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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1)
김 용 환**
1. 들어가면서
1) Detlef Altenburg, “Programmusik,” 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hrsg. von Ludwig Finscher, zweite
Ausg. (1997), 7: 1824.
2) 이미 1830년대부터 ‘음악의 개혁’, ‘음악을 통한 사회의 개혁’을 꿈꾸었던 리스트는 1848년에 독일의 바이마르(Weimar)로
이주하여 이 도시를 ‘괴테-쉴러(Goethe-Schiller)’ 시기의 전통적 위상과 명예를 승계하는 “유럽의 새로운 문화국가의
중심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와 함께 바이마르에는 수많은 저명 예술가, 문인,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혹은 리스트의 요청에 의해 바이마르로 왔다). 1850년대 초에 리스트의 주위에서 활동한 “대표적 제자들”로는 라프(Joachim
Raff, 1822-1882), 뷔로우(Hans von Bülow, 1830-1894), 코르넬리우스(Peter Cornellius, 1824-1874), 폴(Richard Pohl,
1826-1896)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열정적이고 재능있는 언론(음악비평) 활동을 전개하였고, “소수 정예”와 같은 이들의
글은 리스트의 이상을 반영하였다. 이 4명의 음악비평 활동은 1848년부터 1857년 사이에 전개되는데, 특히 1852년부터
1854년 사이에 집중되었다, 비평문의 주요 기고지는 (슈만에 의해 1834년부터 약 10년 동안 주도적으로 운영되었고,
1845년에 브렌델이 인수한) 뺷음악신보뺸(Neue Zeitschrift für Musik)였다. 또한 리스트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저술들도
이들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발표되었다. Klaus Ries, “Die Einheit der Kunst: Franz Liszt zwischen Universalismus
und Nationalismus,” in Liszt und Europa, hrsg. Detlef Altenburg und Harriet Oelers (Laaber: Laaber Verlag, 2008),
27.
3) Arnfried Edler, “Schumann und die Neudeutschen,” in Liszt und die Neudeutsche Schule, hrsg. Detlef Altenburg
(Laaber: Laaber Verlag, 2006), 173.
4) Albrecht Rietmüller, “Programmusik in der Ästhetik des 19. Jahrhunderts,” in Programmusik, hrsg. Albrecht Goebel
(Mainz: Schott Verlag, 1992), 9.
5) 이에 관해서는 김용환, “프로그램음악에 대한 논쟁의 재조명,” 뺷서양음악학뺸 20/1 (2018), 79-81 참조.
6) Detlef Altenburg, “Programmusik,” 1821.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11
7) Ludwig Finscher,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Zur Interpretation der deutschen romantischen Symphonie,”
in Über Symphonien: Beiträge zu einer musikalischen Gattung, hrsg. von Christoph-Hellmut Mahling (Tutzing: Hans
Schneider Verlag, 1979), 103-115.
8) Walter Wiora,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in Festschrift Friedrich Blume zum 70. Geburtstag, hrsg.
von Anna Amalie Abert und Wilhelm Pfannkuch (Kassel: Bärenreiter Verlag, 1963), 381.
9) Walter Wiora, 위의 글, 381.
10) Ludwig Finscher, 위의 글, 103.
11) Ludwig Finscher,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Zur Interpretation der deutschen omantischen Symphonie,”
in Über Symphonien: Beiträge zu einer musikalischen Gattung, hrsg. von Christoph-Hellmut Mahling (Tutzing: Hans
Schneider Verlag, 1979), 103-115.
12) Bärbel Pelker,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in Studien zur Musikgeschichte. Eine Festschrift für Ludwig
Finscher, hrsg. von Annegrit Laubenthal (Kassel: Bärenreiter, 1995), 560-571.
12 서양음악학 제23-2호
즉 슈만은 연주자에게 음악적 분위기를 유사한 그림적 상상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제목을 붙인
것이며, 연주자는 그에 따라 연주해야 하고, 청중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연주된 것을 듣는 것이다.
