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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연구(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Yonsei Law Review

제29권 제2호 (2019년 6월) 1~36면 Vol. 29 No. 2 (June 2019) pp. 1~36
DOI http://dx.doi.org/10.21717/ylr.29.2.1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 자율주행자동차의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법학적 사유실험을 겸하여 ―*
1)

김 준 호**

◈목차◈
Ⅰ. 서론 2. 뚱보 딜레마의 형사법적 결론
Ⅱ. 트롤리학 ― 폭주하는 전차의 딜레마 Ⅳ. 법학적 사유실험 두 번째 ― 자율주
Ⅲ. 법학적 사유실험 첫 번째 ― 폭주하 행자동차의 딜레마에 관하여
는 전차의 딜레마에 관하여 Ⅴ. 결론
1. 지선 딜레마의 형사법적 결론

Ⅰ. 서론

자율주행자동차(self-driving car)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차량의 진행방향 앞에


갑자기 여러 명의 보행자가 나타났다. 자율주행차는 진로를 선회하여 이들 보행자와
의 충돌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면 이번에는 인도 위를 걷고 있는 한
명의 보행자를 치게 될 것이다. 차가 그대로 직진을 하면 여러 명을 치어 사망케
할 것이다. 반면, 선회를 하면 한 명을 치어 사망하게 하는 데에 그친다. 이 상황에서
자율주행자동차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정확히 말해, 자율주행차의 제조사는
위 딜레마에서 차량이 어떻게 움직이도록 알고리즘을 설정해야 할 것인가?
이는 윤리학의 고전적 딜레마를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에 맞게 각색한 예이다.

* 이 글은 한국인터넷법학회 2019년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윤문(潤文)


한 것이다.
** 숭실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2 김준호

자율주행차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실제 도로 위를 자율주행차가 주행할 때 벌어


질 수 있는 상황을 상정한 법제도적 과제가 현안(懸案)으로 등장했다. 자율주행자동
차의 윤리적 과제를 놓고 세간(世間)의 관심이 뜨겁다.1) 그간 다수의 생명과 소수의
생명 사이의 딜레마를 그린 문학이나 영화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어 왔다. 그것이
결코 픽션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딜레마를 둘러
싼 논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자율주행차의 딜레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자율주행자동차의 딜레마도 우리 사회가 직면하는 현실적 과제일 수
있다.
본 원고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선택에서 겪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다. 그
딜레마에 관해 법학의 관점에서 해답을 모색해 본다. 어떤 사례든 간에 실제로 현실
에서 발생하여 누군가의 법익을 침해하면 법적 책임의 추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
다. 자율주행차가 직진을 하든 선회를 하든 그 어떤 움직임에 의해 사람을 친다면
이에 대해 우리 형사사법은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 결론이 만일 유죄라면, 그
같이 자율주행차가 동작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재고(再考)될 필요가 있다.
명백히 범죄를 저지르는 방향으로 동작하게끔 제조사가 알고리즘을 설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본고(本稿)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상정한 윤리학의 딜레마

1) 2015년 6월, 외국의 한 연구팀이 “자율주행차량의 사회적 딜레마”(The Social


Dilemma of Autonomous Vehicl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미국의 과학전문저널 ‘사
이언스’(Science)지에 게재했다. 이 논문은 자율주행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처할
수 있는 세 가지 딜레마 상황을 제시하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연구했
다. 동 논문은 자율주행차량이 주행 중에 앞에 나타난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하
려고 급선회하였을 경우 다른 보행자나 차량의 탑승객이 사망하게 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리고 앞의 보행자가 여러 명일 경우와 한 명일 경우, 다른 보행자
가 희생되는 경우와 차량의 탑승객이 희생되는 경우로 구분하여 각각의 딜레마
사례의 내용을 구성했다([사례 1] 여러 명의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방향
을 틀면 한 명의 다른 보행자가 사망하는 경우; [사례 2] 한 명의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방향을 틀면 차량에 탑승한 승객이 사망하는 경우; [사례 3]
여러 명의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방향을 틀면 차량에 탑승한 승객이 사
망하는 경우). 이들의 연구는 국내외 언론에 의해 빈번히 인용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윤리적 과제에 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喚起)하는 데에 일조했다.
Jean-François Bonnefon, Azim Shariff & Iyad Rahwan, “The Social Dilemma of
Autonomous Vehicles”, Science Vol. 352, Issue 6293 (2016), pp. 1573-1576 참조.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3

사례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사람이 위와 같은 류(類)의 딜레마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범죄가 되고 또 면책이 되는지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해서 범죄인
행위라면, 같은 동작을 인간의 설정에 의해 자율주행자동차가 해도 마찬가지로 범법
(犯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가 원용하는 것은 윤리학의 고전적 주제
인 ‘폭주하는 전차의 딜레마’이다. 이는 자율주행차 딜레마의 모태가 된 예이면서
최근에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이다. 자율주행차 딜레마
와의 연관성을 떠나 시사적인 측면에서 그 자체로서의 분석의 값어치도 있는 사례라
고 생각된다. 아래에서는 목차의 항목을 바꾸어 전차 딜레마의 이론적 배경에 관해
먼저 살펴본 다음, 순차로 전차 딜레마와 자율주행차 딜레마의 형사법적 결론에
대하여 고찰해 보기로 한다.

Ⅱ. 트롤리학 ― 폭주하는 전차의 딜레마

사례 1: 철로 위를 폭주하는 전차가 있다. 당신은 그 전차의 기관사이다. 전차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철로 위에 서서 작업을 하고 있다. 여러분은 전차를 멈추려 하지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대로 달린다면 다섯 명의 인부는 모두 전차에 치여 죽고 말 것이다.
이때 당신은 옆으로 빠지는 비상철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차를 비상철로
쪽으로 돌리면 다섯 명의 인부는 살 수 있다. 그런데 비상철로 위에도 한 명의 인부가
서 있다. 당신이 전차의 방향을 바꾼다면 다섯 명은 살겠지만 한 명이 죽게 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소위 ‘支線’(spur track) 딜레마)
사례 2: 여기 또 한 대의 폭주하는 전차가 있다. 이번에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다리 위에 서서 전차를 바라보는 구경꾼이다. 마찬가지로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서
다섯 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전차가
다섯 명의 사람을 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 놓여있다. 문득 당신은 옆에 난간에
기댄 채 서 있는 덩치가 큰 남자를 발견한다. 당신은 그 남자를 밀어 다리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 남자를 밀어 질주하는 전차 바로 앞에 떨어지게 한다면 전차를
막아 세울 수 있다. 그 남자 한 명은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소위 ‘뚱보’(fat man) 딜레마)
4 김준호

이 전차 문제(trolley problem)는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Philippa Foot)이 고안하


고,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에 의해 보완된 윤리학
의 사고실험(思考實驗)에서 발췌한 것이다.2) 1967년 이 문제가 처음 논단에 제시된
이래 지금껏 여러 변용(變容) 사례가 등장하며 세간의 논의를 촉발시켰다.3) 많은
논문과 저서, 기사가 위의 ‘질주하는 트롤리’ 사례와 연관되어 있는 까닭에 이 테마
를 아울러 ‘트롤리학’(trolleyology)이라 부르는 농담조의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
다.4) 또한 이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Michael J. Sandel)이 그의 하버드대학 강좌인 「정의」(Justice)에서 첫 번째 토론
주제로 다루면서 더욱 유명해진 예이기도 하다.5) 전차의 진로를 옆으로 돌리는 것이

2) Philippa Foot, “The Problem of Abortion and the Doctrine of the Double
Effect”, Oxford Review, No. 5 (1967), pp. 5-15; Judith Jarvis Thomson, “The
Trolley Problem”, The Yale Law Journal, Vol. 94 No. 6 (1985), pp. 1395-1415.
위 사례 1(지선 사례)이 처음 등장한 것이 필리파 풋(Philippa Foot)의 1967년도
논문에서였고, 사례 2(뚱보 사례)는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
의 1985년도 논문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3) 트롤리 딜레마의 여러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풀어쓴 문헌으로, David Edmonds,
Would You Kill the Fat Man?: The Trolley Problem and What Your Answer
Tells Us about Right and Wrong,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데이비드 에드먼즈(석기용 역),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이마,
2015; Thomas Cathcart, The Trolley Problem, or Would You Throw the Fat
Guy Off the Bridge: A Philosophical Conundrum, New York: Workman
Publishing Company, Inc., 2013; 토머스 캐스카트(노승영 역), 󰡔누구를 구할 것
인가?󰡕, 문학동네, 2014 등 참조.
4) 트롤리학(trolleyology)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의 철학자 콰메 앤서
니 애피아(Kwame Anthony Appiah)로 알려져 있다. Kwame Anthony Appiah,
Experiments in Ethic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8, pp.
89-92 참조.
5)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2014년 12월에 ‘정의, 시장 그리고 좋은 사회’(Justice,
Markets and the Good Society)라는 주제로 열린 「제3회 숭실석좌강좌」에서도
그는 예의 트롤리 딜레마를 언급하여 강연의 문을 열었다. 1,700여명의 청중이
함께 한 그 자리에는 필자도 있었다. 샌델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필자는 이 문
제를 우리 형법에 대입하여 본다면 어떤 결론이 날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
다. 최근 자율주행자동차를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것을 보며 필자는 그때 생각했던 바를 짧게나마 글로 옮겨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원고는 그 소박한 작업의 소산(所産)이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5

