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경영 (京永) 단축마라톤대회 (1931~1963) 의 변천 과정
경영 (京永) 단축마라톤대회 (1931~1963) 의 변천 과정
경영(京永) 단축마라톤대회(1931~1963)의 변천 과정
The Evolution Process of the Gyeong-Yeong Short Course Marathon(1931~1963)
김재우 중앙대학교 교수ㆍ하정희 순천향대학교 교수ㆍ왕심위* 중앙대학교 대학원생
Kim, Jae-Woo Chung-Ang Univ.ㆍHa, Jung-Hee Soonchunhyang Univ.ㆍWang Xinyu Chung-Ang Univ.
요약
본 연구는 경영 단축마라톤대회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첫째, 대회 창설 당시 한국 마라톤의 환경은 어떠하였는지,
둘째 대회의 창설과정과 주최 및 후원의 변화는 어떠하였는지, 셋째 대회의 참가자 현황, 코스와 기록 등은 어떻게 변화하
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제강점기하 규모가 있는 마라톤대회는 일본인 단체에 의해 주최되었고, 이 대회에는 조선인
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참가하였다. 대회의 참가자는 회수를 거듭하면서 확산하는 추세를 보였고, 경성에서 지방으로 확산
하여 전국규모의 대회로 발전되었다. 제1회부터 제6회 대회까지의 경기기록은 자주 이루어진 코스의 변경으로 인해 기록
을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코스가 거의 확정된 제7회 대회부터 기록은 단축되었다. 광복 이전에는 김은배, 손기정, 남승룡
등이 그리고 광복 이후에는 서윤복, 함기용, 황영조, 이봉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examining the changes in the Gyeong-Yeong Short Course Marathon. Firstly, it investigates the
context of the Korean marathon at the time of the competition's establishment. Secondly, it delves into the process of
the competition's creation and changes in its organization and sponsorship. Thirdly, it analyzes the participant
demographics and course variations and records developments for the competi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ignificant marathon competitions were organized by Japanese groups, with both Joseons and Japanese participating
together. The number of participants in these competitions increased over time, spreading from Gyeongseong to
various regions, eventually evolving into a nationwide event. The race records from the first to the sixth competitions
are challenging to compare due to frequent changes in the course. However, the records improved from the seventh
competition when the trail became more stable. Before Korea's liberation, notable athletes such as Kim Eun-bae, Son
Ki-jung, and Nam Seung-ryong, among others, participated in the competition and achieved commendable results. After
independence, athletes like Seo Yun-bok, Ham Ki-yong, Hwang Young-jo, and Lee Bong-joo, who represented Korea,
also participated and performed well in the competition.
Key words: Short Course Marathon, Goryeo Athletic Association, Joseon Sports Association, Dong-A Ilbo
* wangxy1993@cau.ac.kr
Copyrightⓒ2023 KAHPERD
18 한국체육학회지 제62권 제6호
2. 대회 주최와 후원의 변화
표 1. 경영단축마라톤의 주최 및 후원의 변화
마라톤 대회 우승자 김성학 등이 참가했다. 특히, 개 수 있도록 참가 자격도 완화하였다. 그 결과, 제10회
성에서 참가하는 19세의 박승준, 장주형, 백연패 등은 대회에는 전남 순천을 비롯하여 평남 순안 등 49명의
마라톤으로 경성에 도착하는 진귀한 모습을 연출하기 선수가 참가 신청을 하였다(동아일보, 1939. 3. 21). 그
도 했다(동아일보, 1934. 3. 20b). 특히, 제4회 대회에 러나 제10회 대회에 출전한 실제 선수는 총 23명이었
서는 선수들의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참가선수에게 다. 그 이유는 지방 선수들이 전부 기권하였으나 경
특제 참가 메달을 제작하여 증정하기도 했다. <그림 성의 유명 선수들이 경인 역전경주대회를 위하여 이
2>는 1934년 제4회 대회 때 증정한 참가 메달이다. 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선일보, 1939.
1935년 제5회 대회에는 4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3. 22). 따라서 대회의 침체 상황은 제10회 대회까지
예년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동아일보, 1935. 3. 18).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36년 제6회 대회에는 예년과 비교해 10여 제11회 대회는 동아일보사 창간 20주년 기념행사로
명 적은 29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예년에 비해 참가 서 ‘마라손에 新人은 나오라!’, ‘마라손王을 길러내는
선수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京永斷郊大會’라는 보도들을 통해 ‘마라톤 왕’이 되고
대회 일주일 전인 1936년 3월 29일 서울육상연맹이 싶은 유명한 선수들의 참가를 호소하였다. 특히, 동아
주최하는 제12회 ‘A마라손’대회10)(동아일보, 1936. 3. 일보는 2주간 이 대회와 관련된 신문보도를 7편 게재
29)에 다수의 선수가 참가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하였는데, 이는 1939년 제10회의 2주간 4편의 보도
수 있다. 빈도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다. 이러한 동아일보의 노
고려육상경기협회와 조선체육회가 공동 주최한 제7 력으로 제11회 대회의 신청자는 42명에 달하였다(동
회 대회에는 3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지난해와 비 아일보, 1940. 3. 21).
슷한 면모를 보였다. 이에 1939년 제10회 대회에서 광복 이후, 대회가 사라진 지 10여 년 만인 1954년
주최 측은 선수들의 부진한 참가를 만회하고자 등록 부활하였다. 당시 국제무대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비 50전을 취소하는 한편, 아마추어 규칙에 위반되지 한국 마라토너의 영향으로 마라톤 경기의 인기는 매
않는 남자면 누구라도 참가(동아일보, 1939. 2. 19a)할 우 높았다. 따라서 부활된 제25회 대회의 신청자는
광복 이전의 대회보다 40여 명이 늘어나 73명에 달하
였다. 특히, 이번 대회부터 군인 선수들이 국군체육회
를 통하여 신청하여 대회 참가하기 시작하였다(동아
일보, 1957. 4. 19).
제34회 대회 때까지 10년 동안 대회에 참가하는 선
수의 수는 완만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또한, 이 10회
대회의 참가 선수를 분류하면, 전국각지의 중⋅고등학
교, 대학교를 비롯하여 군인과 일반 선수 등으로 나
눌 수 있다. 아쉽게도 유명 선수들은 해외 대회11) 출
전하는 이유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였다(동아일보,
1959. 4. 19). 특히, 제32회 대회의 경우, 이상철12) 선
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무명의 신진 선수들이었다(동
그림 2. 제4회 대회 때 특제 참가메달
출처: 동아일보, 1934. 3. 20.
11) 1950년대의 유명 마라톤 선수들은 3, 4월에 보스턴마라톤대회
10) 1935년 2월부터 서울육상경기연맹에서는 장거리 선수들의 실 를 비롯한 세계급 마라톤대회, 그리고 중국과 일본 등 인근
력증진을 목적으로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A마라손’대회가 개 나라들에 개최되는 육상경기와 단일 마라톤대회를 자주 참가
최하기로 되었다. 코스는 광화문 4거리를 출발점으로 한강제 하였다.
1인도교 종점으로 왕복 8리이다(조선일보, 1935. 2. 21). 12) 이상철 선수는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를 참가하였다.
경영(京永) 단축마라톤대회(1931~1963)의 변천 과정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