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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 행함 (demonstrate, perform)

*신정론적= 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로 봄


*실천적 연행/연행적 의례 = 속됨에서 성스러움으로의 질적 변화
*디제시스=setting, background

8 장: 죽음과 생명의 종교 영화 (327-334)

1. 망각의 죽음과 기억의 생명을 표현하는 종교 영화 (327-334)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니메와 망각을 치유하는 정성과 배려 (327-334)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니메: (주제의식) 인간 소녀의 정성, 즉, ‘마코토’의 정성으로 망각된
자기정체성을 상기하고 상실한 ‘생명력’을 되찾는 것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블(Marvel)과 D.C. 등 미국 애니메이션(남성 초인 중심)과 상당히 다른 양상
살아갈 만한 힘 = 생명력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지향하는 근원적 방향)
<모노노케 히메> (1997)  ‘신의 죽음’과 죽은 신을 달래는 ‘원령 신앙’으로 ‘신의 생명력’을
되찾아 주는 재생의 이야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 일본의 ‘자기정체성 망각 현상’을 지적하고, 그것을 극복할
정신으로 ‘마코토’의 정성을 제시
패러다임의 전환 (회귀의 양상)
지양 (before) 지향 (after)
인간의 과학적 문명 자연의 총체적 생명력
남성의 지배 여성의 배려
완숙한 어른 미숙한 소녀
서구 동양
현대 전통
물질 정신
지배의 지식 (knowledge) 조화의 지혜 (wisdom)

소녀가 주인공인 이유는?


미야자키의 소녀 주인공들은 연약한 정성으로 강력한 권력을 감화시킴
‘노자의 부드러움과 약함의 지혜’ “부드러움이 강함을 다룰 수 있고 약함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맥락에서, 문제를 정성의 배려로 치유하는 동양의 여성적이고 조화적인
내러티브를 위해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
소녀: 어른과 아이 사이의 여성 / 여성적 배려로 남성적 지배를 넘어서고, 미숙한 소녀의 정성으로
완숙한 어른의 세계를 구원함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상 보여줌


‘근대 과학문명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인위적 유토피아를 약속, BUT 실제로는, 인간이 살아갈
터전인 자연 환경을 파괴하여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 경험)
인간의 자연 정복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인간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태론적 관점 제시
<미래소년 코난> ‘정복과 지배의 갈등’(인더스트리아)에서 ‘협력과 배려의 조화’(하이하바)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 (지식지혜)
지식: 주체를 가득 채움, 냉철한 인식, 지배 / 지혜: 주체를 텅 비움, 따스한 정성, 배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군국주의적 지배 주체 ‘토르메키아’, 피지배의 대상 ‘페지테’, 갈등,
인간의 지식과 지배에 따라 썩어버린 바다 ‘부해’, 인간에게 복수하는 파괴적 존재의 자연 ‘분노한
빨간 오무’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소녀의 순진한 정성으로 어른, 신의 본 모습을 되찾아 줌
<모노노케 히메>: 소녀가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되찾고, 오물신의 본모습을 회복시키고, 형체와
목소리를 상실한 신 가오나시를 치유함
*일본의 애니메이션: 망각되고 폐기된 자연-신을 인간이 호명하고 상기하여 회복시킴

What we need is 근원적 총체성 (상반된 것의 역설적 공존) 빛과 어둠, 음과 양이 하나


<바람계곡의 ‘부해’ 죽음의 바다이자 생명의 바다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숲을 지배하는 신’ 낮과 생명의 사슴신 시시가미(=대지모신)이자,
밤과 죽음의 신 ‘디다라봇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통과의례의 장인 터널의 동굴로 진입하였을 때, 부모님이
자기정체성 망각 (돼지가 됨) / 치히로도 정체성을 의미하는 이름 빼앗겨서 ‘센’으로 규정됨
BUT 망각했던 자기정체성을 상기하는 순간, 센은 치히로의 이름을 회복, 친구 하쿠도 본래 신의
모습 되찾음
인간 소녀의 정성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망각된 신의 정체성까지도 되찾아 줌
*문제: 순수한 정성이 주관적 심정 차원에 묶인 채,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빚어지는 비극 (제국주의 일본) 근원적 총체성의 한계 이데올로기 역할을 강요할 수 있음

근원적 총체성 = 대지모신(Mother Goddess)의 상징


예) 가이아 여신 (지구 생태계 시스템 의미)
땅의 엄마는 포근하게 안겨서 응석 부릴 근원성의 여성적 모성의 상징
한국: 리(理) 이성 중시, 초월적 아버지 상징을 주목, 도덕성 역설, 근본주의(fundamentalism)경향
강함, 강렬하고 분명한 정색(正色) 선호
일본: ‘아마에’ 심리, 미학적 감성, 상대주의 문화, 미묘한 틈새의 미학을 반영하는 간색(__色)
*일본문화의 주관적 ‘마코토’와 한국문화의 보편적 리(理)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야 함

9 장: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 (335-373)

1. 악과 고통의 신정론적 문제 (335-343)


