 박태식의 행동을 보며 말하였다.
“혹시 모르지, 남, 여가 들어가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
박태식의 농담에 주차장에 있던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응? 무슨 차량이지?”
주차장에서는 모두가 농담을 즐기며 웃고 있었고, 곧 이수호의 집 앞으로 검은색 SUV 가 서서히 다가서며
정차하자, 형사들 중 한 명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다가섰다.
“이보시오. 여기 차 세우면 안 됩니다. 저기 올라가셔서…….”
‘위이이잉’
형사가 차량을 옮겨줄 것을 말하고 있을 때, 창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
‘픽!’
“뭐야!”
창문이 한 뼘 정도 열렸을 때, 형사의 눈앞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총이 정확하게 겨눠졌고, 그의 눈동자가
커지자마자, 그의 눈을 뚫고 총알이 발사되었다.
형사가 뒤로 밀려나며 넘어지자, 이수호의 집을 경계 서던 형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움직였다.
‘픽픽픽픽!’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 채,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곧 SUV 에서 몇 사내들이
내렸고, 잠시 후, 또 다른 SUV 가 더 들어서고 있었다.
“국정원과 이창민 대사의 집으로도 사람을 보냈나?”
“네. 검찰총장님.”
“그래? 그럼 우린 이곳을 정리하고 국정원을 친다.”
“네. 알겠습니다.”
차량에서 내린 사람은 검찰총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강력계 검사들과 함께 이수호의 집을 습격하였다.
‘띠리리리.’
“네 대통령님.”
-도착하셨습니까?-
“네. 지금 막 도착하여 내부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나저나 서지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서지호 뿐만 아닙니다. 오늘 하루…….쓸어내야 할 놈들이 많으니, 바삐 움직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비밀병기는 그냥 그대로 두실 것입니까?”
검찰총장은 집 안으로 들어선 후, 그와 통화하면서 검사들에게 손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하하. 대통령님께서도 연기가 꽤 많이 느셨습니다. 어떻게 정말 감쪽같이 모두를 다 속이실수가
있으십니까?
-숨은 놈을 잡자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일단 이수호의 집을 장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검찰총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현태와 함께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차현태는 꽤 많은 것을 모두에게
숨기며, 지금까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형사님. 외부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형사들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 나가서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주차장에서 설장호와 강서진이 무슨 짓을 하는지 구경이라도 하고자, 차 창문을 조금 열어보려던
박태식에게 한 형사가 말했고, 그는 창문을 열려던 것을 멈춘 채, 그에게 명령하였다.
‘퍽퍽’
“!!!”
형사들이 지하주차장을 나서려던 순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던 검사들과 맞닥들였고, 그들에 의해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굴러 떨어져내렸다.
“박태식 형사…….어쩌다 이 꼴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군.”
“장검사?”
박태식은 거구의 몸에 거친 인상, 건달과도 같은 외모를 지닌 장검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고, 곧 주위
형사들에게 그를 잡도록 손짓을 하였다.
“워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 우리 편이 좀 많거든.”
장검사는 웃으며 그의 행동을 보았고, 곧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형사들의 시선이 주변으로 돌아섰다.
“박태식. 넌 대체 용서할 수가 없겠구나. 너를 그토록 잘 보살폈던 사람이 설장호 실장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뒤통수를 쳐도 아주 제대로 쳤더군.”
장검사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박태식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모조리 잡아!”
곧 검찰총장의 목소리마저 들리자 그곳에 있던 모든 형사들의 눈빛이 놀란 듯. 그를 향해 보았다.
“거…….검찰총장이 직접!”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검사들이 나서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장이 직접 현장에
나서서 검사들의 지휘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박태식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들고 있던 총으로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자신과
함께 이번 일을 꾸몄던 모든 형사들이 그들과 맞설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박태식. 그냥 조용히 가자.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그러면 혹시 알아? 선처라도 해
줄지 말이야.”
장검사는 박태식의 앞에서 웃으며 말하였고, 곧 그의 멱살을 잡아 뒤로 밀쳤다.
“설 실장은 어디에 있나? 우선 이것부터 선처의 대상으로 잡아주지.”
장검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고, 박태식은 자신의주머니에서 서지호의 차량 열쇠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뭐야? 차키? 저 차안에 있어?”
장검사의 말에 검사들이 곧 해당 차량 앞으로 다가섰지만, 안은 보이지 않았다.
장검사는 다른 검사에게 열쇠를 던져주었고, 그는 차 문을 열었다.
“설 실장님.”
차 문이 열리자, 설장호는 뒤 좌석에 아주 편히 앉아서 검사들을 향해 보고 있었다.
“강 검사!”
설장호의 뒤로 강서진의 모습이 보이자, 검사들이 반대편 문을 열어 강서진을 꺼냈다.
“별 거 아니야. 박태식이 뒷덜미를 후려치는 바람에 기절한 것뿐이야. 하지만…….아주 강하게
후려치더라고.”
설장호는 자신의 포박을 풀어주던 검사를 본 뒤, 곧 강서진을 걱정하던 검사들에게 말했다.
