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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비파연구*
-이왕직아악부의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박주희*

70)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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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
Ⅱ.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의 비파악곡과 연주법
Ⅲ. 이왕직아악부 이습회의 비파 연주곡목과 연주자
Ⅳ. 나오는 글

<국문요약>

비파는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우리나라에는 향악과 당악에 각각 5현의
향비파와 4현의 당비파가 연주되었다. 그러나 조현과 연주가 어려운 향비파의 연주보다 당비파의 연주가
주를 이루었다. 비파는 영인(令人)은 www.earticle.net
물론 사대부와 일반 서민들의 음악 학습을 위한 기본 악기였으며 악공
(樂工)을 선발 할 때에도 필수 과목이었다. 이렇게 성행한 비파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점차 소실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에서 나타나는 비파악곡과 연주법 및 아악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조직된 이습회 연주회 곡목에 나타나는 비파 연주곡목과 연주자를 살펴보았다.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에 채보된 비파악곡은 현악기가 편성․연주되는 연례악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이로 볼 때 비파는 현악기의 편성에서는 빠지지 않았던 악기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이습회의 연주곡목에서
는 5명의 비파 연주자가 총 135회의 이습회 연주 중 34회의 연주회에서 독주와 합주로 무대에 올랐으며
연주곡은 연례악과 취타 등이 연주되었다. 현재 이왕직아악부의 비파악보와 연주곡목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비파가 연주되었던 악곡이나 악기편성, 연주자를 통해 비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
고 판단된다.

<주제어> 향비파, 당비파, 이왕직아악부, 이습회, 이왕직아악부 오선보

* 본고는 2017 난계국악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였음.


**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이론학과 박사과정.
214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Ⅰ. 들어가는 글

비파는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루트계열의 악기로 대부분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서방의 문물이 들어왔고 그 문물과 함께 루트계열의 비파와
하프모형의 공후 등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비파는 5현의 향비파와 4현의 당비파로 구분되며, 향악과 당악에 각각 연주되었
다. 이렇게 향악과 당악에 구분되던 비파는 조선전기 향악에 향․당비파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연례악 뿐 아니라 종묘제례악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향비파보다 당비파의 쓰임이 더 많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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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용재총화󰡕의 기록에도 조현과 연주가 어려운 향비파보다 당비파가 크게 유행하였음이 기록


된다.1) 당비파는 조선 성종 때는 영인(令人)은 물론 사대부와 일반 서민들에게 이르기까지 음악
학습을 위한 기본 악기로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악공(樂工)을 선발할 때에도 당비
파로 시험을 치렀을 정도로 시대를 대표했던 악기였다. 이러한 당비파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아
악부에서도 향비파의 연주보다 당비파의 연주가 주를 이루었다.
비파는 일제감정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여 연주곡은 물론 연주자의 수도 감소하게 되었
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비파의 명맥을 잇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우리의
아악을 지키기 위한 기관이었던 이왕직아악부에서도 비파의 맥을 잇기 위해 비파지도를 적극적
으로 했다.2)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파의 연주자 수는 감소하였고, 비파의 쓰임은
점차 쇠퇴했는데 당시 비파는 전공악기의 개념이 아닌 부전공 악기의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또
한 비파의 연주법이 거문고와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3) 비파의 연주법은 현재 전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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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나 조선시대 󰡔금합자보󰡕 와 󰡔속악원보󰡕에 비파 악보 일부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의 비파
악보도 전해지는데 이왕직아악부는 1930년대 두 가지 종류의 악보를 정리했다. 하나는 아악을
정간보 및 율자보로 정리한 것과 다른 하나는 아악을 오선보로 채보하여 편찬한 것이다. 이 중
채보된 오선악보에 비파보가 전해져 당시 비파음악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이
외에도 이왕직아악부의 노(老)악사들이 아악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설립한 이습회의 연주곡목4)
에서 비파가 연주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현재 이왕직아악부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으나 그 시대의 오선악보에 실린 비파 악보 연구
와5)이습회 연주곡목에 나타나는 비파를 다룬 연구는 미비하다. 그 중 이진원은 일제강점기 이

1) 유수연, 「󰡔琴合字譜󰡕 慢大葉에 관한 考察」,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13, 61쪽.
2)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국립국악원, 1991, 62쪽.
3) 박은옥, 「악기의 변천과정에서 본 악기의 興衰 -한국과 중국의 비파를 중심으로-」, 󰡔한국악기학󰡕 제9권, 한국퉁소
연구회, 2004, 81쪽.
4)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국립국악원, 2015, 21~219쪽.
5) 이진원, 「이왕직아악부의 비파 음악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제51집, 한국음악사학회, 2013, 193~220쪽;
이지선,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 이본(異本)비교: 수연장지곡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제37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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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직아악부에서 비파의 위치와 남아있는 비파 음악, 그리고 그 비파 음악의 특징을 연구하였고,


그 일부에 이왕직아악부 오선보와 이습회 연주회에 대한 연구를 일부 포함시켰다. 연구에 사용
된 자료를 살펴보면 오선악보 자료는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에 정리된 표만을 인용하였고
이습회 자료는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에 서술된 내용을 표로 정리한 것에 머물렀다. 이들 자료
마저도 누락되거나 소략된 내용이 보이기에 이왕직아악부의 비파를 살펴보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상당 부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6)
이번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를 통해 채보된 비파악보와 악보에 나
타나는 비파의 연주법을 살펴볼 것인데 비파의 연주법은 󰡔악학궤범󰡕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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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습회 연주회에 나타나는 비파의 연주곡목과 연주자를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학자료총


