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on page 1of 14

Medeia 이아손 ; 메데이아의 남편

메데이아 아이게우스 ; 아테나이의 왕


에우리피데스(Euripides) 크레온 ; 코린토스의 왕
사자
두 남아 ; 메데이아의 아들
하녀들 ; 메데이아의
시종들과 무사들 ; 크레온과 아이게우스의
◈ ≪메데이아≫에 대하여

기원전 431년으로 저작 연도가 추정되는 ≪메데이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지 1 코린토스에 있는 이아손 가의 외부. 아침 무렵. 아르고 호의 무사들이 황금 양털을 찾아 가
년째 될 무렵에 공연된 것으로 당시 아테나이와 코란토스 사이에 적개심이 들끓어 올랐으므 지고 귀항한 지 10년이 흘렀다. 그 동안 이아손과 메데이아(이아손이 아시아 지방에서 신부
로 코린토스에 저주를 퍼붓는 메데이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아테나이 인들에게는 크 로 맞아 데려온)는 코린토스에서 안락하게 살았다. 부부 사이가 화목하고 자녀들에게 헌신
게 인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대 걸작으로 자주 평가되는 《메데이아》는 적인 모범적 결혼생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리라 소문
비극 경연 대회에서 3위 입상에 그쳤다. 그는 평생 네 번밖에 수상하지 못했는데 아이스퀼 이 쫙 퍼졌다. 무대 왼쪽은 읍과 왕궁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시골로 통하
로스의 13회, 소포클레스의 18회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는 길이 나 있다. 유모가 집에서 나온다. 유모는 갓난아이 시절부터 메데이아를 보살펴 왔
에우리피데스는 전 작품을 통하여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는데 종교와 여자와 전쟁이 다. 무겁고 짙은 색상의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 얼굴만 노출되어 있는데 분노와 절망의
그것이다. 이 주제들에 있어서 모두 그는 당시의 기성관념에 정면으로 맞섰다. 종교의 문제 표정이 완연하다.
에 있어서 그는 한마디로 무신론자로 낙인 찍혔다. 《엘렉트라》를 위시하여 여러 작품에서
그는 아폴론신의 권위를 부정했고 여타의 신에 대해서도 조롱을 퍼붓기 서슴치 않았다. 전 유모 ; 어찌하여 아르고의 노가 그 험난한 검푸른 바위를 날쌔게 헤치고 콜키스의 땅에 이
쟁의 문제에 있어서 그는 영원한 평화주의자였다.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위시한 여러 작 르렀단 말인가? 어찌하여 펠리온 골짜기의 소나무들은 무사들의 도끼날에 잘리어 황금 양
품에서 그는 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리얼하게 그렸다. 세 번째로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 털을 찾으러 떠난 아르고의 제목이 되었단 말인가? 그런 일만 없었던들 우리 메데이아 아
큼 일찍이 여권을 옹호하고 나선 여성해방 운동가였다. 씨께서 이올코스에 갔을 리도 없으며 이아손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리도 없으련만, 그런 일
이 세 가지 문제들이 다 현대 서구사회가 당면한 최대의 뜨거운 쟁점들인 까닭으로 에우리 만 없었던들 아씨께서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그의 아비를 죽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남
피데스는 현대에 와서 새삼 문제 작가로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메데이아》의 편을 따라 자식들을 데리고 이 곳 코린토스에까지 와서 살게 되지도 않았으련만. 아씨께서
진가는 주인공 메데이아의 거대한 감정의 회오리가 들고 온 비극이라는 점에 있다. 질투와 는 비록 망명자셨지만 높은 평판을 들으셨고 이아손과도 지아비에 순종하는 충실한 아내로
분노에 휩싸였을 때 가냘픈 한 여인이 복수의 화신으로 표변하는 마성적인 힘은 공포와 전 서 화목하게 살았었지.
율을 불러일으킨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희곡 문학사상 가장 놀랍고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해 내었다. (절망에 찬 시선으로 집을 돌아보며)
《메데이아》는 극의 구성에 있어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긴밀하고 압축되어 있어서
거의 폭발적인 극적 효과를 가지고 관객을 사로잡는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메데이아의 처절 그런데 이제 사랑은 증오로 변했고 가슴은 고통으로 가득 찼네. 이아손은 제 아들들과 메데
한 한탄으로부터 시작해서 코러스와의 대화를 통해 극이 시작하기 이전의 정보를 간결하게 이아 아씨를 배신하고 이제는 코린토스의 공주인 크레온의 딸과 잠자리를 같이하다니. 메데
전달해 주며 곧 이어 이아손이 등장해서 격렬한 언쟁을 통해 극적 갈등을 날카롭게 드러내 이아 아씨께서는 절망과 분노에 치를 떨며 신들을 향해 이아손이 지난 은공을 지금 어떻게
보여 주고 나서 곧장 극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가공할 친자살해 장면으로 넘어간다. 인 보답하고 있는가를 증거하도록 탄원하고 계시오. 식음을 전폐한 채 고통에 몸부림치며 누워
간의 비합리적인 심성을 즐겨 그려 온 에우리피데스의 작가적 역량이 경이로운 경지에 도달 서 하루 종일 하염없이 눈물만 쏟고 계시다니. 이아손이 배신했다는 얘기를 들은 그 날부터
한 작품으로서 《메데이아》는 평가할 만하다. 눈을 들어 사람을 보려고도 않고 땅만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계실 뿐. 친구들의 동정도 아랑
곳없이 바위처럼 혹은 바다처럼 움쩍도 하지 않고 다만 이따금 파리한 고개를 들어 사랑했
[등장인물] 으면서 배반했던 아버지와 조국의 이름만 신음하듯 불러 대고 있네. 과거에 지금의 남편을
유모 위해 고국마저 헌신짝처럼 버렸건만 이제 와서 바로 그 남편의 버림을 받다니. 이제 조국을
교사 ; 메데이아의 아들들의 잃은 슬픔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으시겠지.
메데이아 ; 아시아 출신의 왕녀
코러스 ; 코린토스 여인들의 (잠시 사이, 그리고 거의 속삭이듯)
않소. 사람이란 자기밖엔 모르니까. 다만 그것이 떳떳한가 아니면 탐욕과 이기심 때문인가
아씨는 아들들을 보아도 즐거워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증오의 빛을 띠우니 아씨의 마음속에 하는 차이뿐이지. 얘들의 아버지는 새 여자에 혼이 빠져서 얘들을 걱정할 틈이 없는 거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두렵기조차 하다오. 아씨는 결코 욕을 당하고도 가만있을 분이 아니 유모 ; 얘들아, 그만 집에 들어가거라. 아무 일도 없을 게다. (소리를 낮추어) 애들을 어머
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오. 독한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두렵기만 하다오. 아 니 곁에 못 가게 하세요. 아씨의 기분이 지금 아주 좋질 않으니. 애들을 바라보는 아씨의
씨에게 해를 끼치고 아무 탈이 없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바보지. 아, 이제 아이들이 놀이를 눈에는 미친 황소의 살기가 어려 있어요. 아씨는 지금 무언가 마음속으로 꾸미고 있어요.
마치고 돌아오네. 어머니의 슬픔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천진난만하게…… 애들이란 불행을 아씨의 노기는 결코 쉬이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잘 알아요. 머지않아 벼락이 떨어지
모른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아. 고 누군가가 반드시 상하고 말 거예요. 그게 우리 편이 아니라 원수이기만을 바랄 뿐이죠.

(교사가 8살 10살 또래의 두 사내애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그는 황토빛 외투를 걸친 노인이 (집안에서 메데이아의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통곡 소리가 들린다)
다. 애들은 짧은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꼭 맞는 털모자를 쓰고 있다. 그들은 후면에 처져서
웃고 떠든다. 교사가 앞으로 다가선다) 메데이아 ; 아, 이런 비운을 당하다니, 차라리 죽어 없어졌으면.
유모 ; (애들을 서둘러 들여보내며) 얘들아, 어머니가 지금 크게 상심하고 계신단다. 어서
교사 ; (반 농담조로) 오, 유모! 마님의 충실한 시종께서 어찌하여 이렇게 문밖에 나와서 그 집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리고 어머니 곁에 절대 가서는 안돼. 가까이 가지들 마라. 어머닌
렇게 풀이 죽은 모습으로 탄식을 하고 섰는 거요? 마님은 안에 홀로 계시게 하고, 지금 야수처럼 분노에 치를 떨고 계시니 조심해야 해. 어서들 들어가. 이제 어머니의 노기
유모 ; 이 늙은 주책바가지 선생, 내 말 좀 듣소. 주인의 불행을 보고 어찌 충직한 하인의 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그 상처받은 영혼이 무슨 험한 일을 저지를지 모른단다.
마음인들 편할 수 있단 말이요? 나는 지금 슬픔에 가슴이 미어져서 이렇게 밖에 나와 하늘
과 땅을 향해 탄원하는 거라오. (교사와 애들 퇴장. 안에서 억눌린 듯한 긴 부르짖음이 들린다)
교사 ; 아니, 마님께선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않으셨단 말이오?
유모 ; 그쳐요? 정신이 온전하세요? 지금 마님의 고통은 끝이 나기는커녕 채 시작도 안할 메데이아 ; 오, 이 비참한 운명이여, 이 고통이여, 저주받은 자식들이여, 이 어미는 너희들
걸. 또한 저주한다. 모두 죽어 버리거라. 너희들과 너희들의 애비가 이 집과 함께 모두 없어져
교사 ; 이런 법통 같으니, 마님 일을 내 솔직히 털어놓자면…… 더 놀랄 만한 새 소식이 있 버리거라.
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계실 거요. 유모 ; (울며) 아, 슬프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아버지의 죄를 같이 짊어져야 한단 말
유모 ; 새 소식이라니, 그게 뭐죠? 어서 말 좀 해 보우. 인고! 왜 그들마저 미워해야 하나? 불쌍한 너희들에게 닥칠 불행이 몹시 두렵다. 왕가의 기
교사 ; 아, 아무것도 아닐세. 내 괜히 얘길 꺼냈군. 질이란 어이 이토록 무자비하단 말인가. 아무에게도 명령을 받지 않으면서도 남에게는 명령
유모 ; 어서 말 좀 하라니까요. 우리야 다 같은 노예의 신분이 아닌가배. 내 비밀을 지킬 터 만 내리고, 남을 용서하는 데 인색하고 남의 과실은 쉬이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왕가의 기
이니 말 좀 해 보구려. 질이라니, 차라리 나 같은 천한 신분이 낫지 왕가에는 결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사람들에
교사 ; 페이레네의 성스러운 우물 근방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 얘기를 슬쩍 엿들었는 게는 중용의 길이 가장 좋은 법, 지나쳐서 좋은 일이란 절대 없는 거야. 그리고 높은 지위
데 그 중의 하나가 “이 나라의 왕인 크레온은 메데이아와 그의 두 아들을 코린토스에서 추 에 있는 사람이 신의 비위를 거슬리면 벌도 크게 받는다니까.