설장호의 말을 들은 검사들은 그 즉시 박태식을 향해 쏘아보았고,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장검사가 그의
한 쪽 볼을 수차례 내리쳤다.
“죽지 않게만 해라. 죽으면 너도 영창간다.”
그 모습을 보며 검찰총장이 말했고, 그는 곧 설장호에게 다가섰다.
“괜찮습니까?”
“의외군요. 설마 검찰총장님이 이렇게 직접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장호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의아한 눈빛을 한 채 답하였다.
“생각지 못한 일은 앞으로 더 있을 것입니다. 일단…….국정원으로 가실까요?”
검찰총장의 말에 설장호는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총장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난 이창민대사가 준 증거자료를 아무리 훑어봐도 알아낸 것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물론,
인원수도 몰랐고, 대통령께서 알아내신 사진속의 사진, 그 속의 인물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검찰총장은 검사들에게 주변 정리를 마저 하도록 손짓을 한 뒤, 곧 주차장에서 1 층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곧 보게 될 것이야. 그러니 서둘러 이수호의 잔챙이들을 잡자. 아니. 아니지. 잔챙이가 아니라, 어쩌면
이수호보다 더 윗선에 앉은 놈이라고 해야지.”
“윗선요?”
강서진은 이 모든 상황이 궁금증 투성이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몇 가지를 아는 듯, 총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 실장님 같은 분이 이창민대사의 단서를 놓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서를
대통령께서 찾아낸 것도 놀랍고요.”
총장과 설장호는 이수호의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고, 검찰총장이 설장호를 보며 물었다.
“제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만 쫒은 모양입니다. 그에 반해 대통령께서는 그 누구도 보지 않은 부분을
보시고, 지금과 같은 숨은 놈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설장호는 총장의 말에 답하면서 곧 강서진을 보았다.
“서지호와 함께 한 놈이 더 있으니, 그 놈도 마저 잡아야지.”
설장호가 그녀를 보며 말했고, 총장도 그가 잡으려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듯, 곧바로 검사들에게 이동할
것을 명령 내렸다.
“이수호의 자택에는 검찰청 형사들을 배치시켜두었습니다. 그리고 박태식은 검찰로 이송했으며, 서지호는
추적을 시작하였다.”
검찰총장은 설장호와 함께 이동 중, 차현태에게 연락하여 현 상황을 알렸다.
“저 좀 바꿔 주십시오.”
설장호는 총장이 차현태와 통화중인 것을 알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확실한 증거를 들고, 괜한 의심을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를만한 소지는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 뜻을 아셨으니, 남은 한 놈을 쳐야죠.-
“네. 지금 국정원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설장호의 실수는 차현태가 가볍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국정원에 있는 놈을 치면, 정말 마지막 놈을 다 쳐내는 것일까요?”
검찰총장이 이동 중 물었다. 하지만 설장호는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줄 수 없었다.
비록 이창민 대사의 서류를 뒤늦게라도 파악하여 숨은 놈을 찾아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끝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확인해봐야 알겠죠. 그 놈이 끝인지…….아니면 또 있을지 말입니다.”
설장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고, 잠시 후, 차량은 국정원 정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검찰총장과 설장호, 그리고 강서진이 앞 선 차량에서 내리고, 그 뒤로 검찰청 차량에서 검사들이 내리자
국정원내의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설장호가 앞장섰고, 그는 곧 제 3 차장에게 연락하여 부탁하였던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띠리리리’
국정원장실을 나서자마자 설장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뭔가 있어?”
때마침 이창민의 집으로 갔던, 조동민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허탕입니다. 이창민대사의 집으로 들어온 이장구의 차량은 이장구의 딸이 운전해서 온 것입니다.-
“딸?”
-네. 조금 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장구의 아내가 그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병문안을 한 후, 다시 돌아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병문안을 하고 돌아왔는데, 왜 자신의 집이 아닌 이창민의 집으로 간 것인가?”
설장호는 조동민의 말 중,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여 물었다.
-이장구. 아직 이창민대사의 집에 기거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주민등록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이창민대사가 자신의 집 한 편에 만들어 준,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설장호는 조동민의 보고를 들은 후, 여러 가지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이장구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창민 대사를 죽도록 버려두었고, 이지현을 쫓는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사후 처리에 대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었다.
비록 그의 죽음 뒤로, 석강수가 나오고, 또 최기수, 정구석, 고민국, 우수광이 등장하면서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지며, 바빴던 것이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다 핑계라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네. 일단 국정원으로 돌아오게.”
-네? 이제 돌아가도 되는 것입니까? 국정원에서의 일은 모두 정리가 된 것입니까?-
조동민은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물었다.
“그래. 가서 국정원장님을 경호한다.”
-네? 원장님을요? 조금 전에는 원장님으로부터 저를 보호한다고 국정원에서 나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또 들어가서 원장님을 경호하라니…….-
“잔말 말고 까라면 까.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하면서 하자.”
