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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관용의 문제

1. 이주의 역사
한 인간의 삶에서 배경이 전부인 사회는 다원성이 인정되기 어렵고 관용과 변화가 부정되는 사회이다. 16
세기 이전까지 하나의 신만 인정하고 가톨릭의 교리 해석만 허용했던 서구 사회는 개인의 선택이 거의 불
가능한 배경만 있는 사회였다. 전경밖에 없는 사회, 배경이 없는 사회는 개인의 결정에 따라 결정될 수 있
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지침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서구의 근대는 배경
중심의 사회에서 배경과 전경의 관계에 큰 변화를 겪는 시기이다. 근대화란 전경과 배경의 조정을 통해 다
원성이 창출되는 사회이다. 종교가 배경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서구 사회에서 관용이 종교의 영역에서 제일
먼저 대두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영토적 동일성과 인종, 혹은 민족에 근거해서 출발했던 근대 국가는 전쟁의 위험성과 안보를 위해 ‘이주’
라는 탈출구를 선택했다. 서구 사회의 이주의 역사는 ‘아메리카의 대륙의 발견’이라는 오류로부터 시작된
유럽인들의 신대륙으로의 이주, 이러한 제국주의적 이주로부터 180도 방향을 바꾼 식민지 영토로부터 유
럽에로의 이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첫 번째 유형의 이주는 15세기 말 콜럼부스로 시작된, 그러나 사실
상 침탈에 불과한 식민지로 향한 유럽인의 이주로부터 시작해서 유럽,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세 대륙
을 연결하는 노예무역을 통한 강제 이주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자신의 문화를 유포하고 계몽
하는 엘리트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유행의 시대, 55) 이 시기 유럽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가장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문화’이다. 문화의 어원인 ‘culture’는 ‘농업agriculture’이라는 용어에서
드러나듯이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경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문화’는 경작에 내
포된 물질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영혼의 경작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문화‘에는 “영혼을 경작할 임
무를 맡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교육자와 경작 대상인 다수의 구분”(유행의 시대, 18)과 차이가 전제되어
있다. 절대왕정 시대에 평민을 대상으로 누렸던 군주나 귀족의 우월성은 이주를 통해 신대륙에 도착한 백
인의 우월성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의 침탈’로부터 시작된 유럽인들의 우월성은 시민의 안전과
부의 확장을 위해 군대를 만들고,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문명을 확장하는 계몽2)의 과정, 그들
의 종교를 강제하는 구원의 과정으로 오해되었다.
두 번째 이주는 식민지 토착민들의 유럽에로의 이주로, 전 단계의 이주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
었다. 이러한 이주의 역사적 변화로 인해, 문화에 대한 다원주의적 접근법과 더불어 종교적 관용에 대한
논의가 국민국가 안으로 수용되었다. 국민국가Etat-nation 형성 초기에 종교적 갈등을 배경으로 등장한
관용 개념은 한 국가 내에서 혹은 다양성이 확장된 세계에서 새로운 윤리적 가치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노
동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진행된 역 이주의 과정에서 소수자들의 공동체는 민족, 인종, 문화의 영역에
서 철저하게 소수자였으며, “국가, 국민, 영토의 삼위일체”(유행의 시대, 105)에 따라 강력한 동화의 대상
이었다. 동화의 목적은 “‘타자’에게서 그들의 ‘타자성’을 벗겨내어, 그들이 다른 국민과 구별되지 않게 하
고 그들의 특수성을 국가 정체성이라는 통일된 혼합물 속에 포함하고 녹이고 소화시키는 것이었다.”(유행
의 시대, 110)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혼합물 안으로 녹아들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은 분리될 수밖에 없
다. 따라서 종교적 관용으로부터 시작된 근대 이후의 관용은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실행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자신의 타자성을 버리고 국가 정체성 안으로 융해된 개인 혹은 공동체는 이미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을 포기한 것이므로 더 이상 실질적인 관용의 대상이 아니며, 혼합물 속에 융해되지 않은 공동체들은 국가
정체성에 융해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분리되거나 제거될 이질적인 존재들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 관용
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포기하고 공교육의 장을 통해 동화되기로 한 공동체
의 구성원들은 소수자를 위한 특별한 교육적, 문화적 혹은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1) 바우만, 유행의 시대