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네.” 이렇게 말하지 않겠나.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메데이아를 동정하는 코린토스 여인들의 코러스가 들어온다)
유모 ; 아니, 그럴 리가? 세상에…… 이아손이 아무리 마님한테서 멀어졌다 하더라도 애들
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거야. 코러스 ; 메데이아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달려왔다오. 콜키스 여인 중에 가장 불
교사 ; (우울하게) 옛 정은 이제 새 사랑에 덮이고 말았소. 그 양반은 이제 이 집안의 친구 행한 여자임에 틀림없어요. 여보시오 유모, 아직도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나요? 통곡 소리가
가 아니오. 대문 밖까지 울려 퍼지니 말예요. 저희들이 아끼던 이아손의 집안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일
유모 ; 그러면 우리도 끝장이군요. 이제 첫 파도를 간신히 피하기도 전에 두 번째 파도가 어나다니 가슴 아프군요.
밀려오다니 유모 ; 이젠 집도 없고 생명도 없어졌답니다. 주인 양반이 공주에게 빠져서 헤어나질 못한
교사 ; 이봐요, 이 얘기는 아직 마님께 알려서는 안 되오. 절대로 말해선 안되오. 답니다. 아씨의 슬픔을 달래 줄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답니다
유모 ; (어깨 너머로 고통에 차서 속삭이듯) 불쌍한 애들 같으니, 너희들은 어떤 아버지를 메데이아 ; ― 아! 하늘이여. 내 머리에 차라리 벼락을 치소서. 이제 더 살아서 무엇 한단 말
두었는지도 모르지. 차라리 그 양반이 죽어 버렸으면. 아, 그건 안 돼. 어쨌든 아직은 내 주 입니까. 슬프다, 슬프다. 죽음이여, 어서 와서 이 저주스러운 삶으로부터 나를 놓아주소서.
인인걸. 그렇지만 가장 사랑해야 될 사람들의 원수가 되어 버리다니. 코러스 ; 제우스 신이시여, 대지여, 빛이시여, 이 가련한 여인의 비통한 울부짖음을 들으소
교사 ; 그런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소? 모든 사람들의 가장 절친한 이웃은 자기밖엔 없다지 서. 오, 메데이아여, 쾌락의 침상 때문에 죽음을 택하다니. 제발 그러지 말아요. 당신의 남
편이 딴 여자에게 마음이 뺏겼다 한들 그런 일이 세상에 어디 처음이나요. 그대 영혼을 괴 이유를 잃었어요. 내 생명의 전부였던 사람이(그 사람도 이걸 알고 있죠) 인간 이하로 전락
롭히지 마세요. 제우스 신께서 당신 편이 되어 주실 거예요. 잃어버린 남편을 위해서 죽은 해 버렸답니다.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피조물 가운데 여자는 가장 천시 받고 있습니다. 우
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리 여자는 우리들의 지배자가 될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엄청난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죠. 이
메데이아 ; (안에서) 오, 위대한 테미스 여신이시여, 그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이시여, 그렇게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그러나 그것은 약과죠. 그 다음에는 더 큰 위험이 따릅니다. 남편될
도 굳은 맹세를 나누었건만 오늘날 저의 저주스러운 남편이 제게 한 짓을 보세요. 저로 하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찌 압니까? 그래도 이혼은 수치예요. (적어도 여자
여금 제 남편이 새로 맞은 부인과 이 궁성과 함께 파멸되는 꼴을 보게 해 주세요. 어찌 제 에게는 말이죠) 남편을 퇴박하는 일은 용서받지 못해요. 그리고 집에서의 관습과 전혀 다른
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 아버님, 그리고 내 스스로 버린 나의 조국이여. 나 새로운 관습을 익혀야 하고 예언자라도 된 듯이 침상을 같이하는 남편을 다루는 기술을 알
는 친동생마저 무참히 죽이고 당신을 떠나왔습니다. 아내야 합니다.
유모 ; 저보세요, 아씨께서 테미스 여신과 제우스 신께 탄원하는 저 소리를 들어보세요. 정 이 모든 것을 잘 배우고 시행해서 결혼의 사슬에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면 우리
의의 신과 인간의 맹세를 지키게 하는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잖아요. 이제 머지 않아 아씨 여자들에겐 그 이상의 행복이 없죠. 그렇지 못할 때 여자의 운명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해
의 분노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말 거예요. 요. 남자가 여자와 집에 싫증이 나면 그는 멀리 여행을 떠나서 권태를 달랩니다. 그래서 절
코러스 ; 메데이아를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군요. 그러면 분노가 가라앉을지도 몰라요. 친한 친구를 찾아 위안을 삼습니다. 반면에 우리 여자들은 남편 하나밖에 몰라요. 우리는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어서 안에 들어가서 댁의 아씨를 불러내 오도록 하세 집안에서 편안히 지낸다고 남자들은 말하죠. 자기네들은 전쟁터에 나가 창들고 싸우는 대신
요. 우리는 그분 편이라고 전해 주세요. 저 안에서 어떤 무서운 일을 저지르기 전에 어서요. 에 말예요. 하지만 그 얼마나 얄팍한 말입니까. 저는 한 번의 애를 낳는 고통보다는 차라리
슬픔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할 수 있거든요. 세 번 전장에 나가 싸우는 걸 택하겠어요.
유모 ; (문으로 가며) 힘껏 해 보겠어요. 그렇지만 아씨를 설복시킬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당신네들과 내 경우는 또 달라요. 당신네들은 고향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부모님도
요. 기꺼이 노력은 해 보지요. 누가 옆에 가거나 말만 시켜도 미친 황소 같은 눈초리로 바 다 여기 계시구요. 그리고 여러분 근처에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저는 혼자예요. 조국
라보는 것이 두렵기는 하지만요. 오, 어리석고 미련한 옛 시인들이여, 즐거운 잔칫상에는 기 도 등지고 남편에게는 버림받고, 타국에서 뿌리가 뽑혔어요. 저는 어머니도 없고 형제도, 사
쁨을 더하게 하는 노래를 지으면서도 슬픔과 고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를 못하니 수많 촌도 없어요. 이 폭풍 속에서 몸을 의탁할 피난처라곤 한 군데도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께
은 죽음과 불행 앞에서 노래와 가락이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이럴 때에 도움이 되는 음악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제가 남편에게 보복할 수 있는 계책을 찾아냈을 때 침묵을 지켜 달라는
이 없다니. 잔칫상에서는 배부른 것이 즐거움이요 소득이지, 노래가 무슨 소용이람. 것입니다. 여자란 원래 겁이 많죠. 싸움도 못하고 칼날이 한 번 번쩍해도 간담이 서늘해지
죠. 그렇지만 사랑에 배신당했을 때는 무엇보다도 잔인해지는 법예요.
(유모, 집안으로 들어간다) 코러스장 ; 그렇게 하지요. 당신은 당신 남편과 따져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아니, 저기 이 나라의 왕이신 크레온님이 오고 있잖아
코러스 ; 저 고통에 찬 통곡 소리를 들으소서. 결혼의 배신과 사랑의 위약에 몸부림치는 저 요. 새로운 결정을 정하러 오는 것에 틀림없어요.
여자의 애끓는 탄원의 소리를 제우스님의 신부요, 맹세를 지켜보시는 분이신 테미스 여신은
들으소서. 바다 건너 이 헬라스까지 위험한 협곡을 밤을 도와 항해해 온 저 여자의 기도를 (크레온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들어온다. 60세 가량의 수염이 텁수룩한 사람으로 검박하나
들으소서. 왕다운 차림을 하고 있다. 얼굴엔 고통스러운 결심의 빛이 나타나 있다)

(메데이아, 호화롭게 차려 입고 집안에서 나온다. 울어서 눈이 붓고 빨갛지만 놀랄 정도로 크레온 ; 메데이아, 이 땅을 떠나거라. 짐을 꾸려서 이 나라를 떠날 것을 명한다. 네 자식들
침착하다) 도 거느리고 남편에 대한 너의 분노마저 안고 곧 떠나라. 나는 이 명령이 시행되는 것을 지
켜보려고 왔다. 네가 이 곳을 떠나 국경을 넘어가기까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련다.
메데이아 ; 코린토스의 여인들이여, 용서하세요. 당신네들 말대로 이렇게 나왔어요. 거만하 메데이아 ; 그렇군요. 저는 철저히 짓밟히고 마는군요. 나의 원수는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
다는 평은 바쁜 사람뿐 아니라 한가한 사람도 들을 때가 있는 법이죠. 조용하게 사는 사람 하는데 나의 절망은 아무 데도 정박할 곳이 없군요. 비록 이렇게 궁지에 몰려 있지만 한 가
들도 게으름과 무기력 때문에 거만하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어요. 대중의 의견이란 항상 이 지만 묻겠어요. 무엇 때문에 저를 추방하시나요?
렇게 피상적이죠. 정작 어떤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만 보고 미워하기 일쑤거든요. 크레온 ; 굳이 감추지 않겠다. 두렵기 때문이니라. 나는 네가 내 아이에게 재앙을 가져올까
더구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잘 적응해야 한다는 두렵다. 그 밖에도 많은 두려움이 일어난다. 너는 여러 가지 못된 재주를 지닌 여자다. 네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본고장 사람들도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거나 버릇없이 굴어서 남편이 너를 떠났고 너는 남편을 잃었기 때문에 비탄에 싸여 있지 않느냐. 네가 나와 신부
는 안되겠지만요. 와 그리고 신랑을 해치겠다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런 위험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지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청천 하늘에 가슴이 터지는 날벼락을 맞고 보니 예의를 차릴 겨를이 금 네게 부드럽게 대했다가 뒤에 가서 후회하느니보다 지금 너의 미움을 받는 편이 낫지 않
없습니다. 여러분, 저에게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저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살아야 할 겠느냐.
메데이아 ; (코러스와 시선을 나누고) 오, 하늘이여, 저를 도우소서. 나의 세평 때문에 해를 풀어주세요. 전하께서도 아버지이신즉 이해하실 테죠. 저 때문이 아니라 애들이 불쌍해서
입은 적이 이번뿐이 아닙니다. 나의 명성에 저주 있으라. 분별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식들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애들의 처지가 너무 가련해서 말입니다.
결코 보통 이상으로 똑똑하게 키워서는 안되겠군요. 사람들은 똑똑함을 무용한 것이라고 비 크레온 ; (잠시 주저하다가) 나는 마음이 잔악한 사람이 아니다. 내 지금 잘못하는 줄은 안
웃거나 아니면 매섭게 질투할 뿐일 테니까요. 어리석은 자 앞에서 지식을 꺼냈다가는 현명 다만 그렇게 하려무나. 그러나 경고해 둔다면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네가 아이들과 함께
하다고 칭찬 받기는커녕 오히려 바보 취급만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명성이 높은 학자의 콧 이 땅에 남아 있으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리라. 나의 말은 모두 진심이다. 머물되 단 하루뿐
대를 꺾으면 오히려 질시의 대상이 되고 말지요. 오늘 내가 바로 이런 처지에 놓였군요. 내 이다. 네가 하루 동안에야 무서운 일을 저지르지는 못하겠지.