-네. 알겠습니다.-
조동민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그의 말에 답하였다.
설장호는 오늘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리 하려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제길.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야하는데…….”
한 편. 서지호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운전 중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안전한 곳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그 곳이라면 괜찮겠군.”
그리고 어느 한 곳을 떠올린 듯 표정을 밝게 하며 말한 뒤, 곧바로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운전대를 잡아
돌렸다.
“삼촌…….여기는…….”
같은 시각. 태정민은 지현을 데리고 북정마을로 왔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추선우를 만났던 곳으로 향해
걸었고, 지현은 추선우를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보았다.
“이곳…….너의 운명이 바뀌게 된 곳이잖아.”
태정민은 그녀를 데리고 그녀가 있을 만한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을 생각하여 이곳으로 왔다. 그녀의
마음이 편하며, 또 지현을 노리는 그들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곳이라 여겼다.
두 사람은 곧 빌라 앞에 섰다. 그리고 빌라는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까지 되어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고 깨진 유리에 마친 폐건물처럼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뉘시오?”
두 사람이 빌라 앞에 서자, 한 여인이 다가서며 물었다.
“네? 아 네…….뭐 이 집에 사는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입니다.”
태정민은 여인의 물음에 웃으며 답하였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의 친구? 누구의 친구요? 은주를 말하는 것인지, 선우를 말하는 것인지?”
“선우 삼촌과 은주이모. 두 사람 다 알아요.”
여인의 말에 지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추선우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은주 씨의 애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아이는 추선우의 조카입니다.”
태정민은 여인을 보며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말했고, 그가 은주의 애인이라는 말에 여인은 다시 한 번
그를 빤히 보았다.
“하…….신기하네. 은주가 이리 반듯하게 생긴 사람을 애인으로 사귈 만 한 년은 아닌데 말이야.”
“하하…….하하…….아주머니. 애도 있는데 말씀 좀 가려가시면서…….하하…….”
여인의 말은 조금 거칠었다. 그리고 태정민은 그녀의 말에 지현의 귀를 살짝 가리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년을 년이라고 하는데 무슨.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야? 이제 이 집에는 은주가 살고있지 않아. 주인이
바뀌었지.”
여인은 깔끔하게 정리된 빌라를 올려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은주 씨의 새로운 집을 구해준 사람이니까요.”
태정민도 빌라를 올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여인은 태정민을 보았다. 그리고 지현을 보았다.
“참 요상하네. 전혀 은주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애인이 되었는지…….”
여인은 홀로 중얼거리며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삼촌. 그런데 이제 은주이모도 여기에 없잖아. 그리고 선우 삼촌도…….”
지현은 말을 흐렸다. 그러자 태정민은 그녀의 앞으로 자세를 낮춰 앉은 뒤, 그녀를 보았다.
“우리. 여기서 선우삼촌 기다릴까? 이 집 주인한테 말해서 우리가 이 집에서 살자. 그래야 선우삼촌이
나중에 돌아와도 쉴 자리가 있을 것 아냐.”
태정민은 지현을 보고 말했고, 지현은 글썽거리는 눈을 한 채, 태정민을 보았다.
“삼촌.”
그리고 그를 안아주었다. 태정민은 지현이 자신을 안자, 자신도 살며시 팔을 올려 그녀를 안아주었다.
“어? 실장님이다.”
“실장님?”
그녀를 안자마자 지현이 조금 들 떤 목소리로 말하였고, 곧 태정민이 몸을 돌려 지현이 보고 있는 곳을
향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서지호가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서지호는 자신이 몸을 술길 최적의 장소로
추선우의 집을 택한 것이었다.
이수호의 부하가 치고 들어올 리가 없고, 또 설장호가 자신을 찾겠다고 이곳으로 올리도 없으니,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집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틀어져 버렸다.
“태정민…….”
“실장님…….”
서지호는 태정민을 불렀고, 태정민은 서지호를 불렀다. 하지만 태정민은 서지호가 이수호의 리스트 중,
숨은 한 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뭐하는 건가? 그리고 지현을 데리고 이렇게 나오면 그녀의 안전에…….”
“추선우가 돌아올 때까지, 그 때까지 지현은 제가 지킵니다.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처럼 누가 누구의
편에 서 있으며, 또 누가 누구를 죽이려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순간에서 그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대통령님도 말입니다.”
태정민은 아직 차현태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지호에 대한 의심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현은 제가 경호하겠습니다. 그러니 실장님께서는 청와대로 돌아가 대통령님을 경호하십시오.”
태정민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에게 말한 뒤, 몸을 돌려 빌라로 들었다.
그리고 2 층 은주의 집을 지나치며 추선우가 지내고 있었던 옥탑 방까지 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섰을 때, 1 층 계단으로 올라서는 서지호를 계단 틈 사이로 보게 되었다.
“이곳은 삼촌이 있는 집인데…….”
지현은 오랜만에 이곳을 보았다. 그리고 추선우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 올렸다.
“사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난 믿지 않았어. 여름에는 덮고, 겨울에는 춥고, 그런데 이런
곳에서 그런 대단한 사람이 살고 있으니,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이었지.”
