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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

26 ver

완득이

원작 김려령
각본 김동우

-1-
감독 이 한
(주)유비유필름
어나더라이프컴퍼니(주)
#1. 캬바레 앞 (오후)

한산한 오후. 캬바레 앞. 폐업 안내문을 쳐다보고 있는 완득. 계단을 올라간다.

#2. 캬바레 안(낮)

정돈되지 않은 캬바레 내부. 캬바레 스테이지 한 가운데에 맥주박스가 나란히 쌓여


있다. 박스를 네트 삼아 족구를 하고 있는 기도. 어둠에 묻힌 반대편으로 공이 넘어
가면 상대편은 보이지 않지만 공은 잘도 넘어 온다.

완득 어떻게 된 거에요?

기도1이 완득을 쳐다보더니 공을 잡는다.

기도1 장사가 안 되니 별 수 있냐?

어둠 속에서 상자 위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오는 소인증의 정현.


완득이 정현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정현 정사장 도망갔다. 건물 주인이 카바레 이거, 클럽으로 바꾼단다.


(혼자말로) 난 이제 뭘 먹고 사나? (완득에게) 근데, 너 학교는?
완득 아버지는요?
정현 도씨? 민구 데리고 시장 갔잖아.
완득 시장요?
기도1 몰랐어? 장사라도 해보겠다던데.

기도1을 쳐다보는 완득의 얼굴이 잠시 보인다.

-2-
#3. 학교(낮)

동주가 교실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말하고 있다.

동주(소리) 공부하지 말라니까? 어차피 세상은 특별한 놈 두어 명이 끌고 가는


거야. 고 두어 명 빼고 나머지는 그저 인구수 채우는 기능밖에 없
어. 니들은 벌써 그 기능 다했고. 알아?

동주가 학생들에게 얘기를 하며 몸을 돌리는데 빈자리가 보인다.

동주 빈자리 뭐야? 완득이 자리 아냐?

교실 뒤쪽에 두 명의 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보인다.

동주 야! 니들 고개 들어봐. 어서!

주섬주섬 고개를 드는 학생들. 얻어터졌는지 얼굴이 엉망이다.

동주 완득이냐?

대답이 없는 학생들.

동주 이 새끼! 어디 갔어?

완득의 빈자리 옆에 앉아있던 혁주가 생글거리며 대답한다.

혁주 아까 수업 째고 발랐는데요.
동주 뭘 째고 뭘 발라?

대답이 없는 혁주. 그 옆으로 가방이 보인다.

동주 가방은 뭐야?

-3-
혁주 가방 버리는 게 특긴데요.
동주 도완득, 이 새끼.

#4. 캬바레 앞 거리(낮)

캬바레 앞을 걸어 나오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완득.

완득 어, 삼촌. 어디야? (얼굴이 변하며) 삼촌. 목소리가 왜 그래?

#5. 길거리. 재래시장(교차, 낮)

(골목길)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달려가는 완득.

(재래시장)

거친 인상의 행상1이 가방을 잡아당기고 있고 가방에 매달린 완득부가 질질 끌려간


다. 완득부는 작은 키에 곱사등이다.

행상1 여기 우리 구역이라니까!
완득부 (끌려가며) 아이고,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
행상1 놓으라고! 쬐끔한 새끼가 끈질기네!

그 옆에는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남민구가 흩어진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민구 채칼, 채칼, 채칼. 깔창, 깔.

순간, 행상2가 민구를 걷어찬다. 벌렁 넘어지는 민구. 정리하던 물건들도 다시 흩어


진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물건들을 챙긴다.

민구 아, 아, 아. 채칼, 채칼.
행상2 뭐야, 이거. 병신들이 세트로 다니는구만.

-4-
(길거리)
넓은 도로를 달리는 완득. 저 멀리 시장의 입구가 보인다.

(재래시장)
힘겹게 일어난 완득부가 행상들에게 사정한다.

완득부 알겠습니다. 다른 곳으로 갈테니까 물건은 좀 주세요.


행상1 너희들 때문에 공쳤으니까 이거라도 가져가겠다고. 이 새끼야! 놔!
완득부 제발 부탁드립니다.
행상1 놓으라고! 이 곱추 새끼야!

행상1이 다시 가방을 당기지만 완득부가 완강하게 버티자, 완득부의 뺨을 후려친다.

행상1 이 난쟁이 똥자루만한 새끼가!


민구 (자기 뺨을 만지며) 아파, 아파.
행상1 까불지 말고 내놔! 이 새끼야!

완득부가 여전히 버티자, 행상1이 완득부를 걷어찬다. 키작은 완득부가 뒤로 벌렁


넘어진다. 그 주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남민구의 눈에 재래시장을 가로지르며 달
려오는 완득의 모습이 보인다.

민구 완득아,

뒤로 시선을 돌리는 행상1, 2. 어느새 그 들의 앞까지 다가온 완득.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팔과 다리. 퍼버벅! 쓰러지는 행상1, 2.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몇 몇의
사람들이 멍하게 쳐다본다. 잠시 후, 넘어져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완득.

완득 (손을 내밀며) 괜찮으세요?

손을 내밀고 있는 완득의 눈만을 노려보며 일어서는 완득부. 뭔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재래시장 입구에 요란스레 정차되는 승합차. 불량스러워 보이는 3명의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5-
남자1 어, 저 있네. 꼬맹이 새끼.
남자2 야! 애기야! 일루 와! 일루 와! 애기야~~

킥킥거리는 세사람. 완득부가 완득을 올려다본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완득.


완득부가 완득의 손을 잡으며 돌린다.

완득부 빨리 가자.
완득 물건 챙겨가야죠.

땅바닥에 어지럽게 쏟아져있는 물건들. 완득이 바닥에 놓여있는 양파를 집어든다.

완득 어서 챙기세요.

서둘러 가방에 물건을 집어넣는 완득부와 남민구.


완득이 양파를 손바닥 위에서 가볍게 튕긴다.

#6. 야구장 - flash back(회상,낮)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야구공. 중등부 야구 대회.


완득이 마운드에 서서 포수의 사인을 받고 있다.
힘차게 뿌려지는 야구공. 타자의 헛스윙.

(완득) 중2때 135km. 사람들 난리가 났다. 그런데...

컷되면, 백스크린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5회부터 9회까지의 점수가 빠르게 보여 지


며 시간경과를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백스크린의 정보는 9회말 2사, 주자
1, 2루에 0:0의 상황이다. 덕아웃에서 완득만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시선들. 그들을
쳐다보는 완득의 흔들리는 눈빛. 귀 옆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완득이 공을 던지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자, 포수가 마스크를 벗고 쳐다본다. 경기의 속행을 지시하는 심
판. 그런 완득을 보며 인상을 쓰는 감독.

감독 자, 자! 하나만 잡자!

-6-
불안한 얼굴로 다시 포수의 사인을 받는 완득. 이어지는 투구. 타자의 엉덩이를 맞
히는 데드볼. 완득이 백스크린을 쳐다보면 9회말 2사 만루가 표시되어있다. 다시 다
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이어지는 연속투구. 타자의 머리위로 날아가는 공. 흠짓
놀라는 타자. 심판을 마스크를 맞히는 공. 마스크를 벗어서 완득을 노려보는 심판.
원바운드 되어서 포수의 급소를 때리는 공. 데굴데굴 구르는 포수. 이어지는 마지막
네 번째 공에는 심판과 타자가 흩어질 정도다. 모자를 벗어서 던지는 감독. 끝내기
포볼. 환호하는 상대팀 선수들. 인상을 쓰는 완득. 다시 공을 위로 튕긴다.

#7. 재래시장(낮)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양파.

(완득) 제구가 개판이었다. 그래서 때려 쳤다.

야구공을 잡듯 양파를 움켜지는 완득의 손가락. 와인드업과 함께

민구 (물건을 챙기다 완득을 보며) 완득, 완득.


(공 던지는 시늉을 하며) 야구, 야구.

완득의 손을 떠나 슝~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양파. 퍽. 다가오던 3명의 남자중 한


명이 이마 부위를 잡고 뒹군다. 당황하는 남자들.

남자2 저 새끼, 저거 뭐야. 씨발, 양파! 윽!

남자2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이어 날아온 양파에 맞고 바닥을 뒹군다.

남자2 아, (눈가를 문지른 후) 아! 따가워! 씨팔!

남자3, 4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이 새끼, 저 새끼하며 소리만 지르고 있다.


그 사이 물건을 다 챙겨서 일어서는 완득부와 남민구.

남자3 너 뭐하는 놈이야. 뭐야. 이 새끼야.

-7-
다시 힘차게 양파를 던지는 완득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떠오르는 타이틀.

완득이
#8. 동네 골목길(밤)

동네 골목길을 오르는 완득, 완득부, 민구. 화난 듯 앞장서서 걸어가는 완득부와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는 민구가 보이고 한 걸음 떨어진 채 고개를 내리고 걸어
가는 완득이 보인다. 동네 아이들이 그들의 옆을 뛰어서 내려간다.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완득부의 키. 골목길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이 한 동안 보여진다.

#9. 완득의 집(밤)

옥상을 올라오는 완득, 완득부, 민구. 완득부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갑자기 완
득의 뺨을 후려친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는 완득. 카메라가 옆으로 돌면, 건너
편 옥상에서 동주가 담배를 피며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완득부 내가 주먹 쓰지 말랬지! 그리고 학교는 어떻게 하고 온거야!


동주 잘 하십니다. 완득이 아버님. 저놈 내일은 저한테 죽습니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동주. 고개를 숙인 완득의 얼굴이 잠시 보인다.

#10. 교실(낮)

앞 씬에서 얼굴에 멍이 들어있던 서 너 명의 학생들이 교실 한 쪽에 무릎 꿇은 채


앉아있다. 연신 엉덩이를 주물러대는 모습이 꽤 맞은 듯하다. 그 옆으로 완득이 엎
드려 있고 동주가 몽둥이로 완득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 대사와 매질의 리듬이
동일하다.

-8-
동주 야자는, 그렇다, 치고, 수업을, 땡땡이, 쳐? 엉덩이 스무 댄데,
어제 아버지한테 맞았으니까 다섯 대 빼준다. 그럼 몇 대 남았어?
혁주 열 세 대 때렸구요. 두 대 남았어요.

동주가 혁주를 쳐다보자, 실룩거리며 입을 다문다.

동주 (학생들에게) 사진 찍어서 방송국에 보내지.


아님 홈페이지에 올리던가. 그럼, 학부모가 찾아와서 난리치려나?
아니지, 경찰이 먼저 올 수도 있겠네.
요새 신고정신 투철한 놈들 많던데 하고 싶은 놈들은 신고 해.

학생들은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이어지는 동주의 매질.

동주 들어가!

학생들이 일어나서 자리로 돌아간다. 동주는 책을 정리한다.

동주 무슨 놈의 학교가 아무나 야자야. 될 놈들만 따로 시키든가. 종례


필요 없으니까 시간 되면 알아서들 가고. (나가려다가 돌아서며) 얌
마! 도완득. 앞 반에 어떤 놈이 쪽팔린다고 수급품 안 가져간 모양
이야. 니가 가져가. 왜? 너도 쪽팔려? 새끼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거야. 잔말 말고 가져가.

교실을 휙 나가는 동주.

#11. 교회(밤)

작고 허름한 교회 안. 텅 빈 예배당 안에 홀로 무릎 꿇고 앉아있는 완득.

완득 여기 똥주가 다니는 교회맞죠?


똥주가 헌금 얼마나 냈나요. 제가 나중에 돈 벌면요.
똥주보다 만원 더 내겠습니다. 그러니까 똥주 좀 죽여주세요.

-9-
교통사고도 좋구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 안으로 꼭 부탁드립니다.
소리 자매님 오셨네요.

완득이 뒤를 돌아보면 어눌한 말씨를 쓰는 동남아인 핫산이 서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완득.

완득 똥주 꼭 좀 죽여주세요. 똥주! 아멘.

햇반 상자를 들고 일어서는 완득.

#12. 완득의 집(밤)

방 안 시디플레이어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낮게 흐르고 완득부는 장터용의상을 걸친


채 민구가 입고 있는 반짝이 의상의 모양새를 다듬고 있다. 민구는 조용조용 움직
이며 스텝을 밟는다. 좁은 방안은 온갖 물건들로 가득이다. 방구석에 나란히 올려
진 이사용 파란 상자. 벽에 나란히 걸려있는 반짝이 의상들. 장롱 위로 걸려있는 난
전 장사용 문구들. 방바닥에 놓여있는 견본용 채칼, 깔창. 잠시 후, 완득이 문을 연
다.

민구 완득아,
완득 어. 삼촌. (상자를 부엌에 놓으며) 오셨어요.
완득부 어. 그래.
완득 뭐 하시는 거에요?
완득부 이제 카바레도 나 같은 바람잡이는 써주지 않아.
그렇다고 집에 앉아 놀 수도 없고, 먹고 살아야지.
민구하고 시골장터를 돌아다녀 볼 생각이다.
민구 오일장, 오일장
완득부 (문뜩 완득에게) 혼자 있을 수 있지?

잠시 마주치는 완득과 완득부의 시선.

민구 아줌마들, 집나간 남편 돌아와요. 마사지 채칼.

-10-
아저씨들, 고기반찬 올라와요. 변강쇠 깔창.

완득부는 가방에서 물건들을 챙긴다. 민구가 채칼로 썬 오이를 완득의 이마에 붙이


는가 싶더니 자신의 입속으로 가져간다. 좋아서 깔깔 웃는 민구. 이내 반짝이는 무
대의상을 걸친다. 그 위로 반짝이는 카바레 조명이 돌아간다.

#13. 캬바레 - flash back(낮)

캬바레에 몇 몇의 손님들이 앉아있고 무대에는 완득부와 무희가 지루박을 추고 있


다. 곱사등이 완득부의 키는 상대 여자와 머리 하나가 차이 날 정도로 작다. 진지한
표정의 완득부지만 캬바레 손님들은 그를 가리키며 웃어 댄다. 한 쪽에 서있는 민
구. 한 손에는 꽃바구니, 한 손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다. 황홀한 표정으로 완득
부를 쳐다본다. 다시 조명이 바뀌며 스페셜 조명 아래에 혼자 서는 완득부. 탭댄스
를 춘다. 멋진 실력을 보이자, 놀라며 박수를 치는 손님들.

cut to
카바레 앞, 거리에서 춤을 추며 바람잡이를 하는 완득부.
그 옆에서 완득부를 지켜보는 민구.

(완득) 오갈 때 없던 민구 삼촌은 어느 날, 나에게 삼촌이 되었고


아버지에게 춤을 배웠다.

cut to
완득부에게 춤을 배우는 민구.
완득부의 지적에 난처해하면서도 헤헤거리는 남민구.

cut to
뛰어난 춤 실력을 보이는 민구. 흐뭇해하는 완득부. 헤헤거리는 남민구.

cut to
멋지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민구. 중년의 여성이 다가온다. 중년여성을 리드하며 멋
지게 춤을 추는 민구. 주변의 사람들이 부러운 듯 바라본다. 노래가 끝나자 동작을
멈추는 민구. 황홀한 표정으로 민구를 바라보는 중년 여성.

-11-
중년여성 최고예요. 다음에도 한 번 잡아주세요.
민구 네, 네, 최고에요...

황당한 얼굴로 민구를 바라보는 중년 여성.

#14. 완득의 집(밤)

(완득) 민구 삼촌은 키 작은 아버지를 유일하게 어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다.

완득부가 조그마한 턱시도와 중절모를 챙긴다. 중절모를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민구


에게 건넨다.

완득부 이거 너 가져라.

민구가 환한 얼굴로 중절모를 받아들더니 거울 앞에서 써본다. 스텝을 밟아보는 민


구.

민구 이거, 이거,
완득 멋있다구요?
민구 헤헤헤.

이때 들려오는 소리.

소리 얌마! 도완득. 완득아 새끼야!