게 약간의 재주가 있어 남의 시기를 모으니 사람들은 나를 요사스럽고 미친 여자라고 몰아
세우지 않는가요. (크레온 퇴장)
실상 저는 별반 재주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두렵다고 하시는군요. 저 같은 것이 전
하의 집에 화를 끼칠 것 같습니까? 천만예요.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전하에 대해서는 코러스 ; 오, 가련한 여인이여,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가 누구
아무런 악의도 없습니다. 제발 두려움을 거두세요. 도대체 전하께서 제게 해를 끼친 일이 를 찾는단 말인가요? 어느 땅에서 어떤 낯설은 사람이 당신에게 안식처를 준단 말입니까?
무엇입니까? 전하는 단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따님을 내 주셨을 뿐인 걸요. 제가 미워하 누가 당신을 받아 주나요? 신은 진정 불쌍한 당신을 슬픔의 바다로 인도하셨습니다.
는 것은 저의 남편뿐입니다. 오히려 전하께서는 온당하게 처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메데이아 ; (복수의 집념을 보이며)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로군요. 그러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도 저는 전하의 일이 그르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두 사람을 결심시키시 돌아간 것은 아니에요. 이제 신혼 부부들에겐 한 가지 시련이 남아 있어요. 그 다정한 부부
고 축복이 있으시기를 빌겠어요. 저를 이 땅에서 살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되지 못한 계집 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시련이 될 거예요. (미친 듯한 웃음과 함께) 내가 아무 얻는 것
이오나 전하의 통치 밑에서 조용히 살겠습니다. 없이 그 사람에게 애걸복걸했을 것 같아요? 천만예요. 말 한 마디, 손끝의 놀림 하나마저
크레온 ; 너의 말은 무척 유순하나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구나. 도대체 너의 마음속에는 무 헛된 것은 없어요. 천치 같으니! 단번에 나를 내쫓지 못하고 하루의 여유를 주다니. 그 하루
엇이 도사리고 있느냐? 나는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욱 너를 믿지 못하겠다. 침착하고 조용한 가 나의 세 사람의 원수들을 세 구의 시체로 만들겠지. 그 아비와 딸과 내 남편.
자가 성미가 급한 자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법. 그러나 즉각 떠나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여러분, 내겐 이들을 죽일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어느 것을 택할까요? 신혼의 달콤한 잠
없다. 나의 결심은 섰다. 너는 위험한 인물이다. 네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나라에 머물러 자리에 불을 지를까요?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어. 들어가다가 또는 일을 저지를 찰나에 붙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들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죽을 거고 원수놈들에게 웃음감을 안겨 주는 꼴밖에 안되지. 더
메데이아 ; 이렇게 무릎을 꿇고 비오니 어여쁜 따님이신 신부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 호소를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내게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이기도 한데 독살이 바로 그것이에요.
들어주세요.
크레온 ; 내 결심은 확고한즉 더 이상 시간을 낭비치 말라. (잠시 생각에 잠겨 거닐다가)
메데이아 ; 저의 호소를 물리치고 끝내 저를 추방하시렵니까?
크레온 ; 그렇다. 너보다는 내 집을 더욱 아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을 죽인 뒤에 나를 받아 줄 곳이 있을까? 앙갚음으로부터 나를 지켜 줄 안식처
메데이아 ; 집이라구요? 오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온갖 추억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를 제공해 줄 사람이 있을까? 아무 데도 없어. 그렇다면 어떤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
크레온 ; 그래, 사랑하는 조국이지. 자식들 다음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제일인 거야. 까지 잠시 계획을 연기해야지. 그러고 나서 속임수를 써서 독살하는 거야. 그러나 거사도
메데이아 ; 사랑이라구요? 인간에게 사랑보다 더한 저주가 있을까요? 하기 전에 쫓겨나면 어쩐다지? 그럴 때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칼을 빼들어 내 손으로 직접
크레온 ; 그야 사람의 운명에 따라 다를 테지. 해치우는 거야. 헤카테 여신에 의지해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어. 헤카테야말로 나의 몸속에
메데이아 ; 오, 제우스 신이시여. 이 죄악을 범한 자를 기억하소서. 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신이시지. 내 가슴을 찢고도 무사할 사람은 없어. 그들의 결혼을
크레온 ; 가거라. 가련한 여인이여. 그래서 이 나라의 번민을 덜어 다오. 나는 고통과 슬픔으로 만들어 줄 테야. 그들이 만나고 결혼한 것이 고통이 되고 나를 추방
메데이아 ; 번민은 모두 저의 것입니다. 제게는 번민뿐입니다. 한 것이 슬픔이 되도록 말이야. 자! 메데이아여, 너의 요술을 부려 계교를 만들어 내자꾸나
크레온 ; (돌아서며) 시종들을 불러서 너를 강제로 내쫓아야겠다. 너의 용기를 시험하는 이 복수의 살육을 시작하라. 지금의 네 처지를 돌아보라. 시쉬포스의
메데이아 ; (매달리며) 안됩니다. 전하! 다른 부탁이 있사옵니다. 후예들에게 이아손의 짝이라고 비웃음을 사고 있지 않느냐? 너의 아버지는 왕이었고 그의
크레온 ; 끝끝내 골치를 썩일 생각이로구나. 아버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아니었느냐. 그 사실을 잊지 말라. 게다가 너는 여자의 몸
메데이아 ; 아니에요. 기꺼이 추방을 달게 받겠어요. 제가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 으로 태어났어. 숭고한 일 앞에서는 연약해지지만 악을 꾸미는 일에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
닙니다. 지 않았느냐 말이다.
크레온 ; 그렇다면 왜 빨리 일어나 가지 않느냐? 코러스 ; (노래)
메데이아 ; 단 하루만 머물게 해 주세요. 길 떠날 준비를 할 여유를 주세요. 애들은 어차피 성스러운 강물은 다시 샘으로 거슬러 흐르고
아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 거두어 갈 준비를 하도록 해 주세요. 그 애들에게 친절을 베 우주와 인류는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가.
남자의 마음은 다만 거짓에 지나지 않고 내 가슴속의 독기를 조금은 내뿜을 수 있는 기회이고 당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기회이니
그의 믿음이란 변덕에 지나지 않네. 까요. 처음부터 말하죠. 나는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줬어요.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간 아르고에
어느 날 역사는 바뀌리라. 탔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당신은 불을 토하는 황소에게 멍에를 씌워 죽음의
그리하여 여자에게 영광은 돌아오고 밭을 갈도록 되어 있었죠. 그리고 잠자지 않고 황금 양털을 품에 안고 지키는 거대한 뱀을
마침내 남존여비는 뒤바뀌리라. 죽여서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기도 했어요. 나는 철없이 열정에만 불타서 아버지와 고국을
버리고 펠리온 산을 지나 이올코스까지 당신을 따라갔어요. 나는 딸들을 시켜 가장 지독한
여자의 거짓된 마음을 노래한 옛 노래들은 방법으로 제 아비인 펠리아스 왕을 죽이게 했고 그들의 가문을 멸망시켰어요. 이 모든 것이
불리우기를 멈추리라.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나는 당신에게 애들까지 낳아 주었어요. 그런데 마침내는 여자 때문
노래의 신 아폴론이 우리에게 노래를 지을 재주를 주셨더라면 에 버림받게 되었군요. 만일 아이들만 없었다 해도 당신이 다른 여자를 쫓는 것을 용서했을
남자들의 노래에 지지 않는 곡을 지었을 것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모든 맹세들은 산산이 흩어졌어요. 나는 당혹할 뿐이에요. 그 예전의
아직도 멀기만 해라. 신들은 이제 사라졌나요? 아니면 인륜이 바뀌었나요? 당신의 옛 맹세들이 물거품처럼 없어
여자의 운명이 남자의 운명보다 져 버렸으니 말예요. 당신이 어루만지던 이 오른손에 저주 있으라. 그리고 당신이 그 더러
조금도 못하지 않게 되어질 날. 운 손으로 만져 더럽혀진 이 두 무릎에도 저주 있으라. 당신은 나의 희망을 거짓으로 만들
었어요. 자, 솔직하게 한 번 대답해 봐요. 친한 벗이기라도 한 양, 당신이 진정 나를 돕기
메데이아여, 그대는 고국을 등지고 사랑을 따라 위해 온 것인 양. 그래,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아버지에게? 아니면 고국으
유신느의 해벽을 헤쳐 이 먼 타국에 왔건만 로? 둘 다 당신을 위해 희생해 버렸어요. 아니면 펠리아스의 애비 잃은 딸들에게 찾아갈까
남편의 버림을 받고 마침내는 수치 속에 추방을 당하는 신세. 요?“ 그들은 제 아비를 죽인 살인자를 기꺼이 대접해 줄 테죠. 내 처지가 바로 이렇습니다.
결혼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나는 버림받은 여자예요. 나는 그들을 해칠 아무 이유도 없었건만 내 주위는 원수들로 가득
이 드넓은 헬라스의 천지에 몸둘 곳 없으니 찼어요. 이 모두가 당신 때문예요. 이 얼마나 훌륭한 보답입니까. 당신은 헬라스의 딸들 가
고국마저 버리고 이 험난한 파도 속에 운데 나를 최고로 행복한 여자로 만들었군요. 당신 같은 남자를 만나다니, 이 메데이아는
그대의 쉴 곳은 어딘가. 참으로 복이 많군요. 당신 같은 충실한 남편을 만났으니 말예요. 나는 이 나라에서 모든 것
그대의 잠자리는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신세. 을 잃고 친구마저 없이 애들만 데리고 홀로 떠납니다. 당신은 훌륭한 경력을 지닌 새 신랑
이 되겠군요. 목숨을 구해 준 아내와 자식들을 집 없는 거지로 만든 신랑이 되겠군요. 목숨
(이아손이 왕궁으로 통하는 길에서 나타난다. 왕의 호위대장의 복장을 한 젊은 남자다) 을 구해 준 아내와 자식들을 집 없는 거지로 만든 신랑이 될 테니. 오, 제우스 신이여, 당신
은 황금과 쇠붙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시었으면서 어찌 인간의 사악한 징조가 그의
이아손 ; (당황하고 흥분해 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당신의 그 야만적 발광 때문에 내 육신에 뚜렷이 찍히게 하여 가짜임을 알 수 없게 하셨나이까?
가 손해를 본 일이 말이오. 당신이 왕의 계획에 순종했던들 이 나라와 이 집에서 쫓겨나지 코러스장 ; 사랑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사랑을 내던지고 미움으로 돌아설 때 그 저주란 얼마
는 않았을 거요. 그런데 결국 미치광이처럼 발작을 일으킨 대가로 추방당하게 됐군. 나에 나 무서운 것이며 치료하기 힘든 것인가!
