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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탈피(1)
제3장탈피(2)
[BL] 사냥의밤(외전증보판) 2
목차

제3장탈피(1)
제3장탈피(2)
제3장탈피(1)

“도망쳐요. 설우씨.”

이틀동안이나, 열이올랐다내렸다, 통증으로의식을차렸다잃기를반복하다, 겨우정신이든참이었다. 깨어난


나를붙잡고최교수는다짜고짜그말부터했다. 내옆을쭉지키던백도하는어디로갔는지자리를비운상태였다.

“그작자, 아무래도정신나간인간같아요.”

그작자라는건백도하를지칭하는말인듯했다. 그는내가입을열기도전에바로종알거렸다.

“로열오메가도아닌상대와성관계에마킹까지하다니. 페로몬쇼크가얼마나무서운건데. 살인미수범이랑다를


게뭐야. 다행히설우씨가잘견뎌냈기에망정이죠. 그정도로페로몬쇼크가지독하게온걸보면그작자, 분명
콘돔도하지않고안에다사정했죠?”

아무리그와오래알고지낸사이라해도얼굴에열이오르는건어쩔수없었다.

“저, 그런데최교수님.”
“네.”
“마킹이뭔가요?”

계속궁금했던단어의뜻을묻자최교수의눈이휘둥그레졌다. 이내그가땅이꺼져라깊게한숨을내쉬었다.

“어휴. 설우씨, 진짜. 당신같이순진한사람이어떻게그런인간한테걸려서는. 그작자가당신목에낸붉은


흔적이요. 그걸마킹이라고해요.”

최교수가손으로내목덜미를가리켜보였다. 백도하에게유난히집요하게물리고빨려목에붉은흔적이가득한
걸봤던기억이났다. 그부분엔커다란반창고가붙어있었다.
“보통로열알파가상대방을제짝으로인정했을때내는흔적인데, 일반알파들이내는마킹의개념보다좀더
강한의미예요. 그래서로열알파들은문란한성관계를해도상대의목에웬만하면흔적을내지않는데…….”
“그럴리가요.”

기가막혀서최교수의말을딱잘랐다.

“그럴리가없습니다. 왜저한테그런걸남기겠어요. 백도하씨같은사람이왜. 흥분해서이성을잃다보니


자기도모르게그런짓을한거겠죠.”

최교수의한숨이더욱깊어졌다.
제짝으로인정하는상대에게만남기는흔적이라니. 아무리생각해도말이안되는소리였다. 난목을쓰다듬으며
인상을썼다.

“혹시설우씨. 그작자에게협박당하고있다거나합의되지않은관계를요구당하는거라면제게말하세요.”
“그런건아닙니다. 저도원한관계였고…….”

말은끝까지이어지지못했다. 얼굴이시뻘겋게달아올라서최교수의얼굴을바라볼수가없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최교수는다정하게내어깨를도닥이면서진심으로날위로했다. 날보는시선에안쓰러운기색이
가득했다.

“설우씨가워낙순진해서그작자에게홀랑넘어간거겠죠. 로열알파란게, 참아이러니하게도정말위험한


족속들인데치명적인매력이넘치는존재이기도해요. 하지만유설우씨는감당못할거예요. 제충고허투루듣지
말고헤어져요, 당장.”

헤어지고말고, 그럴정도의깊은관계던가. 백도하와내관계가? 목이간질거려침대옆냉장고위에놓인


물병에손을뻗자, 최교수가대신물을따라주며다시말을이었다.

“그작자가저를포함한의사들을다불러놓고설우씨의몸상태에대해서하나하나다설명하게했어요. 아니,
대체뭐하는작자이기에병원장까지달려와서는그인간앞에서설설긴대요? 여하튼거만하게팔짱을끼고서
설명을다듣고그작자가뭐라했는지알아요?”

“그러니까유설우씨는임신도가능하다는거죠?”
마시던물을뿜을뻔했다. 다시생각해도기가막힌모양인지최교수도헛웃음을쳤다.

“그건불가능하다고하니까왜안되냐고따져묻기에유설우씨에게페로몬분비가된현상은일시적인현상일
수있다, 그렇다고완전히오메가로변이한것도아니고, 오메가로변이했다고해도로열오메가가아닌보통의
오메가가로열알파의페로몬을버텨내고아이를갖는사례자체가드물다, 다들입을모아설명했는데안
듣더라고요.”
“……정말가능합니까? 임신?”

난정말심각하게진지해져서물었다. 그러자“하하. 그럴리가요.” 하며웃던최교수의얼굴이갑자기심각하게


굳었다.

“그러고보니설우씨모친이우성오메가라고했었죠?”

고개만끄덕였다.

“사실설우씨모친부터가굉장히이례적인케이스예요. 우성오메가가로열알파와관계해서아이를갖는다는
거요.”

최교수가말하다말고잠시생각에잠겼다. 그러다옆구리에끼고온차트를황급히열어들여다봤다.

“설우씨가응급실에왔던때, 매칭시스템수치가30대까지올라갔었어요. 이건일반오메가에준하는


수치거든요. 그런데그이후부터서서히떨어져서지금은10대예요. 전에왔던때에는0대까지올라갔잖아요.
그거보다더올라간상태예요.”
“그게무슨의미입니까?”

그가차트에서눈을떼고날봤다.

“미약하지만페로몬이생성되고있는상태란소리죠.”

나도덩달아표정이묘하게일그러졌다.

“그런말도안되는일이…… 가능해요?”
“그런말도안되는일이벌어졌고, 아직진행중이네요. 당신몸에서. 솔직히저도아직까지믿기지가않아요.”
짧게한숨을내쉰뒤최교수가바로말을이었다.

“전에정기검진때, 로열알파와부딪치면서몸속에페로몬이흘러들었던것같다고말했었잖아요. 그로열


알파가저작자죠?”

그의말에수긍하진않았지만부정하지도않았다.

“로열알파의페로몬에상대가영향을받아특이한증상을일으킨케이스가없지는않거든요. 그들의페로몬이
지닌독성이나영향력도다천차만별이고. 또설우씨자체가워낙희귀한특이체질이기도하니까요.”
“그럼전오메가로변이한건가요?”
“그건아닌것같아요. 하지만그작자의페로몬으로인해설우씨의몸에변화가생긴건확실해요. 국내엔설우
씨같은케이스의환자가없어서이번같은현상은어떻다, 정확히설명할수가없어요. 일단해외에자문을
구해놓고, 매칭시스템본사에도문의를넣어둔상태이긴해요. 설우씨도언제든지몸상태나체질이변할수
있다는사실을염두에두는편이좋을것같고.”

장황하게설명을늘어놓던최교수가내어깨를움켜잡고다시한번경고했다.

“그냥도망쳐요.”

아까부터계속도망치라고한다. 혼자진지하게구는최교수의모습이왠지우스웠다.

“거창하게도망씩이나가야할필요가있을까요? 어차피그사람은저한테금방질릴텐데요.”
“제가말했죠? 마킹, 그것부터가장난이아니라니까요?”

그때였다. 똑똑, 병실문을노크하는소리가들리더니곧드르륵문을열고슈트차림을한남자가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백대표님의전담비서실장인한민우라고합니다. 대표님이급한용무로자리를비우시게되어


제가대신모시러왔습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나도마주인사했다. 나와비슷한사람일테다. 내가유현서의그림자처럼놈을따라다니며보좌하듯, 백도하의


옆에붙어다니며그를보좌하는남자.
“오늘퇴원해도된다하시기에, 퇴원수속은제가미리해두었습니다.”
“그럴필요까진없었는데요. 병원비는나중에제가…….”
“그런건유설우씨가신경쓰실일이아닙니다.”

남자가하얀이를드러내고환하게웃어보였다. 지극히사무적인미소였다.

“천천히준비하고나오시면됩니다. 밖에서대기하고있겠습니다. 아, 그런데오늘치억제제는드셨을까요?


약하지만페로몬이풍기고있는데요.”

최교수가옆에서한마디거들었다.

“페로몬이풍기곤있지만굉장히약한데요.”
“약해도풍기고있으니문제입니다.”

최교수의말을받아치는한실장의어조는단호했다.

“저, 그런것까지한실장님께서관여하십니까?”
“대표님이그무엇보다유설우씨의페로몬을확실히관리하라는명령을내리셔서요. 마침교수님도함께계시니
약처방을받고, 확실히페로몬제어가된뒤에퇴실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자기할말만내뱉곤, 웃는얼굴로인사하고돌아서서나갔다. 최교수가저기요, 하고부르는소리에도


응답하지않고서.

“어떻게든도망쳐봐요.”

잠시깔린정적을찢고최교수의목소리가귓속으로흘러들었다. 하지만이번엔그의충고에한마디가더
붙었다.

“가능할것같진않지만.”

***

약처방을받고매칭시스템검사까지다시해야했으므로퇴실까진제법오랜시간이걸렸다.
“억제제를처방하니바로수치가0대로내려가긴하네요. 어휴. 아무리봐도믿을수가없어요. 설우씨에게
억제제를처방할날이오다니…….”

검사결과를확인한최교수는참담한심경인듯했다.

“일시적인현상일거예요. 매칭시스템본사에의뢰한검사결과가나오면다시진료받으러와요. 그전까지


억제제는매일꼭챙겨먹고, 중화제는상대의페로몬에영향을받을때먹으면되고. 혹시성관계시과다한페로몬
쇼크가오면…….”

말을하다말고그가내손을꼭움켜쥐었다.

“콘돔해요. 꼭. 아니지, 성접촉을가급적피해요. 임신……까진불가능할것같긴한데, 또모르는일이거든요.


이젠그무엇도확실히장담하질못하겠네요. 안끼고그냥하면죽여버려요.”

그게가능할까. 그러다그가페로몬을최대치로개방하기라도하면내가되레죽을것같은데.
진료실밖으로나오며핸드폰을꺼내전원을켜봤다. 배터리가다된것인지전원이들어오질않았다. 의식을
잃었던이틀이나충전도하지않고방치해두었으니당연한일이었다.
현서놈은어떻게됐을까. 그자식, 아주미쳐버렸을텐데.
한민우를찾기는어렵지않았다. 1층로비로내려서자마자그를바로발견할수있었다. 지나치게말끔한슈트
차림을한그는단연코눈에띄는존재였다.

“짐은따로없으십니까?”

없었다. 입고있는옷도백도하가병원으로데려올때대충갈아입힌것이었다. 어깨위에걸친코트도그의


것이고. 응급실에실려올땐몰랐는데그가내게입힌옷은전부고급이었다. 코트는태그도떼지않은새것이었다.
살아오면서이렇게좋은옷은한번도몸에걸쳐본적이없었다. 드레스룸에서유현서의옷을꺼내서가져다준적은
많았어도.
한민우는상대를배려해주는것이몸에밴남자였다. 몇발짝뒤에붙어서서조용히기척도없이따라왔고,
그러다눈앞에문이있으면얼른성큼걸어나와먼저문을열어주었다.

“대표님의저택으로바로모실까요?”
병원밖으로나와주차된차로향하면서묻는소리에깜짝놀랐다. 내가거길왜가?

“네? 아뇨. 집으로가야죠.”


“집이라하심은유회장님댁말씀이십니까?”
“전회장님본가가아니라회장님막내아들의저택에머물고있습니다.”
“유현서씨의저택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주차장에유난히눈에띄는고급세단이있구나싶었는데, 역시나였다. 그는날그차앞으로데려갔다. 그리고


재빨리앞으로걸어나가정중하게뒷문을열어주었다.
유현서를극진히받들기만했지, 누구에게이런대우를받아본적이없어서황송하기만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흘긋거리며보는시선이느껴졌다. 부러움가득한시선과수군거림은주로유현서에게향했던것들이라
기분이묘했다.

“감사합니다.”

깍듯하게고개를숙여인사하며차에올라탔다. 뒷좌석문을닫은한민우가빙돌아서서운전석에탔다. 그에게


핸드폰충전을부탁하면서재차고맙다는인사를했다.

“저에게일일이인사하실필요없습니다. 전할일을하는것뿐인데요. 앞으로뵐일이많을텐데계속이러시면


제가부담스럽습니다.”

아, 네, 대답을얼버무렸다. 앞으로뵐일이많을텐데, 라는소리가신발속에굴러다니는돌멩이처럼신경


쓰였지만내색은하지않았다. 차에시동을거는것과동시에한민우의핸드폰이울렸다. 그는곧내게제핸드폰을
건넸다.

“대표님이유설우씨를바꿔달라하십니다.”

전화기를귀에갖다대자그의나른한음성이흘러나왔다.

[좀괜찮아졌어요?]
“네. 퇴원하고집으로가는중입니다.”
[약은잘챙겨먹었고?]
“네.”
[잘했어요.]

어째어린애한테하는말투같았다.

[집이라면유현서와사는그집으로가는겁니까? 내집에서지내도돼요. 난집에머무는시간이많지않으니까.]


“저, 백도하씨.”
[또새침하게쏘아붙일기세인데?]

나와는어울리지않는, 그누구도날지칭해쓰지않고, 쓸생각도하지않는온갖단어와표현이그의입에서다


나온다.

“제가왜백도하씨의집에서지내야합니까? 제가집이없는것도아니고. 또그럴이유도없고요.”


[내가내집에당신을눌러앉히고싶거든. 퇴근해서집에가면바로볼수있게.]
“무슨. 장식용호랑이머리박제도아니고.”

그의듣기좋은웃음소리가핸드폰에서흘러나왔다.

“안좋은버릇입니다. 그거.”
[뭐가요?]
“그런식으로여지를주고기대하게하는, 그런거요.”

말을하고도아차싶었다. 이런말은하지말걸. 짧은웃음소리가들리더니그의목소리가이어졌다.

[기대해도돼요. 당신이그럴각오가되어있다면.]
“그럴각오라뇨?”
[날감당할각오말입니다.]

잠시말을잃었다. 무슨말을해야할지도무지알수가없었다. 짧은침묵을찢은건백도하의목소리였다.

[난당신인생에아주깊고집요하게관여하고집착하고파고들겁니다. 느긋하게기다려줄생각이었는데마음이
급해졌거든. 당신의향기를맡고어떤개새끼들이꼬일지모르니까.]
“…….”
침묵했다. 섣불리말을뱉느니입을다물고있는편이차라리나을것같았다. 조용한호흡소리가차안에깔렸다.
핸드폰에서도백도하의규칙적인숨소리가흘러나왔다. 이윽고후, 짧은한숨소리에이어그의목소리가들렸다.

[나만이러는게아니라고말해줄래요?]

“뭐가말입니까?”
[당신한테안달나서미치겠는거. 숨쉴때마다당신의향기가맴돌아서돌아버리겠는거. 지금당장당신한테
달려가서당신향기를흠뻑들이마시고키스하고싶은거. 당신이날노려보는얼굴, 우는얼굴, 웃는얼굴을보고
싶은거.]

쉼없이떠벌리는목소리에는조금의떨림도없었다. 평온하게, 담담하게, 대본을읊듯이백도하는말을늘어놓을


뿐이었다.

[아무래도제대로미친것같아. 유설우씨, 당신생각만나. 당신만생각하면파블로프의개처럼발정이나.


당신은모르겠지. 병원에서잠든당신의창백한얼굴을보면서, 앓는소리를내며뒤척거리고괴로워하는당신을
보면서, 당신위에올라타옷을잡아찢고내흔적이남은목을피가나도록물어뜯고몸속에내좆을쑤셔박아
흔드는상상만했다는거. 개같죠?]

목소리는담담했지만말의내용까지담백하진않았다. 목소리가흘러드는귓속이화상을입은것처럼뜨거웠다.
얼굴에열이올라화끈거렸다. 혹시통화내용이밖으로새어나가진않았을까걱정돼서, 흘긋운전석쪽을바라봤다.
한실장은태연히운전을할뿐이었다.

[나만이러는게아니라고말해요.]

처음엔부탁조더니이젠명령조였다.

“전…….”

입을열었다가머릿속에떠도는생각들이정리가되지않아다시입을닫았다.
수화기너머에서‘도하야!’ 하고부르는나이지긋한중년여자의목소리가울렸다.

[일단은끊겠습니다. 나중에또통화합시다.]
전화를끊는가싶더니, 그가뒤늦게할말이생각난모양인지말을덧붙였다.

[통화를하기보다는곧제가만나러가죠.]

상투적인인사뒤에전화가뚝끊겼다. 통화가끊긴핸드폰을잠시멍하게바라봤다.

“회장님께서또쓰러지셨습니다.”

운전석쪽에서한실장의목소리가들렸다. 그제야정신을차려고개를들어올렸다. 회장님이란건백도하의


부친일테다.

“회장님께서죽음을앞두시다보니남은자식들이눈에밟히시는모양입니다. 특히회장님께서백대표님을무척
좋아하십니다. 눈감으시기전에대표님에게어울리는조건좋은짝을이어주고싶어하시죠.”

한실장이룸미러로뒷좌석쪽의나를흘금바라봤다. 말투는지극히사무적이었으나, 흘긋거리며한번씩보는


눈빛에서날무시하는기색이다읽혔다.

“저희백대표님은회장님을쏙빼닮아, 회장님의자제분들중에가장뛰어납니다. 그래서회장님께서가장


신뢰하시죠. 그간회장님혼자짊어지고끌어오신짐을고스란히대표님이짊어져야할터라대표님의파트너는
단순한반려자가아닌, 대표님을이끌어주고함께길을헤쳐갈유능한파트너가되실분이적합할테고요. 대표님은
기업의후계자인동시에로열알파라원초적인본능에휩쓸리기보다는실리에집중해파트너를선택하셔야할
위치에계십니다.”

“무슨말씀이십니까?”
“많은사람들이대표님에게쉽게접근합니다. 하지만대표님은다가오는상대를쉽게받아주시진않죠. 워낙
까다로운분이라. 그런분이이렇게적극적으로나서는것이이례적인일이라진심으로두분의관계를응원해
드리고싶긴합니다만. 현실의벽을무시할순없으니까요.”

그가잠시말을끊고핸들을틀어방향을돌렸다.

“자신의처지를생각하시길바랍니다. 유설우씨.”

뒤이어그가덧붙인말이결국본론이었다.
어디서많이듣던소리였다. 숱하게들어왔던말이다. 네주제를알라는소리.
마치내가주제도모르고백도하에게매달린다는투로말하는데, 억울하고분통이터져서눈이다시큰거렸다.
멀쩡히나름대로잘살고있는인생에불쑥난입해일상을깨부순게누군데.

“불쾌하셨다면죄송합니다.”

불쾌하라고한소리면서저런다. 할말은많았지만꾹꾹눌러참고, 한실장에게그의핸드폰을건네며말했다.

“제핸드폰좀주시겠습니까?”

그가내가내민핸드폰을가져가고, 충전을부탁한내핸드폰을건네줬다. 핸드폰을건네받으면서차창밖에


보이는건널목쪽을가리켜보였다.

“저앞에세워주십시오.”
“유현서씨의집까지는한참남았지않나요?”
“세워주십시오.”

재차말하자, 그는더이상토달지않고건널목앞에차를세웠다. 차문을열고내리기전에한마디쏟아냈다.

“다시는한실장님을뵐일, 없을겁니다.”

차갑게쏘아붙이고내린뒤, 일부러차문을쾅닫았다. 차는내가내리자마자빠르게움직여눈앞에서사라졌다.


혐오와경멸, 무시를당하는것에는익숙했다. 하지만지금까지와는다른새로운오물을뒤집어쓴기분이었다.
제대로쏘아붙이지도못하고낯선곳의건널목앞에멀뚱히서서헛웃음만칠뿐이었다. 미친척, 욕이라도퍼부어
주고내릴것을.
난아무것도하지않았다. 그저살아갈뿐인데, 여기저기서날들이받는다.
코트주머니속에서핸드폰을꺼냈다. 손끝에닿는보드라운코트의감촉. 황홀하게보드랍고매끄럽고가벼운데
따뜻하다. 몇년째걸치고다니는무겁게축축늘어지는내낡아빠진코트와는달리.
입은것같지도않은코트의가벼움이어색하기만했다. 내몸에맞지않는남의옷이니까.
핸드폰전원을켜자마자기다렸다는듯전화가울렸다.
유현서도, 유회장도아니었다. 사모님에게서걸려온전화였다. 사모님이내게전화를한건처음이었다. 그토록
예뻐죽는막내아들, 유현서에게관련된일이겠지. 또무슨사고를쳤기에. 그런일이아니라면나를극도로
혐오하는사모님이내게전화를할리가. 잠깐망설이다마지못해전화를받았다.
전화를받자마자사모님이다급하게외쳤다.
[유실장! 이제야전화통화가되네. 왜전화를안받았어? 유실장. 어디야? 우리현서, 현서가어디있는지알아?
현서좀찾아줄래? 부탁이야. 흑흑. 현서가며칠전밤에전화를해서이상한소리를하다가전화를끊었는데, 그
이후부터계속연락이안돼. 집에도없고, 친구들도다모른대. 대체이애가어디있는지모르겠어.]

사모님은정상이아니었다. 두서없이횡설수설중얼거리더니이내흐느끼는소리가흘러나왔다.

***

유현서가무작정백도하의회사에찾아갔다가모욕을당한날밤, 놈은술에만취해사모님에게전화를걸었다고
한다.

[엄마. 나속상해미칠것같아. 내가누군데. 나유현서잖아. 다들나한테설설기잖아. 나대단한놈이잖아? 근데


백도하그새끼만, 그개새끼만날좆같이알아. 내가싫대. 날선택하는일은없을거래. 씨발새끼. 더럽게눈높은
새끼. 재수없는새낀데씨발, 그게또좋아. 그래도너무좋아. 엄마. 나밸도없는새끼인가봐.]

술에취해온갖욕을섞은소리를줄줄늘어놓다가흐느껴울다가욕을하다가,

[나죽고싶어. 속상해서죽어버릴래. 너무우울해.]

그말을마지막으로내뱉고는전화를끊었다고한다. 그이후에는아예핸드폰을꺼놨고. 사모님은당장내게도


전화를했는데나조차전화를받지않았던것이다. 사모님입장에서는미칠노릇이었을테다.

하지만어디그놈이죽을놈인가. 누굴죽이면죽였지. 자기자식인데그렇게모를까.

[우리애좀찾아줘. 짐작가는곳이라도있어? 우리현서가잘못되기라도하면백도하, 그새끼를갈가리찢어


죽여버릴거야!]

울며사정하던사모님이짐승같이악을써댔다.
짐작가는데가몇군데있었다. 유현서놈이만나는섹스파트너가몇있는데, 그들에게전화를다걸어봤다.
그중한놈이포위망에걸렸다.

[네. 현서, 우리집에있어요. 제발데리고가요. 전시회가코앞인데작업을못하겠어.]


강원도별장에서은둔하듯이처박혀살며그림을그리는화가였다.
로열알파이고이름은하성호. 그길로택시를타고집으로가차고에있는유현서의차를몰고강원도로
내려갔다. 빠르게움직인이유는유현서가걱정이되어서가아니라내가귀찮아질것같아서였다.

“현서, 어디에있습니까?”

하성호의별장에도착하자마자, 문을열어준집주인에게인사도하지않고들어가놈부터찾았다.

“방에서자고있어요.”

하성호가턱짓으로침실쪽을가리켰다. 당장달려가침실문을열어젖혔다. 방안은독한술냄새와매캐한


연기로가득했다. 단순한담배연기는아니었다. 역시테이블위에주사기와약병이나뒹구는게보였다.
넓은침대위에애벌레처럼웅크려누워잠이든유현서를흔들어깨웠다. 놈은으으, 앓는소리만내며좀처럼
눈을뜨질못했다.

“페로몬쇼크가왔을지도몰라요. 이틀내내섹스만했거든요. 쇼크가왔다해도현서는로열오메가라크게


이상은없을테지만요.”

어느새하성호가들어와내옆에서있었다. 그에게서독특한향기가풍겼다. 페로몬은아니었다. 향수냄새에


섞인물감냄새다. 이집에올때마다늘나는냄새.

“마약도했습니까?”

하성호가어깨를으쓱해보였다. 뭐그리당연한걸묻느냐는듯한제스처였다. 한숨이절로나왔다. 유회장


내외에겐유현서가세상물정하나모르는, 물가에내놓은애같이보이는모양이지만아니었다. 놈은지나치게
방탕한어른이었다.
페로몬이넘쳐나는건로열오메가인유현서도마찬가지였다. 페로몬을방출하는용도로주기적으로섹스파티를
벌이곤하는데그게늘과했다. 한명, 혹은여러명의알파들과난잡하게어울리며술과마약, 페로몬에취해짐승
같은섹스를해댔다.
도무지정신을못차리고드러누운유현서를난감하게바라보고있노라니, 날빤히보는시선이느껴졌다. 시선을
돌려그를보고물었다.

“왜그렇게보십니까?”
“연애한다더니설우씨도애인과화끈한시간을보냈나봐요?”

하성호는노골적으로내얼굴, 붓기는가라앉았지만피딱지가앉은입술, 반창고가붙은목을차례로훑었다.


무례하게날빤히보는건백도하도마찬가지였지만하성호의시선은불쾌하기만했다. 축축한뱀혓바닥이피부
위를핥는듯한기분이었다.
하성호가멋대로물감묻은손을뻗어반창고가붙은내목덜미를건드렸다.

“상대는알파예요?”

손끝이반창고위를의미심장하게훑었다. 나는흠칫놀라몸을비틀어서놈의손을떨쳐냈다.
하성호의입가에웃음이배어났다. 같은로열알파지만백도하와는완전히다른타입이다. 부드럽고선이고운
외모에말투도나긋나긋했고, 행동에도우아함과기품이묻어났다. 그린듯한귀족도련님같은사내라다들
하성호를좋게봤다.
하지만난늘저남자가기분나쁘다고생각했다. 백도하가한결같이무례하다면저남자는자상한가면뒤에
잔인함과무도함을숨기고있다. 겉과속이완전히다른질이나쁜부류다. 저반드르르한껍데기안에숨겨진
본성이얼마나추악하고더러운지, 잘안다.
동화속요정의집같은이곳에서얼마나많은끔찍한일이벌어졌는지, 페로몬파티라이름붙여진집단난교
파티를벌이며얼마나많은파트너들을휘두르고망가뜨리고부쉈는지도.
그렇다고해도나와는상관없는일이었다. 저놈의기분나쁜관심이내게향하는일은없었으니까. 난저남자의
눈밖에벗어난사물에불과했다. 유현서가이곳에서몇날며칠처박혀눈돌아간짐승새끼들과뒤엉켜난교를
벌이든말든, 난철저한외부자였다. 이집의주인인저놈뿐만아니라이곳을찾는놈들모두날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일반알파는아닌것같은데. 목에그거, 반창고좀떼어볼래요?”

날보는하성호의갈색동공이기분나쁘게번득였다. 놈이또손을뻗기에아예옆으로멀찍이물러났다.

“왜남의일에이렇게신경쓰시는지모르겠습니다.”
“그냥좀신기해서요. 설우씨를본지1년이다되어가는데한번도이런일이없었으니까.”
“끄으으.”
마침유현서가괴롭게신음하는소리에나는시선을내리깔았다. 일어나보라며녀석을흔드는와중에도
하성호는계속지껄였다.

“연애는커녕자위는하나? 싶을정도로딱딱하고건조한이미지였는데갑자기섹스했다고광고라도하듯이
흔적을주렁주렁달고나타난게우습기도하고.”

뭐가우습다는건지모르겠다. 지껄이든말든무시하고있으려니, 갑자기뒷목쪽에서늘한손끝이닿았다.

“무슨!”
“잠깐만요. 옷에태그가붙어있는것도몰랐나봐요?”

깜짝놀라버둥거리자하성호가뭔가를쥐어잡아당기는게느껴졌다. 코트에달려있던태그가깃뒤로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는멋대로태그를잡아당겨떼어내손에들고유심히봤다.

“모브랜드제품이네요. 나도좋아해요, 이브랜드. 설우씨가센스가있네요.”

혼잣말을하듯지껄이던놈이눈을들어다시날봤다.

“아니면애인이사준건가?”

아직선뜩한기운이남은뒷목을문지르며인상을썼다. 이새끼는또왜이렇게질척하게구는건가싶어서인상
쓴얼굴로빤히노려봤다.

“그런데유설우씨, 원래이런이미지였던가요?”
“네?”
“전과는완전히다른사람같아서. 뭔가이미지가확변했는데. 계속신경쓰여서미치겠는데, 당신목에그거.
반창고좀떼어내서보여줘요.”
“저기요, 하성호씨.”

놈이갑자기또손을뻗기에확물러났다. 하지만놈은포기하지않고더강하게손을뻗어코트깃을움켜잡았다.

“갑자기왜이러는…… 하성호씨!”
있는힘껏악을쓰면서허우적거렸다. 그러나로열알파의힘을당해내기란쉽지않았다. 놈은막무가내였다.
힘으로버둥거리는날억누르고저지하고, 멱살을움켜쥐어벽쪽으로쾅밀어붙였다. 욕나오게거센힘이라몸통에
압정박힌곤충같이바르작거렸다.
벽에뒤통수가부딪혀정신을못차리는와중에, 하성호가내목덜미에붙은반창고를우악스럽게떼어냈다.
살갗에붙어있던접착성강한반창고가뜯겨나가는통증에비명이절로나왔다.

“신기하네. 처음봤어. 목에흔적남긴거. 색이나형태가아직옅긴해도마킹이맞는데.”

놈은옅은갈색눈으로유심히바라보며반창고아래로드러난목덜미를손으로매만졌다. 퇴원하기전에
확인했을땐, 흔적이라기보다는멍에불과한형태였다. 벌레가기어다니는것같은손길이었다. 소름이끼쳐서몸이
파드득떨렸다.

“놔요. 미쳤…… 크흑.”

그가반대쪽손으로목울대부분을움켜쥐고쾅, 벽에날짓눌렀다. 배려라곤전혀없이제멋대로힘으로


짓누른다. 놈이얼굴을가까이해목에코를파묻고냄새를맡았다. 냄새를맡는짐승처럼.

“로열알파죠? 설우씨애인.”

미간에힘이들어갔다. 정말냄새가나는건가? 로열알파끼리는서로의냄새를맡을수있는걸까? 날보는놈의


갈색동공이소름끼쳤다. 감정이배제된유리알같은눈이었다. 날보는동공에서읽을수있는유일한감정은딱
하나다. 즐거움.

“재밌네.”

놈이날똑바로보며입술한끝만치켜올려픽웃었다.

“돌연변이라기에아예제기능을못하는줄알았더니, 할건다하는몸이었네.”

다리사이에놈의허벅지가얽혀들어왔다. 딱딱하고뜨거운아래가닿았다. 맞닿은아래에서확끼치는명백한


성욕. 완전히발기한놈의아래가고스란히느껴졌다.

“꼴리는데. 제법.”
“젠장…… 미쳤어요?”

난있는힘을쥐어짜내꿈틀대면서잇새로욕을흘렸다. 아프고짜증이났다. 무섭지도않았다. 어린애의


허세같이느껴져서같잖기만했다. 역겹기만했다.

“아, 진짜. 유설우씨, 원래이렇게꼴리게생겼었나?”

하성호가웃으며목을움켜쥔손에힘을주었다. 억센손아귀로사정봐주지않고목을조른다. 미친놈.


컥컥대면서필사적으로버둥거렸다. 목을조르는굵은팔뚝을움켜잡고, 있는힘껏두들겼다. 놈은한손으로만목을
조르며눈한번깜빡이지않고날똑바로봤다. 놈의얼굴에밴미소가한층더짙어졌다.
피가통하지않아시뻘겋게팽창한얼굴이부들부들떨리고치뜬눈에서는저절로눈물이줄줄쏟아졌다.
퍼억. 갑자기허공에서베개가날아들어하성호의머리통을후려쳤다.

“미쳤냐? 하성호?”

언제일어났는지유현서가일어나앉아서오만상을찌푸리고욕을씨불였다.

“씨발. 어디들이댈데가없어서저딴병신새끼한테꼴리고지랄이야? 박을구멍만있으면어떤구멍이든


상관없다이거야?”
“어? 일어났어?”

하성호가고개를살짝틀어유현서를보며화사하게웃었다. 숨통을옥죄던놈의손아귀에서힘이약간풀렸다.
남은힘을전부쥐어짜내재빨리벗어났다. 놈이내팔을붙잡은것과동시에, 유현서가벌떡일어나서하성호의
어깨를잡아돌렸다. 그러곤바로하성호의목을끌어안고매달렸다.

“내가있는데저새끼를왜잡아? 미친새끼야.”

현서가짐승같이으르렁거리면서잡아먹을듯이하성호의입술을제입술로덮쳤다. 하성호도순순히놈의
도발에응했다. 날놔주고제게매달리는유현서를끌어안아깊게입을맞췄다. 현서를끌어안고키스하면서도놈은
날봤다.

