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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학 연극학과 교과과정에 관한 연구1)

김창화 (상명대학교)

목차

1. 서론
2. 독일에서의 연극교육
3. 인지학과 예술교육
4. 미국대학 연극학과 교과과정
5. 미국 대학 연극학과 개설 과정
6. 영문요약
참고문헌

1. 서론

교육은 인간과 사회에 관한 체계적 사고와 바람직한 삶의 모습과 지식에 관한 주장


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은 교육의 의미, 목적, 제도, 방법에 관한 체계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현실 교육과 이상적인 교육사상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현실교육에 대한 관념적 대안으로서의 교육사상이
주장될 수도 있다. 플라톤은 참된 [지식]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진리를 대상으로 한
다고 주장했으며, 어떤 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하는 소견인
[독사] (doxa, 억견 혹은 억상)의 주관적이고 완전하지 못한 [지식]에 반대되는
[에피스테메(episteme)]를 [이데아의 세계]에 이르는 [순수한 지식]이라고 규정했
다. 자유교양교육과 주지주의 교육은 플라톤의 [합리적] 철학의 사유에 따라 발전
된 교육이론으로 지식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자유교양교육은 자유로운
[시민]의 자질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학문과 지식, 예술에 대한
이해와 향유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실용적 관심을 배제하고 순수 학문적 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자유교양교육은 인간과 자연, 우주의 질서에 관한 폭넓은 이해를 위
한 교육이며, 진리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지적인 욕구]를 [배움]이라는 과정을 통
해 확인하기 위한 교육이다.
미국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크게 희곡(drama)에 관한 교육과 언어와 말하기
(speech) 교육, 연극의 예술적 측면에 관한 실기와 이론교육, 공연학 연구
(performance studies), 공연예술 (performing arts)분야의 실기교육, 공연예술경
영(performing arts management) 교육, 전문적인 제작관련(drama production) 교
육, 극작술 연구(dramaturgie)를 위한 교육, 연극 치료(drama therapy)를 위한 교

* 이 논문은 2003년도 한국 학술 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KRF-2003-013-G00014)


육, 연극예술의 실기 교육으로 구분된다. 교육 과정은 학사학위 과정에서부터 박사
학위 과정까지 있으며, 다양한 협동과정(Associate Degree)과 학위 인증과정
(Certificate), 연극이외의 학위과정(other degree), 전문직업 인정과정(first
professional degree)이 있다.
특히 미국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이론중심 교과과정과 실기중심 교과과정으로 크게
양분되며, 대학별로 다양하면서도 탄력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즉 미국 대
학에서의 연극교과과정은 영미언어와 문학의 영역에서부터 공연예술의 이론과 실기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을 지니고 있으며, 단일한 형태의 교과과정보다는 응용과
융합을 전제로 한 복합적인 교과과정이며, 언어와 말하기 교육, 공연예술 분야의
실무교육, 전문적인 직업훈련을 위한 교과과정이다. 따라서 획일적인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요와 요구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가변형 교과과정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직업적인 전문연극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라기보다
는 연극을 이해하는 교양인을 위한 교육이며, 동시에 인문사회과학의 기초와 연관
된 연극의 희곡적 (문학적) 이해와 연극의 언어소통을 위한 말하기 교육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 교육의 목적이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기초 교양교육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 연구의 핵심은 본인이 일년간 교환교수로 있었던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U. I.
W. 대학 (University of the Incarnate Word) 연극학과의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연
기교육과 희곡, 제작 중심의 교과 과정에 관한 연구이며, 미국 전 지역의 다양한
교과과정, 학위 과정, 교육방법론, 교육철학에 관한 연구다.

2. 독일에서의 연기교육

독일에서의 연기교육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탈리아에서 건너 온 즉흥연희 집단의