태정민은 옥상에 놓여있는 평상에 앉으며 말했고, 곧 지현도 그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 곧 옥상으로 들어서는 문을 향해 시선이 고정되었고, 그곳에서 서지호가
옥상으로 나서고 있었다.
“실장님도 여기 와서 앉아보세요. 이곳이 바로 선우삼촌이 지내던 곳이에요.”
지현은 그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태정민의 표정은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아직 서지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은 것은 없지만,
느낌상으로 전해지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던 그였다.
“지현아. 잠시 뒤로 물러나 있어.”
태정민은 지금의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지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지현은 그를
향해 보았다.
“삼촌. 왜 뒤로 가 있어야 해.”
지현은 태정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보며 물었다.
“왜냐면 말이야…….”
‘픽!’
“!!!”
지현의 말에 대한 답은 서지호가 하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총도 답을 주었다.
“삼촌!”
지현은 깜짝 놀라 그를 보며 소리쳤다. 서지호는 총을 꺼내며 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소음기가 장착된
총에서는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면서도 아무런 소음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태정민의 어깨를 관통하여 지나치며 그를 바닥에 쓰러지도록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심장을 뚫어버리고 싶은데. 너와 지낸 세월이 있어서 이것으로 끝낸다. 하지만
지현은 내가 데리고 간다.”
서지호는 총에 맞은 어깨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온 몸을 타고 전해지고 있지만, 지현이 놀랄 것을 우려하여
고통에 대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 삼촌!”
하지만 지현은 그를 계속하여 불렀다. 고통에 몸서리치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불렀다.
“이제 그만. 너도 조용히 가라.”
서지호는 울부짖는 지현을 옆에 두고서 태정민을 향해 보며 말하였다.
‘쾅!’
같은 시각. 서지호의 어깨에 총을 쏜 후, 지현을 데리고 가려던 서지호가 갑자기 열린 옥탑방의 문에
의해 쥐고 있던 총을 놓치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지현은 곧바로 쓰러진 태정민의 곁으로 간 후, 그의 어깨를 보며 울었다.
“총 맞아보니 별 것 아니더군요.”
“!!!”
옥탑방 문이 열리며 들린 목소리. 그 목소리에 옥상에 있는 세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태정민은
총상을 입고도 입가에 미소를 지은 뒤,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하였다.
“하하하!”
그리고 이내 더 큰 목소리로 웃었고, 곧 어깨에 통증이 이어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삼…….촌.”
지현은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온 그를 보며 떨리는 눈동자로 서 있었고, 이내 말을 더듬거리며 그를 불렀다.
“우리 지현이…….그 동안 많이 자랐구나. 더 예뻐지기도 하였고 말이야.”
옥탑방의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추선우였다. 그는 총상을 입은 부분에 아직도 붕대를 징징 감고 있었지만,
얼굴 안색은 좋아보였다.
그리고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내 몸을 낮춰 앉은 뒤, 지현을 안아주었다.
“뭐야!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서지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병원에서 사라진 것은 알고 있지만, 이리 빠르게 회복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그였다.
‘슉!’
서지호의 주먹은 스피드부터가 달랐다.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의 경호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니,
지금까지의 그 어떤 누구보다 더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 여겼다.
더군다나 추선우는 아직 총상에서 완벽히 완쾌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 지금 추선우씨가 북정마을에 있다는 것입니까?”
강서진은 검찰총장의 답을 들은 후, 깜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비단 강서진 뿐만 아니라, 설장호도 깜짝
놀란 눈으로 검찰총장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설장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그의 곁으로 다가서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
내려졌었다. 하지만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강서진의 아버지가 그를 외부로 빼낸 것이었다.
“이 역시 결론은 좋게 났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구멍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강선배가 권력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이고,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그는 병원에서 추선우를 잘
빼냈습니다.”
검찰총장은 추선우를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정말 만족하는 눈빛이었지만, 결국은 제 살을
깎아먹는 것에 박수를 치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국정원 3 차장 이두식이 이명수라는 명함을 사용해서 추선우를 빼내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함은 3 차장이 준 것이 확실해졌고,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강선배가…….”
“시간차 공격…….”
“시간차 공격?”
설장호의 추리대로라면 강서진의 아버지는 추선우를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두식이 먼저 주치의를
만나 추선우를 빼내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린 총장의 말에 다시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되 내였다.
“누군가가 추선우를 빼낸 것을 다시 빼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쪽도 알지 못하고, 우리 쪽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추선우가 공중에서 사라져버린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이두식이었지만, 그 중간에서 목표를 가로채 간 사람은 바로 강서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금 그를 만나기 위하여 북정마을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서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설장호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지호의 위치가, 공교롭게도 북정마을입니다.”
“네!?”
북정마을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검찰총장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다시 놀란 눈을 하였다.
“북정마을에 추선우가 있다는 것을 서지호가 알고서 간 것입니까?”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두 사람이 한 곳에 있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그저 추선우를 만나러 간다는 것에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이미 가 있다는
말에 설렘이 긴장감으로 변했고, 곧 초조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퍽!’