1) 악과 고통의 신정론적 문제와 종교 영화 (335-339)
한국 종교 영화: 악과 고통의 원인과 해결 방식에 대한 관심 有
(유신론적 전통 신정론적 방식으로 설명 / 힌두교나 불교 업과 윤회의 관점에서 접근)
영화 장르 영화 제목 표현하는 것 악과 고통의 원인과 처방 방식
그리스도교 영화 <밀양>, <박쥐> 신정론의 문제, 인간의 실존적 선택의 초월적 신의 섭리와 현실적
인간의 한계 사이에서
의미
신정론적 질문들 적극 표출
문제 해결하기 위한 고행의
불이론적 지혜를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의례적 몸짓을 표현하며
<봄 여름 가을
불교 영화 이원화된 현실을 넘어서서 악과 초월적 이상과 일상적 현실의
겨울 그리고 봄>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표현 간격을 불식시키는 불이론적
수행 형상화
고통과 억압을 받는 하위주체
신종교 혹은 <개벽>, <화평의 (subalterns)들을 위한 새로운 세계의
민족종교 영화 길> 이상을 ‘후천개벽’이나 ‘해원 상생’
등으로 대변
현실적인 악과 실존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다양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무속 영화 <만신>
다큐멘터리와 재연을 결합함으로써
의례와 주술을 포함한 인간의
새로운 영상 의례의 연행적 효과를 표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노력
신 혹은 악마에 대한 의심이 소문으로
강조
혼성 종교 영화 유행하며 전염시키는 절망적 현실의
<곡성>
(무속 포함된) 원인과 구원 부재의 양상을 영화적으로
재구성
장르화된 종교 고통의 시간을 역행하는 사회극의
<박하사탕>
영화에 속하지 X 의례적 연행의 효과를 드러냄
유신론: 악과 고통을 해결할 초월적 신에 대한 기대와 신앙의 의존 강조
일신론 초월적 신의 섭리, 신정론적 접근 부각
다신론 인간의 주체적 실천을 강조 (상대적으로)
무신론: 악과 고통이 비롯되는 인간의 마음과 환경에 상대적으로 주목

*유신론의 전형적 모델 3 (모두 연행적 의례로서의 종교 영화 특성을 잘 보여줌)


한국의
<밀양> <만신> <곡성>
종교 영화
일신론 모델의 일신론 + 다신론
장르 구분 다신론 모델의 샤머니즘 영화
그리스도교 영화 모델의 혼종 영화
보이지 않는 초월적
보이지 않는 대상에
악과 시간과 공간, 신과 인간 신에 대한 두려움의 ‘ 궁극적
대한 불신의 의심과
고통의 사이의 경계들이 소외와 의심’ 보이는 대상에 실재로부터
보이는 대상에 대한
원인 불화의 원인 대한 ‘집착’ 소문 확산 분리되는 것
집착적 믿음
(347)
(‘무신도의 몽타주’를 반복적으로 제시)
궁극적 실재가
극복 방식 연행적 의례의 클라이막스,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실존적 현실
(영화적 쇠걸립 장면에서, 고통과 한을 ‘무명’의 여성적 배려에
내재적이고 수평적인 안에서 빛나는
형상화 해소하고, 화해와 공감과 대한 믿음
공감(empathy)과 배려 수평적 배려의
양상) 소통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공감(empathy)
되찾게 됨 (370-371)
구원의 가능성: <밀양> 구원의 가능성: 구원의 가능성: <곡성>
의 종찬 매개자인 무당 김금화 의 무명
속의 성스러움을 보여줌 성으로 나아가는 양상 보여줌 성의 속됨을 보여줌
비교
불화와 소외의 비극 마지막에는 결국 모든 불화를
(compare)
속에 언제나 화해와 해소하고 화해를 이룩하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소통의 가능성이 함께 축제적 희극의 연행적 재전유 현실의 철저한 비극
했음을 보여줌 양상 선보임
중재자 만신을 통해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의 한을 모두 의심과 집착으로 인해
초월적 기대에서 공감적 모아서 녹이는 의례적 연행이 분리되고 갈등하는
몽타주
배려로 전환하는 몽타주 한계를 부수고, 경계를 불화와 소외의 비극적
무너뜨림으로써 보이지 않는 몽타주
실재의 구원을 형상화
구원의 햇볕으로 인해
실존의 땅에 드리운 현실의 인간이 빛과 어둠을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불행의 그림자만 함께 지닌 존재로서 불화와
빛에 대한 의심으로
빛과 어둠 쳐다보는 인간에게 소외의 어둠을 풀고, 화해와
인해, 어둠의 그림자에
햇볕은 늘 곁에 소통의 빛으로 변환시키는
갇혀버린 비극
있었다는 사실을 의례적 연행에 성공
상기시킴
***정답 쓸 때는  371-373

*종교 영화는 초월과 해방의 연행으로서 기능, 악과 고통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줌,
감정이입을 통해 불화와 소외의 현상을 반성적으로 성찰, 수평적 공감과 배려로 화해와 구원
창출하도록 자극한다.
*9 장 topic: 연행적 의례 이론 (performance theory)의 관점, 디제시스 (diegesis), 몽타주적 해석

2) 연행적 의례로서의 종교 영화 (339-343)

연행적 의례: 현실의 속된 정체성을 해체하고, 성의 정체성으로 질적인 변화를 거쳐, 재통합
영화도 현실에서 ‘분리’된 의례적 시공간에 진입한 존재가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전이’를 거쳐, 사회에 ‘재통합’
되는 통과의례의 구조에 따른다.
종교 (연행적 의례) 몸의 참여와 몸짓의 연행적 실천을 통해 속에서 성으로의 이행을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체험
영화 몸짓의 연행적 실천이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는 수동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임
BUT, 모두 성스러움을 창출  실천적 연행 (practical performance)

