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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평

마틴 버낼/오홍식 역,
『블랙 아테나』 (소나무, 2006)
Martin Bernal, Black Athena: Afroasiatic Roots of
Classical Civilization(New Brunswick, NJ, 1988)



1993 년 성서학 박사과정을 위해 필자가 미국의 코넬 대학교 (Cornell
University) 근동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협력 교수(Adjunct Professor)
명단 가운데 마틴 버낼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
해 들은 기이한 이력이나 수업 시간에 보인 열정과 박학함을 보면서 괴짜 교
수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 정돈되지 않은
흰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누구하고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털털하지만 열
정이 넘치는 성품이었다. 원래 캠브리지 대학에서 중국 현대사를 전공한 버
낼온 미국 코넬 대학교의 정치학과 (Government) 교수이자 근동학과 협력교
수로 있다가 은퇴하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유명한 공산주의 사상가인
존 버낼을 아버지로, 저명한 이집트 학자였던 알랜 가드너의 딸이자 작가였
던 마가랫 가드너를 어머니로 둔 화려한 유대인 가문의 이 학자는 젊어서 마
오쩌뚱에 십취하여 중국, 베트남 등에 대한 급진적 성향의 글을 발표했지만,
중년에 이르러 맞게 된 정체성의 위기로 인해 그의 유대교적 뿌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75 년에 나는 중년의 위기를 맞았다. 각별히 홍미로울 만한 개인적인 사연은


없었댜 위기는 정치적으로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개입이 끝났다는 점, 그리고
중국에서 마오쩌뚱의 시대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더 깊
어졌다. 이제 세계에서 위험과 관심이 집중하는 곳은 더 이상 동아시아가 아니라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이었던 것이다(『블랙 아테나』, pp.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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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3 년 후안 1988년, 고대 서 구 문명 의 요람으로 알려 진 그리 스 문