2) 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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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완전히 그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도시의 변두리에 그들만의 장소를
점유하고, 변형되긴 했지만 그들 고향의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공동체 내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 문화적 위치는 여전히 주변부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주류 사회의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
유로울 수 없었다. 따라서 오히려 동화주의 정책이 강화될수록 그들의 문화와 종교적 차이는 더 뚜렷해진
다. 따라서 동화주의 정책 아래에서는 그들이 동화되기를 선택하거나 혹은 선택을 유보하는 것과 상관없이
오히려 그들의 이질성은 부각되고 강조된다. 그 결과 동화 정책의 의도와는 달리, 동화정책이 강조될수록
오히려 이질성은 커지고,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확대된다.
하나의 나라와 국민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의 국민국가에 기초한 이민 국가는 애국적인 충성심과 복종을
이끄는 국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두 개의 얼굴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갔다. 국수주의의는 지역적이
거나 민족적인 차이들을 ‘하나의 국가’라는 용광로 속으로 폭력적으로 밀어붙였고, 자유주의는 민족이나
지역에 기반 한 공동체가 개인의 선택과 자기결정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공동체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1908년과 1924년 사이에 미국으로 온 유렵 이민자의 3분의 1이 귀향”을 선택했고, 2차 대전 후
에도 유럽에로의 역이주가 상당기간 지속되었으며, 상당수의 유럽 이민자조차도 학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민자의 삶은 복잡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서구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에 대한 제한과 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유지되던 국가
에서 인종 갈등과 소수 민족 문제는 당연한 귀결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다
문화주의는 영토의 통일성과 인종적 동일성에서 출발했던 근대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
장했다. 현대 국가는 이주로부터 시작된 동일성의 위기, 영토적 통일성과 인종의 동일성의 위기를 극복하
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다문화주의’라는 이론적 장치를 고안해 낸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이민자의 나라’를 표방했던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인종,
민족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다. 이 시기 백인 중심의 이민정책을 실시해
왔던 오스트리아는 아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캐나다에서는 각각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지역 사이의 갈등을 완화, 해소하기 위해 실시했던 이중 언어와 문화 정책을 원주
민과 같은 다른 소수자들에게도 확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양
한 지역으로부터의 이주민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유럽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과거 식민지의 문화권에 있었던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이민자가 유입되었다. 프
랑스로 유입된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과거 식민지 역사를 통해 이미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 있었
으므로, 보다 쉽게 프랑스로의 이주를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는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인정하는
관용에 기반 한 동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동화정책은 효율적인 통합정책이긴 했지만, 민족이나 인종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정책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의 이주는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바우만은 현재 이주의 특징을 ‘디아스포라 시대의 이주’
라고 표현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이민국의 상황, 경제 변화로 인한 이민 정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이주,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목숨을 건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바우만은 현재의 이주가 “제
국/식민지 사건들이 계획하고 포장한 길을 무시하고, 그 대신 현재의 세계화 각축장 특유의 생존 가능성
과 전 세계적인 생활 자원 재분배의 논리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착
한 무한히 많은 섬”(유행의 시대, 57), 디아스포라의 섬들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활용되었던 이민은, 더 이상 추가적인 노동력이 필요로 하지 않음
에도 불구하고, 이민사회 안에 섬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이주민들이 정착해서 적응하며 사는 동안, 이주민
의 2세대, 3세대 후예들에게는 그곳은 돌아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들의 고향이 되었다. 심
각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이해되었던 외국인 노동자 이주는 성장력이 줄어들자,
인종, 종교, 문화적 갈등이 문제되는 섬이 되고 있다. 결국 이민국의 정책과 무관하게 남아 있는 섬들의
이질성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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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자, 관용과 환대
「타자에 대한 책임, 관용, 환대 그리고 인정」, 문성훈
관용, 웬디 브라운
타자 - 레비나스에게 타자가 동일성 논리에 따라 세계를 대상화하는 향유적 자아의 자기중심적 자유 때문
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라면, 왈쩌에게 타자란 나, 혹은 우리와는 다른 생활방식과 정체성을 갖고 있는 차
이의 존재이다. 데리다에게도 타자란 마찬가지로 차이의 존재로서 단적으로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곳에서
온 사람, 즉 언어, 문화, 정체성이 다른 이방인이다.

