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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원인은 무엇이고 해법은 있는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전후(戰後) 베이비 붐(Baby Boom: 아기 풍년)을 경험했던 세계 각


국은 베이비 붐 세대가 출산 적령기에 접어들게 되면 또 한 번의 인구
폭증을 경험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그 우려는 기우로 끝났고
지금은 출산 파업(Baby Strike)이라는 복병을 만나 이의 해법에 골몰
하고 있다.
󰡔무자녀 혁명󰡕의 저자 메들린 케인은 100여 명의 여성을 만나 그동
안 금기시 되어 왔던 주제,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이유’를 다각도로 탐색
하고 있다. 실제로 무자녀가 된 경로를 보니 의외로 다양한 스토리들
이 등장한다. 먼저 주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기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이유가 공존하고 있다. ‘내 인생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
을 원치 않는다’는 확신에 따라 무자녀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
면, 종교적 이유로 독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환경주의 신념에 따
라 오염되고 위험한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의 표현으로 무자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피임약의 개발은
이들에게 안전장치를 제공해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음으로는 자녀를 원했지만 상황에 의해 무자녀가 되는 경우도 있
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불임은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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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이고, 동성애 부부도 이에 해당된다. 유전적 질병을 보유하


고 있기에 출산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굳이 무자녀를 선택하려 했
던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도 있다. 결혼 연령이 늦
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무자녀가 되기도 하고, 이미 자녀를 둔 재혼 부부
가 더 이상의 자녀를 원치 않는 경우도 빈번하게 관찰된다. 메들린 케
인은 이들 무자녀 여성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그들의 선택을 존
중해주자고 제안하면서, 출산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긍정적 미래
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저출산을 넘어 초저출산 현상에 다가선 한국의 상황을
진단해보고, 저출산의 원인을 다각도로 규명해보면서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을 경험
한 국가별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볼 것이다.

고(高)출산 국가였던 대한민국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18년 한국의 출산율은 1.05명으로 국가적


위기 수준의 초저출산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1960년
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고출산 국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0
년 출산율은 (믿거나 말거나) 6.2명으로 당시의 이상적 자녀수는 “아
들 셋 딸 셋”이었다. 높은 인구성장율이 경제성장의 압력 요인이 되면
서 국가적 차원에서 가족계획 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했음은 익히 알려
진 사실이다.
가족계획을 실시하면서 처음 내걸었던 표어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
지꼴을 못 면한다” 속엔 당시의 절박했던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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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셈이다. 이후 새마을운동과 함께 “세(3)살 터울 셋(3)만 낳고 서


른 다섯(35) 단산하자”는 의미의 “333 운동”이 추진되었다 한다. 당시
단산 혹은 정관수술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남자에게는 예비
군 훈련 면제, 가족에게는 아파트분양 청구권 0순위를 주었다는 이야
기도 전해내려 온다. 이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는 명품 표어가 등장했고, 이는 가족계획의 성공을 상징하는 작품으
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인구학
자들은 실패할 것이라 단언했다. 이유인 즉 뿌리 깊은 “남아선호”로 인
해 아들을 낳으려면 딸도 낳아야 하는 고로, 한국에서 단기간에 출산
율을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인구학
자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한국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고출
산국가에서 저출산국가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출산율을 가파르게 떨어뜨린 대신 아들을 골라 낳음으로써 성비 불
균형의 심화를 가져왔음은 가족계획정책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
중 하나다. 성비 불균형이 피크에 달했던 시기에 태어난 아들들이 최
근 결혼 적령기에 진입하면서 결혼시장의 남초(男超) 현상이 심각하
다는 분석도 있다.
출산율이 감소하게 된 일반적 원인으로는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가
지목되고 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노동력이요 노후보험의 의
미를 지닌 자산이었다. 덕분에 다산(多産)은 다복(多福)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자녀는 노동력의 의미보다
소비재(?)로서의 의미가 강화되었고, 노후보험의 의미도 확연하게 약
화되었다. 실제로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이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에 기
여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요, 가족의 복지 기능이 약화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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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서구식 복지국가의 선례를


