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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45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1)

최 애 경

Ⅰ. 들어가며
Ⅱ. 윤이상의 창작 작업과 그 특성
Ⅲ. ‘교향곡’ 이후 윤이상의 마지막 시기 창작 작업과 그 의미:
“이제는 스스로를 정리할 때”
Ⅳ. 마지막 세 작품: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
Ⅴ. 나가며

Ⅰ. 들어가며

작곡가 윤이상(1917.9.17-1995.11.3)의 ‘작품’ 창작 작업은 1958년 베를린


음대 재학 시절 작곡된 그의 첫 ‘작품’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5

* 이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NRF-2016S1A5B5A07920807)로, 지난 2017년 11월 4일 한독음악학회ㆍ민족음
악학회 공동주최로 서울대학교(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열린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윤이상, 통영, 베를린’에서 발표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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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ücke für Klavier)으로 시작되어 1994년 작곡된 마지막 작품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Engel in Flammen. Memento für Orchester mit
Epilog für Sopran, dreistimmigen Frauenchor und fünf Instrumente)로 마감
되기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30대의 생생한 젊음의 시절은 이
미 종지부를 찍고 ⋯ 이제는 도저히 젊음을 돌이킬 수 없는 40이란 고개”1)
를 넘어 인생의 내리막길로 접어든 중년에서 노년까지 37년 동안의(만41
세~77세까지) 지속적이고 치열했던 유럽에서의 창작 작업을 통해 윤이상이
남긴 ‘작품’은 독주곡에서 실내악, 오페라, 칸타타,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에 걸쳐 총 119곡2)에 이른다.
37년 동안의 창작 작업에서 윤이상의 창작에너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활력을 띠고 있다. 전체 작품의 약 1/2(60곡)에 해당하는 곡이 교향곡 작곡
으로 시작되는 마지막 1/3의 창작시기(1982/83-1994년) 동안 작곡되었다.
또한 윤이상은 이 마지막 창작시기의 전반부에, 즉 65/66세가 되는 1982/83
년부터 70세가 되는 해인 1987년까지 매년 1곡씩 작곡한 총 다섯 개의 교향
곡 연곡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 및 음악적 작업을 집대성하는 작업을 했다.
1985년 「교향곡 3번」을 작곡하던 당시 윤이상은 「교향곡 5번」 작곡이 끝나
면 작곡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음악을 마음으로 들으며 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3) 이 말은 윤이상이 다섯 개의 교향곡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1) 윤이상, “20년 청년(靑年)이 되어”, 1955년 말에 발표된 이 글은 이수자, 󰡔내 남


편 윤이상(상)󰡕, 82-84쪽에 실려 있다. 인용은 82쪽.
2) 윤이상의 마지막 작품인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Engel in Flammen.
Memento für Orchester mit Epilog für Sopran, dreistimmigen Frauenchor und
fünf Instrumente)에서 「화염 속의 천사」는 반드시 「에필로그」와 함께 연주되어
야 한다. 반면 「에필로그」는 「화염 속의 천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를 두 개의 독립적인 악곡으로 볼
경우 윤이상의 총 작품 수는 119곡이다.
3) 윤이상은 「교향곡 3번」을 작곡하던 당시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교향곡 5번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Grimmel, Werner M.: Programmhefttext für Literatur und Musik. Abendprogramm
Leonardo Trio/Luise Rinser, Ludwigsburg, Ordenssaal, 1992(?), ohne Seitenangaben
(Aufführung von Yuns Trio für Violine, Violoncello und Klavier von 1972/75)를 참조.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47

생각하고 교향곡 창작에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5번 교


향곡 이후 윤이상이 만70세가 넘어 작곡한 작품의 수는 무려 36곡에 달한
다.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집대성’한 후 작곡한 음악은 어떤 음악
일까? 거대한 다수의 대중을 염두에 둔 교향곡 작곡 이후 인생의 말년에 그
가 마음으로 들으며 악보에 옮긴 내면의 음악은 어떤 것이며, 어떤 방식으
로 표현되고 있는가?
말년(末年)은 노년(老年)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노년이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어 생체 구조와 기능이 노화되는 늙은 때를 일컫는 말이라면, 말
년은 말 그대로 생의 마지막 시기라 하겠다. 말년의 시기는 대개 인간이 자
신의 죽음이 가까이 와있음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하다. 1991년 한 해 동안
윤이상의 건강은 여러 번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매우 좋지 않았으며,
1993년에는 병세가 더욱 심해져 요양과 병원입원을 반복해야만 했다. 1994
년 마지막 창작의 해에 윤이상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
다.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음을 예감하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윤이상의 창작 작업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생의 마지막 시기에 남기고 있는 작품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본 연구는 윤이상의 5대 교향곡 작곡 이후 마지막 시기의 창작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말년의 창작 작업 및 작품의 특성을 고찰함으로써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을 떠나있으면
서도, 그 고향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은 갈 수 없는
고향의 모든 것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는 음악이다.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을 특징으로 하는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윤이상의 삶과 사유를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고찰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사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
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윤이상의 전체적인 창작 작업과 그 특성을
개관한 후, ‘교향곡’ 이후 그의 마지막 시기 창작 작업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그가 마지막 창작의 해인 1994년 후반기에 작곡한 마지막 세 작품 -「클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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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5중주 Ⅱ」(Quintett für Klarinette und Streichquartett II), 「오보에 4중주」


(Quartett für Oboe und Streichtrio),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Engel in
Flammen. Memento für Orchester mit Epilog für Sopran, dreistimmigen
Frauenchor und fünf Instrumente)-을 분석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Ⅱ. 윤이상의 창작 작업과 그 특성

1. 창작 시기 구분

윤이상의 유럽에서의 창작 시기는 크게 셋 또는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58년 첫 작품인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부터 시
작하여 이 시기 작곡된 4개의 오페라 중 마지막 오페라 「심청」(Sim Tjong.
Koreanische Legende in zwei Akten mit Vor-und Zwischenspiel, 1971/72)을
작곡한 70년대 초반까지의 ‘음향작곡시기’4)로,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적ㆍ
표현적 특색을 유럽의 무조음악 작곡기법과 결합시켜 ‘주요음(향)기법’이라
는 자신의 고유한 작곡기법을 확립ㆍ발전시킨 시기다. 네 개의 오페라를 포
함하여 총 27곡이 초기 창작시기에 작곡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1972년 소편성 관현악을 위한 「협주적 음형」(Konzertante
Figuren für kleines Orchester)에서 1982년 피아노를 위한「간주곡 A」
(Interludium A für Klavier)까지의 시기로, 첫 번째 협주곡인 「첼로 협주곡」

4) 독일의 음악학자 슈테판(Ilja Stephan)은 윤이상의 창작시기를 세 시기로 나누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창작 시기를 윤이상이 1969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인
한 감옥생활에서 풀려난 시기까지로 보고 있다. 또한 작품 수도 총 117곡(필자는
119곡)으로 정리하고, 그 중 실내악곡을 총 66곡(필자는 68곡)이라 정리하고 있
어 필자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일리야 슈테판 저, 송화숙 역, “창작 원리로
서의 연속성. 윤이상의 작품에 나타난 순환적 연관관계에 대하여”, 󰡔윤이상의 창
작세계와 동아시아 문화󰡕, 104-105쪽.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49

(Konzert für Violoncello und Orchester, 1975/76)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해나가기 시작한 ‘협주곡시기’다. 5개의
협주곡 및 5개의 칸타타를 포함하여 총 32곡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세 번째 시기는 1982/83년부터 마지막 창작의 해인 1994년까지의 시기
로, 「교향곡 1번」의 작곡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매년 하나씩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다섯 개 교향곡 연작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며 윤이상
의 창작이 절정을 이루게 되는 ‘교향곡시기’이다. 이 시기에 총 60곡이 창작
되었다. 이 세 번째 창작 시기는 마지막 교향곡인「교향곡 5번」까지의 ‘교향
곡시기’와 교향곡 이후 현악기 또는 현악5중주를 위한 「융단」(Tapis pour
cordes (chorisch oder Streichquintett), 1987)으로 시작되는 ‘현악4중주시기’
로 다시 세분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지막 창작 시기에서 전반 ‘교향곡
시기’에 총 24곡, 후반 ‘현악4중주시기’에 3개의 현악4중주를 포함해 총 36
곡이 작곡되었다.
지금까지 서술한 윤이상의 전체 창작 작업과 악곡의 수를 시기별, 장르별
로 개관해보면 다음 <표1>과 같다.

