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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 통권11호

ISSN : 1598-9267(Print)

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 1930년대 이


상의 시와 산문을 중심으로

김수이

To cite this article : 김수이 (2007) 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 1930년대 이상
의 시와 산문을 중심으로, 한국문예창작, 6:1, 32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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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2007. 6. pp.321~339

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1)


—1930년대 이상의 시와 산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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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 이(경희대 조교수)

차 례
1. 서론 2) 시각에 의한 자연과 인간의 물화
2. 이상 시에 나타난 시각중심주의 —‘모형정원’
과‘인간모형’
1) 근대적 시각중심주의와 시각적 3. 결론
주체와 대상의 위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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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모더니즘 문학은 근대세계의 분열된 글쓰기 주체가 세계와 자신에 행하


는 자의적이며 인위적인 가공과 재구성을 통해 형성된다.“이러한 주관적
인 재구성의 방식을 취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엄격한 원칙을 벗어나 주체
2)
는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
도 근대의 파편화된 글쓰기 주체는 균열된 세계와 자신을 인공적으로 재
배치하고 재축조하는 방법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세계의 파열
을 거부하는 동시에 내면화하면서, 근대 모더니즘의 글쓰기 주체는 부조
리한 세계와 그 속의 자신을 변용하하는 과정을 자신의 정체성과 작품의

1) 이 논문은 경희대학교 신임교수연구지원(과제번호 20051047)을 받았음.


2) 최미숙,『한국 모더니즘 시의 글쓰기 방식과 시 해석』
, 소명출판, 2000,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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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창작 원리로 전화(轉化)한다.
한국문학의 모더니즘을 선도한 1930년대 이상의 시와 산문에는 근대의
시각중심주의Occurcentrism에 입각한 새로운 글쓰기 주체가 등장한다.
시각중심주의는 시각의 감각을 코기토cogito의 이성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근대적 사유의 한 계열체로, 시각(視覺)보다 심안(心眼)을 우위에 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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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유와 대비되는 것이다. 이상의 시와 산문에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감


각의 재편성을 통해 근대 모더니즘의 글쓰기 주체가 출현하는 광경이 구
체적이고 세밀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상 문학의 글쓰기 주체는 시각을
중심으로 감각의 위계를 혁신함으로써 시각의 속성인 성찰적 거리
distance와 소외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주체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이
러한 토대와 정황을 문학의 내용은 물론 형식과 미학에도 심층적으로 반
영한다.“한국의 모더니즘은 그 기획에서부터 이전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3)
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인 것이었다” 는 견해에 입각할 때, 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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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트 이 상의 기획은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에 입각한 한국문학의 전면적
인 형질 변화를 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이상의 시와 산문이 시각중심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글쓰
기 주체가 탄생한 최초의 현장으로, 이상이 시각 중심의 근대적 사유와 미
학을 선구적으로 육화하고 작품의 창작원리로 삼았음을 규명하는 데 있
다. 이를 바탕으로, 이상이 행한 시각 중심의 감각의 위계 재편성이 이상
의 개인적인 실험에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라, 이전 시대의 문학과 변별되
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기획으로 근대문학의 특수한 행보임을 논증하
고자 한다. 이 행보는 관찰하고 감시하는 글쓰기 주체와 그러한 관찰과 감
시에 포획된 대상의 소외, 글쓰기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자연(물)의 위상
변화, 글쓰기의 새로운 제재인 인공물과 사물의 등장 등으로 구체화된다.

3) 정문선,「한국 모더니즘 시 화자의 시각체제 연구—보는 주체로서의 화자와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공


간을 중심으로」, 서강대 박사, 2002,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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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3

최근 이상 시에 대한 연구는 선행 연구들이 간과한 부분을 예각적으로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상 시에 나타난 육체의식을 고찰4)하고,
문화기호학적 측면에서 이상 시의 원리를 규명하며5), 이상 시를 멀티미디
어 양식의 선구적인 사례로 재조명하거나6), 이상 시를 모더니즘 시 화자
의 시각 체제를 보여주는 적실한 예로 파악하는 것7) 등이 그것이다. 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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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은 각기 이상의 시를 이해하는 유용한 방식과 결과물을 제출했음에


도, 이상 시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를 구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
다. 일례로, 모더니즘 시 화자의 시각 체제를 연구한 경우, 한국 모더니즘
시의 화자를‘역사와 이데올로기의 관람객viewer’
으로 규정하면서 시 화
자의 성격을 이데올로기적 차원에 종속시키는 한계를 드러낸다.