대한 당신의 비난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이 이아손이 악당이라고 마음대로 떠들구려. 그 이아손 ; 이제 나로서도 말주변을 피워야 할 판이로군. 당신이 그 매섭고 위험천만한 혀끝
렇지만 왕과 공주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도 추방당하는 것에 그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 을 피해 무사히 항해하자면 폭풍을 헤치는 항해사와 같은 재주가 필요하겠는 걸. 당신은 내
오. 나는 당신을 여기 남게 하기 위하여 소동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소. 그런데 당 게 베풀은 태산 같은 은혜를 주워섬겼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의 항해를 보살핀 것은 아
신이 어리석게도 왕가를 모욕했으니 이제 추방을 당하게 된 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내 프로디테 여신이었지 그 밖에는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었소. 당신의 영리함이 전혀 도움을
가 좋아했던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마지막 친절을 베풀기 위하여 이렇게 찾아온 거요. 당신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좀 몰인정하게 표현해서 당신이 나를 구해 준 것은 내게 무분별한
과 아이들이 아무 대책 없이 무일푼으로 떠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말이오. 추방 길에는 사랑 때문이었던 거요. 나는 이 점은 강조하고 싶지 않소. 어쨌든 당신의 도움이 해롭지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니까. 당신이 아무리 나를 증오한다 해도 나는 당신에게 해를 않았으니까. 다만 이 점은 분명히 하지. 당신은 내게 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았다는 것
끼칠 생각은 없소. 말이오. 우선 당신은 야만국이 아닌 이 헬라스 땅에 살게 되었고 힘이 아니라 법에 의하여
메데이아 ; 악당, 악당이란 칭호도 당신에겐 너무나 과해요. 그런 무자비한 짓을 하고도 감 다스려지는 문명의 혜택을 받게 되었소. 그리고 당신의 재능이 온 그리이스 땅에 유명해졌
히 나를 찾아오다니. 이 세상 천지에서 가장 가증스럽고 내게는 가장 원수인 당신이 나를 지. 당신이 이 세상 끝에 살았더라면 당신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을 거요. 집에 금은보화
찾아오다니, 그건 용기도 대담성도 아니에요. 당신이 한때 사랑했고 이제 와서 배신한 피해 를 쌓아 놓고 오르페우스의 노래보다 더 달콤한 노래를 듣는다 해도 그것이 알려지지 않으
자를 당신 눈으로 보기 위해 온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병이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면 무슨 소용이오? 좌우지간 나의 위험했던 항해에 대한 얘기는 그만둡시다. 어차피 당신이
추악한 짓이에요. 당신은 수치조차 모르는군요. (엷은 미소를 띠고) 그러나 아주 잘 왔어요. 꺼냈던 얘기니까. 이제 나의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해 봅시다. 첫째 내가 왕가와 혼인을 하게
된 것은 건전한 양식에 입각한 것이요. 둘째 전혀 이기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며, 끝으로 당 이아손 ; 당신과 더 얘기할 필요가 없소. 추방길에 당신이나 애들이 필요한 게 있거든 알려
신과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행위라는 것을 밝혀 두겠소. (메데이아, 기가 막혀 탄식을 발한 주오. 기꺼이 제공하리다. 그리고 당신을 보살펴줄 친구들에게 소개장도 써 주리다. 내 호의
다) 잠깐 내 말을 듣구려. 내가 쫓겨다니기에 지친 몸으로 이올코스의 땅에서 여기까지 왔 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제 정신이 아니오. 원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보다 당신 자신이나
을 때 나 같은 가련한 망명가에게 공주와 결혼하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겠소? 당 돌보도록 하시오.
신이 생각하듯 내가 당신에게 권태를 느낀 때문도 아니요, 새 부인을 얻고 싶어서 몸살이 메데이아 ; (내뱉듯이) 당신의 물건도 당신의 친구도 모두 필요 없어요. 감히 내게 그런 제
난 탓도 아니고, 자식을 더 얻고 싶은 생각 때문은 더욱 아니오. (나는 지금의 자식들로써 의를 하다니요? 사악한 인간의 선물은 독약이나 다름없어요.
도 충분히 만족하오)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가난을 청산하고 안락하게 살고 싶기 때 이아손 ; 그렇다면 하늘이 내 증인이 되어 주실 테지. 당신과 애들을 도우려던 내 뜻을 당
문이오. 가난한 자들이 얼마나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는지 나는 잘 아오. 나는 내 자식들이 신의 사악한 마음이 저버렸다는 것을 말이오.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망치는 거요. 응분의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자라기를 바라고 그 애들이 새로 태어날 애들과 함께 섞여 행복 고통을 받도록 하시오.
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보고 싶은 거요. 당신은 더 애를 가질 필요가 없지 않소. 그
러니 내 생각은 이미 낳은 자식들이 앞으로 낳을 자식들의 도움을 받게 하자는 것이오. 이 (이아손, 퇴장한다)
것이 나쁜 계획이오? 당신도 질투만 없다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거요. 여자들이란 잠자
리에 대한 질투만은 다 대단하단 말야. 여자들이란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아무 문제도 메데이아 ; 가요, 여기서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그토록 보고 싶은 그 여자에게 가 버려요.
없는 걸로 생각하고 사랑에 금이 가면 모든 인생살이가 끝장이 난 걸로 생각하거든. 이 세 그리고 결혼하세요. 신의 도움을 빌어 그 결혼을 통탄할 것이 되게 만들고 말 테니까.
상에서 애를 저절로 낳을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여자들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러면 코러스 ;
세상엔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사랑은 위험한 것.
코러스장 ; (엄하게) 그대의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그대가 무슨 말을 한다해도 아내를 희생 한없는 사랑이란
시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불신과 상실을 가져오기도 하지.
메데이아 ; (차가운 경멸을 보이며) 내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퍽 다른 모양이죠. 내 생각에 그러나 한 번 아프로디테께서
입심 좋은 위선자는 자신의 위험만을 가중시킬 뿐이고 입으로 거짓을 꾸며댈수록 더욱 뻔뻔 분수에 맞는 사랑을 베푸실 때면
해지고 파렴치해지는 법예요. 그렇지만 결과는 그리 똑똑한 것으로 판명되지는 않을 거예 그보다 더 빈틈없는 신은 없으시지.
요. 그러니 내게 허울 좋은 변명을 늘어놓지 마세요. 한 가지 점만 들어도 당신의 말이 모 위대한 여신이시여, 제발 나에게는
두 거짓이라는 게 판명돼요. 그래 당신이 비겁한 사내가 아니라면 그렇게 남몰래 결혼의 공 당신의 황금빛 독약 묻은 화살을 쏘아
작을 꾸미기 전에 왜 떳떳이 내게 미리 말하지 못했죠? 독이 든 쾌락을 갖게 하지 마소서.
이아손 ; 내가 말했더라면 당신은 기필코 나를 두둔했겠군. 지금도 이렇게 분노에 차서 어
쩔 줄 모르면서. 제게 깨끗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메데이아 ; 그 때문이 아니죠. 동방 야만국의 아내를 두어서 명예가 실추된다고 생각했기 그것이 신의 최상의 선물입니다.
때문이겠죠. 열정의 여왕이신 퀴프리스 여신이시여,
이아손 ; 제발 내 말을 믿구려. 내가 이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것은 여자하고는 관계가 없는 내 가슴에 정욕을 심어
일이오. 이미 말했다시피 당신을 지켜 주고 내 아이들을 새로 태어날 왕자들과 형제가 되게 남의 침실을 넘보지 않게 하소서.
해서 우리 가정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요. 오직 평화를 지키는 부드러운 눈으로
메데이아 ; (처절한 웃음과 함께) 하하! 사랑의 무덤 위에 튼튼한 행복을 다진다구요? 가슴 정숙한 여인의 굳은 사랑의 맹세를 지켜 주소서.
속 상처를 안고 잘 산다구요? 난 결코 그런 것은 원치 않아요.
이아손 ; (열심히) 제발 생각을 고쳐먹고 분별을 알도록 하오. 성공이 실패로 보이지 않도록 오, 나의 조국, 나의 집이여,
해 주시고 행운이 비운으로 잘못 보이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바꾸시오. 나를 떠나지 말게 하소서.
메데이아 ; 여전히 나를 조롱하시는군요. 당신은 지붕도 있고 쉴 곳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고향을 떠나 버림받은 삶을 살게 하느니
홀로 버림받은 몸이에요. 차라리 죽음을 주소서.
이아손 ; 당신 스스로 자초한 일이오.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오. 고향을 잃은 슬픔보다 더한 슬픔은
메데이아 ; 그랬던가요? 새로 결혼을 하고 배신을 한 것이 나였던가요? 이 세상에 없다오.
이아손 ; 아니, 당신은 이 나라의 왕에게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부었소. 코러스장 ;
메데이아 ; 그래요. 그리고 나는 당신을 괴롭힐 운명이 정해 주신 저주가 될 거예요. 소문과 거짓말로서 아니라
내 눈으로 목격했노라. 아이게우스 ; 저런!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데요?
집도 친구도 잃은 메데이아는 메데이아 ;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이려고 저를 쫓아내려 한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랴. 아이게우스 ; 아니 어찌 감히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한단 말이오?
남의 티없는 존경심에 메데이아 ; 사실 그런 걸요. 한때 사랑 받았으나 이제 저는 버림받은 신세랍니다.
마음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아이게우스 ; 그가 딴 여자와 사랑에 빠졌단 거요, 아니면 그저 당신에게 싫증을 느낀 거
불운 속에서 잠들게 하라. 요?
그런 사람은 결코 나의 친구가 아니니라. 메데이아 ; 참 대단한 사랑이죠. 세상이 뒤집히고 말았어요. 모든 맹세는 바람에 불려 날아
가 버렸구요.
(아이게우스가 시골길로부터 들어온다. 중년의 남자로 여행복 차림이다. 귀족들과 시종들을 아이게우스 ; 그럼, 그 사람이 그렇게 못된 인간이라면 내버려두구려.
대동하고 있다) 메데이아 ; 그의 사랑이란 왕과 인척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이에요.
아이게우스 ; 왕이라구요? 어느 왕 말이오?
아이게우스 ; (손을 내밀며) 메데이아, 건강과 행복이 있기를. 다정한 벗을 만났을 때 더 좋 메데이아 ;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이랍니다.
은 인사말이 없을까? 아이게우스 ;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군요. 정말 안됐소.
메데이아 ; (쓸쓸하게) 현명하신 포세이돈의 아드님이신 아이게우스님께도 건강과 행복이 메데이아 ; 이젠 끝이에요. 더구나 저는 추방당한 몸이에요.
