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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2 213
Vol62 213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이왕직아악부의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박주희*
70)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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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
Ⅱ.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의 비파악곡과 연주법
Ⅲ. 이왕직아악부 이습회의 비파 연주곡목과 연주자
Ⅳ. 나오는 글
<국문요약>
비파는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우리나라에는 향악과 당악에 각각 5현의
향비파와 4현의 당비파가 연주되었다. 그러나 조현과 연주가 어려운 향비파의 연주보다 당비파의 연주가
주를 이루었다. 비파는 영인(令人)은 www.earticle.net
물론 사대부와 일반 서민들의 음악 학습을 위한 기본 악기였으며 악공
(樂工)을 선발 할 때에도 필수 과목이었다. 이렇게 성행한 비파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점차 소실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에서 나타나는 비파악곡과 연주법 및 아악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조직된 이습회 연주회 곡목에 나타나는 비파 연주곡목과 연주자를 살펴보았다.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에 채보된 비파악곡은 현악기가 편성․연주되는 연례악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이로 볼 때 비파는 현악기의 편성에서는 빠지지 않았던 악기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이습회의 연주곡목에서
는 5명의 비파 연주자가 총 135회의 이습회 연주 중 34회의 연주회에서 독주와 합주로 무대에 올랐으며
연주곡은 연례악과 취타 등이 연주되었다. 현재 이왕직아악부의 비파악보와 연주곡목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비파가 연주되었던 악곡이나 악기편성, 연주자를 통해 비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
고 판단된다.
Ⅰ. 들어가는 글
1) 유수연, 「琴合字譜 慢大葉에 관한 考察」,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3, 61쪽.
2)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62쪽.
3) 박은옥, 「악기의 변천과정에서 본 악기의 興衰 -한국과 중국의 비파를 중심으로-」, 한국악기학 제9권, 한국퉁소
연구회, 2004, 81쪽.
4)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국립국악원, 2015, 21~219쪽.
5) 이진원, 「이왕직아악부의 비파 음악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제51집, 한국음악사학회, 2013, 193~220쪽;
이지선,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 이본(異本)비교: 수연장지곡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제37집, 한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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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우용의 채보에 처음으로 인용된 피리 선율은 2기 졸업생 ‘박성재’의 <여민락> 피리연주였다고 한다.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0쪽.
10)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0쪽.
11) 백우용이 채보한 승평만세지곡은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7, 48집에 해당한다.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에는 수연
장지곡이 두 종류의 악보로 있는데 하나는 백우용이 채보한 것으로 여민락 뒤에 첨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로
독립된 수연장지곡 악보이다.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9집, 2014, 12쪽. 이숙희 해제.
12) 백우용의 후임으로 이왕직아악부에 초빙될 당시 경성사범학교에서 음악을 교수하다가 아악부의 초빙을 받고 얼마
간의 겸직 기간을 거친 후 아악부로 자리를 옮겼다. 아악부에서 채보 외에 양악이론을 교수하였는데 그가 담당했을
채보 내용 및 성과는 미상이다.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6~147쪽.
13) 이시가와 기이치(石川義一)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1921년 한국에 들어와 문필활동과 연주 활동을 하였
다. 그는 총독부의 직원이 되어 전국적으로 민요 조사를 하고 글을 발표하다가 1925년 귀국하였으며 1930년대 말
까지 민요조사와 궁중음악의 채보 및 연구를 목적으로 조선을 빈번하게 왕래한 사람이다. 김수현, 「石川義一의
1920년대 조선에서의 활동에 대한 연구-궁중음악채조와 민요조사를 중심으로」, 2007 문화관광부 선정 전통예술
우수논문집, 문화관광부․한국국악학회, 2007, 2쪽.
14)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6쪽.
15) 朝鮮雅樂譜出版에 對하야 -愼重에 愼重을 加하라-…(하략)…, 동아일보, 1935년 10월 28일자, 1면.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17
주성배 1916 4기 피리 총보 정서
김종희 1918 4기 해금 총보 정서
위 <표 1>에 등장하는 악사들은 백우용에게 서양식 오선악보를 배웠고 약 4년에 걸쳐 오선악
보를 채보․정리하게 된다. <표 1>을 살펴보면 졸업기수가 대부분 3․4기의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의 서양음악 교
육은 3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비파의 채보자는 김철영인데 전공은 거문고이다. 김철영이 비파를 연주했었는지는 알 수 없
으나 거문고 연주자가 비파를 채보했다는 것은 이미 거문고에 비파가 흡수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왕직아악부는 백우용의 타계 www.earticle.net
이후 아악의 오선보 채보를 완성하기 위해 서양음악을 전공한
일본인들과 조선인을 초빙하여 오선악보 채보 작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결국 오선보 채보 작업
의 완성은 국악 실기를 전공한 젊은 소장악사들의 손에 의해 마무리가 된다.