완득부 누구냐?
완득 똥주요.
완득부 쓰읍! 선생님한테.

문을 나서는 완득.

#15. 옥상(밤)

-12-
완득이 옥상으로 나가면 옆 건물의 옥상에 동주가 서있다.

동주 새끼가 왜 이제 나와. 햇반 하나만 던져!

완득이 문 앞에서 몸을 움직이며 뭔가 중얼거리는데 얼핏 복화술로 보인다.

완득 (상자에서 햇반을 꺼내며) 자기 먹으려고 수급 대상자인 제자한테


(건너편 옥상 앞에 서며) 배달시키는 인간.
동주 (잘 안 들리는 듯) 뭐?

건너편으로 던져지는 햇반.

동주 왜 백미야? 흑미 없어?
완득 오늘은 백미밖에 없었어요. 그 전 건 어제 다 먹었구요.
동주 아껴 좀 먹어, 새끼야!

완득이 뒤로 모습을 보이는 완득부. 공연용 반짝이 장터의상을 입고 있다


.
완득부 선생님. 안녕하세요!
동주 어이쿠, 완득이 아버님. 집에 계시네요!
완득부 그렇게 됐습니다!
동주 의상이 뭡니까? 멋집니다.
완득부 하하.
동주 소주 한잔 하셔야죠!

이때, 앞 집 아래층에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의 고성이 들려온다.

insert - 앞집의 창문이 거칠게 열린다.


앞집아저씨 : 야! 이 씨불놈들아!

소리 어떤 씨불놈이 밤만 되면 완득인지 만득인지를 찾고 지랄이야!


니들은 전화도 없냐!

-13-
동주 당신은 오 미터 거리에서 전화 하냐! 이 양반아!

재빨리 자신의 옥탑방으로 들어가는 동주.

#16. 완득 집(밤)

모자를 이리저리 써보던 민구가 시디를 튼다. 송창식의 ‘밀양머슴아리랑’이 작은 소


리로 흘러나온다. 천천히 디스코를 추는 민구. 완득부와 완득이 방으로 들어오다가
민구를 보며 씩 웃는다. 볼륨을 높이는 민구. 놀라울 정도의 디스코 실력을 보여주
는 민구. 잠시 후, 방문을 열며 들어오는 동주. 그의 손에 들려있는 소주와 오징어.

동주 아싸! 아리랑 쓰리랑랑랑!


완득부 선생님. 오셨습니까.
동주 아버님. 이 시간에, 카바레는 어떡하고요? 완득아, 컵 가져와.
완득부 문 닫았어요.
동주 네? 그래요?

완득이 익숙하게 상과 잔을 준비하자 동주가 술을 따른다.

동주 아니, 왜 갑자기.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완득부 시골장을 다녀볼까 합니다. (민구를 가리키며) 저 녀석이랑요.

한 쪽에 선채로 경계의 눈빛과 어색한 웃음을 번갈아 보이는 민구.

완득부 너 와서 인사드려라. 완득이 선생님이시다.

민구가 음악소리를 낮추곤 꾸벅 인사한다.

동주 우리 몇 번 만났는데, 이름이?
민구 난밍구, 난밍구,
동주 난닝구? 이야. 이름이 시원하네.
완득 남민구요. 삼촌이에요.
민구 난밍구, 난밍구,

-14-
동주 거. 가족 구성이 개성만점입니다.
(완득부에게 술을 따르며) 농담입니다. 아버님.

동주가 방 안에 쌓인 짐들을 둘러본다.

동주 아휴, 짐이 많네요.

민구는 한 쪽에서 서서히 몸을 흔든다.

완득부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까 이 일이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동주 장터 돌아다니기가 만만치 않으실텐데요.
완득부 다 그렇죠, 뭐. 배운 게 춤이라 저 놈이 바람 잡고 제가 팔죠.

민구가 멋지게 디스코를 춘다.

동주 오호, 멤버가 괜찮네요. 완득아, 소리 작다. 좀 올려라.


(술잔을 들며) 자, 자.

음악소리가 집을 쩌렁쩌렁 울리고 동주와 완득부는 연신 술잔을 비운다.


이때, 들려오는 소리.

소리 어떤 씨불놈이 야밤에 아리랑 타령이야! 씨불놈들아!


동주 완득이 아버님이 오늘 퇴사해서! 한잔 하는 거잖아! 이 양반아!
소리 완득인지 만득인지 니는 잠도 없냐! 씨불놈아!
동주 내일 일요일이잖아! 이 양반아! 좀 천천히 자도 돼! ...
정든 님을 만났는데 삐쭉 뻬쭉 삐쭉 뻬쭉 말한마디 못해....
동주, 완득부 바보처럼 미소 지며 히쭉 해쭉 시간만 자꾸 가네
일동 아리랑 아리랑. 쓰리랑 쓰리랑. 아리랑 쓰리 랑랑랑
아리쓰리 아라리요 요 요 요

동주, 일어나 민구와 춤까지 추며 노래 부른다.


사람들을 쳐다보던 완득이 문을 열고 나간다.

-15-
#17. 완득집 옥상(밤)

문을 열고 나오는 완득. 고지대에 위치한 완득의 동네 전경 위로 '밀양머슴아리랑'


이 울려 퍼지고 그 위로 앞 집 아저씨의 고성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 좀 해요. 해요!!!


소리 (동시에 메아리처럼) 야! 이! 씨불놈들아, 아, 아, 아~~~~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완득. 이 모습이 메아리의 울림에 맞춰 팍, 팍, 팍


멀어진다.

#18. 완득의 집 앞(낮)

완득의 집 앞에 놓여있는 15년은 족히 된 듯한 자주색 티코. 티코 내부뿐만 아니라,


차 위에도 끈으로 묶어놓은 짐이 한 가득이다. 그 주위에 서있는 완득, 완득부, 남
민구.

민구 좋아요, 좋아요.
완득 그렇게 좋아요?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민구. 완득부는 자동차 바퀴에다 소주를 붇는다.

완득부 취하지 말고 천천히 달리자.

이때, 문을 열고 다가오는 동주. 그의 옆구리에 들려있는 성경책.

동주 와, 이 똥차 뭡니까?
완득부 시골장 다니려면 필요하잖아요.
동주 지금 가시는 거에요?
완득부 네.
동주 근데 갑니까? 이거? 툭 치면 쓰러지겠는데?
완득부 연식에 비해서 주행거리는 얼마 안 됩니다.

-16-
동주가 창문으로 머리를 쑥 넣더니 이내 뺀다.

동주 이야. 28만 킬로. 지구 한 바퀴가 4만 킬로니까 딱 일곱 바퀴 돌았


네.
민구 지구, (손가락 다섯 개를 펴며) 일곱, 일곱, 헤헤.
완득부 그래도 무사고라네요. 조심해서 타야죠. 뭐.

완득부가 운전석에 타자, 보조석으로 냉큼 올라타는 민구.

동주 (성경책으로 티코의 지붕을 탁탁 치며) 이 놈 곧 갑니다.


살살 달리세요. 완득이 아버님 추진력 하나 대단하십니다.
완득부 그럼, 완득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동주 그러시죠.
완득 언제 오세요?
완득부 열흘에 한 번은 올 생각이다. 전화할게.
(완득에게) 너, 주먹 쓰지 말고.
완득 다녀오세요.
민구 (조수석 창문으로 상체를 내밀며) 완득, 주먹 쓰지 마,
쓰지마.

완득이 민구를 보며 손을 흔들자, 헤헤거리며 손을 흔드는 민구. 완득부가 민구를


끌어내리자, 차 안으로 쏙 들어가는 민구. 출발하는 티코. 티코가 골목을 내려가자,
어색하게 서 있는 동주와 완득.

동주 그, 햇반.
완득 햇반 달라고요?
동주 잘 챙겨먹으라고. 새끼야.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는 동주. 그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완득.

완득 기도발이 안 먹히는 이유가 있었네. 교회를 생각보다 착실히 다니는


구나.

-17-
동주의 손에 들려있는 성경책이 보인다.

#19. 완득의 집(낮)

정돈 되지 않은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 완득.


방을 둘러보는 완득.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물건들이 빠지자 텅 비어보이는 방
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만 원권 몇 장을 손가락으로 훑어보더니 바닥에 드러누
워 천정을 올려다본다.

완득 휴, 하늘 아래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똥주라니.

#20. 교실(밤)

동주가 A4지 한 장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다.

동주 똥주가.... 그래, 좋겠다. 니들 담임 이름 이렇게 불러서.


‘똥주가 수업 시간에 만날 딴소리나 하고 야자도 잘 챙기지 않는다.

그가 선생인지 의심스럽다’

서로 눈치만 보는 아이들.

동주 니들 잘나가는 학원에서, 초등학교 때 중학교 마스터하고, 중학교


때 고등학교 마스터하고 오잖아. 근데 나한테 뭘 가르쳐달라는 거
야? 대학교 꺼? 아무튼 니들이 원하는 데로 야자 튀거나, 자는 놈들
은 죽는다. 그리고 얌마! 도완득!
완득 (혼자말로) 얌마, 도완득. 얌마, 도완득.

insert
- ‘얌마! 도완득!’하며 부르는 다양한 동작의 동주 몽타쥬 몇 컷.

(완득) 위인들에겐 호가 있다. 백범 김구, 도마! 안중근!


완득 (큰 소리로) 나는 얌...마! 도완득이다!

-18-
스스로 놀란 표정의 완득. 그런 완득을 학생들이 멍하게 쳐다본다.

동주 이 새끼가 미쳤나? 너도 앞으로 야자 튀지 마. 이 꼴 같지도 않은


선생 밥줄 끊어져서 니 아버지하고 오일장에서 마사지용 채칼 팔기
싫으니까.

혁주가 그 소리에 킥하고 웃는다.

동주 어떤 새끼가 웃었어? 오일장에서 마사지용 채칼 파는 게 어때서!


몸땡이 멀쩡하면서 집에서 처노는 놈들보다 백배는 나은 사람들이
야. 알아? 이 새끼들아! 얌마! 도완득! 너, 나 좀 보자.

교실을 나가는 동주.

혁주 오우, 도완득. 니네 아버지 요즘엔 춤 안추고 마사지 채칼 파냐?


어쩐지 니 피부가 맨질맨질 하다 했어.

완득이 혁주의 뒤통수를 냅다 친다. 혁주 일어나더니 완득을 향해 달려든다.

혁주 이 새끼가!

혁주의 주먹을 붙잡아 손가락 하나를 꺾어버리는 완득. 손을 부여잡고 뒹구는 혁주


를 뒤로하고 교실을 나가는 완득.

#21. 교무실(밤)

동주 니 어머님 필리핀 분이더라?


완득 네?

동주의 책상 앞에 서있는 완득.

동주 아버님이 말 안 해?

-19-
완득 저 어머니 없는데요.
동주 있어. 새끼야. 내가 너 처음 봤을 때 눈썹이 건방지게 진하다고 생
각했어.
완득 등본에도 없는 어머니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와요?
동주 여어, 이 새끼 제법 묵직한 돌대가릴세. 십오 년 전에 등본에서만
빠졌어. 새끼야. 호적등본에는 그대로 있고, 알지? 호적등본? 네 부
모님 이혼한 것도 아니야. 그냥 십칠 년 동안 따로 산 것뿐이야. 니
어머님. 그 옛날에 뗀 호적등본을 아직까지 가지고 계셔.
완득 호적등본이요?
동주 그래, 새끼야. 그때는 한국 남자하고 결혼만 하면 자동으로 국적을
취득했단 말이야. 니 어머님, 호적등본에 이숙자라고 한국 이름으로
떡 등재돼 있어. 이 새끼야.

완득의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동주 만나볼래?
완득 내가 누군 줄 알고 만나요. 그 동안 나도 몰랐던 사람을 선생님이
어떻게 알고 어머니래요? ..... 나한테 왜 이러세요!

교무실을 뛰쳐나가는 완득.

동주 얌마! 도완득!

#22. 길거리(여러 곳, 밤)

<야구연습장>
배트를 휘두르는 완득의 모습이 컷, 컷되면서 빠르게 보여진다.

<터널>
긴 터널을 걷고 있는 완득.

(완득) 완벽하다. 가난, 장애인 아버지 그리고 고2 게다가 필리핀 어머니.


가출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다.

-20-
<유흥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는 완득.

#23. 완득의 집(밤)

책상 위에서 뭔가를 적고 있는 완득. ‘잠시 혼자 있고 싶어서 떠납니다.’

(완득) 똥주의 말대로라면 그 분은 십 여 년 전에 집을 나갔다. 아버지와


삼촌은 시골장을 돌다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내가 가출이라는 절차
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가 남긴, 저 쪽지는 내가 가장 먼저 읽을
가능성이 높다.

노트를 찢어버린 후,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눕는 완득. 이때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

동주(소리) 얌마! 도완득. 도완득!

완득은 이불 위로 얼굴을 잠시 내밀다가 다시 거칠게 뒤집어쓴다. 새시로 된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동주(소리) 새끼야, 있는 거 다 알어! 빨리 문 열어! 문 열라고!


이 새끼야! 완득아! 완득아!
소리 야이, 완득인지 만득인지 씨불놈아! 빨리 문 안 열어주냐!
이것들이 밤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아랫집 아저씨의 소리에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서는 완득.

동주(소리) 빨리 문 열어! 이 새끼야. 완득아! 완득아!


소리 빨리 문 열어 줘! 씨불놈아!

신경질적으로 문을 여는 완득.

-21-
동주 (옥탑으로 들어오며) 완득이 문 열었잖아. 이 양반아!

동주가 얼른 옥탑문을 닫더니 방으로 들어온다.

동주 학생이 책가방을 버려두고 가? 이 썩어빠질 학생 새끼 같으니라고.

동주가 책가방을 열더니 안에서 소주를 꺼낸다.

동주 학생 새끼가 책가방에 쏘주나 넣고 다니고... 컵 가져와.


완득 컵도 같이 사오시죠? 왜.
동주 빨리. 이 새끼야.

완득이 동주 앞에 컵을 하나 내려놓는다.

동주 하나 더 가져와.

동주를 바라보는 완득.

동주 하나 더 가져오라고, 새끼야.

컵을 하나 더 내려놓는 완득.

동주 받어.
완득 ......
동주 받으라고. 새끼야.

동주의 술을 받는 완득. 잠시 쳐다보더니 단숨에 마신다. 처음 술을 마셔보는 고통


이 완득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동주 너 술 못 마시냐?
완득 스승이 고2 제자한테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동주 닥쳐! 이 새끼야!

-22-
술을 한잔 마시는 동주.

동주 니 어머님, 성남에 계신다.


우리 교회에 외국인 노동자 사랑방이 있는데,
성남 사랑방하고 연결됐어. 건강하게는 보이시더라.
... 두 분 같이 사시는데 힘든 부분이 있었을거야.
완득 도대체 무슨 증거로 제 어머니라고 하세요?
동주 사진 봤다. 너 돌 때 찍은 가족사진.
너 모유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오셨대.
다행인지 불행인지 니가 모유는 빨리 뗐다더라.
완득 내가 어머니 젖을 먹고 컸다구요?
동주 뭐? 그럼 이 새끼야, 너는 태어난 날 바로 쌀밥에 김치 먹은 줄 아
냐? 왜, 이왕이면 그날 저녁에 얼큰한 짬뽕 한 그릇이라도 시켜먹지
그랬냐?
완득 (한심한 표정으로) 나는 카바레 누나들이 주는 과자 먹고 큰 줄
알았거든요.
동주 닥쳐! 이 새끼야. 한 마디도 안지네. 이 새끼가.
... 널 보고 싶어 한다.
완득 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동주 널 보고 싶어 한다니까.
완득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물어보시라고요.
동주 아버님은 뵙기 싫데. 이 새끼야. 널 보고 싶어 한다고!
완득 몇 번을 말해요! 아버지한테 먼저 물어보라잖아요!
동주 그래. 새끼야! 너 졸라 효자다. 나, 간다. 이 새끼야!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방을 나가는 동주. 멍하게 방에 앉아있는 완득의 모습이


한 동안 보여 진다.