희극적 연기방식에 대한 비판과 거부반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737년 10월 라이프찌히의 연극무대에서 노이버린 (Neuberin)이라는 여배우가 코메
디아 델 아르떼의 영향으로 생겨난 독일 즉흥희극의 대표적 배역가운데 하나인, 알
록달록한 의상의 하르레킨(Harlekin)인형을 자신의 언어중심의 연극공연 이전에,
서극의 형식으로 무대 위에서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노이버린의 도발적인 행동은 당시 하르레킨 역할로 민중들의 대단한 인기를
모았으며, 노이버린의 극단과 경쟁상태에 놓여 있었던 희극배우 요셉 페르디난드
뮬러에 대한 도전 이였으며 동시에 독일 무대에서 이탈리아 즉흥희극의 영향력을
몰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독일의 실천적 연극운동가인 노이버린은 1697년 3월 법률
자문의 전문가인 변호사의 딸로 체코슬로바키아 부근의 중부독일지방에서 출생했으
며, 본명은 프리데리케 카롤린 봐이센본 (Friederike Caroline Weissenborn)이다.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웠으며, 당시의 일반적인 여성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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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학력을 유지했으며, 법학을 전공한 요한 노이버 (Johann Neuber)와 1717년
결혼해 1727년에는 남편과 함께 직접 극단을 인수해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
했으며, 드레스덴의 궁중과 독일 북부지역을 순회했고,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의 성
공적인 공연으로 지식인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노이버린은 특히 배우들의 도덕
적인 생활에 관해서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배우는 양녀
로 삼았으며, 결혼하지 않은 남자배우는 합숙생활을 강요했고, 남녀배우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결혼시키거나 헤어지게 만들었다.
슈트룸 운트 드랑 시대의 연극실천가 슈뢰더 (F. L. Schröder : 1744-1816)는 함부
르크 민족극장의 설립자 가운데 한사람인 악커만(Konrad Ernst Ackermann : 1712 -
1771) 이 죽자, 극장의 운영을 맡았다. 당시 27세의 슈뢰더는 함부르크를 무대로
새로운 연극적 형식을 개발했으며, 슈트룸 운트 드랑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셰익
스피어의 희곡을 새로운 독일의 관객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슈뢰더는 자신의 친
구들과 조언자들을 적극적인 관객으로 동원하여, 객석 맨 앞줄에 앉힌 뒤, 성공적
인 공연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했으며, 실패로 끝난 공연은 침묵으로 반응을
나타내도록 했다. 무료입장이 허락된 이들 가운데는 레싱과 헤르더의 책을 출판한
로데 출판사의 사장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M. Claudius)와 함부르크의 부유한 시
민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들은 독일인을 위한 연극예술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
기 시작했다. 이들은 빌란트 (Christoph Martin Wieland : 1733-1813)와 에쉔부륵
(Johann Joachim Eschenburg : 1743-1820)의 셰익스피어 희곡 번역판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었으며, 고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충실하게 번역된 최초의 셰익스피
어 희곡의 공연을 슈뢰더에게 부탁했다. 이들은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돈을 젊은 독
일의 극작가들에게 지급했고, 번역자에게도 많은 번역료를 지불했다. 이렇게 엄청
난 작품료를 지불하고 준비한 공연이 “슈트룸 운트 드랑”의 작가 클링거의 “쌍
둥이”이며, 1776년 2월 23일 함부르크에서 슈뢰더의 연출로 공연되어 졌다. 이때
부터 함부르크에는 새로운 독일 극작가의 희곡과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셰익
스피어의 희곡들이 계속해서 공연되어 졌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을 지속적인 관객
으로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더는 매년 25편의 공연을 준
비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공연으로는 자신이 직접 리어 역을 맡은 “리어왕”의
성공적인 공연과 결말부분에서 햄릿이 죽지 않고 살아서 덴마크의 왕이 되도록 고
친 “햄릿”, 당시 함부르크의 저명한 집안의 딸이 불행하게 죽게 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오셀로”의 성공적인 공연 외에도 “맥베트”와 “베니스의 상인”, “법
에는 법으로” 등이 있으며, 괴테의 작품으로는 “강철주먹 괴쯔”, “클라비고”,
“스텔라”를 공연했으며, 실러의 작품으로는 “도둑들”, “간계와 사랑”, “피
에스코”와 “돈 카를로스”를, 렌쯔의 작품으로는 “가정교사”를 공연했으며, 이
밖에도 레싱과 몰리에르의 희극을 공연했고,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어 독일의 대표
적 대중 작가인 이프란트 (Iffland)와 콭쩨부 (Kotzebue)의 멜로 드라마도 다루었
다. 슈뢰더는 당시에 이미 일반화 된 프로세니움 아취형식의 무대 위에서 자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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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로 장면의 변화가 가능한 배경 막을 사용해 공연했으며, 새로운 희곡의 새로운
장소의 변화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매 공연마다 새로운 배경 막을 그리도록
했다. 특히 당시의 열악한 조명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무대 앞바닥에 설치된 조명
기 외에 무대 앞면의 윗 부분에서도 빛을 비추어 주는 두줄 짜리 조명효과를 고안
해 냈으며, 새로운 연극적 환경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어떤 내용의 공연이든 미
리 준비된 의상이 있으면, 아무 옷이나 입고 등장하던 당시의 관례를 깨뜨리고, 모
든 배우가 공연마다 새로운 의상을 몸에 맞게 맞추어 입고 공연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웠다. 특히 슈뢰더는 ‘독일 연극배우의 아버지’로 알려진 콘라드 에크호프 (Ko
nrad Eckhof : 1720-1778)의 부드러우면서도 설득력이 충분한 화술과 상징적인 의
미의 전형적 모습을 드러내는 행동을 통해 ‘생각하는 배우’의 모습을 잘 드러낸
내면적인 연기와는 달리 자연스럽고, 표현력이 풍부한 동작을 통해, 개별적인 상황
의 변화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외면연기로 잘 알려진 배우였다. 즉 에크호프의 연기
는 머리를 써서 하는 연기라면, 슈뢰더의 연기는 심장을 통해 표현하는 연기라고
할 수 있으며, 독일 연기술의 두 가지 방법론적인 흐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
다. 초기 독일에서의 연기교육은 배우들의 개인적인 강습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17
39년 요한 프리드리히 쇠네만이 관리하고 있는 극단의 일원이 된 에크호프는 독일
어로 번역한 프랑스 연극에서 주역을 맡았던 배우이자 연출자였다. 쇠네만의 극단
이 1751년부터 56년까지 슈베린에 머물고 있던 기간에 에크호프는, 레싱과 릴로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고, 1753년부터 이 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드라마 아카
데미’를 조직했다. 동료들과 함께 ‘배우라는 직업과 시민의 책임’에 관한 문제
를 토론한 이 모임은 실질적으로는 독일 최초의 ‘사설 연기교육 과정’이였다. 훗
날 1775년부터 3년간 고타에 생긴 새로운 궁정극장의 책임을 맡았던 에크호프는 독
일 연기술의 초기 이론적 체계를 확립했으며,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연기법’을
주장했다.
1905년 막스 라인하르트 (Max Reinhardt: 1873-1943)가 베를린 슈만의 거리에 위치
한 ‘독일인의 극장’을 장악했던 바로 그 해에 독일 최초의 전문연기교육 과정이
생겼다. 오늘날 ‘에른스트 부쉬 (Ernst Busch)’ 배우학교로 알려진 ‘연기자 전
문 양성교육기관’이 바로 이때에 설립된 것이다.
1905년부터 1930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527회에 달하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무대를
연출했던 라인하르트는 19세기까지 단지 ‘희곡문학의 재현’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연극을 과감하게 새로운 ‘극장주의의 공연예술’로 옮겨 놓았으며, 20세기 연극예
술의 본질을 ‘희곡중심’에서 ‘공연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라인하르트의 연
출방식은 1866년 작센 (Sachsen) 지역의 도시 마이닝겐 (Meiningen)의 새로운 통치
자로 등장한 게오르그(Georg) 2세가 1873년 여배우 엘렌 프란쯔 (Ellen Franz)와
결혼한 뒤, 1874년부터 1890년까지 38개 지역의 도시를 순회하며 2591회의 공연을
기록한 ‘마이닝겐 궁정 극단 (Die Meininger)’의 사실적인 공연 방식을 중심으로
삼았으며, 연출 중심의 공연 활동을 현대연극의 전통으로 만든 인물이다.
라인하르트가 세운 ‘연기학교’는 ‘배우의 재능을 키우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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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 표현법 개발과 향상을 위한 훈련’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독일 연극의
예술적 향상을 위한 교육도 함께 이루어 졌다. 라인하르트와 함께 오랫동안 연기교
육에 직접 참여한 인물은 베어톨트 헬트 (Berthold Held) 였다. ‘배역에 관한 연
구’, ‘앙상블 연기’, ‘음성훈련’, ‘화술’, ‘무용’, ‘펜싱’, ‘체조’,
‘분장’, ‘연극과 문학의 역사 연구’, ‘무대미술’과 ‘예술사’를 교과과목으
로 삼았던 초기의 교육과정은 ‘배우를 교육’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배우로 키
우는’ 곳이 되도록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론교육’을 전제로 한 ‘연기학교’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배우의 ‘실천적 훈련과 경
험’을 위한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초기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
졌던 사항은 ‘배우로서의 기능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인간의 모든 요
소’를 배움으로써,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익히는 것이다. 특별하게 강조되었던 점은
‘신체적 표현의 유연성’과 ‘감성이 풍부한 상태로 재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집중
력’을 요구했다. 배우가 해야 할 최상의 목표를 ‘느끼고, 행동하는 것’으로 삼
았던 라인하르트와 헬트의 교육방식은 언어적 표현의 전달방식과 음악적 표현, 무
용적 움직임에 악기의 연주와 곡예의 기능까지 갖추도록 했다. 그러나 학생들 개
인의 재능을 계발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훌륭한 선생을 모셔 오기 위해 필
요한 재원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학교’는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많은 학
생들이 몰려오고, 학생들이 낼 수 있는 돈은 제한되어 있으니, 교육에 필요한 만큼
의 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재정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1925년부터 정부가
이 학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1931년 베어톨트 헬트가 죽고나자 ‘연
출과정’이 새로 생기게 되었다. 1944년에는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았고,
1946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 이 ‘학교’는 남다른 어
려움을 겪게 되었다. 즉 국가가 ‘학교’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적 의도’
와는 다른 방식의 ‘교육기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1958년 또 다시 ‘연극인’의
손에 학교의 운영이 맡겨졌으나, 1981년 9월 학교의 이름을 1900년 킬 (Kiel)에서
태어나 50년대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던 배우이자 ‘선동
적인 노래의 가수’로 알려진 에른스트 부쉬의 이름을 따서, ‘에른스트 부쉬 배우
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기 전까지 ‘학교’의 운영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
았다. 독일 통일 후에는 1993년 10월에야 베를린에 주소를 둔 ‘예술대학’으로 인
정되었다.
현재 ‘에른스트 부쉬 배우학교’는 4년간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과의 구분
은 연기, 연출 (연극연출과 무용연출로 분리되어 있음), 인형극 공연예술로 구분되
어 있으며, 2년간의 기초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일정한 시험 (Vordiplom)을 거쳐, 2
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예술사 자격’에 해당하는 디플롬 (Diplom)과정으로 졸업
하게 된다. 입학을 위해서는 별도의 ‘선발시험’을 봐야하며, 매년 겨울학기에만
입학이 허용된다. 단 ‘무용연출 과정’은 2년에 한번씩 신입생을 뽑는다. 입학의
기준은 우선적으로 ‘예술적 재능’이며, 그 재능을 ‘직업적 특성과 능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건강상태는 양호한지, 등을 고려한다. 입학을 위한 ‘연령제
한’은 ‘연기과정’은 최소 나이가 18세가 되어야 하며, 25세가 ‘제한연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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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일반대학의 졸업학력과 현장에서의 실제 연출경력을 전제로 선발하는
‘연출과정’의 최소연령은 21세이며, 28세가 ‘제한연령’이다. ‘인형극 공연예
술 과정’은 최소연령이 18세, ‘제한 연령’은 28세이며, ‘무용연출과정’은
‘제한 연령’이 없다.
기초과정에서의 교육은 ‘기초 교양 강의’, ‘즉흥연기’, ‘장면연구’, ‘배역
연기’, ‘제작실습’, ‘배역연구’, ‘성격연구’, ‘연출된 장면 연기’와 ‘각
색 혹은 번안된 작품의 연기’ 등을 통해 신체훈련, 음성훈련, 언어적 표현법을 중
심으로 배운다. 예술사 자격 (디플롬)을 얻기 위해서는 즉흥연기, 장면연기, 배역
연기, 제작실습을 포함한 ‘연기교육’과 행동 연구, 무용, 펜싱, 곡예, 팬터마임
을 포함하는 ‘움직임 훈련’, 호흡, 음성, 조음, 표정, 몸짓을 포함하는 ‘소리
훈련’, ‘독일 시 낭송법과 시문학의 역사’, ‘음악교육’, ‘배우의 역사와 극
작술 연구 (Dramaturgie)’를 배우게 된다. 그밖에도 ‘예술사와 미학’, ‘문화사
와 문화사회학’을 배워야 졸업이 가능해 진다.
오토 브람 (Otto Brahm: 1856-1912)이 1889년 창단에 참여한 베를린의 ‘자유 무대
(Freie Bühne)’는 자연주의적 경향의 독일 희곡을 주로 공연했으며, ‘자유 무
대’의 문학적 예술성이 강조된 희곡 공연은 곧이어 등장한 표현주의 연극2)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현재의 문학적 예술성이 강조된 공연 형태로 나타나는 독일 연극의
또다른 전통을 만들었다. 베를린의 ‘에른스트 부쉬 연기학교’와 비교할 만한
‘학교’로는 뮌헨에 있는 ‘오토 팔켄베르크 (Otto-Falckenberg) 학교’를 언급해
볼 수 있겠다.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거쳐, ‘일반적인 연기교육’과정으로 전환된
‘에른스트 부쉬 연기학교’와는 달리 라인하르트와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 연극의
연출자로 뮌헨의 ‘캄머슈필 하우스 (실내극장)’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오토 팔켄
베르크 (1873-1947)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 학교는 아직까지도 ‘연기’와
‘연출’과정만 고집하고 있다. 1915년 스트린드베리히의 ‘유령소나타’를 연출한
이후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연출한 팔켄베르크는 특히 셰익스
피어 작품의 공연을 통해 배우들의 ‘음성적 표현’과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했
으며, 1917년부터 44년까지 ‘뮌헨 실내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그의 경력
과 함께 독일의 대표적인 ‘연기교육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30년 ‘라
인하르트 연기학교’의 25주년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독일의 대표적 연출자 가운데
한사람 이였던 칼 하인쯔 마틴 (Karl Heinz Martin)이 했던 말을 되돌아보면, 팔켄
베르크의 ‘연기지도’가 라인하르트의 ‘배우 훈련법’과 몹시도 닮았으며, 한국
의 대학 연기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를 시사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소개해 보도록 하