2. 비파가 수록된 악곡
제 47 집 ○
수연장지곡
경록무강지곡 소장악사
태평춘지곡
제 48 집 각 악기별 악보 ○
장춘불로지곡
기수영창지곡
황하청 ○
수연장지곡 ○
제 49 집 세환입 ○ 이왕직아악부(이시가와기이치․소
계면가락환입 ○ 장악사)
양청환입 ○
우조가락환입 ○
정상지곡 천년만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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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집 각 악기별 악보 ○
경풍년
수룡음
헌천수
요천순일지곡
취타
수요남극지곡 ○
제 51 집 이왕직아악부(이시가와기이치․소
수제천
장악사)
동동
유황곡
정동방곡
경모궁제례악
종묘제례악
제 52 집 각 악기별 악보 ○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19
3. 비파의 연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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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1>
<이습회조직취지서(肄習會組織趣旨書)>28)
조선아악은 수 천 년이래 전해온 것이다. 그동안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였고 인심(人心)의 전환
을 따라 이 또한 각양각색으로 변하여 왔으니 조선 산수의 수려한 기분(氣分)이 이를 비쳐 동방의
우아한 정서를 여기에서 느껴 얻을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로로써 보면 아악은 궁중에서 거행되었고 연례나 제례에 연주되어 왔으므로
궁중에서는 항상 연례나 제례의 의식이 주체가 됨으로 아악은 자연 객체가 되어 왔다. 그러므로 악곡의
장단절조(長短絶調)가 음악 자체로서의 장단절조를 갖추지 못하고 늘 의식의 지속을 따라 좌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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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으로는 매달 1회 일소당(佾韶堂)에서 이습회를 개최하고 각자 단련하고 연구한 결과를 보이도
록 하며 서로 권장하고 비평하여 독특한 기술을 발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인용2>
<조선아악이습회조직방법(朝鮮雅樂肄習會組織方法)>29)
<인용 2>에 나타나는 조직방법을 살펴보면 연주자와 청중의 태도까지 기록하고 있음이 인상
적이다. 연주자에게는 합주보다는 독주를 강조했고 불참자나 기피자에게 벌금을 물도록 하는
등 다소 강하고 엄격하게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일반 청중은 그 다음
날에 각자 연주에 대한 감상과 선악(善惡)을 평론하여 문자로 제출하고 추후 토의할 것’ 이라는
내용과 약간의 심판 즉, 심사위원30)을 세워 3회에 한 번씩 평가하여 1, 2, 3등을 가려 그에 상응
하는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진행 방식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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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leaflet, 광고나 선전용 전단을 의미하며 여러장으로 된 팜플렛이 아닌 낱장의 전단지를 의미한다.
32)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25쪽.
226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승평만세지곡
제 13 회 수제천 김천룡
(6, 7장 가야금 김강본과 병주)
제 15 회 www.earticle.net 오운개서조
중광지곡(세령산, 가락제지) 김천룡
제 18 회 승평만세지곡 × 고칠동
제 25 회 × 정상지곡(하현~군악) 김천룡
수연장지곡
제 49 회 × 김천룡
하현~군악
제 84 회 × 황하청 2장 김천룡
제 96 회 × 승평만세지곡 장사훈
33) 중광지곡(重光之曲) 옆에 흐릿하게 ‘상(上)’자가 보이는데 이것은 ‘상령산’을 줄여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7
오운개서조
제 107 회 × 안동, 김봉진
송구여지곡
정상지곡
제 111 회 송구여지곡 김봉진
(하현,염불,타령)
정상지곡
제 114 회 황하청 안동번정
(미환입~하현)
우림령
제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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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만세 김봉진
세령,가락,삼현
오운개서조(6, 7장)
제 120 회 × 안동
송구여지곡
제 125 회 × 여민락 안동
승평만세지곡
만파정식지곡 안동
제 132 회 × 우림령
번외(番外)수연장지곡 목호, 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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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 3>은 이습회 연주곡목에 기록되어 있는 비파악곡과 연주자를 정리해 놓은 표이다.
<표 3>을 살펴보면 연주 횟수와 비파의 독주연주곡목․합주연주곡목과 비파 연주자를 알 수
있다. 총 135회의 이습회 연주 중 비파는 제5회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비파독주가 25회 합주가
30회로 기록되고 있다. 연주곡은 연례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비파 연주자로는 ‘고칠동’․‘태제복’․‘김천룡’․‘장사훈’․‘김봉진’34)이 있다. 그 중 ‘태제복’
은 제6회 이습회 연주의 합주에서 비파가 아닌 북을 연주하였다. 이습회 연주회에서 합주의 장
고반주자는 그 날 출연자 중 한 명이 연주하기도 했으나 주로 장고전공자가 했다.35)
34) 고칠동 3기․태제복 3기(비파전공)․김천룡 2기(전공 대금, 부전공 비파)․장시훈 4기(거문고 전공)․김봉진 6기
(비파전공)
35) 아악부 장고전공자는 황종순․고영재․박성재․박영복․김선득 등이 있었다.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
동」, 150쪽.
