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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 그리고 선험적 종합 판단에 대한 고찰

형이상학 서설을 바탕으로

201500208 철학과 권상호

차례

1. 서론
2.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에 대한 비교
1) 분석 판단에 대하여
2) 종합 판단에 대하여
3. 선험적 종합 판단에 대하여
4. 결론

1. 서론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우선, 형이상학은 하나의 학문이다. 학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인식들과는 구별되는 그 만의, 특유의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학문 간의 교착,
간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의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형이상적인 인식에 대해
다룬다. 형이상(形而上)적인 인식은 형이하(形而下)적인, 물리적인 인식의 차원을 초월한 인식을
의미한다. 즉, 경험적 인식이 아닌, 선험적 인식만을 다루는 학문이 형이상학인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어떠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형이상학을 연구하던 칸트는 형이상학을 전개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판단’에 대해 분석한다.
그렇게 칸트는 ‘판단’을 내용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하기에 이른다. 하나는 분석 판단이며,
다른 하나는 종합 판단이다. 칸트는 이러한 판단의 분석 및 이해를 통하여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이 성립 가능한 지 모색하였다. 선험적 인식이라는 것이 가능한 지에 대해 고찰을 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칸트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2.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에 대한 비교

‘판단’이라는 것은 내용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설명적이어서 인식의 내용에


덧붙이는 점이 없는 ‘분석 판단’과 확장적이어서 주어진 인식을 확대하는 ‘종합 판단’이
바로 그것이다. 분석 판단은 술어가 주어에 개념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명제를 말한다.1 술어
B 가 주어 A 의 개념에 이미 속해 있는 것을 서술하는 형식을 말한다. 한편 종합 판단은
술어가 주어에 개념적으로 포함되어있지 않은 명제를 말한다. 술어 B 가 주어 A 의 개념과
연관성은 있으나, 본질적으로 주어 A 의 개념 밖에 놓인 것이다. 예시와 함께 더 깊이 있게
알아보도록 하자.

1
칸트 저, 백종현 역, 『형이상학 서설』, 아카넷, 2012. P127
1) 분석 판단

분석 판단이란, 앞서 언급했듯 설명적인 것으로서, 판단이 인식의 내용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속해 있는 경우라고도 표현 될 수 있다.
예컨대, ‘모든 물체는 연장적이다.’라는 판단은 분석적이다. 물체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 아니라,
단지 분해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연장적’이라는 말은 주어인 ‘물체’의 성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물체’의 개념 안에 내재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판단들은 전적으로 모순율2에
의거하며, 본질적으로 선험적 인식들이다. 이는 인식의 대상이 되는 개념들이 경험적이든
선험적이든 상관 없이 그러하다.3 판단하기 이전에 개념에 대한 관념이 이미 생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긍정적 분석판단의 술어는 모순 없이는 주어 개념에 대해 부정될 수 없다.
반대로 부정적 분석판단의 술어는 반드시 주어에 대하여 부정된다. 긍정적 분석판단의 예시는
앞서 언급한 ‘모든 물체는 연장적이다.’라고 들 수 있으며, 부정적 분석판단의 예시는 ‘어떤
물체도 비 연장적이지 않다.’라고 들 수 있다. ‘어떤 물체도 연장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경우는
분석 판단의 술어가 주어를 부정하므로 성립할 수 없다. 위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모든
분석적 명제들이 그 인식 대상의 경험 성, 선험성과 상관없이 선험적 판단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금은 황색 금속이다.’와 같은 판단은 인식의 질료가 경험적인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있어서는 ‘금’이라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개념 이외의 것은 필요가 없으므로
선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체는 연장적이다.’, ‘금은 황색 금속이다.’ 외의 다른 분석
판단의 예시로는 ‘모든 물은 액체다.’,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 정도가 있겠다.