<표1> 윤이상의 전체 창작 작업 개관
기악곡
장르유형 성악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솔로
현악 실내
독주 중주 협주 교향 관현 오페 칸타 및
창작시기 및 사중 앙상
곡 곡 곡 곡 악곡 라 타 합창
시기별 악곡 수 주 블

Ⅰ 1958~71/72 27곡 5 6 1 1 6 4 4
Ⅱ 1972~82 32곡 5 7 2 5 6 5 2
1.1982/83
24곡 5 9 2 55) 36)
~87

2.1987/88
36곡 3 18 3 3 3 5 17)
~1994
총 18 40 4 6 10 5 20 4 5 7
119
계 68 35 16
150 음악과 민족 제55호

2. 창작 작업의 특성

윤이상의 전체 창작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총 119곡의 작품에서 반이


넘는 60곡이 마지막 창작시기에 작곡되었으며, 실내악의 경우 총 68곡 중
2/3를 차지하는 41곡이 이 마지막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교향곡 작
곡 이후 마지막 ‘현악4중주시기’ 윤이상의 창작 작업은 실내악곡이 압도적
인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작품 수에 있어서도 총 36곡으로 전체 창작 시기
중 가장 많다.
윤이상의 창작이 후기로 갈수록 활발해지는 실제적인 이유에 대해 독일
의 음악학자 슈테판(Ilja Stephan)은 이 시기에 와서야 윤이상이 창작에 집
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과 경제적인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즉 윤이
상이 베를린 음대 정교수직(1977-1985)에서 물러난 점, 그의 정치참여가 70
년대에서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집중돼 있다는 점, 연금의 부족과 출판사가
갖고 있던 악보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이 시기에 넘겨받게 된 점 등이다.8)
윤이상은 실제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의 구명운
동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때로는 써야할 곡을 미루면서까지 활발하게 해
외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해오다가 1984년 10월 30일
자로 ‘한민련’ 유럽본부 의장직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의 이런 결정은 ‘누구
나 할 수 있는 정치’가 아니라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예술’로 조국의 “문
화재건과 통일에의 미세한 길”을 뚫고자하는 의지에서 내린 것이었다.9)

5) 다섯 개의 교향곡 중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5번」(1987)은 바리톤 솔로와 오케


스트라 편성으로, 교향적 가곡이라 할 수 있다.
6) 윤이상의 유럽 시기 작품 중 유일하게 한글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는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6/87)는 관현악곡으로 분류해 놨지만 독창, 합창, 오케스트
라를 위한 교향적 칸타타라 할 수 있다.
7)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에 이어 반드시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있는 윤이상의 마
지막 작품 「에필로그」는 독립적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 만든 곡으로 소프라노 솔
로, 여성3부 합창, 다섯 개의 악기로 편성되어 있다.
8) 일리야 슈테판 저, 송화숙 역, 앞의 글, 105쪽.
9)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하)󰡕, 123-124쪽.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51

1982년부터 매년 가을에 평양에서 ‘윤이상 음악제’를 개최해 온 북한은


1984년 12월 5일 평양에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개관했고, 이때부터 윤이상
은 열정적으로 북한의 음악계와 북한 현대음악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10)
윤이상의 전체 창작 작업에서 또 하나 매우 특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
는데, 그것은 매 창작 시기가 55세(1972), 65세(1982), 70세(1987) 등 중요한
삶의 주기를 따라 변화하면서 마지막과 시작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는 것이다. 이는 작곡가가 중요한 삶의 주기마다 자신의 삶과 예술을 되돌
아보고 성찰하는 가운데 뭔가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찾고 생각하며 앞으로
의 삶과 작품을 계획적 ․ 체계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해나갔음을 보여주는 것
이다.
삶과 작품에 대한 윤이상의 계획과 실천은 이미 한국 시기에서부터의 오
래된 습관임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윤이상은 1955년 말에 인생의 중요
한 전환기를 앞에 두고, 즉 불혹(만39세)의 나이에 접어드는 해이자 또한 자
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가족을 떠나 먼 유럽 유학을 떠나게 될 1956년
을 앞두고 발표한 「20살 청년이 되어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인생의 후
반부인 40세 이후의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있다.11) 윤이
상은 실지로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먼 이국땅으로 건너가 인생 후반기 삶의 모험을 감행해 나갔다.
50세(1967년)에는 소위 ‘동베를린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게
됨으로써 자신이 자유롭게 뭔가를 만들어갈 수 없는 부자유한 상황임으로
이 경우는 예외적이다. 50살 생일을 감옥에서 맞게 되는 이 사건은 그러나
이후 윤이상의 삶과 음악의 변화에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된다. 60세(1977)에
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형식으로 자신의 삶과 음악을 회상하며 정리하고,
또한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알리고 기록하는 성격의 대담

10) 여기에 대해서는 위의 책, 124쪽 이하 참조.


11) 윤이상의 이 글은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상)󰡕, 82-84쪽 참조.
152 음악과 민족 제55호

집 󰡔상처 입은 용󰡕(Der verwundete Drache)을 발간했다. 65세가 되면서는


자신의 삶과 사상 및 음악적 작업을 총 결산하는 다섯 개 교향곡으로 이루
어진 연작 교향곡 작곡을 계획하고 해마다 1곡씩 교향곡을 작곡하여 70세
(1987)에 마지막 5번 교향곡을 완성, 자신의 70세 생일(1987.9.17)에 발표한
다. 교향곡 작곡 이후 1988년부터 현악4중주를 2년마다 한곡씩 작곡하여 75
세(1992)에 마지막 현악4중주를 완성한다. 마지막 창작의 해인 77세(1994)
생일에 「화염속의 천사」작곡을 끝마치고, 이후 마지막 작품인 「에필로그」
(Epilog für Sopran solo, dreistimmigen Frauenchor und fünf Instrumente)로
자신의 창작 작업을 분명하게 끝맺고 있다.

Ⅲ. ‘교향곡’ 이후 윤이상의 마지막 시기 창작 작업과


그 의미: “이제 스스로를 정리할 때”

교향곡 작곡 이후 ‘현악4중주시기’인 윤이상의 마지막 시기 창작 작업은


이미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거의 실내악 작곡에 집중하고 있는 시기다(<표2>
참조!). 독주곡을 포함해 2중주에서 실내앙상블까지 다채로운 편성과 제목
으로 이루어진 그의 실내악곡은 다양한 악기간의 모든 결합 가능성을 발견
하고 시도하고 있는 온갖 변화된 색채의 음향 울림으로 충만하다.12) 이 시
기에 윤이상은 1959년 작곡한 「현악4중주 3번」 이후 거의 30년 만인 1988
년부터 2년 간격으로 3개의 현악4중주를 작곡하여 75세가 되는 1992년 그
의 마지막 「현악4중주 6번」을 완성한다.13) 마지막 창작시기에 윤이상이 다

12) 윤이상의 총 68곡의 실내악곡에서 2중주 편성의 곡은 18곡, 3중주 6곡, 4중주는
4개의 현악4중주를 포함해 모두 10곡, 5중주는 7곡, 7중주 1곡, 8중주 2곡, 10중
주 1곡, 타악기를 포함한 실내앙상블 5곡, 독주곡은 모두 18곡이다.
13) 「현악4중주 4번」은 1960년부터 임종까지 윤이상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깊은 우
정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귄터 프로이덴베르크(Günter Freudenberg,
1923.9.16.-2000.12.29)의 65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윤이상에게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53

시 재개한 현악4중주 창작과 실내악 창작에의 집중은 70년을 넘게 살아온


자신의 삶과 음악의 출발점과 그 여정을 회상하고 기억하며 스스로를 정리
하는 의미를 지닌다고도 하겠다.