228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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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 4>와 <그림 5>는 이습회 연주회 제131회의 연주 프로그램이다. <그림 4>는 이습
회 연주회 리플렛이고 <그림 5>는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에 이습회 연주곡목을 서술해 놓은
것인데43) 그 중 131회에 비파 연주자를 <그림 5>와 달리 ‘김천룡’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제 132회에 ‘번외(番外)’라고 되어 있고 <수연장지곡>의 연주자가 ‘목호(木戶)’․‘목원(木元)’라
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 <그림 6>은 이습회 연주회 제132회 리플렛이다.
Ⅳ. 나오는 글
에 완성하였다. 여기에 비파가 채보되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는데 비파의 채보자는 거문고 연주자
인 ‘김철영’이고 채보된 비파악곡은 대부분 현악기가 편성되는 연례악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비파의 연주법을 살펴보았는데 비파에만 ‘ㅇ’과 ‘ㄱ’으로 표기하였고 특히 ‘ㄱ’은 서
법(書法)과 주법(奏法)이 따로 기록되어 있고 그것을 악보에 표기하였다. ‘ㅇ’은 거문고의 ‘뜰’과
같이 줄을 안으로 뜯어서 소리내는 주법으로, ‘ㄱ’은 당비파의 연주법이 기록된 악학궤범을
살펴본 결과 ‘스렝’이나 ‘흥’의 연주법으로 알 수 있었다. 즉, 비파의 연주법은 밖으로 치고 안으
로 뜯는 주법과 두 줄에서 세 줄을 동시에 연주하는 주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이왕직아악부 이습회 연주곡목에 나타난 비파의 악곡과 연주자를 살펴보았다.
먼저 이습회의 설립 취지를 살펴보았는데 아악의 전승과 발전을 염려하던 노(老)악사들에 의
해 설립된 이습회는 1932년 10월에 시작되어서 1944년까지 총 135회의 공연이 열렸다. 곡목을
살펴본 결과 총 135회의 연주회 중 비파독주가 25회와 합주에서 30회 연주되었음을 확인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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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었다. 연주된 비파곡은 연례악이 주로 연주되었다.
다음으로 이습회 연주회에서 비파를 연주한 연주자들을 살펴보았는데 비파연주자로는 ‘고칠
동’․‘태제복’․‘김천룡’․‘장사훈’․‘김봉진’이었다. 이습회 연주곡목을 살펴보던 중 100회가
넘어가면서 연주자들의 이름이 창씨개명으로 바뀐 이름으로 기록한 것이 확인되었다. 비파 연
주자들 역시 창씨개명 후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안동번정(安東繁正)’과 ‘대림영천(大林榮
天)’이다. ‘안동번정’은 ‘고칠동’으로 추정하고, ‘대림영천’은 ‘김천룡’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번외(番外)라고 기록하고 ‘수연장지곡’을 연주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에 ‘목호(木
戶)’․‘목원(木元)’라는 비파 연주자가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왕직아악부원 이외의 일
반인 연주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이습회 연주회에서 비파와 공후 등의 편성으로 ‘승평만세지곡’을 연주하였다는 사진이
있었는데 이습회 연주회에서 이 편성으로 ‘승평만세지곡’을 연주했던 기록은 한국음악학자료
총서 제53집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밝히지 못한 것들은 추후 보완하고 연구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234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참고문헌>
신문기사
동아일보, 1935년 10월 28일자 기사.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35
Park,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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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pa (a kind of lute) was introduced to Korea through China when the Silk Road opened,
and a five-string Hyang-Bipa and a four-string Dang-Bipa were performed for Hyangak and
Dangak in Korea. However, a Dang-Bipa was mainly performed than a Hyang-Bipa, since
the latter’s tuning and performance were more difficult. A Bipa was a basic instrument for
the learning of music for nobles, government officials, scholars and ordinary persons alike,
and it was a compulsory subject to select a court musician. But it gradually disappeared
during and after Japanese colonial era.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Bipa music and technique appeared in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Division in the 1930s and the repertoire of Yiseup Society,
organized to preserve and develop A-ak.
Bipa music of which staff score was written from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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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sion was used in all the ceremonial and banquet music in which string instruments were
placed and performed. In this regard, a Bipa w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string music.
In the repertoires of Yiseup Society, five bipa players performed a Bipa for solo and
ensemble in 34 concerts, out of 135 Yiseup Society concerts. In the repertoires, a Bipa was
performed for ceremonies, banquets, pipe and percussion music. As a result, the existence
of Yiwangjik A-ak Division’s Bipa scores and repertoires for the present seems to be an
important clue to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Bipa through its music, instrumental
placement and players in Japanese colonial era.
* Chung-Ang University
236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Key words> Hyang-Bipa, Dang-Bipa, Yiwangjik A-ak Division, Yiseup Society,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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