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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20주년 수기공모전

제목 잊지 못할 그 날, 그리고 인천공항
정확히 4년 전인 ‘2017년 1월 15일’, 나는 아직도 이날을 잊을 수가 없다.
입대를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친구와 함께 입대 전 마지막 추억을 쌓기 위해서
대만 여행을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비행기 예약부터 숙소 예약, 환전까지 끝마
친 나는 여행 전날 설레는 마음과 함께 짐을 싸고 있었다. 짐을 모두 다 싸고,
마지막 여권을 챙기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짐 다 챙겼지? 여권 잊지
말고 꼭 챙겨" 나는 어려서부터 꼼꼼한 성격이었기에 리스트까지 작성해가며
짐을 다 챙겼고, 내 친구는 항상 어디에서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꼼꼼하지
못한 성격을 가졌기에 전화로 여행 물품을 다시 한 번 알려주며 재차 확인하
였다. 이윽고 나는 완벽하게 챙긴 나의 짐들을 확인하며 흐뭇해하고 있었고,
친구와의 전화가 끝날 무렵 나의 여권을 마지막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백 번도 더 확인한 나의 여권이었을
텐데, 여권 만료 일자가 왜 지났지?' 아뿔싸, 나의 실수였다. 여행을 계획한 시
점부터, 여권을 바로 확인하였지만 2017년 12월에 만료인 줄만 알았던 여권이
알고 보니 2016년 12월에 만료인 것이었다. 눈을 닦고 몇 번이나 더 확인하였
지만 6이라는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급히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내가
아는 모든 곳에 전화를 해봤다. 하지만 모든 대답은 똑같았다. '죄송합니다.'
방법이 없었다. 나의 부주의로 인한 문제였기에 다른 것은 모두 내가 안고 가
야 할 문제였지만, 대만을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전역 후 대만에 있는
대학교로 편입할 생각이 있어 대만에 있는 대학 관계자와 미팅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부주의와 실수로 인해 나의 미래와 꿈까지 문제가 될 수 있
다는 생각이 드니,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흔히 ‘멘탈붕괴’라고 하는 이른바 ‘멘붕’에 빠진 그 순간, 대한민국 최고의
공항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인천공항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몇 초간의 신호음은 몇 시간으로 느껴
질 만큼 길었고, 나의 심장 소리는 '제발….'이라고 말해주는 듯이 쿵쾅거렸다.
이윽고 상담원께서 전화를 받으셨고, 나는 나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에게 한줄기 불빛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단수여권이라고 있어요. 인천공항
오셔서 발급받으세요.” 나는 그 순간, 나의 실수로 인해 물거품이 돼버릴 번
한 여행과 나와 함께 가려고 했던 친구와의 약속, 그리고 편입 대학을 알아보
기로 한 중요한 일정까지,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버스가 아닌 내가 탈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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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비행기가 된다는 것에 감격하여 소리를 질렀다.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단수여권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단수여권'이란, 여권 유효기간이 1년 이내로 1회만 사용 가능하며 본인의 요
청이 있거나 병역의무자로서 국외 여행 허가 기간이 6개월 미만의 경우 등에
발급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단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외교부 영
사 민원서비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여행 전날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후 비행기로 대만 출국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루도 남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이 하루가 너무나 소중했고, 간절했다.
여행 가기 하루 전날,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슬픔과 절망에 빠진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여행 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는 내 말을 듣고
놀래 벌떡 일어나 되물었다. '정말? 그런데 너 인천 어떻게 갈 건데?"
나는 또 '멘붕'에 빠졌다. 내 집은 거제도이다. 인천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와
기차는 당연히 없었다. 그리고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하필 또 김해공항에서
출발이었다. 가는 데만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막막하였다. 당장 내일 첫차를 타고 인천에 간다고 하더라
도, 공항까지는 어떻게 가고 또 김해공항까지는 어떻게 오지? 눈앞에 암초가
계속 생기듯이 여러 가지 현실의 문제들이 현재의 나를 감싸버렸다. 혼자서
이도 저도 못 할 때,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기로 하
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로 하였다. 여권의 만료 기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을 때, 어머니한테 가장 먼저 말씀을
드렸다. 나의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걱정 반 잔소리 반이 섞인 말투
로 ‘어떡하긴, 그럼 못 가지. 아버지한테 한 번 말씀드려봐’라고 하셨다. 하지
만 나는 아버지한테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느꼈던 아버지에 대한 인식은 정말 엄했고, 무서웠다. 그리
고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항상 '이제 성인이니 네가 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귀에 못 박히도록 말씀하시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 다른 친구들에 반해,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의 없었고 둘이서 여행
을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일이 바쁘셨고, 맞벌이하는 부
모님으로 인해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항상 나보다 일이
우선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위해 입대 날짜가 결정되었
을 때도, 친구와 대만 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대만에 있는 학교에 편입하기 위
해 미팅을 잡았을 때도, 항상 아버지는 '네 일이니 알아서 잘해라'라고 말씀하
시며 내가 무엇을 하던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인천공항에 가서 단수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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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아버지께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에게 향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 드렸다. '왜 이거 하나 알아서 못 하냐'라고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
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짐 싸, 지금 출발하자' 나는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예?'라고 되물으며
다시 한 번 확인을 하였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새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계
셨다. 정말 놀랐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아버지께서는 다음날 출근이었다. 지금
껏 아버지가 단 한 번도 회사를 안 간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내일 휴가를 내야 한다고 통화를 하고 계셨다. 나는 무언가 죄
송한 마음도 들었고, 왠지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아직도 2017년 1월 15일을 절대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이날이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서 간 여행(?)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고,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버지
는 나에게 군대에 대해서, 여행에 대해서,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등 많은 부분
을 물어보셨고,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차 안의 분위기가 정말 어색했지
만,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 안의 히터만큼이나 분위기가 따뜻
해졌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만 알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얘기만 하지 않았을 뿐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알고 보니 항상 어
머니에게 내가 요즘 어떤지, 힘들어하는 것은 없는지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렇
게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였고, 새벽이 다 된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숙소를 잡고 각자 침대에 누웠다. 아버지께서는 잠자리에 들기
직전, 나에게 잘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다 잘될 거니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다음 날 아
침 눈을 뜨자마자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다행히 미리 준비한 서류들 덕분에
문제없이 단수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 오기까지는 정말 마음이 무거웠는데, 공항에서 나올 때는 어찌
나 마음이 가벼웠는지 모른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음식
을 먹으러 갔고, 같이 쇼핑도 하였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그리고 인천공항
덕분에 문제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여행도 잘 다녀올 수 있었다. 지금도
한 번씩 아버지께 '그날 기억나셔요?'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기억나지, 이놈아'
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물론 다시는 하면 안 되는 나의 실수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 실수로 인해 아버지와 이렇게 가까워지고,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인천공항은 이런 의미로 기억이 된다.
아마도 이 기억은 내가 더 나이를 먹어도, 평생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이다. 내 가슴 속에서 기억될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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