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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니체 레포트

이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루는 책으로, 책 내용 중에서도 자기


극복에 초점이 맞춰진 듯 하다. 책에서 첫 부분에 등장하는 것은 ‘몰락’이었다. 몰락으로 시작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아름다웠다. 몰락의 이유가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자신을 극복되어
야 할 자로 여기며 군림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니체의 ‘초인’은 블레이크의
유리즌과 같은 신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고정된 신 혹은 가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플라톤과 그리스도교가 합쳐진 신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기존에는 이러
한 신이 어떤 이유로 파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니체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고정적인 가치가 그 특징 때문에 폭력적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유동성이 없는 가치는 절대적인 숭배 대상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
다. 또한 달라질 수 없기 때문에 극복 될 수도 없다. 한편 니체의 사상의 요지는 특정한 이상
을 추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보다는 약한정신을 극복하고 강한 정신이 됨으로써 삶을
보존 및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니체는 현대적인 사고의 바탕이 된 철학자라고
알고 있는데, 신으로 상징되는 절대적인 가치가 죽은 상태에서 강한 정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니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떠나 근대로 오면서 유럽인들의 신앙은 감소되고 세속화되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
한 시점은 그 끝에서였다. 절대적인 것이 없어진 상황은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오
히려 절대적인 신을 비판하며 절대적인 게 없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삶을 만들어나가고 자신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면서 삶 그 자체를 긍정했다. 니체를 통해 삶을 보존하고 증진
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피로 쓴 글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으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끝물인
간인가 깜짝 놀랐다. 끝물인간은 무엇이든지 극단적인 것을 혐오하여 편안함과 안락을 추구한
다. 이것은 ‘적당히 좀 해’라는 명령으로 요약되는데 소름이 끼쳤다. 적당히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비록 겉으로는 좋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천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지금 글을
쓰는 나 조차도 니체식으로 말해, 약하고 태만한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행복과 편안함을
떨쳐내기가 너무도 힘들다.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을 보면서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
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면모를 지닌 복잡한 존재인 인간은, 경멸스럽기도 하지만 아
름다운 순간들도 많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어느 인생이나 절정이 있다. 사랑, 환대, 환희,
숭고함의 순간들이 말이다. 하지만 키르히너의 그림 속 인물들은 과연 그 좋은 점들을 지니거
나 한때 지녔던 인간들이 맞는가 의구심을 품도록 만들었다. 그 인간들은 너무도 추해보였다.
특히 매춘부의 표정이 그러했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사랑의 모욕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 타
락함, 거짓이 보였다. 이러한 인간들이 단순히 그림에만 나오는 인물들이 아니고 현실 속 우
리에게 구역질을 일으키며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바로 끝물인간
의 표정이다. 차라투스트라처럼 삶 그 자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물론 어렵다. 기존에도
어렵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그것이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긍정적인 것으로서 니체의 초인이 우리에
게 제시되는 것이고, 고귀한 것일 것 같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성경의 말씀이
떠올랐고 가난 속에서 오직 그림만을 추구한 고흐가 생각났다. 숭고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을 투쟁해야 한다. 돈을 추구하며 편안함,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된 사람의 정
신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러나 얼마나 유혹적이고 보편적인 소망인가!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니
체와 같이 초인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끝물인간에 안주하며 극복하지 않으면, 자신을 잃게
되고 삶을 긍정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삶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초인
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인류를 사랑하는 자는 천민도덕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면서 극복의 대상으로
천민도덕이라는 것이 소개된다. 천민도덕의 종류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남을 지배
하려는 교만이고 그 다음으로는 복종이 있다. 초인은 남을 지배하려는 이도 아니고 남에게 복
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두가지 경향 모두 위험하며 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내 생각
에 천민도덕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사회 전체가 천민도덕에 심하게 물들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은 개인의 욕망
과 양심에 호소하는 자본주의가 가장 많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탐닉하며 나르시시스트가 되고 우울증에 걸린다. 그리고 다수의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에 대
한 사랑보다 남들은 지배하는 데에 집착하고 자신을 높이고자 한다. 복종은 또 얼마나 심한
가? 강력한 자본주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맹신적인 기독교가 맹위를 떨친다. 책에서도 언급되
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무섭고 역겨운 존재는 바로 위선적인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긍정
하는 좋은 가치를 설파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
들이나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남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썩어가며 자기연민에 빠지고 나
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혐오하는 이들이 그러하다.