하지만 추선우의 돌려차기는 몸이 돌아가는 것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빈틈을
노리려 들어오는 서지호의 주먹은 추선우의 이어지는 옆 차기보다 약간 늦게 추선우의 몸에 와 닿을 뻔
하였다.
즉. 추선우의 옆차기가 먼저 서지호의 복부에 그대로 꽂히며 서지호의 몸이 활처럼 휜 뒤,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정말…….살아있군.”
설장호는 추선우를 보았다. 마치 죽을 사람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지금. 거짓말처럼 추선우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가봐.”
설장호는 아직도 총을 들고 매섭게 한 곳을 노려보고 있는 강서진에게서 총을 건네받은 뒤, 말했고,
그녀는 추선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의 그 독한 눈빛은 이제 없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그런 눈빛만이 그녀에게 있었다.
“다행입니다. 자칫 조금만 늦었다면 힘들게 구해낸 사람 어이없게 잃을 뻔 하였습니다.”
검찰총장이 두 사람을 보며 말하였다.
“이제 지현을 찾아 가봐야겠습니다. 추선우가 이리 건강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 하던
아이…….”
“지현은…….이 곳에 있습니다.”
“뭐?”
설장호는 추선우를 데리고 청와대로 향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추선우가 옥탑 방을 가리키며
말했고, 설장호는 놀란 눈으로 옥탑 방을 보았다.
“괜찮아요?”
설장호를 비롯하여 검찰총장은 서둘러 옥탑 방으로 향하였지만, 강서진에게는 지현보다 추선우가 더
중요하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검사님의 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추선우도 이미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요…….나중에.”
강서진은 그의 얼굴을 보며 손을 천천히 뻗어 올린 뒤, 그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문 좀 열어보게.”
옥탑 방 문은 꽉 닫혀 있었다. 이에 검찰총장이 추선우를 보며 말했고, 곧 열쇠를 들고 문 앞으로 갔다.
‘탈칵’
“안 돼! 안 돼! 오지 마!”
“…….”
추선우가 옥탑 방 문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문 바로 앞에서는 지현이 방빗자루를 들고 눈을 꼭 감은
채 소리치고 있었다.
“지현아.”
추선우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현은 추선우의 목소리를 듣고,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삼촌…….”
지현의 눈에는 금방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고, 이내 그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다.
“미안한데…….저도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넌 또 왜 그래?”
방 한쪽으로 앉은 태정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설장호가 그를 상태를 보며 물었다.
“보시다시피…….또 영광의 상처를…….”
“영광의 상처는 지랄. 그냥 총에 맞은 것이지 무슨 영광까지 가고 그래.”
설장호가 그의 곁으로 다가선 뒤, 어깨에 입은 총상을 자세히 보았다.
“죽지 않겠네. 병원 가서 치료하고, 한 이틀 푹~ 쉬면 다 괜찮을 거야. 어서 병원과.”
설장호는 태정민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한 뒤, 몸을 돌려 지현에게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몸을
낮춰 앉은 뒤, 미소를 지었다.
‘애애애앵~’
곧 북정마을 입구 쪽에서 엠블란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올라서고 있었다.
“다쳤다는 놈이 신고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있으면 추선우 꼴 난다. 어째 두 놈이 그리 닮았냐.”
설장호는 추선우와 태정민을 번갈아보며 말하였다.
“실장님…….”
태정민은 그를 보며 나지막이 불렀다. 그저 딱딱하게 말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설장호는
이곳으로 엠블란스를 오도록 하였다.
“어서타고 가. 그리고 완쾌되기 전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설장호는 태정민을 보며 말한 뒤, 북정마을을 마저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곧 추선우가 태정민의 옆으로
다가가선 후, 그와 은주를 보았다.
“태팀장님 잘 부탁해.”
은주에게 말했다. 은주는 그를 보았고,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엠블란스에 탑승하였고, 곧 차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향하였다.
“총장님께서는 청와대로 가실 것입니까?”
“그래야죠. 가서 대통령님께 보고도 해야 하고, 또 앞으로 더 잡을 놈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도 청와대를 들렀다가 국정원으로 향해야겠군.”
설장호도 함께 청와대로 향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는 먼저 앞서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명단입니다.”
그가 내민 것은 만찬초대 명단이었다.
명단에는 국정원장과 함께 조동민과 그의 팀원들, 그리고 경질된 경찰청장을 대신하여 업무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경찰차장과 형사들, 그리고 검찰청의 검사들. 또 한 민간인으로는 은주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미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초대하세요. 그리고 민간인들은 직접 차를 보내 모셔 오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듣고, 감사의 뜻으로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설 실장께서는 앞으로 지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알겠습니다.”
차현태는 지현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보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사람이 지현이었다.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롭지 않은 청소년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대통령님. 외교부 장관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연결하십시오.”
보좌관이 다시 다가와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네. 장관님.”