#24. 교회(밤)

완득 정말 이러시기예요? 가시관이 머리를 찔러서 잘 안돌아가세요?


똥주 하는 꼴 좀 보라구요. 학생 집에서 술 퍼마시고, 꼴리는 대로
학생이나 패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인성이 저 따윈데 학생들한테

-23-
뭘 가르치겠어요? 그리고 이도저도 안되니 머리가 돌아버렸나 봐요.

어머니가 있다는 거예요. 저한테 말이에요. 그것도 필리핀 사람이래


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죽이는 거. 이번 주에도 안 죽이면,
나 절로 갑니다. 그럼, 이만. 아멘.
소리 자매님 또 오셨네요?

완득이 뒤를 돌아보니 핫산이 서있다. 그 앞으로 다가가는 완득.

완득 아저씨는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핫산 아, 인도에서 온 핫산입니다.

#25. 완득 집 옥상(낮)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완득과 완득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완득부의 눈치를 살피는 완득.

#26. 완득 집 앞(낮)

집 앞에 세워진 티코에는 ‘씨불놈’이라고 못으로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민구가 그


자국 위를 계속해서 문지른다. 그 옆에 서있는 동주.

동주 씨불놈?

동주가 앞 집문을 한 번 쳐다보더니 몸을 돌린다.

#27. 완득 집 옥상(낮)

빨래를 걸던 완득이 완득부를 쳐다본다.

완득 아버지.
완득부 응?
완득 ... 아니에요.

-24-
이 때 골목에서 들려오는 소리. 쿵쿵쿵하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동주의 고함이
섞여서 들려온다.

동주(소리) 이 봐! 나와 봐!

난간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완득과 완득부.

#28. 완득 집 앞(낮)

동주 (큰소리로) 이봐. 당신. 거기 좀 나와 보쇼! 나와 보라니까!


내가 안 그래도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그래, 잘 걸렸어. 나오라고!

그 사이에 계단을 내려오는 완득부와 완득. 차를 살펴보면 타이어는 펑크가 나있고


옆구리에는 욕이 적혀있다. 민구는 계속해서 티코를 문지른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동주, 열리는 문. “누구세요?”하는 여자 소리에 동주
고개를 돌린다. 하늘하늘한 옷차림. 30대 초반의 여인 호정이 보인다.

동주 (당황하며) 그... 저... 씨불놈...


호정 예?
동주 아니... 그 저... 만날 씨불놈이라고 노래 부르는 사람...
소리 (걸어 나오며) 아! 씨불... 아침부터 뭐야?
동주 오. 저기 씨불놈.
호정 아니 왜 자꾸 욕이세요.
동주 ... 아니 ... 그게 아니고요... 그 씨불놈이 그게...

cut to
아저씨 이 씨불놈들이 어디서 생사람을 잡어!
동주 이 동네에서 씨불놈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어?
완득부 그냥 사과 하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아저씨 무슨 사과!
민구 씨불놈, 씨불놈, 씨불놈.
아저씨 아니, 웬 병신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지랄이야?

-25-
순간, 느린 화면으로 전개된다. 놀란 얼굴로 완득을 쳐다보는 동주와 완득부. 완득부
가 완득의 다리를 잡으려고 두 손을 뻗는다. 한 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피하는 완
득. 넘어지는 완득부. 동주가 완득을 양손으로 껴안으려는 듯 감싸오면 허리를 숙여
피하는 완득. 역시 넘어지는 동주. 앞집 아저씨 앞으로 다가간 완득이 주먹을 뻗는
동작에서 컷.

#29. 파출소(낮)

눈이 벌겋게 멍든 앞집 아저씨는 연신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그 옆에 호정이


앉아있다. 완득, 완득부, 민구는 죄인처럼 소개를 숙이고 앉아있고 동주만이
당당하게 서서 얘기하고 있다.

동주 제 아비한테 그렇게 욕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아들 아닙니까.
아저씨 아이고! 나 죽네!
경찰1 거 조용히 좀 하세요!
동주 (간간히 책상을 가볍게 치며) 자기 집 앞에 차를 댔는데, 타이어는
펑크내고 차에는 씨불놈이라고 써놓는 게 정상입니까?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사회선생으로서 이런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저씨 거기가 왜 저 양반 집 앞이야! 내 집 앞이지.
동주 두 대문이 꼭 마주 보고 있는데, 왜 당신 집 앞만 돼! 차도 없는
양반이!
아저씨 나는 내 집이고, 저 양반은 세 들어 사는 사람이잖아!
동주 세를 냈으니까 집 앞까지 쓸 자격이 있지!
경찰1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저씨, 선생님 말 틀린 거 없어요.
아저씨 민중의 지팡이가 아주 썩었네.
경찰1 아저씨!

할 말이 없는 지 신음으로 맞서는 앞집 아저씨.

동주 (경찰에게) 제가 담임이라 잘 압니다. 저 아이, 무척 성실한

-26-
학생입니다.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실수를 한 모양인데
선처 바랍니다.
경찰1 제가 봐준다고 되나요. 합의를 봐야죠. 저기, 아저씨. 별로
다친 거 같지도 않은데 좋게 끝내세요. 그 집 앞, 아저씨네만 쓰는
데 아니에요. 아저씨도 도색 값 물어줘야 하는데 화해하시고 좋게
끝내시죠?
아저씨 그 똥차 도색해주고 말지. 저런 놈은 폭행죄로 집어넣어야 돼!
법대로 해. 법대로! 난 합의 못해! 씨불!
호정 오빠!!!! 그 입!

모두들 호정을 쳐다본다. 동주의 입모양. ‘오빠?’

호정 오빠가 잘못 한 거잖아! 하여튼 그 입 때문에, 정말.


아저씨 아니....나는...
호정 됐어. (완득 식구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완득부 (호정에게 인사하며) 아닙니다. 제 아들놈 교육을 잘 못시켜서 되레
제가 죄송합니다. (완득에게) 뭐해? 사과드리지 않고.

동주가 호정의 눈치를 보더니 끼어든다.

동주 얌마! 도완득. 뭐해? 아버님 얘기 안 들려?

완득이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아저씨에게 다가간다.

완득 죄송합니다.

인상을 잔뜩 쓰고 노려보는 앞집 아저씨. 벌떡 일어난다.

아저씨 씨불... 생기다가 만 똥차가 무슨 재산이라고.

휙 돌더니 문으로 향한다.

-27-
경찰1 아저씨, 여기 도장 찍고 가세요!

다시 휙 돌더니 서류에 지장을 찍는데 연신 씨불 씨불이다.

경찰1 아저씨, 자꾸 욕하시면 소란죄로 스티커 발부합니다.

씨~하던 아저씨의 불퉁한 입이 억지로 멈추더니 코구멍으로 크르릉 거리는 소리가


거칠게 한번 나온다. 이내 휙 돌아서 파출소를 나가는 아저씨. 모든 사람들이
파출소를 우르르 나가고 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동주. 경찰들이 동주를 가만히
쳐다본다.

경찰1 선생님. 안가세요?


동주 (그대로 선채로 혼잣말) 친동생 일까?
경찰1 네?

#30. 교실(밤)

공중을 날아다니는 노트. 준호는 노트를 잡으려 왔다 갔다 하고, 학생들은 혁주를


놀리려는 듯 주고받으며 혁주를 피한다. 교실 문 앞으로 떨어지는 노트.
문을 들어서던 완득이 노트를 집는다. ‘뭐지?’하는데 옆에 있던 남학생이 노트를 들
고 다른 곳으로 패스한다. 한 여학생 앞에 떨어지는 노트.
여학생이 ‘어머!’하며 얼굴을 가린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다시 노트를 들고 다른 곳
으로 던진다. 그 모습을 삐닥한 자세로 쳐다보고 있는 혁주. 얼굴에는 썩은 미소까
지 번져있다. 잠시 후, 혁주에게 날아오는 노트. 노트를 받는 혁주. 노트를 뒤져본다.
혁주와 윤하를 주인공으로 한 성인만화다. 다시 씩 웃는 혁주.

혁주 다들 봤냐? 이제 윤하는 내 여자다.

굳은 자세로 자리에 앉아있는 윤하. 준호가 혁주에게 다가간다.

준호 이리 내. 새끼야.

혁주가 노트를 높이 들어서 피한다. 준호가 혁주의 멱살을 잡자, 혁주가 준호의 얼

-28-
굴을 강타한다. 넘어진 준호를 올라타는 혁주. 하지만 이내 전세는 역전돼서 준호에
게 깔리고 마는 혁주. 목이 졸려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른다. 컥컥거리는 혁주. 주
변의 학생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낸다.

혁주 덤벼, 이 새끼야. 씨발놈. 할 짓이 없어서. 퉷!


씩씩거리던 준호가 주변을 둘러보면 그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냉담하다.

여학생1 어후, 재수 없어.


여학생2 변태.

준호가 떨어져 있는 노트를 집어 들고 자리로 가는데 그 앞을 막는 윤하. 준호에게


손을 내민다.

윤하 줘.

준호는 대답이 없다.

윤하 달라고!

어색하게 내밀어지는 노트. 윤하가 노트를 살핀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 노트를 북북


찢더니 그 종이로 준호의 뺨을 때린다. 잠시 후,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가는 윤하.
주변을 둘러보던 준호도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간다.

혁주 씨발놈아! 또 그리러 가냐! 씨발놈.

완득의 앞자리로 가서 앉는 혁주.


싸늘한 표정의 정윤하가 교실 뒤를 걸어간다.

정윤하 비켜!

자리를 피하는 학생.


교실 문을 나서는 정윤하. 그 앞에 서있는 완득.

-29-
정윤하 비켜 줄래?

의아한 표정을 한 채 옆으로 피하는 완득. 그의 눈에 정윤하의 교복 자켓 위로 볼


록하게 쏟아있는 가슴께가 눈에 들어온다. 교실을 나서는 정윤하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혁주의 뒤에 앉는 완득. 혁주는 찢어진 만화를 보물지도 맞추듯 하고
있다.

혁주 (완득에게) 어쨌거나 정윤하는 이제 내 여자다.


아, 머리 좋은 여자 피곤한데... 너, 그 만화 궁금하지 않아?
완득 그 만화보다 니가 궁금하다. 이 새끼야.

두 장의 만화가 붙여졌다. 한 장은 야한 옷차림의 윤하 단독 그림, 다른 한 장은 혁


주와 윤하 두 사람의 묘한 그림이다. 혁주가 단독 그림을 완득에게 준다.

혁주 선물이다.

완득의 책상 위에 놓여지는 그림. 혁주가 다른 한 장을 책갈피 사이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혁주 난 이거면 돼.
완득 또라이 새끼.

그림을 책상에서 치워버린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그림을 잠시 쳐다보는 완득. 이내


엎드린다.

#31. 복도(밤)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를 걸어가는 완득.

혁주(소리) 완득아.

완득이 혁주를 쳐다본다.

-30-
혁주 오늘 일찍 끝났는데, 니네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
완득 이 또라이야. 그건 아주 친한 사이끼리 하는 얘기야.
혁주 우리 친하잖아?
완득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오시는 날이야.
혁주 오시면 왜?
완득 쉬셔야지.
혁주 에이,

혁주가 고개를 돌리는데 저 멀리 윤하가 보인다.

혁주 (씩 웃으며) 그럼 마이 달링하고 같이 먹어야겠다.

cut to
앞 쪽에 걸어가고 있는 윤하에게 달려가는 혁주. 완득이 그 모습을 쳐다본다. 웃으
며 뭔가를 얘기하는 혁주. 갑자기 윤하가 혁주의 뺨을 찰싹 때리더니 사라진다. 멍
한 표정의 혁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완득.

#32. 개천길(밤)

개천길을 올라가는 완득. 몇 몇의 가게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별별노래방. 이치과.


팡팡베이커리. 킥복싱 체육관. 이때, 들리는 소리.

소리 저기... 도완득.

완득이 뒤를 돌아보면 정윤하가 서있다. 머쓱하게 개천을 내려다보는 완득.

정윤하 도완득!
완득 왜?
정윤하 할 말이 있어.
완득 해.
정윤하 어디 좀 가서...
완득 어디?
정윤하 나, 이 동네에 안 살아서...

-31-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완득.

완득 따라와.

앞장서 걸어가는 완득, 그 뒤를 따르는 정윤하.

#33. 교회(밤)

교회 안. 예배당. 나란히 앉아있는 완득과 정윤하.

정윤하 너 교회 다니는 구나.


완득 ......
정윤하 교회 아담하고 좋다.
완득 할 말이 뭐야?
정윤하 너 첨에 싸우는 거 보고 노는 앤 줄 알았어.
완득 노는 애야.
정윤하 진짜로 노는 애 말이야. 날라리.
완득 날라리든 노는 애든 그게 왜?
정윤하 하긴, 노는 애들이 더 쿨 하기는 하더라.
완득 할 말이라는 건 언제 할 건데?
정윤하 너 왜 매일 혼자 다녀?
완득 뭐?
정윤하 혼자 급식 먹고, 혼자 등하교 하고 교실에도 스윽 나타났다가 스윽
사라지고. 그래서 혹시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넌 스윽 잊어줄 것 같
아서. 니가 그 만화 봤어도 상관없고, 못 봤어도 상관없어.
나는 그냥...
완득 안 봤어.

정윤하가 완득을 한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정윤하 흑,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복수할 줄 몰랐어.


완득 복수?

-32-
정윤하 (주저하면서) 사실, 나, 나 준호랑 사귀었었거든. (손수건으로 눈물
을 닦으며) 걔, 그런 만화 그리는 거 나한테 벌써 걸렸었어. 그래서
헤어졌고.

완득의 눈에 교복 단추를 목까지 꽉 채운 정윤하의 가슴께가 눈에 들어온다.

정윤하 남자들은 다 그러니?

모르는 척, 정면을 쳐다보는 완득.

정윤하 누가, 준호 좀 죽여줬으면 좋겠어.

완득이 일어나 십자가 앞에 선다.

완득 이 교회 올 사람 또 생겼네. 하느님. 바쁘시겠습니다.


그래도 내 기도가 먼저입니다. 잊지 마세요.
정윤하 뭐라고?
완득 (다시 자리에 앉으며) 아냐.

코를 팽 푼 손수건을 가방에 넣는 정윤하.

정윤하 아, 후련하다. 고마워.


완득 ......
정윤하 너 참 편하다. 혹시 다음에 또 시간 내줄 수 있니?
완득 (일어나며) 가자.
소리 오늘은 두 자매님이 오셨네요.

완득이 돌아보면 핫산이 서있다.

완득 이 조합은 남매랍니다. 아저씨.

#34. 완득 집(밤)

-33-
방바닥에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는 완득.

동주(소리) 니 어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하신다.

천정에 동주의 얼굴.

동주 니 어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 하신다.
너를 보고 싶... (하는데 동주 멀어지고 윤하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윤하 또 시간 내줄 수 있니?

천정의 무늬 사이로 윤하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앞 씬, 교회에서 봤던 윤하의 가슴이 보인다. 윤하는 뭔가 말을 하고 있지만 완득의
눈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윤하의 가슴만이 확대되어 보인다. 정신을 차리려고 고
개를 흔드는 완득. 하지만 이번에는 윤하의 조각난 그림이 나타난다. 잠시 후, 조각
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성되는 윤하의 야한 단독 그림. 잠시 후, 아랫도리를 쳐
다본다. 이내, 휴 하며 한 숨을 내쉬다가 꾸부정한 자세로 일어선다.

#35. 완득 집 옥상(밤)

몸을 비틀어보며 옥상으로 나오는 완득. 문뜩 건너편 옥상을 보는데 동주가 목을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뭔가 싶어 따라서 내려다보는 완득.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앞 건물 1층 창문 안으로 민소매에 가디건 차림의 호정이
책상에 앉아있는 게 보인다. 다시 가자미눈으로 동주를 보는 완득.