2) 종합 판단

종합 판단은 인식의 내용을 확장시키는 확장적 판단이다. 이는 술어가 주어의 속성과


연관성은 있으나 본질적으로 주어의 외부에 있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물체는 무겁다.’라는 명제는 술어가 ‘물체’라는 주어에 내재적으로 있지 않은 어떠한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확장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종합 판단은 오직 선천적인 인식만을 낳았던
분석 판단과 달리, 선험적 종합 판단과 후험적 종합 판단으로 나뉜다. 술어가 주어에
제한되어있지 않으므로 선험적 일수도 있고, 후험적 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 두 종합 판단은
모두 모순율에 맞게 도출된다. 물론 모든 종합 판단이 모순율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합 판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모순율은 지켜져야 한다. 이러한 종합 판단의
예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모든 경험 판단은 종합 판단에 속한다. 이는 앞서 설명된 분석
판단에는 경험 판단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경험 판단은 우리에게 항상 인식의
확대를 야기하며, 따라서 인식이 확대되지 않고, 이미 알던 개념의 분해를 위주로 하는 분석
판단은 경험 판단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경험 판단은 경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판단 또한 종합 판단에 속한다. 예컨대, ‘7+5=12’라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사람들은 7+5 가 12 가 되는 것은 분석적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7+5=12’라는
명제에서 ‘7+5’는 7 과 5 의 하나의 수로 통일함을 의미할 뿐, 12 라는 새로운 개념과 맞닿을 수

2
칸트는 우선 『새로운 해명』에서 판단의 논리형식과 추론의 원리와 같은 좁은 의미의 논리학적 문제에
대한 고찰을 통해 모순율만을 제 1 원리에 두는 것의 불충분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오히려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긍정적 및 부정적인 두
원리로부터 이루어지는 '동일률(principium identitatis)'을 채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판명성』
에서는 "긍정판단이 참인 것은 술어가 주어와 동일한 경우이다", "부정판단이 참인 것은 술어가 주어에
모순되는 경우이다"라고 한 다음, 긍정판단의 최고원리로서 "어떠한 주어에도 그것과 동일한 술어가
속한다"라는 '동일률'을, 또한 부정판단의 최고원리로서 "어떠한 주어에도 그것과 모순되는 술어는 속하지
않는다"라는 '모순율'을 각각 제출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순율 [矛盾律, principium contradictionis, Satz des Widerspruchs] (칸트사전,
2009. 10. 1., 도서출판 b)
3
칸트 저, 백종현 역, 『형이상학 서설』, 아카넷, 2012. P129.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7+5=12’라는 명제는 기존에 있던 7 과 5 라는 선험적 인식4에 종합
판단을 하여 12 라는 새로운 인식을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술의 명제들은
항상 종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학적 판단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
수학적 판단과 특성이 유사한 순수 자연과학적 판단, 형이상학적 일반에 대한 판단 모두 선험적
종합 판단의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종합 판단의 예시로는, 앞서 언급된 ‘어떤 물체는
무겁다.’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은 좁다.’, ‘그는 키가 크다.’,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선이다.’ 등이 있겠다.
4.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칸트의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에 대해 알아보았다. 분석 판단은


선험적 인식을 통해 개념의 분해 및 재확인을 시도한다. 종합 판단은 경험과 선험적 인식
모두를 통해 인식의 확대를 유도한다. 이러한 종합 판단은 경험적 종합 판단과 선험적 종합
판단 두 가지로 나뉜다. 경험적 술어를 통해 서술되는 명제가 타당한 경우, 이를 경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한다. 한편, 선험적 술어를 통해 서술되는 명제가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녀 타당할
경우, 이를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한다. 분석 판단이 경험성과 선험 성을 기준으로 나뉘지
않는 이유는 분석 판단이 선험 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가지 종류의 판단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 해야 할 부분은 바로 선험적 종합
판단의 영역이다. 형이상학의 인식은 바로 선험적 종합 판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형이상학은 형이상적인 인식 즉, 선험적 인식에 대한 학문이다.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식이 확대되어야 하므로 분석 판단으로는 형이상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 경험적 종합 판단은 경험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므로, 선험적 인식만을 다루어야 하는
형이상학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선험적 인식만을 다루는 선험적 종합 판단만이 형이상학의
발전적 토대가 될 수 있다. 회의론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어가던 형이상학은,
칸트가 선험적 종합 판단의 실재를 증명 함으로서 그 토대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4
본래의 수학적 명제들은 경험에서는 취할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항상 선험적
판단들로서 경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좋다. 나는 나의 명제를 순수 수학에만 국한하겠다. 순수 수학은 그 개념 자체가 이미, 그것은
경험적이지 않은, 순전히 순수한 선험적 인식만을 함유한다는 것을 당연히 필요로 하는 바이다.
칸트 저, 백종현 역, 『형이상학 서설』, 아카넷, 2012.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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