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7) 이처럼 현재 이왕직아악부의 비파악보와 연주곡목이 존재
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비파가 연주되었던 악곡이나 악기편성, 연주자를 통해 비파의 위치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연구 및 검토는 조선후기를 거쳐 이왕직아악부까지 연주되었던 비파를 살펴볼 수 있
을 것이며 현재는 명맥이 끊긴 비파의 악곡과 연주법을 찾을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비파의 복원 및 개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Ⅱ.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의 비파악곡과 연주법8)

1. 오선악보 편찬배경 www.earticle.net

이왕직아악부에서 오선악보를 채보하여 편찬하게 된 계기는 영친왕의 유럽여행 당시 유럽에


우리나라 아악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였고 그곳에서 악보와 음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영친왕은 바로 이왕직아악부에 연락을 취해 아악의 오선악보 편찬을 지시하게 된다. 이러한 계
기로 이왕직아악부에서 아악이 정간보나 율자보에서 서양의 오선악보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이
것은 다른 의미로 서양음악의 유입에 따른 우리 음악의 근대화 변화에도 관련이 있다.
아악을 오선악보에 옮기는 작업을 위하여 백우용이 촉탁되었는데 백우용은 오선악보 채보와
아악원생들의 서양음악이론 교육을 하게 된다. 백우용의 악보 채보 방법은 피리를 불게하고9)

국국악학회, 2005, 273~306쪽; 신송은, 「이시카와기이치․주성배 역보의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 연구-중광지곡


상령산 가야금악보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6) 이진원의 글은 2012년 󰡔中國音樂史學論集󰡕(臺北: 國泰文化, 2012)에 발표한 번역고이다.
7)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제53집까지를 살펴볼 것이다.
8) 이번장에서는『한국음악학자료총서』제45집~52집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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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오선보에 옮겨 적고, 본인이 직접 클라리넷을 불어 확인하는 방법으로 채보가 진행되었


다.10) 백우용이 채보한 곡은 ‘승평만세지곡(여민락)’과 ‘수연장지곡(미환입)’ 두 곡이다.11)그러
나 백우용은 오선악보 채보 작업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1930년에 타계한다. 백우용의 타계 이후
이가라시 테이사부로12)와 이종태가 채보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몇
년간 중단하게 되었다.
백우용이 1930년 타계 후 3, 4년간 중단되었던 오선악보 채보 작업은 이시가와 기이치(石川
義一)13)를 초빙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시가와 기이치의 채보 방법은 아악부에 전해지는 정
간보 및 율자보를 양악 오선보에 먼저 옮겨 놓고, 악기 주자들을 데려다가 연주하게 한 뒤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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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채보와 크게 문제가 없으면 넘어가곤 하였다고 한다.14)이러한 채보방식은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시가와 기이치의 아악 채보에 대한 우려가 신문에 사설15)로 실리기도 하였
다. 결국 이시가와 기이치의 채보 방식에 문제를 가지고 있던 소장악사들이 의의를 제기하게
된다. 이는 아악에 대한 이해가 없고 서양음악의 스킬만으로 채보된 이시가와 기이치의 아악곡
은, 당시 국악 전공자들에게 많은 문제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소장 악사들은 각자가
악기별로 채보하고, 채보된 악보를 취합하여 총보를 완성하게 된다. 채보 작업은 1936년경에
다시 시작되어서 1939년에 완성되었다.
오선악보 채보에 참여한 이왕직아악부 악사들의 명단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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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우용의 채보에 처음으로 인용된 피리 선율은 2기 졸업생 ‘박성재’의 <여민락> 피리연주였다고 한다.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0쪽.
10)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0쪽.
11) 백우용이 채보한 승평만세지곡은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7, 48집에 해당한다.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에는 수연
장지곡이 두 종류의 악보로 있는데 하나는 백우용이 채보한 것으로 여민락 뒤에 첨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로
독립된 수연장지곡 악보이다.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9집, 2014, 12쪽. 이숙희 해제.
12) 백우용의 후임으로 이왕직아악부에 초빙될 당시 경성사범학교에서 음악을 교수하다가 아악부의 초빙을 받고 얼마
간의 겸직 기간을 거친 후 아악부로 자리를 옮겼다. 아악부에서 채보 외에 양악이론을 교수하였는데 그가 담당했을
채보 내용 및 성과는 미상이다.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46~147쪽.
13) 이시가와 기이치(石川義一)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1921년 한국에 들어와 문필활동과 연주 활동을 하였
다. 그는 총독부의 직원이 되어 전국적으로 민요 조사를 하고 글을 발표하다가 1925년 귀국하였으며 1930년대 말
까지 민요조사와 궁중음악의 채보 및 연구를 목적으로 조선을 빈번하게 왕래한 사람이다. 김수현, 「石川義一의
1920년대 조선에서의 활동에 대한 연구-궁중음악채조와 민요조사를 중심으로」, 󰡔2007 문화관광부 선정 전통예술
우수논문집󰡕, 문화관광부․한국국악학회, 2007, 2쪽.
14)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6쪽.
15) 朝鮮雅樂譜出版에 對하야 -愼重에 愼重을 加하라-…(하략)…, 󰡔동아일보󰡕, 1935년 10월 28일자, 1면.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17