명의 기원에 대한 책인 『블랙 아테나 제 1 권: 고전문명의 아프리카 및 아시
아적 뿌리들』을 출판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블랙 아테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랙 아테나를 둘러싼 논쟁이 서양사학계에서 뜨겁
게 진행 중이다. ‘성서 이후 동지중해 연안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논쟁
적인 책’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세계적인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늦은 감은 있
지만, 오홍식 박사를 통해 『블랙 아테나』 1 권이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어, 본
격적으로 독자층을 광범위하게 확보해가면서 찬반 논쟁은 더욱더 가열될 것
이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반응을 대략 살펴보면, 그리스 역사 전공자, 고고학
자들은 부정적인 반면, 고대 근동 전공자들은 지지하는 편이다. 버낼의 제자
이자, 버낼이 가장 존경하고 블랙 아테나의 논지예 가장 큰 은혜를 입은 고
든 (C. H. Gordon) 의 계보 하에서 성서 및 고대 근동학을 전공한 필자는 당
연히 블랙 아테나의 기본적인 논지에 찬성하는 편이라는 점을 밝히고 서평에
임하고자 한다.
이 책은 4 부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1 권은 1785-1985년까지 서구의 학자
들이 그리스 문명의 이집트적 기원을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다루며 이 시리즈
의 모체가 되는 주장을 포함한다. 2권은 고고학 및 문헌상의 증거를 다룬다.
3 권은 2006년에 출판 예정으로 언어학적 증거를 다루며, 4권은 신화적 증거
를 다룰 예정이다. 1 권을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예 근거하여 기존의 이론의
아데올로기적 측면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주장의 핵심을 선언했다고 본다면,
2, 3, 4권은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책의 재목인
블랙 아테나를 들 수 있댜 버낼은 그리스 도시의 상징인 아테네 (Athene 혹
은 Athena) 라는 아름이 이집트어인 bt nt "네이트의 집 (House of Neit)," 즉
리비아 근처의 사이스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버낼은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빌
려와 리비아, 이집트인들이 혹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집트 여신인
Neit가 그리스의 대표적인 여신인 아테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의
제목을 『블랙 아테나』라고 명명하였다. 버낼온 또한 세소스트리스의 군대를
‘컴은피부의" ”곱슬머리 카락"이라고 표현한 헤로도투스의 주장에 근거해
이집트인들은 검은 색이었다고 주장한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멤논에 대해,
버낼온 세소스트리스의 아들인 아메넴헤트 II 에 주목하여, 그의 가족이 남부
이집트, 즉 누비아, 이디오피아에서 왔으며, 아메넴헤트 II 세를 이오니아의 전
설에 나타나는 멤논이라고 주장한다. 버낼온 오늘날 고대 그리스 문명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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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및 형성과정에 대하여,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도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인정했지만 19 세기 후반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진출 과
정에서 고대 이집트와 서부 셈족의 역할이 부정되는 극단적 아리안 족 중심
의 자생론에 근거한 백인 우월주의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버낼은 『블랙
아테나저1 서 고대 그리스 문명은 고대 이집트, 검온 색의 이집트인과의 접촉
을 동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한 사람은 버낼이 처음이 아니다,
디오프 (Cheikh Anta Diop) 나 조지 제임스(George G. M. James) 등이 이미
주장했지만 구체적 증거의 부족과 고대의 기록에 근거한 추측이 대부분이어
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블랙 아테나』는 지금까지의 주장들보다 광
범위한 자료들을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증거로 이론을 세우고 그것에 따른 증
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와 파괴력을 지닌다, 더군다나 문명의 전달자가
검은 색 피부였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인종주의적 논쟁까지 불러오
고 있댜 버낼은 그리스 문명의 기원에 대한 주장을 고대 모델, 수정 고대 모
델 광의의 아리안 모델, 극단적 아리안 모델 극단적 유럽 중심적 모델의 다
섯 가지로 분류한다. 버낼의 주장은 ·수정 고대 모델’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
면, 그리스 문명의 기원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서부 셈족을 동하여 그리스
로 전파된 것이라고 본다. 논생이 되는 시기는 주전 2100-1100 이며, 고고학
적 분류에 의하면 주로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
버낼은 주장의 근거는 헤로도투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문학. 신화, 전
설, 고고학적 증거둘 그리스어와 이집트어 및 서부 셈어 사이의 유사성이댜
이를 바탕으로 버낼온 기원전 2000 년대의 이집트와 그리스 간의 역사를 재
구성한다. 버낼온 이집트의 11-12 왕조 시대의 에게 해에 미친 영향을 강조한
댜 전설적인 이집트의 왕 세소스트리스의 정복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영향을
고고학적 및 텍스트를 통해서 증명한다. 버낼은 초기 헬라딕 III 시대의 몰락
의 원인을 세소스트리스의 정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제우스 신을 위
한 에게 해 주위에서 발견되는 양을 바치는 제의는 양과 관련된 아문 신에
대한 12 왕조의 종교적 의식에서 온 것으로 본다. 버낼온 힉소스의 에게 해
침략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이집트를 정복하여 화려했던 중 왕조를 몰락
시켰던 힉소스가 기원전 1720 년경, 레반트 지역과 연합하여 곧바로 에게 해
를 침략했다 그리하여 크레테가 무너졌으며, 레반트의 무기, 관습, 정치제도.
문화, 종교 등이 그리스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버낼은 그 증거로 무덤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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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제의 등의 유사성을 제시한다. 버낼은 이집트어와 셈어, 그리고 그리스어