완득 (큰 소리로) 어험!

화들짝 놀라는 동주. 완득이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동주 저, 저.
완득 안녕하세요!
동주 야, 이 새끼야.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는 완득. 호정이 창문으로 올려다보자 서로 시선이 마주치는

-34-
동주와 호정. 호정 가벼운 목례를 한다. 동주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한다.

#36. 학교(낮)

학교 전경이 보인다.

동주(소리) 얌마, 도완득!

#37. 복도(낮)

동주 얌마, 도완득!

가방을 메고 가던 완득이 돌아보면 동주가 라면 상자를 들고 서있다. 평소와는 다


르게 완득이 다소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동주에게 다가가며 중얼거린다.

완득 (복화술) 야밤에 남의 집 여자나 훔쳐보고, 뭐하는 짓인지 참.


동주 (안 들리는 듯) 뭐?

짝 다리를 집고 서는 완득.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동주 집에 가다 보면 비탈에 교회 하나 있지? 거기 사랑방에 좀 갖다 줘.


왜 웃어? 이 새끼야!
완득 아니요. (복화술) 궁하면 결혼을 하든가.
동주 이 새끼가 자꾸 뭐라고 중얼거려! 지금 땡땡이 칠 생각 말고 있다가
야자 끝나면 가. 받어, 이 새끼야!

완득이 라면을 받아든다.

동주 그리고 오늘 교회 사랑방에 어머니 오신단다.

태연하게 복도를 걸어가는 동주. 씩웃으며 그 모습을 보던 완득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싹 가신다.

-35-
#38. 교회(밤)

까치발로 살금살금 사랑방으로 다가가는 완득. 갑자기 들리는 소리.

소리 자매님.

깜짝 놀란 완득이 뒤를 돌아보면 핫산이 서있다.

핫산 이동주 선생님한테서 연락 받았습니다.


완득 (당황하며) 네? 무슨 연락이요?
핫산 오신다구요.
완득 아, 네. (라면을 건네며) 이거 받으세요.
핫산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때, 사랑방의 문이 열리며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나온다. 동그랗게 커지


는 완득의 눈. 그 얼굴 위로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들리고 세 사람 사이에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핫산 제 부인입니다.

후다닥 교회 밖으로 뛰어나가는 완득. 진정이 되지 않는지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39. 옥상, 부엌(밤)

힘없이 계단을 오르는 완득. 옥탑방 입구를 쳐다보며 굳은 듯 선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또 다른 동남아인 여자가 보인다.
한 동안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완득모 잘 지냈어요?
완득 라면...... 끓여 먹으려고요.

옥탑방의 문을 여는 완득. 가방을 방안으로 던지더니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36-
완득모 잘 커줘서 고마워요.
완득 (시선을 주지 않고) 라면 드실래요?
완득모 ......

완득이 냄비에 물을 더 넣는다.

완득모 아버지는......
완득 계란은 없어요.
완득모 나는....... 그냥, 한번만......
완득 끓여서 들어갈 테니까, 방에 계세요.

잠시 망설이던 완득모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간다. 완득의 눈에 분홍색 낡은


단화가 들어온다.

#40. 완득의 집(밤)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사람. 완득모가 자신의 앞에 놓인 라면을 완득의 그릇


에 덜어준다.

완득모 김치 없어요?

대답이 없는 완득.

완득모 매일 이렇게 먹어요?


완득 저 라면 좋아해요.
완득모 라면 많이 먹으면 안 좋다던데.
완득 한국말 잘하시네요.
완득모 한국 온 지 오래됐으니까요.
완득 라면 불어요.

라면을 먹는 완득모.

-37-
cut to
물 두 잔이 놓인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두 사람. 완득모는 벌 받는 사람처
럼 무릎을 꿇고 있다. 완득의 시선에 보이는 완득모의 거친 손과 발, 예쁘장한 얼굴
에 어울리지 않는 새치들이 보인다. 골목에서 여자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
진다.

완득모 내일 학교 가야지요.
완득 이제 자려구요.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는 완득모.

완득모 이거......
완득 그런 거 필요 없는데요.
완득모 말로는 잘 못하겠어요... 너무 미안해서...
완득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

봉투를 바닥에 둔 채 방을 나서는 완득모. 그 뒷모습을 잠시 보던 완득이 봉투를


집어 든다. 꺼내면 편지가 들어있다. 펼쳐서 읽어보는 완득.

완득모(NA) 미안해요.
잊고 살지 않았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혹시 전화할 수 있으면 전화해주세요.
000-0000-0000
안 해도 돼요.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편지를 바닥에 놓고 물끄러미 천정을 올려다보는 완득. 한참 본다.

#41. 완득의 집 옥상(낮)

동네의 아침 전경이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38-
완득(소리) 필리핀 사람이데요?

#42. 완득의 집(낮)

가방에 든 물건을 정리하던 완득부의 손이 멈춘다.

완득 왔었어요.
완득부 잘 지낸데?

다시 손을 움직이는 완득부.

완득 금방 갔어요.
완득부 ......
완득 전화번호 두고 갔어요.
완득부 (반짝이 옷을 문 앞에 놓으며) 이거 세탁소에 좀 맡겨라.
완득 시장에 춤 출 곳이 있어요?
완득부 수레 앞에서. 민구 춤이 좋아서 제법 사람들이 모인다.
민구 각설이들도 잘 춘다.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는 민구.

완득부 그 사람, 나라가 가난해서 그렇지, 거기서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다.
완득 이혼도 아니던데요.
완득부 보내줬지.
완득 왜요?
완득부 카바레에서 춤추는 걸 이해 못 했어.
완득 그게 다예요? 그랬다고 보내줘요?
완득부 업소 사람들이 그 사람을 팔려 온 하녀 취급하는 게 싫었다.
내 부인이 아니라, 자기들 뒷일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알더라.
가는 모습 봤는데, 못 잡았다.
완득 세탁소 다녀올게요.

-39-
옷을 들고 방을 나가는 완득.

#43. 완득의 집 앞(낮)

완득이 대문을 열고 나옴과 동시에 옆 건물의 대문을 열고 나오는 동주. 잠시 시선


이 마주치는 두 사람. 완득이 들고 있던 옷을 공격적으로 바닥에 놓는다. 뭐지? 하
는 표정의 동주. 천천히 다가오는 완득. 속도에 맞춰 뒷걸음치는 동주. 동시에 뛰기
시작하는 두 사람. 계단을 오르는 동주를 따라 뛰어올라가는 완득. 재빨리 새시문을
걸어 잠그는 동주. 완득이 옥탑방의 문을 당기지만 잠겨있다.

완득 문 열어요.
동주 못 열어, 새끼야!
완득 씨발, 빨리 안 열어요!
동주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 선생님한테 씨발이야! 이 씨발놈아!
완득 왜 가르쳐줬어요!
동주 내가 안 가르쳐줬어!
완득 그럼 어떻게 알고 왔어요!
동주 내가 어떻게 알아, 새끼야! 나는 우리 집밖에 안 가르쳐줬어!
완득 이 집은 왜 가르쳐줬어요!
동주 니네 집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완득 그거 봐요! 가르쳐줬잖아요!

완득이 새시 문이 부서져라 걷어찬다.

동주 나는 우리 옆집이라고밖에 안 했어! 이 새끼야.


우리 옆집이 니네 집만 있냐!
아저씨(소리) 야이, 완득이 씨불놈아! 왜 일요일까지 지랄이고! 조용히 안 하나!
동주 (문을 열며) 완득이네 엄마 왔다잖아, 이 양반아!

재빠르게 문을 닫는 동주.

완득 ...고맙습니다.
동주 뭐? 고구마 가져왔다고?

-40-
완득 (문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맙다구요.
동주 씨발, 씨발 다 해놓곤 고맙다고, 씨발. 얼른 가, 새끼야.

옥상을 내려가는 완득.

#44. 교실(낮)

세계사 수업. 앞 쪽에 있는 TV에는 밀레의 ‘이삭줍기’가 보인다. 수업시간이지만 아


무렇지 않게 책상에 김밥을 올려놓고 먹고 있는 혁주. 완득은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생각에 잠겨있다. 김밥을 먹던 혁주와 윤하의 시선이 마주친다.

세계사 선생님의 설명 - 오늘 세계사 시간에는 1800년대 프랑스의 사회상을 잘 보


여주는 밀레의 대표작 ‘이삭줍기’에 대해 알아보겠어요. 당시의 상류층에 대한 밀레
의 비판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요.

혁주 (입모양) 마이달링. 줄까?

코웃음 치는 윤하.

혁주 (입모양) 달링, 맛있어. 안 먹어? 정말?


윤하 (입모양) 죽고 싶어?
혁주 (고개를 저으며) 아니, 죽기 싫어.

여선생의 시선이 완득에게서 멈춘다.

여선생 거기 맨 뒤에 학생.

혁주가 완득의 책상을 톡톡친다.

여선생 거기 뒤에 학생!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여선생을 쳐다보는 완득.

-41-
완득 네? 네.
여선생 (그림을 가르키며) 저 그림 보니까 어때요? 얘기해봐요.

그림을 쳐다보는 완득.

완득 뭘 봐? 하는 것 같은데요.
여선생 뭐?
완득 구부정하게 서 있는 저 아줌마요, 뭘 봐? 하는 거 같다고요.

학생들 일제히 책상을 드럼처럼 두드린다.

여선생 당시 농민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렸죠.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밀레를 보면,
뭘 봐? 할 수도 있겠네요. 뭐 또 다른 느낌은 없나요?
완득 느낀 대로요?
여성생 그래요.

그림을 쳐다보는 완득.

완득 우선 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온 이방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그들은 사회가 주는 공격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완득의 대사 중간 중간에 밀레의 ‘이삭줍기’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인다.

완득 세 명 중에, 맨 오른쪽 구부정하게 서 있는 아줌마는


지푸라기를 슬쩍 들고, 나머지 손은 쫘악 펴 손가락뼈를 맞춘 뒤
농장 주인과 붙기 일보 직전입니다.

- 그림 속 우측의 여자가 주먹을 쥐면 뼈마디 맞추는 소리가 우드득 난다.

맨 왼쪽 여자는 일하는 척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지푸라기를 던져 상대의 시야를 가리고

-42-
곧 치고 들어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입니다.

좌측의 여자가 지푸라기를 카메라 쪽으로 빠르게 던져 시야를 가린다. 다시


카메라의 시선이 열리면 어느새 여자가 빠른 동작으로 주먹을 내지른다.

맨 오른쪽 여자의 주먹 크기도 상당해 보입니다.


저 안에 돌을 쥐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가운데 여자가 내리고 있던 손을 휘두르면 그 속에 있던 돌이 카메라를 강하게


때린다.

완득 치사해도 상관없어요. 싸움은 일단 이기고 봐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 사람들, 자기 나라에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입니다.

여선생은 날아온 돌에 맞은 듯 멍한 표정이고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좋아한다.
완득이 시선을 돌리는데 윤하가 자기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완득이 시선을 돌린다.
완득이 다시 윤하를 쳐다보면 여전히 웃고 있는 윤하.

#45. 교회 내부(밤)

교회 안쪽을 살피는 완득.


성격책을 읽고 있는 할머니, 소파에 잠이 든 외국인도 보인다.

소리 자매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완득이 고개를 돌리면 눈썹 아래가 쭉 찢어진 핫산이 서있다.

완득 맞았어요?
핫산 싸웠어요.
완득 그 사람 어딨어요?
핫산 집에 갔겠죠.
완득 집 알아요?

-43-
핫산 몰라요.
완득 혼자 다니지 마세요.
핫산 개인전인데 그럼 둘이 올라가요?
완득 네?
핫산 킥복싱 스파링이 있었어요. 아, 이길 수 있었는데,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서.
완득 괜히 그런 데 다니면서 맞지 말고 교회나 열심히 다니세요.
핫산 상대가 너무 쎘다니까요.
완득 쎄긴 뭘 쎄요. 킥복싱 그거 팔다리 다 쓰는 건데 그냥 패면 되지.
핫산 하하하. 싸움 잘하나 봐요.
완득 싸움......

#46. 캬바레외 여러 곳-flash back(회상)

어린 시절의 완득. 카바레의 조폭, 기도, 웨이터 등 화류계의 사람들이 완득에게 싸


움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인다. 룸, 홀, 화장실 등등에서.

<캬바레 사무실>

백발의 덩치가 손바닥을 앞으로 편 채 앉아있고 그 앞에 어린 완득이 서있다.

덩치 자, 치라. 치라. 말 할 시간이 어딨노? 무조건 선빵이야. 치라.

완득이 샌드벡을 치듯 덩치의 손바닥을 친다.

덩치 오, 잘 하네. 그래, 그래.

<캬바레 대기실>

변발을 한 차력사가 완득의 앞에 서있다. 굵은 무쇠를 들고 있는 차력사. 탈의한 상


체가 울퉁불퉁하다.

-44-
차력사 싸움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무쇠의 양끝을 잡으며) 상대의
모가지를 잡고는 이건 닭 새끼다 생각하고! 비트는거야.

무쇠가 엿가락처럼 휘어진다. 어린 완득의 눈이 동그레진다.

<캬바레 홀>

호리호리한 외모에 양아치 풍의 웨이터와 완득이 서있다. 싱글싱글 거리면서 말하


는 웨이터.

웨이터 하하, 참. 내가 원래 싸움 이런 거 안 가르쳐 주거든? 하하.


내가 오늘 특별히! 자, 들어와 봐.

온갖 폼을 다 잡는 웨이터. 완득이 옆을 가르킨다. 웨이터가 완득의 손을 따라 시선


을 돌린다. 화면을 꽉 채운 웨이터의 얼굴이 뭔가 충격을 받은 듯 덜컹 흔들린다.
이내 벌겋게 달아오르는 웨이터의 얼굴. 웨이터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완득의 발
이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들어와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웨이터의 몸.

웨이터 (엄지손가락을 들며) 컥! 잘... 하... 네... 컥! 완득이...

옆으로 쿵하며 넘어지는 웨이터. 그 옆에서 일을 하던 다른 웨이터들이 킥킥거리며


지나간다. 컷되면 대기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완득부. 이내 거울 앞으로 가서
굳은 얼굴로 분장을 지운다.

<학교 운동장>

운동장 철봉 아래에 서있는 완득. 완득보다 상급생으로 보이는 초등학생 두 명이


연신 ‘난쟁이 새끼야’를 외치며 완득을 놀려댄다. 컷되면 엉켜 붙어서 싸움박질을
하는 학생들. 독기어린 완득에게 질려하는 두 명의 초등학생.

#47. 체육관(낮)

링 위에서 스파링을 하고 있는 완득과 관원.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지만 관원의 손

-45-
과 발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완득. 연이어 들어오는 관원의 미들킥과 하이킥에 속
수무책인 완득. 순간, 열 받은 완득이 미들킥으로 들어오는 관원의 발목을 잡아당기
자, 관원이 뒤로 벌렁 넘어진다. 위로 올라타는 완득. 엎치락 뒤치락거리는 두 사람.

누가 보면 킥복싱이 아니라 그라운드 플레이로 오해할 정도다.

관장 그만! 그만하라고!

서로 몸을 떼는 두 사람. 완득의 얼굴이 엉망이다.

관장 야! 너, 내려와!

절뚝거리며 힘겹게 링을 내려오는 완득. 그 사이 관장이 오른 손에 글러브를 낀다.

관장 똑바로 서!

관장이 왼손으로 완득의 뺨을 때린다. 휘청하는 완득.

관장 이건 따귀고!

글러브를 낀 관장의 오른손이 잽을 날린다. 강하고 빠른 주먹이 연이어 나간다.

관장 이건 잽!

강력한 스트레이트성 잽에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완득.

관장 (글러브를 벗으며) 싸움하고 운동도 구분 못해! 일어서!