<표2> 윤이상의 1987년 「교향곡 5번」 작곡 이후의 창작 작업 개관

작곡 작 품
년도 실내악곡 협주곡 관현악곡
Duetto concertante
Kammersinfonie I
für Oboe
Tapis pour cordes (chorisch oder für zwei Oboen,
1987 (Englisch-Horn),
Streichquintett) zwei Hörner und
Violoncello und
Streicher
Streicher
Pezzo fantasioso per due strumenti
con basso ad libitum
Intermezzo für Violoncello und
Akkordeon (oder Klavier oder Orgel)
Quartett für Flöte, Violine,
Violoncello und Klavier
1988 Distanzen für Bläser und
Streichquintett
Streichquartett IV (in zwei Sätzen)
Contemplation für zwei Violen
Festlicehr Tanz für Bläserquintett
Sori für Flöte solo
Kammersinfonie II
»Den Opfern der
Rufe für Oboe und Harfe Freiheit« für
1989 kleines Orchester
(in drei Sätzen)
Together für Violine und Kontrabaß Konturen für
(in zwei Sätzen) großes Orchester

‘현악4중주’라는 장르는 매우 의미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


와 같이 윤이상은 1947년 ‘통영현악사중주단’을 조직해 첼로주자로 활동하였으
며, 유럽 유학 전인 1955년 한국에서 작곡한 「현악사중주 1번」과 「피아노 3중
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54 음악과 민족 제55호

Kammerkonzert I (in einem Satz) Konzert für Oboe


Kammerkonzert II (Oboe d'amore)
1990
und Orchester in
Streichquartett V (in einem Satz) einem Satz
Bläserquintett (in zwei Sätzen)
1991
Sonate für Violine und Klavier
Streichquartett VI; 4악장: Pesante,
Giocoso, Lamentoso, Animato Konzert für Violine
Quartett für Horn, Trompete, Posaune und kleines Silla. Legende für
1992 und Klavier Orchester Nr. 3 (in Orchester
Trio für Klarinette, Fagott und Horn einem Satz)
Espace I für Violoncello und Klavier
Sieben Etüden für Violoncello solo;
Legato, Leggiero, Parlando,
Burlesque, Dolce, Triller,
Doppelgriffe
Chinesische Bilder für
(Block-)Flöte(n) solo; Der Besucher
1993
der Idylle (Tenorblockfl.), Der Eremit
am Wasser (Baßblockfl.), Der
Affenspieler (Sopranblockfl.), Die
Hirtenflöte (Altblockfl.)
Espace II für Violoncello und Harfe
mit Oboe ad libitum
Bläseroktett für zwei Oboen, zwei Engel in Flammen.
Klarinetten, zwei Hörner und zwei Memento für
Fagotte mit Kontrabaß ad libitum Orchester mit
Ost-West-Miniaturen für Oboe und Epilog für Sopran,
1994 Violoncello (in zwei Sätzen) dreistimmigen
Quintett für Klarinette und Frauenchor und
Streichquartett Nr. 2 fünf Instrumente
(Fl., Ob., Celesta,
Quartett für Oboe und Streichtrio Vl., Vlc.)

<표2>에서 보듯이 「교향곡 5번」 이후 작곡된 윤이상의 총 36개의 작품


중 75%에 해당하는 27곡이 독주곡을 포함한 실내악곡이다. 윤이상이 ‘교향
곡’이라는 장르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며 창작의 정점을 이루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서 실내악곡은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 및 음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55

악의 내면적 성격, 그리고 비르투오소적인 성격의 본질을 드러내는데 있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윤이상의 음악에서 큰 편성의 협주곡, 교향곡
및 관현악곡에 자주 등장하는 독주 및 실내악적 편성 부분 역시 그의 음악
적 정체성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윤이상에게 독주곡을 포함한 실내악곡은 그가 한국 전통음악의 ‘음’ 모델
에서 창안한 독창적인 ‘주요음’의 기운생동 하는 음의 특성을 토대로 하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유럽의 개별 악기들이나 악기들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탁월한 연주기법과 함께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최상의 장르라 할 수 있다.
윤이상은 특히 실내악 작품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여러 개별 악기의 독특한
주법 및 음색/음향에서 창안한 연주기법을 탁월한 연주기량을 가진 세계적
인 연주자들14)과의 협력 작업을 통해 실험하고, 그들의 창조적이고 비르투
오소적인 연주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악기가 가진 연주 및 표현가능성의
한계까지 밀고나간다. 작곡가들의 음향적 상상력은 연주자들에 의해 실현
되고, 이들에 의해 실현되는 악기들이 지닌 잠재적인 연주 가능성의 확대는
작곡가들에게 또 다른 음향적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하는 기본 토대
가 된다.

거대한 교향곡 프로젝트를 마친 이후 윤이상은 자신의 남은 삶과 음악에


대해 “70년을 넘게 살아온 나로서는 이제 스스로를 정리할 때”15)라고 말하

14) 윤이상의 음악을 열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연주한 탁월한 연주자들 중에는 첼로


의 지그프리트 팔름(Sigfried Palm, 1927.4.25.-2005.6.6)과 발터 그림머(Walter
Grimmer), 오보에의 게오르크 메어바인(Georg Meerwein, 1932-), 잉고 고리츠
키(Ingo Goritzki, 1939.2.22.-), 하인츠 홀리거(Heingz Holliger, 1939.5.21.-), 부
르크하르트 글래츠너(Burkhard Glätzner, 1943.5.29.-), 하프의 우어줄라 홀리거
(Ursula Holliger, 1937.6.8.-2014), 클라리넷의 에두아르트 브룬너(Eduard
Brunner, 1939.7.14.-2017.4.27) 등이 있으며, 이들 중 이미 세상을 떠난 연주자
들도 여럿 있다.
15) 김언호, “나의 삶, 나의 음악, 나의 민족”, 󰡔윤이상의 음악세계󰡕, 97쪽. 이 대담은
1988년 10월 한겨레신문의 요청으로 베를린 윤이상의 자택에서 언론인 김언호
와 윤이상이 가진 대담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56 음악과 민족 제55호

며, 실제로 자신의 삶과 음악을 개인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양방향에서


정리해 나간다. 그는 “민족문제를 제 일차적인 문제”16)로 삼고 개인으로서
또한 예술가로서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한다. 청
년 ․ 학생 ․ 노동자 등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양심의 부채”를
언급하며, 이들 영령들에게 바치기 위한, 동시에 그들의 ‘죽음’을 “우리 마
음에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품을 계획한다. 1988년에 이미 언급하고
있는 이 계획을 윤이상은 77세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작품 「화염속의 천사
와 에필로그」로 실현한다.
또한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며 창작에 영감을 제공한
연주가들, 어려울 때마다 헌신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주며 유럽에서 망명
예술가로서의 창작 활동을 가능하게 했던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여 헌정한다.17) 윤이상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16) 최성만 저, 홍은미 편역, 위의 책, 107쪽.


17) 교향곡 작곡 이전 시기에도 작품의 헌정은 이루어졌지만, 교향곡 이후 시기는
거의 모든 작품이 연주가와 친구들에게 헌정된다. 예를 들면 대담집을 출간했던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의 77세 생일을 맞아 「거리」(Distanzen
für Bläser und Streichquintett, 1988)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귄터 프로
이덴베르크(Günter Freudenberg, 1923.9.16-2000.12.29)의 65세 생일을 축하하
며 「현악사중주 4번」(Streichquartett IV, 1988)이, 그의 악보 출판사 사장이자
오페라 대본을 썼던 친구 하랄드 쿤츠(Harald Kunz)를 위해 「투게더」(Together
für Violine und Kontrabaß, 1989)가, 자신의 악보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한스-유
르겐 라데케(Hans-Jürgen Radecke)를 위해 「클라리넷, 파곳, 호른을 위한 삼중
주」(Trio für Klarinette, Fagott und Horn, 1992)가, 베를린 축제위원회 원장이었
던 울리히 에카르트(Ulrich Eckhard, 1934.5.28-)의 60세 생일을 축하하며 2개의
「동서의 단편들」(Ost-West-Miniaturen für Oboe und Violoncello, 1994) 중 「동
서의 단편 Ⅱ」가 헌정되었다. 또한 연주자에게 헌정된 작품으로는 첼리스트 발
터 그림머(Walter Grimmer)를 위한 「첼로를 위한 7개의 연습곡」(Sieben Etüden
für Violoncello solo, 1993), 오보이스트 잉고 고리츠키(Ingo Goritzki, 1939.
2.22-)를 위한 「관악8중주」(Bläseroktett für zwei Oboen, zwei Klarinetten, zwei
Hörner und zwei Fagotte mit Kontrabaß ad libitum, 1994), 클라리넷티스트 에두
아르트 브룬너(Eduard Brunner, 1939.7.14-2017.4.27)를 위한 「클라리넷 5중주
Ⅱ」(Quintett für Klarinette und Streichquartett Nr. 2, 1994),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Heingz Holliger, 1939.5.21-)를 위한 「오보에 4중주」(Quartett für Oboe
und Streichtrio, 1994) 등이 있다.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57

한국 전통음악과 문화 및 고유한 정신을 알맹이로 하는 독창적인 음악을 통


해 절대적 순수, 꿈과 이상 및 동서의 화합, 무엇보다도 세계 및 조국의 평
화와 인간정신의 해방을 추구한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함께
기여한 연주가와 친구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과 정신을 자신의 음
악과 함께 (유럽 현대)음악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희망이자 간절한
염원이었던 “나의 고국 땅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과 “내 조상이 살았고 우
리에게 물려준 땅에 묻히는 것”18), 돌보지 못한 조상의 묘를 찾아 사죄하고
참배하는 것, ‘고향과의 화해’는 자신의 명예회복에 ‘사상 전향문’의 조건을
내건 한국 정부와 끝까지 화해하지 않음으로 이루지 못했다.