2) 표현주의 연극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전되는 변화의 시기에 나타난 독일의 대표적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
로, 주로 1875년에서 1895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에 의해 이루어진 ‘새로운 철학, 새로운 종교, 새롭게 발견된
인간을 주제로한 예술 운동’이며, 지금까지의 자연주의 문학이 물질적인 세계에 속한 인간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재현에 주력해 온데 대한 반발로, 보다 더 주관적이며 직접적인 인간의 현실을 주제로 하
여 20세기의 철학적, 사회적, 심리학적 현상과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되어져 가는 개인의 내면적 세
계의 혼돈을 보여주고 있다. 표현주의 연극은 1910년부터 시작된 독일 사회의 ‘시민적 도덕 감의 상실과 가
치관의 변화’를 소재로 하여 일차 세계대전이 끝나 새로운 사회질서의 확립을 위한 ‘의회정치의 시대’가 열리
기 시작한 1920년까지의 시기에 형성된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연극을 통해 재현해 주고 있으며 당시에 유행
했던 미래 주의자 (Futurist)들이나 행동 주의자 (Activist) 혹은 다다주의자 (Dadaism)들과 더불어 세기말적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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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언제나 분명한 지도자의 뜻에 따라 움직여 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막스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은, 단지 번쩍이
는 명성만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풍부한 연극적 상상력과 진정으로 연극을
사랑하고 즐기는 분위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그의 열정이 내 젊은 시절을 사
로잡았습니다. 나의 그의 상상력과 분위기, 그리고 그의 열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연출자로서의 나의 인생에 만족합니다. 나는 내가 현재 ‘민중극장’의 예
술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젊은 연극인들이 나보다 옳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습니다.”

3. 인지학과 예술교육

인지학(cognitive science)의 사전적 정의는 “심리학과 인공지능, 언어학


그리고 철학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학제 간 학문 (interdisciplinary science)’
영역에 속하며, 인간의 인지능력과 사고방식, 그리고 교육을 위한 이론”3)이며,
수용자의 인지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인지론(perception's theory)은 철학적 개념으로 ‘인식론’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철학적 사유의 과정을 의미한다.
인식론(認識論 epistemology)은 ‘지식’, ‘참된 앎’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에피스템(epistem)에서 유래했으며, 인간 인식의 기원, 본질, 한계 등을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즉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외부적 환경과 그 이해의
중심이 되는 인간 이성 혹은 인식의 범주와 과정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며,
인간이 바로 그 탐구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인식론’은 문명과 과학의 발달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자신의 인식 능력을 탐구하며, 지식에 관한 인지능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탐구의 많은
부분들은 초월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포기되었고, 철학적 분석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지식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심리학과 인식론 사이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심리학은 철학적 방법을 거부하고 경험과학의 연구
방법론을 택했다. 그래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인식론자의 ‘인지’에 대한 개념의
확산에 심리학의 분석적 이론의 틀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어린아이들의 초기
인지형성이나 인간의 지각 경험, 기억, 무의식 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인지론’은 인식론에서 심리철학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새로운 학문적
개념을 얻게 된 것이다.

3) “an interdisciplinary science that draws on many fields(as psychology, artificial


intelligence, linguistics, and philosophy) in developing theories about human perception,
thinking, and learning.” 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10t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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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은 비교적 최근에 자신의 학문적 영역을 갖게 된 분야다. 심리철학은
인식론의 문제보다는 정신활동의 다양한 측면에 관한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의지와 행동 간의 관계, 욕구의 형성과 해소의 과정, 자기 부정의
원인과 개인적 감각의 수용과 표출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를 위해
심리철학은 인식론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논리학은 인식론과는 언뜻 보기에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논리학자들은 논리적 법칙들의 배타적 체계에 직면하게 되면, 논리적 결정을
주도하는 개인의 인식론적 판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식론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인간을 규정짓는 이성적 사유와 논리적 사유의 본성을 설명해야만
한다. 또한 인식론적 분석에 논리학은 유용한 도구가 되며, ‘인식논리’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인지현상을 논리적으로 형식화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철학과 함께 사회심리학도 ‘인지론’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학문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회심리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회인지’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인식이며, 이러한 인지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술철학에서의 ‘예술인지’와 매우 대조되는 개념으로
비교할 수 있다.
‘인지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인식론’은 합리주의적 논리의 바탕에서
형성된 철학적 개념이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형상개념’4)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대 논리5)로 시작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각기
다른 ‘인식론’은 인간의 인지능력과 감각적 지각에 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플라톤은 기원전 415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369년에 죽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이며 동시에 친구인 테아이테토스(Theaitetos)와의
대화편에서 감각과 판단 그리고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 모두를 부정했다6).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감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7).
그는 감각적 지각없이는 배움도 이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에 관해 추론해낼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8).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각이 제공 하는 지식은 단순한

4) 플라톤은 『향연』에서 영원하고, 시간, 장소, 사람, 사물에 대해 상대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의 형상


에 관해 언급하면서, 『국가론』에서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선(善)과 정의의 형상에 관해 논의를 펼
쳤다. 플라톤의 형상개념은 이후 인식론에 합리주의적 토대를 제공했다.
5)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합리주의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
학』과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형상개념을 공격했다. 그는 형상이 개별적 사물과 독립해서 존
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들 속에 보편적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
형상에 관한 지식이 진리획득을 위한 본질적 이론이라는 사실을 거부했으며, 진리는 추론적인 사
유의 과정에서 지적 직관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적 직관은 이전에 주어진 것들로
부터의 발전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자체가 초월적인 그 무엇이며 영원한 것이다.
6) Plato, Sämtliche Dialoge, Übersetzt und hrsg. von Otto Apelt (Leipzig : Philosophishe Bibliothek),
1922, Bd. 7, pp.78.
7) Aristoteles, Die Nikomachische Ethik, Übersetzt von Olof Gigon (München :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1991, pp.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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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인지적 파악 모두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지각이다9). 감각적 지각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감각적 지각이 합리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일반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일반화가 자연세계에 적용되는
한, 또한 언제나 감각 경험에 의해 시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10). 다른
경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세계에 관한 사유는 감각과
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진리에 대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구분되는 ‘비극적 경험’으로의 ‘카타르시스’에 관한 도덕적
인지이론을 그의 대표적인 저서 『시학』에서 ‘인간적인 결함 (harmatia)'으로
설명하고 있다11).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적 인물의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극적 인물에 대한 윤리적 측면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인간적인 결함 (Harmatia)'은 흔히 영웅들이 벌이는 도덕적 속성에 의한 실수와
잘못된 행동에 대한 언급이며 그로 인한 비극적 사건의 발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극적 인물은 윤리적 측면에서 우선은 완벽해 보이나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결함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작가적 측면인데, 비극적 인물은 비극적
효과를 위해 관객들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주인공에
대한 반대자의 성격을 구축할 때에도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동정심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착해도 안 되며 악해도 안 된다. 결국
비극적 인물인 주인공에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그가 저지른 잘못보다 그가 겪게
되는 고통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관객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우리와 흡사한 인물로 보이나 그가 겪게 되는 운명의
사나움을 통해 우리는 전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인공에 대한
반대자의 측면인데, 비극적 인물인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은 선과 악의 가운데에
놓여진 '중개자적 인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개자가 곧
새로운 영웅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비극적 인물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
최선의 인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이미 다음과 같은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즉 비극적 인물은 최선의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비극적 인물은 반대자의 논리에 의해 부정적인 인물로 바뀌며 결국 비극적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효과를 위해서는 비극의 주인공은
끝까지 가장 훌륭한 인물로 관객들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는 비극적 인물과 비극적
효과에 대한 모순은 비극적 인물의 '도덕적 측면에서의 부정적인 성격'과 '미학적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효과'라는 구분을 통해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모든
문학과 마찬가지로 희곡은 일반적인 사실성으로의 '어떠한 성격'을 사진을 찍어
재현해 놓듯 '이러한 성격은 이러하다'는 결론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의 '어떤 인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이러한

8) Ibid., pp. 319.