* 타자에 대한 태도
관용: 관용은 한편에서는 이민자로 인해 백인 중심의 정체성이 위협당한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인종과 종교적 갈등이 국제 분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던80년대 후반에, 다시 주목받기 시
작했다. ‘관용’이란 유럽을 비롯한 북미 지역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인종과 문화, 종교에 대한 위
협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가치로서의 관용이며, 특히 다문화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풀 실마리
를 가치로 이해되었다. 또한 그들은 섹슈얼리티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 차이에로까지 관용이 확장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관용을 태도나 마음의 상태로 이해하는 것의 형태들


1) 최초의 관용은 16,7세기에 종교적 관용의 기원을 반영한 것으로, 평화를 위해서 체념적으로 차이를 용
인한 것
2) 용인acceptance이 더 지속된 경우, 차이에 대한 수동적이며, 자비로운 무관심.
-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것을 모두 수용한다.”
3) 도덕적 스토아주의. - ‘나는 마음이 들지 않지만, 타인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4) 타인에 대한 열린 태도와 차이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 - “차이는 신의 피조물 혹은 자연 세계의 광대함
과 다양함을 대변하는 문화적 형식이라고 주장하며, 차이를 지지하는 미학적 태도” 혹은 “차이가 있어야
자율적 선택이 가능하며, 자율적 선택이 인간의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다
문화주의자의 주장”(기능적 측면에서 관용을 지지, 지지하는 것과 관용하는 것은 다르다. 모든 형태의 다
름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실제 관습이나 믿음에 가까운 다른 사람을 선호한다.)

환대: 환대는 타자를 자기 밖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자기 안에 존재


하게 함으로써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관용과 다르다. 더 나아가 데리다의 환대 개념은 관용과 대립된
다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타자에 대한 관용이란 위계적 관계에서 주권자가 베푸는 시혜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용의 대상이 되는 타자란 레비나스 식으로 말해서 여전히 지배와 소유의 대상으로 존재하
기 때문이다. 또한 환대란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과도 다르다. 물론 레비나스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은 종
종 타자에 대한 환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타인의 호소에 응답한다는 것은 자신의 문을 열고 타인을 나
의 손님으로 대접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가 타자에 대
한 책임의 표현인 레비나스 식의 환대와 구별되는 이유는 이방인에 대한 환대가 타자가 내안에 불러일으
킨 죄책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환대란 주인이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즉 손님이 자신의 거주지에 머물러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내어주어 접대하는 것이 환대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 모든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타자가 왔을 때 누구냐는 질문을 한다. 이는 타자가 과연 내가 환
대해야 할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나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이 누구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환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입증할 때 환대가 이루어진다. 데리다는 이런 식의 환대를 조건적 환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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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규정한다. 여기서 환대는 권리 의무 관계라는 상호적 조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의 환대를 받는 사람은 타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환대받는 손님은 나의 기준에
따라 자격이 부여된 동일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즉 내가 환대하는 손님은 보편적 개념에 따라 동일
화된 존재이며, 내가 가정한 보편타당한 원칙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나에게 통합된 사람
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건적 환대에서는 여전히 동일화 폭력이 행사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조건적 환대에 대한 대립 항으로 무조건적 환대를 제시한다. 무조건적 환대는 나의 거주지를 찾
아온 타자의 자격을 따지지 않고 이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무조건적 환대는 권리 의무 관계로
환원되지 않으며, 내가 타인을 환대한다고 해서 어떤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적 환대
는 상호적이지 않으며, 일방적인 것이며, 대칭적이지 않으며, 비대칭적 관계를 말한다. 따라서 무조건적 환
대는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다. 상대방이 과연 환대받을 자격이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조건적 환대를 거부하고 무조건적 환대를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로 요청하는 것일
까? 무조건적 환대는 사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도 환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
신에게 해를 끼치러 온 사람들 역시 자신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환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요구까지 함축
한다.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를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로 주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조건적 환대를 주
장하는 것도 아니다. 데리다는 이 두 가지 환대 간의 대립을 전제하면서도 상호 침투를 원한다. 즉 데리다
에게 무조건적 환대란 타자에 대한 실제적 태도라기보다는 조건적 환대의 제한성을 드러나게 하는 규제적
역할을 하며, 역으로 무조건적 환대는 조건적 환대로 전환되어야 하는 현실성을 갖는다. 따라서 데리다가
요구하는 타자에 대한 환대란 이렇게 양자 간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즉 무조건적 환대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구체적 조건 하에서 행사되는 조건적 환대이어야 하며, 조건적 환대는 무조건적
환대에 의해 인도되고 고취될 때 환대로서의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타자에 대한 환대가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
되는 것이라면 과연 이러한 역동적 과정은 현실적 동인을 갖는 것일까? 더구나 조건적 환대의 제한성 속
에서 고통 받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조건적 환대로 상승하려는 구체적 주체를 전제한 것일
까? 아니면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는 단지 환대의 이중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 장치에 불과
한 것일까?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가 막연히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가 아니라, 조건적 환대 때문에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것이라면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역동적 과정은 현실적 동인뿐만 아니라, 이를 추진하
는 구체적 주체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이런 시도는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 내지 여전히 동일화 폭력에 시달리는 타자들의 저항을 포착할 수 있는 개념 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는 왈쩌가 말하는 관용과 동일한 문제를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첨예화시킨다.
우선 환대란 자아와 타자의 관계의 시작일 뿐, 이러한 관계의 정착은 아니다. 환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 타자가 여전히 손님으로 남아있을 경우이다. 그러나 타자가 돌아가지 않고 나의 거주지에 지속적으로
산다면 그가 여전히 타자이지만 그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자아와 타자의 공동생활을 위해
서는 환대와는 다른 윤리적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환대한 사람이 강도로 돌변한다면, 그가 내
거주지 안에서 나와의 갈등을 일으킨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환대는 나
와 타자를 공존하게 하지만 공존 속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환대는 관용과
마찬가지로 공존의 전제일 뿐 공동생활을 규율하는 윤리적 규범은 아니다.