-축하드립니다. 제가 업무상 더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숨은 두 사람을 마저 찾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숨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기서 종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공개로 수사는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차현태는 마치 외교부장관을 겨냥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찬은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알겠습니다. 업무 보십시오.”
차현태는 외교부장관의 불참에 대해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희이모.”
곧 지현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지현이 이제 선우삼촌하고 떨어지지 않아서 좋겠네.”
“응. 이모. 이모도 우리와 같이 살자. 응, 이모.”
미희는 지현의 말을 들은 후,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현의 말처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현은 추선우와 함께
지낼 것이었다. 그리고 추선우의 옆에는 강서진이 함께 할 것을 알고 있기에, 지현의 뜻대로 함께 생활할
수는 없었다.
“어깨는 괜찮습니까?”
곧 응급처치를 받고 청와대로 돌아온 태정민을 보며 추선우가 안부를 물었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태정민은 자신의 어깨를 보며 답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은주가 함께 하고 있었다.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설장호는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따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외의 검사들과 국정원 대원들도 모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네. 이리 와보게.”
그는 추선우를 불렀다. 추선우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경직된 자세로 선 채,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새 튼튼해진 것을 보니, 뭐 2 세도 튼튼하게 잘 자라겠군.”
“아빠!”
그의 말에 강서진이 다시 소리쳤고, 만찬장은 더 큰 웃음소리로 가득하였다.
모두가 기분 좋게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의 힘든 나날을 지나간 추억처럼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내일부로 추선우씨는 대통령 권한으로 청와대 경호실에 특별 채용할 것입니다. 그러니 실업자는 면하게
될 것이며, 우리 경호원들을 위해, 집도 제공해 줍니다. 그러니 집도 해결됩니다.”
차현태의 말을 듣고, 추선우보다 강서진이 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차현태를 보았고, 곧 몇 번이나 고개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말씀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이 친구에게 직장을 선물해 준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강서진의 아버지는 추선우를 본 후, 다시 차현태를 보고 물었다.
“대통령의 특권은 아닙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충분히 권력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차현태는 추선우를 향해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였다.
“우리도가죠.”
추선우와 지현, 그리고 강서진이 청와대를 나선 후, 은주도 태정민을 보며 말했고, 태정민은 은주와
은주의 어머니를 데리고 청와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조동민.”
“네. 실장님.”
“네가 미희 씨를 댁까지 모셔다드려.”
“네? 네. 알겠습니다.”
사건이 종결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설장호였다.
“내일부터는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종결하고, 마무리를 짓는 작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차현태에게 내일 진행할 일에 대해 먼저 말하였고, 언론보도를 동원하여 이수호의 만행을 전
국민에게 알리려는 뜻을 미리 밝혔다.
“마지막까지 고생해주십시오.”
차현태는 그의 뜻을 받아들였고, 곧 설장호도 국정원장과 함께 청와대를 벗어났다.
-주요 인물로는 국정원 3 차장 이두식과 청와대 경호실장 서지호, 국정원 2 차장 지형민, 청와대 비서실장
민광만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 비서실장 민광만은 이수호의 조직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나머지는
체포되어 검찰과 국정원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또 한 차대통령은 이수호와 관련된 모두에게 엄중한 법의
처벌을 내릴 것을 각 기관에 명령 내렸습니다.-
“저런 쳐 죽일 놈들! 저 놈들이 지금까지 나라의 중요자리에 앉아있었으니,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기나
했겠어! 그리고 지 놈 살자고 이제 10 살 된 애를 죽이려 해! 이런 나쁜 새끼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TV 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설장호가 각 언론단체 및 기관에 전달한 이수호에 관한 내용은 삽시간에 한국을 덮었다.
이수호와 단 한번이라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소환대상에 포함되었다.
설장호는 주요 핵심인물들을 잡아내며, 이수호를 무너뜨렸다고 보지만, 아직 그의 잔해는 남아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언제나 무언가의 문제를 남겨두었기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아직도 개운하지 않았다.
“삼촌. 잠깐만…….”
곧 지현이 그를 보며 손짓으로 몸을 낮추도록 하였고, 추선우는 그녀와 눈높이를 같이하여 앉았다.
‘쪽.’
지현은 추선우의 볼에 키스하였고, 해맑은 미소를 덤으로 보여주었다.
“고마워. 한 결 나아진 것 같아.”
추선우는 지현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두 명이나 곁에 두다니, 부럽다. 어서 가봐.”
태정민은 지현의 사랑과 강서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보며 말했고, 추선우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에게 자랑하듯 행동한 뒤, 집무실로 향하였다.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네.”
차현태는 추선우를 보며, 악수를 청한 뒤,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 보다 저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앞으로 나를 위해서, 그리고 지현을 위해서 자네의 그 힘을 발휘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추선우는 큰 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집무실을 들어섰을 때 가졌던 긴장감은 사라졌다.
자신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가졌다. 그것도 경호원 중, 최고라 자부하는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이었다.