제목은 청중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음악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도움으로 여기면
된다.
슈만의 ≪교향곡 1번≫(일명 “봄 교향곡”) 역시 비오라에 의하면 프로그램음악도 아니고 절대
음악도 아닌 제3의 영역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봄”이라는 제목이 있고 각 악장에도
소제목21)이 있다. 그리고 악곡의 곳곳에는 봄을 깨우는 외침, 들판, 나비와 같은 어느 특정 대상
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봄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성격을 표현하는 음악적 형상이 나타난
다. 그리하여 이 곡의 [도입부의] 트럼펫 모티브는 “높은 곳에서 울리는, 마치 봄을 깨우는 외침”
과 같고, 이어서 “모든 곳이 녹색으로 물들고 나비가 날아든다”는 것 역시 “마치 잎사귀와 꽃봉오
리가 피어오르고 나비가 날아드는 것처럼”인 것이다. 물론 슈만은 그와 같은 “환타지들이 작업을
마친 후에 떠올려졌음”22)을 강조하고 있다. 비오라는 이 내용들이 단지 ‘유사함’을 의미하는 것이
고, 작품에 동반되고, 작품을 뒷받침하는 상상이라고 강조한다. 즉 음회화를 위한 토대 혹은 프로
그램이 아닌 것이다. 또한 이 ‘시적 제목’은 개인적으로 발설된 것이고 공개적으로는 (침묵한 혹
은 은폐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물론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편지로 준 작품에 동반된 아이디어는
대중들에게 제목을 통해서 공지할 수 있다. 작곡가는 이러한 ‘간접적 알림’을 통해서 음악에 의도
된 성격에 대한 정보를 주고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비오라는 이러한 의미에서 종종 프로그램
음악으로 인식되는 많은 작품들이 사실은 유사한 동반적 내용(Begleitinhalt)의 음악이라고 강조
한다. 베토벤이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Die Wut über den verlorenen Groschen, Op.
129)라는 작품에서 동전, 손실 및 분노를 그리지 않았고, 그것은 음악적으로 결코 그릴 수 없으
며, 단지 ‘동반적 상상’(Begleitvorstellung)을 첨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피아노 작품의 성격 과
정을 구체화한 것이다.23) 즉 음악이 그 대상을 음회화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그 분위기와 움직
임 등의 성격을 암시하고, 프로그램이 아닌 유사 내용을 통해서 유사한 상상을 하도록 한다는
슈만의 반박으로서, 슈만이 1839년 9월 5일자로 자신의 작곡 스승이었던 도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되어 있다. Robert
Schumann, Gesammelte Schriften über Musik und Musiker, hrsg. von Martin Kreisig, Band 2 (Leipzig: Breitkopf &
Härtel, 1914), 74.
21) 이 소제목들은 작품의 출판 때 삭제되었다.
22) 이 내용은 슈만은 타우베르트(Wilhelm Taubert)에게 보낸 편지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Walter Wiora,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386에서 재인용.
23) Walter Wiora, 위의 글, 386.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15
28) 클라라 슈만은 부부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일기장(Tagebuch)의 1841년 1월 25일자에 “봄의 시가 이 창작의 첫 번째
자극이었다.”라고 적었으며, 슈만이 1841년 10월 19일자로 세라르(André Chélard) 보낸 편지에는 “나는 이 교향곡을
겨울 말까지 작곡할 것이다. 봄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라는 구절이 있다.
29) Ludwig Finscher,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Zur Interpretation der deutschen romantischen Symphonie,”
108-113.