한국도 따라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산업화 및 경제성장 과정에서 출산율이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됨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불과 20여 년 사이
에 출산율 하강 곡선이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특기할만
한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인구정책이 실기(失期)하는 우를 범하게 되
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도 밝힌 바 있듯이 한국의 저출산 징후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
작되었다. 그러나 가족계획의 성공에 심취한 덕분인가, 정부는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경우는 부존자원 부
족에 인구가 과다하니 계속 출산율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
했다. 이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표어와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라는 포스터를 통해 출산율 통제를 더욱 강
화해갔다. 국민들도 정부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는 상황에서, 1980년대
말 대학가에선 “가족계획은 이웃집과 상의해서 두 집 건너 하나씩”이
라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
불과 50여년 사이에 고출산국가에서 초저출산국가로 전환한 한국
사례는 가족계획사업의 일시적 성공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는
동시에, 적절한 정책 개입의 시기를 놓칠 경우 그 결과가 얼마나 치명
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실례라 할 것이다.

저출산의 진정한 이유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저출산의 징후를 외면했던 정부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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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저출산의 진짜 원인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지난 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사회 저출
산의 주요 원인은 바로 결혼율 감소에 있다고 발표했다. 10여 년간 100
조원 가까운 규모의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오
히려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린 이유는, 기혼 부부가 일 가정 양립의 고
통으로 인해 출산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율 자체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결혼율을 높여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결
론을 도출함은 상식적 추론일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실현 가능성을 갖춘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음 또한 합리적 논리일 것
이다. 하지만 당시 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 대책은 격렬한 비판을 받
으며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해프닝을 연출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결혼율 제고 방안으로 스펙이 훌륭한 여성의 취업기
회를 제한하자, 여성들 눈이 높아 결혼율이 낮아지는 것이니 여성들
눈높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결혼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그렇게 하
면 결혼율을 높여서 출산율까지 높일 수 있다는 안이 공식적 대책으
로 발표되었으니 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결혼건수가 26만
4,500건으로 전년 대비 1만 7천 건이 감소하여,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관을 주제로 진행되어온 일련의 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요,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
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꾸준히 증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결혼이 개인의 생애주기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할 필수 항목이었다면
이제는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럭셔리 아이템의 성격이 강화
되고 있음을, 통계 자료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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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피 요인으로는 남녀 공히 경제적 부담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특별히 결혼 적령기 여성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 같지 않다. 일단은 결혼의 필요성을 굳이 느끼지 않는
비혼파(非婚派)와 대책 없이 결혼을 미루는 만혼파(晩婚派)는 구분
을 해야 할 것 같다.
비혼파 속에도 적극적으로 독신을 선택하는 경우와 일본의 “패러사
이트(寄生的) 싱글”처럼 소극적으로 결혼을 기피하는 경우 사이엔 미
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일본 사회가 저속(低速)성
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결혼을 통해 계층하강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는 부모 밑에서 안락하게 살겠다는 싱글 비율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지금도 일본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초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편 선뜻 결혼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만혼파 여성들의 속내
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2016년 말 서울시와 북경시
에 거주하는 고학력 여성 300여 명을 대상으로 결혼관을 비교 분석
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선 결혼의 필요성을 인정한 비율이 43%에 머
물렀던 반면 중국에선 74%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결혼을 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는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부담”이 한국
과 중국 공히 1순위로 나타난 가운데, 2순위로 가면 한국은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지목하고 있었고 중국은 “자율적인 생활 상실 가능성”
을 들고 있었다.
심층면접을 통해 밝혀진 바 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국가사회주의
를 경험한 바 있는 중국여성의 경우는 노동자로서의 강력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전통적 가족 가치관에 대해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선 남성들의 가사 및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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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참여가 일상화되어 있기에 결혼 이후 “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결