00256 완 결. ====================================================================
=====
“청와대 경호원으로써의 임무에 대해서는 태정민 팀장에게 하나씩 배워나가게, 자네는 꼭 최고의 경호원이
될 것이네.”
“감사합니다.”
차현태는 추선우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더 전하였다.
추선우는 그와의 짧았지만, 정말 길게 느껴지는 면담을 마친 후, 집무실을 나왔고, 그 앞에는 지현과
태정민이 서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긴장감은 어땠어?”
태정민이 물었다.
“뭐. 사람을 앞에 두고 만나는 것인데 긴장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편안하게 대화 나누고
나왔습니다.”
“삼촌. 거짓말하면 입 꼬리 올라가는 것 모르지? 지금 입 꼬리가 수십 번은 더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추선우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하자, 지현이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조금 전에 알았어. 하지만 지현은 너를 처음 볼 때부터 알았다고 하더군. 네가 곧 돌아온다는 말,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아프지 않다는 말. 그 모든 말을 할 때마다 자네의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씰룩거렸다고 하더군.”
태정민이 말을 덧붙였고, 추선우는 지현을 보았다.
“미안해…….삼촌이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것은…….”
“삼촌은 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한거야. 하지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마. 거짓말은 나쁜 거야.”
“어…….그래. 알았어.”
“하하하. 천하의 추선우가 제대로 임자 만났군.”
태정민이 큰 소리로 말하여 웃자, 지현의 매서운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의 웃음소리고 바로
그쳤다.
“저 뿐만 아닌 것 같은데요.”
세 사람은 집무실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집무실 안에서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차현태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고생도 많이 했고, 또 그 고생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부터
청와대 경호실에 새롭게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
태정민이 그에게 정식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추선우는 차현태가 말할 때와는 달리, 태정민에게서
직접 축하 메시지를 들으니, 이제야 경호원이 된 것이 실감나고 있었다.
“삼촌. 축하해.”
지현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도 함께 맺히고 있었다.
추선우와 태정민은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낮춰 지현을 안아주었다. 비록 부모님의 따뜻한 품은 아닐지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포근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자자. 오늘은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지불받은 날이다. 모두 고생했고, 신나게 마셔.”
저녁 6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모두 광화문 인근의 한 호프집에 모여 앉았고, 설장호가 잔을 들여 말했다.
함께한 자리에는 설장호를 비롯하여 추선우와 태정민, 강서진과 조동민, 그리고 지현이 함께하고 있었다.
“실장님은 그 동안 너무 늙으신 듯 합니다. 흰머리가 꽤 많이 보이네요.”
태정민이 설장호를 보며 말하자, 설장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나도 이제 이 짓을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너무 늙었어.”
“괜히 우울한 표정 짓지 마십시오. 늙어서 그만 두신다는 말은 10 년 전에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랬나?”
설장호에 대해 조동민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설장호의 농담은 절대 진담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미희 씨가 보이지 않네, 오늘 연락 하지 않은 건가?”
모두 모였지만 미희가 보이지 않아 설장호가 물었다.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 때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아쉽군. 참 많은 고생을 함께 했는데 말이야.”
미희에게는 추선우가 연락하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녀가 간다는 곳, 추선우는 그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미희야.”
미희는 다른 회식자리에 갔다. 모두가 그녀를 반겼다.
“선우는? 선우는 함께 오지 않았어?”
미희는 고아원 출신의 가족들을 만났다. 절대 성공하기 전에는 만나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났다.
“선우는 좀 바빠. 다음에는 같이 올게.”
그녀는 선우대신 선우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이 가족들은 선우와 미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났지만, 이들은 그 일에 대해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정말 성공한 거야?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가족들은 미희를 보며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냥.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연락했어. 사실…….성공은 가족들이 함께 있을
때 더 잘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그들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잠시 가만히
있었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래그래. 우리가 어릴 때 괜한 약속을 했어. 사실 나도 너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정말 미희
아니었으면 난 평생 너희들을 보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몰라.”
미희의 말을 들은 가족들이 하나, 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생활이었는지를 말했다.
“앞으로는 그런 쓸데없는 약속하지말자, 자주보고 서로 도와주고, 정말 가족같이 살자.”
미희는 웃었다. 비록 추선우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다른 가족들을 만나며 정말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참. 내가 추선우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말이야.”
같은 시각. 설장호는 술을 마시다말고 추선우를 보며 말했다.
“무엇입니까?”
설장호의 말에 추선우가 잔을 들다말고 그를 보며 물었다.
“강 검사 울리지 말라. 내가 아는 강 검사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강 검사의 어머니를 울린 적이 없다.
물론 강서진도 울린 적이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다.”
추선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강서진을 보았고,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어떻게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라는 거다. 그러니 잘해. 무엇보다 건강하면 좋다. 술도 잘 먹어야하고,
장인어른이 밤늦게 부르면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설장호가 마치 장인어른처럼 말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설장호는 강서진을 보며 설장호의 말에 답하였다. 그리고 이내 잔을 들어 모두를 향해 건배를 권했다.
“이모. 삼촌과 결혼해도 나 버리면 안돼요.”
