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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노트

작성법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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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독서노트 작성법

풀로엮은집에서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


회>>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을 수강생 중의 한 분
이 정리했더군요. 그것을 옮겨 보겠습니다.

1. 목차 읽기

책을 읽을 때에는 ‘목차'를 먼저 읽는다. 목차를


읽으면서 대강의 내용을 예측해 본 후에 본문을
읽는다. 결코 저자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 내가
이반 일리히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이반 일리히가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사람
이다.

메모를 하며 읽는다. 그 메모들이 서평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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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자료가 된다.

<학교 없는 사회>의 경우 학술서적이므로 논리


적인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차를 통해 전반적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다. 책
을 다 읽었는데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한 바와 별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면 문제가 있다. (반드시 그
런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예상을 깨는 책일수록
(독자의 배반감이 클수록) 괜찮은 책인 경우가 많
다.

책을 사고 읽은 후 서평을 쓰기까지의 순서를


제시하겠다.

1) 우선, 장서표를 붙이고 첫 장에 그 책을 구


입한 의도와 목적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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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되는 내용을 쓴
다. 이것이 서평 쓰기의 출발점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의 의도와 그 내용이 일치하는지
를 확인한다. 공부를 하려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또, 짐작가는 내용을 써 봐야 책을 선택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남이 쓴 서평을 읽고 책을
살 수는 없다. 서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
문이다.
3)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내다 버릴 책이라 할지라도 충실히 읽어야 한다.
충실히 읽고 깔끔하게 재정리해야 한다. 책을 읽
으면서 (난외에) 써야 한다. 다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읽으면서 노트에 정리한다. 그리
고 나서는 노트만 읽으면서 관점을 잡아서 서평의
초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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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체는 어찌 보면 창작이라 할 수 있다.
서평은 저자도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독자가
발견하고 저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다. 저
자가 책을 쓸 때에는 '독자가 여기까지는 읽어줬
으면…'하고 생각(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까
지는 읽어봐야 한다. <책과 세계>를 읽고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라는 구절에 현혹된 독자는 '
하수'이다. 그런 구절이 저자가 깔아 놓은 부비트
랩이다.

2. 서문 읽기

서문에 있는 내용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그러


므로 서문은 세 문단으로만 구성되면 된다.

1) 이 책을 쓰게 된 과정, 이유————<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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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핵심 주장—–<목적>
3) 핵심 주장을 논증하는 방법————<방법>

그 이상 쓰는 것은 오버다. (출판사 사장, 가족


에 대한 감사 따위)

예를 들어 서평집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면 충분할 것이다.

1) 내(저자)가 생각하기에 책은 '이러이러한 것'


이다.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서 몇몇 책을 골랐으므
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2) 서평집을 내게 된 경과
3) 내가 책을 해석interpretation한 방법
여기에 덧붙여 독자에 대한 당부 정도를 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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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책의 3분의 1정도는 이해


된 것이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이면지(메모지나 아
무 종이)에 처음의 의도(짐작한 내용), 목차와 서
문을 읽고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다. 정리한 종이
를 '책갈피'로 사용한다. 읽는 중간중간 서문에서
제시한 목적과 방법이 본문 속에서 균형있게 서술
되고 있는지 대조해 가면서 확인한다.

제1장 우리는 왜 학교를 폐지하여야 하는가

'학교폐지론'에 대한 내용으로 이 책의 핵심 주
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상식적으로도 가장 중
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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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효과적으로 -힘을 쓸 부분과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각각
의 챕터에 같은 시간을 배정할 필요가 없다. 바쁠
때는 필요한 부분만 읽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읽고 싶을 때 더 읽으면 된다. 이 책의 경우, 1장
을 치밀하게 읽고 '핵심주장'과 그것을 논증하는
데 사용한 '개념'을 분명히 해 두면 서평이 써진
다. 처음에(1장에서) 기본 개념을 철저히 정리하
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의
끝까지 잘 읽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책은 1장의 첫번째 내지는 두번째 문


장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증한 부분은 잘 봐두어야 한다.


쉽게 appeal이 되고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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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사례에 강한 설득력이 있는 경우에는 서평을
쓸 때 인용해도 좋다.

주장이 확장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소제목'을 붙


여 지표로 삼는다.

밑줄은 세 줄 이상 치면 의미가 없다.(주목성이


떨어진다.) 중요한 부분, 문단에는 '박스'를 친다.

논술은 결국 창의적인 사고와 토론인데, 일단


집에서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토론)을 해 본 아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는 정형화된 정답을 강요하고, 할(하고 싶은) 말
하는 아이들에게 싸가지 운운하니 논술을 잘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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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의 주장은 결국 누구나 가르치는 일
과 배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
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다. 그 자격(에의 진입장벽)을 높일수록 경직된
사회가 되고, 교육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
로 전락한다.

외국 저자의 책 서문에 인명이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저자들이 출판사 사장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책의 저술에 기여
contribution한 이들을 기록해 둔 것이다. 그 이
름들을 기억하고 책을 읽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중요한 사람인 줄 알면 된다. 그 인명들은 나중의
확장된 독서를 위한 저자 리스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세 번 이상 등장하게 되면 관련 도서 목록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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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에 등장하는 책은 체크해 두고 번역본이 있
는지 확인한다. 인용된 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
을 하는지 살피고, 사서 읽거나 도서 목록에 추가
한다.