<표 1> 오선악보 채보에 참여한 이왕직아악부 악사16)

성명 출생연도 졸업기수 전공 채보담당분야

이주환 1909 3기 피리 양금곡

성경린 1911 3기 거문고 아악곡 속도 측정

이석채 1912 3기 피리 피리곡

김기수 1917 4기 대금 대금곡, 당적곡, 단소곡

김철영 1916 4기 거문고 거문고곡, 비파곡

이창규 1918 4기 가야금 가야금곡

이덕환 1918 4기 해금 해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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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훈 1918 4기 거문고 가곡․가사․시조

주성배 1916 4기 피리 총보 정서

김종희 1918 4기 해금 총보 정서

위 <표 1>에 등장하는 악사들은 백우용에게 서양식 오선악보를 배웠고 약 4년에 걸쳐 오선악
보를 채보․정리하게 된다. <표 1>을 살펴보면 졸업기수가 대부분 3․4기의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의 서양음악 교
육은 3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비파의 채보자는 김철영인데 전공은 거문고이다. 김철영이 비파를 연주했었는지는 알 수 없
으나 거문고 연주자가 비파를 채보했다는 것은 이미 거문고에 비파가 흡수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왕직아악부는 백우용의 타계 www.earticle.net
이후 아악의 오선보 채보를 완성하기 위해 서양음악을 전공한
일본인들과 조선인을 초빙하여 오선악보 채보 작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결국 오선보 채보 작업
의 완성은 국악 실기를 전공한 젊은 소장악사들의 손에 의해 마무리가 된다.

2. 비파가 수록된 악곡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해오는 이왕직아악부 오선악보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2집~제52


집으로 총 11권의 악보집으로 정리되어 전해진다. 그 중 비파 악보가 전해지는 자료집은 제45
집~제52집까지이다.17)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제52집에 비파 악보가 수록된 악곡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 국립국악원, 2012, 7쪽, 김우진 해제.


17)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2집~제44집에는 남․여창 가곡과 각 악기별 악보로 정리되어 있다.
218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표 2>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비파가 수록된 악곡

한국음악총서번호 악곡명 비파수록 채보


중광지곡 1 ○ 이시가와 기이치
중광지곡 2 ○
제 45 집
유초신지곡 ○
소장악사
표정만방지곡
제 46 집 각 악기별 악보 ○
승평만세지곡 1
○ 백우용
수연장지곡
승평만세지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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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 집 ○
수연장지곡
경록무강지곡 소장악사
태평춘지곡
제 48 집 각 악기별 악보 ○
장춘불로지곡
기수영창지곡
황하청 ○
수연장지곡 ○
제 49 집 세환입 ○ 이왕직아악부(이시가와기이치․소
계면가락환입 ○ 장악사)

양청환입 ○
우조가락환입 ○
정상지곡 천년만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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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집 각 악기별 악보 ○
경풍년
수룡음
헌천수
요천순일지곡
취타
수요남극지곡 ○
제 51 집 이왕직아악부(이시가와기이치․소
수제천
장악사)
동동
유황곡
정동방곡
경모궁제례악
종묘제례악
제 52 집 각 악기별 악보 ○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19

위 <표 2>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제52집에 비파 악보가 수록된 악곡을 정리한 것


으로 홀수집은 총보이고 짝수집은 각 악기별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채보곡은 연례악부터 제례악까지 채보되어 있으며 채보자로는 이시가와 기이치․백우용․소
장악사이다. 그 중 ‘중광지곡1’은 이시가와 기이치가 단독으로 채보하였는데 악보를 살펴보면
대금․당적등의 몇 종류 악기에 불과하므로 미완성본이다. 백우용은 ‘승평만세지곡’과 ‘수연장
지곡’ 두곡을 완성하였다. 나머지 악곡들은 채보자가 이왕직아악부라 되어 있고 이시가와 기이
치와 소장악사들의 협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시가와 기이치가 악보 채보 작업에 기여한 기
여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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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당시 현악기가 편성되어 있는 모든 악곡에 비파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며, 비파가 모든 악곡에 편성되었다는 것은 비파가 이왕직아악부의 현악기 편성에
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악기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3. 비파의 연주법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제52집 중 특이한 점은 비파에만 서법(書法)과 주법(奏法)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시가와 기이치가 전적으로 채보를 맡아 했던 ‘중광지곡1’은 대
금과 당적등의 일부만 채보되어 있을 뿐 비파의 선율이나 연주법을 확인 할 수 없다. 또한 백우
용이 채보한 ‘승평만세지곡1’은 비파의 연주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비파의 연주법을 명시한
것은 소장악사들이 채보한 악보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 중 ‘상령산’․‘승평만세지곡’․‘황하
청’․‘수요남극지곡’에서 ‘ㅇ’․‘ㄱwww.earticle.net
’의 표기와 ‘ㄱ’의 서법(書法)과 주법(奏法)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다음의 악보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악보 1> 제45집 ‘상령산’ <악보 2> 제47집 ‘승평만세지곡2’ l


220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악보 3> 제49집 ‘황하청’ <악보 4> 제51집 ‘수요남극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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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를 살펴보면 비파에만 연주법이 명시되어 있는데, 총보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 중 비파의


연주법을 살펴보기 위해 비파악보만을 따로 발췌하여 살펴 볼 것이다. 다음은 비파의 악보만을
따로 발췌한 것이다.