한 대 패고 튈 수 있는 쌈질에서야 쌈꾼이 이길지 모르겠지만,
링 안에서 어림도 없어. (핫산에게) 어디서 이런 조폭 같은 놈을 데
려와서는. (완득에게) 너! 다시는 체육관 올 생각하지 말고 길거
리 나 돌아다녀. 원하는 싸움질 실컷 하면서. 나가!

가만히 서있는 완득.

-46-
#48. 완득의 집(밤)

방 안에 앉아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완득부와 얼굴이 부어 있는 완득. 민구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백열등에 양말을 끼워 어설프게 바느질을 하고 있다.

완득부 뭐? 킥복싱? 고작 싸움이나 하라고 서울로 온 줄 아냐?


완득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예요.
완득부 나도 춤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웃음거리로 보더라.
그게 세상이야!
완득 세상이 뭐라고 해도, 아버지는 춤추셨잖아요.
완득부 춤은 그나마 다른 사람하고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놈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쌈질을 하겠다고......
완득 (일어서면서) 아버지가 제 몸 같았으면 춤, 안 추셨겠네요.

물건을 정리하던 완득부의 몸이 멈춘다. 민구, 이상한 분위기에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둥절하다.

완득 나는 아버지가 그런 춤을 춰서, 세상이 더 받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


요. 그래서 어머니도 떠나신 거 아니에요?

가만히 일어나서 방을 나가는 완득부. 완득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인다.

#49. 동네 입구 가게 앞(밤)

가게 앞의 평상에 앉아있는 동주와 완득부가 막걸리를 먹고 있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완득부.

완득부 선생님, 저도 이런 제 몸이 싫었어요. 이게 나한테 끝나는 게


아니라 멀쩡한 아들놈한테까지 피해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이면 그 녀석하고 떨어져 있으려고 했어요.

말없이 막걸리 잔을 비우는 동주.

-47-
완득부 내가 그 놈 아버지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길 바랐어요. 그래서
자꾸 숨었어요. 그렇게 나를 숨겼던 게 오히려 그 녀석까지
숨어 살게 만든 꼴이 된 것 같아요.
동주 너무 걱정 마세요. 몸이 아니라 정신이 문제인 부모들이 훨씬
많습니다.
완득부 카바레에서 일할 때 건달들 많이 봤습니다. 어설프게 운동하고
어설프게 건달 짓이나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단지 그게 걱정입니다.
동주 아버님,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건 좋은 겁니다.
그 운동, 완득이에게 나쁘지 않을 거예요.
완득부 그럴까요?
동주 지가 스스로 세상으로 나와 보겠다는 거 아닙니까?
조만간 한 번 가보려고요.
완득부 어디요?
동주 체육관요. 요 밑에 있는 동네 체육관이잖아요.

이때, 동주가 벌떡 일어나더니 인사를 한다. 완득부가 돌아보면 호정이 걸어오고 있


다. 근데, 호정은 이미 술을 한 잔 했는지 붉은 얼굴에 걸음걸이가 산만하다.

동주 안녕하세요.

쓱 보더니 고개만 끄덕이는 호정.

동주 어디 가시나봐요?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게로 들어가는 호정. 잔을 주고받는 동주와 완득부.


동주의 시선은 자꾸 가게 쪽을 기웃거린다.

완득부 지하철 2호선 타고 다니는데 대학생들 보기 좋더라고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동주 이런 아버지가 있는데 저는 엇 나갈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8-
완득부가 동주의 잔에 막걸리를 채우는데 넘쳐흐른다.

완득부 아, 이거. 죄송합니다. 술이 취했나?


동주 괜찮으세요?
완득부 그럼요. 딸꾹!

호정이 가게에서 나온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막걸리 두 병.


두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막걸리 두 병을 올려놓는다.

호정 나도 술 값 낸거에요.

호정이 평상에 걸터앉는다. 잔을 들어서 동주를 빤히 본다. 얼뜻 정신을 차린 동주


가 호정의 잔에 술을 따른다. 호정이 단숨에 잔을 비운다.

동주 오늘 무슨 일이라도?
호정 죽여야 돼? 살려야 돼?
동주 네?
호정 진도가 안 나가! 글빨이 안 붙는다고!
동주 네?
호정 이때까지 뭐 들었어요?
동주 네? 방금 오셨는데요. 술 많이 하셨네.
호정 씨, 무협소설 작가라고 내가 얘기했잖아요. 몰라요?
무협소설 작가 이호정. 이호정!
동주 아, 네.
호정 떠있어요.
동주 네?
호정 주인공이 공중에 떠있다고요. 거기서 막혔어요. 독살 외엔 방법이
없어요. 근데 그 놈이 내공이 너무 높아서 독살이 안 통한단
말이에욧!
완득부 (혀가 꼬인 목소리) 나도 한 때 무협지에 빠졌었죠. 특히, 축지법과
경공술! 이 짧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겁니다.
그러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붕하고 뛰어오르죠. 으하하하.
호정 와! 아저씨. 최고다.

-49-
완득부가 아예 일어서서 뛰는 동작과 날아오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붕!!’, ‘성큼, 성
큼’. 완득부의 발치에 막걸리 병이 채여서 넘어진다. 이때 병을 받아 세우는 손. 올
려다보면 완득이다.

완득 (완득부에게) 많이 취하셨는데 올라가시죠.


완득부 오, 아들! 그럴까? 흐흐흐.

#50. 골목길(밤)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는 완득과 완득부.

완득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완득부 그러게 말이다. 하하.

#51. 골목길 가게(밤)

동주와 호정만이 평상에 앉아있다. 웃음을 머금은 호정이 동주를 빤히 쳐다본다.


헛기침을 하며 잔을 드는 동주의 눈에 반창고를 여러 개 붙이고 있는 호정의 손이
보인다.

동주 그 손은 왜?
호정 아, 이거요? 철사장 연습하다가요.
동주 철사장요?
호정 손가락 단련.

호정이 평상에서 일어나 다리를 벌리더니 자세를 잡는다.

호정 모래를 불에 달군 다음 손을 넣었다 빼는 거죠. 슉! 슉! 슉!


그 모래를 화룡출판사 편집장 얼굴이다 생각하고 슉! 슉!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굳은살이 베길 때까지!
동주 술, 괜찮으시겠어요?
호정 여기 혈!

-50-
호정이 갑자기 동주의 명치쪽으로 손바닥을 빠르게 내민다. 깜짝 놀라는 동주.

동주 헉!
호정 날 만만하게 보는 놈들 쿡!

다시 다소곳하게 앉는 호정,

호정 한 잔 따르시죠.
동주 네.

다시 단숨에 한잔을 비운 호정.

동주 근데, 그 술은 괜찮......

비실비실 웃더니 동주의 무릎 위에 쓰러지며 잠든다. 동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동주 어이그, 내가 진짜 선생, 선생만 아니라면.

#52. 개천길(밤)

길을 걸어가던 완득부가 술기운에 휘청한다. 부축하는 완득. 완득부 앞에 등을 대고


앉는다. 잠시 보던 완득부가 완득에게 업힌다.

완득부 (완득이 일어서는 속도와 동일하게) 아이구, 높다. 이자식.


다리 긴 것 좀 봐라. 완득아...멋있다. 완득이...멋있어...

잠이 드는 완득부. 길을 오르는 완득의 얼굴이 한 동안 보여 진다.

#53. 교무실

교무실에서 햇반에 컵라면을 먹고 있는 동주. 그에게 다가가는 학생부장.

-51-
학생부장 저기, 이 선생.
동주 (돌아서며) 네.

학생부장이 서류를 한 장 흔든다.

학생부장 이게, 이게 야간자율학습을 면제시키는 이유가 됩니까?


동주 네?
학생부장 예체능 학원도 아니고 킥복싱, 나, 참. 답답하시네.
동주 아, 도완득이요. (음식을 탁탁 정리하며) 주임선생님. 킥복싱 배우면
깡패 된답니까? 킥복싱, 그거 그냥 운동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하겠다는데 뭔 권리로 막습니까? 그리고 선생님께선 국어를
가르치시죠? 제가 답답합니다. 말 그대로 야간자율학습입니다.
자율학습을 면제 시킨다는 게 문법에 맞나요?
학생부장 뭐요?
동주 뭐, 위에서 야간강제학습으로 바꾼다면 고려해보죠. 전 수업시간이
다 돼서, 이만. (잘 먹었다는 듯 배를 문지르며) 아, 못 먹었다.
학생부장 아니, 이 선생!

동주가 총총걸음으로 걸어간다. 뿔이 난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학생부장.

#54. 체육관

몇 몇의 관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가다듬어주는 관장. 관장이


한 쪽으로 시선을 쓱 돌리면 체육관 앞에 서있는 완득이 보인다.
완득을 무시하는 관장.
그렇게 체육관의 전경이 시간흐름으로 잠깐 보인다. 이내, 완득의 앞으로
던져지는 줄넘기용 줄. 완득이 올려다보면 관장이 서있다.

관장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 글러브 잡지 마. 기초체력부터 다져.


여기오면 줄넘기. 나가면 달리기다. 알겠어?

사무실로 들어가는 관장. 완득이 줄을 두 손으로 잡아본다.

-52-
#55. 길거리(새벽)

길을 뛰어 올라가는 완득. 길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의 짐칸에 신문이 가득 실려


있다. 잠시 후, 골목 안에서 뛰어나오는 신문배달원.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완
득이 시선을 돌리면 신문보급소의 간판이 보인다.

cut to
신문배달을 하는 완득.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뚫고 달리는 완득의 모습이 한 동안
보인다.

#56. 교실(낮)

동주 저 위대한 킥복싱 선수 좀 봐라. 안 일어나, 새끼야!

완득이 고개를 번쩍 들고 일어난다.

동주 혁주 처럼 책 보는 척 자는 성의나 보이던가.
새끼가 대놓고 엎드려 자고 자빠졌어.

혁주도 입가에 침을 닦으며 부스스 눈을 뜬다.

동주 얌마, 도완득. 싸움 자신 있다고 야자 빼줬더니 얻어터지고 와.


야, 혁주하고 완득이. 내가 꼴 보기 싫어 죽겠지?
니들은 고3때도 내가 무조건 담임이다. 새끼들아.

순간, 들리는 노크 소리. 일제히 문 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잠시 후, 학생부장이 문


을 열고 그 뒤로 한 남자가 보인다.

학생부장 이 선생님.

동주가 학생부장을 쳐다보면, 학생부장이 이럴 줄 알았다 라는 표정으로 뒤의 남자


를 돌아본다.

-53-
남자 이동주 선생님이시죠?
동주 그런데요.
남자 잠깐 나와 주시죠.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는 동주.

남자 학생들 있는데 좀 나와 주시죠.


동주 학생들 있는 게 보이면 지금 수업중인 거 아시겠네요.
남자 네?
동주 문 닫으세요.

학생부장이 남자의 표정을 살핀다.

동주 자, 어디까지 했지? 그러니까 이 사회보장제도라는 건......

남자가 동주와 학생들의 시선을 살피더니 문을 닫는다.

#57. 운동장(낮)

승용차 앞에 서있는 동주와 형사.

동주 신고한 사람이 누굽니까?


형사 서에 가서 얘기 하시죠.
동주 이상준씨죠?
형사 타시죠.
동주 아, 영감. 진짜.

cut to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있는 동주의 모습이 보인다.

#58. 체육관(밤)

땀으로 흠벅 젖은 채 샌드백을 치고 있는 완득에게 다가가는 관장.

-54-
관장 요 며칠 핫산이 안 나오네?
완득 핫산 형이요?
관장 한 번도 운동 빠진 일이 없는 녀석인데...... 이상하네.
너 킥 한 번 보자.

완득이 미들킥으로 샌드백을 친다.

관장 디딤발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릎을 깊이 넣고 이렇게!

관장의 미들킥에 샌드백이 강하게 울린다. 관장을 따라 샌드백을 차는 완득. 그 모


습을 지켜보고 있는 관장.

#59. 교실(낮)

혁주 야, 똥주. 외국인 노동자들 먹여주고 재워줘서 잡혀간 거래.


완득 그게 왜? 그게 죄야?
완득 그 외국인들이 불법체류자니까 문제가 된다는데. 똥주, 공산당인가?
(소리 낮춰) 아무튼 남부서 유치장에 잡혀 있데.
완득 뭐? 누가 그래?
혁주 좀 전에 교무실 지나다가 들었어.

#60. 복도/교실(낮)

하교를 하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정윤하를 불러 세우는 완득.

완득 정윤하, 나 좀 잠깐 보자.
정윤하 왜?
완득 여기는 좀 그렇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완득. 따라 들어가는 정윤하.

완득 똥주한테 같이 좀 가자.

-55-
정윤하 담임? 어딨는데?
완득 경찰서.
정윤하 어머, 왜?
완득 나도 몰라.
정윤하 근데 거길 우리가 왜 가?
완득 그냥, 토요일이고, 날씨도 좋으니까.
정윤하 너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완득 그렇다 치자.
정윤하 그런데 하필이면 경찰서냐? 좋아, 가자.

#61. 경찰서(낮)

면회실. 동주, 완득, 정윤하가 마주하고 있다. 동주는 아주 지저분한 모습이다.

동주 이게 누구야, 일등하고 꼴찌 아냐!

그 소리에 옆에 있던 경찰관과 눈이 마주치는 완득. 경찰관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간


다. 외면하는 완득.

정윤하 (태연하게) 선생님, 왜 여기 계세요?


동주 경찰이 막 끌고 왔잖아.
정윤하 그러니까 경찰이 왜 끌고 왔냐고요.
동주 나도 몰라. 하여간 금방 나갈 거야.
정윤하 금방 나오는지 어떻게 알아요?
동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빨리 가.
학생들이 이런 곳에 오래 있으면 안 좋아.
정윤하 네.

윤하가 일어서다가 동주를 쳐다본다.

윤하 근데, 선생님. 이 사람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동주 뭐가?
윤하 이런데 잡혀왔다고 세수도 못하게 해요? 치사하게.

-56-
윤하가 시선을 돌려서 경찰관을 째려본다. 동주와 시선이 마주치는 경찰관. 헛기침
하는 동주.

동주 얌마! 도완득.
완득 네.
동주 넌 윤하 보디가드냐? 새끼가 가만히 와서 가만히 가네.
완득 .....
동주 사식이라도 좀 넣었냐?
완득 네?
동주 됐다. 새끼야. 제자라는 게 선생이 고생하는데. 가라. 가! 새끼야.

몸을 돌리다가 다시 돌아서는 동주.

동주 얌마, 도완득. 너 교회 사랑방은 한 번 들러봤냐?


완득 아무도 없던데요.
동주 그래? 알았어. 가 봐.

문을 나서는 완득과 윤하를 잠시 보더니 돌아서 들어가는 동주.

#62. 산성길(밤)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완득과 윤하.

완득 요즘은 편지지 안 팔린다고 천원에 엄청 주더라.


윤하 편지지? 왜?

머쓱한 표정의 완득이 말이 없다.

윤하 (씩웃으며) 나한테 편지 적었구나? 맞지? 맞지?


완득 아니, 그게...
윤하 줘 봐, 빨랑. 빨랑. 빨랑. 빨랑!

-57-
완득이 품속에서 편지지 한 장을 꺼낸다. 얼른 낚아채는 윤하.

완득 집에 가서 읽어.
윤하 지금 못 읽게 하면 나 안 읽어.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는 완득. 윤하가 편지지를 펼쳐서 읽는다.

“윤하에게”
“요즘은 내가 보는 모든 게 너랑 닮았다. 구름도 닮았고 꽃도 닮았고 달도 닮았다.
오늘 구름은 쭉 찢어진 게 너의 웃는 모습을 닮아서 나도 입이 쭉 찢어지게 웃었
다.”

완득이 안 되겠다는 듯 일어나서 편지지를 뺏으려고 한다. 요리 조리 피하는 윤하.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완득과 윤하의 실루엣. 마치 그림자극을 연상시킨다. 문뜩 멈
추는 두 그림자. 멀리서 들려오는 대사들.