9) Ibid., pp. 330.
10) Ibid., pp. 347.
11) Aristoteles, Poetik, Übersetzt von Manfred Fuhrman (Stuuttgart : Philipp Reclam), 1982, p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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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기에 비극적 인물은,
수많은 부차적 설명에서 벗어나 인물의 본질과 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 인물의 특성은 관객의 눈에 '가능한 세계'와 '필연적인
인식'으로 보이게 되며 따라서 비극적 인물은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겨지게 되고
비극적인 효과는 일반적인 인간에 대한 인식으로의 효용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언어적 측면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언어는 '선택된
언어'여야 한다고 했다. 즉 일정한 운율과 더불어 격조가 있는 형태를 취해야하며
노래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 언어의 특성은 특히
합창대의 노래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바 언어의 음악적 성향을 강조하는
것이며 특히 그리스의 비극에서 합창대는 사건의 전개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면서도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기에 적절한
언어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비극적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비극적 인물은
비극적 언어와 비극적 사건전개를 통해 보다 더 구체화되어짐으로 사건의 전개와
언어 그리고 인물의 성격은 일관된 비극적 형식과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모든 예술적 양식은 분명한 내적 구조를 토대로 형성되어져 있으나 때로는 명백한
예술의 한 구성요소가 다른 예술적 구성요소와의 상징적이고도 추상적인 관계를
통해 새롭게 발전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비극적 형식은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성격 그리고 언어와의 관계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비극적 내용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비극적 내용과 형식은 분명한 비극적 효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즉 비극적 사건의 전개는 행복한 상태에서 불행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비극적 인물을 보여주게 되며 비극적 인물의 '인간적인 결함'과 잘못을 지적하는
반대자의 입장과 비극적 상황에 빠진 주인공의 고통을 통해 관객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경험하게 되고 비극적 인물이 처하게 된 상황에 합당한 언어적 표현을 통해
'전율과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경험주의 철학이론은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에
의해 전개되었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상이론 혹은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과 함께 서양철학의 인식론 논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했다. 플라톤의 이론에 따르면, 예컨대 아름다운 사물은
아름다움 자체와 구분되며 오직 아름다움을 알 때에야 비로소 실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주체를 일반적 인 철학적
논쟁에서 ‘보편자’로 보고, ‘보편자’의 의미와 해석에 관한 철학적 개념에서 보다 더
구체화 되었다12).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독립된 존재를 갖는다는 것을
비판하고, 보편자를 사물의 일반적 성질에 포함시켰다13).

12) 일반명사로 표현되는 보편자의 존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보
편자 이론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
인이 되고 말았다.
13) 근대에 이르러 경험주의자들은 보편자를 경험에서 추상개념으로 간주했고 합리주의자들은 어떤
보편자들은 선험적으로(a priori) 알려진다고 주장했다. 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재론과 개
념론이 많이 받아들여졌지만, 실증주의자들은 유명론을 제창했다. 한편 관념론자들과 수리논리주의
학파의 일원들은 플라톤적 실재론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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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편자’ 논쟁은 3세기 오늘날 리바논 지역에 해당하는 타이로스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은 그리스의 철학자 포르피리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개념’에 관한 논평을 다룬 저술(Eisagoge)과 함께 그리스도의 창조와
신성에 관한 비판을 다룬 15권 분량의 기독교에 반대하여 (Gegen die
Christen)14)에서 ‘인간 영혼의 구원은 철학적 목적’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신플라톤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교리에
포함되는 논리적 근거로 그의 ‘보편자’에 대한 개념이 이용되었다. 중세
철학에서 포르피리오스의 관점은 매우 독보적 이였으며, 그의 영향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와 로마의 보에티우스(Boetius)를 통해 이어졌다. 결국
‘보편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13세기가 되어서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4세기 들어서면서 ‘보편자’는 사유 혹은 개념 작용 속에 추상으로,
심지어는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견해들이 등장했다. 이를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명론15)보다는 개념론16)에
가깝다17).
그러나 ‘보편자’는 인식의 주체이며, ‘보편자’의 존재는 ‘신적인 이상’과
현세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 모두에게 ‘철학적 사유의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인식’은 인간 사유의 근본적인 방법과 태도를 결정하는데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인식’과 ‘인식의 주체’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인식론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 사유에 ‘존재론적 적합성’을 확립하는 인식론의
근거를 ‘보편자’에서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따라서
‘인식론’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본질에 관한 질문으로 환원되며, 인간의 도덕적
의식이나 미적 가치 평가에 대한 논의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론’과
구분되는 ‘인지론’은 예술철학에 있어서의 ‘미적인 것’ 혹은 ‘미학’에 관한
인간의 인지능력과 예술교육을 통한 ‘인지의 형성’과 예술의 이해라는 ‘인지적
작용’을 전제로 하는 예술교육 인지론으로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

3-1. 예술철학과 인지론


예술철학에 관한 논의에 앞서 예술철학과 예술 비평 사이의 개념이 우선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비평의 목적이 주어진 예술작품을 보다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즐기는 데 있다면, 예술철학의 목적은 비평가들에게 예술비평을

14) Porphyrios von Tyros, Gegen die Christen, 15 Bd., Übers. Hg. v. A. v. Harnack (Berlin), 1916
15) 보편자는 단어 혹은 단어들의 집합일 뿐이다.
16) 보편자는 개념이다.
17) 인식론에서 보편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반명사가 사유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
속성과 그것이 속하는 사물 사이의 연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해줄 속성에 관한 탐구, 속성들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대한 설명, 개념 활동 안에 내재하는 성향적 요인들에 대한 규정, '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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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예술철학에서의 ‘인지론’은
비평의 ‘인지’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어떤 예술 작품이 '표현적'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비평가의 ‘인지’라면, 그 작품을 '표현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그러한 판단은 어떻게 해서 내려지게 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예술철학에서 다루어야 할 ‘인지론’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철학은 비평적 인지의 근거가 되는 개념을 검토하고 정립하여, '예술', '
미학적 가치', '표현'에 관한 개인의 ‘인지능력’을 확장하고, 예술작품에 관한
비평적 인지를 분명한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개념적 근거와 개념의 ‘인지적
구조’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평가의 ‘예술인지’를 구체적인
예술작품의 ‘인지 대상’과 관련된 ‘의미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술철학의 직접적인 관심은 '예술'에 관한 철학적 사유다. 그러나 예술에
관한 정의와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구분은 위한 ‘예술인지’가 전제
되어야하고, 이러한 ‘예술인지’에 관한 구체적 개념과 현상은 철학적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라톤의 형상이론은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사유의 방식으로는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비형상적 예술’의 영역에 관한 그의 철학적 사유와
논증은 논리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역시
‘예술인지’의 창조적 자아와 대립되며, ‘예술’에 관한 정의가 철학적 사유를
넘어서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 심리적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는,
현대적 예술 수용의 과정에서 ‘예술’에 관한 합리주의 적 철학의 사유체계는
이미 더 이상 정론이 될 수 없다.
‘예술’이란 인간이 만든 것, 즉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이다.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또는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유익한 것이든 파괴적인
것이든 간에 자연에 인간이 변화를 부여한 것은 모두 다 예술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개념적 정의와 함께,
‘예술적인 것’이라는 ‘인지적 대상’으로의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어야만 한다. 즉 ‘미학적 범주’와 ‘구분’이 ‘예술’속에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내재적 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외적인 환경인 ‘예술인지’와
결합되어, ‘심미적 기준으로써의 예술’과 ‘예술적 도구와 목적으로써의
예술’로 구분된다. 즉 ‘심미적 인지’를 전제로 하는 예술과 ‘도구적 인지’를
목적으로 삼은 예술이 구분된다. 순수예술(fine art)과 실용 예술(useful art)의
구분이 일차적 예술의 목적에 따라 구분되는 기준이라면, ‘디자인’과 같은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의 혼합적, ‘상호 보완적’ 기능이 새로운 ‘시각예술’로
구분된다. 따라서 ‘예술’을 실용적 목적과 효용성 혹은 ‘절대적 개념’과
‘상대적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도 충분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건축물의 경우,
‘예술’과 ‘실용’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개념적 보편화가 불가능하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예술이 아닌 것’과의 상대적 개념이다. 따라서 예술은 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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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지닌 대상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누군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러한 ‘표현’은 개인의 예술인지에 대한 ‘예술’의 가치판단과 연관된다.
따라서 예술비평에 있어서의 ‘인지’와 함께 예술에 관한 일반적 인지의 과정도
매우 중요하며, 예술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예술인지’는 ‘보편화’ 혹은
일반화를 지향하기 위한 ‘규범’이 있어야 하며, 예술에 대한 개인의 가치판단과
함께, 예술교육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예술인지’의 범위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예술인지’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가 아니며, ‘인식론’에 의한
‘미학적 정의’가 아니다. 더구나 예술교육을 위한 ‘인지론’은 ‘예술’의
본질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삼아야 하며, ‘예술’에 관한 ‘다층구조의
개념’과 ‘예술’의 ‘의미와 해석’에 관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미학적 논점으로는 ‘예술에 관한 선험적 지식’을 전제로 하지만, ‘예술인지’의
관점에서는 ‘예술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게 된다. 따라서
예술교육을 위한 ‘인지론’은 ‘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이해’를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예술’에 관한 폭 넓은 ‘경험과 인지’를
개인의 ‘미학적 체험’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그의 『예술론』에서
개인의 ‘예술에 대한 체험과 인지’를 매우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의 예술은 나쁜 예술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마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왜곡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하여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참다운
예술과 거짓된 것을 구별해 놓을 필요가 있다. 참다운 예술을 거짓된 것과
구별하는 특징으로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예술의 전이성이 그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편에서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자기의 처지를 조금도
바꿈이 없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듣고 보고나서 자기를 그 작자, 그리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결합시키는 심경을
경험한다면, 그러한 심적 상태를 환기시킨 것이 곧 예술품이다. 대상이 아무리
시적이고 진짜를 닮고 효과적이고 흥미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일 다른 모든
감정과는 다른 완전히 독특한 기쁨의 감정을 다른 사람(작자), 또는 그와 똑같은
예술적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청중 또는 관객)과 정신적으로 합치되는
감정을 사람의 내부에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18)

톨스토이가 위의 글에서 언급한 ‘예술의 전이성’을 예술교육에서 인지하기


위해서는 ‘예술인지’의 현상학과 해석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 되어야하며,
‘예술인지’와 ‘사회인지’의 구분이 필요하다.