Ⅳ. 마지막 세 작품: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

창작의 마지막 해인 1994년 윤이상의 77세 생일을 기념하여 예음문화재


단이 기획한 9월의 대규모 ‘윤이상 음악축제’19)를 기해 윤이상의 38년 만의
귀국이 추진되었다. 이는 1991년 9월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하고,
1993년에는 문민정부(김영삼 정부)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1994년에는 그
해 7월에 개최하기로 합의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1994.7.25-27일 열기로
예정)이 추진되는 분위기 가운데 기획된 것이었다. 윤이상도 독일의 통일
등 1990년 세계적인 냉전이데올로기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에 이러한 정치
적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더 이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1994.7.8)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고, 이어 남한에서 주사파 논쟁 등 극단적인 반공이데올로기의 등장
으로 인한 이데올로기 싸움이 극렬해지자 정부는 윤이상에게 귀국의 조건

18) 최성만 저, 홍은미 편역, 앞의 책, 108쪽.


19) 예음문화재단이 기획한 1994년 ‘윤이상 음악축제’의 내용에 관해서는 최애경,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우주적 음향흐름’: 윤이상의 「에필로그」(1994)”, 󰡔윤
이상의 창작세계와 동아시아 문화󰡕, 80쪽, 각주 2 참조.
158 음악과 민족 제55호

으로 공개적인 ‘사상 전향문’을 요구하게 된다. 윤이상은 그러나 남과 북이


똑같이 하나의 조국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그토록 간절하게 염원
했던 고향으로의 귀국을 완전히 포기한다. 베를린에서도 그의 한국 귀국을
분신으로 막겠다는 사람들로 병든 노령의 윤이상은 찢기고 또 찢기며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받는다.20)
큰 충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 윤이상은 퇴원 하고 얼마 후
인 9월에 가족과 함께 휴양지인 하르츠(Harz)로 떠나 여기서 한 달여간 머
무는 동안 그의 마지막 세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37년간의 창작 작업을 마무
리한다. 「클라리넷 5중주 Ⅱ」와 「오보에 4중주」 그리고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가 이 시기에 탄생한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이다.

1. 작품 탄생 배경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 중 「클라리넷 5중주 Ⅱ」와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는 모두 일본에서의 위촉 작품이다.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
」는 위촉과 무관하게 이미 구상을 마치고 작곡되고 있었으므로, 엄밀한 의
미에서 위촉에 의한 작곡은 「클라리넷 5중주 Ⅱ」 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클라리넷 5중주 Ⅱ」는 1995년 일본 기타큐슈 페스티벌(Kitakyushu
International Musik Festival 1995) 위촉으로 1994년 9월 27일~10월 8일에
작곡되었다. 에두아르트 브룬너에게 헌정21)된 이 작품은 예정된 초연 날자
와 장소를 바꾸어 베를린에서 1995년 9월 26일 베를린 축제주간 중에 브룬
너와 장 시벨리우스 사중주단(Jean Sibelius Quartett)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20) 1994년 윤이상의 귀국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하)󰡕,


287쪽 이하 참조.
21) 브룬너 자신의 위촉으로 작곡된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Konzert für
Klarinette und kleines Orchester, 1981)도 브룬너에게 헌정되어 초연된 곡으로 매
우 어려운 연주기술과 기법(멀리 떨어진 음정간의 트레몰로, 1/4음 글리산도 등)
등이 그의 화려하고 실험적인 연주를 위해 시도되었다. 일본 쿠사쓰 국제 여름
음악제 위촉 작품인 「클라리넷 5중주 I」(1984)도 브룬너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59

병중에 있던 작곡가도 이 초연 연주에 참석하였다. 이 음악회가 윤이상이


살아생전 공식적으로 참가한 마지막 연주회였으며, 작곡가는 이후 11월 3일
세상을 떠난다.
「클라리넷 5중주 Ⅱ」에 이어서 윤이상은 곧바로 1994년 10월 10일~16일
「오보에 4중주」를 작곡하여 그의 음악의 전문 연주자인 하인츠 홀리거에게
헌정22)한다. 「오보에 4중주」는 그의 마지막 세 작품 중 유일하게 위촉 없이
작곡되었다. 오보에와 현악삼중주를 위한 작품의 창작 계획은 1992년에 이
미 언급되고 있다. 1992년 윤이상의 75세 생일을 기념하여 ‘하노버 현대음
악협회’(Hannoversche Gesellschaft für Neue Musik e. V.)는 그에게 실내악
및 관현악 작품을 각각 1곡씩 위촉했고, 윤이상 기념논문집(Isang Yun -
Festschrift zum 75. Geburtstag 1992)의 발행과 함께 그를 기리는 음악회와
강연(“Hommage à Isang Yun”)을 10월 3일~6일까지 4일 동안 열었다. 윤이
상은 음악회 기간 동안 가진 대담에서 자신은 거의 창작의 마지막에 이르렀
고(“ziemlich am Ende meines Komponierens”), 이제는 건강관계로 아주 가
까운 지인들이 부탁한 곡만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에 아직
‘현악3중주’가 없음을(“Außerdem fehlt noch ein Streichtrio.”) 언급했다.23)
이후 윤이상의 작품목록에 ‘현악3중주’가 없는 것으로 보아 「오보에 4중주」는
윤이상이 원래 생각했던 편성에 오보에를 추가해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작곡가의 사후(1995년 11월 7일)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었으며,
오보에는 헌정자인 홀리거가 직접 연주하였다. 마지막 두 실내악 작품의 헌
정자인 에두아르트 브룬너(1939-2017)와 하인츠 홀리거(1939- )는 둘 다
1939년생으로 1994년은 그들이 55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22) 「이중협주곡」(Doppelkonzert für Oboe und Harfe mit kleinem Orchester, 1977),
「공간 Ⅱ」(Espace Ⅱ für Violoncello und Harfe mit Oboe ad libitum, 1993) 등이
하인츠와 우어줄라 홀리거 부부를 위해 작곡되었다. 윤이상의 거의 모든 하프곡
은 우어줄라 홀리거를 위해 씌어졌다.
23) 1992.10.5. ‘HAZ’(Hannoversche Allgemeine Zeitung)에 실린 Volker Hagedorn
이 작성한 “Im Dunkeln etws antasten-Der 75jährige Komponist Isang Yun im
Gespräch” 기사 참조.
160 음악과 민족 제55호

마지막 작품인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미 오래전부터 작곡가가 계획했던 작품이다. 1994년 윤이상은 병과 노령으
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계획했던 이 곡의 작곡을 서둘렀다. 때마
침 일본의 ‘아시아 음악 포럼’(Asia Music Forum)에서 1995년 ‘아시아의 음
악과 정신’이라는 주제 하에 열리게 될 음악회를 위해 윤이상에게 작품을
위촉했고, 윤이상은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의 뜻과 일치해 이 위촉을 받아
들인다. 연주자들에게 헌정된 다른 두 작품과 달리 마지막 작품은 작곡가가
자신의 “동포를 위해 쓴 최후의 관현악곡”24)이다.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된
「화염 속의 천사」는 첫 번째 부분(마디 1-72)이 8월 말에 완성되었고, 나머
지 두 부분의 작곡은 귀국(예정일은 1994년 9월 2일)이 코앞에서 무산된 후
건강의 악화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작곡을 이어가 전체 작품은 윤이상의 77
세 생일인 1994년 9월 17일 완성되었다. 이 곡에 이어서 바로 연주하게 되
어있는 「에필로그」는 「오보에 4중주」 작곡 이후 10월 말 경 하르츠에서 작
곡된 마지막 작품으로 확실시되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작곡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자필본에도 작곡시기를 밝히지 않았고, 작곡시기에 대한
물음에도 침묵하며 이 마지막 곡의 탄생시기를 비밀로 남겨두고 있다.25)

2. 형식 구성 방식의 유사성과 기억의 ‘변주’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 중 두 개의 실내악곡은 모두 단일 악장으로 구성

24)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하)󰡕, 299쪽. 윤이상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동포를


위해 쓴’ 관현악곡은 이 작품을 포함해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1981)와 칸타
타(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6/87)가 있다.
25) 「에필로그」의 탄생배경에 관해서는 최애경,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우주적
음향흐름’: 윤이상의 「에필로그」(1994)”, 80-81쪽; Walter-Wolfgang Sparrer, “In
memoriam Isang Yun. Ein kleiner Bericht zu seinem letzten Jahr und seinen
letzten Werken”, in Musik Texte Nr. 62/63, Jan. 1996, 88쪽. 「에필로그」 자필본
은 작곡가의 사후(1995년 11월 7일)에 딸 윤정 씨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사용하지 않은 오선지 묶음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61