연행적 의례 이론 (performance theory): 디제시스 (diegesis) 속에서 이루어짐

디제시스: 영화 서사의 배경 (Background) (시간적, 공간적 배경, 인물 설정 구도 포함)


*종교 영화는 종교적 서사의 영상적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의 연금술적 상상력을
표상하는 연행을 통해 영화 관객에게 의례적 영화 체험을 선사함
*의례적 디제시스 (악과 고통의 문제와 연관하여 종교 영화의 디제시스는 현실과 구별되는 독특한
이야기의 연행적 시공간 구성함)
영화의 도입부 장면과 결말부 장면을 유기적으로 연결 영화를 한 편의 연행적 몽타주로
구성되는 의례적 장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의심은 궁극적 실재와 현실적 실존 사이의
분리 현상 드러냄
영화 속에서 ‘이야기 전개 양상’과 ‘이미지의 구현 방식’ 연관성 有
*영화(카메라)가 몽타주를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화해와 소통의 구원 OR 불화와 소외의 비극
2. <곡성>: 벗어날 수 없는, 의심과 집착의 비극적 전염병 (343-354)
1) 곡성에서 곡성으로: 무서움의 의심과 두려움의 소문(343-347)
<곡성>의 제목 ‘곡성’이라는 간판이 다양한 공간에 존재함 (일상 속으로 확산된 의심의 전염 &
소문의 확산) 악의 편재성 / 고통의 일상화
*무서움의 의심과 두려움의 소문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전염의 공간임을 상기시키는 것
현실의 ‘곡성’ (평화로운 마을)과 영화 속 ‘곡성’을 하나의 몽타주로 재구성 (의도적으로 으스스한
판타지를 상상하게 만든 것임)

무서움: 외부의 대상에 대한 구체적 감정


두려움: 무엇인지 모르는 대상에 대한 상상적 감정
*둘다 ‘분리’에 의해 나타나는 징후 (통합되기 전까지 고통 지속)
‘공포 영화’는 불화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해와 소통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해소하여
카타르시스의 위안 제공
BUT 종교 영화 중 공포 영화는 해소되지 않는 지속적인 고통을 다룸
예) <곡성>: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 공포와 지속적 고통 표현
(고통의 원인: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신에 대한 ‘의심’ & 보이는 대상에 대한 ‘집착’)
곡성 = 무서움의 의심과 두려움의 소문으로 쌓인 고통스런 영화적 디제시스(background)
영화 속 집착의 예) [1]주술사와 무당의 말, 가시적 증거가 마음을 빼앗거나 (주술사의 부활) [2]
카메라로 몸을 찍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는 것 (347)
‘무명’ (보이지 않는 수호신): 끊임없이 의심받고 공격당하는 잊힌 신
무당 ‘일광’, 악마 일본 주술사: 주술의 효과로 인해 의심에서 확신, ‘집착’
*초월적 신에 대한 의심 & 악마를 향한 집착 = 동전의 양면
2) 낚시의 의심 전염과 사진 찍기의 집착 주술(347-354)
도입부 장면: 비가시적인 영적 성경 말씀(의심)과 가시적인 낚시 장면(믿음)의 대비
 의심과 집착을 관객에게 전염시킴
가시적 존재들의 말이나 행동은 의심과 집착을 전염시키는 셔레이드
주인공 ‘종구’가 주술에 의지하게 됨
‘종교의 역설’ = 몸이 되지 않고, 신을 드러내지 않을 때, 종교가 생존할 수 있음
*보이지 않는 말인 종교적 진리가 가시적 증거인 주술에 의해 의심되고 구원에 실패함

사진 찍기의 셔레이드: (살아있는 영혼을 죽음의 좀비로 박제) 비극적 고통의 연행적 의례를 완성
사진 찍기의 주술은 신체적 접촉을 통해 희생양을 영혼 없는 좀비로 만들고, 의심과 소문의
전염병을 통해 악과 고통을 확산시킴 / 사진 찍기는 살아있는 생명을 고정된 시간과 특정
프레임에 가두어, 생명 없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노예화하는 악마적 권력 작용 (350-351)
**<곡성> 결말부 일광과 악마(주술사)의 사진 찍기 장면: 보이지 않는 영에 대한 의심과 보이는
육에 대한 집착이 소문을 거쳐 주술적 전염을 통해 확산되고, 희생양을 좀비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적 정황을 잘 표현함 / 미미한 종교적 영향력, 강대한 주술적 영향력

구원의 가능성: ‘무명’의 여성적 배려에 대한 믿음 (주인공 딸 효진의 외침,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 <곡성>을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은유로 이해할 수도 있음
영화 초반: 내지인 한국(수호신 여자 ‘천우희’ & 무당 ‘황정민’) 대 외지인 일본(일본인 남자 ‘
쿠니무라 준’)
BUT 무당이 사실은 곡성을 일으키는 악마의 패거리였음 (반전)
보호의 여성성 대 파괴의 남성성 (전환)
닭이 세 번 울기 전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한 주인공 (새벽이 오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실패 상기시킴)

3. <밀양>: 초월적 기대의 절망에서 수평적 배려의 희망으로 (354-362)