“애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고 그래. 세상에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 생각만
해도 무섭다야.”
어린 지현에게는 어쩌면 굉장히 큰 고민일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서진이 지현을 안아주며 말했고,
지현은 그제야 추선우와 강서진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모두가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또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것과 같이 서로를
안아주며 토닥거려주었다.
지난 50 여 일간의 일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일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하나의 일로 인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은 추선우는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
것이었다.
“여기계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와 지현이의 일이 이렇게 커졌고, 또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모두가 나서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무슨 소리야. 이건 우리의 일이야. 오히려 우리가 너에게 더 감사해야 할 상황이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추선우의 말에 오히려 설장호가 그를 보며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그래. 맞아요. 사실 선우 씨가 아니었다면 지현이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지현이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요.”
강서진이 설장호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추선우는 그냥 민간인이며, 이 일과 전혀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
‘툭.’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술을 먹고 있을 때, 서빙을 보던 여인이 추선우의 옆을 지나치며 그와 부딪혔고,
그와 그녀가 들고 있던 맥주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녀의 허리춤에 있던 휴대폰도 함께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잔이 떨어진 추선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괜찮습니다.”
추선우는 잔이 떨어지며 깨진 탓에 그녀의 휴대전화가 깨진 유리잔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이
주워주려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춰 여인도 함께 몸을 낮춰 앉으며 휴대전화를 주우려 할 때, 그녀의 윗옷의 목 부분이
조금 많이 파여 있는 탓에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추선우는 의도치 않게 그녀의 가슴골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강서진이 곧바로 추선우의 눈을 가리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아저씨! 여기 깨진 잔 좀 치워주세요.”
그녀는 남자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곧바로 종업원이 다가와, 깨진 잔을 치운 후, 그녀의
휴대전화를 주워주었다.
“다른 여자를 보는 눈도 조심해야 해.”
깨진 잔이 치워지고, 여인이 떠난 후, 설장호가 맥주잔에 담긴 술을 마시며 말했고, 태정민이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추선우의 표정은 그들의 농담을 들어주는 표정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설마 여인의 가슴골을 처음 본 것인가?”
“실장님! 애도 있는데…….”
설장호의 농담에 강서진이 지현의 귀를 막으며 소리쳤고, 그녀의 시선이 다시 추선우를 향해 돌아섰지만,
그는 아직도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선우 씨.”
“네? 아…….네. 왜요?”
강서진이 다시 그를 부르자, 그때서야 눈에 초점을 맞추는 듯 그녀를 보았다.
“왜 그래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멍해지네요.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선우는 술이 갑자기 오른 것처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일어나면서 태정민에게 눈치를 주자,
그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호프집 외부로 나온 추선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태정민이 물었다.
“이수호의 집에 있던 여인들 말입니다.”
“응? 그 여인들? 그 여인들이 왜?”
이 상황에서 갑자기 이수호의 여인들에 대해 묻자, 태정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그에게 다시 되물었다.
“신체의 중요부위에 이수호와 관련된 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말도 마라. 가슴에 적어 놓은 여자도 있었고, 엉덩이도 있었고, 심지어 그 중요부위에도
새겨두었다고 하더라.”
태정민은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하며 추선우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왜?”
곧 그에게 질문에 대한 의도를 물었다.
“조금 전에 저와 부딪힌 종업원 말입니다.”
“그래. 그 종업원이 왜?”
“가슴골에…….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추선우는 자신이 본 것을 말했다. 그러자 태정민이 잠시 그를 보더니, 이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녀가 이수호의 여자라도 된다고 생각해? 사실…….여자들 중에 자신이 너무나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중요부위에 새겨 넣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그 중에 한명이겠지. 검찰에서 이수호의 여자들은
다 잡아들였어. 그러니 잊어.”
태정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들춰내고, 또 처음부터 하려니 지난 며칠간의
일이 떠올라 깊게 생각하고 말하려하지 않았다.
추선우도 그의 말을 들은 후, 그런 여자들 중, 한명이라 생각하였고, 이내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옷에 술이 다 묻었잖아. 어서 들어가서 씻고 옷갈아입고 다시 나와.”
“네. 사장님.”
실수로 쏟은 맥주로 인하여 종업원은 맥주로 인하여 옷이 젖었고, 끈적거리기까지 하였다.
곧 호프집 사장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녀는 호프집 내에 있는 직원들 휴게실로 향한 뒤, 그 안에 있는 샤워실로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맥주를 쏟은 옷을 벗은 후, 샤워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이 지워지면서 점점
본연의 얼굴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사장이 지워지면서 그녀의 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검찰과 국정원이 이수호의 집을 급습했을 때, 외부에 나와 있었던 여인으로, 차량을 타고 그 앞을
지나쳐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비누거품을 한가득 만든 뒤, 몸에 묻은 끈적거리는 맥주를 닦아내기 시작하여으며, 그녀의 가슴
부분에는 추선우가 본 것처럼 정확하게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 현. 태.-
============================ 작품 후기 ============================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