18) 톨스토이, 『톨스토이 인생론』,지 경자 옮김, 홍신 사상 신서,1995, 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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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예술인지의 현상학과 해석학
모든 예술작품은 개인의 주관적 이해와 관련하여 ‘감상’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예술 감상’은 개인적 활동이며, 개인의 주관적 판단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 감상’은 일종의 ‘현상’이며, 예술에 대한 경험과 인지를
위한 참여의 과정이다.
예술교육은 ‘예술인지’를 수단으로 예술의 가치를 교육의 방법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허버트 리드는 그의 저서 『예술의 의미』에서 예술교육에 관한 그의
신념19)을 밝히면서, “아름다움이란 우리들 감각적 인지의 형식적 관계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20)이라는 ‘예술 인지’의 형식주의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예술의 ‘심리적 가치’를 인지에 의한 형식원리와 상상에 의한 창조원리로
구분하였고, 예술을 형식적 가치와 심리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21)
허버트 리드의 이러한 구분은 ‘예술’을 인지하기 위한 현상학적 접근법과
해석학적 접근법의 이원적 구분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예술의 형식적 가치를
‘현상’으로 이해하고, 심리적 가치를 ‘예술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교육의 인지론으로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 물론 철학에서의 현상학과
해석학의 학문적 접근법과 논리체계를 직접 예술인지론과 연관 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철학에서의 현상학과 해석학은 철학적 사유에 관한 ‘인식론’이며,
예술교육에 있어서의 ‘인지론’은 ‘예술’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위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을 일종의 ‘현상’으로 보고, 예술의
‘현상학적 인지’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에 있어서의
‘형식주의’와 ‘모방론’22) 혹은 ‘창조론’23)이 어떻게 ‘예술인지’와 다른지
구분해야 한다.
‘모방론’과 ‘창조론’은 예술의 ‘심리적 가치’와 연관해서 이해해 볼 수
있으며, 예술의 기능에 대한 ‘형식주의 예술론’은 20세기 초에 ‘모방론’과
‘창조론’에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 생겨난 이론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19) Herbert Read, The Meaning of Art, Penguin Books, 1953, pp.19 : “음악이나 시나 조형예술에 의해 만
들어 낼 수 있는 우아함은 결코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온갖 지식, 온갖 품위, 높은 행동에의
열쇠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20) Ibid., pp. 16. “beauty is a unity of formal relations among our sense-perceptions”
21) Ibid., pp. 35~36.
22) '모방론' 또는 '모방주의 예술론'이 예술의 기능에 대한 설명으로 지니는 설득력을 쉽게 부정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묘사’하지, ‘모방 한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모방이라는 표현은 예술 철학에서 논의할 때 실제로는 '모방'(imitation)이 아니라 ' 묘사'(representation)다.

23) 예술은 언어, 색, 음과 같은 표현요소를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물론 예술의 표현요소는 예술이 존
재하기 이전에도 있었던 것들이다. 결국 창조란 기존의 자료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은
'자기표현'의 과정, 또는 '감정 표현'의 과정, 나아가서 '이념이나 사상 표현'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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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예술을 지식 전달의 수단으로 보는 이론이나 도덕적 정화
및 사회 개량의 수단으로 보는 이론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진정한 ‘예술 감상’은 ‘예술적 구조’의 배열과 조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형식주의 예술론’에 있어서 ‘예술 인지’는
예술 자체의 의도와 목적과는 상관없이, 예술에 대한 직각적 인지의 과정만이
중요하며, 그러한 ‘인지능력’은 선험적이며, 집중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형식논리’에 집중하는 이들의 ‘예술인지’는 인간의 감정보다는
‘순수한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전제로 하며, 20세기 초 러시아를
중심으로 ‘형식주의 미학’이론이 등장했고, 20세기 중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문학에 있어서의 ‘신비평 운동’이 새로운 문학이론으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형식주의 예술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급한 예술의 ‘형식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유기적 통일성’24), ‘복합성 혹은 다양성’25), ‘주제와
주제의 변조’26), ‘전개’27), ‘균형’28), ‘실용주의’29),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30)과 같은 예술의 ‘형식요소’를 주장했다.
이러한 예술의 ‘형식요소’와 구분되는 것이 ‘심리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이론이다. 예술교육을 위한 인지론은 예술가에 대한 정보나 시대적, 역사적
배경, 그 밖의 요인들로 예술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작품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며, 예술을 형식이 아닌 내용의 측면에서 ‘인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술인지’의 또 다른 접근법은 예술작품의 맥락과 관련된 이해의
방식이며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과 같이 비표현적 예술작품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심리적 가치’와 관련된 ‘해석학적 인지’는 동일 예술가가 창작한
여타의 작품들을 연구하는 것, 다른 예술가들이 창작한 동일 장르의 작품들, 특히

24) 형식론자들이 예술작품에 대하여 요구하는 통일성은 일상의 사물들에서 확인되는 통일성, 즉 단순한 의미에
서의 부분과 부분 사이의 조화로운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의도하는 통일성이란 부분과 부분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없어지면 전체가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25) 유기적 통일성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예술작품이란 부분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이 모여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26) 작품 안에 존재하는 주제는 작품에 따라 상이한 방법으로 변조될 수 있다.
27) 여러 요소들이 일정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는 것을 의미하며, 시간의 경과와 진행을 표현하는 예술의
경우에 해당된다.
28) 예술은 다양한 부분이 얼마나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립이나 대조
를 통해 균형이 드러난다.

29) 예술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수용자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

30) 예술은 교훈을 주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묘사하거나 표현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용자를 즐
겁게 하는 일이다. 이들에겐 즐거움을 많이 주면 줄수록 성공적인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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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혹은 전통의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작품들을 연구하는 것, 예술 매체와
관련된 사실에 관한 연구, 예술가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연구, 특히 시대정신과
당시 유행하던 사상, 당대의 미학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 및 지역의
환경과 같이 예술가의 정신적 성장에 영향을 미쳤던 복합적 요인에 관한 연구,
예술가의 생애에 관한 정보, 작가의 의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예술인지’에 관해 서로 대립되는 해석이 존재할 때, 또는 작품을 어떤
각도에서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길 때, 이 문제를 해결할 답변은
예술가가 남긴 기록이나 회고록, 또는 그를 아는 사람들의 증언을 참조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학적 예술인지’에 관해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예술가의
‘의도’가 그대로 작품의 의미라고 믿는 것은 일종의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예술가의 뜻이 작품에 충분히 구현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외적인 정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이는 작품 자체의 예술적 결함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예술가가 작품을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게 되면, 이것은 이미 그 예술가에게 속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해석이 문제될 경우에도 예술가는 단지
수많은 해석자들 중 1명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예술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종의 권위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며, 사실 예술가의 진술이 예술작품을
‘인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여러 가지
‘방법’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예술의 ‘해석학적 인지’와 ‘현상학적 인지’는 사실 동전의 양 면과 같아서,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교육의 측면에서 본다면 ‘현상학적 인지’와
‘해석학적 인지’는 예술작품의 매개요인과 예술의 본질적 표현과 ‘모방론’에
의해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예술작품의 매개요인은 우선적으로 예술가의 의도와 예술가의 ‘예술’에 대한
의식적 상황과 관련된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생성되지만,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예술 작품’ 자체로써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이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 시대에 존재하는 예술이
수용자에 의해 감상되고, 인정받는 단계뿐만 아니라, 통시대적으로 예술은
작가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공연예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일회적 특성을 지닌 공연예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생성이후 곧 소멸된다. 그럼으로 공연예술의 ‘재현적’ 효과는 다른
예술과 구분된다. 그러나 하나의 공연은 다음 공연으로 연계되면서, 미학적,
기술적 효과로 전승되면서, 공연의 ‘현상’은 관객의 기억과 배우의 몸에
기록된다. 연기의 양식과 관객의 반응은 시각적으로는 이미 사라진 ‘예술적
현상’이지만, 기억과 이미지 속에서는 생생하게 남게 된다. 특히 공연이 형성되는
시간과 공간의 내재적 요소와 외재적 요소들은 공연의 결과뿐만 아니라 공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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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 있어서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공연은 하나의 ‘현상’이며,
동시에 ‘현상에 대한 해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예술의 매개요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연은 문학적 기록이 아니며,
배우의 몸과 무대미술의 시각적 요소에 의해 ‘총체적으로 인지’되는 일관된
과정이다. 따라서 관객은 공연을 통해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실존적 현실’로서의 ‘예술’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예술의
‘현상’이며, 관객의 ‘예술인지’는 공연의 ‘해석’을 통해 분명하게 인지된다.
마지막으로 ‘예술인지’의 미학적 수용이 예술의 매개요인으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인지되는 과정을 ‘수용’이라고 한다면, 수용의 결과를
‘미학적’으로 인지할 것인지 아니면 사실적으로 인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물론 공연예술의 경우 관객의 체험과 감상은 매우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학적 인지’와 ‘사실적 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감상의 결과에 대한 수용자의 판단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며, 그 결과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관객의 해석학적 ‘예술인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술비평과 관객의 혹은 수용자의 해석학적 인지가 구분되는 것은,
미학적 인지가 전제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구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술비평은 미학적 인지를 전제로, 예술적 현상을 ‘인지’하는 과정이며,
수용자의 사실적 인지는 예술의 본질적 과정과 ‘현상’을 인지하는 개인의 해석적
인지과정이다.