<악보 5> ‘상령산’ 중 비파보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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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6> ‘승평만세지곡’ 중 비파보19)

18)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 국립국악원, 2012, 220쪽.


19)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7집, 국립국악원, 2013, 268쪽.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1

<악보 7> ‘황하청’ 중 비파보20)

<악보 8> ‘수요남극지곡’ 중 비파보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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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악보 5>․<악보 6>․<악보 7>․<악보 8>을 살펴보면 필체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모


두 김철영이 채보한 것임이 확인된다. <악보 5>에는 ‘ㅇ’이라고 표기 되어있고, <악보 5>․<악
보 6>․<악보 8>은 ‘ㄱ’의 표기와 ‘ᄀ’ 의 서법(書法)과 주법(奏法)이 따로 기록되어 있고 <악보
7>은 서법(書法)과 주법(奏法)이 따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ᄀ’으로 연주법을 표기하였다.
악보들을 살펴보면 <악보 5>의 ‘상령산’ 두 번째 마디의 두 번째 음인 ‘솔’에 ‘ㅇ’이라고 표기
되어 있는데 이것은 거문고의 ‘뜰’22)과 같은 연주법으로 보인다. 먼저, 비파의 연주법은 밖으로
치는 주법과 안으로 뜯는 주법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현행 중국비파의 ‘탄(彈 줄
을 밖으로 치는 주법)’․‘도(挑 줄을 안으로 뜯는 주법)’와 같은 주법이라고 여겨진다. 이 연주법
을 󰡔악학궤범󰡕에서는 ‘도(挑)’와 ‘www.earticle.net
구(勾)’라고 명칭하였다. 현행 중국비파와 󰡔악학궤범󰡕 연주법
의 차이는 현행 중국비파는 현을 한 개씩 튕기지만 󰡔악학궤범󰡕의 ‘도(挑)’는 한 줄만, ‘구(勾)’는
세 줄을 동시에 튕기는 연주법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현행 중국비파는 ‘탄(彈)’과 ‘도(挑)’로
연주 할 때 검지와 엄지손가락만 사용하는데 당비파의 연주법을 살펴보면 ‘도(挑)’는 손가락 세
개, ‘구(勾)’는 손가락 한 개를 사용하도록 되어있다.23)
다음으로 ‘ㄱ’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당비파 연주법으로 살펴보고자 하는데 󰡔악학궤범󰡕의
비파 연주법을 살펴보면 ‘랭’․‘스렝’․‘흥’ 등의 연주법이 있다. 그 연주법을 살펴보면 ‘랭’
은 식지로 자현 제 4주를 짚고 4현을 앞으로 긁는다. 이 때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것은 대현과
중현, 그리고 자현이다. ‘스렝’은 무명지와 장지 두 손가락으로 중현 제 5주를 짚고 무현과 대현
및 중현 세 줄을 긁는다. 이 때 실제로 나는 소리는 대현과 중현 뿐이다. ‘흥’은 무현과 중현

20)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9집, 국립국악원, 2014, 82쪽.


21)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1집, 국립국악원, 2014, 304쪽.
22) 술대로 줄을 안으로 뜯어서 소리를 내는 연주법으로 거문고 구음(口音)이다.
23) 정화순, 「한국 당비파의 연주법에 관한 연구」, 󰡔온지논총󰡕 제18집, 온지학회, 2008, 122쪽.
222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및 대현, 세줄을 앞으로 긁는다. 이 때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것은 대현과 중현 뿐이다.24)


‘ㄱ’은 󰡔속악원보󰡕에 현악기의 연주법으로도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격도지법(擊挑之法)’이
라고 한다. 그러나 󰡔속악원보󰡕의 ‘ㄱ’은 연주법이라기보다 음의 시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
다.25)
이것으로 볼 때 비파의 연주법에는 치고 뜯는 엽주법과 두줄에서 세줄 이상을 치는 연주법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왕직아악부 오선보에 표기된 ‘ㅇ’은 안으로 뜯는 주법으로, ‘ㄱ’은 ‘스
렝’이나 ‘흥’의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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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이왕직아악부 이습회의 비파 연주곡목과 연주자26)

1. 이습회 설립 목적 및 이습회 운영방법

이왕직아악부는 일제강점기 아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그에 따른 교육을 담당하였던 곳이


다. 또한 아악을 알리기 위해 연주활동과 방송 등의 대외적인 활동도 했는데, 그 중 연주활동의
대표적인 것이 이습회의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이습회는 1932년 10월 아악의 보존과 발전, 그리고 젊은 아악부원들의 연주 기술의 향상을
위해 이왕직아악부의 노(老)악사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1932년 조직되어 1944년까지 총 135회
의 이습회 공연이 열렸다. 이왕직아악부가 아악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생겨났다고는 하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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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의해 국권피탈이 된 시대적 상황에서 아악만을 연주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온전한 보존과
발전도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의식음악 위주의 합주가 주가 되어 독주는 거의 하지 않는
이왕직아악부의 공연 시스템에 노(老)악사들의 우려가 있었다. 이것에 염려를 했던 이왕직아악
부의 노(老)악사들은 이습회를 조직하고 젊은 아악부원들이 기술을 연마하여 무대에 서는 것으
로 아악의 위상과 연주자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습회의 설립 취지에 대해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27)의 있는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4)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430쪽~431쪽; 정화순, 위의 논문, 122~123쪽.