혼의 장애요인으로 등장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
다. 여성 취업률이 80%에 육박하는 중국에선 맞벌이 부부 중 먼저 귀
가하는 사람이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이 설거지를 하
는 것이 불문율이라 한다. “집안 일 하기 귀찮아 혹시 남편들이 늦게
귀하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에 “그런 일은 없다” “질문의 의미를 모르
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 취업률이 50%대에 머물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결혼 기
피현상이 두드러짐은 주목을 요한다. 여성은 가족을 위해 밖으로 나갔
으나 남성은 여전히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밖으로 돌고 있는 현
실이야말로 양국 여성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숨겨진 요인일지도 모
를 일이다. 비혼 만혼 가리지 않고 “언제 결혼날짜 잡을 것이냐” 하는
과도한 압력을 부과하거나,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들에게만 물어 사회
적 낙인을 찍음은 희생자 비난하기(blaming the victim)의 전형적 사
례요, 실현가능한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비합리
적 처사이다.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나 만의 인생”에 대한 욕구를 희생하지 않으
면서 동시에 가족공동체의 핵심적 기능 및 가치에 대한 지지와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삶의 여건이 마련될 때만이, 추락하는 결혼율을 반
등시키고 나아가 출산율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정작 출산의 주체가 될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음도 재고를 요한다. 저출산 위기의식이 높아지
던 때 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출산에 관한 가치관 조
사를 실시했다. 당시 출산을 원치 않는다는 비율이 50%에 육박했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 두 가지가 지목되었다. 첫째, 나는 부모님들처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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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위해 희생할 자신도 없고 희생하고 싶지도 않다. 둘째, 내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자식을 낳아 불행한 시절을 보내
도록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두 번째 이유는 한국적 맥락에서 저출산 이슈를 해결하고자 할
때 경제적 접근이나 제도적 차원의 지원 못지않게 미래세대의 출산 의
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만큼 학교교육 차원에서
인구의 중요성과 의미를 주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과 더불어, 청소
년 행복지수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현실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요구된다.
관련해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이른바 “유교 자본주의”
국가들이 초저출산 위기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
다. 유교 자본주의의 특징 가운데 교육을 통한 상승 이동의 강조를 들
수 있는데, 3국 모두 과도한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제한된 자원을 가족 구성원의 성공을 위해 집중적으
로 투자하는 “가족 공리주의” 상황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이 출산
기피로 연결됨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특별히 학벌주의가 만연
한 한국에서 “셋째 아이 낳으면 무조건 서울대 보내준다”면 모를까 지
금과 같은 미온적인 출산장려정책만으로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에 귀 기울일만하다.

저출산의 해법: 유럽식 미국식 일본식

저출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모델로는 유럽식과 미국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유럽식 해법은 “결혼과 출산의 분리 전략”으로 요약된
112 내일을 여는 역사 71•72합본호

다.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한 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으로 출산


반등에 성공한 사례로 흔히 프랑스가 꼽히고 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993년 1.66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2014년 2.08명까지 오른 이후
2명 내외를 꾸준히 유지해가고 있다. 정부 주도 하에 의료비와 교육비
지원, 보육시설 확충 등 저출산 대책을 적극 펼친 것 못지않게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인정 및 포용이 저출산을 극복하는데 주효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을 도입함으로써 동
거 커플을 위시하여 다양한 가족형태를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
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가족형태 다양성 논의를 위한 사
회적 기구 운영방안 연구’에 따르면 PACS는 성인 간 동거관계에 법적
인 권리를 부여하고 세금 납부, 상속세 감면, 매매 등의 권리를 보장했
다. 2012년 기준 시민연대협약에 따른 혼인 건수는 약 16만 건에 이르
러 전체 혼인 중 40%를 차지했고, 2011년 출생한 자녀의 55.8%는 결
혼제도 밖에서 태어났다.
스웨덴에서는 공식 통계에서 혼외자녀(illegitimacy) 범주 자체를 삭
제했다. 자녀는 동거 커플이든 동성 부부든 싱글맘이든 관계없이 출산
을 하게 되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더불어 양
육은 부부 공동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함을 기조로 장기 유급 육아휴
직제도를 도입하면서 휴직기간의 1/3은 반드시 아빠가 신청하도록 의
무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식 모델은 이민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유지해온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출산율은 2.2~2.4로 한국의 2배에 이른다. 다
만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이민 온 유색인종의 출산율이 높
은 대신, 백인의 출산율은 1.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숨은 고민이 있다. 2050년 즈음이 되면 미국은 백인 대 유색인종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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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49% 대 51%로 유색인종이 다수가 되리라는 UN의 추계가 있다.