“씨발. 나한테집중안해?”
신음과함께욕을뱉으며현서가놈의얼굴을감싸제쪽으로돌리게했다. 두놈이한덩어리로뒤엉켜침대위로
엎어지는꼴을보고난밖으로달아났다.
정신없이집밖으로뛰쳐나와차안에올라타서야숨을몰아쉬었다.
미친놈. 정신나간자식. 욱신거리는목을문지르면서숨을토해내고욕을짓씹다가격하게기침을해댔다.
목덜미에파고들던손가락, 사정을봐주지않고숨통을꽉조이던엄청난힘. 유현서가없었다면무슨짓을당했을지
모르는일이다.
얼음물을뒤집어쓴것처럼몸이차갑게식어덜덜떨렸다.
그래. 로열알파들은대개가저랬지.
하지만백도하는저렇지않았다. 적어도백도하, 그사람은날이렇게함부로다루지않았다. 그래도배려가
있었고, 제멋대로휘두르는듯하지만상냥했다. 날보던그의눈은뜨거웠고, 콧속으로파고들던페로몬은독하지만
달착지근했다.
그와같은로열알파라도하성호는역겹기만했다. 페로몬대신풍기던놈의향수냄새에속이울렁거렸다.
난놈의페로몬을맡을수없었는데, 놈은내향기를맡은건가? 난얼른떨리는손으로주머니에넣어온
억제제를두어알꺼내입에털어넣었다. 약을먹곤룸미러로목상태를확인했다.
엉망이다. 원래있던붉은흔적에하성호가남긴손가락자국까지찍혀서목에크게부상을입은사람같다.
핸드폰소리가날카롭게울렸다. 또백도하에게걸려온전화인가싶었는데발신인은사모님이었다. 걱정이되어서
전화를한것이리라.
어쩌지? 잠시고민했다. 평소였다면사모님에겐선의의거짓말을하고조용히유현서를서울로데리고올라갔을
것이다. 늘그래왔다. 유현서의치부는내선에서처리하고, 해결하고, 알아서묻어왔다. 하지만이젠그러기가
싫었다. 핸드폰을받아귀에갖다대뻔뻔하게지껄였다.

“사모님. 현서를찾긴했습니다만사람을보내주셔야할것같습니다. 불미스러운사고가터져서저혼자선


수습이불가능해서요. 아무래도사모님이직접오시는편이해결이빠를것같습니다.”

차창너머로보이는별장건물을내다보며이곳의주소를읊었다. 두놈이한창불이붙어뒤엉켰으니족히한
시간은방에처박혀있을거다. 사모님은의외로침착하게알았다면서전화를끊었다. 최대한빨리오라는소리를
하지않아도헬기를빌려타고날아올사람이었다.
통화가끊긴핸드폰을내려놓다가코트깃에묻은물감을보았다. 빌어먹을. 손으로비벼닦아도물감얼룩은
지워지지않았다. 세탁하면말끔히지워질까? 새옷인데. 내옷이아닌데. 손끝으로얼룩부분을긁으니얼룩이더
번졌다. 젠장. 다시욕을흘리고포기했다. 그냥시트에머리를기대어축늘어져서눈을질끈감았다.
유현서와하성호는사모님이덩치몇명을대동하고별장에들이닥칠때까지방에서나오지않았다. 난
사모님에게그저한마디만하고물러나있었다.

“직접들어가보셔야할것같습니다.”

최대한참담한표정을쥐어짜내면서. 둘이뒤엉키며또약을한건지유현서는인사불성이되어침대에늘어져
있었다. 페로몬과약냄새가가득한침실풍경. 약과페로몬, 섹스에취해늘어진막내아들을본사모님의표정이
어떤지는보이지않았다. 내게는그녀의등만보였으므로. 그녀의뒷모습은떨림하나없이꼿꼿했다.

하성호는샤워중인지침실안쪽의욕실에서물소리가들렸다.

“제가돌아가자고아무리말해도듣지를않아서요.”

말도안되는거짓말을지어낸건아니었다. 유현서는내가서울로돌아가자고두들겨깨웠어도난동을피웠을
테니까.

“유실장.”
“네?”
“그이가그여자빚을갚을필요가없다고했니?”

사모님이차가운뒷모습만보이며물었다. 그여자라는건내어머니를말하는것일테다.

“그래서이집에서나가려고하는거니? 그여자빚을갚지않아도된다고하니까, 이짓을더이상하지않아도


되겠다싶어서? 홀랑나가서애인이랑살려고? 그이가아직그여자한테미련못버린듯하니, 나가서산다해도
너까지돈을대줄것같아서?”

질문은계속이어졌다. 나는대답하지않았다. 어떤대답을해야할지모를질문들이었다. 사모님이고개를


천천히돌려날봤다. 그녀의하얀얼굴이유난히창백했다.
“그런데난그렇겐못해. 유실장, 나가게안놔둬. 나가려면그여자빚다갚아. 아니, 그여자빚을다갚는다
해도그냥은못내보내지. 연애를하다보니허파에바람이들어간모양인데, 허튼생각하지말고살던대로살자.
나도끔찍한짓은하기싫어.”
“무슨말씀이신지…….”
“우리집에서나가려고했다간그년이랑둘이붙잡아파묻어놓고불싸질러죽여버릴거라고. 내가못할것
같아?”

그녀의인형같은얼굴이순식간에험악하게일그러졌다. 붉은립스틱을칠한입술이소름끼치게말려올라가며
조소를띠었다.

“지금당장이라도그렇게하고싶은데참는거야. 그이가널우리집에데려왔을때부터그년을닮은널찢어
죽여버리고싶었는데참았어. 우리현서때문에. 현서한테는네가필요하니까. 너아니면누가우리집망나니를
감당하니?”

사모님도사랑하는막내아들이순수하지만은않다는걸, 다알고서도모른척하고있었던모양이다. 난할말을


잃었다.

“어차피넘쳐나는페로몬은혼자서는못삭여. 현서도로열알파들처럼주기적으로페로몬을빼줘야해.
히트사이클때, 그때만어떻게든막아. 되도않는어중이떠중이들애를임신하기라도하면큰일이니까. 우리같은
로열오메가들은일반오메가처럼히트사이클주기가규칙적이지가않으니까네가옆에붙어다니면서막아.”

말을늘어놓던사모님이환하게웃었다.

“이번에나한테바로연락한건아주잘했어. 혼자서현서를못막을것같으면다음에도그이가아니라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유실장?”

미소짓는그녀는평소의우아하고기품있는사모님의모습으로돌아와있었다.
침대에늘어진유현서가뒤척이는소리가들리자, 사모님이얼른고개를돌려현서에게다가가놈을흔들어
깨웠다.

“아드을, 일어나자. 집에가야지. 이게다뭐니? 엄마속상하게.”


그동안에얼마나약을했는지유현서는눈도뜨지못했다. 사모님이이곳에오면서데려온덩치하나를방으로
불러들였다. 사내가인사불성이된현서를들쳐업고밖으로데리고나갔다.

“엔터갤러리관장의아들이지? 이집주인. 화가이기도하고. 하성호화백.”

사모님의질문에난고개를끄덕였다.

“둘이얼마나만났어?”
“1년됐습니다.”
“만날때마다약을해?”
“네. 거의매번이요.”

묻기에사실대로대답했다. 사모님이한숨을푹내쉬었다.

“유실장. 내가어떻게해야겠니?”

혼잣말을읊조리는것같은낮은목소리였다.

“뭘말입니까?”
“현서와백도하. 둘이어떻게든맺어줘야겠지? 현서가그놈이그렇게좋다는데어쩌겠어.”

침묵했다. 갑작스런질문이라대답할수가없었다. 무슨말을해야할지도몰랐다.

“주제에그놈이현서를싫다고밀어낸모양인데, 어른들이나서서밀어붙이면그놈이라고별수있겠어. 애가
얼마나괴로웠으면나한테울면서전화를다하고이런데처박혀서…….”

그녀의눈가가떨리며발갛게물들었다. 현서와연락이되지않는동안울고괴로워하면서, 아주많은생각과


고민을한끝에결론을내린모양이다. 부러웠다.
현서넌좋겠다. 이렇게널사랑해주는엄마가있어서. 진심으로부러워서속이싸했다.
막내아들을생각하며눈시울을붉히던사모님이어깨를들썩여숨을내쉬곤, 다시차갑게표정을굳혔다.

“유실장이알아서정리하고나와.”
아직도물소리가끊이지않는욕실쪽을눈짓으로가리켜보이고명령했다. 집주인과얘기잘하고나오란
소리였다. 그녀가나가자딸칵, 욕실문이열리며목욕가운을입은하성호가나왔다. 타월로젖은머리칼을문질러
닦으면서놈이텅빈침대위를보고물었다.

“응? 현서는요?”
“현서는저희가알아서데리고가겠습니다.”
“안에서씻는동안사람말소리가들리던데. 설마현서를데리고가려고사람까지불렀어요? 내가못가게
붙잡기라도할까봐?”
“현서가약에취하거나하면저혼자감당하지못할사고를치곤해서요. 혹시몰라서그런것이니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데유설우씨, 왜날안보고말해요? 내가무섭나?”
“아닙니다. 그런거.”

갑자기젖은샴푸냄새가훅끼쳤다. 바로앞에서사람의기척도느껴졌다. 흠칫놀라고개를드니, 어느새


하성호가내앞으로성큼다가와있었다. 물기가채마르지않은젖은얼굴로날보며웃고있었다. 마찬가지로놈의
물기머금은갈색눈이내얼굴을빤히응시했다.

“유설우씨도갈거예요?”

질문과동시에불쑥손을뻗는다. 예고도없이. 얼른뒤로몸을뺐다.

“네. 가야죠. 하성호씨도작업을하셔야할테고.”

놈은포기하지않고다시손을뻗어내팔을붙잡았다.

“현서는보내고유설우씨는붙잡아두고싶은데. 설우씨를보면서작업을하면새로운영감을얻을수있을것
같은데요.”

이자식은아까부터왜이러는걸까. 이해해보려해도도저히이해가되지않았다. 백도하가내게집착하는


이유는페로몬탓이라쳐도, 이놈은대체왜?

“나랑있어주면안돼요? 혼자서는외로운데.”
하성호가그린듯이화사하게웃으며붙잡은내팔을잡아당겼다. 애교를피우는것처럼. 날죽일기세로목을
조르던미친놈이애교라니. 짜증이나고겁도났다. 놈의손에붙잡힌부분이끊어질듯이아팠다. 당장이라도내
팔을부러뜨릴것같은억센힘. 지금은얌전히내팔을움켜쥐고만있지만, 이손이언제튀어나와내목을조를지
알수없었다.

“외로우시면다른파트너들을부르세요.”

있는힘을다해팔을비틀었으나놈의손은꼼짝도하지않았다. 내팔을붙잡은채로, 눈한번깜빡이지않고날


봤다.

“나랑잘래요?”

참뻔뻔하게도묻는다.

“싫습니다.”
“나좆질, 아주잘하는데요.”
“싫다고했습니다.”
“후회하지않을텐데.”
“싫다고…….”

갑자기놈이내팔을확잡아당겼다. 강한힘에끌려가는동시에본능적으로손을쳐들어입가를막았다. 덕분에


강제로키스당하는건간신히막았다. 늘어진머리칼사이로보이는놈의눈이소름끼치게번들거렸다.
호선을그리며올라간입술모양도섬뜩했다. 놈은정상이아니었다. 현서와뒹굴면서사이좋게약을했을테니
정상이아닌게당연했다.

“내가유설우씨를어느선까지봐줘야할까.”

팔을쥔놈의손에더욱힘이들어갔다. 팔이으스러지는것같은통증에손으로틀어막은입에서비명이절로
새어나왔다.

“유실장! 왜안나와? 해지기전에올라가야돼!”

그때침실밖에서날찾는사모님의목소리가들렸다.
“엄마가오다니. 너무하네.”

놈이픽웃으면서중얼거리더니내팔을순순히놔줬다. 그가천천히돌아서서테이블위에놓인물병을들어
물을마시는동안, 밖에서사모님이날찾는목소리가다시한번들렸다.

“잘가요. 조심해서가고.”

하성호는돌아보지도않고인사를건넸다. 난인사도하지않고얼른돌아서서침실밖으로도망쳐나왔다.

“아, 곧서울에서전시회를할겁니다. 와줘요. 전시회는멋질겁니다. 재미도있을테고요.”

대답하지않았다. 어차피대답을듣자고꺼낸말도아닐것이다. 정원에서기다리고서있던사모님이왜이리


늦게나오냐며나를혼냈다. 사정도모르고서.
해가이울어가는늦은오후, 강원도산골에불어닥치는바람은욕나오게매서웠다.

***

“개새끼야. 이번에도또내전화안받고잠적하고그지랄해봐, 어디. 나가기만해봐. 내가무슨수를써서든널


찾아내서진짜병신새끼로살게해줄테니까! 너뿐만아니라네어미도함께잡아다가갈아버릴거야!”

사모님은내가나가게놔두지않는다고했다. 그건유현서도마찬가지였다.
하성호의별장에서정신을못차리고늘어진상태로서울집까지실려온뒤, 놈은계속잠만잤다. 잠시
깨어났다가메이드가갖다주는음식을대충먹고다시자고, 잠깐깨어났다가또자고.
이상한일은아니었다. 하성호의별장에서벌이는파티에다녀온뒤엔늘이랬다. 약물쇼크아니면페로몬
쇼크일수도있었다. 둘다겹친걸수도있고. 아무리현서가로열오메가라도로열알파와의과도한섹스는몸에
부담이가는모양이었다.
나야늘있던일이라놀라울것도없지만이런꼴을처음겪은사모님은난리가났다. 애가이러다죽는게
아니냐면서울며의사를부르고, 의사가괜찮다고하는데도수액을주사하게하고, 또어디가서약을지어오고.
잠도자지않고제대로먹지도않고서현서를돌보다가사모님도쓰러져병원에실려갔다.
그리고사모님이쓰러진다음날, 정확히사흘만에유현서는정신을차렸다. 사흘만에눈을번쩍뜨고자리를
박차고일어난놈이가장먼저한일은지랄발광이었다.
잠옷바람으로뛰쳐나와거실에서고용인들과대화를나누던나한테달려와서는정강이를걷어차고, 목이터져라
욕을하고, 고함을지르고, 가구를몽땅때려부수고, 손에잡히는건뭐든지집어던지고.

“왜엄마를거기로불러! 이개새끼야! 일부러나엿처먹이려고그런거지!”

숨쉴틈도없이얻어터지고걷어차여서아플새도없었다. 눈이벌게져서날죽일기세로펄펄날뛰는놈에게서
날보호하기위해최대한얼굴이나급소를방어할뿐이었다. 오히려놈이이성을잃고날뛸때에는맞아주는척,
피할수있었다. 놈이주먹을휘두르면주먹이닿기도전에, 고개를홱틀어세게맞은척한다든가.

“씨발. 별좆같은게하성호새끼한테수작이나부리고. 발정이났으면애인하고붙어먹든가, 자기주제에맞는


새끼한테박아달라고하든가. 하성호새끼가아무리좆같아도로열알파인데너같은거한테넘어가겠냐? 어?
주제를알아야지, 새끼가!”

먼저수작을부린건하성호였다. 내가아니라. 하지만입다물었다. 늘그랬듯이. 여기서놈의성질을더


돋웠다간나만더다치니까.
하지만사과하지는않았다. 전이었다면조금이라도덜맞으려비굴하게사과했을테지만조용히맞기만했다.
신나게매타작을해대던놈이지쳤는지씨근덕거리며발길질을멈췄다. 그리고씩씩대면서숨죽이고서자신의
눈치만보고있는고용인들에게놈이명령했다.

“이새끼, 창고에가둬! 거기서네가뭘잘못했는지진지하게반성해라, 새끼야. 뭐해? 안움직여?”

사모님이데려다놓은덩치하나가내게성큼성큼다가와내팔을틀어쥐었다. 난반항도하지않고서질질
끌려갔다. 고용인들의측은해하는시선이날아와박혔다. 덩치는지하창고로날끌고내려가휙패대기치곤문을
닫고사라졌다.

씨발. 입에서욕이나왔다. 유현서, 이자식은내가아직도지하창고를무서워하는줄아나보다. 물론처음


갇혔을땐무서워서울기도했다. 몇번더갇히다보니익숙해지긴했어도여전히싫은곳이었다.
하지만이번엔이상하게이곳이편안했다. 조용하고아늑하고, 누구의방해도받지않고쉴수있는곳아닌가.
갇힌게아니라휴가를온것이라생각하니이곳이더없이아늑한쉼터로느껴졌다. 다행히주머니안의핸드폰도
뺏기지않았고.
오히려천천히생각할시간이많아져서좋지않나.
체질뿐아니라마음가짐과사고방식도확변한게실감됐다. 어째성격까지변한것같았다.
아니, 사실그냥싫었다. 이렇게사는것에갑자기환멸이나서다엎어버리고싶었다. 꾹꾹눌러참았던내안의
분노가어느순간펑터질게분명했다.
창고안에쌓인빈박스를몇겹깔고피크닉매트를그위에깐다음, 낡은담요뭉텅이도보이기에뒤집어쓰고서
드러누웠다.
주머니에서핸드폰을꺼내봤다. 괜히통화목록을훑어보며백도하의이름을찾았다. 아까부친의수술이
잘못돼서입원기간이길어졌다고들었는데. 정신이없겠지.

내가그에게전화를걸어볼까. 늘전화를하는것은그였지, 내가먼저연락을한적은없었다. 전화를걸어봐도


될까? 핸드폰화면에찍힌백도하의이름을보면서계속고민만했다.
전화연락, 그게대체뭐라고. 전화한번하는게뭐가그리어렵다고. 전화하는게싫으면문자라도보내보면될
것을. 결국고민만하다가핸드폰을바닥에내려놓고눈을감았다.

***

깜빡잠이들었던모양이다. 핸드폰진동소리에퍼뜩잠에서깨어났다. 눈을떠도주위는온통암흑이었다.


핸드폰불빛만현란하게번쩍거렸다.

“여보세요.”

잠이덜깨서눈을감은채로전화를받았다.

[잤습니까?]

백도하의목소리였다. 눈이번쩍뜨였다. 가슴이쿵, 쿵, 크게뛰었다. 그의페로몬을맡거나한것도아닌데.

“아뇨. 안잤어요.”

자다가깼으면서거짓말을했다. 그의듣기좋은저음이다시흘러나왔다.

[나와요.]
“네? 나오다니요? 어디로요?”
[집앞에있습니다. 만나러가겠다고했지않습니까.]
기억을떠올려보니그랬던것같기도하다. 실소가비어져나왔다. 놀랍지도않았다. 지극히백도하다운
행동이라서. 그는늘이렇게불쑥선을넘고내세계에들이닥치지.

[나와줘. 보고싶어요. 유설우씨예쁜얼굴.]

왜저낯간지러운소리를들으니안심이되는지모를일이었다.

“못나갑니다.”
[왜요?]

이야밤에연락도없이집앞에들이닥쳐서는못나간다니까“왜요?”란다. 어이가없어서웃음이났다.

“못나갈이유가있습니다.”

지하창고에갇혀있다고말할순없는노릇이었다.

[내가안으로들어갈까요?]
“아, 아뇨. 제발그러지마세요. 그냥가세요. 밤도늦었고도하씨가집앞에있는걸현서한테들키기라도
하면…….”

[유현서한테들키면큰일이라도납니까? 내가당신을만나러온건데, 유현서에게허락이라도받아야합니까?]

큰일이나지. 현서뿐만이아니다. 사모님이날가만히놔두려할까. 엄마랑둘이붙잡아놓고불싸질러죽여버릴


거라던사모님의목소리가떠올라목에소름이돋았다.

[유현서는파티장에서한참잔뜩웃고떠드는중일테니까, 들킬걱정은하지말고나와요.]

또외출을한건가. 사모님속이시꺼멓게타들어가는줄도모르고. 하여튼몹쓸새끼였다.

“가세요. 지금은백도하씨, 만나고싶지않습니다.”


[난보고싶어요. 지금당장. 당신을보고싶고, 당신향기를맡고싶어돌아버릴것같으니까, 10분내로나와요.]

일방적으로자기할말만하고전화를끊었다. 명령하지말라고쏘아붙일틈도없었다. 내가나가지않으면집


안으로쳐들어오고도남을사람이었다. 그러라고해라. 나가기싫으면무시하면그만이었다.
하지만…….
난부스스자리에서일어서서삐걱거리는몸을끌고, 핸드폰불빛으로어둠속을밝혀가며창고문앞에섰다.
그러곤이시간이면숙소에들어가있을입주메이드에게전화를걸었다.

“여사님. 창고문좀열어주시겠습니까? 현서는지금외출중이고, 모든책임은제가질테니부탁좀


하겠습니다.”

사실은나도보고싶었다. 백도하의얼굴. 내게향한그의맑은눈을보고싶었고, 그의향기를맡고싶었다.


벌써부터가슴이쿵쿵세차게뛰었다. 주위가무덤속처럼고요해, 내심장소리가유난히크게울렸다.

집앞에서조금떨어진길가에백도하의차가보였다. 길가에주차된차는여러대였지만저검은세단이그의
차라는확신이들었다. 내가차에다가가기도전에백도하가먼저차문을열고내려섰다. 긴아이보리색코트에
감싸인장신의몸으로날봤다. 그가자신에게다가가는날보며웃었다. 웃는모습이눈부셨다.

“10분넘었습니다.”

백도하가손을들어손목시계로시간을확인하곤뻔뻔하게지껄였다. 기가차서웃고말았다. 차갑고건조한


밤바람에그의향기가실려왔다. 코끝을얼어붙게만드는추위와콧속으로흘러드는그의달착지근한페로몬.
차가운한기가내려앉은겨울밤인데, 꽃잎흩날리는봄날의햇빛아래에선것처럼몸이따끈따끈해졌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파블로프의개처럼페로몬이코끝을스치자마자열을동반한성욕이솟아올랐다.
백도하의앞에멈춰서서는그를올려다보았다. 늘말끔히빗어넘겼던머리칼이이마를뒤덮고있어평소보다
인상이부드러워보였다. 날내려다보는눈을응시하다부담스러워서시선을내리깔자, 그가손을뻗어내뺨을
매만졌다.
손끝이차가워서뺨이흠칫떨렸다. 현서에게맞아아직도욱신거리는부분을차가운손끝이부드럽게덧그렸다.

“유현서죠?”

‘유현서에게맞은거죠?’라고묻는소리일터였다.
“겉으론올바른척, 착하고성실한척, 당신을끔찍이위하는척, 연기하지만내눈엔다보였어. 가식떠는거. 그
빌어먹을새끼, 버릇좀고쳐놔야겠는데.”
“무슨수로요. 부모도못고치는버릇인데.”

건조하게지껄이며뺨을매만지는백도하의손을떼어냈다. 불어오는차가운바람이부스스해져있을머리칼을
더엉망으로헝클어뜨렸다. 말없이빤히바라보는시선이느껴졌다. 뜨겁게날핥는시선.
여전히노골적이긴해도그의시선은불쾌하지않았다. 하성호의시선이몸을훑을땐온몸에소름이돋았는데.
침묵이어색해질무렵, 백도하가입을열어나직한목소리를뱉었다.

“오늘치약은요?”
“먹었어요. 내몸이아픈건싫어서잘챙겨먹고있습니다.”
“약으로페로몬을완전히억제하는건불가능한가.”

한숨을내쉬면서혼잣말을하듯이낮게뇌까렸다.

“약을먹었는데도저한테서아직향기가납니까?”
“납니다. 여전히미칠것같은냄새라터질것같아.”

어디가터질것같은지는묻지않아도알수있었다. 그의슬랙스앞섶쪽으로자연히시선이갔다. 스웨터자락에


가려져있는데도앞이불룩하게선것이보였다. 눈가에뜨끈하게열이올랐다. 아래에도열이올라다리가절로
오므라들었다.

“빨리들어가봐야합니다. 달리용건이없다면들어갈게요.”
“당신도섰으면서무슨. 꼴리잖아, 나한테.”

말을이따위로밖에못하는걸까. 좀더우아하게, 로맨틱하게말할순없는건가.

“당신아래에서젖은냄새가나. 환장하게먹음직스러운냄새. 그런주제에들어가봐야한다느니, 그딴소리하지


말아요.”
“하아. 말좀…….”

어두운골목에서사람말소리가들렸다. 깜짝놀라고개를틀자, 사람하나가전화통화를하며걸어오는게


보였다.
“차에서얘기해요.”

난얼른움직여그의차에올라탔다. 아무리밤이라해도집앞골목에서이러고있을순없는노릇이었다.
이윽고백도하도운전석에올라탔다.

“다른곳으로이동하는게…….”

백도하는차에올라타자마자날덮쳤다. 다른곳으로이동하자고말을꺼내려던입술이그의입술에틀어막혔다.
씹어삼킬것같은키스였다. 날통째로집어삼킬듯이덮치는그의페로몬이전처럼두렵지만은않았다.
그는거칠고급했다. 굶주린짐승처럼덮쳐내입술을물고빨았다. 뜨거워진숨을헐떡이느라벌린입안으로
혀가밀려들어와입안까지엉망으로헤집었다.

“자, 잠깐만요. 여기서는…….”

깜짝놀라백도하를밀쳐냈지만, 그는꼼짝도하지않고더강하게날밀어붙였다. 그래도포기하지않고계속


꿈틀대자, 그가입술을맞붙인채로중얼거렸다.

“키스만할거니까.”

그러곤다시입술을강하게맞댔다. 벌어진입안으로백도하의혀가불쑥밀려들어와제멋대로드나들면서
입안을샅샅이핥고할딱이는숨까지빨아마셨다. 바르작대는어깨를강하게움켜쥐고, 얼굴을못움직이게턱을
단단히그러쥐고는키스를퍼부었다. 여유라곤전혀없었다. 그래도전에는여유를가지고약하게날농락했다
몰아붙였는데.
신음만흘리며어설프게입을벌리고그의키스를받아들일뿐이었다. 지속적으로콧속으로파고드는그의
페로몬에몸에힘이들어가질않았다. 밀폐된공간안에가득차찰랑거리는그의페로몬에몸이푹절었다.

“역시미치도록좋아. 당신향기.”

잠시입술을떼고그가중얼거렸다. 날보는그의눈이예쁘게반짝거렸다. 야하게젖어반들거리는눈에기꺼운


만족감이가득했다. 뜨겁고질척이지만말랑말랑한호감을지닌눈. 날뜨겁게달궈흐물흐물녹이는눈.
턱선을은근히매만지는손길에움칫떨면서, 불안하게차창너머를훑었다. 짙게선팅이되어있긴해도누가
지나가면서볼지도모를일이다.
“그만떨어져요, 좀.”

순순히내말을들을백도하가아니었다. 다시입이틀어막혔다. 더노골적으로몸을밀착시키고, 턱을


그러쥐었던손으로목덜미를쓰다듬으면서키스를계속했다. 강하게입술을깨물었다빨고핥다가, 잠시입술을
뗐다가달뜬숨이비어져나오는아랫입술에다시키스하면서입술을미끄러뜨렸다. 젖은입술이뺨, 귓불을지나
목덜미로미끄러져내려왔지만목까지올라오는터틀넥을입은터라, 옷위에그의입술이닿았다.

“성가시게왜이런옷을.”

그가손으로목을가린옷부분을끌어내린뒤에다시입술을갖다댔다. 왜이런옷을입었는지정말몰라서
이러는걸까. 목의흔적을어떻게든가리려고일부러꺼내입은건데.

“아, 잠깐만요. 안돼요…….”

아랑곳하지않고백도하는노출된목덜미에입술을파묻었다. 입술로여린살점을아프게빨았다. 흠칫놀라


버둥거리면서그의얼굴을세게밀었다.

“안되는거잖아요. 목은…….”
“안될게뭐있어요.”

백도하는꿈쩍도하지않고입술로빨던부분을세게콱씹었다. 꽤아팠다. 찌릿한통증에흠칫하며나도모르게


숨을들이마셨다가그의페로몬까지흠뻑삼키고말았다. 몸에서힘이쭉빠졌다.

“하, 목은…… 마킹이라고…… 아, 아무한테나하는게아니라고들었, 하으읏. 읏.”

로열알파의마킹, 마킹의의미. 주워들은정보들이흐물흐물해진머릿속에서어지럽게떠다녔다. 그는


아랑곳하지않고물어뜯을듯이키스하던것처럼목덜미를집요하게애무했다. 목의여리고예민한살점을계속해서
물고짓씹고빨고. 짐승에게물어뜯기는것같기도했다. 시간이지나겨우목의흔적이옅어졌는데또새로운
흔적이남게생겼다.
목에남기는흔적의의미를모르지않기에, 가만히손놓고있을순없었다. 하지만밀어낼힘이없어서
미약하게나마꿈틀거릴뿐이었다. 예민하고여린부위인데계속같은곳만씹어대자극하니통증이상당했다.
하지만멈추지않는찌릿한통증이괴롭지만은않았다. 발가락끝까지저리게하는아찔한쾌감도동반됐기
때문이다.
“이런걸함부로남기면후회하게될텐데…….”
“난후회한적없다고했습니다.”

목덜미위에차지게맞붙은입술이달싹였다. 손이겉옷속으로들어와가슴을넓게쓰다듬었다.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옷위로도드라져있을젖꼭지부분을짓궂게지분거리고간질이고긁었다.
흐윽. 상반신이크게펄쩍튕겼다.

“만져주면만져주는대로발발떨어.”

목에서입술을떼지않고웃음을흘리고지껄이면서희롱하던젖꼭지를잔인하게꼬집어비틀었다. 눈에서하얀
빛이번쩍터진것같은감각에아까보다더발작적으로몸이튀었다. 신음하며몸을비틀고힘이들어가지않는
손을떨면서한쪽유두만끊임없이지분거리는그의손을떼어내보려시도했다. 하지만그가목에이를콱박아
넣자쥐어짜내던힘까지빠져버렸다.
그냥나가긴글렀다. 키스만한다고하더니. 그냥가볍게만나서서로의페로몬좀맡고얘기만하다가건전하게
헤어질거라생각하진않았다. 하지만차안에선, 적어도집앞에선.
날약올리듯이목에달라붙어살점을잘근씹어대던그가갑자기목에서입술을떼고, 얼굴을들어올려날봤다.

“어떤개새끼예요?”

붉게젖은입술새로음산한목소리가흘러나왔다. 그가터틀넥목부분을더밑으로끌어내려드러난피부위를
손끝으로쓸었다.

“목에다른새끼흔적이있는데?”

그의눈에위험한이채가번득였다.
하성호에게목을졸린흔적일것이다. 체감되는그의페로몬냄새가확올라갔다. 무의식적으로숨을흐읍,
참고서터틀넥목부분을끌어내린그의손을떼어냈다.

“설명해봐요. 뭡니까, 이거?”


“별거아닙니다…….”
“별것아니라고? 설마다른새끼랑잔거야?”
“그럴리가없잖아요!”
나도그처럼언성이높아졌다. 목소리를높이느라멈췄던숨을들이마시게돼눈물이맺혔다. 괴로웠다. 저놈의
페로몬. 날미치게하기도하고성욕에들끓는짐승으로만들기도하는저페로몬.
저남자가아닌타인에게는발정하지않는다. 지금까지단한번도, 아무리멋진상대를봐도그무엇도느끼지
못했다. 오직저남자에게만, 저남자의향기에만뜨거워지고흥분했다.

“아니라고요. 아무하고나자고, 그런거안해요, 전. 그런거싫어합니다. 육체적관계를맺을만큼끌리는사람도


없었고성욕자체도없었고……. 지금도마찬가지입니다. 아무한테나끌리지않아요. 그러니까도하씨가생각하는
그런거아닙니다.”
“나니까자줬다는소리로들리는데?”

백도하가말을뱉고는바로덧붙였다.

“나하고만잔다는소리로도들리고?”

두번이나비슷한뉘앙스로말하면서그렇다는대답이나오길유도하고있었다. 난입을꾹닫았다. 아무말도


하지않았지만눈을내리깔고열이올라붉어진얼굴로있으니, 그렇다고자인하는꼴이나다름없었다.
다른것보다넘실대는압도적인페로몬에질식해죽을것만같았다.

“나가겠습니다.”

손을뒤로뻗어문을열어보았지만열리지않았다.

“창문이라도열어주세요, 좀.”

이남자의앞에선늘파들파들떠는초식동물이되고만다. 나도이러고싶지않았다. 몸이달아어쩔줄을몰라


하며눈물까지흘리면서덜덜떠는거.
약이효과가있긴한걸까. 그때같은죽을듯한통증은경험하고싶지않아서꼬박꼬박챙겨먹긴하는데, 어째
전보다더빠르고예민하게페로몬에반응하는것같다.

“말하기전엔못나갑니다. 설명하랬죠? 어떤새끼가남긴흔적인지.”


“현서를데리러갔다가, 거기서…… 현서의섹스파트너한테어쩌다보니……. 그사람도그냥장난으로한짓일
겁니다. 성적인의도는아니었어요.”
그의페로몬에흥분해떨리는목소리로주절주절변명을늘어놓았다.

“장난으로건드려? 목을? 성적인의도가있었건아니었건, 내가남긴흔적을보고서도건드렸다는것부터가


개새끼란소리야. 같은알파끼리는절대로목에흔적이남은상대는안건드려. 그게암묵적인룰이야. 당신도알
텐데?”

모른다. 그런거. 마킹이니, 선택받은자들끼리의암묵적인룰이니, 그런거. 나와는상관없는일이었고지금도


모르겠다. 나와상관있는일인지, 내가알아야할것들인지, 알고싶지도않았다. 날집어삼킨페로몬에괴롭기만
했다.

“전몰라요. 그런거.”
“어떤개새끼인지말해요. 당신한테이딴짓한개새끼.”

“어떤사람인지말하면요……?”
“그새끼죽여버리게.”

살벌한목소리였다. 진심이었다. 눈빛이위험하게번들거렸다. 그냥하는말이아닌게분명했다. 사실은목이


졸린흔적이라고말하면정말미쳐서눈이돌아갈것같았다.