25) 김재영, 「󰡔俗樂源譜󰡕」信篇의 擊挑法 硏究-定大業․保太平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제23집, 한국음악사학
회, 1999, 171쪽.
26) 이번장에서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27) 이왕직아악부 이습회 연주 곡목은 국립국악원과 청주대에 소장되고 있으며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은 이 두
기관의 자료를 대조하고 누락된 것을 보완하여 영인하였다.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6쪽, 송지원 해제.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3

<인용1>

<이습회조직취지서(肄習會組織趣旨書)>28)
조선아악은 수 천 년이래 전해온 것이다. 그동안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였고 인심(人心)의 전환
을 따라 이 또한 각양각색으로 변하여 왔으니 조선 산수의 수려한 기분(氣分)이 이를 비쳐 동방의
우아한 정서를 여기에서 느껴 얻을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로로써 보면 아악은 궁중에서 거행되었고 연례나 제례에 연주되어 왔으므로
궁중에서는 항상 연례나 제례의 의식이 주체가 됨으로 아악은 자연 객체가 되어 왔다. 그러므로 악곡의
장단절조(長短絶調)가 음악 자체로서의 장단절조를 갖추지 못하고 늘 의식의 지속을 따라 좌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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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었다. 또 연주하는 악인(樂人)들도 이와 같은 필요에 따라 합주에만 전력을 다하였고 독주에는 일절


소홀했었다. 이는 한스러운 일이다.
매양 음악이라는 것은 합주보다도 독주에 있어 그 실력을 볼 수 있는 것이니 아악의 확실한 근거를
세우고 참다운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면 우리는 모름지기 독주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
이습회를 조직하고자 하는 것도 독주력을 양성하여 장래의 지대한 발전을 기도(企圖)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모든 고색(古色)을 찾을 수 없는 오늘날 우리가 지켜온 이 아악의 존재는 곧 참다운 우리의 존재이니


그 내용을 일층 더 충실히 하고 독주력을 양성하여 장례의 무한한 발전을 도모하며 세계에 그 진가를
머물게 함이 진실 우리가 지고 있는 책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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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으로는 매달 1회 일소당(佾韶堂)에서 이습회를 개최하고 각자 단련하고 연구한 결과를 보이도
록 하며 서로 권장하고 비평하여 독특한 기술을 발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 1>은 이습회의 조직 취지서이다. <인용 1>을 살펴보면 아악의 우수성과 그 우수


성을 보존하고 지켜야하는 이유를 언급하고 무엇보다 악인들의 독주력 향상을 강조하며 음악의
진정한 평가는 독주에서 알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습회 공연 장소는 일소당(佾韶堂)이고
방법은 매달 1회 연주회 개최라고 되어 있다.
이습회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은 <조선아악이습회조직방법(朝鮮雅樂肄習會組
織方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에는 이습회의 조직과 그 운영방
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8)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6~7쪽.


224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인용2>

<조선아악이습회조직방법(朝鮮雅樂肄習會組織方法)>29)

-이습회는 본부원으로써 조직함


-이습회원은 매월 단련, 연구한 결정(結晶)을 공개하여 일단의 비판을 구하며 독특한 기술을 발휘시
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
-이습회는 매월 일회씩 첫 번째 목요일 야간에 개최함
-이습회의 연주 시간은 약 2시간으로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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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방법은 독주 혹은 합주로써 하되 합주보다는 독주에 치중할 것


-출연하는 사람은 자세를 정중히 하며 체면(體面)을 엄수(嚴守)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긴장하도록
주의할 것
-일반청중은 무대의 음악을 정숙하게 들을 것이며 연주의 선악(善惡)에 대하여는 일절 말하지 말고
무대에 나가거나 퇴장할 때와 그 진취가 발로(發露)될 때에는 다만 박수로써 환영할 것
-일반 청중은 그 다음 날에 각자 연주에 대한 감상과 선악(善惡)을 평론하여 문자로 제출하고 추
후 토의할 것
-매 회마다 심판원 약간 명을 선정하여 제 3회까지 무대에 오른 연주곡목을 평정(評 定)하되 1,
2, 3등 외 특등으로 감정(鑑定)된 사람은 구락부(俱樂部)에서 그에 상응하는 시상을 할 것
-이습회 시간 중에는 제1연구실과 제2연구실을 출연자 대기실로 정하고 출연자 이외에는 절대
출입을 엄격히 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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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습회 불참자는 어떠한 사정을 불문하고 상당한 벌금을 징수할 것
-출연자는 돌아가며 지정하되 만약 이를 회피하는 자는 상당한 벌금을 따져 물도록 할 것

<인용 2>에 나타나는 조직방법을 살펴보면 연주자와 청중의 태도까지 기록하고 있음이 인상
적이다. 연주자에게는 합주보다는 독주를 강조했고 불참자나 기피자에게 벌금을 물도록 하는
등 다소 강하고 엄격하게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일반 청중은 그 다음
날에 각자 연주에 대한 감상과 선악(善惡)을 평론하여 문자로 제출하고 추후 토의할 것’ 이라는
내용과 약간의 심판 즉, 심사위원30)을 세워 3회에 한 번씩 평가하여 1, 2, 3등을 가려 그에 상응
하는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진행 방식과 흡사하다.

29)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7~8쪽.