옳은가, 돌리지 않는 것이 옳은가? 또 남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것이 옳은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위 두 딜레마 사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화두(話頭)가 그것이다. 어느 선택이 정의로운가를
놓고 잇단 사유실험(思惟實驗)이 이루어졌다. 이는 마치 한 사회의 도덕적 직관을
확인하는 문제인 듯 여겨졌기에 고뇌를 요하는 딜레마로서 곧잘 문학과 영화의 모티
브가 되고는 했다. 근년에 이루어진 한 심리실험에 따르면, 사례 1에 대해서는 대다
수의 사람들이 전차의 진로를 갓길로 트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일이라고 여긴
반면, 사례 2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를 밀어 철길에 떨어뜨리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여겼다.6) 두 사례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
인가?
공리주의(utilitarianism) 관점에 따르면, 사례 1과 사례 2의 딜레마 사이에 본질적
인 차이는 없다. 기관사는 한 명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했고, 구경꾼도 본질상
같은 일을 해서 사회의 공리(功利)를 증진시켰다. 그러므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공리주의의 명제 아래에서 기관사와 구경꾼은 모두 옳은 일을 한 것이 된
다.7) 하지만 의무론(deontology)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례 2의 행위는 사례 1의 그것
과 달리 그르다는 판단을 받는다. 예(例)의 구경꾼은 옆의 덩치 큰 남자를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定言命法)에 위반했다는 점에서 다리 위의 구경꾼은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8)

6) 미국의 하버드대학 심리학자들의 주도 하에 2003년 9월부터 2004년 1월까지


5,000여명의 자발적인 피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한 온라인 심리실험에서 사
람들은 위의 두 딜레마 사례를 두고 두드러지리만치 상반되는 선택을 했다. 첫
번째 딜레마에서 운전자가 전차의 방향을 바꿔 한 명의 인부가 있는 쪽으로 질
주하도록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89%에 달했다. 반
면, 두 번째 딜레마에서는 구경꾼이 옆에 있는 한 남자를 철로 위로 밀어 떨어
뜨려 전차의 질주를 막는 일이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11%에
그쳤다. Marc Hauser, Fiery Cushman, Liane Young, R. Kang-Xing Jin & John
Mikhail, “A Dissociation Between Moral Judgments and Justifications”, Mind &
Language, Vol. 22 No. 1 (2007), pp. 1-21 참조.
7) 이는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의 견해를 반영한 결론이다.
8) 이는 의무론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6 김준호

한편, 사례 1과 사례 2의 옳고 그름의 차이를 행위자가 품었던 심리상태(state


of mind)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입장도 있다. 지선(支線) 사례에서 기관사는 전차의
진로를 바꾸면서 한 명의 인부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는 자신이 전차의 방향을 돌림
으로써 측선철로 위에 서 있던 한 명의 인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한 명의 죽음을 의도하며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가 의도한 것은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는 일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기관사는 전차를 조종해서 그 진로를 측선철로 쪽으로 바꾸었다. 그로써 한 명이
죽게 되었다는 결과는 논외로 하되 행위 자체만을 놓고 보면 전차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한 명의 죽음을 의도하며 이루어진 행동이 아니다. 그 한 명의 죽음은 행위자가
의도했던 다섯 명의 구명(救命)이라는 효과와 더불어 실현된 쌍둥이 효과일 뿐이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는 한 명의 사망을 예견하였으되 그것을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
다.
반면, 뚱보 사례에서 구경꾼은 한 덩치 큰 남자의 죽음을 처음부터 의도했다.
그는 자신이 옆의 덩치 큰 남자를 다리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면 그가 전차에 치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이용해서 구경꾼은 달려오는 전차를
멈추고자 했다. 그로써 그는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인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사람을 밀어 떨어뜨려 전차에 치어
죽게 만드는 행위는 잘못이다. 이는 사람의 죽음을 의도하며 이루어진 행위이기
때문이다. 뚱보 사례에서 행위자의 행위가 지선 사례의 그것과 다른 점은 행위자가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서 다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의도에 있다. 사례 1에서
지선 위 인부의 죽음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예견되었던 효과라면, 사례 2에서 덩치
큰 남자의 죽음은 행위자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효과에 가깝다. 이 의도와 예견의
차이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근거를 구하는 이론을 이중효과의 원리
(doctrine of double effect)라고 부른다.9)

의 견해에서 가져온 결론이다.


9) 이중효과의 원리에 따른 결론은 지선 사례의 행위는 옳고, 뚱보 사례의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지선 사례에서 행위자에게는 비상철로 위의 한 인부
를 죽일 의도가 없었지만, 뚱보 사례의 행위자에게는 옆에 있던 덩치 큰 남자
를 죽일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그와 같은 주장의 논거였다. 이 주장을 논박하
기 위해 연구자들은 아래의 예를 포함한 몇 가지 변용례(變容例)를 제시했다.
이하의 두 예에서 행위자는 지선 사례에서와 같이 전차의 방향을 다른 선로로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7

혹자는 두 딜레마의 성격을 두고서 ‘다섯 명을 살릴지 한 명을 살릴지 선택을


하는 것’과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그 차이를 설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설명은 잘못되었다. 사례 1과 사례 2는
모두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할지 말지’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 본질의 차이가 없다.
사례 1에서 측선(側線) 선로에서 작업하던 한 인부에게는 처음부터 위험이 발생하

바꾸는 일만 했다. 하지만 행위자가 다른 선로 위 한 사람의 죽음을 전혀 의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게끔 사례가 구성되어 있다.
사례 3: 전차가 철로 위를 폭주하고 있다. 당신은 철로 밖에서 그 장면을 바
라보고 있다.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는 다섯 사람이 서 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다섯 명은 모두 전차에 치어 사망할 것이다. 마침 당신은 지금 선로전환기(線
路轉換器) 옆에 서 있다. 당신이 전환기를 당기면 전차의 진로는 본선 옆의 루
프선로(loop line) 쪽을 향할 것이다. 하지만 전차가 루프선로를 따라 고리 모양
으로 회전한 다음에 다시 본선으로 진입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전환기를 당
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전차의 진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한
전차는 루프선로를 돌아 뒤에서 다섯 명을 치어 사망케 할 것이다. 그런데 루
프선로 위에는 한 덩치 큰 남자가 묶여 있다. 그의 큰 몸집은 달리는 전차를
멈춰 세우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차를 루프선로 쪽으로 향하게 한다면 그 한
명은 사망하겠지만, 대신 전차의 진행이 멈춰 다섯 명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소위 ‘루프’(loop) 딜레마)
사례 4: 한 대의 전차가 철로 위를 폭주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철로 밖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고, 당신 옆에는 선로전환기(전철기)가 놓여 있다. 전차
가 다섯 명을 향해 질주하여 이들을 치기 일보직전이다. 당신은 전환기를 당겨
전차의 진로를 보조선로 쪽으로 바꿀 수 있다. 보조선로 위에는 덩치 큰 한 남
자가 묶여 있다. 당신이 전환기를 당겨 전차의 방향을 바꾼다면 전차는 그 한
명을 치어 죽이고 멈춰 설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 한 명 뒤편의 보조선로
위에 또 다른 여섯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만일 보조선로 위의 한 남자가
없었다면 방향을 전환한 전차는 속력을 더해 질주하여 여섯 사람을 치어 죽일
것이다. 전차의 방향을 바꾼다면 본선 위의 다섯 명은 살 수 있고, 대신 보조
선로 위의 한 명이 죽을 것이다. 또, 보조선로 뒤편의 여섯 명이 살기 위해서
는 앞쪽의 한 명이 반드시 전차에 치어 전차를 멈춰 세워야 한다. 당신은 전환
기를 당길 것인가? (소위 ‘한 명 뒤에 여섯 명’(six behind one) 딜레마)
사례 3(루프 사례)은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이 그의 1985
년도 논문에서 소개한 예이고, 사례 4(한 명 뒤에 여섯 명 사례)는 마이클 오
츠카(Michael Otsuka)가 그의 2008년도 논문에서 소개한 예이다. Judith Jarvis
Thomson, supra note 2; Michael Otsuka, “Double Effect, Triple Effect and the
Trolley Problem: Squaring the Circle in Looping Cases”, Utilitas Vol. 20, No. 1
(2008), pp. 92-110.
8 김준호

지 않았다. 그는 전차가 달려오지 않는 지선에서 평온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


다. 그런데 갑자기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꿈으로써 그 한 인부는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위험에 처했다.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꾼 것은 본선 선로 위에서 작업하
던 다섯 명의 인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의도야 어찌되었건 기관사는
다섯 명을 살리려고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 비록 기관사가 그 한 명의 죽음을
진심으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같은 이치로, 사례 2에서도 다리 위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에게 처음부터 위험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평온하게 다리 위에 서서 질주해 오는 전차를 바라보고 있었
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구경꾼이 자신을 밀어 떨어뜨려 다리 아래로
질주하는 전차에 부딪치게 했다. 물론 그의 의도는 전차를 멈추게 해 선로 위 다섯
명의 인부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써 덩치 큰 남자가 사망
하게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리 위의 구경꾼은 다섯 명을 살리려고 의도적
으로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처럼 사례 1과 사례 2는 모두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지선 사례의 기관사에게는 오직 두 가지 선택지만이
주어져 있다. 전차의 방향을 바꾸어서 한 명을 죽게 만들고 다섯 명을 살릴 것인가
(작위),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다섯 명의 죽음을 지켜볼 것인가(부작
위). 또, 뚱보 사례의 구경꾼에게도 오직 두 가지의 선택지만이 주어진다. 옆의 남자
를 밀어서 떨어뜨려 죽게 만들고 다섯 명을 구할 것인가(작위),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다섯 명의 죽음을 지켜볼 것인가(부작위).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
이 문제에 관한 의무론적인 해결 방법은 행위가 정언명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었다. 정언명법에 의하면, 사례 2에서 옆 사람을 다리 아래로 미는 행위
는 그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우했기 때문에 옳지 않다. 또, 이중효과의
원리에 의하더라도 사례 2의 행위는 처음부터 한 사람의 죽음을 의도하고 이루어졌
기에 옳지 않다는 판단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례 1의 행위는 언제나 정당한가? 사례
1에서 기관사는 전차의 방향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언제나 옳다는 판단을 받을 것인
가?
이제부터 필자는 이 물음에 관해 철학이 아닌 법학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위 사례들의 옳고 그름은 지금껏 철학계의 난제(難題)로서 완벽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형사실무에 가져간다면 유죄나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9