“씹. 어떤개새끼야. 가만안둬.”

백도하가낮게욕을짓씹어뱉으며몸을움직여운전석쪽으로넘어갔다.

“발정난개새끼들이당신향기를맡고달려들줄알았어! 이럴줄알았다고!”

화를제어하지못하고그가주먹으로핸들을쾅내리쳤다. 그리고형형하게눈을부라리면서거친숨을몰아쉰뒤
갑자기운전석쪽차문을열려고했다.

“일단내려요. 나갑시다.”
“어디로요?”
“당신집. 유현서의집이긴하겠지만당신의방은있을거아냐.”

당장내려설기세로움직이는백도하의팔을붙잡고말렸다.
“제방엘당신이왜가요? 미쳤어요?”
“카섹스하고싶어요? 난상관없어.”
“키스만하겠다고…….”

그가하, 어이없다는듯이코웃음을쳤다.

“정말키스만하고가려고나온거야? 아니잖아.”
“나가겠습니다. 문열어줘요.”

백도하는내말을묵살하고차에시동을걸었다.

“다른곳으로이동하죠.”
“내려달라고했어요.”

이번에도그는내부탁을들어주지않았다. 차는빠르게움직여익숙한골목에서벗어났다. 몇번이고돌아가


봐야한다고, 내리고싶다고해도소용없었다. 소리도질러봤지만마찬가지였다. 현서가돌아오기전까지는
들어가야한다고애원해보기도했다.

“그놈의유현서, 유현서! 왜자꾸그새끼핑계를대?”


“핑계가아니라……. 사정도모르면서함부로말하지마세요.”
“모친의빚때문에그빌어먹을집구석에매여있는노예신세라는거알아. 빚이문제라면내가갚아주면되는
거아닙니까?”
“백도하씨가왜제빚을갚아줍니까?”
“그게그집구석에서당신을빼오는유일한방법이라면별수없지. 얼마가들더라도상관없어. 아니면유현서를
죽여줄까?”
“아까부터죽인다느니어쩐다느니, 왜그런말도안되는허세를부립니까. 깡패도아니고.”

그가일부러한쪽입술을불량하게비틀어웃었다.

“허세같아?”

아니. 허세가아니라진짜로그럴수있을것같아서무서웠다. 눈빛이무시무시했다. 그는위험하게번득이는


눈으로차창앞을바라보면서계속말을이었다.
“사람을발정난개새끼가되게하고, 돌아버리게하고, 눈돌아가게하고, 가지가지해, 진짜. 당신때문에내
일상이엉망진창이야. 전같은평범한일상생활이불가능해. 알아? 난이런데당신은태연하게돌아다니면서
무방비하게페로몬이나뿌리고이새끼, 저새끼꼬이게하기나하고. 돌아버릴것같아. 당신때문에.”

그게아니라고, 그런적없다고말해도저남자의귀엔들리지않을것이다. 하성호는내페로몬에반응을한것이


아니었다. 내목에남은흔적에쓸데없는호기심이일었을뿐이지. 하지만무슨말을하든, 그는믿지않을게
분명했다.

“당신, 날어디까지미치게할작정이야?”

이미눈빛이정상이아니었다. 눈빛이며중얼거리는말투, 짙어지는페로몬이무서워서씨알도먹히지않을


애원을흘렸다.

“내려줘요.”
“못내려요.”

돌아오는대답은칼같았다. 커브길에서그가핸들을틀며싸늘하게중얼거렸다.

“안놔줘. 이대론.”

말한마디붙이기힘든무서운얼굴이었다. 그의심정을대변하듯, 차는난폭하게서울밤거리를내달렸다.

“도망치세요. 가능할것같진않지만.”

최교수가했던충고가떠오르며등골이오싹해졌다.
그런데무섭고두려운것과는별개로아래가뜨겁게젖어들었다. 이건본능이었다. 페로몬이불러일으키는
시뻘건본능. 미칠듯한쾌락을맛보고나니, 치미는성욕을주체할수가없었다. 아래가뜨겁다못해지글지글
끓었다. 그의성기에꿰뚫리던때의그맛을기억하며아래가기대감에잔뜩차게걸스럽게빠끔대면서근질거렸다.
그때같이쇼크가와쓰러지게될지도모르는일인데.
미쳐버린건나도마찬가지였다.

***
도로를내달리던차가서울도심의어느고층아파트앞에멈춰섰다. 일전에갔던백도하의집이아니었다. 그는
차에서내려내팔을붙잡아끌었다.

“손놔주세요. 안도망가요.”

누가보기라도할까봐팔을비틀어빼내려했지만백도하는아랑곳하지않았다. 그상태로엘리베이터안까지
끌려갔다. 늦은밤이라두사람만탄엘리베이터문이닫히자, 기다렸다는듯이그가날덮쳤다. 붙잡힌팔을제
쪽으로휙끌어당기며키스했다. 흐읍! 흠칫놀라버둥거렸지만내등허리를단단히끌어안고급하게입술을
집어삼킬뿐이었다.

숨막히게거친키스였다. 겹쳐진입술을거칠게빨고핥으면서헐떡이는숨결마저모조리집어삼켰다. 입술이


짓물러터질듯이빨리고혀가음란하게얽혔다.

“흣, 흐읍.”

괴로워서벌어진입안을백도하의혀가사정없이유린했다. 버둥거리던손으로그의가슴을밀어내고두들겼다.
헛된반항인걸알면서도. 달콤한타액과함께그의페로몬이입속에흘러들고콧속가득들어찼다. 몸에힘이
빠지는게당연했다. 가슴팍을두들기며밀어내던손이축늘어지고, 그에게끌어안긴허리가흐물흐물녹아바르르
떨렸다.

백도하가그제야무자비하게씹어대던입술을뗐다. 맞붙어있던입술사이로은색타액의실이길게이어졌다
떨어졌다.
하아아. 벌어진입에서나도모르게달콤한숨이새어나왔다. 날보는백도하의젖은눈에성욕이번들거렸다.

“이렇게야해서는. 순식간에발정이나서숨막히는향기를사방에뿌리기나하고. 대체어디에숨어있다가


나타난거야.”

그가손을뻗어타액에젖은내입술과턱을쓰다듬었다. 그러다머리를가까이해내목에얼굴을파묻었다.

“잡아먹고싶어.”
살벌한소리가농담같이들리지않아서그에게끌어안긴몸이흠칫떨렸다. 엘리베이터안이었다. 이러고있는걸
누가보기라도하면……. 그런생각을하면서꿈틀거리는데마침엘리베이터가땡, 소리를내며멈췄다. 문이열리자
그가잠깐몸을떼고아까같이내팔을붙잡아끌었다.

“어디예요? 여기?”
“당신집.”

도어록번호를누르면서백도하가건조하게대답했다. 내집? 대답의의미를생각해볼틈도없이, 그가열린문


안으로날끌고들어갔고다시허리를확끌어안겼다. 날끌어안은채로연이어퍼붓는키스. 흠칫하며얼굴을뒤로
빼면백도하의입술이바로쫓아와덮쳤다. 밀어붙이는힘에뒷걸음질치다발목이꺾여휘청대자, 허리를감싼손에
더힘이들어가덜렁들어올려졌다.
백도하는날안아올려끝없이키스를퍼부으면서성큼성큼집안으로걸어들어갔다. 그의페로몬에취해정신이
하나도없어서집안을둘러볼여유도없었다.
곧그가날푹신한바닥에눕히더니내위에그대로올라탔다. 소파위인모양이었다. 입술을떼지않고집요하게
키스를해대며백도하는급하게내옷을벗겨냈다.

“도, 도하씨, 잠깐…….”

겉옷이벗겨지고터틀넥상의가훌렁위로벗겨올라갔다. 터틀넥을벗기기가쉽지않을텐데그는능숙하게
벗겨냈다. 벗겨낸상의를내던진뒤그의손은거침없이허리춤을풀어헤쳐바지를끌어내렸다.

“뭐가이렇게급해서, 천천히좀…….”

뭐이리급하게하느냐는소리가무색하게바지가끌려내려가자마자바짝일어선성기가퉁튕겨나왔다. 차
안에서키스당할때부터곧추서서흠뻑젖어있던성기였다. 바지와속옷을발목까지끌어내려벗기자난실오라기
하나걸치지않은알몸이됐다. 나와는달리그는코트도벗지않은상태였고.
부끄러워할새도없었다. 백도하가다리를확벌려그사이에파고들어몸을더깊게겹치면서다시입술을
덮어왔다. 난폭하게입술을빨며손으로더듬더듬내다리사이를문질렀다. 흥건히젖은아래를더듬는손길에
벌어진허벅지가움찔움찔떨렸다. 다리사이에파고든그의몸때문에다리를확오므릴수도없었다.
그의손이발딱일어선성기를훑거나움찔대며덜렁이는불알을둥글렸다. 입안, 목구멍깊숙한곳까지혀를
쑤셔넣어헤집어대면서.

“흣, 으으. 하아. 수, 숨막혀요.”


맞붙인입술새로신음이끝도없이새어나왔다. 그의아래에깔린몸이끊임없이꿈틀거렸다. 버둥거리면서
그의어깨를밀어내보지만힘이하나도들어가지않은, 시늉뿐인반항이었다.
하반신을더듬는커다랗고뜨거운손의감촉이미치도록좋아서몸이시뻘겋게익었다. 가죽소파에깔린
등허리며엉덩이가요란하게들썩거렸다. 이미젖을대로젖어서흐물흐물풀어진구멍이미친듯이빠끔거렸다.
백도하와처음몸을겹쳤던때보다내몸은더빠르고격렬하게달아올랐다. 순식간에끓어올라온몸을흥건히
적시고는참지않고신음을마구토해냈다. 두려움따위는사라진지오래였다. 이남자와짐승같이뒤엉켜도
죽지는않는다는걸알기때문일까. 그때같이또쇼크가와서쓰러져도이남자가어떻게든날구해주리란믿음
때문일까.
뭐가됐든상관없었다. 미치도록몸이뜨거워서제발어떻게해줬으면싶었다.
애달프게만지지만말고넣어줘. 제발. 제대로쑤셔줘요. 흠뻑젖은머릿속에말도안되는생각이들어찼다.
입술을꽉짓씹었다. 입을열면저소리를입밖으로토해낼것같아서.

그의굵은손가락이젖어서움찔대는구멍주름주위를손끝으로덧그리다안으로쑥들어왔다. 아무저항감없이
손가락이빨려들어왔다. 젖은구멍이기다렸다는듯이손가락을게걸스럽게집어삼켰다.

“흐윽!”
“벌써이렇게흠뻑젖어서죄열려있지.”

입술을맞댄채로그가질척하게속삭였다. 그의마디가굵은손가락이빠르고거칠게안을쑤시기시작하자
이성이날아갔다. 벌어진입에서뜨거운신음이마구터져나왔다.

“하, 하윽, 으응, 하으윽!”


“좆을넣기도전인데벌써이렇게흐물흐물풀어져선.”

구멍을쑤시고들어온굵은손가락이빠르게안을드나들었다. 내벽을사정없이푹푹쑤셔대며후벼파고,
자극당하는붉은점막을샅샅이긁고, 손가락개수를더해가면서안을엉망으로쑤시고헤집어놨다. 구멍이
조여들면붉은점막이그의손가락에차지게달라붙었다가손가락이빠져나가면함께딸려나가는듯도했다.
아찔한쾌감에눈앞이아득해졌다. 눈앞에서하얀빛같은게펑펑터졌다.
젖은구멍에서찌걱대는마찰음이들리며물같은게줄줄흐르는듯한느낌도들었다. 엉덩이가저절로
흔들렸다. 나도모르게엉덩이를흔들면서듣기민망한신음을연방토해냈다. 성기를곧추세우고물을질질
흘리면서. 숫제발정난짐승같았다. 페로몬에절어성욕만이가득들어찬짐승.
“제대로안씹어요? 손가락하나못씹으면서내좆은어떻게받아먹으려고.”

손가락이구멍안에서갈고리모양으로휘어져예민해진점막을난폭하게긁었다.

“흐앗!”

등허리가펄쩍튕겼다. 허벅지가바짝긴장하고발가락끝까지힘이들어가며구멍이꽉조였다. 곧추선성기도


바르르떨리며묽은액을흘리면서복부를적셨다. 한껏오므라든구멍을억지로잡아벌리듯이안에파묻힌
손가락이벌어졌다.

“하으, 으으읏. 하으으으.”

등허리가격하게흔들렸다. 떨리는눈가가축축하게젖어드는게느껴졌다. 안에서벌어져구멍을넓히던


손가락이점막을긁고빠져나오더니, 구멍이오므라들기도전에다시끝까지푹들어와안에서빙글돌려진다.
그러곤다시빠져나갔다퍽쑤셔들어오고는안에서마구휘돌려졌다.
벌어진입에서나오는소리는신음인지, 울음인지모를정도로질척함을담고있었다. 예민해질대로예민해진
안을무자비하게쑤시고짓이기는행위에온몸이뒤틀리고꿈틀거렸다. 안을드나드는손가락이몇개인지도
몰랐다. 구멍이벌써헐어버릴것같았다.

“그개새끼앞에서도울었어요?”

그가거친숨결과함께뜬금없는소리를내뱉었다.

“아, 아니…… 내가왜다른사람앞에서울어요…….”

흐느끼면서고개를붕붕저었다. 아니다. 하성호에게목이졸릴때눈물이찔끔나오긴했나. 하지만저남자가


묻는울었냐는소리는지금처럼흥분에젖어발발떨며울었는지를말하는것일터였다.

“당신은야하게울때페로몬이확짙어져. 알아요? 무방비하게시뻘겋게익어서는사람돌아버리게하는향기를


펑펑풍긴다고. 타고난거야, 아니면일부러이러는거야?”
“제페로몬을맡을수있는건도하씨밖에없어요. 억제제도먹어서페로몬이풍길리없다고요. 그리고그
사람은단순히위협을한것뿐이에요.”
“그럴리가없어. 이렇게꼴리는향기를알파새끼들이못맡을리가. 나도알파니까알아.”
다시느꼈다. 이남자는내말을들을생각이없다는걸. 내가사방에발정난페로몬을풍기며알파들을유혹하고
다닌다고믿어의심치않고있었다.

“다른새끼앞에서울지마요. 울면서다른새끼유혹하지마. 당신은무방비상태로그럴지몰라도굶주려


돌아버린새끼들은절대로이냄새, 안놓쳐. 젠장, 이걸대체어떻게막아야돼? 페로몬한방울남지않게쥐어
짜버릴수도없고. 구멍이란구멍을전부막을수도없고.”

말도안되는소리를진지하게지껄이면서그의손은바삐움직였다. 한손으로는쉴새없이굵은손가락으로
구멍을드나들고, 다른한손으론가슴을넓게쓰다듬다가유두를꼬집어비틀었다. 날카로운통증에입이크게
벌어져비명같은소리가튀어나왔다.

“하악! 아, 아파.”

손끝으로잔인하게젖꼭지를비비고꼬집으며힘주어확잡아당겼다. 몸이크게펄떡이면서엉망으로뒤틀렸다.
발끝까지힘이바짝들어가구멍이수축하면서그의손가락을힘껏씹어물었다.

“아프다면서온몸이발갛게익어서바들바들떨고, 울면서좆을세우고엉덩이도흔들고. 대체어떻게생겨먹은


몸이야.”
“하윽. 윽. 아파요. 진짜아파…….”

흐느끼면서손을덜덜떨며집요하게젖꼭지를지분대는백도하의손을떼어내려시도했지만, 그는사정을
봐주지않고유두를잔인하게꼬집어비틀었다. 날카로운통증에소스라치게놀라허리가크게휘어경련하는것과
동시에, 첫번째절정이터졌다. 꺼덕거리던성기가단단히치솟더니뜨거운체액이확뿜어져나왔다. 통증과함께
순식간에찾아온절정이었다.

“흑, 흐으윽. 흐윽.”

절정의여운에감정이격해져몸을떨면서눈물을줄줄흘렸다. 흘러내린눈물이귓바퀴에고여귓속까지
축축하게젖었다. 첫사정이라양이많아정액이복부며다리사이를적시고줄줄흘러엉덩이골사이까지흠뻑
젖었다. 젖은눈물냄새, 진한정액냄새가섞인그의페로몬향기가유난히독했다. 몸에닿는차가운공기까지
끔찍이도생생하게느껴져몸을떨면서히끅거리는울음을삼켰다.

“젠장. 정액냄새까지환장하게달지.”
습한숨을뱉으며그가잠시떼어냈던손을다시유두에갖다댔다. 쓰라리고아픈유두에손이닿는것만으로도
입에서우는소리가튀어나왔다.

“흐윽, 하으으!”

눈에서불꽃이튀고몸이격하게튕겼다. 사정을하고나면몸이극도로예민해진다는것을최근에야깨달았다.
모든감각이몇배는더민감해졌다. 백도하의손이튕기고꿈틀대는내몸곳곳을만지고쓰다듬고, 감각이
예민해진부위를잔인하게뭉개고짓이겼다. 방금전에사정해가장민감해진성기를쥐어귀두를사정없이
문지르고긁는다. 몸이용수철처럼튀고엉망으로뒤틀렸다. 벌어진입에선흐느끼고애원하는소리가연방터져
나왔다.
우스운게다리를버둥거리고손을허우적거리면서그만하라고, 아프다고울며애원하면서도엉덩이를흔드는걸
멈추지않았다. 그의손에감싸여쥐어짜이는성기는풀이죽어늘어지는법없이꼿꼿하게서서멀건액을쏟아내고
있었다.
아팠다. 괴로워서숨이막혔다. 하지만미치게좋았다. 날극한으로몰고가는아찔한고통이절정의쾌감으로
변해내온몸을시뻘겋게짓무르게했다. 정신까지엉망으로젖어너덜너덜해졌다. 숨을들이쉴때마다콧속으로
쏟아져들어오는페로몬에취해미쳐버릴것같았다.
아니, 이미미쳤다. 아무생각도들지않았다. 제어할수없는성욕에사로잡혀생각이란걸할수가없었다.
난잡하게쑤셔박히고싶었다. 그의굵고긴성기에박혀정신없이꿰뚫리고만싶었다. 눈덩이처럼확불어난성욕이
전신을덮쳤다.

“페로몬…… 미쳤군. 날터뜨려죽일셈이야?”

날죽일기세로페로몬을뿜어내는건백도하도마찬가지였다. 그의페로몬에반응해온몸의구멍이란구멍이죄
열려그를유혹하는진액을뿜어내는듯했다. 죽을것같았다. 몸이며뇌가녹아버릴것만같았다. 내몸을만지던
그의질척한손은떨어진지오래였다. 어느순간부터백도하는내게서손을뗐다. 그런데도나혼자잔뜩달아올라
입을벌려애원하고흐느꼈다.
그가뿜어내는독한페로몬에배속이온통뒤집히고꼿꼿이일어선성기에서는방뇨할때처럼물이흘러내리는
감각이느껴졌다. 뒤가빠끔거리며열을뿜어내는감각에진저리가쳐졌다. 신체일부분에서느껴지는모든감각이
열을품은덩어리가되어배속에고이는느낌이었다. 이게방출하지못한페로몬이배속에쌓이는느낌일까.
자세한건알수없었지만그냥싸고싶었다.
“도, 도하씨. 도하씨…… 죽을것같아요. 흐, 으윽, 흑. 미칠것같…….”
“미칠것같아? 난이미미쳤어. 돌아버리겠네. 이걸어떻게밖에내보내.”
“도하씨. 제, 제발. 제발…….”
“제발, 뭐?”
“너, 넣어줘요. 으으. 박아줘요. 제발, 제발넣어요.”

내가무슨말을토해내는지자각도없었다. 정신이나가흐느끼면서다리사이에자리잡고앉은그의하반신에
엉덩이를흔들어가며비볐다. 발정난구멍에문질러지는그의하반신도단단히일어서있었다. 당장이라도바지
앞섶을뚫고나와내안을꿰뚫을기세로잔뜩성이나있다.

“너, 넣어줘요. 도하씨거.”

히끅거리는소리와함께흘러나오는목소리는애원을담고있었다. 내목소리가아닌것같았다. 어설프게손을


내려내다리사이에닿아있는그의하반신을더듬었다. 발칙하게도그의바지버클을풀어보려는시도도했다.

씨발. 백도하가음습하고살벌하게욕을씹어뱉으며몸을일으켜소파바닥에무릎을대고앉았다. 그리고발정


난내모습을내려다봤다. 내다리사이에거만하게앉아얼굴을일그러뜨리고거추장스러운코트만벗어던지곤,
옷을다벗기도귀찮은지하얀손을바삐움직여바지버클을풀고지퍼를지익끌어내렸다. 여유라곤없는성급한
손길이었다.
지퍼사이로튕겨나온굵은성기는흉기그자체였다. 배에닿을듯이일어선성기가흥건히젖어위협적으로
번들거렸다. 눈물과열기에젖은시선이저절로노출된그의성기에꽂혔다.
그가손으로내양무릎을세워올리곤활짝잡아벌렸다. 등허리가붕뜨며자연적으로엉덩이가그의앞에훤히
드러났다.

“다리벌리고있어. 소원대로쑤셔줄테니까.”

나도모르게그의명령대로양손으로내허벅지를잡아벌려자세를유지했다. 부끄러운것도없이다리를벌려
엉덩이며, 벌름거리는구멍을드러내놓고는뜨거운눈으로그를보면서헐떡였다.
그가발기한제성기의기둥을쥐고드러난구멍입구에문질렀다. 붉게충혈된구멍주위를약올리듯이
비비다가애가달아오물거리는붉은입구에끝부분을조준하는가싶더니, 갑자기강하게허릿짓을해단번에짓쳐
올렸다. 굵은성기가사정없이퍼억쑤셔박혔다. 순식간에끝까지꿰뚫렸다.

“아으윽!”
꿰뚫린충격에몸이크게튀었다. 등과허리가아치형으로튀고목이뒤로크게젖혀졌다. 워낙굵고길어배속
장기까지무자비하게쳐올리는듯했다. 구멍이빡빡하게, 한계치까지늘어나파르르떨리며그의성기를위태롭게
씹어물었다.
갑자기빠르게머릿속에스치는생각하나가있었다. 콘돔.

“자, 잠깐. 도하씨, 하으, 코, 콘돔…… 콘돔을해야한다고…….”


“안해도상관없지않나?”

하지만말을들을백도하가아니었다. 잠시다리를벌리고꿰뚫린상태로그를올려다봤다.

“그때같이페로몬쇼크가오거나하면내가책임질테니까.”
“하지만…….”
“집중안하지? 여유부릴틈도있고. 다리제대로벌리고있으라고했어요.”

어느새허벅지를움켜잡고있던손에서힘이빠진모양이었다. 백도하가힘없이늘어진내손대신양무릎을
잡아찢을듯이벌리곤, 빠르고격하게허릿짓을해대기시작했다. 더이상아무말도나오지않았다. 숨돌릴틈도
없이몰아붙이는격렬한움직임에마구흔들리느라콘돔생각은사라졌다.

“여기로넣어주는거는다받아먹어요. 남김없이. 제대로씹고제대로삼켜.”

그가뇌까리는음절마디마디에마다굵은숨소리가섞였다. 그에게꿰뚫려흔들리면서흐느끼는신음을
내지르느라그의목소리가제대로들리지도않았다.
사정없이안이때려박히고내벽이짓이겨졌다. 안에빠듯하게들어차있던그의성기가반쯤빠져나왔다다시
뿌리끝까지퍽, 퍼억처박히기를반복하며안을짓물러터뜨렸다.
안의극점을끊임없이찌르고뭉갰다. 그의무자비한성기는구멍뿐만아니라배속까지엉망으로헤집어놓았다.
엄청났다. 자지러질듯한극한의쾌감이쉬지않고계속됐다. 이감각에익숙해질수가없었다. 계속같은체위로,
같은방향으로안을쑤셔박히고있지만, 성기끝이안쪽깊숙한곳을찔러댈때마다새로운고통이터졌다. 고통을
동반한숨넘어가는쾌감이.
짓물러터지다못해붉게헐어버린점막이그의성기에달라붙어죄딸려나가는느낌이었다.
더욱진하고독해져사방에풍기는백도하의페로몬은마약같아서, 통증은곧쾌감으로변했다.

“하, 으, 으아아도하, 도하씨. 도하……. 하으, 으, 으!”


울었다. 울고흐느꼈다. 비명같은소리도내질렀다. 빠르게짓쳐올리고쑤셔대는대로맥없이흔들리느라
입에서터져나오는소리도뚝뚝끊겼다. 벌어진입사이로미처삼키지못한타액이물처럼줄줄흘렀다.
그가처박아흔들때마다가죽소파바닥에달라붙은등이쓸려서아프고쓰렸다. 뭔가붙잡고버티고싶었지만
붙잡을것이없어애꿎은소파만긁었다. 정신이하얗게아득해졌다가돌아오길반복했다.
구멍이다물릴새가없었다. 벌어진다리며, 입도다물수가없었다. 내몸은전부활짝열려서백도하에게
농락당하고있었다. 불에달군인두처럼내아래를지져대고있었다. 안에끝까지처박힌그의성기가움직이지않고
크게팽창해부르르떨렸다.
안에싸지말라고말릴새도없었다. 뜨거운것이안에서왈칵쏟아졌다. 아, 젠장……. 떨리는내벽을뜨거운
것이온통적시는느낌이거지같았다. 양도엄청나서한치의틈도없이맞물린구멍사이로정액이줄줄새어
나왔다.
백도하가굵은숨을쉬면서느긋하게허리를움직였다. 남의몸안에서거하게쏟아냈음에도그의성기는조금도
기죽는법없이안을휘저었다. 내벽깊숙한곳, 점막곳곳까지제정액을펴바르듯이휘젓고는허리를뒤로물려
성기를쑤욱뽑아냈다. 그의것이뽑혀나간구멍에서정액이주르륵흘러내렸다. 안에싸놓은양이얼마나많은지
뒤로물을쏟아내는기분이었다.

“흐아, 하아아. 흐으.”

숨을몰아쉬다흐느낌이터져나와입술을깨물어삼켰다. 아직도뒤에그의성기가처박혀있는것같았다. 그의
성기크기대로늘어나꽉다물어지지않고벌름거리는구멍이화상을입은듯이따갑고쓰렸다. 온몸이다아팠다.
싸한느낌이온몸에퍼지며정신이몽롱해졌다. 심장박동이비정상적으로빨라지고더운데도한기가들어몸이
떨리는, 쇼크와발작이오기전의불길한징조.
하지만그때와는어쩐지좀달랐다. 심장이쥐어짜이는듯한통증은아직찾아오지않았다. 한기가들어살갗에
소름이돋긴해도몸을불태우는벌건성욕은여전했다. 더쑤셔줬으면싶었다. 이걸로는모자랐다. 조금도
만족스럽지않았다.
발름거리는구멍이따갑고쓰리고참을수없이근질거려서손을내려아래를더듬었다. 손가락으로흠뻑젖은
구멍을쑤셔대고엉덩이며허리를흔들면서울었다. 그가안에싸갈긴정액이움찔움찔새어나오고있어구멍을
더듬는손가락이흥건히젖었다. 미쳤다, 진짜.

“도하씨. 넣어줘요. 얼른넣어…… 아, 아으으.”


“하! 보채지말아요. 금방먹여줄테니까. 왜이렇게유난히몸이달아서이러지? 히트사이클이야?”
어차피백도하도이번한번으로끝낼생각은없었을것이다. 그는잠시몸을일으켜옷을마저벗어던지곤군살
하나없이탄탄한알몸을드러냈다. 잘짜인근육을뒤덮은피부는매끄럽게윤이나고약간상기된얼굴은지나치게
건강해보였다. 조금도지친기색이없어보였다. 다리사이에불룩치솟은성기도마찬가지고.
내안을무자비하게꿰뚫어뭉개던흉기같은성기를흐려진눈으로홀린듯이바라봤다. 검붉게젖어기립한
성기에서숨막히는페로몬이뿜어져나왔다.
백도하가내양발목을힘주어잡아벌리곤제어깨위에걸쳤다. 귀두가구멍입구를비집고박히는가싶더니
순식간에끝까지푸욱쑤셔박혔다. 충분히젖어서풀어진구멍이기다렸다는듯이그의성기를받아삼켰다. 몸이
뱀처럼휘어졌다.
그의성기는다시빠르고거칠게내안을짓이겨뭉갰다. 붉게젖은안을질컥거리며잔인하고악랄하게짓찧어
박아댔다. 불알까지짓이겨처넣으려는듯이깊게도처박는다. 퍽, 퍽, 쳐올릴때마다그의불알이처덕거리며구멍
아래를아프게때렸다.
난또맥없이흔들리며울음을토해낼뿐이었다. 아찔한열락이긴했지만쉬이끝나지않을지옥이기도했다.
통증과쾌감이롤러코스터를탄듯이오르락내리락, 빠르게교차됐다.

눈앞에서불꽃이번쩍거렸다. 정신없이흔들리고때려박히는와중에안에서또한번뜨끈한것이터졌다. 아까
흠뻑싸놓은정액이다흘러나오지도않았는데안에또잔뜩쏟아냈다.

“흐, 으윽, 흐으으.”

안에박힌걸밀어내려고아래에본능적으로힘을주자, 그가허리를힘껏튕겨반쯤미끄러져나온제성기를
끝까지찔러올렸다.

“한방울도흘리지말아요. 몇번이고계속먹여줄테니까뒤로다삼켜.”

그러며위협적으로으르렁거렸다. 뒤로다삼키라니말이되는소리인가.

하지만안에찰랑찰랑들어찬정액이움찔대는내벽에차지게달라붙어흡수되는듯한느낌이들었다. 그의
페로몬을품은정액이배속까지흘러들어내장을녹여버리는게아닐까, 하는무서운생각까지들었다. 뒷구멍으로
정액을삼키라는소리는헛소리였지만, 내생각은헛된망상만은아니었다.
로열알파의페로몬이그만큼지독하다는건사실이니까.
무섭고아찔한기분이훅끼쳐흐느껴울면서몸을잘게떨었다. 괜히서러운울음이찰찰흘러넘쳤다. 정신이
가물가물, 몽롱해지며의식이끊어질것같았지만불에달군쇠기둥같은것이아직아래에처박혀있었다. 물론
조금도수그러들지않은상태로살아있는뱀처럼내안에서꿈틀대며움직였다. 그리고내몸의열기역시조금도
잦아들지않았다.

내몸은아직끝이아니라고, 아직만족하지않았다고말하고있었다. 입술새로흘러나오는울음이괴로움의


울음만은아니었다.
이미친성욕의끝에무엇이있을지, 이폭풍이휘몰아치고지나간뒤에는얼마나망가지고부서지고
너덜너덜해질지, 얼마나많은것이변하게될지, 가늠할수조차없었다.

***

하성호의별장에서열리던파티에초대되는이들은하나같이부와권력을지닌최상류층인사들이었다.
경쟁하듯이명품옷을차려입고운전기사를대동한고급외제차를타고와서는, 홀에삼삼오오모여값비싼
샴페인을물처럼마시며담소를나누는광경은여느사교파티와다를바없었다.
평범한파티의풍경은오래유지되지않았다. 보통은유현서나그들과난잡하게뒤엉킬이들이등장하면
그때부터본게임이시작되곤했다. 로열알파들이내뿜는페로몬에마약까지곁들인섹스파티. 우아하게샴페인
잔을기울여가며사업이야기며세계정세이야기를나누던이들이옷을벗어내던지고발정난짐승으로돌변했다.
파티의초대객들을상대하는이들도짐승이되는건마찬가지였다. 그들은로열알파의페로몬과약에취해
이성을잃고자지러질듯이신음하며괴롭다고울면서도엉덩이를흔들어댔다. 누가그러라고시키지않았는데도
스스로옷을벗고다리를벌려헐떡였다.
그러다실제로숨이넘어가기도하고페로몬쇼크가와코피를쏟으며쓰러지기도하고. 파티홀에서는누구나다
공평하게알몸이되었고, 성욕에돌아버린짐승이되었다.
난도무지그들을이해할수가없었다.
로열알파들이야원래그렇게생겨먹은자들이니그렇다쳐도, 그들을상대하는이들은대체왜저럴까. 돈을
주고데려온창부들도있었지만색다르고아찔한자극을찾아서스스로파티에찾아오는이들도적지않았다.
얼굴한번본적없는낯선상대에게박히고또박히다가, 힘이빠져덜덜떨며기어다니면서도또다른로열
알파들에게가매달리고. 그러다초점풀린눈을하고서그들의다리사이에얼굴을묻고개처럼상대의좆을물고
빨고. 누구의것인지모를정액으로흠뻑젖은하반신을활짝열고붉게짓물러터진구멍을제손가락으로
쑤셔가면서제발누구라도좀넣어달라고울며애원하는행태.
간혹히트사이클이온오메가에게발정나달라붙어구멍이란구멍에죄성기를처박아쑤시는기괴한모습의
알파들. 그렇게무자비하게쑤셔박히면서도더거칠게해달라고, 더괴롭혀달라고울면서애원하는모습의오메가.
하나같이기괴하기짝이없었다. 어떻게사람이저정도로미칠수있지? 왜저러는거지? 섹스라는게뭐가
그렇게좋다고?
난평생저들을이해하지못하리라생각했다. 저들처럼페로몬과성욕의노예가되어짐승이되는일은없을
테니까. 난저들과다르니까. 성욕이라는것자체가존재하지않는몸이었으니까.
그런데내가이렇게될줄누가알았을까.