된 곡들로, 표제가 붙지 않은 ‘Quintett’, ‘Quartett’이라는 장르 편성을 악곡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각 리드를 사용하는 목관악기 하나(클라리넷
과 오보에)와 현악4중주 및 현악3중주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클라리
넷5중주 Ⅱ」와 달리 「오보에4중주」는 윤이상이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악기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곡이다. ‘교향시’로 작곡된 마지막
관현악곡 역시 지금껏 시도되지 않은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
로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유럽의 전통적인 ‘교향시’와 달리 편성과 음악적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악장, 또는 악곡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소프라
노 솔로, 여성3부 합창, 다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에필로그」는 독립적으로
도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교향시 「화염속의 천사」의 종결부 악장/악곡인
동시에 윤이상의 전체 창작 작업과 작품을 종결하는 성격의 곡이기도 하다.
예외적 성격과 역할의 「에필로그」를 제외한 세 작품에서 윤이상은 각각
의 악곡의 새로움을 모두 공통적인 형식 구성 방식을 사용하여 실현하고 있
는데, 세 곡은 모두 뚜렷하게 구분되는 빠름-느림-빠름의 대칭적 구성의 3
부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표3> 참조!). 악곡의 길이에서 「클라리넷5중
주 Ⅱ」는 총 241마디, 약 21(22)분의 길이로 가장 길고, 나머지 두 곡은 각각
188, 170마디로 약 16(17)분, 그리고 마지막 곡에 부가된 「에필로그」는 총
52마디, 약 6분의 길이로 되어있다.
마디수의 배치를 살펴보면 두 개의 실내악곡은 각각 100-58-83마디,
80-48-60마디 구성으로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느린 중간부분은 두
곡 모두 마디수로는 가장 짧지만 세 부분 중 연주시간은 가장 길다. 「화염
속의 천사」는 72-32-66마디 구성으로 느린 중간부분이 두 실내악곡과 다르
게 길이나 연주시간에 있어 비교적 짧은 비율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가된
느린 「에필로그」로 인해 이 곡 역시 느린 부분이 가장 길게 확대되어 있다.
세 곡 모두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공통적인 특성은 마지막 동적인 성격의
빠른 부분에서 곡을 종지하기 전 다시 한 번 곡 중간의 느린 부분이 짧게
회상되며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표3>의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 참조!).
162 음악과 민족 제55호

이와 같이 세 곡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느린 부분의 연주 길


이의 확대, 그리고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회상/기억을 통한 강조
는 윤이상의 악곡에서 느린 중간 부분이 표현내용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
분임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표3> 마지막 세 작품의 형식 구성 및 구성 요소의 배치


A B A'
159- 213-
클라 마디 1-80 81-100 101-158 222-241
212 221
리넷
5 템포 ♩ca.66 60 52 68 52 72
중주 박자 5/4 6/4 4/4 6/4 4/4
II 연주시간 7'33" 8'05" 6'19"
129- 177-
마디 1-80 81-128 181-188
오보 176 180
에 템포 ♩ca.60 52 60
4
박자 4/4 6/4 4/4
중주
연주시간 5'17'' 7'39'' 4'00''
13- 25- 29- 37- 45- 65- 105- 113- 133- 153- 161-
마디 1-12 73-104
24 28 36 44 64 72 112 132 152 161 170
♩ca.
템포 60 56 60 68 72 52 68 60 52 56
화염 56
속의 박자 6/4 5/4 4/4 5/4 6/4 4/4 5/4 6/4
천사
연주시간 6'40'' 4'10'' 6'28''
&
에필 마디 1-52
로그 템포 ♩ca.52
박자 6/4
연주시간 6'00"

마지막 세 작품의 음악적 구성 요소 중 박의 기본단위는 모두 4분음표로,


이는 초기 창작 시기부터 시작해 윤이상의 거의 모든 음악에서 발견되는 특
징이다. 박자는 4/4, 5/4, 6/4의 세 개의 박자 유형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
또한 몇 개의 악곡을 제외하고는 70년대 이후 윤이상의 거의 모든 악곡을
특징짓는 박자들이다. 박자와 연관된 템포 및 곡의 성격에 있어서 일반적으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63

로 4/4는 매우 동적인 성격의 빠른 템포, 5/4는 유동적인 성격의 보통빠르


기, 6/4은 매우 정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의 느린 악곡을 특징짓는다. 마지막
세 작품의 경우 6/4은 템포 ♩ca. 52, 56, 60이 사용되고 있으며 4/4와 5/4는
♩ca. 60, 66, 68, 72의 사용으로 박자만 다를 뿐 동적인 성격과 템포는 공통
적이다. 개별 악곡에 사용되고 있는 템포를 살펴보면 「클라리넷5중주 Ⅱ」
와 「화염 속의 천사」는 템포 ♩ca. 52~72까지, 「오보에4중주」는 ♩ca. 52와
60의 두 종류의 템포가, 「에필로그」는 ♩ca. 52 한 종류의 템포가 사용되고
있다. 악곡을 구성하는 다이내믹에 있어서 바깥쪽의 빠른 부분은 f 영역이
지배적이며, 느린 중간부분은 대조적으로 p 영역이 지배적이다.
다음의 마지막 세 작품에 대한 간략한 분석적 고찰에서는 곡의 진행 순서
를 따르지 않고 먼저 각 곡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의 특성을 서술하고 난 후,
기억의 ‘변주’의 핵심부분이라 할 수 있는 느린 중간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
겠다.

1) 「클라리넷5중주 Ⅱ」
빠름(5/4) - 느림(6/4) - 빠름(4/4-6/4-4/4)으로 구성된「클라리넷5중주 Ⅱ」
는 전체 현악기가 ff 의 피치카토로 강하게 연주하는 C♯으로 시작한다. 이어
저음현악기와 고음현악기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짧은 음가로 상행하는 피
치카토 음향의 선율적 제스처가 연주된 후 클라리넷이 등장하여 저음역에
서 시작해 고음역까지(f~b2) 화려한 제스처로 빠르게 상행해 음을 길게 지
속한다. 이후 클라리넷은 넓은 폭으로 상행한 후 다시 하행하는, 또는 하행
한 후 다시 상행하는 제스처의 활모양의 선율선과 한 음을 길게 지속하는
긴 선 등 클라리넷의 넓은 음역을 활용한 다양한 서정적인 선율선을 짧은
장식적 음형, 악센트, 1/4음 글리산도, 트릴 등의 표현수단을 통해 다채롭게
형상화한다. 피치카토와 아르코(arco) 음향을 대조적으로 반복하는 현악4중
주는 화려하게 연주되는 서정적인 클라리넷의 선율선을 반주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면서도 때로는 클라리넷과 결합하여 이중적 선율선을 만들어가
164 음악과 민족 제55호

기도 한다.
처음부터 강한 피치카토 음향을 연주하던 현악4중주는 마디 17에서 - 숫
자 17은 윤이상의 생년과 생일에 들어있는 숫자(1917. 9. 17)로 윤이상을 상
징하는 숫자임 - 아르코로 연주하는 부드러운 선율선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협주적 독주악기 풍으로 연주하던 클라리넷은 도약하는 E음(e1-e2-f2)을 연
주하며 현악기와 결합한다. 마디 17-18에서 윤이상은 또한 헌정자인 에두아
르트 브룬너(EDuArD Brunner)를 상징하는 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클라리
넷: E, 제2바이올린: Bb(=B)-A, 제1바이올린: D-A).
전체적으로는 C♯, A 음이 자주 등장하는 ‘주요음’으로 곡의 마지막은 클
라리넷이 e3음과 a4음을 장식적으로 연주한 후 저음에서 고음까지 장식을
동반한 A음(a, a1, a2 a3)을 강한 다이내믹으로 연주하며 마친다. 현악4중주
는 저음과 고음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연주되고, 마지막에는 저음현악기(비
올라와 첼로)는 a minor 코드를 상행하는 아르페지오로 연주하고, 고음 현
악기(두 개의 바이올린)는 c2와 f2음을 연주한다.
「클라리넷5중주 Ⅱ」의 느린 부분(마디 101-158)은 다시 ‘정-동-정’ 성격
의 20-25-13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낮은 첼로 솔로를 시작으로 현악기의
부드러운 노래 후 클라리넷의 ‘독백’으로 A음이 낮은 샬루모 음역(a)에서
아주 조용하게 반복적으로 연주(마디 105-106)된다. 이어서는 다시 높은 a2
음으로 장식을 동반해 큰 폭으로 상승하고 마지막에 다시 큰 폭으로 하강해
출발음인 a로 돌아와 첫 부분을 마친다. 중간부분에서는 느린 가운데서도
매우 장식적인 선율선이 f 로 연주된 후 다시 고요하게 낮은 음역에서 마친
다. 마지막 부분에서 클라리넷은 계속 낮은 음역에 머물며 첼로와의 이중주
(마디 149-151)를 펼치고 핵선율 e-a를 반복한 후 마지막에 f-ab을 연주하고
사라진다. 첼로가 페르마타가 붙은 E음을 세 번 반복하여 느린 부분의 종지
를 강조한다.
이 느린 부분은 마디 213-221의 9마디동안 다시 회상되는데, 여기서는 바
이올린과 비올라가 하모닉스 음을 통해 천상의 소리를 연주하는 동안 클라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65

리넷과 첼로가 낮은 음역에서 고요하게 노래된다. 거의 매 음마다 페르마타


가 붙어 있어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듯한 고요 가운데 클라리넷은 e2, 첼로
는 A를 다른 현악기의 하모닉스 음과 함께 길게 울린다. 마지막은 하모닉스
의 울림이 지속되는 가운데 첼로가 C♯을 연주하고 마친다.