무죄, 어느 쪽으로든 결론은 나게 되어 있다. 혹여 윤리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행위


가 형사법상 범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인가? 철학에서 옳고 그름이 갈린 사례들에
대해 법학에서도 같은 결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사례 1, 2의 행위에 대한
형사법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위의 두 딜레마 사례에서는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차의 방향을 틀거나
남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것만이 최후의 유일수단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것이 유일
한 수단이었던 만큼 그보다 더 가벼운 수단, 다른 말로 법익에 더 작은 피해를 입히는
선택지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관사와 구경꾼의 행위는 최후의
수단이었고 또 필요최소한 수단이었다. 나아가 두 행위자의 행위는 고의(故意)에
기한 것이었다. 기관사도 지선에서 한 인부가 작업 중인 사실을 알면서 전차의 방향
을 틀었고, 구경꾼이 의도적으로 옆의 남자를 다리 아래로 밀었다는 사실은 불문가
지(不問可知)이다. 그러므로 이들 사례에서는 업무상과실치사죄와 같은 과실범을
논할 여지가 없다. 오직 검토할 수 있는 바는 고의범인 살인죄뿐이다.
이상의 점을 전제로 해서 본고(本稿)는 사례 1과 사례 2의 각 행위에 대한 형사처
벌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형법상의 행위란 작위와 부작위로 나누어지기에 위의 두
사례에 대해서도 작위범과 부작위범의 성립을 모두 검토하기로 한다. 먼저 사례
1에서는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꾸는 행위(작위)와 그로써 한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놓고 살인죄의 성립 여하를 검토한다(아래 Ⅲ. 1. (1)). 또, 같은 사례에서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행위(부작위)와 그로써 다섯 명이 사망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립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아래 Ⅲ.
1. (2)). 나아가 사례 2에서 구경꾼이 남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행위(작위)를 하여
그의 사망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살인죄의 성립 여부를 검토한다(아래
Ⅲ. 2. (1)). 그리고 같은 사례에서 구경꾼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부작위) 다섯 명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했을 경우에도 살인죄가 성립할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아래 Ⅲ. 2. (2)).
10 김준호

Ⅲ. 법학적 사유실험 첫 번째 ― 폭주하는 전차의


딜레마에 관하여

1. 지선 딜레마의 형사법적 결론

(1) 전차의 진로를 바꾼 경우 ― 한 사람이 사망한 결과에 대하여

1) 기관사의 행위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가?

지선 사례의 기관사는 전차의 진로를 바꿔 비상철로 쪽으로 향하게 했다. 비상철


로 위에는 한 명의 인부(이하 A라 칭한다)가 있다. 달리는 전차의 방향을 바꿔 사람
을 향하게 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생명을 앗을 만큼 위험하다. 이는 살인의 객관적인
위험성이 인정되는 행위이다. 형법 제17조는 범죄를 구성하는 모든 행위가 “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10) 이처럼 어떤 죄의 구성요건적
결과를 야기할 만한 ‘위험발생에 연결’되는 행위를 그 죄의 실행행위(實行行爲)라고
부른다. 살인죄를 예로 들면, 사망의 결과를 야기할 만한 유형적인 위험성을 가진
행위가 살인죄의 실행행위, 즉 살인행위가 되는 것이다. 사례 1에서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꿔 A를 향하게 한 것은 살인죄의 실행행위이다.11) 이 실행행위가 A의
사망이라는 결과와 인과관계를 가질 때에 그것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시계열적(時係列的)으로 보면, 구성요건적 결과 앞에는 무수히 많은 행위의 연쇄
(連鎖)가 자리하고 있다. 이 맞물리는 행위들 중에서 어느 것이 결과의 원인이 되었
는가를 찾는 과정이 인과관계(因果關係)의 판단이다. 형법상 인과관계의 판단은 조
건관계와 상당인과관계, 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 중 조건관계는 어떤 행위와
결과 사이에 사실적인 연결관계가 있는가 라고 하는 판단이다. 반면 상당인과관계는
어떤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진행이 개연성이 있는가 라고 하는 판단이다. 판례
중에는 명목상 상당인과관계의 존부(存否)만을 따지는 듯한 예가 많다. 다수의 판결

10) 제17조(인과관계) 어떤 행위라도 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결과로 인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11) 실행행위를 다른 말로 ‘구성요건적 행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리는 전차의 진
로를 바꿔 사람을 향하게 하는 것은 살인죄의 구성요건적 행위이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11

례가 행위와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거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식으


로 결론을 맺는다.12) 하지만 판결의 내용을 따져보면 그 안에는 조건관계의 존부를
판단한 예도 분명히 있다.13) 형법상 인과관계의 내용은 조건관계와 상당인과관계의
순차적인 판단으로 채워지는 것이 자연스럽다.14)
조건관계의 판단은 ‘행위가 없었으면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인가’라고 하는
공식에 대입하여 이루어진다. 행위와 결과 사이에 조건관계가 있다고 하려면, ‘그
행위가 없었다면 절대로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야 한다.15) 반대
로 말해, ‘그 행위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같은 결과가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조건관계는 부정된다.16)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는 전차의 진로를 비상철로 쪽으
로 틀었다. 그 결과 A가 전차에 치어 사망했다.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면 전차가 A를 치어 사망케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차의
진로를 바꾼 기관사의 행위가 없었다면 A의 사망이라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12) 대법원 1967. 2. 28. 선고 67도45 판결; 대법원 1967. 8. 29. 선고 66도1197 판
결; 대법원 1986. 9. 9. 선고 85도2433 판결; 대법원 1989. 9. 12. 선고 89도866
판결; 대법원 1990. 5. 22. 선고 90도580 판결; 대법원 1993. 1. 15. 선고 92도
2579 판결; 대법원 1995. 5. 12. 선고 95도425 판결; 대법원 1996. 5. 10. 선고
96도529 판결; 대법원 1996. 5. 28. 선고 95도1200 판결; 대법원 1998. 9. 22.
선고 98도1854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5286 판결; 대법원 2000. 9.
5. 선고 2000도2671 판결; 대법원 2001. 6. 1. 선고 99도5086 판결; 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도5005 판결;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도4315
판결; 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5도5236 판결;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7도7060 판결; 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9도3219 판결 등 다수.
13) 대법원 1967. 10. 31. 선고 67도1151 판결; 대법원 1990. 12. 11. 선고 90도694
판결; 대법원 1996. 11. 8. 선고 95도2710 판결.
14) 형법 제17조는 인과관계의 내용 중 ‘실행행위’에 관해서만 짤막한 규정을 두는
데에 그친다. 실행행위와 구성요건적 결과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을 때에 인
과관계가 있다고 볼 것인지에 대해 제17조는 별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인과관계의 주요한 내용이 오롯이 판례와 학설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15) ‘피고인의 과실이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증명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부정한 예로 대법원 1990. 12. 11. 선고 90
도694 판결; 대법원 1996. 11. 8. 선고 95도2710 판결을 보라.
16) ‘피고인의 부작위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피해자는 사망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하여 인과관계를 부정한 예로 대법원 1967. 10. 31. 선고 67도1151 판결을
보라.
12 김준호

‘행위 없으면 결과 없음’이라는 조건관계의 공식을 충족한다. 기관사의 행위와 A의


사망 사이에는 조건관계가 있다.
다음으로 검토할 것은 상당인과관계의 존부이다. 상당인과관계의 핵심은 ‘어떤
행위가 가지는 위험이 실제로 결과로 실현되었는가’에 있다. 행위와 결과 사이에
다른 조건이 개입되었을 경우에 처음에 행위가 지녔던 위험이 결과로 실현되어야만
그 행위를 결과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간에 개입된 다른 조건이 결과를
야기하였을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행위가 가졌던 위험이 결과로 실현되었
다고 볼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상당인과관계의 판단이다. 행위와 결과 사이에
개입될 수 있는 다른 조건에는 (ⅰ) 피해자의 특수체질17), (ⅱ) 피해자의 행위18),
(ⅲ) 제삼자의 행위19) 및 (ⅳ) 행위자의 다른 행위20)라고 하는 네 가지 유형이 있
다.21) 지선 사례에서는 기관사의 행위와 A의 사망 사이에 그 어떤 다른 조건이
개입된 정황이 없다. 그러므로 상당인과관계를 검토할 필요도 없이 기관사의 행위와
A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례 1의 기관사는 전차의 진로를 바꿈으로써 A의 사망의 결과를 야기했다. 그의
행위는 A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고, 살인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충족한다. 그의
살인행위는 위법하다는 추정을 받고, 따로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위법
행위로서 확정될 것이다.