단어 및 이름 사이의 음운론적 유사성을 찾아내고, 지금까지 기원을 알 수
없었던 그리스어의 어원을 설명한다. 또한 이 시기에 알파벳이 전래된 것으
로 본댜 이 견해는 기존의 주장보다 500년 혹은 1000년 정도 빠른 것이다.
헤로도투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문명
(기원전 2100-1100) 은 이집트, 페니키아 등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고 기록
하고 있댜 버낼은 1 권에서 그 역사적 사실이 이후의 시대마다 어떻게 해석
되어 왔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그것은 18세기까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상
식이었지만 18세기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발생한 유럽 중심의 민족주의, 인
종 우월주의는 감성과 예술성의 완성이라는 그리스적 이상의 원류를 미개하
다고 여긴 이집트와 페니키아를 중심으로 한 오리엔트의 영향이었다는 역사
적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 문
명에서 아프리카와 셈족의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수치이자 비과학적인 것으
로 여겨졌댜 따라서 유럽 중심주의자들은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북쪽의
히타이트나 후르족의 영향 혹은 자생론에서 그 기원을 찾아 동일한 혈통인
아리안 족을 고대 그리스 문명의 뿌리로 서술하는 조작을 감행했다고 주장한
댜 아리안 모델은 지금까지 학교 교육을 통하여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정설
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에 대하여 버낼온 아리안 모델아 무시한 고대의 사료
들과 신화들 이집트어와 그리스어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객관적, 과학
적, 종합적인 방법으로, 아리안 모델은 유럽 중심적 인종 우월주의와 제국주
의적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의 산물이었음을 적나라하게 지적했
다. 동시에 버낼온 역사의 해석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걷어내고, 객관
적 사실을 재구성하여 빼앗겨 버린 이집트의 역할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아리안 모델에 대한 정반대의 극단적
태도를 견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인종주의 논쟁을 불러올 뿐이다.
그가 주장하는 수정된 고대 모델은 고대 모델과 넓은 의미의 아리안 모델이
제기하는 객관적 증거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버낼은 『블랙
아테나』 역시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리안 모델이
유럽중심의 문화적 인종적 우월주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작이었다면, 수정
된 고대 모델은 유럽 중심의 문화가 지닌 문화적 우월주의, 인종적 편견 등
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닫혀있는 완료형이 아니라, 여
전히 우리의 의식과 삶에 살아 움직이는 진행형임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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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은 기원전 1730년경 이집트의 통치하에 있던


헉소스가 추방되면서 에게 해를 침략하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 문명의
뿌리는 이집트 및 페니키아이며, 이후에 아나톨리아 둥의 아리안 요소들이
혼합된 문명이다.
버낼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거세다. 열정적이자 아마추어적인 한 학자가
이집트, 레반트, 그리스의 세 지역의 역사, 언어, 문학, 종교, 고고학 등의 모
든 문제를 섭렵하고 그 분야의 모든 전문가를 설득시킬 주장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작업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방법론이다. 버낼의 주장은 역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신화나 전설을 문자적으로 역사적 사실로 동일시 한다는 문제점을 지
적한댜 이와 함께, 고고학 및 문헌적 증거가 아니라, 막연한 개연성을 확실
한 증거로 주장하는데 따론 논라적 비약, 추측도 문세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하여 버낼은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하지만, 고고학적 증거만으로 자
신의 주장에 대한 역사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고고학적 증
거의 불확실성이 곧바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명제로 이어지는 것에 반대
한다 즉 엄격한 증거주의에 사로잡혀 고대의 기록들을 무시하는 일은 무책
입하며, 현재 남아있는 증거들(고고학, 신화, 역사, 종교, 언어, 문학)을 나름
대로 종합하여 개연성 있는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Jeit-Athena 의 예에서 보듯이 언어학적 증거에 대한 버낼의 주장에 대해
서도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발음의 유사성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두
언어 사이의 유사성이 반드시 문화의 직접적 접촉으로 결론짓는 것은 무리라
는 평가와 버낼이 비교한 단어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가 아니라, 후대의 것이
라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사실 방대한 분량의 내용들이 비체계적이며, 논리적으로 정돈되지 않았고,
같은 주장들이 자주 반복되는 산만한 모습들도 발견된다. 워낙 방대한 양을
다루다보니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점들도 제기되며` 버낼은 이를 받아들
여 수정하기도 한다. 아울러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히타아트 및 후르 족의
언어와 관습의 관련성도 정확하게 분석되고 밝혀져야 이집트, 레반트와의 관
련성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이미 획득된 지위의 역사에 증거주의 원칙을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블랙 아테나는 잘 보여준다. 남아있는 증거의 실체가 다소 불확
실한 개연성으로 집합해 있을 경우, 해석의 과학적 및 객관성의 확보는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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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여야 하는가? 또한 그 원칙은 모든 역사에 적용되어야 하눈 것인가? 그


렇다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역사는 어느 정도일까? '}차 냐 선 당시 노르망
디 상륙작전의 경 우도 고고학적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만다. 그럽 우리
가 배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역사성도 의심해야 하는가? 또 다론 의문이 꼬
리를문다
『블랙 아테나』는 고대의 주장을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사 방법론에
대한 끝없는 논쟁점을 동시에 부활시키고 있다, (평택대학교 신학 전문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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