2. 이상 시에 나타난 시각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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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적 시각중심주의와 시각적 주체와 대상의 위계질서

이상의 시는 관찰과 감시의 시선을 지닌 시각적 주체가 현상(現像)하는


시각적 장면과 풍경으로 구성된다. 한자 파자(破字), 다양한 크기와 형태
의 활자, 각종 기호들의 기하학적 배열, 외국어, 숫자, 순열 조합, 그림 등
을 활용한 이상의 시는 시각중심주의에 기초한 근대적 주체의 감각이 재
편성되는 과정과 그 극단의 양상을 다채롭게 전시display한다. 이 상의 시
는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시의 보편 제재인‘자연(물)’
에 대해서도 시각 우

4) 조해옥,『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 소명출판, 2001.


5) 박현수,「이상 시의 수사학적 연구」 , 서울대 박사, 2002., 이경훈,「미쓰코시, 근대의 쇼윈도우—문학
과 풍속 1」
,『현대문학의 연구』15, 한국문학연구학회, 2000. 8.
6) 김민수,『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 생각의나무, 1999.
7) 정문선, 앞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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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위의 근대적 감식안을 내세운다. 자연(물)을 시각적으로 포획하고 재구성


하는 이상의 시는“자연에 대한 억압을 기반으로 하는 이성의 운명에 대한
8)
완벽한 은유”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시는 인간의 이성이 자연
과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재편성했는가는 증명하는 예이자,
그 과정이 곧 근대적 주체의 탄생과 분열의 과정이었음을 반증하는 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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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시각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대해 이상의 산문에는 극히 상반되는 두
개의 장면이 등장한다. 하나는 이상이 관찰과 구경의 주체가 되는 장면이
며, 다른 하나는 이상이 관찰과 구경의 대상이 되는 장면이다. 관찰과 구
경의 매체로서의 시각은 주체에게는 대상을 포획하는 강력한 권능과 권위
를, 대상에게는 주체성과 자율성의 박탈을 부과하면서 주체와 대상의 관
계를 원천적으로 규정하는 권력의 도구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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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獄史의 案內를 받아 工場 各部分을 차례 차례 求景하기로 하였다. 求景

하기 前에 獄史는 우리들에게 부디 부디 다음 몇가지 點에 主義해 달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卽 담배를 피우지 말 것, 그들에게 무슨 必要로든 決코 말을 건

네지 말 것, 그네들의 얼굴을 너무 차근차근히 들여다보지 말 것 等이다. 차례대

로 이윽고 見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벽돌 製造 같은 것에는 秋

毫의 趣味도 가지지는 않았다. 罪囚들의 生活, 動靜의 姿態를 볼 수 있다는 것

이 이 見學이 나로 하여금 즐겁게 하여 주는 理由의 全部였다. 나는 일부러 끝

으로 좀 처어지면서 그 똑같이 赤土色 服裝에 몸을 두르고 깃에다 番號札을 붙

인 이네들이 모양을 살피기로 하였다. 그런데 果然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끝없

는 憎惡의 視線을 우리들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냐 나는 놀랐다. 가슴이 두근두

근해 왔다. 그리고 제출물에 怯이 나서 얼굴이 달아 들어오는 것을 어찌하는 수

8) 슬라보예 지젝 외, 이운경 역,『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한문화, 2003,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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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5

가 없었다. 너무나 똑똑이 不快한 表情을 지어 보이는 그들을 나는 차마 바로

쳐다보는 재주가 없었다.