눈앞에서수많은상대들이알몸으로난잡하게뒤엉키고발정난개들처럼들러붙어끙끙대는꼴을보면서도눈
하나깜빡하지않던내가, 페로몬에미쳐스스로다리를벌리고애가달아손가락으로항문을쑤셔가며제발좀
넣어달라고, 쑤셔달라고울면서애원하는날이오게될줄은.
……미칠것같았다. 진짜.
소파에서몇번이고백도하를받아내고상대하다가언제기절했는지까무룩의식이끊겼다눈을떴을때, 가장
먼저치미는건미칠듯한수치심이었다. 이성을잃고눈물을펑펑흘려가며넣어달라고, 엉덩이를흔들면서
백도하를재촉해대던기억이생생히떠올랐다.
내가기절한사이에백도하가뒤처리를어떻게한건지, 마취가덜깬듯이몸에감각이없어수치심만뾰족하게
도드라졌다.
미쳤지. 왜그랬을까. 이성을잃고짐승같이굴었으면그당시의기억마저사라져버리든지. 왜이렇게생생하게
떠올라괴롭게하는지모르겠다.
기절해늘어진사이에백도하가침실로옮겨온모양인지등에닿는매트리스의감촉이푹신했다. 몸위에덮인
이불은가볍고포근하고.
이불속에파묻힌몸은여전히알몸이었지만몸상태를확인해보기도겁이났다. 몇번이나그를뒤로
받아냈는지기억도나지않았다. 뒤가짓무르고헐어서제기능을못하게되는게아닐까겁이나서, 힘을주어
아래를조였다풀어봤다. 움찔대는뒤가얼얼하기만할뿐이었다. 진통제를쓴걸까. 원래대로라면온몸이쑤시고,
뒤가숨도못쉴정도로아프고화끈거려야정상일텐데.
백도하가그렇게쉴새없이뒤에싸갈겼는데도뒤에서정액이흐르는느낌은없었다. 보송보송한몸에선은은한
비누향기도났다. 아마백도하가무뚝뚝하게굳은얼굴로묵묵히시체같이늘어진날씻기고엉덩이사이를벌려
손가락으로안을긁어내줬을것이다. 자세히기억나진않아도욕실에서들리던물소리, 몸을닦아내주던손의감촉
같은게단편적으로떠올랐다.

“으, 으응. 도하씨. 으, 읏. 하으.”

그리고다리사이, 엉덩이안쪽을닦아주던백도하의손길에무의식적으로반응해꿈틀대며울던기억까지.
“으으으. 미쳤구나, 진짜로.”

앓는소리를내면서이불속에서마구뒤척였다. 페로몬탓이다. 이모든게페로몬탓이라생각해야만했다.


딸칵, 문이열리는소리가들렸다. 누가들어오는지확인해보지않아도알수있었다. 익숙한페로몬이
풍겼으니까.

“깼어요?”

백도하의목소리가울렸다. 난잠든척눈을질끈감았다.
발소리를내며가까이다가온백도하가이불을살짝들추곤, 이불속에웅크려누운내이마에손을갖다댔다.
손이서늘해서기분좋았다.

“열은내린것같고.”

말을하다말고백도하가픽웃음을흘렸다. 그가자는척눈을억지로감고있느라마구움찔대며흔들리는내
눈꺼풀위를손가락으로툭튕겼다.

“귀엽기는. 자는척하지말고깼으면눈떠보지?”

하는수없이슬며시눈을떠서그를올려다봤다. 웃는얼굴로날내려다보는백도하는여전히단정했다. 정사의


흔적이라곤조금도없이깔끔하게씻고주름하나없는셔츠와슬랙스를단정하게차려입고있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듯평상시와다름없는모습으로. 늘나만저남자앞에서엉망으로흐트러진모습을보이지.

“괜찮나? 아픈곳있어요? 주치의가와서전처럼크게쇼크가온것같진않다고하면서간단히치료하고가긴


했는데.”
“최교수님이왔다갔다고요?”

“그돌팔이를왜불러? 내주치의가따로있습니다.”
“그러니까의사가와서…… 이꼴을다본거예요?”
“의사니까환자의몸상태를살펴보는게당연하지. 당신구멍상태까지샅샅이다들여다보고치료하고갔어.
닥터김이안에의료기구같은걸넣어서치료하고연고를바를때, 흥분해서좆을발딱세우고앙앙울던거
기억나긴해요? 뒤로뭘넣어만주면자동적으로발딱세우고질질싸지, 이제?”

미치겠다. 앙앙울다니. 진짜내가그랬다고?


“거짓말…….”
“내가그딴거짓말을해서뭐하게? 닥터의손끝만스쳐도바들바들떨면서우는게제법귀엽긴했는데
다음부터는그러지마요. 닥터도알파니까.”

세상에. 내가대체무슨짓을한거야. 민망함과수치심에온얼굴을새빨갛게물들이고서벌벌떠는모습을보는


게퍽재미있는모양이다. 그가짓궂게빙글거리는눈으로날봤다.

“닥터말로는히트사이클은아닌것같다던데. 히트사이클이아닌데도스스로발정이나서엉겨붙었단말이지.
처음엔무섭다고훌쩍거리며몇번이고날밀어내던사람이.”

흥분에겨워목이터져라울면서매달리던내모습이떠오르는지백도하가픽웃었다. 그는즐거운모양이지만난
진심으로괴로웠다. 입술을잘근깨물며있는힘을전부쥐어짜간신히몸을일으켜세웠다.

“……가야겠습니다.”
“어딜가? 아직난만족할만큼싸지못했는데.”

기가차다못해질렸다, 진짜. 인간인가, 저게? 그렇게빼내고도또쌀게남았다고?

“그러다진짜로죽습니다, 저.”
“안죽어요. 지금도죽지않고잘버티고있잖아.”

이러다가또갑자기그의페로몬에취해서이성을잃게될지도모르는일이었다. 얼른침대밖으로다리를빼내
일어섰다. 아니, 시도를했다. 몸에통증이없어서난아주멀쩡한상태라고착각을했다. 하지만다리가휙꺾이며
털썩주저앉고말았다. 갓태어난사슴이다리에힘이없어발발떨다가풀썩주저앉듯이.

“그몸으로어딜가겠다고.”

백도하가코웃음을치고내양겨드랑이사이에손을집어넣어날일으켜침대위에앉혔다. 몸에힘이들어가지
않아앉아만있는데도온몸이후들거리면서떨렸다. 알몸이라한기가들어춥기도했다. 백도하가침대옆옷걸이에
걸린실내용가운을가져와내어깨위에걸쳐주었다.

“이대로벗겨놓고예쁜몸, 계속보고싶은데감기라도들면안되니까. 어지간히약해야지.”


친절하고자상하게힘없이늘어진내팔을들어올려가운을입혀준뒤, 앞을여미고끈으로매듭까지야무지게
매줬다. 코끝을스치는그의페로몬도독하지않고상냥했다.

“힘들면누워도되고. 아니면식사할래요? 점심식사를하기엔이른시간이긴한데.”

그가여상히지껄이는소리에난놀라고말았다. 벌써하루가지났다고? 침실창문에블라인드를쳐놓아아직


밤인줄로만알았다.

“아뇨. 집으로돌아가야합니다. 현서가돌아와서집이발칵뒤집혔을텐데.”


“이젠여기가당신집이야.”

손으로바닥을짚고일어서보려다멈칫했다. 내앞에서서태연하게지껄이는백도하를올려다봤다. 농담을하는


것같진않았다. 이집에안겨들어왔을때에도여기가어디냐는질문에‘당신집’이라는대답을들었던것같고.

“내집이라고요?”
“그래. 당신집. 당신주려고샀어요. 나중에천천히둘러보고마음에들지않으면말해요.”

내표정이이상하게일그러졌다. 머릿속에서온갖생각이들썩거렸지만입밖으로나온소리는이한마디였다.

“왜이런짓을해요?”
“그러고싶으니까.”

돌아오는대답도간단명료했다. 너무나도백도하다운대답이었다.

“아니, 대체왜…….”
“아, 차가필요하지? 차는한실장에게말해뒀어요. 또필요한게있으면한실장에게말하면됩니다.”
“저기, 백도하씨.”
“또뭐가문제인데?”

뭐가문제냐니. 총체적으로다문제야. 기가차서말문이막혔다.

“백도하씨가왜제게집을사주십니까? 도하씨한테대체제가뭐라고…….”
“애인.”
그가내말을뚝자르고단호하게대답했다.

“애인관계잖아. 우리사이. 당신한테는내가애인이아니야?”

내생각도제생각과같은지되묻는다. 어떤대답을해야할지몰라서잠시할말을잃고그를바라보고있으려니,
백도하가인상을팍썼다.

“대답좀하죠? 나만안달나서이러는건가? 나만당신이딴놈한테낚아채일까봐불안해서미칠것같은


거예요?”

애인사이가맞는것같다. 시작이야어찌됐건, 가끔전화통화를하고서로몸을맞대뒤엉키고, 서로의체온과


숨결, 체액까지나누는사이. 단순히발정난짐승의교미라치기엔, 명백히감정이란게존재했다. 폭풍같이
휘몰아쳐날몰아붙이는백도하가싫지않다. 그에게서풍기는페로몬이더이상두렵지만은않았다.
이런게애인관계가아니면뭐란말인가.

“아무말이라도해봐. 사람속터지게그러지말고.”

백도하가참을성없게대답을채근했다.

“애인……이죠. 저한테도.”

겨우입을열어말을꺼냈다. 그제야백도하의굳은입매가풀어지며그의얼굴에미소가번졌다.

“당신도나때문에괴롭고?”

그렇다고말하라고종용하는듯한어조였다.

“페로몬때문에괴롭긴합니다.”
“페로몬때문에만?”

끈질기기는. 더이상말려들기싫어서얼른화제를전환했다.

“다떠나서요. 이런건받을수없어요. 다른것도아니고집은…… 이건너무과해요.”


“전혀과하지않아.”

집을무슨신상품코트를사듯이척척구입할수있는재력을가진당신한테나그렇겠지.

“당신은그빌어먹을집에서나와야할필요가있어. 당신이그거지같은집구석에서그딴노예취급을받으며
사는꼴, 내가못보겠어. 뭐, 사실다핑계고.”

백도하가말을하다말고입매를비틀어옅은실소를흘렸다.

“내가당신을매일보고싶으니까. 매일안고싶으니까. 그래서이러는겁니다. 이집에있어요. 내눈에닿는곳에


있으라고. 내눈앞에안보이면불안해서돌아버릴지도모르겠거든.”

묘하게, 아니, 대놓고신경을긁는소리였다. 너무나자연스럽게말도안되는명령을한다. 부탁보다명령하는게


익숙할테니까.
하지만내주제를알고참아야했다. 못이기는척, 적당히튕기고그가베푼호의를감사히받아들여야만했다.
하지만그러기가싫었다.

“싫습니다.”

발끈해서그를쏘아보며한마디뱉었다. 백도하의눈썹이꿈틀거렸다. 내주제를아는데, 내분수를아주잘


아는데, 저남자앞에선같잖은자존심을세우게된다.

“사람을가둬두고성욕해소도구로만쓰겠다는겁니까, 지금? 그런취급에눈물흘리며고마워할사람도


있겠지만전아닙니다. 싫습니다, 그런거.”
“왜또앙칼지게가시를세우지?”

그냥하는말이아니라정말로내가왜이러는지몰라서하는말이분명했다. 저남자가살아온세상속에서나
같은놈은처음일것이다. 아무리그가거지같은소리를지껄여도이제까지는군소리없이명령에따르고, 고분고분
말잘듣는사람들만넘쳐났을테니까.

“당신이란사람, 알다가도모르겠어. 뭐가그렇게문제야?”

백도하가얼굴쪽으로손을뻗기에매몰차게쳐냈다. 찰싹, 제법차진소리가났다. 그가즐거운듯이소리내


웃었다.
“미치겠네.”

웃음기띤어조로한마디툭뱉더니, 백도하가예고도없이몸을던져날덮쳤다. 그와한덩어리로엉켜침대


위로풀썩넘어졌다. 몸이겹쳐지면서육중한체중이고스란히실렸다. 콧속으로파고드는향수냄새에섞인그의
페로몬.
백도하가바동거리는날제체중으로찍어누르고뺨이며귓불, 목에키스를퍼부었다. 사람이아니라커다란
개가덮쳐누르고마구핥아대는것같았다.

“후우. 떨어져요…….”

역시백도하는듣는시늉도하지않고서내귓불을잘근깨물었다. 가운사이로그의손이들어와옆구리며
허리를어루만졌다. 살갗에닿는손의감촉에소름이끼쳐몸이움찔움찔떨렸다.

“속은이렇게말랑말랑하면서겉으로는가시를세우지.”

달싹인그의입술이귓불을지나목덜미로미끄러져내려왔다. 목의여린부분을할짝핥고쪼옥키스하면서, 내
허리를감싸안은채로빙글돌아누웠다. 백도하가바닥에눕고내가그위에누운구도가됐다.

“아무리날카롭게가시를세우고앙탈을부려도귀여워만보이는데어쩌지?”

앙탈이라니. 저남자의단어선정능력엔한숨만나온다. 백도하의앞에서날을세우고반항을하고, 자존심을


세우며튕기는이유는이거였다. 이남자가날받아줄걸아니까.

“당신이아무리개같은짓을해도용서해줄수있을것같아.”

“안해요. 그런짓.”

그가말하는개같은짓이뭔지는모르겠지만내가저남자에게무슨짓을할수있을까. 기껏해야주제도모르고
말대답이나하면서버둥거리며밀쳐내는정도지.

“놔요.”

씨알도안먹힐것을알지만우선말하고꿈틀거려봤다. 역시소용없었다. 그의손이뻔뻔하게가운자락속으로


기어들어와엉덩이를주물러댔다.
“놔요, 좀. 농담이아니라정말가봐야…… 흣, 아으.”

굵은손가락이엉덩이사이를비집고들어오자나도모르게신음이터져나왔다.

“조건반사야, 아주.”

내반응이재미있는지백도하가소리내웃었다. 몸아래깔린그의몸이기분좋게출렁였다. 꼭어린사내애같이


짓궂게도웃으면서내엉덩이를토닥토닥두들기고등을슥슥쓰다듬었다. 몸위에올라탄고양이를어루만지듯이.
쓰다듬는그의손길이부드러워바짝힘이들어갔던몸에서힘이빠졌다.

“난사냥꾼이라동물을키우는사람들의심리를이해하지못했거든. 그런데이젠알것도같아. 살아있는작은


생물은귀엽고따뜻하고부드럽네.”

그가속삭이는목소리가나른하게울렸다. 백도하의단단한몸위에누워늘어져있으려니졸음이솔솔밀려드는
것같았다.
이상한사람. 알다가도모를듯한건백도하도마찬가지였다. 양아치같이무례하게굴고짐승처럼날
몰아붙이다가도꿀이뚝뚝떨어지게달콤하기도하고, 상냥하고자상하기도하고.
그리고그는따뜻했다. 눈물나도록.
아래에깔린그의몸이너무도뜨끈해서가운하나만입은맨몸인데도조금도춥지않았다. 맞닿은몸아래에서
쿵쿵, 세찬심장박동이느껴졌다. 살아있는사람의몸. 온기. 등을쓰다듬고도닥여주는커다란손에선조금의
악의도느껴지지않았다.
이토록편안한온기를느껴본게얼마만일까. 아니, 처음이었다. 누군가의품속에서이런온기를느껴본적은.

“유설우씨. 잘겁니까?”

가물가물, 졸음이몰려와멀어져가는의식을깨우는저음. 난애써무거운눈꺼풀을잡아뜨고몸을짓누르는


수마를밀어냈다.

“아뇨. 안자요.”
“자요. 졸리면.”
“일어나야돼요. 정말로가봐야합니다.”
하지만물먹은솜처럼늘어진몸을일으키는것은생각처럼쉽지가않았다.

“유현서가신경쓰여서그래요? 그자식은신경안써도될텐데.”

갑자기어디선가지이잉, 핸드폰진동소리가울렸다. 백도하가주머니에서핸드폰을꺼내귀에갖다대고입을


열었다.

“상황보고해요.”

백도하의몸위에늘어져있는상태라듣고싶지않아도수화기너머의상대가하는말이다들렸다.

[일단경찰이파티현장에급습해현장에서일당을모두검거했습니다.]
“유현서도?”

정신이번쩍드는소리였다. 아무생각없이늘어져있다가고개를번쩍쳐들어올리고백도하를빤히봤다.
백도하가통화음량을높였는지수화기사이로흘러나오는남자의목소리가더커졌다.

[유현서씨는마약과다복용으로인한쇼크와환각증상으로출동한경찰을공격하다혼절했답니다. 여러약을
한꺼번에과도하게섞어서복용한모양입니다. 유현서씨의소지품과차에서도다량의마약이발견됐고요. 깨어나면
골치깨나아플겁니다. 로열알파들의문란한마약페로몬파티는하도만연해있어새삼스러울것도없다지만,
마약제조까지했다면얘기는달라지죠. 평범한주택가지하에서20만명분의어마어마한양의마약을제조해
왔다면요. 그것도마약제조일당중하나가국가에서보호받고, 온갖혜택을몰아받던로열오메가라면. 언론들이
아주눈에불을켜고신이나서물어뜯을겁니다.]

남자가잠시헛기침을하고는다시말을이었다.

[로열알파들이야무슨수를써서든빠져나갈테지만유현서씨는좀힘들죠. 누구하나책임을지려하지않으려
유현서씨에게만덤터기를씌울겁니다. 이번사건의모든포커스가유현서씨에게만향하겠지요. 지금까지는이런
일이터지면유설우씨가도맡아처리했지만, 이번엔대표님도아시다시피유설우씨가손을놨으니까요. 사건의
스케일이워낙커서유설우씨선에서해결할수있는일이아니기도하고요. 유회장이전담팀을꾸려어떻게든
해볼테지만이번엔불을끄기가쉽지않을겁니다.]
“알겠습니다. 계속수고해주십시오.”
백도하가전화를끊었다. 그는말없이자신을빤히바라보는날보면서눈을휘어웃었다. 꿈틀대며움직여그의
몸위에서내려가바닥에손을짚고상반신을일으켜세워앉았다.

“무슨소리예요, 저게? 제가대체뭘들은거예요?”

내말에백도하가누운채로날올려다보면서나른하게지껄였다.

“경찰이익명의제보를받고마약파티가벌어지는청담동의고급주택가로출동했는데, 지하에서엄청난양의
마약제조까지하고있더라는얘기야. 거기에유현서가가담했다는거고. 유현서가지금은마약과다남용으로
쓰러져서병원에있다는소리이기도하지.”
“마약파티얘기야새삼스럽진않지만마약제조라뇨. 청담동쪽이라면제가알기론현서가주기적으로찾는
J그룹후계자의집이있는쪽일텐데. 그정도재력을가진로열알파가수익창출을위해마약제조를할이유가…….
그리고그런질나쁜파티의단골멤버이긴해도현서는평소에마약을소지하고다니지않습니다.”
“사람일은모르는겁니다.”

그러며그가부스스일어났다. 침대에앉는게아니라완전히일어서서는날봤다.

“그리고꼭손에피를묻혀야만사람을죽이고매장할수있는게아니지.”

그소리가무엇을의미하는지모를정도로바보는아니었다. 만들어진사건. 조작된사건현장. 타깃은


유현서였다. 경찰에신고한익명의제보자가누구인지묻지않아도알것같았다.
왜그랬어요? 그를응시하며소리없는질문을던져봤다. 백도하가씩웃으면서손을뻗어내뺨을가볍게
두들겼다. 페로몬이풍기는하얀손이뺨을스치고떨어졌다.

“식사합시다. 나와요. 당신은너무말라서좀먹어야돼.”

그리고그는등을돌려나갔다. 난그상태로앉아커다란등을멍하게바라만봤다.

** *

[이배은망덕한새끼! 너지? 네가꾸민거지? 어떻게네가이럴수가있어? 키워주고보살펴준은혜를이런


식으로갚아? 우리현서가어떤애인데, 그애가얼마나대단한애인데, 네깟게우리애인생에똥물을퍼부어? 제깟
게감히주제도모르고. 가만안놔둬! 죽여버릴거야! 네가어디에있든, 어떻게든찾아내서태워죽여버릴거야!]
사모님의피맺힌악다구니.

[네가이렇게까지나올줄은몰랐는데. 어떻게될지각오하고일을벌인거지? 지금까지잘해왔으면서왜이런


일을벌여? 네가나에게불만이많은건알고있었지만현서는건드리지말았어야했어. 이렇게나오면더이상은
봐주기힘들지.]

그리고유회장의점잖은협박.

[이개새끼가! 이런짓을하고도무사할수있다고생각하냐? 봐주니까제주제도모르고미쳐서나대지. 내가너


하나못찾을것같아? 씨발, 기다려. 어떻게든찾아내서산채로갈아버릴거니까, 병신새끼야!]

양아치유현서가퍼붓는살벌한욕설.
계속전원이꺼져있던핸드폰에는수도없이많은음성메시지, 문자가들어차있었다. 일일이확인하기도
벅찼다. 특히사모님이교양과품위를갖다버리고온갖저주와욕을퍼부어대는소리들은보통정신으로는듣기
힘들었다.
사모님은내가있지도않은일을모두조작해순진한유현서를지옥으로내몰았다며, 너도불에태워죽여버릴
거라고악을써댔다. 자신의소중한막내아들이순진하지만은않다는사실을잘알면서.
도심한복판의고급주택가에서마약파티가벌어진점은팩트일것이다. 마약제조현장, 마약소지등은조작된
것일테고. 아니다. 또모른다. 백도하의말대로사람일은모르는거니까. 정말로청담동에서살던그로열알파가
지하에마약제조공장을갖추고있었는지도모르는일이다. 유현서가아무도모르게마약을가지고다녔는지도
모르는거고.
진실은아무도모른다. 백도하외에는. 그는그건에대해서입을열지않았고나도캐묻지않았다.
사건이터지고한사나흘, 언론이들썩였다. <수면위로불거진‘로열’ 계층들의심각한마약일탈> 운운하며
온갖자극성제목을내세운온라인기사들이쏟아졌다. 언론에서는‘매칭시스템도입이래유일하게최고점을받아
로열계층에입성, 국가의보호와혜택을받던존재. 꾸준히기부와봉사를하며선행을베풀어노블리스오블리주의
정신을몸소펼쳐보이던청년의어두운이중성’에포커스를맞춰떠들어댔다. 로열알파들의이야기는없었다.
포커스는오직유현서였다.
그러다며칠이지나자거짓말같이잠잠해졌다. 유회장이혼신의힘을다해꾸렸을전담팀이제대로활약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마침세계정세를뒤흔드는큰사건이터지며유현서의사건은자연스럽게묻혔다.
어찌됐건유현서가대외적인이미지에심각한타격을입게됐다는건사실이었다. 큰불은꺼놓았지만전같은
상태로돌아가진못할것이다. 어딜가든열렬히환영받고사람들의관심과호감을사던, 헐리우드스타같이
화려하기만했던인생으론돌아가기힘들테다.
유현서의티끌하나없던완벽한인생에치명적인흠이생기고만것이다. 유현서인생최초의고난이고.
그건환영할만한일이었다. 집구석에처박혀온갖발광을다하며미쳐갈현서놈의모습을상상하면아주,
정말로즐거워졌다. 자다가도실실웃음이나올정도였다.
내가처리하지않아도되니즐거워하기만하면되는일이었다. 지금은누가현서를감당하고있는지몰라도아마
한명만놈을보좌하기란불가능할거다. 내가그동안유현서를감당하느라얼마나고생했는지, 누구든조금은
알아줬으면좋겠는데.
그리고또한가지확실한건, 나역시전의일상으론돌아가지못하리란사실이다.
내일상, 꾸역꾸역, 죽지못해이를악물고버텨온거지같던일상이한순간에끝장났다. 하루아침에모든게
변해버렸다.

집이사라졌다. 돌아갈곳이사라졌다. 10년을지내왔던그저택, 내방으로두번다시돌아갈수없게생겼다.


그립다거나아쉽진않았다.
대저택한구석에처박힌작고낡은내방. 낡은옷몇벌. 책몇권. 가끔씩몇자끼적이던다이어리. 당장
생각나는것이라해봤자그딴물건들이전부인내짐. 그집으로다시돌아가서내물건을가져올기회가주어진다
해도, 가방하나에전부쑤셔담으면끝일단출한짐.
10년을산그집에얽힌추억따위, 단하나도없었다. 놀랍게도. 아무리쥐어짜생각해보려해도좋은
기억보다는악몽같은기억만떠올랐다.
현서의패악질에시달리느라천근만근늘어진몸을끌고방으로가씻지도않고웅크려자던일. 심한감기에
걸려숨도못쉬게아파도엄살을부린다며현서에게얻어터지던일. 하루종일아무것도먹지못하고힘없이주방에
기어갔을때, 다먹고뼈만남은갈비찜몇점을겨우얻어먹던일.

찬찬히돌이켜보니놀랍도록한결같이지난10년동안내삶은좆같았다. 가축도그런식으로먹이지도, 재우지도


않고부려먹진않을것이다.
유현서를도려내고난10년의세월속에서, ‘유설우’의인생은하나도없었다. 기억할만한추억도, 손에쥔것도,
아무것도남은게없다. 아무도없다. 친구한명, 가볍게연락할지인한명도. 지금이대로내가어딘가에서
비명횡사한다해도날위해진심으로울어줄사람하나없을것이다.

<넌평생지옥에서살게될거야.>
사모님은끊임없이그런문자를보냈다. 그오랜세월을부려먹었으면서남은세월도지옥에서살게될거라고
저주를한다.
내가하지않은짓이었다. 하지만백도하가이런짓을벌이지않았어도, 언젠간내가이런비슷한일을터뜨렸을
게분명했다. 유현서의노예, 유회장집안의치부인‘그돌연변이’로손가락질당하고사는게당연했던인생. 뭔가를
해볼힘도없고, 해보려는의지도없이, 목줄이매여질질끌려다니던세월.
이렇게끔찍했나. 이토록처참한삶이었나.
한발물러나들여다보니, 내가파묻혀있던삶의구덩이는내가생각했던것보다더끔찍한지옥이었다.
싫다. 이젠. 두번다시그인생으로돌아가기싫었다.
10년이란세월동안날속박한노예의굴레에서탈피하고싶었다. 묵은껍데기를벗고이악물고새인생을
살아보고싶었다.
백도하의도움도받지않는완전한새인생.
하지만새인생을향해힘차게도약해보기엔, 내몸상태가문제였다.
몸이아팠다. 많이. 백도하와진하게뒤엉킨이후로계속앓았다. 이번엔처음같은쇼크증상도없고아주
멀쩡해서이젠적응이되었나생각했는데, 그건착각이었다.
숨넘어가게섹스하고, 유현서의사건이터졌음을알게된그날밤, 페로몬쇼크가왔다. 백도하와식사를하던
중에갑자기심장이터질듯이아프더니픽쓰러졌다.
쓰러진이후의기억은처음과비슷했다. 몸을들끓게하는열. 심장을옥죄고온몸을쥐어짜는통증. 속이
뒤집히는토기. 까무룩혼절했다깨어나고통증에뒤척이다가또잠들고를반복했다.

“야, 백도하. 아무래도이사람, 네페로몬을감당못하는것같은데? 할때마다쇼크가오면어떻게버티겠냐?


어쩌자고안에다쌌어? 콘돔이라도하지.”

닥터김이라는, 백도하의주치의로추정되는낯선남자의목소리가울리기도했다.

“닥쳐. 치료나해.”

곧이어들리는백도하의목소리도. 대화의뉘앙스로보건대두사람은오랜친구인듯했다.
주치의가혀를쯧쯧차며내팔뚝에주사바늘을꽂아넣었다. 따끔한통증과함께혈관을타고싸한약이
들어오면서또깊은잠에빠져들었다.
그러다갑자기눈이뜨여약기운이가시지않아몽롱한정신으로침대위에드러누운채로핸드폰을좀
들여다보고, 이번사건으로이미지가완전히구겨졌을유현서를생각하며통쾌해하고, 내거지같은인생을회고하며
감상에도젖어보고, 그러다다시치미는통증에끙끙대면서앓다가잠이들고. 중환자가따로없었다.
잠들었다눈을떴을때, 열번에서너번의확률로백도하가있었다. 굳은얼굴로조용히날내려다보기도하고,
괜찮냐고묻기도했다.

“당신몸은왜이모양이야?”

오늘은짜증난어조로대놓고긁어댄다. 이렇게생겨먹은몸인걸어쩌라고. 이런대답을해주고싶었지만목이


꽉막혀목소리가나오지않았다.

“꼼짝없이누워만있으면서도향기를폴폴풍겨. 잘때도, 울면서앓는소리를낼때도, 깨어있을때도. 몸은


정상이아닌데빌어먹을향기는평소보다더미치게진해서사방팔방에서풍겨. 억제제를용량이상으로
투여했다는데도왜이래?”

날탓하는소리에속에서울컥짜증이치밀었다. 며칠내내누워만있는사람한테저게할말인가. 애초에이렇게


누워만있게된게누구때문인데.
울컥해서막쏘아붙이고싶었지만도무지목소리가나오질않아입만뻐끔거렸다. 목에서쌔액대는소리만샜다.
눈물이비어져나와눈가가시큰거렸다. 안그래도죽을것같이몸이힘든데, 날탓하는소리를들으니괜히
서러워졌다.

“하아.”

굵게숨을내쉬며그가손을뻗어이마를쓰다듬어줬다. 손끝으로눈물이배어나온눈가를문질러줬다.

“알았으니까울지마. 얼른나아요. 제발일어나. 아픈사람엎어놓고박아대는개같은짓은하고싶지않아.


진심으로.”

더없이단정하고우아한얼굴로지껄인다는소리가그랬다. 기가막혀서노려보니웃는얼굴을하고내입술을
매만지면서뻔뻔하게속삭였다.

“입으로라도빨아줄래요? 뒷구멍은못써도이구멍에라도처넣어야살겠는데.”
손가락이입술사이를비집고들어와입안을헤집었다. 산송장꼴로누워있는사람한테발정하는저남자도정신
나갔지만, 그의페로몬에반응해뜨거워지는나도미친건마찬가지였다.
때마침주치의가문을열고들어오지않았다면진짜로좆을꺼내내입에처박았을지도모를일이었다. 의사가
얼른달려들어백도하를밀쳐냈다.

“백도하. 너왜이래? 아직몸도성하지않은사람한테무슨짓을하는거야? 설우씨. 괜찮아요?”

괜찮았다. 아직은. 의사에게별꼴을다보였지만새삼스럽게부끄러워져서눈도마주치지못하고고개만


끄덕였다.

“아직아무짓도안했지만인내심이바닥이나고있어. 돌아버려서저사람한테무슨짓을할지모르니까, 뭐라도


해. 왜저렇게몸이낫질않는거야? 이젠적응이될때도되지않았어?”
“야. 네페로몬이얼마나독한데. 그걸로열오메가도아닌일반인한테적응하라고하냐? 난설우씨가이정도로
버텨내고있는것만해도신기한데.”
“적응해야돼. 그래야만돼. 네가생각하는것이상으로난엄청나게참고있어.”
“너진짜안되겠다. 어디가서좀빼고와라. 오메가라면널리고깔렸잖아.”
“저사람이아니면안돼. 저맛을알아버렸는데어떻게다른놈을안아? 생각만해도역겨워.”

하! 기가차는지의사가대차게코웃음을쳤다. 백도하가한숨을쉬며의자에털썩앉았다.

“저환장하게하는페로몬이라도억제할순없는거야? 왜갈수록더진해져서사람을발정난개새끼로만들지?”
“그거야성관계를하고목에표식까지남겨댔으니냄새가진해지는게당연하지. 그리고못참겠으면설우씨를
보러오지않으면되잖냐.”
“하루라도안보면미칠것같으니까.”

허어! 아까보다더크게헛웃음을치고는의사가날바라보면서중얼거렸다.

“설우씨. 대체저자식한테무슨짓을한거예요? 내가알던백도하가아닌데?”

뭐라할말이없어고개를옆으로돌리고그냥모른체했다. 차라리정신이없는편이낫겠다싶었다.

“세상에, 기가막혀서. 총들고사냥이나하러다니던자식이갑자기어디서이런희귀종을발견해와선.


데려오려면제대로된거를데려와야지, 이게뭐냐.”
사람을앞에두고별말을다지껄인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의사역시무례하기짝이없는인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무례한소리를툭툭뱉곤했다.

“닥쳐, 김빈우. 남의애인한테무슨소리를지껄이는거야?”


“미치겠다. 애인이란다. 백도하, 저까다로운새끼입에서애인이라는소리를듣게될줄은. 그나저나이러면
유현서는어쩌냐?”
“갑자기유현서가왜나와?”
“아니, 유현서가너한테푹빠졌잖아. 그콧대높은인간이네앞에서끊임없이알짱대고너만보잖아. 너한테
관심받고싶어서갖은수를다쓰는데넌거들떠보지도않고. 보고있으면얼마나웃긴지아냐?”
“유현서는역겨워. 얼굴도목소리도다싫어. 특히그자식의페로몬.”

백도하는떠올리기도짜증난다는듯한어조로중얼거렸다. 유현서에대한백도하의반응은쭉한결같았다.

“그럼얼마전에있었던유현서의피아노콘서트엔왜갔는데? 너한테잘보이려고일부러쇼팽을연주한거
같던데.”
“유설우씨를보러.”
“하하하! 돌아버리시겠다!”