30) 물론 슈만이 작품의 출판시에 삭제한 작품의 각 악장에 붙인 소제목들(1악장: 봄의 시작, 2악장: 저녁, 3악장: 즐거운
놀이, 4악장: 봄의 만개)은 뵈트혀의 시와의 연관성이 없다. 슈만이 이후에 진행된 봄의 경과에 따라 “프로그램적”으로
계속 시를 지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31) Ludwig Finscher,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Zur Interpretation der deutschen romantischen Symphonie,”
110.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17
작품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여행에 동행했
던 클링에만(Karl Kingemann), 옛 제자 쿠페라트(Hubert Ferdinand Kufferath), [1842년 당시 21
세였던] 젊은 작곡가 에케르트(Karl Eckert) 및 가족들과 나눈 편지, 그리고 슈브링(Julius
Schubling)이 훗날 발간한 뺷멘델스존 회고록뺸과 같은 1차 자료에서 언급된 ≪헤브리디스 서곡≫
관련 내용을 제시한다. 부언하자면, 펠커는 우선 멘델스존이 1829년 8월 7일자로 그의 가족들에
게 쓴 편지에서 중에서 “헤브리디스 군도에서 기이하게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을 명확하게
하도록 다음과 같은 것이 떠올랐다”38)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스케치를 제시한다.
적 모티브가 파곳, 비올라 및 첼로에 의해 제시되는데, 이 형상은 “해안에 가볍게 부딪히는 파도”
를 연상케 한다.
43) Bärbel Pelker, Die deutsche Konzertouvertüre(1825-1865) (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93), 21.
44) 예를 들어 Walter Wiora,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381.
45) Carl Dahlhaus, Musikästhetik (Laaber: Laaber Verlag, 1986), 90.
46) Dahlhaus, 위의 글, 91.
47) Wolfgans Stockmeier, Die Programmusik (Köln: Arno Volk Verlag, 1970), 6.
48) 음악세계 편찬, 뺷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쇼스타코치뺸 (서울: 음악세계, 2001), 50쪽에서 재인용.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21
함부르크 연주회 때의 프로그램은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곡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덧붙인 것이었
는데, 유감스럽게도 프로그램이 이해를 돕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오해를 낳는데만 많은
기여를 하게 된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 교향악에도 물론 프로그램이 있고, 베토벤의 교향곡들
도 그런 ‘내적 프로그램’(inneres Programm)를 지니고 있을 테지만, 그런 것은 오로지 청중들이 작
품과 점점 더 친해짐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니 프로그램 책자에 딸려있는 해설을 읽는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51)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제가 반복적으로 화제로 거론되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말러는 1900년 10월에 ≪교향곡 2번≫의 뮌헨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둘러보면서 힘주어 “프로그램 타도(Pereat den Programm)”53)를 외치게 된다. 알텐부르크의 주
장은 이와 같은 말러의 초기 교향곡의 연주⋅수용사를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관
점 역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곡가가 본래 프로그램음악으로 작곡했으나 훗날
그 프로그램을 거두어들였거나 은폐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주
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음악외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개입되었다면, 훗
날 그 내용을 철회하거나 은폐하더라도 프로그램음악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예를 들어 플로로스 같은) 학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흥미로운 사례는 슈만의 ≪교향곡 4번 d단조 Op 120≫이다. 독일의 음악
학자 에곤 보스는 이 작품을 논하는 지면에서 이 곡이 “엄밀히 말해서 절대음악과 프로그램의
사이에 자리매김되어 있다”54)라고 언급하였다. 슈베르트의 ≪C장조 교향곡 D. 944≫(일명 “The
Great”)의 본질적 특성을 “소설적 특성”으로 본 슈만이 이 작품에서, 즉 “절대음악의 교향곡”이
뭔가를 “설명하는 것”, 말하자면 “마치 어떤 특정 이야기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설명하는
듯한 것”55)을 경험하였고,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d단조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는 프로그램이 없고, 주변 지인들과의 편지 등에서 엿볼 수 있는 그 어떤 암시조차 존
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우선적으로 2악장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즉 2악장은 “로만체”
(Romanze)라는 제목을 가지는데, 이 ‘로만체’는 18세기 및 19세기의 ‘프랑스 ‘로망스’(romance)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된 옛 전통의 ‘스페인 로만차(romanza)’56)를 의미하며, 바로 1버전의 자필
[...]