自己의 恥辱의 生活의 內面을 惑 恥辱이라고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決코 남

에게 떠벌려 자랑할 것이 못되는 제 生活의 內面을 어떤 生面不知 사람들에게

莫不得已 求景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누구나 다 싫어하리라. 仰不愧御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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俯不 於人 이런 心境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그런 一點의 흐린 구름이 지지 않

은 生活을, 남이 그야말로 求景꺼리로 알고 보려 달려들 때에는 저으기 不快할

것이다. 況此 罪囚들이 自己네들의 恥辱的 生活을 白日 아래서 餘地없이 求

景꺼리로 어떤 몇사람 앞에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境遇에 그들의 心痛 함이 또

한 服役의 괴로움보다 오히려 倍大할 것이다.9)

② 그다지 名譽롭지 못한 그러나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까지 不名譽라고까

지 할 것도 없는 疾患을 가지고 어떤 學府 附屬病院에를 갔다. 診察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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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治療를 始作하려 그 그리 보기 좋지 않은 베드 위에 올라 누웠다. 그랬더

니 난데 없이 數十名의 黑裝束의 壯丁 一團이 우— 闖入하여는 내 寢牀을 둘

러싸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學府 在學의 學生들이요 이것은 臨床講義

時間임에 틀림없다. 손에는 各各 노—트를 들었고 視線을 내 患部인 한點에

集中시키고 있는 것이다. 醫師 즉 敎授는 徐徐히 입을 열어 用意周到하게 내

治療받고자 하는 個所를 주므르면서 流暢한 言語로 講義를 開始하는 것이 아

닌가.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千萬意外의 일일뿐 아니라 정말로 不快하

기 짝이 없는 逢變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은 大體 누구의 許諾을 얻어 나를 實驗動物로 使用하는 것인가. 옆구리

에 腫氣 하나가 나도 그것을 남에게 내어 보이는 것이 不快하겠거늘 아픈 탓으

로 恥部를 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그 자그마한 機會를 타서 밑천 들이지 않고

9) 이상,「秋燈雜筆 - 求景」
, 김윤식 엮음,『이상문학전집 3』
, 문학사상사, 1993, 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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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그들의 實驗動物을 얻고자 꾀하는 것일 것이니 治療를 받기 위하여는 반드시

이런 屈辱을 받아야만 된다는 制度라면 辭此不避일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變만은 어디까지든지 不快한 일이다.10)

①은 이상이 경성제대 건축학과 재학시절 형무소 견학의 일환으로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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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일하는 마포 벽돌공장을 보러 갔다가“罪囚들의 生活, 動靜의 姿


態”
를‘구경’
한 경험을 서술한 것이고, ②는 이상이 종기를 치료하러 병원
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임상강의의‘실험동물’
이 되어 수십 명의 학생들의
시선에 포위되어 관찰당한 정황을 서술한 것이다. ①은 죄수들이 노동하
는 형무소라는 근대적 공간을, ②는 치료와 임상강의가 결합된 병원이라
는 근대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11) 감옥과 병원은 근대적 주체와 대
상이‘시각’
에 의해 직선적인 서열 관계로 구조화되는 과정과 결과를 극명
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감옥과 병원의 근대적 공간에서 이상이 집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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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서술하는 것 역시 이러한 시각적 체험이다. 실제로 두 편의 글에서
이상은‘견학’
,‘구경’
,‘시선’
,‘들여다보’
기,‘보’
기,‘쳐다보’
기,‘살피’
기,
‘내보이’
기 등의 시각과 관련된 어휘들을 자주 사용한다. 시각 이외의 다
른 감각들,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은 여기에서 별다른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두 편의 산문에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
와 내면, 즉 인간 자체이다. ①에서 이상은“나는 처음부터 벽돌 製造 같
은 것에는 秋毫의 趣味도 가지지는 않았다. 罪囚들의 生活, 動靜의 姿態
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見學이 나로 하여금 즐겁게 하여 주는 理由의 全

10) 위의 책, 83쪽.
11) 감옥과 병원은 푸코가 근대적 권력이 작동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공간이다. 푸코는 감옥, 병
원, 학교, 군대, 공장 등의 모든 장치 속에서 감시받는 병자, 환자, 노동자는 결국은 자기자 자신을 감
시하게 되고, 간수, 의사, 교사, 공장장 등도 역시 감시되고 관리되는 메카니즘을 구성하는 데 기여할
뿐이라고 설명한다.—미셸 푸코, 박홍규 역,『감시와 처벌』 , 강원대학교 출판부, 1989, 5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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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7