따르기를. 그런데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아이게우스 ; 추방이라구요? 이거야말로 정말 큰일이군요. 도대체 누가 추방을 했단 말입니
아이게우스 ; 델포이에 아폴론 신의 신탁을 듣고 오는 길이오. 까?
메데이아 ; 아니, 무슨 일로요? 메데이아 ; 크레온이에요. 저를 이 코린토스 밖으로 내쫓으려고 해요.
아이게우스 ; 자식을 얻게 해 달라고 청원하러 갔었소. 아이게우스 ; 당신 남편도 찬성을 했단 말입니까? 이건 정말 야비한 일이군요.
메데이아 ; 아니, 그러시다면 여태껏 자식이 없으셨단 말씀입니까? 메데이아 ; (아이러니컬하게) 그이 말을 들어보니 찬성은 안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꾹 참는
아이게우스 ; 없었소. 하늘의 뜻이었소. 모양이더군요. (무릎을 꿇고) 오, 아이게우스님, 이렇게 무릎을 꿇고 비오니 저의 불행을 동
메데이아 ; 부인이 계셨는데도요? 아니면 여태 결혼을 안 하셨던가요? 정해 주세요. 제가 홀로 추방당하도록 놔두지 마시고 저를 아테나이로 데려가 보살펴 주세
아이게우스 ; 결혼했지요. 잠자리를 같이하는 아내가 있답니다. 요. 저를 좀 받아 주세요. 신들이 당신께 보답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자식
메데이아 ; 그래, 아폴론 신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을 갖도록 해 주실 거예요. 이렇게 저를 만난 것은 신이 당신께 은총을 내리신 거예요. 제
아이게우스 ; 매우 뜻이 깊은 말씀이라 인간의 지혜로써는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말은 당신에게 자식을 갖도록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약속하겠어요. 전 자식을 갖게 하는
메데이아 ; 신의 대답을 알려 주시지 않겠어요? 처방을 알아요.
아이게우스 ; 물론이죠. 어쩌면 그대 같은 사람이라면 풀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게우스 ; (감동을 받아) 메데이아, 나는 당신의 청을 기꺼이 들어 줄 태세가 갖추어져
메데이아 ; 그래, 뭐라고 하셨는데요? 있소. 그런데다 내게 단념하고 있던 자식까지 갖게 해 주겠다고 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
아이게우스 ; 이것이었소. “술부대를 열지 말아라.” 겠소? (붙들어 일으키며) 아테나이로 오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서 당신을 보
메데이아 ; 거기에 어떤 조건이 붙지 않았나요? 살펴 드리리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겠소. 나는 당신을 이 코린토스에서 같이 데
아이게우스 ; ‘집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는.’ 이라는 조건이 붙었소. 리고 갈 수는 없소.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내게 찾아온다면 그때는 최대한의 보호를 해 드
메데이아 ; 그런데 왜 이리로 오셨나요? 리겠소.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을 내 주지 않을 거요. 그러니 당신 힘으로 이곳을 빠
아이게우스 ; 트로이젠의 왕 핏테우스를 만나기 위해서요. 져나오시오. 나는 코린토스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로 해서 서로 금이 가
메데이아 ; 펠롭스의 아드님 말씀이시죠. 매우 공정하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는 것을 원치 않소.
아이게우스 ; 그렇소. 신탁에 관해서 상의를 할까 해서 만나러 가는 길이오. 메데이아 ;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지금 말씀하신 것을 맹세에
메데이아 ; 현명한 분이시라 그 방면에 대해서도 잘 아실 거예요. 걸어 주세요.
아이게우스 ; 그리고 나하고는 절친한 전우이기도 하죠. 아이게우스 ; 나를 믿지 못한다는 말씀이오?
메데이아 ; 당신의 모든 꿈이 잘 실현되기를 빌겠어요. 메데이아 ; 저는 당신을 믿어요. 다만 제게는 적이 많답니다. 크레온 한 사람뿐이 아녜요.
아이게우스 ; 그런데 당신의 안색이 왜 그리 창백하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펠리아스의 집안도 저의 적이에요. 그들은 제게 현상금을 붙이고 저를 찾을 거예요. 당신이
메데이아 ; 제 남편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랍니다. 맹세를 해 주신다면 결코 저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단지 약속으로 그친다
아이게우스 ; 그게 무슨 말이오? 자세히 말해 보시오. 면 당신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제게는 아무 무기도 없어
메데이아 ; 아무 죄도 없는 제게 혹독한 짓을 했어요. 요. 반면에 저의 적들은 재산도 있고 권력도 있어요.
아이게우스 ; 당신은 매우 신중하군요. 당신이 정녕 원한다면 내 거절하지 않겠소. 실상 맹 요.
세를 해 두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오. 당신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그 일을 위해서 나 역시 고통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돼요. 내 애들을 내 손으로
정당한 변명거리가 될 테니 말이오. 그리고 당신도 안전해질 테고. 자, 어서 맹세를 할 신의 죽여야 하니까요. 하나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애들을 아무도 내게서 뺏아갈 수 없게 되는 거
이름을 대시오. 예요. 나는 이아손을 파멸시킨 후 이 곳을 빠져나가겠어요. 내 할 일을 다하고 애들을 죽인
메데이아 ; 당신이 딛고 계신 대지에 맹세하세요. 그리고 제 할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뒤에 떠나는 거예요. 남의 증오를 사는 사람은 결코 안심해서는 안되는 법예요. 이제 나의
태양에게도 맹세하세요. 그리고 모든 신께 맹세하세요. 인생에 무엇이 남습니까? 아버지도 고향도 잃고 위험 속에 살아야 해요. 나의 잘못은 남자
아이게우스 ; 그렇게 하리다. 그러면 뭐라고 맹세를 하리까? 의 말을 믿고 고국을 떠난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남자는 대가를 지불하게 되겠죠. 결코
메데이아 ; 결코 저를 당신의 나라에서 추방하지 말 것이며 나의 적들이 나를 잡아가려 할 그는 나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테고 새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
때 당신이 살아 있는 한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세요. 날 아이도 없을 거예요. 내 손에 독살 당하게 될 가련한 공주여, 나를 하찮고 미약한 존재
아이게우스 ; 나는 대지와 태양의 성스런 빛에 걸고 당신이 방금 한 말을 굳게 지킬 것을 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나는 결코 힘없는 피해자는 되지 않을 테니까.
맹세합니다. 친구들에게는 상냥하지만 원수에게는 만만치 않은 존재가 바로 나의 본성인 걸.
메데이아 ; 좋아요. 그러면 당신이 맹세를 깨뜨렸을 경우에 어떤 벌을 받으시겠어요? 코러스장 ; 메데이아, 우리들은 서로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고 나 또한 당신을 돕고 싶지
아이게우스 ; 신을 모독했을 때 받는 모든 벌을 받겠소. 만 삶의 율법에 비추어 말하건대 제발 그것만은 참아 주오.
메데이아 ; 다른 길은 없어요. 당신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당신은 나와 같은 고통은 겪어 보
(두 사람,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아 서약의 뜻을 표한다) 지 못했어요.
코러스장 ; 그렇지만 당신 자신의 애들마저 죽이다니…….
메데이아 ; 그럼 이제 떠나세요. 모든 게 잘됐어요.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아테나이로 메데이아 ; 그것이야말로 내 남편을 벌주는 최상의 방법인걸요.
가겠어요. 그 전에 여기서 할 일이 남아 있답니다. 코러스장 ; 그렇지만 그런 짓을 하면 당신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가 되는 거
요.
(아이게우스, 퇴장) 메데이아 ;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어요.

코러스장 ; 여행의 신이신 헤르메스가 그대를 아테나이까지 무사하고 신속하게 인도해 주기 (조금전 대화 중에 등장한 유모에게)
를 빌겠어요. 그대는 매우 훌륭한 분이시기에 그대의 마음이 애타게 그리는 고향으로 평안
히 가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유모, 내게 충성을 바칠 사람은 당신밖엔 없다오. 가서 이아손을 이리 데려오도록 해요. 그
메데이아 ; (코러스를 향하여) 오, 제우스 신이시여, 그리고 정의의 여신이시여, 찬란한 태 러나 당신은 같은 여자이자 우리집의 충직한 하인인 만큼 여기서 있었던 얘기는 조금도 누
양의 신이시여, 나의 벗들이여, 마침내 저의 복수를 향한 길은 열렸습니다. 머지 않아 승리 설해선 안돼요.
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마침내 희망이 생겼습니다. 나의 원수들이 쓰러질 날도 머
지 않았습니다.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가 싶은 찰나에 이 사람이 내게 절호의 기회를 (유모, 천천히 퇴장한다. 코러스의 합창이 시작된다)
주었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 아테나이로 가서 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러스 ;
(여인들을 가까이 부른다) 아테나이의 백성들은 오래도록 축복 받았으며
신성한 신들의 자손이라오.
이제 여러분께 나의 계획을 말해 드릴께요. 나는 이아손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리로 오도록 신성하고 침략받지 않은 땅에서 태어나
할 생각예요. 그가 오면 아주 부드럽게 말하겠어요. 그의 생각이 모두 옳았다구요. 그가 왕 자식을 사랑하는 백성들이라오.
가와 혼인을 맺고 내가 희생당하는 것이 결국은 잘한 일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리고 나서 애 피에리아의 순결한 처녀 아홉 무사이를
들만은 남게 해 달라고 청하겠어요. 물론 나를 미워하는 이 원수의 땅에서 내 자식을 돌봐 하르모니아가 탄생시킨 그 땅에서
줄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것은 단지 공주를 살해하기 위한 속임수에 지 맑은 공기 호흡하며 발걸음도 가벼이 거닌다오.
나지 않아요. 나는 애들의 손에 공주에게 바칠 선물을 들려서 들여보내겠어요. 추방을 거두
어 주십사는 탄원의 뜻으로 말예요. 비단 가운과 금장식을 한 관을 선물할 생각예요. 만약 아름다운 케피소스 강물을 아프로디테 여신이 땅 위에 뿌려 주고
공주가 이 선물을 받아 걸치기만 하면 그 여자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을 거예요. 그리 대기는 향긋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오.
고 공주의 몸에 손을 대는 자는 누구나 내가 칠해둔 무서운 독약 때문에 같이 죽게 될 거예 장미꽃으로 장식한 머리카락에서 향기를 풍기며
아프로디테는 가슴속에 지혜와 함께 사랑을 심어 나.
이 둘로써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운다오. 이아손 ; 오, 내 아들들아, 너희들이 이렇게 나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
겠느냐.
의인으로 가득 찬 이 성스러운 강가의 도시가 메데이아 ;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나는 너무나 눈물이 많아서 탈이야. 너희들 아버
자식을 살해한 여인을 어찌 받아 주리오? 지와 갑자기 화해를 하고 나니 눈물이 쏟아지는구나. 이 가슴 아픈 정경을 보니 자꾸만 샘
오, 자식을 어찌 찌를 수 있단 말이오? 솟듯 흘러내리는구나.