1) 보이지 않는 햇볕의 몽타주: 하늘의 초월적 기대에서 지상의 내재적 공감으로(354-357)
‘밀양’: 비밀스런 햇볕 / 고통스런 현실에 스며든 햇볕으로 가득 찬 종교 문화적 장소
도입부와 결말부가 수미상관식으로 대조됨 하나의 몽타주 이룸 (이야기가 새로운 의미 갖게 됨)
햇볕 (신의 은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비추지만, 항상 감추어진 은밀한 것
도입부 결말부
장면 하늘 장면 땅 장면
카메라 로우 앵글 쇼트 (low angle shot) 하이 앵글 쇼트 (high angle shot)
앵글 올려다보는 인간 내려다보는 하늘
시점의 수직적 상승의 기대와 초월적 동정 수평적 이해와 현실적 공감(empathy)
변화 (sympathy)의 하사 의 배려
*용서를 하는 일이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신의 몫이 되었을 때, 악과 고통의 피해자는 정의로운
징벌도 못하고 사랑의 용서도 못하면서, 고통의 피해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됨 (역설의 문제)
구원의 희망 = ‘밀양’이 뜻하는 비밀의 햇볕은 깨끗한 하늘이 아니라, 더러운 땅을 비추면서
초월적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
2) 수직적 동정에서 수평적 공감으로 전환하는 의례적 연행(358-362)
<밀양>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느라, 정작 옆에 있는 좋은 이웃(종찬)의 존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여 불행하게 되는 양상 묘사함
남자 주인공 ‘종찬’  오히려 거룩한 수평적 구원의 가능성
대조
교도소 장면 삭발 장면
살인자를 만나는 창문 이웃이 들어준 거울
수직적 동정과 초월적 기대의 실패 수평적 공감과 공감적 배려의 성공
신의 은총으로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가해자,
‘종찬’은 속물적인 겉모습과 달리, 언제나
속죄할 권리를 빼앗긴 채 고통스러운 피해자
내면적 평안을 유지하며 신애를 돕기 위해
역설적 미장센 (용서와 고통이 뒤바뀜)
거울을 들어줌  속의 성스러움
*살인자의 창문이 오히려 피해자의 심리적으로
(자기성찰의 희망, 구원의 가능성 드러냄)
갇혀있는 답답함을 보여줌
신애의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종교적 용서의 선행,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기기만의
허상 창출, 신의 이름으로 초월적 축복 과시
‘신애는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원했던 것’
*초월적 기대가 좌절된 신애는 [1]교회 목사의 설교가 나올 때 <거짓말이야>라는 속된 유행가를
틀거나 [2]교회 장로를 불륜으로 유혹하거나 [3]자해의 절망적 몸부림을 통해 신을 모욕함
 신경증적 퇴행의 양상

4. <만신>: 무신도와 쇠걸립의 몽타주 (362-371)


1) 다큐멘터리와 재연의 앙상블, 한을 해소하는 연행적 디제시스(362-366)
<만신> = 재연적 종교 다큐멘터리 (실천적인 의례적 연행 perform, demonstrate)
김금화의 인터뷰 + 각 시기의 일화들을 ‘재연’ 교차 편집  [1]김금화 개인의 삶을 매개로 삼아,
한국의 집단적 기억을 역사로 호출함 [2]모든 존재들의 개별적인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를 품는
만신의 역할 드러냄
영화 제작과 상영 자체가 무속의 굿을 벌이는 연행(perform)의 효과를 자아내도록 쇠걸립의
의례적 연행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함
*각기 상이한 시공간에서 반복되는 굿의 연행적 재연 = 사회적 불화와 개인의 소외라는 한을
푸는 과정
<만신>은 무당이 고통과 상처를 지닌 존재로서, 모든 이들의 한과 눈물을 위로하는 굿-연행적
의례
<만신>은 개별적 일화들을 병렬적으로 연결하고 사실적 인터뷰와 상상적 재연을 교차 편집하면서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연행적
재연(re-perform)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개인적 기억이 아니라 집단적 한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해소함으로써, 연행적 의례(해체,
재통합)를 위한 재연적 다큐멘터리의 역설적 디제시스를 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66)
2) 한을 푸는 무신도의 의례적 몽타주와 쇠걸립의 연행적 의례(366-371)
<만신>은 한을 푸는 연행적 의례를 위해 몽타주와 셔레이드를 효과적으로 활동함
의례로 시작해서 의례로 끝나는 구조 (도입부: 김금화가 영화 제작에 앞서 준비하는 의식, 결말부: 쇠걸립)
인터뷰로 나타나는 현재의 사실적 공간으로부터 애니메이션이나 재연으로 구성되는 과거의 상상적 공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양자가 교차 편집되는 양상을 통해, 영화 도입부에 배치한 무신도의 몽타주를 반복적으로
재연했다.
주인공 김금화 = 소외, 배제의 대상 / 하위주체(subaltern) / 매개자 (mediator)

도입부: 무신도의 몽타주 (사실적 실사 영화에서 환상적 꿈의 세계로 입문)