30) 심사위원은 아악사장인 함화진과 아악사․아악수장이 맡았다.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한국학중앙
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16, 150쪽.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5

2. 이습회의 비파 연주곡목과 비파 연주자

이습회는 매회 연주곡목과 출연자 이름이 실린, 지금으로 말하면 리플렛31)을 만들어서 관객


이 그날의 연주곡목과 출연자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림 1>은 이습회 리플렛 중 제5회의 리플
렛이다. 제5회의 리플렛을 실은 이유는 비파가 5회부터 연주회에서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림 1> 제5회(1933년) 이습회 연주회 리플렛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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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leaflet, 광고나 선전용 전단을 의미하며 여러장으로 된 팜플렛이 아닌 낱장의 전단지를 의미한다.
32)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25쪽.
226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위 <그림 1>은 이습회 연주곡목과 연주자가 적힌 리플렛이며 그 중 제5회의 리플렛이다. 제5


회 리플렛을 살펴보면 비파 연주는 ‘고칠동’이 했고 연주곡은 <중광지곡> 중 ‘상령산’으로 보인
다.33) 대부분 한 회에 12개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악기의 독주 무대 후 마지막은
전 출연자가 합주로 마무리한다.
이습회 연주회 곡목을 살펴보면 비파가 독주와 합주에서 수차례 연주되었던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비파로 연주했던 독주곡목과 합주곡목이 기록되어 있어서 이 당시 비파의 연주곡
목과 비파 연주자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습회 연주곡목에 기록되어 있는 비파악곡과 연주자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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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이습회 연주곡목에 기록된 비파 악곡과 비파 연주자 목록

연주횟수 독주연주곡목 합주연주곡목 연주자(합주)

제 5 회 중광지곡(상령산) 장춘불로지곡 고칠동

제 6 회 중광지곡(세령산, 가락제지) 만파정식지곡 태제복 (북)

제 7 회 중광지곡(중령산) 중광지곡(상령산) 고칠동

제 9 회 중광지곡(세령산, 가락제지) 만년장환지곡 고칠동

제 10 회 승평만세지곡(4, 5장) × 김천룡

제 12 회 중광지곡(상현, 하현도드리) 함령지곡 고칠동

승평만세지곡
제 13 회 수제천 김천룡
(6, 7장 가야금 김강본과 병주)

제 14 회 중광지곡(염불) 염양춘 고칠동

제 15 회 www.earticle.net 오운개서조
중광지곡(세령산, 가락제지) 김천룡

제 16 회 승평만세지곡(4장) 오운개서조 고칠동

제 18 회 승평만세지곡 × 고칠동

제 25 회 × 정상지곡(하현~군악) 김천룡

제 27 회 승평만세지곡(초장) 천년만세(별곡) 김천룡

제 29 회 하성조(양금 박노아와 병주) × 김천룡

제 37 회 오운개서조(대금 왕종진과 병주) 김천룡

수연장지곡
제 49 회 × 김천룡
하현~군악

우림령(가야금 김영윤과 병주)


제 60 회 승평만세지곡 김천룡

제 84 회 × 황하청 2장 김천룡

제 96 회 × 승평만세지곡 장사훈

33) 중광지곡(重光之曲) 옆에 흐릿하게 ‘상(上)’자가 보이는데 이것은 ‘상령산’을 줄여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7

제 103 회 중광지곡(중령산) × 안동번정

제 105 회 중광지곡(하현, 염불도드리) 천년만세 김봉진

오운개서조
제 107 회 × 안동, 김봉진
송구여지곡

제 109 회 중광지곡(하현, 염불도드리) 천년만세 안동번정

정상지곡
제 111 회 송구여지곡 김봉진
(하현,염불,타령)

정상지곡
제 114 회 황하청 안동번정
(미환입~하현)

우림령
제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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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만세 김봉진
세령,가락,삼현

오운개서조(6, 7장)
제 120 회 × 안동
송구여지곡

제 121 회 천년만세 수요남극지곡 안동번정

제 123 회 중선회(언락) 천년만세 김봉진

제 125 회 × 여민락 안동

제 126 회 × 여민락 안동번정

제 129 회 중선회 유초신지곡 안동번정

제 131 회 중광지곡 여민락 대림영천

승평만세지곡
만파정식지곡 안동
제 132 회 × 우림령

번외(番外)수연장지곡 목호, 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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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 3>은 이습회 연주곡목에 기록되어 있는 비파악곡과 연주자를 정리해 놓은 표이다.
<표 3>을 살펴보면 연주 횟수와 비파의 독주연주곡목․합주연주곡목과 비파 연주자를 알 수
있다. 총 135회의 이습회 연주 중 비파는 제5회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비파독주가 25회 합주가
30회로 기록되고 있다. 연주곡은 연례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비파 연주자로는 ‘고칠동’․‘태제복’․‘김천룡’․‘장사훈’․‘김봉진’34)이 있다. 그 중 ‘태제복’
은 제6회 이습회 연주의 합주에서 비파가 아닌 북을 연주하였다. 이습회 연주회에서 합주의 장
고반주자는 그 날 출연자 중 한 명이 연주하기도 했으나 주로 장고전공자가 했다.35)

34) 고칠동 3기․태제복 3기(비파전공)․김천룡 2기(전공 대금, 부전공 비파)․장시훈 4기(거문고 전공)․김봉진 6기
(비파전공)
35) 아악부 장고전공자는 황종순․고영재․박성재․박영복․김선득 등이 있었다.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
동」, 150쪽.
228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그림 2> 제96회(1940년) 이습회 연주회 리플렛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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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 2>는 이습회 연주회 제96회이자 이습회 제8주년 기념연주회 리플렛이다. 이 중