당신의 손에 그 어찌 피를 묻힐 수 있단 말이오? 코러스장 ;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구려. 제발 이 이상의 불행한 일이 없기를.
그대의 무릎을 안고 비오. 이아손 ; (애들을 가만히 놓아주며) 메데이아, 나는 이제 당신을 책망하지 않겠소. 남편이
제발 무슨 짓을 해도 좋으나 재혼을 하게 되었을 때 여자로서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러나 이제 시간은 좀 걸
자식만을 살해하지 마오. 렸지만 당신이 지각을 차려서 이 일의 좋은 면을 깨닫게 됐으니 당신은 영리한 여자요. (아
이들에게) 그리고 애들아, 이 아비는 너희를 결코 소흘히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을
자기의 핏줄을 살해할 만큼 위해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얼마 안 있으면 너희는 새로 태어날 너희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잔인한 손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 코린토스의 일등 시민이 될 것이다. 언젠가 너희들이 자라서 이 아비의 적들을 무찔러
언제,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줄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리겠다. 그런데, 메데이아, 어째서 이렇게 울기만 하오? 얼굴마저
눈물로 범벅이 된 시선으로 창백하구려. 내 말이 기쁘지 않고 괴로움만 주었단 말이오?
어찌 차마 자식들을 바라볼 수 있겠소. 메데이아 ;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 애들을 생각해서 울었을 뿐이랍니다.
당신의 가여운 애들이 울며 살려 달라 애걸할 때 이아손 ; 이제 진정하구려. 그 일을 내게 맡기고.
어찌 손에 그들의 피를 묻힐 마음이 일어나겠소? 메데이아 ; 그러겠어요. 당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여자들이란 원래 잘 우는 법이에요.
이아손 ; 알고 있소. 그렇지만 애들 때문에 슬퍼할 이유는 하나도 없소.
(이아손이 유모와 함께 들어온다) 메데이아 ; 저는 저 애들의 어머니예요. 당신이 저 애들에게 오래오래 살라고 기원하셨을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때문에 슬퍼졌어요. 그것이 제가 눈물을 보인 첫째 이유
이아손 ; 메데이아, 당신의 말대로 이렇게 다시 왔소. 당신은 나를 거역했지만 나는 당신이 고 또 한 이유는 이것이에요. 왕의 결심이 확고부동하여 저는 이 나라에서 쫓겨나게 돼요.
시키는 대로 따랐소. 내게 무엇을 바라시오? 어차피 저는 있어 봤자 당신께 방해만 될 뿐이니까 추방당하는 편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
메데이아 ; 전에 말한 것을 모두 용서하세요. 과거의 정분을 생각해서 제가 당신께 퍼부어 각합니다. 그렇지만 애들만은 당신 슬하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왕을 설득해서 머물도록
댄 것을 크게 괘념치 마세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스스로 해 주세요.
를 질책했답니다. “이 바보 천치야, 네게 좋은 일을 하려는 분께 항거하다니, 더구나 네가 이아손 ; 글쎄 잘될는지 모르겠소. 손쉽지 않을 것 같구려.
섬겨야 할 남편에게. 그분이 왕가와 혼인하는 것은 네 자식들뿐 아니라 네게도 최상의 일임 메데이아 ; 신부에게 부탁해서 아버지를 설득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에도 어찌 침착하지 못했느냐. 신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도 괴로워하다니 너는 자식도 이아손 ; 글쎄.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소.
없느냐? 너는 이 곳에 올 때 이렇다 할 친구도 없는 망명자가 아니었더냐.” 메데이아 ; 물론 들어주실 거예요. 그분도 여자이니까. 저도 힘을 쓰겠어요. 그분에게 아름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당신께 감사해요. 당신이 다운 선물을 보내도록 하겠어요. 비단 가운과 황금 장식으로 된 관을 선물하겠어요. 우리
저를 위해서 한 일이란 걸 깨닫고 보니 당신은 현명하셨고 저는 바보였어요. 오히려 당신 애들에게 들려서 보내도록 하죠. (손뼉을 쳐서 하녀를 부른다) 안에 들어가서 선물들을 이
편에 서서 도와 드렸어야 할 저였어요. 당신 곁에서 기꺼이 신부를 위한 잠자리를 펴 드리 리 가져오너라. (하녀, 들어간다) 그분은 굉장히 기뻐하실 거예요. 한편으로는 당신 같은 훌
고 옷을 입혀 드렸어야 했을 텐데. 여자란 별수 없나 봐요. 그런 여자의 변변치 못한 소갈 륭한 분을 남편으로 맞아서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제가 저의 할아버지이신 위대한 태양의
머리를 닮지 마시고 제발 용서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야 비로소 사리를 알겠어요.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선물을 받게 되어 기쁘실 거예요. (하녀가 두 개의 상자를 들
고 나온다) 애들아, 이 결혼 선물을 들고 행복한 신부가 되실 공주님께 가지고 가서 그분
(기쁜 낯을 가장하고) 손에 놓아 드려라. 그분이 보시고 실망하실 선물은 결코 아니란다.
이아손 ; 아니 어리석게 왜 남에게 주어 버리려고 하오? 설마 한 나라의 공주가 걸칠 옷이
자 애들아, 애들아, 어서 이리들 나오너라. (애들이 교사와 함께 나온다) 이리 와서 아버님 없을까 봐서? 왕궁에 금붙이가 귀할 것 같아서 그러오? 도로 가지구려. 함부로 버리지 마
께 인사 여쭈어라. 아버님을 원망 말고 어서 품에 안기거라. 이 어미의 원망도 이젠 사라졌 오. 내 부인될 여자는 이러한 물건보다는 나의 축복을 더 소중히 생각할 사람이오.
다. 우린 다시 화목해졌으니 어서 아버님의 손을 잡아 드려라. (애들이 이아손의 팔에 안기 메데이아 ; 저를 말리지 마세요. 선물은 신의 마음도 움직이는 법이에요. 그리고 황금은 어
자) 오, 신이여, 이 무슨 불길한 예감인가? 어둠 속에 무언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있구 떤 지혜보다도 강한 힘을 지녔답니다. 공주께서는 누구보다 운이 좋으시고 축복 받으셨고
부유하세요. 하지만 저는 제 애들을 위해서 이까짓 황금뿐 아니라 제 목숨도 바칠 수 있어 니까?
요. 자, 애들아, 이걸 들고 궁안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너희 아버님의 새 부인께 탄원을 메데이아 ; 그대는 알릴 것을 알린 것뿐이오. 당신의 잘못은 아니오.
드려라. 제발 코린토스에서 살게 해 주십사고. 그리고 이 값진 선물일랑 반드시 그분 손에 교사 ; 아니, 부인, 왜 이렇게 두 눈을 감으시나요? 그리고 어인 눈물이십니까?
올려놓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자, 어서 가라. 부디 잘 되어서 내게 좋은 소식을 들 메데이아 ; 오, 내가 독한 마음으로 신과 더불어 꾸민 이 일이 나를 짓누르오.
려 다오. 이 어미는 가슴 조이며 기다리고 있으마. 교사 ; 부인, 용기를 내십시오, 언젠가 아드님들이 부인을 고향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메데이아 ; 고향이라구요?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을 먼저 고향으로 보내야만 해요. 오, 자비
(애들 교사를 따라 퇴장, 이아손은 뒤따라 나간다) 를 베푸소서.
교사 ; 자식들과 이별하는 어머니는 이 세상에 부인 한 분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인간
코러스 ; (노래) 의 짐을 인간답게 짊어져야 합니다.
이제 저 애들이 살 마지막 희망도 꺼졌구나. 메데이아 ; (교사의 손을 잡으며) 그러겠어요. 자, 그만 들어가서 애들이나 가르치세요. (교
저 애들은 이미 죽음의 잔치로 떠났으니 사, 걱정스레 안으로 들어간다. 메데이아, 애들을 두 팔로 안으며) 내 아들들아, 너희들은
가엾은 신부는 저주의 금관을 받겠지. 나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 이 비참한 곳에 어미를 두고 너희는 저 세상으로 떠나 언제까지
그 아름다운 금발 위에 나 엄마 없이 있어야 한다. 이 어미는 타국으로 떠나야 한단다. 너희들이 자라는 모습도 이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의 장식을 놓으리라. 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너희가 신부를 맞아 결혼하는 모습도 볼 수 없겠구나. 오, 내 기구
한 팔자여, 여태 너희들을 기른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구나. 너희에게 쏟은 온갖 정성
향내나는 의상의 광휘에 매혹되어 과 근심들이 이제는 모두 소용없게 되었구나. 너희를 낳기 위한 출산의 고통도 헛되이 되고
신부는 금관과 더불어 의상을 걸치겠지. 말았구나. 그리고 너희들에게 걸었던 나의 무수한 꿈도 허사가 되었구나. 너희에게 의지하
의상 아래의 죽음과 결혼하기 위해. 여 노년을 보내리라는 기대도 무너졌구나. 그리고 죽어서 자식들 손에 묻히고 싶은, 모든
오, 죽음의 운명에 놓인 가련한 여인이여, 사람이 바라는 마지막 기대도 허물어졌구나. 이 모든 달콤한 환상은 깨어지고 이제 나 홀로
운명의 굴레에 씌워 파멸에 떨어지겠구나. 쓸쓸히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구나. 너희들의 영롱한 두 눈도 이제는 영영 어미를 볼 수 없
겠고 다시는 너희와 만나지 못하겠구나. 오, 내 자식들아, 왜 그리 뚫어져라 바라보느냐?
그리고 그대, 저주받은 자, 그 미소는 내게 보내는 마지막 웃음이냐? 오, 어찌하면 좋을꼬? 너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
죽음을 자초한 임금님의 사위여, 울을 보니 내 마음이 봄눈 녹듯이 풀리는구나. 내 결심이여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들을 함
그대는 자식들에게 닥쳐올 비운과 께 데려가야겠다. 너희 애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하여 너희를 해치는 것은 나의 상처만 두
그대의 신부에게 은밀히 찾아올 죽음을 갑절로 만드는 것. 도저히 할 수 없구나. 내 결심을 포기해야지.
모를 테지, 불행한 사내여.
그대는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리니. (불현듯 애들에게서 떨어지며)

그리고 비참한 어머니여, 아니, 왜 내가 갑자기 이렇게 약해지지? 나의 원수들이 나를 비웃도록 내버려두란 말인가?
그대의 고통을 위해 눈물을 흘리노라. 메데이아여 마음을 든든히 먹어라. 이 헛된 상념에 빠져 비겁해져서는 안된다. (거의 떠다
그대를 버리고 딴 여자와 밀 듯이) 너희는 어서 안으로 들어가거라. (우울하게 코러스를 향해) 이 피의 제전을 차마
잠자리를 같이한 남편에 대한 못 볼 사람은 돌아가도록 하세요. 그러나 나의 결심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을 거예요.