윤하 너, 내일 뭐해?
완득 뭐? 체육관 가야지.
윤하 나도 갈래.
완득 니가 거길 왜 와?

다시 ‘나 잡아봐라’를 하는 두 그림자.

윤하 나도 갈래.
완득 학원이나 가. 빨리 줘.

두 그림자의 실랑이가 한 동안 보여 진다.

#63. 골목길(밤)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골목길을 오르는 완득. 완득이 어딘가를 올려다본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불 꺼진 동주의 옥탑방이 보인다. 다시 올라가는 완득. 이내, 들려
오는 벨소리. 계속해서 이어진다. 완득이 다가가면, 호정이 대문의 벨을 계속 누르고

-58-
있다.

완득 없어요.

호정이 돌아보는데 술을 한 잔한 얼굴이다.

호정 왜? 글빨이 막혀서 찾아왔는데. 술 한 잔 하면서 뚫어보려고.


완득 잡혀갔어요.
호정 네? 어디요?
완득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호정 네? 그 분 선생님아니에요?
완득 맞아요.
호정 근데 왜?
완득 낮엔 그렇긴 한데 밤엔 뭐하는지 모르니까요.

집으로 올라가는 완득. 의아한 표정의 호정.

#64. 체육관(낮)

완득은 샌드백을 차고 있고 정윤하는 조그만 아령을 들고 끙끙대고 있다.


완득 옆으로 다가오는 관장.

관장 누구냐?
완득 우리 반 애요.
관장 근데 여긴 왜 왔대?
완득 다이어트한대요.
관장 여기가 무슨 헬스클럽이냐?

관장이 완득을 빤히 쳐다본다.

관장 몸 다 풀었냐?

관장을 쳐다보는 완득.

-59-
관장 윤하라고 했냐?
윤하 네.
관장 니가 심판 좀 봐라.

cut to
링 위에는 완득과 관장이 있고 링 밖에는 윤하가 서있다.

윤하 시... 작!

관장의 잽과 킥이 빠르고 정확하게 나온다. 완득은 관장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버거


워 보인다. 가드 위를 향하는 공격에도 중심이 휘청거린다. 완득이 공격을 나가려면
번번이 한발 앞선 관장의 공격 때문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완득) 기회는 온다. 한 방이다. 한 방을 노린다.

잠시의 공방이 있은 후, 완득의 페인트 모션에 주춤하는 관장.

(완득) 왔다!

관장의 옆구리에 미들킥을 넣기 위해 빠르게 회전하는 완득. 하지만 예상 외로 빠


른 움직임을 보이는 관장이 팔꿈치와 무릎으로 미들킥을 방어함과 동시에 무방비상
태로 놓여있는 완득의 왼쪽 다리에 강한 로우킥을 집어넣는다. 철퍼덕 넘어지는 완
득.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허벅지를 부여잡고 다시 쓰러지고 마는 완득. 링에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고 있는데 수건 한 장이 펄럭이며 날아와서 얼굴을 덮는다.
잠시 후, 수건을 걷어내며 다가오는 얼굴. 정윤하다.

정윤하 (팔을 잡으며) 괜찮아?

숨쉬기가 어려운 듯 컥컥거리는 완득.

정윤하 구운 마늘을 먹어야 되는데.


완득 뭐?

-60-
정윤하 추신수 선수는 그거 먹는데.
완득 내가 야구선수냐?
정윤하 야, 나 앞으로 너 매니저 할래.
완득 뭐, 어휴.

코너에서 관장이 글러브와 장비들을 정리하고 있다.

관장 지는 연습부터 하는 거야. 맞아 봐야 맞는 법도, 피하는 법도 알지.

껄껄거리며 링을 내려가는 관장. 반한 모습으로 관장을 말을 듣고 있는 윤하.

윤하 맞어.
관장 내가 공격할 부위만 보지 말고, 상대방 움직임을 봐.
윤하 맞어.

완득이 윤하와 관장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인다.

#65. 완득의 집(밤)

문을 열려는데 아래 쪽에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보인다. 보자기를 풀면 찬합이 들


어있고 그 위에 놓인 쪽지가 보인다. 완득이 쪽지를 열어본다.

완득모(NA) 기다려도 안 와서 그냥 갑니다.


반찬 남기지 말고 먹으세요.

찬합 통을 열면 백반에 맛깔스러운 반찬이 가득이다. 찬합을 다시 덮고는 방 안 구


석에 둔다. 렌지에 냄비를 올려서 불을 켠 후, 라면 하나를 까서 그 옆에 둔다. 물이
끓을 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완득의 눈에 찬합이 자꾸 밟힌다. 벌떡 일어나 렌지의
불을 끄고는 찬합을 다시 푼다. 음식을 먹는 완득.

완득 아... 짜다...

그러면서도 우걱우걱 먹는 완득.

-61-
#66. 주택가(새벽)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거리를 달리는 완득. 그의 등 뒤로 메어진 가방에는 신문 뭉


치가 들어있다. 신문을 하나씩 빼내면서 배달하는 완득. 원투 로우킥, 원투 하이킥
등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완득의 모습이 빠르고 경쾌하다.

#67. 킥복싱 체육관(오후)

완득을 포함한 서너 명의 관원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타닥거리며 바닥을 치는


줄소리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cut to
샌드백을 향해서 날리는 완득의 하이킥이 제법 모양 나온다. 그런 완득을 쳐다보는
관장.

관장 너, 다른 체육관 애랑 스파링 한번 해볼래?

#68. 교실(낮)

문 앞에 서있는 동주. 경찰서보다 한층 지저분한 모습이다.

동주 새끼들, 이게 웬 미친 학습모드야!

순간, 환호성을 지르며 책상을 두드리는 학생들.


성큼성큼 들어와 교탁 앞에 서는 동주.

동주 이놈의 인기는, 싸인 받고 싶은 사람은 야자 시간에 따로 찾아와.


싸인 받은 사람은 야자 하루 면제다.

다시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

동주 시험 얼마 안 남았다. 알아서들 해. 그렇다고 체육이나 음악

-62-
시간에 대놓고 다른 과목 공부하지 말고, 그 선생님들도 졸라 공부
해서 선생 됐으니까. 알았어?
학생들 네.

교실을 나가는 동주.

혁주 (완득에게) 담탱이, 유치장까지 갔다 와놓고,


무슨 빽으로 학교에 복귀했냐? 그리고 저 거지같은 외모는 뭐야?
완득 내가 어떻게 알아?
혁주 옆 집 사는 애가 그것도 몰라?
완득 됐다.
혁주 음, 완득아. 오늘밤은 니네 집에 가서 라면 먹어도 돼?

완득이 혁주를 보며 한숨 쉰다.

완득 화장실이나 갈란다.
혁주 얌마! 완득아. 에이, 그럼.

혁주가 윤하를 쳐다보면 윤하가 앙칼진 얼굴로 쳐다본다.

혁주 나도 화장실이나 갈란다.

#69. 동주의 집(밤)

문 앞에 두부를 들고 서있는 완득부. 그 옆으로 완득과 민구가 보인다.

완득 선생님......

조용하다.

완득 없나 봐요. 그냥 가요.

완득부가 완득을 한 번 쳐다보더니 직접 부른다.

-63-
완득부 선생님! 이 선생님!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나오는 동주. 얼굴에 온통 비누 거품이다.

#70. 동주의 방(밤)

동주 김치가 있어야 되는데, 없으니 그냥 먹겠습니다.

커다란 두부를 우걱우걱 먹는 동주. 완득이 동주의 방을 둘러본다. 완득의 집과 별


차이가 없지만 한 쪽 벽면이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다. 민구는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들을 밀어 넣거나 책장 앞 쪽에 있는 사진들을 나란히 정리한다.
완득부는 함께 가져온 오징어와 소주를 꺼낸 후, 동주에게 따른다.

완득부 무슨 일로 선생님이 그런 험한 곳을.


동주 외국인 노동자들 약점 잡아서 부려먹는 고약한 노인네 하나가
저를 신고했거든요.
완득부 왜요?
동주 내가 그 노인네를 신고 했었거든요.
완득부 선생님 계신 곳이 무슨 단체라도.
동주 단체 없어요. 맘 맞는 사람들끼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이번에는 제법 덩치가 있는 곳을 찔렀더니 바로 맞받아치더라
고요. 그나저나 오일장 다니시는 건 좀 어떠세요?
완득부 자리 잡기가 힘들어요. 좀 크다 싶은 장은 조합이 있어서
목 좋은 자리는 알음알음 그 사람들이 다 차지해요.
동주 그놈의 연줄이 시장에도 있었네.
민구 연줄, 요즘 안 팔려, 안 팔려.

동주와 완득부가 민구의 말에 픽 웃는다.

완득 핫산 형은 어떻게 됐나요?
동주 (얼굴이 어두워지며) 핫산? 잡혀서 추방당했다.
완득 왜요?

-64-
동주 일하다 보니 체류기간을 넘겼어. 대부분 그렇게 불법이 되는 거지.
고용주들은 그걸 악용하기도 하고. (혼자말로) 고약한 노인네.
완득 그 사람들하고 계속 있으면, 선생님 또 잡혀가시는 거 아니에요?
동주 외국인 노동자하고 있는 게 불법이냐? 하하하.

한참을 웃는 동주.

완득 그럼 그 교회는 교회를 가장한 외국인 노동자 모임 장소네요.


동주 교회 맞아. 새끼야!
완득 근데 그 교회, 사이비 아니에요?
동주 사이비 아냐, 새끼야!
완득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던데요?
동주 무슨 기도?

사람들이 완득을 가만히 쳐다본다.

완득 (머쓱하게) 저 먼저 가요. 드시고 오세요.

집을 나가는 완득의 뒤에 대고 소리치는 동주.

동주 무슨 기도냐고? 임마! 기도는 열심히! 매일 매일 해야지. 새꺄!

#71. 동주의 집 옥상(밤)

동네를 둘러보는 완득. 야밤의 불빛이 동네를 가득 채우고 있다.

#72. 몽타쥬(낮)

경쾌한 음악소리 아래, 완득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모습이 빠르게 편집되어 보여


진다. 정윤하는 간간히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 샌드백을 치고 있는 완득의 옆에서 코치인양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정윤하.


-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완득.

-65-
- 미트를 대고 있는 정윤하. 망설이는 완득. 빨리 차라는 정윤하.
미들킥을 날리는 완득. 미트와 함께 뒤로 자빠지는 정윤하.
- 줄넘기를 하고 있는 완득.
- 미트를 대고 있는 관장과 호흡을 맞추는 완득.
펑펑하며 들리는 미트 소리가 강하다.
그 위로 어렴풋이 종소리가 울린다.

#73. 학교 교실(낮)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동주. 맞은편으로 학생들이 앉아있고 그 사이에 역시


엎드려서 자고 있는 완득이 보인다. 학생부장이 들어와서 동주에게 다가간다.

학생부장 이 선생. 이 선생.


동주 (부시시 일어나며) 어? 무슨 일이세요?
학생부장 내 수업시간이에요.
동주 아, 그래요.

동주가 일어나서 교실을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칠판을 지우는데 ‘자습’이라고 씌


어져 있다.

#74. 골목길(밤)

골목길을 경쾌하게 뛰어오르는 완득. 문뜩 멈춘다. 완득의 시선을 따라가면 티코가


보인다. 민구는 아무 생각 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그 옆으로 도시락을 든 완득모와
완득부가 서로 노려보고 있다. 말없이 지나치는 두 사람. 완득모가 골목길을 내려오
자, 완득이 한 쪽 코너로 몸을 숨긴다. 완득모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완득.

#75. 체육관(낮)

앙다문 얼굴의 완득.


샌드백에 유독 강하게 전달되는 완득의 다양한 킥과 펀치. 한 동안 보여진다.

#76. 교회(밤)

-66-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완득과 윤하. 윤하가 완득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

정윤하 너 내일 시합인데 괜찮니?


완득 괜찮아.
정윤하 너무 무리했나봐. 눈동자까지 충혈 됐네. 너 나 보이니?

완득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눈을 살피는 정윤하. 완득의 눈에 정윤하의 입술이


보인다. 뽀뽀를 하는 완득. 잠시 가만히 있는 두 사람.

정윤하 야!
완득 왜?
정윤하 뭐 이런 게 다 있어? 니가 내 남자친구야? 너 미쳤어!
완득 나가자. 똥주 나타날지 몰라.
소리 나타났다. 새끼야.

두 사람 놀라서 돌아보면 동주가 서있다.

동주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 선생님한테 똥주야! 니들 딱 붙어서 뭐


했어?
완득 뽀뽀했는데요.
동주 뭐! 형제님들! 형제님들은 왜 남의 교회에서 연애질을 하고
계십니까?
완득 선생님은 여기 무슨 일로......
동주 나 여기 전도사로 있기로 했다. 이 새끼야.
완득 뭐요?
동주 뭘 놀래, 형제님 새끼야. 전도사 첨 봐?
완득 네, 선생님 같은 전도사는 처음 봅니다.
동주 뭐야? 이 새끼야!
완득 여기 교회 맞아요?
동주 맞지, 새끼야. 십자가 안 보여? 그리고 여기 성경책.
새끼가 생각보다 믿음이 좋아.
완득 (뒤로 돌아보며) 무슨 믿음이요, 여기 교회도 아니면서.

-67-
동주 교회다 싶으면 교횐 거지, 교회가 뭐 특별한 데라도 되는 줄 아냐?
윤하야. 너 왜 저런 새끼랑 다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차라리 혁주랑 다녀라!

킥킥거리는 정윤하.

완득 가자!
동주 얌마, 도완득.

완득이 돌아서 동주를 쳐다본다.

#77. 교회마당(밤)

한 쪽에 서 있는 동주와 완득. 한참 떨어진 곳에 윤하가 서성이고 있다.

동주 너, 이 새끼. 윤하랑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된거야!


완득 네?
동주 그러니까! (힐끔 윤하 쪽을 쳐다보더니) 여자는 어떻게 꼬시냐고?

완득이 가만히 동주를 쳐다본다.

#78. 성북동 체육관(낮)

체육관에 서 있는 완득, 관장, 성북동 체육관 관장 그리고 다수의 관원들이 보인다.


현대적인 시설로 잘 꾸며진 체육관이다.

관장 애들 몸 좀 풀어 놨냐?
성북관장 우리 애들이야 늘 풀려 있죠. 도진아, 몸 좀 풀었냐?
도진 예!
관장 쟤야?
성북관장 네.
관장 그럼 바로 할까? (완득에게) 괜찮지?
완득 네

-68-
보호 장구를 착용한 완득과 도진이 링 위에 서있다. 심판을 보기로 한 김사범의 신
호에 시합이 시작된다. 링 주위에 몰려있는 회원들. 공소리와 함께 서서히 상대에게
다가가는 완득과 도진. 잠시의 탐색전 후, 원투스트레이트 로우킥, 원투스트레이트
하이킥. 컴비네이션을 펼친다. 순간적으로 도진의 얼굴에 적중되는 스트레이트성 잽.
휘청하는 도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파고 들어가며 잽과 로우 킥을 무수히
날린다. 하지만 도진은 완득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민첩하게 공격으로 연
결한다.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 속에 라운드가 끝난다. 코너에 앉아있는 완득에게
쉼 호흡을 시키는 관장. 지친 모습이 역력한 완득.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다.

관장 지치기는 저 쪽도 마찬가지다. 괜찮아?


완득 헉, 헉. 관장님.
관장 왜?
완득 3분이, 헉, 헉, 왜 이렇게, 헉, 헉, 길어요?
관장 흐흐흐. 죽지는 않겠네.

2라운드 공이 울린다.

관장 3분이다. 가자!