2) 기관사의 살인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는가?

지선 사례에서 전차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폭주했다. 전차가 계속 진행한다면

17) 대법원 1967. 2. 28. 선고 67도45 판결; 대법원 1978. 11. 28. 선고 78도1961
판결; 대법원 1986. 9. 9. 선고 85도2433 판결 등.
18) 대법원 1982. 11. 23. 선고 82도1446 판결; 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도3612
판결; 대법원 1995. 5. 12. 선고 95도425 판결; 대법원 1996. 5. 10. 선고 96도
529 판결;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5286 판결 등.
19) 대법원 1982. 12. 28. 선고 82도2525 판결; 대법원 1984. 6. 26. 선고 84도831
판결; 대법원 1990. 5. 22. 선고 90도580 판결 등.
20) 대법원 1988. 6. 28. 선고 88도650 판결; 대법원 1994. 11. 4. 선고 94도2361
판결 등.
21) 이 네 가지의 각 유형마다 판례가 축적되어 있어 상당인과관계의 법리를 구성
한다. 이를 분석한 연구로 졸고(拙稿), “위험의 실현으로서의 상당인과관계”, 󰡔저
스티스󰡕 통권 제137호, 한국법학원, 2013, 301-333면 참조.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13

다섯 명의 인부(이하 B, C, D, E, F라 칭한다)를 치어 사망케 할 것이다. 이 같은


위험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초래된 상황이 아니다. 이는 누군가에 의한 침해
가 아니라 B 외 4인에게 닥친 위난일 뿐이다. 따라서 전차가 B 등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은 제21조의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아니라 제22조가 규정하는 “현재의 위난”
에 포섭된다. 기관사가 B 등을 치지 않으려고 전차의 진로를 바꾼 것은 피난상황에
대응하여 이루어진 행위이다. 이 행위가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가 사례 1의 가벌성을 가름하는 관건이다.
긴급피난이 성립하려면 피난상황 외에도 피난행위와 상당한 이유라는 요건이 모
두 갖추어져야 한다. 제22조 제1항이 규정하듯,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행해지
고, 그러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긴급피난이 성립한다. 긴급피난이
성립하는 행위를 우리 형법은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22) 반면, 위난을 ‘피
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없는 때’에는 긴급피난이 아닌 과잉피난이 성립한
다. 이를 우리 형법은 다른 말로 ‘피난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라고 표현하며,
이 경우에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23) 정리하
면, 피난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란 다른 말로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없는 때’라고 표현할 수 있고, 반대로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란 피난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하지 않은 때’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할 수
있다. 위난자의 피난행위는 ‘상당한 이유’의 있고 없음에 따라 긴급피난과 과잉피난,
이 두 가지로 정확히 나뉘어진다.24)
긴급피난과 과잉피난은 둘 다 위난자의 행위가 ‘피난행위’, 즉 “위난을 피하기

22)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23) 제21조(정당방위)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
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
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2조(긴급피난) ③전조 제2항과 제3항의 규정은 본조에 준용한다.
24)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란 말은 정확하게 ‘피난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란 말에 반대된다. 다시 말해, ‘피난행위가 그 정
도를 초과한 때’는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없는 때’와 같은 말로
쓰일 수 있다. 이 점은 형법 제22조의 문언을 가지고 귀류법적으로 논증할 수
있다. 그 상세한 논증은 졸고(拙稿), “형법 제22조 긴급피난의 성립요건에 관한
연구”, 󰡔법학연구󰡕 제28권 제3호,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2018, 139-177면 참조.
14 김준호

위한 행위”에는 해당할 것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 행위가 애초에 피난행위가 아니


라면 상당한 이유를 따질 전제가 사라지고, 이는 긴급피난도 과잉피난도 되지 못한
다. 행위가 긴급피난도 과잉피난도 되지 못할 때의 효과는 형의 감면이 없는 유죄판
결이다. 피난행위가 아닌 행위는 단순한 가해행위로서 과잉피난조차 되지 못해 형의
감면이라는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행위가 처음부터 피난행위가
아닌 때의 효과는 피난행위가 상당한 이유를 결하는 때의 효과보다 행위자에게 더욱
불리하다. 피난행위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행위자에게 형의 감경・면제라는 효과를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위와 같이 피난행위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상당한 이유가 있나 없나의 판단과 엄밀
히 구분되어야 한다. 형의 감경・면제란 가능성을 남겨둘지 아니면 그 여지조차 박탈
해 버릴지는 법적으로 엄연히 다른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지선 사례의
기관사의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다.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B 일행
쪽으로 돌린 행위는 과연 피난행위인가? 그래서 그 행위에 형의 임의적 감면이라는
최소한의 혜택을 확보해 주어도 좋을 것인가? 혹여 이 행위를 두고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조차 아니라고 보아 긴급피난은 물론 과잉피난도 성립하지 못하도록 할
여지는 없는가? 이 점에 답을 하려면 행위가 피난행위가 되고 되지 못하는 기준을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상당한 이유가 있고 없음에 관한 기준과는 다른 무엇인가의
잣대가 여기서 밝혀져야 한다.
긴급피난의 요건으로 판례 및 학설이 언급하는 바는 크게 네 가지이다.25) 이를

25) 처음에 대법원 2006. 4. 13. 선고 2005도9396 판결이 형법 제22조의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의 요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언급한 이래, 이를 따르는 후속판
례가 누적되며 하나의 법리를 형성했다. 2006년 대법원판결은 긴급피난의 상당
한 이유의 내용으로, (ⅰ)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
한 수단이어야 하고”(최후수단성), (ⅱ)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며”(필요최소성), (ⅲ) “피난행위에 의하여 보전되는 이익은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법익우월성), (ⅳ)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사회윤
리성)이라는 네 가지를 적시했다. 이 판시를 그대로 따르는 판결례로,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8도11921 판결; 대법원 2013. 6. 13. 선고 2010도13609
판결;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판결;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4도2447 판결 등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긴급피난의 성립요건 중에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영역이 있고 그 아래에 유일수단성과 사회윤리성의 판단을 따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15

지선 사례에 대입하여 보면서, 이 중에 피난행위의 요건이 될 것과 상당한 이유의


요건이 될 바를 각각 나누어 보기로 한다. 행위를 ‘피하기 위한 행위’로 볼 것인가
아닌가 라고 하는 유무(有無)의 판단은 피난행위의 요건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달리 피난행위가 과잉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정도(程度)의 판단은 상당한 이유
의 요건으로 분류되는 것이 맞다.
그 요건의 첫 번째는 최후수단성(最後手段性)이다.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
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유일수단이었어야 한다.26) 다시 말해, 위난으로부터 도망
친다거나 이웃에 구조를 요청하는 등의 회피수단이 불가하고 누군가의 법익을 침해
하여 그 위난을 타개하는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난을 피할
래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법익침해만이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말뜻에 어울린다. 예컨대, 행위자가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가 구태여 누군가를 공격하면서까지
자신의 법익을 옹호하는 것은 피난행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최후수단성은 피난행
위의 하위요건으로 분류되는 것이 문의(文義)에 맞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의 행위
는 이미 최후의 유일수단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긴급피난의 두 번째 요건은 사회윤리성(社會倫理性)이다.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이어야 한다.27) 가령, 납치되
어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인질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납치범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은 윤리상 허용될 수 없는 수단이다. 설사 그것이 인질을 살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이상 사회윤리성을 결여한다고 보아

로 위치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래서 ‘상당한 이유’라는 개념의 하위에는


필요최소성과 법익우월성의 판단만을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례처럼 모
든 판단의 요소를 뭉뚱그려 ‘상당한 이유’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위치시키는
것은 사례에 따라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을 초래한다. 이 점은 본문에서 간략하
게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졸고(拙稿), 앞의 글(주 24), 139-177면 참조.
26) 이를 학설은 보충성의 원칙이라 표현한다. 이 용어는 같은 맥락의 ‘유일수단성’
이나 ‘최후수단성’이라는 말로 갈음될 수 있다.
27) 이를 학설은 적합성의 원칙이라 표현한다. 여기서 어떤 수단이 적합성이 있다
는 말은 그것이 단순히 ‘위난을 피하기에 적합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 적합성
은 행위자가 취한 수단이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을 만큼 사회윤리
에 부합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혼동의 여지를 더는 차원에서
적합성이란 용어는 ‘사회윤리성’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
된다.
16 김준호

야 한다. 마찬가지로 긴급 수혈을 요하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의사가 때마침 병원을