部였다.”
고 고백한다. 건축학도로서 벽돌공장 건물을 견학하러 간 이상이
진정한 관찰과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벽돌 구조’
가 아니라,“죄수들
의 생활, 동정(動靜)의 자세”
였다. 이상은 이들의 생활태도와 표정 등을
‘구경’
하면서 모순되는 이중적인 심리를 드러낸다. 하나는“죄수들의 생활
과 동정의 자세”및 그들의“自己의 恥辱의 生活의 內面”
을‘구경’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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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흥미와 쾌감이며, 다른 하나는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생활과 내


면을‘구경’
당하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쾌감과 괴로움에 대한 공감
과 죄책감이다.“自己의 恥辱의 生活의 內面을 惑 恥辱이라고까지 하지
는 않더라도 決코 남에게 떠벌려 자랑할 것이 못되는 제 生活의 內面을
어떤 生面不知 사람들에게 莫不得已 求景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누
구나 다 싫어하리라.”
,“너무나 똑똑이 不快한 表情을 지어 보이는 그들
을 나는 차마 바로 쳐다보는 재주가 없었다.”
는 진술은 이상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관찰당하는 죄수들에게 행한 윤리적인 성찰과 이를 내면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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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인 죄책감을 표현하고 있다.
①에서 시선의 객체인 타인을 물화(物化)하는 구경과 관찰의 주체로서
이상이 누린 권위는 ②에서는 정반대의 형태로 역전된다. ②에서 치료를
하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누운 이상은“난데 없이 數十名의 黑裝束의 壯丁
一團이 우— 闖入하여는 내 寢牀을 둘러”
싸는 불쾌한 상황에 처한다.“손
에는 各各 노—트를 들었고 視線을 내 患部인 한點에 集中시키고 있는”
임상강의의 수강생들을 보면서 이상은 시선의 주체로서의 힘을 전혀 발휘
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상은,“그들은 大體 누구의 許諾을 얻어 나를 實
驗動物로 使用하는 것인가.”
라는 외부로 발화하지 못하는 유약한 항변
속에서 자신이‘실험동물로 사용’
되는 상황을 승인하게 된다. 침대 위에
누워 철저히 시선의 객체가 된 이상은 임상강의의‘실험동물’
, 즉 지식 탐
구를 위한 타인의 폭력적인 시선 앞에 물화된 육체로 전락한 자신을 힘없
이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千萬意外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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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일뿐 아니라 정말로 不快하기 짝이 없는 逢變일 수밖에 없는 일”


이라는
이상의 분노에 찬 내면은, ①에서 이상에게 구경당하며“너무나 똑똑이 不
快한 表情을 지어 보이는”죄수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두 편의 산문에서 시선의 주체와 객체로서 상반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
상이 도달한 자리는 윤리학적 성찰과 내면화 및 근대문화에 대한 이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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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상은 타인의 시선에 관찰당하는 폭력적인


경험을‘기여(寄與)’
라고 칭하면서, 이러한 시각적 경험들이 근대문화와
제도의 속성임을 인정하고 수락한다.

(…) 그렇다면 醫師는, 敎授는, 그가 어떤 種類의 微微한 人間에 不過한 경

우일지라도 반드시 그의 感情을 尊重히 하여 一言 懇曲한 請託의 말이 있어야

할 것이요 一言承諾의 말이 있은 다음에야 敎材로 使用할 수 있을 것이겠다.

要는 이런 種類의 寄與를 欣然히 하게 하는 새로운 道德觀念의 樹立과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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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感情 慣習의 普及에 있을 것이다.12) (밑줄 강조 인용자)

이상이 시각의 폭력에 희생되는 인간에 대해,“醫師는, 敎授는, 그가 어


떤 種類의 微微한 人間에 不過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그의 感情을 尊
重히 하여 一言 懇曲한 請託의 말이 있어야 할 것이요 一言承諾의 말이
있은 다음에야 敎材로 使用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매우 온정적이나 비현실
적인 해결책과 함께 결론으로 내세우는 것은“새로운 道德觀念의 樹立과
새로운 感情 慣習의 普及”
이다. 이‘새로운 도덕관념의 수립과 감정 관습
의 보급’
이 시각중심주의에 입각한 근대문화와 제도의 일상적인 확장과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의식/무의식적 차원의 침투를 의미하는 것임은 물론
이다. 그러므로 이상이 행하는 윤리적 성찰은 근대적 개인으로 거듭나기