주먹을 강하게 부딪히며 일어나는 완득. 라운드가 시작되자, 도진의 공격에 초반부
터 밀리기 시작한다. 맞으면 맞을수록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완득. 공격은 무위로 돌
아가고 방어는 되지 않는다. 점점 멍해지는 완득의 오감. 완득의 눈에 뭐라고 소리
지르는 관장의 액션이 보이지만 왠지 느린 화면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도진의 공격
속에 링 밖의 소리는 이미 들리지도 않는다. 무모한 완득의 라이트 훅을 피하며 터
지는 도진의 카운터. 링 위에 대자로 쓰러지는 완득. 깊은 물속으로 잠수한 듯 진공
소리만이 완득의 귓가를 맴돈다. 뭔가 꿈을 꾸는 듯, 아버지와 어머니, 윤하, 민구
삼촌의 얼굴이 일렁거리며 지나간다. 피식 피식 웃는 완득. 이내 동주의 얼굴이 나
타난다. 아예 소리까지 내며 웃는 완득. 정신은 놓은 것처럼 보인다. 짧게 웃다가 짧
게 코를 골고 잤다가 난리다. 헤롱거리는 완득의 얼굴위로 쏟아지는 물. 완득의 시
선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장과 성북관장. 완득의 얼굴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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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관장 골이 꽤 흔들렸네요.
관장 응. 웃다가 자다가. 제대로네.

관장이 완득을 일으켜 코너에 앉힌다.

관장 이 정도면 잘했다. 쟤 고등부 랭킹 3위야.


완득 히히, 3위. 히히.
관장 아직도 골이 제자리를 못 찾았구만.

엉망인 얼굴로 천정을 올려다보는 완득. 정말 속 시원하게 맞은 듯, 크고 통쾌하게


웃는 완득.

#79. 길거리(낮)

한적한 길거리의 벤치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먹고 있는 완득과 관장.

관장 완득아.
완득 네.
관장 체육관, 문 닫을 생각이다.
완득 (관장을 잠시 쳐다보다가) 관장님!
관장 별 신통치도 않은 체육관 문 닫으려고 하니 핫산 오고 너 오더라.
이동주 선생이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고

관장을 쳐다보는 완득.

관장 이선생 말이 너 안에 불덩이를 하나 품고 있는 게 보이는 데, 그거


잘못 뿜으면 여럿 다칠 것 같다고 부탁하더라.
완득 어디로 가시는데요?
관장 알면?
완득 따라가서 운동하게요.
관장 거기서 어떻게 운동을 해.
완득 어딘데요!
관장 마누라가 많이 아프다. 의사가 공기 좋은 데서 지내래서 홍천으로

-70-
간다.
완득 강원도요?
관장 그래. 젊어서 맞고 때린 사람은 난데, 왜 마누라가 아퍼.
전생에 업보가 쌓였나.

잠시 말없이 앉아있는 두 사람.

완득 자주 찾아갈게요.
관장 홍천?
완득 네.

#80. 완득의 집(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완득. 새시문에 열쇠를 꽂으려던 완득이 손을 멈


춘다.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게 보인다. 방 안에선 얼뜻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완득 아버지가 왔다면 티코가 있어야 하는데...... 도둑?

완득이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의 끈을 바짝 조인다. 조용히 새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방문을 잡고 쉼 호흡을 한 후, 문을 빠르게 열며 방으로 들어
간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서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한 걸음 다가간 후, 무릎을 깊
이 넣고 정확하게 정강이로 옆구리를 가격하는 완득. 푹 꼬꾸라지는 어둠속의 인물.
스위치를 켠다. 깜짝 놀라는 완득의 얼굴. 동주다. 옆구리를 잡은 채 뒹굴고 있다.

완득 헉!
동주 너, 이...... 싸지가 없는 새끼......감히 학생이......선, 선생을......

#81. 개천길(밤)

동주를 업고 개천길을 다급하게 뛰어가는 완득. 교회 옆을 지나가다 잠시 멈춘다.

완득 하나님, 헉헉! 제 기도를 이런 식으로 들어주나요?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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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리는 완득. 그 앞으로 고양이가 한 마리 휙 지나간다.

완득 비켜! 개새끼야!
동주 (힘겹게) 고양이야. 이....새끼야.

동주의 말소리에 멈춰서는 완득. 고개를 돌려 동주를 쳐다보는 완득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동주 이... 새끼... 무슨 기도 한 지... 알았다... 이 새끼...매일 매일!


열심히! 기도한 모양이네. 이 새끼...
완득 (울면서) 이, 씨. 좆나게 무겁네. 씨.
동주 나는 좆나게 아프다... 이 새끼야...

다시 개천길을 뛰어가는 완득. 바람에 눈물이 옆으로 흩날린다.

#82. 교실(낮)

학생부장이 교실 앞에 서있다.

학생부장 담임선생 곧 돌아오실 거다. 자리에 없다고 야자 빠지거나


하지 말고 착실히 수업하도록. 얌마, 도완득.
완득 네?
학생부장 알겠지?
완득 네.

학생부장이 교실을 나간다.

혁주 담탱이 또 잡혀갔냐?
완득 뼈에 금이 가서 입원했어.
혁주 왜?
완득 킥복싱하다가.
혁주 하다하다 이제 별짓을 다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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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병원(밤)

완득이 조심스레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주 옆에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문을 닫으려는 완득.

동주 얌마, 도완득! 와놓고 어디 가?


완득 손님이 계셔서요.
동주 옆에 앉아 있어.

완득이 동주 옆, 빈 침대에 걸터앉는다.

동주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게......


동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그러는 거에요.
동주부 그래서 제 아비 공장을 신고했냐?
동주 외국인 노동자들 험하게 대하셨잖아요.
동주부 나는 그 사람들, 합법적으로 대했다.
동주 합법적으로 법을 피해서 대했겠죠.
동주부 이놈, 꼴같잖은 선생질이나 똑바로 할 일이지. 뭔 놈에, 외국인 노동
자, 외국인 노동자. 노래를 부르고 다니냐? 왜? 외국인 신부라도 하
나 데려오려고 그러냐! 너 앞가림이나 잘 해! 이놈아! 약해 빠진 놈
같으니라고!

동주가 완득을 잠시 쳐다본다.

동주 베트남에서 온 티로 누나 기억하시죠? 아 왜, 필통 판금하다가 절단


기에 손가락 잘려서 귀국시켰던. 저요, 그때부터 철로 된 필통 안
썼어요.
동주부 자원봉사도 아니고, 노동이 안 되는 사람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순 없
었다.
동주 하하하. 치료는 하고 보내셨어야죠. 안 그래요? 잘린 손가락 세 개
가 손등까지 썩도록 부려먹다 보냈잖아요. 도대체 외국인 노동자한
테만 왜 그러세요? 아! 맞다. 아버지는 원래 약자한테만 무지 강한
분이셨죠. 그걸 자꾸 잊네, 내가.

-73-
동주부 정 기사, 정 기사!

동주부가 흥분된 표정으로 문 쪽을 쳐다본다.

동주부 천하의 못된 놈!

동주부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양복 차림의 정기


사와 완득이 어리둥절하게 동주부를 쳐다본다. 문 앞에 서있는 완득을 보고 그 옆
에 멈추는 동주부.

동주부 니가 찬 놈이냐?
완득 죄송합니다.
동주부 아주 뒈지도록 찼어야지 이놈아!

병실 문을 나서는 동주부. 휠체어를 끌고 따르다가 이내 접어서 들고 나가는 정기


사. 동주가 힐끗 완득을 쳐다본다.

동주 아이고 나 죽네. 너 이 새끼, 퇴원하면 봐.


완득 아주 살짝 금 갔대요. 아주 살짝. 아직 퇴원 안 했냐고 물어보던데
요?
동주 누가 그래? 나 죽을지도 몰라, 새끼야.
완득 그러게 왜 남의 집에 계세요. 열쇠는 어디서 나셨어요? 그리고 불이
라도 켜고 계시죠.
동주 니가 불 켤 때 스위치 거기 있는 줄 알았다. 새끼야.
그리고 니 아버님이 너한테 일 생기면 봐달라고 열쇠 하나 줬고.
완득 나한테 무슨 일이 있다고 왔어요, 그럼?
동주 니가 아니라 나한테 있어서 갔지.
아까 그 영감이 밤에 갑자기 들이닥쳤잖아.
완득 부잔가 봐요.
동주 부자지.
완득 선생님도 부자겠네요.
동주 왜, 부자라 싫으냐?
완득 저 원래 선생님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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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알아, 새끼야.
완득 근데 왜 가난한 척하고 다녔어요?
동주 새끼야, 척이 아니라 진짜야. 옥탑 방에 사는 거 보면 몰라?
완득 아닌 건 아닌 거예요! 하도 가난해서 다른 나라로 시집온 어머니
있어봤어요? 장애인 아버지 때문에 놀림 받아봤어요? 배고파서
쪽 팔린대도 참고 수급품 받아가 봤어요?
동주 새끼가 주둥이로 킥복싱을 배웠나? 니 아버지, 사고로 키 안 크신
게 니 아버지 잘못이냐? 그리고 니 아버지가 너한테 금칠은 못줬어
도 굶기지는 않았잖아? 이 새끼야.
완득 제가 재미있으시죠?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불쌍한 놈이 있을까하고
재미 있으신 거죠!
동주 이 새끼가? 그래, 이 새끼야. 재밌다. 이 새끼야. 아주 재밌어 환장
하겠다. 이 새끼야. 문병 오면서 복숭아 하나 안 사오고......싸가지
없는 새끼.

침대에서 일어나는 완득.

동주 야, 어디 가.

대답이 없이 가방을 챙기는 완득.

동주 운동하러 가냐? 데이트나 해, 새끼야. 만날 얻어터지면서 운동은......

그리고, 너. 이 새끼야. 어머님한테 잘 해드려.


음식 해 오시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어?
완득 선생님 아버지. 많은 늙으셨던데 좀 잘하시지 그래요.
동주 닥쳐, 이 새끼야. 이 새끼, 주둥이로 킥복싱 한 거 맞네. 갈려면 가.
나도 졸려. 새끼야.

획 돌아서 나가는 완득.

#84. 골목길 or 옥탑방 앞 평상(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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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골목길을 오르는 완득. 어딘가를 쳐다보며 멈추는 완득. 완득의 시선을 따라
가면 완득모가 도시락통을 들고 내려오고 있다.

완득모 안 씻어놔도 되는데 왜 씻었어요.


완득 잘 먹었습니다. 힘들게 매번 음식 안 해주셔도 되요.
완득모 얼굴이?
완득 괜찮아요.
완득모 네... 운동한다면서요. 힘들텐데.
완득 그렇죠. 뭐.

잠시 말이 없는 두 사람.

완득모 갈게요.

완득모가 완득을 지나쳐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완득.

완득 저기요.

완득모가 돌아본다.

완득 아버지 한 번 만나보실래요?

#85. 교무실(낮)

몇 몇의 선생님들이 앉아있는 조용한 교무실 분위기. 완득이 동주 앞에 서있다.

동주 그래서, 내일 수업을 빼달라고?


완득 네.
동주 일요일 날 가면 되잖아. 새끼야.
완득 어머니, 일하시는 날이라서요.
동주 너, 잘 판단 한거야?
완득 네?
동주 두 분, 따로 사시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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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 ... 그래도 가 보려고요.
동주 부딪혀 보겠다? 좋아. (다짐받듯) 잘 해라!
완득 네.
동주 그럼 나한테 뭐 해줄래?
완득 네?
동주 수업 빼주면 뭐 해줄거냐고. 이 새끼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아, 맞다. 너 요즘 신문 돌린다며?
완득 네.
동주 잘 됐다. 요즘 볼 만한 신문이 없어. 돈 주고 보는 건 아까우니까.
하나씩 쌔벼 와.
완득 인터넷으로 보세요, 그냥.
동주 새끼야 너는 똥 쌀 때 컴퓨터 들고 가냐?
완득 노트북을 사든가요.
동주 니가 사줘라 노트북.

어이없는 표정의 완득. 동주가 신문을 챙겨들고 일어나다가 문뜩 멈추더니 옆구리


를 부여잡는다.

동주 아! 아야, 이 씨.

완득을 째려보며 교무실을 나가는 동주.

#86. 도로(낮)

한적한 바닷가 길을 달리고 있는 시외버스. 맨 뒷자리에 창가에 완득이 앉아있고


그 대각선 앞자리에 완득모가 앉아있다. 완득모가 힐끔 뒤를 돌아보면 완득은 창밖
만 응시하고 있다.

#87. 오일장 내외(낮)

완득과 완득모가 어딘가를 올려다보면 ‘OO오일장’이라는 큰 간판이 보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그 사이로 들어가는 두 사람. 학교 운동장 사이즈의 넓은 공
간. 수많은 천막과 장사꾼들이 보이고 그 위로 트로트 음악과 상인들의 외침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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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인다.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는 두 사람. 어딘가 ‘밀양머슴아리랑’이 들려온다. 두
사람이 시선을 돌리면 완득부와 민구가 춤을 추며 물건을 팔고 있다. 삐에로 분장
에 우스꽝스런 옷을 입은 두 사람. 춤추는 사이사이 완득부의 외침이 들려온다.

- 반들반들 마사지용 채칼! 변강쇠 깔창!


- 집나간 남편 돌아옵니다. 마사지 채칼!
- 고기반찬 올라옵니다. 변강쇠 깔창!

완득은 어색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고 완득모는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소리를 지르며 호객을 하던 완득부의 시선이 완득과 완득모에게서 멈춘다.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완득부와 완득모.

#88. 숙소 앞(밤)

완득부와 민구의 숙소다. 민박집 형식으로 나란히 방이 있고 방마다 앞쪽으로 조그


만 덧마루가 붙어있다. 가운데 마당에는 공용 수돗가가 만들어져 있고 그 위로 빨
랫줄에는 완득부와 민구의 빨래가 나란히 널려있다. 덧마루에는 완득과 민구가 앉
아있다.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의 민구. 완득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완득
의 시선을 따라가면 낡은 분홍색 단화가 보인다. 이때,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완득모) 아무리 가난해도 자랑스러운 남편이었으면 했어요.

#89. 방안(밤)

완득부와 완득모가 마주 앉아있다.

완득부 그래서 보내줬잖아.


완득모 내가 떠났어요.
완득부 그래, 떠났지.
완득모 이상한 춤이나 추면서 남한테 무시당하며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여자 저 여자 아무나 손잡고 춤추고! 아무나 당신을
만지고!
완득부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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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모 완득이한테는 미안했지만, 당신한텐 미안하지 않았어요.
완득부 나도 그래. 그래서 핏덩이 같은 아들을 두고 떠났나?
그러고선 지금 나타나는 이유가 뭐야?
완득모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까요.
완득부 낳기만 한다고 다 엄만가?
완득모 당신도 제대로 키운 거 같지 않은데요.
완득부 뭐야?
완득모 어린 애가 혼자 밥먹고 설겆이하고 빨래하고! 당신이 잘 키울 수
있다면서요!
완득부 왜 이래!
완득모 가끔 와서 용돈 주고 쌀독 채워놓으면 다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당신이 싫었어도 끝까지 옆에 있었을 거라고요!

#90. 숙소 앞(밤)

벌컥 문이 열리며 완득모가 나온다. 마루에서 일어나는 완득과 민구. 완득모가 분홍


색 단화를 신고는 옆으로 걸어가서 선다.

완득모 (돌아선 채로) 배고프죠? 밥을, 밥을 해야 되는데.


완득 한국에 밥하러 오셨어요?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 보이는 완득. 잠시의 시간이 흐른다. 완득이 열려진 문틈


을 바라보면 완득부가 쳐다보고 있다. 잠시 쳐다보던 완득부가 시선을 내리더니 문
을 천천히 닫는다.

완득 (완득모에게) 따라오세요.

앞장서 걸어가는 완득을 잠시 쳐다보더니 뒤를 따르는 완득모. 민구가 두 사람과


방 문 사이에서 왔다갔다 망설이더니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다.