찾은 다른 환자로부터 강제로 혈액을 채취한다고 하는 예도 사회윤리상 허용되지
못할 피난에 속한다. 이 같은 예들은 처음부터 ‘피하기 위한 행위’의 범주에서 제외
시켜 무죄판결이나 형 감면을 얻을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사회윤리성
은 피난행위의 하위요건으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의 행위는 사회윤리상 적합한 수단인가? 이 점에 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긴급피난의 요건 세 번째는 필요최소성(必要最小性)이다.28) 행위자는 피난을 할
때에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한다. 이 요건의 충족
여하는 행위자가 실제로 취한 피난행위보다 더 경미한 수단으로도 법익을 위난에서
온전히 보호할 수 있었는가 라는 가정적(假定的) 심사를 통해 판단된다. 만일 경미한
대체수단으로도 피난자의 법익을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고 인정되면, 실제의 피난행
위는 법익 보호에 필요하고도 최소한 수단이라 할 수 없어 긴급피난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판단은 명백히 행위의 강도를 따져 실제의 피난수단과 경미한 대체수단
을 비교하는 속성을 지닌다. 피난행위의 과잉 여하를 따지는 판단이니만큼 필요최소
성은 상당한 이유의 하위요건으로 분류되어 마땅하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의 행위
는 그가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었던 필요최소한 수단이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요건은 법익우월성(法益優越性)이다.29) 피난행위에 의해 보
전되는 이익은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라야 한다.
긴급피난의 피해자는 애초에 부당한 침해를 가한 사실이 없는 제삼자이다. 그런
그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려면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 비추어 피난자가
피난행위로써 보다 높은 법익을 보호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낮은 가치의
법익을 보호하려고 높은 가치를 가진 ‘정당한’ 법익을 희생시키는 일은 전체 법질서
의 관점에서 손실로 귀결되기에 허용될 수 없다. 이 같은 판단도 그 본질은 침해법익
과 보호법익을 비교하여 피난행위의 과잉 여하를 따지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법익

28) 이를 학설은 상대적 최소침해의 원칙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그 심사의 내용이


법익 보호에 필요하고도 최소한의 피난수단을 찾는 과정이라면, 차라리 이를
줄여 ‘필요최소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뜻이 잘 통하는 이론이 될 것이다.
29) 이를 학설은 균형성의 원칙이라 표현한다. 동가치(同價値) 법익 사이에서의 피
난에 대해 긴급피난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을 바에는 균형성이라는 용어 대신 ‘법
익우월성’이라는 용어를 쓰는 편이 더 적절한 어법(語法)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17

우월성도 역시 해석의 체계에 있어서는 상당한 이유의 하위요건으로 분류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렇다면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꾼 행위는 과연 우월
한 법익을 위한 피난이었는가? 다섯 사람의 생명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상에서 본고는 긴급피난의 성립요건으로 총 네 가지를 검토했다. 본고는 이
네 가지를 (ⅰ) 최후수단성, (ⅱ) 사회윤리성, (ⅲ) 필요최소성 및 (ⅳ) 법익균형성이
란 말로 요약하여 표현했다. 이 중 최후수단성과 사회윤리성을 본고는 피난행위에
관한 요건으로 분류했다. 행위가 위난에 대응하는 최후의 유일수단이 아니라면 이는
문리(文理)상 그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행위가 사회
윤리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이를 해석상 피난행위의 범주로부터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꾼 것은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위
행위가 우리 사회의 윤리상 허용되지 못할 바 아니라는 판단만 서면, 이는 다섯
명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하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사람을 향해 전차가 달리도록 방향을 바꾸는 행위가 과연 사회윤리상 적합한 수단
인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설사 전차 앞에 있는 대상이 단 한
명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명을 침해할 것이 예견되는 행위가 사회윤리에 적합한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재삼 숙고가 필요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
논의가 처음부터 법익에 대한 침해를 전제로 하여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긴급피난은 원래가 무고한 제삼자의 법익을 침해하였을 때에 그 정당성 여하
를 따지기 위해 이루어지는 논의의 영역이다. 기관사가 사람을 향해 전차를 질주시
켜 그를 살해하였음에도 그 행위의 허용 여부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자 하는 데에
본 논의의 취지가 있었다. 위난자의 행위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였다는 점만을
가지고는 그의 사회윤리적 적합성을 부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같은 법익
침해 사안인 지선 사례와 뚱보 사례를 비교하여 양자의 다른 점을 따져 보는 것이
오히려 해답을 구하는 손쉬운 길이라고 생각된다.
뚱보 사례에서 구경꾼은 한 사람의 생명을 전차를 멈추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래서 그는 그 한 사람의 죽음을 의도했다. 한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만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뚱보 사례를 특징짓는 핵심적 표지였다.
그러나 지선 사례는 이와 다르다. 적어도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는 한 사람의 생명을
18 김준호

피난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한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였을 뿐이라고 일컬어진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 한 명의 인부가 선로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달려오는 전차를 무사히 피해갈 수 있을지를. 그가 반드시 죽지
않아도 다섯 명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지선 사례의 기관사의 행위는 사회윤리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지선 사례의 행위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의 범주에 포섭된다.
나아가 본고는 필요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을 상당한 이유의 하위요건으로 분류했
다. 이 두 요건을 충족해야지만 최종적으로 긴급피난이 성립하고,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보다 가벼운 대체수단으로도 법익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굳이 무거
운 피난수단을 선택해서 법익을 침해하였다면 이는 상당하다 할 수 없다. 또, 무고한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하고도 그보다 높은 가치의 법익을 보전하지 못한다면 이 행위
도 긴급피난의 ‘상당한 이유’가 없는 행위이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에게는 달리는
전차를 옆으로 트는 것 외에 달리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의 행위는 필요최소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이제 법익우월성의 요
건만 충족하면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고, 긴급피난은 성립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섯 사람의 생명의 가치와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비교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생명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그 가치가 우월한가? 다수라는 명목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앗는 행위가 과연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 비추어 보아 정당한가?
필자는 이 물음에 대해 모든 사람의 생명은 타인에 대한 관계에서 존엄성을 가진다
는 말로 답하고자 한다. 생명의 가치는 숫자로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점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자칫 다수의 생명을 위해서는 소수의 생명을 희생시
켜도 좋다는 위험한 사고에 이를 우려가 있다. 여러 사람이 살겠다고 ― 혹은 여러
사람을 살리겠다고 ― 한 사람을 죽이겠다는 사고는 허용될 수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를 죽일지 선택할 권한이 없다. 만일 그러한 선택을 한다면 이를 우리 형법이
긴급피난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생명과 생명 사이의 피난행위
는 법익우월성을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긴급피난이 되지 못한다. 여러 사람을 구하려
고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제22조 제1항의 ‘상당한 이유’를 결여하는 피난이
다.
결론을 말해, 지선 사례의 기관사의 행위는 위법하다. 생명을 구하려고 생명을
침해한 그의 행위는 긴급피난이 되지 못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19

는 피난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해당하므로 과잉피난으로 형을 임의적으


로 감경 혹은 면제 받을 여지는 있다. 형의 감경이나 면제는 유죄판결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사례 1의 기관사는 따로 책임조각사유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 살인죄의
유죄를 피할 수 없다.

3) 기관사는 살인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하는가?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를 운전했다. 전차는 다섯 명의


인부를 향해 뻗어있는 철로 위를 폭주했다. 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기관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차의 진로를 지선 쪽으로 바꾸는 것밖에 없었다. 전차를
지선으로 몰아 한 명의 인부를 향해 달리게 하는 것 외에 기관사가 달리 취할 수
있는 행위라고는 없었다. 기관사에게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법익을 침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타인의 생명 침해
외의 ‘타행위가능성’(他行爲可能性)이 결여되어 있었다. 위법한 행위를 한 행위자라
도 타행위가능성이 없었을 때에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이렇듯 비난이 애초에 불가
능한 때에는 행위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사례 1의 기관사에게는
책임의 조각 여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성문상의 근거는 없으나 강학상 주장되는 것에 면책적 긴급피난이라는 이론이
있다. 제22조 제1항이 정하는 위법성조각사유로서가 아니라 불문의 책임조각사유로
서의 긴급피난을 인정하겠다고 하는 이론이다. 피난행위가 위법하지만 행위자에게
비난을 가할 수가 없어 책임을 면제하겠다고 하는 발상이 그 이론의 기초에 깔려있
다. 이와 유사한 책임조각사유로 형법 제12조가 명문으로 정하는 ‘강요된 행위’란
것이 있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를 우리 형법은 벌하지 아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30) 예컨대, 자신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부득이하게 타인을
살해한 경우라면 이론상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여 책임이 조각될 여지가 있을 것이
다.
제12조가 규정하는 대로, 누군가에 의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방어할 방법

30) 제12조(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20 김준호

이 없는 협박’에 처한다면 이는 다시 말해 행위자에게 ‘현재의 위난’이라는 피난상황


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피난상황에 처하여서 이루어진 피난행위는 긴급피난이
되거나 과잉피난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피난행위가 동가치(同價値) 법익인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면 법익우월성을 충족하지 못해 과잉피난밖에 될 수 없고,
이는 위법하다. 이 위법한 행위를 두고서 ‘강요된 행위’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조각하
고자 하는 것이 형법 제12조의 취지이다. 제12조의 강요된 행위에도 해당하지 못하
는 영역을 두고 다시 책임의 조각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론이 바로 면책적 긴급피난
이다.
학설은 면책적 긴급피난을 동가치 법익 사이에서 이루어진 피난에 한하여 인정하
고 있다. 비교열위에 있는 법익을 보호하려고 우위에 있는 정당한 법익을 침해한
경우에는 면책적 긴급피난도 성립하지 않는다. 또, 학설은 제12조의 취지를 반영하
여 면책적 긴급피난이 허용되는 대상법익의 범위를 생명・신체나 장소이동의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등의 주요(主要) 법익으로 제한한다. 경미한 재산이나 명예를 보호
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신체를 침해하는 행위는 면책적 긴급피난에도 해당하지 못
한다. 쉬운 예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득불 타인의 생명을 해친 경우가
바로 동가치 법익 사이의 피난으로서 면책적 긴급피난에 해당할 수 있다. ‘생명
대 생명’이라는 같은 가치의 법익 사이의 피난은 비록 정당화적 긴급피난(위법성조
각사유로서의 긴급피난)은 되지 못하더라도 면책적 긴급피난(책임조각사유로서의
긴급피난)에는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면책적 긴급피난이 성립하려면, 위의 요건을 갖추는 외에도 ― 즉, 주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동가치 법익 사이의 피난일 것 외에도 ― 한 가지 전제를 충족해야만
한다. 피난행위의 요건인 사회윤리성에 위반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
다. 원래 면책적 긴급피난이란 법익우월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피난, 즉 동가치 법익
사이에 이루어진 피난에 대해 책임조각의 근거를 마련해 주려는 취지에서 주장되기
시작했다. 동등한 법익 사이의 피난은 제22조 제1항의 ‘상당한 이유’를 갖추지 못해
무조건 위법한 행위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경우의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해 행위자를
비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에 책임을 면제해 주고자 한 것이 면책적 긴급피난
이론의 단초(端初)이다. 그런데 행위가 처음부터 사회윤리상 허용되는 피난행위의
범주에도 들지 못한다면 피난의 상당성 여하를 따져 면책적 긴급피난을 논할 전제가
사라진다. 애초에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조차 아니라면 그 행위는 면책적 긴급피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21