2) 「오보에4중주」
「오보에4중주」 역시 빠름(4/4) - 느림(6/4) - 빠름(4/4)의 구성을 갖는다.
오보에가 핵선율 c♯1-e1의 3도 트릴 후 악센트를 동반한 짧은 음가로 끝맺는
음형으로 시작하며, 여기에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차례로 2도 하행 음형을
글리산도(b-a)와 트릴(c1-b)로 응답한다. 네 개의 악기가 독립적으로, 또는
두 개씩 짝을 이루며 상승하는 힘과 하행하는 힘이 균형을 이루며 전개되며
트레몰로, 트릴, 1/4음 글리산도, 짧은 꾸밈음, 악센트, 글리산도와 비브라토
의 결합, 하모닉스 등 다양한 형상화수단을 통해 유동하는 선율선들이 전개
된다. 마디 17에서 20까지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이중주가 처음으로 등장하
는데, 오보에는 주요음 a2음을 글리산도 및 짧은 음형들로 수식하며 연주하
고, 바이올린은 매우 빠른 리듬으로 b2(=h2)음과 e3음을 연주한다. C♯, A음과
함께 이 곡에서는 B(=H), E, G음이 자주 등장한다(예를 들어 첼로: 마디
15-16, 21; 오보에: 마디 55-57 등). 「클라리넷5중주 Ⅱ」에서와 마찬가지로
윤이상은 이 곡에서도 헌정자인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를 상징하
는 음들을 중요한 음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곡의 마지막 부분(마디 183부터)
에서 오보에는 b1(=h1)에서 e3까지 빠르게 상승하는 음형을 반복하며, 마지
막 마디에서 다시 한 번 이 음형을 바이올린의 상승하는 음형과 짝을 이루
어 강조함으로써 끝맺는다. 마지막에는 바이올린과 오보에가 b2(=h2)와 e2를
트릴로 연주하고, 비올라와 첼로는 저음으로 하강하는 아르페지오 음형으
로 피치카토로 연주함으로써 상승하는 힘과 하강하는 힘의 균형을 이루며
마친다. 다양한 연주기법을 통하여 전통적인 한국 악기인 피리, 또는 거문
고 등의 음향을 만들어 낸다(예를 들어 첼로에서 마디 160, 167의 왼손 피
166 음악과 민족 제55호

치카토, 마디 165의 악센트를 동반한 짧은 음과 글리산도와 비브라토로 미


끄러지는 음형 등).
「오보에4중주」의 느린 부분(마디 81-128)에서는 오보에도 약음기를 끼고
연주한다. 첼로와 비올라의 핵선율 Ab-d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클라리넷5
중주 Ⅱ」에서 클라리넷이 매우 넓은 음역에서 움직이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음향/음색을 들려줬던 것과 달리 오보에가 주로 고음역에서 연주된다. 페르
마타가 등장하는 마디 117-118마디를 제외하고는 아주 여린 다이내믹이 요
구되는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좁은 음역에서 움직이는 선율의 거의 모든 음
과 음사이가 글리산도로 이어지며 쉼 없이 흐르는 고요한 음향흐름을 만들
어낸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자주 하모닉스를 글리산도로 연주하는 가운
데 오보에와 첼로의 이중주가 펼쳐진다. 중간 중간 첼로는 2도하행의 글리
산도 제스처 뒤에 C♯을 피치카토로 반복하고(마디 84, 87/88, 89, 102/103)
마지막에도 이 음향 제스처를 (피치카토 대신 아르코로)반복한 후, C♯을 페
르마타로 길게 연주하며 느린 부분을 마친다. 전체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매우 빠른 움직임과 f-fff 의 강한 다이내믹 사이에 pp-p 의 다이내믹과 함께
대조적으로 삽입된 마디 177-180은 서서히 조금씩 상승하는 선율선을 고요
하게 글리산도로 연주하며 앞의 느린 부분의 고요한 음향흐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한다.

3) 「화염속의 천사와 에필로그」


관현악곡 「화염속의 천사」는 A(24-20-28) - B(32) - A'(28-20-18)의 구성
으로, 가운데 느린 B부분을 중심으로 바깥부분이 3부분으로 이루어져 대칭
을 이룬다. 1991년 5월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젊은이들의 분신과 죽음이라
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곡
은 A부분은 순진무구한 젊은이들의 생활, 인간적 갈등과 내면의 동요, 사회
적 갈등의 고조와 분신의 결심을 묘사하고, B부분은 분신을 행동으로 옮기
기 전 젊음의 순수한 이상을 지닌 ‘천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내면적 질문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67

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분신의 장면, 이를 목격하는 대


중의 충격,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는 제의적 장면을 극
적으로 차례로 묘사하고 있다. 각 부분은 장면의 성격을 대변하는 하나의
악기 그룹에 의해 시작되는데, 전체 8개의 극적 장면은 각각 저음현악기(마
디 1), 호른(마디 25), 현악기(마디 45), 잉글리시호른 솔로(마디 73), 하프
솔로(마디 105), 금관이 빠진 오케스트라 그룹(목관, 타악기, 현악기; 마디
133), 제의적 음향의 타악기(탐탐, 심벌즈, 팀파니; 마디 153)가 장면의 전환
을 알리며 전개된다.
앞의 실내악곡들과 다르게 이 작품은 Bb-Ab의 글리산도로 2도 하행하는
저음현악기의 핵선율로 시작된다. 이 음향제스처는 그의 「교향곡 1번」 마디
31에 나오는 저음현악기의 음향제스처(Bb-A)를 연상시킨다. 목관, 금관, 팀
파니 편성의 마디 17-20에서는 오보에 솔로가 등장하고 파곳은 G-Eb(=Es),
A-F, A-D♯(=Es)의 하행하는 음형의 핵선율을 연주한다. 이곳에 윤이상은 자
신을 상징하는 음들(iSAnG)을 등장시키고 있다. 전체 악기군이 등장하는
마디 21에서 24까지 저음현악기군에서는 주요음 C♯이 연주된다. 마지막 세
마디의 서서히 상승하는 현악기군과 목관악기군(트릴)의 음향 제스처는 마
지막에 G♯을 최고음으로 하는 화음(c♯7 minor)을 연주하는 동안, 금관악기는
유니슨으로 하행하는 2도 음향제스처(B-A) 후 저음부에서 A음을 강하게 연
주한다. 이어 현악기와 하프는 각각 트릴과 트레몰로로 앞에서 울렸던 음향
을 계속 이어가며 사라져간다. 마지막 세 마디 종지부분은 「교향곡 4번」의
마지막 악장인 2악장의 종지부분(마디 167-170)을 연상시킨다.
「화염속의 천사」의 느린 B부분(마디 73-104)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분신
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 젊음의 순수한 이상을 지닌 ‘천사’가 스스로에게 던
지는 내면적 질문을 형상화하고 있는 부분이다. 20-12마디 길이의 두 부분
으로 이루어진 느린 부분은 잉글리시호른의 어두운 음색으로 부드럽게 연
주되는 C♯으로 시작해, 오보에가 A음을 연주하고, 이어 첼로, 클라리넷, 비
올라, 호른, 플루트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내면적 질문’을 이어간다. 여기
168 음악과 민족 제55호