눈에 띄는 연주자가 ‘승평만세지곡’ 합주에서 비파를 연주한 ‘장사훈’이다. ‘장사훈’은 거문고
전공자로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4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이를 보고 다른 자료들에서 ‘장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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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비파 연주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장사훈’이 거문고 전공이며 비파도 함께
연주한 것으로 추정 할 뿐이다.
또한 <그림 2>를 살펴보면 장사훈은 1번 ‘국가’37)와 2번 ‘황화만년지곡’에서는 거문고를 연
주하였고 4번 ‘승평만세지곡’에서는 비파를 연주하였다. 특히 이습회 연주회에서 가장 첫 곡으
로 ‘국가’와 ‘황화만년지곡‘이 연주되었다는 것은 관객이 한국인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
본인들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8)또한 연주의 가장 처음이 ‘국가’ 즉 ‘기미가요’인 것은
민족말살 정책의 수난과 아픔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것은 출연자들의 이름에서도 확
인할 수 있다.

36)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148쪽.


37) 일본국가 ‘기미가요’로 이습회 연주회 제72회부터 연주 시작 전 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38)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04쪽.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29

<그림 3> 제103회(1941년) 이습회 연주회 리플렛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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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3>은 이습회 연주곡목에서 이왕직아악부 연주자들이 창씨개명한 이름을 사용한 리


플렛이다. 비파연주자의 창씨개명 이름은 103회부터 기재되어 있다. 연주곡은 ‘중광지곡’ <중령
산>이고 비파연주는 ‘안동번정(安東繁正)’이다. 민족말살 정책은 출연자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나
는데 이습회 연주회 목록을 살펴보면 100회가 넘어가면서 ‘안동번정(安東繁正)’․‘안동(安東)’․
‘대림영천(大林榮天)’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이것은 창씨개명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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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번정’은 ‘고칠동’40)으로 추정하고 ‘대림영천’은 ‘김천룡’으로 확인된다. 특히 ‘대림영천’이
‘김천룡’인 것은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39)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166쪽.


40) 고칠동의 성씨는 안동 ‘고’씨이므로 안동번정은 ‘고칠동’으로 추정 할 수 있다.
230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그림 4> 제131회(1943년) 이습회 연주회 리플렛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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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국악대사전󰡕이습회 연주곡목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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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 4>와 <그림 5>는 이습회 연주회 제131회의 연주 프로그램이다. <그림 4>는 이습
회 연주회 리플렛이고 <그림 5>는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에 이습회 연주곡목을 서술해 놓은
것인데43) 그 중 131회에 비파 연주자를 <그림 5>와 달리 ‘김천룡’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제 132회에 ‘번외(番外)’라고 되어 있고 <수연장지곡>의 연주자가 ‘목호(木戶)’․‘목원(木元)’라
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 <그림 6>은 이습회 연주회 제132회 리플렛이다.

41)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206쪽.


42)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음악출판사, 1984, 613쪽.
43) 장사훈, 위의 책, 594~613쪽.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31

<그림 6> 제132회(1943년) 이습회 연주회 리플렛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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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 6>을 살펴보면 ‘번외(番外), 수연장지곡 (全), 합악(合樂)’이라고 되어 있고 그 아


래로 각 파트의 연주자들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그 중 비파에 ‘목호(木戶)․목원(木元)’이라고
되어있다. ‘목호(木戶)․목원(木元)’은 누구인지, 이 번외(番外)가 이왕직아악부원이 아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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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다. 또한 번외(番外)는 프로그램 순서 번호
매김에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용 2>의 <조선아악이습회조직방법> 중 가장 첫 회
칙이 -이습회는 본부원으로 조직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번외(番外)가 이습회 본부원
이 아니라면 외부 단체라고 추정할 뿐이다.
국립국악원에서 개원 마흔돌 기념으로 근대음악사진 자료집을 1991년에 발간하였는데 이 책
을 살펴보면 이습회 연주회의 사진이 여러 장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이습회 연주회에서 비파의
연주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있는데 그 사진은 다음 <사진 1>에서 확인 할 수 있다.

44)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 209쪽.


232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사진 1> 이습회 연주회 비파 연주 사진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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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1>은 이습회 연주회 사진 중 비파 연주가 확인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설명을


보면 아악부 연주회 사진이라 되어있고 연주곡이 ‘승평만세지곡’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연주자
에 거문고 장인식․가야금 김강본․비파 김천룡․양금 김진환․공후 김천흥46)․해금 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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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53집에는 ‘승평만세지곡’에서 위의 악기편성
으로 연주되었던 프로그램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비파와 공후의 악기
편성이다. 이 사진을 보고 누가 증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승평만세지곡’을 연주한
사진이 맞는다면 비파와 공후가 편성된 것으로 볼 때 지금과는 다른 악기편성이었음을 알 수
있는 사진이다.

Ⅳ. 나오는 글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비파를 알아보기 위해 이왕직아악부의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연구하였


는데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를 통해 채보된 비파악보와 연주법을 살펴보았다. 또

45) 국립국악원, 󰡔이왕직아악부와 음악인들󰡕, 109쪽.