12) 이상, 위의 글,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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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9

위한 통과의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찰과 내면화, 이해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요소는, 각기 시
선의 주체와 객체로서‘불쾌한’경험을 한 이상이 근대적 글쓰기의 주체이
자 객체로서 자신을 재정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이 자기 자
신을 배려하는 행위는 끊임없이 글쓰는 행위와 결합되었다. 자기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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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에 대해 쓸 무엇, 글쓰기 행위의 주제 혹은 대상(주체)이었다.” 라는 견해
에 의할 때, 글쓰기는 한 개인이 세계의 폭력에 상처 받은 자신을‘배려’

가운데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그 세계의 주체이자 객체로 거듭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글쓰기의 주체는 자신이 세계의 주체 혹은 객체로서
경험한 것들을 다시 보면서/성찰하면서 주체의 최종심급의 자리를 점하는
것이다. 이상이 자신의 실제 체험에 입각한 고백적인 두 편의 산문에서 달
성한 것 역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상은 글쓰기를 통해‘구경’

‘관찰’
의 최종 권위를 지닌 시각적 주체가 된다. 그 최종적인 구경과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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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이상 자신이다.

2) 시각에 의한 자연과 인간의 물화(物化) —‘모형정원’


과‘인간
모형’

산문뿐만 아니라 이상의 시에서도 시각중심주의의 편향성은 빈번히 드


러난다.14) 자연 인식과 이미지의 활용 방법, 시적 주체의 시선 등에서 이상
의 시는 시각 중심의 성향을 다채롭게 표출한다.15) 주지하다시피 이상의
시는 자연이나 자연물을 제재로 선택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 이상의 시는
거울, 시계, 총, 장화, 데드마스크, 수학·물리학의 법칙, 숫자, 기호, 표,

13) 미셸 푸코, 이희원 역,『자기의 테크놀로지』, 동문선, 1997, 52쪽.


14) 그런데 지금까지 이상의 시를 시각중심주의나 자연 인식의 면에서 고찰한 시도는 거의 없었다. 모더
니즘 연구자들에게‘자연’ 은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으며, 다른 영역의 시 연구자들, 즉 (전통) 서정
시의 논자들에게 모더니즘 시인 이상은 처음부터 논외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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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그림 등 근대문명의 산물들을 주요 제재로 채택한다. 그렇다고 이상이 근


대문명을‘새로운 물품’
이라는 물질적이거나 문화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은 한국에서 근대가 출발하는 시기에 이미 근대의 정
체와 구성원리를 직관적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2-1)장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이상은 시각중심주의에 의한 주체와 객체의 위계질서를 근대사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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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중요한 특징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이상은 시각중심주의의 원리와


폭력성을 근대문화와 제도의 구성원리 및 폭력성의 핵심 요소로 인식했
다. 이상이 시각이 촉발하는‘폭력적인’관계와 경험에 유난히 관심을 가
진 것은 그가 처한 식민지시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상은 시각의 주체와 대상의 수직적 위
계질서에 기반한 근대세계의 폭력적 구조를 식민지사회의 지배원리로 파
악했다고 볼 수 있다.16) 앞 장에서 논증한 것처럼, 그 구조에 희생되는 대
표적인 예가 바로 시각의 폭력에 지배당하는‘죄수’
와‘환자’
이다. 시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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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의해 하나의‘구경꺼리’
에 불과한 사물로 전락한‘죄수’
와‘환자’
의 운명은, 이상에게 그를 포함한 식민지 사회의 피지배자들이 처한 운명
과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와 산문은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의 권위가 왜곡되게
팽창되면서‘모형(模型)’
과‘위조(僞造)’
가‘진본(眞本)’
을 대체하고, 이것
이‘죄(의식)’
를/을 불러일으키는 정황을 공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5) 이상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시각중심주의는 근대적 산물 외에도 과학자와 문필가가 갖는 하나의 편향
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트레버 로퍼에 따르면 화가, 수학자, 문필가 등은 근시안적 성격을 갖는 경
향이 있다.‘타인들과는 다른 내면 생활’ 과 색다른 성격이 이들의 특징인데,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가
까이서 들여다본 세계만이 시각적으로 쓸모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 속 이미지는“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것들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이들은 더욱 내성적이 된다.” (다이
앤 애커먼, 백영미 역,『감각의 박물학』 , 작가정신, 2004, 395쪽.)
16) 이 점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분석을 참조할 만하다.“이상의 작품 세계는 근대성·식민주의, 그리고 공
동체적 정체성이, 식민지와 메트로폴 양쪽에서 많은 요인들(계급과 경제분야, 성, 지리학적인 지역,
민족주의적 사고와 식민지 정책의 양 국면을 포함한)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에 맞서 자신들을 강화
하고 전복하며 전유하고 정의하는 다양하면 끊임없이 재조정해 나가는 과정들을 독특한 의미 구조 안
에 담아내고 있다.”(월터 K. 류,「이상의「산촌여정—성천 기행 중의 몇 절」 에 나타나는 활동사진과
공동체적인 동일시」 ,『이상문학전집 5』 (2001),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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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11