[출처]
http://blog.daum.net/kukwha15/8423715
(2013년 3월 4일 접속)

II. (강의) 노트 필기 매뉴얼

- 일러두기

이 매뉴얼은 내가 공부하면서 얻어듣거나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스스로 조금 바꾸어 본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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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정리한 것이다. 모든 학문분야에 해
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며, 여기 쓴 것이 아주 적절
하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노트 필기하기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때에는 과목을 보고 수강


신청을 하면 낭패를 겪는 수가 많다. 아무리 좋은
제목과 내용을 가진 강좌라해도 가르치는 이에 따
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나는 이 원칙을
대체로 신뢰한다. 따라서 같은 과목이라도 한 교
수에게서 여러번 듣는 것이 낫고, 그 교수가 가르
치는 것이라면 무조건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다.

노트 정리를 기준으로 보면 강의는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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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노트 필기에 유리한 강의
와 그렇지 않은 강의. 강의방식에 따라서는 특정
한 교재가 있어서 그것을 꼼꼼하게 읽어주면서 해
설해주는 강의와 교재없이 교수가 설명하는 강의
로 나눌 수 있다. 어떤 경우든지 노트필기의 관점
에서 보면 노트 필기에 유리한 강의와 그렇지 않
은 강의로 귀착된다. 교재가 없어도 노트필기가
잘되는 강의가 있다. 그것은 그 교수가 그만큼 그
주제를 장악하여 체계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의미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노트 필기가 잘되
는 강의라는 건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지식이 전
개되어 나오는 것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용으
로 적당한 분량의 암기사항이면 끝나는 것을 말하
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만 떠드는 강의에 대해서
는 노트필기가 필요치 않다. 그냥 메모지면 충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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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설명해보겠다.

군에서 제대한 뒤 1985년에 3학년 1학기로 복


학한 내가 수강한 전공 과목 중에는 '인식론'이 있
었다. 그때 나는 수강신청한 과목들을 '집중 학습
과목’, '적당 학습 과목’, '학점 땜질용 과목'으로
나눈뒤, 가장 앞에 적은 것은 심혈을 기울여 공부
하고 중간 것은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해서 해치우
고, 마지막 것은 메모를 바탕으로 시험때에만 잠
깐 공부해서 넘어가는 방식을 택하였다. '인식론'
은 '집중 학습과목'에 해당하였다. 인식론은 철학
과 전공필수였기 때문에 반드시 수강을 해야 했
다. 그러나 담당 교수가 별로였다면 '집중 학습 과
목'에 할당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
요하거나 자신이 관심있는 과목이면서 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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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훌륭하다면 '집중 학습 과목'에 넣어야 하는 것
이다.

나는 나보다 앞서 복학하여 한 두 학기를 보낸


동기들로부터 인식론 담당 교수가 보통 깐깐한 사
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다른 대학에
서 새로 온 교수인데 수강 인원 중에 A를 주는
학생은 단 한 명이라는 것, 수업은 완전히 무미건
조하지만 졸음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한 학기에
규모있는 뭔가를 얻는다는 것, 내가 들은 바는 그
것들이었다. 나는 수강신청을 하면서 이것을 집중
학습과목으로 정하였고, A를 목표로 삼았다.

이 수업의 교재는 맥밀란에서 나온 철학 사전의


인식론 항목, 정확하게 말하면 History of
Epistemology 항목을 복사한 것이었다.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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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 그것을 나누어 준 뒤 나직한 목소리로
그 중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보편논
쟁,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를 다룬
다고 말하였다. 나는 다른 참고서적을 봐야 하는
지가 고민이었다. 대학 2학년까지 다녔다고는 하
나 내가 가진 철학책은 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
사>> 뿐이었다. 2년 동안 술만 마셨고, 그러다가
지원해서 군대에 갔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을 사
야할지도 잘 몰랐고 선배에게 물어보는 것도 마땅
치 않았으며, 게다가 돈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눈
딱감고 교재로 복사해준 것만 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담당 교수는 그 교재를 꼼꼼하게


번역해주면서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
하였다. 처음 한 두 시간은 그냥 흘려 듣고 말았
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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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들어서 연습장에 번역과 설명을 필사하기
시작하였다. 혼자서 궁시렁거리는 것만 같아서 무
심했었는데 들어보니 말 그 자체가 문장이 되는
교수였다. 말도 빠르지 않아서 받아 적기에 그만
이었고, 받아적다보니 졸리지도 않아서 썩 좋았다.
그렇게 받아 적어온 것을 집에 와서 사전과 대조
해가며 여러차례 읽으면서 노트에 다시 정리를 하
였다.

아래 사진은 이렇게해서 만든 노트의 일부분이


다.

노트의 첫 장에는 과목명, 목차, 날짜, 담당 교


수를 적었다.

이 과목은 노트 정리가 어렵지 않았다. 교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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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말을 조리있게 하는 데다가 번역을 깔끔하게
해주어서 다시 대조해 보는 것이 수월했기 때문이
다.

시험공부를 할 때는 이렇게 만들어진 노트를 여


러 번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연필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종이
에 여러번 요약정리를 하였다.

복학한 뒤 첫번째 수업에서 사전을 번역하며 읽


은 것은 그 뒤 나의 공부 방법을 결정해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전에 의거하여 정확한 설명
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전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단어로써 최대한 풍부하게 말할 수 있어
야 한다는 것, 어떤 개념에 대해서 알았다고 하는
것에는 반드시 그것의 역사까지도 포함되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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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을 익히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그 당시에
는 전혀 몰랐던 것이며 내가 나중에 깨닫게 된 것
이다.

어쨌든 얇은 책을 교재로 삼아 꼼꼼하게 강의하


는 수업인 경우 이런 방식의 노트 정리가 썩 도움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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