사랑의 복수를 위하여 아, 그건 안돼. 이 일만은 도저히 할 수 없어. 이 애들을 아테나이로 데려가야 해. 그래서
자식을 살해하려는 가엾은 여인이여. 같이 즐겁게 살아야지. 지옥의 어느 죽음의 신도, 어느 망령도 이 애들을 짓밟도록 버려 두
어서는 안돼.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죽여야 해.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일. 이미 신부의
(교사가 두 애들을 데리고 궁성 쪽으로 급히 들어온다) 머리에는 관이 올려져 있고 가운을 몸에 걸친 채 그의 몸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을 테
지. (코러스를 향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더욱 비참해요. 그러므로 이 애들과 잠시
교사 ; 부인, 아드님들이 추방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공주께서는 친히 두 손으로 부인의 선 말을 하고 싶어요.
물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이제 애들은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메데이아의 우울한 표정을
보고 이상히 여겨) 아니, 기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말이 없으시니. (메데이아, 고통의 신 (애들의 손을 붙들고)
음을 발한다)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제 전갈이 기쁜 소식이 아닌가요? 웬 일이십
너희들의 오른손을 다오. 그 손에 키스해 주마. 이 얼마나 귀여운 손이냐! 그리고 이 귀여운 메데이아 ; 누군가 드디어 소식을 가져오는구나. 틀림없이 왕궁 쪽에서 오고 있군. 아, 보인
입술, 그리고 이 얼굴, 이 순진한 귀태어린 모습하며. 너희에게 축복을 보내마. 다만 이 곳 다. 이아손의 시종이 숨을 헐떡이며 오는구나. 놀라운 소식을 가져오는 모양이지.
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이 곳에서의 축복은 너희들 애비에 의해서 손상된 것이니까. 너희
의 살결은 이렇게 어루만지기만 해도 다정하구나. 그리고 이 향기로운 숨결. 이제 그만 들 (왕궁의 관리인 사자가 뛰어들어온다)
어가거라. 더 이상 너희를 볼 수가 없구나. 너무 고통스러워. (아이들, 울면서 집안으로 들
어간다) 나는 너희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 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내 의지보다 감정이 사자 ; 메데이아, 어서 피하시오. 부인은 너무도 끔찍한 일을 저질렀소. 무슨 수단을 써서든
앞서는 걸 어찌하느냐. 감정이란 인간의 저주로구나. 감정이 무서운 악을 불러오니 말이다. 지 어서 피하시오. 배를 타건 마차를 타건 어서 달아나시오.
코러스 ; (노래) 메데이아 ; 달아나라구요? 그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나요?
우리 여자로서는 도저히 풀기 힘든 의문을 안고 사자 ; 죽었습니다. 지금쯤은 완전히 숨이 끊겼을 겁니다. 부인의 독약 때문에 공주님과 부
오래도록 씨름했다오. 왕께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 중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있다오. 메데이아 ; 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야. 이 반가운 소식을 가져온 당신은 이제 나의 영
천의 하나는 똑똑한 여자도 있는 법, 원한 벗입니다.
그 덕분에 오늘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소. 사자 ;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지금 제 정신이오? 얼이 빠진 것이나 아니요? 지
금 왕가는 납골당으로 화했는데 부인은 즐거워하시다니, 두렵지도 않으시오?
곧 부모 노릇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메데이아 ; 그 질문엔 답해 드리리다. 서두르지 말아요. 그보다 먼저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
훨씬 더 행복하다구요. 는지 자세히 좀 말해 봐요. 처참하게 죽었을수록 나의 기쁨은 배가 되는 것이에요.
애를 갖지 않은 사람은 사자 ; 우리는 부인의 아드님이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겼는지
저주가 있을지 축복이 있을지 모른답니다. 우리 시종들은 부인의 시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동정하고 있
앞일을 근심할 필요가 없다오. 었으니까요. 그런데 부인께서 남편과 화해를 하셨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우리 중의 어
자식 없는 사람은 많은 짐을 던 셈이지요. 떤 이는 부인의 아드님 손에 키스를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그 황금빛 머리카락에 키스
자식 가진 사람은 편안한 집에 앉아서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너무도 반가와서 여자들의 거실까지 따라 들어갔습니다.
근심이 떠날 날이 없는 법, 거기에는 공주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공주님은 이아손님을 보자 반색을 하셨습니다. 이아손
애들을 잘 먹여야지 유산을 남겨 줘야지 님에게 빠져서 처음엔 애들이 들어오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애들을 보시고는
하는 걱정에 항상 조바심친다오.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시더니 고개를 돌리고 마시더군요. 이아손님께서는 계집애처럼 샐쭉해
그리고도 자식들이 잘 될는지 잘못 될는지 서 토라진 공주님을 이렇게 달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대의 친구를 미워하지 마오. 그렇게
전혀 알 도리가 없지요. 화를 내고 돌아앉지 말아요. 당신 남편의 사랑스런 자식들을 당신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해
근심 걱정한 보람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주오. 자, 애들의 선물을 받아주고 나를 위해서 애네들의 추방을 막아 주구려.”
어찌 알겠소? 공주님께서는 아름다운 선물들을 보시자 갖고 싶은 마음에 못 이겨 남편의 말을 따랐습니
다. 그리고 이아손님이 애들을 데리고 나가시자마자 그 호화로운 옷을 꺼내 입으시고 황금
그리고 그 중에도 가장 비참한 경우가 있지요. 장식이 달린 관을 머리에 쓰시고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셨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애들이 훌륭하게 잘 자라서 자기의 죽음의 얼굴을 보시고 한껏 미소지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겨우 마음을 놓을 무렵에 우유같이 뽀얀 발끝으로 방안을 거닐며 몸매를 아래위로 훑어보시면서 방금 받은 선물을 마
무자비하게 죽음이 찾아와 냥 즐거워하셨습니다.
애들을 불러갈지 어찌 안단 말이오? 그러더니 갑자기 무서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공주님은 안색이 달라지면서 비틀거렸어요.
신이 우리에게 이 같은 슬픔을 안겨 준다면 온몸을 벌벌 떨며 쓰러질 뻔하시다 겨우 의자 위에 몸을 던졌습니다. 늙은 하녀는 이를 보
애써 키운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자 판 신이 갑자기 씌웠거나 혹은 어떤 다른 신의 힘 때문인 것으로 알고 당황하고만 있었
아들 낳는다는 기쁨만으로 만족하라는 건가요? 습니다. 그 때 공주님은 공포의 비명을 내지르셨습니다. 한 하녀는 전하의 궁성으로 달려갔
고 또 한 사람은 신부에게 일어난 일을 알리기 위해 신랑을 찾아 뛰어나갔습니다. 온 집안
(코러스가 노래하는 동안 메데이아는 앉아 있다. 거리에서 사자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자리 에 사람들의 급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불쌍한 공주님은 두 눈을 내려 감고 의식을
에서 벌떡 일어난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달리기 선수가 미처 백 야드를 뛸 만한 겨를도 없이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다시 질
렀습니다. 공주님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관에서는 몸서리치는 불꽃이 피어올랐고 부인의
아드님이 선사한 가운은 공주님의 생살을 파먹어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공주님은 의자에 코러스 ; (노래)
서 벌떡 일어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머리 위의 불붙은 관을 떼어내려고 애쓰셨습니다. 그 대지여, 태양의 빛이여.
러나 관은 단단히 머리 위에 달라붙어서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도 떨어질 줄 모르고 불길만 이 가여운 여인을 보소서.
더욱 퍼져 나가 마침내 공주님은 고통에 못 이겨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공주님의 형체는 제 자식을 살해하려는 행위를 막아 주소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는 간 곳 없고 몰골은 처참하게 뒤 당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을 구하소서.
틀렸으며 뭉그러진 골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살덩 신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극악한 일이옵니다.
이는 송진이 흘러내리듯 독약 기운에 녹아 뼈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제발 이 여자를 만류하셔서
그 정경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아무도 공주님의 곁에 다가가 시체를 건드릴 생각도 하지 이 집안을 살육으로부터 지키소서
못했습니다. 그 때 공주님의 아버님이 영문도 모르고 방안으로 뛰어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곤 복수의 여신들을 멀리 쫓아 주소서.
공주님에게 달려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곤 공주님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키스를 퍼부으며 통
곡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 내 가엾은 딸아, 어떤 악귀가 너를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이냐? 그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있었던 산고는
누가 너를 죽게 했으며 나를 고대의 비석처럼 혼나간 인간이 되게 했단 말이냐”라고요. 그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았나요?
런데 전하께서 통곡하기를 멈추고 노쇠하신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월계수 나무에 담쟁이덩 그 험난한 파도를 건너 이 곳까지 항해해 온 부인이여,
굴이 들러붙듯 공주님의 가운이 들러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전하께서는 기겁을 해 가슴에 원한 맺힌 증오를 불태우고
서 떼어내려고 날뛰셨습니다. 무릎을 일으켜 세우려 해도 공주님의 시신이 놓지를 않았습니 살인과 복수를 위한 분노를 키우기 위하여
다. 억지로 떼내려 하자 전하의 살덩이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마침내 기진맥진한 전하께서 오셨던가요?
는 그 도살장 같은 아수라장에 쓰러지고 마셨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두 시체가 나란히 바닥 친족을 살해하는 자는 하늘의 분노를 사며
에 펼쳐졌으니 그 얼마나 처참한 정경입니까! 평생을 두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라오.
메데이아여, 부인께 드릴 말이 따로 없군요. 오늘 있은 일에 대한 보복을 피할 수 있는 방
법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오늘 새삼 깨달은 바는 아니나 제 보기에 인생이란 (집안에서 비명이 들린다)
모두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거나 아는 척하는 사람
들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행복한 인간이 첫째여인 ; 들어 봐요. 애들의 비명이 들려요.
어디 있습니까? 남보다 더 부유하고 더 출세한 사람들은 혹 있겠지만 그렇다고 남보다 더 큰아들 ; 오, 어머니가 우리를 죽이려 해요.
행복할까요? 행복한 사람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작은아들 ; 형! 형! 우리는 죽어요!
둘째여인 ; 오, 저 잔혹한 여인이여.
(사자, 퇴장) 셋째여인 ; 우리가 뛰어들어가서 그 애들을 구해 낼까?
큰아들 ; 오, 하늘이여, 우리를 구해 주세요.
코러스장 ; 오늘 정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정의의 철퇴가 이아손의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을 작은아들 ; 우린 꼼짝없이 죽어요. 어머니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아요.
