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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내가 공부하는 방법
강유원) 내가 공부하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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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생인 건 알겠는데, 그런 자각은 선생님
의 존재가 전제될 때에야 가능하니 이는 학생임이
완벽하게 내재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이처럼
선생님이 내준 숙제하듯이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선생님들이나 펼칠 수 있는, 원리와 결말이 뚜렷
하게 들어맞는 <길>을 찾아낼 수 없고, 내 머리
속을 채우기도 급급한 터에 <우리>의 공부 법까지
밝혀낼 수도 없다. 그래서 부탁 받은 제목인 <우
리 공부의 길을 찾아서>를 <내가 공부하는 방법>
이라고 제멋대로 바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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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세상과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세계가 조금
은 다른 탓에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에 해당하는 걸 두서없이 늘어놓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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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다. 훌륭한 선
생님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훌륭하지 못
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을 분별할 방도가 없기 때
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학문적 업적이나 주위 사
람들의 평판을 참고해서 선생님을 찾게 된다. 그
러나 이는 지도 교수를 고르는 방법이지 선생님을
찾는 방법은 아니다. 선생님은 지도 교수 이상의
그 무엇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
서 여기서는 고작 지도 교수 고르는 법을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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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만족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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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이런 교수가 있다면 계속해서 강의를 들어
야 한다. 그래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런 원칙주의자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나머
지 작년에 한 이야기를 또 하는 경우가 없으며,
말을 옮겨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되는 수가 많으
니 공책에 적어 두면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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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원칙 지키기를 기업가에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아무리 어린 사람이어도 존중해
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세상은 나이로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인격으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
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제대로 된 삶의 기
초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공부에
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서도 기본이다.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 사람도 배워두어야 하는 것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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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하는 교수. 출판사에서 넘어온 교정본을 자
신이 교정보는 교수. 새로울 것도 없고, 치열함은
더더욱 없이 사교장으로 변해버린 학회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교수. 대학원 수업 시간을 꽉
채우고 끝내는 교수. 고전만 붙잡고, 세월 가는 것
도 모르고 그것만 읽히는 교수. 논문 주제를 상의
하면 <알아서 써보라>고 하는 교수. 막상 논문을
써 가면 주격 조사나 접속사부터 따지는 교수. 논
문 인용문의 원전을 죄다 찾아보고 잘못된 번역과
적절치 않은 인용을 지적해 주는 교수. 이렇게까
지 해놓고도 <지금까지는 문장 연습과 논문 쓰기
연습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주제를 잘 정하고, 본격
적으로 써보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교수. 자신이
정한 기준에 합당치 않으면 아무리 여러 학기가
지나도 결코 논문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교수. 같
은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가진 견해와 달라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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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주장이 논리적이면 인정해 주는 교수. 자신
에게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에게 다른 학교 강의
하나 알선해 주지 않는 교수. 아무리 오랜 세월을
공부해도 두 사람의 거리가 딱 그 만큼에 멈춰 있
게 하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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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쓸 수가 없다. 그런데 학생은 한국에 있고,
지도 교수는 외국인이어서 외국에 있다면 어떨까?
무서울 게 없다. 아직도 먼길을 가야 할 사람이
게을러지고 망가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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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로써 생각하고 말하는 힘이 길러진다. 이러다
보면 외국의 책을 번역해도 우리말이 안 되는 번
역을 하게 되질 않는다. 공부 가르쳐 주는 것 외
에는 아무것도 신경을 안 써주니까 학생도 자연히
쓸데없는 데 신경 안 쓰고 공부만 하는 습성이 생
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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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데 제일 좋은 건 훌륭한 선생님을 만
나는 일이지만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선
생님 없이도 공부하는 방법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면 훌륭한 학생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이런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
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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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20년쯤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를 만나서
<비법>을 물은 적이 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은 <베껴라>였다. 베끼라니, 표절을 하라는 말인
가? 그런 뜻은 아니었다. 초보자가 대단한 걸 만
들어보겠다고 덤벼봤자 땀만 빼고 시간만 낭비되
니 잘된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보는 일을 되풀
이해야 기본을 익힐 수 있다는 거였다. 똑같은 물
체를 두고 그대로 그린다 해도 그리는 사람마다
그림은 다르다. 초보자가 내놓은 그림과 숙련자가
내놓은 그림, 대가가 내놓은 그림은 아주 다르다.