[1]어린 넘세의 오른쪽 눈에는 그림자가 드리운, 왼쪽에는 그림자가 드리운 장면
[2]넘세의 얼굴과 하늘의 해와 달을 교차 편집
[3]애니메이션 (‘일월오병’: 음양오행의 대우주 / ‘파도’: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한 / 이 둘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만신 / 굿의 퍼포먼스를 통해 파도 속의 심층 차원에서 꽃의 개화로 완성)
*애니메이션 내용 정리 = 만신은 우주적 기운을 바탕 삼아, 성난 파도로 나타나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한을 아름다운 꽃으로
근원적으로 승화시키는 의례적 존재
무신도의 몽타주가 무당의 굿으로 지속적으로 반복됨 (재연의 의례적 연행)
쇠걸립 = 시공간 및 인간 사이를 분리하는 모든 경계들에 맺힌 한을 넘어서, 모든 존재들의 개별적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를 푸는 연행적 의례의 Climax

쇠걸립은 의례용 무구를 만들기 위해 쓸모 없는 쇠를 모으는 것 = 한을 모으는 것 상징


상스러운 일상적 한 성스러운 한풀이의 굿으로 해소되고 승화되는 전이의 과정 = 쇠걸립
Interestingly, 쇠걸립은 본래 준비과정 즉, <만신>은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스크린 밖, 현실의 한을 푸는 의례적 기제 (쇠걸립에 제작진도 참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 무너짐)

10 장: 신비주의의 영화적 상상력 (375-409)

1. 신비주의와 영화적 상상력 (375-380)


인성이 신성에 완전히 융해되어 사라질 때, 결핍과 분열은 사라지고, 완전과 통합의 신비가
드러남
신비의 합일에 이르는 두 가지 종교적 방식: 부정의 길, 긍정의 길 (종교 별 내용은 376 참고)
개별적 자아(ego)와 보편적 참나(Self) 구별됨
자아: 피상적, 개별적 / 참나: 총체적, 보편적
신비의 합일을 통해 유한의 ‘여럿’에서 무한의 ‘하나’로, 자아에서 참나로 승화됨
초월적 ‘상상’ = 총체적인 보편적 실재에 이르는 신비적 합일을 통해, 현실적 개체의 다양한
구체적 이미지를 상실하는 ‘상상’인 것.
신비주의 영화는 신비의 현상적 차원 혹은 본질적 차원을 강조하는 양상으로 나뉨
<라이프 오브 파이>는 동물성을 통제하여 신성으로 통합하려는 개체적 자아(ego)가 분투하는 ‘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 보여줌
<셰이프 오브 워터>는 침묵의 고요 속에서 자아의 희생과 소멸을 통해, 궁극적 실재와 합일에
이르는 본질적 참나(Self)가 드러나는 ‘사랑의 본질적 신비주의’를 구현함
신비주의 영화는 ‘상상력’을 통해 이러한 차원을 보여줌
스크린은 현실을 꿈으로, 꿈을 현실로 치환하는 거울이며, 상상력은 이러한 치환 작용
신비주의 종교 영화 = (현실과 꿈의 치환을 넘어서서) 양자의 상호삼투작용이 일어나면서,
현실성과 환상성의 지위가 역전되거나,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짐
<라이프 오브 파이>와 <셰이프 오브 워터>는 모두 현실과 환상의 상호삼투작용을 통해, 양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신비주의적 상상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음
*10 장에서는 궁극적 실재인 일자(the One)와의 신비적 합일을 통해 경계를 해체하는 신비주의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영화를 신비주의 영화로 제시하면서, 신비주의적 상상력이 해당 두 영화에 투영되는 방식에 대한 탐색할 것임

2. 현실과 환상의 역설과 신비주의 영화 (380-386)


1) 현실과 환상의 역설과 신비주의(380-382)
신비 체험 = 신비적 합일 (유한한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초월적 의식)
‘자아’가 사라지고, ‘무아의 나(egoless/selfless Self)’만 존재함
자아와 자아가 만든 세계는 모두 ‘환상’ / 그 환상이 끝날 때, ‘참나’인 ‘실재’가 드러남
스크린으로 비유되는 ‘참나’만이 영원한 실재
<라이프 오브 파이>: 환상과 현실의 삼투적 현상
<셰이프 오브 워터>: 문제 상황이 해소되는 꿈/물이 현실로 스며들어, 새로운 변화와 구원의
가능성 구현함 (물이 넘쳐나서, 아랫층의 오르페움 영화관으로 흘러내리는 장면 현실을 꿈으로,
꿈을 현실로 치환하는 동시에, 그 경계 마저 사라지는 합일의 신비를 보여줌)
2) 심층 종교의 신비주의와 신비주의의 두 차원(383-386)
심층 종교: 특정 전통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영성 / 신비주의 수용 / 신의 내재성에 주목하여
신비적 합일 강조
표층 종교: 특정 전통의 차별적 교리와 규범적 형식으로 표상됨 / 합리성과 윤리성으로 무장함 /
신의 초월성만 강조 / 신비주의 거부

누멘적 감정인 ‘두려운 신비’와 ‘매혹적인 신비’의 구별


*두려움과 매혹은 수직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함
두려움 매혹
초월자에 대한 감정 내재자에 대한 감정
초월적 대상과의 거리를 드러냄 수용적 상태
분별 초래 사랑과 합일에 이름
자아가 느끼는 분별적 의식 자아가 사라지는 무분별적 초월 의식
에고가 주체로서 살아있는 에고의 개체성이 사라지고, 근원적으로 하나뿐인 신
신비의 개별적이고, 현상적인 차원 혹은 우주가 드러나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우주 의식
<라이프 오브 파이>: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본질적 신비주의
*집중비움 (현상적 의식 단계) 자아 살아있음
*비움드러남 (초월 의식 단계) 자아 사라짐
신비주의 = 의식에서 초월의식으로, 개체적 자아에서 보편적 참나로, 현상에서 본질로 승화되는
경험적 과정