여기에서 ‘음악은 시적이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슈만이 하나의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는데,
그 요구에 음예술의 ‘순수함’은 지양되고 있다. 마치 ‘관념(Idee)’이 “구체적인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슈만은 그러한 ‘이정표’(Wegweiser), 즉 프로그램노트는 품위가 없고
사이비 같다”라고 언급하였다. 이 글귀는 마치 슈만이 프로그램음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관련 문헌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슈만은 “5개의 악장 제목”을 전적으로 인정했으며,
62) Robert Schumann, “14. Sinfonie von H. Berlioz,” in Gesammelte Schriften über Musik und Musiker, hrsg. von Martin
Kreisig, 5. Auflage (Leipzig: Breitkopf & Härtel, 1914), 84; 슈만의 이 비평문은 다음과 같은 책에 번역되어 있다: 이기숙
번역 뺷음악과 음악가.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뺸(서울: 포노, 2016), 87.
63) Robert Schumann, 위의 글, 84.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25
3. 나가면서
67) 이 점에서 보스는 핀셔와 다른 관점을 보인다. 핀셔가 이 곡을 “슈만의 교향곡 중에서 유일하게 절대음악과 프로그램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분류에 해당되지 않는 예외적인 작품”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68) Carl Dahlhaus, “Neuromantik.” 노영해 번역, “서양음악사에서의 ‘신낭만주의’,” 뺷한국음악사학보뺸12 (1994), 222.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27
검색어
프로그램음악(program music), 중간음악(medium music), 절대음악(absolute music), 성격음악(character
music), 메타그램음악(metagramm music)
28 서양음악학 제23-2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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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Detlef Altenburg, 171-185. Laaber: Laaber Verlag,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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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mphonie.” In Über Symphonien: Beiträge zu einer musikalischen Gattung. Herausgegeben
von Christoph-Hellmut Mahling, 103-115. Tutzing: Hans Schneider Verlag,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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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lick, Eduard. Vom Musikalisch-Schönen. Wiesbaden: Breitkopf & Härtel, 22. Auflage 2010.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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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pokoski, James. Aesthetics of Music: Musicological Perspectives. Edited by Stephen Downes. New
York: Routledge, 2014. “프로그램음악.” 뺷음악미학: 음악학적 접근뺸. 민은기⋅조현리 공역,
114-151. 서울: 음악세계, 2017.
Kleinertz, Rainer. “Schumanns Rezention von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anhand der Klavierpartitur
von Liszt.” In Robert Schumann und die französische Romantik. Herausgegeben von Ute Bär,
139-168. Mainz: Schott, 1997.
Pelker, Bärbel. “Zwischen absoluter und Programmusik.” In Studien zur Musikgeschichte. Eine Festschrift
für Ludwig Finscher. Herausgegeben von Annegrit Laubenthal, 560-171. Kassel: Bärenreiter,
1995.
. Die deutsche Konzertouvertüre(1825-1865). 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93.
Ries, Klaus. “Die Einheit der Kunst: Franz Liszt zwischen Universalismus und Nationalismus.” In Liszt
und Europa. Herausgegeben von Detlef Altenburg und Harriet Oelers, 27-42. Laaber: Laaber
Verlag, 2008.
Rietmüller, Albrecht. “Programmusik in der Ästhetik des 19. Jahrhunderts.” In Programmusik. Herausgegeben
30 서양음악학 제23-2호
Abstract
Many writings discussing absolute music and program music often refer to a third
area that does not belong to the two groups. In other words, they are works that can
be called “medium music”. This paper has been attempted while paying attention to
this point. There has been in-depth discussion of what works are referred to by scholars
as “intermediate areas” that do not fall under the category of the extreme dichotomy
of absolute music and program music, and the reasons for and background to such
claims.
32 서양음악학 제23-2호
프로그램음악⋅중간음악⋅절대음악
김 용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