어떤 대가의 그림은 전혀 엉뚱하기까지 하다. 그
러면 그 대가는 처음부터 그런 엉뚱한 그림을 그
렸을까? 그건 아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데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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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철학사를 여러 차례 읽는 것이다. 힐쉬베르
거의 {서양철학사}(이문출판사)가 너무 두껍다면
얇은 것이라도 골라서 열심히 되풀이해서 읽는 것
이다. 베끼기를 할 때는 베낄 책을 잘 골라야 한
다. 일테면 서양 근대철학사를 공부하려면 최소한
코풀스턴의 철학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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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에 빠지며 급기야는 도사가 된다. 이런 도사들
은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
신이 접하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읽은 몇 안 되는
책 속에 나온 말로만 설명할 뿐이며,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기가 좋아하는 학자의 관점에서만 바라
보려 한다. 이런 도사는 철학 공부하는 사람 중에
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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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각 주제에 관련된 철학자들의 원전을
부분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덧붙여 두었기 때
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책도
50번은 되풀이해서 읽어야 한다. 철학사를 읽든
철학의 제문제를 읽든 주의할 점은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처
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한다. 누가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만 읽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에게는 그
게 중요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자기 맘에
드는 학설이나 학자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것은 정말로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맘에 드는 사
람이라 해도 그가 모든 문제에 대해 답을 내주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의 학설은 수많은 대답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무덤덤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 학
자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이건 공부하는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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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아니라 신앙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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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그 결과 아는 게 많아져서 장광설을 쏟아놓
는다. 게다가 그들은 최근의 것what's new에 대
한 관심도 지대해서 항상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하면, 장광설은 사라지고 말을 더듬게
되며, 그 점을 지적하면 원래 제대로 된 공부는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우격다짐을 하곤 한다.
언뜻 듣기에는 옳아 보이나 <학>이라는 게 <체계
적 지식>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하
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많은 사례
를 들어가며 대중의 수준에 걸맞게 성교육을 잘한
다 해도 그는 성의학자가 아니며, 자장면을 아무
리 많이 팔았다 해도 그는 경영학자가 아니다. 어
쨌든 베끼기를 거치지 않은 독학은 시간 낭비, 지
적인 허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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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체득하는 이점이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대개는 참고문헌 목록을 작성하고
이 책 저 책 들춰보면서 노트에 정리한 뒤 끝내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책도 기억에 남지 않고 문장 몇 개만 막연한
추억처럼 머리 속을 둥둥 떠다닌다. 차라리 가장
표준적인 책을 한 권 정해서 모든 말과 문장을 따
져가며 끝까지 읽는 게 낫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데 막상
실천하려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참고
문헌을 적게 읽으면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
정, 이거 한 권 읽다가 새로운 것을 놓치지 않을
까 하는 불안 따위가 엄습하는 것이다. 이런 걱정
과 불안이 생겨나는 것은 베끼기를 통해 축적한
기본이 없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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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의 철학사를 충실히 읽은 이는 철학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건 아니며, 자고 일어나면 새
로운 관점이 생겨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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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를 열심히 하는 건 기초를 다지는 일이
다. 기초가 다져졌으면 구체적인 자기 공부에 들
어갈 차례다. 도대체 무얼 공부할 것인지, 다시 말
해서 무엇을 주제로 삼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
제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인데도 어려워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떤 이는 그걸 다른 사
람에게 물어보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한다. 간
단히 말해서 공부 주제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여야 한다. 실존적인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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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고민해 본 문제를 다듬어서 철학적 주제로
삼는 것이다. 별로 해주는 것 없이 규제만 하고
세금만 잔뜩 걷어 가는 국가가 못마땅했으면 국가
론을 주제로 삼아보는 것도 좋다. 자기가 만나는
사람마다 죽어나가는 게 이상했다면 존재와 무의
문제를 주제로 택해도 될 것이다. 주제를 이런 식
으로 정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거, 남들이 하는
거 붙잡아서 공부하다 보면 유행이 지나서 말짱
헛것이 될 수도 있고,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만
하게 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공부
는 얼마 가지 않아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따로 노는 공부가 가면 얼마나 가겠
는가? 자기 스스로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주제
를 가지고 남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
게 흥미가 떨어지면 최신 이론 들춰서 적당히 요
약 정리한 논문이나 쓰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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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내용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주느냐고 묻는다면 <철학은 본래 메타 학문이므로
구체적인 현실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고상한 대답을 하게 된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
는 게 낫다. <이 논문은 내 삶과도 별로 관계가
없고, 단지 나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썼을 뿐>이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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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사실이므로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 원전을 읽
기 위해서 해당 외국어를 익혀야 함은 당연하다.
