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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도네시아 새 형법과 다원성
3 인도네시아 새 형법과 다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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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 이웃, 나아가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문제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혼전 성관계를 범죄화하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형법 개정을 지지한 측이 제시한 두 번째 논거는 종교로서, 이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의 절대
다수인 87% 정도가 무슬림이며 이슬람에서 혼외 성관계를 금지한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나머
지 13%에 해당하는 비무슬림과 관련하여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국가 이념 중 하나가 ‘유일신
에 대한 믿음’이고 모든 종교에서 프리섹스를 금기시하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혼전 성관계
금지의 보편적 성격을 부각하고자 했다.
형법 개정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습과 종교가 이용되었지만, 그중 이슬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종교 중 이슬람에서 혼전 성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금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혼
외 성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개정 형법에서는 토착어 대신 ‘지나’(zina)라는 아랍어 표현이 이
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법 개정안에 이슬람 교리가 온전하게 적용되었
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이슬람식 처벌 방식인 태형이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교리가 반영되었지만, 부분적으로만 적용된 상황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되어 온 종교적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무슬림이
급증했다. 이슬람 부흥 혹은 이슬람화라고 불리는 이러한 움직임은 사적 영역에서 먼저 시작
해서, 매일 5차례의 기도, 1년 중 한 달간의 금식과 같은 의무를 충족하고자 노력하는 무슬림
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이슬람화의 영향력은 2000년대에 접
어들어 공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외부인이 이런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던
사건 중 하나는 2010년대 지방자치 단체의 조례를 통해 시행된 편의점에서의 주류 판매 금지
였다. 무슬림 다수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규정이 최근에야 제정되었음에 혹자는 놀라움
을 표할 수도 있지만,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던 술을 특정 마트나 식당으로 제한했다
는 점에서 가시성을 지닌 행보였다.
외부인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이슬람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는 조례가 제정되
었다. 학교 진학이나 공무원 임용 과정에서 경전 낭송 능력을 의무화하거나, 금요 예배 참여
와 이슬람식 의복 착용을 강제하거나, 마사지 시설과 도박을 금지하거나, 심지어 여성의 외부
출입을 제약하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국가적 수준에서는 2014년 할랄제품보장법이 국회를 통
과해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에 할랄 인증, 즉 이슬람 교리상 허용되는 재료를 사용
했음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슬람의 요소가 지방 조례나 국가법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이슬람법이 국가법 체계에 충분히 스며들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슬람의 요소가
이분법적 방식이 아닌 절충적인 방식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할랄제품보장법을 예로 들면,
이 법은 할랄 인증 표기를 의무화했지만,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제품의 유통 자체를 불법화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술과 돼지고기와 같이 이슬람에서 금지한 물품의 판매가 용인되었다.
혼전 성관계 금지 조항에서도 절충적인 성격을 찾을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혼전 성관
계는 부모나 자녀의 고소를 통해서만 공소 제기가 가능한데, 이는 혼전 성관계가 현실에서 범
죄시되기보다는 성관계를 맺은 남녀에게 결혼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큼
을 시사한다. 혼전 성관계 사실이 알려지거나 여성이 임신했을 때 이들의 결혼을 압박하는 공
동체적 압력이 과거에도 작동했음을 고려해보면, 개정안은 이런 관습을 뒷받침하는 추가적 압
박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혼전 성관계 금지 조항의 삽입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어 온 종교적 변화와 같은 괘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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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있다. 한 편으로 그것은 이슬람 교리를 국가법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현실이 법 제정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슬람 세력의 주장을
담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개정 형법은 절충적인 내용을 내포함으로써 인구의 13%가 비이슬
람 교도라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두 입장이 공존함으로써 인
도네시아 사회는 아직 강한 이슬람의 색채로 채워져 있지 않다. 이슬람과 다원성의 줄다리기
가 계속되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치경제적 안정 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될 때, 그 균형추가 이슬람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명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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