46) 김천룡의 동생으로 김천룡과 함께 아악부원 양성소 2기생이다.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33

한 이와 함께 이습회 연주회 연주곡목에 나타나는 비파의 악곡과 연주자를 국립국악원의 󰡔한국


음악학자료총서󰡕 제45집~제53집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이왕직아악부의 오선악보 편찬 배경과 오선보에 수록된 비파 악곡을 통해 비파의 연주법
을 살펴보았다. 이왕직아악부는 1927년 영친왕의 요청으로 아악의 오선보 채보 작업을 ‘백우용’
에 의해 시작하게 되었으나 백우용은 ‘승평만세지곡’과 ‘수연장지곡’ 두 곡만을 채보하고 타계하
게 된다. 그 후 ‘이가라시 테이사부로’와 ‘이종태’를 오선악보 채보를 위해 위촉하였으나 그 성과
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중단된 오선악보 채보는 ‘이시가와 기이치’의 부임으로 시작되었으나
그의 채보 방법에 우려와 불만이었던 소장악사들은 1936년에 다시 채보 작업을 시작하여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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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완성하였다. 여기에 비파가 채보되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는데 비파의 채보자는 거문고 연주자
인 ‘김철영’이고 채보된 비파악곡은 대부분 현악기가 편성되는 연례악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비파의 연주법을 살펴보았는데 비파에만 ‘ㅇ’과 ‘ㄱ’으로 표기하였고 특히 ‘ㄱ’은 서
법(書法)과 주법(奏法)이 따로 기록되어 있고 그것을 악보에 표기하였다. ‘ㅇ’은 거문고의 ‘뜰’과
같이 줄을 안으로 뜯어서 소리내는 주법으로, ‘ㄱ’은 당비파의 연주법이 기록된 󰡔악학궤범󰡕을
살펴본 결과 ‘스렝’이나 ‘흥’의 연주법으로 알 수 있었다. 즉, 비파의 연주법은 밖으로 치고 안으
로 뜯는 주법과 두 줄에서 세 줄을 동시에 연주하는 주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이왕직아악부 이습회 연주곡목에 나타난 비파의 악곡과 연주자를 살펴보았다.
먼저 이습회의 설립 취지를 살펴보았는데 아악의 전승과 발전을 염려하던 노(老)악사들에 의
해 설립된 이습회는 1932년 10월에 시작되어서 1944년까지 총 135회의 공연이 열렸다. 곡목을
살펴본 결과 총 135회의 연주회 중 비파독주가 25회와 합주에서 30회 연주되었음을 확인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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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었다. 연주된 비파곡은 연례악이 주로 연주되었다.
다음으로 이습회 연주회에서 비파를 연주한 연주자들을 살펴보았는데 비파연주자로는 ‘고칠
동’․‘태제복’․‘김천룡’․‘장사훈’․‘김봉진’이었다. 이습회 연주곡목을 살펴보던 중 100회가
넘어가면서 연주자들의 이름이 창씨개명으로 바뀐 이름으로 기록한 것이 확인되었다. 비파 연
주자들 역시 창씨개명 후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안동번정(安東繁正)’과 ‘대림영천(大林榮
天)’이다. ‘안동번정’은 ‘고칠동’으로 추정하고, ‘대림영천’은 ‘김천룡’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번외(番外)라고 기록하고 ‘수연장지곡’을 연주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에 ‘목호(木
戶)’․‘목원(木元)’라는 비파 연주자가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왕직아악부원 이외의 일
반인 연주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이습회 연주회에서 비파와 공후 등의 편성으로 ‘승평만세지곡’을 연주하였다는 사진이
있었는데 이습회 연주회에서 이 편성으로 ‘승평만세지곡’을 연주했던 기록은 󰡔한국음악학자료
총서󰡕 제53집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밝히지 못한 것들은 추후 보완하고 연구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234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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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동아일보󰡕, 1935년 10월 28일자 기사.
일제강점기 비파연구 235

Bipa Scores and Repertoires in Japanese Colonial Era


-Focusing on Yiwangjik A-ak Division and Literature-
47)

Park, Ju-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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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pa (a kind of lute) was introduced to Korea through China when the Silk Road opened,
and a five-string Hyang-Bipa and a four-string Dang-Bipa were performed for Hyangak and
Dangak in Korea. However, a Dang-Bipa was mainly performed than a Hyang-Bipa, since
the latter’s tuning and performance were more difficult. A Bipa was a basic instrument for
the learning of music for nobles, government officials, scholars and ordinary persons alike,
and it was a compulsory subject to select a court musician. But it gradually disappeared
during and after Japanese colonial era.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Bipa music and technique appeared in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Division in the 1930s and the repertoire of Yiseup Society,
organized to preserve and develop A-ak.
Bipa music of which staff score was written from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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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sion was used in all the ceremonial and banquet music in which string instruments were
placed and performed. In this regard, a Bipa w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string music.
In the repertoires of Yiseup Society, five bipa players performed a Bipa for solo and
ensemble in 34 concerts, out of 135 Yiseup Society concerts. In the repertoires, a Bipa was
performed for ceremonies, banquets, pipe and percussion music. As a result, the existence
of Yiwangjik A-ak Division’s Bipa scores and repertoires for the present seems to be an
important clue to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Bipa through its music, instrumental
placement and players in Japanese colonial era.

* Chung-Ang University
236 한국음악연구(Studies in Korean Music) 제62집(vol.62)

<Key words> Hyang-Bipa, Dang-Bipa, Yiwangjik A-ak Division, Yiseup Society, The staff
score of Yiwangjik A-ak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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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17년 10월 19일∥심사완료일 : 2017년 12월 4일∥게재확정일 : 2017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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