철학자의 책을 읽어나갈 때는 머리를 비우고 그의
입장에 서서 읽어야 한다. 괜한 말 덧붙여 봐야
쓸데없는 일이고 감상일 뿐이다. 철학자의 책을
충분히 읽어서 그 책에 등장하는 개념과 논지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관련된
책, 즉 해설서나 참고 문헌을 읽는다. 이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관심 가진 주
제에 대해 가장 심오한 학설을 제시한 학자가 칸
트라면 칸트의 책부터 읽어야지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철학}(민음사)부터 읽기 시작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순서를 바꾸면, 칸트의 책을 읽을 때에
도 이미 들뢰즈가 규정한 칸트, 즉 <들뢰즈 버전
의 칸트>를 머리에 담고 들어가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글에도 들뢰즈가 강조한 문장만 인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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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에 이르게 된다. 도서관에서 어떤 철학자에
관한 논문을 여러 권 가져다 놓고 인용된 원문을
비교해 보라. 거의 다 똑같은 걸 인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눈으로 읽은 성과를 발견
할 수 없다. 순서를 바꿔 공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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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다. 참고 서적을 읽은 다음에는 다시 철학자
의 책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읽는다. 누가 아무 페
이지나 펼쳐서 이거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나름대
로 논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자기 글을 써볼 차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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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가자면 본문에
는 그의 원전에서 인용한 것만이 들어가야 한다.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철학}에 담긴 내용은 각주
에서 처리하면 된다. 들뢰즈가 제시한 칸트 해석
을 논문의 주제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데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논문이 아니라 소개글,
또는 에세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학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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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그걸 하는 건 도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원
저작과 대결함으로써 철학자의 사유의 힘을 익히
고 깊이를 다져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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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붙인 글로 리포트를 써내던 사람이 자기 논문
을 쓰기 시작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떼다 붙인
글들도 문장이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에 아무 주제나 붙잡고 글을 써봐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일기라도 날마다 써야 한다. 말은 일사
천린데 글은 엉망이라면 공부를 접는 게 낫다. 생
각이 표면에서만 떠돌 뿐 되새겨지지 않은 증거이
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책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정리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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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다시 할 기회가 없다. 글은 최대한 간결하
게 써야 한다. 열 개의 문장으로 하던 이야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걸 단 한 문장으로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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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거 좋은 점 하나도 없다. 우선 선배는 불
확실하게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삼 사년 선배
라 해도 자신보다 크게 나을 것 없다. 또 선배에
게 자주 묻다 보면 공부와는 관계없는 <인간 관
계>가 생겨서 훗날 그 선배의 글을 냉정하게 비판
하기도 어렵게 되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하기도 어
렵다. 선배를 우습게 안다고 말하는 선배는 정말
로 우습게 알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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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할 일은 공부를 심화시키는 과정이
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철학자의 사고를 검토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나의 언어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었다면 이제부터 하는 일은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
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참으로 복합적인 영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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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로써 이루어진다. 철학으로 간주되는 영역만
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공부를
심화시키는 목표는 교수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
니라 학자가 되는 데 있다. 공부는 벼슬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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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발표도 하고 마찬가지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사교도 하고 자신의 글이 학회지에 실리
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수가 되고 나서 그 바닥이
편협하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건, 스스로가 그런
것도 예측하지 못한 바보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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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선 읽어야 할 분야는 역사이다. 통사는 물론
이고 세부적인 항목을 다룬 역사책들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역사책 읽기는 철학적 주제들에게
생동성을 가져다준다. 몰역사적인 철학적 사유는
위험한 것이다. 철학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부
응하려면 과거에는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전범으로 삼아 오늘날 요구하는 바를 파악해
야 한다. 과거와 오늘날의 끊임없는 대조를 통해
서만 철학적 탐구가 빠져들 수 있는 추상성이라는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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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져야만 자신의 철학을 정립할 기본을 갖출
수 있고, 그것이 공허한 탁상공론이 되는 것을 막
을 수 있다. 기초가 튼튼한 메타 학문으로서의 철
학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철학
속에 <삶>이 들어간다. <생활 속의 철학>은 고매
한 에세이 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
군가의 말처럼 철학 공부하는 이들도 시대의 아들
이다. 그러니 시대를 넘어설 수 없고, 시대를 넘어
서는 사유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다. 시대에 충실한 학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보편
적인 사유로 가는 첩경이 아닐까. 철학사에서 접
하는 철학들 중에서 오로지 철학만 공부해서 얻어
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든 분야를 골고루 천착한 결과 이루어진 것들이
었다. 학자가 되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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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학자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훌륭
한 학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
는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성인데, 이게
구체적으로는 먹고 사는 일과 연결되어 있어서 자
기를 먹여 살려주는 사람을 욕할 수 없게 되어 있
기 때문이다. 자기 목이 걸려 있는 일에 소신을
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말로는 대의명분을 지
껄여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열이면 아홉이 수
그러드는 게 사람의 행태다. 그러니 아예 속 편하
게 학문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지는 것이 학문적
독립성을 지키는 데에는 가장 좋을 것이다. 게다
가 직업을 가지면 구체적인 현실 속에 정신이 자
리잡을 수 있고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자학과 자만
에 빠지지도 않는다. 글을 통한 현실 공부는 아무
리 열심히 해도 이차적인 것일 뿐이다.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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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존경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당장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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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어설프게나마 적어본 <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한마
디로 말하자면 <자기 학대>이다. 스스로를 괴롭히
면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매저키스트가 된다
면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해서
명예를 얻지 않아도 슬프지 않으며, 공부가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서럽지 않다. 어쩌면 이런 상태
가 바로, 옛사람들이 말했다는 <위기지학(爲己之
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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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내가 공부하는 방법', <현대사상> 9호,
민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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