#91. 재래시장(밤)

시장을 걸어가는 두 사람. 그 앞 쪽으로 보이는 신발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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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 들어오세요.

입구에서 멈칫거리는 완득모. 주인이 두 사람 끼어든다.

주인 그래, 얼른 들어 와. 골라 봐. 많아.
완득 들어오시라고요.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완득모.

완득 신발 몇 신어요?
완득모 난 괜찮아요.
완득 몇 신냐고요.
주인 240은 되겠네.
완득 그럼 240짜리 구두 보여주세요. 굽 좀 있는 걸로요.
저렇게 납작한 거 말고.
주인 (구두를 챙기며) 여기서 골라 봐. 응? 이거? 이거?
한 번 신어 봐. 어서.

완득이 작은 리본이 달린 검은 구두를 든다.

완득 신어보세요.

머뭇거리는 완득모.

주인 사준다고 할 때 신어. 좋은 걸로 골랐네. 근데 둘이 무슨 사이야?

당황한 완득모가 얼른 구두를 신는다.

주인 꼭 맞네.

다시 신발을 벗는 완득모.

-80-
완득 그냥 신고 가세요.

다시 신발을 신는 완득모.

완득 얼마에요?
주인 삼만 오 천 원인데 삼만 삼 천 원만 내.

완득이 삼만 오천원을 내고 가게를 나간다. 가게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는 완득.


잠시 후, 완득모가 나오는데 손에 이천 원이 들려있다. 완득에게 내밀어지는 돈.
잠시 쳐다보더니 돈을 받아드는 완득. 그 뒤에서 두 사람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주인이 보인다.

주인 아니, 무슨 사인데 이 양반이 이렇게 쩔쩔매?


완득모 (난처한 듯) 그냥......
완득 어머니요. 제 어머니.

길을 걸어가는 완득과 완득모. 그들을 쳐다보는 주인.

#92. 시외버스 정류장(밤)

벤치에 앉아있는 완득모. 완득모의 무릎 위에는 검정색 구두가 올려져있고 발에는


분홍색 단화가 신겨져 있다. 고개를 드는 어머니의 턱이 파르르 떨린다. 턱까지 흘
러내린 눈물이 덜렁거리다가 검정색 구두 위로 떨어진다. 옷소매로 구두 위에 떨어
진 눈물을 닦아내는 완득모. 잠시 후, 완득이 버스표를 들고 다가와서 옆에 앉는다.

완득모 고마워요......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완득 음식이 좀 짜요. 저 아버지처럼 짜게 안 먹어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는 완득모.

-81-
완득 그리고 다음에는 존댓말 하지 마세요.
완득모 와... 완득아... 이름을...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어요.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완득모.

완득모 부탁이 있는데...한번 안아보고 싶어요.

머뭇거리던 완득이 일어선다. 따라 일어서는 완득모. 완득이 다가가서 팔을 벌린다.


안겨오는 완득모. 완득의 긴 팔이 조그만 완득모의 몸을 포근히 감싼다. 완득의 눈
에서 쪼르륵 흐르는 눈물 한 방울.

#93. 동주 집 옥상(밤)

옥상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주. 불 꺼진 완득의 옥탑방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담배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94. 방안(밤)

상 위에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올려져있고 완득부와 민구가 그 음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완득부는 간간히 소주를 마신다.

민구 맛있다, 맛있다.
완득부 그래? 맛있어?

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민구 근데, 좀, 짜다, 짜다.


완득부 하하하.
민구 좋다, 좋다.
완득부 아주머니가 좋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민구.

-82-
민구 완득이도 엄마 있으면 좋다. 엄마 좋다, 엄마 좋다.

소주를 한잔 마시는 완득부.

#95. 산성길 - OMIT

윤하와 완득이 초콜릿과 음료수를 주며 데이트하는 장면.

#96. 동주 집 옥상(밤)

옥탑방 문을 열려다가 멈추는 동주. 돌아서서 완득의 옥탑방을 가만히 쳐다본다. 잠


시 후,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97. 성남식당 외부(낮)

평범해 보이는 식당. 그 앞으로 주차되어있는 티코. 티코의 내부와 외부는 온통 짐


으로 가득하다.

#98. 성남식당 내부(낮)

꽤 널찍해 보이는 홀에 십 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한 쪽 벽면으로는 서 너 개


의 홀이 자리하고 있다. 띄엄띄엄 앉아있는 손님들. 그 사이에 앉아있는 완득부와
민구. 민구는 헤헤거리며 음식을 먹고 있고 그 맞은편에 완득부가 앉아있다. 계산대
에 모여 있던 두 명의 종업원이 완득부와 민구를 쳐다보며 뭔가 수군거린다.

종업원1 (조심스럽게) 야, 야. 바보하고 곱추지? 키도 되게 작네.


난쟁인가?
종업원2 아닌 것 같은데? 멀쩡하잖아. 좀 작기는 하지만.
종업원1 좀 작어? 많이 작구만.
종업원2 하긴, 의자에 앉으니 다리가 안 닿네.

-83-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완득모. 배달을 다녀왔는지 머리에 큰 쟁반을 이고 있
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돌리는데 완득부와 민구가 보인다. 가만히 쳐다보는
완득모. 완득모에게 다가가는 종업원들. 완득모에게 완득부를 손짓으로 가르킨다. 어
림짐작한 키높이를 맞추며 킥킥거린다. 완득부와 민구를 보던 완득모의 시선이 어
딘가로 향한다. 완득모의 시선을 따라가면 늘 완득에게 가져가던 찬합보자기가 보
인다. 컷되면, 테이블에 놓여지는 찬합 한 단. 그 속에 가득 채워진 맛깔스러운 음식
들. 완득부가 올려다보면 완득모가 보인다. 민구는 완득모를 쳐다보며 깜짝 놀란 듯
‘어?’하며 소리치다가 완득부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급하게 음식만 먹는다. 완득모가
잔에 물을 따라서 완득부의 옆에 둔다. 잠시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완득모가
다시 주방 쪽으로 움직인다. 완득모에게 모여드는 종업원들.

종업원1 뭔 얘기했어?
종업원2 아는 사람이야?
완득모 (필리핀어) 내 남편. (한국어) 내 남편이에요.

놀란 표정의 종업원 1, 2. 여전히 음식을 먹고 있는 완득부와 민구의 모습이 잠시


보인다.

#99. 교실(낮)

동주 이번 방학 끝나면 이제 고3이야. 승부 갈렸다고. 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공부를 해두던가. 이제 와서 암만 공부해도 니들 대학
은 다 정해 졌어. 그러니까 이번 방학 때 실컷 놀아. 알았어? 그리
고, 도완득, 혁주. 내년에도 내가 담임한다고 했지? 니들은 반 편성
벌써 끝났어. 3학교 3반이다. 당연히 담임은 나고 새끼들아. 그리고
완득이! 아버님 춤은 내가 전수받기로 했다. 괜히 가업 물려받을 생
각 하지 말고 전단지나 착실히 돌려. 이상.
학생들 감사합니다!

동주가 교실을 나가자, 우르르 일어나는 학생들.

혁주 야, 니네 아빠 요즘에는 담탱이랑 카바레 다니냐?


완득 너 또 손가락 부러지고 싶어?

-84-
입이 쏙 들어가는 혁주.

#100. 재래시장(낮)

시장을 걸어가고 있는 완득과 완득모. 가게 앞에 서는 두 사람.

완득모 이 폐닭은 얼마에요?


주인 세 마리 오 천 원이요.
완득모 주세요. 그거하고 돼지 목살도 좀 주세요.
완득 그렇게 많이 살 필요 없잖아요. 그냥 닭으로 사요. 질긴데.
완득모 싸서 산 게 아니야. 아버지가 이 닭을 좋아하셔. 몰랐니?

그런 완득모를 가만히 쳐다보는 완득.

#101. 완득의 집(밤)

완득의 집 안. 상 위에 삼계탕, 제육볶음 그리고 각종 밑반찬이 푸짐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 위로 여러 사람의 손이 들어와서 백숙을 집어간다. 화면 넓어지면 동주, 완
득가족, 호정, 아저씨가 둘러앉아서 음식을 먹는다. 백숙의 다리를 베어무는 아저씨.

아저씨 이런 씨불, 이게 뭐야, 이게 고기야 타이어야?


어디서 맹수들이나 먹는 고기를.
너희들, 나 골탕 먹이려고 불렀지?
동주 아니, 무슨 고기가 씹을수록 더 질겨. 이 고기 정체가 뭐예요?
완득부 폐닭입니다. 노계요. 씹는 맛도 좋고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완득부가 능숙하게 살점을 뚝 떼어내서 씹어 먹는다.

아저씨 이거, 육이오 동란 때도 안 먹던 고기를 여기서 먹네. 씨불!


호정 오빠! 그 입!

호정이 철사장 자세를 취하자 입이 쑥 들어가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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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보니까 앞집의 위계질서는 확실해 보이네요.

헛기침을 하는 아저씨. 동주가 아저씨를 힐끔 보더니 술을 한잔 따른다. 아저씨가


술을 받으며 민구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는 민구.

민구 난밍구, 난밍구, 난밍구.


아저씨 난닝구?
완득 (끼어들며) 아뇨, 남민구요. 제 삼촌이에요.
아저씨 (완득모를 보며) 그럼 이분은......
완득 제 어머니십니다.
아저씨 완득이가 어머니를 닮아 인물이 좋구만. 근데 저쪽 사람 같네?
완득 필리핀에서 오셨어요.
아저씨 그랬구만.
동주 완득이 아버님. 전에 제가 말씀 드렸던 거 생각 좀 해보셨어요?
완득부 아, 네. 저야 좋은데 제가 가진 게 영 없다보니...
동주 아, 그럼 됐습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놀란 눈으로 동주를 쳐다보는 완득.

동주 뭘 그렇게 봐. 새끼야. 아버님하고 예술 생활 좀 하겠다는데.


완득부 댄스 교습을 해 볼 생각이다.
완득 댄스 교습요? 어디서요?
동주 어디긴 어디야? 교회지.
완득 교회에서 그렇게 해줘요?
동주 해주긴 뭘 해줘. 내 껀데.
완득 네? 그 교회가 선생님 꺼라고요?
동주 전 재산 털어 넣은 곳이야. 새끼야.
완득 (어이가 없는) 그럼 거기 교회 아니네요.
동주 교회 맞아. 십자가 있는 거 보면 몰라?
아저씨 아니, 둘이 사업 얘기 할 거면서 난 왜 불렀어?
동주 아, 잘 됐다. 이번에 다문화 교실을 오픈하는데. 거기 댄스수업이
있어요. 운동도 좀 할겸 당신 거기 등록하쇼. 반값으로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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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게.
아저씨 (술잔을 들며) 됐네. 이 사람아.
동주 자, 자. 다 같이 한잔 합시다들!

술잔을 드는 사람들.

cut to
춤판이 벌어졌다. 호정은 한 쪽 구석에서 편지지 하나를 들고 읽고 있다.

동주(NA) 요즘은 내가 보는 모든 게 호정씨랑 닮았습니다.


구름도 닮았고 꽃도 닮았고 달도 닮았습니다.

픽 웃는 호정.

동주(NA) 오늘 구름은 쭉 찢어진 게 호정씨의 웃는 모습을 닮아서


나도 입이 쭉 찢어지게 웃었습니다.

신나게 춤을 추는 동주의 모습을 보며 씩 웃던 호정이 춤판에 합류해서 철사장 춤


을 선보인다. 밝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동안 보여진다.

#102. 교회(낮)

넓은 공간을 바라보며 서있는 동주와 완득부. 몇 몇의 기술자들이 인테리어에 한창


이다. 흐뭇한 모습의 동주와 완득부.

#103. 주택가 여러 곳(새벽)

동네 어디선가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며 신문을 배달하


는 완득의 몇 컷. 신문과 함께 배달되어지는 전단지. ‘신(神)나는 다문화교실’

#104. 교회(오후)

교회의 간판이 있어야 되는 자리에 ‘다문화교실’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한 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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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붙어있는 플랜카드에는 춤, 한국 전통 음식, 국어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소
개되어있다. 완득이 간판을 잠시 올려다본다.

(완득) 오늘이 오픈 날이다.

다시 골목을 걸어가는 완득. 골목에는 온통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 쪽 구석에 쪼그


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앞집아저씨. 그 옆에서 구경하는 꼬마 아이.

(완득) 앞집아저씨의 직업은 화가였다.

아저씨를 지나쳐서 교회로 들어가는 완득. 교회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완득) 꽤 많은 분들이 오신 모양이다.

머리를 내밀어 창문 안을 들려다보는 완득.


완득부가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완득) 아버지는 댄스 수업의 이론을 맡으시고,

그 옆으로 직접 시범을 보이는 민구의 모습이 보인다.

(완득) 민구 삼촌이 실습을 맡았다.

다른 한 쪽에는 떡을 나눠주는 완득모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으로 완득모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는 윤하의 모습도 보인다.

(완득) 어머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 요리법을 가르치신단다.


윤하는 이 곳 다문화교실의 매니저를 맡겠단다.

다시 수강생들을 보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앉아있는 동주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


앉은 호정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웃음꽃이 폈다.

(완득) 호정 누나는 한글교육을 맡았고 똥주는, 호정누나와의 수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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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았다.

다시 한 번 전체 전경을 훑어보고 있는 완득.

(완득)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어머지가 한 집에서 살 것 같단다.


집에 어머니란 존재가 있는 모습,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밝고 활기찬 교실 안의 모습이 한 동안 보여지다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105. 완득의 동네 (새벽)

완득의 동네 전경이 몇 컷 보인다. 그 그림 위로 흐르는 완득의 나레이션.

(완득)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


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106. 완득의 집-(새벽)

완득의 책상 위, 벽으로 카메라가 다가가면 몇 장의 사진이 보이고 그 프레임 안으


로 완득이 들어온다. 완득, 완득부, 완득모, 민구가 같이 앉아있는 가족사진이 보이
고 그 옆으로 완득모의 필리핀 대가족 사진이 붙어 있다.

(완득)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머니를 만났고 아버지를 느끼게


됐고 가족을 알게 됐다.

집 밖, 옥상으로 나가는 완득. 새벽 불빛 아래 마을을 내려다본다.

(완득) 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빽 생긴 것 같다. 이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다가 힘들면.
완득 (큰 소리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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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외침이 고지대 주택가를 메아리치며 울린다. 잠시 후, 맞은 편 동주의 집
새시 문이 열리며 동주가 나온다.

동주 얌마! 도완득! 새벽부터 왜 지랄이야!


호박죽 있지? 그거나 하나 던져, 이 새끼야!
아저씨(소리) 새벽 다섯 시다! 이 씨불놈들아!

동주와 완득이 앞집아저씨의 집을 쳐다본다. 이내 시선이 마주치며 웃는 두 사람.

#107. 언덕(새벽)

언덕위에서 스텝을 밟으며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완득. 스카이라인으로 보이는


완득의 모습이 경쾌하다. 잠시 후, 울리는 완득의 핸드폰 문자 전송음. 완득이 핸드
폰을 열어보면 완득모에게서 온 문자다.

‘오늘 대회 출전하는 날이지? 몸조심해서 잘하길 바란다. 난 아빠하고 전주 오일장


에 있다. 내일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 우리 아들 화이팅!’

다시 핸드폰을 품속으로 넣고 쉐도우 복싱을 하는 완득. 빠르고 큰 동작들이 연속


으로 보여진다. 멋지게 올려지는 하이킥에서 컷되면, 화면을 가득채우는 완득의 얼
굴. 씩 웃는다.

화면 한 쪽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그 옆으로 보여지는 사진들.

- 트렁크를 입은 채 트로피를 들고 있는 완득. 그 좌우로 완득부, 완득모, 민구가 서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사람.
- 완득의 같은 반 학생들과 찍은 단체사진.
- 수학여행 중 동주가 학생들과 찍은 밝고 재미난 사진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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