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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넷째 주(4/24-30)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다]


순 예배 스터디_김소리 목사

본문 : 사무엘하 16장 5-14절 & 19장 16-23절

회개하는 자의 자세
도망 중인 다윗 왕과 그의 적은 수의 추종자들이 요단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사울 집안에 속한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가와 다윗을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저지르지도 않았던 무
서운 죄를 덮어씌우면서 저주를 퍼부었고 다윗과 신하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장군인 아비새가 자기 주인에게 저주를 하는 시므이를 죽여서 모욕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도록 요
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치욕적인 경험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삼하 16:10b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다윗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보았고, 겸손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다윗에게 문제가 되
는 것은 시므이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비새는 사람만 보았고 그 자를 죽여 처리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마치 훗날 주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자신들을 받아들지
않자,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했던 것을 떠
올립니다. 또한 베드로가 자신이 사랑하는 주님을 잡으러 온 살인자들의 무리에 맞서 그분을 지키려고 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가장 깊은 순종을 그분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주님은 자신이 마셔야 할 잔을 넘어서 그 잔을
채우고 계신 손길을 보았습니다. 도구로서 수행하는 유다, 가야바, 빌라도와 군인 누구든 상관없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마주한 현상에서 들어 올려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를 다루시는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
기에 시험에 빠져 넘어지곤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손길
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민감해지길 소망합니다.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그가 죽은 후에 왕좌를 그의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끈질긴 노력들이 있었습
니다(삼하 2:8-31). 그러나 사울 집안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던 아브넬의 노력과 이스보셋의
노력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삼상 16:1-13; 삼하 2:4). 시므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무시했고, 그의 마음은 다윗이 왕좌를 강탈한 자로 여기고 적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윗이 권력을
쥐고 있을 동안에는, 감히 공개적으로 저주하지 못했지만 곤경에 처하여 달아나고 있는 지금 그를 향해 자
신의 적의를 쏟아냈습니다. 누군가의 곤경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천박한 인간인지를
보여줍니다. 잠시 사무엘서에서 이미 바후림이라는 지명이 언급된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까요. 다윗
은 자기가 빼앗아 온 미갈의 남편이 바로 그 장소까지 그녀를 따라왔다가 울면서 홀로 돌아갔던 사실을 기
억했을까요?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 때의 기억이 그의 영혼을 눌러 시간이 많이 흘러 시므이의 포악한 모욕
에 온유하게 순종하도록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시므이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
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출 22:28).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전 10:20).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
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시 69:26). 사악한 시므이는 자신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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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이름을 사용한 모든 자들이 의로
운 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경고가 됩니다. 시므이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해
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을 다루시는 문제를 마음대로 정리하고 해석하려는 어리석음의 죄
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반응
다윗은 시므이가 말하는 것처럼 “피를 흘리는 자”(16:8)가 아님을 보여주었고, 욕설을 욕설로 되갚기를 거부
했습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었으나 우리아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의로운 징계에 순응했고 시므이를 용서했습니다. 압살롬과 시므이는
모두 그들의 행위 자체는 그들의 것이었을지라도 다윗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들이었습니
다. 그리고 다윗은 이 원통함을 하나님이 감찰하심으로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소망했습니다(16:11-12).

용서를 간청하는 시므이


하나님의 능력에는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반역적인 마음을 가진 자라도 얼마든지
제압하실 수 있고, 타락한 자들 안에서도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들에게
이러한 보호를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적들의 증오를 누그러뜨리시고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긍휼과 친절한 태
도를 보이시게 하는 선한 손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므이는 반역적인 행동을 그쳤고, 자기가 저지른 악한
죄를 시인했습니다. 왕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가 기꺼이 왕의 주권에 속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진실로 항복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여전히 자기를 즐겁게 하는 삶을 살고 그리


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역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적이
고 인간적인 만족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성령의 뜻에 복종하고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일에는 신앙심 깊은 사람처럼 지내지만 주중에는
불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윗은 아비새의 악한 제안(시므이를 죽이길 원함)을 혐오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


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마 5:7).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잘못을 용서
하시고,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마
6:14-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우리도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
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인을 변화시켜 부드럽게 바꾸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애통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긍휼을 구하면 다윗이 시므이를 향해 한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19:23) 성령께서 믿지 않는 가족들을 은혜롭게 만지셔서 그들 역
시 주님께 그렇게 나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나눔 및 적용 질문]
1. 누군가 나를 향해 악하게 행동했을 때 들었던 나의 생각과 반응은 어땠는 지 나누어볼까요.
2. 하나님의 주권을 의식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사람이나 사건을 판단한 적이 있을까요.
3.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는 이웃을 어떻게 용서하길 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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