① 이슬을아알지못하는다—리야하고바다를알지못하는金붕어하고가繡놓여

져있다. 囚人이만들은 模型庭園이다. 구름은어이하여房속으로야들어오지아니

하는가. 이슬은들窓琉璃에닿아벌써울고있을뿐.

季節의順序도끝남이로다. 算盤알의高低는旅費와一致하지아니한다. 罪를

끝내버리고싶다. 罪를내어던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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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囚人이만들은模型庭園17)」

나는거울없는室內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

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陰謀를하는

중일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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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품고식은寢牀에서잤다. 확실한내꿈에나는缺席하였고義足을담은軍用長

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놓았다.

나는거울있는室內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 解放하려고. 그러나거울속

의나는 沈鬱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

내가그 때문에囹圄되어있듯이그도나때문에囹圄되어떨고있다.

17) 임종국이 편한『이상전집』 (1956)에는‘소정원’


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이 글에서는 박현수의 견해에 따
라‘모형정원’ 이라는 어휘를 취하기로 한다.“소정원의 원문은‘箱廷’ 으로, 일어로는 하코니와’ 로 발음
되는데, 이것은 유리상자에 실제의 정원이나 산수 풍경을 모방하여 만든 축소된 모형 정원(miniature
garden)이다. 따라서 모형 정원으로 부르는 것이 의미상 적합하다.”—박현수(2002),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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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내가缺席한나의꿈. 내僞造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無能이라도좋은나의孤獨

의渴望者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自殺을勸誘하기로決心하였다. 나는그

에게視野도없는들窓을가르치었다. 그들窓은自殺만을위한들창이다. 그러나내

가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自殺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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鳥에가깝다.

내왼편가슴心臟의位置를防彈金屬으로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

겨누어 拳銃을發射하였다. 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貫通하였으나그의心臟은바

른편에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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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 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刑을받앗

다. 내꿈을支配하는자는내가아니다. 握手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封鎖한거대한

罪가있다.

—「烏瞰圖 詩第十三號」전문`18)

③ 로울러 스케이트장의 요란한 풍경, 라디오 효과처럼 이것은 또 계절의 웬

季節僞造일까. 月色이 푸르니 그것은 흡사 郊外의 音響! 그런데 로울러 스케

이트장은 겨울—이 땀흘리는 겨울 앞에 서서 찌꺼기 여름은 소름끼치며 땀 흘린

다. 어떻게 저렇게 겨울인 체 잘도 하는 複寫 빙판 위에 너희 인간들도 결국 알

고 보면 人間模型인지 누구 아느냐.19)

18) 김윤식 편, 앞의 책.
19)「산책의 가을」 ,『이상문학전집 3』
,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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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13

‘모형’
과‘위조’
는 시각적 변형과 오인(誤認)에 기초한 대상 재현의 방식
으로, 대상—진본의 허위적이며 기만적인 재현을 특징으로 한다.‘모형’
과‘위조’
는 대상을 진본에 가깝게 재현하는 동시에 부정하면서, 대상—
진본의 결핍과 부재를 가시화한다. 이상이‘모형’
과‘위조’
에서‘죄(의식)’
를/을 읽어내는 것은 그 속에서 근대문명의 허위와 파행성을 보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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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더불어 그 속에서 식민지의 몰주체적 인간으로서 자신이 겪는 깊은