다음으로는 실질적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니체의 개념인 ‘약한 정신’과 그에 대해
어떻게 내 스스로를 점검했는지를 이야기해볼 것이다. 자신을 극복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도움
을 주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면 그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 글에 본 내용을
넣게 되었다. 먼저 인상깊었던 그리스도와 차라투스트라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그리스도와 차라투스트라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연민을 가져
초인이 될 수 없었고 차라투스트라는 연민을 갖지 않았으나 사랑하려고 한 점이 자기당착과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책에서 등장한 두 인물의 차이에 대한 분석이다. 그동안 나는 니체에
대한 오해- 신 죽음의 시대에서 반 그리스도적인 사상가-를 하고 있었는데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히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역시 사랑을 중요시 하고 예수처럼 자기몰락을 했다
는 점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니체는 현재 천민도덕을 따르는 끝물인간을 동정하는 것이야말
로 이들이 삶을 긍정하도록 하지 못하게 막으며 실패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진단하고 도리어
이들을 경멸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할 뿐이다. 차라투스
트라는 지금 이상태의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랑했다. 현재는 비록 끝
물인간인 그들이지만 장차 스스로를 극복하며 건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초인이 될 수 있는
역량을 보았던 것이었다. 이 맥락에서 니체가 동정을 혐오한 것을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애통해하는 자’에 대한 사랑을 비판한 것은 강한 정신을 추구하는 니체의 통찰
로써, 탁월하다고 느꼈다. 특히 자기연민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라는 통찰은 시람들의 광
기를 고찰했다는 점에서 니체에게 영향을 준 도스토예프스키를 연상시켰다. 내가 이 사유가
탁월하다고 느낀 이유는 내 자신이 나는 자기연민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기만, 자아 집착
등은 모두 경험해보니 다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행복과 편안을 쫓으며 고통을 회피하니 좋아
하는 것이라도 편안한 것만을 쫓고 어려운 문제는 회피하기 일쑤다. 고통을 받으면 자기연민
으로 대처했는데 니체를 계기로 이러한 내 자신이 극복되어야 할 상태이며 경멸해 마땅한 약
한 정신을 지녔다는 것을 돌아보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쳤다. 그리고 내 자신의 상태를 마땅히
경멸하고 삶을 위해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후회없이 진정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진정 사랑하며 고귀한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같이 편안한
상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편안함을 너무 좋아하는 내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니체를 마냥 긍정적인 모델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니체에게서 너무나 많은 위험
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가장 많이 비판되는 요소인 힘과 권력의 추구가 갖는 위험성
은 치차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특히 니체의 인간 경멸이 위험하다고 생각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니체의 철학이 그의 여동생을 통해서 니체의 초인이 나치
로 변용되며 나치에 이용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볼 때, 니체의 인간경멸이 비록 사랑
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제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연민없는 경멸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
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니체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연민을 비판했다. 하지만 인
간에 대한 연민이 없는 니체의 사상은 비록 니체에게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비
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연민 없는 사상은 아주 쉽게 인간 혐오와 인종 청소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을 강조한 나머지 지적 장애인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에서 시대적 한계를 느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는 니체의 사상에 깔린 기본 전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삶을 만들어 나갈 가능성의 정신을 지닌 지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중증 지적 장애인
의 경우 이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계속해서 약한 정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고 혼
자 극복해 나갈 수도 없다. 니체의 관점에서 볼 때 어쩌면 이들은 경멸되어야 하는 상태이며
극복될 희망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히 경멸되어야 할 존재일 수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
는 권리의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 여성인권, 환경권, 동물권까지 확장되고 있는 세상에서 19세
기의 니체를 바라보기에 이러한 점들을 고찰할 수 있었다.
별에 대한 동경에 대한 니체에 사유를 다루는 부분이 아름다워서 인상깊었기에 이를 언급하
며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현대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이라한 동경을
가진 이들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깝다 책을 통해 내가 가진 동경을 지키고 다른 이
들도 동경을 갖기 되길 소망한다. 또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동경으로 이끌고 현상태를 극복하
는 데에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했다.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우리는 그렇게 되고 싶어하기 때문
이다 아름다움은 강력하다. 때로는 너무 강력한 나머지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이다. 하지
만 니체가 별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아름다움을 통해 삶을 보존 및 증진시킬 수 있다
면 좋을 것 같다. 니체도 선악덕 판단 대신 미학적인 것을 중요히 여긴만큼 아름다움이 가지
는 강력함과 그에 대해 꿈꿀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면 끝물인간에사 벗어나 삶을 긍정하고 사
랑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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