김빈우가크게웃음을터뜨렸다. 듣는내가부끄러워서미쳐버릴것같았다. 그냥푹잠들수있게진정제라도


놔달라고말하고싶을정도였다.

“유현서는이사실을아냐? 모르니까가만히있지. 알면그성질에가만히있겠어? 그새끼, 성격지랄같은거알


만한사람은다아는데. 곧결혼할거라고확신에차서말하고다니길래, 당연히너하고잘되어가는모양이구나
생각했지.”

김빈우는쉴새없이지껄이면서도내몸의열을재고, 혈압을재고, 능숙한솜씨로피를뽑아갔다.

“헛된꿈을꾸고있군. 유현서의면전에대고내가당신을선택하는일은없을거라고분명히말해뒀는데.”
“진짜? 그런소리를듣고도포기하지않았단말이야? 진짜너한테푹빠졌나보다? 이거진짜흥미진진한데.
유현서가알게되면어떤반응을보일지벌써궁금하다. 안그래도얼마전에마약사건터진것때문에유현서뿐만
아니라그집안인간들다설우씨를가만안놔두겠다고이를갈고있던데. 그사건경찰에찌른익명의제보자,
그거설우씨죠?”
“아, 아뇨. 전…… 콜록콜록.”

목소리를쥐어짜내자부어터진목이긁히며기침이터져나왔다.

“어이구. 목소리가완전히맛이갔네. 목많이아파요?”


“네. 목소리가…….”

목소리가나오지않아요. 목이너무아파간신히그소리만뱉자, 김빈우가진찰가방에서도구를꺼내들고


말했다.

“자. 좀봅시다. 입크게벌려봐요. 아, 하고.”

시키는대로입을벌리자그가“옳지. 잘하네.” 하면서입안을들여다봤다.

“목이많이부었네. 억지로말하지말아요. 물많이마시고. 알았죠?”

고개만열심히끄덕였다. 그사이, 백도하의목소리가불쑥끼어들었다.

“그거나야. 익명의제보자.”
“그리고설우씨번호로내전화번호보낼테니까, 갑자기몸에큰이상이생기거나하면도하를거치지말고바로
나한테연락……. 어? 잠깐. 뭐라고?”

촉새같이지껄이던김빈우가뒤늦게야백도하의말에반응을보였다.

“마약파티사건을찌른익명의제보자, 나라고. 유설우씨가아니라. 마약페로몬파티는팩트지만지하에서


발견된마약제조공장건, 유현서의차에서발견된마약소지건, 그건조작이다.”
“어어? 뭐! 뭐라고했냐, 너! 네가한짓이라고? 아니, 왜? 왜그런짓을해?”
“재수없는애새끼, 버릇좀고쳐주려고.”

백도하가아무렇지않게담담한어조로툭뱉었다. 한숨나올정도로짧고강렬하고어이없는대답이었다.
김빈우는기가차서허공에대고헛웃음을치다가, 허탈하게웃다가, “저미친.” 하고중얼거리며거칠게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나도한숨이푹나왔다. 예상은했지만정말이었다. 역시백도하가꾸민짓이맞았다.
“어쩌려고이러냐? 아무리그래도상대는로열오메가야. 유현서가보통로열오메가냐? 그집안식구들이이
사실을알아봐라. 집안대집안싸움으로번질수도있을텐데?”
“아무리잘나봤자오메가일뿐이지. 난로열알파고.”

백도하가의자에비스듬히기대앉아다리를꼬자, 의자에서삐걱거리는소리가울렸다.

“오메가와알파는결코같지않아. 유현서는그사실을확실히자각해야해. 주제도모르고내게이를드러내면


오메가와알파의차이가무엇인지, 온몸으로뼈저리게절감하게될거야. 난절대로안봐줘.”

반박할여지가없는소리였다. 맞는말이었다. 아무리유현서가여왕벌같이로열알파들을휘둘러대지만, 놈은


오메가였다. 그사실은변치않을것이다. 그런데어째저소리가나에게하는소리처럼들릴까.

“난모르겠다. 난신경끌테니까알아서해라.”

김빈우가어깨를들썩여깊게한숨을내쉬었다.

“너한테신경써달라고한적없어.”
“어휴, 진짜.”

다시한숨을푹쉬고김빈우는가방에서주사기와앰풀병을꺼내내팔뚝을걷어내팔에정체모를약을
주사했다.

“목이너무많이부어서항생제를주사했어요. 약도놓고갈테니까약, 잘챙겨먹고요.”

또고개만끄덕이다가고맙다는인사한번제대로하지않았다는게생각났다. 여태껏날돌봐준사람인데.

“가사하니다.”

하지만목소리가제대로나오지않아나도모르게발음이샜다. 김빈우가잠시말없이빤히날봤다. 왜저렇게


보나싶어서나도눈만깜빡이면서그를응시했다.

“귀엽네. 굴속에숨어서머리만내민토끼같은게.”

나도모르게얼굴표정이일그러졌다. 역시백도하의친구구나, 싶었다.


“눈안돌려? 눈뽑아버린다.”

백도하가살벌하게지껄이는소리에김빈우가픽웃었다.

“순수한의미로귀엽다는소리야. 네가목을다짓씹어서당당히표식을남겨놨는데누가설우씨를함부로
건드리겠냐?”

“발정난개새끼들은눈에뵈는게없어지니까. 굶주린짐승새끼들은맛있는냄새를기가막히게알아채게
마련이야.”
“야, 백도하. 이상해, 너. 설우씨의페로몬이그정도로강렬하진않아. 페로몬이풍기긴하는데아주아주옅어.”
“옅다고? 저향기가? 난미쳐버릴것같은데?”
“설우씨한테만이아니라너한테도문제가있는거같다, 아무래도. 너야말로검사를받아봐야할듯싶은데.”

바로받아칠줄알았던백도하가웬일로조용했다. 그는진지한얼굴로잠시생각에잠겼다가입을뗐다.

“난지극히정상이야.”
“너지금까지이정도로한사람한테미쳐서발정난적이있었냐?”

백도하는대답하지않았다. 침묵이곧긍정이었다.

“로열알파들은과도한페로몬때문에몸상태가휙휙바뀌기도하고, 심각한이상증세가생기기도해. 말을안


해서그렇지페로몬과다분비때문에힘들어하는로열알파들많아. 특히넌로열알파들중에서도페로몬수치가
심각하게불안정한케이스야. 정밀검사받아본지꽤됐지? 이번기회에검사받자.”

김빈우의말에백도하가아무리생각해도어이가없는지코웃음을쳤다.

“내게문제가있다고?”
“검사해보기전까진확신할수없지만정상은아닌것같다, 너.”
“뭐이리어려워?”
“네가어려운사람을선택했잖아. 하고많은손쉬운상대는다놔두고.”

왜하필이런돌연변이를. 날내려다보는김빈우의눈이그렇게말하고있었다.
“그런데설우씨. 목에표식남긴건합의된일이에요?”

목이너무아파서대답할수가없어고개만저었다.

“그럴거라생각했어요. 마킹의의미가어떤건지알고는있죠? 설우씨는이제아무나못만나요. 다른알파의


아이도못가지고. 목에그게찍혀있는이상은. 보통알파들의표식보다더지독한거라고, 그거.”

이런게없어도누가내게관심을가진다고. 그리고아이라니. 최교수는임신의가능성이있을지도모른다고


했지만, 그럴리가없었다. 아무리곱씹어생각해봐도그건말도안되는소리였다. 아무리내몸에이상이생겨
없던페로몬이풍긴다해도임신까지는너무갔다.

“아, 설우씨는상관없나? 어차피아이를가질수없는몸이니까. 평범한오메가가아니니히트사이클도따로


없고.”

김빈우가곧이어덧붙여지껄였다.

“오메가야. 유설우씨는.”

그리고백도하는이럴땐언제나, 늘반박하곤했다.

“오메가야.”

더단호한어조로다시한번쐐기를박듯이말했다.

“그래. 알았다. 오메가라고하자.”

백도하와오랜친구인김빈우는쉽게포기했다. 그는백도하의막무가내식고집에익숙해진듯했다.

“그리고다른새끼를왜만나? 다른놈한테가게놔둘것같아? 안놔줘, 절대로. 유설우씨털끝하나라도


건드리는새끼는다죽여버릴거야.”

이어진백도하의반응도예상했던그대로였다. 그는포악한짐승같이으르렁거리며말을씹어뱉었다.

“야. 너무그러지마. 그러다설우씨가너한테질려서도망갈수도있어.”


그말을바로받아치지않는대신, 백도하는얼굴을일그러뜨리고잠시김빈우를노려봤다.

“상당히불쾌한상상인데.”

그의목소리가험악하게가라앉았다.

“상상하는것만으로도눈앞이시뻘겋게타오르는것같아. 유설우씨가나한테어떤개같은짓을해도용서할수
있을것같다고했는데…… 아무리생각해도그것만은용납못하겠어.”

말끝을늘어뜨리며생각에잠겼던그가다시입을열었다.

“그짓만은하지마요. 내손으로당신다리를부러뜨리고싶진않아.”

참태연하게도무시무시한협박을한다. 진지하기짝이없는어조였다.
무슨말을하려고입을열었지만바짝말라붙은목때문에콜록콜록, 기침이터져나왔다. 기침이좀처럼
가라앉지가않아온몸을들썩거리며기침을하고있으려니, 누가내어깨를감싸일으켜앉혔다. 백도하였다.

“물마셔요.”

그가침대끝에걸터앉아한손으로내어깨를감싸안고는, 나머지한손으론물병을들어건네줬다. 떨리는


손으로물병을건네받아마시다가몇모금마시지도못하고또기침이나와다뿜어내고말았다. 기침하느라물병을
놓쳐이불도다젖었다.

“죄, 죄소…… 콜록콜록.”

깜짝놀라목소리가튀면서, 목이긁혀더격한기침이터져나왔다. 입을틀어막고눈물까지줄줄쏟으면서몸을


둥글게웅크려콜록댔다. 백도하가둥글게말린내몸을껴안아등을토닥거려줬다.

“괜찮아요.”

그러면서손을쭉뻗어침대옆테이블에서다른물병하나를더가져와, 물병입구를내입에갖다댔다.
아까처럼물병을받아들었다가또떨어뜨릴까봐, 입만빠끔열어꿀꺽꿀꺽받아마셨다. 반은들이켜고반은줄줄
흘렸다. 물을줄줄흘리면서도허겁지겁한병을다마셨다. 다행히기침이잦아들었지만목은여전히따끔거리는
데다쌔액쌔액하는숨소리가흘러나왔다.
백도하의손끝이온통젖은입가며턱을닦아내줬다. 다정한손길이었다. 날보는시선에도다정함이가득했다.
당신다리를부러뜨리고싶진않다고살벌하게지껄이던남자의모습은어디에도없다.
알다가도모르겠다. 아니, 알아갈수록더모르겠다. 이남자의진짜모습이무엇인지.

“와……. 살다보니별꼴을다본다.”

이추태를다지켜본김빈우가어이가없다는듯이허탈한어조로지껄였다.

“너백도하맞냐? 진짜? 약이라도처먹었냐?”


“헛소리지껄이지마.”

힘이없어멍하게눈만끔뻑이다가잠옷단추를풀려는백도하의손길에흠칫놀라몸을떨었다. 미친건가. 다른
사람앞에서왜옷을벗기려고. 버둥거리며필사적으로그를밀어냈다.

“옷이젖어서갈아입는게좋을텐데.”

됐어요. 괜찮으니까떨어져요. 쌕쌕, 쇳소리섞인소리로겨우지껄이면서꼼지락대며그의품에서벗어나


이불을뒤집어썼다. 갑옷으로몸을보호하듯이.

“난젖은옷을갈아입히려던것뿐이야.”

백도하가변명을하듯이지껄이는소리에아무런대꾸도해주지않았다. 제발좀나가줬으면. 목도아프고머리도


아팠다. 이불속에파묻힌몸에열이올라덥고불편했다. 식은땀이나서땀방울이등줄기를타고주르륵흘렀다.
목의염증때문만은아니었다. 백도하의페로몬이문제였다.
백도하는아직침대끝에걸터앉은채로날빤히응시하고있었다. 내몸상태를알아챈눈빛이다. 그의입술이
호선을그리며올라가고페로몬도한층짙어졌다. 페로몬에즉각반응해아래가흠뻑젖어들었다. 성기가아프도록
단단히서고뒤에선미지근한물같은게왈칵흘러나왔다. 웅크려앉아있는엉덩이아래가흠뻑젖는감촉이
불쾌했다.

“젖었죠? 뒤? 흠뻑젖은향기가나는데.”
그가내몸상태를바로알아채고웃는낯으로지껄였다. 그의눈이짓궂게빛났다. 얼굴에열이확올라고개를
푹수그렸다. 모른척해주면얼마나좋아. 꼭저렇게말로지껄여야하나.

“페로몬에반응해서젖는걸보면몸상태가괜찮은듯한데. 섹스해도되지않나?”

몸이흠칫했다. 그의페로몬에본능적으로열이오르는것과몸이만신창이가된것은별개의문제였다.

“되긴뭐가돼. 나와, 이자식아. 목소리도제대로나오지않아서쌕쌕대는꼴이불쌍하지도않냐. 설우씨. 정못


견디겠으면중화제를먹어요. 정량이상만먹지않으면괜찮을테니까.”

다행히김빈우가백도하를끌고나가줬다. 두사람이나가고나서야난안심하고몸의긴장을풀며이불밖으로
기어나갔다. 끙끙대면서김빈우의말대로중화제를털어입에넣고물을마셨다.
다시침대위에누워몸을웅크리고다리를꼼지락거리거나몸을비틀어가며치미는성욕을눌러삭이려했다. 이
몸상태론자위도무리였다. 섣불리자위했다가몸상태가더악화되면큰일이었다.
빨리나아야했다. 언제까지산송장같이침대에누워시간을흘려보낼순없었다.
다행히중화제의약효가돌면서몸의열이서서히가라앉기시작했다. 열이가라앉으니온몸이저렸다. 목덜미
부근도따끔거리고아픈듯했다. 백도하가집요하게씹어놓은목덜미부근이말이다.

“마킹의의미가어떤건지알고는있죠? 설우씨는이제아무나못만나요.”

김빈우의목소리가귓가에맴돌았다. 사실은모른다. 아직도잘모르겠다. 난분명그러라고허락한적없다.


필사적으로거부했어도백도하는어떻게든날찍어눌러목을씹어댔을것이다.

“다른새끼를왜만나? 다른놈한테가게놔둘것같아?”

백도하의목소리도연이어떠올랐다.

“내손으로당신다리를부러뜨리고싶진않아.”

그말을떠올린순간, 갑자기한기가들어몸이크게떨렸다.
얼른나아야해. 몸이나아야뭐든할수있어. 난이불속에푹파묻혀억지로눈을감고잠을청했다.

“야, 유설우. 안일어나? 병신새끼가어디서엄살을피워!”


겨우잠들었다가고막을때리는앙칼진유현서의외침에소스라치게놀라깨어났다. 끔찍한악몽을꾸다잠에서
깬것처럼땀에흠뻑젖어거칠게숨을몰아쉬면서주위를두리번거렸다. 여전히침실엔나혼자뿐이었다. 유현서는
없었다.
꿈이었고환청이었다. 다행히도.
숨을들이마시자방안에옅게남은백도하의페로몬이콧속가득들어찼다. 여긴유현서의집이아니었다. 내
휴식을방해할사람은아무도없었다. 새삼절감하고안심해서, 몸을들썩여크게심호흡을하곤다시이불속에
파묻혔다.
침대는몇사람이누워서굴러다닐정도로컸는데도난구석에처박혀몸을둥글게웅크려말았다. 어미배속의
태아처럼.
제3장탈피(2)

<설우야. 지금이라도돌아오면다용서해주마.>

며칠만에유회장은태도를바꿨다.

<이번일로충격이너무컸던모양인지현서의상태가심각해. 몇명이나현서옆에붙여줬는데하나같이다
관두고도망쳤어. 현서하나를감당하지못해서다들쩔쩔매고있어. 역시현서에게는네가필요한것같다,
설우야.>

유회장에게서날아온문자메시지를보고대차게코웃음을쳤다.
웃기시네. 난10년이나현서새끼한테시달리면서참았는데고작며칠을못버텨서이래? 10년을무급으로
부려먹던노예가사라지니빈자리가너무큰가보지? 엄청난선심을쓰듯이다용서해줄테니돌아오란다.
웃기지마. 두번다시그지옥으로돌아갈일은없어. 갈곳이없어길바닥에나앉아비명횡사하는일이있더라도
그집으론절대로돌아가지않을거야.
김빈우의치료가효과를봐서인지, 앓을만큼앓고나서인지, 유현서같은진상상전없이누워서푹쉬기만한
덕분인지, 어느날아침에눈을뜨니신기할정도로몸이멀쩡해졌다.
눈을뜨고나서가장먼저한일은유회장에게서날아온메시지를보고코웃음을친것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보고나니몸상태뿐만아니라기분도아주상쾌해졌다.
아주산뜻한아침이었다. 이렇게상쾌하고가뿐한아침을맞은게얼마만인지모르겠다.
마치묵은껍데기를벗고탈피해새몸을얻은것처럼, 몸이가벼웠다.
며칠동안뒹굴던침대에서가뿐하게일어나침실에달린욕실로향했다. 그리고씻으려옷을벗다가거울에비친
내모습을보곤깜짝놀라고말았다.
원래부터건강해보인다고는할수없던몰골이며칠새반쪽이됐다. 누가봐도병색이완연한모습이었다.
백도하와관계하며씹히고빨렸던흔적은많이옅어져있었지만목덜미의멍은선명한붉은색을띠고있었다. 이
여린부위를그렇게씹어댔으니선명한자국이남는건당연했다. 다행히목전반에걸쳐찍혔던하성호의손자국은
좀희미해져있었다.
엉망이네. 만신창이야. 거울에비친퀭한몰골을보다가한숨을푹쉬었다. 한숨소리가욕실안에크게울렸다.
욕실이커서그랬다. 유현서의집한구석에있던내방보다이집욕실이몇배는더컸다. 곰팡이나물때가낀
부분하나없고모든게하얗고반짝거렸다. 욕실물품도다새것이었다. 씻고나서바디워시의달콤한바닐라
향기를폴폴풍기는몸을닦으려고꺼낸타월까지. 남이쓰던흔적은전혀없었다.
그러고보니내가누워있던넓은침대도, 이불도, 침대아래에가지런히놓여있던실내용슬리퍼, 벗어던진
잠옷이며속옷도. 새것이아닌게없었다.
개운하게씻고나와침실을찬찬히둘러보다보니, 침대옆스툴위에갈아입을옷과속옷이단정히접혀놓여
있는게보였다.
입어도될까?
대답해줄사람은없었다. 땀을흘리면서뒤척이며자느라구겨지고더러워진잠옷을다시껴입을까하다가, 누가
뭐라하면벗자싶어서조심스럽게새옷으로갈아입었다. 맨살에부드럽게휘감기는재질의옷이었다.
옷을갈아입고발소리를죽여조심조심침실문을열고밖으로나가봤다. 하얀색감의대리석바닥이깔린
복도를걸어나가자넓은거실이나타났다.

“와…….”

절로탄성이터져나왔다. 거실의전면창을통해한강의풍경이펼쳐져있었다. 유난히날씨가좋은날이라


내다보이는한강풍경이기가막혔다. 잠시창앞으로가넋놓고바깥풍경을구경한뒤, 거실곳곳을기웃거리다
주방에도들어가봤다. 연신탄성이터져나오며입이다물어지질않았다.
거실구석에나선형으로된계단이보이기에올라가봤더니아래층과똑같은구조의뻥뚫린거실이있었다.
아래층의압도적인규모만으로도입이벌어지는데같은크기로2층까지있다니. 집을둘러본내소감은이랬다.
너무과하다.
유회장이머무는본가나현서가단독으로살던저택도크고화려했지만, 어차피내공간은아니었다. 내게
허락된공간이라곤창고같은방한칸이전부였다.
그런데이런집이내집이라니. 당신주려고샀다고, 아무렇지않게툭뱉을수준의집이아니지않나. 과해.
지나쳐, 너무.
머릿속이넘실넘실떠다니는생각들로복잡해창밖풍경에시선을고정했다. 넋을잃고보게끔하는풍경이었다.
좋았다. 너무도아름답고. 바깥공기는차갑고건조하겠지만햇빛이쏟아져들어오는거실은따스하기만했다.
한강풍경이저렇게아름다울줄은. 서울에살면서여유롭게한강풍경을구경해본적도없었다. 봄에연인과
벚꽃길을걷는, 여름에한강둔치에앉아친구들과맥주를마시는, 누구에게는아무렇지않을일상이내겐
사치였다. TV 속에서나보던, 절대로내것이될수없는남의일상이었다.
내가유현서라는족쇄에묶여끌려다니면서흘려보냈던10년동안, 세상은늘이렇게아름다웠겠구나. 내가살던
서울은, 한강은, 늘저토록아름답게빛나고있었겠구나.
평화로운바깥풍경을넋놓고보고있으려니, 머릿속복잡한생각이사라졌다. 대신눈가가시큰해졌다. 가슴
중앙이묵직해지며목이메어왔다. 갑자기울고싶어졌다.
구질구질하게무슨짓이야. 얼른손끝으로젖은눈가를문지르고있을때였다.
갑자기등뒤에서억센두팔이뱀처럼내몸을감아왔다. 깜짝놀라뒤를홱돌아보자, 백도하의얼굴이보였다.
언제왔는지기척도없이다가와등뒤에서날끌어안은것이다. 페로몬도풍기지않고서.

“몸은어때요?”

날보는백도하의말간두눈에미소가번졌다. 그제야그의페로몬이확풍겼다.

“언제왔어요? 아무도없던데.”
“계속서재에있었지. 당신이침실에서나와서도둑고양이처럼살금살금기웃거리며구경하던모습도다
지켜봤고.”

난그가있는지전혀몰랐다. 그는페로몬을아예없애는것도가능하니까.

“그럼말을하시지, 왜몰래…….”

엿봅니까. 그소리가입술에틀어막혔다. 백도하의입술이불쑥다가왔다. 그의입술이말을하느라벌어진입술


위에닿았다. 본능적으로움찔하자, 그가손으로턱을그러쥐고는입술을깊게포갰다.
내모든것을빨아들일듯한키스. 격하게입술을씹다가조금떼어, 굵은숨소리를흘리면서다시깊게겹쳐씹어
먹을듯이빨아댔다. 벌어진입술사이로뜨거운혀가밀려들어와입안점막을샅샅이핥아댔다.
하…….

맞붙은입술사이로뜨겁고질척한숨이샜다. 그의숨결이, 타액이혀끝이얼얼할정도로달았다. 그의페로몬도


달큼하게데워졌다. 그와의키스가처음이아닌데도정신을차릴수가없었다. 이젠이입술의맛이, 이향기에
익숙해질만도한데내몸은전기에감전된듯이떨렸다.
난어설프게입을벌려그의키스를받아들일뿐이었다. 그를밀어내지도않고가만히안겨몸을떨면서.
적극적으로반응하진않아도몸은착실하게뜨거워졌다. 허리를감싸안은그의손이뜨겁게익어흐물흐물늘어진
내몸을돌려세웠다. 마주보는상태로돌려세워, 단단한팔로허리를안아제쪽으로바싹끌어당겨안는다.
잠시떨어졌던그의붉은입술이다시다가왔다. 난입을벌려그의입술을맞을준비를했다. 하지만그는바로
입술을맞대지않고내인중바로앞에서멈추곤픽웃었다.

“이젠윗입도넣어달라고알아서벌리네.”

저입좀다물었으면좋겠다. 정말이지. 살짝꿈틀대면서그의어깨를밀어내자, 그가웃으면서쪼옥, 장난스럽게


소리내키스했다.

“귀여워.”

즐거이속삭이며쪼아대는것처럼몇번더가벼운키스를퍼부었다. 간질간질한느낌에나도모르게몸이뒤로
빠지자, 허리를더단단히감싸끌어안았다. 장난치듯이윗입술, 아랫입술을번갈아잘근씹다가헐떡이는숨소리가
새는입사이로혀를밀어넣었다. 두툼한혀가또한번입안을한껏헤집어놓았다.
혀가멋대로돌아다니는탓에볼이커다란사탕을문듯이불룩해졌다. 볼안쪽점막을남김없이핥은혀가
어찌할바를몰라움찔대는내혀를얽어당겼다. 혀뿌리가뽑히는게아닐까싶을정도로강하게.
벌어진입이다물릴새가없었다. 입이벌어져삼킬수가없는숨결이어지럽게흩어졌다. 한손으론허리를안고,
한손으론뒷머리를쥐어얼굴각도를바꿔가며능숙하고노련하게내입안을농락했다. 감은눈꺼풀위로빛알갱이
같은게터졌다.
좋았다. 이남자와의키스는좋다. 고통이나두려움없이황홀한쾌감만선사한다.
늘어뜨려야할지, 가슴위에포개고있어야할지를몰라어정쩡하게붕뜬두손으로그의팔뚝을움켜쥐었다.
땀이배어난손바닥에그의단단한팔뚝이감겼다. 보답하듯이허리에감긴그의손에더욱힘이들어갔다.
난어느새제법능숙하게그의품안에끌어안겨키스를받아내고있었다. 몸의떨림이사라졌다. 눈을감고
어설프게나마그가빨기쉽게혀를내밀어도보고, 입술을오물오물움직여보기도했다.
그가입술을맞댄채로웃은것같았다. 보지않아도맞붙은입술에미소가번진게느껴졌다.
넘실넘실밀려와날덮치는쾌감의파도. 날잠식한구질구질한연민과우울이쾌락의파도에밀려났다. 아무
생각도할수없게만드는백도하의페로몬. 기분좋게몸을이완시키는매혹적인향기.
입안을돌아다니던따뜻한혀가빠져나갔다. 벌어진채다물리지않은입술을핥고, 아랫입술을살짝깨물고는
떨어졌다. 감은눈을떠떨어진온기가아쉽다는듯이눈앞의남자를응시했다. 벌어진입술사이로떨리는숨이
길게새어나왔다. 그의타액에젖은입술이얼얼했다.

“몸은괜찮은거죠?”
“……네.”
젖은숨을마저내쉬며고개를끄덕였다.
우리는잠시가만히서로를마주봤다. 누가그러자고한것은아니었지만둘다입을열지않았다. 주위는너무도
조용해서우리두사람의숨소리만들렸다.
날보는그의눈이맑게빛났다. 아름다운눈. 창밖에펼쳐진풍경처럼넋놓고보게만드는아름다운얼굴.
그가손끝으로내입가를문질렀다. 호되게앓느라홀쭉하게패였을뺨을매만지다가눈가를문지르고,
간지러워서눈을움찔대자손을움직여괜히귓바퀴를만지작댔다. 눈한번깜빡이지않고줄곧말간눈으로날
응시하면서. 맑은동공이유리구슬같다.
계속마주보기가부담스럽고어색해서내가먼저시선을돌렸다.

“억제제챙겨먹었어요?”
“아뇨. 빈속에약을먹으면속이쓰려서.”

너무꽉끌어안겨서답답해몸을좀움직이자그가귀쪽에입술을갖다댔다. 귓바퀴연골부분을입술로잘근
씹어물다가, 움찔거리는목에코를묻고숨을크게들이마셨다.

“당신향기. 역시좋아. 아무리맡아도질리지가않아.”

그가풍겨대는향기탓에나도아침부터술이라도마신것같이몽롱했다.

“집은마음에들어요?”

목에차지게달라붙은입술이달싹였다. 간지럽고찌릿하다. 목덜미근육이경직되고어깨가움찔거렸다.

“집이너무…….”
“너무?”

향기만맡는게아니라목을핥고씹는다, 또. 목한부분만유난히씹어대는집착이무서울정도였다. 목의붉은


멍이나을새가없을것같았다. 꿈지럭거려봤지만허리를감싼팔은꿈쩍도하지않았다.

“너무…… 크고화려해요. 바깥풍경도너무예쁘고.”


“마음에든다는얘기지?”
“좋은집이긴한데, 역시받을수없어요. 몸상태가나아진것같으니나가겠습니다.”
백도하가목에달라붙어있던입술을떼고고개를들었다.

“그래서유현서의집으로돌아가겠다고?”
“아뇨. 현서나회장님내외가절죽여버리겠다고난리인데그집으론못돌아가죠.”
“내가괜한짓을했다고탓하는소리로들리는데?”
“아닙니다. 도하씨가그러지않았어도저도언젠간참다가폭발해서사고거하게치고나왔을거예요. 저도
다시는그집으론돌아가기싫습니다.”
“그럼그냥이집에있으면될일이에요.”
“그건싫습니다.”

단1초도망설이지않고딱잘라말했다. 이넓고쾌적한집이좋지않은건아니었다. 너무좋아서탈이었다. 바깥


풍경이제일마음에들었다. 이집에서보이는, 저녁에석양이지는한강풍경은또얼마나기가막힐까.
하지만내집은아니었다. 내것이아니다. 내게맞지않는옷이다.

“전분명히말했습니다. 싫다고. 오늘내로바로나가겠습니다.”


“누구멋대로?”

백도하의어조가험악해졌다. 포근한기운이찰찰흘러넘치던두눈이험악하게굳었다. 손바닥을뒤집듯이어조,


표정, 눈빛, 페로몬의기운까지휙휙바뀐다. 다정했던분위기가순식간에쨍하게얼어붙었다.

“안내보내. 당신혼자서는.”
“백도하씨.”
“당신이한가지확실히인식해야만하는게, 당신에겐선택권이없어. 난부탁이아니라명령을하는겁니다.”

하! 기가막혀서실소가흘러나왔다. 혀가아릴정도로달콤한키스를퍼붓던입술이금세독을머금고가시돋친
말을뱉는다.

“무슨소리를하는거예요?”
“내가알아듣기어려운소리를했나?”
“내게선택권이없다는말, 그거…….”
“말그대로의의미입니다. 당신이할수있는선택은당신이살집을고르는정도뿐이야. 이집이마음에안들면
다른집을고르는것정도? 여기서나가겠다, 안나가겠다, 그건당신이선택할수없어. 당신은멋대로못나가.
내가놔주기전까진. 당신은내애인이니까.”
“애인이란게…… ‘내것, 내소유’라는의미의단어였던가요?”
“아니야?”

뻔뻔한말대답에입에서더큰헛웃음이터져나왔다. 그런의미는아니라는변명을기대한내가멍청했다.

“나한테‘애인’이라는의미는그런겁니다.”

덧붙이는당당한소리. 자기가무슨개소리를하고있는지전혀자각이없는듯했다. 누가‘애인’의의미를저런


식으로정의해.
하지만지극히이남자다운해석이라고마음한구석으로수긍하는내가우스웠다. 달콤함이넘쳐흐르는
로맨틱함보다는점성강한비틀린집착이어울리는남자가아닌가.

“아예목줄이라도채워서가둬두지그래요?”
“그러고싶어. 진심으로.”

어이가없어지껄인소리를진지하게받아친다. 새삼깨달았다. 이남자와는정상적인대화를하기가힘들다는


거.

“저기, 백도하씨. 무슨말도안되는소리를하는거예요?”


“그런소리로따지듯이말하는거, 하지말죠? 굉장히거슬리는데.”

속이터질거같아서쏘아붙였더니바로불쾌한기색을비친다. 짜증이벌컥치밀어몸을비틀면서그의어깨를
밀쳐냈다. 꿈쩍도하지않았다. 그의몸은너무크고단단해서내필사적인반항이앙탈로보일지경이었다.

“고분고분, 귀엽게굴다가또뭐가마음에안들어서이럴까.”
“놔요.”

목소리가떨렸다. 끊임없이풍겨나오는페로몬. 저거지같은페로몬때문에언제나내필사적인반항은끝까지


이어지지못했다.
지독히도향기롭고, 숨막히게독하고, 극상의쾌감과끝없는성욕의지옥, 황홀경과나락을동시에보여주면서
날미치게해울게도하고, 웃게도하는저빌어먹을페로몬. 압도적인규모로치솟아시꺼멓게덮쳐오는해일과도
같아내의지로는피할수없는것.
뻔뻔하게헛소리를지껄이던그의입술이다시다가왔다.

“하지마요. 놔.”

얼굴을돌려피했다. 그의입술은집요하게따라붙어목에닿았다. 그의아찔하도록압도적인페로몬이콧속으로


파고들어진을빼놨다. 숨이가빠오며몸에서힘이빠지고아래가확달아올랐다. 다리사이가묵직하게당기며흠뻑
젖어들었다. 앞도, 뒤도흥건히젖어서속옷이살갗에불쾌하게달라붙었다.

“아침먹기전에한발빼죠?”
“하지말라고……. 흐으으.”

애처롭게떨리는목소리에열오른신음이섞였다.
그것봐. 너도흥분했으면서반항은왜해. 부르르떨리는목을짓씹는그의입술이그렇게비웃는듯했다. 그의
커다란두손이내엉덩이를움켜쥐고주물렀다. 양쪽살점을잡아벌려구멍을노출시키듯이, 엉덩이살점을힘주어
잡아당겼다. 아래가한층더밀착되면서단단해진그의하반신이착달라붙었다. 뜨겁게일어선제하반신을
문지르고비비면서목을아프게꽉깨물었다.
깜짝놀라팔을버둥거리다그의턱을퍽치고말았다. 반항하다그를때린게처음은아니었지만이번엔그냥
넘어가지않았다.