절망과 자괴감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주체성과 자
유를 박탈하는 근대문명과 식민지 현실을, ①의 시20)에서는“囚人이만들
은 模型庭園”
으로, ②의 시에서는“내가그때문에囹圄되어있듯이그도나
때문에囹圄되어떨고있”
는,“模型心腸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지”
는“내僞
造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로, ③의 산문에서는‘人間模型’
들이 로울러 스
케이트를 타는,‘季節僞造’
를 한‘複寫 빙판’
으로 비유한다. 이 공간들은
모두‘모형’
과‘위조’
를 원리로 한,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에 의해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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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강화된 점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모형’
과‘위조’
에 불과한 세계와 인간(이상 자신을 포함한), 삶에 대한 이
상의 고통스러운 직시(直視)는 이러한 세계와 인간, 삶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연결된다. ①
“罪를끝내버리고싶다. 罪를내어던지고싶다.”
,②
“握手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封鎖한거대한罪가있다.”
, ③
“너희 인간들도
결국 알고 보면 人間模型인지 누구 아느냐.”등의 직간접적인 진술에는
이상이 죄의식과 자괴감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이상은‘거대
한죄’
를 씻어내기 위해 ②
“視野도없는”
“自殺만을위한들窓”
을 상상해낸
다.‘시야도 없는 들창’
은 결국 왜곡과 기만에 이른 주체—진본과 객체—
모조의 시각적 위계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장치이며, 근대의 시각중심주의

20) ①의 시는 원문이 일문으로,‘모형정원’ 의 일어인‘상정’(箱庭)은 이상의 이름자인‘상(箱)’을 떠올리


게 한다. 본명이 김해경인 이상이 필명을‘상(箱, 상자)’
으로 한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의 정체
성을“囚人이만들은 模型庭園” 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이 시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졸고, 위의 논문 2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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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가 부과하는 광학적 기만에서 이탈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이


이 장치를 사용하는 방법은「烏瞰圖 詩第十三號」
에서 보는 것과 같은 상
상적이며 엽기적인 자기희생의 제의적 방식이다. 이처럼 내면화된 폭력과
공포를 이상은‘얇다란禮義’
라고 명명하면서, 그러한‘얇다란예의’
를“사
랑스레여기”
는 자신을 다시 관찰한다. 이상이 감옥과 병원에서 시각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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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의 주체와 객체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언급한“새로운 도덕관념의 수립


과 감정 관습의 보급”
은, 개인/인간의 가치관과 내면을 원천적으로 지배
하는 근대세계의 행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다.21)
이상은 시각의 권위/폭력의 주체와 대상으로서 이중적인 정체성을 끝내
보유하면서 근대적 분열과 식민지 현실의 모멸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음과
같이 그로테스크하게 재현한다.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威脅당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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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새파랗다. 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燭臺세움으로내방안에裝飾

하여놓았다. 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怯을내이는것만같다. 나는이런얇다란禮

義를花草盆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烏瞰圖 詩第十三號」전문22)

3. 결론

1930년대에 쓰여진 이상의 산문과 시는 우리 문학에서 근대적 인식이


발아하고 성장한 양상을 보여주는 문제적인 사례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중심에 위치한‘시각중심주의’
는 이상의 산문과 시에서 긍정과 부정의 양

21)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다.


22)《조선중앙일보》 , 1934. 7. 24.~1934. 8. 8, 김윤식 편, 앞의 책,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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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15

측면에서 다각도로 발견된다. 본고에서는 시각을 다른 감각보다 우위에


두는 위계적인 가치관인 시각중심주의가 이상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그의 시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지하다시
피, 이상의 산문과 시는 근대에 대한 동경과 지향성만을 내용으로 하지 않
는다. 이상은 근대가 자연과 인간에게 행사한 인위적인 힘의 실체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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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직관의 차원에서나마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그러한 조작