난에도 해당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타인의 생명을 수단


으로 이용한 피난행위는 위법할 뿐만 아니라 책임도 조각되지 못한다. 자기가 살기
위해 타인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행위를 두고 전적으로 책임을 면제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된다.31)
앞서 논하였듯, 지선 사례의 기관사의 행위는 사회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
을 받았다. 그의 행위는 긴급피난의 다른 요건을 모두 갖추되 법익우월성 한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였다. 생명이라는 주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불 그는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고 말았다. 이런 그의 행위는 면책적 긴급피난의 요건에 해당된다.
사례 1의 기관사는 그의 살인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제받을 이론상의 가능성을 가진
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가능성을 의미할 뿐 실제로 같은 사건이 법원에
의해 다루어지면 반드시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면책적 긴급피난을
채택하여 무죄를 선고한 판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32) 차라리 후술하듯이 적법행위

31) ‘생명 대 생명’의 갈등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피난의 예로 곧잘 인용되는 것에


다음의 두 가지 고전적 사례가 있다. 이 둘은 비슷한 사례인 듯 하면서도 실상
은 법리를 달리하여 형사법적 결론이 엇갈리는 예이다.
하나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사례라 불리는 예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
학자 카르네아데스(Karneades)가 제시한 가상의 사례이다. 기원전 2세기경 대양
(大洋)을 항해하던 배가 난파하여 승무원 전원이 바다에 빠졌다. 한 선원이 바
다 위에 떠 있던 한 조각 판자에 몸을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이때
조난자는 다른 선원이 자신이 매달린 판자를 향해 헤엄쳐 오는 것을 보았다.
작은 판자에 두 사람이 매달린다면 둘 다 죽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조
난자는 필사적으로 다른 선원을 밀어내어 그를 익사케 했다. 이 같은 행위는
형법 제22조의 ‘피하기 위한 행위’에는 포섭된다. 다만 이 행위는 자신의 생명
을 부지하려고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킨 것이므로 긴급피난은 되지 못하나 면책
적 긴급피난에는 해당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세간에 유명한 ‘미뇨네트 호’ 사건이다. 1884년 5월, 대양을 항
해하던 영국 선박 미뇨네트(Mignonette) 호(號)가 난파했다. 선원들은 보트에 옮
겨 타고 20일 가량을 표류했다. 그러다 식량과 물이 바닥났다. 절체절명(絶體絶
命)의 위기에서 선원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던 한 어린 소년을 죽이고 4일간 그
의 살점을 먹고 피를 마시며 연명하다 구조되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선원들은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에서 선장은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선원 두 명은 징역 10년형에 처해졌다. 자신들이 살겠다고 타인의 목숨
을 앗아 그 피와 살을 먹으며 연명하는 행위는 사회윤리에 반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이용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윤리상 허용되는
피난행위가 될 수 없어 과잉피난은 물론 면책적 긴급피난도 되지 못한다.
22 김준호

의 기대가능성이 없었다는 이유를 든다면 책임이 조각되어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


이 높으리라 생각된다. 몇 건 안 되지만 기대가능성이 없음을 이유로 책임을 조각시
킨 예는 그나마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은 경우 ― 다섯 사람이 사망한 결과에


대하여

1) 기관사의 행위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가?

이번에는 사안의 내용을 바꿔,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전차는 그대로 본선을 질주하여 다섯 사람을 치어 사망케 했다. 사람이 사망하
였다는 것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 만한 결과이다. 그 결과를 귀속시킬 수
있는 앞선 행위를 찾아 이를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로 인과관계의
판단이다. 형법상 인과관계의 판단에서는 제17조의 규정에 따라 어떤 행위가 “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되는지를 확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동조는 작위・부작
위를 불문하고 모든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적 결과를 초래할 만한 위험발생에 연결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17조의 “어떤 행위”라고 하는 문구는 별달리 작위와 부작
위의 구별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당연한 말이지만, 인과관계의 기점(起點)
이 될 살인죄의 실행행위에는 작위뿐 아니라 부작위도 포함된다.

32) 피고인은 길을 가다가 한 여성이 저수지에 투신하여 자살하려는 광경을 목격했


다. 그가 다급히 여성에게 다가갔을 때는 이미 여성이 둑 아래로 몸을 던져 몸
이 반쯤 물속에 잠긴 상태였다. 피고인은 여성의 생명을 구하고자 물속으로 뛰
어들어 그녀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목을 팔로 감은
채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둑 위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피고인의 팔에
목이 옥죄인 여성은 질식하여 숨을 거두었다. 검사는 피고인에게 여성을 사망
케 한 책임을 물어 그를 폭행치사죄로 기소했다.
위와 같은 사건에서 대구고등법원 1987. 9. 16. 선고 87노787 판결은 피고인
에게 유죄를 인정하여 그를 징역 1년에 처했다. 분명 피고인은 여성의 생명을
구하려 했다. 그러다가 그는 동인의 생명을 침해하고 말았다. 보호법익과 피해
법익이 생명으로 동일하므로 이는 동가치(同價値) 법익 사이의 피난에 해당한
다. 이론상으로는 면책적 긴급피난에 해당함에 충분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대구
고등법원판결은 면책적 긴급피난에 대한 심사에 들어가지 않고 피고인에게 과
잉피난을 인정하는 데에 그쳤다. 이처럼 우리 법원은 아직까지 면책적 긴급피
난을 인정하는 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23

지선 사례에서 결과에 앞서 드러나 있는 행위라고는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


지 않은 것밖에 없다. 기관사가 선로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이다. 이제 이 부작위가 살인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되어야
그것이 다섯 사람에 대한 살인죄의 실행행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 아무 동작도 취하지 않는 부작위가 살인행위가 되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작위에서와는 다른 특수한 조건이 요구된다. 부작위가 사람을 사망케 할 만한 위험
의 발생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 부작위를 한 자에게 부작위를 하지 말 의무, 다른
말로 ‘작위의무’가 있었어야 한다. 작위의무 있는 자의 부작위만이 사람을 살해할
위험발생에 연결되었다고 평가받고, 그로써 살인죄의 실행행위가 될 수 있다.
작위에 있어서 ‘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된다는 사정은 기존에 없던 위험
을 새로이 창출하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가령, 사례 1의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측선 쪽으로 바꾼 것은 그 앞에 있던 한 사람을 새로운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반면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은 것은 그 앞에 있던 다섯 사람에게 이미 발생한
위험을 없애지 않은 것이다. 부작위에 있어서 이 ‘위험발생에의 연결’이라고 하는
요건은 기존에 처한 위험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부작위범에 있어
서는 행위자가 위험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에 착목해야만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 아무 동작도 취하
지 않는 부작위는 그 자체로서는 부작위의 대상에게 어떠한 위험도 발생시켰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은 자가 그 위험의 발생에
‘연결’되었다고 말하려면 그 행위자는 처음부터 그러한 위험을 제거할 의무가 있는
자였어야 한다. 작위의무를 지는 자가 위험을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그 위험이 그대
로 결과로 실현되게끔 방치한 행위는 스스로 작위를 통해 범죄를 실행한 것과 진배
없다.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부작위범의 요건을 규정한 형법 제18조이다.33)

33) 형법 제17조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 행위가 “위험발생에 연결”될 것을 요


구하고, 제18조는 부작위범의 성립을 위해 작위의무자가 “위험발생을 방지”하
지 아니하였을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위험발생’이란 같은 핵심어를 매개로 하
여 제17조와 제18조가 나란히 이어지는 것은 입법상의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 제17조만으로는 포섭하지 못하는 부작위범의 특수한 인과관계를 규율하
기 위해 동조 바로 아래에 만들어 둔 것이 제18조라고 보아야 한다. 이 두 조
항이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작위 내지 부작위가 구성요건적 결과와 연결되
는 범죄의 실행행위가 되는가 여부에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한 연구로 졸
고(拙稿), “형법상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 기준”, 󰡔저스티스󰡕 통권 제148호, 한국
24 김준호

제18조는 부작위범의 성립을 위해 행위자에게 처음부터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었거나 또는 행위자가 그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하였을 것을 요구한
다.34) 이러한 사정을 갖춘 행위자를 학설에서는 ‘작위의무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제18조가 규정하는 행위자의 사정은 ‘작위의무의 발생근거’라고 표현된다. 다시 말
해, 행위자에게 위험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었거나 또는 행위자가 위험발생의 원인
을 야기하였을 때에 행위자는 일정한 작위를 할 의무를 지게 되고, 이 작위의무를
게을리하였을 경우에 행위자는 부작위범의 죄책을 지게 되는 것이다. 제18조 전단의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는 법령이나 계약, 사무관리에 의해 생겨난다. 또, 동조
후단과 같이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다고 함은 선행행위를 통해 상대방을 먼저
위험에 빠뜨렸다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선 사례의 기관사는 철도안전 관계법령에 의해 선로 위에
서 있는 이에게 닥친 위험을 제거할 의무를 지닌 자이다. 그는 여하한 방책이든
동원해서 전차가 그 앞의 다섯 사람을 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녔다.
다시 말해, 기관사는 선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였다. 그런 그가 아무런 조치도 없이 전차가 다섯 사람을 치고 지나도록 방관한
것은 작위의무 있는 자의 부작위이다. 이는 곧 살인죄의 실행행위이다. 사례 1의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아 다섯 사람을 치어 사망케 한다면 그 행위는
살인죄를 구성한다.