서 주된 역할을 하는 음은 윤이상에게 절대와 순수를 상징하는 A음이다. 첫


번째 부분의 마지막에는 첼로가 다시 솔로로 등장하고 이어 두 번째 부분에
서 트럼펫이 첼로의 음 제스처를 이어 받는다. 파곳 솔로가 등장한 후 클라
리넷과 파곳이 대화를 이어갈 때 저음현악기(첼로, 콘트라베이스)에서 악곡
시작부분의 글리산도 음향제스처(Bb-Ab)를 기억하게 하는 A-Bb-A의 글리산
도 음형이 울린다. 마지막에 다음에 이어질 분신을 알리는 트럼펫의 시그널
로 마친다. 제 몸에 불을 붙이고 높은데서 떨어지는 ‘화염속의 천사’들(마디
129-132)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충격에 싸인 모습이 그려진 후 젊음/천사의
‘순수한 이상’은 마디 153-161에서 다시 기억된다. 먼저 세 마디 동안 타악
기(팀파니, 탐탐, 심벌즈)만의 제의적 음향이 고요하게 울리고 난 후, 순수
한 동질의 음색을 가진 약음기를 낀 세 개의 현악기 솔로(두 개의 바이올린
과 비올라)가 젊은 청년들의 영혼을 노래한다. 제1바이올린은 a-eb1(=es1),
bb1으로 시작되는 ‘순수’한 영혼의 노래를 모든 고요가운데(tranquillo) 부드
럽고 슬프게(dolciss., elegico) 노래한다. 제2바이올린, 비올라와 함께 헤테
로포니적으로 연주되는 제1바이올린의 노래는 다시 b1부터 시작해 높이 상
승해 올라가며 ‘절대적 순수’를 상징하는 a3에 도달해(마디 159) 페르마타로
다섯 번에 걸쳐 반복된 후 글리산도로 다시 c4까지 높이 상승한다.
「화염속의 천사」에 이어 연주하게 되어있는 마지막 곡 「에필로그」의 분
석은 지금까지 다룬 마지막 세 작품의 형식 형성의 핵심인 ‘기억과 상징’과
연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3. 기억과 상징

하늘로 올라간 ‘화염속의 천사’의 영혼은 「에필로그」에서 바이올린의 c♯2


로 연결된다. ‘하늘의, 천상의’라는 뜻을 가진 첼레스타(Celesta)는 천상의
하모니/고요를 표현하는 f♯2-c♯3의 5도 음정으로 바이올린의 시작음을 감싸
며 전혀 다른 음향 세계의 서막을 알린다. 윤이상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69

서 선택한 박자기호와 템포는 6/4박자와 ♩ca. 52다. 또한 다이내믹은 거의


p 의 영역이 지배적이며, 악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약음기를 끼고 매우 부드
럽게 연주한다. 앞에서 고찰한 세 작품의 느린 부분이 대칭적으로 구성된
세 부분의 중간부분으로서 씌어졌다면, 「에필로그」는 전체적인 하나의 악
장 내지는 악곡으로 독립되어 있다. 전체 여섯 개의 부분(마디 1-7, 8-16,
17-28, 29-36, 37-44, 45-52)으로 이루어진 「에필로그」는 A(28=7+9+12) -
B(24=8+8+8), 또는 A(16=7+9) - B(20=12+8) - A'(16=8+8)의 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2부분으로 볼 경우 각 부분은 세 개의 작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고, 3부분으로 볼 경우 각 부분은 두 개의 작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 둘
과 셋 내지는 셋과 둘이 서로 보완적으로 짝지어져 있는 형식 구성이다.26)
각 부분마다 목표음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서서히 상승해 가는 ‘거시적’ 선
율선은 소프라노 독창에 의해 eb1(=es1)에서 시작해 g2를 거쳐 a2의 최종 목
표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세 개의 음은 윤이상 자신(iSAnG)을
상징하는 음이기도 하다. 첼로 역시 자신을 상징하는 악기로 차례차례 등
장하는 노래성부와 다섯 악기들(마디 1: 바이올린-첼레스타; 마디 2: 합창;
마디 3: 소프라노 솔로; 마디 13: 오보에; 마디 14: 플루트; 마디 16/17: 첼
로)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마디 16/17에 등장한다. 숫자 17 역시 윤이상을
상징한다. 첼로는 마디 17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부분의 시작(마디 29, 마디
37)에 등장하며, 모두가 자신을 상징하는 음인 Eb(=Es), eb(=es), a1을 부각
시킨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역을 넘어 모든 억압과 폭력에 분신과 죽음으로 저
항한 세계 곳곳의 ‘화염속의 천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위
한 진혼곡 성격의 「에필로그」에서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의 근원으로 돌아
간다. 그는 이 곡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우주적 음향의 한편을 떼어낸 것이
라 말할 수 있는, 정신에서의 울림’27)인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몸속 깊은

26) 「에필로그」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최애경,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우주적 음


향흐름’: 윤이상의 「에필로그」(1994)”, 93쪽 이하 참조.
27) 윤이상, “나의 음악을 듣는 이를 위하여”, 󰡔내 남편 윤이상(하)󰡕, 186쪽 참조.
170 음악과 민족 제55호

곳 보이지 않는 내면에 흐르고 있는 ‘우주적 음향’을 소프라노 솔로, 여성3


부합창, 다섯 개의 악기(첼레스타,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의미하는 여성3부합창과 이들의 영혼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다섯 악기는 ‘죽음’에 대한 ‘책임 있는
기억’이라는 작품의 내용과 함께 그의 초기작인 「영상」(Images für Flöte,
Oboe, Violine und Violoncello, 1968)을 기억하게 한다. 「영상」은 평양에 있
는 강서고분 벽화인 「사신도」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으로 윤이상은
1963년 고구려시대에 만들어진 이 벽화를 보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이것
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
며,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삶과 음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부분은 전체
요 전체는 곧 부분이다’, 또는 ‘다원성 안의 일원성’ 내지는 ‘일원성 안의
다원성’28)으로 표현할 수 있는「사신도」의 미학은 곧 윤이상 음악미학 및
형식 형상화의 핵심이다. “죽음을 뛰어넘어 영혼의 소리를 매개로 다시 새
로운 삶을 계시하는”29) 윤이상의 마지막 작품 「에필로그」는 한마디로 그의
상처 입은 삶에서 나온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과거와 미래
를 연결하는 ‘기억과 상징’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기억과 상징은 「에필로그」를 포함한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에서 형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을 상징하는 수 17은 마디 17로 표출
되고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필로그」에서뿐만 아니라 「클라리
넷5중주 Ⅱ」, 「오보에4중주」, 「화염속의 천사」에서도 마디 17은 항상 음악
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시작되는 곳이다. 또한 각 곡에 사용된 음상징들은
두 곡의 실내악의 경우 각각의 헌정자를 상징하는 음들이, 마지막 관현악곡
에서는 윤이상 자신을 상징하는 음들이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윤이상을

28) 신라시대 승려인 의상의 화엄사상의 요지의 하나인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


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 즉 ‘하나 속에 일체가 있으며 일체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다.’라는 사상은 「사신
도」뿐만 아니라 윤이상 음악을 관통하고 있는 미학적 핵심이다.
29) 최애경, 위의 글, 87쪽.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71

상징하는 악기인 첼로는 두 실내악곡에서 각각 클라리넷과 오보에와 결합


되어 이중주를 펼친다. 마지막 세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C♯과 A음은 중심음
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C♯은 주로 악곡을 시작하는 음으로, A음은
마치는 음으로 사용되고 있다.30) 윤이상에게 A음은 인간이 도달하고자 염
원하는 절대 자유, 순수, 이상을 상징하는 근원적인 음이다. 특히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에서 느린 형식 부분은 그의 몸속에 흐르는 내면적 기억, 절
대와 순수에 대한 염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Ⅴ. 나가며

윤이상의 유럽에서의 본격적인 창작 작업은 초기부터 자신의 내면에 흐


르고 있는 소리에 대한 기억과 함께 시작되었다.31) 자신의 내면에서 흐르는
소리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자연이 들려준 소리, 고향에서 살던 때
그가 경험한 삶과 문화를 통해 그의 몸속에 자연스럽게 기억된 소리들이다.
이러한 기억들로부터 샘솟은 윤이상의 음악 하나하나는 ‘기억의 흐름과 변
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이상에게 작곡이란 끊임없이 ‘새로운 비밀을 찾고 발견하는’ 작업이다.
자신이 그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리던 고향으로의 귀국이 무산된 후 병
든 몸으로 죽음을 예감하는 고통 속에서 작곡된 마지막 세 작품에서도 윤
이상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클라리넷5중주
Ⅱ」는 실내악 작품이면서도 클라리넷을 화려하고 기교적인 협주적 독주악
기 풍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보에4중주」는 처음 시도하는 악기들의 결합