3. <라이프 오브 파이>: 자아 생존과 경외의 신비주의 (386-396)


1) 자아 생존의 현상계: 신성과 동물성의 긴장과 공존(386-391)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여행은 바다라는 전이(transition)단계를 거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통과의례
Interestingly, 환상과 현실이 오버랩 됨 / 양자가 상호 삼투 되어 있음 / 합리적 이야기, 과학적
사실 vs 환상적 이야기, 종교적 진실
주인공의 자아는 소년 파이(현실)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환상)로 분열된 채 생존을 위한 극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극한 사투를 벌임 (인간이 동물적 욕망의 환상을 길들임)
소년 파이: 이름에 성과 속의 변증법적 공존 (깨끗한 물 ‘피신’에서 비롯되었으나, 더러운 물 ‘오줌’
으로 불림) / 파이는 무한수인 파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설정함 더러움에서 깨끗한 물의
본질로 나아가는 영웅의 자아로 거듭남 (‘학교 종교’로 불리게 됨)
바다: 더러운 물에서 깨끗한 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적 변용을 위해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전이 공간
호랑이: 본래 ‘목마름’이라는 이름, 실수로 ‘리처드 파커’로 이름이 뒤바뀜 (현실과 환상의 역전)
이론[1]: 호랑이와 파이를 동물성에서 신성으로 승화되는 심리상태로 설명
이론[2]: 파이의 표류는 종교적 훈련
이론[3]: 동물적 영혼을 극복한 신성한 영혼의 귀환 (바다의 표류=신성이 동물성을 통제하며
헤어지는 초월의 영적 과정)
*신성한 영혼(파이)은 동물적 영혼(호랑이)의 위협 속에서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긴장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길들이고 통제함 (‘생존’ 성공)
바다의 물: 의식의 변용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 / 동물성신성)
파이와 리처드 파커 = 동물적 영혼과 신성한 영혼의 분열
바다의 표류 = 신비의 훈련 (목마른 상태를 극복하는 구원의 여정)
*파이도 목마른 존재
카빌라적 해석: 목마름의 환상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환상과 현실의 통합=종교와 과학의 통합=신성과 동물성의 결합
2) 자아의 통제와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391-396)
BUT 이러한 통합/결합은 철저한 합일이 아닌, 신과의 긴장 상태의 공존
신과의 긴장 상태의 증거이자, 두려움과 경외를 느끼긴 하나, 완전한 합일에는 이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증거
* ‘호랑이’를 잊고 완전한 합일을 해야 사랑의 신비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데, 주인공은 그걸 못해서, 경외의
신비주의로만 남게 됨 (신과의 긴장이 남아있음) Pi misses the tiger; he hates it but loves it at the
same time
[1]마지막 장면: 파이가 파커에게 항상 친구로 기억할 것이라는 인사를 함
[2]“악몽이지만 사랑이 뒤섞인 꿈”에서 파이가 파커를 봄
[3]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며 ‘아멘’ 기도 장면: “수많은 신을 섬기며 죄책감을 느끼며 산다”라고
고백함 (=긴장의 증거)
[4] “악마같은 자가 아이까지 악마처럼 만든 죄의식”을 고백함
[5] 채식주의자였던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한 상황 (파이의 동물적 영혼 보여줌, more
reason than faith, more carnivore than vegetarian)
 합일이 아니라, 파이와 파커가 생존을 위한 긴장을 동반한 동행자 라는 것을 부각
자아가 환상을 통제하지만, 합일에 의한 자아 소멸이 아닌 (신비적 합일이 아닌), 초월자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는 현상적 신비주의
파이는 ‘치환’을 통해 현실을 환상으로 변용하여, 환상을 길들였으나, 그 과정에서 살인의
죄책감은 남음 (‘하이에나=주방장’이 ‘오랑우탄=엄마’ 죽임 / 다음날 ‘호랑이=파이’가 하이에나
죽임) 392

<라이프 오브 파이>는 현실은 비슈누 신의 꿈이라는 인도 신화의 모티프 & 비슈누 신의 화신


(avatar)으로서 우주를 한입에 물고 있는 크리슈나의 모티프 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보여줌
우주 = 크리슈나 신의 입 속에 있는 것 / 현실 = 비슈누 신이 꾸는 환상/꿈
현실은 환상으로 축소됨
비슈누를 식충섬으로 형상화 죽음과 생명이 모두 신의 꿈 / 비슈누가 낮에는 생명 키우고,
밤에는 죽임 (힌두교의 삼신일체 표상)
*영화에서는 신에게 순복하는 경향보다는 오히려 생존을 위한 주체의 의지가 부각됨
바다=긴장하는 생존의 현상계 분열과 분별지의 세계 상징
‘두려움의 신비주의’ 전개 (합일에 따른 개체성 소멸에 이르지 않음)

루리아: 죄악을 참회하는 새로운 윤리적, 의례적 계명 준수 (가학적 고행 감행함)


BUT ‘사랑의 매혹’이라는 신비주의의 다른 측면은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없음
루리아 사상의 핵심적 메시지는 유배와 구원의 긴장 395