보았습니다. 가장 혹독한 보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엾은 크레온의 따님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의 결혼이 바로 저승의 문으로 통해 버린 가련한 공주여. (코러스가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릴 때 안에서 신음과 비명이 들린다. 곧 이어 문 밑으로 피
메데이아 ; 자, 벗들이여, 이제 나의 자식들을 죽여 없애고 이 땅을 속히 떠나 나의 마지막 가 흘러나온다. 여인들 기겁을 한다)
임무를 완수해야겠어요. 이제 와서 망설이다가는 나보다 더 야만스런 자의 손에 죽음을 당
하고 말 거예요.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 애들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코러스 ;
죽어야만 한다면 그들에게 생명을 준 내 손으로 죽이는 편이 나아요. (몽유병자처럼 독백을 오, 무쇠의 심장을 지닌 돌 같은 여자.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자, 마음을 굳게 먹자. 주저해서는 안돼. 잔인한 일이지만 안할 수 내 손으로 내 자식을 무참히 죽이다니!
없어. 자, 주저 말고 어서 칼을 잡자. 어서 빨리 이 고통의 순간을 넘겨야지. 절대로 물러서 제 몸에서 난 자식을 죽인 예
서는 안돼. 그 애들에 대한 사랑은 잊어버리자. 비록 죽이지만 사랑스러운 나의 자식들아. 꼭 하나 더 있었지.
오, 내 아들들아, 이 어미는 절망의 심연에 떨어져 있구나. 헤라 여신의 미움을 받아 미친 이노
들을 방황하던 그녀가 바로 그 여자였소.
(소리없이 울며 따르는 유모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다)
미쳐서 제 자식을 무참히 죽였었어. 신했던 너, 그리고 아르고에 오르기 전에 친동생마저 살해했던 너는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
가엾은 이노는 자식을 죽인 죄로 냐? 신은 네 속의 악마를 풀어놓아 나를 파멸케 했구나.
벼랑 끝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지. 나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사랑의 질투 때문에 그 아이들을 죽이고 말다니, 이 헬라스 천
앞서 간 애들을 따라. 지에 어떤 여자가 그럴 수 있단 말이냐. 그런데도 나는 그리이스의 여자를 마다하고 너와
세상에 이보다 더 몸서리치는 일이 결혼했었다. 나는 여자도 아내도 아닌 암호랑이와 결혼한 셈이지. 나를 증오하고 파멸하려
또 어디 있단 말이오? 는 상대와 결혼을 하다니. 시켈리아 바다의 스퀼라보다도 더 악독한 것! 더 비난을 계속해
사랑의 고통에 빠진 여자들이 보았자 무슨 소용이랴. 수백 마디의 질책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철면피에게 욕을 한
인간 세상에 끼친 환란이 무려 얼마였던고! 들 무엇하랴. 이 어린애의 피를 빠는 마녀야. 지옥에나 떨어지거라. 나는 비참한 내 운명이
나 한탄하고 있으련다. 기쁨이 사라진 나의 신혼과 애써 키워서 죽이고 만 자식들을 위해
(이아손이 증오에 차서 시종들을 거느리고 뛰어들어온다) 통곡을 하련다.
메데이아 ; 당신의 말을 조목조목 따져서 대들기도 귀찮군요. 제우스 신께서는 당신이 내게
이아손 ; 거기 집앞에 서 있는 여인들이여, 살인광 메데이아는 아직 집안에 있소, 아니면 도 서 무엇을 얻었으며 또 어떻게 보답했는가를 너무도 잘 아십니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신부
망쳤소? 땅속이든 하늘 꼭대기든 제 마음대로 가서 숨으라지. 언제까지 이 왕가의 정의를 에 의해서 내 결혼이 짓밟혀 모멸당하고 당신네들은 축복받으며 사는 꼴을 보는 것을 용납
피해 다닐 수 있을까보냐? 한 나라의 왕과 공주를 살해하고도 무사히 도망칠 수는 결코 없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중매쟁이 크레온이 나를 추방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답니다. 나
어. (문으로 가서) 지금은 그까짓 메데이아가 문제 아니라 내 아들들이 염려된다. 메데이아 를 암호랑이로 부르든 스퀼라라고 부르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더라도 나는 할 일을 했을
야 언제고 보복을 하면 그뿐 우선 내 자식들을 살려놓고 봐야겠다. 어미의 가공할 죄악 때 뿐이에요. 나는 마침내 당신의 심장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문에 왕가의 가족들이 반드시 보복을 하려 들 테니 그것이 걱정이구나. 이아손 ; 고통받긴 너도 마찬가질 테지. 이 비참한 운명이 어찌 나만의 것이랴.
코러스장 ; 오, 이 태평한 양반이시여, 그대는 이미 저질러진 악을 모르시나요? 아신다면 메데이아 ; 이제는 당신이 나를 더 이상 조롱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만한 값어치는 있는 셈
그런 말을 하실 수 없었을 텐데. 이죠.
이아손 ; 무엇이? 그러면 메데이아가 나까지 죽이려 한단 말이오? 이아손 ; 오, 불쌍한 내 자식들아, 괴물 같은 것을 어미로 가졌으니, 이 무슨 모진 운명이
코러스장 ; 그대의 아들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어미의 손에 죽고 말았다오. 냐!
이아손 ; 무엇이라구요! (비로소 문 밑으로 흐르는 피를 발견한다) 오, 이럴 수가. 나마저 메데이아 ; 오, 불쌍한 내 자식들아, 간교한 애비를 가졌으니 그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더
죽여 다오! 란 말이냐?
코러스장 ; 그렇습니다. 아드님의 피입니다. 이러고도 살아 있을 리 만무하죠. 이아손 ;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애들을 죽인 것은 아비는 아니었어.
이아손 ; 어디서 애들을 죽였단 말이오? 여기, 이 집 밖에서, 아니면 집 안에서 말이오? 메데이아 ; 천만예요. 아비의 오만과 욕정이 애들을 죽인 거예요.
코러스장 ; 이 문을 부수고 열어 보세요. 그러면 피를 쏟고 죽은 아드님들을 보시게 될 거 이아손 ; 사랑을 빼앗겼다 해서 살인을 해도 좋단 말이냐?
예요. 메데이아 ; 사랑을 빼앗기는 일이 여자에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아손 ; 여봐라, 이 문을 부숴라. 이 고리를 깨뜨려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두 번째의 살육 이아손 ; 겸손한 여자에게는 별 일이 아니지만 너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었겠지.
현장을 보게 해다오. 그러고 나서 내 손으로 그 살인광을 죽이리라. 메데이아 ; (죽은 애들을 가리키며) 이 애들은 이제 없어졌어요. 당신은 그 때문에 괴로워하
겠죠.
(이 때 집 위에서 용들이 끄는 마차를 탄 메데이아의 모습이 구름을 헤치고 나타난다. 한 이아손 ; 그 애들은 너의 뇌리 속에 살아서 너도 언제까지나 괴롭힐 거다.
옆에는 두 아들의 시체를 태우고 있다) 메데이아 ; 신들은 이 재앙을 누가 먼저 일으켰는가를 알고 계세요.
이아손 ; 신들은 너의 악독한 성질을 혐오하실 거다.
메데이아 ; (승리에 찬 모멸을 보이며) 어째서 문을 두드리시나요? 애들의 시체와 그들을 메데이아 ; 얼마든지 저주를 퍼부으세요. 나는 당신의 고통을 실컷 비웃어 드릴 테니.
죽인 나를 찾으시나요? 그렇게 수고할 것 없이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하세요. 그렇지만 내 이아손 ; 나 역시 비웃어 주마. 그러니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라.
게 손 댈 생각은 아예 마세요. 나의 할아버지인 태양신에게서 받은 이 마차는 적으로부터 메데이아 ; 그건 나 역시 바라는 바예요. 더 할 얘기는 없나요?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답니다. 이아손 ; 그 애들을 두고 가라. 내가 묻어 주고 장례를 치러 주겠다.
이아손 ; 오, 이 상상도 못할 악독한 여자여, 네 스스로 낳은 자식들에게 칼을 대다니? 자 메데이아 ; 안돼요! 이 애들은 내 손으로 묻어 주겠어요. 원수들이 이 애들의 무덤을 해칠
식들을 잃어버린 나마저 죽이거라. 아직도 태양과 대지를 바로 볼 수 있다니, 저주가 네게 수 없도록 헤라 여신의 성역에 묻겠어요. 그리고 시쉬포스의 땅인 코린토스에 이 끔찍스런
떨어지거라. 이제야 비로소 깨닫겠구나. 내가 너를 먼 외국에서 이 곳 그리이스 땅까지 데 살육의 죄를 정화하기 위한 영속적인 제사를 만들어 시행토록 하겠어요. 그리고 나는 에렉
려올 무렵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만 너는 악의 화신이다. 네 아비와 너를 기른 조국을 배 테우스의 땅인 아테나이로 가서 판디온의 아들인 아이게우스의 도움을 받아 살 거예요. 당
신에게는 무가치한 죽음이 어울릴 테니 아르고의 뱃전에 머리를 부딪쳐 죽는 것이 낫겠군
요. 그래서 당신과 나의 사랑의 역사는 쓰라린 종말을 거두겠죠.
이아손 ; 살인에 대한 징벌로서 너는 네 자식들의 망령들의 복수를 받게 될 것이다.
메데이아 ; 어느 신이 당신 같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기나 한답디까? 이 배신자, 사기꾼,
악당!
이아손 ; 자기 애를 죽인 이 사악한 여자!
메데이아 ; 어서 돌아가 당신의 신부나 묻어주구려.
이아손 ; 오, 나는 상처를 입고 물러간다. 아이들마저 잃어버리고.
메데이아 ; 엄살이 너무 이르군요. 늙어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으실 텐데.
이아손 ; 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메데이아 ; 그 애들은 어머니를 사랑했어요.
이아손 ; 그래서 죽였단 말이냐?
메데이아 ; 당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이아손 ; 그래, 잘했구나. 내게 충분한 고통을 주었으니까. 오, 내 자식들에게 입맞추고 싶
구나.
메데이아 ; 전에는 그렇게 헌신짝처럼 팽개치더니 이제 와서 목마르게 불러 대나요?
이아손 ; 오, 신이시여, 제발 내 아이들의 부드러운 살갗을 어루만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메데이아 ; 그건 절대로 안돼요. 아무리 애걸해 보았자 헛수고일 뿐이죠.
이아손 ; 제우스 신이여, 이 악독한 여인으로부터 제가 겪고 있는 이 수모를 보고 계십니
까? 제 자식들의 피를 마시는 암호랑이의 횡포를 보십니까? 제 자식들을 죽이고 나서 애비
로 하여금 그 시신조차 거두지 못하게 하는 이 악행을 신께 호소합니다. 차라리 그 애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이 같은 처참한 죽음을 맛보지는 않았으련만.

(이 말의 끝부분에 이르러 메데이아는 차가운 모멸의 웃음을 띤 채 마차를 타고 사라진다.


이아손도 비틀걸음으로 퇴장한다)

코러스 ;
드높구나 올림포스 산정에 좌정하신 제우스 신의 권세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 주시노라.
바라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바라지 않던 일은 오히려 일어나고 마니
이 무서운 일도 결국 이렇게 종말을 보았구나.

(코러스 퇴장)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