“앙탈이귀엽긴한데적당히하지?”

날보는얼굴은웃고있었지만목소리가음습하게젖어있었다.

“마음에도없는앙탈부릴거없이몸의욕망에솔직해져요. 내좆으로뒤를쑤셔줬으면싶잖아.”

가슴이두근뛰었다. 뒤가흠뻑젖다못해안쪽깊숙한곳까지뜨거워졌다. 안을벌려빠듯하게들어차는


압박감을기억하는뒷구멍이게걸스럽게벌름거렸다.
내마음인데도잘모르겠다. 아무렇지도않게말도안되는소리를지껄이면서날몰아붙이는이남자가짜증이
나고, 이상하고, 싫고, 무섭다. 하지만몸은저남자를원한다. 마음과성욕이따로논다. 정말로끔찍하게싫다면젖
먹던힘까지다쥐어짜내반항하면될일이다. 반항할힘이없다면욕이라도하면될테다.
하지만전력을다해밀어내고거부하기엔이남자의눈빛, 페로몬이너무…….

“대표님.”

갑자기낯선목소리가날아들었다. 화들짝놀라버둥거렸지만날안은그의팔은역시꿈쩍도하지않았다.

“급히드릴말씀이…… 아, 죄송합니다.”

계단을올라오던남자와눈이마주쳤다. 일전에보았던한실장이란사내였다. 백도하의품에서벗어날수가


없으니내가고개를돌려시선을피하는수밖에없었다.

“말해. 뭐야?”
“아닙니다. 내려오시면말씀드리겠습니다.”

한실장이터벅터벅, 계단을내려가는발소리가들렸다. 백도하가빨갛게익은내귀에입술을대고낮게


속삭였다. 한실장의갑작스러운등장으로바짝긴장한탓에, 귓가에닿는입술의감촉이지나치게생생하게
느껴졌다.

“한실장이말하는급한이야기가뭔지압니까?”

알수있을리가. 고개를얕게저었다.

“당신모친에관한이야기야.”

뒤이은소리에깜짝놀라눈을크게뜨고백도하를바라봤다.

“무슨……. 제어머니얘기요? 무슨소리인데요, 그게? 도하씨가왜제어머니를…….”


“나도무슨얘기인지는몰라.”

놀라서할말을잃은사이, 백도하의손이셔츠자락사이로들어와허리와옆구리를만졌다. 살갗을간질이는


손의감촉이간지러워몸을비틀었다.

“그러니까구멍대요. 빠르게한번하고내려가서같이들읍시다.”
어느새그의손은멋대로슬랙스버클까지풀어헤치고있었다. 버클이풀어지고지퍼가끌어내려지자매끄러운
재질의바지가주르륵흘러내려발목에고였다.

“자, 잠깐……. 싫, 흐으.”

속옷위에감기는그의손감촉이한층더적나라해졌다. 둔부에착달라붙은드로어즈까지기어이끌어내리려는
그의손을움켜잡아필사적으로막으려했다.
아래층에서한실장을비롯한사람들의말소리가들려왔다. 흠칫했다. 아까까지는쥐죽은듯이조용하더니저
사람들이다어디서나타난걸까. 소리를내면아래층사람들에게도들릴게분명했다. 그래서떨리는목소리로
애원했다.

“떨어져요, 제발…….”
“이렇게젖었으면서. 당신도앓아누워있는동안꽤쌓였을텐데.”

백도하는손으로속옷을끌어내리기를포기하는대신, 불룩솟아짙은색으로흥건히젖은앞섶을매만졌다.
그의커다란손이솟구친성기형태를덧그리듯이간질였다.

“하, 하으으.”

달뜬소리가비어져나와얼른입술을아프게짓씹어물었다. 하지만다물린입술새로도신음이질질샜다. 속옷
위로만져주는것만으로도다리에힘이풀려주저앉을듯했다. 그의손끝이닿는부위마다사정없이떨렸다. 이
남자와더한짓거리도했으면서고작이정도로도이런다. 그의말대로누워있는동안자위도못했으니까.

“또쇼크가오면…….”
“빈우말로는자주섹스해서페로몬을계속빼줘야적응이된다고하던데.”

의사가진짜로그랬다고? 당신의망상이아니고?
온신경이그의손길이닿은아래에쏠려생각이란게사라져갔다. 백도하가말한어머니에대한생각도, 그가왜
내어머니를입에담았는지에대한생각도. 뭐가어찌됐건당장지독히도치명적인향기를풍기는이남자와
뒤엉키고싶어서가슴이벌렁거렸다. 치미는시뻘건성욕에이성의벽은너무도쉽게허물어졌다.
무슨얘기를하는건지아래층에서사람들의웃음소리가들렸다. 흐물흐물해진신경이깜짝놀라또다시몸이
흠칫했다.
“왜이렇게머뭇거려? 나도엄청쌓여서터지기직전이야. 내가그동안얼마나참았는지알아?”
“아래층에사, 사람들이있는데…….”
“신경쓰이면아래층에가서붙어먹을까요? 청중이있으면색다르고좋을것같은데.”

미쳤어. 하지만진짜로그렇게하고도남을남자였다. 이대로조용히포기하고날놔줄사람이아니었다. 아래가


뜨거워질대로뜨거워져서나도힘들었다. 그가온몸으로풍기는페로몬은내가견딜수있는한계를넘어서버렸다.
젖은뒷구멍에서뜨거운물이샘솟아나와팬티를적시는게느껴졌다. 느낌탓이아니라진짜그랬다. 스스로
뒤가젖어드는게처음은아니었지만이번처럼줄줄흐른적은없었다. 뒤가완전히젖어물이뚝뚝흐를것같아
입술을깨물며뒷구멍을꽉조였다.

앓는동안차곡차곡쌓인성욕이한꺼번에터져배속이지글지글끓는듯했다.

“손놔요.”

그를마주보지도못하고고개를수그린채, 다기어들어가는소리로중얼거렸다.

“제가벗을테니까…….”

백도하의손을밀어내면서다시지껄였다. 그가픽, 낮게웃으며손을물렸다. 얼굴이새빨갛게익어서는떨리는


손으로드로어즈밴드부분에손가락을걸어끌어내렸다. 성기가튕겨나오면서탄력있게흔들렸다.

“벽에손짚고서요. 다리벌리고.”

그의명령대로몸이저절로움직였다. 뒤돌아서서벽에손을짚고다리를벌려섰다.

“엉덩이올리고구멍벌려봐요.”

엉덩이를뒤로빼치켜올렸다. 위에걸친셔츠자락이허리아래로떨어지며치켜올린엉덩이만노출된게
치욕스러워발발떨면서도, 홀린듯이손을뒤로가져갔다. 페로몬에절어제정신이아니었다.
손으로엉덩이살점을쫙벌렸다. 흠뻑젖은밀부를훤히노출시켰다.
아침햇살이쏟아져들어오는거실에서, 아래층에사람들이있는데도. 떨리는허벅지, 아래로처진성기와음낭,
빨리뭔가좀넣어달라고천박하게오물거리는구멍주름하나하나까지, 치부란치부는죄백도하의눈앞에드러내
보였다. 뚫어지게보는시선이느껴져구멍이조여지다풀리기를반복했다.
구멍안쪽에고였던물이주르륵흘러허벅지를적셨다.
끈끈하게젖은안쪽까지불에덴듯이뜨거웠다. 단순한뜨거움이아닌구멍안쪽이견딜수없이지글지글끓는
듯한이느낌. 이건아무리시간이지나도적응되지않을듯했다.
다른오메가들도알파의페로몬에반응해이럴까. 그사람들은대체어떻게견디고사는거지.

“혼자보기는아까운광경인데. 이렇게물이넘쳐나는오메가는처음봐.”
“빨리…….”

입닥치고넣기나하라고지껄이려다입술을씹었다. 온몸이파들파들떨려뒤를열어보이는자세를유지하기가
버거웠다. 뒤가뜨겁고간지럽고, 아팠다.
백도하가뒤로다가와서는기척이느껴지더니바지버클을푸는소리가났다. 묵직한성기가튕겨나와꼬리뼈
위를두들겼다. 짙은페로몬이섞인체액냄새가훅풍겼다. “하으으.” 소리죽인흐느낌이흘러나왔다. 못참겠다.
미치겠다, 정말로.

“넣어요. 빨리. 넣어…….”

애원하는흐느낌이내목소리가아닌것같았다. 엉덩이살점을잡아벌리고있던손을더듬거려골사이에닿아
있는그의성기기둥을잡아구멍으로인도했다. 그의젖은성기가미끈거려손이자꾸만미끄러지자, 엉덩이를
위아래로흔들어댔다. 빨리좀쑤셔달라고재촉했다.

“요부가따로없어. 내가잡아먹는게아니라잡아먹힐것같은데.”

당신이날그렇게만들었잖아. 당신의페로몬이. 자위조차한적없던날이렇게만든건당신이야. 불기둥같은


좆으로꼬리뼈아래로이어지는구멍주위를문지르는가싶더니, 순식간에구멍을비집고퍽꽂혀들어왔다.

“하윽!”

짓씹은입술사이로큰소리가터졌다. 젖을대로젖은구멍을비집고끝까지꿰뚫고처박았다. 어떻게생겨먹은


구멍인지저큰게쑤시고들어오는데도조금의저항감도없이기다렸다는듯이날름받아먹는다.
엉덩이살점을잡아열어보이던손이미끄러져떨어졌다. 치켜올렸던엉덩이가떨어지자백도하의손이대신
골반을움켜잡고는더깊게퍼억쳐올렸다.
숨넘어가는소리를뱉으며나도모르게아래를꽉조였다. 조임이만족스러운지뒤에서굵은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에처박힌성기가기분좋게진동했다.
젠장. 좋아. 좋았다. 미치도록. 배속깊은곳에서부터터져나오는소리를참을자신이없어난한손으로입을
틀어막고말았다.

***

“연지수님은현재제주도에계시는것으로확인됐습니다.”

한실장의목소리가이명처럼울렸다. 어머니에관한이야기였는데도도무지집중이되지않았다. 백도하


탓이었다. 한번하겠다는약속은지켰지만기어이안에싸갈긴탓에앉아있는것자체가고역이었다. 줄줄흐르는
정액은대충닦아냈으나안에남은체액까지는긁어내고씻어내질못해여간불쾌한게아니었다.
온통젖은속옷을다시꿰입을수없어서둘러바지만꿰입은채로아래층에내려와식탁에앉은상태였다.
젖어서축축한아래가신경쓰이기도하고혹시냄새가나는게아닐까, 싶어서편히앉아있지를못하겠다.
앞에서는메이드가식사를준비하는중이었다. 아침부터뭘만드는지메이드의움직임이분주하다.
엉덩이가닿은의자바닥이축축하게젖는것만같았다. 흉기같은좆이드나들던구멍도홧홧했다.

난앉아있는것자체도고역인데, 맞은편에앉은백도하는지나치게말끔했다. 방금전까지온갖음란한말을


싸지르면서구멍안을마구쑤셔대더니, 머리칼한올흐트러지지않은모습으로앉아있다.

“제주도에서혼자사는건가?”
“그건아닙니다. 그지역유지인알파남성과동거중이십니다. 불법하우스도박장을운영하는남성과도만나는
중이신것같고.”

한실장의말에난속으로헛웃음을흘렸다. 어머니다웠다. 한시도술과남자없이는못사는사람이었지.

“색에미친건모계유전인가.”

그가웃으며한마디, 툭뱉었다. 나들으라고한소리인가? 맞은편의백도하를쏘아보았다. 백도하는웃으며앞에


놓인물을마셨다.
한실장이태블릿을식탁위에올려놓았다. 태블릿화면가득낯선남자와팔짱을끼고웃는어머니의모습이
들어차있었다. 몰래찍은사진인모양이다. 그녀는여전했다. 여전히젊고아름다웠고화려했다. 어째전보다더
젊어진것같았다.
“미인이군. 당신은어머니를닮았나봐요.”

백도하는무미건조한어조로사진속어머니를본감상을늘어놓았다. 내감상은이랬다. 어머니는여전히잘


살고있구나. 혼자서만화려하고멋지게살고있었네. 난유현서에게붙잡힌채곪아썩어가고있었는데.
아무것도먹지않은빈속이싸하게쓰렸다.
물을마시곤태블릿화면에서시선을떼백도하를보며입을열었다.

“왜어머니뒷조사를하신겁니까?”

아까부터계속궁금했던사실이었다. 백도하의시선도내게향했다.

“모친이당신의유일한약점이니까.”
“그게무슨…….”
“가장효과적인협박방법은협박당하는상대의가족을인질로삼는거야. 아무리강한사람도가족을인질로
삼아협박하면못버텨요. 유회장식구들이당신모친을들먹여가며당신을가만두지않겠다고협박했을건
자명하고, 마음약한당신한테는그협박이먹혀들었겠지. 그래서모친이유회장식구에게해코지를당하지나
않았을까걱정되고신경쓰여서미칠것같을테고.”

정곡이었다.
하도깨물어퉁퉁부어서아직얼얼하고아린입술을다시잘근씹었다. 어머니의안위따위나와는상관없다,
무슨짓을당해도자업자득이다, 애써그렇게생각하려했지만사실은신경쓰였다. 사모님이나유현서가
어머니에게끔찍한짓을한게아닐까, 걱정이됐다.
어쩔수없었다. 어머니는단하나뿐인내가족이니까.
백도하가손을뻗어태블릿화면속에서환하게웃고있는어머니의이미지를툭쳤다.

“보다시피당신모친은아주멀쩡해. 그리고앞으로우리가쭉감시할테니안심해요. 유회장쪽인간들이이


여자에게허튼짓하지못하게할테니까.”

그는거스러미하나일어나지않은손톱끝으로어머니의얼굴에동그라미모양으로그려보였다. 범죄영화나
드라마의주인공이용의자얼굴에빨간색펜으로동그라미를그려보이는것처럼.

“왜…….”
내입에서나오는소리는그한마디가다였다.

“당신인생, 내가책임지겠다고했잖아. 망가지지않게, 부서질일없게내가꽉붙잡아주겠다고했어, 분명.”

그랬던것같다. 첫관계직전에내가무서워서벌벌떨자날달래며그랬던것같다. 백도하가입을열어한


실장에게질문을던졌다.

“그래서유회장이갚아주었다는연지수의빚은얼마야?”
“대표님이가지고계신A시의아파트하나를처분하시면충분히해결될것같습니다.”
“뭐? 겨우그깟푼돈으로사람을협박하며10년이나묶어둬?”

그깟푼돈이라니. 내몸의장기를다팔아도갚을수없을돈을푼돈이란다. 기가차서웃음도나오지않았다.

“한실장선에서알아서해결해.”
“네. 아, 그리고알아보다보니문길상이얼마전교도소에서출소한모양입니다.”
“문길상? 그게누구야?”

한실장은대답대신태블릿으로손을뻗어화면에펼쳐진사진을휙넘겼다. 어머니의사진이넘어가며다른
사진하나가펼쳐졌다. 누가봐도깡패그자체인남자의사진이었다.

“아.”

사진속남자를바로알아본난짧은탄식을뱉었다. 눈이크게뜨였다. 갑자기온몸이파들파들떨렸다. 저


얼굴을어떻게잊을수있을까.
백도하의질문이날아들었다.

“누군지알아요?”
“……10년전에절협박했던사채업자입니다. 교도소에수감중이었군요.”

구질구질한과거를굳이입아프게나열하지않아도내사정에대해선그도다알고있을터였다. 이미내과거며
어머니와얽힌일까지다조사해본것같으니.

“네. 유회장이잡아처넣은모양입니다. 주제도모르고유회장을협박하려다되레당한듯하고요.”


한실장이사무적인어조로대답해주었다. 저남자의얼굴을다시보게되다니. 몸속까지덜덜떨렸다. 치가
떨렸다. 10년전, 어머니가막대한도박빚을지고도망쳤고사채업자가들이닥쳤다. TV에서나보던악독한
사채업자의전형이었다. 아니, 미디어에서보던악당보다더한악마였다.

“출소후에바로연지수님에게찾아간모양입니다.”
“왜? 빚은유회장이전부갚아주었다면서?”
“연지수님과내연관계이기도했으니쌓인원한이나감정같은게있겠지요.”

저악마가어머니의연인이었다고? 왜저남자가그정도로눈이돌아가서네어미는어디로도망쳤냐고, 제발
말하라고, 날사정없이몰아붙이며악다구니를써댔는지이제야알것같다. 도망친채무자를향한울분이라기엔
지나치게끈적한집착이느껴진다했더니.
어머니는내생각은하지도않은걸까.
분노로눈이돌아간남자의손에하나뿐인자식놈이맞아죽든말든, 저혼자살겠다고도망쳐서는다른남자를
꾀어화려하게기생하고살았을테지. 새삼스러울것도없었다. 원래그런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런사람을하나뿐인가족이라고걱정했던내가우습고한심했다. 어머니는내생각은하지도않고알아서잘
사는데, 나만늘어머니를떠올리며분노하고걱정하고. 일방적인집착이다. 마음둘곳하나없어서저런
인간이라도엄마라고인연의끈을붙잡고있는내가바보다, 정말.

“문길상이유설우씨에게도찾아올지모르는일입니다.”

한실장의말에내어깨가움찔했다. 태연한척손을뻗어컵을쥐고물을마시려했지만손이떨리는건어쩔수
없었다. 백도하에게서느끼던막연한두려움과는종류가달랐다. 뼛속깊이밴무자비한폭력의흔적.
어느날, 갑자기집으로들이닥친문길상이란악마는날흠씬두들겨패노끈으로꽁꽁묶어, 야산으로끌고가
미리파둔구덩이에던져넣었다. 그러곤삽으로흙을퍼서구덩이에퍼부었다. 머리위로비처럼쏟아지던흙덩이가
수백개의칼날같았다. 좁은구덩이안에서벌레처럼기어다니며울면서빌었다. 제발살려달라고. 기어나가고
싶어도발목이부러져서그럴수도없었다.

“네어미가어디있는지말해.”

밤하늘을등지고선문길상은묵묵히삽으로흙을퍼내머리위로쏟아부으면서그렇게지껄였다. 싸늘하게
빛나는남자의눈에선피비린내가풍겼다. 피도눈물도없는악마의얼굴이었다.
애써잊었던, 생각하기도싫은끔찍한악몽을고스란히기억해낸몸이사시나무떨리듯이경련했다.
그악마가다시내게찾아올지도모른다고? 무서웠다, 진심으로. 날협박하던악마의얼굴을떠올리는
것만으로도정신이아뜩해지는듯했다.

“어떻게할까요?”

한실장의질문에백도하는대답을하지않았다. 그저떨리는손으로컵을쥐고물을마시며, 애써태연한


척하려는날빤히바라볼뿐이었다. 내눈빛에담긴두려움, 뺨의떨림등내얼굴에어린감정을샅샅이훑어보는
시선이느껴졌다.

“죽여.”

그가입을열어한실장에게묵직한명령을뱉었다. 물을다마시고빈컵을내려놓던내손이움칫했다.

“네?”
“문길상, 그새끼. 죽이라고.”

우아한목소리로매끄럽게내뱉는명령.
진심으로하는소리인가. 어이없는눈으로백도하를봤다.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태연히대답하는한실장도어이없기는마찬가지였다. 농담따먹기를하는건아닐터였다. 허세도아닐테고.


저런소리를한두번뱉어본것도아닌듯했고, 저런명령을하루이틀들어본것도아닌듯했다. 위화감이라곤전혀
느껴지지않는너무도자연스러운대화였다.
문득백도하의모친이폭력조직간부의딸이라며, 막장깡패집안운운하던사모님의말이생각났다.
저남자는나와는다르다. 나와는사는세계자체가다른인간. 한공간, 한식탁에마주앉아있지만몸속에
흐르는피부터나와는다른사람이다.
방금전까지내뒤에뜨겁게달라붙어내안을쑤셔대던남자인데, 갑자기낯선존재처럼느껴졌다. 아직내안에
채긁어내지못한그의정액이남아있는데도.
통유리를통해쏟아져들어오는햇빛덕에주방은알맞게따뜻했지만뒷목이서늘했다. 그의페로몬이
불러일으키는한기와는달랐다. 입을열어말을하려하다가관뒀다.
아무리악당이어도죽이는것까진심하지않습니까. 그소리가찰랑찰랑차오르는동시에머릿속한편으론
‘죽이면왜안돼? 죽어도싼인간이야.’ 이런생각을하는내가있었다.
톡, 톡, 톡. 백도하가손톱끝으로대리석식탁을치는소리가들렸다. 그는습관처럼식탁바닥을두들기면서
나를봤다.

“당신을위해서예요.”

어색한침묵을깬것은그의낮은목소리였다.

“문길상, 그새끼를가만히놔두면당신을해칠테니까. 당신을보호하기위해서야.”

아무말도하지않았는데저런다. 마치변명을하는것처럼. 뭐라대답해야할지를모르겠다.


왜당신이그러느냐, 그래도그런짓까지는하지말라고말해볼까? 하지만바로포기했다. 내가무슨말을해도
어차피듣지않을텐데싶어서.

“화났어요?”
“……네?”

하도뜬금없는소리라잘못들었나했다.

“아무말도하지않고나와눈도마주치지않으려하기에. 평소였다면지지않고쏘아붙였을사람이조용하니까.”

실소가절로터졌다. 저남자는매번, 언제나, 늘놀랍다. 지금까지제멋대로, 저꼴리는대로날휘둘러왔으면서


새삼왜저러는걸까.

“그럼제가그러지말라고하면안하실겁니까?”
“아뇨. 가만놔두면당신을해칠게분명한새끼인데바로잘라내야지.”

빌어먹을. 결국자기고집대로밀고나갈거면서. 눈에힘을주어쏘아보자그가나른한목소리로덧붙였다.

“그새끼를죽이는게정마음에걸리면불구로만들어놓을까요? 다리나손을잘라도되고.”

그게더무서웠다. 눈물콧물다쏟으면서애원하는내머리위로흙을퍼붓던문길상이꽁꽁묶여손이잘리며,
짐승같은비명을내지르는모습을상상해봤다. 통쾌하다기보다는끔찍했다. 상상하는것만으로도속이안좋았다.
“……멋대로하세요.”

입을달싹여목소리를끄집어냈다.

“결국멋대로하실거면서왜새삼제의견을물으십니까.”

입을닫으려다한마디더덧붙였다. 백도하가식탁을손톱끝으로두들기는소리는계속이어졌다. 짧은침묵.


넓은주방을밀도높게꽉채우는페로몬.
음식냄새에섞여서인가, 그의페로몬이먹음직스러운향기처럼느껴졌다. 안그래도푹젖은아래가다시젖는
게느껴짐과동시에갑자기배가고파졌다. 갑자기날빤히보는백도하에게달려들어그의보드라운입술을피가
나도록씹어먹고싶다는괴상한충동이일었다.
성욕과동시에치미는식욕. 이상한남자와뒤엉키다보니나까지이상해지는모양이다. 이래서야사람을음식에
비유하던백도하를욕할게없지않나.

“식사준비가늦어져서죄송합니다.”

메이드의목소리가갑자기불쑥끼어들었다. 음식준비가다된건지, 메이드가식탁위에음식그릇을착착


내려놓았다. 식기가부딪치며요란하게덜그럭거리는소리가울렸다. 더이상진지하게대화할분위기가아니었다.
메이드혼자서일하는게버거워보여나도도우려고손을뻗자, 그녀가깜짝놀라만류했다.

“어머! 그, 그러지마세요! 제가할일입니다!”

그녀가크게당황하면서백도하의눈치를살폈다. 그녀가신경쓸까봐가만히있기는하는데, 여간어색한게


아니었다. 이렇게가만히앉아서대접받아본적이있어야지.

“맛있게드세요.”

식탁가득아침식사를차린메이드가공손하게인사해보였다. 나도그녀에게고개를숙여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침부터음식만드시느라고생하셨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아뇨. 제일인데요, 뭘.”

그녀가환하게웃어보이며또바삐움직여자리를피했다.
“인사할것없어요. 당신밥해먹이라고고용한사람이니까. 먹고싶은게있으면언제든지메이드에게말해요.”

백도하가낮게지껄이면서수저를들었다. 분명내게하는소리일텐데믿기지가않았다. 날위해고용한


사람이고, 먹고싶은게있으면언제든지말하라니. 하마터면‘나한테하는소리입니까?’ 하고되물을뻔했다.
수저를들생각도하지못한채눈앞에놓인음식들을바라만봤다.
아침식사라기엔너무과하지않나. 노릇노릇구운한우떡갈비구이에전복찜에갖가지정갈한반찬들. 윤기가
잘잘흐르는밥.
유현서나유회장이주로먹던아침상과비슷했다. 그들의아침상은나를위한게아니었다. 난주방한구석에
석상처럼버티고서서허기를참아가며그들이먹는모습을지켜봤을뿐이었다.

“왜? 좋아하는음식이없어요?”

우아하게식사를하던백도하가말을걸었다.

“아뇨. 제가먹어도되나해서요.”
“그게무슨소리야. 당신속이안좋을것같아서일부러한식으로준비하라고했는데.”

백도하가피식웃으면서젓가락으로알맞게익은떡갈비를잘라내밥위에얹어놔주었다.

“얼른먹어요. 빈우말로는영양실조증세가있어서더크게앓은것같다고하던데. 몸상태가심각하다고.


유현서, 그개새끼는노예를밥도안주고부려먹습니까?”

사람을앞에두고대놓고노예란다. 한결같이무례하기는. 그래도개새끼라말해줘서속은시원하다. 수저를


들어떡갈비가얹힌밥을한술떠서입에욱여넣었다. 눈이번쩍뜨였다. 너무맛있어서웃음이다났다.

“어떻습니까?”
“맛있어요!”

너무감탄하다보니목소리가튀었다.

“다행이네.”
백도하가웃으며전복찜도밥위에얹어놔줬다. 또크게한술떠서먹었다. 눈물난다, 진짜. 탱탱하고
쫄깃쫄깃한전복살이씹히는식감이끝내줬다. 음식이들어가니잊고있던허기가폭풍처럼몰려들어배속이
뒤틀렸다. 갑자기배가고파서눈이돌아갈것같았다.
제대로된음식을먹어본게얼마만일까. 처음이지않나. 유현서의집에서도이정도진수성찬을먹어본적이
없었다. 어머니와살던시절에는말할것도없고.
먹어도된다고했지? 수저를들고떡갈비에가져가댔다가, 혹시몰라백도하의눈치를살폈다.

“마음놓고먹지, 좀? 주인눈치살피는개같이그러지말고.”

바로핀잔이날아들었다. 말을꼭저렇게해야할까. 어쨌든허락이떨어지기가무섭게열심히수저를놀렸다.


허겁지겁, 게걸스럽게먹어치웠다. 더이상눈치를살필여유도없었다. 순식간에밥그릇이비었다.

잠시어딘가로사라졌던메이드가주방으로다시와내빈밥그릇을보며물었다.

“밥더드릴까요?”
“아, 네. 더먹어도될까요?”

밥한그릇더먹는걸로눈치를살피느냐, 하겠지만어쩔수없었다. 지난10년간의생활로눈치보는버릇이


몸에배있었다.

“당연히드셔도되죠. 밥이야얼마든지있으니까요. 다행히음식이입맛에맞으셨나봐요.”


“다맛있습니다, 정말!”
“잘드시니저도뿌듯하네요.”

메이드가웃으면서밥그릇을가져가서김이모락모락나는밥을한가득퍼주고, 내가다먹어치운떡갈비도새로
내왔다.
밥을입에욱여넣다가백도하와눈이마주쳤다. 자기몫의밥은먹지도않고날보고만있었다. 눈이마주치자
웃는다. 사르르녹는듯한웃음.
가슴이뛰었다. 쿵, 쿵. 페로몬탓만은아니었다. 괜히기분이이상해져서눈을내리깔고밥을우물우물씹었다.
아침식사를마치고방으로들어와다시씻고옷을갈아입는중이었다. 막새속옷을꺼내꿰입는때, 등뒤에서
알파페로몬이훅풍겼다. 곧백도하의팔이뒤에서뻗어나와날안았다. 그의단단한몸이뒤에닿았다.

“속옷은입지말지? 어차피또젖을텐데.”

귀에대고낮게속삭이면서속옷안으로손가락을넣어끌어내렸다. 드로어즈가허벅지까지끌려내려가고
엉덩이살점위로그의묵직한성기가눌렸다. 앞으로덜렁튀어나온성기는이미반쯤일어선상태였다.
백도하를만난이후로성기가늘어진상태로유지된적이없었던것같다. 시도때도없이발기해속옷을적셨다.

“대표님. 나가셔야합니다.”

다행히한실장이밖에서재촉하는소리가들렸다. 백도하가귓바퀴를지나목덜미를빨면서말같지도않은
소리를지껄였다.

“나가기싫은데. 출근하지말까요?”

……애인가. 밖에서한실장이다시한번“대표님.” 하고부르는다급한목소리가들렸다. 쯧, 그가짜증을섞어


혀를차며손으로내턱을쥐어고개를돌리게하고는, 입술에쪽키스했다.

“금방사료먹은개입에키스할때같은고소한맛이나.”
“자꾸사람을개…….”

취급하는데, 라는소리는다시맞부딪치는그의입술안에묻혔다. 아까보다는좀더농밀하게입술살점을핥고


빨아맛보고는입술이떼어졌다.

“다녀올게요. 잊지말고약챙겨먹고.”

바로눈앞에보이는그의눈동자는촉촉하게젖어있었다. 윤기흐르는긴속눈썹까지도.

“대답해요.”
“……네.”
“속옷입지말고기다리고있어요.”
그는기어이손으로엉덩이를주무르고떨어졌다. 맞붙어있을때는질척하더니더없이깔끔하게몸을떼어냈다.
탄탄한몸선을그대로드러내는말끔한슈트차림을하고돌아서서는뒤도한번돌아보지않고밖으로나갔다.
팬티를허벅지까지끌어내린모양새로멍하게그모습을보다가, 엉덩이에닿는한기에아차싶어얼른
드로어즈를끌어올렸다. 아직성기가일어서있어속옷을입기가좀괴로웠다. 금방갈아입었는데또앞이불룩하게
솟아축축하게젖었다. 아래에피가바짝쏠려있어서당기고아팠다.
미치겠다는말도이젠지겹다.
저페로몬을어떻게견뎌야하고, 이성욕을어떻게제어해야하지? 매일같이뒤가헐어버리도록섹스해야하는
건가. 하루종일알파페로몬에취해아래를세운채로? 다른오메가들은대체이성욕을어떻게제어하고살지?
겨우바지를꿰어입고억제제와중화제를입안에털어넣었다. 그러곤어기적거리며창가로다가가, 창문을열어
알파페로몬이가득한방안공기를환기시켰다.
찬바람을쐬면서정신을차리니문득그런생각이들었다.
어머니가내유일한약점은맞다. 그건인정한다. 그렇다면내약점을틀어쥔백도하가언젠가는어머니를이용해
날협박할수도있는게아닐까?

“죽여.”
“그새끼를죽이는게정마음에걸리면불구로만들어놓을까요?”

백도하가했던말이떠올라머릿속을어지럽혔다. 비서에게태연하게사람을감시하라고, 사람하나를죽이라고


명령하는게과연정상인가?
……나가자. 당장.
돈한푼없지만살방도는일단이집에서나가서찾자.
이대로나갔다간얼어죽을지도모르니위에걸칠옷이라도찾으려했는데, 드레스룸은따로있는모양이었다.
침실밖으로나가서드레스룸으로들어가옷걸이에걸린두툼한점퍼를꺼내입었다. 태그가그대로달린, 비닐도
뜯지않은새옷이다. 분명날위해준비해둔옷일터였다.

“어디나가시려고요?”

점퍼를단단히껴입고발소리를죽여몰래나가려하는데, 메이드의목소리가불쑥날아들었다. 어디있다가


나타난건지모르겠다. 깜짝놀라둘러댔다.

“아, 네. 급한볼일이있어서요.”
“꼭나가셔야하나요?”
“네. 아주급한일입니다. 제가직접나가서해결해야하는일이고요.”

그녀가“잠시만요.” 하고웃어보이더니앞치마주머니에서핸드폰을꺼내어디론가전화했다.

“김팀장님. 설우님이나가신다고합니다.”

딱그소리만하고전화를끊은그녀가다시사무적인미소를지어보였다.

“경호팀장님이곧올라오실테니잠시기다리세요.”
“저혼자가도됩니다. 잠깐나갔다올건데요.”
“팀장님이곧올라오실거예요.”

그녀는웃는얼굴로앵무새처럼같은말을반복했다. 닥치고가만히기다리고있으라는소리였다.

“안내보내. 당신혼자서는.”

백도하의낮은지껄임이다시떠올랐다. 인정할수밖에없었다. 백도하는절대, 단한마디도허투루뱉지않는


남자란것을.