<라이프 오브 파이>는 창조의 불완전성,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하는 긴장을 강조함으로써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 구현
자연적으로 놀랍고 경의로운 존재는 신이 될 수 있음 (경외감, 공포심)
**이 영화에서 신비주의의 핵심인 ‘궁극적 일자와의 합일’은 일어나지 않음
주인공 파이는 파커를 의식하면서 생존하지만, 합일되지는 않음
파커를 길들이면서 긴장관계가 해소될 뿐, 개체적 ‘분별’ 의식이 사라지지 않음
자아의 통제와 긴장이 초월자를 향할 때, 현상적 마음으로 작용할 때 드러나는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의 특성임

<라이프 오브 파이> separation from God


Tsimtsum: (name of the boat that sinks) “A reduction of the divine energy that creates worlds.
Much like the irrational number PI, the primal Tsimtsum transforms an infinite circle into a
measured line. Tsimtsum then, is the way God makes space for us to have our own world. He
hides his light from us, so that we can make our own choices. But he remains imminently
present within that hiddenness” – Tzvi Freeman
Richard = Brave Ruler / Parker = Park Keeper
The priest says, “you must be thirsty” (목마른가 보구나 / 너가 “Thirsty(호랑이)” 구나)
 indicates Pi’s thirst for spiritual knowledge
호랑이 = 주인공 파이의 동물성 상징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동물성) 배 위에서 준비되지 않은
동물적인 일들을 파이가 해야 함
“식충섬” life-giving by day, and life-taking by night / 이 섬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음=
파이를 뜻함
(자신의 신성과 동물성 사이의 분투를 표현함)

‘종교적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혹은 변용을 겪기 위해서는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갈급함)
The moral of this story: In order to find the spiritual truth and experience this transformation,
you must be thirsty. (doubt leads to a discovery of truth)

4. <셰이프 오브 워터>: 자아 희생과 사랑의 신비주의 (396-407)


1) 형상 없는 물: 무한한 자유의 변용과 사랑의 합일(396-400)
<도입부>: (물 속에서 잠들어 있는 주인공 엘라이자) ‘[3]꿈이 없는 깊은 잠’ 상징
*물의 세계=유한한 현실을 넘어서서, 무한한 자유의 변용이 가능한 잠의 세계
<결말부>: (물 속에서 초월적 존재와 만나, 사랑의 합일을 뜻하는 키스를 통해, 잠 혹은 죽음에서
깨어남) ‘[4]궁극적 실재와 사랑으로 합일한 뒤 초월 의식인 뚜리야’ 상징 / 죽은 여자 주인공은 수중 키스를
통해, 부활하고 완전한 합일을 이룸 (부활)

불이론적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을 담은 힌두교 세계의 상태를 네 가지로 구분


[1]의식이 활동하는 현실
[2]잠재 의식이 구현되는 꿈
[3]꿈이 없는 깊은 잠 (도입부)

[4]완전하고 궁극적인 초월 의식인 뚜리야 (결말부)

* ‘물에서 잠들어서 시작된 꿈이 물에서 깨어나는 이야기’: 잠의 무의식꿈의 잠재의식뚜리야의 초월 의식


영화의 두 가지 해석 (1) 무지에서 지혜로 깨어남 (2) 분리된 개별자들이 사랑의 합일을 통해
초월적 보편자로 부활
물의 장면: 시간을 넘어선 무한한 영원을 보여줌 (현실에서 주인공은 시간에 의해 규정 당함, 물
속에서는 본질적 의식만 있음)
월요일 달력 장면: “시간은 우리 과거로부터 흐르는 강에 불과하다” (=무한과 영원의 신비적 차원
예고함) 이것을 이미지로 구현한 오브제가 ‘물’
물 속에서 불가능한 존재들의 소통과 사랑 합일 이룸
<셰이프 오브 워터> 물방울 사랑 장면: (사랑을 나눈 뒤, 버스에 탄 여인에 손길에 따라 자유롭게
변용되며 하나로 합쳐지는 물방울 = 무한의 사랑의 교감 표현)
<셰이프 오브 워터> 목욕탕 물이 넘쳐 흐르는 장면: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목욕탕을 가득 채운
물이 넘쳐서, 아래층 극장에 누수 현상이 일어나는 것 = 무한, 영원, 자유의 본질적 힘이 유한,
시간, 억압적 현실로 스며드는 것 보여줌) *남성 가부장사회에서 소외된 이교도 여자, 이교도 축일, 게이,
죽음의 극복과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 등의 모티프가 여자의 방에서 흘러 넘친 무형의 영원을 뜻하는 물의 축복과
은총으로 유한한 현실을 자유롭게 변용 한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 400
2) 자아의 희생과 사랑의 본질적 신비주의(401-407)
사랑은 개별적 주체의 소멸 혹은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주체와 대상의 합일
엘라이자와 수중 생물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장소가 ‘강’ (= 개별자로서 분리되었던 불완전한
존재들이 ‘사랑의 합일’과 ‘영원한 자유’라는 본래적 상태로 복귀하는 것)

사랑의 신비주의를 수행하는 인물들 = 배재당하는 대상들 ‘서발턴’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존재들) 401
권력을 가진 인물들 = 무한한 신을 왜곡된 방식으로 한정하여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킴 402
*신비주의에서는 유한한 현상과 무한한 본질 = 소리와 고요로 대비됨