과 변형의 주체이자 희생자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일제에 의해 주도된 근대적 기획의 이중성과 파행성에 대한 반성의 산물
이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상은 근대적 주체로 거듭나는 가운데 근대적 주체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폭력을 감수했다. 이상은 그 폭력의 대상(희생자)
이자 주체였다. 자연에 대한 철저한 거리두기를 통해 자연을 포획하고, 자
연물을 그 자신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는 심리적 기호로 활용한 것이 그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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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적 양상으로,‘모형 정원’
은 이러한 자연 인식의 극점에 해당하는 것이
었다. 이상이 자연을 분할·배제·축소·변형하여 하나의 모형으로 인식하
기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대상화·타자화의 폭력성에 희생된 존재는 비단
자연만이 아니었다. 그 희생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상 자신이
었다. 이상은 시각 외의 여타의 감각들을 자신의 육체와 의식의 중심에서
분리·배제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존재 자체를 하나의‘모형 정원’
으로 화
하게 만든다. 이 변형의 과정을 주재한 것은 이상이면서, 동시에 이상의
배후에 있던 근대 세계였다. 그리고 이상은 자신을 그‘모형 정원’
에 갇힌
‘수인(囚人)’
이자, 그 모형 정원을 감상하고 관조하는 시각적 주체로 인식
했다. 특히‘거울’
을 소재로 한 시들은 이상이 그 모형 정원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인가와, 그 규정할 수 없는 자신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회의하는 근대적인 고뇌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의
시는 근대 세계가 인간의 육체와 정신, 감각과 이성을 분할한 것에 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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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아니라, 감각 자체를 재배열하고 재편성함으로써 감각의 새로운 체제(시


각중심주의)를 만들었으며, 그 체제가 근대인의 (무)의식의 풍경과 일치하

고 있음을 증명한다. 논의를 한국근대시사의 차원으로 확대하면, 앞으로


한국근대시사는 이성[지성]과 감각의 분리, 혹은 감각에 대한 이성[지성]
의 지배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감각의 재편성 과정이 이성[지성]의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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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구조적으로 같은 것이었을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근대시사에서 모


더니즘이 한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이 부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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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6 -
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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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통권 제11호)

Abstract

The Study on the Visualcentrism of Writing Subject


of Modernism
— focused on Lee, Sang’
s essay and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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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u - I

Lee, Sang reverses the value of nature and civilization. He had


never been to have worship and feel emotion on nature. He always
stayed at the outside of nature and his sense of body did not react on
nature. The only sense out of five he used was the sense of the 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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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e can see two things. First, Lee got accustomed to the modern
experiences and senses called‘the visualcentrism’
. Second, Lee
regarded nature not the object of sense, but the object of intellectual
thought.
The visualcentrism is a strategy devised by the modern society to
dominate modern people. The modern society separated the sense of
sight from the human body and created new human being. Modern
people to be a just‘seeing being’has lost his physicality so that
nature is destructed. The miscellany‘Fatigue’by Lee showed that
modern people lose the physicality of‘nature/human’and a literary
historical scene which a modern subject who stare nature as a thing
was born in Korean modern literature.
The modern cognition of nature of Lee based on the visualcentrism
controls his poetic objects and inner landscapes. Poetries that Lee
rarely expressed on nature, such as‘A Flower- tree’
,‘A Cliff’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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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글쓰기 주체의 시각중심주의 고찰 19

‘The Last’do not describe real landscapes of nature. The natural


materials in Lee’
s poems were separated from nature and transformed
into an abstract, individual and artificial signs which explain the
inside of Lee. The natural materials such as a flower-tree, a flower,
and crab apples are only psychological signs that Lee used to visibly
describe his inner landsc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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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dern cognition of nature of Lee can be summarized as the


word, a model garden, which is appeared in his poem.‘A model
garden’appeared in‘A model garden made by a prisoner’means‘a
box garden’in Japanese with the meaning of a little model garden for
decoration.‘A box garden’reminds of‘Sang(box),’the name of Lee,
Sang. He symbolized his identification as‘A model garden made by
‘A model garden made by a prisoner’is an allegory of
a prisoner.’
the real condition of the nature/human of the colonial Chosun
distorted in course of www.earticle.net
modernization forced by Japan. The landscape
of modern nature degraded to a decoration in the modern society
exactly corresponds to the dissociated inner landscape of Lee. His
abstruse poetries were the model garden made by modern society or
by Lee as a small part of it.

●주제어: 시각중심주의Visualcentrism, 시각vision, 진본the orisinal, 모형the


model, 위조a forgery, 인체 모형a model of a human body, 모형
정원a model garden

●2007년 5월 10일 논문 접수, 5월 31일 논문 심사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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