Q. ‘관용’, ‘환대’ 개념을 정리하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관해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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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철학사에서 시기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었다. 그의 등장과 더불어 철학의 주요 문
제는, 우주가 어떻게 생겼느냐의 물음에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로 옮겨졌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
학자들에 대한 연구는 출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 중 어느 누구의 문헌도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또
한 그들의 학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학파에 의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에 따른 해석과
전달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선배들의 작품을 철학체계 이전 단계, ‘덜 완성된 것’이라
는 시각으로 저들의 철학을 바라본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들 가운데 한 사
람이었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
이점이 있다. 소피스트는 어떤 주제든 반대편 입장에서 훌륭한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
써, 확실하고 믿을 만한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했다. 그들은 모든 지식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도덕적
기준도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전통적 가치관에 관해 회의적이었지만, 진리를 추구
했으며 확고 부등한 지식을 위한 기초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연관시키려 했
다. 선을 아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지식은 덕이다.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식이라는 건축물의 확고한 기초가 되는 것을 발견
하고자 했고, ‘영혼(ψυχη, Psychē)’ 개념을 만들었다. 영혼은 지성과 인격을 위한 능력, 인간의 의식적인
퍼스낼리티를 의미한다. 이 영혼을 통해 “현명한가 혹은 어리석은가, 선한가 혹은 악한가를 판별할 수 있
다.”려 했다. 영혼은 인식할 수 있고 인간의 일상 행위에 영향을 주며, 그 행위를 인도하고 지배할 수 있
다. 정의가 남을 해치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은 영혼이 인식 능력을 사용함으로
써 획득할 수 있는 지식의 한 전형적 예다. 남을 해치는 행위가 자신의 정의에 대한 지식과 위배된다는 사
실을 알면서도 남을 해치는 것은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확실
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지식만이 도덕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도덕적 가치 기준의 평가가 필요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특히 문화적 가치나 전통은 지역이나 인종 등의
여러 가지에 따라 서로 다르다. 관용은 좋은 것이지만, 관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에 관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문제될 수 있다. 세계 곳곳에 문화적 다양성이 있는 반면, 모든 문화들의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
을 잊어서는 안 된다. ‘뜨겁다’, ‘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용어를 이해하고 서로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주의가 인정되는/인정되지 않는 예를 찾아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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