30) Bb으로 시작하는 「화염속의 천사」의 경우 마디 9에서 저음현악기에 핵선율 C♯


-E가 등장한다. 「오보에4중주」의 마지막은 A음 대신 헌정자를 상징하는 E음과
B(=H)음으로 마치고 있다.
31) 윤이상의 음악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 글은 최애경, “미래를 향한 기억: 윤이상
음악에서 한국 문화의 위치와 의미”, 󰡔음・악・학󰡕 32, 75-101쪽 참조.
172 음악과 민족 제55호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그가 한국 전통음악의 음이 지닌 본질적 특


성 및 악기의 주법적 특성에서 출발해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지닌 다양한 연주가능성을 두 비르투오소 연주자를 통해 악기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화염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는 편성자
체를 달리하는 두 개의 악곡을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에
필로그」는 악기편성에서부터 곡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체 작품의 미
학적 ․ 철학적 원리이자 한국 문화의 구성원리라 할 수 있는 천지인 삼재(三
才)사상, 역(易)사상, 음양오행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윤이상은 1992년 75세가 되는 해에 자신의 마지막 창작적 관심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이제 더욱더 근본적인 것에 나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는데,
이는 더 많은 평화,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많은 순수(純粹)와 온정(溫情)을
이 세상으로 지어 나르기 위함이다.”32)라고 하였다.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
품에서 느린 중간부분은 가장 긴 연주시간으로 다른 부분보다 강조되고 있
고, 또한 곡의 마지막 부분에 다시 한 번 강조되며 기억됨으로써 기억과 내면
세계와 연관된 그의 음악적 표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느린 중간부분은
모두 동일한 음악적 구성요소(6/4, ♩ca. 52, dolce, con sordino, 여린 다이내
믹의 지배, 페르마타 등)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독주 악기의 독백 또
는 자신을 상징하는 첼로와의 이중주, A음의 주요음적 특성을 통해 ‘평화’,
‘아름다움’, ‘순수’, ‘온정’을 표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음악관을 토대로 하
고 있는 윤이상의 음악에서 이 느린 부분은 “정신이 우주전체와 지고의 단계
에서 직관적으로 합일”되는 순간의 ‘아름다움’33)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2도하행(Bb-A / Bb-Ab 등), 3도상행(C♯-E / C-Eb 등) 등과 같은 특정한 핵
선율과 주요음(특히 C♯과 A)의 반복과 변형은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에
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반복하며 변화하는 음제스처들은 그의 교
향곡에서도 매우 특징적인 것들이다. ‘주요음’ 모델에서 출발하는 윤이상의

32) 윤이상・발터-볼프강 슈파러 저, 정교철・양인정 역, 󰡔나의 길, 나의 이상, 나의


음악: 윤이상의 음악미학과 철학󰡕, 7쪽;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하)󰡕, 173쪽.
33) 윤이상, “민족문화와 세계여론”, 󰡔윤이상의 음악세계󰡕, 55쪽.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73

음악은 이러한 핵선율들의 다양한 결합과 변주의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흐


름을 이어가는 음악이다. 윤이상은 ‘주요음(향)’을 토대로 하는 자신의 음악
을 끊임없이 흐르는 우주의 음향과 같이 처음도 끝도 없이 다만 무한으로
흐르는 우주의 음의 한편을 떼어 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에서의 울림으
로 이해한다.34) 또한 그는 한 작품의 시작은 이미 울렸던 음의 연속이며,
마지막은 다시 미래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간다는 순환적 형식관을 따
른다. 이러한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음고적 요소가 아니라, 순간순간 다양
한 시김새적 표현수단을 통해 생성되는 음과 음향 그 자체의 생명력이며,
이 생명력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흐르는 음향흐름을 통해 지속된다. 바로 이
음의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윤이상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들의 창조적 해석능력이 요구된다. 윤이상이 마지막 두 개의 실내악 작품을
자신과 직접 소통하며 그의 많은 작품을 수없이 연주했던 소위 ‘윤이상 전
문연주자’들에게 헌정한 의도가 자신이 죽고 없어도 자신이 남긴 음악이 창
조적인 해석의 연주로 계속 이어져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는 않았을까. 윤
이상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에 발 딛고 서 있는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
akchoi88@hanmail.net

◉ 검색어: 윤이상(Isang Yun), 말년의 작품(Compositions in the


Later Years),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Aesthetics of Memory and
the Inner World), 기억과 상징(Memory and Symbols)

투고일자 심사(수정)일자 게재확정일자


2018. 2. 28 2018. 3. 1 - 3. 20 2018. 3. 25

34) 윤이상, “나의 음악을 듣는 이를 위하여”, 󰡔내 남편 윤이상(하)󰡕, 187-188쪽.


174 음악과 민족 제55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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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HICE, 1988.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상)・(하)󰡕, 창작과비평사, 1998.
일리야 슈테판 저, 송화숙 역, “창작 원리로서의 연속성. 윤이상 작품에 나타난 순환
적 연관관계에 대하여”, 󰡔윤이상의 창작세계와 동아시아 문화󰡕, 한국음악학
학회・윤이상평화재단 공동 엮음, 예솔, 2006, 101-116쪽.
최성만 저, 홍은미 편역, 󰡔윤이상의 음악세계󰡕, 한길사, 1991.
최애경, “유럽 음악의 장르 ‘교향곡’을 넘어서”. 󰡔음・악・학󰡕 9, 한국음악학학회, 세
종출판사, 2002, 265-294쪽.
______,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우주적 음향흐름’: 윤이상의 「에필로그」(1994)”,
󰡔윤이상의 창작세계와 동아시아 문화󰡕, 한국음악학학회・윤이상평화재단
공동 엮음, 예솔, 2006, 55-82쪽.
______, “미래를 향한 기억: 윤이상 음악에서 한국 문화의 위치와 의미”, 󰡔음・악・
학󰡕 32, 한국음악학학회, 예솔, 2017, 75-101쪽.

Ae-Kyung Choi, Einheit und Mannigfaltigkeit. Eine Studie zu den fünf Symphon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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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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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음악과 민족 제55호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기억과


내면세계의 미학

최 애 경

윤이상(1917-1995)은 자신의 음악을 집대성하는 총 다섯 개의 교향곡 작


곡(1982/83-1987) 을 끝마치고 나면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 음악
을 들으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1987년 그의 70세 생일
에 초연된 교향곡 5번 이후에도 윤이상의 창작활동은 1994년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의 전체 작품(총 119곡)의 약 30%에 해당하는 36개의
작품들(대부분이 실내악곡)이 교향곡 이후 칠십이 넘은 나이에 작곡되었다.
윤이상의 창작열은 생의 마지막 시기에 병과 힘들게 싸우면서도 꺼지지 않
았다. 1994년 9월 윤이상은 그가 간절히 염원하던 고향으로의 귀국이 성사되
기 바로 직전에 무산되자 심한 충격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자신
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써야 할 작품을 서둘렀다. 이렇게 탄생
한 윤이상의 마지막 세 작품은 「클라리넷 5중주 Ⅱ」, 「오보에 4중주」,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다. 이 작품들에는 자신의 음악적 근원에 대한 기억과
피안(彼岸)의 경지에 이른 듯한 내면세계가 형상화되어 있다. 본 연구는 자신
의 죽음을 예감하며 작품 창작에 열중한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을 ‘기억
과 내면세계의 미학’이라는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는 논문으로, 기억과 상징
의 방식을 통해 표현되는 그의 음악의 표현양식과 표현내용의 본질적 의미
를 분석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특집: 윤이상의 말년의 창작 작업 177

Isang Yun’s Compositions in the Later


Years of His Life: Aesthetics of Memory and
the Inner World

Ae-Kyung Choi

Isang Yun (1917-1995) said that he would like to rest with listening to
music after completing his five symphonic compositions (1982/83-1987) that
compiling his own music. However, even after the Symphony No.5
premiered on his 70th birthday in 1987, he continued his creative activities
until 1994. 36 works (mostly chamber music), about 30% of his entire
works (119 pieces), were composed after he was 70s. Sickness at the end
of his life could not keep him from his desire to composition. In September
1994, Isang Yun hastened to work on his composition because he felt that
his life is not long after his health was severly aggravated by a severe shock
when his return to his hometown was canceled.《Quintett für Klarinette und
Streichquartett II》,《Quartett für Oboe und Streichtrio》, and《Engel in
Flammen. Memento für Orchester mit Epilog für Sopran, dreistimmigen
Frauenchor und fünf Instrumente》are the last three compositions created in
this manner. In these works, the memories of his musical origins and an
inner world were shapes. This study illuminates the creation of the late years
of Isang Yun with a viewpoint of ‘Aesthetics of memory and inner world’.
It analyzes the essential meaning of expression tyle and contents.
대학생을 위한 음악교양서. 서양음악사, 한국의 창작음악,
전통음악, 음악미학, 음악학과 분과학, 한국의 대중음악등
이 실림(세종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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