***

백도하는뭘어쩌려는걸까. 내게뭘원하는걸까.
퇴근해돌아오면알아서다리를벌려주는자위도구가되어주기를원하는걸까.
그렇다고하기엔대우가너무과했다. 집뿐만아니라모든집기, 생필품, 옷가지, 음식까지아낌없이제공받는
생활이다. 혼자쓰기엔지나치게넓은복층아파트에메이드와경호인력까지딸려있다.
마치내가유현서라도된기분이었다. 현서놈이야날때부터금수저였으니호화로운생활이익숙하겠지만난
아니었다. 모든게어색하기만했다. 계속이런생활을즐긴다면익숙해질수도있겠으나그러긴싫었다.
익숙해져서는안될생활이기도하고. 받기만하는이런인생이당연한것도아니고.
무엇보다내멋대로나가지못하게막는게정상인가? 나가야한다면경호원과함께여야만했다. 몰래빠져나갈
수도없었다. 백도하가없는사이엔메이드가상냥하게웃는얼굴로날감시했으니까.
마음만먹으면나갈수있을거라고생각했다. 그런데아니었다. 호화로운감옥이나다름없었다. 대체왜
이렇게까지하지?
불안하고두렵기도하고초조하다가, 백도하가돌아오면그의페로몬에취해본능만남은짐승이되곤했다. 이것
또한어쩔수없는일이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억제제와중화제를꼬박꼬박잊지않고번갈아챙겨먹어도백도하의
페로몬만맡으면아래가흠뻑젖었다.
유현서가이랬다. 안그래도페로몬이넘쳐나는데억제제도먹지않으니성욕이그야말로찰찰흘러넘쳤다.
그래서히트사이클때가아닌때에도섹스파트너와며칠씩붙어먹곤했고. 히트사이클때에는일주일내내
처박혀서밥먹고그짓만했던적도있다. 여러명의로열알파들과번갈아가면서.
유현서와다른점은난오직백도하의페로몬에만반응하고, 그와만관계한다는것.
다른알파들과의섹스는생각해본적도없었고그러기도싫었다. 백도하가아닌다른남자의좆이내안에
들어온다고생각하는것만으로도속이역했다.
백도하가출근하고없는사이에도, 불안해하다가도집안곳곳에희미하게남은그의페로몬이코끝을스치면
아래에열이몰리고.

“나왔어요.”

백도하가문을열고들어서는순간부터는일어서지도못할정도로아래가불끈서곤했다. 앞도뒤도흥건히젖는
건말할것도없고. 어느순간부터는예고도없이불쑥덮쳐오는그를밀어내지도않았다. 식사를하다가, 어느
때에는집에들어오자마자그가내게다가오면순순히안겼다.
인정하긴싫지만몸을겹칠수록백도하의페로몬에익숙해져갔다. 페로몬쇼크가와앓아눕는일도없었다.

[이거진짜운명아닌가?]

매일같이전화해내몸상태를묻는김빈우가그렇게말하면서웃었다.

[운명의상대라고밖에는설명할수가없네. 이렇게단기간에로열알파의페로몬에익숙해지는것도굉장하고.]

그가학회에보고된변이증상케이스어쩌고저쩌고, 말을줄줄이늘어놓았지만한귀로듣고한귀로흘렸다.

[몸에다른이상은없어요? 가슴이비정상적으로두근거리고심장부근이쥐어짜지듯이아프거나눈앞이핑핑
돌고그러진않고?]
“네. 얼마전의페로몬쇼크이후론그런증상이없습니다.”

거짓말같이그런증상이사라졌다. 어젯밤에도백도하에게시달리느라극도로피곤하고, 그의성기가들락거렸던


뒤가쓰리고아픈것만빼고는.
[기가막힌상성인데!]

김빈우가과장된탄성을내지르며놀라워했다.

[로열오메가도아닌상대가이렇게까지로열알파의페로몬에빨리적응하다니. 도하가왜설우씨를꽁꽁
싸매놓고가둬두는지알것같아요. 놓치면어떻게또찾아내겠어. 설우씨같은사람을. 나같아도아무도못
거들떠보게가둬두겠다.]

가만히놔두니말이끊이지가않았다. 말한번더럽게많은인간이었다.

“저, 김선생님.”

그를부르며말을잘랐다.

[선생님이뭐야. 형이라고불러. 내가너보다형이니까. 지금에야말하는데, 너몸상태가왜그따위냐? 요즘


시대에영양실조가다뭐야.]
“제대로못먹고살아서요.”

수화기너머에서웃음소리가터졌다. 농담인줄아는모양이다. 난사실그대로말한것뿐인데.

“혀……, 김선생님. 사람을나가지못하게가둬두고그러는게정상입니까?”

죽어도형소리가나오지않아선생님이란호칭을고집하면서질문을던졌다.

[당연히정상이아니지.]

그는바로인정했다.

[그런데로열알파들사이에선흔한일이야. 너도유현서랑같이다니면서로열알파놈들이하는짓거리들, 많이
봤을텐데? 겉은멀쩡해도속은하나같이정상이아냐. 알파페로몬을가진것들은다그래. 어쩔수없어. 체질
특성이야, 이건. 알파인나도정상은아니니까.]

김빈우는아주담백하게자신도정상이아님을인정했다.
[도하의페로몬을받아내고도죽지않고버텨내고있으니아주잘하고있어. 기왕이렇게된거피할수없으니
즐겨. 열심히구멍대주면서뜯어낼거다뜯어내.]

이게의사가할말인가. 다시한번절감했다. 유유상종. 옛말틀린거하나없다. 백도하의친구다웠다. 후우우.


듣고있자니짜증만나서한숨을푹쉬자김빈우가픽웃으며다시입을뗐다.

[구멍대줄오메가는넘쳐나도페로몬과몸의상성까지잘맞는상대는흔치않거든. 알파하나잘잡아서
알파한테보호받고경제적인원조도받고사는오메가들, 많아.]

그가친절하게설명해주지않아도다아는사실이었다. 다시한숨만새어나왔다.

“저, 그리고…… 이렇게시도때도없이성욕이넘쳐나는것도정상입니까?”


[아니. 그런면에서는너도정상은아냐.]

김빈우가1초의고민도없이즉답했다.

[히트사이클때가아닐경우에는억제제를먹으면성욕이어느정도가라앉는게정상이야. 억제제는잘챙겨
먹고있지?]

“네. 꼬박꼬박하루도빠짐없이잘먹고있는데…….”
[그새끼가네목에남긴표식때문에그래. 너이제그새끼아닌다른놈하고는못붙어먹는다.]
“별로다른남자와는하고싶지도않습니다. 그럴마음도들지않고.”
[하하! 너한테도도하가운명의상대맞네! 그럼뭐가문제야? 그냥포기하고그렇게살면되는일아니야? 그
새끼너한테미쳐있는꼴을보니까, 결혼을해도널옆에끼고살면서부족한거하나없이막퍼줄것같던데.
솔직히네주제에어디가서도하새끼같은놈을만나겠어.]

“그걸지금말이라고하십니까? 결혼을하면결혼상대에게충실해야죠.”
[꼰대같은소리하고앉아있네. 로열알파에게결혼은그냥비즈니스야. 종족번식을위한의무일뿐이라고.
성욕과는별개의문제야.]
“그건짐승이나다름없잖습니까.”
[그래. 짐승이맞지.]
김빈우가괴상하게킬킬거렸다.

[도하새끼가지금은참친절하고다정해? 그치? 근데그거믿고허튼짓했다간죽는다, 너? 얼마전에네가


질려서도망갈지도모른다는말꺼내기가무섭게분위기험악해지는거봤지? 그새끼눈돌아가면무슨짓을할지
몰라.]

죽인다, 어쩐다, 하는소리가이젠처음에듣던때만큼소름끼치지도않았다. 짧게침묵하던김빈우가“야,


근데.” 하며다시말문을열었다.

[도망쳐볼래? 도하새끼가눈돌아가서미쳐날뛰다폐인쓰레기되는꼴은보고싶다. 재미있을것같은데.


상상만해도벌써짜릿하다.]
“이게재미있습니까?”

[어. 미치게재밌어. 요새내가기분이얼마나좋은지아냐? 그까칠하고오만방자한새끼가너같은거한테


미쳐서발정난바보천치가되어가는꼴이너무보기좋아. 일하다가도막웃음이실실나. 난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쭉도하새끼싫어하거든. 말이친구지, 집안끼리더럽게얽혀서평생을그새끼발닦개로살아서.]

백도하도, 나도, 동시에후려치는소리를지껄인다. 알고싶지도않고, 듣고싶지도않은소리였다. 남의사생활엔


관심도없었다.

“끊겠습니다.”

이런인간과더말을섞어봤자머리만아프다.

[아, 잠깐만. 맞다! 그얘기를깜빡했다. 너첫히트사이클이올지도몰라.]

핸드폰을쥔손이움찔떨렸다. 깜빡할얘기가따로있지. 제일중요한얘기아닌가.

“무슨말도안되는…….”
[헛소리가아니라수치가그래. 너요새페로몬수치가계속안정적이거든. 페로몬수치가마이너스로떨어지지
않고계속10점대를유지하고있어. 이런상태를페로몬안정기라고해. 오메가들은보통이런안정기상태가
유지되다가첫히트사이클이와.]
“그게가능합니까?”
[그거야아무도모르지. 너도네몸이갑자기이렇게변할줄알았냐?]

아니. 상상도하지못했다. 난그냥죽을때까지돌연변이오메가인상태로살줄알았다.

[수치상으로는그렇다는거니까알아두라고. 뭐, 이러다가마이너스수치로확떨어질수도있고.]
“그냥전같은체질로돌아가는방법은없을까요?”
[몰라. 그방법은아무도모를거다, 아마. 너같은환자케이스가없어서. 그리고이미한번변이된몸은
원래대로돌아갈순없어. 도하새끼를만나기전으로돌아가는수밖에없지않겠냐? 근데도하새끼가살아있는
이상, 과거로돌아간다해도그새끼가또먼저널찾아내서붙잡을걸?]

김빈우가애같이킬킬거리면서웃었다. 정신나간놈. 그래도연상에게욕할순없어서이만뿌드득갈았다.


전화를끊고바로서랍에서억제제통을꺼내약을더털어먹었다. 몇분간전화통화만했을뿐인데극도로
피곤해졌다. 정신이멍했다.
히트사이클이라니.
페로몬은커녕성욕조차없어목석같던몸이백도하의페로몬에반응해열이오르고, 미약하지만페로몬을
생성하고, 발정이나서스스로다리를벌리는지경에이르렀다. 이젠몸도적응해서페로몬쇼크도오지않고…….
불가능하다고생각했던것들이하나씩하나씩가능해졌다. 그러다보니절대로히트사이클이오지않을거라고
확신하지는못하겠다.
만약히트사이클이오면난어떻게되는거지?
갑자기타는듯한갈증이치밀었다. 물을마시려고방밖으로나가주방으로향했다. 주위가조용했다. 메이드는
어딜갔는지보이지않았다. 물병을꺼내마시면서여기저기기웃거려봤다.
잠시외출을했는지, 메이드는집어디에도없었다.
깊게생각하고고민할여유가없었다. 몸이즉각움직였다. 후다닥점퍼를꿰어입고문을열고나갔다. 가슴이
미친듯이뛰었다. 며칠만의외출인지모르겠다. 그래봤자겨우문을열고집에서벗어났을뿐이지만.
하지만엘리베이터를타고1층에서내린순간이었다. 열린문앞에야생곰처럼큰덩치를가진남자가하나서
있었다.
범상치않은외모를한남자는메이드가말한경호팀장이분명했다. 그를직접본적은처음이었다. 남자가입을
열었다.

“어딜가시려고요?”

몸이싸늘하게식었다. 공포영화가따로없었다.
편의점에담배를사러나간다고대충둘러대자, 경호원이대신사다주겠다했다. 그에나는직접가겠다고
우겼고, 경호원도기어이편의점까지따라왔다. 피우지도않는말보로한갑을사서계산을하니, 직원이공포에
질린눈으로내뒤에선경호원을흘긋거렸다.
돈은없었지만경호원에게계산을시킬순없어서핸드폰결제를했다. 핸드폰결제를하면유회장에게
알림문자가갈테지만어쩔수없었다.
바로전화가울렸다. 유회장인줄알았는데백도하였다.

[왜나갔어요?]

낮게착깔린목소리가지나치게차가웠다. 화를억누르는목소리였다. 한창업무중인지수화기너머에서


사람들의목소리가울렸다.

“답답해서요. 바람도쐴겸편의점에잠깐…….”
[별일없이나온거면집에돌아가요.]

백도하는내말을끊고딱한마디를뱉었다.

“싫습니다. 왜제마음대로나가지도못하게합니까?”

발끈해서바로받아쳤다.

[당신, 내가만만하지?]

그가실소와함께말을뱉었다. 농담을하는듯한가벼운분위기는아니었다. 묵직하게가라앉은목소리가


살벌했다.

[내가우스워?]

아무말도하지않았다. 그가만만하지도, 우습지도않았다. 하고싶은말은많았지만애써억누르고간신히말을


뱉었다.

“전살아있는사람이에요.”
[당연히사람이지. 내가사람이아닌짐승과붙어먹는놈이겠어?]
저인간이, 진짜. 욕이치밀었지만꾹참았다.

“살아있는사람을이렇게가두는게말이된다고생각해요? 아무리생각해도왜이렇게까지하는지이해가되질
않습니다.”
[가두다니. 위험하니까당신혼자나가지못하게할뿐가둔적은없는데.]

“그게그거아닙니까! 경호팀까지붙여서밖으로못나가게감시를하고, 시꺼먼남자가착달라붙어서


편의점까지따라오게하질않나. 진심으로이런게정상이라고생각합니까?”

쉬지않고쏘아붙이는데도백도하는아무런말이없었다. 어째이상했다.
하아. 곧수화기너머에서굵게한숨을내쉬는소리가들렸다.

[그래. 정상은아니야. 당신이아무리칭얼거려도귀엽게만들리는걸보면.]


“…….”

칭얼이라니. 기가차서맥이탁빠졌다. 할말없게만든다, 정말.

[일이고뭐고다때려치우고집으로달려가고싶게만드네. 어제그렇게박아댔는데도당신목소리를들으니또
꼴려. 보고싶어. 당신얼굴.]

대표란사람이, 회사에서일하는도중에이딴식으로사적인전화를걸어음담이나늘어놓기나하고. 이래도되는


건가.

[대표님.]

한실장이옆에서다듣고있었는지백도하를부르는소리가들렸다. 어째그의목소리에깊은한숨이섞여있는
것같았다.

[들어가요. 이따봅시다.]

그한마디만툭뱉고는전화를끊는다.
언제나이렇지, 이남자는. 처음부터사람말을들어먹지를않고저꼴리는대로날휘둘렀지.
그는그래도되니까. 로열알파들의세상에선이런게정상이니까.
백도하가원하는건내몸일테다. 늘그가지껄이는듯이난까다로운그의입맛에딱맞는최고의성욕해소
도구겠지.
잠시고개를들어하늘을올려다보았다. 차갑게얼어붙은파란하늘.
다시한번불안함을가득담은의문이떠올랐다.
히트사이클이오면난정말어떻게되는거지? 임신이라도되면?
백도하가싫진않았다. 솔직히말해서좋았다. 그의페로몬, 그의몸, 나만보는그의눈빛, 내게만보여주는그의
웃음, 그와의섹스. 과하게베푸는친절. 다좋았다. 하지만날통제하며휘두르고가두는이런점까지좋아할순
없었다.
그와난애초에평행선상에설수가없는완전히다른개체였다.
백도하는페로몬에미쳐버린짐승, 난그냥사람. 그가피라미드상단의포식자라면나는힘없는피식자. 그가
사냥꾼이라면난사냥감.
백도하와난이렇게나달랐다.
가장큰문제는이런남자에게내가어느새길들여졌다는것이다. 지금은이래도, 또백도하가돌아와페로몬을
뿜어대면흠뻑취해발정이나서덜덜떨며엉덩이를흔들면서다리를벌리겠지.
그리고그는친절했다. 자상하고다정하고. 차갑고무서울때도있지만그는따뜻했다. 그의넓은품속은너무도
따스하고포근하고안락했다. 살면서처음으로느껴본온기였다. 사람의몸은이렇게따뜻한거구나, 알게해준
유일한사람이었다.
그온기를놓치고싶지않았다. 김빈우의말대로내가포기하고살면되는일이다. 감금당해나혼자서는
편의점에도나가지못하는삶속에서나름의안정적인행복함을찾으면되는일.
이답답한상황이마음먹기에따라천국이될수도있으니까.
만약히트사이클이오면그시기를백도하와함께보내고, 임신이라도하게되면그런가보다하고, 아이를낳고
순응하고그렇게살면…….
모르겠다. 답이이미나와있는데내마음은왜이렇게흔들리고들썩이는지.
모든게처음이어서그렇다. 이런감정을느껴본적이없으니불안할만하다.

백도하는나와같지않다. 그런데난그를나와같은선상에놓고내눈높이로보려고한다. 그러니내가백도하를


이해할수없는게당연했다. 그역시날이해하지못하는게당연하고.
내불안의근본적인원인은결국그것일테다.
그래서난대체뭘어떻게하고싶은거지? 내가원하는건뭐야?
누구도답해줄수없는문제였다.
***

내가잠시편의점외출을시도했던날, 백도하는집에돌아오지않았다. 갑자기급한일이생겨지방으로가는


중이라고했다. 회사일이려니, 대수롭지않게생각했다.
우스운일이었다. 그가날통제하는것이답답하더니막상그가돌아오지않자허전했다.
혹시그가돌아오지않을까싶어서, 밤늦은시간까지자지않고기다렸다.
하염없이현관문을바라보면서주인이돌아오기만을기다리는애완동물이나다름없었다. 언제이렇게된거지.
언제이렇게백도하와함께하는이생활이익숙해진걸까. 늦게까지TV를보다가결국소파에웅크려잠이들었다.
아침에출근한메이드가왜여기서자느냐고깨우고, 그녀가차려주는식사를먹고또꾸벅꾸벅졸다가점심때가
되어서또밥을먹고.
어차피이집에서할일이없었다. 집안에갇혀서뭘해야할지도몰랐다. 사실밖으로나간다해도딱히할일은
없을것이다. 평생이렇게한가해본적이없었으니까.
10년만에강제로주어진휴식은꿀같았지만지루하기도했다.
점심을먹고한참을멍하게창밖풍경을보다가메이드가가져다주는간식을먹으며아무생각없이TV를켰다.

[사실은매칭시스템을도입한이래최초로만점을받은로열오메가, 세계최고, 이런타이틀이자랑스러운


동시에굉장히부담스러웠어요. 부담감이지나쳐서정신적으로도육체적으로도정말많이힘들었던것도
사실이었고요.]

마시던물을뿜을뻔했다. TV 화면가득들어찬인물은유현서였다. 어느토크쇼프로그램에게스트로초청된


모양이었다. 놈이TV 쇼에등장한것은처음이었다.
기가막혔다. 마약사건이터진지얼마나됐다고.
전에는저런데출연하면이미지저렴해진다고, 난그런급이아니지않느냐면서캐스팅이들어오는족족
거절하더니. 마약사건으로기존이미지에큰흠집이생기자, TV에자주등장해친근한이미지를만들어보자고
저러는것이분명했다.

[그렇다고는해도제가저지른실수에대한면죄부가되어서는안되겠지요. 정말반성많이하고있습니다.]
[살면서실수한번하지않는사람이어디있겠어요. 현서씨야워낙강한분이니금방이겨내실거라생각해요.]

사회자는유현서의심경에깊이공감하는척하며, 놈을띄워주는데여념이없었다. 오늘의주인공은


유현서였으니까.
놈주위에만반사판을댄것처럼놈만유난히하얗게반짝거렸다. 많이힘들었다고지껄이기엔얼굴상태가
지나치게좋았다. 이런저런가식적인이야기를주고받다가사회자가결혼얘기를꺼냈다.

[결혼이요? 당연히해야죠. 저도하고싶어요.]

결혼얘기가나오자유현서의얼굴이한층더밝아졌다.

[그런데현서씨. 로열오메가들은매칭시스템을통해서결혼상대를정할수있다면서요?]
[네. 그렇죠. 기계가정해주는인연, 사랑도없는계약결혼, 뭐그런소리가많은데요. 그게그렇게나쁘지만은
않은시스템이라생각해요. 아무래도저같은로열오메가들은워낙소수거든요. 저희들의상대가될로열
알파들보다훨씬수가적어요. 그래서유전자검증으로인증된사람들끼리만나는게좋거든요. 유전자상성이
맞아야로열알파의페로몬에영향을크게받지않고임신을할수있고요.]
[그렇죠. 로열알파들의페로몬이워낙독하다보니까요. 현서씨의결혼상대가어떤분일지벌써부터
궁금하네요.]
[곧알게되실거예요. 조만간좋은소식알려드릴게요.]

현서가하얀이를드러내고만개한꽃처럼웃었다. 웃는얼굴이배우뺨쳤다. 연기력한번대단한새끼. 속에서


열불이났다. 이를뿌드득갈면서무심코옆에갖다놓은그릇에손을뻗었지만집히는게아무것도없었다.
메이드가간식으로쿠키를가져다주었는데어느새다먹은모양이었다. 참맛있었는데언제다먹었지? 아쉬워서
입맛만다시다가목이마르기도해서빈그릇을가지고주방으로향했다.

“뭐필요하신거있으세요?”

물만가져가려고했는데메이드가말을걸었다.

“쿠키더드릴까요?”

“아, 네에. 제가더먹어도되는지모르겠지만…….”


“설우님. 왜자꾸그런말씀을하세요. 드시고싶은건얼마든지다드셔도돼요. 제가못드시게막는것도
아니고, 매번뭘드실때마다그런말씀을하시면저도서운해요.”

아무말하지않고있자, 그녀는조용히빈그릇을가져가접시가득쿠키를담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여사님이해주시는음식, 정말너무맛있어요. 뭐든지다맛있습니다. 솜씨가너무
좋으셔서, 엄마손맛이이런거구나싶기도하고. 제가엄마밥을먹어본적이없거든요.”

괜히머쓱해서둘러대다보니하지않아도될말까지하고말았다. 얘기를듣고있던메이드가갑자기눈물을
터뜨렸다. 난크게당황해서어쩔줄을몰라하다가허둥지둥, 식탁위에놓인티슈몇장을뽑아그녀에게건넸다.

“죄송해요. 갑자기우리아들생각이나서요. 우리아들도엄마음식은뭐든다맛있다고했던지라.”

그녀가내가건네준티슈로젖은눈가를닦으며훌쩍거렸다.

“아드님이혹시…….”
“아, 생각하시는그런건아니에요. 우리애는결혼해서애낳고잘살고있어요. 제가원래눈물이좀많아요.”

내입에서바람빠지는듯한웃음이새어나왔다. 다행이었다. 혹시그녀의아픈곳을건드린건가했더니.

“우리애도설우님같은오메가거든요. 미국인알파와결혼해서얼마전에아이하나를낳았어요.”

난여사님아드님같은평범한오메가는아니라고말하려다말았다. 말해봤자뭐할까싶었다. 그녀는묻지도


않았는데결혼한아들얘기를늘어놓았다. 핸드폰을꺼내손자사진까지보여주었다.
인형같은아기였다. 아이를안고있는동양인남성을끌어안은금발의알파남성이함께찍힌사진. 그림같은
가족사진. 사진속의그들은행복해보였다.

“아이가너무예쁘네요. 엄마랑아빠, 둘다빼닮았어요.”


“대표님과설우님사이에서태어나는아이도엄청예쁠걸요? 대표님이좀차갑고무뚝뚝하시긴해도좋은
분이시니멋진아빠가되실거예요.”
“저혼자선멋대로나가지도못하게하는사람이좋은사람이라고요?”
“그거야설우님이걱정되어서그렇죠. 설우님을너무좋아하시다보니까그러시는거예요. 그래도대표님은
제가모셔온로열알파분들중에서가장매너좋고훌륭한인성을지니셨는걸요. 저같은일개고용인에게도함부로
대하시지않고.”

다른건몰라도고용인에게함부로하지않는다는점은인정했다. 그는제법매너가좋은고용주에속했다.
난미간을좁히고핸드폰속, 어느평범한가족사진을보았다.
저사진속의가족처럼백도하와날닮은아이를품에안은나, 백도하가함께찍힌가족사진을상상해봤다.
피식, 실없는웃음만나왔다. 가족이라니. 아이라니. 말도안돼.

“저도이런가족을가질수있을까요?”
“당연하죠. 행복한가족을못가질건뭐예요?”

그녀의대답은확신에차있었다. 감정이몽글몽글해져누구에게도해본적없는말을입에담았다.

“제가행복해도되는걸까요? 저한테그럴자격이있을까요.”
“무슨말을그렇게하세요. 사람에겐누구나행복해질권리가있어요.”

작지만따스한그녀의손이내어깨를다독거렸다. 그녀에게서내친모에게서도맡아본적없는엄마의향기가
풍겼다.

“그러니까많이드시고건강해지세요. 건강해야행복도제대로느낄수있죠. 살좀더찌셔야해요.”

그녀는웃으며저녁준비를하는동안거실에가서TV를보고있으라면서날떠밀었다. 밥먹기전에간식너무
많이먹지말라는잔소리도잊지않았다. 과자그릇을손에들고커다란쿠키하나를오독오독씹으면서다시거실로
오자, 기다렸다는듯이핸드폰이울렸다.
테이블위에놓인핸드폰을들어보자낯선번호가떠있었다. 이력서를몇군데넣어둔게생각나서얼른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죽고싶지? 병신새끼야?]

수화기에서유현서의목소리가흘러나왔다. 자신의핸드폰으로전화를걸면받지않으니, 다른번호로전화를한


모양이다.

[씨발. 그딴짓을하고도넌속편하게발뻗고잘지내고있나보다? 난너때문에지옥에서허우적대면서괴롭게


살고있는데? 사람인생진창으로처넣고잠은잘오냐? 개자식아!]

TV 화면에는아직도유현서가비치고있었다. 화면속의놈은반짝반짝빛나는얼굴로환하게웃고있었다. 놈은
전혀괴로워보이지않았다. 진창에서허우적댄다더니얼굴은전보다더반지르르하다.
진창좋아하네. 진짜더러운진흙탕이어떤건지네놈이알기나할까. 아무리허우적대도빠져나갈수가없어,
결국은포기하고진흙속에푹파묻히고마는그런지옥이어떤건지네놈이알아?

[사람구실도제대로못하는병신새끼데리고다니면서사람답게살게해줬더니, 자기주제도모르고주인을
물어? 아오, 씨발! 별같잖은게! 불쌍해서사람대접해줬더니, 내가우스워보였냐? 병신새끼야?]

현서, 넌여전히개새끼구나. 너무도한결같이개새끼니까오히려좋았다. 양심의가책따위느끼지않아도


되니까.

“야. 유현서.”

입을열어놈의이름을불렀다. 놈의이름을이렇게불러본건처음이었다. 같은나이였는데도난늘놈에게


존댓말을했다.

[뭐? 야, 유현서?]
“네가언제날사람대접을해줬는데?”
[뭐라고? 새끼야?]
“언제네가날사람대접해준적있냐고. 키우는개도그렇게부려먹진않는다, 씨발새끼야.”
[병신새끼가뭐라는거야? 너, 씨발, 나한테욕했냐? 지금?]
“그래. 욕했다. 욕은너만하냐? 마약사건터져서네이미지에흠집난게그렇게억울해? 없는얘기만든것도
아니고, 마약빨고다닌건사실이면서무슨.”
[너미쳤지!]
“그래. 나미쳤다. 10년이나네노예노릇하면서살았는데지금까지미치지않고버틴것만도용하지않아?
억울하고속터지고미칠것같아? 잠도안오고, 자려고누우면가슴이막뛰고, 눈물나고, 죽고싶고그래? 난네
밑에서빌빌대면서10년이나그렇게살았어. 네놈이지금느끼는지옥을난10년이나겪었다고.”

스스로도놀라울정도로침착하게말이나왔다. 시뻘건분노로속은부글부글끓는데머릿속은차가웠다.

[아악! 이새끼가뭘잘못처먹고이지랄이야? 죽고싶어? 죽고싶냐고!]

또현서놈의특기가나왔다. 무조건악다구니쓰기. 놈이악을쓰면서손에집히는대로물건을내던지고때려


부수는소리가들렸다. 듣고있자니웃음만나왔다.
애새끼가따로없었다. 옆에서지켜보던때보다더유치하고수준낮은, 몸만큰애새끼. 더는무섭지않았다.
우습고같잖았다.

[내가너가만히놔둘줄알아? 너랑네어미년, 너랑눈맞은애인새끼, 찾아내서다죽여버리겠어. 너진짜내가


병신새끼만들거야!]
“말만하지말고죽여봐! 씨발, 개자식아! 하지도못할거면서입만살아서나불대지말고죽여보라고! 날가만히
안놔둔다고? 씨발, 이젠안당해. 바보같이당하지만은않아. 나한테덤빌거면각오해. 나도널가만히안놔둘
테니까!”

나도지지않고악을썼다. 어이가없어서넋이나갔는지수화기너머에서헛웃음치는소리만들렸다.

[병신새끼가뭐라는거야? 네깟게뭘할수있다고.]
“나유설우야. 개새끼야. 병신새끼, 이딴거가아니라. 유설우라고, 나!”
[야아아아아! 아아악!]

말문이막히니또소리만꽥꽥내지른다. 같잖은애새끼같으니라고. 소리는너만지르고, 욕은너만할수있는


줄알아?

“그리고결혼? 웃기고있네. 네가원하는상대와결혼할수있을것같아? 네놈이목매는상대는너한테관심도


없으니까구질구질하게매달리지마라. 이번에제대로흠집난네이미지, 바닥까지떨어져너절하게구겨지고싶지
않으면.”
[뭐? 또무슨개소리야! 야! 말해. 그게무슨소리냐고!]

놈이절규비슷한소리를내지르는걸무시하고전화를끊었다. 놈이포기하지않고바로전화를걸었지만받지
않았다. 일부러전원도끄지않았다. 아무리전화를걸어도받지않고무시당하는걸당해보라고. 문자폭탄이
연이어날아왔다. 그것도무시했다.
야, 유현서. 너도당해보니어떠냐? 기분더럽지? 속이시원했다. 10년묵은체증이싹내려가는기분이었다.

10년을참다가딱한번꿈틀거리며악을쓴건데이렇게나시원하다니.
일단나오는대로내지르긴했지만뒷수습이문제였다. 제대로긁어놨으니현서놈이무슨짓을할지모르는데.
나도잘안다. 말뿐인허세를부렸다는것을. 유현서의악다구니는허세가아니지만내악다구니는허풍이었다.
결혼얘기는하지말걸그랬나. 현서놈이내뒤를캐다가백도하와내관계를알게되면어쩌지?
상관없지않나. 오히려현서가이사실을알게되면정말이지통쾌할듯싶었다. 그렇다고그놈이백도하를해칠
수있는것도아니고. 백도하는못건드리니날찢어죽이려들겠지. 모든걸내탓으로몰고가면서.
저딴게자기주제도모르고로열알파에게꼬리를쳤다, 현서자신이좋아하는상대란걸알면서도몸을팔았다,
비열한새끼, 은혜도모르는새끼, 사회에해악만끼치는해충같은새끼. 백도하와내관계가알려졌을때, 쏟아질
비난과수군거림이벌써부터귓가에맴도는듯했다.
그리고그비난은나만듣지는않을것이다. 나와붙어먹는백도하의귀에도들어갈터였다.
자신을좋아하는최고의로열오메가는거절하고밀어내더니, 성치도않은몸을지닌돌연변이와놀아나는로열
알파. 왜하필저딴놈이야? 역시소문대로이상한놈, 제정신이아닌놈같은온갖수군거림이백도하가어딜가든
따라붙을것이다.
난그런수준낮은종류의후려침과손가락질에익숙하다해도, 백도하는익숙하지않을텐데.
그누구에게도환영받지못할관계다.
어디에서도떳떳하게말못할그런관계.
나를놔주지않고붙잡고있는이상, 무엇하나그에게득될것이없고손해만가득할관계.
이런소리를하면백도하는또똑같은소리를지껄이면서코웃음치겠지.
난한번도내선택을후회한적이없어, 라면서.
하지만언제까지그럴까?
내게향한집착, 관심, 친절과애정, 그런감정은어느순간희미해질것이다. 결국은내게질릴테다. 후회하면서,
나같은존재에게집착한과거를부끄러워하게될지도모른다.
세상에영원한건없다. 급하게불붙은감정일수록빠르게사그라진다. 세월이흐르면강산도변하는데사람의
감정이라고변하지않고영원할까.
유현서에게욕을하면서악을쓴건통쾌했지만웃음의끝맛은썼다. 10년묵은체증은내려갔지만또새로운
불안과체증이쌓였다.
현서에게난병신새끼도, 이딴거도아닌유설우라고소리질렀지만, 그래서뭐? 세상모든게변해도, 백도하의
감정이변해도, 여전히난아무것도아닌존재일텐데.
다시핸드폰소리가울렸다. 화면에뜬백도하의이름을보자마자얼른전화를받았다. 기다렸다는듯이. 아니,
사실은계속기다렸다.

[어제는나없이혼자서잘잤어요?]

낮게속삭이는목소리. 유현서의악다구니를듣느라지친고막을달래주는나른한저음.
실소가흘러나왔다. 혀끝에쓴맛이맴도는웃음이아니라달콤하기만한웃음. 사실은당신을기다리다소파에
웅크리고잠들었다는소리는하지않았다.

“혼자서못잘건없죠. 애도아니고.”
[그래? 서운한데. 난당신예쁜얼굴이보고싶어서밤잠을설쳤는데요.]

저런느끼한소리를어쩌면저렇게태연하게지껄일수있는지. 언제들어도이런식의대화엔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들을때마다어색했다. 부끄럽고민망하고. 예쁘다는소리에늘가슴이뛴다. 몸이배배꼬인다.

[약은? 밥은잘먹었어요?]