혼외 출산을 광범위하게 인정해주는 유럽식 모델은 한국의 가족 정
서 내지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사회적 저항이 예상된다. 더불어 아
빠를 위한 장기 육아휴직이나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을 도입할 경
우 재원 확보의 어려움도 기다리고 있다. 미국식 이민정책 또한 인종
갈등 내지 사회통합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선뜻 선택하
기 어려운 전략이라 하겠다.
󰡔2018 인구절벽󰡕의 저자인 인구학자 해리 덴트는 한국을 향해 일본
의 경험을 “눈이 빠져라 관찰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식과
미국식 모델보다는 일본식 모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바, 일본처럼
저출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후에 저출산이 가져올 사회 각 분야의
충격을 미리 재단하여 충격 완화 내지 방지 정책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일
본이 걸어온 길을 세밀히 관찰한다면 적어도 다가올 재앙을 미리 예측
하여 예방 내지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덴트 주장에 담긴 함의다.
일본에서 결혼율 감소에 기여한 현상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
은 채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페러사이트(parasite) 싱글”이 지목된 바
있다. 이에 일본에서는 저출산의 주범인 결혼율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
혼활(婚活)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혼인활동을
의미하는 혼활은, 취직을 위해 취직활동이 필요하듯 결혼을 위해서도
운명적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보다 적극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 한다. 물론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혼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혼율은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고, 그 결
과는 저출산 유지로 연결되면서, 오늘날 일본은 “가족 파산(破産)” 내
지 “가족 난민(難民)”으로 표상되는 가족차원의 부양 위기를 심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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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고 있다. 일본의 시행착오 및 위기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저출산 및


고령화가 야기할 미래에 적극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 친화적 시스템 구축

한국의 저출산 대책이 주로 기혼부부의 일 가정 양립 및 보육 지원


을 통한 출산율 제고에 집중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 투입에도 불
구하고 출산율 반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
전히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물
론 일 가정 양립 지원 및 보육 정책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일
과 생활의 균형(일명 워라밸)을 도모함에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의가 있
다. 그러나 이를 저출산 해결과 연동하면서 저출산 해법에 착시를 야기
하는 것은 필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의 진짜 원인이 결혼율 감소에 있을진대는 결혼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매력이 눈에 띄
게 감소한 상황에서 결혼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
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실패를 경험해본 일본의 사례
가 우리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길은 앞서도 밝혔듯이 저출산이 가져오게 될 엄
혹한 미래를 직시하면서 저출산 친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
다. 인구 감소 사회도 고령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
휘하여 가족에서부터 교육, 노동을 거쳐, 의료, 연금 등의 제반 영역에
걸쳐 저출산 친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투자
지금 우리는? · 저출산, 원인은 무엇이고 해법은 있는가? 115

해야 하리란 생각이다.
저출산에 대비하는 첫 과제로는 노동력의 질적 제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중학교 1학년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가 될 때, 지금
과 같은 규모의 대학 정원이 유지된다면 대학입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
업생 수를 초과하는 상황이 온다. 각급 학교 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감
소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의 인적자본으로서의 잠재적 역량을 어떻
게 극대화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최근 일본의 청년 취업률이
90%를 넘어섰다는 보도는 청년실업이 대세인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큼은 물론이다.
나아가 저출산으로 인한 고령화의 가속화 및 부양 위기에도 체계적
으로 대처해야 한다.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노인층의 고독사나 연금생
활자인 부모와 자녀의 동반 파산 등은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있는’ 남
의 일이 아니다. 이제 4세대 사회를 지나 5세대 사회가 도래할 것인 바,
이 과정에서 연금과 의료보험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대가 제한된 자
원을 공유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준비해
야만 한다. 더불어 개인의 가치관 의식 태도 측면에서도 저출산 시대
의 의미를 성찰하고 이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결국 지난 10년 동안 실시해온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출산부양
정책에 머물기보다는 저출산 해법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면서, 제
한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꾀하는 동시에 미래를 적극 준비하는 일
이 보다 현명한 전략이라 생각한다.
116 내일을 여는 역사 71•72합본호

참고문헌

배은경, 󰡔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 여성 모성 가족계획사업󰡕, 시간여행, 2012.


해리 덴트, 󰡔2018 인구절벽이 온다: 소비 노동 투자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세상󰡕, 교
보문고, 2015.
리 배지트,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민음사, 2016.
매들린 케인, 󰡔무자녀 혁명: 아이없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북키앙, 2003.
NHK 스페셜 제작팀, 󰡔가족의 파산: 장수가 부른 공멸󰡕, 동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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