2) 기관사의 살인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는가?

기관사가 그의 살인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조각받아 처벌을 면하는 방법은 긴급피


난에 해당하는 길뿐이다. 누군가에게 닥친 위난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B 외
4인을 그대로 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논리만이 기관사에게 남은 항변인
듯이 보인다. 기관사에게는 물리적으로 전차의 방향을 비상철로 쪽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비상철로 위에는 A가 서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A를 살리는 길을 택했고,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

법학원, 2015, 123-145면 참조.


34) 제18조(부작위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
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25

이 선택은 마치 A에게 발생한 위난을 피하기 위해 B 외 4인을 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틀렸다. 처음부터 A에게는 위난이 발생한 사실이 없다.
A는 전차의 진행방향이 아닌 지선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차는 본선을
달려서 A의 옆을 그냥 지나쳤다. 만일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꾼다면 필시 지선
위의 A는 위난에 처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이는 전차가 진로를 바꾸었을 상황에나
있을 ‘가상의 위난’이지 실제로 A에게 발생한 ‘현재의 위난’이 아니다. 형법 제22조
는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라야 긴급피난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결국
기관사가 차마 전차의 진로를 A 쪽으로 돌리지 못하고 B 외 4인을 친 행위는 A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A의 생명을 구하려고 B 외 4인의
생명을 앗았다는 궤변은 긴급피난의 법리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례 1의 기관사의
행위는 긴급피난이 되지 못해 위법하다.

3) 기관사는 살인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하는가?

기관사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하여도 그의 책임이 조각되


어 궁극적으로 처벌을 면할 가능성은 있다. 기관사의 행위를 놓고서 그에게 비난을
가할 수가 없다면 책임이 조각되어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관사는 본선 위의
B 외 4인을 보고도 전차의 진로를 지선 쪽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사람을
치어 사망케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기관사는 전차의 방향을 바꿀 수가 없었다.
지선 위에는 A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차의 방향을 돌려 한 사람을 사망케 하는
행위는 위법함을 면치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앞서 도출한 결론이었다. 긴급피난은
우월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열등한 법익을 희생시켰을 경우에만 성립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는 우열을 따질 수 없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사망케 하는 행위는 과잉피난으로서 위법한 것이다.
결국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지선 쪽으로 바꾸면 그의 행위는 위법하다. 한 명을
살해한 위법행위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차의 진로를 본선으로 유지하면
이 역시도 위법하다. 다섯 명을 살해하는 위법행위가 되는 것이다. 기관사로서는
어떻게 행동해도 위법함을 피할 방법이 없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적법행위를 취할
가능성이 주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법질서는 애초에 기관사에게 적법행위를 기대
할 수 없었다.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것, 바로 이 점에 착목하여 행위자의
26 김준호

책임을 조각시키고자 하는 주장이 기대가능성의 이론이다. 성문의 근거는 없지만


기대불가능성을 이유로 범죄의 성립을 부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학설에서 드물지
않으며, 판례 중에도 또한 이 이론을 원용하는 예가 간간히 발견된다.35) 기대가능성
이론에 의한다면 기관사는 그의 위법행위에 책임이 없어 살인죄의 성립이 부정된다.
기대가능성 이론의 난점(難點)은 그것이 형법전상의 근거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적법행위의 기대불가능성을 두고 ‘초법규적(超法規的) 책임조각사유’라고 부
르는 까닭이다. 법규를 넘어서서 책임 조각을 인정하고자 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
다. 그래서 가급적 이 이론의 범위를 좁게 인정하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는다.36)
개중에는 초법규적인 기대가능성 이론을 아예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발견된다.37)
입법자가 명문의 책임조각사유로 형법 제12조만을 규정해 둔 이상 그 취지를 존중해
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12조의 ‘강요된 행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영역은 분명히
있다. 예의 지선 사례가 그에 해당한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이 아니어도 기관사는 여하간에 위법행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 그에게 살인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법감정상 납득하기 어렵
다. 사례 1의 기관사야말로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전형적인 행위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폭주하는 전차’ 사례 중의 첫 번째 딜레마는 기대가능성의 이론이 적확
하게 들어맞고 그 적용이 필요한 리딩 케이스라고 생각된다. 결국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은 기관사는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어 살인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한
다. 사안을 달리해 전차의 진로를 바꾼 앞의 예에서도 기관사는 같은 논리로 살인행
위의 책임을 면할 수가 있다.

2. 뚱보 딜레마의 형사법적 결론

(1) 남자를 밀어 떨어뜨린 경우 ― 한 사람이 사망한 결과에 대하여

뚱보 사례의 구경꾼은 옆의 덩치 큰 남자(이하 G라 칭한다)를 밀어 다리 아래로

35) 대법원 1966. 3. 22. 선고 65도1164 판결; 대법원 1980. 3. 11. 선고 80도141
판결.
36) 배종대, 󰡔형법총론(제11판)󰡕, 홍문사, 2013, 490-491면.
37) 신동운, 󰡔형법총론(제10판)󰡕, 박영사, 2017, 445면.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27

떨어뜨렸다. 그럼으로써 그는 다섯 명의 인부를 향해 질주하는 전차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이는 G의 희생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다. G가 그의 큰 덩치로 전차를
막아 세우면서 다섯 사람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의도한 구경꾼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 그의 행위가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 한 구경꾼은 살인죄의 죄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분명 선로 위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인부에게는 전차가 그들을 향해 질주하는
위난이 발생했다. 구경꾼은 이 위난을 피하기 위해 옆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를
이용했다. 하지만 그것이 위난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었다 하더라도 구경꾼의
행위는 형법 제22조가 정하는 ‘피난행위’가 되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법에 의해 용인되는 피난행위라고 볼 수 없어 ‘피하
기 위한 행위’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애초에 피난행위가 되지 못하면 상당한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이 긴급피난과 과잉피난, 둘 다가 성립하지 않는다. 구경꾼이 옆의
남자를 민 행위는 위법한 살인행위이다.
나아가 구경꾼은 강학상의 이론인 면책적 긴급피난도 원용하지 못할 것이다. 면책
적 긴급피난은 적어도 사회윤리에는 위반하지 않는 행위를 대상으로 하여 성립한다.
행위가 사회윤리상 허용되는 피난행위의 범주에 들 때에 비로소 면책적 긴급피난을
논할 전제가 마련된다. 그 바탕 위에서 피난행위가 같은 가치의 법익 사이에 이루어
지면, 행위자는 이론에 의지해 책임의 조각을 주장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뚱보를 민 구경꾼의 행위는 사회윤리에 위반하여 형법 제22조가 말하는 ‘피하기
위한 행위’라 할 수 없다. 사례 2의 구경꾼처럼 타인의 생명을 수단으로 이용한
자는 책임을 면제받지 못하고 살인의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2)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경우 ― 다섯 사람이 사망한 결과에 대하여

이번에는 뚱보 사례의 구경꾼이 잠자코 전차의 질주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가정해


보자. 전차가 다섯 사람을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구경꾼은 그의 부작위를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는 전차의 질주를 막을 작위의무가 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
다. 그의 부작위는 살인죄의 실행행위가 되지 않는다. 구경꾼은 살인죄의 부작위범
으로서의 죄책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는 다리 위에서 우연히 인명사고를 목격한
자일 뿐이다.
28 김준호