매일같이질리지도않고묻는약먹었냐는소리뒤에, 이젠밥먹었냐는소리도붙었다.

“네. 다잘먹었어요. 여사님이밥도간식도다잘챙겨주십니다.”


[잘하고있네.]

그리고그는내대답을듣고잊지않고칭찬을했다.

[간식은뭐먹었어요?]
“쿠키요. 너무맛있어서엄청먹었어요. 제가먹어본쿠키중에제일맛있었어요. 아침에해주신계란찜도얼마나
맛있었는지…….”

정신없이말을늘어놓다가아차, 싶었다. 혼자흥분해서떠든건가싶어서.

[뭐든지맛있게먹어서좋아. 당신은.]

흘러나오는그의목소리가다정했다. 이런내가귀엽다는듯이바라보며웃는그의모습이눈앞에그려졌다.

“정말로다맛있으니까요. 어제급한일은잘해결되셨어요?”
[뭐, 해결은됐죠. 저녁먹었습니까?]
“아직저녁먹기엔이른시간이라.”
[먹지말고기다려요. 오늘은나가서먹읍시다.]
“집에서먹어도될텐데요.”
[집에만있으니답답해미쳐하는것같아서. 잠깐바람도쐴겸데이트하자고.]

그래. 참많이도생각해줬다. 내가원하는게잠깐의외출이아님을알면서. 아니다. 모를지도?

[뭐먹고싶은거있어요?]

이집에머무는동안워낙잘먹어서딱히생각나는음식이없었다. 문득고개를돌려창밖으로펼쳐진늦은
오후의한강풍경을바라봤다.

“치맥이요.”

갑자기그게생각났다. 한강에서먹는치킨과맥주.

[치맥?]
“치킨이랑맥주요. 강변에돗자리깔고앉아서치킨을시켜서맥주랑먹어보고싶어요.”
[아니, 나도치맥이뭔지는알아. 그런데이계절에?]

백도하가웃음을터뜨렸다. 하긴겨울이었다. 이런날씨에밖에서먹다간얼어죽을지도. 집안이워낙따뜻해서


겨울이란걸잊었다.

“그냥갑자기생각이나서그런거예요. 아무거나괜찮습니다.”
[알겠어요. 다시전화하겠습니다.]

전화를끊자마자바로유현서에게전화가걸려왔다. 놈의포악한성질머리처럼핸드폰이요란하게도울려댔다.
속좀터져봐라. 집안물건다때려부수고지랄발광해봐라. 이젠내가당할일이아니다. 뭐가어찌됐건놈이
악악대면서발광하는꼴을보지않아도되니, 그거하나만은끝내주게좋았다.
메이드에게저녁식사는준비하지않아도된다고말하곤, 욕실로들어갔다. 매일보는사람이지만그래도이런
지저분한몰골로나갈순없었다.
몸에들러붙은우울한감정을따뜻한물줄기로씻어냈다. 오늘은이통쾌한기분을순수하게즐기기로했다.

***
내려오라는백도하의전화를받고집밖으로나섰다. 엘리베이터를타고내려가아파트밖으로나가자마자,
백도하가서있었다. 가로등이고장났는지주위가유난히어둡고, 블랙슈트를입고있어분위기가장난아니게
살벌했다. 원래도무겁고차가운이미지였는데더음산해보였다. 사람같지가않고저승사자처럼보이기도하고.
온통까만배경속에선남자가날발견했다. 그가눈을빛내면서웃었다. 모양좋게말려올라간입술사이로
하얀입김이뿜어져나온다. 드러난이도하얗다.
아파트앞계단을내려가서그에게다가갔다. 백도하의페로몬이훅풍겼다. 옷을얇게입고나온건가,
후회했는데그의페로몬을맡자순식간에뜨거워졌다.

“좋은냄새. 씻었어요?”

백도하가속삭이며손을뻗었다. 그의손끝이채마르지않은머리칼에닿았다. 그의손은뻔뻔하게목덜미로


미끄러져내려왔다. 차갑게식은손끝이목덜미를매만졌다. 자기가남긴표식이제대로있나, 확인하는것처럼.
붉은멍이하루만에사라질까. 옅어질새도없이씹히고빨리는데. 그의손이닿은목덜미에핏대가서며바르르
떨렸다.

“누가보기라도하면어쩌려고요.”

고개를틀면서그의손을떼어냈다.

“아무도없어. 그리고누가좀보면어때서? 당신은사람시선을지나치게의식하는게탈이야.”

그러는당신은사람시선좀의식하고살아라.

백도하의손이떨어지고훤히드러난목에보드라운천이닿았다. 백도하가제목에두르고있던머플러를풀어
내목에감아준것이다.

“목드러내고다니지말아요. 나갈땐꼭가려. 남이당신목을보는거싫으니까.”

추울까봐목에머플러를감아준건참고마운데, 지껄이는말까지고맙진않았다.
애초에당신이내목에이런흔적을남기지않았으면될일이잖아.

“또이렇게하찮게노려보지.”

눈에힘을줘서쏘아보자백도하가소리내웃었다. 딱그표정이었다. 귀여워서어쩔줄을모르겠다는듯한표정.


“밥이고뭐고집에들어가서처박고싶게하네. 그냥집으로올라가서먹을까?”
“차어디세워두셨습니까. 앞에보이는저차죠?”

이러다가또저페로몬에휘말려집으로끌려가게생겼다싶어서, 얼른백도하를밀치고저앞에보이는시꺼먼
차로성큼성큼걸어나갔다.

“사람제대로조련할줄을알아.”

백도하가웃으며뒤따라왔다. 그가스마트키를조작했는지검은세단에저절로시동이걸렸다.
내가먼저조수석에올라타안전벨트를매고있자, 백도하가뒤늦게운전석에올라타서는갑자기내쪽으로훅
넘어왔다. 그리고손으로내목을감싸안고는입술을겹쳤다.
바깥공기에차갑게식은그의입술살점이내입술위에서뭉개져순식간에뜨겁게녹았다. 언제나그렇듯이
잡아먹힐듯한키스였다. 입술이강하게빨리고씹혔다. 잘근잘근입술을씹고벌어진입사이로혀까지밀어넣어서
입안을싹훑고는혀를빼냈다. 곧이어입술이떨어졌다.

“아쉬워도밥은제때먹여야하니까.”

그는내뺨을톡치고는다시운전석으로넘어갔다. 씹힌입술이얼얼해서미간을좁히고입술을문질러닦았다.
아쉬운건나도마찬가지였다. 감질나게입술만맞대고빨다가깔끔하게떨어지다니. 입술에남은알파페로몬의
맛은너무도달콤했다. 더맛보고싶은데.
하지만열이오른다리를오므리고입술을씹으며꾹참았다.
벌게진시선으로그를한번흘긋보기만해도밥이고뭐고, 날덮칠남자였다. 그가흥분해서페로몬이독해지면
나도어쩔수없이이성을잃을테고.
매번그패턴이었다. 며칠내내. 백도하를발정난짐승이라고욕할거없었다. 나도똑같은짐승이되곤
했으니까.

“그냥올라가죠? 아래가당기고아픈데.”

질척한목소리나, 풍기는페로몬만으로도저남자의하반신상태가어떤지잘알겠다. 바지를찢고튀어나올듯이


우뚝서있겠지. 보지않으려고애써무시했다. 집에끌려들어가면끝장이다. 또전과똑같이저페로몬에취해서
뒤엉키게될테다.
오늘은그런식으로휘말리지말아야겠다고, 집밖으로나서는순간부터결심했다. 억제제와중화제도정량
이상으로더먹고왔다.

“식사나하러가죠? 마침할얘기도있는데.”
“빨아줄래요?”

사람이말을하면들어라. 제멋대로, 저꼴리는대로지껄이는건여전했다.

“당신, 입으로내정액을받아먹어본적없지?”

젠장. 뻔뻔하게지껄이는소리에기가차서고개를돌려백도하를봤다. 빙글거리며웃는낯짝이참잘생겼다.


품위없게아무리천박한소리를지껄여도외양하나만큼은기가막히게우아하지.

“꼭정…… 그걸먹어야합니까? 왜그딴걸먹어요? 세상에맛있는게얼마나많은데.”


“왜? 맛있을텐데.”

그의페로몬이짙어졌다. 내눈가가움찔떨렸다. 흐읍, 숨을참아보려했지만소용없었다. 숨이가빠오고배속이


뭉근하게달아올랐다. 이럴거면큰선심쓰듯이바람쐬러가자고하지를말든가.

“페로몬좀낮춰주십시오. 외식하러가자면서요.”
“당신향기를맡으니제어가잘안돼.”

거짓말. 페로몬을완전히지울수있는사람이갑자기제어를잘못하겠다는게말이되나.

“페로몬을제어해주는시술이있다고하는데그걸좀받아보면어때요?”
“내가?”

자신이왜그딴걸받아야하느냐는듯한황당함이어린표정이었다.

“시도때도없이발정하니까요.”
“걱정하지말아요. 당신한테만이러는거니까.”

당신이아무한테나발정할까봐서가아니라, 당신의페로몬때문에내가괴로우니까하는소리지.
“억제제라도먹어보면어때요?”
“나한테그런소리를당당하게할수있는사람도당신뿐일거야.”

백도하가크게소리내웃었다. 호쾌한웃음소리와함께그의페로몬이한층더짙어졌다. 젠장. 기어이날


달아오르게하려는수작이지.
난떨리는손으로주머니를뒤적여약통을꺼냈다. 집에서억제제와중화제를가지고나왔다. 그리고보란듯이
그가보는앞에서약을꺼내입안에털어넣어물도없이꿀꺽삼켰다.

“약, 더먹게하지마세요. 이미정량이상먹어서더먹으면쇼크가올지도모릅니다.”


“그딴걸지금협박이라고해요?”

대답없이백도하를쏘아보기만했다. 그가다시한번소리내웃으며페로몬을확낮췄다. 그것봐라. 역시


가능하면서.

“왜이렇게가시가돋쳤어. 어제혼자놔둬서삐졌나본데.”

욕이마구튀어나오려는걸간신히참았다. 이마에핏대가다섰다.

“먼저외식하러가자고한건도하씨입니다. 그리고할얘기가있다고했잖습니까.”
“유현서얘기? 유현서에게전화라도왔어요?”

허를찔려서할말을잃었다. 백도하가픽웃으며핸들을움켜쥐었다. 곧차가움직여빠르게주차장에서


벗어났다. 그는한손으로여유롭게핸들을조작해운전하면서말을이었다.

“유회장이아버지와전화통화를한모양입니다. 나와유현서가가장이상적인결혼상대라는매칭시스템결과가
나왔다면서. 댁아드님이최고의로열오메가에게걸맞는상대라니, 얼마나자랑스러우시겠냐, 매칭시스템결과도
그렇게나왔으니둘이빨리맺어주자면서결혼을밀어붙인모양이더군.”

그가말을끝맺고는당당하게덧붙였다.

“그딴기계가인증해주지않아도난우수해. 아주.”

허세로보이지는않았다. 잘난사람이자기잘났다고말하는데그게무슨허세일까.
“그리고내취향과는별개로, 유현서도훌륭한오메가야. 최고의결혼상대이긴해. 그건확실히인정해. 유현서와
결혼하게되면얻는것도많을테고.”

뭐라고해야할까. 한참을생각하다간신히입을열었다.

“매칭시스템결과를무시하면어떻게됩니까?”
“막대한손해를보겠죠. 유현서가워낙유명해서, 놈을거절하면대외적인평판도바닥을치고, 놈을소유하고
싶어하는수많은개새끼들한테도원한을사겠지. 어차피내평판은바닥이라더망가질이미지도없긴한데,
부모님은고개를들고다니질못하실테지, 아마?”

백도하는피식웃었지만난웃을수가없었다.

“어차피결혼은비즈니스야. 결혼상대는사업파트너와같아. 서로에게이득이되는상대끼리결혼이란계약으로


맺어지고아이라는결과물을낳지. 그렇게‘가족’이라는이름의사업을키워가는거야.”

그는지나치게사무적인, 사업보고서를읊는듯한어조로자신의결혼관을늘어놓았다.

“결혼이라는계약속에사랑은없는겁니까?”
“사랑?”

백도하가건조한코웃음을쳤다.

“결혼생활에그런게왜필요해요?”

정말로모르겠다는말투였다. 진지하게왜그런게필요한지묻는소리였다. 그래. 쓸데없는질문이었다.


예상했던그대로의반응이라허탈하지도않았다.
달라.
저남자는나와는너무도다르다.
새삼, 너무도절절하게, 온몸으로깨닫게된다.
차근차근말해서이해를시킬수있는문제가아니었다. 애초에사고구조자체가, 생겨먹은것부터가다른
인간이라아무리말해도이해하지못할것이다. 이해하려들지도않을테고.

“로열오메가들도결혼생활에그딴구질구질한감정을끼워넣진않을텐데?”
아니. 유현서는자신이사랑하는상대와결혼하고싶어했다. 유회장과사모님과같은정략결혼이아니라.
그리고그러는유회장도내어머니는사랑했다.

“사랑이왜구질구질합니까.”

“사랑이란건질척해. 감정중에가장짜증나게점성이강해서몸에달라붙으면쉽게떨어지질않아. 최악이야. 왜


그런쓸데없는감정에체력을소비하는건지모르겠어. 사랑타령을하는놈만큼한심한놈이없다고생각해.”

아무렇지않게지껄이는백도하에게묻고싶었다. 그럼당신이내게쏟아붓는이감정은뭔데? 하지만묻지


않았다. 저입에서또무슨소리가튀어나올지몰라서. 하지만저남자의입에서사랑한다는소리가나와도웃길것
같았다. 사랑한다는소리를해도믿지못할것같고.
속이안좋았다. 뭔지모를감정이뱃속에서불쾌하게출렁거렸다.

“결혼과아이는필요해. 로열알파로서의내입지를유지하기위해선.”

백도하는결혼과아이는자신의입지를지키기위한도구일뿐이라는소리를아주태연히지껄였다. 아무감정이
깃들지않은건조한목소리가바로이어졌다.

“하지만유현서는아니야. 결혼은해야할테지만유현서와는못해. 유현서와섹스해서아이를가져야한다니.


생각하는것만으로도끔찍해.”

하고싶은말들이목소리가되지못하고입안에서만맴돌았다. 신발속돌멩이처럼자글거리며입안에서
굴러다니는말을삼키고겨우한마디뱉었다.

“만약결혼하게된다면…….”

하지만말을끝맺지못하고또입이다물어졌다.

“말을하려면끝까지해요. 말끝을얼버무리는버릇, 좋지않아.”


“결혼을하게된다면저와의관계는끝내는게좋겠죠.”
“왜그래야하는데요?”

예상했던그대로의반응이돌아왔다. 김빈우와똑같은반응이었다.
“말했죠? 결혼은비즈니스라고. 결혼상대와애인은달라. 결혼상대는사업파트너고애인은사적인영역의내
소유물이야.”

결국결혼을해도나와는계속붙어먹겠다, 이소리다. 결혼상대따로. 다른집에눌러앉혀주기적으로찾는애인


따로. 그얘기는곧난결혼상대가될수없다고딱잘라말하는것이나다름없었다.
지껄이는말만듣자면개새끼가따로없다.
백도하는자신이개새끼가아니라하지만, 내가보기엔천하에둘도없는개자식이었다.
말투의뉘앙스, 단어선정하나하나, 어느것하나마음에드는게없다. 하나같이재수없고, 신경을벅벅긁는
소리만골라서지껄이는것도재주다.
사랑따위구질구질해서짜증난다고지껄이는남자다. 이남자에게애인은‘소유물’이다. 자신의손에쥐고
멋대로쥐락펴락휘두르고, 통제해야만하는물건.
내가가진건이비루먹은몸뚱이뿐인데백도하는내이몸뚱이를원하고있었다. 기가막히게상성이잘맞아
몸에착감기는섹스도구로서의나.
안다. 로열알파들의몹쓸습성이라는거. 이남자뿐만이아니라로열알파놈들대부분이개자식이라는거. 로열
알파들의세계에선이런일이당연하다는거.
하지만속이부글부글끓고참담하고비참한기분이드는건어쩔수없었다. 진저리가쳐질정도였다.

“전그런거…….”
“또싫다고말하려고? 내가전에도그랬지않나? 당신에게선택권은없다고. 당신이싫고좋고는중요하지않아.”

더이상아무말도하지못하게하는소리였다. 입닥치라는소리나다름없었고.
백도하, 이개새끼야. 저반들반들한낯짝에대고욕을퍼부어주고싶었다.
하지만돌아올반응은뻔했다.
왜화가나서이래? 난도무지당신을이해할수가없어. 이딴소리나지껄이겠지.
당신이지껄이는개소리에내가얼마나상처를받는지, 당신은모르겠지. 알고싶어하지도않을테고.
아, 그래. 생각해보니그렇다. 난아픈것같다. 상처받은것같다. 저남자의입에서뻔뻔하게튀어나오는말이
채찍이되어내몸을후려쳤나보다.
결국저남자도똑같은로열알파니까, 나와는다르니까, 다른세계의인간이니까, 이렇게생각을해도내몸은,
내마음은받아들이질못하겠나보다.
제일짜증나는건기분이이런데도백도하에게서풍기는옅은페로몬에반응해두근거리는심장과달아오르는
몸이다.
망할페로몬. 빌어먹을, 좆같은페로몬. 거지같은내몸.
더지껄이기도싫어서고개를돌려차창밖풍경만바라봤다.
백도하가몇마디더지껄였고난건성으로“네, 그렇군요.” 따위의대답으로받아쳤다.

“또뭐가문제야?”

내기분을눈치채지못할백도하가아니었다. 그가다소신경질적인소리로묻기에대충둘러댔다.

“약을너무많이먹어속도안좋고피곤해서그럽니다.”

내쪽차창이지잉, 소리를내며조금내려갔다. 창틈으로찬바람이쏟아져들어오면서페로몬에뒤범벅이된차


안공기가순환됐다. 그래, 배려해줘서참고맙다.

어느새차가어느호텔앞에다다랐다. 호텔로비에차를세우자, 도어맨이운전석쪽문을열어주었다. 백도하가


먼저내려도어맨에게차키를맡기고빙돌아와내가앉은조수석쪽문을열어주었다.

“내려요.”

안전벨트를풀고나가자백도하는내손을잡아에스코트까지해주었다. 그럴필요까지는없는데.
호텔입구로들어가던사람들이우리를흘긋거리며봤다. 남성알파와남성오메가커플이그리희귀한것도아닐
텐데. 백도하는아무렇지않은듯했지만내가신경쓰여서붙잡힌손을떨쳐냈다.
호텔내부로들어서자, 직원들이로비에크리스마스장식을달고있었다. 이미크리스마스트리도로비한구석에
장식되어있었다.
그러고보니연말이얼마남지않았다. 유현서의집에있었다면새크리스마스트리를알아봐야할시기였다.
현서는매년크리스마스트리를새로사곤했다. 겨우한두달쓰고떼어내는장식물도전부새로샀다. 집안
인테리어도그시기에맞게빨강, 초록으로싹다바꿨다.
매년돌아오는성탄절이뭐그리중요하다고. 겨우한두달장식하고떼어낼성탄절장식들을어찌나까다롭게
고르는지, 나만죽도록고생하면서여기저기전화를하고직접뛰어다녀야했다. 가뜩이나바빠죽겠는데더과중한
업무가쏟아지는때였다. 그래서인지난크리스마스가전혀즐겁지않았다.
올해는내가그좆같은짓을하지않아도되는구나. 그생각을하니기분이확좋아졌다.
순백의눈을뒤집어쓴자작나무를연상케하는새하얀트리와그앞에놓인순록과썰매를탄산타모형들을보고
있을때였다.

“산타하라부지다! 루돌프다아아아!”

한사내아이가괴성을지르며트리모형을향해달려갔다. 잔뜩흥분해서달려간다싶더니, 결국바닥에콰당


엎어지고말았다. 아이가엎어진채로우아앙, 울음을터뜨렸다. 꽤크게엎어졌기에다치지는않았을까싶어서,
아이에게얼른달려갔다.

“괜찮니? 안다쳤어?”

아이를일으켜세우면서묻자, 아이가숨넘어가게울어댔다.

“으아앙! 아파. 아파아.”


“저런. 많이아파?”

울다보니설움이더격해지는지아이가팔을벌려내게매달렸다. 애가낯가리는것도없다.
주위에보호자도보이지않고애가너무격하게울어하는수없이아이를껴안아“괜찮아. 괜찮아.” 하면서애
등을토닥거려줬다. 아이를안은채로트리모형으로다가가애에게보여줬다.

“봐봐. 루돌프도있고산타할아버지도있지? 산타할아버지가뭐라고해? 울면선물안주신다고하지? 선물안


받고싶어요?”
“히잉. 시러어. 선물받고시퍼요.”

“그럼울면안되죠?”

다행히아이가울음을뚝그쳤다. 애는애였다. 아이가히끅거리며손을쭉뻗었다. 아이가만지기쉽게몸을산타


모형쪽으로기울여주었다.

“산타하라부지. 나안우러여. 선물쥬세여.”

아이가반들반들한산타머리를, 작은손으로쓰다듬으면서진지하게애원했다. 귀여워서웃음이났다.


“민우야!”

곧어느여자의날카로운외침이로비에울려퍼졌다. 뒤를돌아보자한여자가새하얗게질린얼굴로미친듯이
주위를두리번거리고있었다. 아이엄마가분명했다.

“엄마아!”

아이가엄마를부르자여자가한달음에달려왔다. 달려온여자에게아이를안겨주었다. 엄마속이타들어간건


모르고아이는엄마가왔다고꺄르륵거리며웃었다. “내가너때문에못살아.” 하면서엉덩이를찰싹쳐도해맑게
꺄륵대는애가너무귀여웠다.
아이엄마는몇번이나고맙다고, 죄송하다고, 허리를꾸벅숙여인사를하고는애를안고돌아섰다.

“안녕!”

엄마품에안긴아이가손을흔들며인사를하기에나도웃으면서손을흔들어보였다.

“애한테는잘도웃어보이네요. 나한테는짜증만내더니.”

백도하가옆에서이죽거렸다. 기가막혀고개를돌려그를봤다.

“……애한테도질투합니까?”
“전에도느꼈지만당신, 애를너무잘봐. 애들이당신을유난히잘따르는것도그렇고.”
“그래서무슨말을하고싶은건데요?”
“나쁘지않다고. 당신과애가같이있는모습.”

그러며백도하가내어깨를감싸안았다. 너무도자연스러운스킨십이었다. 적어도로비를지나는사람들중그


누구도이상하게흘긋대거나하지않았다. 하지만내가싫었다. 몸을비틀어그의손을떼어냈다.

“밥이나먹으러가죠.”
“오늘따라왜이렇게뾰족할까.”

지껄이는소리는무시했다. 크리스마스트리를보고, 귀여운아이를보면서좋아졌던기분이또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실은밥이고뭐고뛰쳐나가고싶었다. 백도하없이혼자서.
말한마디하지않고우리들은호텔꼭대기층의라운지레스토랑으로올라갔다. 식사를꼭이렇게대단한곳에서
해야하는걸까, 하는생각이들었지만입다물었다. 분식집김밥도괜찮은데. 하긴백도하같은남자가일반
식당에서김밥을우물우물씹는모습도상상이되질않았다.
미리예약을해두었는지레스토랑입구의직원에게백도하가자신의이름을말했다.

“미리요청하신대로준비해두었습니다.”

직원이우리를홀로안내했다. 어째홀이휑했다. 휑한정도가아니라손님한명보이질않았다. 혹시레스토랑을


통째로빌렸냐고묻자, 당연한걸왜묻느냐는듯한대답이돌아왔다.

“식사하는데시끄러운건질색이야.”

이렇게까다로울수가없다. 까다로운걸로치자면유현서못지않다. 손님한명없는데직원이우릴이상한


방향으로안내했다. 바깥의테라스자리로.

“야외에서치맥이먹고싶다면서? 이런날씨에한강에돗자리펴놓고먹을순없으니이정도로만족해요.”

이런날씨에호텔꼭대기층야외테라스에서식사를하는것도미친짓이아닐까. 그소리가목구멍까지치밀어
올랐지만소리내말하진않았다. 치맥어쩌고, 지껄인사람은나였으니까. 백도하는나름대로최대한배려를해준
거다. 어떻게든내가원하는걸해주려고. 생각없이그냥뱉은소리였는데.
직원이빼준의자에앉았다. 곧다른직원이커다란담요까지가져다주었다. 칼바람이사방에서사정없이
휘몰아쳤지만야외용히터가여러대가동되고있어그리춥지는않았다.

“당신이원하는치킨과는좀다르겠지만일류셰프가만드는치킨도나쁘진않을거예요.”
“그냥한말이었습니다. 꼭치맥이아니어도됐는데요.”
“어떻게든먹게해주고싶었어. 당신이뭔가원한건처음이었으니까. 하고싶은게있으면언제든지말해요.
뭐든지다해주고싶어.”

맞은편에앉은백도하가미소지었다. 히터에서뿜어져나오는오렌지빛에물든아름다운얼굴. 거짓을말하는


눈이아니었다. 저남자는자신이한말은어떻게든지켰다. 내가이호텔을가지고싶다고해도흔쾌히내게안겨줄
남자다.
차갑지만때론따뜻하고, 강압적이지만때론더없이자상하고상냥한남자. 언제든, 어느곳에서든, 한치의
흐트러짐없이완벽할오만불손한권력자. 어둠속에서도, 이추위속에서도, 날보는그의두눈은생기를띠고
빛났다.
저런남자가날보면서웃는다. 나만보고, 나에게만저렇게웃어준다. 저남자의감정이사랑은아닐지언정,
사랑이아닌페로몬이얽힌본능일지언정, 내게향한그의눈빛은한결같이뜨거웠다.

“주문하신음식나왔습니다.”

날아든직원의목소리가찰나의침묵을갈랐다. 고급식기에한가득담긴치킨. 맥주잔도앞에놓였다. 정말


치맥이네. 왠지웃겼다.
음식을보자갑자기허기가치밀어목에감긴머플러를벗었다. 본격적으로먹으려면목에둘둘감긴머플러가
방해가되니까. 묵묵히음식을내려놓던직원이날흘긋보는시선이느껴졌다. 드러난내목을보는것일테다. 보고
싶지않아도목의흔적이워낙크고선명해서바로보일테니까.

“감히누굴함부로보는거야?”

가만히보고있을백도하가아니었다. 그의목소리가날아들었다. 나도깜짝놀라고개를쳐들게됐다. 직원의


얼굴이눈에들어왔다. 굉장히인상적으로잘생긴사내였다. 외국인인가.

“네? 제게하시는말씀입니까?”

하지만남자의입에서나온말은정확한발음의한국어였다.

“그래. 너. 누구목을빤히보냐고.”
“죄송합니다. 정말실례했습니다.”

직원이빠르게나와백도하에게사과했다.

“무슨배짱으로내애인을흘긋거려?”
“……백도하씨.”

보다못해나직하게그의이름을불렀다. 제발그만좀해. 직원이다시한번죄송하다는인사를하고는황급히


사라졌다. 뾰족하게날이선화살은내게도향했다.
“그리고당신도마찬가지야. 애인을앞에두고다른새끼를흘긋거려? 날앞에두고도다른새끼가눈에들어와?”

세상모든것에질투를할기세다. 오늘따라왜저렇게유난스럽게굴지? 아니다. 저남자는원래저랬지. 저


남자를평하는소리에한가지더붙여야겠다. 의외로엄청나게, 아니, 대놓고유치하다는점.

“워낙특이한외모라자연스럽게눈이갔어요. 모델처럼잘생기기도했고.”
“나보다더?”

당신, 대체어디까지유치해질건데.

“그거야당연히도하씨가……. 아니, 그냥좀본겁니다.”


“그러지말아요. 난당신과있을때단한번도한눈판적없어.”

할말없게한다. 저렇게나오면뭐라반박할수가없지않나. 하긴그랬다, 정말로. 나와있을때저남자의


시선이다른사람에게향한적은없었다.

“일단식사부터하죠. 배고파요.”

이럴땐얼른화제를돌리는수밖에없었다. 포크를들어노릇노릇잘튀겨진치킨조각몇개를집어앞접시에
갖다놨다. 그때였다. 갑자기엄청난강풍이휘몰아쳤다. 휘이잉, 세찬바람소리와함께온갖물건들이날아다니고
넘어지고와장창소리를내며깨졌다. 음식그릇도덜그럭거리면서엎어져, 치킨조각이테이블위에죄쏟아졌다.
답답해서벗어서옆에놓은백도하의머플러도휘익날아갔다.
워낙순식간에휘잉날아가버려서어이없이눈만깜빡여야했다. 머리칼이미친듯이흩날려시야를가로막아
정신이하나도없었다.
이게뭐야. 그야말로난장판이었다.

“이런계절에야외에서식사라니. 역시미친짓이었군.”

정체모를물건들이마구날아다니고, 뭔가우당탕깨지고굴러다니는난장판속에서도백도하는지극히평온해
보였다. 담담하게미친짓이라고뇌까리는모습이너무웃겨서난크게웃음을터뜨리고말았다.

“드디어웃네.”
백도하가미친듯이웃는날보며나직하게지껄였다. 자기도픽웃으면서. 가슴이뛰었다. 사방을뒤흔드는
바람에흩날려내가슴도온통들썩였다.
단정히빗어넘긴머리칼이바람에날려온통헝클어졌어도백도하의미모는여전했다. 그의등뒤에펼쳐진,
반짝이는도시의야경이마치크리스마스트리불빛같았다. 밤의도시도, 내게향한그의눈빛도영롱하게
반짝거린다.
지독히도매력적인남자. 치명적인독을품고있지만, 그독마저아찔하게달콤한인간.
저런남자를어떻게사랑하지않을수있을까. 저런숨막히게아름다운얼굴로, 보석같이반짝이는눈빛으로
바라보며웃어주는데, 누가저남자를사랑하지않을수있을까.
사랑. 백도하는구질구질하고짜증나게점성이강해몸에쩍쩍달라붙어성가시고, 쓸데없다고하던그감정.
아무래도내가그빌어먹을감정을저남자에게품은것같다.
사랑이란걸해본적이없지만, 이감정이, 가슴의이들썩거림이, 이설렘이, 사랑이아니면뭐란말인가.
난뭘원하는거지? 머릿속에떠오르는질문의답을이젠확실히말할수있었다.

난저남자를원한다고.
눈가가시큰거렸다. 눈물이왈칵쏟아질것같았다.

“유설우씨.”

그가감미로운목소리로내이름을불렀다.

“내아이를낳아요.”

뭐……? 눈물이쏙들어가게하는개소리였다. 갑자기무슨소리야? 정신나간개소리는계속이어졌다.

“결혼상대는내가고를수가없으니어쩔수없다해도, 아이는당신이낳는게좋겠어. 당신을닮은아이가보고


싶어졌어.”
“그러니까결혼상대는따로두겠으니아이는제가낳으라고요?”
“제법많아요. 그런케이스가. 결혼상대와는아이를낳지않고, 애인이대신아이를낳는케이스. 말했듯, 난
까다로워서내취향도아닌정략결혼상대와섹스할수없을테지. 그렇다고아이를가지기위해서발정제까지
먹어가며섹스하는건역겹고. 역시당신이내애를낳아. 그게좋겠어.”

뭐가그게좋겠어, 야. 욕이튀어나오려는걸꾹꾹눌러참고최대한침착하게말했다.
“전아이를낳을수가없는몸입니다.”
“그건해보면알테지. 아이를가질때까지내모든걸쏟아부을테니까.”

할말을잃고그를빤히바라봤다. 백도하는바람에흩날리는머리칼을귀찮다는듯이손으로쓸어넘겼다. 그의
개소리는아직끝나지않았다.

“빈우말로는당신의첫히트사이클이올지도모른다던데. 나도아직러트가오지않았어. 그리고당신도알지


않나? 러트때의로열알파는눈동자빛깔이변합니다.”

들은적이있다. 오메가들의히트사이클처럼로열알파들의러트는주기적으로찾아오지는않지만, 그들에게


러트가오면눈동자색깔이변한다는소리. 그런데백도하의눈동자색이변한건아직까지본적이없었다.

“물론재산분배나아이의호적문제는확실히처리할겁니다.”

그러며백도하는참산뜻하게도웃었다. 거래처상대에게협상을제안하듯, 자신감에찬어조로지껄이는얼굴이


완벽하게아름다웠다.
물론이협상은절대로거절할수가없다.
저남자의명령은절대적이니까. 이건일방적인통보에불과하다. 내게는그어떤선택권도없으니까.

개자식. 이가으드득갈렸다. 눈물이쏟아질것처럼시큰거리던눈가가분노로뒤틀렸다.

“걱정하지말아요. 내오메가는당신뿐이야. 유설우씨.”

또내기분이저조해진것같으니, 날달랜답시고개소리를더얹었다. 속이부글부글끓어서참을수가없었다.


잇새로욕을씹어내뱉었다.

“백도하씨. 당신참개새끼야.”

백도하가크게웃었다. 너무도즐겁다는듯이. 목소리만큼이나웃음소리도듣기좋았다. 짜증나게도.


엉망이었다. 참으로좆같았다. 날씨도, 빌어먹을바람도, 추위도, 내기분도.

< 3권에서계속>
사냥의밤(외전증보판) 2

지은이: 새우깡
펴낸이: 유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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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발행일: 2020년12월28일
정가: 2,700원
ISBN : 9791105259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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