3-3. ‘사회인지’와 ‘예술인지’


‘예술인지’와 구분되는 ‘사회인지(social cognition)’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판단과 결정을 위하여
사회적 정보를 어떻게 선택, 해석, 기억, 사용하는지 연구하는 분야”31)이다.
미국의 산타크루즈(Santa Cruz) 캘리포니아 대학교수인 엘리어트 애론슨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사회심리학(The Social Animal)』에서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에서 우리는 유리관 속의 화학물질, 혹은 유모차 안의 고무공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사회 속에서 살아온 지성적이고 호기심
많은, 세련된 성인의 행동을 연구한다. 실험자와 마찬가지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행동에 대하여서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느낌과 행동의 원인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론을 개발시켜 왔다. (중략)
우리가 사회적으로 세련된 인간을 다룬다는 사실은 사회심리학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해 주는 일면이다. 동시에 이런 상황은 실험자가 타당하고 믿을만한
발견을 창출해 내려할 경우 엄청난 예술성을 요구한다.”32)

31) Elliot Aronson, The Social Animal, Worth Publishers, 1999, p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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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을 관찰하고, 미지의 것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체계화 하려고 노력한다.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이미 알려진 환경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예술가의 활동은 ‘예술인지’에 의해 확인 될 수 있으며,
사회심리학에서의 ‘사회 인지’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과학적 인지’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회인지’ 속에 이미 ‘예술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마찬가지 논리로 ‘예술인지’ 속에 ‘사회 인지’가 포함된다. 특히 공연예술처럼
사회적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에서의 ‘예술인지’는
‘사회인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
‘사회성’을 벗어나기 힘들고, 사회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의미가 매우
중요한 범주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에, 예술교육은 인간교육이며, 동시에
사회교육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에서 연구하는 인간의 ‘사회 인지’는
예술교육에 필요한 ‘예술인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문화예술과 자연과학의 접목을 통해 정보화 사회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보려는 시도33) 역시 ‘사회인지’와 ‘예술인지’의 접합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는 문화생활, 예술, 정치, 경제의 각 방면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주로 컴퓨터 속에서 이루어지고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듯이 할 수 있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한편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뀌고
가상현실을 통해 경제의 국경이 허물어진다. 나아가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의
구축으로 여러 문화가 만나 다양하게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국경을 허물 것이다.
도 쌍방향적인 디지털 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교류할 수 있어 참여 민주주의를 확대시킬 것이다. 그러나 정보와 기술을 장악한
새로운 제국주의의 출현,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기술의 발달이 미래의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다.”34)

미디어와 컴퓨터, 인공지능이 인간과 결합하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인지능력’은 얼핏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잠식되어 소멸해
버리는 듯 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소통을 위한 규칙’이 ‘디지털’로 바뀐다고
해서, ‘아날로그적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 사회에서의 인간과
인간의 ‘소통체계’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질과 양의 차원에서, 속도와 거리의
측면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적인 이미지와 상상의 세계가 변하고

32) Ibid., pp. 442.


33) 최혜실, 『디지털 시대의 문화예술』, 문학과 지성사, 1999.
34) 같은 책, viii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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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인간의 모든 사고는 과학적 사고의 이상을 추구한다는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이론35)에 영향을 받아 1983년 인간의 지능에 대해 생물학적
문화인류학적 증거를 지닌 여덟 가지 기준을 소개하면서36), 인간의 다중지능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 하워드 가드너는 이미 발달심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저술활동을 해 왔다. 그는 인간의 음악적 지능에서부터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에 이르는 서로 독립된 미지수의 지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개인 중심의 교육’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가드너는 1894년부터
소르본느 대학의 심리학 연구소 소장 이였던 앨프레드 비네(Alfred Binet:
1857-1911)가 시몽 (Th. Simon: 1873-1961)과 함께, 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지능검사 (Binet-Simon-Test)가 만들어 졌던 1905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을 통해, “인간은 다른
인지적인 장점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인지의 다양하고 분리된
국면을 인정하는 인간정신의 다원적인 관점”37)을 다중지능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가드너는 이상적인 미래의 학교를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능력과 흥미를 가지고 있고, 학습하는 과정도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비관적으로 들리겠지만 현대인은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다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처럼 모든 인간이 모든 것을
배우며 또한 배울 수 있다고 믿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38)

‘예술인지’와 ‘사회인지’는 가드너의 ‘다중지능’과 관련해서, 선택적으로


개인에게 존재하는, 혹은 개발이 가능한 ‘인지능력’이다. 따라서 ‘예술인지’를
활용하는 ‘예술교육’은 개별화된 교육이 되어야 한다.39)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술교육’이 오직 ‘예술’ 그 자체만을 목표로 삼았을 때, 교육의 효과는
그렇게 높지 않다. ‘인지론’을 통한 예술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잘 판단해
내는 교육이어야 한다.

3-4. 21세기 미국대학 연극교육의 가치관

35) Jean Piaget, Piaget's theory, In P. Mussen (Ed.), Carmichael's manual of child psychology (New
York: Wiley), 1970.
36) 언어적 지능, 논리지능, 수학적 지능, 음악적 지능, 공간적 지능, 대인관계 지능, 개인이해 지능, 자연과학적
지능. Howard Gardner,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 (New York: Basic
Books), 1983.
37) 하워드 가드너, 『다중지능의 이론과 실제』, 김명희/이 경희 옮김, 양서원, 1998, 27쪽.
38) 같은 책, 31쪽
39) 같은 책, 33쪽. “우리는 개별화된 교육을 실시하기에 충분한 공학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성취하려는 의지이며, 기존의 고질적인 획일주의 교육개념과 일차원적인 평가를 타파하고자 하는 결단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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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의 미국사회의 변화를 중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미래학자
토플러(A. Toffler)가 인류의 문명을 농업단계와 산업단계, 그리고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로 구분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생산의 과정과 단계를
통해 시대를 구분한 토플러의 역사진행에 관한 구분법은 인간의 ‘인지’가 시대에
따라, 생산수단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즉 수요를 예측하지 못했던 초기 농업단계의 생산방식과 대량생산을 통해
수요를 증가시켰던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 미래사회는 수요와 생산의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인간의 ‘인지’는 자기 자신을 떠난
주변과 환경에만 집착했던, 합리주의적 ‘인식론’의 세계관에서, ‘현상학적
인지’의 다층적 구조를 통해, ‘인식’과 ‘인지’의 구분이 가능했던,
‘구조주의적 인지’의 단계를 지나, 현상과 해석의 절충, 보완이 가능한
‘구조-기능주의적 인지’의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이런 인지변화의 단계와
과정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기준이 달라지면서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가드너의 표현처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르네상스 시절의
‘인지능력’을 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생산중심’의 삶에서
‘소비중심’의 생활로 옮겨가기 시작한 21세기는 드루커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40)로 진전해 가고 있다. 물론 9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승리가 완전해지고, 세계는 미국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로
급전하는 듯 보이는 국제사회의 정치, 경제적 현상을 지켜보면, 자본주의는 소멸된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에 있어서의
‘자본’은 전통적인 ‘물리적 자본(Physical Capital)’과 함께, 기술, 교육,
지식을 포함하는 ‘인간자본(Human Capital)’41)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면서,
‘자본’과 ‘소유’관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산이 필요를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절대, 이상, 관념, 일체성, 일원화, 선별, 귀족적인 것, 내적인 것, 목적 등에
기울었던 중요도의 축이 상대, 실제, 경험, 복수성, 다원화, 개방, 대중적인 것,
외적인 것, 수단 등으로 기우는 것”42) 현상이 생기게 된다.
중심적인 문화의 이론이 주변부 문화에 의해 대체되고, 문화의 핵심이
순수예술에서 대중적 취향으로 전이되는 21세기에 있어서 예술교육은 시대의
상황과 논리에 합당한 인지론을 필요로 한다. 즉 예술교육이 일 방향적인 목적을
지닐 수 없고, 쌍방향적인 과정을 통해 생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교육을 위한 ‘인지론’은 동시대의 문화논리에 합당해야 하며, 동시대의
문화현상을 읽을 수 있는 ‘해석학적 인지’와 ‘현상’을 이해하는

40) Peter F. Druker, Post-Capitalist Society, (New York: HaperCollins), 1993.