<셰이프 오브 워터> 수중 생물에 대한 전기 고문 장면: 미국의 주류 계급 ‘스트릭랜드’의 일방적


폭력과 침묵하는 수중 생물
<셰이프 오브 워터> <<긍정적 사고의 힘>> 독서 장면: ‘스트릭랜드’의 손에 들린 전기봉과
<<긍정적 사고의 힘>> 책 (무한한 신을 유한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힘의 실체)
*착한 사마리아인 = 권력의 지배와 억압에 따라, ‘결핍’으로 규정 당함 BUT 실제로는 무한과 영원의 ‘자유’인 존재들
여주인공의 변화: ‘합일의 사랑’으로 유한한 현실의 가짜 자아에서 무한한 본질의 참나로 거듭남
여주인공과 수중 생물은 물에서 음악, 수화, 음식을 나누며 하나가 되어 소통하는 사랑의 삼매와
지복을 즐김
이 연대에 참여한 존재들은 모두 과감한 자기희생 감행
‘사랑의 신비 경험’ = 에고를 넘어서서 완전한 참나를 향해 열리는 ‘개방’
In contrast, 이미지와 사유는 무한함을 유한함으로 한정하는 것,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 심연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
수중 생물은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궁극적 존재 (가슴으로 소통하고 사랑으로 합일 되어야
할 존재) / 영화는 유한의 한계를 넘어, 무소부재 (omnipresence) 하는 사랑의 신비주의 표상함
5. 스크린에 투영된 신비주의의 두 차원 (407-409)
<라이프 오브 파이> <셰이프 오브 워터>
경외의 현상적 신비주의 사랑의 본질적 신비주의
경외와 긴장의 신비주의 매혹과 합일의 신비주의
‘바다’는 목마른(spiritually thirsty) 자아가
초월자에 대한 경외감과 동물적 영혼과
신성한 영혼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아의
‘물’은 내재하는 신성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시험의 장 /
모습을 자각하고 존재자들 사이의 자유로운
(또한, 동물성을 통제하고 신성으로 거듭나는
‘물’의 상징 소통이 이루어지며, 개별적 자아를 희생하여
의식의 변용이 이루어짐 / ‘생존’에
사랑의 합일로 새롭게 생명을 얻는 의식 변용의
성공하지만, 자아가 소멸 되진 않음)

더러운 물에서 깨끗한 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적 변용을 위해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전이 공간
신과 분리되어 긴장하는 자아 (소년 파이)
엘라이자
주인공 궁극적 실재인 참나를 찾으려고 분투하는
이미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된 참나
현상적 자아
현실과 환상의 상호삼투작용을 통해, 양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신비주의적 상상력’을 충분히 보여
공통점
주었음
차이점 현실과 환상의 통합은 이루어졌으나, 궁극적 ‘사랑의 합일’ 이루어짐
실재와의 합일은 이루어지지 않음 (개체적
분별 의식 有)
두려움/경외의 분별적 의식을 드러내는 ‘ 사랑/합일의 무분별적 초월 의식을 나타내는 ‘
신비주의의 현상적 차원’을 보여줌 신비주의의 본질적 차원’을 스크린에서 잘 구현함
도입부 결말부
영화의 도입부 장면과 결말부 장면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영화를 한 편의 연행적 몽타주로 구성되는 의례적 장으로 만들 수
있음!!

<곡성> 도입부 비가시적인 영적 성경 말씀(의심)과 가시적인 낚시 장면(믿음)의 대비


<밀양>: 비밀스런 햇볕을 올려다보는 것에서 시작, 햇볕이 땅을 비추는 것으로 끝 (수미상관식으로 대조됨)
<만신>: 의례로 시작해서 의례로 끝남 / 도입부: 김금화의 의례 준비, 무신도의 몽타주 / 결말부: 쇠걸립
<셰이프 오브 워터>: 물 속에서 시작, 물 속에서 끝 (잠들어 있는 주인공,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 대비)

‘물’의 상징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바다 ‘부해’ = 인간의 지식과 지배에 따라 썩어버린 바다 / 죽음의 바다이자, 생명의 바다
<만신>: 무신도의 몽타주 애니메이션에서 ‘파도’ =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한을 상징함 (만신은 굿의 퍼포먼스를 통해 파도 속의
심층 차원에서 꽃의 개화로 완성)
<라이프 오브 파이>: 물 = 시험의 장 (경외감, 긴장)
<셰이프 오브 워터>: 물 = 의식 변용의 장 (사랑의 합일)

통과의례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통과의례의 장인 터널의 동굴로 진입하였을 때, 부모님이 자기정체성을 망각하고, 돼지가 됨
<라이프 오브 파이>: 여행의 여정은 ‘바다’라는 전이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통과의례

이름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치히로’가 정체성을 의미하는 이름을 빼앗겨서, ‘센’으로 규정됨 (망각했던 자기정체성을 상기하는
순간, 센은 치히로의 이름을 회복함) “망각된 정체성”
<라이프 오브 파이>: ‘파이’ (이름이 깨끗한 물  더러운 오줌  무한수 ‘파이’) “정체성을 새롭게 설정”
<만신>: 쇠걸립 장면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의 고통과 한을 해소하고, 화해와 공감과 소통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되찾게 됨
<셰이프 오브 워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서발턴들, 하위 주체들이 물 속에서 (연대) 목소리를 되찾음?

연행적 의례
*연행적 의례 = 속됨에서 성스러움으로의 질적 변화
<곡성> x
<밀양> o
<만신>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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