Ⅳ. 법학적 사유실험 두 번째 ― 자율주행자동차의


딜레마에 관하여

자율주행자동차가 제조사가 설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차량


의 진행방향 앞에 갑자기 다섯 명의 보행자가 나타났다. 자동차가 진로를 선회하면
인도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방향을 바꾸지 않고
달리면 다섯 사람을 치게 된다. 이 자율주행차의 딜레마는 ‘폭주하는 전차’ 사례
중의 지선 딜레마를 닮았다.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꿀지 말지 라고 하는 한계상
황은 자율주행차가 진로를 바꾸어야 할지 말지 라고 하는 한계상황에 꼭 들어맞는
다. 사람이 운전해서 범죄가 될지 말지 라고 소정의 결론을 내었다면, 이 기준은
자율주행차로 하여금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알고리즘을 설정한 제조사에게도 같게
적용되어야 한다.
지선 사례에서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면 이는 위법한 살인행위가 되었다.
이것이 현재까지 우리 판례가 취하고 있는 결론이다. 다만, 강학상으로는 기관사가
면책적 긴급피난이라든가 혹은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 없음을 이유로 책임을 면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가능성에 머무르는 가설이다. 실제 이
같은 사건에서 법원이 면책적 긴급피난 같은 법리를 채택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그나마 기대가능성 이론은 몇 안 되지만 이를 원용한 판례가 있어 향후 법원에 의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안을 바꿔 기관사가 전차의 진로를 바꾸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같은 난관에 봉착
한다. 전차를 그대로 질주시켜 사람을 치는 것도 위법한 살인행위이다. 기관사가
이 행위에 대한 처벌을 면하는 방법은 적법행위에의 기대가능성이 없었음을 주장하
는 길밖에 없다. 어떻게 행동해도 위법행위를 범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 이를
비난하여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펴야 한다. 몇 안 되는 선례에 의지하여
법원에 의해 기대불가능성이 채택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무죄
를 선고받을 이론상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만은 기관사로서는 위안이 될 것이다.
필자의 결론을 말한다면, 작위와 부작위, 이 두 행위 모두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
이 없어 법원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아야 한다고 본다. 자율주행차라고 해서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설정자가 여하하게 명령을 입력해도 그는 결국 형법상
의 이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해서 무죄가 되는 행위라면, 자율주행차가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29

그렇게 움직이도록 명령을 입력한 사람도 무죄가 되어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선회를
하든 직진을 하든 그렇게 알고리즘을 짠 제조사는 기대불가능성의 이론을 주장하여
법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기대가능성 이론이 적용될 단 한 가지 영역을 꼽으라면,
이처럼 행위자가 어떻게 행동해도 위법행위를 범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상황을 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Ⅴ. 결론

전차 딜레마에서 인간이 취한 선택을 놓고 그 심적 배경을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


하다. 각종 학문의 관점에서 사람이 왜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론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들 학문 분과는 인간이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법적 처벌을 면할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답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전차 딜레마 같은 자율주행자동차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여차여차해서 자율주행차가 실제로 인명사고를 야기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고가 형사법적 규율을 피할 수 없다면, 어느 쪽으로든 사회구성원
간의 합의가 도출되고 그 결론이 자율주행자동차의 알고리즘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 간의 합의는 일차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확인된다. 법원이 어떠한 판결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법학자의 의견이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철학자에게는 위의 전차 문제가 도덕적 딜레마의 관점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법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작위와 부작위, 유죄와 무죄 사이의 딜레마에
해당한다.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 인공지능의 제작자라면 법적으로
보다 가벼운 책임에 이르는 결론을 선호할 것이다. 두 선택지 간에 형사책임의 차이
가 없다면, 다음으로는 민사책임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든 자율주행차든 어
떠한 선택을 했을 때에 더 낮은 손해배상책임에 머무를 것인지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주행 중인 자율주행차 앞에 갑자기 다섯 명의 보행자가 나타났다. 이들은 필시
무단횡단 중이었을 것이다. 횡단보도 근처라면 사전에 자율주행차가 서행을 했으리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갑자기 무단횡단자가 나타났기에 자율주행차가 이를 피하
30 김준호

려고 인도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음에 틀림없다. 다섯 명의 보행자에게


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과실이 있다. 반면에 인도 위를 걷고 있던 한 명의 보행자에
게는 아무 과실이 없다. 난데없이 인도 위로 덮쳐든 차에 그 보행자는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을 뿐이다.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고 없고는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반영된
다.
자율주행차가 선회를 해서 인도 위의 한 명을 친다면, 차량 관계인은 그에 무조건
적인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반면에 자율자동차가 직진을 해서 차도 위의 다섯 명을
치었을 경우에는 피해자의 과실 유무가 고려되어야 한다. 다섯 명의 보행자에게
인정되는 과실의 비율에 따라 차량의 제조자는 그만큼 배상금액이 감경될 것이다.
물론 한 명을 친 경우보다 다섯 명을 친 경우에는 늘어난 사람의 숫자만큼 높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고려될 수 있다. 민사법적 결론에 따를 경우에는
피해자의 수에 따라 행위의 선택지를 둘러싼 복잡한 경우의 수가 생겨날 수 있다.
그만큼 자동차보험업계는 분주해질 것이다.
형사법상 유무죄의 판단은 피해자의 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한 명을 치든
다섯 명을 치든 살인죄의 성립 여부는 같은 법리에 따라 판단이 이루어진다. 작위든
부작위든 모두 위법한 살인행위이다.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었음이 받아들여
진다면 두 행위 모두 무죄가 된다. 독자제현(讀者諸賢)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투고일: 2019. 5. 19. 심사완료일: 2019. 6. 3. 게재확정일: 2019. 6. 17.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31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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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33

<국문요약>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 자율주행자동차의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법학적 사유실험을 겸하여 ―

김 준 호

철로 위를 폭주하는 전차가 있다.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전차는 멈출 수


없다. 전차의 진행방향 앞에 다섯 명의 인부가 서 있다. 이대로 질주하면 다섯 사람은
전차에 치어 사망할 것이다. 만약 기관사가 전차를 비상철로 쪽으로 돌린다면 다섯
사람은 살 수 있다. 하지만 비상철로 위에도 한 명의 인부가 서 있다. 전차의 방향을
바꾸면 이번에는 한 사람이 사망한다. 기관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전차 문제에서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새로운 딜레마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전차 딜레마를 모태로 한 것이다. 자율주행차 앞에 갑자기 여러 명의
보행자가 뛰어든 경우에 자율주행자동차가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선회해야 할 것인
지가 그 논란의 핵심이다. 만일 자동차가 이를 피하려다 인도 위에 서 있는 한 명의
보행자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자율주행차는 진로를 선회해야 할
것인가? 자동차 제조사는 자율주행차가 한 명의 보행자를 희생시키도록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짜야 옳은가?
본 연구는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전차 딜레마에 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 보았다. 기관사가 전차의 방향을 바꾼 행위를 작위로 보고, 또 전차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행위를 부작위로 설정했다. 작위를 통해 기관사는 한 사람의 생명을
앗게 된다. 그리고 부작위를 통해서는 다섯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이
행위와 결과를 우리 법원에 가져가면 유죄와 무죄 중 어떠한 판결이 나올 것인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결론은 전차가 어느 방향으로 달려도 기관사에게 유죄를
34 김준호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차의 방향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기관사의 행위는 긴급


피난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기관사의 행위는 위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행동해도 위법행위를 범할 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기관사는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 된다. 적법행위를 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없었던
행위자에게는 형사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관사는 작위를 하든 부작위를
하든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 예상된다.
사람이 해서 무죄가 되는 행위라면, 자율주행차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명령을 입력
한 사람도 무죄가 되어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선회를 하든 직진을 하든 그렇게 알고
리즘을 짠 제조사는 기대불가능성의 이론을 주장하여 무죄가 나오도록 법원을 설득
해야 할 것이다.

핵심어 : 트롤리 딜레마, 자율주행자동차, 이중효과의 원리, 긴급피난, 과잉피난,


기대가능성
‘폭주하는 전차’ 사례에 대한 형사법적 결론을 생각해보기 35

<Abstract>

Considering Criminal Conclusions on the


‘Runaway Trolley’ Case
― With a Legal Thought Experiment on the Ethical Dilemma of
Self-Driving Cars ―

Kim, Junho*
38)

There is a trolley that runs over the railroad. The brakes of the trolley are broken
and the trolley cannot stop. There are five workers standing in the direction of the
trolley. If unstopped, the trolley will hit and kill these five people. If the driver turns
the trolley to the emergency rail, the five workers can live. However, there is another
worker standing on the emergency rail. If the trolley changes the direction, one person
dies. What choice could the driver make to avoid criminal liability?
Over the past decades, several theories have been put forward in various disciplines
as to what choices should humans make in this trolley problem. Recently, as
technology for autonomous driving has continued to develop, a new dilemma
surrounding it has emerged. Its contents are based on the trolley dilemma. The core
of the controversy is to which direction should the self-driving car turn if several
pedestrians were to suddenly jump in front of the car. Should the self-driving car
still turn its course, even if hitting a pedestrian on a sidewalk is inevitable? Is it
right for an automaker to use an artificial intelligence algorithm to make self-driving
cars sacrifice a single pedestrian?
In order to find the answer to this question, this study first considered the criminal
conclusions on the trolley dilemma. The act of the driver changing the direction of
the trolley was seen as a commission, whereas not changing the direction was seen
as an omission. A commission takes one person’s life, whereas an omission takes

* Assistant Professor, Soongsil University College of Law.


36 김준호

five people’s lives. It should be considered which judgment such acts and outcome
will result in at court. The conclusion was that no matter the direction of the trolley,
the driver cannot be convicted. The driver's act cannot be a necessity regardless of
whether the trolley’s direction is changed or not. Therefore, the driver's act is judged
to be illegal. If one cannot act without violating any law, then the driver has been
put in a situation where one cannot expect a lawful conduct in the first place. Actors
who have no room for lawful conduct should not be held liable for criminal offenses.
Therefore, it is expected that the driver will be acquitted of innocence, regardless
of acts of commission or omission.
If an act of a person results in innocence, the person who entered the order for
the self-driving car to move as such should also be acquitted. Whether the self-driving
car turns or goes straight, the manufacturer of such algorithms will have to plead
innocent by claiming inexigibility.

Key Words : Trolley Dilemma, Self-Driving Car, Doctrine of Double Effect,


Necessity, Necessity of Excess, Exig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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