41) Lester C. Thurow, The Future of Capitalism, (New York: William Morrow), 1996.
42) 김용석,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푸른 숲, 2000.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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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능력’이 ‘다중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4. 미국대학 연극학과 교과과정

인류의 문화와 더불어 발전해 온 연극의 역사에 관한 이해나 다양한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문학으로써의 희곡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인간을 통한 인간에
의한 공연예술로의 연극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설득력
있는 제안과 모색으로 다루어 져 왔으며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적 활동 가운데도
연극을 통한 새로운 인간성의 발견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더불어
발전해온 문화사회적 혹은 사회문화적 현상이며 긍정적인 평가로 수용되어져야 할
학문적 대상개념이 되고 있다.

4-1. 연극학과 교과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현상학의 이해

현상학이란 영국의 철학자인 W. Whewell (1794 - 1866)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찰자


의 눈에 드러난 기록될 수 있는 모든 자료(Datenmaterial)에 관한 이론적 작업이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한 현상학은 관찰대상에
관한 원론적인 인식과 더불어 “현상의 자연스러운 개념적 분류의 과정”을 통해
이해되어 질 수 있는 학문이다43).
현상학이 철학적 개념으로 파악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 엘사스 지방의 가난한 재단
사의 아들로 태어나 만물박사로 알려지게 됐으며 1765년에는 베를린에 있던 ⌈프
로이센 학술원⌋의 회원이 되었던 Johann Heinrich Lambert (1728 - 1777) 의 “現
想과 眞相”에 대한 구분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이로부터 경험주의적 인식이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Kant는 Lambert 와 편지로 현상학에 관한 자
신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현상학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의 바탕을 전제로 해야 한
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형이상학적 학문이 인간의 感性的 영역에 관한 “허용과
제한에 관한 원칙”을 유지할 때에 현상학은 이해되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44)
이와는 대조적으로 Hegel은 1807년에 발표한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지식형성
을 단계적으로 파악하여 재구성해 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순수한 지식과 절대
적 정신”을 구분하여 인간의 인식범위를 넘어선 현상학적 정신의 세계를 주장한바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인식되어 질 수 없다”는 주장으로 19세기 중반부터

43) Whewell의 자연현상에 관한 관찰은 특히 화학적 합성물인 칼슘히드라 라는 흰색의 작은 진주


같은 수정체의 광물질에 대한 Whewellit라는 명명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Whewell의 현상학적
인식과 분류는 이후 현상학의 개념정립을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으며 물리학에서는 현상
학적 이론을 미시적 분자구조에 관한 설명이 불가한 거시적 조건에서의 물리학적 실체에 관한 설
명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전자파에 관한 Maxwell의 이론이나 고전적인 열역학에서의 열전도율
에 관한 현상학적 이론들을 그 예로 삼을 수 있다.
44) 그 후 Kant 는 1786년 “형이상학적 근원으로의 자연과학의 시작” 이라는 저술을 통해 인간의 신
체적 움직임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 운동역학 (Kinematik) 의 이론을 전개했으며 인간의 신체적
움직임이 다른 신체와의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지 아니면 절대적으로 공간과의 관계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 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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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된 “대수학적 논리학”의 기틀을 잡은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 논리학 교수인
William Hamilton (1788 - 1856) 이 다시금 Kant의 현상학적 이론에 접근하여 집필
했으며 그가 죽은 다음 다음해인 1858년에 출판된 “의식의 현상학 (Phenomenology
of mind)” 에서 그는 이미 주어진 상황에 대한 체험을 분석하여 기록하는 심리적
체험의 현상학을 발전 시켰다.
그리하여 Kant 와 Hegel 을 통해 미국적 실용주의의 철학을 발전 시켰으며 유럽으
로 부터 독립된 미국의 현대철학이 가능하게 했던 사람 중의 한사람 이였으며 연극
기호학의 단서를 제공했던 미국의 철학자 Charles Sanders Peirce (1839 - 1914)
의 “경험론적 철학이 전제된 규범론(Kategorienlehre) 으로의 현상학”이 등장하
기 시작했다.
Peirce 가 1878년에 발표한 “우리들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는법 (How to make our
ideas clear)” 에서 그는 Hegel 의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사실성에 관한 철학적
이론”을 발전 시켰다. Peirce 는 지금까지의 인식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인
“인식하고 있는 주체와 인식되어 지고 있는 대상은 무관하다는 전제에 대한 부정
으로 “우리들의 존재는 우리들이 인식하고 있는 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이론적 철학과 실천적 철학의 분리를 그는 부정했
다. 그럼으로 Peirce 에게 있어서의 논리학은 윤리학과 마찬 가지로 규범적이며 자
기통제가 필요한 효율적 원론으로 파악되게 된다. Peirce 에게 있어서의 현상학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혹은 어떤 의미로든 인간의 정신세계에 나타나는 그 모든
것”이며 어떠한 진실에 대한 접근과 일치하든 않든 완벽하게 기록되어져야 할 기
호 (Sign) 며 이러한 현상학적 기호의 이론적인 체계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과 실천
적인 접근을 1980년대 이후에 발표된 연극학 관계 논문들은 이미 연극학방법론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4-2. 교과과정 연구 방법론에 관한 철학적 개념

방법론 (Methodenlehre)이란 흔히들 “경험으로 인한 인식의 결과를 재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한 가능성”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철학에서의 방법론은
일반적 의미로의 방법론이 내포하고 있는 인식형성의 과정과 행위를 통한 경험의
단계 그리고 최종적인 실행의 단계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이성의 “방법론적
성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철학에서 방법론
이란 용어에 관해 언급하게 될 때에는 우선 어떠한 “구조적 인식의 틀”을 확보하
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이 전제되어져야하며 즉흥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생각이나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되풀이되는 사변적 경향의 논리적 서술에 의한 행위들은
“방법론적 思考”를 방해하는 일상적 언어의 유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
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방법론에 관한 이론적 (학술적) 접근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단계의 철학적 사유체계의 과정을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방법론을 통해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대상에 관한 전문적인 이해
두 번째: 방법론에 관한 분명한 自意識의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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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법론에 관한 철학적 개념의 정확한 이해
네 번째: 방법론을 적용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대상범위의 설정
다섯 번째: 지금까지 철학에서 방법론에 관해 제기했던 문제점에 대한 극복

4-3. 현상학에 관한 철학적 용어의 제한된 활용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현상학은 독일의 철학자 Edmund Husserl (1859 - 1938) 을
통해 “현상학적 철학”의 체계를 확보했으며 그가 1900년과 1901년에 걸쳐 두 권
의 책으로 출판한 “논리적 연구 (Logische Untersuchungen)" 는 당시 철학 계를
석권했던 심리 주의적 논리체계와 수학적 인식으로의 철학적 용어의 남발을 과감하
게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사고체계의 방법론을 제기하는데 성공했으며 지
금까지 현상학은 사물에 대한 우리들의 지적인식의 욕구에 “순수철학적 개념”을
제공할 수 있는 학문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상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는 현상학과 관련된 철학적 개념(용어)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현상학적
방법론”을 다른 학문의 이론적 (학술적) 방법론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상학
적 철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제한된 활용이 불가피 할 것이다. 즉 모든 학
문적 서술의 단계는 우선 언어를 매개로 하고 있음으로 새로운 학문의 방법론을 주
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정립 (새로운 용어의 활용)이 우선되어져야만 할 것이
다. 그럼으로 우선 Husserl 이 주장한 “현상학적 방법론”에 관한 기본적 입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상학적 방법론”은 우선 사물에 대한 “현상학적 인식의 결론”을 얻기 위해
사물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세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태도를 전제로 하게 된다. 다
시 말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재활용의 가능성을 배제하
고 사물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근본적인 관찰자의 시각으로 되돌려 놓는 과정이 우
선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들에겐 사물에 대한 “경험의 물결”이 형성
되고 우리들은 사물에 대한 보다 더 뚜렷한 자의식을 갖게 된다. 사물에 대한 우리
들의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 (Noema:의식 대상의 측면, Noesis:의식작용의 측면)이
점차 구체화 되면서 대상으로의 사물이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내적 경험의 활
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 순간 우리들의 의식은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인
식하게 된 세상을 포용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언급해 왔던 “인간영혼의 근본적 심리구조의 단계”와 일치하는 것이다. 즉 인간
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指向的 성향을 띄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직관에 의해
형성된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이미 사물 자체로 부터 독립되어 사물의 개별적
현상과는 무관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경험된 사물에 대한 인식과 존재하고 있
는 현상과의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초기에 Husserl은 이러한 “현상학적 실체”
를 단순히 “직관으로만 이해 될 수 있는 내적 감응의 상태”로 분류했으나 훗날
사물의 본질에 대한 形相的 制約 (Eidetische Reduktion)에 관한 보충설명45)으로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근본적 존재와 인식의 대상인 사물에 대한 경험적 인식의 불
일치를 주장하여 지금까지의 “만능적 도구로의 학문 (Positive Wissenschaft)”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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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하였으며 그의 “현상학적 철학”은 기존해 오던 보편적 학문의 논리체계의 근
본인 “세상에 속한 모든 자의식의 확산”을 부정하고 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논리
적 구조로만 파악 할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주관의 轉移를 위한 “초월적 자아
(Transzendentale Ich)”의 확립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현상학적 인식의 지평을 열
었다. Husserl에 의하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철학적 의미체계는 인간의 선험적 인
식으로 부터 출발하며 이러한 선험적 인식(Apriori)이 근본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
었을 때 철학은 다시금 경험적 인식의 확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46)
그러나 Husserl의 “현상학적 철학”을 연극학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위한 제안
으로 삼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언급된 논점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현상학적 용어의
활용” 또한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사상에 뒤를 이은
Max Scheler나 Heidedegger 의 철학적 주류 못지않게 20세기 후반의 문학과 예술론
심지어 심리학에서 까지 끊임없이 연구되어지고 있는 “현상학의 실체”에 관한
“연극학적 접근”은 그럼으로 보다 더 신중해야 할 것이며 뚜렷한 성과를 위해서
는 보다 더 정밀한 분석과 연구가 전제되어 져야 할 것이다.

4-4. 현상학적 이해를 연극학 방법론에 적용시킨 Dietrich Steinbeck 의 교수자격


청구 논문 “연극학의 이론적 체계를 위한 서문”

1970년 Berlin에서 Dietrich Steinbeck은 자신의 교수자격청구 논문인 “연극학의


이론적 체계를 위한 서문”을 출판하면서 머리말에 자신의 논문이 Husserl의 추종
자였던 폴란드의 철학자 Roman Ingarden 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했음을
고백했다. Steinbeck이 자신의 책제목을 구태여 “서문 (Einleitung)”이라고 붙인
이유는 그 역시 당시로는 과감한 표현일 수밖에 없었던 “연극학 방법론”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단순한 시도”로 제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연극학적 연구의 성과는 주로 공연관계 논문이나 희곡론 내지는 연극의 미
학적 (심미적) 구조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며 곧이어 연극의 사회사적 성립
과정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나 자료에 의한 기록적 (해석적) 접근이 시도되었
지 “방법론”에 관한 접근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실정이고 보면 그의 “예언
자적 연구”는 과히 기념할 만 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단계로 진행된 그의 논문은 곧이어 전개
된 기호학적 접근 (Semiotik des Theaters)이나 수용 미학적 접근
(Rezeptionsästhetik)의 구체적 대안에 비해 상당히 허술했고 설득력 있는 학문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연극학의 “대상개념”을 뚜렷하게 확보한 점에 있어
서는 지금껏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첫 번째 단계로 그는 우선 “서문”에 대한 서문에서 연극을 더 이상 연극적 공간
에 한정된 대상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사건적 성격”을 지닌 과정으로 이해하는

46) Husserl에 의하면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가능한 모든 생각들은 실제로 불변하는
인간존재에 대한 자의식으로 인해 객관적 인식의 단계에 도달할 수 없으며 관찰자인 인간은 사물
에 대한 자의식과 대상에 대한 경험을 일치 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사물의 근본에 대한 제한된 인
식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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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성을 보였다. 그에 의하면 연극공연의 역사적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이
연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가능성과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연극적 현
상”은 의미를 지니게 되며 이러한 연극적 현상의 의미는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에
게 “우리들을 위한 행위”로의 효력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과 회화와 음악은 각기 그들이 추구하는 미적대상이 있으며 바로 지금 여
기에 있는 (hic et nunc) 우리들에게 이해되어 질 수 있으나 연극은 뚜렷한 미적대
상이 불분명하며 다른 예술과 달리 연극공연은 일회적이며 순간적이라는 점을 지적
했다. 문학과 회화는 보존될 수 있으며 각기 책과 그림을 통해 항시적 감상의 기회
를 얻게 되나 연극의 경우에는 공연되어 지고 있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예술적 향
유의 대상은 사라지고 순간적 감상의 결과만 남겨지게 된다.47) 그럼으로 “연극학
적 연구의 대상”은 항시 과거의 역사적 공연만을 겨냥하게 되고 “재생산된 연극
감상의 주관적 견해”만이 미학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Steinbeck 의
“연극학 방법론”은 바로 이러한 연극공연과 연극학의 상호 모순된 관계에 대한
문제점의 제기로 출발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의 내용을 주제로 한 “현상학
적 연극학 방법론”을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 “연극학”의 독자적 영역확보를 위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과 “연극
학의 대상개념의 확보” 그리고 “이론과 실제”의 상호 보완적인 “학문연구의 필
요성”에 대한 강조
두 번째: 연극이 예술이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예술론”에서 찾게 될 경우와 연
극미학을 새로운 인문과학적 논점으로부터 끌어내게 될 경우에 필요한 연극학분야
의 논문들에 관한 제안
세 번째: 예술로써의 연극의 구조와 형성에 관한 연극학적 용어의 사용
네 번째: 연극공연과 연극학에 관해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

4-5. 현상학과 연극교과과정 연구 방법론

지금까지 연극학 방법론을 위한 현상학적 접근에 관한 내용들을 점검해 보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과연 현상학이 연극학 방법론으로 가능한 것인가 ?
두 번째: 현상학을 연극학 방법론으로 택했을 때 우리는 과연 연극학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
세 번째: 현상학이외에 연극학 방법론으로 제기될 수 있는 이론들은 ?
네 번째: 현재 한국의 연극을 위한 연극학 방법론은 ?
다섯 번째: 연극학 방법론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 (1992년
6.18)

5. 미국 대학 연극학과 개설 과정

47) 희곡은 일회적 공연예술인 연극의 미학적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기 위한 아주 훌륭한 근거를 제
공하기는 하지만 공연의 결과로 남겨진 희곡은 이미 문학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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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미국대학 연극학과 교과과정에 관한 연구


미국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크게 희곡(drama)에 관한 교육과 언어와 말하기(speech) 교육,
연극의 예술적 측면에 관한 실기와 이론교육, 공연학 연구(performance studies), 공연예술
(performing arts)분야의 실기교육, 공연예술경영(performing arts management) 교육, 전
문적인 제작관련(drama production) 교육, 극작술 연구(dramaturgie)를 위한 교육, 연극 치
료(drama therapy)를 위한 교육, 연극예술의 실기 교육으로 구분된다. 교육 과정은 학사학
위 과정에서부터 박사학위 과정까지 있으며, 다양한 협동과정(Associate Degree)과 학위
인증과정(Certificate), 연극이외의 학위과정(other degree), 전문직업 인정과정(first
professional degree)이 있다.
특히 미국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이론중심 교과과정과 실기중심 교과과정으로 크게 양분되
며, 대학별로 다양하면서도 탄력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즉 미국 대학에서의 연극
교과과정은 영미언어와 문학의 영역에서부터 공연예술의 이론과 실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을 지니고 있으며, 단일한 형태의 교과과정보다는 응용과 융합을 전제로 한 복합적인 교
과과정이며, 언어와 말하기 교육, 공연예술 분야의 실무교육, 전문적인 직업훈련을 위한 교
과과정이다. 따라서 획일적인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요와 요구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가변형 교과과정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의 연극교육은 직업적인 전문연극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연극
을 이해하는 교양인을 위한 교육이며, 동시에 인문사회과학의 기초와 연관된 연극의 희곡적
(문학적) 이해와 연극의 언어소통을 위한 말하기 교육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따
라서 대학 교육의 목적이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기초 교양교육의 성
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 연구의 핵심은 본인이 일년간 교환교수로 있었던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U. I. W. 대학
(University of the Incarnate Word) 연극학과의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연기교육과 희곡,
제작 중심의 교과 과정에 관한 연구이며, 미국 전 지역의 다양한 교과과정, 학위 과정, 교육
방법론, 교육철학에 관한 연구다.

영문요약

A Study on the Curriculum of Department of Theatre in American University


The theatrical education in American university is largely divided into the
education of drama, and the education of language and speech, the practical
and theoretical education in the artistic aspects of theatre, the research on
the performance studies, the practical education in the field of performing
arts, the education of performing arts management, the education of
professional drama production, the education for the dramaturgie, the
education for the drama therapy, and the practical education of theatre arts.
As to the curriculum, there were a lot of ones from the undergraudate cou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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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doctor courses. Also, there are various associate degrees, certificate
degrees, other degrees except for the theatre, and first professional degree.
In particular, the theoretical education in American university is largely
divided into two parts like the theory-oriented curriculum and
practice-oriented curriculum. Each university operates the curricula
variously and flexibly. That is, the curriculum of theatre in American
university has various widths from the field of British and American language
and literature to the field of theory and practice in the performing arts.
They are complex curricula on the premise of application and fusion rather
single type of curriculum. It is curriculum for the education of language and
speech, practical education in the field of performing arts, and first
professional degree. Therefore, it has a characteristic like a variable
curriculum operated flexibly according to the students' demands and needs,
not a uniform curriculum.
The theatrical education in American university is one for the cultured
people who understand the theatre rather than the one for cultivating the
professional theatrical people. Simultaneously, it emphasizes the functional
sides of education of the speaking for the linguistic communication of
theatre and the dramatic(literary) understanding of theatre related to the
basis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Accordingly, the purpose of
education in university shows the characteristics of pure and basic
humanistic education strongly, not based on the practical use, in other
words, validity.
The key point of this study is a research on the curriculum of the education
for acting, play, and production centered on the curricula at the department
of theatre in U. I. W., University of the Incarnate Word, located on San
Antonio in Texas where which this researchers have worked over a year. Also,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various curricula, degrees, teaching methods,
and philosophy of education in every state in the continental U.S.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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